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1. 성소수자의 건강과 삶은 어떠한가 / 2018.05

성소수자의 건강과 삶은 어떠한가

재현 선전위원장


성소수자는 누구인가

성소수자는 남녀 동성애자를 포함하여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퀘스쳐닝(자신의 정체성에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특정 젠더 또는 섹슈얼리티로 자신을 한정 짓지 않는 자), 간성 등을 포함하는 LGBTQI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stioning, Intersex)를 총칭한다. 한국의 성소수자는 그 자체로 혐오에 대상이다 보니 많은 이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히지 못하고 살아간다.

성소수자가 문제가 되는 사회

이 사회에서는 성소수자를 정신질환자로 여긴다. 그래서일까? 성소수자를 정신병 환자로 여기는 사람들은 성소수자가 꾸준히 전환 치료를 받으면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의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러한 주장은 틀렸음이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했다. 1973년 미국 정신의학회는 전 세계적으로 정신과 질환 진단에서 표준으로 사용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의 정신질환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하기로 했다.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하며 더는 성소수자가 정신질환자가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이후 성소수자의 전환 치료를 주장하던 세력은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오히려 전 세계는 1990년 세계보건기구 결정이 있었던 5월 17일을 기념하여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and Biphobia)' 행사를 진행하면서 성소수자의 인권 증진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한편, 보수개신교는 자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면서 성소수자를 죄악으로 여기는데 전념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차별금지법 제정, 인권조례 제정 등 성소수자의 인권 증진을 가로막는 데 일조하고 있다. 보수정치 세력역시 반공 이데올로기로 지지층 결집이 쉽지 않자, 성소수자에 대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정치세력을 동성애 집단으로 매도하며,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있다.

혐오는 성소수자의 삶 자체를 위협

지난 2017년 육군 A대위는 군대 밖에서 상호합의하에 업무와 무관한 사람과 성관계를 맺었는데, 상대가 동성이라는 이유로 군형법 92조 6항('군인 또는 준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형사처벌 할 수 있다)에 의해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러한 반인권적인 판결은 당시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의 지시로 진행되었음을 확인했다. 당시 군은 의심이 가는 대상자 군인들에 통화 기록을 파헤치고, 개인의 성적지향을 강압적으로 진술하게 하는 면담 등을 통해 성소수자의 인권을 짓밟았다. 무엇보다 A대위는 성적지향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감옥에 갇히며 본인이 원치 않는 상황에서 성정체성이 밝혀지고, 생존권 자체가 박탈되었다.

문제는 한국 사회처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낙인이 판치는 세상에서 A대위와 같은 일은 어떤 성소수자 그리고 성소수자 노동자에게 나타날수 있는 일이라는 거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이 알려졌을 때 일상적인 생활을 계속 이어가기가 결코 쉽지 않은 사회다. 한국 성소수자 건강 연구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연구팀 역시 '모든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경험하지만, 성소수자는 자신이 놓여있는 소수자 지위로 인해 차별과 폭력 등 편견적 사건을 겪게 되고 이들은 배제에 대한 예상, 정체성에 대한 숨김, 내재화된 동성애 혐오 등의 소수자만이 느끼는 스트레스를 경험한다'고 말했다(<한겨레 21> 낙인과 고립 그리고 죽음 2018.01.02).

몸과 마음의 건강마저 위협받는 성소수자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고통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 역시 비일비재하다. 성소수자 인권포럼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성소수자가 일반 인구보다 자살 경험이 9.2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낙인이 결국 생명까지도 위협한다는 사실을, 혐오 세력들이 반드시깨달아야 한다. (2017 성소수자 인권포럼, 한국인 LGB(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 건강연구)

성소수자들은 의료 영역에서도 방치되어 있다. 특히 트렌스젠더의 경우 성전환 과정과 이후 받아야 하는 의료적 조치가 있지만 대부분 건강보험에서 비급여 항목이기 때문에 이 모든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대부분 트렌스젠더들은 성정체성을 이유로 사회적으로 이른바 괜찮은 일자리에서 일할 확률도 낮고, 가족으로부터 지지와 동의를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성전환 수술에 들어가는 비용과 몇 년씩 호르몬 치료에 필요한 비용을 홀로 감당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이나 캐나다, 아르헨티나 등 해외에서 트랜스젠더의 성전환과 관련된 비용을 국가 의료보험 체계에서 보장하는 사례를 고민해야 한다.

성소수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성적지향에 맞게 사랑하며 살아갈 권리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사회를 모든 성소수자가 건강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연대적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함께 해야 한다.

특집4.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해 일합니다 / 2018.04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해 일 합니다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영은 권익옹호활동가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차별에 맞서 배제에 맞서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이 지역사회 내 동등한 주체와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접근권, 이동권, 자립생활권리 확보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권익옹호활동가’다. 지난 3월 29일,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활동가로 일하는 장애인 노동자 최영은 님을 만나 장애인 노동자로서 겪고 있는 어려움과 보람, 장애인 노동권 쟁취를 위한 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최영은 님은 지체 장애와 뇌병변 장애를 가진 중복장애 1급으로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장애인을 위한 의사소통 어플 「진소리」를 이용했다. 그리고 활동보조인¹ 정지원 선생님도 함께했다.

(사진출처: 최영은 님) 

“올해 권익옹호활동가로 일한지 3년째예요. 저를 포함한 4명의 장애인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른 일도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멘토를 하기도 하고, 지금은 장애인인권교육을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영은 님은 5살 때부터 장애인시설에서 살다가 3년 전 탈시설을 하게 되면서 권익옹호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장애인은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주한다. 보호의 대상으로 시설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이것은 일터와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을 볼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최영은 님도 3년 전에야 시설에서 나올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나오게 됐다. 탈시설을 통한 자립생활 그리고 노동자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장애인이 일하는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최저임금 적용 제외 규정이다. 이 규정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원칙에도 어긋나고, 이 위원회가 2014년에폐지를 권고한 사항이다. 무엇보다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향상을 기한다는 최저임금제도의 취지 자체에 어긋난다. 다행히 영은 님은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일자리 지원 사업으로 재정지원을 받기 때문에 최저임금보다 약간 웃도는 임금을 받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장애인 보호작업장, 직업재활시설에서는 최저임금조차 주지 않고 있는 문제가 심각하다. 더 많은 장애인에게는 일할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다.

“올해 주 20시간 일하고 77만8천 원을 받고 있어요. 노동조건도 많이 좋아졌어요. 연차도 있고, 퇴직금도 있고 센터 측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종로청에 요구해서 명절 선물도 받게 됐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자기실현, 자기발전의 기회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일하면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자기발전의 기회를 엊는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애초에 노동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영은 님에게 일은 자기 안의 기쁨과 어려움을 발견하는 소중한 순간이다. 3년 동안 활동보조인을 하고 계시는 정지인 선생님께서도 장애인 동료에게 멘토 역할을 하며 서로 사는 이야기, 안부도 전하면서 그분이 자립하자 영은 님이 큰 기쁨을 얻은 적이 있다고 했다.

“전장연에서 발언 요청도 들어오면 A.A.C²로 발언 준비해서 집회에서 발언하는 게 보람돼요. 발언하고 나면 기쁘고, 저 스스로 너무 뿌듯해요. 자신감을 상시키고,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력을 쌓는과정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변한 것 같아요. 한편으론 장애인 인권에 대한 집회나 행사에 다 참여하거든요. 가끔 주말에도 나가야 할 때가 있어서 힘들 때가 있어요.”

장애인 일자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부의 장애인에 대한 관점은 시혜적이기 때문에 일자리 역시 그렇다. 속도와 방식이 다를수밖에 없는 중증장애인들을 같이 일하기 불편해하고, 힘들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건복지부의 일자리는 손발과 말이 자유로운 경증 장애인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중증장애인 역시 한 사회의 일원으로써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많은 제도개선과 노력이 필요하다. 영은 님에게 장애인 당사자로서 일하는 장애인이 왜 극소수일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물었다.

“장애인들의 경제활동이 너무 없다 보니 이런 제도를 알아도 장애인들의 취업 정보가 잘 안 알려지고, 최저임금이 너무 적기 때문에 경제활동을 잘 못 하고 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지며 배제와 차별 없이 일 할 수 있는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가 되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영은 님은 어플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전했다.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노동하고 안전한 장소에서 안정적으로 일해야 좋은 일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이 노동하게 된다면 다양한 정보와 장애유형별로 안내와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용어를 풀어서 설명하고,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편의시설과 여러 가지 정보가 필요하겠죠.”


* 각주

1) 장애인 활동보조인은 중증장애인이 자기결정권을 갖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하기 위해 일상생활(식사, 신변처리, 세면 등)과 사회활동(외출, 등하교, 교우관계 등)을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활동을 지원해주는 사회서비스 노동자이다. 만 6세 이상 만 65세 미만의 「장애인복지법」상 등록 1급~3급 장애인이 대상이다.

2) A.A.C(Augmentative Alternative Communication)이란 보완대체의사소통을 의미한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의 말을 ‘보완(Agumentative)’하거나 말 이외의 방식으로 ‘대체(Alternative)’해서 ‘의사소통(Communocation)’능력을 향상시켜주는 다양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 스마트폰 등 장비들을 이용해 장애인이 하고 싶은 말을 기기가 대신 출력해줄 수 있다.

특집3. 사용자에게 부속품 취급 당하는 산재 노동자 - 산재 노동자 유○○ 님 인터뷰 / 2018.04

사용자에게 부속품 취급 당하는 산재 노동자

- 산재 노동자 유○○ 님 인터

재현 선전위원장


장애인 노동자의 건강권을 고민하면서 현장에서 일하다 산재로 장애나 장해가 남은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들어보고자 3월 13일 인천에서 한 노동자를 만났다.

일하다 언제 산재 요양을 갔던 건가요?

저는 1978년도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업무는 자동차 지붕을 칠하는 업무였는데 이 작업을 하다가 낙상해서 허리 척추 1, 2번 4, 5번을 다쳤었죠. 그게 1998년 4월인데 산재를 인정받아서 그해 11월까지 쉬다가 현장으로 복귀했어요.

복귀해서 일할 때 별다른 문제는 없었나요?

그때만 해도 작업 발판이 낮고 미끄러워도 안전조치라는 게 특별히 없었어요. 그러다 사고가 나서 산재 요양을 받고 현장에 복귀했는데 2001년도에 해고를 당했어요. 해고는 왜 당했냐, 기준이 명확한 건 아닌데, 그때 IMF가 오면서 회사 관리자들이 정리해고자 명단을 만들었거든요. 들리는 이야기로는 20점 만점에 10점 이상을 받으면 정리해고 대상자가 된다고 했는데, 산재를 나갔다 복귀한 노동자는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기본 5점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산재 노동자들은 쉽게 해고 대상자가 되었죠. 결국, 1,750명이 해고됐는데 100명 정도가 산재 노동자였고 심지어 요양 중이거나 통원치료 중인 노동자들도 쫓겨났어요.

정리해고도 그렇고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에게 해고는 불법 아닌가요?

