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4월_특집3] 질병권의 관점에서 만성질환자의 노동권을 이야기하기 / 2021. 04

[만성질환 노동자의 자리]

질병권의 관점에서 만성질환자의 노동권을 이야기하기

김다연 상임활동가

작년 성공회대 시설관리 용역업체는 ‘정년을 맞은 노동자도 “건강상 업무수행“에 문제가 없으면, 1년 단위로 촉탁연장 계약을 최대 3번까지 맺을 수 있다’는 골자의 단협을 깨고, 방광암으로 수술과 요양을 위해 2개월 병가를 사용했던 한 노동자를 해고했다. “건강한 육체”를 바탕으로 청소 업무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노동자는 건강에 이상 없다는 의사 소견서도 제출했었다. 

질병 없는 “건강한 육체”를 도달해야 할 이상이자 노동자라면 갖춰야 할 기본값으로 여기는 사회의 노동시장에서는, 만성질환자들과 같이 회복하기 어려운 병과 함께 해야 하는 몸 혹은 아픈 적이 있는 몸(미래에 아플지도 모를 몸)은 그 자체로 결격사유다. 어릴 적 소아암 이력이 차별의 근거가 되기도 할 정도니. [각주:1] 아픈 이들은 자신의 질병, 질병 이력을 감추고 몸을 돌보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도 쉬쉬한다. 설사 채용이 되어도, 건강한 육체도 병들게 할 만큼 과도한 근무 시간과 일의 양은 질병과 통증을 악화시키니 버텨내는 게 불가능하다.

이런 어려움은, 자신의 질병과 통증을 이기적인 핑계로 보는 동료들의 시선이 주는 두려움으로 배가된다. 아픈 이들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해야 사정을 양해받고, 몸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기에 자기 몸의 상태와 통증을 입증하고 설득해야 한다. 질병이 눈에 잘 띄지 않거나 질병명이 없는 경우는 더 쉽게 의심의 대상이 된다. 사회는 폭력의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듯, 아픈 사람에게도 ‘아픈 사람다움’을 강요한다. 

타인의 시선을 포함한 감당할 수 없는 노동조건은, 아픈 몸들을 노동에서 배제하고 노동권을 박탈한다. 이렇게 사회에서 몸이 오롯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험들은, 아픈 이들이 질병과 질병을 앓는 자신을 스스로도 수용하기 어렵게 만든다. 

질병권, 아픈 몸을 기본값으로 하는 노동조건을 말하다

이런 한국 사회에서, 몇 년 전부터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의 질병 경험과 삶을 공적으로 드러내며 ‘잘 아플 권리’를 주장하는 “질병권”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질병권이란, “(건강이 아닌) 질병을 중심에 배치하고, 아픈 몸을 사회의 기본 몸으로 설정하며, 질병을 겪는 상태도 삶의 ’정상적‘시기로 본다. 더 이상의 건강을 쟁취할 수 없는 아픈 몸을 인정하고, 모든 이가 건강을 삶의 최우선 목표로 두지 않을 수 있음을 존중” [각주:2] 받을 권리이다. 

질병권은 “아파도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여건” 정도가 아니라, “취약하고 아픈 몸을 기본값으로 하는 사회”를 강조한다. 이런 사회의 노동권은 어떤 모습일까. 아픈 몸들도 ‘정상적으로 아프면서’ 무사히 일할 수 있게 하는 노동환경의 구성을 전제조건으로 할 것이다. [각주:3] 포인트는 건강한 몸에 기준을 둔 채 예외적으로 아픈 몸들을 특별히 배려하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아프고 약한 몸에 맞는 노동환경을 설계를 주장한다는 점이다. 이는 ILO의 산업보건서비스의 원칙 중 노동자의 능력에 기준을 두고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을 맞춰야 한다는 ‘적응의 원칙’과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또한, 질병권 담론에서는 한 사회의 폭력과 배제와 차별과 극심한 경쟁과 과로와 오염된 환경과 같은 요소들은 몸에 질병과 통증으로 현현하지만, 아픈 몸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개인에게 전가되는 현실을 비판한다. 이 역시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해치는 노동조건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주장과 직결된다.

질병권의 관점에서 노동권을 볼 때, 더 주목할 점은 이제까지 사회에서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던 “아픈 몸이라는 정체성”이다. 질병권에서는 건강중심 사회에서 소수자가 될 수밖에 없던 아픈 몸들이 바로 여기에 존재하며, 정당한 노동조건을 이야기할 때 이 몸들의 특수성을 배제해선 안 되고, 더 나아가 바로 이 아픈 몸이 사회의 기준이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제까지 아픈 몸은 비생산적인 몸, 폐를 끼치는 몸, 독립적이지 못하고 의존하는 몸, 쉽게 주류에서 밀려나는 몸이기에 배제와 혐오의 대상이었다. [각주:4] 하지만 몸은 질병과 각종 통증을 포함한 변화에 늘 열려있기에, 아픈 몸 정체성은 누구나의 것이기도 하다. 질병권의 관점은, “취약한 몸”이라는 인간생명체의 본질적인 특성을 기준으로 노동조건을 구성해야 하며, 이는 건
강한 이들에게도 훨씬 유익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넓은 스펙트럼의 아픈 몸 중, 기준이 되어야 할 ‘아픈 몸’은 무엇일까. 

“아픈 몸을 인정하는 것”(질병권 개념정의 일부)은, 몸 상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수용 받음을 의미한다. 결국 질병권에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노동조건이란, 그 개개인의 특수한 몸의 조건과 경험들이 모두 존중받는 환경을 말한다. 이는 “정상적인 몸, 표준의 몸의 기준에 도전함으로써 정상성에 균열을 만들고 새로운 n개의 정상을 만드는 것이다” [각주:5]

동일노동의 기준
몸의 조건에 따라 생산량을 배분하면 비교적 건강한 몸이 더 많은 생산량을 소화하게 될 텐데, 이것이 역차별로 오인될 수 있다. “동일노동”을 계산하는 방식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익숙한 슬로건인 “동일노동 동일임금”에서, 동일노동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신체적(정신을 포함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동일한 시간/작업량과 같이 완전하게 동일한 조건
의 노동은 과연 평등한가?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요즘 자주 이야기되는 평등이란, 이러한 기계적 평등에 머무는 듯하다.

“크론병 환자는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해 염증이 심해지고, 장에 구멍이 뚫리기도 한다. (...) 크론병을 ‘딛고’ 성공하는 이들도 존재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통을 계속 외면하고 참아야 한다. 이는 목숨을 건 싸움이 된다.” [각주:6]

누군가에게는 피로감을 주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건 사투다. 겉으로 볼 때 동등해 보이는 노동조건은, 사람의 신체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의 노동강도를 유발할 수 있다. 나에게 오는 신체적 부담의 관점에서, 이는 아픈몸에 대한 차별이다. 따라서 동일노동의 기준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노동강도라는 관점에서 설정해야 한다. [각주:7]

노동현장은 돌봄현장이다
노동권은 천부적으로 태어나면서 부여되는 게 아니라, 노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에서 생성된다. 그러니 아픈 몸의 노동권을 보장한다는 건, 일정 선 이상으로는 노동할 수 없고 때론 통증으로만 가득 차 몸을 돌보는 일에 전념해야 하면서도, 생존을 유지하고 사회관계망에서 배제되지 않으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노동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복잡다단한 몸들의 욕망에 적극적으로 관심 갖고 여건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수반한다. 그렇게 세부적인 개별성을 고려할 때에서야, 아픈 몸들도 “동등한 인간”의 조건을 누리게 된다. 

아픈 몸이 가진 특수성에 주목하고, 그들에게 적합한 노동조건을 만들어내는 일은 ‘돌봄’ 그 자체이다. 노동현장은 돌봄현장이다. 하지만 법은 공식적인 강제력을 동원하여 최소한 지켜져야 할 것들이 지켜지게끔 할 뿐,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세밀한 조정이 필요한 아픈 몸에 대한 제대로 된 노동권 보장을 위해서는, 상호 간에 ‘섬세한 눈길과 손을 가진 돌봄의 자세’로 몸을 대해주는 대인관계(방식)라는 제도가 때론 더 중요하다. 돌봄은 법이나 기타 규제로는 차마 파악할 수 없는, 상대방의 독특성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인관계방식의 변화는 단순히 주체들의 마음
먹기에 기대어서는 안 되며,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덜 경쟁적인 사내 문화, 아픈 몸을 기준으로 한 넉넉한 인원 배치와 같은 조건들 역시 받쳐줘야 한다.

아픈 몸들이 함께 노동현장에 안녕히 존재할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이 곧 모두가 더 편하고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아픈 이들의 각양각색의 질병 경험과 이들의 노동권에 대해 더 자주, 많이 듣고 말해야 할 이유이다.

 

  1. 조한진희, 기사 <건강 중심 세계의 질병 난민>, 비마이너, 2020.04.01 [본문으로]
  2. 조한진희(다른몸들), <우리 시대 건강권을 넘어, 질병권을 제안하다>, 2020한국문화인류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174p [본문으로]
  3. 물론, 아픈 몸들 중 전혀 일할 수 없는 몸도 있을 것이다. 질병권은 일하지 않을 권리 역시 동시에 주장한다.(조한진희(다른몸들), 2020, 175p 참고) [본문으로]
  4.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에서는, 아픈 몸에 대한 혐오는 곧 인간이라면 마땅히 피해야 할 ”추함과 역겨움“을 ”’나‘의 현실에서 지우려는 욕구“로 본다. 돌봐져야 할 아픈 몸들은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내가 차마 맞이하고 싶지 않은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하기 때문이다.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개인”이 바람직한 모델로 제시되고, 아픈 이를 위한 제대로 된 사회적 지원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의존할 곳은 가족뿐이다. 그마저도 운이 좋아야 한다. 돌봄제공자(주로 여성가족구성원)와 집에 고립되어 질병과 경제적 어려움, 불안한 미래를 감당하며 생존 이외에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협소한 삶은 취약한 인간의 몸과 타인에의 의존을 혐오하게 할만큼 충분히 좌절스럽다. [본문으로]
  5. 조한진희(다른몸들), 2020, 174p [본문으로]
  6. 안희제, 『난치의 상상력』, 동녘, 2020, 94p [본문으로]
  7. 기저질환 환자의 경우, 주 52시간 이상 노동시 기저질환이 없는 이에 비해 심뇌혈관질환 발병률이 1.58배 상승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본문으로]

[일터4월_특집2] 아픈 몸들은 외친다.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잘 아플 권리’ 보장하라. / 2021. 04

[만성질환 노동자의 자리]

아픈 몸들은 외친다.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잘 아플 권리’ 보장하라.

이종란 회원, 반올림 상임활동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아픈 몸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아파도 학교에 가야 했고, 아파도 일터에 나갔다. 그런데 코로나19 감염병 시대를 관통하면서 우리는 ‘아프면 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처음엔 단지 감염병 전파로 인한 위험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필요에서 시작된 의미겠지만, 점점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과 공감대는 커지고 있다.

‘아프면 쉴 권리’에서 좀 더 나아가 ‘잘 아플 권리’에 대한 주장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건강권’이라는 개념 대신에, ‘질병권’이라는 개념으로, ‘잘 아플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저자 조한진희 님은, 아픈 몸으로 여러 해를 살다 보니 우리 사회의 제도가 ‘건강한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고, ‘아픈 몸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문제의식이 생겼다고 한다. 매우 공감 가는 말이다. 반올림에서 암이나 난치성 질환 피해자분들을 만나오면서도 ‘잘 아플 권리’가 얼마나 부족한지 느낄 수 있다.

아픈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픈 이는 질병 자체가 주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 외에도 힘든 점이 많다. 아프면 일을 못 하니 치료비, 생계비 부담이 크다. 오랜 투병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돌봄의 문제는 본인을 넘어 가족 전체의 문제가 된다. 아픈 게 미안할 일이 아닌데도 가족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을 보인다. 혼자 살다가 아프면 요양병원에라 도 의지해야 한다.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다가 기초생활 수급권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수급권자가 되면 의료보호 대상이 되므로 치료비 걱정은 줄지만, 빈곤으로 인한 은근한 차별을 당하며, 작은 일자리도 얻을 수 없다.

이처럼 아픈 몸으로 살아가다 보면 빈곤과 소외가 현실이 된다. 오로지 노동으로만 먹고 살게 설계되어 있는 현대사회 구조에서 장애인이나 아픈 몸들은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나마 존재하는 사회보장제도는 부족하고 허술하다. 차별당하지 않은 사람이 차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 하듯이,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이 아픈 사람이 겪는 어려움을 바탕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면 제도는 겉 돌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암이나 난치성 질환 등에 대해 산재 인정이 시작된 지 수년이 흘렀으나, 산재보험은 이들의 현실적 필요를 잘 흡수·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올림에서 경험한 몇 사례를 공유하면서 개선의 필요성을 이야기해보겠다. 또한 암이나 만성질환의 경우 건강보험 영역에서의 보호가 중요하다. 따라서 최근 논의되는 건강보험 상병수당에 거는 기대로 글을 마무리해 보겠다.

난치성 질환, 암 피해자의 휴업급여 부지급 사례

은희씨(가명)는 루푸스 환자이다. 25년 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할 때 이 병이 발병했 다. 치료제가 없어 25년째 이 병과 함께 살아간다. 2019년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인정을 받았다. 루푸스는 신체 장기 침범이 주요 증상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신체 장기 어디에서든 이상이 나타날 수 있다. 갑자기 중환자실에 실려 가기도 했고, 뇌경색이 와서 현재까지 후유증이 있다. 합병증으로 생긴 쇼그렌(건조증후군) 때문에 치아의 80%에 손상이 오고, 한쪽 눈은 궤 양이 생겨 각막 이식까지 받았다. 그나마 수급권자가 되어 병원비 부담은 덜었으나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은희씨에게 산재 인정은 큰 희망을 주었다. 시효가 남아있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우선 8년 치의 휴업급여를 신청했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고작 76일 치의 휴업급여만 지급이 되었다. 류마티스 내과 통원치료 일만 지급된 것이다. 몸이 아파 집 밖에 나가지 못했던 시간들을 보냈음에도, 휴업급여가 거절된 이유는 무엇일까.

‘휴업급여’란 업무상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노동자가 요양으로 취업하지 못한 기간에 대해 지급하는 보험급여를 말한다. 평균임금의 70%를 휴업급여로 지급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52조) 여기서 ‘요양으로 취업하지 못했다’는 것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근로복지공단은 ‘요양급여 신청소견서’ 서식란에 주치의에게 통원치료 기간 중 환자의 취업이 가능한지 또는 불가능한지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묻는 체크박스를 만들었다. 어떤 설명도 없이 그 서식을 맞닥뜨린 주치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주치의는 산재보험 휴업급여 제도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니 자신의 소견으로 취업 불가능하다고 하면 환자가 노동시장에서 배제당해 생계의 위협을 받을까봐 우려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주치의는 근전도 검사결과 떨림은 있지만 그래도 움직임이 양호하니 취업 가능에 체크했다고 한다. 그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몰랐다는 것이다.

휴업급여 지급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아픈 노동자의 절박한 생존권이나 다름없는 휴업급여 문제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 주치의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간편한 체크리스트 하나로 휴업급여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또한, ‘취업할 수 없는 상태’를 ‘의학적 소견’으로만 판단하는 것도 재고되어야 한다. 의학적으로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지 않으면 취업 가능하다고 판단할지 모른다. 그런데 현실적인 노동시장은 어떤가.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고, 밤낮이 뒤바뀌는 힘든 교대근무를 견딘다. 아주 튼튼한 몸으로도 버티기가 힘들어 과로가 일으키는 여러 질병으로 고통 받는 것이 만연한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아픈 환자가 억지로 취업시장에 내몰리는 것은 부당하다.

은희 씨의 경우, 다행히 재심사 결정으로 8년 치의 휴업급여를 지급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은희 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반올림의 최근 사례만 해도 두 사례가 더 있다. 암이 재발한 림프종 피해자의 경우, 주치의는 요양급여신청서 소견서 란에 취업이 가능하다고 체크하였다. 암에 대한 두려움, 약해진 면역력으로 취업은 고사하고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주치의의 소견 때문에 휴업급여는 부지급 되었다. 마찬가지로 뼈로 전이가 된 폐암 피해자에게도 같은 이유로 휴업급여가 부지급 되었다.

암 만성질환자를 보호하는 보험급여가 마련되어야

건강보험은 암 환자에 대해 요양비 산정 특례를 두고, 총액의 5%만 부담하게 한다. 5년 동안은 적어도 이 특례가 적용된다. 그러나 산재보험은 직업성 암 환자에 대해 별다른 대책 같은 것이 없다. 암이나 만성질환에 맞는 보험 급여가 필요하다.

산재 보험급여 중에 상병보상연금 제도가 있긴 하다. 요양급여를 받는 노동자가 요양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치유되지 않고 ‘중증’요양 상태인 경우에 상병보상연금을 지급한다(산재법 66조). 그러나 그야말로 중증의 경우만 지급하는 것으로는 보호가 미흡하다. 이 상태에까지 이르는 정도가 아닌 만성질환자들은 현실적으로 취업을 할 수 없는데도, 상병 보상연금을 지급 받을 수 없다. 휴업급여의 경우 요양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나면 계속 심사 대상에 오른다. 제도가 불안정한 것이다. 만성 질환자들을 폭넓게 보호하도록 휴업급여 및 상병보상연금 지급기준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산재 비지정 병원의 문제, 건강보험 요양비 부당 환수의 문제

산재 비지정 병원의 문제, 건강보험 요양비 부당 환수의 문제도 심각하다. 난소암을 진단 받은 장00님은 생사를 오가는 투병 과정에서 부득이 요양병원에 입원했고, 어렵게 산재가 인정되었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에서는 해당 요양병원이 산재 비지정 병원이므로 산재 요양급여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안내를 하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산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건강보험이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2년 뒤 갑자기 건강보험공단에서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해왔다. 산재 노동자인데 건강보험이 적용된 것은 ‘부정수급’이니 이달 안으로 요양병원 치료비 1400만원을 반환하라는 것이다. 산재로도 처리가 안 되었는데, 건강보험 요양비마저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산재노동자는 산재의료기관(지정병원)에서 요양하는 경우만 산재보험이 적용된다. 부득이 한 경우에 한해서만 사후 요양비 처리를 할 수 있다(산재법 제40조). 이러한 적용방식은 의료 기관 선택권에 대한 심각한 제약이자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장00 님의 사례처럼 돌봄이 꼭 필요한 환자가 요양병원을 이용하려 해도, 가까운 곳에 산재 지정병원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국림암센터나 원자력병원도 지정병원이 아니다.

