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노동자의 시선으로 본 한국의료의 부끄러운 실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MERS 대응백서
김태훈 회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2015년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 2015년 5월 20일 환자가 발생한 뒤 총 186명이 확진되었고 37명이 사망했다. 16,752명이 격리되었다.
메르스 사태는 부끄러운 한국 의료의 현실을 낱낱이 드러냈다. 공공의료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책임 방기가 국가방역체계의 문제점을 가져왔고, 메르스 확산의 원인이 되었다. 또한, 개별 병원들이 전염성 감염병에 대비하기 위한 시설 준비도 되지 않았고, 장비도 충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간호사를 포함해 병원 노동자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메르스 환자를 치료하는 데 뛰어들어야 했다. 국립대병원, 지방의료원 등 메르스 환자를 직접 치료했던 병원의 노동조합들이 속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한편으로는 현장에서 새롭게 겪는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메르스로 드러난 병원 인력 외주화, 부실한 병원 내 감염 관리, 간호사 직업안전보건 등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정책 논의를 촉발하고자 했다.
‘의료연대본부 MERS 대응백서’는 2015년 메르스 사태를 통해 향후 과제와 노동조합의 사회적 의무와 역할을 재확인하고자 했다. 이 글에서는 백서 1부의 병원별 현장 대응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병원마다 메르스 환자 진료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그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는지, 노동조합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우선 병원 혹은 노동조합에서 작성한 문헌 자료를 수집하고, 자료를 바탕으로 노동조합 간부와 실제 환자를 간호한 노동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백서가 주목한 것은 현장 노동자의 시선에서 바라보았을 때만 보이는 메르스 사태의 진실이다.
서울의료원: 공공병원의 의미와 과제를 보여주다
서울의료원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대표적인 공공병원이다. 2008년 국가지정 입원치료 병상(국가지정 격리병상)으로 23병상(음압격리 5, 비음압격리 18)을 지정받았다. 서울의료원의 격리병상은 시설 면에서 최상급으로 평가받는다. 병원 본 건물과 별도로 병동 시설을 구축해, 감염관리에 효과적이다 서울의료원은 5월 26일 첫 확진환자를 받기 시작해, 7월 12일 마지막 환자가 퇴원할 때까지 총 23명의 환자(전체 확진 환자 186명 중 약 12.4%)를 치료했다.
초기에는 많은 혼란이 있었다. 환자가 처음 입원한 초기에는 에볼라 대응 훈련을 받은 감염전문간호사만 투입되었다. 과거 사스(SARS) 때 수간호사 중심으로 투입하여 다른 병동의 인력 부담에 큰 무리 없이 지나갔던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환자가 예상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추가 인력이 필요했다. 121병동(호스피스 병동)은 환자를 다 퇴실시켜서 폐쇄하고 131병동(특실 병동)은 이동식 음압설비를 가져와서 의심환자 격리병동으로 운영했다. 이렇게 환자를 뺀 두 병동 간호사 중에서 연차가 높은 순으로 메르스 병동에 배치되었다. 이때 차출된 간호사의 경우 사전에 교육된 바가 없었고, 사후 조치 및 산재 처리 방침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 다만 증상이 있으면 감염관리실에 연락하라는 말을 들었고, 출퇴근할 때 체온 검사 및 증상 점검 등을 했다. 근무 당일 날 메르스 간호를 하고 있던 수간호사로부터 오리엔테이션 식으로 교육을 받았다. 간호과정에 대한 특별한 설명은 없었다. 배치된 간호사들은 맞교대로 일했다.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새서울의료원분회는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6월 11일경 부원장 면담을 하게 된다. 주요 요구는 3가지였다. 첫째, 메르스 사태가 종결된 뒤 간호사들이 바로 다시 병동에 투입되면 위험하다, 잠복기를 고려해서 14일 휴가가 필요하다. 둘째, 메르스 전담 간호사들이 대부분 가족 한두 명과 같이 살고, 아기들이 있는 경우 더욱 불안해하고 있으니 전용 숙소를 마련해 달라. 셋째, 12시간 맞교대로 근무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7월 2일 노사협의회에서 전담 간호사 전원에게 14일 특별휴가를 주는 것을 합의했다. 다른 요구는 합의되지 못했다. 실제 7월 12일 마지막 메르스 환자가 퇴원하고, 담당 인력들은 14일 동안 유급 휴가를 받았다. 포상의 의미도 있으나, 메르스 잠복기를 고려하면 적절한 감염관리조치라고도 볼 수 있다.
