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4.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존재, 청년노동자를 말하다 / 2019.02

[특집 청년 + 노동자, 다시 보기④]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존재, 청년 노동자를 말하다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준비위원장 인터뷰

 

선전위원회

 

도로의 무법자로 불리는 이들이 있다. 바로 배달노동자이다. 언론은 큰 사고가 날 때만 그들을 주목하고 호명한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존재해왔다. 단지 우리 사회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지 않았을 뿐. 가리어진 존재의 목소리를 모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라이더유니온의 박정훈 준비위원장을 지난 131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라이더유니온이 궁금한데요. 조합원의 구성이나 특징, 조합의 핵심 요구사항은 무엇인가요?

프랜차이즈, 배달대행사, 우버이츠 기사들로 주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리고 돈 못 버는 영세 배달대행 지사장들도 조합원으로 받을 생각인데, 아직 세부 기준은 정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등에 칼 꽂는다고들 말하는데 일하다가 자기가 창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배달대행은 가게와 기사만 있으면 되거든요. 운영 프로그램은 따서 쓰면 되고요. 그러다 보니 영세한 사람도 많고, 이 업 자체에서 지지고 볶는 특징이 있죠.

그리고 배달노동자는 개별화되어 있어요. 프랜차이즈 라이더를 한 사업장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모두 출퇴근 시간이 달라서 모이기가 불가능해요. 그래서 플랫폼노조로서 온라인을 기반으로 해요. 그러다 보니 가끔 정기로 모이듯이 조합원들이 모여요.

대여섯 가지 조합의 요구 중 보험료 문제가 가장 큽니다. 배달용 오토바이 보험료가 제 나이대인 30대 정도에 1년에 300만 원이에요. 20대는 500만 원이구요. 심각하죠. 그래서 대부분 배달용 보험을 안 들고 출퇴근보험을 들어요. 이렇게 일하다 사고 나면 보험 적용이 안 돼서 문제가 생기고, 부담이 크니 산재보험 가입도 꺼려요. 산재보험 가입률이 높아지려면, 배달용 오토바이 보험료를 해결해야 해요.

추가로 기후변화에 따른 보호 대책, 최소배달료, 플랫폼세를 통한 고용보험, 산재보험 기금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어요. 지사장에게 책임을 묻는 두 당으로 하지 말고 일정 매출 이상의 플랫폼 사업장이 근로복지공단에 보험료를 내라는 거죠.

개인 사업자의 경우, 유급휴일 보장 안 되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보험을 바꾸고 싶어요. 개인사업자도 유급휴일을 주는 거죠. 예로 들면 여름휴가 간만큼 일하지 못한 부분을 고용보험 재정에서 조달하는 거죠. 그러면 라이더들이 고용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생기겠죠. 또 산재보험기금으론 악천후일 때 일을 못 하니 그때 휴업급여를 지급하고요. ‘근로자신분이 아니란 현실과 괴리되는 이유로 말이죠. 물론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 여겨질 수 있어요. 그러니까 노조가 싸워 만들어나가야겠죠.”

연령대 특징도 있을 텐데요. 노조에 10~20대 청년이 많은 편인가요?

아뇨. 30~50대가 많아요. 10~20대는 눈에 띄어서 과잉대표된 거죠. 배달 노동에 대한 편견이에요. 소위 젊은 놈이 오토바이 함부로 몰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거죠. 언론에서 주로 다루는 배달노동자 사고가 10대이기도 해요. 어리면 어리다고, 50대까지 라이더 일을 하고 있으면 그것도 그거대로 욕먹죠. 20~30대 정도는 그럴 수 있다 치고요. 나머지는 실패, 혐오의 상징이에요. 보면 가족들에게 얘기를 잘 못 하세요. 자녀 학교가 있는 동네이거나 지인이 주문하거나 하면 다른 사람에게 일을 넘기기도 해요. 당당하기 힘든 거죠.”

지금 하는 맥도날드 배달 일을 포함해 여러 노동을 경험하셨을 때 우리 사회가 청년 노동자에 대해 어떤 인식을 하고 있고, 어떤 노동조건에 내몬다고 보시는지 궁금해요.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요. 청년이라고 했을 때 청년 내 계급, 계층의 문제가 다 삭제되어 있어요. IMF 이후 청년실업이라는 말, 단 한 번도 해결되지 않은 이 문제에서 주인공은 4년제 대학을 나온 이들이죠. 뉴스 인터뷰 보면 그래요. 문제는 이런 조건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이 가려진 거예요. 수능성적으로 1~2등급. 나머지 80%의 사람들은 주인공이 아니죠. 그런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면 고등학교 때 공부 좀 열심히 하지라는 댓글이 달리는 거죠. 더 문제는 최저임금, 위험한 일자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 지금의 노동시장을 다 공급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이 사람들이 청년 문제 담론 주인공이 된 적은 없어요. 당연히 공부 못했으니까 그런 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공론화되고 주인공이 되어야 해요.

우리 사회의 드러나지 않는 주인공이란 말이 인상적이에요. 그런 주인공 중 하나가 배달노동자라고 생각하시나요?

대표적이죠. 아르바이트 노동자도 마찬가지고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선진적 기술혁신산업과 가장 최하층의 노동이 만난다는 점이에요. 아르바이트 시장, 플랫폼 시장은 실업자의 노동이자 잉여시간의 노동을 조직해요. 20대 청년들도 실업인 상태에서 취준생으로 자기 생존을 위해 일하고 있죠. 플랫폼 노동은 나머지 시간조차 자본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시간으로 투자하라고 강요하고 있어요. 자본이 모든 시간을 장악하는 거예요. 시간 장악, 이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곧 위험한 노동이자, 과로 노동이기 때문이에요.”

최근 고 김용균 님 사건부터 산업체 파견형 현장 실습문제까지 소위 젊은 노동자들의 문제가 이슈인데요. 계속 잇따르는 청년 노동자의 사고를 볼 때 특히 공감되는 부분이 있나요.

한국 노동시장 자체가 왜곡되어 있어요. 사람이 매일 죽어 나가는 구조를 계속 유지하죠. 그 문제를 청년 문제로만 접근하면 답이 없어요. 청년이 문화적, 지식 권력에서 약자이기도 하지만, 원래 노동시장 자체가 최악인 게 근본적 원인이죠.

그걸 바꾸기 위해서 저는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모든 담론이 일자리를 달라는 거죠. 사실 이게 우리의 구호가 되어야 하나 싶어요. 핵심은 사회안전망이죠. 여기서 계급 문제가 발생해요. 노동자들이 나쁜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으려면 생계비가 필요하죠. 고시 공부, 해외 유학, 대학원까지 약 10년간의 취업 기간을 견딜 수 있는 노동 상품과 당장 최저임금 일자리라도 가야 하는 노동 상품은 거부권이 완전히 다르죠. 지금까진 가족들이 그 부담을 졌어요. 하지만 이제 사회가 해야죠. 고용으로만 풀려는 것은 답이 없어요. 임금만을 소득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렇다면 청년 노동자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적 조건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노동자의 권리는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핵심은 노동과정에서의 권한이에요. 그걸 쟁취하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야 하죠. 작업중지권조차도 소극적이라고 봐요. 노동과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작업중지권은 사후적일 수밖에 없죠. 예를 들어 빙판길이 얼었다고 하면 위험을 겪을 수 있는 노동자들 모두 일하지 않는 것. 배달에 적합한 오토바이 기종이 있다면 교체하는 것. 배달 시간이 너무 촉박하면 안전하게 바꾸는 것. 자본이 정한 30분 배달제가 대표적이죠. 지금까지는 임금을 많이 받기 위해 노동 강도를 높여왔다면, 이제는 노동과정을 조직하는 권리를 쟁취해야 해요.

지금까지 배달노동자는 100원이라도 더 받는 곳으로 이동했어요. 그분들에게 이런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이동하지 말고 모든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자고요. 라이더유니온으로 오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올해 51일 노동절에 국회에서 청와대까지 오토바이 행진을 할 예정이에요. 트럭을 한 대 불러 공연도 하고 그 뒤를 오토바이가 따라가는 거예요. 그 행진에도 꼭 함께 해주시길 바랄게요.”

 

 

 

[연구리포트] 금속노조 A지회 2018년 위험성평가 / 2019.04

[연구리포트] 

 

 

 

 

금속노조 A지회 2018년 위험성평가

 

 

 

 

푸우씨 / 상임활동가 

 

 

 

 

금속노조 A지회는 2017년에 이어, 2018년 노사 공동으로 위험성평가를 실시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위험성평가 자문기관으로서 노사의 실행위원 역량강화 교육, 안전보건교육 시간을 활용한 전 조합원 교육 설명회 및 결과보고회, 현장조사 지원 및 개선방향 수립 토론등에 함께 하였다. 이번 연구리포트에서는 2018년 진행된 A지회의 위험성평가 결과를 담았다2018A지회의 위험성평가 실시 목표는 아래와 같았다.

 

노사공동으로 실시하는 위험성평가에서, 어떻게 실무역량을 기를 것이며 어떤 관점을 가질 것인가

현장의 유해위험요인을 있는 그대로 찾아, 개선할 내용과 방안 만들기

지난 위험성평가 이후 개선이 미비했던 점에 대한 평가 및 개선 방안 만들기

일하는 이들이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일터 조성에 기여

A지회의 안전보건 당사자인 일하는 이들의 관심과 참여 재고

회사의 환경안전보건 방침을 보다 구체적으로 구현하는데 일조

 

 

위험성평가 주요결과

위험성평가에 있어 공장 내 모든 작업공정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자 하였으며, 일부 중복공정 등을 제외한 74개 공정을 조사하여 시트에 담았다. 조사내용을 회사 안전보건담당자와 작업자들에게 제공하여 의견을 취합하였다. 이런 과정은 조사내용에 대한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개선에 대한 노사의 대책 논의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조사결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근무형태 변경이다. 지난 위험성평가 당시 A 지회 대부분의 작업자가 장시간 노동과 심야노동으로 인한 고충을 토로했고 이에 대해 주간연속2교대라는 근무형태 변경을 통해 장시간, 야간노동에 따른 위험성을 낮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서서 일하는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일부 공정을 중심으로 우선 공급된 의자 비치 현황, 조도개선 위해 진행된 조명설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근골격계 질환부담요인 완화, MSDS의 게시 및 관리시스템 구축, 취급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 저감방안, 소음 저감을 위한 노력, 재래형 사고 위험 낮추기 등에 있어서는 별다른 개선이 진행되지 않은 현황이 확인됐다.

 

 

현장개선 방향과 제언

 

1. 회사의 안전보건경영 선언을 실현해 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A 회사는 지난 위험성평가 이후 안전보건경영방침을 마련했다.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통한 유해·위험 사전 예방활동 관련 법규의 준수와 지속적 재해예방 개선활동 환경과 인간을 존중하는 지속 가능한 경영활동 능동적인 교육참여와 적극적인 책임 역할 완수를 핵심가치로 담았다. 이러한 안전보건경영 선언의 의미를 살리고 현실화하는 것은, 위험성평가에서 도출된 개선과제에 대한 이행계획을 착실히 수립하는 것이 다. 위험성평가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개선과제를 확인하고 이를 단기적, 중장기적 과제로 분류하여 그에 맞는 이행의 계획을 산보위 등을 통해 실물화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비용부담이 덜한 즉시 개선과제를 우선 과제로 삼아 선별하고, 이행해 나가는 방식 등을 취할 수 있다. 개선에 있어서 무엇보다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노사가 작업자의 필요와 요구를 확인하여 내실 있는 개선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다.

 

2. 주간연속2교대 실시 후 제기되는 노동강도의 문제

A 회사는 지난 위험성평가에서 가장 큰 유해 위험요인으로 꼽은 장시간 노동, 심야노동의 문제를 주간연속2교대-근무형태 변경을 통해 근본적으로 개선하였다. 그렇지만 작업자들은 이번 위험성평가 과정에서 여전히 노동강도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근무형태 변경으로 절대적인 노동시간이 단축되었고, 그에 따른 유해 위험 노출부담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감소된 시간만큼 물량이 줄어들지 않은 상태에서, 근무형태 변경이 동반한 휴식시간, 점심시간 등의 축소로 인해 작업부하와 부담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도한 업무 부담 완화를 위한 적절한 휴식시간과 휴게공간의 제공 등 향후 노동강도와 부하에 대한 개선 계획을 수립해 나갈 필요가 있다.

 

3. 근골격계 부담 완화를 위한 노력

근무형태 변경 이외에 기존의 낙후된 노후설비, 작업방식과 작업방법의 변화는 동반되지 않았다. 이로 인한 작업자들의 근골격계 부담은 여전히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상존하고 있다.

당장 인간공학적 설비개선을 단기적으로 추진하기는 쉽지 않은 조건이기 때문에 우선 서서 일

하는 작업 부담 완화를 위해서는, 작업자들의 필요와 작업방식에 대한 고려를 바탕으로 입좌식 의자의 배치 등을 적극적으로 실행할 필요가 있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작업대 높이 개선 등 인간공학적 설비개선을 만들기 위한 노력 또한 동반되어야 한다.

