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2월_특집3] 버스노동자들의 안정적 노동이 필수노동자 대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정홍근 본부장 인터뷰 / 2021.02

[필수노동자 대책에 노동권 보장은 필수다]

 

버스노동자들의 안정적 노동이 필수노동자 대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정홍근 본부장 인터뷰

 

유청희/상임활동가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전국민이 코로나19로 불안과 두려움을 겪어야 했다. 전염병은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에 균열을 만들었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등의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고 많은 일터가 재택근무로 업무 장소를 바꾸기도 했다. 멈춘다는 것에 우리가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멈출 수 없는 곳도, 그런 노동자도 많다. 정해진 노선을 운행하는 버스노동자들이 그렇다. 과연 이들의 시간은 어떠했을까?
  서울시 성동구를 시작으로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 조례가 제정되고, 정부와 여당이 필수노동자 지원 대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후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 조례는 전국적으로 제정되고 있다. 보건·의료, 돌봄, 교통 등의 노동자들은 시민들이 비대면으로 활동하는 시기에도 대면 노동을 하고 있고, 건강을 위협받을 수 있어 점검과 보호가 필수적이다.
  버스노동자들 중에도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들이 뉴스 기사를 통해 알려지고 간혹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는 승객을 통제하는 중에 폭행을 당했다는 뉴스가 나와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은 평소 안고 있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나게 만들기도 했는데, 이 시기 버스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 문제를 묻고, 필수노동자 지원 및 보호 대책에 반드시 담겨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의 정홍근 본부장을 만나 들어보았다.
  버스 업종은 지자체로부터 임금 등 지원을 받으면서도 회계는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지 않아 채용 비리, 횡령 등의 문제를 오랫동안 풀지 못한 채 안고 있다. 정 본부장은 버스가 이윤 창출이 아니라 공공사업으로 변화해야 함을 피력하며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완전공영제'를 제시해왔다. 이미 임금 등 상당액의 지원금을 지자체가 부담하고 있기도 하다.
  공공성을 분명히 할 때 시민들에게 필요한 곳으로, 시민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버스 노선이 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필수노동자 지원 및 보호 대책 역시 공공성이 그 핵심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정홍근 본부장

 

버스노동자의 코로나19 시기 노동

    버스노동자들은 업무 중에 많은 승객들을 대한다. 누가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예측불가능성에서 오는 불안과 두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기인한 업무상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승객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 써 달라고 요구하다가 버스기사가 폭행당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기존에도 버스노동자들의 폭행 피해는 있었던 일이지만 폭행당하는 이유가 한 가지 추가된 것이다. 이렇게 감염병은 평소 있던 위험이 더 증폭되는 원인이 되었다. 일반 시민들은 이런 뉴스를 보며 안타까움을 표하겠지만 그 일을 겪은 버스노동자는 어떨까?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가 이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가 워낙 확산세라서 처음보다는 인식이 바뀌고 완화되었죠. 힘없는 사람들의 한이랄까요. 시민들이 언론을 보면 폭행당한 버스기사 보면서 안타까워하지만 우리는 하소연 할 데가 없어요. 회사에서는 어느 회사에서 벌어졌다는 거 자체가 지자체 평가 대상이 되는 이유다 보니까 쉬쉬하고 그래도 일하라면서 달래고 끝내는 식이에요. 우리도 '내가 왜 맞아야 돼' 하는 분노는 있지만 어떻게 보면 어머니 같고 형제 같아서, 고발하고 조사받는 거 생각하면 복잡하니까 거의 '내가 운전하는 게 죄지' 하고 포기하죠.
  코로나 관련해서 위험을 줄이려면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해요. 물론 회사에서는 주5일근무제를 요구해도 6일, 7일 다 시키고 싶어 하죠. 신규채용하면 그만큼 기본금, 상여금이 다 뛰니까요. 그래서 주5일 근무제로 가야한다는 것이 우리가 주장해온 것인데,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포함되어있었으니 노사가 합의하면 12시간을 더 할 수 있었죠. 그렇게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다행히 특례업종에서 제외되어 주52시간제가 시행됐어요. 그런데 이번엔 탄력근로제로 업무시간을 늘려버렸어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노동시간이 통제되겠습니까."


'아프면 쉬라'는 공허한 외침

  필수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대면노동을 하는 버스노동자들이 안전을 보장받으려면, 감염병이 확산되는 시기 내내 정부가 전국민에게 제시했던 '아프면 집에서 쉬라'는 권고가 이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면서도 실행하기 어렵다는 모순이 버스업계에서는 코로나19 전부터 있었다. 아플 때 휴가를 내 쉬는 일은 한국의 노동자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누군가가 대신 채워야 하는 상황에서, 버스 회사들은 '쉴 권리'를 보장하기보단 어떻게 해서든 그 시간만 넘어가기를 기대하며 노동자에게 노동을 권한다.

  "법으로 연차휴가가 보장되지만, 연차를 내라고 하는 회사는 전국적으로 100개 중 10개도 안 될 겁니다. 대부분 수당으로 줘 버려요. 누군가 쉬면 그만큼 인력을 충원해야 하는데 회사입장에선 비용이 더 드는 일인거죠. 회사에서 용인 안 해줍니다. 대신 돈으로 주죠. 노사가 합의를 하면 법적 강제력이 없는 거예요. 근로기준법에 무조건 쉬라고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법으론 연차휴가를 제공해야 한다고 되어 있긴 하지만, 우리가 연차를 돈으로 받겠다고 합의된 것을 무효화할 강제력은 없어요."

  버스 업종은 장시간 노동으로 오랫동안 악명을 떨쳐 왔다. 새벽에 출근해 밤에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인 업종이다. 장시간 노동은 버스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고 스트레스 대응도 어렵게 만든다. 게다가 시내버스 노동자들은 한 번 운행을 시작하면 종점까지 가야하니 원할 때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 어렵고, 그러다 보니 방광염은 흔히들 앓는 질환이다. 허리 질환에, 사고 위험도 이들이 갖는 큰 두려움 중 하나다.
  또 너무나 자연스러우면서도 쉽게 잊혀지는 어려움이 바로 정신적 스트레스다. 아침에 담뱃갑에 십계명을 적고 마음을 다스리며 출근한다고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일을 하다보면 마음 다스리기는 요원해진다.

감염 위험에 고용 불안까지 덮치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대면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적어도 덜 위험하게 일을 하려면 마스크나 손소독제 같은 보호구는 안정적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특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버스노동자에게는 더 그렇다. 그런데 이런 충격이 올 때 쿠션 역할을 하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회사는 하지 않고 노동자가 고스란히 겪어내야만 한다.
  버스노동자들이 코로나19 확산으로 겪은 즉각적인 어려움에 대해 방역 등 회사의 안전조치, 감염 위험에 대한 보상, 유급휴가같은 보호 및 지원이 있었을까? 노동자들에게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보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완충 조치는 일어나지 않고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고 있다.

  "초기에 우리도 마스크도 제대로 지급이 안 된다는 말이 많이 공유됐습니다. 하나를 주고 며칠 쓰라는 곳도 있고요. 심지어 회사에 마스크를 요구했더니 지자체에서 안 나와서 못 준다 이런 식으로 무시당하고 노동자들 개인이 사는 경우도 많았어요. 버스노동자 폭행도, 그렇게 노동자들이 폭행당하고 언론에 나올 정도면, 경영자들이 버스노동자들 폭행한 승객에 처벌을 더 강화하라고 하는 것이 맞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요.
  코로나 때문에 생긴 변화라면 근무를 못 한다는 거죠. 운행이 감축되었으니까요. 재난 시기라서 지급된 것이 고용유지지원금인데요. 고용유지지원금이 운행감축으로 인해서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니까 국가에서 임금의 70%를 주고 유급휴가를 쓰라고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30%는 일단 회사가 지급한 뒤 지자체에 신청하면, 다시 돌려받아요. 근데 이것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지원을 하는데도 전국적으로 경영을 제대로 못 해서 노선 폐지하고 폐업하는 버스회사들이 수두룩합니다."

필수노동자에게 꼭 필요한 지원·보호 대책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노사정이 버스 격일제, 복격일제를 하루 2교대제로 변경하고 준공영제 등 운영체계 다각화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버스본부는 하루 2교대제를 환영하면서도 '완전공영제'로 나아가야한다고 입장을 냈다. 버스노동자들이 필수노동자로 그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감염병 상황에서 건강과 임금, 고용 역시 지자체와 국가 차원의 보장이 있어야 한다. 정부 및 여당의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 대책 역시 마찬가지다.

  "필수노동자 지원·보호 대책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그런데 강제사항이 없다는 점이 아쉬워요. 조례 만들고 대책 세우는 것은 좋은데, 이게 사업주들의 협조 없이는 못 한다는 것이 문제죠. 지자체장이 계획을 세운다고 한다면 '재난수준에 대해서는 지자체장이 제출하면 지원을 받고 있는 사업장은 따라야 한다'고 단정지어야 하는데,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 하고 있어요. 운행이 감축하더라도 임금을 우선 지급하라는 조항을 줘야 합니다. 그래야 조례에 대한 정의가 살아나는 거죠.
  버스노동자는 감염병에 취약하니까 민간 기업에서의 대책보다는 지자체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봐요. 지자체가 공공 영역의 버스노동자들의 휴식과 임금에 대한 불안함을 없애려면 조례에 대해서도 강제성을 두게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느 사회든지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사회가 굴러갑니다. 필수라는 건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잖아요? 파업해도 필수인력 남겨놓고 하듯이요. 그렇다면 노동자 권리를 충분히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터2월_특집2] 일상 속 재난 마주한 국제 사회, 필수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지원하고 있나? / 2021.02

[필수노동자 대책에 노동권 보장은 필수다] 

 

일상 속 재난을 마주한 국제 사회,

필수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지원하고 있나?

 

이승윤/중앙대 사회복지학

 

▲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필수노동자 논의가 전세계적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필수노동자 지원보호 대책을 마련할 때, 이 논의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재난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일상 유지를 위해 보이지 않고 있는 곳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던 노동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고요 속에서만 비로소 저음의 파동이 들리듯, 많은 이들이 일상에서 '멈춤'을 경험하자 멈추지 못하는 노동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그동안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그 노동이 사회와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는 것에 비해 저평가되어 왔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노동이 필수적 속성을 가지고 있겠지만, 특히 재난은 우리사회의 유지를 넘어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서 필수적인 노동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주로 저임금 또는 불안정한 고용관계를 경험하는 필수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그동안 이들도 목소리를 내어보았지만, 사회에서는 그다지 귀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제적으로 그리고 국내에서 필수노동에 대해 논의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여기에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와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서도 필수노동자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정부의 관심이 급격히 확대된 맥락이 있다.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필수노동자의 특징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불안정한 고용관계, 저임금 및 대면노동의 불가피성이 있다. 먼저, 국내 사례로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지자체차원의 필수노동자에 대한 연구 결과(해당 지자체의 필수노동자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돌봄노동자 중 보육교사와 요양보호사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간단하게 소개하면, 돌봄노동자는 코로나19 이전에도 '높은 노동강도 및 휴식권의 제한', '업무 스트레스와 감정노동', '높은 고용 및 소득 불안정성'을 경험하였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일반적인 노동조건 및 노동환경으로 인한 어려움이 심화된 형태로 나타났다.
  또한, 일터에서 실직, 소득감소 등의 어려움을 경험하여도 사회안전망으로도 적절하게 보호받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방문 돌봄종사자의 모호한 종사상 지위, 거리두기 조치로 인해 일감이 줄어들어 비자발적으로 경험한 실직이나 감염병에 대한 우려로 자발적으로 일을 줄이게 된 경우도 현재의 실업급여 제도와는 부정합한 측면이 나타났다. 또한, 재난 상황에서 지급되었던 한시지원금의 엄격한 소득기준 때문에 가계를 책임지기 위한 소득활동으로 필수노동을 하는 노동자는 자격기준을 상회하여 코로나19로 인한 소득감소에도 불구하고 정작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한계도 나타났다.

  이와 같은 필수노동자의 불안정성과 지역사회의 필요에 대응하여, 국내에서는 성동구 등 지자체에서 선도적으로 필수노동자 보호를 위해 조례를 제정하고 정책도입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2020년 12월에 정부는 필수노동자 지원대책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정책의 구체성과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며, 해외사례 또한 참고할 부분이 있어 보인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식품가공업, 배달업, 보건의료업과 같이 '경제활동'의 유지에 핵심적이지만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산업들은 감염병 국면에서 '필수적인(essential) 산업'으로 정의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필수노동자(key workers)'라고 설명한다.
  한편 원격 및 비대면으로 수행할 수 없는 필수적인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최전방노동자(Frontline worker)'는 전체 노동인구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보건의료 종사자, 점원, 식품가공 종사자, 건물 관리인, 농업 종사자, 트럭 기사 등을 필수노동자 범위에 포함시켰다.
  다음으로 국제노동기구(ILO)는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인간이 갖는 기본적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감염 국면의 최전방(frontline)에 있다고 언급하며, 이러한 정의에 해당하는 경제 부문을 제시하는 형태로 필수노동자를 정의한다.
  해당 경제 부문은 간호사, 의사, 시설 관련 업무(human health related work), 사회복지 관련 업무(social work), 청소 관련 업무(support work)로 요약된다. 이들은 감염병과 직접적으로 싸우며 대면 노동을 지속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 전 세계에서 1억 3천만 명의 노동자가 해당 부문의 노동자인 것으로 추산되며, 다른 주요한 특징으로 이 부문의 노동자는 약 70%가 여성인 노동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하였다.
  한편, 국제엠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보건의료 노동자(health worker)'를 "보건의료 산업에 종사하고 자격과 무관하게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노동자"로 정의하고, '필수노동자(essential worker)'는 "코로나19 감염병 시기동안 필수적인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노동자"를 의미한다.
  이는 대중교통 종사자, 환경미화원 등 공공 서비스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식료품점, 배달 서비스업 종사자 등과 같이 코로나19 감염병 상황에서 영업이 허용된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또한 포함하였다. 마지막으로 유럽연합(EU)는 봉쇄 조치를 시행한 EU의 3개 국가(스페인, 이탈리아, 독일)에서 세부 업종별 봉쇄 조치 적용 여부를 통해 각 산업의 필수적인 정도를 구분하였다.
  분석 결과, 모든 국가에서 필수적이지 않은(non-essential) 산업과 완전히 필수적인(fully essential) 산업이라는 양극단을 구성하는 업종은 유사하여, 필수적이지 않은 업종에는 관광업, 숙박업, 외식업이 있고, 완전히 필수적인 업종에는 식품 및 제약 생산업, 수도전기 등의 공익적 업종(utilities), 운송업, 의료업이 있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정리하자면, 각 기구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 대체로 공유하는 핵심적 속성은 '노동 현장에 물리적으로 나타나야만 하는 노동자', 혹은 '사회, 가구 및 개인의 기초적인 삶이 유지되는 데 있어 기본적으로 필요한 서비스와 생산품을 제공하는 노동자'로 수렴된다. 한편, 해당 용어를 사용하는 기구나 국가가 필수노동자의 어떤 속성에 보다 초점을 두는가에 따라 다른 용어가 사용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필수노동자(essential worker) 용어는 국가의 경제·사회·공공 핵심 업무를 강조하는 개념인 반면, 최전방노동자frontline worker) 용어는 대면업무의 불가피성을 보다 강조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다음으로, 해외 국가 중 미국과 캐나다의 사례를 중심으로 필수노동자 정의 및 지원 정책과 관련하여 진행된 논의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우선 미국의 국토안보부 산하의 CISA(Cybersecurity and Infrastructure Security Agency)에서 발표한 '필수 산업 분류'에 따르면, 필수노동자는 보건의료, 통신, 정보기술, 국방, 식품 및 농경, 운수, 에너지, 공공행정 등과 같이 '주요한 인프라의 지속을 위해 필수적인 운영 및 서비스를 수행하는' 광범위한 집단을 의미한다.
  연방 지원정책의 경우, 펜실베이니아, 버몬트, 루이지애나 등 3개 주는 연방 CARE act 기금을 활용하여 민간 및 공공 부문 근로자를 포함한 필수노동자에 대한 위험 부담금을 지급했다. 다른 몇몇 주에서는 연방 구호 기금을 사용하여 긴급구조원, 보건 관련 간병인과 같은 더 좁은 범위의 최전방 필수 근로자에게 위험 급여를 제공했다. 미국의 주정부별 및 연방정부별 필수노동자 관련 정책은 대부분 임금보조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많은 경우 1회성 지급으로 이루어졌다는 특징을 갖는다.
  캐나다의 경우 국세청(CRA, Canada Revenue Agency)을 통해 코로나19 판데믹 상황에 대응하여 새로운 지원정책을 추가함과 동시에 기존의 제도(고용보험)에도 관련 조항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구체적으로, 자영업자 등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지원정책, 돌봄노동자 대상 정책, 코로나19로 인해 자가격리 조치 중인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 긴급임금보조정책, 기업 대상 긴급대출제도 등이 시행되었다.
  이와 같은 캐나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필수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지원정책 중 EWSP(Essential Worker Support Program)를 살펴보면, 보건의료 및 사회서비스, 돌봄노동, 청소, 교통 및 물류, 환경미화 등의 업종을 대상으로 필수노동자 자격요건을 설정하고, 이들 중 저임금인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하는 형태로 지원을 제공하였다. 여기에서 필수노동자는 연방정부가 아닌 각 주에서 세부적인 자격요건을 결정하고 지원범위를 설정하였다. 재원은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각 주정부가 25% 보조하는 형태로 지원이 제공된다.
  필수노동자는 필수적인 서비스와 핵심 공공서비스의 공급을 위해 감염병 국면에서도 밀접 노동을 하고 있어, 해외 주요국과 국제기구 등에서 이들에 대한 지원체계가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필수노동자에 대한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문제에 아직은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다. 필수노동자는 감염병 국면 이전에도 저임금 상태와 더불어, 비공식노동인 '그림자 노동'상태로 지속되어 왔다. 위험을 감수하는 그림자 노동 없이는 현재의 비대면 소비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 '필수'노동자 지원체계에 대한 논의와 적극적인 정책확대가 필요하다.

