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4. 일터괴롭힘 없는 일터를 위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과제 / 2019.07

[일터괴롭힘 없는 평등한 일터 만들기④] 

 

 

일터괴롭힘 없는 일터를 위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과제

 

 

최민 / 상임활동가 

 

 

오는 7월 16일부터 일터괴롭힘 예방을 위한 조항이 포함된 근로기준법이 시행된다. 이 날부터는 취업규칙에도 일터괴롭힘 예방을 위한 조치가 포함돼야 한다. 일터괴롭힘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에서 회자된 것이 몇 년 되지 않았다
는 점을 고려하면 큰 진전이지만, 누구나 ‘일터괴롭힘’ 문제가 법이 도입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으리라는 점을 잘 알 것이다. 괴롭힘이 없는 일터를 넘어, 노동자가 존중받는 일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것은 직장 내 괴롭힘인가요?


일터괴롭힘과 관련된 교육에서 ‘반말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인가요? 일을 정말 못 하는 사람을 혼내는 것도 문제가 되나요?’와 같은 질문을 흔히 받는다. 직장내성희롱 금지법이 만들어졌을 때도 유사한 상황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나도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한 직장 상사가 능글맞게 웃으며 “이것도 성희롱인가?”, “이건 아니지?”라고 던지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성희롱 목록’에 들어가는 행동만 조심하는 것이 아니다. 내게 익숙한, 성별과 성정체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기반한 여러 말과 행동이 타인을 배제하고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자각과 이에 비추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성찰이다. 일터괴롭힘 문제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행동이나 행위가 일터 괴롭힘인지 아닌지가 아니다. ‘직장에 갈 때 영혼은 집에 두고 가는 거야,’ ‘이런 직장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먹고 사는 게 먼저지, 지금 자존심 챙길 때냐’ 하는 사회적 통념에 기댄 우리의 무딘 말과 행동이 누군가를 모욕하거나 배제하고,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성찰이다. 나라도 그런 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책임감, 이런 문화를 바꾸어 내겠다는 고민이 중요하다.


당신은 괴롭힘 행위자? 동조자? 방관자?


예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로부터 ‘선배에게 폭언을 들을 때, 옆에 있던 너도 동조자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괴롭힘의 순간에 당하는 사람의 편에 서지 못 했던 것은 나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너무 부끄러운 나머 지, 오히려 ‘내가 직접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잖아’, ‘그래도 나중에 위로해주지 않았나’ 하는 억울한 마음이 먼저 들기도 했다. 하룻밤 뒤척이고 나서야, 뒤늦게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괴롭힘이 눈앞에서 벌어질 때, 그 순간 바로 제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괴롭힘’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괴롭힘 행위자와의 관계에서 불편함이 발생하거나 본인에게도 불똥이 튈 수도 있다는 점을 감수할 용기도 필요하다. 용기와 감수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교육과 훈련, 경험을 통해 기를 수 있다. 일터괴롭힘이 단순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직장 문화와 직장 내 관계로부터 기인하는 문제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저 멀리 있는 ‘악독한’ 상사와 ‘불쌍한’ 피해자에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 일터와 직장’의 문제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나 쉽게 동조자나 방관자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도록 일터괴롭힘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고, 일터를 인권의 눈으로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조합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 일터에서 누가 이익을 얻나?

물론 나와 우리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보는 것과 함께 이런 살풍경한 직장 분위기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지,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누구인지 따져보는 것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에 따르면,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경영 전략 차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응답이 22.4%나 됐다. 노동조합 활동이나 노동자들의 모임을 방해하기 위한 괴롭힘을 당해봤다는 답변도 4.6%나 됐다. 개인적 차원의 괴롭힘을 먼저 생각하기 쉽지만, 조직적 괴롭힘 피해도 상당한 수준이다. 직장에서 직장내 괴롭힘이 실적이나 성과 향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4명 중 한 명은 그렇다고 답했다. 일터괴롭힘 문제가 가해자를 적발해, 처벌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간의 괴롭힘이나 갈등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사실은 과도한 업무량이나 비체계적인 조직 내 의사 결정 과정, 비합리적인 평가 체계 등의 조직 문제가 갈등을 격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일터괴롭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노동조합이 나서 경영진과 회사 자체의 문제를 드러내고 이런 조직적 수준에서의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도록 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일


일터괴롭힘 문제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목록화 하고, 여기 해당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요리조리 몸을 사리는 방식으로 이해되지 않도록 노동조합이 노력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일터괴롭힘을 폭넓게 이해하고 직장 내 인권과 관계 문제에 대한 감수성과 용기를 기를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취업규칙이나 직장 내 규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도, 신고와 공개적인 조사 및 징계로 이어지는 단선적인 해결법 외에 피해자 혹은 신고자의 의사에 기반한 다양한 방식의 문제 해결 방법도 마련하여, ‘괴롭힘인지 아닌지’에 대한 지루하고 폭력적인 논쟁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대응 규정 혹은 노동인권 존중에 관한 규정을 만들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처리 방법과 원칙을 구체적으로 정해둔다. 조사 기간이나 조사위원회 구성, 일터괴롭힘 여부를 결정할 기구 등을 미리 정하며, 여기에 노동조합이 참여하도록 한다. 처리 과정에서 사생활 보호 등 피해자 혹은 신고자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노동조합 내에서 일터괴롭힘 문제를 담당할 사람을 정하고, 그가 충분한 역량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 기회를 제
공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도 직장내괴롭힘 예방 대응 업무를 총괄 담당하는 직원을 ‘상담원’과 같은 이름으로 둘 것을 추천하고 있다. 이 담당자가 단순히 신고를 접수하고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사람에 머물지 않고, 처리 과정 전반을 인권의 관점에서 진행해 갈 수 있도록 일터괴롭힘 교육, 상담 교육, 인권교육 등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없는 우리는?


일터괴롭힘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이고, 집단적인 대응이 없이는 해결이나 처리, 예방이 모두 요원하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이 있을 때 더 존중받기 쉽고, 일터괴롭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일터괴롭힘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이 조직된 노동자에게만 가능한 권리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일터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폭력과 무권리, 무존중 상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 자체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실현하고, 노동자들이 집단적인 행동을 경험할 수 있는 과정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동료들과 함께 문제적 상사에 대해 얘기하기, 우리 직장 상황을 반영하는 일터괴롭힘 교육을 요청하기, 증거를 모으고 대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 취업규칙과 법에 근거한 조사와 처리를 함께 요구해보기, 산재 신청이나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 취할 수 있는 절차를 찾아 보기 등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은 많다. 피해자가 원인제공자로 쉽게 둔갑하는 일터괴롭힘의 특성상, 홀로 있을 때는 문제가 무엇인지 조차 뚜렷하게 알기 어렵다. 함께 이야기할 때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되고, 해결책도 떠올려 볼 수 있다. 일터괴롭힘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온 직장갑질119와 같은 민간단체도 있고, 노동권익센터나 근로자복지센터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지원 조직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우리의 괴로움과 고통을 ‘함께’ 얘기하는 데서 출발하자.

특집3. 사장님, 직장 내 괴롭힘 신고합니다! / 2019.07

[일터괴롭힘 없는 평등한 일터 만들기③] 

 

 

사장님, 직장 내 괴롭힘 신고합니다!

 

 

조은혜 / 돌꽃노동법률사무소 공인노무사,

직장갑질119 법률 스탭, 한노보연 회원 

 

 

“할 줄 아는 게 뭐예요? 본인이 잉여인원인 거 알죠?” 입사 10년 차인 A 씨가 올해 새로 온 상사B 씨로부터 매일 같이 듣고 있는 말이다. A 씨는 전년도까지만 해도 성과평가 최고등급을 받을 정도로 우수하게 근무해왔던 재원이었으나, 상사 B씨에게 밉보인 이후로는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원래 담당하던 업무에서도 배제된 상태다. 다른 직원이 모두 모여 있는 자리에서 고성을 지르는 것은 기본이고 B 씨의 지적에 대답이라도 하게 되면 폭언은 두 배가 되어 돌아온다. 상사 B 씨와 함께 보낸 2개월 동안 A 씨는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까지 생긴 상태이다.


위 사례는 민간단체인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사례로, 유사한 사례들이 매일 수십 건씩 제보된다. 이런 사례에서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상대방으로부터 모욕적인 언사를 들은 경우에는 형법상 모욕죄가 성립될
수 있다. 우선 폭언내용을 녹취해 놓는 것이 좋다.”는 정도였다. 만약 모욕죄 성립이 안 된다면 할 수 있는 것이 있냐고 내담자가 물었을 때, 당시에는 답변드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것이 노동관계법령 내에 정의되어 있지도 않았고, 정의도 존재하지 않으니 구제 방법도 요원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바뀌나?

오는 7월 16일부터 시행될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르면 위와 같은 상사의 갑질은 ‘직장 내 괴 롭힘’으로 회사에 신고할 수 있고 조사를 통해 사실로 밝혀지면 징계 대상이 된다. 사용자는 신고를 접수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조사를 하여야 한다. 신고를 이유로 사용자가 피해근로자나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주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피해근로자 보호조치는 물론이고,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이 사실로 확인된 경우 사용자는 피해근로자의 요청이 있으면 근무 장소의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 또한 괴롭힘 발생 사실이 사실로 인정된 때에는 그 행위자에 대하여 징계, 근무 장소의 변경 등의 조치를 해야 하며, 이때 사전에 피해근로자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다.


이번 개정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인한 업무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업무상 질병이 발생한 경우에도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상기 사례의 경우 A 씨의 불면증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인정된다면 산재가 가능하다.

상사 B 씨를 직접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나?

현재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내용으로는 상사 B씨를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죄목으로 직접 형사 처벌할 수는 없다. 가해자를 형사 처벌하기 위해선 예전처럼 모욕죄, 폭행죄 등 형법상 성립요건이 갖추어진 경우에 개인적으로 고소해야 한다. 가해자를 직접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어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던 부분이다. 물론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이번 개정안은 회사 내부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자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끔 하였다.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기재사항으로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등에 관한 사항’을 신설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고용노동부 매뉴얼은 ▲사내에서 금지되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 관련 사항, ▲직장 내 괴롭힘 사건처리 절차, ▲피해자 보호조치, ▲행위자 제재, ▲재발방지 조치 등의 내용을 기존 취업규칙에 추가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상시 근로자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이를 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지 않을 시에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취업규칙을 통해 실효성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취업규칙을 개정하기 전에 회사 자체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를 익명으로 실시하여 어떤 종류의 직장 내 괴롭힘이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는지, 징계 수위의 적절성, 조사절차에 관한 의견 등을 파악한 뒤 이를 내용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신고자 및 피해근로자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도록 신고자 보호와 관련된 규정 및 공정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동조합 또는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의 참여를 보장하는 규정이 함께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아쉬운 점은?


직전에도 언급했던 가해자 처벌조항이 없는 점, 그리고 근로기준법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규정하다 보니 5인 미만 사업장에는 하위 법령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간접고용(파견, 용역, 사내하청 등),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경우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취업규칙 규정 신설 시 적용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가 대표이사 등 사용자일 경우 신고를 그 가해자에게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고용노동부 매뉴얼에서는 대표이사 등 최고 경영자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로 지목된 경우에는 감사가 조
사한 후 이사회에 보고하는 방식을 채택하라고 권고하고 있으나, 감사나 이사회가 없는 중소·영세사업장에서는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의미한 변화

아쉬운 점이 분명 존재하지만,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정의가 신설된 것만으로도 유의미하다. 처벌 규정이 다소 미흡하고, 현장에서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 우려의 시선들이 있지만 우선 노동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투쟁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갖춰진 것만으로도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다.

직장 내 수직적 직급체계가 일반화되어 있던 우리나라 사회에서 상명하복은 회사 내 진리처럼 여겨져 왔다. 아무리 부당한 명령이라 하더라도 감내해야 했고, ‘사회생활은 다 그런 거야’라는 말 아래 모든 것이 묵인되어 왔다. 하지만 2014 년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비행기 회항 사건 이후로 갑질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점점 수면 위로 떠 오르기 시작하였고, 개인이 혼자 참아내야 하는 문제로 치부되던 상사의 갑질이 어느새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행위로 인정된 것이다. 직장갑질119 카톡 채팅방에 많이 올라오는 질문 중의 하나가 바로 ‘제가 이러이러한 일을 겪었는 데 이것도 갑질인가요?’라는 질문이다. 지금까지는 상사의 갑질에 자존감이 꺾이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원래 사회생활은 이런 거니까 하며 참고 넘어갔던 일들이 사실은 문제 제기가 가능한 부당한 대우였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이들의 입을 열게 한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첫걸음이라고 본다.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계속해서 바꿔나가면 될 일이다.

앞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다면?

이 개정안은 시행일인 2019년 7월 16일 이후에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부터 적용된다. 사용자에게 신고하게 되더라도 그 직장 내 괴롭힘 발생사실이 입증되어야 하므로 녹취록이나 증인 등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반드시 모아놓아야 하며, 신고 등으로 인해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게 되면 노동부에 신고가 가능하다. 전문가의 조력이 필요하다면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에서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특집2. 5년이 지난 지금도 다 회복되지 않았어요 / 2019.07

[일터괴롭힘 없는 평등한 일터 만들기②] 

 

 

5년이 지난 지금도 다 회복되지 않았어요 

 

 

선전위원회

 

 

“그녀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그녀는 자신이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여전히 그녀는 술을 마셔도 되는지, 안 마시면 안 되는지 자신이 없다. 자신이 미안해하지 않고 뻔뻔한 사람 일지도 모른다고 가끔 생각한다. 그러다가 다시 그렇다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뻔뻔하게 살겠노라고 마음먹는다. 그녀에게는 늘 오늘이 최선이지만, 그 최선이 다른 사람의 발끝에도 못 미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A씨가 자신의 경험을 짧은 소설로 표현한 ‘그녀의 오늘’ 중에서 인용

 

A씨는 2012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약 11개월간 일했던 사무실에서 일터괴롭힘을 당했다. 일터 괴롭힘으로 인한 피해 얘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일터괴롭힘으로 객관화한 생존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더니, 5년이 지난 지금도 이 문제에 객관적이거나 회복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지금도 두 가지 완전히 다른 마음이 공존한다. 하나는 내가 좀 더 용기 내서 싸웠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괴롭힘을 당한 후 우울증 치료를 받게 됐는데 이걸로 산재를 신청하거나 소송을 걸어야 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 강하게 싸웠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나약하고 당장 먹고 사는 게 급급해서 그렇게 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있다. 그런가 하면, 정반대의 생각도 여전하다. 그래도 처 음에는 나한테 잘 해줬던 사람인데, 대체 무슨 일을 계기로 이상해졌는지 몰라도, 관계가 괜찮은 시기도 있었는데, 내가 좀 더 참았어야 했던 거였을까, 이렇게까지 서로 감정이 나빠지지 않았을 방법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여전히 한다. 지금도 이 문제를 객관화해서 보거나 회복됐다고 말하기 어렵다.”

매뉴얼에 나온 모든 괴롭힘을 다 당했어요

A씨는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다. 회사에 취업하거나, 유사한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무실을 운영하기도 하는 직종이다. 자격증을 취득한 후 바로 입사한 첫 번째 사무실에서는 성희롱 사건이 있었다. 6개월 만에 자리를 옮겼다. 사장 1인과 A씨는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이고, 이들을 도와주는 행정담당자 1명까지 총 3명이 일하는 작은 사무실이었다. A씨는 그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고용노동부 매뉴얼에 나와 있는 일터괴롭힘 유형을 거의 다 당했다.


“정확히 언제부터, 왜 시작됐는지는 모르겠다. 처음 보고서를 냈을 때 ‘내가 원하던 게 바로 이거’라며 칭찬을 듣기도 했다. 그나마 짚이는 것은 일 시작한 지 얼마 되어 다리를 다친 것이다. 회식 후 귀가하다 한 번, 출장 다녀오다 또 한 번 발목 인대를 다쳐 몇 달간 깁스를 했다. ‘산재 안 된다’는 얘기는 물론이고, ‘꼴 보기 싫으니 깁스를 풀어라, 목발 치워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다리가 불편해 택시를 타고 출근했더니, 둘이서 ‘돈도 많다, 택시 타고 출근하고 건방지다’고 대화하기도 했다. 사장이 나가는 업계 내 모임에도 못 나오게 했다. 다른 사무실 후배의 손을 빌리면서도 내게는 제대로 된 일을 주지 않다가, 일을 달라고 요청하자 골치 아파 ‘처박아 두었던’ 일이라며 행정업무를 시키기도 했다.

