특집 2.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산재은폐 고발 투쟁 /2015.10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산재은폐 고발 투쟁

-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정동석 노안부장 인터뷰 


선전위원회


산재은폐의 심각성을 얘기할 때,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의 산재은폐 고발 투쟁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의 산재은폐 실태조사는 2013년 시작되어 2015년까지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첫 번째 실태조사에서, 울산 동구지역 10곳의 정형외과 방문 조사, 사례 접수 등을 통해, 2주 동안의 조사에서 무려 106건의 산재은폐 사례가 무더기로 접수되었다. 2013년 총 3차에 걸쳐, 131건의 산재은폐를 고발했고, 2014년 4차(3월)와 5차(6~8월) 실태조사에서도 각각 83건, 32건의 은폐 사실을 확인했다. 올 해에도, 4월 20일부터 열흘간 울산 동구 지역 정형외과 10여 곳을 중심으로 산재은폐 실태조사를 벌여, 62건의 산재은폐 의심사례를 찾아냈다. 정동석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노안부장은 산재은폐를 밝히는 싸움이 추리 소설처럼 머리를 써야 했다고 회고한다.


“머리 아픕니다. 산재은폐 밝혀내는 거. 제일 처음에 1차, 2차 시도할 때는 병원 앞에서 진을 쳤어요. 처음에 약 1주일 만에 120건 정도가 나왔어요. 고구마 줄기 캐듯이 마구 나오더라고요. 그냥 줄줄이. 그 중 확실한 것들로 추려 노동부에 고발을 했고, 또 건강보험관리공단 노동조합에도 정보를 제공했지요.실태조사를 시작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대응이 달라지더라고요. 분명히 회사에서 다쳐가지고 오는데도 옷을 갈아입혀서 병원에 보내기 시작하고요. 그다음 해 4, 5차 때에는 화상을 입어도 국물에 데었다 이렇게 진술하게 시키고요. 또, 환자가 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회사 쪽 사람들이 먼저 차를 타고 와서, 말하자면 정찰조가 먼저 오는 거죠. 실태조사하는 사람 없는지 확인을 먼저 하는 거예요.”


최근에 사용했던 추적방법은 공개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현대중공업의 산재 은폐는 지금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하청지회가 산재은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현대중공업은, 자신들이 산재를 은폐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며 노동조합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한 하청업체 대표는 언론사(<프레시안>)와의 인터뷰에서 “이제까지 꼬박꼬박 낸 산재보험료가 아까워서라도 회사 생돈을 들이는 공상이 아닌, 산재 처리를 하고 싶다." 면서 "하지만 산재 처리 했을 경우 (원청) 부서장으로부터 유무언의 압력을 받고, 재계약에서도 불이익을 받는데 어쩔수 없다.”고 괴로움을 토로했다.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라며, 하청 업체 재계약 과정에서 산재 발생 건수를 업체 평가에 반영하지만 이 탓에 하청업체는 산재 발생을 감추려고 한다. 그러는 가운데, 하청 노동자들은 더욱 움츠러든다. 산재 블랙리스트가 있어, 산재 신청을 한 번 하고 나면 조선소에서 일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일반화돼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도 ‘산재 나갔다는 건 아프다는 얘긴데, 누가 환자 쓰겠느냐’ 며 산재 신청을 꺼리게 된다.


“현장에 가면 크게 ‘12대 중대재해. 퇴출제도’ 이렇게 붙어 있어요. 중대 재해 발생하면 그 업체는 퇴출시킨다는 건데, 이 말은 ‘확실하게 숨겨라’ 이런 거죠. 사고 났을 때, 뒷말 나오지 않게 확실하게 해라. 안 그러면 재해자와 하청업체에게 책임을 묻겠다, 이런 얘기거든요.


용접 불에 얼굴 화상 입은 조합원이 한 명 있었는데, 화상 입은 채로,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럼 왜 의무실을 가지 않을까. 반장이나 소장이 아주 난리를 치고 괴롭히니까. 그 난리를 치고 의무실 가니 겨우 연고 두 통 주더래요. 그러니 의무실에 가겠습니까. 더 답답한 것은, 산재은폐 접수 후 이게 산재은폐였다고 인정을 받게 되면, 그 건은 산재신청을 내면 무조건 바로 산재승인이 되거든요. 그런데도 신청을 못 해요. 노동조합에서 산재은폐 건을 모아서, 고발하고 산재은폐라고 인정까지 받아서 무조건 산재신청서만 던지면 되는데, 그것도 안 합니다. 바보라서 그럴까요? 불이익 때문이죠. 산재 신청한다고 하면, 회사에서 사람 보내서 ‘야, 너 이제 현대중공업에 안 다닐 거야?’ 딱 그런 식으로 공갈을 쳐요. 그러면 입 다물게 되죠.”


그래도 꾸준한 실태조사, 언론을 통한 여론 형성, 노조 가입운동, 현장 내 캠페인 등 다양한 실천을 함께 벌인 결과 노동조합 문을 두드리고, 산재신청을 하는 노동자 숫자가 꽤 늘었다.


“산재신청을 하는 사람들은 많이 늘었어요. 산재 신청하고 같이 준비했던 사람들은 노동조합에도 상당히 가입을 하게 됩니다. 산재신청을 하러 여기 우리 지회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그나마 용기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지금까지 지회에서 함께 100건도 넘게 산재 승인을 받았어요. 산재 신청하러 오면, 대부분 먼저 초진 진료 기록지부터 확인을 하게 돼요. 작업 중에 사고를 당한 것인데도, 대부분 불명의 통증을 호소 이런 식으로 모호하게 돼 있어요. 이런 부분부터 다시 짚고, 확인하고 보강하는 작업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정동석 노안부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며 갑갑해 했다. 산재은폐 시도해서 고발하고, 과태료까지 물었던 하청 업체가 무재해 포상 대상이 되어 포상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바위를 뚫는 낙숫물처럼 은폐를 캐내고, 고발하고, 함께 할 사람을 조직 하는 그에게서 희망을 느낀다.



  • 2020.06.18 07:42 ADDR 수정/삭제 답글

    비밀댓글입니다

    • 한노보연 2020.06.29 05:13 신고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의사나 간호사를 보건관리자로 선임한 경우에는 건강관리실을 두고 상담실, 처치실, 양호실 등을 갖추도록 하고 있습니다.(산안법 시행령 22조 3항, 시행령 별표 6, 시행규칙 14조)
      보건관리 전문기관에 위탁하게 되면 이런 시설이 필요없게 되겠지요. 하지만 산안법 시행령 별표5에서 보건관리자로서 의사나 간호사 중 1인을 반드시 선임해야하는 기준(사업의 종류에 따라 상시근로자 2천명이상 혹은 5천명이상)에 부합하는 사업장의 경우에는 건강관리실을 두어야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특집 1.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산재은폐 /2015.10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산재은폐


선전위원회


2015년 7월 청주의 (주)에버코스 화장품 공장에서 노동자가 지게차에 치였다. 회사 측은 신고로 달려온 구급차를 돌려보냈고, 과다출혈로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산업재해 은폐에 대한 전사회적 분노가 들끓었다. 하지만 산재은폐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고성 재해를 감추는 것뿐 아니라 업무상 질병을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지 않는 경우, 업무 도중 발생한 교통사고를 자동차 보험으로 처리하는 등을 포함하면 그 규모는 얼마나 될까? 숫자와 그림으로 산재 은폐 실태를 살펴보았다.


지정병원이 산재은폐 도구로 활용된다


20분

2015년 2월 9일 오후 1시 30분. 부산 신세계 백화점 증축공사장에서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회사에서는 1시 34분 지정병원에 신고했고, 지정병원 구급차가 도착했지만 이 병원에서 처치할 수준의 부상이 아니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지나가던 행인이 119에 신고해 13시 54분에 119로 이송 시작. 20분이 낭비됐다. (뉴스타파, 2015.3.3 신세계 건설은 왜 사고현장 문을 닫았나)


14시 20분 vs 15시 30분

(주)에버코스 지게차 사고에서 119 구급차가 최초로 도착한 시각 14시 5분. 이 구급차를 이용했다면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에 도착했을 시각은 오후 2시 20분이었지만, 119 구급차를 돌려보내고 뒤늦게 도착한 지정병원 구급차를 이용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에 도착한 시각은 15시 30분. 애초 119 구급차가 고인을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했다면, 유족들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 얼굴이라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참세상, 2015.9.1, 산업재해 은폐 에버코스 사망사건은 범죄행위)


산재 은폐, 얼마나 되나?


7978건 중 452건

산재 은폐에 대한 감독이 부실하기 때문에,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산업재해가 신고 되지 않고 있는지 정확한 규모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008년부터 2014년 7월까지 산재보고 의무를 지키지 않은 사례 7,978건을 적발했는데, 이 중 사업장 감독으로 밝힌 것은 452건에 불과하다. 건강보험공단이 파악한 부당이득금 환수자 명단을 넘겨받아 추적한 게 60% 이상을 차지한다. (시사인, 2015.9.8., 회사가 당신의 산재를 숨기는 이유)


106건

2013년 3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울산지역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울산 동구지역 10곳의 정형외과를 방문하여 불과 11일 만에 106건의 산재은폐 사례를 수집하였다. 얼마나 많은 산재 사례가 은폐되고 있는지 짐작해볼 뿐이다. 


145만 명

전국적인 차원으로 보면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2011년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은 손상 환자 2,412,005명 중, 직업성 손상인데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은 환자가 145만 명(최소 92만 명~최대 198만 명)으로 추산된다. (임준 외, 산재보험 미신고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손실 규모 추정 및 해결방안, 2012)


17배

이 숫자는 2011년 산재보험 직업성 손상 재해자 수 84,662명의 17배에 해당한다.


일하다 다쳤을 때, 산재로 처리한 경우?


7.2%

다른 통계에서도 산재 은폐는 의심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연구를 맡긴 2014년 연구에서, 조선업 사내하청 노동자 중 일하다 다친 경험이 있는 노동자 127 명 중, 산재 보험으로 처리한 경우는 7.2%인 9명에 불과했다.


7.2% 산재보험으로 처리했다.

4.0% 원청비용으로 공상처리

56.0% 하청비용으로 공상처리

28.0% 개인부담으로 의료보험처리

4.8% 특별한 치료 없었다

(주영수 외, 산업재해 위험직종 실태조사, 2014)


9.0%

2011.11 ~ 2012.10 전국 10개 표본병원 응급실을 직업성 손상으로 방문한 환자 수 4,894명 중 응급실비 지급을 위해 산재보험을 이용한 경우는 9.0%인 442명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에서 직업성 손상이 모두 산재 보험으로 처리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산재 은폐 규모는 아주 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다. (신상도 외, 응급실기반 직업성 손상 원인조사연구, 2012)


58개 중 11개 지회

은폐 범위를 업무상 사고로 인한 손상 뿐 아니라, 업무상 질병으로까지 넓히면 산재 은폐는 더 늘어난다. 금속노조 소속 90개 지회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2014년에 근골격계질환으로 산재나 공상을 한 건이라도 신청한 적이 있다는 지회는 58개. 이 중 11개 지회에서는 산재 신청을 한 건도 하지 않고, 공상으로 모든 근골격계질환을 처리했다. (금속노조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 실태조사, 2015)


이렇게 해서 쌓인 돈은?


1,756억 원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아야 할 질병을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아서 건강보험이 지출한 금액을 건강보험 재정 손실이라고 했을 때, 직업성 손상으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손실규모가 2011년 1,756억 원이다. 2853억 원 직업성 손상에 근골격계질환과 천식까지 포함한 경우 2011년 건강보험 재정손실 규모는 2,853억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8조 6천억 원

이 결과, 산재보험의 적립금이 쌓이고 있다. 2013년 말 기준 산재기금 적립금은 8조 6천억 원에 이른다. 산재보험의 적립금은 매년 수천억 원씩 증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2013년도 산재보험 사업연보, 2014)


산재 은폐, 이제 더 이상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게 해야 한다. 산재 은폐를 넘어,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를 찾자.

특집 3. 분임조 활동으로 소중한 민주노조 지켜냈어요! - 갑을오토텍지회 조균형 조합원 인터뷰 /2015.9

분임조 활동으로 소중한 민주노조 지켜냈어요!!!
- 갑을오토텍지회 조균형 조합원 인터뷰

 

 

 

선전위원회

 

 

길고 힘들었지만 어느 때 보다 조합원 스스로 나섰던 이번 투쟁!! 싸움의 당사자였던 조합원들은 이번 투쟁 과정을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했다. 지난 8월21일 갑을오토텍 지회 사무실에서 조합원 조균형 님을 만나 소회를 들었다. 조균형 님은 갑을오토텍에서 21년째 일하고 있는 노동자로 2005년에 대의원, 2010~2011년 노동조합 조사부장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초반에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피켓 들고 일인 시위 하는 모습 보고 감동 받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첫 피켓팅한 3인 중 한 명이라고 들었다. 어떻게 행동에 나서게 되었나?

 

나는 그냥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은 셈이다. 박종국 조합원이 제안했고 나랑 손찬희 조합원이 초기에 참여했다. 작년에 신규채용 60 명이 됐는데, 이 사람들이 문제가 있다는 제보가 2월부터 계속 됐다. 사실 기업노조 만들면서 복수노조 만들어서 노동조합 흔들려는 움직임은 2010년경부터 감지됐던게 있었기 때문에 조합에서 차분히 대응하는 편이었다. 초반에는 주로 외부에 이런 문제를 알리고, 정보를 모아나가는 일을 했다.

 

그러던 중 박종국 조합원이 조합원들이 먼저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 거다. 작년 두원정공 투쟁 때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피켓팅했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 때 200일 투쟁했다고 했으니, 우리도 200일이라도 버티겠다는 생각이면 승리하지 않겠냐며 시작했다. 피켓팅 시작한 날, 정년이 얼마 안 남은 조합원 중 한 명, 늙은 노동자가 ‘나는 어차피 여기 떠나면 갑을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지만, 정년하기 전에 투쟁이라도 같이 할 수 있어서, 이 투쟁 같이 해서 후배들에게 노동조합이라도 지켜서 남겨주고 갈 수 있게 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 때 생각하면 울컥해진다. 그 내용이 대자보로 붙고, 채팅방에서 공유됐다. 조합원들이 이런 얘기에 공감하고, 서로 감동받았던 것 같다. 3명으로 시작한 피켓팅이 8명, 20명 하다가 제일 많을 때 200명까지 늘었다. 처음에 간부들이 아침에 나오면, 우리가 오지 말라고 했다. 조합원들이 조합이 시켜서 하는 투쟁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랐다. 진심으로 자발적으로, 마음이 동한 조합원들이 만들어간 투쟁이 됐다.

 

조합원들 사이에서 투쟁을 알리고, 동참을 이끌어 내는 데 SNS 등을 잘 활용한 것 같다

 

정말 SNS 활용을 잘 한 것 같다. 피켓팅 시작하면서 사람들 모아서 처음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는데, 점점 확대돼서 나중에는 거의 전 조합원이 참여하게 됐다. 초반에 피켓팅 사진도 올리고 하면서 서로 격려가 됐고, 사진이 계속 올라오니까 조합원들 사이에서 ‘오늘은 누가 참여했구나, 오늘은 누가 안 보이네’ 하는 얘기들이 되고, 안 나오는 사람에 대해 독려도 하게 됐다. 또 카톡 채팅방을 통해서는 토론도 많이 하게 돼서, 소통의 중요한 통로가 됐다. 무전기보다도 더 빠르게 상황 공유가 되더라. 조합원들이 토론도 했지만, 위안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사람들이 투쟁하는 동안 늘 교섭 속보를 그렇게 기다린다. 실제 내용이 궁금해서라기보다, 모르고 있는 상황이 불안한 거다. 평소에 눈 뜨고 살던 사람이 눈 감으면 불안한 거랑 같은 거다. 그런 불안감을 카톡 단체방이 덜어준 거 같다. 상황이 바로 공유되고, 그 상황에 대해 서로 얘기 할 수 있다는 것이.

