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한국 노동자의 노동, 그리고 시간 / 2014.6






[특집] 1. 노동시간센터(준) 기획연재를 시작하며 / 2014.6

노동시간센터(준) 기획연재를 시작하며

 

김경근 노동시간센터(준)

 

한국의 노동자들은 정말 오래 일한다. 여전히 그들은 하루 종일 일하고, 일 년 내내 일한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장시간 노동이 사회적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점점 더 가족과 여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생명과 건강의 소중함이 인정받게 되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정부와 기업은 이미 발 빠른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 자체를 거부할 수 없게 되자, 속도와 방향을 자신들의 뜻대로 좌우하려 한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자들의 삶과 생명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커다란 변화가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 우리의 준비가 부족한 상황. 노동시간센터는 바로 이러한 위기에서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비단 ‘길이’ 만 문제가 아니다. ‘배치’의 문제, 즉 비표준적 노동시간이 확산되고 있다. 예전에는 비슷했지만 이제는 개인별로 다양해진다. 누군가는 너무 많이 일하고 누군가는 너무 적게 일한다. 어떤 이들은 남들과는 다른 시간에 일해야 한다. 예전에는 무조건 오래 일을 시키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시간만큼 일을 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변화했다. 그들의 관심은 이제 노동시간을 누가 어떻게 통제하는가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고용의 유연화를 확보한 그들은 이제 시간의 유연화마저 손에 넣으려 하고 있다.

 

한국에서 장시간 노동이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기업들이 최대한 적은 인원을 채용하여 최대한 오랫동안 일을 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 세계 모든 자본의 꿈이다. 중요한 것은 왜 한국에서 그러한 방법이 성공할 수 있었느냐이다.  우선 임금과 법·제도의 문제, 사회적 규범 등을 원인으로 제시할 수 있다. 저임금에 기본급 비중이 낮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는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 초과 노동에 대한 법 규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며, 사회적 분위기는 장시간 노동을 미덕이자 의무로 여긴다.


이에 더해, 소비가 점점 더 중요한 삶의 요소가 되고 있다.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노동자들은 더 많이 일해야 한다. 이처럼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선택’하고 있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노동자들이 오히려 장시간 노동을 요구하고 원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노동자들의 선택은 ‘욕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속에 숨겨진 ‘공포’와 ‘불안’을 읽어야 한다.

 

IMF 경제위기 이후, 노동자들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끊임없는 구조조정 속에서 고용이 절대적 과제가 되었지만, 노동조합이라는 기존의 방식은 별다른 힘을 가지지 못했다. 집단적 해결책이 좌절된 상황에서 남은 길은 개별적 순응뿐이었다. 장시간 노동은 당연한 현실이 되었고, 나아가 부러움의 대상이자 감사한 선물이 되었다. 무엇보다 작업장의 권력이 완전히 넘어간 상황에서, 회사가 초과노동을 ‘권했을’ 때 이를 거부할 수 있는 노동자는 없다. 돈을 더 벌 수 있어서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용에 대한 불안과 현실을 바꿀 수 없는 무기력에서 시작된 선택이었다. 그렇게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했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처럼 IMF 이후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기업의 이윤이 절대적 가치로 자리 잡았고 합리성의 기준이 되었다.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그것은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힘의 격차가 압도적인 상황을 바꿔내지 못한다면, 그 변화가 긍정적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결국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과 노동시간의 통제권을 확보하는 것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곧 게임의 규칙을 바꿔야 함을 의미한다. 일터를 바꿔내지 못한다면, 장시간 노동 문제는 그저 가족과 여가의 문제로 국한되고 기업의 입맛에 맞는 노동시간의 유연화로 이어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노동시간 문제가 중요한 것은 규칙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심야노동 철폐와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주장들은 관점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더 이상 이윤이 아니라 인간이 우선임을, 생명과 건강 그리고 삶의 행복이 합리성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기업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것이 게임의 규칙이었다면, 노동자들의 ‘당연한’ 요구가 새로운 기준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결국 관건은 ‘일터’의 안과 밖을 연결시키는데 있다. 노동시간은 가족이나 여가 그리고 본인의 건강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다. 따라서 개인의 사생활 문제로 여겨지기 쉽다. 노동시간 단축의 원동력은 분명 그렇게 일터 ‘바깥’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터 ‘안’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며, 무엇보다 ‘안’을 바꾸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다. 노동시간은 일터 안과 밖을 연결하는 핵심적인 고리이자, 변화를 위한 핵심적인 장소이다.


이번 연재 기획을 통해 장시간 노동, 노동 강도, 심야노동, 여성노동과 가족,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과 같은 노동시간의 여러 측면들을 다룰 것이다. 각각의 사안들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현재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안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무엇보다, 노동시간 문제가 어떻게 개인과 가족 그리고 일터를 넘나드는지를 보여 줄 것이다. 노동시간을 통해 일터의 안과 밖을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에 많은 관심 가져주기를 부탁드린다.

[특집] 3. 작업중지권의 현재(1) / 2014.5

[특집3] 작업중지권의 현재(1)


안규백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조합원

 

 

한국지엠은 지난 1999년 대우그룹 부도와 함께 2001년 1750여명이라는 대규모 정리해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대우자동차에서 초국적 자본인 GM으로 매각 된 종합 자동차 제조 기업이다. [일터]에서는 2회에 걸쳐,

대우자동차에서 GM으로 매각된 후 한국지엠에 이르기까지  노동 안전 분야 현실을 함께 짚어보면서,

작업중지권을 현장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고 있는지 공유하고자 한다.

 

1회 - GM으로 매각 전 대우자동차에서의 작업중지권
- GM대우의 탄생, 사라진 현장통제권과 작업중지권
- 2006년 이후 한국지엠


2회 - 신음하는 현장, 다시 꿈틀대는 현장
- 2011년 안전사고에 따른 작업중지권 발동 사례
- 실질적 작업중지권 쟁취를 위하여

 

 

GM으로 매각 전 대우자동차에서의 작업중지권


2000년 이전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본은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고 현장을 통제하기 위해 신 경영전략을 실시한다. 이에 현장에서는 활동가들이 현장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일본 SUZUKI OJT[각주:1] 반대 투쟁과 일방적인 잡수 증가 저지, 노동강도 강화 반대 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며 현장의 저항을 조직해 나간다. 이에 저항의 방식으로 컨베이어 라인을 정지시키는 작업중지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한다. 이런 사례는, 안전 분야에만 제한적인 작업중지권이 아닌 적극적인 작업중지권의 행사로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각주:2]

 

작업중지권의 행사 주체를 사업주로만 한정 해두었던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가 1995년에 와서 실행주체가 노동자도 될 수 있다는 사항을 신설 2항에 명기하게 된 후, 자본에게 작업중지권은 곧 일상적인 파업을 의미 할 만큼 껄끄러운 존재였고, 반대로 노동자들에겐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커다란 무기가 생기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그 주체는 투사로 불렸던 일부 현장 활동가들로 한정됐지만 말이다[각주:3]

 

이 시기에 수많은 안전사고들이 일어났지만 작업중지권은 제대로 행사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앞서 얘기했던 잡수 투쟁의 여파였을 것이다. 작업중지권은 현장투쟁의 강력한 무기로서 힘은 발휘했지만 작업자들 누구나 쉽게 행사할 수 있는 보편적인 권리로서는 인식되지 못했다. 평범한 작업자들이 받아들이기엔 징계와 해고를 감당할 수도 있는 어려운 결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다음은 당시 실제 안전사고 발생 사례이다.

 

[일본인 금형기술자 도자끼라는 사람이 작업도중 금형사이에 끼어서 즉시 사망함. 사후 프레스라인만 작업 중지 후 프레스 조합원 대상 안전교육 실시. 생산라인은 정상 가동됨.-1997년][각주:4]

 

위 사례를 보면 몇 가지 아쉬움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이 재해는 작업자가 사망한 중대재해에 속한다. 그런데 작업 중지는 프레스 부서에서만 행사되는 것이 타당한가?
둘째, 사고의 원인은 명확히 규명되었는가?
셋째, 재발방지 대책은 수립되었는가?
넷째, 사고사례가 전 공장에 전파되었는가?

 

GM대우의 탄생, 사라진 현장통제권과 작업중지권


2001년 GM이 인수조건으로 구조조정을 전면에 내걸자 정권과 자본은 1750여명의 정리해고를 밀어붙인다. 그렇게 공장은 하루아침에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뉘고 현장은 그야말로 초상집이 된다. 이때부터 현장에서는 무시 못 할 변화들이 감지되었다.


공장 밖에선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기 위한 처절한 복직투쟁이 시작되었으나 현장은 조속한 정상화라는 미명하에 다시금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동안 앞장서 활동했던 대다수의 현장 활동가들은 정리해고와 징계해고를 당하면서 거의 사라졌다. 곧이어 실시된 대의원 선거에서는 그동안 직장으로서 조합원이었지만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해왔던 사람들이 대거 대의원에 출마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현장은 급속도로 회사 통제 하에 들어갔다.

 

정리해고가 단행되고 만 3년여의 시간이 흐를 즈음인 2002년 7월 25일 300여명의 정리해고자의 복직 방침이 노사 합의하에 결정되었다. 복직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나름 원칙과 기준[각주:5]이 있었지만 1차 대상자에서 제외된 조합원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아직도 논란이 되는 우여곡절 끝에 다수의 현장 활동가들이 복직하기에 이르렀고, 복직자를 중심으로 현장조직과 계파를 떠나 정리해고 원상회복 투쟁동지회(이하 ‘정원투’)를 결성했다. 정원투를 중심으로 한쪽에선 나머지 정리해고자들의 완전복직을 위한 투쟁을 전개했고, 나머지 한쪽에선 무너져 있던 현장의 기운들을 살려내고자 노력했다. 이후 2006년 1750여명의 정리해고자 중 희망자가 최종적으로 복직을 완료했다.

 

이 시기 조합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경위이다[각주:6]

 

사고 경위 : 프레스 4라인 자동화 공정으로 개선이후 8월 8일(월)부터 시운전을 실시하였다. 이후부터 생산 테스트 작업을 계속실시하고 사고당일인 18일에도 판넬 생산을 테스트 중이었다. 사고당일인 18일 09시10분경 이○○ 조합원이 이곳(4라인 1호기)에서 생산테스트 작업을 하던 중 1호기의 금형 상/하형 에 머리가 협착되어 병원으로 긴급 후송하였으나 사망하였다.

 

사고조치 :
19일 09시27분경 인천 북부 소방서 119 구급대 도착, 09시30분경 세림병원으로 후송 조치함.

09시34분 세림병원에 도착하여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였으나, 사망하였음.

10시00분부터 12시00분까지 전 공장 조합원 안전교육실시

10시30분 노동조합 상집간부 비상회의를 실시함(사고대책, 등 전반에 관한사항을 논의함)

13시00분에 노동조합 간부 합동 비상간담회 실시를 통하여 대책위를 구성하기로 함. 

 

이후 노동조합에서는 긴급 속보 2호로 ■ 야간조는 엔진부와 K.D를 제외한 전 공장 70% 휴무를 실시하고 ■ 다음 날 근무는 금일 18:00에 진행되는 비대위[각주:7]에서 결정한다고 안내했다

 

위 사고경위 및 이후 대응을 살펴보면서 몇 가지의 의문이 생긴다.

 

첫째, 사고자의 응급처치 및 후송이 제때 이루어졌는가? 사고 발생 후 119가 도착할 때까지 촌각을 다투는 상황임에도 17분이 흘렀다. 그리고 사내 구급차는 어디 있었나?
둘째, 작업중지권 발동이 엔진부와 KD(각 부위, 부품 등 포장 수출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제외되었다. GM의 법인 분리 인수로 엔진부와 KD는 GM대우 소속이고, 나머지는 대우 인천자동차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셋째, 사고이후 비상 대책위가 구성되고 비대위에 의해 재발방지대책은 수립되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각주:8]

 

2006년 이후 한국지엠 : 세대의 변화와 잦은 안전사고


2006년 중형세단인 토스카와 한국지엠의 첫 SUV였던 윈스톰(현 캡티바)을 출시하면서 부평 2공장은 수 년 만에 다시 2교대 가동을 하게 되었다. 이에 정리해고자들이 모두 복직했고, 상당수의 사내 비정규직들과 군산과 부천에서 운영 중인 사내 기술교육원 소속 인원들이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행운(?)을 맛봤다. 현장은 한동안 자연스럽게 구조조정 과정에서 살아남았던 자와 복직자, 그리고 신입이라는 세 부류가 공존하게 된 것이다. 이후 한 동안 부평공장은 출신에 따른 갈등과 세대에 따른 갈등 등이 맞물리면서 현장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지엠에서 2004년 이후 입사자들은 한동안 신입사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각주:9] 우리는 기존 선배 세대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 온 세대였다. 이것은 때로는 장점으로 때로는 단점으로 작용되었다. 하지만 현장에 새로운 흐름이 이 세대들의 출현으로 시작됐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정리해고의 광풍이 휩쓸고 간 현장은 완전히 무너졌다. 임단투 기간에 노동조합이 파업 지침을 내려도 현장의 컨베이어는 거의 정상적으로 가동되었다. 말 그대로 자발적 복종이었다. 물론 소수였지만 정원투에 소속되어 있었던 인원들과 현장 활동가들은 파업코드[각주:10] 적용을 감수하며 파업지침을 사수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정원투의 헌신적인 현장투쟁과 젊은 세대들의 등장에 따라 현장은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시기의 잦은 안전사고는 대부분 조직적으로 은폐되고 작업중지권 발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장면1 : 머플러를 장착하는 공정에서 4인이 머플러를 힘겹게 들어 올려 장착하다가 그만 한 사람이 머플러를 놓치면서 상대편 작업자의 이마 부분이 찢긴다. 동료가 직장에게 보고해 병원 응급실로 향한다. 그리고 얼마 후 5바늘 봉합 후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여 묵묵히 컨베이어 조립작업을 수행한다.

 

장면2 : 일부 조립된 엔진이 마무리 배선작업 장소로 이동하기 전 적재되는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보전인원 2명이 호출되었다. 작업자 한 명은 직접 확인을 위해 좁고 위험한 적재 공간으로 들어가고 다른 한 명은 동작 스위치 앞에서 대기한다. 엔진 이동 랙이 가동되면서 협소한 적재공간에 들어갔던 작업자의 다리가 짓이겨진다. 구급차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주변 작업자들은 묵묵히 작업을 하고, 이곳과 동떨어져 있는 컨베이어 라인 작업자들은 사고 상황 자체를 모른 채 열심히 라인을 탄다. 이 작업자는 오른쪽 다리뼈 3군데가 복합 골절되어 큰 수술을 하고 1년이 넘는 시간을 요양 후 복귀했다.

 

장면3 : 엔진을 자동차에 장착하려는 순간 한 작업자의 손가락이 엔진과 차체에 협착되었다. 뼈가 으스러져 결국 수술을 해야 했다. 이 사고 사실 또한 주변 작업자들이 전하는 소문 외에 아무도 몰랐다.

 

장면1의 작업자는 봉합한 부위가 다 나을 때 까지 상처부위에 거즈를 덧대고 묵묵히 작업에 임했다. 정규직도 이런 상황이었는데 비정규직들은 어땠을까?


장면2의 작업자는 회사 안전 담당자가 병원으로 찾아와 치료비 전체를 부담할 테니 그냥 공상 처리를 하자며 한참을 설득했다. 이 작업자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산재 요양 절차를 진행했고, 이후 핀 제거 수술을 할 때 재요양 신청으로 치료 완료 후 복귀했다.


장면3도 결국 공상 처리를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공상 처리[각주:11]거짓이 대부분이다. 치료비와 치료기간의 근태만 인정을 해주는 것이 전부다. 이 중 단 한 차례도 안전사고에 따른 작업중지권이 발동 된 사례가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작업중지권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사망사고가 때에만 행사 할 수 있는 것인가?

 

 

  1. off-the-job training. 업무수행 중단없이 작업자를 교육시키는 방법 [본문으로]
  2. 한국지엠 부평1공장 고남권 조합원 구술.(고남권 조합원은 일방적 잡수 증가 저지 투쟁과 일본 OJT 반대투쟁으로 정직과 두 번의 해고를 당한다.) 즉, 이때의 작업중지권은 현장통제권을 누가 가지느냐를 결정짓는 싸움이기도 했다. [본문으로]
  3. 물론 이때에도 현장 활동가들은 산업안전보건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그 법규를 근거로 투쟁에 임한 것 같지는 않다. 당시의 열악했던 작업환경과 일방적 노동강도 강화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의 표현으로 작업중지권이 활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다시 말해 산업안전보건법이 투쟁의 무기로 활용되었다기보다는 자본 주도의 생산과정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함으로서 현장 작업통제권을 강화해 나가는 최후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본문으로]
  4. 15,17대 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김성갑 구술.(현 툴링센터 대의원) [본문으로]
  5. 2001.2.16. 정리해고가 통보된 이후 2.19 공권력에 의해 공장이 침탈되면서 당시 17대 노동조합(위원장 김일섭) 지도부는 공장 밖으로 밀려나 투쟁의 거점을 천주교 산곡동 성당에 마련하고 농성에 돌입한다. 이때부터 매일 출근투쟁을 시작으로 공장탈환 투쟁을 준비해 나가는데 이 과정에서 참여도(출근부)등이 최우선 되어 선정되었다고 했지만 아직도 각종 억측과 왜곡 등을 낳고 있다. [본문으로]
  6. http://www.gmno.or.kr/bbs/board.php?bo_table=new2_02_1&wr_id=254 참조. [본문으로]
  7. http://www.gmno.or.kr/bbs/board.php?bo_table=new2_03_2_tod&wr_id=2381 참조. [본문으로]
  8. 현장조직 민노회의 홍보물 ‘민주노동자’ 제25호(2005년 9월 7일자)를 보면 회사에서는 이 문제를 단순하게 유족들의 보상 문제로서만 마무리 하려 하고 보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어떠한 예방대책도 내 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노동자 현장투쟁 10년 자료집344Page 참조. [본문으로]
  9. 이들은 2004년 개악된 근로기준법에 의거 고정연차(월차) 폐지를 골자로 한 별도 조항의 단협을 적용 받고 있던 세대를 통칭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하나의 사업장에서 별도의 단협을 적용받는 세대가 생긴 것이다. 이후 2012년 임단투 투쟁을 통해 이 조항은 완전히 사라진다. [본문으로]
  10. 파업 참여 조합원과 불참 조합원을 차등 대우하기 위함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참여자의 임금공제 및 인사고가 불이익 등의 처우에 사용되었다. [본문으로]
  11. 부서 자체 공상 이라는 이름으로 부서에서만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사고사실 자체는 보고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본문으로]

[특집] 2. 왜 작업중지권인가 / 2014.5

[특집2] 왜 작업중지권인가


김재광 선전위원


‘작업중지권’의 맥락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은 국가와 사업주의 의무를 규정하는 대표적인 산업현장의 안전보건규제법이다. 법문에 노동자의 권리라는 명시적 단어를 찾을 수는 없으나, 사업주와 국가의 의무를 재구성하면 노동자의 권리를 구현할 수 있고, 이는 ‘알 권리, 참여할 권리, 거부할 권리’로 구분할 수 있다.