사장과 실장이 돌아가면서 혹은 함께 ‘옷을 못 입어 다른 사무실 보기 창피하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직접적인 폭언을 퍼붓고, 회의 시간에 쳐다본 것을 ‘노려본다’고 화내기도 했다. 업계 다른 사람들에게 ‘정말 싫다’며 험담하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심지어 사무실에 바퀴벌레가 나오거나 화장실 변기가 막혀도 내 탓을 했다. 처음에는 장난인가 싶었는데, 어느새 나와 무관한 일들이 내가 한 일이 돼 있었다. 물을 마시면 물을 많이 마신다고, 화장실을 가면 화장실을 자주 간다고 나무라기도 했다. 괴롭힘은 점점 심해졌다.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에는, 결국 그 둘이 한쪽씩 팔을 잡고 나를 물리적으로 끌어내기까지 했다. 원래 정해진 계약 기간까지의 3개월치 급여를 주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외면하는 주변 사람들


A씨 사례는 소규모사업장, 좁은 업계에서 특히 더 일터괴롭힘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사정을보여준다. A씨와 사장을 모두 아는 같은 업계 사람들은, 얘기를 꺼내려고 하면 말을 돌려버렸다.

“셋밖에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이 나를 그렇게 대할 때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게 된다. 내게 너무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내가 뭘 잘못했을까,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지속적으로 그런 대우를 당하면,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진다. 업계 내에서 나보다 선배인 사장이 나에 대해 험담을 하고, 함께 있는 것을 싫어하니 외부 모임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게 됐다. 사장과 겹치는 모임에서는 장소가 바뀌었는데 내게만 공지를 안 해줘 틀린 장소에서 기다린 적도 있다. 그 모임 선배로부터 ‘그렇게 눈치를 줬는데 와서 (자신을) 곤란하게 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선배들은 사장의 행동에 관해 얘기하려고 하면 아예 말을 못 꺼내게 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당연히 몸과 마음은 지치게 된다. A씨는 퇴사 이후 오랫동안 우울증 치료를 받기도 했다. 업계 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자신감을 다시 찾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회복하게 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은 거의 도움을 주지 않았다.


“내가 가장 크게 도움받은 사람은 차라리 병원 선생님들이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내 잘못이 아니고, 누구나 힘든 상황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 정신과 의사든 산재 때문에 만나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든, 의사 선생님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잘 알고 지지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의사 입장에선 작은 도움이라 해도 당사자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업계 내 주변 사람 중 상당히 민주적 혹은 진보적이라는 사람들도 A씨가 도움을 요청할까 회피하기만 했다. 아마도 ‘일터괴롭힘’이라는 잣대를 우리 업계에, 아는 선배에게 똑같이 적용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의 벽이 작용했을 것이다. A씨는 괴롭히는 2명하고만 일했기 때문에, 도움을 줄만한 직접적 직장 동료는 없었던 셈이지만, 직장 내에 다른 동료가 있었던들 도움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이유다. 가해자와 불편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외면하는데, 심지어 본인의 직장 내에서 상사가 가해자로 지목되었을 때, 피해자 편에서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일 수 있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는 흔히 ‘개인적인 갈등’으로 치부된다. 실제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모아놓고 보면 괴롭힘으로 보이는데, 당시에는 ‘그럴 수도 있는 일’, ‘피해자도 일부 책임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쉽다. 이런 조건에서 A씨는 홀로 지난 일을 글로 적어 내려가며 곱씹는 과정에서 조금씩 다시 일어설 힘을 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당한 사건과 당시 상황을 글로 적어보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사실 아주 여러 번 쓰고 다시 쓰는 과정이 있었다. 동료에게 내 사정을 알려주려고 쓰기도 하고, 소송이나 산재 같은 법적 절차를 밟는다면 혹시 쓸 일이 있을까 싶어서 써 보기도 했다. 문학성은 거의 없지만, 소설 버전도 있다(웃음). 여러 차례 쓰고 또 쓰면서 ‘누가 겪어도 힘든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 게 나 자신에게 위로가 되었다. 내가 나약해서 못 버틴 것이 아니라, 누가 겪더라도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게 되니, 마음이 훨씬 나아졌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일을 하면서 치유되는 게 있었다. 나도 다른 데서 일을 시작하고, 그 일이 궤도에 올라가니까 힘이 되었다. 사장과 겹쳐서 쫓겨나다시피 한 모임 대신, 업계 내 다른 모임에 나가서 사람들을 새로 사귀고 만난 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일터괴롭힘이다 보니 당연히 ‘일’과 ‘업무’, ‘커리어’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피해자들이 힘들어도 일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다른 피해자들에게 먼저 겪고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한국에서 미투운동에 불을 붙인 서지현 검사가 했던 말과 같았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무엇보다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고, 당신이 이상한 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 상황을 겪으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 나도 그걸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내가 다르게 했어야 하나’ 후회하는 생각이 자주 나니까. 얼마 전에도, 직장 내에서 찍혀서 따돌림 당하다가 결국 해고당한 분의 한탄을 들을 일이 있었다. 그때도 그렇게 말했다. 당신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고. 미투 운동에서 하는 얘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실제 로 일터괴롭힘 피해자 중 많은 사람이 여성일 것이다. 건장한 성인 남성보다 신체적이든 사회적이든 불리한 사람이 타겟이 되기 쉬울 테니까. 나처럼 다친 상황, 정신적으로 약한 상황, 임신 상황 등 여성이 일터에서 약점을 갖게 되는 순간이 많은데, 일터괴롭힘에서도 ‘여성’ 노동자의 문제에 좀 더 신경 써야 한다.”


일터괴롭힘 생존자 A씨가 볼 때, 7월부터 시행 되는 법적 변화에 큰 기대는 없다.

“이번에 생기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서는 사업주에게 신고하라고 돼 있는 게 제일 아쉽다. 나도 그랬고, 많은 작은 직장들에서 사업주가 괴롭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럴 때는 법에 기대려 해도, 방법이 없다. 이럴 때 누구에게 신고하고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보완돼야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를 자꾸만 고객응대 노동자 중심으로 얘기하는 것도 아쉽다. 일터괴롭힘이 감정노동자나 판매노동자들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데, 진상고객에 의한 괴롭힘만 강조되는 것 같다. 이러면서 마치 고객 문제인 것처럼, 기업이나 사업주에게는 책임이 없는 것처럼 문제를 몰아가는 것 같다. 물론 이 와중에 국가나 정부도 딱히 책임을 지려는 것 같지 않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언론과 사람들의 입길에 ‘일터괴롭힘’이라는 말이 오르내리고, 법에도 몇 개 조항이 들어간 것은 시작일 뿐이다. 괴롭힘 없는 일터, 나아가 노동자가 존중받는 일터는 곧 시행되는 법 조항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특집1. '갑'의 '폭력'을 넘어서 일터 괴롭힘 발견하기 / 2019.07

[일터괴롭힘 없는 평등한 일터 만들기①] 

 

 

'갑'의 '폭력'을 넘어서 일터 괴롭힘 발견하기 

 

 

지안 / 상임활동가

 

 

감정은 한국의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로써 중요한 주제다. 이 감정과 관련된 노동문제는 갑질, 감정노동, 괴롭힘, 직장 폭력 등 여러 가지 개념의 혼용을 통해 이야기되고 있다. 가령 갑질이라는 말은 일터에서 벌어지는 각종 폭력을 곧바로 문제화하는 직관적인 말이다.

그러나 한 노동자가 맺고 있는 고객, 상사, 매니저, 사장, 동료, 거래처 등등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권력 문제를 제기할 때 갑질이란 말은 각 관계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경우이든 우리는 쉽게 갑이라는 개인의 과도한 권력 행사를 비난하거나, 이러한 폭력이 가능해 왔던 한국의 위계적인 문화를 비판하게 된다. 본 글을 통해서 갑질이라는 유용한 서사의 한계점을 지적하면서 각 용어의 본래 의미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문제를 개인적·문화적 측면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관점에서 구조적인 문제로 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갑질로 명명하는 방식의 한계점

앞서 말했듯이 갑질이라는 말은 노동자의 감정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들을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좋은 언어로 쓰이고 있다. 무엇보다 갑질은 계약상의 갑을관계에서 따온 말이기 때문에 꼭 노동관계에서의 권력 문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건물주의 갑질, 기업주의 갑질, 상사의 갑질, 고객의 갑질, 거래처의 갑질 등등 다양한 경우에 통용된다. 한국의 위계적인 사회문화를 잘 반영해주는 언어로써 유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에 있어 이 말은 노동관계의 특수성을 보지 못한다는 몇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먼저 어떤 사건을 갑질 문제라고 읽어 낼 때 우리는 자동으로 어떤 갑의 지위를 가진 개인의 위력 행사에 초점을 맞추거나, 낮은 인권감수성을 토대로 벌어지는 한국사회의 수직적인 위계 문화를 비판하게 된다. 물론 감정노동과 일터괴롭힘은 구체적인 사람을 통해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쉽게 갑이라는 명확한 대상이 행사한 폭력을 문제 삼게 된다. 하지만 이 문제의 원인을 갑이라는 개인의 일탈이나 폭력성으로 읽어내는 것은 감정노동과 괴롭힘의 구조적인 측면을 비가시화한다.

서비스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은 차치하고서라도, 조직적 괴롭힘을 통해 해고하거나 성과 달성을 목표로 상사가 팀원들을 압박한다거나 하는 것들은 분명 노동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감정이 자본의 조직관리, 경영방식으로 활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한국사회의 고질적 문제로 지목되는 위계 문화로 이 문제에 접근할 경우에는 광범위하게 들어맞는 틀이기 때문에 노동문제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집주인의 갑질과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상사의 갑질을 동일하게 한국적 위계 문화의 결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문화적인 문제로 해석한다면, 그것이 노동관계 안에서 어떻게 더 심화 되는가, 혹은 달라지는가를 봐야 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접근이든 문화적인 접근이든 일터에서 벌어지는 감정노동, 괴롭힘, 감정소진·부하, 폭력의 문제들을 말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우리는 자본이 어떻게 감정을 이용해서 노동자들을 관리하거나 탄압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하는지 노동의 관점에서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괴롭힘을 의 어떤 행위로 상상한다면 괴롭힘이 발생하는 장을 수직적인 구도로 설정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신설된 괴롭힘의 법적 정의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다. 직장에서의 지위뿐만 아니라 관계상의 우위 역시 포함되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사회적 차별과 배제가 성별, 나이, 계급, 학력, 성정체성 등을 매개로 어떻게 중층적으로 발생하는지 알고 있다. 이러한 정체성들은 관계에 따라서 상대적이기 때문에 갑이라는 고정된 위치로 괴롭힘의 가해자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사람이 맺고 있는 여러 가지 관계 속에서, 누구라도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갑이라는 위치를 유동적으로 이해해야만, 일터에서 벌어지는 괴롭힘의 다양한 양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갑질은 서비스 노동자들의 감정노동과 그 밖의 일반적으로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온갖 감정 문제를 모두 포괄하기 때문에 혼란을 준다. 전자가 구체적인 상품으로 기능하는 노동의 한 종류라면, 노동자들이 보편적으로 겪고 있는 감정적인 부하나 소진에는 다른 이름이 필요하다. 감정노동의 개념을 규정한 사회학자 혹실드는 감정이 인간에게 내재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사회적 형태로 만들어지고 교환된다고 설명한다. 감정이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교류된다는 속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에 의해 조직적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즉 감정노동이란 노동과정 속에서 감정이 하나의 상품으로 기능하고 판매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노동자들은 회사가 원하는 감정의 표현규칙을 수행해야 한다. 기업의 구체적인 판매 전략이 의도하는 규칙을 따라야 하므로 감정에 대한 노동자의 자율성은 최소화되며, 자신이 느끼는 것이자 동시에 상품인 감정에 대한 소외가 발생한다.

여기서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감정노동자라고 하더라도, 직종과 업무에 따라서 노동자가 자신의 감정표현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자율성의 정도는 다르다. 따라서 감정의 자율성에 대한 자본의 착취를 문제화해야 하는 지점 또한 다를 것이다. 이러한 수준들을 구별해야만 자본이 노동자의 감정을 도구화하는 방식들을 구체화할 수 있다.

일터 괴롭힘 발견하기

이렇게 상품으로써 감정노동과 일터에서의 감정소진·부하의 문제가 구별되지 않고 모두 감정노동으로 불리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문제와 괴롭힘과의 차이점도 불명확해진다. 특히 감정소진·부하의 문제와 괴롭힘을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감정노동과 감정부하·소진이라는 현상 자체가 괴롭힘이 되지는 않는다. 전자의 문제들에서 상품이든 그렇지 않든 노동자 자신의 감정표현에 대한 자율성이 문제가 된다면, 일터괴롭힘은 특정 인물에 대해 체계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심리적 압박·공격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일터괴롭힘 역시 발현되는 방식이 매우 다양하기에 일터괴롭힘이 정확히 어떤 행위들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거나 규정하는 것 자체가 까다롭다. 그래서 우리는 그럼 이것도 저것도 다 일터괴롭힘이야? 기준이 대체 뭐야?’라는 식의 방해를 가장 많이 마주하게 된다. 일터 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에서 일터괴롭힘을 발견할 수 있는 몇 가지 지점을 소개한다. 우선 일터괴롭힘을 폭력과 구분해야 한다. ‘폭력과 구별하지 않고 일터괴롭힘을 이야기할 때 괴롭힘의 다양한 차원을 보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최근 직장갑질이나 폭력으로 이슈화된 사안들은 직접적·물리적인 폭력 행사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터괴롭힘은 당사자 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도 가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신체적 폭력이나 눈에 드러나는 심각한 폭언과는 다른 층위에서 괴롭힘문제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개인 간의 갈등이나 불화를 괴롭힘과 구분하는 것 또한 일터괴롭힘 문제를 가시화하기 위해 중요하다.

책의 저자 류은숙은 우선 일터괴롭힘의 양상이 매우 다양하고 문제의 수준도 광범위하다는 점을 설명한 뒤 여러 가지 사례 속에서 일터괴롭힘의 공통적인 특성을 묶어낸 일반적인 정의를 소개한다.

일터 괴롭힘은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위해하거나 사회적으로 배제하거나 누군가의 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행위다. 괴롭힘 행위는 장기간에 걸쳐 주기적 빈도로 반복해서 발생한다. 괴롭힘의 대상은 열등한 지위로 귀결되는 과정을 겪으며 체계적/조직적으로 자행되는 부정적인 사회적 행동의 표적이 된다. 고립된 별개의 사건 또는 힘이 비슷한 쌍방 간에 일어나는 갈등은 괴롭힘이라 부를 수 없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일터괴롭힘은 장기간에 걸쳐, 주기적인 빈도로 반복되며, 이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괴롭힘의 행위가 고조되는 특성을 가진다. 즉 노동과정에서 갈등이 일회적으로 발생했을 때 그것을 모두 일터괴롭힘 문제로 접근하자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지속적으로 반복되는지 봐야 한다. 물론 권력의 불균등 속에서 갈등이 언제든 쉽게 괴롭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 역시 주시해야 할 것이다.

일터괴롭힘이 드러나는 방식을 더 발견하고 포착해내기 위하여 다시 본 글의 제목으로 돌아가려 한다. 우리는 권력을 나보다 높은 지위를 가진 어떤 의 위력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발현되는 상대적인 모습들로 상상해야 한다. 이 상상력을 통해서 괴롭힘눈에 보이지 않고그래서 공감할 수 없는 타인의 일이 아니라, 일터의 평등한 감각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감각은 누군가를 일터의 정당한 구성원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불평등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으며 왜 노동과정에 있어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밝혀낼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특집3. 중대재해 트라우마 대응 실태와 개선 방향 / 2019.06

[노동자의 힘으로 중대재해 막아내자] 

 

 

 중대재해 트라우마 대응 실태와 개선 방향 

 

 

장경희 / 회원, 충남노동인권센터 노동자심리치유사업단 두리공감 상임활동가 

 

 

책임을 전가, 축소, 은폐하려는 가해자

중대 재해 그 자체로도 그렇지만, 중대 재해 이후 트라우마를 바라보는 태도와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최근 충청남도 모 대기업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 이후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노사 간의 합의과정도 그렇지만, 합의 이후 회사와 근로복지공단의 태도에는 기가 막혀 분노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트라우마 예방 활동을 위해 고용노동부가 지정한 기관 중 하나였지만, 회사는 두리공감을 배제하고 싶어 했다. 배제하려는 마음이야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는 이해하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예의 바르게 배제하고 싶어 했던 과정에서 확인된 회사의 태도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이 사람들은 직접 목격자가 아닙니다.” “저 사람들은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인데 힘들다고 합니다.” “근로자들은 어떻게든 놀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자기 보고식 설문지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고용노동부 트라우마 매뉴얼에는 2, 3차 피해자에 동일 부서를 명시한 적이 없습니다.” “그 많은 사람을 다 만나봐야 한다면 공장은 누가 돌립니까?”

