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3. 한국 산재예방정책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다 / 2020.07

[산재예방정책을 진단한다] 

 

 

한국 산재예방정책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다 

 

 

선전위원회 편집

 

한국 정부의 산재 예방 정책은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겠다는 분명한 목표와 방향을 가지고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추진 과정에서 부처 간 불협화음, 전문 역량 부족, 이슈 되는 특정 의제만 추진되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정부의 산재 사망사고 예방 정책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와 노사 자율 안전보건점검, 정부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강태선 세명대학교 보건안전공학과 교수,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가 모여 지난 7월 2일 오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사무실에서 대담을 가졌다. 사회에는 최민 한노보연 상임활동가가, 기록에는 박기형 한노보연 상임활동가가 맡았다. - 기자 주


집중과 선택이라는 전술이 유효했는가?

최민: 1~2년 전부터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이 산업재해 전반이 아니라 산재 사망사고에 집중하고, 특히 건설업과 추락사고 중심으로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이러한 정책 방향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정진우: 이번 정부 들어서 사고 사망 재해를 줄이는 것을 더욱 강조하며 전력투구한 것 같습니다. 정책 방향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런데 중대 재해 예방에만 집중하니, 현장에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어요. 중대 재해를 막으려면 체제를 강화하고 여건과 역량이 갖춰져야 할 텐데, 역량 강화에는 소홀히 하고 있어요. 지나치게 보여주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일상적 안전보건에는 무관심하거나 역행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안전 관련 교육프로그램도 부실해지고 있고요. 사고 사망 재해에 집중해야 하니, 공공기관에서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들을 정리하는 차원이겠죠.

하지만 사업장의 안전보건 수준과 관리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안전감수성, 안전의식, 안전관심을 높여야 하는데, 여기에 필수적인 교육 제공, 시스템 정비 등을 예전에 비해 소홀히 하는 게 아닐까 우려됩니다.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부작용이 심할 수 있어요. 너무 산재 사망사고에만 올인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죠. 하인리히 법칙을 떠올려 보면 현장에서 빈번한 아차사고에 더욱 유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차사고 없이 중대 재해가 발생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전조가 될 수 있는 아차사고를 드러내고, 교훈으로 삼는 활동이 병행되어야 해요. 그게 보이지 않는 것이란 말입니다. 한 마디로, 밸런스가 없는 게 아닐까 싶어요.

강태선: 저는 정책의 전면을 다 모르지만, 제한적인 수준에서라도 평가해보면, 정부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그동안 정부가 못했다기보다는 전략이 부재했다고 봐요. 한국은 안전보건 정책을 오랫동안 펼쳐왔죠. 문제는 국정감사나 노동부 자체 감사를 준비하는 게 목적이었다는 거죠. 산업재해는 막을 수 없다는 게 안전보건 하는 사람들의 통념이었다고 생각해요. 패배주의에 젖어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 책잡히지 않을 수 있는 정책 수준에서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산재 사망사고 절반 줄이기라는 정책 목표를 제시한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집중과 포기가 필요한 것이었죠. 업종은 건설업, 사고유형 중에는 추락을 선택했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포기한 것이죠. 포기하면 당연히 욕먹을 수 있겠죠. 하지만 한 번도 집중해보지 않았으니 해볼 만 한 시도였어요. 물론 포기된 측에서는 불만이 많겠죠. 

예를 들어, 보건 관련 업무를 하던 사람은 한 번도 가지 않은 건설 현장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요. 건설 직렬 쪽에서는 학교에서 4년 동안 구조역학 등 각종 지식을 배워서 들어왔고, 건설 현장 점검을 하려면 토질에 관한 지식 등 알아야 할 것이 많은데,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점검하러 보내냐는 반발도 있고요.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선택하고 집중하지 않았던 안전보건 영역에서는 필요한 일이었어요. 

사망사고, 중대 재해 예방 활동이라는 건 결국 위험을 평가하고 줄이는 것이잖아요. 효과가 분명히 검증된 것에 집중하는 게 유효한 전술일 수 있죠. 사다리와 비계 등을 중점으로 현장 점검하고, 시스템 비계 시장을 넓혀준다든지. 건설업의 안전보건 관행이 많이 바뀌리라 기대하는 것이죠. 물론 평가는 3년 뒤에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사망률 외에 더 많은 지표를 내고 평가 기준으로 필요가 있어요. 여러 가지 자료 공개도 해야 하고요. 아직 그런 게 부족하다 보니,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기 힘들고 평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류현철: 인적, 재정적 자원이 순식간에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역량 축적도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 특정 의제나 국면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선택을 하게 된 의사결정 과정, 집중의 방법이 적절했는지 되묻고 싶어요. 강한 리더십에 따라 정책 실현의 동력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의사결정권을 가진 몇몇 사람의 판단에 따라 집중사업이 훅훅 바뀔 수도 있잖아요. 

정책 효과를 면밀히 검증하기보다는 단일 지표 감소에만 너무 주목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정책실행 과정과 그 효과에 대해 더 들여다보고, 다양한 주체들의 의사를 고려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정책 기조를 명확히 세우고 집행한 적이 적다 보니 정책 성과를 알리는 데만 주의를 기울였을 수도 있다고 봐요. 향후 평가도 더 세밀하고 하고 논의의 장을 열어둘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선순위를 정할 때부터 효과를 평가하고 알리기까지, 순환 논리의 오류에 빠진 게 아닌가,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빠진 게 아닐까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방향을 지속하는 게 바람직할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진우: 저는 의욕은 있었는데 실력이 부족했다고 정리하고 싶어요. 그리고 실력이 없으면 의견수렴이라도 제대로 해야 했다고 봐요. 하지만 예전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사다리 정책이 대표적이에요. 법령 개정이 단기간에 어려우니 지침으로 내놓는 것인데, 이번에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부개정 하면서 사다리 관련한 규칙을 개정하지 않았어요. 앞뒤가 맞지 않죠. 

전문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주먹구구식 행정이 되는 게 아닐까요. 도급 관련해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어요. 내외부에서 의견수렴이 안 되고,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 간 의견조율도 잘 안 되고, 그러다 보니 정책 수립과 집행이 거칠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정책은 실험 대상이 아니잖아요. 완벽하지 않더라도 최대한 정책의 질을 높여서 수립·시행하는 게 정책담당자들의 자세가 아닐까요.

시스템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민: 의사결정 절차도 중요하지만, 선택한 정책의 실효성 또한 중요할 텐데요. 시스템 비계 설치가 추락사 예방 효과가 검증되었다지만, 패트롤 운영이나 시스템 비계 시장 확대 등의 정책이 추락사 예방과 향후 건설 현장 안전수준 증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강태선: 사실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입니다. 절차나 방법의 타당성을 검증하려면 더 분석할 자료가 있어야죠. 죽은 사람과 다친 사람의 통계만 있잖아요. 그러나 워낙 사태가 심각하니 정책은 구사해야 하고, 현재 취합된 통계로 정확한 대책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으니 외국의 정책을 모사하게 되죠. 

법 제도는 알 수 있어도, 정책의 실행 전략은 암묵지에 해당하니 알 수가 없습니다. 패트롤 같은 건 이렇게 할 것이라고 일정 부분 추정한 것일 텐데요. 사다리 지침이나 도급 지침의 경우에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은 분명해요. 안전보건공단이나 현장과 소통이 잘 안 됐고, 실효성 측면에서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결국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하고, 어디까지 동의를 구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건 정책기획과 집행의 영역에 속하지 않을까요. 체계 정비를 위한 과도기가 아닐까 해요. 정리되지 않은 자료와 제도를 가지고, 여러 정책을 시도해보는 과정이랄까요.

류현철: 다른 측면에서 접근해보고 싶어요. 전술을 잘 짜는 것도 중요하고 시도해보면서 수정해나가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정책을 시행했다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것인지도 살펴봐야 할 지점이 아닐까요? 

일터의 노동자들까지 여파가 미칠 수 있을지. 최근 발생한 파쇄기 사고, 질식 재해 그리고 추락재해 등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사항은 아니잖습니까. 모든 현장과 해당 현장의 말단까지 완벽히 관리할 수 없다면, 노동자들에게까지 정책효과가 파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안전교육 프로그램이나 대국민 홍보뿐만 아니라요. 

예를 들어, 당사자들이 당면한 위험 상황에 대해 작업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개개인이 어려우면 대변할 수 있는 조직에 권한을 보장해주는 등. 노동자나 노동단체의 참여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비록 노동부나 안전보건공단에 비해서 전문성이 부족하지만, 안전보건 주체를 다변화해서 포괄적으로 안전보건 관련 활동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노동자들 스스로의 권리 보장 및 실현을 위한 노력도 중요할 것이고요. 이렇게 안전보건 관련한 주체들을 포괄하는 거버넌스, 기관 간, 이해관계자들 간 협의체를 만들어가는 일, 이를 도외시하면 앞으로의 정책 방향 또한 협소해질 수밖에 없어요.

정진우: 안전보건 활동의 주체라는 측면에서 사업장 차원의 자율적인 안전보건 활동이 필요합니다. 안전보건 행정 역량과 자율 안전보건관리, 이는 양대 축이죠. 전자뿐만 아니라 후자도 부족합니다. 행정부가 단기실적에 급급해선 곤란해요. 행정기관의 관리감독이 직접 이뤄지지 않더라도 안전보건 활동의 기본에 해당하는 자율규제를 실제로 작동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역량 투여가 필요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운 일이다 보니 손 놓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됩니다. 예를 들면, 근로자 참여 제도를 재정비하는 일입니다. 노동조합이 없는 곳, 특히 소규모 사업장에서 이것이 보장되려면 근로자 대표가 실질적인 권한을 가질 수 있어야죠. 법에는 근로자대표를 선출하도록 되어 있는데 선출 절차나 활동내용 등이 규정되지 않은 채로 있죠. 근로자 참여 인프라가 체계적으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자율규제가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기업 규모를 떠나서 자율적인 활동으로 많은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데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전문성뿐만 아니라 진정성도 없는 게 아닐까 싶어요.

최민: 노동자 참여제도와 자율 안전점검은 묘하게 겹치면서도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자율 안전점검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는가일 텐데요. 한국의 경우 기업들이 자율 안전점검을 규제나 책임 회피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율 안전점검이 현장에서 작동되지 않는 것은 정부가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기보다는 기업의 이해관계가 우선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정진우: 자율 안전점검은 로벤스 보고서에서 제기된 개념이었습니다. 법규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정부의 관리감독만으론 사업장 안전보건 전반을 커버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법 제도를 보완하는 수단이었죠. 법을 지키기 어려우니 현장에 맡겨달라는 것은 아니죠. 

그런데 산업안전보건법의 목적에서도 자율규제 개념이 빠져 있어요. 이건 정부도 이를 사족으로 생각했다는 걸 반증하는 게 아닐까요. 행정의 부족한 점을 메우려면, 근로자 참여를 빼놓고는 자율 안전규제를 얘기할 수 없습니다. 현장을 가장 많이 아는 주체 중 하나니까요.

강태선: 저도 100% 동의합니다. 지난번에 OSHA 대표가 내한했을 때, 사업주만이 안전한 현장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300만 개가 넘는 사업장이 있어요. 모든 일터를 감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죠. 사업주의 윤리에만 의존할 수도 없고요. 

▲   강태선 세명대학교 보건안전공학과 교수.

결국 관리감독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사업주에겐 경각심을 주는 게 필요하고, 특히 안전보건 관련 법규를 이행하기 쉽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어요. 법 이행에 따른 시행착오가 생길 수 있어요. 이를 지도하는 과정도 수반돼야 합니다. 

억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감독행정력이 중요하고, 근로감독관들도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대로 재량권을 발휘하는 게 결국 전문성이죠. 현장 개선을 위한 관리감독, 지도 등은 법으로 규정하기 어려워요. 일정한 프로세스와 인적 역량이 갖춰져야 합니다. 현재 한국의 조건에서 자율규제와 억제 효과가 실현될 수 있을까요?

류현철: 근로감독관의 재량권과 관련해서는 전문성과 공정성 모두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전적이든 사후적이든 생산에 차질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영세하다는 이유로 작업 중지를 내리지 않는 경우도 많잖아요. 기업의 이해관계를 먼저 고려한 게 아니었을까 의구심이 듭니다. 

감독관에게 바라는 전문성이라는 것이 무엇이 기반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어요.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사고 예방과 개선을 위한 작업 중지 요구를 하고 이를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과정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현재 재량권이 언제 어떻게 발휘되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태선: 사실상 지금은 재량권이 없는 것과 다를 바 없죠. 사업주가 노동자를 보호하도록 유도하지 못한 정부의 잘못이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패트롤 운영 관련해서 참고할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조그만 현장들의 경우, 감독관당 1년에 최소한 30~40개를 돕니다. 주로 형식적으로만 감독하는 것에 그쳐요. 똑똑한 사업주, 소위 악성 사업주들은 규제망에 걸려들지 않습니다. 말 잘 듣고 실태를 모르는 사업주는 끌려다닌다, 이런 인식이 만연해있죠. 

이번에 집중적으로 패트롤을 운영했잖아요. 현장에서는 '우리도 드디어 감독을 받았다, 정부가 이런 곳에도 오네.' 이런 반응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점검받아보니까, 주로 추락 중심으로 하더라 크게 부담 안 되더라, 추락 관련 안전조치를 잘했으면 감독받는 게 어렵지 않더라, 이제 사업주들도 해야겠다, 해볼 만 하다는 인식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업주의 의지가 형성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류현철: 그와 함께 사업주가 안전한 현장을 만들 수 있기 위해선 제반여건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안전에는 비용이 들어가잖아요. 결국은 안전조치를 이행할 수 있는 의지만이 아니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죠. 소규모 사업장 등에서는 실제로 비용부담이 크죠. 이를 감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여전히 사업주의 선의에 기대는 방식이 아닐까요?

정진우: 한 가지 정책으로는 부족합니다. 단발성으로 그칠 수 있어요. 한 번 지적하고 개선되지 않으면, 회초리를 들고 '이제부터는 정말 혼낼 거야' 같은 식으론 안전보건체계가 구축되지 않습니다. 기초적인 인프라가 구축되고서 이런 집중정책이 작동되어야 자율 안전보건관리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관리감독 및 사업장의 역량이 축적될 수 있죠. 지속가능한 정책, 장기적 전망을 지녔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전보건 관리 체계·조직 변화 전제돼야

류현철: 현재 안전보건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느냐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현재 정책은 몇몇 리더십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니죠. 안전보건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해선 무엇이 중요한 과제일까요?

 

▲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강태선: 안전보건은 여러 행정이 중첩되는 영역이죠. 타워크레인과 승강기 관련 대응이 좋은 모범사례입니다. 행정안전부와 노동부, 또는 국토부와 노동부가 서로 협조해서 정책을 마련했었죠. 관계부처들에 걸쳐있는 문제들이 많죠. 건설 현장 화재 사고도 마찬가지고요. 한 부처의 몫으로만 남겨두지 말고 협력체계를 구축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류현철: 그리고 안전보건 행정의 주요 관계를 사업주와 정부의 관계로 규정한다면, 노동조합 참여가 안전보건 수준을 높이는 데 유효하다는 얘기와 충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강태선: 안전보건영역은 노사자치에 전적으로 맡겨둘 수 없다고 봅니다. 원칙적으로 노사자치가 가능하려면, 기반이 마련되어야 해요. 최저수준을 지킬 수 있도록 규범과 규칙을 만들어야 하고요. 이는 정부와 사업주 간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겠죠. 만에 하나 노사가 합의해서 위험수당 받고 넘어가는 식이 되어선 안 되잖아요.

정진우: 사업장을 배로 비유하면, 사업주가 선장이라고 할 때, 선원들을 잘 관리해서 순항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때 정부는 배 건조와 운항, 선원 관리 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하겠죠. 사업주가 산재 예방 활동에 관한 의지와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거죠. 현장에서 안전보건 활동을 직접 해나갈 수 있도록 독려하고 교육도 제공해야 합니다. 단순히 감시하는 차원으로만 접근하면 한계가 있습니다.

류현철: 노동자 참여를 좀 더 얘기해보면, 독일의 경우 산재보험 자체에 노동조합이 관여하도록 하고 있고, 노동자 평의회를 통해서 사업주의 안전보건 활동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국 산안법에도 노동자 참여가 보장되어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산업안전 보건위원회나 명예산업 안전감독관의 실질적 운영 문제가 제기되는데, 여기에 주의를 덜 기울이고 있는 게 아닐까요? 더 활성화하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부에서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위험을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야 할 텐데요. 타임오프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있는 것도 해결해야 하고요.

정진우: 저는 노동조합 있는 사업장과 없는 사업장의 차이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더욱 취약한 곳은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들이죠. 그곳에서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유명무실한 게 문제입니다. 노동부에서 이런 문제의식이 없는 것 같아요. 노동조합 요구에 대응하는 수준에 그치죠. 산재 사망사고의 대부분이 작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데, 안전보건 활동을 마련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습니다. 

독일의 종업원 평의위원회, 영국, 일본의 노동자대표제도와 같은 모델을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서 도입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안전보건에 의지가 있는데, 왜 이런 걸 하지 않는지 의문입니다.

안전보건 역량 강화를 위한 과제

최민: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의 입장에서는 노동부나 안전보건공단이 기업의 이해관계만 대변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습니다. 이번 현대제철 산재 사망사고 사례처럼 제대로 된 판단과 조치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고요. 행정의 측면에서 현장의 근로감독관이 노사관계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게 개선되어야 할까요? 인력과 예산을 더 투여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안전보건청 설립이나 조사 권한 확대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태선: 최근 인력과 예산이 늘고 있는 추세이지요. 지방 근로감독관을 늘려서 현장 인력을 확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본부의 인력 증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현장 점검, 사고 대응이 2차적인 전문성이라면, 1차적인 전문성은 어떻게 하면 자율 안전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입니다. 기술적 접근 외에 전략적 접근을 할 수 있는 인력이 중요합니다. 본부와 중앙의 정책 그룹을 확충해야 합니다.

정진우: 동의합니다. 그런데 해외와 비교하면 인력이 부족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만약 확충한다면, 인력의 정예화가 전제돼야 합니다. 채용, 경력관리, 교육 훈련 등 인사 문제와 관련해 개혁이 필요하고요. 시험 준비만 해보고 현장경험이 전무한 사람이 어떻게 정책을 제대로 수립할 수 있겠습니까. 현장경험을 축적하고 정책에 녹여낼 수 있도록 세심한 인사정책이 필요합니다.

강태선: 그걸 위해서는 담당자들에게도 유인이 필요합니다. 안전보건 전문가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런 조직에 어떤 걸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개별 담당과에서 하는 일을 총괄하고 성과분석 및 정책 입안을 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그런 곳에 안전보건 담당자들을 세울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하고 역량 강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해외 사례에 비춰 인력 수준이 상대적으로 비슷하다고 해도, 권한이 어느 정도인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충분한 정책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이어야 합니다. 안전보건청 같은 대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조직개편은 장기적인 과제 단계적 이행 전략을 수립해가야 합니다.

류현철: 구조적 문제 또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의역 김군, 고 김용균 투쟁 등에서 제기된 '위험의 외주화'가 안전 보건의 핵심 문제라 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안전보건 행정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나가야 할까요?

강태선: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려면 사고조사부터 제대로 해야 합니다. 사고조사에선 기술적 원인부터 구조적 원인까지 폭넓게 다룰 수 있습니다. 단순 처벌이 아닌 재발 방지를 위한 조사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적, 법적으로 위반요소만 찾을 것이 아니라 근본적 개선사항까지 밝히는 거죠. 조사보고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법에 반영하고 현장에서 개선하는 프로세스를 갖춰나가야 합니다. 

모든 걸 안전불감증으로 치환하는 건 문제지만, 모든 게 도급 때문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비약이 있습니다. 제대로 된 사고조사가 반복, 축적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관련 자료를 공개해서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대안들이 제출되어야 합니다. 안전보건공단이나 노동부에서 사고조사에 더 주의를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류현철: 건설업 다단계 하도급이나 특수고용노동자 등의 경우 예방적 차원에서 기술적 안전보건 문제만이 아니라 고용 형태, 산업구조를 바꿔나갈 필요가 있잖아요. 이럴 때 왜 정부는 법 제도를 적극적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요?