[일터2월_특집1] 필수 노동자 지원 대책 '보호 및 지원'을 넘어 일상의 권리로 진전해야 / 2021.02

[필수노동자 대책에 노동권 보장은 필수다]

 

필수 노동자 지원 대책 '보호 및 지원'을 넘어 일상의 권리로 진전해야 

 

류현철/소장,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사스(SARS), 조류 인플루엔자, 신종 플루, 메르스에 이어 2019년 겨울 등장한 코로나바이러스는 두 번의 겨울을 거치면서도 전 세계에 맹위를 떨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는 비교적 모범적인 방역국가로 주목을 받았고, 정부도 K-방역을 치적으로 삼기에 여념이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자못 삭막한 방역 구호와 더불어서 펼쳐지는 방역 행정에 지쳐가고 있지만, 우리의 삶은 대체로 유지되고 있다.
  어떤 노동의 덕분이며 누구의 덕인가? 매일 수만 명에 대한 검사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수백 명의 확진자들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의료시스템을 지탱해 온 이들이 가장 먼저 조명 받았다.
  그들만이 아니다. 바이러스 창궐 속에 눈보라와 혹한이 몰아쳐도 필요한 것들은 여전히 문 앞까지 도달하며, 배달 음식은 식기 전에 식탁에 오른다. 휴일이나 명절에도 연로한 부모나 아픈 가족을 찾아가는 것조차 행정명령 위반의 죄가 될까 두렵지만 그들의 곁은 돌봄 노동자들이 지키고 있다. 코로나 19의 시대에 필수 노동자들이다.

필수노동자 지원 대책이 등장한 배경

  필수 노동자들의 현실은 의료인의 과로와 소진,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망, 배달 노동자 사고사망, 돌봄노동자의 감염, 콜센터 노동자들의 고위험 노출과 감염 등의 문제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초기에 코로나 방역에 실패했던 서구에서는 실업률이 치솟고 실업보험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일자리 유지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일터로 나가는 노동자들의 현실과 그들이 수행하는 노동이 통상의 이동이 멈춘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돌아보는 기사와 논문, 여러 가지 보호와 지원대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K-방역'을 해치는 빌런들을 성토하는 데 쓰는 열의에 비해 필수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진전은 더디기만 했다. 그런 와중 지난 2020년 9월 방역 성과로 반등했던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가 다시 내려앉던 정치적 상황에서, 서울 성동구 의회에서 바람직하면서도 일면 느닷없는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등장했다.
  대통령이 각별한 관심을 표명하자 노동부는 '필수 노동자 안전 및 보호 강화 대책'을 내놓았고, 필수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가 출범했다. 성동구를 필두로 2021년 1월까지 행정안전부 자치법규정보시스템에서는 23개의 광역 및 기초지자체에서 필수노동자 보호나 지원과 관련된 조례가 확인됐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는 작년 11월부터 필수노동자 보호와 지원에 관련된 4건의 법안(민형배, 김영배, 송옥주, 이해식 의원 발의안)이 올라와 있다. 정부에서는 작년 12월 14일 관계부처합동으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필수노동자 보호·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팬데믹 시대에 필수노동자 보호와 지원 대책의 대유행이다.

 

▲   코로나19가 드러낸 노동 불평등의 면면을 신중히 들여다 봐야 한다.

 

협소한 논의 지형, 지원 대책의 한계

  논의를 촉발한 지자체 조례들은 코로나19 대유행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필수노동자들을 위해 지자체가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수준이다. '필수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 두고 있는 점은 분명한 한계다. 필수노동에 종사하지만,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 노동자들이 가장 문제적임에도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법률안들은 대동소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필수 노동과 필수 노동자들에 대한 포괄적 정의,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 구체적인 필수 업종을 지정하고 기본계획·실태조사·시행계획 등을 수립할 위원회 조직구성을 담고 있고, 일부 법안에서는 추가수당 지급, 예방접종, 필수노동자 가족 돌봄서비스 등 구체적인 지원내용이나 필수노동자협회 등 당사자 조직 설립 등을 포함하고 있다.
  민형배 의원안을 제외한 3개의 안은 필수노동자를 근기법상 근로자뿐 아니라 '노무종사자'로 확장해두고 있다. 현재 소관위에 접수되어 있는 법률안들이 당장 필수노동자들에게 실효적인 보호와 지원을 가져올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사회적 논의가 입법이라는 형태로 귀결되는 상황에서 필수노동자 문제를 논의의 장으로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필수노동에서 수반되는 위험들에 대해서 국가와 정부,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가 각각 수행을 분담하고 협조해야할 사항을 큰 틀의 국가재난안전관리계획의 차원에서 조망하고 기획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비필수노동과 필수 노동의 경계는 모호하여 어떤 재난인지에 따라, 감염병이라도 유행 수준에 따라 유지해야 할 사회기능을 어떤 것으로 볼 것인지는 달라질 수 있다.
  필수노동과 필수노동자에 대한 규정과 정의를 누가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결정해야 하며, 재난 상황에 따라 재원 마련, 지원 우선순위 결정, 집행은 누가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을 제시해야한다. 필수노동자들에 대한 방역과 안전대책은 국가재난안전계획에 포함시키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 가치가 낮게 매겨져 있던 그림자 노동과 그것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논의하는 계기로서 입법과정이 아닌 '필수노동자 지원'이라는 정치적으로 매우 그럴싸해 보이는 문구에만 매달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재난 시기뿐 아니라 일상의 시기에도 지속가능한 '안전과 건강' 대책은 건너뛰고, 위험을 감수하거나 강제하게 만들 경제적 금전적 지원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필수노동자 보호·지원 대책 추진목표 및 전략. 2020년 12월 14일 관계부처 합동발표 자료 중 발췌

 

바람직한 필수노동자 정책방향은?

  작년 12월 관계부처합동으로 내놓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필수노동자 보호·지원 대책(아래 필수노동자 대책)'은 추진목표를 필수노동자 보호 및 중단 없는 필수업무 수행으로 두고 정책방향으로 코로나 19로 가중된 위험에 대해서는 필수인력 확충, 감염·산재에서 보호하고 취약한 근로여건에 대해서는 종사자 처우개선, 사회안전망 등 제도개편으로 잡았다.
  전체적 정책방향에 동의할 수 있으나 구체적 추진전략으로 제시된 총괄대책과 분야별 '맞춤형' 지원방안은 기존 고용노동부의 사업계획을 이리저리 나열해 놓고 지도와 감독을 중심으로 하는 방역대책을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맞춤형'이라는 표현은 전체 제도의 조망 속에서 적절한 부분을 찾아가는 방식이라기보다 예외적인 상황을 만들어 정책을 교란하는 방식을 일컫는 것 같기만 하다. 진행형인 코로나 시기에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노동자들은 누구이며, 위험 노출의 결과로 나타난 노동자들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지 실증적으로 살펴야만 한다.
  정부대책인 2021년에 필수노동자를 대상으로 마스크를 38억 원어치 지원하는 등 국가(공공)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더불어 한시적 조치를 넘어서서 일상적인 안전보건조치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인지 살펴야 한다. '방역조치 지도·점검 강화'라는 두루뭉술한 이야기가 아니라 요양보호사나 택배·배달노동자의 감염 예방을 위한 보호구 지급 및 보호 조치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누가 책임져야하는 것인지, 어떤 법과 규정에 따르라고 지도하고 감독할 것인지 정하고 감독해야한다.
  당장 2배 넘게 증가하는 택배물량으로 작년에만 16명의 택배기사가 과로사하고 새벽 출근과 심야 업무에 시달리는 택배노동자들에게 직종별 특화 건강진단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대책은 핵심을 빗겨나간다. 작년 12월 노동부 스스로 성수기 택배노동자들은 주6일 이상 근무가 97.3%(일주일 내내 근무 12.4%), 1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가 92.9%(14시간 이상 근무 41.6%)라는 조사를 발표했음에도 이런 살인적인 노동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 개입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작년 9월부터 연이어 정부가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내놓고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어도 기업의 이해관계를 좀처럼 넘어서지 못한다. 5인 이상 모임 금지, 각종 시설과 영업장에 대한 집합금지 행정명령 등 단호한 방역 대책이 내려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국내 50세 미만 전체 사망자수와 같은 16명의 택배기사가 과로사 했는데 택배물량을 기준으로 적정 인력을 제시하여 분류 작업을 분리하고 배치를 강제하는 행정력 동원은 왜 가능하지 않은가?

필수노동자들에게 노동권 보장은 필수다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내놓은 대책에 포함된 노동자의 안전보건 방침과 처우개선, 사회안전망의 확대에 대한 기존의 계획을 코로나 19를 계기로 국민들에게 필요성을 적극 호소하고 실현되도록 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대책 전반에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권리를 신장하고 옹호하도록 법제도를 구성해야한다는 관점은 드러나지 않는다.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복원력(resilience) 확보는 필수노동에 대한 정당한 가치 인정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과 사회안전망의 강화에서 비롯된다.
  실제 사회적 가치에 비해 현저히 저평가된 필수노동이 어떻게 정당한 대접을 받도록 할 것인가, 필수노동자들의 사회적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따져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유행의 시기 이후에 필수노동은 다시 그림자 노동, 불안정 노동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좀 더 나아가면 필수노동자라면 '노동을 해야만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 비필수노동자라면 '노동을 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 국가는 사회가 함께 나눌 책임을 살펴야 한다. 현행 법제도에서는 고용된 사업장의 규모, 고용계약의 형태나 관행에 따라 같은 일을 하는 '필수노동자' 사이에도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여부가 달라지고 결국 권리나 보호 수준에 차별이 발생한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대책에 포함된 소득기반 제도 전환을 염두에 둔 전국민 고용보험과 전속성 기준을 폐지하는 전국민 산재보험 적용은 환영할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확장이 '특고'라는 기괴한 범주를 전제로 하고 있다면 한계가 분명하다.
  5인 미만 사업장의 필수노동자, '가사사용인'으로 분류되는 돌봄 노동자, 배달·택배 특수고용직 노동자, 프리랜서 등 근로기준법의 외부에 있는 노동자들을 살펴야 한다. 21세기에는 노동관계나 고용계약의 관행도 변화하고 있다.
  근로자성의 기준을 포함하여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 등 법제도 개정을 통해서 사회적 안전망에 포섭되지 못한 노동자들을 제도 내로 포섭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 현재 사회적 권리에서 배제되어 발생하는 필수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한 포괄적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핵심적이다.
  '필수노동자 지원 법'은 그 사이 당장에는 노동자의 기본권과 건강권 관련 법제로 보호받기 어려운 필수 노동자들에 대해서 기본적인 긴급방역 및 안전보건조치, 감염 가능성이나 감염으로 인해 더 이상 '필수노동'을 수행할 수 없을 때의 대책을 강구할 근거를 마련하는 보완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
  부대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생활물류법', '사회서비스원법', '가사근로자법' 등 보완적인 법안의 제·개정에는 현장 노동자들의 현실적인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과정을 밟는 것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보호 및 지원'을 넘어서 필수 노동자들이 사회 전체의 일상성과 안전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지언정 이윤을 위해 위험을 강제 받지 않도록, 긴박한 시기의 위험수당으로서가 아니라 일상의 시기에서도 안전하고 건강할 수 있는 권리로 진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일터1월_특집3] 주 52시간제, 방송 노동의 상황은 괜찮습니까? / 2021. 01

[과로사회에서 노동존중사회로]

주 52시간제, 방송 노동의 상황은 괜찮습니까?

성상민 후원회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활동가


온갖 말도 탈도 많았지만 어찌 됐든 '주 52시간제', 엄밀하게는 '주 40시간 노동시간 상한제'가 지난 2018년 공공기관과 공기업,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올해 2021년 7월부터는 5인 이상의 사업장에 모두 적용된다. 물론 여전히 반발도 적지 않다.

2019년까지는 '장기 불황'을 이유로, 2020년부터는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퍼져 여전히 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이유로 계속 주 52시간제를 유예하거나 피해가려는 움직임이 끊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러한 소식 등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전달하는 언론을 비롯한 방송 제작 현장 전체가 노동시간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노동 시간 규제에 대응한 방송업계의 '꼼수'

애당초 방송 제작 현장은 '주 68시간제'이건 '주 52시간제'를 시행하건 별로 상관이 없던 영역이었다. 2019년 7월 전까지는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 상의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지정된 26개 업종에 '방송업'과 '영상·오디오 기록물제작 및 배급업'(방송 프로그램 제작업)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 산업'의 특성상 일률적으로 근로시간을 규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근기법의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방송업은 오랜 시간 속해 있었고,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들은 이를 이유로 정규직·비정규직·프리랜서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방송 노동자들을 마음껏 밤을 새우게 하며 일을 시킬 수가 있었다. 어차피 노동청에 진정을 넣어도 방송업의 야근과 과로를 사실상 합법적으로 보장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대응할 여지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8년 근기법이 개정되며 시대착오적이었던 '근로시간 특례업종'은 기존 26개 업종에서 5개 업종으로 대폭 축소됐다. 이와 함께 '방송업'과 '영상·오디오 기록물제작 및 배급업'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어, 오랜 시간 적용을 받지 않던 근기법 상의 근로시간 기준을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게 되었다.

▲   최규석의 만화 <송곳>의 한 장면. 방송 노동은 언제가 되어야 "코리아 스타일"이 아니라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킬 수 있을까. 역설적으로 이 작품을 드라마로 방영한 JTBC도 주 52시간제를 가장한 "꼼수"를 쓰는 상황이다.

