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26조 ‘작업중지권’ 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 2014.9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26조 ‘작업중지권’ 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푸우씨 집행위원장



0. 들어가며


노동현장에서 재해발생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노동자가 그 위험으로부터 도피하거나 해당 작업을 거부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자연법적 권리이므로,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 이러한 작업중지권은 생명권이며, 이에 대해 막는 것은 살인행위와 다름없다. 그래서 노동운동진영은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사전적 예방조치이자, 노동자가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권리로 ‘작업중지권’에 대해 의미 부여하며, 지금의 법 조항이 이루어질 때까지 오랫동안 자본과 힘겨루기를 해왔다. 


그러나 현실에서 작업중지권은 노사관계에서 충분한 힘을 가진 노동조합만이 행사할 수 있는 제한적 권리로, 노동조합이 부재한 90%의 노동자는 그 존재유무조차 모르는지 오래다. 그렇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작업중지권은 현장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며, 필수적인 조치다. 그래서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에 담겨있는 작업중지권의 현실에 대한 진단[각주:1]과 함께 작업중지권의 확장, 재구성을 위한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1.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26조의 현실


“사측에서 생산제품에 하자가 발생하거나 시공 등의 문제가 있을 때 작업을 즉시 중지하고 접근금지 조치를 하는 경우들은 존재하지만, 작업현장에서 사망 등 인명 사상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노동자가 라인중단을 멈추거나, 설비가동을 중지하는 경우는 상상할 수 없는 조건이다.” 


위의 작업자 진술은 노동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이 실행되지 못하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느 것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이, 불량 없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보다 못하게 취급받는 실정이라는 아픈 진술이 담겨있기도 하다. 이를 통해 결국 작업 중지는 사고 발생 이후 수습을 위해 행해지는 조치이며, 재해를 예방하는데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작업중지권 행사를 둘러싼 사측과의 힘겨루기는 제한적이지만 현장에서 의미 있게 진행 중에 있으며,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법원에서의 판례 또한 존재한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벌어진 작업 중지와 관련하여 법원이 이를 업무방해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법원, “노동자가 행사한 작업중지권 정당하다” 판결

수원지법 “재해 예방행위, 사회상규에 위배 안 돼”

매일노동뉴스 2010-06-29


산업재해 발생 가능성이 큰 작업공정에서 노동자가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하더라도 이를 범죄행위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작업중지권’이 사업주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으로, 노동자도 작업을 중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중략)


지난해 6월 기아차 화성공장 관리자들은 1공장 조립1부 하체3반 연료탱크가 컨베이어에 30도 정도 기울어진 불안정한 상태로 실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생산라인을 중단하고 원인파악에 나섰고, 특별한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자 라인을 재가동했다. 


이에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화성지회 대의원으로 활동하던 문씨가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라인을 재가동할 수 없다”며 하체3반 노동자 40명의 작업을 중단시키고, 이들을 분임토의장에 모이게 했다. 그러자 회사 측은 “문 씨의 위력으로 소렌토R 차량 28대, 시가 7억2천700만원 상당의 생산이 이뤄지지 못했다”며 업무방해 혐의로 문 씨를 고소했다.


재판부는 “유사한 사고가 전날에도 발생했으나 원인을 밝히지 못했고, 이 같은 상태에서 작업자가 부주의하게 작업을 계속할 경우 금속밴드가 부러지거나 튕겨져 작업자가 다칠 수 있다”며 “문 씨의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 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기존에 설비 이상 등으로 라인이 중단됐을 경우 노사가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협의를 진행하고, 이를 통해 작업자가 이해하거나 동의할 경우 라인을 재가동해 왔던 관행이 존재한다.” 고 덧붙였다. (후략)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의 현장에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행사는 매우 어려운 조건에 놓여있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① ‘급박한 위험’의 모호성

우선, 노동자가 위험하다고 느낀 순간 작업중지권이 행사되어야 하는데, 작업중지권 사용의 요건이 되는 ‘급박한 위험’에 대한 판단이 주관적일 수 있어 실제 노동현장에서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법조항에 담긴 ‘급박한 위험’에 대한 모호한 규정 때문이다. 현행 산안법에서는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합리적 근거’를 해당노동자가 입증해야 한다. 노동자가 생명에 위협을 느껴 작업 중지를 실시했다 하더라도, 사후적으로 아무런 위험이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나면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가 민형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당하는 형국이다. 이로 인해 실제로 현장에서는 사측의 위협을 견뎌낼 수 있는 힘 있는 노동조합의 노조간부, 혹은 의식 있는 현장 활동가만 라인과 설비를 멈출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②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

작업 중지로 인해 발생할 사측의 노동자에 대한 불이익 등의 처사에 대해서, 이를 예방하기 위해 1995년 제26조 제3항이 신설되었으나, 이 조항 역시 사업주의 위협에서 제대로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한다. 


산업안전보건법 26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에는 제2항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이를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3항은 사업주에 의한 징계나 임금공제에 대한 방어책은 될 수 있으나, 민형사상 가해질 수 있는 사업주의 고의적인 위협으로부터의 방어책은 될 수 없다. 더욱이, 제3항에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바로 ‘합리적인 근거’인데, 이를 다시 뒤집어 보면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사업주는 언제든 해당 노동자를 징계하거나 불이익한 처우를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동차 급발진 사고를 차주가 입증해야 되는 상황과 똑같다. 


결국,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권’은 실제로는 사업주가 언제든 그 행사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들을 이면에 깔아놓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위협들은 노동자가 현장에서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내는 유력한 수단인 작업중지권을 사실상 행사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결정적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추상적인 산안법 제 26조 2항과 3항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근거마련이 필요하다.



2. 그렇다면 현행 산안법 26조는 어떻게 확장, 재구성되어야 할 것인가?


이와 관련해서는 지면의 한계로, 큰 틀의 일부를 제시하는 것으로 하겠다. 



① 작업 중지 대상의 확대

가장 중요한 것은 ‘급박한 위험’ 만으로 제한되어 있는 작업 중지 대상의 확대다. 현행 규정은 ‘당장 목숨을 잃을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참고 일하라!’ 라는 말과 다를 바 없을 수 있다. 사고가 발생해 노동자가 건강과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것만을 작업 중지 대상으로 협소화해서는, ‘가랑비에 옷 젖듯’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현장에서의 유해·위험성에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다. 따라서 지속적인 노출로 인해 노동자의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을 훼손시킬 수 있는 유해위험요인을 포함해 예방적 조치로써 작업중지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콜센터 노동자들이 고객응대 과정에서 무방비 상태로 폭언, 욕설, 성희롱 등 다양한 형태의 유해·위험요인에 노출되고 있으나, 상담원의 통화종료 등 작업 중지나 작업거부가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각주:2] 이러한 유해·위험요인은 ‘급박한 위험’ 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노동자 개인을 병들게 하고,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커다란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② ‘급박한 위험’ 등 작업중지권 행사 요건의 정비

이와 함께 고용노동부에서 진행한 용역연구에서는 작업중지권의 실질적 행사를 위해 ‘산안법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급박한 위험의 정의를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 급박한 위험이라는 용어를 ‘산업재해가 발생 할 위험을 인지한 경우로 수정’, ‘사업장 안전관리규정에 급박한 위험에 대한 정의를 포함하도록 강제할 필요성’ 등을 언급하며 작업중지권의 행사 요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작업 중지가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 에서 실행된 것임을 노동자가 스스로 밝히지 못하면, 사업주의 위협에서 노동자를 보호할 장치가 없는 조건에서, 이러한 요건의 정비는 필수적이다. 


또한 업종에 따라 위험의 내용이 다를 수 있고, 같은 업종이라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업무에 따라 그 위험의 형태가 제 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시행령으로 담는 등 일정한 가이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를 사업장 차원에서는 ‘안전규정관리규정’ 등으로 보완하여 명문화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③ 안전보건교육의 현실화

노동조합이 있어도 작업 중지를 둘러싼 노사 간의 마찰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가 없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작업중지권이라는 권리가 노동자에게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무엇이 위험한지, 현장에서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유해·위험요인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기초적인 안전보건교육과 더불어 작업중지권에 대한 직접적인 교육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권리로써 ‘작업중지권’ 을 자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자가 작업현장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가만있지 말라’ 고 강조하는 교육은 백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1. 1) 진단과 관련해서는 다음의 연구를 참고하였다. [사업장의 작업중지권 행사에 관한 실태 조사], 조흠학,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본문으로]
  2. 2) 제3항은 사업주에 의한 징계나 임금공제에 대한 방어책은 될 수 있으나, 민형사상 가해질 수 있는 사업주의 고의적인 위협으로부터의 방어책은 될 수 없다. 더욱이, 제3항에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바로 ‘합리적인 근거’인데, 이를 다시 뒤집어 보면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사업주는 언제든 해당 노동자를 징계하거나 불이익한 처우를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동차 급발진 사고를 차주가 입증해야 되는 상황과 똑같다. 결국,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권’은 실제로는 사업주가 언제든 그 행사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들을 이면에 깔아놓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위협들은 노동자가 현장에서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내는 유력한 수단인 작업중지권을 사실상 행사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결정적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추상적인 산안법 제 26조 2항과 3항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근거마련이 필요하다. 2. 그렇다면 현행 산안법 26조는 어떻게 확장, 재구성되어야 할 것인가? 이와 관련해서는 지면의 한계로, 큰 틀의 일부를 제시하는 것으로 하겠다. ① 작업 중지 대상의 확대 가장 중요한 것은 ‘급박한 위험’ 만으로 제한되어 있는 작업 중지 대상의 확대다. 현행 규정은 ‘당장 목숨을 잃을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참고 일하라!’ 라는 말과 다를 바 없을 수 있다. 사고가 발생해 노동자가 건강과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것만을 작업 중지 대상으로 협소화해서는, ‘가랑비에 옷 젖듯’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현장에서의 유해·위험성에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다. 따라서 지속적인 노출로 인해 노동자의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을 훼손시킬 수 있는 유해위험요인을 포함해 예방적 조치로써 작업중지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콜센터 노동자들이 고객응대 과정에서 무방비 상태로 폭언, 욕설, 성희롱 등 다양한 형태의 유해·위험요인에 노출되고 있으나, 상담원의 통화종료 등 작업 중지나 작업거부가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 [본문으로]

[특집] 2. 3인 3색 휴가이야기 - (3) 휴가는 꿈도 못 꾸는 환상의 나라? / 2014.8

(3) 휴가는 꿈도 못 꾸는 환상의 나라?


재현 선전위원


저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국내 최대 종합 테마파크 E랜드에 있는 식당에서 조리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원우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우연한 기회에 지인을 통해 서울 장충동에 있는 00 호텔에서 3년 정도 일을 했습니다. 그때 경력으로 1999년 E 랜드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에는 비정규직이었는데 몇 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줄곧 주방장으로 일했어요. 그런데 2011년 조리장으로 직책이 바뀌었지요. 무노조 경영방침을 고수하는 S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E 랜드에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게 이유입니다. 


휴가는커녕 정시 퇴근도 힘들어


E 랜드 식당의 하루는 이렇습니다. 아침 9시에 출근하면 식자재 검수작업을 하고, 직원 미팅을 해요. 그리고 나면 오픈준비를 위해 음식을 하고, 그다음부터는 퇴근할 때까지 계속 음식 만들고 팔고를 반복해요. 퇴근은 원래 6시인데 정시 퇴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기본 10시 넘어야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죠. 하지만 저는 6시에 퇴근해요. 회사가 인력충원을 안 해서 매번 늦게까지 남아서 일해야 하는 현실이 아무리 생각해도 불합리하기 때문이죠. 지금은 저 혼자지만, 하루빨리 모두가 정시 퇴근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제가 더 뛰어야겠지요.