 

중간에 낮 시간 투쟁이나 연대 활동에 2조(주간연속 2교대의 후반조)가 참여하는 과정도 카톡 단체방 토론을 통해 시작하게 됐다. 한 대의원이 ‘요즘 간부들이 밖으로 다니느라 바쁘다, 기자회견하고 외부 사람들한테 우리 상황 알리고 있다. 그 와중에 고용노동부, 경찰서 이런 데서 1인 시위 하고 있는데, 2조가 잠 조금 덜 자고 같이 하자’는 얘기를 카톡방에 올리고, 조합원들이 ‘그래, 좋다’하면서 시작된 거다.

 

가족대책위도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대책위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가족들이 참여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가족들 동참도 자발적으로 시작됐다고 들었다

 

피켓팅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 딸이랑 얘기를 하게 됐다. 이러저러해서 아빠가 선전전 하느라 매일 새벽에 일찍 나가고, 주말마다 바쁜 거다 그랬더니 딸이 ‘피켓팅 나도 할까?’ 하고 먼저 얘기를 꺼냈다. 그래서 할 거면 피켓은 네가 예쁘게 만들어 와라 했다. 그랬더니 열심히 만들어서 어느 날 아침에 피켓팅을 같이 나갔다. 그 때쯤 피켓팅이 좀 뻔해지는 것 같았는데, 이벤트가 된 거다. 역시 또 사진 찍어서 올리고 그랬더니 조합원들 사이에서 얘깃거리가 되더라. 그러면서 다른 조합원 가족들도 여러모로 참여하게 됐다. 이 얘기를 했더니, 아들 녀석이 자기도 투쟁 기금으로 20만원을 보태겠다고 하더라. 딸도 자기랑 동갑인 다른 조합원 형님 딸이랑 돈을 모아서 밥버거를 400인분 사서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 또 다들 신기하고 재미있으니까 화제가 되고, 얘깃거리가 되고, 분위기가 살아나는 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도, 우리 가족들도 내가 하는 활동에 대해 막연하게만 알던 것을 이해하게 된 것 같아 좋다. 주말마다 나가고, 약속 많고, 저녁에 늦게 들어오는 것에 대해 부인이 불만을 갖기도 했는데, 이번 투쟁에 같이 참여하면서 나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 가족대책위들, 피부 관리해야 할 사람들인데 땡볕에 얼굴 벌개져서 투쟁하던 장면들은 지금 생각해도 안쓰럽기도 하고, 저 사람들까지 나오게 하다니 암울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다.

 

이런 아래로부터의 제안과 자발적인 분위기가 조합원들에게 활력을 줬고, 조합원 스스로 자기 투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번 투쟁을 통해 느낀 게 조합원들에게 숨겨진 저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노동조합 조사부장 할 때 조직 분석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했었다. 복수노조 등 바람이 불면 훅 갈 수도 있겠다고 걱정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가 몰랐던 조합원들의 저력이 있었던 것 같다. 그걸 끌어내는 계기와 모아내는 매개체가 필요했던 거다. 이번 투쟁 과정에서 정말 바닥으로부터 그런 힘이 올라왔던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분임조 활동이 시작됐다. 다른 지회들도 분임조 활동은 꼭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도 몇 년 전부터 분임조 얘기를 했다. 확대간부들이나 실천단은 교육도 몇 차례 받았었다. 그런데 우리도 ‘좋긴 하지만, 그게 될까?’ 하는 생각으로, 현장내 구역별로 친목 모임 하는 정도였다. 그러던 중, 이번 투쟁이 자연스럽게 분임조 활동의 시발점이 된 거다.

 

분임조가 토론과 행동의 단위가 되면, 조합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지금 우리 분임조는 5명인데, 토론을 하면 누구든 한 마디씩 꼭 하게 돼 있다.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다가도, 자기 얘기를 하게된다. 불안한 마음, 반대 의견, 걱정되는 부분도 얘기가 나오게 되고, 서로 설득하고 합의하는 과정이된다. 또 같이 결정한 내용은 ‘나는 빠져도 되겠지’하는 생각을 못 하고 꼭 같이 지키게 된다. ‘전 조합원 모여라’ 하면 400명이니까, 나 한 명 빠져도 되겠지 싶은데, 분임조마다 5명씩 연락을 돌리니까 내가 빠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기업노조 만들어 나간 사람은 우리 분임조 활동보고 ‘5호 담당제’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우리도 분임조 활동이 이제 시작된 거고, 정착된 것은 아니다. 분임조마다 활동 방식도 다양하고, 아직 운영이 서툰 조도 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다 잘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 조합에서 잘 될까?’ 이런 생각하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시도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분임조 활동을 통해 노동조합 내적으로 조직력이 강화되고, 조합원들의 자발성과 참여도가 높아진 것이 이번 투쟁의 가장 중요한 의미 중 하나라고 보기 때문이다.

 

갑을 조합원들이 이렇게 잘 싸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우리가 몇 년 전부터 ‘자판기 노조’ 탈피하자는 얘기를 많이 했다. 조합원들이 간부들에게 ‘이 문제 해결해줘’하는 것을 안 했다. 구역 내에서 발생한 문제는 구역 내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우리 구역에서는 몇 년 전에, 조합원들 근무 태도 가지고 시비 걸고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생산과장을, 조합원들이 항의하고 현장 투쟁 벌여서 바꿔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이 훈련이 돼 있다가, 죽기 살기로 투쟁해야 하는 시점이 되니까 터져 나온 것 같다. 조합이 시키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간부들이 하는 일이 아니라 내 투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본격적인 싸움만 해도 2달이 넘고, 분위기가 뒤숭숭할 때부터 치면 거의 6개월이다. 지치거나 힘든 때도 있었을 텐데 피켓팅 처음 시작한 게 4월 8일이었으니, 4달 정도를 정신없이 지냈다. 사실 그 동안은 지치거나 힘들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나간 것 같다. 그 사이에는 개인 생활이라는 게 거의 없었을 정도였다. 물론 투쟁하는 동안 나도 겁났고 무서웠다. 평생 사람들이랑 싸울 일 없이 살아왔는데, 웬 깡패 같은 사람들이 현장에 들어와 돌아다니니, 무섭기도 하고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 이런 얘기도 조합원들하고 많이 했는데, 얘기하다보면 다들 똑같이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위안도 받고, 다시 힘낼 수 있었던 것 같다.

 

8월 들어 현대차에 공급할 물량이 정말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관리직에서 직접 기계 돌리겠다고 할 때 나도 불안했다. 그래도 돌아보면, 우리가 처음 이 싸움을 시작할 때 이 싸움에서 진다면 죽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절박함이 있어서 조합원들도 스스로 투쟁에 나섰던 거다. 그렇게 치면 싸우다 져도 죽는 거지만, 물량 때문에 지금 그만두면 그냥 죽는 거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런 마음을 조합원들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잘 싸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조합도 대처를 참 잘 했다. 사무직 투입해서 기계 돌리겠다고 했을 때, ‘그럼 너네들 특별안전교육은 받았냐?’고 던지고 노동부에 고발하면서 충돌이 더 진행되지 않도록 하면서 막바지 투쟁이 잘 될 수 있었다.

 

복수노조를 등에 업고 민주노조 탄압하는 경우도 많고, 민주노조 패배 소식도 많았는데, 이번에 갑을이 긴 싸움을 승리로 마무리하게 되어 의미가 크다. 조합원 입장에서 가장 중요 하게 생각되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

 

제일 큰 것은 노조파괴 시도에 대항해서 승리했다는 점이다. 아직도 용역들 일부는 기숙사에 남아 있고, 다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노조파괴 시도는 노동계가 전국적으로 직면한 문제인데, 여기에 우리 투쟁이 반전의 계기를 만들수 있었다면 좋겠다. 내부적으로는 우리 조합원들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고, 분임조 활동 등을 통해 조직력이 강화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투쟁과정에서 아쉬운 점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런 걸 다시 짚는 평가는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어떤 때든 완벽하게 준비돼서 투쟁할 수는 없는 거다. 어떤 상황에서든 조합원들이 함께 잘 버텨준 것이 중요했다고 본다.

 

특집 2.갑을대첩 비책공개 /2015.9

갑을대첩 비책공개

 

 

안재범 운영집행위원, 갑을오토텍지회 노안부장

 

 

 

갑을오토텍은 그룹차원에서 노조파괴 용병들을 모집했다. 신입사원으로 위장해 갑을오토텍에 입사한 노조파괴 용병중 절반이상이 전직 경찰과 특전사 등 군경 이력을 가진 자들이다. 전직 경찰들은 경찰협동조합을 통해 특전사는 특전 동지회를 통해 사전 모집됐다. 특히, 노조파괴 총책 및 팀장급으로 활동한 자들은 이미 계열사인 동국실업에 부·차장으로 인사발령이 나서 투입됐던 자들이다. 용병들은 입사 전부터 수차례의 교육을 받고, 금속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어용노조 설립을 통한 노조파괴 활동을 준비했다. 갑을자본은 용병들에게 특정 지회간부 테러, 금속 파업 시 대체인력 및 파업파괴, 생산량 UP, 폭력사태유도 및 구사대, 직장폐쇄 후 선별복귀까지 계획한 것이 노조파괴문건으로 확인되었다. 금속노조 타 지회들의 노조파괴 시나리오에서 확인 되듯이 갑을자본도 노동조합을 파괴하려는 목적은 명확하다. 자본의 이익극대화 수단(사내비정규직, 외주 용역화, 생산성 등 인원 및 사업구조조정)들을 아무런 저항 없이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 모든 자본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민주노조를 이익극대화의 최대 걸림돌로 여기고 현장에서 치우려 하는 것이다.

 

분노한 조합원들의 1차 투쟁, 마침내 6·23 항복문서 쟁취!

 

갑을자본의 신종노조파괴에 맞선 지회대응은 크게 법적투쟁과 12차 파업투쟁으로 나눌 수 있다. 지회의 법적투쟁은 충남지부에 익명으로 제보된 내용을 토대로 여러 가지 정황과 증거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전직 경찰관 출신의 이력과 용역들의 모집책과 경로를 찾아냈고, 이를 근거로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에 요청한 특별근로감독은 노사 쪽과 산안쪽 두 가지 모두 이례적으로 즉각 받아들여졌다. 노동부의 수사는 빠르고 신속했다. 그러나 딱 그만큼이었다. 신종노조파괴의 모든 증거를 손에 쥔 고용노동부 천안지청과 검찰은 시간 끌기에 들어갔다. 반면 지회조합원들과 주변의 기대는 컸다. 노조파괴에 대해 법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증거도 충분했다. 적어도 노조 파괴 가담자들 중 한 두 명이라도 구속된다면 이후 투쟁의 고삐를 쥐고 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자본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잘 알면서도 기대감을 버리기는 어려웠다. 결국 자본과의 1차전이 진행되는 내내 법과 공권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목도하면서 그 기대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깨닫게 됐다. 고용노동부, 경찰, 검찰은 자본의 움직임과 태도에 따라 말과 행동을 바꿔가고 있었다.

 

파업투쟁은 합의를 우선할 지 담판을 낼 지였다. 정상적 노사관계로 보자면 현안문제든 협상이든 밀고 당기는 노사합의 과정을 거쳐 마무리가 된다. 하지만 정상적 노사관계가 모두 파탄난 상태, 즉 갑을자본에 의해 그 어떤 대화와 교섭도 차단된 상태에서 지회는 고민 끝에 섣부른 교섭을 청하기보다 최대한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갖춘 상태에서의 담판을 결정했다. 모든 역량을 아래로부터의 조직체계를 세우는 데 집중했다. 나아가 조합원들의 자발적 투쟁과 실천을 장려하고 아낌없이 지원했다. 더불어 자본이 내세우는 논리를 하나하나 반박했다. 노동부의 조사로 잠시 미뤄뒀던 신종 노조파괴의 모든 증거 역시 조합원들에게 전면 공개했다. 이 과정을 통해 조합원들은 신종 노조파괴 분쇄는 대화나 교섭에 앞서 조합원 스스로가 이 투쟁의 선봉에 서는 것임을 알아가고 있었다. 이를 가능케 했던 것이 분임조 활동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편, 전직 경찰과 특전사 출신으로 무장한 노조파괴용병들의 폭력은 무자비했고, 거침이 없었다. 때려보기만 했지 맞아 보지 않은 이들의 폭력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617일 용병들의 무자비한 집단 폭력을 참을 수 없어 여기서 끝장을 내자며 기업노조 사무실로 향하는 조합원들의 분노를 보며, 오히려 전세가 역전됐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언론 카메라에 죽봉 든 조합원들의 모습이 나올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의지는 분명했다. ‘공장 밖으로 쫓겨나더라도 용병들과는 더 이상 현장에서 같이 일을 할 수 없다. 여기서 끝장을 보자.’ 고 다짐했다. 결국 7일간 정문봉쇄 투쟁을 통해 용병들을 공장 밖으로 몰아내고 6·23 합의라는 갑을자본의 항복 문서를 받아냈다. 6·23 합의는 조합원 동지들의 주체적인 투쟁, 가족대책위의 헌신적 투쟁, 그리고 어느 때 보다도 열렬했던 연대의 힘이 결합되어 만든 승리였다.

 

 

 

 

한 치의 망설임 없는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로 2차 투쟁도 승!!

 

6·23 합의를 통해 노조파괴 용병들을 전원 채용 취소시키고, 기업노조 설립을 주도했던 기존 5명에 대해서도 7월 중으로 퇴사조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노조파괴 분쇄투쟁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6·23합의 이행을 위한 후속 조치사항(채용취소에 따른 신규채용 및 채용원칙, 채용 취소자들과의 법적분쟁에 따른 후속조치, 2015년 발생한 민형사상 사건에 대한 징계 등 불이익 금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과 및 책임자에 대한 인사조치, 부상자에 대한 치료비 부담 및 치료기간 정상근태, 조합원 심리치료비 부담, 기숙사 퇴거조치, 합의서 불이행 책임 등)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갑을자본도 완성사의 일부 생산차종에 대한 물량회수를 빌미로 한시적인 일용직 운영, 비생산부서의 용역화 및 일부 생산 공정의 외주화, 생산성 향상 등을 공격적으로 요구하며 이미 6·23합의로 채용 취소된 용병들을 적극 활용했다. 기숙사 기거는 물론이고 식사까지 제공했다. 용병들은 한발 더 나아가 기업노조 사무실을 회사 정문 앞에 차리고 지노위에 채용취소가 부당하다는 취지의 구제신청까지 했다.

