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7월_특집3] 현장에서 느끼는 중대재해 보고서 공개의 필요성

현장에서 느끼는 중대재해 보고서 공개의 필요성

 

우리나라에서 발생되는 중대재해는 추락, 협착 등 재래형 사고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동일하거나 유사한 원인으로 중대재해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현대중공업, 현대제철과 같은 대기업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노동자의 죽음, 중대재해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의 노동자들의 죽음, 또 중대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건설현장에서의 죽음. 이들 죽음에 대한 사고원인과 예방대책이 중대재해보고서에 담겨 있다. 현 법과 제도 하에서 사업장 재해에 대한 사고원인 조사는 사망사고에 따른 중대재해에 대해 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실시하는 조사와 그 후 작성하는 중대재해 보고서가 유일하다. 그럼에도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중대재해보고서가 공개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 조사의 실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감독관집무규정에 따라 해당 사업장에 감독반을 편성해서 작업중지 조치명령을 하고 중대재해 발생원인 등을 조사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6(중대재해 원인조사) 규정은 중대재해 원인조사의 근거를 규정하고, 동시에 산업재해 예방대책 수립을 그 목적으로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실제 조사는 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와 동시에 이뤄지면서 피의자인 회사의 권리만을 온전히 보장할 뿐이다.

작업중지명령 과정에서도 회사에는 자세한 설명을 하면서, 해당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는 제대로 된 설명조차 하지 않는다. 중대재해에 대한 사고조사를 수사라는 미명 하에 회사의 안내와 설명을 들으면서 진행하지만, 노동자와 노동조합 및 유족의 참여를 철저히 배제시키고 있다.

중대재해조사의 목적은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사업주의 산업안전보건법 등 위반인지를 조사하고 처벌하는 데 있지만 예방대책 수립역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방대책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조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다양한 당사자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검토해야 한다. 더불어서 예방대책이 문서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정착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주체로서 대책 실행여부를 점검하고 확인할 수 있도록 중대재해보고서는 공개되어야 한다.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조사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을 떠올려보면, 협착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한 사업장에서 회사가 개선계획으로 가져온 것은 사망설비에 추가로 센서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조사를 마치고 작업중지를 해제한 경우가 있어 황당해한 적이 있었다.

해당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센서가 작동되지 않아서 설비가 멈추지 않은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의 공정에서 트러블 조치, 설비점검 작업 중 안전작업수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사업장에서 단위 시간당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서 설비를 중지시킬 수 없었거나 작동이 되는 상태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구조에 대해서 간과하거나 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이러한 조사와 대책만으로는 구조적으로 개선되지 않은 사업장에서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시 안전센서가 작동되지 않게 될 것은 눈에 뻔히 보인다.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구의역 사고, 태안화력 사고처럼 해당 중대재해가 사회적으로 알려지고 공론화 되어 시민대책위 및 진상조사단이 구성되는 경우에는 사고의 직접적 원인, 구조적 원인을 비롯해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활동을 통해서 사고의 근본적 대책까지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중대재해보고서는 3일 이내 조사만으로 작성되다 보니 근본적인 접근까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방 및 대책활동

현재 중대재해를 제외한 사고와 질병이 발생하면 노동부는 사업장에서 작성한 산업재해조사표를 받는다. 산업재해조사표에는 사업장 정보 및 고용형태, 재해자 정보 등의 기본정보와 더불어 재해발생 당시 상황, 재해발생 원인, 재발방지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해당 조사표는 조사와 보고의 주체가 사업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 노동안전보건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업주의 관점만 반영된 조사보고서가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해당 산업재해조사표에 대해서 노동부가 통계를 내거나 분석을 하거나 데이터베이스화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1:29:300 하인리히의 법칙300번의 아차사고가 발생하면 신체손상을 일으키는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발생하고, 1번의 중대재해가 발생한다는 이론으로써 사고예방에 있어서 대표적인 이론이다. 그러나 노동부가 산재사망을 감소시키기 위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데 있어 이런 사고발생에 대한 실태분석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충청지역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해당 사업장 노동조합, 민주노총을 비롯한 지역단체 및 노동안전보건활동가들이 공동대응을 하기 위해 2~3년 전부터 논의를 해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하는 경우 중 하나는 노동조합 내 노동안전보건활동에 대한 역량이 축적되지 않는 것을 확인하는 때다. 보고서가 공개된다면 다양한 사례 검토를 통해서 산업재해 예방활동 및 대응활동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중대재해보고서 공개운동으로 나가자

중대재해보고서 공개가 필요한 이유는 사고와 관련해 노동부가 유일하게 생산하는 공식적 문서이며 사고조사의 방법과 기술 등의 노하우가 축적된 문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고서 공개가 보고서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고의 직접요인 및 기술적 요인, 그리고 구조적인 원인을 조사해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이행여부에 대한 확인이 이루어지고 강제되어야 보고서의 궁극적인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소중하지 않은 목숨은 없다. 사업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중 사회적 관심을 받았거나, 노동조합 및 지역차원에서 대응했던 사건들에 대해서는 최소한 억울한 죽음을 밝힐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은 신문 단신 하나로 끝나게 된다. 지역차원에서 대응을 해보려 해도 사업장 정보나 사실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개입조차 차단되는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중대재해보고서를 공개해 지역사회에서 해당 죽음의 실태라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개입을 모색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태진 회원,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

 

 

[일터7월_특집2] 중대재해조사보고서 공개의 필요성에 관하여- 무엇을 바탕으로 예방하고, 무엇을 근거로 처벌할 것인가?

중대재해조사보고서 공개의 필요성에 관하여- 무엇을 바탕으로 예방하고, 무엇을 근거로 처벌할 것인가?

 

중대재해 원인조사와 중대재해조사보고서

우선 개념과 명칭을 명확히 정리해보자. 현재 중대재해(조사)보고서라는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이라 한다)은 중대재해 발생시 고용노동부장관이 그 원인을 규명하고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중대재해 원인조사에 대한 근거를 두고 있다(56). 산업재해 중 사망 등 재해 정도가 심하거나 다수의 재해자가 발생한 경우로서 산안법상 중대재해’(법 제2조 제2, 시행규칙 제3)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법상 조치 중 하나다. ‘중대재해 원인조사시에는 현장을 방문하여 조사하고 재해조사에 필요한 안전보건 관련 서류 및 목격자의 진술 등을 확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등의 조사 내용에 관한 근거도 있다(시행규칙 제71). 고용노동부는 이와 같은 중대재해 원인조사의 일환으로 관련 조사 업무를 안전보건공단에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안전보건공단은 그 조사의 결과물을 재해조사 의견서라는 명칭의 문서로 작성하여 고용노동부에 제출하고 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의 요청에 따라 안전보건공단이 수행한 중대재해 원인조사의 결과를 담은 재해조사 의견서, 이상하게도 중대재해 발생으로 인한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범죄 수사 과정에서의 자료로만 활용될 뿐 위 조사의 구체적 내용은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수사자료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극히 일부의 내용이 지극히 일반적인 수준으로 재가공되어 재해사례별 또는 유형별 미디어 자료로 공개되고 있으나, 중대재해 원인 규명 및 산업재해 예방대책 수립을 위한 진정한 의미의 중대재해 원인조사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리하면, 산안법상 중대재해 원인조사는 법문 그대로 중대재해 원인 규명 및 산업재해 예방대책 수립을 위한 제도이기에, 형사처벌을 위한 수사 절차로서의 조사로 한정 해석될 이유가 전혀 없고 그 조사를 거쳐 작성된 문서 역시 수사자료로서의 의미만을 가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 원인조사를 근로감독관의 수사에 참고하기 위한 과정으로 축소한 채 이를 비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공개를 요구하는 중대재해조사보고서는, 첫 번째 기고글에서 담고 있는 바와 같이 근본적인 사고 원인을 포함한 진정한 의미의 중대재해 원인조사의 결과물이고, 제도의 목적에 맞게 그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을 우선 밝혀둔다.

중대재해조사보고서 공개의 의의 및 활용 지점

그동안에도 중대재해 원인조사를 충실히 진행하고 그 결과를 공개할 필요성에 대한 현장과 전문가들의 요구는 있었지만, 작년에 제정 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라 한다)을 고려하면 그 필요성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법의 제정이유, 기업의 조직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해 일어나는 중대재해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고의 원인에 대한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파악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대재해조사보고서 공개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되고(위하력/예방), 적용될 수 있을까(처벌)에 대한 문제와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2(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2. “중대산업재해산업안전보건법2조제1호에 따른 산업재해 중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결과를 야기한 재해를 말한다.
.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
.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


4(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은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ㆍ운영ㆍ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종사자의 안전ㆍ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 및 규모 등을 고려하여 다음 각 호에 따른 조치를 하여야 한다.
1.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2. 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3. 중앙행정기관ㆍ지방자치단체가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 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에 관한 조치
4. 안전ㆍ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
1항제1호ㆍ제4호의 조치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6(중대산업재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의 처벌) 4조 또는 제5조를 위반하여 2조제2호가목의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경우 징역과 벌금을 병과할 수 있다.
4조 또는 제5조를 위반하여 제2조제2호나목 또는 다목의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항 또는 제2항의 죄로 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후 5년 이내에 다시 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저지른 자는 각 항에서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한다.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의 구성요건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이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또는 제5조에서 정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할 것, 동법상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것, 의무 위반행위와 중대산업재해 발생 간의 인과관계가 존재할 것 등이다. 특히 경영계는 위 의 구성요건과 관련하여 명확성의 원칙 및 포괄위임입법 금지원칙 위반 등을 들고 나오고 있어 향후 해석 다툼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의 구성요건, 즉 동법 제4조의 안전·보건 확보의무의 내용과 범위를 해석하는데 있어,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서의 해당 중대재해 조사 결과는 물론이고 동일 사업장에서 이전에 일어난 사건의 조사 결과 및 동종 업종의 중대재해 조사 결과 등이 기준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중대재해 발생원인 조사 결과들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법원과 수사기관에서 해당 사업장이 제4조 제1항 각호에 따른 조치들을 얼마나 타당하게 했는지 평가하고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거나, 사업장에서 각호의 예방조치들을 현장에 적용하고 조치의 적절성을 스스로 피드백하는 과정이 얼마나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

물론 제1호와 제4호에 대해 시행령으로 구체적인 사항을 정하겠지만, 여전히 중대재해조사보고서 등 중대재해 조사 결과의 구체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위 각호에 따른 조치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였는지, 설령 이행하였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이행의 내용이 적절하고 타당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조치가 내실 없이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가령 단순히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이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형식을 갖추고 이에 관한 이행조치를 재량껏 했다는 것만으로(1), 또는 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 대책 수립의 형식을 갖추고 이에 관한 이행조치를 어느 정도 하기만 한다면(2), 안전ㆍ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를 형식상 내지 임의로 이행하였다고 해서(4)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안전·보건확보의무를 다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이 법의 입법취지에도 부합된다고 볼 수 없다.

중대재해조사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 구성요건의 명확성을 확보하기 위한 해석 전략으로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대법원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서 파생되는 명확성의 원칙은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이 명확하여야 한다고 하여 모든 구성요건을 단순한 서술적 개념으로 규정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다소 광범위하여 법관의 보충적인 해석을 필요로 하는 개념을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통상의 해석방법에 의하여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면 당해 처벌법규의 보호법익과 금지된 행위 및 처벌의 종류와 정도를 알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면 처벌법규의 명확성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어떠한 법규범이 명확한지 여부는 그 법규범이 수범자에게 법규의 의미내용을 알 수 있도록 공정한 고지를 하여 예측가능성을 주고 있는지 여부 및 그 법규범이 법을 해석·집행하는 기관에게 충분한 의미내용을 규율하여 자의적인 법해석이나 법집행이 배제되는지 여부, 다시 말하면 예측가능성 및 자의적 법집행 배제가 확보되는지 여부에 따라 이를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법규범의 의미내용은 그 문언뿐만 아니라 입법 목적이나 입법 취지, 입법 연혁, 그리고 법규범의 체계적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해석방법에 의하여 구체화하게 되므로, 결국 법규범이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는 위와 같은 해석방법에 의하여 그 의미내용을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해석기준을 얻을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대법원 2014. 1. 29. 선고 201312939 판결 등)고 판시하고 있다.

수사기록에 편철되어 해당 사건 수사를 담당한 검사와 근로감독관만 참고하고 사라지는 깜깜이조사가 아니라, 기업과 노동자가 무엇이 중대재해의 원인인지 인지하도록 하여 관련 법령상 무엇이 금지되고 무엇이 필요한지 충분히 예측가능케 하는 토대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 내에서 위하력을 가지고 재해예방의 기제로 작동하고 중대재해 발생시 처벌을 위한 근거로서 적용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사고의 원인이 규명되고 현장에서 그 내용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중대재해 원인조사 완료 후 개인정보만을 삭제한 채 즉시 일반에 공개하여 현장에서 가급적 빨리 원인을 파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고용노동부는 재해조사 결과에 기반해 도출한 재해예방 대책 등의 내용을 해당 사업장과 동종 업종 사업장들에 고지하고, 행정지도 등을 통해 그 이행을 점검하도록 하는 것도 시급히 고려해야 한다.

또한,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체계 내에서도 공개된 중대재해조사 내용을 활용하여 재해예방을 위한 안전보건관리체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위험에 대한 사업장 내 통제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노사 동수로 구성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사업주의 중대재해 원인조사 및 재발방지 대책 수립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해야 하는데, 이 때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조사보고서의 내용은 중요하게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박다혜 회원,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

[일터7월_특집1] 중대재해 조사 보고서, 지금 이대로 충분한가?

중대재해 조사 보고서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근로감독관은 현장에 방문해 재해발생 원인조사와 재발방지 대책수립에 관한 조사를 진행한다. 이때 전문적·기술적 자문을 위해 재해조사에 참여하는 안전보건공단(이하 공단)의 해당 분야 전문가가 작성한 보고서(재해조사 의견서)를 참고한다. 이를 가리켜 중대재해 조사 보고서(이하 중대재해 보고서)’라 한다. 즉 중대재해 발생의 원인 규명 및 동종·유사 사고 방지를 위해 고용노동부에서 실시한 공공·행정 조사의 결과물이 중대재해 보고서다.

사고예방은 재해로부터 배운다라는 말이 있다. 안전보건활동의 상식이자, 중대재해 보고서 작성의 이유다. 하지만 오늘날의 중대재해 보고서는 세상에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재해예방에 가장 기초가 되는 자료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는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부분은 고용노동부에서도 중대재해 보고서가 공개되지 않는 현재의 심각성을 일부나마 자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 산하의 공단에서 2020년 실시한 연구에서 기존 중대재해 보고서의 질적 측면의 한계와 함께 제한적인 수준이나마 재해조사 보고서 공개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일터7월호의 특집을 통해 중대재해 보고서 공개의 필요성은 충분히 다뤄질 것이므로 본 고에서는 관행적으로 행해지는 현재의 중대재해 조사 및 중대재해 보고서의 문제를 짚고자 한다.

도대체 중대재해 보고서는 작성하는 것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중대재해 보고서는 중대재해에 대한 공공·행정 조사의 결과물이다. 즉 중대재해라는 막중한 결과의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고, 해당 현장뿐만 아니라 수많은 일터의 재해예방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다시 한번 중대재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이유를 되짚는 이유는 중대재해 보고서가 자료로 활용되기는커녕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중대재해를 대하는 고용노동부의 태도부터 살펴보자. 우선 일반재해 경우 사업주가 재해발생 신고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하는 것으로 모든 처리 절차가 끝난다. 사망사고가 아니라면, 민원이 접수되지 않는 한 고용노동부에선 별도의 현장조사를 실시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다 보니 사업주가 재해발생 신고서에 재해 원인을 노동자의 과실이나 부주의 등으로 작성해, 피해자에게 재해의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그러나 중대재해는 다르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56조 제1항에 따라 고용노동부에서 직접 원인조사에 나서고, 동종·유사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고자 한다. 즉 일반재해와 달리 중대재해만큼은 산안법과 그 시행규칙에 조사 필요성과 처리 근거가 마련돼 있다.

어째서 중대재해는 고용노동부 차원의 별도 규정이 마련돼 있는 걸까? 그 이유는 무척이나 자명하다. 인간의 생명은 다른 어떤 가치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 한 명이라도 일터에서 죽음에 이르러서는 안 되고, 2명 이상의 노동자가 3개월 이상의 치료를 받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발생시킨 사고에 대해서도 간과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한 사업장에서 10명 이상 동시에 다치거나 질병에 노출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면, 이 또한 우리 사회가 모른 척 지나칠 수 없다.