여기는 테마파크라는 특성상 공휴일, 주말엔 일이 더 많고, 주로 평일이 휴일이에요. 그러다 보니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건 꿈같은 일이죠. 더 안타까운 건 이마저도 제대로 못 쉬고 있다는 겁니다. 현장엔 늘 사람이 부족하니 회사는 비정규직 직원은 주 2회 휴무 중 하루는 특근하고 남은 하루만 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요. 휴일이라도 마음 편히 쉬고 싶은데, 상사가 짜는 근무표에 이의제기하기란 쉽지 않죠. 무엇보다 동료한테 미안해서 더 못 쉬어요. 


보통 젊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일을 많이 하고 있는데 S기업이 운영하는 회사라서 무노조 경영에 대해 직원 의식화 교육을 계속 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동조합은 나쁘다는 회사의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런 불합리한 일을 바꾸려고 선뜻 나서지 못하게 돼요.


여름휴가는 다른 세상 이야기... 우린 꿈도 못 꿔


저는 보통 휴일에 가족들이랑 근교에 나가서 바람도 쐬고, 등산도 다니고 그랬는데, 노동조합 활동하면서부터는 한 달에 적게는 2~3차례 많게는 7~8차례 재판이 있어서 거기 다녀오면 휴일도 끝이에요. 그러다 보니 제 필요로 휴일을 사용하기보다, 재판에 참석하려고 휴일을 쓰게 되었어요.

이쯤 되면 예상하시겠지만, 여름휴가는 아예 없어요. 만약 휴가를 가려면 E랜드 특성상 1년 내내 바쁘지만, 그중 최고로 바쁜 시기인 5~8월은 피해서 개인 연차를 쓰는 게 전부예요. 회사에서 말로는 작년부터 여름휴가를 가라고 권고하기는 하는데, 사무직이나 가능하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꿈도 못 꿔요.

이렇다 보니 남들은 여름휴가 때 교통체증도 심하고 사람도 많고, 바가지요금으로 휴가가 더 힘들다 앓는 소리 하는데, 단 한 번이라도 들로 바다로 산으로 남들 가는 여름휴가 한번 가는 게 희망 사항이에요. 조금 더 욕심내자면 더 많은 조합원과 가족들이 함께 아무 걱정 안 하고, 마음 편히 힐링할 수 있는 그런 곳에서 휴가를 마음껏 즐기고 싶네요. 

이 글은 금속노조 삼성지회 박원우 지회장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현재 소수의 조합원으로 힘도 많이 부족하고 열악한 상황이지만, 동료들과 함께 인간다운 삶을 꿈꾸며 애쓰고 있는 박원우 지회장을 비롯하여 삼성지회 동지들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특집] 2. 3인 3색 휴가이야기 - 카페주인의 여름은 월급쟁이보다 핫(hot)하다 / 2014.8

(2) 카페주인의 여름은 월급쟁이보다 핫(hot)하다


정하나 선전위원


서울역 뒤 즐비한 빌딩숲을 지나 재개발이 아직 들어가지 않은 구역으로 접어들면 은미 씨(가명.35세)가 운영하는 예쁜 카페가 나온다. 여의도의 외국계 회사에 다니다가 부모님이 하시던 그릇가게 자리에 카페를 차린 지도 어느덧 6년째. 그 전엔 월급쟁이 생활로 6년을 꼭 채웠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 중 절반은 누가 시켜서 일하고 따박따박 월급 받는 생활을, 나머지 반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벌리는 만큼 갖는 삶을 지내왔다. 


카페를 하는 이들에게 여름은 최대의 성수기라고 하지만 현실은


카페를 하는 이들에게 여름은 성수기다. 추워서 사람들이 잘 돌아다니지 않는 겨울은 소비가 위축된다. 따뜻한 봄이 오고 슬슬 밖으로 거동할 만한 날씨가 되면 거리에 돈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날씨가 무더운 여름으로 다가 갈수록 시원쌉싸름한 아이스커피, 제철을 맞은 과일주스, 그리고 팥빙수까지. 카페 메뉴들은 호황을 맞는다. 

은미 씨 가게가 위치한 서울역 근처는 최근 몇 년간 재개발이 되어 새로운 빌딩 2~3개가 들어섰다. 12시 땡! 점심시간이 시작되면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온다. 요즘처럼 더운 날씨면 식사 후 디저트로 시원한 음료 한잔씩 들고 사무실 올라가는 게 코스가 되었다. 지역 전체가 대공장 휴가일에 맞춰 한꺼번에 쉬는 공단지구라면 모를까, 노동인구 대부분이 사무직인 서울 중심부에서 여름휴가철은 카페 주인장에게 한몫 단단히 챙겨야 할 성수기다. 하지만 자영업자 은미 씨의 지난 6년은 성수기라는 말이 무색했다. 겨우 근근이 버텨온 수준이다. 가게를 내면 3년이 고비라던데 이를 넘겼으니 이 정도도 수지맞았다고 해야 하나? 


휴가? 그런 거 없다


TV에서 말하는 경기침체, 구조조정, 물가상승은 은미 씨 카페의 매출과 바로 연결되었다. 경제상황에 따라 주 고객인 월급쟁이의 방문 숫자가 달라지고, 그들의 월급이 인상되는지 동결되는지는 가게의 존망과 직접 연결되었다. 그 와중 주변엔 10개가 넘는 커피숍이 생겨나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회사에서 일찍 밀려난 사람들이 퇴직금 털어 가게를 열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많은 이가 2~3년 안에 도태된다는 걸 이 골목에서 은미 씨는 직접 보고 겪었다. 돈 버는 재미에 무더위도 잊고 신명나게 일한다? 아니다. 이때라도 꼬박꼬박 가게 문을 열고 음료를 팔아야 한 해를 버틸 수 있다. 


그래서 은미 씨에게 ‘여름’ 휴가는 없다. 그나마 ‘휴가’와 같은 시간은 1년에 두 번 카페 한 켠에서 판매하고 있는 인테리어 소품 및 잡화를 구입하러 떠나는 비즈니스 차원의


▲ 은미 씨가 하루 종일 일본에서 발품을 팔면서 직접 공수한 아이템들


 일본행이 유일하다. 초봄과 늦가을 손님들이 많아지는 시기를 피하고, 평일이 아닌 주말을 이용해 다녀온다. 이런 일본행은 카페들의 과다 경쟁 속에서 활로를 모색하다 작년에 시작했다. 구역 내 10개가 넘는 카페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카페와 공방 ·잡화 판매점을 결합한 이색공간을 생각해 낸 것이다. 


처음엔 1년에 두 번이나 가게를 비울 때 나름대로 결단이 필요했다. 카페를 여닫는 시간에 대해 일반적인 기대치가 있는데 임시휴업이 잦으면 손님들이 떨어져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건비 부담을 무릅쓰고 잠깐 쓸 알바를 구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은미 씨는 힘들게 낸 시간인 만큼 한 번 일본에 가면 카페를 주로 찾는 단골 여성손님들이 만족할 물건을 찾기 위해 하루 중 자는 시간 빼고는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닌다.


물론 일본에서 틈틈이 특색 있는 카페나 가게에 들러 마음껏 구경도 하고, 맛집도 찾아다니지만, 이것도 여유를 누리기 위해서라기보단 메뉴를 개발하고 상품 보는 안목을 높이려는 목적이 강하다. 그래도 은미 씨는 월급쟁이 시절 일이 많고, 상사 눈치가 보여서 휴가 쓰는 게 자유롭지 못하던 때랑 비교해보면 지금은 외지에 나와 콧바람 쐬니 숨통도 트이고, 스스로 계획한 일이니 재미가 있단다. 하지만 이것도 가게가 재개발에 들어가면 끝이다.

[특집] 2. 3인 3색 휴가이야기 (1) 휴가, 내가 가고 싶을 때 가고 싶다 - 하청노동자의 작지만 큰 바람 / 2014.8

[특집2] 3인 3색 휴가이야기

(1) 휴가, 내가 가고 싶을 때 가고 싶다

- 하청노동자의 작지만 큰 바람 


김재광 선전위원


오랜만에 허리가 아플 정도로 자고 일어났다. 하계휴가가 시작됐다. 같은 뜻이기는 한데 내게는 어쩐지 ‘여름휴가’라기보다는 ‘하계휴가’가 입에 착 달라붙는다. 여름휴가라고 하면 여름을 맞이해 쉬기도 하고 여름을 즐기는 느낌이라면, 하계휴가는 쉬고 즐긴다기보다는 불가피한 생산중지의 느낌이다. 원청 공장이 쉬기 때문에 그 생산계획에 맞춰 내가 다니는 하청공장이 생산을 중지할 수밖에 없다. 원청 공장의 생산과 연동된 적기생산을 하는 우리 공장은 ‘짤 없이’ 원청이 쉬는 7월 말 8월 초에 쉬는 것이다. 올해는 8월 첫째 주다. 보통 아이들 학원도 이때쯤에 맞추어서 쉬는데, 올해는 어찌 된 일인지 한주 먼저 쉬게 되어 오랜만에 함께 놀러 가서 점수 따보려는 나의 셈도 어긋났다. 대한민국 전체가 7월 말 8월 초에 대부분 휴가를 가는 이유는 한창 더울 때이기도 하지만, 학원과 대기업이 쉬기 때문이 아닐까? 학원이 쉬니까 학부모가 쉬어야 했던 것인지, 학부모가 쉬니까 학원이 쉬어야 했던 것인지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원청 공장은 여력이 있는 건지, 노동조합 덕분인지 하계휴가가 별도인 모양인데, 하청인 우리 공장은 1년 연차에서 의무적으로 하계휴가 일수를 제외한다. 이런 거 생각하면 입맛이 쓰지만 이조차도 못 찾아 먹는 주위 사람들은 생각하면 괜스레 미안한 마음도 든다. 당장 내 아내는 휴가가 따로 없다. 작은 마트에 나가는 아내는 여름휴가라고 따로 내보지도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 녀석은 방학이어도 학원가서 없고, 아내는 일 나가고 휑한 집 방안에서 연신 TV 리모컨만 돌려대니 은근히 부아가 난다. 원청이 쉬니 어쩔 수 없이 우리 공장도 쉰다고 치면, 이때 말고 내가 가족들과 일정 맞추고, 내 사정에 따라 휴가를 쓰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휴가라기보다는 강제 휴업이나 다름이 없다. 


하긴 아들 녀석과 휴가가 안 맞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머리가 굵어져 나와 같이 있으려고 하지도 않고, 나도 휴가철 피서지에서 그야말로 물 반 사람 반에 치여 지치는 것도 지겹기도 하다. 평소에는 유명한 피서지에 가지 말자고 작정하지만 정작 휴가 때가 되면 계획을 규모 있게 짤 시간도 경비도 없어 그냥 하던 대로 하게 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공장 동료들도 오십 보 백 보다. 뭐 차이 나는 거라면 캠핑용품인데, 이거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비싼 것은 입이 딱 벌어지는 수준이다. 장비 가격에 밀리면 기도 못 펴는지라 가뭄에 콩 나듯 가는 캠핑도 심드렁하다. 이거 뭐 놀아본 놈이 놀아본다고 휴가라고 달랑 여름 한철 반짝이니 사실 어떻게 쉬고 놀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휴가가 안 맞아 이렇게 혼자 집에 있는 것이 편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늦은 아침을 먹으려 한가롭게 집안을 살피니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화장실 검은 곰팡이가 보인다. 노는 김에 이놈을 손봐볼까? 어차피 아이와 아내는 늦은 저녁에 올 것이니 이놈으로 하루 보내야겠다. 마음이 왔다 갔다 해도 아내와 아이와 한 이틀 정도는 콧바람을 쐬고 싶은데 올해는 이것도 어려우니 아쉽기는 하다. 늦은 밤에 귀가할 아내는 곰팡이 없는 깨끗한 화장실을 보고 칭찬은 해주려나? 아니면 너무 피곤해서 깨끗해진 것 눈치도 못 채려나? 


