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호 기획 7. 청소년 노동건강권 활동을 돌아보며 -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이수정 활동가 인터뷰 / 2020.10·11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마주침 ]

청소년 노동건강권 활동을 돌아보며 -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이수정 활동가 인터뷰

이숙견 상임활동가

2014년 1월 24일, CJ 진천공장 현장실습생으로 나간 김동준군은 폭언과 폭행,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왜 현장실습 과정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로 시작한 청소년 노동인권활동은 연구소 내 청소년 노동건강팀을 구성하게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아래 청노인넷)와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주었다. 청노인넷에서 2006년부터 핵심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는 이수정씨를 만나 청소년 노동인권 활동과 과정에서 고민 그리고 향후 청소년 노동안전보건 활동 방향을 나누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의 시작

"2003년 실업계고 현장실습생이 엘리베이터 설치하는 과정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게 되면서 현장실습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단체 전교조 실업위, 인권운동사랑방,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민주노동당 등들이 모이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실업계고 현장실습 실태조사를 하게 되었고, 당시 열악하고 위험한 현장실습 상황을 드러내면서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교육부의 2006년 직업계고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을 이끌어 냈고요. 저는 2006년 '노동자의 벗'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를 알게 되었고, 이후 한국비정규노동자센터 소속(민주노무법인)으로 청노인넷 활동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청노인넷은 네트워크로 모인 활동 단체로 많은 성과를 냈다. 실제로 '똑똑, 노동인권교육 하실래요?(아래 똑똑)'를 함께 만들고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많은 지역에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확산과 교육과정에서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전국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더불어 교육을 통해서 만난 청소년은 미래의 노동자가 아닌 현재 일하는 청소년 노동자로서 밑바닥 노동 현실을 직면하게 했다.

"현장실습 대응활동으로 시작했으나 청노인넷에 모인 단위가 공통으로 교육에 관심이 많았어요. 2006년 현장실습제도 정상화 방안을 끌어내면서 현장실습대응보다 자연스럽게 교육활동으로 모아졌어요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함께 만든 내용이 '똑똑'이었지요.

처음부터 완결된 내용이 아니기에 워크숍을 통하여 내용을 보완하고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냈어요. 공부방, 학부모, 청소년단체, 노동조합활동가 등이 전국에서 참석하였습니다. 첫 번째 워크숍을 2005년에 시작하였고, 2010년까지 매년 워크숍을 하면서 전국단위 활동가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더불어 학교 안에서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도 느끼고 있었기에 전교조 교사 대상의 직무연수도 함께 배치했죠.

학교나 지역에서의 교육은 실제로 일하는 청소년의 심각한 노동현실을 직면케 하였고, 이 과정에서 필요한 실태조사-예를 들어 2008년 최저임금 실태조사, 2011년 10대 배달노동실태, 2014년 10대 밑바닥 노동 등-로 이어졌으며, 문제 제기와 대응을 요구하는 활동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네트워크로 구성되었지만, 참가자가 관심과 이슈를 가지고 참석하였고, 과정에서 실태조사와 문제에 대한 방안 마련을 요구하는 대응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2011년 광주 기아자동차에서 발생한 현장실습생 뇌출혈사건은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대부분 직업계고 현장실습문제에 관한 상담은 취업 이후 임금문제 정도였는데, 기아차 사건을 통해 확인된 현장실습제도의 문제점은 확인할수록 심각했다. 이 사건은 현장실습생이 도장부서에서 주 7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이며, 취업률을 위해 산업체의 단기간 노동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는 현장실습 제도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청노인넷에 함께 했던 청소년단체와 인권단체는 2012년 학생인권조례 활동에 집중하면서 네트워크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고, 결국 남은 단체의 역량으로 현장실습제도를 바꾸기에는 벅찬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하여 현장실습제도와 실습생에 대한 금속노조 등 노동조합의 관심과 연계를 모색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그전까진 노동조합이 현장실습제도와 현장실습생에 관한 관심이 없었어요. 잠깐 왔다 가는 학생으로만 생각했지 동료로 생각하지 못했었죠. 노동조합이나 금속노조에서 관심갖게 되었고, 대책위가 만들어지면서 적극적으로 결합하였지만 이후 청노인넷 활동으로 함께 이어지지는 못하였습니다.

더불어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를 바라보는 입장 차이와 지역과의 소통과정에서의 여러 문제로 현장실습제도는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정도로 마무리되었어요. 청노인넷도 단체들이 빠지면서 단체결합에서 개인이 결합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죠.
이렇다 보니 이슈를 중심으로 모여 집중하고 빠른 대응이 가능했던 네트워크의 활력이 떨어지게 되었고, 자발성과 책임성이 요구되는 네트워크 활동의 지속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후 현장실습생의 사망사건은 지속적으로 발생된다. 현장실습생이 야간작업 중 폭우로 바다에 빠지는 사고, 야간에 폭설로 공장지붕이 무너지면서 작업 중인 실습생이 사망하였고, 괴롭힘과 과로노동으로 자살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연구소는 현장실습생의 산재사망사건 대응과 노동안전보건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청노인넷을 방문하였다.

한노보연의 결합

"현장실습생 고 김동준님 사건 이후 연구소에서 최민 활동가와 김형렬 소장이 찾아왔어요. 당시 충북지역에서 대응하고 있었고 청노인넷은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대응 수위를 고민 중이었기에 연구소가 제안한 현장실습 실태조사와 대응활동에 적극적인 노력을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기존 단체와는 다른 노안단체이기에 기대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부터 최민 동지가 연구소 상임활동가로 청노인넷에 함께하면서 현장실습 제도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다시금 하게 되었어요.

2015년 전교조,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3차례 단위별 간담회를 진행하였고, 2016년 직업계고 실습실 실태조사는 기간 직업계고 대응활동에서 다른 돌파구를 보여주는 활동이기도 했다. 당시 단체들이 빠지면서 침체되어 있던 청노인넷의 상황에서 연구소의 결합(특히 무게감을 싣는 상임활동가의 결합)은 활력이 되었어요."
 
연이어 발생한 전주 LG유플러스 사망사건과 제주 음료수 제조공장 현장실습생 사망사건은 전국 현장실습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게 하였고, 간담회에 참석한 단위(민주노총, 금속노조, 전교조실업위원회, 비정규직없는세상,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가 대책위 구성에 함께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산업체파견 현장실습 폐지를 내세우며 공세적인 대응을 하였으나, 결국 현장실습제도 개선에 더 초점을 맞춘 당사자 조직의 요구와 지역 및 전국 대책위 내 여러 버거움으로 결국 지금의 현장실습제도로 머물게 된다. 이 과정에서 대책위도 해소하면서 결국 개인의 활동가와 한노보연이 함께하는 청노인넷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 대응활동은 연구소에도 많은 경험을 하게 한 활동이었으나, 과정에서 현장실습생, 직업계고학생, 그리고 교사와 노동조합 등 모두의 동력이 함께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방안 마련이 힘들다는 것도 확인하였다. 2019년부터 연구소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활동으로, 청소년과 교사, 활동가를 대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으로 전환을 모색 중이다. 그중 하나가 청소년 노동인권활동가 대상 노동안전보건 워크숍이었다.

"2019년에 이어 청노인넷과 함께 준비 중인 청소년 노동안전보건 워크숍은 청노인넷에서도 시너지가 되는 활동이며, 청소년 노동안전 이슈의 전국화로 연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어요. 하지만 다시 지역과 만났을 때 그러지 못한 상황을 확인하게 되었고, 올해 심화과정을 준비하면서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기대했던 사업이 될까, 오히려 교육 아이템 중 하나가 되어버리진 않을까 하는 우려도 됩니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은 교사와의 접촉면을 더 넓혀서 교사들이 수업에서 풀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교과과정도 융합교과, 선택 교육 등으로 바뀌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교사가 교육 내용을 잘 소화해야지 학생들에게 전달을 잘할 수 있습니다.

최근 나오는 안전보건 교과서도 내용이 문제가 많은 것도 있고, 안전보건에 관한 내용을 교사가 잘 모르니까 교육이 잘 안됩니다. 한노보연이 그러한 역할을 해주게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소의 콘텐츠를 잘 전달하는 것', 노동교육원이 출범했는데 노동안전보건 부분에 대한 콘텐츠가 전혀 없어요. 그러한 비워 있는 부분을 잘 채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나서 내용을 잘 전달하고, 방향과 고민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지금과 같이 안전보건에 관한 연구소의 역량을 투여하는 것이 필요하며, 지금의 한노보연은 그러한 역할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현장실습생의 노동 현실을 쫓아가며, 청소년 노동권과 건강권이 실현될 수 있도록 활동과 연대를 이어나가고자 한다.

청소년 노동안전보건운동의 과제

연구소는 실습실 실태조사를 통한 직업계고 실습실의 작업환경개선 필요성을 의제화하였고, 청소년의 노동안전보건 플랫폼 구축 연구를 통하여 알 권리 실현의 중요성도 제기 중이다. 이러한 활동은 청소년의 노동안전보건 감수성 키우기를 토대로 청소년이 당사자로서 중심성을 가지고 안전과 건강의 주체로서 세우기 위함이다. 연구소의 청소년 노동건강권 활동을 다년간 지켜본 청노인넷 활동가로서 좀 더 연구소가 집중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아래 한노보연)의 무기는 전문성이고, 청소년 노동에 대한 높은 감수성과 남다른 관점이 강점이기에, 그러한 강점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제대로 발휘하는 것입니다. 연구소의 역할은 역량을 계속 축적해서 여기저기에서 내용으로 순환되고, 그게 바탕이 되어서 당장 드러나지 않더라도 지속성을 갖고 연구소가 할 수 있는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심화 워크숍이 마무리되면 다른 형태의 고민도 해보면 좋겠어요. 청노인넷만 파트너로 생각하지 말고 한노보연이 중심이 되어서 청소년팀에 자문위원이나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회원들을 결합하고, 자문하는 방식도 고민할 필요가 있겠죠. 청소년과의 접촉면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지금은 역량의 한계도 있기에 에너지가 분산되지 않도록 한두 군데로 사업을 집중하거나, 몇 개년 계획으로 집중할 장기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일터 200호를 맞이하는 10월호 인터뷰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누며, 200호를 맞이한 일터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꾸준히 목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0호가 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거 같아요.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것, 컨텐츠를 축적한다는 것은 노력하지 않으면 대단히 어렵습니다. 청노인넷 활동 중 아쉬운 것은 네트워크 활동이니 총회 등 행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청노인넷 활동에 대하여 시기별로 정리된 내용이 없습니다. 그러한 부분에서 아카이빙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터는 여러 매체의 홍수에서 관점을 담은 몇 안 되는 매체로서 의미가 크고, 누군가 이 분야에서 관심을 가질 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 연구소의 전문적인 이야기는 기획기사로 집중적으로 다루고, 나머지는 회원들 이야기, 어설프긴 하지만 쉬어가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함께 나누는 지면이 할애되었으면 해요. 연구소에서 '이런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구나' 알 수 있는 지면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축하합니다."

200호 기획6.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으로 안전한 현장 만들자! -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야 라이 위원장,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대표 인터뷰 / 2020.10·11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마주침 ③]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으로 안전한 현장 만들자! -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라이 위원장, 천 이주노동자센터 김성 대인터

유청희 상임활동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노동안전보건 운동은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 산업재해 피해자와 사망자의 유가족들의 기나긴 싸움이 만들어냈다. 많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조항이 이들의 싸움으로 바뀌고 개선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자본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은 나 몰라라 한 채 이윤만을 좇으며, 노동자의 죽음까지도 비용으로 처리할 뿐 현장을 바꾸는 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끈질긴 싸움으로 안전과 보건 관련 제도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가운데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어 현장 변화가 너무나도 더딘 곳이 있다. 바로 이주노동자들의 일터다.

이주노동자들의 산재발생률은 한국인의 7배로 수치 면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이주노동자들이 산재신청에 대해 잘 모르거나 사업주가 승인하지 않아서, 또는 미등록 신분이 불안해 많은 경우 산업재해 신청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사업장에서 일상적으로 듣고 겪는 고성, 인종차별 발언, 폭행은 이들의 정신 건강을 갉아먹기도 한다.

이런 이주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노동안전보건 운동은 무엇일지, 이주노동자들이 운동의 주체로서 서기 위해서는 노동안전보건 운동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 법의 사각지대를 어떻게 메꿀 수 있을지를 묻기 위해 이주노동자노동조합(아래 이주노조)의 우다야 라이 위원장과 포천 이주노동자센터의 김달성 대표를 만나보았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사업장 변경 자유를 위해, 또 이주민 차별을 막기 위해 싸워왔다. 2014년부터 노조 위원장직을 맡아 이주노동자 처우 개선과 조직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김달성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과거 노동운동 활동 후 일반 교회 목회 활동을 이어가다가 3년 전부터 영세 소규모 제조업 사업장과 농업 사업장이 분포해있는 포천 지역에서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병들게 하는 사업장 변경 제한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게 최초 3년간의 노동 시간을 준다. 사업주가 승인한다면 1년 10개월간 더 일을 할 수 있고, 또 한 번의 승인이 있으면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재입국할 기회가 생긴다. 사업장 변경은 온전히 사업주의 권한이기 때문에 사업주가 근로계약 해지를 원할 경우, 사업장의 휴업, 폐업,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또는 부당한 처우가 있을 경우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그 외에는 사업주 승인이 있어야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직장에서 한국인 관리자에게 폭행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한다 해도 사업주가 승인하지 않으면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산업재해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더라도 사업주 승인 없이 직장을 옮길 수 없는 이들에게 강제노동은 먼 얘기가 아니라 매일 맞닥뜨리는 현실이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노동자로 들어와 있는데 직장 변경 권리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강제노동에 노출되는 거죠.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고 한계를 넘어서면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런 건 전혀 고려가 되질 않아요. 사업장에서 산재사고, 또 산재사망도 일어나는데 열악한 근로조건이 개선되지를 않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계속하고 있어요. 사업주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개선 노력을 하지 않아요. 권리가 인정되어야 사업주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할 수가 없죠.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하는 이주노동자도 있습니다. 사업장 이탈해서 미등록 상태가 되는 노동자도 있고요."
     
김달성: "산재보상신청 하는 데 거기서부터 걸려요. 사업주 동의가 없어도 산재신청할 수 있지만 방해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합법적인데도 못 하는 거죠. 고용허가제 첫 기간은 3년이고 1년 10개월 연장하기 위해서 사업주 승인이 필요하고, 그 후 본국에 돌아갔다가 재입국을 할 때도 사업주 승인이 필요합니다. 그런 법과 제도하에서 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산재보상보험 신청조차 이주노동자가 포기하게 만드는 거예요. 법과 제도적 문제가 노동자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거죠. 고용허가제가 산재를 조장하기도 합니다.

올해 1월, 양주에 있는 회사에서 보일러가 폭발해서 노동자 2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대재해를 당했는데 사망자 중 1명이 이주노동자였습니다. 재해자 중 절반이 이주노동자였고요. 재해당한 이주노동자가 사고 충격이 심해서 불안해 일을 못 하겠다고 하면서 사업장 변경을 신청했는데 사업주가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세 노동자가 외상 후 스트레스를 심각하게 앓았고 담당 의사도 사고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거든요. 사업장 변경하려고 5개월 넘게 요구하다가 겨우 승인받았습니다."

한국인의 7배 산재발생률

2018년 이주노동자의 산재발생률은 1.42%로, 0.18%인 한국인 노동자보다 7배가 높다. 그만큼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이다. 영세 사업장이 대다수이다 보니 사업주 역시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경우가 많다.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유해하다고 지적하니 어떤 사업주는 "30년간 내가 썼지만 아무 문제 없었다"고 했다는 우다야 라이 위원장의 말이 씁쓸하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단기간 머물다 가지만 유해 물질을 취급한 후 당장 나타나지 않을 질환이 나중에 나타날 수 있어 그 위험 정도를 알기 어렵다. 이런 위험을 알고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안전보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안전장치가 필수적이겠지만, 그런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이주노동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김달성: "3년간 만나 본 이주노동자 중 안전교육을 받았다는 사람은 한, 두 명 정도뿐이에요. 99%가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거의 없는 거죠. 공장에 안전장치도 설치되어있지 않고요. 올해 초 양주 가죽공장 사고를 보면 폭발이 엄청 크게 나서 주변 공장들이 파편 맞을 정도였습니다. 가죽공장은 안전관리사가 있어야 하는 업종인데, 안전 관리사를 두지 않고 안전조사를 하지 않아 기소됐거든요. 큰 보일러를 쓰기 때문에 안전 관리사가 있어야 하는 공장인데 없었습니다. 안전장치가 있어도 빼놓고 일하게 하는 것이 현실이고요."

산재예방을 위한 제도는 전무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지 않는 소규모 사업장이기에 산재예방은 먼 얘기일 뿐이다. 예방은 고사하고 산업재해가 빈번히 일어나는데도 산재보상보험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주노동자들이 고용되는 농축산어업의 경우 법인이 아닌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사업주가 산재보상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고나 질병이 발생하는 사업장에 법을 적용해 산재를 예방하게 만들고 정부가 작업 환경 감시를 통해 안전을 유지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정부 정책에 그런 고려는 전혀 없어 보인다.

농축산어업에서는 법인이 아닌 사업주에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문을 열어두지만, 이들에게 산재보상보험법이나 건강보험에는 가입을 강제하지 않아 노동자 보호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본적인 산재보상보험과 건강보험 보장이 시급해 보인다.

김달성: "농어촌은 대부분 기계화되어 있습니다. 산재가 적지 않아요. 그런데 5인 미만 사업장이 대다수라서 산재보상보험 적용이 안 되죠. 어떤 이주노동자는 과수원에서 일하다가 허리뼈가 부러지는 재해를 입었는데, 산재보상도 안 되고 근로기준법으로도 보상을 못 받았습니다. 1년간 1억 넘는 비용이 들었는데 네팔 공동체, 일반 시민들이 기금 모아서 병원비를 지원해줬습니다.

5인 이상 농어촌 사업장은 산재보상보험법 적용 대상이지만 이주노동자와 사업주가 주종관계나 마찬가지라서 산재보상 신청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근로기준법 63조(농축산어업 등에 근로시간, 휴게, 휴일 등 적용 제외) 때문에 제조업보다 더 옥죄는 상황이고, 하루도 안 쉬고 일하는데 수당도 없습니다."

이주노조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입국하는 인천공항에서 직접 사전 교육을 하기도 한다. 공항에 막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에게 고용허가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개선할 점, 노동3권에 대해 설명한다. 노동자에게 문제가 생길 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산재신청, 보상 안내 등도 교육 내용이다.

이런 기본 교육은 사업주가 실시해야 하지만, 고용허가제는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사용'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노동자의 노동권, 건강하게 일할 권리에 관심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예상도 못 한 채 다치고 폭력에 시달리며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터 108호(2012.12) 표지에 실린 사진. 이주노동자들은 죽기 위해 이 곳에 온 게 아님을, 이 땅에 일하는 모든 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요구해나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출처: 부경이주공대위



안전한 현장을 위한 과제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사회는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사업장을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우다야 라이: "노동강도를 낮춰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하게 일할 수 있죠. 사업주가 산재보상보험법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만드는 것도 필요하고요. 산재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다시 고용하지 못하게 해야 안전에 신경 쓰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업장 점수가 높으면 이주노동자를 많이 고용할 수 있는데요. 성폭력이나 사고가 나면 감점 몇 점주는 식이죠.

이주노동자가 정해진 날짜에 귀국하거나 사고가 안 나면, 또 문제가 있어도 정부에 들키지 않으면 점수 잘 받아요. 노동자가 사망해도 감점 몇 점 받을 뿐 이주노동자 고용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사업장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사고가 나도 폭행이 나도 사업장 변경이 어려운 상황을 바꿔야 해요. 사업장 변경 권리가 산재개선에 핵심적인 부분이에요."

이주노동자들의 싸움이 어려운 것은 이들이 한국에 장기간 머물지 않는 데서 오는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싸움을 해야 할 때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이주노동자들에게 어려운 것이다. 이런 한계로 인해 사업주나 정부에서도 변화하지 않고 오히려 악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필요한 체류 기간을 쪼개는 현 정책은 이주노동자를 단기간 사용하고 본국으로 보내겠다는 뜻이 분명히 담겨 있다.

우다야 라이: "체류기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어요. 체류기간이 더 길면 부당함을 더 잘 알 수 있으니까요. 이주노동자들이 의식을 높일 수 있는 시간도 더 있어야 합니다. 현 제도가 노동자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해요. 이주노동자 유입되기 시작한 지 30년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참 오랫동안 똑같은 요구를 하고 있어요.

제도, 정치인, 국민들의 인식까지 바꿔야 해요. 동남아시아 출신 무시하고 선진국 출신은 다르게 생각하는 인종차별 문제도 바꿔야죠. 한국인도 똑같이 이주민이 될 수 있는데, 이걸 깨닫고 차별 없애야 해요. 한국 사회에 있는 차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쁜 것은 나쁘다고 말할 수 있어야죠."

노동안전보건 운동을 가열차게 진행하는 동안에도 변화는 더디고 어떤 곳은 빛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있기도 한다. 소규모 영세 사업장은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안전보건은 때로 교집합이면서 때로 합집합 상태가 된다.

산재보상보험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하라는 지금까지의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요구가 이주노동자에게도 중요한 요구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이주노동자에게도 해당되는 문제로, 이에 더해 사업장 변경 제한 폐지가 함께 들어가는 것까지 확장한다면 이주노동자가 함께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200호 기획5. 노동안전보건을 ‘젠더’ 관점으로 바라보기 - 권영은 반올림 상임활동가,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인터뷰 / 2020.10·11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마주침 ②]

노동안전보건을 ‘젠더’ 관점으로 바라보기 - 반올림 상임활동가, 경아 한림대 사회수 인터

지안 상임활동가

우리가 '노동자의 건강'을 노동자의 조직적인 힘과 역량을 통해서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사고할 때, 건강한 일터란 단순히 주어진 노동조건이 아니라 노동자의 요구와 투쟁을 통해 쟁취한 '권리'가 된다. 일터의 건강이 노동자의 권리라는 메시지는,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몸과 작업환경, 생산 속도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특히나 중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노동자의 건강을 보는 방식이 구체적인 '조직'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 소수적인 영역에서의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다룰 다른 관점과 역량을 발굴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나 갈수록 고용 형태가 다양화되고, 일 자체가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에서 노동자의 건강 문제가 개별화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틀은 무엇일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점에서 '젠더'는 우리가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다룰 때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나 정체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여성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적 조건들은 어떻게 개별적 여성 노동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 또는 노동안전보건의 의제로써 쟁점화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본 글의 기획을 두 가지 방향으로 구성했다.

먼저 2007년부터 전자 산업 노동자들의 산재 피해 활동을 해온 반올림의 상임활동가 권영은님과 함께 기존의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젠더의 관점에서 돌아보고 읽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고민을 나눴다. 두 번째로는 한림대 사회학과 신경아 선생님을 만나 현재 한국의 여성노동자가 처한 다양한 문제점들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짚어보았다.

여성 노동자의 관점에서 '산재' 다시 읽기

반올림의 꾸준한 투쟁을 통해서 전자산업 반도체 공장에서의 산재 피해는 사회적으로 잘 알려지게 되었다. 이 활동을 통해서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직업병 문제가 조명받았지만 한편에서는 피해자 중 많은 수가 여성이기도 했다는 점은 특별히 사건의 중요한 측면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지난 투쟁을 돌아보며 우리가 '젠더'의 눈으로 산재 피해를 읽어낼 부분은 없을지 물었다.

권영은: "반도체 공장 클린룸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오퍼레이터가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이 활동이 '여성'에 방점이 찍히지는 않았습니다.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 상 유해성이나 직업병 자체에 집중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여성 노동자의 비율이 높다는 점 외에도 생리불순 등 재생산 건강 문제에 대한 제보도 초기부터 많이 들어오는 등 여성에게 특수하게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초기부터 많이 보였어요. 대다수의 오퍼레이터가 여성이었던 배경에도 성역할의 고정관념이 존재한다는 것도 중요해요. 여성들이 꼼꼼하니 더 세밀하고 빠르게 작업을 할 것이다, 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결과였죠."

그렇다면 실제 전자산업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직업병 피해자 중 여성 노동자의 숫자, 그리고 반도체 공장 여성 노동자 중에서도 사업장 규모에 따른 집단적 특성은 없을까? 반올림은 이렇게 구체적인 수치를 파악하기 어려운 현실을 한계로 지적했다.

권영은: "전자산업에 어느 정도의 노동자가 있는지 세세한 수치를 파악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에요. 산업별 국가 통계에서도 별도로 조사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제조업' 분류에 묶여있어 알고 싶은 만큼 자료가 확보되지는 않는 상황이죠. 반올림이 함께 하고 있는 안산지역네트워크에서 안산지역의 반도체 공장 중에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해보려고 하는 중인데, 작게나마 통계로 확인하기 어려운 실제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어요."