노동부 찾아가서 항의하고 그랬죠. 당시에 정부가 400억인가 투자해서 정리해고자들 재취업 기회를 만들겠다고 희망센터를 운영했는데 저처럼 산재 요양을 받았거나 현재 요양 중인 노동자들은 희망센터에서 전화도 안 받아 줬어요. 일하다 다치고 해고당한 것도 억울한데 아무도 나를 받아준다는 곳이 없으니 동료들이랑 복직 투쟁에 전념했죠. 저랑 같은 처지인 산재 노동자 30∼40명 정도가 투쟁했는데 시간이 길어지고 생계가 어려워지니까 다들 떠나가고 5명이 남았어요. 그러다 2002년 12월 23일에 5명이 복직했는데 이미 저는 왕따였죠. 은근히 따돌린다고 해야 하나 동료들이 저랑 얘기도 안 하고 밥도 같이 안 먹고요. 회식이라도 있으면 저는 일부러 늦게 가요. 눈치가 보이니까. 회식자리 가보면 구석에 제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어요. 술따라 주는 사람도 없고 대화도 안 하고 저랑 누가 얘기라도 하면 관리자들이 뭐라 하고요.

대체 왜 그런 거예요?

제가 계속해서 산재 노동자 해고는 불법 아니냐고 복직시키라고 투쟁을 했으니까, 다시 현장을 시끄럽게 할까 봐 감시한 거예요. 하도 왕따 당하고 감시받으니까 나중에는 공황장애가 오더라고요. 지금도 그때 기억이 떠오르면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잠도 안와요.

산재 이후 장해가 남으셨다고 들었는데 일할 때 눈치가 보이거나 압박감을 느끼거나 그런가요?

아무래도 능률이 떨어지죠. 근로복지공단에서 충분히 요양 기간을 주는 것도 아니니까 완전히 회복해서 현장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거든요. 열심히 일하려하는데 몸은 안 따라주고 동료들은 내가 못 따라가는게 보이니까 도와준다고는 하는데 마음이 계속 불편하고 눈치가 보이죠. 그러다 2016년 12월에 오른쪽 어깨가 파열돼서 산재 요양을 한 번 더 나갔고요.

장해가 남은 동료들도 비슷한 상황인가요?

아무래도 그렇죠. 아시겠지만 산재는 로또고 고통이고 파산이에요. 산재 신청을 한다 해도 될지 안 될지 늘노심초사하고, 된다 해도 고통은 남아있고 산재가 안되면 돈이 없으니까 파산하고 가정생활은 불화가 생기고요. 주변에 장해가 남아서 이혼하고 사회생활 못하는 사람도 4명이나 봤어요. 장해 급여를 받으면 돈은 있겠지만 산재 노동자와 가족들 마음에 편안함을 주지는 않거든요. 게다가 중증장애인은 누군가의 보조가 필요하고 도움을 받아야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러다보면 우울증도 생기고 극단적으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거죠. 그거 아시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는 거요.

산재 이후 현장에 변화가 없나 봐요?

작업장은 잘 안 바뀌어요. 설비를 투자해서 바꾸려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부서를 바꿔준다고는 하는데 그래 봐야 작업에 부담이 있는 건 비슷하고, 저 같은 경우는 부서를 옮기고 싶어도 다른 라인 작업자들 물들인다고 바꿔 주지도 않았거든요.

요즘 경제도 어렵고 회사도 다시 위기라고 하잖아요. 어떤 심정인가요?

요즘은 잠도 잘 못 자요. 산재 노동자에게 해고는 살인인데 다시 희망퇴직서를 쓰라니 그냥 죽으라는 거죠. 장애나 장해가 없는 사람도 고통스러운데 정말이지 산재 노동자는 회사에 부속품이에요! 부속품!!


특집2. 중증장애인 노동권 실태와 노동권 투쟁의 의의 / 2018.04

중증장애인 노동권 실태와 노동권 투쟁의 의의

정다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중증장애인의 경제 활동 실태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과 빈곤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이다. 굳이 수치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일단 중증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경우를 보기가 드물고, 직장 생활을 하는 경우는 더 드물다. 장애로 인한 경제적인 부담은 고스란히 가족 구성원에게 떠넘겨지고, 가족이 부양의 부담을 감당하지 못 하는 경우 장애인은 거주시설에 보내진다.

고용과 관련된 여러 가지 통계 자료 중에서도, 전체 인구 통계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차이 나는 중증장애인 통계는 바로 현격히 높은 ‘비경제활동인구’이다. 전체 인구의 경우, 10명 중 3.6명이 비경제활동인구지만 중증장애인 비경제활동인구는 10명 중 7.8명이다. 이처럼 중증장애인의 현격히 높은 비경제활동비율은 더욱 질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취업을 하지 않은 중증장애인을 경제활동인구인 실업자로 볼 것인가, 비경제활동인구로 치부하고 기생적 소비계층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실업자는 노동을 제공할 ‘의사’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구직활동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중증장애인은 전체 인구보다 노동할 ‘의사’가 부족한가? 혹시 노동할 ‘능력’을 의심받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중증장애인은 왜 구직활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가?

중증장애인에게 노동권이란 단순히 생존의 문제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독립된 구성원으로서 자기 삶을 계획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부분 중증장애인은 노동할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 비장애인 중심의 노동 환경에서 ‘능력’을 의심받으며 ‘훈련’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왜 중증장애인들이 구직을 포기하겠는가? 중증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와 제도가 뒷받침된다면 중증장애인도 노동을 선택할 수 있다. 이 사회는 그 선택지 자체를 고려하지도, 만들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장애인이 ‘노동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복지서비스에 머무르며 보호받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노동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노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중증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노동’을 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중증장애인이 접근 가능하며 사회 통합적인 노동

‘중증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노동’으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제14조’에서는 보호 고용을 정의하고 있다. ‘보호 고용’이란 정상적인 작업 조건에서 일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위하여 특정한 근로 환경을 제공하고 그 근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보호 고용의 본 취지는 근로 경험이 없는 중증장애인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고 후에 일반 고용으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호 고용을 제공하는 직업재활시설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짚어볼 문제점은, ‘최저임금법 제7조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에 따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 인원의 94.4%가 직업재활시설에서 노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법 제7조에 따라 장애인을 고용한 사업주는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를 신청한 후, 정해진 절차를 거쳐 인가를 받으면 장애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직업재활시설은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매년 20~30개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 장애인 인원수도 3,436명(`12년)→8,108명(`16년)으로 늘어나고 있다.

또한, 중증장애인 생산품 우선 구매 제도, 기능보강사업, 고용장려금 등의 여러 가지 직업재활시설 지원 제도에도 불구하고 직업재활시설의 많은 중증장애인은 보호 고용에서 경쟁 고용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복지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을 지역사회로부터 격리하고 배제했던 ‘장애인 거주시설’과 마찬가지로 직업재활시설도 장애인의 노동에 있어서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 것이다. 요컨대 모든 일터가 중증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장애인의 사회통합이 가능하다. 중증장애인을 한데 모아 그들만이 노동하는 보호 고용은 ‘중증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노동’일 수는 있어도, 사회 배제적인 요소가 다분하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될 수 없다. 실제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한국의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상황에 대한 유엔의 최종 견해’¹에서 ‘심리사회적 장애를 가진 장애인이 결과적으로 최저임금 이하의 보상을 받는 것과 개방된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 보호 작업장이 지속되는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민간 기업에 책임을 떠넘기는 ‘의무고용제도’는 이미 한계를 드러내 

장애인고용법 시행 25년이 되어가고 의무고용 이행률도 많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의무고용률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의무고용을 준수하지 않았을 때 내는 고용부담금 현황을 살펴보면 2016년 기준으로 민간 기업은 4,424억 원, 공공기관은 150억 원, 국가 및 지자체는 28억 원을 냈다. 특히 대기업일수록 의무고용 이행률이 낮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부담금을 내지 않기 위해 장애인을 고용하려고 하기보다는 부담금을 내는 방식을 간편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이와 같은 행태에도 고용노동부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기업의 의무고용 이행을 위해 과연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기업들이 낸 고용부담금으로 조성된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억재활 기금’으로부터 운영비와 사업비를 출연받기 때문이다. 의무고용제도는 한국의 주된 장애인 고용 정책이지만 그것을 이행하면 운영비가 고갈된다. 정부가 장애인 고용 정책에 대하여 일반 회계를 투여하지 않는 한, 모순적인 상황일 수밖에 없다.

「기업체 장애인고용실태조사(2016)」를 통하여 장애인 근로자 채용이 쉽지않은 이유를 조사하였는데, ‘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가 부족해서(32.0%)’, ‘업무 능력을 갖춘 장애인이 부족해서(20.6%)’, ‘장애인 지원자 자체가 없어서(12.1%)’라는 응답 결과가 나왔다. 기업의 이윤과 효율을 중심으로 문제를 진단한다면, 장애인의 노동력은 평가의 대상일뿐이며 비장애인보다 능률이 떨어지는 존재일 뿐이다. 결국, 장애인 고용률을 높이기 위한 처방으로 장애인을 기업이 원하는 수준만큼 훈련만 반복하는 것 이상이 제시되지 않는다. 

중증장애인 노동권 정책 요구 3가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장애인 고용 정책은 그 심각성에 비해 민간의 영역으로만 떠넘겨져 있기 때문에 국가 주도의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7년 11월 21일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소속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에서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위한 3가지 정책을 요구하며 85일간 점거 농성을 했다. 그 결과 고용노동부와 장애계 간의 민관협의체가 구성되어 정책협의를 진행 중이다.

정책 요구 첫 번째는 중증장애인 특성과 속도를 고려한 신규 ‘공공일자리’ 1만 개를 창출하는 것이다. 중증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사회적 활동, ▲장애인동료 상담 활동 ▲장애인 인권 옹호 활동 ▲장애인인식개선 활동 ▲장애인 민원 안내 활동 ▲장애인문화 예술 활동 등을 종합적인 직무로 구성하여, 그 업무를 신규 ‘공공일자리’로 만들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로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규정 (최저임금법 제7조) 폐지 및 지원 대책 마련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는 취약한 노동자 계층을 지나친 저임금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사회적인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가장 취약한 노동자 계층인 중증장애인에 대해서도 예외일 수 없다.

세 번째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사업을 중증장애인 중심으로 전면 개혁하고 선 배치·후 훈련 제도인 ‘지원 고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지원 고용’이란 일반 사업장에 중증장애인을 우선 취직시키되, 중증장애인의 적응을 돕는 ‘직무지도원’이라는 인력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직무 지도원은 장애인의 직장으로 찾아가 작업 분석, 직무 분석, 환경 분석, 고용주와 직장동료와의 대화 등을 통해 장애인이 직업기술을 현장에서 배우고 적응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²을 한다. 장애인 고용 패러다임이 분리에서 통합으로 전환되고 있는 시점에서 지원 고용은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마치며

중증장애인은 노동시장에서 지워진 유령 같은 존재였다. 소득과 직업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이라 할2009지라도 ‘실업자’라는 인정도 받지 못했고, 오랜 시간 동안 비경제활동인구로 방치됐다. 즉, 노동하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이 없는 사람들로 취급받아온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라는 출연기관에 모든 것을 떠넘겼고, 공단은 기업이 내는 부담금으로 근근이 연명하며 기업이 원하는 대로 장애인의 노동력을 평가하고 관리·감독하는 기관이 되었다. 직업재활시설은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저임금·사회 분리 정책으로 전락시켰다.