모르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과오로 발생한 사건에서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그것의 직간접 피해가 퍼지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고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시도는 분명한 죄다. 더불어 불특정 다수에게 낙인을 찍어 원래 그들은 문제가 많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가해자 레퍼토리다. 중대 재해 사망사고 현장에서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회사는 위와 같았다. 위 사건 당시 회의에 참석한 근로복지공단 담당자는 회사의 말이 맞다는 말 외에는 하지 않았다.

 

고통의 근원을 모른 채 자신을 탓하는 피해자

반면, 중대 재해를 경험하거나 동료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한 노동자들은 스스로 죄인이 된다. ‘내가 좀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내가 혹시 스위치를 잘 못 누른 것은 아닌지’, ‘평소에 문제가 많았던 곳인데 주저하지 말고 개선을 요구하며 싸웠더라면’ 등이 첫 번째 동료의 죽음을 대하는 살아남은 동료들의 마음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찾아오는 죄책감, 두려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차라리 이 상황을 만든 회사에 분노하며 고함을 치고 통곡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동료와 자신이 당한 이 비참한 고통을 고스란히 가슴에 묻으며, 일상의 공포를 재경험하면서도 가
해자들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고 살아내야 한다.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불면의 밤을 지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못난’ 자신을 탓한다. 이것이 트라우마다.

 

정부의 중대 재해 트라우마 대응 실태와 문제점

고용노동부는 2017년 ‘산업재해 트라우마 관리 프로그램 운영 매뉴얼’을 만들고 현재는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 상담센터까지 운영하고 있다. 중대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 트라우마 위기에 대한 검토를 거쳐 고용노동부가 사업주에게 트라우마 프로그램 시행 명령(권고)을 내리게 된다. 그러면 사업주는 각 지역의 근로자건강센터,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 상담센터 등과 연계하여 재해의 직간접피해자를 대상으로 트라우마 관리 프로그램을 시행하게 된다. 노동 현장에서 물리적으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고들과 그로 인한 신체적 손상, 사망 등에 대한 대응에서 정신적·심리적 대응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실행한다는 점에서 진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매뉴얼 시행 이후 많은 중대 재해 사업장에서 실행돼 왔다. 반면 매뉴얼과 그 시행과정에서 몇 가지 한계와 문제 들도 나타나고 있다.


첫째, 중대 재해 사건 처리 자체와 트라우마 예방 프로그램의 분리 문제다.


자연재해나 사회적·인적 재난의 원인, 사건처리 절차 및 과정, 재발위험의 방지와 안전대책 등이 심리적 위기 수준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중대 재해 현장에서는 이러한 통합적 접근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안전의 확보”라는 것은 사고 위험으로부터의 안전, 사고를 재경험하도록 만드는 장소·사람 등으로부터의 안전, 자신이 경험한 피해를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하며 사고위험을 인식했을 때 배치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로서의 안전을 모두 포함한다. 또한 사건처리 과정 전반에서 노동자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처리 결과에 동의 여부를 묻는 것은 원칙적 절차를 넘어 통제권과 자율성의 회복이라는 심리적 위기를 완화하는 주요한 기제가 된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매뉴얼에는 이와 같은 관점이 결여돼 있다.

중대 재해 사고와 트라우마 예방 프로그램을 종합적으로 안내하지 않는 문제가 나타난다. 사고의 원인과 처리 과정과 더불어 트라우마 예방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지, 누가 오는지 등을 전혀 안내하지 않는다. ‘해 주는 거니까 잠자코 해’라는 식이다.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결정권과 통제권을 빼앗아 오히려 위기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두 번째, 트라우마 예방 프로그램 자체의 한계다.

고용노동부 매뉴얼은 중대 재해 직후 직간접 피해자들에 대한 사건충격도 검사를 거쳐 고위험군에 대한 상담 및 전문기관 연계 등을 밝히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주장하듯이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의 심리적·정신적 고통의 수준을 객관적 지표로 측정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증상과 발현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갖는 효과성을 확인하기 위해 사전 사후 검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 심리상담의 경우도 각 지역의 근로자건강센터가 확보한 상담 인력의 부족, 1개소뿐인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 상담센터 등의 한계도 있지만, 심리 상담만으로 급성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문치료기관 연계가 매뉴얼에 나와 있으나 그에 따른 비용이나 시간 등을 노동자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시스템도 개선이 필요하다.

세 번째,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고, 철저한 현장 개선으로 안전한 현장을 만드는 과정이 트라우마 예방매뉴얼에 포함되어야 한다.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위기 개입은 보통 1개월에서 3개월 단기개입으로 이뤄지며, 고용노동부 매뉴얼 역시 그와 같은 기간을 명시하고 있다. 이 경우 두 측면의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 우선 트라우마 예방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기간에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 완전한 현장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트라우마를 완전히 예방할 수 없다. 다음으로 설사 위와 같은 개선이 모두 이뤄지더라도 이미 발생한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 증상들이 이후에도 계속될 경우 치료방안이 수립되고 제공되어야 한다. 급성스트레스 증상이 2개월 이상 경과되면 외상후 스트레스로 봐야하며 이는 보다 더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현재의 매뉴얼에 이 같은 내용들이 빠져있다.

마지막으로 트라우마 위기의 완전한 극복은 “신뢰”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분명한 가해자, 외부로부터의 위해적 상황 등은 ‘신뢰의 상실’을 초래한다. 중대 재해를 경험한 피해 및 생존자들은 회사와 정부기관을 불신하며 때로는 자신을 보호해주리라 기대했던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신뢰를 잃는다. 세상과 주변이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대 재해 트라우마 예방에서 중요한 고리는 피해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피해 및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제대로 사과하며 그들의 요구를 알아차려 수용하고, 안전을 위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신뢰 회복의 실마리다. 이러한 과정이 트라우마 치유의 핵심이라고 하는 ‘사회적 지지’의 시작이다. 사람이 죽을 수 있는 노동은 이미 강제노동이다.

자동차 자율 안전주행처럼 소비자 또는 고객의 안전을 위한 기술은 나날이 발전한다. 하지만 그 소비자가 노동자로 살아가는 현장에서의 안전은 답보상태이거나 후퇴하는 듯하다. 그러니 관점과 태도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위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이기 때문에 죽게 된다.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 개인의 힘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이나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의 예방은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하는 구조를 바꾸는 과정과 함께 가야만 한다.

 

특집2. "중대재해 없는 사회, 부산 엘시티 사고를 다시 기업해봅니다" / 2019.06

[노동자의 힘으로 중대재해 막아내자] 

 

 

 "중대재해 없는 사회, 부산 엘시티 사고를 다시 기업해봅니다"

 

 

나래 / 상임활동가 

 

 

지난 424, ‘최악의 살인기업선정식이 진행됐다. 올해 최악의 살인기업에 선정된 곳은 바로 포스코건설이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가 10명에 이르는 곳이다. 게다가 모두 하청노동자였다. 작년 32일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던 부산 해운대 엘시티 신축공사 현장에서 자재가 떨어져 건설노동자 4명이 숨진 사건 역시 포스코건설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산재 사고 사망자를 임기 내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곳이 바로 건설현장이다. 특히 추락같은 재래형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인 만큼 위험이 제대로 관리감독 되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의 노동안전보건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렇다면 사고가 발생 된 뒤 현장 개선, 피해자에 대한 조치 등은 얼마나 잘 이행되고 있을까? 이후에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선 무엇보다 발생했던 일들이 어떤 과정에서 해결되었는지, 혹 해결되지 않았다면 어떤 점들이 그러한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엘시티 사고 당시 건설노조 부산울산경남지부 교선부장을 맡았던 강한수(현 토목건축분과위원장) 씨를 지난 524일 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사고 발생일은 201832일이었습니다. 당시에도 공사가 꽤 진행된 상태라 저희 조합원들은 많이 빠진 상태였어요. 그래도 200여명 정도는 됐죠. 그런데 당일은 건설노조 창립일로 유급휴일이라서 조합원들이 현장에 없었어요. 처음엔 기자가 저에게 연락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현장에서 작업했던 팀장, 간부들에게 연락을 돌렸고 오후 4~5시경 사고현장에 갔어요.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도 사고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깐 그때까지도 수습을 못 하는 상황이더라고요.”

 

부산 해운대구 중동에 들어서는 엘시티(LCT)는 해수욕장변에 지어지고 있는 101층 초고층 건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곳엔 아파트와 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없었지만, 부산시가 200912월 규정을 바꾸고 이어 201110월 호텔과 아파트 건축을 허가했다. 이어 부산시는 2013년 엘시티를 부동산 투자이민제 대상지역으로 지정해 달라며 법무부에 건의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 당시 오거돈 부산시장이 지명한 공공기관장 6명 가운데 2명이 엘시티 쪽으로부터 명절 때마다 선물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게다가 엘시티 추락사고가 발생한 이후 특별감독에 나선 관계 공무원들이 성 접대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더했다. 한 마디로 비리의 총체적 합작품이라 불릴 정도였다.

석연치 않은 점 투성이인 공사는 계속됐고 결국 사고가 발생했다. 신축현장 A동 유리외벽 부착과정에서 54층에 설치돼 있던 4개의 안전 작업 발판(SWC, Safety Working Cage) 2번째를 55층으로 올리는 작업을 하던 중 SWC를 고정하고 있던 슈브라켓 4개가 원인 불상의 이유로 이탈된 것으로 경찰 조사에 따라 확인됐다. 강한수 토목건축분과위원장은 애초에 이 사고가 왜 발생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했다.

 

“SWC는 자동 유압장치로 올리는 거에요. 이작업대의 경우 자동 유압 방식이기 때문에 타워크레인으로 올리거나 하지 않거든요. 저층에서 사용하는 안전 작업 발판은 크레인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협업하게 돼요. 그럼 이 과정에서 충돌이 있다거나 신호가 맞지 않아 사고가 자주 발생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엘시티의 경우 타워크레인과 상관없이 위에 고정해놓고 자동 유압 방식으로 쭉 올리는 형태라 안전하다고 주로 얘기됐죠. 상식적으로 지금까지 SWC를 인상하면서 떨어진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구조물은 외국에서 제작 해온 거에요. 그러다 보니 사고가 난 후 특별안전 점검을 할 때도 이 작업대에 대한 걸 안전보건공단에서 잘 모르니깐 외부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을 불러온게 제작업체 관계자였어요. 그러다보니 제작업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거고, 현장에서 정말 잘 이해하고 관리감독 해왔겠느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작년에 그렇게 큰 사고가 난거 죠. 워낙 고층건물에 규모도 크다 보니 조사를 하는 과정도 쉽지않았어요. 외벽이다 보니 밖에서 살펴보기 힘든거죠. 국과수나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들도 사고 위치 지점에서 확인하려고 하니 모두가 위험한 상황이었죠. 아마 조사자들도 아주 불안했을 거에요.”

 

사고 현장을 조사하는 사람들조차도 위험한 상황에 놓였던 엘시티 사고. 중대재해가 발생한경우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과정엔 노동조합이 직접 참여해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의견을 전달하고, 제대로 조사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당시 대응 과정에서 얼마나 노동자 참여가 보장됐을까.

 

사고 발생일 이후 일주일 정도 있다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현장 전체 특별근로감독이 실시됐어요. 노동조합이 계속 요구했죠.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노동부 말로는 포스코건설 측에서 반대가 워낙 심하다고 설명하더군요. 그래서 노동조합 참여보다 현장에서 일 하고 있는 조합원, 간부 중심으로 참여하는 걸로 했어요. 3개 팀으로 나눠서 지하부터 옥상까지 점검했죠. 그때 다들 많은 고생을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든 노동부, 안전보건공단 사람들이 와서 위험한 것을 전반적으로 훑을 수 있게 됐고, 조합원과 간부들 역시도 본인들이 일을 하면서 잘 보지 못했던 문제점들을 확인할 기회이기도 했죠. 일을 하다 보면 법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피부로 느끼는 위험들이 있어요. 그런 걸 발견하고 실제 제안해서 개선하는 게 중요하죠. 특별근로감독을 한다는 건 위험성을 확인하고 바꾸자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현장의 위험성은 무엇인지 일하는 사람의 의견을 많이 들어야 해요. 그런 게 노동자 참여보장의 중요성이에요.”

 

4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7명의 사상자가 나온 엘시티 사고. 사고 이후 유족과 목격자에 대한

조치는 어떻게 취해졌는지 물었다.

 

위에서 작업하다 추락했던 분들이 있고, 그 밑이 통제가 되어야 하는데 통제가 안되서 사고를 당한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 분들 모두 업체가 달랐어요. 아마 하부 통제라도 됐으면 한 명이라도 사고가 덜 났을 거라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원청의 안전총괄책임이 중요하죠. 요즘 말로 컨트롤 타워 역할을 시공사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아무리 각자 잘하려고 해도 많은 하청업체가 별도로 작업하는 상황에서 종합적으로 시공사가 컨트롤 해주지 않으면 사고 위험 확률은 확 높아지는 거죠. 사실 돌아가신 분들이 조합원이 아니다보니 깊게 대응하긴 쉽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우리 입장에선 왜 사고가 발생했는지 규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그래야 유족들이 제대로 된 사과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가 사고 책임을 정확히 져야하는 것도 중요했고요. 노동조합의 역할이 쉽지 않았지만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죽음의 원인을 철저히 밝히는 것과 함께 살아남은 자가 제대로 치료 받고 일상생활에 복귀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사고가 일어나면 언론에서 잠시 시끄러울 뿐 살아남은 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그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으며 원상복귀까진 어렵더라도, 안정된 생활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무엇이 필요한지 사회적으로 얘기되는 것들이 필요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조합원들만 두고 보면 사고를 목격한 사람은 없었죠. 작업중지가 한 달 넘게 진행되서 410일 경작업이 재개됐어요. 조합원 중엔 없었을지라도 최소한 목격자들에 대한 트라우마 치료는 노동조합도 중요하게 생각했죠. 그래서 노동부에 적극적으로 트라우마 치료를 포함한 조치들을 취하라고 요구했어요. 당시에 당연히 하겠다고 하긴 했는데 얼마나 잘 됐는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합니다. 건설 현장의 경우 고정된 제조업 사업장과 다르게 시시각각 변화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 위험요소를 상상력을 갖고 긴장감 있게 해야 하는데 잘 안되죠. 시스템적으로나 체계적으로 우리나라 건설현장의 빨리빨리 문화가 여전히 심각하죠. 게다가 불법 하도급 문제도 있고요. 건설 현장에 가보면 선안전, 후시공이란 문구가 붙어 있어요.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란 거죠. 실제 현장에서 안전관리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심각성을 깨달아요. 97IMF 이후 안전관리자는 정리해고 1순위었어요. 결국 안전이 제일 먼저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거였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실제 포스코건설이 안전관리자 80% 이상을 비정규직으로 돌려막기한 사실이 작년에 밝혀졌다. 안전관리자 315명 중 정규직은 56(18%)에 불과했따. 100대 건설사 안전관리자 정규직 비율(37.2%)의 절반 수준에 그친 것이다. 안전관리자와 건설 노동자의 비정규직 문제가 결국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동한 것이다. 강한수 토목건축분과위원장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중대재해가 발생한 이후 기업을 처벌하고 책임을 제대로 묻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중대재해 없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물었다.

 

우리나라 건설회사만 놓고 보더라도 노동자에게 권한을 주지 않고 책임만 전가하는 식이에요. 회사가 이윤을 가져가듯이 책임 또한 마찬가지로 져야죠. 권한과 책임이 함께 담보되어야 합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하는 건 그런 이유에요. 우리나라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망자 1명 당 평균 벌금은 얼마 되지 않아요. 다행히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발생한 이윤은 기업에게 돌아가죠. 회사가 잘해서 사고가 안 나는게 아니에요. 위험 부담을 갖고 일했던 노동자들에게 전가 되는거죠. 그렇기 때문에 실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처벌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고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기업들이 어떤 노력이라도 하지 않을까요.”

