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그들을 벼랑으로 내몰지 말라!
- 유성기업 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와 과제
장경희 충남노동인권센터
2011년 5월 18일,
그들의 삶은 그 날, 그곳에 멈춰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은 대한민국 민주노조 운동의 한 역사였다. 중소사업장이지만, 엄혹하던 시기 어용노조를 민주화했고, 눈 뜨고 코 베어가려는 자본의 의도를 간파했으며, 지역연대투쟁의 모범을 만들었다. 당시 부천지역(현재 유성기업은 충남 아산과 충북 영동에 소재하고 있다)의 수많은 사업장과 활동가들은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지원과 연대로 투쟁할 수 있었으며, 살 수 있었다. 90년대 초반 파업투쟁에 공권력이 투입되고, 97년 IMF로 구조조정의 한파가 밀려왔어도 그들은 당당했고 민주노조를 지키겠다는 의지는 확고했다. 민주노조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한 유성 자본의 탄압은 거셌다. 대통령은 주례연설에서 ‘1,000원짜리 부품이 완성차 라인을 끊었다.’며 사실을 호도했고, 용역 깡패들은 차량을 동원해 노동자들 13명에게 중부상을 입혔으며, 소화기와 도끼로 무장했다. 공권력은 노동자들에 대한 공포스런 폭력을 목격하고도 ‘재산권 행사’라며 노동자들을 막아섰다. 많게는 30여 년을 근무하던 직장에서 쫓겨나 자존을 지키려는 그 작은 소망하나로 모기와 파리가 넘쳐나고 습하디 습한 비닐하우스에서 100일을 견뎌냈다. 그러나 자본의 탄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성기업 노동자를 살리자!’ 하나로 시작된 정신건강실태조사와 치유활동
현장에 복귀해서도 징계·해고, 감시, 협박, 통제, 나아가 인간의 본성까지 찢어 놓고야 말겠다는 자본의 의도는 계속됐다. 그즈음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살려야 한다는 지역의 목소리들이 있었다. 완강한 투쟁으로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섰으나 남은 건 사회적 고립이었고 그중 일부는 세상을 저버리고야 말았던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처럼 만들어선 안 된다는 외침이었다. 적어도 이 사회의 정의를 위해, 노동자에겐 한없이 부조리하기만 한 탄압과 현실에 저항했던 이들을 절대로 고립시킬 수 없었다. 그런 두려움으로 유성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정신건강실태조사는 시작됐다. 충남노동인권센터의 ‘노동자 마음치유 사업단 두리공감’의 시작이기도 했다.
정신건강실태조사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지난 4년간 진행됐다. 동일한 진단지로 매년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상태를 점검해 왔다. 그 4년 동안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삶은 많이 변했다. 임금은 2011년 5월 18일 이전보다도 내려갔으며, 일상이 돼버린 감시와 통제로 얼굴빛은 검게 변했다. 정상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고도 회사가 주는 밥을 넘기지 못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회사가 유성기업 금속노조 소속 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고소장이 1,000건이 넘는다. 징계는 매일같이 이뤄진다. 최근엔 회사경영난을 주장하며 강제 순환휴직까지 시키고 있으며 민주노조를 압박하기 위한 자본의 이 같은 행태를 거부한 금속노조원들에겐 기계와 유리창을 닦게 하고 청소를 시키고 있다. 극심한 탄압, 막무가내의 폭력을 경험했던 2011년과 현재,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이 당해야 하는 고통은 여전하다.
2015년 정신건강, ‘위기상태’로 확인
정신건강실태조사는 총 6개 항목으로 진행됐다. 우울장애, 사회심리스트레스, 불안 증상, 알코올 사용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직무스트레스 등이다. 이모든 지표에서 2015년 결과는 가장 좋지 않았다
위 그림은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2012년 아산지회, 2013년~ 2015년은 아산·영동지회 통합결과)의 우울증 고위험군 연도별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매년 우울증 고위험군의 비율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비단 우울증만이 아니라 불안증세에서는 전년도에 비해 13.5%p가 증가했으며, 사회심리스트레스는 무려 22.9%p나 증가하여 약 64.5%의 노동자들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 같은 결과는 현재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 상당수는 삶이 가치 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으며, 매우 우울하고 불안감 속에 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외상후 스트레스의 경우 이전년도에 비해 12.4%p 증가한 53.6%의 노동자들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
는데 이는 2014년 모 국회의원이 전국소방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결과인 11.4%에 비해 4가 넘는 수준이다.
