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_A-Z다양한노동] 선한 사회를 그려나가는 타이핑- 미디어오늘 손가영 기자 인터뷰

선한 사회를 그려나가는 타이핑- 미디어오늘 손가영 기자 인터뷰

 

기자는 사회 구성원이 궁금해 할 만한 내용을 취재해서 기사로 쓰고, 이를 매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뉴스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직업을 말한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기자라고 하면 신문기자나 방송기자를 떠올렸지만 이젠 온라인이나 모바일로만 기사를 공급하는 인터넷 신문기자들도 많다. 이번 AZ 다양한 노동이야기에서는 손가영 기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터넷 신문 기자의 일과 삶의 한 편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미디어 오늘이라는 인터넷 신문 기자로 2015년부터 일하고 있는 손가영입니다. 인터뷰를 많이 하는데 당해보니 새롭고 당황스럽네요.

저는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했고 교지편집위원을 했었어요. 학생때는 구체적으로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교지편집이 재미가 있었고 이쪽 분야의 일들이 제 적성에 맞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그래서 생업으로 기자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에 삶에 관심이 많아 사회분야 기사를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노동, 복지, 환경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회부에서 3년 일했고 지금은 미디어부 소속입니다. 요즘은 오보, 왜곡보도, 기자들의 갑질 등 언론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기자들의 일과는 밀도가 있고 업무 스트레스도 많다고 들었는데, 어떤 일들을 하시고 그 과정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공식적인 근무시간은 9시부터 6시까지인데, 9시 전에 오늘 어떤 기사를 쓸지 데스크 팀장에게 발제를 합니다. 이렇게 취재승인을 받으면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되죠. 현장취재, 전화 문의, 자료검색 등을 통해서 그날 여섯 시 전후로 기사를 마감하게 됩니다. 기사를 작성하면 데스크에 넘기고 최종적으로는 국장승인 후 기사를 내보내게 됩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한 개의 기사를 쓰는 것 같습니다. 출입처에 보도자료를 쓰는 기자들은 하루에도 몇 개의 기사를 쓰는 데 저희는 하루에 하나 정도 기사를 씁니다. 밀도 있게 일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어떤 언론사의 비리 문제를 전화로 확인하고, 인터뷰까지 마친 뒤 여기에 왔네요.

제가 관심있게 보고 있는 사안들이 여러 가지라 특정 기사를 쓰는 도중이라도 그 사안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틈틈이 확인합니다. 그래서 하루 일과가 밀도 있게 돌아가는 편인데요, 일상적인 업무를 하다가도 갑작스럽게 큰 사건이 발생하면 바로 취재를 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아침 신문 솎아 보기라는 기사를 쓰는 당번이 있어요. 국내 일간지를 8시에 정리해서 기사를 작성하는 건데, 5시 반에 일어나서 8시 반까지 정리해서 올리고 좀 쉬다가 11시에 출근을 합니다. 52시간제 덕분에 업무시간은 줄어든 거 같습니다.

주말은 하루는 쉬고 하루는 자료 조사 하는 편입니다. 업무과 비업무 시간이 분리가 잘 안 되는 편이에요. 주말에도 취재원들로부터 불쑥 전화가 오는데요, 그러면 받아야지요. 이 또한 업무의 연장인데... 그림자 노동이라고나 할까요. 밥 먹고 있다가도 중요한 전화가 오면 받아야 되고요. 스트레스를 안 받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의 업무가 지속되니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더라구요.

 

일을 하다보면 인터뷰 거부당하고 기사로 비판 받는 일도 많을 것 같아요.

우리가 일상적인 삶에서는 거절당하는 일이 많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기자는 거절 당하는 게 일상사입니다.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면 우선 피하고 인터뷰를 거부하는 사람이 정말 많으니까요. 비판적인 기사를 쓰면 욕을 듣기도 하고요.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해서 힘들게 인터뷰 했는데 인터뷰 받는 분(인터뷰이)이 언론에 기사화하는 걸 거부할 때도 있죠. 그런 때는 내가 설득을 못했다는 자책감도 듭니다. 그래도 거절이 연속되는 일상을 겪어왔다보니 이제는 거절 당하는 게 신경쓰이진 않습니다.

그리고 취재원들이 기사를 보고 비난할 때도 있어요, 사실관계가 맞는데도 기사를 철회해달라고 막무가내로 요구할 때도 있고요. 기사에 대한 반응과 평가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들어옵니다. 취재원들이 연락하기도 하고 데스크도 기사에 대한 평가를 하고요. 기사에 댓글도 달리고요.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마냥 편한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기자 생활을 5년 이상 하다보니 맷집이 생기는 거 같아요, 웬만한 일에 상처받지 않는다는 거, 이게 입사초기에 비해 달라진 점이예요. 하지만 책임감은 더 느끼죠.

 

일 하시면서, 힘든 순간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취재원이 1년 전 유서를 남기고 돌아가신 적이 있어요. 지역 방송사 비정규직 PD인데 만 13년 동안 정식 직원처럼 일을 했어요. 프리랜서 신분이었지만 고정으로 매주 1, 1시간의 고정 프로그램을 했고 그 외에도 다른 일을 했어요. 십 수년 간 박봉으로 일해왔기에 상사한테 13년 만에 월급을 올려달라고 했는데 바로 해고 되었어요. 이분은 정식 직원처럼 일을 했기에, 억울해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진행했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동료를 회유해 진술을 번복하게 했습니다. 법원에서는 회사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1심을 패소했어요. 저는 몇 개월전부터 그 분 관련 기사를 썼었어요. 판결나고 후속 기사 쓰려고 통화했는데 며칠만에 돌아가신거지요. 그 일을 겪고 충격이 컸습니다. 유서에는 제 이름도 있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못했다는 자책감도 컸습니다. 제가 이분 관련 기사를 많이 썼는데 다른 언론에서는 기사가 많이 나오진 않았습니다. 이 사건 겪으며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자가 뭔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고 이재학 PD2018년 억울해서 미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 피디의 가족은 재판을 이어받아 법정 다툼을 벌여왔다. 지난 20215, 근로자였던 점과 부당해고 당한 점이 인정된다고 항소심에서 승소한 바 있다.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는 고 이재학 PD만의 문제는 아니다. 방송계에 잘못된 관행, 열악한 노동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건 익히 알려졌다. 그의 죽음 이후 방송계 노동자들의 부당한 노동현실에 사회적인 관심이 모아진 바 있다. 손 기자는 이 PD의 사망 이후에도 여러 번 후속 기사를 낸 바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020년 올해의 좋은 보도상에 미디어오늘 손가영, 김예리 기자의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부당해고 및 사망사건 관련 연속 보도를 선정했다.

기자의 직업병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지난 1년 동안 그 분 자살로 충격을 받고 집에 들어가면 문득 우울해지고 불면증도 생긴 적이 있어요. 지금은 좀 나아졌습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손가락이 아파요, 저도 손가락이 욱씬거려 병원도 가 봤는데 딱히 병명은 못 찾았어요, 병원에서는 쉬라고 하는데 쉴 수는 없는 현실이고요. 그리고 두통이 생겼고요, 편두통인거 같은데 일을 시작하고 생활이 안 될 정도로 머리가 아픈 적도 있어서 약을 챙겨서 먹기도 합니다. 알고 보니 다른 기자들도 두통이 많더라고요. 매일 기사거리를 생각하고 작성해야 되니 긴장감이 높고 스트레스가 많은 편이예요.

 

언론사 내부 문화는 어떤가요?

우리 언론사는 각자 일 열심히 하자는 분위기입니다. 수평적인 분위기로 지시하는 편이라기 보다는 기자들이 스스로 각자 발제하는 아이템 위주로 흘러가는 편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방향성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다른 일부 언론사는 선후배 관계가 명확하게 수직적인 곳들도 많아요. 선배가 시키면 해야되는 분위기인 곳도 있고요, 심하게는 자기기 쓰고 싶지 않은 기사를 써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 양심에 반하는 기사를 쓰게 되는 경우가 있어서 심한 경우 사직하는 경우도 있어요. 내가 쓴 기사가 기사내용이 바뀌어서 나가는 경우도 있고요. 또 직장내 괴롭힘이 있기도 하죠, 수 년전만 해도 잠도 안재우고 주말에 당직서게 했어요. 언어 폭력으로 스트레스 받는 기자도 있습니다. 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옂너히 남성중심적인 편이고, 술자리에서 성희롱도 있어요. 언론계에 숨겨진 이야기가 많아요, 언론은 자기 이야기를 잘 안해요.

 

기사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일까요?

언론은 필요한 정보를 주고 기업, 정부, 공공기관 등 권력집단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며, 내 이웃의 문제를 충분히 보여 주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 번째에 방점을 두는데요, 사회를 선하게 바꾸어 내려는 힘이 있는, 영향력이 있는 기사가 좋은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좋은 기사는 많은 노력이 끝에 완성됩니다. 시간을 들여 여러 사람들 만나야 합니다. 기사에는 1명 인터뷰한 걸로 나오지만 실제 취재과정에서 여러 명을 만나 인터뷰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발품을 들여야 좋은 내용이 나옵니다. 저도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에게 물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인터넷 기사를 보면 양은 많지만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라고 느낄 때가 많은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표적으로는 최근 손정민씨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손정민씨의 사건에 대해 언론이 전해주는 수준으로 세세히 알 필요가 있을까요? 하지만 기사가 잘 팔리니까 많이 쏟아져 나왔죠.

요즘은 코로나백신 이상반응에 대한 기사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이 보도하는 거 같습니다. 사람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린 게 아닌가 합니다.

 

좋은 기사, 좋은 언론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독자의 역할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기자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는 정확한 지적이 필요하고요. 그리고 경쟁과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다 보니 좋은 기사가 나오면 격려도 필요합니다. 이런 피드백이 언론 발전에도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선전위원장 장영우)

 

 

 

 

 

 

 

 

 

[8월_동아시아과로사통신] 과로사 판단기준 변경과 노동법에서 배제된 가사노동자

과로사 판단기준 변경과 노동법에서 배제된 가사노동자

 

623일자 신문기사에서, 일본 정부는 후생노동성이 뇌심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업무 관련인지 혹은 과로사인지 판단하는 과로사 기준의 수정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년 동안 변함없이 유지돼 온 현재의 판단 기준에서는, 질병 재해 발생 전 한 달 동안 100시간 혹은 질병 재해가 발생하기 2~6개월 전 평균 80시간 이상의 초과 근로를 했을 경우 업무 관련성이 인정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서류상으로는 초과 노동 여부를 과로사 판정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지 않고, 직장 내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는 다른 문제들도 고려한다고 정부는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이제까진 실질적으로 초과 노동 시간이 가장 주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했다. 이는 업무 관련으로 승인된 사건들 중에서 초과 노동시간이 한 달 동안 80시간 미만인 사건은 단지 10%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피해 가족 구성원들은 수 년 동안 이 기준을 낮출 것을 주장해 왔다. 정부나 법원은 피해자가 한 달 동안 60-70시간의 초과 노동을 했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과로사 인정을 거부한 사례가 많다. 피해자 가족은 피해자의 노동 조건과 같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증거에 대해서는 접근할 수 없다. 이렇게 피해자 가족들이 피해자의 실 노동시간 정보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초과 노동 시간이라는 판단 기준은 추가적인 걸림돌이 된다. 하지만 정부 부처 스스로도 한 달 동안 45시간 이상의 초과 근무는 뇌심질환 발병을 야기할 위험이 높다고 인정했고, 세계 보건기구(WHO)는 주당 55시간(40시간 근로 기준으로 한 달 동안 60시간 초과 근로) 일하는 노동자는 뇌심장 관련 질병에 걸릴 위험이 더 높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80시간 기준은 이 문제에 대한 수많은 학술 연구를 무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많은 피해자(피해 가족)들이 정부를 상대로 보상을 청구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기준이 낮아질지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다. 정부는 보다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부상이나 질병의 업무 관련성 여부를 판단하는 여러 기준을 추가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새로운 기준은 4 시간 이상의 시차가 있는 곳으로의 해외 출장, 교대근무 사이 휴식 시간이 11 시간 미만인 경우, 무휴 근로 등이다. 하지만 정부는 시간 기준을 낮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 보호에서 배제된 가사 노동자

대부분의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에 의해 보호되지만 개인이 고용한 가정부 또는 가사 도우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제 116조는동거하는 친족만 고용하는 사업체나 가사 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어, 가사 노동자는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은 가사 노동자들이 직장 상해 보상 제도(역자주- 한국의 산업재해 보상보험 제도에 해당함) 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개인 가구를 위해 일하는 동안 입은 부상은 업무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업에서 고용한 가사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점이다. 개인 가구를 위해 일하는 근로 계약에 동의한 사람만 제외된다(노동권 보호 측면에서 노동자가 고용주와 집에 함께 거주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가사 노동자는 직장 상해 보상 청구에서 명시적으로 배제된 유일한 노동직군이다.

