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3. 역행하는 위험의 외주화 금지 / 2019.12

역행하는 위험의 외주화 금지

 

이진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문재인정부의 노동안전보건 정책 행보

 

퇴진 촛불의 결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정책 이념과 이론이 취약한 상황에서의 인기관리를 핵심목표로 갖는 포퓰리즘적 성격이 다분하다. 노동자·시민의 생명안전과 관련 공약과 정책을 발표했으나 인기관리의 맥락에서 속도 조절을 해왔고, 최근에는 오히려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2017년 대선시기 세월호 광장에서 진행된 '대선후보 생명안전 서약식'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는 "안전 때문에 눈물짓는 국민이 단 한 명도 없게 만들겠습니다.”라고 직접 서명했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제·개정,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비롯한 생명안전 관련 공약을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대통령 자리에 오른 후 2017750회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그 어떤 것도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될 수 없다산업재해는 한 사람의 노동자만이 아니라 가족과 동료 지역공동체의 삶까지 파괴하는 사회적 재난이라고 했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 외주화는 절대 없도록 하겠다,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안전의 대상이 되도록 하겠다, 사망사고 발생하는 사업장은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모든 작업을 중지하도록 하겠다, 대형 인명사고의 경우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20178, 범부처 합동으로 '중대산업재해 예방대책'을 발표했다.

 

이어 20181, '국민생명안전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통해 사고성 산재사망 절반감소 대책을 포함했다. 이후 환경부를 비롯한 범정부 차원의 환경미화원 안전대책, 2019년 공공기관 안전관리 대책 등 각종 안전대책이 쏟아졌다.

 

그러나 임기 절반을 넘긴 문재인 정부의 공약과 대책은 휴짓조각으로 전락했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 약속을 파기했다. 오히려, 생명안전제도의 개악과 후퇴가 급속하게 추진되고 있다.

 

▲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4월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3주기 추모 '생명 존중 안전사회를 위한 대국민 약속식'에 참석해 국민안전 약속 서명을 세월호 유가족들과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 가습기 피해자에게 전달하는 모습

 

김용균이 없는 김용균법 산업안전보건법

 

고 김용균 노동자 죽음에 대한 유족과 사회적 투쟁으로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지만,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의 도급금지에는 구의역 김 군도, 태안화력의 김용균도, 조선하청 노동자도 없다. 대선 공약에서는 산업현장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제개정, 상시 유해위험작업의 사내 하도급 전면금지를 명시했다. 그러나, 정부는 도급금지의 범위를 22개 사업장으로 극단적으로 축소해서 입법 예고를 했고, 국회를 통과했다. 자본과 국회 핑계를 대던 정부는 하도급하려면 노동부 승인을 받도록 하는 도급승인조차도 4개의 화학물질 설비 해체작업으로만 한정했다.

 

건설현장에서는 해마다 600명이 사망한다. 그중 20%가 넘는 사망사고는 건설기계 장비에서 발생한다. 장비 사고 중 65% 이상은 굴삭기, 덤프, 이동식 크레인 등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노동부는 원청 책임 적용 대상으로 이들을 제외한 채 2개만 규정했다. 사고 다발 기종은 아예 빠진 것이다. 원청 책임 강화 전면 적용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하더니 하위법령에서 사무직 노동자만 사용하는 사업장은 적용을 제외했고, 사고가 다발하는 에어컨 등 전자제품, 통신 설치·수리·정비작업도 빠져있다. 법의 구멍은 실제 산재 사망사고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지난 117일 오전10시 경 경기 남양주시의 한 건물에서 통신 개통 작업을 위해 홀로 건물 외벽에서 사다리를 이용해 작업을 하던 KT협력업체 직원이 추락해 사망한 것이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KT새노조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KT서비스 남·북부에서 총 6명이 숨지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중 외주화가 진행된 KT서비스 남부의 경우 같은 기간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크게 다쳤는데, 이 중 3명이 협력사 직원으로 밝혀졌다.

 

고 김용균 노동자 죽음을 두고 더 위험의 외주화는 없어야 한다던 문재인 정부였다. 이후 진행된 특조위는 노동의 외주화가 위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하였다. ‘외주화는 노동의 불안정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불안전성을 높인다. 외주화는 고용을 외부화 할 뿐만 아니라 위험 역시 외부화한다. 이때 위험은 단순히 위험이 외부로 전가되는 것이 아니다. 위험을 동태적으로 파악하면 원-하청 관계에서 새로운 위험이 형성된다.’는 점을 규명하였고, 이로부터 위험의 외주화는 원-하청 관계에서 새롭게 구조화된 위험의 형성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발전소 비정규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특조위의 권고는 아직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와 조선업 노동자의 죽음 이후 꾸려진 사고조사위원회는 위험의 외주화가 산재사망의 주범임을 밝히고 대안을 제시했지만, 권고는 보고서 활자로만 남아있다. 대통령이 약속한 국민 참여 사고조사위원회는 조선업 산업재해 조사위원회 이후 열린 적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11월 국가인권위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명안전과 기본적인 노동인권 증진을 위해 위험의 외주화 개선 불법 파견 근절 노동 삼권 보장 등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도급 금지 작업 확대, 생명안전업무 기준 구체화, 산재보험료 원·하청 통합관리제 확대 등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내뱉은 말이 이행되지 않으니, 인권위까지 나서게 된 처참한 상황이다.

 

위험의 외주화, 자본에게 책임 물어야

 

곧 김용균 노동자의 1주기다. 위험의 외주화에 의한 죽음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111일부터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김용균 분향소를 설치하고, 다시 농성을 시작했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 김용균 특조위 권고안 이행, 비정규직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조선, 철강, 건설노동자를 비롯한 시민단체들도 18일부터 조사위원회 권고 즉각 이행 촉구, 위험의 외주화 금지·중대재해 기업 처벌을 요구하며 농성 투쟁에 나섰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가 문재인 정부의 인기영합을 위한 말 잔치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위험의 외주화는 구조화된 위험이다. 노동을 분할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원청의 책임을 지운다. 노동자와 시민의 힘으로 사회에 드러낸 위험의 외주화. 실질적이고 최종적인 사용자, 자본에 직접적인 책임을 묻자.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 시켜 노동자·시민의 생명안전을 지켜내고, 산재사망에 대한 기업과 정부 관료에게 조직적 책임을 묻기 위한 연대와 투쟁에 함께하자.

특집2.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업무상 질병 승인율 증가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 2019.12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

업무상 질병 승인율 증가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김형렬 노동시간센터,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업무상 질병 승인율 증가

 

2018년 이후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여러 정책 토론회, 보도자료를 통해 업무상 질병 인정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2018년 업무상 질병 인정률이 63%를 기록해 2017년보다 19.1%포인트 상승했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경향은 20196월까지의 승인율에서도 65%로 이어져 승인율 상승은 이어지고 있다. 각 질환별로 승인율을 살펴보면, 2016년에 비해 2017년도 승인율이 뇌심혈관계 질환은 10.6%p 상승(22.0%32.6%), 정신질환은 14.5%p 상승 (41.4%55.9%), 근골격계질환은 7.5%p 상승(54.0%61.5%), 직업성 암은 2.6%p 상승했다(58.8%61.4%).

 

고용노동부의 뇌혈관질병 또는 심장질병 및 근골격계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뇌심혈관계질병 인정기준)’ 고시 개선이 일정한 역할을 했다. 노동부는 20181월 개정한 고시를 시행하여 평균 업무시간이 주 60시간이 안 되고 52시간에 미달해도 교대근무, 해외 출장, 책임의 증가, 높은 육체 강도 업무, 휴일 부족 등 질적인 요소를 반영하여 과로 기준을 정하고, 이를 업무상 질병을 판정하는 데 활용하도록 했다. 또한 추정의 원칙을 만들어 작업(노출)기간·노출량 등에 대한 인정기준을 충족할 경우 반증이 없는 한 해당 사례를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사례를 만들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암, 희귀 질병, 특정 직종의 근골격계질환 등에서 이와 같은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었다.

 

 

구분

2014

2015

2016

2017

승인

승인

승인

승인

승인

승인

승인

승인

직업성암

215

86

129

188

92

96

228

134

94

303

190

113

 

(40.0)

(60.0)

 

(48.9)

(51.1)

 

(58.8)

(41.2)

 

(61.4)

(37.3)

<> 직업성 암 신청, 승인율 변화

 

 

산재 신청 증가했나?

 

2018년 산재신청 건수는 128576건으로 2017년에 비해 24860(21.9%p) 늘었다. 출퇴근 중 사고를 산재보상 대상으로 확대하고, 노동자가 사업주의 확인 없이도 산재보상을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는 등의 노력이 있었다. 최근에는 병원에서 산재요양 신청서를 작성해주지 않을 경우, 진단서만으로도 산재신청이 가능하도록 변경되었다. 여전히 많은 병원의 의사가 산재요양 신청서를 작성해주지 않아 노동자들이 산재신청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산재요양 신청서는 업무관련성을 평가하는 서류가 아니라, 해당 병원에서 해당 상병으로 진료를 받고 있음을 써주는 것인데, 이에 관해 부담을 느끼거나 귀찮은 이유로 써주지 않는다.

 

애초에 산재요양 신청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환자의 신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치의나 자문의사의 판단으로 산재절차가 밟아질 수 있어야 한다. 20% 이상 신청 건수가 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재해율은 1%를 넘지 않고 있다. 독일, 캐나다 등이 3% 수준임을 생각하면, 신청하지 않는 재해, 질병이 아직도 너무 많다. 산재신청을 늘리기 위해서는 신청과 승인절차를 더 간소화하고, 산재신청에 따른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이 뒤따라야 하고, 산재요양의 질을 개선하고, 작업 복귀 프로그램이 강화되는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

 

신속한 처리 이루어지고 있나?

 

산재보험제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신속하고 공정한 보상이다. 그러나 업무상 질병에 대한 산재신청과 절차가 진행되는 기간은 신속성과는 거리가 멀다. 2018년 근로복지공단은 16건의 업무상 질병 사건을 처리했고, 이들의 평균 처리기한은 166.8(근골격계질환 108.7, 뇌심혈관계질환 103, 직업성 암 341, 정신질환 179일 등)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산재신청을 한 노동자는 자신의 병이 직업병으로 승인되기 전에는 치료에 소극적이다. 치료가 늦어지면 병이 잘 낫지 않을 것이고, 산재 노동자의 복귀는 더 늦어진다. 장애가 남을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보험자의 입장에서도 손해다. 몇 가지 조치는 당장이라도 시행할 필요가 있다. 주치의와 공단 자문의 소견이 업무관련성이 높다라고 판단하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를 거치지 않고 바로 승인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단계적으로 2주 혹은 4주 이내 요양 기간의 질병부터 실시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직업성 암은 당연 인정기준을 확대하여 그동안 직업성 암으로 인정된 유사 사례를 정리하여 전문조사 없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바로 판단하거나, 장기적으로는 자문의사에 의해 바로 판단이 내려질 필요가 있다.

 

정신질환 직업병 인정, 여전히 어렵다

 

최근 5년간 업무상 정신질환으로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는 2014137, 2015165, 2016183, 2017213, 2018268명으로 총 966명이다. 이 중 산재 승인을 받은 것은 총 522건으로 승인율은 약 54%에 불과했다. 아직 정신질환은 산재신청도 적고, 업무상 질병 판정에서도 개인 요인의 영향을 크게 보는 경향이 있다. 정신질환으로 확진된 사례라면 환경요인과 관리 요인을 중심으로 업무관련성 판단이 이루어져야 하고, 산재신청과 승인 사례가 늘고 (특히 사망 사건), 예방 노력도 이어져야 한다.

 

지역별 승인율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6개 지역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주요 질병에 대한 승인율의 차이가 현저히 드러났다. 근골격계질환 산재판정 결과는 평균 승인율이 최저 60.4%에서 최고 86.7%까지 편차가 컸다. 지역별로 업무관련성이 높거나 낮은 질병만 신청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직업병을 인정하는 위원회의 판단 절차와 과정, 인정하는 기준의 차이가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지역별 위원회의 위원장이 갖는 역할도 매우 중요하고, 위원들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구성의 변화 또한 필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비롯한 업무상질병판정을 위한 여러 심의회의 체계상 변화가 필요하다. 그 중 임상의사는 업무관련성을 평가하는 심의회에 참여하기보다는 업무관련성평가에서 상병을 명확히 확인하는 과정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즉 심의 전 단계에 참여하는 것이 적절하고, 업무관련성을 평가하는 것은 법률적 판단, 사회적 판단 중심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심의마다 다뤄지는 건수를 제한하여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위원회별로 구성 위원 수를 줄여 (현행 7명에서 4~5명 수준), 위원회를 늘리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예방에 중점을 두고 정책이 입안·시행되어야

 

산재로 승인받는 것보다 질병이 걸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과로사 문제는 노동시간 단축의 제도 변화로 이어져야 하고, 근골격계질환의 문제는 인간공학적인 작업환경 개선으로, 정신질환은 과로, 직장 내 괴롭힘, 폭력, 감정노동 등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 정책들이 뒤따라야 한다.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와같은 노동정책의 변화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우려스러운 행보가 이루어지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무력화시키는 탄력근로제 확대, 300인 미만 사업장 주 52시간 상한제 실질적 유예, 특별근로허용제 도입 등 장시간 노동 사회로 회귀하는 정책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주40시간 법정근로시간 조차 무력화 시키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돌아봐야할까. 이처럼 오히려 예방이 아니라 직업병을 늘리는 정책이 시도되고 있다.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 모든 일하는 이들의 건강할 권리가 보장되고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정부가 취한 방향이라고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노동안전보건정책의 방향은 어디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특집1. 산재사망사고 절반 줄이기,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 2019.12

산재사망사고 절반 줄이기,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최민 상임활동가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2022년까지 자살 예방, 교통안전, 산업안전 등 ‘3대 분야 사망 절반 줄이기를 목표로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집중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에 따라 총리실 주도로 관계부처가 함께 하는 자살 예방 국가행동 계획, 교통안전 종합대책, 산업재해 사망사고 감소대책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집행을 시작한 지 2년이 다 돼 간다.

 

산재 사망사고 감소 대책을 노동부만의 과제가 아니라 범정부적 차원의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고, 산재 사망을 줄이기 위해 여러 부처가 공동의 행보를 시작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예를 들어 국토교통부는 10월 사고사망자가 발생한 6개 대형 건설사 현장을 집중적으로 점검하는 '징벌적 현장 점검'12월부터 특별 점검 형태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건설사에 영향력이 큰 국토교통부의 감독이 노동부의 부족한 관리, 감독 인력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넘어 건설 현장을 바꾸는 지렛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아직 산재 사망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지는 않고 있다. 현재 정부의 접근 방식만으로, 2022년까지 산재 사망 사고를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든다.

 

더디게 줄어드는 산재사망사고, 건설업은 오히려 증가

 

2018년부터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정부에서는 2018년 사고사망만인율 8% 감소를 목표로 제시했지만, 2018년 사고사망자 수는 971명으로 2017964명보다 더 증가했다. 노동부는 산재보험 적용이 확대되어 산재로 인정되는 사고 사망이 증가했고(10), 이전 년에도 사망했지만 유족급여를 뒤늦게 받은 경우가 포함돼 있다고 해명했지만, 궁색했다.

2019년은 2018년보다는 사고 사망이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 3/4분기 산업재해 발생 현황이 발표되지 않았지만(12월 발표 예정), 상반기까지의 현황을 보면, 20196월말까지 사고사망자수는 465명으로 2018년 상반기보다 38명이 감소해 7.6%의 감소율을 보였다. 사고사망만인율은 0.25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02p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줄긴 했지만, 인상적인 수준은 아니다.

구분

2018.

16

2019.