중대재해는 결코 운이 없거나 불가피한 상황에 의해 발생하는 게 아니다. 흔히 호도하듯이 노동자의 실수나 부주의로 발생한 게 아니라 안전보건 관리의 총체적 부실로 인한 결과가 드러난 것이다. 그렇기에 해당 사업장의 안전관리를 전적으로 자율성의 영역에 맡겨서는 문제해결이 쉽지 않다. 이 같은 문제의식하에 근로감독관의 직접조사와 공단의 자문이라는 행정력을 동원해, 재해발생의 원인을 철저히 규정하고 동종·유사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고용노동부가 실시하는 중대재해 조사는 산안법 시행규직 제3에 명시된 경우로만 국한된다. 직업병이나 직업성 질환과 관련한 조사는 보상을 위한 공단의 재해조사와 역학조사로만 갈음되고 있다. 또한 중대성이 심한 부상자가 다수 발생하더라도 의료기관에서는 최초 진단 시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쉽게 내리지 않는다. 결국 대부분의 중대재해 보고서가 사고사망에 한정돼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계를 참작할 경우, 사고사망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 여기에는 그렇다, 아니다로 답하기 곤란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답하자면, 중대재해 보고서가 세상에 온전한 형태로 드러나지 않아 그 여부를 따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앞서 제시한 재해조사 보고서의 질적 제고를 위한 연구에서 일부나마 그 실태를 엿볼 수 있다. 중요한 지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현행 중대재해 조사 보고서의 한계

공단의 연구보고서를 살펴보기에 앞서, 중대재해 조사는 조사인가 아니면 수사인지 여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 보고서와 재해조사 의견서를 작성하는 근로감독관과 공단 전문가는 보고서 공개에 우려를 표한다. 중대재해 보고서는 수사자료이고,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재판 등 송사에 대한 부담은 조사내용의 손질로까지 이어진다. 즉 검찰의 기소 자료로 활용되는 산안법 법령 위반 자료 이외에 조사내용은 근로감독관에 의해 수정되거나 의견 조율이라는 형태로 수정을 요구받고 있었다. 이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담당자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채, 산업안전보건규칙 조항을 중심으로만 작성되는 한계로 작용한다.

5년간의 재해조사 의견서를 검토하고 분석한 연구에서는 재해조사 의견서의 내용상 문제를 언급한다. 재해 발생 과정이나 조사 및 확인 내용은 비교적 상세히 기술되지만, 재해 원인과 대책은 매우 단순명료하게 작성된다. 또한 작성 방법이나 재해조사 규정이 표준화돼 있지 않은 탓에 중대재해 보고서의 질이 들쑥날쑥하다. 특히 공단의 중대재해조사 실무 핸드북(2019)에서는 중대재해 보고서의 현장 확인 내용 및 분석항목에 총 12가지 요소에 관한 기술을 권하지만, 이조차 충실히 진행되지 않았다. 이는 7일로 한정된 재해조사 기간이라는 또 다른 문제와 연결되는 문제이다.

이외에도 고용노동부에서 재해조사에 한 명도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7.6%(56)에 이르는 것 조사 기간이 90.2%(668)3일 이내로 단순 현장 조사만 이뤄지는 것 중대재해 발생의 원인 수도 1~2개의 원인으로 작성된 게 63.8%(47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산안법 위반 법 조항 없이 원인만 (추락방지망 설치 미비, 방호물 설치 불량 등) 기술한 게 83.8%(62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단순한 기술적 관리 원인을 지적한 보고서가 98.4%(611)인 것 재해예방대책 제시에서도 1~2개로 작성된 게 56.7%(420)건에 달하고, 이조차 없는 보고서도 0.8%(6)나 되는 것 재해발생 대책에 교육적 대책의 필요성을 언급한 보고서는 1~2건을 포함한 게 9.3%(64)에 그치는 것 등이 문제임을 언급한다.

어떻게 보강할 것인가?

공단의 자체 용역연구 결과를 통해 제한적이지만, 그동안 중대재해 조사가 얼마나 허술하게 진행됐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지금껏 관행적으로 이뤄졌지만 중대재해 조사와 중대재해 보고서는 재해감소와 동종·유사 사고의 재발 예방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재해조사의 보강과 중대재해 보고서 작성의 본래 목적 달성을 위해 몇 가지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노동자 참여 보장이다. 예방을 위해서는 실제 사고를 유발한 현장의 실태가 가감 없이 고스란히 드러나야 한다. 이러한 실체적 기반 위에서 예방대책이 마련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재해조사 과정에서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현재의 참고인 조사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또한 안전보건활동 경험이 풍부한 지역 및 인근 사업장의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재해조사와 예방대책 수립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둘째, 재해조사의 표준화다. 지금의 조사는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조사, 사고를 유발한 기인물 조사로 한정된다. 하지만 안전대책은 노동자의 실수가 사고로 이어지지 않기 위한 것이며, 노동자의 불안전한 행동과 관리적 대책이나 조직문화 등 간접적 원인 등을 전제로 이뤄지는 조치여야 한다. 따라서 조사의 내용을 확대하고 표준화해야 한다.

셋째, 재해조사 결과의 전면 공개를 전제로 중대재해 조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전면 공개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상태처럼 관행적인 조사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과연 우리 사회에 전면적으로 공개되는 재해조사라면, 이렇게 한정적으로 조사를 할 것인지를 되물어야 한다. 이를 통해 재해조사 과정에서 누락하거나, 미처 조사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보완하도록 해야, 재해조사가 내실화를 기할 수 있을 것이다.

(손진우 상임활동가)

[일터6월_특집3] 연대의 정치로 기후정의 실현하기 - 기후정의활동가 김선철 님 인터뷰

연대의 정치로 기후정의 실현하기

- 기후정의활동가 김선철님 인터뷰

박기형 상임활동가

 

기후위기는 세계 전체의 문제다. 최근 한국정부도 그린뉴딜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지난 5월 18일 저녁 김선철 활동가를 만나, 현재 한국에서 기후위기와 관련한 정부정책의 한계와 앞으로 기후위기운동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말뿐인 한국의 그린뉴딜

김선철 활동가는 기후정의 원칙에 입각한 비폭력 시민불복종 운동을 추구하는 멸종저항서울과 멸종반란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가장 먼저, 한국에서 얘기되고 있는 정부정책으로서의 그린뉴딜에는 기후정의운동이 제기한 문제의식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알맹이는 쏙 빠진 허울뿐인 그린뉴딜로 둔갑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미국에서 활발히 이뤄졌던 ‘그린뉴딜’은 정책 이전에 운동이었다는 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정의 원칙에 입각해, 기후위기 대응만이 아니라 사회 불평등 해소를 위한 사회체제의 변화를 목표로 삼은 운동이었죠.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정부가 그린뉴딜이라는 껍데기만 가져와 기존의 친기업 성장 정책에 녹색칠을 한 것입니다. 한국 정부의 그린뉴딜과 2050 탄소중립 계획은 기후위기로 인해 변하고 있는 세계경제질서에 대응하려고 하는 경제정책의 성격이 강합니다. 더욱이 정부뿐만 아니라 정당 등 여러 단위에서 제출한 그린뉴딜 정책들 모두 아래로부터의 목소리와는 분리된 채 위로부터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폭염과 폭한, 이상기후로 인한 재앙, 일자리, 돌봄, 먹거리, 지역 공동체, 에너지 불평등 등 기후위기는 노동자, 저소득층, 여성, 청년, 장애인 등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해결책은 한줌도 안되는 관료와 소위 전문가들이 떠맡고 있죠. 이런 경향이야말로 한국 기후운동의 가장 큰 문제점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정부는 마음대로 정책을 만들고 밀어붙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구요. 이렇게 된 데에는 정부나 전문가집단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노동조합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 멸종반란 런던의 기후위기 대응 시위 모습

 

기후정의라는 대안 프레임

김선철 활동가는 '프레임 투쟁'으로 기후위기 대응의 지형을 분석하였는데, 특정한 사회세력의 프레임에 갇혀서 기후위기와 연관된 다양한 사회문제들, 여러 사회집단의 목소리가 제약되거나 무시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흔히 프레임이라 하면, 어떤 사건이나 경험, 혹은 세상을 특정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렌즈를 말합니다. 사회운동론에서 프레임은 운동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사회운동 주체가 자신의 이념적 지향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고안해내는 인식틀을 의미합니다. 정치적 갈등 상황에서 갈등의 주체들은 언제나 자기주장의 정당성과 대중들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때 자기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만들고자 경쟁을 벌입니다. 이를 프레임 투쟁이라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기후운동은 몇몇 기후환경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왔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대체로 오랜 시간 각종 환경 거버넌스에 참여해오며 현 정부와 친화적인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이들 단체 출신들은 정부위원회 위원은 물론 정부기관과 국회, 심지어 환경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자리에 포진해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아래로부터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사회운동이 강화되기보다는 소수의 활동가와 전문가에 의존하거나 정부 내 담당 부서와의 협의나 여러 형태의 로비를 통한 입법 또는 정책입안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기층 풀뿌리 조직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없으니, 현 상황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갖기 어려운 것으로 보입니다."

김선철 활동가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가장 절실한 것으로 대안 프레임의 제시를 꼽았다. 정부가 내걸고 있는 그린뉴딜이나 탄소중립에 맞선 새로운 프레임을 내걸고 이에 동의하는 사회세력을 구축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프레임 간의 경쟁을 만들어내고 논쟁의 구도를 전환시키기 위한 싸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경우, '그린뉴딜'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일자리'와 인종, 젠더, 노동, 지역, 세대 등 다양한 영역에 걸친 '사회정의' 실현입니다. 미국만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이나 '멸종반란(Extinction Rebellion)' 등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진보적 기후운동에서도 정의의 문제를 강조하면서 스스로를 기후운동이 아닌 기후정의운동으로 호명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말고 체제변화'라는 구호도 이런 문제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자연환경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이윤을 위한 도구로 삼았던 자본주의가 기후위기의 원인이라면, 이 자본주의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기후위기 극복도 불가능하다는 기후정의의 문제의식에 기반해 정부나 기업의 가짜 기후정책에 맞서 제대로 된 기후위기 대응책을 마련을 위한 진보적 시민사회의 연대와 확장이 무엇보다 필요해 보입니다."

기후정의운동을 만들어 가려면?

기후정의운동을 만들어가기 위한 원칙이자 방법으로 김선철 활동가는 ‘교차성’을 강조했다. 교차성에 입각한 기후정의운동을 만들어가는 건 도대체 어떤 것일까?

"다시 한번 미국 사례를 살펴보면, '그린뉴딜 네트워크'가 현재 주도하고 있는 THRIVE 캠페인을 참고할 수 있어요. 변혁(Transform), 치유(Heal), 새롭게 하기(Renew), 투자(Invest), 활력(Vibrant), 그리고 경제(Economy)의 앞 글자를 따서 '사회를 바꾸고 치유하고 새롭게 만들기 위해 활력있는 경제에 투자하라'라는 요구를 걸고 있어요. 여기에는 노동조합과 기후정의운동단체는 물론 원주민, 여성, 정치개혁, 인종정의, 청(소)년 등 280여 개 단체가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임금과 일자리 보장, 인종 간 평등 구현, 원주민 권리 쟁취, 모두의 건강을 보장하는 환경정의, 기후재앙 방지, 정의로운 전환, 그리고 민중의 안녕을 위한 공적 투자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이 내걸고 있는 세 개의 전략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아래로부터의 창조적이고 파열적인 운동을 통해 사회구성원들의 상식과 사회문제를 이해하는 내러티브를 바꿔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강력한 풀뿌리 연대를 강화하는 것과 선거에 직접 참여함을 통해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이 두번째고요. 이 캠페인은 ‘많은 이슈, 하나의 투쟁’이라는 구호 아래 기후변화, 인종 부정의, 공공 보건의료, 경제적 불평등 등 오늘날 미국인들이 경험하고 있는 위기들이 다 같은 뿌리를 가진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분절된 이슈 영역들을 관통하는 공통의 문제의식에 기반한 연대를 만들고자 해요. 이것이 교차성의 원칙입니다."

김선철 활동가는 한국의 역사적 경험에선 '민중연대'를 떠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IMF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특히 시장경쟁논리가 확산되면서 사회구성원 간의 연대가 약화되었고, 이는 문재인 정부와 같이 '착한 얼굴을 한' 자본주의에서 더 심화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약화시킨 '민중연대'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가 노동운동, 노동안전보건운동을 비롯한 한국 사회운동의 핵심 과제라고 보았다.

"한국인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의 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약하다는 평가가 있어요. 그런데 이건 착각이에요. 국가 간 비교를 보면, 한국인들의 기후위기 인지도는 세계 어떤 나라에 비해 높아요. 정말 '위기'로 인식하고 있어요. 실천도 잘하고 있고요. 문제는 그 실천이 쓰레기 분리배출 엄격히 하거나 텀블러 들고 다니는 것과 같은 소비의 차원으로만 제한되는 것이죠. 정부의 프레임에 철저히 갇혀 있는 셈이지요. 그렇게 대안적 프레임에 기반한 아래로부터의 사회운동 활성화, 다양한 사회문제의 공통 지반으로 기후위기를 인식하는 프레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정의로운 사회로의 전환은 자동적으로 오지 않아요. 자극이 필요합니다. 그 자극을 만들어내는 게 사회운동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일터6월_특집2] 기후위기와 노동, 노동조합(*): 〈국가책임 기후일자리〉와 〈민주적 공공소유〉, 그리고 〈기후적록동맹〉

기후위기와 노동, 노동조합(*): 〈국가책임 기후일자리〉와 〈민주적 공공소유〉, 그리고 〈기후적록동맹〉

이승철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

 

초록은 동색이 아닌 시대

이 정도면 그야말로 메가트렌드라고 부를 만하다. ‘기후’와 ‘전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정치세력이 없다. 기후 뉴스도 하루를 거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12개국 정상과 주요 글로벌 그룹이 참여하는 <P4G 서울정상회의>를 참으로 성대하게 개최했다. ‘기후’를 붙인 시민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심지어 현대자동차 부사장과 포스코 회장, SK발전 대표이사는 <탄소중립위원회>에 이름 석 자를 올렸다. 어제까지도 ‘주요 탄소 배출원’이었던 자동차-철강-발전회사의 사장님들이, 왜 갑자기 탄소중립에 환호하며 나서고 있을까. 그들의 ‘녹색’과 우리의 ‘녹색’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초록은 동색이 아닌 시절이 왔다.

에너지 산업 전환, 정부의 언행불일치

정의로운 전환의 첫 단계는 탈석탄-탈핵에 기초한 재생에너지 체계로의 이행이다. 실제 우리나라 2018년 온실가스 총배출량 727.6백만톤 CO₂eq 중에서 에너지부문의 배출량은 632.4백만톤 CO₂eq으로 87%를 차지한다. 정부 대책 중 가장 먼저 화력발전소 폐쇄가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석탄화력발전을 중단해야 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정부도, 발전노동자들도 같은 의견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실현하느냐의 경로와 방안인데, 정부의 언행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정부는 10개 노후발전소를 폐쇄하는 조치를 취한 것과 동시에, 7개의 신규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이율배반을 보이고 있다. 7개 신규발전소 중 무려 6개가 SK-삼성-포스코-두산중공업 등 재벌대기업에 의해 지어지고 있다. 이렇게 스멀스멀 커진 민간발전 비율은 이제 30%대에 이른다. 여기에 더해 전력산업 민영화의 일환인 전력판매시장 개방 움직임도 쉼 없이 등장하고 있으며, 발전 부문의 경쟁을 부추기는 전력거래를 허용하는 법안도 ‘녹색에너지’를 명분으로 슬그머니 비집고 들어왔다. 발전대기업의 이윤보장 수단이 된 천연가스 직수입 비율도 매년 올라 지난해에는 22%를 기록했다. 한국전력과 발전공기업, 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들은 지속적인 경쟁압력과 수익성 추구 압박 속에 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경쟁을 토대로 시장화 된 에너지 체제는 철저하게 이윤 논리에 따라 작동하게 된다. 싼 값에 많은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대량생산-대량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발전사업에 몰두한다. 화석연료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어렵다. 계획적이고 구조적인 에너지 전환은 ‘배부른 소리’로 치부된다. 이런 상황에서 빠르고 효과적이며 정의로운 전환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녹색자본'이 온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들어 등장하고 있는 것이 바로 ‘녹색자본’이다. 한화와 SK, 현대기아차, 포스코 등은 지난 5월말 개최된 P4G 서울정상회의에서 ‘탄소중립 세일즈’에 열을 올렸다. 대기업뿐만이 아니다. 태양열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에서는 크고 작은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기후-환경 단체를 구성하거나 개입하는 방식으로 ‘탈탄소를 위한 재생에너지 자본 육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탈석탄만 된다면 농지를 덮고 산을 깎아 태양열 발전판을 세워도 된다는 위험한 시각까지 등장한다. 이들에게는 기후위기마저도 ‘새로운 시장’이다.

하지만 시장과 기업에 맡겨두는 에너지 전환이 성공할 수 없다는 사례는 이미 증명됐다. 2007년 독일 정부는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40%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2020 기후변화 행동 프로그램>을 발족했다. 이는 대부분 시장 기반의 정책을 사용하는 포괄적인 국가 계획이었다. 그러나 2017년 독일의 온실가스 감축은 30%를 밑돌았고, 결국 독일 정부는 감축 목표를 낮추었다.1)

유럽에서 최근 재생에너지에 대한 신규 투자가 줄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FIT 제도(발전차액지원제도)가 축소되자, 쏟아져 들어오던 민간 자본이 철수하기 시작하며 태양광 붐도 사라졌다. 즉 시장에 맡겨둔 에너지 전환은 속도와 규모의 면에서 기후위기의 긴급함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2)

 

▲ 지난 3월 31일 국회 앞에서 국제운수노련과 공공운수노조, 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철도지하철에 재정 지원과 친환경, 정의로운 복구를 위한 국제적 흐름"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방안은 '민주적 공공소유'

해법은 시장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는 에너지 산업을 ‘민주적 공공소유’ 형태로 전환해 바로 잡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발전 6개사의 수평적 통합>과 <민영 발전소의 공영화>다. 통합발전공기업 설립을 통해 현재와 같은 경쟁체제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예방하고, 이를 ①원자력과 석탄 발전의 점진적 중단과 ②재생 가능 에너지에 대한 전폭적 투자 수행으로 돌릴 수 있다.