근로복지공단은 비지정병원의 요양에 대해서도 산재보험을 적용해야 한다. 부득이한 경우에만 예외를 허용하는 부당한 법조항도 개정되어야 한다. 건강보험공단도 문제가 크다. 아픈 노동자는 단지 몰랐을 뿐이다. 이러한 사정을 건강보험공단에 수차 이야기해도 자신들이 고려할 사항이 아니란다. 건강보험공단은 이제라도 산재 노동자를 부정수급자 취급하며 1400만원을 반환하라는 독촉과 협박을 멈추길 바란다.

2007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현 국민권익위)는 ‘산재환자의 요양급여 지급제도 개선 권고안’을 냈다. 요지는 “산재보험법의 적용대상 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국민건강보험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사회보험이익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보장제도의 본질에도 반하는 것이므로 산재보험급여 대상이 되지 않는 요양은 건강보험법을 적용하도록 함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또 ‘산재노동자가 건강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는데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는 것이니 국민건강보험법이 개정될 때까지 지침을 마련하거나 관련 지침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를 수용한다고 밝혔다.

권고안이 나온 지 14년이 흘렀다. 이제라도 법이 바뀌어야 한다. 법이 바뀌기 전이라도 건강보험공단은 부당한 환수조치를 멈춰야 한다. 두 보험 간의 연계성이 떨어지고 보장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재해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시켜야 한다.

아프면 쉴 권리, 건강보험 ‘상병수당’ 도입에 거는 기대

코로나19 감염병 시대에 아프면 쉴 권리를 제도상 정착하기 위한 논의가 한참이다. ‘업무 외 질병’에 있어서도 아프면 쉴 권리를 구현하기 위해 건강보험에 상병수당 도입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제 논의 중이라는데, 부디 단기적 대안으로 그치지 않길 기대해본다.

아프면 쉴 권리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지급 기간과 보장수준에서 충분한 수당이 되어야 한다. 휴업급여처럼 지급에 있어 까다로운 조건을 걸지 말아야 한다. 또한 직장에 복귀하는데 있어 어떠한 불이익도 없어야 권리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건강보험의 상병수당 논의는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이자 보편적 복지의 문제이다. 사실, 아픈 이유가 일 때문인지, 또 다른 이유 때문인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이유가 혼재되어 있기도 하고 이유를 밝히기 어려운 경우가 태반이다. 산재라 하더라도 규명이 어렵기도 하고, 산재가 아니면 휴업급여 같은 것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병의 원인과 무관하게 아프면 치료비와 생계비 걱정 없이 잘 치료받고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상병수당이 제대로 설계되길 바란다.

[일터4월_특집1]만성질환자의 몸과 마음을 담은 사회제도, 있어? - 삼성반도체직업병(전신 홍반성 루프스) 피해자 구진선(가명) 님 인터뷰 / 2021. 04

[만성질환 노동자의 자리]

만성질환자의 몸과 마음을 담은 사회제도, 있어?

- 삼성반도체직업병(전신 홍반성 루프스) 피해자 구진선(가명) 님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구진선 님은 IMF 이후 갑작스런 부서이동 이후 1999년 삼성전자(주) 기흥공장에서 퇴사 하였다. 웨이퍼 가공공정의 포토공정에서 4년 7개월간 3교대 근무를 하였고, 2020년 ‘전신성 홍반 루프스’로 업무상 질병 승인을 받았다. 지난 26년간 그녀의 삶을 통해 만성질환자가 겪 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자, 3월 17일 요양을 목적으로 이사한 여주 시골집을 찾아 인터뷰하였다.

구진선 님이 여주 시골집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출처: 구진선

퇴사 후 결혼, 임신 중에 나타난 몸의 이상 증상

구진선 님이 근무하던 라인은 정예 멤버만 남기고 인원감축에 들어갔다. 자진퇴사여부를 가리는 면담과정을 거쳐 그녀는 반자동 신규라인에 남기로 했다. 그러나 신규라인은 납기일에 맞춰 물량을 빼기도 하고 반자동이다 보니 그만큼 일도 많았다. 무엇보다 라인멤버의 유대관계가 예전 같지 않아 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퇴사의사를 밝힌 후부터 퇴사당일까지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장비만 돌아가는 곳에 혼자 있게 했어요. 그동안 열심히 일해 왔는데, 일하다 퇴사하는 것은 선택 가능한 당연한 권리 아닌가? 당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힘들었죠. 근무 할 당시 피로감이나 편두통 같은 두통이 많았어 요. 눈의 피로가 심했고, 한번 라인에 들어가면 방진복을 입고, 담당설비가 있으니 화장실을 자유롭게 갈 수가 없으니 방광염 등으로 병원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우리가 취급하는 물질이 무엇이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들어본 적도 교육받은 적도 없어서 누구나 아프니까 아픈 게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퇴사한 해 남자친구였던 현재 남편의 청혼으로 결혼을 했고, 임신 7개월쯤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단백뇨가 나오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 그 순간이 지난 20년 동안 겪고 있는 고통의 시작이었다고 구진선 님은 회고했다. 가정을 꾸리고 새 가족을 맞이할 중요하고도 행복한 시기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몸이 붓고 다리도 부었는데 정확한 진단을 못 내리는 거예요. 임신중독 증상인지, 루프스인지 애매하게 생각만 할 뿐이었어요. 그런데 원주 기독병원 갔을 때 애기 심장소리가 안 들린다고 하는 거예요. 8개월에 1.43kg 미숙아로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 한 달 반가량 있었고 저는 먼저 퇴원했어요. 애기 낳고나니 친정엄마가 병원에 면회 오셨어요. 몸이 붓기도 하고 얼굴에 나비모양 반점이 있어서인지 엄마가 저를 못 알아보시는 거예요. 퇴원하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아산 병원에서 검사하고 남편이랑 결과 들으러 갔더니 ‘이건 완치가 없는 병이라 치료가 안 돼요.’ 라고 했어요. 당황스러워서 남편과 서로 쳐다만 봤어요. 지금은 신장이 안 좋지만 다음에는 어디로 갈지 모르고 눈에도 가고, 머리에도 가고 전신을 다 공격한다고 무서운 얘기를 들으며 ‘루프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달수를 채우고 퇴원할 때도 애기는 2.5kg 밖에 되지 않았고, 한돌 쯤 됐을 때 코에 동그랗게 낭종이 생긴 거예요. 검사하니 뇌종양이었이라 고 하더라고요. 머리를 열어서 수술할 뻔 했는데 캐나다에서 소아신경외과 선생님이 오셔서 코로 수술했어요. 병원 다니면서부터는 온 집안이 난리가 났으니 남편이나 저나 결혼해서 신혼의 달콤함은 남의 말이었어요. 병원생활하기도 어렵고 힘들었죠.”

루프스 자가면역질환자로 살아가기

잠복기와 활동기를 반복하는 루프스는 활동기에 생명을 위협하고, 잠복기에는 드러나지 않는 통증과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활성화로 늘 불안의 연속이라고 한다. 고통의 시간을 다시 떠올리시게 해서 죄송했지만, 루프스 자가 면역질환 투병생활에 대해 여쭤보았다.

“잠복기에는 일반사람들과 겉으로는 똑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계속 약을 먹고 염증을 일으키지 않게 조심해야 되고, 햇볕을 보면 안 되고, 거의 외부활동도 못하죠. 애기 낳고 퇴원했을 때 관절이 너무 아팠어요. 기어다녀야해서 애기 케어를 못하는 거죠. 우유도 못 탈 정도로요.

2005년도쯤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염증수치가 높았던 어느 날 친정 부모형제가 모두 병문안을 왔어요. 나중에 안 사실인데 죽는다 고 마지막으로 가족들 다 모셔오라고 의사선생 님이 말씀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저로 인해 애기 가 아팠고, 뇌종양 수술을 했고, 남편은 신장을 떼 줬어요. 그래서 남편도 사회활동을 하는 게 힘들어요. 남편이 감기만 걸려도 제 입장에서는 엄청 미안한 거예요.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 원래 건강한 사람인데 신장이 하나 없어서 그럴까 미안함도 크고요.

저는 신장이식수술, 자궁적출술도 했어요. 자궁에 염증이 있었는데 일반인 같으면 간단하 게 치료를 받으면 되지만, 면역억제제를 먹기 때문에 모든 장기 문제가 암으로 갈 수 있는 확률이 엄청 높대요. 그래서 건강검진하고 1년 뒤에 자궁을 적출했어요. 자궁적출하고 신장이식하고 퇴원하려는데 후유증으로 눈에 바이러스가 침투한 거예요. 퇴원은 하고 버스타고 병원 다니 면서 약을 먹었어요. 신장 이식 초기에는 감염에 취약한데 마스크 쓰고 감염내과, 안과에 같이 다녔죠. 지금도 좌안이 시력이 떨어져있고, 비문증이 있어서 운전도 조심스럽고 컴퓨터 보는 것도 힘들어요. 지금은 신장이식센터에서 약이랑 관리하고, 거기 약이랑 루프스에 쓰는 면역억제제가 같아서 6개월에 한 번씩 류마티스내과에 가고 있어요.”

발병 후 15년이 지나서 산재신청을 했고, 20년이 지나서야 업무상 질병 승인을 받았다. 그렇다면 기나긴 투병기간 동안 그녀는 생활비와 의료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루프스가 희귀질환이라 진료비는 10~20% 정도 본인부담금을 낼 수 있었는데, 약값이 비싸서 남편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의 사선생님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두 알씩 먹으라고 했는데, 하루는 아침에만 두 알 먹고, 다음날 은 저녁에만 두 알 먹고 이렇게 빼먹은 적도 있었어요. 대출, 식구들 도움도 한계가 있었고, 약 값 때문에 남편이 밤에 대리운전도 했어요. 누가 건강보험공단에서 재난지원금이 있다고 알려줘서 혜택 조금 받았고, 보건소에 본인부담금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어 조금 받았고요.

병원비도 그렇고, 애기 인큐베이터 값도 엄청 나왔고, 경제적으로 힘드니까 몸이 좀더 나은 잠복기가 되면 일을 다녔어요. 애기 4살 무렵에 는 집 가까이 걸어갈 수 있는 곳에서 아르바이트 를 했었거든요. 힘든 일 아니고 시청에서 오래된 문서 정리하는 간단한 일이요. 집에 있으면서 우울증이 있었거든요.”

일했다면 일할 수 있는데 왜 안하냐, 휴업수당 못 준다는 근로복지공단

황산, 염산, 불산이 있는 베쓰에 흄이 올라 오는 걸 쳐다보면서 세척하고, 먼지에 예민한 반도체와 장비를 아세톤으로 청소를 했다. 웨이퍼로 코팅을 할 때는 케미칼이 많이 튄 볼도 장비에 올라가 직접 교체하고, 주변에 튀면 손수 닦아주었는데 그 작업들이 자신의 몸을 망가뜨렸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그녀는 2020년에야 업무상질병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아픈 몸으로 여기저기 20년 가까이 진료 본 수많은 자료를 냈는데 2015년 10월에 신청해서 승인받기까지 기간이 너무 길었잖아요. 발병 초기 검사하고 수술, 치료하느라 비용이 많이 들었는데 병원 진료비 세부 영수증 보관기관이 5년밖에 안 돼서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중 간에 일을 할 수 있는데 왜 안 했냐고 휴업수당도 줄 수 없다더라고요. 공단에도 자문의가 있으면 신장이식을 한 사람은 평생 다시 투석이나 신장이 망가져서 이식을 하거나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고 계속 진료를 해야 한다는 것을 더 잘 알텐데, 계속 자료를 원하더라고요.

승인 이후라도 마음 편하게 병원 다녔으면 좋겠는데 의사선생님 만나서 요양연기신청서도 내야 해요. 바쁜 의사선생님께 ‘연장신청서 써주세요’ 어떻게 말을 꺼낼지 엄청 고민되고요. 공단에서 환자의 동의를 받아서 의료기관에 조치를 취해주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환자가 직접 받 으러 다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아픈 사람이 중심에 있지 않고 공단이나 기관이 더 중심에 있는 것 같아요.”

서로의 몸 상태가 다름을 인정하고 상처 주고받지 않게 살아가기

건강함이 정상성으로 인정되는 사회에서 질병을 개인의 잘못이나 부족함으로 치부하는 시선은 또 다른 고통이다. 구진선 님 역시 그런 시선 때문에 상처를 받아왔다. 그녀가 경제적 어려움과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다녔던 일과 동료의 반응, 그녀의 기대에 대해 들었다.

“그 사람이 아프다는 걸 알면, ‘너 오늘은 어 디가 안 좋아 보인다’, ‘오늘은 얼굴이 왜 이래?’ 등 신체적으로 콕 집어서 대놓고 하는 말들이 다 상처거든요. 그냥 저 사람이 아프니까 그런가보 다 속으로만 생각하고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해요. 다름을 인정하고 이상하게 보지 않는 태도 도 필요해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자기만큼 못 한다고 해서 ‘야 힘 좀 써라’, ‘그것도 못 드냐’, 이 런 말들이 다 상처니까 저 사람이 아프다고 생각 하면 그런 말들은 삼갔으면 좋겠어요.”

아픈 사람도 정규성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면

“언제 발병할지 모르니까 업무를 하다가 갑자기 아플 수 있고 피해를 주게 되니까 정규직으 로 일하지 못했어요. 관공서 같은 데서 10~11개월 일하고 조금 쉬었다가, 또 몸이 괜찮다 싶으면 다시 했지 퇴사 이후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보질 못 했어요. 잠복기에는 멀쩡해도 조금씩 아프거나 관절이 아플 수 있는데 어디가 아프다는 말을 안 했어요. 관공서에서 사무보조로 의자에 앉아서 서류 정리, 입력해주는 정도 일을 주로 했죠.

저 같은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이 일하기 위해서는 휴게시설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계속 일을 하는 건 안 되고, 질병의 특성을 동료들이 이해하고 어느 정도 일하고 쉴 때 눈치 안 주는 분위기, 단순한 일이라도 서로 공감할 수 있게 만성질환자들끼리 모여서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면 더 좋겠고요. 주변에서 눈치를 안 준다고 해도 우리가 눈치를 봐요. 만성질환자들은 폐, 신장 등이 안 좋기 때문에 공기나 환경적으로 깨끗하면 좋을 것 같아요.

만성질환자는 평생을 병원에 다니는데 일 하다가 아프다고 쉬면서 치료 받고, 다시 직장에 들어가려면 힘들거든요. 솔직히 건강한 사람을 쓰지 누가 아픈 사람을 쓰겠어요. 그러니까 아프다는 얘기를 안 하고 일하다 아프면 그만 두는데, 아픈 사람도 꾸준히 일을 할 수 있게끔 했으 면 좋겠어요. 솔직히 아픈 사람들이 점점 사회하고 멀어지고 우울해지거든요. 잠깐 일을 하더라도 나가게 되면 일어나서 씻고 챙기고 자기를 가꾸면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한 건강권 활동, 그러나 이미 사고나 질병으로 아픈 사람은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가 있고 사회는 이를 보장해야한다. 구진선 님의 인터뷰를 통해 아픈 사람이 살아가기에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것, 서로 다른 몸들이 살아가기 위해 가져갈 삶의 태도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기꺼이 고통의 시간을 소환해주신 구진선 님께 감사드리며, 활동기로부터 불안감을 떨쳐버릴 만큼 잠복기가 지속되길 기원한다.

[일터3월_특집3] 작은 사업장, 필요한 규제와 절실한 지원 - 경기동부 근로자건강센터 공유정옥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인터뷰 / 2021. 03

[작은 사업장의 큰 문제들]

작은 사업장, 필요한 규제와 절실한 지원

경기동부 근로자건강센터 공유정옥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인터뷰

유청희 상임활동가


규모가 큰 국내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이 책임을 부여하고 규제해 산업재해를 예방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소규모 사업장은 대부분 법조항이 적용 예외로, 법 규제의 '빈 곳'에 남아있다. 2019년 산재발생현황을 보면, 국내에서 산업재해를 입증 노동자 10만 9242명 중 8만 3678명(76.5%)이 5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이다. 산업재해는 더 많이 발생하지만, 법적 규제는 덜 받는 곳이 바로 '작은 사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환경을 만드는 데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곳이 바로 전국의 안전보건공단 산하 근로자건강센터다. 근로자건강센터는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이 연결되고 안전보건공단과 계약한 민간기관이 위탁해 센터를 운영한다.

경기도 성남시 산업공단에 위치한 경기동부 근로자건강센터에서 근무하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공유정옥님을 만났다. 공유정옥님은 센터에서 노동자들에게 건강 상담을 하고, 사업장을 방문해 위험요인을 점검하고 교육하며 사업주, 관리자, 노동자들과 만나고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과 노동자 건강권을 위해 가장 필요한 안전보건관리 활동은 무엇인지 물었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A부터 Z까지

소규모 사업장에서 산업재해가 자주 일어나니 관리를 해야 하지만, 현재 법에서는 산재 예방을 위한 규제 조항에서 소규모 사업장들을 적용 예외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물적·인적 자원 면에서 부족하다는 것이 그 근거일 수는 있지만, 이들 사업장에서 사업주들이 자발적으로 안전보건관리를 하며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정부는 이러한 사업장에 지원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경기동부 근로자건강센터에서 주로 만나는 노동자들은 누구인지, 진행하는 사업은 무엇인지 물었다.