 

모든 법 제도가 그렇지만, 특히 노동관계법은 노동과 자본 간의 힘 관계의 산물이다. 산안법 ‘제26조 작업중지’ 역시 같은 맥락 속에 있다. 1990년 “사업주는... 위험이 있을 때...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시키는 등.” 이라는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조문이 산안법에 규정될 때 자본이 반발한 것도 단순히 문구 때문이 아니라, 당시의 노동과 자본 간의 긴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1987년 이후 성장한 노동(조합)운동은 모진 탄압을 받으면서도 산업 전반 및 노사관계의 변화를 강제하고 있었다. 특히 제조업 노동자들은 1980년대 말, 1990년도 초 중반까지 특유의 ‘전투성’을 발산하고 있었다. 대공장과 중소공장에서 그 강도의 차이가 있었을지언정, 막 들어선 ‘민주노조’는 기존의 자본가가 설정한 일방적 현장질서를 위협하였다. 노동자들은 파업과 태업을 반복하며 현장의 질서를 변화시켰으며, ‘작업중지’라는 법 규정이 도입되기 이전에도 이미 ‘작업중지’는 일상 투쟁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오히려 처음 입법된 1항은 현실보다 뒤처진 것이었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1항의 문구 자체가 아니라, 노동자의 ‘무법 현장’을 합법화하여 질서로 보장한다는 것에 분노하고, 불안했다. 이후 5항까지의 개정은 국제사회의 기준이라는 명분도 있었지만,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현장에서의 ‘작업중지’가 일상적인 권리로 진전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말도 많았던 2항과 3항의 조항이 1995~6년에 걸쳐 속속 도입된 후, 자본가들이 걱정했던 ‘현장의 무법천지’는 오히려 기우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현장의 열기는 급속히 식었다. 자본가들의 신경영전략은 노노갈등과 노동조합의 연성화를 일정하게 이루었고, 결정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는 노동(조합)운동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규제 철폐, 민영화, 성과급, 경쟁력, 적기생산, 전사적 자원관리, 유연화’ 등등 온갖 자본의 용어는 현장과 사회 전체를 뒤덮었고, 마침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저항 이데올로기 또한 잠식했다. 이러한 와중에 노동현장은 점점 더 답을 찾을 수 없는 고용게임(누군가 남아야 한다면, 누군가 나가야 하는)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1987년 이후 근 10년간 유지되고 재설정되어가던 현장의 질서가 변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모든 산업과 현장에 똑같이 작용한 것은 아니었으나, 대세로 자리 잡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 가운데 ‘작업중지’는 본래의 맥락을 상실하고 법 규정으로 남게 되었고, 제한적 시공간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행사되게 되었다.    
  
재해의 이전(移轉)과 노동권으로서의 작업중지


‘작업중지’ 자체는 자연권이다. 위험을 직면하고서 또는 위험을 알면서 작업을 계속할 수는 없다. 위험을 알면 본능적으로 피하고 거부하는 것이 순리다. 이를 막는다면 살인과 다름없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자연권적인 권리와 반응이 제한되어 생명과 몸을 파괴하고 있다. 실로 당장의 ‘밥벌이’ 때문에 정작 지켜야 할 ‘밥줄’을 끊게 하는 기이하고도 비참한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많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는 생존을 위해 생명을 걸고 있다. 생명에 대한 본능이 환경과 처지에 의해 억압당하고 있는 것이다.

 

중대재해는 점점 더 열악한 노동계층에게 이전되고 있다. 사고에 의한 사망 재해 피해자는 대부분 하청과 비정규직 노동자다. 본능마저도 압살하는 야만적 강제는 자연권으로서의 작업중지권만으로는 극복할 수가 없다. 그래서 끔찍하다. 역설적이게도 의식적인 노동권적 자각만이 생명의 본능을 깨울 수 있다. 작업 중지가 권리로 형성하기 위한 조건은 현장의 질서를 현장의 노동자 자신의 것으로 하겠다는 의지이다. 이는 다분히 의식적인 공감이며,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이다. 법문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것은 그다음의 문제이다.

 

노동권적 자각, 즉 현장 질서를 노동자 자신이 규율해야 한다는 자각이 있어야만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야 비로소 작업을 멈추거나 거부하는 소극적 작업중지권 행사(물론 이마저도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다.)에서 나아가, 위험을 감지한 사전에 작업을 중지하고 거부할 수 있으며, 사고뿐 아니라 각종 직업성 질환에서의 위험에서도 같은 태도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작업중지권이 행사되기 위해서는 알 권리, 참여할 권리가 복합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 위험과 재해에 대한 정보와 철학을 통해 안전 감수성 향상하고, 더불어 참여를 통해 과정과 결과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중지와 거부의 정당성을 스스로 구현할 수 있다. 세 가지 권리의 종합과 구현, 이러한 경험과 시도가 현장질서를 일하는 자의 것으로 긴장시키고, 노동자의 현장 통제력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주춧돌이 되는 것이다. 


몇 가지 과제


위와 같은 작업중지권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가 있다. 

 

첫째, 현장통제력과 작업중지권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현장통제력을 확보하고 복원하는 것은 여러 경로가 있다. 이 중 안전보건 사항이 노동자의 현장질서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으며, 이것이 사실상 일상 현장 규율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것, 노동권으로서 작업중지권을 확립하는 것이다. 문제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작업중지권은 노동(조합)운동 전체 맥락 아래에 위치되는 것으로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현실에서 작용하기 어려운 이유와 원인에 대한 실증적, 이론적 고찰이 필요하다.

 

둘째, 산안법 규정의 보완이다. 
‘급박한 위험’을 명확히 정의하고, 대피 및 거부의 경우 ‘합리적 근거’를 작업자(노동자) 입장에서 간명하게 하여 제도적 차원에서 작업중지권을 보완하는 것이다. 최근 이와 관련해서 한 연구자는 ‘급박한 위험’과 ‘합리적 근거’를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을 인지한 경우’로 바꾸자고 주장하였는데 참고할 만하다. 이외에도 작업 중지 행사가 현재 법 규정으로 보호받지 못한 사례와 현행법 규정의 취약성 역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셋째, 기업살인법의 현실화이다.
기업 살인법의 요체는 적정한 안전과 보건조치를 하지 않고 발생한 사망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기업살인법 자체가 노동권적 자각을 통한 작업 중지, 이로 말미암아 축적되는 현장통제력과 직접 관련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명의 본능마저도 억압하고 매일 사망 위험 속에서 일하는 하청과 비정규직노동자의 환경을 고려한다면 한편으로 절실한 제도적 장치임이 틀림없다. 현재 조직력이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노동권에 기반을 둔 작업중지권은 여전히 중요한 것이나, 다가서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조치는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이며, 작업중지권을 확대하기 위한 중요한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특히 원청의 책임문제는 중요하다. 이것이 배제된다면 효용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현행 산안법의 전반적인 한계와도 연관되어있다.

 

이것부터 시작하자


우선 전국에 산재해 있는 최근의 작업중지 사례를 취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례의 배경과 경과, 결과를 종합하여 그 현실성과 의의를 재구성하고 이를 전국적 차원에서 공유해야 한다. 한편 작업중지권에 포함된 중지와 거부 개념을 명확히 하고, 사회적 정당성을 확고히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동시에 작업중지권을 이제는 행사할 수 없는 문구상의 권리로 대하는 태도를 일신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직종과 부문의 구체적 노동실태를 바탕으로 시도할 수 있고, 시도해야만 하는 구체적 중지와 거부에 대한 기획과 실행이 요청된다.

[특집] 1. 세월호와 작업중지권 / 2014.5

[특집1] 세월호와 작업중지권
작업중지권 복원·중대재해 근절 투쟁을 다시 제안하며

 

선전위원회

 

세월호 승무원들이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은 사업주에게 안전교육을 요구했다면!
적재량을 초과하는 화물과 안전장치 미비에 대해 항의하고 신고했다면!!
승객을 포함하여 자신의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 출항을 거부할 수 있었다면!!! 
뒤늦었지만 이런 참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작업중지권 복원 투쟁을 제안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작업중지권[각주:1][각주:2]

 

1990년 처음 산업안전보건법에 도입된 작업중지권은 사업주의 지시가 있어야만 대피를 할 수 있었으므로 실질적인 ‘작업중지권’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작업자가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게 할 것을 운동 진영에서 요구하였고, 1990년대 중반 잇따른 중대 재해로 인해 여론이 형성되면서 1995년 지금의 2항이 신설되었다. 그러나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과 ‘대피 후 작업재개의 조건’에 관한 세부 규정이 없어 작업중지권을 행사함에 있어 모호한 측면이 존재했다. 이에 노동계의 지속적인 요구로 1996년 대피한 노동자에 대한 불이익 금지 조치인 3항이 신설되었다. 


그러나 법은 여전히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하기 위한 조건으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만한 합리적인 근거’를 요구하고 있다. 노사가 이에 대한 판단이 다르면 회사는 해당 노동자를 징계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작업중지권을 행사하는 데 장해요인이 된다.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2013년 연구보고서에서도,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작업중지권의 행사 요건을 업종별로 세분화하여 제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제26조(작업중지 등) ①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또는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작업장소로부터 대피시키는 등 필요한 안전·보건상의 조치를 한 후 작업을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②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으로 인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하였을 때에는 지체 없이 그 사실을 바로 위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바로 위 상급자는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③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에는 제2항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이를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 고용노동부장관은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그 원인 규명 또는 예방대책 수립을 위하여 중대재해 발생 원인을 조사하고, 근로감독관과 관계 전문가로 하여금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안전·보건진단이나 그 밖에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할 수 있다.
⑤ 누구든지 중대재해 발생현장을 훼손하여 제4항의 원인조사를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함께’ 거부하는 것


연구소는 올해를 기점으로 연구소 4대 실천 의제 중 하나인 '중대재해근절, 작업중지권 복원 투쟁'을 본격적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그러나 ‘작업중지권이 보장된다’는 것은 법조문에 좀 더 자세한 규정을 포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조선소 하청 노동자가 방금 추락하여 사망한 동료의 시신을 치우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것 아니냐.’ 며 용접을 다시 시작해야만 할 때 작업중지권은 법조문일 뿐이다. 그에게 작업중지권이 의미를 가지려면 ‘산 사람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 줄 조직화된 노동자의 힘이 필요하다. 그에게는 안전을 위해 작업을 거부해도 고용을 지켜줄 수 있는 노동자 조직이 필요하다.

선도적인 활동가 한 명이 라인을 잡고 작업을 중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노동자가 ‘함께’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작업을 거부하는 것이 작업중지권 실현의 핵심이다. 그래서 작업중지권 복원 투쟁은 작업환경이 열악하여 작업중지가 절실히 필요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운동과 함께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호 특집에서는 연구소가 지금 작업중지권을 제기하는 배경과 한국 사회 작업중지권의 현재를 보여줄 수 있는 한국지엠 사례를 소개한다. 향후 연속 기획을 통해 업종별 작업중지권 사례와 쟁점, 산업안전보건법 정비와 기업살인법, 작업중지권의 현장적용 방안 등을 다루고자 한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개입과 참여를 요청 드린다.

 

 

  1. 유성규, 작업중지권에 대하여, 2007년 1월 일터 알기 쉬운 산안법 [본문으로]
  2. 사업장의 작업중지권 행사에 관한 실태조사,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2013년 [본문으로]

[특집] 3.작업중지권의 실현으로 중대 재해를 막아내자 / 2014.4

작업중지권의 실현으로 중대 재해를 막아내자


선전위원회

 

대한민국은 여전히 중대재해, 산재사망 왕국이다. 노동부의 2013년 산재 통계를 보면, 2013년 한 해 동안 1929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매일 5.3명이 사망하는 것이고, 이는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보상된 사망 건수만을 포함하는 것이므로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고 있으리라고 충분히 짐작된다.

 

현재 중대재해에 대한 투쟁은 주로, 현대제철을 비롯한 삼성, 대림, SK 등 대기업의 하청 비정규 노동자 사망에 대해 원청 기업의 책임을 묻는 ‘기업살인법 제정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기업살인법 제정 투쟁은 사망 재해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법 제정이 실현된다면 사망 재해를 포함한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그 책임을 명확히 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그러나 ‘기업살인법’이 입법화되더라도 실제 사망 재해를 포함한 중대재해를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동시 병행되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작업중지권’의 실현이다. 이른바 ‘사회적 여론과 관심’을 모아내고, 입법 과정을 통해 기업살인법을 만드는 과정뿐 아니라, 현장의 주체 즉 노동자들이 스스로 행동을 통해 노동재해를 근절하는 노력과 시도가 맞물려야 만이 건강한 일터의 실현할 수 있다. 나아가 현장에서의 노동자 관점에서의 안녕한 질서를 구현할 수 있는 토대를 쌓을 수 있다.

 

따라서 입법운동은 홀로 성립할 수 없으며 현장 주체의 실천 의지가 결합하여야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생명과 안전에 관한 현장의 저항권, 노동자 현장질서를 구현하는 ‘작업중지권’은 현실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활동은 그 자체로 노동자 입장에서 현장질서를 구현하는 집단적 일상 활동이기에 소중한 것이다.

 

"2013년 추석 연휴, 이화여대 식당에서는 환풍기가 고장이 난 상태에서 식당 노동자들이 일을 시작했다가 결국 한 명이 근무 중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있었다. 어지러움과 가슴이 울렁거리는 증상을 느낀 노동자들이 많았지만, 돌아가면서 바람을 쐬고 다시 업무에 복귀하길 반복하며 일을 하는 동안, 식당과 학교 측은 환풍기 고장을 방치했다. 결국, 3일 동안 이렇게 일하던 노동자 한 명이 쓰러져 응급실에서 일산화탄소 중독 진단을 받았다.'

(관련 기사 : 일터 118호, 작업중지권이 꼭 필요한 이유)

 

 이 사례는 작업 중지권이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중요하고 기본적인 권리인지를 보여준다. 작업중지권은 무엇보다 먼저, 노동자 자신의 생명과 건강에 어떠한 위험을 초래하는 작업을 거부하여 자신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고자 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공공노조 서경지부의 하해성 조직차장은 위 사건을 겪으면서 신규 조합원뿐 아니라 조합 활동 경험이 많은 분회 간부들도 이런 상황에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작업 중지권을 행사해야 할 상황 판단과 이어질 구체적인 행동을 단위 활동가, 조합원들과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현장에서 위험을 인지하고, 이를 거부하고, 작업중지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 위험을 예측하고 인지하는 힘, 위험의 시정을 요구하는 힘, 위험이 해소될 때까지 작업을 거부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작업 중지권에는 현장 통제권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3월 27일 현대자동차 전주 공장 엔진 고마력 써브 공정에서 작업자가 4바늘 꿰매는 사고가 발생했다. 대의원들은 “작업재개 표준서”에 기초하여 조합원 설명회 시간을 요구하였으나, 회사 측이 이를 거부했다. 결국, 전체 대의원들이 엔진공장에 집결하고, 해당 엔진공장 조합원들이 고마력라인을 세우면서 생산이 이틀간 중단되었다. 현대차 전주 공장에서는 올해 들어, 집회, 텐트 농성, 구사대 폭력, 노사 양측 고소·고발 등 노사 간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한 조합원은 “안전이나 노동시간 문제 등 별개의 사건으로 갈등하고 있지만, 핵심은 회사 측이 노조활동을 옥죄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본은 생산 손실뿐 아니라 현장 통제권 측면에서 작업중지권 행사를 극도로 꺼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장 장악력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서 작업중지권의 행사 범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소한, 중대재해가 발생했거나 중대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인지했을 때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작업중지권은 지금 당장, 모든 노동자가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에서 작업 중지권이 행사되기 위해, △ 위험을 어떻게 인지할 것이며 △ 필요한 조치를 어떻게 요구할 것인가 △ 상급 단체 및 시민사회·법률 단체의 지원은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 어떤 후속 조치가 취해졌을 때 작업을 재개하는 것이 가능한지 등이 제시되고 현장에서 쉽게 참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실제 투쟁 사례를 만드는 활동이 필요하다.

 

 이화여대 식당에서 노동자들이 환풍기가 수리되고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있을 때까지 작업을 거부할 수 있기 위해, 현대자동차에서 회사 측의 작업 중지 거부가 사회적으로 비난받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사회적 연대가 형성되기 위해, 폭설이 내리고 한파가 오면 택배 노동자나 우편집배원 노동자들이 작업을 거부할 수 있기 위해 사문화되어 가는 ‘작업중지권’을 복원하고 실현하는 현장의 기획과 실행을 준비하자.

  

* 중대재해[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2] 다음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재해

1.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

2.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한 재해

3. 부상자 또는 직업성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

 

* 작업중지[산업안전보건법 제 26]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또는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작업장소로부터 대피시키는 등 필요한 안전·보건상의 조치를 한 후 작업을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으로 인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하였을 때에는 지체 없이 그 사실을 바로 위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바로 위 상급자는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에는 제2항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이를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고용노동부장관은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그 원인 규명 또는 예방대책 수립을 위하여 중대재해 발생원인을 조사하고, 근로감독관과 관계 전문가로 하여금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안전·보건진단이나 그 밖에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할 수 있다.

누구든지 중대재해 발생현장을 훼손하여 제4항의 원인조사를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특집] 2.살아남은 자의 슬픔, 살아남은 자의 투쟁 / 2014.4

살아남은 자의 슬픔, 살아남은 자의 투쟁
'현대제철 당진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나다'


최민 선전위원장

 

2013년 한 해 동안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만 9명이 사망했다. ‘죽음의 공장’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이 중 대부분이 하청, 외주업체 직원이다. 고로(용광로) 3기 공사 기한을 단축하려고 무리하게 작업하면서 사망 사고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망사고가 잦아진 2012년 9월부터 지금까지 모두 15명이 사망했다. 추락사고, 질식사고, 협착사고. 다양한 사고로 15개의 우주가 닫혀버렸다.

 

<현대제철 당진 공장 2012년 9월 - 2014년 사망 사고 일지>

 

▲ 2012년 9월 5일 : 철 구조물 해체 작업 도중 철 구조물이 쓰러지면서 사망
▲ 10월 9일 : 크레인 전원 공급 변경 작업하던 도중 감전, 추락 사망
▲ 11월 2일 : 작업발판 설치 중 발판 붕괴로 해상으로 추락 사망
▲ 11월 8일 : 풍세 설비 설치 작업 중 추락 사망
▲ 11월 9일 : 기계 설치 작업 중 기계에 끼어 협착 사고 사망

▲ 2013년 5월 10일 : 전로에서 노동자 5명, 아르곤 가스 누출로 질식 사망
▲ 10월 29일 : 제강3기 건설 현장 8층에서 작업하던 중 추락 사망
▲ 11월 26일 : 전기로 가스 유출돼 작업하던 중 사망
▲ 12월 2일 : 철강공장 지붕에서 안전진단 중 추락해 사망
▲ 12월 6일 : 제철소 고로 보수 작업 이후 쓰러진 뒤 사망(심근경색)

▲ 2014년 1월 27일 : 슬래그 처리 작업 중 고온 냉각수에 빠져 화상 사망 

 

사망의 원인은 단순한 사고 뿐 아니라 장시간노동도 연관이 있다. 지난해 12월 6일에는 고로의 바람구멍 근처에서 보수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일하던 중 탈진하여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만 37세의 젊은 나이였다. 죽은 노동자는 11월 한 달 동안 단 3일 쉬었다. 고로 바람구멍 앞은 방열복을 입지 않으면 다가가기도 어려울 만큼 뜨거운 곳이다. 고열 작업은 에너지 소모가 많으므로 일반 작업보다 여유율을 높이고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도 이 젊은 노동자는 죽기 직전 일주일 동안 62시간을 근무했고, 한 달 내내 주 평균 54시간씩 근무했다.

 

절단 사고는 한 달에 한 건은 계속 생겨요

 

사망 사고가 이 정도니, 중대재해가 아닌 사고는 일상다반사다. 현대제철 비정규직 지회 활동가들은 ‘절단 사고는 한 달에 한 건씩은 꾸준히 발생하는 것 같다’고 한다. 게다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고는 산재 처리조차 되지 않고 있다.

 

당진 공장에서 천장크레인을 운전하는 김○○ 씨는 2013년, 일하기 위해 크레인에 탑승하던 도중 발을 헛디뎌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다행히 큰 부상은 피했지만, 발가락이 골절됐다. 그렇지만 현대제철도, 하청업체인 크레인회사도 김 씨의 골절을 책임지지 않았다. 탑승 도중 충분히 주의하지 않은 김 씨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결국, 김 씨는 발가락을 본인 부담으로 치료했다. 나중에 잇따른 사망사고로 인해 특별근로감독이 시행된 후에야 이 사건도 산재로 처리되었다.

