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 416 인권 선언을 운동으로 /2015.6

416 인권 선언을 운동으로


선전위원회


아직도 세월호 얘기야?


일터를 읽는 독자들은 아직도 세월호를 얘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아실 것이라 믿는다. 많은 이들이 세월호 침몰을 지켜보고 그 후 1년이 넘는 시간을 고통과 분노, 연대의 마음으로 함께 보냈다. 이들에게 ‘끝나지 않은 그리움’ 이라는 추모 뮤직비디오의 제목은 명치를 건드리는 것이다. 아직도 사고와 그것을 구조라 부를 수 있다면 ‘구조’ 에 관련된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실종자가 있는데 배는 인양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세월호 사건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고자 했지만,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과제들은 여전히 산적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세월호 얘기 중이다.



세월호가 인권 문제야?


‘416 인권선언’ 은 좀 어색하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가 인권 문제였나? 무능한 국가, 더 나아가 국민을 살리지 못 하는 국가의 문제 아닌가? 진상을 밝히기 위한 ‘조사위원회’ 활동이 시작조차 힘들 정도로 꽁꽁 숨기려는 비밀과 음모의 문제 아닌가? 수십 년간 되풀이 되어 온 대형 참사에도 규제완화로만 달려왔던 이 사회의 안전 문제지. 그래, 이 모든 문제가 견고하게 서로 얽혀있는 문제지. 그런데 이런 복잡한 문제의 밑바닥에서 숨막혀하는 안전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권리는? 슬픔을 참고 모욕과 수모를 받으면서도 싸워야하는 피해자의 권리는?


지난 1년간 우리가 잃은 것


지난 1년간 우리가 잃은 것, 우리가 짓밟힌 것은 무엇이었나 다시 생각해본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생명의 존엄’ 이 너무 쉽게 포기되는 것을 보고 분노했다. 상실과 슬픔을 모욕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추모할 권리조차 빼앗겼다. 이미 난 사고의 진실이라도 밝히는 것은 피해 당사자의 당연하고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고, 진실에 대한 권리는 벌어진 사건, 구체적 상황, 누가 그 사건에 참여했는지에 대한 완전한 진실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는데(류은숙, 인권오름 2014.10), 이런 요구는 불온으로 매도됐다. 안전이라는 것이 기술이 발달하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옳은 정보를 알 권리, 부당한 지시를 멈출 권리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지만 참사 현장에 알 권리와 멈출 권리는 없었다.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큰 손실에 대해 공동체는 긴급한 지원을 충분히 하지 못 했고, 피해자들에게는 참사 상황에서 최소한의 보호와 지원을 받을 권리가 없었다.

각자가 기억하는 끔찍한 장면은 너무나 많고 서로 다를 수 있지만, 그 모든 장면에서 인권은 하늘 아래 원래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었다.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과 빼앗으려는 사람이 싸우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이것은 우리 권리라고 선언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는 것이었다. 세월호 침몰과 그 뒤 일련의 사태를 인권 문제로 보려는 것은, ‘인권’ 이 만능열쇠이기 때문이 아니다. 인권 문제라고 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세월호를 계기로 우리 사회 인권의 현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지난 1년 내내 우리는 ‘인권’이라고 생각했던 권리들이 짓밟히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짓밟힌 권리들을 아직 되살려내지 못 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 권리다, 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 행동 하겠다’ 고 선언하자는 것이 ‘존엄과 안전을 위한 416 인권선언’ 의 취지이다.


존엄과 안전을 위한 416 인권 선언을 운동으로


416 인권선언은 가장 먼저 ‘세월호는 당신에게 무엇이었나’ 라는 질문을 던진다. 바로 거기에 우리가 참사를 통해 배운 ‘인권’ 이 있다. 인권 선언이 멋들어지게 쓰여진 글에 ‘동의한다’ 서명하는 것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법조문처럼 장과 절을 갖추고 국제 인권 조약에 버금가는 형식에만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416 인권 선언은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한 운동, 세월호 이후 다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존엄과 안전을 위한 416 인권선언’을 준비한 사람들은 304번의 풀뿌리 토론을 통해, 말 그대로 사람들이 스스로 ‘선언’ 하는 인권선언을 만들자는 당찬 계획을 세우고 우리에게 제안하고 있다. 우리의 구체적인 공감, 생생한 언어, 각자의 경험을 가지고 ‘존엄과 안전을 위한 416 인권선언’ 을 만들자고 손을 내밀고 있다. 함께 만드는 '4.16 인권선언' 이 되도록 앞으로 이어질 제정 과정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사진 설명 : 인권영화제 416인권선언 홍보부스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출처 : 416 인권선언 실행팀)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운동을 제안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모두 말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사회는 달라져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약속을 지킵시다. 참사 이전의 사회와 단절을 선언하고, 참사 이후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을 함께 밝히자고 제안합니다.


1.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현실을 기억합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모두 약속했습니다. 끝까지 잊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제 다시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2014년 4월 16일 아침,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를 포함한 304명의 희생자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것 외에 우리는 아직 함께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과 국민이 따로 또 같이 1년이 넘는 시간을 겪으며 우리는 수많은 경험들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억울함, 분노, 절망으로 우리를 내몰았던 경험들 말입니다. 그것에 이름을 붙여본다면, 인간의 존엄이 훼손된 경험이라고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저 안타깝고 슬프고 화나는 일을 겪은 것이 아니라 인권을 침해하는 하나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2. 사회 구조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존엄을 훼손하고 무시한 결과, 참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사회가 만들어졌고, 여전히 그 사회는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기업은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을 앞세우고, 정부는 국민의 권리보다 권력의 보호에 골몰하며, 어떤 이들은 공감과 연대보다 모욕에 익숙합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개개의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서로 맞물려 우리를 억압하는 힘을 더욱 발휘하는 구조임을, 우리는 목격하고 확인했습니다. 이런 구조가 세월호 참사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미래에도 우리의 존엄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 역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달라져야 하는 것은 몇몇 문제에 그치지 않는 구조 자체입니다. 혼자서 조심하고 피한다고 해서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낳은 구조가 견고할수록 우리는 더욱 손잡고 연대해야 합니다.


3. 무엇이 안전인지, 인간의 존엄에 기초하여 우리가 말합시다!


누구나 존엄과 안전을 누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추구할 안전은 어떤 가치인가요? 누군가 나서서 지켜주기를 바라며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남기 위해 제각각 경쟁하며 구매하는 것도 아닙니다. 위험을 줄이고 참사의 피해를 줄이는 것은 인권의 문제입니다. 취약한 개인이나 집단에 더욱 큰 위험을 떠넘기는 구조에 맞서 근원적인 평등을 이루는 것이 안전입니다. 우리의 삶을 구속하려는 공포와 비참으로부터 함께 자유로워지는 것이 안전입니다. 구조적 억압을 제거하기 위해 공동체에 참여하며 실천하는 연대가 안전입니다. 우리가 함께 이루려는 안전이 무엇인지 충분히 따져보지 않는다면 자칫 우리가 원하는 정반대의 결과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 동안 국가가 툭 하면 말해온 안전은 오히려 우리의 자유와 평등, 연대를 해쳐왔기 때문입니다.


4. 피해자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우리의 권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속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는 수많은 참사를 겪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잊어왔습니다. 언제나 비슷한 문제들이 드러났지만, 못이긴 척 정부가 나서서 누군가를 엄벌에 처하겠다거나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했다고 하면 그런가보다 하고 잊었습니다. 물러서지 않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는 피해자들이 있으면 보상이 부족한가보다 하고 남 문제로 여겼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진실과 정의, 배상과 재발방지에 대한 피해자의 권리는 거래나 선택을 강요당해서는 안 됩니다. 실종자, 희생자, 생존자와 그 가족들, 그들을 돕거나 피해를 막기 위해 나섰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았던 우리가 어느새 우리를 위험으로 내몰고 있었습니다. 피해자의 권리가 곧 우리의 권리임을 잊지 않고 끝까지 함께 행동해야 합니다.


5. 다른 사회를 열기 위한 우리의 책임은 우리의 권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안한 마음을 가슴 한편에 지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의 미안함은 무엇에 대한, 무엇을 향한 미안함일까요? 혹시 누군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의 무게를 대신 나눠진 채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인권의 시선으로 책임을 밝혀야 합니다.

인권은 인간의 존엄이라는 기초 위에 서 있는 푯대입니다.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실현하지 못하는 정부는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정부뿐만 아니라 인권침해의 구조에 개입된 기업, 언론 등의 행위주체들도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것이 정의입니다. 우리의 미안함은 우리를 짓누르는 상처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책임져야 할 자가 책임질 때, 우리는 참사로부터 자유로운 사회에서 우리의 권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책임을 묻는 행동은 우리의 정치적 책임이자 권리입니다.


6.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은 행동입니다!


권리는 선물이 아닙니다. 시대와 장소를 넘어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역사가 인권입니다. 국제인권법과 헌법이 이미 제시하는 수많은 권리들은 누군가의 치열한 투쟁이 남긴 기록입니다. 앞서 겪은 사람들의 증언에 귀 기울이며 우리 스스로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달라져야 할 것을 고집하는 세력에 경고하며 우리의 권리를 현실에 새깁시다. 모두의 생명과 안전, 자유로운 표현과 결사, 인간다운 노동과 생활 등 우리 스스로 인권의 목록을 써내려갑시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함께 배우면 되고 부딪치는 의견이 있다면 함께 토론하면 됩니다. 세상을 바꿔온 것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감각을 놓치지 않으며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박한 상식과 작은 행동이었습니다. 함께 선언하는 우리가 바로 살아있는 인권입니다.


2016년 4월 우리 모두의 이름으로 인권선언을 선포합시다. 그때까지 함께 선언할 사람들을 조직합시다.

416인권선언운동의 취지와 목적을 알리는 작은 간담회를 열어 첫발을 떼어주십시오.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 홈페이지(http://416act.net)에서 관련 자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416인권선언을 매개로 단위에서 토론을 조직하고 싶은 분들은 추진단에도 함께 해주십시오. http://416act.net/416declaration에서 신청할 수 있습니다.

특집 2. 세월호를 인권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 /2015.6

특집 2. 세월호를 인권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


정리 선전위원회


최민 사회자, 선전위원장 세월호 참사 그리고 그 이후 1년 넘게 벌어진 일들이 끔찍했지만 그걸 '인권' 침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런데 416 인권선언운동에서는 이 과정이 '인간의 존엄이 훼손' 된 경험이라고 선언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만들자는 선포를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궁금하다.


처음엔 먼 이야기, 인권 선언


정경희 회원, 두 아이의 엄마, 물리치료사 세월호를 ‘계기로’ 인권 선언을 만들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인권이라는 것은 삶 전반의 문제이지 않나. 그런 점에서 모든 문제를 세월호랑 연결해서 담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권이라는 말이 너무 멀고 포괄적이지 않나? 안전할 권리, 스스로를 혹은 우리 아이들을 보호할 권리에 대해서 선언한다면 적절하고 구체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영우 회원, 내과의사 더 나아가 논점을 흐릴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남아 있는 것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당장 배가 침몰한 정황에 대한 진상조차 밝혀져 있지 않았는데, ‘인권 선언’ 을 한다는 게 혹시 문제의 본질을 덮어버릴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들었다.


안규백 회원, 한국지엠조합원 공감된다. ‘인권’ 이라고 하면 너무 넓고,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우리는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 이러니 좌담회를 준비하면서 ‘현장에서 인권 얘기를 어떻게 하지? 어디까지를 인권문제라고 해야 하지?’ 하는 고민이 많이 들었다.

사실 1주기 이후에는 ‘그런다고 애들이 살아 돌아 오냐’ 는 얘기까지 하는 조합원도 봤다. 이런 상황이 우리의 인권이나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바닥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옛날에는 사람이 다치면 안타까워하는 게 인지상정이었는데, 요즘에는 동료가 다쳐도 그래서 어쩔 건데? 하는 정서가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세월호를 계기로 한 인권선언이라니. 현장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비관적인 생각도 들었다.


손진우 한노보연 집행위원장, 416 인권선언 추진단 지금 말씀하신 안전, 진실 규명, 피해자에 대한 연대와 공감이 권리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인권 선언을 제안한 배경이라고 본다. 지난 1주기 때를 생각해보면, 애도할 권리, ‘추모할 권리’ 마저 존중받지 못 하지 않았나. 영우 동지가 말한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제대로 지라는 요구는 매도당하지 않았나. 유가족들이 우리가 인간이 맞나 하는 순간들이 있지 않았나. 그런 권리 짓밟힘의 현장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런 것들이 우리 권리라는 것, 요구하고 싸우지 않으면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는 감각이 생겼던 것 같다. 이걸 우리 권리라고 소리 내어 말하고, 주장하고,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존엄성이 짓밟혔던 순간들


최민 ‘인권선언’ 이라는 제목이 다가가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손진우 동지 말대로 참사 이후 지난 1년 동안 권리들이 짓밟히는 장면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끔찍한 장면들 중에서, 세월호가 자신에게 가장 다가온 지점을 생각해보면, 거기서 세월호가 어떻게 왜 인권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지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는 ‘진상규명’ 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구호일 뿐 아니라, 피해자들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권리라는 것을 세월호에서 배웠다. 그리고 진실을 숨기는 것이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짓밟는 장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안규백 세월호 참사 당시에, 국회의원 자식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안산 단원고가 아니라 서울 강남 고등학교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얘기를 많이 하지 않았나. 생명은 누구나 소중하고, 인간은 평등하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다름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노동자 한 명 죽음이 어떻게 같나?’ 이런 얘기를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권리가 있다고 말은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그 축소판이 세월호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우리는 이런 토론이 어색하고 어려워도, 이런 문제의식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확산돼서 우리 딸이 어른이 됐을 때는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정훈 수유너머 N, 416 인권선언 추진단 세월호 문제를 보는 시각은 다양할 것이다. 누군가는 ‘내 아이가 거기 있었다면’ 이라는 생각에 몸서리치며 안전에 주목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정부의 부재나 계급 문제가 세월호를 바라보는 관점일 것이다. 인권도 이런 관점 중 하나다. 세월호가 인권 문제라고 선언할 때, 인권이라는 틀로만 세월호를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인권’ 이라는 관점으로 세월호 참사과 그 이후 시간을 다시 짚어보니, 새롭게 보여주는 게 무엇인가 성찰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한편으로는 ‘왜 인권이냐’ 하는 반응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앞서 다들 말씀하신 것처럼 인권이라는 단어는 참 늦게 다가오는 말이다. 왜 그럴까? 인권이라는 말은 마치 ‘거짓말을 하지 맙시다.’ 라는 말과 비슷한 느낌이다. 본질을 짚어 내거나, 권력관계를 드러내는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 단어의 위험성을 희석화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인권’ 과 연결이 잘 되지 않는 세월호 참사을 인권과 연결시켜보는 과정이, 인권이라는 말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해본다


최민 세월호 참사를 ‘인권 문제’ 로 보면서 우리에게 새롭게 보여주는 게 있나 하는 얘기를 하셨는데, 산재에서의 인권침해도 정말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재가 발생하는 원인이 대부분 현장에서 인간 존중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라든지, 산재 발생 이후 사고 처리나 산재 신청과 승인 과정에서 피해자가 존중받지 못하는 과정이 그렇다. 그리고 인권선언 제안문에서는 피해자가 ‘재발 방지와 제도개혁에 대한 권리’ 가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나는 산재 피해자들에게도 이런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명시적으로 해보지 못했다. 반올림에서 직업병 당사자들이 재발 방지와 제도 개혁을 위해 저렇게 투쟁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인권이라는 관점으로 세월호 참사을 보면서 새로 보게 된 그림이다.