 

이때 갑을자본의 이데올로기는 이랬다. “금번 사건으로 고객사로부터 일부 차종이 회수되고 주력제품에 대한 물량도 이원화될 위기에 있다며 더 이상의 파업은 고객사로부터 퇴출된다는 것과 통상임금확대, 주간연속 2교대 시행에 따른 노동시간 단축 및 임금상승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이대로 가면 회사가 폐업할 수밖에 없다.” 비생산부서의 외주용역, 생산성 30% 향상, 적자 아이템의 외주생산 등에 노동조합이 동의해 주면 용병들 문제도 말끔히 정리하겠다는 것이 6·23 합의 이후 갑을자본이 취한 태도였다.

 

이런 갑을자본의 태도에 지도부는 완성차의 요구로 주력 차종 물량이 줄어들게 되면 고용불안으로 조합원들이 흔들릴 수 있지 않을까를 우려했다. 조합원 동지들이 회사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는 이데올로기를 넘어설 수 있을까. 그리고 물량 반납 얘기를 현장에 알리면 투쟁의지가 위축이 되거나 꺾이지 않을까. 어느 정도 수준으로 현장에 알려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지도부의 우려와 고민은 기우에 불과했다. 분임조에 이 문제를 공개하고 토론에 붙인 결과 조합원동지들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같이 죽자! 망하는 싸움하자!’는 반응이었다. 이에 따라 갑을오토텍지회는 곧바로 2차 투쟁을 선포하고 분임조 활동을 중심으로 조합원들의 기세를 끌어올리는데 주력했다.

 

 

 

 

또한 휴가 기간 동안 확대간부동지들이 공장을 사수하며 사무 관리직들이 휴가를 가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돼서 생산하는 것을 저지하였다. 동시에 노동부 천안지청에 사무 관리직 사원들의 건강권을 위한 배치 전 건강검진, 작업변경 특별교육 등이 진행되지 않은 것을 고발조치하고 그 결과로 부분 작업 중지 명령이 내려졌으나 갑을자본은 이를 무시하고 사무 관리직의 현장투입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이에 따라 지회는 논의 끝에 분임조를 통해 휴가 중인 조합원의 공장집결을 결정했고 300여명의 조합원동지들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이러한 조합원동지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도부는 이 싸움은 이겼다고 생각했고 회사는 이러한 조합원들 기세에 눌려서

현장 침탈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후 휴가 마지막 날인 89일에는 전체 조합원들에게 철야농성을 위한 파업배낭을 꾸려서 공장에 집결하도록 했고 전면적으로 공장가동을 막고 싸울 것을 결의했다. 결국 전 조합원 철야농성 하루 만에 갑을자본의 교섭요청이 왔고 후속조치에 대한 노동조합의 요구안 전체를 합의하게 되었다.

 

 

 

갑을자본은 조합원들의 분임조 활동에 떨었다

 

2014년 교대제 준비 시기부터 두원정공동지들의 투쟁을 연구하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분임조에 대한 조합원 교육을 실시하고, 중대장, 소대장, 분임장 체계를 세우고 교육을 실시하면서 공정별로 5-6명씩 61개 분임조 조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복수노조와 노조파괴 문제가 벌어졌다. 두원정공 지회의 2차례 분임조 교육이후 처음엔 중대장, 소대장, 분임장 3명의 동지가 뭐라도 해야겠다고 시작한 아침 출근 선전전이 1주일이 지나면서 50, 100명으로 늘고 전체 조합원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2조 근무 조합원들이 노동부, 법원 등에 가서 투쟁하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서면서 분임조는 서로 투쟁을 결의하고 소통하는 논의 구조를 만들어 나갔다. 이번 신종노조파괴 분쇄투쟁을 잠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평상시처럼 지도부나 확대간부들만 공유하고 판단하여 결정했다면 조합원동지들의 자발성 역동성은 고사하고 기세도 떨어져 투쟁을 말아 먹는 꼴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갑을자본은 막바지 실무 교섭에서 투쟁이 끝나면 분임조를 해체할 것인지" 묻고 분임조가 있어서 아무 것도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고 한다. 자본이 무서워했던 것은 지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제 자본은 더 큰 공격을 더욱 철저하게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도 이를 대비하기 위해 분임조 활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큰 투쟁이든 작은 투쟁이든 지도부가 하나하나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일상투쟁을 조합원들이 할 수 있도록 배치하려고 한다. 그리고 교육, 소모임, 학습모임 등을 더욱더 체계적으로 만들어 상시 분임조가 가동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특집 1.조합원의 주체성으로 다시 서는 민주노조 /2015.9

조합원의 주체성으로 다시 서는 민주노조

 

 

선전위원회

 

 

조합원의 주체성으로 다시 서는 민주노조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경과하며 민주노조가 폭발적으로 등장한 이후, 30년이 지났다. 현장의 민주적 역동성은 어느 새 80년대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의 추억으로만 여겨진다. 민주노조 건설을 둘러싼 격렬한 투쟁 국면이 일단락되고 노사 관계에서 제도적 측면들이 완성됨에 따라, 노동조합은 노동자를 대리하거나 대행하는 데에 머물게 된 경향을 보였다. 그 결과 노동자 개인은 운동의 주체가 아니라 지침을 이행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 지도부를 넘어서는 아래로부터의 투쟁, 통제 가능하지 않은 자발적인 투쟁은 환영받지 못한다. 민주적 역동성을 잃고 제도화된 노동조합은 ‘관리된 투쟁’을 조직한다. 의례화된 임단협 투쟁 일정, 자조 섞인 ‘뻥 파업’ 등은 노동조합 운동의 현재를 보여주는 한 단초다. 나아가 투쟁을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현장의 역량에 대한 믿음 자체가 약해진지 오래다. 관성화된 조합 활동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수동적인 개인으로 여겨지고, 사회적으로는 자기 밥그릇 챙기는 정규직 노동자 취급당한다. 이런 노동조합들마저 사측의 주도 아래 극단적인 폭력으로 깨져나가 억압적인 어용노조로 교체되는 것이 복수노조 시대 민주노조의 현실이기도 하다.

 

투쟁 속에 실현된 조합원 민주주의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사측의 노조 파괴시도에 맞선 한 노동조합의 투쟁이 이목을 끈다. 금속노조 ‘갑을오토텍 지회’의 투쟁이다. 복수노조 도입 이후, 어용 노조를 활용한 민주노조 파괴가 노무법인들의 돈벌이 수단으로까지 된 마당에, 갑을오토텍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 자체는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뒤 진행 과정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의 지침을 넘어서는 활동을 제안했다. 1인 시위도, 가족 연대 활동도, 교대제 2조의 오전 투쟁 결합도, 조합원 스스로 채팅방을 통해 상황을 나누고, 토론하고, 투쟁 방안을 제안하고, 호응했다. 노동조합은 이런 조합원들의 열기를 적극적으로 받아 안고, 이런 주체적인 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고 살리는 투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전부터 고민하던 분임조 활동을 본격화해 실질적인 소통과 논의 구조가 될 수 있도록 조직했다. 갑을오토텍지회 안재범 노안부장은 “평상시처럼 지도부나 확대간부들만 공유하고 판단하여 결정했다면 조합원 동지들의 자발성, 역동성은 고사하고 기세도 떨어져 투쟁을 말아 먹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균형 조합원은 “우리가 몰랐던 조합원들의 저력이 있었던 것 같다. 그걸 끌어내는 계기와 모아내는 매개체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다시 발견한 조합원의 자발성과 주체성

 

갑을오토텍 조합원들에게 주체적인 활동의 영감을 준 것이 두원정공 투쟁이다. 2014년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두원정공 노동자들이 아래로부터 만들어간 투쟁이 힘이 되었다. 2014년 두원정공 지회의 투쟁은 사측의 단협 위반으로 시작되어, 교섭이 교착 상태에 있으면 폐업절차를 밟겠다는 사장의 발언으로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 폐업 발언이 나오자 조합원들이 스스로, 당시 지침으로 시행하고 있던 1시간 파업을 전면파업으로 전환시켰다. 노동조합도 이런 조합원들의 투쟁 의지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조합 지침 대신 소단위(중대)별로 파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노래가사 바꾸기 대회, 계열사 노동자 만나러 광주에 가기, 사장을 만나러 집이나 두원공대로 원정투쟁 가기 등 이었다. 조합원들은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두원 자본을 때려눕혔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투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런 투쟁 과정에 대해 엄정흠 두원정공 대의원은 “언제부터인가 투쟁이 지침에만 의존한다. 이러니 투쟁을 노동조합이 관리하는 측면도 있고, 그런 투쟁에 간부도 조합원도 익숙해진다. 지침을 떠나 자발적으로 투쟁하자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처음에는 조합원들이 지침을 내려달라고 하기도 했지만, 막상분임조 활동이 활발해지고 매일 1시간씩 중대 총회가 벌어지자 자연스럽게 갖가지 활동을 제안하고 주체로 나섰다. 정작 판이 열리니 조합원들이 다 알아서 하더라.”고 회상했다.두원정공 지회라고 전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합간부들이 이렇게 해도 되나 할 정도로,기세가 올라오는 게 무서웠다. 조합 활동 오래 한 간부들에게 조합원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던 거다. 조합원들의 투쟁이 간부들의 계획을 넘어서면, 결국은 그 부담이 조합으로 온다. 그러니 집행부도 조합원들의 자발성과 주체성을 받아 안을 수 있어야 한다.”

 

노조는 민주주의 학교라는데 주목해야

 

갑을이니까, 두원이니까 가능했다고 단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한편으로 단사의 투쟁 성공사례를 접하며 고군분투하는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자괴감에 빠지지도 않았으면 한다. 다만 ‘노동조합’이 형식적으로 유지되며 자본의 지배와 관리를 일부 대변하는 존재가 아닌 자본의 논리를 꿰뚫어 세상의 질서를 바꿔내는 노동자들의 학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이 투쟁과 경험에서 함께 배우고 읽었으면 한다.

특집 4.자본이 호들갑을 떠는 '통상임금' 임금체계 바꿔 노동자가 누려야 할 권리 /2015.8

자본이 호들갑을 떠는 '통상임금' 임금체계 바꿔 노동자가 누려야 할 권리



김영선 노동시간센터(준) 회원


1990년대 이후 그간 통상임금의 범위는 계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그 가운데 2012년, 2013년의 대법원 판결은 통상임금 논쟁에 불을 지폈다. 특히 자동차의 주간연속 2교대라는 교대제 개편 논의와 맞물리면서 그 파장은 더욱 컸다. 그래서인지 자본은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에 따른 총노동 비용이 '38조 원'에 달한다는 위기론을 조성한다. '날벼락 같은 임금폭탄', '기업 간 임금격차 더욱 벌어져', '대규모 사업장일수록 인상률이 높다', '노조의 무리한 떼쓰기', '통상임금으로 고용률 1% 줄어', '한국GM은 철수할 수 있어' 등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에 따른 '위기' 를 확대 재생산하고 그 원인을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로 몰아세웠다.


자본의 '이유 있는' 볼멘소리

자본이 이렇게 볼멘소리를 하는 이유는 통상임금 문제가 저임금 구조에 기반을 둔 장시간 노동을 압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통상임금은 한국 사회의 왜곡된 저임금 체계와 이를 매개로 한 기형적인 장시간 노동체제의 모순을 집약하는 지점이다. 따라서 통상임금에 대한 문제제기는 저임금 구조에 기반을 둔 총자본의 착취 체계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고 맞서야 하는 투쟁인 것이다.

통상임금을 기업에 대한 비용부담 전략으로 활용해 주간연속 2교대를 보다 주체적으로 이행한 한 사업장의 경우,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를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통상임금을 매개로 주간연속 2교대로의 이행을 구체화하는데 있어 보다 공세적일 수 있었으며 실천적으로도 야간노동 철폐, 노동시간 단축, 임금 안정성을 동시에 구축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통상임금 논쟁이 주간연속 2교대로의 이행에 긍정적인 지렛대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부품사들은 '특정한 가이드라인'에 매인 채 대응하였다. 부품사의 위치적 한계 즉 자본 위계와 생산 서열에 종속된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통상임금 합의 현황을 보면, 특히 계열사의 경우, "자동차의 교섭결과에 따라 추후 특별교섭을 통해 재논의 한다"는 전제를 달고 있다.

부품사들은 교대제 개편안을 '일종의 가인드라인과 같은 자동차의 합의안을 넘어서지 않는 수준'에 맞춰야 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는 규명해야겠지만 일차적으로 자동차 산업의 기업 간 구조가 종속적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부품사들의 제도 선택은 '강제적 동형화'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통상임금 확대 적용이 노동시간 단축의 방향으로 전개됐다기 보다는 노동 강도를 감수한 채 어느 정도 생산성 향상에 동의하면서 총액임금을 보전하는 수단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를 테면, 한 사업장의 '선(先) 통상임금 (단계별) 적용'은 '자금 사정이 열악해 신규 설비투자와 신규인원 충원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사측에 유예를 주고 2교대로의 이행 속도를 늦추는 상황을 낳기도 했다. 


조합원이 공감하고 함께하는 투쟁 만들어야 한다

물론 임금 보전에의 매몰을 특정한 부품사만의 한계로 언급하는 것은 주간연속 2교대로의 이행과정에서 나타났던 근본적인 문제를 축소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물량을 절대화하고 노동의 필요를 제대로 담지 못하는 '생산량 만회를 전제로 한 임금 보전' 프레임은 완성차에서 주간연속 2교대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등장했고 2000년대 중반 구체화됐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품사 지회들의 임금 보전에의 매몰을 소득을 극대화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어쩌면 '가이드라인' 을 넘어설 수 없다는 제한적 상황에서 이뤄진 '차악' 의 선택으로 봐야 하는 건 아닐까 싶다. 

자본의 '물량보전-임금보전' 프레임의 영향력은 여전하고, 성과 연동형 임금체계 개편 같은 정부와 자본의 전 방위적인 유연화 기획들은 더욱 가속도를 내고 있다. 그 가운데 업체들은 편법으로 취업규칙을 바꾸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의 '심야노동 철폐' 구호가 이전만큼의 효과를 발휘할지 미지수이다. 결과적으로 통상임금 카드를 '설비 투자'나 '일자리 창출' 및 '월급제 시행' 등과 같이 보다 공세적인 대안들과 연결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여기서 다시, 보다 주체적인 주간연속 2교대 등 근무형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오래된 언어, 다시 말해 오래되고 낡아서 쓸모없어져 버린 것 같지만, 노동자들의 현실과 요구를 담지하는 생명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요구를 새롭게 제기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그것은 '기본급 비중을 높이는 방향의 임금 구조개선' 이다. 단순히 시급제에서 월급제로의 전환이라는 지불 형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통상임금을 매개로한 교대제 개편의 방향은 저임금 구조에 기반을 둔 자본의 착취 시스템에 정면으로 맞서는 주요 투쟁의 하나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기본급 비중을 높이고 생활임금 쟁취라는 방향으로 임금체계를 표준화하는 것은 물론 고착화된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고리를 끊고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필요는 물론이고 총 노동의 지향을 자신의 것으로 구체화해 나가야 한다. 또한 편법과 꼼수로 취업규칙을 바꾸려는 사측의 시도들을 저지하는 동시에 총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임금체계 개편 시도의 본질과 정치적 의도를 꿰뚫고 조합원들이 공감하고 함께하는 투쟁과제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특집 3.자동차 부품사 교대제 변경과 사내하도급/비정규직 문제 /2015.8

자동차 부품사 교대제 변경과 사내하도급/비정규직 문제


김보성 노동시간센터(준) 회원



부품사의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과 사내하도급

부품사 주간연속 2교대제와 사내하도급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먼저 자동차 부품사의 상황을 이해 할 필요가 있다. 완성차를 정점으로 하여 위계적으로 수직 계열화 되어 있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종속적 기업 관계를 고려할 때, 물량조절은 주간연속 2교대로의 전환 시 부품 업체가 고려할 수 있는 변수가 될 수 없다. 완성차가 요구하는 물량을 맞추지 못하면 부품업체는 언제든지 계약해지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품업체 노사는 물량보전 방안을 놓고 고민하게 된다. 