1~6

증감

 

증감률

ㅇ 사망자수

1,073

1,115

42

3.9

- 사고 사망자수

503

465

-38

-7.6

- 질병 사망자수

570

650

80

14.0

ㅇ 사망만인율

0.58

0.60

0.02

3.4

- 사고 사망만인율

0.27

0.25

-0.02

-7.4

- 질병 사망만인율

0.31

0.35

0.04

12.9

ㅇ 건설업 사고사망자수

235

229

-6

-2.6

ㅇ 건설업 사고사망만인율

0.86

0.97

0.11

12.8

 

게다가 안전보건공단과 노동부가 전력 집중하고 있는 건설업의 사고 사망자는 여전히 전체 사고 사망의 49.2%229명이나 됐다. 2018년 상반기보다 6명 줄었을 뿐이다. 2.6% 감소해서, 전체 사고 사망자수 증감율보다 낮다. 산재보험 대상 건설업 노동자 수가 줄어, 사고사망만인율은 오히려 증가했다. 2018년 상반기 건설업 노동자 사망만인율은 0.86, 2018년 전체 건설업 노동자 사망만인율은 1.65, 2019년 상반기 건설업 노동자 사망만인율은 0.97이다. 2018년 전체 사고사망의 49.9%가 건설업에서 발생했는데, 그 비율도 큰 변화가 없다.

 

사고 유형으로 보면 떨어짐 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184(39.6%)으로 여전히 가장 많다. 2018년 상반기에는 떨어짐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173명으로 34.4%였고, 2018년 전체를 통틀어 보면 376명으로 38.7%였다. 떨어짐 재해가 오히려 소폭 늘어나고 있으며 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아직 각 업종 내에서 사고 유형이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자세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산재 사망사고가 매우 더딘 속도로 감소하고 있을 뿐이며, 그 효과 역시 정부가 자신 있게 집중했던 건설 현장, 추락사고 예방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연말에 발행할 ‘2018년도 산업재해분석에서는 2018년부터 해온 추락사고 예방 중심, 건설업 안전 비계 설치 중심의 사고사망재해 예방활동에 대한 중간 점검과 진지한 평가가 제출되어야 한다. 건설업에서 추락사고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그 효과는 어떤 규모의 건설 현장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는지, 아직 뚜렷하지는 않지만 이런 예방 활동이 앞으로 성과를 거두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지 등이 제대로 논의돼야 한다.

▲ 지난 11월22일에 '문재인정권 생명안전제도개악분쇄!건설산업연맹, 공공운수노조, 금속노조 투쟁 결의대회'가 개최됐다.

노동자 단속 대신 권한과 책임 있는 자를 찾아라

안전비계를 지원하여 사망사고를 줄인다는 것은 매우 좁은 목표를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기술적인 접근이다. 사고 사망이 매우 높은 한국 상황에서는 이런 접근이 효과를 일부 발휘하기를 기대했을 수 있다. 그런데도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는 단순한 인적 오류가 아니라 기업의 안전 문화부재 및 시스템 실패와 관련성이 높다는 최근의 연구를 고려한다면, 실제로 지금까지 2년 동안 정부의 산재 사망 사고 감축 정책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근본적 인식 변화 없이, 지금처럼 얼마 안 되는 행정력을 특정 업종에 총동원해 따라다니는 방식으로는 절대 사망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예를 들어, 원청이나 실사용주의 책임성 강화, 실질적 경영 책임자에게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 부여, 안전에 최상위 가치를 부여한다는 기업들의 명시적 선언과 이에 걸맞은 실천 등이 사망사고를 줄이는 데 더 시급한 일일 수 있다. 안전공단에서 2018년 제출했던 또 다른 목표 중 하나가 산업현장에서 권한과 책임 있는 자가 산업안전보건의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던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기술적 접근 외에 이런 거시적인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 것이며, 얼마나 추진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업주는커녕, 노동부 자신도 이런 시각을 제대로 장착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 1121일 고용노동부와 경찰청은 이륜차 안전운행 및 사고 예방을 위한 홍보 및 단속이라는 보도 자료를 냈다. 최근 3년간(’16’18) 이륜차 가해 사고로 연평균 보행자 31명이 사망하고 3,630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연평균 812명의 이륜차 탑승자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특히 이륜차 탑승자 중 배달 종사자가 많아 이륜차 사고 예방은 교통안전과 산재사망사고 줄이기 측면에서 모두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정부가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운전자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121일부터는 이륜차 사고가 잦은 곳과 상습 법규 위반지역에서 고위험 위반행위를 암행 단속하고, 난폭운전 등에 대한 기획 수사도 추진한다고 한다. 국민이 좀 더 편리하게 공익 신고할 수 있도록 스마트 국민제보앱 화면에 이륜차 신고 항목을 별도로 신설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으로 산재 사고를 노동자의 불안전 행동 탓으로 보는 접근이다. 배달 종사자들이 왜 난폭운전을 하는지 들여다보고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사고는 줄지 않는다. 노동자의 위험 행동과 단속사이에 숨바꼭질만 벌어질 뿐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라이더를 직접 고용하고 고정급이 보장되면 훨씬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안전배달료등을 도입해서 배달 단가를 높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서울신문, 2019.11.21.) 배달뿐 아니라, 플랫폼 노동 등의 이름으로 고용 관계를 넘어서는 노동력이 점점 증가하고, 정부는 이들의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할 대책을 내놓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위험은 여러 형태로 증가할 뿐이다.

 

노동 정책 전반이 변해야 산재 사망 줄어든다

 

그런 점에서 산재사망 사고를 줄이기 위한 대책은, 임금과 고용 등 노동정책 전반에서 함께 고민돼야 한다. 하지만 산재사망 사고를 줄여야 한다는 정부의 노동정책 전반은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201812월 김용균 노동자의 사고 이후 석탄화력발전소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에서는 다단계 고용 구조 자체가 책임의 공백을 낳고, 새로운 위험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설비 개선은 이루어지고 있어도 약속했던 발전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는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다. 구의역 사고와 태안화력발전소 사고에서 위험의 외주화가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대안으로 직접 고용이 제안되었지만,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계획은 여전히 자회사를 통한 간접 고용 중심이다.

 

201910월에도 선로 보수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철도노조는 32교대에서 42교대로 전환하고, 안전인력을 충원하라며 파업을 진행했고 지난 1125일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측과 잠정합의하였다. 당시 코레일 사측에서도 최소한 1,800명 이상은 충원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기획재정부에서는 정부 예산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회사 측 주장마저 수용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아쉽게도 노조 핵심 요구안이었던 인력충원에 대한 확답을 이끌지 못해 과제로 남았다.

 

매년 반복되고 있는 이주노동자 사망 사고도 마찬가지다. 이주노동자는 언어, 문화 등의 이유로 산재 사고 고위험군이 되기 쉽다. 고용허가제로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사업주에게,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와 흔한 사고예방을 위해 반드시 취해야 할 조치 등을 교육해야 한다. 지금은 입국한 노동자가 산업안전보건 교육을 받을 뿐, 사업주들은 관련 교육을 받을 의무가 없다. 사업주들에게는 외국인고용관리 교육을 실시하며 그 내용은 주로 고용허가제, 출입국관리법, 외국인근로자 노무관리기법 등이다. 산재 발생이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발생 시 고용 허가를 취소하는 등의 제재도 없다. 이런 제도를 그대로 두고, 개별 사업장 교육과 감독으로 2018135, 20196월까지 42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하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산재 사망사고 줄이는 것을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산업안전보건정책뿐 아니라 고용, 임금 등 노동 정책 전반을 바꿔야 한다. 지난 수십 년을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은 뒷전인 채로 경영을 하고, 이윤을 남겨 온 세상이다. 전 사회적으로 노동자 권리가 증진되고, 노동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과정을 통해서만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이 지켜질 수 있다.

 

산재사망사고는 그 사회 노동권의 수준과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존중정책이라던 약속을 모두 버리고, 유예하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줄어들길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정부는 노동자, 노동조합에 더 적극적으로 손 내밀어야 한다. 주체들의 안전보건활동 참여가 행정력의 공백을 메우고, 현장의 문화를 바꿀 것이다. 건설노조에서 얼마 전부터 국토교통부와 함께 현장안전점검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법적 근거도 없고, 큰 현장 중심의 소수 현장에, 예고한 날에만 방문하고 있다. 더 많은 노동자, 노동조합이 이렇게 사업장을 수시로 드나들며 명예산업안전감독관으로 현장을 바꾸고, 위험하다 싶으면 멈출 수 있을 때야 사망사고가 줄어들 것이다. 노동권을 키우고, 노동인권을 보장하는 정책이 산재 사망사고를 예방하는 정책이다.

 

특집3. 노동자 건강 불평등, 노동조합의 참여로 시작하기 / 2019.11

노동자 건강 불평등, 노동조합의 참여로 시작하기

[인터뷰]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유청희 노동안전보건부장

 

나래 상임활동가

 

유령에서 인간으로!’라는 울림 넘치는 구호를 외치는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어떤 환경과 조건이 그들을 유령으로 만들었고, 스스로 인간임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을까. 또 차별과 불평등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활에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라는 고민에서 인터뷰를 기획했다. 지난 1031일 노조 회의실에서 유청희 노동안전보건부장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이날은 노동개악과 탄력근로제 저지를 위한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있었던 날이기도 했다.

유청희 노동안전보건부장은 노조 활동을 시작하기 전 회사에도 다니고 이주노동자 한국어 자원봉사도 하는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이주노동자 자원 활동은 그에게 차별, 불평등에 대해 곱씹어볼 수밖에 없는 소중한 경험이기도 했다. 현재는 전국교육공무직본부에서 노동안전보건활동을 전담하고 있다. 1년 반 동안 해온 활동들을 돌이켜 보면 폭풍 같은 시간이기도 했지만, 하루하루 쉽지 않았다며 지난날을 되새겼다.

 

비정규직 양산하는 학교의 실상

 

전국에 약 40만 명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기 전까지 학교엔 비정규직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왜냐면 학교라는 곳은 당연히(?) ‘평등이라는 가치를 가르치고 직접 실현하는 공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 어느 공공기관보다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고 있었다.

 

“직종이 매우 많다. 최소 잡아도 20~30개 정도다. 세부적으로 나눠 잡으면 100개 이상으로 잡기도 한다. 언뜻 생각하면 학교에 교사만 떠올리기 쉽지만, 비정규직 노동자 직종이 이렇게 많다. 거기에 지역마다 명칭이나 처우도 각기 다르다 보니 100개 이상까지 나오는 것이다.”

 

올해는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창립 10주년을 맞이한 해이기도 하다. 2009우리는 유령이 아니다를 외치며 학교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냈고, 그동안 부당함을 이야기하지 못했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란 조직으로 뭉친 것이다. ‘모든 학교비정규직을 교육공무직으로! 노동존중 평등학교, 비정규직 없는 세상으로! 평등하고 차별 없는 학교 만들기! 아프지 않고 일할 권리, 안전하고 건강한 학교를!’은 노조 창립부터 지금까지 노동조합의 핵심적 요구이며 동시에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이 요구는 노조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고, 노조가 존재하는 이유 그 자체다. 우리 노조뿐만 아니라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침 오늘 인티뷰를 준비하면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다들 분노에 차서 이야기했다. 교사의 경우 방학 중 임금이 당연히 나오지만,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방학 중 근무가 없어 임금이 나오지 않고, 이 때문에 생계에 어려움도 겪는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방학 중 최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방학 중 근무가 없어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는 급식실 조리사와 조리원, 특수교육 실무사, 교무 실무사, 전산 실무사 등 10개 직종 안팎에 이른다. 전체 학교 비정규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규모임에도 이들의 처우 개선은 여전히 더디다. 방학 중에 생계를 위한 일을 하고 싶어도 학교장에게 겸직허락을 얻어야 하는 데 쉬운 일이 아니다. 고용과 임금의 불안정성은 이처럼 삶의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임금과 처우 모든 면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정규직 임금의 60%를 받고 있다. 우리의 요구는 80%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례는 바로 호칭이다. 선생님, 실장님 다양한 호칭이 있지만 학교 급식 노동자에게 아무도 그런 호칭으로 부르지 않는다. 아줌마로 부른다. 교무·행정 실무사의 경우에는 차 심부름 문제가 한창 논란이 됐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라면 누구나 흔히 경험한 사례들이다. 그런데도 노동조합의 싸움으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사실 정규직의 80% 임금을 요구하는 것도 고민이 든다. 최근 공정성이 이슈가 되지 않았나. 노동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은 정규직의 60%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가. 사람들은 시험이 공평함의 기준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정말 그 시험이 공평한지 되물어야 한다. 사실 노동자들끼리 공평함, 고정성을 두고 싸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직업과 노동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공정성에 대해 사회적으로 정교하게 논의를 하는 식으로 구조를 제대로 만들고 설계해 나가야 한다.”

 

아프다는 이야기하는데 필요한 용기

 

노동조합이 가장 앞장서서 바꾸고 있는 것에는 임금과 처우 문제 말고도 바로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있다.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이들에겐 다른 무엇보다 바로 용기가 필요하다. 일 때문에 아프다는 것을 증명하기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쌓인 차별과 불평등의 장벽이 너무나 높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고혈압 유병률이 정규직 여성 노동자보다 1.4배 높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경우 고용 불안정 등의 이유로 더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조합원들이 아프다는 말을 잘못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노조 교육을 하러 가면 산재 신청 실무의 경우 인기가 굉장히 높다. 질문이 정말 많다. 가려는 강사를 붙잡고 세세하게 물어본다. 현실에서의 문제는 이들이 아프다고 말하기 위해선 ‘용기’를 내야 한다는 점이다. 내 질병과 사고가 업무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최근 <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이라는 책을 읽었다. 여성의 몸이 어떻게 차별받아왔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긴 책이다.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심장의 경우에도 여성이 더 아프다는 것이다. 여성은 아파도 아프다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는 거다. 밤에 굉장히 아파도 119 부르는 걸 폐 끼치는 거로 생각해서 참고, 다음 날 아침에 응급실에도 안 가고 외래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여성들은 살아왔기 때문에 자기가 필요한 걸 잘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 노조의 경우 중년 여성들이 대다수다. 산재 신청하는 것에 대해서 지금까지 입사할 때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학교에 얘기하기보다 노조에 얘기하는 것을 더 친숙하게 여길 거다. 그만큼 학교라는 공간은 이들에게 안전한 공간, 평등한 공간이 아니다. 이런 여러 가지 불평등, 학교에서 유령 취급당하고 학교에서 아줌마로 불리는 분들이 이런 식으로 불평등과 차별을 경험해오지 않았나 싶다.”

 

노동자의 참여가 건강 불평등 해결의 열쇠

 

노동조합이 만들어져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오며 쌓아온 결실이 이제 조금씩 빛을 보고 있다. 2017년 학교 비정규직 중 급식 노동자를 대상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으로 인정받으며 드디어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까진 법의 적용 대상조차 아니었다. 노조가 생기고 학교에서의 차별 경험이 얼마나 건강에 유해한지를 밝히는 활동을 통해 어렵게 만들어낸 성과다. 현재 17개 각 지역 교육청들이 시간 끌기를 해온 바람에 이제야 몇 개 지역에서 회의를 1~2차례 진행했다. 그런데도 노동자 참여가 건강 불평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징검다리란 것을 조금씩 경험하고 있다.

 

“참여라는 것은 노조 활동의 기본이다. 제가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급식실에 높이 조절되는 조리대 같은 게 들어오면 어떨지 생각해보자고 말이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자율주행차가 다니고, AI가 바둑을 두는 시대다. 그런데 학교 급식실이나 여성들이 일하는 곳, 비정규직이 일하는 곳을 보면 놀라우리만큼 발전이 안 되어 있다. 사실 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게 아니고 ‘하지 않는 것’이다.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고 직장에 다니더라도 여러 기회를 박탈당한다. 학교 급식실의 경우도 경력단절 된 분들이 많이 가는데 이들이 일하는 곳은 시설 개선이란 게 없다. 노동자 참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런 지점이다. 일하는 사람이 직접 자기 일터를 돌아보고 무엇이 필요한지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그때 바로 변화가 일어난다.”