사진 설명 : 5월 30일 열린 인권선언 워크숍 (제공 : 416인권선언 추진단)


나에게 세월호는


정경희 엄마 입장에서 보면 세월호와 관련해서는 안전할 권리, 안전하게 양육할 권리가 가장 크게 다가오는 문제다. 특히 아이들을 안전하게 양육하는 것은 나의 권리이고 책임인데, 이게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계기였다. 그래서 ‘내 아이만 잘 키우면, 나머지는 알아서 잘 될 거라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세월호라는 너무도 큰 대가를 치르면서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게 되었다.’ 는 유가족의 말씀에 크게 공감했다.

얼마 전에 5·18 때 고등학생이던 자녀를 잃은 유가족과 세월호 유가족이 만나는 장면을 봤는데, 그걸 보니 5·18이나 세월호나 고등학생들이 똑같이 공권력에 의해 생명을 잃은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도 안전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어른들 말만 들어서는 안 된다’ 는 얘기를 하곤 한다.


장영우 얼마 전 한 역사학자가 세월호와 한국전쟁을 비교한 글을 봤다. 한국 전쟁 때 한강 다리를 폭파한 공무원을 이승만이 사형시켰는데, 정작 군 책임자들은 전혀 처벌받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지금 똑같다. 세월호 때에도 맨 처음 출동했던 해경 123정 책임자가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전형적인 꼬리자르기다. 왜 사고가 일어났는가도 문제지만, 그 뒤가 더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배가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왜 구하지 않은 걸까? 왜 나오라고 방송하지 못한 걸까?


손진우 바로 그렇게 진실에 접근할 권리가 지금 완전히 묵살당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을 요구하는 유가족에게 ‘보상금과 바꿔라’ 며 거래를 종용하고 있다. 그래서 선언 제안문에 이런 권리들 중 일부만 선택하거나 거래하도록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넣었다.


안규백 보상금 얘기는 세월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본다. 이전에 있던 여러 사건에서도 애도와 추모,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대책을 내놓기보다 보상금을 먼저 내밀었다. 그 공식을 그대로 세월호에도 적용했던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나만 아니면 된다. 는 생각이다. 예전에 현장에서 작업 중지를 했을 때도, ‘왜 남의 선거구까지 와서 라인을 잡고 난리야.’ 하는 소리를 들었다. 자기 문제로 생각하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거나 바뀌지 않는다. 요구하고 움직이는 만큼 바뀐다. 이 문제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공감하느냐, 그 힘으로 요구하고 움직이느냐가 관건이다. 그 과정에서 조금은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다.


정정훈 여러 토론해주신 것처럼, 현장 권리와도 연결시켜 생각해보고, 다른 역사적 장면과도 연결되는 것. 이게 인권선언의 토론이 하려던 자기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문가가 선언의 초안을 쓰고, 발표하고, 사람들은 고개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304회의 풀뿌리 토론으로 만들자고 했다. 지금 토론처럼 자기 생활 속의 권리문제, 내가 애통하고 분노했던 다른 문제와도 연결되는 경험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이 선언이 ‘세월호 참사’ 을 해결하는 데에만 쓰이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면서 다른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는 데도 번역될 수 있기를 바란다.


손진우 권리를 선언한다는 것은 곧 ‘내가 그 권리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서 행동하겠다. 내가 권리의 주체다.’ 라는 다짐이고 선포다.



최민 마무리할 시간이다. 인권선언이 운동으로서 의미를 갖기 위해 주변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누구와 어떻게 문제의식을 나눌 계획인지, 또 이런 확산과 설득을 촉진하기 위해 함께 준비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지 나누며 토론을 마무리하자.


정경희 9·11 테러 희생자 가족들도 긴 시간 동안 싸워서 긴급대책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세월호도 한 발짝 나아가는 과정이다. 세월호 가족들이 투쟁하는 게 본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결국은 우리아이가 또 다른 세월호를 타지 않게 만들기 위한 투쟁이다. 이웃들과 이런 얘기들 더러 나눈다.


안규백 어느 정도까지 함께 아파할 수 있느냐. 이게 감수성인 것 같다. 선언 토론 과정이 이런 감수성을 키우는 과정이 됐으면 좋겠다. 학부모인데도 벌써 공감과 연대의 마음을 잃은 사람들을 보면서 답답해지기도 하지만, 결국 ‘이게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제’ 라는 걸 설득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인권선언도 그 설득 과정에서 쓸모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한 거라고 본다. 토론을 하면서도 세월호를 한 번 더 생각하고, 이후에도 관심을 잃지 않게 할 수 있는 작고 다양한 실천이 토론 과정에서 많이 제안되었으면 한다.


정정훈 5·18 얘기 나왔는데, 5·18 자체는 패배한 투쟁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그걸 기억하고, 배우고, 되살려내어 80년대 강력한 민주주의 운동을 만들어냈다. 인권 선언을 토론하고 만드는 과정도 세월호를 기억하고, 배우게 해 신자유주의 시대에 하나의 계기로 만들어 냈으면 한다.


최민 좌담회를 준비하면서 나에게 세월호는 어떤 문제였는지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도 인권선언에 대한 얘기와 논쟁이 곳곳에서 이런 효과를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일요일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

특집3. 416 인권선언에 바란다 / 2015.6

특집 3. 416 인권선언에 바란다


장세현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그 때 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 사고 소식을 듣고, 큰일이 없을까 걱정 했지만 얼마 후 ‘전원구조’라는 언론 보도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준비한 행사를 마쳤다. 행사를 마친 후 혹시 구조된 이들 중에 다치거나 위급한 사람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켰다. 그리고 이어진 충격과 슬픔. 구조된 이는 없었다. 알아서 나왔던 이는 있을지언정. 304명의 꽃 같은 이들을 보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첫 번째 이유는 정부의 패악이다. 그들은 잘못된 정보를 생산했고, 이를 마치 진실인 양 시민들에게 알렸다. 두 번째, 언론이 자신의 사명을 잊었다. 당시 가장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가 정부라 할지라도 그들은 확인하고 그 심각성을 알려야 했다. 세 번째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했을 알권리가 제한된 것이다. 피해당사자 혹은 피해 관계자임에도 그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참사와 아픔의 진실을 접할 수 없었다. 이들의 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실이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 이들에 의해 제한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고통과 직면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이 4.16인권선언은 의미가 있다. 지금껏 거대담론과 공의에 의해 가려져있던 인간의 권리(알 권리, 진실에 대한 권리 등)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이를 위한 책임과 의무까지 담고 있다. 나는 이 선언이 그냥 스쳐가는 선언에 그치지 않기를 원한다. 모든 이들이 당연히 알아야할 인권선언이 사회에 퍼지고, 이 내용이 당연한 사고가 되어 세상이 바뀌기를 원한다. 모두의 인권이 소중해지는 그런 세상을 말이다. 다만 한 가지 이 선언에 아쉬운 점이 있다. 선언문이라는 글의 성격상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용어가 많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러한 용어의 사용은 선언문이 내용을 아는 이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위험을 갖게한다. 이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알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 그렇기에 모두에게 알려지고 퍼지는 선언문이 될 수 있도록 혼선이 오지 않으면서도 모두가 듣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되었으면 한다.




쥬리 NGA, 청소년 활동가


작년 교육부가 교내 세월호 리본을 달기를 금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내 논란이 되었다. 학생이 노란 리본을 달고 등교할 수 있는지 여부는 학교장과 교사들의 자의에 좌우된다고 학생들은 증언한다. 그나마 세월호 참사는 다수가 공감한 사안이었기에 허용될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많은 중고등학교에서 학생의 정치적 의사표현과 집회 참석, 학교에 대한 항의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으며, 개중에는 학교장이 허하지 않은(정치적일 수 있는) 뱃지 착용을 명시적으로 금하고 있는 곳도 있다. 청소년에게 영향이 미치는 모든 일들이 청소년의 투표 없이 정치인과 학교장에 의해 결정되는 상황인데, 항의마저도 금지당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원천적으로 억압받는 현실에서 청소년 주체가 학교나 교사의 이해와 충돌하는 정치적 표현을 했다면 그 탄압이 어떠했을지 불 보듯 뻔하다.


위 공문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노란리본 달기는 순수한 애도행위이며 이를 금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입장을 냈다. 인권위의 판단은 청소년의 추모리본 달기가 ‘비정치적 활동이니 괜찮다’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학생들의 정치적 표현을 금하겠다는 교육부의 입장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정치에 개입하겠다는 것은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에 개입하겠다는 뜻이다. 애도는 이미 정치적 행동이다. 안전이 지켜지며 죽음까지 존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정치적 목소리로 모아질 때 변화를 만들어낸다. 4.16인권선언이 말하는 연대와 권리를 위해 행동할 권리가 정치적 주체성을 억압당해온 청소년에게 실현되기를 바란다.




유미아빠 황상기 반올림


2005년 우리 유미는 삼성반도체 공장에 다니다가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그때 당시 삼성에서는 반도체 공장에 화학약품은 쓰지도 않고 취급도 안한다고 했고, 전리방사선도 없다고 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삼성은 어떤 화학약품을 쓰는지 어떤 방사선을 쓰고 있는지 아무런 대답이 없지만,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병에 걸렸다는 제보전화가 여전히 반올림에 접수됩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제가 생각해보니까 세월호하고 삼성하고 닮은 점이 너무 많습니다. 삼성은 노동자한테 자신이 무슨 유해화학물질을 쓰는지, 어떻게 자신의 몸을 보호해야하는지 교육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는 그냥 일만 했습니다. 암에 걸려 죽으면 개인 탓으로 돌렸습니다. 세월호 역시 똑같았습니다. 배에서 일하는 노동자한테 배의 안전교육하나 시키지 않았습니다. 배가 잘못되면 그 승객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서 사고가 났는데도 승객을 대피시키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다 노동자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노동자는 이 나라를 끌고가는 주체인데, 왜 노동자가 무시 당하고 가진자 권력자들의 소모품이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 권리를 찾고 생명을 지켜야 합니다.

[특집] 2. 96·97 총파업이 2015 총파업에게 /2015.5

96·97 총파업이 2015 총파업에게


선전위원 재현


4월 24일 재벌 배불리기에 맞서 노동자 서민 살리기 총파업에 민주노총 조합원 26만이 참가했다. 총파업 선포에 앞서 집회 무대를 향해 민주노총 깃발이 입장하는데 뭔가 일을 낼 것만 같은 전율을 느꼈다. 96·97 총파업을 경험했던 선배노동자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96년엔 구로의 한 전자산업 사업장에서 조합원으로, 19년이 지난 지금은 안양의 컴퓨터를 만드는 주연테크 사업장에서 지회장으로 총파업을 조직하는 김명신 지회장을 만나서 96·97 총파업에 이어 2015 총파업을 맞이하는 감회를 들어보았다.


1996년 12월 26일 그날을 잊을 수 없어요!


사진  : 1996-1997 날치기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 투쟁 [출처 보건의료노조]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어요. 1996년 12월 26일. 아직 날도 밝지 않은 아침이었는데 뉴스에서 국회의원들이 노동법 날치기 통과를 위해 삼삼오오 모이고 있다는 거예요. 결국, 날치기로 법이 통과됐는데 그때 민주노총 지도부가 지금부터 무기한 전면 총파업을 선언한다는 지침을 내리는 데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1996년 당시 한국사회는 비약적인 경제성장으로 국민소득 1만 불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노동자 서민들은 세계 4위의 중대재해율을 기록하는 현장에서 연간 2,500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었다. 이때 김영삼 정부와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12월 26일 새벽 단 6분 만에 노동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 시켰다.

“노동법 개정안엔 정리해고뿐만 아니라 탄력적 변형 근로 형태 도입 등 개악 안이 많았는데 무엇보다 정리해고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어요. 지금도 정리해고 때문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희생되었는지 다 알잖아요. 그래서 당시에 ‘이건 무조건 파업이다’ 이런 정서가 현장에 있었어요.”

노동법 날치기 통과 이후 민주노총은 자동차, 금속, 현총련, 전문노련 등 현장에 파업 지침을 내렸다. 파업이 어려운 전교조의 경우 단식수업, 화물노련은 구간별 안전운행 등의 투쟁 지침을 내렸다. 그 결과 12월 26일 85개 노조, 14만 2천여 명이 총파업에 참가했다. 이후 투쟁을 확대하면서 12월 31일엔 연인원 100만 명을 기록했다.