게다가 더 많은 여성들이 노동 시장으로 진출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이주 노동자가 가사 노동자로 일할 수 있도록 경제 특구를 만들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는 대부분 필리핀에서 온 약 1000명 이상의 여성 노동자가 일본에서 가정부로 일하기 위해 입국했다. 그들 모두는 주요 노인 요양 기업들의 직원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에 의해 보호를 받겠지만, 개인 가구에 고용되는 순간 그들은 모든 권리를 잃게 된다.

법이 제정된 지 약 70년 만에 마침내 이 규정이 사회적 논쟁거리가 되었다. 68 세의 일본인 가사 노동자가 2015년 거의 6일 연속으로 24시간 동안 일 하다가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남편은 2017년 시부야 노동 기준국에 직장 상해 보상 청구서(역자주- 한국의 산업재해보상보험 유족급여 청구에 해당함)를 제출했지만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근로기준법 제 116조 제 2항에 따라 가사 노동자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72세가 된 고인의 남편은 POSSE의 도움으로 20203월 도쿄 지방 법원에서 후생 노동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고인의 사망에 대해 정부의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개인 가구를 위해 일하는 가사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위헌임을 주장하였다. 이는 동종 사건에서 최초의 소송이며, 이는 아직 진행 중이다. 우리는 차별을 용인하고 가사노동자를 일회용처럼 다루는 법에 도전하고 있다.

(Makoto Iwahashi(POSSE))

[8월_만평] 답답하다..."중대재해조사 보고서 비공개"

[8월_현장의목소리] 직영화 파업투쟁 승리는 노동자와 가입자의 권리 지키는 길-국민건강보험공단 김숙영 고객센터지부장 인터뷰-

 

직영화 파업투쟁 승리는 노동자와 가입자의 권리 지키는 길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숙영 고객센터지부장 인터뷰-

 

1577-1000, 국민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에 볼일이 있을 때 이용하는 전화번호다. 하지만 통화가 되기까지 여러 번의 전화 시도와 짧게는 몇 분, 길게는 몇 십분 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연결되어 주민번호를 눌렀어도 개인정보에 관한 몇 가지를 더 확인 후 용건을 물어본다. 공단의 실무담당자와 통화가 필요한 경우 바로 연결되지 않고 민원인의 연락처를 남겨 담당자가 다시 전화를 주는 민원인에게는 매우 불편한 시스템이다. 건보공단이 왜 이렇게 복잡하게 일할까? 풀리지 않은 의문은 69일 오전 수원에서, 하루 전 무기한 파업투쟁을 선포하고 바쁜 일정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건보공단고객센터지부 김숙영 지부장과의 인터뷰에서 말끔히 해소되었다.

 

책임회피로 일관하고 있는 건보공단

인터뷰 하루 전 무기한 파업을 선포한 기자회견이 있었다. 지난 2월 파업 투쟁 후 이번에는 초강수를 결의한 것이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 이유를 먼저 물었다.

“2019년 12월 4일 지부 설립신고를 했고, 21일 제가 선출되고 그때부터 끊임없이 건보공단에 대화를 요구했어요. 노동 강도가 강하고 노동환경이나 처우가 너무 열악했어요. 12개 센터에 11개 도급업체를 교섭해야 하는 상황이라 원청인 건보공단에 대화를 요구했는데 안 만나줬어요.”

“2020년 대구 고객센터에서 감염으로 휴업이 들어가고, 구로고객센터에서 집단 감염이 되면서 건보공단에 조치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저희는 공단 직원이 아니니 위탁업체에 얘기하라는 거였어요. 위탁업체는 책상, 컴퓨터, 의자, 장소, 인력 모든 것을 건보공단이 하기에 설치를 마음대로 할 수 없어 해줄 수 없다는 거예요. 그 후 정부에서 발표한 가림막과 마스크, 유연근무 등 가이드가 있었어요. 건보공단에서 취해 준 조치는 앞면 가림막이었어요. 1인 시위해서 얻은 게 옆면 가림막이었고요.”

“마스크도 2020년 4월 위탁업체가 바뀌면서 일주일에 한 개씩 주는 거예요. 너무너무 스트레스였어요. 하루에 120~130건 콜을 받는데 한 시간 정도만 일하면 마스크 안에 습기 차고 열감 있으니 발열 생기고, 민원인들이 말소리 안 들린다고 뭐라 하니 배에 힘주고 큰소리로 얘기하는 상황들이 벌어지면서 구토, 두통, 발열이 심해지는 거예요. 구로센터에서 가족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고, 임산부, 기저질환자, 가족 중 환자나 노약자가 있는 분이 있으니 불안하고 고통이 심했어요. 건보공단, 위탁업체와 같이 만나서 대책을 세우자고 했으나 만나주지 않았어요.”

“2월, 24일간 파업하는 동안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파업할 수 없는 상황, 시민대책위의 중재시간이 필요하고, 국민들의 고통이 있어서 현장으로 들어가서 현장투쟁을 하면서 건보공단이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으면 언제든 파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들어갔어요. 3~5월이 지났는데,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진전이 없으니, 조합원 입장에서 이 상황을 두고 볼 것이냐, 민간위탁사무논의협의회를 통해서 이 논의를 하겠다고 하면서도 고객센터지부는 들어오지 말라고 하고, 들어오려면 정규직노조와 같이 들어오든지, 둘 다 빠지든지 하라는데 사실 당사자는 저희거든요. 당사자는 빼고 전문가와 공단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는 곳에서 저희 내용을 결정한다고 하니 지난번처럼 강력하게 항의할 수 없는 거죠. 이번에는 마무리를 하자는 의미로 무기한 전면 파업을 결의하게 되었어요.”

 

힘겹게 코로나19 상황을 이겨내고 있는 상담사들

구로고객센터의 집단감염은 밀폐된 공간에서의 감염 위험성으로 주목받았던 사건이기도 하다. 국민건강을 먼저 생각해야 할 건보공단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질병관리청에서 코로나19 콜에 관한 민원이 폭주하다보니 건보공단고객센터 인원 중 1,623명이 근무하는데 관리자를 제외한 1400명 중 500~600명이 차출되고, 재택근무인원이 빠져나가니 업무도 줄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힘들었죠. 질병관리청 업무로 갑자기 차출되신 분들은 두꺼운 페이퍼북을 놓고 3시간 100명이 넘게 집체교육만 한 후 업무를 해야 하는데 코로나19 상황이 수시로 바뀌었어요. 고객입장에서 시원한 답변을 못 받으면 면박을 줄 수밖에 없고, 저희는 스트레스를 이중으로 받고 있었지만 건보공단을 여전히 묵묵부답이었어요. 정부에서 코로나19 단계를 3단계로 올려 재택근무를 30%로 올려야하는데 저희는 10%로 떨어뜨렸어요. 국가의 재난적 상황에서 개인정보를 이용해서 업무하는 자는 예외라는 거예요.”

 

상담품질보다는 콜 건수로 평가하는 시스템

공공기관 위탁업체는 한정된 도급비로 인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위탁으로 인한 문제는 단지 임금뿐만이 아니었다.

“임금교섭이 중요했던 이유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친절하고 정확한 안내가 가장 중요한데 도급업체가 운영하다보니 콜 수로만 생산성을 판단하는 거예요. 5분 동안 통화할 내용도 최대한 2분 30초로 줄이는 사람들이 월급을 더 많이 가져가는 거예요. 복잡하고 어려운 상담은 오래 걸리고, 단순한 것은 금방 해결할 수 있잖아요. 그것은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닌데 콜 수로만 평가하는 건 제대로 반영하는 게 아니죠. 그리고 ‘고객님 제가 확인해보겠습니다.’하고 시간이 몇 초 지났느냐에 따라 점수가 달라요. 그러나 고객은 상담사가 정확하게 찾아서 안내해주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니거든요. 업무가 방대하다 보니 오래 걸릴 수도 있고, 고객님께 양해를 구하고 찾아서 전화드리겠다고 하면 좋은데, 그것은 건수에 안 들어가요.”

“인센티브는 0~40만 원 가져가는데 40만 원 가져가려면 160콜 이상은 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죽어라 일해야 해요. 200콜 받으면 점수를 3점 준다고 하면 화장실도 못 가고 일해야 해요. 이런 노무관리가 고객센터의 기능을 훼손하는 첫 번째거든요. 건보공단에서는 220만 원을 직접 인건비로 주라는데 위탁업체는 최저임금만 주고 나머지는 인센티브로 나눠주다 보니 세전 금액이 220만 원을 제대로 받아가는 사람은 130명 중 3~5명 정도밖에 안 되는 거죠. 이런 게 노동자 건강을 다 해치는 거죠.”

 

국가는 국민의 개인정보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국가는 국민의 개인정보를 관리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이 정보를 민간업체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2년마다 바꿔가면서 말이다.

“몇 가지로 본인확인 후 고객의 정보가 열리는 순간 상상 이상의 개인정보가 나타나요. 재산 상태나 해외출국내역은 물론이고 현재의 배우자가 몇 번째인지, 자녀가 입양아인지 아닌지, 범죄여부 등 그래서 경찰 쪽에서 자료협조요청을 많이 하죠.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관계에 있는 사람, 직장의 정보까지 조회가 돼요. 그런데 민간위탁업체는 2년에 한 번씩 바뀌어요. 그 부분도 상당히 찝찝한 부분이죠. 고객센터에서 취급하는 국민의 개인정보에 대해 건보공단이 공적 책임을 지라는 게 저희의 요구인 거죠. 2월에 쟁의권 확보하고 첫 번째 요구가 이 문제에 관해서 건보공단 이사장과 대화하자는 것이었어요.”

 

4대 보험 고객센터 중 건보공단만 직영 안 해

건보공단 고객센터가 2006년부터 위탁되었고, 16년이 지난 시점에 직영화 요구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문재인정부가 2017년 5월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선언하고, 4대 보험 중 국민연금, 산재보험, 고용보험을 다루는 곳은 2019년 이후 모두 정규직 전환이 됐고, 건보공단만 남아있어요. 보건복지부 고객센터는 처음부터 직영화로 출발했고,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공적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므로 고객센터가 직영화 되었어요. 건보공단이 규모가 가장 크고, 업무도 복잡하고 많은데 아직까지 안 되고 있어요. 정부는 비용의 문제로만 보고 너무 많다 직원이 반대한다는 핑계만 대고 있죠.”

“가입자 입장에서 전화하시면 업무기능에 맞게 건보공단 직원이 처리하는 게 맞죠. 그렇다고 해서 저희가 공단직원처럼 되겠다는 게 아니라 건보공단의 1,069가지의 상담업무를 공단에서 책임지고 운영하라는 것이거든요. 고객센터에 있으면 건보공단의 전반적인 업무와 시시때때로 변경된 내용을 알아야 상담할 수가 있거든요. 상담업무에 있어서 2년마다 바뀌는 도급업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1도 없어요.”

 

파업투쟁은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넘어 가입자의 권리를 지켜내는 길

공공기관에서 가장 힘든 일은 민원을 접수하고 처리하는 것이다. 위험은 외주화된다는 말이 일치되는 대목이다. 방광염, 신우신염을 앓는 사람도 많고, 성대결절, 혈액순환 불순, 시급하게 대책이 필요한 근골격계질환 등 다양한 업무상 유해요인에 노출되어 있었다. 고객센터 상담사의 감정노동은 익히 알려진 바 있다. 감정노동예방매뉴얼이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고통의 사슬을 끊을 직영화 투쟁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물었다.

“약간의 임금이 오르거나 처우개선 하는 정도 가지고는 업무평가, 인사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우리가 힘들다고 어렵다고 덮고 간다면 5년이든 10년이든 이 상태로 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처음 말을 꺼냈을 때는 건보공단이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어요. 이제야 민간위탁사무협의회를 열겠다고 했지만, 정작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현장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에는 귀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어요. 건보공단이 이게 정말 문제이구나 그러니 뭔가를 해야 하는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는 계기를 이번 파업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의를 단단히 해서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있는 힘을 다해서 싸워봐야죠. 우리의 요구가 정당하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노동환경을 바꾸고 노동권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미래에 건보공단 가입자의 권리를 지켜드리는 길이라 생각해요.”