물론 사내에 노조가 조직되어 있는 경우 부품사는 설비투자와 신규인원 충원에 대한 노조의 요구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종속적인 기업 구조 속에서 완성차에 의한 강제적인 납품단가 인하 압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온 부품사는 이러한 요구를 감당할 수 있는 재정적 여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부품사는 설비투자와 신규인원 충원과 같은 방식의 문제해결을 꺼리게 된다. 노조 역시 이러한 요구를 끝까지 관철시키지 못한 채 제한적인 설비투자 및 인원충원을 받아들이거나 업체가 제시하는 다른 방식의 해결책에 타협하게 된다. 

결국 부품사 노사는 노동강도를 조정하여 물량을 소화하는 방식을 검토하게 된다. 이것은 현대자동차 노사가 취한 해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일한 방식이 부품업체에는 보다 많은 문제들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완성차에 비해 부품업체들의 노동강도가 더 높기 때문이다. 즉 편성효율이 더 높고 설비가 감당할 수 있는 생산능력 역시 최대치에 보다 가깝게 도달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부품사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기업 역시 노동강도 강화를 통한 물량보전에 대해 난색을 표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을 활용하거나 물량의 일부를 보다 낮은 가격에 하도급업체에 넘겨주는 외주화를 검토할 수 있다. 물론 자동차 산업 부품업체의 수익성 악화와 이에 따른 외주화의 가능성, 비정규직 노동력 활용 가능성에 관한 논의는 이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양상이 자동차 산업 내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을 계기로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설비투자와 신규인원 채용 비용에 대한 부담을 원청사에 비해 훨씬 많이 느끼며 편성효율과 설비의 작동 능력이 한계치에 도달해 있는 부품사들의 경우, 외주화와 비정규직 활용에 대한 유인을 훨씬 많이 느낄 수 있다. 즉, 주간연속 2교대제가 수직 계열화 되어 있는 원청과 1-2-3차 밴더의 기업간 구조가 보다 강화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주간연속 2교대제를 계기로 한 작업장 구조조정과 도입 부담의 외부 전가 


▲  사업장 L사례는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발굴된 사례로, 여기서는 다른 유노조 사업들과 비교를 위하여 발췌하여 다루기로 한다 (배규식 외, 2013)


이번 조사에서 사내하도급이나 비정규직을 활용한 임금-물량 보전 양상은 <표 1>과 같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양상을 살펴보면, 1) 사내하도급 인력을 통해 비용 절감 및 노동강도 완화(R사). 2) 원청과의 도급계약 변경을 통해 24시간 공정의 외부화 및 내부 노동강도 완화(D사). 3) 그 외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기 전에 이미 노동강도를 강화시켜놓고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한 기업이 임금보전을 대가로 다른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사례도 발견되었다(J 사). 이들은 모두 유노조(금속노조) 직서열 부품업 체들로, 물량보전을 위해 UPH를 향상하고 추가 작업시간을 확보하는 것 외에 비정규직이나 사내하도 급을 활용하여 노동강도와 교대제 전환비용을 조정 하는 공통점을 보였다. 

이에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무노조 업체 L 사업장의 경우, 사내하도급 업체와의 도급 계약에서 임금보전을 전제로 인력충원 없는 UPH 상승을 관철시켰다. 재정적 여력이 작은 중소부품업체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을 활용하여 인력충원 없이 극심한 노동강도의 강화가 예견된 교대제 전환을 관철시킨 것이다. 네 사업장만을 놓고 비교해 볼 때, 유노조 사업장에서는 임금보전과 더불어 노동강도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가 노사 간의 쟁점이 되었으나, 무노조 사업장에서는 임금보전을 대가로 기계적인 UPH 상승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 사내하도급과 비정규직이 크게 쟁점이 된 것으로 확인되는 사업장이 모두 직서열 업체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직서열 업체들은 대부분 치밀한 준비와 내부조직화 없이 현대차의 근무 형태 변경과 더불어 자동적으로 근무형태를 변경하였다. 현대차가 교대제를 전환했으므로 당연히 따라 가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따라 주간연속 2교대제의 도입은 내부적인 큰 고민 없이 현대차 모델을 동형화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거의 모든 직서열 사업장에서 8/8+1의 근무형태가 도입되었고 임금보전은 물량보전과 맞교환 되었다. 

그러나 부품업체들은 이러한 맞교환에 있어 완성차에 비해 보다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국내 자동차산업 기업사슬에서의 위치상 부품업체들은 완성차에 비해 재정적 여력이 빈약하고 노동강도가 이미 높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금보전과 물량보전을 맞교환하기에 부담을 느끼는 부품업 체들의 경우, 상황에 따라 사내하도급이나 비정규직을 활용하여 문제를 우회하고자 유인을 보다 크게 받을 수 있다. 

물론 비정규직과 사내외 하도급 노동력 활용은 임금 부담을 낮추고 노조와의 갈등을 우회하고자 할 때 기업이 일반적으로 고려하는 선택지들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반드시 직서열 부품업체에서만 비정규직과 사내외 하도급 노동력 활용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다른 부품업체뿐만 아니라 완성차나 여타 제조업 분야에서도 유사한 목적을 가진 고용유연화 사례들이 보고된 바 있다. 

그러나 많은 직서열 부품업체들이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을 위한 체계적인 준비가 미비했던 상황에서 완성차의 합의안을 그대로 모방하며 교대제 전환을 추진했으며, 그 과정에서 사내하도급과 비정규직의 활용이 전환 비용의 부담을 낮추기 위한 보다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주간연속 2교대제가 완성차-1차-2차 밴더 간의, 유노조사업장-무노조사업장 간의,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작업조건에 대한 격차가 확대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노동 내부의 분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준비된 교대제의 전환, 전환 시 최소한의 원칙에 대한 확인은 중요하다.

특집 2.자동차 부품사 주간연속 2교대제 투쟁에서 나타난 노동시간-생산성을 둘러싼 교전 / 2015.8

자동차 부품사 주간연속 2교대제 투쟁에서 나타난 노동시간-생산성을 둘러싼 교전



전주희 노동시간센터(준) 회원


자동차 공장에서 벌어지는 지루하고 소소한 싸움

한국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하면 흔히 현대, 기아, 쌍용 등을 떠올리겠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갑을 오토텍, 동희오토, 한라공조 등의 생소한 이름을 가진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공장들이다. 자동차 한 대가 완성되기 위해 들어가는 2만~3만 개의 부품을 만드는 기업을 자동차 부품사라고 한다. 이 부품사들은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긴밀하게 작동하지만 이 기업들 사이에는 지배와 위계가 존재한다. 

기계를 완성하는 기업, 부품을 조립하는 공장 사이에 불공정 거래와 자본의 추가적 수탈이 가능한 것은 자본 그 자체의 힘이다. 그 위계들의 아래에는 언제나 노동자들이 있고, 노동자들은 자본의 위계에 따라 또 다시 분할된다. 완성차 정규직-완성차 비정규직-협력사 정규직-협력사 비정규직. 여기에 다른 나라에서 한국의 자동차를 만드는 검은 피부와 하얀 피부의 노동자들이 줄 세워진다. 

현대자동차, GM대우, 쌍용차, 기아, 르노삼성의 이름에는 시기는 다르지만, 모두 각기 구조조정과 정리 해고의 상처와 투쟁의 흔적들이 새겨져 있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와 희망퇴직으로 동료들을 보내야 했고, 비정규직과 사내하청으로 동료들의 일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기업들은 이를 발판으로 생산성 질주를 시작했고, 스스로 초국적 자본이 되었거나 초국적 자본의 하위파트너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극에 달했다. '나도 언젠가는 짤릴 수 있다'는 불안감을 왼쪽 가슴에 지니고 일해야 했고 그 불안감은 어느 때보다 잔업과 특근을 열망하게 만들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을 이끌었던 대공장 노동자들은 이제 한국사회의 장시간 노동을 이끌고 있다. IMF 위기가 각인시킨 불안의 흔적이 장시간 노동으로 남아 '연봉 1억 원 현대차 귀족노동자의 신화'를 완성한다. 

완성차 노동자들이 이럴진대 완성차 기업에서 물량 오더를 받고 있는 부품사 노동자들의 실상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부품사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들이 장시간 노동, 심야 노동을 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수십 년 일해 왔다는 것이다. 


"왜 여태까지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싸움을 시도 조차 못한 거죠?" 

"인식을 못했거나 아니면 별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 같아요... 저희들이 그러니까 심야노동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했고. 사실은 저희들이 교육을 받기 전에는 심야노동, 오히려 야간을 뛰면 낮에 볼일도 볼 수 있고 더 좋은 거 같은데. 이렇게 심야노동이 우리 인체에 미치는 영향, 그런 것들을 몰랐던 거죠. 또 야간 들어가야 돈이 되니까. 야간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 돈 차이가 많이 나거든요. 또 장시간 노동? 장시간의 기준을 저희가 몰랐고 스스로도 이렇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자각이나 이런 게 없었고. 그래서……예전에는 정말 오랫동안 일 했거든요." 

1998년 정리해고 도입이후 현대자동차를 시작으로 자동차 노동자들은 '주야맞교대'를 '주간연속 2교대제'로 전환하자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 자본은 보다 본격적으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도입하는 데 골몰했으므로 고용을 안정시키기 위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국가와 자본이 한목소리로 내는 경영합리화에 묻힌 소음에 불과했다. 

2002년 주40시간제가 도입되어 언론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며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대를 축하했지만 자동차 노동자들은 줄어든 법정 시간만큼 더 많은 초과노동을 해야 했다. 고용불안을 떨치지 못한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러한 초과노동을 온 몸으로 흡수했다. 줄어든 시간만큼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공장을 짓고 기계를 들여 더 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도록 해야 하지만, 자동차 자본은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거래로 이뤄진 다단계 하도급 체계를 구축하면서 완성차 노동자와 부품사 노동자 사이의 임금격차를 벌렸다. 

2006년 이후에도 주간연속 2교대제에 대한 요구는 이어졌다. 커다란 싸움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자동차 노동자들은 참으로 길게, 지루하리만치 요구했다. 이때 현장 노동자들 일부는 여전히 특근과 잔업을 하게 해달라고 간부들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급기야 2012년 현대자동차 노사가 주간연속 2교대제에 합의했다.

그 결과 2013년부터 완성차 노동자들은 주간연속 2교대제로 일하고 있다. 무엇이 변했을까? 보통 새벽1시부터 5시까지는 공장에 불이 꺼진다. 주야맞교대로 24시간 돌아가던 공장이 그나마 몇 시간이라도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잔업이 줄었다. 무조건 8시간 노동하고 2시간 잔업하던 것이 이제는 잔업할 틈 없이 교대를 해야 하니 강제로 줄어든 셈이다. 무엇보다 심야노동을 하지 않게 되었다. 2조는 새벽 1시에 근무가 끝나고 1조는 6시까지 출근해야 하니 여전히 야간노동과 새벽노동은 있지만 그래도 '노동자 모두가 잠든 시간'은 자동차 노동자들이 처음 겪는 사건이다. 

이들은 단 한 번도 동료들이 모두 잠을 자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들 중 절반은 늘 깨어 있었다. 이들의 신체는 누군가 나 대신 일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잠들 수 있었던 것이다. 1998년부터 시작된 길고 지루한 싸움은 완성차에서 부품사로 번지고 있다. 모두가 잠자는 시간은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자동차 노동자들의 신체와 삶을 바꿔놓고 있다. 이제는 이 변화의 방향을 둘러싸고 자본과 노동의 두 번째 싸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이라는 감각 일깨우기 

2012년 한국의 노동시간은 2,092시간으로 OECD 국가 중 2위다. 같은 해 OECD 평균 노동시간은 1,765시간이다. 그런데도 노동시간이 예전에 비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한국의 기업들은 장시간 노동이 문제가 아니란다. 그러나 같은 해 금속노조가 조사한 자동차 부품사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2,856시간이었다. 

이들은 한국노동자들 평균 노동시간보다 800시간을, OECD 노동시간보다는 1,000시간을 더 일했다. 자동차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이 한국사회의 노동시간 단축을 저지하고 있는 형세다. 부품사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해왔던 이유는 자신들이 다른 노동자들보다 1 년에 1,000시간을 더 일하고 있다는 "인식을 못했기 때문" 이었고, 다른 나라의 자동차 노동자들은 심야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려면 동료들의 장시간 노동이 보이지 않고, 내가 장시간 동안 일하고 있다는 인식을 망각하는 상태여야 한다. 인간의 신체는 분명 고통을 호소했을 것이다. 자본의 속도에 맞추는 인간의 신체는 급격하게 소진될 수밖에 없다. 이 고통의 시간을 신체가 기꺼이 흡수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자동차 노동자들이 밤을 '심야노동을 할 수 있어서 수당이 붙는 쏠쏠한 노동시간'으로 인식했던 것은, 왜곡된 임금구조와 낮은 임금 때문이다. 화폐가 부르는 밤의 노래에, 장시간 노동이라는 굳은살은 노동자들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고, 급기야 "견딜만 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이 느낌은 화폐가 덧씌운 느낌, 장시간 노동이라는 감각을 제거한 통증 없는 상태에 불과하다. 


"밤에는 잠 좀 자자"는 유성지회의 싸움은 장시간 노동에 대한 감각이 깨어나는 목소리였다. 

"유성기업이 밤에는 잠 좀 자자, 우리는 올빼미가 아니다 라는 타이틀을 걸고 싸울 때 우리도 집회에 참여했어요. 이렇게 싸우다보니 조합간부와 임원이 느낀 거죠. 아~ 밤에 왜 일을 해야 하나." 

주간연속 2교대제를 경험하고 있는 자동차 노동자들은 이제 다시는 심야노동을 하고 싶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이미 장시간 노동이라는 통각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들의 '잠자는 밤 시간'은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만든, 싸워서 다시 찾은 공통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생산성과 노동시간 단축의 교전-제2라운드 

그래서 잠을 자는 시간은 이제 자본이 멈춘 시간이 되었다. 자본 측이 이를 그냥 두고 볼리는 만무하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윤이고, 이윤이란 시간당 생산성의 증대다. '시간이 줄었으니 생산성을 더 올려라.' 다른 한편 잠을 자는 시간은 노동자에게는 심야수당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노동자들은 밤 시간을 두고 갈등했다. '밤에는 잠을 자야지'와 '죽으면 원 없이 잘 텐데, 임금이 줄면 안 된다' 사이의 간극은 1,000시간의 초과노동을 수 십 년 일한 만큼이나 깊다. 이러한 갈등을 파고들어 자본은 생산성과 임금을 연결하고자 했다. 

