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호 기획 7. 청소년 노동건강권 활동을 돌아보며 -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이수정 활동가 인터뷰 / 2020.10·11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마주침 ]

청소년 노동건강권 활동을 돌아보며 -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이수정 활동가 인터뷰

이숙견 상임활동가

2014년 1월 24일, CJ 진천공장 현장실습생으로 나간 김동준군은 폭언과 폭행,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왜 현장실습 과정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로 시작한 청소년 노동인권활동은 연구소 내 청소년 노동건강팀을 구성하게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아래 청노인넷)와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주었다. 청노인넷에서 2006년부터 핵심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는 이수정씨를 만나 청소년 노동인권 활동과 과정에서 고민 그리고 향후 청소년 노동안전보건 활동 방향을 나누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의 시작

"2003년 실업계고 현장실습생이 엘리베이터 설치하는 과정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게 되면서 현장실습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단체 전교조 실업위, 인권운동사랑방,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민주노동당 등들이 모이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실업계고 현장실습 실태조사를 하게 되었고, 당시 열악하고 위험한 현장실습 상황을 드러내면서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교육부의 2006년 직업계고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을 이끌어 냈고요. 저는 2006년 '노동자의 벗'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를 알게 되었고, 이후 한국비정규노동자센터 소속(민주노무법인)으로 청노인넷 활동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청노인넷은 네트워크로 모인 활동 단체로 많은 성과를 냈다. 실제로 '똑똑, 노동인권교육 하실래요?(아래 똑똑)'를 함께 만들고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많은 지역에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확산과 교육과정에서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전국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더불어 교육을 통해서 만난 청소년은 미래의 노동자가 아닌 현재 일하는 청소년 노동자로서 밑바닥 노동 현실을 직면하게 했다.

"현장실습 대응활동으로 시작했으나 청노인넷에 모인 단위가 공통으로 교육에 관심이 많았어요. 2006년 현장실습제도 정상화 방안을 끌어내면서 현장실습대응보다 자연스럽게 교육활동으로 모아졌어요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함께 만든 내용이 '똑똑'이었지요.

처음부터 완결된 내용이 아니기에 워크숍을 통하여 내용을 보완하고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냈어요. 공부방, 학부모, 청소년단체, 노동조합활동가 등이 전국에서 참석하였습니다. 첫 번째 워크숍을 2005년에 시작하였고, 2010년까지 매년 워크숍을 하면서 전국단위 활동가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더불어 학교 안에서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도 느끼고 있었기에 전교조 교사 대상의 직무연수도 함께 배치했죠.

학교나 지역에서의 교육은 실제로 일하는 청소년의 심각한 노동현실을 직면케 하였고, 이 과정에서 필요한 실태조사-예를 들어 2008년 최저임금 실태조사, 2011년 10대 배달노동실태, 2014년 10대 밑바닥 노동 등-로 이어졌으며, 문제 제기와 대응을 요구하는 활동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네트워크로 구성되었지만, 참가자가 관심과 이슈를 가지고 참석하였고, 과정에서 실태조사와 문제에 대한 방안 마련을 요구하는 대응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2011년 광주 기아자동차에서 발생한 현장실습생 뇌출혈사건은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대부분 직업계고 현장실습문제에 관한 상담은 취업 이후 임금문제 정도였는데, 기아차 사건을 통해 확인된 현장실습제도의 문제점은 확인할수록 심각했다. 이 사건은 현장실습생이 도장부서에서 주 7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이며, 취업률을 위해 산업체의 단기간 노동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는 현장실습 제도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청노인넷에 함께 했던 청소년단체와 인권단체는 2012년 학생인권조례 활동에 집중하면서 네트워크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고, 결국 남은 단체의 역량으로 현장실습제도를 바꾸기에는 벅찬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하여 현장실습제도와 실습생에 대한 금속노조 등 노동조합의 관심과 연계를 모색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그전까진 노동조합이 현장실습제도와 현장실습생에 관한 관심이 없었어요. 잠깐 왔다 가는 학생으로만 생각했지 동료로 생각하지 못했었죠. 노동조합이나 금속노조에서 관심갖게 되었고, 대책위가 만들어지면서 적극적으로 결합하였지만 이후 청노인넷 활동으로 함께 이어지지는 못하였습니다.

더불어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를 바라보는 입장 차이와 지역과의 소통과정에서의 여러 문제로 현장실습제도는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정도로 마무리되었어요. 청노인넷도 단체들이 빠지면서 단체결합에서 개인이 결합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죠.
이렇다 보니 이슈를 중심으로 모여 집중하고 빠른 대응이 가능했던 네트워크의 활력이 떨어지게 되었고, 자발성과 책임성이 요구되는 네트워크 활동의 지속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후 현장실습생의 사망사건은 지속적으로 발생된다. 현장실습생이 야간작업 중 폭우로 바다에 빠지는 사고, 야간에 폭설로 공장지붕이 무너지면서 작업 중인 실습생이 사망하였고, 괴롭힘과 과로노동으로 자살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연구소는 현장실습생의 산재사망사건 대응과 노동안전보건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청노인넷을 방문하였다.

한노보연의 결합

"현장실습생 고 김동준님 사건 이후 연구소에서 최민 활동가와 김형렬 소장이 찾아왔어요. 당시 충북지역에서 대응하고 있었고 청노인넷은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대응 수위를 고민 중이었기에 연구소가 제안한 현장실습 실태조사와 대응활동에 적극적인 노력을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기존 단체와는 다른 노안단체이기에 기대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부터 최민 동지가 연구소 상임활동가로 청노인넷에 함께하면서 현장실습 제도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다시금 하게 되었어요.

2015년 전교조,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3차례 단위별 간담회를 진행하였고, 2016년 직업계고 실습실 실태조사는 기간 직업계고 대응활동에서 다른 돌파구를 보여주는 활동이기도 했다. 당시 단체들이 빠지면서 침체되어 있던 청노인넷의 상황에서 연구소의 결합(특히 무게감을 싣는 상임활동가의 결합)은 활력이 되었어요."
 
연이어 발생한 전주 LG유플러스 사망사건과 제주 음료수 제조공장 현장실습생 사망사건은 전국 현장실습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게 하였고, 간담회에 참석한 단위(민주노총, 금속노조, 전교조실업위원회, 비정규직없는세상,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가 대책위 구성에 함께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산업체파견 현장실습 폐지를 내세우며 공세적인 대응을 하였으나, 결국 현장실습제도 개선에 더 초점을 맞춘 당사자 조직의 요구와 지역 및 전국 대책위 내 여러 버거움으로 결국 지금의 현장실습제도로 머물게 된다. 이 과정에서 대책위도 해소하면서 결국 개인의 활동가와 한노보연이 함께하는 청노인넷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 대응활동은 연구소에도 많은 경험을 하게 한 활동이었으나, 과정에서 현장실습생, 직업계고학생, 그리고 교사와 노동조합 등 모두의 동력이 함께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방안 마련이 힘들다는 것도 확인하였다. 2019년부터 연구소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활동으로, 청소년과 교사, 활동가를 대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으로 전환을 모색 중이다. 그중 하나가 청소년 노동인권활동가 대상 노동안전보건 워크숍이었다.

"2019년에 이어 청노인넷과 함께 준비 중인 청소년 노동안전보건 워크숍은 청노인넷에서도 시너지가 되는 활동이며, 청소년 노동안전 이슈의 전국화로 연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어요. 하지만 다시 지역과 만났을 때 그러지 못한 상황을 확인하게 되었고, 올해 심화과정을 준비하면서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기대했던 사업이 될까, 오히려 교육 아이템 중 하나가 되어버리진 않을까 하는 우려도 됩니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은 교사와의 접촉면을 더 넓혀서 교사들이 수업에서 풀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교과과정도 융합교과, 선택 교육 등으로 바뀌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교사가 교육 내용을 잘 소화해야지 학생들에게 전달을 잘할 수 있습니다.

최근 나오는 안전보건 교과서도 내용이 문제가 많은 것도 있고, 안전보건에 관한 내용을 교사가 잘 모르니까 교육이 잘 안됩니다. 한노보연이 그러한 역할을 해주게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소의 콘텐츠를 잘 전달하는 것', 노동교육원이 출범했는데 노동안전보건 부분에 대한 콘텐츠가 전혀 없어요. 그러한 비워 있는 부분을 잘 채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나서 내용을 잘 전달하고, 방향과 고민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지금과 같이 안전보건에 관한 연구소의 역량을 투여하는 것이 필요하며, 지금의 한노보연은 그러한 역할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현장실습생의 노동 현실을 쫓아가며, 청소년 노동권과 건강권이 실현될 수 있도록 활동과 연대를 이어나가고자 한다.

청소년 노동안전보건운동의 과제

연구소는 실습실 실태조사를 통한 직업계고 실습실의 작업환경개선 필요성을 의제화하였고, 청소년의 노동안전보건 플랫폼 구축 연구를 통하여 알 권리 실현의 중요성도 제기 중이다. 이러한 활동은 청소년의 노동안전보건 감수성 키우기를 토대로 청소년이 당사자로서 중심성을 가지고 안전과 건강의 주체로서 세우기 위함이다. 연구소의 청소년 노동건강권 활동을 다년간 지켜본 청노인넷 활동가로서 좀 더 연구소가 집중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아래 한노보연)의 무기는 전문성이고, 청소년 노동에 대한 높은 감수성과 남다른 관점이 강점이기에, 그러한 강점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제대로 발휘하는 것입니다. 연구소의 역할은 역량을 계속 축적해서 여기저기에서 내용으로 순환되고, 그게 바탕이 되어서 당장 드러나지 않더라도 지속성을 갖고 연구소가 할 수 있는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심화 워크숍이 마무리되면 다른 형태의 고민도 해보면 좋겠어요. 청노인넷만 파트너로 생각하지 말고 한노보연이 중심이 되어서 청소년팀에 자문위원이나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회원들을 결합하고, 자문하는 방식도 고민할 필요가 있겠죠. 청소년과의 접촉면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지금은 역량의 한계도 있기에 에너지가 분산되지 않도록 한두 군데로 사업을 집중하거나, 몇 개년 계획으로 집중할 장기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일터 200호를 맞이하는 10월호 인터뷰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누며, 200호를 맞이한 일터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꾸준히 목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0호가 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거 같아요.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것, 컨텐츠를 축적한다는 것은 노력하지 않으면 대단히 어렵습니다. 청노인넷 활동 중 아쉬운 것은 네트워크 활동이니 총회 등 행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청노인넷 활동에 대하여 시기별로 정리된 내용이 없습니다. 그러한 부분에서 아카이빙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터는 여러 매체의 홍수에서 관점을 담은 몇 안 되는 매체로서 의미가 크고, 누군가 이 분야에서 관심을 가질 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 연구소의 전문적인 이야기는 기획기사로 집중적으로 다루고, 나머지는 회원들 이야기, 어설프긴 하지만 쉬어가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함께 나누는 지면이 할애되었으면 해요. 연구소에서 '이런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구나' 알 수 있는 지면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축하합니다."

200호 기획6.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으로 안전한 현장 만들자! -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야 라이 위원장,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대표 인터뷰 / 2020.10·11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마주침 ③]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으로 안전한 현장 만들자! -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라이 위원장, 천 이주노동자센터 김성 대인터

유청희 상임활동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노동안전보건 운동은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 산업재해 피해자와 사망자의 유가족들의 기나긴 싸움이 만들어냈다. 많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조항이 이들의 싸움으로 바뀌고 개선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자본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은 나 몰라라 한 채 이윤만을 좇으며, 노동자의 죽음까지도 비용으로 처리할 뿐 현장을 바꾸는 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끈질긴 싸움으로 안전과 보건 관련 제도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가운데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어 현장 변화가 너무나도 더딘 곳이 있다. 바로 이주노동자들의 일터다.

이주노동자들의 산재발생률은 한국인의 7배로 수치 면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이주노동자들이 산재신청에 대해 잘 모르거나 사업주가 승인하지 않아서, 또는 미등록 신분이 불안해 많은 경우 산업재해 신청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사업장에서 일상적으로 듣고 겪는 고성, 인종차별 발언, 폭행은 이들의 정신 건강을 갉아먹기도 한다.

이런 이주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노동안전보건 운동은 무엇일지, 이주노동자들이 운동의 주체로서 서기 위해서는 노동안전보건 운동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 법의 사각지대를 어떻게 메꿀 수 있을지를 묻기 위해 이주노동자노동조합(아래 이주노조)의 우다야 라이 위원장과 포천 이주노동자센터의 김달성 대표를 만나보았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사업장 변경 자유를 위해, 또 이주민 차별을 막기 위해 싸워왔다. 2014년부터 노조 위원장직을 맡아 이주노동자 처우 개선과 조직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김달성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과거 노동운동 활동 후 일반 교회 목회 활동을 이어가다가 3년 전부터 영세 소규모 제조업 사업장과 농업 사업장이 분포해있는 포천 지역에서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병들게 하는 사업장 변경 제한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게 최초 3년간의 노동 시간을 준다. 사업주가 승인한다면 1년 10개월간 더 일을 할 수 있고, 또 한 번의 승인이 있으면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재입국할 기회가 생긴다. 사업장 변경은 온전히 사업주의 권한이기 때문에 사업주가 근로계약 해지를 원할 경우, 사업장의 휴업, 폐업,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또는 부당한 처우가 있을 경우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그 외에는 사업주 승인이 있어야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직장에서 한국인 관리자에게 폭행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한다 해도 사업주가 승인하지 않으면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산업재해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더라도 사업주 승인 없이 직장을 옮길 수 없는 이들에게 강제노동은 먼 얘기가 아니라 매일 맞닥뜨리는 현실이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노동자로 들어와 있는데 직장 변경 권리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강제노동에 노출되는 거죠.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고 한계를 넘어서면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런 건 전혀 고려가 되질 않아요. 사업장에서 산재사고, 또 산재사망도 일어나는데 열악한 근로조건이 개선되지를 않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계속하고 있어요. 사업주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개선 노력을 하지 않아요. 권리가 인정되어야 사업주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할 수가 없죠.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하는 이주노동자도 있습니다. 사업장 이탈해서 미등록 상태가 되는 노동자도 있고요."
     
김달성: "산재보상신청 하는 데 거기서부터 걸려요. 사업주 동의가 없어도 산재신청할 수 있지만 방해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합법적인데도 못 하는 거죠. 고용허가제 첫 기간은 3년이고 1년 10개월 연장하기 위해서 사업주 승인이 필요하고, 그 후 본국에 돌아갔다가 재입국을 할 때도 사업주 승인이 필요합니다. 그런 법과 제도하에서 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산재보상보험 신청조차 이주노동자가 포기하게 만드는 거예요. 법과 제도적 문제가 노동자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거죠. 고용허가제가 산재를 조장하기도 합니다.

올해 1월, 양주에 있는 회사에서 보일러가 폭발해서 노동자 2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대재해를 당했는데 사망자 중 1명이 이주노동자였습니다. 재해자 중 절반이 이주노동자였고요. 재해당한 이주노동자가 사고 충격이 심해서 불안해 일을 못 하겠다고 하면서 사업장 변경을 신청했는데 사업주가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세 노동자가 외상 후 스트레스를 심각하게 앓았고 담당 의사도 사고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거든요. 사업장 변경하려고 5개월 넘게 요구하다가 겨우 승인받았습니다."

한국인의 7배 산재발생률

2018년 이주노동자의 산재발생률은 1.42%로, 0.18%인 한국인 노동자보다 7배가 높다. 그만큼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이다. 영세 사업장이 대다수이다 보니 사업주 역시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경우가 많다.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유해하다고 지적하니 어떤 사업주는 "30년간 내가 썼지만 아무 문제 없었다"고 했다는 우다야 라이 위원장의 말이 씁쓸하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단기간 머물다 가지만 유해 물질을 취급한 후 당장 나타나지 않을 질환이 나중에 나타날 수 있어 그 위험 정도를 알기 어렵다. 이런 위험을 알고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안전보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안전장치가 필수적이겠지만, 그런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이주노동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김달성: "3년간 만나 본 이주노동자 중 안전교육을 받았다는 사람은 한, 두 명 정도뿐이에요. 99%가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거의 없는 거죠. 공장에 안전장치도 설치되어있지 않고요. 올해 초 양주 가죽공장 사고를 보면 폭발이 엄청 크게 나서 주변 공장들이 파편 맞을 정도였습니다. 가죽공장은 안전관리사가 있어야 하는 업종인데, 안전 관리사를 두지 않고 안전조사를 하지 않아 기소됐거든요. 큰 보일러를 쓰기 때문에 안전 관리사가 있어야 하는 공장인데 없었습니다. 안전장치가 있어도 빼놓고 일하게 하는 것이 현실이고요."

산재예방을 위한 제도는 전무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지 않는 소규모 사업장이기에 산재예방은 먼 얘기일 뿐이다. 예방은 고사하고 산업재해가 빈번히 일어나는데도 산재보상보험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주노동자들이 고용되는 농축산어업의 경우 법인이 아닌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사업주가 산재보상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고나 질병이 발생하는 사업장에 법을 적용해 산재를 예방하게 만들고 정부가 작업 환경 감시를 통해 안전을 유지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정부 정책에 그런 고려는 전혀 없어 보인다.

농축산어업에서는 법인이 아닌 사업주에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문을 열어두지만, 이들에게 산재보상보험법이나 건강보험에는 가입을 강제하지 않아 노동자 보호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본적인 산재보상보험과 건강보험 보장이 시급해 보인다.

김달성: "농어촌은 대부분 기계화되어 있습니다. 산재가 적지 않아요. 그런데 5인 미만 사업장이 대다수라서 산재보상보험 적용이 안 되죠. 어떤 이주노동자는 과수원에서 일하다가 허리뼈가 부러지는 재해를 입었는데, 산재보상도 안 되고 근로기준법으로도 보상을 못 받았습니다. 1년간 1억 넘는 비용이 들었는데 네팔 공동체, 일반 시민들이 기금 모아서 병원비를 지원해줬습니다.

5인 이상 농어촌 사업장은 산재보상보험법 적용 대상이지만 이주노동자와 사업주가 주종관계나 마찬가지라서 산재보상 신청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근로기준법 63조(농축산어업 등에 근로시간, 휴게, 휴일 등 적용 제외) 때문에 제조업보다 더 옥죄는 상황이고, 하루도 안 쉬고 일하는데 수당도 없습니다."

이주노조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입국하는 인천공항에서 직접 사전 교육을 하기도 한다. 공항에 막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에게 고용허가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개선할 점, 노동3권에 대해 설명한다. 노동자에게 문제가 생길 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산재신청, 보상 안내 등도 교육 내용이다.

이런 기본 교육은 사업주가 실시해야 하지만, 고용허가제는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사용'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노동자의 노동권, 건강하게 일할 권리에 관심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예상도 못 한 채 다치고 폭력에 시달리며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터 108호(2012.12) 표지에 실린 사진. 이주노동자들은 죽기 위해 이 곳에 온 게 아님을, 이 땅에 일하는 모든 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요구해나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출처: 부경이주공대위



안전한 현장을 위한 과제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사회는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사업장을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우다야 라이: "노동강도를 낮춰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하게 일할 수 있죠. 사업주가 산재보상보험법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만드는 것도 필요하고요. 산재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다시 고용하지 못하게 해야 안전에 신경 쓰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업장 점수가 높으면 이주노동자를 많이 고용할 수 있는데요. 성폭력이나 사고가 나면 감점 몇 점주는 식이죠.

이주노동자가 정해진 날짜에 귀국하거나 사고가 안 나면, 또 문제가 있어도 정부에 들키지 않으면 점수 잘 받아요. 노동자가 사망해도 감점 몇 점 받을 뿐 이주노동자 고용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사업장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사고가 나도 폭행이 나도 사업장 변경이 어려운 상황을 바꿔야 해요. 사업장 변경 권리가 산재개선에 핵심적인 부분이에요."

