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세월호를 인권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
정리 선전위원회
최민 사회자, 선전위원장 세월호 참사 그리고 그 이후 1년 넘게 벌어진 일들이 끔찍했지만 그걸 '인권' 침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런데 416 인권선언운동에서는 이 과정이 '인간의 존엄이 훼손' 된 경험이라고 선언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만들자는 선포를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궁금하다.
처음엔 먼 이야기, 인권 선언
정경희 회원, 두 아이의 엄마, 물리치료사 세월호를 ‘계기로’ 인권 선언을 만들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인권이라는 것은 삶 전반의 문제이지 않나. 그런 점에서 모든 문제를 세월호랑 연결해서 담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권이라는 말이 너무 멀고 포괄적이지 않나? 안전할 권리, 스스로를 혹은 우리 아이들을 보호할 권리에 대해서 선언한다면 적절하고 구체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영우 회원, 내과의사 더 나아가 논점을 흐릴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남아 있는 것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당장 배가 침몰한 정황에 대한 진상조차 밝혀져 있지 않았는데, ‘인권 선언’ 을 한다는 게 혹시 문제의 본질을 덮어버릴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들었다.
안규백 회원, 한국지엠조합원 공감된다. ‘인권’ 이라고 하면 너무 넓고,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우리는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 이러니 좌담회를 준비하면서 ‘현장에서 인권 얘기를 어떻게 하지? 어디까지를 인권문제라고 해야 하지?’ 하는 고민이 많이 들었다.
사실 1주기 이후에는 ‘그런다고 애들이 살아 돌아 오냐’ 는 얘기까지 하는 조합원도 봤다. 이런 상황이 우리의 인권이나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바닥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옛날에는 사람이 다치면 안타까워하는 게 인지상정이었는데, 요즘에는 동료가 다쳐도 그래서 어쩔 건데? 하는 정서가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세월호를 계기로 한 인권선언이라니. 현장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비관적인 생각도 들었다.
손진우 한노보연 집행위원장, 416 인권선언 추진단 지금 말씀하신 안전, 진실 규명, 피해자에 대한 연대와 공감이 권리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인권 선언을 제안한 배경이라고 본다. 지난 1주기 때를 생각해보면, 애도할 권리, ‘추모할 권리’ 마저 존중받지 못 하지 않았나. 영우 동지가 말한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제대로 지라는 요구는 매도당하지 않았나. 유가족들이 우리가 인간이 맞나 하는 순간들이 있지 않았나. 그런 권리 짓밟힘의 현장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런 것들이 우리 권리라는 것, 요구하고 싸우지 않으면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는 감각이 생겼던 것 같다. 이걸 우리 권리라고 소리 내어 말하고, 주장하고,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존엄성이 짓밟혔던 순간들
최민 ‘인권선언’ 이라는 제목이 다가가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손진우 동지 말대로 참사 이후 지난 1년 동안 권리들이 짓밟히는 장면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끔찍한 장면들 중에서, 세월호가 자신에게 가장 다가온 지점을 생각해보면, 거기서 세월호가 어떻게 왜 인권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지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는 ‘진상규명’ 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구호일 뿐 아니라, 피해자들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권리라는 것을 세월호에서 배웠다. 그리고 진실을 숨기는 것이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짓밟는 장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안규백 세월호 참사 당시에, 국회의원 자식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안산 단원고가 아니라 서울 강남 고등학교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얘기를 많이 하지 않았나. 생명은 누구나 소중하고, 인간은 평등하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다름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노동자 한 명 죽음이 어떻게 같나?’ 이런 얘기를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권리가 있다고 말은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그 축소판이 세월호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우리는 이런 토론이 어색하고 어려워도, 이런 문제의식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확산돼서 우리 딸이 어른이 됐을 때는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정훈 수유너머 N, 416 인권선언 추진단 세월호 문제를 보는 시각은 다양할 것이다. 누군가는 ‘내 아이가 거기 있었다면’ 이라는 생각에 몸서리치며 안전에 주목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정부의 부재나 계급 문제가 세월호를 바라보는 관점일 것이다. 인권도 이런 관점 중 하나다. 세월호가 인권 문제라고 선언할 때, 인권이라는 틀로만 세월호를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인권’ 이라는 관점으로 세월호 참사과 그 이후 시간을 다시 짚어보니, 새롭게 보여주는 게 무엇인가 성찰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한편으로는 ‘왜 인권이냐’ 하는 반응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앞서 다들 말씀하신 것처럼 인권이라는 단어는 참 늦게 다가오는 말이다. 왜 그럴까? 인권이라는 말은 마치 ‘거짓말을 하지 맙시다.’ 라는 말과 비슷한 느낌이다. 본질을 짚어 내거나, 권력관계를 드러내는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 단어의 위험성을 희석화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인권’ 과 연결이 잘 되지 않는 세월호 참사을 인권과 연결시켜보는 과정이, 인권이라는 말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해본다
최민 세월호 참사를 ‘인권 문제’ 로 보면서 우리에게 새롭게 보여주는 게 있나 하는 얘기를 하셨는데, 산재에서의 인권침해도 정말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재가 발생하는 원인이 대부분 현장에서 인간 존중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라든지, 산재 발생 이후 사고 처리나 산재 신청과 승인 과정에서 피해자가 존중받지 못하는 과정이 그렇다. 그리고 인권선언 제안문에서는 피해자가 ‘재발 방지와 제도개혁에 대한 권리’ 가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나는 산재 피해자들에게도 이런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명시적으로 해보지 못했다. 반올림에서 직업병 당사자들이 재발 방지와 제도 개혁을 위해 저렇게 투쟁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인권이라는 관점으로 세월호 참사을 보면서 새로 보게 된 그림이다.