"주로 20~30명 규모 사업장에 방문해요. 사업장에 가서 상담, 교육, 컨설팅 하면서 사업장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의사들은 건강, 작업환경, 보호구 상담을 하고 간호사 선생님들은 뇌심혈관 예방 상담을 해요. 근골격계질환 예방실에서는 운동치료, 스트레칭 가르치는 일을 하고요. 심리파트에서는 상담심리사가 감정노동 노동자들에게 교육을 하고 심리평가도 진행합니다. 사업장 다니면서 정신건강 관리 필요한 사람들이 있으면 상담을 권하기도 하고요. 산업위생기사, 직업환경팀에서 사업장 보건관리, 화학물질관리 등 컨설팅을 하고 안전보호구 지도, 위험 표지, 포스터, 스티커 제공하는 활동까지 여러 가지를 합니다. 주로 작은 공장들을 방문하는데요. 의사, 간호사, 산업위생기사 셋이 가요. 노동자 한 명씩 만나서, 건강진단 결과표 설명하고 현장 순회도 하고요. 보건관리대행 사업과 유사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산업위생기사는 작업환경 컨설팅 보고서를 보내는데, 그 후에 사업장에 재방문해서 개선하도록 권고도 합니다."

안전보건관리를 위해서 사업장에 방문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한다. 센터에서는 고용노동부 지청이나 안전보건공단 지사와 연계해 센터가 방문하는 계획을 사업장에 안내할 수 있게 한다. 특수건강검진을 진행한 곳에는 사후 관리를 위해 연락을 달라고 한 다음 신청이 오면 찾아가며, 신청이 오지 않으면 별도로 연락해 찾아가기도 한다. 공공 또는 민간어린이집 연합회가 회의를 할 때 찾아가 제안하고, 산업단지 관리공단을 통해서도 안내를 한다. 센터에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해서 사업주들이 방문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갖가지 방법을 써서 센터에서 방문할 방법을 만드는 것이다.

"센터에서 여러 방법을 써서 사업장을 찾아가지만 이런 것이 안 되는 업체들, 결국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은 답이 없어요. 법으로 강제할 수도 없는 거고요. 20인 미만 제조업에는 보건관리의무가 없으니 근로자건강센터를 통해서 안전보건관리를 받도록 법을 바꾸자는 주장도 하고 있습니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라면 무엇일까? 노동자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질환이나 회사에서 취하는 조치는 충분한지 등이 궁금했다. 또한, 작업 사업장의 노동 환경이나 안전보건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지 물었다.

"사실 사업장에 갔을 때 사업주나 공장장 같은 관리자는 거의 만나지 못해요. 상대하는 사람은 온갖 업무를 다 하는 노동자인 경우가 많죠. 상담 후 결과가 사업주에게 닿아야 하는데 잘 안 돼요. 전혀 정보가 없거나 잘못된 정보를 가진 사업주들도 있어요. 이런 곳들은 두세 달에 한 번씩 열 번 정도 만나면 수준을 올릴 수 있습니다. 이 사업장들은 학교를 가지 않았다고 할 수준이에요. 문맹이라고 할 수 있죠. 아주 기본적인 것이 제공되어야 하는데 안 되는 상황이에요. 왜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고가 나는지 알 수 있어요. 지식, 정보, 교육이 가서 닿은 적이 없으면 특출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위생을 전혀 모르고 노동자는 아프죠. 사회의 진보, 성숙 속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맹과 견주는 건데요. 문맹을 타파하기 위해 뭔가를 시도해본 적이 없었어요. 사업주는 국가가 개입하는 데 불만을 표하고요. 두세 달에 한 번씩은 가고, 일정 기간 동안 반복해서 만나고 잘 되면 졸업하는 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초 산업보건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과 사람도 많아져야 하고요."

필요한 곳에 필요한 지원을

인터뷰 내내 공유정옥님은 지속적으로 들여다보아야 많은 사업장이 안전해진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산재예방을 위해서 산업안전보건법으로 풀어내야 할 것, 법제도와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작은 사업장에 필요한 조치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진짜 문제를 풀려면 케어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A에게는 어떤 조치를, B에게는 어떤 도움을, C에게는 어떤 지원을 하는 식이어야 하죠. 전체가 다 들어오는 그림을 그려놓고 할 수 있는 곳부터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해야 해요. 이 전체 그림를 그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국에 23개 근로자건강센터가 있지만, 이걸로는 부족하고 100개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도 합니다. 또 모델을 만들어봤으면 좋겠어요. 파주의료원 같은 공공병원에서 하는 방식이나 민간기업에서 하는 건강센터도 의미 있죠. 조직된 노조에서도 시도해봤으면 해요.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안전보건공단이 하는 근로자건강센터와 다른 식으로 해봤으면 하는 거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을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3년간 적용을 유예하게 되었다. 산업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에게 이 법을 적용 유예하고 아예 적용하지 않는다는 데 어떤 문제점이 있다고 보는지 물었다.

"이 법은, 정규분포에서 계속 사업을 해서는 안 될 정도로 가장 나쁜 상황의 사업장을 걸러낼 장치라고 생각해요. 사업주의 자격을 묻는 법이라 생각합니다. 규모로 예외 두는 것에 물론 동의할 수 없고요. 산안법 처벌이 너무 약한 것도 맞아요. 분명히 처벌할 곳과 처벌이 아니라 다른 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곳들은 프레임에 안 들어온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에도 힘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기초 공부를 하게 도울까도 생각해야 합니다. 처벌밖에는 답이 없는 사업장은 처벌해서 본보기가 되게 해야 하고, 여기 전략도 필요합니다."

노동계, 정부의 과제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노조 조직률 면에서도 저조하다 보니 건강하게 일하는 것이 노동자의 권리라는 인식을 갖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노동자들에게서 가능성을 보았다면 어떤 것이 있었는지 노동계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지 물었다.

"쉽지 않은 건 맞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물꼬가 트이기도 하더라고요. 권리 주장이라기보다 '사장이 00해야 하는데 안 해', '건강진단 해준다더니 안 해준대' 이런 표현을 듣기도 하거든요. 이런 게 권리죠. 이런 인식이 보편적으로 확산되려면 계기가 필요해요. 역시 교육이 답이죠. 불만, 걱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있으면 가능한데, 그런 자리를 조직해내야죠. 돌고 돌아서 결국 노동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동자와 한 자리에 서는 운동이 같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가가기 어려워요. 노동운동, 지역운동, 계층운동 등 다양하게 만나는 시도가 있어야 해요. 그런 기회 면에서 사각지대는 고령노동자들이라고 할 수 있죠. 보편적인 권리의식도 부족하니까요. 또 노동조합에서 중년 여성 노동자들을 만나면 할 일이 많겠다는 생각도 해요."

정부는 사업장을 법으로 규제하고 근로자건강센터와 같은 방식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할 때 한 발씩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위해서 정부가 어떤 정책을 가지고 건강권을 설계해야 할까?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면, 30년을 보는 비전 세우기라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지반을 다듬으며 집을 짓지 않거든요. 일목요연하게 정비할 방법을 구상하고 체계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개별 사안이 돌아가게 해야 해요. 계속 점검해가면서 정부, 입법, 행정, 노동계같은 기구가 청사진을 따라가면서 리포트가 나오는 구조였으면 합니다. 영국은 정기 리포트를 제출하게 하고 있어요. 이걸 놓고 반대하고 요구하면서 논쟁하는 구조가 한국에도 있었으면 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안전과 건강을 보장받으려면 정부와 노동계의 역할은 백번 강조해도 부족해 보인다. 그런 한편으로, 근로자건강센터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현장에 다니고 교육할 때 작은 사업장 사업주의 인식과 노동 환경에 아주 조금 변화가 생길 거라는 게 예상되기도 한다. 그 변화, 아주 느리게 올 변화를 위해 법과 제도, 지원책이 꾸준히 모아져야 하지 않을까?

 

[일터3월_특집2] 작은 사업장의 위험에 맞선 지역 연대활동의 현재와 가능성 / 2021. 03

[작은 사업장의 큰 문제들]

작은 사업장의 위험에 맞선 지역 연대활동의 현재와 가능성

최진일 회원,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대표

세종충남 희망노조

'총체적 난국' 작은 사업장의 노동안전보건문제를 한마디로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일 것이다. 혹자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안전보건관리정책은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성공하지 못한 과제라고 말한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부분에서 문제를 끌어안고 있다.

자체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추고 예방적 조치들을 시행하기 위한 자원과 비용을 감당할 수 없으며, 고용노동부-안전보건공단-근로자건강센터의 관리감독과 지원은 263만 2955개의 작은 사업장에 쉽사리 닿지 않는다. 예방조치는커녕 산재발생에 대한 사후적 조치로서 산재보상과 재발방지대책의 수립·시행 역시 시스템 밖의 노동자들에게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이 모든 것들의 바탕이 되는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에게는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다. 작은 사업장의 위험은 시쳇말로 '노답'인 걸까?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앞서 나열한 작은사업장 안전보건관리의 한계들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우선, 작은 사업장들이 안전보건관리를 위한 자원과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은 '원래 그런 것'도 '당연한 일'도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대다수가 대기업에 다단계 하청관계로 종속되어 생산을 유지하는 이상의 수입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다.

그 때문에 노동재해에 대한 원청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법제도적 정비는 발생한 재해에 대한 사후적인 책임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예방을 위한 비용의 부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안전보건관리를 포함한 재생산비용 전체를 사회에 떠넘기는 플랫폼노동 사용자들의 문제 역시 지적되어야 한다.

둘째, 이번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리과정에서도 반복된 '영세하니까 열외'라는 궤변을 멈추고 국가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영세함을 이유로 규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영세사업장의 한계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고용노동부-안전보건공단-근로자건강센터 체계가 이를 수행하기 불가능하다면 대대적인 개편과 변화가 필요하며, 현재 진행중인 산업안전보건청 논의에 있어서도 작은 사업장의 문제는 그 중심에 놓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집단적 조직화를 통한 교섭력의 확보라는 전통적인 노동조합 조직전략에서도 소외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자기조직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들이 더 늘어나야 한다. 노동조합이든 다른 형태든 노동자들의 집단적 결사는 '권리로서의 안전'을 요구하고 행사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은 사업장의 안전보건문제는 산업구조의 문제, 정부정책의 문제, 노동운동의 체질개선의 문제 등 다분히 전국적 의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의 방향성과 조응하며 현장과 지역단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 역시 절실하다.

아직 지역에서의 노동안전보건 연대활동은 주로 중대재해, 중대산업사고에 대한 공동대응이 중심이며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운동을 통해 외연이 확장된 측면이 있을 뿐, 명확하게 작은 사업장의 문제에 주목한 활동이 진행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재사망사고의 77.2%가 작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현실이 있다. 노동조합이 조직된 사업장에서는 산별노조나 단위노조를 중심으로 대응이 이루어지는 반면 미조직 노동자들의 재해에는 지역에서의 연대활동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간의 연대활동을 작은 사업장 문제를 중심으로 평가하고 과제를 도출하는 것은 나름의 타당성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사후적 대응을 넘어 예방적 요구로

2020년 6월 쿠팡 천안물류센터의 식당노동자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인 중의 하나로 소독제와 청소용제 등의 화학물질을 마구 섞어서 사용하는 작업방식이 지목됐다. 고용노동부와의 첫 면담에서 지역의 활동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식당 및 청소노동자들의 소독제 사용이 급격히 늘어난 상황에서 사고조사와는 별개로 혼합사용의 위험을 관련 사업장에 전파하고 경보체계를 가동할 것을 요구했다. 천안지청 역시 취지에 공감하고 동의했으나 구체적인 행동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충남노동권익센터와 지역 이주노동자지원센터들이 공동으로 진행한 이주노동자실태조사 과정에서 언어적 장벽과 사업주들의 무관심으로 인한 이주노동자들의 코로나19 방역 문제가 제기되었다. 노동권익센터를 중심으로 구성된 노동단체네트워크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었고 충남도와의 협의를 통해 방역정보에 대한 다국어번역과 배포, 외국어 방역경보 문자발송 등의 대책이 발 빠르게 실행되었다.

작은 사업장에 대한 전면적인 예방조치들을 지역차원에서 구현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과제이지만, 최소한 드러난 사례들을 개념화하고 이를 통해 비슷한 문제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의 연대체가 스스로 작은 사업장의 안전보건 감시망으로서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자각과 장기적으로는 공적인 시스템이 이러한 역할을 하도록 요구하는 전망이 공유되어야 한다. 일부 지역에서 운영 중인 급성중독직업병관리체계도 비록 협소한 범위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사회에서의 의제화

세월호참사를 지나 김용균투쟁을 기점으로 생명과 안전, 노동재해의 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자리잡았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 같은 성과들이 만들어졌지만, 문제의 핵심인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위험은 지역사회 핵심의제로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방정부나 의회만을 탓할 일도 아닌 것은, 우리의 지역연대활동 역시 중대재해 대응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작은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을 강화하라는 요구 외에, 이 문제에 대해 노동지청과 지방정부에 우리가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어떤 요구를 할 것인지 충분히 준비되어있지 않다. 지역의 노동시민사회단체들 안에서부터 이 문제를 핵심적 의제로 삼고 구체적 실천과제와 요구들을 토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례로, 지역명예산업안전감독관(아래 지역명감)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충남지역에서는 2018년부터 민주노총세종충남본부의 주도로 지역명감 양성사업을 활발히 진행했다. 매년 20~30명이 위촉장을 받았지만 여전히 지역에서 이들의 활동은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사업장 출입이 보장되지 않는 한 법이 정하고 있는 지역명감들의 권한과 역할을 행사할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이다.

과거 몇몇 사고대응 과정에서 지역명감들의 참여를 보장받고 사고조사에 참여한 사례가 있지만, 현재 고용노동부는 사고조사에 있어 노동자 참여를 해당사업장으로만 제한하며 지역명감의 참여권을 사실상 부정하고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조차 출입이 되지 않는 지역명감들이 지역 내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예방활동을 벌이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각 현장에서도 지역명감의 지역적 역할과 책임에 주목하기 보다 자기 현장의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숫자를 늘리는 협소한 의미로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역명감들이 사업장 담을 넘어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기획하고, 그들이 실질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활동시간과 권한의 보장을 확대하는 투쟁들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작은 사업장 조직화와 발 맞추기

지역차원의 노동안전보건활동이 작은 사업장의 문제들에 있어 (아주 제한적인) 개별적인 사건들에 대한 (역시 제한적인) 사후적 개입에만 머물러 있는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의 주체가 되는 과정에 대한 고민이 결합되어야 한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일상적인 권리로 천명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나 활동가들이 아닌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지역노조, 공단노조 등을 비롯해 다양한 방식의 작은 사업장 조직화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최근 충남에서도 세종충남희망노조가 작은사업장 조직화를 목표로 활동을 시작했다.

작은 사업장의 위험에 맞서는 투쟁은 이러한 조직화사업과 더욱 긴밀하게 조응해야 한다. 임금과 복지 등 단위사업장의 요구를 기반으로 조직되는 전통적인 노동조합들과는 달리 업종이나 지역의 특수성에 기반해 다양한 형태의 조직전략, 교섭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작은 사업장 조직화에 있어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은 조직화의 주요한 의제로 기능하기에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해법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현실에서 풀리지 않는 사회문제가 있다면, 그 이유는 해법이 '요구'로서 구체화되지 않았거나, 요구를 발화할 '주인공'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사업장의 위험이라는 문제에 있어 아마도 지금의 우리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처지이기에, 전국적 차원의 법제도 개선투쟁만이 아니라 지역에서 다양한 주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노동안전보건활동을 더욱 촘촘히 구축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일터3월_특집1] 작은 사업장 안전보건 실태와 개선과제 / 2021.03

[작은 사업장의 큰 문제들]

작은 사업장 안전보건 실태와 개선과제

류현철/소장, 직업환경의학전문의

20년 12월 7일,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한 활동가 워크숍>이 있었다

차별과 불평등의 역사는 길고도 질기다. 왕족‧귀족과 평민‧노예라는 혈통으로, 섬기는 신과 믿음의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민족이나 인종과 피부색으로, 남성과 여성 혹은 기타의 성별로 차별해왔고 불평등을 당연시 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차별과 불평등의 양상은 달라졌지만 지속되고 있다.

중세시대 차별의 잔혹성에 비하자면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나 21세기 노동의 현장에서 차별은 만연하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노동자들은 비교적 안전 수준이 높아졌으며 어쩔 수 없이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경우에는 위험수당이라는 명목으로 금전적 보상의 수준도 높아졌다. 그러나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위험하거나 더 위험해졌으며, 위험수당은커녕 일자리를 유지하는 조건 자체가 위험 감수를 전제하기도 한다. 일터의 위험에 있어 불평등과 차별은 만연하다.

작은 사업장 일터 안전건강에서의 차별과 불평등

2020년 11월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에서는 '30인 미만 '작은사업장' 노동자 실태와 정책 대안'이라는 의미 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오늘의 전태일 보고서'라는 부제를 단 보고서는 한국 사회에서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이 처한 불평등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30인 미만 작은 사업장 수는 전체 사업체의 97.9%, 종사자 수(자영업자 포함)로는 61.1%가 작은 사업장에서 근무한다. 노동자 수는 2019년 8월 기준으로 약 58.4%가 작은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여성, 고령자, 저학력 노동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의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임금, 노동시간, 종사상 지위, 사회보험, 안전보건 등 대부분의 권리에서 차별을 겪고 있다는 것이 각종 통계와 질적 조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이는 한국의 경제적 사회적 변화과정과 맞물려 있다. 1970년대 정부 주도 하에 제조업 육성 정책을 바탕으로 해서 1980년대를 거치며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수출을 통해 성장한 대기업은 독자적 성장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는 대기업을 정점으로 하는 '하청 계열화' 방식의 동원 전략을 통해서 뒷받침되었으며 중소기업은 위계화된 하청 시스템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고 말았다. 원하청 불공정거래로 인한 기업간 격차는 확대되고 이는 결국 기업의 규모에 따른 노동자들 간의 격차로 이어지고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불평등은 일터 안전건강문제에서 더욱 적나라하다.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시설, 장비, 인력, 시술 등 자원이 소요되기 마련이나 불공정한 원하청 거래관행으로 인해 작은 사업장에는 위험관리에 따르는 자원과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터의 안전보건 수준과 관련된 요인은 위험통제와 관련된 기술력, 사업주의 의지, 정부의 규제 정책 등등 다양하지만 이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위험은 '작은'사업장에 수렴되고 증폭된다.

