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따른 사망의 불평등
이혜은 운영위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죽음은 평등한가?
모든 사람은 죽는다. 역사 속의 많은 사람들이 불로장생을 꿈꿨으나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남긴 ‘죽음과 세금 이외에 확실한 것은 없다’ 도 같은 맥락이리라. 그렇지만 언제 어떻게 죽는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한 차이는 여러 원인에서 비롯되겠지만 학력, 소득, 직업으로 대표되는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나타나는 사망의 차이, 즉 사망의 불평등을 드러내고자 했던 많은 연구들이 있다. 이런 사망불평등 연구의 아버지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영국의 “블랙리포트 (Black report)" 이다. 1980년 영국의 보건사회복지부에서 발간한 것으로 사회계층과 지역에 따른 사망률의 차이를 보고했다. 이 보고서는 직업에 따라 사회계층을 5군으로 분류하였다. 1군 ‘전문가 (Professional)’에 비해 5군 ‘비기술자(Unskilled)'의 사망률은 남성에서 2.5배 높았다. 여성의 경우 결혼한 여성을 대상으로 남편의 직업에 따라 분류했고 역시 2.5배의 차이를 보였다. 건강불평등에 관한 가장 선도적인 보고서로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으나 보수당 정권에 의해 오랫동안 묻혀있다가 1997년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집권 이후 구체적인 정부과제로 채택되었다. 이 연구 이후로 많은 학자들이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사망의 불평등을 연구하였고 한국에서도 소득과 학력, 직업, 지역 등을 이용하여 비교한 연구들이 상당수 발표되었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연구는 기존의 연구들보다 대규모의 데이터를 사용함으로써 좀 더 다양한 9개 직업분류에 따른 사망률의 차이를 보여줄 수 있었다.
연구는 어떤 방법으로 수행되었나
1995년부터 2000년까지 고용보험에 가입된 적이 있는 국내 노동자를 대상으로 코호트(연구대상)를 구축하고 통계청의 사망원인 자료와 연계하여 1995년부터 2009년까지 대상 노동자들의 사망 여부 및 사망원인을 추적하였다. 한국표준직업분류에 따라 직종을 9개로 분류하였다. 직종별로 사망률(10만명당)을 구하고 집단 간의 연령과 성별을 고려한 비교를 위해 2000년의 주민등록연앙인구(매년 7월 1일 기준 주민등록상 인구)에서 15세부터 74세의 인구를 표준인구로 한 연령표준화 사망률을 구했다. 사망률이 가장 낮았던 ‘전문가’ 집단과 사망률이 두 번째로 높았던 ‘단순노무직 근로자’ 집단을 비교하여 사망률의 차이(10만명 당)와 사망률의 비를 제시하였다. 가장 사망률이 높았던 집단은 ‘농업 및 어업 숙련근로자’ 이었지만 대상자의 수가 적은 편으로 연구의 대표성을 위해 비교집단은 ‘단순노무직 근로자’로 선택하였다. ‘전문가’는 의사, 변호사, 간호사 등 가장 고도의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직종이고 ‘단순노무직 근로자’는 청소, 경비, 생산보조 등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고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직종이다.