▲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정진우: 정부 부처 간 역할이 구분되어 있고, 문제해결에 서로 긴밀하게 협조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컨대, 불법 파견으로 인한 산재 사고의 경우, 누가 봐도 불법 파견인데 안전보건 관련 부서는 관심이 없고 다른 부서 소관이라고 눈감아 버리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만약 산업안전보건법에 특고 관련한 조항을 넣을 때도 더 세심하게 고민할 수 있는데, 특고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세우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 같아요. 건설 현장 안전감시단도 외주화하는데, 이를 산안법상 안전관리자처럼 허용해주는 것도 문제입니다. 안전관리자는 종합건설사가 직접 고용해야 하는데 말이죠. 전문성과 권한에서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이런 식으로 서로 일을 구분 짓고 책임을 미루는 것은 노동부와 공단이 직무유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범정부 차원의 긴밀한 업무 연계, 안전보건관리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강태선: 그런 점에서 지금과 같은 노력을 계속 기울여나가면 좋겠습니다. 진지한 노력에 대해서는 성과 여부를 떠나 칭찬도 하고 날카롭게 비판도 하고요. 함께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갈 수 있길 바라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최민: 오랜 시간 대담을 나눴는데요. 현 산재 예방정책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산재 예방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 더 많은 고민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특집2. 시스템을 구축하고 환경을 바꾸는 산재예방정책을 바라며 / 2020.07

[산재예방정책을 진단한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환경을 바꾸는 산재예방정책을 바라며

 

 

박기형 / 상임활동가 

 

지난 2019년,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했다. 산재 사망사고가 다발하는 일터 중에서도 건설 현장, 그중에서도 추락사를 줄이고자 했다. 시스템 비계 설치 점검, 안전패트롤 운영 등 추락사 예방정책을 시행하고, 행정력을 건설현장 안전점검에 집중했다. 이러한 조치가 현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만약 당장 효과가 드러나지 않기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면,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유효할 수 있을까? 정말 건설현장이 안전한 일터가 되기 위해선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이러한 질문을 안고, 지난 7월 1일 광화문 부근 카페에서 강한수 건설노조 토목분과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건설사들은 "안전관리능력"을 갖춰야 하고, 정부는 안전한 건설 노동환경을 갖추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택과 집중, 그 너머의 문제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2018년 타워크레인 사고 집중 점검, 2019년 건설현장 추락재해 집중 점검, 2020년 건설현장 화재사고와 질식사고 집중 점검 등 주요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특정 의제를 중심으로 대응해왔다. 건설현장에서 두드러진 사고유형별로 집중 점검을 시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우선 정부가 건설현장 안전에 관심과 의지를 갖고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것은 유의미한 변화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노동부가 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기엔 두루뭉술한 내용이 많았거든요. 그러니 현실에서 집행될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확실한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전략이라 할 수 있었죠. 하지만 문제는 선택을 하면, 포기하는 부분이 생긴다는 것이에요. 건설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고, 계속해서 발생하는 여러 유형의 사고들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죠.

특정 의제에 집중하더라도 여러 사고 형태들을 모아서 분석하는 일도 병행이 되어야 해요. 각각의 사안에 대한 세부대책 또한 마련되어야죠. 종합대책이 부실하면 그걸 탄탄하게 만드는 것으로 가야 하는데, 사회적 이슈가 된 사안에 건별로 대응하는 게 아닐까 우려스러워요. 단편적인 방안만 내놓는 게 아닐까 싶은 거죠. 이슈화된 특정 사안에만 관심이 옮겨가는 것은 그만큼 노동부 내 산업안전 관련된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닐까요?"

강한수 위원장은 사안별로 집중해서 점검하고 관련 대책을 시행하는 것이 해당 사안을 해결하는 데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집중점을 옮겨갈 때 그 효과가 지속될 수 있을지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약 타워크레인 집중점검에서 추락사 집중점검으로 정책의 강조점을 바꿔 갈 때, 타워크레인과 관련한 안전수준이 정말 올라간 것인지 평가하고,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단계라면 타워크레인 안전점검의 역량을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역량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기만 하는 것이라면, 안전관리가 누적되거나 증대해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부에서 이 점에 유의해서 산재예방정책을 검토·수립·시행하고 있는지 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2019년, 추락재해 예방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효과가 정말 나왔는지도 앞으로 지켜보면서 평가하는 일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과연 실제로 추락재해가 줄고 있는지 모니터링해야죠. 무엇보다 사망재해에 초점을 두고 했던 것인데 추락사로 이어지는 동안, 수많은 '아차 사고'가 있었을 것이잖아요.

또한 사망자만큼 중경상의 부상자도 많을 것이고요. 추락사가 줄었다면, 그만큼 중경상 사고도 함께 줄어든 것인지 점검이 필요해요. 집중을 통해 파급효과를 노린 것이라면, 사망사고 외에 다른 추락 관련 산재들도 줄어야 제대로 된 정책효과가 아닐까요?

나아가 파급효과가 있다면, 화재사고, 질식사고 집중점검으로 옮겨갈 때 추락 관련한 안전점검 또한 지속할 수 있을지도 평가가 필요하고요. 결국 중요한 문제는 집중점을 옮겨갈 때, 감독을 안 한다고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죠. 이러한 집중사업이 시스템을 구축하는 형태로 나아가는 촉발제가 될 수 있는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해요."
   
제대로 된 '자율안전점검'이 가능하려면?
   

"만약 안전 장구 미지급으로 착용하지 않아서 다치거나 죽었다면, 그걸 누구의 잘못으로 규정해야 하나요? 그럴 때 미착용으로 노동자 과실로 규정하는 게 타당할까요? 만약 지급했다면, 순시가 돌아다니면서 노동자들에게 안전벨트와 안전모 착용하라고 지적했어요. 그리고 노동자들도 착용했죠.안전관리의 주요 논리 중 하나가 바로 '자율규제'다. 그런데 과연 한국의 건설현장에서 자율안전점검이 가능한 조건일까?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안전점검, 관리·감독을 통해 현장에서 사업주와 노동자들이 함께 안전한 건설현장을 만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고 있을까?

"한국의 사업주들은 안전보건과 관련한 관리·감독에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할 거예요.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 '근로감독관 나왔을 때만 조심하면 된다', '이때만 바짝 조심하면 괜찮을 거다' 등. 예를 들어 중대재해가 발생했어요. 해당 사업장에 특별근로감독이 나오죠. 그러면, 너네 한 번 정신 차려 보라면서, 온갖 산안법 위반사항을 적발하고 과태료를 물리죠.

이렇게 징벌적으로 점검하는 방식이 반복되다 보니, 현장에서도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죠. 아무리 준비해봤자 걸릴 거 다 걸린다, 평소에 신경을 써도 못 피해간다는 부정적인 인식과 회의적인 정서가 뿌리 깊게 형성되어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집중점검정책이 끝나면, 다시 이전의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건설현장의 유해위험요인은 매우 다양하다.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만만치 않으며, 정부의 안전점검도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그런 점에서도 자율안전관리가 필요하지만, 현장 상황에 따라 역량이 천차만별이다. 현대건설, 포스코 등 대기업 건설현장의 경우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 등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꾸리고 운영하게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노동부나 안전보건공단도 소규모 건설현장에 더 집중하려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 대기업 건설현장에서 자율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건설현장 산재사망사고의 원인을 살펴보면, 관리가 되는 현장과 아닌 현장의 차이가 별로 피부로 와닿지 않아요. 다시 말해 건설현장 간 차이가 없는 것이죠. 건설 현장에서 산재사망사고가 다발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언제나 시공이 우선이 되기 때문이에요. 안전조치가 온전히 이뤄지고 나서 작업을 시작하는 건 어느 건설현장이 부족한 것이죠. 포스코의 경우엔 CCTV를 설치하고 안전관리자를 곳곳에 두고서 구역별로 상시 점검하고 있어요.

하지만 안전조치, 안전교육, 안전설비, 작업현장을 점검한 뒤 작업을 개시하는 안전관리 절차는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아요. 안전점검 이후 인력을 투입하지 않고 있죠. 작업 자체를 전문건설사에 위임하고 원청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감시·감독하는 형태로 진행하고 있는 식인 거죠. 결국 강압적인 안전관리가 이뤄지게 되죠. 안전패트롤 운영이 그 연장선에 있어요.

문제는 안전관리자는 원청이 직접 고용하지만 패트롤은 하청을 준다는 점이에요. 안전관리자들이 모든 현장을 다 확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안전팀 인력 중 일부를 용역으로 사용해요. 안전팀이 관련한 지시를 하고, 패트롤은 손발이 되어 돌아다니죠. 하지만 건설현장 안전 관련 지식과 권한이 부족하다 보니 제대로 된 점검이 어려워요. 물론 작업자들이 유해위험요인을 일하면서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안전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게 적절한 것인지 모르겠어요."

예컨대, 한 건설현장에 패트롤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거기서 콘크리트 타설작업이 이뤄지고 있죠. 타설 작업할 때, 펌프카가 엄청난 압력으로 콘크리트를 쏴요. 타설 지점에서 도킹을 잡은 사람, 옆에서 라인에 맞게 골고루 뿌리는 작업을 도와주는 사람 등이 여럿 모여서 작업하고 있어요. 문제는 펌프카의 바퀴가 떠 있는 채로 작업이 이뤄진다는 거예요. 쏘는 방향에 따라 특정 부위에 하중이 쏠리죠. 그때 지반침하로 인한 펌프카 전도가 자주 발생해요. 그러면 이 작업자 서너 명 중 한 명은 늘 사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위험이 늘 있다면, 타설 작업 전에 지반조사를 해야 하잖아요. 지반침하 위험이 있다면 타설작업을 중지하고요. 작업 재개 전에 충분한 조치가 취해져야 하고요. 그런 안전점검, 중지 및 재개 의사결정이 현장의 패트롤이나 안전팀을 통해 이뤄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점검체계가 갖춰진 곳이 별로 없어요. 그럴 권한과 역량이 부족해요. 더욱이 공사기간을 맞추는 게 최우선 원칙이다 보니, 안전점검할 시간적 여유도 없습니다. 작업중지하고 점검하는 데 따른 책임을 누구도 지기 싫어하게 되고요."

그 결과, 건설현장의 자율안전점검을 하더라도 대부분 작업자에 대한 규제 중심으로 좁혀지게 된다. 안전패트롤이 상주하면서 돌아다녀도, 노동자들이 안전장구를 잘 착용했는지, 작업자가 작업 과정에서 안전조치를 충실히 하고 있는지 등 작업자 개인에 대한 규율 위주로 점검한다. 사람의 행위만 통제하려는 방식 말이다.

이에 대해 노동자들은 안전을 강조하는 것에 반발감만 생긴다고 토로한다. 작업환경은 별로 바뀌지 않는데 노동자들만 못살게 굴고 귀찮게 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생기는 것이다. 왜 이런 행위자 규제 중심의 안전조치만 이뤄지게 되는 것일까? 이는 다단계 하도급이라는 구조적 요인뿐만 아니라, 안전사고 원인 분석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발판이 고장 나서 또는 난간이나 낙하 방지망이 없어서 추락하면 그때는 누구에게 과실이 있는 건가요? 자동차 사고의 경우, 운전자의 과실 여부를 주로 따지죠. 하지만 도로 설비가 부실했다면, 차선이나 신호등에 문제가 있었다면, 싱크홀 같은 게 생겨서 사고가 발생했다면, 그건 운전자의 과실이 아니잖아요. 노동자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 안전불감증 프레임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해요."

강한수 위원장은 건설현장의 '환경이 변화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건설현장의 안전시스템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동자 개인이 주위를 살피지 못했거나 실수를 했더라도, 다치거나 죽지 않을 수 있어야 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관점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정부기관, 지자체 등에서 건설현장 안전점검 보고서 및 개선 계획들을 제출한다. 하지만 건설현장 사고원인의 대부분은 노동자의 과실, 특히 개인 부주의로 기록되어 있다. 추락사 또한 개인이 안전고리를 착용하지 않고 일을 해서, 부주의로 발을 헛디뎌서 죽은 것이라고 적혀있기도 한다. 그런데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죽었다는 단순한 인과관계로 설명되는 추락사의 경우에도, 정말 노동자 개인만 탓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노동부가 작년 한 해 시스템 비계를 건설현장에 널리 도입하기 위해 취했던 여러 노력은 특기할만하다. 추락사가 벌어지는 환경적 요인을 개선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대부분의 산재사망사고의 원인은 개인의 기저질환, 부주의 등으로 기록되고, 대책도 안전불감증을 개선해야 한다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사고 원인을 무엇으로 규정하는가, 사고 조사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도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이를 위해 기존의 사고조사를 재검토해서 원인 규정부터 새로이 할 필요가 있다. 안전설비 부실, 작업 개시 전 안전조치 미비, 장구 미지급 등 다양한 환경적 요인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건설현장의 안전점검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책임을 명확히 묻는 것도 필수적이에요. 만약 안전조치하라고 잔소리만 한다고 행하는 건 아니잖아요. 스스로 할 마음이 들어야지요. 물론 마음을 먹어도 소홀하게 될 수 있으니 자극을 주거나 독려하는 등의 관리가 필요하겠죠.

다시 말해, 건설사 스스로가 바뀌어야 하죠. 집중사업 이후 건설사의 태도를 바꿔내기 위해 두 가지 방향의 조치를 취할 수 있겠죠. 우선 유인책이랄까요. 적정공사기간 및 적정공사금액을 보장하고, 안전관리비 계상 및 집행 등에 건설사가 안전관리를 더 잘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는 거예요. 그리고 재해율이 평균 미만일 때, 입찰 시 PQ점수를 조정해주거나 산재보험요율 줄여주는 것도 그렇죠.

문제는 유인만 제공하는 것으론 불충분하다는 거예요. 더군다나 건설사들이 악용할 수 있어요. 적당히 재해율 지표만 관리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산재은폐를 하거나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을 정도로만 조치하는 것이죠. 실질적인 안전조치를 하는 사람이 바보라는 인식이 생길 수 있어요.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나중에 걸리면 벌금만 내면 되고, 소송 가면 변호사만 잘 쓰면 된다는 식이에요. 책임을 적당히 지려고 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요. 그마저도 하청업체나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고 하고. 건설사들의 태도 변화가 쉽지 않아요. 그러니 강한 충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죠. 일정한 강제가 필요하니, 과태료나 벌금 강화, 경영책임자 처벌, 공공기관 공사 수주나 시공 자격 박탈 등의 요구가 제기되는 것이죠. 잘못을 확실히 밝히고 강력히 처벌해야, 적당히 넘어가야지 하는 수준 이상으로 안전에 관심을 쏟을 테니까요.

비유하자면 지금은 공부하는 사람이 제대로 공부하려고 하기보다는, 책상이 없어서, 의자가 불편해서, 더운데 에어컨이 없어서, 필기구가 안 좋아서 공부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공부할 수 있도록 이거저거 사달라고 하는 수준에만 머물러 있어요. 물론 이렇게 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래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 중요하죠.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거잖아요.

모든 걸 정부나 하청업체, 노동자의 탓으로만 돌리려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죠.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만큼 그에 따른 책임을 부과하고 이행하지 않을 시 처벌하는 것도 필요해요.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유리한 것만 챙기려고 하는 것은 막아야죠. 은근슬쩍 넘어가지 않게 면밀히 감독하고, 원인을 제대로 밝히고, 확실히 처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규모 건설현장 관리 방안도 고민해야

추락사 예방을 위한 집중안전점검을 할 때,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소규모 건설현장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실제로도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더 많이 발생하며, 시스템비계와 같은 안전설비를 갖추지 않는 일이 더 빈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스템비계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여 시스템비계 공급을 늘리고 가격을 낮추는 등의 지원책 시행, 현장 안전점검 확대 등의 안전정책만으로 충분할지 되짚어봐야 한다.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안전조치가 미비한 이유는 단지 안전설비 가격이 비싸기 때문일까? 또는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안전관리 인력이 부족한 것은 단지 안전관리체계를 갖출 만한 인적, 재정적 여력이 부족해서일까? 왜 이런 안전관리 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지 되풀어 볼 필요가 있다.

"소규모 건설현장의 안전사고 예방이 안전점검만으로 가능할지 의문이 듭니다. 건설업의 경우 면허등록을 해야 해요. 신고제로 이뤄지죠. 건설산업기본법 규정에서는 종합건설업, 전문건설업 등 영업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토목·건축·산업환경설비 등의 내용에 따라, 법인과 개인의 경우에 따라, 자기자본금 기준이 책정되어 있어요. 갖춰야 할 전문인력의 규모도 있고요.

그런데 자기자본금이나 소지면허 등에 허위기재사항이 많고, 면허대여의 문제가 있어요.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서 일만 따고 다시 도급을 주는 경우도 많고요. 그러니 현장의 실제 관리자와 서류상 책임자가 다르거나, 더욱이 관리책임자 자체가 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해요.
 
그러니 시공 능력뿐만 아니라 안전관리 능력 자체가 확인이 안 됩니다. 건설업체 관리가 허술하게 이뤄지는 것이죠. 재정과 인력이 부족한 것은 단순히 소규모라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소규모여도 현장을 관리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들을 운영할 수 있는지 검토할 수 있는데, 그것 자체가 전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죠. 안전관리 능력이 없는 업체들을 난립하게 해놓고 영세하다고 봐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고 행정기관이 무책임한 것이죠.

무엇보다 건설현장은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안전, 건물을 짓는 사람들의 안전을 우선해야 하잖아요. 시공능력이라는 것도 건물 자체를 지을 수 있느냐의 능력인데, 건물을 짓는다는 건 마냥 세우는 게 아니라 튼튼한 건물을 안전하게 짓는 걸 묻는 거잖아요. 그러니 건설업 허가를 더 강하게 규제하고 더 면밀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적어도 규모에 상관없이 각 현장별로 안전관리책임자가 상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관리자 선임 기준도 조정하고, 선임만으로 그치지 않고 실제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안전한 건설현장을 만드는 것은 단지 특정 사고유형만 점검하는 일로 달성되지 않을 것이다. 집중과 선택의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해당 전략이 다양한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도록 제반 조건을 마련하는 일과 병행되어야 한다. 건설현장의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실효성 있는 안전조치가 작업 과정 전반에서 사전에 실행되는 등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스템이 안착할 수 있도록 더 체계적인 정책, 장기적인 계획이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란다.

특집1. 정책 목표에 기반한 '산재 발생 평가'가 필요하다 / 2020.07

[산재예방정책을 진단한다] 

 

정책 목표에 기반한 '산재 발생 평가'가  필요하다

 

최민 / 상임활동가  

 

이제 1년에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숨진다는 얘기는 많은 시민, 노동자들이 알게 된 것 같다. 산업재해 발생 건수, 사망자 수, 질병에 의한 사망과 사고 사망의 정확한 통계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전반적인 국가 통계를 모두 표와 그래프 형태로 제공하는 통계청 포털에서도 지난 20여 년간의 업종별, 성별, 산업재해 발생 건수와 사망자 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 매년 고용노동부(노동부)는 지난해를 기준으로 '산업재해 발생 현황'을 발표한다. 여기에는 해당 연도의 전체 산업재해 발생 현황과 개요, 주요 특징 등이 담겨 있어, 노동부가 산재 통계 중 어떤 부분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4월 27일 노동부는 '2019년 산업재해 발생 현황'을 발표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2020명으로 이 중 사고 사망자는 855명, 질병 사망자는 1165명이었다. 2018년에 비하면 전체 산재 사망자 수도 122명이나 감소했고, 특히 사고 사망자 수가 크게 줄었다.

사망 만인율도 줄어서 2018년 1.12에서 2019년 1.08이 됐다. 질병사망 만인율은 오히려 증가했지만, 사고사망 만인율은 10% 가까이 줄어 0.46이 됐다. 하지만 2022년까지 산업안전 분야에서 사고 사망률을 절반으로 낮추겠다는 공언을 달성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특히 사고사망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려는 더 커진다.

 

▲   한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재사고로 사망한 노동자가 쓰고 있던 안전모


  
건설업 사고사망, 예방 정책 때문에 줄어들었다?
  
2020년 1월 초, 노동부는 2019년 산재사고 사망자가 2018년에 비해 116명이나 감소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는 1999년 사고사망자 통계가 시작된 이후 가장 큰 감소 규모라고도 했다. 특히 건설업 사망자 수가 485명에서 428명으로 57명이나 감소했고, 이는 선택과 집중 방식의 사업장 관리·감독, 발로 뛰는 현장 행정 때문이라고 했다. 전체 산재보험 대상 근로자 수가 나오기 전이라 '사고사망률'을 알 수 없는 상황인데도, 이례적으로 일찌감치 현장 패트롤이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2019년 산업재해 발생 현황'의 결과는 이와 다르다. 건설업에서 사고사망자 숫자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건설업의 사고사망만인율은 1.65에서 1.72로 오히려 늘었다. 건설업 사고사망자 숫자가 줄어든 것은 산재예방정책이 효과를 거뒀기 때문이 아니라, 2019년 건설 경기가 나빴기 때문이었다. 건설업 노동자가 줄어서 사망사고도 줄어 보였던 것뿐이다.