"임금보전 수준은 생산량 보존 수준과 연계하는 것이 회사의 기조다. "(Q사 관리자) 

완성차와 부품사 지회는 점심시간을 줄이고, 휴게시간을 없애고, 노조교육시간을 근무시간 밖으로 내밀면서 일하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했다. 그것도 모자라 "숨어있는 여유율"을 뽑아내기 위해 노동강도를 높였다. 노동강도의 척도로 사용되고 있는 UPH(시 간당 생산대수)를 10~15% 올렸다는데, 이 정도는 현장 노동자들에겐 "더는 못 올리는" 수준이다. 

완성차를 필두로 부품사들의 합의 과정에서 잡음이나 소란은 없었다. 심야노동을 철폐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자는 싸움치고는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완성차가 그렇게 매듭지었다. 생산성의 증대와 임금보전,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요구를 적절하게 조정했다. 완성차의 합의안은 암묵적인 가이드라인이 되어 부품사 자본과 노동자에게 전달되었다. 

두 번째는 주간연속 2교대제를 선도적으로 전개하고 본격적인 투쟁으로 만들고자 했던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패배다. 현대차 자본이 개입하고 공권력이 실행한 폭력은 주간연속 2교대제의 가이드라인을 넘을 경우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가 되었다. 인터뷰에 응한 50명이 넘는 부품사 노동자들은 유성기업의 투쟁에 대해 기묘하리만치 함구했다. 완성차 지부의 타결과 유성기업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타격이 그어 놓은 선 안에서 부품사 노동자들은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게 된다.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생산성의 이데올로기에 잠식된 현장에 있다. IMF 위기를 겪은 지금의 노동자들, 그 위기에서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자본의 생산성 증가 요구를 노동강도 강화로 흡수했다. 고정급이나 기본급을 높이기 위한 집단적인 요구보다는 잔업과 특근에 따른 보상적 임금을 요구했다. 연쇄적인 구조조정을 저지하지 못하면서 '우리의 일터'라는 집단적 공간성에 균열이 심화되었고, 그 틈으로 생산성 이데올로기가 초과수당이라는 개별적 성과주의로 채워졌다. 

주간연속 2교대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현장의 기조는 "물량 수평이동" "임금 수평이동" 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정리되었다. 하지만 임금은 보전되었지만 몸이 흡수하는 시간당 물량은 더욱 늘어났다. 임금은 하락하지 않고 고정되었지만 몸이 흡수하는 물량이란 몸이 견디는 한 더욱 늘어나는 속성을 가진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시작한 싸움이 생산성을 둘러싼 교전으로 역전되었다. 

우리가 임금을 보전 받으려면 사측이 요구하는 생산성도 보전해주어야 한다는 기묘한 평등주의가 자동차 공장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주간연속 2교대제 전환은 아직 진행 중이다. 1조와 2조 시간을 각각 8시간, 9시간으로 도입했지만 2016년 이후부터 8시간, 8시간으로 더 낮춰야한다. 지금의 기묘한 평등주의 논리 하에서, 1시간 더 줄인 만큼 1시간 분의 노동강도를 더 높이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 노동강도로 흡수하지 않은 단 1시간을 확보하는 싸움은 이 평등주의를 깨야만 가능하다. 

개별화된 임금을 전체의 보편적인 임금구조로 바꾸는 것, 시간급제가 아니라 월급의 형태로 임금을 바꾸어야만 한다. 생산성의 이데올로기를 깰 수 있는 지루하고 소소하고 지속적인 잡음을 지금부터라도 만들어야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임금과 생산성의 고리를 끊어낸 '단 1시간' 을 확보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주간연속 2교대제의 2라운드를 고민할 시간이다.

특집 1.주간연속 2교대 시행 현황과 교대제 변화의 영향 /2015.8

주간연속 2교대 시행 현황과 교대제 변화의 영향



김형렬 노동시간센터(준) 회원



확대되는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 

2013년 완성차 공장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한 이후 자동차 부품 회사들이 연속적으로 교대제 변경을 진행하고 있다. 주야 맞교대를 시행하던 20여 년의 장시간 노동과 야간 노동이 일부 완화되고 있고, 노동 시간과 야간 노동의 단축이라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일부 지회에서 수행한 조사에서 조합원들의 만족도는 높았고, 일상의 삶도 변화가 감지되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취미 활동을 기획하고, 자녀 돌봄이나 가사 노동에 대한 분담도 늘어났다. 무엇보다 주간연속 2교대 실시와 함께 노동 시간 단축과 심야 노동 단축의 문제는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과제로 인식된 점은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야간노동의 단축 효과가 예상했던 것보다 미미하고, 토요일, 일요일 특근이 다시 시작되는 등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가 크지 않은 불완전한 변화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일부 사업장에서 교대제 변경과 함께 노동 강도의 증가가 있거나 예측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임금 감소에 따른 조합원들의 반발도 있었다. 

완성차 공장의 교대제 변화 과정에서 발생한 이와 같은 문제는 예측했던 문제이거나 얻은 성과의 크기에 비해 작은 문제라고 판단하는 관점이 있다. 또 한 측면으로는 이러한 문제와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노동 시간 단축과 야간 노동 철폐를 만들어 나갈 기획과 현장 통제력이 충분치 않다는 비관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교대제 전환의 흥정과 협상 

이러한 상황에서 자동차 부품 사업장의 주간 연속 2교대로의 전환은 임금, 노동 강도, 고용(비정규직 확대)의 문제와 연동되어 몇 가지를 양보하거나 맞바꾸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임금의 유지를 위해 생산물량을 더 늘리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변화가 단위 사업장에서 고립되어 진행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이에 부품사들의 주간연속 2교대 이행 실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이행 과정에 대해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즉, 이행의 과정에서 임금, 노동 강도, 고용의 문제가 어떻게 논의되고 결정되었는지, 조합원을 설득하는 과정은 어떠했고, 사측의 대응과 투쟁방향을 설정해 가는 과정은 어떠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이러한 확인과 평가를 통해, 향후 주간연속 2교대 뿐 아니라 이후에 벌어질 노동 시간 단축 투쟁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기초 자료를 만들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미 교대근무의 변화를 경험했거나,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 단위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건강과 삶의 변화를 조사하고, 노동 시간과 생활의 변화로 인해 노동조합 활동의 변화가 없는지, 있다면 구체적인 변화의 양상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연구 방법 

이러한 결과를 얻기 위해, 38개 지회 51명의 조합 간부 및 조합원들에 대해 면접을 진행하였다. 면접의 주요 내용은 교대제 변화 전후의 작업환경, 임금, 노동시간, 조합 활동에 대한 내용과 교대제 이행 과정에서 어려움, 조합원과의 소통, 사측과의 합의 과정 등이었다. 사업장 단위의 설문조사도 수행하였는데, 45개 사업장에 대해 교대제 이행 상황, 교대제 변화의 주요 내용, 작업환경의 변화, 교대제 전환의 주요 동력, 조합의 대응과 조합원 소통 등에 대해 설문하였다. 

또한 7개 사업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교대제 이행 전후 건강과 삶의 변화, 특히 수면건강 및 건강행태, 취미 생활 등에 대해 물었고, 교대제 변경에 따른 노동시간, 임금, 노동 강도 변화에 대해 설문하였다. 진행했던 연구 결과 중에 부품사의 교대제 이행과정에서의 특징, 외주화 경향, 통상임금의 문제를 둘러싼 쟁점 등에 대해 주요 내용을 싣는다. 

일부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문제를 짚어 내고 논쟁을 제기하는 것은 노동 시간 단축과 심야 노동의 철폐가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장의 힘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면 더 이상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 나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절실함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특집 3. 유난히 폭력적인 한국기업의 노동통제, 실체를 보다 /2015.07

유난히 폭력적인 한국기업의 노동통제, 실체를 보다

- 신경아 교수 인터뷰

 

 

정하나 선전위원

 

 

 

 

신경아 교수(한림대 사회학과)는 주로 여성노동, 신자유주의 사회의 개인화, 노동자 가족의 일- 삶균형, 감정노동, 일터에서의 인간관계 및 직장 내 괴롭힘 등을 연구주제로 삼고 있다. <여성과 일: 일터에서 평등을 찾다>, <시간제 노동과 성평등: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 정책에 대한 비판적 논의>, <감정노동의 구조적 원인과 결과의 개인화>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발표하였다.

 

 

최근 KT의 '인력퇴출 프로그램'이나 대신증권의 '전략적 성과관리체계'와 같은 사례를 통해, 자본의 폭력적인 인사정책에 의해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심각하게 파괴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혹자는 이를 '직장 내 괴롭힘'이란 틀로 설명하기도 한다. 가학적·폭력적 노무관리와 직장 내 괴롭힘, 어떻게 다른가?


"'직장 내 괴롭힘'이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폭력적인 노무관리는 직장 내 괴롭힘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침해하는 일터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가해대상과 원인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해 볼 수 있다.

 

첫째, 기업의 경영전략 전반이 노동자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기조일 수 있다. 대규모 구조조정이나 노동조합 파괴를 목적으로 전개되는 인사관리, 실적을 쥐어짜기 위한 영업 전략이나 평가체계, CS(고객만족)를 추구하기 위한 과도한 교육 등이 이에 속한다. 이를 '가학적 노무관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종업원 간의 관계, 즉 같이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괴롭힘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수직적 관계와 수평적 관계 모두에서 일어난다. 회사 전체의 경영전략이 아닐지라도 개별 상사(관리자)가 자기보다 직급이 낮은 노동자를 괴롭힐 수 있다. 같은 팀에서 일하는 데 일하는 방식이나 성격이 맘에 들지 않는다거나, 업무상 성과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폭력적인 양상을 띨 수 있다.

 

혹은 같은 직급 내, 수평적인 관계의 노동자들끼리 역시 갈등이 생기는데, 여성 직원에게 남성 동료들이 비하적인 언사를 하는 것, 직장 내 성희롱도 여기에 속한다. 혹은 같은 노동자임에도 노조에 가입한 사람을 백안시하며 따돌리는 사례도 있다. 마지막으로 고객에 의한 괴롭힘이 있다. 고객을 직접대면 서비스직 노동자들이 주로 노출되는 괴롭힘이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최근 보고서나 논의들을 보면 여러 가지 외국의 사례나 개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학문적으로는 어떻게 정립되어 있는지?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하는 것은 학술 진영에서 제기한 개념은 아니다. '성폭력' 사안이 그랬듯이, 현장에서 발생한 어떤 '문제'적 현상을 '문제화' 하고 이후 처벌기준과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한 흐름 가운데 실태조사와 이론 작업을 병행하는 중이라고 보면 되겠다. 세계적으로도 아직 관련 연구가 거의 없고 학술적으로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는 않다.

 

영어권에서는 workplace(직장)라는 단어에 bullying(약자 괴롭히기, 따돌림), harassment (괴롭힘, 학대), violence(폭력, 폭행)과 같은 단어를 붙여서 표현한다. 일본은 직장 내 상하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괴롭힘은 '파 워하라(power harassment)', 성희롱이나 성추행 같은 성적 괴롭힘은 '세쿠하라(sexual harassment)', 임신이 나 출산시기의 노동자를 괴롭히는 모성탄압은 '마타하라 (maternity harassment)'로 나눠 유형화 했다.

 

한국의 노동자 괴롭힘 양태로 볼 때 개인적으로는 '기업의 폭력적 노동통제 전략'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 다. 직장 내 괴롭힘의 여러 가지 양태 중에서도 관리자로부터의 괴롭힘 더 나아가 회사의 경영전략으로서 채택한 폭력적인 인사(노무)관리의 성격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한국은 외국사례와 비교해 어떤 특징이 있나? 한국사회의 여러 '직장 내 괴롭힘' 양상들을 보며 주목하시는 지점이 있다면 말씀해 달라.


"노사관계가 안정된 유럽 국가들 같은 경우에는 제3자에 의한 괴롭힘에 주로 주목하고 있다. 즉, 고객에 의한 폭력적 상황에 노출되는 노동자가 많아 이 부분이 최근 가장 큰 이슈이다. 노동자 인권이 보장된 사회에서는 기업이나 상사가 노동자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제3자에 대한 것이 더 부각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감정노동만 해도 그렇다. 이번에 서울시에서 만드는 '감정노동자 가이드라인' 제정 과정에 참여하면서 보니, 한국에서 만드는 이 메뉴얼이 그 어떤 나라에서 만든 것보다 내용이 많고 앞서 있더라. 유럽 등지에서는 기업이 과도한 감정 억압적 노동이나 CS평가를 노동자에게 마구 부가할 수 없다. '손님은 무조건 왕'으로 대하며 노동자가 고객에게 괴롭힘 당하는 부분이 구조적으로 어느 정도 제지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과도할 경우 노조를 통해 문제제기 의견 반영이 잘 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우리처럼 세세한 법 규정이 굳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기업들이 이런 일상적인 괴롭힘, 폭력적 노동 통제를 하는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기업의 폭력적 노동통제의 맥락을 짚어보면 첫째로 실적관리가 가장 많다. 높은 실적, 시장 우위 선점을 이유로 노동자의 근태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노골적 구조조정이다. 비용절감을 위해 노동자를 내보내고 싶으나 자를 수는 없으니까, 스스로 사표를 쓰고 나갈 때까지 괴롭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목표를 위해 기업의 전략적 괴롭힘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성과를 위해 노동자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관리하는 것은 근거 없는 경영전략이다. 엄격하게 근태관리를 하기 위해 노동자를 감시하고, 실적이 좋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는 것, 정당한 이의제기 창구인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등의 '통제' 전략은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성과를 올리고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결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젠더차별로 나타나는 모성 탄압적 괴롭힘과 성적 괴롭힘 역시 노동자를 퇴출하는 결과로 귀결된다.

 

기업이 공식적인 통제 전략으로 표방하지는 않지만,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 법정 육아휴직기간을 신청한 여성이 결국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거나, 같은 사무실에 있어도 커피 타는 손님접대는 여성에게 요구되어 일 집중도나 직장 만족도가 떨어져 이직했다는 등의 얘기는 너무 많다."

 

성과를 높이고 노동자들의 근로의욕을 제고한다는 명목에 서 자행되는 한국 기업들의 엄격한 근태관리 정책이나 저 성과자 관리프로그램은 실효가 없는 것인가?


"생산성과 이윤의 논리로만 봤을 때도 자본의 이러한 전략은 바뀌어야 한다. 경영·경제학 쪽 이론에서 말하기를, 기업이 성과관리를 위해 과도하게 노동자를 통제할 때 가장 우수한 노동자가 빠져나가게 된다고 한다. 회사의 억압적인 분위기 안에서는 자신의 기량을 다 펼치지 못하는 불만이 있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결국 퇴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기업에서 눈엣가시로 여기며 퇴출시키고자 했던 '능력이 부족하고 실적이 없는' 노동자만 남는 결과를 기업 스스로 자초하는 꼴이다.

 

한편 그런 회사에 남은 사람들은 무사안일주의, 관료주의에 빠진다고 말한다. 압박에 지친 노동자들은 더 이상 창조적인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열심히 뭔가를 달성하면 또 더한 성과를 요구받게 되니 위에서 시키는 선 정도만 맞추는 것이 노동자들의 목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즉, 일정한 수준 이상의 생산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자율성이 최대한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결국, 현재 기업들의 행태는 한국사회에서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자본이 노동을 바라보는 매우 권위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인식('노동은 통제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기저에 작동하는 가운데, '비용절감'을 위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유연화 및 구조조정 전략이라고 보인다. 작년 말 발표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도 '직무 성과제'를 주장하고 있는데, 결국 성과가 낮은 노동자는 해고가 용이하게끔 하는 개악안인 것을 알 수 있다. 정부정책까지 이렇게 되어가고 있으니, 자본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 같은 폭력적 경영전략이 더 심화될까 우려스럽다."