 

유청희 노동안전보건부장은 노동자의 건강 불평등 문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하고 실천해나갈 중요한 단위가 바로 노동조합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이 외친 구호는 여전히, 어쩌면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평등해야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위한 여정을 하고 있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우리는 어떤 연대의 손길을 내밀 것인지 그 고민부터 함께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특집2. 노동자들의 건강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제도, 근로자건강센터 / 2019.11

 노동자들의 건강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제도, 근로자건강센터

- 서울근로자건강센터 정최경희 센터장 인터뷰

 

박기형 상임활동가

 

건강 불평등 문제를 다룰 때, 우리가 흔히 놓치기 쉬운 것은 특정 집단이나 계층이 속한 공간이 어디냐는 것이다. 지역 간 보건의료 서비스 격차, 시스템 부재에 따른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런데도 공간상의 위계가 건강 격차를 낳는 것은 또 다른 지점이 있다.

바로 일하는 곳에 따라 건강 진단 및 관리를 받는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일하는 작업장·사업장의 노동환경·조건이 어떠한가가 나의 건강 수준에 많은 영향을 끼침에도, 건강불평등 해소를 논의할 때는 일하는 공간에서의 건강관리 서비스 및 시스템을 개선 및 강화하려는 노력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이러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 간의 건강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대표적인 제도로 근로자건강센터(이하 근건센)’10여 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앞으로 노동자들의 건강 불평등 개선에 있어 근건센의 역할에 대해 지난 1028일 서울 근건센의 정최경희 센터장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았다.

 

안전보건체제 사각지대인 소규모 사업장 지원 사업의 중요성

 

근건센은 안전보건 관련 법 제도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건강관리를 지원하기 위해 제도화되었다. 소규모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제3조 안전보건관리 체제 규정에서 면제됨에 따라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를 관리할 담당자가 부재하다. 그래서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지원을 받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소규모 사업장의 재정 상황에 비춰볼 때, 민간기관에 비용을 지불하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다. 근건센은 소규모사업장 노동자의 건강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공단에서 안전보건관리를 위한 비용 및 물품이나 의료적 지원을 해왔다.

 

“서울 근건센에서 하는 사업은 크게 두 개로 나눠집니다. 사업장에 나가서 하는 이동업무와 노동자들이 센터에 내방했을 때 하는 업무입니다. 주요 사업으로는 뇌심혈관계 질환 및 근골격계질환 예방관리, 고혈압·당뇨·과로 등 직업병 관련 상담 및 건강검진, 직무스트레스 평가 및 감정노동자 상담·치유, 작업장 위험성평가와 안전보건 정보제공 및 상담 등이 있어요. 예컨대, 만성질환의 경우 진단을 하고, 노동자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관리계획을 함께 세우는 걸 돕는 식이죠.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운영하는 콜센터에서 하청업체를 통해 고용되어 일하는 콜센터 직원들에게 근건센을 통해 집단으로 상담 및 관리를 요청해오기도 했어요. 이 경우엔 직무스트레스 조사나 감정노동 관련 상담을 진행했었죠. 일터괴롭힘이나 직장갑질에 대해서도 상담을 했었고요.

 

다른 한편, 산업위생기사도 센터에 상주하고 있어서, 소규모 사업장에 직접 나가서 작업환경을 점검하고 향후 개선 및 관리에 대해 컨설팅도 해드리고 있어요. 현재 서울 근건센에서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사업은 개인 보호구 착용 관련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사업장 단위별로 작업환경 개선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설비 개선 등은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영세한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컨설팅을 해드려도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그럴 경우에는 차선책으로라도 보호구를 잘 착용하는 것이 중요하죠. 물론 보호구 착용은 안전보건 조치에서 최후의 수단이죠. 그렇지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잖아요. 더구나 노동자들에게 보호구가 잘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보호구가 있더라도 어떻게 착용해야 할지, 착용한 채로 어떻게 일해야 할지 잘 모르는 분들도 많아요. 나아가 어떤 보호구가 더 좋은지 정보도 없으시고요. 그런 점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보호구를 잘 활용하고, 자신과 작업장 환경에 맞는 적합한 보호구를 고를 수 있도록 도와드리려고 해요. 다른 근건센에서 하고 있기도 해서, 이를 도입해서 시도해보려 합니다.”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마주하는 문제, 의무 또는 유인의 부재

 

근건센 사업의 핵심적인 문제는 지원 서비스를 주고받는 과정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규모 사업장을 제도적으로 포괄하기 위해선 지원 프로그램에 노동자들이 각자 알아서 찾아오는 방식이 아닌 소규모 사업장 단위인 집단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근건센과 소규모 사업장이 MOU 등 협약을 체결해 집단 수준에서 진단 및 관리를 받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러한 집단적 관리방식의 일환으로 사업장 건강주치의프로그램이 마련되었지만, 이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이는 근건센의 지원 서비스를 받는 이들에게 참여할 유인이 적기 때문이다. 소규모 사업장의 사업주는 안전보건 관련 문제를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의무를 지지 않으려 한다.

노동자들이 근건센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업주의 협조가 중요한데, 시간과 비용을 들여 할 정도의 관심과 열의가 있는 사업주가 아닌 이상, 일정 정도 이윤손실을 감수하면서 노동자들이 건강검진과 상담을 받도록 해주는 사업주는 거의 없다. 노동자가 필요하거나 방문하고 싶어도 찾아갈 시간을 내지 못하는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노동자들 또한 근건센의 효용에 대한 인식이 없고, 사업장 내 안전보건에 대한 문제의식이 낮아서 근건센을 이용하려는 욕구 또한 적다.

출처 : 서울근로자건강센터 홈페이지

 

“그나마 안전보건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업주가 있는 사업장이라면 모를까, 집단으로 노동자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아요. 노동자가 자신의 건강을 걱정해서 상담받고 싶어서 여기저기 수소문해보다가 혼자 찾아오는 경우도 꽤 됩니다. 서울 근건센의 경우 아파트형 공장으로 되어 있어서, 근건센이 있는 빌딩과 그 주변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 아름아름 찾아오세요. 여전히 근건센이 있다는 것, 근건센을 통해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모르는 분들이 많은 상황이죠. 그래서 근건센의 활동을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더 많이 알려야 해요. 그래도 긍정적인 점은 근건센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거에요. 센터가 있는 빌딩의 환경미화원분들이 오셔서 집단 프로그램을 받고 계신데, 처음에는 잘 모르셨다가 프로그램을 받고는 건강이 개선된 분들이 많으세요. 만족도가 높으신 거죠. 그런데도 문제는 이분들조차 센터에 시간 내서 오시는 게 힘들다는 거예요. 정말 센터가 있는 지역 인근에서 오시는 것이죠. 그나마도 짧은 점심시간 활용해서 오세요. 만약 오전 오후 업무 시간에 내방하시는 분들은 그나마 사업장의 재정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에요. 일반 소규모 민간 사업장에서는 거의 오지 못하세요.”

 

개인이 알아서 찾아오는 경우도 많지만, 집단 서비스 제공을 위해 센터에서 직접 대상 사업장들에 연락도 돌린다. 하지만 사업장에서는 민간 회사들의 판촉이라 여겨서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만약 특수건강검진 사후관리를 하라고 안전보건공단에서 명단이 내려와 대상 사업장에 공문을 보내고 연락하면, 그나마 성공률이 20% 정도다. 그때야 비로소 사업장에 방문해서 현장에서 직접 건강진단 및 상담 등을 진행할 수가 있다. 어렵사리 사업장에 가더라도, 일하다 나온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란 쉽지 않고 노동자 입장에서도 다시 일하러 가야 하는 상황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결국 소규모 사업장에도 안전보건 관리 의무를 부과하거나 노동자 건강관리에 따른 각종 유인을 제공해야 하며, 노동자들에게 유급으로 시간을 보장해줘서 근건센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환경 또한 조성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으로의 과제들, 운영시스템 체계화 및 인력·예산 확충

 

현재 전국에 21개 센터, 21개 분소가 있고 2020년 운영 10주기를 앞두고 있지만, 아직도 근건센의 운영을 기획 및 조정하는 중앙 근로자건강센터가 없다. 정부가 시행 중인 다른 센터 사업의 경우엔 광역 단위 이상의 규모를 갖춘 경우에 중앙관리조직을 두고, 시군구 규모를 가진 경우엔 광역관리조직을 두고 있다. 다양한 사업들을 평가 및 조정, 근건센 관련 데이터를 취합 및 생산, 기존 사업 개선 및 신규 사업 기획을 중앙부처 관료나 공단 직원 몇 명이 전적으로 부담하는 것은 근건센 운영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일이며, 그들에게도 과중한 업무를 부과하는 일이다. 만약 안전보건시스템 구축 차원에서 근건센의 역할을 제대로 정립하고 장기적인 로드맵을 갖추려 한다면, 중앙관리조직을 두는 게 필수적이다.

 

“근건센 모델에 대해 많이 고민해요. 그때 제가 떠올리는 건 보건소예요. 노동자들의 보건소가 근건센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공공보건 영역에서 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 그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창구죠. 정부의 손발 역할을 하는 곳이란 말이죠. 근건센도 노동안전보건 영역에서 손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두뇌와 심장도 있어야 하겠죠. 그게 중앙관리조직일 테죠. 하지만 중앙관리조직을 갖추는 것만큼 중요한 게 손발이 제대로 역할을 할 만큼 충분한 인력과 예산이 확보되고 있는가를 돌아봐야 해요. 보건소와 근건센의 인력 및 예산을 비교해보면 명확히 드러나죠. 더구나 21개 센터와 21개 분소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소규모 사업장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에요. 센터의 양적 확대뿐만 아니라, 지역 간 배치 또한 적절하게 조정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나아가 위치한 지역의 특성에 적합하게 특성화된 프로그램을 갖춰야겠죠. 장기적으론 보건소처럼, 아니 모세혈관과 같이 노동안전보건 영역에서 건강관리 서비스를 촘촘하게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를 위해 센터 운영의 체계를 갖추는 것만큼이나 인력의 질적 역량도 높아져야 하지만, 민간위탁 방식의 센터 운영은 고용 안정성을 저해하여 인력 확보를 어렵게 한다. 우선 운영기관이 위탁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사유가 발생할 경우 재지정에서 탈락할 수 있어, 안정적 고용을 보장할 수 있는 위탁운영 기관이 적으며, 근건센을 제대로 운영할 만큼의 전문성을 갖춘 위탁운영 기관 또한 한정되어 있다. 더구나 수년째 예산 증액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임금상승이 정체되고 있어서 인력 유출이 쉽고 유입은 어려운 실정이다. 장기적 고용의 필요성이 확인되는 지점이다. 민간위탁 방식의 시범사업 형태에서 벗어나, 고용 책임성 및 사업 전문성을 확보하고 소규모 사업장 대상의 안전보건 사업을 양적으로 확장하고 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공공 조직화, 즉 공단 직영 형태로 점차 전환하고 장기적으로는 독립법인을 설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근건센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날카로운 문제 제기가 많은 건, 우리 사회에서 근건센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 불평등 해소라는 지향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노동안전보건 영역에서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소규모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들,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자신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받는 이들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는 창구로서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인 거죠. 근건센이 설립되면서 내세웠던 목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그렇지만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만큼, 근건센이 우리 사회의 건강 불평등, 건강 격차 해소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특집1. 건강 불평등과 노동 / 2019.11

건강 불평등과 노동

 

조성식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사회적 불평등의 결과, 건강 불평등

 

크게 본다면, 사회 부정의(不正義)는 살인이다. Social injustice is killing on a grand scale.” (WHO, CSDH, 2008)

 

건강 불평등이란 건강 상태가 사회 집단 간에 평등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 용어는 사실 각 사회구성원들의 건강이 평등해야 한다는 지향을 내포한다. 그런데 만약 건강 불평등이 지향하고 있는 이 의미를 제거한다면 건강 불평등은 사회 집단 간에는 건강 격차가 존재한다는 단순한 말이 될 것이다. 국제 학회에서는 윤리적이고 도덕적 의미를 내포하는 건강 형평성 (health equity)’이란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국제 건강형평성학회에서는 건강 형평성을 사회적, 경제적, 인구학적 또는 지리적으로 정의된 인구집단 간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측면에서 건강상의 잠재적으로 개선 가능한 체계적 차이의 부재로 정의한다.

 

건강 불평등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관찰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극적인 건강 격차를 확인할 수 있는 건 국가 간의 건강 격차이다. 저개발 국가와 이미 산업화된 국가를 비교하면 수명이 수십 년의 차이를 보인다. , 한 국가 내에서도 어떤 지역에 살고 있는지에 따라 건강 불평등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같은 대도시이더라도 서울 시민의 건강 수준이 부산 시민의 건강 수준보다 더 좋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부산 시민의 평균 수명이 서울 시민의 평균 수명보다 2년 더 짧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같은 도시 안에서 좀 더 작은 구 단위나 동 단위로 건강 수준을 살펴봤을 때 격차가 확인된다.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서울의 경우 강남 3구의 건강수준이 강북 지역의 건강 수준보다 더 좋고, 부산의 경우에도 수영구나 남구의 건강 수준이 서구나 사하구의 건강수준 보다 좋다. , 같은 지역 사회 내에서 다양한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건강 수준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체로 높은 사회적 지위의 사람들이 낮은 사회적 지위의 사람들보다 건강하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자산을 많이 가지거나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더 건강하다.

 

건강 형평성이라는 단어가 격차의 양상과 격차 개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건강 불평등을 보다 비판적인 의미에서 사용하는 사람들은 격차가 존재하는 원인과 격차를 개선하기 위한 과제를 드러내는 것에 더 주목한다. 이들은 집단 간의 건강 격차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로 기인한다고 인식한다. 그리고 건강 불평등이 정의롭지 않은 사회임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하며, 건강 격차를 줄이고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추구하는 일을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설정한다. 이러한 비판적인 의미에서의 건강 불평등 개념에 비추어볼 때, 건강격차는 정의롭지 않고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건강상의 평등은 사회적 구조,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킬 때에만 실현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2008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간한 보고서(“한 세대 안에 격차 줄이기”)에는 공정하지 않은, 정의롭지 않은 권력, , 자원의 분배에서 건강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고 이를 개선하는 것이 건강 불평등을 줄이는 근본적인 원칙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원칙에 입각해서 볼 때, 건강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일은 질병이 생겼을 경우 공평한 의료이용을 보장하는 보편적 의료보장제도를 구축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공정한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걸 요구한다.

▲   과연 건강, 그리고 건강한 삶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각종 자원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가?

 

원인의 원인을 제대로 보자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인 수준에서 건강 불평등 문제의 원인을 살펴보자. 우선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려면, 충분한 먹을거리와 의복 그리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이 필수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물질적 자원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소득 불평등은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자원의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

식습관, 흡연, 음주, 운동과 신체 활동 등의 생활습관 역시 건강 유지에 중요하다. 이는 동료집단의 문화에 영향을 받으며, 사회에서의 지위에 따라서도 생활습관이 다르다. 문제는 생활습관이 개인의 선택인 것처럼 비춰지지만, 사실은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선택이 아닌 강제된 상황에서의 비자발적 선택이라는 점이다. 각자가 처한 노동환경, 노동조건, 작업장 문화 등에 따라 건강에 유해한 생활습관을 갖게 된다. 교대제, 장시간 노동, 야간노동, 휴게시설 및 휴게시간 부족, 연차 사용 제한, 건강검진 미보장 등이 노동자 개인이 자신의 건강관리 습관을 형성하는 데 미치는 영향을 무시해선 안 된다.