사진 설명 : 5월 30일 열린 인권선언 워크숍 (제공 : 416인권선언 추진단)
나에게 세월호는
정경희 엄마 입장에서 보면 세월호와 관련해서는 안전할 권리, 안전하게 양육할 권리가 가장 크게 다가오는 문제다. 특히 아이들을 안전하게 양육하는 것은 나의 권리이고 책임인데, 이게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계기였다. 그래서 ‘내 아이만 잘 키우면, 나머지는 알아서 잘 될 거라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세월호라는 너무도 큰 대가를 치르면서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게 되었다.’ 는 유가족의 말씀에 크게 공감했다.
얼마 전에 5·18 때 고등학생이던 자녀를 잃은 유가족과 세월호 유가족이 만나는 장면을 봤는데, 그걸 보니 5·18이나 세월호나 고등학생들이 똑같이 공권력에 의해 생명을 잃은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도 안전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어른들 말만 들어서는 안 된다’ 는 얘기를 하곤 한다.
장영우 얼마 전 한 역사학자가 세월호와 한국전쟁을 비교한 글을 봤다. 한국 전쟁 때 한강 다리를 폭파한 공무원을 이승만이 사형시켰는데, 정작 군 책임자들은 전혀 처벌받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지금 똑같다. 세월호 때에도 맨 처음 출동했던 해경 123정 책임자가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전형적인 꼬리자르기다. 왜 사고가 일어났는가도 문제지만, 그 뒤가 더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배가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왜 구하지 않은 걸까? 왜 나오라고 방송하지 못한 걸까?
손진우 바로 그렇게 진실에 접근할 권리가 지금 완전히 묵살당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을 요구하는 유가족에게 ‘보상금과 바꿔라’ 며 거래를 종용하고 있다. 그래서 선언 제안문에 이런 권리들 중 일부만 선택하거나 거래하도록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넣었다.
안규백 보상금 얘기는 세월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본다. 이전에 있던 여러 사건에서도 애도와 추모,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대책을 내놓기보다 보상금을 먼저 내밀었다. 그 공식을 그대로 세월호에도 적용했던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나만 아니면 된다. 는 생각이다. 예전에 현장에서 작업 중지를 했을 때도, ‘왜 남의 선거구까지 와서 라인을 잡고 난리야.’ 하는 소리를 들었다. 자기 문제로 생각하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거나 바뀌지 않는다. 요구하고 움직이는 만큼 바뀐다. 이 문제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공감하느냐, 그 힘으로 요구하고 움직이느냐가 관건이다. 그 과정에서 조금은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다.
정정훈 여러 토론해주신 것처럼, 현장 권리와도 연결시켜 생각해보고, 다른 역사적 장면과도 연결되는 것. 이게 인권선언의 토론이 하려던 자기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문가가 선언의 초안을 쓰고, 발표하고, 사람들은 고개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304회의 풀뿌리 토론으로 만들자고 했다. 지금 토론처럼 자기 생활 속의 권리문제, 내가 애통하고 분노했던 다른 문제와도 연결되는 경험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이 선언이 ‘세월호 참사’ 을 해결하는 데에만 쓰이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면서 다른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는 데도 번역될 수 있기를 바란다.
손진우 권리를 선언한다는 것은 곧 ‘내가 그 권리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서 행동하겠다. 내가 권리의 주체다.’ 라는 다짐이고 선포다.
최민 마무리할 시간이다. 인권선언이 운동으로서 의미를 갖기 위해 주변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누구와 어떻게 문제의식을 나눌 계획인지, 또 이런 확산과 설득을 촉진하기 위해 함께 준비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지 나누며 토론을 마무리하자.
정경희 9·11 테러 희생자 가족들도 긴 시간 동안 싸워서 긴급대책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세월호도 한 발짝 나아가는 과정이다. 세월호 가족들이 투쟁하는 게 본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결국은 우리아이가 또 다른 세월호를 타지 않게 만들기 위한 투쟁이다. 이웃들과 이런 얘기들 더러 나눈다.
안규백 어느 정도까지 함께 아파할 수 있느냐. 이게 감수성인 것 같다. 선언 토론 과정이 이런 감수성을 키우는 과정이 됐으면 좋겠다. 학부모인데도 벌써 공감과 연대의 마음을 잃은 사람들을 보면서 답답해지기도 하지만, 결국 ‘이게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제’ 라는 걸 설득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인권선언도 그 설득 과정에서 쓸모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한 거라고 본다. 토론을 하면서도 세월호를 한 번 더 생각하고, 이후에도 관심을 잃지 않게 할 수 있는 작고 다양한 실천이 토론 과정에서 많이 제안되었으면 한다.
정정훈 5·18 얘기 나왔는데, 5·18 자체는 패배한 투쟁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그걸 기억하고, 배우고, 되살려내어 80년대 강력한 민주주의 운동을 만들어냈다. 인권 선언을 토론하고 만드는 과정도 세월호를 기억하고, 배우게 해 신자유주의 시대에 하나의 계기로 만들어 냈으면 한다.
최민 좌담회를 준비하면서 나에게 세월호는 어떤 문제였는지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도 인권선언에 대한 얘기와 논쟁이 곳곳에서 이런 효과를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일요일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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