이주노동자들의 싸움이 어려운 것은 이들이 한국에 장기간 머물지 않는 데서 오는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싸움을 해야 할 때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이주노동자들에게 어려운 것이다. 이런 한계로 인해 사업주나 정부에서도 변화하지 않고 오히려 악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필요한 체류 기간을 쪼개는 현 정책은 이주노동자를 단기간 사용하고 본국으로 보내겠다는 뜻이 분명히 담겨 있다.

우다야 라이: "체류기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어요. 체류기간이 더 길면 부당함을 더 잘 알 수 있으니까요. 이주노동자들이 의식을 높일 수 있는 시간도 더 있어야 합니다. 현 제도가 노동자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해요. 이주노동자 유입되기 시작한 지 30년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참 오랫동안 똑같은 요구를 하고 있어요.

제도, 정치인, 국민들의 인식까지 바꿔야 해요. 동남아시아 출신 무시하고 선진국 출신은 다르게 생각하는 인종차별 문제도 바꿔야죠. 한국인도 똑같이 이주민이 될 수 있는데, 이걸 깨닫고 차별 없애야 해요. 한국 사회에 있는 차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쁜 것은 나쁘다고 말할 수 있어야죠."

노동안전보건 운동을 가열차게 진행하는 동안에도 변화는 더디고 어떤 곳은 빛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있기도 한다. 소규모 영세 사업장은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안전보건은 때로 교집합이면서 때로 합집합 상태가 된다.

산재보상보험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하라는 지금까지의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요구가 이주노동자에게도 중요한 요구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이주노동자에게도 해당되는 문제로, 이에 더해 사업장 변경 제한 폐지가 함께 들어가는 것까지 확장한다면 이주노동자가 함께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200호 기획5. 노동안전보건을 ‘젠더’ 관점으로 바라보기 - 권영은 반올림 상임활동가,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인터뷰 / 2020.10·11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마주침 ②]

노동안전보건을 ‘젠더’ 관점으로 바라보기 - 반올림 상임활동가, 경아 한림대 사회수 인터

지안 상임활동가

우리가 '노동자의 건강'을 노동자의 조직적인 힘과 역량을 통해서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사고할 때, 건강한 일터란 단순히 주어진 노동조건이 아니라 노동자의 요구와 투쟁을 통해 쟁취한 '권리'가 된다. 일터의 건강이 노동자의 권리라는 메시지는,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몸과 작업환경, 생산 속도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특히나 중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노동자의 건강을 보는 방식이 구체적인 '조직'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 소수적인 영역에서의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다룰 다른 관점과 역량을 발굴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나 갈수록 고용 형태가 다양화되고, 일 자체가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에서 노동자의 건강 문제가 개별화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틀은 무엇일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점에서 '젠더'는 우리가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다룰 때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나 정체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여성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적 조건들은 어떻게 개별적 여성 노동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 또는 노동안전보건의 의제로써 쟁점화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본 글의 기획을 두 가지 방향으로 구성했다.

먼저 2007년부터 전자 산업 노동자들의 산재 피해 활동을 해온 반올림의 상임활동가 권영은님과 함께 기존의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젠더의 관점에서 돌아보고 읽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고민을 나눴다. 두 번째로는 한림대 사회학과 신경아 선생님을 만나 현재 한국의 여성노동자가 처한 다양한 문제점들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짚어보았다.

여성 노동자의 관점에서 '산재' 다시 읽기

반올림의 꾸준한 투쟁을 통해서 전자산업 반도체 공장에서의 산재 피해는 사회적으로 잘 알려지게 되었다. 이 활동을 통해서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직업병 문제가 조명받았지만 한편에서는 피해자 중 많은 수가 여성이기도 했다는 점은 특별히 사건의 중요한 측면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지난 투쟁을 돌아보며 우리가 '젠더'의 눈으로 산재 피해를 읽어낼 부분은 없을지 물었다.

권영은: "반도체 공장 클린룸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오퍼레이터가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이 활동이 '여성'에 방점이 찍히지는 않았습니다.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 상 유해성이나 직업병 자체에 집중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여성 노동자의 비율이 높다는 점 외에도 생리불순 등 재생산 건강 문제에 대한 제보도 초기부터 많이 들어오는 등 여성에게 특수하게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초기부터 많이 보였어요. 대다수의 오퍼레이터가 여성이었던 배경에도 성역할의 고정관념이 존재한다는 것도 중요해요. 여성들이 꼼꼼하니 더 세밀하고 빠르게 작업을 할 것이다, 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결과였죠."

그렇다면 실제 전자산업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직업병 피해자 중 여성 노동자의 숫자, 그리고 반도체 공장 여성 노동자 중에서도 사업장 규모에 따른 집단적 특성은 없을까? 반올림은 이렇게 구체적인 수치를 파악하기 어려운 현실을 한계로 지적했다.

권영은: "전자산업에 어느 정도의 노동자가 있는지 세세한 수치를 파악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에요. 산업별 국가 통계에서도 별도로 조사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제조업' 분류에 묶여있어 알고 싶은 만큼 자료가 확보되지는 않는 상황이죠. 반올림이 함께 하고 있는 안산지역네트워크에서 안산지역의 반도체 공장 중에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해보려고 하는 중인데, 작게나마 통계로 확인하기 어려운 실제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어요."

물론 반도체 산업의 산재 피해는 '여성 문제'로만 국한시켜 볼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클린룸 엔지니어 직종의 경우 남성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피해자의 집단적 특성이 존재하고, 특별히 여성의 재생산 건강과 관련된 문제점들이 초기부터 발견되었다면 이를 '여성 노동자'의 문제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명되지 못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권영은: "사실 해외에서는 반도체 공장의 유해성이 입증되기 시작한 단계에서, 먼저 유산, 불임, 기형아 출산 등 생식독성 문제가 중요하게 이야기가 되었어요. 한국의 경우는 2017년 불임으로 첫 산재 승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런 문제들이 비교적 조명이 덜 된 이유는 생식독성 문제, 또는 여성의 재생산과 관련된 건강 문제가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쉽게 연결될 수 있다는 점과도 연결된다고 봐요.

이전 상담기록을 살펴보면, 피해자 중에서 본인뿐 아니라 아이도 질병에 걸리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이 경우 본인은 산재인정을 신청할 자격이 주어지는데 아이는 그렇지 않아 제보 기록으로만 남아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2세 질환 문제를 '산재'로 인정하고 인식하는 변화도 필요합니다. 한편 이런 경우 '어머니'에게 가해질 주변의 비난도 쉽게 상상할 수 있어요. 산재인정 투쟁뿐만 아니라 이런 사회문화적 인식과도 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산재 피해 노동자의 2세 질환 문제는 특히 최근 10년 만에 대법원에서 제주의료원 태아산재 인정 판결이 나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 판결이 유사한 피해 사례들을 드러내는 유의미한 시작점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관련 법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2세 질환의 산재 인정기준을 낮추고, 보상체계를 제대로 만듦으로써 피해자를 돕고 다양한 산업에서 유해요인과 직업병의 연관성이 제대로 밝혀질 수 있어야 한다.

권영은: "앞으로 2세 질환의 산재 신청을 준비하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제주의료원 판결을 계기로 여성노동자들의 생식질환, 2세 질환 문제에 초점을 맞춰 인터뷰집을 내려고 해요. 한국뿐 아니라 대만,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여러 피해 사례들이 있는데, 단순히 화학물질 등 노동환경의 유해성에 대한 지적을 넘어서, 여성 노동자의 몸의 문제를 드러낼 수 있도록 그간 국내외 연구에서 제기되어왔던 전자산업에서의 2세 질환 문제가 더 많이 제기되고 조사되어 예방까지 이어지길 바랍니다."

한편, 반올림은 이전부터 젠더와 노동자의 건강 문제라는 주제를 고민한 바 있다. 2014년 전자산업여성노동자모임은 직업성 암 등 질병의 문제를 넘어서 전자산업의 노동환경이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여러 수준의 유해성을 살펴보고자 했다. 이 시기에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등한시된 여성 재생산 건강 문제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권영은: "성인지적 관점에서 반올림 사건을 '여성 노동자'의 문제로 다루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관심이 있는 다양한 연구자, 활동가, 피해자들이 모여 여성 건강권 문제를 공부하기도 하고, 산재 피해를 단순히 '피해' 그 자체로 다루기보다 여성 노동자들의 생애사적인 측면에서 다뤄보자는 이야기도 했어요. 즉 여성 노동자의 삶 차원에서 문제를 다시 보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여성 노동'의 관점에서 반올림 활동을 돌아보고, 앞으로 문제의식을 이어간다고 할 때 어떤 것들이 조명되어야 한다고 보는지 물었다.

권영은: "산재라는 것이 단순히 일하는 노동자 개인의 보상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부각되었으면 해요. 2세의 건강, 나아가 노동자의 삶과 가족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는 사건이라는 점, 그래서 사회의 안전과도 연결이 된다는 인식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7년간 일했던 여성 노동자의 모습이다. 추후 유방암으로 집단산재신청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성노동 의제, 면밀한 현황 조사부터 다양한 의제 발굴해야

'여성 노동자'의 노동, 그리고 노동안전보건 문제에는 어떤 주제가 있고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지 구체화해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의 여성노동자가 딛고 선 현실을 진단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연관된 주제 중에서도 '노동시간'은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여성이 시간제 일자리 등 저임금 인력으로 활용되어온 노동의 역사나, 보조 인력으로 상상되고 주변화되어온 맥락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돌봄·가사노동이 여성 개인의 부담으로 맡겨진 사회에서 여성의 '일하는 시간' 문제는 단순히 임금 노동시간만의 문제를 넘어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여성' 그리고 '노동시간'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최근 몇 년간의 노동정책을 봤을 때 어떤 변화점이 있는지 물었다.

신경아: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초기부터 대단히 비판받았어요. 공공일자리 등 시간제 일자리가 대거 양산되었죠. 그러나 노동자의 자율성 측면에서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시간제 일자리'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도록 하는 정책은 저임금, 고용차별 문제를 낳을 뿐입니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최근 정부 조사에서 80%에 가까운 여성들이 시간제 일자리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나왔다는 점이에요. 한편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집중하는 것은 '노동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52시간제도 대단히 제한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 노동정책은 정말 '안 보인다'고 할 수 있어요. 고용노동부에 양성평등정책과는 신설되었지만, 그 외 미미한 수준에서 돌봄 관련 규정들이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에서 마련된 것에 불과합니다. 제대로 된 여성 노동 정책이 있다고 보기 어렵죠."

향후 어떤 정책적 방향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물었다.

신경아: "예를 들어, 비정규직 일자리 중에서도 특수고용 노동자, 초단시간 일자리 등에 여성이 더 많습니다. 이들은 이중적 차별에 직면하고 있어요. 하나는 현재의 고용제도 안에서 여러 법적 보호의 밖에 밀려나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노동법 체계의 근본적 변화, '노동자' 개념 정의를 재구성하는 문제 등이 과제입니다. 한편, 노동운동 역시 정규직 남성 노동자 중심으로 구성되어왔기 때문에 이들의 의제가 운동의 핵심 주제로 다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이 또 하나의 차별이죠. 이런 점에서 한국사회를 지탱해오던 전통적인 노사관계를 바꾸어나갈 필요가 있어요."

성별 임금 격차뿐 아니라, 저임금·비정규직 등의 사안은 IMF 이후 뿌리 깊은 여성 노동 현안이며 그만큼 여전히 유효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성노동운동에 있어 주요한 변화가 있다면, 어떤 문제나 경향일지 궁금했다.

신경아: "가장 큰 변화는 여성노동자들이 자기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비정규직, 저임금, 경력단절 등의 문제는 여전히 큰 문제죠. 그러나 시민사회단체, 연구자들이 문제를 드러내 왔던 방식을 넘어서 2015년 강남역 사건, 2018년 미투 운동 등 이후 시기에서 여성 개개인의 주체가 굉장히 변화했어요. 그에 따른 실천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차후 이런 것들이 개인적 저항 수준을 넘어서 사회적, 운동적 차원으로 끌어올려져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만큼 노동 의제가 부각되진 못했어요. 미투 운동 역시 여성 노동자들이 어떤 노동환경 속에서 일 해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볼 수 있죠.

그렇지만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 두 가지 문제가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젠더와 노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개인적 수준의 저항을 넘어서 노동의제로 확장시켜 다뤄나갈 필요가 있죠."

전시 상황에서 어떻게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노동력으로 동원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포스터 이미지다. 차후 이 시기의 이미지들은 여성운동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의미화되었다. 출처: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한편, 현재 여성노동운동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이슈는 코로나19일 것이다. 코로나19 위기가 특히 여성 노동자에게 집중되었다는 통계가 드러났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독립적인 사건으로 보기보다는 한국사회가 이미 경험한 두 번의 경제위기와의 연관성 속에서 주목하고 있다. 1997년 IMF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노동시장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차후 더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로 밀려났다. 이런 사회적 맥락에서 현재 많은 여성단체들이 코로나19를 '여성 노동자의 위기'로써 선제적으로 명명하고 있다.

신경아: "자본주의,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경제위기가 있을 때 어떤 집단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해결해나갔어요. 희생의 대표적인 집단은 '여성 노동자'였죠. IMF의 경우, 대기업 생산직, 사무직 중간관리자 여성들이 대거 일자리를 잃었어요. 현재는 서비스직·임시직 여성 노동자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어요. 그러나 여성이 위기 국면에서 도구화되는 것을 초기부터 문제제기하고 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전망합니다. 이런 변화가 과거의 해결책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큰 변수이자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반이라고 봐요."

한편, 여성 노동자의 구체적인 현실은, '여성'에 대한 시선과 인식, 나아가 근본적 차원의 젠더 불평등 문제 등 여러 층위의 문제들과도 복합적으로 이어진다. 이런 점에서 여성 노동운동과 연구가 가야 할 길은 다양한 층위에 있는 문제 간의 연관성을 밝히고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신경아: "여전히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특히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중요한 비판 대상입니다. 이런 인식 속에서 같은 일에서의 성별임금격차, 직무의 성별분리 등 결과가 만들어져요. 의식의 차원에서 혁명이 필요해요. 또한 노동자의 정체성, 인권과 관련된 다양한 의제들을 노동운동의 과제로 가져가면서 교차하는 지점들을 보려는 노력 역시 필요합니다."

이번에 진행한 두 가지 인터뷰를 통해서 '젠더'와 노동자 건강의 관련성을 지속적으로 고찰해나가기 위해, 그리고 '여성 노동'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해나가기 위한 관점들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노동안전보건의 활동을 '젠더'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되짚어보는 것, 그리고 노동안전보건 운동이 향후 고민해야 하는 다양한 의제들을 발견하는 작업을 연구소의 집중사업인 '여성노동자 건강권' 활동을 통해 풀어나가야 할 후속 과제로 남겨두며 글을 마친다.

 


 

200호 기획 4. 장애 운동이 제기하는 과제, 안전보건에서의 ‘정상성’을 바꿔내는 일 - 전국장애인철폐연대 정창조 노동위원회 간사, 정다운 활동가 인터뷰 / 2020. 10·11

[기획 -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마주침 ]

장애 운동이 제기하는 과제, 안전보건에서의 ‘정상성’을 바꿔내는 일 - 전국장애인철폐연대 정창조 노동위원회 간사, 정다운 활동가 인터뷰

박기형 상임활동가

<일터> 200호를 맞아, '노동안전보건, 사회운동과 만나다'라는 코너를 기획하였다. 이 코너를 통해, 연구소가 그간 만났던, 또는 앞으로 만나갈 사회운동의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노동안전보건운동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전망을 확대함으로써, 운동의 과제를 도출하고 다른 사회운동들과 공동전선을 만들어가기 위한 고민을 담아보고자 했다.

첫 번째 인터뷰에서는 장애운동과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접점을 찾아보려 했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아래 전장연)의 정창조 노동위원회 간사, 정다운 활동가를 지난 10월 8일 혜화에서 만났다. 장애운동에서 다시금 또는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장애인 노동권이 안전보건 영역에서의 건강하고 안전할 권리를 급진적으로 확장시키는 데 어떤 함의를 던져줄 수 있을지, 반대로 장애인의 노동권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안전보건의 쟁점들이 어떤 고민을 안겨줄 수 있을지 얘기를 나눠보았다.

장애인 노동권의 현주소

장애인 노동권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은 바로 고용이다. 전반적으로 고용률이 낮으며, 일자리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2019년 장애인 고용률은 34.9%로 전체 고용률 60.9%의 절반 수준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의무고용률 미준수 시의 부담금 수준이 높지 않아 부담금을 내고서 고용하지 않는 게 대다수다. 노동조건 또한 열악하다. 2019년에는 임금근로자 중 43.9%가 임시 일용직으로서 전체 인구의 임시 일용직 비중 31.4%보다 높다. 전문직, 사무직 숫자 적고 단순노무직(청소, 환경미화 등)이 많다.

정창조: 장애인에게 노동권은 역사적 맥락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장애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노동할 수 없다는 개념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죠. 자본주의가 형성되면서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과 노동할 수 있는 사람이 구분되기 시작해요. 하층민들을 대량 수용했던 구빈원에서도 중요하게 이뤄졌던 일이에요. 결국 장애인은 (임금)노동을 할 수 없는 자라는 관점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윤 창출을 할 수 없는 활동 전반을 비생산적 활동으로 규정하고, 생산적 활동을 하지 못하는 일들을 배제하는 현 사회의 구조를 문제 삼아야 합니다.

정다운: 이른바 '정상성'이라고 하는 것을 바꿔내는 일이죠. 특정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은 배제해버리는 것 말입니다.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이냐를 가르는 기준과 규범을 새롭게 정립하는 게 중요합니다. 임금노동,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되는 활동만을 노동으로 규정하고, 이 노동을 할 수 있는 신체만을 노동력으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장애인 일자리는 시혜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고용되더라도, '어차피 일 못 할 텐데'라는 식의 태도로 인해 부수적인 일밖에 받지 못하면서 주변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임금과 관련해 최저임금 적용 제외가 특히 문제다. 최저임금법 제7조에서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를 규정하고 있다. 평균적인 생산성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작업능력평가를 한다. 이를 근거로 2018년 기준 9413명이 제외되었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 대다수는 직업재활시설 노동자, 중증장애인이다. 이렇듯 노동할 능력, 신체에 대한 정상성 기준에 따라 장애인들이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 제도 폐지를 요구하는 퍼포먼스 중인 정다운 활동가(사진 맨 좌측).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노동시장에서 장애인들이 배제되면서, '산재는 우리에게 사치다', '산재라도 당해봤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장애인 노동자가 노동시장에 진입하더라도, 불안정한 일자리에만 들어가게 되고, 이로 인해 위험한 노동환경에 노출되기 쉽다. 그러나 그 실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정창조: 장애인의 일자리 마련 자체가 핵심적인 이슈다 보니, 진보적 장애인 운동 진영 입장에서도 산재 사망사고 등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고용촉진법 제26조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이 매년 장애인 노동자 산재 통계를 조사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요. 최근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노동자 산재 비율은 0.8%, 장애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승인율은 33.1%로 나타났어요. 그러나 굉장히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현황 파악 자체가 쉽지 않고, 산재 예방 활동에도 적극적이지 않은 상황입니다.

정다운: 더 중요한 것은 취약한 이들일수록 불안정한 일자리, 그로 인해 계속해서 위험하고 유해한 노동환경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사회전반적으로 노동권이 제대로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장애인 이동권 투쟁하면서 이런 얘기를 자주했어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저상버스를 도입하면, 모두에게도 이동권이 더 잘 보장된다라고요. 산업재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예요. 장애인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라면, 모두에게도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이지 않을까요?

장애운동에서 제기하는 산재보상제도의 지향점

정다운 활동가의 질문에 비춰볼 때, 일터에서 '안전'과 '건강'이, 우리가 주장하는 안전할 권리와 건강할 권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지 되물어 볼 수 있었다. 산재보상제도를 중심으로 보상·재활·치료에서 정상성이 작동하는 방식, 건강할 권리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잘 아플 권리'를 얘기하는 것의 의미에 관해 얘기를 나눠보았다.