“매일 명동성당으로 모였어요. 파업 이후 수배가 떨어진 지도부들이 명동성당에 있었거든요. 제가 그때는 결혼 전이라 부모님과 같이 살았는데, 교회를 다니는 집이라 12월 31일엔 꼭 집에 모여서 송구영신 예배를 드려야 했어요. 그런데 살면서 처음으로 배 째라는 심정으로 부모님께 집에 못 간다고 전화했던 기억이 있어요. 경찰이 명동 성당을 침탈한다고 하는데 도저히 집에 갈 수가 없더라고요.”


사진 : 1996년 12월 30일 노동법 개정 총파업 당시 명동 성당 집회 사진 [출처 금속노조]


1997년 1월 18일 그때 고비만 넘겼더라면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돌입하자 사회운동단체들도 ‘노동법 안기부법 개악 철회와 민주기본권 수호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 를 구성하여 투쟁에 동참했다. 80% 넘는 국민들도 날치기 통과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해가 넘어가고 1997년 민주노총의 2단계 투쟁지침에 따라 언론, 사무, 전문, 서비스직 노조로 투쟁 단위들이 확대됐고 그 결과 총 169만 5천여 명이 파업투쟁 참가했다. 당시 한국노총도 42만 여 명의 조합원이 파업에 함께했다. 한편, 파업이 길어지자 민주노총 지도부는 1997년 1월 18일을 기점으로 총파업을 수요파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요 파업 전환한다고 했을 때 불만이 대단히 많았죠. 파업이 길어지면서 참가 인원이 조금 줄어들기는 했는데, 우리 현장만 해도 언론에서 정치파업이다 불법파업이다 그러면서 무섭게 몰아치니까 조합원들이 긴장하고 집회에 못 나가기도 하고 그랬으니까요. 그러니 지도부 입장에서도 더는 조합원들이 버티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흔히 조합 활동 하다 보면 지도부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는데……. 지나고 나니까 굉장히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그때 그 고비만 넘고 갔더라면, 임·단협 기간도 맞물리면서 좋은 국면을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

수요파업 전환 이후 민주노총은 투쟁의 주도권을 상실했고 2월 17일 김영삼 정권이 국민들에게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대한 사과를 표명하면서 국면이 전환되었다. 3월 11일 임시국회에선 여·야간 합의로 날치기 법안을 폐지하고 정리해고제 시행시기를 2년 유예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비판의 목소리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땐 잘 싸웠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싸웠는데도 근본적으로 정리해고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패배감이 컸던 게 사실이에요. 정리해고가 가진 여파가 굉장했죠. 다만 그래도 전노협 시절엔 합법 노조가 아니니까 매일 경찰에게 두들겨 맞고 많은 규모가 모여 집회하기도 어려웠는데 그때 투쟁의 성과로 민주노총이 합법화 되고, 조합원들이 많이 모여서 투쟁할 수 있었고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고 봐요.”

96·97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투쟁은 노동자들이 단사·업종·지역을 넘어 ‘노동악법 전면 무효화’ 라는 정치적 요구를 중심으로 단결했던 건국 이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정치파업이었다. 더 나아가 당시 투쟁은 1980년 이후 세계 노동운동 역사에서도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투쟁이었다. 이후 민주노총은 투쟁을 통해 조직력을 확대했고, 산별노조 건설의 토대 구축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한편,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 전선에서 노동자 정치세력의 부재는 ‘단 한 명이라도 노동자 국회의원이 국회에 있었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라는 말을 낳았고 총파업을 마무리한 민주노총은 정치세력화를 위한 활동에 나섰다. 그 결과 민주노총 초대 지도부였던 권영길 위원장이 국민승리 21 대선후보로 출마했다. 이러한 흐름은 투쟁의 긍정적 의미와 성과에도 불구하고 96·97 총파업을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으로 분리하여 사고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뼈아픈 평가를 남겼다.

“권영길 위원장이 대선에 나왔잖아요. 그땐 이러려고 파업 접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당시 일어나라 코리아 의제에 대해서도 비판의식이 있었어요. 민주노동당 창당 때도 시선이 좋지만은 않았고요. 여전히 분단국가인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이라고 하면 빨갱이 정당이라는 선입견이 너무 강하니까 기대보다 염려와 우려가 컸죠. 그래도 노동자 정치 세력화는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가입은 했어요.

권영길 위원장 사퇴 이후 민주노총 직무대행 집행부는 1998년 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에 합의했다. 이후 직무대행 집행부는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비대위는 정리해고를 인정할 수 없다는 정치적 선언만 있었을 뿐 폐기를 위한 총파업 투쟁을 전개하지 못했다. 이후 IMF 외환위기, 신자유주의 공세에 따라 전국 곳곳 현장에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벌어졌다. 그 결과 대우자동차 해외매각에 따른 정리해고와 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파업부터 노무현 정권 비정규직 악법, 한·미 FTA 체결, 이명박 정권 타임오프 날치기 통과, 용산 참사, 쌍용자동차 77일 옥쇄파업, 박근혜 정권 철도 민영화 저지 파업까지 19년이 흐르는 동안 노동자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몰렸다.

19년 전 보다 지금이 더 절박한 상황이라고 봐요

“워낙 많이 밀려왔어요. 타임오프 때였나. 그때도 여의도에서 집회하고 있었는데 민주당에서 결국 합의했다는 거예요. 당시 민주노총 직무대행은 잠적하고. 또 민주노총이 매년 총파업을 선언하지 않은 해가 없었는데 매번 뻥 파업 하면서 잘못한 것도 많고요. 그래도 지금 모두가 96·97 총파업 때보다 더 절박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면서 파업을 조직하고는 있는데 안타깝게 현장엔 별로 긴장감이 없는 것 같아요. 총파업이 왜 필요한지 교육도 하고 그러는데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삶이랑 파업이 와 닿지 않은가 봐요. 파업해야 한다니까 하지 뭐 그런 정서 같아요. 현차 같이 큰 노조도 안 하는데 우리 같이 작은 사업장이 파업해봐야 효과도 없고 현장에서 탄압만 받을 텐데 왜 하느냐는 이야기도 많고요.”

금속노조가 4.24 4시간 파업 지침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 지부는 파업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많은 내홍이 있었다. 그러나 파업 준비 기간도 부족하고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도 민주노총을 비롯해 빈민, 장애인 등 민중들이 함께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 을 노린 박근혜 정권의 노동자 죽이기 정책에 맞서 4.24 총파업 투쟁을 벌여냈다.

“저희도 4시간 파업을 결의했어요. 5월 1일 노동절에도 최대한 집중하자는 분위기이고요. 세월호 참사 정국에 성완종 리스트 파문까지 지금은 분명 우리에게 유리한 국면이니 잘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조합원들에게 누가 나오든 나오지 않던 신경 쓰지 말고 우리 갈 길을 가자. 집회는 무조건 가야 한다고 얘기해요. 만일 10,000명이 오기로 한 집회에 나 하나 안가면 9,999명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 집회는 무조건 많이 가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게 노동자의 힘이거든요.”

12명 소수의 조합이지만 자본과 박근혜 정권의 폭주를 멈추기 위해 애쓰고 있는 주연테크 동지들을 비롯해 80만 민주노총 조합원 모두가 96·97 총파업의 교훈을 잊지 말고 단결해서 위력적인 2015 총파업 투쟁을 열어젖히길 기대한다.

* 기사에 싣지는 못했지만 이번 인터뷰에 큰 도움 주신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 김학철 조직부장, 금속노조 경기지부 주연테크지회 안준민 노안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특집기고] 경제 위기와 총파업, 그리고 건강 / 2015.5

경제 위기와 총파업, 그리고 건강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최은경


<편집자> 경제위기는 노동자 건강을 위협한다. 위기를 기회로, 건강하게 일할 수 없는 조건이 강요되기 때문이다. 이번 총파업의 도화선이 된 ‘비정규직 종합대책’ 역시 비정규직과 파견근로를 늘리고, 해고를 쉽게 만든다. 지금도 최장시간 노동하는데 연장 근로 한도를 20시간으로 늘리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본의 위기에 맞서 몸과 삶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땠나. 2015년 총파업 투쟁을 맞아 경제위기와 총파업 그리고 노동자건강 연관의 역사를 되돌아보았다.


자본주의 경제 위기는 건강 문제를 동반한다. 경제 위기가 가져오는 영양 공급의 문제, 주거 및 환경의 문제, 보건의료 접근성의 문제, 그리고 정신적 스트레스의 문제 등이 건강 문제에 항상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경제 위기 속에 사회적 문제 해결을 모색해야 할 상황에서 경제 위기와 건강 문제 사이의 관련성은 점점 더 역사가들과 보건의료 정책가들이 고민하는 주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노동자와 노동조합들이 늘 체감해오던 주제이기도 하다. 반면 총파업 결과 건강 정책과 노동자 건강 문제에 있어 획기적 진전이 있었던 사례들도 많다.

경제 위기는 건강을 악화시킨다.

경제 위기 속에서 건강 문제는 중요한 문제였고, 역사상 보건의 노력들을 뚜렷하게 바꾸어 놓기도 한다.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1930년대 대공황 때 드러난 건강 문제는 다음과 같다.

영국의 경우 모성 사망이 크게 증가하였고 영아사망률은 지속적으로 저하되는 추세였지만 계급적 지역적 불균등과 불평등 차이는 커졌다. 당시의 연구가 아닌 최근 남부 웨일즈 지방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대부분 연령 집단에서 1930년대 초반 건강 상태가 더 나빠진 것으로 나오고 있다. 1929년부터 1932년 사이 중산층 가족들의 질병 건수를 연구한 결과 대공황 후 수입이 크게 하락한 가족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질병 발생이 56% 높았다. 국제연맹보건기구에서 도시 빈민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의 결과 실직 가정 아동과 그렇지 않은 가정 아동의 신장과 체중에서 차이가 있었음이 발견된 적이 있었다.

한편, 같은 경제 대공황을 겪더라도 국가의 시스템적 제도적 인프라가 작동하여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 경우 건강 문제의 발생 또한 낮아지기도 한다. 경제 대공황 시절 미국의 경우 복지 프로그램을 확대한 결과 영아사망률이 유의미하게 낮아졌으며, 영국 또한 1930년 이후 보건 부분 지출이 늘면서 모성 및 아동 복지 수준이 향상되고 결핵 치료가 증가하는 등 긍정적인 결과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록펠러 재단을 중심으로 한 국제보건 프로그램의 지원에만 의지했던 식민지 지역에서는 프로그램의 축소로 말라리아 퇴치 노력 등 공중보건 활동 자체가 지속되지 못했다.

경제 위기는 특히 제3세계 개발도상국의 보건 수준에 더 악영향을 미친다. 1997년-1998년 동아시아의 경제 위기는 인도네시아의 공공 지출 감소로 이어졌고, 가계의 보건 지출이 악화되었으며 그 결과 질병 이환 보고율이 낮아졌다는 연구가 이루어진 바 있다. 쿠바의 경우 1989년 후반 심각한 경제 위축, 그리고 1992년 미국의 엠바고 영향이 결합되어 영양 공급의 감소, 감염병과 급사의 증가 등 직접적 악영향을 경험한 바 있다.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 경제 위기와 멕시코의 건강 상태를 연관 짓는 한 연구에서는 경제위기가 있던 해가 그렇지 않은 해보다 유년기와 노년기의 사망률이 높거나 최소한 감소율이 낮아진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경제 위기가 건강 상태를 악화시킨다는 일련의 연구 발견들이 모두 같은 수준의 근거들을 통해 일정하게 지지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소위 선진국의 경우 상반된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프라가 취약한 국가에서 경제 위기가 보건 수준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은 유의미하게 밝혀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진:의료민영화와 의료 예산 삭감에 반대한 스페인 백의의 물결 운동. 사진 출처 : http://www.rtve.es/)


사회 지출 축소에 대항하는 총파업

경제 위기는 이처럼 인구의 건강 문제를 또렷이 드러내기도 하나 경제 위기와 보건 복지 분야의 지출 축소가 연관되어 인식되고, 정부의 지출 축소에 대항하는 저항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최근의 일이라고 할 만하다. 국가가 국민(인구)의 건강을 보장한다는 가치를 내재화하고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시스템화한 것 자체가 1,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건강권 확대와 복지 제도 수립 자체가 서구에서는 오래된 파업과 사회주의적 요구 확대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1877년 철도노동자 파업, 1919년 시애틀 파업 등 교과서적인 파업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 국가(제도)의 수립 이후 파업과 대규모 시위가 복지의 진전과 후퇴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지, 비서구권에서는 어떠한 영향을 가져왔는지는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복지 국가(제도) 수립 이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끊임없이 긴축 프로그램과 파업 사이에서는 긴장 관계가 형성되었다. 1,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에서는 복지 국가가 수립되는 한편 제조업 등의 쇠퇴로 구조조정과 지출 축소 등 긴축 프로그램(austerity program)을 도입하려는 시도들,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총파업들이 있었다. 가장 기념비적인 파업은 1960년-1961년 벨기에 총파업이었다. 복잡한 정치적 지형 속에서 발로냐 지방의 산업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1960년 벨기에 정부가 정부지출을 축소하기 위한 종합 방안을 수립하자 이에 대항하는 총파업이 2년간 지속되었다. 이 당시 총파업은 노조가 직접적으로 지도한 것이 아니라 지역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파업했기 때문에 정부의 통제는 불가능했다. 이 파업은 단지 긴축 정책만이 아닌 체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발전하였고, 종국에는 실패했지만 벨기에의 현대 정치 지형을 바꾼 것으로 평가된다.

오일 쇼크와 인플레이션 이후 노동당 정부의 긴축 정책에 대항하여 영국에서 1978년-1979년 겨울동안 일어난 파업 또한 당시 노동당 정부를 위기로 몰고 갔다. 하지만 이는 이후 마가렛 데쳐의 집권을 불러온 요인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아마도 복지국가 수립 이후 서구에서 신자유주의적 긴축 공세에 대한 유의미한 저항으로 지목되고 있는 곳은 현재 진행 중인 그리스일 것이다. 유로존 위기 이후 심화된 긴축 공세에 대해 반대하는 그리스발 파업과 뒤이은 각 유럽 국가의 파업은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고,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파업이기도 하다.