 

가입자, 시민들께 드리는 말씀

“입사할 때는 가입자의 한 사람으로 ‘건보공단 1577-1000에 전화할 일이 얼마나 있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일해보니 정말 많은 거예요. 시민들이 시간을 쪼개서 내가 낸 보험료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전화를 주시는 거잖아요. 법적 테두리 안에서 해결은 다 못하더라도 건보공단에서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정도의 상담시간만큼은 저희에게 보장해달라는 거예요. 몇 콜을 받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가입자한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가치를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만이라도 해달라는 거죠.”

“파업하는 동안 전화연결이 안 되면 얼마나 답답하시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사의 근무환경뿐 아니라 가입자의 민원 해결환경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을 기억해 주셨으면 해요. 앞으로 건강보험의 역할이 더 커질 텐데, 그에 걸맞은 고객센터가 되는 기회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가입자 분들이 언론에서 뿌려대는 말에 현혹되지 않고, 객관적 입장에서 저희의 요구가 어떤 것이고 왜 하게 됐는지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희도 최대한 노력해서 좋은 결과 얻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정경희 선전위원)

[8월_문화로읽는노동] “이렇게도 노동재해를 이야기할 수 있구나”- 판 드라마 <야드> 관람기

이렇게도 노동재해를 이야기할 수 있구나

- 판 드라마 <야드> 관람기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야드라는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조선소 노동자의 산재 사고를 소재로 한 임채묵 작가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었다. 출연진은 단 한 명, 판소리꾼이자 이날치 밴드의 보컬 안이호 씨였다. 안이호 씨는 소설 속 이야기 위에 소설을 읽은 자신의 감상과 해설을 덧붙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연기도 하고, 소리도 하고, 춤 혹은 몸동작도 한다. 연극, 뮤지컬, 판소리, 뭐라고 불러야 적당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제작진도 판소리와 드라마를 합쳐서 판 드라마라는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남의 눈으로 본 내 노동은 어떨까

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리고 공연장이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무대 저 멀리 커다란 화물용 엘리베이터 출입문이 덜커덩 열렸다. 거기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이는 제 머리통에 알루미늄 호일을 둘러 감았다가, 벗겨내어 바닥에 내려놓고, 다른 호일을 집어 들어 다시 머리통에 감고 벗겨서 내려놓았다. 하나, , , 쉬지도 않고 열 개인가 스무 개인가 호일로 만든 머리통 모양의 구체를 벗어 던질 때마다 가볍고 차가운 금속성 잡음이 무대에 번졌다.

뭘 하는 거지? 저게 뭐지? 객석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들 눈에 힘을 잔뜩 주고 배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조금 걸어 나와 어두운 무대에 한걸음 다가섰다. 이제 엘리베이터 안을 비추던 환한 조명이 그의 등 뒤로 감춰졌다. 무대가 조금 더 밝았으면 좋겠는데. 배우가 우리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오면 좋겠는데. 그는 그저 한 발짝만 나왔을 뿐이고, 이제 우리 눈에는 조명을 등지고 선 그의 실루엣만 보일 뿐이었다.

그는 거기 서서 알루미늄 호일을 머리에 감고, 벗겨내어 바닥에 내려놓고, 다른 호일을 머리에 감는 일을 계속 했다. 검은 실루엣을 한참 지켜보노라니 눈의 초점이 차차 흐려졌다. 어느 순간, 그가 끝없이 자라나는 자기 머리통을 떼어 던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혹은 인간의 속성 따위는 전혀 들어있지 않은, 텅 빈 가짜 머리통을 계속 찍어내고 있는 것도 같았다. 혹은 그저 기계처럼 아무 의미 없는 움직임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궁금하고, 섬뜩하고, 처연하고, 답답해졌다. 내 일상의 노동도 멀리서 남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 않을까.

 

나는 내 노동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공연의 뼈대는 원작 소설의 이야기에 있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선박에 케이블을 까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제일 처음 나오는 목소리는 야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대한 선박, 거대한 장비들, 그것들을 담고 있기에 더욱 거대한, 너무 거대해서 사람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 야드의 장대함을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흡사 자기가 일하는 곳의 위대함에 가슴이 벅찬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옷섶마다 솔기마다 어찌나 쇳가루가 많은지 모르겠노라 한다. 털어도 털어도, 씻어도 씻어도, 귀신에 홀린 듯 어디선가 쇳가루가 계속 나온다. 끝도 없이 나오는 쇳가루는 과연 그이의 작업복에서 나오는 게 맞을까. 혹시 그이의 몸속 가득 쇳가루가 쌓인 건 아닐까. 피부의 주름과 땀구멍, 털 사이사이에, 온통 쇳가루가 들어찬 것은 아닐까. 세월이 더 흐르면 쇳가루 눈물, 쇳가루 땀을 흘리고 쇳가루 오줌, 똥을 싸게 되지는 않을까. 지금 그이의 몸은 본래 타고난 모습의 몇 퍼센트나 남아있는 걸까. 쇳가루가 들어차는 대신, 그이의 몸에서 사라진 것은 무엇일까.

생각을 더 이어갈 새 없이 이야기는 선박에 케이블을 까는 작업 설명으로 이어졌다. 아무리 장대한 선박도 동력과 신호를 전달하는 케이블이 구석구석 깔리기 전까지는 쓸모없는 쇳덩어리일 뿐이다. 그렇게 중요한 작업이건만 정작 케이블을 설치하는 일은 아주 간단하다’. 안이호 배우는 어느 새 고참 노동자가 되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작업 방법을 가르쳐준다. ‘“하면 잡고 하면 당겨’. 이렇게 말하며 그는 라고 외칠 때 케이블을 움켜잡고, ‘라고 외칠 때 케이블을 당기는 시범을 보인다. 배우가 홀로 무대에 쭈그리고 앉아서 ’, ‘’, ‘’, ‘를 반복하는 동안, 관객의 머릿속에는 선박의 온갖 구멍이며 코너마다 몸을 구겨 접고 들어가 손바닥이 쓸리고 어깨와 허리를 삐어가며 케이블을 잡아당기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노동은 그저, ‘하면 잡고 하면 당기는 일일 뿐일까.

 

가련할 손 백만 군병은 허망히 죽고

무대 위의 는 낯설고 거대한 야드에 처음 들어와 케이블을 당기는 일을 배우는 신참이다. 이런 나에게 먼저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건넨 사람이 태식이다. 나보다 몇 살 적어 싹싹하게 굴면서도 경력으로는 선배랍시고 가르쳐주는 시늉도 제법 할 줄 아는, 밉지 않은 동료. 태식이는 아침마다 야드에 울려 퍼지는 신나는 안전송뒷이야기 따위도 슬며시 귀띔해주었다. 사람이 죽은 다음 날엔 안전송을 틀지 않는다나.

어느 날, 둘이 함께 야드를 걸어가던 중 지게차가 태식이를 덮쳤다. 태식이는 내 눈 앞에서 허리부터 다리까지깔려 즉사했다. 누군가는 탄식했다. 안전통로가 아닌 곳으로 걸어 다니면 안 된다는 걸 왜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느냐고. 또 누군가는 담담하게 말했다. 매년 열 명이 따박따박 죽어나가는 조선소에서 늘 일어나던 일이 일어났을 뿐이라고. 그런데 담담하건 탄식하건 다들 손바닥을 털며 일어나 하는 말은 같았다. 결국 배는 나가야 되니까(가서 일이나 하자).

결국 배는 나가야 되니까, 결국 일은 해야 되니까, 태식이가 죽은 자리는 말끔히 치워지고 야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 딱 하나 달라진 것이 있긴 했다. 사고 다음 날 아침에 안전송이 나오지 않았다.

객석에 낮은 탄식이 흘렀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정의하기 힘든 감정이 밀려와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안이호 배우가 무대 앞으로 성큼 나오더니 판소리 적벽가한 대목을 부르기 시작했다.

가련할 손 백만 군병은앉어 죽고 서서 죽고 웃다 울다 죽고 밟혀 죽고 맞어 죽고 애타 죽고 성내 죽고 덜렁거리다 죽고 복장 덜컥 살에 맞어 물에거 풍 빠져 죽고 바사져 죽고 찢어져 죽고 흉하게 죽고 우습게 죽고무단히 죽고 함부로 덤부로 죽고 땍때그르르 궁굴다 아뿔사 낙상하야 가슴 쾅쾅 뚜다리며 죽고 실없이 죽고 가이없이 죽고 어이없이 죽고 허망히 죽고 재담으로 죽고 꿈꾸다가 죽고대해수중 깊은 물에 사람을 모두 국수 풀 듯 더럭더럭 풀며적벽 풍파에 떠나갈 제 일등명장이 쓸 디가 없고 날랜 장수가 무용이로구나

소리를 듣노라니 꽉 깨물고 있던 어금니에서 스르르 힘이 풀렸다. 앉아 죽은 이, 서서 죽은 이, 부서져 죽은 이, 실없이 죽은 이, 어이없이 죽은 이, 허망이 죽은 이들을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아이고’, ‘저런탄식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가련할 손 노동자여. 전쟁 같은 일터에서 전쟁처럼 더럭더럭 죽어간 사람들이여.

 

공연보다 더 긴 여운

이 작품의 뼈대는 원작 소설 속 이야기지만, 그 뼈대 위에 이야기가 불러일으킨 감정이나 심상, 생각 따위의 근육과 피부를 덧붙여 완성된 것 같다. 이야기는 말만으로도 충분히 전할 수 있지만, 이야기가 불러일으킨 감정과 심상은 말로 다 전하기 어렵다. 그래서 음악으로, 미술로, 혹은 어떤 맛이나 촉감에 빗대어 설명해야 한다.

이 공연 말미에도 소리, , 모양, 동작, 그리고 사람의 눈빛과 표정 등 비언어적 방식으로 이야기 위에 덧붙여질 감정과 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 배우의 몸짓, 무대에 준비된 장치들과 조명 같은 것들이 관객들의 눈과 귀를 통해 이성과 감정의 모든 창문을 두드린다고나 할까. 그게 바로 공연 예술의 힘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런 공연이라면, 살면서 단 한 번도 산업재해 통계를 들여다보거나 중대재해 사례를 자세히 들어본 적 없던 사람들의 가슴 속 창문도 노크할 수 있지 않을까.

(공유정옥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8월_연구리포트] 하루 6시간 노동을 위한 노동시간단축 실험연구

하루 6시간 노동을 위한 노동시간단축 실험연구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들의 삶과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국내외 수 많은 연구들이 증명해 왔다. 그런데, 우리가 장시간 노동이라 말할 때 기준이 되는 표준 노동시간은 얼마가 적절할까? 그리고 그 표준 시간을 정하는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상품화된 노동을 판매해야 살아갈 수 있는 자본주의적 질서를 전제할 때, 일을 해야 한다면 우리는 하루 몇 시간 노동해야 만족스럽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산업혁명 시기 유럽의 노동자들은 하루 20시간 일을 하는 경우도 많았고, 19세기 초반까지도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을 해야 했다. 130여 년 전 선언된 하루 8시간 노동제는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정착조차 되지 않았지만, 유럽의 국가들은 이미 주 35시간 이상 일을 하는 것은 인간적 삶을 유지하는데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주 30시간 노동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이 글에서는 21세기의 의제가 될 하루 6시간 혹은 주 4일의 노동제를 위해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이루어진 노동시간 단축 실험에 대한 네 편의 논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소개할 논문 두 편은 스웨덴에서 20051월부터 200611월에 걸쳐 사회서비스, 기술서비스, 돌봄, 콜센터 노동자 등의 공공부문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종단 연구에 기반한 것이다. 이 실험 연구는 주당 25%의 노동시간 단축이 풀타임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기 위한 것이었다. 실험을 위해 한 집단은 이 실험 기간 내내 이전과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 하루에 두 시간 단축된 일 6시간 근무를 했고(실험집단), 다른 집단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실험 기간 동안 8시간 근무를 지속했다(통제집단). 노동시간 단축 실험이 시작되기 직전인 20052월에 두 집단에 대한 첫 번째 조사가 이루어졌고,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진 이후에는 양 집단에 대한 두 차례의 (20061-2, 그리고 200610-11)후속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두 집단 동시 조사를 통해 수집된 정보를 비교하여 두 시간 노동단축의 효과를 측정하였다.

첫 번째 논문은 노동시간 단축이 수면과 스트레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앞서 소개한 스웨덴에서 실험한 노동시간의 단축이 수면과 스트레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초점을 두었다. 이 논문은 직장에서의 일과 후 회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고혈압, 심박 증가, 만성피로, 수면 장애 등의 만성적 건강문제를 일으키는 부하 반응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근무 시간의 단축은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만큼 회복 시간을 늘려주기 때문에 만성적 건강 문제의 감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연구의 결과, 노동시간이 감소된 사람들은 8시간 노동시간이 유지되었던 통제집단에 비해 주관적으로 인지한 수면의 질과 수면 시간이 향상되었고, 일하는 시간 동안의 졸림, 스트레스가 감소하였으며, 잠자리에 드는 시간에 불안과 스트레스도 역시 감소되는 효과가 있었다.