물론 반도체 산업의 산재 피해는 '여성 문제'로만 국한시켜 볼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클린룸 엔지니어 직종의 경우 남성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피해자의 집단적 특성이 존재하고, 특별히 여성의 재생산 건강과 관련된 문제점들이 초기부터 발견되었다면 이를 '여성 노동자'의 문제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명되지 못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권영은: "사실 해외에서는 반도체 공장의 유해성이 입증되기 시작한 단계에서, 먼저 유산, 불임, 기형아 출산 등 생식독성 문제가 중요하게 이야기가 되었어요. 한국의 경우는 2017년 불임으로 첫 산재 승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런 문제들이 비교적 조명이 덜 된 이유는 생식독성 문제, 또는 여성의 재생산과 관련된 건강 문제가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쉽게 연결될 수 있다는 점과도 연결된다고 봐요.

이전 상담기록을 살펴보면, 피해자 중에서 본인뿐 아니라 아이도 질병에 걸리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이 경우 본인은 산재인정을 신청할 자격이 주어지는데 아이는 그렇지 않아 제보 기록으로만 남아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2세 질환 문제를 '산재'로 인정하고 인식하는 변화도 필요합니다. 한편 이런 경우 '어머니'에게 가해질 주변의 비난도 쉽게 상상할 수 있어요. 산재인정 투쟁뿐만 아니라 이런 사회문화적 인식과도 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산재 피해 노동자의 2세 질환 문제는 특히 최근 10년 만에 대법원에서 제주의료원 태아산재 인정 판결이 나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 판결이 유사한 피해 사례들을 드러내는 유의미한 시작점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관련 법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2세 질환의 산재 인정기준을 낮추고, 보상체계를 제대로 만듦으로써 피해자를 돕고 다양한 산업에서 유해요인과 직업병의 연관성이 제대로 밝혀질 수 있어야 한다.

권영은: "앞으로 2세 질환의 산재 신청을 준비하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제주의료원 판결을 계기로 여성노동자들의 생식질환, 2세 질환 문제에 초점을 맞춰 인터뷰집을 내려고 해요. 한국뿐 아니라 대만,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여러 피해 사례들이 있는데, 단순히 화학물질 등 노동환경의 유해성에 대한 지적을 넘어서, 여성 노동자의 몸의 문제를 드러낼 수 있도록 그간 국내외 연구에서 제기되어왔던 전자산업에서의 2세 질환 문제가 더 많이 제기되고 조사되어 예방까지 이어지길 바랍니다."

한편, 반올림은 이전부터 젠더와 노동자의 건강 문제라는 주제를 고민한 바 있다. 2014년 전자산업여성노동자모임은 직업성 암 등 질병의 문제를 넘어서 전자산업의 노동환경이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여러 수준의 유해성을 살펴보고자 했다. 이 시기에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등한시된 여성 재생산 건강 문제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권영은: "성인지적 관점에서 반올림 사건을 '여성 노동자'의 문제로 다루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관심이 있는 다양한 연구자, 활동가, 피해자들이 모여 여성 건강권 문제를 공부하기도 하고, 산재 피해를 단순히 '피해' 그 자체로 다루기보다 여성 노동자들의 생애사적인 측면에서 다뤄보자는 이야기도 했어요. 즉 여성 노동자의 삶 차원에서 문제를 다시 보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여성 노동'의 관점에서 반올림 활동을 돌아보고, 앞으로 문제의식을 이어간다고 할 때 어떤 것들이 조명되어야 한다고 보는지 물었다.

권영은: "산재라는 것이 단순히 일하는 노동자 개인의 보상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부각되었으면 해요. 2세의 건강, 나아가 노동자의 삶과 가족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는 사건이라는 점, 그래서 사회의 안전과도 연결이 된다는 인식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7년간 일했던 여성 노동자의 모습이다. 추후 유방암으로 집단산재신청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성노동 의제, 면밀한 현황 조사부터 다양한 의제 발굴해야

'여성 노동자'의 노동, 그리고 노동안전보건 문제에는 어떤 주제가 있고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지 구체화해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의 여성노동자가 딛고 선 현실을 진단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연관된 주제 중에서도 '노동시간'은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여성이 시간제 일자리 등 저임금 인력으로 활용되어온 노동의 역사나, 보조 인력으로 상상되고 주변화되어온 맥락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돌봄·가사노동이 여성 개인의 부담으로 맡겨진 사회에서 여성의 '일하는 시간' 문제는 단순히 임금 노동시간만의 문제를 넘어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여성' 그리고 '노동시간'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최근 몇 년간의 노동정책을 봤을 때 어떤 변화점이 있는지 물었다.

신경아: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초기부터 대단히 비판받았어요. 공공일자리 등 시간제 일자리가 대거 양산되었죠. 그러나 노동자의 자율성 측면에서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시간제 일자리'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도록 하는 정책은 저임금, 고용차별 문제를 낳을 뿐입니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최근 정부 조사에서 80%에 가까운 여성들이 시간제 일자리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나왔다는 점이에요. 한편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집중하는 것은 '노동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52시간제도 대단히 제한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 노동정책은 정말 '안 보인다'고 할 수 있어요. 고용노동부에 양성평등정책과는 신설되었지만, 그 외 미미한 수준에서 돌봄 관련 규정들이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에서 마련된 것에 불과합니다. 제대로 된 여성 노동 정책이 있다고 보기 어렵죠."

향후 어떤 정책적 방향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물었다.

신경아: "예를 들어, 비정규직 일자리 중에서도 특수고용 노동자, 초단시간 일자리 등에 여성이 더 많습니다. 이들은 이중적 차별에 직면하고 있어요. 하나는 현재의 고용제도 안에서 여러 법적 보호의 밖에 밀려나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노동법 체계의 근본적 변화, '노동자' 개념 정의를 재구성하는 문제 등이 과제입니다. 한편, 노동운동 역시 정규직 남성 노동자 중심으로 구성되어왔기 때문에 이들의 의제가 운동의 핵심 주제로 다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이 또 하나의 차별이죠. 이런 점에서 한국사회를 지탱해오던 전통적인 노사관계를 바꾸어나갈 필요가 있어요."

성별 임금 격차뿐 아니라, 저임금·비정규직 등의 사안은 IMF 이후 뿌리 깊은 여성 노동 현안이며 그만큼 여전히 유효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성노동운동에 있어 주요한 변화가 있다면, 어떤 문제나 경향일지 궁금했다.

신경아: "가장 큰 변화는 여성노동자들이 자기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비정규직, 저임금, 경력단절 등의 문제는 여전히 큰 문제죠. 그러나 시민사회단체, 연구자들이 문제를 드러내 왔던 방식을 넘어서 2015년 강남역 사건, 2018년 미투 운동 등 이후 시기에서 여성 개개인의 주체가 굉장히 변화했어요. 그에 따른 실천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차후 이런 것들이 개인적 저항 수준을 넘어서 사회적, 운동적 차원으로 끌어올려져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만큼 노동 의제가 부각되진 못했어요. 미투 운동 역시 여성 노동자들이 어떤 노동환경 속에서 일 해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볼 수 있죠.

그렇지만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 두 가지 문제가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젠더와 노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개인적 수준의 저항을 넘어서 노동의제로 확장시켜 다뤄나갈 필요가 있죠."

전시 상황에서 어떻게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노동력으로 동원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포스터 이미지다. 차후 이 시기의 이미지들은 여성운동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의미화되었다. 출처: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한편, 현재 여성노동운동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이슈는 코로나19일 것이다. 코로나19 위기가 특히 여성 노동자에게 집중되었다는 통계가 드러났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독립적인 사건으로 보기보다는 한국사회가 이미 경험한 두 번의 경제위기와의 연관성 속에서 주목하고 있다. 1997년 IMF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노동시장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차후 더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로 밀려났다. 이런 사회적 맥락에서 현재 많은 여성단체들이 코로나19를 '여성 노동자의 위기'로써 선제적으로 명명하고 있다.

신경아: "자본주의,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경제위기가 있을 때 어떤 집단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해결해나갔어요. 희생의 대표적인 집단은 '여성 노동자'였죠. IMF의 경우, 대기업 생산직, 사무직 중간관리자 여성들이 대거 일자리를 잃었어요. 현재는 서비스직·임시직 여성 노동자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어요. 그러나 여성이 위기 국면에서 도구화되는 것을 초기부터 문제제기하고 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전망합니다. 이런 변화가 과거의 해결책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큰 변수이자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반이라고 봐요."

한편, 여성 노동자의 구체적인 현실은, '여성'에 대한 시선과 인식, 나아가 근본적 차원의 젠더 불평등 문제 등 여러 층위의 문제들과도 복합적으로 이어진다. 이런 점에서 여성 노동운동과 연구가 가야 할 길은 다양한 층위에 있는 문제 간의 연관성을 밝히고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신경아: "여전히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특히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중요한 비판 대상입니다. 이런 인식 속에서 같은 일에서의 성별임금격차, 직무의 성별분리 등 결과가 만들어져요. 의식의 차원에서 혁명이 필요해요. 또한 노동자의 정체성, 인권과 관련된 다양한 의제들을 노동운동의 과제로 가져가면서 교차하는 지점들을 보려는 노력 역시 필요합니다."

이번에 진행한 두 가지 인터뷰를 통해서 '젠더'와 노동자 건강의 관련성을 지속적으로 고찰해나가기 위해, 그리고 '여성 노동'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해나가기 위한 관점들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노동안전보건의 활동을 '젠더'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되짚어보는 것, 그리고 노동안전보건 운동이 향후 고민해야 하는 다양한 의제들을 발견하는 작업을 연구소의 집중사업인 '여성노동자 건강권' 활동을 통해 풀어나가야 할 후속 과제로 남겨두며 글을 마친다.

 


 

200호 기획 4. 장애 운동이 제기하는 과제, 안전보건에서의 ‘정상성’을 바꿔내는 일 - 전국장애인철폐연대 정창조 노동위원회 간사, 정다운 활동가 인터뷰 / 2020. 10·11

[기획 -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마주침 ]

장애 운동이 제기하는 과제, 안전보건에서의 ‘정상성’을 바꿔내는 일 - 전국장애인철폐연대 정창조 노동위원회 간사, 정다운 활동가 인터뷰

박기형 상임활동가

<일터> 200호를 맞아, '노동안전보건, 사회운동과 만나다'라는 코너를 기획하였다. 이 코너를 통해, 연구소가 그간 만났던, 또는 앞으로 만나갈 사회운동의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노동안전보건운동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전망을 확대함으로써, 운동의 과제를 도출하고 다른 사회운동들과 공동전선을 만들어가기 위한 고민을 담아보고자 했다.

첫 번째 인터뷰에서는 장애운동과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접점을 찾아보려 했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아래 전장연)의 정창조 노동위원회 간사, 정다운 활동가를 지난 10월 8일 혜화에서 만났다. 장애운동에서 다시금 또는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장애인 노동권이 안전보건 영역에서의 건강하고 안전할 권리를 급진적으로 확장시키는 데 어떤 함의를 던져줄 수 있을지, 반대로 장애인의 노동권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안전보건의 쟁점들이 어떤 고민을 안겨줄 수 있을지 얘기를 나눠보았다.

장애인 노동권의 현주소

장애인 노동권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은 바로 고용이다. 전반적으로 고용률이 낮으며, 일자리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2019년 장애인 고용률은 34.9%로 전체 고용률 60.9%의 절반 수준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의무고용률 미준수 시의 부담금 수준이 높지 않아 부담금을 내고서 고용하지 않는 게 대다수다. 노동조건 또한 열악하다. 2019년에는 임금근로자 중 43.9%가 임시 일용직으로서 전체 인구의 임시 일용직 비중 31.4%보다 높다. 전문직, 사무직 숫자 적고 단순노무직(청소, 환경미화 등)이 많다.

정창조: 장애인에게 노동권은 역사적 맥락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장애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노동할 수 없다는 개념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죠. 자본주의가 형성되면서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과 노동할 수 있는 사람이 구분되기 시작해요. 하층민들을 대량 수용했던 구빈원에서도 중요하게 이뤄졌던 일이에요. 결국 장애인은 (임금)노동을 할 수 없는 자라는 관점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윤 창출을 할 수 없는 활동 전반을 비생산적 활동으로 규정하고, 생산적 활동을 하지 못하는 일들을 배제하는 현 사회의 구조를 문제 삼아야 합니다.

정다운: 이른바 '정상성'이라고 하는 것을 바꿔내는 일이죠. 특정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은 배제해버리는 것 말입니다.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이냐를 가르는 기준과 규범을 새롭게 정립하는 게 중요합니다. 임금노동,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되는 활동만을 노동으로 규정하고, 이 노동을 할 수 있는 신체만을 노동력으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장애인 일자리는 시혜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고용되더라도, '어차피 일 못 할 텐데'라는 식의 태도로 인해 부수적인 일밖에 받지 못하면서 주변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임금과 관련해 최저임금 적용 제외가 특히 문제다. 최저임금법 제7조에서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를 규정하고 있다. 평균적인 생산성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작업능력평가를 한다. 이를 근거로 2018년 기준 9413명이 제외되었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 대다수는 직업재활시설 노동자, 중증장애인이다. 이렇듯 노동할 능력, 신체에 대한 정상성 기준에 따라 장애인들이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 제도 폐지를 요구하는 퍼포먼스 중인 정다운 활동가(사진 맨 좌측).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노동시장에서 장애인들이 배제되면서, '산재는 우리에게 사치다', '산재라도 당해봤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장애인 노동자가 노동시장에 진입하더라도, 불안정한 일자리에만 들어가게 되고, 이로 인해 위험한 노동환경에 노출되기 쉽다. 그러나 그 실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정창조: 장애인의 일자리 마련 자체가 핵심적인 이슈다 보니, 진보적 장애인 운동 진영 입장에서도 산재 사망사고 등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고용촉진법 제26조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이 매년 장애인 노동자 산재 통계를 조사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요. 최근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노동자 산재 비율은 0.8%, 장애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승인율은 33.1%로 나타났어요. 그러나 굉장히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현황 파악 자체가 쉽지 않고, 산재 예방 활동에도 적극적이지 않은 상황입니다.

정다운: 더 중요한 것은 취약한 이들일수록 불안정한 일자리, 그로 인해 계속해서 위험하고 유해한 노동환경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사회전반적으로 노동권이 제대로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장애인 이동권 투쟁하면서 이런 얘기를 자주했어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저상버스를 도입하면, 모두에게도 이동권이 더 잘 보장된다라고요. 산업재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예요. 장애인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라면, 모두에게도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이지 않을까요?

장애운동에서 제기하는 산재보상제도의 지향점

정다운 활동가의 질문에 비춰볼 때, 일터에서 '안전'과 '건강'이, 우리가 주장하는 안전할 권리와 건강할 권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지 되물어 볼 수 있었다. 산재보상제도를 중심으로 보상·재활·치료에서 정상성이 작동하는 방식, 건강할 권리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잘 아플 권리'를 얘기하는 것의 의미에 관해 얘기를 나눠보았다.

정다운: 산재보상제도에서 보상기준을 살펴보면서, 장애인 등급제를 떠올렸어요. 둘 다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특정 척도를 기준 삼아 등급을 매기고 제도지원을 받을 대상자를 선정하는 걸로 보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빠지게 되는 것은 결국 정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관점과 필요가 아닐까요? 장애인의 경우 사회참여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요구가, 산재노동자의 경우 직장복귀 등의 다양한 회복을 위한 요구가 있을 거잖아요. 이들이 단순히 평가대상으로 남아있다면, 그건 불평등한 권력 구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대상이 아닌 주체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는 주체의 상태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그 상태를 우선 인정하고 필요한 것을 묻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것입니다. 산재보상제도에서도 노동자의 필요와 욕구, 나아가 참여에 기반한 정책이 지향해야 할 바라고 봐요.

정창조: 산재보상제도에서 얘기하는 회복에 이런 의미도 있을까요? 노동자들의 신체와 정신을 치료하여 기존의 생산성에 부합하도록 회복시키는 것. 물론 재활과 직장복귀 등 산재보상제도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노동자 입장에서도 자기 삶과 일터에서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욕구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재활 개념에 대해서는 달리 접근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장애 운동에서 재활은 주요 쟁점 중 하나인데요. 재활이라는 개념 자체가 개인을 정상적 노동력을 획득하지 못한 이를 정상적 노동력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의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재활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러면 또 다시 사회와 일터에서 배제되는 거지요. 이는 장애인이나 산재 노동자의 현재 존재 자체를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노동을 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류 장애인 노동정책이 개인의 기능 회복, 즉 자본 입장에서 생산성 있는 신체로 거듭나게 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여요. 이때 우리는 재활이 충분한지 아닌지를 누구의 기준, 어떤 기준에서 판단하는지를 문제삼아야 한다고 봐요. 자본이나 기업이 요구하는 노동력 상품으로서가 아니라, 상품화되지 않는, 심지어 상품화될 수 없는 그 존재 자체의 역량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장판(장애인운동판)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중증장애인 권리중심형 일자리 확장을 주장하고 있어요. 그 주장의 핵심은 어떤 신체적, 정신적 상태인지 관계없이, 각자의 상태를 인정하고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의미 있는 활동들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를 산재보상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재활이란 단지 개인의 기능 회복을 넘어서, 사회와 일터에서의 관계변화와 노동이나 건강, 안전에 대한 개념 변화를 중심에 두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중증장애인 노동권 쟁취를 요구하는 집회에서의 정창조 간사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잘 아플 권리'가 제기하는 질문

노동안전보건운동에서는 '건강할 권리'를 주장한다. 이때 늘 부딪히는 고민은 우리가 주장하는 건강과 안전이 '정상적인 신체와 정신', '평균적인 생산성을 제공할 수 있는 노동력'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다. 이를 풀어가기 위해, 최근 '잘 아플 권리'라는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장판에서도 건강을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에 관한 얘기가 활발하다고 한다.

정창조: 예를 들어, 만성질환자는 건강한 신체가 아닌가요? 주류 사회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건강한 신체가 아니겠죠. 그러나 100% 건강한 상태란 애초에 없다고 생각해요. 만성질환자나 장애와 질병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라고 할지라도, 당사자의 존재 차원에서 보자면 질병이나 장애와 잘 사귀어 가며, 사회에서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수 있고, 자신의 역량을 보존하고 확장해 갈 수 있다면, 곧 그것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픈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해 달라는 게, 결코 나는 '건강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이런 차원에서 국가나 자본이 요구해서 관리되는 건강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건강 개념에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 내지 질병과 건강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아무도 온전히 도달할 수 없는 '건강'을 추구하는 강박을 깨야한다는 것이지요. 전 이런 면에서 건강할 권리와 잘 아플 권리는 충분히 양립가능하다고 봅니다.

정다운: 건강에 대해서 사람들마다 다양하게 생각하잖아요. 안 아프고 안 다치는 게 우선 중요하지만, 아픈 상태가 지속된다고 한다면 의료 서비스를 계속해서 잘 보장받을 수 있는 게 중요하겠죠. 이렇듯 각자의 조건에 따라 다른 규정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장애인이나 산재 노동자처럼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그 상태로도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이를 사회적으로 마련해주는 것 말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정창조 간사는 장애인 노동권이 추구하는 방향은 일반 노동시장에의 편입만으로는 안 되고, 기존 노동체계 바꿀 수 있도록 다양한 노동형태, 방식, 과정을 바꿔내는 계기들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기존의 노동 개념, 정상 신체 등 정상성을 뒤흔드는 운동이다. 장애인과 산재 노동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일하고 활동할 수 있는, 그럼으로써 각자의 조건에 맞게 최대한 자기 삶의 역량을 발휘하는 세상.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을 장판과 노동현장에서, 부문과 전체가 교차하며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200호 기획3.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일터> 200호로 살펴본 한국 사회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 / 2020. 10·11

[기획 -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발자취 ]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일터> 200호로 살펴본 한국 사회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 

최민 상임활동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창립 초기부터 '노동자 정신건강'이라는 주제에 주목해왔다. 도시철도 기관사 공황장애 및 자살 사건, 청구성심병원과 하이텍알씨디 집단 정신질환 산재신청, 요양 중인 산재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 등으로부터 시작된 고민은, 일터괴롭힘과 가학적 노무관리, 자살 대국에서 과소평가되고 있는 노동자 자살 문제, 감정노동과 작업거부권 등으로 확장되어 왔다.

그 사이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정신질환 산재 신청 건수와 승인율이 증가하는 등 사회적 변화도 있었다. 최근에는 직장내괴롭힘과 감정노동과 관련된 중요한 노동법상의 변화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노동자 자살을 반복하게 하는 구조적 요인은 변화가 없고, 치료, 심리상담, 산재신청 등 개별적인 대응만 활발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200호까지 <일터>가 다뤄왔던 노동자 주요 이슈를 훑어보면서, 노동자 정신건강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를 돌아보고, 향후 과제를 짚어본다.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의 정신건강
 

노동자 정신건강과 관련한 문제의식은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에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일터 초기에 소개된 노동자 자살은 주로 산재 요양과 관련된 것이었다. 다쳤지만 산재를 신청하지 못하거나 승인을 받아도 불충분한 요양으로 요양 중, 혹은 회복되지 못한 채 일터에 복귀한 후의 자살을 꾸준히 소개했다. 사실 <일터> 발간이 시작되기도 전인 1999년 이상관 투쟁이 있었다. 1999년 대우국민차 창원공장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쳐 산재로 요양하던 20대 청년 노동자 이상관은,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도 요양을 종결하라는 근로복지공단 직원의 종용을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IMF 사태에 따른 근로복지공단의 예산 절감 방편으로 세워진 '산재보험급여 거품 제거 대책'의 희생양 중 하나였다.

당시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155일간의 농성 투쟁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 시민사회단체와 현장 노동자, 의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연대했다. 이 연대투쟁 과정에서 산업재해, 산업안전보건, 산재추방운동이라는 말 대신 노동재해, 노동안전보건, 노동안전보건운동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상관의 죽음은 끝내 산재로 인정되지 않았고, 책임자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도 자리를 보전했다.

하지만 이 투쟁으로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가 위기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산재 요양 중 이와 관련하여 발생한 정신질환이나 자살의 경우 산재로 인정되는 건이 늘었다. 2005년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요양 중 발생한 우울증은 업무상 재해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일관된 판단을 내리고 있었는데, <일터>에서는 산재요양 과정 중 발생한 우울증이 산재라고 인정한 법원 판결을 소개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산재 요양 노동자 자살이 지속되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2003년에서 2014년 사이 업무상 사고를 당해 산업재해보상보험 요양급여를 수급한 15~79세 노동자 약 77만 명 중 2796명이 2003년에서 2015년 사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들 산재 노동자의 자살 사망률은 전체 경제활동인구에 비해 2.21배 높게 나타났다. (Hye-Eun Lee, Inah Kim, Myoung-Hee Kim, Ichiro Kawachi. 2020."Increased risk of suicide after occupational injury in Korea." Occupational & Environmental Medicine, BMJ Journals.)

사고 당시 임시직에 종사한 노동자는 상용직보다 자살 사망률이 더 높았고, 특히 남성 산재 사고 노동자의 경우 장해가 발생하지 않은 노동자가 중증 장해를 앓는 노동자보다 자살 사망률이 더 높은 역설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장해가 없는 산재 사고 노동자는 장해등급 1~3급의 중증 장해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연금을 받지 못하고 계속해서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처지에 놓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산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 개입뿐 아니라, 산재 사고 노동자들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회복하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논문의 주저자인 이혜은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이메일을 통해 "산재 요양 중 자살이 산재로 인정된 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렇지만 정작 산재 노동자의 자살을 예방하는 노력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향후 산재노동자 자살의 구체적인 경로 파악과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 "장해 수준과 상관없이, 오히려 장해가 없는 산재노동자들의 자살률이 더 유의하게 높았다는 점"이 연구의 중요 결과라며, "산재요양이 종결되어 산재보험의 경제적 지원이 끝나고 산재 이전보다 소득이 줄어든 경우에 대해 특별히 대책이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열차를 운영 중인 지하철 기관사. 위 사진은 일터 통권 12호(2004.07) "스크린 도어로 기관사 정신건강을 보장할 수는 없다"에 수록되어 있다.

도시철도 기관사 이야기

일상적 노동환경의 문제로 발생한 최초의 집단적인 정신질환 직업병 사례로 <일터>가 주목한 것이 도시철도 기관사들의 공황장애와 자살이었다. 2003년 당시 서울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던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기관사 2명이 연달아 자살했다.

당시 도시철도노동조합 승무본부 사묵국장이었던 윤성호 기관사는 "처음부터 정신건강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접근했던 건 아니었다"라고 기억한다. 처음으로 자살이 연달아 발생한 2003년은 노동조합 집행부의 대폭 물갈이가 있던 해였다. 선거운동하던 중 기관사 한 명이 자살했고, 당선되고 새로운 임기를 준비하던 중 다른 한 명이 연달아 자살했다. 두 명이 연달아 이런 일을 당하자, 뭔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1~4호선을 운영하는 1기 지하철에서는 자살하는 노동자가 없는데, 도시철도에서만 기관사가 자살한다면, 노동환경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

당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공유정옥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정신질환도 직업병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안내해줬다. 새로운 노동조합 집행부의 첫 활동이 되었다. 도시철도는 지하철공사에서 분사하면서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가 만들어져 있었다. 거기에 혼자 전철을 운전하며, 서비스까지 담당해야 하는 기관사들은 책임감과 서비스 강요에, 자주 혼나고 억눌려 있었다. 연달아 발생한 자살이 노동환경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얘기하자 주변에서 그동안 참고 있던 울분을 터뜨렸다. 윤성호 기관사는 정신건강 문제는 조합원들에게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고 기억한다. 다들 공감하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개별 사건의 산재 보상을 청구했을 뿐 아니라, 서울도시철도공사 내 모든 기관사에 대해 직무스트레스와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정신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기관사가 다수 발견되었고, 먼저 공황장애를 진단받은 기관사들이 연달아 업무 관련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정신건강과 관련이 높은 요인으로, 운전 중 사상사고 경험 여부뿐만 아니라, 도시철도에서 운영 중인 1인 승무제도와 권위적인 인사노무관리도 문제로 지적됐다. 하지만, 사상사고를 줄이기 위한 안전문 도입과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관사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지 않도록 하는 등의 대책에만 합의할 수 있었다. 2인 승무 제도 도입은 결국 합의되지 못했다. 사상사고와 같은 극적인 단일 사건에 의한 정신질환 발생은 산재로 인정해도, '1인 승무' 등과 같은 일상적인 스트레스 요인에 따른 정신건강 영향은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여전한 관행이다.