또 통합발전공기업은 내부적 인력 재배치를 통해서 탈원전-탈석탄 과정에서 발생할 고용 문제를 예방할 수 있으며, 신규 복합화력 발전소 건설과 적극적인 재생에너지 사업을 통해 재생에너지 부문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외주하청업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공적 고용 전환 전략 내부로 포함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통합발전공기업△발전공기업의 녹색화(재생에너지의 획기적 확대 여건 마련)와 △발전공기업의 민주화(이사회와 사업구조 개혁을 통한 운영구조 민주화 및 노조-지역사회의 참여 보장)로 나아가야 한다.

 

[표1] 공공적 에너지 전환을 위한 6대 과제

 

'기후고용 창출'과 '대규모 고용불안'의 갈림길

탈석탄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가장 먼저 고용불안의 영향을 받는 곳은 에너지 산업이다. 그 중에서도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이며, 그 가운데 발전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안감은 가장 크다. 정부는 2034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30기를 폐쇄한다는 계획인데, 이는 다시 말해 2021년 현재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는 25,112명의 고용이 백척간두에 놓인다는 뜻과 같다. 전체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 중 정규직은 13,846명이며, 비정규직 노동자(청소·경비·시설 자회사, 경상정비, 연료·환경설비 운전 등) 규모는 11,286명으로 집계된다. 정부가 발표한대로 LNG발전소 전환배치 등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발전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업무특성상 이들 모두를 포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대로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될 경우, 최소 8천여명의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전망한다.

물론 기후위기와 산업전환 과정에서 일자리의 위협이 나타나는 영역이 화력발전 뿐만은 아니다. 약 36만명의 고용규모를 나타내고 있는 자동차 및 부품산업의 경우 내연기관에서 전기자동차로의 전환에 따라 커다란 고용위협이 나타나고 있다. 탈원전 과정에서 1만여명 규모의 원자력 산업 일자리도 사라진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직간접 고용인원이 190만명에 이른다는 점을 보면, 단지 몇몇 업종의 현안을 넘어 노동자 전반의 문제가 된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고 있는 고용대책은 여전히 ‘맞춤형 직업훈련과 재취업 지원’ 정도에 머물러 있다. 정부지원책의 대부분이 오히려 기업에 쏠려있다. 문재인 정부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부터 철저히 노동자를 배제해 왔다.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은 정권 초기인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지지하며, 고용 보장 방안을 논의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정부는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런 응답을 보내지 않고 있다. 이미 폐쇄된 보령화력 1-2호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고용전환 관련해서도, 정부는 노조와 아무런 협의 없이 밀어붙였다.

국가책임 기후일자리가 필요하다

기후위기는 몇몇 산업의 일자리를 위협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대규모 기후일자리의 수요를 만들기도 한다. 예컨대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재생에너지 제조-설치-유지관리 △자동차 중심의 사적 교통체계를 대체할 공공교통 확충에 따른 일자리 △에너지 효율과 단열 보강에 필요한 건물 리모델링 일자리 △생태적 농축어업 일자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책임 기후일자리>가 등장한다. 이를 위해선 △탈탄소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잃을 위험에 처한 모든 노동자에게 일자리가 제공되고 △이 일자리는 국가 또는 공공부문의 책임 하에 만들어져야 하며 △적절한 임금과 양질의 노동조건이 보장돼야 하는 3대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 아울러 이와 같은 정의로운 전환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산업-고용정책 수립-집행의 책임자이자, 에너지-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실질적 사용자인 중앙정부 차원의 노정교섭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후적록동맹을 만들자

공공운수노조는 2021년 핵심 사업의제 중 하나로 <기후위기 대응과 정의로운 전환>을 설정하고, △발전 △가스 △철도 △버스 △화물 등 유관 업종 사업장을 중심으로 대응기구를 구성해 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투쟁이 벌어질 곳은 비단 공공부문 사업장만은 아니다. 금속노조와 건설산업연맹 등 여러 산별 노동자들 역시 정의로운 전환과 직결되는 요구를 가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를 모아내기 위해 <특별위원회> 구성도 고민하고 있으나, 이 경우 민주노총 강규에 따라 ‘총연맹 가맹산하조직이 참여하는 내부 기구’가 된다는 한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대응은 △민주노조(총연맹, 공공운수, 금속, 건설 등) △탈시장주의 환경운동 △체제변혁적 진보정당(정치조직)의 동맹 속에서 가능하다. 따라서 이 세 단위가 공동으로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노동-환경 동맹(기후적록동맹)> 구성을 추진하는 것도 고민해볼 필요가 높다. 이런 속에서 민주노총 내부의 특별위원회 구성도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이 문서는 주로 공공운수노조와 관련 있는 에너지 산업의 대응을 중심으로 작성하며, 일부의 경우 사업 담당자의 의견입니다.

1) William Wilkes&Hayley Warren&Brian Parkin(2018), Germany’s Failed Climate Goals.

https://www.bloomberg.com/graphics/2018-germany-emissions/

2) <시장주의적 에너지 전환을 넘어 변혁적 정의로운 전환으로> 구준모, 2021.

[일터6월_특집1] 기후위기와 노동운동: 기후운동과 노동운동의 과제는 다르지 않다

기후위기와 노동운동: 기후운동과 노동운동의 과제는 다르지 않다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노트워크 기획실장

 

 

▲ 석탄을 넘어서, 경남환경운동연합,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은 5월 17일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신규 화력발전소 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거리행진했다.

 

기후 정책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 반대, 위험관리, 지지?

기후위기가 심각하게 진행되면서 더 이상 기후위기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떤 방법으로 이에 맞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유럽의 노동운동에 대한 한 연구에 따르면 기후위기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1)

첫 번째는 온실가스 감축 정책에 반대하는 경우이다. 폴란드의 석탄산업노조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데, 일자리 상실과 에너지 주권의 침해를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입장은 노동운동 내에서도 매우 드문 경우이다. 두 번째는 위험관리 차원에서 기후 정책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온실가스 감축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규제를 최소화하고 점진적인 정책을 펴면서 환경과 고용을 조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철강산업이나 자동차산업의 노조들이 주로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는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유럽공공서비스노조연맹(EPSU)이나 유럽제조산별노조(IndustriAll Europe) 등 노조연맹체에서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평면적이다. 신자유주의적인 정치경제 체제를 인정하고 이를 녹색화하자는 입장과 현존 자본주의 자체의 구조적인 개혁이나 변혁을 통해서 생태사회로 전환하자는 입장 사이의 차이를 잘 포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두 입장 간의 차이를 역사적으로 잘 살펴보기 위해서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개념의 등장과 확산 과정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정의로운 전환: 산업재해와 일자리 위협에 맞선 전략2)

정의로운 전환은 국가 정책으로 제안된 것도 이론적인 탐구의 산물도 아니다. 정의로운 전환은 1970~8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일자리 위협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으로 탄생했다. 미국의 석유·화학·원자력노조(OCAW)의 지도자였던 토니 마조치는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아이디어를 첫 번째로 고안한 활동가였다. 그는 일자리 문제와 환경 문제가 대립한다는 통념을 거부했고, 이 프레임을 변화시킬 전략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고민했다. 노동자 산업재해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마조치는 1973년 환경운동가들과 함께 셸(Shell)사의 석유정제공장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관한 최초의 환경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마조치는 공해 산업이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환경 문제와 보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해 산업이 야기한 환경 파괴와 건강 악화는 노동자와 지역주민들 모두에게 피해를 주었다. 따라서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이 협력해서 해당 산업을 전환시킨다면 건강한 일자리와 환경, 삶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 결과 1990년대 초반에 ‘노동자를 위한 슈퍼펀드’가 제안되었고, 이것이 정의로운 전환이 정교화된 첫 번째 결과물이었다. 당시 미국의 보수파는 일자리와 환경을 대립시키면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환경 규제를 약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를 위한 슈퍼펀드는 일자리 대 환경이라는 부당한 대립을 해체하고, 공공적인 개입을 촉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1995년 마조치의 동지였던 레스 리오폴드와 브라이언 콜러는 5대호 수질에 관한 국제 컨퍼런스에서 처음으로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우리는 특별 펀드를 제안한다. 정의로운 전환 펀드는 과거에 노동자를 위한 슈퍼펀드라고 불리던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 펀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공해야 한다. 노동자가 은퇴하거나 다른 직업을 구할 때까지 임금 전액과 수당, 직업학교나 대학에 다니는 4년 동안의 등록금과 임금 전액, 졸업 후 구한 일자리의 임금이 이전보다 적을 경우 보조금 지급, 재정착 지원."

한편 이러한 노력으로 1997년 정의로운 전환 동맹(Just Transition Alliance: JTA)이 결성되었다. JTA에는 환경정의 단체와 사회정의 단체들이 함께했으며 이들은 미국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을 대표하는 곳들이었다. 또한 JTA에 참가한 단체들은 노동조합 조직화에도 열정적이었으며 노동자들과 지역주민들이 함께하는 지역 투쟁을 이끌기도 했다. 노동운동 내에서 환경운동을 강화하고, 환경운동 내에서 노동운동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그 결과 1990년대에는 정의로운 전환이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정의로운 전환은 노동운동, 환경운동, 지역운동 사이를 엮어주는 끈이 되었고,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이 만들어 낸 대안적인 사회·환경적 정치의 장이 될 수 있었다.

즉 초기에 고안되고 발전한 정의로운 전환은 매우 급진적인 노동자 정치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영향을 받는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초점을 맞췄으며, 노동자와 지역주민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녹색 산업 정책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함을 역설했다. 1991년 석유·화학·원자력노조의 결의안은 정의로운 전환을 미국의 정치경제를 뒤바꾸는 야심찬 정책들로 구성했다. 그들은 성장 자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노동자와 사회와 환경을 파괴하는 기존의 성장 방식을 문제 삼았다.

생태사회주의적 정의로운 전환의 필요성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국제기구와 국제노총, 각국 정부를 통해서 정의로운 전환이 확산되면서 급진적인 노동-환경 정치의 가능성을 내포했던 정의로운 전환의 의미가 퇴색하기 시작했다.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을 통해서 최근 주류화된 정의로운 전환은 탈탄소 경제 전환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노동자에 대한 보상과 직업재교육의 의미로 축소되었다. 그 과정은 노사정 협상과 같은 사회적 대화로 달성될 수 있다고 봤다.

이렇게 상이한 정의로운 전환의 전략을 두 가지 기준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먼저 전환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대안 사회의 성격을 기준으로 <기존 체제의 개혁을 통한 녹색화>와 <정치경제적 변혁>으로 구분한다. 다음으로 전환을 위한 접근법이자 방법론을 기준으로 <사회적 대화>와 <사회적 권력>을 구분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대화를 통한 옅은 녹색 사회로의 전환을 생태적 현대화로 파악할 수 있다(3사분면).

 

▲ 정의로운 전환의 이념형

 

반면 사회적 권력을 통한 짙은 녹색 사회로의 전환 모델은 생태 사회주의로 간주할 수 있다(1사분면).

생태적 현대화와 생태 사회주의라는 구분법은 오늘날 제기되는 다양한 정의로운 전환을 분류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를 구조개혁과 변혁을 지향하는 <생태 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와 녹색 케인스주의를 지향하는 <생태적 현대화>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런 구분을 통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정의로운 전환을 식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사회적 대화 접근법의 한계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국가와 국제기구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노동조합이나 노동자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배제하고 있고, 포함하는 경우에도 하위 파트너로 동원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다양성을 고려하더라도, 고도의 코포라티즘(corporatism) 체제를 구축한 북유럽마저도 노사정 합의 모델이 형해화되어 이에 대한 노동조합의 권한은 약화되고 있다. 따라서 낡은 방식의 사회적 대화에 의존한 채 정의로운 전환을 추진한다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수는 없어 보인다.

또한 오늘날 기후위기와 사회경제적 위기가 말해주는 바는 이윤과 성장에 목을 매는 자본주의를 표면적으로만 가다듬는 옅은 전환으로는 문제의 해결이 요원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오늘날 자본주의 심층의 권력 구조까지 변화시키는 정치경제적 변혁 모델의 전환이 필요하다. 요컨대, 생태 사회주의형의 정의로운 전환이 지금 필요한 시급하고 구조적인 변화의 측면에서, 또한 운동 전략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노동운동과 기후운동의 접점: 체제 전환과 생산의 재조직화

 

▲ 기후위기의 근본적 원인이 현 체제에 있음을 외치는 시위대의 모습

 

오늘날 거세지고 있는 기후위기와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적 위기는 체제 전환을 지향하는 노동운동과 기후운동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제공해준다. 기후변화가 국제 정치의 주요 이슈가 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기만 한 것은 신자유주의적 정치경제 질서를 그대로 두고 그 속에서 미시적인 정책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탄소시장을 육성하고 활용하는 방식의 그릇된 시장주의 해결책과 기술주의 해결책만이 활용되었다. 지금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기후운동은 이러한 낡은 대책으로는 기후위기에 맞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진적인 체제 전환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운동도 마찬가지이다. 2000년대 이후 불안정노동의 확산에 대해서 국제노총이나 국제노동기구는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 캠페인으로 대응했지만, 실제로는 불안정노동의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 신자유주의적인 정치경제 질서를 바꿀 사회적 권력을 형성하지 못한 채, 국제 회의장과 각국의 사회적 대화 과정에서 동원되는 좋은 말 잔치로 끝나는 캠페인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오늘날 노동운동은 사회적 권력 관계의 변화를 통한 불평등 해소와 노동자계급의 실질적 권리 확대라는 과제와 맞닥뜨리고 있다.

또한 생태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생산의 재조직화라는 보다 근원적인 과제에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생산적 정의’의 문제라고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현대기아차 재벌이 자동차를 생산하는 지금까지의 방식을 그대로 두고 만들어내는 생산물만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바꾼다고 해서 생태사회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동차가 생산되는 과정에서의 착취와 산업재해 및 노동자 건강권 문제, 생산 전후방으로 연관된 하청 문제, 자동차 생산량 및 수출주도 산업 전략의 문제 등도 함께 문제시되고 재조정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기후위기와 생태사회로의 전환은 마르크스가 제기한 소유 및 생산의 문제와 이의 재조직화를 다시 중요한 과제로 만든다.

따라서 기후운동이 제기하는 근원적인 과제는 노동운동이 원래 꿈꿨던 근원적인 변화의 과제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의 전환과 생산의 재조직화라는 점에서 두 운동은 만나고 함께할 수 있다.


1) A. Thomas, N. Dörflinger(2020), Trade union strategies on climate change mitigation: Between opposition, hedging and support, European Journal of Industrial Relations Volume: 26 issue: 4.

2) 이 부분은 다음을 참고하여 요약 정리한 내용입니다. Edouard Morena&Dunja Krause&Dimitris Stevis(2020), Introduction: The genealogy and contemporary politics of just transitions, Just Transitions: Social Justice in the Shift Towards a Low-Carbon World, Pluto Press.

[일터5월_특집1] 가사노동, 착취에서 벗어나 노동권 쟁취의 길로!

일터5월호_특집1

가사노동, 착취에서 벗어나 노동권 쟁취의 길로!

당신이 가정에서 일상을 보내는 동안 스스로 하지 않았지만 거슬림이나 불편함이 없도록 많은 것들이 갖추어져 있다면 필요한 여러 가지 일을 다른 누군가가 해놓았다는 말이 된다. 당신이 쓴 수건을 빨아서 건조시키기, 설거지하기, 쌀 구입하기, 돌봄이 필요한 가족 구성원의 일상을 케어하는 일까지. 여기 보이지 않는 가사노동이 있다.

오랫동안 가사노동은 무급노동 영역에 있었고 노동으로 인식되지도 않았다. 그 노동 대부분은 여성들이 맡아왔고 지금도 그렇다. 가부장제 하에서 남성은 사회로 나간 반면, 여성은 가정에 머물며 가사노동을 담당하게 되었고 여성의 가사노동은 오랜 세월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가사노동이라는 노동

여성들의 가사노동은 애정이나 여성의 본성으로 오래 인식되었고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70년대 페미니스트들은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라는 투쟁(Wages for Housework)을 시작했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하에서의 착취를 이제 끝내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70년대 영국과 이탈리아,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이 투쟁은 단순히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던 가사노동이 노동임을 선포하는 강력한 싸움이었다. 여성들이 가사노동을 거부할 때 남성과 사회의 일상이 어떻게 흔들릴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70년대 가사노동 임금 투쟁을 이끌었던 실비아 페데리치는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을 투쟁할 때는 우리의 사회적 역할을 직접적으로 분명하게 거역하면서 투쟁한다고 밝혔다.

여성들의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투쟁은 가사노동뿐 아니라 모든 무급 노동에 대한 싸움이기도 했다. 이런 싸움은 확장하면서, 또 다른 방향으로 갈라지기도 하면서 이어졌다. 2018년 스페인에서는 여성들이 전국적 파업을 선언하고, 2시간 동안 부분파업에 돌입해 530만 명이 동참했다. 그 결과 열차 300편이 운행을 취소했다. 또한 여성단체들은 가사를 내려놓으라고 선언하였고, 여성들이 아파트 발코니에 앞치마를 내걸기도 했다. 모든 차별과 착취를 끝내기 위해 노동조합과 여성단체가 함께 했고, 일하는 여성과 전업주부가 함께 행동에 참여했다. 이 행동은 가사노동을 하는 무급 여성 노동자들과 유급 여성 노동자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한쪽이 착취된다면 다른 한쪽 역시 착취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신호를 보여주었다.