 방송사과 외주 제작사는 이러한 '비상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개정된 근기법을 세세하게 검토한 끝에 또 다른 '꼼수'를 창안하게 되었다. 근기법 상에 있는 3개월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나 '유연근무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최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문제를 제기한 JTBC의 꼼수가 바로 이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악용이다. 방송 노동자들을 불러 모을 때는 '주 52시간제를 지켜서 촬영에 나서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계약서를 그 자리에서 바로 쓰지 않는다. 방송 제작 현장은 오랜 시간 '프로그램 촬영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것을 명목으로 방송 촬영에 투입되어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계약서를 쓰는 악습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약서를 쓰게 되면 방송 노동자들은 이상한 구석을 그제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철석같이 믿었던 '주 52시간제'는 사실 주 52시간을 3개월(12주)로 환산해 '3개월 624시간'으로 명시한 탄력적 근로시간제였으며, 이를 제외하면 일일 노동시간은 물론 주간 노동시간 제한도 없다. 이동 시간도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오로지 3개월 노동을 마치고 624시간을 넘겼으면 추가 수당을 지급한다는 조항이 전부이다.

이는 명백히 근기법을 위반하는 움직임이다. 근기법은 3개월 단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시행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나 이는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가 필요하며 설사 시행하더라도 일일 12시간, 주간 52시간을 넘길 수 없다. 허나 JTBC는 이러한 조항을 제시하고도 정작 계약서 자체는 이전처럼 근로계약서가 아닌 '프리랜서 용역계약서'로 작성해서 노동자를 속이고 제대로 된 법적 조치도 회피하려는 이중의 꼼수를 부리고 있다. 

이러한 조항으로 인해서 방송 노동자들이 2020년 많은 제보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 보내왔다. 방송사의 '주 52시간제' 약속을 혹시나 하고서 믿었다가 속았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함께. JTBC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 공문을 보내 2020년부터 자사를 통해 방송하거나, 자사가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드라마들은 모두 이러한 조항을 적용하고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 동시에 다른 방송사들은 자신들과 같은 주 52시간제도 시행하고 있지 않다면서 오히려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주장도 함께 답변에 실었다.

장시간노동 폐지 외면하는 방송업계

그러나 JTBC의 태도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JTBC의 주장을 마냥 변명이라며 무시할 수도 없는 게 우리의 씁쓸한 현실이다. JTBC의 말대로 다른 방송사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의 제작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주 52시간제에 대한 이야기나 약속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JTBC와 똑같이 방송 스태프들 대부분을 직접 고용한 노동자처럼 취급하며 일을 시키고 있지만, 이들을 법적인 노동자로 인정하는 대신 명목상 '개인 사업자'로 취급하는 프리랜서 용역 계약서만을 계속 체결하는 상황이다.

당연히 노동시간에 대한 명문화된 조항도 없다. JTBC가 근기법을 악용한 꼼수로 노동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면, 다른 방송사들은 주 52시간제의 전면 시행이나 방송업의 근로시간 특례업종 제외 조치는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이전과 똑같은 야간·장시간 노동을 그대로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일단' 지상파 방송사는 계속 노력 중이다. 2019년 6월부터 KBS·MBC·SBS 지상파 방송사 3사는 드라마 외주 제작사들의 연합체인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와 2018년 최초로 결성된 방송 스태프들의 노동조합인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그리고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함께 표준근로계약서 의무 작성과 표준임금기준 마련, 근기법상의 노동시간 준수 등을 골자로 한 4자 협의체에 참여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래대로라면 2019년 하반기에 시행이 되었어야 할 표준근로계약서를 비롯한 각종 사항은 협의체가 결성된 지 1년 반 가량이 지나도록, 2020년이 끝나가도록 여전히 합의가 끝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들은 아직 합의가 진행 중임을 이유로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서 주 52시간제의 전격적인 시행을 계속 거부하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2021년 7월부터는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서 주 52시간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되지만, 과연 올해 7월까지 4자 협의체의 합의가 끝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자신들이 '공영방송'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있는 KBS와 MBC가 정작 자신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권리 문제에 있어서는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거나 변화를 위해서 나서지 않고 있는 모습은 방송 노동이 놓인 현실을 매우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지상파 방송사들이 미적이는 가운데 JTBC는 편법적이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주 52시간제를 내세우며 노동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2020년에도 여전히 열악한 방송 노동의 상황이 방송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상 영역에도 점차 번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TV나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되는 웹드라마들은 오래전부터 노동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으며,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를 통해 방송되는 작품들도 노동 조건에서는 전혀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키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마치 최규석의 만화 <송곳>이 지금은 철수한 프랑스계 할인마트 기업 '한국까르푸'의 사례를 소재로 삼으며 프랑스 자국 내에서는 노동법을 성실히 준수하는 기업이 정작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악덕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나 징계가 부족한 국내의 현실을 악용하는 모습을 그렸듯, 똑같은 일이 방송 노동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러한 방송사들이 '무늬만 프리랜서'를 악용하여 노동자를 혹사로 밀어 넣는 만행을 가만히 보고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감독급/팀장급 스태프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은 한계가 있었지만, 이미 고용노동부는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의 드라마 제작 현장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방송 스태프 다수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바 있다. 2000년대부터 계속 이뤄진 방송 노동자 개개인의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서도 스태프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전례가 다수 있다.

이런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송사나 외주 제작사는 요지부동이다. 소송을 건 당사자만이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뒤 사측의 재판 방해로 부당하게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서 패소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세상을 떠난 CJB 청주방송 故 이재학 PD와 같은 안타까운 사례도 생기고 있다,

많이 늦었지만 2020년 12월,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 방송사 재허가 요건에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조건으로 삽입하며, 처음으로 방송사를 평가·관할하는 기준에 방송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에 대한 요소를 삽입한 바 있다. 노동 시간 문제 또한 이러한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나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와 같은 시민사회단체나 노동조합의 활발한 움직임과 꾸준한 감시, 현장 노동 문화의 개선도 동반되어야 하지만, 우선 방송 영역에 막중한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올바르게 사용해야만 할 것이다.

동시에 고용노동부나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같은 방송 노동과 유관한 부처들 간의 협력을 통해 종합적인 방송 노동 대책을 입안하기 위해 야간·장시간 노동을 비롯한 해묵은 방송 노동의 문제가 지니는 심각성을 반드시 인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다각도의 노력이 있어야 노동계가 오랜 시간 투쟁을 하여 쟁취한 '주 52시간제'가 비로소 방송 영역에서도 정착할 수 있지 않을까.

 

[일터1월_특집2] 장시간 노동 근절을 위한 과제, 포괄임금제 금지 / 2021. 01

[과로사회에서 노동존중사회로]

장시간 노동 근절을 위한 과제, 포괄임금제 금지

혜인 선전위원, 노무사


▲ 지난 2020년 11월 5일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포괄임금제 금지법" 공동발의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동자의 1주일은 휴일을 포함한 7일이며, 그 1주간 법정 근로시간은 40시간임을 명시한 개정 근로기준법(법률 제15513호, 2018. 3. 20.)이 시행된 지도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2018년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과 국가‧지방자치단체 등을 선두로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되었고, 2021년 7월 1일부터는 모든 5인 이상 사업장의 법정 근로시간은 1주 40시간이 된다.

노동시간 단축을 기조로 한 현 정부의 입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국면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노동시간단축 기조에 배치되는 일련의 노동개악도 진행 중이다. 주52시제를 정착시키겠다면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등 표면적으로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듯 보이나 실제로는 오히려 장시간 노동을 지속하도록 해주는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다.

탄력근로제 도입 등 노동개악이 장시간 노동을 심화할 수 있는 맥락의 근저에는 포괄임금제라는 오래된 제도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시간 근로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는 포괄임금제의 금지 또는 제한에 대한 목소리가 재점화되고 있다.

포괄임금제의 개념

포괄임금제는 근로기준법상 근거 없이 판례에 따라 용인된 임금 지급 방식으로 ① 기본급을 미리 산정하지 않은 채 시간 외 근로 등에 대한 제 수당을 합한 금액을 월급여액이나 일당 금액으로 정하거나("정액급제"), ② 매월 일정액을 제 수당으로 지급("정액 수당제")하기로 하는 임금지급계약(대법원 1997.4.25. 선고 95다4056판결, 대법원 1998.3.24. 선고 96다24699 판결, 대법원 19995.28. 선고 99다2881 판결 등)을 말한다.

<예시>
① 정액급제
- 1주 52시간을 근무하기로 하고, 월 급여를 200만원으로 책정
- 1일 10시간을 근무하기로 하고, 일당을 10만원으로 책정

② 정액 수당제
-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한 임금을 기본급의 20%로 책정
-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한 임금을 매월 25만원으로 책정

임금은 노동자가 실제로 근무한 시간만큼 산정하여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실제 노동 현장에서는 사용자가 임의로 노동시간(특히, 장시간 노동)을 가정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포괄임금제가 만연하다. 한국경제연구원에서 2018년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총 195개 응답기업 중 113개사(57.9%)가 포괄임금제를 도입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포괄임금제 적용 직군은 '일반 사무직' (94.7%), '영업직' (63.7%), '연구개발직' (61.1%), '비서직' (35.4%), '운전직' (29.2%), '시설관리직' (23.0%), '생산직' (13.3%), '경비직' (8.0%), 기타 (4.4%) 순으로, 포괄임금제에 포함되는 임금항목은 '연장근로 수당' (95.6%), '휴일근로 수당' (44.2%), '야간근로 수당' (32.7%), '연차휴가 미사용수당' (1.8%), '퇴직금' (0.9%), '기타' (1.8%) 순으로 나타났다. (포괄임금제 활용 기업 중 70.8%, 포괄임금제 원칙적 금지에 반대, 한국경제연구원, 2019.02.11.)

포괄임금제의 성립 및 유효 요건

포괄임금제의 성립 여부는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포괄임금제로 임금을 지급받기로 한 합의가 존재하는지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대부분의 판례는 묵시적 합의만으로도 포괄임금제 약정을 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1983. 10. 25. 선고 83도1050 판결, 대법원 1991. 4. 9. 선고 90다16245 판결 등)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포괄임금제 약정이 적법하게 성립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약정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판례가 제시한 다음의 유효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첫째,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워야 한다. 이 때,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란 '사용자의 지휘·명령 하에 있는 시간'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하며, 사업장 밖에서 장거리 운행을 하는 트랙터 트레일러 운전원(대법원 1982. 12. 28 선고 80다3120 판결), 매일 기상상황에 따라 근로시간이 달라지는 염전회사 직원(대법원 1990. 11. 27. 선고 89다카15939 판결) 등이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로 판단된 바 있다.

둘째, 노동자의 자발적인 동의가 존재해야 한다. 포괄된 제 수당을 사용자가 임의로 구성하는 등 노동자의 의사결정권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셋째, 포괄임금제 약정이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없고 제반 사정에 비추어 정당해야한다.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없다'는 것은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규정된 임금 지급 기준에 비추어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제반 사정에 비추어 정당하다'는 것은 포괄임금계약 체결 경위, 동종 업계의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부당함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유효요건을 갖추지 못한 포괄임금제 약정은 무효가 되며, 사용자는 노동자의 실 근로시간에 따른 임금을 산정한 후, 포괄임금에 포함하여 지급한 법정수당과의 차액을 노동자에게 지급해야한다.

포괄임금제의 문제점

근로시간 관점에서 포괄임금제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포괄임금제는 노동자의 시간 주권을 박탈한다. 다시 근로기준법으로 돌아가면,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이러한 근로기준법 규정의 취지는 구체적인 근로시간을 규율함으로써 노동자의 근로시간 안과 밖의 삶을 보장하는데 있다. 하지만 포괄임금제는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휴일근로 등을 사전에 예정하여 이를 임금 구성에 포함시키는 것이므로 노동자가 자신의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을 방해한다.

둘째, 포괄임금제는 노동자의 실 근로시간 측정을 어렵게 한다. 포괄임금제를 도입한 사업장에서는 노동자의 근로시간에 대한 모든 수당을 포괄하여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여기므로, 추가적인 임금 계산을 위한 근로시간을 기록하는 등의 노력을 기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사업장의 행정력 부재는 향후 노동자가 임금체불 진정을 제기할 때 뿐 만아니라 과로로 인한 업무상 재해 신청 시 상당한 불이익으로 작용한다.

포괄임금제가 이미 많은 사업장에서 관행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고, 새로운 산업의 출현으로 업무 형태가 다변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오히려 포괄임금제를 새로운 임금 산정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의도 존재한다. 그러나 적정한 근로시간 규제를 통한 노동자 보호 측면에서 포괄임금제는 "임금산정의 자유는 아주 넓게 발휘된 것인 반면에, 경제적 압력을 통한 근로시간의 제한은 거의 또는 상당한 수준으로 무력화 될 수 있는 제도"(강성태, "포괄임금제의 노동법적 검토", <노동법연구> 제26호, 서울대학교 노동법연구회, 2008, 269쪽.)다.

노동시간 자체에 대한 규제가 유연화되고, 장시간 노동이 습속처럼 배어있는 상황에서 임금 산정의 측면에서조차 노동시간을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상황을 지속해서 악화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노동시간단축을 위해선 포괄임금제 활용에 대한 제재가 중요하다. 1주 40시간 준수를 위한 노력과 더불어,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포괄임금제의 규율을 위한 입법과 행정적 조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셋째, 포괄임금제는 장시간 노동을 고착시킨다. 근로시간은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법정근로시간을 한도로 실 근로시간만큼 임금을 산정하여 지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포괄임금제는 연장·야간·휴일근로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임금 지급의 편의를 위해 탄생한 기형적 제도이므로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고 고착시키는 폐단을 만들고 있다.

 

[일터1월_특집1] 누더기가 된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지금처럼 해서 노동시간 단축 이뤄질까? / 2021.01

[과로사회에서 노동존중사회로]

누더기가 된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지금처럼 해서 노동시간 단축 이뤄질까?

박기형/상임활동가

▲ 2018년 국회에서 통과한 주52시간 근무제가 1월부터 50~299인 사업장에, 7월에는 5~49인 사업장에 시행된다. 대통령 공약으로 "노동존중 사회"를 내세우고 장시간 노동을 없애겠다고 말 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재계가 반대할 때마다 세부 규정에서 장시간 노동을 허용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은 언제쯤 사라질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주52시간 상한제가 드디어 본격 시행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20년 12월 50~299명 사업장에 대한 주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계도기간을 연말에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주52시간 이상 노동을 규제하는 근로기준법(아래 '근기법') 개정사항을 2021년부터 제대로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그간 중소규모 사업장 등에 주52시간제 도입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서 계도기간을 부여했다. 이제 당장 1월부터 50~299명 사업장에 적용되고, 7월부터 5~49명 사업장에 대한 자율적 개선지원 사업도 시행된다.

2021년 주52시간 상한제가 본격 시행되니, 드디어 장시간 노동을 해소할 길이 열렸다고 반가워해야 할까? 반갑게 맞이하기엔, 상황이 녹록지 않다. 오히려 장시간 노동 타파는 요원해 보인다.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과제들이 산적해있지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그들에게 부여한 소명을 쉽사리 내팽겨쳤다. 오히려 노동시간을 늘리고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일을 벌이고 있다. 주52시간 상한제가 본격 시행되지만, 장시간 노동 타파를 위한 여정은 더디기만 하고, 심지어 무산될 위험에 처했다.

노동존중 약속은 저버린 지 오래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진행된 노동개악을 되돌려,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야 할 의무가 그들에게 있었다. 이를 위해 노동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행정지침을 시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자신들의 약속을 저버리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는 '전태일3법', 그리고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는 사회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2020년 12월 국회에서는 근기법 개악이 이뤄졌다. 장시간 노동 구조를 유지해 자본과 기업에게 부담을 덜어주려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노력'은 주52시간 상한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계속 확인되었다. 주변 상황 악화를 노동시간 규제 완화의 핑계 삼으며 자신들이 만든 법에 예외를 계속 둘 뿐만 아니라, 미약하게나마 보장된 노동기본권조차 후퇴시켰다.