* 이 글은 남성 하청 노동자의 여름휴가를 가상하여 작성하였습니다.

[특집] 1. 여름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 / 2014.8

[특집1] 여름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


대담 : 김영선 국학중앙연구원, 송홍석 노동시간센터(준)

정리 : 선전위원회


바캉스의 계절, 대기업들의 집단 휴가철인 8월이다. <잃어버린 10일, 경영 담론으로 본 한국의 휴가정치>의 저자 김영선 교수와 한국의 휴가 양태와 그 속에 숨겨진 휴가 역사와 정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려한 휴가 ?


송홍석(이하 송)) 먼저, ‘휴가’ 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인가?

김영선(이하 김)) 누군가에게는 ‘쉰다’는 게 영원히 불가능한 꿈일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쉰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송) 최근 대기업들이 2주간의 집중 휴가제다, 연중 자율휴가제다, 휴테크다 뭐다 시행하는 걸 보면 많은 노동자들이 점점 더 휴가다운 휴가를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매체에서 보여주는 휴가의 모습이 노동자들 다수의 휴가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보는가? 

김) 그렇다. 이맘때쯤이면 안식, 배낭, 아이디어 휴가 등 다양한 휴가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통칭하면 리프레쉬 휴가라고 한다. 겉으로 보면 리프레쉬 휴가가 화려하고, 흔해 보인다. 언론에서는 이런 형태의 휴가를 유독 많이 부각한다. 대신 보편적으로 보장된 법정휴가의 문제는 잘 건드리지 않는다. 재충전, 자기 성찰, 싱크 위크 등 재미있어 보이는 내용이 많지만, 거기에는 사실 생산성, 아이디어, 경쟁력, 자기계발 등 기업의 경쟁력을 전제하는 언어들이 깔려있다.  

역사적으로 국가와 기업들은 휴가를 언급하지 않고 무조건 통제하고 막아왔다. 그런데 90년대 중반 들어 기업들이 휴가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휴가란 노동으로부터 면제된 자유시간이고 노동자가 알아서 쓰면 되는 시간인데, 그 시간마저 자기계발, 생산성, 아이디어를 위한 업무 활동의 연장선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리프레쉬 휴가를 다녀오면 간단하게라도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여기에는 마케팅, 아이템, 혁신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리프레쉬 휴가 이면에 있는 진실이다.


송) 특별휴가니까 누구나 갈 것 같지는 않다. 

김) 특별형태 휴가가 누구에게 부과되는지 봐야 한다. 특별 휴가는 직장에서 특별히 실적이 높은 핵심 인재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런 휴가를 받은 사람들은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고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징표이고, 반대로 이런 휴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회사로부터 배제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런 특별 형태의 휴가나 휴가 담론은 기업들이 전방위적으로 끌어가고 있다.


휴가, 안 가는 건가! 못 가는 건가!


송) 특별 휴가는 차치하고 보편적 휴가인 연차 휴가마저 맘대로 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서 법정 휴가 일수는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실제 사용하는 휴가 일수는 많은 차이를 보일 것 같다(1년 8할 이상 출근 시 15일의 유급연차휴가가 발생하고 최대 25일까지 유급휴가를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이렇게 된 원인을 근로자들이 임금 보전을 위해 휴가를 모두 쓰지 않는다며 단순히 노동자 선택의 문제로 돌리고 있다.

김) 자세히 확인해봐야겠지만 실 휴가 사용률(소진율)은 50%를 맴돈다. OECD 국가 평균이 70~80%인 것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은 4~5일의 여름휴가가 고작인 데 많은 국가는 2주 연속 휴가를 강력하게 보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속적인 짧은 휴가는 노동자의 시간 권리가 완전히 박탈되었다는 징표다.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소득 보전이 이야기되는데 사실은 업무과다, 여유 없는 인력의 부족이라고 본다. 이제는 돈을 적게 받아도 되니까 가족들과 쉬고 싶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중소기업 노동자들이나, 임금과 시간이 직접 연계되는 제조업 사업장에서는 소득 보존 경향이 높다. 그러나 직장에서 ‘소득보전’보다 훨씬 자주 언급되는 언어는 ‘상사/동료의 눈치’다. 업무량과 눈치는 하나다. “이 바쁜 와중에 출산 휴가 3개월을 다 써? 아줌마 다 되셨네!!”라는 팀장의 발언은 휴가권리를 철저히 봉쇄할뿐더러 ‘아줌마’라는 낙인까지 찍는다. 

‘상사/동료의 눈치’는 ‘팀제’라는 경쟁적 노동패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한 사람에게 3~6개월짜리, 1년짜리 장단기 과제들을 여러 팀에 걸쳐 배치하는 경쟁적 상황에서는 당연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휴가요? 남들 이야기입니다~


송) 단 얼마간의 연차도 쓰기 힘든, 일주일 휴가도 배부른 이야기라 할 노동자들도 있다. 경제의 양극화만큼이나 휴가의 양극화도 심화하는 것 같다. 

김) 기업의 규모 차이는 휴가 기간과 휴가비의 차이로 연결된다. 길게 휴가를 갈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기간을 보장받는 만큼 휴가비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니까. 대기업 노동자들은 여름휴가 전후로 연차를 더 붙여서 일주일을 쉴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더 심각한 양극화는 고용 조건에서 비롯한다. 연차 휴가를 쓴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정규직이다. 실제 비정규직이 쓸 수 있는 유급의 연차 휴가는 없다. 1년 미만의 계약기간을 가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작업장에서 10년을 일해도 연차 휴가가 발생하지 않는다. 임금, 복지, 작업복, 신분증 차이만큼이나 휴가의 차이도 크다.

그래서 휴가 부여 기준을 낮춰야 한다. 프랑스는 1936년부터 6개월 근무 시 연차휴가 1주일을 부여했다. 자유시간, 여가, 휴가를 시민의 권리로 여기는 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1993년 연차 휴가 부여 기준을 1년에서 6개월로 줄였다. 비정규직이 절반을 넘어선 한국 사회에서 1년을 근무해야만 휴가가 발생하는 기준은 자본 편의적이다. 노동자 중심적인 휴가 부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송) 지금은 누구나 입에 오르내리는 언어가 되었지만, 한국에서 ‘휴가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임금노동자인 나를 고용하고 있는 고용주가 필요한 만큼만 부여하고, 그 의미를 각인시켜 왔던 것 같다.

김) 주말 노동이 평일 노동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던 80년대 말까지 주말이란 관념은 그리 크지 않았다. 현재와 같은 주말이란 인식은 90년대 이후의 것이다. 마찬가지로 80년대 말까지 휴가는 그야말로 사치였다. 휴가를 도덕의 언어로 강력하게 통제한 것이다. 87년 이후 휴가가 하나의 권리로 등장하는 듯했지만 당시에도 ‘너희가 지금 먹고 놀자는 얘기냐’, ‘베짱이가 되려나 보다’, ‘과소비’, ‘낭비’ 등의 도덕 프레임으로 휴가권리를 억제했다. 


노동자들의 휴가 되찾기


송) 상품 소비적 휴가 문화도 문제인 것 같다. 직장 생활에 지친 이들에겐 고민할 필요 없는 손쉬운 방법이긴 한데, 뭔가 아쉽다. 다른 건강한 휴식, 휴가는 없을까?  

김) 상품의존주의 경향이 높은 것은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인 특징이다. 게다가 예측 불가능한 짧은 휴가를 보내는 한국 사회에서는 상품 소비적인 경향이 강하다. 휴가가 길면 여러 가지 선택지가 가능하지만 휴가가 짧으니 선택의 폭이 좁다. 짧은 시간에 좋은 곳에 가서 좋은 거 먹고 좋은 거 보는 상품 집약적인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휴가가 짧은 시간에 내가 아버지다움, 남편다움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적지 않은 기회라는 점이다. 가족으로부터 인정도 받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이런 기회인 휴가를 망치고 싶지 않으면 위험도가 낮고 만족도가 높은 상품들을 투입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에 대체재가 별로 없다는 거다. 서구 사회에서는 상품 소비적인 휴가 패턴이 있는가 하면 시민사회, 노동진영에서도 ‘다른’ 휴가 방식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마을 공동체 프로그램과 가족휴가를 연계하거나 생태 운동, 먹거리 운동 등과 휴가를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한국에서는 아직 찾기 어렵다. 휴가를 어떻게 쓰느냐는 어떻게 건강한 시민을 만들고 주체적인 삶을 기획할 것이냐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송) 책 <잃어버린 10일>에서 노동자의 휴가 권리 찾기로 ‘쉼 없는 2주 연속 휴가의 실현’을 주장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김) 한국에서 2주 연속 휴가를 쓰려면 머리에 총 맞은 사람 취급을 받는다. 한국사회 휴가의 특징은  ‘비예측적이고 불연속적인 최소’ 휴가다. 기업의 생산성, 업무 흐름에 방해받지 않은 최소한의 휴가만이 주어진다. 2주 연속 휴가는 휴가의 본래 의미를 강조한 ILO의 권고 사항이다. 그래야 건강, 가족, 자유, 민주주의를 챙길 수 있고 이것은 시민다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두려움 없이 쉼 없는 2주 연속 휴가’를 위해서는 시간권리를 합리적 선택으로 유도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특집] 3. 제대로 치료받고 건강하게 복귀하고 싶다! / 2014.7

제대로 치료받고 건강하게 복귀하고 싶다!

김정수 운영위원


산재 노동자들의 고충은 산재 승인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하고 난 이후에도 계속된다. 치료에서부터 복귀까지 또다시 수많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 


부실한 치료와 방치되는 산재 노동자 

“그 뒤로는 의사도 원장도 만나보질 못했으니까. 처음에 처방만 해 주고 계속 물리치료만 왔다 갔다. 원무과장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더 받아야겠다고 하는 식이었어요.[각주:1] 산재 노동자들이 산재 승인 이후에 맞닥뜨리는 첫 번째 난관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본 연구소가 작년 경기도에 있는 한 사업장에서 최근 10여 년간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 요양을 다녀온 노동자 153명을 대상으로 벌인 연구 결과를 보면 치료가 얼마나 부실하게 이루어지는지, 산재 노동자들이 어떻게 방치되는지 잘 알 수 있다. 산재 요양을 다녀온 노동자들은 치료받는 동안 “하루 1~3시간의 치료 시간을 제외하고 집에만 있음”, “물리 치료가 치료의 주를 이루고 운동 치료는 거의 없음”, “치료 효과가 의심스러우며 자구책을 찾음”, “요양 종결이나 연장 결정 과정에 의학적 판단 거의 없음”을 경험했다고 호소하였다. 이 연구는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 요양을 다녀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결과를 전체 산재 요양으로 확대하여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으나 부실한 산재 요양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임은 분명하다. 


산재모병원 건립, 과연 적절한 대안인가?

예전부터 산재 노동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산재 전문 치료 기관 설립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계속 있었고, 이에 고용노동부에서 현재 울산 지역에 산재모병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2004년 노동부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산재전문병원 건립 기초조사 연구”를 의뢰하였고 연구진은 종합병원/특수병원 형태로 나누어 산재전문병원 설립 타당성을 진단하였다. 이 연구에 기초하여 2012년 대구산재병원, 2013년 경기산재요양병원 등이 개원하였고, 현재 산재모병원 건립을 추진 중이다.