이와 같은 투쟁이 있었지만, 여성의 노동이,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이 제대로 인정받는 시대가 오지는 않았다. 다만, 여성들은 공고한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들은 모든 차별과 착취에 대해 계속해서 싸울 뿐이다. 한편, 여성들이 사회 진출을 시작하면서 집 밖에서 유급 노동을 하게 되었으므로 가사노동을 대신 할 사람이 필요해졌고 그 결과 하나의 유급 가사노동 시장이 생겼다. 남성의 노동에는 큰 변화가 없었고 여성의 노동에 변화가 생기면서 새로운 가사노동 시장이 생겼다는 것은 씁쓸하면서도 흥미롭다. 가사노동 시장에 진입한 노동자들 역시 여성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가사노동 임금 투쟁을 하면서 가사노동의 사회적 역할을 외쳤지만, 가사노동 시장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이런 가치는 반영되지 않았다. 반대로 낮게 평가된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가 그대로 시장에도 반영되어 가사노동자들을 불안정한 고용과 저임금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가사노동 시장 형성과 노동권 배제

시장화된 가사노동을 법제도는 어떻게 정의할까? 근로기준법은 제2조에서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한편, 동법 제11조 제1항 단서에서는 가사사용인에 대해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정해두었다. 가사노동을 비공식 노동으로 보는 관점이 법제도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역시 시행령 제2조 제4호에서 가구내 고용활동에 대해 법 적용을 제외하고 있어 가사노동자들은 법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때문에, 가사노동자들은 엄연히 노동하고 있지만, 일하다가 다치거나 질병을 얻었을 때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없고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고 만다. 이렇게 가사노동자들이 법 적용에서 배제되고, 가사노동의 여러 문제가 개별화된 영역에 남아 있을수록 이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 인권 침해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가사노동자의 법 적용 제외 이유는 무엇일까. 가정은 상호의존과 애정에 바탕한 공간으로 상상되기 때문에, 시장의 가치와는 상충될 수밖에 없고 기존의 노동법상 권리는 가정에서는 부적합한 것으로 인식되는 것을 하나의 이유로 들 수 있다. “가사서비스는 전형적인 여성의 일로 인식됐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지위 및 대우가 정당화되었다는 점은 또 다른 근거가 된다. 누군가의 가정은 다른 이의 직장이 될 수 없으며, 하필 그 일이 여성의 일이라는 것이다.

가사노동이 본업임에도 노동자들은 업무를 하기로 한 당일 아침에도 이용자에게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기도 하는 등 고용이 매우 불안정하다. 다른 직종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 가사노동에서는 이렇게 생기기도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2015<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 인권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중개업체를 통해 이용자의 집에 노동을 제공하는 가사노동자들이 겪는 심각한 고충 중 하나는 이용자들의 하녀처럼 대하는 원시적인 태도였다. 가사노동자들을 동등한 노동자로 보지 않는 것이다. 또한 타인의 집안이라는 매우 폐쇄된 공간에서 이용자에게 인권이 침해되는 경험을 할 가능성이 있고, 일터에서 성폭력이나 육체적 폭력이 발생할 경우, 이용자와 단둘이 있어 대처하기가 다른 직장에 비해 훨씬 어렵다. 가사노동이 남성들이 하는 노동과 종류가 다른 노동이지만, 동등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 시장이 형성된 이후에도 동일하게 유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문제 발생 시 법 적용을 받는 노동자에 비해 해결, 보상을 요구하기보다 참고 넘어가는 일이 빈번할 수밖에 없다.

가사노동자법 제정 시도 및 쟁점 검토

오랫동안 비공식 노동으로 인식되었던 가사노동은 ILO의 협약 이후 제도화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ILO2011년 제100회 총회에서 가사노동자의 인간다운 노동에 대한 협약(Convention Concerning Decent Work for Domestic Workers)을 채택했다. ILO 협약의 주요 내용을 보면, 가사노동자들에게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권 인정, 모든 종류의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차별 금지 등을 명시하고(3), 모든 종류의 학대, 추행, 폭력으로부터 가사노동자를 보호하도록 하며(5), 가사노동자들에게 고용 관련 조건을 명시하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7), 노동시간, 연장노동수당, 휴게시간, 주휴, 유급연차휴가에 대해 일반 노동자와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고(10) 명시하는 등 가사노동자와 가사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하도록 했다.

ILO 협약 채택 이후 2012년부터 국내에서 가사노동자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수차례 발의되었지만, 지금까지 제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거의 매년 법안이 발의되었는데, 2020<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이라는 동일한 이름으로 정부안, 이수진 의원 안, 강은미 의원 안이 발의되고, 213월 임이자 의원 안이 국회에 발의되었다. 발의된 법안들을 보면 정부에서 인증받은 제공기관과 가사노동자가 근로계약을 맺고 사용관계를 명확히 하게 된다. 또한 주당 근로시간을 15시간 이상으로 정하고 노동자들이 초단시간 근로에서 벗어나게 해 주휴 수당과 연차유급휴가를 받게 한다. 발의된 네 개의 법안대로라면 제공기관와 계약한 가사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역시 적용받게 된다. ILO 협약과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대로 상당 부분 가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법안이 마련되면 안정적 노동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가사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기관은 가사노동자 법안을 추진해온 가사노동자 협회, 여성단체에서 꾸준히 요구해온 것이기도 하다.

가사노동자들은 비공식 노동에서 벗어나 다른 노동과 업무가 다를 뿐 같은 노동을 제공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가사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해 사용자 단체와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우루과이의 경우, 가사노동자들이 전국가사노동자연맹에 소속되어 이용자 단체인 가정주부연맹과 교섭한다. 이들의 단체교섭의 결과는 교섭 당사자뿐만 아니라 우루과이의 모든 가사노동자에게 전국적으로 확장되어 효력을 미친다. 미국에서는 개별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교섭 단체를 꾸려 가사노동자들과 교섭을 진행하기도 한다. 아직 해보지 않았을 뿐 이를 위한 투쟁이 있다면 한국에서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가사노동자들의 온전한 노동권 보장의 길

10여 년간 가사노동자들의 법제화가 시도되었으나 한 번도 제정으로 이어지지 못한 가운데 어떤 법제화인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사노동자 고용개선을 위해 현재 논의되는 법안들은 제도 안에 포함되지 않았던 가사노동자들을 임금, 근로계약, 노동시간, 고용안정의 측면에서 보호하기 때문에 분명 진일보한 면이 있다. 여성의 가사노동이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상황을 타파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는 법안이다. 그러나 현재의 가사노동자법 제정 움직임은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서 가사노동자 적용 제외 조항을 삭제하려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정부가 인증하는 제공기관과 계약을 맺지 않은 가사노동자는 여전히 법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되고 사각지대에 머물게 된다는 한계가 있다. 여전히 여성이 하는 가사노동이 비공식적 노동으로 남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법안을 통해 가사노동에 대한 오랜 차별이 사라질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 부분이다.

가사노동자들에게 온전히 노동권을 보장해 노동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지급해야 하고, 쉴 권리,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또한, 집단적으로 노동조합을 조직해 사용자 단체와 교섭을 진행하고 행동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것이 비가시화되고 비공식 노동 영역에 있는 가사노동자들이 드러내고 목소리 내게 하는 길이다. 가사노동이 멈추면 모두의 생활이 멈추고 사회가 멈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유청희 상임활동가)

[일터5월_특집2] 가사노동자의 몸을 노동자의 몸으로 인정하라

일터 5월_특집 2

가사노동자의 몸을 노동자의 몸으로 인정하라

 

62세 재가요양보호사 이씨는 하루 동안 네 집을 방문한다. 치매환자 홀로 사는 집, 거동이 불편한 80대 노인 부부의 집, 70대 여성 노인의 집 두 군데를 차례로 돌고 퇴근을 한다. 어느 날 70대 여성 노인 집을 방문했을 때 장 봐온 것들을 옮기다가 어깨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통증으로 며칠을 앓다가 정형외과를 방문해 우측 회전근개 완전 파열을 진단받았다. 결국 그녀는 수술을 했다. 비슷한 일을 겪은 동료 재가요양보호사의 소식을 듣고 자신도 산재를 신청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수술 후 한 달 반, 보호대를 풀고 재활치료 중인 그를 진료실에서 만난 근로복지공단 의사는 그간 어떤 일을 해왔는지 묻는다.

재가요양보호사 한 지는 이제 1년 반 정도 되었고, 이전에는 10년 정도 남의 집 집안일 도와주는 일을 하다가 그만뒀어요. 그 전에는 남편 사업이 괜찮아서 집안일만 했고요. 그 때 일하면서도 이렇게 저렇게 다치고 아플 때 있었는데 우리 집에서 일 할 때도 그 정도는 힘드니까 그냥 참고 지냈어요.”

가사서비스노동자로서 지내온 시간들을 노동자 스스로가 도와주는 일로 표현하는 것은 그의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돌봄을 제공하고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로 어깨 부담작업을 수행해왔지만 산재보험에서 인정하는 어깨 부담 작업 경력은 18개월인 셈이다.

또 다른 60대 여성 정씨는 재작년, 고객의 집 화장실을 청소하다 미끄러져 손목 뼈가 골절되었다. 고객에게 치료비를 요청해보았지만 어떤 의무조항도 없었기에 400만원 가량의 치료비를 스스로 떠안았다. 손목뼈 고정 수술을 2번 받는 동안 그는 이른바 생산활동을 할 수 없었는데, 노동자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업급여도 없었고 은행 대출도 불가능 했다. 노동자인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그는 다시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로 돌아갔고, 일하다 손목이 또 부러지지는 않을까 두렵다.

드러나지 않는 가사노동자의 아픈 몸

2017년 고용노동부는 국내 가사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규모를 25만명으로 집계했고 2020년 한국가사노동자협회는 30만명에서 5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가사도우미, 산후관리사, 베이비 시터, 그리고 펫 시터까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의 몸은 한 번도 노동자의 몸으로 지칭된 적이 없었으며 제대로 된 숫자조차 파악된 적이 없었다.

국내 가사노동자의 건강권에 대하여 다룬 연구 중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진행한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는 가사도우미, 간병인, 육아도우미 50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연구 결과 가사도우미, 간병인, 육아도우미 각 집단에서 최근 1년간 경험한 건강문제 중 가장 높은 빈도를 보인 것은 근골격계 증상’(간병노동자 77.6%)아픈데도 일함’(가사도우미 74.3%, 육아도우미 57.2%)이었다. 근골격계 증상은 가사도움, 간병인, 육아도우미 모두에서 빈도가 가장 많이 또는 2번째로 많이(육아도우미) 경험했다고 보고되었다. 앞서 만나본 이씨와 정씨 역시 가사노동자로서 경험하는 근골격계 위험을 잘 보여준다. 반복적인 근골격계 부담작업으로 인한 건강상의 불편이 있음에도 계속해서 일해야만 하는 아픈 몸들의 이야기는 이미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런데 가사노동자가 겪는 건강의 위험은 그 뿐만이 아니다. 같은 연구에서 가사도우미의 경우 독한 세제로 인한 각종 건강문제를 다수가 경험했다고 보고하고 있으며 간병인은 정신적 스트레스 관련 높은 경험률을 보고하였다. 간병인의 경우 무시당한 경험, 과도하게 감시당한 경험을 가장 많이 했다고 응답했다. 가사도우미와 간병인은 물품 분실 관련하여 부당하게 의심 받은 경험은 11%, 업무 수행 과정에서 과도하게 감시당했다는 응답도 가사 28.2%, 간병 31.4%, 육아 17.9%로 높게 드러났다. 과도한 감시와 관련하여 CCTV가 설치돼 있음을 인식하는 경우가 16~32%에 달했는데, 가사노동자에게 사전 동의를 받은 경우는 26%에 불과했다. 고용노동부에서 발간한 직장내 괴롭힘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서 ‘CCTV를 통한 지나친 감시가 명시되어있는 것을 고려하면 노동자로서 가사노동자의 일터는 그 기준 밖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감시당하고 있음에도 성희롱, 성폭력에의 노출 역시 크다는 점 역시 아이러니하다. 간병인의 경우 성희롱을 경험했다는 답변은 전체의 30.8%에 달했다.

2015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는 가사서비스 노동자의 노동환경과 건강실태 연구를 발표하며 근로환경조사 내 가사서비스 노동자라는 범주와 돌봄노동 노동자(보육교사, 간병인, 육아도우미)’를 나누어 돌봄노동자와 다른 가사노동자들만의 특성을 확인하고자 돌봄노동자 780, 가사노동자 165명의 자료를 인용해 가사노동자들의 특성을 살펴보았다. 해당 연구에서는 중고령자가 많은 가사노동자의 특성을 고려하여 분석대상자인 전체노동자·돌봄노동자·가사노동자의 연령대를 동일하게 하였으나 본인 스스로 평가하는 건강수준은 가사노동자가 가장 낮았고, 실제 직무(가사노동 등)로 인해 발생된 질환들도 가사노동자에게서 많이 보고되었다. 신체적 질환 이외 우울과 불안장애 등의 심리정서적 건강문제도 가사노동자가 상대적으로 많았고, 이 또한 가사노동자로서 업무를 시작한 이후에 경험한 사례들로 확인되었다.

가사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열악한 노동조건(아플 때 일해야 했던 경험, 원할 때 휴식이 불가능했음, 건강·안전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함)과 노동환경(근로환경 만족도, 고용 안정성, 보상의 적절성, 일의 가치성)이 건강(주관적 건강, 직업성 근골격계 질환, 정신건강 지표)과 연관성이 있는지도 분석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이러한 부정적 노동조건, 노동환경의 세부 항목들이 건강의 세부항목과 연관성이 있었다. 이 연구에서는 실태조사를 위해 총 800명의 가사서비스노동자를 대상으로 직접 개발한 설문 역시 진행하였는데, 고객으로부터 위험한 작업을 요구 받은 경험자는 무경험자에 비해 주관적 불건강은 1.92, 근골격계질환 경험은 1.99, 안전사고 경험은 7.11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아플 때 일한 경험자는 무경험자 보다 주관적 불건강은 3.21, 우울감은 3.52, 근골격계 질환 경험은 2.63, 그리고 안전사고 경험은 3.49배 더 많았다. 특히, 물건 파손/도난 오해 경험자와 부당한 대우 경험자는 각각 무경험자 보다 우울감 경험 확률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연구 밖에서, 표집되지 않은 근로자 모수에서 얼마나 많은 가사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쳐 일을 못하게 되었는지, 혹은 아픈 몸을 견디며 일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안에 가사노동자들은 포함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일하고 있는 가사노동자의 수는 물론이거니와 일하다 다친 가사노동자의 수는 아무도 모른다.

가사노동자의 몸을 노동자의 몸으로 인정하라

가사노동이 사회의 근간을 유지하는 필수 노동임에도 가사노동자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취약한 일자리로 다시 한 번 자리매김 하고 있다. 20206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여성가족부는 가사노동자 290명을 상대로 코로나 19가 가사노동자들의 일자리에 미친 영향에 대해 조사했다. 응답자 10명 중 7명 이상은 코로나19 전후 방문가정 수가 줄어들었다고 응답했다. 연구에 참여한 가사노동자의 월 평균 수입은 112만원으로 코로나 19 이후 월 평균 수입은 63.9만원이었으며 코로나19 이전보다 48.4만원이 감소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에 대해 가사노동자 10명 중 8명은 수입 감소를 꼽았고 7명은 일방적 방문취소로 인한 어려움을 꼽았다. ‘코로나 감염위험5.6명이었다. 코로나 시대에 가사노동자들이 감염보다 더 절실하게 느낀 위협은 수입 감소와 일방적 방문취소였던 것이다.

타인의 가정 내에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은 이전과는 또 다른 어려움을 야기한다. 2015년에도 가사노동자들은 휴게시간 없이 개별 고객 집에서 일만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4시간 시간제로 일할 경우 10분에서 20분가량만이라도 쉬고 싶다는 것이 그들의 요구였으나 고객의 요구에 맞춰 일을 다 끝내려면 쉬지 않고 일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집과 학교가 돌봄노동을 가정으로 이행시키며 업무 요구도는 더 가중되었지만 그 자리마저 놓칠세라 두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노동관계법이 가사노동자의 보호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일을 하다 다쳐도 고용주는 이를 부담할 법적 책임이 없다. 가사노동자를 노동관계법의 보호가 미치는 곳으로 포섭하려는 노력은 18대 국회로부터 현재까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실질적인 근로계약과 그에 따른 노동자 보호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를 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가사노동자의 사용인을 명확히 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원칙적으로는 그 노동자의 서비스를 받는 가정이 사용자처럼 보이나 실상은 가사노동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직업소개소, 알선업체, 간병업무를 지시하는 병원 등)이 있기 때문인데, 결국 가사노동자의 사용인, 가사노동자의 노동권과 건강권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업무의 지휘, 감독을 누가 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다변화하는 노동시장 형태와 고용관계 때문에 보편적인 노동관계법에서 보호받지 못 하는 노동자들의 얼굴은 이미 낯설지 않다. 중요한 것은 평가 절하된 가사노동자의 노동을 다시 수면위로 올려 필수영역에서 일하는 여성의 몸을 일하는 몸으로 다루지 않는다면 여성노동의 문제는 답보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성 노동자이자 비전형, 비공식영역의 노동자로서 가사노동자는 가장 취약한 일하는 몸인 셈이다.

1953년 근로기준법 제 111항의 가사사용인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문구에 근거해 가사노동자들은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60여년을 보내왔다. 2011ILO 가사노동자 협약 채택을 계기로 정부에 가사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을 강력히 요구하기 시작했으나 그 후로 다시 10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가사노동자의 몸은 노동자의 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노동자의 아프면 쉴 권리가 화두에 오른 가운데 일하는 몸으로서 인정받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는 부디, 가사노동자의 노동권을,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

(정지윤 회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일터5월_특집3] 가사노동자법안은 노동권을 보장하는 법이 될 수 있나?