대표적인 국면들을 돌아보자. 먼저 2018년 3월 정부와 국회는 근기법을 개정해 노동자의 1주일은 휴일을 포함한 7일이며, 그 1주간 법정 근로시간은 40시간임을 명시하였다. 2018년 7월 1일부터 공공기관과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 주52시간 상한제를 먼저 시행하였다. 하지만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을 놓고 재계의 반발이 일자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시도했다. 또한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에 계도기간을 설정하고, 그 기간을 몇 차례 연장했다.

지난 2019년 8월에는 고용노동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겠다며,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조치들을 시행하였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일본의 수출규제를 "자연재해와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해 이를 수습하기 위한 연장근로를 피할 수 없는 경우"로 본다며, 관련 사업장에 '인가연장근로'를 허용했다.

기존 법제도에서는 노동시간 규제의 취지에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따른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해 이를 수습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거나 재난 등의 발생이 예상돼 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만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 해석으로 기업들은 노동부 장관 승인만 받으면 노동자들에게 무한 연장노동을 시킬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고용노동부는 탄력근로제 대상업무를 확대하는 고시와 함께 탄력근로제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법정 연장근로 한도에 구애받지 않고, 얼마를 더 일하든지 노사가 서면합의한 시간만을 일했다고 허용해준 것이다.

2020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2020년 1월 31일 고용노동부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를 규정한 근기법 시행규칙 9조를 개정했다. 2019년 8월에는 기존 법제의 해석을 유리하게 해준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이를 넘어 법제 자체를 유리하게 바꾸어주었다. 인명보호·안전확보, 돌발적 상황 수습, 업무량 폭증, 소재·부품 연구개발까지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하도록 인가 사유를 확대했다. 특별연장근로 활용 기간 또한 지난 조치에서 제한한 1년 내 90일이라는 한도를 확대하기까지 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때가 코로나19 발생 전이었다는 것이다. 2020년 7월 15일에 이르러서는 코로나19 사태를 빌미로 삼기 시작했다. 국가 위기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특별연장근로 활용 가능 기간을 한시적으로 조정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 확대를 사후적으로 정당화해주는 것에 불과했다. 역시나, 주52시간 상한제 시행 의지는 온데간데 없었다.

개악으로 열린, 장시간 불규칙 노동으로의 길

국회에서 공수처 설치를 둘러싼 대치가 격화되던 2020년 12월, 민주당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6개월 확대,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3개월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근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선진국' 유럽과 일본에서는 탄력근로제를 운용하면서도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기 위해 총노동시간을 규제하지만, 정작 한국은 탄력근로 등 변형근로 도입 시 추가적 총노동시간 제한에 대한 규정은 없었고, 최장 주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건강권 침해 우려가 있는 걸 고려해, 11시간 연속휴식시간제도도 담고 있으나, 그에 대한 해석이 1일(24시간) 단위가 아니기에 건강권 보호조치의 실효성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마저도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사항으로 뒀다. 이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자대표를 임명하는 등 근로자대표제를 악용해온 그간의 관행을 고려할 때, 법적용 제외의 길을 터준 것과 다를 바 없다.

또한 양적으로 노동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해준 것에 더해, 불규칙노동까지 확대될 위험이 커졌다. 기존 3개월 탄력근로제는 '일별' 노동시간을 합의해야 했다. 하지만 신설된 3개월 초과 사항에 대해선 '주별' 노동시간만 정하면 된다. 이를 노동자에게 2주 전까지만 알려주면 되며, 그마저도 업무량 급증 등 사유가 있으면 근로개시 전까지만 알려주면 된다. 이로 인해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시간을 예측도 할 수 없고, 결국 노동 통제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자본과 기업의 이윤 창출 압박이 노동자들을 더욱 옥죌 것이다.

여전히 강고한 포괄임금제

노동시간 자체를 규제와 더불어 임금 제도를 통해 장시간 노동 관행을 유지, 운영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동안 포괄임금제도는 사무직군, IT·게임 업계 등에서 장시간 노동을 심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현행법상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로 한정해, 명확한 노·사 합의가 있고, 노동자에 불이익이 없으며, 제반 사정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인정될 때에 유효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실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지 않은 경우에도 광범위하게 악용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무엇보다 노동자 건강 측면에서도 악영향을 미친다. 포괄임금제가 시간 외 근로를 전제하고 있으니, 노동자는 회사에서 지시하는 야간, 주말 연장근로를 거부하기 힘들어진다. 포괄임금제는 장시간 노동시간 관행을 조장하고 유지하는 요인이다. 이에 대해서도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 실현의 과제 중 하나로 초과수당 제대로 안 주는 포괄임금제를 규제하고, '눈치야근 잡는 출퇴근시간기록의무제(일명 칼퇴근법)'를 제정하고, 퇴근 후 카톡 업무지시 근절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 이 약속 또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자연스레 임금체불은 막대히 쌓여만 가고, 노동자들은 과로에 지쳐 쓰러져 죽어간다.

최근 정의당을 중심으로 포괄임금제 폐지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지만, 현실에서는 오랜 기간 불법과 편법에 기대 강고한 제도로 자리 잡았다. 근본적으로는 이를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또한 현재는 과로사 산재신청 시 실노동시간 입증 책임이 노동자에게 부과되어 있는데, 근무시간 기록의무를 져야 할 주체를 사업주로 규정하여 노동자의 산재신청을 막지 않게 해야 한다. 고용노동부 또한 포괄임금제 규제 지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단속조차 안 하고 방관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행정 집행을 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 근절, 노동존중 사회의 전제조건

문재인 정부는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 취지를 잊었는가. 노동존중 사회 실현이라는 소명을 부여받았음을 잊었는가. 21세기에도 한국은 장시간 노동이 만연해 있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인 1700시간보다 400~500시간 이상 길다.

주40시간 노동이 노동법에서 규정한 원칙이자 노동기본권 실현의 핵심임에도, 여전히 우리는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주52시간 상한제를 둘러싼 싸움에서조차 자본과 기업의 반발에 밀려, 그리고 말로만 노동존중을 외치며 정작 저들을 대변하는 정권에 속아 뒷걸음질치고 있다. 노동자·시민의 안녕을 위한, 일터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여정을 새롭게 재조직해야 할 때이다.

특집3. 노조법 개악 저지, 산별 체제와 작업장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투쟁 / 2020.12

[노동개악에 맞서자] 

 

노조법 개악 저지, 산별 체제와 작업장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투쟁 

 

이원재 / 금속노조 기획실장 

 

정부는 ILO협약과 상충되는 국내법의 해석과 적용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노조법 개정과 협약 비준 절차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작 ILO는 "법제가 완벽해지고 모든 이해당사자가 만족할 때까지 핵심 협약 비준을 미룬다면 노동권 보호 진전은 더욱 지체될 것이다"라며 신속한 협약비준을 주문하고 있다. 실제 핵심 협약은 비준 이후 1년 후부터 국제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이 이렇게까지 사회적 쟁점이 되는 것은 정부가 제출한 노동조합법 개정안 탓이다. ILO 노동헌장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협약의 비준이, 협약에 규정된 조건보다 노동자에게 유리한 조건을 보장하고 있는 법률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협약 비준에 따라 '보완 장치를 마련'하겠다며 오히려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준하기 위해 결사의 자유를 후퇴시키는 말도 안 되는 노조법 개악안을 제출했다.
   
현 노조법 개악안의 문제점
 

정부의 노조법 개악안의 문제점은 크게 네 가지이다. 하나씩 집어보자.

첫째, '종사자인 조합원'과 '비종사자인 조합원'을 나눠 놓고 비종사자 조합원의 노조활동을 제한했다.

사업장 출입과 조합활동이 제한되는 '비종사 조합원'에는 해고자 뿐만 아니라, 산별노조의 임원 및 조합원, 특수고용, 간접고용 조합원도 포함될 수 있다. 현재 대법원은 산별노조 조합원이 다른 지부·지회 사업장의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그 사업장에 출입하는 행위와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며 원청 사업장에 출입하는 것 모두 노조의 정당한 활동으로 판시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개정안에 의하면 지금까지 허용되던 노조 활동이 사용자 의사에 반해 사업장 출입시 주거침입죄, 업무방해죄로 처벌 대상이 된다. 정부는 '합리적 이유 없이 비종사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을 거부해서는 안된다'라고 안전장치를 마련했다지만 '합리적 이유' 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이다. 사용자는 당연히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산별노조 조합원, 하청업체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을 제지하고 조합활동을 방해할 것이다.

또한 노조 대의원 및 임원 자격을 종사자로 제한하고 있는데 ILO와 EU는 노조의 임원과 대의원을 종사자에 한정하는 게 결사의 자유 원칙 위반이라고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고, 노동조합의 임원과 대의원을 누구로 할지는 조합원들이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할 문제지 국가가 법으로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군사독재 시절의 악명높은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의 부활에 다름 아니다.

둘째,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연장했다.

노동조합은 임금·단체협상을 거치며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조직력과 투쟁력을 강화해간다. 그런데 현재 2년으로 되어있는 단체협약유효 기간을 3년으로 늘리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인사, 전환배치, 고용, 안전 등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의 계획수립과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법제도가 부재한 현실에서, 사용자의 일방적 횡포를 노조가 견제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사용자들이 민주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복수노조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악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수노조는 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이 3년으로 늘어나면 4년을 기다려야 교섭하자는 말을 꺼낼 수 있다. 조합원 수가 한 명이 부족했건 열 명이 부족했건 소수노조가 되면 4년 동안 식물노조가 될 수밖에 없다.

셋째, 가장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직장점거 금지이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주요업무시설이든, 주변업무시설이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점거의 범위가 직장 또는 사업장 시설의 일부분이고 사용자측의 출입이나 관리지배를 배제하지 않는 병존적인 점거인 경우에는 정당한 쟁의행위로 판결해왔다. 그런데 정부안은 아무런 근거 없이 현재 대법원 판례가 인정하는 '부분적·병존적 직장점거의 정당성'을 불이익하게 변경하여 주요업무시설에 대한 '전부 또는 일부'의 점거를 일체 금지하고 있다. ILO도 확고하게 직장점거를 정당한 쟁의행위의 한 유형으로 보장하고 있다. 정부안은 직장점거를 금지하여 노동조합의 쟁의권, 파업권을 약화시켜 달라는 사용자의 일방적인 민원사항을 그대로 수용한 것일 뿐이다.

노동부 업무매뉴얼을 보면, 주요업무시설의 예시로 호텔 로비, 병원 진료대기 공간, 백화점 통로, 사무실, 자동차 판매 및 정비와 관련된 시설 일체 등으로 적시하고 있다. 이런 곳의 일부라도 점거가 금지되면 그 공간에서 평화롭게 피켓을 들고 있을 수 있을까? 피켓팅은 가장 평화로운 쟁의행위 수단이지만, 불가피하게 공간 일부의 점유를 수반한다. 제조업 사업장 내에서 진행하는 많은 쟁의행위도 마찬가지이다.

피켓팅 뿐만 아니라 현장순회, 생산시설에 위법한 대체인력 투입 감시활동 등 현재의 일상적인 노조 활동마저 제한될 것이다. 심지어는 사업장 정문에서 노조의 선전물을 나눠주는 행위도 불법으로 규정될 수 있다. 이를 금지한다는 것은 사업장 내 쟁의행위 대부분을 제한하는 것이다. 정부안이 통과된다면 노동조합이 파업할 경우 사업장에서 쫓겨나 공원에 가서 파업 집회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안에는 ILO가 지속적‧명시적으로 권고했고, EU가 쟁점적으로 문제제기했던 사항들이 대거 누락되어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간접고용노동자의 교섭할 권리,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는 노조설립신고제도, 노조 전임자 급여 노사자율결정, 필수공익사업장 쟁의권 보장, 파업으로 인한 민·형사책임의 면제에 관한 사항도 모두 누락되어 있다.

예상되는 노조 탄압 시나리오

최근에 광주에 있는 금속노조 호원지회의 노조 탄압사례를 보면, 노조법 개악이 가져올 현장의 노조탄압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 호원지회는 올해 1월 '공장에서 인간으로 존중받고 일하고 싶다. 사측은 막말하지 마라, 욕하지 마라'라고 호소하며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그러자 회사는 즉시 기업노조를 만들고 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 탈퇴를 종용하고 간부들을 징계하고 금속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노조법 개악안이 통과도 안 됐는데, 놀랍게도 광주지법은 음향 장비를 사용한 사내집회를 금지하고, 산별노조 임원 사업장 출입을 금지하고 위반 시 1회당 위반자별 강제이행금 100만 원을 부과하는 엽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또 어용노조에만 사무실을 제공해 지회가 천막으로 설치한 '노조 임시 사무실'도 불법 시설이라며 철거하라고 판결했다.

판결 이후 호원지회는 천막 사무실을 공장쪽에서 주차장쪽으로 옮겼는데, 사측은 여기도 '사업장 시설이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이유를 대며 철거하라고 하고 있고, 판결 이후 사내집회를 했다는 이유로 지회장을 해고하고 지회 조직부장에게 정직 1개월, 사무장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또한 산별노조의 식수와 농성 물품 전달도 통제하고, '비종사자' 출입금지뿐만 아니라 '비근무자인 종사자'의 출입도 징계위원회로 회부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노조법 개악안이 실제 현장에서는 '민주노조 파괴'로 다가오고 있다.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전국에서 호원지회 사례처럼 수많은 노조파괴사업장이 생길 것이다. 정부가 노동개악 판을 깔아주면 자본이 받아서 현장에서 노조를 파괴하고 법원이 이를 정당하다고 지원하는 모양새다.

우리는 이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금속노조는 올해 임단협 교섭에서 노조법 개악에 대비한 '노동3권 보장'과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전대미문의 정세변화 속에 '감염병으로부터의 보호'를 통일요구로 교섭을 진행했다. 올해 교섭을 통해 금속 노사는 '회사는 기존 노사합의 또는 관례적으로 보장해온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 및 금속노조 간부의 사업장 내 출입과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한다'라고 합의해 법 개악을 핑계로 산별노조 간부나 해고자의 사업장 출입과 조합활동을 규제할 수 없도록 못을 박았고, '회사는 쟁의행위 중 노동조합의 회사 내 일상적인 각종 시설 이용에 협조한다. 단, 세부적인 사항은 사업장 노사가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금속노조의 올해 합의사항은 노조법 개악에 대비한 최소한의 방어 장치를 확보한 수준에 불과하고. 중앙교섭이나 지부집단교섭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신규사업장이나 소수노조 사업장은 그나마 최소한의 방어 장치조차 없다. 그래서 금속노조는 노조법 개악을 막아내기 위해 올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을 전개하면서 11월 25일 어려운 조건에서도 8만여 명의 조합원이 '노조파괴법저지! 전태일 3법쟁취'를 위한 총파업에 참여했고 대국회 압박투쟁을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한국사회의 노동시장 이중구조화(노동자 간의 임금과 고용안정성의 질적 차이 심화, 위험의 외주화 등)의 폐해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사회 양극화가 더 빠르게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가 집중되는 취약계층을 포괄하거나 대변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연대를 가능케 하는 노사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와 언론, 사용자들은 틈만 나면 노동운동이 기업별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정작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은 오히려 산업별 노조를 무력화하고 기업별 노조 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노동배제적인 한국 사회에서 사업장별로 개별화, 파편화된 교섭구조로는 양극화 해소나 사회연대가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에 고용안정성은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고 노동권은 보장되기 어려우며,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은 지켜질 수 없다. 또한 기후위기와 기술변화, 산업전환에의 대응 과정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배제되고 사용자의 일방적인 독주가 강화되고 있다.

산별체제로의 전환과 작업장 민주주의 실현

따라서 기후위기에 대한 대처와 기술 변화에의 대응이 정부와 기업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게 하려면, 노동권을 쟁취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기 위해선, 노동자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주도적·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자신의 권한과 권리를 행사할 수 있기 위한 제도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기업의 의사결정에 노동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작업장 민주주의를 확대하여야 한다. 둘째, 실질적인 산별체제 확립을 통해 작업장 민주주의가 개별 사업장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산업적인 차원에서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작업장 민주주의 확대와 산별체제 확립을 제도화될 때에야 비로소 노동조합의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되어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사회 양극화 해소의 대안적 주체로 바로 설 수 있다.