산재모병원 건립은 산재 의료전달체계 확립, 국공립 의료기관 확충이라는 측면이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 과연 적절한 대안인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고용노동부는 산재모병원에서 “응급외상․수지접합․화상센터와 같은 산재 특화시설, 전문 재활치료기법 개발을 위한 임상연구 시설, 중증 난치성 질환 및 직업병 등의 연구개발을 위한 시설이 설치․운영”될 계획이라고 밝혔다.[각주:2] 지금까지 전문재활치료기법이나 중증 난치성 질환 및 직업병 연구가 부족해서 산재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일까? 이런 연구개발은 필요하다면 민간 의료기관 및 연구기관을 활용하여 연구 용역을 통해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고용노동부는 산재모병원 건립에 사업 기간 총 5년, 사업비 총 4,269억 원을 예상하고 있으며 사업비는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기금으로 충당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 또한 적절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현재 누적 흑자가 수조 원에 이르는 산재보험 재정은 산재보험의 문턱을 낮춰 산재 은폐 혹은 불승인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노동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 예방기금 또한 원래 목적대로 산재 예방사업에 활용되어야 한다. 산재모병원 건립 사업비를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기금으로 충당한다는 것은 행정 편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건립 이후 운영과정에서 겪게 될 재정적 어려움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각주:3] 응급외상․수지접합․화상센터와 같은 산재 특화시설을 설치․운영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접근성도 고려해야 한다. 울산 지역에 건립할 경우 영남권 이외 지역의 노동자들이 이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상을 고려했을 때 현재와 같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대규모 병원을 건립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이 들어가는 특수 전문병원 여러 개를 권역별로 건립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인 방안일 수 있다.


여전히 부족한 산재보험 재활사업

“한참 쉬다가 바로 라인에 투입하다 보니까 허리에 힘이 없어서 많이 고생했죠. 기침하면 허리에 충격이 가서 몇 개월 동안 복대 매고 다니고 했으니까.[각주:4] 산재 요양으로 그나마 몸 상태가 조금 좋아지고 나면,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는 것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재활 및 복귀 과정에서 산재 노동자들은 불충분한 회복 상태에서 공단의 압박으로 종결하게 되거나, 작업장 복귀 관련 재활 프로그램이 없고, 업무 배치 및 전환에 대한 원칙이 부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각주:5] 산재 요양 과정에서 재활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지적은 예전부터 있었고, 고용노동부 또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여 수년 전부터 다양한 재활 사업을 해오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재활사업 5개년 계획(’01~’05), 제1차 재활사업 중기발전계획(’06~’08), 제2차 재활사업 중기발전계획(’09~’11)을 추진하였고, 현재 제3차 재활사업 중기발전계획(’12~’14)을 추진 중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7월 4일 산재보험 50주년을 맞아 '산재보험 재활사업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는데 세미나에서 논의된 심리재활, 직업재활, 사회재활 관련 주요 개선책들은 내년부터 시행되는 제4차 산재보험 재활사업 중기발전계획에 반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없다시피 했던 재활사업이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다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노동건강연대는 2010년 “산재보험 재활사업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산재장해인의 직업복귀율 특히 원직장 복귀율이 낮으며, 상대적으로 장해 정도가 낮은 산재장해인의 직장복귀율 역시 낮다고 지적하고 있다.[각주:6] 이 보고서에서 제안한 개선 과제 중 일부는 제3차 재활사업 중기발전계획(’12~’14)에 반영되어 개선 중이다. 


노동자들의 필요와 요구에 응답하라!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10여 년 전에 비하면 재활 및 복귀 과정에서 일부 제도적 개선이 있었다. 그런데 왜 여전히 산재 노동자들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을 찾기 어렵고, 충분한 재활 서비스를 받기도 어렵고, 현장에 복귀하기가 두려운 것일까? 제도적 개선이 노동자들의 필요와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하다 다치고 병든 노동자들이 제대로 치료받고 건강하게 복귀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 부족한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재보험이 도입된 지 50년이 되고 외형상 크게 성장했어도 여전히 사회보험으로서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산재보험 가입 대상이 1인 이상 전 사업장으로 확대된 현재 시점에서 질적인 성장도 중요하다. 산재보험이 질적으로 성장하고 사회보험으로서 제 기능을 다 하기 위한 첫 단추는 바로 노동자들의 필요와 요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1. 2013년 **정공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2013.12.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본문으로]
  2. “산재근로자를 위한 최첨단 진료!「산재모병원」건립 추진”, 2013.11.21.(목).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본문으로]
  3. 앞서 언급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산재전문병원 건립 기초조사 연구” 보고서를 보면 일반종합병원의 경우 “경제성은 낮게 평가되나, 공공의료의 한축으로서의 산재의료에 대한 정책적 배려의 관점에서 어느 정도의 타당성은 있다고 보여진다”고 결론을 내렸고, 재활전문 산재병원의 경우 “일반종합병원과는 달리 특수병원으로서 재활전문 산재병원은 투자비용에 비하여 경제적 편익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본문으로]
  4. 2013년 **정공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2013.12.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본문으로]
  5. 상동 [본문으로]
  6. 해당 보고서는 그 원인으로 “조기 개입 부재”, “재활서비스간 연계 부재”, “직업재활 서비스 수급자 수 과소”, “현금 급여 위주의 직장복귀지원 제도”, “직장내 직업적응 및 훈련 프로그램 부족”, “효과성 낮은 직업훈련 지원사업”, “사회재활 서비스 부족”, “전문 인력 부족”, “예산 부족, 예산 집행 미비”, “통계 및 사업 평가 시스템의 문제”, “산재장해인 고용에 대한 사업주 의무 미약” 등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산재보험 재활사업 효과성 제고를 위해 법제도, 근로복지공단 행정, 사업 방식 및 문화, 재활서비스 인프라 확충 등 네 개 분야의 개선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본문으로]

[특집] 2. 산재보험 50년 세월이 야속해~ / 2014.7

산재보험, 50년 세월이 야속해~


김재광 선전위


‘모든 산업재해를 산재로’를 요구하는 현실이 야속하다  

지난 2014년 7월 1일은 산업재해보상보험이 도입된 지 50년이 된 날이다. 산재보험은 1964년 도입되었다. 1964년에는 500인 이상의 사업장과 일부 업종에만 산재보험이 적용됐지만, 점차 적용규모와 업종이 확대되면서 2000년에는 1인 이상 전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외형상으로 보자면 크나큰 발전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반세기 한국 사회보험의 역사이며, 도입의 목적과 취지가 산업재해 노동자들의 아픔을 달래고 치유와 예방의 동반자를 자부하고 있으니[각주:1] 실로 그 역사가 뿌듯할 만한데, 막상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오죽하면 ‘모든 산재를 산재로’ 라는 뜨악하고, 논리 모순적인 요구가 가장 우선의 요구로 앞서겠는가![각주:2]


‘모든 산재를 산재로’라는 요구는 그만큼 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가 ‘산업재해’로 오롯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빈번하게 은폐되는 산업재해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재해를 당한 노동자 또는 그 유족이 절박한 심정으로 용기(?)를 내어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한 요양 및 유족보상 신청은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인지조차 의심될 정도로 적지 아니 꺾이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사회보험의 역할을 망각한 고용노동부 그리고 운영기관인 근로복지공단[각주:3] 의 부적절한 태도이며, 이와 연동하는 빡빡한 재해 인정 기준과 재해노동자가 과도하게 짊어져야 하는 입증책임 때문이다.


업무상 질병, 절반 이상이 불승인

산업재해는 크게 사고와 질병으로 나눌 수 있는데, 사고성 재해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상당부분 인정되었다.[각주:4] 반면 업무상 질병의 경우 절반 이상이 불승인이 되었다. 통계를 보면 2013년 인정률의 경우 뇌심혈관질병 21%, 근골격계질병 53.8%, 정신질환, 자살 등등 포함하는 기타 질병 35.5%로 전체 업무상 질병 인정률이 44.1%에 지나지 않는다.[각주:5] 이나마도 최근 3-4년의 통계를 비교하자면 높은 편에 속한다. 바꿔 말하면 60%에 이르는 산재노동자의 경우 불승인되어 질병의 고통과 가정 경제의 파탄을 개인적으로 감당하고 있다. 요양신청자 중 업무상 관련성이 없는 경우를 고려하더라도 인정 기준은 턱없이 높다. 


예컨대 최근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과로성 질병(심혈관질환 또는 사망과 관련이 있음)과 관련하여 그 기준이 완화되었다고 고용노동부나 근로복지공단이 선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리 만만치 않다. 산재업무 현업에 종사하는 Y 노무사의 증언은 승인기준이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과로와 관련하여 발병 전 4주 64시간, 12주 60시간 이상 일했는지가 변경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이 기준만은 보지 않는다고 했는데, 실상 이것이 거의 절대적 기준이 되었다. 이 기준에 미달된 경우에는 여지없고, 이 기준 시간이 넘었다 하더라도 개인 질병 관리 등을 살피게 된다. 더욱이 문제는 시간 이외에 해당 직업이 가지는 독특한 스트레스 요인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전 보다 과로의 인정 범위가 확대되었다는 것은 일면 맞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노동자가 겪는 과로와 스트레스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과로성 질병뿐만 아니라 업무상 질병의 산업재해 인정의 기준은 재해노동자를 두 번 울리고 있다.    


입증책임 누구의 의무인가 

2011년 6월 23일, 서울행정법원은 “백혈병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판정을 하였다. 세상의 이목을 받고 있는 소위 ‘삼성 백혈병’ 사건이다. 이 판결의 의미는 삼성전자에서 일했던 노동자의 최초의 백혈병 산재 인정이라는 사회적 의미도 있겠지만, 이외에도 중요한 내용을 함께 가지고 있다. 판결은 "명백하게 백혈병 유발 요인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유해한 화학물질에 지속해서 노출되면 백혈병이 발병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하여 재해노동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였다. 물론 이러한 판결 내용이 재해노동자의 입증책임을 전적으로 전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근로복지공단의 태도와 비교하면 매우 전향적임에 틀림없다. 위 판결의 대상이 되는 유족은 2007년 딸의 죽음 이후 지난한 싸움을 하고 있다. 만일 근로복지공단이 애초에 산재사망을 인정하였다면 유족은 이다지도 힘든 싸움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은 이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태도는 일반 사보험의 이익추구와 다를 바 없으며, 오히려 그 이상이다. 이쯤 되면 공적기금으로 산재보험을 운영하는 근로복지공단의 존재가치를 다시금 생각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근로복지공단은 현행법상 산재 여부는 심사되어야 한다고 한다. 법 개정 이전에는 재해 노동자의 입증책임 전환은 어림도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법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법을 바꾸지 않고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보험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재해노동자가 업무상 질병을 신청하였을 때 근로복지공단은 관련 조사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 설사 재해노동자가 ‘개떡’ 같이 요양 신청서를 작성하였다 하더라도 근로복지공단은 이것이 업무상 관련이 있는지 최선을 다하여 조사하고, “명백하지 않아도 발생 가능성이 있다”면 산재를 인정하면 된다. 법원이 인정하는 것을 근로복지공단이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조사하는데 행정력을 가진 준 국가기관이 개인 노동자보다 유리하지 않겠는가!  


근로복지공단이 바로 서는 시작은 모든 산재를 산재로 인정하는 것부터

산재보험의 목적이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하여 이에 필요한 보험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재해 예방과 그 밖에 근로자의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불승인할까’ 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인정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이 사보험이 아닌 공공보험과 공공기관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현재의 근로복지공단의 행태 때문에 개별 노동자들은 산재보험 급여 신청을 주저하게 된다. 산재보험의 수혜를 받아야 하는 재해노동자에게 근로복지공단은 두렵고 먼 하늘이다. 근로복지공단이 5조에 가까운 수익을 남겨도 재해노동자는 즐겁고 행복하지 않은 이유이다. 