일터5월호_특집3

가사노동자법안은 노동권을 보장하는 법이 될 수 있나?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가사노동자법’)이 국회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간 정부 발의안 및 이수진 의원 대표발의안, 강은미 의원 대표발의안이 논의되어 왔다.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부터 그 적용을 제외되어 수십 년간 노동자로서의 기본권이 보장되지 못했던 노동자들에게 드디어 노동관계법령이 적용될 것인지에 대해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가사노동자들의 일을 중개하는 기관들에서 특히 법안 통과의 요구가 높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동시에 존재한다. 첫번째 이유는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확대하여 포괄적인 노동권을 보장하는 방식이 아닌 별도 법안의 형태로 발의되었다는 점, 두번째는 해당 법안의 내용이 노동력의 중개를 중심으로 가사노동의 공식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두번째 이유는 최근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플랫폼 종사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직업안정법 개정안과 함께 노동력 중개 시장을 확산하기 위한 정책의 추진과 연관되어 더 우려를 낳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특히 후자를 중심으로 법안의 문제점을 검토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그러한 방식이 각 법안이 내세우고 있는 목적인 노동자 보호에 과연 실효성이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인증절차 도입의 효과는 불분명

현재 발의된 법안에서 제시되는 제정의 취지 및 목적 사항은 가사서비스의 질 개선의 필요와 고용·노동환경·처우 등의 개선을 통한 노동권 보호로 축약해 볼 수 있다. 가사노동자 고용이 노동관계법 적용이 배제되는 비공식 영역에 존재하기에 이를 공식화하여 서비스 공급체계 및 질을 개선하고 노동권 보장을 획득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가사노동을 비공식에서 공식 영역으로 끌어내기 위한 방안은 노동관계를 공식화하는 것이 아니라 가사노동의 중개를 공식화하는 방안을 취하고 있다. 이 공식화는 제공기관의 인증, 그리고 제공기관을 사용자로 하여 근로계약(노동자성)을 공인하는 것을 그 요소로 한다. 즉 이용자에 대해서는 기관 인증을 통해 서비스를 보증하고, 노동자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노동조건 보장이라는 양면을 충족해 수요와 공급의 각 측면을 확대함을 통해 가사 노동 시장을 확장하려는 방안이다.

그런데 정작 정부가 의도하는 인증 절차를 통한 시장 정비와 확장이라는 효과는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 세 법안은 모두 가사노동자의 대다수가 중개업체 등을 통해 구직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나 가사노동자의 구직 경로는 다양하다. 중개업체를 통한 구직이 오히려 비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는 연구도 있는데, 이남신 외(2010)에서는 사회단체 및 여성인력개발센터, 가정관리사 협회 등을 통한 구직이 36%로 나타났고, 박지순 외(2015)에서는 중개업체의 이용이 불과 3.1%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에 플랫폼을 통한 공급 혹은 매칭을 고려하면 가사노동자의 취업 경로는 더욱 다양화될 것으로 예측되는데, 조현경 외(2019)에서는 수도권의 경우 30% 가량의 서비스 거래가 플랫폼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 법안의 의도와 같이 인증된 제공기관을 통한 공급체계의 안착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수요와 공급이 모두 인증 기관으로 수렴될 수 있어야 할텐데, 이의 효과성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공식과 비공식, 노동시장의 양분화 우려

오히려 공식 노동 시장의 확대나 정비가 아니라 시장의 양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시장의 양분은 인증된 기관이 체결하는 근로계약에 의해 노동자성을 공인하는 구조에서 기인한다. 인증 제공기관을 통해 일하는 노동자들과 그렇지 않은 근로기준법상의 가사근로자를 구분하고, 근로기준법상의 가사근로자에 대한 적용 배제를 그대로 둠으로써 두 노동자 군 사이의 법 적용에서의 차별을 만든다. 인증 제공기관과 근로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노동자성을 부여하면서 일부 노동관계법상의 보호를 적용하는 구조에서 인증이라는 요건이 법 적용 여부를 나누는 기준이 되어 버리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여전히 비공식 영역에 노동자들을 남기고, 남겨진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방치해 버린다.

게다가 노동의 특성상 제공기관을 통한 노동에 근로계약이라는 공식성을 부여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회피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가사노동 중개는 일회성을 띤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일시 파견, 호출노동화의 우려는 여전히 크다. 법안은 근로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있지만, 계약기간에 대한 제한은 없으므로 일용직 고용이 배제되지도 않기에 인증을 받은 중개업체가 모든 노동자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을 할 것이라는 것도 보장되지 않는다. 일용직 고용은 법안의 취지와 분명 상충되지만 현재 발의된 법안에서 배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는 분명 법안 제정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양상의 하나로 가정될 필요가 있다. 유사한 예로 (재가)요양보호사에 대해 장기요양제도에서는 기관 직접고용을 규정하고 있으나, 해당 노동은 끊임없이 특수고용, 파견 등의 형태로 이탈한다. 해당 시장이 다른 불안정 고용이 충분히 가능한 형태로 열려있고, 노동관계법령의 적용 범위가 매우 협소한 탓이다.

노무중개 플랫폼의 확대에 따른 한계

플랫폼 확대를 고려하면, 해당 법안의 한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인증기관을 통한 가사서비스 제공 역시 인력공급의 구조 측면에서 바라보고 해당 법안의 제정이 미치게 될 효과를 가늠할 필요가 있는데,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플랫폼 종사자 관련 법안은 플랫폼 기업에 사용자로서의 의무를 지우지 않는 것으로 자유로운 활동을 도모하고 그로써 노무중개이라는 새로운 노동력 거래를 만들어내는 것을 시도한다. 직업안정법상 파견을 제외하고는 노동관계에 제3자가 개입하는 것이 금지되지만, 플랫폼을 통한 노무중개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아니고 그 일자리에 노동자를 안착시키지도 않는다. 파견과 유사하게 노동력을 보유한 노동자를 공급하는 것임에도, ‘노무중개로 개념화하여 또 다른 노동력 거래 시장을 열고 그 노동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플랫폼기업에 대한 신고와 같은 관리 구조의 마련은 노동관계 자체를 은폐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한다.

가사노동자법이 의도하는 노동시장의 공식화 과정은 이러한 흐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중개기관의 공식화라는 과정을 공유하면서 법의 범위 밖에 놓이는 더 많은 노동자를 권리의 보유 주체 목록에서 지워버린다. 그리고 가사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은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는 것조차 덮어 버린다. 인증 여부에 따라 노동관계는 공식과 비공식의 영역으로 양분되고, 비공식의 영역, 사적 영역으로 남겨지는 일자리에서는 여전히 알선, 중개, 파견 등의 불안정한 고용이 노동관계를 은폐한 채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노동관계법 적용이라는 원칙을 세워야

제대로 된 가사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가사 노동 시장을 공식화하는 방안이 아니라 가사노동자에 대한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통해 노동관계 자체를 공식화하고, 그에 따른 사용자, 노동자의 권리 · 의무를 규정해야 한다. 가장 먼저 근로기준법의 가사노동자 적용 배제에 대한 제11조 제1항 단서 조항 가사사용인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를 삭제하는 개정이 이루어져야 하며, 가사노동자의 노동 특성에 따른 근로기준법의 유연한 적용은 그다음에 뒤따르면 될 문제이다. 별도 법안을 제정하는 방식에 대한 우려에 대해 글 앞머리에 언급한 바 있다. 별도 법안의 제정 방식에 반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노동권의 확장이 아닌 갈라치기 방식이라는 점이다. 노동자와 아닌 자, 노동자와 아닌 자 사이에 노동자와 유사한 자 등을 계속해 구분짓는 방식으로 인해 노동권은 일부의 권리인 양 여겨지게 되고 보편적인 권리로 나아가는 길은 계속해 가로막힌다. 노동자들은 노동관계법의 확장을 통해 권리의 보편화로 나아가려 하지만 노동권의 반대 편에 사용자의 의무를 두고 그 의무의 경중을 고심하는 정부는 늘 보편이 아닌 예외를 만들고 그 예외를 허용하기 위한 절차를 짜맞춘다.

정부의 본의는 노동자성의 부여 혹은 노동권의 보장이 아니라 새롭게 시장화되는 영역에 대한 제도적 규율의 필요와 함께 더 자유롭게 유연한 노동을 사용할 수 있는 길도 열어두는 것에 있다. 노동권의 보장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노동법의 영역에서 권리 보장을 위한 논의를 형성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관계를 노동관계법령으로 규율하는 시도는 약하고 정부 주도의 시장 규율을 위한 제도 추진의 힘은 강한 것이 현실이다. 새롭게 등장하는 노동, 혹은 공식화를 통한 시장 형성을 필요로 하는 직종에 대한 노동권 보호 전반을 어렵게 만드는 흐름이 계속해 이어질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정부의 의도에 편승하면서 노동권 보장 조항을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노동법의 원리에 따라 노동권 보호를 위한 전략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보다 보편적 노동권의 보장을 위해 한번 더 고심해야 할 때다.

(엄진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일터4월_특집3] 질병권의 관점에서 만성질환자의 노동권을 이야기하기 / 2021. 04

[만성질환 노동자의 자리]

질병권의 관점에서 만성질환자의 노동권을 이야기하기

김다연 상임활동가

작년 성공회대 시설관리 용역업체는 ‘정년을 맞은 노동자도 “건강상 업무수행“에 문제가 없으면, 1년 단위로 촉탁연장 계약을 최대 3번까지 맺을 수 있다’는 골자의 단협을 깨고, 방광암으로 수술과 요양을 위해 2개월 병가를 사용했던 한 노동자를 해고했다. “건강한 육체”를 바탕으로 청소 업무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노동자는 건강에 이상 없다는 의사 소견서도 제출했었다. 

질병 없는 “건강한 육체”를 도달해야 할 이상이자 노동자라면 갖춰야 할 기본값으로 여기는 사회의 노동시장에서는, 만성질환자들과 같이 회복하기 어려운 병과 함께 해야 하는 몸 혹은 아픈 적이 있는 몸(미래에 아플지도 모를 몸)은 그 자체로 결격사유다. 어릴 적 소아암 이력이 차별의 근거가 되기도 할 정도니. [각주:1] 아픈 이들은 자신의 질병, 질병 이력을 감추고 몸을 돌보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도 쉬쉬한다. 설사 채용이 되어도, 건강한 육체도 병들게 할 만큼 과도한 근무 시간과 일의 양은 질병과 통증을 악화시키니 버텨내는 게 불가능하다.

이런 어려움은, 자신의 질병과 통증을 이기적인 핑계로 보는 동료들의 시선이 주는 두려움으로 배가된다. 아픈 이들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해야 사정을 양해받고, 몸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기에 자기 몸의 상태와 통증을 입증하고 설득해야 한다. 질병이 눈에 잘 띄지 않거나 질병명이 없는 경우는 더 쉽게 의심의 대상이 된다. 사회는 폭력의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듯, 아픈 사람에게도 ‘아픈 사람다움’을 강요한다. 

타인의 시선을 포함한 감당할 수 없는 노동조건은, 아픈 몸들을 노동에서 배제하고 노동권을 박탈한다. 이렇게 사회에서 몸이 오롯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험들은, 아픈 이들이 질병과 질병을 앓는 자신을 스스로도 수용하기 어렵게 만든다. 

질병권, 아픈 몸을 기본값으로 하는 노동조건을 말하다

이런 한국 사회에서, 몇 년 전부터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의 질병 경험과 삶을 공적으로 드러내며 ‘잘 아플 권리’를 주장하는 “질병권”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질병권이란, “(건강이 아닌) 질병을 중심에 배치하고, 아픈 몸을 사회의 기본 몸으로 설정하며, 질병을 겪는 상태도 삶의 ’정상적‘시기로 본다. 더 이상의 건강을 쟁취할 수 없는 아픈 몸을 인정하고, 모든 이가 건강을 삶의 최우선 목표로 두지 않을 수 있음을 존중” [각주:2] 받을 권리이다. 

질병권은 “아파도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여건” 정도가 아니라, “취약하고 아픈 몸을 기본값으로 하는 사회”를 강조한다. 이런 사회의 노동권은 어떤 모습일까. 아픈 몸들도 ‘정상적으로 아프면서’ 무사히 일할 수 있게 하는 노동환경의 구성을 전제조건으로 할 것이다. [각주:3] 포인트는 건강한 몸에 기준을 둔 채 예외적으로 아픈 몸들을 특별히 배려하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아프고 약한 몸에 맞는 노동환경을 설계를 주장한다는 점이다. 이는 ILO의 산업보건서비스의 원칙 중 노동자의 능력에 기준을 두고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을 맞춰야 한다는 ‘적응의 원칙’과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또한, 질병권 담론에서는 한 사회의 폭력과 배제와 차별과 극심한 경쟁과 과로와 오염된 환경과 같은 요소들은 몸에 질병과 통증으로 현현하지만, 아픈 몸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개인에게 전가되는 현실을 비판한다. 이 역시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해치는 노동조건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주장과 직결된다.

질병권의 관점에서 노동권을 볼 때, 더 주목할 점은 이제까지 사회에서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던 “아픈 몸이라는 정체성”이다. 질병권에서는 건강중심 사회에서 소수자가 될 수밖에 없던 아픈 몸들이 바로 여기에 존재하며, 정당한 노동조건을 이야기할 때 이 몸들의 특수성을 배제해선 안 되고, 더 나아가 바로 이 아픈 몸이 사회의 기준이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제까지 아픈 몸은 비생산적인 몸, 폐를 끼치는 몸, 독립적이지 못하고 의존하는 몸, 쉽게 주류에서 밀려나는 몸이기에 배제와 혐오의 대상이었다. [각주:4] 하지만 몸은 질병과 각종 통증을 포함한 변화에 늘 열려있기에, 아픈 몸 정체성은 누구나의 것이기도 하다. 질병권의 관점은, “취약한 몸”이라는 인간생명체의 본질적인 특성을 기준으로 노동조건을 구성해야 하며, 이는 건
강한 이들에게도 훨씬 유익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넓은 스펙트럼의 아픈 몸 중, 기준이 되어야 할 ‘아픈 몸’은 무엇일까. 

“아픈 몸을 인정하는 것”(질병권 개념정의 일부)은, 몸 상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수용 받음을 의미한다. 결국 질병권에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노동조건이란, 그 개개인의 특수한 몸의 조건과 경험들이 모두 존중받는 환경을 말한다. 이는 “정상적인 몸, 표준의 몸의 기준에 도전함으로써 정상성에 균열을 만들고 새로운 n개의 정상을 만드는 것이다” [각주:5]

동일노동의 기준
몸의 조건에 따라 생산량을 배분하면 비교적 건강한 몸이 더 많은 생산량을 소화하게 될 텐데, 이것이 역차별로 오인될 수 있다. “동일노동”을 계산하는 방식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익숙한 슬로건인 “동일노동 동일임금”에서, 동일노동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신체적(정신을 포함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동일한 시간/작업량과 같이 완전하게 동일한 조건
의 노동은 과연 평등한가?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요즘 자주 이야기되는 평등이란, 이러한 기계적 평등에 머무는 듯하다.

“크론병 환자는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해 염증이 심해지고, 장에 구멍이 뚫리기도 한다. (...) 크론병을 ‘딛고’ 성공하는 이들도 존재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통을 계속 외면하고 참아야 한다. 이는 목숨을 건 싸움이 된다.” [각주:6]

누군가에게는 피로감을 주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건 사투다. 겉으로 볼 때 동등해 보이는 노동조건은, 사람의 신체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의 노동강도를 유발할 수 있다. 나에게 오는 신체적 부담의 관점에서, 이는 아픈몸에 대한 차별이다. 따라서 동일노동의 기준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노동강도라는 관점에서 설정해야 한다. [각주:7]

노동현장은 돌봄현장이다
노동권은 천부적으로 태어나면서 부여되는 게 아니라, 노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에서 생성된다. 그러니 아픈 몸의 노동권을 보장한다는 건, 일정 선 이상으로는 노동할 수 없고 때론 통증으로만 가득 차 몸을 돌보는 일에 전념해야 하면서도, 생존을 유지하고 사회관계망에서 배제되지 않으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노동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복잡다단한 몸들의 욕망에 적극적으로 관심 갖고 여건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수반한다. 그렇게 세부적인 개별성을 고려할 때에서야, 아픈 몸들도 “동등한 인간”의 조건을 누리게 된다. 

아픈 몸이 가진 특수성에 주목하고, 그들에게 적합한 노동조건을 만들어내는 일은 ‘돌봄’ 그 자체이다. 노동현장은 돌봄현장이다. 하지만 법은 공식적인 강제력을 동원하여 최소한 지켜져야 할 것들이 지켜지게끔 할 뿐,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세밀한 조정이 필요한 아픈 몸에 대한 제대로 된 노동권 보장을 위해서는, 상호 간에 ‘섬세한 눈길과 손을 가진 돌봄의 자세’로 몸을 대해주는 대인관계(방식)라는 제도가 때론 더 중요하다. 돌봄은 법이나 기타 규제로는 차마 파악할 수 없는, 상대방의 독특성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인관계방식의 변화는 단순히 주체들의 마음
먹기에 기대어서는 안 되며,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덜 경쟁적인 사내 문화, 아픈 몸을 기준으로 한 넉넉한 인원 배치와 같은 조건들 역시 받쳐줘야 한다.