 

4. MSDS 관리 및 화학물질 관리 시스템 구축

지난 위험성평가 이후 물질안전보건자료(MSDS)가 일부 공정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각 공

정에 비치, 게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료의 업데이트 등 최신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한계가 있었다. 또한 작업자들의 눈에 띄는 곳에 부착하고, 관리하는 등의 세심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작업자에게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비치, 게시 의무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공정마다 취급하는 유해 위험물질의 현황을 작업자가 인지하도록 하여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가장 기초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특별안전보건교육을 받아야 하는 유해화학물질을 직접 취급하는 작업자들과 노출정도가 심할 수 있는 주변 작업자들에 대해서는 특별안전보건교육 혹은 그에 준하는 교육을 통해 유해성을 주지하고 대처방안을 숙지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노력이 보다 동반되어야 한다. 또한 성분표시가 안 되어 있는 상태로 덜어서 사용하는 유해화학물질취급 방법 및 옥내보관 등에 대한 개선과 더불어 방청유, 가공유 등을 제거한 걸레가 덮개가 없는 폐기통에 방치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

 

5. 국소배기장치 점검 및 내실화

국소배기장치는 유해 위험 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설비로, 이를 제대로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난 위험성평가 개선안으로 국소배기 장치에 대한 성능검사 및 확인의 필요성을 제기하였으나, 개선의 성과가 뚜렷하지 않았다. 실질적인 개선을 위한 조치를 위해서라도, 상하반기 작업환경측정 시 국소배기장치성능검사 및 확인을 계획하는 등 적극적으로 현황파악부터 진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

 

6. 방청유, 금강사 및 랩제 보관 방법 개선

지난 위험성평가에서 발암물질 및 화학물질 보관 방법의 개선이 즉각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음을 제안하였으나, 제대로 개선되지 않은 현황을 다시 확인하였다. 부적절한 유해 위험 물질 보관은, 이를 직접 다루고 취급하는 노동자뿐 아니라 해당 공정 주변 작업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적극적인 밀폐, 환기, 격리 등의 조치를 강구해 나갈 필요가 있다.

 

7. 소음 저감 조치 및 관리를 위한 체계 구축

소음 저감 조치는 비용과 기간 등의 측면을 고려하여 장기적 기획이 필요하다. 이전 위험성평가에서 공장동별 소음지도 작성과 소음관리를 위한 기관 선정과 대책수립의 필요성을 개선과제로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놓치지 않고 수립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단기적으로 소음 차단, 소음원 저감, 흡음 및 차음재의 부착 등의 노력과 함께 작업자들이 귀마개 등 보호구 착용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유해 위험성에 대한 주지와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귀마개 등 보호구의 적극적인 사용으로 인하여 사고 발생 위험 등, 긴급상황에서의 경보나 알림 등을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으므로, 위험을 시각화하는 방식에 대한 고려또한 동반되어야 한다.

 

8. 냉온풍기의 도입

고온과 한파에 노출되는 공정을 대상으로 냉온풍기의 도입이 일부 진행되었다. 작업자들의 필요를 반영하여 미비한 곳에 냉온풍기를 보강하여 비치할 수 있도록 추진해야 한다. 이때 제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위생상태 점검 및 성능관리가 동반되어야 한다.

 

9. 작업자의 필요와 요구에 기반한 조도 개선

A 회사의 작업현장은 낮은 조도의 문제가 심각하였다. 시야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작업을 하면서 노동과정에서의 피로감뿐 아니라 유해 위험요인을 그대로 방치하게 되는 문제도 동반된다. 지난 위험성평가의 반영으로 일부 공정에서 조도개선 작업이 진행되었으나, 작업자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개선작업으로 인한 공들임에 비하여 작업자들의 조도 개선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은 한계가 있었다. 작업방식 등에 대한 작업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조도 개선작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설치된 조명을 비용절감 등의 사유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 또한 개선해 나가야 한다.

 

10. 일상적인 재래형 사고예방 및 일상적 점검 시스템 구축

A회사는 오래된 기계기구, 설비로 인한 안전사고의 문제뿐 아니라 지면 평탄화 작업 미비, 청소와 정리 정돈 문제 등으로 인한 넘어짐 등 각종 재래형 사고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일상적 사고예방을 위해 무엇보다 일상적 점검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다. 가령, 사람의 키 높이 이상으로 쌓고 있는 적재 방식의 개선, 작업자 이동통로에 대차가 방치되어있는 문제 등이 일상적으로 점검되어야 한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하여 생산에 필요한 각 공정의 유해 위험성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사업장 전체 시설에 대한 정기적 순회점검이 노사 공동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11. 안전교육의 내실화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의 구현은 노사의 협력뿐 아니라 작업자들이 적극적인 주체로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전교육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작업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물론 노동안전보건의 감수성과 역량을 키워나가기 위한 내실 있는 안전보건 교육 계획 수립에 노사가 지혜를 모아나갈 필요가 있다.

[국제안전보건기준비교검토]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주는 메시지⑥-산업재해보험 ② / 2019.04

[국제안전보건기준비교검토]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주는 메시지⑥

-산업재해보험 ②

 

 

 

 

임혜인 / 회원, 노무사  

 

 

 

 

<머리말>

산업안전보건 국제기준 비교 연구팀에서는 2018년 9월부터 독일 산업안전보건법과 체계를 공부하면서, 한국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여섯 번째 글로 산업재해보험 문제의 두번째 내용을 다룬다. 

한국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의 목적에 따르면 재해근로자에 대한 보상·재활·사회 복귀는 산재보험법이 달성해야 할 소명이다. 이하에서는 독일 산재법의 관련 내용 중 한국 산재보험법의 목적 실현을 위한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산재보험급여의 직권 지급

독일의 법정 산재보험 급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해노동자에게 직권으로 지급된다. 이는 사업주 및 산재전문의사의 '산재신고의무'와 관련된다.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는 사고의 규모와 상관없이 산재보험조합(이하 산재조합)에 이를 신고해야 한다.

또한 산재전문의사는 재해노동자를 치료함과 동시에, 산재조합에 이를 보고해야 한다. 산재보험요율의 인상 등으로 사업주가 신고의무를 해태하기도 하나, 재해노동자 본인 스스로 또는 동료를 통해 병원을 방문하기 때문에 사업주가 신고하지 않더라도 병원에서 신고가 이루어진다.

 

산재조합은 조사원칙에 따라 사실관계를 직권으로 조사해야 한다. 이때 조합은 피보험자인 재해노동자에게 유리한 사정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러한 독일의 산재신고절차는 산재보상을 위한 재해노동자의 신청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의 산재보상절차와 차이가 있다.

노동자나 사용자가 산재발생사실 또는 산재보상신청에 대한 현실적인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특히 노동자의 경우 산재신청 후 보상지급여부에 대한 불확실성, 사업주와의 관계 등으로 인해 산재보상 신청조차 주저하며 적절한 보상 및 요양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재해노동자의 신청을 전제로 하지 않는, 산재보험급여의 직권 지급은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직업재활을 넘어 사회재활까지

독일은 직업재활을 넘어 사회재활까지 도모하며 이를 위한 세세한 부분까지 법률로서 보장한다. 독일의 사회재활급여에는 재해노동자가 지속적인 차량 사용이 필요한 경우 지급하는 '차량에 대한 보충급여', 산재로 장애를 갖게 된 재해노동자가 치료시설 이용을 위해 주거지를 개축·수리하거나 이사를 하는 등의 상황을 지원하기 위해 지급하는 '주거지에 대한 보충급여', 재해노동자가 가계를 이끌어나가기 불가능한 상황을 지원하기 위해 지급하는 '가계보조 및 어린이 돌봄비용' 등이 포함된다. 법률과 제도로서 재해근로자의 사회화를 지원하고자 하는 노력은 우리의 산재보험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적극적인 사업장복귀관리

독일의 모든 사업장은 재해노동자가 1년 동안 계속하여 또는 단속적으로 6주를 초과하여 노동 불능이면 그 노동자에 대하여 사업장 복귀관리를 하여야 한다. 목적은 재해노동자의 노동 불능을 억제 및 예방하고 실직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있다.
 

<사업장 복귀 단계>
1. 노동 불능 6주 초과 확인
2. 사업장복귀관리팀 구성
3. 해당 취업자와 최초 접촉
4. 해당 취업자와 대화
5. 해당 취업자의 동의하에 사업장 내에서 사례를 의논
6. 사업장 내에서 해결방안을 찾지 못 할 경우 외부 자문 활용
7. 확실한 사업장복귀대책 합의
8. 대책 시행
9. 대책의 효과 점검

 
  사업장복귀관리에 따른 독일의 재해노동자 직업복귀율을 따져봤을 때 사업장복귀관리에 따른 독일의 재해노동자 직업복귀율은 산재보험의 재활 관리와 추가·특별 직업재활을 받은 산재 노동자 통틀어 98%가 직업복귀가 가능했다.¹ 우리나라의 2018년도 재해노동자의 직업복귀율이 65.3%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독일과 같은 재해노동자의 사업장 복귀를 위한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

 이상 재해노동자에 대한 보상, 재활, 사회복귀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독일의 산업안전보건체계를 살펴보았다. 독일은 재해노동자에 대한 보상-재활-사회복귀의 단계가 일련의 과정으로서 관리되는 것으로 보인다. 의료적 치료와 현금급여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우리의 산재보험제도와 차별점이 있다. 독일과 같이 재해노동자에 대한 보상-재활-사회 복귀의 과정이 상호 연관되어 기능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산재보험 제도 또한 그 목적 실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각주1. DGUV(2018), Guidelines in Case Management of Work Accidents and Occupational Diseases/ Rehabilitation Management
in the German Social Accident Insurance, p. 40.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투명함을 만들어내는 노동자 / 2019.04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투명함을 만들어내는 노동자

 

 

 

 

김지원 /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고 했어요."
- 영화 '베테랑'에서

경인 지역의 한 중소기업은 유리제품을 만들고 있다. 화학용기, 화장품 용기, 약병,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초자부품 등을 대기업의 주문에 따라 생산해내고 있다. 반세기의 오랜 역사를 지닌 이 회사는 아쉽게도 산업안전보건 관계자에게는 참으로 계륵 같은 곳이다.
2010년에는 산업재해 다발 사업장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사망이나 중독 같은 심각한 재해는 아니라 할 수 있는 소음성 난청으로 유소견자가 3명 나와서 3%의 재해발생율을 기록했다. 그 때 노동자수가 100여 명이었고 지금은 50명 정도이다. 단순 계산으로는 직업병 유소견자가 두 배 가량 폭증한 것처럼 통계적 착시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직업병·산업재해 유소견자가 발생하면 해당 관서에는 평소보다 귀찮은 일들이 생긴다. 현장지도를 하고 유소견자 관리를 해야 한다. 소음성 난청의 경우 청력 검사 과정이나 결과 판정에 문제가 있는 경우 병원이 행정 처분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한 병원은 이곳의 건강검진을 맡았다가 특수건강진단 업무 2개월 금지 처분을 받은 적도 있다. 병원 평가에도 문제가 생길 수가 있기 때문에 이 회사 맡기를 꺼려 직원 건강진단 실시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현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산업보건의 요구가 더 절실한 곳이 오히려 전문가들이 기피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유리를 만드는 산업의 현황은 어떨까. 2019년 현재 한국유리공업협동조합의 조합원 명부를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기업에서는 기술력이 좀 더 필요한 판유리, 건축자재, 자동차유리, 용광로 내열소재, LCD의 기판이나 액정유리 등을 만든다. 중소기업에서는 식품용기와 그릇, 화장품 용기, 약병, 화학실험용 비커나 플라스크 일체, 음료수병 등을 만들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에 가깝다 보니 규모를 가리지 않고 산재사고가 발생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모 대기업 공장에서 판유리에 깔려 근로자가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중소기업에서 주로 만들어내는 유리제품들은 원료들을 혼합하여 뜨거운 열로 녹인 뒤 용해·성형하고 서서히 식혀 후처리와 가공을 하고 포장, 출하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고열·적외선에 의한 온열장애·백내장 등의 발생 가능성이 생기게 되고, 분진에 의한 호흡기 질환, 소음에 의한 난청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공장에서도 수십 년간 난청이 발생하여 왔고, 최근 작업환경 측정에서는 유기화합물인 디클로로메탄이 노출기준치를 상회하여 측정되었다. 하지만 관할 관서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정의 본질은 크게 바뀌지 못했다.

영세한 업체들은 중국과의 경쟁에 밀리거나 가파른 임금 상승의 여파로 회사 자체의 규모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결국 지금의 이 노동자들이 정년을 맞이하게 되면 자연스레 사라질 사양산업이라는 걸 사장과 직원들 모두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산재를 추방하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하지만, 허탈하게도 글로벌한 세계 자본의 흐름에 따라 직업병을 유발하는 산업들이 구조조정의 흐름 속에 재편되거나 사라져가는 경우도 많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지만 우리 주변에는 아직 옛날 '공장'들이 남아있고 여전히 힘들고 위험한 일을 예전과 다름없이 묵묵히 해 나가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도 기록해본다.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실질적인 노동안전보건활동이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들 / 2019.04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실질적인 노동안전보건활동이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들

-서울교통공사노조 한창운 노동안전국장 인터뷰

 

 

 

 

지안 / 상임활동가 

 

 

 

 

지난 3월 19일 한창운 노안국장과의 인터뷰를 위해 노조가 있는 차량기지를 방문했다. 이날의 인터뷰는 매우 다채로웠다. 노안활동가와 조직들의 연대 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부터 노안활동이 법적인 경계를 아울러야 한다는 의견, 그리고 미조직, 영세사업장의 노안문제를 위해 상위 노조들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여러 가지 층위에서 노안 활동가로서의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국장 한창운입니다. 현장에서는 기술파트의 신호를 담당하고 있어요. 지난 2017년 5월 서울지하철이 통합되었는데요. 노조의 통합은 18년 2월 14일에 있었습니다. 통합 전에는 1~4호선의 노동안전부장을 했었습니다. 줄곧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해온 셈입니다."

- 기술파트 신호 담당이란 어떤 업무인가요?