정다운: 산재보상제도에서 보상기준을 살펴보면서, 장애인 등급제를 떠올렸어요. 둘 다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특정 척도를 기준 삼아 등급을 매기고 제도지원을 받을 대상자를 선정하는 걸로 보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빠지게 되는 것은 결국 정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관점과 필요가 아닐까요? 장애인의 경우 사회참여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요구가, 산재노동자의 경우 직장복귀 등의 다양한 회복을 위한 요구가 있을 거잖아요. 이들이 단순히 평가대상으로 남아있다면, 그건 불평등한 권력 구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대상이 아닌 주체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는 주체의 상태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그 상태를 우선 인정하고 필요한 것을 묻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것입니다. 산재보상제도에서도 노동자의 필요와 욕구, 나아가 참여에 기반한 정책이 지향해야 할 바라고 봐요.

정창조: 산재보상제도에서 얘기하는 회복에 이런 의미도 있을까요? 노동자들의 신체와 정신을 치료하여 기존의 생산성에 부합하도록 회복시키는 것. 물론 재활과 직장복귀 등 산재보상제도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노동자 입장에서도 자기 삶과 일터에서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욕구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재활 개념에 대해서는 달리 접근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장애 운동에서 재활은 주요 쟁점 중 하나인데요. 재활이라는 개념 자체가 개인을 정상적 노동력을 획득하지 못한 이를 정상적 노동력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의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재활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러면 또 다시 사회와 일터에서 배제되는 거지요. 이는 장애인이나 산재 노동자의 현재 존재 자체를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노동을 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류 장애인 노동정책이 개인의 기능 회복, 즉 자본 입장에서 생산성 있는 신체로 거듭나게 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여요. 이때 우리는 재활이 충분한지 아닌지를 누구의 기준, 어떤 기준에서 판단하는지를 문제삼아야 한다고 봐요. 자본이나 기업이 요구하는 노동력 상품으로서가 아니라, 상품화되지 않는, 심지어 상품화될 수 없는 그 존재 자체의 역량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장판(장애인운동판)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중증장애인 권리중심형 일자리 확장을 주장하고 있어요. 그 주장의 핵심은 어떤 신체적, 정신적 상태인지 관계없이, 각자의 상태를 인정하고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의미 있는 활동들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를 산재보상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재활이란 단지 개인의 기능 회복을 넘어서, 사회와 일터에서의 관계변화와 노동이나 건강, 안전에 대한 개념 변화를 중심에 두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중증장애인 노동권 쟁취를 요구하는 집회에서의 정창조 간사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잘 아플 권리'가 제기하는 질문

노동안전보건운동에서는 '건강할 권리'를 주장한다. 이때 늘 부딪히는 고민은 우리가 주장하는 건강과 안전이 '정상적인 신체와 정신', '평균적인 생산성을 제공할 수 있는 노동력'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다. 이를 풀어가기 위해, 최근 '잘 아플 권리'라는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장판에서도 건강을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에 관한 얘기가 활발하다고 한다.

정창조: 예를 들어, 만성질환자는 건강한 신체가 아닌가요? 주류 사회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건강한 신체가 아니겠죠. 그러나 100% 건강한 상태란 애초에 없다고 생각해요. 만성질환자나 장애와 질병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라고 할지라도, 당사자의 존재 차원에서 보자면 질병이나 장애와 잘 사귀어 가며, 사회에서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수 있고, 자신의 역량을 보존하고 확장해 갈 수 있다면, 곧 그것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픈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해 달라는 게, 결코 나는 '건강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이런 차원에서 국가나 자본이 요구해서 관리되는 건강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건강 개념에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 내지 질병과 건강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아무도 온전히 도달할 수 없는 '건강'을 추구하는 강박을 깨야한다는 것이지요. 전 이런 면에서 건강할 권리와 잘 아플 권리는 충분히 양립가능하다고 봅니다.

정다운: 건강에 대해서 사람들마다 다양하게 생각하잖아요. 안 아프고 안 다치는 게 우선 중요하지만, 아픈 상태가 지속된다고 한다면 의료 서비스를 계속해서 잘 보장받을 수 있는 게 중요하겠죠. 이렇듯 각자의 조건에 따라 다른 규정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장애인이나 산재 노동자처럼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그 상태로도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이를 사회적으로 마련해주는 것 말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정창조 간사는 장애인 노동권이 추구하는 방향은 일반 노동시장에의 편입만으로는 안 되고, 기존 노동체계 바꿀 수 있도록 다양한 노동형태, 방식, 과정을 바꿔내는 계기들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기존의 노동 개념, 정상 신체 등 정상성을 뒤흔드는 운동이다. 장애인과 산재 노동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일하고 활동할 수 있는, 그럼으로써 각자의 조건에 맞게 최대한 자기 삶의 역량을 발휘하는 세상.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을 장판과 노동현장에서, 부문과 전체가 교차하며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200호 기획3.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일터> 200호로 살펴본 한국 사회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 / 2020. 10·11

[기획 -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발자취 ]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일터> 200호로 살펴본 한국 사회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 

최민 상임활동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창립 초기부터 '노동자 정신건강'이라는 주제에 주목해왔다. 도시철도 기관사 공황장애 및 자살 사건, 청구성심병원과 하이텍알씨디 집단 정신질환 산재신청, 요양 중인 산재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 등으로부터 시작된 고민은, 일터괴롭힘과 가학적 노무관리, 자살 대국에서 과소평가되고 있는 노동자 자살 문제, 감정노동과 작업거부권 등으로 확장되어 왔다.

그 사이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정신질환 산재 신청 건수와 승인율이 증가하는 등 사회적 변화도 있었다. 최근에는 직장내괴롭힘과 감정노동과 관련된 중요한 노동법상의 변화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노동자 자살을 반복하게 하는 구조적 요인은 변화가 없고, 치료, 심리상담, 산재신청 등 개별적인 대응만 활발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200호까지 <일터>가 다뤄왔던 노동자 주요 이슈를 훑어보면서, 노동자 정신건강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를 돌아보고, 향후 과제를 짚어본다.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의 정신건강
 

노동자 정신건강과 관련한 문제의식은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에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일터 초기에 소개된 노동자 자살은 주로 산재 요양과 관련된 것이었다. 다쳤지만 산재를 신청하지 못하거나 승인을 받아도 불충분한 요양으로 요양 중, 혹은 회복되지 못한 채 일터에 복귀한 후의 자살을 꾸준히 소개했다. 사실 <일터> 발간이 시작되기도 전인 1999년 이상관 투쟁이 있었다. 1999년 대우국민차 창원공장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쳐 산재로 요양하던 20대 청년 노동자 이상관은,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도 요양을 종결하라는 근로복지공단 직원의 종용을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IMF 사태에 따른 근로복지공단의 예산 절감 방편으로 세워진 '산재보험급여 거품 제거 대책'의 희생양 중 하나였다.

당시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155일간의 농성 투쟁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 시민사회단체와 현장 노동자, 의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연대했다. 이 연대투쟁 과정에서 산업재해, 산업안전보건, 산재추방운동이라는 말 대신 노동재해, 노동안전보건, 노동안전보건운동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상관의 죽음은 끝내 산재로 인정되지 않았고, 책임자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도 자리를 보전했다.

하지만 이 투쟁으로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가 위기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산재 요양 중 이와 관련하여 발생한 정신질환이나 자살의 경우 산재로 인정되는 건이 늘었다. 2005년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요양 중 발생한 우울증은 업무상 재해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일관된 판단을 내리고 있었는데, <일터>에서는 산재요양 과정 중 발생한 우울증이 산재라고 인정한 법원 판결을 소개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산재 요양 노동자 자살이 지속되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2003년에서 2014년 사이 업무상 사고를 당해 산업재해보상보험 요양급여를 수급한 15~79세 노동자 약 77만 명 중 2796명이 2003년에서 2015년 사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들 산재 노동자의 자살 사망률은 전체 경제활동인구에 비해 2.21배 높게 나타났다. (Hye-Eun Lee, Inah Kim, Myoung-Hee Kim, Ichiro Kawachi. 2020."Increased risk of suicide after occupational injury in Korea." Occupational & Environmental Medicine, BMJ Journals.)

사고 당시 임시직에 종사한 노동자는 상용직보다 자살 사망률이 더 높았고, 특히 남성 산재 사고 노동자의 경우 장해가 발생하지 않은 노동자가 중증 장해를 앓는 노동자보다 자살 사망률이 더 높은 역설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장해가 없는 산재 사고 노동자는 장해등급 1~3급의 중증 장해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연금을 받지 못하고 계속해서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처지에 놓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산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 개입뿐 아니라, 산재 사고 노동자들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회복하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논문의 주저자인 이혜은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이메일을 통해 "산재 요양 중 자살이 산재로 인정된 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렇지만 정작 산재 노동자의 자살을 예방하는 노력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향후 산재노동자 자살의 구체적인 경로 파악과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 "장해 수준과 상관없이, 오히려 장해가 없는 산재노동자들의 자살률이 더 유의하게 높았다는 점"이 연구의 중요 결과라며, "산재요양이 종결되어 산재보험의 경제적 지원이 끝나고 산재 이전보다 소득이 줄어든 경우에 대해 특별히 대책이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열차를 운영 중인 지하철 기관사. 위 사진은 일터 통권 12호(2004.07) "스크린 도어로 기관사 정신건강을 보장할 수는 없다"에 수록되어 있다.

도시철도 기관사 이야기

일상적 노동환경의 문제로 발생한 최초의 집단적인 정신질환 직업병 사례로 <일터>가 주목한 것이 도시철도 기관사들의 공황장애와 자살이었다. 2003년 당시 서울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던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기관사 2명이 연달아 자살했다.

당시 도시철도노동조합 승무본부 사묵국장이었던 윤성호 기관사는 "처음부터 정신건강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접근했던 건 아니었다"라고 기억한다. 처음으로 자살이 연달아 발생한 2003년은 노동조합 집행부의 대폭 물갈이가 있던 해였다. 선거운동하던 중 기관사 한 명이 자살했고, 당선되고 새로운 임기를 준비하던 중 다른 한 명이 연달아 자살했다. 두 명이 연달아 이런 일을 당하자, 뭔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1~4호선을 운영하는 1기 지하철에서는 자살하는 노동자가 없는데, 도시철도에서만 기관사가 자살한다면, 노동환경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

당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공유정옥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정신질환도 직업병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안내해줬다. 새로운 노동조합 집행부의 첫 활동이 되었다. 도시철도는 지하철공사에서 분사하면서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가 만들어져 있었다. 거기에 혼자 전철을 운전하며, 서비스까지 담당해야 하는 기관사들은 책임감과 서비스 강요에, 자주 혼나고 억눌려 있었다. 연달아 발생한 자살이 노동환경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얘기하자 주변에서 그동안 참고 있던 울분을 터뜨렸다. 윤성호 기관사는 정신건강 문제는 조합원들에게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고 기억한다. 다들 공감하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개별 사건의 산재 보상을 청구했을 뿐 아니라, 서울도시철도공사 내 모든 기관사에 대해 직무스트레스와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정신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기관사가 다수 발견되었고, 먼저 공황장애를 진단받은 기관사들이 연달아 업무 관련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정신건강과 관련이 높은 요인으로, 운전 중 사상사고 경험 여부뿐만 아니라, 도시철도에서 운영 중인 1인 승무제도와 권위적인 인사노무관리도 문제로 지적됐다. 하지만, 사상사고를 줄이기 위한 안전문 도입과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관사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지 않도록 하는 등의 대책에만 합의할 수 있었다. 2인 승무 제도 도입은 결국 합의되지 못했다. 사상사고와 같은 극적인 단일 사건에 의한 정신질환 발생은 산재로 인정해도, '1인 승무' 등과 같은 일상적인 스트레스 요인에 따른 정신건강 영향은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여전한 관행이다.

그래도 안전문 설치는 인명 사고 발생 가능성 때문에 운전 내내 긴장할 수밖에 없던 기관사들의 압박감을 상당히 낮춰주었고, 승객 안전 측면에서도 진일보한 정책이었다. 그 후 일상적인 개선결과 평가와 피드백이 잘 이루어지지는 않던 차에, 2011년 다시 기관사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2013년 다시 기관사 전체를 대상으로 실태조사에서, 사상사고 이외에도 권위적 조직문화 등이 직무스트레스에 중요한 원인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위험군 노동자들을 잘 관리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 또한 확인하였다.

이를 교훈 삼아, 작업장 기반의 노동자 정신건강 관리를 위해 '도시철도 힐링센터'가 문을 열었다. 의사, 간호사, 임상심리사 등이 상주하며 개별 노동자 혹은 노동자 가족의 심리상담과 치료 지원, 조직 차원의 정기적인 직무스트레스 검사와 작업복귀 프로그램, 정신건강 증진 프로그램 등을 시행하고 있다.

도시철도공사의 정신건강 관리 프로그램 도입 과정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정신건강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에 일찍이 종합적 접근의 중요성을 깨닫고, 체계적으로 문제 해결을 도모하였다. 다음으로 긴 시간에 걸쳐 노동자 당사자들의 요구와 참여를 바탕으로 개선 방안 마련했다. 노동자 정신건강의 예방 및 치료에서 개별적이고 단편적 접근이 아닌 집단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 사례였다.

윤성호 기관사는 특히 "그전까지 노사는 항상 대립하는 상대였는데, 힐링센터가 세워지면서, 직무스트레스를 줄이고, 기관사를 보호해야 한다는 같은 방향의 고민을 노사가 함께 한다는 것이 신기한 경험이었다"라고 회상한다. 회사로부터 독립적이고, 단순히 심리상담뿐 아니라 전직이나 업무 복귀 상담까지 포괄하고. 직무스트레스 관리와 노동환경 평가까지 다면적으로 접근하는 힐링센터의 경험은 "웬만한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는 다 했으면 좋겠다"라고 추천한다.

일터괴롭힘에서 조직은 '중재자'가 아닌 '반성의 대상'

200호까지 발간되는 동안, <일터>가 꾸준히 다뤘던 문제 중 하나가 '일터괴롭힘'이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상사의 폭언에 의한 정신질환, 직장 내 따돌림 등 관련된 이슈가 간헐적으로 있었다. 여기에 '직장갑질', '일터괴롭힘'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면서, 지난 3~4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노동 인권 이슈가 되었다.

노동인권 의식이 매우 낮은 한국 사회 일터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가 '직장갑질'이라는 말에 열렬히 호응했고, 그동안 인식되지 않았던 다양한 인격 침해를 '일터 괴롭힘'이라고 명명함으로써 각자의 고통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억압적인 일터로부터 겪은 각자 경험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서사로 묶이면서, 한국의 노동현실을 드러냈다. 물론 처음에는 일부 자극적인 사건들을 중심으로만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직장갑질119 등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이뤄지면서 해당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조직적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리고 각 기관에서 일터괴롭힘 예방 가이드라인을 제정했을 뿐 아니라,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도입하는 등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 중 특별히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주목해 온 부분은 조직적 괴롭힘이다. 조직적 괴롭힘은 일터괴롭힘을 실적이나 성과 향상 수단, 노무관리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조직적 괴롭힘이 중요한 이유는 집단적 노사관계, 자본의 착취 구조와 형태 등이 노동자 정신건강에 매우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가학적 노무관리'라는 말에서도 드러나듯, 회사가 최고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또는 자본이 이윤을 내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노동자의 인격과 정신을 파괴할 수 있다. 조직적 괴롭힘에 주목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들을 드러내보일 수 있다.

일터 148호(2016.05) 표지 사진. 당시 <일터>는 유성기업 고 한광호 열사 투쟁을 "가학적 노무관리" 측면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조직적 괴롭힘의 역사는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청구성심병원,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등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억누르기 위해 일터괴롭힘이 활용된 사례들이 <일터>에 소개됐다. 2010년대 들어서는 KT와 유성기업의 노조탄압, 증권사의 저성과자 퇴출 프로그램 등의 사례가 부각되었다. 이러한 조직적 괴롭힘 또한, 한국에서 일터괴롭힘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데 있어 중요한 계기 중 하나였다.

조직적 괴롭힘은 개인 간의 괴롭힘보다 대규모로 이뤄질 뿐만 아니라, 훨씬 더 분명하고 악의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조직적 괴롭힘은 멀리 있는 일처럼 느껴지기 쉽다. 개인 사이에 발생한 괴롭힘에 비해 개선이 어렵고,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더욱이 문제로 인식되더라도, '노동자 정신건강 침해'라는 관점보다 '노사갈등', '공격적 경영' 등의 틀로 설명되기 쉽다.

예를 들어, 경비원에게 막말을 한 입주자는 손쉽게 가해자로 지목되지만, 은근하게 모멸감을 주면서 마치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것처럼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회사는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조직적 괴롭힘의 양상은 모호하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문제제기를 어렵게 한다. 오히려 자본과 기업은 이를 빌미삼아 피해자와 그에 연대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왜곡 또는 희석시킨다.

지난 2005년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의 집단 우울증을 둘러싼 말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노사갈등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업무상 질병이 아니지 않느냐는 반문과 아프다면서 어떻게 농성할 수 있냐는 비아냥거림 등등. 이러한 공격은 2016년 유성기업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광호 조합원의 산재 승인 후 회사가 승인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 소송을 거는 방식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이에 대해,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일터괴롭힘 대응과 심리상담을 오랫동안 지원해 온 충남 노동인권센터 노동자심리치유사업단 두리공감의 장경희 활동가는 "'조직'에 의한 구조적 괴롭힘은 비가시성 때문에 잘 조명되지 않는다. 사내 규칙과 규율 또는 제도, 경영자의 암묵적 메시지는 괴롭힘을 행사하는 도구이자 은폐하는 장치"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조직적' 괴롭힘과 '개인 간' 괴롭힘이 따로 있다고 얘기하는 것도 또 다른 은폐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노동자 개인들 사이의 폭력(괴롭힘) 역시, 그 배후에는 조직이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를 위한 연단은 확대되어야 하지만, 괴롭힘을 "개인 일탈로의 치부, 방관하면 괴롭힘은 재생산"된다는 것이 장경희 활동가의 주장이다. "조직이 더이상 중재자가 아닌 반성과 변화의 대상임을 제기"하고 조직 자체를 변화의 대상으로 삼을 때, 일터괴롭힘을 줄여나갈 수 있다.

노동자 자살, 죽음 너머 노동환경을 보라

이런 다양한 이슈들이 우리의 시야로 들어오는 과정에 대부분 '노동자 자살'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일터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적대적인 노동환경에 적응하려 애쓰다가, 아픈 몸을 이끌고 일해 보려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산재 요양 중 목숨을 끊은 이상관 노동자를 통해, 경제적 동기에 따른 산재요양 관리가 산재 노동자를 얼마나 압박하는지 드러났다. 도시철도 기관사의 잇따른 자살로 과도한 책임, 억압적인 조직문화 등이 집단적인 직업적 정신질환 발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스스로 세상을 등진 노동자들을 통해, 정리해고가 노동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이며, 그 과정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이 이 트라우마를 어떻게 확대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일과 관련한 자살은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노동환경으로 인한 침해를 드러내는 여러 징후 중 하나로 봐야 한다. 자살이 하나의 극단적이거나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라, '자살 정도는 돼야 주목하는 한국사회'가 극단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자살'의 경우에도 죽음 너머 노동환경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한 해에 1만 3000여 명이 자살하고, 2003년부터 자살예방대책을 운영하면서도, 그동안 정부의 자살예방대책에서 노동자는 빠져있다시피 했다. 1, 2차 자살예방정책에서는 '직업'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매년 발간하는 '자살예방백서'에서도 직업군에 대한 분석은 매우 단순하여, 직업군별 사망자수만 제시될 뿐, 사망률도 분석되지 않는다. 2019년에야 정부가 심리부검을 실시하고 경찰청 조사 기록을 확보하는 등 자살의 원인에 대해 심층적인 접근을 시작하면서, 노동환경에서의 스트레스가 자살 경로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중앙자살예방센터가 펴낸 '2018 심리부검 면담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자살사망자의 사망 전 스트레스 사건 중 정신건강 관련 문제가 84.5%로 가장 많았지만, 직업 관련 스트레스 사건이 68%로 뒤를 이었다. 직장 내 대인관계, 퇴직 및 해고, 이직 또는 업무량 변화 등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자살 경로의 시작점인 첫 번째 위험 요인에서 가장 빈도수가 높았던 것이 업무부담이었다는 점이다. 직접적인 자살 동기는 정신적 건강 때문일지라도, 그 정신적 건강 문제가 시작되는 요인이 업무일 수 있다는 얘기다. 자살 예방 정책에서 일터와 직무스트레스를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업무상 정신질환 연구모임'에 함께 하고 있는 류한소 사회학 연구자는 그래도 노동자 자살과 관련해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가 크다고 본다. "경비노동자 자살 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이 공분하거나 아이돌 가수가 자살로 사망했을 때 '이것도 산재'라는 기사들이 뜨는 것"을 보면서 이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노동자 자살은 구체적인 규모와 원인도 공백으로 남아 있다. "일단은 노동자 자살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통계들이 생겨야 한다. 심리부검 수준의 세부적인 통계가 생겨서 일단 이 사람이 왜 자살을 했는지 추정이라도 해볼 수 있는 국가통계가 있어야" 예방을 위한 활동도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감정노동은 '고객'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주'의 책임

일터가 200호까지 발행되는 동안, 노동자 정신건강 분야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가 있었던 주제가 감정노동이 아닐까 싶다. 2006년 3월 서비스연맹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진행한 감정노동 연구를 소개한 단신 기사로 <일터>에 처음 등장했던 감정노동은 콜센터 노동자, 판매 노동자, 교사, 금융노동자 등 다양한 노동자들의 문제제기로 이어졌고, 다양한 개선책도 제안되었다. 감정노동수당, 감정노동휴가 등의 보상 방법이 개별 사업장마다 시도되었다. 무엇보다 노동자가 고객의 과도한 요구에 시달리지 않도록 예방과 지지체계를 사업주가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산업안전보건법에 도입되기도 했다.