 

한국기업들이 이러한 노동통제가 상대적으로 더 폭력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이 기본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노동에 대한 타성적 인식이 문제라고 본다. 노동자는 계속 통제하고 감시·감독해야 하는 존재이며, 자율성을 존중하기보다 억압해야 하는 대상으로 취급한다. 또한 그보다 더 긴 역사 속에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가부장적 권위주위의 문화도 큰 문제이다.

 

반드시 성폭력과 같은 성적 괴롭힘의 형태를 띠지 않더라도 일터에서 발생하는 여러 괴롭힘과 폭력의 양상들은 젠더 차별적으로 나타나기 일쑤이다. 이 사회의 산업구조와 직무배치가 젠더 차별적이기 때문이다. 서비스업에 여성노동자가 훨씬 많이 투입되어 있는 노동시장의 구조가 큰 틀에 존재하고, 특히나 공공기관의 민원담당, 기업의 불만처리 창구·핫라인 등 고객을 직접 응대해야 하는 자리에 젊은 여성노동자를 배치하는 경향이 짙다. 외국의 경우 특히 불만접수 업무는 전자 우편이나 우편을 통해 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러한 노동에 대한 천대, 가부장적 문화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 그리고 산업구조와 맞물려 괴롭힘의 가해주체(기업·동료나 직장상사·고객들)들이 여성 등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약한 노동자에게 훨씬 더 폭력적으로 대한다. 비정규직, 이주여성, 성적소수 노동자에게라면 괴롭힘의 심도가 훨씬 더할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 혹은 선결과제로 생각하시는 것이 있는지?


"앞서 말씀드렸듯, 한국은 기업에 의한 경영전략상의 노동통제 측면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주요하게 발생한다. 이것이 외국과 다른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우리와는 그 양상부터 다르기에 외국의 제도를 그대로 이식하는 건 맞지 않다. 사문화될 가능성이 크다. 성과를 빌미로 기업 경영전략 차원에서 무개념적으로 노동자를 통제하는 흐름이 있는데 이것의 허위성을 폭로하며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나가야 한다. 한편 결과중심 자본 중심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틀을 깨기 위한 새로운 성과지표 개발도 고민해 보아야 한다."

특집 2. 가학적 노무관리, 노동자를 죽인다 /2015.7

가학적 노무관리 노동자를 죽인다

 

 

선전위원회

 

 

미포조선 정규직 노동자인 김석진씨는 지난 2009년 1월 경 미포조선 굴뚝 농성에 참여했다가 중공업 경비대의 테러를 당하고 크게 다쳐 1년 여간 치료받은 뒤 복직했다. 그러나 복직 후 회사는 김석진 씨가 회사를 망하게 한다며 악선전을 하고, 그와 인사하거나 대화하는 노동자들을 개별 면담 등으로 압박했다. 같은 부서원 명의로 '같이 일할 수 없다'는 내용의 펼침막을 걸기도 했다. 젊은 직원을 감시, 미행자로 붙여 작업 중 몇 발자국만 움직여도 따라다니게 하고, 심지어 화장실까지도 따라붙게 했다. 매일 집 앞에서 승용차를 세워둔 채 감시하여 가족의 사생활까지도 감시했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으로 3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오던 김 조합원은 증상 악화로 2011년 병가 휴직을 내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신청을 했고, 2012년 결국 산재 승인되었다. (관련 기사 : 현대미포 김석진씨 우울증 산재로 인정) 고 양우권 이지테크 지회장 사례와 너무 흡사해서 가슴을 치게 된다. 지난 몇 년 사이 가학적 노무관리는 더 흔해지고, 더 심해져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버티던 노동자들이 결국 죽어나가게 된 것이다.

 

괴롭힘이 심할수록 황폐화되는 마음

 

이렇게 직장 내 괴롭힘, 가학적 노무관리는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무너뜨린다. 김석진 씨 사례에서처럼 우울증 등 정신건강이 특히 문제가 된다. 2014년 발표된 'KT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강제 퇴출 프로그램인 CFT 근무자들은 신체화 증상, 강박증, 대민예민성, 우울, 불안, 적대감, 편집증, 정신증 등 모든 항목에서 일반 인구보다 건강 상태가 나빴다. CFT 근무자 내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이 심하다고 응답할수록 신체화, 강박증, 대 민예민성, 우울, 불안, 적대감, 공포불안, 편집증, 정신증이 유의하게 증가되었다.

2012년까지 발표된 직장 내 괴롭힘의 건강 영향과 관련된 연구를 모아 통합적으로 분석해보니 연구 시작 시점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던 참가자 들이 나중에 정신 건강 문제가 발생하거나, 건강 문제로 병가를 낼 위험이 유의하게 높았다.

 

6만2916명을 대상으로 장기적으로 관찰한 13개의 연구를 모아 분석한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연구 시작 시점에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정신 건강 문제가 생길 위험은 2.33배 (95% 신뢰구간 1.76~3.09)나 높았다. (Nielsen and Einarsen, <Work & Stress>, 2012, 26 (4) 참조)

 

직장 내 괴롭힘 중 가학적 노무관리만 분리해서 건강영향을 따로 살펴본 연구는 많지 않지만,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다른 직장 내 괴롭힘 과 마찬가지로 가학적 노무관리는 정서적 소진과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 가학적 노무관리를 심하게 느낄수록 이런 지표들이 더욱 나빠진다는 보고가 있다.

 

가학적 노무관리를 심하게 느낄수록 소진(burnout), 정서적 소진(emotional exhaustion)이 심해졌다. 최근에는 가학적 노무관리와 우울증, 불안, 심리적 웰빙 지수, 삶의 만족도, 불면증 등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발표되고 있다. (Martinko et al., <Journal of Organizational Behavior>, J. Organiz. Behav. , 2013, 34, S120∙S137)

 

극심한 스트레스, 몸도 병든다

 

정신적인 학대인 '직장 내 괴롭힘'과 '가학적 노무관리'는 노동자의 몸도 병들게 한다. 병원 직원을 2년간 추적 관찰한 연구 결과, 2번의 설문조사에서 모두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다고 응답한 노동자는 한 번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지 않은 노동자에 비해 우울증 발생할 위험이 4.2배(95% 신뢰구간 2.0~8.6)나 높았던 것은 물론이고, 심장질환이 발생할 위험도 2.3배(95% 신뢰구간 1.2~4.6)나 높았다. (Kivimaki et al., <Occup Environ Med> 2003, 60, 779-783쪽 참조) 

 

정신적 학대의 결과로 극심한 스트레스가 발생해 만성적인 심혈관계 질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추측된다. 직무스트레스가 이들 질병의 위험을 높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아침 기상 시 타액 내 코티졸 농도가 낮았다.(Hansen et al., <Journal of Psychosomatic Research>, 2006, 60(1), 63-72쪽 참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은 정상적으로 아침에 가장 농도가 높고, 시간이 지날수록 농도가 낮아지는 하루 주기 리듬을 가지고 있는데, 만성적인 피로와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경우 이 차이가 줄어들고 이는 심혈관계 질환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건강의 극단, 자살

 

이런 피해의 극단적인 형태가 자살이다. 가학적 노무관리 피해자들은 이런 학대 행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힘들다는 짙은 무력감을 느낀다. 정신적인 학대가 개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조직적이고 집단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느끼는 이런 무력감은 직장 내 괴롭힘의 가장 큰 공통된 특징 중 하나다.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이 발생하고, 강한 무력감을 느끼는 피해자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경쟁 체제에 기반한 가혹한 실적 관리에 압박을 받아 자살한 은행 지점장이나, 노동조합 만들었다는 이유로 인격을 모독당하다가 목숨을 던진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 가학적 노무관리의 희생자다.

 

정신적 괴롭힘을 '경영' 수단으로 활용하는 폭력적인 노무관리의 피해자다. 어린이를 좁은 갱도에 몰아넣고 석탄을 채굴하던 18세기 자본주의가 신체적 착취의 극단이었다면, 노동자의 정신을 쥐어짜려는 시도는 지금도 극단을 향해 더 나아가고 있다.

 

행복하게 살 권리 쟁취하자

 

가학적 노무관리를 넘어 행복하게 일할 권리,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이 문제를 인식하고 수면 위로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비인간적인 대우를 수반한 성과 경쟁, 감시와 사생활 침해를 동반한 노동자 관리는 개별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대응해야 할 사안이다.

 

법적인 측면에서 가학적 노무관리를 처벌하는 입법안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직장 내 괴롭힘의 행태와 발생 원인이 다양할뿐더러, '괴롭힘' 이나 '가학적 노무관리' 를 정의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지순 등, <근로자에 대한 가학적 인사관리 등 관련 사례분석 및 입법례 연구>, 2014 참조)

 

그래서 먼저 근로기준법 상에서 노동자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취해져야 한다. 그리고 당분간은 각각의 사건을 이슈화하고 개별 사건들에서 사업주가 사법적으로 처벌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과, '가학적 노무관리' 를 문제화하고, 최소한의 제어를 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수립이 필요하다.

 

신체적, 정신적 훼손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것은 '대안' 은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기도 하다. 2003년 청구성심병원 노동자 8명이 회사의 감시와 괴롭힘에 의한 집단정신질환으로 산재 승인된 바 있지만, 가학적 노무관리에 의한 노동자 피해에 대한 보상은 여전히 부족하다.

 

물론 이런 끔찍한 광경이 현장에서 발붙일 수 없도록 하는 것은 노동자의 조직된 힘뿐이다. 우리는 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그 시간 동안 그 공간 내에서 우리의 모든 인격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함께 주장하고, 노동자에 대한 학대에 맞설 수 있는 노동자의 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특집 1. 이것은 '학대'다 /2015.7

이것은 '학대'다

- 사례로 본 가학적 노무관리

 

선전위원회

 

 

"책상에 앉혀두고 아무 일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높은 사람들이 나와는 얘기도 하지 말고 밖에서 밥도 같이 먹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직원들은 나와 눈 마주치기도 어려워했습니다."

 

지난 5월 10일 자살한 양우권 포스코사내하청지회 EG테크분회장이 생전에 나눈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고 양우권 분회장은 노동조합 활동 때문에 두 차례나 해고를 당했는데, 결국 3년에 걸친 길고 어려운 법정 투쟁을 통해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다. 2014년 2월 두 번째 징계 해고까지 '부당해고'라고 판결이 확정되었지만, 회사는 그를 원래 일하던 제철소 현장 대신 제철소 밖에 있는 행정사무실로 출근시켰다. 거기서 회사는 그를 책상에 앉혀둔 채 아무 일도 시키지 않았다. 홀로 남아서도 투쟁을 이어가던 그였지만, 다양한 방식의 학대로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을 의지만으로 이겨낼 수 없었다.

 

단순한 괴롭힘이 아니다

  
이런 행태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직장 내 괴롭힘을 직장 내 폭력의 한 유형으로 심리적 괴롭힘, 감정적 학대, 집단적 따돌림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보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용어를 들으면, 앞뒤 꽉 막히고 폭력적인 '진상 상사'가 폭언과 비인간적이고 모욕적인 대우를 하는 드라마 속 장면이 떠오르거나 친한 동료들끼리 몰려다니면서 다른 동료를 왕따 시키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자칫 노동자들 사이, 개인적인 문제에 기인한 정신적 괴롭힘이나 감정적 학대를 먼저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통일된 정의가 사용되지는 않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보통 괴롭히는 사람과 피해자 사이에 불균등한 권력 관계가 있으며, 더불어 괴롭힘 행위가 체계적이고 반복적으로 벌어진다. 또 피해자 스스로가 열등한 위치에 처해 있음을 알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상황을 경험하는 것 등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공통적으로 뜻하는 것들이다.

 

'가학적 노무관리'란 이런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을 회사나 상급자가 인사 관리, 노무관리의 수단으로 채택한 경우다. 가학적 노무관리에 대한 연구는 사회학이나 경영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연구자들에 따르면 '가학적 노무관리'란 '상사가 관여된 적대적인 언어적 비언어적 행위가 지속적으로 행해진다는 하급자의 인식'이다.

 

기본적으로 비대칭적인 권력 관계인 상사-부하직원 혹은 경영 조직 자체-노동자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정의할 때처럼 '피해자의 인식'이 '가학적 노무관리' 여부를 정의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행위의 구체적인 양태로는 공적인 조롱, 무례한 언사나 태도, 사생활 침해 등이 모두 포함될 수 있다. 특히 회사가 괴롭힘을 정책적으로 적극 활용하는 경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가학적 노무관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가학적 노무관리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노동조합 활동 탄압 도구로 활용되어온 사례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노조 탄압'이나 노사 간의 격렬한 투쟁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구조조정을 달성하기 위해, 성과를 높이기 위해, 고객 만족을 위한다는 다양한 핑계로 노동자 학대를 '경영 수단'으로 활용한다.

 

괴롭힘 양상 또한 과거와 달리 해고 대상자에 대한 구조조정형, 정규직·비정규직·파견직 등 고용형태의 차이에서 생기는 노무 관리형, 과도한 경쟁과 성과주의에 따른 괴롭힘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채용부터 근로관계 종료까지의 전체 인사·노무관리 과정에서 '학대'와 '괴롭힘'을 자본과 경영의 목적에 따라 지속적이고 공공연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노동자들의 인식을 '가학적 노무관리'라고 부르고자 한다.

 

앞으로 몇 가지 사례를 통해 가학적 노무관리의 유형을 분류해보고, 이런 폭력이 얼마나 우리 노동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 함께 확인해보자.

 

1) 노동조합 탄압의 도구

 

EG테크 양우권 열사 사례는 각종 학대와 괴롭힘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한 전형적인 예이다. 과소 업무량을 주거나, 조직적으로 왕따 시키기, 반대로 도저히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의 과도한 업무량을 부과하는 등 다양한 전술이 사용되지만, 결국 조합 활동을 포기하도록 하거나, 조합원이 사직하도록 하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추진된다는 점은 동일하다. 노동조합 활동 탄압에 이런 괴롭힘을 도구로 활용한 역사는 매우 길다.

 

2003년 청구성심병원 노동자 8명이 집단정신질환으로 산재 승인을 받았다. 노동 조합원에 대한 폭언, 폭행과 괴롭힘이 집단 정신질환 발병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직접적인 폭력 사태도 심각했지만, 정신적인 괴롭힘도 무시무시했다. 조합원들에게만 업무를 과도하게 분배하거나, 부서 내 회식에서 배제하고 비조합원 직원들이 말도 걸지 못 하게 했다. CCTV를 설치해서 감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합원 근무처에서 관리자가 커튼 뒤에 숨어서 감시하는 일까지 있었다.

 

몇 년 전 이마트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에 선제적 대응'을 위해 노동자 개인을 감시하고, '문제인력'을 파악하기 위해 면담을 진행하고, 문제인력으로 찍히면 분산된 사업장에 배치하도록 했던 것도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하기 위해 괴롭힘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2) 괴로우면 나가라, 퇴출 프로그램

 

D증권에서는 저성과자들의 실적 향상을 돕는다는 미명 하에 전략적 성과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8개월간 3단계에 걸쳐 저성과자들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들은 실제 성과를 높이는 것보다, 퇴직을 강요하고 구조조정을 우회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실적 향상을 도와준다면서, 실효성 없는 업무를 시키거나 실제 영업과 관련 없는 우편물 분류나 회사 도서관 사서 등의 업무를 맡겼기 때문이다.