 

원청의 예방 노력이라는 것도 생색내기 수준이다. 20m 가까운 높이의 스카이웨이는 크레인 상부를 점검하는 노동자들이 다니는 길인데 위험천만하게도 난간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추락 사고가 발생한 다음에야 사고가 난 구간에만 난간이 만들어졌다. ‘정말 사고를 예방하려면 비슷한 위험이 있는 곳을 찾아내 예방조치를 해야 하고, 단번에 하기가 어렵다면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울분 섞인 항변이다. 원청의 미흡한 조치들은 노동부의 특별 근로감독, ‘죽음의 공장’이라는 여론의 뭇매를 피하려는 임시조치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고는 현상일 뿐이다

 

비정규직 지회 활동가들은 사고는 현상일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비정규직, 하청·외주·도급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안전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안전사고 위험이 예견돼도 비정규직 노동자나 노조는 원청에 개선요청을 할 수 있는 통로조차 없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하청은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3년 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이후 현대제철은 안전관리 인력을 200명으로 확대하고, 안전 관련 예산을 2,500억 원에서 5천억 원으로 늘린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 위험을 가장 많이 겪고 있는 하청 노동자들의 의견이 반영될 구조는 전혀 없는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공정과 개선이 시급한 곳에 이 돈이 제대로 쓰일지는 미지수다.

 

그뿐만이 아니다. 비정규직의 차별적인 저임금은 안전을 무시한 장시간 노동을 낳고, 이는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작년 12월 사망한 젊은 노동자가 1주일 평균 54시간씩 근무하고 받은 기본금은 110만 원. 잔업수당, 휴일수당, 공휴수당을 합쳐 한 달 200만 원을 받으며 일했다. 현재 당진공장 하청 노동자들은 3조 3교대로 자유로운 휴일 사용이 매우 어려우며, 작년부터 주휴일이 보장되고 있으나 인력이 부족하여 동료들이 대근을 해야만 쉴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현대제철 비정규직 지회의 현안은 2013년 노사합의를 이룬 운송노동자들의 주 1회 유급휴일 보장 약속을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임금삭감 없는 주 1회 휴일 보장이 되지 않으면, 생활을 위해 하루라도 더 일할 수밖에 없는데,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인 것이다.

 

10년 정도 근무하는 동안 4번 이상 소속 회사가 바뀌는 현재의 불안한 고용 상태가 해결돼야 노동자들이 안전 문제나 처우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그래서 하청 노동자 안전 문제는 비정규직 철폐 투쟁, 전 사회적인 노동자 연대 운동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 이곳 활동가들의 판단이다.

 

살아남은 자의 투쟁

 

사망 사고 발생 후, 현장 조사가 끝나면 곧바로 그 작업에 다시 노동자가 투입된다. 하지만 산재 처리나 사고 예방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다 보니 어떤 조치가 새로 취해졌고, 비슷한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 어떤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았다. 당연히 현장에는 분노와 불안이 쌓였다. 2013년 5월, 전기로 보수 공사 도중 아르곤 가스 누출로 인해 5명의 노동자가 한꺼번에 질식사했던 협력업체 한국내화에 노동조합이 생겼다. 여기에는 이런 분노와 불안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노동자들은 수도 없이 사측에 건의하고 요청하였지만, 무엇 하나 개선되지 않았고, 조직적으로 요구하고 싸우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이 모이게 되었다.

 

비정규직 지회에서도 하청 노동자들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올해 3월 중순부터 원청인 현대제철 노동조합과 원하청 연대회의를 격주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하청 노동자들이 느끼는 안전 문제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물론 간접적인 통로라는 한계는 뚜렷하다. 그러나 지금의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력이나 현재 노동자 연대 운동의 수준에서 비정규직 지회가 곧바로 산보위에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우선은 사고라는 ‘현상’에 대해서 같이 대응을 모색하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2014년 금속노조 철강업종분과위원회에서는 철강분과 공동요구안을 포함한 임단협 요구안으로 투쟁하기로 하였다. 철강분과 공동요구안에는 △교대제 개선과 월급제 실현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건강권 확보 대책 △사내하청 노동자 처우개선과 동등처우가 포함된다. 원칙적인 수준이지만,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 문제, 하청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를 공동의 투쟁 과제로 설정하고 임단협에 명시한 것은 분명한 진전이다.

 

매달 한 명씩 죽어 나가는 현장에서 살아남아 일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압박과 공포, 불안일 것이다. 그러나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 계속 일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죽음의 공장을 살만한 일터로 바꾸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싸움은 전 사회적인 연대 운동이 필요하다고 한다. 생존을 걸고 싸우는 이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응답할 때이다.

 


 

죽음의 공장을 살만한 일터로 바꾸기 위해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 비정규직 지회 조민구 지회장 인터뷰'

 

 

- 지회를 간략히 소개해 주시겠어요?
현대제철 비정규직 지회는 2012년 10월 15일 설립되었습니다. 노조인정과 고용 보장, 처우개선을 주요 과제로 투쟁해 왔으나 아직 조직률은 10%가 안 되는 실정입니다. 올 해 첫 임단협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현재 당진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127개 협력사가 있고, 현대제철 공장 내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만 7천 5백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회사에서는 외주협력사, 관계사 등으로 이름을 달리 부르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다시 1차, 2차로 나누어 차별적으로 대우하려고 합니다. 이런 2차 하청 차별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죠.

 

- 유독 당진 공장에서 사망사고가 더 많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당진에 일관제철소를 만들면서 그 어디보다 이곳이 생산 제일주의가 만연해 있습니다. 게다가 공장을 계속해서 새로 지으면서, 아직까지도 생산력을 시험하는 단계입니다. 회사에서는 최대로 생산성을 밀어붙이면서 최대생산량, 최고 생산속도 등을 확인하고 있구요. 실제로 그런 과정에서 택타임이 줄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노동자들을 압박하니 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죠.

 

- 안전사고에 대한 회사 대응은 어떤가요?

1월에 사망 사고가 또 발생하면서 노동부나 회사 모두 당황하긴 했죠. 2013년의 근로감독관 상주, 2차례의 특별근로감독 등이 효과가 없었던 셈이기 때문입니다. 노동부에서는 한 명만 더 사망하면 공장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하고, 회사에서는 안전 관리자를 늘리고 투자를 늘린다고는 합니다. 그런데 이 안전 관리자 자체가 6개월 임시직입니다. 1주일 교육받고 현장에 투입됩니다. 현장 노동자들은 ‘저 안전 관리자가 사고 나게 생겼다’고 걱정하죠. 이런 눈 가리고 아웅 식 조치로는 사고를 줄일 수 없다고 봅니다.

 

[특집] 1.2013년 삶을 잃어버린 사람들 / 2014.4

4.28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한국의 산재사망 현황을 짚어 본다. 죽음의 공장, 현대제철에서 살만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함께 나누고, 생명을 지킬 권리, 현장을 바꿀 권리를 되찾아 올 작업중지권 쟁취 투쟁을 제안한다.

 

[특집1] 2013년 삶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림으로 본 산재사망'

선전위원회

 

매년 삼풍백화점 3.8개가 붕괴된다 

 

 

빙산의 일각 - 매일 5.3명이 산업재해로 죽어간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매일 5.3명이 산업재해로 죽어간다. 하지만 1,929명에는 사업장 외 교통사고, 출퇴근 재해, 체육행사, 폭력행위, 사고발생일로부터 1년이 경과한 사고 사망자는 제외되어 있다.

더욱이 산업재해보상보험에서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았거나 사업주의 압박 등으로 노동자 본인이 산재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 은폐된 사망 사고들은 모두 통계에서 제외된다.

 

 

 

 

 

산재왕국 대한민국 - 사고성 사망 만인율

‘사고’로 인한 사망률을 비교하면 한국은 일본, 독일보다 3배, 미국보다도 2배 가까이 사망률이 높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업무와 관련된 사망 규모’를 추정하면서 사고로 인한 사망은 업무와 관련된 전체 사망의 14% 규모에 불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장병이나 뇌졸중 같은 순환기계 질환, 전염성질환, 발암물질 노출로 암에 의한 사망이 사고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보다 훨씬 규모가 클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산재로 승인된 사망 중 질병으로 인한 사망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산재사망자 수

2013

2012

사고

1,090 (56.5%)

1,134 (60.8%)

질병

839 (43.5%)

730 (39.2%)

 

 

 

단 47명!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직업 관련 유해요인에 의한 사망이 전 세계적으로 85만 명(1년)이 넘을 것으로 추정했으며 노동과정에서 발암물질에 노출되어 발생하는 사망자 수는 11만 8천 명 규모일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2013년, 한국에서 산재로 인정된 직업성 암 사망은 모두 47건이었다.

 

 

 

 

 

 

 

 

위험의 이동 

<박종식, 조선산업의 사내하청 산재 집중, 현황과 대책, 2013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이슈페이퍼 >

3배 - 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위험에 내몰 뿐 아니라 위험을 영세한 자본, 가난한 나라로 전가시킨다. 대표적으로 산재가많은 조선산업에서 원청의 재해자수는 감소하지만 하청 재해자수는 증가하고 있다. 특히 사고로 인한 사망 가능성은 사내 하청노동자가 원청 노동자보다 3배 이상 높다.

 

 

2배 - 전체 산재 사망의 58%가 50인 미만의 소규모 영세 사업체에서 발생하며 5인 미만 영세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1000인 이상의 대기업 노동자보다 산재로 사망할 위험이 2배 이상 높다.

 

 

하늘을 언제까지 가릴 수 있을


한국에서는 매년 삼풍백화점이 3.8번씩 무너지고 있으며, 하루에 5명씩 일하다 산업재해로 죽어간다. 그러나 이 숫자는 정부에서 인정할 통계일 뿐이며 반올림 사례와 같은, 산업재해가 분명하나 정부에서 인정하지 않고 있는 피해자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수없이 시도되고 실제 발생하고 있는 은폐된 산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산재사망 만인율에 있어서도 독일의 사망만인율에는 출퇴근 재해가 포함되어 있으나 한국은 그렇지 않으므로 실제 규모는 더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단 47명만이 산업재해로 인정된 처참한 한국의 직업성 암 문제와 기업 규모와 고용형태에 따른 산재사망의 문제. 산업재해는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읽는 동안에도 발생하고 있다. 하늘을 가리는 손바닥을 치워버릴 수 있는 힘, 새로운 하늘을 만드는 힘, 그 힘의 조직을 다시금 마음먹는 ‘노동자 건강권 쟁취의 달 - 4월’이기를 바래본다.

 

 

  • 이름 2014.04.30 10:53 ADDR 수정/삭제 답글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홍보하는 좋은 활동을 하시는데요 그래도 인용한 것들은 출처를 밝혀주셔야죠. 인용한다고 copyright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인용한 줄 넣는게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닐텐데요. 직접 작업한 것도 아니시면서 무단으로 도용하면 양심에 찔리지 않으신가요?

  • 한노보연 2014.05.13 13:5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희 연구소와 발간하고 있는 잡지 '일터'에 대한 관심에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우선 지적하신 출처와 관련하여 설명을 드리면,

    1. 2013년 산재 사망자 숫자 및 하루 사망자 수, 사업장 규모에 따른 사망자 수, 규모에 따른 만인율, 직업성 암 인정 건수 모두 노동부 2013 산업재해 발생 현황입니다. 비슷한 이미지가 전에도 있긴 하지만, 저희가 새로 확인하고 재가공한 자료입니다.

    2. 사고성 사망 만인율도 '정부 나라지표'에 나와 있는 것이라서 따 온 것인데, 그 챕터에 정부 자료라는 말이 없어서 오해하셨을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림 등은 모두 저희가 새로 제작한 것입니다.

    3. ILO 보고서는 2003년에 나온 '숫자로 본 안전' 보고서입니다.

    4. WHO 보고서는 2010년 '세계 질병부담' 보고서입니다.

    5. 그림을 그대로 따 온 것은 조선산업에서 하청과 원청 사망 만인율 그래프입니다. 박종식/금속노조 노동연구원 비상임 연구원이 2013-4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이슈페이퍼에 실은 '조선산업의 사내하청 산재 집중, 현황과 대책'에 있는 그래프이고, 홈페이지에는 출처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저희 편집상의 실수로 오프라인 잡지에 출처가 표시되지 못 해서, 저자에게 직접 연락드리고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종이 잡지에서 출처가 누락된 실수는 저희 잘못이고 앞으로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저희 연구소와 일터에 대한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 ph 2015.05.04 11:45 ADDR 수정/삭제 답글

    년 삶을 잃어버린 사람들

[특집] 위험성 평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 2014.3

위험성 평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2013년 6월,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의2에 위험성 평가가 신설되었다. 위험성 평가는 모든 사업장이 대상이고 신설된 법안인 만큼 미시행에 따른 불이익을 피하고자 사업장이 시끌시끌하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교육원에서 진행하는 위험성 평가 관련 교육에 500명씩 신청자가 몰리는 상황이지만 반대로 위험성 평가를 통해 위험에서 벗어나야할 노동자(노동조합)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상황이다. 3월 법 시행을 맞아 이번 일터 특집에서는 위험성 평가의 이해, 활용방안, 현장대응에 대해 다룬다. 이를 바탕으로 위험성 평가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특집1]

위험성 평가의 이해


흑무 상임활동가

 

1. 위험성 평가란

 

41조의2(위험성 평가) 사업주는 건설물, 기계·기구, 설비, 원재료, 가스, 증기, 분진 등에 의하거나 작업행동, 그 밖에 업무에 기인하는 유해·위험요인을 찾아내어 위험성을 결정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이 법과 이 법에 따른 명령에 의한 조치를 하여야 하며, 근로자의 위험 또는 건강장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추가적인 조치를 하여야 한다.

사업주는 제1항에 따른 위험성 평가를 실시한 경우에는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실시내용 및 결과를 기록·보존하여야 한다.

1항에 따라 유해·위험요인을 찾아내어 위험성을 결정하고 조치하는 방법, 절차, 시기,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고용노동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한다.

* 위험성 평가의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고시 제2012-104] 사업장 위험성 평가에 관한 지침>을 통해 정하고 있다.


위험성 평가는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고 해당 유해·위험요인에 의한 부상 또는 질병의 발생 가능성(빈도)과 중대성(강도)을 추정·결정하고 감소대책을 수립하여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여기서 유해․위험요인이란 유해위험을 일으킬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것의 고유한 특징이나 속성을 말하며 다음 표와 같은 것들이다.

 

용어

위험요인

유해요인

분류

()

1. 기계기구, 설비 등에 의한 위험요인

2. 폭발성 물질, 발화성 물질, 인화성 물질, 부식성 물질 등에 의한 위험요인

3. 전기, , 그 밖의 에너지에 의한 위험요인

4. 작업방법으로부터 발생하는 위험요인

5. 작업 장소에 관계된 위험요인

6. 작업행동 등으로부터 발생하는 위험요인

7. 그 외의 위험요인

1. 원재료, 가스, 증기, 분진 등에 의한 유해요인

2. 방사선, 고온, 저온, 초음파, 소음, 진동, 이상기압 등에 의한 유해요인

3. 작업행동 등으로부터 발생하는 유해요인

4. 그 외의 유해요인

 

 

 

2. 위험성 평가의 방법
-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 해당 사업장에서 사업의 실시를 총괄 관리하는 사람이 위험성 평가의 실시를 총괄 관리하고,
- 사업장의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 등에게 위험성 평가의 실시를 관리하게 하며
- 관리감독자에게 유해·위험요인의 파악, 위험성의 추정, 결정, 위험성 감소대책의 수립·실행을 하게 하며
-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거나 감소대책을 수립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작업에 종사하고 있는 근로자를 참여하게 하고,
- 기계·기구, 설비 등과 관련된 위험성 평가에는 해당 전문가를 참여시키고,
- 안전·보건관리자의 선임의무가 없는 경우에는 위험성 평가를 수행할 사람을 지정하는 등 그 밖에 위험성 평가를 위한 체제를 구축할 것

 

1. 유해·위험 방지 계획서(법 제48)

2. 안전·보건진단(법 제49)

3. 공정안전보고서(법 제49조의2)

4. 근골격계부담작업 유해요인조사(안전보건규칙 제657조부터 제662조까지)

5. 그 밖에 법과 이 법에 따른 명령에서 정하는 위험성 평가 관련 제도

 

3. 절차
위험성 평가는 (1) 평가대상의 선정 등 사전준비 (2) 근로자의 작업과 관계되는 유해·위험요인의 파악 (3) 파악된 유해·위험요인별 위험성의 추정 (4) 추정한 위험성이 허용 가능한 위험성인지 여부의 결정 (5) 위험성 감소대책의 수립 및 실행 (6) 위험성 평가 실시내용 및 결과에 관한 기록으로 진행된다. 

 

(1) 평가대상의 선정 등 사전준비
① 실시계획서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 : 실시의 목적 및 방법, 실시 담당자 및 책임자의 역할, 실시 연간계획 및 시기, 실시의 주지방법, 실시상의 유의사항


② 대상 : 위험성 평가는 과거에 산업재해가 발생한 작업, 위험한 일이 발생한 작업 등 근로자의 근로에 관계되는 유해·위험요인에 의한 부상 또는 질병의 발생이 합리적으로 예견 가능한 것은 모두 위험성 평가의 대상으로 한다.

 

③ 사전 조사 : 사업주는 다음의 사업장 안전보건정보를 사전에 조사하여 위험성 평가에 활용하여야 한다.

 

 - 작업표준, 작업절차 등에 관한 정보
- 기계·기구, 설비 등의 사양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등의 유해·위험요인에 관한 정보
- 기계·기구, 설비 등의 공정 흐름과 작업 주변의 환경에 관한 정보
- 법 제29조제1항에 따른 사업으로서 같은 장소에서 사업의 일부 또는 전부를 도급을 주어 행하는 작업이 있는 경우 혼재 작업의 위험성 및 작업 상황 등에 관한 정보
- 재해사례, 재해통계 등에 관한 정보
- 작업환경측정결과, 근로자 건강진단결과에 관한 정보
- 그 밖에 위험성 평가에 참고가 되는 자료 등

 

(2) 근로자의 작업과 관계되는 유해·위험요인의 파악
사업주는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할 때 업종, 규모 등 사업장 실정에 따라 ① 사업장 순회점검 ② 청취조사 ③ 안전보건 자료 ④ 안전보건 체크리스트 ⑤ 그 밖에 사업장의 특성에 적합한 방법 중 어느 하나 이상의 방법을 사용하여야 하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①번 방법을 포함하여야 한다.

 

(3) 파악된 유해·위험요인별 위험성의 추정
사업주는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여 사업장 특성에 따라 부상 또는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 및 중대성의 크기를 추정해야 하는데, 그 방법에는 가능성과 중대성을 곱하거나, 더하거나, 행렬을 이용하는 방법 등 사업장의 특성을 반영하는 방법은 어느 것이든 사용될 수 있다.

 

(4) 추정한 위험성이 허용 가능한 위험성인지 여부의 결정
사업주는 유해·위험요인별 위험성의 추정 결과와 사업장 자체적으로 설정한 허용 가능한 위험성의 기준을 비교하여, 해당 유해·위험요인별 위험성의 크기가 허용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허용 가능한 위험성의 기준은 위험성 결정을 하기 전에 사업장 자체적으로 설정해 두어야 한다.

 

(5) 위험성 감소대책의 수립 및 실행
- 사업주는 위험성을 결정한 결과 허용 가능한 위험성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위험성의 크기, 영향을 받는 근로자 수를 고려하여 ① 위험한 작업의 폐지·변경, 유해·위험물질 대체 등의 조치 또는 설계나 계획 단계에서 위험성을 제거 또는 저감하는 조치 ② 연동장치, 환기장치 설치 등의 공학적 대책 ③ 사업장 작업절차서 정비 등의 관리적 대책 ④ 개인용 보호구의 사용 등 위험성 감소를 위한 대책을 수립하여 실행하여야 한다.
- 사업주는 위험성 감소대책을 실행한 후 해당 공정 또는 작업의 위험성의 크기가 사전에 자체 설정한 허용 가능한 위험성의 범위인지를 확인하고, 위험성이 자체 설정한 허용 가능한 위험성 수준으로 내려오지 않는 경우에는 허용 가능한 수준이 될 때까지 추가의 감소대책을 수립·실행하여야 한다.
- 사업주는 중대재해, 중대산업사고 또는 심각한 질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위험성으로서 위험성 감소대책의 실행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경우에는 즉시 잠정적인 조치를 강구하여야 한다.
- 사업주는 위험성 평가를 종료한 후 남아 있는 유해·위험요인에 대해서는 게시, 주지 등의 방법으로 근로자에게 알려야 한다.