"자동차도 신호가 있잖아요. 열차는 자동신호이긴 한데, 그게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역, 열차, 그리고 양자를 이어주는 총 세 가지의 설비가 있어요. 신호설비가 자동으로도 되지만 안전 간격을 유지하면서 열차가 오갈 수 있도록 조정하는 일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예전에는 손으로 깃발을 들어 신호를 보내는 일이었죠. 사람 힘으로 선로를 바꾸던 업무가 요새는 프로그램화가 되어 전자적으로 움직입니다. 즉 여러 열차가 신호를 토대로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입니다."

 

- 어떻게 노조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노안활동을 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지회장도 하고, 대의원 현장 간부도 하다가, 선배 활동가의 권유로 근골격계 실행위원을 1년 정도 하게 되었어요. 그 후에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하 명산관) 활동했습니다. 서울교통공사에는 직종별로 명산관이 있어요. 저는 기술 파트이니 기술 담당 명산관 활동을 했습니다. 2016년도부터 서울지하철 1~4호선 노안부장을 하게 되어 현재의 활동까지 이어지게 되었어요."

- 근골 실행위를 통해서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2004년에 처음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했어요. 근골 사업 이후에 근골 예방 활동을 해야 한다고 요구해서 사측과 합의해 '근골 예방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그 안에는 근골 실행위원이 월 16시간 활동해야 한다, 등의 조항이 있었어요. 이 조항에 따라서 유해요인조사에 따른 실행이 잘 되고 있는지, 조사 결과에 따른 단기, 중기, 장기 계획들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현장 점검을 하는 거죠. 노동조합 주도로 이루어졌지만, 사용자 측도 불러서 함께 입회 합니다. 이러한 활동이 근골격계 실행위원의 담당입니다.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는 법적으로는 3년에 한 번 씩 조사를 하게 되어있어요. 그렇지만 조사를 한다는 것이 활동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 중요해요. 만약에 노조 집행부가 사용자 측과 친화적인 어용노조라면, 사용자 측과 자체 조사를 하는 방식으로 상당히 형식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때가 있죠. 그래서 조사를 한다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들더라도 좋은 기관에 의뢰해서 제대로 된 조사를 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죠.

보통은 노조, 사용자 측, 연구용역 기관 세 주체가 같이 90일에서 150일 정도 조사를 합니다. 2020년에는 모든 호선을 통합해서 진행하려고 해요. 조사한 지 3년이 안 된 셈이지만 통합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2년만인 내년도에 조사를 실행할 예정입니다."
 

- 최근에 무인운전 테스트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무인운전을 통해 인력을 감축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은데요. 1인승무제와 비슷한 맥락에서 대응이 필요한 일일 것 같아요.


"무인운전은 사용자 측에서 지속적으로 시도를 해왔던 사업 이에요. 먼저 무인운전은 안전문제와 직결됩니다. 열차가 안전하지 않다면, 노동자뿐만 아니라 탑승한 승객들 전부가 위험에 노출됩니다. 그런 점에서 무인운전 시스템이 정말 100%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무인운전은 검증되지 않은 시스템이라는 것이 노조의 입장입니다.

인력감축 문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무인운전뿐만 아니라 1인 승무제 자체의 문제가 있습니다. 차장과 승무원, 이렇게 2인제로 운영되던 것이 두 가지 역할을 1명이 맡게 되면서 업무가 과중해지기 때문에 안전에도 당연히 구멍이 뚫립니다. 예를 들어 2002년 대구지하철 참사도 1인 승무제를 도입한 후 발생한 사고라고 봅니다. 여러 가지 기록에도 나와 있지만 2인 승무만 되었어도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거예요. 노조의 기조는 2인 1조가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것입니다.

현재 서울 지하철 1~4호선은 2인 승무제이고 5~8호선은 1인 승무제입니다. 물론 1~4호선이 10량으로 5~8호선보다 2량이 더 많은 것도 있지만 5~8호선은 나중에 만들어진 호선이니 자동 운전 시스템이 되어있어요. 여기서 사용자 측은 자동운전도 아니고 무인으로 운영을 하고 싶은 거죠. 작년에 노조가 싸워서 무인운전 도입은 안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서울시,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무인운전시스템에 대해서 사회적 논의를 하기 위해 공청회를 열자고 한 상황입니다."

-산보위 활동을 오래 해오셨는데, 새로 산보위 구성하려는 사업장에 조언을 해준다면요?


"당연히 처음부터 모든 걸 잘할 수는 없을 거예요. 분기마다 실행해야 하는 사업들이 있고, 그것과 별도로 해당 시기에 현장에서 이슈가 되는 문제들이 있을 거예요. 그래서 산보위 활동이란 항상 전략·전술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가장 중요한 건 산보위 활동을 잘 하고 있는 노조를 방문해서 직접 참관을 해보는 거라고 조언해드리고 싶어요. 최근 산보위를 구성하게 된 학교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너무 도움을 주고 싶어요.

사실 학교뿐만 아니라 조리원들의 작업환경이나 처우가 굉장히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근골 사업만 제대로 해도 환경 개선부터 시작해서 인원충원까지 충분히 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다른 곳들 역시 직종과 개별 사업장의 상황에 따라서 그 특성이 있으니 산보위 구성은 정말 절실한 문제일 거예요. 관련해서 자문이나 도움 요청이 온다면 언제든지 가능한 만큼이라도 돕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는 조사를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되, 그 이후의 어떤 예방책들을 만들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관리·감독할 것인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한창운 활동가가 인터뷰 내내 강조했던 것은 어떤 사업이든 얼마든지 형식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라는 것이었다. 노안활동은 노조가 사업과 활동에 얼만큼 개입하고 주체적으로 질문하고 문제제기하는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산안법은 현장에서의 웬만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채널로써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나 사업장의 모든 안전은 산보위에 달려있다고 봐야죠. 물론 산보위 역시 매우 형식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어요. 법에 아무리 보장되어있더라도 형식적으로 하려면 얼마든지 형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노조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으면 산보위가 있다는 것도 큰 의미가 없어요. 의결 사항들도 법적으로, 형식적으로만 넘어갈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어쩌면 있는 사업을 제대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법에 나와 있는 것만 제대로 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아요. 예를 들어 근골 조사만 하려고 해도 활동가 조직이라든지, 교육이라든지, 부수적인 활동과 사업이 필요해요. 특히 노안 사업을 할 때 현장에서는 귀찮아하는 것도 있긴 있어요. 이럴 경우에 충분히 사업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내야 해요. 그런 과정이 없으면 또 '왜 하냐, 해봤자 바뀌지도 않는데'라는 의견들도 생겨요. 이런 의견은 노조가 설득해서 돌려야 할 우리의 몫이죠."

- 말씀하신대로 실질적으로 노안활동이 현장에서 의미가 있으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의지가 있고 마음이 있는 활동가들이 중요합니다. 경험도 있어야 하고요. 경험과 더불어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지금은 예전 같지 않게 사용자 측도 안전관리자나 전문가들이 많아요. 그래서 법리싸움이 치열합니다. 거기서 이기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해요. 아까 말한 것처럼 한 50%만 진행해놓고 이건 사업 진행한 거다, 라고 사측이 주장하기도 해요. 그럴 때는 노조가 나서서 싸워야겠죠. 그래서 공부와 투쟁이 동시에 필요한 일입니다. 지식적으로 우위에 있는 상태에서 투쟁해야 승산이 있을 거예요.

두 번째로는 어떤 법 조항에 근거해서나 어떤 담론의 결과물을 넘어서, 그 해당 사업장의 직접적인 활동을 통해서 사업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안활동이 당연히 법을 넘어서는 지점도 있어야겠지만, 일차적으로는 법적 지식도 갖추면서 각 사업장에 맞는 활동을 통해 개선을 해야 한다고 봐요."

- 노안활동가로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노안활동가끼리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노조, 노안 단체, 노안 활동가, 기관 등이 정보도 교류하고 연대하는 것이 있어야 해요. 힘든 사업장이 있으면 가서 도와주기도 하고 고민도 나누고 해야 서로 발전이 생겨요. 뛰어나게 잘하는 사업장이 있거든요. 그런 사업장에서 처음 노안활동 시작하는 곳이나 힘든 사업장에 가서 도와주고 조언만 해줘도 엄청나게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노동안전보건 영역은 활동가가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한도 끝도 없이 할 수 있는 분야예요. 그만큼 할 게 많다는 얘기기도 하고 가능성이 많은 영역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현재도 네트워크가 없는 건 아니지만, 활동가 개인의 인적 네트워크 범위를 넘어서서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일상적으로 교류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담당 기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노동안전문제는 노사가 없는 문제라고 흔히 말하는데, 실제로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특히 영세사업장 같은 경우에 당연히 노조가 없을 확률이 높고 작업 환경도 더 열악할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업장에서 열악한 노안 문제를 제기하려면, 다시 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주체인 노조가 없다는 모순이 있어요. 저는 이 문제를 더 상위 조직, 더 체계 잡힌 노조가 있는 단위에서 나서서 같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노안활동가로서 가장 주요하게 고민하는 지점이고 그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싶습니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안전하게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싶은 "과학실 포뇨의 꿈" / 2019.04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안전하게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싶은 "과학실 포뇨의 꿈"

 

 

 

경희 / 선전위원

 

 

 

 

초행길 운전의 걱정은 포뇨(<벼랑 위의 포뇨>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봄바람에 넘실대는 오이도 앞바다에 싹 날려버리고, 이은영 선생님과 윤승섭 선생님을 지난 3월 21일 퇴근 후 오이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초·중·고등학교에 과학실험수업을 위해 과학실무사가 있다는 사실을 나만 몰랐나 싶다.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듣고 싶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많았는데 학교 과학실에서 일하는 과학실무사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대학 다닐 때 생물을 전공했고, 1995년 졸업 후 전북정읍 초등학교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아무도 과학실이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는데 위험한 약품들이 너무 많았어요. 희석해서 써야 하는 황산, 염산 같은 원액이 밀폐장이 아닌 나무장에 놓여 있었어요."

 

아이를 가르칠 수 있다는 부품 꿈을 안고 출근한 첫날, 아무런 설명 없이 유해물질과 맞닥뜨리다니 당황했을듯한데 그보다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수업에 동참하고 함께한다는 기대를 안고 갔는데, 그야말로 보조 역할만 하는 거였어요. 교장, 교감선생님 같은 관리자로부터 허드렛일이나 하는 시녀나 몸종처럼 대하는데서 인격적인 모멸감을 느꼈어요. 수업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실험에 대해 설명을 해 준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네가 뭔데 교권을 침해하느냐'고 해서 위험한 실험이 아닐 때는 수업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어요."

그러나 안전에 대한 대처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과학실험을 지도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이은영, 윤승섭 선생님은 지적한다.

"과학실험 시 과학실무사가 보조 선생님으로 함께하는 것이 아이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필수교구 실험자재 92종, 권장교구까지 하면 200~300종, 거기에 소모품, 약품까지 1000종이 넘는데, 종종 위험한 일이 발생해요. 비커에 물을 넣고 그 안에 알코올이 든 작은 비커에 이파리를 넣고 엽록소를 빼는 실험을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비커가 엎어져서 알코올이 쏟아지고 불이 번진 거예요.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니까 알코올에 불이 붙었을 때 물을 뿌리면 더 번진다는 사실을 몰랐던 교사가 물을 뿌려서 눈썹이 탄 아이들도 있었어요."

일당제에서 무기한 비정규직 교육청 소속 무기계약직이 되다

아이들 교육에 이바지한다는 자부심으로 힘든 나날을 버텨왔다는 그녀는 9대 1의 경쟁률을 뚫고 2008년 오이도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과학실무사를 하게 되었다.

"전에는 학교장에 채용해서 나온 일수만큼 세어서 월급을 주는 일당제였어요. 2007년 이후 '2년을 근무하면 무기계약직이 된다'는 법이 적용돼서 현재는 교육청 소속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어요.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무기계약직이요. 풀어 얘기하면 무기한 비정규직이죠. 과학실무사는 교사들이 과학실험 수업을 위해서는 사전실험, 실험자재 구입, 실험도구 정리, 약품구입 등을 위해 과학실무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여 생겼고, 이 직업이 등장한 지는 30년이 되어가요. 전문적인 준비와 지식이 필요한데도, 관리자나 교사는 아무나 해도 되는 쉽고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과학실무사는 주 업무에 버금가는 행정업무가 많았다.

"출근하면 과학실험 신청서를 보고, 각 학년별 반별로 다른 수업내용에 맞춰서 바구니마다 실험준비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 넣어두죠. 수업진행 중일 때는 행정업무를 해요. 컴퓨터, 프린터기, TV 등 기자재가 고장 나면 수리기사님과 연결하는 문제나 프린터기 잉크가 떨어지면 품의하고, 정보화 기자재 허브 등에 대한 품의와 구입을 해요. 학교운영위원회 선출, 회의주관, 학부모 소통에 대한 업무, 학교 홈페이지 운영을 하고 있어요.

학교운영위준비, 홈페이지 관리, 기자재유지보수 등의 업무는 대부분 3월에 집중돼서 너무 힘들어요.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실질적인 과학수업이 되려면 과학실무사에게 본연의 업무를 주고 역할 분장이 돼야 해요. 다른 행정업무를 하다보면 과학실험을 준비할 시간이 없어요."

과학실무사에게 행정업무가 많게 된 것은 2012년도에 행정실무사제도가 생기면서라고 한다.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거나 질병에 걸려서 그만두는 경우가 없어야 하는데, 이런 일은 일어났다.

