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스테인리스 식기 제조 노동자에게 왜 급성 진폐가 발생했는가?
김대호 /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 연구위원
오랫동안 스테인리스 그릇을 가공하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돌아가신 어느 노동자의 역학조사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46세 때부터 22년 4개월간 스테인리스 그릇을 가공하는 공장에서 분말 세척 및 포장작업을 한 후 대학병원에서 '과민성 폐렴'을 진단 받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한 노동자가 있었다. 신청인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화재 진압 후 공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을음에 노출되어 폐질환이 발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산재신청 후 직업환경연구원에 업무상 질병 역학조사가 의뢰되어 자료를 검토해 보니 흉부 영상에서는 과민성 폐렴에 합당하였지만, 조직검사 결과에서는 과민성 폐렴의 증거가 없었다. 20년 이상 근무하였다는 업체는 스테인리스 식기류의 광택만 전담하는 업체로 산재 신청인(아래 신청인)은 미상의 분말로 세척하거나 포장을 하는 일을 하였는데, 면담하려고 유선 연락을 해보니 신청인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사망원인이 과민성 폐렴?
하는 수 없이 홀로 남은 유족인 남편과 함께 신청인이 오랫동안 일을 하였던 공장을 방문하였는데, 조그만 공장에서는 산화알루미나 크림을 식기에 바른 후 나무원단에 고속으로 마찰을 시키는 방식으로 광택을 내는 작업을 여러 노동자가 하고 있었다. 신청인이 하였던 일은 광택이 마무리된 식기를 미지의 분말을 이용해 용기 내부를 닦아내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국소배기장치가 있었지만, 미지의 분말이 주변으로 날리고 있었다. 사업장 담당자에게 미지의 분말이 뭔지 물어봤지만 잘 모르고 있었고, 산화알루미늄 가루라고만 추정하고 있었다.
직업환경연구원에서 이를 채취하여 분석(X선회절분석기)을 해보니 결정형 유리규산인 석영과 크리스토발라이트가 각각 12%, 9% 함유되어 있었고, 나머지 성분은 대부분 비결정형 물질이었으며, 다른 분석(X선형광분석) 결과에서는 SiO2 78.0%, Al2O3 6.76%, Fe2O3 6.23%, K2O 3.06%, CaO 1.58%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산화알루미늄 가루는 아니었다.
대학병원에서 진단받은 질병은 '과민성 폐렴'이었지만, 사업장 조사에서는 과민성 폐렴을 일으킬 만한 물질은 없었고 임상경과도 과민성 폐렴에 잘 맞지 않았다. 노출량이 상당할 것 같은 미지의 분말은 산화알루미늄 가루가 아닌 광물 성분으로 과민성 폐렴을 일으키는 물질이 아니라 폐암 발암물질이면서 진폐의 일종인 규폐를 일으키는 석영과 크리스토발라이트가 함유되어 있었다.
그게 정확한 진단명이었을까?
조사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을 하였는데, 우선 신청인의 폐 조직을 입수하여 폐 조직을 전문적으로 판독하는 병리과 전문의에게 재판독을 의뢰하였고, 최초 '과민성 폐렴'을 진단할 당시부터 사망한 날까지의 흉부 영상을 입수하여 흉부 영상을 전문으로 하는 영상의학과 전문의에게도 재판독을 의뢰하였다. 한편, 미지의 분말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분말을 납품하는 업체를 방문하여 조사한 결과 분말의 성분 분석표에 시료 명칭이 '규조토 분말'로 표시되어 있었고, 원료는 포항 흥해 지역에서 생산된 규조토라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다공성(多孔性, porous) 광물인 규조토는 높은 온도로 가열하는 소성 가공 이전에는 석영이나 크리스토발라이트와 같은 결정형 유리규산의 함량이 1% 미만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우리가 입수한 시료에서는 9~12%나 함유되어 있었다. 이에 2회에 걸쳐 작업환경평가를 실시한 결과, 신청인의 작업 중 노출될 수 있는 공기 중 석영 농도는 각각 0.042 ㎎/㎥, 0.091 ㎎/㎥, 크리스토발라이트는 0.025 ㎎/㎥, 0.106 ㎎/㎥로 이 둘을 합친 결정형 유리규산의 농도는 고용노동부 노출기준(0.05 ㎎/㎥)을 초과하면서 최대 4배 가까이에 달할 정도로 고농도였다.