 

▲   2015~2019 건설업 사고사망자 수 및 사고사망만인율 추이


  

건설업은 2018년에 비해 산재보험 대상 근로자 수가 45만 명가량 감소했기 때문에 사망 만인율이 오히려 증가했는데도, 사망자 수가 57명이나 감소한 것이다. 만인율이 줄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 2018년 수준의 사망률만 유지됐어도, 건설 사고사망자는 410명이어야 하는데, 이보다 많은 428명이 건설업에서 사망했다는 뜻이다. 2018년 수준의 사고사망 만인율만 유지됐어도 죽지 않았을 노동자 18명이 오히려 더 죽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노동부와 안전공단의 사망사고 감소 대책의 주요 대상이 '건설업'이었다는 점이다. 노동부와 안전공단은 2018년부터 추락사고 예방 중심, 건설업 안전 비계 설치 중심의 사고사망재해 예방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쳐왔다. 2018년 건설업 사고사망자 수는 20여 명 감소했지만, 사고사망 만인율은 줄어들지 않았다.

2019년 초 노동부는 2018년 5월 이후 건설업 산재예방 사업을 본격화했기 때문에, 아직 효과가 나타날 시간이 부족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타워크레인에 대한 관리 후 타워크레인 사망사고가 줄어드는 등 성과가 있었고, 늘어난 사고사망 숫자는 산재보험 적용이 확대되어 ▲ 산재로 인정되는 사고 사망이 증가했고 ▲ 이전 년도에 사망했지만 유족급여를 뒤늦게 받은 경우가 포함돼 있어, 당해연도 발생 사고사망자 수는 감소하고 있다고 평가했었다.

우리는 당시에도 변명 대신 건설업 산재예방활동 중간 점검과 진지한 평가를 요청했다. 건설업에서 사망사고 건수나 사망 만인율이 큰 차이가 없더라도, 집중 예방활동을 하는 추락사고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그 효과는 어떤 규모의 건설 현장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는지, 아직 뚜렷하지는 않지만 이런 예방활동이 앞으로 성과를 거두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지 등의 분석이 필요했다.
   
단순 통계가 아닌, 정책 목표에 따른 평가를

그러나 노동부는 이런 분석 없이 2019년에도 시스템비계 설치를 통한 추락 사고 예방, 현장 패트롤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건설업 사망 만인율은 또 줄지 않았다. 지난 5년간 건설업 사망 만인율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현장 패트롤을 통해 어떤 효과를 거두려고 했는지, 그 목표는 어떻게 달성되고 있는지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으면, 결과론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고, 건설업 사고사망자 수 혹은 사고사망 만인율이 줄어들지 않으면 건설업 집중 예방 활동이나, 현장 패트롤을 지속할 근거도 사라진다.

처음으로 산재예방정책이 구체적인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접근하고 있는데, 섣부르게 비판하는 것은 아닌지, 1~2년 사이에 당장 가시적 효과가 없다고 비판하는 것은 근시안적이라든지, 오히려 고용노동부와 공단은 산재 예방을 새로이 접근해보려고 하나 행정력이 부족해서 그 효과가 잘 안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예산과 사람을 더 투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산재보험이 집계하는 건설노동자 추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건설업에서 산재 사고사망률이 증가한 것 자체가 착시라는 주장도 있다.

건설노동자 사고사망자의 절대 숫자가 감소한 것은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나, 위와 같은 주장들이 근거를 가지려면, 계속 강조하는 대로 시스템 비계 설치 독려와 패트롤 중심의 안전공단, 고용노동부 산재예방 사업이 어떤 점에서 효과를 거두고 있고, 어떤 점에서 부족한지 진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당장 현재의 전략을 바꾸거나, 유지해야 한다는 단편적인 '싸움'이 아니라, 제대로 된 분석과 평가, 토론이 필요하다.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사망자 감소

전체적으로 산재사고사망이 감소하고 있는 것도 산재 사고 사망 예방 정책에 힘입었다기보다, 산재율이 높은 업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것의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전체 사고사망률 평균보다 사고사망 만인율이 낮은 업종의 비중(기타의 사업, 기타, 전기·가스·수도업의 합)은 2017년 56.2%, 2018년 57.7%, 2019년 59.7%로 계속 높아졌다. 산재예방정책이나 안전조치 등이 특별히 달라지는 게 없어도 산업구조 변화만으로도 산재 사망사고는 줄어드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산업별 사망 만인율의 변화를 보면 사망률이 높은 임업과 광업, 건설업에서는 사망률이 오히려 증가했다. 운수·창고·통신업에서 사망 만인율이 가장 크게 감소했고, 원래 사망 만인율이 낮은 편이던 기타의 사업에서도 사망 만인율이 0.03명(1만명 당) 감소한 것을 제외하면 제조업을 비롯한 나머지 산업에서 사망률은 큰 변화가 없다.

특별한 노력 없이 2018년의 산재사고 사망률이 그대로 유지된다 하더라도 2019년에는 사망자 수가 893명으로 총 78명 감소했을 것이다. 일종의 자연감소분이다. 그러나 2019년 실제 사고사망자 수는 855명이므로, 추가 감소 사망자 수는 38명이다.

노동부는 2018년과 비교했을 때 사고사망자 수가 116명이나 줄어든 것은 성과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 116명의 사고사망자 감소 중 사망사고 발생 위험이 낮은 산업 비중이 높아지는 산업구조 변화로 인해 발생한 일종의 자연감소 사망자 수는 78명, 행정과 정책의 개입 등으로 인해 이보다 더 많이 추가된 사망자 수 감소분은 38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최근 3년간의 산재사고 사망자와 사망률 변화 역시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영향이 더 크고, 산업안전 실태가 개선되어 발생한 변화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법이 있고, 체계가 있고, 행정 인력이 있는 나라라면 당연히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자연감소 이외의 사고 사망이 감소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산재 통계의 목표는 '일터를 안전'하게 하는 것
   

▲   정부는 산재 통계의 수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일터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산재 통계의 수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일터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하는 것이다. 산재 예방 정책이 시기별로 목표로 삼는 산재사망률 혹은 재해발생률은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보다 효율성, 이윤 등을 중시하는 관행이 쉽사리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제대로 된 정책이 시행되더라도 효과가 나타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다양한 지표들을 활용한 분석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이유를 분석하고 이에 따라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새로 수립해야 한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지속해야 할 정책 과제가 있다면, 이를 설득해야 한다.

노동부와 안전공단은 2018년부터 해 오고 있는 산재 예방 정책과 그 목표 지표에 대한 평가, 산재 사고 사망 감소를 위한 전략과 전술에 기반한 분석, 그리고 이에 따른 예방 정책에의 시사점을 제안해야 한다. 현장 패트롤, 시스템비계 도입과 같은 기술적인 접근 외에 원청 책임 강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건설현장 불법하도급 근절 등 '큰 얘기'를 계속 주장하는 건설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이를 산재예방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노동부가 산재 발생 현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산재 사망률도 줄어들고 일터도 조금 더 건강하고 안전해질 것이다.

특집3. 단결권 보장을 통해 만들어갈 노동권 사각지대의 노동운동 / 2020.06

[노동권 회색지대에 맞서다③] 

 

 

단결권 보장을 통해 만들어갈 노동권 사각지대의 노동운동

 

 

박기형 / 상임활동가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일하는 사람들에게 당면한 물음이 있다. 우리는 '노동자'로서의 법적 지위와 그에 걸맞은 권리를 누리고 있는가? 

특수고용 노동자(아래 특고)나 플랫폼 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겪는 안전보건 문제를 얘기할 때마다 '노동자성' 문제가 근본적인 쟁점으로 거론된다.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음에 따라, 이들이 겪는 문제는 노동법뿐만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 등 제도 내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더욱이 노동자 스스로 요구하지 않으면 논의조차 되기 어렵다.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함께 모여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조차 쉽지 않다. 이런 난관을 넘어서기 위해 그동안 노동운동계에서는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전태일 3법 제정'의 의미와 노동운동의 과제는 무엇일지, 지난달 19일 박정환 서비스연맹 정책기획국장을 연맹 사무실에서 만나 얘기를 나눠보았다.

 

서비스연맹 박경환 정책기획국장을 만났다.


노동권 사각지대의 핵심 쟁점, 노동자성 인정

박정환 정책국장은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는 일이 난관이었다고 말했다. 서비스연맹에서도 특고와 플랫폼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벌였는데, 그때마다 부딪혔던 문제가 바로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 특히 설립 필증을 받는 것이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제10조(설립의 신고)에 따르면, 설립신고서를 접수하면 행정관청에서 3일 이내에 신고증을 교부하게 돼있다. 물론 법에 규정된 사항에 따라 행정관청에서 설립신고서를 반려하거나 보완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정당한 이유 없이 신고필증을 기간 내에 교부해주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박정환 정책국장은 가전통신서비스 노동자의 사례를 들며, 노동조합 설립에 대한 법적 인정 문제를 지적했다. 서비스 연맹 산하의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 코웨이 코디·코닥지부는 노동조합 설립 필증을 받는 데 무려 103일이나 걸렸다.

회사와 노동부를 상대로 한 투쟁 끝에 지난 5월 13일 노동조합 필증을 발부받았다. 그리하여 가전제품 방문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법적 지위를 보장받고 집단적으로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동안 행정관청에서는 노동자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인정해주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요. 노조법에서는 신고제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행정에서는 허가제처럼 운용되고 있었죠. 최근 노동부 또한 노조설립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있다지만, 여전히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처럼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 대해서는 보수적이었죠. 

노조법 제2조를 개정하는 것은 이러한 노조설립 절차를 변화시키는 것이죠. 합법노조와 불법노조, 법외노조 구분이 의미가 없어지는 거예요.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결사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죠."

전태일 3법 중 한 축은 바로 노조법 제2조를 전면개정하는 것이다. 현행 노조법 제2조 제1항은 노동 3권을 보장받는 근로자를 임금으로 생활하는 자로 한정한다. 같은 법 제2조 제2항은 사용자를 해당 사업의 사업주 등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제1항을 개정해 '특수고용노동자의 단결권'을 쟁취하고, 제2항을 개정해 '원청의 사용자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에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단결권 보장, 자주적 노동운동의 기초

노동자들의 집단적 움직임이 중요한 이유는 일터의 노동환경을 노동자 스스로 바꿀 수 있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은 단결권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단체교섭을 하더라도 사업주와의 교섭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노조로서 안정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함에 따라, 안전보건 문제를 논의하거나 작업환경을 바꿔나가는 일에서도 충분한 역량을 마련하거나 발휘하기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사업장 바깥에서 정부와 법원의 조치가 이를 대신하면서, 제대로 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기도 했다. 

특수고용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법적 지위를 보장받게 되면, 더 확실한 자주성을 획득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조건에 맞게 요구를 만들고 관철시켜 나갈 수 있다.

물론 노조를 결성하고 단결권을 보장받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서비스업처럼 고용구조가 복잡한 경우, 교섭을 진행하면서 드러내고 대응해야 할 쟁점이 많다.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것뿐만 아니라, 사용자성을 드러내고 복수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각각의 책임을 구체화하는 게 필수적이다. 박정환 정책국장은 면세점 노동자의 사례를 소개했다

"산업구조와 고용구조가 복잡해지면서, 노동권 사각지대가 만들어지는 거 같아요. 서비스업이 대표적이죠. 면세점의 서비스노동자는 면세점의 여러 가게 중에서도 특정 브랜드의 매장에서 일하고 있죠. 그런데 면세점이나 해당 입점 업체가 아닌 면세점 판매위탁법인에 고용되어 있어요. 면세점-입점 업체-판매위탁법인 3자 간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서, 인력을 공급받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면세점 서비스노동자가 일하는 장소가 면세점과 해당 매장이라는 점이에요. 예컨대 화장실 개선, 의자 비치 등 노동환경 개선 요구를 하려면, 면세점과 매장과 협의가 필요한 거예요. 고객 응대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노동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죠. 

결국은 지시·관리·감독 등의 실질적 사항 즉, 공동사용자성을 문제 삼아야 하죠. 면세점 위탁법인과 협상 후 업체와 면세점에 요구를 전달하는 이중 교섭 전략만으론 한계가 있어요. 실효성 있는 조처를 하게 하고 실질적인 종속관계를 드러내기 위해선 이들 모두와 교섭할 수 있어야 해요. 노조법 제2조 개정이 그 발판이 될 수 있어요."


플랫폼 산업,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플랫폼 산업 또한 서비스업과 유사한 구조를 지니며, 노동자성 인정을 위한 투쟁의 연장선에 있다. 온라인 플랫폼, 클라우드 등이 노동을 매개하는 새로운 창구로 등장하게 되면서, 복잡한 노동관계의 또 다른 유형이 등장했다. 

동네 배달대행사와의 위탁계약이나 인력관리업체와의 아웃소싱 계약 등을 맺음으로써,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복잡해진다. 이에 따라, 법이 규정한 사용자와 노동자의 지위는 현실에 대입할 때마다 불명확해진다.

그럴 때,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한편에서는 플랫폼 자본주의, 플랫폼 산업이라 불리는 것들은 '혁신'과는 거리가 멀며, '새로운 노무관리' 수단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기존 노동자 개념으로부터 배제된 노동자들을 포함시키기 위해 법규정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특수고용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온전히 전통적인 노동자성 개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현실적 문제들이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자영업자로서의 특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지, 복수의 사용자가 있을 때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사업장 변경이 잦은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법적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지 등의 문제가 남는다. 그리하여 법제도를 단순히 확장하는 것으론 부족하고, 기존의 노동자 개념 자체를 문제삼아 재규정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얘기되기도 한다.

박정환 정책국장은 이러한 논쟁 가운데 중요한 것은 해당 산업과 노동시장 내에서 질서와 규범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누구까지 사용자와 노동자로 볼 것인지, 그때 말하는 사용자와 노동자는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다퉈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주적 노동운동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며, 이런 점에서 전태일 3법 입법 요구가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는 것일 테다.

 

배달원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들이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배달 앱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배달료 보장, 지역 차별 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단결권 보장을 넘어선 노동운동의 과제
 

그럼에도 남는 문제는, 단결권이 법적으로 보장된다고 해도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온라인 플랫폼으로부터 일감을 할당받는다. 그러니 다른 노동자를 한정된 일감을 두고 경쟁하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임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지금과 같은 고용 형태를 감내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에 따라 노동자들 간의 연대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서비스업 특고의 경우 고용 기간이 짧은데, 이는 노동조건이 불안정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동자가 이직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이직을 통해 자기 가치를 올려 더 높은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고, 상황에 따라 노동시간을 조정하거나 잠시 일을 그만둘 수 있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서비스업 특고의 경우에도, 고용유지 및 소득안정 등의 문제를 놓고 고민이 깊었다. 이때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산재보험을 비롯한 4대 보험 문제 등 안전보건, 복지 의제와 관련해서, 노동자성 인정의 중요성 및 연대의 필요성 등을 알려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박정환 정책국장 또한 서비스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안전보건과 복지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자 노조 활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안전보건을 비롯한 다양한 노동 의제를 함께 고민하고 투쟁하기 위한 집단으로서의 단위, 노동조합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전태일 3법 제정을 계기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화가 더욱 활성화되고, 나아가 플랫폼 노동자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플랫폼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특집2. 법이 허용해온 노동권 사각지대,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권 회색지대에 맞서다②] 

 

 

법이 허용해온 노동권 사각지대, 특수고용노동자 

 

 

지안 / 상임활동가 

코로나19 이후의 위기 상황은 한국 사회를 지탱해온 열악한 노동의 불안정성을 드러냈다. 현재 노동을 하고 있으나 법적으로는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단시간 일자리거나,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근로계약이 아니라 도급이나 용역 계약 형태라서, 일감과 노동자 사이를 중개만 한 것이기 때문에 등등.

이런 갖가지 이유로 인해 그동안 법이 허용해온 노동권의 사각지대에서 수많은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2018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그렇게 양산된 '임금노동자'도 '자영업자'도 아닌 노동자의 규모는 221만 명에 달한다.01

노동력이 필요한 시기에 열악한 조건으로 고용해 이윤을 창출하고, 위기 상황에는 쉽게 해고하는 자본과 그것을 합법적으로 허용해준 법이 불안정 노동자의 층을 지속적으로 양산한 것이다. 이들은 일상적으로도 고용불안과 차별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코로나19는 위험의 비대칭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냈다. 동일한 위기 상황이 고용 형태에 따라 달라지며, 불안정 노동자들의 심각한 소득감소와 무급휴가, 해고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산업과 노동의 변화에 따라 증가하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경우에는 표면적으로는 '자영업자'라는 점에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인 사회보험에서 배제되어있기에 더욱 문제적이다. 따라서 '노동자'의 법적 정의를 '모든 일하는 사람들'로 확대해야만 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고민 속에서 지난 5월 31일,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전국보험설계사노조 오세중 위원장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이대근 대외협력국장을 만났다.

전국보험설계사노조는 노동자성 인정 여부 때문에 아직 인가조차 받지 못한 상황이다. 화물연대는 얼마 전 노동부 지침에 의거한 집단 산재신청을 통해 화물노동자, 그리고 산재보험에서 배제된 노동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환기하고 있다. 이번 고용보험 개정에 대한 비판부터 코로나19 이후 특수고용노동자(이하 특고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사회보험, '시혜가 아닌 권리'02로 보장하라

지난 5월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는 고용보험법 개정을 의결했다. 정부가 '전국민고용보험제'를 이야기하는 상황에서도, 특고노동자는 여전히 개정안에 포함되지 못했다. 위기 속에서 고용보험의 사각지대가 얼마나 노동자들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드는지 드러났고, 이에 대한 응답으로 '전국민고용보험제'를 꺼냈지만 실제로는 특고보다 훨씬 작은 규모(5만명)의 '예술인' 직종만을 특례 조항을 통해 포함시킨 것이다.

이에 대한 시급한 비판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환노위 고용소위원회 임이자 위원장은 특고가 이번 개정 논의에서 제외된 까닭을 범위가 넓어 쟁점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선 범위가 크다는 것은 단순히 법 개념의 적용 범위가 크거나 불분명하다는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실제의 삶이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고용불안과 생계 위협 속에 있다는 의미다.

이미 산업의 변화 속에서 특수고용·플랫폼·단시간·일용직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여전히 수세적인 법 개정은 전통적인 근로관계에 준거해 땜질에 그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에게 집중된 극심한 위기 상황에서도 사회보험 체계의 근본적 변화가 불가능하다면, 대체 언제까지 평등을 유보해야 하는가?

나아가 화물연대가 성명을 통해 비판했듯이, 2018년 특고, 예술인 노동자가 함께 논의하고 제기한 결과 만들어진 한정애 의원 발의안(2018.11.6.)에는 적용대상 "근로자가 아니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 수령자로부터 대가를 얻는 사람으로서 이 법에 따른 보호의 필요성이 있다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었고, 또한 실업급여 등 고용보험 혜택을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지를 규정하는 제도적 설계가 포함되어있었다.

"특고를 고용보험에 포함시키면 실업급여 등 부정수급이나 악용사례가 있을 것이라는 비판이 있는데요. 2018년 논의된 합의안에서는 기존 실업급여 납입일 기준인 180일이, 특고의 경우 12개월로 설정되어있었어요. 악용을 막을 장치를 '보수적으로' 마련해 둔 거죠. 그러니 이런 비판은 근본적으로 고용 관계에 대한 사업주 책임성과 고용보험료에 대한 부담을 비가시화하는 핑계입니다." - 전국보험설계사노조 오세중 위원장

또한 이러한 포함 방식 자체에 대해 비판할 필요가 있다. 의결 이후 5월 12일 문화예술노동연대는 노동권이 시혜가 아닌 권리로써 주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명시하며 개정안을 비판했다.