"교육청에서 과학실무사 처우를 개선해주면서 행정업무를 몇 개 받으라고 했어요. 그래서 업무 폭탄을 맞은 거예요. 충북에서 과학실무사가 학교 내 나무에 목을 메달아 사망하는 일이 있었어요. 일이 너무 많아 힘들어서 쉬려고 했는데 병가제도를 잘 몰라서 사직서를 낸 거예요. 직후에 병가를 일주일보다 더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취소하려 했으나 학교에서 들어주지 않은 거죠.

온몸을 다 바쳐 일하다 병까지 얻었는데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거예요. 2013년도에는 과학실무사가 부가적인 업무를 하던 와중에 과학실 전체가 전소되는 일이 있었어요. 예전에는 교사들이 나누어서 했었는데, 지금은 교무실, 행정실, 과학실에 1명씩 있는 실무사가 다 해야 해요."
 

 

고무장갑 낄 틈도 없이 설거지하느라 지워진 지문

과학실무 중에는 실험자재에 의한 사고나 유해물질로 인한 노출사고 등이 여느 공장 못지않게 위험이 높은 수준으로 보였다. 10년 이상 주부습진이 없던 적이 없다며 보여준 그녀의 엄지와 검지는 지문이 거의 지워진 상태였다.

"6학년 실험 중 '산소·이산화탄소 발생실험'이 있어요. 삼각 플라스크에 고무마개를 끼우고 고무마개 안에 유리관을 집어넣는 실험이에요. 시간이 없다 보니 빨리빨리 세팅을 해야 하는데, 유리관을 고무관에 끼우는 과정에서 유리관이 파손되면서 손바닥이 찢어졌다는 사람들이 셋 중 한 명꼴이에요.

포르말린 병에 개구리, 뱀 등을 담아놓은 표본이 깨져 제가 기간제 교사를 피신시키고 치우는 과정에서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119에 실려 갔던 적도 있죠. 그 후로 저는 장에 궤양성 염증이 생겼어요. 부천의 한 선생님은 시력이 점점 퇴화되는 질환에 걸리셨는데, 염산 증기에 노출이 된 것 같지만, 그것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서 모두 개인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죠."

화학물질은 예전에 엄청 많았지만 현재 초등에서는 13종정도 남았다고 한다. 올해도 묽은 염산 대신 진한 식초로 대체되었지만, 중·고등학교는 아직 100종이 넘고 과학영재고등학교는 훨씬 많다고 한다.

"약품냄새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세요. 밀폐시약장이 있어도 냄새가 새어나와요. 그래서 일하는 곳과 떨어진 곳에 약품장을 두는 게 필요하죠. 물질안전보건자료(MSDS)가 있긴 한데 그것으로 인해 안전을 위한 조치가 취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와 관련한 행정업무만 많아지는 것 같아요.

노동부에서 조사를 나온 적이 있는데 물질안전보건자료가 비치되지 않은 경우 교장과 과학실무사에게도 과태료를 내게 하더군요. MSDS가 뭔지도 몰랐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말이죠. 또 보호장구가 있어도 착용할 새도 없고, 지급되지 않는 곳도 있어요.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규정이 없잖아요. 그래서 급식실에도 적용되는 산업안전보건법이 과학실에는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급식실 못지않게 알코올램프에 의한 화상, 베임, 절단 같은 사고도 자주 발생해요.

특수검진을 하려 할 때 5만 원이면 되는데, 타학교의 경우 근거가 없다고 교장선생님이 못하게 하면서 학기말에는 몇 천만 원이 남아서 교장실 소파를 교체하거나 행정실 천공기를 구입하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져요. 정말 필요한 건강이나 안전에는 인색하면서 말이죠."

 


내가 나를 버리면 남도 나를 버린다

이은영 선생님은 교육공무직 노동조합 경기지부 과학실무사분과 부분과장을 맡고 있고, 윤승섭 선생님은 과학실무사분과장을 맡고 있다.

"무기계약직이 되기 전에 교장선생님이 출장을 가면 과학수업동안 하는 일 없다고, 제 차를 타고 가세요. 차 안에서 '내년에도 재계약하고 싶지?' 하면서 자기 말을 잘 들어야 재계약 할 수 있다고 했어요. 당시 재계약은 목숨 줄과도 같은 거였어요. 그래서 부당하고 억울하고 분해서 노동조합에 가입했어요.

가족여행으로 연차를 쓰려고 했는데 하루 전이라고 연가승인을 못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도교육청에 민원 올리고, 노동조합에도 알렸어요. 다음날 교장선생님이 저를 투명인간 취급했어요, 더 힘들어졌다고 다시 도교육청에 민원을 넣었더니, 교장선생님 태도가 확 바뀌었어요.

하라는 대로 다 하면 인간취급도 못 받지만, 강하게 당당하게 나가면 함부로 못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어요. 2015년에는 파업이라는 걸 나가봤고,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도 약품장을 앉은 자리와 분리되게 설치하는 것을 요구해서 관철시켰어요. 제 몸은 제가 지켜야겠더라고요."

평소 만들기를 좋아해서 과학실 일이 적성에 잘 맞다는 윤승섭 선생님은 분과대표의 일 년간 끈질긴 전화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도 깊은 상흔이 있었다.

"과학실무사의 99%가 여선생님이어서인지, 자신을 너무 아끼지 않는 것 같아요. 내가 나를 버리면, 남도 나를 버리는 거예요. 참고 인내하는 것이 해법은 아니라는 것을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먼저 지키는 것이 모든 일의 기본이고, 그런 측면에서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 과학실무사가 꼭 적용되었으면 해요."

불가능할 것 같았던 물고기 소녀 포뇨의 '인간이 되고자 하는 꿈'이 이루어지듯, 아이들의 실질적인 과학실험을 위해 필요한 과학실무사의 무기한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도 언젠가는 정규직이 되는 날을 고대한다.

[현장의 목소리] 반복되는 중대재해, 악순환의 고리 끊어내야 / 2019.04

[현장의 목소리] 

 

 

 

 

반복되는 중대재해, 악순환의 고리 끊어내야 

 

 

 

 

박기형 / 상임활동가 

 

 

 

 

지난 3월 13일 오전에 한화 대전공장 폭발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노동자 세 분의 합동 영결식이 열렸다. 사고 발생 28일 만이었다. 진상조사와 재발 방지를 위한 합의문을 받고 나서야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어려웠을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장례식장을 지키며 유가족들과 연대해온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오임술 노동안전국장을 지난 3월 15일 대전에서 직접 만나 한화 대전공장 폭발사고 이후 대응 과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 한화 대전공장 폭발사고에 어떻게 연대하게 되셨나요?


"장례식장을 먼저 찾아가 유가족들을 뵈었죠. 물론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부터 체계적으로 결합하지는 못했어요. 아무래도 한화 대전공장은 한국노총 사업장이고 돌아가신 분 중 한국노총 조합원도 계셨으니까요.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에서 이번 중대재해 사망사고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고심이 많았죠.

그렇지만 이번 사고에 결합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고 지역본부 차원에서 대응하게 되었죠. 그때 다른 시민사회단체들 또한 함께 해주었고, 이후 방사청 항의 방문이나 국회 투쟁에 정의당 대전시당에서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대전지역본부뿐만 아니라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하여 지원하게 되었어요. 저는 장례식장에 자주 거하며, 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과 함께 유가족들에게 대응 과정에 필요한 조언을 드렸죠. 

그때 유가족들이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님의 투쟁을 보고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주셨어요. 사고 발생 직후인 2월 15일에 청와대 게시판에 '한화 대전공장 폭발 진상규명' 국민청원을 올리셨죠. 유가족들이 크게 분노하신 건 작년에 발생했던 사고 이후로 9개월 동안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조치 등 하나도 제대로 이뤄진 게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에요.

 

국민청원이 진행될 때쯤 저 혼자서라도 연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장례식장에 찾아가게 되었죠. 유가족들께서 많이 질타하셨어요. 지역에서는 도대체 뭐 하고 있었냐고. 그 말을 듣고 나니 참 마음이 무거웠어요. 물론 대책위원회가 꾸려지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곁에서 뭐라도 함께 하며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때 유가족들이 세종시, 한화, 방사청, 노동청 등으로의 항의 방문 및 지역 내 현수막 게시 등 연대를 요청했고, 지역활동가들과 함께 곁에서 도움 드리게 되었어요."


- 작년에 있었던 사망사고에 대해 좀 더 얘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우선 지난 2월에 있었던 사망사고는 70동 공장에서 벌어진 것이에요. 로켓 추진체와 코어를 분리하고 유압실린더를 연결하는 이형작업을 하다 폭발이 발생해서 20~30대 청년노동자 세 분이 돌아가셨죠. 같은 사업장인 한화 대전공장에서 작년에도 비슷한 사망사고가 있었어요. 2018년 5월 29일 51동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다섯 분이 중대재해로 사망했죠.

사고가 발생한 이후 노동청에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고, 처벌 126건, 과태료 2억 6156만원(322건), 시정지시 31건, 권고 7건 등 총 486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행위를 적발했어요. 그리고 한화 측에서도 안전대책을 시행한다는 명목으로 공정위험평가서 또는 위험요인발굴서를 작성하기로 했었죠. 그때 노동자들이 참여해서 70개 동에서 135건의 위험요인을 발굴했다고 해요.

하지만 어떠한 개선 조치나 재발방지 대책이 취해지지 않았어요. 2018년 5월 발생했던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고요. 안타까운 건 당시 위험요인발굴서를 작성했던 분 중의 한 분이 이번 폭발사고로 돌아가신 거예요. 유가족들이 분노하신 것도 그때 제대로 조사, 처벌, 개선이 이뤄졌으면, 이런 일이 반복되었겠냐는 거죠. 더구나 최신식 첨단무기인 천무를 생산하는 공장의 작업환경이 다른 일반 공장들보다도 더 열악하다는 것에 충격을 많이 받으셨다고 해요."
       
- 비록 대책위가 꾸려지지 않았지만, 유가족들과 함께 대응해오셨잖아요. 지역 차원에서는 어떤 활동들을 진행하셨나요?


"대책위가 구성되어서 그 일원으로 참여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활동하기엔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진상규명, 재발방지 차원에서 유가족들과 공감대가 형성되었죠. 결국 한화 대전공장에서 반복되는 중대재해를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움을 드리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같은 법률적 자문이나 현수막과 성명서 등의 내용 수정 및 게시, 항의 방문 시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의 연대요청 등을 계속했죠. 특히 한화 및 유관기관들과 유가족들이 합의하는 과정에서 작업중지해제심의위원회에 노동자 참여권을 보장받기 위한 조항을 넣을 수 있도록 유가족들과 여러 차례 소통했어요."

- 3월 4일 대전시, 대전고용노동청, 대전소방본부, 방위사업청 등이 참여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주재한 '한화 중대재해 관계기관 회의'에서 유가족들의 요구사항이 담긴 합의문이 받아들여졌잖아요. 여기서 어떤 내용을 강조해야 한다고 조언하셨나요?


"노동자들의 위험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잘 알잖아요. 그래서 노동자들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죠.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가 추천하는 외부 전문가가 작업중지해제심의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어요. 유가족분들 또한 외부에서의 개입과 견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셔서, 외부 전문가 참여 보장 내용이 합의문에 반영되었어요. 폭발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화약만이 아니라 작업공정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죠. 그래서 앞으로 해당 합의문에 근거해서 외부 전문가 선정 과정에서 다양한 인원을 추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겠죠. 

이와 함께 연 1회 위험환경평가를 시행하기로 합의도 했어요. 여기에 방사청, 노동청, 대전소방본부, 대전시와 대전소방본부가 추천한 전문가 외에 조합원 투표로 선출된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참여하지요. 그리고 작업 중지 및 해제, 위험환경 평가를 실시할 때, 위험요인발굴서를 심의위원들이나 조사단에게 공유하기로 했잖아요. 이 정도에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이전에 비해 노동자들의 참여 측면에서는 진전된 부분이 있다고 봐요."

- 방산업체가 갖는 특수성 때문에 노동자에 대해 기밀엄수, 보안유지 등을 이유로 통제가 어느 정도 가해진다고 알고 있는데, 노동자 참여 측면의 진전은 어떤 내용인가요?


"위험요인발굴서의 공개 및 공유, 합동조사단에 의한 위험환경평가를 약속이 의미 있는 이유는 노동자 참여가 일정 수준이나마 보장받았다는 것뿐만 아니라 한화 대전공장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해요. 한화 대전공장은 군사무기를 만드는 방산업체예요. 그래서 국방부와 방사청이 모두 연관되어 있어요. 기밀유지, 보안 등의 이유 때문에 외부에서 관리감독하기가 어려운 특성이 있는 거죠. 더구나 발주처가 국방부인데다, 거의 방산업을 특정 기업들이 독점하다시피하기 때문에 패널티를 가하기가 여러모로 어렵죠.

그리고 해당 사업장에 적용되는 안전관련 법제도도 방위사업법, 산업안전보건법 둘 다 적용을 받아요. 그래서 사업장 안전문제에 대해 어디까지가 노동청이나 방사청의 책임인지 명확하지 않아요. 서로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떠넘길뿐이죠. 이런 식으로 방산업체 사업장이 지닌 특수성 때문에 안전보건관리가 제대로 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어서 감독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죠.

그만큼 안전보건 관련 정보가 보안 문제를 이유로 은폐되지 않고 노동자와 조사단에게 공개하는 것도 중요해요. 노동자 자신이 어떤 위험에 노출되는지 알면, 대응하거나 관련된 요구를 할 수 있으니까요. 작업장의 정보가 공개된다 하더라도 일상적인 안전보건 활동 같은 작업장 분위기가 중요해요. 작업장 내에서 노동조합 활동이 활발해져야, 합의문의 내용이 작업장에서 진짜로 실현되고, 안전한 작업장을 노동자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현장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봐요.