 

보다 자세히 말해, 건강 불평등은 단순히 국가 간, 지역 간에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소득과 학력 등의 사회적 지표와 건강 수준의 지표 간의 연관을 고려할 때, 우리는 노동자의 건강 불평등에 대해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노동자의 건강 불평등과 가장 관련성이 높은 요인은 바로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이다. 사람들은 노동 시장에 참여함으로써 소득을 얻고 자아 정체성을 형성한다. 사회에 만연한 소득 불평등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자원 배분의 불평등을 야기하는데, 여기서 핵심은 생활 임금 이하의 저임금 문제다.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건강을 유지 및 관리할 수 있는 자원의 부족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안전하지 않은 작업환경에 따라 사업장 간 건강 불평등도 심각하다. 어떤 사업장들에선 안전설비와 보호장비가 잘 마련되어 있고, 안전점검과 보건관리가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데 반해, 다른 사업장들의 경우엔 기계설비에 압착되거나 높은 곳에서 추락하거나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는 등의 각종 사고위험이 상존하며 뇌심혈관계질환이나 근골격계질환 등 각종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고 이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러한 사업장 안전보건 수준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의 사업장 규모별 또는 직종별·산업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런 상황에 대한 조사가 통계나 자료로 자세히 정리되어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동자들이 겪는 노동안전보건 상의 문제를 건강 불평등의 차원에서 재규정할 수 있다.

이런 접근의 연장선에서 사회적 지위에 따라 느끼는 직무 스트레스의 정도와 같은 사회 심리적 문제 역시 건강 불평등과 관련되어 있다.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의 노동자들은 직무에 대한 낮은 통제력을 느낄 가능성이 크고, 노력에 비해 보상이 부족할 수 있다고 느낄 가능성 역시 크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이 같은 건강 불평등이 발생하는 기저의 원인은 사회적 불평등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원인의 원인이라고 한다.

 

건강한 삶, 차별 없이 누려야 할 모두의 권리

 

현재 단편적인 뉴스로만 보도되고 있지만 산재 사망을 비롯한 중대한 산업재해는 소규모 영세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서 빈발하고 있다. 이는 일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권한과 자원이 부족한 불안정·비정규직·하청 노동자들에게 떠넘겨 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는 이를 위험의 외주화라고 정의하여 문제제기하고 있다.

노동자의 건강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환경과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 산재 사망사건은 정의롭지 않은 사회적 환경에서 발생한 것, 이른바 사회적인 타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빈발한 중대재해, 각종 산재사망사고는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요소들이 고착화되어 노동자의 사망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건강 불평등의 고리들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며, 이러한 부정의한 상황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불평등의 근본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그것들을 개혁해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건강은 누구나 다 누려야할 가치이며 권리다.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에 의해서 누구나 그 같은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재차 강조하자면, 건강할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사회적 불평등을 줄여야한다. 노동자간의 임금 격차를 줄여하고 그러기 위해선 최저임금이 생활의 최저선이 아닌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자원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일터를 바꿔 나갈 수 있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노동안전보건 권리인 알 권리, 참여할 권리, 거부할 권리를 적극 보장하는 것 역시 노동자들의 건강 불평등을 줄여 나가는데 중요한 열쇠다.

또 안전과 관련해서는 누구나 다 안전하고 건강에 해롭지 않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 소규모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성, 이주, 청소년, 고령, 장애, 성소수자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이들 역시 배제 되거나 차별 당하지 않고 충분히 안전한 노동환경을 보장받아야 한다.

물론 건강 불평등은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지만, 앞으로도 이를 줄이기 위한 지속적인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유럽에선 이미 각종 법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제대로 작동시켜 노동자의 건강 불평등을 오래전부터 충분히 줄여왔다는 점이다. 우리도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고서 안전보건체계를 제대로 구축하고 및 실효성 있게 집행한다면 노동자의 건강불평등을 해소해나갈 수 있다.

 

특집3. 직업병 수출-공해수출에대응하는 사회운동의 의의와한계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 / 2019.10

[불법인 사람은 없다③]

직업병 수출-공해수출에대응하는 사회운동의 의의와한계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

최예용 아시아환경피해자권리네트워크 부조정관  

20191027일부터 30일까지 사흘 간 서울에서 아시아 직업·환경 피해자 대회라는 이름의 국제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는 15여개 아시아 나라의 산업재해, 직업병 등 노동안전보건문제와 환경오염으로 인한 건강상의 피해인 환경보건문제를 다룬다. 이들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학술 또는 정책 관련해 논의하는 행사가 아니라, 피해자들을 위한 피해자들의 자리다. 즉 환자와 유족들이 주인공인 대회다. 이들과 노동안전보건운동가, 환경보건운동가 그리고 의학, 사회학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일부 함께한다.  

이 대회는 아시아 직업 및 환경 피해자 권리네트워크(ANROEV, Asia Network for Right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Victims)’라는 이름의 기구가 주관한다. 이 네트워크는 20여 년전 태국, 방글라데시, 중국 등에서 발생한 대규모 공장화재 사고로 인해 수백, 수천 명의 노동자 사망한 참사를 계기로 아시아 각국에서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일환으로 조직되었다. 매년 아시아 주요 도시에서 대회를 개최하고 각국, 각 분야의 노동안전보건운동의 경험을 교류하고 구체적인 연대활동을 추진해왔다.  

이 네트워크의 활동성과 중 하나가 석면분야다. 2009년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가 결성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현재 아시아 10여개 나라에서 석면추방운동과 석면피해자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더불어 10여 년 전 연간 200만 톤에 이르던 세계석면소비량이 2017130만 톤규모로 감소되었고, 아시아에서 일본, 한국에 이어 홍콩, 대만, 태국, 네팔 등에서 석면사용이 전면금지 또는 크게 제한되었다.  

필자는 2008년부터 아시아 직업·환경 피해자대회에 참가해왔는데, 한국에서 가동되던 석면방직공장이 인도네시아로 이전하면서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에게 석면피해가 나타나는 문제를 조사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 2009년부터 석면사용을 전면금지했다. 원료나 제품을 사용해서도 수입, 수출해서도 안 된다. 발암물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가동되던 석면공장이 인도네시아, 중국 등지로 옮겨가서 가동되고 있다.  

인도네시아나 중국에서는 아직도 석면사용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그들 나라의 노동자나 주민들은 석면에 노출되어도 괜찮은가? 당연히 아니다. 한국에서 가동될 때 노동자들과 주민들에게 석면피해를 입혔던 석면공장이 그대로 인도네시아로 옮겨가서 가동되기 때문에 그들 나라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석면에 대한 안전기준이 더 허술한 인도네시아에서는 오히려 한국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2007년 부산의 법원이 석면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가 석면암인 악성중피종으로 사망한 사례에 대해 해당 공장이 유족에게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때 필자는 1971년부터 부산에서 가동되던 석면공장 일부가 1992년 인도네시아로 옮겨간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석면방직공장은 1971년 일본에서 옮겨온 것이었다. 필자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동안 10여 차례 일본과 인도네시아 현지를 방문해 석면방직공장의 국가 간 이동과 노동자 및 주민 피해상황을 조사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짐작(?)대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다시 한국에서 인도네시아로 석면방직공장 설비들이 이전되면서 안전관리시스템은 전달되지 않았고, 노동자와 주민들의 석면피해는 고스란히 아니 더 심각한 형태로 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했고 지금도 발생중이다. 소위 전형적인 형태의 공해수출 문제다. 유해·위험 산업이 일찍 발전한 선진국에서 이제 막 산업화를 시작하는 개발도상국으로 유해·위험 산업이 이전한 것이다.

필자는 학자가 아닌 활동가로서 이 문제를 조사하고 다루면서 이미 석면문제를 노동운동의 주제로 다뤄오던 노동안전보건운동가 및 전문가들과 결합해 환경보건운동의 주제로 삼았고, 특히 석면공장 인근 지역으로의 석면오염과 주민건강 피해문제에 집중했다. 그 동안의 가시적인 성과라면, 한국의 경우 석면사용이 금지되었고 환경성 석면피해를 구제하는 석면피해구제법이 제정되어 지난 89개월간 3,883명이 석면피해 및 구제 대상자로 인정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석면질환자가 진단되었고 업무관련성이 인정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아시아 직업·환경 피해자 권리네트워크를 통한 활동에 힘입은 바다. 일본과의연대활동을 통해서도 일본 센난과 한국 부산의 석면피해문제를 법정에서 제기하고 인정받는 성과가 있었다. 역시 이 네트워크의 힘이었다. 이 네트워크는 평생을 산업보건운동에 바친 운동가들과 양심적인 전문가 그리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피해자의 세 축으로 구성되고 유지된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방식의 사회운동은 매우 드물고 한 나라를 넘어 권역차원으로서는 유일하다. 2년마다 개최되는 대회의 경비는 석면 피해자와 유족의 기부와 시민사회단체의 지원으로 충당한다. 정부와 기업 또는 국제단체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서 20여 년 간 피해자 중심의 네트워킹을 통해 노동안전보건분야의 성과를 내온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의 환경운동을 통한 석면문제의 사회이슈화와 전자산업 피해자운동의 성과, 일본에서 진행 중인 석면암 중피종환자들의 전국투어프로그램, 인도네시아에서의 산업보건운동의 약진, 인도 스리랑카 지역에서의 산업보건운동의 분투 등 국가별 모범 사례가 적지 않고, 극동, 동남아, 남아시아 등 아시아내에서도 권역별로의 연대가 세분화되고 있다.  

나름의 성과와 함께 한계와 부족한 점도 많다. 노동안전보건운동과 환경보건운동간의 접점을 넓혀야 하고, 나라마다 다른 경제적 정책적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동의 목표설정과 구체적인 행동계획이 추진되어야 하지만, 아직은 피해사례 공유에 머무는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다. 피해자를 위한 네트워크라고 하지만 실제 활동에서 아직은 피해자가 중심에 있지 않다. 피해자들은 국제회의는 물론 자국 내에서의 네트워킹에서도 어려움이 많다. 이러한 아시아연대를 담당하는 활동가나 전문가도 소수에 불과하다.  

직업병과 환경문제를 다른 나라로 수출하고 피해를 확대하는 문제가 국제사회의 이슈로 떠오르게 하고, 이를 규제하는 UN차원의 협약과 피해지원을 위한 국제펀드가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피해자는 시혜의 대상이 아닌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삼성백혈병, 태안화력피해자 등 유족들이 만든 산재피해자단체 <다시는>의 사례가 아시아로 전파되고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다. 2015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대회에서 한국참가자들은 노동자 산재피해자와 시민환경 피해자간의 국제연대로 노동해방 녹색세상 만들자라는 구호의 붓글씨 작품을 만들어 아시아 참가자들과 함께했다. 유럽공동체와 달리 아시아공동체는 아직은 이름뿐이지만 조금씩 실체가 만들어 지고 있다.

특집2. 베트남 전자산업의 여성 노동자가 처한 현실 / 2019.10

['불법'인 사람은 없다②]

베트남 전자산업의 여성 노동자가 처한 현실

팜 티 민 항(Pham Thi Minh Hang), CGFED 부원장

번역 : 선전위원회

허울 좋은 이야기일 뿐인 경제 핵심, 발전전략으로서의 전자산업

베트남은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성장을 하는 곳 중 하나다. 베트남 경제성장의 대부분은 국내 총생산(GDP)20% 이상을 차지하는 전자산업 덕분이다. 베트남은 정치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서 전자산업을 환영했다. 2007423일자 총리령 제55/2007/QD-TTg’으로, 2007~2020년의 기간 동안 전자산업을 3대 핵심 산업 중 하나로 계속 선정함을 확인했다. 그리고 총리령 제1290/QDTTg’를 통해 2030년에 전자 산업이 베트남 경제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비전을 가지고서, 2020년까지의 전자산업 발전을 위한 실행 계획을 승인했다. 베트남 계획투자부의 외국인투자 부서에서 낸 통계를 보면, 지금까지 베트남은 삼성, 스콘, LG, 파나소닉, 인텔, 노키아 등 주요 기업들로부터 100억 달러 이상의 해외직접투자(FDI)를 유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처음으로 전자제품 수출 규모가 핵심 산업이었던 의류 부문을 앞질렀다. 2015년 베트남 전자산업은 총 46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고, 2016년에는 수출 규모가 530억 달러로 증가했다. 그 결과, 다른 모든 산업을 통틀어 1위를 차지했다. 응우옌 쉬안푸크 총리는 20186월 지구환경기금(GEF) 협의회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베트남은 경제성장을 위해 환경을 희생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우리의 목표를 이룰 것을 맹세합니다.” 그러나 산업의 규모와 그것의 경제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해당 산업이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잠재적 유해성에 대한 현재의 정보는 부족하다.  

베트남이 WTO의 정식 회원국이 된 200711일 이후, WTO 가입 조건에 따라 전자산업에 주어지는 정부 지원과 특혜도 없어졌다. 몇몇 FDI 회사들은 파산하거나 생산을 중단하거나, 상업 또는 서비스 부문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WTO 가입 이후 전자산업 내 주요 대기업들의 투자를 포함한 새로운 외국인 투자 물결이 베트남으로 유입됐다. 이들의 투자 프로젝트로 인해 베트남 전자산업의 FDI 자본이 100억 달러 이상으로 늘어났다. 베트남에서 30여 년 넘게 전자산업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전문가들은 갓난아기가 걸음마를 시작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한다. 전자산업은 언제나경제의 핵심으로 여겨지지만, 베트남의 국내 기업 대부분은 생산 단계 중 이윤이 가장 낮은 생산단계인 소비재 조립 작업만 담당할 뿐이다.  

삼성은 베트남에서 1996년에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20년 만에 총 등록 자본금 148억 달러(2015년 기준)로 베트남 최대 외국인 투자자가 됐다. 2016년 삼성이 베트남에서 기록한 총 매출액은 463억 달러로, 그 중 수출액은 4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2015년 대비 9.9% 증가한 것이며, 국내 총 수출액의 22.7%를 차지한다. 그리고 삼성은 137000여 명의 직원을 채용했다. 베트남에 있는 삼성공장 중 박 닌 공장과 타이 응우옌 공장이 핵심인데, 베트남은 물론 삼성의 글로벌 시스템 전체를 놓고 봐도 그렇다. 예를 들어, 현재 베트남에서 삼성이 출시하는 휴대폰의 50%를 생산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8%를 생산하고 있다. 2016년 삼성 베트남 공장의 매출은 360억 달러로 이들의 제품은 78개국에 수출되며, 주로 유럽과 미국에서 팔린다. 베트남에서 삼성전자는 전자산업과 FDI의 성공적인 시범 사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베트남 전자산업을 지탱하는 여성 노동력과 노동권의 부재  

전자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는 2005년부터 현재까지 9년 동안 46000여 명에서 411000여 명으로 급증했다. “현재 많은 가치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조립라인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전자산업 하위부문 노동자의 80%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 대부분은 기술직이나 관리직이 아닙니다. 모든 선임 관리자 자리는 외국인이 맡고 있습니다.”  

이렇듯 전자산업이 급성장하여 베트남 경제에서 통합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전자산업 내 노동조건에 관한 정보, 특히 환경과 노동자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정보가 매우 제한적이다. 더구나 노동조합의 결성과 단체행동의 자유는 ILO협약 87호와 98호의 요건이지만, 베트남은 두 협약 모두비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산업통상노조(VUIT)IndustriALL에 가입되어 있으며 전자산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은 무노조 방침을 갖고 있으며, “노조가 필요 없는 경영 원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의 내부 문서(ITUC, 2016)는 노동조합을 조직 할 가능성이 있는 노동자를 식별하는 방법, 그들을 감시하는 방법, 그리고 노동조합 결성을 막기 위해 그들을 고립시키는 방법 등 노동조합 결성을 저해하기 위한 회사의 행동들을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개발한 것이다. 이 전략으로 인해 삼성 관계자가 한국 검찰에 구속되는 사건이 촉발되었고 회사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이어졌다. 