그래도 안전문 설치는 인명 사고 발생 가능성 때문에 운전 내내 긴장할 수밖에 없던 기관사들의 압박감을 상당히 낮춰주었고, 승객 안전 측면에서도 진일보한 정책이었다. 그 후 일상적인 개선결과 평가와 피드백이 잘 이루어지지는 않던 차에, 2011년 다시 기관사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2013년 다시 기관사 전체를 대상으로 실태조사에서, 사상사고 이외에도 권위적 조직문화 등이 직무스트레스에 중요한 원인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위험군 노동자들을 잘 관리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 또한 확인하였다.

이를 교훈 삼아, 작업장 기반의 노동자 정신건강 관리를 위해 '도시철도 힐링센터'가 문을 열었다. 의사, 간호사, 임상심리사 등이 상주하며 개별 노동자 혹은 노동자 가족의 심리상담과 치료 지원, 조직 차원의 정기적인 직무스트레스 검사와 작업복귀 프로그램, 정신건강 증진 프로그램 등을 시행하고 있다.

도시철도공사의 정신건강 관리 프로그램 도입 과정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정신건강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에 일찍이 종합적 접근의 중요성을 깨닫고, 체계적으로 문제 해결을 도모하였다. 다음으로 긴 시간에 걸쳐 노동자 당사자들의 요구와 참여를 바탕으로 개선 방안 마련했다. 노동자 정신건강의 예방 및 치료에서 개별적이고 단편적 접근이 아닌 집단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 사례였다.

윤성호 기관사는 특히 "그전까지 노사는 항상 대립하는 상대였는데, 힐링센터가 세워지면서, 직무스트레스를 줄이고, 기관사를 보호해야 한다는 같은 방향의 고민을 노사가 함께 한다는 것이 신기한 경험이었다"라고 회상한다. 회사로부터 독립적이고, 단순히 심리상담뿐 아니라 전직이나 업무 복귀 상담까지 포괄하고. 직무스트레스 관리와 노동환경 평가까지 다면적으로 접근하는 힐링센터의 경험은 "웬만한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는 다 했으면 좋겠다"라고 추천한다.

일터괴롭힘에서 조직은 '중재자'가 아닌 '반성의 대상'

200호까지 발간되는 동안, <일터>가 꾸준히 다뤘던 문제 중 하나가 '일터괴롭힘'이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상사의 폭언에 의한 정신질환, 직장 내 따돌림 등 관련된 이슈가 간헐적으로 있었다. 여기에 '직장갑질', '일터괴롭힘'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면서, 지난 3~4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노동 인권 이슈가 되었다.

노동인권 의식이 매우 낮은 한국 사회 일터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가 '직장갑질'이라는 말에 열렬히 호응했고, 그동안 인식되지 않았던 다양한 인격 침해를 '일터 괴롭힘'이라고 명명함으로써 각자의 고통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억압적인 일터로부터 겪은 각자 경험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서사로 묶이면서, 한국의 노동현실을 드러냈다. 물론 처음에는 일부 자극적인 사건들을 중심으로만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직장갑질119 등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이뤄지면서 해당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조직적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리고 각 기관에서 일터괴롭힘 예방 가이드라인을 제정했을 뿐 아니라,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도입하는 등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 중 특별히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주목해 온 부분은 조직적 괴롭힘이다. 조직적 괴롭힘은 일터괴롭힘을 실적이나 성과 향상 수단, 노무관리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조직적 괴롭힘이 중요한 이유는 집단적 노사관계, 자본의 착취 구조와 형태 등이 노동자 정신건강에 매우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가학적 노무관리'라는 말에서도 드러나듯, 회사가 최고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또는 자본이 이윤을 내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노동자의 인격과 정신을 파괴할 수 있다. 조직적 괴롭힘에 주목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들을 드러내보일 수 있다.

일터 148호(2016.05) 표지 사진. 당시 <일터>는 유성기업 고 한광호 열사 투쟁을 "가학적 노무관리" 측면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조직적 괴롭힘의 역사는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청구성심병원,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등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억누르기 위해 일터괴롭힘이 활용된 사례들이 <일터>에 소개됐다. 2010년대 들어서는 KT와 유성기업의 노조탄압, 증권사의 저성과자 퇴출 프로그램 등의 사례가 부각되었다. 이러한 조직적 괴롭힘 또한, 한국에서 일터괴롭힘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데 있어 중요한 계기 중 하나였다.

조직적 괴롭힘은 개인 간의 괴롭힘보다 대규모로 이뤄질 뿐만 아니라, 훨씬 더 분명하고 악의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조직적 괴롭힘은 멀리 있는 일처럼 느껴지기 쉽다. 개인 사이에 발생한 괴롭힘에 비해 개선이 어렵고,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더욱이 문제로 인식되더라도, '노동자 정신건강 침해'라는 관점보다 '노사갈등', '공격적 경영' 등의 틀로 설명되기 쉽다.

예를 들어, 경비원에게 막말을 한 입주자는 손쉽게 가해자로 지목되지만, 은근하게 모멸감을 주면서 마치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것처럼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회사는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조직적 괴롭힘의 양상은 모호하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문제제기를 어렵게 한다. 오히려 자본과 기업은 이를 빌미삼아 피해자와 그에 연대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왜곡 또는 희석시킨다.

지난 2005년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의 집단 우울증을 둘러싼 말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노사갈등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업무상 질병이 아니지 않느냐는 반문과 아프다면서 어떻게 농성할 수 있냐는 비아냥거림 등등. 이러한 공격은 2016년 유성기업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광호 조합원의 산재 승인 후 회사가 승인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 소송을 거는 방식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이에 대해,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일터괴롭힘 대응과 심리상담을 오랫동안 지원해 온 충남 노동인권센터 노동자심리치유사업단 두리공감의 장경희 활동가는 "'조직'에 의한 구조적 괴롭힘은 비가시성 때문에 잘 조명되지 않는다. 사내 규칙과 규율 또는 제도, 경영자의 암묵적 메시지는 괴롭힘을 행사하는 도구이자 은폐하는 장치"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조직적' 괴롭힘과 '개인 간' 괴롭힘이 따로 있다고 얘기하는 것도 또 다른 은폐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노동자 개인들 사이의 폭력(괴롭힘) 역시, 그 배후에는 조직이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를 위한 연단은 확대되어야 하지만, 괴롭힘을 "개인 일탈로의 치부, 방관하면 괴롭힘은 재생산"된다는 것이 장경희 활동가의 주장이다. "조직이 더이상 중재자가 아닌 반성과 변화의 대상임을 제기"하고 조직 자체를 변화의 대상으로 삼을 때, 일터괴롭힘을 줄여나갈 수 있다.

노동자 자살, 죽음 너머 노동환경을 보라

이런 다양한 이슈들이 우리의 시야로 들어오는 과정에 대부분 '노동자 자살'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일터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적대적인 노동환경에 적응하려 애쓰다가, 아픈 몸을 이끌고 일해 보려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산재 요양 중 목숨을 끊은 이상관 노동자를 통해, 경제적 동기에 따른 산재요양 관리가 산재 노동자를 얼마나 압박하는지 드러났다. 도시철도 기관사의 잇따른 자살로 과도한 책임, 억압적인 조직문화 등이 집단적인 직업적 정신질환 발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스스로 세상을 등진 노동자들을 통해, 정리해고가 노동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이며, 그 과정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이 이 트라우마를 어떻게 확대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일과 관련한 자살은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노동환경으로 인한 침해를 드러내는 여러 징후 중 하나로 봐야 한다. 자살이 하나의 극단적이거나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라, '자살 정도는 돼야 주목하는 한국사회'가 극단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자살'의 경우에도 죽음 너머 노동환경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한 해에 1만 3000여 명이 자살하고, 2003년부터 자살예방대책을 운영하면서도, 그동안 정부의 자살예방대책에서 노동자는 빠져있다시피 했다. 1, 2차 자살예방정책에서는 '직업'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매년 발간하는 '자살예방백서'에서도 직업군에 대한 분석은 매우 단순하여, 직업군별 사망자수만 제시될 뿐, 사망률도 분석되지 않는다. 2019년에야 정부가 심리부검을 실시하고 경찰청 조사 기록을 확보하는 등 자살의 원인에 대해 심층적인 접근을 시작하면서, 노동환경에서의 스트레스가 자살 경로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중앙자살예방센터가 펴낸 '2018 심리부검 면담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자살사망자의 사망 전 스트레스 사건 중 정신건강 관련 문제가 84.5%로 가장 많았지만, 직업 관련 스트레스 사건이 68%로 뒤를 이었다. 직장 내 대인관계, 퇴직 및 해고, 이직 또는 업무량 변화 등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자살 경로의 시작점인 첫 번째 위험 요인에서 가장 빈도수가 높았던 것이 업무부담이었다는 점이다. 직접적인 자살 동기는 정신적 건강 때문일지라도, 그 정신적 건강 문제가 시작되는 요인이 업무일 수 있다는 얘기다. 자살 예방 정책에서 일터와 직무스트레스를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업무상 정신질환 연구모임'에 함께 하고 있는 류한소 사회학 연구자는 그래도 노동자 자살과 관련해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가 크다고 본다. "경비노동자 자살 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이 공분하거나 아이돌 가수가 자살로 사망했을 때 '이것도 산재'라는 기사들이 뜨는 것"을 보면서 이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노동자 자살은 구체적인 규모와 원인도 공백으로 남아 있다. "일단은 노동자 자살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통계들이 생겨야 한다. 심리부검 수준의 세부적인 통계가 생겨서 일단 이 사람이 왜 자살을 했는지 추정이라도 해볼 수 있는 국가통계가 있어야" 예방을 위한 활동도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감정노동은 '고객'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주'의 책임

일터가 200호까지 발행되는 동안, 노동자 정신건강 분야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가 있었던 주제가 감정노동이 아닐까 싶다. 2006년 3월 서비스연맹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진행한 감정노동 연구를 소개한 단신 기사로 <일터>에 처음 등장했던 감정노동은 콜센터 노동자, 판매 노동자, 교사, 금융노동자 등 다양한 노동자들의 문제제기로 이어졌고, 다양한 개선책도 제안되었다. 감정노동수당, 감정노동휴가 등의 보상 방법이 개별 사업장마다 시도되었다. 무엇보다 노동자가 고객의 과도한 요구에 시달리지 않도록 예방과 지지체계를 사업주가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산업안전보건법에 도입되기도 했다.

감정노동을 수행하던 노동자에게서 발생한 정신질환도 산재로 보상받게 되었다. 특히 콜센터 노동자가 먼저 통화를 끊을 수 있는 권리를 얻어낸 것은 서비스 노동, 감정노동에서 작업중지권이 어떻게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지 잘 드러내는 사례였다.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 투쟁의 성과로, 2014년 2월 콜센터 상담사들의 인권실태조사 이후 원스트라이크아웃 제도가 도입됐다. 성희롱, 언어폭력, 무의미한 통화 등의 악성 민원에 대해 상담사들이 안내 후 전화를 끊을 수 있게 하고, 곧바로 법적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조치가 중요한 이유는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정책 마련과는 달리, 노동자에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힘과 권리를 부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사례를 통해 작업중지권이 반드시 재래식 사고 위험이 임박했을 때에만 활용되는 권리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콜센터 노동자들의 전화 끊을 권리 보장은 쉬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 이후, 마스크공급, 방역수칙, 재난지원금 등 정부 문의가 폭주하면서, 업무량이 엄청나게 증가한 정부민원안내콜센터의 석소연 분회장은 "끊을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차단하겠다'는 멘트를 하면서 팀장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끊을 수 있다. 결국 허락받을 때까지, 욕설이나 고성을 다 들어야 한다"라고 토로했다. 감정노동자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높아졌다고 해도, 콜센터 업무의 특성상 결국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악성 민원인으로 돌변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이럴 때 스스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노동자의 자율권이다.

또한, 감정노동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성 노동자가 처한 특수한 위험 요인을 드러내는 데에도 기여했다. '타인의 감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은 꼭 임노동에서만이 아니라 많은 여성이 가족, 일터, 사회관계에서 일상적으로 수행하던 일이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감정노동에서 흔히 문제가 되는 '친절과 미소' 요구는 대부분 여성 노동자에게 집중된다. 이런 요구는 업무에 성별화된 역할과 지위를 부여하고,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여성 노동자를 성적 괴롭힘에 취약하게 만든다. 특히 야간에 안내하는 여성 상담원들의 경우, 더 자주 성폭력에 노출되는 것처럼 보인다. 석소연 분회장의 동료 중에도 심한 성폭력 발언을 들은 뒤, 자살 충동을 느껴 옥상에 올라가기까지 한 사례도 있었다.

고객을 상대하는 모든 업무가 노동자를 소진시키는 것은 아니다. 감정노동은 노동자의 감정조차 자본에 의해 어떻게 이윤 추구의 도구로 활용되는지를 보여주는 개념이다. 이를 염두에 둬야만,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회사와 자본은 노동자의 감정을 어떻게 착취하는가? 반대로 노동자의 권리와 주체성을 보장하기 위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가? 고객 응대 등의 업무를 하는 노동자에게 노동과정에 내재된 감정노동이 노동자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는 업무 자체에 더해,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작업환경은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진다. 감정노동과 관련된 과제가 '감정노동' 그 자체로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석소연 분회장에 따르면, 코로나로 문의 전화가 폭주하고, 이 때문에 쉬는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매달 통화품질평가(QA)를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감정노동을 진상 고객과 서비스 노동자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주의 관리 책임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KT 직장내 괴롭힘 보고서 표지 사진. 해당 사안과 관련해서는 일터 138호(2015.07)에서 "이것은 '학대'다 - 사례로 본 가학적 노무관리" 기사로 다룬 바 있다. 출처: KT 직장 내 괴롭힘 조사연구팀.



마음 다치지 않고 일하는 일터는 가능한가?

노동자의 정신질환과 자살은 이윤축적 과정에서 노동자를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안전할 수 없는 상태에 빠뜨리는 자본주의 자체로부터 비롯된다. 어떻게 마음 다치지 않고, 인간답게 일할 수 있을 것인가. ILO 산업보건서비스의 원칙 중 '적응의 원칙'이 있다. 일터의 속도와 질서에 노동자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몸과 삶에 일터를 맞춰가야 한다. 예를 들어, 근골격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량물을 줄이고,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정신건강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 각자가 더 참고 견디는 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유리멘탈인 사람도 일할 수 있는 일터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일터를 바꾸는 데 있어, 노동자 참여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신체건강이나 정신건강 모두 마찬가지다. 노동자가 참여할 때에야 제대로 문제제기할 수 있으며, 실효성 있는 개선방안을 제안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자들 스스로도 일터를 변화시키는 주체로 설 수 있다. 이를 위해 도시철도에서 노동자, 노동조합이 시도했던 것과 같은 다양한 경험이 공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산재보상과 관련해, 그동안 주로 정신질환 산재 승인률을 높이는 데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져 왔다. 앞으로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산재 요양의 질과 재활 과정, 노동자와 사업장 양 측면에서 업무 복귀를 위해 필요한 지원, 다른 질환 요양 중 발생하거나 악화되는 정신질환 문제 등이 폭넓게 다뤄져야 한다. 아직 연 200건이 채 되지 않는 정신질환 산재 신청 자체가 늘어나고,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받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 노동자 건강 영역에서도 정신건강과 관련된 관심과 요구는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류한소 연구자가 지적하듯이, 일과 관련된 정신질환이나 자살에 대한 관심이 "여러 방식의 심리치료, 다양한 힐링문화나 서비스 상품들, 하다 못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충동구매를 하는 '시발비용'에 대한 유행까지 또 다른 힐링상품에 대한 소비로 끝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각자 참아내거나, 각자 다른 상품을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일터를 바꿔내기 위한 시도를 월간 <일터>가 지속적으로 알리고 엮어나가기를 기대한다.

200호 기획 2. 노동시간과 노동자 건강 - 노동시간센터 활동을 돌아보며 / 2020. 10·11

[기획 -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발자취 ]

노동시간과 노동자 건강 - 노동시간센터 활동을 돌아보며

김형렬 노동시간센터

총 200권에 달하는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를 발간하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자신의 활동을 그곳에 담아냈다. 노동운동이자 노동안전보건운동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연구소가 노동시간에 대한 투쟁과 과제를 다룬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장시간 노동, 노동강도, 심야노동, 과로사, 임금과 노동시간 등 노동시간을 둘러싼 현장의 이야기와 변화, 법제도 개선을 위한 요구와 실천을 해왔다.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발자취" 기획의 두 번째 기사에선, 노동시간 문제에 대한 그동안의 문제의식과 주요한 실천들, 앞으로의 과제를 정리해 보고자 하였다.

과로, 삶과 죽음 사이의 줄타기

연구소에서 노동시간에 대한 접근은 과로사 사례와 현장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초창기 <일터>에서는 완성차 공장에서 12시간 맞교대, 한 달에 하루 쉬며 일하는 노동자, 야간조 근무 때 주당 64시간 노동이 이루어졌고, 1년에 4일 쉬고 361일 일한 노동자의 사례를 소개하였다.

한 회사에서 1998년부터 2002년 사이에 59명의 노동자가 과로사에 해당하는 뇌혈관, 심장질환으로 진단을 받거나 사망한 통계를 제시하였다.¹) 부당영업을 강요하는 등의 직무 스트레스와 과로로 사망한 학습지 교사, 인력감축으로 노동시간이 증가하고, 노동강도가 증가하여 사고로 이어졌던 철도 노동자의 죽음을 이야기했다.²)

우리나라는 1953년에 근로기준법을 제정하면서부터 1일 8시간 노동제가 도입되었고, 주당 기준 노동시간은 1953년에 48시간으로 정한 이후, 1989년에 44시간, 2004년에 대기업부터 40시간으로 단축되어, 2011년에 5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에게 주당 40시간이 적용되었다. 그럼에도 법에 존재하는 1일 8시간, 주 40시간 노동은 노동시간특례제도와 같이 수많은 예외조항을 담아 다수의 노동자에게 이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전국학습지산업노조(위원장 이소영) 주최로 6월 26일(토) 오후 2시 울산대공원 동문에서 열린 ‘고 이정연 교사 추모제’. 일터 통권 13호(2004.08) 특집 <과로사 대응,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다룬 바 있다. 출처: 참세상

밤에는 집에 가서 자야 한다

밤에는 집에 가서 자야 한다. 병원, 경찰, 소방 같은 야간에 불가피하게 일해야 하는 공공영역을 제외하고 생산을 목적으로 반드시 야간에 노동해야 하는 경우는 없다. 야간노동이 심장질환, 수면장애, 소화기 장애, 심지어 호르몬 교란을 일으켜, 유방암, 전립선암, 대장암 등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노동자 건강을 위협하는 야간노동을 생산을 목적으로 꼭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반인권적이다.

<일터> 통권 30호에서는 "노동안전보건투쟁, 이렇게 나아집니다. 4대 실천의제를 중심으로"라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4가지 실천의제 중 "교대제로부터 생명 지키기-심야노동 철폐"를 첫 번째 실천의제로 제시하였다. 당시의 문제의식은 교대제를 없애는 것까지는 어려우나, 생산을 이유로 24시간 운영하는 제조업의 질서를 노동자 건강권을 근거로 심야노동을 제한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여러 완성차, 부품사들의 심야노동을 줄이는 주간연속2교대제 전환으로 이어졌다.

"심야노동 철폐는 교대제로부터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는 첫 발걸음일 수 있다. 물론 심야노동 철폐는 노동자의 몸과 삶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일 뿐이며, 그것이 곧바로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질을 보장해 주거나 자본의 이윤율에 타격을 주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심야노동 철폐는 교대제 문제의 근본 해결이나 완벽한 대안일 수는 없지만, 중요한 시작임은 분명하다.

특히 완성차와 조선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국의 제조업 체계를 고려한다면, 앞으로 상당한 범위의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서비스업에서도 심야노동을 확대시키고 있는 최근의 흐름을 본다면, 심야노동 철폐는 24시간 노동하는 사회를 구축하려는 자본의 시도에 맞서는 투쟁의제로 적극 발전시킬 문제라 하겠다."³)    

반쯤의 성공, 주간연속 2교대 전환
  
심야노동을 없애기 위한 현장의 투쟁이 진행되었다. "노동시간 연장 없는, 실질임금 삭감 없는, 노동강도강화 없는 주간연속2교대"를 주장하였고, 실제 "두원정공"은 이를 실현시켰다. 점심시간이 포함된 하루 8시간 노동,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오후 4시부터 밤 12시까지 근무하는 주간연속2교대를 2010년에 실시하였다. 주간연속2교대와 함께 월급제도 시행하였다.

교대제 변화 이후 노동자들의 건강 수준의 개선이 보고되었다. 교대제 개선 6개월 후와 1년 6개월 후에 두 차례 설문조사를 했다. 삶의 질과 노동의 질이 좋아졌다는 노동자가 많았다. "교대제 개선 전에 비해 수면의 질이 좋아졌다"라고 응답한 노동자들이 6개월 후 60.4%에서 1년 6개월 후 69.6%로, "노동시간 단축으로 근무 피로도가 줄어들었다"라는 노동자들은 70%, 78%로, "자신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횟수와 시간이 늘어났다"라는 노동자들은 64.5%, 67.8%로, "퇴근 후 집안일을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라는 대답은 75.9%, 82.8%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라는 대답은 57.2, 66.9%로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적인 변화가 확대되었다.
  
대표적인 완성차 회사들은 2012년부터 주간연속2교대 근무로 전환이 이루어졌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연구소는 노동시간 연장 없고, 실질임금 삭감 없고, 노동강도 강화 없는 교대제 변화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시간제 임금체계로 인해 발생하였던 장시간 노동으로 유지되던 실제 임금의 감소가 있었고 자동화와 비정규직 확대, 라인의 재배치 등이 이뤄졌다. 명확한 정량화는 어려웠으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 노동강도가 강화되었다. 주간연속2교대로 전환되었지만, 야근과 특근 또한 여전히 남아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에 노동시간센터에서는 2015년 8월호 <일터> 특집 기사를 통해 부품사들의 교대제 전환 문제를 다뤘다. 임금삭감 없고 노동시간 연장이 없는 교대제 변화를 만드는 대신, 실질적인 노동강도 증가를 받아들였던 완성차 방식의 교대제 전환을 다른 사업장에도 도입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자동차 부품사의 경우에는 이미 상당한 노동강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완성차 회사에서의 교대제 전환 방식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것은 아닐지, 적정한 수준에서 노동강도 증가를 제한할 수 있을지 등 면밀한 검토가 필요했다.

"야간노동의 단축 효과가 예상했던 것보다 미미하고, 토요일, 일요일 특근이 다시 시작되는 등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가 크지 않은 불완전한 변화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일부 사업장에서 교대제 변경과 함께 노동 강도의 증가가 있거나 예측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임금 감소에 따른 조합원들의 반발도 있었다. 완성차 공장의 교대제 변화 과정에서 발생한 이와 같은 문제는 예측했던 문제이거나 얻은 성과의 크기에 비해 작은 문제라고 판단하는 관점이 있다.

또 한 측면으로는 이러한 문제와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야간노동 철폐를 만들어나갈 기획과 현장 통제력이 충분치 않다는 비관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동차 부품 사업장의 주간 연속 2교대로의 전환은 임금, 노동 강도, 고용(비정규직 확대)의 문제와 연동되어 몇 가지를 양보하거나 맞바꾸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임금의 유지를 위해 생산물량을 더 늘리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변화가 단위 사업장에서 고립되어 진행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이에 부품사들의 주간연속2교대 이행 실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이행 과정에 대해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즉, 이행의 과정에서 임금, 노동강도, 고용의 문제가 어떻게 논의되고 결정되었는지, 조합원을 설득하는 과정은 어떠했고, 사측의 대응과 투쟁 방향을 설정해 가는 과정은 어떠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이러한 확인과 평가를 통해, 향후 주간연속2교대뿐 아니라 이후에 벌어질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한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기초 자료를 만들고자 하였다.”4) 

주간연속2교대제 전환은 부품사에게도 노동시간 단축의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냈다. 절대적인 노동시간의 감소는 그 자체로 긍정적일 수 있었고, 이로 인한 건강 수준의 향상도 일부 가져왔다. 다만, 자본의 공세 역시 거셌다. 숨은 여유율을 찾아내어 실제 노동강도를 높였고, 현장에서 '물량과 임금의 연동'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계속해서 심었다. 교대제 전환을 통해 노동의 몫과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되찾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음을 깨닫는 계기였다. 생산력의 발전만큼 노동시간, 노동밀도를 감소시키는 싸움을 해내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한계였다고 할 수 있다.