 

(6) 위험성 평가 실시내용 및 결과에 관한 기록
사업주는 위험성 평가를 실시한 경우에는 ① 위험성 평가를 위해 사전조사 한 안전보건정보 ② 평가대상 공정의 명칭 또는 구체적인 작업내용 ③ 유해·위험요인의 파악 ④ 위험성 추정 및 결정 ⑤ 위험성 감소대책 및 실행 ⑥ 위험성 감소대책의 실행계획 및 일정 등 ⑦ 그 밖에 사업장에서 필요하다고 정한 사항을 담은 기록물을 남겨야 하며 사업주는 기록물을 3년 이상 보존해야 한다.

 

 

4. 위험성 평가의 실시 시기
- 위험성 평가는 최초평가 및 수시평가, 정기평가로 구분하여 실시하여야 하며 최초평가 및 정기평가는 전체 작업을 대상으로 한다.
- 수시평가는 다음 표에 해당하는 계획이 있는 경우에 해당 계획의 실행을 착수하기 전에 실시하고, 계획의 실행이 완료된 후에는 해당 작업을 대상으로 작업을 개시하기 전에 실시하여야 한다. 다만, (5)번에 해당하는 재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재해발생 작업을 대상으로

 

(1) 사업장 건설물의 설치·이전·변경 또는 해체

(2) 기계·기구, 설비, 원재료 등의 신규 도입 또는 변경

(3) 건설물, 기계·기구, 설비 등의 정비 또는 보수

(4) 작업방법 또는 작업절차의 신규 도입 또는 변경

(5) 중대산업사고 또는 산업재해(휴업 이상의 요양을 요하는 경우에 한정한다) 발생

(6) 그 밖에 사업주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

 

- 정기평가는 최초평가 후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하며 (1) 기계·기구, 설비 등의 기간 경과에 의한 성능 저하 (2) 근로자의 교체 등에 수반하는 안전·보건과 관련되는 지식 또는 경험의 변화 (3) 안전·보건과 관련되는 새로운 지식의 습득 (4) 현재 수립되어 있는 위험성 감소대책의 유효성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

 

 

[특집2]
위험성 평가의 철학은 ‘주체에 의한 평가’ 산업위생전문가 박두용 교수 인터뷰


최민 선전위원

 

위험성 평가가 도입된다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업도 노동자도 아직 구체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위험성 평가 도입의 배경과 단위사업장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산업위생전문가인 한성대 박두용 교수를 만났다. 박두용 교수는 2000년대 초반부터 ‘위험성 평가’를 주장해왔으나 정작 지금 시행되는 위험성 평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라고 했다.  


위험성 평가가 도입된 맥락과 배경은 어떤 것인가?

 

1980년대 들어 영국과 미국에서 위험성 평가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과 미국은 이윤위기를 맞으면서 본격적으로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을 활용하거나 위험 유해 산업의 해외 외주화를 진행하였다. 그렇게 유해 산업으로 인한 부담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유해물질 측정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는 산업 위생 기술적 측면에서 포화 상태였다. 현재 사용하는 측정 기술 등이 대부분 1970년대에 개발이 완료되어, 기술적인 면에서는 더 발달할 것이 없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위험 관리, 경영을 강조하는 흐름이 생겼다.

 

그중의 하나로 제기된 것이 ‘노동자 스스로에 의한 사업장 위험성 평가’였다. 전문가에 의존하지 않고 사업주와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이 다루고 있는 물질, 자신이 하는 작업, 자기가 속한 작업장의 위험성을 평가하고 관리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 전까지 전문가가 모든 것을 해 주면서 주체를 객체로 만들어왔다면, 이제 스스로 평가를 하고 이에 기반을 두어 개선의 우선순위를 정해나가자는 것이 위험성 평가의 철학이고 정신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 사회는 여전히 유해산업이 존재하고 재래형 재해도 잦으며, 아직도 산업안전보건이 권리로서 정착되어 있지 않다. 또 스스로 작업장을 평가하고 개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사회 전반에 형성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아직 현장에서 스스로 나서서 위험성을 평가하기에 이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작업환경측정을 해서 객관적으로 수치를 보여주고, 이에 기반을 둬 안내와 감독을 해 줘야 하는 수준이 아닌가 한다. 산재를 제대로 신고하지도, 모두 보상을 받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자율적인 사업장 평가는 시기상조인 것 같다.

 

전문가에 의존하지 않고 사업주와 노동자들이 스스로 작업장 유해요인을 평가하고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이것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이전에는 위험성 평가를 위해 전문가가 측정하고, 측정치의 의미를 해석해주고,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면, 이제는 거칠더라도 그 평가를 노동자들이 스스로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해성을 1-4점으로 나누고, 물질 사용량을 1-4점으로 나누어, 각 점수를 곱해서 위험도를 표현해 볼 수도 있다. 벤젠을 사용한다면 유해성은 4점을 주고 쓰는 양이 거의 없으니 양은 1점을 주어 위험도는 4점이 된다. 톨루엔을 예로 들면 유해성은 2점이고, 쓰는 양도 적어서 1점을 매기면 위험도는 2점이 된다. 이때의 위험도 숫자는 절대적인 의미가 있지 않지만, 여러 물질 사이의 위험도를 비교하면 최소한 그 사업장에서 개선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

 

물론 처음에는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다. 벤젠은 향기도 좋고 나쁠 것도 없을 것 같아 유해성을 2점 줄 수도 있다. 그래도 이런 과정이 2-3년 지나면 노동자나 부서, 사업장끼리 소통을 통해, 혹은 정부 감독이나 전문가 안내를 통해 결국 정보가 교류되고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화학물질 위험성 평가 용역’ 이런 식으로 위험성 평가 자체를 다시 전문가에게 위탁하는 형식으로 올해 시행을 대비하고 있다. 이는 위험성 평가의 기본 취지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이른바 전문가 역시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간단한 위험도 평가 방법은 전문가용이 아니라, 사업주나 노동자를 위한 것이다. 전문가의 역할은 각 사업장의 유해성을 평가해주는 것이 아니라, ‘전자산업의 위험성’과 같이 산업 전반에 대한 평가, ‘벤젠의 위험성’과 같이 특정 물질이나 유해요인에 대한 깊이 있는 평가와 대안 마련이다. 개별 사업장에 도움을 준다면, 노동자나 사업주가 한 위험성 평가에 대해 안내해주거나 여러 종류의(화학물질, 근골격계 질환 등) 위험성을 통합적으로 접근하도록 돕고, 우선순위에 맞는 적절한 개선 대책을 제안해주면 된다.

 

소규모 사업장, 영세사업장에서는 이런 종합적인 위험성 평가가 가능할까.

 

위험성 평가가 제안된 배경이 전문가 손을 빌지 않고, 쉽고 간단하게 직접 한다는 데 있기 때문에 실은 중소규모 사업장에 먼저 적용되었던 방법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들 자신에 의한 평가’라는 위험성 평가의 취지를 살리려면 사회 전반적으로 산업안전보건이 권리로 정착되고, 자기 작업장에 대해 평가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아져야 한다.

 

 

[특집3]
위험성 평가 현장 활동에 달려있다


김재광 선전위원

 

형식적인 평가로 끝낼 것인가


지난 몇 년간의 시범사업을 지나, 올해 3월 13일부터 모든 사업장에 위험성 평가가 전면적으로 적용된다. 현장 안전보건활동에서 위험성 평가는 어떠한 의미가 있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위험성 평가 역시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다른 조사나 조치와 마찬가지로 어떤 자세로 바라보고, 현장 활동에 임하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위험성 평가는 특정한 위험요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업장 전체의 위험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그 위험성의 등급을 정한다는 차원에서 다른 조사와는 구분된다. 다시 말해 위험성 평가는 안전보건점검에 있어 종합세트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긍정적인 작용을 할 여지가 크다. 따라서 위험성 평가는 사업장의 재해 예방에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노동조합 또는 노동안전보건활동가가 현장의 위험을 차분하게 추적, 점검하고 개선책을 제시하는 일련의 활동을 통해 사업장 전체의 안전보건사항을 조망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안전보건 점검이 그러하듯 위험성 평가를 통해 재해를 예방하고자하는 의지가 각별하지 않다면 노사 모두 형식적으로 대하는 요식 행위에 머물 수도 있다. 또, 현장의 모든 안전보건활동은 결국 현장 노동자의 관심을 증대시키고, 참여를 독려하여 결국 현장 조직활동에 강화에 있다는 점을 잊는다면, 최대한 잘한다고 한들 노동조합의 노동안전부서가 현장조사에 참여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 현장에서 위험성 평가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활용할까?

 

 현장을 다시 보는 계기로 삼자


위험성 평가의 준비과정부터 노동조합 및 노동안전보건활동가들 그리고 현장노동자들의 적극적인 목소리가 필요하다. “과거에 산업재해가 발생한 작업, 위험한 일이 발생한 작업 등 근로자의 근로에 관계되는 유해·위험요인에 의한 부상 또는 질병의 발생이 합리적으로 예견 가능한 것은 모두 위험성 평가의 대상으로 한다. 다만, 매우 경미한 부상 또는 질병만을 초래할 것으로 명백히 예상되는 것에 대해서는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즉, 우선 우리 현장의 과거 재해(부상과 질병)를 먼저 점검하고, 과거 재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예견 가능한 재해를 적극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때 화학물질이나 위험한 기계 기구 등 물리, 화학적 위험 뿐 아니라, 작업량, 작업속도, 인력 부족, 노동성격, 교대제 현황, 심야노동, 조직문화에 따른 사고, 육체 및 정신질환, 스트레스 등도 적극적으로 고려하여 평가에 포함시키자.


이를 위해 우선 현장에서 실시된 각종 조사와 점검이 무엇이었는지, 우리 현장에서 사용하는 물질은 무엇인지, 물질안전보건자료는 구비되어 있는지를 우선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작업량, 작업속도, 인력 현황, 노동성격, 교대제 현황, 심야노동, 조직문화 등도 점검해야 할 것이다. 이는 위험성 평가의 기초적인 과정이며, 동시에 그 동안의 안전보건예방 상태를 점검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이와 같은 과정은 우리 노동조합과 안전보건활동가들 뿐 아니라 사용자에게도 현장 안전보건예방 상태를 환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현장 노동자의 참여를 준비하자


박두용 교수 인터뷰 기사에서 본 것처럼, 위험성 평가의 중심 철학은 현장 주체에 의한 평가와 개선이다. 현장 노동자의 참여는 위험성 평가의 핵심이다. 위험성 평가는 6단계의 절차로 진행되는데 이러한 전 과정에서 해당 현장 노동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청된다. 이를 위해서 사전에 현장노동자들의 교양과 토론이 필요하다. 자신의 업무를 가장 잘 알고 있으나, 한편 자신의 업무의 위험성에 둔감하거나 정보가 부족한 모순된 상황이 현장에 엄존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유해위험요인을 파악, 추정하는 것에서부터 위험성을 평가하고 대책을 수립하는데 있어 능동적인 현장노동자의 태도가 결국 이 평가의 질을 결정할 것이며, 향후 안전보건예방에 실제적이며, 효과적인 대책이 될 것이다. 따라서 노동조합 또는 노동안전보건활동가는 위험성 평가가 시작되기 이전에 선제적인 현장 교양과 활동 목표를 현장노동자들과 공유하고 준비해야 한다. 또한 이번 위험성 평가를 통해 대책 마련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설정하여 종합적인 안전보건예방 대책과 동시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도록 애써야 한다. 이를 통해 현장 노동자들이 평가의 실용성을 설득해야 한다.  

 

위험성을 평가하고 그 대책을 만드는데 있어, 현장의 준비 뿐 아니라, 가능한 모든 선전활동을 통하여 일련의 과정과 대책을 공론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대책의 사후 경과와 효과를 치밀하게 탐구하고 대중적으로 보고함으로써 평가의 생명력을 보존해야 할 것이다.

 

 

현장 종합보고서를 노동자의 입장에서 만들자

 

위험성 평가를 통해 현장의 안전보건상태가 일순간에 혁신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의의를 말했지만, 위험성 평가는 여러 조사나 점검 중 하나일 뿐이고, 금년에 전체 사업장에 적용되는 법 규정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노동조합과 안전보건활동가는 일순간에 혁신할 태도로 임해야 한다. 우리 활동가들이 이러저러한 조사와 점검을 일순간에 혁신할 태도로 임해야만 그나마 “눈 가리고 아웅”하는 조사나 점검을 극복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소한 이번 위험성 평가가 우리 현장의 안전보건 상태가 어떠한지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며, 동시에 우리 현장의 안전보건과제를 대중적으로 공유하는 근거가 되어야 될 것이다.

 

 

[특집]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 전후 비교 연구의 의미 / 2014.2

두원정공에서 시행된 노동시간 연장 없는, 노동강도 강화 없는, 임금 삭감 없는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이 노동자의 건강과 삶에 실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평가하였다. 노동시간 단축과 밤샘노동 철폐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함께 확인해보자. 

[특집1]
두원정공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 전후 비교 연구의 의미

노동시간센터(준) · 한노보연 김경근

 

* 본 특집 내용은 <두원정공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과 노동자의 삶과 건강> 보고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보고서 원문은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두원정공은 기계식 연료분사장치를 주력 생산하는 곳으로 생산품의 대부분을 현대자동차에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업체이다. 두원정공은 1997년 경영상의 위기를 맞아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시도하여 관철하였고, 당시 한국노총 소속의 두원정공 노동조합은 임금동결과 상여금 반납 등의 사측 제시안을 모두 수용한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두원정공 사측은 2001년 말까지 총 40%에 달하는 인원을 정리하는 등 구조조정을 공세적으로 진행한다.

 

물량이 없다면 천천히 쉬면서 일하자!

이러한 일련의 상황 속에서, 2001년 노동조합 선거에서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 변경을 내걸고 나선 ‘민주집행부’가 당선된다. 당시 노조집행부는 당선 직후 강도 높은 임․단협 투쟁과 근골격계 집단요양 투쟁, 신규 물량 확보 투쟁 등을 전개하며 무너진 현장조직력과 투쟁력을 복원한다. 노조집행부의 헌신적인 리더십 하에 전개된 투쟁의 승리로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의 신뢰가 견고해진다. 물론 사측은 ‘물량이 곧 고용’이라며 ‘물량이 줄었으니, 고용조정은 당연하다’는 담론을 유포하지만, 이러한 사측의 시도는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조합원들의 강경한 대응으로 번번이 좌초된다. 노동조합은 회사의 물량 이데올로기에 대해 ‘물량이 없다면 천천히 쉬면서 일하자!’는 응답으로 맞선다. 그리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주간연속2교대제와 월급제 도입’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한다. 2007년 주간연속2교대제 토대 마련 작업, 2008년과 2009년 주간연속2교대제 연구팀 활동과정에서 조합원들의 불안과 불만은 끊임없는 토론으로 해소된다. 그리고 2010년 10월 주간연속2교대제와 월급제가 시행된다.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 이전 두원정공 생산직 노동자의 근무형태는 다른 완성차 및 자동차 부품업체와 같은 ‘10+10 교대제’였다. 여기에 주말 특근이 덧붙어, 두원정공 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0시간을 상회했다. 그러나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으로 잔업이 사라져 ‘8+8 주간연속2교대제’가 실시되고, 노동조합에 의해 특근이 통제되어 총 노동시간은 현저히 줄어든다. 2013년 설문조사에서 확인한 두원정공 생신직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46.95시간이다.

 

두원정공 주간연속2교대제 근무시간표
* 자료출처 : <2010년 임금·단체협약 교섭위원자료>

오전반(시업/종업)

시간

구분

오후반(시업/종업)

시간

구분

08:00-10:00

2시간

노동1

16:00-18:00

2시간

노동1

10:00-10:10

10

휴식1

18:00-18:40

40

식사

10:10-12:00

1시간 50

노동2

18:40-20:30

1시간 50

노동2

12:00-12:40

40

식사

20:30-20:40

10

휴식1

12:40-14:30

1시간 50

노동3

20:40-22:30

1시간 50

노동3

14:30-14:40

10

휴식2

22:30-22:40

10

휴식2

14:40-16:00

1시간 20

노동4

22:40-24:00

1시간 20

노동4

 

주간연속2교대제와 월급제 도입을 위한 논의 초기과정에서, 조합원들의 반발은 매우 컸다. 가장 컸던 반발은 줄어드는 노동시간만큼 임금이 줄어들 것에 대한 우려였고, 이와 함께 20년 가까이 적응해 온 교대제 시스템이 바뀌면 생체리듬이 깨져 더 힘이 들 것이라는 견해도 제출된다. 임금감소에 대한 조합원의 우려를 꿰뚫고 있던 사측은 이에 따라 잔업과 특근을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 직전까지 최대한 늘려서 운영하다가, 주간연속 2교대 시행과 동시에 전면 중단해 임금이 감소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에 대해 노조는 물량이 줄어든 현실에 맞게 주간연속2교대제를 도입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월급제를 도입하여 기본급을 확충하는 것이 ‘고용안정과 임금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점을 내세워 조합원을 설득한다. 또한 일시적으로 특근에 대한 통제를 풀어 수당으로 임금 보전이 가능하게 하여 조합원들의 불만을 해소해 가는 등 유연한 대응을 펼친다.

 

3무원칙에 입각한 교대제 변화의 결과는?
현재 두원정공에서 실시한 ‘주간연속2교대제와 월급제’는 3년을 경과해 안정화된 상황에 있다. 두원정공에서 실시 중인 주간연속2교대제는 노동조합이 오랜 준비과정을 거쳐 ‘3무원칙(노동시간 연장 없는, 노동강도 강화 없는, 임금 삭감 없는)’에 입각해 근무형태를 변경한 소중한 사례이다. 1997년 IMF 경제위기를 겪으며, 노동운동 진영에서 고용을 유지하며 동시에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대안으로 ‘주간연속2교대제’가 제기되고, 도입을 위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두원정공 사례처럼 ‘3무원칙’이 지켜진 교대제 변경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조건이다. 이와 함께 장시간노동과 야간노동이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여러 연구 결과는 다수 존재했으나,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이 근무형태 변경으로 개선된 사례를 두고, 직접적으로 전후를 비교한 연구가 없었던 상황에서, 두원정공에서 실시된 주간연속2교대제가 노동자의 건강과 삶에 실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검토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실제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이 이루어진 현장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활의 변화에 대한 관찰과 평가를 위하여 수행되었다.