IPEN & CGFED의 삼성 베트남 공장 작업환경 조사 보고서  

국제환경보건단체 IPEN과 베트남 시민단체 CGFED가 수행한 <베트남 전자 산업에서의 여성노동자 이야기>라는 조사 보고서는 베트남 전자 산업의 노동조건에 관한 기존 연구에 특별한 공헌을 했다. 이 연구는 산업영역 조사와 박닌, 타이 응우옌 두 곳의 대형 삼성 공장에서 일하는 45명의 여성들에 관한 질적 연구(구술 작업)을 결합한 것이다. 그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연구에 참여한 여성 노동자들은 다양한 건강상의 영향을 토로했다. 45명 모두 직장에서 실신하거나 현기증을 느낀다고 얘기했지만, 교대 근무로 인한 정상적인결과라고 보고되었다. 유산했을 경우엔 만약 그들이 어리다면, 매우 정상적이라고 보고되었다. 다른 문제들로는 시력 손상, 코피, 미관 상 변화, 그리고 복통, 뼈와 관절의 통증 등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4일씩 돌아가는 주야맞교대 근무(alternating day and night shifts for periods of 4days), 9~12시간 내내 서 있어야 하는 점(standing for the entire 9-12 hours shift), 그리고 베트남 법정 제한치를 정기적으로 초과하는 높은 소음 수준을 포함한 열악한 작업 환경을 지적했다. 임산부 노동자들은 근무시간 내내 서있어야 하지만, 휴식을 취할 순 있다.  

-여성 노동자들 중 어느 누구도 제품 세척에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나 공장 내 다른 곳에서의 화학물질 사용으로부터 노출되는 일에 관해 생각해보지 못했다. 휴대전화 생산 공장의 직종에는 페인트, 잉크, 화학물질이 함유된 청소 제품을 사용하는 업무들이 포함되어 있다. 생산 공정 단계들에는 가열, 금속 코팅(가스 처리), 도장, 레이저 조각 및 절삭이 포함되며, 이 모든 과정에서 화학 물질이 방출될 가능성이 있다.  

-연구에 참여한 여성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결혼했고, 회사에서 근무하기 전에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자녀를 둔 모든 여성은 회사의 주거 규율로 인해 아이들과 따로 떨어진 채 살아야 했고, 아이들은 다른 마을이나 도시에서 조부모와 함께 지내고 있다.  

-베트남은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전자제품의 표준 개발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장 안전 규정은 없다.

* 이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베트남 노동보훈사회부(MOLISA)에서 삼성 휴대전화 공장에 대한 간단한 후속 조사를 진행했다 위 보고서에 포함된 내용 중 빠진 것들도 많았지만, 장시간 노동, 근로계약 위반, 교육·훈련 부족 등도 확인됐다.

글로벌 리더들, 삼성에 베트남 노동자 보호를 촉구하다

이 보고서가 발표된 직후, 국제사회는 베트남의 삼성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하게 목소리를 높였고, 베트남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의 성명을 통해 베트남 여성 노동자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보고서의 조사 결과에 대한 평가는 관할 당국의 대응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건강에 유해하고 부적절한 노동 조건을 알리는 연구원이나 노동자들에게 민간이나 정부 관료들이 위협을 가하는 것은 받아들일수 없다.” 세계 각국의 인권, 노동권, 여성권리, 공중보건, 환경정의, 지속가능한 구매관리(sustainable purchasing) 단체의 지도자들은 삼성에게 베트남공장에서 휴대폰을 만들고 있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그들 대부분은 가임기 여성들이다-을 보호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 탄원서는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201851일 아시아, 유럽, 미국에서 전자업계의 거인인 삼성의 건강·노동·인권 침해를 규탄하는 세계 삼성 반대의 날(International Day Against Samsung)’이 열렸다. 이러한 실천에는 세계 곳곳에 있는 삼성 공장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에서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수십만 전자산업 노동자들을 보호하라고 삼성에 항의하는 요구를 담은 탄원서들을 전달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러한 국제적 실천과 청원은 삼성이 노동자와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위협을 공식적으로 철회하고, 공장에서 사용하는 모든 화학물질을 공개하며, 정보를 차단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더 안전한 대안을 마련하며, 노동자들이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경제 발전 과정에서 GDP 증가만 추구해선 안 된다. 전자산업 등 주요 산업이 급속히 팽창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에선 그와 동등한 수준으로 경제 발전 과정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지역사회가 받는 영향 또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화학물질, 전자기장, 방사능, 교대제 및 기타 잠재적 유해·위험에 관한 규제 등 전자 산업에서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종합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유해물질 및 유해환경 노출 제한 값은 가임기 여성을 포함해 가장 취약한 집단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하며, 직장 및 지역사회에 균등한 수준의 보호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회사는 노동자들의 전폭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개방적이고 진정성 있는 자세를 갖고서 투명하게 연구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또한 노동조합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개혁하고, ILO 협약과 세계 인권 선언에서 확립된 권리들을 존중해야 한다.

특집3. “이주노동자의 인권은 우리 사회인권 수준의 바로미터입니다” / 2019.09

['불법'인 사람은 없다③]

 

“이주노동자의 인권은 우리 사회 인권 수준의 바로미터입니다”

-이주민방송MWTV 정혜실 공동대표 인터뷰 

 

나래 / 상임활동가 

 

차별과 혐오는 얼마나 사회를 병들게 하는가. 이 질문의 시작은 이주노동자들의 문제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미 이주민 2백만 명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는 인종차별, 국가차별 등 각종 차별의 화살을 이주민들에게 향하고 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혐오 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 방안 연구>에 따르면 이주민 중 63.2%가 오프라인 환경에서 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뉴스 기사나 영상 댓글, 카페/커뮤니티댓글 등 온라인에서도 이주민 차별·혐오 발언은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이처럼 미디어는 이주민 인권 침해의 수단이 되어버린 채 시민들에게 왜곡된 관점을 주입하는 결과마저 낳고 있다. 그 사회의 미디어는 인권 수준의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그 바로미터를 인권의 관점, 노동의 관점에서 바로 세우려는 활동을 하고 있는 정혜실 이주민방송MWTV 정혜실 공동대표를 지난 92일 안산에서 만나 이주민 차별과 혐오 문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정혜실 씨는 원래부터 미디어 활동을 시작하진 않았다. 처음 시작은 안산 외국인노동자센터(현재 안산이주민센터)에서 자원봉사 활동이었다. 대학에선 경영학을 전공했다. 이후 파키스탄인 남편을 만나 본인 역시 이주민 문제를 직접 겪게 됐다. 이후 개인적으로 공권력에 피해를 경험하게 되고, 돈을 쫓는 삶이 큰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시작하게 된 자원봉사가 점점 영역을 넓혀 결국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 이후 여성학, 인류학을 통해 이주노동자나 이주민, 다문화가족의 삶을 변화시키는 법제도,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공부와 활동을 병행하게 됐다. 현재는 이주민방송MWTV(Migrant World TV)의 공동대표로 활동을 하고 있다.

이주민들의 미디어 접근권 생각해본 적 있나요?

이주민방송은 이주민의 삶과 목소리를 담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이주민의 현실과 쟁점을 전하는 전문 매체로서 이주민 스스로 제작하는 이주민라디오 운영, 이주민의 영화 제작 지원 및 이주민영화제 운영 등 이주민의 삶과 목소리를 그들 스스로가 담아낼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발성은 이주민방송의 중요한 가치다. 이주민이 주체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스스로 돕고, 스스로 성장하며 문제 해결의 주인공으로 서는 과정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가 고민이다. 특히나 미디어를 통해 생산되는 인종차별과 이주민 혐오는 문제가 심각하다. 국내 미디어 대다수가 다문화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성의 감각을 떨어트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주민방송은 더욱더 이주민뿐만 아니라 한국인에게도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가볍게 라디오를 배우고 싶어서 와도 환영이다. 그들이 주류에 나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만의 기쁨이 있고 조회수가 상당히 높다. 1만씩 찍는 것도 있다. 주류방송에 접근할 수 없는 이주민 입장에서 라디오나 방송 프로그램을 생각해보면 그들에게 미디어를 통한 즐거울 수 있는 권리는 박탈됐다. 한국인 라디오는 한국 문화 안에서 선정된 음악이지뿐 이주민들이 선호하는 음악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미얀마 이주민이 하고 있는 음악 방송의 경우 인기가 좋다. 베트남 이주민이 하는 ‘착한 뉴스’의 경우 인권 이야기가 주다. 전공은 컴퓨터 관련 전공이지만 베트남어 전공한 한국인 진행자를 본인이 섭외해서 베트남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하면서 유학생에게 도움이 될 정보, 한국 이주 이슈를 정리해서 방송한다. 우리가 하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진행과 엔지니어를 자원봉사로 하고, 이주민 본인이 기획하고 대본도 쓰고 선정한 음악으로 진행한다.

이주민 공동체 안에서 조회수가 높다는건 어떤 의미에선 그만큼 다양하게 누릴 콘텐츠가 많지 않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미디어 권리이기도 하다. 일반 시민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를 1인 미디어로 풀어내듯이, 이주민에게도 당연한 권리로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미디어 운동의 첫번째 목적이다. 그 다음으로 이주민과 관련된 여러 집회, 기자회견 여러 이슈들이 알려져야 한다. 이주민도 알아야 하지만 한국인이 더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맺고 있는 네트워크가 넓어질 수록 전달이 더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함께 하는 게 이슈를 공유할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게다가 마을 안의 차별 문제를 이야기해보자고 마을 라디오에 찾아갔더니 실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주민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 해내는 미디어

우리는 이주민을 향한 차별 인식을 언제부터 키우기 시작한 걸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미디어는 큰 영향을 미친다. 다양한 매체 속에서 이주민이 어떤 식으로 그려지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이주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우하고 있는지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주민은 대부분 개그프로에선 비하를 통한 놀림의 대상이 되거나, 선정적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등장한다.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혐오와 차별이 당연 인정되는 대상으로 삼아진다.

“민주언론시민연합과 함께 미디어 모니터링을 계속 하고 있다. 이주민 관련한 콘텐츠 분석을 이주민 당사자 10명과 한국인 몇 명과 진행했다. 올해는 전문 모니터링 요원이 아예 맡아서 하고 있다. 2년째 지켜보니 10여 년 전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콘텐츠가 적은데도 불구하고 이주여성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고, 다문화 가족에 집중했다. 불쌍하고 시혜적인 대상, 가난한 나라에서 시집 온 착한 며느리와 아내로서 모습으로 프레임이 짜여 진 것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지금은 KBS의 ‘이웃집 찰스’ 프로그램을 보면 백인, 흑인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출연진을 구성하긴 하지만 여전히 백인 중심이거나, JTBC ‘비정상회담’은 백인 남성 서구 유럽 중심의 출연진이 많아 비판을 받기도 했다. EBS ‘고부열전’의 경우 시어머니와 이주여성 간에 선정적인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특정 이미지를 조장한다. 실제 이주여성이 싫어하는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통합이라고 하겠지만 우리가 봤을 땐 다문화가정을 하찮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둔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그런 내용이 한국인 입맛에 맞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문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 현실이 진짜라기보다 한국인이 상상하는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한국인을 만족시키는 프로그램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EBS ‘글로벌 아빠 찾아 삼만리’의 경우 이주노동자에게 가족결합권이 없기 때문에 단절되어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은 정작 외면한다. 현실에선 이주노동자들이 자기 가족을 한국에 초청해 자유롭게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실제 이주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은폐 하고 성실한 이주노동자 이미지를 갖고 가난을 극복하는 서사를 그린다. 사업주의 선의에 의해 진행되는 방식으로 보여 진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기계 부품 취급 당하는 이주노동자

“사각지대에 있는 농업이주노동자, 어업이주노동자가 처한 현실은 끔찍하다. 무인도에 기숙사 지어놓고, 양식장에서 일 시켜놓고 섬에 데려다 놓는다. 바지선 위에 컨테이너를 지어 숙소라고 한단다. 한국 사람의 경우 살 수 있겠나. 사업주에게 이탈 신고할 권한을 주니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이주노동자에게 이탈 신고하겠다고 위협한다. 이주노동자가 권리를 찾기 위해 하는 방법은 탈출이거나 끝날 때까지 참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불법’이란 프레임 때문에 사업장 이탈 자체를 범죄로 보고 있다. 사업장 이탈의 원인은 당연히 사업주에게 있다. 귀책사유 증명은 사업주가 해야 하는데 그 증명을 이주노동자가 해야 한다. 증명하지 못하면 자기 권리를 내세울 수 없다. 노동현장 자체가 욕이고 무시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정작 뒤로한 채 인력수급에 혈안이다. 법무부는 올해 상반기 전국 41개 지방자치단체에 이주민 계절노동자 2597명을 배정했다. 단기취업(C-4) 비자를 받아 입국한 뒤 최장 3개월 동안 지정된 농가에서 일 한다. 지난해까지 모두 4127명이 농번기에 한국에 들어왔다. 고용허가제 등 행정적 절차를 밟은 이주노동자 조차도 임금체불, 초과노동, 폭력, 일터괴롭힘 등 무법지대에 노출된다. 소위 합법 노예제도인 것이다.

고용허가제 폐지와 차별금지법 제정 중요해

겹겹이 쌓인 문제를 격파하기 위해 정혜실 씨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중요성을 강조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헌법의 평등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이다. 2007년 정부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기치 아래, 차별금지조항으로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성적지향, 학력 등 총 20개 차별금지조항을 설정했다. 하지만 보수세력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제정되지 못했다. 무산된 이후에도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법이 모든 현실을 바꾸고 한계를 넘어설 순 없겠지만 최소한 변화의 근거를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정 과정 자체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크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함께 시급히 바뀌어야 하는 제도로 고용허가제를 지목했다.

“시급한 건 고용허가제 폐지다. 고용허가제가 썩을 대로 썩어서 더 이상 기능을 못하고 있다. 사업장 이동 자유 제한으로 인해 노예제와 다르지 않다. 이주노조에서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사안이다.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 갖춰져야 한다. 주거와 관련해서 미국, 캐나다 이주노동자 기숙사 조건을 본 적이 있다. 그곳은 사생활을 중요시 여겨 방을 따로 주고, 침대 사이즈, 화장실, 샤워실 구비를 중요하게 여긴다. 공간 규모도 조건이 있다. 한국도 규정은 있지만 너무나 협소하다. 그것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개선의 방향은 얼마든지 있다. 사람다운 노동환경이 제대로 갖춰지면 좋겠다. 왜 비닐하우스에 지내는데도 몇 십만원을 내야 하는 지 모르겠다. 임금을 깎는 수단이다.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노동하며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면 좋겠다."

특집2. 이주노동자가 건강해야 지역사회도 건강하다 / 2019.09

['불법'인 사람은 없다 ②] 

 

 

이주노동자가 건강해야 지역사회도 건강하다

 

 

송홍석 / 향남공감의원 원장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인류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이지만, 개인과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의 차이는 건강 격차를 발생시킨다. 사회적 환경 중 특히 중요한 것이 건강한 사회적 관계이다. 세계 경제의 불평등은 전 세계 이주민 인구를 17년 만에 49%나 증가시켰고, 한국도 이주민이 10년 만에 무려 3.3배나 증가하여, 2016년 인구의 3.4%, 176만 명이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가며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다. 비인권적 고용허가제라는 환경, 언어, 인종, 국적이 다른 이들과 일상에서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향남공감의원에서의 경험을 공유하며,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주노동자가 병원에 온다는 것

27세의 캄보디아 국적 미등록 남성 이주노동자가 회사 관리자와 함께 병원에 왔다. 한국말이 서툴러 전화로 한국말을 좀 하는 동료의 도움을 받았고, 이를 통해 3일 전부터 38도 이상의 고열과 오한, 기침, 객담(가래)이 있었다는 정보를 알 수 있었다. 더 견디기 힘들어 병원을 찾은 것으로 보였다. 급성폐렴이나 독감이 의심되었고, 확진을 위해 혈액검사와 X-RAY, 인플루엔자 신속검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그에겐 부담이 되는 돈이었다. 검사를 거부했고 약만 달라고 했다. 회사 관리자는 지켜만 보고 있었다.