교대제 개선이 가져온 일부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현장 대응의 문제를 짚어내고자 한 것은 노동시간 단축과 심야 노동의 철폐는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장의 힘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면, 더이상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절실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터 통권 32호(2006.05)에 수록된 만평. 당시 제조업 현장에서는 노동강도를 낮추기 위한 일상활동으로 맨아워(M/H) 투쟁이 진행되었다. 출처: 선전위원회

노동시간센터 만들어지다

2012년 연구소 창립 10주년 준비를 하며, <노동시간센터>를 만들기로 결의하였다. 연구소 초기부터 가졌던 노동시간, 심야노동, 노동강도의 문제를 노동보건운동의 주요한 문제라고 인식하였기에, 현장에 기반을 둔 실천적인 연구와 정책대안을 만들고, 현장에서 실천과 연대를 하고자 하였다. 조직 형식은 연구소 내에 위치하지만, 노동시간센터 회원은 개방된 형태로 연구소 회원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를 보장하였다.

현장 노동조합 활동가, 학계(사회학, 직업환경의학, 사회복지학 등), 사회단체 활동가, 학생 등 다양한 분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앞서 언급한 부품사 교대제 전환 관련 연구, 책 발간 사업('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굴뚝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보이지 않는 고통'), 정책연구활동(산재보험연구, 최저임금제, 직업성정신질환연구, 과로사 기준 마련), 현장 연구(택시노동조건 실태연구, 사무금융 노동자 직무스트레스 연구) 등을 실시하였다. 매월 공개토론회를 통해 다양한 노동시간 관련 주제를 다뤘다.

제대로 된 과로(사) 인정기준을 마련해야
  
노동시간센터에서는 과로의 인정기준, 질적인 기준의 예시를 만들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법원판례, 질병판정위원회 사례검토를 통해, 과로의 기준이 되는 노동시간 길이를 낮추고, 과로의 질적 기준을 다양하게 제시할 것을 요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대법원에서 업무상 이유로 고객과 잦은 술을 마셔야 했던 노동자의 사망을 직업병으로 인정한 것이 최초의 과로사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늘어나자, 1995년에 노동부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직업병 목록에 뇌혈관 심장질환을 포함하게 되었다. 2004년에 2천 건 이상이 직업병으로 산재승인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2007년 이후 직업병 인정기준의 변화가 생겼다. 2007년 이전에는 "업무수행성"이라고 해서 일을 하던 중에 뇌출혈이나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질 경우에 자동으로 직업병으로 인정하는 기준이 있었으나, 2007년 이후로는 작업 중 발생한 사고라도 업무관련성이 없다면 직업병으로 인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새로운 기준의 적용은 객관성, 과학성, 근거 중심 등을 강조하며 산재승인이 더욱 어려워지는 현상을 낳았다. 그 결과, 2007년 이후 직업병으로 인정되는 과로사의 사례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이후 만성과로를 발병 12주 평균 60시간으로 정하는 변화와 2018년 이후 12주 평균 주당 평균 52시간으로 과로의 기준을 정하는 변화가 있었다.

과로라고 하면 노동시간 길이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에 더해, 단위 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노동의 양을 나타내는 노동밀도 (노동강도), 직무스트레스, 교대제 등이 과로를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직무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사례로 갑자기 업무량이 늘어나는 상황, 일은 그대로라고 해도 일을 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경우, 과도한 책임을 부여받는 경우, 새로운 부서로 옮겨 직장 적응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 직장에서 집단 따돌림을 경험, 직장 내 구조조정에 의해 심한 고용불안을 경험, 잦은 지방 출장, 기한이 정해진 프로젝트의 참여, 회사 내 과도한 경쟁구조 등을 들 수 있다. 야간노동을 포함한 교대근무를 하는 것도 과로를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직업병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그 원인을 찾아 예방하려 하지 않는다. 과로에 의해 사망하는 노동자들이 직업병으로 인정되기 위한 연구와 기준마련이 중요한 이유다.

또, 다시 과로의 현장이

기술 및 산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노동의 형식과 내용에서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다시 과로를 이야기해야 하는 현장이 넘쳐나고 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택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문제는 주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은 전통적인 임노동 관계만을 보호 대상으로 삼고 있는 법제도에서 배제되어 있다. 이처럼 법제도가 변화하는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면서, 노동권과 사회보장의 사각지대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주류 산업으로 급속히 등장하고 있는 IT,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과로 또한 앞으로 드러내고 해결해야 할 과제다.

"넷마블 설문에서는 흥미로운 질문이 포함돼 있었는데, 한번 출근해서 회사에 머물렀던 최장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이었다. 놀랍게도 전체 응답자의 30%가 36시간 이상 회사에 머물러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퇴직자의 40.1%였고, 현재 재직 중이라는 응답자 중에도 21.4%로, 현재 재직 중이라는 응답자로만 좁혀 봐도 5명 중 한 명은 회사에 36시간 이상 머물러봤다는 얘기다."5)

나아가 버스 노동자의 과로는 노동자 건강과 시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 놓여 있는 문제이다(근로시간특례제도에서 노선버스가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장시간 운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집배 노동자의 과로와 이로 인한 사망 또한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경기 시내버스 노동자들은 하루 15시간 이상 운전하는 경우가 전체의 95.7%나 차지하였다. 또 경기 시내버스 노동자들의 주당 운전시간은 56시간 이상이 76.3%였고, 72시간 이상도 4.9%나 됐다. 경기 광역버스도 장시간 운전에서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경기 시내와 경기 광역버스 노동자들은 격일제 운전이 기본이나 한 차량당 2명의 기사가 배치되어 있지 않아, 실제 하루 15시간 이상씩 3일 연속 근무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기본임금이 적어, 적정임금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이런 장시간 노동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용하고 있었다.6)

플랫폼 노동, IT,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뿐 아니라 버스, 택시, 집배, 보건의료,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 이르는 전통적인 산업의 노동자들에게도 장시간 노동, 과로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노동시간이 일부 줄었다고 하지만, 기술의 발달에 힙입어 자본은 노동자들의 노동밀도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노동과정을 통제·관리하고 있다. 택시노동의 사납금 제도, 버스 노동자들의 저임금 민영 구조, 집배, 보건의료 노동자들과 같은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의 공공지원 부재 등 각종 현안에 대해서 현장에 기반한 대안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출처: 우정사업본부

노동시간 단축, 노동강도 저지 투쟁은 노동자 생존과 건강권의 문제

연구소는 지속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일자리 창출 프레임으로 보는 것의 문제를 지적해 왔다. 노동시간을 일자리 창출로 연결 짓는 '노동 경제학'이 아니라 노동시간의 사각지대에서 허덕이고 있는 이들을 바라볼 '노동 인간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노동강도를 통해 무한 이윤을 축적하려는 자본의 시도를 비판하는 실천들이 요구된다.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 나누기가 아닌 노동자 삶의 문제, 생존과 건강권의 문제다. 주간연속2교대제의 문제를 건강권 중심으로 파악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노동시간 단축분만큼 임금을 보전하기 위한 연장근무, 특별근무 비중을 높이고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노동강도를 높이는 방향이 전개되었다. 지난 투쟁을 돌이켜 볼 때, 완성차에서부터 기형적인 주간연속2교대제를 막아내지 못하면서, 부품사로 내려가면 갈수록 노동자들은 높은 노동강도를 견디며 일하게 되었고, 이제 부품사 노동자들에게는 자본에 더 양보할 노동강도가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 이르기도 했지 않았는가.

노동안전보건운동은 지난 노동운동이 생산력의 발전만큼 노동시간 단축을 노동자의 권리로서 쟁취하지 못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결과, 노동강도는 올라가고 고용은 이뤄지지 않는 구조가 재생산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리고 앞으로도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평등하고 자유로운 노동의 출발점이자 지향으로 삼아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삶이 우선되는 세상으로의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

노동 유연화뿐만 아니라 노동시간 유연화도 심화되고 있다. 이는 산업구조의 측면에서 플랫폼 노동의 등장과 연관된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등이 이뤄지면서 재택근무가 확산되는 등 주춤했던 노동 유연화 논의가 다시금 활발해지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로 경기침체, 고용불안까지 촉발되었다. 현 상황을 돌이켜 볼 때, 앞으로 세워나가야 할 노동안전보건운동, 노동시간센터의 전망은 다음과 같다.

시간제 저임금 구조에서 비롯된 생활임금 유지를 위한 장시간 노동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현장의 노동강도를 평가하여 과도한 노동을 막아야 한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휴게시간을 확대함으로써,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의 통제권과 여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한 과제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심야노동, 교대제, 장시간 노동은 앞으로도 지속해서 대응해나가야 할 과제다. 동시에 저임금 (초)단시간 노동, 과로 자살, 플랫폼 노동 등은 새롭게 쟁점을 만들어가야 할 주요 의제들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보건의료 노동자, 운송업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노동시간 특례제도(근로기준법 제59조)의 폐지와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권 및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은 긴급하게 개입해야 할 사안이다.

이러한 장단기적 과제를 놓고서, 날카롭게 문제 제기를 하고 사안별 대응을 이어나가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기 노동의 주인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다양한 현장연구와 노동강도 저지 투쟁이 더욱 힘차게 이뤄져야 한다.


1) 일터 통권 2호(2003.09), 기획1, "노동강도 강화, 그 삶과 죽음 사이의 줄타기 - 현대자동차 생산공장 사례를 중심으로.", 김봉길(현대자동차민주노동자 투쟁위원회), p.14-18

2) 일터 통권 3호(2003.10), 기획2, "철도의 안전사고, 노동자 몇 명 구속되면 해결될 수 있을?", 손미아(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준)연구위원/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p.16-19

3) 일터 통권 30호(2006.03), 특집. "노동안전보건투쟁, 이렇게 나아집니다 - 4대 실천의제를 중심으로.", 공유정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p.12

4) 일터 통권 132호(2015.08), 특집. <노동시간을 둘러싸고 계속되는 싸움>, "주간연속 2교대 시행 현황과 교대제 변화의 영향", 김형렬(노동시간센터(준) 회원, 가톨릭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p.30

5) 일터 통권 158호(2017.03), 연구 리포트, "게임개발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실태.", 최민(상임활동가), p.25

6) 일터 통권 144호(2016.01), 연구 리포트. "장시간 버스 운전, 운전노동자의 건강과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 - 버스 운전노동자의 과로 실태와 기준 연구.", 이이령(회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직업환경의학과), p.25

200호 기획 1. 근골격계 직업병과 근골유해요인조사, 노동자가 현장을 바꾸는 무기?! / 2020. 10·11

[기획 -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발자취 ]

근골격계 직업병과 근골유해요인조사, 노동자가 현장을 바꾸는 무기?!

푸우씨 상임활동가

들어가며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을 끊임없이 괴롭혀왔던 질환이 있다. 바로 '근골격계 질환'이다. 살아가기 위해 어느 누구든 몸을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사람의 신체를 구성하는 근육, 뼈, 인대, 신경조직 등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병증은 그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왔다. "아이고, 삭신이야", "젊을 때 너무 고생해서, 일찍 골병이 들어서 그래"와 같이 사람들은 이 질환을 '삭신이 아픈 병', '골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이제 포털 사이트에서 '근골격계 질환'을 검색하면 페이지 가득히 다양한 내용이 나열된다. 뉴스란에는 체중 증가와 비만이 근골격계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건강 상식을 담은 기사도 있고, 다양한 근골격계 질환에는 도수 치료가 근본적인 치료법이라며 이를 시행하는 병원을 홍보하는 기사도 눈에 띈다. 이렇듯 '근골격계 질환'은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입에 잘 붙지 않고 낯선 질환일 수도 있지만, 포털 사이트에서 누구나 손쉽게 주요 질환, 증상과 일반적인 특징, 치료방법과 전문 치료기관을 알 수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질병 중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근골격계 질환이 사회화된 배경에는 IMF-구조조정을 거치며 분출된 노동자들의 역사적인 투쟁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근골격계 질환'이 노동자를 병들게 하는 '가장 흔한 직업병'이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노동강도를 낮추기 위한 현장개선이 동반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3년에 한 번씩 정기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찾아보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지만 말이다.

감히 말하자면, '근골격계 직업병'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창립하게 된 배경이다. 이를 현장에서 제기하며, 노동자의 직업병으로 조직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결집하여 연구소가 결성됐다. 그만큼 200호를 맞이하는 <일터>의 현재까지, 주요하게 다뤄지고, 언급된 노동자의 직업병이기도 하다.

작업대 앞 두원정공 노동자들. 출처: 금속노조 두원정공지회, 일터 통권 1호(2003.08) 수록.

근골격계 질환은 어떻게 직업병이 되었나?

"지난 2002년 초 비 내리는 새벽 거제 옥포 매립지에 허리, 어깨, 팔, 다리가 아파 버스에 오르던 노동자들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근골격계 직업병으로 판명난 노동자 중 회사의 압력과 회유 속에서도 30% 정도인 76명의 노동자가 근골격계 직업병으로 집단 산재요양에 들어갔고, 전원 산재 인정을 받았다. 사측에서는 노동자들이 심하지 않은 증상을 침소봉대한다고 하며, 일을 하기 싫으니까 노동조합의 힘을 빌어 산재에 들어간다는 말이 나돌았다. 예전에 유기용제에 의한 직업병이나 망간중독증처럼 한 번 스쳐가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2002년 7월에는 한라공조 11명, 카스코 등 32명, 11월에는 대우상용차 27명이 집단 산재 요양에 들어갔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삼호중공업 33명, 두원정공 21명, 대한이연 10명의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 요양 투쟁을 시작으로, 풀무원, 도시철도, 철도, 현대자동차, 쌍용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업종을 초월하여 여러 지역의 사업장에서 근골격계 직업병에 대한 집단 산재요양 및 노동강도 강화저지 투쟁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 일터 통권 1호(2003. 08), 기획2, "근골격계 직업병의 현황과 실태", 고상백(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준) 연구기획실), p.18

연구소가 창립을 준비하던 시기에 작성된, 위의 <일터>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근골격계 질환'은 2002년 대우조선 노동자들을 필두로 한 2003년 금속제조업 노동자들의 연이은 집단요양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직업병'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한국통신 전화교환원, 현대정공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 집단요양이 없었던 바는 아니지만, 2003년을 정점으로 진행된 금속제조업 노동자의 집단요양 투쟁은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특정한 직업군에서 근골격계 질환이 발견되거나 전문가들에 의해 밝혀진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이 현장조직화를 기반으로 "허리 아파 어깨 아파 사업주가 책임져라", "노동자가 철인이냐? 근골격계 대책 마련하라!", "아프나? 치료하자! 힘드나? 쉬었다 하자!"를 외치면서, 자신의 망가진 몸과 훼손된 신체를 '증거'로 내세워 이것이 직업병임을, 문제해결이 필요함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근골격계질환이 주요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1997~1998년 IMF-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대량의 정리해고가 횡행하던 노동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산 자'와 '죽은 자'로 분류되어 공장 밖으로 밀려나가는 것을 지켜봤던 노동자, 동료들이 잘려나간 그 자리가 하청,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일자리로 채워지는 것을 지켜봤던 노동자, 누군가 떠난 몫까지 고스란히 할당되어 강화된 노동강도를 감내하며 생존을 위해 버텨왔던 노동자들. 바로 이들이 당시에는 생소했던 근골격계 질환을 '골병'으로 명명하였다. 나아가 집단요양 투쟁이라는 방식으로 운동을 조직했고, 근본적인 대책으로 '노동강도 강화 저지'를 내세웠던 것이다.

이러한 금속제조업의 집단요양 투쟁은 조직노동자들에게 '근골격계 질환이 직업병이며, 산재신청을 통해 치료받을 수 있다'라는 걸 널리 알리는 계기이자, 이 직업병의 원인이 노동강도 강화와 같은 집단적 요인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를 통해 '일하면 아픈 게 당연한 것', '나이 들면 아픈 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나이, 키, 몸무게, 취미생활 등 개인적 요인이나 중량물 취급, 불안정한 작업자세, 진동 등 개별적 작업요인만이 아니라, 근골격계 질환의 집단적 발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노동과정의 조건(노동강도, 노동조건, 노동시간, 직무스트레스 등), 집단적 요인이 가장 밑바탕에 있음을 알게 됐다.

또한, 이 과정을 거치며 노동조합은 현장 조직화와 현장 개선의 소중한 경험을 축적하게 됐다. 당시 집단요양의 목표를 단순히 요양 승인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요양자만이 아니라 현장조합원 전체가 자신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현장 투쟁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노동자들의 투쟁은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의 도입'이라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국가가 주도하는 근골격계 질환 예방제도인 '유해요인 조사'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유해요인조사와 관련한 법제도적 근거는 2003년 하반기 당시 산업안전보건법 제24조(보건조치), 산업보건규칙 제9장을 신설함으로써 새롭게 마련됐다.

그림. 연도별 업무상 질병자와 근골격계질환자 수. 출처: 직업성 근골격계질환의 발생 현황과 특성, 2010, 김규상·박정근·김대성,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발빠른 자본의 대응, 제도 안에 갇혀버린 노동자의 '골병'

앞서 밝혔듯이, 2003년 당시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의 법제화는 금속제조업 노동자들이 전개한 집단요양 투쟁의 성과였다. 하지만 동시에 더이상 투쟁이 진전되지 않는 한계 속에서 형성된 타협의 산물이기도 했다. 자본과 정부는 당시 확산 일로에 있었던 근골격계 투쟁을 효과적으로 막아서기 위한 제도적 수단이 필요했고, 노동 측에서는 직업병 인정 투쟁을 넘어 노동강도 저하 및 현장 통제력의 복원으로까지 투쟁을 확장하지 못하는 한계에 봉착한 상황이었다.

당시 자본은 근골격계 투쟁이 '아픈 노동자의 치료'를 넘어 실질적인 '구조조정 저지, 노동강도 강화 저지' 투쟁으로 나아가는 데 두려움을 느끼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었다. '골병'으로 아프지 않은 현장을 만들겠다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적정 인력과 생산량 등에 대한 현장통제를 요구하는 운동으로 진전될 성격을 띠었기 때문이다. 자본은 이 투쟁이 이윤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자신들의 고유영역인 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임을 재빠르게 간파했다.

이에 반해, 노동조합은 근골격계 투쟁이 가지고 있는 '노동강도 저지' 투쟁으로서의 본질적인 의미를 되새기는 데 한 발짝 늦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 전면에는 '노동강도'의 문제를 내세웠으나, '당장 직업병으로 인정받아, 치료라도 받는 게 어디야'라는 인식들이 도처에 자리잡고 있는 현실도 존재했다.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집단요양 투쟁을 전개한다는 자체만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사측의 유무형의 탄압, 건강진단 감시, 조사요원 사업장 진입방해(진입시 형사고발), 요양신청 철회 압력, 잔업특근 불이익, 계약직의 경우 계약만료, 폭력행사, 교섭 전면 거부 등등은 노동자가 기계 부품만도 못하다는 것을 뼈 저릴만큼 느끼게 한다. 그런데 집단요양 투쟁을 하고 그 다음에 해야 할 것을 보자면 이것이 일도 아님을 알게 된다." - 2) 일터 통권 1호(2003.08), 기획1,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 어디를 향하여 갈 것인가", 김재광(노동강도강화저지와 현장투쟁승리를 위한 전국노동자연대), p.15

 
이 투쟁을 조직하는 과정은 2003년 8월호(통권 1호) <일터>가 당시 분위기를 전하고 있듯이, 대단한 각오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치료를 받는 데 있어, 자본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것이 노동자에게 유리하다는 현실적 판단을 하는 경우들도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에 따라 법 조항과 노동부의 11개 근골격계 부담작업 고시 등 세세한 부분을 규정하는 데 있어 일부 마찰이 있기는 했으나, 현재 수준의 '절충된 타협안'이 도출되었다.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는 당시의 자본과 노동의 힘관계를 반영한 제도적 산물이었으며, 빠른 속도로 법제화되었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다른 제도와 비교했을 때, 유해요인조사는 (정기 유해요인 조사뿐 아니라 질환자 발생에 따른 조사, 새로운 공정 도입에 따른 조사 등에서) 노동조합의 참여와 개입을 상당히 허용하였다. 그렇기에 현장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유력한 기제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다소간의 '긴장감 있는 절충안'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집단요양 투쟁이라는 형태로 제기되었던 근골격계질환 산재 인정 요구는 승인율의 변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투쟁 이후, 근골격계질환 승인율은 그 투쟁의 파고만큼이나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IMF-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시기인 1998년에는 업무상 질병자 중 근골격계 질환자는 124명(7%)에 그쳤었다. 집단요양 투쟁이 정점에 이른 2003년도에는 업무상 질병의 4532(49.6%)명에 이르며 승인율도 93.7%에 달했다. 이후 근골격계 질환이 정부와 자본의 적극적인 관리하에 들어가면서 2005년 2901명(38.7%)까지 하락했으나, 이후 점차 회복되며 2008년 이후 현재까지 70% 내외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근골격계질환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 그만큼 산재 신청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근골격계질환으로 치료를 받는 데 있어서, 여전히 산재 승인이라는 장벽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제도화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의 현실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제도가 법제화된 이후, 총 6회의 정기 유해요인조사(3년마다 실시하는 정기 유해요인조사는 최초인 2004년, 2007년, 2010년, 2013년, 2016년, 2019년)가 이뤄졌다. 하지만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가 사업주의 의무로서 시행됨에 따라, 초기의 취지를 잃어버리고 형식적으로 시행하는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 현장에서 근골격계질환의 직업병 인정을 둘러싼 지형은 법제화 이전과 다른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조직화를 바탕으로 거리에서 분출했던 근골격계 투쟁은 개별 사업장의 담벼락 안으로 갇히고 말았다. 노동자가 주도권을 갖고 실시했던 현장조사는 회사와 이를 대행하는 전문기관의 손에 주도권을 내주게 되었다. 현장개선과 노동강도의 문제는 예방관리프로그램으로 봉합되며, 현장개선을 통한 예방의 영역으로부터 질환자 관리 및 치료의 영역으로 협소화되었다. 요컨대, 법제도의 틀 내로 운동이 포섭되어가면서, 노동강도 완화, 노동시간 단축, 노동자에 의한 현장 통제 등을 요구했던 정치적 투쟁으로서의 의미가 형해화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해요인조사는 현재 어떻게 실시되고 있을까? 이를 2019년 안전보건공단이 실시한 작업환경실태조사 결과에서 일부 확인할 수 있다.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조사는 5인 이상 제조업과 5인 미만 제조업 중 산재발생의 가능성과 위험도가 높은 업종 9개를 표적업종으로 삼아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제조업과 비제조업 중 유해·위험인자 다수 보유업종 13개를 표본조사한 것이다. 이 중 전수조사 대상인 10만 7665개 사업장 중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곳이 2만 7221개소(25.3%)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곳은 16.3%이며, 표본조사의 경우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한 비율이 전수조사보다 적은 7.6%로 그쳤다.

물론 이 자료를 통해서 더 자세한 현황을 파악할 수 없고 유해요인조사 실시 여부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가 3년마다 실시해야 하는 사업주의 의무로 제도화되었음에도, 시행하는 곳에 비해 실시하지 않는 곳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초기 취지가 퇴색되었다는 평가와 별개로, 유해요인조사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현재 정부 차원에서 실시율 자체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결국 법적 의무로 협소화되면서, 현장에서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할 내적 동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지, 돌아봐야 할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유해요인조사를 제대로 실시하도록 강제한다고 하더라도, 조사 자체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2019년 고용노동부의 산재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업무상 질병으로 치료를 받은 노동자의 67.2%가 근골격계질환으로 요양을 하고 있다. 이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비용은 상당히 크다. 유해요인조사를 통해 일차적으로는 산재 실태를 드러내고, 산재승인율을 높이는 데 일정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조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이를 넘어서 작업환경 개선 등 근골격계질환 자체를 예방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해요인 조사의 실시율이 낮을 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인간공학적 요인 개선 외에는 노동시간 단축, 교대제 전환 등을 통한 작업환경 및 노동강도 개선 논의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활용하여 노동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실시하는 현장조사를 통해 현장을 개선해가고 있는 금속제조업 현장의 모범사례들이 있다. 전문가들의 손에 맡겨져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진행하는 근골유해요인조사 방식(현장조사 시트 등의 개선)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객관적·과학적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는 인간공학적 평가 중심의 조사방식을 넘어, 수차례의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자의 현장 경험을 반영한 주관적 노동강도 평가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또한 노동자의 치료·요양 경험을 진단하여 질환자에 대한 조치를 개선하고자 한다. 그리고 조사결과에 근거한 개선조치를 목록화화고 이행현황을 점검함으로써 작업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해나가고 있다. 금속제조업 현장에서는 근골격계 문제를 사회화하는 '1라운드'를 거쳐, 본격적으로 현장에서 이를 둘러싼 현장개선과 노동강도의 문제를 둘러싼 '2라운드'를 치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최근 몇 년간의 노동조합 조직률의 증가와 함께 2000년대 초반 금속 제조업을 필두로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이 문제를 사회화한 것처럼, 학교급식, 마트, 청소, 건설 등 다양한 업종의 노동자들도 산재신청과 근골격계질환 현황 드러내기를 통해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다른 현장 곳곳에서도 '1라운드'를 본격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강도 완화 투쟁 중인 풀무원노조 조합원들. 출처: 풀무원 춘천지역 노동조합, 일터 통권 1호(2003.08) 수록.