아픈 몸들이 함께 노동현장에 안녕히 존재할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이 곧 모두가 더 편하고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아픈 이들의 각양각색의 질병 경험과 이들의 노동권에 대해 더 자주, 많이 듣고 말해야 할 이유이다.

 

  1. 조한진희, 기사 <건강 중심 세계의 질병 난민>, 비마이너, 2020.04.01 [본문으로]
  2. 조한진희(다른몸들), <우리 시대 건강권을 넘어, 질병권을 제안하다>, 2020한국문화인류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174p [본문으로]
  3. 물론, 아픈 몸들 중 전혀 일할 수 없는 몸도 있을 것이다. 질병권은 일하지 않을 권리 역시 동시에 주장한다.(조한진희(다른몸들), 2020, 175p 참고) [본문으로]
  4.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에서는, 아픈 몸에 대한 혐오는 곧 인간이라면 마땅히 피해야 할 ”추함과 역겨움“을 ”’나‘의 현실에서 지우려는 욕구“로 본다. 돌봐져야 할 아픈 몸들은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내가 차마 맞이하고 싶지 않은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하기 때문이다.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개인”이 바람직한 모델로 제시되고, 아픈 이를 위한 제대로 된 사회적 지원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의존할 곳은 가족뿐이다. 그마저도 운이 좋아야 한다. 돌봄제공자(주로 여성가족구성원)와 집에 고립되어 질병과 경제적 어려움, 불안한 미래를 감당하며 생존 이외에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협소한 삶은 취약한 인간의 몸과 타인에의 의존을 혐오하게 할만큼 충분히 좌절스럽다. [본문으로]
  5. 조한진희(다른몸들), 2020, 174p [본문으로]
  6. 안희제, 『난치의 상상력』, 동녘, 2020, 94p [본문으로]
  7. 기저질환 환자의 경우, 주 52시간 이상 노동시 기저질환이 없는 이에 비해 심뇌혈관질환 발병률이 1.58배 상승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본문으로]

[일터4월_특집2] 아픈 몸들은 외친다.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잘 아플 권리’ 보장하라. / 2021. 04

[만성질환 노동자의 자리]

아픈 몸들은 외친다.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잘 아플 권리’ 보장하라.

이종란 회원, 반올림 상임활동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아픈 몸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아파도 학교에 가야 했고, 아파도 일터에 나갔다. 그런데 코로나19 감염병 시대를 관통하면서 우리는 ‘아프면 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처음엔 단지 감염병 전파로 인한 위험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필요에서 시작된 의미겠지만, 점점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과 공감대는 커지고 있다.

‘아프면 쉴 권리’에서 좀 더 나아가 ‘잘 아플 권리’에 대한 주장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건강권’이라는 개념 대신에, ‘질병권’이라는 개념으로, ‘잘 아플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저자 조한진희 님은, 아픈 몸으로 여러 해를 살다 보니 우리 사회의 제도가 ‘건강한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고, ‘아픈 몸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문제의식이 생겼다고 한다. 매우 공감 가는 말이다. 반올림에서 암이나 난치성 질환 피해자분들을 만나오면서도 ‘잘 아플 권리’가 얼마나 부족한지 느낄 수 있다.

아픈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픈 이는 질병 자체가 주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 외에도 힘든 점이 많다. 아프면 일을 못 하니 치료비, 생계비 부담이 크다. 오랜 투병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돌봄의 문제는 본인을 넘어 가족 전체의 문제가 된다. 아픈 게 미안할 일이 아닌데도 가족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을 보인다. 혼자 살다가 아프면 요양병원에라 도 의지해야 한다.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다가 기초생활 수급권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수급권자가 되면 의료보호 대상이 되므로 치료비 걱정은 줄지만, 빈곤으로 인한 은근한 차별을 당하며, 작은 일자리도 얻을 수 없다.

이처럼 아픈 몸으로 살아가다 보면 빈곤과 소외가 현실이 된다. 오로지 노동으로만 먹고 살게 설계되어 있는 현대사회 구조에서 장애인이나 아픈 몸들은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나마 존재하는 사회보장제도는 부족하고 허술하다. 차별당하지 않은 사람이 차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 하듯이,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이 아픈 사람이 겪는 어려움을 바탕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면 제도는 겉 돌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암이나 난치성 질환 등에 대해 산재 인정이 시작된 지 수년이 흘렀으나, 산재보험은 이들의 현실적 필요를 잘 흡수·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올림에서 경험한 몇 사례를 공유하면서 개선의 필요성을 이야기해보겠다. 또한 암이나 만성질환의 경우 건강보험 영역에서의 보호가 중요하다. 따라서 최근 논의되는 건강보험 상병수당에 거는 기대로 글을 마무리해 보겠다.

난치성 질환, 암 피해자의 휴업급여 부지급 사례

은희씨(가명)는 루푸스 환자이다. 25년 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할 때 이 병이 발병했 다. 치료제가 없어 25년째 이 병과 함께 살아간다. 2019년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인정을 받았다. 루푸스는 신체 장기 침범이 주요 증상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신체 장기 어디에서든 이상이 나타날 수 있다. 갑자기 중환자실에 실려 가기도 했고, 뇌경색이 와서 현재까지 후유증이 있다. 합병증으로 생긴 쇼그렌(건조증후군) 때문에 치아의 80%에 손상이 오고, 한쪽 눈은 궤 양이 생겨 각막 이식까지 받았다. 그나마 수급권자가 되어 병원비 부담은 덜었으나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은희씨에게 산재 인정은 큰 희망을 주었다. 시효가 남아있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우선 8년 치의 휴업급여를 신청했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고작 76일 치의 휴업급여만 지급이 되었다. 류마티스 내과 통원치료 일만 지급된 것이다. 몸이 아파 집 밖에 나가지 못했던 시간들을 보냈음에도, 휴업급여가 거절된 이유는 무엇일까.

‘휴업급여’란 업무상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노동자가 요양으로 취업하지 못한 기간에 대해 지급하는 보험급여를 말한다. 평균임금의 70%를 휴업급여로 지급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52조) 여기서 ‘요양으로 취업하지 못했다’는 것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근로복지공단은 ‘요양급여 신청소견서’ 서식란에 주치의에게 통원치료 기간 중 환자의 취업이 가능한지 또는 불가능한지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묻는 체크박스를 만들었다. 어떤 설명도 없이 그 서식을 맞닥뜨린 주치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주치의는 산재보험 휴업급여 제도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니 자신의 소견으로 취업 불가능하다고 하면 환자가 노동시장에서 배제당해 생계의 위협을 받을까봐 우려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주치의는 근전도 검사결과 떨림은 있지만 그래도 움직임이 양호하니 취업 가능에 체크했다고 한다. 그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몰랐다는 것이다.

휴업급여 지급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아픈 노동자의 절박한 생존권이나 다름없는 휴업급여 문제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 주치의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간편한 체크리스트 하나로 휴업급여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또한, ‘취업할 수 없는 상태’를 ‘의학적 소견’으로만 판단하는 것도 재고되어야 한다. 의학적으로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지 않으면 취업 가능하다고 판단할지 모른다. 그런데 현실적인 노동시장은 어떤가.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고, 밤낮이 뒤바뀌는 힘든 교대근무를 견딘다. 아주 튼튼한 몸으로도 버티기가 힘들어 과로가 일으키는 여러 질병으로 고통 받는 것이 만연한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아픈 환자가 억지로 취업시장에 내몰리는 것은 부당하다.

은희 씨의 경우, 다행히 재심사 결정으로 8년 치의 휴업급여를 지급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은희 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반올림의 최근 사례만 해도 두 사례가 더 있다. 암이 재발한 림프종 피해자의 경우, 주치의는 요양급여신청서 소견서 란에 취업이 가능하다고 체크하였다. 암에 대한 두려움, 약해진 면역력으로 취업은 고사하고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주치의의 소견 때문에 휴업급여는 부지급 되었다. 마찬가지로 뼈로 전이가 된 폐암 피해자에게도 같은 이유로 휴업급여가 부지급 되었다.

암 만성질환자를 보호하는 보험급여가 마련되어야

건강보험은 암 환자에 대해 요양비 산정 특례를 두고, 총액의 5%만 부담하게 한다. 5년 동안은 적어도 이 특례가 적용된다. 그러나 산재보험은 직업성 암 환자에 대해 별다른 대책 같은 것이 없다. 암이나 만성질환에 맞는 보험 급여가 필요하다.

산재 보험급여 중에 상병보상연금 제도가 있긴 하다. 요양급여를 받는 노동자가 요양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치유되지 않고 ‘중증’요양 상태인 경우에 상병보상연금을 지급한다(산재법 66조). 그러나 그야말로 중증의 경우만 지급하는 것으로는 보호가 미흡하다. 이 상태에까지 이르는 정도가 아닌 만성질환자들은 현실적으로 취업을 할 수 없는데도, 상병 보상연금을 지급 받을 수 없다. 휴업급여의 경우 요양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나면 계속 심사 대상에 오른다. 제도가 불안정한 것이다. 만성 질환자들을 폭넓게 보호하도록 휴업급여 및 상병보상연금 지급기준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산재 비지정 병원의 문제, 건강보험 요양비 부당 환수의 문제

산재 비지정 병원의 문제, 건강보험 요양비 부당 환수의 문제도 심각하다. 난소암을 진단 받은 장00님은 생사를 오가는 투병 과정에서 부득이 요양병원에 입원했고, 어렵게 산재가 인정되었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에서는 해당 요양병원이 산재 비지정 병원이므로 산재 요양급여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안내를 하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산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건강보험이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2년 뒤 갑자기 건강보험공단에서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해왔다. 산재 노동자인데 건강보험이 적용된 것은 ‘부정수급’이니 이달 안으로 요양병원 치료비 1400만원을 반환하라는 것이다. 산재로도 처리가 안 되었는데, 건강보험 요양비마저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산재노동자는 산재의료기관(지정병원)에서 요양하는 경우만 산재보험이 적용된다. 부득이 한 경우에 한해서만 사후 요양비 처리를 할 수 있다(산재법 제40조). 이러한 적용방식은 의료 기관 선택권에 대한 심각한 제약이자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장00 님의 사례처럼 돌봄이 꼭 필요한 환자가 요양병원을 이용하려 해도, 가까운 곳에 산재 지정병원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국림암센터나 원자력병원도 지정병원이 아니다.

근로복지공단은 비지정병원의 요양에 대해서도 산재보험을 적용해야 한다. 부득이한 경우에만 예외를 허용하는 부당한 법조항도 개정되어야 한다. 건강보험공단도 문제가 크다. 아픈 노동자는 단지 몰랐을 뿐이다. 이러한 사정을 건강보험공단에 수차 이야기해도 자신들이 고려할 사항이 아니란다. 건강보험공단은 이제라도 산재 노동자를 부정수급자 취급하며 1400만원을 반환하라는 독촉과 협박을 멈추길 바란다.

2007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현 국민권익위)는 ‘산재환자의 요양급여 지급제도 개선 권고안’을 냈다. 요지는 “산재보험법의 적용대상 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국민건강보험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사회보험이익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보장제도의 본질에도 반하는 것이므로 산재보험급여 대상이 되지 않는 요양은 건강보험법을 적용하도록 함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또 ‘산재노동자가 건강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는데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는 것이니 국민건강보험법이 개정될 때까지 지침을 마련하거나 관련 지침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를 수용한다고 밝혔다.

권고안이 나온 지 14년이 흘렀다. 이제라도 법이 바뀌어야 한다. 법이 바뀌기 전이라도 건강보험공단은 부당한 환수조치를 멈춰야 한다. 두 보험 간의 연계성이 떨어지고 보장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재해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시켜야 한다.

아프면 쉴 권리, 건강보험 ‘상병수당’ 도입에 거는 기대

코로나19 감염병 시대에 아프면 쉴 권리를 제도상 정착하기 위한 논의가 한참이다. ‘업무 외 질병’에 있어서도 아프면 쉴 권리를 구현하기 위해 건강보험에 상병수당 도입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제 논의 중이라는데, 부디 단기적 대안으로 그치지 않길 기대해본다.

아프면 쉴 권리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지급 기간과 보장수준에서 충분한 수당이 되어야 한다. 휴업급여처럼 지급에 있어 까다로운 조건을 걸지 말아야 한다. 또한 직장에 복귀하는데 있어 어떠한 불이익도 없어야 권리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건강보험의 상병수당 논의는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이자 보편적 복지의 문제이다. 사실, 아픈 이유가 일 때문인지, 또 다른 이유 때문인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이유가 혼재되어 있기도 하고 이유를 밝히기 어려운 경우가 태반이다. 산재라 하더라도 규명이 어렵기도 하고, 산재가 아니면 휴업급여 같은 것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병의 원인과 무관하게 아프면 치료비와 생계비 걱정 없이 잘 치료받고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상병수당이 제대로 설계되길 바란다.

[일터4월_특집1]만성질환자의 몸과 마음을 담은 사회제도, 있어? - 삼성반도체직업병(전신 홍반성 루프스) 피해자 구진선(가명) 님 인터뷰 / 2021. 04

[만성질환 노동자의 자리]

만성질환자의 몸과 마음을 담은 사회제도, 있어?

- 삼성반도체직업병(전신 홍반성 루프스) 피해자 구진선(가명) 님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구진선 님은 IMF 이후 갑작스런 부서이동 이후 1999년 삼성전자(주) 기흥공장에서 퇴사 하였다. 웨이퍼 가공공정의 포토공정에서 4년 7개월간 3교대 근무를 하였고, 2020년 ‘전신성 홍반 루프스’로 업무상 질병 승인을 받았다. 지난 26년간 그녀의 삶을 통해 만성질환자가 겪 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자, 3월 17일 요양을 목적으로 이사한 여주 시골집을 찾아 인터뷰하였다.

구진선 님이 여주 시골집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출처: 구진선

퇴사 후 결혼, 임신 중에 나타난 몸의 이상 증상

구진선 님이 근무하던 라인은 정예 멤버만 남기고 인원감축에 들어갔다. 자진퇴사여부를 가리는 면담과정을 거쳐 그녀는 반자동 신규라인에 남기로 했다. 그러나 신규라인은 납기일에 맞춰 물량을 빼기도 하고 반자동이다 보니 그만큼 일도 많았다. 무엇보다 라인멤버의 유대관계가 예전 같지 않아 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퇴사의사를 밝힌 후부터 퇴사당일까지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장비만 돌아가는 곳에 혼자 있게 했어요. 그동안 열심히 일해 왔는데, 일하다 퇴사하는 것은 선택 가능한 당연한 권리 아닌가? 당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힘들었죠. 근무 할 당시 피로감이나 편두통 같은 두통이 많았어 요. 눈의 피로가 심했고, 한번 라인에 들어가면 방진복을 입고, 담당설비가 있으니 화장실을 자유롭게 갈 수가 없으니 방광염 등으로 병원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우리가 취급하는 물질이 무엇이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들어본 적도 교육받은 적도 없어서 누구나 아프니까 아픈 게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퇴사한 해 남자친구였던 현재 남편의 청혼으로 결혼을 했고, 임신 7개월쯤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단백뇨가 나오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 그 순간이 지난 20년 동안 겪고 있는 고통의 시작이었다고 구진선 님은 회고했다. 가정을 꾸리고 새 가족을 맞이할 중요하고도 행복한 시기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몸이 붓고 다리도 부었는데 정확한 진단을 못 내리는 거예요. 임신중독 증상인지, 루프스인지 애매하게 생각만 할 뿐이었어요. 그런데 원주 기독병원 갔을 때 애기 심장소리가 안 들린다고 하는 거예요. 8개월에 1.43kg 미숙아로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 한 달 반가량 있었고 저는 먼저 퇴원했어요. 애기 낳고나니 친정엄마가 병원에 면회 오셨어요. 몸이 붓기도 하고 얼굴에 나비모양 반점이 있어서인지 엄마가 저를 못 알아보시는 거예요. 퇴원하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아산 병원에서 검사하고 남편이랑 결과 들으러 갔더니 ‘이건 완치가 없는 병이라 치료가 안 돼요.’ 라고 했어요. 당황스러워서 남편과 서로 쳐다만 봤어요. 지금은 신장이 안 좋지만 다음에는 어디로 갈지 모르고 눈에도 가고, 머리에도 가고 전신을 다 공격한다고 무서운 얘기를 들으며 ‘루프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달수를 채우고 퇴원할 때도 애기는 2.5kg 밖에 되지 않았고, 한돌 쯤 됐을 때 코에 동그랗게 낭종이 생긴 거예요. 검사하니 뇌종양이었이라 고 하더라고요. 머리를 열어서 수술할 뻔 했는데 캐나다에서 소아신경외과 선생님이 오셔서 코로 수술했어요. 병원 다니면서부터는 온 집안이 난리가 났으니 남편이나 저나 결혼해서 신혼의 달콤함은 남의 말이었어요. 병원생활하기도 어렵고 힘들었죠.”

루프스 자가면역질환자로 살아가기

잠복기와 활동기를 반복하는 루프스는 활동기에 생명을 위협하고, 잠복기에는 드러나지 않는 통증과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활성화로 늘 불안의 연속이라고 한다. 고통의 시간을 다시 떠올리시게 해서 죄송했지만, 루프스 자가 면역질환 투병생활에 대해 여쭤보았다.

“잠복기에는 일반사람들과 겉으로는 똑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계속 약을 먹고 염증을 일으키지 않게 조심해야 되고, 햇볕을 보면 안 되고, 거의 외부활동도 못하죠. 애기 낳고 퇴원했을 때 관절이 너무 아팠어요. 기어다녀야해서 애기 케어를 못하는 거죠. 우유도 못 탈 정도로요.