이 실험에 관련된 또 다른 연구는 노동시간 감소 전 후, 사회복지사들의 스트레스 대처에 대한 비교 연구로서, 사회복지사라는 특정 직업군들의 스트레스 대처 방식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노동시간 감소의 효과를 평가한 논문이다. 저자들은 양적 분석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은 사회복지사들의 직업적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직업적 생활이 사생활의 영역에 침범하는 정도는 낮춰준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직업적 삶의 상황과 관계적 특성을 고려하면서 노동시간 감축이 이들의 스트레스 대처 방식에도 영향을 주는지 연구했다는 점이다. 연구에 따르면, 사회복지사는 노동시간 감소 이후 더 다양한 스트레스 대처 전략을 활성화해 자신의 대처능력을 증가시켰다, 또한 감정적 소진을 덜 경험하면서 긴급 상황에 대한 시간 관리를 더욱 조직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감축된 노동시간은 수면, 여가, 휴식 등에 직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을 포함하여 업무에서 오는 다양한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까지 높여주는 효과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소개할 논문은 스웨덴에서 2005년에 이루어진 노동시간 단축 실험 이후 10여년만인 2015년부터 이루어진 노동시간 단축 실험에 대한 결과 보고서, 23달 동안 6시간 근무하기- 감소된 노동시간에 대한 실험적 후속연구 이다. 이 실험 연구는 스웨덴의 예테보리시 (City of Gothenburg)에서 20152월부터 201612월까지 요양병원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는데, 근무시간 감축이 이 지역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경제적 측면을 포함하여 요양병원 근무 간호사들과 병원의 환자들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이 기간 동안 스바르테달렌(Svartedalens) 노인요양병원의 간호사들은 급여는 그대로 유지된 채 하루 6시간 근무했으며(실험집단), 스바르테달렌 병원과 비슷한 조건과 규모를 가진 예테보리시의 다른 요양시설의 간호사를 통제집단으로 설정하고 진행하였다.

최근의 이 실험설계와 분석이 이전의 연구 방법과 다른 점은, Best Practice Theory 라는 방법을 적용해 실험집단(하루 6시간 노동)에서 나타나는 긍정적인 결과들이 단축된 노동시간의 효과인지 아니면 환경적 요소 등 다른 요인에 의해 이루어진 효과인지를 측정한 데에 있다. 노동시간 감축은 간호사들의 피로감과 스트레스, 활력, -여가 양립, 기본적 육체 활동, 근골격계 증상, 일반적 건강상태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저자는 Best Practice Theory에 의한 실험설계 분석을 통해 노동시간 감축 자체는 6시간 노동하는 사람들의 건강상태를 유의미하게 향상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으며 어떤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영향력도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2시간의 노동감축이 제대로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정책들이 실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구자는 다섯 가지 영역에서 이러한 추가적 개입을 추천하는데, 1) 증가된 여가시간 동안의 건강한 신체 활동, 2) 건강한 음식섭취 습관과 양질의 음식, 3) 만족스러운 근무 환경 조성, 4) 지속가능한 건강한 일터와 그로 인한 근무자들의 권리 향상, 마지막으로 5) 장기적이고 효율적인 조직 운영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연구는 앞선 스웨덴의 노동시간 단축 실험들보다 훨씬 앞서 핀란드에서 1996년부터 1998년까지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이루어진 실험에 대한 연구 핀란드에서의 노동시간 감축 실험에 대한 연구 이다. 핀란드는 1990년대 초반에 경제 불황 속에서 실업률은 급등했고 공공복지의 비전이 불투명해지는 상황이었다. 노동시장의 전반적 위축과 사회 불안으로 인한 공공복지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는 데, 반면 가용자원은 감소하고 있었다. 이 실험은 현재의 일자리를 다른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과부하를 줄이는 동시에 교육 수준이 높은 청년들의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속에서 고안되어, 핀란드의 19개 지방자치단체들에서 3년간 실행되었다.

이 연구는 노동시간 감축이 건강뿐만 아니라 고용의 증가에도 영향이 있는지, 있다면 노동시간의 재편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효과가 가장 좋은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미 30년 전에 핀란드의 사회학자 파보 세페넨 (Paavo Seppänen)은 생산적인 조직은 12시간 운영되어야 하고 따라서 통상적인 하루 8시간 근무가 아닌 6시간 2교대제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특히 공공서비스는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장시간 개방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 장시간 개방은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요구한다. 따라서 이러한 두 가지의 필요성을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 6+6교대제가 제기된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저자는 6+6교대제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근무 시간 제도를 시행하고, 이들을 상호 비교한다.

노동시간의 단축은 가족적 삶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고, 다양한 방식의 근무 시간 중 6+6교대제가 가족생활뿐 아니라 본인들의 개인적 삶에도 가장 긍정적인 효과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시간 감축의 효과는 노동 강도가 가장 컸던 사람들에게서 가장 크게 나타났다. 또한 노동자들의 노동윤리를 향상시키고 앱슨티즘 (뚜렷한 이유 없는 결근)을 줄여줌으로써 긍정적인 경제효과 역시 가져왔다.

사실 이렇게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이루어진 수차례의 노동시간 단축실험을 통해 6시간 노동제는 그 긍정적 효과가 확인되었음에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폐지와 도입을 반복하며 아직 제도적으로 정착하지 못했다. 게다가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자들의 삶과 경제적 측면에서 모두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명백히 뒷받침할만큼의 연구 자료가 충분히 축적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OECD 국가들 중 노동시간이 두 번째로 긴 한국에서도 최근 몇몇의 기업들이 주 4일제를 도입해, 노동시간 단축으로 자본축적의 위기를 극복하고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움직임이 있을 만큼 노동시간 단축은 세계적 흐름이 되었다.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현재의 실험과 연구들은 한국에 단축된 노동시간이 제도적으로 정착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지 그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다.

(신희주 회원(노동시간센터), 카톨릭대 사회학과)

 

 

 

 

[일터7월_특집3] 현장에서 느끼는 중대재해 보고서 공개의 필요성

현장에서 느끼는 중대재해 보고서 공개의 필요성

 

우리나라에서 발생되는 중대재해는 추락, 협착 등 재래형 사고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동일하거나 유사한 원인으로 중대재해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현대중공업, 현대제철과 같은 대기업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노동자의 죽음, 중대재해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의 노동자들의 죽음, 또 중대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건설현장에서의 죽음. 이들 죽음에 대한 사고원인과 예방대책이 중대재해보고서에 담겨 있다. 현 법과 제도 하에서 사업장 재해에 대한 사고원인 조사는 사망사고에 따른 중대재해에 대해 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실시하는 조사와 그 후 작성하는 중대재해 보고서가 유일하다. 그럼에도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중대재해보고서가 공개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 조사의 실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감독관집무규정에 따라 해당 사업장에 감독반을 편성해서 작업중지 조치명령을 하고 중대재해 발생원인 등을 조사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6(중대재해 원인조사) 규정은 중대재해 원인조사의 근거를 규정하고, 동시에 산업재해 예방대책 수립을 그 목적으로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실제 조사는 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와 동시에 이뤄지면서 피의자인 회사의 권리만을 온전히 보장할 뿐이다.

작업중지명령 과정에서도 회사에는 자세한 설명을 하면서, 해당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는 제대로 된 설명조차 하지 않는다. 중대재해에 대한 사고조사를 수사라는 미명 하에 회사의 안내와 설명을 들으면서 진행하지만, 노동자와 노동조합 및 유족의 참여를 철저히 배제시키고 있다.

중대재해조사의 목적은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사업주의 산업안전보건법 등 위반인지를 조사하고 처벌하는 데 있지만 예방대책 수립역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방대책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조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다양한 당사자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검토해야 한다. 더불어서 예방대책이 문서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정착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주체로서 대책 실행여부를 점검하고 확인할 수 있도록 중대재해보고서는 공개되어야 한다.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조사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을 떠올려보면, 협착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한 사업장에서 회사가 개선계획으로 가져온 것은 사망설비에 추가로 센서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조사를 마치고 작업중지를 해제한 경우가 있어 황당해한 적이 있었다.

해당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센서가 작동되지 않아서 설비가 멈추지 않은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의 공정에서 트러블 조치, 설비점검 작업 중 안전작업수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사업장에서 단위 시간당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서 설비를 중지시킬 수 없었거나 작동이 되는 상태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구조에 대해서 간과하거나 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이러한 조사와 대책만으로는 구조적으로 개선되지 않은 사업장에서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시 안전센서가 작동되지 않게 될 것은 눈에 뻔히 보인다.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구의역 사고, 태안화력 사고처럼 해당 중대재해가 사회적으로 알려지고 공론화 되어 시민대책위 및 진상조사단이 구성되는 경우에는 사고의 직접적 원인, 구조적 원인을 비롯해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활동을 통해서 사고의 근본적 대책까지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중대재해보고서는 3일 이내 조사만으로 작성되다 보니 근본적인 접근까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방 및 대책활동

현재 중대재해를 제외한 사고와 질병이 발생하면 노동부는 사업장에서 작성한 산업재해조사표를 받는다. 산업재해조사표에는 사업장 정보 및 고용형태, 재해자 정보 등의 기본정보와 더불어 재해발생 당시 상황, 재해발생 원인, 재발방지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해당 조사표는 조사와 보고의 주체가 사업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 노동안전보건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업주의 관점만 반영된 조사보고서가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해당 산업재해조사표에 대해서 노동부가 통계를 내거나 분석을 하거나 데이터베이스화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1:29:300 하인리히의 법칙300번의 아차사고가 발생하면 신체손상을 일으키는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발생하고, 1번의 중대재해가 발생한다는 이론으로써 사고예방에 있어서 대표적인 이론이다. 그러나 노동부가 산재사망을 감소시키기 위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데 있어 이런 사고발생에 대한 실태분석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충청지역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해당 사업장 노동조합, 민주노총을 비롯한 지역단체 및 노동안전보건활동가들이 공동대응을 하기 위해 2~3년 전부터 논의를 해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하는 경우 중 하나는 노동조합 내 노동안전보건활동에 대한 역량이 축적되지 않는 것을 확인하는 때다. 보고서가 공개된다면 다양한 사례 검토를 통해서 산업재해 예방활동 및 대응활동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중대재해보고서 공개운동으로 나가자

중대재해보고서 공개가 필요한 이유는 사고와 관련해 노동부가 유일하게 생산하는 공식적 문서이며 사고조사의 방법과 기술 등의 노하우가 축적된 문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고서 공개가 보고서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고의 직접요인 및 기술적 요인, 그리고 구조적인 원인을 조사해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이행여부에 대한 확인이 이루어지고 강제되어야 보고서의 궁극적인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소중하지 않은 목숨은 없다. 사업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중 사회적 관심을 받았거나, 노동조합 및 지역차원에서 대응했던 사건들에 대해서는 최소한 억울한 죽음을 밝힐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은 신문 단신 하나로 끝나게 된다. 지역차원에서 대응을 해보려 해도 사업장 정보나 사실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개입조차 차단되는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중대재해보고서를 공개해 지역사회에서 해당 죽음의 실태라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개입을 모색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태진 회원,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

 

 

[일터7월_특집2] 중대재해조사보고서 공개의 필요성에 관하여- 무엇을 바탕으로 예방하고, 무엇을 근거로 처벌할 것인가?

중대재해조사보고서 공개의 필요성에 관하여- 무엇을 바탕으로 예방하고, 무엇을 근거로 처벌할 것인가?