50년, 반세기, 세대가 두 번 물갈이가 될 수 있는 참으로 긴 시간이다. 이쯤 되면 국민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산재보험 그리고 근로복지공단이 스스로 제대로 서기 위해서 몸부림을 쳐야 맞지 않을까? 그 시작이 모든 산업재해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현행법에 의해 인정기준, 입증책임이 불가피하다고 뒤로 숨을 일이 아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지금이라도 못할 것이 없다. 불승인이 목표가 아니라 가능한 승인을 조직목표로 하고, 조직의 중요한 부처로 직업성 질병 원인 파악 전담부서를 구성하면 된다. 동시에 적어도 “명백하지 않아도 발생 가능성이 있다”면 재해로 승인하면 된다. 혹여 재정 상황을 운운할 것이라면 우선 대사업장으로부터 부당하게 감면하는 수조 원에 이르는 산재보험료부터 챙기고서 나서 운을 떼는 것이 순서이다. 


  1. 산재보험법 제1조(목적)은 다음과 같이 이 법의 취지와 목적을 밝히고 있다. ‘이 법은 산업재해보상보험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하여 이에 필요한 보험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재해 예방과 그 밖에 근로자의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문으로]
  2. 산재보험 50년을 맞아 안전보건단체 등 여러 민주사회단체가 구성한 ‘산재보험 50년을 맞아 구성한 '일하는 모든 이들의 산재보험과 안전할 권리를 위한 공동행동’은 10대 요구안을 발표하였는데 그 첫 번째 요구가 ‘모든 산재를 산재로’이다. 전체 요구 사항은 연구소 홈페이지(www.kilsh.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문으로]
  3.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이 2008년부터 지난 5년간 산재보험료로 징수한 총 금액은 약 23조 9,850억 원이며, 이 중 노동자들에게 산재 보상 차원에서 지급한 각종 급여 총액은 17조 8,854억 원 가량이다. 지난 5년간 약 5조 원의 흑자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흑자는 그만큼 불승인을 통하여 재해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 사회보험의 가치로 따지자면 자랑일 수 없고, 오히려 가정경제 파탄, 사회갈등과 불나, 쟁송비용을 고려하면 사회적 낭비를 조장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본문으로]
  4. 사고의 경우 현행법에서는 특히 출퇴근 중 사고가 인정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2013년 위헌 심판에서 현행 산재보험법에서의 출퇴근 재해 불인정에 대해서 헌법불합치판정을 하면서 출퇴근 중 재해 인정으로의 법 개정을 촉구하였다. [본문으로]
  5. 대한직업환경의학 외래협의회 춘계 위크숍(2014): 업무상 질병 승인 및 불승인 현황[권영준] [본문으로]

[특집] 3.저는 이런 '시간'을 원해요 / 2014.6

저는 이런 ‘시간’을 원해요
- 각계각층 5인에게 ‘노동, 시간’을 묻다 -

 

노동시간센터(준)

 

어느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간을 지배하는 자”라는 제목의 게임을 하던 날이 있었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 일하는 시간 동안 우리는 노동시간을 지배하며 일하고 있을까? 노동시간센터 기획연재를 시작하며 일반 사무직, 프리랜서, 알바생, 전문직 등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만나 딱 두 가지만 질문해 보았다.

 

Q1. 지금 일을 하면서 노동시간 부문 중 무엇이 제일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Q2. 그럼 노동시간에서 무엇이, 어떻게 바뀌길 원하십니까?

○○병원에서 3교대제로 일하는 간호사, 김○○ 씨

 

일하는 시간만 놓고 보면 아주 길지는 않아요. 식사시간 포함해서 8시간 30분에서 9시간이니까. 그런데 일하는 동안 잠시의 짬도 안 난다는 게 정말 힘들어요. 중간에 좀 쉬면서 티타임도 갖고 싶고, 가끔은 하늘도 보면서 일하고 싶은데 일하는 내내 쉴 틈이 없어요. 환자들이 계속 찾으니, 40분 식사시간도 다 못 채우고 밥만 먹고 올라와야 하죠. 저녁 근무 때는 식당 내려갈 틈도 없어 식판이 간호사실로 올라오고, 일하다 먹게 되니까 찬밥이 돼 있죠.


교대 근무라는 것도 너무 힘들어요. 낮 근무는 아침 7시 10분에 출근해서 오후 4시 안에는 퇴근하는데 퇴근 후에 뭘 배우고 싶어도 낮, 저녁, 밤 3교대 근무스케줄 때문에 규칙적으로 뭘 배우기가 힘들어요. 오후 2시 40분에 출근해서 밤 10시 30분에 퇴근하는 저녁 근무 때는 삶을 포기해야 해요. 남들 놀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나는 노니까요. 그래도 제일 힘든 건 ‘수면 장애’입니다. 밤 근무 때는 낮에 잠을 자 놓아야 하는데 주위가 밝으니까, 자는 듯 마는 듯 3시간 자고 마는 거죠. 낮에 자면 밤에 못 잘까 봐 낮에 안자는 사람도 많아요.


바꾸려면, 그냥 직업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하하하! 교대근무 자체가 가진 문제들이 많으니까요. 그래도 일하는 중에 좀 쉴 수 있고, 휴일을 늘리면 좀 나을 텐데. 그러려면 간호사를 지금보다 훨씬 많이 뽑아야겠죠.

 

 

○○25시 편의점에서 주말알바를 하는 대학생, 정○○ 씨

 

23살이고요, 대학교 다니면서 주말만 일하고 있어요. 근무시간은 토․일요일 오후 3시부터 10시까지예요. 근무 자체에 어려운 점은 없지만, 한 명이 근무하는 업장이다 보니 교대할 사람이 안 오면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 힘듭니다. 아! 그러고 보니 첫 3개월은 수습기간이라면서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임금이라고 준 게 생각나네요. ‘3개월’이나요.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어요.


오전 9시부터 근무했으면 좋겠지만 이건 편의점 사장님 사정상 쉽지는 않을 거 같고……. 일단 제시간에 교대자가 왔으면 좋겠고, 교대자가 오지 않더라도 약속된 근무시간이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업장 문 잠가놓고서 라도요.

 

 “편의점 알바의 패기” 출처| http://humorstorage.tistory.com/

 

대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송○○ 씨

 

우리 같은 사무직 노동자의 경우 시간 외 노동에 대한 인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법적 규정과 무관하게 사무직 노동자에게는 연장 근로에 대한 수당 지급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라는 거죠. 사무직은 보이지 않게 법정 노동시간을 넘어 시간 외 노동을 하고 있고, 이에 따른 직무 스트레스, 과로사 같은 문제가 많지만, 타 직종만큼 주목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 않습니까? 한편 최근 들어서는 IT 기술의 발달로 퇴근 후에도 일해야 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동은 아예 노동시간 통계에서조차 잡히지 않습니다. 우선은 법정 노동시간 준수가 사무직 노동자에게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회적, 주체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기업의 효율성이란 미명으로 사무직 노동자의 공짜 노동을 강요하는 관성이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IT를 통한 업무 시간 외 지시 등을 엄격히 금하는 사회적, 법적 강제 등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림 : 박원종

 

공중파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 10년 차, 이○○ 씨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방송작가는 대표적인 ‘프리랜서’ 직종입니다. 시간 운영과 업무 운용이 자유롭죠. 쉽게 말해서 아이템과 섭외 대상자가 결정 됐다면(팀 내에서 일하는 방식에 합의된 경우) 집에 가서 일해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TV든 라디오든, 메인 작가가 돼야 비로소 자유로운 운용이 가능합니다. 서브작가나 막내 작가는요? 방송사에서 붙어삽니다. 서브나 막내급이 기혼자라면 어떨까요? (어린 자녀가 있다면 더더욱) 얼마 버티기 힘듭니다. 물론 메인이어도 일의 분량까지 조절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제가 맡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은 매일 생방송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매일 원고 마감(정규 1시간 분량 프로그램의 경우 A4 20장 안팎)이 있고, 시의성이 중요해서 사실관계나 시점이 틀리지 않도록 늘 뉴스의 추이에 안테나를 맞춰야 하는데요. 이렇다 보니 원고가 한 번에 완성될 수가 없어, 종일 일에 붙들리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업무 강도나 투입된 시간과 상관없이 작업 결과물, 애초에 계약된 원고료로만 급여가 지급되고 있어요. 게다가 이미 준비된 원고가 방송사 사정으로 방송되지 않을 경우에도 급여가 (부분적으로도) 처리되지 않습니다. 그날은 똑같이 일하고도 공치는 거죠.

 

아주 소박한 바람 같지만, 현실적인 수준에서 가장 바라는 것은, 장기적인 휴가계획을 세워보는 것입니다. 휴가(무급)신청을 하면 대타 작가가 무리 없이 일을 해주긴 하지만, 제작팀원은 기존 작가의 부재상황을 몹시 불안해하고 번거로워합니다. 결혼식을 앞둔 작가도 결혼식 전날 밤까지 방송에 매달려야 했죠. 작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도 이유겠지만 명확한 근로 계약 없이 고용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계약서상에 휴가를 며칠이라도 공식적으로 보장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현직 노무사, 유○○ 씨가 바라보는 현행 노동시간의 문제와 개선점

 

현재 근로기준법 체계는 노동시간에 맞춰 임금이 지급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임금 수준은 별도로 정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소 생계비 이상의 임금을 받기 위해서는 장시간 노동을 해야만 가능한 상황입니다. 결국,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구조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즉, 사회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순응케 만드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근로기준법은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원칙으로 하며, 주 12시간 한도로 연장근로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업종별 특례제도를 통해 근로시간, 휴게시간에 사실상 제한을 두지 않아 사용자가 악용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노동자의 동의 없는 연장근로를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방안,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방안이 함께 고민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1일 노동시간의 단축, 주 30시간제는 상상이 아닌 현실의 지향으로 고민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집] 1. 노동시간센터(준) 기획연재를 시작하며 / 2014.6

노동시간센터(준) 기획연재를 시작하며

 

김경근 노동시간센터(준)

 

한국의 노동자들은 정말 오래 일한다. 여전히 그들은 하루 종일 일하고, 일 년 내내 일한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장시간 노동이 사회적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점점 더 가족과 여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생명과 건강의 소중함이 인정받게 되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정부와 기업은 이미 발 빠른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 자체를 거부할 수 없게 되자, 속도와 방향을 자신들의 뜻대로 좌우하려 한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자들의 삶과 생명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커다란 변화가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 우리의 준비가 부족한 상황. 노동시간센터는 바로 이러한 위기에서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비단 ‘길이’ 만 문제가 아니다. ‘배치’의 문제, 즉 비표준적 노동시간이 확산되고 있다. 예전에는 비슷했지만 이제는 개인별로 다양해진다. 누군가는 너무 많이 일하고 누군가는 너무 적게 일한다. 어떤 이들은 남들과는 다른 시간에 일해야 한다. 예전에는 무조건 오래 일을 시키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시간만큼 일을 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변화했다. 그들의 관심은 이제 노동시간을 누가 어떻게 통제하는가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고용의 유연화를 확보한 그들은 이제 시간의 유연화마저 손에 넣으려 하고 있다.

 

한국에서 장시간 노동이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기업들이 최대한 적은 인원을 채용하여 최대한 오랫동안 일을 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 세계 모든 자본의 꿈이다. 중요한 것은 왜 한국에서 그러한 방법이 성공할 수 있었느냐이다.  우선 임금과 법·제도의 문제, 사회적 규범 등을 원인으로 제시할 수 있다. 저임금에 기본급 비중이 낮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는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 초과 노동에 대한 법 규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며, 사회적 분위기는 장시간 노동을 미덕이자 의무로 여긴다.