2005년도쯤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염증수치가 높았던 어느 날 친정 부모형제가 모두 병문안을 왔어요. 나중에 안 사실인데 죽는다 고 마지막으로 가족들 다 모셔오라고 의사선생 님이 말씀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저로 인해 애기 가 아팠고, 뇌종양 수술을 했고, 남편은 신장을 떼 줬어요. 그래서 남편도 사회활동을 하는 게 힘들어요. 남편이 감기만 걸려도 제 입장에서는 엄청 미안한 거예요.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 원래 건강한 사람인데 신장이 하나 없어서 그럴까 미안함도 크고요.

저는 신장이식수술, 자궁적출술도 했어요. 자궁에 염증이 있었는데 일반인 같으면 간단하 게 치료를 받으면 되지만, 면역억제제를 먹기 때문에 모든 장기 문제가 암으로 갈 수 있는 확률이 엄청 높대요. 그래서 건강검진하고 1년 뒤에 자궁을 적출했어요. 자궁적출하고 신장이식하고 퇴원하려는데 후유증으로 눈에 바이러스가 침투한 거예요. 퇴원은 하고 버스타고 병원 다니 면서 약을 먹었어요. 신장 이식 초기에는 감염에 취약한데 마스크 쓰고 감염내과, 안과에 같이 다녔죠. 지금도 좌안이 시력이 떨어져있고, 비문증이 있어서 운전도 조심스럽고 컴퓨터 보는 것도 힘들어요. 지금은 신장이식센터에서 약이랑 관리하고, 거기 약이랑 루프스에 쓰는 면역억제제가 같아서 6개월에 한 번씩 류마티스내과에 가고 있어요.”

발병 후 15년이 지나서 산재신청을 했고, 20년이 지나서야 업무상 질병 승인을 받았다. 그렇다면 기나긴 투병기간 동안 그녀는 생활비와 의료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루프스가 희귀질환이라 진료비는 10~20% 정도 본인부담금을 낼 수 있었는데, 약값이 비싸서 남편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의 사선생님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두 알씩 먹으라고 했는데, 하루는 아침에만 두 알 먹고, 다음날 은 저녁에만 두 알 먹고 이렇게 빼먹은 적도 있었어요. 대출, 식구들 도움도 한계가 있었고, 약 값 때문에 남편이 밤에 대리운전도 했어요. 누가 건강보험공단에서 재난지원금이 있다고 알려줘서 혜택 조금 받았고, 보건소에 본인부담금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어 조금 받았고요.

병원비도 그렇고, 애기 인큐베이터 값도 엄청 나왔고, 경제적으로 힘드니까 몸이 좀더 나은 잠복기가 되면 일을 다녔어요. 애기 4살 무렵에 는 집 가까이 걸어갈 수 있는 곳에서 아르바이트 를 했었거든요. 힘든 일 아니고 시청에서 오래된 문서 정리하는 간단한 일이요. 집에 있으면서 우울증이 있었거든요.”

일했다면 일할 수 있는데 왜 안하냐, 휴업수당 못 준다는 근로복지공단

황산, 염산, 불산이 있는 베쓰에 흄이 올라 오는 걸 쳐다보면서 세척하고, 먼지에 예민한 반도체와 장비를 아세톤으로 청소를 했다. 웨이퍼로 코팅을 할 때는 케미칼이 많이 튄 볼도 장비에 올라가 직접 교체하고, 주변에 튀면 손수 닦아주었는데 그 작업들이 자신의 몸을 망가뜨렸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그녀는 2020년에야 업무상질병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아픈 몸으로 여기저기 20년 가까이 진료 본 수많은 자료를 냈는데 2015년 10월에 신청해서 승인받기까지 기간이 너무 길었잖아요. 발병 초기 검사하고 수술, 치료하느라 비용이 많이 들었는데 병원 진료비 세부 영수증 보관기관이 5년밖에 안 돼서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중 간에 일을 할 수 있는데 왜 안 했냐고 휴업수당도 줄 수 없다더라고요. 공단에도 자문의가 있으면 신장이식을 한 사람은 평생 다시 투석이나 신장이 망가져서 이식을 하거나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고 계속 진료를 해야 한다는 것을 더 잘 알텐데, 계속 자료를 원하더라고요.

승인 이후라도 마음 편하게 병원 다녔으면 좋겠는데 의사선생님 만나서 요양연기신청서도 내야 해요. 바쁜 의사선생님께 ‘연장신청서 써주세요’ 어떻게 말을 꺼낼지 엄청 고민되고요. 공단에서 환자의 동의를 받아서 의료기관에 조치를 취해주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환자가 직접 받 으러 다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아픈 사람이 중심에 있지 않고 공단이나 기관이 더 중심에 있는 것 같아요.”

서로의 몸 상태가 다름을 인정하고 상처 주고받지 않게 살아가기

건강함이 정상성으로 인정되는 사회에서 질병을 개인의 잘못이나 부족함으로 치부하는 시선은 또 다른 고통이다. 구진선 님 역시 그런 시선 때문에 상처를 받아왔다. 그녀가 경제적 어려움과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다녔던 일과 동료의 반응, 그녀의 기대에 대해 들었다.

“그 사람이 아프다는 걸 알면, ‘너 오늘은 어 디가 안 좋아 보인다’, ‘오늘은 얼굴이 왜 이래?’ 등 신체적으로 콕 집어서 대놓고 하는 말들이 다 상처거든요. 그냥 저 사람이 아프니까 그런가보 다 속으로만 생각하고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해요. 다름을 인정하고 이상하게 보지 않는 태도 도 필요해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자기만큼 못 한다고 해서 ‘야 힘 좀 써라’, ‘그것도 못 드냐’, 이 런 말들이 다 상처니까 저 사람이 아프다고 생각 하면 그런 말들은 삼갔으면 좋겠어요.”

아픈 사람도 정규성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면

“언제 발병할지 모르니까 업무를 하다가 갑자기 아플 수 있고 피해를 주게 되니까 정규직으 로 일하지 못했어요. 관공서 같은 데서 10~11개월 일하고 조금 쉬었다가, 또 몸이 괜찮다 싶으면 다시 했지 퇴사 이후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보질 못 했어요. 잠복기에는 멀쩡해도 조금씩 아프거나 관절이 아플 수 있는데 어디가 아프다는 말을 안 했어요. 관공서에서 사무보조로 의자에 앉아서 서류 정리, 입력해주는 정도 일을 주로 했죠.

저 같은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이 일하기 위해서는 휴게시설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계속 일을 하는 건 안 되고, 질병의 특성을 동료들이 이해하고 어느 정도 일하고 쉴 때 눈치 안 주는 분위기, 단순한 일이라도 서로 공감할 수 있게 만성질환자들끼리 모여서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면 더 좋겠고요. 주변에서 눈치를 안 준다고 해도 우리가 눈치를 봐요. 만성질환자들은 폐, 신장 등이 안 좋기 때문에 공기나 환경적으로 깨끗하면 좋을 것 같아요.

만성질환자는 평생을 병원에 다니는데 일 하다가 아프다고 쉬면서 치료 받고, 다시 직장에 들어가려면 힘들거든요. 솔직히 건강한 사람을 쓰지 누가 아픈 사람을 쓰겠어요. 그러니까 아프다는 얘기를 안 하고 일하다 아프면 그만 두는데, 아픈 사람도 꾸준히 일을 할 수 있게끔 했으 면 좋겠어요. 솔직히 아픈 사람들이 점점 사회하고 멀어지고 우울해지거든요. 잠깐 일을 하더라도 나가게 되면 일어나서 씻고 챙기고 자기를 가꾸면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한 건강권 활동, 그러나 이미 사고나 질병으로 아픈 사람은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가 있고 사회는 이를 보장해야한다. 구진선 님의 인터뷰를 통해 아픈 사람이 살아가기에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것, 서로 다른 몸들이 살아가기 위해 가져갈 삶의 태도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기꺼이 고통의 시간을 소환해주신 구진선 님께 감사드리며, 활동기로부터 불안감을 떨쳐버릴 만큼 잠복기가 지속되길 기원한다.

[일터3월_특집3] 작은 사업장, 필요한 규제와 절실한 지원 - 경기동부 근로자건강센터 공유정옥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인터뷰 / 2021. 03

[작은 사업장의 큰 문제들]

작은 사업장, 필요한 규제와 절실한 지원

경기동부 근로자건강센터 공유정옥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인터뷰

유청희 상임활동가


규모가 큰 국내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이 책임을 부여하고 규제해 산업재해를 예방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소규모 사업장은 대부분 법조항이 적용 예외로, 법 규제의 '빈 곳'에 남아있다. 2019년 산재발생현황을 보면, 국내에서 산업재해를 입증 노동자 10만 9242명 중 8만 3678명(76.5%)이 5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이다. 산업재해는 더 많이 발생하지만, 법적 규제는 덜 받는 곳이 바로 '작은 사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환경을 만드는 데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곳이 바로 전국의 안전보건공단 산하 근로자건강센터다. 근로자건강센터는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이 연결되고 안전보건공단과 계약한 민간기관이 위탁해 센터를 운영한다.

경기도 성남시 산업공단에 위치한 경기동부 근로자건강센터에서 근무하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공유정옥님을 만났다. 공유정옥님은 센터에서 노동자들에게 건강 상담을 하고, 사업장을 방문해 위험요인을 점검하고 교육하며 사업주, 관리자, 노동자들과 만나고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과 노동자 건강권을 위해 가장 필요한 안전보건관리 활동은 무엇인지 물었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A부터 Z까지

소규모 사업장에서 산업재해가 자주 일어나니 관리를 해야 하지만, 현재 법에서는 산재 예방을 위한 규제 조항에서 소규모 사업장들을 적용 예외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물적·인적 자원 면에서 부족하다는 것이 그 근거일 수는 있지만, 이들 사업장에서 사업주들이 자발적으로 안전보건관리를 하며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정부는 이러한 사업장에 지원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경기동부 근로자건강센터에서 주로 만나는 노동자들은 누구인지, 진행하는 사업은 무엇인지 물었다.

"주로 20~30명 규모 사업장에 방문해요. 사업장에 가서 상담, 교육, 컨설팅 하면서 사업장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의사들은 건강, 작업환경, 보호구 상담을 하고 간호사 선생님들은 뇌심혈관 예방 상담을 해요. 근골격계질환 예방실에서는 운동치료, 스트레칭 가르치는 일을 하고요. 심리파트에서는 상담심리사가 감정노동 노동자들에게 교육을 하고 심리평가도 진행합니다. 사업장 다니면서 정신건강 관리 필요한 사람들이 있으면 상담을 권하기도 하고요. 산업위생기사, 직업환경팀에서 사업장 보건관리, 화학물질관리 등 컨설팅을 하고 안전보호구 지도, 위험 표지, 포스터, 스티커 제공하는 활동까지 여러 가지를 합니다. 주로 작은 공장들을 방문하는데요. 의사, 간호사, 산업위생기사 셋이 가요. 노동자 한 명씩 만나서, 건강진단 결과표 설명하고 현장 순회도 하고요. 보건관리대행 사업과 유사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산업위생기사는 작업환경 컨설팅 보고서를 보내는데, 그 후에 사업장에 재방문해서 개선하도록 권고도 합니다."

안전보건관리를 위해서 사업장에 방문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한다. 센터에서는 고용노동부 지청이나 안전보건공단 지사와 연계해 센터가 방문하는 계획을 사업장에 안내할 수 있게 한다. 특수건강검진을 진행한 곳에는 사후 관리를 위해 연락을 달라고 한 다음 신청이 오면 찾아가며, 신청이 오지 않으면 별도로 연락해 찾아가기도 한다. 공공 또는 민간어린이집 연합회가 회의를 할 때 찾아가 제안하고, 산업단지 관리공단을 통해서도 안내를 한다. 센터에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해서 사업주들이 방문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갖가지 방법을 써서 센터에서 방문할 방법을 만드는 것이다.

"센터에서 여러 방법을 써서 사업장을 찾아가지만 이런 것이 안 되는 업체들, 결국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은 답이 없어요. 법으로 강제할 수도 없는 거고요. 20인 미만 제조업에는 보건관리의무가 없으니 근로자건강센터를 통해서 안전보건관리를 받도록 법을 바꾸자는 주장도 하고 있습니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라면 무엇일까? 노동자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질환이나 회사에서 취하는 조치는 충분한지 등이 궁금했다. 또한, 작업 사업장의 노동 환경이나 안전보건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지 물었다.

"사실 사업장에 갔을 때 사업주나 공장장 같은 관리자는 거의 만나지 못해요. 상대하는 사람은 온갖 업무를 다 하는 노동자인 경우가 많죠. 상담 후 결과가 사업주에게 닿아야 하는데 잘 안 돼요. 전혀 정보가 없거나 잘못된 정보를 가진 사업주들도 있어요. 이런 곳들은 두세 달에 한 번씩 열 번 정도 만나면 수준을 올릴 수 있습니다. 이 사업장들은 학교를 가지 않았다고 할 수준이에요. 문맹이라고 할 수 있죠. 아주 기본적인 것이 제공되어야 하는데 안 되는 상황이에요. 왜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고가 나는지 알 수 있어요. 지식, 정보, 교육이 가서 닿은 적이 없으면 특출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위생을 전혀 모르고 노동자는 아프죠. 사회의 진보, 성숙 속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맹과 견주는 건데요. 문맹을 타파하기 위해 뭔가를 시도해본 적이 없었어요. 사업주는 국가가 개입하는 데 불만을 표하고요. 두세 달에 한 번씩은 가고, 일정 기간 동안 반복해서 만나고 잘 되면 졸업하는 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초 산업보건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과 사람도 많아져야 하고요."

필요한 곳에 필요한 지원을

인터뷰 내내 공유정옥님은 지속적으로 들여다보아야 많은 사업장이 안전해진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산재예방을 위해서 산업안전보건법으로 풀어내야 할 것, 법제도와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작은 사업장에 필요한 조치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진짜 문제를 풀려면 케어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A에게는 어떤 조치를, B에게는 어떤 도움을, C에게는 어떤 지원을 하는 식이어야 하죠. 전체가 다 들어오는 그림을 그려놓고 할 수 있는 곳부터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해야 해요. 이 전체 그림를 그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국에 23개 근로자건강센터가 있지만, 이걸로는 부족하고 100개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도 합니다. 또 모델을 만들어봤으면 좋겠어요. 파주의료원 같은 공공병원에서 하는 방식이나 민간기업에서 하는 건강센터도 의미 있죠. 조직된 노조에서도 시도해봤으면 해요.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안전보건공단이 하는 근로자건강센터와 다른 식으로 해봤으면 하는 거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을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3년간 적용을 유예하게 되었다. 산업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에게 이 법을 적용 유예하고 아예 적용하지 않는다는 데 어떤 문제점이 있다고 보는지 물었다.

"이 법은, 정규분포에서 계속 사업을 해서는 안 될 정도로 가장 나쁜 상황의 사업장을 걸러낼 장치라고 생각해요. 사업주의 자격을 묻는 법이라 생각합니다. 규모로 예외 두는 것에 물론 동의할 수 없고요. 산안법 처벌이 너무 약한 것도 맞아요. 분명히 처벌할 곳과 처벌이 아니라 다른 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곳들은 프레임에 안 들어온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에도 힘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기초 공부를 하게 도울까도 생각해야 합니다. 처벌밖에는 답이 없는 사업장은 처벌해서 본보기가 되게 해야 하고, 여기 전략도 필요합니다."

노동계, 정부의 과제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노조 조직률 면에서도 저조하다 보니 건강하게 일하는 것이 노동자의 권리라는 인식을 갖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노동자들에게서 가능성을 보았다면 어떤 것이 있었는지 노동계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지 물었다.

"쉽지 않은 건 맞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물꼬가 트이기도 하더라고요. 권리 주장이라기보다 '사장이 00해야 하는데 안 해', '건강진단 해준다더니 안 해준대' 이런 표현을 듣기도 하거든요. 이런 게 권리죠. 이런 인식이 보편적으로 확산되려면 계기가 필요해요. 역시 교육이 답이죠. 불만, 걱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있으면 가능한데, 그런 자리를 조직해내야죠. 돌고 돌아서 결국 노동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동자와 한 자리에 서는 운동이 같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가가기 어려워요. 노동운동, 지역운동, 계층운동 등 다양하게 만나는 시도가 있어야 해요. 그런 기회 면에서 사각지대는 고령노동자들이라고 할 수 있죠. 보편적인 권리의식도 부족하니까요. 또 노동조합에서 중년 여성 노동자들을 만나면 할 일이 많겠다는 생각도 해요."

정부는 사업장을 법으로 규제하고 근로자건강센터와 같은 방식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할 때 한 발씩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위해서 정부가 어떤 정책을 가지고 건강권을 설계해야 할까?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면, 30년을 보는 비전 세우기라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지반을 다듬으며 집을 짓지 않거든요. 일목요연하게 정비할 방법을 구상하고 체계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개별 사안이 돌아가게 해야 해요. 계속 점검해가면서 정부, 입법, 행정, 노동계같은 기구가 청사진을 따라가면서 리포트가 나오는 구조였으면 합니다. 영국은 정기 리포트를 제출하게 하고 있어요. 이걸 놓고 반대하고 요구하면서 논쟁하는 구조가 한국에도 있었으면 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안전과 건강을 보장받으려면 정부와 노동계의 역할은 백번 강조해도 부족해 보인다. 그런 한편으로, 근로자건강센터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현장에 다니고 교육할 때 작은 사업장 사업주의 인식과 노동 환경에 아주 조금 변화가 생길 거라는 게 예상되기도 한다. 그 변화, 아주 느리게 올 변화를 위해 법과 제도, 지원책이 꾸준히 모아져야 하지 않을까?