감정노동을 수행하던 노동자에게서 발생한 정신질환도 산재로 보상받게 되었다. 특히 콜센터 노동자가 먼저 통화를 끊을 수 있는 권리를 얻어낸 것은 서비스 노동, 감정노동에서 작업중지권이 어떻게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지 잘 드러내는 사례였다.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 투쟁의 성과로, 2014년 2월 콜센터 상담사들의 인권실태조사 이후 원스트라이크아웃 제도가 도입됐다. 성희롱, 언어폭력, 무의미한 통화 등의 악성 민원에 대해 상담사들이 안내 후 전화를 끊을 수 있게 하고, 곧바로 법적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조치가 중요한 이유는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정책 마련과는 달리, 노동자에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힘과 권리를 부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사례를 통해 작업중지권이 반드시 재래식 사고 위험이 임박했을 때에만 활용되는 권리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콜센터 노동자들의 전화 끊을 권리 보장은 쉬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 이후, 마스크공급, 방역수칙, 재난지원금 등 정부 문의가 폭주하면서, 업무량이 엄청나게 증가한 정부민원안내콜센터의 석소연 분회장은 "끊을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차단하겠다'는 멘트를 하면서 팀장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끊을 수 있다. 결국 허락받을 때까지, 욕설이나 고성을 다 들어야 한다"라고 토로했다. 감정노동자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높아졌다고 해도, 콜센터 업무의 특성상 결국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악성 민원인으로 돌변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이럴 때 스스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노동자의 자율권이다.

또한, 감정노동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성 노동자가 처한 특수한 위험 요인을 드러내는 데에도 기여했다. '타인의 감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은 꼭 임노동에서만이 아니라 많은 여성이 가족, 일터, 사회관계에서 일상적으로 수행하던 일이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감정노동에서 흔히 문제가 되는 '친절과 미소' 요구는 대부분 여성 노동자에게 집중된다. 이런 요구는 업무에 성별화된 역할과 지위를 부여하고,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여성 노동자를 성적 괴롭힘에 취약하게 만든다. 특히 야간에 안내하는 여성 상담원들의 경우, 더 자주 성폭력에 노출되는 것처럼 보인다. 석소연 분회장의 동료 중에도 심한 성폭력 발언을 들은 뒤, 자살 충동을 느껴 옥상에 올라가기까지 한 사례도 있었다.

고객을 상대하는 모든 업무가 노동자를 소진시키는 것은 아니다. 감정노동은 노동자의 감정조차 자본에 의해 어떻게 이윤 추구의 도구로 활용되는지를 보여주는 개념이다. 이를 염두에 둬야만,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회사와 자본은 노동자의 감정을 어떻게 착취하는가? 반대로 노동자의 권리와 주체성을 보장하기 위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가? 고객 응대 등의 업무를 하는 노동자에게 노동과정에 내재된 감정노동이 노동자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는 업무 자체에 더해,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작업환경은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진다. 감정노동과 관련된 과제가 '감정노동' 그 자체로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석소연 분회장에 따르면, 코로나로 문의 전화가 폭주하고, 이 때문에 쉬는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매달 통화품질평가(QA)를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감정노동을 진상 고객과 서비스 노동자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주의 관리 책임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KT 직장내 괴롭힘 보고서 표지 사진. 해당 사안과 관련해서는 일터 138호(2015.07)에서 "이것은 '학대'다 - 사례로 본 가학적 노무관리" 기사로 다룬 바 있다. 출처: KT 직장 내 괴롭힘 조사연구팀.



마음 다치지 않고 일하는 일터는 가능한가?

노동자의 정신질환과 자살은 이윤축적 과정에서 노동자를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안전할 수 없는 상태에 빠뜨리는 자본주의 자체로부터 비롯된다. 어떻게 마음 다치지 않고, 인간답게 일할 수 있을 것인가. ILO 산업보건서비스의 원칙 중 '적응의 원칙'이 있다. 일터의 속도와 질서에 노동자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몸과 삶에 일터를 맞춰가야 한다. 예를 들어, 근골격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량물을 줄이고,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정신건강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 각자가 더 참고 견디는 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유리멘탈인 사람도 일할 수 있는 일터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일터를 바꾸는 데 있어, 노동자 참여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신체건강이나 정신건강 모두 마찬가지다. 노동자가 참여할 때에야 제대로 문제제기할 수 있으며, 실효성 있는 개선방안을 제안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자들 스스로도 일터를 변화시키는 주체로 설 수 있다. 이를 위해 도시철도에서 노동자, 노동조합이 시도했던 것과 같은 다양한 경험이 공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산재보상과 관련해, 그동안 주로 정신질환 산재 승인률을 높이는 데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져 왔다. 앞으로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산재 요양의 질과 재활 과정, 노동자와 사업장 양 측면에서 업무 복귀를 위해 필요한 지원, 다른 질환 요양 중 발생하거나 악화되는 정신질환 문제 등이 폭넓게 다뤄져야 한다. 아직 연 200건이 채 되지 않는 정신질환 산재 신청 자체가 늘어나고,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받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 노동자 건강 영역에서도 정신건강과 관련된 관심과 요구는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류한소 연구자가 지적하듯이, 일과 관련된 정신질환이나 자살에 대한 관심이 "여러 방식의 심리치료, 다양한 힐링문화나 서비스 상품들, 하다 못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충동구매를 하는 '시발비용'에 대한 유행까지 또 다른 힐링상품에 대한 소비로 끝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각자 참아내거나, 각자 다른 상품을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일터를 바꿔내기 위한 시도를 월간 <일터>가 지속적으로 알리고 엮어나가기를 기대한다.

200호 기획 2. 노동시간과 노동자 건강 - 노동시간센터 활동을 돌아보며 / 2020. 10·11

[기획 -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발자취 ]

노동시간과 노동자 건강 - 노동시간센터 활동을 돌아보며

김형렬 노동시간센터

총 200권에 달하는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를 발간하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자신의 활동을 그곳에 담아냈다. 노동운동이자 노동안전보건운동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연구소가 노동시간에 대한 투쟁과 과제를 다룬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장시간 노동, 노동강도, 심야노동, 과로사, 임금과 노동시간 등 노동시간을 둘러싼 현장의 이야기와 변화, 법제도 개선을 위한 요구와 실천을 해왔다.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발자취" 기획의 두 번째 기사에선, 노동시간 문제에 대한 그동안의 문제의식과 주요한 실천들, 앞으로의 과제를 정리해 보고자 하였다.

과로, 삶과 죽음 사이의 줄타기

연구소에서 노동시간에 대한 접근은 과로사 사례와 현장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초창기 <일터>에서는 완성차 공장에서 12시간 맞교대, 한 달에 하루 쉬며 일하는 노동자, 야간조 근무 때 주당 64시간 노동이 이루어졌고, 1년에 4일 쉬고 361일 일한 노동자의 사례를 소개하였다.

한 회사에서 1998년부터 2002년 사이에 59명의 노동자가 과로사에 해당하는 뇌혈관, 심장질환으로 진단을 받거나 사망한 통계를 제시하였다.¹) 부당영업을 강요하는 등의 직무 스트레스와 과로로 사망한 학습지 교사, 인력감축으로 노동시간이 증가하고, 노동강도가 증가하여 사고로 이어졌던 철도 노동자의 죽음을 이야기했다.²)

우리나라는 1953년에 근로기준법을 제정하면서부터 1일 8시간 노동제가 도입되었고, 주당 기준 노동시간은 1953년에 48시간으로 정한 이후, 1989년에 44시간, 2004년에 대기업부터 40시간으로 단축되어, 2011년에 5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에게 주당 40시간이 적용되었다. 그럼에도 법에 존재하는 1일 8시간, 주 40시간 노동은 노동시간특례제도와 같이 수많은 예외조항을 담아 다수의 노동자에게 이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전국학습지산업노조(위원장 이소영) 주최로 6월 26일(토) 오후 2시 울산대공원 동문에서 열린 ‘고 이정연 교사 추모제’. 일터 통권 13호(2004.08) 특집 <과로사 대응,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다룬 바 있다. 출처: 참세상

밤에는 집에 가서 자야 한다

밤에는 집에 가서 자야 한다. 병원, 경찰, 소방 같은 야간에 불가피하게 일해야 하는 공공영역을 제외하고 생산을 목적으로 반드시 야간에 노동해야 하는 경우는 없다. 야간노동이 심장질환, 수면장애, 소화기 장애, 심지어 호르몬 교란을 일으켜, 유방암, 전립선암, 대장암 등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노동자 건강을 위협하는 야간노동을 생산을 목적으로 꼭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반인권적이다.

<일터> 통권 30호에서는 "노동안전보건투쟁, 이렇게 나아집니다. 4대 실천의제를 중심으로"라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4가지 실천의제 중 "교대제로부터 생명 지키기-심야노동 철폐"를 첫 번째 실천의제로 제시하였다. 당시의 문제의식은 교대제를 없애는 것까지는 어려우나, 생산을 이유로 24시간 운영하는 제조업의 질서를 노동자 건강권을 근거로 심야노동을 제한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여러 완성차, 부품사들의 심야노동을 줄이는 주간연속2교대제 전환으로 이어졌다.

"심야노동 철폐는 교대제로부터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는 첫 발걸음일 수 있다. 물론 심야노동 철폐는 노동자의 몸과 삶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일 뿐이며, 그것이 곧바로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질을 보장해 주거나 자본의 이윤율에 타격을 주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심야노동 철폐는 교대제 문제의 근본 해결이나 완벽한 대안일 수는 없지만, 중요한 시작임은 분명하다.

특히 완성차와 조선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국의 제조업 체계를 고려한다면, 앞으로 상당한 범위의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서비스업에서도 심야노동을 확대시키고 있는 최근의 흐름을 본다면, 심야노동 철폐는 24시간 노동하는 사회를 구축하려는 자본의 시도에 맞서는 투쟁의제로 적극 발전시킬 문제라 하겠다."³)    

반쯤의 성공, 주간연속 2교대 전환
  
심야노동을 없애기 위한 현장의 투쟁이 진행되었다. "노동시간 연장 없는, 실질임금 삭감 없는, 노동강도강화 없는 주간연속2교대"를 주장하였고, 실제 "두원정공"은 이를 실현시켰다. 점심시간이 포함된 하루 8시간 노동,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오후 4시부터 밤 12시까지 근무하는 주간연속2교대를 2010년에 실시하였다. 주간연속2교대와 함께 월급제도 시행하였다.

교대제 변화 이후 노동자들의 건강 수준의 개선이 보고되었다. 교대제 개선 6개월 후와 1년 6개월 후에 두 차례 설문조사를 했다. 삶의 질과 노동의 질이 좋아졌다는 노동자가 많았다. "교대제 개선 전에 비해 수면의 질이 좋아졌다"라고 응답한 노동자들이 6개월 후 60.4%에서 1년 6개월 후 69.6%로, "노동시간 단축으로 근무 피로도가 줄어들었다"라는 노동자들은 70%, 78%로, "자신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횟수와 시간이 늘어났다"라는 노동자들은 64.5%, 67.8%로, "퇴근 후 집안일을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라는 대답은 75.9%, 82.8%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라는 대답은 57.2, 66.9%로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적인 변화가 확대되었다.
  
대표적인 완성차 회사들은 2012년부터 주간연속2교대 근무로 전환이 이루어졌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연구소는 노동시간 연장 없고, 실질임금 삭감 없고, 노동강도 강화 없는 교대제 변화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시간제 임금체계로 인해 발생하였던 장시간 노동으로 유지되던 실제 임금의 감소가 있었고 자동화와 비정규직 확대, 라인의 재배치 등이 이뤄졌다. 명확한 정량화는 어려웠으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 노동강도가 강화되었다. 주간연속2교대로 전환되었지만, 야근과 특근 또한 여전히 남아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에 노동시간센터에서는 2015년 8월호 <일터> 특집 기사를 통해 부품사들의 교대제 전환 문제를 다뤘다. 임금삭감 없고 노동시간 연장이 없는 교대제 변화를 만드는 대신, 실질적인 노동강도 증가를 받아들였던 완성차 방식의 교대제 전환을 다른 사업장에도 도입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자동차 부품사의 경우에는 이미 상당한 노동강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완성차 회사에서의 교대제 전환 방식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것은 아닐지, 적정한 수준에서 노동강도 증가를 제한할 수 있을지 등 면밀한 검토가 필요했다.

"야간노동의 단축 효과가 예상했던 것보다 미미하고, 토요일, 일요일 특근이 다시 시작되는 등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가 크지 않은 불완전한 변화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일부 사업장에서 교대제 변경과 함께 노동 강도의 증가가 있거나 예측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임금 감소에 따른 조합원들의 반발도 있었다. 완성차 공장의 교대제 변화 과정에서 발생한 이와 같은 문제는 예측했던 문제이거나 얻은 성과의 크기에 비해 작은 문제라고 판단하는 관점이 있다.

또 한 측면으로는 이러한 문제와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야간노동 철폐를 만들어나갈 기획과 현장 통제력이 충분치 않다는 비관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동차 부품 사업장의 주간 연속 2교대로의 전환은 임금, 노동 강도, 고용(비정규직 확대)의 문제와 연동되어 몇 가지를 양보하거나 맞바꾸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임금의 유지를 위해 생산물량을 더 늘리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변화가 단위 사업장에서 고립되어 진행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이에 부품사들의 주간연속2교대 이행 실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이행 과정에 대해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즉, 이행의 과정에서 임금, 노동강도, 고용의 문제가 어떻게 논의되고 결정되었는지, 조합원을 설득하는 과정은 어떠했고, 사측의 대응과 투쟁 방향을 설정해 가는 과정은 어떠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이러한 확인과 평가를 통해, 향후 주간연속2교대뿐 아니라 이후에 벌어질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한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기초 자료를 만들고자 하였다.”4) 

주간연속2교대제 전환은 부품사에게도 노동시간 단축의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냈다. 절대적인 노동시간의 감소는 그 자체로 긍정적일 수 있었고, 이로 인한 건강 수준의 향상도 일부 가져왔다. 다만, 자본의 공세 역시 거셌다. 숨은 여유율을 찾아내어 실제 노동강도를 높였고, 현장에서 '물량과 임금의 연동'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계속해서 심었다. 교대제 전환을 통해 노동의 몫과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되찾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음을 깨닫는 계기였다. 생산력의 발전만큼 노동시간, 노동밀도를 감소시키는 싸움을 해내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한계였다고 할 수 있다.

교대제 개선이 가져온 일부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현장 대응의 문제를 짚어내고자 한 것은 노동시간 단축과 심야 노동의 철폐는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장의 힘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면, 더이상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절실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터 통권 32호(2006.05)에 수록된 만평. 당시 제조업 현장에서는 노동강도를 낮추기 위한 일상활동으로 맨아워(M/H) 투쟁이 진행되었다. 출처: 선전위원회

노동시간센터 만들어지다

2012년 연구소 창립 10주년 준비를 하며, <노동시간센터>를 만들기로 결의하였다. 연구소 초기부터 가졌던 노동시간, 심야노동, 노동강도의 문제를 노동보건운동의 주요한 문제라고 인식하였기에, 현장에 기반을 둔 실천적인 연구와 정책대안을 만들고, 현장에서 실천과 연대를 하고자 하였다. 조직 형식은 연구소 내에 위치하지만, 노동시간센터 회원은 개방된 형태로 연구소 회원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를 보장하였다.

현장 노동조합 활동가, 학계(사회학, 직업환경의학, 사회복지학 등), 사회단체 활동가, 학생 등 다양한 분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앞서 언급한 부품사 교대제 전환 관련 연구, 책 발간 사업('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굴뚝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보이지 않는 고통'), 정책연구활동(산재보험연구, 최저임금제, 직업성정신질환연구, 과로사 기준 마련), 현장 연구(택시노동조건 실태연구, 사무금융 노동자 직무스트레스 연구) 등을 실시하였다. 매월 공개토론회를 통해 다양한 노동시간 관련 주제를 다뤘다.

제대로 된 과로(사) 인정기준을 마련해야
  
노동시간센터에서는 과로의 인정기준, 질적인 기준의 예시를 만들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법원판례, 질병판정위원회 사례검토를 통해, 과로의 기준이 되는 노동시간 길이를 낮추고, 과로의 질적 기준을 다양하게 제시할 것을 요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대법원에서 업무상 이유로 고객과 잦은 술을 마셔야 했던 노동자의 사망을 직업병으로 인정한 것이 최초의 과로사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늘어나자, 1995년에 노동부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직업병 목록에 뇌혈관 심장질환을 포함하게 되었다. 2004년에 2천 건 이상이 직업병으로 산재승인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2007년 이후 직업병 인정기준의 변화가 생겼다. 2007년 이전에는 "업무수행성"이라고 해서 일을 하던 중에 뇌출혈이나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질 경우에 자동으로 직업병으로 인정하는 기준이 있었으나, 2007년 이후로는 작업 중 발생한 사고라도 업무관련성이 없다면 직업병으로 인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새로운 기준의 적용은 객관성, 과학성, 근거 중심 등을 강조하며 산재승인이 더욱 어려워지는 현상을 낳았다. 그 결과, 2007년 이후 직업병으로 인정되는 과로사의 사례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이후 만성과로를 발병 12주 평균 60시간으로 정하는 변화와 2018년 이후 12주 평균 주당 평균 52시간으로 과로의 기준을 정하는 변화가 있었다.

과로라고 하면 노동시간 길이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에 더해, 단위 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노동의 양을 나타내는 노동밀도 (노동강도), 직무스트레스, 교대제 등이 과로를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직무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사례로 갑자기 업무량이 늘어나는 상황, 일은 그대로라고 해도 일을 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경우, 과도한 책임을 부여받는 경우, 새로운 부서로 옮겨 직장 적응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 직장에서 집단 따돌림을 경험, 직장 내 구조조정에 의해 심한 고용불안을 경험, 잦은 지방 출장, 기한이 정해진 프로젝트의 참여, 회사 내 과도한 경쟁구조 등을 들 수 있다. 야간노동을 포함한 교대근무를 하는 것도 과로를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직업병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그 원인을 찾아 예방하려 하지 않는다. 과로에 의해 사망하는 노동자들이 직업병으로 인정되기 위한 연구와 기준마련이 중요한 이유다.