이에 더해, 소비가 점점 더 중요한 삶의 요소가 되고 있다.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노동자들은 더 많이 일해야 한다. 이처럼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선택’하고 있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노동자들이 오히려 장시간 노동을 요구하고 원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노동자들의 선택은 ‘욕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속에 숨겨진 ‘공포’와 ‘불안’을 읽어야 한다.

 

IMF 경제위기 이후, 노동자들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끊임없는 구조조정 속에서 고용이 절대적 과제가 되었지만, 노동조합이라는 기존의 방식은 별다른 힘을 가지지 못했다. 집단적 해결책이 좌절된 상황에서 남은 길은 개별적 순응뿐이었다. 장시간 노동은 당연한 현실이 되었고, 나아가 부러움의 대상이자 감사한 선물이 되었다. 무엇보다 작업장의 권력이 완전히 넘어간 상황에서, 회사가 초과노동을 ‘권했을’ 때 이를 거부할 수 있는 노동자는 없다. 돈을 더 벌 수 있어서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용에 대한 불안과 현실을 바꿀 수 없는 무기력에서 시작된 선택이었다. 그렇게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했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처럼 IMF 이후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기업의 이윤이 절대적 가치로 자리 잡았고 합리성의 기준이 되었다.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그것은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힘의 격차가 압도적인 상황을 바꿔내지 못한다면, 그 변화가 긍정적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결국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과 노동시간의 통제권을 확보하는 것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곧 게임의 규칙을 바꿔야 함을 의미한다. 일터를 바꿔내지 못한다면, 장시간 노동 문제는 그저 가족과 여가의 문제로 국한되고 기업의 입맛에 맞는 노동시간의 유연화로 이어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노동시간 문제가 중요한 것은 규칙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심야노동 철폐와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주장들은 관점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더 이상 이윤이 아니라 인간이 우선임을, 생명과 건강 그리고 삶의 행복이 합리성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기업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것이 게임의 규칙이었다면, 노동자들의 ‘당연한’ 요구가 새로운 기준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결국 관건은 ‘일터’의 안과 밖을 연결시키는데 있다. 노동시간은 가족이나 여가 그리고 본인의 건강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다. 따라서 개인의 사생활 문제로 여겨지기 쉽다. 노동시간 단축의 원동력은 분명 그렇게 일터 ‘바깥’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터 ‘안’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며, 무엇보다 ‘안’을 바꾸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다. 노동시간은 일터 안과 밖을 연결하는 핵심적인 고리이자, 변화를 위한 핵심적인 장소이다.


이번 연재 기획을 통해 장시간 노동, 노동 강도, 심야노동, 여성노동과 가족,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과 같은 노동시간의 여러 측면들을 다룰 것이다. 각각의 사안들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현재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안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무엇보다, 노동시간 문제가 어떻게 개인과 가족 그리고 일터를 넘나드는지를 보여 줄 것이다. 노동시간을 통해 일터의 안과 밖을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에 많은 관심 가져주기를 부탁드린다.

[특집] 3. 작업중지권의 현재(1) / 2014.5

[특집3] 작업중지권의 현재(1)


안규백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조합원

 

 

한국지엠은 지난 1999년 대우그룹 부도와 함께 2001년 1750여명이라는 대규모 정리해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대우자동차에서 초국적 자본인 GM으로 매각 된 종합 자동차 제조 기업이다. [일터]에서는 2회에 걸쳐,

대우자동차에서 GM으로 매각된 후 한국지엠에 이르기까지  노동 안전 분야 현실을 함께 짚어보면서,

작업중지권을 현장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고 있는지 공유하고자 한다.

 

1회 - GM으로 매각 전 대우자동차에서의 작업중지권
- GM대우의 탄생, 사라진 현장통제권과 작업중지권
- 2006년 이후 한국지엠


2회 - 신음하는 현장, 다시 꿈틀대는 현장
- 2011년 안전사고에 따른 작업중지권 발동 사례
- 실질적 작업중지권 쟁취를 위하여

 

 

GM으로 매각 전 대우자동차에서의 작업중지권


2000년 이전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본은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고 현장을 통제하기 위해 신 경영전략을 실시한다. 이에 현장에서는 활동가들이 현장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일본 SUZUKI OJT[각주:1] 반대 투쟁과 일방적인 잡수 증가 저지, 노동강도 강화 반대 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며 현장의 저항을 조직해 나간다. 이에 저항의 방식으로 컨베이어 라인을 정지시키는 작업중지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한다. 이런 사례는, 안전 분야에만 제한적인 작업중지권이 아닌 적극적인 작업중지권의 행사로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각주:2]

 

작업중지권의 행사 주체를 사업주로만 한정 해두었던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가 1995년에 와서 실행주체가 노동자도 될 수 있다는 사항을 신설 2항에 명기하게 된 후, 자본에게 작업중지권은 곧 일상적인 파업을 의미 할 만큼 껄끄러운 존재였고, 반대로 노동자들에겐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커다란 무기가 생기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그 주체는 투사로 불렸던 일부 현장 활동가들로 한정됐지만 말이다[각주:3]

 

이 시기에 수많은 안전사고들이 일어났지만 작업중지권은 제대로 행사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앞서 얘기했던 잡수 투쟁의 여파였을 것이다. 작업중지권은 현장투쟁의 강력한 무기로서 힘은 발휘했지만 작업자들 누구나 쉽게 행사할 수 있는 보편적인 권리로서는 인식되지 못했다. 평범한 작업자들이 받아들이기엔 징계와 해고를 감당할 수도 있는 어려운 결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다음은 당시 실제 안전사고 발생 사례이다.

 

[일본인 금형기술자 도자끼라는 사람이 작업도중 금형사이에 끼어서 즉시 사망함. 사후 프레스라인만 작업 중지 후 프레스 조합원 대상 안전교육 실시. 생산라인은 정상 가동됨.-1997년][각주:4]

 

위 사례를 보면 몇 가지 아쉬움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이 재해는 작업자가 사망한 중대재해에 속한다. 그런데 작업 중지는 프레스 부서에서만 행사되는 것이 타당한가?
둘째, 사고의 원인은 명확히 규명되었는가?
셋째, 재발방지 대책은 수립되었는가?
넷째, 사고사례가 전 공장에 전파되었는가?

 

GM대우의 탄생, 사라진 현장통제권과 작업중지권


2001년 GM이 인수조건으로 구조조정을 전면에 내걸자 정권과 자본은 1750여명의 정리해고를 밀어붙인다. 그렇게 공장은 하루아침에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뉘고 현장은 그야말로 초상집이 된다. 이때부터 현장에서는 무시 못 할 변화들이 감지되었다.


공장 밖에선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기 위한 처절한 복직투쟁이 시작되었으나 현장은 조속한 정상화라는 미명하에 다시금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동안 앞장서 활동했던 대다수의 현장 활동가들은 정리해고와 징계해고를 당하면서 거의 사라졌다. 곧이어 실시된 대의원 선거에서는 그동안 직장으로서 조합원이었지만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해왔던 사람들이 대거 대의원에 출마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현장은 급속도로 회사 통제 하에 들어갔다.

 

정리해고가 단행되고 만 3년여의 시간이 흐를 즈음인 2002년 7월 25일 300여명의 정리해고자의 복직 방침이 노사 합의하에 결정되었다. 복직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나름 원칙과 기준[각주:5]이 있었지만 1차 대상자에서 제외된 조합원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아직도 논란이 되는 우여곡절 끝에 다수의 현장 활동가들이 복직하기에 이르렀고, 복직자를 중심으로 현장조직과 계파를 떠나 정리해고 원상회복 투쟁동지회(이하 ‘정원투’)를 결성했다. 정원투를 중심으로 한쪽에선 나머지 정리해고자들의 완전복직을 위한 투쟁을 전개했고, 나머지 한쪽에선 무너져 있던 현장의 기운들을 살려내고자 노력했다. 이후 2006년 1750여명의 정리해고자 중 희망자가 최종적으로 복직을 완료했다.

 

이 시기 조합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경위이다[각주:6]

 

사고 경위 : 프레스 4라인 자동화 공정으로 개선이후 8월 8일(월)부터 시운전을 실시하였다. 이후부터 생산 테스트 작업을 계속실시하고 사고당일인 18일에도 판넬 생산을 테스트 중이었다. 사고당일인 18일 09시10분경 이○○ 조합원이 이곳(4라인 1호기)에서 생산테스트 작업을 하던 중 1호기의 금형 상/하형 에 머리가 협착되어 병원으로 긴급 후송하였으나 사망하였다.

 

사고조치 :
19일 09시27분경 인천 북부 소방서 119 구급대 도착, 09시30분경 세림병원으로 후송 조치함.

09시34분 세림병원에 도착하여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였으나, 사망하였음.

10시00분부터 12시00분까지 전 공장 조합원 안전교육실시

10시30분 노동조합 상집간부 비상회의를 실시함(사고대책, 등 전반에 관한사항을 논의함)

13시00분에 노동조합 간부 합동 비상간담회 실시를 통하여 대책위를 구성하기로 함. 

 

이후 노동조합에서는 긴급 속보 2호로 ■ 야간조는 엔진부와 K.D를 제외한 전 공장 70% 휴무를 실시하고 ■ 다음 날 근무는 금일 18:00에 진행되는 비대위[각주:7]에서 결정한다고 안내했다

 

위 사고경위 및 이후 대응을 살펴보면서 몇 가지의 의문이 생긴다.

 

첫째, 사고자의 응급처치 및 후송이 제때 이루어졌는가? 사고 발생 후 119가 도착할 때까지 촌각을 다투는 상황임에도 17분이 흘렀다. 그리고 사내 구급차는 어디 있었나?
둘째, 작업중지권 발동이 엔진부와 KD(각 부위, 부품 등 포장 수출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제외되었다. GM의 법인 분리 인수로 엔진부와 KD는 GM대우 소속이고, 나머지는 대우 인천자동차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셋째, 사고이후 비상 대책위가 구성되고 비대위에 의해 재발방지대책은 수립되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각주:8]

 

2006년 이후 한국지엠 : 세대의 변화와 잦은 안전사고


2006년 중형세단인 토스카와 한국지엠의 첫 SUV였던 윈스톰(현 캡티바)을 출시하면서 부평 2공장은 수 년 만에 다시 2교대 가동을 하게 되었다. 이에 정리해고자들이 모두 복직했고, 상당수의 사내 비정규직들과 군산과 부천에서 운영 중인 사내 기술교육원 소속 인원들이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행운(?)을 맛봤다. 현장은 한동안 자연스럽게 구조조정 과정에서 살아남았던 자와 복직자, 그리고 신입이라는 세 부류가 공존하게 된 것이다. 이후 한 동안 부평공장은 출신에 따른 갈등과 세대에 따른 갈등 등이 맞물리면서 현장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지엠에서 2004년 이후 입사자들은 한동안 신입사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각주:9] 우리는 기존 선배 세대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 온 세대였다. 이것은 때로는 장점으로 때로는 단점으로 작용되었다. 하지만 현장에 새로운 흐름이 이 세대들의 출현으로 시작됐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정리해고의 광풍이 휩쓸고 간 현장은 완전히 무너졌다. 임단투 기간에 노동조합이 파업 지침을 내려도 현장의 컨베이어는 거의 정상적으로 가동되었다. 말 그대로 자발적 복종이었다. 물론 소수였지만 정원투에 소속되어 있었던 인원들과 현장 활동가들은 파업코드[각주:10] 적용을 감수하며 파업지침을 사수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정원투의 헌신적인 현장투쟁과 젊은 세대들의 등장에 따라 현장은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시기의 잦은 안전사고는 대부분 조직적으로 은폐되고 작업중지권 발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장면1 : 머플러를 장착하는 공정에서 4인이 머플러를 힘겹게 들어 올려 장착하다가 그만 한 사람이 머플러를 놓치면서 상대편 작업자의 이마 부분이 찢긴다. 동료가 직장에게 보고해 병원 응급실로 향한다. 그리고 얼마 후 5바늘 봉합 후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여 묵묵히 컨베이어 조립작업을 수행한다.