돌이켜보면 ‘장애인 운동’이란 교육권·이동권·사회서비스권리·주거권 등 수많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를 조금씩 바꾸는 것이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통해 일반 버스를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저상버스로 바꾸었더니 모든 사람이 버스를 편리하게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모든 일터가 중증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일터가 된다면? 모든 사람이 성과와 효율 중심으로 평가받지 않고, 고유의 특성을 존중받으며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중증장애인의 노동권 투쟁은 단지 장애인만의 문제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윤과 효율 중심의 한국 사회 전체를 바꾸는 투쟁으로 나아갈 것이다.


* 각주

1) 한국 국회는 2008년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함. 이에 한국 정부가 제출한 국가 보고서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심의하여 2014년 9월 30일에 채택함.

2) 네이버 지식 백과 참조

- 국립특수교육원, 특수교육학용어사전, 2009

특집1. 만인을 위한 노동사회의 유니버설 디자인 - 노동시장으로의 참여를 넘어 공공시민노동 체제로 / 2018.04

만인을 위한 노동사회의 유니버설 디자인

- 노동시장으로의 참여를 넘어 공공시민노동 체제로

노들장애학궁리소 김도현 연구활동가


장애인 노동권, 그 엄혹한 현실에 대하여

3년마다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장애인실태조사 자료에 의한 2014년 장애인의 실업률은 6.3%로 같은 기간 전체 인구 실업률 3.5%의 1.8배 정도이다. 그러나 정부가 얘기하는 실업률이라는 것이 워낙 기만적이어서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실업률과는 큰 차이가 난다. 장애인의 경우 15세 이상 노동 가능 연령 인구 중 2/3에 가까운 61.0%가 비경제활동 인구로 분류되어 있어(전체 인구에서는 36.9%가 비경제활동인구임), 사실 공식적인 실업률은 별 의미가 없다. 더구나 보건복지부는 오랫동안 장애인 실태조사에서 실망실업자가 포함된 실업률을 산정하였고 이것이 공식적인 실업률로 주로 사용되었지만, 2008년도부터는 아예 이를 누락시켰다. 그래서 장애인계에서는 경제활동인구와 비경제활동인구를 구분하지 않은, 전체 노동 가능 연령 인구 중 미고용률 63.4%가 훨씬 더 의미 있는 수치라고 보며 전체 장애 인구 중 70% 가까이가 실업 내지는 반실업 상태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진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그러나 이렇게 취업해 있는 36.6%의 장애인들이 처해 있는 노동 환경 역시 열악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임금 노동자 중 임시직(28.8%)과 일용직(31.4%) 비율의 합이 60.2%로, 고용계약 기간이 1년 이상인 상용직의 비율은 39.8%에 불과하다. 그리고 취업 장애인의 임금 수준은 153만 원으로 우리나라 전체 상용 노동자 평균임금 329만원(고용노동부,「사업체 노동력조사」(2014년 2/4분기), 5인이상 사업체)의 46%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마디로 장애인에게는 건강한 일자리가 존재하지 않으며, 일하면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불인정노동자로서의 장애인

소위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이자 장애 정책이 잘되어 있다고 하는 나라들도 장애인의 고용률에서는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은 수치를 보여준다. 한국의 장애 인권이나 장애인복지 관련 지표들을 살펴보면 거의 모든 것들이 OECD 34개 회원국 중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지만, 2000년대 후반 장애인 고용률은 OECD 국가 평균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¹ 그리고 이는 ‘장애(인)’이라는 근대적 범주의 형성 과정을 이해한다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자본주의의 형성기, 즉 본원적 축적기는 토지에서 쫓겨났지만 임노동 관계에 편입되지 못했던 소위 ‘부랑자’가 대량으로 양산된 시기였다. 느리고 자율적이며 유연한 형태의 노동에 익숙해 있던 많은 사람은 칼 맑스(Karl Marx)가 『자본』에서 사용한 표현을 빌자면 “별다른 도리가 없어서” 그렇게 부랑자가 되었는데, 이들을 임노동 관계로 포섭하기 위해 국가는 강제 수용과 훈육 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서구 사회복지 역사에서 등장하는 구빈원(workhouse)은 바로 이러한 강제 노동과 결합한 수용소였다.

그런데 구빈원에서는 일정 시점부터 효과적인 훈육과 나태의 방지를 위해 수용자들을 분류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핵심적인 목표는 ‘일 할 수 없다고 간주한 사람들’을 일할 수 있지만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로부터 분리하는 것이었다. 구빈원과 같은 시설 밖에서의 구제 조치(원외 구제)를 폐지한 영국의 1834년 「개정구빈법」(The Poor Law Amendment Act)은 빈민들을 분류하면서 아동, 병자, 광인, 심신결함자(defective), 노약자(the aged and infirm)를 특별히 중요한 다섯 개의 범주로서 설정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범주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잔여적인 방식으로 노동 능력자로서 간주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다섯 가지 범주 중 아동을 제외한 네 가지 범주가 바로 장애인을 구성하게 된다.

즉, 일을 할 수 있는 몸(the able-bodied)을 선별하기 위해 일을 할 수 없는 몸(the disable-bodied)을 명확히 규정하고자 했고, 이로부터 오늘날과 같은 ‘장애인’(disabled people)라는 개념이 발명된다.² 요컨대, 근대 사회로의 전환기에 생겨난 장애인이라는 범주는 근대의 자본주의적 노동에서 배제 당해온 사람들, 즉 ‘불인정 노동자’(不認定 勞動者, unrecognized worker) 집단을 가리켰던 개념인 것이다.³

노동개념의 혁신과 공공시민노동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장애인의 노동권이 보장되는 사회로의 전환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필자는 그러한 전환을 ‘공공시민노동’이라는 개념의 확립과 시스템의 구축을 통해 만들어가자고 제안하고 싶다.

기본적으로 공공시민노동이라는 ‘개념’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전제로 한다. 첫째,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는 것.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근대 자본주의가 노동·토지·화폐를 상품처럼 다룸으로써 시장경제 체제를 확립했지만, 그것은 단지 ‘상품 허구’(commodity fiction)일뿐이며 노동·토지·화폐는 결코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상품일 수 없다고 말한다. 상품이란 판매를 위해 생산되는 것인데, 토지는 자연의 다른 이름이고, 노동이란 인간의 다른 이름이며, 화폐는 신용관계의 매개물이기 때문에, 판매를 위해 더 생산하거나 덜 생산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1944년 개최되었던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는 통상 ‘필라델피아선언’이라고 불리는「국제노동기구의 목표와 목적에 관한 선언」을 채택하게 되는데, 이 선언에서 가장 먼저 제시되고 있는 원칙도 바로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둘째, 노동은 헌법의 정신에 따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시민권, 즉 ‘권리’로 존재해야 하며, 더구나 노동(근로)은 단지 ‘권리’인 것만이 아니라 교육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라는 것. 대한민국의 헌법은 제32조 ①항에서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라고 노동할 권리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②항에서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것이 이처럼 권리이자 동시에 의무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예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것처럼 민간(시장)의 영역에 방치되어서는 안 되며, 공적인 개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예컨대 공교육이 존재하지 않고 사교육(교육시장)만이 존재한다면, 혹은 공교육+‘α’의 위상으로 사교육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교육+‘α’의 위상으로 공교육이 존재한다면, 교육은 결코 권리도 될 수 없고 국가가 부과하는 의무도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노동이 하나의 권리이자 의무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노동 역시 시장이 아닌 공공의 영역에 존재하거나 최소한 공공의 영역에 의해 통제될 수 있어야만 한다. 즉 공공시민노동+‘α’의 위치에 노동시장이 자리매김 되도록 함으로써, 일정 연령 이상의 모든 이들에게 기본적으로 공공이 노동의 기회를 보장해야만 하는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공시민노동 ‘정책’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칙을 따른다. 첫째, 공공시민 노동을 통해 제공되는 급여는 전체 상용노동자 평균 임금의 50% 이상(2014년을 기준으로 하자면 최저 약 165만원)에서 정해진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터무니없이 낮은 민간영역의 최저임금을 견인하는 효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공공시민노동으로 인정되는 활동은 국가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흔히 ‘제3섹터’라고 불리는 광범위한 시민사회의 다양한 단위들과 공공시민노동을 하려고 하는 개인들 자신으로부터 신청을 받는다. 그리고 그러한 단위 및 개인이 신청한 활동이 공공시민노동에 합당한지는 기초지방자치단체 단위로 꾸려지는 ‘공공시민노동위원회’에서 심의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원회에는 여성·성소수자·장애인·노인·이주민·청소년 등의 소수자를 포함해서 지역사회를 대표할 수 있는 다양한 시민위원들이 2/3 이상 참여를 한다. 물론 이러한 위원회와는 별도로 ‘공공시민노동청’도 중앙과 지방에 필요한데, 공공시민노동청은 기본적인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것과 더불어, 보다 핵심적으로는 공공시민노동을 하기를 원하지만 스스로 적절한 활동을 찾거나 개발하지 못한 이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한편, 공공시민노동위원회에서 이루어지는 공공시민노동으로의 인정에 대한 심의 기준은 ‘해당 개인이 지닌 현재적 조건 및 능력’에 비추어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물질적·정신적·정서적 삶에 기여’를 하는가의 여부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기준을 적용할 경우 현재 매우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지니고 있거나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들의 생존 활동 자체를 노동으로 인정하게 된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노동이란 ‘해당 개인이 지닌 현재적 조건 및 능력’에 비추어 판단되며, 그/그녀의 생존(활동)은 그/그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구성원들에게 상당한 정신적·정서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도 학업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인정하여 일정 수준의 급여를 단계별로 지급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학생들의 학업은 이 사회가 유지·발전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상이 실현될 수 있다면,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출현과 더불어 노동을 할 수 없다고 치부됐던 중증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들도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성(또는 남성)의 가사 활동도 새롭게 그 가치를 공인받을 수 있으며, 현재 광범위한 사회문제가 되는 청년실업 문제도 실질적인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공공시민노동의 적용 집단이 점차 확대되고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노동에 대한 정의와 관념이 일정하게 재구성될 수 있다면, 그 토대 위에서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도 병행해 추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의 재구성을 통해 만인을 위한 노동사회가 구축될 때에만, 노동은 다른 사람을 밀어내야만 내가 앉을 수 있는 ‘의자놀이’가 아니라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자기 삶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기 위한 하나의 시민권으로서 자리매김 될 수 있을 것이다.


* 각주

1) 김성희 외, 『장애인 복지지표를 통해 살펴 본 OECD 국가의 장애인 정책 비교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1, 122쪽.