- 대전 한화공장 폭발사고의 원인에 대한 진상조사가 진행되고 있잖아요. 이형 작업에 대한 실험 조사로 물리적 요인 또는 작업장 내 위험이 밝혀진다고 해도, 그걸 제거 또는 관리하기 위해 작업장 안팎에서 유가족들 또는 연대단체 및 활동가들과 고민을 나눈 적이 있으신가요?


"유가족 중 몇 분은 한화와 관계기관들이 처벌받지 않는 것에 많이 답답해하고 화도 내셨어요. 사업장에 대한 관리 감독의 책임을 그들에게 물을 수 없는 상황에 실망하신 거죠. 그래도 대응 과정에서 저나 다른 분을 통해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에 대해 알게 되셨죠.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의 취지와 내용에 크게 공감하시더라고요.

또한, 노동조합이 사업장의 안건보건문제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어요.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노동안전보건활동에 대한 인식이 낮은 곳이 많아요. 대개 당장 위험하지 않고, 내가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로 안전보건문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요. 하지만 정말 산재사망사고가 없었을지, 정말 위험하지 않은 것인지 의문이 들어요.

자신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죠. 더욱이 노동안전보건활동은 임금과 각종 수당 등 다른 문제들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자주 밀려나죠. 특히 단체협상이 시작되면, 협상 테이블에서 노동안전보건문제는 거래를 위한 수단, 흥정의 대상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보니 지속적이고 확실하게 안전보건과 관련한 활동을 해내기가 어렵죠.

작업장 내 어려움도 있지만, 중대재해의 경우 지역 차원에서 연대해서 경험을 나누고 함께 대응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를 위해 중대재해에 대처하는 매뉴얼을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매뉴얼을 포함한 대응활동이 가능한 조직 단위가 없어요. 예를 들어, 한화 대전공장 폭발사고 발생 시, 대전충청권 내에서 공동대응을 할 수 있는 조직 단위가 필요한 거죠. 이를 위해서 공장 담을 넘어선 지역 내 역량 있는 네트워크가 구축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게임 속 노동과 노동의 시뮬레이션 / 2019.04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게임 속 노동과 노동의 시뮬레이션

 

 

 

 

김상민 / 문화사회연구소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때쯤 아이패드라는 물건이 세상에 나왔다. 노트북이나 데스크탑 컴퓨터 보다 납작한 이 태블릿으로 이런저런 것을 하는 것이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되었다. 유튜브를 찾아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이 대부분의 용도였다. 친구들이 하던 게임이나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게임을 설치해 플레이하곤 했는데, 유난히 좋아했던 게임들이 있다. 다름 아닌 미용실 게임과 햄버거 가게 게임이었다.

 

 

노동과정부터 자본주의 윤리의식까지 가르치는 게임의 공식 


미용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애견 미용사가 되어서 줄 서 있는 손님을 자리로 안내하고 머리를 손질한 다음 샴푸를 하고 드라이어로 말려 주고서 돈을 받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빨리하지 않거나 순서가 꼬이면 손님들이 화를 내고 가버리거나 돈을 지불하지 않기도 했다. 햄버거 가게도 비슷하다.

아이 입장에서는 난이도 높은 게임이나 멀티 플레이어 게임은 즐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나마 단순한 루틴으로 이루어지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적절한 타이밍에 클릭이나 터치를 해주기만 하면 되니 나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주어진 단순 업무를 완료하면 금색 동전이나 초록색 지폐가 짤랑 혹은 촤르륵 소리를 내면서 자기의 아바타에게 날아가는 장면을 보는 것은 무척 보람된 일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단순한 놀이와 그에 대한 보상은 많은 게임들이 채택한 기본적 방식이다. 플레이어가 받는 보상이 실제 돈은 아니지만, 게임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주어진 임무(머리 깎기, 햄버거 만들기 등)를 한정된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수행할 때에만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가르친다. 아이는 게임을 플레이할 뿐이지만 언젠가 자신이 살아갈 현실의 노동 조건 하에서 어떻게 고객에 응대하고 주어진 노동의 프로세스에 맞춰나가야 하는지 학습하고 있는 듯 보인다.

물론 정해진 순서나 시간에 맞추지 못하거나 한눈을 팔아 손님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경우에는 여지없이 자기 노동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매우 자본주의적인 윤리의식도 어느새 심어준다는 점에서 아이들의 게임이지만 진지하게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

어느새 게임들은 점점 세련되고 복잡한 방식으로 디자인된다. 화려한 그래픽과 실감 나는 장면, 캐릭터의 묘사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 내에서 노동하도록 혹은 '노동을 플레이'하면서 게임을 즐기도록 한다. 일종의 시뮬레이션 게임들에서 특히 그런 특성들이 보인다. 예컨대 농사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트럭운전 시뮬레이션 게임은 플레이하는 일-노동이 얼마나 신나고 흥미롭고 매력적인지를 보여준다.

농사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광활한 미국, 유럽의 농장에서 가축을 기르거나 각종 트랙터와 콤바인 등 성능 좋은 첨단 농기계와 시설을 선택해가면서 파종에서부터 수확과 저장에 이르기까지 실제 농사를 짓는 것과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현재 실제로 시판되고 있는 고가의 농기계 브랜드가 그대로 등장하고 농장주와 계약을 맺어 특정 농작물을 수확하는 등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이들도 실감나게 농사를 지어볼 수 있다.

트럭운전 시뮬레이션 게임 또한 플레이어가 운전기사가 되어 유럽의 경계를 넘나들며 여러 나라의 풍경과 날씨, 도로 등을 경험하면서 화물을 정해진 시간 안에 배달하는 것이 목표다. 실제 판매되고 있는 유명 자동차 제조사의 트럭 모델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게임 속에서 대출도 받아야 하고 운전 도중 사고가 발생하거나 교통법규 위반을 할 경우 수리비가 들거나 벌금을 내야 할 수도 있다. 트럭에서 라디오를 듣거나 내비게이션 장치를 켤 수도 있고 심지어 장시간 운전 시에는 졸음운전을 할 위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게임은 정말 '게임'일 뿐일까

이처럼 현실에서의 노동 환경과 조건은 시뮬레이션 게임 속으로 들어오면서도 여전히 유지되는 것처럼 보인다. 플레이어들은 노동에 대한 시뮬레이션으로, 즉 노동을 재미로 플레이하면서 경험의 재미를 얻는다. 게임이 재현하는 상황이나 시각적 경험은 현실에서와 무척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게임을 통해서 플레이하는 노동은 언제나 노동이 아니라 플레이, 즉 놀이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 속에서의 노동이 무의미하거나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노동을 시뮬레이션함으로써 플레이어는 여전히 노동을 경험하는 셈인데, 때로는 그 노동의 시간과 강도가 단순히 감내해야 할 것, 게임처럼 즐겁고 즐길만한 것으로 낭만화하게 된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니 즐기기만 하라는 것도 일견 맞는 말이지만, 게임 속에서 이루어지는 플레이어의 노동과 그 노동에 투여되는 시간, 그리고 플레이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는 실제로 매우 물질적인 것으로 그것이 현실과 맺는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말하자면, 게임의 플레이 혹은 게임을 통한 노동은 그 자체로 플레이어의 재미만을 제공하도록 설계되지는 않는다.

모든 노동의 절차가 자동화되고 가상화되는 게임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플레이어는 스스로 경영자가 되는 자본주의적 인간, 호모에코노미쿠스, 나아가 노동을 놀이하거나 놀이로 노동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지금 여기에서의 노동 현실과 조건을 그저 하나의 시뮬레이션의 대상으로 경험한다.

또한 게임은 플레이어의 노동 시뮬레이션이면서 동시에 플레이어의 게임 데이터 수집과 이를 통한 미래 경제의 시뮬레이션이 될 수도 있다. 트럭운전 시뮬레이션 게임 플레이어들의 데이터가 머지않아 무인(자동운전) 트럭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이나 플랫폼을 제작하기 위한 기본 데이터로 쓰일지 누가 알겠는가. 게임 속 노동이 현실노동의 시뮬레이션이 되고 또 그것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자동화의 시뮬레이션이 되는 그런 시대가 금방 도달할 것만 같다. 그때 인간의 노동은 또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특집3. 견디는 사람의 얼굴을 보라-산재 유가족들의 활동에 함께 하자 / 2019.04

[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③]

 

 

 

 

견디는 사람의 얼굴을 보라

-산재 유가족들의 활동에 함께 하자 

 

 

 

 

최민 / 상임활동가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빅터 프랭클은 인간은 이성으로 사유하는 존재이기 이전에 먼저 고통 받는 존재이며, 그것이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하는 더 중요한 측면이라는 점에서 호모 파티엔스(고통 받는 인간)라는 말을 제안했다고 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빅터 프랭클의 논의를 이어, 인간이 단순히 고통을 받는 위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당해내고 견뎌내며, 그 점이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질문한다.¹ 고통을 받으면서 인생의 비참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고통을 견디면서 인간임을 증명해내는 사람들이 견디는 사람이다. 견디는 사람이 보여주는 것은 인생의 비참, 삶의 비극, 개인이 어찌하기 어려운 구조의 폭력이지만, 동시에 비극을 넘어선 삶 그 자체의 숭고함, 폭력 너머 새로운 구조에의 꿈이기도 하다.

 


아픔을 함께 견디는 산재 유가족들

최근 모여서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산재 유가족을 보면서 '견디는 사람'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는 모습은, 둥그렇게 둘러서서 어깨를 옹송그리고 남극의 겨울을 버티는 펭귄들을 떠올리게 한다. 유가족은 무엇보다 함께 모여 아픔을 '견디는' 중이다.
 
"세월호 예은 아빠 유경근씨가 민호 1주기 때 왔어요. '많이 아프지? 많이 아플 거야.' 이 말 한마디 해주는데, 그게 저한테는 너무 큰 위로가 됐어요." - 2017.11. 현장실습 도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민호 님의 아버지 이상영씨 


"씩씩한 얼굴로 외출을 해도 당신이 지금 어떤지 안다라고 누군가가 위로를 해줘도 '대체 뭘 알아?'라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와서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담당 변호사 외의 사람에게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 너무 기뻤습니다." - 일본 과로사 유가족 모임 ㅇㅋㅁㅌ
 
하지만 가족들이 함께 모여 견디는 것은 단순히 가족을 잃은 '슬픔'만은 아니다. 일하다 발생한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 탓이 아닌 구조의 문제다. 제대로 된 안전교육도 받지 못하고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 부주의 탓이 아니다.

근로기준법 상 노동시간 관련 조항이 모두 적용 제외되어, 일주일에 80시간 근무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서, 장시간 일하다 숨진 60대 학교 경비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 탓이 아니다. 일터에서 폭력과 폭언을 당하고, 지속적인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의 탓이 아니다. 

 


울분을 함께 견디는 산재 유가족들 


하지만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죽음은 쉽게 '동정'의 대상이 되거나, '불운'의 상징이 되고, 결국 개인의 문제로 돌아간다. 심지어 남겨진 가족들은 '왜 그런 험한 일을 시켜서',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지 몰랐냐?', '평소에 건강 좀 잘 챙겨주지 그랬냐'와 같은 비난에 부닥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산재 유가족들은 거대한 울분에 휩싸이게 된다. 일하다가 생긴 사고인데 왜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가? 일하다 죽은 것도 억울한데 왜 우리가 숨을 죽이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가?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일하다 죽어갔다는데, 왜 세상은 아무 일 없는 듯 돌아가는가?

최근 정신보건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울분'은 분노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라고 한다. 울분은 '이런 처사는 부당하다'는 생각이 지속되면서 감정적 고통이 격화된 상태라 공정성이나 정의에 대한 감각과 뗄 수 없다고 한다. '세상은 공정해야 한다'는 기대와 '실제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는 경험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² 산재유가족의 고통은 여기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제 아들은 현장실습으로 나간 업체에서 일하다 자살했습니다. 전공과도 맞지 않는 실습처였고, 학교에서 체결했다는 표준계약서에는 엉뚱한 사람의 사인이 들어 있을 정도로 엉망인 채 나간 실습이었는데 학교에서는 끝내 사과 한마디가 없었어요." - 직업계고 현장실습 피해가족모임 김용만 씨 


"(산재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유가족들에게 있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회사가 자료를 다 가지고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뿐이에요. 자료를 요청할 때 우울증이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이지 회사랑은 관계없다고 얘기하기까지 했어요."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장향미씨

 


현실을 바꾸려 손을 잡는 산재 유가족들 


이렇게 고통을 함께 견디고, 울분을 함께 견디던 유가족들은 끝내 울화통 터지는 현실을 함께 바꿔보기로 결심하기도 한다. 유가족들이 피해자로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가는 주체로 나서는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낯설지 않다. 가까이에는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물으며 싸워 온 세월호 유가족이 있다. 독재 정권 시절 사망한 열사들의 가족들이 결성해 민주화운동에 함께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도 있다.

일본에서는 좀 더 특수한 산재 유가족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 모임이 있다. 공식 명칭은 '전국과로사를생각하는가족회'이다. 약 300여 명의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이 가입된 이 모임은 1991년 결성되어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과로사·과로자살을 낳은 구조적 원인에 대해 학습하고, 과로사·과로자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끊임없이 환기해, 결국 2014년 '과로사 등 방지대책 추진법'(과로사 방지법)의 제정을 이끌어냈다.

한국에서도 2018년 반올림이 10년 넘는 싸움 끝에 삼성과의 합의에 도달하고, 김용균씨의 어머니가 나서 산업안전보건법을 고치는 모습을 보면서 산재 유가족들도 힘을 내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조금씩 모임을 이어 가던 '한국 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직업계고현장실습희생자가족모임', '재난· 참사가족모임', '산재피해자및가족모임' 등 다양한 형태의 모임들이 활동의 싹을 틔우고 있다.