기업 내 의사결정에 대한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의 통제력을 높이는 제도적 방향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유럽에서의 공동결정제도나 이사회·감사회에 대한 참여 등을 통해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방식이 있다. 두 번째는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의 대상 범위 등을 넓혀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노조의 쟁의권을 제한하고 기업별 노사관계를 고착하는 노조법 개악안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3권 전면보장을 위한 노동법 개정안을 제출해야 한다. 노동3권을 지키는 것은 일하는 모든 노동자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특집2. ‘결사의 자유’에 관한 ILO 핵심협약 비준,무엇이 달라져야 하나 / 2020.12

[노동개악에 맞서자] 

 

 

‘결사의 자유’에 관한 ILO 핵심협약 비준,무엇이 달라져야 하나

 

 

류미경 / 민주노총 국제국장 

 

▲   11월 26일, 정부노조법개악안 반대, ILO 핵심협약 비준 촉구 노동시민종교단체 공동대책위원회 결성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약속만 수십 년째 해 온 ILO 결사의 자유 협약(결사의 자유와 단결권에 관한 협약 87호,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보호에 관한 협약 98호) 비준이 눈앞에 다가왔다. 강제노동에 관한 29호 협약까지 3개 협약 비준 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그러나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요구해온 협약 비준을 앞두고도 환영할 수가 없다. 노조할 권리를 더욱 후퇴시키는 법안이 먼저 통과되어야만 비준동의안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와 여당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의 비준과 노조법 개악이 쌍을 이룰 수 있는 것인가. 지금 국회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결사의 자유 협약, 왜 중요한가

국제노동기준은 일터에서의 기본 원칙과 권리를 규정하는 법적 도구로서 각국 노사정 대표가 모이는 ILO 총회 두 번을 거쳐 만들어진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채택된 협약은 총 190개다. 이 중에서도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철폐, 아동노동금지, 고용 직업상 차별철폐에 관한 8개 협약, 즉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의 보호), 29호(강제노동), 105호(강제노동 철폐), 100호(동등보수), 111호(고용직업상 차별 철폐), 138호(취업 최저연령), 182호(가혹한 형태의 아동노동) 8개 협약은 '기본협약(Fundamental Conventions)'으로 분류된다. 모든 회원국이 비준해야 하는 협약이다. 또 모든 회원국은 해당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더라도 ILO 회원국이라는 이유만으로 헌장에 따라 성실하게 기본 권리에 관한 원칙을 존중하고 촉진하고 실현해야 한다.

8개 기본협약은 각종 무역협정의 노동장 또는 지속가능발전 장,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기업과 인권에 관한 유엔 이행 지침>에서 각국 정부의 국제적으로 보장되는 노동기본권 준수 의무를 규정하는 원천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기본협약은 다른 모든 협약을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필수 요소라는 의미에서 '권리 실현을 가능케 하는 권리(enabling rights)'라고도 불린다. 노동시간, 임금, 사회보장, 노동안전보건, 휴일 등을 망라한 여러 국제노동기준을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단결하고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을 할 권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협약 비준의 의미

한국이 1991년 ILO에 가입한 후 역대 정부는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을 비준하겠다고 약속해왔다. 그러나 조건을 달았다.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국내 노사관계법제가 협약비준의 걸림돌이므로 법을 먼저 고친후'라야 비준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협약 비준 약속의 이행을 한없이 미루기 위한 변명이었던 이 '선입법 후비준'론은 비준 절차에 대한 큰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협약비준이 국내법이 국제기준에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점을 인증하는 절차인 양 말이다.

그러나 ILO에 따르면, 협약비준은 국내법을 협약에 부합하도록 개정하겠다고 미리 약속하는 것이고, ILO 헌장이 정한 대로 협약 이행에 관한 ILO의 감시감독절차를 수락하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협약을 비준하게 되면, 1년 후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니게 된다. 다시 말해, 협약이 국내 법체계에 통합되는 것이다. 이 1년의 기간 동안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법을 개정하면 되고, 만약 1년 내에 법 개정을 완료하지 못하면 협약이 신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개정되지 않은 법보다 우선 적용된다. 따라서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기본 인권을 국내에서도 효과적으로 적용되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국내 인권법에서 통용되는 일반원칙인 '역진금지(Non-Regression)' 원칙이다. ILO 헌장 제19조 제8호는 "어떠한 경우에도, 총회에 의한 협약이나 권고의 채택 또는 회원국에 의한 협약의 비준이 협약 또는 권고에 규정된 조건보다도 관련 근로자에게 보다 유리한 조건을 보장하고 있는 법률 판정 관습 또는 협정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인정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ILO 협약 87호 제 8조 제 2호는 "국내법은 이 협약에 규정된 보장사항을 저해하거나 저해할 목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협약 비준을 위한 법개정 절차는 현행법에 보장된 권리를 확대하는 방향이어야지 축소하는 방향일 수 없다.
   
정부법안은 협약의 취지를 반영하고 있는가
 

[제2조]
노동자와 사용자는 사전인가를 받지 아니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단체를 설립할 수 있는 권리와 그 단체의 규약에 따를 것만을 조건으로 하여 그 단체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어떠한 차별도 없이 보장받아야 한다.


87호 협약 제2조에 따르면, 단결권은 정부 당국의 양보로 베풀어진 시혜가 아니므로 노동조합의 존립이 행정당국의 기분에 따라 좌우돼서는 안 된다. 행정당국이 설립신고를 반려할 재량권을 가져서는 안 되며, 설립신고 절차에 관한 법 조항이 노동조합 단체의 설립을 지연 또는 방해하는 방식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직업, 성별, 피부색,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견해, 고용형태, 고용상 지위 등에 구애받지 않고 실업자든 해고자든 민간부문 공공부문 가리지 않고 모든 노동자가 노조를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다.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특수고용노동자·자영업자를 법 적용에서 배제(노조법 제2조 제1호),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한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제2조 제4호 라목)고 규정하고 설립신고 과정에서 조직의 구성이나 규약('근로자'가 아닌자가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 등을 행정당국이 심사할 여지를 두고 있는 제12조가 결사의 자유 원칙을 위반한다고 보고 여러 차례 개정을 권고했다.

87호 협약 비준의 선결조건으로 협약에 부합하게 법을 정비하는 것이 정부가 제출한 법안의 취지라면 위의 사항을 개정하는 내용이 우선적으로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정부가 제출한 법안에는 제2조 제1호, 제2조 제4호 라목, 제12조를 개정하는 내용이 없다. 제2조 제4호 라목에 대해서는 본문을 삭제하라는 결사의 자유 위원회의 권고와 달리 단서조항만 삭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밝힌 입법 취지와 전혀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협약의 효과적 이행과 전혀 관련이 없다.
 

[제3조]
1. 노동자단체 및 사용자단체는 그 규약과 규칙을 작성하고, 자유로이 그 대표자를 선출하며, 자체행정 및 활동에 관하여 결정하고, 사업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2. 공공당국은 이 권리를 제한하거나 또는 이 권리의 합법적인 행사를 저해하는 어떠한 간섭도 하여서는 아니된다.


협약 3조에 따르면, 노동조합 규약은 조합원들이 스스로 논의하고 채택해야 한다. 누가 조합원이 되어야 하는지는 노조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간부의 자격요건, 임기, 선출방식은 노조 스스로 정해야 하며 정부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해고자나 해당 사업장 소속이 아닌 자를 법으로 간부가 될 수 없다고 규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회의를 개최하고 이를 위해 간부들이 사업장에 출입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며 조합원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치활동과 파업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국가의 이름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공무원이거나 엄격한 의미에서 필수서비스에만 파업권을 제한할 수 있고, 비공인파업, 작업중지, 태업, 준법투쟁, 연좌파업 등 평화적이면 노동조합 단체가 사용할 수 있는 행동 수단에 본질적인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부가 제출한 법안은 어떠한가. 임원의 자격 요건을 제한한 23조에 더해 대의원의 자격 요건도 제한하는 조항을 17조에 새롭게 도입했다. 실업자와 해고자의 기업단위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대신 '종사자'와 '비종사자'를 갈라 '비종사자 조합원'에 대해서는 사업장 출입을 제한하는가 하면 타임오프 산정, 교섭대표노조 결정, 쟁의행위 찬반투표 시 조합원 수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협약에 부합하도록 법을 개정한다면서 새롭게 추가한 조항이다.

뿐만 아니다.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적 의사 표현과 단체행동 전면 금지, 정부의 노동 정책이나 정리해고에 저항하기 위한 파업은 쟁의행위 목적정당성에 위배되어 불법파업으로 규정하는 조항, 파업권이 제한되는 '필수 유지 업무'의 폭넓은 규정, 파업에 무분별하게 적용되는 업무방해죄와 손배가압류 등을 결사의 자유 원칙 위반으로 지적해왔다. 정부 법안은 이런 사항들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사업장 점거 방식의 파업을 전면 금지하는 조항을 도입했다. 역시 협약의 취지에도, 스스로 밝힌 법개정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 대목이다.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 이제 그만

이렇듯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의 행사를 촉진하기보다는 오히려 최대한 많은 제약을 가해 행사를 저해하는 노조법의 존재는 그동안 한국을 국제노총이 매년 발간하는 '글로벌 노동 권리 지수' 최하위 등급인 5등급(노동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 머물게 했다.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과 함께 이 현실은 달라져야 한다. 모든 노동자가 노조할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나라로 바뀌어야 한다.

국제적으로 인정된 기본 인권으로서 결사의 자유 원칙을 사회 전반이 규범으로서 받아들여야 하고, 노조할 권리가 제한과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자유로서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제출한 노조할 권리를 더욱 제약하는 내용이 가득한 법안은 협약의 효과적 이행에 걸림돌이 되므로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특집1. 국회 문턱 넘은 노동개악, 그에 맞선 우리의 투쟁 / 2020.12

[노동개악에 맞서자①]

 

국회 문턱 넘은 노동개악, 그에 맞선 우리의 투쟁 

 

박기형 상임활동가 

 

지난 12월 9일, 노동개악 법안들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보험료징수법 개정안, 고용보험법 개정안, 공무원노조법 개정안, 교원노조법 개정안, 근기법 개정안, 노조법 개정안, 산재보험법 개정안 등 총 7개 노동관련 법안이 처리되었다. 이 중 노동권을 제약할 독소조항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노조법 개정안은 각각 76.31%와 62.95%로 가결되었다. 민주당은 이 두 법안을 당일 새벽 1시 30분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날치기 처리하였다.

반면, 10만 국민동의청원을 받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심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몸과 삶을 지키기 위한 법은 도외시 한 채, 과로사회를 심화시키고 노동권을 제약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노동개악은 현재 진행형이다.

노동개악 국면의 지형

지금의 노동개악 시도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약속했던 '노동존중 사회 실현'과도 거리가 멀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변화의 흐름에도 역행한다.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며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지 50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노동권 보장은 미약하기만 하며, 각종 사회적 변화 가운데 새롭게 등장하는 노동형태들에 놓인 노동자들은 노동권 사각지대에 계속해서 머물고 있다. 그리고 고 문송면군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지 32년이 지났다. 그러나 오늘도 수많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일하다 아프고 다치고 죽는다.

올해 매일 7명이 퇴근하지 못하는 죽음의 일터를 멈추고 바꿔보자고, 모든 일하는 사람이 노동자로서 존중받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보자고, 노동자와 시민이 힘을 합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전태일3법을 마련하여 10만의 국민동의청원을 하였다. 코로나19가 극심한 상황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모이고 흩어지며 목소리를 내고 사회개혁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공수처법, 국정원법 등 권력기관 개혁을 우선입법과제로 내세우면서, 다른 모든 법안을 뒷전으로 밀어내었다. 며칠 전 임시국회가 열렸지만, 여전히 두 법안은 법안 심의조차 제대로 거치지 못했다. 이들은 서로 선후문제나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마치 자신들이 하는 모든 선택이 세상 모든 정의를 담보하고 있는 것인 양, 노동존중 사회를 위한 과제는 나중에 할 수 있고 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나중에, 언젠가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노동존중 사회' 실현에 역행하는 수많은 조치를 아무 거리낌 없이 통과시켰다.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와 정의당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노조법 개정 논의의 출발점

그러면서 그들은 노조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개정안을 가리켜, 'ILO 3법'이라 부르며, 국제노동기구 ILO의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것이라 주장했다. 한국은 ILO에 가입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총 29개 항만 비준했으며 핵심협약 8개 항 중 4개 항을 비준하지 않았다.

그 4개 항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결사의 자유 협약'(87호·98호)과 '강제노동 협약'(29호·105호)이다. 이 중 전자가 바로 '노조할 권리'에 해당하는 조항이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비준하지 않다가, 올해 서둘러 노조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환노위 날치기 통과를 하면서까지 비준에 나선 것인가? 더욱이 얼핏 보기에 ILO협약을 비준해 노동권을 강화시켜주는 법안에 60%가 넘는 위원들이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찬성한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선, ILO 핵심협약 비준을 누가 어떻게 요구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국은 ILO, OECD, EU로부터 이 4개 항의 비준을 지속해서 요구받았다. 그 압력이 가장 높아진 때가 바로 최근 추진 중인 EU와의 무역협상을 하던 때였다. EU는 한-EU FTA를 체결할 당시 "핵심협약 체결을 위해 노력한다"고 약속한 조항을 근거로 한국 정부에 대해 경제적 제재를 시사하며 압박을 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EU와의 경제적 관계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ILO 협약 비준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결국, ILO 3법이라 불리는 노동 관련 법률 개정안들은 애초부터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EU와의 무역갈등을 해소해, 자본과 기업을 위한 경제활동을 원활히 지속하기 위한 것이었다.

노조할 권리를 제약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법 제정의 목적이 무엇이든, 그 논의 출발이 무역갈등해소였든 아니든, 국제사회가 요구한 바는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을 비준하라는 것이었다. 해당 핵심협약의 요지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노조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의 법률 개정안은 노동권을 강화시켜주는 거란 게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 아닌가. 출발점이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괜찮지 않은가. 여기가 바로 문제의 지점이다.

ILO가 지속적으로 한국 정부에 요구해온 건 특수고용노동자, 하청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법‧제도적으로 노동3권을 온전히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노조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듣겠다며, 일견 공평무사한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정작 정부가 제출한 노조법 개정안은 이들의 노동3권을 보장하기는커녕, 부족하지만 어렵사리 지켜온 현재의 노동권들마저 후퇴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물론 공무원노조법 개정으로 가입 기준 가운데 직급 제한을 폐지하고, 교원을 제외한 교육·소방공무원 및 퇴직공무원 등의 노조 가입도 허용하도록 했다. 일부 개선된 면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정작 핵심 쟁점이었던 노조법 개정은 개악이라 비난받기에 충분했다.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도 허용했다고 하지만, ILO 핵심 협약 비준의 의미에 비춰볼 때, 너무 당연한 상식을 법으로 확인시켜주는 것에 불과했다. 기존 정부안에서는 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에 제한을 두는 등의 단서 조항을 뒀다가 비판이 거세게 일자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더욱이 실상을 들여다보면, 실업자·해고자 등은 현재 산별노조에 자유롭게 가입이 가능했었다. 그런데 기업별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라 개선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이다.

오히려 실업자·해고자 등이 사업장 내에서 노조활동을 하려면 '사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고, 실업자·해고자 등은 기업별 노조의 임원 및 대의원으로 출마하는 것 자체가 금지된다. 그나마 좋게 봐준다면, 심의 과정에서 독소조항이라고 비판받아온 '생산 주요 시설에서의 쟁의행위 금지' 조항도 제외되긴 했다. 하지만 이를 대신하여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여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의 쟁의행위 금지' 규정이 신설되었다.  