2) Michael Oliver, The Politics of Disablement, St. Martin’s Press: New York, 1990, pp. 32~34.

3) 김도현,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메이데이, 2007, 72쪽.

특집 3. ‘일하는 사람’이 빠진, ‘일하는 사람’을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 / 2018.03

‘일하는 사람’이 빠진, ‘일하는 사람’을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

권종호 선전위원


한국은 OECD 가입 이후 꾸준히 산재 사망률 1·2위를 차지해왔다. 2016년 한 해에도 1,776명이 산재로 사망하였고 그중 969명은 업무상 사고로 사망(전체 산재 사망자-업무상 질병 사망자)하였다.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일반 질병에 의한 사망으로 과소평가될 가능성을 고려해 업무상 사고사망으로만 한국의 노동안전보건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지금까지 발표된 자료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사고사망 만인율은 지속해서 감소하여 0.53까지 감소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969명의 목숨이 안타까운 사고로 사망한다는 점에서, 일본, 독일 등의 사고사망만인율은 0.19, 0.16에 불과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심지어 영국은 0.04에 달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산재 사망은 아직도 심각한 수준이다. 여기에 그동안 은폐되고 저평가되어 온 업무상 질병 사망까지 생각해 본다면 한국의 노동안전보건 상황은 처참한 지경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월9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하였다. 그동안 다른 노동 관련법보다 상대적으로 빈번하고, 꾸준히 부분 개정되었음에도 법 개정 요구가 끊이지 않았던 산업안전보건법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부개정이라는 강수를 둔 것이다. 1990년 이후 28년 만에 이루어지는 전부개정이라는 점이나 2022년까지 산업재해 사고사망자를 절반 수준으로 감축하기 위해 그간 발표한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 등의 내용을 모두 포함하려 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개정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¹⁾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모든 사람이 안전한 일터에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법의 보호 대상을 일하는 모든 사람으로 넓히고, 발주자ㆍ도급인 등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책임 주체를 확대하며, 법 위반에 대한 처벌 수준을 상향하고 제재수단을 다양화하여 법의 실효성을 제고하고자 함. 

아울러,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근로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긴급대피 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하고, 사업주가 작업을 중지하고 긴급대피한 근로자에게 불이익 처우를 한 경우에는 형사적 제재를 할 수 있도록 함. 한편, 생산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함에 따라 산업현장에서는 새로운 화학물질이 생산 공정에 경쟁적으로 도입되고 있으며, 특히, 유해하거나 위험한 물질의 경우에는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에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으므로 이를 국가가 관리하기 위하여 유해하거나 위험한 화학물질을 제조하거나 수입하는 자로 하여금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작성하여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하고, 영업 비밀을 이유로 화학물질의 구성성분 등 일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위해서는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함.

그 밖에 국민이 내용을 파악하기 쉽도록 법체계를 정비하고, 법 문장 중 어려운 용어를 쉬운 용어로 바꾸고, 길고 복잡한 문장을 간결하게 하는 등 국민이 법 문장을 이해하기 쉽게 하려는 것임. 

위와 같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의 ‘취지’는 그 자체로 환영할 만하다. 노동자와 노동 안전보건운동진영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요구가 일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정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취지를 실현하기에는 매우 역부족이다. 다음은 이번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에 대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입장²을 정리한 것이다.

첫째, 법의 보호 대상 확대가 매우 제한적이다. 개정법안 제77조(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산업재해 예방), 제78조(배달종사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제79조(가맹본부의 산업재해 예방 조치) 등은 변화되는 다양한 고용형태 속에서 노동자 보호의 확대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나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일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점, 플랫폼(platform) 노동자 중 유독 배달중개업의 이륜차 배달노동자만을 특정하여 보호 대상으로 한 점 등은 ‘법의 보호 대상을 일하는 모든 사람으로 확대’하겠다는 취지에 비춰볼 때 한참 부족하다. 개정법안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나름 혁신적인 개념을 도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에 대해 제대로 된 ‘정의’가 법안 어디에도 없고, 보호 대상의 확대나 사업주의 책임에서 효과적인 규정 또한 없다는 점은 법 개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둘째, 급박한 위험시 작업중지 강화 및 중대재해 발생 시 조치 강화가 미흡하다. 개정 이유에서‘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근로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긴급대피 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하고, 사업주가 작업을 중지하고 긴급대피한 근로자에게 불이익 처우를 한 경우에는 형사적 제재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 명시하였으나 개정법은 현행법을 분리하여 재배치하고, 대피 노동자 불이익 처우에 대한 벌칙을 추가하였을 뿐 내용적 진전이 없다. ‘급박한 위험’은 그 해석이 매우 협소하여 중대재해를 막을 수 없기에 최소한 ‘급박한 위험’과 더불어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안전과 보건조치가 미비할 경우’를 추가해야 할 것이고, ‘일하는 주체’로서 노동자의 중지(거부 및 대피권)를 명시적으로 부여해야 하며, 동시에 근로자대표, 산안위 위원 또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에게 작업중지를 할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또한, 작업 재개 시에도 해당 작업 노동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셋째,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의 도급 제한, 도급인의 산업재해 예방 책임확대/건설공사에 관한 특례 등을 통해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자 하였으나 여전히 부족한 지점이 많다. 개정법안에서 는 도금, 수은, 납 등 12개 물질에 한정하여 도급을 금지하고 있고, 도급금지 범위확대에 대한 논의나 절차 관련 조항이 전혀 없다. 원청이 적격수급업체를 선정하도록 하는 안도 적격기준의 세부 내용을 찾을 수 없고, 이를 위반할 시 처벌조항도 없다. 또한, 노동 현장의 다양한 기형적인 임대차 계약 형태에 대한 이해와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포괄적인 책임 부과 및 외주화 제한은 법안에 담기지 못했고 발주처의 책임 강화를 건설공사로 한정함에 따라, 하청의 산업재해가 다발하고 있는 대표적인 화학 산업단지, 제철소, 발전소 등에 대한 근본 대책도 빠졌다.

넷째, 물질안전보건자료와 관련하여 비공개 정보에 대한 사전 승인제도를 도입하고 비공개 승인의 유효기간(3년)을 정하는 한편, 대체정보 기재의무를 규정한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관련 심의(비공개 승인 여부와 대체정보의 적정성에 대한 심의)를 산재보상보험예방심의위원회에 맡기는 것이 적정한지 의문이며(개정안 제115조제6항), 심의의 기준과 절차에 대한 세부규정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심의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있어 노동계의 참여를 구체화하여야 한다. 아울러 심의를 위해 제출되어야 하는 자료와 그 자료의 보관, 공개에 관하여도 세부적인 규정이 필요하다. 정보 요구권자를 확대한 것은 바람직하나, 여전히 개별 근로자에게는 정보 요구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고, “근로자의 안전ㆍ보건을 유지하거나 직업성 질환 발생원인을 규명하기 위하여 근로자에게 중대한 건강장해가 발생하는 등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로 요건을 엄격하게 정하고 있으며 대상물질을 양도ㆍ제공하는 자 또는 이를 취급하는 사업주에게 해당 정보를 제공하게 되어있어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다섯째, 개정이 필요한 사항임에도 언급조차 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먼저,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필참 성원이며, 주로 노동자 조직 추천으로 선임되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임에도 불구하고, 작업 현장에서의 별다른 권한(예컨대 대체정보로 기재된 구성성분의 명칭 및 함유량 정보에 대한 자료 제공 요구권, 자료 열람권, 작업중지권 등)이 없다. 개정법안이 이에 대해 어떠한 고려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실망스럽고, 노동자의 참여와 권리 보장에 대한 정부의 기본 태도가 무엇인지 재차 확인하게 되는 지점이다.

또한, 건강은 신체와 정신의 조화라는 점, 노동현장에서 정신건강의 문제가 크게 대두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개정이 진정한 ‘전면 개정’이되기 위해 정신 건강에 대한 내용이 적극적으로 포함되었어야 한다. ‘업무수행이나 이와 관련한 인적·물적 환경에 따른 신체적 피로 및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장해’에 대한 예방의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과하여, 고객 응대뿐만 아니라, 일터 괴롭힘을 포함한 정신건강을 저해하는 노동환경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행법의 매우 모순된 규정에 의하여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심의 자체를 무시할 수 있는 법 불비 사항이 존재하고 있다. 의결된 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되나, 아예 명시된 심의안을 올리지 않으면, 사업주 임의대로 할 수 있다는 맹점이다. 전부개정안에서는 이점이 개선되어 사업주의 악의적인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심의절차 무시를 제어하여야 한다. 이상의 내용으로 볼 때 정부의 개정안은 방향에 있어 일부 타당하나, 그 내용은 부실하여 전부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강조한 생명존중, 노동존중 그리고 산업재해의 획기적 감소의 핵심 관건은 ‘일하는 사람’의 참여와 권리 보장이다. 

이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 다음의 내용을포함하여 구체화되어야 한다.

첫째, 보호 대상의 확대가 ‘일하는 사람’으로 전면화되어야 하고 이에 대한 보호 책임자도 사업을 통해 이득을 보는 자로 확대되어야 한다. 둘째, 보호 대상자는 보호의 대상임과 동시에 권리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작업중지의 주체, 정보청구와 수합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셋째, 신체 건강과 동시에 정신 건강이 보호 예방의 영역에 속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전면 개정'이라면 업무 성과를 만들기 위한 졸속인 짜깁기가 아니라 현재 법에 부족한 철학을 보충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녹여내는 것부터 시작해 그것이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틀을 짜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어야 할 것이다.


* 각주

1) 고용노동부공고제2018-66호,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 입법예고, 1. 개정이유

2)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 법률안에 대한 입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018.02. http://www.kilsh.or.kr/

특집 2. 작업중지권 개정안이 한계적인 이유 / 2018.03

작업중지권 개정안이 한계적인 이유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상황실


현대 위험사회와 산안법의 제도적 한계

지난 2월 9일 고용노동부가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개정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정부는 ‘제안 취지’에서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모든 사람이 안전한 일터에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산안법 전부 개정을 실시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는 기존의 산안법이 변화된 노동환경과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효과적인 예방을 달성하기에는 일부 개정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개정안의 취지는 그 자체로 매우 반가운 것이다. 1981년 제정되어 현재까지 수많은 개정을 거쳐 왔지만 여전히 산안법은 현대 사회의 위험을 관리, 통제하는 예방적 기능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엄청나게 위험성을 내포하게 된 현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과 물자, 자본과 정보의 이동,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위험이 대형화, 고도화, 집적화, 복합화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지적이고, 지엽적인 수준의 사고가 한국사회를 뒤흔들 정도로 폭발력이 향상됐고, 사고가 대형화되고, 국가적 재난이 되고 마는 현실에 놓이게 됐다. 언론을 통해 종종 마주치는 산업단지에서의 화학물질 누출 사고와 폭발, 건설현장에서의 크레인 붕괴 등 의 예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그동안의 성장 위주의 경제개발 정책은 이러한 위험을 관리, 통제하는 데 소홀했다. 그에 따른 결과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 1위’라는 오명으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경제성장 속도만큼 노동자는 더욱 취약한 노동환경에 내몰리고, 그 위험을 고스란히 일차적으로 노동자가, 그리고 그 결과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사회가 떠안아야 했다.