원하청 관계를 통해 책임 없는 위험의 이전을 통한 기업의 이윤추구를 용인해주겠다면 정부가 위험 관리의 책임을 지고 비용과 자원을 동원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기존의 정책은 위험의 방조를 선택해왔다. 불공정한 거래관행을 개선을 통한 최소한의 안전보건관리 비용을 보장해주지도 않았으며, 관련한 공공적 지원은 미미했다. 오히려 작은 사업장에게 영세성을 이유로 안전보건관리체제 구성 등의 의무를 면제해주고 소극적인 규제로 일관해왔다.

원청의 책임에 대한 법적 규정 역시 실질적으로 담고 있지 못하다. 위험을 관리할 시설과 자원에 대한 지불 부담 능력이 없는 사업주가 위험을 담보로 생산이나 영업 활동을 유지하는 것을 영세하다는 이유로, 생존권 보장이라는 이유로 용인한 결과는 노동자들의 손상과 죽음으로 귀결된다.

2019년 산재 통계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의 사망 만인율은 1.65로 전체 평균 1.08보다 1.5배 이상 높고 이는 산재 통계가 작성된 이후로 변하지 않는 양상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산재보험 대상 노동자 중 16.0%를 차지하지만 사고 재해자중 33.9%, 사고 사망자 중 35.2%를 차지한다. 떨어짐, 끼임, 부딪힘, 깔림 등 재래식 사고의 위험이 관리되지 않고 있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일수록 더 많이 다치고 죽는다.

질병재해에 있어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비율은 17.4%, 질병사망자에서는 16.6%이지만 이는 산재보상 절차와 승인에 있어서 장벽이 더 높은 질병재해의 경우에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접근성 자체가 낮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최민, 작은 사업장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과제,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한 활동가 워크숍 자료집, 2020)

이렇게 수 십년 간 변함없는 결과를 마주하면서도 작은 사업장 안전보건관리는 해결 안 되는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 예방조치는 미진하고 생색만 내는 수준으로, 작은 사업장은 위험이 상존하지만 관리 책임은 공백인 상태가 지속된다.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정에서도 작은 사업장 안전보건 문제를 대하는 제도권의 인식의 일면은 그대로 드러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 과정은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과 시민의 안전에 대한 인식수준의 성장을 반영하고 있다. 과거 압축적인 산업화와 경제성장과정에서 용인되던 노동재해에 대해 이제 기업의 책임을 따져 묻고 있으며, 특히 원청을 포함한 진짜 사장 처벌이라는 사회적 쟁점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손질된 중대재해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그 적용을 유예하고 있다. 법의 실효성의 차원을 떠나서 중대재해의 상당부분이 발생하고 있는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할 권리에 대한 가치절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적용범위의 축소를 통해서 원청이 면책되고 있는 현실의 반증인 것이다.

작은 사업장 안전보건,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먼저, 사업주의 안전보건 관리책임은 사업장의 규모와 무관하게 동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위험관리 실패의 결과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업장의 규모가 아니라 위험관리의 실패로 인해서 빚어지는 결과의 중대성에 따라 합당한 책임을 지우도록 해야 한다. 위험물을 중심으로 도급 금지 등의 관리책임을 상향할 것이 아니라 일터의 위험 관리에 소요되는 자원의 크기와 비용지불능력에 따라 관리 책임을 지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 무엇이 얼마나 왜 위험한지 알고 무엇부터 개입해야할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부차원의 제대로 된 위험성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관리는커녕 등록조차 되지 않은 작은 사업장과 노동자들을 파악해야 한다. 안전상 문제는 주로 사업장 단위의 등록이 필요하며 보건상의 문제는 경우는 노동자 단위의 관리가 필요하다. 등록의 통로는 기존의 여러 법제를 활용하고 정보 공유를 통해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화학물질 유통, 위험 기계 기구의 유통에 따라서, 기업의 서플라이 체인을 따라서, 공장설립 인허가를 통해서 등록할 수 있다.

또한 지원을 전제로 한 자발적 등록(안전보건공단의 기존 지원사업 활용)과 중대한 위험이 확인된 경우 관리와 규제를 전제로 찾아내서 등록하는 등의 다양한 통로를 활용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기존의 안전보건관련 자료와 통합하여 위험을 파악해야 한다.

이에 기반하여 개별 사업장 단위의 위험성평가가 아닌 산업생태계 전반에 대한 위험성평가가 수행되어야 한다.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상황이 아닌 구체적인 위험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며 사업장 규모 자체로서 가지는 보편적인 위험이 아닌 실제적 수준에서 고위험 우선관리 대상을 파악해야 한다.

위험관리에 소요되는 자원과 비용에 따라 원청이 책임져야 할 부분을 정해야 하며 위험관리에 필요한 기본적인 장비, 자원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는 진입장벽을 세우는 것도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산업 생태계 전반에서 원재료를 포함한 생산-유통-폐기의 전 과정에서 소요되는 안전보건관리 비용은 마진(margin)이 아니라 원가(cost)로 여겨지게 만드는 필요하다. 위험으로 이윤을 얻는 자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역할이 필수적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다.

그간 정부의 작은 사업장 지원 사업은 목적과 방향이 없는 퍼주기식 금전 지원이 대부분이었다. 사업장 규모만을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지원이나 규제를 통해서 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 커버리지 수준 등을 예측하고 개입해야 한다. 위험 관리에 필요한 조건과 자원이 미비한 작은 사업장에 대해서는 일정 수준의 지원을 통해서 관리가 가능한 경우와 불가능한 경우를 가려 지원하거나 혹은 해당 업종에서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작은 사업장의 위험관리와 노동자들의 건강관리에 대한 지원은 물론이거니와 관리 감독에 있어서도 국가, 정부, 지자체 각각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기획하고 수행할 건전한 안전보건행정조직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이 실질적 교섭과 협상력에 기반한 권리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산안법 개정으로 사업주의 안전보건관리체제 구성과 노동자의 참여 보장 의무가 규모와 무관하게 적용되는 등 형식적 권리가 획득된다고 해서 바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이 획득되는 것은 아니다.

2019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노조가입률은 4.0%로 300인 이상 사업장의 33.5%에 비해서 현저히 낮고, 2020년 민주노총에서 전략조직화 사업의 일환으로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5%만이 노동조합 조합원이라고 응답했으며 이는 2018년 한국의 노조 조직률 11.8%에 훨씬 못 미친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데 있어서 노동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노동조합 활동이 노동안전보건 수준을 높인다는 것은 학술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작은 사업장의 안전보건 문제는 실타래처럼 얽혀 쉬운 해법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해결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자연도태(?)를 기다리며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할 일을 하자. 삶과 죽음의 크기는 사업장의 규모와 무관하다.

 

[일터2월_특집3] 버스노동자들의 안정적 노동이 필수노동자 대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정홍근 본부장 인터뷰 / 2021.02

[필수노동자 대책에 노동권 보장은 필수다]

 

버스노동자들의 안정적 노동이 필수노동자 대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정홍근 본부장 인터뷰

 

유청희/상임활동가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전국민이 코로나19로 불안과 두려움을 겪어야 했다. 전염병은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에 균열을 만들었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등의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고 많은 일터가 재택근무로 업무 장소를 바꾸기도 했다. 멈춘다는 것에 우리가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멈출 수 없는 곳도, 그런 노동자도 많다. 정해진 노선을 운행하는 버스노동자들이 그렇다. 과연 이들의 시간은 어떠했을까?
  서울시 성동구를 시작으로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 조례가 제정되고, 정부와 여당이 필수노동자 지원 대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후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 조례는 전국적으로 제정되고 있다. 보건·의료, 돌봄, 교통 등의 노동자들은 시민들이 비대면으로 활동하는 시기에도 대면 노동을 하고 있고, 건강을 위협받을 수 있어 점검과 보호가 필수적이다.
  버스노동자들 중에도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들이 뉴스 기사를 통해 알려지고 간혹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는 승객을 통제하는 중에 폭행을 당했다는 뉴스가 나와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은 평소 안고 있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나게 만들기도 했는데, 이 시기 버스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 문제를 묻고, 필수노동자 지원 및 보호 대책에 반드시 담겨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의 정홍근 본부장을 만나 들어보았다.
  버스 업종은 지자체로부터 임금 등 지원을 받으면서도 회계는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지 않아 채용 비리, 횡령 등의 문제를 오랫동안 풀지 못한 채 안고 있다. 정 본부장은 버스가 이윤 창출이 아니라 공공사업으로 변화해야 함을 피력하며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완전공영제'를 제시해왔다. 이미 임금 등 상당액의 지원금을 지자체가 부담하고 있기도 하다.
  공공성을 분명히 할 때 시민들에게 필요한 곳으로, 시민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버스 노선이 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필수노동자 지원 및 보호 대책 역시 공공성이 그 핵심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정홍근 본부장

 

버스노동자의 코로나19 시기 노동

    버스노동자들은 업무 중에 많은 승객들을 대한다. 누가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예측불가능성에서 오는 불안과 두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기인한 업무상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승객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 써 달라고 요구하다가 버스기사가 폭행당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기존에도 버스노동자들의 폭행 피해는 있었던 일이지만 폭행당하는 이유가 한 가지 추가된 것이다. 이렇게 감염병은 평소 있던 위험이 더 증폭되는 원인이 되었다. 일반 시민들은 이런 뉴스를 보며 안타까움을 표하겠지만 그 일을 겪은 버스노동자는 어떨까?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가 이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가 워낙 확산세라서 처음보다는 인식이 바뀌고 완화되었죠. 힘없는 사람들의 한이랄까요. 시민들이 언론을 보면 폭행당한 버스기사 보면서 안타까워하지만 우리는 하소연 할 데가 없어요. 회사에서는 어느 회사에서 벌어졌다는 거 자체가 지자체 평가 대상이 되는 이유다 보니까 쉬쉬하고 그래도 일하라면서 달래고 끝내는 식이에요. 우리도 '내가 왜 맞아야 돼' 하는 분노는 있지만 어떻게 보면 어머니 같고 형제 같아서, 고발하고 조사받는 거 생각하면 복잡하니까 거의 '내가 운전하는 게 죄지' 하고 포기하죠.
  코로나 관련해서 위험을 줄이려면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해요. 물론 회사에서는 주5일근무제를 요구해도 6일, 7일 다 시키고 싶어 하죠. 신규채용하면 그만큼 기본금, 상여금이 다 뛰니까요. 그래서 주5일 근무제로 가야한다는 것이 우리가 주장해온 것인데,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포함되어있었으니 노사가 합의하면 12시간을 더 할 수 있었죠. 그렇게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다행히 특례업종에서 제외되어 주52시간제가 시행됐어요. 그런데 이번엔 탄력근로제로 업무시간을 늘려버렸어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노동시간이 통제되겠습니까."


'아프면 쉬라'는 공허한 외침

  필수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대면노동을 하는 버스노동자들이 안전을 보장받으려면, 감염병이 확산되는 시기 내내 정부가 전국민에게 제시했던 '아프면 집에서 쉬라'는 권고가 이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면서도 실행하기 어렵다는 모순이 버스업계에서는 코로나19 전부터 있었다. 아플 때 휴가를 내 쉬는 일은 한국의 노동자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누군가가 대신 채워야 하는 상황에서, 버스 회사들은 '쉴 권리'를 보장하기보단 어떻게 해서든 그 시간만 넘어가기를 기대하며 노동자에게 노동을 권한다.

  "법으로 연차휴가가 보장되지만, 연차를 내라고 하는 회사는 전국적으로 100개 중 10개도 안 될 겁니다. 대부분 수당으로 줘 버려요. 누군가 쉬면 그만큼 인력을 충원해야 하는데 회사입장에선 비용이 더 드는 일인거죠. 회사에서 용인 안 해줍니다. 대신 돈으로 주죠. 노사가 합의를 하면 법적 강제력이 없는 거예요. 근로기준법에 무조건 쉬라고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법으론 연차휴가를 제공해야 한다고 되어 있긴 하지만, 우리가 연차를 돈으로 받겠다고 합의된 것을 무효화할 강제력은 없어요."

  버스 업종은 장시간 노동으로 오랫동안 악명을 떨쳐 왔다. 새벽에 출근해 밤에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인 업종이다. 장시간 노동은 버스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고 스트레스 대응도 어렵게 만든다. 게다가 시내버스 노동자들은 한 번 운행을 시작하면 종점까지 가야하니 원할 때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 어렵고, 그러다 보니 방광염은 흔히들 앓는 질환이다. 허리 질환에, 사고 위험도 이들이 갖는 큰 두려움 중 하나다.
  또 너무나 자연스러우면서도 쉽게 잊혀지는 어려움이 바로 정신적 스트레스다. 아침에 담뱃갑에 십계명을 적고 마음을 다스리며 출근한다고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일을 하다보면 마음 다스리기는 요원해진다.

감염 위험에 고용 불안까지 덮치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대면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적어도 덜 위험하게 일을 하려면 마스크나 손소독제 같은 보호구는 안정적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특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버스노동자에게는 더 그렇다. 그런데 이런 충격이 올 때 쿠션 역할을 하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회사는 하지 않고 노동자가 고스란히 겪어내야만 한다.
  버스노동자들이 코로나19 확산으로 겪은 즉각적인 어려움에 대해 방역 등 회사의 안전조치, 감염 위험에 대한 보상, 유급휴가같은 보호 및 지원이 있었을까? 노동자들에게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보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완충 조치는 일어나지 않고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고 있다.

  "초기에 우리도 마스크도 제대로 지급이 안 된다는 말이 많이 공유됐습니다. 하나를 주고 며칠 쓰라는 곳도 있고요. 심지어 회사에 마스크를 요구했더니 지자체에서 안 나와서 못 준다 이런 식으로 무시당하고 노동자들 개인이 사는 경우도 많았어요. 버스노동자 폭행도, 그렇게 노동자들이 폭행당하고 언론에 나올 정도면, 경영자들이 버스노동자들 폭행한 승객에 처벌을 더 강화하라고 하는 것이 맞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요.
  코로나 때문에 생긴 변화라면 근무를 못 한다는 거죠. 운행이 감축되었으니까요. 재난 시기라서 지급된 것이 고용유지지원금인데요. 고용유지지원금이 운행감축으로 인해서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니까 국가에서 임금의 70%를 주고 유급휴가를 쓰라고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30%는 일단 회사가 지급한 뒤 지자체에 신청하면, 다시 돌려받아요. 근데 이것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지원을 하는데도 전국적으로 경영을 제대로 못 해서 노선 폐지하고 폐업하는 버스회사들이 수두룩합니다."

필수노동자에게 꼭 필요한 지원·보호 대책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노사정이 버스 격일제, 복격일제를 하루 2교대제로 변경하고 준공영제 등 운영체계 다각화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버스본부는 하루 2교대제를 환영하면서도 '완전공영제'로 나아가야한다고 입장을 냈다. 버스노동자들이 필수노동자로 그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감염병 상황에서 건강과 임금, 고용 역시 지자체와 국가 차원의 보장이 있어야 한다. 정부 및 여당의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 대책 역시 마찬가지다.

  "필수노동자 지원·보호 대책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그런데 강제사항이 없다는 점이 아쉬워요. 조례 만들고 대책 세우는 것은 좋은데, 이게 사업주들의 협조 없이는 못 한다는 것이 문제죠. 지자체장이 계획을 세운다고 한다면 '재난수준에 대해서는 지자체장이 제출하면 지원을 받고 있는 사업장은 따라야 한다'고 단정지어야 하는데,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 하고 있어요. 운행이 감축하더라도 임금을 우선 지급하라는 조항을 줘야 합니다. 그래야 조례에 대한 정의가 살아나는 거죠.
  버스노동자는 감염병에 취약하니까 민간 기업에서의 대책보다는 지자체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봐요. 지자체가 공공 영역의 버스노동자들의 휴식과 임금에 대한 불안함을 없애려면 조례에 대해서도 강제성을 두게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느 사회든지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사회가 굴러갑니다. 필수라는 건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잖아요? 파업해도 필수인력 남겨놓고 하듯이요. 그렇다면 노동자 권리를 충분히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터2월_특집2] 일상 속 재난 마주한 국제 사회, 필수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지원하고 있나? / 2021.02

[필수노동자 대책에 노동권 보장은 필수다] 

 

일상 속 재난을 마주한 국제 사회,

필수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지원하고 있나?

 

이승윤/중앙대 사회복지학

 

▲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필수노동자 논의가 전세계적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필수노동자 지원보호 대책을 마련할 때, 이 논의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재난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일상 유지를 위해 보이지 않고 있는 곳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던 노동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고요 속에서만 비로소 저음의 파동이 들리듯, 많은 이들이 일상에서 '멈춤'을 경험하자 멈추지 못하는 노동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그동안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그 노동이 사회와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는 것에 비해 저평가되어 왔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노동이 필수적 속성을 가지고 있겠지만, 특히 재난은 우리사회의 유지를 넘어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서 필수적인 노동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주로 저임금 또는 불안정한 고용관계를 경험하는 필수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그동안 이들도 목소리를 내어보았지만, 사회에서는 그다지 귀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제적으로 그리고 국내에서 필수노동에 대해 논의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여기에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와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서도 필수노동자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정부의 관심이 급격히 확대된 맥락이 있다.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필수노동자의 특징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불안정한 고용관계, 저임금 및 대면노동의 불가피성이 있다. 먼저, 국내 사례로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지자체차원의 필수노동자에 대한 연구 결과(해당 지자체의 필수노동자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돌봄노동자 중 보육교사와 요양보호사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간단하게 소개하면, 돌봄노동자는 코로나19 이전에도 '높은 노동강도 및 휴식권의 제한', '업무 스트레스와 감정노동', '높은 고용 및 소득 불안정성'을 경험하였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일반적인 노동조건 및 노동환경으로 인한 어려움이 심화된 형태로 나타났다.
  또한, 일터에서 실직, 소득감소 등의 어려움을 경험하여도 사회안전망으로도 적절하게 보호받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방문 돌봄종사자의 모호한 종사상 지위, 거리두기 조치로 인해 일감이 줄어들어 비자발적으로 경험한 실직이나 감염병에 대한 우려로 자발적으로 일을 줄이게 된 경우도 현재의 실업급여 제도와는 부정합한 측면이 나타났다. 또한, 재난 상황에서 지급되었던 한시지원금의 엄격한 소득기준 때문에 가계를 책임지기 위한 소득활동으로 필수노동을 하는 노동자는 자격기준을 상회하여 코로나19로 인한 소득감소에도 불구하고 정작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한계도 나타났다.