 

장면2 : 일부 조립된 엔진이 마무리 배선작업 장소로 이동하기 전 적재되는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보전인원 2명이 호출되었다. 작업자 한 명은 직접 확인을 위해 좁고 위험한 적재 공간으로 들어가고 다른 한 명은 동작 스위치 앞에서 대기한다. 엔진 이동 랙이 가동되면서 협소한 적재공간에 들어갔던 작업자의 다리가 짓이겨진다. 구급차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주변 작업자들은 묵묵히 작업을 하고, 이곳과 동떨어져 있는 컨베이어 라인 작업자들은 사고 상황 자체를 모른 채 열심히 라인을 탄다. 이 작업자는 오른쪽 다리뼈 3군데가 복합 골절되어 큰 수술을 하고 1년이 넘는 시간을 요양 후 복귀했다.

 

장면3 : 엔진을 자동차에 장착하려는 순간 한 작업자의 손가락이 엔진과 차체에 협착되었다. 뼈가 으스러져 결국 수술을 해야 했다. 이 사고 사실 또한 주변 작업자들이 전하는 소문 외에 아무도 몰랐다.

 

장면1의 작업자는 봉합한 부위가 다 나을 때 까지 상처부위에 거즈를 덧대고 묵묵히 작업에 임했다. 정규직도 이런 상황이었는데 비정규직들은 어땠을까?


장면2의 작업자는 회사 안전 담당자가 병원으로 찾아와 치료비 전체를 부담할 테니 그냥 공상 처리를 하자며 한참을 설득했다. 이 작업자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산재 요양 절차를 진행했고, 이후 핀 제거 수술을 할 때 재요양 신청으로 치료 완료 후 복귀했다.


장면3도 결국 공상 처리를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공상 처리[각주:11]거짓이 대부분이다. 치료비와 치료기간의 근태만 인정을 해주는 것이 전부다. 이 중 단 한 차례도 안전사고에 따른 작업중지권이 발동 된 사례가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작업중지권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사망사고가 때에만 행사 할 수 있는 것인가?

 

 

  1. off-the-job training. 업무수행 중단없이 작업자를 교육시키는 방법 [본문으로]
  2. 한국지엠 부평1공장 고남권 조합원 구술.(고남권 조합원은 일방적 잡수 증가 저지 투쟁과 일본 OJT 반대투쟁으로 정직과 두 번의 해고를 당한다.) 즉, 이때의 작업중지권은 현장통제권을 누가 가지느냐를 결정짓는 싸움이기도 했다. [본문으로]
  3. 물론 이때에도 현장 활동가들은 산업안전보건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그 법규를 근거로 투쟁에 임한 것 같지는 않다. 당시의 열악했던 작업환경과 일방적 노동강도 강화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의 표현으로 작업중지권이 활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다시 말해 산업안전보건법이 투쟁의 무기로 활용되었다기보다는 자본 주도의 생산과정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함으로서 현장 작업통제권을 강화해 나가는 최후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본문으로]
  4. 15,17대 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김성갑 구술.(현 툴링센터 대의원) [본문으로]
  5. 2001.2.16. 정리해고가 통보된 이후 2.19 공권력에 의해 공장이 침탈되면서 당시 17대 노동조합(위원장 김일섭) 지도부는 공장 밖으로 밀려나 투쟁의 거점을 천주교 산곡동 성당에 마련하고 농성에 돌입한다. 이때부터 매일 출근투쟁을 시작으로 공장탈환 투쟁을 준비해 나가는데 이 과정에서 참여도(출근부)등이 최우선 되어 선정되었다고 했지만 아직도 각종 억측과 왜곡 등을 낳고 있다. [본문으로]
  6. http://www.gmno.or.kr/bbs/board.php?bo_table=new2_02_1&wr_id=254 참조. [본문으로]
  7. http://www.gmno.or.kr/bbs/board.php?bo_table=new2_03_2_tod&wr_id=2381 참조. [본문으로]
  8. 현장조직 민노회의 홍보물 ‘민주노동자’ 제25호(2005년 9월 7일자)를 보면 회사에서는 이 문제를 단순하게 유족들의 보상 문제로서만 마무리 하려 하고 보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어떠한 예방대책도 내 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노동자 현장투쟁 10년 자료집344Page 참조. [본문으로]
  9. 이들은 2004년 개악된 근로기준법에 의거 고정연차(월차) 폐지를 골자로 한 별도 조항의 단협을 적용 받고 있던 세대를 통칭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하나의 사업장에서 별도의 단협을 적용받는 세대가 생긴 것이다. 이후 2012년 임단투 투쟁을 통해 이 조항은 완전히 사라진다. [본문으로]
  10. 파업 참여 조합원과 불참 조합원을 차등 대우하기 위함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참여자의 임금공제 및 인사고가 불이익 등의 처우에 사용되었다. [본문으로]
  11. 부서 자체 공상 이라는 이름으로 부서에서만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사고사실 자체는 보고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본문으로]

[특집] 2. 왜 작업중지권인가 / 2014.5

[특집2] 왜 작업중지권인가


김재광 선전위원


‘작업중지권’의 맥락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은 국가와 사업주의 의무를 규정하는 대표적인 산업현장의 안전보건규제법이다. 법문에 노동자의 권리라는 명시적 단어를 찾을 수는 없으나, 사업주와 국가의 의무를 재구성하면 노동자의 권리를 구현할 수 있고, 이는 ‘알 권리, 참여할 권리, 거부할 권리’로 구분할 수 있다.

 

모든 법 제도가 그렇지만, 특히 노동관계법은 노동과 자본 간의 힘 관계의 산물이다. 산안법 ‘제26조 작업중지’ 역시 같은 맥락 속에 있다. 1990년 “사업주는... 위험이 있을 때...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시키는 등.” 이라는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조문이 산안법에 규정될 때 자본이 반발한 것도 단순히 문구 때문이 아니라, 당시의 노동과 자본 간의 긴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1987년 이후 성장한 노동(조합)운동은 모진 탄압을 받으면서도 산업 전반 및 노사관계의 변화를 강제하고 있었다. 특히 제조업 노동자들은 1980년대 말, 1990년도 초 중반까지 특유의 ‘전투성’을 발산하고 있었다. 대공장과 중소공장에서 그 강도의 차이가 있었을지언정, 막 들어선 ‘민주노조’는 기존의 자본가가 설정한 일방적 현장질서를 위협하였다. 노동자들은 파업과 태업을 반복하며 현장의 질서를 변화시켰으며, ‘작업중지’라는 법 규정이 도입되기 이전에도 이미 ‘작업중지’는 일상 투쟁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오히려 처음 입법된 1항은 현실보다 뒤처진 것이었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1항의 문구 자체가 아니라, 노동자의 ‘무법 현장’을 합법화하여 질서로 보장한다는 것에 분노하고, 불안했다. 이후 5항까지의 개정은 국제사회의 기준이라는 명분도 있었지만,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현장에서의 ‘작업중지’가 일상적인 권리로 진전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말도 많았던 2항과 3항의 조항이 1995~6년에 걸쳐 속속 도입된 후, 자본가들이 걱정했던 ‘현장의 무법천지’는 오히려 기우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현장의 열기는 급속히 식었다. 자본가들의 신경영전략은 노노갈등과 노동조합의 연성화를 일정하게 이루었고, 결정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는 노동(조합)운동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규제 철폐, 민영화, 성과급, 경쟁력, 적기생산, 전사적 자원관리, 유연화’ 등등 온갖 자본의 용어는 현장과 사회 전체를 뒤덮었고, 마침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저항 이데올로기 또한 잠식했다. 이러한 와중에 노동현장은 점점 더 답을 찾을 수 없는 고용게임(누군가 남아야 한다면, 누군가 나가야 하는)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1987년 이후 근 10년간 유지되고 재설정되어가던 현장의 질서가 변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모든 산업과 현장에 똑같이 작용한 것은 아니었으나, 대세로 자리 잡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 가운데 ‘작업중지’는 본래의 맥락을 상실하고 법 규정으로 남게 되었고, 제한적 시공간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행사되게 되었다.    
  
재해의 이전(移轉)과 노동권으로서의 작업중지


‘작업중지’ 자체는 자연권이다. 위험을 직면하고서 또는 위험을 알면서 작업을 계속할 수는 없다. 위험을 알면 본능적으로 피하고 거부하는 것이 순리다. 이를 막는다면 살인과 다름없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자연권적인 권리와 반응이 제한되어 생명과 몸을 파괴하고 있다. 실로 당장의 ‘밥벌이’ 때문에 정작 지켜야 할 ‘밥줄’을 끊게 하는 기이하고도 비참한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많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는 생존을 위해 생명을 걸고 있다. 생명에 대한 본능이 환경과 처지에 의해 억압당하고 있는 것이다.

 

중대재해는 점점 더 열악한 노동계층에게 이전되고 있다. 사고에 의한 사망 재해 피해자는 대부분 하청과 비정규직 노동자다. 본능마저도 압살하는 야만적 강제는 자연권으로서의 작업중지권만으로는 극복할 수가 없다. 그래서 끔찍하다. 역설적이게도 의식적인 노동권적 자각만이 생명의 본능을 깨울 수 있다. 작업 중지가 권리로 형성하기 위한 조건은 현장의 질서를 현장의 노동자 자신의 것으로 하겠다는 의지이다. 이는 다분히 의식적인 공감이며,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이다. 법문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것은 그다음의 문제이다.

 

노동권적 자각, 즉 현장 질서를 노동자 자신이 규율해야 한다는 자각이 있어야만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야 비로소 작업을 멈추거나 거부하는 소극적 작업중지권 행사(물론 이마저도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다.)에서 나아가, 위험을 감지한 사전에 작업을 중지하고 거부할 수 있으며, 사고뿐 아니라 각종 직업성 질환에서의 위험에서도 같은 태도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작업중지권이 행사되기 위해서는 알 권리, 참여할 권리가 복합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 위험과 재해에 대한 정보와 철학을 통해 안전 감수성 향상하고, 더불어 참여를 통해 과정과 결과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중지와 거부의 정당성을 스스로 구현할 수 있다. 세 가지 권리의 종합과 구현, 이러한 경험과 시도가 현장질서를 일하는 자의 것으로 긴장시키고, 노동자의 현장 통제력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주춧돌이 되는 것이다. 


몇 가지 과제


위와 같은 작업중지권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가 있다. 

 

첫째, 현장통제력과 작업중지권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현장통제력을 확보하고 복원하는 것은 여러 경로가 있다. 이 중 안전보건 사항이 노동자의 현장질서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으며, 이것이 사실상 일상 현장 규율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것, 노동권으로서 작업중지권을 확립하는 것이다. 문제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작업중지권은 노동(조합)운동 전체 맥락 아래에 위치되는 것으로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현실에서 작용하기 어려운 이유와 원인에 대한 실증적, 이론적 고찰이 필요하다.