또, 다시 과로의 현장이

기술 및 산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노동의 형식과 내용에서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다시 과로를 이야기해야 하는 현장이 넘쳐나고 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택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문제는 주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은 전통적인 임노동 관계만을 보호 대상으로 삼고 있는 법제도에서 배제되어 있다. 이처럼 법제도가 변화하는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면서, 노동권과 사회보장의 사각지대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주류 산업으로 급속히 등장하고 있는 IT,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과로 또한 앞으로 드러내고 해결해야 할 과제다.

"넷마블 설문에서는 흥미로운 질문이 포함돼 있었는데, 한번 출근해서 회사에 머물렀던 최장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이었다. 놀랍게도 전체 응답자의 30%가 36시간 이상 회사에 머물러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퇴직자의 40.1%였고, 현재 재직 중이라는 응답자 중에도 21.4%로, 현재 재직 중이라는 응답자로만 좁혀 봐도 5명 중 한 명은 회사에 36시간 이상 머물러봤다는 얘기다."5)

나아가 버스 노동자의 과로는 노동자 건강과 시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 놓여 있는 문제이다(근로시간특례제도에서 노선버스가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장시간 운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집배 노동자의 과로와 이로 인한 사망 또한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경기 시내버스 노동자들은 하루 15시간 이상 운전하는 경우가 전체의 95.7%나 차지하였다. 또 경기 시내버스 노동자들의 주당 운전시간은 56시간 이상이 76.3%였고, 72시간 이상도 4.9%나 됐다. 경기 광역버스도 장시간 운전에서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경기 시내와 경기 광역버스 노동자들은 격일제 운전이 기본이나 한 차량당 2명의 기사가 배치되어 있지 않아, 실제 하루 15시간 이상씩 3일 연속 근무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기본임금이 적어, 적정임금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이런 장시간 노동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용하고 있었다.6)

플랫폼 노동, IT,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뿐 아니라 버스, 택시, 집배, 보건의료,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 이르는 전통적인 산업의 노동자들에게도 장시간 노동, 과로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노동시간이 일부 줄었다고 하지만, 기술의 발달에 힙입어 자본은 노동자들의 노동밀도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노동과정을 통제·관리하고 있다. 택시노동의 사납금 제도, 버스 노동자들의 저임금 민영 구조, 집배, 보건의료 노동자들과 같은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의 공공지원 부재 등 각종 현안에 대해서 현장에 기반한 대안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출처: 우정사업본부

노동시간 단축, 노동강도 저지 투쟁은 노동자 생존과 건강권의 문제

연구소는 지속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일자리 창출 프레임으로 보는 것의 문제를 지적해 왔다. 노동시간을 일자리 창출로 연결 짓는 '노동 경제학'이 아니라 노동시간의 사각지대에서 허덕이고 있는 이들을 바라볼 '노동 인간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노동강도를 통해 무한 이윤을 축적하려는 자본의 시도를 비판하는 실천들이 요구된다.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 나누기가 아닌 노동자 삶의 문제, 생존과 건강권의 문제다. 주간연속2교대제의 문제를 건강권 중심으로 파악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노동시간 단축분만큼 임금을 보전하기 위한 연장근무, 특별근무 비중을 높이고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노동강도를 높이는 방향이 전개되었다. 지난 투쟁을 돌이켜 볼 때, 완성차에서부터 기형적인 주간연속2교대제를 막아내지 못하면서, 부품사로 내려가면 갈수록 노동자들은 높은 노동강도를 견디며 일하게 되었고, 이제 부품사 노동자들에게는 자본에 더 양보할 노동강도가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 이르기도 했지 않았는가.

노동안전보건운동은 지난 노동운동이 생산력의 발전만큼 노동시간 단축을 노동자의 권리로서 쟁취하지 못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결과, 노동강도는 올라가고 고용은 이뤄지지 않는 구조가 재생산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리고 앞으로도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평등하고 자유로운 노동의 출발점이자 지향으로 삼아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삶이 우선되는 세상으로의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

노동 유연화뿐만 아니라 노동시간 유연화도 심화되고 있다. 이는 산업구조의 측면에서 플랫폼 노동의 등장과 연관된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등이 이뤄지면서 재택근무가 확산되는 등 주춤했던 노동 유연화 논의가 다시금 활발해지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로 경기침체, 고용불안까지 촉발되었다. 현 상황을 돌이켜 볼 때, 앞으로 세워나가야 할 노동안전보건운동, 노동시간센터의 전망은 다음과 같다.

시간제 저임금 구조에서 비롯된 생활임금 유지를 위한 장시간 노동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현장의 노동강도를 평가하여 과도한 노동을 막아야 한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휴게시간을 확대함으로써,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의 통제권과 여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한 과제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심야노동, 교대제, 장시간 노동은 앞으로도 지속해서 대응해나가야 할 과제다. 동시에 저임금 (초)단시간 노동, 과로 자살, 플랫폼 노동 등은 새롭게 쟁점을 만들어가야 할 주요 의제들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보건의료 노동자, 운송업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노동시간 특례제도(근로기준법 제59조)의 폐지와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권 및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은 긴급하게 개입해야 할 사안이다.

이러한 장단기적 과제를 놓고서, 날카롭게 문제 제기를 하고 사안별 대응을 이어나가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기 노동의 주인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다양한 현장연구와 노동강도 저지 투쟁이 더욱 힘차게 이뤄져야 한다.


1) 일터 통권 2호(2003.09), 기획1, "노동강도 강화, 그 삶과 죽음 사이의 줄타기 - 현대자동차 생산공장 사례를 중심으로.", 김봉길(현대자동차민주노동자 투쟁위원회), p.14-18

2) 일터 통권 3호(2003.10), 기획2, "철도의 안전사고, 노동자 몇 명 구속되면 해결될 수 있을?", 손미아(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준)연구위원/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p.16-19

3) 일터 통권 30호(2006.03), 특집. "노동안전보건투쟁, 이렇게 나아집니다 - 4대 실천의제를 중심으로.", 공유정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p.12

4) 일터 통권 132호(2015.08), 특집. <노동시간을 둘러싸고 계속되는 싸움>, "주간연속 2교대 시행 현황과 교대제 변화의 영향", 김형렬(노동시간센터(준) 회원, 가톨릭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p.30

5) 일터 통권 158호(2017.03), 연구 리포트, "게임개발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실태.", 최민(상임활동가), p.25

6) 일터 통권 144호(2016.01), 연구 리포트. "장시간 버스 운전, 운전노동자의 건강과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 - 버스 운전노동자의 과로 실태와 기준 연구.", 이이령(회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직업환경의학과), p.25

200호 기획 1. 근골격계 직업병과 근골유해요인조사, 노동자가 현장을 바꾸는 무기?! / 2020. 10·11

[기획 -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발자취 ]

근골격계 직업병과 근골유해요인조사, 노동자가 현장을 바꾸는 무기?!

푸우씨 상임활동가

들어가며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을 끊임없이 괴롭혀왔던 질환이 있다. 바로 '근골격계 질환'이다. 살아가기 위해 어느 누구든 몸을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사람의 신체를 구성하는 근육, 뼈, 인대, 신경조직 등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병증은 그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왔다. "아이고, 삭신이야", "젊을 때 너무 고생해서, 일찍 골병이 들어서 그래"와 같이 사람들은 이 질환을 '삭신이 아픈 병', '골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이제 포털 사이트에서 '근골격계 질환'을 검색하면 페이지 가득히 다양한 내용이 나열된다. 뉴스란에는 체중 증가와 비만이 근골격계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건강 상식을 담은 기사도 있고, 다양한 근골격계 질환에는 도수 치료가 근본적인 치료법이라며 이를 시행하는 병원을 홍보하는 기사도 눈에 띈다. 이렇듯 '근골격계 질환'은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입에 잘 붙지 않고 낯선 질환일 수도 있지만, 포털 사이트에서 누구나 손쉽게 주요 질환, 증상과 일반적인 특징, 치료방법과 전문 치료기관을 알 수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질병 중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근골격계 질환이 사회화된 배경에는 IMF-구조조정을 거치며 분출된 노동자들의 역사적인 투쟁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근골격계 질환'이 노동자를 병들게 하는 '가장 흔한 직업병'이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노동강도를 낮추기 위한 현장개선이 동반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3년에 한 번씩 정기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찾아보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지만 말이다.

감히 말하자면, '근골격계 직업병'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창립하게 된 배경이다. 이를 현장에서 제기하며, 노동자의 직업병으로 조직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결집하여 연구소가 결성됐다. 그만큼 200호를 맞이하는 <일터>의 현재까지, 주요하게 다뤄지고, 언급된 노동자의 직업병이기도 하다.

작업대 앞 두원정공 노동자들. 출처: 금속노조 두원정공지회, 일터 통권 1호(2003.08) 수록.

근골격계 질환은 어떻게 직업병이 되었나?

"지난 2002년 초 비 내리는 새벽 거제 옥포 매립지에 허리, 어깨, 팔, 다리가 아파 버스에 오르던 노동자들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근골격계 직업병으로 판명난 노동자 중 회사의 압력과 회유 속에서도 30% 정도인 76명의 노동자가 근골격계 직업병으로 집단 산재요양에 들어갔고, 전원 산재 인정을 받았다. 사측에서는 노동자들이 심하지 않은 증상을 침소봉대한다고 하며, 일을 하기 싫으니까 노동조합의 힘을 빌어 산재에 들어간다는 말이 나돌았다. 예전에 유기용제에 의한 직업병이나 망간중독증처럼 한 번 스쳐가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2002년 7월에는 한라공조 11명, 카스코 등 32명, 11월에는 대우상용차 27명이 집단 산재 요양에 들어갔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삼호중공업 33명, 두원정공 21명, 대한이연 10명의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 요양 투쟁을 시작으로, 풀무원, 도시철도, 철도, 현대자동차, 쌍용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업종을 초월하여 여러 지역의 사업장에서 근골격계 직업병에 대한 집단 산재요양 및 노동강도 강화저지 투쟁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 일터 통권 1호(2003. 08), 기획2, "근골격계 직업병의 현황과 실태", 고상백(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준) 연구기획실), p.18

연구소가 창립을 준비하던 시기에 작성된, 위의 <일터>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근골격계 질환'은 2002년 대우조선 노동자들을 필두로 한 2003년 금속제조업 노동자들의 연이은 집단요양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직업병'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한국통신 전화교환원, 현대정공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 집단요양이 없었던 바는 아니지만, 2003년을 정점으로 진행된 금속제조업 노동자의 집단요양 투쟁은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특정한 직업군에서 근골격계 질환이 발견되거나 전문가들에 의해 밝혀진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이 현장조직화를 기반으로 "허리 아파 어깨 아파 사업주가 책임져라", "노동자가 철인이냐? 근골격계 대책 마련하라!", "아프나? 치료하자! 힘드나? 쉬었다 하자!"를 외치면서, 자신의 망가진 몸과 훼손된 신체를 '증거'로 내세워 이것이 직업병임을, 문제해결이 필요함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근골격계질환이 주요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1997~1998년 IMF-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대량의 정리해고가 횡행하던 노동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산 자'와 '죽은 자'로 분류되어 공장 밖으로 밀려나가는 것을 지켜봤던 노동자, 동료들이 잘려나간 그 자리가 하청,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일자리로 채워지는 것을 지켜봤던 노동자, 누군가 떠난 몫까지 고스란히 할당되어 강화된 노동강도를 감내하며 생존을 위해 버텨왔던 노동자들. 바로 이들이 당시에는 생소했던 근골격계 질환을 '골병'으로 명명하였다. 나아가 집단요양 투쟁이라는 방식으로 운동을 조직했고, 근본적인 대책으로 '노동강도 강화 저지'를 내세웠던 것이다.

이러한 금속제조업의 집단요양 투쟁은 조직노동자들에게 '근골격계 질환이 직업병이며, 산재신청을 통해 치료받을 수 있다'라는 걸 널리 알리는 계기이자, 이 직업병의 원인이 노동강도 강화와 같은 집단적 요인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를 통해 '일하면 아픈 게 당연한 것', '나이 들면 아픈 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나이, 키, 몸무게, 취미생활 등 개인적 요인이나 중량물 취급, 불안정한 작업자세, 진동 등 개별적 작업요인만이 아니라, 근골격계 질환의 집단적 발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노동과정의 조건(노동강도, 노동조건, 노동시간, 직무스트레스 등), 집단적 요인이 가장 밑바탕에 있음을 알게 됐다.

또한, 이 과정을 거치며 노동조합은 현장 조직화와 현장 개선의 소중한 경험을 축적하게 됐다. 당시 집단요양의 목표를 단순히 요양 승인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요양자만이 아니라 현장조합원 전체가 자신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현장 투쟁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노동자들의 투쟁은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의 도입'이라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국가가 주도하는 근골격계 질환 예방제도인 '유해요인 조사'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유해요인조사와 관련한 법제도적 근거는 2003년 하반기 당시 산업안전보건법 제24조(보건조치), 산업보건규칙 제9장을 신설함으로써 새롭게 마련됐다.

그림. 연도별 업무상 질병자와 근골격계질환자 수. 출처: 직업성 근골격계질환의 발생 현황과 특성, 2010, 김규상·박정근·김대성,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발빠른 자본의 대응, 제도 안에 갇혀버린 노동자의 '골병'

앞서 밝혔듯이, 2003년 당시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의 법제화는 금속제조업 노동자들이 전개한 집단요양 투쟁의 성과였다. 하지만 동시에 더이상 투쟁이 진전되지 않는 한계 속에서 형성된 타협의 산물이기도 했다. 자본과 정부는 당시 확산 일로에 있었던 근골격계 투쟁을 효과적으로 막아서기 위한 제도적 수단이 필요했고, 노동 측에서는 직업병 인정 투쟁을 넘어 노동강도 저하 및 현장 통제력의 복원으로까지 투쟁을 확장하지 못하는 한계에 봉착한 상황이었다.

당시 자본은 근골격계 투쟁이 '아픈 노동자의 치료'를 넘어 실질적인 '구조조정 저지, 노동강도 강화 저지' 투쟁으로 나아가는 데 두려움을 느끼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었다. '골병'으로 아프지 않은 현장을 만들겠다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적정 인력과 생산량 등에 대한 현장통제를 요구하는 운동으로 진전될 성격을 띠었기 때문이다. 자본은 이 투쟁이 이윤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자신들의 고유영역인 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임을 재빠르게 간파했다.

이에 반해, 노동조합은 근골격계 투쟁이 가지고 있는 '노동강도 저지' 투쟁으로서의 본질적인 의미를 되새기는 데 한 발짝 늦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 전면에는 '노동강도'의 문제를 내세웠으나, '당장 직업병으로 인정받아, 치료라도 받는 게 어디야'라는 인식들이 도처에 자리잡고 있는 현실도 존재했다.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집단요양 투쟁을 전개한다는 자체만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사측의 유무형의 탄압, 건강진단 감시, 조사요원 사업장 진입방해(진입시 형사고발), 요양신청 철회 압력, 잔업특근 불이익, 계약직의 경우 계약만료, 폭력행사, 교섭 전면 거부 등등은 노동자가 기계 부품만도 못하다는 것을 뼈 저릴만큼 느끼게 한다. 그런데 집단요양 투쟁을 하고 그 다음에 해야 할 것을 보자면 이것이 일도 아님을 알게 된다." - 2) 일터 통권 1호(2003.08), 기획1,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 어디를 향하여 갈 것인가", 김재광(노동강도강화저지와 현장투쟁승리를 위한 전국노동자연대), p.15

 
이 투쟁을 조직하는 과정은 2003년 8월호(통권 1호) <일터>가 당시 분위기를 전하고 있듯이, 대단한 각오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치료를 받는 데 있어, 자본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것이 노동자에게 유리하다는 현실적 판단을 하는 경우들도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에 따라 법 조항과 노동부의 11개 근골격계 부담작업 고시 등 세세한 부분을 규정하는 데 있어 일부 마찰이 있기는 했으나, 현재 수준의 '절충된 타협안'이 도출되었다.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는 당시의 자본과 노동의 힘관계를 반영한 제도적 산물이었으며, 빠른 속도로 법제화되었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다른 제도와 비교했을 때, 유해요인조사는 (정기 유해요인 조사뿐 아니라 질환자 발생에 따른 조사, 새로운 공정 도입에 따른 조사 등에서) 노동조합의 참여와 개입을 상당히 허용하였다. 그렇기에 현장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유력한 기제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다소간의 '긴장감 있는 절충안'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집단요양 투쟁이라는 형태로 제기되었던 근골격계질환 산재 인정 요구는 승인율의 변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투쟁 이후, 근골격계질환 승인율은 그 투쟁의 파고만큼이나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IMF-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시기인 1998년에는 업무상 질병자 중 근골격계 질환자는 124명(7%)에 그쳤었다. 집단요양 투쟁이 정점에 이른 2003년도에는 업무상 질병의 4532(49.6%)명에 이르며 승인율도 93.7%에 달했다. 이후 근골격계 질환이 정부와 자본의 적극적인 관리하에 들어가면서 2005년 2901명(38.7%)까지 하락했으나, 이후 점차 회복되며 2008년 이후 현재까지 70% 내외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근골격계질환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 그만큼 산재 신청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근골격계질환으로 치료를 받는 데 있어서, 여전히 산재 승인이라는 장벽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제도화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의 현실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제도가 법제화된 이후, 총 6회의 정기 유해요인조사(3년마다 실시하는 정기 유해요인조사는 최초인 2004년, 2007년, 2010년, 2013년, 2016년, 2019년)가 이뤄졌다. 하지만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가 사업주의 의무로서 시행됨에 따라, 초기의 취지를 잃어버리고 형식적으로 시행하는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 현장에서 근골격계질환의 직업병 인정을 둘러싼 지형은 법제화 이전과 다른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조직화를 바탕으로 거리에서 분출했던 근골격계 투쟁은 개별 사업장의 담벼락 안으로 갇히고 말았다. 노동자가 주도권을 갖고 실시했던 현장조사는 회사와 이를 대행하는 전문기관의 손에 주도권을 내주게 되었다. 현장개선과 노동강도의 문제는 예방관리프로그램으로 봉합되며, 현장개선을 통한 예방의 영역으로부터 질환자 관리 및 치료의 영역으로 협소화되었다. 요컨대, 법제도의 틀 내로 운동이 포섭되어가면서, 노동강도 완화, 노동시간 단축, 노동자에 의한 현장 통제 등을 요구했던 정치적 투쟁으로서의 의미가 형해화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해요인조사는 현재 어떻게 실시되고 있을까? 이를 2019년 안전보건공단이 실시한 작업환경실태조사 결과에서 일부 확인할 수 있다.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조사는 5인 이상 제조업과 5인 미만 제조업 중 산재발생의 가능성과 위험도가 높은 업종 9개를 표적업종으로 삼아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제조업과 비제조업 중 유해·위험인자 다수 보유업종 13개를 표본조사한 것이다. 이 중 전수조사 대상인 10만 7665개 사업장 중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곳이 2만 7221개소(25.3%)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곳은 16.3%이며, 표본조사의 경우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한 비율이 전수조사보다 적은 7.6%로 그쳤다.