비서구권에서 파업을 통해 긴축을 성공적으로 저지하고 사회적 비용이 유의미하게 확대시킨 곳으로 지적되는 곳은 라틴 아메리카이다. 많은 연구들이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군부 독재 시절의 지도자들이 비효율적인 경제 정책을 고수한 반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지도자들은 파업과 대규모 사회적 시위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긴축을 저지하고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 등 사회적 비용을 확대하는 대응을 했다는 데에 동의한다. 안타깝게도 조직 노동자를 위한 혜택의 증가가 아닌 다른 집단을 위한 혜택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있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사례는 민주화 이후의 파업이 유의미한 사회적 지출 확대를 가져왔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진 : 긴축에 저항하는 그리스 민중들)

경제 위기는 보건 정책을 진전시켰을까

파업과 사회적 요구는 역사적으로 보건 제도 또는 정책을 진전시켜 왔다. 그렇다면 경제 위기는 보건 정책을 진전시켰을까, 그렇지 않을까. 우선 보건 전문가들의 연구 자체는 경제 위기를 계기로 많은 도약을 이루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초로 지구적 차원에서 경제 위기와 건강 문제 관련성이 제기된 것 또한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이다. 1919년 설립된 국제연맹 산하에서 건강 문제를 다루었던 국제연맹보건기구(League of Nation Health Organization)에서는 대공황이 닥치자 대량의 실직으로 식품 소비량이 줄어들고 가계가 악화되면서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지고 있다고 거론하였고, 1932년 ‘경제 후퇴와 공중 보건(The economic depression and public health)’ 라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보건 전문가들은 광범위한 영양 부족이 질병에 대한 취약성을 증가시키고 정신적 건강을 악화시키고 아동의 발육 상태를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당시만 해도 분절적이었던 각국 식민지 경계들을 넘을 수 있는 공중보건적 차원의 접근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국제적 차원의 보건 연구들이 시작되었다. 역사적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수립된 보건복지 체제와 사회의학 체제는 이 시기에 더욱 그 범위를 확대하게 된다. 병원이 문을 닫거나 정부가 필요한 보건 프로그램을 하지 못하게 될 거라는 우려도 팽배했다. 이 시기의 문제는 식민지 본국의 보건 문제만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공급을 담당했던 식민지 지역의 공황은 식민지 주민들의 건강과도 연결되어 있었고, 세계 시장의 공급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보건 전문가들의 연구는 당시 식민지 본국의 이해와 긴밀하게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경제 위기는 미국의 뉴딜이나 영국의 보건 부문 지출 증가처럼 보건 정책상의 진전을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 위기 가운데 입안된 보건 정책들 중 긍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중보건 상의 위협에 대해 대처한다는 명목으로 사회적 비용 지출에 예민해지고 단속이 강화되는 방향의 정책 입안이 많아진 것도 이 때이다. 이를테면 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경제위기를 경험하면서 이민자들의 나쁜 건강 상태와 전염병(매독, 결핵 등)이 공중보건 상 일종의 생물학적 위협이라고 여기고 이들을 탄압하고 단속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이러한 입장이 나치와 파시즘의 탄생에 일조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당시에도 병원과 각종 위생 시설의 저 숙련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의 퇴출이 또 다른 보건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국제적’ 인 경제 위기가 ‘국제’ 보건뿐만 아니라 ‘일국’ 의 노동 구조 및 일국의 보건 상태, 보건 담론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특집]3. 안전은 서비스가 아니라 우리의 권리/2015.4

안전은 서비스가 아니라 우리의 권리

존엄과안전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김혜진 인터뷰


선전위원회


참사 1년이 되도록 책임 있는 진실 규명은 요원하고, 안전한 사회 건설을 위한 행동은 걸음마 단계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안전위원회 김혜진 공동집행위원장을 만나 진상 규명과 안전 사회 건설을 위해 나아갈 바를 들었다.


최근 정부가 1주기가 다가오니, 인양 가능성과 배·보상액 정보를 흘리면서 동시에 세월호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의 역할을 축소, 제한하는 시행령(안)을 발표하고 나서 광화문이 다시 투쟁의 현장이 되었다.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 부탁드린다.


3월 27일 정부의 특별법 시행령(안)이 발표됐다. 이 안은 전체 특별진상조사위원회 위원 수는 줄이고 공무원 참여는 높여 정부가 진상조사위원회를 직접 관장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전사회위원회는 ‘과’ 로 격하하고 진상조사의 범위를 해상사고로 국한시켰다. 독립적인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철저히 진상을 밝히고, 참사가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초석이 되길 바랐던 가족들의 바람을 짓밟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배·보상 얘기를 흘렸다. 가족들과 소통이 전혀 없는 일방적인 발표였을 뿐 아니라, 국민 성금과 개인이 가입한 여행자 보험 액수까지 보태 금액을 부풀려 발표하니 가족들이 농락당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가족들이나 국민대책회의는 그 동안 늘 철저한 진상 규명과 연계하고, 전체 참사 과정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두 제대로 치유 받을 수 있는 배·보상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해 왔는데 이런 정신은 싹둑 잘라버리고 돈 얘기만 내놓고 있다. 게다가 배·보상에 정부 돈은 쓰지 않겠다는 발상은 참사에 정부 책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어서 가족들은 전혀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이라 차분한 추모의 1주기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세월호 인양과 정부 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며 가족들이 광화문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4월 18일 범국민대회로 계속 투쟁이 이어질 것이다.


참사 이후 안전한 사회에 대한 열망이 높아졌고, 과제들도 많이 제시되었는데 가장 시급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시급한 걸로 따지면 월성 1호기 핵발전소 수명 연장 문제인 것 같다. 수명 연장 결정 과정이 투명하지도 않았고, 위험성에 대해서 제대로 널리 알려지지도 않은 채 결정됐다. 세월호와 똑같이 경제성, 효율, 비용이라는 이름이 안전, 생명의 가치를 압도해버린 것이다.


근본적으로 안전이 ‘권리’ 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 그래야 경제성의 논리로 안전 문제를 재단하려는 시도를 막을 수 있다. 안전이 우리의 권리이고 그에 상응하는 정부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야,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가 구조를 방기했던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제도적으로는 안전을 위한 규제를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가 안전대진단을 하고 안전 혁신 마스터플랜을 내놓았다고 하지만 안전하기 위한 규제에 대한 검토와 정상화는 없다. 정부가 스스로 참사의 원인이라고 지목했던 선박 과적 문제나 선박 수직 증축 완화, 관리감독 외주화도 규제가 강화되지 않았다.


세월호 진실 규명과 안전사회 건설 노력은 함께 갈 수 밖에 없다. 사고 원인 중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 과적을 한 이유, 고박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 그리고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물어야 한다. 왜 해경에는 구조장비가 없었는지, 그들은 왜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 했는지, 그렇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고 대안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참사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투명한 규명이 안전 사회 건설 제안과 함께 가는 이유다.


국민대책회의가 가족협의회 등과 함께 416 연대로 조직 전환을 진행하고 있는데, 의미와 앞으로 과제가 궁금하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가족협의회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스스로 생겨난 풀뿌리 조직들이 함께 하게 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모여 추모하고 슬퍼하고 기억하는 것에 더해 집단적이고 힘 있는 대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에서 비롯했다. 개인과 단체들이 참여하는 회원 조직으로 416 연대를 만들어, 서로 실천을 독려하는 조직을 만들려고 한다.


416 연대에서 안전이 권리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416 인권 선언을 대중운동으로 만들어 가려고 한다. 현재 304명의 제정위원을 모으고 있고, 이 제정위원들이 함께 토론하면서 인권 선언 제안문을 채택한다. 이후 이 제안문과 참사 이후 과제를 주제로 304회의 토론을 조직하고 그 결과를 모아 내년에 인권 선언을 제정하는 것이 목표다. 우리 사회 다양한 구성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안전이 권리라는 인식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역에서 안전 관련 조례를 제정하거나,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안전할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는 것처럼 행동으로,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16 연대에도 안전사회위원회가 따로 구성될 예정인데, 안전사회위원회의 활동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예정인가?


참사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자는 생각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 차원에서 ‘위험사회를 멈추는 시민행동’ 을 함께 해왔다. 핵발전소 문제, 반올림과 함께 한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권 문제, 노후 산단 안전 문제 등을 알렸다. 기업 살인법 논의도 함께 하고 있어 올해 본격적으로 제정 활동이 있을 예정이다. 시민과 노동자가 위험을 알고 그 위험에 대한 결정에 참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현실에서 어떤 제도로 만들지, 어떻게 대중적으로 논의하며 만들지가 숙제다. 풀뿌리 시민안전위원회 조직, 조례 제정 등이 운동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특집]2. 세월호 참사가 남긴 노동안전 과제/ 2015.4

세월호 참사가 남긴 노동안전 과제


이진우(운영집행위원)


한국은 대형 사고를 수차례 겪으면서도 공공의 안전, 시민의 안전,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대책을 세워본 적이 애석하게 없다. 그렇게 된 데는 여러 원인이 있다. 빠름을 추구하는 생활방식으로 사고도 빠르게 잊혔기 때문이고, 정부부처는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아닌 책임자에 대한 미온적 처벌 등의 임기응변식 대책만을 내놓았으며, 전문가 수준에서도 재난이나 안전에 대한 논의가 그다지 진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세월호 사고가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이 큰 만큼 곳곳에서 ‘안전’ 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안전한 사회로 가기 위한 노동안전 과제들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세월호 사고를 통해 드러난 구조적 문제

: 안전규제 완화


세월호 참사는 규제완화의 위험성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노후선박 연령 제한 기준, 안전 교육 및 심사절차 등 해상 안전에 꼭 필요한 조치들이 지속적으로 삭제 또는 축소되어 왔다는 사실이 참사 이후 알려졌다. 2009년 선박안전법이 개정되면서 선장이 과적‧과승을 하면 선박소유자에게도 벌금형을 부과하던 양벌규정도 완화되었다. 청해진해운은 노후선박을 수입해, 선박 개조를 하고, 더 많은 화물을 싣기 위해 평형수를 뺐다.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늘려 왔고, 선원들의 안전 교육은 안중에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연안여객선의 안전관리는 엉망이었다.


안전규제의 완화는 선박분야만의 특수한 것이 아니다. 규제는 ‘악’ 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조성되면서 자본 친화적인 규제개혁이 전 산업에 걸쳐 단행되었다.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는 선박, 철도, 항공기 등의 사용 가능 연한을 폐지하는 안전 규제 완화가 진행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안전 관련 규제 완화를 더욱 광범위하게 단행하여,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철도산업 규제 완화 등)과 4차 투자활성화대책(의료산업 규제 완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각 부처별로 앞 다투어 규제를 폐지하기 시작했고, 발전을 저해하는 ‘암 덩어리’ 에 불과한 안전규제는 무차별적으로 사라져 갔다. 이제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사고는 언제라도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 생명·안전 업무의 외주화·민영화


세월호 사고에서 안전 업무의 외주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점검을 담당한 한국선급은 정부를 대행하여 선박검사를 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이었다. 해운법에 따라 승객과 화물 적재 등 안전 관리를 총괄해야 하는 해경은 안전 관리업무를 한국해운조합 운항관리실에 위탁하였다. 수난구호의 경우는 2012년 수난구호법이 전면개정 되면서, 정부는 ‘언딘’ 과 같은 “수난구호협력기관 및 수난구호민간단체와 협조체제를 구축” 하게 되었다. 구난 능력은 큰 의미가 없고, 값이 싼 구난업체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세월호 선원들 중, 선장은 1년짜리 계약직이었고, 핵심 선원 17명 중 12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청해진 해운에게 선장과 선원은 회사의 인건비를 축내는 비용으로 간주되었고, 임금을 적게 줄 수 있는 계약직을 채용했다. 이런 고용구조에서는 안전훈련을 한다 하더라도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고, 선원들에게 책임감을 기대하거나 요구하기도 어렵다. 자본은 정부를 등에 업고 비용절감을 위해 생명·안전 업무를 외주화한 것이다.


정부는 규제완화뿐만 아니라 안전에 대한 책임까지 놓아버리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가공공부문 민영화는 큰 틀에서 규제완화 정책의 일부이다. 철도, 의료 등 각종 영리행위가 금지되어 있던 공공서비스 분야에 민간 자본의 투자나 운영 참여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전을 책임져야할 정부가 이번에는 안전 분야에까지 민간 기업의 참여를 장려하겠다는 ‘안전 민영화’ 방안을 내놓았다. 지난 3월 30일 발표된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 에 의하면, “안전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안전투자와 민간 참여를 활성화”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안이다. 게다가 정부는 “재난취약계층을 위한 다양한 보험 상품 개발을 추진” 하겠다고 발표해 안전 관련 업무의 외주화·민영화뿐만 아니라 재난사고의 책임마저 회피하려 하고 있다.


: 책임자에 대한 미온적 처벌


세월호가 침몰한 데에는 안전을 도외시한 채 이윤을 위해 무리한 운행을 강요한 청해진 해운이 큰 원인이었던 것은 명확해 보인다. 검찰과 경찰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지목했고, 검찰은 그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겠다는 말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의 법체계 안에서 그에게 세월호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유병언의 장남 유대균 씨는 배임 및 횡령 혐의로 징역 3년, 김한식 청해진 해운 대표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및 배임 및 횡령 혐의로 징역 10년, 이준석 선장은 유기치사상죄로 징역 36년을 선고받았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승객들을 구조할 수 있었던 이들은 1차 구조책임자인 선장 및 선원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들이 중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납득하더라도, 구조적인 원인을 제공한 자들에 대한 형량은 너무 낮다. 회사의 안전정책에 대한 결정권을 기준으로 본다면 오히려 그러한 권한이 가장 없었던 계약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중형을, 권한이 가장 많은 이들이 가벼운 형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기업이나 정부 관료가 안전이나 환경조치를 소홀히 해 인명과 환경에 큰 피해가 발생해도 기업이나 사업주, 정부 관료가 처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형 재난사고 직후에는 책임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컸지만, 실제 처벌로 이어진 경우는 드물며 처벌 수위 또한 낮았다.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서는 회장과 사장이 각각 징역 7년 6월과 7년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23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화성 씨랜드 화재 참사 때도 수련원 대표가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192명이 사망한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에서도 기관사·관제사 등만 처벌받았으며, 대구지하철공사 사장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청업체의 산재사망 사고에 대해 원청업체 사업주가 책임을 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2013년 대림산업의 여수산단 가스폭발사고, 삼성전자의 화성 불산유출사고, 청주SK 폭발사고 등에서 원청 사업주는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러한 책임자 처벌로 과연 안전한 사회가 가능할까?