  이와 같은 필수노동자의 불안정성과 지역사회의 필요에 대응하여, 국내에서는 성동구 등 지자체에서 선도적으로 필수노동자 보호를 위해 조례를 제정하고 정책도입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2020년 12월에 정부는 필수노동자 지원대책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정책의 구체성과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며, 해외사례 또한 참고할 부분이 있어 보인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식품가공업, 배달업, 보건의료업과 같이 '경제활동'의 유지에 핵심적이지만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산업들은 감염병 국면에서 '필수적인(essential) 산업'으로 정의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필수노동자(key workers)'라고 설명한다.
  한편 원격 및 비대면으로 수행할 수 없는 필수적인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최전방노동자(Frontline worker)'는 전체 노동인구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보건의료 종사자, 점원, 식품가공 종사자, 건물 관리인, 농업 종사자, 트럭 기사 등을 필수노동자 범위에 포함시켰다.
  다음으로 국제노동기구(ILO)는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인간이 갖는 기본적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감염 국면의 최전방(frontline)에 있다고 언급하며, 이러한 정의에 해당하는 경제 부문을 제시하는 형태로 필수노동자를 정의한다.
  해당 경제 부문은 간호사, 의사, 시설 관련 업무(human health related work), 사회복지 관련 업무(social work), 청소 관련 업무(support work)로 요약된다. 이들은 감염병과 직접적으로 싸우며 대면 노동을 지속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 전 세계에서 1억 3천만 명의 노동자가 해당 부문의 노동자인 것으로 추산되며, 다른 주요한 특징으로 이 부문의 노동자는 약 70%가 여성인 노동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하였다.
  한편, 국제엠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보건의료 노동자(health worker)'를 "보건의료 산업에 종사하고 자격과 무관하게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노동자"로 정의하고, '필수노동자(essential worker)'는 "코로나19 감염병 시기동안 필수적인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노동자"를 의미한다.
  이는 대중교통 종사자, 환경미화원 등 공공 서비스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식료품점, 배달 서비스업 종사자 등과 같이 코로나19 감염병 상황에서 영업이 허용된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또한 포함하였다. 마지막으로 유럽연합(EU)는 봉쇄 조치를 시행한 EU의 3개 국가(스페인, 이탈리아, 독일)에서 세부 업종별 봉쇄 조치 적용 여부를 통해 각 산업의 필수적인 정도를 구분하였다.
  분석 결과, 모든 국가에서 필수적이지 않은(non-essential) 산업과 완전히 필수적인(fully essential) 산업이라는 양극단을 구성하는 업종은 유사하여, 필수적이지 않은 업종에는 관광업, 숙박업, 외식업이 있고, 완전히 필수적인 업종에는 식품 및 제약 생산업, 수도전기 등의 공익적 업종(utilities), 운송업, 의료업이 있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정리하자면, 각 기구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 대체로 공유하는 핵심적 속성은 '노동 현장에 물리적으로 나타나야만 하는 노동자', 혹은 '사회, 가구 및 개인의 기초적인 삶이 유지되는 데 있어 기본적으로 필요한 서비스와 생산품을 제공하는 노동자'로 수렴된다. 한편, 해당 용어를 사용하는 기구나 국가가 필수노동자의 어떤 속성에 보다 초점을 두는가에 따라 다른 용어가 사용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필수노동자(essential worker) 용어는 국가의 경제·사회·공공 핵심 업무를 강조하는 개념인 반면, 최전방노동자frontline worker) 용어는 대면업무의 불가피성을 보다 강조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다음으로, 해외 국가 중 미국과 캐나다의 사례를 중심으로 필수노동자 정의 및 지원 정책과 관련하여 진행된 논의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우선 미국의 국토안보부 산하의 CISA(Cybersecurity and Infrastructure Security Agency)에서 발표한 '필수 산업 분류'에 따르면, 필수노동자는 보건의료, 통신, 정보기술, 국방, 식품 및 농경, 운수, 에너지, 공공행정 등과 같이 '주요한 인프라의 지속을 위해 필수적인 운영 및 서비스를 수행하는' 광범위한 집단을 의미한다.
  연방 지원정책의 경우, 펜실베이니아, 버몬트, 루이지애나 등 3개 주는 연방 CARE act 기금을 활용하여 민간 및 공공 부문 근로자를 포함한 필수노동자에 대한 위험 부담금을 지급했다. 다른 몇몇 주에서는 연방 구호 기금을 사용하여 긴급구조원, 보건 관련 간병인과 같은 더 좁은 범위의 최전방 필수 근로자에게 위험 급여를 제공했다. 미국의 주정부별 및 연방정부별 필수노동자 관련 정책은 대부분 임금보조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많은 경우 1회성 지급으로 이루어졌다는 특징을 갖는다.
  캐나다의 경우 국세청(CRA, Canada Revenue Agency)을 통해 코로나19 판데믹 상황에 대응하여 새로운 지원정책을 추가함과 동시에 기존의 제도(고용보험)에도 관련 조항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구체적으로, 자영업자 등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지원정책, 돌봄노동자 대상 정책, 코로나19로 인해 자가격리 조치 중인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 긴급임금보조정책, 기업 대상 긴급대출제도 등이 시행되었다.
  이와 같은 캐나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필수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지원정책 중 EWSP(Essential Worker Support Program)를 살펴보면, 보건의료 및 사회서비스, 돌봄노동, 청소, 교통 및 물류, 환경미화 등의 업종을 대상으로 필수노동자 자격요건을 설정하고, 이들 중 저임금인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하는 형태로 지원을 제공하였다. 여기에서 필수노동자는 연방정부가 아닌 각 주에서 세부적인 자격요건을 결정하고 지원범위를 설정하였다. 재원은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각 주정부가 25% 보조하는 형태로 지원이 제공된다.
  필수노동자는 필수적인 서비스와 핵심 공공서비스의 공급을 위해 감염병 국면에서도 밀접 노동을 하고 있어, 해외 주요국과 국제기구 등에서 이들에 대한 지원체계가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필수노동자에 대한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문제에 아직은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다. 필수노동자는 감염병 국면 이전에도 저임금 상태와 더불어, 비공식노동인 '그림자 노동'상태로 지속되어 왔다. 위험을 감수하는 그림자 노동 없이는 현재의 비대면 소비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 '필수'노동자 지원체계에 대한 논의와 적극적인 정책확대가 필요하다.

[일터2월_특집1] 필수 노동자 지원 대책 '보호 및 지원'을 넘어 일상의 권리로 진전해야 / 2021.02

[필수노동자 대책에 노동권 보장은 필수다]

 

필수 노동자 지원 대책 '보호 및 지원'을 넘어 일상의 권리로 진전해야 

 

류현철/소장,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사스(SARS), 조류 인플루엔자, 신종 플루, 메르스에 이어 2019년 겨울 등장한 코로나바이러스는 두 번의 겨울을 거치면서도 전 세계에 맹위를 떨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는 비교적 모범적인 방역국가로 주목을 받았고, 정부도 K-방역을 치적으로 삼기에 여념이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자못 삭막한 방역 구호와 더불어서 펼쳐지는 방역 행정에 지쳐가고 있지만, 우리의 삶은 대체로 유지되고 있다.
  어떤 노동의 덕분이며 누구의 덕인가? 매일 수만 명에 대한 검사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수백 명의 확진자들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의료시스템을 지탱해 온 이들이 가장 먼저 조명 받았다.
  그들만이 아니다. 바이러스 창궐 속에 눈보라와 혹한이 몰아쳐도 필요한 것들은 여전히 문 앞까지 도달하며, 배달 음식은 식기 전에 식탁에 오른다. 휴일이나 명절에도 연로한 부모나 아픈 가족을 찾아가는 것조차 행정명령 위반의 죄가 될까 두렵지만 그들의 곁은 돌봄 노동자들이 지키고 있다. 코로나 19의 시대에 필수 노동자들이다.

필수노동자 지원 대책이 등장한 배경

  필수 노동자들의 현실은 의료인의 과로와 소진,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망, 배달 노동자 사고사망, 돌봄노동자의 감염, 콜센터 노동자들의 고위험 노출과 감염 등의 문제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초기에 코로나 방역에 실패했던 서구에서는 실업률이 치솟고 실업보험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일자리 유지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일터로 나가는 노동자들의 현실과 그들이 수행하는 노동이 통상의 이동이 멈춘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돌아보는 기사와 논문, 여러 가지 보호와 지원대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K-방역'을 해치는 빌런들을 성토하는 데 쓰는 열의에 비해 필수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진전은 더디기만 했다. 그런 와중 지난 2020년 9월 방역 성과로 반등했던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가 다시 내려앉던 정치적 상황에서, 서울 성동구 의회에서 바람직하면서도 일면 느닷없는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등장했다.
  대통령이 각별한 관심을 표명하자 노동부는 '필수 노동자 안전 및 보호 강화 대책'을 내놓았고, 필수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가 출범했다. 성동구를 필두로 2021년 1월까지 행정안전부 자치법규정보시스템에서는 23개의 광역 및 기초지자체에서 필수노동자 보호나 지원과 관련된 조례가 확인됐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는 작년 11월부터 필수노동자 보호와 지원에 관련된 4건의 법안(민형배, 김영배, 송옥주, 이해식 의원 발의안)이 올라와 있다. 정부에서는 작년 12월 14일 관계부처합동으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필수노동자 보호·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팬데믹 시대에 필수노동자 보호와 지원 대책의 대유행이다.

 

▲   코로나19가 드러낸 노동 불평등의 면면을 신중히 들여다 봐야 한다.

 

협소한 논의 지형, 지원 대책의 한계

  논의를 촉발한 지자체 조례들은 코로나19 대유행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필수노동자들을 위해 지자체가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수준이다. '필수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 두고 있는 점은 분명한 한계다. 필수노동에 종사하지만,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 노동자들이 가장 문제적임에도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법률안들은 대동소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필수 노동과 필수 노동자들에 대한 포괄적 정의,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 구체적인 필수 업종을 지정하고 기본계획·실태조사·시행계획 등을 수립할 위원회 조직구성을 담고 있고, 일부 법안에서는 추가수당 지급, 예방접종, 필수노동자 가족 돌봄서비스 등 구체적인 지원내용이나 필수노동자협회 등 당사자 조직 설립 등을 포함하고 있다.
  민형배 의원안을 제외한 3개의 안은 필수노동자를 근기법상 근로자뿐 아니라 '노무종사자'로 확장해두고 있다. 현재 소관위에 접수되어 있는 법률안들이 당장 필수노동자들에게 실효적인 보호와 지원을 가져올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사회적 논의가 입법이라는 형태로 귀결되는 상황에서 필수노동자 문제를 논의의 장으로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필수노동에서 수반되는 위험들에 대해서 국가와 정부,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가 각각 수행을 분담하고 협조해야할 사항을 큰 틀의 국가재난안전관리계획의 차원에서 조망하고 기획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비필수노동과 필수 노동의 경계는 모호하여 어떤 재난인지에 따라, 감염병이라도 유행 수준에 따라 유지해야 할 사회기능을 어떤 것으로 볼 것인지는 달라질 수 있다.
  필수노동과 필수노동자에 대한 규정과 정의를 누가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결정해야 하며, 재난 상황에 따라 재원 마련, 지원 우선순위 결정, 집행은 누가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을 제시해야한다. 필수노동자들에 대한 방역과 안전대책은 국가재난안전계획에 포함시키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 가치가 낮게 매겨져 있던 그림자 노동과 그것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논의하는 계기로서 입법과정이 아닌 '필수노동자 지원'이라는 정치적으로 매우 그럴싸해 보이는 문구에만 매달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재난 시기뿐 아니라 일상의 시기에도 지속가능한 '안전과 건강' 대책은 건너뛰고, 위험을 감수하거나 강제하게 만들 경제적 금전적 지원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필수노동자 보호·지원 대책 추진목표 및 전략. 2020년 12월 14일 관계부처 합동발표 자료 중 발췌

 

바람직한 필수노동자 정책방향은?

  작년 12월 관계부처합동으로 내놓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필수노동자 보호·지원 대책(아래 필수노동자 대책)'은 추진목표를 필수노동자 보호 및 중단 없는 필수업무 수행으로 두고 정책방향으로 코로나 19로 가중된 위험에 대해서는 필수인력 확충, 감염·산재에서 보호하고 취약한 근로여건에 대해서는 종사자 처우개선, 사회안전망 등 제도개편으로 잡았다.
  전체적 정책방향에 동의할 수 있으나 구체적 추진전략으로 제시된 총괄대책과 분야별 '맞춤형' 지원방안은 기존 고용노동부의 사업계획을 이리저리 나열해 놓고 지도와 감독을 중심으로 하는 방역대책을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맞춤형'이라는 표현은 전체 제도의 조망 속에서 적절한 부분을 찾아가는 방식이라기보다 예외적인 상황을 만들어 정책을 교란하는 방식을 일컫는 것 같기만 하다. 진행형인 코로나 시기에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노동자들은 누구이며, 위험 노출의 결과로 나타난 노동자들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지 실증적으로 살펴야만 한다.
  정부대책인 2021년에 필수노동자를 대상으로 마스크를 38억 원어치 지원하는 등 국가(공공)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더불어 한시적 조치를 넘어서서 일상적인 안전보건조치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인지 살펴야 한다. '방역조치 지도·점검 강화'라는 두루뭉술한 이야기가 아니라 요양보호사나 택배·배달노동자의 감염 예방을 위한 보호구 지급 및 보호 조치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누가 책임져야하는 것인지, 어떤 법과 규정에 따르라고 지도하고 감독할 것인지 정하고 감독해야한다.
  당장 2배 넘게 증가하는 택배물량으로 작년에만 16명의 택배기사가 과로사하고 새벽 출근과 심야 업무에 시달리는 택배노동자들에게 직종별 특화 건강진단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대책은 핵심을 빗겨나간다. 작년 12월 노동부 스스로 성수기 택배노동자들은 주6일 이상 근무가 97.3%(일주일 내내 근무 12.4%), 1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가 92.9%(14시간 이상 근무 41.6%)라는 조사를 발표했음에도 이런 살인적인 노동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 개입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작년 9월부터 연이어 정부가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내놓고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어도 기업의 이해관계를 좀처럼 넘어서지 못한다. 5인 이상 모임 금지, 각종 시설과 영업장에 대한 집합금지 행정명령 등 단호한 방역 대책이 내려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국내 50세 미만 전체 사망자수와 같은 16명의 택배기사가 과로사 했는데 택배물량을 기준으로 적정 인력을 제시하여 분류 작업을 분리하고 배치를 강제하는 행정력 동원은 왜 가능하지 않은가?

필수노동자들에게 노동권 보장은 필수다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내놓은 대책에 포함된 노동자의 안전보건 방침과 처우개선, 사회안전망의 확대에 대한 기존의 계획을 코로나 19를 계기로 국민들에게 필요성을 적극 호소하고 실현되도록 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대책 전반에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권리를 신장하고 옹호하도록 법제도를 구성해야한다는 관점은 드러나지 않는다.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복원력(resilience) 확보는 필수노동에 대한 정당한 가치 인정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과 사회안전망의 강화에서 비롯된다.
  실제 사회적 가치에 비해 현저히 저평가된 필수노동이 어떻게 정당한 대접을 받도록 할 것인가, 필수노동자들의 사회적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따져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유행의 시기 이후에 필수노동은 다시 그림자 노동, 불안정 노동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좀 더 나아가면 필수노동자라면 '노동을 해야만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 비필수노동자라면 '노동을 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 국가는 사회가 함께 나눌 책임을 살펴야 한다. 현행 법제도에서는 고용된 사업장의 규모, 고용계약의 형태나 관행에 따라 같은 일을 하는 '필수노동자' 사이에도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여부가 달라지고 결국 권리나 보호 수준에 차별이 발생한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대책에 포함된 소득기반 제도 전환을 염두에 둔 전국민 고용보험과 전속성 기준을 폐지하는 전국민 산재보험 적용은 환영할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확장이 '특고'라는 기괴한 범주를 전제로 하고 있다면 한계가 분명하다.
  5인 미만 사업장의 필수노동자, '가사사용인'으로 분류되는 돌봄 노동자, 배달·택배 특수고용직 노동자, 프리랜서 등 근로기준법의 외부에 있는 노동자들을 살펴야 한다. 21세기에는 노동관계나 고용계약의 관행도 변화하고 있다.
  근로자성의 기준을 포함하여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 등 법제도 개정을 통해서 사회적 안전망에 포섭되지 못한 노동자들을 제도 내로 포섭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 현재 사회적 권리에서 배제되어 발생하는 필수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한 포괄적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핵심적이다.
  '필수노동자 지원 법'은 그 사이 당장에는 노동자의 기본권과 건강권 관련 법제로 보호받기 어려운 필수 노동자들에 대해서 기본적인 긴급방역 및 안전보건조치, 감염 가능성이나 감염으로 인해 더 이상 '필수노동'을 수행할 수 없을 때의 대책을 강구할 근거를 마련하는 보완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
  부대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생활물류법', '사회서비스원법', '가사근로자법' 등 보완적인 법안의 제·개정에는 현장 노동자들의 현실적인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과정을 밟는 것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보호 및 지원'을 넘어서 필수 노동자들이 사회 전체의 일상성과 안전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지언정 이윤을 위해 위험을 강제 받지 않도록, 긴박한 시기의 위험수당으로서가 아니라 일상의 시기에서도 안전하고 건강할 수 있는 권리로 진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일터1월_특집3] 주 52시간제, 방송 노동의 상황은 괜찮습니까? / 2021. 01

[과로사회에서 노동존중사회로]

주 52시간제, 방송 노동의 상황은 괜찮습니까?