당초 예술인, 특고 노동자들이 줄곧 제기하고 싸워 마련한 결과로써 한정애 의원의 발의안(2018.11.6)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고용보험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논의 과정이 묵살 당한 채 '특례조항'의 형태로 예술인만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기존 법체계를 바꾸지 않고, 특정 직종만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평등한 노동자의 권리로써 노동법 적용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올해 7월 1일부터 화물노동자 중 일부 직종도 산재보험에 포함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화물노동자 중에서 극히 일부 품목을 다루는 화물차의 노동자만 포함이 되었고, 두 번째로 과반 소득을 얻는 사업장이 있어야 적용이 됩니다. 비록 산재보험의 예시를 들었지만, 이렇게 몇몇 직종들만 추가되는 식으로 법이 개정되면 특고 노동자가 광범위하게 포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전속성의 정도를 따지고 결국 사용자가 누구냐는 이야기로 전도됩니다." -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이대근 대외협력국장

지난 5월 고용보험 개정 의결 당시, 환노위는 21대 국회에서 특고에 대한 적용 논의를 다루겠다고 하였고, 본 인터뷰가 이루어진 이후 6월 9일 21대 국회에서 다시 개정 법안이 발의되었다. 우려한 대로 20대 국회에서 '예술인'이 특례로 규정된 것처럼, 이번에도 특고 중 산재보험에서 규정하는 9개 직종만 특례로 도입되는 방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당초 의결안에는 없었던 '노무제공계약을 체결'한 경우라는 제약이 추가되었다.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대책위 역시 이 규정 하나로 인해 실제 사업주와 직접 계약을 맺지 않는 방식으로 일하는 수많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제외된다는 점을 비판했다. '특례' 형태로 적용 제외된 노동자 중 일부만을 다시 법 안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산업 특성, 고용구조의 문제로 인해 사회 안전망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보편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속 특수고용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문제

가장 열악한 노동 계층이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는 경험적인 사실을 드러낸 통계가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특수고용노동자의 소득감소가 정규직 대비 30%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즉 노동시장 취약계층에게 위기의 영향이 집중되고 있다. 03

그렇다면 현장에서 체감하는 코로나19 이후의 상황은 어떨까. 보험설계사노조에 따르면, 소득감소 상황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첫째, 고객을 대면해 보험 상품을 설명하고 계약을 체결하는 설계사의 노동 특성상 실제 보험 계약 건수가 낮아졌다. 이는 대부분 100% 성과에 따른 임금을 받는 보험설계사들의 경우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

둘째, 소득감소를 노동시간 증가를 통해 모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동일한 임금을 받기 위해 이전에는 8시간의 노동을 했다면, 다수의 설계사들이 스스로 노동시간을 10~12시간으로 증가시킴으로써 성과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임금이 100% 성과제로 구성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비)자발적인 장시간 노동은 필연적이다. 위기에 대응하는 노력은 개인의 책임이 된 사이, 성과의 이윤은 앉은 자리에서 보험사가 나누어 가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안전 및 건강 문제를 규제하고 감독할 방안 역시 구체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장시간 노동 자체의 건강 영향도 크지만, 노동시간이 증가할 경우 대면 노동자에게 더욱 취약한 감염병 위험 역시 문제다.

"감염병 관련 예방 대책은 전무한 상황이에요. 또 보험설계사들은 산재보험에서 규정하는 9개 직종 중 하나지만, 현재 보험설계사들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10%밖에 되지 않아요. 의무가입이 아니기에 노동자들이 제도를 잘 모르는 것도 있지만, 가입하려고 해도 회사에서 막는 경우가 많아요." - 전국보험설계사노조 오세중 위원장

감염병 유행 시기에 노동자들이 생계뿐 아니라 건강을 훼손하지 않도록 산재보험이 폭넓게 적용되어야 하고, 이미 적용된 직종 역시 실질적으로 가입 및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의무가입화 해야 할 것이다.

화물노동자의 경우 97년 합법화된 지입제의 도입 이후로 등록은 운송사 명의이더라도 화물 운송에 필요한 차량은 직접 구매하고 있다. 화물 운송 차량은 1~2억을 쉽게 호가하기 때문에 대부분 캐피탈사를 끼고 할부금과 이자를 갚아 나간다. 그래서 물량 감소로 인한 당장의 생계비도 문제지만, 소득이 없어도 한 달에 200~300만 원에 달하는 고정비용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경제적 위협이 되고 있다.

이런 경제적 위협은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에도 악영향일 뿐 아니라, 특히 화물노동자에겐 과적, 과속을 하게 되는 기제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월 50만 원씩 총 150만 원을 지원하는 특고 대상 지원 정책이 얼마나 큰 실효성이 있을까. 노동자들의 삶이 하루 빨리 안정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법, 정책의 변화가 시급하다.

게다가 스스로 노동시간을 늘려 소득을 보전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소득감소'를 기준으로 하는 정부의 특고 지원정책은 무효한 상황이다. 또 3~4월 감소분을 기준으로 특고 노동자를 지원하는, '시기'의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물류 산업의 특성상, 코로나19 이후 전체 물량이 줄어도 항구 컨테이너에 집적된 분이 있기에 실제 화물노동자에게 소득감소 타격이 오기 시작하는 것은 다른 산업보다 뒤늦다. 이런 정부 정책 전달의 공백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 특성을 다면적으로 반영하지 못한 결과다.

배제 없는 사회 안전망 구축하라
 

법을 누더기처럼 개정한 결과, 사회보험을 둘러싼 현장의 쟁점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산재보험 적용 직종이더라도 세부 기준에서는 누락되는 직종이 너무 많은 화물노동자, 그리고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기에 제도의 실질적 효과가 미미한 보험설계사들, 법의 사각지대에서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안전보건 문제가 누락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화물연대의 집단 산재신청의 의의는 무엇인지 물었다.

"7월1일부터 시행되는 산재보험 적용대상은 전체 화물노동자 중에 극히 일부이지만, 일하다가 업무 외 작업 때문에 다치는 사고에 대해서는 전 직종 화물노동자에게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노동부 지침이 신설되었어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업무 지시가 없었다고 발뺌하거나, 화물운송법상 차주의 의무(적재물 낙하 방지 조치, 복포작업, 밴딩작업)를 가지고 업무 외 작업이 아니라고 해석할 것이 우려됩니다.

상하차 작업은 화물노동자의 업무가 아니지만, 막상 현장에 가면 인력 부족으로 스스로 작업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낙상사고 또는 물체에 의해 깔리거나 다치는 사고가 빈번해요. 차주의 업무냐 아니냐를 따지지 않고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관행적 지시를 폭넓게 승인해야 실질적으로 화물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거예요. 집단 산재신청을 통해 그런 의미를 알리고 싶고, 현장에도 잘 안착되길 바랍니다." -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이대근 대외협력국장

화물연대의 집단 산재신청 역시 현장의 노동을 충분히 반영해 지침의 취지를 살리자는 의미가 크다. 마찬가지로 코로나19에 대한 정부 정책과 사회보험 논의도 애초 취지를 살리고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한다. 특히 산업이 다변화하고, 점차 사업주를 가리는 것이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노동의 형태가 달라진 시대에 더 이상 전속성, 종속성이 적용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

전속성이 불분명한 노동이 벌어들인 이윤은 대자본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고용은 물론이고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은 더욱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며 등한시될 것이다. 위기를 통해 근본적인 법체계를 변화시키고 배제 없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나가야 한다.

 

 


01 
여기서 특수고용노동자의 규모에 대해서는 ⑴ 이전까지 정확히 통계화 되지 않았고 ⑵ 기존의 특고의 범위를 너무 좁게 설정했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전체 노동자에서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추산했다. '디지털 특고'로 불리는 플랫폼 노동자 55만 명은 기존 정의된 특고보다 종속성은 더 약하지만,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의 경계에 있는 존재다. 따라서 이 글에는 양 집단을 합산한 221만명을 기술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규모추정을 위한 기초연구>, 정흥준, 2018

02 
2020년 5월 12일, 문화예술노동연대 성명 중.

03
<코로나19 비정규노동의 현실과 고용안정 방안>, 황선웅, 직장인 1천명 코로나19 설문결과와 건강·일자리 긴급토론회, 2020.5.12.

 

특집1. 노동안전보건의 경계를 허무는 전장, 노동자성 인정 / 2020.06

[노동권 회색지대에 맞서다①]

 

노동안전보건의 경계를 허무는 전장, 노동자성 인정

 

 

류현철 / 한노보연 소장, 직업환경전문의 

 

'평등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평등한가'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사회적 규범과 법제도의 경계를 문제 삼으면서, 경계를 무너뜨리고 확장시킨다.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의 문제를 다룰 때도 이 문제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현재의 평등과 차별의 경계를 인정하고 방치하거나, 때로는 조장하고 강화하는 법 제도에 대한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이다.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경계를 문제 삼다

근로기준법은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의 위임을 받아 '산업 안전 및 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노무를 제공하는 자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하겠다고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산업재해보상보험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하여 이에 필요한 보험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재해 예방과 그 밖에 근로자의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법이 만들어진 취지가 온전히 지켜지고 있을까?

전형적인 근로계약관계나 사용종속관계만을 대상으로 해온 근로기준법을 위시한 노동법제와 정책은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수고용노동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의 등장은 근로기준법의 경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소위 '특수고용'(이하 특고)의 본격적인 등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부도의 불안감을 극대화시키면서, 정부는 정리해고 합법화, 파견노동 도입 등 노동유연화 정책을 시행하였고, 이로 인해 전통적인 고용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특수한 형태의 '자영업자'가 늘어났다.

예컨대, 건설회사는 고용하고 있던 대형트럭 기사들을 해고하고, 계속 일을 하고 싶으면 트럭을 구매하여 회사와 일대일 계약을 체결하고 수수료를 받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화물트럭기사나 택배기사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근로계약을 가진 노동자에서 위·수탁계약을 하는 독립 자영업자로 노동시장 내 지위가 변했다. 이렇게 시작된 한국의 특고 종사자는 보험설계사, 방문판매원, 학습지교사, 대리운전기사 등으로 확대되어 왔다(정흥준, 특수형태고용종사자의 현황과 실태, 2019). 

노동자성 은폐로 만들어진 회색지대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이러한 과정을 기업이 근로자(employee)개념에 대한 정교한 조작을 통해 노동법을 회피하는 데 성공해 왔으며, 이를 통해 기업이 마땅히 부담해야 할 비용들을 사회에 전가해왔던 과정이었다고 규정한다. 특히 기업은 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닌 존재로 은폐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노동자를 자영인으로 오분류하게 만들었고, 그들이 마땅히 누렸어야 할 노동법적 보호가 박탈되고 말았다(권오성, 플랫폼 유니온 출범의 기회와 도전, 2020).

택배노동자였으며 동시에 만화작가였던 이종철은 자신의 책 <까대기>(2019, 보리출판사)에서 "개인 사업자인데 개인 사업자의 자율성은 없고, 노동자인데 노동자의 권리는 없는 게 바로 특수고용직이죠"라는 대사를 통해 노동권의 회색지대를 지적했다.

하는 일이 똑같아도 종이 문서 한 장만으로 특고는 회색지대에 놓이게 된다. 그리하여 실은 강요이지만 자신의 선택이라는 포장된 채, 일과 관련한 모든 걸 자기 책임을 넘겨받는다. 그 대가로 근로기준법상의 부여되고 있는 근로자의 권리를 잃어버리고 만다.

이는 플랫폼 노동에도 마찬가지다.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해내는 과정과 거기에 결부되는 노동의 투입과 매개의 방식이 다변화되고 있다. 사회는 이것을 소위 4차산업혁명, 혁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와중에 기업과 사용자들은 오로지 책임회피의 측면에서만 창의적이고 희한한 고용계약 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점에서 특고의 문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플랫폼 노동은 장소라는 측면에서 산업화 이후로 등장한 공장형태의 공동 작업공간에 기반하지 않고, 노동(혹은 서비스)의 수요가 발생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지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플랫폼의 중개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작은 직무로 세분화된 초단기 일자리라는 특징도 가지게 된다. 이 속에서 전통적인 노사관계의 붕괴, 노동자와 사용자 간 경계의 모호성, 집과 일터 간 경계의 모호성 등이 발생한다. 그로 인해 노동과정에서의 건강위험은 상존하지만, 그에 대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는 어려워진다.

플랫폼 노동은 기술변화에 따라서 생산·소비 방식이 달라지고, 고용과 노동을 매개하는 방식이 바뀐다는 점에선 새롭다. 그러나 노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불안정한 노동을 활용하고자 하는 사용자의 전략이라는 측면에서는 특고의 등장 이래로 전혀 새롭지 않다.

안전보건의 관점에서도 유해·위험요인의 노출 결과로 나타난 손상이나 질환 등의 건강 문제에 대한 치료기법이 특고나 플랫폼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다를 바는 없다. 문제는 이러한 노동에서 마주치는 건강상의 유해인자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그 책임은 누구에게 두어야 사고와 질환을 예방할 것인가에 있으며, 또한 건강문제에 뒤따르게 되는 치료·보상·재활·생계에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의 부담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다.

또한 노출되는 유해요인 자체의 고유한 위험성을 넘어서, 건강의 사회적인 결정요인에 대해 주목하는 게 필요하다. 노동을 통해서 안정적으로 생활임금이 유지가능하지 않다면 개인은 노동시간이나 노동밀도를 높이고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며, 파편화된 노동에서 발생하는 건강상의 위험은 관리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윤을 취하는 이들은 어떤 책임도 나누지 않고 숨어있게 된다.

노동자성 인정이라는 전장

이에 대한 사회적 제약이 부재한 상황에서, 근로자성을 다투는 일이 격렬한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특고에 대해 국가는 산재보험제도로의 반쪽 편입이라는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2008년 산업재해보상법에서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함에도 '근로기준법' 등이 적용되지 아니하여 업무상의 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자"로서 법정 요건에 해당하는 자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자"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고 규정하여 최초로 법률상에 특고가 등장하게 된다.

기형적인 고용관행은 '특수형태'가 되고, 차마 근로자로 호명하지 못하여 '근로종사자'가 된 모양새였다.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함에도 '근로기준법' 등이 적용되지 아니하여 업무상의 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자" 가운데에서도 법정 요건(주로 하나의 사업에 그 운영에 필요한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할 것, 그리고 노무를 제공함에 있어서 타인을 사용하지 아니할 것)을 갖춘 자 가운데 산재보험법 시행령으로 정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자를 제한적으로 부르는 이름이 특수형태근로종사자다(박은정, 특수형태고용종사자에 대한 법적 보호, 2019).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2008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에서 최초로 규정된 보험설계사나 모집인, 콘크리트믹서트럭 운전자,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에서출발해서 현재는 택배원, 대출모집인, 신용카드회원 모집인, 대리운전기사, 방문판매원, 제품 방문점검원, 가전제품 설치 수리원, 컨테이너 운전기사, 화물자동차 운전사 일부까지 포함하고 있다.

직업군은 근로기준법이 아닌 보험업법, 건설기계관리법,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대부업법, 여신전문금융업법,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등등의 법률의 규정을 따르고 있다. 이러한 '특고'의 규모는 정의에 따라서 매우 편차가 커서 50만에서 230만까지 다양한 추정을 하고 있으며, 2018년 한국노동연구원의 '특수형태근로(특수고용)종사자의 규모추정을 위한 기초연구'에서는 166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정흥준·장희은, 2018).

특고 종사자의 규모 결과 출처: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규모추청을 위한 기초연구, 정흥준, 2018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에는 그 규모의 추정이 매우 어려우나 2018년 한국고용정보원의 '플랫폼경제종사자 규모 추정과 특성 분석' 보고서에서는 무작위 추출 표본조사 방식으로 최소 47만에서 최대 54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근로기준법은 기존 법률의 '근로자'의 개념의 고루함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수많은 노동자를 '노동자'라 불리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적용 제외를 '제외'하라

이름을 제대로 얻지 못하면, 권리에서도 배제된다. 노동자가 분명함에도 사업장의 규모에 따라서도 차별받고 있다. 이것은 근로기준법에서만이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고용특례업종, 영세업종(업주) 보호, 공익필수직종,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위험작업의 범위 등 여러 가지 설명을 곁들여 이들 법의 적용범위에 '차이'를 두고 있고, 이는 노동자들의 권리와 일터의 안전과 건강문제에 있어서 '차별'을 낳는다. 사용자와 사업주가 지켜야 할 기준 적용에 있어서 예외(특례)는 결국 불평등을 낳고, 이것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의 수준이 낮아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일수록 권리의 박탈과 건강과 안전상 위험이 높아질 것이다.

변화하고 있는 존재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지 않고 법을 통해 포괄하고자 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차별과 배제를 낳게 된다. 합리적 이유나 설명 없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하는 예외규정을 손봐야 한다. 단지 사업장의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자신의 권리에 대한 제약이 따르고, 안전과 건강문제에 대해서 작업환경이나 업무의 위험성과 그에 따른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관리 전략에 따른 것이 아니라, 사업주의 경제적 여건이나 기형적인 계약 관행에 따라 적용을 달리하는 것은 차별이다.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여 향상하고,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 증진하기 위한다는 법의 예외는 그 목적(법익)에 충실히 부합하는 한에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예외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인정되어야 하며, 그 어쩔 수 없는 이유라는 게 누구의 이해에 맞닿아 있는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노동자들이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고, 안전하고 건강할 '권리'가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플랫폼 혁신'이라는 허울 좋은 말이나 '특고'라는 족보 없는 단어 사용을 지속하면서, 새로운 고용 관계들에 대한 적극적 해석을 방기하거나 법제도 내로 포괄하려는 노력이 결여된다면, 권리의 사각지대는 자꾸만 넓어질 뿐이다.

사업의 규모나 사업주의 여건을 고려한 적용 제외조항이 남아있는 한 고용 관행의 왜곡은 지속될 것이며, 위험의 외주화는 계속될 것이다. 그로 인해 법률상 권리도 조직력도 없는 노동자들은 더욱 위험해질 것이다.

법의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발된 기묘한 편법들을 방치하게 되면, 법은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한 채, 본연의 목적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여러 번 주장하거니와 모든 노동자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적용제외 조항을 제외하여야 한다. 새롭게 시작되는 21대 국회에서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법 보장, 중대재해기업처벌법(기업살인법) 제정으로 대표되는 '전태일 3법'이 반드시 관철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특집3. 평등한 생존 : ‘K-방역’이 말하지 않은 것 / 2020.05

평등한 생존 : ‘K-방역’이 말하지 않은 것

 

전주희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앞으로의 세상은 코로나 전(BC:Before Corona)과 후(AC:After Corona)로 규정지어질 것'이란 말이 유행처럼 돌고 있다. 코로나19는 정치, 경제에서 일상적 삶의 풍경까지 전지구적 차원에서 우리 모두 공동의 시간대를 경험하게 만들고 있다. 집, 학교, 도시, 국경 등 울타리가 있는 곳들은 봉쇄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 직접적인 이동이 제한되었지만, 반대로 그 빗장을 자유롭게 넘고 이동하고 교통하는 것은 바이러스와 디지털화된 정보들이다.

국가의 통제인가, 보살핌인가

한국사회에서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이 한국인들만의 이슈가 아니었던 것처럼, 코로나 정국 와중에 일어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위시한 디지털 성폭력은 디지털화된 정보의 불법적, 탈법적 활용이 일반화되고 암묵적으로 용인된 사회에서 개인정보를 활용한 성착취가 어떤 형태로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극단적 사례일 뿐만 아니라, 이미 '초국적'인 사안이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했다.

한편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은 의료기술의 문제 이전에 정보 기술과 이러한 활용을 둘러싼 사회적 합의의 문제였다. 그러니까 한국의 질병관리본부는 개인정보의 유출이 일반화된 한국사회에서 개인정보를 국가가 '위기상황'에서 취합하고 사회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적 방역이라고 간주할 수 있었던 조건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코로나19와 n번방은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정보가 어떤 경로를 통해 자본화되며, 권력이 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극적인 장면들이다. 동시에 개인정보를 둘러싼 권리의 문제가 복잡할 뿐만 아니라, 코로나를 통과하면서 변화하고 있다는 것 역시 보여준다.

한국사회에서 가뜩이나 '사생활 침해'가 젊은 여자들의 깐깐함 정도로 치부되는 상황에서 'K-방역'은 개인의 권리보다는 생명의 안전이 우선한다는 광범위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것은 적어도 두 가지의 권리를 둘러싼 쟁점을 낳는다. 하나는 권리의 주체가 누구인가의 문제이다. 지금까지 권리는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근대사회 이후 '시민'의 권리는 재산권을 기본으로 한다. 개인의 권리 역시 '나'에게 귀속된 것이었다. 하지만 권리는 개인적인 것을 넘어 상호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 권리로 환원될 수 없는 집단적인 권리들이 존재한다. 가령 노동권이 그렇다.