▲   올해 초중순 ILO협약 비준을 이유로 제출한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 당시 사진.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체협약 유효기간 최대 3년 연장으로 기업에서 단체협약을 지속해서 미룰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조합원만 기업별 노조의 임원·대의원을 맡을 수 있다는 조항이 남아 해고자의 임원 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등 비종사자의 노조 활동 또한 제약할 수 있다. 더욱이 현재에도 현장에서는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못한 노조는 교섭대표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 유효기간 동안 교섭도 할 수 없고, 근로시간 면제를 인정받아 조합활동을 하는 것도 공정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빈번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악안이 시행되면, 사용자와 어용노조가 담합하여 최소 4년간 교섭대표노조가 아닌 노조의 단결권, 단체교섭권에 '합법적'으로 제약을 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더구나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조항을 삭제하는 대신, 타임오프제라 불리는 근로시간 면제제도 한도 내에서 하도록 규정함으로써 해당 제도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에 더해, 타임오프 한도 초과 단협이나 기존에 개별 사용자가 동의한 내용을 모두 무효로 한다는 규정을 신설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기존 현행법을 교모하게 후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작 정부가 개정 압력을 받았던 지점인 특수고용, 간접고용,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권 보장은 제대로 이뤄지지도 못했다. 물론 배달노동, 물류·택배 노동 등에서 논란이 일자, 산재법 개정안, 보험료징수법 개정안, 고용보험법 개정안 등을 통해, 이들 노동에서의 처우 개선이 일부 이뤄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노동자로서 노동3권을 제대로 인정하도록 하진 않고 있다.

이를 위해선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노조법상의 규정과 행정관청이 노조설립 신고를 반려할 수 있는 규정을 수정 또는 삭제해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행정집행 중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을 '근로자가 아닌 자'로 보고 노조설립 신고를 반려·지체하는 일은 지금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개정안 자체에서 전혀 다루고 있지 않았다. 
 

▲   전태일 열사의 바람은 언제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한 투쟁들

노조법 개악만이 아니라, 3개월에서 6개월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근기법 개악까지 이뤄졌다. 내년부터 주52시간제가 각 사업장 규모별로 계도기간이 종료되면서 차츰 적용되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탄력근로제 도입을 통해 장시간 노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조치로 이해된다. 이런 탄력근로제의 확대는 장시간 노동에 따른 건강상 위험을 더 가중시키는 조치라고 지속해서 비판받아왔다. 한국의 과로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피를 토하며 장시간 일해야 했던 여공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국회 안팎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노동개악을 비판하며, 노동자와 시민들이 행동에서 나서고 있다. 고 김용균 노동자 2주기를 맞이했지만, 김미숙님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며 아들의 기일에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에 연대함과 동시에, 전태일3법 입법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국회 정문 앞에서 단식농성을 함께 이어가고, 구의역에서부터 국회로 오체투지 행진을 시작했다. 국회에서 노동개악이 시도되고 있던 11월 말과 12월 초에도 노동자들은 떨어져서 죽고 폭발사고로 죽고 기계에 끼여 죽고 과로로 쓰러져 죽었다.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터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기 위해선,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보장받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집단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자기 일터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 전체 노동자 집단으로 연대하여 노동권을 지켜내고 신장하기 위해선, 산별 노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요구하는 노동개악 저지, 나아가 전태일3법 입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바로 이러한 변화들을 쟁취하기 위함이다. 코로나19가 극심한 와중에도 우리는 자신이 행하는 바가 곧 정의라고 생각하는 자기승리 서사에 도취된 저들에 맞서, 전국 곳곳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한 우리의 싸움은 다시, 새롭게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다.

 

 

200호 기획 7. 청소년 노동건강권 활동을 돌아보며 -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이수정 활동가 인터뷰 / 2020.10·11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마주침 ]

청소년 노동건강권 활동을 돌아보며 -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이수정 활동가 인터뷰

이숙견 상임활동가

2014년 1월 24일, CJ 진천공장 현장실습생으로 나간 김동준군은 폭언과 폭행,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왜 현장실습 과정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로 시작한 청소년 노동인권활동은 연구소 내 청소년 노동건강팀을 구성하게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아래 청노인넷)와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주었다. 청노인넷에서 2006년부터 핵심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는 이수정씨를 만나 청소년 노동인권 활동과 과정에서 고민 그리고 향후 청소년 노동안전보건 활동 방향을 나누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의 시작

"2003년 실업계고 현장실습생이 엘리베이터 설치하는 과정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게 되면서 현장실습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단체 전교조 실업위, 인권운동사랑방,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민주노동당 등들이 모이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실업계고 현장실습 실태조사를 하게 되었고, 당시 열악하고 위험한 현장실습 상황을 드러내면서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교육부의 2006년 직업계고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을 이끌어 냈고요. 저는 2006년 '노동자의 벗'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를 알게 되었고, 이후 한국비정규노동자센터 소속(민주노무법인)으로 청노인넷 활동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청노인넷은 네트워크로 모인 활동 단체로 많은 성과를 냈다. 실제로 '똑똑, 노동인권교육 하실래요?(아래 똑똑)'를 함께 만들고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많은 지역에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확산과 교육과정에서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전국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더불어 교육을 통해서 만난 청소년은 미래의 노동자가 아닌 현재 일하는 청소년 노동자로서 밑바닥 노동 현실을 직면하게 했다.

"현장실습 대응활동으로 시작했으나 청노인넷에 모인 단위가 공통으로 교육에 관심이 많았어요. 2006년 현장실습제도 정상화 방안을 끌어내면서 현장실습대응보다 자연스럽게 교육활동으로 모아졌어요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함께 만든 내용이 '똑똑'이었지요.

처음부터 완결된 내용이 아니기에 워크숍을 통하여 내용을 보완하고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냈어요. 공부방, 학부모, 청소년단체, 노동조합활동가 등이 전국에서 참석하였습니다. 첫 번째 워크숍을 2005년에 시작하였고, 2010년까지 매년 워크숍을 하면서 전국단위 활동가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더불어 학교 안에서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도 느끼고 있었기에 전교조 교사 대상의 직무연수도 함께 배치했죠.

학교나 지역에서의 교육은 실제로 일하는 청소년의 심각한 노동현실을 직면케 하였고, 이 과정에서 필요한 실태조사-예를 들어 2008년 최저임금 실태조사, 2011년 10대 배달노동실태, 2014년 10대 밑바닥 노동 등-로 이어졌으며, 문제 제기와 대응을 요구하는 활동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네트워크로 구성되었지만, 참가자가 관심과 이슈를 가지고 참석하였고, 과정에서 실태조사와 문제에 대한 방안 마련을 요구하는 대응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2011년 광주 기아자동차에서 발생한 현장실습생 뇌출혈사건은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대부분 직업계고 현장실습문제에 관한 상담은 취업 이후 임금문제 정도였는데, 기아차 사건을 통해 확인된 현장실습제도의 문제점은 확인할수록 심각했다. 이 사건은 현장실습생이 도장부서에서 주 7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이며, 취업률을 위해 산업체의 단기간 노동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는 현장실습 제도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청노인넷에 함께 했던 청소년단체와 인권단체는 2012년 학생인권조례 활동에 집중하면서 네트워크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고, 결국 남은 단체의 역량으로 현장실습제도를 바꾸기에는 벅찬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하여 현장실습제도와 실습생에 대한 금속노조 등 노동조합의 관심과 연계를 모색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그전까진 노동조합이 현장실습제도와 현장실습생에 관한 관심이 없었어요. 잠깐 왔다 가는 학생으로만 생각했지 동료로 생각하지 못했었죠. 노동조합이나 금속노조에서 관심갖게 되었고, 대책위가 만들어지면서 적극적으로 결합하였지만 이후 청노인넷 활동으로 함께 이어지지는 못하였습니다.

더불어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를 바라보는 입장 차이와 지역과의 소통과정에서의 여러 문제로 현장실습제도는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정도로 마무리되었어요. 청노인넷도 단체들이 빠지면서 단체결합에서 개인이 결합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죠.
이렇다 보니 이슈를 중심으로 모여 집중하고 빠른 대응이 가능했던 네트워크의 활력이 떨어지게 되었고, 자발성과 책임성이 요구되는 네트워크 활동의 지속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후 현장실습생의 사망사건은 지속적으로 발생된다. 현장실습생이 야간작업 중 폭우로 바다에 빠지는 사고, 야간에 폭설로 공장지붕이 무너지면서 작업 중인 실습생이 사망하였고, 괴롭힘과 과로노동으로 자살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연구소는 현장실습생의 산재사망사건 대응과 노동안전보건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청노인넷을 방문하였다.

한노보연의 결합

"현장실습생 고 김동준님 사건 이후 연구소에서 최민 활동가와 김형렬 소장이 찾아왔어요. 당시 충북지역에서 대응하고 있었고 청노인넷은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대응 수위를 고민 중이었기에 연구소가 제안한 현장실습 실태조사와 대응활동에 적극적인 노력을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기존 단체와는 다른 노안단체이기에 기대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부터 최민 동지가 연구소 상임활동가로 청노인넷에 함께하면서 현장실습 제도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다시금 하게 되었어요.

2015년 전교조,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3차례 단위별 간담회를 진행하였고, 2016년 직업계고 실습실 실태조사는 기간 직업계고 대응활동에서 다른 돌파구를 보여주는 활동이기도 했다. 당시 단체들이 빠지면서 침체되어 있던 청노인넷의 상황에서 연구소의 결합(특히 무게감을 싣는 상임활동가의 결합)은 활력이 되었어요."
 
연이어 발생한 전주 LG유플러스 사망사건과 제주 음료수 제조공장 현장실습생 사망사건은 전국 현장실습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게 하였고, 간담회에 참석한 단위(민주노총, 금속노조, 전교조실업위원회, 비정규직없는세상,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가 대책위 구성에 함께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산업체파견 현장실습 폐지를 내세우며 공세적인 대응을 하였으나, 결국 현장실습제도 개선에 더 초점을 맞춘 당사자 조직의 요구와 지역 및 전국 대책위 내 여러 버거움으로 결국 지금의 현장실습제도로 머물게 된다. 이 과정에서 대책위도 해소하면서 결국 개인의 활동가와 한노보연이 함께하는 청노인넷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 대응활동은 연구소에도 많은 경험을 하게 한 활동이었으나, 과정에서 현장실습생, 직업계고학생, 그리고 교사와 노동조합 등 모두의 동력이 함께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방안 마련이 힘들다는 것도 확인하였다. 2019년부터 연구소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활동으로, 청소년과 교사, 활동가를 대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으로 전환을 모색 중이다. 그중 하나가 청소년 노동인권활동가 대상 노동안전보건 워크숍이었다.

"2019년에 이어 청노인넷과 함께 준비 중인 청소년 노동안전보건 워크숍은 청노인넷에서도 시너지가 되는 활동이며, 청소년 노동안전 이슈의 전국화로 연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어요. 하지만 다시 지역과 만났을 때 그러지 못한 상황을 확인하게 되었고, 올해 심화과정을 준비하면서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기대했던 사업이 될까, 오히려 교육 아이템 중 하나가 되어버리진 않을까 하는 우려도 됩니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은 교사와의 접촉면을 더 넓혀서 교사들이 수업에서 풀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교과과정도 융합교과, 선택 교육 등으로 바뀌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교사가 교육 내용을 잘 소화해야지 학생들에게 전달을 잘할 수 있습니다.

최근 나오는 안전보건 교과서도 내용이 문제가 많은 것도 있고, 안전보건에 관한 내용을 교사가 잘 모르니까 교육이 잘 안됩니다. 한노보연이 그러한 역할을 해주게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소의 콘텐츠를 잘 전달하는 것', 노동교육원이 출범했는데 노동안전보건 부분에 대한 콘텐츠가 전혀 없어요. 그러한 비워 있는 부분을 잘 채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나서 내용을 잘 전달하고, 방향과 고민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지금과 같이 안전보건에 관한 연구소의 역량을 투여하는 것이 필요하며, 지금의 한노보연은 그러한 역할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현장실습생의 노동 현실을 쫓아가며, 청소년 노동권과 건강권이 실현될 수 있도록 활동과 연대를 이어나가고자 한다.

청소년 노동안전보건운동의 과제

연구소는 실습실 실태조사를 통한 직업계고 실습실의 작업환경개선 필요성을 의제화하였고, 청소년의 노동안전보건 플랫폼 구축 연구를 통하여 알 권리 실현의 중요성도 제기 중이다. 이러한 활동은 청소년의 노동안전보건 감수성 키우기를 토대로 청소년이 당사자로서 중심성을 가지고 안전과 건강의 주체로서 세우기 위함이다. 연구소의 청소년 노동건강권 활동을 다년간 지켜본 청노인넷 활동가로서 좀 더 연구소가 집중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아래 한노보연)의 무기는 전문성이고, 청소년 노동에 대한 높은 감수성과 남다른 관점이 강점이기에, 그러한 강점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제대로 발휘하는 것입니다. 연구소의 역할은 역량을 계속 축적해서 여기저기에서 내용으로 순환되고, 그게 바탕이 되어서 당장 드러나지 않더라도 지속성을 갖고 연구소가 할 수 있는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심화 워크숍이 마무리되면 다른 형태의 고민도 해보면 좋겠어요. 청노인넷만 파트너로 생각하지 말고 한노보연이 중심이 되어서 청소년팀에 자문위원이나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회원들을 결합하고, 자문하는 방식도 고민할 필요가 있겠죠. 청소년과의 접촉면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지금은 역량의 한계도 있기에 에너지가 분산되지 않도록 한두 군데로 사업을 집중하거나, 몇 개년 계획으로 집중할 장기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일터 200호를 맞이하는 10월호 인터뷰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누며, 200호를 맞이한 일터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꾸준히 목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0호가 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거 같아요.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것, 컨텐츠를 축적한다는 것은 노력하지 않으면 대단히 어렵습니다. 청노인넷 활동 중 아쉬운 것은 네트워크 활동이니 총회 등 행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청노인넷 활동에 대하여 시기별로 정리된 내용이 없습니다. 그러한 부분에서 아카이빙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터는 여러 매체의 홍수에서 관점을 담은 몇 안 되는 매체로서 의미가 크고, 누군가 이 분야에서 관심을 가질 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 연구소의 전문적인 이야기는 기획기사로 집중적으로 다루고, 나머지는 회원들 이야기, 어설프긴 하지만 쉬어가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함께 나누는 지면이 할애되었으면 해요. 연구소에서 '이런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구나' 알 수 있는 지면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축하합니다."

200호 기획6.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으로 안전한 현장 만들자! -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야 라이 위원장,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대표 인터뷰 / 2020.10·11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마주침 ③]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으로 안전한 현장 만들자! -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라이 위원장, 천 이주노동자센터 김성 대인터

유청희 상임활동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노동안전보건 운동은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 산업재해 피해자와 사망자의 유가족들의 기나긴 싸움이 만들어냈다. 많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조항이 이들의 싸움으로 바뀌고 개선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자본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은 나 몰라라 한 채 이윤만을 좇으며, 노동자의 죽음까지도 비용으로 처리할 뿐 현장을 바꾸는 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끈질긴 싸움으로 안전과 보건 관련 제도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가운데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어 현장 변화가 너무나도 더딘 곳이 있다. 바로 이주노동자들의 일터다.

이주노동자들의 산재발생률은 한국인의 7배로 수치 면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이주노동자들이 산재신청에 대해 잘 모르거나 사업주가 승인하지 않아서, 또는 미등록 신분이 불안해 많은 경우 산업재해 신청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사업장에서 일상적으로 듣고 겪는 고성, 인종차별 발언, 폭행은 이들의 정신 건강을 갉아먹기도 한다.