특집1. 중대 재해, 당장 멈춰! : 당장멈춰TV 제작팀 대담 / 2019. 06

[노동자의 힘으로 중대재해 없는 일터 만들자①]

 

 

중대 재해, 당장 멈춰! : 당장멈춰TV 제작팀 대담

 

 

박기형 / 상임활동가

 

 

*대담 참여자: 푸우씨(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당장멈춰상황실), 미디어뻐꾹, 이태진(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안부장), 손익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진행 및 기록: 박기형(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당장멈춰상황실


무더위가 일찍 찾아온 지난 5월 중순. 일요일 오후의 더위를 견디며, 사무실 한쪽에서 당장멈춰TV의 유튜브 영상 촬영이 진행되었다. 중대 재해와 작업중지(권)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최근 태안화력발전소, 한화 대전공장, 제천화학공장, 한솔제지 장항공장 등에서 중대 재해가 발생했다. 산업 재해로 인한 사망사고와 화학물질 누출 및 폭발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고 발생에 관한 소식만 전해질 뿐, 현장에서 사고 발생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사고 이후 재발방지 대책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 모든 일하는 이들이 스스로 중대 재해의 위험에 대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당장멈춰TV 제작팀을 만나, 중대 재해 대응에 관한 대담을 나눴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푸우씨: 저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당장멈춰 상황실 멤버로, 미디어뻐꾹과 함께 유튜브 콘텐츠인 "당장멈춰TV"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당장멈춰 상황실을 중심으로 작업중지권의 실효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해왔는데요, 현장에서 노동자 스스로 작업장 내 위험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디어뻐꾹: 당장멈춰TV는 일하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서 관련 정보를 드리는 국내 유일의 노동안전보건 전문 프로그램입니다. 당장멈춰TV 시즌1에서는 노동안전보건 의제 중 중대 재해와 작업 중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분이 당장멈춰 상황실에서 고민하고 정리한 내용을 접할 수 있도록 하고자 영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최근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작업중지와 관련한 조항이 수정 및 신설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간략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태진: 작년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님이 중대재해로 돌아가신 이후, 중대재해 재발방지를 위한 투쟁이 거세게 일어났었죠. 이를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이 전면 개정되었죠. 개정 이전 산안법 제26조에서 근로자의 작업거절을 규정하면서, 작업중지 및 대피 등 필요한 조처를 할 것을 사업주의 의무로 두었죠. 이번 전면개정안에서는 제26조 제2항을 분리하여, 제52조(근로자의 작업중지)로 신설하면서, 작업중지 및 대피가 사업주의 의무를 넘어 노동자 스스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즉시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는 권리가 명확히 규정되었습니다.

손익찬: 개정 이후 사업주뿐만 아니라 근로자가 작업중지권의 행사 주체로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진전된 측면이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근로자의 작업중지 행사 요건과 관련해 모호한 부분이 많고, 하위법령도 없어요. 특히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가 가장 논쟁적이죠. 위험성 판단이 노동자, 사업주, 고용노동부, 법원 사이에 상이할 수 있어요. 이를 사용자 측이 악용할 경우, 위험하지 않은 상황이라 주장하며, 업무방해로 작업중지한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어요. 더욱이 고용노동부가 해당 요건에 대한 예시 규정으로 든 것들이 재래형 안전사고에 국한되어 있어서, 작업중지를 할 수 있는 실질적인 범위가 여전히 제한될 수 있는 우려도 있죠. 작업중지 강화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제52조와 관련한 구체적인 요건과 절차, 즉 시행령, 시행규칙이 마련될 필요가 있어요.

 

유투브 채널 '미디어뻐꾹'에서 운영 중인 당장멈춰TV

작업중지가 노동자의 권리로 규정되었다고는 하지만, 말씀해주신 것처럼 실제로 작업중지를 행사하는 데는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중대재해 대응 시 맞닥뜨리는 문제는 무엇인가요?

푸우씨: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중대재해 발생 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잘 모른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이에요. 이는 대응 경험이 파편화·개별화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형식적인 수준에서라도 대응 매뉴얼을 갖춘 곳도 없고, 실제 대응 경험도 적죠. 비정규직의 증가가 이런 상황을 악화시켜요. 비정규직은 작업장 내 위험을 거의 공유 받지 못해요. 그러니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죠. 이 때문에 대응하기 점점 어렵게 되는 거예요.

이태진: 빈번히 사고가 일어나는 곳들이라고 해도, 작업장의 일상에서 안전사고에 대해서 보고·관리하는 시스템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에요. 그러다 보니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해당 사업장에서만 일어난 일들로 치부되면서, 대응 경험이 공유되거나 축적되지 못하는 거죠. 사고 상황 자체도 다른 사업장에 전파되지도, 해당 산별 노조에 공유되지도 않는 상황이니까요. 그래서 다른 사업장에서 동종유사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그에 대한 조사나 대처 등의 조치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워요. 그러니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게 되죠.

미디어뻐꾹: 언론에서도 중대재해 대응 과정에 관해서는 관심이 거의 없죠.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죠. 이는 중대재해 대응 과정에 대해 알려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단신으로 처리되면서, 순식간에 잊히는 상황이잖아요. 사고가 이미 일어났으니 어쩔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기도 한 거 같아요.

손익찬: 대응 경험이 축적되지 않으니까, 작업중지를 행사할 수 있는 역량도 높아지지 않는 것 같아요. 사고가 일어난 후, 작업중지하고 진상조사에 들어가고 안전보건 조처를 하는 등 일련의 과정에서 노동자들 스스로 작업중지와 개선요구를 권리로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잖아요. 하지만 중대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우왕좌왕하는 상황이 반복될 뿐이죠. 사고가 일어나도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 조치는 제대로 취해지지 않고, 노동자들은 작업중지권을 권리로 인식하지도, 행사할 역량을 축적하지도 못한 채 위험 상황에 여전히 노출되는 악순환이 지속하는 것 같아요.

미디어뻐꾹: 중대재해 중 여전히 재래형 안전사고가 계속되고 있지만, 최근 산업구조 변화로 화학물질 누출과 관련한 안전사고도 증가하는 추세잖아요. 하지만 삼성반도체처럼, 영업비밀이라고 화학물질 정보를 숨기는 경우가 많죠. 이게 중대재해를 은폐하고 재발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화학물질 누출 및 폭발 사고는 지역 사회에도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죠. 노동자뿐만 아니라 시민 안전을 위해선 알 권리가 보장되어야 해요.

작업중지의 발동 및 해제가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 것만큼, 사고 당사자와 동료들의 복귀 및 치유도 중요한 문제잖아요. 이에 대한 대처 및 관리가 잘 되고 있나요?

이태진: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고 이후 트라우마를 비롯해 노동자들의 복귀 및 치유의 문제가 주요한 의제로 떠올랐죠. 이에 따라 정부도 근로자건강센터를 중심으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관련한 재활·치료의 체계가 제대로 갖춰진 상황은 아니에요. 현재 근로자건강센터가 충분한 시설과 인력, 적합한 프로그램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에요. 보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자의 치유와 복귀가 근로자건강센터만의 몫인지도 물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사업장 내 다른 노동자나 회사, 그리고 해당 사업장이 위치한 지역 차원에서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관점에서 점차 시스템을 갖춰나갈 필요가 있어요.

푸우씨: 이에 더해, 사고 현장에 있던 분들을 피해 자화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어요. 상담·치료가 트라우마 치유의 전부가 아니니까요. 작업장 자체가 안전해져야만, 제대로 된 복귀가 가능하죠. 이를 위해서 사고의 당사자들도 진상조사과정과 개선 및 예방 조치 마련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해요. 피해자로 대상화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손익찬: 사회에서 어떤 권리를 인정받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 권리를 얻게 되면,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중대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작업중지권이 사업주의 의무뿐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로 명확히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자신의 권리로 인식하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죠.

이태진: 결국 중대 재해에 체계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작업중지권이 제대로 보장되어야 하고, 작업중지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중대 재해 대응 경험이 축적되고 공유되어야 해요. 그 한 방법으로 중대 재해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볼 수 있겠죠. 앞으로 당장멈춰 상황실에서 그런 시도를 해보려 합니다.

미디어뻐꾹: 저도 과거에 그랬지만, 작업중지를 할 수 있다는 사실과 작업중지가 정당한 권리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당장멈춰TV 시즌1을 시작한 것이죠. 9화로 시즌1이 마무리되는데, 이후에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함께 노동안전보건 이슈 전체를 다뤄보고 싶어요.

푸우씨: 중대 재해 재발방지와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어 가는데, 당장멈춰TV와 당장멈춰 상황실이 함께 노력해나가야죠. 같이 힘내봅시다!

특집3. 위험은 노동시간 규제가 없는 곳, 가장 낮은 위치로 전가된다 / 2019.5

[모든 사람에게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③]

 

위험은 노동시간 규제가 없는 곳, 가장 낮은 위치로 전가된다

 

지안 / 상임활동가 

 

 

2017년 한국은 OECD 36개 국가 중 두 번째로 높은 노동시간을 기록했다. 초과 노동을 하는 사회에서 그 어떤 노동자도 노동시간 규제의 예외로 존재해선 안 된다.

법정 노동시간인 주 40시간에 주당 최대 연장근로시간인 12시간을 합친 '주당 52시간'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조치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조항에 따르면 특정 운송업과 보건업 등 5가지 업종은 연장근로 제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경우에는 '합의'를 통해 주 당 52시간도 초과하는 노동이 법적으로 가능해진다. 장시간의 과로가 노동자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도 법은 예외적인 노동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건강은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

인터뷰이인 민주노총 IPOC지부 이동우 지부장은 인천항의 9개 부두운영회사가 공동 설립한 IPOC(인천내항부두운영주식회사) 소속이다. 야간 노동 후 연속 11시간 휴게시간을 부여하는 제도가 생겼다는 것은 노조 설립 이후의 성과다. 한편으로 전창환 지부장이 소속된 민주노총 인천지역일반노조 항만지부는 일용직 노동자로 구성된 노조다. 노조가 있지만 인력공급을 담당하는항운노조에서 이들의 권리를 인정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노동시간뿐 아니라 4대보험과 같은 기본적인 법적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24일 <일터>는 인천항에서 일하는 항만하역 노동자인 전창환 민주노총 인천지역일반노조 항만지부 지부장을 만나 장시간 노동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들어보았다.

실제로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노동환경이 맞물리는 조건 속에서 각종 위험작업이 일용직 노동자에게 부가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선박이라는 물류체계의 특성상 장시간 노동이 집약적으로 발생한다. 

민주노총 IPOC지부 이동우 지부장은 인천항의 9개 부두운영회사가 공동 설립한 IPOC(인천내항부두운영주식회사) 소속이다. 야간 노동 후 연속 11시간 휴게시간 부여 제도는 노조 설립 이후 만들어진 성과다.

그러나 전창환 지부장이 소속된 민주노총 인천지역 일반노조 항만지부는 일용직 노동자로 구성된 노조다. 노조가 있지만 인력 공급을 담당하는 항운노조에서 이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노동시간뿐 아니라 4대 보험과 같은 기본적인 법적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량에 맞추는 일용직 노동자의 노동시간

인천항으로 배가 들어오면 TOC(부두운영사)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배를 총괄하여 담당한다. 배에 어떤 물건이 실려 있는지를 파악하여 필요 장비와 인력을 요청한다. 현장에서는 한 조의 작업 시간을 '1슈트'라고 말한다. 오후 조로 8시간 근무하면 이는 '1슈트의 작업을 했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연달아 2슈트를 근무하면 연장근로 수당이 나왔다. 오전 4시에 마치는 새벽 근무 후 오전 8시부터 시작되는 오전 근무를 하는 장시간 노동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노조가 슈트를 붙여서 일해 받는 연장근로 수당을 없애면서 사실상 연장근로 자체가 금지됐다. 

또 오전 0시를 넘겨 야간 노동을 하면 다음 날은 무조건 휴무다. 2018년 3월 연장근로 제한 특례 업종 26종 중 21종이 폐지되었고, 남아있는 5가지 특례업종에서 연장근로가 발생하면 '연속 11시간 휴게시간을 부여하라'는 2항이 같은 해 9월 1일부터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즉 수상운송업에 해당하는 항만노동은 여전히 노동시간을 제한받지 못하고 있지만 TOC가 노사 합의를 통해 59조 2항인 '연속 11시간 휴게시간 제도'를 규정화하면서, 연근(2슈트 이상 노동)이 사라지고 연장 근로 후의 연속 11시간 휴게시간이 보장되었다. 이 덕분에 현장에서 장시간 노동에 따른 문제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법적 규제는 말 그대로의 최소한의 보장이다. 특히 탄력근로제가 도입된다면 물량에 따라 노동시간과 노동 강도가 단시간에 집중되는 항만노동은 더욱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이동우: "IPOC 노동자들 같은 경우는 연장근로 금지, 철휴(24시 이후 노동)시 '연속 11시간 휴게시간' 제도 도입 등을 통해서 자체적인 노동시간 규제가 어느 정도 되고 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탄력근로제가 도입되면 이런 노력들이 물거품 됩니다. 인청항 특성 상 배가 많을 때는 많고 없을 때는 없기 때문이죠. 탄력근로제가 도입되면 이 스케줄에 맞춰 노동시간을 조정하게 될거고, 특정 기간에 노동강도와 시간이 집중될 거예요. 항만노동자들이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탄력근로제 저지가 노동시간 규제에 있어서 관건이예요." 

IPOC 노동자들에게 탄력근로제 저지가 중요한 이슈라면, 일용직 노동자들은 현재도 자신의 노동시간과 일정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가장 큰 이슈다. 일용직 노동자들의 들쭉날쭉한 노동시간은 우리가 왜 노동시간 규제의 필요성과 탄력근로제 도입 반대를 위해 싸우는지 문제의 시급함을 드러낸다. 

전창환 : "근무시간은 주·야간 하루 2번 나눠서 8시간을 기준으로 해요. 앞뒤로 1시간 연장근로가 가능하고요. 그런데 배 출항 시간이 가까운 경우에는 그냥 연장수당을 받으면서 몇 시간이고 연속해 작업해야 해요."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스케줄에 따라 하역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박의 스케줄에 맞춰져 있었다.

또 인력 배치에서 일용직 노동자는 가장 뒷순위기 때문에 '내가 언제 일을 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항만업 자체의 물량이 감소한 상황에서 일이 있을 때 최대한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강력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전창환 : "일용직 노동자들은 내가 일을 안 하면 돈을 못 벌기 때문에 무조건 회사 스케줄에 맞춰요. 일용직 노동자들도 순번이 정해져 있어요. 순번대로 돌기 때문에 본인 차례를 건너뛰면 언제 다시 일을 하게될지 몰라요. 그래서 가정일이나 일상생활을 포기하고 계속 근무를 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 인천항 물량이 계속 줄기 때문에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도 많아요."


가장 열악한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가장 위험한 작업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항만노동자 재해비율이 전체 산업 평균과 비교했을 때 2배 정도 높으며 항공운수사업과 비교했을 때 6배 정도 높다고 밝혔다.

전창환 지부장이 직접 찍은 인청항 항만노동 현장의 모습이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하역작업은 '홀드'라고 불린다. 기계가 운반할 수 있도록 제반 작업을 하는 업무다. 과중한 무게를 드는 작업이 많아서 당연히 허리와 다리 등 근골격계질환이 많이 발생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물류 사이를 걸어 다니면서 기계가 들어 올릴 수 있도록 줄 거는 작업이 많은데 건설작업에 사용되는 집채만 한 원목과 쇳덩이 사이로 기어들어 가 작업을 해야 한다. 아무리 조심해도 무릎을 부딪치거나 쌓여있는 물류 사이로 사람이 빠지는 일이 부지기수다. 물건들이 겉으로는 평평하게 쌓여있어도 까딱하면 중심이 무너져서 크게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작업이다. 중량물의 무게뿐만 아니라 작업의 긴장도가 심각하다. 

전창환 : "항만에는 '윈지'라는 크레인을 조작하는 작업과 '홀드'라는 크레인 운반에 필요한 제반 작업을 담당하는 업무가 있어요. 윈지 작업은 총 노동시간인 8시간 중에서 2시간마다 교대근무를 해요. 이 업무를 하려면 항운노조 소속이어야 하고 교육을 이수해야 해요. 

홀드는 기계로 할 수 없는 작업을 의미해요. 항만은 물건 자체의 무게가 톤수 단위이기 때문에 당연히 크레인 조작보다 훨씬 노동강도가 클 수밖에 없어요. 물건을 준비한 후 물건과 장비를 연결해야 해요. 또 컨테이너 사이에 물건이 쌓여있으면 그걸 꺼내는 작업도 있어요. 기계가 할 수 없는 기타 모든 작업이라고 보면 돼요.

원래 이 홀드 작업도 항운노조 노동자들이 하던 작업이었어요. 2007년 10월 1일부터 항운노조에 소속되지 않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하게 됐는데 이때부터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홀드 작업을 전가했어요." 

항만에는 IPOC 소속 노동자와 민주노총 항만지부의 일용직 노동자 외에도 항운노조에 소속된 정규직과 일용직 노동자들이 있다. 항운노조도 IPOC에서 월급을 부담하기 때문에 IPOC 소속으로 현장 인력공급을 받고 있다. 즉 IPOC 소속 노동자, 항운노조의 정규직과 일용직 그리고 항운노조에 소속되지 못한 일용직 노동자들이 인천항에서 하역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다. 

일용직 노동자 중에서도 항운노조에 소속되지 못한 노동자들은 장기간 인천항에 근무하면서 같은 작업을 하더라도 4대 보험, 퇴직금 등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근로계약서를 매일 다른 하역회사와 새로 작성하기 때문이다. 