세월호 참사가 제기하는 과제

: 안전규제 후퇴에 영향을 미친 법제도, 정책 철폐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한국에서 안전을 위한 규제는 후퇴되는 중이고, 곳곳에 널리 존재하고 있는 문제가 이번 참사에서 응축되어 드러났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안전을 사고하는 사회의 기본정책방향을 다시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드시 필요한 안전규제마저 완화시키는 기업 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 규제개혁위원회 등에 대한 조치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지금까지 진행된 규제 완화도 재검토하여, 이윤이 아니라 안전 중심으로 개정해야 할 것이다.


: 안전위험업무/유해물질 취급업무 외주화 금지


안전위험업무와 유해물질 취급 업무의 외주화는 실제적으로 안전에 대하여 책임져야 할 원청회사가 안전 책임도 회피하고 비용절감 효과도 보게 된다. 이러한 외주화의 만연은 안전과 생명의 소홀로 이어진다. 사고 발생 시 하청회사, 노동자, 시민에게 책임이 전과하게 되고, 원청회사는 안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이 되고 있다. 따라서 권한과 책임이 함께 하기 위해서 외주화 금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및 안전 관련 업무 종사자의 정규직화 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 안전을 지킬 충분한 인력 보장


충분한 인력의 확보는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치이다. 인력이 부족하면 안전수칙을 지키기도 어렵고, 과로로 인한 실수도 늘어나며,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대처능력도 약해진다. 안전인력을 보장하라는 것은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 에서처럼 안전 전문가를 별도로 육성하라는 뜻이 아니다.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사고 시 안전인력이다. 이들에게 작업장의 유해환경에 대한 알권리를 보장하고, 현장의 안전을 채워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은 사고발생에 대해서는 염두에 두지 않고 인력 최소화만 추구한다. 대구지하철화재에서는 당시 1인 승무제로 운행되고 있음에도, 기관사가 운전실에서 사령실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불이 난 현장에 가서는 불도 끄고, 승객도 대피시켰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본인의 의무를 다하고, 처벌을 피할 수 있겠는가. 철도·지하철 노동조합들은 자동화를 이유로 계속해서 줄어드는 인력을 적정 수준에서 보장하기 위해 오랫동안 싸워왔다. 지하철과 철도를 막론하고 2인 승무가 유지되는 노선은 이제 일부에 불과하다. 시민과 노동자 모두의 안전을 위해 충분한 인력 보장은 필수이다.


: 노동자에게 위험작업을 중지할 권리를


현재 한국도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시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법적으로는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작업중지권이 보장된다' 는 것은 법조문에 규정되어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실에서의 작업중지권은 노사관계에서 힘을 가진 노동조합만이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업중지권이 현실적으로 의미를 가지려면, 실질적인 권한 행사가 가능하도록 하는 법제도 정비뿐 아니라 조직화된 노동자의 힘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안전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자본에 맞서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지켜내야 한다.


: 안전을 지키기 위한 기업의 책임 강화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두고 꼭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피할 수 있는 죽음이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의 무책임한 행태를 규제할 대책이 없는 무기력한 상황이다. 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힘은 노동자와 시민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안전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아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분명 살인이다. 기업의 살인 행위에 응당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논의가 현재 진행 중이다. 우리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이윤보다 생명이 먼저인 세상을 위해 시민과 노동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특집]1. 안전을 기업에 맡긴다? 세월호 1년, 정부 안전대책 평가 / 2015.4

안전을 기업에 맡긴다? 세월호 1년, 정부 안전대책평가


푸우씨(집행위원장)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년이 다가오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동시대의 다른 어떤 사건보다 한국사회에 던진 충격과 파장이 컸다. 그만큼 세월호 참사를 빚게 한 다양한 형태의 원인진단과 해석, 대안이 각계각층에서 지난 1년간 쏟아져 나왔다. 노동안전보건운동진영을 비롯한 시민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자본주의 체제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빚어낸 결과로 규정하고, ‘규제완화 정책 폐기’, ‘민영화 반대’, ‘수명 끝난 원전 폐기’, ‘안전사회 건설’ 등 투쟁 요구와 기치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이에 반해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단순 해상사고’로 축소하며, 참사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 진단과 진상규명 요구의 목소리를 애써 외면해 왔다. 이는 세월호 참사가 체제와 권력의 문제로 지목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전면에 떠오른 ‘안전’이라는 화두를 활용해 ‘안전산업 육성’ 등 자본시장의 활로를 개척하는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월호 참사 1년이 다가오는 지금,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안전대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거듭되는 참사


사건

규모

문제점

고양

종합터미널

창고 화재

(2014년 5월 26일)

8명 사망, 지하 1층

- CJ내부 인테리어 공사 중 방화셔텨와 스프링클러 등을 작동할 수 있는 긴급 전원 시설도 차단한 채 공사

-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에 공사

- 공사를 관리 감독해야 할 책임자인 공사감리도 비상주 1인만 지정

전남

장성요양병원

화재

(5월 28일)

21명 사망,

8명 중경상

- 새벽에 화재 발생으로 5분 사망

- 4656㎡ 규모의 2층 별관 70~80대 환자 34명에 간호조무사 1명

- 발화 시점부터 소방대원 도착시간 6분 동안 화재로 인한 유독가스로 사망

- 스프링클러 없음.

- 요양병원의 인력기준, 화재안전 기준 2013년부터 요양병원의무인정제가 시행되고 있으나, 의료기관 평가 인증원은 요양병원 인력 기준에 관한 법을 지키지 않아도 모두 인증을 해주었음.

판교

테크노벨리

환풍구 추락

(10월 17일)

16명 사망,

11명 중경상

- 환풍구 안전 관리 규정 없음.

- 국과수 1차 감정결과: 용접불량, 지지대 절단, 앵커볼트 미고정 등 부적절한 시공형태

- 덮개 지지대 전체 앵커볼트 40개 중 11개 불량 시공

- 14년 2월 안전행정부가 ‘재난안전관리법 시행령’ 개정으로 공연법의 관리 대상 지역축제를 ‘예상관람객 3천명 이상’으로 명시. 14년 3월 소방방재청 개정 시행령에 따라 ‘지역축제장 안전매뉴얼’적용대상 축소

의정부

도시형 생활주택 화재

(2015년 1월 10일)

5명 사망,

125명 중경상

- 사무실로 활용해야 할 공간까지 주거용 원룸으로 개조해 월세 임대

- 2009년 도시형 생활주택 도입 이후, 여섯 차례에 걸쳐 외부 마감재, 건물간 거리 등 관련 규제 완화

- 건물 간 거리가 좁아 소방차 진입이 늦어짐

- 건물 외부 마감재가 화재에 취약해 불길이 빠르게 번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후에도 안전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했다. 판교 테크노벨리 환풍구 추락사고, 의정부 도시형 생활주택 화재, 글램핑 화재사건, 최근 발생한 신촌대로 싱크홀 사고까지 어느 것 하나 예외없이 기업의 이윤 추구를 우선시 하고, 이를 위해 정부가 규제 완화에 나선 결과이다. 결국, 세월호 참사 이후 ‘침몰은 자본이, 참사는 정부가’ 라고 진단한 시민사회의 언명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거듭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참사 이후 벌어진 또 다른 참사들을 통해 아주 잘 증명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에게서 안전에 대한 근본적, 철학적 성찰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앵무새처럼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관계기관의 철저한 수사를 바탕으로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발표만을 주문처럼 되뇌었을 뿐이다.


급기야 박근혜 정부는 구체적인 안전 대책을 내놓지도 않은 채, 3월 19일 산업자원부 산하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안전산업발전방향’ 을 내놓았다. ‘안전’에 대한 투자는 없이, ‘안전산업’에 투자하여 ‘안전산업을 육성’ 하여 국가의 안전을 수립하겠다는 발상이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국민의 안전까지 기업에게 넘겨주겠다고 선언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는 지난 3월 30일 이완구 국무총리가 중앙안전관리위원회를 열어, 박근혜 정부의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을 확정·발표했다.



5년간 30조원을 쏟아 붓는…….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의 정책수립 방향을 발표했던 시기부터 속빈 강정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었다. 정부는 작년 세월호 참사 이후 한 달여 만인 2014년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8월 26일 제5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발표한 [국민안전 대진단 및 안전산업 발전 방안], 9월 23일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 기본방향 및 향후 추진계획]에서 안전 정책 대강의 얼개와 방향을 제시해왔다. 이런 정책방향 하에 3월 30일 모습을 드러낸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은 ▲재난안전 컨트롤기능 강화 ▲현장 재난대응 역량강화 ▲생활 속 안전문화 확산 ▲재난안전 인프라 확충 ▲분야별 창조적 안전관리 등 5대 전략과 100대 세부계획으로 구체화 됐다.


이 과정에서 지난 1년간 박근혜 정부가 안전관련 대책을 언급할 때마다, 시민사회가 제기했던 ‘안전관련 규제 완화 중단’ 등 근본적 비판은 철저히 외면됐다. 기업투자 활성화, 경제 활성화 대책이라는 명목으로 등장한 각종 규제개혁이 가장 우선적으로 기업과 공공기관, 다중이용시설 등에서 필수적인 안전시설, 안전보건 인력 채용 등을 무력화해 위험을 증폭하고, 확산하는데 일조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귀를 막아버린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전인 작년 3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장관회의에서 ‘규제는 쳐부수어야 할 원수이자 암 덩어리’ 라고 선언하며 각종 규제를 임기 내 10%, 임기 말까지 20% 줄이겠다고 발표했으나,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 국민여론을 의식해 잠시 주춤했던 규제개혁이 현재는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결국 정부는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을 통해 참사와 사고 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보호와 예방에 관한 국가의 책무에 대해서는 사실상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국가안전처 중심의 ‘재난안전관리체계’ 를 확립해, 재난과 사고 등 상황에서 긴급한 구조, 구난, 지원에 효과적인 인력 확보, 지자체와의 협력, 대응 체계를 갖추겠다는 것을 ‘안전대책’ 의 전부로 일관하고 있다.



안전을 기업에게 맡긴다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

- 안전을 ‘산업화’ 하여 기업 이익을 보장하는 수순


물론 정부는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에서 ▲생활 속 안전문화 확산 ▲재난안전 인프라 확충 ▲분야별 창조적 안전관리를 5대 전략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사실상 양념 식으로 곁들여진 안전대책에서 별다른 실효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3가지 과제에서 거론된 ‘민관합동’ 의 ‘민’ 은 사실상 기업이기 때문에, 그 우려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기업의 이윤보장을 위해 안전문제가 도외시 되었던 그간의 과정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어 더욱 그렇다. 작년부터 언급되기 시작한 정부의 안전산업 육성 방안에서도 방점은 ‘안전’ 이 아니었고, ‘안전산업’ 을 육성해 ‘수출’ 주력분야로 육성하겠다는 입장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올해 정부는 각종 안전진단과 점검 분야를 민간에 대폭 개방하겠다며, 상반기에 가스 안전진단 분야를 민간에 시범 개방한 뒤 교량, 터널, 댐 등으로 확대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해 사실상 정부(공공기관)의 몫까지 기업에게 내주겠다고 선언해 버림으로써 국가의 역할을 포기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거론조차 되지 않은 노동안전


정부의 이번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 중 ▲분야별 창조적 안전관리에는 ‘항공, 도로, 산업단지, 에너지, 철도’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노동안전(산업안전) 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 모든 분야에서 안전을 담당하고 책임지는 노동자들은 우선적으로 정규직화 되어야 하고, 시민과 노동자들에게는 위험 요인과 안전 관련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알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일선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예방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이 부여되어야 한다. 이런 과제는 노동자의 안전이 곧 시민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문제의식 하에 세월호 참사 이후 시민사회가 끊임없이 주장하고 요구하던 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과제들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을 발표하며 "안전관리는 재난 현장에서 얼마나 잘 작동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며, "이론이 아닌 실제적인 대응체계를 갖출 것" 을 주문한 것에 비추어 본다면, 위험상황을 1차적으로 마주해 이를 통제하고, 최소화할 수 있는 권한은 해당 노동자에게 부여되어야 한다.


‘안전대책’ 과 ‘대응매뉴얼’ 이 실제 작동할 수 있으려면, 그에 걸맞은 예산과 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은 가장 기본적인 국민의 ‘안전’ 까지 결국 ‘기업’ 에게 맡겨버리고, 국가의 역할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통해 얻은 교훈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특집] 2. 안전한 일터, 국민 행복 시대는 가능한가?-제4차 산재예방 5개년계획의 의미와 과제 / 2015.3

안전한 일터, 국민 행복 시대는 가능한가?

- 4차 산재예방 5개년계획의 의미와 과제 -

 


선전위원회


 

지난 127일 고용노동부에서 산업현장의 안전보건 혁신을 위한 종합계획 <4차 산재예방 5개년계획 (2015~2019)>’ (이하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혁신안과 함께 안전한 일터·건강한 근로자·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한 4대 추진 전략을 제시했다. 그리하여 선전위원회는 이번 종합계획이 짧게는 박근혜 정부 남은 3, 길게는 2019년까지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그 의미와 과제를 짚어보았다.

 


산업안전보건 혁신 종합계획의 배경

 

고용노동부는 이번 종합계획을 수립한 가장 큰 이유로 그간 각종 안전보건대책의 성과로 재해율 지표는 꾸준히 개선되었으나, 산재사망만인율의 경우 여전히 선진국보다 2~4배가량 높고 (2010년 기준 한국 0.78, 일본 0.22, 미국 0.38, 독일 0.18), 경제적 손실액도 19조원에 달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또한, 작년 현대 중공업에서만 9명의 하청·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망한 사례에서 보듯 위험의 외주화에 따라 안전보건의 사각지대가 확대되고, 안전보건에 관한 책임을 하청에 떠넘기는 현실을 지적했다.