성상민 후원회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활동가


온갖 말도 탈도 많았지만 어찌 됐든 '주 52시간제', 엄밀하게는 '주 40시간 노동시간 상한제'가 지난 2018년 공공기관과 공기업,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올해 2021년 7월부터는 5인 이상의 사업장에 모두 적용된다. 물론 여전히 반발도 적지 않다.

2019년까지는 '장기 불황'을 이유로, 2020년부터는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퍼져 여전히 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이유로 계속 주 52시간제를 유예하거나 피해가려는 움직임이 끊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러한 소식 등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전달하는 언론을 비롯한 방송 제작 현장 전체가 노동시간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노동 시간 규제에 대응한 방송업계의 '꼼수'

애당초 방송 제작 현장은 '주 68시간제'이건 '주 52시간제'를 시행하건 별로 상관이 없던 영역이었다. 2019년 7월 전까지는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 상의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지정된 26개 업종에 '방송업'과 '영상·오디오 기록물제작 및 배급업'(방송 프로그램 제작업)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 산업'의 특성상 일률적으로 근로시간을 규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근기법의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방송업은 오랜 시간 속해 있었고,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들은 이를 이유로 정규직·비정규직·프리랜서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방송 노동자들을 마음껏 밤을 새우게 하며 일을 시킬 수가 있었다. 어차피 노동청에 진정을 넣어도 방송업의 야근과 과로를 사실상 합법적으로 보장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대응할 여지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8년 근기법이 개정되며 시대착오적이었던 '근로시간 특례업종'은 기존 26개 업종에서 5개 업종으로 대폭 축소됐다. 이와 함께 '방송업'과 '영상·오디오 기록물제작 및 배급업'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어, 오랜 시간 적용을 받지 않던 근기법 상의 근로시간 기준을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게 되었다.

▲   최규석의 만화 <송곳>의 한 장면. 방송 노동은 언제가 되어야 "코리아 스타일"이 아니라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킬 수 있을까. 역설적으로 이 작품을 드라마로 방영한 JTBC도 주 52시간제를 가장한 "꼼수"를 쓰는 상황이다.

 방송사과 외주 제작사는 이러한 '비상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개정된 근기법을 세세하게 검토한 끝에 또 다른 '꼼수'를 창안하게 되었다. 근기법 상에 있는 3개월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나 '유연근무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최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문제를 제기한 JTBC의 꼼수가 바로 이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악용이다. 방송 노동자들을 불러 모을 때는 '주 52시간제를 지켜서 촬영에 나서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계약서를 그 자리에서 바로 쓰지 않는다. 방송 제작 현장은 오랜 시간 '프로그램 촬영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것을 명목으로 방송 촬영에 투입되어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계약서를 쓰는 악습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약서를 쓰게 되면 방송 노동자들은 이상한 구석을 그제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철석같이 믿었던 '주 52시간제'는 사실 주 52시간을 3개월(12주)로 환산해 '3개월 624시간'으로 명시한 탄력적 근로시간제였으며, 이를 제외하면 일일 노동시간은 물론 주간 노동시간 제한도 없다. 이동 시간도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오로지 3개월 노동을 마치고 624시간을 넘겼으면 추가 수당을 지급한다는 조항이 전부이다.

이는 명백히 근기법을 위반하는 움직임이다. 근기법은 3개월 단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시행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나 이는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가 필요하며 설사 시행하더라도 일일 12시간, 주간 52시간을 넘길 수 없다. 허나 JTBC는 이러한 조항을 제시하고도 정작 계약서 자체는 이전처럼 근로계약서가 아닌 '프리랜서 용역계약서'로 작성해서 노동자를 속이고 제대로 된 법적 조치도 회피하려는 이중의 꼼수를 부리고 있다. 

이러한 조항으로 인해서 방송 노동자들이 2020년 많은 제보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 보내왔다. 방송사의 '주 52시간제' 약속을 혹시나 하고서 믿었다가 속았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함께. JTBC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 공문을 보내 2020년부터 자사를 통해 방송하거나, 자사가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드라마들은 모두 이러한 조항을 적용하고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 동시에 다른 방송사들은 자신들과 같은 주 52시간제도 시행하고 있지 않다면서 오히려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주장도 함께 답변에 실었다.

장시간노동 폐지 외면하는 방송업계

그러나 JTBC의 태도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JTBC의 주장을 마냥 변명이라며 무시할 수도 없는 게 우리의 씁쓸한 현실이다. JTBC의 말대로 다른 방송사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의 제작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주 52시간제에 대한 이야기나 약속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JTBC와 똑같이 방송 스태프들 대부분을 직접 고용한 노동자처럼 취급하며 일을 시키고 있지만, 이들을 법적인 노동자로 인정하는 대신 명목상 '개인 사업자'로 취급하는 프리랜서 용역 계약서만을 계속 체결하는 상황이다.

당연히 노동시간에 대한 명문화된 조항도 없다. JTBC가 근기법을 악용한 꼼수로 노동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면, 다른 방송사들은 주 52시간제의 전면 시행이나 방송업의 근로시간 특례업종 제외 조치는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이전과 똑같은 야간·장시간 노동을 그대로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일단' 지상파 방송사는 계속 노력 중이다. 2019년 6월부터 KBS·MBC·SBS 지상파 방송사 3사는 드라마 외주 제작사들의 연합체인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와 2018년 최초로 결성된 방송 스태프들의 노동조합인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그리고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함께 표준근로계약서 의무 작성과 표준임금기준 마련, 근기법상의 노동시간 준수 등을 골자로 한 4자 협의체에 참여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래대로라면 2019년 하반기에 시행이 되었어야 할 표준근로계약서를 비롯한 각종 사항은 협의체가 결성된 지 1년 반 가량이 지나도록, 2020년이 끝나가도록 여전히 합의가 끝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들은 아직 합의가 진행 중임을 이유로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서 주 52시간제의 전격적인 시행을 계속 거부하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2021년 7월부터는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서 주 52시간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되지만, 과연 올해 7월까지 4자 협의체의 합의가 끝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자신들이 '공영방송'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있는 KBS와 MBC가 정작 자신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권리 문제에 있어서는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거나 변화를 위해서 나서지 않고 있는 모습은 방송 노동이 놓인 현실을 매우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지상파 방송사들이 미적이는 가운데 JTBC는 편법적이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주 52시간제를 내세우며 노동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2020년에도 여전히 열악한 방송 노동의 상황이 방송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상 영역에도 점차 번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TV나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되는 웹드라마들은 오래전부터 노동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으며,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를 통해 방송되는 작품들도 노동 조건에서는 전혀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키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마치 최규석의 만화 <송곳>이 지금은 철수한 프랑스계 할인마트 기업 '한국까르푸'의 사례를 소재로 삼으며 프랑스 자국 내에서는 노동법을 성실히 준수하는 기업이 정작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악덕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나 징계가 부족한 국내의 현실을 악용하는 모습을 그렸듯, 똑같은 일이 방송 노동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러한 방송사들이 '무늬만 프리랜서'를 악용하여 노동자를 혹사로 밀어 넣는 만행을 가만히 보고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감독급/팀장급 스태프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은 한계가 있었지만, 이미 고용노동부는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의 드라마 제작 현장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방송 스태프 다수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바 있다. 2000년대부터 계속 이뤄진 방송 노동자 개개인의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서도 스태프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전례가 다수 있다.

이런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송사나 외주 제작사는 요지부동이다. 소송을 건 당사자만이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뒤 사측의 재판 방해로 부당하게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서 패소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세상을 떠난 CJB 청주방송 故 이재학 PD와 같은 안타까운 사례도 생기고 있다,

많이 늦었지만 2020년 12월,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 방송사 재허가 요건에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조건으로 삽입하며, 처음으로 방송사를 평가·관할하는 기준에 방송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에 대한 요소를 삽입한 바 있다. 노동 시간 문제 또한 이러한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나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와 같은 시민사회단체나 노동조합의 활발한 움직임과 꾸준한 감시, 현장 노동 문화의 개선도 동반되어야 하지만, 우선 방송 영역에 막중한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올바르게 사용해야만 할 것이다.

동시에 고용노동부나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같은 방송 노동과 유관한 부처들 간의 협력을 통해 종합적인 방송 노동 대책을 입안하기 위해 야간·장시간 노동을 비롯한 해묵은 방송 노동의 문제가 지니는 심각성을 반드시 인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다각도의 노력이 있어야 노동계가 오랜 시간 투쟁을 하여 쟁취한 '주 52시간제'가 비로소 방송 영역에서도 정착할 수 있지 않을까.

 

[일터1월_특집2] 장시간 노동 근절을 위한 과제, 포괄임금제 금지 / 2021. 01

[과로사회에서 노동존중사회로]

장시간 노동 근절을 위한 과제, 포괄임금제 금지

혜인 선전위원, 노무사


▲ 지난 2020년 11월 5일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포괄임금제 금지법" 공동발의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동자의 1주일은 휴일을 포함한 7일이며, 그 1주간 법정 근로시간은 40시간임을 명시한 개정 근로기준법(법률 제15513호, 2018. 3. 20.)이 시행된 지도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2018년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과 국가‧지방자치단체 등을 선두로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되었고, 2021년 7월 1일부터는 모든 5인 이상 사업장의 법정 근로시간은 1주 40시간이 된다.

노동시간 단축을 기조로 한 현 정부의 입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국면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노동시간단축 기조에 배치되는 일련의 노동개악도 진행 중이다. 주52시제를 정착시키겠다면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등 표면적으로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듯 보이나 실제로는 오히려 장시간 노동을 지속하도록 해주는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다.

탄력근로제 도입 등 노동개악이 장시간 노동을 심화할 수 있는 맥락의 근저에는 포괄임금제라는 오래된 제도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시간 근로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는 포괄임금제의 금지 또는 제한에 대한 목소리가 재점화되고 있다.

포괄임금제의 개념

포괄임금제는 근로기준법상 근거 없이 판례에 따라 용인된 임금 지급 방식으로 ① 기본급을 미리 산정하지 않은 채 시간 외 근로 등에 대한 제 수당을 합한 금액을 월급여액이나 일당 금액으로 정하거나("정액급제"), ② 매월 일정액을 제 수당으로 지급("정액 수당제")하기로 하는 임금지급계약(대법원 1997.4.25. 선고 95다4056판결, 대법원 1998.3.24. 선고 96다24699 판결, 대법원 19995.28. 선고 99다2881 판결 등)을 말한다.

<예시>
① 정액급제
- 1주 52시간을 근무하기로 하고, 월 급여를 200만원으로 책정
- 1일 10시간을 근무하기로 하고, 일당을 10만원으로 책정

② 정액 수당제
-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한 임금을 기본급의 20%로 책정
-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한 임금을 매월 25만원으로 책정

임금은 노동자가 실제로 근무한 시간만큼 산정하여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실제 노동 현장에서는 사용자가 임의로 노동시간(특히, 장시간 노동)을 가정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포괄임금제가 만연하다. 한국경제연구원에서 2018년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총 195개 응답기업 중 113개사(57.9%)가 포괄임금제를 도입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포괄임금제 적용 직군은 '일반 사무직' (94.7%), '영업직' (63.7%), '연구개발직' (61.1%), '비서직' (35.4%), '운전직' (29.2%), '시설관리직' (23.0%), '생산직' (13.3%), '경비직' (8.0%), 기타 (4.4%) 순으로, 포괄임금제에 포함되는 임금항목은 '연장근로 수당' (95.6%), '휴일근로 수당' (44.2%), '야간근로 수당' (32.7%), '연차휴가 미사용수당' (1.8%), '퇴직금' (0.9%), '기타' (1.8%) 순으로 나타났다. (포괄임금제 활용 기업 중 70.8%, 포괄임금제 원칙적 금지에 반대, 한국경제연구원, 2019.02.11.)

포괄임금제의 성립 및 유효 요건

포괄임금제의 성립 여부는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포괄임금제로 임금을 지급받기로 한 합의가 존재하는지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대부분의 판례는 묵시적 합의만으로도 포괄임금제 약정을 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1983. 10. 25. 선고 83도1050 판결, 대법원 1991. 4. 9. 선고 90다16245 판결 등)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포괄임금제 약정이 적법하게 성립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약정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판례가 제시한 다음의 유효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첫째,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워야 한다. 이 때,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란 '사용자의 지휘·명령 하에 있는 시간'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하며, 사업장 밖에서 장거리 운행을 하는 트랙터 트레일러 운전원(대법원 1982. 12. 28 선고 80다3120 판결), 매일 기상상황에 따라 근로시간이 달라지는 염전회사 직원(대법원 1990. 11. 27. 선고 89다카15939 판결) 등이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로 판단된 바 있다.

둘째, 노동자의 자발적인 동의가 존재해야 한다. 포괄된 제 수당을 사용자가 임의로 구성하는 등 노동자의 의사결정권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셋째, 포괄임금제 약정이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없고 제반 사정에 비추어 정당해야한다.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없다'는 것은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규정된 임금 지급 기준에 비추어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제반 사정에 비추어 정당하다'는 것은 포괄임금계약 체결 경위, 동종 업계의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부당함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유효요건을 갖추지 못한 포괄임금제 약정은 무효가 되며, 사용자는 노동자의 실 근로시간에 따른 임금을 산정한 후, 포괄임금에 포함하여 지급한 법정수당과의 차액을 노동자에게 지급해야한다.

포괄임금제의 문제점

근로시간 관점에서 포괄임금제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포괄임금제는 노동자의 시간 주권을 박탈한다. 다시 근로기준법으로 돌아가면,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이러한 근로기준법 규정의 취지는 구체적인 근로시간을 규율함으로써 노동자의 근로시간 안과 밖의 삶을 보장하는데 있다. 하지만 포괄임금제는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휴일근로 등을 사전에 예정하여 이를 임금 구성에 포함시키는 것이므로 노동자가 자신의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을 방해한다.

둘째, 포괄임금제는 노동자의 실 근로시간 측정을 어렵게 한다. 포괄임금제를 도입한 사업장에서는 노동자의 근로시간에 대한 모든 수당을 포괄하여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여기므로, 추가적인 임금 계산을 위한 근로시간을 기록하는 등의 노력을 기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사업장의 행정력 부재는 향후 노동자가 임금체불 진정을 제기할 때 뿐 만아니라 과로로 인한 업무상 재해 신청 시 상당한 불이익으로 작용한다.

포괄임금제가 이미 많은 사업장에서 관행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고, 새로운 산업의 출현으로 업무 형태가 다변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오히려 포괄임금제를 새로운 임금 산정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의도 존재한다. 그러나 적정한 근로시간 규제를 통한 노동자 보호 측면에서 포괄임금제는 "임금산정의 자유는 아주 넓게 발휘된 것인 반면에, 경제적 압력을 통한 근로시간의 제한은 거의 또는 상당한 수준으로 무력화 될 수 있는 제도"(강성태, "포괄임금제의 노동법적 검토", <노동법연구> 제26호, 서울대학교 노동법연구회, 2008, 269쪽.)다.

노동시간 자체에 대한 규제가 유연화되고, 장시간 노동이 습속처럼 배어있는 상황에서 임금 산정의 측면에서조차 노동시간을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상황을 지속해서 악화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노동시간단축을 위해선 포괄임금제 활용에 대한 제재가 중요하다. 1주 40시간 준수를 위한 노력과 더불어,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포괄임금제의 규율을 위한 입법과 행정적 조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셋째, 포괄임금제는 장시간 노동을 고착시킨다. 근로시간은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법정근로시간을 한도로 실 근로시간만큼 임금을 산정하여 지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포괄임금제는 연장·야간·휴일근로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임금 지급의 편의를 위해 탄생한 기형적 제도이므로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고 고착시키는 폐단을 만들고 있다.

 

[일터1월_특집1] 누더기가 된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지금처럼 해서 노동시간 단축 이뤄질까? / 2021.01

[과로사회에서 노동존중사회로]

누더기가 된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지금처럼 해서 노동시간 단축 이뤄질까?

박기형/상임활동가

▲ 2018년 국회에서 통과한 주52시간 근무제가 1월부터 50~299인 사업장에, 7월에는 5~49인 사업장에 시행된다. 대통령 공약으로 "노동존중 사회"를 내세우고 장시간 노동을 없애겠다고 말 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재계가 반대할 때마다 세부 규정에서 장시간 노동을 허용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은 언제쯤 사라질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주52시간 상한제가 드디어 본격 시행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20년 12월 50~299명 사업장에 대한 주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계도기간을 연말에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주52시간 이상 노동을 규제하는 근로기준법(아래 '근기법') 개정사항을 2021년부터 제대로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그간 중소규모 사업장 등에 주52시간제 도입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서 계도기간을 부여했다. 이제 당장 1월부터 50~299명 사업장에 적용되고, 7월부터 5~49명 사업장에 대한 자율적 개선지원 사업도 시행된다.

2021년 주52시간 상한제가 본격 시행되니, 드디어 장시간 노동을 해소할 길이 열렸다고 반가워해야 할까? 반갑게 맞이하기엔, 상황이 녹록지 않다. 오히려 장시간 노동 타파는 요원해 보인다.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과제들이 산적해있지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그들에게 부여한 소명을 쉽사리 내팽겨쳤다. 오히려 노동시간을 늘리고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일을 벌이고 있다. 주52시간 상한제가 본격 시행되지만, 장시간 노동 타파를 위한 여정은 더디기만 하고, 심지어 무산될 위험에 처했다.