의무기록을 재검토 한 결과, 다른 감염성 질환을 모두 배제할 수 있는 상태에서 흉부 영상에서는 규폐(silicosis)가 의심되는 소견이 확인되었고, 조직검사 재판독 결과에서도 결정형 및 비결정형 입자들이 확인되었으며, 퇴사한 후에 치료에 집중하면서 스테로이드를 투여하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폐 섬유화가 진행하면서 최초 영상으로부터 사망할 때까지 영상을 재판독한 결과에서는 급성 규폐(acute silicosis)에 합당한 소견이 확인되었다.
흉부 영상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되기 1년 전에 공장이 이전했다는 사실을 종합하여 복잡했던 실타래들을 하나씩 풀어보면, 스테인리스 공장에서 분말 세척작업을 하면서 결정형 유리규산에 노출되었지만 규폐가 발생하지 않다가 공장을 이전한 이후부터 고농도의 결정형 유리규산에 노출되어 규폐가 발생하였는데, 일반적인 규폐의 진행 경과에 비해 매우 빠른 경과를 보이면서 사망하였던 임상경과를 감안하면 고농도의 결정형 유리규산 노출에 의한 급성 규폐로 사망하였던 것으로 최종적으로 판단하였다.
즉, 스테인리스 식기를 최종적으로 세척하는 데 사용하였던 분말이 규조토 분말이었고, 규조토 분말에는 진폐나 폐암을 일으키는 석영과 크리스토발라이트가 함유되어 있었으며, 이에 노출되어 급성 규폐가 발생하였고, 노출이 중단된 상태에서도 급성 규폐가 진행하다가 호흡부전으로 사망하게 된 것이다.
스테인리스 제조과정의 유해위험요인, 규조토 분말
규조토는 수백만 년 전에 규조라고 부르는 단세포 식물인 프랑크톤 조류가 사멸하여 축적되어 생성된 것으로 규조토의 주성분은 함수비품질 규산(SiO2)이고, 화석 규조의 크기는 매우 작아서 평균 20㎍이며, 그 구조는 다공질각벽으로 형성되어 있고, 형태는 매우 다양하며, 색깔은 백색, 회색, 황색 등이 있다. 규조토는 현재 시멘트 혼합재, 각종 흡수재, 각종 여과 보조재로 사용되는 등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자연 상태의 규조토는 65~90%가 규산(SiO2)로 이루어져 있으나 대부분 비결정형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자연 상태에서도 결정형 유리규산이 21%나 함유되어 있었다.
다른 스테인리스 제조업체에서도 규조토 분말을 계속 사용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번 역학조사 결과를 안전보건공단과 고용노동부에도 알렸다. 스테인리스 세척용 분말에는 탄산칼슘(CaCO3) 분말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 규조토를 사용하는 업체도 있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번 업무상 질병 역학조사를 진행하면서 추가로 알아낸 사실이 있는데, 영국 수입 제품이면서 스테인리스 제품을 세척하는 데 사용하는 분말 제품(아스***)의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찾아본 결과에서도 결정형 유리규산(CAS number: 14808-60-7)이 60~100% 함유되어 있었다. 나무그릇이나 사기그릇을 많이 사용하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스테인리스 그릇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이를 생산하는 업체도 많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업체들에서 탄광이나 채석장에서나 생기는 진폐(규폐)가 얼마나 많이 발생할 것인지 걱정된다. 전국적인 실태조사를 하여 더 이상 진폐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빠른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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