표 1. 한국표준직업분류 (대분류)
직종 1: 입법자, 고위임직원 및 관리자
직종 2: 전문가
직종 3: 기술공 및 준전문가
직종 4: 사무직원
직종 5: 서비스 근로자 및 상점과 시장판매 근로자
직종 6: 농업 및 어업 숙련근로자
직종 7: 기능원및 관련 기능근로자
직종 8: 장치, 기계조작원및 조립원
직종 9: 단순노무직근로자
직종별, 사망원인별 사망률의 차이
연령구조를 맞춘 후 직종별, 사망원인별 사망률은 다음 표2, 표3과 같다. 연령표준화사망률이 가장 높은 직업군은 "농업 및 어업 숙련근로자"로 10만명당 남성은 563.0명, 여성은 206.0명 사망하였으며 그 다음으로 높은 직업군은 "단순노무종사자"로 10만명당 남성은 499.0명, 여성은 163.4명 사망하였고 그 다음으로는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 종사자"로 10만명당 남성은 380.3명, 여성은 157.8명 사망하였다. 연령표준화 사망률이 가장 낮은 직업군은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로 10만명당 남성은 209.1명, 여성은 93.3명 사망하였다. "단순노무종사자"는 "전문가"보다 10만명 당 남성 289.9명, 여성 70.1명 더 사망하였고 남성 2.39배, 여성 1.75배 사망률이 높았다. 두 직업군간 가장 사망률의 차이가 컸던 사망원인은 사고와 자살을 포함하는 "손상, 중독 및 외인에 의한 결과"로 10만명당 남성 96.9명, 여성 21.6명이 "단순노무종사자"에서 더 사망하였으며 남성의 간질환 사망도 10만명당 38.3명이 높아 큰 차이를 보였다. 정신질환의 경우 사망자 수 자체가 높지 않아 사망자 수의 차이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으나 "전문가"에 비해 " 단순노무종사자"에서 남성 6.31배, 여성 13.11배 사망률이 높았다.
사망 불평등에 기여한 사망원인
이번 연구에서 가장 눈여겨 볼 점은 한국의 사망불평등 양상은 다른 나라와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사망불평등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던 유럽의 몇몇 나라들의 예를 보면 주요 사망원인을 심혈관계질환으로 꼽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노동자 데이터의 경우 운수사고, 자살을 포함하는 외인에 의한 사망이 불평등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의 산재사망률은 유럽, 미국에 비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직업적 위험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 보이지만 교통사고 역시 큰 부분을 차지하였는데 좀더 안전한 교통수단을 구매할 능력, 주거환경의 안전수준, 음주운전이나 안전벨트와 같은 행동적 요인의 차이가 관여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전반적인 사회발전과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노르웨이의 한 연구에서는 1960년대에 보여졌던 교통사고 사망의 불평등이 2000년 이후 크게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자살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직업군에서 높은 이유는 사회적, 경제적 자원의 부족으로 중요한 자살 위험 요인의 노출이 높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남성의 간질환 사망과 간암 사망도 큰 차이를 보였다. 가장 쉽게 추정할 수 있는 원인은 음주와의 관련성이다. 사회경제적지위가 낮은 직업군일수록 건강과 관련된 생활습관이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생활습관은 마치 개인적인 문제로 여겨질 수 있지만 낮은 사회계층에서 생활습관이 나쁜 데에는 지식과 여유가 부족하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적 배경이 존재하고 이러한 차이를 줄이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 될 것이다. 암 중에서는 폐암이 사망률의 차이를 보여 직업적 발암물질의 노출과의 관련성과 흡연의 영향을 추정 할 수 있다.
사망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이번 연구결과는 특히 사고와 자살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 단순노무직과 같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계층은 사고와 자살의 고위험군이므로 이들의 안전의 확보, 자원의 확보가 필요하다. 결국, 사회경제적 평등을 이룰 때 건강의 평등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최고사망률 직종 최저사망률 직종
직종 1: 입법자, 고위임직원 및 관리자, 직종 2: 전문가, 직종 3: 기술공 및 준전문가, 직종 4: 사무직원, 직종 5: 서비스 근로자 및 상점과 시장판매 근로자, 직종6: 농업 및 어업 숙련근로자, 직종 7: 기능원 및 관련 기능근로자, 직종 8: 장치, 기계조작원 및 조립원, 직종 9: 단순노무직근로자
사망률비=직종9 사망률/직종 2 사망률, 사망률 차이= 직종9 사망률-직종2 사망률 (10만명당)
* 본 연구결과는 국제저널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Medicine [직업환경의학] 온라인버전에 2016. 2. 26에 등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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