전창환 : "항운노조 소속인지 여부에 따라 같은 일용직 노동자라도 산재 적용이 달라요. 소속되지 않은 일용직 노동자들의 경우 몸이 회복된 상태에서 일을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친 상태에서 그냥 일해요. 노동자를 고용한 회사에서 산재 책임을 져야 하는데 사고가 날 때 그걸 회사에서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죠.

홀드 작업을 하다가 다칠 땐 장비에 든 보험으로 산재 처리를 받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산재처리에서 임금의 70%를 적용받는다면 일용직 노동자는 그중에서도 70%만 받아요. 누가 산재처리를 해주려고 하겠어요? 타박상 등의 사고는 일상다반사기 때문에 그냥 자비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보다 심한 수준의 산재가 발생하면 사측은 산재처리를 하지 않고 회사가 재해에 대해 일정 금액을 보상하는 공상처리를 유도해요. 공상처리를 안 하면 회사에서 다음에 안 불러주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따를 수밖에 없어요." 

선박이라는 위험한 환경에서 안전사고에 대한 대책과 산재 처리도 불가한 상황은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 문제다. 여기에 물류량에 따라 들쭉날쭉한 일용직 노동자들은 별도의 휴식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잠깐 담배를 피우며 허리를 펴는 것이 전부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항운노조는 일반노조 조합원들의 기본적인 노동조합 활동마저 저지하고 있다. 4대 보험과 같은 법적 조치는 물론 기본적인 복지조차 차별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이다. 이는 항만지부 일용직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3년 동안 인천항에서 항만노동자로 일한 전창환 지부장은 여전히 매일 다른 하역회사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 다쳐도 산재 보상을 받지 못하고 마땅한 휴게공간도 없이 일용직 노동자들은 선박 안의 가장 위험하고 강도 높은 작업을 담당한다. 

이처럼 '위험의 외주화'가 본격화된 사회에서 노동의 종류에 따라 법 적용 제외를 만들어낸다면, 과연 그 사회를 누가 지탱하는가? 

사회의 위험이 법적 규제가 없는 곳으로 전가되고 있다. 규제가 없는 이러한 곳에서 물량과 배 출항 시간을 맞추는 사람은 누구인가? '법 적용 제외'라는 아이디어 자체에 대해 반대할 수밖에 없다. 노동시간 규제의 필요성이 제한 없는 연장근로가 노동자의 삶과 건강을 훼손하기 때문에 모든 노동자에게 법이 전면 적용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IPOC 노조의 경우처럼 연속 11시간 휴게시간을 도입하더라도 우리는 59조가 제안하고 있는 노사 간 연속근로 합의 자체를 반대해야 한다. '법 적용 제외'라는 개념이 남아있는 한 위험한 노동은 전가될 뿐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전 지부장은 인터뷰를 마친 후 "오늘 근무를 못 해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일용직 항만노동자들의 초과 노동시간과 안전장치 없는 노동환경 그리고 일의 불안정함은 우리가 모든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특집2. 건설기계 노동자, 산재법 확대적용의 명암을 들여다보다 / 2019.05

[모든 사람에게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②] 

 

건설기계 노동자, 산재법 확대적용의 명암을 들여다보다 

 

박기형 / 상임활동가 

 

2018년 12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 시행령이 일부 개정되어, 올해 1월 1일부터 건설기계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을 받게 됐다. 개정 이전에는 27개 건설기계 중 레미콘 1개 직종만 특수형태근로(이하 특고) 종사자로 적용됐다. 개정 이후 27개 직종에서 일하는 1인 사업주 모두가 특고로 간주되어 산재보험에 당연가입 할 수 있게 됐다. 지난 4월 22일 건설노조 기계분과 서울경기북부 김학열 지부장을 만나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산재법 확대적용에 대해 갖는 기대감과 우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직면하는 건설현장의 위험들

건설현장은 전체산업 사망자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그중 건설기계에 의한 사망사고는 전체 사고의 21%를 차지한다. 특히 최근 건설현장의 고층화·대형화·기계화가 진행되면서, 건설기계 장비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 중대형 장비인 건설기계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면 건설기계의 조종사뿐만 아니라 인근 노동자들까지 위험에 처해 중대재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지난해까지도 건설기계에 의한 사고 책임은 오롯이 건설기계 노동자가 져야 했다.

"산재처리와 관련한 현장의 원칙은 '당신이 사장이니까 당신이 책임져야 하는 거다'에요. 현장에선 근로자처럼 일하기를 요구받는데, 일하다 다치면 근로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로 취급했던 거죠. 직접 장비를 운전했을 경우엔 공상 처리도 안 해주는 경우가 다반사에요.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영세한 1인 차주가 많아 경제적 부담이 커요. 더욱이 근무 조건이나 개인 사정에 따라 기사를 쓸 때가 종종 있다는 사실이 문제에요. 기사가 큰 사고를 당하면, 1인 차주가 중소기업사업주로 임의가입해서 해당 기사를 산재처리를 해줘야 해요. 기사와 같이 일하다 차주 본인까지 다쳐도 마찬가지죠. 그러면 차주의 부담은 더 커지죠."

건설기계 장비는 대개 고가의 제품이다. 이 비용을 한 번에 지불하기 어렵기 때문에 금융기관에 빚을 지거나 장비매매업체에 리스 방식으로 구입한다. 만약 사고로 인해 일하지 못하게 되면, 할부 대금, 대출 이자, 리스 대금을 납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결국엔 금융기관에 차량을 차압 당하거나 매매업체가 차량을 회수해가는 지경에 이른다. 결국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몸이 상하고 장비를 잃는다. 생계유지가 어려워져 가정이 무너지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산재법 확대적용이 갖는 의미와 한계

올해부터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특고로 간주되어, 산재법의 특례 적용을 받게 되었다. 이는 건설기계 노동자가 근로자성의 인정 여부와는 별개로 보호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산재법 적용 범위에 포함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산재법 확대적용으로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휴업급여, 요양급여 등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김학열 지부장은 장비에 대한 손실을 보상받지 못하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언제나 기계와 함께 노동을 제공해요. 더구나 기계 손실에 대한 비용도 상당한 부담이죠. 과거 공상 처리 시에 노동조합이 압박하면, 회사와 사고에 대한 책임 비율을 책정해서 장비 손실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보상받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산재 원칙에 따라 장비는 보호 범위에서 제외되죠. 현행법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보호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장비손실에 대한 보상 대책도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이에 더해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과 달리, 근로복지공단의 구상권 청구에 따른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구상권 청구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에요. 차주가 고용한 기사가 상해를 당했을 경우와 1인 차주의 장비 사고로 다른 노동자가 상해를 입었을 경우죠.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근로복지공단이 기사나 다른 노동자에게 보상해주고, 해당 금액을 차주가 가입한 보험회사에 구상권을 청구합니다.

구상권 청구로 인해 보험료가 크게 인상되죠. 대다수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장비 보상을 위해 민간 보험에 가입해요. 이런 상황에서 구상권 청구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악화시켜요. 근로복지공단이 기금 규모를 유지 및 확대하려는 태도로 보아, 산재법 확대적용 이후에도 구상권 청구 관행이 지속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원청책임 더욱 강화되어야

김학열 지부장은 산재법 확대적용 의미가 퇴색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청책임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건설기계·장비는 건설업 하도급 구조로 산재사고 예방관리 및 안전보건 조치의 책임 소재가 불명확했다. 더욱이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맺는 계약 형태는 고용계약이 아니라 임대계약이었다. 근로자의 속성과 자영업자의 속성 모두를 가진 것으로 간주되어 기존의 근로자 개념으로 규정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전부개정안에서 기존의 근로자보다 넓은 개념인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규정이 바뀌면서, 건설기계 노동자들에까지 안전보건 조치가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이는 산재법 적용확대와 마찬가지로, 건설기계 노동자들을 보호할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4월 22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안법 전부개정안 시행령·시행규칙 입법예고안에는 타워크레인, 건설용 리프트, 항타기, 항발기 등 4대 기종에 제한하여 원청이 책임지도록 하는 내용이 담기고 말았다. 김학열 지부장은 건설현장의 안전을 제대로 담보하기 위해선 27개 기종 전체로 규정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원청은 관행적으로 건설현장의 안전보건 조치와 그에 대한 책임을 하청사에 미뤄왔어요. 그렇지만 건설기계와 관련한 산재사고가 빈번했고 현장 내외에서 예방관리에 대한 요구도 컸어요. 특히 타워크레인 사고가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면서, 이미 고정식 기계 설비의 설치·해체에 대해서는 원청도 충분히 책임을 인정하고 있었죠. 이번 입법예고안은 이러한 현장의 요구와 변화를 법적인 조항으로 확정한 것에 불과해요."

"더구나 현장에서 사고가 나는 건 고정식 기계 설비만이 아니에요. 물론 대형 타워크레인이 넘어지면 위험의 정도가 크지만, 현장투입 비율만 놓고 보면 다른 건설기계 기종들이 훨씬 많고 사고도 빈번해요. 예컨대, 대개 25톤 덤프가 27개 기종 중에 현장투입 비율이 절반이 넘어요. 그만큼 덤프 전복이나 작업 중 추락 등 크고 작은 사고들이 매일 같이 일어나죠.

하지만 사회적으로 문제되지 않으면 보호받지 못해요. 산재보험 적용 특례를 정할 때처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야만 해당 직종을 포괄하는 것이죠. 싸우지 않으면 보호받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정부가 진심으로 건설현장의 산재사망사고를 줄이고 싶다면, 그렇게 접근하면 안 되죠. 이동식 기계 설비를 포함한 27개 기종 전체에 대해 원청책임을 강화해야죠."



건설기계 노동자에게 위험과 비용을 전가하는 원청

하지만 원청책임을 묻는 것은 단지 건설기계 노동자 보호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원청이 하도급 구조를 활용해 건설기계 노동자에게 위험과 비용을 전가하기 때문이다. 김학열 지부장은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원래부터 전통적인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틀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처음부터 특고였던 건 아니에요. 예전에 덤프기사들도 건설사에 정규직으로 고용돼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한진그룹 계열사였던 한일개발에 입사해서 7~8년간 근무했어요. 그때만 해도 건설사들이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장비와 기사를 갖추고 있어야 했죠. 하지만 80년대 중후반 국내 건설경기가 나빠지면서 공사수주자격 규제가 완화되고 건설사들이 재무건전성을 높여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해 중장비 등 유휴고정자본들을 줄여나가기 시작했어요.

물론 90년대 초반에 주택 200만호 건설 정책으로 건설경기가 반짝 좋아졌지만, 건설사 몸집 줄이기는 계속됐죠. 저도 그때 장비를 불하해주는 조건으로 회사 일을 계속 줄 테니 개인 사업자로 일하라는 요구를 받고 나왔어요. 기계 하나 주고 회사가 직원을 내친 격이었죠. 사업증 하나 달랑 가진 사장 아닌 사장이 됐죠. 이런 일이 레미콘부터 시작해서 다른 기종들로 확산됐어요. 그렇게 하도급 구조가 널리 퍼진 게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모호한 근로자성의 출발점이었다고 생각해요."

건설업의 특성상 공정에 다수의 건설기계가 필요하다. 건설기계는 고정자본, 즉 유형고정자산에 해당한다. 유형고정자산의 구입·운영·유지에는 각종 고정비용과 감가상각비용이 든다. 문제는 계절에 따라 공사수주 물량의 변동이 크고 거시경제순환에 따라 건설경기가 유동적이라는 점이다. 몇몇 대형건설사를 제외하고는 공사 물량이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확보되는 경우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건설사들은 경기 순환에 유연하게 대응하여 재무구조 건전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한국의 건설사들은 80년대 중후반 이후 지속적으로 건설경기가 하락하는 국면에서, 이윤을 높이고 비용을 낮추기 위해 고정자본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취하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건설기계를 임대하여 공정에 투입하는 비율을 높였다. 그 결과, 하도급이 건설현장에 널리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그 반대급부로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건설기계 운용에 따르는 각종 비용과 건설현장의 위험을 떠맡게 되었다.

한마디로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특고로 진입하게 된 이유는 건설사들의 이윤추구전략 때문이었다. 원청이 이윤은 최대한 사유화하고 비용과 위험은 건설기계 노동자들에게 전가한 것이다. 따라서 건설기계 노동자들에 대한 산재 적용 및 안전보건 조치 확대 요구는 단순히 건설현장의 위험이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건설기계 노동자들을 특고로 전환시킨 원청에게 사회적 책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의 하도급 구조가 위험의 외주화를 통해 지탱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고용노동부의 입법예고안은 한계가 명확하다.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을 위해 남은 과제들

다른 한편, 원청책임 강화뿐만 아니라 27개 기종에 대한 산재법 확대 적용이 정말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해봐야 한다. 특례규정에 따라, 건설기계 노동자들도 1인 차주에 한해서 산재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김학열 지부장은 실제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타인을 고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공사 기간이 점점 단축되면서 정해진 시간 내 많은 공사 물량을 해치워야 하기 때문에, 1인 차주 혼자서는 해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타인을 고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산재법은 여전히 1인 차주에 한해서 보험이 제공되도록 규정되어 있죠."

또한 김학열 지부장은 지금처럼 특고에 대한 특례 조항으로 산재보상과 안전보건 조치의 적용범위를 확대해 나갈 경우,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난점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건설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임금체불, 부당해고 등에 대항하기 위해선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전통적인 근로자와 동등한 법적 지위를 누리지 못할 경우, 현행 법체계 내에서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였다.

마지막으로 일부 건설현장들에서는 고용 조건으로 적용확대 제외신청을 건설기계 노동자들에게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얘기하며, 이런 사례들을 적발하고 위반 시에는 강력한 처벌을 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평생 정규직이길 바랬다는 김학열 지부장. 사업증만 하나 달랑 가진 사장 아닌 사장이 되어 버린 지금, 그의 바람은 단 한 가지였다.

"최저수준의 임금을 유지하며 겨우겨우 살아가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과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기를 바랍니다. 건설기계 노동자들 모두에게 산재법, 산안법이 제대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고 싸워나갑시다. 투쟁!"

 

 

특집1. 노동자 건강권 관련 법, 적용제외 조항 '제외'하라 / 2019.05

[모든 사람에게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①]

 

노동자 건강권 관련 법, 적용제외 조항 '제외'하라 

 

 

류현철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국회가 난장판이다. 근대 이후로 공중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국가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기제 중 하나가 법률일진대 그것을 만드는 입법기관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혈안이 되어 이전투구 중인 것이다.

지난 연말 이런 이전투구 집단에서도 쉽게 외면할 수 없었던 법안 하나가 어렵사리 통과되었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가 몸이 끼어 숨진 19살 하청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발의되어, 석탄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가 컨베이어에 온몸이 갈리어 숨진 24살 또 다른 하청 노동자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그것이다.

노동자의 허망한 죽음을 막자고 발의된 법안은 그렇게 또 다른 숱한 죽음이 쌓이고 나서야,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앞섬에 노동자 민중들의 분노가 뒤서고 넘쳐서야 통과되었다. 그렇게 법이 만들어지고 고쳐지는 것이다. 노동자가 일터에서 건강하게, 최소한 몸과 마음을 다치지 않게 아니 최소한 죽음을 무릅쓰지 않고 일하게 만들어줘야 할 기본법으로서 산업안전보건법과 더불어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모두 마찬가지다.

 

법 적용제외는 삶 전체의 불평등으로 이어져

근로기준법은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 안전 및 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노무를 제공하는 자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하겠다고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산업재해보상보험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하여 이에 필요한 보험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재해 예방과 그 밖에 근로자의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법 취지가 온전히 지켜지고 있을까? 사회적인 가치,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해내는 과정과 거기에 결부되는 노동의 투입과 매개의 방식이 다변화되고 있으며 사회는 이것을 4차산업이니 하면서 떠들고 있다. 4차산업 시대에 기업과 사용자들은 오로지 책임회피 측면에서만 창의적이고 희한한 고용·계약 관계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은 기존 법률의 '근로자'의 개념의 고루함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수많은 노동자를 '노동자'라 불리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이름을 제대로 얻지 못하면 권리에서도 배제되는 것이다.

고용특례업종, 영세업종(업주) 보호, 공익필수직종,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위험작업의 범위 등 여러 가지 설명을 곁들여 이들 법의 적용범위에 '차이'를 둔다. 이는 일터의 안전과 건강문제에 있어서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을 낳는다. 사용자와 사업주가 지켜야 할 기준 적용에 있어서 예외(특례)는 결국 불평등을 낳고, 이것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의 수준이 낮아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일수록 건강과 안전상 위험이 높아진다.

지난 연말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은 '김용균법'으로 불렸지만 그 이름으로 대표되는, 일터에서 위험에 노출되는 많은 비정규직/불안정 노동자들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진행된 하위 법령 개정에서라도 최대한 노동자의 건강권 영역과 포괄범위를 넓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하위법령 개정안은 더욱 후퇴하고 말았다.