유해요인조사 실효성 증진을 위한 개선과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가 예방을 위해 도입되었다는 본래 취지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보완되어야 할 지점들이 상당히 존재한다. 유해요인조사가 형식적 조사로 그치도록 하는 현실적 조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자 투쟁을 통해 제도변화를 강제해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당면한 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11개 부담작업으로 제한된 고용노동부 고시 기준의 폐기다.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는 11개 부담작업을 기준으로 평가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도입 당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아왔다. 제조업의 라인 업무나 조선업 등만을 기준삼았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업종과 작업의 비정형적인 업무는 반영되지 않는 점,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하여 여성이나, 장년 등 일터에서 일하는 성별과 연령 차이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 하루 2시간, 5kg 등 시간과 무게를 일률적으로 제시하여 마치 그에 해당하지 않으면 근골격계질환이 발생하지 않는 것처럼 규정하고 있다는 점 등을 현장 노동자와 전문가들이 지속해서 비판해왔다.

그러나 해당 고시는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대다수 사업장에서는 이를 기초로 본 조사에 앞서 예비조사를 실시하는데, 고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상당수의 작업은 아예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만약 본 조사에 포함되었다고 하더라도, 고시에 제시된 시간과 무게 등을 근거로 부담이 없는 작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따라서 고시 기준을 폐기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둘째, 유해요인조사의 내용이 인간공학적 평가로만 제한되고 있는 현실을 바꿔내는 일이다. 대다수 현장에서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할 때, 작업장 상황이나 작업조건 등 사업장 현실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를 수행하지 않는다. 단지 인간공학평가와 그에 따른 개선만 다루고 있다. 이는 근골격계질환의 주요 부담요인, 근본요인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인간공학평가 중심의 유해요인조사는 외부전문가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이로 인해 현장 노동자의 참여를 어렵게 만든다. 그 결과, 노동자가 현장조사의 주체가 아니라 조사 대상으로만 머물게 될 위험이 있다.

셋째, 유해요인조사가 근골격계질환의 예방에 있어 실질적 역할을 하도록 개선해야 한다. 이는 본래 취지를 되살리는 일이다. 예를 들어, 유해요인조사가 특정 평가로 제한되고 형식적으로만 시행되면서, 사업주에게 작업환경개선 조치를 요구해야 할 사항들이 '운동범위의 축소, 쥐는 힘의 저하, 기능의 손실 등'과 같이 노동자 개인들이 유의해야 할 사항, 개별적 조치 사항으로 협소해지고 있다. 또한 현장개선요구조차 '인간공학적으로 설계된 인력작업 보조설비 및 편의설비를 설치' 등 인간공학적 개선에 편중되어 있다. 또한 사업장 인력 대비 일정 규모 이상의 근골격계 질환자 발생 및 산업재해 인정 여부를 기준 삼아, '예방관리프로그램의 시행을 의무화'하고 있기에 배제되는 사업장들이 다수 발생하여, 보호·예방에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것

근골격계질환은 특정 업무, 특종 직군에게만 나타나는 질병이 아니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병에 노출될 수 있고, 누구든지 이 병의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 다만, 그 고통의 현실을 노동조합 등 조직적 운동을 통해 세상에 드러내 '직업병'임을 알리고 앞서서 대책을 요구하며 현장을 개선한 노동자들과 뒤늦게 이를 '직업병'으로 자각하고 현장 개선을 고민하기 시작하는 노동자들이 있을 뿐이다.

현재 '일하다 보면 아픈 게 당연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자각한 노동자들이 일부 조직되어 있다면, 여전히 대다수의 노동자는 '일하다 보면, 아픈 게 당연하다'는 생각에 머물고 있고, 자본은 이윤 축적을 위해 끊임없이 노동자들을 골병들게 하고 있다. 그렇기에, 근골격계질환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사회문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전통적인 제조업을 넘어 노동시장, 고형태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현실을 반영하여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대책이 적극적으로 수립될 필요성이 있다. 앞서 고용노동부의 11개 고시를 폐기할 필요성을 언급하며 지적했던 제조업 남성노동자에 국한된 범정부적 인식은 노동시장과 고용 형태 변화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미 노동시장은 전통적인 제조업으로부터 다양한 서비스직군의 출현에 따라 그 중심이 변화하고 있으며, 여성이나 고령 노동자가 고용시장에 진입하면서 단속적 노동, 비정형 노동, 불안정 노동 등이 지배적인 노동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이를 반영한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보호와 예방' 대책뿐 아니라, '치료와 재활'을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한편, 이러한 현실은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진행해 왔던 금속제조업 현장에서도 변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신규 고용이 창출되지 않는 제조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고령화는 매우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장년 노동자에게 적합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기준을 새롭게 마련하는 것이 더이상 미뤄져선 안된다.

마치며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노출되며, 고통받을 수 있는 근골격계질환은 한국 사회에서 역사적인 금속제조업 노동자의 투쟁을 통해 비로소 '직업병'으로 등장했다. 이후 이를 둘러싼 투쟁과 싸움은 그 진폭은 줄었지만, 다양한 형태로 반복·변주되고 있다. 근골격계질환은 일하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당신은 얼마나 인간적인 노동을 하느냐'의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우리 사회에도 끊임없이 되묻고 있다. '골병 들지 않는 일터', '인간다운 노동을 하는 일터'가 어떻게 가능하며, 그 기준이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느냐고 말이다. 그 기준은, 다른 무엇이 아닌 노동자의 몸과 삶이어야 하지 않냐고 말이다.

특집 3. 삶의 회복을 위한 산재보상제도를 만들어가자!-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김은경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인터뷰 / 2020. 09

[산재, 치료 후 '정지'할것인가 직장복귀로 '연결'할것인가③] 

삶의 회복을 위한 산재보상제도를 만들어가자!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김은경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인터뷰

박기형 상임활동가

산업재해 보상제도의 취지를 돌이켜보면, 산재 노동자들에게 단지 금전적 보상만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삶 자체를 회복하고 앞으로도 살아갈 역량을 되찾아주고자 하는 사회적 책임 또한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책임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 바로 재활과 직장복귀다. 한국 사회에서 온전한 재활과 직장복귀가 아직은 요원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일선에서 산재 노동자들의 회복을 위한 법 제도를 마련하고 실제로 작동시키기 위해 노력 중인 한 사람을 만났다.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에서 근무 중인 김은경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를 만나, 재활 강화 및 직장복귀 증진을 위한 고민과 제안을 들어보았다.

작업능력강화 훈련과 산재관리의사 제도

김은경님은 2009년부터 근로복지공단 소속으로 산업보건사업을 위주로 하다가, 2017년 초부터 산재환자의 직장복귀, 업무 관련성 조사를 위한 특진 업무를 하고 있다. 2020년 3월부터는 경기남부근로자건강센터 업무도 맡게 되었다. 그는 예방과 보상 그리고 재활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산재 프로세스를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재활 강화를 위해선 무엇이 개선되어야 하는지 얘기를 나눠보았다.

"근로복지공단병원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재활의학과 중심으로 작업능력강화훈련을 진행해왔습니다. 쉽게 말해, 스포츠 선수들이 손상 후 복귀를 위해 치료뿐만 아니라 적절한 신체기능 강화를 하는 것을 산재 환자들에게도 적용한 것인데요, 의학적 치료뿐만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하지만 긴 요양 기간 후에 막상 복귀하려고 하면 사업주와의 관계 단절이나 원 직무 수행이 불가하여 복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2017년부터는 작업능력 강화뿐만 아니라 사업주와의 관계 지속을 위한 연계 업무, 작업환경 등의 개선, 업무 적합성 평가 등에 대해서도 함께 개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위해 근로복지공단 병원은 시범 수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치료를 받은 분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고, 복귀율 또한 높다는 것은 연구보고서를 통해서도 나온 바가 있습니다.

다만, 한 해 10만여 명의 산재 환자가 유입되고 그 중 근로복지공단 병원에서 요양하는 분들은 극소수입니다. 산재 환자 대다수가 아직 기존의 시스템 하에서 의학적 치료의 종결 후에 산재 종결이 되고 복귀를 하기에는 힘든 상태로 실업 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단의 지사에 잡코디네이터가 있어서 원직장 복귀가 어려운 분들에 대한 타직장 복귀 지원, 원직장 복귀를 위한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지만, 아직은 모든 산재 환자가 도움을 받고 있다고 체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8년 말부터는 고용노동부에서 산재관리의사를 양성해 산재 환자의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은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산재 진입 과정부터 종결, 그리고 직장 복귀까지 세심한 접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산재 노동자 각자에게 적합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제도와 인력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산재관리의사제도의 실효적 도입을 제안했다.

"산재관리의사제도는 고용노동부에서 독일의 산재전문의사(DA)제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한 제도입니다. 의사 중에서 산재 제도와 산재 노동자의 특성을 좀 더 이해하고, 적절한 치료 및 적시 전원을 유도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현재까지는 정형외과,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조건을 만족하는 병원에 근무하면서 소정의 교육을 받으면 자격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산재 환자의 직장 복귀를 위해서는 재해 초기부터 적절한 설명과 지원이 필요한데, 현재까지 산재관리의사가 100명 넘게 배출이 되기는 했으나, 역할을 하기에는 여건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는 등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산재 제도로의 유입 증진과 적시 개입 등을 위한 제도가 도입된 것은 중요하다. 이후 제도 보완을 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애초 기획을 했던 고용노동부의 시도대로 산재의료전달체계를 명확하게 확립하기 위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 수가의 개선, 의료 시설의 개선, 무엇보다도 의사들과 환자, 사업주들의 의식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급성기 병원에서 수술 등의 치료를 한 후 기본적인 열전기 치료 등만 할 것이 아니라, 아급성기에 적절한 재활을 위해 재활인증병원이나 근로복지공단 병원으로 전원이 필요할 것이고요. 전원 후에는 사업장과의 연계를 위해 재빨리 직업환경의학과와 협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기 위한 인센티브로 산재관리 의사가 산재 환자를 대상으로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수가가 산정되고 있지만, 수고로움이 동반되는 업무이고 홍보 또한 충분치 않은 터라 참여가 아직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직장복귀 증진을 위한 방안

김은경님은 산재 노동자의 직장복귀와 관련한 교육을 할 때마다 던지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당신이 불의의 산재 사고를 당한다면 원 직장에 복귀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파트너가 불의의 산재 사고를 당해 치료 후 직장에 복귀한다면 그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해, 산재 노동자의 회복에는 직장과 사회에서의 배려가 필요하다. 사업주나 직장 동료 등이 시간적, 물질적 측면에서 복귀자에 대한 지원을 해줘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러한 지원을 불필요한 비용이나 손해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나라처럼 한 사람이 가져야 하는 노동력을 1명이 아닌 1명 이상으로 요구하는 때엔 복귀한 사람 입장에서도 죄책감이나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요양 중 해고는 불법에 해당하지만, 종결 후 견딜 수 없어 노동자가 직접 사직서를 내는 일이 종종 벌어져요. 하지만 이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법은 없죠. 

산재 환자의 80%가량을 차지하는 50인 미만 소규모사업장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원 직무 외에 전환 가능한 직무가 없는 경우가 많고요, 요양 중에 이미 대체 인력을 뽑아 일하고 있는 경우 돌아갈 자리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보다 보편적인 차원에서 시스템 마련이 필요할 텐데요. 독일의 사례를 보면, 원직장이 있는 산재 환자의 원직장복귀율은 90% 이상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전문가가 개입하게 되면 그 비율은 95%까지 올라간다고 하더군요. 독일은 산재 환자의 원직장복귀가 사업주의 의무라서 그렇게 높은 비율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우리나라는 원직장복귀를 사업주의 의무로 하는 법안이 국회의 벽을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되었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제도적으로 사업주의 의무를 조금 더 강화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고요, 산재 환자에 대해서는 직장 복귀에 대한 개입이 산재 초기부터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산재 보상이 아니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회보험의 틀도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근래에 상병 급여가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는데, 산재 환자가 산재를 종결하고 직장에 복귀하여 일하다 다시 아프더라도 산재의 재요양 또는 상병 급여 등을 통해 원활하게 생계지원을 받게 되면 산재 환자들을 대상으로 독버섯처럼 활동하면서 그들의 삶을 좀먹는 산재 브로커들의 활동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현재 그가 속해있는 안산병원에서는 어떻게 시스템을 갖추고 재활과 직장복귀를 위한 제도적 개입을 시도해보고 있을까?

"안산병원에서는 본원에 유입되는 모든 산재 환자를 직장복귀지원 대상자로 선정하여 조기에 상담을 진행합니다. 이후 사업주와의 연락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파악합니다. 환자에게 의학적 치료를 지속해가고 중간중간 상담을 통해 직장복귀에 대한 의욕을 고취시킵니다. 

사업주에게는 대체인력지원금, 직장복귀지원금 등 지원 가능한 제도에 관해 설명하고 장해가 남는 분에 대해서는 장애인고용과 관련된 혜택 등에 대해서도 설명을 합니다. 장해 때문에 원 직무 수행이 어려운 경우, 사업장의 직무분석을 통해 복귀할 수 있는 타직무를 파악하고 지원하기도 합니다. 일용직 등의 이유로 원직장 복귀가 어려운 경우에는 지사의 직장복귀지원팀을 통해 타 직장 취업도 알아봐 드립니다."

이와 같은 시스템을 공공영역에서 안착시키는 것과 동시에, 민간영역에서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사업주 의무를 규정하는 것 외에, 민간 의료체계에서 산재 제도 프로세스를 갖추도록 하려면,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

"안타깝게도, 민간병원의 의료진들에게 산재 환자는 대하기 까다로운 대상에 해당합니다. 건강보험 환자보다 차지하는 비율이 낮을 뿐만 아니라 보상이 걸려 있으니 치료를 종결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한편 어떤 식으로든 치료를 지속하면 보상이 나올 수 있으니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산재관리의사 제도의 기획 의도에 맞게 적정치료, 적기 전원, 적절한 종결을 하면 치료를 한 의료진에게도 보상이 주어지는 방향으로 더욱 제도 보완이 되어야 할 것이고요, 사업주에게도 산재 환자의 직장복귀에 대한 의무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직장 복귀를 시킨 경우, 산재요율, 근로감독 등에 대한 혜택, 인증 부여 등 혜택도 강화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온전한 신체·정신적 회복을 위해

"우리나라에서 산재 환자의 직장복귀를 위한 노력이 기울여지고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환자의 유입, 치료, 복귀의 과정까지 모든 과정이 유기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한두 사람의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정부의 노력, 현장의 의료진들, 사업주들, 특히 산재 노동자가 열린 마음으로 함께 노력을 기울여야 가능한 일입니다. 현장과 함께 뛰는 전문가로서 직장복귀와 재활의 좋은 사례들을 발굴해내고, 이를 바탕으로 산재 제도의 선순환 프로세스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더 나은 노동 조건 속에서, 서로의 삶을 회복하는 데 배려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특집 2. ‘허공에 손 젓기’, 산재 트라우마 재활기 / 2020. 09

[산재, 치료 후 '정지'할것인가 직장복귀로 '연결'할것인가②]

‘허공에 손 젓기’, 산재 트라우마 재활기

유청희 상임활동가

노동 현장에서 업무상 사고나 질병에 의한 산업재해는 잘 알려져 있었지만, 업무상 정신질환이나 직업적 트라우마는 일반인들에게 익숙하지 않다. 이런 인식의 문제는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트라우마 산재 피해자에게 치료와 지원을 위한 제도가 부재한 상태이고, 그 피해와 상처는 산재 피해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한국에서 정신질환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것은 오래됐지만, 업무와 관련된 트라우마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체계화하게 된 것은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이후라고 볼 수 있다. 2018년 노동부에서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를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고, 올해 5월부터는 8개소에서 운영을 시작했다.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에서 800톤 대형 크레인과 32톤 크레인이 충돌해 타워크레인 지지대가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삼성중공업 협력업체 노동자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크게 다쳤다. 이 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한 많은 노동자가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이 중 7명에게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산업재해가 인정됐다. 

이 사고 목격자로 산업재해 승인을 받아 치료를 받는 김영환씨를 만나, 지금까지 트라우마 산업재해로 치료를 받은 과정을 묻고, 이후 직장 재취업을 위한 지원을 어떻게 받고 있는지 등을 들었다.

산재신청은 누가 알려주나요?

사고를 겪고 10일 만에 다시 직장으로 돌아간 김영환씨에게 직장의 그 누구도 트라우마에 대해 얘기해주거나 치료에 대해 안내해준 사람은 없었다. 사고 장면이 떠오르고 밤에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됐지만 어떤 도움을 누구에게 청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극도로 예민해지고 가족에게도 폭력적으로 대하는 그에게 정신과 치료를 권한 것은 동생이었다. 

그때서야 김영환씨는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깨닫고 2017년 9월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영환씨에게 업무상 재해로 산재 신청을 할 수 있고 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회사도, 노동부도 해주지 않았다. 그런 조언을 해 준건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마창거제산추련)가 유일했다.

"7월경에 거제시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어요. 시 아니면 노동부에서 결정해서 한 것 같았어요. 보건소 갔을 때 담당 공무원과 얘기했고요, 그런데 행정일 하는 공무원이 정신과 진료받아야 하는지 판단하더라고요. 다음에 일을 하루 빠지고 가서 정신과 의사와 만났는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니까 자신의 병원에서 치료받으라고 했어요. 

비용 부담은 누가 하는지 물으니 개인 부담일 거라고, 잘 모르겠다고 했어요. 공무원한테 누가 병원비 내는지, 또 근무하지 못한 것 급여 보상은 어떻게 하는지 물으니까 모른다고 해요. 병원에 계속 다닐 수 없어서 중단했습니다.

산재 신청은 마창거제산추련에서 추진해주셨어요. 2017년 10~11월경으로 기억나네요. 그전까지는 산재 신청해보라는 사람 없고요. 오히려 (산재신청을) 하면 큰일 난다고 했죠. 팀장이 '산재 신청하면 못 돌아온다'라고 했고요. 그래도 진행했습니다. 같은 사고 겪은 친구는 안 했어요. 삼성중공업에 돌아올 때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으니 산재 신청 포기하겠다고요."

'산 넘어 산' 트라우마 치료기

산재 승인 후 새로운 병원에 다니게 된 김영환씨는 가장 의지하게 됐던주치의로부터 상처를 받는 일이 발생했다.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중에 주치의로부터 치료 종결하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다른 지역으로 옮긴 뒤에는 담당 공무원이 김영환씨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트라우마 산재 노동자가 이해받지 못하고 지지받지 못한다는 기억만 남게 했다. 김영환씨는 산재 신청과 치료 기간이 공무원을 비롯한 제도와의 싸움 기간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의사를 밝히거나 질문하지 않으면 제대로 치료를 받기 어려운 과정이었다. 

"9월에 최초로 병원 진료를 받았습니다. 산재 승인된 후에는 다른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라고 해서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진료에 문제가 많았어요. "잠은 잘 자요?" "아니오" "요즘 어때요?" "힘들어요" "그래요" 이렇게 하고 진료가 끝이 납니다.

7~8개월 진료받고 나니까 의사 선생님이 산재 종결 얘기를 자꾸 하시는 거예요, 그만할 때 되지 않았냐고요. 기분이 나빠져서 "그만둘 수 없다. 며칠 전에 집사람이랑 싸웠는데 집사람 몸을 손을 댔다"고 하니 그냥 웃고는, "알겠다"고 하면서 연장 신청서 작성을 해주더라고요. 대구에 있기 싫었던 이유 중 하나가 그 병원이었어요.

산재 승인 후 대구에서 진료받다가 이후에 인천으로 옮겼는데, 인천에서는 주치의는 괜찮은데 공무원이 힘들게 했어요. 2018년 3월에 연장 신청을 했는데 공무원이 그만하라는 말을 계속하는 거예요. 결국 주치의 선생님이 연장 신청을 했죠. 또 근로복지공단 인천지사에서 (산재 승인 후 1년이 되는) 5월 이후에는 산재 신청이 종결된다고 하더라고요. 

매일노동뉴스 기자님이랑 얘기했어요. 근로복지공단에 전화해서 기자님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산재 치료 기간이 1년이면 끝나는 거냐고 물으니까 절대 아니라고 했대요. 다 나은 후에 종결짓는 거라고요. 근로복지공단에서 지사에 공문을 다 보냈다고 했습니다."

트라우마 치료는 주치의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대구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동시에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에서 상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김영환씨는 전문상담센터에서 받은 상담에서 가장 큰 위안을 받았다고 말한다. 센터는 2018년 5월 대구에서 시범운영 되다가 2020년 5월 전국에 8개소로 확대했다. 

아이러니지만,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그 후 트라우마 산재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책 요구로 인해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가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시기를 고스란히 겪어온 김영환씨는 정부와 사회의 정신질환 산재 피해자를 향한 이해 부족, 시행착오를 겪어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주치의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성장 과정을 말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성장할 때 우울감이나 여러 문제점, 성격 등을 파악했어요. 외상후 스트레스의 원인을 성장 과정에서 찾는 식으로 했었고요. 어떤 병원은 제가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게 배려해주신 곳도 있었어요. 

대구 근로자건강센터에서는 한 시간 정도 상담하면서 제가 욕을 하든 소리를 지르든 얘기를 계속 들어주셨고요. 속에 있는 화를 분출하도록 도와주시더라고요. 속에 있는 불만이나 화가 나는 걸 가감 없이 이야기하게 해줬었고요. 대구 트라우마센터에서 근로자건강센터 내부에 헬스 시설이 있었는데, 간단한 헬스 운동을 병행하니까 좋아졌어요.

문제는 시민단체인 산추련에서 모든 걸 해줬다는 거예요, 정부 기관에서 한 것이 아니고. 정부에서는 언론에서 기사가 나오니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너무 늦게 개입하게 되는 거죠. 사고 난 후에 바로 개입해서 대구 근로자건강센터에서 받은 서비스를 받았더라면 많이 심각해지지는 않았겠죠."

손 닿는 곳에 없는 재취업 프로그램

김영환씨는 현재 산재가 종결된 상태로 장해 14급 판정을 받고 장해급여를 받고 있다. 내년까지 치료 지원을 받게 된다. 지금 구직이 절실한 김영환씨에게 정부의 재취업 지원은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치료자 재취업 설명회' 안내 문자메시지를 받아 설명회 내용에 대해 물었지만, 이력서 쓰는 방법 교육이 전부라는 말을 듣고 실망한 적도 있었다.

고용노동부에서 제공하는 재활 프로그램이나 재취업을 위한 교육에는 한계가 있다. 주치의에 따르면 김영환씨는 취업이 가능하지만 약을 복약해야 하는 상태인데, 담당 공무원은 약을 완전히 끊어야 취업성공 패키지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해 답답한 상황이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또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면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산재 겪으면서 부조리함을 많이 봤고, 세상이 내 편이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회사 입사할 때 근로계약서 작성도 제대로 하지 않는 회사가 많은 것도 문제죠. 작업 지시받을 때 '안전한가?',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도 하게 되고요. 그러다가 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도 해요. 위험한 곳에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해야 할 것같은데, 그렇게 하면 그만두라고 할 것 같아요. 일을 해야 돈을 벌 텐데, 내가 어느 정도 선에서 스스로 합의를 볼 것인지 그냥 넘어갈 것인지 생각하면 힘들어요.

사회적으로 취업 프로그램을 강화해서, 사람마다 다 다른 취업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하고, 혁신적으로 개선해서, 사고당한 사람마다 어떤 일에 잘 어울릴지 매칭해서 취업하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 사람이 여기 들어가면 딱 맞을 것 같다고 판단해서 연결시켰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해주는 것도 감지덕지하라' 이런 식은 맞지 않아요. 몇 명 취업시켰다는 식으로 성과를 말하지 말고 취업 프로그램 질을 올려야 합니다."

2019년 2월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노동자 맞춤재활로 직장복귀율 최초 65%"라는 내용으로 보도자료를 내서 "원직장에 복귀하지 못한 산재노동자에게는 구직등록, 취업설명회, 취업박람회 등을 통해 재취업을 지원하고 무료 직업훈련으로 고용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도록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것이야말로 김영환씨가 희망하는 재활과 재취업 방향이다. 

그런데 김영환씨가 겪은 산재 치료는 직업성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의료진과 공무원, 민간단체 안내 이외 접근성 부족, 충분한 치료 계획이나 요양 계획 안내 없음, 요양 기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상처받은 기억으로 가득하다. 재취업 프로그램 역시 필요한 내용을 제공하지 않거나 참가 요건이 너무 까다로운 사업뿐이었다. 김영환씨 바람대로 취업 성공자 수나 성공률 등 숫자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질을 올려서 산재노동자가 치료를 잘 마치고 직장에 복귀하게 해야 한다.

특집1. 산재노동자의 재활과 직업복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 2020. 09

[산재, 치료 후 '정지'할것인가 직장복귀로 '연결'할것인가①] 

산재노동자의 재활과 직업복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김형렬 / 노동시간센터

노동자들의 산재, 직업병 관련 주제를 네 가지로 나누어 보자면, 1) 산재인정, 2) 요양 과정, 3) 예방, 4) 재활 및 직업복귀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동안 산재인정을 둘러싼 쟁점이 가장 많았다. 소규모 사업장, 하청 노동자들의 산재는 사망 사고를 제외하고는 신청조차 힘든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직업병은 인정되기 어려웠다. 직업병인정의 입증책임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산재가 인정되더라도, 요양(치료)의 과정은 부실했고 산재환자 특성에 맞는 치료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산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노력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산재보상과 예방은 분리된 채 똑같은 산재가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직장을 관둘 각오로 산재신청을 하는 산재 노동자에게 재활과 직장복귀 또한 쉽지 않은 문제다. 직장복귀를 고려한 포괄적인 재활은 아직 소수의 산재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되고 있다.