4.16 세월호 참사 이후 일터뿐만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안전보건에 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이번 종합계획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밖에 고용노동부의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삼성 반도체 직업병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산재인정 판결이나, 제주의료원 간호사 노동자들의 집단 유산 산재인정 판결 등 직업성 암, 생식독성 등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이번 종합계획이 만들어지는데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겠다.

 


산업안전보건 혁신 종합계획의 목표

 

고용노동부는 이번 종합계획으로 선진국 수준의 안전한 일터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20130.71%의 산재사망만인율을 20190.3%로 낮추기로 했다. 이를 위해 4대 추진 안전보건 책임 명확화 대응 능력제고 확고한 기반 구축 실천 중심의 안전보건 문화 확산 과제를 설정했다.

 

 

사업주의 안전보건 책임 강화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안전보건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하는 듯 이번 종합계획에서 가장 먼저 사내하청업체의 위험작업에 대해 원·하청 공동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확대했다. 만약 유해·위험작업을 도급할 땐 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이 확보되도록 기존의 도급인가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사업주의 안전보건 책임 확대를 위한 또 다른 방안으로 앞으로 300인 이상 고위험 업종 (조선·철강·건설 등) 사업장에서는 의무적으로 안전보건관리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했다. 사업장 내 안전보건관리자 선임 의무가 없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사업장의 직·반장이 안전보건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또한, 앞으로 위험성 평가를 하지 않는 사업주에게는 과태료 부과 및 안전보건공단에서 수행하는 사업 제공에 불이익을 주고, 위험성 평가에 따른 개선계획을 이행하지 않으면 사법조치 대상으로 분류하기로 했다.

 

노동자의 참여 및 역할 확대

 

노동자에게 작업현장의 급박한 위험 발생시 '작업회피' 를 결정하게 하고, 사업주에게 안전보건점검 실시를 요구할 수 있다. 또한, 현장책임자에게 안전수칙을 미준수한 노동자에게 작업을 제한하는 권리도 부여했다. 위험성 평가의 경우 노동자 대표가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도 마련되었다.

 


업무 특성 맞춤형 안전보건 지원

 

여성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는 재생산 노동영역 (교육 · 사회복지 서비스, 청소, 병원) 노동자들의 건강증진 및 직무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을 보급하기로 했다. 청소, 현장실습 노동자를 다수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휴게 공간을 제공했는지, 현장실습 노동자에게 안전보건교육을 했는지 등 관련해서 집중 지도점검을 시행한다.

유해·위험 화학물질을 다루는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을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상 관리대상 화학물질의 범위를 현재 751종에서 확대해 나가는 한편, 유해·위험성 평가 프로세스를 구축하기로 했다. 또 사용물질, 노출정도, 작업방법 등이 노동자의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실태조사를 통해 작업환경개선 등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안전보건문화 확산

 

··정이 T·F를 구성 산재 은폐 관련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한, 복지부 (건강보험관리공단 담당), 국민안전처 (119, 응급환자 이송기관 담당) 등 민·관 협업 체계를 통해 산재 은폐를 근절하고, 안전보건문화를 확산하도록 했다.

기존 안전점검의 날을 매월 4일에서 세월호 참사일인 16일로 변경해, 일터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안전의식을 높이는데 힘쓰기로 했다.

 


기업 편의 위한 규제완화 정부가 노동자 건강을?


그러나 이번 산업안전보건 혁신 종합계획역시 박근혜 정부 특유의 유체이탈 기조는 변함이 없었다. 왜 선진국보다 산재사망만인율이 2~4배 높은지,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산재 사망이 왜 많은지, 4.16 세월호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고찰도, 책임도, 반성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산재 사망률이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높은 이유는 고용의 불안정과 함께 위험 작업을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전가하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급박한 위험 발생 시 '작업회피' 를 결정하도록 보장한다고 하는데, 노동조합이 나서서 작업 중지를 선언해도 하루 일당 공치는 것이 답답해 항의하는 노동자들이 있는 현실이 존재한다.

원청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확대한다지만, 그동안 기업 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기업규제완화법) 아래에서 기업은 다양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면제받아왔다. 정부가 지속해서 견지하고 있는 규제개혁이다. 전체 정부 정책과 기조는 노동자 안전과 건강, 생명을 경시하는 방향인데 개별적인 접근으로 안전보건이 혁신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헛될 뿐이다.

 


산재은폐 막지 않고 산재사망률 관리?


우리나라 산재 발생률 통계에 대해서는 항상 물음표가 따라 다닌다. 전체 산재 발생률은 낮은데, 사망사고 발생률은 높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사고 사망률을 낮추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제안했다. 그러나 만일 산재 발생 보고가 적어서 산재 발생률이 낮게 나타나는 것이라면 정확한 상황 인식과 통계를 위해 산재 은폐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현재 낮은 산재 보험 적용률, 산재인정에 대한 부담, 3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만 보고하게 되어 있는 체계 등이 모두 산재 보고를 낮추는 원인이 된다. 물론 이런 단순보고 누락 외에 산재 은폐를 막기 위해 강력한 처벌을 포함한 실질적인 노력이 따라야 하는데, 규제 완화라는 미명 하에 산재 은폐의 중요한 기전으로 작용하는 개별실적요율제를 1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하자고 결정한 것이 작년의 일이다. 정부가 산재 발생 실태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고민 없이, 산재 은폐를 부추기는 방향의 정책을 펴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를 '사고 사망률 낮추기' 로 설정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진짜 노동자 참여가 필요하다

산재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현장책임자에게 안전수칙 미준수 근로자의 작업을 제한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고 한다. 이는 노동자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안전에 불감하기 때문에 안전사고가 발생한다는 고용노동부의 발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면서 이 대책이 근로자의 참여와 역할을 강화하는 조치라고 한다.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데 노동자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기존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명예산업안전감독관 등이 실질적으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수십 명의 산재 사망자를 낸 사업장의 비정규직 노조는 사고가 발생해도 공식적인 보고는커녕, 사고 조사에도 정규직 노동조합을 통해서만 참여할 수 있다. 숫자로도 절반에 가깝고 더 위험한 부서에 배치되어 있어도 산보위에도 참여할 수 없다.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 물론,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곳도 많다. 노동자의 참여라기보다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 사용 또한 회사의 징계와 고소·고발 폭탄을 맞는다. 노동자에게 사고의 책임을 묻고, 작업을 제한한다는 발상으로는 노동자들의 자율과 권리에 기반을 둔 노동자 참여를 통한 안전문화 확산은 요원하다.

 

물론 한 번의 종합계획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 또한, 아무리 훌륭한 계획이라도 안전보건 감독 인력과 예산 확보 없는 계획은 증세 없는 복지처럼 그저 공염불에 불과하다. 공정안전보고, 위험방지계획, ·하청 공생협력, 위험성 평가 등 이미 있는 법과 제도조차 이행되지 않은 게 작금의 현실이다. 무엇보다 전체 국정 방향이 노동자의 삶을 불안하게 하고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데 안전한 일터, 건강한 노동자, 국민 행복시대는 불가능할 것이다.

[특집] 1.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계획과 평가-3차 산업재해예방 5개년 계획 평가 / 2015.3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계획과 평가

- 3차 산업재해예방 5개년 계획 평가 -

 


회원 김재광(공인노무사)


 

지난 2000년 이후 노동부는 5년 단위로 산업재해예방(5개년 계획)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여 점검하고 있다. 5개년 계획이 이전에도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제1차 산업재해 예방 6개년 계획,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산업안전 선진화 3개년 계획을 시행한 바가 있다. 이를 고려하면 근 25년간 정부 나름의 체계적인 산업재해예방 계획을 수립하고 점검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제3차 산업재해예방 5개년 계획(2010~2014)이 종료되고, 4차 계획이 수립된 시점에서 지난 제3차 계획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목표를 중심으로 확인하고자 한다.

 


재해율 0.5%대 달성? 빛 좋은 개살구

 

정부의 5개년 계획은 보통 비전, 목표, 기본방향, 추진전략 및 과제로 구분되어 있다. 3차 계획의 비전은 근로자가 안전한 삶과 행복을 영위하는 안전행복사회 구현이다. 이러한 비전이 구현되었는지는 전체를 검토하고 글의 말미에 살피고자 한다. 3차 계획의 목표는 ‘2014년 재해자수 6만 명대로 감소시키고, 재해율을 0.5%대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당시 재해자수는 97000여명 대에 이르고, 재해율은 0.7% 대에서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노동부가 발표한 2013년 산업재해 발생 현황에 따르면 재해자는 91824, 재해율은 0.59%, 35개년 계획이 목표한 재해자수 6만 명에 이르기에는 부족했지만 재해율은 0.59%로 목표한 0.5%대에 가까웠다. 아마도 2013년도부터 업무상 교통사고 등을 통계에서 제외한 숨은 노력이 0.5%대를 가능하게 한 것은 아닌가 싶다.

 

수치만 보면 재해율이 줄어든 것은 사실인데 꼭 성공하였다고 말하기가 머뭇거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2013년 사망만인율2012년보다 오히려 증가하였고, 3차 계획 기간 동안 사고사망만인율[각주:1]0.7%대에서 큰 변동을 보이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재해율 저하 목표가 현실을 더욱더 왜곡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들게 한다. 보통 사고사망만인율이 산재재해율보다 낮은 것이 일본을 제외한 OECD 국가들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재해율에 비교하여 턱없이 사고사망만인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 말인즉, 사망사고는 은폐할 수 없어 상당부분이 통계로 드러나고 있으나, 거꾸로 사망이 아닌 경우는 상당부분 은폐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정에서 재해율을 줄이고자 하는 각고의 노력은,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산업재해의 은폐를 조장 묵인하는 것에 한 몫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전히 제자리를 맴도는 사고사망률은 이를 웅변하고 있다. 애초 정책 목표가 산재율, 사고사망만인율 감소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산재 은폐에 대한 단호한 처벌, 산재보험 급여의 내실화가 동반되었어야 하나 이에 미치지 않아 수치상 목표는 달성했으나 취지에는 벗어난 결과를 만든 것이다. 이를 의식했는지 그나마 제45개년 계획에서는 사고사망만인율을 0.7%대에서 2019년에는 0.3%로 줄이고자 계획하고 있으니 다행이라 하겠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산재은폐에 대한 단호한 처벌과 산재보험 급여의 내실화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번 목표마저도 현실적 실효성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업장 자율시스템은 어떻게 되었나?

 

3차 계획이 기존의 5개년 계획과 비교하여 눈에 띄었던 대목은 위험성 평가 그리고 노사자율, 민간참여 유도 등 이라 하겠다. 3차 계획 목표는 재해율 저하 이외에도 또 하나의 목표를 제시하였다. ‘위험성 평가를 기반으로 한 자율안전보건시스템 정착이 그것이다. 위험성 평가는 사업장에 대한 포괄적인 안전보건평가이며 동시에 근로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선진화된 사업장 자율시스템이라 할 것이다. 이것에 대해 제3차 계획은 상당히 힘주어 강조하고 있었다. 실제 위험성 평가는 법제도적으로 2010년부터 3년간 시범사업을 거쳐 2013년부터 본격 시행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참여와 협력을 통한 서비스전달체계 다원화를 추진전략 및 과제로 선정하고, ‘지역별 산업안전 네크워크 구축’, ‘중앙/지방정부간 연계협력강화’, ‘노사공동 산업안전보건 협력체계구축 지원등을 세부과제로 두고 있었다.

 

위험성 평가의 경우 노동부의 안전보건부문에서 2000년도 중반 이후 여러 연구 용역 및 시험 적용 등 상당한 노력을 보였고, 시행이후 이에 대한 선전 및 평가 기법의 교육 등에 대한 대대적인 공을 들인 바 있다. 실제로 안전보건공단에서 주최한 위험성 평가에 대한 교육의 경우 상당한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위험성 평가가 자율적 안전보건관리체계라는 점, 작업자의 참여가 독려된다는 점에서 일정한 긍정적인 요인이 있으며 이것에 대한 제3차 계획의 중점이 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중점 목표였던 위험성 평가의 이행이 얼마나 진행되었는가와 별개로 현장의 노동자들이 이것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분명한 자료나 결과를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위험성의 선진성은 자율적인 안전보건예방관리시스템이고, 여기서의 자율은 회사뿐 아니라 작업자(노동자)에게도 부여된 것인데, 정작 대부분의 현장 노동자에게는 큰 감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사업장에서 조차 활발한 위험성 평가 작업을 찾아보기 힘들다. 더불어 제시된 세부과제인 지역별 산업안전 네크워크 구축’, ‘중앙/지방정부간 연계협력강화’, ‘노사공동 산업안전보건 협력체계구축 지원은 이렇다 할 결과를 낳지 못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제3차 계획에서 강조된 위험성 평가는 제4차 계획에서 찾아보기가 힘들어 이러한 취지의 사업이 사실상 폐기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가지게 된다.

 


계획의 실효성 평가가 필요하다

 

3차 계획에서는 건설, 제조, 화학, 서비스, 소규모 사업장 등 특성화된 예방대책 추진을 통한 사업실효성 제고라는 추진전략 및 과제가 있었다. 그러나 제3차 계획 기간에 유독 중대 산업 사고나 하청 노동자의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았다. 2013년 다른 모든 업종에서 산재사망이 감소할 때 건설업에서는 산재사망률이 오히려 증가했다. 사업의 실효성이 전혀 발휘되지 못한 것이다.

3차 계획 추진 중 하나로 제시됐던 산업안전보건 행정역량강화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산업안전감독관의 수와 역량을 키워 산업안전감독을 내실화하겠다고 하였으나, 2015년 지금까지도 여전히 산업안전감독관 1명은 4000~5000 개의 사업장을 담당한다. 역시 계획이 계획에 머무르고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한 단면이다. 계획을 실행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예산과 행정력, 뚜렷한 정치적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난 산재예방계획들이 그렇게 작동해왔는지 검토가 먼저 필요하다.