경북대병원: 시설도 인력도 문제였다
경북대병원은 메르스 사태에 대응할 시설도, 인력도 갖추지 못했다. 우선 국가지정격리병동이 없다. 5월 20일 메르스가 발생한 이후 대구 지역에서는 국가지정격리병동이 대구의료원 밖에 없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경북대병원은 6월19일 내과 중환자실(MICU)에 확진환자를 입원시킨다. 대구의료원에서 출발한 환자는 6월 19일 오후 3시에 경북대병원 응급실 입구에 도착했다. 간호사와 주치의가 휠체어를 끌고 가서 환자를 이동했다. 문제는 이동과정이다. 환자 이동 경로는 환자가 오기 전부터 가드레일을 쳐 두고, 환자가 타게 될 엘리베이터도 못 쓰게 막아놓았다. 그런데 응급실 입구에서 엘리베이터까지 복도가 너무 길었다. 게다가 입구에서 엘리베이터까지 통로는 다른 통로랑 공기가 다 통했다. 출입통제는 했지만, 공기격리는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또, MICU 음압병실로 환자를 이동할 때 신경외과 중환자실(NSICU)을 지나가야 했다. 음압병실은 제대로 밀폐가 되어야 하는데, 경북대병원의 경우 음압병실의 문틈 아래로 쪽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만큼 공간이 있었다.
인력 배치도 원칙이 없었다. 메르스 환자가 입원하면서 기존 MICU 환자들은 다른 중환자실로 보내졌고, MICU 인력 중에서 10명을 남겨두고 다른 간호인력은 지원인력(helper)형식으로 다른 병동으로 보내졌다. 미혼 간호사가 자원하다 보니 대부분 연차가 낮은 간호사가 메르스 환자를 전담하게 되었다. 수간호사와 과장은 수시로 확인했지만, 음압병실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최대한 들어가는 사람을 줄여야 하니 간호사 10명, 의사 1명만 음압병실로 들어갔다. 교수는 외래를 계속해야 해서 음압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경북대병원이 이렇게 준비도 없이 메르스에 대응하게 된 계기는 병원 차원의 대외적 홍보 목적도 있었던 것 같다. 환자가 퇴원할 때도 언론 홍보를 우선시했다. 그런데 정작 현장에서 환자를 봤던 인력은 제대로 보호해주지도 않았고, 후속조치도 마찬가지였다. 환자를 보기 전에 산재 보상 등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환자가 퇴원한 뒤에 MICU를 48시간 동안 출입 통제하고 청소와 소독을 하기 위해, 이틀간 쉬었는데, 특별휴가를 주겠다고 해놓고, 개인 휴가 처리되어있었다. 현장에서 메르스를 간호했던 간호사는 ‘고생은 아랫사람들이 하고, 언론에 나가고 생색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고, 어쩔 수 없나, 이게 한국 사회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고백했다.
서울대병원: 안일한 병원에 맞서 직접 매뉴얼을 만들다
서울대병원은 국립대병원인 동시에 한국에서 독과점적인 위치에 있는 소위 ‘빅5’ 병원이다. 서울대병원 역시 평소 감염관리와 전염병 유행에 대한 대비는 소홀했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초기에는 안일했다. 메르스 발생 소식이 언론으로 알려진 뒤, 노동조합이 ‘준비해야 하지 않느냐’고 제기하자 관리자는 ‘우리는 메르스 환자가 10명이 넘으면 그 이후부터 받는다.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다음 날 바로 의심환자가 입원했다. 접촉력과 증상이 있는 환자이기 때문에 사실상 메르스 확진자일 수도 있었던 환자였다. 그리고 2일 뒤 확진 환자가 입원했다.