 

둘째, 산안법 규정의 보완이다. 
‘급박한 위험’을 명확히 정의하고, 대피 및 거부의 경우 ‘합리적 근거’를 작업자(노동자) 입장에서 간명하게 하여 제도적 차원에서 작업중지권을 보완하는 것이다. 최근 이와 관련해서 한 연구자는 ‘급박한 위험’과 ‘합리적 근거’를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을 인지한 경우’로 바꾸자고 주장하였는데 참고할 만하다. 이외에도 작업 중지 행사가 현재 법 규정으로 보호받지 못한 사례와 현행법 규정의 취약성 역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셋째, 기업살인법의 현실화이다.
기업 살인법의 요체는 적정한 안전과 보건조치를 하지 않고 발생한 사망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기업살인법 자체가 노동권적 자각을 통한 작업 중지, 이로 말미암아 축적되는 현장통제력과 직접 관련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명의 본능마저도 억압하고 매일 사망 위험 속에서 일하는 하청과 비정규직노동자의 환경을 고려한다면 한편으로 절실한 제도적 장치임이 틀림없다. 현재 조직력이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노동권에 기반을 둔 작업중지권은 여전히 중요한 것이나, 다가서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조치는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이며, 작업중지권을 확대하기 위한 중요한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특히 원청의 책임문제는 중요하다. 이것이 배제된다면 효용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현행 산안법의 전반적인 한계와도 연관되어있다.

 

이것부터 시작하자


우선 전국에 산재해 있는 최근의 작업중지 사례를 취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례의 배경과 경과, 결과를 종합하여 그 현실성과 의의를 재구성하고 이를 전국적 차원에서 공유해야 한다. 한편 작업중지권에 포함된 중지와 거부 개념을 명확히 하고, 사회적 정당성을 확고히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동시에 작업중지권을 이제는 행사할 수 없는 문구상의 권리로 대하는 태도를 일신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직종과 부문의 구체적 노동실태를 바탕으로 시도할 수 있고, 시도해야만 하는 구체적 중지와 거부에 대한 기획과 실행이 요청된다.

[특집] 1. 세월호와 작업중지권 / 2014.5

[특집1] 세월호와 작업중지권
작업중지권 복원·중대재해 근절 투쟁을 다시 제안하며

 

선전위원회

 

세월호 승무원들이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은 사업주에게 안전교육을 요구했다면!
적재량을 초과하는 화물과 안전장치 미비에 대해 항의하고 신고했다면!!
승객을 포함하여 자신의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 출항을 거부할 수 있었다면!!! 
뒤늦었지만 이런 참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작업중지권 복원 투쟁을 제안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작업중지권[각주:1][각주:2]

 

1990년 처음 산업안전보건법에 도입된 작업중지권은 사업주의 지시가 있어야만 대피를 할 수 있었으므로 실질적인 ‘작업중지권’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작업자가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게 할 것을 운동 진영에서 요구하였고, 1990년대 중반 잇따른 중대 재해로 인해 여론이 형성되면서 1995년 지금의 2항이 신설되었다. 그러나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과 ‘대피 후 작업재개의 조건’에 관한 세부 규정이 없어 작업중지권을 행사함에 있어 모호한 측면이 존재했다. 이에 노동계의 지속적인 요구로 1996년 대피한 노동자에 대한 불이익 금지 조치인 3항이 신설되었다. 


그러나 법은 여전히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하기 위한 조건으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만한 합리적인 근거’를 요구하고 있다. 노사가 이에 대한 판단이 다르면 회사는 해당 노동자를 징계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작업중지권을 행사하는 데 장해요인이 된다.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2013년 연구보고서에서도,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작업중지권의 행사 요건을 업종별로 세분화하여 제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제26조(작업중지 등) ①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또는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작업장소로부터 대피시키는 등 필요한 안전·보건상의 조치를 한 후 작업을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②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으로 인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하였을 때에는 지체 없이 그 사실을 바로 위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바로 위 상급자는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③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에는 제2항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이를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 고용노동부장관은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그 원인 규명 또는 예방대책 수립을 위하여 중대재해 발생 원인을 조사하고, 근로감독관과 관계 전문가로 하여금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안전·보건진단이나 그 밖에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할 수 있다.
⑤ 누구든지 중대재해 발생현장을 훼손하여 제4항의 원인조사를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함께’ 거부하는 것


연구소는 올해를 기점으로 연구소 4대 실천 의제 중 하나인 '중대재해근절, 작업중지권 복원 투쟁'을 본격적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그러나 ‘작업중지권이 보장된다’는 것은 법조문에 좀 더 자세한 규정을 포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조선소 하청 노동자가 방금 추락하여 사망한 동료의 시신을 치우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것 아니냐.’ 며 용접을 다시 시작해야만 할 때 작업중지권은 법조문일 뿐이다. 그에게 작업중지권이 의미를 가지려면 ‘산 사람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 줄 조직화된 노동자의 힘이 필요하다. 그에게는 안전을 위해 작업을 거부해도 고용을 지켜줄 수 있는 노동자 조직이 필요하다.

선도적인 활동가 한 명이 라인을 잡고 작업을 중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노동자가 ‘함께’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작업을 거부하는 것이 작업중지권 실현의 핵심이다. 그래서 작업중지권 복원 투쟁은 작업환경이 열악하여 작업중지가 절실히 필요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운동과 함께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호 특집에서는 연구소가 지금 작업중지권을 제기하는 배경과 한국 사회 작업중지권의 현재를 보여줄 수 있는 한국지엠 사례를 소개한다. 향후 연속 기획을 통해 업종별 작업중지권 사례와 쟁점, 산업안전보건법 정비와 기업살인법, 작업중지권의 현장적용 방안 등을 다루고자 한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개입과 참여를 요청 드린다.

 

 

  1. 유성규, 작업중지권에 대하여, 2007년 1월 일터 알기 쉬운 산안법 [본문으로]
  2. 사업장의 작업중지권 행사에 관한 실태조사,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2013년 [본문으로]

[특집] 3.작업중지권의 실현으로 중대 재해를 막아내자 / 2014.4

작업중지권의 실현으로 중대 재해를 막아내자


선전위원회

 

대한민국은 여전히 중대재해, 산재사망 왕국이다. 노동부의 2013년 산재 통계를 보면, 2013년 한 해 동안 1929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매일 5.3명이 사망하는 것이고, 이는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보상된 사망 건수만을 포함하는 것이므로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고 있으리라고 충분히 짐작된다.

 

현재 중대재해에 대한 투쟁은 주로, 현대제철을 비롯한 삼성, 대림, SK 등 대기업의 하청 비정규 노동자 사망에 대해 원청 기업의 책임을 묻는 ‘기업살인법 제정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기업살인법 제정 투쟁은 사망 재해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법 제정이 실현된다면 사망 재해를 포함한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그 책임을 명확히 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그러나 ‘기업살인법’이 입법화되더라도 실제 사망 재해를 포함한 중대재해를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동시 병행되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작업중지권’의 실현이다. 이른바 ‘사회적 여론과 관심’을 모아내고, 입법 과정을 통해 기업살인법을 만드는 과정뿐 아니라, 현장의 주체 즉 노동자들이 스스로 행동을 통해 노동재해를 근절하는 노력과 시도가 맞물려야 만이 건강한 일터의 실현할 수 있다. 나아가 현장에서의 노동자 관점에서의 안녕한 질서를 구현할 수 있는 토대를 쌓을 수 있다.

 

따라서 입법운동은 홀로 성립할 수 없으며 현장 주체의 실천 의지가 결합하여야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생명과 안전에 관한 현장의 저항권, 노동자 현장질서를 구현하는 ‘작업중지권’은 현실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활동은 그 자체로 노동자 입장에서 현장질서를 구현하는 집단적 일상 활동이기에 소중한 것이다.

 

"2013년 추석 연휴, 이화여대 식당에서는 환풍기가 고장이 난 상태에서 식당 노동자들이 일을 시작했다가 결국 한 명이 근무 중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있었다. 어지러움과 가슴이 울렁거리는 증상을 느낀 노동자들이 많았지만, 돌아가면서 바람을 쐬고 다시 업무에 복귀하길 반복하며 일을 하는 동안, 식당과 학교 측은 환풍기 고장을 방치했다. 결국, 3일 동안 이렇게 일하던 노동자 한 명이 쓰러져 응급실에서 일산화탄소 중독 진단을 받았다.'

(관련 기사 : 일터 118호, 작업중지권이 꼭 필요한 이유)

 

 이 사례는 작업 중지권이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중요하고 기본적인 권리인지를 보여준다. 작업중지권은 무엇보다 먼저, 노동자 자신의 생명과 건강에 어떠한 위험을 초래하는 작업을 거부하여 자신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고자 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공공노조 서경지부의 하해성 조직차장은 위 사건을 겪으면서 신규 조합원뿐 아니라 조합 활동 경험이 많은 분회 간부들도 이런 상황에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작업 중지권을 행사해야 할 상황 판단과 이어질 구체적인 행동을 단위 활동가, 조합원들과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현장에서 위험을 인지하고, 이를 거부하고, 작업중지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 위험을 예측하고 인지하는 힘, 위험의 시정을 요구하는 힘, 위험이 해소될 때까지 작업을 거부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작업 중지권에는 현장 통제권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3월 27일 현대자동차 전주 공장 엔진 고마력 써브 공정에서 작업자가 4바늘 꿰매는 사고가 발생했다. 대의원들은 “작업재개 표준서”에 기초하여 조합원 설명회 시간을 요구하였으나, 회사 측이 이를 거부했다. 결국, 전체 대의원들이 엔진공장에 집결하고, 해당 엔진공장 조합원들이 고마력라인을 세우면서 생산이 이틀간 중단되었다. 현대차 전주 공장에서는 올해 들어, 집회, 텐트 농성, 구사대 폭력, 노사 양측 고소·고발 등 노사 간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한 조합원은 “안전이나 노동시간 문제 등 별개의 사건으로 갈등하고 있지만, 핵심은 회사 측이 노조활동을 옥죄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본은 생산 손실뿐 아니라 현장 통제권 측면에서 작업중지권 행사를 극도로 꺼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장 장악력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서 작업중지권의 행사 범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소한, 중대재해가 발생했거나 중대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인지했을 때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작업중지권은 지금 당장, 모든 노동자가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에서 작업 중지권이 행사되기 위해, △ 위험을 어떻게 인지할 것이며 △ 필요한 조치를 어떻게 요구할 것인가 △ 상급 단체 및 시민사회·법률 단체의 지원은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 어떤 후속 조치가 취해졌을 때 작업을 재개하는 것이 가능한지 등이 제시되고 현장에서 쉽게 참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실제 투쟁 사례를 만드는 활동이 필요하다.

 

 이화여대 식당에서 노동자들이 환풍기가 수리되고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있을 때까지 작업을 거부할 수 있기 위해, 현대자동차에서 회사 측의 작업 중지 거부가 사회적으로 비난받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사회적 연대가 형성되기 위해, 폭설이 내리고 한파가 오면 택배 노동자나 우편집배원 노동자들이 작업을 거부할 수 있기 위해 사문화되어 가는 ‘작업중지권’을 복원하고 실현하는 현장의 기획과 실행을 준비하자.

  

* 중대재해[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2] 다음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재해

1.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

2.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한 재해

3. 부상자 또는 직업성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

 

* 작업중지[산업안전보건법 제 26]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또는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작업장소로부터 대피시키는 등 필요한 안전·보건상의 조치를 한 후 작업을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으로 인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하였을 때에는 지체 없이 그 사실을 바로 위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바로 위 상급자는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에는 제2항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이를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고용노동부장관은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그 원인 규명 또는 예방대책 수립을 위하여 중대재해 발생원인을 조사하고, 근로감독관과 관계 전문가로 하여금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안전·보건진단이나 그 밖에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할 수 있다.

누구든지 중대재해 발생현장을 훼손하여 제4항의 원인조사를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