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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고] 경제 위기와 총파업, 그리고 건강 / 2015.5 경제 위기와 총파업, 그리고 건강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최은경 경제위기는 노동자 건강을 위협한다. 위기를 기회로, 건강하게 일할 수 없는 조건이 강요되기 때문이다. 이번 총파업의 도화선이 된 ‘비정규직 종합대책’ 역시 비정규직과 파견근로를 늘리고, 해고를 쉽게 만든다. 지금도 최장시간 노동하는데 연장 근로 한도를 20시간으로 늘리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본의 위기에 맞서 몸과 삶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땠나. 2015년 총파업 투쟁을 맞아 경제위기와 총파업 그리고 노동자건강 연관의 역사를 되돌아보았다. 자본주의 경제 위기는 건강 문제를 동반한다. 경제 위기가 가져오는 영양 공급의 문제, 주거 및 환경의 문제, 보건의료 접근성의 문제, 그리고 정신적 스트레스의 문제 등이 건강 문제에 항상 직결될 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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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고] 경제 위기와 총파업, 그리고 건강 / 2015.5

경제 위기와 총파업, 그리고 건강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최은경


<편집자> 경제위기는 노동자 건강을 위협한다. 위기를 기회로, 건강하게 일할 수 없는 조건이 강요되기 때문이다. 이번 총파업의 도화선이 된 ‘비정규직 종합대책’ 역시 비정규직과 파견근로를 늘리고, 해고를 쉽게 만든다. 지금도 최장시간 노동하는데 연장 근로 한도를 20시간으로 늘리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본의 위기에 맞서 몸과 삶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땠나. 2015년 총파업 투쟁을 맞아 경제위기와 총파업 그리고 노동자건강 연관의 역사를 되돌아보았다.


자본주의 경제 위기는 건강 문제를 동반한다. 경제 위기가 가져오는 영양 공급의 문제, 주거 및 환경의 문제, 보건의료 접근성의 문제, 그리고 정신적 스트레스의 문제 등이 건강 문제에 항상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경제 위기 속에 사회적 문제 해결을 모색해야 할 상황에서 경제 위기와 건강 문제 사이의 관련성은 점점 더 역사가들과 보건의료 정책가들이 고민하는 주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노동자와 노동조합들이 늘 체감해오던 주제이기도 하다. 반면 총파업 결과 건강 정책과 노동자 건강 문제에 있어 획기적 진전이 있었던 사례들도 많다.

경제 위기는 건강을 악화시킨다.

경제 위기 속에서 건강 문제는 중요한 문제였고, 역사상 보건의 노력들을 뚜렷하게 바꾸어 놓기도 한다.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1930년대 대공황 때 드러난 건강 문제는 다음과 같다.

영국의 경우 모성 사망이 크게 증가하였고 영아사망률은 지속적으로 저하되는 추세였지만 계급적 지역적 불균등과 불평등 차이는 커졌다. 당시의 연구가 아닌 최근 남부 웨일즈 지방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대부분 연령 집단에서 1930년대 초반 건강 상태가 더 나빠진 것으로 나오고 있다. 1929년부터 1932년 사이 중산층 가족들의 질병 건수를 연구한 결과 대공황 후 수입이 크게 하락한 가족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질병 발생이 56% 높았다. 국제연맹보건기구에서 도시 빈민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의 결과 실직 가정 아동과 그렇지 않은 가정 아동의 신장과 체중에서 차이가 있었음이 발견된 적이 있었다.

한편, 같은 경제 대공황을 겪더라도 국가의 시스템적 제도적 인프라가 작동하여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 경우 건강 문제의 발생 또한 낮아지기도 한다. 경제 대공황 시절 미국의 경우 복지 프로그램을 확대한 결과 영아사망률이 유의미하게 낮아졌으며, 영국 또한 1930년 이후 보건 부분 지출이 늘면서 모성 및 아동 복지 수준이 향상되고 결핵 치료가 증가하는 등 긍정적인 결과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록펠러 재단을 중심으로 한 국제보건 프로그램의 지원에만 의지했던 식민지 지역에서는 프로그램의 축소로 말라리아 퇴치 노력 등 공중보건 활동 자체가 지속되지 못했다.

경제 위기는 특히 제3세계 개발도상국의 보건 수준에 더 악영향을 미친다. 1997년-1998년 동아시아의 경제 위기는 인도네시아의 공공 지출 감소로 이어졌고, 가계의 보건 지출이 악화되었으며 그 결과 질병 이환 보고율이 낮아졌다는 연구가 이루어진 바 있다. 쿠바의 경우 1989년 후반 심각한 경제 위축, 그리고 1992년 미국의 엠바고 영향이 결합되어 영양 공급의 감소, 감염병과 급사의 증가 등 직접적 악영향을 경험한 바 있다.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 경제 위기와 멕시코의 건강 상태를 연관 짓는 한 연구에서는 경제위기가 있던 해가 그렇지 않은 해보다 유년기와 노년기의 사망률이 높거나 최소한 감소율이 낮아진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경제 위기가 건강 상태를 악화시킨다는 일련의 연구 발견들이 모두 같은 수준의 근거들을 통해 일정하게 지지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소위 선진국의 경우 상반된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프라가 취약한 국가에서 경제 위기가 보건 수준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은 유의미하게 밝혀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진:의료민영화와 의료 예산 삭감에 반대한 스페인 백의의 물결 운동. 사진 출처 : http://www.rtve.es/)