감염을 둘러싼 감각은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은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어떤 사람은 교통사고에 걸릴 확률과 비교하며 일상의 위험으로 치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사회적 압력이 모두에게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강제했다. 사회적 압력은 두 가지 방향으로 작동했다. '내가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곧 타인과 공동체의 안전'이라는 것, 또 하나는 '타인에게 마스크를 강제하는 것이 곧 나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미세먼지에 대한 대응으로 '마스크'는 위험의 개인화라는 맥락에서 비판받았다. 미세먼지를 감축하기 위한 사회적, 정치적 노력을 개인의 마스크 착용으로 환원하면서 마치 개인이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반면 코로나 시기의 마스크는 '공적 마스크'라는 이름이 상징하듯이 공동의 안전을 위한 상호간의 윤리적 약속이 되었다. 이러한 집단적인 경험은 권리를 둘러싼 감수성을 변화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선 '전자팔찌' 논란 등으로 드러난 정보인권의 문제가 자리한다. 개인정보의 문제이든, 확진자의 지나친 동선 공개의 문제이든 이것이 '프라이버시권'이라는 맥락에서 주장된 개인의 권리는 코로나 정국에서 사회적으로 설득되지 못했다. 향후 권리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적인 것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될 가능성이 크다. 개인정보나 사생활 침해의 문제 역시 집단적이고 상호 교통하는 권리들인 한에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권리들이 국가를 매개하여 작동하고 조절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로 인해 깨지고 있는 환상 가운데 하나는 전지구적인 네트워크에 대한 진보적인 믿음이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해진 만큼, 연결된 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종종 코로나와 같은 재난을 전쟁에 비유하곤 하지만, 재난이 전쟁과 다른 점은 국가의 역할에 있다. 즉 '폭력의 주체'냐 '보살핌의 주체'냐의 차이다. 물론 감염병 확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근대 국가가 자연에 가한 자본주의적 침략과 약탈이 지목될 수 있지만, 이것이 과연 국가만의 문제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아무튼, '국가 대 개인'이라는 대립구도에서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존재라는 오랜 통념이 해체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권리를 둘러싼 투쟁의 장소가 다름 아닌 국가 안이라는 점이다. 권리는 국가에 대항하는, 국가의 바깥에 존재하는 권리가 아니다.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 시설에서 격리된 무연고자들, 이주노동자들처럼 국가에서 배제된 자들이 행사하는 권리조차 늘 국가 안에서 보장된 권리를 근거로 행사된다. 즉 이동권, 거주권, 노동권, 생존권 등은 국가에 새겨진, 헌법이 보장한 권리이지만, 이들 권리가 불평등하게 적용되도록, 나아가 무권리의 상태로 배제하도록 구조화된 것이 국가이다. 따라서 국가를 둘러싼 권력투쟁은 국가에 대항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불평등의 구조를 평등의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코로나 정국에서 권리를 둘러싼 쟁점은 개인정보 보호냐, 생명의 안전이냐의 문제, 프라이버시권과 안전권의 문제가 아니라 방역과 보살핌, 생명의 보호를 둘러싼 조치들이 불평등한 조건 위에서 적용되고 있는가, 아니면 평등의 조건들이 새롭게 창출되는가의 여부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의 생명을 지켰다'라는 성공적인 K-방역에서 '누가 죽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   K-방역이 말하지 않은 코로나19 정국에서의 국가의 통치성을 묻고, 코로나19 이후 평등한 생존을 위한 노동권을 재구성해야 한다. ⓒ pixabay

 
생명이냐, 생존이냐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코로나에 취약하다'라는 것만큼 탈정치화된 진술이 있을까? 일반화된 노인에 대한 혐오가 코로나 시기 의학적인 진술과 겹쳐지면서, 코로나 시기에 빈곤하고 불우한 노인들은 자가격리인지, 사회적 감금인지 모를 상태에 놓였다. 국가의 안전문자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주변인들의 반복적인 '염려'의 말들에 의해서. 취약한 신체를 가진 노인들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이 사회의 안전을 위해 격리되었다.

우리 모두 기꺼이 격리를 감수했다고 항변할 수 있지만, 격리를 버틸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자원과 정보력이 현격히 다르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회적 격리를 못 견뎌 하는 것은 혈기왕성한 젊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 신체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코로나와중에 죽었거나, 죽고 있다. 생명이 유지된다고 해서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코로나 시기에 생명에 대한 보건의료적 조치로 인한 '생명권'과 사회적인 삶의 영위를 의미하는 '생존권'이 확연하게 구분되었고, 국가는 생명권에 대한 선별적 조치를 우선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로 상징되는 생존권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조치는 코로나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 둔다'라는 차원에서 생명은 보장하되 생존은 각자도생의 몫으로 여전히 남겨두는 것, 기업의 생존이 노동자의 생존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모두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정국을 경유하면서 구축한 통치성의 본질이다.

앞서 말했듯이, 권리는 집단적이고 상호적일 뿐만 아니라 분할될 수 없다.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는 생명권이란 기껏해야 생명을 국가통치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불과하다. '우선 살리고 본다'라는 주장이 정당화되려면, 살릴 수 있는 시간 동안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생존권은 불평등한 생존 조건에 대한 평등한 생존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생존권의 기본축이 바로 서려면, '100% 재난수당'이라는 임시적, 간헐적 수혈 이전에 노동권의 강화 및 확대가 근본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물론 최근 고용 대책들이 속속 제출되고 있다.

하지만 핵심은 재정 규모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이전부터 지속해서 후퇴했던 노동정책의 기조 변화다. 동시에 IMF위기 대응에 대한 노동계 내부의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면서도 노동의 분할과 배제에 대항하는 실천, 즉 평등의 실현을 얼마나 구체화시켰는가?

평등한 생존을 위한 노동권의 재구성

미국 클린턴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코로나19 사회에 새로운 4개 계급이 출현했다고 분석했다. 첫 번째 계급은 '원격 근무가 가능한 노동자'(The Remotes)들이다. 두 번째 계급은 '필수적 일을 해내는 노동자'(The Essentials)로 의사·간호사, 재택 간호·육아 노동자, 농장 노동자, 음식 배달(공급)자, 약국 직원 등이다. 세 번째 계급은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The Unpaid)들 소매점·식당 등에서 일하거나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직원들이고, 마지막 계급은 '잊혀진 노동자'(The Forgotten)들로 미국인 대부분이 볼 수 없는 곳, 이를테면 감옥이나 이민자 수용소, 이주민 농장 노동자 캠프, 아메리칸 원주민 보호구역, 노숙인 시설 등에 있는 사람들이다.

라이시 교수는 원격 근무가 가능한 노동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코로나19로 인해 생존이 위태로운 계급들이라고 말한다. 노동 내부의 분절화와 불평등이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심화하고 있으며 이는 노동권에 대한 집합적인 권리행사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이시 교수의 분석은 날카롭지만, 다분히 '미국적'이다.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재택근무는 더 확대될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기업들은 재택근무의 노동효율성과 통제가능성을 실험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제 기업들은 경영 방식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어느 정도 확신하게 되었다. 재택근무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뿐만 아니라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투자를 전제한다.

이것은 기업이 사무실과 OA시스템, 휴게시설 등에 대한 투자를 개인이 부담하도록 자연스럽게 이전한다. 즉 재택근무는 노동자들을 생산수단을 보유한 유사 자영업자의 형태로 전환하게 하는 물적 토대의 변화를 가져오며, 이는 향후 '프리랜서'의 이름으로 일반화될 불안정 노동자로의 '갈등 없는 지위변화'의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리고 이것은 디지털 사회라는 기술진보의 이름으로 더욱 촉진될 뿐만 아니라, 불안정노동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타인의 노동권을 보호하지 않으면 나의 노동권 또한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의 분할은 노동권의 약화가 아니라 소멸을 야기한다. 분할되고 개별적인 노동권의 실현이란 환상에 불과하며, 코로나로 인한 노동 내부의 격차와 더욱 강화될 디지털화된 정보력은 노동권보다는 개인의 능력을 통한 생존을 추동한다. 즉 노동이 분할되고 노동권에서 배제된 노동자 계급들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안전한 노동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안전한 개인들만이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생존을 위한 요구로서의 노동권은 집단적이고 상호적인 권리에 토대를 두고서 평등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생존을 말하지 않은 채, 노동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생존을 말하지 않은 채, 주장하는 '나'의 노동권은 사회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IMF 위기 이후 20여 년간 나의 생존을 위해 다른 노동자들의 해고와 불안정노동을 수용했던 경험을 성찰하지 않는 이상, 코로나 이후 경제적 위기에서 노동자 '계급'은 노동권과 함께 소멸할 것이다. 평등한 생존은 국가가 보장해야 할 것이 아니라 국가 안에서, 국가를 둘러싼 투쟁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특집2. 코로나 이후, 재난자본주의를 경계한다 / 2020.05

코로나 이후, 재난자본주의를 경계한다

 

최민 상임활동가

지난  4월 13일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은 「문재인 정부 코로나19 대응 비판」(민주노동연구원, 이슈페이퍼 2020-06)을 통해, 정부가 천문학적 규모의 기업지원 조치를 발표했지만, 그에 비해 고용·실업 및 노동자 지원대책은 매우 부실하다고 비판했다. 금융시장 안정화에 100조원 이상, 코로나 19 피해 수출입해외진출기업에 대한 긴급 금융지원 20조, 36조 이상의 수출활력 제고 방안, 2.2조 원 규모의 스타트업·벤처 지원방안이 발표됐다. 이에 비해, 고용․실업 및 노동자 지원대책에 새롭게 증액된 예산 규모는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재난지원금(14조 가량)을 제외하면 1조 5783억 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고용충격에 대비한 대책도 기존의 고용유지지원금과 일자리안정자금을 확대하는 방식이어서, 해당 제도의 문제점이 그대로 반복된다. 예를 들어, 고용보험 미가입자, 특수고용 노동자, 파견·용역·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법적 혹은 실질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경총과 전경련은 지난 3월 말 "경제활력 제고와 고용·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경영계 건의",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계 긴급제언"을 통해, 일상 해고를 포함한 노동유연화와 법인세·소득세〮 상속세 인하 등 기업 비용 축소, 규제 완화 등을 요구했다. 코로나 19를 핑계로 대고 있지만, 사실상 재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하던 규제완화 내용이다. 경총과 전경련의 제안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어, 전경련의 경제계 긴급제언 중 노동자 건강 및 안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조항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계 긴급 제언(2020.03.25) ⓒ 전경련

   
코로나19 빙자한 노동시간 연장 시도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노동시간과 관련된 규제 완화 요구가 대거 들어있다는 점이다. 2018년 주 52시간까지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있었지만, 300인 이상 사업장에만 먼저 시행됐고, 겨우 올해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노동시간 제한의 예외가 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대상을 확대하라는 요구가 포함돼 있다. 그리고 노동부 장관은 코로나19와 관련한 지원 때문에 바빠진 금융기관의 경우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빠르게 추진해주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한 사유를 대폭 늘릴 수 있게 준비해두었다. 원래 인가 대상이던 '자연재해,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의 수습'과 같은 제한적인 경우뿐 아니라, '통상적인 경우에 비해 업무량이 대폭 증가한 경우로서 이를 단기간 내에 처리하지 않으면 사업에 중대한 지장이 초래되거나 손해가 발생되는 경우'까지 포함시켜놓았던 것이다. 이 개정 내용이 코로나 국면에서 방역업체, 마스크 생산 업체로 적용되더니, 이제 금융기관까지 확대되려는 것이다.

재계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연장도 요구하고 있다. 주52시간으로 노동시간 연장이 제한되면서부터 지속적으로 요구해오던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 기간 동안에는 주당 최대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데, 그 단위 기간이 늘어나면 연달아 64시간까지 일하는 기간도 늘어난다. 단위기간이 6개월만 돼도, 3개월 연속 주당 64시간 일할 수 있어 뇌심혈관질환이나 정신질환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확대나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연장 요구는 모두 노동시간 제한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다. 자본이 꿈꾸는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아마도 과로와 실업이 공존하는, 일자리 때문에 과로도 감지덕지하는, 그래서 노동시간 제한이 필요 없는 사회인 것 같다.

안전도 상생도 뒷전으로

그 외에도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폐지하라는 요구나 화물차 안전운임제도 유예기간 연장 요구 역시 해당 산업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노동환경을 악화시키게 된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지정의 주요 근거는 소상공인 살리기였지만, 그 덕에 마트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도 단축되었다. 특히 남들 쉴 때 쉬는 '사회적 휴일'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수적인 업무가 아닌 다음에야 불필요한 야간 노동, 휴일 노동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측면에서의 작은 성과를 없던 것으로 하자는 주장이다. 유통업계에서는 대형마트가 더 이상 유통업계의 강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코로나19로 대형마트의 온라인 매장 매출액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일부 유통재벌만의 욕심은 아닌 것이, 안동시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 한시 철폐가 추진되기도 했다. 생필품 품귀 현상을 막는다는 명분이었다. 결국 부결되어 없던 얘기가 되었지만,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유통업계와 경제지들은 안동시에서 규제가 풀리면 다른 지자체까지 확대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자본의 공격은 2020년 1월 1일부터 시작된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에도 닿았다. 안전운임제는 낮은 운임으로 인해 과로, 과속, 과적의 위험에 내몰리는 화물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제안됐다. 화물노동자가 지급받는 최소한의 운임을 공표하고 지키지 않을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다. 화물노동자들의 과로, 과속, 과적으로 인한 사고 발생이나 도로 손상 등 사회적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재 시행되는 안전운임제는 3년 한시적으로 전체 화물노동자 40만 명 중 6.5%에 해당하는 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 품목에만 적용되고 있을 뿐이다. 적용대상이 훨씬 넓어져야 한다는 서명 운동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2월까지였던 유예 기간을 코로나 사태 종료 때까지 연장하자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계기로 2013년 제정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도, 재계가 무슨 일만 있으면 완화와 유예를 요구해오던 법률이다. 이번에도 역시 화학물질 등록 기간을 1년 유예해달라고 요청했다. 환경운동연합 등은 이에 대해 "올해 들어서도 서산 롯데케미칼 폭발사고 등 전국 곳곳의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있고 여전히 노동자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상황"인데, 가당찮은 요구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4월 8일 열린 제4차 비상경제회의에서 환경부는 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 화평법상 일부 조치를 유예하거나 완화해주었다. 내년 12월까지 한시적으로 화관법상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인허가 패스트트랙 품목을 늘리고, 화평법상 연 1톤 미만으로 신규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기업이 환경부에 제출해야 했던 시험자료 제출생략 품목을 크게 확대해주는 것이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요구나 안전운임제 유예 연장, 화평법 완화 등은 모두 안전과 상생은 뒷전으로 하고 싶던 기업들의 속내를 보여준다. 재난 상황을 기회로 규제완화의 '뉴 노멀'을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어떤 사회로의 회복을 요구할 것인가?

이런 기업들의 요구에 정부가 적극 호응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노동부에서 노동시간 제한을 완화하고, 환경부는 화학물질 관리 책임을 느슨하게 해 준다. 기업활력제고 특별법 적용대상 모든 업종으로 확대하라는 요구에, 정부가 법 개정을 고민하고 있다는 기사도 나왔다. 원샷법이라고 불리는 기업활력제고 특별법은 기업 인수합병을 쉽게 하는 법인데, 정부 스스로도 이 법에 따라 사업 재편을 위한 기업 인수합병이 활발해지면 중장년층 실직자들이 양산될 수 있다고 말해왔다.한국판 재난자본주의가 펼쳐질 수 있다.

전쟁, 자연재해 등과 같은 재난이 사회를 덮쳐,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공포에 빠져 있을 때, 자본이 즉각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높이기 위한 약탈 행위를 재난자본주의라 한다. 1998년 한국의 외환위기도 한 예다. 국가 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로 '쇼크'를 받은 한국은, "개방하고 민영화해야 국가 부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를 '쇼크 독트린'으로 받아들인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확대, 상시적 구조조정과 불안정 고용이 한국사회의 '정상'이 되었다. 구조조정 후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높아졌다. 1998년 크게 증가한 자살률은 이후로 20년째 떨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코로나로 인한 감염자 수, 재난지원금만 바라보다 지난 과오를 되풀이 할 수 있다. 경기활력 제고를 앞세운 규제 완화, 일자리를 볼모로 한 노동권 후퇴, 노동관계법 개악이 슬금슬금 진행되고 있다. 고통분담이냐 노동자 사이의 연대냐, 기업 살리기냐 고용 유지이냐, 어떤 기조로 이 시기를 넘어서느냐에 따라 앞으로 마주할 20년이 달라질 것이다.

특집1. 코로나19가 촉발한 물음,노동안전보건의 뉴노멀, ‘K-산재예방’은 가능한가? / 2020.05

코로나19가 촉발한 물음, 노동안전보건의 뉴노멀, ‘K-산재예방’은 가능한가?

 

박기형 상임활동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 사회 불안정 노동의 면면들이 다시금 확인되었다. '사회적(물리적) 거리두기'를 시행하면서, 체계적인 방역 시스템을 가동했다. 하지만 거리두기가 삶에서 확보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다.

확진자들의 동선이 한때 이슈가 되었다. 장거리 녹즙 배달을 하는 구로 콜센터 직원이나 슈퍼마켓 배송과 음식점 서빙 등 투잡을 뛰던 이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잠시 멈춤'을 할 수 없었다. 직장에서 거리두기를 하자며 장려한 재택근무 및 유급 휴직, 유급 돌봄 휴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는 먼발치의 얘기였다.

더욱이 물류·운송이 늘어남에 따라 오히려 노동강도가 증가하는 곳들이 생겨났고, 심지어 코로나19 사태 초기 급작스러운 배송량 증가에 과로사한 쿠팡맨도 있었다. 이렇게 코로나19는 늘 우리 사회에 존재했던 불안정 노동의 문제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드러냈다.

그럼에도 강력한 방역 조치를 취한 결과, 지난 5월 6일 다행히도 사회적(물리적) 거리두기의 기간을 끝내고, 생활방역 체계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여전히 감염 및 확산의 위험이 존재하지만, 일상으로의 복귀, 즉 일상의 회복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도래할 세계의 과제, 가치의 재정립

그러나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사람들도 많다. 우선 세계 전체 차원에서 보면, 여전히 코로나19 사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계속해서 확진자 증가 추세가 이어지며, 미국과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는 사망자 증가 추세 또한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프랑스와 같이 G20에 속하는 국가들에서조차 마스크 지급 등 방역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는 100여 년 전인 1918년에서 1920년 사이에 발병했던 스페인 독감과 가장 큰 차이로 지적된다. 스페인 독감의 경우엔 흑사병처럼 엄청난 사망자를 내고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 등 사회변화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음에도,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들에서 피해가 컸다. 하지만 코로나19는 한 사회 내에서 불안정 노동을 드러낸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과 유럽 등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에 타격을 가했다. 그로 인해 곳곳에서 국제 질서의 변동, 나아가 이 세계를 오랫동안 떠받치던 사회 시스템 자체의 변화를 전망하거나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불확실성의 증대를 지적하기도 한다. 이는 정부의 재정투입, 정부 지출 증대와 관련한 논쟁에서 두드러졌다. 이전 경제 시스템에서는 인과성을 중시했다. 일정한 제약 조건에서 어떤 변수가 달라질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어떤 정책을 어느 수준에서 시행할지 정할 수 있었다. 예컨대, 정부 지출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정부지출의 수준을 일정하게 예측해서 제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업률, 인플레이션율 등의 경제 지표를 놓고서 수많은 데이터를 활용해 지표의 변화를 예측·통제하는 등의 경제관리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말미암아 경제 시스템의 변화가 더는 계산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위기를 일으킬 경제적 위험들이 무엇인지, 그것이 언제 어디서 실현될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계산불가능한 위험, 즉 불확실성이 증대했다. 이로 인해 이제는 주식시장의 주식가격, 외환시장의 환율 변동 등 경제지표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기가 점차 어려워질 것이다. 이런 변화는 경제 위기에의 대처 방식 자체를 변경할 것을 요청한다.