 

[특집2]
두원정공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 이후 조합원들의 일상생활의 변화
'여가와 가족생활을 중심으로'


노동시간센터(준) · 한노보연 김보성

 

1. 한국 자동차 산업 생산직 노동자들의 일상생활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은 한국 제조업 생산직 중에서도 자동차산업 생산 현장에는 주야 2조 2교대제의 장시간 노동 시스템이 견고하게 뿌리 내려왔다. 이는 철저하게 일 중심의 시간 시스템으로, 노동자들의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시험하고 가족생활과 사회생활을 파괴한다. 가족 및 사회로부터 탈구되어 있는 작업장의 시간성 때문에 노동자들은 가족과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생계부양자로서의 역할만을 배타적으로 강요받게 된다. 1997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한 일련의 작업장 구조조정의 흐름은 노동자들의 의식 속에 불안을 깊이 각인하여 가족생활과 사회생활을 포기한 채 임금소득활동에만 더 몰입하도록 만든 구조적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두원 노동자들 역시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없었으며, 가족과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없었다. 피로에 지쳐 신경이 예민해진 남편, 집에서는 항상 잠만 자는 아빠가 가족들의 머릿속에 박힌 남편과 아버지의 이미지였으며, 남성 노동자들은 사실상 ‘돈 버는 재미’ 외의 다른 가치를 추구할만한 육체적․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2. 주간연속2교대제의 도입과 여가생활의 변화
1) 시간의 변화와 삶의 변화
전반적으로 이전 장시간 노동과 심야노동이 이루어질 때에 비하여 조합원들이 주체적으로 계획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으며, 이에 따라 여가활동이나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패턴 역시 적지 않게 변화했다. 자유 시간의 확대와 이에 따른 여가의 다변화가 가장 일차적인 생활상의 변화이다. 조합원들의 대다수가 헬스, 달리기, 걷기 등의 스포츠 활동과 등산, 온천여행 등의 짧은 여행을 자주 즐기게 되었으며, 동호회 활동도 더욱 활발히 하게 되었다. 또한, 가사노동이나 자녀 돌보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가족 외식이나 영화나 공연 관람을 더욱 자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시간 사용 패턴의 변화는 조합원들로 하여금 삶의 의미나 가치에 대해 재성찰․탐색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자유 시간을 적극적으로 누리거나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면서 ‘돈 버는 재미’ 외에 다른 즐거움과 행복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두원정공에서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 배경에는 고용조정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 그러나 일단 주간연속2교대제를 도입하고 실노동시간을 단축하자,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경험이 달라졌다. 이제는 고용 안정만이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미뤄두었던 운동을 시작하고, 취미생활을 시작하고, 가족과 시간을 갖고 더욱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하고, 자기계발을 위한 투자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을 계획하고 경험하면서 새로운 활동이 가져다주는 즐거움과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일 이외의 활동이 가지는 가치에 새롭게 눈뜨고 스스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옛날에 일에 미쳐 살 때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게 참 좋더라고요. 행복하니까. 그런 소소한 일상들이 좋으니까. 좀 오바하면 옛날보다는 조금 즐거워요. 출근할 때, 옛날보단.” (A1, 남성 조합원, 연속2교대)

 

가족 구성, 자녀의 연령 등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가족과의 관계 개선을 경험한 조합원들도 다수이다. 노동시간 단축과 심야노동의 철폐를 통해 확보된 자유시간의 많은 부분을 가족과 함께, 혹은 가족을 위해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애들이 첨에는 싫어했어요. 귀찮아하더라고. (…) 집에 오면 항상 아빠가 있으니까. 컴퓨터도 마음대로 못 하고, TV도 맘대로 못 보고, (…) 살살 꼬셔서 이제 밖에 나가서 뭐도 하고 뭐도 하고 하면서 조금씩 관계가 좋아진 거죠. (…) 일 년 훨씬 지나보니까, 학교 갔다 와서 아빠가 없으면 전화를 해요. 오늘 어디 있는 거야? 전화를 해요. 좀, 당연히 가까운 관계인데, 막, 그냥, 말뿐인 게 아니라 훨씬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A1, 남성 조합원, 연속2교대)

 

2) 미완의 변화: ‘더 긴 시간의 노동-더 많은 소득’으로 회귀의 움직임
주간연속2교대제로의 전환과 더불어 여가생활과 가족생활을 풍요롭게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이와 사뭇 다른 결의 움직임 또한 존재한다. 잔업과 특근 선호, 그리고 추가적인 임금노동과 소득에 대한 지향이 그것이다. 이는 투쟁을 통해 확보한 자유시간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로, ‘더 긴 시간의 노동-더 많은 소득’으로의 자발적 회귀라 볼 수 있다.

 

“지금 주간근무만 상시 주간근무를 하시는 분들 중에 제가 알기로는 투잡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 저만 해도, 당장 저만 해도 주간만, 만약에 근무를 주간만 한다면 투잡을 뛸 의향이 있어요. (…) 원체 일찍 끝나니까...” (A6, 남성 조합원, 연속2교대, 강조는 인용자)

 

3. 삶의 회복: 그 가능성과 질곡
이전의 노동시간 패턴은 노동자들의 육체적 활력을 고갈시키고 노동자들로부터 삶의 의미나 가치에 대해 성찰해볼 기회 역시 박탈했다. 성장하는 자동차 산업의 잘나갔던 부품업체 정규직 직원이었던 두원정공 노동자들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작업장의 시간 리듬에 자신을 끼워 맞춘 채 일했다. 그러나 두원정공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리더십과 조합원들의 단결을 바탕으로 고용 위기로부터 일자리를 지켜내고 ‘노동시간 연장 없는’, ‘노동강도 강화 없는’, ‘임금 삭감 없는’ 주간연속2교대제를 현실화시켜냈다. 잔업 없는 ‘8+8’ 노동시간 시스템을 정착시켰으며, 노동자의 건강권을 실현하는 데 한발 다가섰다. 가능성은 단지 가능성에 그치지 않고 변화의 실마리들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들은 더욱 자유롭게, 적어도 이전보다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생활시간을 통제하고 설계할 수 있게 되었다. 자유 시간을 누리고, 여가를 향유하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과거에는 잊고 살던 삶의 가치들에 새롭게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는 작업장 시간제도의 변경을 통해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의 의식과 가치관의 재구성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가 ‘시간을 둘러싼 투쟁’, 즉 ‘시간의 정치’를 통해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보다 조심스럽게 관찰해야 할 점은 이러한 표면 이면에 존재하는 역동이다. 어렵사리 확보한 자유 시간을 추가적 소득을 위한 제2의 임금노동 시간으로 활용하거나 특근 통제에 대한 불만과 특근 선호가 여전하다는 점. 이는 작업장 시간성으로의 자발적 회귀 그리고 일상을 포기하고 임금 보상으로 투항한다는 점에서 삶의 회복과는 반대되는 흐름이다. 이것은 비단 몇몇 개인들의 선호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주의 깊은 분석이 필요하다.

 

이러한 반응은 한국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이 겪어온 공통된 역사와 집단적 기억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 산업 초창기부터 자유 시간을 포기하고 일하면서 노동자들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희생이 크면 클수록 크게 되돌아오는 임금이었다. ‘최소 기본급+시간 외 수당’의 임금 구조는 돈의 보상을 더욱 중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장시간 노동과 군대식 통제라는 작업장 문화는 노동자들이 ‘돈 버는 재미’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했다. 여기에 97년 경제위기와 뒤이은 구조조정은 노동자들의 마음속 깊이 불안을 새겨 삶을 포기한 대가로 고용 유지와 임금 보상을 추구하는 것을 절대화하였다. 두원정공 노동자들 역시 1997년 이후 총 40%의 인원이 정리되는 구조조정을 경험했다. 특히 생산품의 특성상 점차 주문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조건과 이러한 상황을 혁신을 통해 타개해나가려고 하지 않고 고용조정만을 주문하는 경영진은 노동자들의 불안과 불신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러한 집단적 경험과 기억으로부터 두원정공 노동자들 역시 자유롭지 않다. 게다가 두원정공에서 거둔 2000년 이후 승리의 경험은 거대한 골리앗들이 쓰러져나가던 끝에 외롭게 지켜낸 승리였다. 그래서 두원정공 노동자들은 불안하다. 이것이 강성 두원정공 노동조합의 승리와 성과 이면에 존재하는 노동자들의 초상의 일면이며, 실업과 불안정 노동이 상존하는 신자유주의 시대 노동자들의 공통된 모습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 노동자들의 ‘삶의 회복’을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사업장 차원의 노동시간 단축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시대 근본적 불안을 해석하고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두원정공 조합원들은 주간연속2교대제를 도입․정착 이후 삶의 회복을 위한 도정에 섰다. 투쟁의 성과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불안한 발을 떼어 앞으로 한 걸음 나가야 한다. 시간의 회복을 삶의 회복으로 진전시켜야 하며, 이를 위한 보다 구체적이고 집단적인 계획과 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특집3]
두원정공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 이후 노동자의 건강 변화
'우리는 조금 더 건강해졌다'


노동시간센터(준) · 한노보연 이혜은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 이후 건강영향으로는 근골격계 증상, 수면건강, 건강 행동, 심혈관계질환 관련 지표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이 중 근골격계 증상과 건강 행동은 2010년과 2013년에 같은 항목으로 설문조사를 하여 2010년부터 주간근무만 시행하였던 노동자(164명)와 2010년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으로 주야맞교대에서 주간연속2교대로 교대형태가 달라진 노동자(104명)로 나누어 비교하였다. 수면건강은 2007년의 설문조사(주간근무자 301명과 주야 맞교대근무자 142명)와 2013년의 설문조사 결과(주간근무자 231명과 주간연속2교대근무자 150명)를 비교하였다. 심혈관계 질환 지표는 2009년과 2012년의 건강검진 자료를 이용하여 주간근무 노동자(156명)와 주야맞교대에서 주간연속2교대로 변경된 노동자(102명)로 나누어 비교하였다.

 

심야노동 단축으로 근골격계 증상 완화
근골격계 증상은 전체적으로 73.5%에서 82.5%로 증가하였고 가장 중요한 원인은 조사 대상자들의 연령이 평균 44.8세에서 47.8세로 증가한 것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사대상과 증상 부위를 분류하여 분석한 결과 근골격계 증상자의 비율 변화는 교대군(5.8% 증가)은 주간근무군(15.3% 증가)에 비하여 증가 정도가 10%가량 낮았고 특히 조립 등 업무와 연관성이 큰 어깨/팔/손 등 상지 부위 증상은 오히려 감소한 결과를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주간연속2교대제를 통한 심야노동의 단축이 근골격계 증상의 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할 수 있다.

 

가장 뚜렷하게 개선된 수면건강 
수면건강은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를 보였다. 교대근무자의 야간근무 시 수면시간이 5시간 49분에서 6시간 20분으로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또한, 교대근무자의 야간근무 시 수면의 질이 나쁜 편이라고 응답한 경우는 72.5%에서 39.7%로 거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주간근무자의 경우에도 수면의 질이 좋은 편이라는 응답이 20%에서 32.6%로 증가한 변화를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특히 교대근무자의 수면건강 향상에 주간연속2교대제의 시행이 큰 영향을 미쳤고, 주간근무자의 경우에도 노동시간 단축이 수면의 질에 좋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음주는 줄고, 운동은 늘고
건강 행동의 경우 흡연상태는 2010년에 비해 2013년에 흡연자가 오히려 소폭 증가(주간근무군 2.5% 증가, 교대근무군 2.9% 증가)하였으나 음주의 경우 전체 노동자에서 상당히 개선된 변화를 보였다. 특히 교대근무자의 경우 주간근무자와 비교하면 월 2회 이상의 음주자가 33.8% 감소하여 14.9% 감소한 주간근무자에 비해 현저한 변화를 보였다. 운동의 경우 주간근무자의 경우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 전후 비슷한 수준을 보였으나 교대근무자의 경우 주 3회 이상 운동하는 비율이 22.1%에서 26.2%로 약간 증가하였다. 흡연과 달리 음주와 운동의 경우 여가의 활용과 밀접히 관련하는 지표로서 충분한 여가가 확보되어 음주보다는 운동을 포함한 다양한 활동을 추구함으로써 건강 행동이 개선된 것으로 판단된다.

 

 


심혈관계 질환 관련 지표 악화 둔화
건강진단결과를 이용하여 심혈관계 질환 관련 지표를 분석한 결과 고혈압, 중성지방, 복부비만 등 전반적인 항목에서 악화소견을 보였다. 이러한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조사대상의 고령화 문제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조사대상자를 교대근무에 따라 나누어 비교하였을 때 심혈관계 질환 관련 지표 중 고밀도콜레스테롤, 복부비만, 당뇨(고혈당)의 경우 교대근무자에서 그 악화 정도가 주간근무자에 비해 낮거나 오히려 개선된 결과를 보였다. 이러한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요인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대사증후군의 진단기준을 이용하여 분석하였을 때 주간근무자의 경우 8.2%에서 13.8%로 증가하였고 (+5.6%) 교대근무자의 경우 5.9%에서 7.1%로 증가하였으나 (+1.2%) 그 증가 폭이 주간근무자에 비하여 훨씬 적었다. 조사대상자들의 고령화를 고려하였을 때 이러한 결과는 심야노동 단축의 효과가 심혈관계 질환 관련 지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되며 여가 확보를 통한 건강 행동의 개선이나 생체리듬 교란의 최소화 효과로 추정된다.

 

 

 

 

결론적으로 두원정공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 3년 이후, 수면건강이 크게 개선되었고, 음주의 빈도가 감소하였으며 그 효과는 주야 맞교대에서 주간연속2교대로 변경된 교대근무자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근골격계 증상과 대사증후군의 경우 전체적으로는 나이 증가와 함께 2010년보다 2013년에 악화소견을 보였으나 주간근무자를 비교군으로 설정하였을 때 교대근무자에서 좋은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영향을 고려할 때 두원정공과 같이 주간연속2교대제의 의의를 잘 살리는 교대제 변화를 현장 노동자의 주도적인 요구로 확산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

[특집] 2013년 노동안전보건 10대 뉴스 / 2014.1

지난 2013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한노보연 송년회에서 ‘2013년 노동안전보건 10대 뉴스’ 앙케이트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결과를 보면 ‘세계적 기업’에서의 산재 사망 사고와 공공의료에서의 안전보건 뉴스가 눈에 띕니다. 올 한해, 그리고 앞으로는 이와 같은 노동안전보건뉴스를 접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2013년 노동안전보건 10대 뉴스


한노보연 선전위원회

 

1위. 제주의료원 간호사 집단 유산 해결 나서 “임신·출산의 자기결정권 보장하라”

 

‘병원 사업장 여성 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2013년 4월 29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제주의료원 간호사 4명이 아이를 유산하고, 4명은 선천성 심장 질환아를 출산했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유산율이 제주 지역의 평균 유산율보다 19%가 높은데 주야 교대제,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 X레이에서 나오는 방사능 물질,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등 생식독성 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이와 함께 지자체와 병원이 제주의료원의 적자를 이유로 환자 내원이 힘든 한라산 초입으로 병원을 옮기고 노동자의 임금을 체납하여 간호사 이직률이 30%가 넘어 남아있는 간호사들의 노동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한편 근로복지공단은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2012년 12월 산재신청 (선천성 심장 질환아를 출산한 간호사 4명)에 대해 재해가 노동자 당사자가 아닌 자녀에 해당하기 때문에 산재가 아니라고 반려했으며, 역학조사 과정에서 아이를 유산한 간호사 4명의 아픔을 들쑤시기도 했다.

 

 

사진출처 : 뉴스제주

 

 

공동 2위. 고 황선웅 기관사 산재 인정

 

생전 정신 질환 판정을 받지 않았더라도, 지하철 기관사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했을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한다는 근로복지공단의 판정이 나왔다. 지난 2013년 1월 19일 공황장애 등의 증상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황선웅 기관사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16년 경력의 서울도시철도공사 소속 고 황선웅 기관사는 2012년 9월 출입문 가방 끼임 사고를 당했다. 이후 황 기관사의 사고 사례는 교육 자료로 작성돼 동료 기관사들에게 반복적으로 전파됐다. 황 기관사는 사고가 난 지 약 4개월 후, 출근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동료들은 황 기관사가 출입문 가방 끼임 사고 후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보였다고 증언했다. 특히 황 기관사 사례가 '기관사 잘못'의 대표 사례처럼 반복적으로 교육된 부분이 황 기관사에게 정신적인 불안감을 가중시켰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편 이번 산재 판정과 관련해 노무법인 필의 유상철 노무사는 황 기관사 사례는 사전에 정신 질환 확진을 받지 않았더라도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 지하철 기관사의 근무 환경 및 통제적 조직 문화가 정신적 스트레스 및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 가지의 큰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 매일노동뉴스

 

공동 2위. 진주의료원 폐업


경상남도가 지난 2013년 2월 26일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발표했다. 경상남도는 진주의료원이 매년 40~60억 원의 손실로 인해 300억 원의 부채를 안고 있으며, 이대로 가면 3~5년 안에 파산할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달랐다. 2011년 말 진주의료원의 부채비율은 63.9%로 300억 원의 부채는 진주의료원의 자산 규모를 감안하면 과도한 규모가 아니다. 또한 의료수익 대비 인건비 비율이 82.8%로 타 병원 보다 과도하게 높은 것이 경영 악화의 가장 핵심적 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진주의료원 노동조합은 6년째 임금을 동결해 왔고 7개월 동안 임금을 받지 못했다.


 

폐업 방침 발표 후 진주의료원 지키기에 나선 보건의료노조를 비롯해 시민사회단체는 철탑 고공농성과 도의회 점거, 폐업 철회 주민투표 추진 등의 투쟁을 전개했다. 또한 보건복지부 지자체의 일방적인 지방의료원 폐업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진주의료원은 지난 5월 29일 폐업했으며 6월 11일 진주의료원 폐업을 위한 경상남도 조례 개정안이 도의회를 통과, 뒤이은 7월 1일 공표 과정에서 홍준표 도지사는 이른 시일 내에 청산절차를 마무리와 진주의료원 건물을 매각 방침을 밝혔다. 그리고 현재 진주의료원 재개원 촉구를 위해 박성용 진주의료원 지부장이 창원 경남도청 앞에서 1월 18일 현재 130일째 도청 정문 앞에 자리를 깔고 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있고, 진주의료원 폐업 저지 및 재개원 투쟁을 벌인지 326일째, 조합원들은 지난 14일 도의회 앞에서 진주의료원 재개원 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등 완강한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프레시안

 

공동 2위. 삼성 반도체 화성공장 불산 누출 사고


지난 2013년 1월 27일 삼성 반도체 화성공장 11라인 (반도체 칩 생산설비) 중앙화학물질공급장치(CCSS) 배관 교체작업 중 불화수소희석액(불산)을 공급하는 관 아래쪽 밸브가 녹아내리며 약 10리터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현장에 들어간 협력업체 에스티아이(STI) 서비스 노동자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삼성은 사고를 감추려고 사건 발생 16시간이 지나도록 경찰과 소방당국에 신고를 지체했다. 사고 이후 한노보연을 비롯한 인권·노동·환경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은 ‘삼성전자 화성공장 불산 누출 사고 은폐 규탄 진상규명 및 대책수립 촉구를 위한 대책위’를 구성했다.


사고 후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 삼성전자 1,934건, 협력업체 70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위반사항 가운데 712건에 대해서는 사업주를 형사입건했으나 검찰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143건에 대해서는 2억 4938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이와 같은 솜방망이 처벌은 결국 지난 5월 2일 또 한 번의 불산 누출 사고로 이어졌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공동 2위. 백혈병 걸린 반도체 노동자, 첫 산재 인정 결정


반도체 공정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에 대해 처음으로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1973년에 태어난 고 김진기 씨는 1997년 LG반도체 청주사업장에 입사해 클린룸 4·5·6라인에서 임플란트 (이온 주입) 공정 예방정비(PM) 업무를 담당했다. LG반도체는 2001년 현대반도체와 합병해 하이닉스 반도체가 됐고, 2004년 하이닉스의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부가 분리되면서 김 씨의 소속은 다시 매그나칩으로 바뀌었다. 김 씨는 소속이 3차례 바뀌었지만 같은 공장에서 같은 직무를 수행했다. 하루 8~12시간 주·야간 반복 교대근무와 연장·휴일 근무에 시달려오던 김 씨는 2008년 5월 갑상선 기능 저하증 진단을 받았고, 2010년 5월 만성 골수 단핵구성 백혈병에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김 씨는 발병 이듬해 숨졌다.


유족과 반올림은 김씨가 30대에 발병하기 매우 어려운 만성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고, 담당했던 주치의는 ‘약 15년 동안 X-선과 관련된 업무를 지속해서 수행한 점으로 봤을 때 병과 직업적 노출의 상관성이 높다’는 소견을 밝혔다며 산재를 신청했다. 유족과 반올림이 제출한 김 씨의 최종 의견진술서에 따르면 김 씨가 일했던 임플란트 공정의 이온 주입 장치에는 고압 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X-선(전리방사선)이 발생한다. 또 김 씨와 같은 정비 작업자들이 임플란트 장비 내부에 들어가 일할 때 방사선과 유해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었다. 또 유족과 반올림은 의견서에서 클린룸에서 일하면서 저농도의 벤젠과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또 업무 중에 방독마스크나 방사선을 막을 수 있는 보호구 등을 착용한 적이 없었다. 김 씨의 동료들도 혈소판 수치가 낮게 나오거나 백혈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오는 등 건강에 이상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 씨의 근로복지공단 산재 인정 결정은 반도체 공정에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로서는 처음이어서 현재까지도 산재 인정 여부를 놓고 싸우고 있는 삼성 반도체 피해 노동자들의 재판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주목된다.