건강보험에서 환자 치료의 목표는 질병상태의 극복, 신체 상태의 회복에 있지만, 산재보험에서 환자 치료의 목표는 노동력의 회복에 있다. 훨씬 더 적극적인 치료와 직장복귀를 고려한 재활치료의 개입이 필요한 이유다. 네 가지 영역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산재인정이 제대로 되어야 재활과 직업복귀가 잘 될 수 있고, 요양과정의 부실은 재활과 직업복귀를 어렵게 한다. 작업장 환경개선을 통해 산재발생을 줄여야하고,이를통해 작업장 복귀를 쉽게 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서로 연관된 네 가지 영역 중에 재활, 직업복귀에 관해 집중해서 논의하고자 하고, 국내 재활, 작업장 복귀 현황과 문제점, 재활, 작업장 복귀의 개선 방향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재활 및 복귀 현황과 문제점

올해 2월 근로복지공단에서 보도자료를 통해 제시한 자료에 의하면 국내 산재노동자의 직업복귀율이 2019년 68.5%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선진국 수준인 70%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이러한 직업복귀율 상승의 원인은 개인별 맞춤형 재활서비스 제공, 재활인증병원 도입, 산재관리의사제도 도입, 재활지원팀을 통해 취업지원 등의 결과라고 하였다. 원직장 복귀율이 어느 정도인지, 사업장 규모별, 장해 정도별 복귀율을 구분하여 설명해야 하고, 직업복귀율 상승의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는 제도가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 어떤 기전에 의해 직업복귀율 상승으로 이 어지고 있는지 함께 설명하지 않는다면 의미 없는 통계일 뿐이다. 그럼에도 근로복지공단에서 재활, 직업복 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여러 노력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진전이라 할 수 있다.

직장복귀와 관련하여 현재 시도되고 있는 제도들을 나열해 보면, 원직장 복귀 지원과 관련하여 대체인력지원금, 직장복귀지원금 제도가 있고, 직장적응훈련비, 재활운동비, 직장지원프로그램, 직업재활급여 등이 마련되어 있다. 직업훈련제도, 재취업 지원제도 등도 있고, 산 재노동자 직장 복귀를 돕기 위해 직장동료화합 프로그램도 시행하고 있다. 인천, 안산 근로복 지공단병원 등에서 산재노동자 직업 복귀를 위한 사례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산재노동자 업무특성을 고려한 재활과 직장복귀와 관련한 맞춤형 사례관리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되고 있고, 이들 프로그램의 적용되는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이들 프로그램이 작동되기 어려운 조건이 무엇인지 함께 제시되고 있지 않다. 이정화 (2017) 의 연구에 의하면, 2016년 산재 노동 자의 원직장 복귀율은 41.4%였다. 이러한 원직장 복귀율은 10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53.5%,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30.8%였다. 상용직은 62.8%, 임시직은 33.2%, 일용직은 12.7% 원직장 복귀율을 보였다.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비정규직 노동자일수록 원직장복귀율은 현저히 낮다. 산재보험 사업연보에 의하면, 2017년도 원직장복귀율은 41.6%, 2018년도에는 42.5%로 나타나, 원직장 복귀율은 지금까지도 큰 차이가 없다. 직업 복귀를 돕기 위해 시도되고 있는 여러 정책들의 수혜율은 여전히 낮고, 작업복귀에 영향을 주는 여러 인적특성, 사업장 특성, 업종 특성, 장해 특성 등을 고려한 정책 제시는 확인되지 않는다. 근로복지공단 병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맞춤형 직장복귀 사례관리 프로그램은 현 제도의 한계 내에서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사업 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산재노동자 중에 이 프로그램의 수혜율이 낮고, 주로 근골격계질환에 한정되어 있는 문제가 있다.

재활과 직업 복귀 증진은 산재 인정 개선에서 출발해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산재가 발생해도 자비로 혹은 공상으로 처리하는 노동자에게 제도를 통해 재활이나 직장 복귀 지원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일부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산재 신청은 고용유지를 위협하는 상황을 만들고, 고용유지를 위해 산재 신청을 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런 직장에서는 언제든 건강의 문제로 노동자의 고용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산재 발생율(재해율)은 2019년 0.58%이다. 독일, 캐나다 등의 재해율이 3% 전후인 것을 비교할 때 매우 낮은 발생률을 보인다. 거기에 비해, 산재사망 만인율은 1.08로 OECD 주요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산재은폐가 어려운 사망율은 가장 높은 수준인데 반해, 일반 산재의 재해율이 현저히 낮은 것은 산재은폐가 상당한 수준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최근 조선소 사업장에서 하청노동자가 인원은 2배 많은데 산재발생은 원청 노동자가 2배 더 많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는 산재은폐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고, 실제 산재 신청 노동자, 하청 사업장에 불이익이 주어진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었다. 산재가 사회적으로 은폐되는것은 여러 문제를 낳게 되는데, 실제 발생 규모를 왜곡하여, 왜곡된 예방대책을 만들 가능성이 크고, 산재 노동자들의 적절한 치료와 재활, 복귀, 예방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재활과 직장 복귀 개입, 산재 발생부터 시작해야

산재 요양기간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재활, 직업복귀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재활과 직업복귀는 산재 발생 시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문제이다. 예를 들어, 산재발생 시점에서는 환자라는 정체성이 99%, 노동자라는 정체성이 1% 수준이라면, 산재 요양 기간이 종결되는 상황에서는 반대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환자라는 정체성, 노동자라는 정체성이 연속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산재요양 기간이 종결되는 시점에서 재활, 직업 복귀에 대한 개입이 시작된다면 이미 늦고 질 좋은 재활과 직업 복귀는 멀어지게 된다. 현재 일부 시행되고 있는 요양 과정에서 재활, 직업 복귀의 요소를 포함하는 시도는 더 확대 될 필요가 있고, 산재 요양 시기별 개입 프로그램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출처: "산재환자 원직장복귀의 최신 지견과 우리의 역할" 노동시간센터 발표자료(김은경, 2019)

포괄적 재활이란 무엇인가?

산재노동자들이 재활이라는 이름으로 제공받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치료 영역에서 받고 있는 물리치료, 그것도 열치료 수준의 핫팩 치료를 가장 많이 이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재활의학은 실제 재활의 협소한 부분만을 담당할 뿐이다. 한 마디로, 산재 노동자에게 제공되어야 할 재활은 여러 영역의 프로그램이 포함되어야 한다.

산재환자의 재활은 의료재활, 사회심리재활, 직업재활, 산재복지사업 등으로 분류된다. 의료 재활은 신체 상태 회복을 지원하는 것으로 넓은 의미로는 치료의 개념을 포함하고, 정신적 측면, 직업적 측면의 회복까지 포함한다. 현재 근로복지공단병원의 재활전문센터, 101개 재활인 증의료기관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사회심리재활은 산재환자들의 심리지원, 사회적응프로그램, 가족지원 프로그램 등이 있다. 직업재활은 산재노동자의 직업복귀를 목적으로 대체인력지원사업, 직장복귀지원사업, 직업훈련지원사업, 창업지원사업 등의 지원 프로그램 이다. 산재복지사업은 산재노동자와 그 유족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을 위해 시행하는 사업 등을 말한다. 산재노동자에게 이러한 재활 프로그 램이 포괄적으로 이루어지고, 실제로 작동될 수 있어야 하고, 수혜율을 높여야 한다.

직업재활을 넘어 사회재활까지

나아가 직업재활의 개념을 사회재활의 개념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런 개념은 독일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협소한 직업재활 개념을 확장하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독일의 사회재활급여에는 재해노동자의 이동서비스를 제공하는 ‘차량에 대한 보충급여’, 산재로 장애를 갖게 된 재해노동자가 치료시설 이용을 위해 주거지를 개축·수리하거나 이사를 하는 등의 상황을 지원하기 위해 지급하는 ‘주거지에 대한 보충급여’, 재해노동자가 가계를 이끌어나가기 불가능한 상황을 지원하기 위해 지급하는 ‘가계보조 및 어린이 돌봄 비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사회재활의 서비스는 기존 프로그램의 효과를 높이고 실제적인 직업 복귀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산재 노동자가 제대로 회복할 수 있으려면?

앞서 기술했던 내용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선, 재활복귀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산재은폐를 막아, 실제 발생의 규모와 원인이 드러날 수 있게 해야한다. 제도 내로 들어와 제공되는 서비스를 통해 재활, 복귀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보상, 치료, 재활, 사회복귀, 예방이 상호 연관되어 기능할 수 있어야 하고, 재활과 직업복귀는 산재요양이 시작되는 시기부터 개입할 수 있어야 한 다. 셋째, 포괄적인 재활의 개념이 확립되어야 하고 직업재활을 넘어 사회재활의 개념까지 확장될 필요가 있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시도되고 있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이 실제 작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들 제도의 수혜율을 높이고,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장애요인을 찾아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 하다.

특집3. 돌봄 떠안은 여성 고령 노동자들의 이야기 / 2020.08

[고령노동의 위험과 현실 들추기③] 

 

돌봄 떠안은 여성 고령 노동자들의 이야기

 

 

김가을길 / 상임활동가

 

'2019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19년 65세 이상 인구는 768만 5천 명으로 전체 인구 중 14.9%를 차지한다. 올해 들어 출산율은 급격히 감소해 통계 집계 이래 최저치를 경신했다. 고령화는 미래의 일이 아니라 코앞에 맞닥뜨린, 우리의 주요 사회 문제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제공하는 노동력은 이미 사회의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같은 통계에 따르면, 55~79세의 고령자 중 64.9%가 장래에 일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실제 은퇴 이후 고령노동자 다수가 임시계약직·불안정 노동에 건강권을 침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여성고령노동자의 실태는 남성고령노동자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많은 여성고령노동자는 은퇴가 아닌 경력단절 이후부터 노동시장에 진입하며, 특히 청소·조리·가사·유아돌봄·간병·요양 등 광범위한 돌봄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여성고령노동의 건강권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진은정 요양서비스노조 부산경남지부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경력단절 이후 선택한 요양노동
 


요양노동의 평균연령은 다른 직종보다 상대적으로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보편적으로 어느 연령대부터 일을 시작해 언제까지 하는지 궁금했다.

"보건복지부 공식 통계 기준으로 요양보호사 평균 연령이 60세입니다. 대단히 높죠. 보통 서울시 같은 광역도시일수록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낮고 인구가 적은 지역은 연령대도 더 높습니다. 시설요양보호사는 보통 50대 중반부터 60대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균 50대에 자녀양육을 마치고 이 직종을 선택하는데, 50대 여성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다 경력단절이라고 보면 되고요. 그리고 방문요양, 재가요양보호사들의 경우는 요양원에서 정년을 하고 일자리가 없어서 옮겨가기도 합니다. 50대에 하게 되면 단시간이 대부분입니다. 집안일에 신경을 써야 하니 하루 3시간, 4시간 근무하고 개인 생활을 유지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죠.

재가요양보호사는 훨씬 더 취약합니다. 고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못하는 게 가장 큽니다. 고용이 불안정하다는 건 사용자의 상황에 따라 쉽게 해고된다는 겁니다. 어르신이 아프다거나, 기관에 들어가신다거나, 돌아가신다거나, 보호자가 마음에 안 들어 한다거나. 그러면 바로 해고됩니다. 보호장치도 거의 없습니다.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기 때문에 전반적인 노동환경, 노동안전도 더 열약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임금이 불안정한 것 또한 해당합니다. 한 달에 50만~60만 원 받는데 그걸로 어떻게 생활하겠습니까."

최소인력으로 장시간 근무

보건복지부 시행령에 따르면 시설요양보호사의 인력배치는 서비스대상자(돌봄어르신) 2.5명당 1명 이상을 고용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설이 24시간 돌봄을 제공하기 때문에 기준에 맞춘 인력으로는 노동시간을 준수하기 어려웠으며, 실제 현장에서는 교대제가 일상적이었다. 또 노동시간이 지나치게 길어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문제가 요양보호사의 노동안전보건 의제에서 중요한 지점으로 보였다.

"2교대는 보통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15시간을 일하는데, 그 15시간 중에 명목상 휴게시간이 적게는 3시간 많게는 7시간까지 계산됩니다. 휴무를 잡아놓고 임금을 주지 않는 거예요. 실질적으로 쉬는 시간이 아니게 되죠. 밤에 일하는 경우엔 사고위험이 훨씬 큽니다.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기 때문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습니다. 요양보호사들은 비상상황을 대비해 늘 대기하고 있는 거죠. 그 때문에 보건복지부에 야간근로를 인정하고 수당을 지급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사업주들은 야간 휴게시간을 많이 잡아놓고 임금을 주지 않는 형태로 장시간 노동을 시킵니다.

법적 인력 이상을 둘 수도 있지만 절대 그 이상 두지 않아요. 그렇기에 3교대를 하는 곳은 당연히 2교대를 하는 곳보다 노동밀도가 더 촘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쉴 시간도 모자라고, 빠르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부담도 생기죠. 주로 2교대, 3교대를 많이 하지만 현장에 나가보면 별 희한한 근무 형태도 있습니다. 어떤 곳은 24시간 근무 후 이틀을 쉬게 해준답니다. 24시간을 연속으로 일하는데, 실제로는 12시간만 근무한 것으로 기록됩니다. 나머지는 휴무로 처리를 해버리는 거죠. 이걸 '퐁당당'이라고 부릅니다."

보건복지부에서 위법을 권장하는 수준이었다. 교대제나 노동시간을 보면 신체적, 정신적 부담이 상당히 클 것 같은데, 휴게공간이나 샤워시설은 별도로 마련이 되어 있는지 궁금했다.

"원래는 독자적인 휴게공간을 줘야 하지만 휴게시간을 보장하는 곳도 없기 때문에 아직 전면적으로 요구하기는 힘들어요. 지금은 정말 밥만 먹고 돌아서서 일합니다. 조합이 생긴 이후 쉬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는 노동자들도 많고요. 그만큼 휴게시간에 대한 보장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이러니 요양원의 경우 같은 시설에서 1년에서 3년 미만으로 일하는 비율이 90%가량 됩니다. 그 정도로 일이 힘들고, 인력이 없고, 일자리가 불안정해 여기저기 옮겨 다니니 통계가 그렇게 나오는 거죠."

실제로 많은 요양서비스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알고 있음에도 직장에서 해고될까 봐, 이후에 일할 곳이 없어질까 봐 두려워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을 참고 일한다. 진은정 지부장은 이러한 현상에 직종 특유의 '고령', '여성'이라는 조건이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폭언·폭행·성희롱은 산재가 아니다? 

시설돌봄 특성상 업무범위가 굉장히 넓어 사고도 다양하게 일어날 것 같은데, 요양보호사가 많이 겪는 사고의 유형은 무엇일지, 또 특별히 더 위험하다고 할 만한 업무와 그 이유는 무엇일지 물었다.

"골절이 가장 많죠. 목욕시키다가 미끄러지기도 하고, 사용자가 밀쳐서 넘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외 물기가 있는 곳에서 미끄러진다던가, 주방도 물기가 있는 곳에서 미끄러지면 부러집니다. 또 어르신들 다수가 치매 어르신인데 이분들 중 폭력적인 분들이 많습니다. 피멍이 생기는 게 일상이지만, 그런 건 아직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주지도 않습니다.

폭행, 폭언, 성희롱도 거의 매일 벌어집니다. 산재로 넣을 수 있는 건 골절사고나 폭행으로 다친 경우, 또 배식하거나 옮기다가 뜨거운 국을 쏟아 화상을 입는 그런 사례들입니다. 규모가 작은 곳에선 업무 구분이 없어 주방 일도 막 시키니까 사고가 많이 납니다. 김장철이 되면 배추 100포기를 쪼그려 앉아서 자르는 업무까지 하셨던 분이 있는데, 하다가 밑이 빠지는 느낌과 함께 통증이 심하게 들어 병원에 가보니 자궁이 탈출했다고. 그분은 심지어 업무가 끝날 때까지 참고 일을 하시다가 퇴근하고 119에 실려 가셨다고 합니다. 힘들어도 참고해야 한다는 인식이 상당히 보편적입니다. 노조에 상담 오는 거 보면 약 30%가 산재 관련 상담입니다." 

무리한 노동강도에 골병드는 몸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내리는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됩니다. 식사도 하셔야 하고, 거실에 나와서 TV도 보고, 목욕도 시키고 기저귀 교체 등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을 보조해야 하죠. 그때 개인 힘으로 어르신을 들어서 옮겨 태우는데, 최소 50~60kg 넘는 어르신들을 들어 옮기려고 하면 일단 허리에 큰 무리가 갑니다. 2.5명당 1명을 교대로 돌리려고 하니 규모가 작은 시설은 야간에 요양보호사 1인이 모든 돌봄을 다 담당하기도 합니다. 상황이 이러니 협동해서 한 분을 옮기는 방식은 지금 인력체계에서 불가능합니다.

시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근골격계 질환이 많아요. 허리, 어깨, 손목에 부담이 많이 갈 수밖에 없죠. 디스크, 협착증, 탈출을 달고 산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끼리는 요양보호사 일을 하면 6개월 안에 근골격계 질환에 다 걸린다고 합니다. 어깨 같은 경우 회전근개파열이 많고요, 요양원 규모가 크면 많이 걸어야 해 족저근막염도 상당히 많습니다."

근골격계 질환은 개인적 요인으로 나이와 성별을 많이 고려한다. 그렇다면 여성고령노동자들이 직업병, 특히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신청을 했을 때 그 과정에서 차별을 받은 경험은 없는지 궁금했다.

"연령대가 높고 대부분 여성 노동자인데다가, 원래도 근골격계 질환이 많기 때문에 산재로 인정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노동자들 본인도 대부분 일반적인 질병으로 치부해버리고요. 그래서 산재 신청 자체를 꺼리게 됩니다. 그런데 근래에 조합원 중에 회전근개파열이나 이런 진단명으로 인정받으신 분은 있습니다. 그분도 오랫동안 참고 일하셨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 수술을 하셨습니다. 병원에 가면 '원래 본인이 가지고 있었던 질환 아니냐'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고령인 만큼 수술력 같은 게 있을 수 있는데, 그것들이 업무상 요인으로 더 악화했음에도 산재로 인정받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또 사실 신청 자체가 극히 드문 편이에요. 조합이 생긴 곳 정도가 겨우 사고로 산재를 인정받고, 대다수의 시설에서는 고용 불안으로 신청 자체를 하지 않죠. 아프면 병가를 쓰거나 그냥 쉬거나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해고해버리니까요.

산재는 최초진술이 중요한데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말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공상처리도 많이 하고, 여전히 산재하려면 회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인식의 문제가 큽니다. 결국 개인에 대한 차별보다도 전체적으로 낮은 인식과 고용불안 등 사회적인 요건이 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인터뷰를 통해 들어본 요양보호사들의 노동시간 실태는 정말로 심각했다. 무엇보다도 노동시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가 최소인력 지침을 조금이라도 강화하도록 요구하는 사회적 움직임이 필요하다. 공공영역인 노인돌봄 문제를 국가가 책임지고, 요양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이 비로소 존중될 때 우리 사회가 안전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특집2. 늘어나는 고령 노동, 드러나는 현실 / 2020.08

[고령노동의 현실과 위험 들추기②] 

 

 

늘어나는 고령 노동, 드러나는 현실 

 

 

정경희 / 선전위원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현재, 전체 취업자 중 65~79세가 8.7%이다. 55~79세의 55.9%가 취업 중이며 희망 근로 상한 연령은 73세로 64.8%가 장래에 일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층이 일하고 싶은 이유는 생활비에 보탬(60.2%), 일하는 즐거움(32.8%)이었고, 일자리 선택 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일의 양과 시간대(28.4%), 임금 수준(23.9%), 계속 근로 가능성(16.6%), 일의 내용(13.2%) 순으로 나타났다. 고령화가 가속되면서 고령 노동자는 지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2018년에 이어 올해 5월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또 일어났다. 경비원 고 최희석씨가 아파트 주민의 갑질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역 대책위원회가 구성됐고 대응과 재발 방지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전국경비노동자지원단에 참여하면서 대책위에 함께하는 노원노동복지센터 법규팀장 임득균 노무사를 만나, 고령 노동자를 둘러싼 노동조건과 안전 보건 문제에 대해 들어보았다.



"고령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목소리 내게 도와야"
 - 노원노동복지센터가 주축이 돼 지역에서 취약계층 노동자 모임이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들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2012년부터 센터장님이 맡아서 월 1회 경비노동자를 만나는 자리를 갖고 있어요. 경비노동자 근무 특성이 24시간 격일제라 A조, B조 이렇게 두 번 만나요. 참여 인원이 조금씩 늘어나 지금은 작년 기준으로 50명, 30명씩 80명 정도 모이세요. 상담도 진행하고, 기간 만료, 해고, 연차휴가, 최저임금인상 등 실제 도움 되는 내용으로 교육도 합니다. 부당한 처우에 대응하고, 산재 접수도 진행하고, 식사하며 얘기 나눌 기회를 마련하고 있어요. 

현재 강북구 인근 구에는 노동복지센터가 있고 강북구에만 없는데,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도 이런 모임에 오셨더라면 함께 대응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워요. 다양한 업종에서 상담받으러 오시고, 모임은 경비노동자 모임만 하다가 지금은 요양보호사, 학교비정규직노동자, 아파트 청소노동자 모임도 하고 있어요. 점점 사업을 넓히려 하고 있어요.

고령 노동자들 하시는 업무가 대부분 민원인을 직접 상대하는 경비, 청소, 주차관리 등입니다. 다수의 민원인을 상대하다 보니, 조금만 실수하거나 다른 업무로 인해 응대하지 못하면 아파트, 회사에 민원이 들어가고 계약 만료가 되는 등 불이익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갑질 당해도 참는 경우가 많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세요. 저희는 이런 고령 노동자들이 최소한 본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법률적 지원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 경비노동자가 감정노동에 노출되면서 겪는 어려움과 해소방안에 대해 대책위에서 논의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입주자를 대면하는 모든 소통창구가 경비노동자에게 있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어 입주민 A가 차를 밀어 달라 업무지시를 내려서 B의 차를 밀었는데 B가 왜 그랬냐고 갑질하는 거죠. 민원창구를 관리사무소로 하고, 그것이 경비노동자의 업무라면 경비반장한테 전달해서 경비반장이 업무지시를 하는 구조가 되면 갑질 문제는 어느 정도 완화되지 않겠냐는 얘기가 있어요. 물론 관리사무소장이나 직원의 감정노동에 대한 보호 장치가 있어야겠죠.

갑질에 대한 처벌 규정을 만들자는 안이 올라오고 서울시에서 발표도 했더라고요. 공동주택 관리법 제65조 제6항에 입주자, 입주자대표회의 및 관리 주체 등은 경비원 등 근로자에게 적정한 보수를 지급하고 처우개선과 인권존중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업무 이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돼 있어요. 그런데 처벌 규정이 없거든요. 천준호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강북갑)을 주축으로 진행된 토론회 이후 TFT를 꾸렸고, 국토교통부,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사업단,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 대한주택관리사협회 등과 함께 '아파트 경비노동자 등 공동주택 종사자 고용안정과 권익 보호를 위한 상생 협약식'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 경비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은 감정노동 외에도 고용불안, 긴 휴게시간, 야간순찰, 열악한 휴게장소 등이 있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과 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요?
"고용노동부에서 경비노동자를 감시단속적근로자로 인가해줄 때 근무 장소와 별도로 휴게장소가 있는지 조사하는데, 거짓이거나 지하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지하 휴게실은 우수관이나 쥐, 석면 같은 게 있어 꺼리세요. 입주민 이해관계 때문에 아파트 수선충당금으로 새로운 건물을 짓기가 쉽지 않아요.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요. 

재작년 서울시 조사에서 초소에 에어컨이 없는 경우가 40%였는데 최근 사업을 진행해서 30%로 낮아졌어요. 이런 부분도 지자체의 지원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정부나 서울시에서 이런 지원을 하면서 단기 계약 근절 얘기도 하거든요. 고용 관계는 계속 이어지면서도, 계약서에 사인하는 것이 월례 행사인 거죠. 그러다 민원 조금만 들어오면 해고하기도 하고요. 단기 계약을 장기로 늘리거나 적어도 용역회사랑 계약 기간을 맞추는 데 지원하겠다는 얘기는 있어요.

야간순찰 관련 불만이 제일 많으세요. 야간순찰 앞뒤 시간은 돈 안 받는 휴게시간인데 잠자다 중간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가장 문제예요. 보통 야간 8시간 중 6시간이 휴게시간, 나머지 한 시간은 순찰, 한 시간은 인수인계로 비워놓아요. 근로복지공단 뇌심혈관계질환 관련 지침에서 경비노동자의 경우 별도 휴게공간이 없거나 5시간 연속해서 휴게시간을 보장하지 않으면 야간휴게시간은 대기시간으로 보겠다는 내용이 있거든요. 