검사비의 50%를 할인하는 미등록이주노동자 의료비지원제도가 있음을 알려주었고, 이후 그는 흔쾌히 동의하였다. 검사결과 인플루엔자 감염증으로 진단되었다. 일주일간의 격리를 위한 병가가 필요하다는 소견서로 휴식을 취하며 치료를 받았다. 그는 독소에 의한 신기능저하까지 진행된 상태로 5일간 수액치료까지 받았고, 이후 정상 신기능으로 회복하였다. 한 달 동안 추적 관찰을 위해 내원할 것을 권유했으나, 그는 다시 오지 않았다. 5일간 지불한 의료비는 5만 원가량이었고, 공감의원에서 부담한 지원비는 9만원이 조금 넘었다.

아파도 진료 받을 수 없는 이주노동자

장시간 고강도의 위험한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아프기 십상이지만 병원에 들어서는 일, 검사를 진행하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특히나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 더 하다. 건강하지 못한 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이 병원에 오기 힘든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2017년 화성시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진행한 이주노동자 건강권 토론회에서 나온 이주노동자의 말을 정리해본다. 먼저,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크다. 아픈 증상을 표현하기 힘들고, 의료진이 사용하는 의학용어를 알아듣기도 힘들다. 병원에 오는 이들은 나름 언어 문제를 해결한 이들이다. 둘째, 병원에 갈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영세한 소규모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이주노동자는 고용주가 허락을 안 해주는 경우가 많아 근무 중 외출하기가 힘들다. 두세 번 병원을 방문하는 경우엔 더욱더 어렵다. 응급과 전염성 질환이 아니라면 말이다.

셋째, 의료비도 부담된다. 특히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더하다. 병원비 부담으로 진료를 포기하거나 본국에서 우편으로 약을 받아 해결하려다 질병이 악화하기도 한다넷째,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 단속에 대한 두려움으로 병원을 이용해야 하지만 심리적 위축으로 포기한다. 그들은 휴일에도 익숙한 길만 이용하거나 심지어 대중교통 이용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마지막으로, 아플 때 어느 병원을 이용해야 하는지, 보건소나 도립의료원과 같은 공공병원에서는 의료비 지원이 된다는 정보도 모른다.

이주노동자가 건강하면 지역주민도 건강해진다

한국사회 인구구조 변화추이로 볼 때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는 명백하게 동일한 우리 사회 구성원이다. 이주노동자, 이주민과 모두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의료기관 접근성에 대한 차별을 해소해야

첫째, 의료비 부담으로 치료의 적기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의료보장제도를 차별 없이 모든 이주노동자에게 적용해야 한다. 중소규모 사업장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미등록이주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듯이 인간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건강보험도 당연 적용해야 한다.

둘째,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적극적인 역할과 공공의료사업 민관협력을 구축해야 한다. 당장의 현실이 평일 진료가 힘든 이주노동자들에게 지역 의료기관과 협력하여 주말 진료를 추진하고,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도록 해야 한다. 특히, 미등록이주노동자에게도 단속으로부터 안전한 진료라는 인식을 만드는 데 지난한 공을 들여야 한다또한, 공공과 민간의 의료비 지원사업에 대한 효과적이고 적극적인 홍보가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평일 진료를 허락하도록 고용주를 대상으로 안전보건인지 교육, 산업안전 교육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주민 역량강화 사업을 통해 지역사회 통번역시스템을 만들어야

비단, 의료의 영역만이 아닌 노동, 법률, 생활의 영역 전반에서 의사소통문제가 이주민의 건강과 삶의 어려움을 야기하고 있다. ‘()더큰이웃아시아에서는 모국인 가족, 친구를 통해 한국생활의 어려움을 주로 해결하고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에 근거하여 리더역량강화 사업을 지자체에 제안하였다.

이 사업을 통해 이주민 리더(한국 정착에 성공한)를 양성하고 적정 수준의 활동 수당을 제공하여 상시통역 요원과 이주민 멘토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조(self help) 조직의 구성과 운영은 이주민의 자존감을 높이고 정주민에게도 이주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기대효과가 예상된다당장에 화성시 재원으로 이주민 통역 상담원을 채용하여 의사소통과 취업, 생활 고충 등 어려움을 지원하는 사업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지역 내 의료기관들은 통역 상담원의 보건의료 분야 전문역량을 강화하는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주노동자 공동체는 스스로 건강을 지키는 힘이다

장시간 노동, 동료나 관리자에게 받는 멸시와 차별, 고국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 스트레스가 누적돼 우울증을 앓거나 최악의 경우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주노동자의 정신건강문제를 해결할 유력한 방안 중 하나가 친구 조직, ‘이주민 공동체의 활성화를 통한 이주노동자의 공동체 참여를 높이는 일이다. 지자체와 지역사회는 이를 적극 지지, 지원하여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돕고, 건강과 보건의료 영역에서도 교육사업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을 기획해볼 수 있을 것이다.

차별의 이전구조에서 존중과 평등의 관계를 만드는 지역사회로

보다 평등한 사회관계를 지향할수록, 서로 존중하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수록 그 사회 구성원 전체가 건강해진다는 영국의 저명한 사회역학자의 말을 빌려본다. 평등한 사회관계는 평등에 대한 인식과 구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지역사회에서 이주노동자도 동일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닌 사람으로 인식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과 문화 사업이 필요하다. 평등성을 인식하는 사업에 이주민과 정주민이 함께 참여하고 아동, 청소년, 성인,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 지역사회 각 영역에서 차별과 편견이 해소될 수 있도록 하자는 ‘()더큰이웃아시아의 고견에 귀 기울일 만하다.

특집1. 안전보건 영역에서 배제되는이주노동자 실태와 문제점 / 2019.09

['불법'인 사람은 없다 ①] 

 

안전보건 영역에서 배제되는이주노동자 실태와 문제점

 

 

푸우씨 / 집행위원장

 

매일 같이 언론을 통해 산재 사망 등 대형 참사 소식을 전해 듣는다. 희생자 명단에서 이주노동자를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지난 731일 발생한 목동 신월 빗물 저류시설 수몰 사고에서 희생된 노동자 중 한 명은 미얀마 청년 쇠 린 마웅이었다. 722일 새벽 강원 삼척시에서 밭일하러 가던 승합차 전복으로 4명 사망12명 중경상을 입은 사고 해자의 일부는 태국 국적의 이주노동자(사망 2, 부상 3)였다. 814일 속초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공사용 승강기가 추락해 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사고의 피해자 중 2명은 중앙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였다.

그들은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삼척 승합차 전복 사고와 마찬가지로 치료를 받지 않고 몰래 몸을 숨겨야 했다. 당장 치료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미등록 상태에 있어 단속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런 현실에 대해 이주노동자를 을 중의 을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며,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위험의 이주노동자화라고 빗대기도 한다.

이주노동자 산재통계의 현실?!

작년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문진국 자유한국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토대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5월까지 산재를 당한 이주노동자는 33708명으로, 이 중 511명이 사망했다. 산재보험에 가입된 이주노동자의 산재 발생률은 1.16%, 정주 노동자(0.18%)6.4배에 이르고 있는 현실이 드러났다. 또한 전체 산업재해율은 20120.59%에서 20160.49%로 낮아졌지만, 같은 기간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율은 6.9%에서 7.4%로 오히려 증가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통계조차 정확치 않으며, 현실을 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산재 발생에 대한 보고 의무를 가진 사업주의 산재 발생 미보고(산재 은폐)로 인해 산재보험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수많은 이주노동자의 노동재해가 현실에 존재한다. 또한 동전의 양면처럼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이주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하지 않을, 아니 못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실제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에서 201712월 이주노동자 20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산업재해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정보부족’, ‘사업주의 비협조’, ‘보험처리 과정의 어려움등을 이유로 산재보험 이용에 어려움이 있다고 응답했다.

응답자 중 65.5%산재보험 신청 방법을 잘 몰라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으며, 56.6%산재 치료 및 보상 과정에서 설명을 듣기는 했으나 통역이 없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52.2%산재 진행 절차 등에 관해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어 불안했다고 답했다. 이러한 산재보험의 보고체계가 갖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의 재해 현실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국가통계라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산재보상보험법 제외업종에 많이 종사하는 이주노동자

이에 덧붙여 산재보상보험법의 대상자가 아닌 이주노동자의 현실은 아예 통계에서 제외되고 있다. 단적으로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이주여성 노동자는 대상자가 아니기 때문에 누락된다·축산업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도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71일부터 상시 1인 미만의 사업장까지도 산재보험이 적용됐지만, 농업은 예외이며, 상시 근로자가 5인 미만인 사업장은 산재보험 가입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현재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의 85%4인 이하의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들은 일하다가 다치거나, 병들어도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재해 현실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와 함께 특히 위험한 일터로 꼽히는 어업에도 16천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종사하고 있으나, 이들의 현실 또한 잡히지 않는다. 20t 이상의 연근해 어선과 원양 어선 선원취업자들은 근로기준법적용대상에서도 제외됐고 선원법의 적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이주노동의 현실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산업재해 통계 현황에서, 현실에 근거한 정책 대안이나 이주노동자 안전보건 대책이 제출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고용허가제 폐지!

열악한 이주노동의 현실 타개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는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이주노조와 이주노동자, 이주인권운동 진영은 무엇보다 고용허가제 폐지를 최우선의 과제로 꼽고 활동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대표적인 이주노동자 국내 유입제도인 산업연수생 제도의 문제점01이 제기되자 그 대안으로 마련되었지만, 고용허가제는 사업주가 허가하지 않으면 원천적으로 사업장을 옮길 수 없다. (자신이 일할 업종, 사업장에 대한 선택권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하던 사업장을 그만 둘 자유도 없다!)

사업주에게 귀책사유가 있을 때는 이직이 가능하지만 이 또한 이주노동자가 사유를 입증해야만 한다. 임금체불과 폭력, 저임금, 장시간 노동, 안전·보건의 취약함 등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사업장을 옮기고자 할 때도, 사업주가 고의로 이탈 신고를 하면 이주노동자들은 미등록 상태가 되어 하루아침에 불법이라는 꼬리표를 달기도 한다.

이러한 고용허가제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은 아프거나, 다쳤을 때 치료받기를 요구하거나, 산재신청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 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협박을 받거나, ‘더 일할 수 있도록 비자 연장을 해주지 않겠다.’며 침묵을 강요하기도 한다.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등 국제사회에서도 고용허가제문제를 지적하며 개선을 권고하고 있으나, 한국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안전은 권리입니다!’ 이주노동자도 차별 없이 안전을 기본권으로!

20192월 정부는 산재예방 캠페인의 슬로건을 안전은 권리입니다로 새롭게 채택했다. 안전이 이주노동자에게 권리로 받아들여지려면 임금과 근무조건을 자유롭게 협상하고 차별 받지 않는 것’, ‘자유로운 사업장 이동권한을 갖는 것’,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며 숙식비로 30만 원가량 공제되지 않고 안전한 공간에서 살 수 있는 주거권을 갖는 것’, ‘불리한 노동조건을 타개하기 위한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 것’, ‘국적, 인종, 종교, 성별, 체류자격에 구별 없이 평등한 인권을 갖는 것’, ‘가족과 자유롭게 교류하고 초청할 권리를 갖는 것등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사회에 던지고 있는 인간으로서 마땅한 요구에 응답하고 이를 보장할 때 이루어질 것이다.

특집3. 최고기온 50도 넘는 곳에서 장시간 일하지만... '쉬지 못하는' 공항 노동자들

[옥외작업노동자의 건강, 안녕하신가요 ③]

 

최고기온 50도 넘는 곳에서 장시간 일하지만... '쉬지 못하는' 공항 노동자들

 공공운수노조 민주한국공항지부 서우석 홍보부장, 우형진 조직쟁의부장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되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 있다. 바로 공항이다. 작년에는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한 여객 수가 6800여만 명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운항 횟수와 환승객 수도 2001년 개항 이후 역대 최대치였다. 공항은 사람들만 이용하지 않는다. 여객 수 증가와 함께 여객기와 화물기 운항도 크게 늘었다. 항공화물 중 국제화물은 295만2069톤으로 홍콩과 상하이 푸동에 이어 2년 연속 세계 3위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게다가 인천국제공항은 공항 분야 유엔으로 불리는 국제공항협의회(ACI)가 발표하는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2016년까지 연속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공항에서 일하는 만큼 공항 노동자들의 작업환경도 1위일까? 정작 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무엇보다 날씨 영향을 크게 받는 옥외작업자인 지상조업 노동자들에게 여름 휴가철은 가장 끔찍하다. 뜨거운 공항 아스팔트 위에서 가림막 하나 없이 올여름을 또다시 버텨야만 하는 지상조업 노동자들을 직접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7월 19일에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민주한국공항지부 사무실에서 서우석 홍보부장, 우형진 조직쟁의부장과 진행했다. 두 사람 모두 97년에 대한항공의 자회사인 한국공항에 입사해 지상조업 노동자로 22년 가까이 근무 중인 베테랑들이다.

지상조업은 공항과 비행장에서 항공기가 이륙하기 전, 착륙 후 항공기에 대해 이루어지는 지상 업무를 일컫는다. 비행기가 공항에 이착륙하면 챙길 일이 많다. 이착륙이 원활히 되도록 유도를 해야 하고, 승객들의 수많은 짐을 싣고 날라야 한다. 겨울에는 비행 날개가 얼어 위험할 수도 있어 제설작업도 해야 한다. 주로 야외에서 작업을 많이 하므로 날씨 영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위험하다. 틈틈이 잘 쉬어주는 것이 필수적인데 그럴 수가 없다. 쉴 시간과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공항 노동자에게 존재하지 않는 쉼

서우석: "지상조업 노동자들에게 휴게시간은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노조가 요구해서 지난해에 개장한 제2여객터미널은 동편, 서편에 각 한 개씩 컨테이너를 배치해 휴게공간으로 사용하고 있고 제1여객터미널과 탑승동에는 심지어 휴게공간이 없어요. 그나마 사무실 직원 대기실과 가까이 일하는 노동자들은 아주 잠깐 짬 내서 대기실에 엉덩이를 붙이고 나오는 정도죠."

우형진:" 김포공항은 인천공항보다 크진 않아요. 공항과 비행기를 연결해주는 브릿지(Bridge) 쪽은 그나마 건물 안쪽에 있어서 덥거나 추울 때 안으로 들어갈 수라도 있어요. 그런데 리모트(Remote, 원거리)라고 해서 승객들이 밖으로 나와 버스로 이동하는 야외 공간의 경우 인천공항처럼 컨테이너 같은 것도 없어요. 햇빛 차단하는 게 전혀 없고, 그나마 램프 카(Ramp Car) 같은 걸 이용하죠. 그런데 이것도 3대밖에 없어요. 제가 소속된 한국공항은 하루 15개 조가 나와서 작업을 하거든요. 3대 중 겨우 2대만 에어컨 나오고 한 대는 그것도 안돼요. 그래서 리모트에서 작업한다고 그러면 쉴 공간이 없어 비행기 밑이나, 아니면 승객 짐 싣는 곳 난간 안쪽에 들어가 있는 정도예요. 그늘만 생기면 그게 어디든 이용하는 거죠."

