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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꿀잠 이야기 / 2020. 09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꿀잠 이야기 권종호 회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이불 밖은 위험해 어느 날 저녁 여느 때처럼 7살 딸과 5살 아들이 자기들 방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둘이 장난도 치고 수다도 떨다가 몇 번 주의를 받고서야 잠이 들곤 하는 게 일상이라 그날도 그러려니 하고 아이들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데 갑자기 5살 아들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누나 때문에 나 꿀잠 못 자잖아~~” 적당히 주의를 주고 잠들게 하려던 나와 아내는 5살 인생의 뜬금없는 꿀잠 욕심에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어른들의 키득거림과는 달리 동생의 꿀잠을 위한 누나의 진지한 배려가 있었던 것인지 아이들 방은 이내 조용해졌고 누나 동생 모두 행복한 꿀잠에 빠져들었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도, 이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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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꿀잠 이야기 / 2020. 09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꿀잠 이야기

권종호 회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이불 밖은 위험해

어느 날 저녁 여느 때처럼 7살 딸과 5살 아들이 자기들 방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둘이 장난도 치고 수다도 떨다가 몇 번 주의를 받고서야 잠이 들곤 하는 게 일상이라 그날도 그러려니 하고 아이들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데 갑자기 5살 아들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누나 때문에 나 꿀잠 못 자잖아~~”

적당히 주의를 주고 잠들게 하려던 나와 아내는 5살 인생의 뜬금없는 꿀잠 욕심에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어른들의 키득거림과는 달리 동생의 꿀잠을 위한 누나의 진지한 배려가 있었던 것인지 아이들 방은 이내 조용해졌고 누나 동생 모두 행복한 꿀잠에 빠져들었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도, 이불 밖 세상은 불이 꺼지지 않는다. 바로 옆에 있는 우리 아파트 경비실부터 골목 곳곳에 자리 잡은 편의점, PC방을 거쳐, 소방서, 경찰서, 병원을 넘어 밤새 돌아가는 공장들, 물류센터들, 이 많은 곳들을 사이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배달 노동자까지... 밤에는 꿀잠을 자는 것이 당연한 아이들에게는 생경한 세상일 것이다. 실제로 특수건강진단을 하며 만나는 야간 작업 노동자들의 잠 이야기는 아이들의 공감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힘든 이야기이다.

정상 수면 패턴과 수면 유지 장애

야간 작업 노동자들의 수면 상담을 진행하면서 자주 활용하는 그래프이다. 정상 수면 상태에서 깊은 잠 얕은 잠이 수 차례 반복되는 것을 잘 보여주는 그래프인데 이게 정상 수면이라고 하면 많이들 놀란다. 보통 깊은 잠 한 번으로 잠이 끝나는 줄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본인도 모르게 잠에서 깨거나 꿈을 꾸거나 하는 얕은 잠과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의 깊은 잠을 반복하며 신체적 정신적 휴식을 번갈아 취하고 한 번의 수면이 끝난다.

정상 수면 패턴

이러한 수면의 과정이 잘 이루어지면 한 번의 꿀잠을 잔 것처럼 수면이 이루어지지만 그렇지 않고 과정 중 나타나는 얕은 잠이나 꿈수면 중에 자주 깨고 다시 잠들지 못하게 되면 수면의 질이 매우 떨어지게 된다. 흔히들 불면증이라고 하면 잠들기 어려운 형태(입면 장애)만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잠이 들었다가 너무 자주 깨거나 다시 잠들지 못하고 아침까지 뜬 눈으로 지새는 형태(수면 유지 장애)의 불면증이 두 배 가량 더 많고 심한 불면증의 경우 이 둘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수면 유지 장애는 일반적으로도 흔하게 경험한다. 기분 나쁜 꿈 때문에 새벽에 깨거나 어렴풋이 깨는 느낌이 들어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이거나, 잠깐 화장실 가느라 깬 잠이 이런저런 스트레스 때문에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고, 코골이 때문에 수면 무호흡증으로 자주 깨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중간에 깨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도 몇 시인지 확인하려 시계를 보거나 굳이 눈을 뜨지 말 것, 실제 불면증이 아니라 원래 정상적인 수면의 한 과정으로 얕은 잠이 반복되는 것이니 스트레스 받지 말고 편안히 자신의 호흡에 집중할 것, 높은 온도, 밝은 조명, 소음, TV, 핸드폰 같은 수면에 방해되는 요인들을 최소화할 것 등을 권고하기도 한다.

낮잠은 밤잠이 될 수 없다

야간 작업 노동자의 수면 장애에서도 이러한 정상 수면 과정에서의 얕은 잠 패턴을 잘 알고 넘어가거나 일반적인 수면 환경을 개선하는 것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낮 시간의 생체 리듬은 깊은 잠을 유지할 수 없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기 때문에 낮잠은 근본적으로 편안한 잠이 될 수 없다. 실제로 10년 이상 고정 야간 근무를 하며 낮밤을 바꿔 생활하더라도 수면의 질이 더 나빠질 뿐 적응되지 않는다는 연구들도 있고, 특수건강진단을 통해 만나는 야간 작업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낮잠을 잘 수 밖에 없는 야간 근무 주간은 힘들어도 그냥 버티는 거지 편안한 잠을 기대할 수는 없다.

낮잠은 길어야 네시간, 아무리 깜깜하게 해놓고 귀마개를 해도 저절로 깨요’, ‘야간 출근 전에 한번 더 자려고 해도 잠이 안와요’, ‘심장이 요동을 치며 한번 깨버리면 다시 잘 수 없어요’, ‘야간 있는 주는 주중에 겨우 버티다 주말에 몰아서 자요’, ‘낮잠으론 제대로 못 자니 여기저기 아프고 그러니 더 못자고 악순환이에요

늘어가는 야간 노동, 잃어버린 꿀잠의 가치는?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 나온 외국인은 몇 년간의 한국 생활이 그립다고 했다. 돌아간 고국에서는 저녁만 되어도 문 여는 가게가 없다며 새벽에도 배달 음식을 시켜먹고 밤새 PC방과 노래방에서 놀 수 있는 한국은 최고의 나라라고 했다. 불과 1~2년 사이에 이제는 저녁에 인터넷 주문을 하면 새벽 배송까지 해주는 나라가 되었으니 더 좋은 나라가 되었을까?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낮잠은 마지못해 잠들 뿐 밤잠만큼 편할 수 없다. 늘어난 야간 노동의 양만큼, 우리가 누리는 편리만큼 누군가의 꿀잠은 사라졌다. 그런데 밤 시간을 활용하는 외연의 확장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생산성을 높여준 만큼, 잃어버린 건강한 수면의 가치도 평가되었을까? 그만큼 야간 작업 노동자는 보호받고 있을까? 한국의 밤이 활기찬 것은 그만큼 야간 노동을 쉽게 생각해서는 아닐까? 늘어난 야간 노동만큼 이제는 더욱 중요해진 꿀잠의 가치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회적 배려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