 

[일터3월_특집2] 작은 사업장의 위험에 맞선 지역 연대활동의 현재와 가능성 / 2021. 03

[작은 사업장의 큰 문제들]

작은 사업장의 위험에 맞선 지역 연대활동의 현재와 가능성

최진일 회원,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대표

세종충남 희망노조

'총체적 난국' 작은 사업장의 노동안전보건문제를 한마디로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일 것이다. 혹자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안전보건관리정책은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성공하지 못한 과제라고 말한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부분에서 문제를 끌어안고 있다.

자체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추고 예방적 조치들을 시행하기 위한 자원과 비용을 감당할 수 없으며, 고용노동부-안전보건공단-근로자건강센터의 관리감독과 지원은 263만 2955개의 작은 사업장에 쉽사리 닿지 않는다. 예방조치는커녕 산재발생에 대한 사후적 조치로서 산재보상과 재발방지대책의 수립·시행 역시 시스템 밖의 노동자들에게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이 모든 것들의 바탕이 되는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에게는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다. 작은 사업장의 위험은 시쳇말로 '노답'인 걸까?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앞서 나열한 작은사업장 안전보건관리의 한계들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우선, 작은 사업장들이 안전보건관리를 위한 자원과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은 '원래 그런 것'도 '당연한 일'도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대다수가 대기업에 다단계 하청관계로 종속되어 생산을 유지하는 이상의 수입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다.

그 때문에 노동재해에 대한 원청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법제도적 정비는 발생한 재해에 대한 사후적인 책임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예방을 위한 비용의 부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안전보건관리를 포함한 재생산비용 전체를 사회에 떠넘기는 플랫폼노동 사용자들의 문제 역시 지적되어야 한다.

둘째, 이번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리과정에서도 반복된 '영세하니까 열외'라는 궤변을 멈추고 국가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영세함을 이유로 규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영세사업장의 한계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고용노동부-안전보건공단-근로자건강센터 체계가 이를 수행하기 불가능하다면 대대적인 개편과 변화가 필요하며, 현재 진행중인 산업안전보건청 논의에 있어서도 작은 사업장의 문제는 그 중심에 놓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집단적 조직화를 통한 교섭력의 확보라는 전통적인 노동조합 조직전략에서도 소외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자기조직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들이 더 늘어나야 한다. 노동조합이든 다른 형태든 노동자들의 집단적 결사는 '권리로서의 안전'을 요구하고 행사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은 사업장의 안전보건문제는 산업구조의 문제, 정부정책의 문제, 노동운동의 체질개선의 문제 등 다분히 전국적 의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의 방향성과 조응하며 현장과 지역단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 역시 절실하다.

아직 지역에서의 노동안전보건 연대활동은 주로 중대재해, 중대산업사고에 대한 공동대응이 중심이며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운동을 통해 외연이 확장된 측면이 있을 뿐, 명확하게 작은 사업장의 문제에 주목한 활동이 진행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재사망사고의 77.2%가 작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현실이 있다. 노동조합이 조직된 사업장에서는 산별노조나 단위노조를 중심으로 대응이 이루어지는 반면 미조직 노동자들의 재해에는 지역에서의 연대활동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간의 연대활동을 작은 사업장 문제를 중심으로 평가하고 과제를 도출하는 것은 나름의 타당성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사후적 대응을 넘어 예방적 요구로

2020년 6월 쿠팡 천안물류센터의 식당노동자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인 중의 하나로 소독제와 청소용제 등의 화학물질을 마구 섞어서 사용하는 작업방식이 지목됐다. 고용노동부와의 첫 면담에서 지역의 활동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식당 및 청소노동자들의 소독제 사용이 급격히 늘어난 상황에서 사고조사와는 별개로 혼합사용의 위험을 관련 사업장에 전파하고 경보체계를 가동할 것을 요구했다. 천안지청 역시 취지에 공감하고 동의했으나 구체적인 행동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충남노동권익센터와 지역 이주노동자지원센터들이 공동으로 진행한 이주노동자실태조사 과정에서 언어적 장벽과 사업주들의 무관심으로 인한 이주노동자들의 코로나19 방역 문제가 제기되었다. 노동권익센터를 중심으로 구성된 노동단체네트워크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었고 충남도와의 협의를 통해 방역정보에 대한 다국어번역과 배포, 외국어 방역경보 문자발송 등의 대책이 발 빠르게 실행되었다.

작은 사업장에 대한 전면적인 예방조치들을 지역차원에서 구현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과제이지만, 최소한 드러난 사례들을 개념화하고 이를 통해 비슷한 문제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의 연대체가 스스로 작은 사업장의 안전보건 감시망으로서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자각과 장기적으로는 공적인 시스템이 이러한 역할을 하도록 요구하는 전망이 공유되어야 한다. 일부 지역에서 운영 중인 급성중독직업병관리체계도 비록 협소한 범위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사회에서의 의제화

세월호참사를 지나 김용균투쟁을 기점으로 생명과 안전, 노동재해의 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자리잡았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 같은 성과들이 만들어졌지만, 문제의 핵심인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위험은 지역사회 핵심의제로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방정부나 의회만을 탓할 일도 아닌 것은, 우리의 지역연대활동 역시 중대재해 대응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작은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을 강화하라는 요구 외에, 이 문제에 대해 노동지청과 지방정부에 우리가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어떤 요구를 할 것인지 충분히 준비되어있지 않다. 지역의 노동시민사회단체들 안에서부터 이 문제를 핵심적 의제로 삼고 구체적 실천과제와 요구들을 토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례로, 지역명예산업안전감독관(아래 지역명감)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충남지역에서는 2018년부터 민주노총세종충남본부의 주도로 지역명감 양성사업을 활발히 진행했다. 매년 20~30명이 위촉장을 받았지만 여전히 지역에서 이들의 활동은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사업장 출입이 보장되지 않는 한 법이 정하고 있는 지역명감들의 권한과 역할을 행사할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이다.

과거 몇몇 사고대응 과정에서 지역명감들의 참여를 보장받고 사고조사에 참여한 사례가 있지만, 현재 고용노동부는 사고조사에 있어 노동자 참여를 해당사업장으로만 제한하며 지역명감의 참여권을 사실상 부정하고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조차 출입이 되지 않는 지역명감들이 지역 내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예방활동을 벌이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각 현장에서도 지역명감의 지역적 역할과 책임에 주목하기 보다 자기 현장의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숫자를 늘리는 협소한 의미로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역명감들이 사업장 담을 넘어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기획하고, 그들이 실질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활동시간과 권한의 보장을 확대하는 투쟁들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작은 사업장 조직화와 발 맞추기

지역차원의 노동안전보건활동이 작은 사업장의 문제들에 있어 (아주 제한적인) 개별적인 사건들에 대한 (역시 제한적인) 사후적 개입에만 머물러 있는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의 주체가 되는 과정에 대한 고민이 결합되어야 한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일상적인 권리로 천명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나 활동가들이 아닌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지역노조, 공단노조 등을 비롯해 다양한 방식의 작은 사업장 조직화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최근 충남에서도 세종충남희망노조가 작은사업장 조직화를 목표로 활동을 시작했다.

작은 사업장의 위험에 맞서는 투쟁은 이러한 조직화사업과 더욱 긴밀하게 조응해야 한다. 임금과 복지 등 단위사업장의 요구를 기반으로 조직되는 전통적인 노동조합들과는 달리 업종이나 지역의 특수성에 기반해 다양한 형태의 조직전략, 교섭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작은 사업장 조직화에 있어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은 조직화의 주요한 의제로 기능하기에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해법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현실에서 풀리지 않는 사회문제가 있다면, 그 이유는 해법이 '요구'로서 구체화되지 않았거나, 요구를 발화할 '주인공'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사업장의 위험이라는 문제에 있어 아마도 지금의 우리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처지이기에, 전국적 차원의 법제도 개선투쟁만이 아니라 지역에서 다양한 주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노동안전보건활동을 더욱 촘촘히 구축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일터3월_특집1] 작은 사업장 안전보건 실태와 개선과제 / 2021.03

[작은 사업장의 큰 문제들]

작은 사업장 안전보건 실태와 개선과제

류현철/소장, 직업환경의학전문의

20년 12월 7일,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한 활동가 워크숍>이 있었다

차별과 불평등의 역사는 길고도 질기다. 왕족‧귀족과 평민‧노예라는 혈통으로, 섬기는 신과 믿음의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민족이나 인종과 피부색으로, 남성과 여성 혹은 기타의 성별로 차별해왔고 불평등을 당연시 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차별과 불평등의 양상은 달라졌지만 지속되고 있다.

중세시대 차별의 잔혹성에 비하자면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나 21세기 노동의 현장에서 차별은 만연하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노동자들은 비교적 안전 수준이 높아졌으며 어쩔 수 없이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경우에는 위험수당이라는 명목으로 금전적 보상의 수준도 높아졌다. 그러나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위험하거나 더 위험해졌으며, 위험수당은커녕 일자리를 유지하는 조건 자체가 위험 감수를 전제하기도 한다. 일터의 위험에 있어 불평등과 차별은 만연하다.

작은 사업장 일터 안전건강에서의 차별과 불평등

2020년 11월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에서는 '30인 미만 '작은사업장' 노동자 실태와 정책 대안'이라는 의미 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오늘의 전태일 보고서'라는 부제를 단 보고서는 한국 사회에서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이 처한 불평등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30인 미만 작은 사업장 수는 전체 사업체의 97.9%, 종사자 수(자영업자 포함)로는 61.1%가 작은 사업장에서 근무한다. 노동자 수는 2019년 8월 기준으로 약 58.4%가 작은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여성, 고령자, 저학력 노동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의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임금, 노동시간, 종사상 지위, 사회보험, 안전보건 등 대부분의 권리에서 차별을 겪고 있다는 것이 각종 통계와 질적 조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이는 한국의 경제적 사회적 변화과정과 맞물려 있다. 1970년대 정부 주도 하에 제조업 육성 정책을 바탕으로 해서 1980년대를 거치며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수출을 통해 성장한 대기업은 독자적 성장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는 대기업을 정점으로 하는 '하청 계열화' 방식의 동원 전략을 통해서 뒷받침되었으며 중소기업은 위계화된 하청 시스템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고 말았다. 원하청 불공정거래로 인한 기업간 격차는 확대되고 이는 결국 기업의 규모에 따른 노동자들 간의 격차로 이어지고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불평등은 일터 안전건강문제에서 더욱 적나라하다.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시설, 장비, 인력, 시술 등 자원이 소요되기 마련이나 불공정한 원하청 거래관행으로 인해 작은 사업장에는 위험관리에 따르는 자원과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터의 안전보건 수준과 관련된 요인은 위험통제와 관련된 기술력, 사업주의 의지, 정부의 규제 정책 등등 다양하지만 이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위험은 '작은'사업장에 수렴되고 증폭된다.

원하청 관계를 통해 책임 없는 위험의 이전을 통한 기업의 이윤추구를 용인해주겠다면 정부가 위험 관리의 책임을 지고 비용과 자원을 동원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기존의 정책은 위험의 방조를 선택해왔다. 불공정한 거래관행을 개선을 통한 최소한의 안전보건관리 비용을 보장해주지도 않았으며, 관련한 공공적 지원은 미미했다. 오히려 작은 사업장에게 영세성을 이유로 안전보건관리체제 구성 등의 의무를 면제해주고 소극적인 규제로 일관해왔다.

원청의 책임에 대한 법적 규정 역시 실질적으로 담고 있지 못하다. 위험을 관리할 시설과 자원에 대한 지불 부담 능력이 없는 사업주가 위험을 담보로 생산이나 영업 활동을 유지하는 것을 영세하다는 이유로, 생존권 보장이라는 이유로 용인한 결과는 노동자들의 손상과 죽음으로 귀결된다.

2019년 산재 통계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의 사망 만인율은 1.65로 전체 평균 1.08보다 1.5배 이상 높고 이는 산재 통계가 작성된 이후로 변하지 않는 양상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산재보험 대상 노동자 중 16.0%를 차지하지만 사고 재해자중 33.9%, 사고 사망자 중 35.2%를 차지한다. 떨어짐, 끼임, 부딪힘, 깔림 등 재래식 사고의 위험이 관리되지 않고 있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일수록 더 많이 다치고 죽는다.

질병재해에 있어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비율은 17.4%, 질병사망자에서는 16.6%이지만 이는 산재보상 절차와 승인에 있어서 장벽이 더 높은 질병재해의 경우에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접근성 자체가 낮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최민, 작은 사업장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과제,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한 활동가 워크숍 자료집, 2020)

이렇게 수 십년 간 변함없는 결과를 마주하면서도 작은 사업장 안전보건관리는 해결 안 되는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 예방조치는 미진하고 생색만 내는 수준으로, 작은 사업장은 위험이 상존하지만 관리 책임은 공백인 상태가 지속된다.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정에서도 작은 사업장 안전보건 문제를 대하는 제도권의 인식의 일면은 그대로 드러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 과정은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과 시민의 안전에 대한 인식수준의 성장을 반영하고 있다. 과거 압축적인 산업화와 경제성장과정에서 용인되던 노동재해에 대해 이제 기업의 책임을 따져 묻고 있으며, 특히 원청을 포함한 진짜 사장 처벌이라는 사회적 쟁점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손질된 중대재해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그 적용을 유예하고 있다. 법의 실효성의 차원을 떠나서 중대재해의 상당부분이 발생하고 있는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할 권리에 대한 가치절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적용범위의 축소를 통해서 원청이 면책되고 있는 현실의 반증인 것이다.

작은 사업장 안전보건,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먼저, 사업주의 안전보건 관리책임은 사업장의 규모와 무관하게 동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위험관리 실패의 결과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업장의 규모가 아니라 위험관리의 실패로 인해서 빚어지는 결과의 중대성에 따라 합당한 책임을 지우도록 해야 한다. 위험물을 중심으로 도급 금지 등의 관리책임을 상향할 것이 아니라 일터의 위험 관리에 소요되는 자원의 크기와 비용지불능력에 따라 관리 책임을 지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 무엇이 얼마나 왜 위험한지 알고 무엇부터 개입해야할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부차원의 제대로 된 위험성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관리는커녕 등록조차 되지 않은 작은 사업장과 노동자들을 파악해야 한다. 안전상 문제는 주로 사업장 단위의 등록이 필요하며 보건상의 문제는 경우는 노동자 단위의 관리가 필요하다. 등록의 통로는 기존의 여러 법제를 활용하고 정보 공유를 통해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화학물질 유통, 위험 기계 기구의 유통에 따라서, 기업의 서플라이 체인을 따라서, 공장설립 인허가를 통해서 등록할 수 있다.

또한 지원을 전제로 한 자발적 등록(안전보건공단의 기존 지원사업 활용)과 중대한 위험이 확인된 경우 관리와 규제를 전제로 찾아내서 등록하는 등의 다양한 통로를 활용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기존의 안전보건관련 자료와 통합하여 위험을 파악해야 한다.

이에 기반하여 개별 사업장 단위의 위험성평가가 아닌 산업생태계 전반에 대한 위험성평가가 수행되어야 한다.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상황이 아닌 구체적인 위험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며 사업장 규모 자체로서 가지는 보편적인 위험이 아닌 실제적 수준에서 고위험 우선관리 대상을 파악해야 한다.

위험관리에 소요되는 자원과 비용에 따라 원청이 책임져야 할 부분을 정해야 하며 위험관리에 필요한 기본적인 장비, 자원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는 진입장벽을 세우는 것도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산업 생태계 전반에서 원재료를 포함한 생산-유통-폐기의 전 과정에서 소요되는 안전보건관리 비용은 마진(margin)이 아니라 원가(cost)로 여겨지게 만드는 필요하다. 위험으로 이윤을 얻는 자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역할이 필수적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다.

그간 정부의 작은 사업장 지원 사업은 목적과 방향이 없는 퍼주기식 금전 지원이 대부분이었다. 사업장 규모만을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지원이나 규제를 통해서 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 커버리지 수준 등을 예측하고 개입해야 한다. 위험 관리에 필요한 조건과 자원이 미비한 작은 사업장에 대해서는 일정 수준의 지원을 통해서 관리가 가능한 경우와 불가능한 경우를 가려 지원하거나 혹은 해당 업종에서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작은 사업장의 위험관리와 노동자들의 건강관리에 대한 지원은 물론이거니와 관리 감독에 있어서도 국가, 정부, 지자체 각각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기획하고 수행할 건전한 안전보건행정조직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이 실질적 교섭과 협상력에 기반한 권리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산안법 개정으로 사업주의 안전보건관리체제 구성과 노동자의 참여 보장 의무가 규모와 무관하게 적용되는 등 형식적 권리가 획득된다고 해서 바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이 획득되는 것은 아니다.

2019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노조가입률은 4.0%로 300인 이상 사업장의 33.5%에 비해서 현저히 낮고, 2020년 민주노총에서 전략조직화 사업의 일환으로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5%만이 노동조합 조합원이라고 응답했으며 이는 2018년 한국의 노조 조직률 11.8%에 훨씬 못 미친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데 있어서 노동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노동조합 활동이 노동안전보건 수준을 높인다는 것은 학술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작은 사업장의 안전보건 문제는 실타래처럼 얽혀 쉬운 해법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해결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자연도태(?)를 기다리며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할 일을 하자. 삶과 죽음의 크기는 사업장의 규모와 무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