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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코로나 음성 증명서 / 2020.04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코로나 음성 증명서 이정엽 / 후원회원, 직환의 나는 현재 한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와 관련된 진료를 하고 있다. 초기에는 특정 국가의 여행력 또는 환자와의 접촉력이 있는 자만 검사가 이루어졌으나 현재는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의사의 소견에 따라 의심 환자로 분류되면 해당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의사의 판단 기준은 지역 내 전파 수준, 검사 가능 여력 등에 따라 기관별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가끔 판단을 내리기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네, 어떤 점 때문에 걱정되어 오셨나요?" "제가 지난번에 대구를 한번 다녀와서요." "최근에 확진자와 접촉한 적이 있다던가, 해외를 다녀왔다거나, 그 외에 다른 의심 되는 노출은 없으셨고요?" "네."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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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코로나 음성 증명서 / 2020.04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코로나 음성 증명서 

 

 

 

이정엽 / 후원회원, 직환의 

 

 

 

나는 현재 한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와 관련된 진료를 하고 있다. 초기에는 특정 국가의 여행력 또는 환자와의 접촉력이 있는 자만 검사가 이루어졌으나 현재는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의사의 소견에 따라 의심 환자로 분류되면 해당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의사의 판단 기준은 지역 내 전파 수준, 검사 가능 여력 등에 따라 기관별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가끔 판단을 내리기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네, 어떤 점 때문에 걱정되어 오셨나요?"

"제가 지난번에 대구를 한번 다녀와서요."

"최근에 확진자와 접촉한 적이 있다던가, 해외를 다녀왔다거나, 그 외에 다른 의심 되는 노출은 없으셨고요?" 

"네."

"최근 열이 나거나, 기침, 인후통과 같은 호흡기 증상이 있거나, 기타 불편한 증상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저는 아무 증상도 없어요. 멀쩡합니다."

"그렇군요. 아무런 증상이 없는데 단순히 대구를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저희가 의심환자로 분류하지는 않기 때문에 검사 대상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우선 사람 많은 곳 방문은 피하시고 손 위생을 철저히 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며칠 후라도 의심 증상이 발생한다면 그때는 다시 방문 해주시고요." 

"저 오늘 검사받아서 음성이라는 결과서를 회사에 제출해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회사에서 저는 일 못 시켜준다고..." 

"......."


물론 회사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 이 노동자가 비록 증상은 없지만, 감염자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혹시라도 이 병이 자신의 회사 내에서 퍼진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 지역을 다녀온 사람들은 얼른 모두 검사받고 정상이라는 소견서를 떼어오라고, 그렇지 않으면 근무를 시킬 수 없다고 아마 이 노동자의 사업주는 지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의 입장에서 이 사람을 의심 환자로 분류하기는 무리가 있다. 접촉력을 고려하기 이전에 우선 감염을 의심할 수 있는 증상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의심환자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사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은 반면, 검사 가능 물량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 유행 지역을 방문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두 검사 오더를 하게 되면 정작 확인이 꼭 필요한 고위험 환자가 방문한 경우 제때 검사받지 못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나는 단순히 유행 지역을 방문한 것만으로는 감염의 가능성이 높지 않고, 무증상기에는 타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증상이 나타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다가 의심 증상이 발생하는 즉시 직장 출입을 막고 검사를 진행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에 하나 이 노동자가 최근에 감염된 무증상 환자라 해도 잠복기에 검사를 시행하게 되면 결과가 위음성(양성이어야 할 결과가 음성으로 잘못 나옴)으로 나올 수 있어 검사 자체의 신뢰도가 낮아지게 된다.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분류의 잣대를 다르게 들이밀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업주와 의사 각자의 사정 못지않게 자신의 사정이 절박한 것은 그 노동자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은 몸이 멀쩡한데 검사를 받아 오지 않으면 일을 시켜 주지 않는다니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할 것이다. 사정을 들어보면 그나마 한 직장에 안정적으로 고용된 경우에는 2주간 휴가를 받는 정도로 정리되기도 하지만 건설업, 대리운전업 등 고용이 불안정한 업종에 종사하는 경우 아예 고용을 거부당하기도 하는 듯하다. 천안에 장례식장을 다녀왔더니 검사를 받고 오지 않으면 일을 시켜 줄 수 없다는 말에 찾아온 미장공, 고객의 요청에 따라 대구까지 운전해주고 돌아왔더니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대리운전 기사 등 안타까운 사연들을 많이 접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곳곳에서 발생하자 급기야 질병관리본부에서는 학교 및 회사에서 코로나19의 음성 증명서 요구를 자제해 달라는 권고를 내리기까지 했으나 여전히 회사의 지시대로 검사를 받기 위한 노동자들의 방문은 계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쪼록 이 신종 전염병 사태가 이른 시일 내에 종식되어 모두가 더는 불안감에 떨거나 피해를 보지 않고 이전과 같이 각자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