상황은 심각했다. 지난해 활주로의 낮 최고기온은 50도를 넘어섰고, 지상조업 노동자 4명이 폭염에 쓰러졌다. 작업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올해는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더위와 추위에 쓰러져갈지 모른다. 날씨에 따른 건강 영향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근본적 원인으로 부족한 인력과 장시간 노동을 지목했다. 지상조업 노동자들은 기본 불규칙 노동을 한다. 이들의 삶은 비행기 스케쥴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이를 합법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이 근로기준법 59조 '노동시간 특례조항'이다. 항공기 수하물·화물을 하역·탑재하고 급유를 하는 등의 지상조업은 항공운송업으로 분류되어 근로기준법 59조 적용을 여전히 받는다. 작년 2월 26개 중 21개를 폐기했지만, 여전히 항공운송업을 포함한 육상/수상 운송업, 보건업이 특례업종이다. 따라서 무제한 노동이 가능하다. 장시간 노동으로 이미 과부하가 걸린 상태에서 덥거나 추운 날씨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민주노조가 생긴 뒤 현장엔 작지만 소중한 변화가 생겨났다. 바로 인터뷰 장소이기도 했던 노조 사무실이다. 왼쪽은 인터뷰에 참여한 우형진 조직쟁의부장, 오른쪽은 서우석 홍보부장의 모습이다.

 

문제는 부족한 인력과 불규칙한 스케쥴 근무, 장시간 노동

서우석: "17년 12월 이기하 씨가 과로로 사망했습니다. 하루 4시간 정도 자고 출근해 10시간 이상 일했어요. 부검했던 의사도 과로와 극심한 스트레스, 날씨 영향이 크다고 유가족에게 설명했다 들었습니다. 이때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한 투쟁도 했는데 현재까지 큰 변화는 없어요.

지금도 새벽이어도 비행기 스케쥴에 맞춰 출근합니다. 첫 조가 새벽 2시 출근하면 30분 단위로 끊어서 근무표가 짜여요. 요일마다, 비행기 편수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보통 5일 근무 중 4일은 연장근무를 해요. 많이 하면 4시간, 5시간까지도 해요. 겨우 5일 차 마지막 날이 되면 기본 8시간 근무만 하고 퇴근하죠. 비행기는 늘면 늘지 줄지 않아요. 그런데 현장에서 일하는 인원은 계속 줄어요. 채용해도 환경이 안 좋으니깐 그만두죠. 그러니깐 사람이 없으니 일은 일대로 많고, 쉴 수가 없어요. 한 마디로 인원 부족에 매일 시달리는 거죠."

한국공항 업체의 경우 인천공항에 80개 조가 일한다. 14년엔 1개 조당 7명이어서 휴무자 1명을 제외하면 6명이 근무했다. 그런데 17년 3월 한국공항 대표이사 총괄 사장으로 강영식씨를 선임하고 이후 인원을 줄여 휴무자 없이 6명이 일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7명이 있어야 1명씩 돌아가면서 쉬는데, 그러질 못하는 것이다. 결국 겨우 6명으로 맞춰 일은 하지만 결원이 생길 경우 그 인원도 못 채워 일할 때가 대다수다. 어떤 땐 5명, 4명이 일할 때도 있다. 김포공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형진: "김포공항은 1개조에 5명이에요. 4명이 근무하고 1명은 휴무자고요. 한 명이 쉬는데 만약 다른 사람들이 일이 생겨 못나오게 되면 큰일나요. 그러면 전원 출근한 조를 찾아서 투입하는 식이에요. 모두가 힘들어 지는 거죠."

부족한 인력에서 근무 시간표는 오로지 비행기 스케쥴에 맞춰 짜인다. 사람의 건강이 기준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이 기준이다. 서우석 씨는 직접 프린트한 근무 스케쥴 표를 보여줬다. 회사는 노동자가 쉴 수 있는 좀처럼의 시간도 참지 못하는 듯했다. 오전 7시 출근자의 근무표가 갑자기 오전 8시 5분 출국 비행기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되면 출근하자마자 바로 작업에 돌입해야 한다. 출국 편의 경우 장비 준비, 승객 짐 싣기 등 준비할 것들이 많다.

문제는 근무표가 이런 식으로 빈틈없이 계획된다는 것이다. 종일 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엔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공항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식사 시간조차 보장되지 않는다. 부족한 인력과 비행기 스케쥴에 맞추는 불규칙 노동, 장시간 노동은 옥외 노동자인 이들을 더욱 지치게 만든다. 지친 몸과 마음을 쉴 공간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사실상 이들은 공항 활주로에 방치된다.

우형진: "김포공항에는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있는 컨테이너 휴게실조차 없어요. 그나마 공항 내부와 가까우면 잠깐 사무실에 가서 물이라도 마실 텐데, 외부 작업을 할 땐 2~3시간 내리 밖에만 있어야 해요. 작년에 워낙 더웠잖아요. 관리자들이 가끔 돌면서 직접 물을 갖다줘요. 그러면 뭐 합니까. 얼마 안 있어서 물이 금방 미지근해지는데요. 올해는 아직 물을 받아본 적이 없고요.

추운 날도 똑같아요. 눈보라, 찬바람 피할 데가 없어요. 야외 작업은 덜덜 떨면서 해요. 겨울엔 눈이 오잖아요. 그게 녹으면 승객 짐이 다 젖어서 비닐을 깔아요. 그런데 추우니깐 짐 싣는 차에 들어가거든요. 그러면 눈이 녹아서 미끄러운 상태가 돼요. 그래서 제가 관리자에게 램프 카라도 여유 있게 배치하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하는 소리가 이 안에 들어가지 말라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눈보라 치는데 여기도 못 들어가는 거냐고 하니깐 자기들 입장에선 다칠 수 있으면 올라가지 말라는 말 밖에 못 한다는 거예요."

한국공항은 무재해 목표를 달성한다는 명목으로 안전클리닉 과정을 운영한다. 이 외에도 안전순찰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 작업환경 개선 요구를 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정작 외면한 채 위반 사항을 적발하는데 목표를 둔 활동은 현장 노동자들에게 전혀 환영받지 못하고 있었다.

서우석: "안전보안팀과 마찰이 심해요. 지상조업노동자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와서 왜 안전규정 위반했냐고 지적을 하면 너무 화가 나죠. 현실하고 동떨어진 소리를 하고, 위반 사항 적어서 보고 올리면 안전클리닉에 가서 교육을 들어야 해요. 그러면 뭐 합니까. 현장이 하나도 개선이 안 되는데요. 안전보안팀이 오면 오히려 분위기가 위축되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의기소침해져요."

"고객의 행복한 여름 여행 속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 땀, 눈물 잊지 마세요." 작년 노동청은 공항에 즉각 휴게공간을 마련하라고 했지만, 계류장 네 곳에 버스가 배치된 것이 전부였다. 턱없이 부족한 상주 직원 휴게실 확보에 항공사, 항공사 하청, 인천공항공사 등이 나서도록 힘 써야 하지만 사실상 사업주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고 있는 것이다.

노조는 끊임없이 이 문제를 제기해왔고, 드디어 지난 7월 19일 인천중부지방고용노동청과 노조 간 면담이 있었다. 이후 휴게시설 관련 제2여객터미널에 카라반 11대를 한국공항, 진에어, 대한항공 세 개 업체가 공동 설치하고 리모트에 화장실 설치 논의가 진행 중이란 소식이 현장에 전해졌다. 물론 끝까지 지켜 봐야겠지만, 그간 노조의 싸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올해 노조가 진행한 설문결과 조합원들은 '휴게시간 보장'을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했다. 승객의 안전한 여행은 곧 공항 노동자들의 쉼이 보장된 안전하고 안정적인 작업환경에 달려있다는 것을, 지상조업 노동자들의 눈물 어린 여름 나기가 보여주고 있다. 더이상 더위와 추위에 공항 노동자들이 다치고, 아프고, 죽지 않도록 공항 측과 업체들의 각별한 노력과 책임이 필요한 때이다.

특집2. '오락가락' 노동부 권고... '폭염시 작업중지' 법제화돼야

[옥외작업노동자의 건강, 안녕하신가요 ②]

 

'오락가락' 노동부 권고... '폭염시 작업중지' 법제화돼야

 

이진우 운영집행위원,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부장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는 옥외작업자 건강보호 가이드 초안을 마련하여, 노사 의견을 모으는 간담회를 2018년 5월 초에 진행한 바 있다. 이때 검토된 가이드는 미세먼지, 폭염, 한파 등이다. 노동계는 폭염에 대해서는 더위체감지수(WBGT)를 기준으로 하고, 한파에 대해서는 체감온도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전문가들도 동의했다.

하지만 2018년 6월에 최종안이라고 보내온 가이드라인은 논의 내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휴식 시간의 구체적인 명시가 빠져있거나 기준지표들을 섞어 사용해, 현장의 혼란만 가중시킬 상황이었다. 결국 고용노동부는 노사 논의까지 진행한 옥외작업자 건강보호가이드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8년 6월에 보내온 문제가 많은 최종안 중 폭염에 대한 부분이 '실수'로 다른 지침과 같이 나가면서, 지청 게시판 및 경총 소속 사업장 게시판에 수없이 게시되었다.

그렇게 고용노동부가 폭염 가이드의 공식발표를 미루는 사이, 작년 7월 17일 전북 전주시의 한 건설 현장에서 폭염경보 기준인 35℃가 넘는 날씨에도 실외작업을 하던 66세의 건설노동자가 정신을 잃고 5m 높이에서 쓰러져 추락 사망했다.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땀을 많이 흘리면 체내 수분이 부족해져 동맥경화와 함께 심근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고 전날에도 열탈진 환자가 발생해 현장조합원들은 '오후에 한 타임만 쉬게 해달라'고 건의했으나 회사는 작업 기일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로 이를 묵살했다.

2018년 당시 연속적인 폭염으로 온열질환 발생이 연이어 발생하자 지자체별로 옥외작업 중단을 발표하더니, 2018년 7월 27일에는 노동부 차관이 폭염을 공사 기간 연장의 요건 규정화 추진방침을 발표했다. 2018년 8월 1일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공공발주공사의 작업 중단 방안 대책을 지시하기도 했다. 노동부 차관이 건설업 대책으로 산업안전보건관리비로 아이스 조끼, 아이스 팩 등을 구입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으나, 법정 산업안전보건관리비가 있는 것은 건설업뿐이고 공사기간 연장도 건설업에만 적용되는 조항이다. 폭염에 같은 용접작업을 해도 조선업, 제철소, 발전소에는 적용될 수 없는 대책이다. 국무총리나 지자체에서 방침을 밝힌 폭염 시 작업중지도 공공발주 공사에만 한정될 뿐이다.

지난 수년간 폭염 시 노동자 대책은 7~8월 반짝하다가 언론의 관심이 사라지면 대책도 동시에 사라지는 행태가 반복됐다. 2018년 온열질환자 발생자 2,549명 중 1/4이 옥외작업자였고, 온열질환 사망으로 산재가 인정된 노동자가 5명에 달했다. 이에 대처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자, 2019년 기상청에서 폭염 영향 예보가 신설되었고 고용노동부는 이 기준에 맞춰 2019년 6월 4일 '폭염 대비 노동자 건강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2018년 옥외작업자 건강보호 폭염 가이드에는 35℃가 넘는 오후 2~5시에는 긴급작업을 제외하고는 작업을 중지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었다.

2018년 서울에서 최고기온이 35℃를 넘었던 날은 22일, 38℃를 넘었던 날은 4일이었다. 2018년에 겪었던 무더위가 올해에도 반복되지 않으리라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올해 6월 발표에선 무더위 시간대에 옥외작업중지를 권고하는 기준이 지난해보다 3℃ 높아져 38℃로 올랐다. 이에 폭염 대책이 후퇴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고용노동부는 결국 2019년 8월 1일 '35℃ 폭염시 작업중지 권고'를 발표하며 다시 기준을 낮췄다. 정말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고자한다면, 최대한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권고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이런 원칙 없이 기준을 오락가락 변경하여 현장의 혼란만 가중시켰다. 올해 여름의 절반이 지나는 동안 고용노동부가 보여준 행보는 옥외노동자의 안전을 내팽개친 것과 다를 바 없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진 1일 광주 서구 농성동 한 건설현장에서 근로자들이 모자와 마스크 등으로 피부에 직접 닿는 열기를 막으며 작업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9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위탁연구용역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옥외작업자 건강보호 종합대책 마련 연구(폭염)'가 진행 중이고, 지난 7월 노사 및 전문가 회의가 열렸다. 연구진은 폭염영향예보가 기온만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현장상황 반영에 한계가 있고, 상대습도를 고려해야 한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했다.

또한, 작업환경(보호구, 직사광선노출), 작업형태(고열노출, 격렬한작업), 취약집단(온열질환경험자, 고령노동자) 등을 고려해 위험단계를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전향적인 내용도 발표했다. 노동계는 연구진의 기본 취지에 공감하지만, 기준지표는 더위체감지수 사용을 주장했다. 더위체감지수가 꽤 높은 단계인 날에도 폭염영향예보는 발표되지 않는 등 폭염에 의한 영향을 제대로 반영 못하고 있고, 폭염영향예보와 마찬가지로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더위체감지수는 도로, 건설현장, 조선소 등 현장 상황에 맞게 위험단계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더위체감지수가 현장 적용의 어려움이 있고, 위험단계 상향 조정에 대해서도 정말 필요한 구체적인 상황만 열거해야 작업중지하는 현장 부담이 줄 수 있다며 난색을 보였다.

한편, 한파 관련 가이드라인은 2018년 12월 다시 노사 및 전문가 논의자리가 있었고, 체감온도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바람이 있을 경우 체감온도에 따른 수칙을 참고하라는 문구만 삽입되었다. 영하 15℃를 한파경보로 엄격히 두고 있으나, 한랭질환의 증상이 발생해야 작업중지를 할 수 있어 예방 차원의 가이드라인을 무색하게 한다. 미세먼지 관련 내용은 2019년 1월에 발표되었으나, 마스크 지급 정도만 규정되어 있을 뿐 미세먼지 경보 수준에서도 작업중지 내용은 빠져있다.

한국에서는 2005년 폭염 종합대책 발표 이래 지난 14년 동안 폭염 시 작업중지는 오로지 권고로만 규정되어 있었다. 한파 및 미세먼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미 권고는 사업장에서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현실로 드러났기에 근본 대책으로 폭염 시 작업 중지가 법제화되어야 한다.