 

중대재해 원인조사와 중대재해조사보고서

우선 개념과 명칭을 명확히 정리해보자. 현재 중대재해(조사)보고서라는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이라 한다)은 중대재해 발생시 고용노동부장관이 그 원인을 규명하고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중대재해 원인조사에 대한 근거를 두고 있다(56). 산업재해 중 사망 등 재해 정도가 심하거나 다수의 재해자가 발생한 경우로서 산안법상 중대재해’(법 제2조 제2, 시행규칙 제3)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법상 조치 중 하나다. ‘중대재해 원인조사시에는 현장을 방문하여 조사하고 재해조사에 필요한 안전보건 관련 서류 및 목격자의 진술 등을 확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등의 조사 내용에 관한 근거도 있다(시행규칙 제71). 고용노동부는 이와 같은 중대재해 원인조사의 일환으로 관련 조사 업무를 안전보건공단에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안전보건공단은 그 조사의 결과물을 재해조사 의견서라는 명칭의 문서로 작성하여 고용노동부에 제출하고 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의 요청에 따라 안전보건공단이 수행한 중대재해 원인조사의 결과를 담은 재해조사 의견서, 이상하게도 중대재해 발생으로 인한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범죄 수사 과정에서의 자료로만 활용될 뿐 위 조사의 구체적 내용은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수사자료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극히 일부의 내용이 지극히 일반적인 수준으로 재가공되어 재해사례별 또는 유형별 미디어 자료로 공개되고 있으나, 중대재해 원인 규명 및 산업재해 예방대책 수립을 위한 진정한 의미의 중대재해 원인조사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리하면, 산안법상 중대재해 원인조사는 법문 그대로 중대재해 원인 규명 및 산업재해 예방대책 수립을 위한 제도이기에, 형사처벌을 위한 수사 절차로서의 조사로 한정 해석될 이유가 전혀 없고 그 조사를 거쳐 작성된 문서 역시 수사자료로서의 의미만을 가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 원인조사를 근로감독관의 수사에 참고하기 위한 과정으로 축소한 채 이를 비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공개를 요구하는 중대재해조사보고서는, 첫 번째 기고글에서 담고 있는 바와 같이 근본적인 사고 원인을 포함한 진정한 의미의 중대재해 원인조사의 결과물이고, 제도의 목적에 맞게 그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을 우선 밝혀둔다.

중대재해조사보고서 공개의 의의 및 활용 지점

그동안에도 중대재해 원인조사를 충실히 진행하고 그 결과를 공개할 필요성에 대한 현장과 전문가들의 요구는 있었지만, 작년에 제정 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라 한다)을 고려하면 그 필요성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법의 제정이유, 기업의 조직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해 일어나는 중대재해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고의 원인에 대한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파악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대재해조사보고서 공개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되고(위하력/예방), 적용될 수 있을까(처벌)에 대한 문제와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2(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2. “중대산업재해산업안전보건법2조제1호에 따른 산업재해 중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결과를 야기한 재해를 말한다.
.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
.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


4(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은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ㆍ운영ㆍ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종사자의 안전ㆍ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 및 규모 등을 고려하여 다음 각 호에 따른 조치를 하여야 한다.
1.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2. 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3. 중앙행정기관ㆍ지방자치단체가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 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에 관한 조치
4. 안전ㆍ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
1항제1호ㆍ제4호의 조치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6(중대산업재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의 처벌) 4조 또는 제5조를 위반하여 2조제2호가목의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경우 징역과 벌금을 병과할 수 있다.
4조 또는 제5조를 위반하여 제2조제2호나목 또는 다목의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항 또는 제2항의 죄로 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후 5년 이내에 다시 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저지른 자는 각 항에서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한다.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의 구성요건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이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또는 제5조에서 정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할 것, 동법상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것, 의무 위반행위와 중대산업재해 발생 간의 인과관계가 존재할 것 등이다. 특히 경영계는 위 의 구성요건과 관련하여 명확성의 원칙 및 포괄위임입법 금지원칙 위반 등을 들고 나오고 있어 향후 해석 다툼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의 구성요건, 즉 동법 제4조의 안전·보건 확보의무의 내용과 범위를 해석하는데 있어,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서의 해당 중대재해 조사 결과는 물론이고 동일 사업장에서 이전에 일어난 사건의 조사 결과 및 동종 업종의 중대재해 조사 결과 등이 기준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중대재해 발생원인 조사 결과들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법원과 수사기관에서 해당 사업장이 제4조 제1항 각호에 따른 조치들을 얼마나 타당하게 했는지 평가하고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거나, 사업장에서 각호의 예방조치들을 현장에 적용하고 조치의 적절성을 스스로 피드백하는 과정이 얼마나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

물론 제1호와 제4호에 대해 시행령으로 구체적인 사항을 정하겠지만, 여전히 중대재해조사보고서 등 중대재해 조사 결과의 구체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위 각호에 따른 조치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였는지, 설령 이행하였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이행의 내용이 적절하고 타당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조치가 내실 없이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가령 단순히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이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형식을 갖추고 이에 관한 이행조치를 재량껏 했다는 것만으로(1), 또는 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 대책 수립의 형식을 갖추고 이에 관한 이행조치를 어느 정도 하기만 한다면(2), 안전ㆍ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를 형식상 내지 임의로 이행하였다고 해서(4)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안전·보건확보의무를 다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이 법의 입법취지에도 부합된다고 볼 수 없다.

중대재해조사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 구성요건의 명확성을 확보하기 위한 해석 전략으로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대법원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서 파생되는 명확성의 원칙은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이 명확하여야 한다고 하여 모든 구성요건을 단순한 서술적 개념으로 규정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다소 광범위하여 법관의 보충적인 해석을 필요로 하는 개념을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통상의 해석방법에 의하여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면 당해 처벌법규의 보호법익과 금지된 행위 및 처벌의 종류와 정도를 알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면 처벌법규의 명확성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어떠한 법규범이 명확한지 여부는 그 법규범이 수범자에게 법규의 의미내용을 알 수 있도록 공정한 고지를 하여 예측가능성을 주고 있는지 여부 및 그 법규범이 법을 해석·집행하는 기관에게 충분한 의미내용을 규율하여 자의적인 법해석이나 법집행이 배제되는지 여부, 다시 말하면 예측가능성 및 자의적 법집행 배제가 확보되는지 여부에 따라 이를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법규범의 의미내용은 그 문언뿐만 아니라 입법 목적이나 입법 취지, 입법 연혁, 그리고 법규범의 체계적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해석방법에 의하여 구체화하게 되므로, 결국 법규범이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는 위와 같은 해석방법에 의하여 그 의미내용을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해석기준을 얻을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대법원 2014. 1. 29. 선고 201312939 판결 등)고 판시하고 있다.

수사기록에 편철되어 해당 사건 수사를 담당한 검사와 근로감독관만 참고하고 사라지는 깜깜이조사가 아니라, 기업과 노동자가 무엇이 중대재해의 원인인지 인지하도록 하여 관련 법령상 무엇이 금지되고 무엇이 필요한지 충분히 예측가능케 하는 토대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 내에서 위하력을 가지고 재해예방의 기제로 작동하고 중대재해 발생시 처벌을 위한 근거로서 적용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사고의 원인이 규명되고 현장에서 그 내용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중대재해 원인조사 완료 후 개인정보만을 삭제한 채 즉시 일반에 공개하여 현장에서 가급적 빨리 원인을 파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고용노동부는 재해조사 결과에 기반해 도출한 재해예방 대책 등의 내용을 해당 사업장과 동종 업종 사업장들에 고지하고, 행정지도 등을 통해 그 이행을 점검하도록 하는 것도 시급히 고려해야 한다.

또한,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체계 내에서도 공개된 중대재해조사 내용을 활용하여 재해예방을 위한 안전보건관리체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위험에 대한 사업장 내 통제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노사 동수로 구성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사업주의 중대재해 원인조사 및 재발방지 대책 수립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해야 하는데, 이 때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조사보고서의 내용은 중요하게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박다혜 회원,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

[일터7월_특집1] 중대재해 조사 보고서, 지금 이대로 충분한가?

중대재해 조사 보고서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근로감독관은 현장에 방문해 재해발생 원인조사와 재발방지 대책수립에 관한 조사를 진행한다. 이때 전문적·기술적 자문을 위해 재해조사에 참여하는 안전보건공단(이하 공단)의 해당 분야 전문가가 작성한 보고서(재해조사 의견서)를 참고한다. 이를 가리켜 중대재해 조사 보고서(이하 중대재해 보고서)’라 한다. 즉 중대재해 발생의 원인 규명 및 동종·유사 사고 방지를 위해 고용노동부에서 실시한 공공·행정 조사의 결과물이 중대재해 보고서다.

사고예방은 재해로부터 배운다라는 말이 있다. 안전보건활동의 상식이자, 중대재해 보고서 작성의 이유다. 하지만 오늘날의 중대재해 보고서는 세상에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재해예방에 가장 기초가 되는 자료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는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부분은 고용노동부에서도 중대재해 보고서가 공개되지 않는 현재의 심각성을 일부나마 자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 산하의 공단에서 2020년 실시한 연구에서 기존 중대재해 보고서의 질적 측면의 한계와 함께 제한적인 수준이나마 재해조사 보고서 공개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일터7월호의 특집을 통해 중대재해 보고서 공개의 필요성은 충분히 다뤄질 것이므로 본 고에서는 관행적으로 행해지는 현재의 중대재해 조사 및 중대재해 보고서의 문제를 짚고자 한다.

도대체 중대재해 보고서는 작성하는 것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중대재해 보고서는 중대재해에 대한 공공·행정 조사의 결과물이다. 즉 중대재해라는 막중한 결과의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고, 해당 현장뿐만 아니라 수많은 일터의 재해예방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다시 한번 중대재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이유를 되짚는 이유는 중대재해 보고서가 자료로 활용되기는커녕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중대재해를 대하는 고용노동부의 태도부터 살펴보자. 우선 일반재해 경우 사업주가 재해발생 신고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하는 것으로 모든 처리 절차가 끝난다. 사망사고가 아니라면, 민원이 접수되지 않는 한 고용노동부에선 별도의 현장조사를 실시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다 보니 사업주가 재해발생 신고서에 재해 원인을 노동자의 과실이나 부주의 등으로 작성해, 피해자에게 재해의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그러나 중대재해는 다르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56조 제1항에 따라 고용노동부에서 직접 원인조사에 나서고, 동종·유사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고자 한다. 즉 일반재해와 달리 중대재해만큼은 산안법과 그 시행규칙에 조사 필요성과 처리 근거가 마련돼 있다.

어째서 중대재해는 고용노동부 차원의 별도 규정이 마련돼 있는 걸까? 그 이유는 무척이나 자명하다. 인간의 생명은 다른 어떤 가치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 한 명이라도 일터에서 죽음에 이르러서는 안 되고, 2명 이상의 노동자가 3개월 이상의 치료를 받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발생시킨 사고에 대해서도 간과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한 사업장에서 10명 이상 동시에 다치거나 질병에 노출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면, 이 또한 우리 사회가 모른 척 지나칠 수 없다.

중대재해는 결코 운이 없거나 불가피한 상황에 의해 발생하는 게 아니다. 흔히 호도하듯이 노동자의 실수나 부주의로 발생한 게 아니라 안전보건 관리의 총체적 부실로 인한 결과가 드러난 것이다. 그렇기에 해당 사업장의 안전관리를 전적으로 자율성의 영역에 맡겨서는 문제해결이 쉽지 않다. 이 같은 문제의식하에 근로감독관의 직접조사와 공단의 자문이라는 행정력을 동원해, 재해발생의 원인을 철저히 규정하고 동종·유사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고용노동부가 실시하는 중대재해 조사는 산안법 시행규직 제3에 명시된 경우로만 국한된다. 직업병이나 직업성 질환과 관련한 조사는 보상을 위한 공단의 재해조사와 역학조사로만 갈음되고 있다. 또한 중대성이 심한 부상자가 다수 발생하더라도 의료기관에서는 최초 진단 시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쉽게 내리지 않는다. 결국 대부분의 중대재해 보고서가 사고사망에 한정돼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계를 참작할 경우, 사고사망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 여기에는 그렇다, 아니다로 답하기 곤란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답하자면, 중대재해 보고서가 세상에 온전한 형태로 드러나지 않아 그 여부를 따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앞서 제시한 재해조사 보고서의 질적 제고를 위한 연구에서 일부나마 그 실태를 엿볼 수 있다. 중요한 지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현행 중대재해 조사 보고서의 한계

공단의 연구보고서를 살펴보기에 앞서, 중대재해 조사는 조사인가 아니면 수사인지 여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 보고서와 재해조사 의견서를 작성하는 근로감독관과 공단 전문가는 보고서 공개에 우려를 표한다. 중대재해 보고서는 수사자료이고,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재판 등 송사에 대한 부담은 조사내용의 손질로까지 이어진다. 즉 검찰의 기소 자료로 활용되는 산안법 법령 위반 자료 이외에 조사내용은 근로감독관에 의해 수정되거나 의견 조율이라는 형태로 수정을 요구받고 있었다. 이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담당자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채, 산업안전보건규칙 조항을 중심으로만 작성되는 한계로 작용한다.

5년간의 재해조사 의견서를 검토하고 분석한 연구에서는 재해조사 의견서의 내용상 문제를 언급한다. 재해 발생 과정이나 조사 및 확인 내용은 비교적 상세히 기술되지만, 재해 원인과 대책은 매우 단순명료하게 작성된다. 또한 작성 방법이나 재해조사 규정이 표준화돼 있지 않은 탓에 중대재해 보고서의 질이 들쑥날쑥하다. 특히 공단의 중대재해조사 실무 핸드북(2019)에서는 중대재해 보고서의 현장 확인 내용 및 분석항목에 총 12가지 요소에 관한 기술을 권하지만, 이조차 충실히 진행되지 않았다. 이는 7일로 한정된 재해조사 기간이라는 또 다른 문제와 연결되는 문제이다.