따라서 정부의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선언은, 선언 그 자체로 달성될 수 없고, ‘보호와 예방’을 강화하기 위한 관련 법 제도의 정비를 비롯하여 인력, 예산 등의 투입이 동반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더불어 재해 예방 활동에 가장 적극적인 주체로 노동자가 자신의 현장에서 대응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고용노동부의 산안법 전부 개정안 중 작업중지권에 대한 개정안은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이다.

정부의 작업중지 개정안의 한계

개정법안은 ‘근로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수 있음을 명확히 하고, 대피한 근로자에게 불이익 처우를 하는 경우에는 형사책임을 부담하도록 함’을 주요한 내용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개정법은 기존 제26조의 각 항을 각 조문으로 분리하여 재배치¹하고, 대피 노동자에 대한 불이익 처우에 대한 벌칙을 추가하였을 뿐 내용적 진전이 없다. 오히려 작업중지의 행사 주체를 명확히 분리함에 따라 마치 적극적 작업중지권은 사업주에게 있고, 노동자에게는 소극적인 대피 권한만이 부여될 뿐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신설된 조항 제53조와 제54조에 있어, 중대재해 발생 시사업주와 고용노동부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고용노동부의 작업중지 명령 근거, 요건, 절차를 구체화한 것은 진일보한 측면이라고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이조차도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7월3일, 제50회 '산업안전보건의 날'에 "사망사고 발생 사업장의 안전 확보는 현장 근로자의 의견을 듣고 확인하겠다"는 메시지를 발표한 이후 고용노동부가 '작업중지 해제를 판단할 경우 현장 노동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심의위원회에서 현장의 위험 개선 사항과 향후 작업 계획의 안전 여부를 검토해 결정토록 한다'고 운영기준을 제시한 것을 법 제도적으로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지침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했던 작업중지 해제 시 노동자의 의견 청취 등은 개정안에 반영하지 않았다. 따라서 작업중지 관련 개정안에서 여전히 노동자는 보호받는 객체일 뿐, 재해예방의 적극적 주체가 아니다.

일터에서 작업중지를 통한 예방 활동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현행법을 개정하여 노동자 대표, 산업안전보건위원, 명예산업안전감독관 등에게 작업중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개정안에는 그동안 지속해서 문제 제기 됐던 독소조항인 ‘급박한 위험’이 그대로 살아있다. 그 해석이 매우 협소하여실제 사고가 발생한 현장에서 작업중지를 한 노동자에게 회사가 ‘급박한 위험이었냐, 아니냐’를 두고 해고위협을 포함한 손배 청구 등 유무형적 압박을 가했던 점을 돌이켜본다면, ‘급박한 위험’이라는 독소조항을 제거하지 않는 한 작업중지나 대피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처분할 수 없고, 처벌을 하겠다고 명시한 것이 어떤 실제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각주
1) 
제51조(사업주의 작업중지), 제52조(노동자의 긴급대피), 제53조(고용노동부장관의 사용중지 명령 등), 제54조(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의 조치)

특집 1. 일하는 사람은 언제까지 보호의 대상일 뿐인가 / 2018.03

일하는 사람은 언제까지 보호의 대상일 뿐인가

-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에 대해서

재현 선전위원장


문재인 정부가 지난 1월 10일 신년사를 통해 앞으로 5년간 자살, 교통사고, 산업재해 분야에서 사망자 수를 대폭 줄이기 위한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에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프로젝트 목표로 2022년까지 2016년 대비 산업재해 사망자 수를 50%로 감축하겠다고 한다. 지난 1월 23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국민생명 3대 지키기 프로젝트’를 위한 산업재해 사망사고 감소대책을 의결하였다.

이어서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9일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 실현을 위한 방안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법률안’을 입법 예고하였다. 반쪽짜리 프로젝트가 아니려면 이번 프로젝트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대통령 당선 이후 안전 사회를 위해 한국 사회의 프레임을 바꾸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선 범정부 차원의 노력은 물론, 개별 자본을 강제해야 하는 등 험난한 과정을 앞두고 있다. 게다가 설령 정부와 자본이 나선다고 해도 현재 노동자의 권리와 권한을 보장하고 확대하는 방안이 언급조차 안 되고 있어 이 프로젝트가 ‘빛 좋은 개살구’가 되는 건 아닌지걱정이 앞선다.

안전보건에 있어서 노동자 참여 보장해야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 첫 번째 중점 추진과제로 ‘주체별 역할. 책임 명확화 및 실천’을 꼽았다. 가령 지금의 산재 사망을 줄이기 위해 우선 법 제도를 개정하여 발주자의 안전관리 의무를 규정하고, 원청의 안전관리 역할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로써 원청이 관리하는 모든 장소에서, 원청 회사는 하청노동자의 안전까지 관리하고 책임지도록 의무를 부여 하였다. 수은, 납, 카드뮴 제련 등 고유해 위험 작업 역시 도급 자체를 금지한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사업장에서 노사가 함께 위험요인을 평가하여 자체적으로 개선하도록 하는 ‘위험성평가’제도가 실효성 있게 이행되는지 점검하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결정은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하청 노동자의 산재 사망이 집중되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 진전하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그러나 ‘위험성평가’ 제도에 있어서 실제 현장에서 노사가 참여하고 실행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이 모색되어야 할 것 같다. 만일 이러한 고민 없이 위험성평가 제도 이행 여부를 점검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실제 원하는 효과와 뜻을 실현하는데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노동자의 참여로 현장 안전보건 관리 시스템 구축해야

두 번째 중점 추진과제로 정부가 현장 관리·감독 시스템을 체계화를 꼽았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도 노동자의 참여는 비어있다. 지금 현재 산업안전감독관 인력은 1명당 약 6,000개 사업장을 담당해야 하는 열악한 조건이다. 참고로 독일은 1명당 493개, 미국은 1059개, 일본은 2,120개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정부가 현장 안전보건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도록 하고 법 위반 사항은 적발하여 개선하는 안전보건시스템 구축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만일 산업안전감독관 인력을 일부 늘린다고 해도 현장에서 매일같이 고위험 작업을 하는 노동자가 현장을 스스로 진단하고 위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권한과 시간을 부여하는 것 만이 근본적으로 산재 사망을 예방하는 방안일 것이다. 이번 대책에서 노동자의 참여와 권한을 보장하는 방안으로 고민해봄 직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와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 등에 있어서도 전혀 언급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무척 아쉽다.

노동자에게 제대로 된 안전교육 참여부터 보장해야

세 번째 중점 추진과제로 안전인프라 확충과 안전중시 문화 확산을 꼽았다. 특히 안전 교육을체험과 현장 중심교육으로 재편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장에서 진행되는 안전 교육도 작업 전 10분 안전 교육이 생활화되도록 지도하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결정은 현장에서 실질적인 안전교육이 단 10분조차 안 되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전혀 안전 교육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라도 투자해서 위험 작업을 하는 작업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이렇다고 안전교육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작업 전 10분 안전 교육을 장려하는 결정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정부는 사업장 개별로 열악한 조건으로 인해 안전보건교육을 제대로 운영하기 어려운 조건인 것이 확인된다면 다른 방안을 모색했어야 한다. 가령 중소영세사업장과 같은 공장의 경우 같은 지역/업종/구역 등에서 공동으로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하도록 방안을 마련하면 된다. 만일 개별 사업주를 강제하기 어렵다면 공공기관부터 우선해서 모범적인 현장 안전교육 사례를 만들고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수 있다. 안전보건교육은 단지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것을 넘어 위험 상황에서 작업자가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기여할 수도 있다.

끝으로 

정부는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에서는 물론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에서까지 안전보건에 있어서 노동자의 권리와 권한을 부여하지않았다. 단지 일하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 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위치 지웠을 뿐이다. 이렇게 해서는 진정으로 바라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도 할 수 없다는 걸 정부가 깨우치길 바란다.

특집4. 2018년 노동안전보건 행정, 달라져야 한다 / 2018.02

2018년 노동안전보건 행정, 달라져야 한다

김재광 소장


새 정부 들어 국민안전과 노동현장의 안전에 대한 언급도 늘고, 이에 따른 일정한 변화가 일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문제 있는 관행과 적폐를 일소하였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기에는 미진한 법 제도가 온전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입법적, 행정적 노력 역시 큰 진전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새 정부 출범 1년이 채 되지 않은 지금 박하게 평가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른바 ‘개혁 드라이브’가 현실 가능한 시기를 고려한다면, 법 제도의 정비뿐 아니라 그간의 잘못된 관행을 개혁하는 것에 그리 연유만만할 시기 또한 아닐 것이다. 그간의 문제는 법제도 문제뿐 아니라 행정기관과 그 구성원의 태도도 분명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여당은 안전과 건강에 도움이 되는 법 개정의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하며, 설혹 법 개정이 여타의 사정으로 여의치 않다고 하더라도, 고용노동부와 산하 관련 기관 등은 행정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함으로써 노동재해와 현장 안전과 건강 변화의 여건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2018년에는 입으로만 하는 개혁이 아니라면, 적어도 다음의 행정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직업병 인정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

그간 재해를 당한 노동자에게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믿음직한 언덕이 아니라, 넘어야할 산으로 군림하였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직업병의 인정의 높은 문턱으로 인하여, 산업재보상보험이라는 공적 사회안전망이 있음에도, 직업병 요양신청을 애초에 포기하거나, 많은 수가 신청과 심사 과정에서 좌절하고 고통 받아 왔다.

근로복지공단은 설립의 취지가 민망하게도 매년 적지 않은 흑자를 자랑하고 있다. 삼성직업병과 관련된 판결은 그간 제도의 취지가 얼마나 훼손됐는지를 다음과 보여주고 있다.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함으로써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취지와 손해로 인한 특수한 위험을 적절하게 분산시켜 공적 부조를 도모하고자 하는 사회보험제도의 목적 및 사회 형평의 관념 등을 고려하여 그 인과관계의 유무를 규범적 관점에서 판단하여야 한다.” 즉 그동안 근로복지공단의 법 취지를 몰각하는 행태를 보여 왔음을 꾸짖고 있다.

직업병을 법원의 태도와 같이 넉넉히 인정하는 것은 법 개정과 관계 없이 실행될 수 있다. 최근 ‘뇌심혈관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의 변경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좋은 신호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긍정적 신호는 여러 직업병에 확대돼야 하며 설사 희귀한 질병이라 하더라도 “발병원인이나 발생기전이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아니한 질병이므로, 발병률이 높은 질병, 발병원인 및 발생기전에 대하여 의학적으로 연구가 다수이루어진 질병과 비교하여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증명의 정도가 완화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이 법원의 판결로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의 관점으로 확고부동하게 되어야 한다.