한 해에 2천여 명이 산재로 사망하는 현실에 비추어 이런 모임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산재 사망자의 1차 가족만 해도 한 해에 8천~1만 명이 발생하고 있다. 홀로, 각개로 견디고 견디던 그들이 이제 함께 세상을 바꾸자고 손을 잡은 것이다.


"제 남편의 자살은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유족모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비록 승소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남편과 같은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고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다른 유족들을 보니 '그래! 이들과 함께라면 끝까지 싸워보자!'란 생각이 들었고, 이젠 남편 산재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닌 일본사회에 과로사와 과로자살문제를 없애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일본 과로자살 유가족. ㅅㅇㄹㅋ


견디는 사람의 얼굴을 보라. 거기에는 인생의 비참, 삶의 비극, 구조의 폭력이 있지만, 동시에 비참함을 견디는 인간의 숭고함이 있고, 비극에도 다시 이어지는 인생의 이야기가 있고, 다른 구조, 다른 삶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의 얼굴이 있다.

한국에서 이제 본격화되는 산재 유가족들의 활동에 함께 하자.

 

 


각주1) 신형철, '호모 파티엔스'에게 바치는 경의, 권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해설 259면.
각주2) 박권일, 한국인의 대표감정, 한겨레신문 칼럼, 2019.3.8
*일본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 구술은 모두 <<과로자살 사례 연구>>보고서에 실린 「과로자살 이후 남겨진 유가족들의 이야기」(강민정, 2018)에서 인용.

 

 

 

 

 

특집2. "형의 이름을 밝히는 것, 그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 2019.04

[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

 

 

 

 

"형의 이름을 밝히는 것, 그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나래 / 상임활동가

 

 

 

 

사랑했던 이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건 어떤 무게일까.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다. 2017년 4월 비상식적인 장시간 노동과 비정규직 스태프 해고 문제로 괴로워한 형의 이름이 새겨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동생 이한솔씨를 지난 3월 30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tvN의 <혼술남녀> 조연출을 맡았던 고 이한빛 PD의 죽음은 감춰져 있던 방송업계의 장시간 노동, 비정규직 문제 등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사회적 관심과 응원,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 속에서 CJ E&M에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던 유족들은 마침내 회사의 공식 사과를 받았다.

재발방지 대책 마련의 일환으로 CJ E&M의 출연기금, 유족 기부금, 시민들의 성금이 모여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한 줄기의 빛'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2018년 1월 24일 설립됐다. 이후 여러 사건이 있었고 1년이 지났다. 그에게 현재 센터의 주요 사업과 활동에 관해 물었다.

"혼술남녀 사건 이후로 대책위 활동을 하면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센터)까지 이어온 운동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방송업계에는 다양한 문제가 있는데, 그걸 해결하기 위한 주된 사업이 바로 'Drama Safe 캠페인'입니다.

제작 가이드 라인은 캠페인 차원에서 나온 거고 노동법 강연, 쉼터 공간 마련 활동을 병행해서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현장에서 노동시간이 살인적이란 건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안 지켜지는 것도 있고, 아예 사각지대 영역도 있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상식적 노동환경으로 바뀔 수 있도록 다방면의 활동을 이어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까지 드라마 제작 개선활동 TF를 구성해서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활동이 한 축으로 있었죠. 또 다른 하나는 제보센터를 운영해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노조와 대응하는 건데요. 심각한 현장은 건별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센터는 디지털미디어시티역 근처에 있는데, 역주변엔 방송국이 참 많다. CJ E&M은 물론이고 MBC 본사, SBS 프리즘타워, KBS 미디어센터, YTN 본사 뉴스퀘어, JTBC 본사뿐만 아니라 IT 기업도 상당수다. 방송업계 노동자들이 하루의 상당 부분을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당연히 센터는 현장의 목소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홈페이지 익명 게시판, 온라인 채팅 등으로 제보가 들어온다. 다들 흩어져서 일하기도 하고 아직 자신을 드러내고 문제를 밝히기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있다. 지금도 방송업계는 장시간 노동이 심각하다. 다른 문제도 상당하지만, 하루 21시간씩 일하는 문제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다른 유형의 제보가 들어오기엔 갈 길이 멀다.

"작년만 하더라도 33건의 제보가 들어왔어요. 다 다른 드라마였어요. 제보가 안 들어오는 드라마도 있을 거에요. 웹드라마를 제외한 수치죠. 웹드라마도 다른 차원으로 심각한데요. 주로 들어오는 건 KMS(KBS, MBC, SBS), CJ E&M, JTBC 쪽으로 들어옵니다. 종편 합쳐 1년에 드라마가 백 건 정도 제작돼요. 그렇기 때문에 현장을 전수 조사하면 2건 중 1건은 노동시간 위반으로 걸린다고 예상해요."

고 이한빛 PD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고인의 죽음을 '평소 근무태도가 불량하고 나약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던 CJ E&M측도 유가족과 연대 단위의 대응과 지지로 결국 자사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관행적인 제작시스템을 선진화하겠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고인의 죽음은 명백히 개인의 죽음이 아닌 사회적·구조적 문제로 인한 것임을 주장했고 회사도 이를 결국 인정했다. 절대 쉽지 않은 싸움이었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그였다.

"응원을 많이 받아요. 그럴 때 제일 보람찹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그럴 때마다 건건이 기쁘죠. 형의 이름을 걸고 하는 활동이니깐요. 최대한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응원을 들을 때 기뻐요."

유가족은 관련자를 처벌하기보다 방송사에서 책임을 지고, 형의 죽음 이후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책이라 생각하고 노력해왔다. 그에게 센터 설립을 결정하기까지 유가족으로서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때와 비교해 지금은 질감과 온도가 좀 다른데요. 형은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고, 그와 더불어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어요. CJ E&M 측이 정말 밉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회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드라마 산업 전체와 묶여있는 것이기 때문에 형의 이름을 잘 간직하고, 기억하고 추모하는 차원에서 형이 바라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초기 협상 국면에서 처벌 같은 건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대신 CJ E&M이 선도적으로 드라마 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역할을 하라고 요구했고요. 부담감은 있었지만 해야 할 일은 명확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진 않았어요. 위로금을 받아봐야 마음이 쓰여서 쓸 수도 없었을 거고요. 센터에 사용하도록 하는 게 맞았던 거죠."
 
며칠 걸러 노동자의 자살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하지만 소식을 접한 이들의 눈총은 따가울 때가 많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둬야 했지 않느냐는 시선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있다. 유가족으로서 이런 사람들의 시선과 인식이 어떻게 다가올까.

"사회적 타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은 안타깝죠. 사회적 타살, 노동에 대한 관점이 아직 시대가 요구하는 감수성을 못 따라오는 것 같기도 해요. 과거 산업화시대 유산이 지금의 수많은, 특히 젊은 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그냥 시키는 대로 일하라는 게 익숙했던 사회가 이제는 새로운 감수성을 받아들여야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요새 위로와 지지가 많아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특히 젊은 층의 사람들은 어떤 문제인지 잘 알기 때문에요."

작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을 계기로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개정 됐고, 한편에선 산재, 재난 유가족들이 모여 직접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최근엔 노동자 죽게 한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자리에 함께하기도 했다. 이처럼 단순히 피해자의 자리가 아니라 문제를 드러내고, 변화를 직접 만들어가기 시작한 유가족들의 모임 구성과 활동에 대해 물었다.

"유가족들의 경우 비슷한 입장일 것 같아요. 삶의 선택지가 다양하겠지만 사실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유가족은 삶 자체가 온전하게 살아가지 못해요. 아마 유가족 모임을 만드신 분들도 당연하단 생각을 갖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가 떳떳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말이에요. 저도 그랬고요. 사회가 유가족을 존중해주고 함께 모여 활동해나가길 바랍니다.

그 활동의 의미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더불어 방송업계에 맞게 노동자에게 필요한 권리를 요구하려면, 모여서 문제를 토로하고 그것들을 이슈화시킬 수 있는 응집력과 조직들이 더 필요해요. 제작사는 거대 제작사까지 더해서 더 뭉치고 강해지죠.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비정규직, 프리랜서 등 다 흩어져 있어요. 조금은 어려워도 일터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모여서 함께 해결해나가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특집1. 산재 유가족, 그들의 못다한 이야기 / 2019.04

[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①]

 

 

 

 

산재 유가족, 그들의 못다 한 이야기 

 

 

 

 

정리 선전위원회

 

 

 

 

하루 5~6명의 노동자가 죽는 나라. 감춰지거나 혹은 밝힐 수 없는 노동자들의 죽음은 훨씬 많을 거라 짐작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신년사에서 안전, 특히 산업재해 예방에 정부가 정책 역량을 집중할 계획임을 거듭 강조했다. 이미 2022년까지 산재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하며 자살예방, 교통안전, 산업안전 등 3대 분야를 국민생명 의제로 설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일 노동자의 사망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한 시인은 얘기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한 사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 그만큼 사회안전망은 허술하고, 노동자의 건강권은 침해당하기 일쑤다.

 

일하다 세상을 떠난 노동자의 이야기는 주목받지 못한다. 더군다나 유가족들의 존재는 더욱 흐려진다. 그러나 여기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높여 사회를 바꾸기 위한 행동을 시작한 유가족들이 있다. 지난 3월 17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3명의 유가족과 함께 가슴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부터 최근 유가족 모임을 만들기까지의 경과를 이야기 나눴다.

- 대담 참여 유가족 : 장향미 님(ST유니타스 고 장민순 씨 유가족), 김미숙 님(태안화력 고 김용균 씨 유가족), 김용만 님(군포 토다이 현장실습생 고 김동균 씨 유가족)

  • 진행: 이나래 (상임활동가)
  • 기록: 박기형 (상임활동가)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용만 “제 아들 동균이가 한국 토다이 분당점에서 일하다가 뛰쳐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저 혼자 3~4개월 정도 힘들게 싸웠죠. 시민단체도 만나고, 전교조나 민주노총과 힘을 합쳐서 매주 수요일마다 광장에 모여서 집회를 6개월 정도 했어요. 1인 시위도 회사 앞에서 했죠. 1년 10개월가량 진행했습니다. 제대로 진상 규명 되지 못했어요. 사과 한마디 받아본 적도 없어요. 사측과는 협의가 돼서 끝났지만, 과제가 남았죠. 현장실습생 홍수현 양, 이민호 군 등이요. 그때 싸웠을 때 좀 더 강력하게 밀고 나갈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제 아들은 인터넷 쇼핑몰을 전공했어요. 자격증과 특허 5개씩 땄죠. 학교는 실적 때문에 전공이 다른 곳으로 내보냈어요. 회사는 인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겠죠. 실습 전에 학교 선생님과 상담했는데 대기업이라 대우가 좋을 것이라고 했데요. 또 선생님은 교장·교감의 압박을 받기도 했겠죠.”

 

김미숙 “용균이도 학교에서 견학 가면 전공이나 원하는 것과 맞지도 않고 현장 상태가 안전하지 않다고 했는데, 피해서 간 게 태안화력발전소였어요. 교수들은 취업률을 목표로 여기저기 알선해줬죠. 사실 전 안전하지 않다는 걸 느끼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에 나보다는 낫겠지 하고 보냈어요. 취업하는 것 때문에 걱정도 되고, 그런 상태에서 애가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상태가 됐죠. 동료들도 위험 취업하더라도 취업 하기 힘드니깐 여기서 버티다 경력 쌓아 이직해야지 생각했을 텐데 결국 다치게 되죠. 30대가 없고 아주 많거나 어리거나, 비슷한 또래들 많았다고 했어요. 자기가 위험한지 모르고 일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죠. 그냥 여기는 당연히 그렇게 일하는 곳인가 보다 생각했던 거예요.”

 

장향미 “동생은 웹디자이너였어요, 공단기, 영단기 등 상품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회사였어요. 회사에 다닌 지 2년 8개월 정도였고, 웹디자인 경력은 10년 정도 됐죠. 이 업종이 야근을 많이 해요. 그렇기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만을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죠.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새벽 3~4시까지 일을 했어요. 5일 중 3일은 야근이었죠. 포괄임금제여서 일한 만큼 제대로 돈도 못 받았어요. 일하면서 건강 상태가 나빠졌어요. 불면증, 스트레스로 밥을 못 먹어서 살이 많이 빠졌죠. 동생이 죽은 게 작년 1월이었는데 2017년도 여름부터 휴직하고 싶다고 신청했더라고요. 그런데 두 번인가 반려가 됐고, 마지막으로 동생이 퇴사를 할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해서 그때서야 한 달 휴직을 받았어요. 일로 괴롭힘을 당한 거죠. 일을 안 해야 하는데, ‘못 해’라는 말이 안 나왔고 동생 입장에서는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시야가 좁아져요. 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 거죠.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가 안 되는 거예요.”

 

 

산재 유가족에게 사건 발생 이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걸로 예상돼요. 실제 가족의 죽음 이후 가장 어려우셨던 점이 무엇이었나요?

 

장향미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요.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유가족들에게 있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책임은 회사에 있는데 회사가 아니라 유가족이 입증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회사가 자료를 다 가지고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뿐이에요. 자료를 요청할 때 우울증이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이지 회사랑은 관계없다고 얘기하기까지 했어요.”

 

김용만 “저희도 그랬습니다. 경찰이 우울증이 있는지 의료기록을 확인해오라고 했어요.”