이 비판에 따르면, 어느 수준으로 위험을 관리할 것인가, 어떤 관리 수단이 적합한가 하는 질문은 의미 없어질 것이다. 이제는 불확실한 위험에 맞서 무엇을 가장 우선해서 지켜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다시 말해, 무엇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가라는 질문이 대두된다. 물론 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기존의 경제 시스템을 구성 및 운영해온 논리, 즉 리스크 관리의 관점은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기존 시스템이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다는 위기의식, 이대로는 어렵다는 문제의식을 더욱더 강하게 심어주었다. 결국 우리는 사회적 가치 자체를 문제 삼게 되었고, 가치를 재정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였다.

▲   지난 5월 2일, 38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 ⓒ 호나라

 

노동안전보건에서의 (뉴)노멀

코로나19로 촉발된 이러한 뉴노멀에 대한 요구는 노동안전보건영역에서도 유효하다. 혹자는 한 번이라도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노멀'인 적이 있었냐고 되묻기도 했다. 노동안전보건 영역에서는 산업재해가 일상이었다. 매일같이 7명이 출근했다가 퇴근하지 못했다. 늘 삶의 위협을 감수하고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한국의 일터에서 정상적인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면, 두 가지 대답이 가능하지 않을까. 만약 정상적인 것이 항상 일어나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면, 만연한 죽음이라고 답했을 것이고, 만약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규범적 상태를 의미한다면, 한 번도 정상적이었던 적은 없다고 답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일상으로의 복귀, 정상으로의 회복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미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일상 곳곳에 잠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언제나 위험은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장애인, 여성 등 차별받는 이들에게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었다.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이 이러한 문제를 더욱 극적인 방식으로 드러내 주었을 뿐이다.

그렇다. 산업재해는 언제나 극적인 방식으로만 주목받았다. 사망사고라는 형태를 띨 때야 비로소 회자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더구나 산재사망사고는 작업자 개인의 실수로, 안전보건관리자나 현장 책임자 몇몇의 책임으로 축소되거나 심지어는 은폐되었다. 산재사망사고의 원인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고, 조사하더라도 물리적 요인, 직접적 원인에만 집중하는 한계를 보였다. 위험의 외주화, 장시간 노동 등과 같은 일터의 구조적 위험은 그대로 남겨졌다. 안전설비 미설치와 같은 물리적 예방책조차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곳이 허다했다.

그렇다면, 코로나19와 'K-방역'이 노동안전보건 의제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노동자들은 죽음의 일터라는 '일상적 재난' 상황에 처해있다. 코로나19에 대한 한국 정부의 신속한 대응, 체계적인 검사·조사는 다른 국가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왜 철저한 방역조치만큼 산업재해에 대한 철저한 예방조치가 취해지지 않는가? 위험으로부터의 거리두기와 잠시 멈춤은 가능하면서, 왜 일터에서의 작업중지는 이뤄지지 않는가? 재난에 맞선 국가와 정부의 책임 있는 행동은 왜 일터의 문턱 앞에서, 노동자들의 목숨 앞에서 늘 멈추는 것일까? 'K-산재예방'은 정녕불가능한가?

생활방역으로의 전환을 앞둔 지난 4월 29일, 이천 물류센터 건설 현장에서 화재로 인해 38명 노동자가 사망했다. 화재 원인을 조사하는 중이지만, 계속해서 비교되는 또 다른 참사가 있다. 바로 2008년 이천 물류센터 화재다. 동일한 지역이면서, 작업 현장 상황과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점 모두 유사했다. 당시에도 폴리우레탄폼 작업에 따른 폭발·화재 위험과 샌드위치 패널로 인한 상황 악화가 지적되었다. '

법제도 상으로도 폴리우레탄폼 작업과 용접·용단 등 화기 작업을 분리해서 진행할 것, 부득이할 시 비산 방지 커버 등 안전조치를 취할 것을 규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어떤 변화도, 어떤 예방 조치도 없었다. 공정 분리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였다. 샌드위치 패널이 타면서 뿜어내는 유독가스를 예방하기 위해서 샌드위치 패널의 사용금지 등의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자재비용이 부담되었기 때문이리라.

결국 현장 관리·감독이 부실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물류창고 건설 현장도 다른 건설 현장과 마찬가지로, 최소 비용으로 빠른 기간 내에 공사를 완료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공사 기간 연장, 해당 자재의 사용금지, 다른 물품으로의 대체 등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이유로 위험을 눈감아줬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냥 눈감아준 것은 아니다.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으니, 위험 정도와 사고 발생 가능성을 계산해서 관리하면 된다고 보았다. 그러니 관리부실이 먼저 지적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관리만 잘하면 되는 문제인가?

코로나19 이후, 위험은 예측하고 관리할 수 없는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사회에서 위험은 복잡다단한 관계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위험은 여러 요인의 복합적 작용을 통해 실현된다. 그에 따라 참사·사고·위기의 원인을 특정하기가 점차 어려워진다. 이럴 때 위험을 예방하는 우리의 자세는 특정 원인을 통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천 물류센터에서 불이 난 것은 폴리우레탄폼 작업 중 발생한 유증기가 화기 작업으로 인해 폭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리적 원인을 밝혔다고 해도, 왜 동일한 사고가 반복되었는지 답할 순 없다. 나아가 이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이러한 죽음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 위한 대책을 내놓을 수 없다.

이러한 산업재해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이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고 제대로 된 예방대책을 수립 및 시행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관점을 바꿔야 한다. 어떤 위험을 어느 수준으로 어떻게 예측·통제할 것인가라는 위험관리의 질문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물음은 이윤과 안전을, 삶을 저울질하는 것이다. 이제는 무엇을 사회적 가치로 삼을 것인지 되물어야 한다. 생명과 안전을 가치 있는 것으로 내세우고, 이를 중심으로 사회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노동안전보건의 (뉴)노멀이다.

특집3. 여성 돌봄노동의 사회적 인정을 위해 / 2020.04

 

여성 돌봄노동의 사회적 인정을 위해

 

 

 

정경희 / 운영위원

 

 

 

오승은 전국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부장, 김정아 재가요양전략조직사업단 조직국장을 모시고 여성 방문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현재 준비 중이거나 논의하고 있는 것은 어떤 내용이 있는지 들어보았다. 평일 점심시간인데도 코로나19로 문 연 음식점을 찾기 어려웠던 3월 26일 대림역 인근 카페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명확한 업무규정과 대응매뉴얼 시급

코로나19 비상상황에서 돌봄 노동자에게 마스크를 지급해야한다는 요구가 있었고, 대면접촉을 해야 하는 돌봄 노동자의 수입이 급감했다는 소식도 이어졌다. 전염병 비상시국에서 중년여성이 대부분이고 대표적 돌봄 노동자인 재가요양보호사에 대해 어떤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김정아: "마스크 같은 보호구나 안전장비 지급이 없어, 시설의 경우는 서울시나 공단에서 일정 지원해주는데, 재가 요양으로 방문하시는 분들은 대체로 개별 구매해야 해요. 최근 서울시가 시설에 4만8천 개, 재가에 1만 개 보급해줬어요. 그러나 공지가 일괄 되는 게 아니고 아는 사람만 받으러 가야 하는 한계가 있어요. 방문해야 할 가정의 안전 여부에 대한 정보도 제공받지 못하고 있어 노출되면 알아서 자가 격리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오승은: "대한의협에서 자가격리자의 부양자나 동거인을 위한 행동수칙으로 1m 이내 접촉은 위험하다든지, 분변은 접촉하면 안 된다 등이 권고돼있던데, 만약 이용자가 자가격리자인 경우 가족은 이것을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요양보호사는 업무 특성상 지킬 수가 없어요. '주의해야 한다'라는 문구만 있고 명확한 업무에 대한 기준이나 비상시 작업매뉴얼이 없어서, 불안한 이용자는 매칭을 중단하고 있어요. 공공영역인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하 서사원)은 지역사회 정보를 파악해 일괄 공지하고, 비상시에는 다른 서비스 유형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공공기관이니 가능한 거죠.

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의 코로나19 대응 3차 지침에서 기존에 지원해주던 사회복지사 임금에 대해 계속 지원해주겠다고 했는데, 3월 24일 발표한 4차 지침에서 '시설급여 등 종사자에 대해 확진 또는 자가격리 기간은 유급병가로 처리한다'는 내용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민간센터의 재가요양보호사에게는 그림의 떡이고, 방문할 가정의 안전성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없어요."

 


이용자에 대한 조직적 관리, 위험 예방 지름길

각기 다른 환경의 가정을 방문했을 때 위험한 상황은 다양하다. 여성이기 때문에 더 취약한 성폭력뿐만 아니라 인격모독이나 사건·사고 발생 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로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작업중지권이 명시돼 있다. 이것을 방문노동 과정에서 실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김정아: "위협적이고 불편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모면하고 카리스마 있게 이용자와 보호자를 제어하느냐가 업무능력의 기준으로 현장에서 얘기되고 있거든요. 그러나 서사원의 경우 이용자와 첫 매칭 시 기관의 팀장이 먼저 가서 초기상담을 해요. 제공할 서비스 내용과 이용자의 권리, 요양보호사가 노동자로서 갖는 권리, 이용자가 하면 안 되는 것에 대해 사전에 설명하고 나서 같은 조의 요양보호사 2명과 팀장이 함께 이용자와 상견례를 하면서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해요. 이때 하면 안 되는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도 몇 가지 예시를 들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이용자가 1:1로 내가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관리·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안전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의미 있는 말씀인 거죠."
 
오승은: "매년 복지부에서 발간하는 업무 매뉴얼이 있어요. 보호사가 해야 할 일과 이용자의 안전을 위한 일,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처 방법이 나와 있어요. '부당한 요구를 받았을 때 말로 이해를 구하고 설명한다. 작업자 선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언쟁하지 말고, 기관센터장과 상의한다.' 뒷부분에 센터는 지휘·감독의 책임이 있다고 모호하게 되어있는데, 사실상 개인의 책임으로 다 미루고 있거든요. 제대로 하려면 그 현장을 벗어날 수 있어야 하고, 기관에서는 업무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게 기본인 건데, 민간기관처럼 호소가 들어가면 중단과 동시에 사실상 실직으로 이어지는 것부터 막아야 해요. 이용자에 대한 교육도 들어가야 하고, 그 사람에게 필요하면 휴가를 주고 다른 이용자로 연결해주는 조치까지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김정아: "서사원 단체협약안의 내용 중 초기상담 및 계약단계에서 음성과 서면으로 안내하고, 똑같은 내용을 노동자에게도 알리고 중간 점검한다는 내용이 있어요. 법 내용대로 하면 '차단할 수도 있다'가 아니라 '신고하고 처벌할 수 있다'로 안내돼야 하는 거죠. 고객이 바로 수익으로 연결되는 민간에서는 어렵다고 하겠지만요."

 


제대로 된 노동권 보장이 필수

방문노동자의 경우 다음 작업을 위해 이동 시간은 필수적이지만 근무시간에 포함되지 않고, 휴게시간이나 식사 시간도 보장받지 못한다. 개인 휴대폰으로 이용자와 연락하기 때문에 업무시간 외 고객 응대 문제가 매번 발생한다. 이것을 개선하려면 추가 재정이 필요한데, 민간센터의 재무회계 도입이 선행돼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또 방문노동자의 작업환경은 개별 가정이다. 이에 맞는 적절한 개선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오승은 : "서사원은 8시간 근무시간 산정에 이동 시간, 중간에 점심시간, 회의 시간도 넣으면서 월급을 주는데 당연히 돈이 더 필요하죠. 그래서 추가 재정이 있어야 해요. 자치구별 종합재가센터 만드는 건 정부계획이에요. 민간기관 측에서 헌법소원도 하고 수가 인상이라는 부대조건을 두고 시행 유예기간도 두는 등 회계 투명성 확보를 위해 엄청 힘겨루기해서 재작년부터 장기요양기관 재무회계 규칙을 단계적 도입했고, 작년에 첫 결산보고를 했어요. 전체 수가 중 인건비 비율이 정해져 있는데 곧 공개가 되는 것 같아요. 공공영역에서 투명하게 운영하는 종합재가서비스센터가 잘 자리 잡아가면 재정확보와 함께 제대로 된 인건비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김정아: "폰 연락 자체가 엄청난 감정노동인데 업무용 폰을 지급하려면 수가에 책정되어야 해요. 요구사항이나 필요한 게 있으면 센터를 통해서 전달되게끔 해달라는 구조가 정해지면 되는 데 그건 계약단계부터 3자 대면이 돼야죠."
 
오승은: "단협안 내용 중 사업장 소독을 포함한 안전보건관리를 매번 하고, 위험 물질을 없애고, 와상편마비 집중이용자인 경우 2인 1조 배치, 특히 경험이라든가 그날 일정에 따라서 필요한 인원을 배치해달라는 요구가 있어요. 그러나 사업주의 의지가 있어도 남의 집에 가서 일일이 점검하고 개입을 할 수가 없으니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여성 노동에 대한 편견을 활용한 일자리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돌봄 노동으로

대부분 중년 여성이 종사하는 돌봄 노동은 업무가 광범위하고, 민간에서 비계획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수요와 공급에 불균형이 일어나 불안정한 나쁜 일자리로 이어지면서, 사회적으로 부차적인 노동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 사회서비스 종사자 근로조건 개선방안(국미애, 2018)에 따르면, 요양보호사는 상시근무로 월급제를 원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하는 비율도 68.2%로 높았다.

오승은: "어느 집에 여자 하나 보내는 사업인데 많은 엄마들이 집에서 모든 일을 다 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잖아요. 밥도 해줘야 하고 정서도 감당해줘야 하는 것처럼 요양보호사도 특별히 업무 구분 없이 당연히 모든 업무를 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게 여성 노동에 대한 나쁜 인식과 편견을 활용한 일자리라는 생각도 들어요."
 
김정아: "옷을 하나 사 입으면 그 옷을 만드는 노동이 있고, 그것을 파는 노동의 가치가 인정되잖아요. 그런데 돌봄 노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당신이 와서 해주는 일쯤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이 너무 커요. 당사자 스스로 갖고 있는 사고도 크게 벗어나지 않아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지 싶어요."

오승은: "지자체가 파악하고 공급 계획을 세우는 게 맞는 거죠. 돌봄 노동 자체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인정돼야 임금도 올라가고 고용안정도 되는 거라 노조가 요양, 보육, 장애 활동 지원, 사회복지 단위를 합쳐서 시민 대상으로 모두를 위한 돌봄이라는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어요. 돌봄이 민간에 맡겨지다 보니 코로나 사태에서 구멍들이 드러났고, 국가가, 공공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확인이 된 것 같아요. 돌봄 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확인하고 공공의 목소리에 동참해 주시라는 캠페인을 여름쯤에 전면적으로 시작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해요."

특집2. 방문노동의 공공성 보장, 안전보건의 출발점 / 2020.04

방문노동의 공공성 보장, 안전보건의 출발점

 

 

박기형 / 상임활동가 

 

 

방문노동은 각 가정에 방문하여 특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을 일컫는다. 재가요양보호사,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통합사례관리사, 다문화가정 방문지도사, 정수기·에어컨·인터넷 설치 등 가전통신서비스노동자 등이 포함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 다양한 노동들이 사회의 필수적인 서비스에 해당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더욱이 각 가정 또는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제공되는 것이기에, 서비스 수요자들이 거주하는 공간에 방문하고 대면 접촉하는 일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집으로 찾아가고 사람을 만나는 일을 통해서만 서비스가 제공되고 서비스가 목적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방문노동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들이 실현되는 한 형태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공성이 사람 간의 관계에서 실현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방문노동 형태를 띠는 각종 서비스에서 공공성이 담보되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공공성을 보장하는 일은 노동자의 안전보건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여성 방문노동자의 안전보건은 무엇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이번 4월호 <일터>에서는 다양한 방문노동의 형태 중 돌봄 노동 영역에서의 변화에 주목해보려 한다.
 
"불필요한 신체접촉에 언어폭력..." 
 

돌봄노동은 여러 방문노동 중 사회복지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가장 공공성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그동안 돌봄 노동이 제공되는 방식은 공공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 사회는 90년대 말부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로의 전환 이후 여러 부문에 걸쳐 민영화가 진행되었고, 사회복지 서비스에서도 민간위탁 방식이 널리 확산되었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반면, 대가족 중심에서 핵가족 또는 1인 가구 중심으로 가계 구성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발전국가 시기에 유지되었던 복지서비스 제공방식, 즉 국가가 경제발전에 집중하는 대신 복지 문제는 각 가정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방식이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그에 따라 돌봄 노동의 영역에서 제도적 공백이 발생했고, 이에 대응할 필요성이 증가했다. 하지만 민영화 흐름 속에서 정부는 충분한 수준의 역량과 재원을 투입하지 않았다. 대신 시장을 통해 공백을 메우고자 했다.

바로 민간위탁 방식을 통해 사회복지 서비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시장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가 무색해질 정도로 임금 떼먹기, 부당해고뿐만 아니라, 재정 운영상의 비리 등 각종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그에 따라 서비스의 질 또한 개선되기는커녕 악화 되었으며, 재가요양보호사들의 안전과 건강 또한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서울의 어느 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요양보호사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경험을 토로했다.

"60대 후반의 남성 한 분이 계시는 집에 방문하는데요. 몇 번 불쾌한 신체 접촉을 하려고 했어요. 닫힌 공간에서 단둘이 있으니 일할 때 늘 불안할 수밖에 없죠. 더구나 제 일에 대해서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요. 여성 이용자나 이용자의 보호자들로부터도 언어폭력을 듣기도 해요. 사람 하나 또는 아줌마를 데리고 쓰고 있다는 말을 통화하면서 서슴없이 하실 때도 종종 있어요."
 
그러나 센터에서는 이들의 고충을 듣고 제대로 해결해주기보다는, 대상자 교체라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다. 심한 경우에 대상자가 요양보호사 교체를 요구하면, 자칫 대상자와 갈등이 빚어져 센터의 실적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그 요구가 적절한 것인지 검토하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요양보호사를 교체하기도 한다. 이에 불응하여 문제를 제기하자, 해당 센터에서 백화점 물건을 바꾸는 것과 같다는 식으로 대꾸했다고 한다. 와상환자를 혼자서 돌보다 어깨가 상하더라도, 산재 보상이나 재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더욱이 일거리를 받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고용불안에 늘 시달린다. 고용 형태도 문제지만, 중년 여성은 이 일자리를 잃으면 다른 곳으로 가기가 힘든 것도 이유다. 그로 인해 문제 제기는 더욱더 어렵다. 이는 요양보호사의 고충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해당 서비스 이용자들도 제대로 된 돌봄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게 된다. 공공운수노조 재가요양전략사업단 김정아 조직국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동안 신고제로 운영하면서, 쉽게 센터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해줬어요. 그러니 해당 센터가 충분한 재정과 적합한 운영방식을 취하고 있는지 검토하지 않았죠. 예컨대, 인천에 센터를 설립하고서 서울 중랑구에서 대상자를 모집해 서비스 제공하는 일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사회복지사가 매달 점검하러 온다고 하지만, 대상자의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채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죠. 설립부터 점검까지 체계적인 관리가 부재했던 것이죠.

그러나 센터들은 이용자의 보험금이 수익의 원천이니 어떻게든 이용자들을 붙잡아두려고 했어요. 이용자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이용자들의 자기부담금을 깍아주는 편법을 쓰고, 요양보호사의 임금을 빼돌려 차액을 별도로 충당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었죠. 그러는 와중에도 이용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각 상황에 맞게 어떤 서비스가 더 제공되어야 하는지를 고려하는 사례별 관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알선·파견용역업체'와 다를 바 없는 센터
 

센터와 이용자, 요양보호사 간의 소통은 오직 건수를 채우기 위해서만 이뤄질 뿐, 실제 서비스가 제공되는 과정에서는 소통이 부재했다. 결국 센터는 요양보호사와 이용자를 연결해주기만 하는 '알선·파견·용역업체'와 다를 바 없었다. 서비스의 질 관리는 오직 요양보호사의 몫으로 남겨졌다. 하지만 요양보호사 혼자서 이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성희롱 등 성폭력의 위협과 센터로부터의 고용불안 등은 요양보호사가 위축될 수밖에 없도록 했다.
 
또한 센터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한 이용자들과 그들의 보호자들은 요양보호사의 역할과 지위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들이 고용해서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사람처럼 생각했다. 이로 인해 요양보호사는 어떤 관계로부터도 고립될 수밖에 없었고, 돌봄 노동 자체도 요양보호사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최근 돌봄 노동의 공공성을 인정하면서 제도상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사회서비스원이다. 사회서비스원은 돌봄서비스를 정부가 직접 제공하기 위해 설립한 공공기관이다. 이를 통해 공공성을 강화하고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한다.
 