물론 이 자료를 통해서 더 자세한 현황을 파악할 수 없고 유해요인조사 실시 여부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가 3년마다 실시해야 하는 사업주의 의무로 제도화되었음에도, 시행하는 곳에 비해 실시하지 않는 곳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초기 취지가 퇴색되었다는 평가와 별개로, 유해요인조사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현재 정부 차원에서 실시율 자체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결국 법적 의무로 협소화되면서, 현장에서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할 내적 동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지, 돌아봐야 할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유해요인조사를 제대로 실시하도록 강제한다고 하더라도, 조사 자체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2019년 고용노동부의 산재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업무상 질병으로 치료를 받은 노동자의 67.2%가 근골격계질환으로 요양을 하고 있다. 이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비용은 상당히 크다. 유해요인조사를 통해 일차적으로는 산재 실태를 드러내고, 산재승인율을 높이는 데 일정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조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이를 넘어서 작업환경 개선 등 근골격계질환 자체를 예방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해요인 조사의 실시율이 낮을 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인간공학적 요인 개선 외에는 노동시간 단축, 교대제 전환 등을 통한 작업환경 및 노동강도 개선 논의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활용하여 노동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실시하는 현장조사를 통해 현장을 개선해가고 있는 금속제조업 현장의 모범사례들이 있다. 전문가들의 손에 맡겨져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진행하는 근골유해요인조사 방식(현장조사 시트 등의 개선)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객관적·과학적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는 인간공학적 평가 중심의 조사방식을 넘어, 수차례의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자의 현장 경험을 반영한 주관적 노동강도 평가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또한 노동자의 치료·요양 경험을 진단하여 질환자에 대한 조치를 개선하고자 한다. 그리고 조사결과에 근거한 개선조치를 목록화화고 이행현황을 점검함으로써 작업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해나가고 있다. 금속제조업 현장에서는 근골격계 문제를 사회화하는 '1라운드'를 거쳐, 본격적으로 현장에서 이를 둘러싼 현장개선과 노동강도의 문제를 둘러싼 '2라운드'를 치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최근 몇 년간의 노동조합 조직률의 증가와 함께 2000년대 초반 금속 제조업을 필두로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이 문제를 사회화한 것처럼, 학교급식, 마트, 청소, 건설 등 다양한 업종의 노동자들도 산재신청과 근골격계질환 현황 드러내기를 통해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다른 현장 곳곳에서도 '1라운드'를 본격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강도 완화 투쟁 중인 풀무원노조 조합원들. 출처: 풀무원 춘천지역 노동조합, 일터 통권 1호(2003.08) 수록.

유해요인조사 실효성 증진을 위한 개선과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가 예방을 위해 도입되었다는 본래 취지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보완되어야 할 지점들이 상당히 존재한다. 유해요인조사가 형식적 조사로 그치도록 하는 현실적 조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자 투쟁을 통해 제도변화를 강제해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당면한 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11개 부담작업으로 제한된 고용노동부 고시 기준의 폐기다.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는 11개 부담작업을 기준으로 평가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도입 당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아왔다. 제조업의 라인 업무나 조선업 등만을 기준삼았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업종과 작업의 비정형적인 업무는 반영되지 않는 점,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하여 여성이나, 장년 등 일터에서 일하는 성별과 연령 차이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 하루 2시간, 5kg 등 시간과 무게를 일률적으로 제시하여 마치 그에 해당하지 않으면 근골격계질환이 발생하지 않는 것처럼 규정하고 있다는 점 등을 현장 노동자와 전문가들이 지속해서 비판해왔다.

그러나 해당 고시는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대다수 사업장에서는 이를 기초로 본 조사에 앞서 예비조사를 실시하는데, 고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상당수의 작업은 아예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만약 본 조사에 포함되었다고 하더라도, 고시에 제시된 시간과 무게 등을 근거로 부담이 없는 작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따라서 고시 기준을 폐기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둘째, 유해요인조사의 내용이 인간공학적 평가로만 제한되고 있는 현실을 바꿔내는 일이다. 대다수 현장에서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할 때, 작업장 상황이나 작업조건 등 사업장 현실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를 수행하지 않는다. 단지 인간공학평가와 그에 따른 개선만 다루고 있다. 이는 근골격계질환의 주요 부담요인, 근본요인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인간공학평가 중심의 유해요인조사는 외부전문가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이로 인해 현장 노동자의 참여를 어렵게 만든다. 그 결과, 노동자가 현장조사의 주체가 아니라 조사 대상으로만 머물게 될 위험이 있다.

셋째, 유해요인조사가 근골격계질환의 예방에 있어 실질적 역할을 하도록 개선해야 한다. 이는 본래 취지를 되살리는 일이다. 예를 들어, 유해요인조사가 특정 평가로 제한되고 형식적으로만 시행되면서, 사업주에게 작업환경개선 조치를 요구해야 할 사항들이 '운동범위의 축소, 쥐는 힘의 저하, 기능의 손실 등'과 같이 노동자 개인들이 유의해야 할 사항, 개별적 조치 사항으로 협소해지고 있다. 또한 현장개선요구조차 '인간공학적으로 설계된 인력작업 보조설비 및 편의설비를 설치' 등 인간공학적 개선에 편중되어 있다. 또한 사업장 인력 대비 일정 규모 이상의 근골격계 질환자 발생 및 산업재해 인정 여부를 기준 삼아, '예방관리프로그램의 시행을 의무화'하고 있기에 배제되는 사업장들이 다수 발생하여, 보호·예방에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것

근골격계질환은 특정 업무, 특종 직군에게만 나타나는 질병이 아니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병에 노출될 수 있고, 누구든지 이 병의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 다만, 그 고통의 현실을 노동조합 등 조직적 운동을 통해 세상에 드러내 '직업병'임을 알리고 앞서서 대책을 요구하며 현장을 개선한 노동자들과 뒤늦게 이를 '직업병'으로 자각하고 현장 개선을 고민하기 시작하는 노동자들이 있을 뿐이다.

현재 '일하다 보면 아픈 게 당연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자각한 노동자들이 일부 조직되어 있다면, 여전히 대다수의 노동자는 '일하다 보면, 아픈 게 당연하다'는 생각에 머물고 있고, 자본은 이윤 축적을 위해 끊임없이 노동자들을 골병들게 하고 있다. 그렇기에, 근골격계질환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사회문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전통적인 제조업을 넘어 노동시장, 고형태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현실을 반영하여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대책이 적극적으로 수립될 필요성이 있다. 앞서 고용노동부의 11개 고시를 폐기할 필요성을 언급하며 지적했던 제조업 남성노동자에 국한된 범정부적 인식은 노동시장과 고용 형태 변화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미 노동시장은 전통적인 제조업으로부터 다양한 서비스직군의 출현에 따라 그 중심이 변화하고 있으며, 여성이나 고령 노동자가 고용시장에 진입하면서 단속적 노동, 비정형 노동, 불안정 노동 등이 지배적인 노동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이를 반영한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보호와 예방' 대책뿐 아니라, '치료와 재활'을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한편, 이러한 현실은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진행해 왔던 금속제조업 현장에서도 변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신규 고용이 창출되지 않는 제조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고령화는 매우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장년 노동자에게 적합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기준을 새롭게 마련하는 것이 더이상 미뤄져선 안된다.

마치며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노출되며, 고통받을 수 있는 근골격계질환은 한국 사회에서 역사적인 금속제조업 노동자의 투쟁을 통해 비로소 '직업병'으로 등장했다. 이후 이를 둘러싼 투쟁과 싸움은 그 진폭은 줄었지만, 다양한 형태로 반복·변주되고 있다. 근골격계질환은 일하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당신은 얼마나 인간적인 노동을 하느냐'의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우리 사회에도 끊임없이 되묻고 있다. '골병 들지 않는 일터', '인간다운 노동을 하는 일터'가 어떻게 가능하며, 그 기준이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느냐고 말이다. 그 기준은, 다른 무엇이 아닌 노동자의 몸과 삶이어야 하지 않냐고 말이다.

<일터> 통권 199호 / 2020.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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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평] 산재노동자, 일터로 돌아가는 길 / 2020. 09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꿀잠 이야기 / 2020. 09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꿀잠 이야기

권종호 회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이불 밖은 위험해

어느 날 저녁 여느 때처럼 7살 딸과 5살 아들이 자기들 방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둘이 장난도 치고 수다도 떨다가 몇 번 주의를 받고서야 잠이 들곤 하는 게 일상이라 그날도 그러려니 하고 아이들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데 갑자기 5살 아들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누나 때문에 나 꿀잠 못 자잖아~~”

적당히 주의를 주고 잠들게 하려던 나와 아내는 5살 인생의 뜬금없는 꿀잠 욕심에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어른들의 키득거림과는 달리 동생의 꿀잠을 위한 누나의 진지한 배려가 있었던 것인지 아이들 방은 이내 조용해졌고 누나 동생 모두 행복한 꿀잠에 빠져들었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도, 이불 밖 세상은 불이 꺼지지 않는다. 바로 옆에 있는 우리 아파트 경비실부터 골목 곳곳에 자리 잡은 편의점, PC방을 거쳐, 소방서, 경찰서, 병원을 넘어 밤새 돌아가는 공장들, 물류센터들, 이 많은 곳들을 사이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배달 노동자까지... 밤에는 꿀잠을 자는 것이 당연한 아이들에게는 생경한 세상일 것이다. 실제로 특수건강진단을 하며 만나는 야간 작업 노동자들의 잠 이야기는 아이들의 공감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힘든 이야기이다.

정상 수면 패턴과 수면 유지 장애

야간 작업 노동자들의 수면 상담을 진행하면서 자주 활용하는 그래프이다. 정상 수면 상태에서 깊은 잠 얕은 잠이 수 차례 반복되는 것을 잘 보여주는 그래프인데 이게 정상 수면이라고 하면 많이들 놀란다. 보통 깊은 잠 한 번으로 잠이 끝나는 줄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본인도 모르게 잠에서 깨거나 꿈을 꾸거나 하는 얕은 잠과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의 깊은 잠을 반복하며 신체적 정신적 휴식을 번갈아 취하고 한 번의 수면이 끝난다.

정상 수면 패턴

이러한 수면의 과정이 잘 이루어지면 한 번의 꿀잠을 잔 것처럼 수면이 이루어지지만 그렇지 않고 과정 중 나타나는 얕은 잠이나 꿈수면 중에 자주 깨고 다시 잠들지 못하게 되면 수면의 질이 매우 떨어지게 된다. 흔히들 불면증이라고 하면 잠들기 어려운 형태(입면 장애)만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잠이 들었다가 너무 자주 깨거나 다시 잠들지 못하고 아침까지 뜬 눈으로 지새는 형태(수면 유지 장애)의 불면증이 두 배 가량 더 많고 심한 불면증의 경우 이 둘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수면 유지 장애는 일반적으로도 흔하게 경험한다. 기분 나쁜 꿈 때문에 새벽에 깨거나 어렴풋이 깨는 느낌이 들어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이거나, 잠깐 화장실 가느라 깬 잠이 이런저런 스트레스 때문에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고, 코골이 때문에 수면 무호흡증으로 자주 깨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중간에 깨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도 몇 시인지 확인하려 시계를 보거나 굳이 눈을 뜨지 말 것, 실제 불면증이 아니라 원래 정상적인 수면의 한 과정으로 얕은 잠이 반복되는 것이니 스트레스 받지 말고 편안히 자신의 호흡에 집중할 것, 높은 온도, 밝은 조명, 소음, TV, 핸드폰 같은 수면에 방해되는 요인들을 최소화할 것 등을 권고하기도 한다.

낮잠은 밤잠이 될 수 없다

야간 작업 노동자의 수면 장애에서도 이러한 정상 수면 과정에서의 얕은 잠 패턴을 잘 알고 넘어가거나 일반적인 수면 환경을 개선하는 것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낮 시간의 생체 리듬은 깊은 잠을 유지할 수 없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기 때문에 낮잠은 근본적으로 편안한 잠이 될 수 없다. 실제로 10년 이상 고정 야간 근무를 하며 낮밤을 바꿔 생활하더라도 수면의 질이 더 나빠질 뿐 적응되지 않는다는 연구들도 있고, 특수건강진단을 통해 만나는 야간 작업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낮잠을 잘 수 밖에 없는 야간 근무 주간은 힘들어도 그냥 버티는 거지 편안한 잠을 기대할 수는 없다.

낮잠은 길어야 네시간, 아무리 깜깜하게 해놓고 귀마개를 해도 저절로 깨요’, ‘야간 출근 전에 한번 더 자려고 해도 잠이 안와요’, ‘심장이 요동을 치며 한번 깨버리면 다시 잘 수 없어요’, ‘야간 있는 주는 주중에 겨우 버티다 주말에 몰아서 자요’, ‘낮잠으론 제대로 못 자니 여기저기 아프고 그러니 더 못자고 악순환이에요

늘어가는 야간 노동, 잃어버린 꿀잠의 가치는?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 나온 외국인은 몇 년간의 한국 생활이 그립다고 했다. 돌아간 고국에서는 저녁만 되어도 문 여는 가게가 없다며 새벽에도 배달 음식을 시켜먹고 밤새 PC방과 노래방에서 놀 수 있는 한국은 최고의 나라라고 했다. 불과 1~2년 사이에 이제는 저녁에 인터넷 주문을 하면 새벽 배송까지 해주는 나라가 되었으니 더 좋은 나라가 되었을까?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낮잠은 마지못해 잠들 뿐 밤잠만큼 편할 수 없다. 늘어난 야간 노동의 양만큼, 우리가 누리는 편리만큼 누군가의 꿀잠은 사라졌다. 그런데 밤 시간을 활용하는 외연의 확장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생산성을 높여준 만큼, 잃어버린 건강한 수면의 가치도 평가되었을까? 그만큼 야간 작업 노동자는 보호받고 있을까? 한국의 밤이 활기찬 것은 그만큼 야간 노동을 쉽게 생각해서는 아닐까? 늘어난 야간 노동만큼 이제는 더욱 중요해진 꿀잠의 가치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회적 배려가 절실하다.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현장에서 전망을 찾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재현 노동안전보건부장 인터뷰 / 2020. 09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현장에서 전망을 찾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재현 노동안전보건부장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지난 7년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활동해오던 정재현 노동안전보건활동가는 지난 2월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로 거취를 옮겼다. 그리고 6개월이 흘렀다. 8월 24일 오후 프란치스코회관 산타미아노라 카페에서 노동안전보건활동가로 또 다른 전환기를 맞고 있는 그를 만났다.

노동자 건강권 운동을 시작한 계기

못 본 사이 얼굴이 더 작아졌다 했더니 예전보다 일은 줄었다며 반갑게 웃는다. 수다는 뒤로하고 인터뷰를 먼저 시작했다. 노안(노동안전)활동 8년 차를 맞은 그가 대학 전공과 무관한 노동자 건강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소위 운동권 학생이었는데 학교 다닐 때 노안활동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학생 때는 안전보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죠. 그러다 졸업을 앞두고, 선배로부터 반올림 자원 활동을 제안받았어요. 두 달간 반올림 상근활동가와 일정을 같이하며 피해자 가족도 만나고 활동도 알게 되면서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활동이고, 여성노동자의 문제이기도 해서 반올림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한노보연과 반올림이 사무실을 함께 사용했는데 연구소 활동가들도 자주 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연구소 활동도 접하게 되었어요. 그동안 익숙한 노조와 같이하는 활동이 인상 깊었고, 현장에서 꼭 임금만이 아니라 안전보건 활동을 오랫동안 해왔고 노안부가 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면서 관심 있어 시작하게 되었어요. 현장 활동 중에서도 또 다른 영역이나 의제가 있는 운동이어서 의미 있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부정은 긍정보다 강렬하다. 관심 있어 시작했고, 의미 있어 보람된 활동이더라도 어디서든 무슨 일이든 곤혹스러울 때는 있기 마련이다. 그동안 노동안전보건활동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한노보연에서 현장성, 계급성, 전문성이 있잖아요. 전문성이 제게는 화두였고 늘 마음의 짐처럼 있었던 것 같아요. 안전보건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애초부터 알았던 게 아니니 현장성이 있거나 전문직인 경우와는 다르게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워야 했어요. 현장 가서는 조합원들한테 '현장안전점검 최고 전문가가 누구냐, 현장에서 일하는 조합원 여러분들이다. 그래서 현장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여러분들이다'라고 말했지만, 정작 스스로는 위축되고 자신감도 부족했죠. 일례로 현장에 안전보건교육 갔을 때 사측 안전관리자들이 나이가 어리다고 깔보거나 어디 대학 출신이냐, 전공은 뭐였냐 질문을 받을 때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스스로 자신이 없어 지금도 잘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올해 방통대 환경보건학과에 편입해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잘 안 하게 되더라고요."

전문성은 기술 지식적 방법론에 지나는 것 아닐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급성이라 표현하는 일하는 사람의 관점이 아니겠냐는 질문에 연구소 상임활동가의 경험이 묻어나는 답변을 주었다.

"현장노동자에게 공감받는 연구를 책임 있게 해야 하고, 또 한 축으로는 노동조합과 사측 모두 설득할 수 있는 연구 활동을 해야 하니 무겁고 어려운 것이죠. 그렇지만 전문성이 가장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연구소 선배들을 보면 다 전문가잖아요. 자격증이 있어서가 아니라 노동자적 관점으로 현장을 볼 수 있어야죠. 현장활동가들도 몸으로 부딪치면서 산재나 노안활동 전문가가 되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연구소에서 전문성을 갖도록 이끌어주고,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던 것도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지난 2019년 인권재단 사람의 <일단, 쉬고> 프로젝트로 다녀온 뉴욕에서의 재충전 시간들. 출처: 인권재단 사람


활동에 대한 고민과 변화

지난 3월, 돌연 7년째 함께했던 한노보연에서 민주노총으로 활동을 옮겼다. 단체에서는 충족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노동조합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민주노총 활동에 대한 갈망이 있었을까? 솔직한 고민 지점을 듣고 싶었다.

"앞서 말씀드린 전문성이라는 부분, 또 하나는 현장의 안전보건활동이 활발하지 못한 이유인 것 같아요. 상근을 시작했을 때에 비하면 최근 사회적 관심과 인식이 많이 높아졌고, 언론에서 중대 재해를 다루는 관점이 달라졌어요. 운동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데 계속 반복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중대재해가 벌어지고 그걸 대응하는 활동, 사고가 나면 대책을 세우고, 현장에서 일상적인 노동안전보건활동이 잘 점검되지 않은 것 같았어요.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노동운동의 흐름 속에서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연구소 활동의 축도 현장과 같이하는 활동이 줄어들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 아쉬웠어요. 연구소 선배들이 현장과 같이 연구하고 투쟁으로 만들어왔던 경험이 저 때는 많지 않았거든요.

가령 연구소 신입회원을 보더라도 현장활동가보다는 전문가이면서 활동하고자 고민하는 분들의 가입이 많은 추세잖아요. 회원이 늘어 좋긴 한데 현장회원 가입률이 저조한 이유를 현장에서 확인하고, 잘 안 되는 과정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을까, 연구소 활동의 장점을 살려 현장과 더 잘 만나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죠. 지금도 그건 고민이에요. 연구소에서 받은 걸 잘 살려서 현장노안활동을 활성화하고, 이것이 연구소가 추구하는 현장노안활동을 만들어갈 수 있으니 연구소 회원들도 제 선택을 존중해줬다고 생각해요."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조직체계나 환경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적응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물었다.

"일단 여기는 100만 명의 조합원이 있는 곳이고 오랜 시간 동안 체계와 관행이 있어 제가 익숙해지면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뭘 하나 하더라도 공문이나 결재를 받거나 그런 것들이요. 그리고 예전에는 저를 보는 분들이 재현 동지 이렇게 불러주셨는데 여기에서는 노안부장 이렇게 불러주시니까 호칭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부를 때도 호칭을 잘 못 부른다든가 그럴 때 민망할 때가 있었죠."

바쁜 일정으로 정신없겠지만 현장을 그 전보다 많이 만나면서 이것만은 내가 지키겠다고 생각하는 노안활동가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여쭤봤다.

"적어도 현장에서 일하다 아프거나 다쳤을 때 조합원은 노조에 알리고, 노조 간부들은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화를 만드는 것 이것이 일단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그것에 대해 조직이 같이 고민하고 책임지고 모두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산재승인 여부를 떠나서 그런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 그리고 사실은 현장조합원 300명 있는데 한두 명 전임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노안부장 혹은 노안활동가에게 전가하는 현장 분위기는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같이 고민하고 같이 집행하는 구조가 되잖아요. 적어도 우리 현장에서 누가 죽거나 다치면 안 된다는 것을 조직 전체가 공유하고 그렇게 하기 위한 문화와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해요.