사회 지출 축소에 대항하는 총파업

경제 위기는 이처럼 인구의 건강 문제를 또렷이 드러내기도 하나 경제 위기와 보건 복지 분야의 지출 축소가 연관되어 인식되고, 정부의 지출 축소에 대항하는 저항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최근의 일이라고 할 만하다. 국가가 국민(인구)의 건강을 보장한다는 가치를 내재화하고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시스템화한 것 자체가 1,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건강권 확대와 복지 제도 수립 자체가 서구에서는 오래된 파업과 사회주의적 요구 확대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1877년 철도노동자 파업, 1919년 시애틀 파업 등 교과서적인 파업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 국가(제도)의 수립 이후 파업과 대규모 시위가 복지의 진전과 후퇴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지, 비서구권에서는 어떠한 영향을 가져왔는지는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복지 국가(제도) 수립 이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끊임없이 긴축 프로그램과 파업 사이에서는 긴장 관계가 형성되었다. 1,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에서는 복지 국가가 수립되는 한편 제조업 등의 쇠퇴로 구조조정과 지출 축소 등 긴축 프로그램(austerity program)을 도입하려는 시도들,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총파업들이 있었다. 가장 기념비적인 파업은 1960년-1961년 벨기에 총파업이었다. 복잡한 정치적 지형 속에서 발로냐 지방의 산업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1960년 벨기에 정부가 정부지출을 축소하기 위한 종합 방안을 수립하자 이에 대항하는 총파업이 2년간 지속되었다. 이 당시 총파업은 노조가 직접적으로 지도한 것이 아니라 지역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파업했기 때문에 정부의 통제는 불가능했다. 이 파업은 단지 긴축 정책만이 아닌 체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발전하였고, 종국에는 실패했지만 벨기에의 현대 정치 지형을 바꾼 것으로 평가된다.

오일 쇼크와 인플레이션 이후 노동당 정부의 긴축 정책에 대항하여 영국에서 1978년-1979년 겨울동안 일어난 파업 또한 당시 노동당 정부를 위기로 몰고 갔다. 하지만 이는 이후 마가렛 데쳐의 집권을 불러온 요인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아마도 복지국가 수립 이후 서구에서 신자유주의적 긴축 공세에 대한 유의미한 저항으로 지목되고 있는 곳은 현재 진행 중인 그리스일 것이다. 유로존 위기 이후 심화된 긴축 공세에 대해 반대하는 그리스발 파업과 뒤이은 각 유럽 국가의 파업은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고,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파업이기도 하다.

비서구권에서 파업을 통해 긴축을 성공적으로 저지하고 사회적 비용이 유의미하게 확대시킨 곳으로 지적되는 곳은 라틴 아메리카이다. 많은 연구들이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군부 독재 시절의 지도자들이 비효율적인 경제 정책을 고수한 반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지도자들은 파업과 대규모 사회적 시위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긴축을 저지하고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 등 사회적 비용을 확대하는 대응을 했다는 데에 동의한다. 안타깝게도 조직 노동자를 위한 혜택의 증가가 아닌 다른 집단을 위한 혜택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있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사례는 민주화 이후의 파업이 유의미한 사회적 지출 확대를 가져왔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진 : 긴축에 저항하는 그리스 민중들)

경제 위기는 보건 정책을 진전시켰을까

파업과 사회적 요구는 역사적으로 보건 제도 또는 정책을 진전시켜 왔다. 그렇다면 경제 위기는 보건 정책을 진전시켰을까, 그렇지 않을까. 우선 보건 전문가들의 연구 자체는 경제 위기를 계기로 많은 도약을 이루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초로 지구적 차원에서 경제 위기와 건강 문제 관련성이 제기된 것 또한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이다. 1919년 설립된 국제연맹 산하에서 건강 문제를 다루었던 국제연맹보건기구(League of Nation Health Organization)에서는 대공황이 닥치자 대량의 실직으로 식품 소비량이 줄어들고 가계가 악화되면서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지고 있다고 거론하였고, 1932년 ‘경제 후퇴와 공중 보건(The economic depression and public health)’ 라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보건 전문가들은 광범위한 영양 부족이 질병에 대한 취약성을 증가시키고 정신적 건강을 악화시키고 아동의 발육 상태를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당시만 해도 분절적이었던 각국 식민지 경계들을 넘을 수 있는 공중보건적 차원의 접근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국제적 차원의 보건 연구들이 시작되었다. 역사적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수립된 보건복지 체제와 사회의학 체제는 이 시기에 더욱 그 범위를 확대하게 된다. 병원이 문을 닫거나 정부가 필요한 보건 프로그램을 하지 못하게 될 거라는 우려도 팽배했다. 이 시기의 문제는 식민지 본국의 보건 문제만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공급을 담당했던 식민지 지역의 공황은 식민지 주민들의 건강과도 연결되어 있었고, 세계 시장의 공급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보건 전문가들의 연구는 당시 식민지 본국의 이해와 긴밀하게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경제 위기는 미국의 뉴딜이나 영국의 보건 부문 지출 증가처럼 보건 정책상의 진전을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 위기 가운데 입안된 보건 정책들 중 긍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중보건 상의 위협에 대해 대처한다는 명목으로 사회적 비용 지출에 예민해지고 단속이 강화되는 방향의 정책 입안이 많아진 것도 이 때이다. 이를테면 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경제위기를 경험하면서 이민자들의 나쁜 건강 상태와 전염병(매독, 결핵 등)이 공중보건 상 일종의 생물학적 위협이라고 여기고 이들을 탄압하고 단속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이러한 입장이 나치와 파시즘의 탄생에 일조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당시에도 병원과 각종 위생 시설의 저 숙련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의 퇴출이 또 다른 보건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국제적’ 인 경제 위기가 ‘국제’ 보건뿐만 아니라 ‘일국’ 의 노동 구조 및 일국의 보건 상태, 보건 담론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