 

김미숙 “여기 회사도 용균이 잘못으로 죽었다고 말했어요. 가지 말라는 곳 갔고 하지 말라는 것 해서 죽은 거라고요. 그런데 회사 동료들은 이상 신호가 발생하면 무조건 고치러 가야 한다고 말했어요. 얘길 듣고 회사 사람들이 용균이 잘못으로 돌리려고 하나보다 판단했죠. 사회 시스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에 판단이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직접 일하는 장소도 가봤죠. 현장 상태가 너무 열악했어요. 탈의실부터 모든 경로 다 가봤죠. 회사는 부검 관련해서도 술이나 약물 등 주장을 했어요. 회사가 개인의 문제로 돌리려고 했던 거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기 계신 분들의 경우 대책위원회도 꾸려지고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등이 함께 힘을 모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것들이 도움이 되었나요?

김미숙 “힘 있게 갈 수 있었던 점이요. 저 혼자만이 아니라 100개 넘는 단체가 함께 했어요. 사회 전체의 문제, 비정규직과 안전 문제에 대해 발언할 때마다 도와달라고 호소했죠. 사실 한 집 건너 한집이 비정규직이잖아요. 연대할 수 있었기 때문에 힘 있게 할 수 있었어요.”

 

김용만 “혼자서 시작했어요. 여기저기 찾아다녔죠. 가정이나 개인의 잘못이라고 하는데, 증거를 찾아서 입증해야겠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회사에서 동료들 입단속을 시켰더라고요. 6~7월까지 증거 수집하러 혼자 다녔어요. 언론에 알리려고 했는데 자살 사건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기피하더라고요. 조그맣게 대책위가 생기면서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내가 죽더라도 이거는 해야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서 한 사람의 목숨이 아니라 가정과 다른 사람들의 삶이 파괴됐어요.”

 

 

그렇다면 산재 유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정부와 사회의 지원은 무엇이라고 보세요?

 

장향미 “산재 신청의 문턱이 높아요. 입증자료 모으는 것부터가 힘들죠. 회사가 순순히 내주지 않거든요. 저희도 법원에 증거보존신청, 판결까지 받아서 받아냈어요. 그런데도 회사가 불성실하게 자료를 줬죠. 법적 강제력이 없어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거죠. 어떻게든 은폐시키려고 해요. 법적 강제력 없는 상황에서 자료를 확보하는 싸움이 불가능합니다. 개인 대 조직의 싸움이기 때문이죠. 대책위와 함께할 수 있어서 가능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유가족이 그렇게 못하기 때문에 포기해요. 그런데 자료를 모아도 문제에요. 추가 자료요청, 진술요청, 자료보관 등, 산재 판결이 날 때까지 죽음을 안고 있어야 해요. 경제적 문제를 떠나서 이게 끝나지 않으면 일상으로 돌아가지를 못해요. 오래 걸리는 산재승인 기간문제도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산재인정 여부나 개인보상 차원의 문제로 여겨지고, 그러다 돈 때문에 저러는 거 아니냐는 유가족에 대한 비난이 가해지기도 해요.”

 

김미숙 “서로가 자책하게 돼요.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는데, 거기만 안 보내면 되었는데, 그만두라고 왜 말하지 못했을까, 했는데도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여러 생각이 들어요. 치유는 그냥 되지 않아요. 법 제도가 바뀌고 개선되는 상황을 봐야 치유가 되는 거예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죽은 사람이 헛되이 죽은 게 아니라는 걸 입증해야죠.”

 

김용만 “죽을 때까지는 고통 속에서 가슴 아파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변화 없이는 그런 상황이 반복될 거잖아요. 그걸 지켜보기 힘들어요. 나 혼자보다는 같이 뭉쳐서 해결해나가고 싶어요. 사실 삶 자체도 피폐해졌습니다. 저도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자요. 1년 동안 악몽에 시달렸어요.”

 

 

유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다시는 이 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어떤 게 필요할까요?

 

장향미 “정부도 문제의식을 점차 가지게 되는 중인 것 같아요. 사실 개인의 문제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약한 사람만 있는 걸까요? 사회 구조적 문제죠. 자살자 한 명으로 인해서 영향을 받는 사람은 평균 8명 정도 될 거예요. 그에 따른 여파가 있을 거란 거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케어를 해줘야 해요. 하지만 현재로는 없죠. 지자체에서는 연락을 취하고 매뉴얼을 갖추려고 하는 것 같은데 초반이라 배려 없이 기계적이고 유가족 입장에 와 닿지 않아요.”

 

김미숙 “사람 목숨값이 제일 싼 거로 취급되잖아요. 영국처럼 강력하게 기업을 처벌하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용만 “교육부의 개악 안으로 그동안 요구해온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 노력이 물거품이 됐어요. 다시 요구해야 합니다. 사실 공공기관의 정책을 신뢰하기 어려워요. 유가족, 시민단체, 전문가 등의 참여하에 바꿔나가야 해요.”

 

 

장향미 님은 과로사·자살 유가족 모임에 참여하고 계시고, 다른 두 분도 얼마 전 출범한 산업재해, 현장실습 유가족 모임에 함께 하고 계시는데요.

 

장향미 “일본 과로사, 과로자살 모임에 참여했던 연구자분이 주도해서 유가족들과 연락이 닿게 되어 모임이 결성됐어요.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회사와 어떻게 싸워나가야 하는지 배워나가 다른 가족들은 시행착오를 안 겪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유가족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에요. 일련의 절차와 노하우, 쟁점 등을 다룰 생각입니다. 누구도 내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죠. 일본은 유가족 모임이 지속되면서 과로사 방지법까지 만들어 냈어요. 향후엔 이를 한국에서도 실현해보고 싶은 바람이에요.”

 

김미숙 “힘을 모아서 싸워나가야 해요. 법제도를 개선해나가는 것조차 유가족들이 나서지 않고서는 못해요.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한테 닥치지 않을 것이라 자기 문제가 아닐 것이라 생각하기 쉬워요. 유가족들이 뭉친다면 사회적 목소리도 커질 거라 생각해요.”

 

김용만 “들불처럼 번질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 산재사망 유가족 모임이 서로 연대하지 않으면 사회를 바꾸기 쉽지 않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 전해졌으면 하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미숙 “인식의 변화, 법제도 변화, 노동과 안전에 대한 생각이 전환되어야 해요. 사회가 안전하게 상생하여 삶이 윤택해지려면 우리가 나서야 해요. 의지가 있다고 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있고, 기업이나 정치인들은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잖아요.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예요.”

 

장향미 “정부도 기업도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해서 경제가 안 좋아진다고 하는데요. 그런 논리면 소위 선진국들은 다 경제위기에 처해야겠죠.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려고 하는 건 기업의 입장을 반영하는 거예요. 출산율이 낮아져서 위기라고 하는데 안전하지 않은 나라에서 누가 아이를 낳고 싶겠어요. 자살률, 산재사망률 높은 이유가 뭔가요. 해결 방법을 1차원적으로 접근하면 안 돼요.”

 

김용만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유가족들이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싸워나간 것처럼 같이 일어설 수 있어야 해요. 생업에 쫓기다 보니 힘들겠지만, 당사자들이 힘들더라도 서로 다독여주며, 서로 연락을 해서 뭉치고 연대를 해서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노동자-기업이 상생해서 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해요.”

 

 

 

 

 

[만평] 인생 미세먼지... / 2019.02

<일터> 통권 181호 / 2019.3








[특집지워지지 않는 존재, 여성 노동자 

 

1.일하는 여성의 숨겨진 노동시간

2. 여성노동자의 재생산권을 보장하지 않는 산재보험 제도

3. 지금 당장, 성평등 노동을 외치다

 

[지금 지역에서는]

 

직업계고 현장실습생 학습은 뒷전인 교육부에 맞선 공동행동

 

[국제안전건강뉴스]

 

위기에 놓인 방글라데시 무두질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

 

[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 검토 연구] 

 

독일 산업안전보건법 체계가 한국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주는 메시지5 

 

[연구리포트] 

 

일본 철도 JR 3사의 외주화와 안전 위협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백래시와 플랫폼에 맞서는 여성 디지털콘텐츠노동자들

 

[현장의 목소리] 

 

아이들 마음의 오아시스 학교 상담선생님의 눈물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현장과 밀착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위해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어느 응급의학과 의사의 고백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어느 군무원의 업무관련성 평가 이야기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노동조합 활동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을 꿈꿔보다

 

[노동자 건강상식] 

 

돌연사(급성심장정지)

 

[문화읽기] 

 

생리혐오를 뚫고 훨훨 날아오르다

 

[발칙 건강한 책방] 

 

상상해보자, 더 나은 세상을

 

[이러쿵 저러쿵] 

 

주체적으로 말하고, 행동하기의 중요성

 

[안전보건동향] 

 

[한노보연 이모저모]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어느 응급의학과 의사의 고백 / 2019.03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어느 응급의학과 의사의 고백

 

 

 

 

 

응급의학과 의사 L

 

 

 

 

최은영의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는 아치디에서라는 제목의 짧은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주인공 랄도는 브라질에서 엄마와 누나의 노동에 의존해 방에서 마리화나나 피우며 목적 없이 살아가는 청년이다. 잠깐의 연인이었던 여자를 아일랜드까지 만나러 왔다가 화산폭발로 발이 묶이게 된다. 더 이상은 그를 경제적으로 지원할 수 없다는 엄마의 뜻에 어쩔 수 없이 돈을 벌 곳을 찾게 되고, 그렇게 찾아간 작은 마을 아치디에서 그는 하민이라는 한국인 여자를 만난다. 무뚝뚝하고 항상 화난 표정이던 그녀와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약간 친밀해진 그는 그녀가 한국의 대도시에서 3교대로 일하던 간호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 좋은 직업을 놔두고 여기까지 왔냐는 물음에 그녀는 대답한다. 한 간호사가 있었는데 그녀를 너무너무 싫어했었다고, 여기까지 모든 것을 버리고 올 정도로. 그러면서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일이 몰릴 때가 있어. 한시도 앉지 못하고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해야 하는 때가.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계속 일을 해. 그런 날 중 하루였어. 거의 백 살이 다 된 할머니가 환자로 들어온거야. 딸은 팔십 먹은 노인이고. 그 노인이 그녀에게 부탁한거지. 자기 엄마 욕창에 드레싱 좀 해달라고. 그녀는 짜증이나. 그리고 생각하지. 왜 노인들은 이렇게 짜증나는 존재들인가. 다른 일들도 많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 해. 정신없이 일해. 할 일이 너무 많아. 노인이 다시 찾아오니. 할머니, 기다리시라고 했잖아요. 네 시간 기다렸어. 노인이 대답해.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우리 엄마가 아파서 울잖아. 기다리세요. 그녀는 차갑게 말해. 급한 일들을 다 끝내고 가서 드레싱을 하지. 손길은 빠르지만 거칠어. 그리고 생각하는 거야. 왜 백 살까지 살아서 모두를 귀찮게 하느냐고. 왜 이렇게까지 살고 싶어 하냐고. "

 

 

그녀가 그렇게 싫어하게 된 간호사는 자기 자신이었다.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던 이유는 예전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전공의로 일하던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커피와 에너지음료로 매일을 겨우 버티던 그 시기에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놓지 못했지만 사실 '왜 이렇게까지 살고 싶어 하냐고' 푸념하듯 속으로 중얼거릴 때가 있었다. 그 전에 스스로 상상했었던 따뜻하고 유능한 의사의 모습이 아니라 분노와 피로와 짜증으로 뭉쳐있는 싸가지 없는 전공의가 된 자신을 발견했던 시간이었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이상, 밤낮이 바뀌는 건 당연했다. 식당 시간을 맞추지 못해 식은 배달음식이나 편의점 음식으로 식사를 때웠다. 야간 근무가 연달아 있을 때에는 밤을 꼴딱 새고 컨퍼런스에 졸면서 참석한 후 편의점에서 빵과 음료수를 사서 머리맡에 놓고 잠이 들었다. 자다가 배가 고파 깨면 머리맡에 있는 음식을 주섬주섬 먹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다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면 깨서 다시 밤 근무를 위해 응급실로 향했다.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들었다. 건강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청천병력 같은 이야기를 듣고 황망히 내원한 이들도 있었고, 타병원에 몇 달째 입원해 있다가 해결되지 않아 사전만큼 두꺼운 의무기록을 가지고 응급실로 오는 환자들도 있었다. 환자 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베드는 이미 찬지 오래라 목도 가누지 못하는 노인들이 휠체어에서 수십 시간이 넘게 버티고 있었고 보호자들은 그 뒤에서 환자분의 머리를 붙잡고 힘들게 서 있다가 때때로 분통을 터트리곤 했다. 가벼운 질환으로 내원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의무기록 한 페이지에 다 들어가지 않는 긴 병력을 가졌고 많은 약과 시술과 수술을 필요로 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정보를 알아내고 적절한 진료를 제공하는 일은 시간도 경험도 없던 나에겐 너무 어려웠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접수되는 환자들이, 항상 무언가를 요구하는 보호자들이, 계속해서 들이닥치는 구급차가 원망스러웠다. 이미 한 설명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면 짜증이 치밀어 올랐고 끊임없이 전자차트에 새로 뜨는 이름들을 보면 분노마저 느끼곤 했다. 모두가 아픈 환자고 각자의 긴 이야기가 있었지만 귀를 기울여 들을 여유가 없었다. 그들의 고통이나 불안함, 아픔을 느끼고 연민하거나 위로하기에는 너무 둔감해져 있었다.