도급금지/승인 규정을 두어 관리하겠다는 일터의 위험업무의 범위, 법적 보호조치 대상이 되는 특수고용직의 범위와 보호조치의 내용, 작업중지권 실질적 운용 가능성은 형편없이 줄어들었다. 산재보상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노동자가 산재보험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어 일터와 업무에서 비롯된 사고와 질병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산재임에도 '산재'로 인정되지 않는 질병과 재해는 통계에 잡히지 않아 위험의 크기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산재 통계는 '산재보상 승인 통계'일 뿐이다. 드러나지 않은 산재는 위험을 감춘다. 감춰진 위험은 관리할 수 없다. 관리되지 않는 위험은 또다시 산재를 일으키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위험 관리의 출발은 '드러내기'부터 시작한다.

물론 일터에서의 사건 사고, 질병, 손상과 죽음이 법적인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음은 논문과 통계가 아니라도 직관만으로 알고도 남는다. 그런 현실을 부정하기 힘들었던 정부와 전문가들이 위험의 외주화 방지, 원청의 책임 강화, 취약노동자보호를 입에 달고 있지만 입법과 행정과정에서 실물로 엮여 나오는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합리적 이유나 설명 없이 법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하는 예외규정이 숱하다.

일터의 안전, 일과 건강에 관련된 영역은 계속 확장되고 있음에도 구시대적인 안전개념에 머물러 있는 구분이나 예외조항도 여전하다. 안전과 건강문제에 대서 작업환경이나 업무의 위험성과 그에 따른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관리 전략에 따른 것이 아니라, 사업주의 경제적 여건이나 (기형적인) 계약 관행에 따라 적용을 달리하는 예외규정은 차별에 불과하다.

수년 전 무상급식이 공론의 장에 올라와 보편적 복지 논쟁이 일었던 적이 있다. 잘사는 집 아이에게도 무상급식을 해야 하는가를 집요하게 문제 삼았음에도 보편적 복지가 판정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관련된 법안의 예외규정은 거꾸로 더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에게서 밥그릇을 뺏는 형국이다.

사용자와 사업주의 의무를 주로 규정한 법들이니 어려운 형편의 사업주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위험에 노출되어 일하는 것은 노동자들이며 법의 목적에서 보호하고 지켜야 할 대상도 그들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경제를 살펴 영세한 사장님들을 배려한다는 논리로 법률상의 예외조항을 두는 것은 본말의 전도이다.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할 권리가 가장 우선이어야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여 향상하고,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 증진하기 위한다는 법의 예외는 그 목적(법익)에 충실히 부합하는 한에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예외는 어쩔수 없는 경우에만 인정되어야 하며 그 어쩔 수 없는 이유라는 것이 누구의 이해에 맞닿아 있는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할 '권리'가 우선이며 이것을 중심으로 그것을 보장할 책임과 의무를 사업주이든 정부건 지자체건 국가건 나눠 가져야 한다. 안전과 건강에 관련된 제도에 있어서 사업의 규모나 사업주의 여건을 고려한 적용 제외조항이 남아있는 한, 위험하여 책임져야 할 것이 많은 업무는 계속 외주화될 것이며 법률상 권리도 조직력도 없는 노동자들은 더욱 위험해질 것이다.

안전하고 이윤이 많이 남는 사업을 독식할 수 있는 구조는 위험하고 책임의 비용이 많이 드는 업무의 외주화를 얼마든지 허용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일터와 노동자 안전보건에 있어서 예외는 오로지 특히 위험하거나 취약한 대상에 대한 더욱 각별하고 강화된 관리와 보장의 측면에서만 인정되어야 한다.

이윤에 매몰되지 않은 인간다운 노동을 위해 관련 법률의 개정과정은 늘 난항을 겪는다. 그리고 그 난항을 헤치고 나가는 해법 역시 변함없다. 진부해 보이지만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각성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힘, 노동인권과 생명에 대한 사회 인식의 진전과 참여를 전제로 하는 연대가 그것이다. 정부의 산업안전보건법개정안에서 '근로자'가 아닌 '일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이라는 개념 찬 제안이 등장한 배경도 거기에 있다.

한편으로 최근의 산업안전보건법 하위 법령의 명백한 후퇴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사회적 관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언제든 오로지 경제 논리와 이윤을 중심에 둔 제도의 역진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진전되고 개선된 제도의 경우는 현실 작동을 점검하고 성과를 확인하여 확장하고, 미진하고 후퇴하는 제도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 짚고, 공중에게 드러내고 바로 잡는 것을 게을리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모든 노동자에게 나이, 성별, 인종, 직종, 업종, 사업장 규모, 고용형태를 넘어서 똑같이 안전하고 건강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특집4.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존재, 청년노동자를 말하다 / 2019.02

[특집 청년 + 노동자, 다시 보기④]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존재, 청년 노동자를 말하다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준비위원장 인터뷰

 

선전위원회

 

도로의 무법자로 불리는 이들이 있다. 바로 배달노동자이다. 언론은 큰 사고가 날 때만 그들을 주목하고 호명한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존재해왔다. 단지 우리 사회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지 않았을 뿐. 가리어진 존재의 목소리를 모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라이더유니온의 박정훈 준비위원장을 지난 131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라이더유니온이 궁금한데요. 조합원의 구성이나 특징, 조합의 핵심 요구사항은 무엇인가요?

프랜차이즈, 배달대행사, 우버이츠 기사들로 주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리고 돈 못 버는 영세 배달대행 지사장들도 조합원으로 받을 생각인데, 아직 세부 기준은 정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등에 칼 꽂는다고들 말하는데 일하다가 자기가 창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배달대행은 가게와 기사만 있으면 되거든요. 운영 프로그램은 따서 쓰면 되고요. 그러다 보니 영세한 사람도 많고, 이 업 자체에서 지지고 볶는 특징이 있죠.

그리고 배달노동자는 개별화되어 있어요. 프랜차이즈 라이더를 한 사업장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모두 출퇴근 시간이 달라서 모이기가 불가능해요. 그래서 플랫폼노조로서 온라인을 기반으로 해요. 그러다 보니 가끔 정기로 모이듯이 조합원들이 모여요.

대여섯 가지 조합의 요구 중 보험료 문제가 가장 큽니다. 배달용 오토바이 보험료가 제 나이대인 30대 정도에 1년에 300만 원이에요. 20대는 500만 원이구요. 심각하죠. 그래서 대부분 배달용 보험을 안 들고 출퇴근보험을 들어요. 이렇게 일하다 사고 나면 보험 적용이 안 돼서 문제가 생기고, 부담이 크니 산재보험 가입도 꺼려요. 산재보험 가입률이 높아지려면, 배달용 오토바이 보험료를 해결해야 해요.

추가로 기후변화에 따른 보호 대책, 최소배달료, 플랫폼세를 통한 고용보험, 산재보험 기금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어요. 지사장에게 책임을 묻는 두 당으로 하지 말고 일정 매출 이상의 플랫폼 사업장이 근로복지공단에 보험료를 내라는 거죠.

개인 사업자의 경우, 유급휴일 보장 안 되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보험을 바꾸고 싶어요. 개인사업자도 유급휴일을 주는 거죠. 예로 들면 여름휴가 간만큼 일하지 못한 부분을 고용보험 재정에서 조달하는 거죠. 그러면 라이더들이 고용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생기겠죠. 또 산재보험기금으론 악천후일 때 일을 못 하니 그때 휴업급여를 지급하고요. ‘근로자신분이 아니란 현실과 괴리되는 이유로 말이죠. 물론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 여겨질 수 있어요. 그러니까 노조가 싸워 만들어나가야겠죠.”

연령대 특징도 있을 텐데요. 노조에 10~20대 청년이 많은 편인가요?

아뇨. 30~50대가 많아요. 10~20대는 눈에 띄어서 과잉대표된 거죠. 배달 노동에 대한 편견이에요. 소위 젊은 놈이 오토바이 함부로 몰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거죠. 언론에서 주로 다루는 배달노동자 사고가 10대이기도 해요. 어리면 어리다고, 50대까지 라이더 일을 하고 있으면 그것도 그거대로 욕먹죠. 20~30대 정도는 그럴 수 있다 치고요. 나머지는 실패, 혐오의 상징이에요. 보면 가족들에게 얘기를 잘 못 하세요. 자녀 학교가 있는 동네이거나 지인이 주문하거나 하면 다른 사람에게 일을 넘기기도 해요. 당당하기 힘든 거죠.”

지금 하는 맥도날드 배달 일을 포함해 여러 노동을 경험하셨을 때 우리 사회가 청년 노동자에 대해 어떤 인식을 하고 있고, 어떤 노동조건에 내몬다고 보시는지 궁금해요.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요. 청년이라고 했을 때 청년 내 계급, 계층의 문제가 다 삭제되어 있어요. IMF 이후 청년실업이라는 말, 단 한 번도 해결되지 않은 이 문제에서 주인공은 4년제 대학을 나온 이들이죠. 뉴스 인터뷰 보면 그래요. 문제는 이런 조건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이 가려진 거예요. 수능성적으로 1~2등급. 나머지 80%의 사람들은 주인공이 아니죠. 그런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면 고등학교 때 공부 좀 열심히 하지라는 댓글이 달리는 거죠. 더 문제는 최저임금, 위험한 일자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 지금의 노동시장을 다 공급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이 사람들이 청년 문제 담론 주인공이 된 적은 없어요. 당연히 공부 못했으니까 그런 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공론화되고 주인공이 되어야 해요.

우리 사회의 드러나지 않는 주인공이란 말이 인상적이에요. 그런 주인공 중 하나가 배달노동자라고 생각하시나요?

대표적이죠. 아르바이트 노동자도 마찬가지고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선진적 기술혁신산업과 가장 최하층의 노동이 만난다는 점이에요. 아르바이트 시장, 플랫폼 시장은 실업자의 노동이자 잉여시간의 노동을 조직해요. 20대 청년들도 실업인 상태에서 취준생으로 자기 생존을 위해 일하고 있죠. 플랫폼 노동은 나머지 시간조차 자본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시간으로 투자하라고 강요하고 있어요. 자본이 모든 시간을 장악하는 거예요. 시간 장악, 이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곧 위험한 노동이자, 과로 노동이기 때문이에요.”

최근 고 김용균 님 사건부터 산업체 파견형 현장 실습문제까지 소위 젊은 노동자들의 문제가 이슈인데요. 계속 잇따르는 청년 노동자의 사고를 볼 때 특히 공감되는 부분이 있나요.

한국 노동시장 자체가 왜곡되어 있어요. 사람이 매일 죽어 나가는 구조를 계속 유지하죠. 그 문제를 청년 문제로만 접근하면 답이 없어요. 청년이 문화적, 지식 권력에서 약자이기도 하지만, 원래 노동시장 자체가 최악인 게 근본적 원인이죠.

그걸 바꾸기 위해서 저는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모든 담론이 일자리를 달라는 거죠. 사실 이게 우리의 구호가 되어야 하나 싶어요. 핵심은 사회안전망이죠. 여기서 계급 문제가 발생해요. 노동자들이 나쁜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으려면 생계비가 필요하죠. 고시 공부, 해외 유학, 대학원까지 약 10년간의 취업 기간을 견딜 수 있는 노동 상품과 당장 최저임금 일자리라도 가야 하는 노동 상품은 거부권이 완전히 다르죠. 지금까진 가족들이 그 부담을 졌어요. 하지만 이제 사회가 해야죠. 고용으로만 풀려는 것은 답이 없어요. 임금만을 소득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렇다면 청년 노동자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적 조건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노동자의 권리는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핵심은 노동과정에서의 권한이에요. 그걸 쟁취하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야 하죠. 작업중지권조차도 소극적이라고 봐요. 노동과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작업중지권은 사후적일 수밖에 없죠. 예를 들어 빙판길이 얼었다고 하면 위험을 겪을 수 있는 노동자들 모두 일하지 않는 것. 배달에 적합한 오토바이 기종이 있다면 교체하는 것. 배달 시간이 너무 촉박하면 안전하게 바꾸는 것. 자본이 정한 30분 배달제가 대표적이죠. 지금까지는 임금을 많이 받기 위해 노동 강도를 높여왔다면, 이제는 노동과정을 조직하는 권리를 쟁취해야 해요.

지금까지 배달노동자는 100원이라도 더 받는 곳으로 이동했어요. 그분들에게 이런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이동하지 말고 모든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자고요. 라이더유니온으로 오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올해 51일 노동절에 국회에서 청와대까지 오토바이 행진을 할 예정이에요. 트럭을 한 대 불러 공연도 하고 그 뒤를 오토바이가 따라가는 거예요. 그 행진에도 꼭 함께 해주시길 바랄게요.”

 

 

 

특집3. 견디는 사람의 얼굴을 보라-산재 유가족들의 활동에 함께 하자 / 2019.04

[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③]

 

 

 

 

견디는 사람의 얼굴을 보라

-산재 유가족들의 활동에 함께 하자 

 

 

 

 

최민 / 상임활동가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빅터 프랭클은 인간은 이성으로 사유하는 존재이기 이전에 먼저 고통 받는 존재이며, 그것이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하는 더 중요한 측면이라는 점에서 호모 파티엔스(고통 받는 인간)라는 말을 제안했다고 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빅터 프랭클의 논의를 이어, 인간이 단순히 고통을 받는 위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당해내고 견뎌내며, 그 점이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질문한다.¹ 고통을 받으면서 인생의 비참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고통을 견디면서 인간임을 증명해내는 사람들이 견디는 사람이다. 견디는 사람이 보여주는 것은 인생의 비참, 삶의 비극, 개인이 어찌하기 어려운 구조의 폭력이지만, 동시에 비극을 넘어선 삶 그 자체의 숭고함, 폭력 너머 새로운 구조에의 꿈이기도 하다.

 


아픔을 함께 견디는 산재 유가족들

최근 모여서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산재 유가족을 보면서 '견디는 사람'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는 모습은, 둥그렇게 둘러서서 어깨를 옹송그리고 남극의 겨울을 버티는 펭귄들을 떠올리게 한다. 유가족은 무엇보다 함께 모여 아픔을 '견디는' 중이다.
 
"세월호 예은 아빠 유경근씨가 민호 1주기 때 왔어요. '많이 아프지? 많이 아플 거야.' 이 말 한마디 해주는데, 그게 저한테는 너무 큰 위로가 됐어요." - 2017.11. 현장실습 도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민호 님의 아버지 이상영씨 


"씩씩한 얼굴로 외출을 해도 당신이 지금 어떤지 안다라고 누군가가 위로를 해줘도 '대체 뭘 알아?'라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와서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담당 변호사 외의 사람에게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 너무 기뻤습니다." - 일본 과로사 유가족 모임 ㅇㅋㅁㅌ
 
하지만 가족들이 함께 모여 견디는 것은 단순히 가족을 잃은 '슬픔'만은 아니다. 일하다 발생한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 탓이 아닌 구조의 문제다. 제대로 된 안전교육도 받지 못하고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 부주의 탓이 아니다.

근로기준법 상 노동시간 관련 조항이 모두 적용 제외되어, 일주일에 80시간 근무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서, 장시간 일하다 숨진 60대 학교 경비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 탓이 아니다. 일터에서 폭력과 폭언을 당하고, 지속적인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의 탓이 아니다. 

 


울분을 함께 견디는 산재 유가족들 


하지만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죽음은 쉽게 '동정'의 대상이 되거나, '불운'의 상징이 되고, 결국 개인의 문제로 돌아간다. 심지어 남겨진 가족들은 '왜 그런 험한 일을 시켜서',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지 몰랐냐?', '평소에 건강 좀 잘 챙겨주지 그랬냐'와 같은 비난에 부닥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산재 유가족들은 거대한 울분에 휩싸이게 된다. 일하다가 생긴 사고인데 왜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가? 일하다 죽은 것도 억울한데 왜 우리가 숨을 죽이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가?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일하다 죽어갔다는데, 왜 세상은 아무 일 없는 듯 돌아가는가?

최근 정신보건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울분'은 분노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라고 한다. 울분은 '이런 처사는 부당하다'는 생각이 지속되면서 감정적 고통이 격화된 상태라 공정성이나 정의에 대한 감각과 뗄 수 없다고 한다. '세상은 공정해야 한다'는 기대와 '실제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는 경험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² 산재유가족의 고통은 여기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제 아들은 현장실습으로 나간 업체에서 일하다 자살했습니다. 전공과도 맞지 않는 실습처였고, 학교에서 체결했다는 표준계약서에는 엉뚱한 사람의 사인이 들어 있을 정도로 엉망인 채 나간 실습이었는데 학교에서는 끝내 사과 한마디가 없었어요." - 직업계고 현장실습 피해가족모임 김용만 씨 


"(산재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유가족들에게 있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회사가 자료를 다 가지고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뿐이에요. 자료를 요청할 때 우울증이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이지 회사랑은 관계없다고 얘기하기까지 했어요."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장향미씨

 


현실을 바꾸려 손을 잡는 산재 유가족들 


이렇게 고통을 함께 견디고, 울분을 함께 견디던 유가족들은 끝내 울화통 터지는 현실을 함께 바꿔보기로 결심하기도 한다. 유가족들이 피해자로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가는 주체로 나서는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낯설지 않다. 가까이에는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물으며 싸워 온 세월호 유가족이 있다. 독재 정권 시절 사망한 열사들의 가족들이 결성해 민주화운동에 함께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도 있다.