 


계획의 근본은 노동자의 권리

 

앞서 제3차 계획의 비전은 근로자가 안전한 삶과 행복을 영위하는 안전행복사회 구현이었다. 그러나 사망만인율은 다시 증가세가 되었고, 사고사망만인율은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안타깝게도 세월호 참사는 제3차 계획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물론 세월호는 산업안전보건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세월호 참사과정에서 나타난 해당 노동자의 위험에 대한 거부와 통제의 권한이 얼마나 하잘것없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정도는 다르지만 산업재해예방 5개년 계획은 노동자의 참여를 양념처럼 집어넣고 있으나, 정작 노동자에게 중요한 알 권리, 참여할 권리, 거부할 권리에 대한 실효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변화되는 산업 환경을 거론하면서도 요청되는 노동자의 신체적, 정신적 보호와 권리를 성의 게 바라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3차 계획의 비전 근로자가 안전한 삶과 행복을 영위하는 안전행복사회 구현은 만무하고, 4차 계획의 비전 선진국 수준의 안전 일터 구현은 요원한 것이다.

 

체계적이고 정기적인 국가적 계획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계획에 정작 일하는 노동자의 권리가 중심이 아니라면 무엇을 위한 산업안전보건인지, ‘계획인지 돌이켜 볼 일이다.   



  1. 사망자수의 1만 배를 전체 근로자 수로 나눈 값. 전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중 산재로 사망한 근로자가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할 때 사용하는 지표 [본문으로]

[특집] 3. ‘여성’ ‘노동자’로 살아가기 / 2015.2

[특집3]
‘여성’ ‘노동자’로 살아가기
- 그녀들의 일하는 이야기

 

 

우리 아이가 컸을 때는 세상이 좀 달라졌으면 좋겠어

 

19살, 가을 1994년 9월 26일에 회사에 첫 출근을 했어. 시골 촌구석에서 여고를 다녔는데, 3학년이 되니까 회사에서 사람을 뽑으러 학교로 오더라고. 어리바리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면접 보라고해서 면접을 보고 지금은 이름이 바뀐 ◯◯◯◯◯에 오퍼레이터로 첫 출근을 했어. 회사에 들어가 3개월은 공부만 했던 것 같아. 내가 하는 일이 뭔지, 내가 쓸 케미(화학물질)는 뭔지에 대해서. 물론 그 케미가 내 몸에 좋은지 어쩐지는 안 알려주지. 근데 어렴풋이, 눈치로는 알겠더라. 이게 이런 역할을 하니까, 독하겠구나…. 몸에 좋지는 않겠구나…. 하고.


10년 동안 3교대로 일하면서 공장과 기숙사만 오갔지. 일은 엄청 힘들었어. 그래도 교대수당 붙고 성과급 붙으면 월급은 주변 보다 훨씬 많았는데……. 돈 다 어디 갔나! 모르겠네. 내 10년 세월인데.

 

29살, 가을 거기서 10년 일하고 서울로 왔어, 동생이 서울에 같이 있자고 해서. 10년을 지방에서 공장과 기숙사밖에 모르고 보냈더니 세상에 대해 아는 게 없더라고. 일자리를 구하려면 벼룩시장 같은걸 보면 되는데 그걸 모르고 지역을 돌아다니며 전봇대를 살폈어. 왜냐고? 옛날처럼 전봇대나 담벼락에 구인광고가 붙어있을 줄 알았거든. 근데 지역을 몇 바퀴 돌아도 구인광고가 안 보이는 거야. 그래서 이 지역에는 공장에 빈자리가 없는 줄 알았다니까, 참. 이 지역에 자리 잡은 지도 벌써 10년인데 주로 전자제품을 조립하거나 검사하는 일을 했어. 50명도 안 되는 회사도 있었고 100명 가까이 되는 큰 회사도 있었어. 생산라인은 다 여자지. 아무래도 핸드폰같이 작은 건 손을 쓰는 거니까 여자들이 많은 거 같아. 그래도 처음에는 일하는 회사에 취업했는데, 점점 파견회사를 통해서 들어가게 되더라고. 요즘! 다 파견이지. 근데 일은 점점 많고 힘들어지는 것 같아.

 

한 번 들어가면 보통 1년 정도 다녔어. 오래 다닌다고 월급 더 주는 것도 아니고, 딱 ‘최임’에 맞춰주거든. 1년 일해도 3년 일해도 다 똑같아 월급은. 사람보고 다니는 거지, 정으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으면 그 사람들 보고 다니는 거야. 근데 옮기기도 많이 옮겨. 다른데 가봐야 다 똑같다는 거는 아는데, 주임이나 계장이나 못된 놈 만나면 안 옮길 이유가 없는 거지. 그 전에 다니던 데도 관리자가 어찌나 무시하고 성질을 부리던지……. 근데 그렇게 옮기잖아? 그러면 거기서 또 만나! 그 전에 같이 다니던 사람들을. 다들 상황이 비슷한 거지. 어제 만나고, 오늘 만나고, 내일 만나고.

 

또 어려운 건 물량 따라서 일도 월급도 들쑥날쑥 이라는 거야. 미리라도 얘기해주면 좋은데 안 그러지. 오늘 아침에 출근했는데 점심 먹기 10분 전에 주임이 들어와서 ‘오늘은 12시에 퇴근합니다!’ 이러는 거지. 아니면 3시 10분에 쉬는 시간인데 3시에 라인 들어와서 ‘오늘은 3시에 퇴근합니다!’ 하고. 우리는 딱 일한 만큼만, 시급으로 계산해서 받으니까 이렇게 되면 생활할 수 있는 월급이 안 되지. 라인에 있는 언니들, 10명 중에 2~3명은 가장이거든. 그래서 이런 언니들은 부동산 전단지 알바도 뛰어야해.
전자산업이라고 특별할 건 없어. 오히려 전자산업이라고 부르는 게 싫어. 그렇게 부르면 뭔가 “내가 못나서 이런 대접을 받는다”, 이런 느낌이 들거든. 기분이 안 좋아. 자존심도 상하고.

 

39살, 가을 임신을 해서 이제 아이를 낳아야하는데, 이 회사에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같은 게 없는 줄 알았어. 한 명도 쓴 사람이 없었거든. 경리 보던 여자 분들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임신 초기에 관두고, 또 한 사람은 7개월쯤 되니까 그냥 관두더라고. 그래서 나도 배가 더 부르면 관둬야겠다고 생각했어. 경리부서만이 아니라 (생산)라인에서도 7개월 정도까지는 일하고 그 뒤에는 관두더라고. 근데 남편이 아니라는 거야. 법으로 보장된 거라는 거야. 그래서 되든 안 되든 한 번 얘기나 해보자, 싶어서 회사에 얘기를 했더니 회사도 몰랐더라고, 그런 게 되는 줄. 회사도 잘 몰라서 우왕좌왕 하던 걸! 우리 회사에서 사무나 생산, 통틀어서 내가 처음으로 출산휴가를 썼어. 근데 출산 휴가 들어가고 얼마 안 있어서 회사가 문 닫은 거 있지. 얼마 전에 00사 문 닫았잖아, 우리 회사가 거기 납품했는데 거기가 망하니까 여기도 문 닫은 거지. 참 나……. 아직 퇴직금도 못 받아서 체당금인가 뭔가 그거 신청하려고 하고 있어. 우리 회사 최초로 육아휴직도 한 번 써보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우리 아이가 컸을 때는 세상이 좀 달라졌으면 좋겠어. | 정리 및 재구성: 흑무(상임활동가)

 

 

꽃다운 나이에 피크타임 단시간알바로 살기

 

꽃다운 나이? 내 나이 스물둘. 남들은 “꽃다운 나이다, 부럽다, 나도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지만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피자가게, 커피숍, 빵집, 술집 등에서 단시간 알바로만 생활한지 벌써 3년째. 대학은 지금 당장 뜻이 없어서 진학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집에서는 내가 골칫거리가 되었고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부모님 잔소리가 너무 힘들어서 월세 방을 구해 독립했다. 내가 원하는 삶,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긴 하지만, 때론 불규칙한 생활, 쉼 없는 노동에 따른 육체적 힘듦, 또래와 다르고, 20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들로 고단하다.

 

주방이모&손님 요즘엔 홍대 인근에 있는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있다. 사장님도 지금껏 일한 곳에 비하면 나쁘지 않고, 서빙일엔 대부분 최저시급(5,580원) 주는데 여긴 시급도 7,000원이니 꽤 센 편이다. 그래서 7개월째 일하고 있다. 출근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까지 퇴근이다. 피크타임에 일하다 보니 숨 한번 돌릴 틈 없이 정신없이 바쁘다. 매번 단시간 알바를 하다 보니 대개 가게들이 가장 바쁜 3~4시간 몰아서 일하는 데는 최적화된 알바생이다.

 

식당 서빙일이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사장님의 갈굼, 진상 손님과의 실랑이 등 힘든 구석이 꽤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홀과 주방과의 신경전이 가장 힘들다. 주방은 음식을 다 만들었는데 서빙 알바들이 주방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제때 음식을 못 내보낸다고 알바 생들을 크게 다그친다. 음식을 밖으로 내려면 손님이 나간 테이블을 치우고, 그 틈에 다른 테이블 음식 주문부터, 휴지 달라, 숟가락 달라 등등 주문사항을 듣다보면 주방 속도에 맞추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주방은 남의 속도 모르고 화부터 낸다. 그렇다고 이모뻘인 분들에게 뭐라 대꾸하기도 어렵다. ‘서로 바쁘고 몸이 힘드니까 마음의 여유가 없어 그렇겠지.’ 이해하려고 하는데 그럼에도 기분이 불쾌한 건 어쩔 수 없다.

 

주방 이모 주방에 있는 이모들 보면 안쓰러울 때가 많다. 나이도 많은데다 대개 12시간씩 종일 서서 칼질하고, 요리하고 설거지를 하니 목·손목·어깨·무릎에 파스가 떨어진 날을 본 적이 없다.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지금이야 나도 버티고는 있지만 밤만 되면 손목, 무릎, 종아리 등등 안 아픈 곳이 없다. 일하는 내내 서있거나 주방과 홀 사이로 그릇 들고 뛰어다니니 안 아픈 게 이상할 정도다. 주방에서 음식을 갖고 나올 때면 미끄러운 바닥을 지나야 하니 허리나 발목을 삐끗하는 일도 늘 있다. 서빙하면서 은근슬쩍 손을 잡으려고 하거나 술주정하는 진상 손님으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피크타임에만 일하면 남들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짧은 시간 알바 하는 게 뭐 그리 힘드냐고 한다. 24시간 중 절대적으로는 일하는 시간은 짧지만, 가게에서 가장 바쁜 4~5시간을 쉬는 시간 없이 압축적으로 일하는 건 생각보다 고된 일이다. 커피숍 알바를 할 때인데 손님이 너무 없어서 잠깐 계산대에 있는 의자에 앉았더니 나중에 사장님이 의자를 치워버리더라. 지금 식당 서빙일은 피크타임이 끝난 후 3시에 점심을 먹게 된다. 이때가 하루 중 첫 끼니다. 이렇게 점심시간이 늦어지니 저녁식사 시간도 당연히 보통 사람들과 밥 먹는 시간이 달라진다. 퇴근하고 6시쯤 활동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일도 논의할 겸 같이 저녁을 먹는데 나는 배가 불러서 밥을 먹을 수가 없다. 그리고 10시쯤 넘으면 배가 고파온다. 그때 대충 집에서 밥을 차려 먹거나 귀찮을 땐 편의점에 들려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좋지도 않은 음식을 밤늦게 먹으니 살은 찌고 소화는 안 되고 밥을 먹어도 문제 안 먹어도 문제다.

 

외모와 서비스업의 관계 최근엔 걱정거리가 또 하나 늘었다. 지금 일하는 곳에 정이 꽤 들었는데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가게 장사가 어려워서 아무래도 오래 있기 힘들 것 같다. 알바자리가 넘치는 것 같지만 요새는 경기 침체 여파가 심각해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단시간 알바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더군다나 알바를 구할 때마다 매번 쓰는 이력서에 면접은 생각만으로 넌덜머리가 난다. 대학은 왜 안다니느냐, 키랑 몸무게는 어떻게 되느냐 등등 음식 서빙하고 설거지 하는데 하등의 필요 없는 질문들은 왜 그렇게들 하는지 생각만으로 스트레스다.

 

그렇다고 알바를 쉴 수 없다. 한 달 월세에 교통비, 생활비까지 최대한 아껴 쓴다고 해도 최소한 70만 원은 필요하다. 딱 1주일만 알바를 안 하고 걱정 근심 없이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데 내겐 너무 먼 이야기다. 옷 입는 것도 그렇다. 원체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매일 알바를 해야 하니까 항상 티셔츠에 바지 입고, 그 흔한 구두 하나 신을 수가 없다. 화장도 해봐야 땀범벅으로 안 하니만 못하다. | 정리 및 재구성: 재현(선전위원)

[특집] 2. 여성노동자의 집단유산 등 산재인정!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2015.2

[특집2]
여성노동자의 집단유산 등 산재인정!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김경희 후원회원(민주노총 제주지역본부 미조직비정규사업부장)

 

 

5년만의 산재승인

 

2014년 12월 19일, 임시로 만들어진 단체대화방의 메시지 도착 알림이 울린다. “원고승!” 병원에서 일하다가 선천적으로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들을 출산한 간호사 4명이 제기한 행정소송의 결과이다. 태아의 질환이 산업재해로 승인되었다. 2014년 12월 30일, “띠릭!” 메시지 알림이 울린다. “오늘 질판위에서 집단유산 4명 모두 산재로 인정 되었다고 합니다!” 이 메시지는 곧장 산재 당사자들에게 전달되어 당사자들을 마음을 울린다. 뱃속의 내 아이와 이별한지 5년이 되어가는 시점이다.

유네스코 3관왕에 빛나며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 한라산 기슭에 위치한 제주의료원의 간호사들의 이야기다. 2009년에서 2010년 사이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유산율은 약 40%로서 일반인구의 2배였고,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율은 일반 인구에 비해 10배가 넘었다. 문제를 감지한 노동조합은 노사합의를 통해 집단유산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였고 조사결과 “집단유산이 업무상 연관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후, 유산한 간호사 중 4명,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간호사 4명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하였다.