실제 근무시간이 주 60시간인지 조사해서 업무상 질병 가능성을 판단하겠다는 거예요. 야간에 일어나서 순찰하는 게 안 좋다는 것을 정부가 인정하는 거잖아요. 이런 건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요." 

"산재 인정될 수 있으니 제발 오세요" 

- 수원지법 행정3부가 "아파트의 택배 관리, 제초, 전지작업 보조, 쓰레기 분리수거는 경비업무가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경비업무 외의 업무를 시킨 아파트 위탁관리 회사들에 단속을 예고했고, 내년부터는 처벌이 불가피합니다. 실제 경비 외 업무가 아파트 운영을 위해 필요하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대량해고 발생 우려가 있기도 합니다.
"경비노동자와 주택관리노동자를 이분화해서 경비노동자는 정문 후문 경비만 하고, 주택관리 서비스 업무자는 감시단속적근로자 승인 안 되는 것으로 현실에 맞게 조정하자는 안을 제시하고 있어요. 근무시간 조정해서 적어도 잠은 집에서 자고, 업무 범위에 맞게 급여 책정되고, 공동주택관리법 규약에도 명시하면서 인원은 감축하지 않는 방안을 찾자는 거죠."

- 경비노동자 대부분 열악한 근무환경에 노출되는데 개인적으로 감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령이기에 주의해야 할 건강상 특성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상담하다 보면 쓰러지신 분이 많아요. 워낙 근무시간도 길고, 다양한 업무를 하시니 뇌심혈관 문제가 있겠죠. 분리수거 과정에서 무거운 것을 많이 들거나 다치는 경우 근골격계질환 문제가 있고, 이틀에 한 번 지하에서 주무시다 일본뇌염으로 쓰러지신 경우도 있었어요. 주민들이 택배 찾으러 오거나 무언가 요청하러 오기 때문에 요즘은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계층 중 하나죠. 감정노동에 노출되니 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도 연관이 있을 거고요."

- 마지막으로 고령인 경비노동자가 연령을 고려해서 적절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해가는 과정에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첫 번째, 고령 노동자라서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많은 것 같아요. 경비노동자도 그렇고, 학교 당직자도 마찬가지일 텐데 24시간 격일 근무를 당연시하면서 가정과 여가생활을 너무 소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거죠. 학교 당직의 경우 경비노동자보다 훨씬 열악해요. 급여도 90~100만 원으로 훨씬 적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두 번째, 아픈 것이 일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인식개선이 중요한데, 산재 교육할 때 단순하게 얘기해요. '이거 산재 인정될 수 있으니 제발 오시라'고요. 세 번째, 입주자들의 인식개선이 필요해요. 입주자대표회의를 비롯해 누구나 노동 인권교육을 듣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미화 노동자의 경우, 산재 교육을 진행해보니 산재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시는 것 같아서 무슨 일을 당하면 바로 연락할 수 있도록 센터 전화번호를 저장해드려요. 언제든지 신고하고 지원할 수 있는 기관들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집1. "아파도 일만 하게 해달라" 쉼 없는 나라의 비밀

[고령노동의 현실과 위험 들추기①] 

 

 

"아파도 일만 하게 해달라" 쉼 없는 나라의 비밀 

 

 

이선웅 / 직업환경의학전문의, 한노보연 회원

 

1. 정년퇴직 이후 한국의 고령노동

한국은 평균수명의 연장과 함께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0년에 고령화 사회(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에 접어들었고, 2025년에 초고령 사회(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25~54세의 핵심 생산층은 2010년에 비해 2020년에는 총 193만여 명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55~59세 인구는 2010년 27만 9천 명에서 2015년 38만 6천 명으로 증가했고, 그 이후에도 점진적 증가가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빠른 속도의 고령화는 노동력 구성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노동자의 평균연령이 1995년 34.8세에서 2016년에는 41.5세로 급격히 증가하였고, 2000년에서 2050년까지의 향후 노동력 연령 구성상의 변화를 보면, 2000년에 50세 이상 노동력의 비중이 약 25% 미만인 데 비해 2050년에는 50%를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 핵심 노동력인 25~49세 노동자 집단은 2000년 66%에서 2050년 44%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임금체계에서 여전히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호봉제가 우세한 편이다. 이러한 연공급 임금체계에서 인건비 부담의 핵심대상은 고령 노동자 집단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높은 임금의 연공성은 한국의 고령 노동자에게 주된 일자리의 조기 퇴직을 강제하는 경향이 있다. 또 퇴직 이후의 낮은 연금 대체율 때문에 연금수급 개시 연령 이후에도 시장에서 은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 49.4세(2020 경제활동 인구조사)에서 의무조기퇴직을 당하는 경향이 높으며, 50대에 조기퇴직을 해도 연금제도의 미성숙으로 노후의 소득을 보완하기 위해 계속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2020년 5월 55세 이상 연금 수령자 비율은 47.1%이고 월평균 연금 수령액은 63만 원에 불과하다. 결국, 한국의 노동시장 은퇴 연령은 2016년 남녀 모두 72세로 OECD 평균(남 65.1세, 여 63.6세)보다 매우 높다. 그리고 2015년 한국의 65세 이상 노년 인구의 빈곤율은 50%에 가까워 OECD 평균의 4~5배 수준이다(표1). 이는 사회보장 시스템과 연금 제도의 미성숙이 큰 원인이다. 조기 은퇴자는 은퇴 이후 충분한 생활 수준을 확보하기 힘든 것이 당연시된다.
 

2. 한국의 고령노동 시장

한국의 고령자는 이런 이유로 노동시장 참여와 고용률이 매우 높은 특징을 보인다. '고령자 고용 촉진법'에서 고령자로 정의하는 55세 이상의 인구 비중(55~64세)은 2015년 15.4%에서 2020년 17.9%로 증가했으며, 이들의 고용률은 2015년 66.0%에서 2020년 67.2%로 증가했다. 2016년 50~74세의 고용률은 한국이 62.1%로 OECD 평균 50.8%에 비해 매우 높다. 55~79세까지의 노년층을 포함한 고령자 인구 역시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2020년 5월 1427만 명으로 이 중 55.3%인 789만 명이 고용상태에 있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한파를 제외하면 고용률 추이는 증가 상태에 있다(그림1).
 

이러한 높은 고용 참여율에 비해 한국 고령자 일자리의 질은 매우 낮고 불안정하다. 사회안전망이 확충되지 못한 상태에서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고령자에게는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기 전까지 불안정한 일자리를 이어가는 것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55~64세 노동자의 2016년 임시직 비율은 32.7%로 OECD 평균 7.9%의 4배에 달한다는 사실은 이를 반영한다. 또한 한국의 연령대별 비정규직 고용 형태도 60세가 넘어가면서 전체 근로자와 비교해 확연히 증가한다(그림2).

2014년 기준 임시직, 시간제, 비전형 근로 형태 모두 전체 근로자보다 60세 이상에서 2배에서 3.5배 높음을 알 수 있다(그림2). 주당 평균 노동시간도 18.6시간으로 OECD 평균 16.9시간에 비해 높다. 하지만 전일제 고령 근로자의 소득수준을 25~54세 근로자의 소득과 비교하면 한국은 0.91로 OECD 평균 1.10에 비해 고령으로 인한 소득수준의 감소가 눈에 띈다.
 
3. 고령 노동자의 주요 직종 및 안전 보건 문제

2014년 지역별 고용조사 자료를 근거로 55세 이상 고령층이 다수 고용되어있는 직종을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선정하였다. 고령 노동자 342만 8826명에 대한 자료 분석을 통해 40개의 고령 노동자 다수 종사 직종 중에서 고령층 구성 비율이 높고 안전보건서비스가 필요한 직종을 15개 선정하였다. 15개 주요 직종은 고령 노동자 다수 직종 순으로, 1) 청소원, 2) 경비원, 3) 버스운전원, 4) 주방보조원, 5) 간병인(요양보호사 포함), 6) 건설 단순 종사원, 7) 가사도우미, 8) 조리사, 9) 제조 관련 단순 종사원, 10) 형틀목공, 11) 매장 판매원, 12) 도장공, 13) 배달원, 14) 재봉사, 15) 용접원이다.

이 15개 직종에 대해 취업자 근로환경 조사 결과를 분석하여 업무로 인한 일반적인 유해위험 노출 정도를 파악했다(표2). 물리적 유해요인(진동, 소음, 높은 온도, 낮은 온도), 분진 및 유해가스(연기 및 밀가루 흡입, 유해 증기, 담배 연기), 화학물질, 근골격계 유해요인(통증을 주는 자세, 사람을 들어 이동시킴, 무거운 짐을 이동시킴, 장시간 서 있는 자세, 반복 동작) 모두에서 55세 이상 고령 근로자가 55세 미만 근로자보다 노출 정도가 높았다.
 

표2의 유해위험 요인에 포함되지 않은 야간작업 역시 55세 이상 고령자에서 매우 높은데, 2013년 고용 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서 55세 이상 전체 근로자의 17.0~18.3%(22만~30만 명)를 야간작업 종사자로 추정했다. 또한, 대표적인 고령 노동 직종인 경비노동자 490명의 설문조사 결과 19.1%가 입주민으로부터의 부당 대우를 경험하여 경비원을 포함해 상당한 고령 노동자가 감정노동 상태에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고령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2014년 산업안전보건공단의 근로환경조사 자료를 이용한 55세 이상 고령 노동자의 질환 및 증상 조사 결과, 심혈관 질환율이 남성 3.88%, 여성 4.05%로 55세 미만의 남성 1.07%, 여성 0.74%에 비해 매우 높았으며 이는 연령에 의한 유병률 증가에 야간작업 등의 유해요인이 추가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 할 수 있다.

그 외 어깨, 목, 팔의 통증 비율도 남성 44.4%, 여성 60.8%로 55세 미만의 남성 28.7%, 여성 36.1%에 비해 높았고, 우울 또는 불안장애 남성 1.32%, 여성 2.43%(55세 미만 남성 1.14%, 여성 1.63%), 수면장애 남성 2.58%, 여성 4.15%(55세 미만 남성 2.25%, 여성 2.20%)로 55세 미만 노동자에 비해 높았다. 고령 노동자의 전반적인 산업재해 발생률 역시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2018년 60세 이상의 산재 비율은 23%로 2008년에 비해 11%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고령 노동자 비율이 4.9%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노동자 수의 증가보다는 위험 노출의 증가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4. 고령 노동자와 산재

업무상 질병 통계를 보면 일반적으로 연령 증가에 따라 산재 인정률이 감소한다. 2018년 기준 30~50대는 산재 인정률이 60% 중반에 이르지만 60대는 57.8%, 70대는 44.4%로 떨어진다. 업무상 질병의 주된 항목인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일하면서 증상이 생겨도 나이에 의한 퇴행성 요인이 어느 정도 확인되면 나이에 따른 자연적 경과로 산재 불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퇴행성 요인을 상쇄할 정도의 심한 업무 부담이 있어야 인정되는 경향이 있다.

퇴행성 요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업무로 인한 부담이 질환 악화에 영향을 준다면 인정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일치된 기준이 없어 보수적으로 판단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뇌심혈관질환 인정에서도 업무 부담이 있다고 하더라도 고령자는 고혈압, 당뇨 등 만성 기저질환 존재가 산재 불승인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판단된다. 업무부담의 기준이 고령 노동자를 고려하지 못한 채 설정돼 있어, 고령 노동자는 업무부담 정도 판단에 노화에 의한 신체적 능력 감소분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고령 노동자는 표2와 같이 업무상 유해위험인자 노출이 비고령 노동자보다 더 큼에도 불구하고 산재 인정률은 낮은 결과가 당연시되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근본적 문제는 고령 노동자의 고용 불안정성이다. 그림2와 같이 60대 이상부터 치솟는 비정규직 형태와 심각한 노인 빈곤율로 아프거나 심리적 상처가 있더라도 산재나 업무상 질병임을 호소할 수 없는 상황이 만연하다. 필자가 일하는 기관 역시 야간작업 특수검진을 하고 있다. 야간작업 특수검진을 하다 보면 간혹 검사 결과를 회사에 보내지 말아 달라는 고령의 노동자를 만난다. 어차피 개인 결과는 회사가 볼 수 없지만, 그분들의 심정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나이 들고 아파도 좋으니 일만 하게 해 달라'는 마음일 것이다.

 

 

특집3. 한국 산재예방정책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다 / 2020.07

[산재예방정책을 진단한다] 

 

 

한국 산재예방정책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다 

 

 

선전위원회 편집

 

한국 정부의 산재 예방 정책은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겠다는 분명한 목표와 방향을 가지고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추진 과정에서 부처 간 불협화음, 전문 역량 부족, 이슈 되는 특정 의제만 추진되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정부의 산재 사망사고 예방 정책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와 노사 자율 안전보건점검, 정부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강태선 세명대학교 보건안전공학과 교수,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가 모여 지난 7월 2일 오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사무실에서 대담을 가졌다. 사회에는 최민 한노보연 상임활동가가, 기록에는 박기형 한노보연 상임활동가가 맡았다. - 기자 주


집중과 선택이라는 전술이 유효했는가?

최민: 1~2년 전부터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이 산업재해 전반이 아니라 산재 사망사고에 집중하고, 특히 건설업과 추락사고 중심으로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이러한 정책 방향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정진우: 이번 정부 들어서 사고 사망 재해를 줄이는 것을 더욱 강조하며 전력투구한 것 같습니다. 정책 방향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런데 중대 재해 예방에만 집중하니, 현장에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어요. 중대 재해를 막으려면 체제를 강화하고 여건과 역량이 갖춰져야 할 텐데, 역량 강화에는 소홀히 하고 있어요. 지나치게 보여주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일상적 안전보건에는 무관심하거나 역행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안전 관련 교육프로그램도 부실해지고 있고요. 사고 사망 재해에 집중해야 하니, 공공기관에서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들을 정리하는 차원이겠죠.

하지만 사업장의 안전보건 수준과 관리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안전감수성, 안전의식, 안전관심을 높여야 하는데, 여기에 필수적인 교육 제공, 시스템 정비 등을 예전에 비해 소홀히 하는 게 아닐까 우려됩니다.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부작용이 심할 수 있어요. 너무 산재 사망사고에만 올인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죠. 하인리히 법칙을 떠올려 보면 현장에서 빈번한 아차사고에 더욱 유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차사고 없이 중대 재해가 발생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전조가 될 수 있는 아차사고를 드러내고, 교훈으로 삼는 활동이 병행되어야 해요. 그게 보이지 않는 것이란 말입니다. 한 마디로, 밸런스가 없는 게 아닐까 싶어요.

강태선: 저는 정책의 전면을 다 모르지만, 제한적인 수준에서라도 평가해보면, 정부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그동안 정부가 못했다기보다는 전략이 부재했다고 봐요. 한국은 안전보건 정책을 오랫동안 펼쳐왔죠. 문제는 국정감사나 노동부 자체 감사를 준비하는 게 목적이었다는 거죠. 산업재해는 막을 수 없다는 게 안전보건 하는 사람들의 통념이었다고 생각해요. 패배주의에 젖어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 책잡히지 않을 수 있는 정책 수준에서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산재 사망사고 절반 줄이기라는 정책 목표를 제시한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집중과 포기가 필요한 것이었죠. 업종은 건설업, 사고유형 중에는 추락을 선택했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포기한 것이죠. 포기하면 당연히 욕먹을 수 있겠죠. 하지만 한 번도 집중해보지 않았으니 해볼 만 한 시도였어요. 물론 포기된 측에서는 불만이 많겠죠. 

예를 들어, 보건 관련 업무를 하던 사람은 한 번도 가지 않은 건설 현장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요. 건설 직렬 쪽에서는 학교에서 4년 동안 구조역학 등 각종 지식을 배워서 들어왔고, 건설 현장 점검을 하려면 토질에 관한 지식 등 알아야 할 것이 많은데,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점검하러 보내냐는 반발도 있고요.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선택하고 집중하지 않았던 안전보건 영역에서는 필요한 일이었어요. 

사망사고, 중대 재해 예방 활동이라는 건 결국 위험을 평가하고 줄이는 것이잖아요. 효과가 분명히 검증된 것에 집중하는 게 유효한 전술일 수 있죠. 사다리와 비계 등을 중점으로 현장 점검하고, 시스템 비계 시장을 넓혀준다든지. 건설업의 안전보건 관행이 많이 바뀌리라 기대하는 것이죠. 물론 평가는 3년 뒤에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사망률 외에 더 많은 지표를 내고 평가 기준으로 필요가 있어요. 여러 가지 자료 공개도 해야 하고요. 아직 그런 게 부족하다 보니,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기 힘들고 평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류현철: 인적, 재정적 자원이 순식간에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역량 축적도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 특정 의제나 국면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선택을 하게 된 의사결정 과정, 집중의 방법이 적절했는지 되묻고 싶어요. 강한 리더십에 따라 정책 실현의 동력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의사결정권을 가진 몇몇 사람의 판단에 따라 집중사업이 훅훅 바뀔 수도 있잖아요. 

정책 효과를 면밀히 검증하기보다는 단일 지표 감소에만 너무 주목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정책실행 과정과 그 효과에 대해 더 들여다보고, 다양한 주체들의 의사를 고려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정책 기조를 명확히 세우고 집행한 적이 적다 보니 정책 성과를 알리는 데만 주의를 기울였을 수도 있다고 봐요. 향후 평가도 더 세밀하고 하고 논의의 장을 열어둘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선순위를 정할 때부터 효과를 평가하고 알리기까지, 순환 논리의 오류에 빠진 게 아닌가,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빠진 게 아닐까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방향을 지속하는 게 바람직할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진우: 저는 의욕은 있었는데 실력이 부족했다고 정리하고 싶어요. 그리고 실력이 없으면 의견수렴이라도 제대로 해야 했다고 봐요. 하지만 예전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사다리 정책이 대표적이에요. 법령 개정이 단기간에 어려우니 지침으로 내놓는 것인데, 이번에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부개정 하면서 사다리 관련한 규칙을 개정하지 않았어요. 앞뒤가 맞지 않죠. 

전문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주먹구구식 행정이 되는 게 아닐까요. 도급 관련해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어요. 내외부에서 의견수렴이 안 되고,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 간 의견조율도 잘 안 되고, 그러다 보니 정책 수립과 집행이 거칠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정책은 실험 대상이 아니잖아요. 완벽하지 않더라도 최대한 정책의 질을 높여서 수립·시행하는 게 정책담당자들의 자세가 아닐까요.

시스템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민: 의사결정 절차도 중요하지만, 선택한 정책의 실효성 또한 중요할 텐데요. 시스템 비계 설치가 추락사 예방 효과가 검증되었다지만, 패트롤 운영이나 시스템 비계 시장 확대 등의 정책이 추락사 예방과 향후 건설 현장 안전수준 증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강태선: 사실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입니다. 절차나 방법의 타당성을 검증하려면 더 분석할 자료가 있어야죠. 죽은 사람과 다친 사람의 통계만 있잖아요. 그러나 워낙 사태가 심각하니 정책은 구사해야 하고, 현재 취합된 통계로 정확한 대책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으니 외국의 정책을 모사하게 되죠. 

법 제도는 알 수 있어도, 정책의 실행 전략은 암묵지에 해당하니 알 수가 없습니다. 패트롤 같은 건 이렇게 할 것이라고 일정 부분 추정한 것일 텐데요. 사다리 지침이나 도급 지침의 경우에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은 분명해요. 안전보건공단이나 현장과 소통이 잘 안 됐고, 실효성 측면에서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결국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하고, 어디까지 동의를 구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건 정책기획과 집행의 영역에 속하지 않을까요. 체계 정비를 위한 과도기가 아닐까 해요. 정리되지 않은 자료와 제도를 가지고, 여러 정책을 시도해보는 과정이랄까요.

류현철: 다른 측면에서 접근해보고 싶어요. 전술을 잘 짜는 것도 중요하고 시도해보면서 수정해나가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정책을 시행했다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것인지도 살펴봐야 할 지점이 아닐까요? 

일터의 노동자들까지 여파가 미칠 수 있을지. 최근 발생한 파쇄기 사고, 질식 재해 그리고 추락재해 등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사항은 아니잖습니까. 모든 현장과 해당 현장의 말단까지 완벽히 관리할 수 없다면, 노동자들에게까지 정책효과가 파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안전교육 프로그램이나 대국민 홍보뿐만 아니라요. 

예를 들어, 당사자들이 당면한 위험 상황에 대해 작업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개개인이 어려우면 대변할 수 있는 조직에 권한을 보장해주는 등. 노동자나 노동단체의 참여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비록 노동부나 안전보건공단에 비해서 전문성이 부족하지만, 안전보건 주체를 다변화해서 포괄적으로 안전보건 관련 활동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노동자들 스스로의 권리 보장 및 실현을 위한 노력도 중요할 것이고요. 이렇게 안전보건 관련한 주체들을 포괄하는 거버넌스, 기관 간, 이해관계자들 간 협의체를 만들어가는 일, 이를 도외시하면 앞으로의 정책 방향 또한 협소해질 수밖에 없어요.

정진우: 안전보건 활동의 주체라는 측면에서 사업장 차원의 자율적인 안전보건 활동이 필요합니다. 안전보건 행정 역량과 자율 안전보건관리, 이는 양대 축이죠. 전자뿐만 아니라 후자도 부족합니다. 행정부가 단기실적에 급급해선 곤란해요. 행정기관의 관리감독이 직접 이뤄지지 않더라도 안전보건 활동의 기본에 해당하는 자율규제를 실제로 작동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역량 투여가 필요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운 일이다 보니 손 놓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됩니다. 예를 들면, 근로자 참여 제도를 재정비하는 일입니다. 노동조합이 없는 곳, 특히 소규모 사업장에서 이것이 보장되려면 근로자 대표가 실질적인 권한을 가질 수 있어야죠. 법에는 근로자대표를 선출하도록 되어 있는데 선출 절차나 활동내용 등이 규정되지 않은 채로 있죠. 근로자 참여 인프라가 체계적으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자율규제가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기업 규모를 떠나서 자율적인 활동으로 많은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데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전문성뿐만 아니라 진정성도 없는 게 아닐까 싶어요.

최민: 노동자 참여제도와 자율 안전점검은 묘하게 겹치면서도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자율 안전점검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는가일 텐데요. 한국의 경우 기업들이 자율 안전점검을 규제나 책임 회피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율 안전점검이 현장에서 작동되지 않는 것은 정부가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기보다는 기업의 이해관계가 우선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정진우: 자율 안전점검은 로벤스 보고서에서 제기된 개념이었습니다. 법규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정부의 관리감독만으론 사업장 안전보건 전반을 커버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법 제도를 보완하는 수단이었죠. 법을 지키기 어려우니 현장에 맡겨달라는 것은 아니죠. 

그런데 산업안전보건법의 목적에서도 자율규제 개념이 빠져 있어요. 이건 정부도 이를 사족으로 생각했다는 걸 반증하는 게 아닐까요. 행정의 부족한 점을 메우려면, 근로자 참여를 빼놓고는 자율 안전규제를 얘기할 수 없습니다. 현장을 가장 많이 아는 주체 중 하나니까요.

강태선: 저도 100% 동의합니다. 지난번에 OSHA 대표가 내한했을 때, 사업주만이 안전한 현장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300만 개가 넘는 사업장이 있어요. 모든 일터를 감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죠. 사업주의 윤리에만 의존할 수도 없고요. 

▲   강태선 세명대학교 보건안전공학과 교수.

결국 관리감독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사업주에겐 경각심을 주는 게 필요하고, 특히 안전보건 관련 법규를 이행하기 쉽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어요. 법 이행에 따른 시행착오가 생길 수 있어요. 이를 지도하는 과정도 수반돼야 합니다. 

억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감독행정력이 중요하고, 근로감독관들도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대로 재량권을 발휘하는 게 결국 전문성이죠. 현장 개선을 위한 관리감독, 지도 등은 법으로 규정하기 어려워요. 일정한 프로세스와 인적 역량이 갖춰져야 합니다. 현재 한국의 조건에서 자율규제와 억제 효과가 실현될 수 있을까요?

류현철: 근로감독관의 재량권과 관련해서는 전문성과 공정성 모두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전적이든 사후적이든 생산에 차질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영세하다는 이유로 작업 중지를 내리지 않는 경우도 많잖아요. 기업의 이해관계를 먼저 고려한 게 아니었을까 의구심이 듭니다. 

감독관에게 바라는 전문성이라는 것이 무엇이 기반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어요.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사고 예방과 개선을 위한 작업 중지 요구를 하고 이를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과정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현재 재량권이 언제 어떻게 발휘되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태선: 사실상 지금은 재량권이 없는 것과 다를 바 없죠. 사업주가 노동자를 보호하도록 유도하지 못한 정부의 잘못이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패트롤 운영 관련해서 참고할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조그만 현장들의 경우, 감독관당 1년에 최소한 30~40개를 돕니다. 주로 형식적으로만 감독하는 것에 그쳐요. 똑똑한 사업주, 소위 악성 사업주들은 규제망에 걸려들지 않습니다. 말 잘 듣고 실태를 모르는 사업주는 끌려다닌다, 이런 인식이 만연해있죠. 