 

 

사진 출처 : 반올림

 

6위. 삼성 백혈병 6년, 삼성-반올림 첫 공식대화 열리나


삼성 백혈병 문제가 공론화된 지 6년 만에, 삼성이 처음으로 공식적인 대화를 제안했다. 삼성전자는 삼성 백혈병 문제가 공론화된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백혈병 발병자와 유가족을 직접 만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입장을 전달하며 공식적인 대화를 제안했다. 반올림은 2013년 1월 22일 강남역 삼성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 황유미의 죽음부터 160여 명의 노동자의 고통에 대한 책임자인 삼성의 대화 제의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여 실무협상단을 구성해 협상에 나선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번 삼성 측의 대화 제의는 삼성 백혈병 최초 제보자인 황상기 씨(고 황유미 부친)와 반올림이 삼성 백혈병 싸움을 진행한 지 6년 만에 이뤄졌다며 “삼성은 유미의 죽음이 개인적인 질병 때문이라고 몰아붙였고, 너무 억울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6년간 싸워왔다” “긴 시간 싸움을 진행하며 많은 여론과 국민들이 삼성을 질타해주셨기 때문에 삼성이 드디어 대화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8개월간의 실무협상을 마치고 12월18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첫 번째 본 교섭이 열렸으나, 교섭을 시작하자마자 삼성전자 측은 ‘반올림’을 교섭 당사자로 인정할 수 없다며 협상을 사실상 파행으로 몰아갔다. 교섭단 구성과 관련해서 사전에 실무협의를 통해 양측이 합의한 사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이 모든 과정을 원점으로 돌리는 매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하루 빨리 삼성은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로 본 교섭에 임해야 할 것이다.

 

 

사진 출처 : 참세상

 

7위. 현대·기아차 46년 만에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


2013년 현대·기아차 국내 모든 공장이 3월 4일부터 주간연속2교대제를 시행했다. 40년 넘게 밤샘노동과 최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됐던 국내 자동차공장과 노동자들, 울산·전주·아산·화성 등 주변 지역의 삶·문화 등에 전반적인 변화가 생겼다. 노동시간의 경우 1인당 10시간에서 8시간 30분으로 단축되고, 연간 근로시간 (근무 일수 230일 기준)으로 따지면, 개인당 평균 236시간이 줄었다. 오후 3시 30분 작업을 시작하는 근무조는 이튿날 오전 1시 30분에 잔업까지 끝나, 밤샘노동에서 벗어났다. 자동차업종은 한국의 대표적인 장시간 노동 사업장으로 꼽혀왔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2010년 기준 연평균 2,19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749시간보다 무려 444시간이나 많았다.

 

한편 주간연속2교대제로 노동시간이 줄면서 생기는 생산량 감소와 임금 축소는 노사가 한발씩 양보해 기존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현대차 노조는 울산·아산공장의 시간당 생산속도(UPH)를 30대(402대→432대) 끌어올리는 등 노동 강도를 높이는 데 합의했다. 대신에 회사는 현재 시급제인 생산직 임금을 월급제로 전환해 기존과 같은 임금을 보장하기로 했다. 한편 현대·기아차가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을 하면서 이전 근무형태와 같은 생산능력 및 생산량을 유지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임금 손실 등에 있어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생산성 향상을 전제로 한 근로시간 단축과, 이에 따른 임금삭감이 이후 부품사 등의 주간연속2교대 실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에 따른 임금문제 등 제반 사항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정규직에 비해, 노동강도 강화에도 직격탄을 맞고 있어 후속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사진 출처 : 미디어 충청

 

8위. 아모텍 노동자 산재인정

 

2013년 3월 핸드폰 부품 회사 아모텍에서 2명이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또한, 지난 1월에도 뇌경색으로 한 명의 노동자가 쓰려졌다. 아모텍은 삼성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칩, 안테나 등을 만드는 1,000명 규모의 중견기업으로 4조 3교대로 24시간 가동되며, 삼성전자 등 원청의 납품 기일을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은 12시간 주야 맞교대로 휴일 없이 일했다. 사망자 중 고 임승현씨는 31살의 나이에 결혼을 앞두고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6개월 동안, 단 하루 연차휴가를 사용하고 매일 12시간 30분씩 일했다. 또 다른 망인인 고 권태영씨는 커먼모드필터(CMF 핸드폰 노이즈 방지 장치)의 품질, 불량률 개선, 설비 개선 업무의 총 책임자였다. CMF는 아모텍을 2011년 적자에서 2012년 1,800억 매출, 170억 영업이익으로 돌아서게 한 주역이다. 한편 아모텍은 2013년 영업이익으로 250억 원을 추정했는데, 이는 같은 장비, 같은 인력으로 2년 만에 영업이익이 11배나 증가한 것이다. 고 권태영씨는, 자신의 작은 실수로 회사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큰 업무를 수행한 것이다.


스마트폰 업종은 너무나 빨리 모델이 교체되고, 그때그때 기술개발과 마케팅, 물량생산에 따라 큰 수익 변동이 발생한다. 그래서 새로운 모델 생산이 시작되면 단시간 내에 엄청난 물량을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죽을 지경으로 일해야 한다. 사건 이후 인천지역 노동자 권리 찾기 사업단 등 시민단체들의 33일간 투쟁으로 전자산업 하청 노동자들의 현실이 세상에 드러나는 한편, 회사로부터 노동환경조건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사진 출처 : 프레시안

 

9위. 현대제철 당진 공장 아르곤 가스 누출 사고


2013년 5월 10일 오전 2시 25분경, 현대제철 당진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5명이 지름 5m, 높이 8m의 전로 제강공장 내화벽돌 설치 보수공사를 마무리하고 임시발판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바닥으로부터 아르곤 가스에 노출돼 질식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고가 난 보수작업은 평상시 3교대 근무와는 다르게 50명이 2개 조로 나뉘어 2교대로 24시간을 진행하는 죽음의 작업조로 불렸다. 또한, 전로에 아르곤 가스 관을 다시 설치하는 작업은 전로 보수작업이 모두 끝나면 이루어져야 하는데도 배관 하청업체인 ‘신화’는 보수작업이 진행 중인이던 9일에 아르곤 가스 배관을 연결했다. 이는 사실상 원청인 현대제철의 지시 없이 불가능한 작업이다. 한편 당시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아르곤이란 유독가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번도 고지 받은 적이 없었다. 또한 가스감지기나 산소마스크도 전혀 지급받지 못했다. 사고 이후 노동부의 특별 관리감독 결과 현대제철 898건, 협력업체 156건, 건설업체 69건 등 총 1,123건의 산업안전법 위반사항이 적발되었다.

 

 

사진 출처 : 참세상

 

10위.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붕괴 사고


“숫자만 가지고는 지난달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사건이 안겨준 공포를 설명할 수 없다.”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 사바르에 있는 라나 플라자 빌딩이 무너지면서 수백 명이 죽었고 수천 명이 다쳤다. 희생자 대부분은 이 건물에 입주한 의류공장 노동자들이였다. 사고가 있기 전 건물 벽에 균열이 생겼을 때 입주해 있던 은행이나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그러나 의류공장 주인들과 건물 주인은 수출 선적 날짜에 맞추기 위해 위험 정도가 과장됐다며 노동자들을 공장에 들여보냈다.


한편 방글라데시 의류제조 · 수출업협회(BGMEA)는 사고 이후 국제노동기구(ILO)와 손잡고 노동자 인권 및 안전 개선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방글라데시에 진출해있는 다국적 의류 기업들은 하청공장의 노동조건을 개선에 함께하겠다는 의미로 협약에 동참했다. 그러나 사고 발생 이후 지금까지도 지난 사태의 교훈을 외면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논의는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공장 건물 전수조사를 약속한 바 있지만, 현재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에 대해 경찰의 무차별 진압으로 맞서고 있다.

 

 

 

사진 출처 : 로이터 통신

 

[특집] 2013 현장연구 나눔마당 / 2013.12

2008, 2009년에 이어 세 번째 개최된 현장연구 나눔마당은 10주년을 맞은 연구소가 그간의 현장연구 역사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자세로 현장연구를 계속해나갈지 짚어보는 자리였습니다. 또한, 연구소가 많은 역량을 투여했던 노동시간센터(준)의 주간연속 2교대제 변화 전후 비교 연구를 비롯하여 2013년 한노보연이 진행했던 연구 사업의 과정 및 결과를 발표하고 그 성과와 의미를 돌아보았습니다. 이번 일터 특집에서는 현장연구 나눔마당 1부 <한노보연 10년의 연구, 성과와 과제> 발표 및 토론 내용과 2, 3부에서 공유한 다양한 연구 사업 내용을 소개합니다.

 

 

[특집1]
한노보연 10년의 연구, 성과와 과제


한노보연 공유정옥

1. 2003년부터 2013년까지의 연구개요

 

연구 주제

건수

근골

30

스트레스, 정신건강

10

노동조건과 건강실태 일반

9

교대제, 노동시간

6

노동강도

4

기타

3

 

기타; 지역실태, 1인승무대안, 산재요양복귀실태

 

업종

건수

설명

금속

35

자동차 및 부품, 조선, 철강, 화학소재

궤도

7

철도, 지하철(도철, 부산)

공공운수

6

공공전반,발전,우편,학교급식,버스

사무서비스

5

오픈에스이,사회보험,증권,농협,손해보험

병원

3

강원대, 고려대

기타

3

비정규실태,요양실태,경기중부지역

제약

1

 

특고

1

학습지

화섬

1

풀무원

 

○ 주제별로는 근골격계 질환이 압도적
○ 다양한 업종의 직무 스트레스 조사
○ 교대제와 노동시간 연구
○ 노동조건과 건강실태 일반에 대한 조사

 

2. 평가의 틀

1) 연구의 목표
10년을 관통하는 우리의 연구 목표는 무엇이었는가. 우리의 연구는 노동자의 건강을 향상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건강권을 매개로 한 노동자 운동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어떤 배경에서 시작한 사업이건 이를 통해 현장과 연구소 양쪽 주체의 운동적 성장을 목표로 했으며, 현장 노동자들을 조사와 연구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연구 과정과 결과에 참여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2) 연구의 기풍
이런 목표 설정을 통해 연구소는 독특한 기풍을 만들어왔다.
○ 주체의 중요성 ; 연구 사업을 매개로 만나는 현장과 연구소의 담당자들은 실무를 처리하는 수준을 넘어 운동적인 동반관계를 형성하고 각자의 운동적 역량을 강화하고자 했다.
○ 내용과 표현 ; 연구의 내용과 보고서, 선전물 등에는 각 연구의 소재나 주제에 국한하지 않고 노동자의 삶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담아내려 했다.
○ 지속성과 일상성 ; 일회성 조사연구가 아니라 연구를 매개로 한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현장 활동을 만드는 데 비중을 두었다.

 

3. 평가

1) 한노보연의 연구는 운동에 어떤 이바지를 했는가
부족하나 진행 중이다. 혹은 진행 중이나 여전히 부족하다. 특히 최근 들어 연구의 배경과 취지, 그리고 이후 성과와 과제에 대한 공유가 연구소 안팎으로 점차 얇아질 뿐 아니라 그 고민 자체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 연구소의 운동적 전문성은 충분한가
연구소 초기에는 근골격계 투쟁에서의 경험을 통해 전문성과 전문주의의 경계를 긋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자동으로 전문주의의 실천적 극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문주의를 지양한다는 선언은 이미 그 자체로 우리 자신이 전문주의 위험을 감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며, 결코 지양 자체가 완결성을 가질 수는 없다.
한편 연구소가 목표로 한 ‘전문성’은 과연 충분했는가. 연구를 통한 운동을 펼치는데 크게 불편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으나 정세에 대한 진단이나 현장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성, 혹은 그런 진단과 판단에 대한 조직적 공유 수준은 아직 충분치 않다.

 

3) 일상성과 연속성은 얼마나 견지했는가
연구소가 일상적 현장 투쟁과 조직화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인식을 넘어, 구체적으로 무엇을 실현했느냐는 문제다. 근골격계 투쟁의 경우 유해요인조사 및 근골투쟁과 현장 개선의 로드맵을 마련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현장을 개선한 사업장들은 제법 많았다. 그러나 연구소의 로드맵에 핵심으로 담긴 내용(구조조정에 맞선 노동강도저하투쟁; 1% 실천단 조직, 현장의 요구 조직, 투쟁을 통한 개선, 이 과정을 통한 일상 현장활동의 재강화와 조직화)은 상당히 이상적인 것이며 지속해서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또한, 현장 일상활동의 강화가 저절로 작업장에서의 통제권에 대한 지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장활동과 노동운동 주체를 전체적으로 진단하면서 계속 새로운 일상 활동의 시도를 의식적으로 펼치고 태세를 갖추지 않는다면 일상성에 대한 강조는 빈말에 불과하다.

 

4) 사업 주체에 따른 차이는 무엇이 문제인가
연구 사업을 주로 담당하는 현장 주체가 개인이냐 조직이냐, 조합 내에서 결정단위냐 실무단위냐, 지역이나 조직적으로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연구 사업의 목표 수립과 달성에 차이가 크다. 연구소 내부 주체의 역할과 위상에 따라서도 차이가 크다. 하지만 개인의 실력과 조건에 의존하지 않고 조직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5) 운동적 목표에 문제는 없는가
연구 내용과 결과를 현장 안에서 일상 활동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지나치게 국한되어 중요한 메시지를 사회적으로 소통하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는가? 연구소는 어떤 제도가 필요하다는 ‘깃발’을 만드는 것보다 그 깃발을 쥐고 흔들 ‘손’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더 주목했다. 그래서 연구소는 연구 내용을 사업장을 넘어 사회적 정책 제도 개선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활동에 집중하지 못 했다. 앞으로 우리가 연구를 통해 함께 만드는 이데올로기를 대중화하는데 힘을 좀 더 쏟아야 한다.
현장 운동이 가능한 주체들을 만나느라 주로 조직 노동자들을 만나온 것은 아닐까? 조직 노동자들이 아니라면 이런 현장 연구는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막연한 방향으로서가 아니라 과연 연구소가 미조직 영세사업장 노동자들과 더불어 할 수 있는 사업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한지 꼼꼼히 따져보고 꾸준히 시도해 보아야 한다.

 

6) 지금까지의 목표 설정은 이후 10년을 내다볼 때도 여전히 유효한가
이에 답하기 위한 정세 토론이 부족하다. 기성 활동가들의 경우 그런 고민과 토론이 어느 정도 연속됐지만, 신규 활동가들의 경우 그보다 긴장이 적은 상황에서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을 내다볼 때,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이냐 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조직적인 토론과 시행착오의 공동 경험을 얼마나 견지하느냐가 아닐까 한다.
이런 토론 속에, 1년 뒤의 현장성과 10년 뒤의 현장성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내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지향을 달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연구의 내용, 방식, 주체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그 토론을 안에서만 나누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내어놓고 평가받기 위해 글쓰기와 모여서 떠들기에 한층 힘을 쏟아야 한다.

 

4. 제언

1) 전망을 세우는 주제
10년 뒤를 의식적으로 내다보면서 문제 인식을 가다듬어야 한다. 10년 전의 현장성이 지금의 현장성과 다르듯이, 10년 뒤의 현장성도 지금과 매우 달라질 것이다. 제조업 공동화, 고령화 사회와 같은 말들은 이미 현실에 바짝 다가와 있다. 지금 이기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질문하는 것만큼이나, 나중에 이기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우리 운동에 필요한 연구는 과연 무엇인지, 세상과 운동이 요구하는 연구 과제는 무엇인지 찾는 데 힘을 쏟자.

 

2) 사회화를 넘어선 사회화
연구소는 현장 연구의 결과를 해당 현장에 알리는 일에 상당히 공을 들여왔지만, 사업장 경계 바깥으로의 사회화는 상당히 빈약했다. 노동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알리는 연구 활동은 사회화 기획을 포함해야만 의미가 있다.
우리가 해 온 사회화란 주로 현장투쟁 조직을 통한 사회화였다. 앞으로는 노동의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무슨 연구를 해야 이놈의 자본주의를 이겨 먹을 수 있는지”를 찾는 것.

 

3) 새로운 운동주체 재생산
새로운 연구 주체와 그들의 관심사에 대한 의식적인 기획을 통해 새로운 운동주체들을 찾고 조직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현장 연구의 역동성은 어느 시대, 어느 업종, 어느 환경이건, 그 속에서 운동하는 주체들에 의해 구현되므로.

 

[특집2]
앞으로의 10년, 현장성과 계급성


정리 : 한노보연 선전위원회

 

김인아 (한노보연 회원, 연세대 보건대학원) : 연구소의 십 년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근골투쟁이다. 처음으로 노동보건 문제를 운동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한 게 우리다. 둘째는 교대제와 노동시간 문제 제기다. 자본이 어떻게 가치를 만드느냐, 노동이 어떻게 구성되느냐를 노동자의 몸과 건강을 기반으로 문제 제기했다. 셋째로 2007년 이후 직업성 암 투쟁이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현장의 동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현장, 운동, 활동가는 그때와 다르다.

 

그럼 지금 우리는 어떤 현장성, 계급성을 가져야 하나? 처음 시작할 때는 연구소가 현장을 읽고 현장의 조직과 소통하며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계급성 측면에서 우리는 그동안 중요한 이슈를 던져왔다. 이제는 그다음을 준비할 때다. 직업성 암, 정신질환과 같은 이슈를 제기해야 하는 게 아닐까? 반올림하면서 만나게 된 여성노동자 문제를 제기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현장을 만들기 위한 주제를 개발해야 한다. 우리의 전문성은 현장을 잘 읽어내는 능력이다. 노동자들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언어화하지 못하고 있는 걸 언어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을 명확히 보고, 앞으로의 현장성과 계급성을 고민하자.

 

이기만 (한노보연 회원, 두원정공지회) : 한노보연을 2002년 8월에 처음 만났다. 근골격계 투쟁을 해보겠다고 했더니, ‘환자 만들고 요양 보내는 것까지만 할 거면 차라리 투쟁하지 마라.’고 했다. 노동강도 저하 투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태도에 동의가 됐고, 21명의 요양자를 찾아내 투쟁을 시작했다. 이 환자들을 주체로 만들어야 한다며, 6개월 동안 1주일에 한 번씩 교육했다. 교육 내용은 다 신자유주의였다. 교육을 통해 환자들은 왜 자기가 아팠는지 알고, 이 투쟁이 반신자유주의 투쟁임을 깨닫게 되었다. 당시 115개 현장 개선안을 만들면서 노동강도를 낮추는 투쟁을 했다. 이때부터 라인별로 1명씩 실천단을 구성해서 지금까지 주 2시간씩 활동하고 있다. 실천단 활동했던 사람들이 두원 핵심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3년에 걸쳐 전면적으로 현장을 개선했다. 그때도 한노보연이 분명한 관점을 갖고 현장을 설득했던 게 중요했다. 2002년 집행부 처음 시작할 때, 자본이 ‘두원정공은 이제 대안이 없다’고 했다. 우리도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가 과제였고, 노동강도 저하에서 대안을 찾았다. 거기서 출발해서 주간연속 2교대까지 왔다. 그 방향에서 두원정공이 사는 방식, 노동자들이 사는 방식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 일을 한노보연이 같이 해 왔다.

 

김재광 (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 : 지난 10년 간 연구를 했던 이유는 한결같다. 우리의 연구는 현장을 조직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수단이다. 연구가 현실을 폭로하고, 현실을 계급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계급적 관점의 대안과 해결을 얘기하지 않으면 한노보연에서 연구를 할 필요가 없다. 사업장에 집중하다 보니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데 힘을 많이 쏟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운 것일 뿐 연구 사업의 본질적인 목표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사업장이 요구하는 연구를 할 수밖에 없다. 다만 태도는 10년 전 두원정공에 가서 우리가 보였던, ‘투쟁과 연구는 이렇게 돼야 한다.’고 설득하는 태도여야 한다. 동시에, 우리 스스로 ‘이기기 위한 연구’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고민의 결과로 우리가 연구를 제안하고 설득하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연구소 성원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사와 경험을 전달,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연구보고서와 같은 자료를 남겨야 하고, 이를 공유하는 사람을 남기고, 그 과정에서 조직을 남기는 것이다. 이 자리가 우리에게 중요한 전환이 되는 고민을 나누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송홍석 (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 : 근골 투쟁이 구조조정 저지 투쟁에 이바지했듯, 건강권 운동으로 우리가 노동 운동에 어떤 이바지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조직노동자들을 주로 바라보고 연구를 해 오지 않았나 하는 평가를 들으며, 연구소가 조직된 비정규직 운동과 어떤 연구나 활동 계획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앞으로 조직된 비정규 운동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한편, 현장의 일상 안전보건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제안하고, 이를 실제 함께 해 보고 그걸 평가하는 등 실질적인 일상 사업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두원정공에서 요양자들 대상으로 6개월 동안 교육을 지속적으로 했던 것처럼 초기에 시도가 있었지만, 최근 이런 부분이 많이 약화된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이다.