이런 이주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노동안전보건 운동은 무엇일지, 이주노동자들이 운동의 주체로서 서기 위해서는 노동안전보건 운동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 법의 사각지대를 어떻게 메꿀 수 있을지를 묻기 위해 이주노동자노동조합(아래 이주노조)의 우다야 라이 위원장과 포천 이주노동자센터의 김달성 대표를 만나보았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사업장 변경 자유를 위해, 또 이주민 차별을 막기 위해 싸워왔다. 2014년부터 노조 위원장직을 맡아 이주노동자 처우 개선과 조직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김달성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과거 노동운동 활동 후 일반 교회 목회 활동을 이어가다가 3년 전부터 영세 소규모 제조업 사업장과 농업 사업장이 분포해있는 포천 지역에서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병들게 하는 사업장 변경 제한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게 최초 3년간의 노동 시간을 준다. 사업주가 승인한다면 1년 10개월간 더 일을 할 수 있고, 또 한 번의 승인이 있으면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재입국할 기회가 생긴다. 사업장 변경은 온전히 사업주의 권한이기 때문에 사업주가 근로계약 해지를 원할 경우, 사업장의 휴업, 폐업,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또는 부당한 처우가 있을 경우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그 외에는 사업주 승인이 있어야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직장에서 한국인 관리자에게 폭행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한다 해도 사업주가 승인하지 않으면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산업재해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더라도 사업주 승인 없이 직장을 옮길 수 없는 이들에게 강제노동은 먼 얘기가 아니라 매일 맞닥뜨리는 현실이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노동자로 들어와 있는데 직장 변경 권리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강제노동에 노출되는 거죠.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고 한계를 넘어서면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런 건 전혀 고려가 되질 않아요. 사업장에서 산재사고, 또 산재사망도 일어나는데 열악한 근로조건이 개선되지를 않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계속하고 있어요. 사업주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개선 노력을 하지 않아요. 권리가 인정되어야 사업주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할 수가 없죠.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하는 이주노동자도 있습니다. 사업장 이탈해서 미등록 상태가 되는 노동자도 있고요."
     
김달성: "산재보상신청 하는 데 거기서부터 걸려요. 사업주 동의가 없어도 산재신청할 수 있지만 방해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합법적인데도 못 하는 거죠. 고용허가제 첫 기간은 3년이고 1년 10개월 연장하기 위해서 사업주 승인이 필요하고, 그 후 본국에 돌아갔다가 재입국을 할 때도 사업주 승인이 필요합니다. 그런 법과 제도하에서 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산재보상보험 신청조차 이주노동자가 포기하게 만드는 거예요. 법과 제도적 문제가 노동자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거죠. 고용허가제가 산재를 조장하기도 합니다.

올해 1월, 양주에 있는 회사에서 보일러가 폭발해서 노동자 2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대재해를 당했는데 사망자 중 1명이 이주노동자였습니다. 재해자 중 절반이 이주노동자였고요. 재해당한 이주노동자가 사고 충격이 심해서 불안해 일을 못 하겠다고 하면서 사업장 변경을 신청했는데 사업주가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세 노동자가 외상 후 스트레스를 심각하게 앓았고 담당 의사도 사고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거든요. 사업장 변경하려고 5개월 넘게 요구하다가 겨우 승인받았습니다."

한국인의 7배 산재발생률

2018년 이주노동자의 산재발생률은 1.42%로, 0.18%인 한국인 노동자보다 7배가 높다. 그만큼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이다. 영세 사업장이 대다수이다 보니 사업주 역시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경우가 많다.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유해하다고 지적하니 어떤 사업주는 "30년간 내가 썼지만 아무 문제 없었다"고 했다는 우다야 라이 위원장의 말이 씁쓸하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단기간 머물다 가지만 유해 물질을 취급한 후 당장 나타나지 않을 질환이 나중에 나타날 수 있어 그 위험 정도를 알기 어렵다. 이런 위험을 알고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안전보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안전장치가 필수적이겠지만, 그런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이주노동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김달성: "3년간 만나 본 이주노동자 중 안전교육을 받았다는 사람은 한, 두 명 정도뿐이에요. 99%가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거의 없는 거죠. 공장에 안전장치도 설치되어있지 않고요. 올해 초 양주 가죽공장 사고를 보면 폭발이 엄청 크게 나서 주변 공장들이 파편 맞을 정도였습니다. 가죽공장은 안전관리사가 있어야 하는 업종인데, 안전 관리사를 두지 않고 안전조사를 하지 않아 기소됐거든요. 큰 보일러를 쓰기 때문에 안전 관리사가 있어야 하는 공장인데 없었습니다. 안전장치가 있어도 빼놓고 일하게 하는 것이 현실이고요."

산재예방을 위한 제도는 전무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지 않는 소규모 사업장이기에 산재예방은 먼 얘기일 뿐이다. 예방은 고사하고 산업재해가 빈번히 일어나는데도 산재보상보험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주노동자들이 고용되는 농축산어업의 경우 법인이 아닌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사업주가 산재보상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고나 질병이 발생하는 사업장에 법을 적용해 산재를 예방하게 만들고 정부가 작업 환경 감시를 통해 안전을 유지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정부 정책에 그런 고려는 전혀 없어 보인다.

농축산어업에서는 법인이 아닌 사업주에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문을 열어두지만, 이들에게 산재보상보험법이나 건강보험에는 가입을 강제하지 않아 노동자 보호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본적인 산재보상보험과 건강보험 보장이 시급해 보인다.

김달성: "농어촌은 대부분 기계화되어 있습니다. 산재가 적지 않아요. 그런데 5인 미만 사업장이 대다수라서 산재보상보험 적용이 안 되죠. 어떤 이주노동자는 과수원에서 일하다가 허리뼈가 부러지는 재해를 입었는데, 산재보상도 안 되고 근로기준법으로도 보상을 못 받았습니다. 1년간 1억 넘는 비용이 들었는데 네팔 공동체, 일반 시민들이 기금 모아서 병원비를 지원해줬습니다.

5인 이상 농어촌 사업장은 산재보상보험법 적용 대상이지만 이주노동자와 사업주가 주종관계나 마찬가지라서 산재보상 신청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근로기준법 63조(농축산어업 등에 근로시간, 휴게, 휴일 등 적용 제외) 때문에 제조업보다 더 옥죄는 상황이고, 하루도 안 쉬고 일하는데 수당도 없습니다."

이주노조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입국하는 인천공항에서 직접 사전 교육을 하기도 한다. 공항에 막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에게 고용허가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개선할 점, 노동3권에 대해 설명한다. 노동자에게 문제가 생길 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산재신청, 보상 안내 등도 교육 내용이다.

이런 기본 교육은 사업주가 실시해야 하지만, 고용허가제는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사용'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노동자의 노동권, 건강하게 일할 권리에 관심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예상도 못 한 채 다치고 폭력에 시달리며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터 108호(2012.12) 표지에 실린 사진. 이주노동자들은 죽기 위해 이 곳에 온 게 아님을, 이 땅에 일하는 모든 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요구해나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출처: 부경이주공대위



안전한 현장을 위한 과제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사회는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사업장을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우다야 라이: "노동강도를 낮춰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하게 일할 수 있죠. 사업주가 산재보상보험법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만드는 것도 필요하고요. 산재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다시 고용하지 못하게 해야 안전에 신경 쓰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업장 점수가 높으면 이주노동자를 많이 고용할 수 있는데요. 성폭력이나 사고가 나면 감점 몇 점주는 식이죠.

이주노동자가 정해진 날짜에 귀국하거나 사고가 안 나면, 또 문제가 있어도 정부에 들키지 않으면 점수 잘 받아요. 노동자가 사망해도 감점 몇 점 받을 뿐 이주노동자 고용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사업장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사고가 나도 폭행이 나도 사업장 변경이 어려운 상황을 바꿔야 해요. 사업장 변경 권리가 산재개선에 핵심적인 부분이에요."

이주노동자들의 싸움이 어려운 것은 이들이 한국에 장기간 머물지 않는 데서 오는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싸움을 해야 할 때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이주노동자들에게 어려운 것이다. 이런 한계로 인해 사업주나 정부에서도 변화하지 않고 오히려 악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필요한 체류 기간을 쪼개는 현 정책은 이주노동자를 단기간 사용하고 본국으로 보내겠다는 뜻이 분명히 담겨 있다.

우다야 라이: "체류기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어요. 체류기간이 더 길면 부당함을 더 잘 알 수 있으니까요. 이주노동자들이 의식을 높일 수 있는 시간도 더 있어야 합니다. 현 제도가 노동자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해요. 이주노동자 유입되기 시작한 지 30년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참 오랫동안 똑같은 요구를 하고 있어요.

제도, 정치인, 국민들의 인식까지 바꿔야 해요. 동남아시아 출신 무시하고 선진국 출신은 다르게 생각하는 인종차별 문제도 바꿔야죠. 한국인도 똑같이 이주민이 될 수 있는데, 이걸 깨닫고 차별 없애야 해요. 한국 사회에 있는 차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쁜 것은 나쁘다고 말할 수 있어야죠."

노동안전보건 운동을 가열차게 진행하는 동안에도 변화는 더디고 어떤 곳은 빛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있기도 한다. 소규모 영세 사업장은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안전보건은 때로 교집합이면서 때로 합집합 상태가 된다.

산재보상보험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하라는 지금까지의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요구가 이주노동자에게도 중요한 요구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이주노동자에게도 해당되는 문제로, 이에 더해 사업장 변경 제한 폐지가 함께 들어가는 것까지 확장한다면 이주노동자가 함께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200호 기획5. 노동안전보건을 ‘젠더’ 관점으로 바라보기 - 권영은 반올림 상임활동가,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인터뷰 / 2020.10·11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마주침 ②]

노동안전보건을 ‘젠더’ 관점으로 바라보기 - 반올림 상임활동가, 경아 한림대 사회수 인터

지안 상임활동가

우리가 '노동자의 건강'을 노동자의 조직적인 힘과 역량을 통해서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사고할 때, 건강한 일터란 단순히 주어진 노동조건이 아니라 노동자의 요구와 투쟁을 통해 쟁취한 '권리'가 된다. 일터의 건강이 노동자의 권리라는 메시지는,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몸과 작업환경, 생산 속도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특히나 중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노동자의 건강을 보는 방식이 구체적인 '조직'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 소수적인 영역에서의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다룰 다른 관점과 역량을 발굴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나 갈수록 고용 형태가 다양화되고, 일 자체가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에서 노동자의 건강 문제가 개별화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틀은 무엇일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점에서 '젠더'는 우리가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다룰 때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나 정체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여성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적 조건들은 어떻게 개별적 여성 노동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 또는 노동안전보건의 의제로써 쟁점화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본 글의 기획을 두 가지 방향으로 구성했다.

먼저 2007년부터 전자 산업 노동자들의 산재 피해 활동을 해온 반올림의 상임활동가 권영은님과 함께 기존의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젠더의 관점에서 돌아보고 읽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고민을 나눴다. 두 번째로는 한림대 사회학과 신경아 선생님을 만나 현재 한국의 여성노동자가 처한 다양한 문제점들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짚어보았다.

여성 노동자의 관점에서 '산재' 다시 읽기

반올림의 꾸준한 투쟁을 통해서 전자산업 반도체 공장에서의 산재 피해는 사회적으로 잘 알려지게 되었다. 이 활동을 통해서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직업병 문제가 조명받았지만 한편에서는 피해자 중 많은 수가 여성이기도 했다는 점은 특별히 사건의 중요한 측면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지난 투쟁을 돌아보며 우리가 '젠더'의 눈으로 산재 피해를 읽어낼 부분은 없을지 물었다.

권영은: "반도체 공장 클린룸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오퍼레이터가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이 활동이 '여성'에 방점이 찍히지는 않았습니다.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 상 유해성이나 직업병 자체에 집중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여성 노동자의 비율이 높다는 점 외에도 생리불순 등 재생산 건강 문제에 대한 제보도 초기부터 많이 들어오는 등 여성에게 특수하게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초기부터 많이 보였어요. 대다수의 오퍼레이터가 여성이었던 배경에도 성역할의 고정관념이 존재한다는 것도 중요해요. 여성들이 꼼꼼하니 더 세밀하고 빠르게 작업을 할 것이다, 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결과였죠."

그렇다면 실제 전자산업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직업병 피해자 중 여성 노동자의 숫자, 그리고 반도체 공장 여성 노동자 중에서도 사업장 규모에 따른 집단적 특성은 없을까? 반올림은 이렇게 구체적인 수치를 파악하기 어려운 현실을 한계로 지적했다.

권영은: "전자산업에 어느 정도의 노동자가 있는지 세세한 수치를 파악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에요. 산업별 국가 통계에서도 별도로 조사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제조업' 분류에 묶여있어 알고 싶은 만큼 자료가 확보되지는 않는 상황이죠. 반올림이 함께 하고 있는 안산지역네트워크에서 안산지역의 반도체 공장 중에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해보려고 하는 중인데, 작게나마 통계로 확인하기 어려운 실제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어요."

물론 반도체 산업의 산재 피해는 '여성 문제'로만 국한시켜 볼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클린룸 엔지니어 직종의 경우 남성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피해자의 집단적 특성이 존재하고, 특별히 여성의 재생산 건강과 관련된 문제점들이 초기부터 발견되었다면 이를 '여성 노동자'의 문제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명되지 못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권영은: "사실 해외에서는 반도체 공장의 유해성이 입증되기 시작한 단계에서, 먼저 유산, 불임, 기형아 출산 등 생식독성 문제가 중요하게 이야기가 되었어요. 한국의 경우는 2017년 불임으로 첫 산재 승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런 문제들이 비교적 조명이 덜 된 이유는 생식독성 문제, 또는 여성의 재생산과 관련된 건강 문제가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쉽게 연결될 수 있다는 점과도 연결된다고 봐요.

이전 상담기록을 살펴보면, 피해자 중에서 본인뿐 아니라 아이도 질병에 걸리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이 경우 본인은 산재인정을 신청할 자격이 주어지는데 아이는 그렇지 않아 제보 기록으로만 남아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2세 질환 문제를 '산재'로 인정하고 인식하는 변화도 필요합니다. 한편 이런 경우 '어머니'에게 가해질 주변의 비난도 쉽게 상상할 수 있어요. 산재인정 투쟁뿐만 아니라 이런 사회문화적 인식과도 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산재 피해 노동자의 2세 질환 문제는 특히 최근 10년 만에 대법원에서 제주의료원 태아산재 인정 판결이 나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 판결이 유사한 피해 사례들을 드러내는 유의미한 시작점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관련 법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2세 질환의 산재 인정기준을 낮추고, 보상체계를 제대로 만듦으로써 피해자를 돕고 다양한 산업에서 유해요인과 직업병의 연관성이 제대로 밝혀질 수 있어야 한다.

권영은: "앞으로 2세 질환의 산재 신청을 준비하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제주의료원 판결을 계기로 여성노동자들의 생식질환, 2세 질환 문제에 초점을 맞춰 인터뷰집을 내려고 해요. 한국뿐 아니라 대만,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여러 피해 사례들이 있는데, 단순히 화학물질 등 노동환경의 유해성에 대한 지적을 넘어서, 여성 노동자의 몸의 문제를 드러낼 수 있도록 그간 국내외 연구에서 제기되어왔던 전자산업에서의 2세 질환 문제가 더 많이 제기되고 조사되어 예방까지 이어지길 바랍니다."

한편, 반올림은 이전부터 젠더와 노동자의 건강 문제라는 주제를 고민한 바 있다. 2014년 전자산업여성노동자모임은 직업성 암 등 질병의 문제를 넘어서 전자산업의 노동환경이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여러 수준의 유해성을 살펴보고자 했다. 이 시기에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등한시된 여성 재생산 건강 문제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권영은: "성인지적 관점에서 반올림 사건을 '여성 노동자'의 문제로 다루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관심이 있는 다양한 연구자, 활동가, 피해자들이 모여 여성 건강권 문제를 공부하기도 하고, 산재 피해를 단순히 '피해' 그 자체로 다루기보다 여성 노동자들의 생애사적인 측면에서 다뤄보자는 이야기도 했어요. 즉 여성 노동자의 삶 차원에서 문제를 다시 보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여성 노동'의 관점에서 반올림 활동을 돌아보고, 앞으로 문제의식을 이어간다고 할 때 어떤 것들이 조명되어야 한다고 보는지 물었다.