아직 시범사업 수준이지만, 서울시와 대구시, 경기도, 경상남도 4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물론 사회서비스원에서도 이동수단 및 이동 비용 제공 문제, 안전보건 관련 예방조치 문제 등 개선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그런데도 민간위탁 방식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점이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지부 김혜미 지부장은 현장의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전에는 혼자서 한 분을 돌봤었는데, 이제는 요양보호사 둘이 들어가요. 그러면 확실히 안정감이 생기죠. 이용자들도 좀 더 주의하게 되고요. 함부로 할 수 없는 거죠. 그리고 처음 방문할 때는 센터의 관리자도 동행해요. 그냥 전화로만 연결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용자의 상태나 환경도 점검하죠. 무엇보다 함께 방문해서 이 서비스는 무엇인지, 어떤 것들을 제공하는 건지 상세히 설명하죠.

이후에 이용자가 문의 사항이나 불만이 있으면 관리자를 통해서 센터로 연락을 해요. 민간에는 매번 개인번호를 교환하니 한밤중이나 주말과 휴일 할 것 없이 연락이 오고 부당한 요구까지 듣기도 해요. 이제는 요양보호사와 이용자 둘만의 개인적 관계가 아니라, 센터 차원에서 제공하는 사회서비스로서 프로세스가 갖춰졌어요. 센터, 이용자, 요양보호사 간의 소통이 잘 이뤄지면서 신뢰감도 생겼죠. 그러면 어떤 케어가 필요한지 확인하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게 되겠죠. 안전확보와 서비스 질 향상 모두 가능해지는 거죠."

 


요양보호사는 직업, 개인의 봉사에 기대서는 안 된다
 
이에 더해 직접 고용에 따른 고용 안정성 담보뿐만 아니라, 인력 증원 및 돌봄 노동 중 발생하는 산업재해에 대한 보상과 치료 등이 가능해지는 부분도 주목해야 한다. 나아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마스크와 손 소독제 지급 등의 안전보건 문제를 집단적으로 협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도 중요한 지점이다. 개별 노동자의 지위에서 집단적인 노사관계로 전환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무엇보다 지자체의 재정투입이 공적인 책임으로 이어지면서 센터가 직접 사례관리를 하게 된 것이 핵심적인 변화다. 요양보호사의 지위 인정과 안전보건 관리, 서비스 질 관리 등 모두가 가능해지기 위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건강보험공단의 보험료 중 일부를 장기요양보험으로 적립하고 이를 지원금으로 제공하는 간접적인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직접적인 재정투입과 이를 통한 공공성, 공적 책임강화가 요구되는 이유다.
 
하지만 사회서비스원이 시범적으로 시행된 이후, 사유재산 침해 등을 이유로 민간센터들의 반발이 극심한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직은 법 제도로 정착하기까지 갈 길이 멀다고 한다. 그런데도 김혜미 지부장과 김정아 조직국장 모두 강조한 바는 다음과 같다.

"돌봄 노동은 사회복지 서비스로서 공적인 것이잖아요. 그런데 요양보호사 한 사람의 착하고 선한 마음, 개인의 봉사에 기대서는 안 되는 것이죠. 사회에 필수적인 것이니 조직적, 집단적으로 해결해나가야죠. 그런 점에서 돌봄노동뿐만 아니라 방문 노동 전반의 공공성 강화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집1. 방문노동의 '위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2020.04

 

 

방문노동의 '위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김지안 / 상임활동가 

 

 

 

어떻게 위험의 원인을 '방문노동'에 내재하는 것으로 설명하지 않으면서, '방문노동'이라는 독특한 노동형태가 가진 문제점을 잘 드러낼 수 있을까? 2019년 여름, 울산 경동도시가스 검침원 투쟁 이후로 방문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위험과 안전 문제가 잘 알려지게 되었다. 또 투쟁을 통해서 이미 수많은 검침원, 그리고 타 직종의 방문노동자 역시 언어적, 신체적 폭력부터 괴롭힘, 성폭력 등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문제를 겪고 있었다는 점이 드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관심 속에서 방문노동이 그 자체로 위험한 노동으로 인식될 우려가 있다. 주로 방문노동의 위험이, 1인이 가정 등 사적 공간을 방문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또 대다수가 여성 노동자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에서 설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의 원인을 '방문'하는 방식 자체, 또는 여성 노동자들의 취약성으로 접근하면 '방문노동'의 위험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방문 노동자의 안전과 권리를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위험이 어떤 조건을 통해서 가능했고 방치되어왔는지, 왜 매일의 일상 노동 속에서 되풀이되어왔는지 더 질문하는 일이다.

 


방문노동의 위험 잘 드러내기
  
울산 투쟁 초기 경동도시가스는 위험세대를 별도 관리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노조의 지속적인 2인 1조 요구에 대해서는 "0.1%의 블랙컨슈머" 때문에 사회적 비용을 감수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형적으로 성폭력 문제를 몇몇 가해자의 잘못으로 축소하는 입장이다. 한편 몇몇 언론들은 여러 직종의 방문노동자가 겪는 위험을 보도하면서 '헐벗은 나체의 고객'이나 '남성 1인 가구' 등의 헤드라인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보도방식은 방문노동에 따른 위험을 지적했다는 측면에서는 정반대의 경향처럼 보였지만, 남성 가해자의 심각한 가해 행위와 더불어 방문노동자의 대다수가 여성 노동자라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런 강조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방문노동자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소수의 가해자에 의해 발생한다는 기업의 논리를 강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더욱이 가해 행위에 초점을 두자, 가해자의 성별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성별 역시 중요한 위험 요인으로 부각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위험세대를 선별해 원청 남성 직원과 동행하도록 하거나, 위험세대는 남성 검침원이 방문하겠다는 기업의 대안들이 제기되거나 검침원을 남성으로 모두 바꾸라는 인터넷 댓글 등이 나타났다.

하지만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이 오랫동안 말해왔듯이, 성폭력은 그것을 용인하고 묵인하는 사회문화, 사회 전반의 낮은 젠더감수성 속에서 벌어진다. 그렇기에 성폭력은 결코 소수의 남성 또는 개인에 의한 문제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 문화적 차원이나 성폭력의 발생 조건을 지적하지 않고 몇몇 개인의 일탈로 설명하는 것은 가장 흔히 문제를 축소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일터에서 발생한 성폭력 역시 노동자가 처한 위험이 방치되고 지속 반복되었던 구조적 문제를 짚어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 우리는 고객에 의한 폭력을 방치한 기업과 사업주의 책임을 주목해야 한다. '여성' 방문노동자라는 점이 곧 성폭력과 고객의 폭력에 취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방문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이 부재한 노동환경이 여성 노동자들이 더욱 쉽게 성폭력 및 폭력에 노출되도록 하는 것이다. 즉 방문노동의 노동환경이 위험을 만들어내는 일차적 조건으로써 더욱 드러나야 할 것이다.

 


방문노동의 '위험', 어떻게 봐야 할까
  
그럼 이 위험을 어떻게 봐야 할까. 방문노동은 확실히 일터의 공간적 특성이 위험을 쉽게 발생시키는 첫 번째 요인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고객을 대면하는 업무에서, 노동자가 고객이 가진 위계에 쉽게 대응하기 어렵게 만드는 기제를 잘 알고 있다.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이 노동자의 안전할 권리보다 고객의 피드백·항의를 우선하기 때문이다.

방문노동의 경우, 대면 업무가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기에 이런 기제가 심화되기 쉬운 여건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방문 형태의 노동 자체가 곧바로 위험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방문 대상자인 고객에 대한 제재나 인식 개선의 노력이 전혀 없이 문제를 방치하는 것, 그리고 업무 중 안전사고나 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정확히 대응하거나 신고하기보다 상황을 무마하고 넘기도록 하는 '실적제' 또는 '할당제' 역시 중요 원인 중 하나다.

또 고객에게 입은 피해를 회사나 중간기관에 사후적으로 신고하더라도 별 응답이 없거나, 오히려 노동자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큰 문제다. 이용자와 노동자를 연결해주는 기관에는 이용자를 유치하는 일이 곧 이윤으로 직결되기에, 전적으로 이용자의 편의를 봐주는 데다가, 노동자를 쉽게 해고하고 교체하는 게 가능한 상황도 노동자의 권리를 약화시키는 원인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 어떻게 노동자가 제대로 된 노동의 권리를 말하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시 정확한 대응을 할 수 있는 힘과 역량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런 와중에 기업과 기관들의 실효성 없는 대책의 반복 또한 드러났다. 2015년 경동도시가스 업무 매뉴얼에는 위험 상황에서 '다음 가정을 빨리 방문해야 한다.'고 말하며 자리를 피하라고 제시되어있었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제작한 <노인장기요양 방문요양·방문목욕 급여 제공 매뉴얼>에 나오는 재가요양보호사 업무 지침에서도 거의 유사하게 존재한다. 그러니 과연 단순히 '사적 공간'에 '방문'해서 노동한다는 점 때문에 위험이 발생한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매뉴얼이 시사하는바 역시 기업과 기관들이 위험이 쉽게 가중될 수 있는 노동조건을 조장해왔으며 노동자의 안전은 협소하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시간 일자리, 비정규 노동의 특징 또한 불안정 노동을 심화하는 조건이다. 이때 불안정한 노동 자체도 문제이지만, 그에 더해서 노동자의 안전과 책임에 대한 부재가 대단히 심각하다. 예를 들어 재가요양보호사는 한 기관이 보통 1명의 노동자와 1건만 계약을 진행하기 때문에 흔히 노동자들은 장시간 일하기 위해서 2~3개의 기관과 고용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일한다.

하루 동안 2~3명의 이용자에게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건마다 계약을 맺은 기관이 다른 셈이다. 이럴 경우, 노동자의 사회보험료 지급 등은 각 기관이 같은 비율로 나눠서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복잡한 고용관계 속에서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책임 또한 소실될 수밖에 없다. 근본적 해결을 위해선 건당 계약, 단시간 고용 등 불안정 노동을 심화하는 조건들을 없애야 하며, '방문노동'의 형태를 충분히 고려한 산안법 적용, 사업주 책임이 부여되어야 한다.

한편에서 현재 방문노동자가 겪고 있는 고객에 의한 다양한 폭력의 양상들, 괴롭힘, 사적 연락, 성희롱 및 성폭력 문제는 안전을 일상적으로 위협하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이것이 방문노동자가 경험하는 안전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일례로, 도시가스안전점검원들은 계단, 비탈길 등을 워낙 잦게 이동하기에 이동 중 안전사고가 발생하기 쉽다. 발목 염좌나 인대 부상은 빈번한 직업병이다.

또 검침 업무를 위해 확인해야 하는 계량기는 대개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건물 측면 위에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보통 다세대주택이나 빌라에서 건물 측면 또는 뒤편으로 가는 길은 자물쇠로 잠겨있기 마련이다. 높이 있는 계량기를 확인하기 위해 담이나 발판을 딛고 올라가 살펴보거나 출입문이 잠긴 경우에 어쩔 수 없이 출입문을 넘기 위해 담을 타는 일이 빈번하다. 이 경우 담에서 떨어지거나 하여 다치거나 정신을 잃은 노동자를 아무도 발견하지 못해 시간이 지나 스스로 정신을 차리고 수습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도시가스안전점검원/검침원에게 2인 1조가 필요한 까닭을 성폭력 등의 위험뿐 아니라 위와 같은 사고성재해 등 노동자의 안전과 관련된 여러 맥락을 통해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위험을 가중시키는 조건들: 노동시간, 실적제, '사적 관계'의 형성 
  

방문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업무를 매번 관리 감독하는 게 어렵다는 이유로 대단히 임의적이고 기업 편의적인 방식으로 책정된다. 대부분 실제 일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보다 노동시간이 낮게 책정되어 있다. 예를 들면, 간주노동시간제로 운영되는 도시가스안전점검원이나, 구청 소속으로 일하는 방문간호사, 통합사례관리사 등을 제외하고는 정해진 서비스 제공 시간에 따른 방문 횟수가 노동시간 책정의 주된 방식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할당된 세대 수와 정해진 '간주노동시간'이 적절하게 설정되어 있는지, 정규 노동시간 동안 일하더라도 일과 중 휴게시간과 공간은 제대로 부여되고 있는지, 방문 시 심각한 상황에 처한 서비스 이용자를 발견했을 때 마음을 추스르거나 숨을 돌릴 시간은 주어지고 있는지, 위험 상황에 처했을 때 작업중지는 가능한지 등도 따져봐야 할 쟁점들이다.

또한 노동시간에 대한 단순한 양적 관리뿐 아니라 '실적제' 형태로 노동을 통제·감시하는 체계도 여러 방문 노동에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적은 노동시간 동안 정해진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는 것은 다양한 직종에 여러 종류의 위험을 낳는다. 검침원들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바쁘게 이동하다 이동과정에서 산재가 발생하기 쉽고, 방문간호사들은 담당하던 노인의 사망을 최초 목격하더라도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경찰신고 등 조치를 취하고서는 곧바로 다음 가정을 방문해야 한다.

한편 시급제로 임금이 책정되는 직종들은 더욱 노동시간 문제가 심각하다. 건당 계약을 하거나, 시간당 임금이 정해지는 장애인활동지원사, 재가요양보호사 등의 직종에서는 서비스 이용자가 할당받은 서비스 시간에 대한 수가에서 임금이 책정되는데, 노동한 만큼 시간이 정해지는 게 아니라 서비스의 제공 시간이 정해지고, 그만큼의 임금만 산정이 되는 방식이다. 중간기관인 방문요양기관이나 장애인활동지원 단체의 이윤과 운영관리비도 동일한 수가에서 지급되기 때문에, 초과근무가 발생하더라도 기관이 노동자에게 수당을 제대로 지급할리 만무하다.

그런데 이렇게 이용자에게 부여된 서비스 제공 시간만큼만 일하는 것이 실제로도 가능할까? 환자인 노인이나 장애인의 컨디션이나 업무 지시 등 상황에 따라서 초과근무 시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때, 돌봄노동의 경우 서비스 제공과정에서 이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관계가 불가피하게 형성되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이러한 관계형성으로 인해 노동자 스스로는 노동시간을 통제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회복지 서비스의 경우에는 방문의 대상이 주로 장애인, 노인, 환자, 이주여성 등이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취약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종종 장애인활동지원사나 재가요양보호사를 주민등록상 비상연락망에 등록하기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정도로 이들을 돌보는 노동자는 이용자들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적인 부탁이나 업무 외 시간에 오는 연락, 업무 범위를 벗어난 일을 지시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물론 이러한 사적 부탁, 업무 외 지시, 업무 외 연락 등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대단히 거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특히 다수의 노동자가 불안정한 고용형태를 가지면서 이용자의 민원, 항의에 중간기관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현 체계상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점에서 이용자의 사적 연락, 부탁 등 소위 '갑질'이 지적되어왔다. 하지만 과연 이 모든 문제를 이용자의 '갑질'로만 해석할 수 있을까. 이용자의 '갑질' 뒤에는 노동자 개인에게 사회복지 서비스의 공백의 책임을 전가하는 위탁운영 기관, 더 중요하게는 지자체 및 정부의 복지서비스 체계가 있다. 이런 전체적인 맥락과 상황마다 결이 지적되지 않고 단순히 이용자와 노동자 간의 문제로 축소되어선 안 된다. 노동자가 사적인 부탁이나 업무 외 지시를 받지 않도록 업무용 폰 지급부터 정해진 노동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관리/감독이 필요하며, 다른 편에서는 이용자에 대한 복지 전달 체계 자체를 검토하는 일과 불편사항을 전담하는 별도 인력이 필요하다. 

 


안전하고 건강한 방문노동을 위한 과제

한 명의 사람이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돌봄의 영역은 매우 광범위하지만, 정작 제공되는 서비스와 시간은 제한적이다. 그러니 제도적 공백을 방문노동자의 사적 시간과 사적 관계로 메우는 일이 발생한다. 개인의 헌신과 시간 투여에 의존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고 있는 사회복지 영역에서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나아가 월급제 등 정확한 노동시간 책정과 업무의 명확한 분할을 통해 방문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뿐만 아니라 방문노동자가 일상적으로 겪는 감정노동부터 고객에 의한 괴롭힘, 성희롱 등 성폭력 문제, 이동 중 안전사고, 만연한 근골격계질환, 정신건강 등의 문제를 제대로 다룸으로써 현재 협소하게 인식되고 있는 방문노동자의 위험을 다각도에서 보는 일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기업과 기관이 직접 문제적 행동을 한 고객을 제재하는 것부터 일상 수준에서 고객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실태조사와 안전조치를 마련하는 것까지 다양한 대응책과 개선방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더 중요하게는 방문노동자들에게 위험을 예방할 수 있도록 작업중지권의 보장, 그리고 방문노동 전 직종에 만연해 있는 실적제, 할당제와 같은 노동 통제를 위한 제도들이 전부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오래된 관점 중 하나는 위험 요인이 일터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위험 요인의 관리, 즉 안전 교육과 매뉴얼의 보급 등 예방적 차원의 문제부터 사고에 대한 대응, 그리고 재발 방지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과 조치가 노동자의 안전을 가름한다. 따라서 방문노동 역시 어떤 조건 속에서 안전 문제가 지속·반복되고 있는지를 규명하는 것, 그리고 어떻게 방문노동의 특성에 맞게 노동과정과 환경에 대한 책임을 사업주나 (대부분 민간에 위탁운영하고 있는 지자체와 같은) 원청에 부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까지 나아가야 한다.

특집3. '평등한' 노동안전보건을 위한 요구, 일터에서의 성중립화장실 / 2020.03

'여자처럼' 꾸미고 '여자처럼' 말하는 일은 정현 인생에 없다. 그러나 회사 사람들은 정현의 성별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 주변에 성소수자는 없다고 믿으니까

 -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오월의봄, 2019) 중에서

 
위의 문장에서 나오는 '정현'이란 사람이 바로 나다. 먼저 내 소개를 하자면 나는 이력서 성별란에 '여자'라고 적히고,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2로 시작하는 '남자'다. 다시 말해서 트랜스젠더 남성이고 30년 전에 여자로 이 세상에 태어남을 '당'했다. 고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내가 가지고 태어난 성별과 실제로 느끼는 성별이 불일치하다는 '젠더 디스포리아(성별불쾌감)'을 경험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는 트랜스젠더 남성으로 정체화했다. 현재는 성소수자인권 단체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노동권팀과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트랜스젠더 남성의 화장실 이야기  

 

성중립화장실의 표지판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트랜스젠더 남성으로서 겪었던 일화 몇 개를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 일화는 어떤 학원에서 일할 때였는데, 퇴근시간 후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남자화장실에 들어갔다가 회사 동료랑 마주쳤던 적이 있었다. 다음 날 팀장님과 면담할 때, 내가 트랜스젠더 남성이고 퇴근시간 이후라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남자화장실을 사용했다고 커밍아웃을 했다. 다행히 그 팀장님은 자신의 주위에도 퀴어가 있는 엘라이(성소수자 지지자)셨고, 팀장님께서는 잘 넘겨주셨다.

두 번째로 가장 최근에 다녔던 직장 이야기다. 장애인 인권단체였는데 입사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같이 일하는 센터 활동가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나는 내가 트랜스남성이며 나를 남자로 대해 달라고 했는데도, 나를 여자로 대하거나 나를 여자로 가정하고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또 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한 동료 활동가들은 그들의 활동지원사와 같이 사무실에서 지내는데, 어느 날 장애인인권활동가들이 모이는 행사가 열렸다. 그곳은 내가 트랜스남성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았지만, 내가 남자화장실에 들어가려 하자 한 활동가의 활동지원사가 여기는 남자화장실이라고 막아 세웠다.

일터에서의 평등, 젠더분리화장실만으로 가능할까?

트랜스젠더 남성으로서 노동을 해오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화장실'은 중요한 문제였다. 최근 몇 년간 성소수자의 화장실의 이용 또는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2015년, 강남역 인근 상가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많은 페미니스트의 분노로 현재 페미니즘 운동과 담론이 활성화됐지만, 한편에서는 사건 이후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당시 서울시는 모든 공중화장실을 남녀 분리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트랜스남성인 나는 그 말을 듣고 "역시 세상은 시스젠더(타고난 생물학적 성과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중심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법적 성별을 정정하기 위한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고 머리도 짧아서 남자화장실에 들어가도 큰 문제는 없지만, 그 당시만 해도 목소리를 내면 톤이 높아 패싱이 깨져 버리는 상황이었기에 외부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화장실과 관련된 한 가지 일화를 더 얘기해 보려 한다. 몇 년 전, 외출해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급히 화장실을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때 남자화장실이든 여자화장실이든 사람이 많은 상황이었는데, 어느 곳을 가야 할지 무척 고민이 되었다. 과거에 내가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잘못 들어온 줄 알고 다시 나가서 표지판을 확인하고 들어오는 경험이 여러 번 있었고, 트랜스젠더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에서 남자화장실을 들어가는 것 또한 어려웠다. 결국 나는 2시간 넘게 화장실을 가지 못하고 참았다.