  

[특집3]

올해의 현장 연구


정리 : 한노보연 선전위원회

 

<2부>에서는 연구소 내 노동시간센터(준)의 프로젝트 연구진이 수행한 <노동시간 연구> 결과를 「주간연속2교대제 변화와 노동자 건강」, 「주간연속2교대 변화와 노동자 일상의 변화」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나누어 발표했다. <3부: 올해의 현장> 시간에는 3개 사업장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3부 발제의 대상 사업장은 각기 다르나 모두 근골격계 질환을 주요 골자로 한 연구였다. 근골격계 질환 투쟁이 10년이 된 지금,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의 의미를 다시 짚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노동시간의 단축은 노동자의 건강과 일상에 큰 변화 가져와


노동시간 연구는 한노보연 노동시간센터(준)의 프로젝트팀이 직업환경의학회의 지원을 받아 착수한 연구 사업이다. 안성에 있는 자동차 부품공장인 ‘두원정공’이 2010년 주간연속2교대제로 전환되며 노동시간과 노동 강도도 달라졌는데, 이에 따라 노동자들이 몸과 생활로 느낀 변화를 자세히 추적했다.

「주간연속2교대제 변화와 노동자 건강」에서는 두원정공 노동자들이 주간연속 2교대제 전환 이전과 이후, 노동 강도, 직무스트레스, 음주와 흡연 등 건강 행동, 근골격계 증상 여부, 수면 건강에 대해 응답한 설문 결과를 비교한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2009년과 2012년 실시한 건강검진 결과도 비교하여 고혈압이나 비만도, 당뇨 등 뇌심혈관계 지표상의 변화도 살펴보았다. 한편, 이 연구에서 주간 근무자와 교대제 근무자로 따로 나누어 비교·분석하였다. 주간연속2교대로의 전환은 계속 주간 근무를 한 노동자에게는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효과를 주었으며, 주야 맞교대를 했었던 노동자들에게 있어서는 노동시간 감소 뿐 아니라 야간 노동하는 시간이 단축되면서 더 많은 건강상의 이점을 가져오는 것을 객관적인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발제를 맡은 이혜은 연구원(한노보연 회원·가톨릭대 직업환경의학과)은 “교대제 전환 이후 노동강도는 전반적으로 감소했고, 건강 행동 중 금주와 운동 여부가 개선되었으며, 특히 수면의 경우 교대군에서 야간근무 시 수면의 질이 크게 좋아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편, “직무 스트레스 요인 중 직무 불안정 수치는 상당히 높아졌고 이는 교대군에서 증가 폭이 특히 심하다”고 지적했다.

근골격계 증상과 뇌심혈관계 지표는 이전보다 악화되었지만, 두원정공 노동자들의 나이가 많아진 것을 고려하였을 때 그 증가 폭이 매우 적은 것으로 이 또한 매우 의미있는 결과였다.

 

이어 김보성 연구원(한노보연 회원·서울대 사회학 박사과정)이 「주간연속2교대 변화와 노동자 일상의 변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김 연구원은 “‘3無원칙’을 고수하며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한 두원정공의 사례는 작업장의 노동시간 길이와 배치의 전변을 통해 한국 자동차 산업 생산직 노동자들의 일상생활 및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물량 확보가 관건인 자동차 산업에서 그간 철저히 ‘일 중심’으로만 작업시간을 짜 왔고, 이 때문에 노동자들의 건강은 육체적·정신적 한계에 다다랐으며, 그들의 가족생활과 사회생활이 파괴됐다. 하지만 두원정공의 사례를 통해, 처음 도입 당시에는 임금과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컸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의 단축이 가정에서의 관계 회복, 여가시간의 적극적 활용 등 결과적으로 삶의 질과 만족도를 높이는 것을 연구를 통해 확인했다. 이는 두원정공이라는 개별사업장이 교대제의 전환을 꾀하면서도 ‘노동강도 강화 없는, 노동시간 연장 없는, 임금삭감 없는’ 3無원칙을 고수한 특별한 사업장이기에 가능한 결과일 수 있다는 연구의 한계점도 잊지 않고 언급했다.

 

2부 전체토론 시간에 한노보연 공유정옥 회원은 노동시간을 6시간으로 줄였다가 노동자들의 요구로 다시 8시간으로 연장한 미국 캘로그社의 사례를 들어 현재 자동차 대공장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한국사회의 노동시간 단축 흐름이 가져올 수 있는 함정에 대해 지적했다. 노동자의 계급연대 의식은 약화되고 왜곡된 가족주의와 소비주의로 경도되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김재광 회원은, 이와 같은 조합원들의 일상생활 양상의 변화에 따라 조합원들의 활동을 조직하는 노동조합의 역할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부터 어떤 사업을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준비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현장에서 조직 노동운동과 함께한 올해의 현장연구

3부의 첫 번째 발제는 「근골격계 질환 산재요양 실태와 경험」이라는 주제로 2003년부터 두원정공에서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요양을 다녀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이다. 근골격계질환으로 산재요양을 다녀온 노동자들이 산재 신청부터 재활과 복귀의 과정을 거치며 어떤 경험을 하는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산재요양 및 재활의 실효성을 되묻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발제를 맡은 최민 회원(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가톨릭대 직업환경의학과)은 “든든한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산재요양 후의 ’낙인효과‘, 즉 꾀병환자로 찍히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으며 이것이 요양기간 중 그리고 현장 복귀 후에도 큰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결과를 전했다. 또한 “처음에는 되도록 길게 쉬기를 원하나, 막상 요양기간에 치료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아,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데도 ’차라리 빨리 복귀하는 게 낫다‘는 식의 모순적인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한노보연 김정수 소장은 “책임지고 제대로 치료를 맡아주는 의료인. 의료기관 자체가 부족하고 부실한 것이 현재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모범사례가 될 만한 의료인을 모으고 기관을 설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재광 회원은 “요즘 잘 정착되고 있는 지역의 근로자건강센터 같은 좋은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발제는 「전북버스 운전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를 수행한 강문식 연구원(한노보연 회원, 아래로부터 전북노동연대)이 맡았다. 이 연구는 복수노조 체제의 불리한 여건 속에서 노동조건,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공공운수노조 전북버스지부의 5개 시내버스 지회 소속 노동자 101명을 대상으로 했다. 실태조사 결과, 전북버스 운전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8시간 근무, 빠듯한 운행일정과 부족한 휴식시간이라는 조건 속에 초고강도 운전노동을 감행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여러 가지 건강상의 문제가 나타나 조합원 대부분이 고도의 피로군에 속했다. 그 뿐만 아니라 버스 노동자를 무시하는 관리자 및 승객들의 의식과 저임금, 상시적 임금체납 문제와 같은 상황이 겹쳐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고 강 연구원은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런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행정적 개입이 필요하고 그러할 때에 모든 승객을 위한 안전성과 공공성이 담보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3부 마지막으로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와 함께 진행한 「경희대 청소용역 노동자 근골격계 부담작업 유해요인 조사」를 발표했다. 공공 서경지부의 6대 요구안 “⓵생활임금에 대한 대학의 책임 ⓶고용 및 노동조건에 대한 대학의 책임 ⓷노동안전에 대한 대학의 책임 ⓸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한 대학의 책임 ⓹노동인권에 대한 대학의 책임 ⓺원청-노동조합 간의 노사협의회 구성”을 쟁취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의 한 방편으로 연구사업이 진행되었다. 대부분 고령의 여성노동자로 이루어진 경희대 분회는 26의 진찰결과 정밀검사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사람은 2명, 약물치료와 같은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한 수도 9명이나 나왔다. 조합원들로 하여금 개선되어야 할 작업조건이나 업무가 힘든 정도, 근골 증상 여부 및 심각성 정도 등에 대해 물었다. 발제자 김형렬 연구원은 경희대 분회 조합원들이 연구팀에 의지하지 않고, 아주 적극적인 연구의 주체가 되었음을 강조하였다. 근골격계 부담작업 평가부터 작업환경 개선이나 예방 및 관리 대안 짜기까지 조합원들이 연구진으로서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적극적으로 연구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김윤수 서경지부 조직차장은 “서경지부의 6대 요구안에서 기본적으로 원청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사업장과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상의 문제를 포함, 전체 노동권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는 근본원인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경희대 백영란 분회장은 현장연구 나눔마당에서 소개된 모든 연구가 흥미로웠지만,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연구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장시간 노동은 고령노동자뿐만 아니라 젊은 여성노동자의 건강에도 큰 문제를 초래한다며, 자신 딸의 이야기를 예로 들다가 눈시울을 적셔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특집] 미나마타병, 그 고통의 역사 / 2013.11

지난 109일과 11일에 걸쳐 일본 구마모토현에서는 유엔환경개발계획(UNEP) 주최로 <수은에 대한 미나마타 협약>을 채택하는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각국 정부 대표들이 참여하는 이 화려한 행사가 열리기 며칠 전, 미나마타 시민회관 한구석에서도 조촐하지만 뜻 깊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진실 규명을 위해 싸워 온 미나마타병 피해 주민들과 운동가들, 그리고 환경오염과 지역사회의 피해에 맞서온 28개국 36개 단체의 운동가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나흘 동안 중금속 문제에 대한 워크숍과 미나마타병에 대한 심포지엄, 그리고 피해자들과 함께하는 현장 견학으로 이어진 이 자리에 한노보연도 초대받아 다녀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 느낀 수많은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독자들과 나누고자 이번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경제발전을 위해 희생된 수만 명의 삶

미나마타병, 그 고통의 역사

 

한노보연 공유정옥

 

미나마타를 배우다

일본 지명에는 귀에 익은 이름이 많다. 일단 도쿄는 수도로, 삿포로는 맥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으로(요새 나가사키는 짬뽕 이름으로 유명하다). 사실 미나마타는 수은 중독 때문에 기억하는 이름이지만 그것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미나마타가 얼마나 아름답고 슬픈 곳인지 2013년 10월 초에 직접 가본 뒤에야 배웠다.

 

작고 아름다운 미나마타

미나마타는 일본 남부 구마모토현 서쪽 바닷가에 있는 작은 도시다. 육지가 팔을 뻗듯 둥글게 바다를 감싸고 있어 그 안쪽 바다는 시라누이해라고 부르고, 시라누이해 한구석에 조그마한 포구를 담고 있는 만을 일컬어 미나마타만이라 한다. 미나마타만 주변으로는 작은 촌락들이 흩어져 있는데, 한눈에 다 볼 수 있을 만큼 몇 채 되지 않는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형상이다. 시내에도 높은 건물은 찾아볼 수 없는 한국 여느 시골의 작은 읍내 느낌이다. 작고 늙었지만 정갈하고 아름다운 바닷가의 소도시, 그게 미나마타의 첫인상이었다.

 

국가와 지역 경제를 살리는 대공장

1908년, 일본 카바이드 상회가 설립되고 미나마타 공장이 가동을 시작했다. 이 회사는 나중에 다른 회사와 합병하여 일본 질소비료 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고(현지에서는 이 회사를 칫소라고 부른다), 이후 암모니아, 카바이드, 아세틸렌, 아세트알데히드, 염화비닐수지 등 일본 최대의 화학 공장으로 자라났다.

칫소 공장은 소규모 어업 말고는 산업 기반이 없던 미나마타 경제에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칫소라는 이름조차 붙이지 않고 그냥 “공장”이라 불렀다. 국가도 무시할 수 없는 거대기업이 작은 어촌에 공장을 차렸다는 자랑스러움도 컸을 것이다. 칫소는 미나마타 지역에서 영주와도 같은 권력을 누렸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 영주가 수만 명의 삶을 앗아가리라고는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으리라. 

 

최초 환자 발생마을. (사진촬영: 공유정옥) 

 

죽어가는 동물들

일찍이 1920년대부터 미나마타 어업 조합에서는 칫소 공장 폐수 때문에 생기는 피해로 골치를 앓았고 몇 차례 이 문제로 칫소와 보상 교섭을 갖기도 했다. 칫소는 매번 ‘앞으로 피해가 발생해도 다시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소액의 보상금을 쥐어주었고, 어민들은 그 이상의 대책을 요구할 줄 몰랐다.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문제는 훨씬 심각해졌다. 미나마타만 안에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해 떠오르고, 빈 조개껍데기가 늘면서 바닷가에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파래와 미역은 색이 바래지고 뿌리가 잘려 떠다니고, 나중에는 식용 해조류가 아예 자취를 감췄다. 어획량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바닷새들이 눈에 띄게 둔해져 ‘장대로 두드려 잡을 수 있을 정도’였고, 까마귀 떼가 미친 듯이 하늘을 날다가 바다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동네 고양이들은 땅에 코를 박고 맴돌거나 몸을 비틀며 펄쩍펄쩍 뛰다가 바다에 뛰어드는 ‘고양이 미친 병’을 보였다. 주민들은 불길한 징조에 불안했지만, 그 불길함이 무엇을 뜻하는지 관심을 두지 못했다.

 

1956년, 첫 미나마타병 피해자 발견

1956년 4월 21일, 칫소 미나마타 공장 부속병원 소아과에 6살 여자아이가 진찰을 받으러 왔다. 멀쩡하던 아이가 말을 제대로 못 하고 걷지도 못하며, 미친 듯이 소란을 피웠다. 이틀 뒤 만 세 살이 되어가던 여동생도 같은 증상으로 진찰을 받으러 왔고, 두 자매의 어머니는 옆집에 사는 아이도 같은 증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깜짝 놀란 의사들이 동네에 왕진을 가보니 그들 말고도 비슷한 환자가 여럿 있었다.

 

“만 5세 4개월. 4월 28일부터 걷는 것이 비틀비틀해지고, 말이 불명료해지고, 물건을 쥘 수 없게 되었다. 5월 9일 물을 마시게 하면 자주 흘리고 사레가 들었다. 5월 10일 서지 못하게 되다. 5월 17일 사지가 경직되다. 5월 21일 폐렴이 생기고 경련이 빈발했다. 전신 경련이 심하고 몸이 변형되고 의식을 잃다. 5월 23일 사망.”

이곳은 미나마타 만 깊숙한 곳에 작고 가난한 어부들이 사는 자그마한 마을로, 밀물 때면 창밖으로 낚싯줄만 던져도 바로 생선을 낚을 수 있었다. 5월 1일 칫소 부속병원 원장은 미나마타 보건소에 ‘원인불명의 중추신경질환이 다발하고 있다’고 정식으로 보고했다.

 

괴질 대책위원회와 구마모토 대학 연구반

사태가 심각함을 알게 되자 5월 28일, 미나마타 보건소와 시, 시의사회, 치소 부속병원과 시립병원 등이 모여 <미나마타시 괴질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전염병으로 생각해서 환자들을 병원에 격리하고 온 동네를 소독하러 다녔다. 그 덕에 환자의 가족이나 같은 동네 주민, 더 나아가 미나마타 출신 사람들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전염병 환자로 낙인찍혀 갖은 사회적 차별을 받았다.

석 달이 지나도 문제의 원인을 찾지 못하자, 괴질 대책위원회는 구마모토 의대에 원인 규명 연구를 의뢰하였다. 구마모토 대학은 미나마타병 의학연구반을 현지에 파견하여 집안에서 사용하는 음식물과 인근 바닷물, 어패류 등 온갖 것들을 열정적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1956년 11월, 구마모토 대학 연구반은 이 괴질이 전염병이 아니라 미나마타만 지역의 오염된 어패류 섭취에서 비롯된 중금속 중독으로 보인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확히 무슨 중금속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패류 섭취를 계속해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뜻을 담고 있는 발표였다. 그러나 이 결과는 지역주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곡식과 채소를 사 먹을 돈이 없는 가난한 미나마타 어민들은 여전히 오염된 해산물을 잡아 주식으로 삼고 있었다. 그것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원인인 줄도 모르는 채.

 

미나마타 사건의 책임이 있는 칫소정문(현재 JNC)    

 

12년간의 살인 방조

1956년 5월에 첫 환자가 보고되었고 그해 11월에 해산물 섭취로 인한 중금속 중독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일본 정부가 미나마타병을 정식 공해병으로 인정한 것은 1968년 9월 26일이다. 정부는 12년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칫소를 감쌌고, 칫소가 무사히 아세트알데히드 공장 문을 닫고 난 뒤에야 문제를 인정하고 나섰다.

그 12년에 대한 여러 자료를 읽다보면 기가 막힐 지경이다. 가령 1957년 구마모토 지방정부에서 미나마타산 해산물에 대한 규제를 검토했을 때 중앙정부 후생성에서는 “원인 물질을 아직 모른다”며 이를 만류했고, 1958년에 후생성 자체의 과학연구팀이 “원인물질을 규명하기 전이라도 식품섭취를 통제해야 한다”고 보고하자 다음 해에 별 이유 없이 이 팀을 해산하고 미나마타병 조사를 수산청으로 이관시켰다. 한 정부 부서에서 칫소 공장의 폐수 방출을 금지하려 하자 통산성(무역, 산업 담당 부처)이 나서서 “칫소와 같은 시스템을 가진 다른 공장들 주변에서는 비슷한 환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만일 칫소 공정이 원인이라면 다른 공장에서도 비슷한 환자들을 발견했을 것”이라며 폐수 규제를 가로막기도 했다.

한편 칫소는 공장 폐수를 사료에 타서 고양이에게 먹이는 실험을 통해 미나마타병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이미 1959년에 알고 있었지만, 이 결과를 철저히 은폐했다. 오히려 일본화학공업협회와 도쿄공업대학 교수 등을 동원해 “폭약설”, “아민 중독설” 등 엉뚱한 원인설을 내놓아 원인 규명을 교란한다. 

 

“이제 미나마타병은 끝났다.”

급기야 1960년이 되자 일본 정부는 “이제 새로운 환자 발생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1962년에는 수산청에서 담당하던 일체의 연구도 중지시켰다. 더는 환자를 찾을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후 일본 정부의 공식 연구는 1968년 공해병 정식 인정을 하기까지 6년 동안 완전히 정지되었다.

첫 환자 발생 후 무려 12년, 일본 정부는 미나마타의 가난한 민중들이 오염된 해산물을 먹고 병들고 죽어가는 사태를 내버려뒀고, 이런 정부의 살인 방조 속에 칫소의 아세트알데히드 생산량은 1950년 5천 톤 미만이었던 것에 비해 1960년경에는 4만 5천 톤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제2의 미나마타병 발생과 시민회의 결성

1965년, 미나마타에서 한참 떨어진 니가타시 부근 아가노 강 유역에서 미나마타병과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이 강 유역에는 쇼와전공이라는 회사가 칫소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아세트알데히드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니가타 지역에서는 1964년부터 고양이들이 미쳐 날뛰다가 죽어가기 시작했고, 개와 돼지, 까마귀도 같은 증상을 보이다가 일 년 뒤 사람들도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니가타 미나마타병 연구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진전했다. 환자 발생 다음 해인 1966년 초에 쇼와전공의 공장폐수가 오염원으로 지목되었으며, 몇 달 뒤에는 공장 배수구 근처에서 메틸수은을 직접 검출하기도 했다. 피해자 가족 13명은 1967년에 회사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한편 미나마타에서는 1968년 1월에 <미나마타병 대책 시민회의>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니가타 지역 피해자들과 연대하여 정부를 상대로 온전한 보상과 공해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그동안 고용안정과 임금보전을 위해 지역 주민들은 물론 자신들 내부의 수은 중독 문제를 외면하던 칫소 노동조합도 1968년이 되자 달라졌다.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며, 미나마타병과 싸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해 8월, 공장 문을 닫고 남은 수은 원액 100톤을 한국에 수출하려던 칫소의 시도를 막아낸 것도 노동조합이었다.

 

보상, 분열, 그리고 다시 투쟁

깜짝 놀란 일본 정부는 1969년에 미나마타병 피해자에 대한 보상안을 내놓았다. 오랫동안 침묵하던 정부의 태도가 180도 달라지자 주민들은 매우 놀랐다. 하지만 정부의 보상은 일정한 기준을 만족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고, “보상 처리 결과에 일체 이의 없이 따른다”는 확약서를 요구했다.