 

경력 20년이 넘는 영업직 노동자가 갑자기 우편물을 분류하거나, 회사 식당 옆 도서관 사서 역할을 하면서 모멸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회사의 목적이었다. 결국 이 프로그램이 끝난 후 대상자 18명이 모두 사직했다.

 

가장 유명한 것은 KT 사례다. 2014년 11월 발표된 'KT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서'는 KT에서 CFT(Cross Function Team)에 근무하는 221명에 대한 조사 결과를 담고 있다. CFT는 명예퇴직 신청 거부자들을 모아 만든 팀으로 사실상의 인력 퇴출 프로그램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응답자들은 명예퇴직 요구를 불응하면서 기존 업무에서의 배제, 계속적인 면담 요구, 조직구성원들로부터의 집단 따돌림 등의 비인격적 조치가 행해졌다고 응답했다. 원거리 발령, 업무 전환배치 등도 대표적인 괴롭힘 수단이다. 이런 가혹한 수단을 활용해가며 KT는 한국 기업 구조조정 최대 규모의 명예퇴직 행렬을 이어나가고 있다.

 

 

 

▲  2014년 발표된 KT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서 

 

3) 학대와 괴롭힘으로 실적 압박

 

2014년 겨울, 한 통신사업체 고객센터 상담원이 자살했다. 그는 유서를 통해 업체가 고객센터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상품 판매를 요구하고, 회사 스스로 정해놓은 규정마저도 실적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무시하도록 조장했다고 고발했다. "고객센터에 단순 문의하는 고객들에게 전화, IPTV, 홈CCTV 등의 상품 판매를 강요하고 목표건수를 채우지 못하면 퇴근을 하지 못합니다. 목표건수 역시 회사에서 강제로 정한 내용입니다…. (중략) 가입실은 휴대폰이나 070전화(핫라인)을 통해 녹취를 남기지 않고 가입을 시켜도 쉬쉬할 뿐 제재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가입시키고 보자는 거니까요." 당시 희망연대노조가 국가인권위에 제출한 진정 내용에 따르면 일부 콜센터에서는 회사가 정해준 영업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퇴근 시간 이후, 자신의 '콜'을 수십 번씩 되풀이해서 들어야 하는 자아비판 시간도 가져야 했다고 한다.

 

이윤과 생산성을 중심으로 하는 평가 시스템이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 사례에서처럼 실적을 높이게 하기 위해 퇴근을 막고, '자아비판'의 형태로 정신적인 '고문'을 가하는 것은 명백한 가학적 노무관리에 해당한다.

 

가학성, 노동의 일반적인 특성이 돼 버렸나

 

최근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감정 노동의 경우, 노동자 권리 보장은 약화되고 '고객 중심' 분위기가 강화 되면서 일 자체로 노동자가 괴로워지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가학성이 노동의 일반적인 특성이 돼 버린 것이다.

 

판매업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미스터리 쇼퍼'가 대표적인 사례다. 감정노동에 대한 통제방식으로 암행감찰을 채택한 것인데, 이 감찰 결과가 평가로 연결되어 고과 반영 혹은 재교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암행감찰은 그 자체로 노동자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억압적인 노동환경을 조성한다. 

 

또, 이런 암행 감찰은 노동자 사이의 유대감과 신뢰를 깨뜨려, 또 다른 직무스트레스의 원천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회사의 노동자 미행·감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한 대기업 영업 노동자는 노동자들 사이에 '미행 감시 제보자는 결국은 우리 주변에 있는 같은 동료'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미행 감시로 인해 동료들 사이에 불신이 생기고, 관계 갈등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조직 보신을 위해 상급자가 학대 조장

 

르노·삼성 자동차에서는 직원 A씨가 동료 직원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희롱 당했던 것을 신고했다. 회사는 피해자인 A씨에게도 사직을 종용했고, 이에 A씨는 가해자와 인사팀 관련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 임원은 A씨에 대한 조직적인 따돌림을 가했고, 그 과정에서 A씨를 적극 돕던 직원 B씨까지 근태불량을 이유로 징계처분을 내렸다. 조직에 누를 끼치지 말고 가만히 입 다물고 있거나 그게 싫으면 나가라는 것이다. 성희롱/성폭력 사건과 조직 보신을 위한 가학적 노무관리가 결합한 셈이다.

 

피해자는 가해자와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2014년 12월 1심 재판부는 가해자에게는 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였으나, 피해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취한 회사 측 인사 담당자와 사업주에 대한 부분은 기각하였다.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퇴사를 종용하고 조직적 따돌림을 조장한 임원의 행위가 "관리, 책임자로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불이익 원칙을 훼손했을 뿐 아니라, 가학적이고 부당한 노동행위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판결이다.

 

다양한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자본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 '가학적 노무관리'는 이미 우리 노동 현장에 널리 퍼져있다. 우리가 인내하고 넘어가던 학대 장면들에 이름을 붙이고, 이러한 장면들을 연출한 치떨리고 간악한 자본의 노무관리를 공론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힘을 모아 조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옆에 있는 동료를 경계하고 의심하는 피폐한 사회에서 자본이 원하는 대로 허우적대며 연명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특집 1. 416 인권 선언을 운동으로 /2015.6

416 인권 선언을 운동으로


선전위원회


아직도 세월호 얘기야?


일터를 읽는 독자들은 아직도 세월호를 얘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아실 것이라 믿는다. 많은 이들이 세월호 침몰을 지켜보고 그 후 1년이 넘는 시간을 고통과 분노, 연대의 마음으로 함께 보냈다. 이들에게 ‘끝나지 않은 그리움’ 이라는 추모 뮤직비디오의 제목은 명치를 건드리는 것이다. 아직도 사고와 그것을 구조라 부를 수 있다면 ‘구조’ 에 관련된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실종자가 있는데 배는 인양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세월호 사건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고자 했지만,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과제들은 여전히 산적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세월호 얘기 중이다.



세월호가 인권 문제야?


‘416 인권선언’ 은 좀 어색하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가 인권 문제였나? 무능한 국가, 더 나아가 국민을 살리지 못 하는 국가의 문제 아닌가? 진상을 밝히기 위한 ‘조사위원회’ 활동이 시작조차 힘들 정도로 꽁꽁 숨기려는 비밀과 음모의 문제 아닌가? 수십 년간 되풀이 되어 온 대형 참사에도 규제완화로만 달려왔던 이 사회의 안전 문제지. 그래, 이 모든 문제가 견고하게 서로 얽혀있는 문제지. 그런데 이런 복잡한 문제의 밑바닥에서 숨막혀하는 안전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권리는? 슬픔을 참고 모욕과 수모를 받으면서도 싸워야하는 피해자의 권리는?


지난 1년간 우리가 잃은 것


지난 1년간 우리가 잃은 것, 우리가 짓밟힌 것은 무엇이었나 다시 생각해본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생명의 존엄’ 이 너무 쉽게 포기되는 것을 보고 분노했다. 상실과 슬픔을 모욕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추모할 권리조차 빼앗겼다. 이미 난 사고의 진실이라도 밝히는 것은 피해 당사자의 당연하고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고, 진실에 대한 권리는 벌어진 사건, 구체적 상황, 누가 그 사건에 참여했는지에 대한 완전한 진실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는데(류은숙, 인권오름 2014.10), 이런 요구는 불온으로 매도됐다. 안전이라는 것이 기술이 발달하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옳은 정보를 알 권리, 부당한 지시를 멈출 권리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지만 참사 현장에 알 권리와 멈출 권리는 없었다.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큰 손실에 대해 공동체는 긴급한 지원을 충분히 하지 못 했고, 피해자들에게는 참사 상황에서 최소한의 보호와 지원을 받을 권리가 없었다.

각자가 기억하는 끔찍한 장면은 너무나 많고 서로 다를 수 있지만, 그 모든 장면에서 인권은 하늘 아래 원래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었다.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과 빼앗으려는 사람이 싸우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이것은 우리 권리라고 선언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는 것이었다. 세월호 침몰과 그 뒤 일련의 사태를 인권 문제로 보려는 것은, ‘인권’ 이 만능열쇠이기 때문이 아니다. 인권 문제라고 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세월호를 계기로 우리 사회 인권의 현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지난 1년 내내 우리는 ‘인권’이라고 생각했던 권리들이 짓밟히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짓밟힌 권리들을 아직 되살려내지 못 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 권리다, 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 행동 하겠다’ 고 선언하자는 것이 ‘존엄과 안전을 위한 416 인권선언’ 의 취지이다.


존엄과 안전을 위한 416 인권 선언을 운동으로


416 인권선언은 가장 먼저 ‘세월호는 당신에게 무엇이었나’ 라는 질문을 던진다. 바로 거기에 우리가 참사를 통해 배운 ‘인권’ 이 있다. 인권 선언이 멋들어지게 쓰여진 글에 ‘동의한다’ 서명하는 것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법조문처럼 장과 절을 갖추고 국제 인권 조약에 버금가는 형식에만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416 인권 선언은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한 운동, 세월호 이후 다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존엄과 안전을 위한 416 인권선언’을 준비한 사람들은 304번의 풀뿌리 토론을 통해, 말 그대로 사람들이 스스로 ‘선언’ 하는 인권선언을 만들자는 당찬 계획을 세우고 우리에게 제안하고 있다. 우리의 구체적인 공감, 생생한 언어, 각자의 경험을 가지고 ‘존엄과 안전을 위한 416 인권선언’ 을 만들자고 손을 내밀고 있다. 함께 만드는 '4.16 인권선언' 이 되도록 앞으로 이어질 제정 과정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사진 설명 : 인권영화제 416인권선언 홍보부스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출처 : 416 인권선언 실행팀)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운동을 제안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모두 말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사회는 달라져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약속을 지킵시다. 참사 이전의 사회와 단절을 선언하고, 참사 이후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을 함께 밝히자고 제안합니다.


1.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현실을 기억합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모두 약속했습니다. 끝까지 잊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제 다시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2014년 4월 16일 아침,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를 포함한 304명의 희생자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것 외에 우리는 아직 함께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과 국민이 따로 또 같이 1년이 넘는 시간을 겪으며 우리는 수많은 경험들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억울함, 분노, 절망으로 우리를 내몰았던 경험들 말입니다. 그것에 이름을 붙여본다면, 인간의 존엄이 훼손된 경험이라고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저 안타깝고 슬프고 화나는 일을 겪은 것이 아니라 인권을 침해하는 하나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2. 사회 구조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존엄을 훼손하고 무시한 결과, 참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사회가 만들어졌고, 여전히 그 사회는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기업은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을 앞세우고, 정부는 국민의 권리보다 권력의 보호에 골몰하며, 어떤 이들은 공감과 연대보다 모욕에 익숙합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개개의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서로 맞물려 우리를 억압하는 힘을 더욱 발휘하는 구조임을, 우리는 목격하고 확인했습니다. 이런 구조가 세월호 참사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미래에도 우리의 존엄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 역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달라져야 하는 것은 몇몇 문제에 그치지 않는 구조 자체입니다. 혼자서 조심하고 피한다고 해서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낳은 구조가 견고할수록 우리는 더욱 손잡고 연대해야 합니다.


3. 무엇이 안전인지, 인간의 존엄에 기초하여 우리가 말합시다!


누구나 존엄과 안전을 누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추구할 안전은 어떤 가치인가요? 누군가 나서서 지켜주기를 바라며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남기 위해 제각각 경쟁하며 구매하는 것도 아닙니다. 위험을 줄이고 참사의 피해를 줄이는 것은 인권의 문제입니다. 취약한 개인이나 집단에 더욱 큰 위험을 떠넘기는 구조에 맞서 근원적인 평등을 이루는 것이 안전입니다. 우리의 삶을 구속하려는 공포와 비참으로부터 함께 자유로워지는 것이 안전입니다. 구조적 억압을 제거하기 위해 공동체에 참여하며 실천하는 연대가 안전입니다. 우리가 함께 이루려는 안전이 무엇인지 충분히 따져보지 않는다면 자칫 우리가 원하는 정반대의 결과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 동안 국가가 툭 하면 말해온 안전은 오히려 우리의 자유와 평등, 연대를 해쳐왔기 때문입니다.


4. 피해자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우리의 권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속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는 수많은 참사를 겪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잊어왔습니다. 언제나 비슷한 문제들이 드러났지만, 못이긴 척 정부가 나서서 누군가를 엄벌에 처하겠다거나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했다고 하면 그런가보다 하고 잊었습니다. 물러서지 않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는 피해자들이 있으면 보상이 부족한가보다 하고 남 문제로 여겼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진실과 정의, 배상과 재발방지에 대한 피해자의 권리는 거래나 선택을 강요당해서는 안 됩니다. 실종자, 희생자, 생존자와 그 가족들, 그들을 돕거나 피해를 막기 위해 나섰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았던 우리가 어느새 우리를 위험으로 내몰고 있었습니다. 피해자의 권리가 곧 우리의 권리임을 잊지 않고 끝까지 함께 행동해야 합니다.


5. 다른 사회를 열기 위한 우리의 책임은 우리의 권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안한 마음을 가슴 한편에 지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의 미안함은 무엇에 대한, 무엇을 향한 미안함일까요? 혹시 누군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의 무게를 대신 나눠진 채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인권의 시선으로 책임을 밝혀야 합니다.

인권은 인간의 존엄이라는 기초 위에 서 있는 푯대입니다.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실현하지 못하는 정부는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정부뿐만 아니라 인권침해의 구조에 개입된 기업, 언론 등의 행위주체들도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것이 정의입니다. 우리의 미안함은 우리를 짓누르는 상처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책임져야 할 자가 책임질 때, 우리는 참사로부터 자유로운 사회에서 우리의 권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책임을 묻는 행동은 우리의 정치적 책임이자 권리입니다.


6.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은 행동입니다!


권리는 선물이 아닙니다. 시대와 장소를 넘어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역사가 인권입니다. 국제인권법과 헌법이 이미 제시하는 수많은 권리들은 누군가의 치열한 투쟁이 남긴 기록입니다. 앞서 겪은 사람들의 증언에 귀 기울이며 우리 스스로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달라져야 할 것을 고집하는 세력에 경고하며 우리의 권리를 현실에 새깁시다. 모두의 생명과 안전, 자유로운 표현과 결사, 인간다운 노동과 생활 등 우리 스스로 인권의 목록을 써내려갑시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함께 배우면 되고 부딪치는 의견이 있다면 함께 토론하면 됩니다. 세상을 바꿔온 것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감각을 놓치지 않으며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박한 상식과 작은 행동이었습니다. 함께 선언하는 우리가 바로 살아있는 인권입니다.


2016년 4월 우리 모두의 이름으로 인권선언을 선포합시다. 그때까지 함께 선언할 사람들을 조직합시다.

416인권선언운동의 취지와 목적을 알리는 작은 간담회를 열어 첫발을 떼어주십시오.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 홈페이지(http://416act.net)에서 관련 자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416인권선언을 매개로 단위에서 토론을 조직하고 싶은 분들은 추진단에도 함께 해주십시오. http://416act.net/416declaration에서 신청할 수 있습니다.