 

근무가 끝나고 몸이 좀 편해지면 후회했다. 환자를 환자로만 보지 않겠다고, 하나의 인격으로 보고 존중하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나는 왜 이리 체력도 약하고 잠도 많고 성격도 더러운지, 자주 자책했고 그러지 않으려 다짐했다. 새롭게 다짐하고 근무를 시작했어도, 피곤하고 배고플 때가 되면 또 짜증을 냈다. 간혹 같이 일하던 동료나 선후배 중 한 두 명이 말없이 도망가거나 사정이 있어 빈자리가 생길 때가 있었고 그럴 때면 그 부재를 누군가는 채워야 했다. 인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아픈 환자가 덜 생기는 건 아니니까. 근무 때 마다 진료를 하면서 부지런히 환자를 퇴원시키거나 다른 병원으로 전원 시켜야 했다. 입원하고 싶어 하는 환자와 원망 섞인 보호자의 비난을 들으면서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어쩔 수 없다고'만 반복했을 뿐. 그 과정에서 하민이란 여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내 자신이 싫어하는 의사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 시간이 끝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공의와 전임의 시절이 끝나고 나는 그곳을 빠져 나와 전보다 건강해진 몸과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의료현장에서 여전히 과중한 노동을 하고 있다. 주로 인턴, 전공의, 그리고 펠노예 (펠로우+노예를 합친 말이다)라고 우리가 부르는 전임의들 이다. 어떠한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하고자 하는 이들도 그 곳이 열악하고 위험부담이 많으며 보수가 적은 자리임을 안다.

 

그러나 여전히 그 현장을 지키고 있고, 그 대가로 건강을 위협받는다. 아주대 외상센터의 이국종 님은 한쪽 눈이 거의 실명 상태이며 어깨와 다리도 잘 못쓰신다고 한다. 아마 함께 일하는 팀의 대부분이 수면장애를 포함 자잘한 질병에 시달리실 거라고 짐작된다. 고 윤한덕 님은 응급의료 시스템을 위해 과도한 근무를 하면서 과로와 수면부족에 시달리다 기저질환도 없이 심정지로 사망하셨다. 한 대학병원의 33세 소아과 전공의는 36시간 연속근무 중 당직실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간호사들의 현실은 어떤가. 현재 신규 간호사의 이직률은 38.1%이고 간호사 평균 근속년수는 5.4년이다. 수면부족과 과중한 업무, 감정적인 스트레스 및 부담감 속에서 그중 몇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그 외의 많은 이는 위염과 수면장애를 얻은 채 그곳을 떠난다. 하민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의 경우, 내가 부족해서 그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시간을 자책하면서 보냈다. 비슷한 상황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다. 같은 환경에서도 어떤 이들은 더 친절하고 공감하는 태도를 보여줬고, 틈틈이 환자들과 라뽀(rapport)를 쌓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지만 모두에게 그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나를 포함한 보통의 많은 사람들은 최소한의 수면시간을 보장받고 예측 가능한 근무 속에서 적절한 노동 강도로 일할 때 인간을 인간으로 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 책에서 랄도는 궁금해 한다. 왜 하민은 항상 자신은 열심히 살았다라고 하는지.

 

나는 살다라는 동사에 열심히라는 부사가 붙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 hard’는 주로 부정적인 느낌으로 쓰이는 말 아닌가. ‘hardworking’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사는 게 일하는 건 아니니까.”

 

사는 게 일하는 것은 아니다. 새삼스러운 말이다. 열심히 일하고, 헌신하는 것,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한 헌신을 높이 평가하고 추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헌신과 희생에 대한 강요가 되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 자신의 몸을 갈아가며, 삶을 바쳐가며 일하지 않아도 무리 없이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꼭 전쟁터에 나간 장수처럼 비장하게 일하지 않아도 되는, 누군가 과로로 죽거나 아프고 나서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 내가 소명의식 없고 게으른 사람이라 그런지는 모르다. 하지만 나는 너무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보통 정도로 적당히 일해도 문제없이 굴러가는 곳에서 스스로의 몸을 돌보며 일하고 싶다.

 

 

 

 

 

 

 

[현장의 목소리] 아이들 마음의 오아시스 학교 상담선생님의 눈물 / 2019.03

[현장의 목소리]

 

 

 

 

아이들 마음의 오아시스 학교 상담선생님의 눈물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화성청소년상담사 인터뷰-

 

 

 

 

 

경희 / 선전위원

 

 

 

 

 

새 학년 준비로 바빠야 할 상담선생님들이 경기도교육청 앞 차가운 인조대리석 위에서 두 달 넘게 노숙농성을 하다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다. 학교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화성시 학교 청소년상담사 박호진, 김선희, 안미숙 선생님을 지난 130일에 만났다.

 

화성시 가서 따지지 왜 여기에 온 거야!’ 기자회견을 마치고 교육청 현관 앞 로비 농성장을 차리려는 상담선생님께 경기도교육청 관계자가 방해를 하며 한 말이다.

 

착잡하죠. 새해를 모두 천막에서 보냈기 때문에 마음도 불편하고요. 화성시는 해고하고, 경기도교육청에서는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않은 상황이라 더 답답해요.”

 

대부분 선생님들이 2~6년간 한 학교에서 근무했는데 어떻게 계약해지로 해고를 당할 수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2012년에 경기교육청에서 채용공고가 나서 학교장 면접을 보고 화성에서 처음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잠깐 쉬다 20149월에도 학교장 면접을 보고 학교에서 근무해 교육청에서 채용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2015년에 2년 이상자에 대해 조사를 했고 연말이 되니 무기계약직 전환조건이 만2년 초과자로 바뀌었어요. 교육청에서 무기계약직이 안 된 선생님은 다른 조치가 있을 것이니 교육공무직 인력풀에 이름을 올리고 기다리라는 공문이 왔어요. 그것에 혁신교육지구 창의지성사업의 1MOU가 끝났다는 걸 의미한데요. 그리고 2MOU에서는 창의지성사업은 하나 인력사업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네요. 그런데 저희는 그것을 알 수 없죠. MOU협약서를 일일이 공개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학교에선 저보고 다시 올 거죠?’를 연발하여 물어보시더라구요. ‘학교에서 저를 버리지 않으면 다시 오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일단 학교에서 다시 공고 나기를 기다렸는데, 어느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어요. 교육청 말고, 화성시 홈페이지에 채용공고가 났다고 하더라고요. 교육청이 아닌 화성시에서 공고가 나는 게 좀 놀라웠지만 학교에서 다시 일할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그리고 다시 2016328일자로 기존학교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어요. 계약서에 서명할 때 20161231일로 되어있어 또 놀랐어요. 학교의 학기는 2월에 끝나는데 저희는 연말까지로 되어있어 저희가 항의했죠. 그랬더니 171월에 계약서를 또 쓰더라고요. 1년짜리로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희는 이것이 파견이라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어요. 저희는 지금껏 학교에서 근무하고 학교에서 일을 했고. 교육부업무(위클래스)를 한 것이지 시청일이나 위탁업체의 일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공공기관(학교)에 근무한다고 생각했는데 20178월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전환심사 1차 조사에 해당사항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파견직이라 하네요. 그래서 조사대상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그때 알았어요. 내년에 또 조사하는 게 있으니 그때 대상이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18년까지는 버티고 기다리자 했어요.

 

2018년도에 계약서에 서명할 때는 위탁업체가 바뀌었다 하네요. 저희가 원해서 위탁업체가 바뀐 것도 아니고 생각해보니 2년이 되면 무기계약을 해야 하는데 우린 2년이 넘으니 무기계약이 안 되게 하는 방법으로 이제는 위탁업체를 바꾸는 꼼수를 부리더라고요. 그래도 어떻게 해요. 사회적 약자이니 그렇게라도 버티고 있어야 무기계약이든, 정규직이든 하겠다 싶어 계약했어요. 그리고 201810월이 되었는데 더 이상 이 사업을 하지 않겠다하는 거예요. 위탁업체가 바뀌고 2년이면 무기계약이 돼야 하고, 상시지속업무다보니 정규직전환심사 조사대상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화성시의 정규직원이 되어야 하거든요. 그러니 안하겠죠.”

 

 

무기계약직 전환조건이 만 2년 초과자로 바뀌면서 하루가 모자라 무기계약직 전환이 안 된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고 한다.

 

 

“201431일부터 2016228일까지 근무하셨어요. 본인은 만 2년이 돼서 무기계약직이 된다고 기대했는데 명단에서 빠진 거죠. 상담사도 감정노동자다 보니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약을 복용하기도 해요. 그 분도 약을 복용하고 계셨지만, 하루 모자란 부분에 대한 억울함과 불안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어요. 선생님이 언제 학교로 갈 수 있을지에 대해 얼마나 불안하고 억울했을지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당시 저희는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어요. 고용이 불안정했기 때문에 겨우 선생님 몇 분이서 조문가는 정도였죠. 그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이 아직 남아있어요

 

평소 시민과의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화성시장. 그런 그가 법대로 하라며 간담회를 박차고 나간 까닭은 노조관계자는 시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아님 노동 감수성의 결핍일까?

 

상담사 40명이 가서 이야기를 한들 시장 님 앞에서 저희가 얼마나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에요. 교장선생님이 부르시면 사실 그 앞에서 마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없어요. ? 상관이니까요. 더군다나 법적인 것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노조관계자분들과 상의를 하고 면담에 함께 할 것을 요청했어요. ‘왜 노조에서 왔냐?’고 말씀하셔서, 저희는 법을 잘 몰라서 노조관계자와 같이 왔다고 하니 나는 면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40명이라 면담에 응해야 한다기에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 그런데 여러분은 무장을 하고 왔다.’며 굉장히 불쾌해하며 그럼, 법적으로 하라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나셨어요. 무장을 했다니요? 그럼 직장에서 상관이랑 일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야 하는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갈수 있나요? 어떤 질문을 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을 준비해 가야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생각해요.”

 

상담선생님은 학교에서 주목받는 위치는 아니다. 그래서 평소 업무가 궁금했다. 인터뷰를 하며 애플데이, 친구사랑데이처럼 아이들이 좋아하는 학교 프로그램 모두 상담선생님의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교행사, 행정적인 일도 하지만 주로 상담을 합니다. 위기상담의 경우 바로 개입해서 연계시키고, 자살이나 자해의 경우 정신건장증진센터로 연계하기 전까지 위기상황을 저희가 돕고요. 학부모 상담이 그 다음으로 중요하고, 교사들이 아이들 상담과 관련해서 자문을 구하기도 합니다. 상담이 50분이면 그것을 일지로 정리하고, 통계를 내서 가지고 있어야하거든요. 교육청에서 봄에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정서인성특성검사는 초1, 4, 1, 1에 시행합니다. 통계를 내어서 분류를 하면 상담이 필요한 경계에 있거나 지속 상담이 필요한 경우 진행 합니다.

 

예방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의 자존감, 사회적 기술 증진 집단프로그램이 있고, 아이들의 일반적인 교우관계를 위해 해마다 계절별 행사들이 있습니다. 봄에는 친구사랑 데이, 가을에 애플 데이, 겨울에 우리들의 크리스마스 등 선생님마다 특색 있는 사업을 해요.”

 

최근 들어 학교 학생의 20%가 이상심리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만큼 상담선생님 역할이 많아지는 이유이다. 학교 현장에서 어떤지 들어보았다.

 

 

최근 들어 학교 상담이 전문적인 이유는 다루기 어려운 우울감, 급성 조현증상, ADHD 같은 병리적인 문제를 가진 아이들의 숫자가 늘고 있어 전문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유사 자폐 같은 경우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가능하고, 복합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을 경우 몇 년씩 약물복용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약효가 떨어지는 오후 2~3시 정도에는 자기 간극이 떨어지고 불안할 때 그 시기를 같이 버텨주고 견뎌주는 것, 학교 내에서 이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에요. 특히 아이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저희가 적극 개입합니다.”

 

학생, 학부모, 교사까지 상담을 하다보면 정작 상담선생님의 소진은 어떻게 해소할까. 또 상담사에게 직무스트레스를 줄이는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상담윤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내담자의 비밀보장이거든요. 학부모가 자발적으로 요청해서 상담이 진행돼도 학교 내에서 상담자, 상담내용 등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요. 상담이라는 것이 내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다보니 외적인 행동의 변화가 금방 나타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모든 문제를 혼자서 감당하다보니 힘이 들어요. 그럴 때는 신앙의 힘, 난타나 춤 같은 취미활동 혹은 동료나 선생님들과 슈퍼비젼을 통해서도 하고, 센터에서 자존감 향상 교육연수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여름과 겨울에 한 번씩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기 어려워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했던 마음을 보여주고, 밝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 그 아이의 지원자로 버텨주는 엄마 같은 존재로 학교에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보람이라며 말씀하시는 동안 얼굴이 쨍하고 밝아진다.

 

 

초등학생이었던 아이가 고등학교 교복 입고 찾아와요. 담임선생님은 학년이 바뀌면 학생과의 관계가 끝나지만, 저희는 그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은 그 아이를 계속 보게 돼요. 평소 지적을 받다가 한번이라도 칭찬을 받으면 소위 꼴통 짓을 하다가도 멈춰요. 학기 초에 학부모 상담주간이잖아요. 10회기, 20회기 아이와 함께 부모님 상담을 진행하면 가정의 변화가 생겨요. 다문화가정의 경우 어머니께 가정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담과 양육태도 같은 교육을 병행해요. 청소년상담사라고해서 아이들만 상담하는 것 같지만, 교사의 심리적 소진 예방, 학부모님을 통해 가정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심을 느끼거든요. 그래서 각 학교에 상담사선생님이 상주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고용안정을 바라는 그들의 희망이 해고를 당할 만큼의 잘못인가! 상담선생님이 하루속히 복직되어 아이들과 학부모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도록 화성시와 경기도교육청 모든 노력을 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