주민들은 각자의 처지에 따라 정부 보상안에 대한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라서게 된다. 찬성파는 모든 보상 문제를 후생성에 일임하겠다는 태도를 밝혔고, 반대파는 자주적인 교섭과 소송을 통해 칫소를 상대로 보상을 받겠다는 입장이었다.

1969년, 전국 222명의 변호사가 참가하여 자주교섭파를 지원하는 변호단을 결성하고 마침내 칫소를 상대로 29가구 112명의 위자료 청구소송이 첫발을 떼었다. 1973년 3월, 4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승소를 쟁취한 환자들은 도쿄에 있는 칫소 본사로 찾아가 직접 칫소와 교섭을 하기 시작했다. 일부 환자들은 이미 1971년 11월부터 칫소 공장 앞에서, 12월부터는 도쿄 본사 앞에서 농성을 시작하여 1년이 넘는 투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들의 투쟁에 소송에서 이긴 자주교섭파 환자들이 합류하여 투쟁이 점점 거세어지자, 마침내 1973년 7월, 환경청의 중재로 이후 새롭게 인정될 피해자들에게도 보상금과 의료비, 연금을 지원한다는 칫소와 환자들 사이의 협정서가 만들어졌다.

 

칫소의 구원투수, 다시 정부가 나서다

1970년까지 미나마타병 환자로 인정받은 수는 고작 121명이었지만, 1973년의 판결로 600명이 추가로 인정되었다. 게다가 앞의 협정서로 칫소는 이후 발생할 환자들까지 보상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편 정부는 판결 이후 밀려든 신청자들의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1976년에는 미처분자 수가 3천 명에 달하며 불만이 폭발 직전에 이른다.

그 대책으로 1977년 일본 정부는 미나마타병 인정기준을 개정했다. 이 기준은 신속한 처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미나마타병 인정을 훨씬 엄격하게 하여 이후 약 3년 동안 2천 명의 신청을 기각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렇게 기각된 피해자들은 대부분 더는 싸움을 이어갈 힘이 없었다. 1978년, 환자 4명이 기각을 취소해달라는 재판을 제기하여 승소했지만, 정부가 고등법원에 항소하자 3명은 소송을 취하했다. 남은 단 한 명이 대법원까지 가서 마침내 미나마타병임을 인정받은 것은 1997년의 일로, 소송을 제기한 지 무려 20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이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정부로부터 미나마타병을 인정받지 못한 다른 피해자들이 모여 집단 소송을 시작했다. 1980년에 시작하여 열여섯 차례에 걸쳐 원고들이 추가된 끝에 총 1,362명의 피해자가 원고로 나섰으며, 이후 1980년대 말까지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소송이 시작되어 총 2천 명의 피해자들이 소송에 임하게 되었다. 이들 소송은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면서 차례로 원고들의 승소로 이어졌다.

그러나 소송에 패소한 정부가 항소를 제기하여 문제 해결은 더뎠고, 피해자들은 이미 평균 70세를 넘은 노인들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 때문에 1995년 들어 정부가 “정치적 해결”이라는 이름으로 화해를 제시하자 환자들 대부분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소수의 질긴 싸움으로 지켜낸 진실

이때 유일하게 화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재판을 계속한 피해자들이 있었다. 칸사이 지방으로 이주해 살고 있던 피해자들이었다. 이들은 정부의 항소에도 끈질기게 소송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마침내 2004년 대법원을 통해 중앙 정부와 구마모토현이 미나마타병의 피해 확산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얻어내었다. 이 판결은 반세기 동안 숨어있던 환자들로 하여금 다시 인정 신청을 할 용기를 불어넣었고, 2006년까지 3천7백 명의 피해자가 새롭게 나타났다. 1천 명의 원고가 다시 재판을 시작하기도 했다.

소수의 끈질긴 싸움은, 칫소와 정부가 은폐하려 애써온 문제의 실체를 집요하게 드러냈다. 마침내 2009년 의회에서는 미나마타 구제법을 만들어 이전에 정부가 인정하지 않았던 환자들에게도 보상금과 의료비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 구제 정책에는 2012년 7월 말까지 총 6만 5천 명 이상이 신청했다고 한다. 2013년에는 대법원에서 1977년에 사망한 여성을 사망 36년 만에 미나마타 피해자로 인정하기도 했다.

 

미나마타 심포지엄. (사진촬영: 김세은)

 

 

아직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미나마타병의 피해자는 드러난 숫자만 수만 명, 미처 보상을 신청하지 못한 채 죽어갔거나 2세에게 태아성 미나마타병으로 이어질 영향까지 고려하면 그 수가 수십만 명에 달한다. 공장 하나가 남긴 상흔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끔찍한 규모다.

하지만 피해자 규모만큼이나 충격적인 사실은 미나마타 지역이 아직도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다. 칫소에서 미나마타만으로 방출한 수은 양은 70에서 150톤 정도라 하는데, 공장 폐수 배출구 주변에는 지금도 수은을 함유한 폐기물이 4미터 깊이로 쌓여있다. 공장에서 미나마타만 쪽을 향한 58만 2천 제곱미터의 매립지에는 수은농도가 25ppm에 달하는 151만 톤의 폐기물이 매립되어 있다. 정부는 그 위에 14년 동안 60억 달러를 들여서 “에코 파크”를 조성했다. 엄청난 양의 수은을 전혀 정화하지 않은 채 벽으로 둘러싼 뒤 그 위에 흙을 덮은 것이다. 지진이 한번 발생하면 이 엄청난 수은이 순식간에 바다로 쏟아져 내릴 수 있다.

공장을 기준으로 미나마타만 반대쪽에는 하치칸이라는 저수지가 있는데, 콘크리트와 모래로 둘러싸인 56만 제곱미터 규모의 이 저수지에는 칫소 염화비닐공장에서 나온 오염물질들이 담겨 있다. 저수지 주변 주거 지역에는 땅으로 스몄다가 다시 땅 밖으로 삼출하여 나온 화학물질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 오염물질들을 칫소와 정부가 책임지고 정화하지 않는 한, 미나마타 문제는 결코 끝난 게 아니라고 피해자들은 외치고 있다. 이미 목숨을 잃거나 회복 불가능한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고통을 수만 명에게 안겨준 가해자들이 반드시 책임지고 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나가며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미나마타에는 서러운 민중의 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 지배계급의 잇속을 위해 치러진 침략전쟁이 그러했고, 그로 인한 원폭과 패전도 그러했으며 후쿠시마 원전사고 역시 그러했듯, 국가와 경제의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일방적으로 고통을 떠안아야 했던 일본 민중들의 한. 단지 수은중독이라는 네 글자로 담을 수 없는, 담아서도 안 되는, 그 원통한 삶과 죽음 그리고 투쟁의 역사가 그곳에 있었다.

일본 정부는 미나마타병 문제가 잘 해결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국제 수은 협약에 미나마타 이름을 붙이자고 주장했다. 미나마타 피해자들은 이를 반대했다. 12년 동안 칫소의 살인을 방조하고, 다시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반세기 동안 피해자들을 기만해온 일본 정부가 그처럼 쉽게 면죄부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마음 때문이다. 이들은 모든 피해자에게 제대로 보상하고, 미나마타의 오염된 땅과 바다를 정화하며, 앞으로 이와 같은 참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수은 사용을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 담기지 못한 협약은 미나마타 협약이라고 부를 수 없으니, 이번에 채택된 <수은에 대한 미나마타 협약>의 내용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협약에는 11월 20일 현재 93개국이 서명하고 미국이 가장 먼저 비준한 상태다. 미나마타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 대한민국은 아직 서명하지 않고 있다. 이웃 나라에서 수만 아니 수십만 민중의 삶을 앗아간 이 문제에 대해 우리도 조금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 하이 2016.06.09 04:15 ADDR 수정/삭제 답글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특집] 사진으로보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10년 / 2013.9·10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번 일터 특집에서는 연구소 창립 10주년을 맞아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삶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활동해 온 지난 1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고자 했습니다. 사진과 함께 연구소 성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시죠~^^

 

사진으로 보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10 

  선전위원회

 

 


  1. 창립까지의 과정 (이훈구)

1998IMF 경제위기를 거치며 노동자에겐 폭력적인 구조조정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생산라인은 U자로 바뀌었고 컨베이어 속도는 야금야금 높아졌습니다. 인력은 줄고 작업량은 늘었습니다.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뒷전이 됐고, 기초질서 지키기 등 현장통제는 강화됐습니다. 노동자 쥐어짜기는 더욱 노골적이었습니다. 자본은 위기를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전가하며 이윤을 확보했습니다. 그 결과 일터는 참혹한 골병과 죽음의 현장이 됐고, 노동자는 기계처럼 일할 것을 강요당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반복되는 작업으로 몸은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하지만 구조조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자들은 알아서 기어야 했습니다.

 

2000년 초부터 더 이상 일하다 병들고 죽을 수 없다는 각오로 대우조선, 풀무원, 두원정공 등 개별현장에서 투쟁을 벼르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 경총 앞 노동조합, 노동보건단체, 정치사회단체 등이 산업재해 대책 마련 촉구를 위한 공동 집회를 열고 노동자의 골병과 죽음에 대해 자본의 책임을 물었습니다. 더 이상 일하다 병들고 죽지 않기 위해, 강화된 노동강도에 맞선 전면적 반격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공감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20031월 대전 경하장에서 12일로 노동보건연대회의가 주최한 노동강도 강화저지 투쟁을 위한 전국수련회를 가졌습니다. 전국의 동지들이 모여 노동강도 강화저지를 위한 공동요구안, 구체 대응방안, 공동투쟁 방안 등에 대해 현장의 현실과 고민 그리고 해결방안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강도 맞은 노동을 되찾기 위한 실천을 모색하였습니다. 이는 노동강도 강화와 근골격계 직업병 대응이라는 책자 발간으로, 현장 곳곳의 집단요양투쟁으로 번졌고 골병과 산재사망은 자본과 정부의 책임이라는 것을 보다 명확히 했습니다.

당시 설정한 고용, 임금, 노동시간, 작업방법, 작업량, 노사관계 등 노동강도와 관련한 전면적인 유연화 공세에 맞서기 위한 현장정치 복원이라는 과제는, 2013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2.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 (김재광)

200351, 무더운 봄. 113주년 세계노동절 대회에 그동안 보지 못한 시위대가 출현했습니다. ‘노동강도 강화 저지와 현장투쟁승리를 위한 전국노동자연대가 주관한 집회 대오였지요. 노동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영정을 들고 죽음과 골병의 현장을 막연한 어느 때가 아닌, 지금 당장멈출 것을 촉구했습니다. 인도에서 구경하던 시민들이, 무엇을 당장 멈춰야 하는지 묻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현장노동자가, 이토록 많은 영정을 들고 독자 대오를 형성해 거리행진을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음영으로 표현한 고인의 영정에는, 사망일시와 사고발생 원인, 사업장이 담겼습니다. 고인들을 앞세우는 것이기에 결코 허투루 할 수 없어, 생전 기록을 하나하나 일일이 찾아내 영정을 만드느라, 며칠 밤을 새우며 많은 동지가 애썼습니다. 이렇게 최초의 대규모 영정시위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2002년부터 터져 나온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요양 투쟁이 있습니다. 살인적인 노동강도로 인한 현장의 전염병, 근골격계 질환을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사회적 의제로, 현장이 반드시 조직해야 할 고통/과제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투쟁을 계기로 전국의 현장 노동자, 노동안전보건활동가가 오랜만에 의기투합해 전국투쟁을 도모합니다. 영정 시위는 그 투쟁의 하나였습니다. 참으로 무더웠지만,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3. 20031024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창립 (김재광)

20031024, 지금은 용산개발로 사라진 철도웨딩홀에서 연구소 출범식이 열렸습니다. 웨딩홀이 출범 장소가 된 이유는 철도노조가 관리하던 곳이라 저렴했기 때문이었죠(^^). 158명이 연구소 창립의 발기인이었는데, 그 동지 중 일부는 현재 연구소 성원이고요, 다른 동지들도 대부분 각자의 공간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구소 출범은 한국노동안전보건운동에 있어 하나의 역사이자, 성과입니다. 연구소의 출범은 단순히 연구소의 성원들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연구소 창립은 투쟁으로 성장한 전국의 현장노동자와 노동안전보건활동가의 헌신과 바람의 결실이었습니다. 사진 속 동지들이 10년 전 그때와 같이 쌩쌩하지는 않지만, 연구소 창립선언문의 정신은 지금도 여전히 명징하고 팔팔합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 조건을 쟁취하고, 노동자 스스로 작업장을 통제하여 진정한 노동의 주인으로 설 수 있는 그날까지 쉼 없이 투쟁할 것이다 

 

 

4. 집단 산재인정을 위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투쟁 (김재천)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 위치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이하 하이텍)에서 자행된 악랄한 노동조합 탄압으로, 13명의 조합원 전원이 집단 정신질환 직업병을 얻었습니다. 2005년 여름 하이텍 노동자와 노동안전보건활동가들이 산재인정을 위해 근로복지공단에 모였고, 사진에 보이는 4인의 대표단은 근로복지공단 정문에서 40여 일 넘는 시간 동안 노숙 단식투쟁을 전개했습니다. 당시 많은 연대 동지들이 500인 동조 단식 투쟁을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에 동참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동조 단식 투쟁은 당시 처음 기획한 생소한 투쟁이었어요.

밤새 차량 경적과 모기와 싸우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 40여 일 이라는 시간 동안, 물만 먹고 싸워야 했던 고통은 지금까지 생생합니다. 그렇지만 함께한 동지들이 있어 우리 투쟁은 즐거웠습니다.

 

 

 5. 한국 사회에 교대제 노동의 폐해를 알리다. (공유정옥)

2004년 연구소 회원들과 몇 개 사업장 노동자들이 모여 교대제의 문제와 대안을 함께 공부하고 토론했습니다. 그리고 20064대 실천 의제 중 하나인 교대제로부터 생명 지키기활동의 연장선에서, 2007[교대제 무한이윤을 위한 프로젝트]란 책을 출판합니다. 책을 제작하며, 교대제가 노동자의 몸과 정신,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관련 자료 수집, 외국어 자료 번역 등, 책을 하나 만들어내는 일이 그렇게 힘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러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책이 당시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어 각급 도서관에 쭉 깔렸다는 소식에 무척 기뻤던 순간도 생각납니다.

책이 나온 몇 년 뒤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최초로 수면장애를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기아자동차 노동자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분이 제게 말하기를, “산재신청을 위해 온갖 자료를 다 읽어봤는데, 우리 노동자 시각에서 쓴 가장 훌륭한 자료는 이 책이다. 꼭 읽어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말씀드렸죠, “그 책 저희가 만들었어요~^^”

지금도 교대제 개선을 고민하는 노동자들이 종종 묻습니다. 몇 조 몇 교대로 바꿔야 좋은 거냐고. 하지만 이 책에서 강조하듯이 좋은 교대제는 없습니다. 교대제 안에서 상대 비교를 한다 해도, 몇 조 몇 교대인지만 봐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교대제 문제는 결국 시간 혹은 노동자의 삶에 대한 지배력을 누가 얼마나 어떻게 갖느냐의 문제니까요.

 

 

 

6. 세상에 나온 삼성 반도체 노동재해 (공유정옥)

20074월 고 황유미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삼성 반도체 노동재해 문제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를 계기로 연구소는 이 사안은 최소 10년간의 투쟁이 필요한 싸움이며, 삼성 반도체뿐 아니라 전체 전자산업에 있어 중요한 문제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해 1120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사망사건 진상규명 및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발족에 함께하며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삼성 반도체 노동재해 문제를 내놓았습니다. 이때 들은 바로는, 1984년 기흥공장이 만들어진 이래 최초의 집회(?)였다고 합니다.

그때 싸우고자 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더라도 함께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물론 몇 사람의 백혈병 피해자가 더 있다고 듣긴 했지만, 당시는 정말 딱 황상기 씨 한 분만 계셨거든요. 더 많은 피해자를 조직해야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백 명이 넘고 이백 명에 육박하게 될 거라고는. 그런 끔찍한 상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7. 지역 운동체로서의 노둣돌 (손진우)

연구소 창립 5년이 흐르며, 무르익은 고민 중 하나가 노동자 건강권운동 확장을 위해 지역 운동체로 거듭나기였습니다. 08년 하반기 경기 수원지역에 또 다른 공간을 마련하게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최근 서울, 경기, 부산지역에서 노동안전보건의 고민을 갖고 노동현장과 시민사회, 지역운동과 다양한 사안/의제로 만나 교류, 연대하는 활동이 확대/심화한 게 아마 이런 고민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8. 국제연대운동의 한 주체가 되기 위한 발돋움 (이숙견)

20135, 생산품 도난방지를 이유로 굳게 잠긴 작업장에서 일하다 화재 발생으로 188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케이더 화재 참사 20주년을 추모하고 2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아시아 지역의 참혹한 노동안전보건의 실태(전자산업피해, 석면피해, 화재참사 등)와 이를 바꾸는 방안 (법률지원, 피해자조직화, 국제공동행동)을 마련하고자 태국 방콕에서 2년 만에 개최된 안로브 회의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는 사진입니다.

아시아 노동재해. 환경재해 피해자 네트워크인 안로브(ANROEV, Asia Network for Right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Victims)회의는 2008년 삼성 백혈병 문제를 알리기 위한 계기로 참석한 이후 연구소에서 꾸준히 결합 중입니다. 전자산업의 유해위험성이 전 세계적으로 드러나며, 국제연대활동의 필요성에 공감이 커지며 연구소도 본격적인 국제연대운동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연구소는 다양한 국제회의 참석과 공동활동, 석면추방활동 등을 통해 국제연대운동의 한 주체로 자리매김해 왔는데요, 2012년부터 국제 연대팀을 구성, 가동 중이라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 같아요. 현재는 인도네시아 바탐지역의 전자산업 노동조합과의 연대, 전자산업노동자와 함께 하는 국제공동행동을 준비 중이고, 긴 안목으로 다양한 국제운동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9. 세상을 움직인 반올림 (이종란)

2011623일 삼성반도체 백혈병에 대한 역사적인 판결 선고 직후, 법정 밖에 대기하던 수 십 명의 기자에게 둘러싸여 판결 결과에 대한 소회를 말하는 순간입니다. 이날 서울행정법원은 고 황유미, 이숙영 씨의 백혈병은 산업재해라고 판결하지만, 나머지 세 분, 고 황민웅, 김은경, 송창호 님에 대해서는 증거부족으로 기각한다고 판결합니다. 산재신청 이후 4년 만에 받아낸 산재 인정 판결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한편 증거부족으로 산재 인정 판결을 받지 못한 세분 때문에 억울한 감정이 북받쳤습니다.

 

목이 메서 말을 하기 힘든 와중에 계속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던 것 중, 이런 말이 기억납니다. “아픈 노동자와 유족에게 증거를 요구하는 현재의 산재 제도는 시급히 바뀌어야 합니다

 

반올림은 삼성에 맞서, 기적 같은 승소를 이끌었다고 세상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산업재해를 노동자가 입증해야 하는 구조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10. 10년 이후의 연구소를 그리며 (김정수)

2012년 연구소 총회에서, “십 년 뒤 나는? 십 년 뒤 우리는?”이라는 주제로 회원 각자가 생각하는 자신과 연구소의 전망에 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연구소의 전망에 대한 회원들의 생각이 독창적이고 기발했는데 명실상부한 전국조직 연구소, 국제적인 조직 연구소, 의료기관등 몇 가지 공통된 키워드가 제기됩니다. 연구소는 이때 나온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더 구체적인 전망을 마련하였고 두 번의 지역별 회원 토론을 거쳐 2013년 총회에서 연구소의 전망을 확정합니다. 의료기관을 기반으로 지역과 현장에서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모색하고자 하는 (가칭) 노동안전보건센터, 노동시간에 대한 연구와 학습을 통해 심야노동 철폐,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자들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이를 사회화하고자 하는 노동시간센터(), 아시아, 더 나아가 전 세계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국제연대활동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연구소 전망을 현실화하는데 한 발짝 다가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