특집 2. 세월호를 인권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 /2015.6

특집 2. 세월호를 인권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


정리 선전위원회


최민 사회자, 선전위원장 세월호 참사 그리고 그 이후 1년 넘게 벌어진 일들이 끔찍했지만 그걸 '인권' 침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런데 416 인권선언운동에서는 이 과정이 '인간의 존엄이 훼손' 된 경험이라고 선언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만들자는 선포를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궁금하다.


처음엔 먼 이야기, 인권 선언


정경희 회원, 두 아이의 엄마, 물리치료사 세월호를 ‘계기로’ 인권 선언을 만들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인권이라는 것은 삶 전반의 문제이지 않나. 그런 점에서 모든 문제를 세월호랑 연결해서 담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권이라는 말이 너무 멀고 포괄적이지 않나? 안전할 권리, 스스로를 혹은 우리 아이들을 보호할 권리에 대해서 선언한다면 적절하고 구체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영우 회원, 내과의사 더 나아가 논점을 흐릴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남아 있는 것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당장 배가 침몰한 정황에 대한 진상조차 밝혀져 있지 않았는데, ‘인권 선언’ 을 한다는 게 혹시 문제의 본질을 덮어버릴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들었다.


안규백 회원, 한국지엠조합원 공감된다. ‘인권’ 이라고 하면 너무 넓고,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우리는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 이러니 좌담회를 준비하면서 ‘현장에서 인권 얘기를 어떻게 하지? 어디까지를 인권문제라고 해야 하지?’ 하는 고민이 많이 들었다.

사실 1주기 이후에는 ‘그런다고 애들이 살아 돌아 오냐’ 는 얘기까지 하는 조합원도 봤다. 이런 상황이 우리의 인권이나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바닥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옛날에는 사람이 다치면 안타까워하는 게 인지상정이었는데, 요즘에는 동료가 다쳐도 그래서 어쩔 건데? 하는 정서가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세월호를 계기로 한 인권선언이라니. 현장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비관적인 생각도 들었다.


손진우 한노보연 집행위원장, 416 인권선언 추진단 지금 말씀하신 안전, 진실 규명, 피해자에 대한 연대와 공감이 권리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인권 선언을 제안한 배경이라고 본다. 지난 1주기 때를 생각해보면, 애도할 권리, ‘추모할 권리’ 마저 존중받지 못 하지 않았나. 영우 동지가 말한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제대로 지라는 요구는 매도당하지 않았나. 유가족들이 우리가 인간이 맞나 하는 순간들이 있지 않았나. 그런 권리 짓밟힘의 현장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런 것들이 우리 권리라는 것, 요구하고 싸우지 않으면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는 감각이 생겼던 것 같다. 이걸 우리 권리라고 소리 내어 말하고, 주장하고,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존엄성이 짓밟혔던 순간들


최민 ‘인권선언’ 이라는 제목이 다가가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손진우 동지 말대로 참사 이후 지난 1년 동안 권리들이 짓밟히는 장면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끔찍한 장면들 중에서, 세월호가 자신에게 가장 다가온 지점을 생각해보면, 거기서 세월호가 어떻게 왜 인권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지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는 ‘진상규명’ 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구호일 뿐 아니라, 피해자들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권리라는 것을 세월호에서 배웠다. 그리고 진실을 숨기는 것이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짓밟는 장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안규백 세월호 참사 당시에, 국회의원 자식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안산 단원고가 아니라 서울 강남 고등학교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얘기를 많이 하지 않았나. 생명은 누구나 소중하고, 인간은 평등하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다름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노동자 한 명 죽음이 어떻게 같나?’ 이런 얘기를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권리가 있다고 말은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그 축소판이 세월호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우리는 이런 토론이 어색하고 어려워도, 이런 문제의식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확산돼서 우리 딸이 어른이 됐을 때는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정훈 수유너머 N, 416 인권선언 추진단 세월호 문제를 보는 시각은 다양할 것이다. 누군가는 ‘내 아이가 거기 있었다면’ 이라는 생각에 몸서리치며 안전에 주목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정부의 부재나 계급 문제가 세월호를 바라보는 관점일 것이다. 인권도 이런 관점 중 하나다. 세월호가 인권 문제라고 선언할 때, 인권이라는 틀로만 세월호를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인권’ 이라는 관점으로 세월호 참사과 그 이후 시간을 다시 짚어보니, 새롭게 보여주는 게 무엇인가 성찰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한편으로는 ‘왜 인권이냐’ 하는 반응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앞서 다들 말씀하신 것처럼 인권이라는 단어는 참 늦게 다가오는 말이다. 왜 그럴까? 인권이라는 말은 마치 ‘거짓말을 하지 맙시다.’ 라는 말과 비슷한 느낌이다. 본질을 짚어 내거나, 권력관계를 드러내는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 단어의 위험성을 희석화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인권’ 과 연결이 잘 되지 않는 세월호 참사을 인권과 연결시켜보는 과정이, 인권이라는 말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해본다


최민 세월호 참사를 ‘인권 문제’ 로 보면서 우리에게 새롭게 보여주는 게 있나 하는 얘기를 하셨는데, 산재에서의 인권침해도 정말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재가 발생하는 원인이 대부분 현장에서 인간 존중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라든지, 산재 발생 이후 사고 처리나 산재 신청과 승인 과정에서 피해자가 존중받지 못하는 과정이 그렇다. 그리고 인권선언 제안문에서는 피해자가 ‘재발 방지와 제도개혁에 대한 권리’ 가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나는 산재 피해자들에게도 이런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명시적으로 해보지 못했다. 반올림에서 직업병 당사자들이 재발 방지와 제도 개혁을 위해 저렇게 투쟁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인권이라는 관점으로 세월호 참사을 보면서 새로 보게 된 그림이다.



사진 설명 : 5월 30일 열린 인권선언 워크숍 (제공 : 416인권선언 추진단)


나에게 세월호는


정경희 엄마 입장에서 보면 세월호와 관련해서는 안전할 권리, 안전하게 양육할 권리가 가장 크게 다가오는 문제다. 특히 아이들을 안전하게 양육하는 것은 나의 권리이고 책임인데, 이게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계기였다. 그래서 ‘내 아이만 잘 키우면, 나머지는 알아서 잘 될 거라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세월호라는 너무도 큰 대가를 치르면서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게 되었다.’ 는 유가족의 말씀에 크게 공감했다.

얼마 전에 5·18 때 고등학생이던 자녀를 잃은 유가족과 세월호 유가족이 만나는 장면을 봤는데, 그걸 보니 5·18이나 세월호나 고등학생들이 똑같이 공권력에 의해 생명을 잃은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도 안전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어른들 말만 들어서는 안 된다’ 는 얘기를 하곤 한다.


장영우 얼마 전 한 역사학자가 세월호와 한국전쟁을 비교한 글을 봤다. 한국 전쟁 때 한강 다리를 폭파한 공무원을 이승만이 사형시켰는데, 정작 군 책임자들은 전혀 처벌받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지금 똑같다. 세월호 때에도 맨 처음 출동했던 해경 123정 책임자가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전형적인 꼬리자르기다. 왜 사고가 일어났는가도 문제지만, 그 뒤가 더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배가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왜 구하지 않은 걸까? 왜 나오라고 방송하지 못한 걸까?


손진우 바로 그렇게 진실에 접근할 권리가 지금 완전히 묵살당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을 요구하는 유가족에게 ‘보상금과 바꿔라’ 며 거래를 종용하고 있다. 그래서 선언 제안문에 이런 권리들 중 일부만 선택하거나 거래하도록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넣었다.


안규백 보상금 얘기는 세월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본다. 이전에 있던 여러 사건에서도 애도와 추모,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대책을 내놓기보다 보상금을 먼저 내밀었다. 그 공식을 그대로 세월호에도 적용했던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나만 아니면 된다. 는 생각이다. 예전에 현장에서 작업 중지를 했을 때도, ‘왜 남의 선거구까지 와서 라인을 잡고 난리야.’ 하는 소리를 들었다. 자기 문제로 생각하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거나 바뀌지 않는다. 요구하고 움직이는 만큼 바뀐다. 이 문제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공감하느냐, 그 힘으로 요구하고 움직이느냐가 관건이다. 그 과정에서 조금은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다.


정정훈 여러 토론해주신 것처럼, 현장 권리와도 연결시켜 생각해보고, 다른 역사적 장면과도 연결되는 것. 이게 인권선언의 토론이 하려던 자기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문가가 선언의 초안을 쓰고, 발표하고, 사람들은 고개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304회의 풀뿌리 토론으로 만들자고 했다. 지금 토론처럼 자기 생활 속의 권리문제, 내가 애통하고 분노했던 다른 문제와도 연결되는 경험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이 선언이 ‘세월호 참사’ 을 해결하는 데에만 쓰이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면서 다른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는 데도 번역될 수 있기를 바란다.


손진우 권리를 선언한다는 것은 곧 ‘내가 그 권리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서 행동하겠다. 내가 권리의 주체다.’ 라는 다짐이고 선포다.



최민 마무리할 시간이다. 인권선언이 운동으로서 의미를 갖기 위해 주변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누구와 어떻게 문제의식을 나눌 계획인지, 또 이런 확산과 설득을 촉진하기 위해 함께 준비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지 나누며 토론을 마무리하자.


정경희 9·11 테러 희생자 가족들도 긴 시간 동안 싸워서 긴급대책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세월호도 한 발짝 나아가는 과정이다. 세월호 가족들이 투쟁하는 게 본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결국은 우리아이가 또 다른 세월호를 타지 않게 만들기 위한 투쟁이다. 이웃들과 이런 얘기들 더러 나눈다.


안규백 어느 정도까지 함께 아파할 수 있느냐. 이게 감수성인 것 같다. 선언 토론 과정이 이런 감수성을 키우는 과정이 됐으면 좋겠다. 학부모인데도 벌써 공감과 연대의 마음을 잃은 사람들을 보면서 답답해지기도 하지만, 결국 ‘이게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제’ 라는 걸 설득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인권선언도 그 설득 과정에서 쓸모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한 거라고 본다. 토론을 하면서도 세월호를 한 번 더 생각하고, 이후에도 관심을 잃지 않게 할 수 있는 작고 다양한 실천이 토론 과정에서 많이 제안되었으면 한다.


정정훈 5·18 얘기 나왔는데, 5·18 자체는 패배한 투쟁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그걸 기억하고, 배우고, 되살려내어 80년대 강력한 민주주의 운동을 만들어냈다. 인권 선언을 토론하고 만드는 과정도 세월호를 기억하고, 배우게 해 신자유주의 시대에 하나의 계기로 만들어 냈으면 한다.


최민 좌담회를 준비하면서 나에게 세월호는 어떤 문제였는지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도 인권선언에 대한 얘기와 논쟁이 곳곳에서 이런 효과를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일요일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

특집3. 416 인권선언에 바란다 / 2015.6

특집 3. 416 인권선언에 바란다


장세현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그 때 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 사고 소식을 듣고, 큰일이 없을까 걱정 했지만 얼마 후 ‘전원구조’라는 언론 보도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준비한 행사를 마쳤다. 행사를 마친 후 혹시 구조된 이들 중에 다치거나 위급한 사람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켰다. 그리고 이어진 충격과 슬픔. 구조된 이는 없었다. 알아서 나왔던 이는 있을지언정. 304명의 꽃 같은 이들을 보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첫 번째 이유는 정부의 패악이다. 그들은 잘못된 정보를 생산했고, 이를 마치 진실인 양 시민들에게 알렸다. 두 번째, 언론이 자신의 사명을 잊었다. 당시 가장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가 정부라 할지라도 그들은 확인하고 그 심각성을 알려야 했다. 세 번째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했을 알권리가 제한된 것이다. 피해당사자 혹은 피해 관계자임에도 그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참사와 아픔의 진실을 접할 수 없었다. 이들의 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실이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 이들에 의해 제한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고통과 직면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이 4.16인권선언은 의미가 있다. 지금껏 거대담론과 공의에 의해 가려져있던 인간의 권리(알 권리, 진실에 대한 권리 등)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이를 위한 책임과 의무까지 담고 있다. 나는 이 선언이 그냥 스쳐가는 선언에 그치지 않기를 원한다. 모든 이들이 당연히 알아야할 인권선언이 사회에 퍼지고, 이 내용이 당연한 사고가 되어 세상이 바뀌기를 원한다. 모두의 인권이 소중해지는 그런 세상을 말이다. 다만 한 가지 이 선언에 아쉬운 점이 있다. 선언문이라는 글의 성격상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용어가 많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러한 용어의 사용은 선언문이 내용을 아는 이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위험을 갖게한다. 이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알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 그렇기에 모두에게 알려지고 퍼지는 선언문이 될 수 있도록 혼선이 오지 않으면서도 모두가 듣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되었으면 한다.




쥬리 NGA, 청소년 활동가


작년 교육부가 교내 세월호 리본을 달기를 금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내 논란이 되었다. 학생이 노란 리본을 달고 등교할 수 있는지 여부는 학교장과 교사들의 자의에 좌우된다고 학생들은 증언한다. 그나마 세월호 참사는 다수가 공감한 사안이었기에 허용될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많은 중고등학교에서 학생의 정치적 의사표현과 집회 참석, 학교에 대한 항의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으며, 개중에는 학교장이 허하지 않은(정치적일 수 있는) 뱃지 착용을 명시적으로 금하고 있는 곳도 있다. 청소년에게 영향이 미치는 모든 일들이 청소년의 투표 없이 정치인과 학교장에 의해 결정되는 상황인데, 항의마저도 금지당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원천적으로 억압받는 현실에서 청소년 주체가 학교나 교사의 이해와 충돌하는 정치적 표현을 했다면 그 탄압이 어떠했을지 불 보듯 뻔하다.


위 공문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노란리본 달기는 순수한 애도행위이며 이를 금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입장을 냈다. 인권위의 판단은 청소년의 추모리본 달기가 ‘비정치적 활동이니 괜찮다’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학생들의 정치적 표현을 금하겠다는 교육부의 입장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정치에 개입하겠다는 것은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에 개입하겠다는 뜻이다. 애도는 이미 정치적 행동이다. 안전이 지켜지며 죽음까지 존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정치적 목소리로 모아질 때 변화를 만들어낸다. 4.16인권선언이 말하는 연대와 권리를 위해 행동할 권리가 정치적 주체성을 억압당해온 청소년에게 실현되기를 바란다.




유미아빠 황상기 반올림


2005년 우리 유미는 삼성반도체 공장에 다니다가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그때 당시 삼성에서는 반도체 공장에 화학약품은 쓰지도 않고 취급도 안한다고 했고, 전리방사선도 없다고 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삼성은 어떤 화학약품을 쓰는지 어떤 방사선을 쓰고 있는지 아무런 대답이 없지만,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병에 걸렸다는 제보전화가 여전히 반올림에 접수됩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제가 생각해보니까 세월호하고 삼성하고 닮은 점이 너무 많습니다. 삼성은 노동자한테 자신이 무슨 유해화학물질을 쓰는지, 어떻게 자신의 몸을 보호해야하는지 교육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는 그냥 일만 했습니다. 암에 걸려 죽으면 개인 탓으로 돌렸습니다. 세월호 역시 똑같았습니다. 배에서 일하는 노동자한테 배의 안전교육하나 시키지 않았습니다. 배가 잘못되면 그 승객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서 사고가 났는데도 승객을 대피시키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다 노동자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노동자는 이 나라를 끌고가는 주체인데, 왜 노동자가 무시 당하고 가진자 권력자들의 소모품이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 권리를 찾고 생명을 지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