실태조사의 맹점이 한 가지 있다면, 이 결과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드러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떤 노동자는 회사 측 주요인사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 할 수 있는 사내 식당에서 상상한다. ‘내가 칼을 들고 몇 발자국을 가면...’ 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는 저 가해자를 없앨 수도 있다는 상상. 또 어떤 노동자는 말한다. ‘정신 차려 보니 아파트 옥상난간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나는 내 목숨을 끊으려 나도 모르는 사이 그곳에 올라갔다. 아이들과 아내에게 고통을 안겨줄 수 없어, 정신병원 폐쇄병동을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대부분의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이 상상하고 말하는 현실이다.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에게 남은 건, ‘악화된 환경’뿐
충남노동인권센터 두리공감은 지역 내 많은 사업장에서 정신건강실태조사를 벌여왔다. 그중 2014년에는 논산시 사회복지직 공무원의 자결사건을 계기로 지역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직무스트레스를 조사한 바 있다. 이를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의 직무스트레스 진단결과와 비교해 보면, 그 결과 역시 참담한 수준에 있다. 직무스트레스의 원인이나 결과, 그것을 해결하는 주체는 고용주다. 노동자에게 능력 이상의 업무나 작업이 강요되고 있는지, 공정하고 합리적인 인사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업무(작업)수행에 필요한 자원들은 제때, 충분히 제공되고 있는지, 수행결과에 대한 지지와 격려 또는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는지 등을 보는 것이 직무스트레스 항목이다. 두리공감이 실시했던 사회복지직 공무원들보다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의 스트레스 수준이 매우 높게 나왔다. 직무요구항목을 제외한, 직무자율, 관계갈등, 직무불안정, 조직체계, 보상부적절, 직장문화 등의 항목에서 모두 높은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음이 확인되었다. 특정항목에서는 두 배 이상의 수준을 보이기도 했다.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탄압만이 아니라 유성기업 회사 측은 작업과정 전반에 걸쳐 노동자에게 강력한 스트레스 환경을 만들고 있다. 이는 원래 그랬던 것이 아니라 매우 고의적이고 체계적으로 노동자들을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들에 의해 변화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이 증언하듯이 공장문을 들어서는 순간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숨소리가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심리·정신건강 관련한 많은 책들서는 계속된 가해 행위가 두 가지의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그 가해행위를 일상으로 인식하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목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맞선다는 것이다. 유성자본이 원하는 것은 전자일 터이고, 후자는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이 지금껏 해 오고 있는 일들이다. 그렇게 햇수로는 5년, 만 4년에 걸쳐 ‘사람’이고자 저항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지금 남아 있는 건 사무치는 ‘고립감’이다.
위 그림은 2011년부터 현재까지 회사 측의 탄압과 그에 대한 투쟁과정에서 주변의 관계는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답변 결과다. 부모와 배우자의 관계는 큰 변화가 없이 아주 약간 개선되었다고 한다. 이례적으로 자녀와의 관계가 개선되었는데, 그 이유에 대해 한 노동자는 “아이들이 불쌍하잖아요.”라고 답했다. 4년간 삶은 나아지지 않은 채 어려워져만 가고, 정신적인 고통은 가중되며, 이제 그 고통이 몸으로까지 전이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아이들을 걱정한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반면, 주변 관계를 보면 친지관계, 이웃관계, 동료관계에서 모두 악화하였다고 응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약처럼 느껴질 수 있겠으나 이 같은 결과는 ‘고립’을 의미한다. ‘사람’이고자, ‘자존’을 지키고자, 나아가 삶과 가족을 지키고자 당당히 맞선 결과가 그들에게는 고립감으로 남아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나 내담자에게 의사와 상담사들은 햇빛을 많이 보고, 좋은 친구를 만나며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을 권유한다. 가해를 통해 상처를 안겨 준 것이 사람이지만, 치유 역시 사람과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은 지금, 외롭다.
너무 늦지 않기를
엄청난 탄압과 폭력 상황에 노출돼 있어도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은 한 번도 흔들림 없이 투쟁해 왔다. 한때는 노동시간 단축과 야간노동철폐의 상징으로 사회적 지지를 받으며 투쟁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다양한 이유로 잊히고 있다. ‘더 어려운 사업장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는 그래도 조합원이라도 있지’, ‘지금까지 지원했는데 더는 뭘 할 수 있을까?’, ‘이젠 좀 적당히 갈 때도 됐잖아?’ 긴 병에 효자 없듯이, 장기투쟁사업장이란 이름표가 붙으면, 으레 ‘한 번쯤 가봐 주는 곳’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은 고립감을 느끼며, 심신이 병들어가면서도 저항하며 투쟁하고 있다. 소위 ‘정상’이 ‘비정상’이라며 자신들의 상태를 위로하며 전선에 서 있다. 유성기업 금속노동자들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이제 사회적 문제이며, 사회적 해결 없이는 불가능한 지형에 놓여 있다. 이제, “유성 투쟁 승리”를 넘어 “유성기업 금속노동자 살리기”를 위해 모여지고 보태져야 한다. 유성기업 금속노동자들의 정신건강과 심리치유를 위한 활동이 만 5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치유를 위한 환경 역시 열악한 게 현실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있다손 치더라도 의사들조차 시간이 지나면 눈치를 보곤 한다. 노동현장이나 분쟁사업장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담사들은 엉뚱한 해답을 내놓기도 하기에 찾고 또 찾아서 현장이해도가 높은 상담사를 배치해 왔다. 그러나 그분들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지경에 놓여있다. 한달이면 자살기도와 같은 몇 건의 응급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정말 그래선 안 되지만 하늘의 운에 맡긴 적도 있다. 유성기업 금속노동자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민주노조 사수 투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전선을 만들고 힘을 보태며,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궁극적인 치유가 될 테지만, 지금 당장 고통받는 그들을 위한 치유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그만큼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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