노동존중 약속은 저버린 지 오래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진행된 노동개악을 되돌려,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야 할 의무가 그들에게 있었다. 이를 위해 노동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행정지침을 시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자신들의 약속을 저버리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는 '전태일3법', 그리고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는 사회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2020년 12월 국회에서는 근기법 개악이 이뤄졌다. 장시간 노동 구조를 유지해 자본과 기업에게 부담을 덜어주려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노력'은 주52시간 상한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계속 확인되었다. 주변 상황 악화를 노동시간 규제 완화의 핑계 삼으며 자신들이 만든 법에 예외를 계속 둘 뿐만 아니라, 미약하게나마 보장된 노동기본권조차 후퇴시켰다.

대표적인 국면들을 돌아보자. 먼저 2018년 3월 정부와 국회는 근기법을 개정해 노동자의 1주일은 휴일을 포함한 7일이며, 그 1주간 법정 근로시간은 40시간임을 명시하였다. 2018년 7월 1일부터 공공기관과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 주52시간 상한제를 먼저 시행하였다. 하지만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을 놓고 재계의 반발이 일자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시도했다. 또한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에 계도기간을 설정하고, 그 기간을 몇 차례 연장했다.

지난 2019년 8월에는 고용노동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겠다며,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조치들을 시행하였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일본의 수출규제를 "자연재해와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해 이를 수습하기 위한 연장근로를 피할 수 없는 경우"로 본다며, 관련 사업장에 '인가연장근로'를 허용했다.

기존 법제도에서는 노동시간 규제의 취지에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따른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해 이를 수습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거나 재난 등의 발생이 예상돼 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만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 해석으로 기업들은 노동부 장관 승인만 받으면 노동자들에게 무한 연장노동을 시킬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고용노동부는 탄력근로제 대상업무를 확대하는 고시와 함께 탄력근로제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법정 연장근로 한도에 구애받지 않고, 얼마를 더 일하든지 노사가 서면합의한 시간만을 일했다고 허용해준 것이다.

2020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2020년 1월 31일 고용노동부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를 규정한 근기법 시행규칙 9조를 개정했다. 2019년 8월에는 기존 법제의 해석을 유리하게 해준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이를 넘어 법제 자체를 유리하게 바꾸어주었다. 인명보호·안전확보, 돌발적 상황 수습, 업무량 폭증, 소재·부품 연구개발까지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하도록 인가 사유를 확대했다. 특별연장근로 활용 기간 또한 지난 조치에서 제한한 1년 내 90일이라는 한도를 확대하기까지 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때가 코로나19 발생 전이었다는 것이다. 2020년 7월 15일에 이르러서는 코로나19 사태를 빌미로 삼기 시작했다. 국가 위기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특별연장근로 활용 가능 기간을 한시적으로 조정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 확대를 사후적으로 정당화해주는 것에 불과했다. 역시나, 주52시간 상한제 시행 의지는 온데간데 없었다.

개악으로 열린, 장시간 불규칙 노동으로의 길

국회에서 공수처 설치를 둘러싼 대치가 격화되던 2020년 12월, 민주당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6개월 확대,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3개월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근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선진국' 유럽과 일본에서는 탄력근로제를 운용하면서도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기 위해 총노동시간을 규제하지만, 정작 한국은 탄력근로 등 변형근로 도입 시 추가적 총노동시간 제한에 대한 규정은 없었고, 최장 주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건강권 침해 우려가 있는 걸 고려해, 11시간 연속휴식시간제도도 담고 있으나, 그에 대한 해석이 1일(24시간) 단위가 아니기에 건강권 보호조치의 실효성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마저도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사항으로 뒀다. 이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자대표를 임명하는 등 근로자대표제를 악용해온 그간의 관행을 고려할 때, 법적용 제외의 길을 터준 것과 다를 바 없다.

또한 양적으로 노동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해준 것에 더해, 불규칙노동까지 확대될 위험이 커졌다. 기존 3개월 탄력근로제는 '일별' 노동시간을 합의해야 했다. 하지만 신설된 3개월 초과 사항에 대해선 '주별' 노동시간만 정하면 된다. 이를 노동자에게 2주 전까지만 알려주면 되며, 그마저도 업무량 급증 등 사유가 있으면 근로개시 전까지만 알려주면 된다. 이로 인해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시간을 예측도 할 수 없고, 결국 노동 통제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자본과 기업의 이윤 창출 압박이 노동자들을 더욱 옥죌 것이다.

여전히 강고한 포괄임금제

노동시간 자체를 규제와 더불어 임금 제도를 통해 장시간 노동 관행을 유지, 운영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동안 포괄임금제도는 사무직군, IT·게임 업계 등에서 장시간 노동을 심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현행법상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로 한정해, 명확한 노·사 합의가 있고, 노동자에 불이익이 없으며, 제반 사정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인정될 때에 유효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실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지 않은 경우에도 광범위하게 악용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무엇보다 노동자 건강 측면에서도 악영향을 미친다. 포괄임금제가 시간 외 근로를 전제하고 있으니, 노동자는 회사에서 지시하는 야간, 주말 연장근로를 거부하기 힘들어진다. 포괄임금제는 장시간 노동시간 관행을 조장하고 유지하는 요인이다. 이에 대해서도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 실현의 과제 중 하나로 초과수당 제대로 안 주는 포괄임금제를 규제하고, '눈치야근 잡는 출퇴근시간기록의무제(일명 칼퇴근법)'를 제정하고, 퇴근 후 카톡 업무지시 근절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 이 약속 또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자연스레 임금체불은 막대히 쌓여만 가고, 노동자들은 과로에 지쳐 쓰러져 죽어간다.

최근 정의당을 중심으로 포괄임금제 폐지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지만, 현실에서는 오랜 기간 불법과 편법에 기대 강고한 제도로 자리 잡았다. 근본적으로는 이를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또한 현재는 과로사 산재신청 시 실노동시간 입증 책임이 노동자에게 부과되어 있는데, 근무시간 기록의무를 져야 할 주체를 사업주로 규정하여 노동자의 산재신청을 막지 않게 해야 한다. 고용노동부 또한 포괄임금제 규제 지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단속조차 안 하고 방관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행정 집행을 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 근절, 노동존중 사회의 전제조건

문재인 정부는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 취지를 잊었는가. 노동존중 사회 실현이라는 소명을 부여받았음을 잊었는가. 21세기에도 한국은 장시간 노동이 만연해 있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인 1700시간보다 400~500시간 이상 길다.

주40시간 노동이 노동법에서 규정한 원칙이자 노동기본권 실현의 핵심임에도, 여전히 우리는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주52시간 상한제를 둘러싼 싸움에서조차 자본과 기업의 반발에 밀려, 그리고 말로만 노동존중을 외치며 정작 저들을 대변하는 정권에 속아 뒷걸음질치고 있다. 노동자·시민의 안녕을 위한, 일터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여정을 새롭게 재조직해야 할 때이다.

특집3. 노조법 개악 저지, 산별 체제와 작업장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투쟁 / 2020.12

[노동개악에 맞서자] 

 

노조법 개악 저지, 산별 체제와 작업장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투쟁 

 

이원재 / 금속노조 기획실장 

 

정부는 ILO협약과 상충되는 국내법의 해석과 적용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노조법 개정과 협약 비준 절차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작 ILO는 "법제가 완벽해지고 모든 이해당사자가 만족할 때까지 핵심 협약 비준을 미룬다면 노동권 보호 진전은 더욱 지체될 것이다"라며 신속한 협약비준을 주문하고 있다. 실제 핵심 협약은 비준 이후 1년 후부터 국제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이 이렇게까지 사회적 쟁점이 되는 것은 정부가 제출한 노동조합법 개정안 탓이다. ILO 노동헌장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협약의 비준이, 협약에 규정된 조건보다 노동자에게 유리한 조건을 보장하고 있는 법률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협약 비준에 따라 '보완 장치를 마련'하겠다며 오히려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준하기 위해 결사의 자유를 후퇴시키는 말도 안 되는 노조법 개악안을 제출했다.
   
현 노조법 개악안의 문제점
 

정부의 노조법 개악안의 문제점은 크게 네 가지이다. 하나씩 집어보자.

첫째, '종사자인 조합원'과 '비종사자인 조합원'을 나눠 놓고 비종사자 조합원의 노조활동을 제한했다.

사업장 출입과 조합활동이 제한되는 '비종사 조합원'에는 해고자 뿐만 아니라, 산별노조의 임원 및 조합원, 특수고용, 간접고용 조합원도 포함될 수 있다. 현재 대법원은 산별노조 조합원이 다른 지부·지회 사업장의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그 사업장에 출입하는 행위와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며 원청 사업장에 출입하는 것 모두 노조의 정당한 활동으로 판시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개정안에 의하면 지금까지 허용되던 노조 활동이 사용자 의사에 반해 사업장 출입시 주거침입죄, 업무방해죄로 처벌 대상이 된다. 정부는 '합리적 이유 없이 비종사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을 거부해서는 안된다'라고 안전장치를 마련했다지만 '합리적 이유' 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이다. 사용자는 당연히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산별노조 조합원, 하청업체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을 제지하고 조합활동을 방해할 것이다.

또한 노조 대의원 및 임원 자격을 종사자로 제한하고 있는데 ILO와 EU는 노조의 임원과 대의원을 종사자에 한정하는 게 결사의 자유 원칙 위반이라고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고, 노동조합의 임원과 대의원을 누구로 할지는 조합원들이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할 문제지 국가가 법으로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군사독재 시절의 악명높은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의 부활에 다름 아니다.

둘째,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연장했다.

노동조합은 임금·단체협상을 거치며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조직력과 투쟁력을 강화해간다. 그런데 현재 2년으로 되어있는 단체협약유효 기간을 3년으로 늘리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인사, 전환배치, 고용, 안전 등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의 계획수립과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법제도가 부재한 현실에서, 사용자의 일방적 횡포를 노조가 견제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사용자들이 민주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복수노조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악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수노조는 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이 3년으로 늘어나면 4년을 기다려야 교섭하자는 말을 꺼낼 수 있다. 조합원 수가 한 명이 부족했건 열 명이 부족했건 소수노조가 되면 4년 동안 식물노조가 될 수밖에 없다.

셋째, 가장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직장점거 금지이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주요업무시설이든, 주변업무시설이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점거의 범위가 직장 또는 사업장 시설의 일부분이고 사용자측의 출입이나 관리지배를 배제하지 않는 병존적인 점거인 경우에는 정당한 쟁의행위로 판결해왔다. 그런데 정부안은 아무런 근거 없이 현재 대법원 판례가 인정하는 '부분적·병존적 직장점거의 정당성'을 불이익하게 변경하여 주요업무시설에 대한 '전부 또는 일부'의 점거를 일체 금지하고 있다. ILO도 확고하게 직장점거를 정당한 쟁의행위의 한 유형으로 보장하고 있다. 정부안은 직장점거를 금지하여 노동조합의 쟁의권, 파업권을 약화시켜 달라는 사용자의 일방적인 민원사항을 그대로 수용한 것일 뿐이다.

노동부 업무매뉴얼을 보면, 주요업무시설의 예시로 호텔 로비, 병원 진료대기 공간, 백화점 통로, 사무실, 자동차 판매 및 정비와 관련된 시설 일체 등으로 적시하고 있다. 이런 곳의 일부라도 점거가 금지되면 그 공간에서 평화롭게 피켓을 들고 있을 수 있을까? 피켓팅은 가장 평화로운 쟁의행위 수단이지만, 불가피하게 공간 일부의 점유를 수반한다. 제조업 사업장 내에서 진행하는 많은 쟁의행위도 마찬가지이다.

피켓팅 뿐만 아니라 현장순회, 생산시설에 위법한 대체인력 투입 감시활동 등 현재의 일상적인 노조 활동마저 제한될 것이다. 심지어는 사업장 정문에서 노조의 선전물을 나눠주는 행위도 불법으로 규정될 수 있다. 이를 금지한다는 것은 사업장 내 쟁의행위 대부분을 제한하는 것이다. 정부안이 통과된다면 노동조합이 파업할 경우 사업장에서 쫓겨나 공원에 가서 파업 집회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안에는 ILO가 지속적‧명시적으로 권고했고, EU가 쟁점적으로 문제제기했던 사항들이 대거 누락되어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간접고용노동자의 교섭할 권리,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는 노조설립신고제도, 노조 전임자 급여 노사자율결정, 필수공익사업장 쟁의권 보장, 파업으로 인한 민·형사책임의 면제에 관한 사항도 모두 누락되어 있다.

예상되는 노조 탄압 시나리오

최근에 광주에 있는 금속노조 호원지회의 노조 탄압사례를 보면, 노조법 개악이 가져올 현장의 노조탄압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 호원지회는 올해 1월 '공장에서 인간으로 존중받고 일하고 싶다. 사측은 막말하지 마라, 욕하지 마라'라고 호소하며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그러자 회사는 즉시 기업노조를 만들고 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 탈퇴를 종용하고 간부들을 징계하고 금속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노조법 개악안이 통과도 안 됐는데, 놀랍게도 광주지법은 음향 장비를 사용한 사내집회를 금지하고, 산별노조 임원 사업장 출입을 금지하고 위반 시 1회당 위반자별 강제이행금 100만 원을 부과하는 엽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또 어용노조에만 사무실을 제공해 지회가 천막으로 설치한 '노조 임시 사무실'도 불법 시설이라며 철거하라고 판결했다.

판결 이후 호원지회는 천막 사무실을 공장쪽에서 주차장쪽으로 옮겼는데, 사측은 여기도 '사업장 시설이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이유를 대며 철거하라고 하고 있고, 판결 이후 사내집회를 했다는 이유로 지회장을 해고하고 지회 조직부장에게 정직 1개월, 사무장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또한 산별노조의 식수와 농성 물품 전달도 통제하고, '비종사자' 출입금지뿐만 아니라 '비근무자인 종사자'의 출입도 징계위원회로 회부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노조법 개악안이 실제 현장에서는 '민주노조 파괴'로 다가오고 있다.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전국에서 호원지회 사례처럼 수많은 노조파괴사업장이 생길 것이다. 정부가 노동개악 판을 깔아주면 자본이 받아서 현장에서 노조를 파괴하고 법원이 이를 정당하다고 지원하는 모양새다.

우리는 이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금속노조는 올해 임단협 교섭에서 노조법 개악에 대비한 '노동3권 보장'과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전대미문의 정세변화 속에 '감염병으로부터의 보호'를 통일요구로 교섭을 진행했다. 올해 교섭을 통해 금속 노사는 '회사는 기존 노사합의 또는 관례적으로 보장해온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 및 금속노조 간부의 사업장 내 출입과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한다'라고 합의해 법 개악을 핑계로 산별노조 간부나 해고자의 사업장 출입과 조합활동을 규제할 수 없도록 못을 박았고, '회사는 쟁의행위 중 노동조합의 회사 내 일상적인 각종 시설 이용에 협조한다. 단, 세부적인 사항은 사업장 노사가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금속노조의 올해 합의사항은 노조법 개악에 대비한 최소한의 방어 장치를 확보한 수준에 불과하고. 중앙교섭이나 지부집단교섭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신규사업장이나 소수노조 사업장은 그나마 최소한의 방어 장치조차 없다. 그래서 금속노조는 노조법 개악을 막아내기 위해 올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을 전개하면서 11월 25일 어려운 조건에서도 8만여 명의 조합원이 '노조파괴법저지! 전태일 3법쟁취'를 위한 총파업에 참여했고 대국회 압박투쟁을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한국사회의 노동시장 이중구조화(노동자 간의 임금과 고용안정성의 질적 차이 심화, 위험의 외주화 등)의 폐해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사회 양극화가 더 빠르게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가 집중되는 취약계층을 포괄하거나 대변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연대를 가능케 하는 노사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와 언론, 사용자들은 틈만 나면 노동운동이 기업별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정작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은 오히려 산업별 노조를 무력화하고 기업별 노조 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노동배제적인 한국 사회에서 사업장별로 개별화, 파편화된 교섭구조로는 양극화 해소나 사회연대가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에 고용안정성은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고 노동권은 보장되기 어려우며,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은 지켜질 수 없다. 또한 기후위기와 기술변화, 산업전환에의 대응 과정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배제되고 사용자의 일방적인 독주가 강화되고 있다.

산별체제로의 전환과 작업장 민주주의 실현

따라서 기후위기에 대한 대처와 기술 변화에의 대응이 정부와 기업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게 하려면, 노동권을 쟁취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기 위해선, 노동자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주도적·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자신의 권한과 권리를 행사할 수 있기 위한 제도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기업의 의사결정에 노동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작업장 민주주의를 확대하여야 한다. 둘째, 실질적인 산별체제 확립을 통해 작업장 민주주의가 개별 사업장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산업적인 차원에서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작업장 민주주의 확대와 산별체제 확립을 제도화될 때에야 비로소 노동조합의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되어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사회 양극화 해소의 대안적 주체로 바로 설 수 있다.