초기에 관리자들이 전문가라는 명분으로 현장의 노동자들을 억압하기도 했다. 경북대병원, 충북대병원은 메르스 대책회의에 노동조합 간부를 포함해서 논의했지만, 서울대병원은 대책회의에 현장 대표를 포함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하지만 정작 실제 준비는 미숙하고, 구체적인 현장의 지침은 전혀 없었다. 처음 환자가 왔을 때 감염병동에는 아무런 지침도 없이, 다 괜찮으니까 시키는 대로 해라, 환자를 받으라는 얘기만 있었다. 정작 현장에서는 계속 쌓이는 폐기물을 어디로 배출해야 하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옷은 어디서 갈아입어야 하는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의심환자가 온 다음 날 (5월 29일) 간호사들끼리 병동에 모여서 매뉴얼을 만들었다. 그런데 간호본부장의 반응은 ‘이걸 너희가 왜 만드느냐’, ‘너희는 간호나 해라’였다. 그 상황을 보던 의사들이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자 그때야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현장에서 직접 만든 매뉴얼은 이후 감염관리실에서도 가져갔고, 보라매병원, 강릉의료원 등에서 환자가 생겼을 때 공유하기도 했다.
고압적 자세는 숙소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할 때도 똑같았다. 감염병동 간호사 중 ‘아기 엄마들’이 많았다. 아직 어린 아기들도 많아서 집에 가는 게 두려웠다. 위험을 감수하고 애들을 마주하느냐 아니면 내가 집을 나와서 아이들과 떨어지느냐 고민해야 했다. 이런 현장 간호사들의 불안에 관리자들은 ‘왜 오버하냐’라는 식으로 대했다. ‘노조가 요구하니까 안 된다’는 대답도 있었다. 절대 없다고 장담했던 3차 감염이 발생하면서, 그나마 현장 간호사들의 말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인터뷰에서는 당시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교수들도 집에 안갔어요. (웃음) 솔직히 의사들이 환자 옆에 머무는 시간보다 우리가 훨씬 많잖아요. 방사선사 교육도 저희가 시켜줬어요. 살기 위해서 한 거지. 우리를 우리 스스로 지키려고. 하나하나 우리 손 안 거친게 없었어요.” 노동조합은 지속해서 숙소를 요구해, 결국, 병원 역내 한 건물에 임시 숙소를 쟁취한다. 사실 숙소라 부르기도 어려웠다. 사무실 공간에 집기 들어내고, 머리 쪽이 꺼지는 접이식 침대 한 개를 들여다 놓았다. 시멘트 바닥이라 은박지 돗자리를 깔았고 화장실에는 샤워시설도 없었다. 이런 숙소지만 고열로 동생 집을 나온 간호사, 파견 나온 간호사, 증상이 있는 직원이 머물 곳이 되어주었다. 이것도 노조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문제 제기도 하지 못했을 것이고, 숙소를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병원의 감염관리, 전염병 대응 역량의 현실을 보여준 메르스 사태
각 병원이 그동안 공공의료에 대해 평소 준비해온 역량,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메르스 대응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노동조합의 과제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노동조합은 임단협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사측을 압박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사태에 미리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것은 노동조합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침을 내리기 위한 근거를 확보하고,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내외적으로 노력했다. 전문가, 연대체, 정책위원에게 자문을 구하는 한편 서울지부의 현장 지침 등을 공유하면서 대응했다.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감염 관리 문제를 빠르게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은 하청 조직화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부분의 간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음압 격리병상의 확대, 응급실 과밀구조 개선 등 공공의료의 강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지부와 분회에서도 병원 내 감염관리와 병 노동자의 안전보건에 대해 더 많이 알아서 병원 현장을 개선 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도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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