3~4년 정도면 공부나 활동을 통해 조금씩 알아 가는데 그때 집행부가 바뀌잖아요. 그래서 노안활동은 적어도 10년은 해야 한다는 긴 호흡으로 갈 수 있고, 조합도 그렇게 길게 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코로나19 때문에 더 안 되고 있는데 적어도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 안전보건교육은 꼭 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한 사항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향후 목표와 포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활동을 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이 많으실 거라 짐작되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현장이나 지역사회에서 필요성에 의해 준비하는 것을 아는데, 실제 현장의 요구는 어떠하고, 어떻게 조직하고 있는지 물었다.

"기업 살인법으로 시작해서 오랜 시간 요구해왔던 의제잖아요. 현장에서는 당연히 관심 있고, 건설노조의 경우 전태일3법 중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있으니까 적극적으로 받아 앉아 가자고 투쟁하고 있어요. 방식이 온라인 청원방식이잖아요. 건설노조는 9월 한 달간 모든 행사는 오프라인으로 하고, 이것을 진행한다고 하고 있어요. 21일대 국회 개원하면서 5~6월 농성 투쟁도 했고, 민주노총은 제정 원년으로 선포하고 코로나19로 어렵긴 하지만 반드시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전 조직이 가동되고 하반기 싸움을 준비하고 있어요.

전태일3법을 20만 명 조직해서 청원하는 것이 목표예요. 민주노총은 전태일3법 성공을 위해 실천단을 조직하고, 이들이 현장에서 20만 명을 조직하는 교육이나 총회, 집회를 통해서 입법 청원을 한다고 결의하고 선전 활동을 하고 있어요. 19대, 20대 국회에서 모두 발의를 했는데 국회 상임위에서 논의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10만 명을 모으는 게 쉽지 않지만, 국민적 여론이 있지 않으면 국회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목도해왔기 때문에 이번에 이런 방식을 선택하게 됐어요."

짧은 인터뷰 시간을 안타까워하며, 시민사회단체, 현장, 각 전문분야에서 활동하는 노안활동가에게 동지로서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했다.

"현장을 많이 가보자.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현장을 보는 것 자체가 배우는 게 많아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강권 활동에 대해 현장노동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현장 상황은 어떤지를 볼 수가 있어요. 건강권 현장 활동은 엄청난 정치적 문제잖아요. 자본 입장에서 안전보건활동은 규제고 귀찮은 것들이라 여기기 때문에 대립해야 하고, 현장에서 이런 것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읽을 수가 있고, 결국 안전보건활동이라는 것이 현장노동자적 관점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제도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서 현장에 가는 경험이 도움 되고 역량이 많이 쌓일 수 있어요.

조합원은 연구소 활동가라고 하면 다 알 것 같고, 질문하면 답을 바로 줄 거라는 눈빛을 해요.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요. 금속사업장은 연구소에서 경험이 많으니 조금만 노력을 기하면 답을 드릴 수가 있어요. 이전 사례들도 있고. 다른 업종의 경우 현장이 어려우니 경험이나 자료가 부족한데, 그런 현장과 활동을 너무나 하고 싶고, 막상 가면 제도적 한계가 있고 이분들은 기대하는 경우는 어렵지만, 현장보고 조합원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 활동하길 잘했다, 같이 바꾸고 싶다고 느끼면서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유예된 권리, 인턴의 ‘노동력’은 어떻게 활용되는가 - 인턴 노동자 A씨 인터뷰 / 2020. 09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유예된 권리, 인턴의 ‘노동력’은 어떻게 활용되는가 - 인턴 노동자 A씨 인터뷰

지안 상임활동가

인턴/실습 노동 형태의 일자리는 저임금·불안정 형태의 열악한 노동을 양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인턴/실습 노동의 가장 큰 특징은 '교육'과 '경험'이라는 명목 아래 열악한 노동조건이 특수한 것으로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경험'이라는 명목으로 어떻게 '인턴'과 '실습생'들의 노동력이 활용되고 열악한 노동조건이 정당화되는지, 이 기제에 대해 비판할 필요가 있다.

인턴, 실습 노동은 각기 형태가 다른 만큼 여러 층위의 문제가 섞여 있다. 먼저 기업이 정식 채용 이전에 '인턴' 기간을 두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 있다. 기업은 고용의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신입 직원을 '교육'의 명목으로 테스트하는 기간을 갖지만, 노동자에게 그 기간은 채용 확정 여부가 걸린 대단한 압박감이 된다. 한편, 인턴 일자리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값싼 노동력을 공급받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인턴으로 채용했으나 업무 분장은 정규 직원과 다름없이 이루어져 과로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었으며, 대학교 현장실습 경험을 통해서는 방학 기간 실습을 명목으로 무임·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경험을 듣기도 했다.

A씨는 영상계열 전공을 했던 2010년대 초반부터, 대학 졸업을 한 최근까지 여러 기업의 인턴으로 근무했다. 짧게는 2~3달부터 길게는 7개월가량에 달하는 이력들은, 기업에 입사하기 위한 '스펙'이란 명목하에 저임금·불안정 노동을 감당해온 시간이다. 지난 8월 31일,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A씨를 만나 인턴 노동 당시의 경험을 들어보았다.

인턴 노동의 양산, 어떤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는가?

이번 인터뷰를 통해 주목한 지점은, 인턴 노동자가 임금/노동조건 상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일터라는 공간 안에서 관계의 불평등을 경험한다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채용에 대한 기대감과 압박감을 가지고 인턴 일자리에 지원하는 노동자들은 일차적으로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일터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관계 속에서 인턴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일터란 어떤 공간일까?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인턴을 단기간노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는 기업의 전략을 어떤 식으로 비판할 수 있을까?

-여러 인턴 일자리를 경험하셨는데, 주로 어떤 업무를 담당하셨는지 소개해주세요.
 "최근 졸업하기까지 언론사, 엔터테인먼트사 등 다양한 업계에서 짧게는 2~3달 길게는 7달 정도를 인턴으로 일해왔어요. 기업마다 담당한 업무는 달랐는데, 주로 언론사에서는 제보 접수, 사실관계 확인, 보도자료 취합 등을 통해 초벌 기사를 작성해 담당 기자에게 넘기는 일을 했어요. 다른 업계에서도 유사한 형태였는데 정직원들이 기획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제반 작업이나 자료조사, 아이디어 기획 등을 했어요. 예를 들어 최근 신간 소설을 읽고 요약 분석을 해 자료를 넘기는 식이죠."

-근데 설명하신 업무들을 보면 상당히 중요성이 있는 구체적인 업무들이네요.
"맞아요. 그런데 반대의 경우들도 있어요. 특별히 인턴을 채용해서 어떤 업무나 교육하겠다는 계획 없이 막연하게 정부 지원금이나 기업 이미지를 목적으로 인턴 공고를 내는 기업이 많아요. 그러면 출근해서도 의미 있는 업무를 하며 경험을 쌓는 게 아니라 무작정 대기하면서 업무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거죠."

-인턴이라고 하더라도, 비용이나 인적 자원이 투여되는 일인데, 이런 식의 일자리를 기업에서 왜 만든다고 생각하시나요?
"인턴은 어차피 6개월 정도 출근하는 거고, 유튜브나 SNS 관리 등 정직원에게 시키고 싶지 않은 일들을 인턴에게 시킬 수 있는 명목이 생기는 거죠. 한 인턴이 일하다가 나가면, 다음 기수에 다른 인턴이 들어와요. 기업에서는 정규직 채용에서 가산점을 준다고 하지만, 그게 그렇게 의미 있는 점수는 아니에요. 심지어 어떤 대기업에서는 인턴 월급을 회사 포인트로 지급했어요. 그 회사 인턴 채용 공고에는 애초부터 임금이 아닌 '소정의 활동료'를 지급한다고 게재되어 있었어요. 인턴을 한 명의 노동자로 생각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겠죠."

-인턴 노동이 흔히 '열정페이' '무급노동'으로 이어지는 한 가지 이유는 교육이나 경험, 경력의 일환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이런 논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노동이라는 개념이 아주 이상하게 잡혀있다고 생각해요. 반드시 어떤 결과물을 계속 내고 있어야만 '노동'이 되는 건 아니에요. 업무를 기획하거나 구상하는 단계, 사전 조사하는 단계도 충분히 노동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에 필요한 시간이나 출근해서 책상 앞에 대기하고 있는 시간도 마찬가지예요. 경중을 따졌을 때 부차적인 '잡일'로 여겨지는 업무도 그렇고요. 인턴을 하러 가면, 첫 출근 날 책상 하나가 있어요. 그럼 앉아서 종일 대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럼 아무도 저를 찾지는 않지만, 누군가 인턴이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내 긴장이 돼요. 8시간을 꼬박 그런 상태로 있다가 집에 오면 퇴근을 하자마자 곯아떨어질 정도로 긴장이 심했어요. 이렇게 업무에 대기하고 있는 시간을 노동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럼 실무 경험이나 업에 대한 이해나 역량이 향상될만한 교육을 회사 차원에서 진행한 것이 있나요? 혹은 인턴들을 담당하는 직원이 따로 있다든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실무교육이라도 진행해야 최소한 인턴 기간은 교육/경험의 기간이니 임금이 낮거나 없어도 된다는 논리가 설득력이라도 있을 거예요. 제 경험상 인턴에게 교육이라고 할 만한 시간이 10%는 될까요? 하루 대부분은 눈치 익히기,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대기하는 거로 생각해요. 반대로 실무에 곧바로 투입하는 경우들은, 그 일에 필요한 체계적인 실무교육을 사전에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아니면 일을 주고 인턴 혼자 아이디어 구상해오고 알아서 해오라는 것밖에 되지 않아요."

-대부분의 일자리는 정규 노동시간 동안 진행된 거죠? 초과 노동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대부분 10시에서 7시까지가 정해진 업무 시간이었어요. 업계마다 차이가 있는데, 엄격한 마감 기한이 있는 언론사 같은 경우는 일이 못 끝나면 초과수당이나 이런 게 따로 없더라도 집에 가긴 어렵죠. 만약 주에 금요일이 마감일이라고 치면 최소한 2~3일 정도는 야근했던 것 같아요. 또 특이하게 언론사는 인턴 일자리가 24시간 운영되었어요. 방송국 스케줄 그대로 맞춰서요. 처음에는 낮에 일하다가 경력이 차고 나서는 심야 시간으로 옮겼어요. 야간에는 당직 기자들 뿐이라 훨씬 심적 부담이 덜하거든요."

-노동강도의 측면에서 인턴 일자리는 어떤가요.
"유튜브 매니지먼트에서 일하던 선배가 있어요. 지금은 과로로 너무 부담이 커 그만두었는데, 당시에 정식 채용 후에 3개월 인턴 생활을 거쳐 시험을 보고 정규직 전환이 되는 상황이었어요. 인턴 하는 동안 너무 극심한 노동강도 때문에 힘들어했어요. 3명이 한 주에 영상 2개를 업로드 해야 하는데, 그럼 촬영/편집 및 그래픽/미팅 작업이 각각 주에 2번씩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예요. 너무 작업량이 많다 보니 매일 자정에 퇴근해서 오전 6시에 첫차를 타고 출근했다고 해요. 일하는 방식도 편집해가면 자막 색깔, 배열 하나하나 지적을 당했는데 일을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로봇처럼 입력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과로로 신체 부담도 크고 탈모도 생겨서 결국 일을 그만두었어요."

유예된 노동, 유예된 권리

기업은 계속 사람을 바꿔가면서 '인턴' 형태로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받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노동자를 고용해 그가 업무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면 그건 신입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대신에 기업은 교육 기간을 명목으로 '인턴' 기간을 두거나, 특정 제반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목적으로 인턴을 뽑아 저임금·불안정 노동력을 활용한다. 그런 과정에서 실제 인턴노동자들이 호소하는 정신적 압박감이나 일터 내 관계에서의 낮은 대우의 경험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말씀하신 내용 중에 '눈치 보였다' '심기' 같은 표현들이 눈에 띕니다. 아무래도 일터 내에서 인턴의 위치라는 게 불안정하고, 또 관계 내에서 취약하다 보니 주변의 눈치가 많이 보였나 봐요.
"인턴 일자리가 채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 속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나 압박감이 있죠. 무슨 업무가 들어오면 빨리 잘 해내야겠다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요. 설사 당장 처리하는 업무가 없더라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덜덜 떨고 있는 거예요. 점심시간이나 퇴근도 옆에서 말을 해줘야 움직일 수 있고요. 막막하고 초조한 시간이었죠."

-여러 명을 인턴으로 뽑고 있는데,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서 경쟁해야 한다든지 이런 문제는 없었나요?
"저 같은 경우는 1곳을 제외하고 대부분 한 팀에 저 혼자 인턴으로 일한 경우였어요. 그래서 경쟁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는 혼자서 압박감을 오롯이 견뎌야 하는 분위기 속에 있었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지인 중에 대기업 인턴으로 취직한 경우가 있었는데, 몇천 명이 지원해서 인적성 검사, 1차 시험, 면접을 거쳐 최종 2명을 뽑았어요. 그리고 그 두 인턴은 6주 동안 인턴 생활을 거쳐 정규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었죠. 상관들도 "너희 둘 중 한 명만 될 거야. 둘 다 안될 수도 있어. 그러니 제대로 잘해야 돼"라고 했다고 해요. 저라면 정말 하루하루 숨이 막혔을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그해에 정규직 채용은 하지 않았어요."

-인턴의 경우에는 대개 4대보험 가입을 안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일하다 다치거나 건강 문제가 생겨도 사회보험을 통해 보상받고 치료받기도 어려운데요.
"인턴은 대부분 4대 보험 가입은 되지 않고 원천징수세만 떼요. 그리고 만약에 일을 하거나 출퇴근 시 다치는 일이 생기더라도, 보험의 유무를 떠나서 회사에 말하기는 거의 어려운 구조예요. 저 역시 직접적인 경험은 없지만 만약에 다치거나 아픈 곳이 있어도 알아서 처리했을 것 같아요."

A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떻게 인턴 노동자가 '노동'과 '노동이 아닌 것'의 경계 속에서 일터의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는지 들어볼 수 있었다. 특히 이 기간을 상당한 정신적 압박감 속에서 보내고 있다는 점이 이번 인터뷰의 중요한 주제였다. 인턴 일자리를 계속해서 채우는 노동력과 이 시스템을 악용하는 기업은, 실재하는 노동을 노동이 아닌 것으로 만듦으로써 노동자의 권리 또한 유예시키고 있다. 이 유예된 권리의 경험은 이후의 일경험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런 고민의 지점들이 단기적인 일자리에서도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배달의 나라,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 2020.09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배달의 나라,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최민 상임활동가

8월 13일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외면하는 노동부 규탄 기자회견"

한국은 유명한 '배달의 나라'이다. 한국의 택배 시장은 이미 2018년 5조 6600억 원, 2019년 6조 1400억 원 규모였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외출이 줄어들고 비대면, 비접촉 판매가 선호되면서,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음식 배달 서비스나 전통적인 '택배' 시장 모두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다. CJ 대한통운과 롯데택배, 한진택배 등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 택배 회사들의 2020년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모두 크게 증가했다. 택배 회사 호황의 그늘에는 택배노동자들의 과로가 있다. 택배노동자들은 2020년 상반기 동안 최소 12명이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근로복지공단의 '택배업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올해 1~6월 업무상 사망한 택배노동자 9명 중 7명이 과로에 따른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숨졌다.

그런데 정부 공식 통계는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올해 5월 기준 택배업 등록종사자 1만 8792명 중 1만 1348명은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 택배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가 아니라서 산재보험에 당연 가입 대상이 아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에 따라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비용을 사용자와 노동자가 절반씩 부담하고, 가입을 거부할 수도 있어, 실제로 산재보험 가입률이 이렇게 낮다. 8월 11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밝힌 과로사 사례 5건은 모두 공단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 공식 자료와 대책위가 파악한 내용을 합쳐, 올해 상반기에만 최소 12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택배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제한(주 40시간, 연장을 포함하여 52시간)을 적용받지 못한다. 1주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도 보장받지 못한다. 배달한 물량만큼 받는 수수료는 십수 년째 동결이어서 '자발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선택하게 된다. 2018년 한 연구에서는 택배노동자들이 하루평균 12.7시간, 월평균 25.6일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렇게 과로에 시달리던 택배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한 이후, 계속해서 모두 함께 쉬는 날을 요구해 왔다. 택배노동자들의 계속된 투쟁과 최근 과로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 증가, 코로나19 유행으로 더욱 격화된 택배노동자 과로 등이 배경이 되어, 한국에서 택배산업이 시작된 지 28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 8월 14일이 '택배 없는 날'이 되었다. 이어진 주말과 연휴로, 많은 택배노동자가 사흘간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8월 14일 노동조합은 성명을 통해 이번 '휴가' 덕에 8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간다, 이번 기회에 아픈 곳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다녀오겠다, 아이가 아파도 병원을 데려가지 못했는데 아이와 함께 병원을 다녀오겠다는 등 다양한 택배노동자들의 소식을 전했다. 평소 택배노동자들이 얼마나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하고 있는지 드러나는 장면이다. '택배 없는 날'과 같은 이벤트만으로 택배노동자의 과로 문제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정부도 나서는 듯했다. 고용노동부는 한국통합물류협회, 주요 택배사와 함께 '택배 종사자의 휴식 보장을 위한 공동의 노력 사항'을 발표했다. 이 선언에는, 매년 8월 14일을 "택배 쉬는 날"로 정하고, 택배노동자의 충분한 휴식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심야까지 배송을 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택배노동자가 질병, 경조사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쉴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앞으로 택배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선언에 대해 택배노동자들은 답답함과 분노를 표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은 8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사실상 이 합의문에는 재벌택배사들이 부담을 느끼거나, 재정을 투입해야 할 조항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택배노동자들은 과로를 줄이기 위해 '분류 작업 인력 투입'을 주장해왔다. 현재 택배노동자 대부분은 아침 일찍 출근해 3~4시간 동안 당일 배달할 물건을 직접 분류한 뒤, 배송 업무를 시작한다. 이 분류 작업은 사실상 무료 노동이다. 이를 전담할 분류 담당 노동자가 있으면, 택배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매일 2~3시간은 줄일 수 있다. 이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은 선언에 전혀 담기지 않았다. 노동조합은 단기적으로 코로나19 확산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분류작업을 담당할 인력을 투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택배노동자들의 요구로 8월 14일이 택배없는 날로 지정되었다. 출처: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노동조합은 택배노동자의 쉴 권리 보장 역시 공허한 선언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택배노동자가 필요할 때 쉬기 위해서는 직영 기사를 확충하거나, 대리점 간 연합형태로 상시로 대체 기사를 운용하는 등 실질적인 대체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선언에서 택배사들은 이런 구체적인 쉴 권리 보장 방안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택배노동자들이 과도한 물량을 소화하도록 만드는 낮은 수수료 역시 마찬가지다. 택배 박스당 평균 단가는 2000년 3500원에서 2018년 2229원까지 꾸준히 낮아졌다. 택배업체 간 경쟁 심화 때문에 운송 단가가 낮아지면서, 택배노동자의 수수료도 낮아졌다. 급여 대신 수수료로 수입을 얻는 대다수 택배노동자는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물량을 배송해야 하고,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적정 수수료 보장이 과로를 방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이유다. 

정부나 택배업계의 생색내기식 선언만으로 택배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을 막을 수 없다. 지난 8월 16일에도 혼자 물류 터미널에서 청소하던 택배노동자가 사망했다. 택배 산업이 더는 택배노동자의 희생을 거름 삼아 성장하지 않도록,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치들이 이어져야 한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현장의 목소리] 여성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와 불안정 노동 - 웹소설 작가 A씨, 전 여행업 인솔자 B씨 인터뷰 / 2020. 09

[현장의 목소리]

여성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와 불안정 노동 - 웹소설 작가 A씨, 전 여행업 인솔자 B씨 인터뷰

지안 상임활동가

코로나19 이후 노동의 위기는 비정규직, 그중에서도 프리랜서 노동자들에게 더욱 집중됐다. 서비스·돌봄·여행업 등 대면이 필수적인 특정 업종의 일자리들이 사라졌고, 그런 일자리들을 지탱하고 있던 프리랜서들은 해고도 아닌 방식으로 실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런 업종에서는 주로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문제를 '여성 노동'의 맥락으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런 업종들에 주로 여성이 고용되어 있었으며, 이들이 고용된 일자리의 형태는 불안정했을까. 전 사회가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사회적 재난이 사회보험 체계에서 배제된 노동자, 그리고 불안정 노동자에게 얼마나 불평등하게 집중되는지 목도하고 있는 시점이다. 즉 이런 일자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변화가 필요하다.