기업 내 의사결정에 대한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의 통제력을 높이는 제도적 방향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유럽에서의 공동결정제도나 이사회·감사회에 대한 참여 등을 통해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방식이 있다. 두 번째는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의 대상 범위 등을 넓혀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노조의 쟁의권을 제한하고 기업별 노사관계를 고착하는 노조법 개악안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3권 전면보장을 위한 노동법 개정안을 제출해야 한다. 노동3권을 지키는 것은 일하는 모든 노동자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특집2. ‘결사의 자유’에 관한 ILO 핵심협약 비준,무엇이 달라져야 하나 / 2020.12

[노동개악에 맞서자] 

 

 

‘결사의 자유’에 관한 ILO 핵심협약 비준,무엇이 달라져야 하나

 

 

류미경 / 민주노총 국제국장 

 

▲   11월 26일, 정부노조법개악안 반대, ILO 핵심협약 비준 촉구 노동시민종교단체 공동대책위원회 결성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약속만 수십 년째 해 온 ILO 결사의 자유 협약(결사의 자유와 단결권에 관한 협약 87호,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보호에 관한 협약 98호) 비준이 눈앞에 다가왔다. 강제노동에 관한 29호 협약까지 3개 협약 비준 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그러나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요구해온 협약 비준을 앞두고도 환영할 수가 없다. 노조할 권리를 더욱 후퇴시키는 법안이 먼저 통과되어야만 비준동의안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와 여당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의 비준과 노조법 개악이 쌍을 이룰 수 있는 것인가. 지금 국회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결사의 자유 협약, 왜 중요한가

국제노동기준은 일터에서의 기본 원칙과 권리를 규정하는 법적 도구로서 각국 노사정 대표가 모이는 ILO 총회 두 번을 거쳐 만들어진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채택된 협약은 총 190개다. 이 중에서도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철폐, 아동노동금지, 고용 직업상 차별철폐에 관한 8개 협약, 즉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의 보호), 29호(강제노동), 105호(강제노동 철폐), 100호(동등보수), 111호(고용직업상 차별 철폐), 138호(취업 최저연령), 182호(가혹한 형태의 아동노동) 8개 협약은 '기본협약(Fundamental Conventions)'으로 분류된다. 모든 회원국이 비준해야 하는 협약이다. 또 모든 회원국은 해당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더라도 ILO 회원국이라는 이유만으로 헌장에 따라 성실하게 기본 권리에 관한 원칙을 존중하고 촉진하고 실현해야 한다.

8개 기본협약은 각종 무역협정의 노동장 또는 지속가능발전 장,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기업과 인권에 관한 유엔 이행 지침>에서 각국 정부의 국제적으로 보장되는 노동기본권 준수 의무를 규정하는 원천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기본협약은 다른 모든 협약을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필수 요소라는 의미에서 '권리 실현을 가능케 하는 권리(enabling rights)'라고도 불린다. 노동시간, 임금, 사회보장, 노동안전보건, 휴일 등을 망라한 여러 국제노동기준을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단결하고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을 할 권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협약 비준의 의미

한국이 1991년 ILO에 가입한 후 역대 정부는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을 비준하겠다고 약속해왔다. 그러나 조건을 달았다.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국내 노사관계법제가 협약비준의 걸림돌이므로 법을 먼저 고친후'라야 비준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협약 비준 약속의 이행을 한없이 미루기 위한 변명이었던 이 '선입법 후비준'론은 비준 절차에 대한 큰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협약비준이 국내법이 국제기준에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점을 인증하는 절차인 양 말이다.

그러나 ILO에 따르면, 협약비준은 국내법을 협약에 부합하도록 개정하겠다고 미리 약속하는 것이고, ILO 헌장이 정한 대로 협약 이행에 관한 ILO의 감시감독절차를 수락하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협약을 비준하게 되면, 1년 후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니게 된다. 다시 말해, 협약이 국내 법체계에 통합되는 것이다. 이 1년의 기간 동안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법을 개정하면 되고, 만약 1년 내에 법 개정을 완료하지 못하면 협약이 신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개정되지 않은 법보다 우선 적용된다. 따라서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기본 인권을 국내에서도 효과적으로 적용되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국내 인권법에서 통용되는 일반원칙인 '역진금지(Non-Regression)' 원칙이다. ILO 헌장 제19조 제8호는 "어떠한 경우에도, 총회에 의한 협약이나 권고의 채택 또는 회원국에 의한 협약의 비준이 협약 또는 권고에 규정된 조건보다도 관련 근로자에게 보다 유리한 조건을 보장하고 있는 법률 판정 관습 또는 협정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인정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ILO 협약 87호 제 8조 제 2호는 "국내법은 이 협약에 규정된 보장사항을 저해하거나 저해할 목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협약 비준을 위한 법개정 절차는 현행법에 보장된 권리를 확대하는 방향이어야지 축소하는 방향일 수 없다.
   
정부법안은 협약의 취지를 반영하고 있는가
 

[제2조]
노동자와 사용자는 사전인가를 받지 아니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단체를 설립할 수 있는 권리와 그 단체의 규약에 따를 것만을 조건으로 하여 그 단체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어떠한 차별도 없이 보장받아야 한다.


87호 협약 제2조에 따르면, 단결권은 정부 당국의 양보로 베풀어진 시혜가 아니므로 노동조합의 존립이 행정당국의 기분에 따라 좌우돼서는 안 된다. 행정당국이 설립신고를 반려할 재량권을 가져서는 안 되며, 설립신고 절차에 관한 법 조항이 노동조합 단체의 설립을 지연 또는 방해하는 방식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직업, 성별, 피부색,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견해, 고용형태, 고용상 지위 등에 구애받지 않고 실업자든 해고자든 민간부문 공공부문 가리지 않고 모든 노동자가 노조를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다.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특수고용노동자·자영업자를 법 적용에서 배제(노조법 제2조 제1호),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한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제2조 제4호 라목)고 규정하고 설립신고 과정에서 조직의 구성이나 규약('근로자'가 아닌자가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 등을 행정당국이 심사할 여지를 두고 있는 제12조가 결사의 자유 원칙을 위반한다고 보고 여러 차례 개정을 권고했다.

87호 협약 비준의 선결조건으로 협약에 부합하게 법을 정비하는 것이 정부가 제출한 법안의 취지라면 위의 사항을 개정하는 내용이 우선적으로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정부가 제출한 법안에는 제2조 제1호, 제2조 제4호 라목, 제12조를 개정하는 내용이 없다. 제2조 제4호 라목에 대해서는 본문을 삭제하라는 결사의 자유 위원회의 권고와 달리 단서조항만 삭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밝힌 입법 취지와 전혀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협약의 효과적 이행과 전혀 관련이 없다.
 

[제3조]
1. 노동자단체 및 사용자단체는 그 규약과 규칙을 작성하고, 자유로이 그 대표자를 선출하며, 자체행정 및 활동에 관하여 결정하고, 사업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2. 공공당국은 이 권리를 제한하거나 또는 이 권리의 합법적인 행사를 저해하는 어떠한 간섭도 하여서는 아니된다.


협약 3조에 따르면, 노동조합 규약은 조합원들이 스스로 논의하고 채택해야 한다. 누가 조합원이 되어야 하는지는 노조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간부의 자격요건, 임기, 선출방식은 노조 스스로 정해야 하며 정부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해고자나 해당 사업장 소속이 아닌 자를 법으로 간부가 될 수 없다고 규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회의를 개최하고 이를 위해 간부들이 사업장에 출입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며 조합원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치활동과 파업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국가의 이름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공무원이거나 엄격한 의미에서 필수서비스에만 파업권을 제한할 수 있고, 비공인파업, 작업중지, 태업, 준법투쟁, 연좌파업 등 평화적이면 노동조합 단체가 사용할 수 있는 행동 수단에 본질적인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부가 제출한 법안은 어떠한가. 임원의 자격 요건을 제한한 23조에 더해 대의원의 자격 요건도 제한하는 조항을 17조에 새롭게 도입했다. 실업자와 해고자의 기업단위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대신 '종사자'와 '비종사자'를 갈라 '비종사자 조합원'에 대해서는 사업장 출입을 제한하는가 하면 타임오프 산정, 교섭대표노조 결정, 쟁의행위 찬반투표 시 조합원 수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협약에 부합하도록 법을 개정한다면서 새롭게 추가한 조항이다.

뿐만 아니다.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적 의사 표현과 단체행동 전면 금지, 정부의 노동 정책이나 정리해고에 저항하기 위한 파업은 쟁의행위 목적정당성에 위배되어 불법파업으로 규정하는 조항, 파업권이 제한되는 '필수 유지 업무'의 폭넓은 규정, 파업에 무분별하게 적용되는 업무방해죄와 손배가압류 등을 결사의 자유 원칙 위반으로 지적해왔다. 정부 법안은 이런 사항들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사업장 점거 방식의 파업을 전면 금지하는 조항을 도입했다. 역시 협약의 취지에도, 스스로 밝힌 법개정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 대목이다.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 이제 그만

이렇듯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의 행사를 촉진하기보다는 오히려 최대한 많은 제약을 가해 행사를 저해하는 노조법의 존재는 그동안 한국을 국제노총이 매년 발간하는 '글로벌 노동 권리 지수' 최하위 등급인 5등급(노동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 머물게 했다.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과 함께 이 현실은 달라져야 한다. 모든 노동자가 노조할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나라로 바뀌어야 한다.

국제적으로 인정된 기본 인권으로서 결사의 자유 원칙을 사회 전반이 규범으로서 받아들여야 하고, 노조할 권리가 제한과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자유로서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제출한 노조할 권리를 더욱 제약하는 내용이 가득한 법안은 협약의 효과적 이행에 걸림돌이 되므로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특집1. 국회 문턱 넘은 노동개악, 그에 맞선 우리의 투쟁 / 2020.12

[노동개악에 맞서자①]

 

국회 문턱 넘은 노동개악, 그에 맞선 우리의 투쟁 

 

박기형 상임활동가 

 

지난 12월 9일, 노동개악 법안들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보험료징수법 개정안, 고용보험법 개정안, 공무원노조법 개정안, 교원노조법 개정안, 근기법 개정안, 노조법 개정안, 산재보험법 개정안 등 총 7개 노동관련 법안이 처리되었다. 이 중 노동권을 제약할 독소조항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노조법 개정안은 각각 76.31%와 62.95%로 가결되었다. 민주당은 이 두 법안을 당일 새벽 1시 30분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날치기 처리하였다.

반면, 10만 국민동의청원을 받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심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몸과 삶을 지키기 위한 법은 도외시 한 채, 과로사회를 심화시키고 노동권을 제약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노동개악은 현재 진행형이다.

노동개악 국면의 지형

지금의 노동개악 시도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약속했던 '노동존중 사회 실현'과도 거리가 멀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변화의 흐름에도 역행한다.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며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지 50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노동권 보장은 미약하기만 하며, 각종 사회적 변화 가운데 새롭게 등장하는 노동형태들에 놓인 노동자들은 노동권 사각지대에 계속해서 머물고 있다. 그리고 고 문송면군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지 32년이 지났다. 그러나 오늘도 수많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일하다 아프고 다치고 죽는다.

올해 매일 7명이 퇴근하지 못하는 죽음의 일터를 멈추고 바꿔보자고, 모든 일하는 사람이 노동자로서 존중받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보자고, 노동자와 시민이 힘을 합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전태일3법을 마련하여 10만의 국민동의청원을 하였다. 코로나19가 극심한 상황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모이고 흩어지며 목소리를 내고 사회개혁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공수처법, 국정원법 등 권력기관 개혁을 우선입법과제로 내세우면서, 다른 모든 법안을 뒷전으로 밀어내었다. 며칠 전 임시국회가 열렸지만, 여전히 두 법안은 법안 심의조차 제대로 거치지 못했다. 이들은 서로 선후문제나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마치 자신들이 하는 모든 선택이 세상 모든 정의를 담보하고 있는 것인 양, 노동존중 사회를 위한 과제는 나중에 할 수 있고 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나중에, 언젠가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노동존중 사회' 실현에 역행하는 수많은 조치를 아무 거리낌 없이 통과시켰다.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와 정의당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노조법 개정 논의의 출발점

그러면서 그들은 노조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개정안을 가리켜, 'ILO 3법'이라 부르며, 국제노동기구 ILO의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것이라 주장했다. 한국은 ILO에 가입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총 29개 항만 비준했으며 핵심협약 8개 항 중 4개 항을 비준하지 않았다.

그 4개 항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결사의 자유 협약'(87호·98호)과 '강제노동 협약'(29호·105호)이다. 이 중 전자가 바로 '노조할 권리'에 해당하는 조항이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비준하지 않다가, 올해 서둘러 노조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환노위 날치기 통과를 하면서까지 비준에 나선 것인가? 더욱이 얼핏 보기에 ILO협약을 비준해 노동권을 강화시켜주는 법안에 60%가 넘는 위원들이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찬성한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선, ILO 핵심협약 비준을 누가 어떻게 요구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국은 ILO, OECD, EU로부터 이 4개 항의 비준을 지속해서 요구받았다. 그 압력이 가장 높아진 때가 바로 최근 추진 중인 EU와의 무역협상을 하던 때였다. EU는 한-EU FTA를 체결할 당시 "핵심협약 체결을 위해 노력한다"고 약속한 조항을 근거로 한국 정부에 대해 경제적 제재를 시사하며 압박을 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EU와의 경제적 관계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ILO 협약 비준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결국, ILO 3법이라 불리는 노동 관련 법률 개정안들은 애초부터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EU와의 무역갈등을 해소해, 자본과 기업을 위한 경제활동을 원활히 지속하기 위한 것이었다.

노조할 권리를 제약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법 제정의 목적이 무엇이든, 그 논의 출발이 무역갈등해소였든 아니든, 국제사회가 요구한 바는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을 비준하라는 것이었다. 해당 핵심협약의 요지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노조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의 법률 개정안은 노동권을 강화시켜주는 거란 게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 아닌가. 출발점이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괜찮지 않은가. 여기가 바로 문제의 지점이다.

ILO가 지속적으로 한국 정부에 요구해온 건 특수고용노동자, 하청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법‧제도적으로 노동3권을 온전히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노조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듣겠다며, 일견 공평무사한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정작 정부가 제출한 노조법 개정안은 이들의 노동3권을 보장하기는커녕, 부족하지만 어렵사리 지켜온 현재의 노동권들마저 후퇴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물론 공무원노조법 개정으로 가입 기준 가운데 직급 제한을 폐지하고, 교원을 제외한 교육·소방공무원 및 퇴직공무원 등의 노조 가입도 허용하도록 했다. 일부 개선된 면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정작 핵심 쟁점이었던 노조법 개정은 개악이라 비난받기에 충분했다.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도 허용했다고 하지만, ILO 핵심 협약 비준의 의미에 비춰볼 때, 너무 당연한 상식을 법으로 확인시켜주는 것에 불과했다. 기존 정부안에서는 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에 제한을 두는 등의 단서 조항을 뒀다가 비판이 거세게 일자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더욱이 실상을 들여다보면, 실업자·해고자 등은 현재 산별노조에 자유롭게 가입이 가능했었다. 그런데 기업별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라 개선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이다.

오히려 실업자·해고자 등이 사업장 내에서 노조활동을 하려면 '사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고, 실업자·해고자 등은 기업별 노조의 임원 및 대의원으로 출마하는 것 자체가 금지된다. 그나마 좋게 봐준다면, 심의 과정에서 독소조항이라고 비판받아온 '생산 주요 시설에서의 쟁의행위 금지' 조항도 제외되긴 했다. 하지만 이를 대신하여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여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의 쟁의행위 금지' 규정이 신설되었다.  

▲   올해 초중순 ILO협약 비준을 이유로 제출한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 당시 사진.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체협약 유효기간 최대 3년 연장으로 기업에서 단체협약을 지속해서 미룰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조합원만 기업별 노조의 임원·대의원을 맡을 수 있다는 조항이 남아 해고자의 임원 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등 비종사자의 노조 활동 또한 제약할 수 있다. 더욱이 현재에도 현장에서는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못한 노조는 교섭대표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 유효기간 동안 교섭도 할 수 없고, 근로시간 면제를 인정받아 조합활동을 하는 것도 공정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빈번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악안이 시행되면, 사용자와 어용노조가 담합하여 최소 4년간 교섭대표노조가 아닌 노조의 단결권, 단체교섭권에 '합법적'으로 제약을 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더구나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조항을 삭제하는 대신, 타임오프제라 불리는 근로시간 면제제도 한도 내에서 하도록 규정함으로써 해당 제도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에 더해, 타임오프 한도 초과 단협이나 기존에 개별 사용자가 동의한 내용을 모두 무효로 한다는 규정을 신설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기존 현행법을 교모하게 후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작 정부가 개정 압력을 받았던 지점인 특수고용, 간접고용,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권 보장은 제대로 이뤄지지도 못했다. 물론 배달노동, 물류·택배 노동 등에서 논란이 일자, 산재법 개정안, 보험료징수법 개정안, 고용보험법 개정안 등을 통해, 이들 노동에서의 처우 개선이 일부 이뤄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노동자로서 노동3권을 제대로 인정하도록 하진 않고 있다.

이를 위해선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노조법상의 규정과 행정관청이 노조설립 신고를 반려할 수 있는 규정을 수정 또는 삭제해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행정집행 중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을 '근로자가 아닌 자'로 보고 노조설립 신고를 반려·지체하는 일은 지금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개정안 자체에서 전혀 다루고 있지 않았다. 
 

▲   전태일 열사의 바람은 언제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한 투쟁들

노조법 개악만이 아니라, 3개월에서 6개월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근기법 개악까지 이뤄졌다. 내년부터 주52시간제가 각 사업장 규모별로 계도기간이 종료되면서 차츰 적용되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탄력근로제 도입을 통해 장시간 노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조치로 이해된다. 이런 탄력근로제의 확대는 장시간 노동에 따른 건강상 위험을 더 가중시키는 조치라고 지속해서 비판받아왔다. 한국의 과로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피를 토하며 장시간 일해야 했던 여공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국회 안팎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노동개악을 비판하며, 노동자와 시민들이 행동에서 나서고 있다. 고 김용균 노동자 2주기를 맞이했지만, 김미숙님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며 아들의 기일에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에 연대함과 동시에, 전태일3법 입법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국회 정문 앞에서 단식농성을 함께 이어가고, 구의역에서부터 국회로 오체투지 행진을 시작했다. 국회에서 노동개악이 시도되고 있던 11월 말과 12월 초에도 노동자들은 떨어져서 죽고 폭발사고로 죽고 기계에 끼여 죽고 과로로 쓰러져 죽었다.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터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기 위해선,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보장받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집단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자기 일터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 전체 노동자 집단으로 연대하여 노동권을 지켜내고 신장하기 위해선, 산별 노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요구하는 노동개악 저지, 나아가 전태일3법 입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바로 이러한 변화들을 쟁취하기 위함이다. 코로나19가 극심한 와중에도 우리는 자신이 행하는 바가 곧 정의라고 생각하는 자기승리 서사에 도취된 저들에 맞서, 전국 곳곳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한 우리의 싸움은 다시, 새롭게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