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석면, 그 끝나지 않는 고통 / 2020. 08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석면, 그 끝나지 않는 고통

곽경민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지난 겨울 외래 진료일에 호흡기 내과 외래에서 산재 신청 관련 문의 및 환자 의뢰가 와서 진료를 보았다. 보호자인 아들과 같이 온 환자는 80세가 넘은 분이고, 조직검사에서 흉막의 악성중피종을 진단받았다고 했다. 환자는 1980년부터 15년 동안 자동차 개스킷을 생산하는 제조업에서 프레스 업무를 했다고 하였고, 회사는 예전에 폐업했고, 석면을 사용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악성중피종은 대부분 석면에 의해 발생하는 암이며, 잠복기가 30~40년으로 길다. 또 석면은 내구성, 내열성, 내화성이 뛰어나 과거 엔진 개스킷의 재료로 많이 사용되었기에 환자의 직업력을 근거로 하였을 때, 석면에 노출되었을 개연성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나는 의사 소견서를 작성해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질병을 신청하라고 안내해줬다. 고령으로 아들에게 부축되어 나가는 환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산재를 신청한 이후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석면은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지정한 1군 발암성 물질로 석면폐증, 악성중피종, 폐암 등의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면은 가격이 저렴하고, 내열성, 절연성, 내마모성, 내열성 등이 뛰어나, 건축재, 마찰재, 방직재 등에 1980~1990년대 중반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2009년 모든 종류의 석면 제조·사용·수입이 금지되었지만, 긴 잠복기(15~40년)로 인하여 폐암, 악성중피종, 석면폐증 등의 석면 관련 질환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석면 관련 질환 피해자 중에서 건설, 조선소, 자동차 수리 등 직업적으로 석면을 사용했던 근로자들은 산재법 등 관련법에 적용되어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다. 또 석면을 사용한 직업력은 없으나, 석면 광산이나 공장 주변에 살면서 환경성 요인으로 인해 발생한 석면질환 피해자들은 2010년 제정된 석면피해구제법에 의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즉, 직업적 요인에 의한 석면질환 보상은 산업재해보상법, 환경적 요인에 의한 석면질환 보상은 석면피해구제법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상을 받는 사람들의 수는 두 가지 제도 간의 큰 차이를 보인다. 석면피해구제법이 시행된 2011년 이후 통계를 비교하였을 때,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산재법상 업무상 질병으로 최초 요양승인이 되었던 사람의 수는 85명에 불과하지만, 석면피해구제법에 의해 보상을 받은 사람의 수는 석면피해 보상이 1697명, 특별유족 보상 637명으로 산재법으로 보상되는 경우와 비교하여 그 수가 훨씬 많다.

우리와 비슷한 환경성 석면피해를 보상하는 구제법이 시행된 일본에서는 2006년 새로운 석면피해구제법이 시행된 이후 보상을 받은 사람은 모두 3230명이었고, 2007년에는 1057명이었다. 한편 산재법 등으로 업무상질병을 인정받은 사람은 2006년 1851명, 2007년 1057명으로 환경성 석면 피해와 직업적 노출로 인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은 수가 비슷한 수준이었다. 즉 한국의 경우 산재법으로 인정되어야 할 석면 관련 질환자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석면피해구제법에 의해 인정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유추할 수 있다. 산재법상 석면 관련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석면 질환의 긴 잠복기, 과거 사업장 정보의 부재로 인한 노출 정보를 확인하기 어려운 것을 고려할 때, 임상적인 석면노출의 징후가 없다면 역학조사를 통한 석면 노출의 입증이 쉽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산업재해로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석면피해구제법에 의해 보상을 받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석면피해 구제 신청자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직업적 석면 노출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산재법과 석면피해구제법의 보상액 차이는 상당히 크다. 통상 석면피해구제법은 산재보상으로 받을 수 있는 수준의 10~20% 정도로 위로금 정도에 불과하다. 석면폐증, 악성중피중, 폐암 등 석면 관련 질환들이 치료가 사실상 힘들고, 환자들이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직업병으로 인정을 받느냐, 환경성질환으로 인정을 받느냐는 천양지차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현재 산재보상보험법에서 석면관련질환에 대한 인정기준과 심의 절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대부분 석면에 의해서 발생하는 악성중피종의 경우는 과거 석면 노출력을 세세하게 따지지 않고, 조직검사에서 확진이 된다면, 역학조사 없이 신속히 심의하여 인정해야 한다. 또한 방사선학적으로 진단이 어려운 석면폐증의 경우에도 현재의 흉부촬영 소견에 의한 판정이 아닌 고해상도전산화단층촬영(HRCT)를 통한 진단과 심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석면 사용이 금지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긴 잠복기로 인해 석면 관련 질환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산업적으로 석면을 다량으로 사용했던 시기를 고려했을 때, 아직 본격적으로 석면 관련질환들이 발생하는 정점에 이르지 않았고, 향후 20년은 석면 관련 질환들의 발생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석면 사용 노동자들의 위험과 고통을 산재법과 근로복지공단은 더이상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