한편, 현장에서 가장 흔한 근골격계질환의 경우 직업성 질환이 아니라는 분명한 반증이 없는 한 모두 인정되어야 한다. 그간 이 질환에 대한 까다로운 인정 기준과 절차로 인해, 노동자들은 산재보험에 의한 요양을 못 하거나, 아니면 치료시기를 놓치고 이로 인해 오히려 장기간 요양에 이르게 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회적 비용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한, 이로 인해 유해요인인 작업장의 개선도 미진하여, 동일 작업, 동일질환 반복 다발이라는 악순환이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근골격계질환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을 명백한 반증이 없는 한 인정되는 방향으로 변경하고, 질 높은 요양관리에 집중해야 한다.


노동환경에 대한 정보는 공개되어야 한다

바로 얼마 전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 그리고 근로복지공단 모두를 부끄럽게 하는 판결이 있었다. 고용노동부가 기업의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것이다. 판결은 “해당 정보가 삼성전자의 경영·영업상 비밀이라고 보기 어렵고, 해당 정보가 공개될 경우 삼성전자의 정당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 이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공개하라”고 하였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어느 정부 기관보다도 노동자의 건강과 삶을 우선하여 보호하여야 할 고용노동부와 그 산하 기관은 그동안 초지일관 기업의 편에 서서 법적의무인 측정결과마저도 기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여, 노동자의 알 권리와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그로 인해 노동자의 고통의 시간을 연장하였던 것이 아닌가?

이것은 법이 개정되지 않아 발생한 불가피한 일이 아니다. 정부와 그 산하기관이 자신의 임무를 방기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훼손한 것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환경을 알고자 하는 것으로 방해하는 이러한 극악한 관행은 일소되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이 점에서 그 누구의, 그 무엇의 핑계도 될 수 없다. 각 사업장의 물질안전보건자료의 정보 이력이 공개되어야 한다. 각 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의 정보이력이 공개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나 산하 기관은 언제나 인력난을 호소한다. 이러한 주장은 분명 근거가 있다고 판단하고, 인력의 충원 역시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인력의 충원과 함께 현장의 안전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자를 만드는 것에 충실해야 한다. 바로 그러한 우군이 현장의 노동자이며, 노동조합이다.

사전적인 관리감독은 더욱더 조밀해져야 하며, 사후적인 개선 관리도 충실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인력을 충원한들 전체 사업장을 충실하게 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 때문에 현장의 노동자나 노동조합의 참여가 중요하다.

노동자의 ‘참여할 권리’ 자체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노동자의 배제는 실효적인 사업장 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할 수 없다는 것을 고용노동부가 인식해야 한다. 관리감독 등등을 강화하더라도 현장 노동자의 상시적 관찰과 감시 그리고 참여가 부족하면 그 목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

예컨대 작은 사업장이 밀집한 산업단지에서 지역명예안전감독관 활동을 독려하고 활성화해야 한다. 지역의 명예안전감독관의 질 향상뿐 아니라, 사업장 정보 파악과 출입 등에 대한 행정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한편, 지역 노동조합과 안전보건단체의 협력도 도모해야 한다. 이러한 협력 속에서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지역명예안전감독관이 선임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이 조직된 단위 사업장의 경우 관리감독에 있어 참관 내지 참가를 가능한 최대한 열어놓아야 한다. 관리감독 이후 개선조치에 대하여 사업주뿐 아니라, 노동조합 및 해당 작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교차확인을 해야 한다.

교차 점검에 의한 개선 효과 향상과 더불어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책임감을 참여를 통해 향상시킬 수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강조하는 위험성평가의 이념적 기초가 ‘작업자의 주체적 참여를 통한 개선’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노동자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법 개정이 지체되더라도 그동안의 행정기관의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면,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변화된 행정이 오히려 필요한 법 개정을 좀 더 쉽게 할 수는 여건을 조성할 수 있다. 적폐 청산의 출발은 그동안 고용노동부와 산하 기관이 자신의 반 노동자 행태를 반성하고 일소하는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특집 3. 뇌심 업무상 질병 고시 개정안에 대해 / 2018.02

뇌심 업무상 질병 고시 개정안에 대해

이진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부장


한국은 한해 약 310명의 노동자가 과로 때문에 산재로 사망한다. 이는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산재심사를 통해 승인된 노동자만을 말한다. 승인된 사례의 절반 정도가 사망하고, 승인율은 20% 내외인 것을 고려하면 매년 최소 3,000여 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의심되는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쓰러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하면서 과로하는 게 일상이고 죽도록 일하다 죽어 나가는 것이 너무 무덤덤하게 흐르는 사회. 하지만 과로사가 사회문제가 되는 국가는 많지 않다. 과로에 대한 산재보상은 일본, 대만, 한국 등 동아시아에 국한된 제도이다. ILO 국제협약이나 EU 국가들의 경우 대부분 장시간노동 자체를 규제하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EU의 경우 ‘7일 평균 노동 시간이 시간 외 근로를 포함해 48시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권고 하고 있고, 이에 따라 EU 국가들은 주 35~48시간을 기준 근로시간으로 정하고 있다. 그밖에 근로시간 평가 기간의 규정, 최소 휴식시간을 정하는 후방 규제, 근로시간 기록에 대한 규제, 대기시간에 대한 규정 등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2003년부터 1주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평균 근로시간 제한 없이 주 12시간의 연장 노동을 허용하고 있으며,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으로 68시간까지 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근로기준법 59조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에 의해 노사가 합의하면, 무제한 노동이 가능하다. 이 특례는 무려 43%의 종사자가 적용받는다. 작년 말 노동부는 ‘뇌심혈관질환 산재 인정기준’ 고시를 개정했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되고 있고, 만성 과로의 업무상 질병 여부를 판단할때 과로기준시간에 노동자의 업무강도나 업무부담 가중요인을 반영하는 내용이 골자다.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업무 관련성이 증가하고, 업무 관련성이 강한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신설됐다. 

가중요인은 ①근무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②교대제 업무 ③휴일이 부족한 업무 ④유해한 작업환경 (한랭, 온도변화, 소음)에 노출되는 업무 ⑤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⑥시차가 큰 출장이 잦은 업무 ⑦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 등이다. 단기간 육체적·정신적 과로를 유발한 업무 변화를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동종의 근로자라도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에서 ‘해당 노동자가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변경하는 등 진일보한 지점이 있다.

한계도 많다. 현행 1주 평균 60시간을 넘겨야만성 과로로 판단하는 기준은 그대로 남겼다. 원칙적으로 52시간 이상 일할 수 없는 것이 현재의 근로시간에 대한 규정이다. 200여 년 전 영국의 산업 혁명기에나 적용할 만한 규정이 개정안에 남아있는 것이다. 공무원들에게 적용되는 <공무상 재해 인정기준>에서 뇌심질환의 인정 기준은 주당 52.5시간이다. 공무상 재해 보다 낮은 수준의 뇌심질환 인정기준은 출퇴근재해도입처럼 또다시 평등권 침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주당 52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시간에 대해 뇌심혈관계 질환 인정기준으로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야간근무(22:00~06:00) 업무시간 산정에 있어 주간근무의 30%를 가산하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했으나, 현장마다 야간노동 스케줄이 다른 것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엄격하다. 또한, 감시 단속 업무 및 이와 유사한 업무의 야간근로 가산 적용 제외 또한 문제다. 마지막으로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불규칙한 업무, 상시 지속적인 장시간 업무, 고온업무 등이 빠졌다. 한계지점이 있지만, 개정된 내용을 산재심의 과정에서 제대로 적용하는 것은 중요하다. 근로복지공단 차원에서 질병판정위원들의 보수교육 및 판정 시 개정사항 안내 과정을 민주노총 추천 질병판정위원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개최할계획이다. ‘뇌심혈관질환 산재 인정기준’ 고시 개정내용을 알리고 개선방안에 대한 토론도 진행할 것이다. 또한, 가맹산하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변화된 산재제도 관련한 교육에서 개정안을 다뤄 산재신청과 조사 및 대응 방안을 구체적으로 알릴 것이다. 과로사에 대한 산재 인정 폭이 일부 확대된다고 해서 과로사가 저절로 줄진 않을 것이다. 과로사를 멈추기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과로에 의한 사망이 잦은 사업장은 중대 재해사업장의 근로감독에 따라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보상만이 아니라, 과로사 예방을 위해 노동부의 행정해석 변경, 59조 특례 폐기를 포함한 근로기준법 개선도 필요하다.

특집2. 출퇴근 재해 산재인정이 넘어야 할 것들 / 2018.02

출퇴근 재해 산재인정이 넘어야 할 것들

홍이 회원


2018년 1월 1일 이전까지는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통근버스)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 아래서 출퇴근하다가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업무상 재해를 했었다. 그 결과 출, 퇴근 버스를 제공하지 않는 중소기업, 새벽에 출근하는 청소 노동자, 건설 노동자,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사업장으로 출근하는 산림감시원 등 취약 계층 노동자들은 산재를 인정받지 못해왔다. 이러한 차별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며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위헌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 위헌결정 이후 국회는 사업주의 지배관리 상황과 관계없이 통상적인 출퇴근 재해도 산재로 법안을 2017년 9월 28일 통과시켰다. 올해 1월 1일부터 적용되는 이 법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대중교통, 도보, 자가용 등 교통수단에 관계없이 출퇴근 시 재해가 발생하면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한편, 우리는 이제 시작이지만 독일, 프랑스, 일본 등 국제노동기구(ILO) 회원국 중 60% 이상이 이미 출퇴근 재해를 산재로 인정하고 있었다. 국내의 경우도 공무원, 교사, 군인은 이미 인정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너무 늦은감이 있다. 현재 출퇴근재해(자동자, 대중교통, 도보 등)사고는 9만 4,000여 건으로 확인된다. 이전과 달리 앞으로는 많은 노동자들이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출퇴근 재해를 입는 많은 노동자가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 노동자 등 취약 노동자이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생계 위협에 직면하는 위기로부터 사회적으로 보호할 수 있게된다.

이번 결정이 무척이나 반갑지만 고민되는 점도 있다. 출퇴근 재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사업장 밖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 통상적인 경로상의 출퇴근인지 여부, 사적 행위인지 아닌지 여부, 제3자의 가해 행위에 의한 사고인지 여부 등 조사가 필요하다. 즉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발생한 사고인지 확인하는 것보다 더 많은 조사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은 출퇴근재해 관련한 인력을 약 590명 증원한 것에 그쳤다. 또한, 법안 통과가 지연되면서 신규인력에대한 교육과 새로운 제도 도입에 따른 하위 법령 및 업무 프로세스 구축, 전산프로그램 개발 등이 졸속으로 이루어졌다.

산재보험은 사회보장제도로 무과실 책임주의를 기본원리로 하고 있다. 그런데 중소기업 사업주는 출퇴근 재해를 인정하면서 퀵 서비스 노동자와 같이 출퇴근 경로와 방법이 일정하지 않은 직종 중 본인의 주거지에 차고지를 두고 출발부터 업무를 시작하는 경우는 적용을 제외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이들이 출퇴근 과정에서 사고가 잦고, 산재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인데 배제 당한 것이다. 이전 출퇴근 재해 적용 기준이 차별적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었는데도 또다시 사회적으로 약자인 퀵 서비스 노동자를 배제하는 것은 납득 할 수 없는 결정이다. 출퇴근 재해 9만 4,000여건 중 7만 건이 교통사고인데, 교통사고의 경우 요양 기간이 길지 않고 상대방과 위로금으로 합의하고 종결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산재처리 하는 것이 가능할지, 재해를 입은 노동자가 사업주 눈치를 보지 않고 산재신청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는지도 고민이 앞선다.