꾸준히 일해왔으나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 프리랜서 노동자의 인터뷰를 담았다. 한 축으로는 두 프리랜서 노동자가 코로나19 이후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도 주요하게 물었다. 여행업 종사자였던 B씨의 경우에는 코로나19의 확산 초기부터 무급휴직에 들어갔고, 그동안 저축한 자금과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한시적 정부지원금으로 버티다 현재는 전혀 다른 분야로 이직한 상황이었다. 한편 웹소설 작가인 A씨의 경우에는 코로나19 이후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는 두 자녀를 돌보는 데 필요한 시간이 급증했다. 결국, 일과 가사를 병행하며 총 노동시간이 증가했고, 그만큼 정신적 스트레스와 더딘 작업으로 인한 수입 감소를 우려하는 상황이다. 여성의 노동, 또는 여성의 노동시간은 코로나19 이후 어떻게 변화했을까.

출처: 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 노동자지회


'프리랜서' 자유로운 일의 형태?

- 먼저 두 분이 하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A씨 같은 경우는 전국여성노조 산하 '디지털콘텐츠지회' 소속 조합원이기도 한데요. 가입 계기도 궁금합니다.

A(웹소설 작가): 저는 5년차 웹소설 작가입니다. 처음으로 도전한 소설이 정식 출간으로 이어진 후로 웹소설 작가를 업으로 삼게 됐어요. 노조에 가입하게 된 배경은, 웹진/웹소설 플랫폼 기업에서 일방적으로 몇몇 웹소설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관련된 대응 활동을 시작했고, 그것이 노조 결성과 가입, 활동으로 이어졌어요.

B(전 여행업 인솔자): 저는 코로나19 이전까지 여행 인솔자로, 2년간 일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가이드'라는 직업은 익숙할 것 같아요. 인솔자는 패키지 상품 형태의 여행에 동행해서 가이드가 담당하는 업무 외 고객들의 각종 요구사항이나 불편사항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해요. 저는 주로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을 담당했어요.

- '프리랜서' 노동을 보통 시간 운용이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노동의 측면에서는 노동시간이 불규칙하다는 특성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런 측면에서 어떻게 일해 오셨는지 소개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B씨: 인솔자가 담당하는 역할은 출국 전부터 시작됩니다. 함께 동행할 고객들에게 주의사항과 안내 연락을 돌리죠. 출발 당일 공항에서 첫 미팅을 가진 후 탑승부터 시작해 전 스케줄을 동행하고 귀국 후 공항에서 헤어지는 일정이죠. 물론 경우에 따라서 여행이 끝나고 나서 발생하는 민원을 담당해 대응하기도 해요.

제 근무 스케줄을 놓고 보면 한 달에 9박 10일 정도의 비행을 2번 정도 나가고, 일정 사이에 3~4일 정도의 휴식기간이 있어요. 쉬는 날도 많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일하는 기간 동안에는 비행 중에도, 자다가도 민원이 발생하면 해결해야 하죠. 보통 오전 7시 정도부터 오후 9시까지 여행 스케줄이 이어지는데요. 9시 이후는 각자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해도 어떤 이슈가 생기면 바로 대응해야 해요. 한번은 고객이 새로운 객실을 달라고 해서 제 숙소를 사용하라 하고 로비에서 잔 적도 있어요. 여행 일정 동안은 사실상 퇴근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A씨: 저 같은 경우는 작품이 매주 월요일 마감이었는데, 1만 4천 자 정도의 분량이었어요. 거기에 휴재할 경우를 대비하여 비축분량도 마련해야 했고요. 일주일에 5일을 작업한다고 치면 하루에 무조건 5천 자 분량의 완성도 있는 글을 써내야 하는 거죠. 마감일 최소 2일 전에는 항상 밤샜던 것 같아요. 저는 당시 미취학 자녀가 있었는데, 거의 주말에 함께 있어주질 못했죠.

- 상당히 장시간을 일하시는 것 같아요. 거기다 웹소설 작가의 경우에는 마감 기간, 인솔자의 경우에는 여행 일정이라는 기간 내에 상당히 긴 노동시간을 소화해야 할 것 같은데요. 관련해서 경험하신 건강 문제들도 있었나요?

B씨: 남유럽 국가들이 보통, 스페인을 예로 들자면 비행시간만 13시간이 걸리고, 경유지를 거칠 경우에는 대기 시간까지 포함해 총 18시간이 걸려요. 한 달에 평균 2번 비행을 나간다고 치면, 편도로 4번을 비행하는 셈이죠. 비행기에서 문득 자다 일어나면 여기가 한국행인지 스페인행인지 헷갈린다고 하는 인솔자들이 많을 정도였어요. 뿐만 아니라 여행 기간 동안은 전용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하루 대부분이에요. 허리 등 근골격계질환 문제는 특히 취약할 수밖에 없죠.

A씨: 작가들의 경우에는 모이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어느 병원이 좋냐는 거예요. (웃음) 대부분 포털사이트에 올라가는 웹소설의 1회 분량이 5천 자 정도예요. 또 보통 일주일에 3번에서 많은 경우 5번까지 웹소설이 업로드되길 원하죠. 작업량이 너무 많아요. 하루 종일 앉아서 타자를 치고 있으니 손목이나 손가락 관절, 허리디스크는 정말 흔한 질환이예요.

- 이렇게 장시간을 일하는데 고용형태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점은 흔히 '프리랜서'라고 하는 용역계약 형태의 가장 큰 문제점이기도 한데요.

A씨: 보다 근본적으로는 레진코믹스가 일방적으로 연재중단 결정을 통보했던 사건처럼 하루아침에 일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어요. 아무런 고지 없이 작가들이 하루아침에 생계가 막막해진 상황이 발생했던 거죠. 저는 개인적으로 플랫폼의 '사과' 한마디만을 원했는데 끝까지 사과는 없었어요. 노동청이나 국회의원실을 찾아가도 노동자가 아니라 해결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오더군요.

B씨: 가장 우선적으로는 한 달에 9박 10일에 달하는 일정을 평균 2번씩 진행하는데, 이걸 마냥 프리랜서라고 볼 수 있을까요. 또 프리랜서로 일하는 인솔자들은 여행사 소속 인솔자로 일하는 경우와 급여가 거의 2배 차이가 나요. 임금뿐 아니라 일하다 보면 부당 대우도 워낙 많이 겪고요. 본사 소속 가이드에게 현지에서 성희롱을 당하거나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회사에 이야기하면 그냥 해당 가이드를 다른 팀으로 옮기면 된다는 생각이에요.

- 불안정한 고용뿐 아니라 회사와의 관계, 또는 회사 내 동료와의 관계에서도 불평등을 경험하신다는 거군요.

B씨: 맞아요. 고객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고객에 의한 민원이 3회 이상 접수되면 차후 계약에 지장이 있는 조항이 있어요. 그래서 많은 인솔자가 혹시라도 다음 일감을 못 받을까봐 고객이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성희롱을 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도 꾹 참을 수밖에 없죠.

A씨: 플랫폼과 작가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플랫폼이 홍보나 노출 지면 등 일방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매출에 대한 수수료 비율뿐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죠. 레진코믹스에서 문제가 되었던 '지각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플랫폼에서 메인에 노출해줄테니 정해진 수수료보다 더 많은 수수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요. 다른 플랫폼에 일정기간 동안 출간되지 못하게 요구하는 경우도 꽤 있어요.

여성노동자는 코로나19 이후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나 

- 특히 코로나19 이후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불안정 노동이 조명되고 있어요. 두 분은 이 시기를 어떻게 겪고 있으신가요.

B씨: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는 사무실에서 계속 재근무를 한다고 문자가 왔어요. 그래서 금방 상황이 종결될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장기화될 거라곤 생각 못 했죠. 모아둔 여유자금으로 몇 달을 생활하다 급하게 이직을 했어요.

A씨: 웹소설이라는 업계는 코로나19의 영향이 없을 수 있겠지만, 아이를 양육하는 입장에서 코로나19 이후에 정말 돌봄 시간이 많이 증가했어요. 그만큼 작업이 늦어지고, 늦어지니 인세가 안 들어오고.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는 것 뿐입니다.

- 여행업 인솔자 같은 경우는 워낙 이동이 많아서 안전사고도 잦을 것 같은데, '프리랜서'들은 사회보험 체계에서 배제되어 있어요. 그건 웹소설 작가들도 마찬가지이고요. 고용보험이 있었다면 B씨처럼 일감이 끊긴 노동자들이나, 레진코믹스 사태에서 잘린 작가들이 일단 실업급여라도 신청할 수 있었을 거예요. 말씀하신 건강 문제들의 경우도 산재보험을 통해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고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B씨: 이전에 이탈리아에서 이동 중 교통사고를 당한 인솔자가 있다고 들었어요. 여행 기간 중 다치거나 몸이 아픈 경우에는 일정에서 빠져서 알아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해요. 물론 숙소나 비용은 자부담해야죠. 일하다 사고를 당하신 분도 자비로 타지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고요. 현재로써는 해외에서 일하다가 다쳤더라도 회사에 얘기하지 못할 거예요. 오히려 일감이 끊길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고객들 같은 경우에는 1만 5천 원 정도 하는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지만, 인솔자들은 그마저도 없어요. 회사에서 따로 비용이 나오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보험사에서도 인솔자는 여행객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받아주지 않아요. 무보험으로 한달에 대부분을 타지에서 일하고 있는 거죠. 인솔자들은 이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일단 최대한 스스로 조심하려고 하죠. 이번 코로나19의 경우에도 제가 저축해둔 여유자금이 없었다면 몇 달 버티기도 어려웠을 거예요. 특히 부양가족이 있는 경우는 더 심각한 상황일 것이고요.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안전망이 필요합니다.

A씨: 최근 고용보험 개정안에 특례로 포함된 '예술인'에 웹소설 작가는 해당 안 된다고 해요. 고용보험의 보편적인 적용이 필요해요.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는 예술인들이 생계 위협 없이 일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를 두 명의 여성 노동자가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정기적으로 일해왔으나 '프리랜서'라는 노동의 형태로 인해 아무런 보장 없이 실직했다는 B씨의 경험은 왜 모든 노동자에게 사회보험의 권리가 주어져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A씨의 경우는 재택근무를 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증가된 노동시간, 임금 노동을 하는 시간 외에도 육아·돌봄·가사와 같은 것들이 포함된 '총 노동시간'과 같은 것을 사회적으로 고민해야할 필요성을 던진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프리랜서'라는 불안정한 노동 형태와 '여성 노동자'가 경험하는 노동과정의 어려움, 배제를 고민하기 위해 필요한 논의는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 걸까? 새로운 질문과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문화로 읽는 노동] 로봇이 간병을 한다면?! - 시네마틱드라마 <간호중>이 던지는 돌봄 노동의 미래 이미지 / 2020. 09

[문화로 읽는 노동]

로봇이 간병을 한다면?! - 시네마틱드라마 <간호중>이 던지는 돌봄 노동의 미래 이미지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출처: MBC 시네마틱드라마 SF8 - 간호중 스틸컷

근미래의 대한민국. 오늘날 누구나 예상하고 있는 것처럼 그곳에서는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고 있다. 그것도 돌봄 노동을 말이다. 로봇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돌봄 노동을 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이긴 하지만, 1999년작 <바이센테니얼 맨>으로부터 시작해서 원제 <Her>로 더 잘 알려진 최근의 <그녀>(2013)에 이르기까지 로봇이 인간의 신체를 어르고 감정을 매만질 수 있다는 상상력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영상 콘텐츠 플랫폼 웨이브에서 스트리밍하고 MBC를 통해 방영되기도 한 <에스에프 에잇>(SF8, 2020)의 첫 번째 이야기, <간호중>도 바로 이런 맥락을 담고 있다. 이 시네마틱 드라마의 기저에 깔린 질문은 매우 극단적이고 그런 점에서 또한 급진적이다. 식물인간 환자의 보호자가 생활고에 지쳐 극단적 선택을 하려 할 때 돌봄 로봇은 선택의 기로 위에 놓인다. 환자를 살릴 것인가, 보호자를 살릴 것인가. 이 질문을 짧게 번역하자면 이런 것이다. 생명의 존엄을 지킬 것인가, 차안의 고통으로부터 해방할 것인가.

돌봄노동의 디스토피아

돌봄이라는 사회적 행위는 우리 인간을 끝없이 시험 들게 한다. 사실 돌봄이 노동이 됐다는 것은 극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가사 및 육아와 더불어 친밀성의 행위가 임금노동이 된다는 것은 보기에 따라 거부감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본주의적 관계 바깥에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가 자본주의의 대표적 상품인 노동으로 변환된다는 것은 서글픈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또 하나의 상투어가 되고 있는 예술 노동이란 말에서도 마찬가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돌봄과 노동의 연결을 마냥 거부하기도 어렵다. 돌봄의 수행은 오랫동안 불평등의 지표로 자리를 잡아왔었다. 특히나 누군가는 공적 세계에서 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자아실현과 임금노동의 아슬아슬한 평형감각을 발휘할 기회를 얻고 있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현모와 양처라는 상징적 보상 외에는 아무런 대가 없이 돌봄의 독박을 쓰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해야 했다. 더군다나 오늘날처럼 성차에 관계없이 누구나가 평등한 개인이라는 이상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통용되는 세상에서, 현대인의 적정한 사회적 삶의 유지를 위해 돌봄이라는 행위는 개인 또는 가족의 구매력 수준에 따라 얼마든지 외주화가 가능한 세상이 되기도 했다.

<간호중>은 돌봄 노동에 대한 미래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임과 동시에 현재적 상황에 대한 철저한 은유이기까지 하다. 도시 곳곳에 요양 병원이 줄 서 있는 풍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상태에 대한 초점화인 셈이다. 우리는 이렇게 미래를 보는 구슬로부터 현재와 맞닥뜨린다. 섬뜩한 감정까지 자아내는 이 장면은 현실의 현재와 영화의 미래를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영상적 장치이기도 하다. 이미 우리는 노부모에 대한 가족 간병이 사실상 불가능한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은가. 효심이라는 오랜 가치를 통해 어떻게든 버티며 스스로를 돌봄의 주체로 갈아넣을 수도 있지만, 이런 선택은 부득불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요양 보호에 대한 자신의 전문성 부족에 가슴 아플 것이고, 누군가는 다른 삶에 대한 기회를 버리고 있는 것에 아파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환자와의 소통불가능성 때문에 지쳐 감정 조절조차 불가능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우리가 맞이할 디스토피아는 이와 같은 불행들이 켜켜이 쌓인 풍경과 다를 바 없다.

위주화되는 돌봄노동

간병을 비롯한 돌봄 노동이 외주화되는 것은 현대인들이 자신의 정상적 삶을 유지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출구일 수밖에 없다. 가족을 돌보는 것과 나의 삶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어쩌면은 상해의 충동에 빠지지 않는 것. 이런저런 조건들을 충족하기 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은 지극히 제한적이기 마련이다. 돌봄의 외주화. 그런데 이렇게 하면 환자가 느낄 불안감과 고립감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물론 기술이 발전한다면 내가 아닌 남이 가족을 돌보더라도 가족적 친밀성의 유지 강화는 보충될 수 있을지 모른다. <간호중>은 간병 로봇이 보호자 얼굴의 외피를 씀으로써 보호자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환자의 공포, 나아가서는 환자 가족에 대한 보호자의 도덕적 죄책감이 유예될 수도 있다는 흥미로운 상상력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해결 방식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한들 끝내 회피할 수 없는 문제가 다가오게 된다. 간병노동자를 통해서든 또는 가장 완벽한 로봇을 통해서든 돌봄의 외주화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간호중>은 어쩌면 가장 우울한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셈인데, 근미래의 대한민국에서 어떤 보호자들은 뛰어나고 사려깊은 고급형로봇을 구매할 수 있지만 다른 보호자들은 어쩔 수 없이 기본 기능만 갖춘 보급형로봇밖에는 구매할 수가 없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보호자의 금전 능력이 그 차이를 가져올 뿐이다. 우리는 환자 가족이 느낄, 또는 보호자 당사자가 느낄 서비스 편차와 상대적 박탈감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증발된 돌봄 노동의 온기

다른 하나의 문제는, 이것은 좀 더 근본적이기까지 한데, 아무리 그럴 듯하게 돌봄을 외주화하더라도 보호자 자신은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효심은 물론이거니와 가족적 우애를 성취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환자와 가장 밀접한 이는 어차피 간병 로봇이 아니겠는가. 혈연 가족에 관한 신화가 유지되는 한 돌봄을 독박 쓰거나 외주화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상적 가족 상황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런 상황에서 주인공 연정인처럼 생활고까지 겹쳐 더 이상 고급형 로봇을 사용할 수 없고 봉양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없게 된다면? 답은 뻔하다. 우리 인간은 더 이상 온전한 의미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을 유지할 수가 없다.

여기서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연정인을 보면서 간병 로봇 간호중은 또 다른 고민에 빠지게 된다. 사실 합리적 선택이라는 기준에서 본다면, 즉 환자와 보호자 사이에서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면 사실 살려야 하는 존재는 환자가 아니라 보호자가 아닐까라고 말이다. 이 지점에 이르게 되면 <간호중>은 단순한 SF를 넘어 한편의 사이코 드라마로 읽히기까지 한다. 실제로 감독 민규영이 로봇 간호중과 보호자 연정인을 배우 이유영의 12역으로 연출한 것도 바로 이런 측면을 내포한다. 극단적 선택과 합리적 선택이라는 두 가지 내적 고민이 일종의 거울 이미지처럼 외화되어 나타나는 장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수녀 사비나가 생명 존엄성에 위협이 되는 간호중을 처단하고자 할 때면 마치 초자아가 작동해서 패륜에 가까워가는 우리의 행위를 차단하고 심판하려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것이 패륜일지 아니면 합리적 선택일지는 불분명하다. 수녀에게 결박되어 포효하는 간호중의 외침은 어떤 식의 판단도 최선일 수 없다는 현재의 상황을 떠올리게끔 하기 때문이다. 간호중은 내지른다. “위선자, 알량한 자기 양심의 무게를 덜기 위해서 도움을 거부해?”

돌봄노동의 미래가 제기하는 질문

여느 로봇물처럼 이 작품 역시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관계되어 있다. 흔한 말처럼 우리는 인간은 가축화되고 동물이나 사물은 인간처럼 취급되는 세상, 나아가 인간이야말로 비인간적이고 로봇이 오히려 인간적일 수 있는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인간다운 삶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구한다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간호중>이 이와 같은 내면적 갈등에 대한 형상적 외화이자, 우리가 현재 직면하는 곤란들에 대한 일종의 은유적 시도라는 점이다.

이렇게 불행이 다가오는 순간들에 맞서, 우리들 중 대다수는 알량한자기기만으로 내면의 목소리 중 몇몇을 억압하면서 위태위태하게 현재와 미래를 버텨나갈지도 모른다. ‘나는 효부, 효자, 효녀니까 버틸 수 있어!’라든가, ‘나의 행복이 부모의 행복이니까 날 이해해주실 수 있을 거야!’라든가, 그것도 아니면 긴 병에 효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거야라든가. 물론 콘텐츠 바깥의 실제 세계에서는 전혀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도 있긴 하다(가령 사회적으로 여전히 논의가 부족한 돌봄의 사회화 같은 것들). 그렇지만 작품은 돌봄 노동의 독박과 외주화라는 양자택일적 선택지를 통해 이야기의 산만함을 줄이고 인간적 삶의 아이러니를 조명하는 데 집중했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어떤 선택의 정당성도 부정하는 <간호중>은 진정으로 취해야 할 선택은 선택지 바깥에 있다는 점을 역설하는 작품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