이외에도 고용노동부에서 재해조사에 한 명도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7.6%(56)에 이르는 것 조사 기간이 90.2%(668)3일 이내로 단순 현장 조사만 이뤄지는 것 중대재해 발생의 원인 수도 1~2개의 원인으로 작성된 게 63.8%(47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산안법 위반 법 조항 없이 원인만 (추락방지망 설치 미비, 방호물 설치 불량 등) 기술한 게 83.8%(62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단순한 기술적 관리 원인을 지적한 보고서가 98.4%(611)인 것 재해예방대책 제시에서도 1~2개로 작성된 게 56.7%(420)건에 달하고, 이조차 없는 보고서도 0.8%(6)나 되는 것 재해발생 대책에 교육적 대책의 필요성을 언급한 보고서는 1~2건을 포함한 게 9.3%(64)에 그치는 것 등이 문제임을 언급한다.

어떻게 보강할 것인가?

공단의 자체 용역연구 결과를 통해 제한적이지만, 그동안 중대재해 조사가 얼마나 허술하게 진행됐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지금껏 관행적으로 이뤄졌지만 중대재해 조사와 중대재해 보고서는 재해감소와 동종·유사 사고의 재발 예방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재해조사의 보강과 중대재해 보고서 작성의 본래 목적 달성을 위해 몇 가지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노동자 참여 보장이다. 예방을 위해서는 실제 사고를 유발한 현장의 실태가 가감 없이 고스란히 드러나야 한다. 이러한 실체적 기반 위에서 예방대책이 마련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재해조사 과정에서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현재의 참고인 조사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또한 안전보건활동 경험이 풍부한 지역 및 인근 사업장의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재해조사와 예방대책 수립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둘째, 재해조사의 표준화다. 지금의 조사는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조사, 사고를 유발한 기인물 조사로 한정된다. 하지만 안전대책은 노동자의 실수가 사고로 이어지지 않기 위한 것이며, 노동자의 불안전한 행동과 관리적 대책이나 조직문화 등 간접적 원인 등을 전제로 이뤄지는 조치여야 한다. 따라서 조사의 내용을 확대하고 표준화해야 한다.

셋째, 재해조사 결과의 전면 공개를 전제로 중대재해 조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전면 공개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상태처럼 관행적인 조사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과연 우리 사회에 전면적으로 공개되는 재해조사라면, 이렇게 한정적으로 조사를 할 것인지를 되물어야 한다. 이를 통해 재해조사 과정에서 누락하거나, 미처 조사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보완하도록 해야, 재해조사가 내실화를 기할 수 있을 것이다.

(손진우 상임활동가)

〈일터〉통권 207호/2021.06

 

 

 

특집 04 기후정의와 노동운동

■기후위기와 노동운동: 기후운동과 노동운동의 과제는 다르지 않다

■기후위기와 노동, 노동조합: 〈국가책임 기후일자리〉와 〈민주적 공공소유〉, 그리고 〈기후적록동맹〉

■연대의 정치로 기후정의 실현하기

 

지금 지역에서는 15

미얀마 민중과 함께하는 일

알아보자, LAW동건강 17 감정노동 스트레스와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상 관련성

연구리포트 20 장시간 근무와 개별 위험 요인이 심혈관 질환에 미치는 영향: 상호 작용 분석

동아시아 과로사 통신 24 드러나지 않는 여성의 과로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26 동물 감염병 방역의 일선에 일하는 사람들

현장의 목소리 30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의 뿌리를 키워낸 한국 기업들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34 현장 안전에 타협이란 없다

문화로 읽는 노동 38 텅 비고 지옥처럼 추운 저 땅으로 노동자들은 모두 함께 간다

직환의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42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與) 44 사고성 '불승인' 후 질병으로 재신청 하는 사건은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

여성노동 건강 상식 46 임신/임신중단 노동자의 일하지 않을 권리, 일할 권리

발칙 건강한 책방 50 미완성의 인생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연결되는 기적

이러쿵저러쿵 52 사랑스런 아기와 이리쿵 저리쿵 하는 나날들

안전보건동향 54

한노보연 이모저모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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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6월호_현장의 목소리]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의 뿌리를 키워낸 한국 기업들 -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활동가 인터뷰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의 뿌리를 키워낸 한국 기업들 

-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활동가 인터뷰

김다연 상임활동가

 

 

▲ 미얀마 시민들이 군부에 쓰러져가는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 기업이 미얀마 군부와 사업으로 이어져 그 돈이 고스란히 군부로 들어가고 있다. 나현필 활동가는 한국 기업이 해외 사업 시 인권침해에 대한 예방책을 마련하게 하거나, 실제 문제 발생 시 정부에서 특별하게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2월 1일 새벽 미얀마 쿠데타가 일어난 지 벌써 4개월이 지났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5월 30일 기준, 사망자만 840명에 이른다. 쿠데타 기간이 하루 늘어날수록, 다음날 7명이 새로운 사망자로 집계된다. 지금 지나가는 몇 시간, 몇 분이 곧 사람 목숨이다. 미얀마 시민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걸 명확히 자각한 채로, 오늘도 불복종 운동을 버텨내고 있다.

이들의 투쟁에 발맞춰, 한국 사회도 연대의 움직임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장의 한복판에서 있는 국제민주연대의 나현필 활동가를 만나, 그간의 연대와 현재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들을 수 있었다.

적극적으로 대응한 한국 정부, 하지만 기업 투자 영역 제재는 빠져

한국 사회의 대응은 크게 정부와 시민사회 두 축에서 이뤄지고 있다. 다행히 한국 정부는 비교적 빠른 조치를 보였다. 전략물자와 무기 수출을 금지하고, 미얀마 군경과의 협력을 중단했으며 미얀마에 지원했던 유무상의 공적개발원조(ODA) 규모 조정, 국내 미얀마인들의 체류자격의 연장 등 미얀마 군부에 제재를 걸었다. 나현필 활동가는 정부가 가장 핵심적인 제재방안인 '미얀마 군부와 사업하는 한국 기업들에 대한 조치'를 배제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정부의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작년 홍콩과 태국 시위에 이어 이번 미얀마 민주항쟁 국면까지, 광주 민주항쟁이 국제 사회에서 호명됨에 따라 한국 시민사회에서 정부의 연대를 강력하게 요청하는 흐름이 있는 것 같아요. 이미 현 집권당이나 보수진영 모두 미얀마 문제와 친연성이 있었고, 여기에 일련의 강력한 사회적 요구들이 결부되면서 미얀마 군부 제재 결의안이 굉장히 빨리 나왔어요. 이례적이었죠. 저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필요한 내용을 담았고요. 그런 점에서 정부 조치가 의미는 있었다고 보는데, 역시 비판지점은 있죠. 가장 핵심적인 한국 기업 투자를 다루지 않았어요. 현재 정부가 미얀마-태국 국경지역에 난민들을 수용할 수 있는 '코리아 세이프 존'을 건설하고 있는데, 사실 정작 군부를 저지하는데 중요한 방안은 한국 기업들이 군부와 결탁해 진행하는 사업을 제재하는 거예요."

미얀마 군부의 무력, 경제력을 키워낸 한국 기업들

2015년도에 아웅 산 수 치 국가고문을 위시한 민족주의민족동맹(NLD)이 첫 문민정부를 열기 전까지, 현재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1988년부터 미얀마를 통치했다. 군부의 미얀마 인권침해 문제는 꾸준히 문제가 됐으나, 포스코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은 미얀마에서 군부와 결탁해 사업을 해왔다.

바세나르 협정 가입국인 한국 정부는 군부 정권인 미얀마를 '방산물자 수출 요주의 국가'로 지정하고 군수물자 수출을 매우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지만, 2001년 현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전신인 대우인터내셔널은 포탄 생산 공장설비와 기술자료를 넘기는 계약을 맺고 사업을 진행했다. 이는 군수물자가 아닌 '일반 공작기계류'를 수출하는 것처럼 꾸몄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사건은 2006년에 적발됐다. 또한 대우인터내셔널은 천연가스를 채굴하는 슈웨 가스전 사업으로, 군부가 어마어마한 돈을 거머쥘 수 있게 했다. 가스전 개발 및 파이프라인 건설 과정에서 현지 주민들의 토지를 강제 몰수하고, 강제노역이 일어나는 등의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한 것은 물론이다.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하면서 가스전 사업을 운영하게 된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해당 사업 지분 중 51%를, 한국가스공사는 8.5%를 소유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의 자금줄이 되는 미얀마국영석유가스회사(이하 MOGE)는 25%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 매년 2~4천억의 배당금을 받는다. 이렇게 MOGE가 여러 가스전 사업으로 취하는 돈은 연간 약 1조 5천억 원으로, 미얀마 정부 예산의 10%에 달한다. 가스전 사업에 대한 제재가 절실한 이유다.1) 한국 기업들이 미얀마에 수출한 기술과 거둬들인 돈은, 미얀마 군부가 자신들의 무력과 경제력을 증강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

한편 쿠데타가 일어난 지 3개월이 넘어가는 무렵인 5월, 군부는 무기를 구매하기 위해 중국과 함께 UN의 미얀마 제재를 반대하고 있는 러시아로 사절단을 보냈다. 한국 기업이 미얀마 군부와 함께 거둬들인 막대한 부는 결국 군부의 통치 권력을 유지를 위해 미얀마 시민들에게 쏟아내는 포탄과 총알이 됐다. 그리고 그 돈은 국내에서도 돈다.

UN과 아세안의 국제적 개입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군부가 막대한 수익을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는 한, 쿠데타와 학살이 쉽게 멈출 리 만무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그에 기여하고 있다. 나현필 활동가를 비롯한 시민단체의 활동가들과 시민들은, 그중에서도 가스전 사업을 운영하는 포스코와 군부의 결탁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압박을 가해 왔다.

"군부의 로힝야 학살 때문에 UN에서 보고서를 냈었어요. 그래서 저희도 작년 11월 쿠데타 전에 이미 인권위와 한국의 OECD 가이드라인 연락사무소, UN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이렇게 3곳에 진정을 넣었어요. 인권위에서는 인권위의 조사 범위에 해당하지 않아 기각됐고요.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산업통상부 소재 연락사무소2)는 벌써 5월 말인데 1차 평가도 안 내고 있어요. 한국 연락사무소의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친기업적인 부서이다 보니 그동안 연락사무소의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OECD 가입국가들에는 이 연락사무소가 다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도 아주 잘 된다고 할 순 없지만, 한국에선 특히 잘 안 돼요.

두 번째는 '포스코·한국가스공사 미얀마 군부와의 관계 단절 촉구 서명운동'인데요. 만 명 서명 채우는 데 1달 걸렸어요. 미얀마 시민들의 불복종 운동과 군부 규탄에 대해서 시민들이 지지를 많이 하는데도, 한국 기업의 사업 제재에 대해서는 만 명 서명받는 것도 참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사업까지 못 하게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 돈도 많이 버는데' 이런 정서가 있는 것 같아요. 서명 전달하고, 기자회견도 계속하고, 국회 대응도 하고 있는데 포스코가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소송도 대규모 캠페인도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더 수위를 올려야 하는지가 가장 큰 고민이에요."

인터뷰 다음 날인 5월 28일, 포스코는 MOGE로 지급되는 배당금의 일부를 지급 중지하기로 했다. 역시 미얀마에서 가스전 사업을 운영하는 프랑스 에너지그룹 토탈과 파이프라인 수익금 수십억 원을 지급 중지한다는 입장이 발표된 이후였다. 포스코보다 토탈에서 먼저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토탈의 파이프라인과 관련해서 인권침해를 당한 주민들이 미국법원에 소송을 낸 적이 있어요. 미국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있어서 소송에서 지면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법적 공방하다가 합의했어요. 토탈이 합의금으로 막대한 금액을 줬고요. 그런 경험이 있다 보니까 이번처럼 선제 조치를 하는 거죠."

하지만 토탈과 포스코에서 지급 중지할 배당금 액수는 전체 가스전 사업 수익금의 아주 일부에 불과해 실질적인 압박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미얀마에서 군부에 자금을 댈 사업을 하는 한국 기업은 포스코뿐만이 아니다.