일본에서는 좀 더 특수한 산재 유가족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 모임이 있다. 공식 명칭은 '전국과로사를생각하는가족회'이다. 약 300여 명의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이 가입된 이 모임은 1991년 결성되어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과로사·과로자살을 낳은 구조적 원인에 대해 학습하고, 과로사·과로자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끊임없이 환기해, 결국 2014년 '과로사 등 방지대책 추진법'(과로사 방지법)의 제정을 이끌어냈다.

한국에서도 2018년 반올림이 10년 넘는 싸움 끝에 삼성과의 합의에 도달하고, 김용균씨의 어머니가 나서 산업안전보건법을 고치는 모습을 보면서 산재 유가족들도 힘을 내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조금씩 모임을 이어 가던 '한국 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직업계고현장실습희생자가족모임', '재난· 참사가족모임', '산재피해자및가족모임' 등 다양한 형태의 모임들이 활동의 싹을 틔우고 있다.

한 해에 2천여 명이 산재로 사망하는 현실에 비추어 이런 모임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산재 사망자의 1차 가족만 해도 한 해에 8천~1만 명이 발생하고 있다. 홀로, 각개로 견디고 견디던 그들이 이제 함께 세상을 바꾸자고 손을 잡은 것이다.


"제 남편의 자살은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유족모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비록 승소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남편과 같은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고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다른 유족들을 보니 '그래! 이들과 함께라면 끝까지 싸워보자!'란 생각이 들었고, 이젠 남편 산재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닌 일본사회에 과로사와 과로자살문제를 없애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일본 과로자살 유가족. ㅅㅇㄹㅋ


견디는 사람의 얼굴을 보라. 거기에는 인생의 비참, 삶의 비극, 구조의 폭력이 있지만, 동시에 비참함을 견디는 인간의 숭고함이 있고, 비극에도 다시 이어지는 인생의 이야기가 있고, 다른 구조, 다른 삶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의 얼굴이 있다.

한국에서 이제 본격화되는 산재 유가족들의 활동에 함께 하자.

 

 


각주1) 신형철, '호모 파티엔스'에게 바치는 경의, 권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해설 259면.
각주2) 박권일, 한국인의 대표감정, 한겨레신문 칼럼, 2019.3.8
*일본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 구술은 모두 <<과로자살 사례 연구>>보고서에 실린 「과로자살 이후 남겨진 유가족들의 이야기」(강민정, 2018)에서 인용.

 

 

 

 

 

특집2. "형의 이름을 밝히는 것, 그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 2019.04

[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

 

 

 

 

"형의 이름을 밝히는 것, 그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나래 / 상임활동가

 

 

 

 

사랑했던 이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건 어떤 무게일까.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다. 2017년 4월 비상식적인 장시간 노동과 비정규직 스태프 해고 문제로 괴로워한 형의 이름이 새겨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동생 이한솔씨를 지난 3월 30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tvN의 <혼술남녀> 조연출을 맡았던 고 이한빛 PD의 죽음은 감춰져 있던 방송업계의 장시간 노동, 비정규직 문제 등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사회적 관심과 응원,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 속에서 CJ E&M에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던 유족들은 마침내 회사의 공식 사과를 받았다.

재발방지 대책 마련의 일환으로 CJ E&M의 출연기금, 유족 기부금, 시민들의 성금이 모여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한 줄기의 빛'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2018년 1월 24일 설립됐다. 이후 여러 사건이 있었고 1년이 지났다. 그에게 현재 센터의 주요 사업과 활동에 관해 물었다.

"혼술남녀 사건 이후로 대책위 활동을 하면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센터)까지 이어온 운동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방송업계에는 다양한 문제가 있는데, 그걸 해결하기 위한 주된 사업이 바로 'Drama Safe 캠페인'입니다.

제작 가이드 라인은 캠페인 차원에서 나온 거고 노동법 강연, 쉼터 공간 마련 활동을 병행해서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현장에서 노동시간이 살인적이란 건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안 지켜지는 것도 있고, 아예 사각지대 영역도 있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상식적 노동환경으로 바뀔 수 있도록 다방면의 활동을 이어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까지 드라마 제작 개선활동 TF를 구성해서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활동이 한 축으로 있었죠. 또 다른 하나는 제보센터를 운영해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노조와 대응하는 건데요. 심각한 현장은 건별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센터는 디지털미디어시티역 근처에 있는데, 역주변엔 방송국이 참 많다. CJ E&M은 물론이고 MBC 본사, SBS 프리즘타워, KBS 미디어센터, YTN 본사 뉴스퀘어, JTBC 본사뿐만 아니라 IT 기업도 상당수다. 방송업계 노동자들이 하루의 상당 부분을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당연히 센터는 현장의 목소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홈페이지 익명 게시판, 온라인 채팅 등으로 제보가 들어온다. 다들 흩어져서 일하기도 하고 아직 자신을 드러내고 문제를 밝히기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있다. 지금도 방송업계는 장시간 노동이 심각하다. 다른 문제도 상당하지만, 하루 21시간씩 일하는 문제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다른 유형의 제보가 들어오기엔 갈 길이 멀다.

"작년만 하더라도 33건의 제보가 들어왔어요. 다 다른 드라마였어요. 제보가 안 들어오는 드라마도 있을 거에요. 웹드라마를 제외한 수치죠. 웹드라마도 다른 차원으로 심각한데요. 주로 들어오는 건 KMS(KBS, MBC, SBS), CJ E&M, JTBC 쪽으로 들어옵니다. 종편 합쳐 1년에 드라마가 백 건 정도 제작돼요. 그렇기 때문에 현장을 전수 조사하면 2건 중 1건은 노동시간 위반으로 걸린다고 예상해요."

고 이한빛 PD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고인의 죽음을 '평소 근무태도가 불량하고 나약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던 CJ E&M측도 유가족과 연대 단위의 대응과 지지로 결국 자사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관행적인 제작시스템을 선진화하겠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고인의 죽음은 명백히 개인의 죽음이 아닌 사회적·구조적 문제로 인한 것임을 주장했고 회사도 이를 결국 인정했다. 절대 쉽지 않은 싸움이었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그였다.

"응원을 많이 받아요. 그럴 때 제일 보람찹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그럴 때마다 건건이 기쁘죠. 형의 이름을 걸고 하는 활동이니깐요. 최대한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응원을 들을 때 기뻐요."

유가족은 관련자를 처벌하기보다 방송사에서 책임을 지고, 형의 죽음 이후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책이라 생각하고 노력해왔다. 그에게 센터 설립을 결정하기까지 유가족으로서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때와 비교해 지금은 질감과 온도가 좀 다른데요. 형은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고, 그와 더불어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어요. CJ E&M 측이 정말 밉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회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드라마 산업 전체와 묶여있는 것이기 때문에 형의 이름을 잘 간직하고, 기억하고 추모하는 차원에서 형이 바라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초기 협상 국면에서 처벌 같은 건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대신 CJ E&M이 선도적으로 드라마 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역할을 하라고 요구했고요. 부담감은 있었지만 해야 할 일은 명확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진 않았어요. 위로금을 받아봐야 마음이 쓰여서 쓸 수도 없었을 거고요. 센터에 사용하도록 하는 게 맞았던 거죠."
 
며칠 걸러 노동자의 자살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하지만 소식을 접한 이들의 눈총은 따가울 때가 많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둬야 했지 않느냐는 시선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있다. 유가족으로서 이런 사람들의 시선과 인식이 어떻게 다가올까.

"사회적 타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은 안타깝죠. 사회적 타살, 노동에 대한 관점이 아직 시대가 요구하는 감수성을 못 따라오는 것 같기도 해요. 과거 산업화시대 유산이 지금의 수많은, 특히 젊은 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그냥 시키는 대로 일하라는 게 익숙했던 사회가 이제는 새로운 감수성을 받아들여야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요새 위로와 지지가 많아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특히 젊은 층의 사람들은 어떤 문제인지 잘 알기 때문에요."

작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을 계기로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개정 됐고, 한편에선 산재, 재난 유가족들이 모여 직접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최근엔 노동자 죽게 한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자리에 함께하기도 했다. 이처럼 단순히 피해자의 자리가 아니라 문제를 드러내고, 변화를 직접 만들어가기 시작한 유가족들의 모임 구성과 활동에 대해 물었다.

"유가족들의 경우 비슷한 입장일 것 같아요. 삶의 선택지가 다양하겠지만 사실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유가족은 삶 자체가 온전하게 살아가지 못해요. 아마 유가족 모임을 만드신 분들도 당연하단 생각을 갖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가 떳떳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말이에요. 저도 그랬고요. 사회가 유가족을 존중해주고 함께 모여 활동해나가길 바랍니다.

그 활동의 의미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더불어 방송업계에 맞게 노동자에게 필요한 권리를 요구하려면, 모여서 문제를 토로하고 그것들을 이슈화시킬 수 있는 응집력과 조직들이 더 필요해요. 제작사는 거대 제작사까지 더해서 더 뭉치고 강해지죠.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비정규직, 프리랜서 등 다 흩어져 있어요. 조금은 어려워도 일터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모여서 함께 해결해나가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특집1. 산재 유가족, 그들의 못다한 이야기 / 2019.04

[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①]

 

 

 

 

산재 유가족, 그들의 못다 한 이야기 

 

 

 

 

정리 선전위원회

 

 

 

 

하루 5~6명의 노동자가 죽는 나라. 감춰지거나 혹은 밝힐 수 없는 노동자들의 죽음은 훨씬 많을 거라 짐작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신년사에서 안전, 특히 산업재해 예방에 정부가 정책 역량을 집중할 계획임을 거듭 강조했다. 이미 2022년까지 산재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하며 자살예방, 교통안전, 산업안전 등 3대 분야를 국민생명 의제로 설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일 노동자의 사망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한 시인은 얘기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한 사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 그만큼 사회안전망은 허술하고, 노동자의 건강권은 침해당하기 일쑤다.

 

일하다 세상을 떠난 노동자의 이야기는 주목받지 못한다. 더군다나 유가족들의 존재는 더욱 흐려진다. 그러나 여기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높여 사회를 바꾸기 위한 행동을 시작한 유가족들이 있다. 지난 3월 17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3명의 유가족과 함께 가슴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부터 최근 유가족 모임을 만들기까지의 경과를 이야기 나눴다.

- 대담 참여 유가족 : 장향미 님(ST유니타스 고 장민순 씨 유가족), 김미숙 님(태안화력 고 김용균 씨 유가족), 김용만 님(군포 토다이 현장실습생 고 김동균 씨 유가족)

  • 진행: 이나래 (상임활동가)
  • 기록: 박기형 (상임활동가)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용만 “제 아들 동균이가 한국 토다이 분당점에서 일하다가 뛰쳐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저 혼자 3~4개월 정도 힘들게 싸웠죠. 시민단체도 만나고, 전교조나 민주노총과 힘을 합쳐서 매주 수요일마다 광장에 모여서 집회를 6개월 정도 했어요. 1인 시위도 회사 앞에서 했죠. 1년 10개월가량 진행했습니다. 제대로 진상 규명 되지 못했어요. 사과 한마디 받아본 적도 없어요. 사측과는 협의가 돼서 끝났지만, 과제가 남았죠. 현장실습생 홍수현 양, 이민호 군 등이요. 그때 싸웠을 때 좀 더 강력하게 밀고 나갈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제 아들은 인터넷 쇼핑몰을 전공했어요. 자격증과 특허 5개씩 땄죠. 학교는 실적 때문에 전공이 다른 곳으로 내보냈어요. 회사는 인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겠죠. 실습 전에 학교 선생님과 상담했는데 대기업이라 대우가 좋을 것이라고 했데요. 또 선생님은 교장·교감의 압박을 받기도 했겠죠.”

 

김미숙 “용균이도 학교에서 견학 가면 전공이나 원하는 것과 맞지도 않고 현장 상태가 안전하지 않다고 했는데, 피해서 간 게 태안화력발전소였어요. 교수들은 취업률을 목표로 여기저기 알선해줬죠. 사실 전 안전하지 않다는 걸 느끼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에 나보다는 낫겠지 하고 보냈어요. 취업하는 것 때문에 걱정도 되고, 그런 상태에서 애가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상태가 됐죠. 동료들도 위험 취업하더라도 취업 하기 힘드니깐 여기서 버티다 경력 쌓아 이직해야지 생각했을 텐데 결국 다치게 되죠. 30대가 없고 아주 많거나 어리거나, 비슷한 또래들 많았다고 했어요. 자기가 위험한지 모르고 일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죠. 그냥 여기는 당연히 그렇게 일하는 곳인가 보다 생각했던 거예요.”

 

장향미 “동생은 웹디자이너였어요, 공단기, 영단기 등 상품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회사였어요. 회사에 다닌 지 2년 8개월 정도였고, 웹디자인 경력은 10년 정도 됐죠. 이 업종이 야근을 많이 해요. 그렇기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만을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죠.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새벽 3~4시까지 일을 했어요. 5일 중 3일은 야근이었죠. 포괄임금제여서 일한 만큼 제대로 돈도 못 받았어요. 일하면서 건강 상태가 나빠졌어요. 불면증, 스트레스로 밥을 못 먹어서 살이 많이 빠졌죠. 동생이 죽은 게 작년 1월이었는데 2017년도 여름부터 휴직하고 싶다고 신청했더라고요. 그런데 두 번인가 반려가 됐고, 마지막으로 동생이 퇴사를 할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해서 그때서야 한 달 휴직을 받았어요. 일로 괴롭힘을 당한 거죠. 일을 안 해야 하는데, ‘못 해’라는 말이 안 나왔고 동생 입장에서는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시야가 좁아져요. 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 거죠.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가 안 되는 거예요.”

 

 

산재 유가족에게 사건 발생 이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걸로 예상돼요. 실제 가족의 죽음 이후 가장 어려우셨던 점이 무엇이었나요?

 

장향미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요.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유가족들에게 있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책임은 회사에 있는데 회사가 아니라 유가족이 입증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회사가 자료를 다 가지고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뿐이에요. 자료를 요청할 때 우울증이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이지 회사랑은 관계없다고 얘기하기까지 했어요.”

 

김용만 “저희도 그랬습니다. 경찰이 우울증이 있는지 의료기록을 확인해오라고 했어요.”

 

김미숙 “여기 회사도 용균이 잘못으로 죽었다고 말했어요. 가지 말라는 곳 갔고 하지 말라는 것 해서 죽은 거라고요. 그런데 회사 동료들은 이상 신호가 발생하면 무조건 고치러 가야 한다고 말했어요. 얘길 듣고 회사 사람들이 용균이 잘못으로 돌리려고 하나보다 판단했죠. 사회 시스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에 판단이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직접 일하는 장소도 가봤죠. 현장 상태가 너무 열악했어요. 탈의실부터 모든 경로 다 가봤죠. 회사는 부검 관련해서도 술이나 약물 등 주장을 했어요. 회사가 개인의 문제로 돌리려고 했던 거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기 계신 분들의 경우 대책위원회도 꾸려지고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등이 함께 힘을 모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것들이 도움이 되었나요?

김미숙 “힘 있게 갈 수 있었던 점이요. 저 혼자만이 아니라 100개 넘는 단체가 함께 했어요. 사회 전체의 문제, 비정규직과 안전 문제에 대해 발언할 때마다 도와달라고 호소했죠. 사실 한 집 건너 한집이 비정규직이잖아요. 연대할 수 있었기 때문에 힘 있게 할 수 있었어요.”

 

김용만 “혼자서 시작했어요. 여기저기 찾아다녔죠. 가정이나 개인의 잘못이라고 하는데, 증거를 찾아서 입증해야겠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회사에서 동료들 입단속을 시켰더라고요. 6~7월까지 증거 수집하러 혼자 다녔어요. 언론에 알리려고 했는데 자살 사건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기피하더라고요. 조그맣게 대책위가 생기면서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내가 죽더라도 이거는 해야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서 한 사람의 목숨이 아니라 가정과 다른 사람들의 삶이 파괴됐어요.”

 

 

그렇다면 산재 유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정부와 사회의 지원은 무엇이라고 보세요?