이번에 집중적으로 패트롤을 운영했잖아요. 현장에서는 '우리도 드디어 감독을 받았다, 정부가 이런 곳에도 오네.' 이런 반응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점검받아보니까, 주로 추락 중심으로 하더라 크게 부담 안 되더라, 추락 관련 안전조치를 잘했으면 감독받는 게 어렵지 않더라, 이제 사업주들도 해야겠다, 해볼 만 하다는 인식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업주의 의지가 형성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류현철: 그와 함께 사업주가 안전한 현장을 만들 수 있기 위해선 제반여건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안전에는 비용이 들어가잖아요. 결국은 안전조치를 이행할 수 있는 의지만이 아니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죠. 소규모 사업장 등에서는 실제로 비용부담이 크죠. 이를 감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여전히 사업주의 선의에 기대는 방식이 아닐까요?

정진우: 한 가지 정책으로는 부족합니다. 단발성으로 그칠 수 있어요. 한 번 지적하고 개선되지 않으면, 회초리를 들고 '이제부터는 정말 혼낼 거야' 같은 식으론 안전보건체계가 구축되지 않습니다. 기초적인 인프라가 구축되고서 이런 집중정책이 작동되어야 자율 안전보건관리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관리감독 및 사업장의 역량이 축적될 수 있죠. 지속가능한 정책, 장기적 전망을 지녔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전보건 관리 체계·조직 변화 전제돼야

류현철: 현재 안전보건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느냐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현재 정책은 몇몇 리더십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니죠. 안전보건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해선 무엇이 중요한 과제일까요?

 

▲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강태선: 안전보건은 여러 행정이 중첩되는 영역이죠. 타워크레인과 승강기 관련 대응이 좋은 모범사례입니다. 행정안전부와 노동부, 또는 국토부와 노동부가 서로 협조해서 정책을 마련했었죠. 관계부처들에 걸쳐있는 문제들이 많죠. 건설 현장 화재 사고도 마찬가지고요. 한 부처의 몫으로만 남겨두지 말고 협력체계를 구축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류현철: 그리고 안전보건 행정의 주요 관계를 사업주와 정부의 관계로 규정한다면, 노동조합 참여가 안전보건 수준을 높이는 데 유효하다는 얘기와 충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강태선: 안전보건영역은 노사자치에 전적으로 맡겨둘 수 없다고 봅니다. 원칙적으로 노사자치가 가능하려면, 기반이 마련되어야 해요. 최저수준을 지킬 수 있도록 규범과 규칙을 만들어야 하고요. 이는 정부와 사업주 간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겠죠. 만에 하나 노사가 합의해서 위험수당 받고 넘어가는 식이 되어선 안 되잖아요.

정진우: 사업장을 배로 비유하면, 사업주가 선장이라고 할 때, 선원들을 잘 관리해서 순항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때 정부는 배 건조와 운항, 선원 관리 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하겠죠. 사업주가 산재 예방 활동에 관한 의지와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거죠. 현장에서 안전보건 활동을 직접 해나갈 수 있도록 독려하고 교육도 제공해야 합니다. 단순히 감시하는 차원으로만 접근하면 한계가 있습니다.

류현철: 노동자 참여를 좀 더 얘기해보면, 독일의 경우 산재보험 자체에 노동조합이 관여하도록 하고 있고, 노동자 평의회를 통해서 사업주의 안전보건 활동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국 산안법에도 노동자 참여가 보장되어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산업안전 보건위원회나 명예산업 안전감독관의 실질적 운영 문제가 제기되는데, 여기에 주의를 덜 기울이고 있는 게 아닐까요? 더 활성화하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부에서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위험을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야 할 텐데요. 타임오프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있는 것도 해결해야 하고요.

정진우: 저는 노동조합 있는 사업장과 없는 사업장의 차이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더욱 취약한 곳은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들이죠. 그곳에서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유명무실한 게 문제입니다. 노동부에서 이런 문제의식이 없는 것 같아요. 노동조합 요구에 대응하는 수준에 그치죠. 산재 사망사고의 대부분이 작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데, 안전보건 활동을 마련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습니다. 

독일의 종업원 평의위원회, 영국, 일본의 노동자대표제도와 같은 모델을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서 도입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안전보건에 의지가 있는데, 왜 이런 걸 하지 않는지 의문입니다.

안전보건 역량 강화를 위한 과제

최민: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의 입장에서는 노동부나 안전보건공단이 기업의 이해관계만 대변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습니다. 이번 현대제철 산재 사망사고 사례처럼 제대로 된 판단과 조치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고요. 행정의 측면에서 현장의 근로감독관이 노사관계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게 개선되어야 할까요? 인력과 예산을 더 투여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안전보건청 설립이나 조사 권한 확대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태선: 최근 인력과 예산이 늘고 있는 추세이지요. 지방 근로감독관을 늘려서 현장 인력을 확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본부의 인력 증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현장 점검, 사고 대응이 2차적인 전문성이라면, 1차적인 전문성은 어떻게 하면 자율 안전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입니다. 기술적 접근 외에 전략적 접근을 할 수 있는 인력이 중요합니다. 본부와 중앙의 정책 그룹을 확충해야 합니다.

정진우: 동의합니다. 그런데 해외와 비교하면 인력이 부족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만약 확충한다면, 인력의 정예화가 전제돼야 합니다. 채용, 경력관리, 교육 훈련 등 인사 문제와 관련해 개혁이 필요하고요. 시험 준비만 해보고 현장경험이 전무한 사람이 어떻게 정책을 제대로 수립할 수 있겠습니까. 현장경험을 축적하고 정책에 녹여낼 수 있도록 세심한 인사정책이 필요합니다.

강태선: 그걸 위해서는 담당자들에게도 유인이 필요합니다. 안전보건 전문가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런 조직에 어떤 걸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개별 담당과에서 하는 일을 총괄하고 성과분석 및 정책 입안을 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그런 곳에 안전보건 담당자들을 세울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하고 역량 강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해외 사례에 비춰 인력 수준이 상대적으로 비슷하다고 해도, 권한이 어느 정도인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충분한 정책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이어야 합니다. 안전보건청 같은 대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조직개편은 장기적인 과제 단계적 이행 전략을 수립해가야 합니다.

류현철: 구조적 문제 또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의역 김군, 고 김용균 투쟁 등에서 제기된 '위험의 외주화'가 안전 보건의 핵심 문제라 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안전보건 행정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나가야 할까요?

강태선: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려면 사고조사부터 제대로 해야 합니다. 사고조사에선 기술적 원인부터 구조적 원인까지 폭넓게 다룰 수 있습니다. 단순 처벌이 아닌 재발 방지를 위한 조사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적, 법적으로 위반요소만 찾을 것이 아니라 근본적 개선사항까지 밝히는 거죠. 조사보고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법에 반영하고 현장에서 개선하는 프로세스를 갖춰나가야 합니다. 

모든 걸 안전불감증으로 치환하는 건 문제지만, 모든 게 도급 때문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비약이 있습니다. 제대로 된 사고조사가 반복, 축적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관련 자료를 공개해서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대안들이 제출되어야 합니다. 안전보건공단이나 노동부에서 사고조사에 더 주의를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류현철: 건설업 다단계 하도급이나 특수고용노동자 등의 경우 예방적 차원에서 기술적 안전보건 문제만이 아니라 고용 형태, 산업구조를 바꿔나갈 필요가 있잖아요. 이럴 때 왜 정부는 법 제도를 적극적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요?

▲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정진우: 정부 부처 간 역할이 구분되어 있고, 문제해결에 서로 긴밀하게 협조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컨대, 불법 파견으로 인한 산재 사고의 경우, 누가 봐도 불법 파견인데 안전보건 관련 부서는 관심이 없고 다른 부서 소관이라고 눈감아 버리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만약 산업안전보건법에 특고 관련한 조항을 넣을 때도 더 세심하게 고민할 수 있는데, 특고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세우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 같아요. 건설 현장 안전감시단도 외주화하는데, 이를 산안법상 안전관리자처럼 허용해주는 것도 문제입니다. 안전관리자는 종합건설사가 직접 고용해야 하는데 말이죠. 전문성과 권한에서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이런 식으로 서로 일을 구분 짓고 책임을 미루는 것은 노동부와 공단이 직무유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범정부 차원의 긴밀한 업무 연계, 안전보건관리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강태선: 그런 점에서 지금과 같은 노력을 계속 기울여나가면 좋겠습니다. 진지한 노력에 대해서는 성과 여부를 떠나 칭찬도 하고 날카롭게 비판도 하고요. 함께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갈 수 있길 바라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최민: 오랜 시간 대담을 나눴는데요. 현 산재 예방정책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산재 예방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 더 많은 고민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특집2. 시스템을 구축하고 환경을 바꾸는 산재예방정책을 바라며 / 2020.07

[산재예방정책을 진단한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환경을 바꾸는 산재예방정책을 바라며

 

 

박기형 / 상임활동가 

 

지난 2019년,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했다. 산재 사망사고가 다발하는 일터 중에서도 건설 현장, 그중에서도 추락사를 줄이고자 했다. 시스템 비계 설치 점검, 안전패트롤 운영 등 추락사 예방정책을 시행하고, 행정력을 건설현장 안전점검에 집중했다. 이러한 조치가 현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만약 당장 효과가 드러나지 않기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면,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유효할 수 있을까? 정말 건설현장이 안전한 일터가 되기 위해선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이러한 질문을 안고, 지난 7월 1일 광화문 부근 카페에서 강한수 건설노조 토목분과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건설사들은 "안전관리능력"을 갖춰야 하고, 정부는 안전한 건설 노동환경을 갖추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택과 집중, 그 너머의 문제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2018년 타워크레인 사고 집중 점검, 2019년 건설현장 추락재해 집중 점검, 2020년 건설현장 화재사고와 질식사고 집중 점검 등 주요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특정 의제를 중심으로 대응해왔다. 건설현장에서 두드러진 사고유형별로 집중 점검을 시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우선 정부가 건설현장 안전에 관심과 의지를 갖고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것은 유의미한 변화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노동부가 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기엔 두루뭉술한 내용이 많았거든요. 그러니 현실에서 집행될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확실한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전략이라 할 수 있었죠. 하지만 문제는 선택을 하면, 포기하는 부분이 생긴다는 것이에요. 건설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고, 계속해서 발생하는 여러 유형의 사고들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죠.

특정 의제에 집중하더라도 여러 사고 형태들을 모아서 분석하는 일도 병행이 되어야 해요. 각각의 사안에 대한 세부대책 또한 마련되어야죠. 종합대책이 부실하면 그걸 탄탄하게 만드는 것으로 가야 하는데, 사회적 이슈가 된 사안에 건별로 대응하는 게 아닐까 우려스러워요. 단편적인 방안만 내놓는 게 아닐까 싶은 거죠. 이슈화된 특정 사안에만 관심이 옮겨가는 것은 그만큼 노동부 내 산업안전 관련된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닐까요?"

강한수 위원장은 사안별로 집중해서 점검하고 관련 대책을 시행하는 것이 해당 사안을 해결하는 데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집중점을 옮겨갈 때 그 효과가 지속될 수 있을지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약 타워크레인 집중점검에서 추락사 집중점검으로 정책의 강조점을 바꿔 갈 때, 타워크레인과 관련한 안전수준이 정말 올라간 것인지 평가하고,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단계라면 타워크레인 안전점검의 역량을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역량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기만 하는 것이라면, 안전관리가 누적되거나 증대해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부에서 이 점에 유의해서 산재예방정책을 검토·수립·시행하고 있는지 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2019년, 추락재해 예방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효과가 정말 나왔는지도 앞으로 지켜보면서 평가하는 일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과연 실제로 추락재해가 줄고 있는지 모니터링해야죠. 무엇보다 사망재해에 초점을 두고 했던 것인데 추락사로 이어지는 동안, 수많은 '아차 사고'가 있었을 것이잖아요.

또한 사망자만큼 중경상의 부상자도 많을 것이고요. 추락사가 줄었다면, 그만큼 중경상 사고도 함께 줄어든 것인지 점검이 필요해요. 집중을 통해 파급효과를 노린 것이라면, 사망사고 외에 다른 추락 관련 산재들도 줄어야 제대로 된 정책효과가 아닐까요?

나아가 파급효과가 있다면, 화재사고, 질식사고 집중점검으로 옮겨갈 때 추락 관련한 안전점검 또한 지속할 수 있을지도 평가가 필요하고요. 결국 중요한 문제는 집중점을 옮겨갈 때, 감독을 안 한다고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죠. 이러한 집중사업이 시스템을 구축하는 형태로 나아가는 촉발제가 될 수 있는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해요."
   
제대로 된 '자율안전점검'이 가능하려면?
   

"만약 안전 장구 미지급으로 착용하지 않아서 다치거나 죽었다면, 그걸 누구의 잘못으로 규정해야 하나요? 그럴 때 미착용으로 노동자 과실로 규정하는 게 타당할까요? 만약 지급했다면, 순시가 돌아다니면서 노동자들에게 안전벨트와 안전모 착용하라고 지적했어요. 그리고 노동자들도 착용했죠.안전관리의 주요 논리 중 하나가 바로 '자율규제'다. 그런데 과연 한국의 건설현장에서 자율안전점검이 가능한 조건일까?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안전점검, 관리·감독을 통해 현장에서 사업주와 노동자들이 함께 안전한 건설현장을 만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고 있을까?

"한국의 사업주들은 안전보건과 관련한 관리·감독에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할 거예요.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 '근로감독관 나왔을 때만 조심하면 된다', '이때만 바짝 조심하면 괜찮을 거다' 등. 예를 들어 중대재해가 발생했어요. 해당 사업장에 특별근로감독이 나오죠. 그러면, 너네 한 번 정신 차려 보라면서, 온갖 산안법 위반사항을 적발하고 과태료를 물리죠.

이렇게 징벌적으로 점검하는 방식이 반복되다 보니, 현장에서도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죠. 아무리 준비해봤자 걸릴 거 다 걸린다, 평소에 신경을 써도 못 피해간다는 부정적인 인식과 회의적인 정서가 뿌리 깊게 형성되어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집중점검정책이 끝나면, 다시 이전의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건설현장의 유해위험요인은 매우 다양하다.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만만치 않으며, 정부의 안전점검도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그런 점에서도 자율안전관리가 필요하지만, 현장 상황에 따라 역량이 천차만별이다. 현대건설, 포스코 등 대기업 건설현장의 경우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 등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꾸리고 운영하게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노동부나 안전보건공단도 소규모 건설현장에 더 집중하려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 대기업 건설현장에서 자율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건설현장 산재사망사고의 원인을 살펴보면, 관리가 되는 현장과 아닌 현장의 차이가 별로 피부로 와닿지 않아요. 다시 말해 건설현장 간 차이가 없는 것이죠. 건설 현장에서 산재사망사고가 다발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언제나 시공이 우선이 되기 때문이에요. 안전조치가 온전히 이뤄지고 나서 작업을 시작하는 건 어느 건설현장이 부족한 것이죠. 포스코의 경우엔 CCTV를 설치하고 안전관리자를 곳곳에 두고서 구역별로 상시 점검하고 있어요.

하지만 안전조치, 안전교육, 안전설비, 작업현장을 점검한 뒤 작업을 개시하는 안전관리 절차는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아요. 안전점검 이후 인력을 투입하지 않고 있죠. 작업 자체를 전문건설사에 위임하고 원청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감시·감독하는 형태로 진행하고 있는 식인 거죠. 결국 강압적인 안전관리가 이뤄지게 되죠. 안전패트롤 운영이 그 연장선에 있어요.

문제는 안전관리자는 원청이 직접 고용하지만 패트롤은 하청을 준다는 점이에요. 안전관리자들이 모든 현장을 다 확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안전팀 인력 중 일부를 용역으로 사용해요. 안전팀이 관련한 지시를 하고, 패트롤은 손발이 되어 돌아다니죠. 하지만 건설현장 안전 관련 지식과 권한이 부족하다 보니 제대로 된 점검이 어려워요. 물론 작업자들이 유해위험요인을 일하면서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안전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게 적절한 것인지 모르겠어요."

예컨대, 한 건설현장에 패트롤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거기서 콘크리트 타설작업이 이뤄지고 있죠. 타설 작업할 때, 펌프카가 엄청난 압력으로 콘크리트를 쏴요. 타설 지점에서 도킹을 잡은 사람, 옆에서 라인에 맞게 골고루 뿌리는 작업을 도와주는 사람 등이 여럿 모여서 작업하고 있어요. 문제는 펌프카의 바퀴가 떠 있는 채로 작업이 이뤄진다는 거예요. 쏘는 방향에 따라 특정 부위에 하중이 쏠리죠. 그때 지반침하로 인한 펌프카 전도가 자주 발생해요. 그러면 이 작업자 서너 명 중 한 명은 늘 사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위험이 늘 있다면, 타설 작업 전에 지반조사를 해야 하잖아요. 지반침하 위험이 있다면 타설작업을 중지하고요. 작업 재개 전에 충분한 조치가 취해져야 하고요. 그런 안전점검, 중지 및 재개 의사결정이 현장의 패트롤이나 안전팀을 통해 이뤄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점검체계가 갖춰진 곳이 별로 없어요. 그럴 권한과 역량이 부족해요. 더욱이 공사기간을 맞추는 게 최우선 원칙이다 보니, 안전점검할 시간적 여유도 없습니다. 작업중지하고 점검하는 데 따른 책임을 누구도 지기 싫어하게 되고요."

그 결과, 건설현장의 자율안전점검을 하더라도 대부분 작업자에 대한 규제 중심으로 좁혀지게 된다. 안전패트롤이 상주하면서 돌아다녀도, 노동자들이 안전장구를 잘 착용했는지, 작업자가 작업 과정에서 안전조치를 충실히 하고 있는지 등 작업자 개인에 대한 규율 위주로 점검한다. 사람의 행위만 통제하려는 방식 말이다.

이에 대해 노동자들은 안전을 강조하는 것에 반발감만 생긴다고 토로한다. 작업환경은 별로 바뀌지 않는데 노동자들만 못살게 굴고 귀찮게 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생기는 것이다. 왜 이런 행위자 규제 중심의 안전조치만 이뤄지게 되는 것일까? 이는 다단계 하도급이라는 구조적 요인뿐만 아니라, 안전사고 원인 분석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발판이 고장 나서 또는 난간이나 낙하 방지망이 없어서 추락하면 그때는 누구에게 과실이 있는 건가요? 자동차 사고의 경우, 운전자의 과실 여부를 주로 따지죠. 하지만 도로 설비가 부실했다면, 차선이나 신호등에 문제가 있었다면, 싱크홀 같은 게 생겨서 사고가 발생했다면, 그건 운전자의 과실이 아니잖아요. 노동자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 안전불감증 프레임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해요."

강한수 위원장은 건설현장의 '환경이 변화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건설현장의 안전시스템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동자 개인이 주위를 살피지 못했거나 실수를 했더라도, 다치거나 죽지 않을 수 있어야 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관점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정부기관, 지자체 등에서 건설현장 안전점검 보고서 및 개선 계획들을 제출한다. 하지만 건설현장 사고원인의 대부분은 노동자의 과실, 특히 개인 부주의로 기록되어 있다. 추락사 또한 개인이 안전고리를 착용하지 않고 일을 해서, 부주의로 발을 헛디뎌서 죽은 것이라고 적혀있기도 한다. 그런데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죽었다는 단순한 인과관계로 설명되는 추락사의 경우에도, 정말 노동자 개인만 탓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노동부가 작년 한 해 시스템 비계를 건설현장에 널리 도입하기 위해 취했던 여러 노력은 특기할만하다. 추락사가 벌어지는 환경적 요인을 개선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대부분의 산재사망사고의 원인은 개인의 기저질환, 부주의 등으로 기록되고, 대책도 안전불감증을 개선해야 한다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사고 원인을 무엇으로 규정하는가, 사고 조사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도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이를 위해 기존의 사고조사를 재검토해서 원인 규정부터 새로이 할 필요가 있다. 안전설비 부실, 작업 개시 전 안전조치 미비, 장구 미지급 등 다양한 환경적 요인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건설현장의 안전점검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책임을 명확히 묻는 것도 필수적이에요. 만약 안전조치하라고 잔소리만 한다고 행하는 건 아니잖아요. 스스로 할 마음이 들어야지요. 물론 마음을 먹어도 소홀하게 될 수 있으니 자극을 주거나 독려하는 등의 관리가 필요하겠죠.

다시 말해, 건설사 스스로가 바뀌어야 하죠. 집중사업 이후 건설사의 태도를 바꿔내기 위해 두 가지 방향의 조치를 취할 수 있겠죠. 우선 유인책이랄까요. 적정공사기간 및 적정공사금액을 보장하고, 안전관리비 계상 및 집행 등에 건설사가 안전관리를 더 잘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는 거예요. 그리고 재해율이 평균 미만일 때, 입찰 시 PQ점수를 조정해주거나 산재보험요율 줄여주는 것도 그렇죠.

문제는 유인만 제공하는 것으론 불충분하다는 거예요. 더군다나 건설사들이 악용할 수 있어요. 적당히 재해율 지표만 관리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산재은폐를 하거나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을 정도로만 조치하는 것이죠. 실질적인 안전조치를 하는 사람이 바보라는 인식이 생길 수 있어요.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나중에 걸리면 벌금만 내면 되고, 소송 가면 변호사만 잘 쓰면 된다는 식이에요. 책임을 적당히 지려고 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요. 그마저도 하청업체나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고 하고. 건설사들의 태도 변화가 쉽지 않아요. 그러니 강한 충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죠. 일정한 강제가 필요하니, 과태료나 벌금 강화, 경영책임자 처벌, 공공기관 공사 수주나 시공 자격 박탈 등의 요구가 제기되는 것이죠. 잘못을 확실히 밝히고 강력히 처벌해야, 적당히 넘어가야지 하는 수준 이상으로 안전에 관심을 쏟을 테니까요.

비유하자면 지금은 공부하는 사람이 제대로 공부하려고 하기보다는, 책상이 없어서, 의자가 불편해서, 더운데 에어컨이 없어서, 필기구가 안 좋아서 공부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공부할 수 있도록 이거저거 사달라고 하는 수준에만 머물러 있어요. 물론 이렇게 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래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 중요하죠.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거잖아요.

모든 걸 정부나 하청업체, 노동자의 탓으로만 돌리려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죠.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만큼 그에 따른 책임을 부과하고 이행하지 않을 시 처벌하는 것도 필요해요.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유리한 것만 챙기려고 하는 것은 막아야죠. 은근슬쩍 넘어가지 않게 면밀히 감독하고, 원인을 제대로 밝히고, 확실히 처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규모 건설현장 관리 방안도 고민해야

추락사 예방을 위한 집중안전점검을 할 때,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소규모 건설현장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실제로도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더 많이 발생하며, 시스템비계와 같은 안전설비를 갖추지 않는 일이 더 빈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스템비계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여 시스템비계 공급을 늘리고 가격을 낮추는 등의 지원책 시행, 현장 안전점검 확대 등의 안전정책만으로 충분할지 되짚어봐야 한다.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안전조치가 미비한 이유는 단지 안전설비 가격이 비싸기 때문일까? 또는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안전관리 인력이 부족한 것은 단지 안전관리체계를 갖출 만한 인적, 재정적 여력이 부족해서일까? 왜 이런 안전관리 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지 되풀어 볼 필요가 있다.

"소규모 건설현장의 안전사고 예방이 안전점검만으로 가능할지 의문이 듭니다. 건설업의 경우 면허등록을 해야 해요. 신고제로 이뤄지죠. 건설산업기본법 규정에서는 종합건설업, 전문건설업 등 영업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토목·건축·산업환경설비 등의 내용에 따라, 법인과 개인의 경우에 따라, 자기자본금 기준이 책정되어 있어요. 갖춰야 할 전문인력의 규모도 있고요.

그런데 자기자본금이나 소지면허 등에 허위기재사항이 많고, 면허대여의 문제가 있어요.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서 일만 따고 다시 도급을 주는 경우도 많고요. 그러니 현장의 실제 관리자와 서류상 책임자가 다르거나, 더욱이 관리책임자 자체가 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해요.
 
그러니 시공 능력뿐만 아니라 안전관리 능력 자체가 확인이 안 됩니다. 건설업체 관리가 허술하게 이뤄지는 것이죠. 재정과 인력이 부족한 것은 단순히 소규모라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소규모여도 현장을 관리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들을 운영할 수 있는지 검토할 수 있는데, 그것 자체가 전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죠. 안전관리 능력이 없는 업체들을 난립하게 해놓고 영세하다고 봐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고 행정기관이 무책임한 것이죠.

무엇보다 건설현장은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안전, 건물을 짓는 사람들의 안전을 우선해야 하잖아요. 시공능력이라는 것도 건물 자체를 지을 수 있느냐의 능력인데, 건물을 짓는다는 건 마냥 세우는 게 아니라 튼튼한 건물을 안전하게 짓는 걸 묻는 거잖아요. 그러니 건설업 허가를 더 강하게 규제하고 더 면밀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적어도 규모에 상관없이 각 현장별로 안전관리책임자가 상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관리자 선임 기준도 조정하고, 선임만으로 그치지 않고 실제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안전한 건설현장을 만드는 것은 단지 특정 사고유형만 점검하는 일로 달성되지 않을 것이다. 집중과 선택의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해당 전략이 다양한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도록 제반 조건을 마련하는 일과 병행되어야 한다. 건설현장의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실효성 있는 안전조치가 작업 과정 전반에서 사전에 실행되는 등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스템이 안착할 수 있도록 더 체계적인 정책, 장기적인 계획이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