"많이 부각은 안 됐는데, 이노그룹이라고 있어요. 2007년에 시작해 현재 미얀마에서 건설, 환전소, 대출사업 등 14개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어요. 이노시티라고 군부가 쓰던 양곤 지역의 토지에서 우리로 치면 호화 아파트 주거단지 건설사업을 2007년부터 하고 있는데, 군부와 유착되지 않고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사업이거든요. 또 최근에 이노그룹이 미얀마에서 운영 중인 의류 공장에서 군복을 생산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쿠데타 이후에도 군복을 생산하고 있다면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죠. 언론에 알릴 준비를 하고 있어요."

해외 지역민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업을 막을 시스템이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미얀마 시민들의 인권침해로 이어지는 사업 규제를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나현필 활동가는 한국 기업이 해외 사업 시 인권침해에 대한 예방책을 마련하게 하거나, 실제 문제 발생 시 정부에서 특별하게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이 없는 시스템을 핵심적인 문제로 꼽았다. 그런 만큼 현재는 곧 있을 대선 전에 국회가 그러한 시스템을 위한 입법을 하도록 하는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그런 시스템은 징벌적 손해배상과 같은 확실한 처벌 규정을 두고, 이를 우려해서라도 기업이 인권침해의 문제를 예방하거나 사업 자체를 재고하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토탈의 사례처럼 2016년에 포스코의 가스 터미널 주변 토지수용 문제를 두고 현지 농민들이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어요. 근데 5년이 지난 지금까지 1심 판결도 안 나고 있어요. 기업이 잘못하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선례가 생겨야 기업들도 조심할 텐데, 한국은 아직 그런 게 안 돼 있죠. 그래서 저는 이 판결이 중요할 거라고 봐요. 중대재해처벌법과 마찬가지로요. 기업들이 예방할 수 있게 장려하는 방식들도 계속 가야 하지만, 처벌이 반드시 동반돼야만 가장 확실한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포스코는 기업의 윤리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사회적 책무를 다 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기업을 평가하는 ESG(Environment환경, Social사회, Governance지배구조) 기준 중 최고등급을 받았다. '사회적 책무를 다한 기업'이라는 타이틀과 시민들을 공격할 무기들을 사들이고 있는 미얀마 군부에 자금줄을 대고 있는 기업이라는 현실 사이 거리가 아득하다. 포스코는 국내에서 2018년 이후, 올해 2월까지 산재사망만 19명을 낸 기업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더더욱 그렇다.

"포스코가 근데 군부에 결탁했다고 해서 주가가 떨어지는 건 아닐 것"이라는 나현필 활동가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기업활동은 어쩔 수 없지'라며 눈 감는 우리는 도처에 있다.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되지만, 한편 그것은 우리 사회적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기에 마음이 무겁다.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고 체포하고 구금하는 미얀마 군부를 규탄하면서, 동시에 한국 기업과 우리의 현주소에 무감해도 괜찮을까. 한국 기업들이 미얀마를 비롯한 다른 국가에서 어떻게 사업을 하고, 그곳의 사람들은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봐야 할 시점이다.


1) 2017년, 포스코인터내셔널은 군부가 로힝야족 학살을 일삼던 시기에 ‘대민 지원용’ 선박이라는 명목으로 포장해 군함을 대리 구매까지 해줬을뿐더러, 현재 양곤의 군부 소유 땅에서 롯데호텔과 함께 호텔사업도 유지하고 있다.

2) 기업이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고 진정이 들어오면 1차 평가를 해서 기업들이 가이드라인 위반할 소지가 있는지를 판단해, 필요하다면 정부가 테이블을 주선하고 기업을 불러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일터6월호_만평] 녹색 섞은 자본주의?!

[일터6월호_여성노동 건강상식] 임신/임신중단 노동자의 일하지 않을 권리, 일할 권리

임신/임신중단 노동자의 일하지 않을 권리, 일할 권리

정지윤 회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병원에서 일하는 임신한 몸들

본과 3학년 때 소아과 실습을 돌 때였다. 소아과 2년 차 레지던트는 임신 35주의 몸으로 당직을 서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숨차 보이던 그 레지던트는 부은 다리를 의자로 올리면서 "쌤들은 소아과 하지 마요"라며 웃었다. 6년이 흘러 내가 레지던트 4년 차가 됐을 때도 동기인 산부인과 레지던트는 37주 3일까지도 당직을 서고 있었다. 출산휴가인 3개월 동안 당직을 설 수 없으니 임신 기간 중 미리 당직을 서야 했기 때문이었다. 동기들끼리 분만실에서 출산한 후 당직을 계속 서라는 둥, 처방창에 지시 처방으로 남편 이름을 넣고 콜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둥 자조적인 농담을 건넸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웃을 수 없었다.

보건의료노조는 2020년 노조원 35,614명을 대상으로 '모성보호-임신 및 출산' 조사를 진행했다. 이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보건의료 여성노동자의 임신 결정 자율성은 2018년 65.9%, 2019년 68.3%, 2020년 73.3%로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4명 중 1명은 임신조차 자유롭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로이 임신을 결정할 수 없었던 이유로는 '동료에게 업무가 가중되기 때문'이 57.6%로 가장 많았으며, '부서 내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 여성이 있다(21.8%)'라는 답변이 뒤따랐다. 모성보호제도 사용의 현황도 살펴볼 수 있었는데 '출산전후 휴가' 사용률은 80.3%였으나, '임신 중 쉬운 업무로 업무전환 요구'는 10% 내외에 불과했다. 비교적 높게 나타난 휴가 사용률 이면에는 휴가 이전에 혹사당하는 몸들이 숨어있다. 이 밖에도 임신 충 초과노동을 수행한 비율이 전체 응답자의 29.2%1)로 나타나는 등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의료기관 특유의 조직문화로 인해 병원 여성 노동자의 임신을 둘러싼 '건강하게 일할 권리'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건강이슈에 가장 민감할 것 같은 전문가 사이에서, 임신한 노동자로서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공공연하게 침해당하고 있는 셈이다.

 

▲ 근로기준법에 따른 임신 근로자의 근무환경 조정 내용

 

모성보호 측면의 임신 노동자 보호

여성노동자 건강권 문제에서 모성보호는 항상 쟁점이었다. 모성보호란 여성의 생리, 임신, 출산, 육아 등 재생산에 관한 보호 측면을 일컬으며, 임산부뿐만 아니라 가임기 여성에게까지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개념이다.

임신노동자의 노동환경에 관한 법률은 현재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여성 노동자가 1일 2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하는 경우 사용자는 이를 허용해야 하고, 1일 근로시간이 8시간 미만의 경우 1일 근로시간이 6시간이 되도록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할 수 있다.2) 이를 위반하거나 임신 중 또는 산후 1년이 지나지 않은 여성에게 시간 외 근로 지시, 쉬운 근로로의 전환 등을 하지 않는 사용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3) 또한, 사용자는 임신 중 여성에게 출산 전이나 후에 90일(한 번에 둘 이상 자녀를 임신한 경우 120일)의 출산전후 휴가를 줘야 하며, 해당 휴가에는 출산 후 45일(한 번에 둘 이상의 자녀를 임신한 경우 60일) 이상이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4) 이 밖에도 근로기준법 시행령에서는 임신한 여성 나아가 모성보호 측면에서 18세 이상의 여성이 할 수 없는 일이나 산후 1년이 지나지 않은 여성이 할 수 없는 일 등에 대한 별도 규정을 마련해두고 있다.5)

그러나 임산부의 야간근로 및 휴일근로는 사정이 다르다. 원칙상 금지됐으나 '산후 1년이 지나지 않은 여성의 동의가 있는 경우'이거나 '임신 중의 여성이 명시적으로 청구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야간근로가 가능하다.6) 그간 야간노동이 산모와 태아에게 미치는 부정적 건강영향이 여러 연구에서 증명됐으나 노동자의 동의만 있다면 가능한 것이다. 그 결과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임산부의 야간노동 동의서가 작성될 위험을 낳았다. 고용노동부의 2015~2019년 임산부 야간·휴일근로 현황에 따르면, 접수된 18,976건의 여성 야간근로 신청 사례 중 거절(미인가)은 단 한 건도 없었다. 해당 동의서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작성되지는 않았는지조차 살펴보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장관 인가를 내줬음을 함의한다.7)

임신중단을 경험한 여성노동자의 보호

모성보호의 일부로써 임신한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는 게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건강권 추구라면, 임신중단을 경험한 여성노동자의 건강권은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을까? 현행 근로기준법은 여성의 유산과 사산을 휴가 사유로 규정하고 주수에 따라 휴가를 차등 부여하고 있지만, 인공적인 임신중단에 따른 유산은 휴가 사유로 인정하지 않는다. 즉 모건보건법 제14조 1항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 항목을 제외하고는 유산, 사산 휴가가 부여되지 않는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낙태죄 조항에 대한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2021년 1월 1일 0시를 기점으로 ‘낙태죄’는 사라졌다. 이에 따라 근로기준법의 임신중단 관련 조항도 개정을 논의 중인데, 여기에는 임신중단 수술을 받은 여성에게도 법정휴가를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임신중단도 출산이나 자연 유산과 유사하게 여성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한편 임신중단 수술이 아닌 약물로 인한 유산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논의가 오가고 있지는 않다. 임신중지 방법에는 약물과 외과적 수술이 있다. 일명 ‘미프진’으로 불리는 유산 유도약은 현재 전 세계 74개국에서 공식적으로 승인돼 사용 중이며 WHO 또한 2005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지만, 그동안 국내에서는 불법이었다. 미프진이 합법화되면 산부인과 의료진의 처방에 따라 임신 시점 등을 확인한 안전한 복용과 외과적 수술 없이도 임신중단이 가능하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먹는 임신중단 약물의 국내 도입을 위한 허가 논의를 진행 중임을 고려해, 관련 법안마련이 시급하다.

임신/임신중단 노동자의 일하지 않을 권리, 일할 권리

여성노동자가 임신/임신중단을 경험하면서 위험한 일을 멈출 권리를 추구하는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는 가임기 여성의 임신 가능성을 '고려'해 일할 권리를 위협하고 있다. 2013년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교사임용 시 경쟁자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신 가능성이 있다'라는 이유로 지원자를 배제했다. 해당 지원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고, 이에 임신 가능성을 이유로 채용 불가를 통보한 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경기도교육감에게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후 대책의 마련과 시행을 권고함에 따라, 임용 지원서류 제출 시 초빙 요건이 아닌 결혼 연차나 자녀 유무 등의 정보를 요구하지 않음의 조치가 이뤄졌다. 이처럼 개인의 신상을 토대로 한 개인의 임신 가능성을 짐작하고, 그 가능성만으로도 채용에 있어 차별을 받는 현실에서 임신이라는 영역과 무관하지 않은 노동자가 불리한 처우를 받지 않기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여성노동자가 임신/임신중단을 둘러싼 일할 권리와 일하지 않을 권리 모두를 추구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그저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추구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임신과 출산을 모성의 신화화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거나 여성이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의무로 다루는 것은 끝날 때가 됐다. 이제는 노동자로서의 여성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


1) 그들의 이름은 ‘마른 수건’... 날마다 쥐어짜인다, 국민일보 2020년 07월 12일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46841&code=14130000&cp=nv)

2) 「근로기준법」 제74조 제7항 단서

3) 「근로기준법」 제110조 제1항

4) 「근로기준법」 제74조 제1항

5) 「근로기준법」 시행령 [별표4] 참고

6) 「근로기준법」 제74조 제2항

7) 임신은 민폐 유산은 내 탓... 야간근무 덫에 걸린 임산부. 서울신문 2020년 11월 22일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

php?id=20201123008012)

 

 

[일터6월호_여성노동 건강상식] 임신/임신중단 노동자의 일하지 않을 권리, 일할 권리

임신/임신중단 노동자의 일하지 않을 권리, 일할 권리

정지윤 회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병원에서 일하는 임신한 몸들

본과 3학년 때 소아과 실습을 돌 때였다. 소아과 2년 차 레지던트는 임신 35주의 몸으로 당직을 서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숨차 보이던 그 레지던트는 부은 다리를 의자로 올리면서 "쌤들은 소아과 하지 마요"라며 웃었다. 6년이 흘러 내가 레지던트 4년 차가 됐을 때도 동기인 산부인과 레지던트는 37주 3일까지도 당직을 서고 있었다. 출산휴가인 3개월 동안 당직을 설 수 없으니 임신 기간 중 미리 당직을 서야 했기 때문이었다. 동기들끼리 분만실에서 출산한 후 당직을 계속 서라는 둥, 처방창에 지시 처방으로 남편 이름을 넣고 콜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둥 자조적인 농담을 건넸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웃을 수 없었다.