국회에는 폭염 관련 법안들이 발의는 되어 있으나 계류 중이다. 노동자에게 '폭염시 작업 중지권'을 부여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이정미, 정동영 의원이 발의했다. 임이자 의원은 폭염에 노출되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우려가 크다고 판단되는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이 사업주에게 직접 작업중지를 명령할 수 있고, 이에 따르지 않을 때 5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또한 작업중지로 건설일용직 노동자의 임금이 줄었을 때 그 일부 또는 전부를 정부가 보조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강병원 의원은 폭염·한파·황사·미세먼지 상황에 대한 사업주의 안전ᄋ보건조치 의무를 명확히 하고, 작업중지 요건에도 포함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특히, 분진작업의 경우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605조에 정의가 있고, [별표16] 제26호의 분진작업은 '미세먼지(PM-10, PM-2.5) 경보 발령지역에서의 옥외작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입법화가 기본 방안이나, 노동부가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있다면 시행령 등 하위 규정을 통해 보완이 가능하다. 현행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558조에는 고열작업에 대한 규정이 있지만, 폭염 시 옥외작업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여러 차례 개정 논의가 있었으나, 결국 2017년 '옥외작업에 적절한 휴식과 그늘진 장소 제공'만 안전보건기준규칙으로 개정되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는 46조에 유해위험작업에 대한 근로시간 제한 규정이 있고, 시행령에서 잠함, 잠수작업만 규정하고 있다. 이 시행령에 폭염, 한파, 미세먼지 발생 시 옥외작업에 대한 시간제한을 규정하는 등의 개정으로도 즉각적인 조치도 가능하다. 또한, 옥외작업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기상변화 시 대응이, 실질 이행이 되도록 인력이나 임금 보전 대책 등이 보완되어야 한다.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이나 국회에 발의된 산안법 개정안이 건설노동자 위주여서, 실내 노동자나, 한 장소에 머물지 않고 이동하는 집배원이나 택배배달원, 배달노동자 등 전체 옥외작업 노동자에 대한 대책과 지자체의 쉼터 조성 등 조치가 필요하다. 또한, 급식노동자들이 냉방시설 없는 작업공간에서 조리하다 열탈진 발생이 속출하고 있다.'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559조'의 고열작업 범위를 넓혀, 학교급식과 같은 음식 조리업 노동자 대책도 즉각 수립되어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이 아니라, 실질적인 작업중지 법제화로 근본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집1. '이상 기후'에 위협받는 옥외작업노동자의 건강

[옥외작업노동자의 건강, 안녕하신가요①]

'이상 기후'에 위협받는 옥외작업노동자의 건강

 

김정수 운영집행위원, 향남 공감의원 원장

 

과다하게 배출된 이산화탄소에 의한 지구온난화로 인해 이상 기후 현상이 전 세계에 나타나고 있다. 폭염, 한파, 가뭄, 폭우 등 다양한 양상으로 북반구와 남반구,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에 번갈아 가면서 나타나 전지구적인 연중행사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여름 일 최고기온이 33℃ 이상인 폭염일수가 역대 최다인 31.4일로 평년 9.8일에 비해 무려 3배 이상 많았고, 6월부터 8월 사이의 전국 평균기온이 1973년 이후 가장 높았다. 그뿐만 아니다. 작년 1월 23일부터 2월 13일에는 전국적으로 강한 한파와 대설이 찾아와 곳곳에서 역대 가장 낮은 일 최저기온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상 기후는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그중에서도 적절한 냉난방이 힘든 저소득층, 어린이와 노인, 만성질환자 등 건강 취약계층이 훨씬 더 위험하다. 폭염이나 한파 속에서 일해야 하는 옥외 작업 노동자들도 위험 인구집단 중 하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옥외 작업 노동자들은 이상 기후뿐만 아니라 미세먼지 같은 대기오염과도 싸워야 한다. 폭염이나 한파 같은 이상기후와 미세먼지 같은 대기오염이 옥외 작업 노동자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2019년 여름 폭염과 소나기가 오가는 기후 속에, 노동자 건강권을 지킬 수 있는 폭염 대책이 필요하다. ⓒ SBS 뉴스 갈무리

 

옥외노동자들의 건강 위협, 이상 기후부터 대기오염까지

뜨거운 환경에 노출되어 발생한 열 때문에 생기는 질환을 온열 질환이라고 하는데, 열경련(heat-cramp)01, 열실신(heat syncope)02, 열피로(heatexhaustion)03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어서 서늘한 환경에서 수액을 공급해주면서 전해질 균형을 맞춰주면 보통 회복이 잘된다.

그러나 열사병은 체온을 유지하는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서 체온이 40도 이상으로 올라가고, 의식변화가 생기며,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특히 체온 조절 기능이 떨어지는 노인들은 열사병에 취약하므로 주의를 해야 한다.

반대로 차가운 환경에 노출되어 추위 때문에 생기는 질환을 한랭 질환이라고 하는데, 저체온증(hypothermia)은 인체의 중심체온이 35도 이하로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 처음에는 몸이 떨리고 손발이 마비되고 입술과 손가락이 파래지는 증상이 나타나고, 진행될수록 심장박동 및 호흡량이 줄어들고 의식이 흐려지다가, 결국 심장박동과 호흡이 없어지고 의식이 소실되면서 사망에 이르게 된다.

동상04이나 참호족05은 심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손발에 주로 생기는 질환으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드물지만, 저체온증은 단시간도 사망에 이를 수 있음으로 주의해야 한다.

미세먼지는 대기 중에 떠다니거나 흩날려 내려오는 입자상 물질을 말하는데, 석탄·석유 등의 화석연료를 태울 때나 공장·자동차 등의 배출가스에서 많이 발생한다. 입자의 크기에 따라 지름이 10㎛보다 작은 미세먼지를 PM10, 지름이 2.5㎛보다 작은 미세먼지를 PM2.5라고 한다.

PM2.5의 경우 발생원에서는 가스 상태로 나온 물질이 공기 중의 다른 물질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미세먼지가 되는 이차적 발생에 의해 주로 생성된다. 폐 깊숙이 침투하고 혈액으로 흡수되어 전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특히 위험하다. 미세먼지는 단기간 노출에도 뇌심혈관계 질환, 호흡기계 질환의 악화로 사망에 이를 수 있고, 장기간 노출되면 암 발생 가능성도 있다. 특히 폭염이나 한파로 인한 건강장해가 일시적인 데 비해 미세먼지의 위협은 일 년 내내 지속된다.


위험요인 자체를 줄이려는 노력 필요해

그렇다면 이런 이상 기후와 대기오염으로 위협받는 옥외작업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작업환경 관리에 관한 일반원칙과 마찬가지로 위험요인 자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가장 근본적인 조치이다. 이상기후 현상을 줄이려면 지구 온난화를 막아야 하고, 이를 위해 전 지구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미세먼지를 줄이려면 미세먼지를 많이 발생시키는 공장 가동과 자동차 배기가스를 줄이는 등 국내 미세먼지 발생 원인에 대한 대책뿐만 아니라 국외 미세먼지(중국발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외교적 노력도 필요하다. 전 지구적인 차원의 문제이므로 국제적인 수준의 협의가 필요하고, 국내 문제에 대해서도 전체 사회 구성원의 합의에 기반한 대책을 수십 년 이상 지속해서 실행해나가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고려할 조치는 위험 요인을 회피하는 것이다. 폭염이나 한파, 미세먼지가 심한 기간에는 작업을 중단하거나 작업 시간을 단축하고 휴식 시간을 늘려야 한다. 폭염이나 한파 등 이상기후에 대해서는 기상청에서,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에 대해서는 환경부에서, 외출을 삼가고 그나마 안전한 실내에 머무는 것을 골자로 한 예보를 하여 위험을 대비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런 기본적인 원칙이 옥외 작업 노동자들에게도 당연히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대책이므로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특히 노인이나 만성질환자는 이상 기후나 대기오염으로 인한 건강 장해에 취약한 민감군이므로 반드시 옥외 작업을 중단하도록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적절한 보호 장구 혹은 장비를 사용하는 것도 추가로 고려해 볼 수 있는 조치다. 폭염을 피하려고 작업장 주위에 그늘막을 설치하거나 냉방기를 가동하고 시원한 물과 식염을 제공하는 것, 한파를 피하고자 작업장 주위에 히터나 난로를 설치하거나 모자, 장갑, 마스크, 방한복 등 방한장구를 착용하고, 따뜻한 물을 제공하는 것, 흡입하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미세먼지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 등이다. 이런 조치들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회피하는 것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리는 조치라는 것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폭염 특보가 발령된 상황에서는 휴식시간을 늘리는 것(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 상 폭염주의보(33℃) 발령 시에는 매 시간당 15분씩, 폭염경보(35℃) 발령 시에는 30분씩)이 우선이고 물과 그늘을 제공하는 것은 부가적인 조치가 되어야 한다.

작년 여름 여러 명의 노동자가 옥외 작업 중에 열사병으로 사망했다. 고용노동부가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 이행 가이드]를 2017년 12월 이미 개정해 현장에 배포했고, 2018년 6월에는 옥외 작업 노동자의 건강 보호를 위해 열사병 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건설현장 등을 대상으로 6월부터 9월까지 감독·점검을 하겠다고 했으나, 노동자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이런 대책들은 강제성이 없어 권고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강제성을 부여하고 실질적인 감독·점검을 통해 대책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여름철 폭염 대책, 겨울철 한파 대책 등 일회적 단기 대책으로는 더이상 이런 피해를 막기 힘들다. "이상기후 및 대기오염으로 인한 옥외작업 노동자 건강장해 예방을 위한 종합대책" 같이 더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각주
01. 뜨거운 환경에서 격렬한 운동을 하고 난 이후에 근육이 수축하면서 국소적인 통증과 근육경련이 생기는 것

02. 말초혈관 확장 등으로 인한 일시적인 저혈압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

03. 땀을 많이 흘렸는데 수분을 제대로 보충하지 못하는 경우에 생기는 피로함이나 어지러움, 두통, 구토 등의 증상

04. 심한 추위에 노출된 후 피부조직이 얼어버려서 국소적으로 혈액공급이 없어진 상태를 말한다. 처음에는 따끔따끔한 느낌이 들면서 예민해지다가, 진행하면 핏기가 사라지면서 마비된 느낌이 들고, 더 심해지면 피부가 딱딱해지면서 검게 변한다.

05. 발을 오랜 시간에 걸쳐 축축하고 비위생적이며 차가운 상태에 노출함으로써 생기는 것으로 피부가 붉어지고, 부풀어 오르고, 감각이 없어지는 증상

특집4. 일터괴롭힘 없는 일터를 위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과제 / 2019.07

[일터괴롭힘 없는 평등한 일터 만들기④] 

 

 

일터괴롭힘 없는 일터를 위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과제

 

 

최민 / 상임활동가 

 

 

오는 7월 16일부터 일터괴롭힘 예방을 위한 조항이 포함된 근로기준법이 시행된다. 이 날부터는 취업규칙에도 일터괴롭힘 예방을 위한 조치가 포함돼야 한다. 일터괴롭힘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에서 회자된 것이 몇 년 되지 않았다
는 점을 고려하면 큰 진전이지만, 누구나 ‘일터괴롭힘’ 문제가 법이 도입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으리라는 점을 잘 알 것이다. 괴롭힘이 없는 일터를 넘어, 노동자가 존중받는 일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것은 직장 내 괴롭힘인가요?


일터괴롭힘과 관련된 교육에서 ‘반말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인가요? 일을 정말 못 하는 사람을 혼내는 것도 문제가 되나요?’와 같은 질문을 흔히 받는다. 직장내성희롱 금지법이 만들어졌을 때도 유사한 상황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나도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한 직장 상사가 능글맞게 웃으며 “이것도 성희롱인가?”, “이건 아니지?”라고 던지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성희롱 목록’에 들어가는 행동만 조심하는 것이 아니다. 내게 익숙한, 성별과 성정체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기반한 여러 말과 행동이 타인을 배제하고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자각과 이에 비추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성찰이다. 일터괴롭힘 문제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행동이나 행위가 일터 괴롭힘인지 아닌지가 아니다. ‘직장에 갈 때 영혼은 집에 두고 가는 거야,’ ‘이런 직장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먹고 사는 게 먼저지, 지금 자존심 챙길 때냐’ 하는 사회적 통념에 기댄 우리의 무딘 말과 행동이 누군가를 모욕하거나 배제하고,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성찰이다. 나라도 그런 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책임감, 이런 문화를 바꾸어 내겠다는 고민이 중요하다.


당신은 괴롭힘 행위자? 동조자? 방관자?


예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로부터 ‘선배에게 폭언을 들을 때, 옆에 있던 너도 동조자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괴롭힘의 순간에 당하는 사람의 편에 서지 못 했던 것은 나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너무 부끄러운 나머 지, 오히려 ‘내가 직접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잖아’, ‘그래도 나중에 위로해주지 않았나’ 하는 억울한 마음이 먼저 들기도 했다. 하룻밤 뒤척이고 나서야, 뒤늦게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괴롭힘이 눈앞에서 벌어질 때, 그 순간 바로 제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괴롭힘’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괴롭힘 행위자와의 관계에서 불편함이 발생하거나 본인에게도 불똥이 튈 수도 있다는 점을 감수할 용기도 필요하다. 용기와 감수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교육과 훈련, 경험을 통해 기를 수 있다. 일터괴롭힘이 단순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직장 문화와 직장 내 관계로부터 기인하는 문제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저 멀리 있는 ‘악독한’ 상사와 ‘불쌍한’ 피해자에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 일터와 직장’의 문제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나 쉽게 동조자나 방관자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도록 일터괴롭힘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고, 일터를 인권의 눈으로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조합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 일터에서 누가 이익을 얻나?

물론 나와 우리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보는 것과 함께 이런 살풍경한 직장 분위기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지,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누구인지 따져보는 것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에 따르면,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경영 전략 차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응답이 22.4%나 됐다. 노동조합 활동이나 노동자들의 모임을 방해하기 위한 괴롭힘을 당해봤다는 답변도 4.6%나 됐다. 개인적 차원의 괴롭힘을 먼저 생각하기 쉽지만, 조직적 괴롭힘 피해도 상당한 수준이다. 직장에서 직장내 괴롭힘이 실적이나 성과 향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4명 중 한 명은 그렇다고 답했다. 일터괴롭힘 문제가 가해자를 적발해, 처벌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간의 괴롭힘이나 갈등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사실은 과도한 업무량이나 비체계적인 조직 내 의사 결정 과정, 비합리적인 평가 체계 등의 조직 문제가 갈등을 격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일터괴롭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노동조합이 나서 경영진과 회사 자체의 문제를 드러내고 이런 조직적 수준에서의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도록 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일


일터괴롭힘 문제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목록화 하고, 여기 해당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요리조리 몸을 사리는 방식으로 이해되지 않도록 노동조합이 노력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일터괴롭힘을 폭넓게 이해하고 직장 내 인권과 관계 문제에 대한 감수성과 용기를 기를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취업규칙이나 직장 내 규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도, 신고와 공개적인 조사 및 징계로 이어지는 단선적인 해결법 외에 피해자 혹은 신고자의 의사에 기반한 다양한 방식의 문제 해결 방법도 마련하여, ‘괴롭힘인지 아닌지’에 대한 지루하고 폭력적인 논쟁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대응 규정 혹은 노동인권 존중에 관한 규정을 만들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처리 방법과 원칙을 구체적으로 정해둔다. 조사 기간이나 조사위원회 구성, 일터괴롭힘 여부를 결정할 기구 등을 미리 정하며, 여기에 노동조합이 참여하도록 한다. 처리 과정에서 사생활 보호 등 피해자 혹은 신고자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노동조합 내에서 일터괴롭힘 문제를 담당할 사람을 정하고, 그가 충분한 역량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 기회를 제
공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도 직장내괴롭힘 예방 대응 업무를 총괄 담당하는 직원을 ‘상담원’과 같은 이름으로 둘 것을 추천하고 있다. 이 담당자가 단순히 신고를 접수하고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사람에 머물지 않고, 처리 과정 전반을 인권의 관점에서 진행해 갈 수 있도록 일터괴롭힘 교육, 상담 교육, 인권교육 등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없는 우리는?


일터괴롭힘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이고, 집단적인 대응이 없이는 해결이나 처리, 예방이 모두 요원하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이 있을 때 더 존중받기 쉽고, 일터괴롭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일터괴롭힘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이 조직된 노동자에게만 가능한 권리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일터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폭력과 무권리, 무존중 상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 자체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실현하고, 노동자들이 집단적인 행동을 경험할 수 있는 과정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동료들과 함께 문제적 상사에 대해 얘기하기, 우리 직장 상황을 반영하는 일터괴롭힘 교육을 요청하기, 증거를 모으고 대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 취업규칙과 법에 근거한 조사와 처리를 함께 요구해보기, 산재 신청이나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 취할 수 있는 절차를 찾아 보기 등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은 많다. 피해자가 원인제공자로 쉽게 둔갑하는 일터괴롭힘의 특성상, 홀로 있을 때는 문제가 무엇인지 조차 뚜렷하게 알기 어렵다. 함께 이야기할 때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되고, 해결책도 떠올려 볼 수 있다. 일터괴롭힘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온 직장갑질119와 같은 민간단체도 있고, 노동권익센터나 근로자복지센터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지원 조직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우리의 괴로움과 고통을 ‘함께’ 얘기하는 데서 출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