이렇게 트랜스젠더들은 일터 화장실이나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어느 곳에 내가 속할 수 있을지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젠더이분법을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서 개인적 경험을 들어 설명했지만, 이는 트랜스젠더 남성인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시스젠더들이 일하거나 외부활동을 할 때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해서 방광염 등의 질환에 걸리는 사례를 주변에서 자주 접하곤 한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건물 중 상당수는 남녀구분이 없는 화장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오래된 건물이나 일반 상가의 경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때 젠더분리된 화장실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젠더분리된 화장실이 일터에서의 평등을 온전히 실현하도록 해주는가? 나와 주변의 경험에 비춰볼 때, 남녀로 구분된 화장실 또한 성별이분법에 근거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화장실 접근에 있어서 불평등 문제는 어디서부터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 다시 말해, 화장실이라는 일상공간을 안전하고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 일은 무엇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을까?

회사생활을 하는 나는 오늘도 내가 일하는 사무실이 있는 층의 '여자'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고 다른 층의 '남자'화장실을 사용하거나 다른 건물의 '남자'화장실을 사용한다. 나는 바이너리 트랜스젠더(본인의 성별정체성을 남성 혹은 여성으로 규정하는 사람)라 이렇게라도 대안이 있지만,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본인의 성별정체성을 남성 또는 여성과 같이 이분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에는 더 복잡해진다. 우리들은 언제나 화장실 앞에서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래서 발걸음을 돌리고 자꾸만 망설이게 되는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끼게 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안전하게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바라며  

 


그동안 화장실 이용에 배제된 당사자로서,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담론을 보며 고민이 들었던 것은 성중립 화장실의 필요성과 성별분리 화장실이 제기된 맥락 사이에서 논점이 자꾸만 흐려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성중립 화장실에 대해서 그것이 성폭력 위험을 더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반문 또는 성중립화장실을 만들기 전 성별 분리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제기된다. 그러나 일터나 일상활동 속에서 성폭력을 예방하고자 할 때, 젠더 분리화장실을 설치하는 것이 과연 안전한 일터와 일상을 만드는 적합한 대책일까?

어쩌면 이 문제는 단순히 화장실 이용의 대상을 규정하는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 게 아닌가 싶다. 이용 대상의 기준을 나누는 우리 사회의 성별이분법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젠더불평등이 우리의 일터와 일상공간에서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우리의 건강을 저해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점에서 화장실 이용에 관한 평등은 다음의 요구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바로 성중립화장실 말이다. 상대의 젠더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편하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성중립화장실의 형태는 생각보다 무척 다양할 수 있다. 그러니 평등한 화장실의 형태란 무엇일지 상상하고 실험해 보는 것, 누구든 배제되지 않는 화장실을 생각해 보는 것, 나름 발칙하고 재밌는 일이 되지 않을까. 이때 그 상상과 실험은 일터에서 우리가 공유하는 평등에 대한 감각을 바꿀 것이다.

특집2. 이동노동자의 화장실 접근권 문제 / 2020.03

[모두를 위한 화장실과 일터의 평등②] 

 

 

 

이동노동자의 화장실 접근권 문제 

 

 

 

재현 / 운영집행위원 

 

 

 

이동 노동자는 대리운전 기사, 택배 기사, 가전제품 설치·수리 기사, 방문 교사, 집배원, 배달원, 방문 판매원, 방문 점검원 등과 같이 정해진 장소에서 일하지 않고 이동하면서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을 말한다.

최근 산업 구조와 환경의 변화로 플랫폼(platform)을 기반으로 노동 및 서비스의 수용과 공급이 연계되는 방식을 통해 생산과 소비가 조직되는 디지털 특수형태 노동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플랫폼 노동이 이동 노동자와 결합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동 노동자의 규모

정부 부처나 연구기관의 자료, 언론 매체를 통해 드러난 업종별 이동 노동자 수를 <표 1>에 정리하였다. 포함되지 않은 노동자들도 있어 명확한 규모를 알기는 어려우나 대략적인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표1> 이동노동자의 규모를 추산했다.

 

기본적인 생리 현상도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

이동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며 일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아주 기본적인 생리 현상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이동 노동자들은 안정적으로 생리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다 보니 각자가 참고 견디는 상황이었다.

"언론사에서 저희가 일하는 것을 보겠다고 동행취재를 왔었어요. 그때 우리가 일하면서 물을 마실 수가 없다고 이야기한 게 기사로 나갔는데, 그걸 본 사람들이 댓글에다가 '웃기지 마라, 가까운 은행도 있고 물 마실 데가 얼마나 많이 있냐' 그러더라고요. 저희는 물이 있어도 그 물을 마실 수가 없거든요.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일하던 곳에서 20~30분 정도는 왔다 갔다 해야 하니까 그냥 안 마시는 거죠."(이동 노동자1)

"집에 방문하다 보면 물을 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마셔도 괜찮은데 겨울에는 물을 안 마셔요. 누가 주신다고 해도 죄송하다고 하고 안 받아요. 어떤 분은 뚜껑을 꼭 열어서 음료수를 주니까 안 마실 수가 없는 경우도 있고요."(이동 노동자2)

"저희가 화장실에 못 가는 문제로 방광염에 걸려서 입원할 때가 있어서 그날은 일을 못 한다고 회사에 연락하면 콧방귀도 안 뀌더라고요."(이동 노동자3)

"저는 한 번 정말 화장실이 급해서 참다 참다가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숨어서 볼 일을 해결한 적이 있어요. 제가 담당하는 지역이 평창동이라 집 담벼락들이 높고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이 적은 동네라 몰래 했는데 그럴 때는 창피하고 그래요."(이동 노동자4)

"과외 일을 할 때 저는 주로 전철역을 이용했고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보편적인 방법이었어요. 아주 가끔 백화점이나 쇼핑몰 화장실을 이용했고요. 아무래도 쾌적하고 청결하거든요. 정말 급할 때는 과외를 하러 간 학생 집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더러 있었는데 사실 굉장히 불편했어요."(이동 노동자5) 

공공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동 노동자들은 긴 시간 생리 현상을 참으면서 일하고 있었다. 그 결과 이동 노동자들은 방광염 같은 질병을 얻기도 한다.

이동 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진 쉼터

이동 노동자들의 화장실 이용은 물론 휴식 공간 제공을 위해 2016년 서울시와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휴(休)서울이동노동자 쉼터를 열었다. 현재 다섯 곳의 쉼터를 운영 중이며, 이후 경기도, 경상남도, 제주도에서도 쉼터 운영을 시작했다. 초기에 쉼터를 이용하는 노동자는 대리운전 기사들이 다수였지만 버스 운전기사, 퀵서비스 기사, 요양보호사, 보험 설계사, 학습지 교사, 집배원, 우유 배달원, 방문판매원, 가사도우미, 아이돌보미 등으로 점차 다양해졌다.

내용 면에서도 화장실과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건강, 법률 상담을 비롯해 인문학 강좌 등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2019년 쉼터를 설치한 제주도의 경우 전국서비스산업연맹 제주지역본부 노동조합이 위탁 운영을 맡게 되어 이동 노동자의 조직화도 고민할 수 있는 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쉼터를 넘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이동/방문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공중화장실 개방이 필요하다.

 

쉼터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와 효과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마련하고, 이동 노동자들의 필요와 요구를 반영하여 쉼터를 만들고 운영해나가는 노력을 지속해야 하겠다. 정부와 국회는 20대 국회가 발의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플랫폼노동 종사자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도록 휴게시설 등을 설치·운영하도록 하는 내용의 '근로복지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시키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나 쉼터를 늘리는 것만으로 이동 노동자의 화장실 접근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번 기회에 다양한 방안에 대해 고민을 이어나갔으면 한다.

또한 생리 현상을 해결하고 개인위생을 보호하기 힘든 이동 노동자의 노동 조건에 대해 전 사회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가령 정부가 실태를 알리고 동네 곳곳의 카페, 편의점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을 이동 노동자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캠페인으로 제안하고 이를 안내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종교 시설, 아파트 관리시설 등에 있는 화장실 역시 이동 노동자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도록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장려할 수 있겠다. 이동 노동자의 화장실 이용에 대해 사업주가 일정 금액을 급여나 수당으로 부담하도록 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단순히 서로에게 호의를 베푸는 문제를 넘어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 등 철저한 개인위생이 요구되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도 이동 노동자들은 손 씻을 곳조차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이동 노동자에게 충분한 손 소독제와 마스크를 지급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개별화되어 있는 이동 노동이라는 고용 형태로 인해 이것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는 주체가 명확하지도 않다. 따라서 정부는 물론 이동 노동으로 인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함께 노력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동 노동자가 자신의 건강을 위해 마음 편히 생리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휴식 시간과 여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업무량이나 건수에 의해 임금이 책정되는 노동 조건과 임금 체계 등의 개선과 더불어 고용안정이 보장되어야 한다. 나아가 이동 노동자의 생리 현상뿐만 아니라 미세먼지, 폭염, 혹한 등 기후 환경과 외부 조건으로도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특집1. 갈 수 없는 화장실: 단일한 ‘노동자’란 없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과 일터의 평등①]

 

 

 

갈 수 없는 화장실: 단일한 ‘노동자’란 없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 일터부터 설치하자

 

 

 

김지안 / 상임활동가 

 

 

 

통제되는 노동자의 권한과 인권

 

갈 수 없는 화장실의 문제는 어떤 조건 속에서 발생하고 있을까? 모든 사람은 매일 일정 횟수 이상 화장실에 가야 하며, 그렇기에 누구든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대전제에 대해서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20세기까지 횡행했던 인종 분리 화장실에 대한 지적은 굳이 자세한 이유를 대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회구성원이 인권침해로 여길 것이다. 인종을 이유로 화장실 이용을 거부해선 안 되고, 인종을 떠나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적절한 거리 간격, 크기와 공간설계로 화장실이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면 성별로 봤을 때는 어떨까. 현재 한국 사회에서 누구든 성별과 관계없이 원활히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을까? 아마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2019, 대다수의 건설 현장에 여성 화장실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실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수는 전체 노동자 대비 10% 정도인데 이들이 용변을 볼 수 있는 화장실과 작업복을 환복 할 수 있는 탈의실이 일하는 현장에 제대로 구비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갈 수 없는 화장실의 문제는 많은 일터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의 문제이기도 하다. 건설 현장의 사례처럼 성차별의 결과로만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서비스·판매직의 경우에는 노동생산성이나 고객의 편의를 위해 화장실 이용이 제한되기도 하고, 이동·방문노동자와 같이 특정한 사업장에 속하지 않고 이동하며 일하는 경우에는 노동의 형태 문제이기도 하며, 젠더와 장애 등 노동자의 정체성에 따라갈 수 있는 화장실 자체가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결국 문제의 양상은 다르더라도 문제의 핵심은 누구나 화장실을 가야 하지만, 현재의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누구나 갈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갈 수 없는 화장실의 문제란 단순히 화장실의 변기 대수와 설치를 늘려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 노동자들의 조건을 밝히고 바꿔야 하는 일이다.

 

가령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필요할 때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것은 자본이 노동자의 인권보다 고객의 편의를 우선하고, 노동을 통제하려는 것, 그러면서 (특히 이동·방문 노동자의 화장실 접근 및 휴게시간·공간이 부재하다는 측면에서) 노동환경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은 갈수록 개별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현상과 맞물려있다.

 

또한 화장실은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누구나 가야 하는 화장실에서 어떤 사람들의 필요는 배제되며, 이 배제된 이용자들은 생리현상과 위생, 그리고 자기 몸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도 과연 누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인지, 누가 이용할 수 없는지를 가르는 것은 일터를 지배하는 뿌리 깊은 정상성, 정상적인 몸의 기준이라는 비판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터의 화장실이라고 하는 이 소박해 보이는 주제는 노동자와 그의 삶이 상상되는 방식과 노동자의 인권, 그리고 일터에서의 평등과 관련된 많은 문제점을 시사한다.

 

누가 일을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지, 누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지, 그 일을 하는 노동자의 삶과 필요들은 어떻게 상상되는지 등등. 그러니 이런 조건에서 화장실 이용이 불가능하거나 제한되는 노동자들의 문제는 사회와 일터가 누구를 포함하고 배제하는지 또는 비가시화하는지, 또는 어떤 노동자의 상을 전제로 노동과정과 속도, 생산시스템이 구성되는지의 문제와도 동떨어질 수 없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의 표지판이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 ‘모두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

 

화장실 이용에서 배제된 구성원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우선 공중화장실의 경우를 보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이용 가능한 화장실이 없어서 문제가 되고, 어떤 경우는 화장실이 있어도 제대로 설치되어있지 않아서 문제가 된다. 즉 화장실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화장실이 존재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때에 이용할 수 있으며 필요한 곳에 필요한 설계로 화장실이 설치되어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 화장실이 마련되어있지 않은 건물에서 일하게 된 장애인이 있다고 하면 그가 느낄 당혹스러움은 전자의 예시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여성 화장실 줄은 후자의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갈 수 없는 화장실의 문제란 기본적으로 화장실-설계, 이용방식, 이용의 대상, 분배-에 누군가는 배제되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그래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또는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담론은 그 말 자체를 통해서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드러낸다. 현재의 화장실이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간단한 사실이다.

 

그래서 가장 우선적으로 이 담론은 이원화된 젠더 체계에 기반한 공중화장실의 설계가 젠더규범에서 벗어나는 성소수자로 하여금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점을 비판한다. 이로 인해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성소수자들의 삶은 제약되고 배제되는데, 지속적인 삶의 제약은 다시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배제라는 악순환을 낳기에 더욱 문제적이다.

 

한편에서 성중립화장실의 설치가 여성의 안전과 대립하는 것으로 상상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많은 사회에서 성중립화장실이란 화장실의 남/여 구분을 아예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의 성별분리화장실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성중립화장실을 하나 더 설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성중립화장실 모델은 반드시 젠더에 대한 접근만으로 설계되는 건 아닌데, (성별과 무관하게) 아이를 돌보고 있는 사람, 몸이 불편하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 타인의 시선이나 접촉 없이 독립된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은 사람 등 그야말로 모두를 위한 디자인인 것이다.

 

화장실에 못 가는 노동자들

 

일터의 경우는 어떨까? 화장실과 관계된 일터의 문제들 역시 갖가지다. 수많은 노동자가 일하는 과정에서 화장실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어있거나,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다 먼저 화장실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만드는 중요한 원인에는, 화장실의 이용이 노동생산성을 방해한다는 생각에서 노동자들을 통제하고자 하는 자본의 입장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콜센터 노동자들은 화장실 출입을 하기 위해서 전체 메신저에 화출’(화장실 출발)화착’(화장실 착석)이라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 일종의 보고 내지 허가를 받아야 하는 셈이다. 콜이 쏟아지는 시기에 여러 명이 동시에 화장실에 갈 경우 그만큼 콜을 받는 생산성도 떨어지고 대기하는 고객도 증가한다는 명목이다. 이런 경우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불편할 콜센터 노동자들의 문제는 쉽게 상상할 수 있겠다. 실제로도 다수의 콜센터 노동자들은 아예 물 섭취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조율하기도 하며 만성적인 방광질환에 시달린다. 이런 문제는 비단 콜센터 노동자뿐 아니라 손님이 몰리는 시기를 피해서 화장실에 가야하고, ‘허가를 받아야 하는 서비스직 노동자들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점이다.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층마다 화장실이 있더라도 그곳이 고객 전용 화장실이기에 출입을 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데, 2018년 서비스연맹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시간이나 인력의 부족 등으로 매장을 비울 수 없기 때문에 59.8%의 노동자가 일하던 중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경험을 했다고 답했다. 게다가 직원용 화장실은 일하는 위치와 멀리 떨어져 있고, 변기 대수 역시 부족하기에 이용은 더 불편하다. 이런 경우들은 모두 화장실이 있어도 실질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사례들이다.

 

반면 이동, 방문 형태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자체가 없다는 게 주된 문제다. 한 예로, 도시가스안전점검원들은 안전점검 업무를 할 때는 고객의 집에 들어가서 가스누출 등을 확인하지만, 검침 업무를 할 때는 건물 바깥에 부착된 검침기를 체크한다. 물론 고객의 집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도 방문노동자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쉬운 일은 아니지만, 주거 밀집 지역을 검침하는 경우에는 주변에 이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이나 상가건물조차 없어서 큰 문제다. 그래서 대개 근무 중에는 식사도 거르고, 물도 마시지 않으며 방광염은 직업병으로 달고 산다.

 

한편, 앞서 말한 건설 현장의 예시는 여성 건설노동자가 건설 현장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통념과 더불어, 분명히 여성 노동자들이 현장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없는 것으로 치부된 성차별의 결과다. 그 속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필요와 욕구는 무시되고 비가시화되어왔다. 왜 기업은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10%나 되는 여성 노동자가 매일 몇 번씩 화장실을 가야 한다는 간단한 사실을 방치하고 있었을까?

 

이 문제가 이슈가 된 직후 고용노동부는 지난 6, <2019 사업장 세척시설 및 화장실 설치 운영 가이드>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화장실 운영의 가장 첫 번째 조항은 남녀분리화장실이다. 이때, 건설 여성 노동자의 사례와 동일한 맥락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갈 수 없는 화장실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일터에, 특히 건설 현장처럼 이동 화장실이 설치된 경우에는 여성의 안전을 위해 남녀분리화장실이 필요하다고 말해지는 맥락이 있다. 수많은 성폭력, 불법 촬영 범죄가 공중화장실과 일터 내 화장실을 매개로 저질러지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하지만 성별분리화장실을 설치한다는 것이 일상과 일터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에 대한 충분한 예방과 해결이 될까? 모든 공중화장실을 남녀분리하면 성폭력은 예방될 수 있는 것일까? 그건 성폭력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과 작동을 단순히 성폭력이 발생하는 단 한 가지 공간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게 아닐까? 그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폭력과 불법 촬영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와 처벌 등의 정책이다.

 

오히려 성별분리화장실로 모든 화장실을 개선하겠다는 정책은 갈 수 없는 화장실문제가 성소수자 노동자에게 심화 되는 결과를 만든다. 그래서 일터에도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사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이미 일터에 존재하고 있는, 일터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노동자들과 그들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실재하는 노동자를 고려했을 때 필요한 것은 화장실 이용대상과 시간, 설계, 분배에서의 적극적인 평등이다.

 

일터의 모두를 위한 화장실’, 건강과 인권의 문제

 

일하는 도중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가. 이런 경우에 많은 노동자가 화장실을 자유롭게 갈 수 없으니 식사는 물론 물 섭취도 자제하고, 화장실에 못 가서 발생하는 방광질환도 만연하며, 늘 갈증이 나기에 과식을 하게 되는 등 생활습관도 망가지며 전반적인 생리작용이 좋을 수 없다.

 

또한 한편에서 화장실은 단순히 용변을 보는 곳으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화장실은 생리대를 교체하거나 손을 씻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같이 전염병이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다뤄지는 시기에 화장실은 공중보건과 위생 차원에서도 주기적으로 손을 씻을 수 있는 공간으로써 감염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전염을 예방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장실 이용조차 통제되고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다는 사실로 인한 노동자들의 불안감과 정신적 스트레스야말로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다.

 

결국 화장실의 이용과 설계, 분배가 평등해야 한다는 말은 인권의 문제인 동시에 노동자 건강과 관련된 중요한 노동의 권리이다. 나아가 노동자가 스스로의 몸과 속도를 기준으로 노동과정과 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권한의 문제도 제기해보고 싶다.

 

성별분리화장실에 들어갈 수 없는 트랜스젠더 노동자, 이뇨제를 먹어야 하는 질환을 가진 노동자, 생리대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여성 노동자 등등···. 너무 많은 현실의 삶이 있다. 어떤 노동자의 삶도 일터에서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 화장실이 모든 문제의 결론은 아니지만 일터부터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설치되어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