보건의료노조는 2020년 노조원 35,614명을 대상으로 '모성보호-임신 및 출산' 조사를 진행했다. 이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보건의료 여성노동자의 임신 결정 자율성은 2018년 65.9%, 2019년 68.3%, 2020년 73.3%로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4명 중 1명은 임신조차 자유롭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로이 임신을 결정할 수 없었던 이유로는 '동료에게 업무가 가중되기 때문'이 57.6%로 가장 많았으며, '부서 내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 여성이 있다(21.8%)'라는 답변이 뒤따랐다. 모성보호제도 사용의 현황도 살펴볼 수 있었는데 '출산전후 휴가' 사용률은 80.3%였으나, '임신 중 쉬운 업무로 업무전환 요구'는 10% 내외에 불과했다. 비교적 높게 나타난 휴가 사용률 이면에는 휴가 이전에 혹사당하는 몸들이 숨어있다. 이 밖에도 임신 충 초과노동을 수행한 비율이 전체 응답자의 29.2%1)로 나타나는 등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의료기관 특유의 조직문화로 인해 병원 여성 노동자의 임신을 둘러싼 '건강하게 일할 권리'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건강이슈에 가장 민감할 것 같은 전문가 사이에서, 임신한 노동자로서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공공연하게 침해당하고 있는 셈이다.

 

▲ 근로기준법에 따른 임신 근로자의 근무환경 조정 내용

 

모성보호 측면의 임신 노동자 보호

여성노동자 건강권 문제에서 모성보호는 항상 쟁점이었다. 모성보호란 여성의 생리, 임신, 출산, 육아 등 재생산에 관한 보호 측면을 일컬으며, 임산부뿐만 아니라 가임기 여성에게까지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개념이다.

임신노동자의 노동환경에 관한 법률은 현재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여성 노동자가 1일 2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하는 경우 사용자는 이를 허용해야 하고, 1일 근로시간이 8시간 미만의 경우 1일 근로시간이 6시간이 되도록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할 수 있다.2) 이를 위반하거나 임신 중 또는 산후 1년이 지나지 않은 여성에게 시간 외 근로 지시, 쉬운 근로로의 전환 등을 하지 않는 사용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3) 또한, 사용자는 임신 중 여성에게 출산 전이나 후에 90일(한 번에 둘 이상 자녀를 임신한 경우 120일)의 출산전후 휴가를 줘야 하며, 해당 휴가에는 출산 후 45일(한 번에 둘 이상의 자녀를 임신한 경우 60일) 이상이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4) 이 밖에도 근로기준법 시행령에서는 임신한 여성 나아가 모성보호 측면에서 18세 이상의 여성이 할 수 없는 일이나 산후 1년이 지나지 않은 여성이 할 수 없는 일 등에 대한 별도 규정을 마련해두고 있다.5)

그러나 임산부의 야간근로 및 휴일근로는 사정이 다르다. 원칙상 금지됐으나 '산후 1년이 지나지 않은 여성의 동의가 있는 경우'이거나 '임신 중의 여성이 명시적으로 청구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야간근로가 가능하다.6) 그간 야간노동이 산모와 태아에게 미치는 부정적 건강영향이 여러 연구에서 증명됐으나 노동자의 동의만 있다면 가능한 것이다. 그 결과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임산부의 야간노동 동의서가 작성될 위험을 낳았다. 고용노동부의 2015~2019년 임산부 야간·휴일근로 현황에 따르면, 접수된 18,976건의 여성 야간근로 신청 사례 중 거절(미인가)은 단 한 건도 없었다. 해당 동의서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작성되지는 않았는지조차 살펴보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장관 인가를 내줬음을 함의한다.7)

임신중단을 경험한 여성노동자의 보호

모성보호의 일부로써 임신한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는 게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건강권 추구라면, 임신중단을 경험한 여성노동자의 건강권은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을까? 현행 근로기준법은 여성의 유산과 사산을 휴가 사유로 규정하고 주수에 따라 휴가를 차등 부여하고 있지만, 인공적인 임신중단에 따른 유산은 휴가 사유로 인정하지 않는다. 즉 모건보건법 제14조 1항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 항목을 제외하고는 유산, 사산 휴가가 부여되지 않는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낙태죄 조항에 대한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2021년 1월 1일 0시를 기점으로 ‘낙태죄’는 사라졌다. 이에 따라 근로기준법의 임신중단 관련 조항도 개정을 논의 중인데, 여기에는 임신중단 수술을 받은 여성에게도 법정휴가를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임신중단도 출산이나 자연 유산과 유사하게 여성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한편 임신중단 수술이 아닌 약물로 인한 유산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논의가 오가고 있지는 않다. 임신중지 방법에는 약물과 외과적 수술이 있다. 일명 ‘미프진’으로 불리는 유산 유도약은 현재 전 세계 74개국에서 공식적으로 승인돼 사용 중이며 WHO 또한 2005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지만, 그동안 국내에서는 불법이었다. 미프진이 합법화되면 산부인과 의료진의 처방에 따라 임신 시점 등을 확인한 안전한 복용과 외과적 수술 없이도 임신중단이 가능하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먹는 임신중단 약물의 국내 도입을 위한 허가 논의를 진행 중임을 고려해, 관련 법안마련이 시급하다.

임신/임신중단 노동자의 일하지 않을 권리, 일할 권리

여성노동자가 임신/임신중단을 경험하면서 위험한 일을 멈출 권리를 추구하는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는 가임기 여성의 임신 가능성을 '고려'해 일할 권리를 위협하고 있다. 2013년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교사임용 시 경쟁자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신 가능성이 있다'라는 이유로 지원자를 배제했다. 해당 지원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고, 이에 임신 가능성을 이유로 채용 불가를 통보한 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경기도교육감에게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후 대책의 마련과 시행을 권고함에 따라, 임용 지원서류 제출 시 초빙 요건이 아닌 결혼 연차나 자녀 유무 등의 정보를 요구하지 않음의 조치가 이뤄졌다. 이처럼 개인의 신상을 토대로 한 개인의 임신 가능성을 짐작하고, 그 가능성만으로도 채용에 있어 차별을 받는 현실에서 임신이라는 영역과 무관하지 않은 노동자가 불리한 처우를 받지 않기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여성노동자가 임신/임신중단을 둘러싼 일할 권리와 일하지 않을 권리 모두를 추구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그저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추구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임신과 출산을 모성의 신화화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거나 여성이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의무로 다루는 것은 끝날 때가 됐다. 이제는 노동자로서의 여성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


1) 그들의 이름은 ‘마른 수건’... 날마다 쥐어짜인다, 국민일보 2020년 07월 12일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46841&code=14130000&cp=nv)

2) 「근로기준법」 제74조 제7항 단서

3) 「근로기준법」 제110조 제1항

4) 「근로기준법」 제74조 제1항

5) 「근로기준법」 시행령 [별표4] 참고

6) 「근로기준법」 제74조 제2항

7) 임신은 민폐 유산은 내 탓... 야간근무 덫에 걸린 임산부. 서울신문 2020년 11월 22일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

php?id=20201123008012)

 

 

[일터6월호_직환의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유형섭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지난 5월 택배노동자의 적정노동시간 연구를 하며 면접조사를 위해 직접 노동자들과 만날 일이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도 과로에 시달렸지만 코로나 이후 물류량이 대폭 늘면서 과로사의 대명사가 된 사람들이다. 사회적 대화 이후 분류작업에 드는 시간은 줄었지만, 월 평균 7,000여개의 물건을 나르고,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하기 위해 쉬는 시간 없이 일을 한다. 일하는 만큼 건당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더 많이 벌려면 더 많이 일해야 한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적정 노동 강도를 위해 노동 시간을 지정해도, 해야 하는 물량이 있으니 노동 강도는 더욱 집중될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집배량을 감소시키면 그만큼 벌이가 줄어들 것이고, 과로로 인한 건강 영향에 대비해 수입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면접을 진행한 이들 중 자신의 업무량, 즉 수입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노동시간은 주 평균 60-80시간이고, 업무량이 많기 때문에 아프거나 일을 쉬어야할 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확실한 것은 택배노동자들은 계속 죽어나가고 있다는 것이고, 그들의 업무에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휴가라는 개념 자체가 저희에겐 없어요. 저는 어머니한테 돌아가실 거면 주말에 돌아가시라고 이야기해요."

자신이 하는 일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당사자인 경우가 많다. 어떤 부분이 바뀌면 나아질 것 같은지 노동자들에게 물었다. 첫 번째는 낮은 단가이다. 택배 업무를 10년간 해왔지만 택배 단가는 오히려 떨어지고 물류량은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택배 물량이 늘면서 택배업체간 경쟁으로 인한 것이다. 낮은 단가를 유지하는 대신 가격 경쟁력을 높여 많은 업체나 지역을 담당하게 되므로, 경쟁업체 역시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등이 터지는 것은 택배 노동자이다. 대체 인력이 없어, 일을 쉬어야 하는 경우 동료에게 일부 나눠줄 수도 있지만, 물류량이 많으면 그것도 어렵다. 그런 경우 용달차에 배송을 맡기기도 하는데 1건당 2,000원 가량을 주어야한다. 반면 택배 단가는 점점 낮아져 1건당 700-1,000원 밖에 못 챙기는 현실에선, 아파도 일하는 것이 당연해진다.

두 번째로는 당일, 익일 배송과 같은 서비스가 점차 늘어나면서 배송 시간이 빠듯해졌다는 점을 지목하였다. 배송 시한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물류센터에 쌓여있는 물건만 배송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물건들은 항상 빠듯하게 도착하기 때문에, 아침 출근 후 1차 배송을 마친 뒤, 다시 물류 센터에 도착해 있는 물건을 싣고 2차 배송을 나가거나, 동료한테 전달 받게 된다. 결국엔 물류 배송량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배송 업계에 해로운 경쟁을 불어넣는 업체들이 있다. 쿠팡, 마켓컬리 등을 필두로 새벽 배송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으며, 이젠 당일이나 익일 배송이 당연해지고 있다. 특히 쿠팡이 로켓배송이라는 이름으로 상품보관부터 배송까지 한 과정으로 수행하는 풀필먼트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2020년 시행된 쿠팡 부천물류센터 노동자 인권실태조사 보고서와 덕평 물류센터 노동자 노동실태 기초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시간당 작업 속도(UPH)를 통제하는데, UPH가 낮은 경우 모욕감을 주며 관리한다. 이렇게 생산량은 최대로 높이면서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휴식을 제공하지 않았고, 결국 과로사에 집단 감염 사태까지 발생시켰다.

반면 쿠팡은 지난 3월 미국 증시에서 상장을 하며 성공가도에 오르고 있고, 여러 대기업에서는 이러한 모델을 따라가기 위한 구상을 밝히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물류업계는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반면, 비대면 배송이 늘어나면서 택배 및 배달 노동자들은 더욱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난 4월 22일 평택항에서 일하던 고 이선호군의 사망과 비슷한 시기 발생한 한강 의대생 실종 사건이 비교되곤 한다. 모든 죽음이 안타깝지만, 죽음의 관심에도 계급이 있는 듯하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사고가 너무나 자주 일어나 그런 것일까? 이 현저한 관심의 차이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의 노동자의 위치를 보여준다.

"예전에는 젊은 사람들이 배송을 하면 돈도 안 되는 일인데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연민으로 바라봤다면, 이제 저희가 버는 돈의 액수를 알고는 많이 벌려고 욕심 부리다 죽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해요."

노동자는 돈 많이 벌려고 욕심 부리면 안 되는 존재인 것이다. 딱 어느 정도를 지켜야하는 사람. 아파트 단지 내에 들어오면 안 되는 사람, 내 눈에 띄면 안 되는 사람이다. 반면 기업이 돈을 벌려는 행동은 당연한 것이고 그들이 성공하면 모두 우러러보며 예전에 투자하지 않았던 자신을 책망한다. 성공한 기업의 노동자가 죽는 것에는 무뎌지고, 그들은 부품으로 취급된다. 이런 인식에 자본가뿐 아니라 이를 두둔하는 사회, 소비자, 심지어 노동자 자기 자신까지 갇히게 된다. 기업은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소비자는 점점 편안해지며, 노동자는 점점 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자들이 더 보여야 한다. 제품과 서비스를 보면 그 과정이, 과정 속의 사람이 보여야 한다. 다시, 택배 노동자의 과로로 돌아가 해결책을 고민해보지만 답은 쉽지 않다. 택배 단가를 정상화하고, 근무 시간을 제한해야 한다. 그리고 택배회사는 더 많은 인력을 뽑아야하며, 고객 민원, 배송 문제에 대한 책임부터 휴가, 휴게시간, 건강검진 등 노동환경에 관여해야 한다. 시민들은 자신의 편의 속에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 알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