근로복지공단은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4명의 간호사들에 대하여는 “아이들은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요양급여신청 반려 처분을 하였고, 당사자들은 처분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진행하였다. 집단 유산의 건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최초 신청 후 2년 만에 승인처분이 내려졌다.

늦었지만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제기한 산업재해가 모두 인정되었다. 비록 행정소송을 통해 산재가 인정된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 건에 대하여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한 상황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성노동자들의 집단유산과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에 대하여 산업재해로 인정된 것은 국내 최초의 사례이고. 특히 선천성 심장 질환아 출산과 관련하여서는 태아의 질환을 산재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이 산업재해로 인정되다!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관련 최초 요양급여신청에 대하여 근로복지공단은 “근로자 본인이 아닌 자녀의 질병은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려 처분을 하였다. 그러나 행정법원에서는 태아가 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였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행법상 태아는 원칙적으로 권리능력이 없으며,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로 취급된다. 태아에게는 독립적인 법인격이 없으므로,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법적권리·의무는 모체에게 귀속되며, 이는 산재보험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업무상재해에 대하여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 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태아의 건강손상은 곧 모체의 건강손상에 해당하므로, 여성근로자의 임신 중에 업무에 기인하여 태아에게 건강손상이 발생하였다면 이는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태아는 모체의 출산과 동시에 독립적인 법주체가 되므로 아이는 근로자에 해당되지 않지만, 현행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는 업무상의 사유로 근로자에게 재해가 발생할 것을 요건으로 하는 것이지 질병의 발병시점이나 보험급여의 지급시점에까지 근로자일 것을 요건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출산의 사정만으로 그 전까지 업무상 재해였던 것이 아닌 것으로 변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예컨대 은퇴자가 20년 전 석면으로 인하여 발생한 폐질환이 있다면, 현재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산재요양이 길어져 재해자가 실업상태라고 하여 보험급여가 정지되지는 않으며, 중대재해로 근로자가 사망하는 경우 근로자가 아닌 유족들에게 산재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현재 산재보험의 운영체계인 것이다.

행정법원은 덧붙여 태아를 보호함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임신한 여성근로자와 태아는 다른 근로자들에 비해 더욱 두텁게 보호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하면서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을 산재보험에서 배제하는 것은 오히려 여성근로자와 태아를 불리하게 차별하는 것이고 국가의 모성 및 태아 생명 보호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며, 산재보험의 입법목적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판단하였다. 요약하면, 모체와 일체인 태아시절 발병한 질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면, 그에 대하여 산재보험을 통해 보호받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인 것이다.

 

 

 

▲ 2013년 4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 노동과 건강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병원사업장 여성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준)>의 출범 기자회견.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업무에 기인한 여성노동자들의 유산 등이 최초로 산업재해로 인정되다!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집단유산 산재신청 후, 근로복지공단은 한국산업안전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간호사들의 유산이 업무상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역학조사를 의뢰하였다. 결과는 유산과 업무 사이에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다. 제주의료원의 노동환경에 많은 유해요소들이 감지되었다. 주요하게는 1) 약품분쇄작업, 2) 인력감소에 따른 노동 강도 및 시간 증가, 3) 3교대근무로 인한 생물학적 주기의 장애, 4) 체불임금과 휴무일 근무 등 높은 직무스트레스 등이다.

제주의료원에는 중증질환자가 많은데, 환자가 알약을 먹지 못할 경우 간호사들이 막자로 알약을 가루로 분쇄하여 복용하도록 하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임산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약품을 5개 등급(A, B, C, D, X)으로 분류하고 있고, X등급은 인체와 동물 모두 태아의 기형이 증명된 약물로서 임산부와 가임기 여성에게 금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당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분쇄 약품 중에는 D등급이 37종, X등급이 17종 포함되어 있었다. 약품 취급에 대한 주의사항이나 안전교육은 받지 못하였다.

교대근무에 대하여는 생물학적인 주기의 장애로 인한 호르몬 교란, 수면장애 등의 효과로 임신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세포면역 반응의 균형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추정하여 간호사들의 유산과 3교대 근무와의 관련가능성을 인정하였다. 또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은 평균 1주일에 45시간을 일하였는데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서는 주당 근무시간이 41시간 이상인 경우에 20~40시간인 경우와 비교하여 유산발생 위험도가 1.5(95%, CI :1.3~1.7)로 나타났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여성노동자의 건강한 일터를 위하여

 

산업재해는 승인되었지만 제주의료원의 현장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재해가 발생한 2010년과 달라진 것은 체불임금과 약품분쇄작업이 없어진 것뿐이다. 여전히 간호사들은 부족한 인력으로 불안정한 교대근무를 하고, 휴무일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정원대비 현원의 비율은 2010년 61%에서 2015년 56%로 오히려 더 낮아졌다. 현장에는 재해발생 책임자로부터 산재발생에 대한 사과를 받고, 간호 인력충원과 교대제 개선에 대해 요구하고 쟁취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업무에 기인한 유산 등에 대한 제주의료원 산재승인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시민단체·여성단체들과 함께 제주지역과 중앙에 공동대책위원회를 각각 구성하였다. 이번 산재승인의 결과에 힘입어 전체 여성노동자들의 건강한 일터를 위하여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공대위의 지속적인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집] 1. 노동보건의 후미진 곳, 그곳엔 여성이 있다 / 2015.2

가부장적 문화와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들의 삶과 노동, 그리고 권리는 가려지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여성노동자의 건강권 문제는 더 주의를 기울여 조명할 필요가 있다. 노동안전보건에 있어 견지해야할 젠더관점, 최근 승소판결을 받은 ‘제주의료원 집단유산 산재인정’ 사례, 여성주체들이 전하는 여성노동의 생생한 노동현실을 확인해 보자.


[특집1]

노동보건의 후미진 곳, 그곳엔 여성이 있다


공유정옥 회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의대생 때 병원으로 실습을 갔었다. 몸통과 팔다리에 전극을 붙여 심장에서 나오는 전기 신호를 기록하는 심전도 검사를 맡았다. 환자를 아프게 하는 검사가 아니라 어려울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실전은 달랐다. 갈비뼈를 기준으로 지정된 위치에 전극을 붙여야 하는데, 여성의 경우 젖가슴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잡을 수가 없었다. 맨살에 손을 대는 일이라 젊은 여성 환자들은 같은 여성끼리인데도 민망해했다. 남성들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려서 힘들었고, 별 일도 아닌데 부끄러워하며 시간을 끄는 환자가 야속했다.

 

한 두 해가 지나 인턴(수련의) 신분으로 병원에서 다시 일하게 되었다. 인턴의 수많은 업무 중 수술을 앞둔 남성 환자들에게 소변 줄을 끼우는 일이 있었다. 누가 정했는지 몰라도 여성 환자는 간호사가, 남성 환자는 인턴이 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요도를 통해 긴 소변 줄을 밀어 넣는 동안 환자들은 아파했다.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하는 게 내겐 가장 중요했다.

 

어느 날 소변 줄을 넣던 중에 환자가 발기했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였다. 그때서야 다른 생각이 들었다. 왼손으로 음경을 쥐고 오른손으로 긴 소변 줄을 밀어 넣는 이 일을, 왜 내가 하는 건가. 수술을 앞두고 소변 줄을 넣는 일이며 사타구니를 면도하는 일이 하나같이 여성은 간호사가, 남성은 의사가 하기로 되어 있는 불문율은 왜 생긴 걸까.

 

 

 

▲ 윤필 작가가 그린 ‘성별분업’에 대한 그림. 출처 : 인권운동사랑방

 

 

세상에는 성별에 따른 촘촘한 규칙들이 있었고, 나도 그것들 속에 있었다. 젠더는 권력 관계였고, 그래서 상대적이었다. 환자나 간호사 앞에서 나는 남성 젠더인 의사로 일해야 했고, 의사들 내부로 돌아와 ‘진짜’ 남성 의사들 사이에 있으면 여성 젠더로 자리매김 되었다. 내가 배운 의학 교과서의 지식은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심전도 검사의 표준도 그러했다. 심전도 검사를 받을 환자의 절반이 젖가슴을 가진 여성인데도. 나는 그런 표준에 길들여졌기에 교과서대로 검사할 수 없는 환자를 불편해할 뿐이었다.

 

노동자 건강권에서도 젠더 문제는 촘촘하고 강력하다. 안전보건 문제가 아직 덜 알려진 곳이 어디냐 묻는다면,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곳이라 답하면 된다. 마트 계산원, 식당 홀 서빙, 어린이집 교사나 병의원 간호사 등 사회적으로 여성의 얼굴을 가진 직종들을 생각해보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도움과 챙김을 받아 물건을 사고 밥을 먹고 가족을 챙기며 치료를 받지만, 이들의 건강이나 권리에 대한 얘기는 아직 제대로 시작도 되지 않았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한 운동 속에도 젠더는 있다. ‘산재 노동자’ 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는 단연코 남성, 아버지, 혹은 남편이다. 반도체 공장에서 ‘꽃다운’ 나이에 병들고 죽어간 노동자들은 ‘소녀’ 이거나 ‘누이’ 로 불렸다. 생식독성을 일으키는 유해요인 문제는 여성 노동자들이 각별히 처한 위험으로 인식되기 전에, 숭고한 모성을 보호해야 하거나 저 출산 문제 악화를 막아야 한다는 얘기와 범벅되곤 한다.

 

2013년 국제노동기구는 <안전보건의 젠더 감수성을 위한 10항> 가이드라인을 발간했다. 노동안전보건에서도 젠더 차이를 고려하고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법과 정책, 위험성 평가와 연구, 교육과 훈련 등을 평가하고 개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안전보건지표에 여성이 처한 문제들이 담기지 않는다는 지적, 작업도구나 개인보호구도 일정한 체격의 남성을 표준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제노동기구가 이런 권고안을 만들게 된 배경은 ‘여성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가 감추어져 있다’ 는 인식에 있다. 보이지 않던 문제를 누군가 말했기 때문에 이제라도 이런 인식이 생겼을 거다. 우리가 여성 노동자 건강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 문제를 말하기까지 힘들었을 누군가, 그 말 때문에 힘들었을 누군가에게 그 지식을 빚진 셈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촘촘하고 강력하고 당연해 보이는 젠더 구조 속에서 누군가 여성 노동자로서의 건강권을 주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내 눈으로 못 보았던 문제를 대신 알려주고 있는 목소리들이다. 마땅히 귀 기울이고, 같이 메아리를 만들어갈 방법을 생각해볼 일이다.

 

[특집] 3. End 2014, And 2015 / 2015.1

End 2014, And 2015



정리 : 선전위원회



선전위원회는 연구소 소장을 만나 지난 한 해 소회와 함께 2015년 새해 연구소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Q. 2014년 노동안전보건 운동진영에게 의미 있었던 일을 꼽는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제기한 유산, 선천성심장기형 등의 발생에 대해 산재 인정이 된 사례, 대학병원 간호사들이 유방암을 직업병으로 인정해달라고 산재 신청한 사건, 7년의 싸움을 통해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故 황유미 씨 백혈병이 법원에서 최종 직업병으로 인정받은 사건, 계속되는 중대재해·화학물질 폭발 사고, 지하철 기관사들의 자살, 우편체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안전보건 문제, 자동차 산업의 주간연속2교대 전환, 안전보건위험성평가 시행, 야간노동에 대한 특수건강진단 실시, 근로자건강센터 확대, 감정노동과 관련된 안전보건이슈 사회화 등등 그 어느 때 못지않은 중요한 사건이 많았던 한 해였다.


그 중 감정노동과 유산의 직업병 인정, 노동자의 자살 문제 등, 노동안전보건의 문제가 노동자 계급 전체의 문제로 부각된 점이 2014년의 가장 큰 변화이자 과제였다고 생각된다. 


Q. 지난 한 해 노동시간, 특히 자동차 산업의 주간연속 2교대를 빼놓고 이야기하긴 어려울 것 같다.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이후 보완해 나가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노동시간단축은 자본의 입장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더는 시간을 늘려 생산을 유지하는 방식이 자본에게도 비효율적일뿐 아니라, 생산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노동자에게 최대한의 여유를 주는 것이 생산한 제품을 소비할 시간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결국, 어떠한 노동시간단축을 만들어 내느냐를 둘러싼 투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본다. 주간연속 2교대를 시행한 이후 노동시간이 줄었지만 평균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주는 임금 역시 줄었고, 공장 운영시간은 줄었지만 생산량은 교대제 변화전과 동일하게 유지된 사업장들이 다수다. 노동시간단축이 겉으로는 노동자 계급에게 유리하게 보였지만, 결국 자본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노동시간이 줄고, 생산량이 유지되는 과정에서 노동 강도가 증가하거나 비정규직의 투입 등 사회 전체적으로 고용불안이 증가되는 변화가 있었다. 


임금, 노동 강도, 고용의 문제를 모두 쥐고 갈 수 있어야 노동시간단축과 교대제 개선을 포함한 생산과정의 변화에 대한 노동계급의 올바른 입장을 견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노동시간센터(준)에서 진행하고 있는 ‘자동차부품사 주간연속 2교대 이행 실태 조사와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변화 연구’는 이후 노동시간단축과 관련된 노동운동의 방향에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Q. 지난 한 해 연구소는 집중사업의 하나로 ‘노동안전보건운동을 통한 공공영역 현장의 조직화와 공공성 강화’를 고민했었다. 지난 한 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A. 작년 말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던 철도산업 민영화, 공공병원의 폐쇄 및 병원노동자 해고, 공공병원 노동조합 무력화 시도, 우편체신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이슈 등 다양한 공공영역의 이슈가 있었다. 연구소에서 우편체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건강 문제에 관한 실태조사와 사회화에 개입하는 등의 작업을 수행하였고, 기관사 1인 승무화 시도 등과 관련된 안전보건 문제를 조사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였다. 작년 한 해 병원노동자들의 안전보건이슈가 어느 해보다 부각되었던 시기였으나, 이를 주요 투쟁의 과제로 가져가지 못한 부분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공공영역의 민영화 시도와 자본의 구조조정 공세에 맞서 공공영역의 공적 내용을 지켜내고,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막아내기 위한 적극적인 노동안전보건영역의 개입이 2015년에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이 투쟁에 연구소도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