 

장향미 “산재 신청의 문턱이 높아요. 입증자료 모으는 것부터가 힘들죠. 회사가 순순히 내주지 않거든요. 저희도 법원에 증거보존신청, 판결까지 받아서 받아냈어요. 그런데도 회사가 불성실하게 자료를 줬죠. 법적 강제력이 없어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거죠. 어떻게든 은폐시키려고 해요. 법적 강제력 없는 상황에서 자료를 확보하는 싸움이 불가능합니다. 개인 대 조직의 싸움이기 때문이죠. 대책위와 함께할 수 있어서 가능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유가족이 그렇게 못하기 때문에 포기해요. 그런데 자료를 모아도 문제에요. 추가 자료요청, 진술요청, 자료보관 등, 산재 판결이 날 때까지 죽음을 안고 있어야 해요. 경제적 문제를 떠나서 이게 끝나지 않으면 일상으로 돌아가지를 못해요. 오래 걸리는 산재승인 기간문제도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산재인정 여부나 개인보상 차원의 문제로 여겨지고, 그러다 돈 때문에 저러는 거 아니냐는 유가족에 대한 비난이 가해지기도 해요.”

 

김미숙 “서로가 자책하게 돼요.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는데, 거기만 안 보내면 되었는데, 그만두라고 왜 말하지 못했을까, 했는데도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여러 생각이 들어요. 치유는 그냥 되지 않아요. 법 제도가 바뀌고 개선되는 상황을 봐야 치유가 되는 거예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죽은 사람이 헛되이 죽은 게 아니라는 걸 입증해야죠.”

 

김용만 “죽을 때까지는 고통 속에서 가슴 아파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변화 없이는 그런 상황이 반복될 거잖아요. 그걸 지켜보기 힘들어요. 나 혼자보다는 같이 뭉쳐서 해결해나가고 싶어요. 사실 삶 자체도 피폐해졌습니다. 저도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자요. 1년 동안 악몽에 시달렸어요.”

 

 

유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다시는 이 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어떤 게 필요할까요?

 

장향미 “정부도 문제의식을 점차 가지게 되는 중인 것 같아요. 사실 개인의 문제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약한 사람만 있는 걸까요? 사회 구조적 문제죠. 자살자 한 명으로 인해서 영향을 받는 사람은 평균 8명 정도 될 거예요. 그에 따른 여파가 있을 거란 거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케어를 해줘야 해요. 하지만 현재로는 없죠. 지자체에서는 연락을 취하고 매뉴얼을 갖추려고 하는 것 같은데 초반이라 배려 없이 기계적이고 유가족 입장에 와 닿지 않아요.”

 

김미숙 “사람 목숨값이 제일 싼 거로 취급되잖아요. 영국처럼 강력하게 기업을 처벌하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용만 “교육부의 개악 안으로 그동안 요구해온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 노력이 물거품이 됐어요. 다시 요구해야 합니다. 사실 공공기관의 정책을 신뢰하기 어려워요. 유가족, 시민단체, 전문가 등의 참여하에 바꿔나가야 해요.”

 

 

장향미 님은 과로사·자살 유가족 모임에 참여하고 계시고, 다른 두 분도 얼마 전 출범한 산업재해, 현장실습 유가족 모임에 함께 하고 계시는데요.

 

장향미 “일본 과로사, 과로자살 모임에 참여했던 연구자분이 주도해서 유가족들과 연락이 닿게 되어 모임이 결성됐어요.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회사와 어떻게 싸워나가야 하는지 배워나가 다른 가족들은 시행착오를 안 겪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유가족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에요. 일련의 절차와 노하우, 쟁점 등을 다룰 생각입니다. 누구도 내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죠. 일본은 유가족 모임이 지속되면서 과로사 방지법까지 만들어 냈어요. 향후엔 이를 한국에서도 실현해보고 싶은 바람이에요.”

 

김미숙 “힘을 모아서 싸워나가야 해요. 법제도를 개선해나가는 것조차 유가족들이 나서지 않고서는 못해요.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한테 닥치지 않을 것이라 자기 문제가 아닐 것이라 생각하기 쉬워요. 유가족들이 뭉친다면 사회적 목소리도 커질 거라 생각해요.”

 

김용만 “들불처럼 번질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 산재사망 유가족 모임이 서로 연대하지 않으면 사회를 바꾸기 쉽지 않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 전해졌으면 하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미숙 “인식의 변화, 법제도 변화, 노동과 안전에 대한 생각이 전환되어야 해요. 사회가 안전하게 상생하여 삶이 윤택해지려면 우리가 나서야 해요. 의지가 있다고 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있고, 기업이나 정치인들은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잖아요.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예요.”

 

장향미 “정부도 기업도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해서 경제가 안 좋아진다고 하는데요. 그런 논리면 소위 선진국들은 다 경제위기에 처해야겠죠.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려고 하는 건 기업의 입장을 반영하는 거예요. 출산율이 낮아져서 위기라고 하는데 안전하지 않은 나라에서 누가 아이를 낳고 싶겠어요. 자살률, 산재사망률 높은 이유가 뭔가요. 해결 방법을 1차원적으로 접근하면 안 돼요.”

 

김용만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유가족들이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싸워나간 것처럼 같이 일어설 수 있어야 해요. 생업에 쫓기다 보니 힘들겠지만, 당사자들이 힘들더라도 서로 다독여주며, 서로 연락을 해서 뭉치고 연대를 해서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노동자-기업이 상생해서 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해요.”

 

 

 

 

 

특집3. 지금 당장, 성평등 노동을 외치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이을 활동가 인터뷰 / 2019.03

[특집 지워지지 않는 존재, 여성 노동자] 





지금 당장, 성평등 노동을 외치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이을 활동가 인터뷰





선전위원회  





올해로 111주년을 맞이한 날이 있다. 바로 세계 여성의 날이다. 빵과 장미가 상징이 되어 장미를 여성에게 주며 기념하는 날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19년에도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장밋빛과 거리가 멀다. 190838일 미국 여성 노동자 15천 여명이 외친 구호는 오늘과 맞닿아 있다. 당시 여성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심지어 18시간 동안 일해야 했고 그들은 외쳤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이 아니라 휴식이다!”, “우리는 빵(임금)과 장미(권리)를 원한다!” 


한국에서도 올해 38일 제33시 스탑 조기퇴근 시위가 열린다. 채용 성차별, 최저임금 개악, 성차별 조직문화를 끝장내기 위해 바쁘게 준비하고 있는 한국여성노동자회 사무실을 지난 228일에 방문해 이을 활동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요즘 집회 준비하시느라 많이 바쁘시죠. 한국여성노동자회가 1987년에 창립되고 지금까지 활발히 활동 중인데요.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성평등 노동이 주요 슬로건이에요. 인구의 절반, 노동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존재함에도, 여성이 어떻게 일 하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잘안 드러나고 있다는 걸 뜻해요. 법이나 정책을 살펴보면 남성 중심적이죠. 거기에 대해서 여성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분명한 인식 속에서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울려 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동 문제에서도 여성 노동은 부차적이거든요. 노동 안에서 성평등해지는 것,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안전하게 일 하는 것이 성평등이라는 키워드 안에 담겨 있어요. 최근 주목하고 있는 건 성별임금격차 문제예요. 임금으로 차별 받는 것 안에 무수히 많은 것들이 포함돼요. 임금 차별은 성차별의 총합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해서 고용상 차별 받는 문제도 시정되어야 하고, 문화가 바뀌어야 해요. 그래야 성별임금격차가 해소 될 수 있는거죠.” 



채용 성차별은 노동권, 시민권을 침해받는 엄연한 범죄 행위에요. ‘여자보다 남자가 일 잘하지’, ‘여자는 임신, 출산 때문에 생산력이 떨어져라는 인식 자체가 심각한 시민권 침해인거죠. 채용을 안 하는 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여성들이 나쁜 일자리로 몰리고, 빈곤에 빠지고, 삶을 영위하기 힘들게 만들어요. 이뿐인가요. 승진, 배치, 정규직전환 나중에는 퇴직까지 다 이어져요.” 



얘기하신 채용 성차별 문제는 그간 여러 활동의 고민이 묻어나는 슬로건 같네요.


실제 채용 성차별 문제는 심각한 문제예요. 남녀고용평등법이 생긴지 30년이 지났어요. 71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되어있지만, 처벌규정은 벌금 500만원에 불과하죠. 사실 유명무실해요. 관행이 계속 있어요. 과거 90년대 채용 공고에 아예 여성 키, 몸무게, 외모 준수를 명시했죠. 여성운동 진영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성과가 있었어요. 그런 활동이 있은 후 최근 점수 조작 사건이 확인된 거죠. 다시 재점화가 된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사이 공백이 길기도 했고, 여성 스스로도 채용 과정에서 임신, 출산 계획, 남자친구 여부 묻는 걸 당연시 생각하기도 하죠. 기분은 나쁜데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고민스럽고, 이런 걸 묻는 게 법을 어기는 거다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아요.” 


제일 기억에 남는 사례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면접을 보는데 우회적으로 결혼을 안했냐는 질문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솔직하게 이혼했다고 대답했더니 갑자기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서 이혼했다는 건 성격상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하더니 결국 채용이 안 된 거죠. 다른 한 경우는 디자이너 면접을 보러갔는데 쓰리 사이즈(가슴, 허리, 엉덩이)를 물어보면서 피팅 모델해야하니깐 사이즈를 물어본다는 거예요. 사실 시민사회진영에서도 결남출(결혼, 남자친구, 출산) 질문이 횡횡해요. 지역운동과 결합되어 있는 한 풀뿌리운동 단체의 채용과정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면접관이 나름 배려 차원에서 임신 계획을 물어봤다고 하더라고요. 진짜로 여성 노동자를 배려하려고 했다면, 육아휴직과 출산휴가문제는 뽑고 나서 협의하면 될 문제라고 생각해요. 면접 자리에서 물어보는 건 그 자체가 당사자에게 부담이고, 위계적인 불법 질문입니다.” 



그런 상황과 문제가 여성 스스로 자기 검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애초에 일자리를 구할 때 나에게 가능한 것들, 결혼과 임신, 육아 계획이 있다면 다니지 못할 환경이 갖춰진 곳은 애초에 선택조차 못하게 되죠. 그리고 그런 환경이 주어진 곳은 드물고요. 


여성들은 출산해서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 친구들만 봐도 그걸 많이 고려하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찾는 게 아니라, 근거리에 있는데, 사장이 눈치 안 주는 데, 근무시간이 유동적일 수 있는 데를 많이 찾죠. 이런 사회 전반적 분위기와 조건이 채용 성차별로 연결되는 거예요. 순응하는 질서가 있죠. 인터뷰한 사례 중 어떤 분은 커플링을 빼고 면접장소에 들어 간데요. 확실히 반지를 빼고 들어가면 결남출 질문을 덜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커플링 끼면 그거 보고 남자친구 있냐, 결혼 계획 있냐 묻고요. 실제 계획이 없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5년 안에 없다고 대답을 한다는 거죠. 당사자에겐 확실히 부담이에요.” 



순응, 자기검열, 타협 아닌 타협을 해서 직장에 들어가는 거네요. 남녀고용평등법이 30년 넘게 존재했는데, 사람들은 법 자체를 많이 모르는 것 같아요. 왜 이 법 자체가 주목을 받지 못했을까요?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요. 남녀고용평등법의 주무부처는 고용노동부예요.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성평등, 젠더 의식 자체가 없죠. 고용 평등에 관심이 없어요. 채용 성차별 문제도 2017년 한국가스안전공사 사건을 계기로 밝혀졌어요. 게다가 국민은행, 하나은행, 신한은행까지 금융권에서도요. 점수를 조작해서 합격했던 여성들을 떨어뜨렸죠. 매우 심각한 성차별 채용 비리 범죄죠. 하지만 작년에 국민은행은 채용 성차별 1심 판결에서 벌금 500만원을 받았어요. 500만원은 그런 대기업에는 껌값에 불과하죠. 500원 느낌 아닐까요? 그러니 기업은 위반해봤자 벌금 정도니 그냥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 뽑자는 태도를 갖기 쉬워요. 게다가 직권조사해서 증거를 잡지 않으면 밝히기 쉽지 않아요. 그러니 면접 2차까지 여성이 훨씬 많은데 3차 올라가면 확 줄어든 인원을 보고 여성들은 차별 받는 것 같다고 생각할 뿐이죠. 채용 성차별 문제가 어려운 지점이 그런 거에요. 거기에 취준생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얘기하기도 어렵죠.” 



여성들이 겪는 차별의 문제는 실제 존재하는 것인데도 정황으로만 취급되는 현실이네요. 한편에선 여성이 그 직무에 적합하지 않은 거 아니냐, 여성이라고 차별 받았다고 하는 거 억지 아니냐는 시선이 많은 것 같아요. 


맞아요. 그리고 여성 스스로도 알기 어려워요. 공채 시스템의 문제를 얘기하시는 분도 있어요. 걸러지는 시스템이죠. 사람들을 대거 모집해서 걸러요. 그런데 당사자들은 왜 떨어졌는지 모르죠. 그냥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힘들어하죠. 저희 대표의 딸과 친구들 이야기인데, 여자라서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그게 또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고,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그랬나 싶어 자존감이 막 떨어진다는 거예요. 정황만 있지 정확한 증거도 없고, 어떤 기준이 나한테 공개되는 것도 아니고, 채용 당사자들에게 밝혀지지 않죠. 그러니까 개별 여성들은 자기 탓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원형 탈모가 생기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이 많아요. 채용 성차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인거죠. 그렇기 때문에 고용노동부에 익명신고센터만 만드는 게 아니라, 채용과정에서부터 채용 성비를 공개하라, 왜 이 과정에서 떨어졌는지 밝히라고 요구했지만 먹히지 않았죠. 블라인드 면접이라고 하지만 최종으로 가면 얼굴 다 공개되고, 서류에도 군필, 미필 이런 거 아직도 체크하게 되어 있거든요. 거기에 해당 사항 없음으로 체크하면당연히 여성인 게 밝혀지죠.” 



채용 성차별뿐만 아니라 성별임금격차 해소도 중요한 요구인데요. 성별임금격차라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문제도 있다고 보여지네요.


 성별임금격차라는 한 키워드 속에 여성 노동의 다양한 의제가 담겨있어요. 여성의 임금이 저임금화되어 있고 소위 싸구려노동 취급을 받죠. 그래서 미투운동 이후 해외에선 페이미투운동이 일어났고요. 채용 성차별을 시작으로 안 좋은 일자리에 내몰리고, 경력단절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고용단절을 겪는 것, 고용단절이 되면서 질 나쁜 일자리로 더욱 고착화 되는거죠. 같은 일을 하면서 임금을 적게 주는 건 눈치 보이니깐 아예 여성의 일이라고 해서 떼어 버리는 것, 회사에서 승진하거나 경력이 올라갈 수 없게 단순한 업무로 임금을 낮게 처버리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젠더 관점에서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재해석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혹시 주목해야 한다고 보는 의제가 있으신가요?


여성 노동자 건강권 문제를 더 파고 들었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부터 그런 흐름이 있는 것 같긴 해요. 여성 노동자들이 많은 사업장, 직군, 직종에서 노동환경, 작업환경이 더 많이 얘기되면 좋겠어요. 그 안에서 신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 그리고 사회적 건강도 다뤄져야죠.” 


노동자 건강권 운동에서도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 고민이 많은데 그것 역시 남성의 얼굴을 띄지 않았나 싶어요. 많은 수의 여성들이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죠. 왜 여성들이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 하게 됐는지 얘기 되는 게 필요해요. 임신출산 문제, 육아 문제도 건강권과 연결되죠. 정말 많은 수의 여성들이 임신출산, 육아 문제로 해고 위협을 당하거나, 막상 들어가도 불이익을 당해요. 파리바게트 사례만 봐도 그렇거든요. 80% 넘게 여성이 있는데도 여성 생애주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요. 생리, 임신출산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도 말이죠. 생리 때 화장실에 못가고 일하다 질염에 걸린다던지, 임신을 해도 노동시간에 대한 고려가 인력 부족을 핑계로 전혀 안 되서 유산을 한다던지. 임신 했으니 차라리 그만둬라, 아니면 휴직해라. 당사자는 건강하게 일할 수 있고, 하고 싶은데 그런 게 전혀 안 되는 거죠. 그런 문제가 없도록 하는 활동이 필요해요.” 


작업중지권도 다뤄지는 게 필요해요. 독일은 작업거절권이라고 해서 법에 명시되어 있죠. 한국도 산업안전보건법에 있긴 하지만 협소하게 해석되고, 여성이 경험하는 위험까지 연결되진 못해요. 노동안전보건 운동에서도 작업중지권과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을 연결해 본 적이 없죠. 2차 가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작업중지권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피해자로만 머무는게 아니라 피해를 당한 노동자로서 취할 수 있는 권리들, 그 권리가 다각적으로 재해석 될 필요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