절차가 복잡한 것도 문제다. 현재는 만일 자동차 보험으로 사고를 처리할 경우 신고만 하면 보험회사에서 각종 서류 및 처리를 다 해주는데, 산재보험승인을 받기 위해선 재해 노동자가 산재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출퇴근 경로에 대해 조사, 부정 수급 등의 사유는 없는지 공단의 조사 등 여러 번거로움이 따른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으로 신속한 산재처리가 가능할지도 의문이 든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출퇴근 재해를 산재로 인정하는 것은 그 긍정성과는 별개로 여전히 준비가 부족한 상황이다. 앞으로 이 제도가 사회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제도가 개선되어야한다.

첫째, 영세사업장이나 5인 이하 또는 10인 이하 사업장의 산재보험요율을 일괄 요율로 적용해야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영세사업장 사업주는 산재보험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노동자에게 압박을 가하거나 산재를 은폐할 수 있다. 산재보험요율 제도를 보완하여 노동자 다수의 산재신청이 영세사업주에게 부담으로 전가되지 않고 사업주도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고 산재신청을 독려하는 현장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신속한 산재처리를 위해 신청서 제출 및 증빙자료, 처리 절차, 조사 방법 등을 단순화하여 산재 노동자의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앞서 지적했듯 산재보험은 모든 일하는 노동자에게 평등하게 당연히 적용되어야 한다. 그것이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으로써 반드시 우선해야 할 역할이다.

특집1. 최저임금 따라 나의 삶의 질도 오르려면? / 2018.02

최저임금 따라 나의 삶의 질도 오르려면?


유선경 민주노총 인천본부 상담실장


최저임금 7,530원이 결정되고 난 뒤 작년 10월부터 상담소에는 최저임금을 계산하는 방법이나 최저임금 적용시기와 같은 소소한 질문부터 최저임금 인상을 회피하려는 회사의 꼼수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묻는 말까지 다양한 상담이 들어오고 있다. 야간까지 연장했었는데 새해가 되자 갑자기 5시간으로 근무시간을 단축하자고 한다며 "나가라는 말이지 이게 뭐냐"고 항변하는 식당 서빙 노동자, 울며겨자 먹기로 휴게시간을 늘리고 있는 경비노동자와 택시노동자, 회사는 상여금을 기본급화하겠다고 하는데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노동자가 없다며 답답해하는 노동자,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정리해고를 해야겠다는 회사의 말에 속수무책인 어느 공단 노동자, 지금까지 공휴일은 모두 쉬고 있었는데, 이제 모두 연차로 대체한다는데 어떻게 하냐는 노동자까지 최저임금인상 이후 각 사업장에는 다양한 형태의 꼼수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 와중에 회사의 편에 서서 상여금을 기본급화하거나 상여금 지급방식을 변경하는 데 앞장서서 동의해주는 노동조합이 있는가 하면, 근무시간과 다를 바없는 대기시간을 휴게시간으로 바꿔치기하는 단체협약에 서명하는 노동조합도 있다. 어느 날은 왜 민노총이 노동시간 단축에 앞장서느냐고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찾아와서 항의하는 노동자가 있는가 하면 어느 날은 장시간 노동에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민주노총이 노동자에게 진정성 있는 운동을 하고 있냐고 항의하는 전화가 걸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사업장을 민주적인 곳으로 바꿔보겠다, 이제 이렇게 마음대로 근무조건을 정하는 관행을 바꾸고 우리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보겠다며 노동조합을 준비하는 노동자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 이후 사용자들이 내놓는 꼼수와 노동자를 둘러싸고 있는 노동환경을 생각하면, 최저임금을 단지 얼마를 더 올리고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어떤 수당을 넣고 뺄 것인가의 문제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당 단가를 올리는 운동, 즉 최저임금을 올리는 운동과 함께 첫째, 어떻게 하면 노동자의 쉴 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둘째,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노동조건을 정하는 비민주적인 현장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셋째, 사회보장시스템을 어떻게 확충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답도 만들어가야 한다.

현재의 법제도 하에서는 노동자의 쉴 권리는 너무나 쉽게 사용자에 의해 포기된다. 사용자는 연차수당을 임금 속에 포함해 휴가를 매수하거나 연차대체합의를 통해 노동자의 시기 지정권을 박탈하고 있다. 노동자 또한 낮은 임금을 보충할 생각으로 휴가를 쓰기보다 수당으로 받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쉴 권리는 너무나 쉽게 포기하고 있다. 임금을 낮추기 위해 터무니없이 긴 휴게시간도 문제다. 장시간의 휴게시간은 노동자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다. 사업장에서 휴게시간이란 아무리 휴게공간이 있고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있다 해도 물리적인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휴게시간이라는 명분으로 노동자의 시간은 손쉽게 사용자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통상임금이슈든, 최저임금이슈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용자는 쉽게 취업규칙을 변경하고 있다. 불이익변경 시에는 노동자 과반의 집단적 동의가 있어야하지만, 대부분 노동자가 회사에 밉보일까 봐 혹은 회사가 어렵다고 하니 동의서에 서명을 해버리고 만다. 용기로 노동조합을 만드는 노동자도 있지만, 상담하러 온 노동자 중 대부분이 체념해버리거나 막을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버린다. 노동조건을 정하는 건 회사이고 회사에는 막강한 인사권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풍토가 있다.

임금의 단가만을 무한정 올릴 수는 없거니와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높은 임금을 받아야만 삶이 제대로 설수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약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다름없다. 삶 대부분 시간을 돈을 벌고 일을 하는 데 써버리기보다 적정한 수입에 여유롭고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사회보장시스템이 함께 개선돼 나가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을 둘러싼 여러 목소리는, 통상임금 논쟁에서부터, 조금은 미완의 모습을 갖췄던 주 40시간제 도입에서부터 시작되었던 노동자의 갈망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주 40시간제가 도입되고 사라졌던 월차휴가, 대신에 며칠 더 늘려줬던 연차휴가는 연차대체 서면합의 속에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휴일이라곤 주휴일과 노동절 밖에 없다는 법 논리는 야박하기 그지없다. 높은 의료비와 교육비, 차갑기 그지없는 사회보장시스템 속에서 까딱 잘못 했다가는 금방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삶을 조금이라도 보전하기 위해 장시간 노동이라도 불사했던 노동자들이 이제껏 현장을 버텨왔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현장을 버텨낼 수 없다는 목소리가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논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따라서 최저임금 운동이 최저임금을 얼마 더 올리고, 산입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노동환경 전체를 바꾸는 운동의 출발점에 있게 했으면한다.

특집5. 그냥 내 나라예요, 거기도! - 귀국 이주노동자 날라끄 이야기 / 2018.01

그냥 내 나라예요, 거기도!

- 귀국 이주노동자 날라끄 이야기

최수정 <담> 프로젝트, 수원이주민센터


“회사에 도착해서 보니까 엄청 시골 같았어요. 겨울이라 나뭇가지만 남아서 삭막했어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밖에 이렇게 보고 ‘진짜 나 어디에 온 거야?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생각했어요. 먼저 사장님하고 사모님이 있는 사무실에 들렀어요. 제가 사모님한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는데 그분은 나한테 인사 안 했어요. 인사하라고 해서 인사했는데…. 그리고 사무실에서 나와 공장에 갔는데 건물이 아니라 비닐하우스였어요. 화장실은 공장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화장실을 쓰고 물은 공장에 와서 다시 가지고 가야했어요. 그리고 집은 컨테이너였어요.”

처음 밟은 한국 땅, 처음 만난 한국 사람, 모든 것이 낯설고 불편하기만 했다. 그래도 돈만 많이 벌수 있다면 참을 수 있었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어릴 때부터 간직해온 군인의 꿈도 포기하고 찾아온 한국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일해도 한 달에 80~90만 원밖에 벌지 못하고 그 돈으로 하루 3번의 식사도 모두 해결해야 하는 그 회사에서 날라끄는 한 해를 채 넘기지 못하고 다른 회사로 옮겼다. 물론 돈도 많이 벌고 일도 힘들지 않은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건 날라끄가 선택할 수있는 게 아니었다. 노동자의 직장이동 자유와 직장선택의 폭을 제한하고 있는 고용허가제하에서 그건 그저 운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3번밖에 회사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거기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갔는데 엄청 힘든 일이었어요. 철판 같은 거, 건물 지을 때 필요한 철근 만들었어요. 다행히 그 회사 사장님은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일은 힘들었지만 2년 반 동안 진짜 열심히 일했어요. 다른 회사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한국 사람이 외국 사람한테 일 시킬 때 말하는 거나 큰소리치는 거 보면 자기가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어떤 회사에서는 다 욕부터 시작했어요. 아침에 올 때마다 욕하면서 ‘야, **! 이리 와’ 이렇게해요. 좋은 말 한 번도 안 해요.”

힘들고 고된 노동, 불편한 주거 환경, 외국인이라고 욕부터 시작하는 사람들.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왔다지만, 하루하루 포기하지 말자는 다짐 없이는 견디기 힘든 나날이 많았다. 게다가 언제 어떻게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작업 환경의 위험 역시 감수해야 했다.

“기계에서 제품이 두 개씩 나오면 문을 열고 그 제품을 빼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기계에 내 장갑이 끼어서 들어갔어요. 피가 엄청났어요. 병원에 가려고 밖으로 나와서, 같이 일하던 스리랑카 친구한테 기계에 있는 내 잘린 손가락 가져오라고 해서 가져갔어요. 그때 병원에서 회사 사람들이 거짓말했어요. 제가 불량을 자르는 분쇄기에서 다친 거라고, 제품 기계로 다친 거 아니라고 거짓말했어요. 분쇄기는 우리가 실수하면 다칠 수 있어요. 그런데 제품 기계에서 다쳤다고 하면 센서를 새로 고쳐야 하고, 보험 문제가 생기고 그래요. 그때는 제가 회사 사람들한테 거짓말해도 괜찮으니까 내 손가락만 제대로 치료해주라고 했어요. 병원비 750만 원 정도를 회사에서 냈어요. 전에도 다른 사람이 이렇게 다친 적 있었는데 그때도 회사에서 병원비를 해 줬어요. 산재처리 해도 아마 100~200만 원 밖에 못 받을 거라고 들어서 안 했어요.”

갑작스럽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사고 앞에서 날라끄는 다른 건 상관없이 손가락이 다시 제대로 붙어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당장 내 손가락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회사의 거짓말이나 산재처리 여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회사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았을 것이다. 말 그대로 ‘적법하게,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넘어갈 방법을. 회사가 왜 다른 기계에서 다쳤다고 거짓말을 하는지, 왜 산재처리를 하지 않고 회사, 돈으로 치료비를 내려고 하는지 날라끄는 모르지 않았다.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 회사가 알아서 잘 치료해줄 테니 문제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고 했을 때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여러 번의 수술과 오랜 치료 끝에 날라끄의 손가락은 정상으로 돌아갔다.

날라끄가 한국에 오게 된 이유도 그리고 한국에서 얻은 것도 첫 번째는 돈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어려움과 억울함을 참았다. 이제 스리랑카로 돌아가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된 날라끄. 힘들었던 나라 한국은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그는 “다시 돈 벌러 가고 싶은 건 아니에요. 진짜 한국에 잘해주고 싶은 마음 있어요. 나한테는 고마운 나라니까. 한국에 다시 갈 기회가 생기면 가보고 싶어요, 당연히. 그냥 내 나라예요, 거기도.”라고 말한다.

얼마 전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5년 이상의 체류를 허가하지 않겠다는 시행령 개정안을 내놓았다. 또한, 숙식비를 월급에서 원천징수할 수 있게 한다고도 한다.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어도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환경은 나빠지기만 한다. 젊은 날, 그 빛나는 청춘을 한국에서 온전히 보낸 날라끄, 그리고 지금도 청춘을 바쳐 일하고 있는 수많은 날라끄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응답할 수밖에 없는 걸까?

특집4. 지금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아요 - 이주노동자 영상활동가 아웅틴툰 이야기 / 2018.01

지금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아요

- 이주노동자 영상활동가 아웅틴툰 이야기

박유호 <담> 프로젝트, 노동당


아웅틴툰씨는 미얀마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94년 18세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때였습니다. 당시 미얀마의 정치상황이 좋지 않아 대학에 진학 할 수 없는 그는 외국으로 견문도 쌓고 공부도 하고 싶어 ‘산업연수생’제도를 신청하여 한국에 들어왔다고 합니다.그는 한국에 들어오기 전 견문도 넓히고 배울 기회가 많아지겠다며 기대를 했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열악한 노동환경이었습니다.

“‘산업연수생’ 이름만 듣곤 막 이것저것 대접 받으며 공부하며 일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기대는 금방 깨졌어요. 이렇다 할 한국어 교육도 없이 3일 정도 딱 교육하고 나서, 바로 공장에 들어가서 일하게 되었어요.”

그는 한국에 들어오자 마자 인천 제물포 인근의 한 선박엔진 주물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막상 한국에 들어와서는 배우는 시간이 있기는 커녕 쉬는 시간조차 여유롭지 않았습니다. 노동시간은 하루 12시간을 넘는게 당연했고, 주말도 없었습니다. 잠자리 또한 비가새고 좁아서 휴식을 취하기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기대’는 이내 ‘실망’이 되었습니다. 그를 괴롭히는 것은 장시간 노동시간과 열악한 노동환경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직장에서의 차별 또한 무시 못했습니다.

“한국말이 서투니 한국인 직원들이 기분 나쁜 장난을 많이 쳤어요. 회사에서 일을 하다보면 한국인 직원들이 한국어를 가르쳐준다고 하면서 나쁜말(상대방을 비하하는 말이나, 욕설 등)을 해보라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한국어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아니니까, 이게 해야 할 말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웠어요. 그 말을 하는 사람의 표정이나 어투를 보며 분간을 해야 하니까 이래저래 눈치보는 법부터 배우게 되었어요.”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한국어’에 서툴다는 이유로 무시받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는 1년정도 일을 하다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노동을 하다가 입은 부상인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산재신청을 거부 당했습니다. 산재신청을 알아보면서 이주노동운동을 하는 동료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노동법을 배우고 동료들의 노동상담을 해주면서 그는 지금까지 이주민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기간 중에서 그는 ‘2003년’ 이주노동자들의 집단 농성과 투쟁의 경험들을 자랑스레 이야기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그는 지금 한국땅에서 이주민 영화제를 몇 년째 진행하고 있고이주민방송에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주민 방송 3년, 다른 데에서도 방송 일을 3년정도 했던 경험을 살려서, 미얀마에서 한국의 EBS같은 교육방송사를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해요. 성인 청소년아이들 모두를 위한 교육방송을 만들고 싶어요.”

그는 인터뷰 내내 한국인들이 쉼 없이 살아가는 이유를 궁금해했습니다. 무엇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가 하고 말입니다. 자기가 일하면서 보았던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찾기보다는 무엇에쫓겨 사는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너무 여유롭지 못하게 사는 것 같아요. 너무 잘사는 미국이나 유럽만 쳐다보고 사는데 부족하지만 여유롭게 살아가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삶도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그가 살았던 미얀마에서는 사람들이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이야기합니다. 한국사람들에게 보고 배울게 많지만 여유롭게 사는 법은 미얀마사람들에게 좀 배워야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장시간 노동을 없애려는 고민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긴 노동시간과 열악한 환경은 계속되고있습니다. 우리에겐 여유로운 삶이란 굉장히 멀어져 보입니다. 하지만 아웅틴툰씨는 간단합니다. 좀 더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길은 그리 복잡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운 시간을 겪어오면서도 활기차고 여유롭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제게도 새로이 힘이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집3.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오쟈 씨 이야기 / 2018.01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오쟈 씨 이야기

푸우씨 <담> 프로젝트, 상임활동가


“고향 친구들 모두 한국에 왔어요. 다 여기 있어요, 한국에. 네팔에서 가족 중 한 명이 E-9 비자로 한국에 와서 돈을 벌면, 그 돈으로 다른 가족 모두가 살수 있거든요.”

태어나 자란 네팔을 떠나는 것,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다른 나라에 가서 일하는 것은 오쟈 씨와 또래의 네팔 청년들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오쟈 씨는 한국에 오기 전 ‘필더보이’로 인도에서 일 했다. 회사의 지시에 따라 사무실로 서류나 돈, 책을 준비해 오토바이로 전달하는 일을 했다. 열심히 일했지만, 한 달 꼬박 일하고 받는 월급은 한국 돈으로 20만 원, 많을 때는 25만 원 남짓한 수준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인도에 갔지만, 네팔과 별반 상황이 다르지 않은 것을 알게 된 그는 고향에 돌아와 친구들처럼 한국행을 택했다.

“5명이 한방에 자야 했어요. 기숙사 비용도 내야 했고요. 월급에서 10만 원씩 잘라갔어요. 하숙비, 전기비, 인터넷비. 이렇게 해서 1인당 10만 원씩 기숙사비용으로 잘랐어요.”

인도에서 네팔로 돌아와 카트만두에서 6개월가량 한국어 공부를 하고, 시험에 합격해 운 좋게 한국에 오게 된 오쟈 씨. 그는 인천 서구의 와이어 커팅 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그러나 그가 꿈꾸던 한국생활과 달리 현실은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눕기에도 빠듯하고, 화장실도 없는 컨테이너에서의 생활이었다.

“회사에 가서 부장님한테,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하니까 ‘안녕하세요 하지마. 안녕하십니까! 이렇게해’ 라고 하더라고요.”

그는 한국에서 첫 출근길에 곤욕을 치렀다. 출근하며 인사를 건넨 오쟈 씨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잘라먹은 한국인 부장은, 출근할 때고개를 숙이고 다니라고, 눈을 깔고 다니라고 말했다. 심지어 사장과 부인은 오쟈 씨의 인사도 받지 않았다.

“네팔에서 오자마자 한 달 동안 매일 같이 욕먹고, 맞고 그랬어요. ‘시발’, ‘이 새끼야’ 이런 욕을 했어요.”

업무지시를 하는 부장은 매일 같이 욕을 했고, 때로는 폭행도 가했다. 일도 많이 힘들었다. 그가 맡은 업무는 운반이었다. 60~70kg가량의 와이어 뭉치를 혼자서 들어 날랐다. 고된 업무로 1년 정도 지나자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허리가 아팠다.

“병원에 갔더니, 무거운 물건을 운반해서 그런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회사에 가서 얘기했죠. 몸이 아프다고요. 회사를 옮겨 달라고요. 그러자 회사에 선 ‘일해! 일 안 할 거면 네팔 가!’라고 했어요.”

그때부터 오쟈 씨는 넉 달 가까이 악몽 같은 일상을 보냈다. 출근한 그에게 부장은 아프냐고 묻곤, 아프다고 답하면, ‘일 없어! 가서 쉬어!’라고 하며 그를 기숙사로 돌려보냈다. 때론 아무 의미 없이 무거운 재료를 이곳저곳으로 들어 나르도록 시켰고, 어떤 때는 2시간만 일을 시키고는 일이 없다며 돌려보냈다. 그가 아프다고 하니 회사에선 컨테이너가 아닌 다른 기숙사(아파트)로 그를 보냈다. 그리고는 월급에서 20만 원을 기숙사비로 잘라갔다. 결국,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쟈씨는 스스로 노동부를 찾았지만, 노동부 직원은 모르겠다며, 사장에게 말해서 사업장을 변경하라고 했다. 도움은 커녕,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노동부 직원에게 배신감을 느꼈던 그에게 도움을 준 것은 이주노조였다. 우연히 친구에게 건네받은 전화로 이주노조 위원장(네팔에서 온 우다야 라이)에게 사정을 말한 그는, 14개월 만에 사업장을 변경했다.

“평택에서 일하던 회사, 사장님도, 부장님도 안 좋은 사람이었어요. 회사에선 ‘네팔로 돌아가고 싶냐, 말 안 들으면 비자 연장 안 해줘!’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오쟈 씨는 우여곡절 끝에 안성·평택에 있는 플라스틱 사출 공장으로 직장을 옮겼다. 농촌에 있는 공장에서 오쟈 씨와 동료들은 일이 없을 때는, 회사 밖의 농장에 불려가 풀을 베야 했다. 정해진 업무가 아닌 다른 일을 시키는 것에 대해 묻자, 회사에선 ‘시키는 대로 해!’라고 답했다. 3년 시효의 비자가 만료되면, 1년 10개월을 연장해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고용허가제’의 비자 연장을 미끼로 회사에서는 부당한 일을 강요했다. 12개월이 넘게 일하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11개월짜리 계약서를 쓰도록 강요하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공장의 다른 부서로 재계약을 맺게 하는 꼼수를 쓰는 회사였다. 오쟈 씨는 또 한 번 이주노조의 도움을 받아 사업장을 변경했다. 그렇게 지금 일하는 천안의 볼트·너트 제조회사에 터를 잡았다.

‘사장님’의 허락 없이는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고,‘사장님’이 3년을 근무한 이후 비자 연장을 해주지 않으면 더 일하고 싶어도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재의 고용허가제의 부당함을 몸소 느낀 오쟈 씨는 이주노조의 활동과 고용허가제 폐지를 촉구하는 행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고용허가제를 해결하지 않고 선 그에게 기대고 있는 가족들의 삶도 보장이 되지않기 때문에, 오쟈 씨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이주노조의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오쟈 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한국경제의 필요에 부응한 많은 이주노동자에게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이대로면 충분한가. 정말 그런가. 계속 질문하고 답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