권영은: "산재라는 것이 단순히 일하는 노동자 개인의 보상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부각되었으면 해요. 2세의 건강, 나아가 노동자의 삶과 가족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는 사건이라는 점, 그래서 사회의 안전과도 연결이 된다는 인식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7년간 일했던 여성 노동자의 모습이다. 추후 유방암으로 집단산재신청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성노동 의제, 면밀한 현황 조사부터 다양한 의제 발굴해야

'여성 노동자'의 노동, 그리고 노동안전보건 문제에는 어떤 주제가 있고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지 구체화해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의 여성노동자가 딛고 선 현실을 진단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연관된 주제 중에서도 '노동시간'은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여성이 시간제 일자리 등 저임금 인력으로 활용되어온 노동의 역사나, 보조 인력으로 상상되고 주변화되어온 맥락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돌봄·가사노동이 여성 개인의 부담으로 맡겨진 사회에서 여성의 '일하는 시간' 문제는 단순히 임금 노동시간만의 문제를 넘어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여성' 그리고 '노동시간'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최근 몇 년간의 노동정책을 봤을 때 어떤 변화점이 있는지 물었다.

신경아: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초기부터 대단히 비판받았어요. 공공일자리 등 시간제 일자리가 대거 양산되었죠. 그러나 노동자의 자율성 측면에서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시간제 일자리'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도록 하는 정책은 저임금, 고용차별 문제를 낳을 뿐입니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최근 정부 조사에서 80%에 가까운 여성들이 시간제 일자리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나왔다는 점이에요. 한편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집중하는 것은 '노동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52시간제도 대단히 제한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 노동정책은 정말 '안 보인다'고 할 수 있어요. 고용노동부에 양성평등정책과는 신설되었지만, 그 외 미미한 수준에서 돌봄 관련 규정들이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에서 마련된 것에 불과합니다. 제대로 된 여성 노동 정책이 있다고 보기 어렵죠."

향후 어떤 정책적 방향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물었다.

신경아: "예를 들어, 비정규직 일자리 중에서도 특수고용 노동자, 초단시간 일자리 등에 여성이 더 많습니다. 이들은 이중적 차별에 직면하고 있어요. 하나는 현재의 고용제도 안에서 여러 법적 보호의 밖에 밀려나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노동법 체계의 근본적 변화, '노동자' 개념 정의를 재구성하는 문제 등이 과제입니다. 한편, 노동운동 역시 정규직 남성 노동자 중심으로 구성되어왔기 때문에 이들의 의제가 운동의 핵심 주제로 다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이 또 하나의 차별이죠. 이런 점에서 한국사회를 지탱해오던 전통적인 노사관계를 바꾸어나갈 필요가 있어요."

성별 임금 격차뿐 아니라, 저임금·비정규직 등의 사안은 IMF 이후 뿌리 깊은 여성 노동 현안이며 그만큼 여전히 유효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성노동운동에 있어 주요한 변화가 있다면, 어떤 문제나 경향일지 궁금했다.

신경아: "가장 큰 변화는 여성노동자들이 자기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비정규직, 저임금, 경력단절 등의 문제는 여전히 큰 문제죠. 그러나 시민사회단체, 연구자들이 문제를 드러내 왔던 방식을 넘어서 2015년 강남역 사건, 2018년 미투 운동 등 이후 시기에서 여성 개개인의 주체가 굉장히 변화했어요. 그에 따른 실천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차후 이런 것들이 개인적 저항 수준을 넘어서 사회적, 운동적 차원으로 끌어올려져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만큼 노동 의제가 부각되진 못했어요. 미투 운동 역시 여성 노동자들이 어떤 노동환경 속에서 일 해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볼 수 있죠.

그렇지만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 두 가지 문제가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젠더와 노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개인적 수준의 저항을 넘어서 노동의제로 확장시켜 다뤄나갈 필요가 있죠."

전시 상황에서 어떻게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노동력으로 동원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포스터 이미지다. 차후 이 시기의 이미지들은 여성운동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의미화되었다. 출처: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한편, 현재 여성노동운동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이슈는 코로나19일 것이다. 코로나19 위기가 특히 여성 노동자에게 집중되었다는 통계가 드러났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독립적인 사건으로 보기보다는 한국사회가 이미 경험한 두 번의 경제위기와의 연관성 속에서 주목하고 있다. 1997년 IMF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노동시장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차후 더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로 밀려났다. 이런 사회적 맥락에서 현재 많은 여성단체들이 코로나19를 '여성 노동자의 위기'로써 선제적으로 명명하고 있다.

신경아: "자본주의,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경제위기가 있을 때 어떤 집단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해결해나갔어요. 희생의 대표적인 집단은 '여성 노동자'였죠. IMF의 경우, 대기업 생산직, 사무직 중간관리자 여성들이 대거 일자리를 잃었어요. 현재는 서비스직·임시직 여성 노동자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어요. 그러나 여성이 위기 국면에서 도구화되는 것을 초기부터 문제제기하고 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전망합니다. 이런 변화가 과거의 해결책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큰 변수이자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반이라고 봐요."

한편, 여성 노동자의 구체적인 현실은, '여성'에 대한 시선과 인식, 나아가 근본적 차원의 젠더 불평등 문제 등 여러 층위의 문제들과도 복합적으로 이어진다. 이런 점에서 여성 노동운동과 연구가 가야 할 길은 다양한 층위에 있는 문제 간의 연관성을 밝히고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신경아: "여전히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특히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중요한 비판 대상입니다. 이런 인식 속에서 같은 일에서의 성별임금격차, 직무의 성별분리 등 결과가 만들어져요. 의식의 차원에서 혁명이 필요해요. 또한 노동자의 정체성, 인권과 관련된 다양한 의제들을 노동운동의 과제로 가져가면서 교차하는 지점들을 보려는 노력 역시 필요합니다."

이번에 진행한 두 가지 인터뷰를 통해서 '젠더'와 노동자 건강의 관련성을 지속적으로 고찰해나가기 위해, 그리고 '여성 노동'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해나가기 위한 관점들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노동안전보건의 활동을 '젠더'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되짚어보는 것, 그리고 노동안전보건 운동이 향후 고민해야 하는 다양한 의제들을 발견하는 작업을 연구소의 집중사업인 '여성노동자 건강권' 활동을 통해 풀어나가야 할 후속 과제로 남겨두며 글을 마친다.

 


 

200호 기획 4. 장애 운동이 제기하는 과제, 안전보건에서의 ‘정상성’을 바꿔내는 일 - 전국장애인철폐연대 정창조 노동위원회 간사, 정다운 활동가 인터뷰 / 2020. 10·11

[기획 -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마주침 ]

장애 운동이 제기하는 과제, 안전보건에서의 ‘정상성’을 바꿔내는 일 - 전국장애인철폐연대 정창조 노동위원회 간사, 정다운 활동가 인터뷰

박기형 상임활동가

<일터> 200호를 맞아, '노동안전보건, 사회운동과 만나다'라는 코너를 기획하였다. 이 코너를 통해, 연구소가 그간 만났던, 또는 앞으로 만나갈 사회운동의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노동안전보건운동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전망을 확대함으로써, 운동의 과제를 도출하고 다른 사회운동들과 공동전선을 만들어가기 위한 고민을 담아보고자 했다.

첫 번째 인터뷰에서는 장애운동과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접점을 찾아보려 했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아래 전장연)의 정창조 노동위원회 간사, 정다운 활동가를 지난 10월 8일 혜화에서 만났다. 장애운동에서 다시금 또는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장애인 노동권이 안전보건 영역에서의 건강하고 안전할 권리를 급진적으로 확장시키는 데 어떤 함의를 던져줄 수 있을지, 반대로 장애인의 노동권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안전보건의 쟁점들이 어떤 고민을 안겨줄 수 있을지 얘기를 나눠보았다.

장애인 노동권의 현주소

장애인 노동권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은 바로 고용이다. 전반적으로 고용률이 낮으며, 일자리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2019년 장애인 고용률은 34.9%로 전체 고용률 60.9%의 절반 수준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의무고용률 미준수 시의 부담금 수준이 높지 않아 부담금을 내고서 고용하지 않는 게 대다수다. 노동조건 또한 열악하다. 2019년에는 임금근로자 중 43.9%가 임시 일용직으로서 전체 인구의 임시 일용직 비중 31.4%보다 높다. 전문직, 사무직 숫자 적고 단순노무직(청소, 환경미화 등)이 많다.

정창조: 장애인에게 노동권은 역사적 맥락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장애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노동할 수 없다는 개념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죠. 자본주의가 형성되면서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과 노동할 수 있는 사람이 구분되기 시작해요. 하층민들을 대량 수용했던 구빈원에서도 중요하게 이뤄졌던 일이에요. 결국 장애인은 (임금)노동을 할 수 없는 자라는 관점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윤 창출을 할 수 없는 활동 전반을 비생산적 활동으로 규정하고, 생산적 활동을 하지 못하는 일들을 배제하는 현 사회의 구조를 문제 삼아야 합니다.

정다운: 이른바 '정상성'이라고 하는 것을 바꿔내는 일이죠. 특정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은 배제해버리는 것 말입니다.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이냐를 가르는 기준과 규범을 새롭게 정립하는 게 중요합니다. 임금노동,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되는 활동만을 노동으로 규정하고, 이 노동을 할 수 있는 신체만을 노동력으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장애인 일자리는 시혜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고용되더라도, '어차피 일 못 할 텐데'라는 식의 태도로 인해 부수적인 일밖에 받지 못하면서 주변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임금과 관련해 최저임금 적용 제외가 특히 문제다. 최저임금법 제7조에서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를 규정하고 있다. 평균적인 생산성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작업능력평가를 한다. 이를 근거로 2018년 기준 9413명이 제외되었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 대다수는 직업재활시설 노동자, 중증장애인이다. 이렇듯 노동할 능력, 신체에 대한 정상성 기준에 따라 장애인들이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 제도 폐지를 요구하는 퍼포먼스 중인 정다운 활동가(사진 맨 좌측).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노동시장에서 장애인들이 배제되면서, '산재는 우리에게 사치다', '산재라도 당해봤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장애인 노동자가 노동시장에 진입하더라도, 불안정한 일자리에만 들어가게 되고, 이로 인해 위험한 노동환경에 노출되기 쉽다. 그러나 그 실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정창조: 장애인의 일자리 마련 자체가 핵심적인 이슈다 보니, 진보적 장애인 운동 진영 입장에서도 산재 사망사고 등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고용촉진법 제26조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이 매년 장애인 노동자 산재 통계를 조사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요. 최근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노동자 산재 비율은 0.8%, 장애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승인율은 33.1%로 나타났어요. 그러나 굉장히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현황 파악 자체가 쉽지 않고, 산재 예방 활동에도 적극적이지 않은 상황입니다.

정다운: 더 중요한 것은 취약한 이들일수록 불안정한 일자리, 그로 인해 계속해서 위험하고 유해한 노동환경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사회전반적으로 노동권이 제대로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장애인 이동권 투쟁하면서 이런 얘기를 자주했어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저상버스를 도입하면, 모두에게도 이동권이 더 잘 보장된다라고요. 산업재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예요. 장애인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라면, 모두에게도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이지 않을까요?

장애운동에서 제기하는 산재보상제도의 지향점

정다운 활동가의 질문에 비춰볼 때, 일터에서 '안전'과 '건강'이, 우리가 주장하는 안전할 권리와 건강할 권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지 되물어 볼 수 있었다. 산재보상제도를 중심으로 보상·재활·치료에서 정상성이 작동하는 방식, 건강할 권리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잘 아플 권리'를 얘기하는 것의 의미에 관해 얘기를 나눠보았다.

정다운: 산재보상제도에서 보상기준을 살펴보면서, 장애인 등급제를 떠올렸어요. 둘 다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특정 척도를 기준 삼아 등급을 매기고 제도지원을 받을 대상자를 선정하는 걸로 보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빠지게 되는 것은 결국 정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관점과 필요가 아닐까요? 장애인의 경우 사회참여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요구가, 산재노동자의 경우 직장복귀 등의 다양한 회복을 위한 요구가 있을 거잖아요. 이들이 단순히 평가대상으로 남아있다면, 그건 불평등한 권력 구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대상이 아닌 주체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는 주체의 상태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그 상태를 우선 인정하고 필요한 것을 묻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것입니다. 산재보상제도에서도 노동자의 필요와 욕구, 나아가 참여에 기반한 정책이 지향해야 할 바라고 봐요.

정창조: 산재보상제도에서 얘기하는 회복에 이런 의미도 있을까요? 노동자들의 신체와 정신을 치료하여 기존의 생산성에 부합하도록 회복시키는 것. 물론 재활과 직장복귀 등 산재보상제도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노동자 입장에서도 자기 삶과 일터에서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욕구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재활 개념에 대해서는 달리 접근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장애 운동에서 재활은 주요 쟁점 중 하나인데요. 재활이라는 개념 자체가 개인을 정상적 노동력을 획득하지 못한 이를 정상적 노동력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의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재활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러면 또 다시 사회와 일터에서 배제되는 거지요. 이는 장애인이나 산재 노동자의 현재 존재 자체를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노동을 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류 장애인 노동정책이 개인의 기능 회복, 즉 자본 입장에서 생산성 있는 신체로 거듭나게 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여요. 이때 우리는 재활이 충분한지 아닌지를 누구의 기준, 어떤 기준에서 판단하는지를 문제삼아야 한다고 봐요. 자본이나 기업이 요구하는 노동력 상품으로서가 아니라, 상품화되지 않는, 심지어 상품화될 수 없는 그 존재 자체의 역량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장판(장애인운동판)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중증장애인 권리중심형 일자리 확장을 주장하고 있어요. 그 주장의 핵심은 어떤 신체적, 정신적 상태인지 관계없이, 각자의 상태를 인정하고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의미 있는 활동들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를 산재보상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재활이란 단지 개인의 기능 회복을 넘어서, 사회와 일터에서의 관계변화와 노동이나 건강, 안전에 대한 개념 변화를 중심에 두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중증장애인 노동권 쟁취를 요구하는 집회에서의 정창조 간사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잘 아플 권리'가 제기하는 질문

노동안전보건운동에서는 '건강할 권리'를 주장한다. 이때 늘 부딪히는 고민은 우리가 주장하는 건강과 안전이 '정상적인 신체와 정신', '평균적인 생산성을 제공할 수 있는 노동력'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다. 이를 풀어가기 위해, 최근 '잘 아플 권리'라는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장판에서도 건강을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에 관한 얘기가 활발하다고 한다.

정창조: 예를 들어, 만성질환자는 건강한 신체가 아닌가요? 주류 사회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건강한 신체가 아니겠죠. 그러나 100% 건강한 상태란 애초에 없다고 생각해요. 만성질환자나 장애와 질병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라고 할지라도, 당사자의 존재 차원에서 보자면 질병이나 장애와 잘 사귀어 가며, 사회에서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수 있고, 자신의 역량을 보존하고 확장해 갈 수 있다면, 곧 그것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픈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해 달라는 게, 결코 나는 '건강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이런 차원에서 국가나 자본이 요구해서 관리되는 건강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건강 개념에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 내지 질병과 건강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아무도 온전히 도달할 수 없는 '건강'을 추구하는 강박을 깨야한다는 것이지요. 전 이런 면에서 건강할 권리와 잘 아플 권리는 충분히 양립가능하다고 봅니다.

정다운: 건강에 대해서 사람들마다 다양하게 생각하잖아요. 안 아프고 안 다치는 게 우선 중요하지만, 아픈 상태가 지속된다고 한다면 의료 서비스를 계속해서 잘 보장받을 수 있는 게 중요하겠죠. 이렇듯 각자의 조건에 따라 다른 규정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장애인이나 산재 노동자처럼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그 상태로도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이를 사회적으로 마련해주는 것 말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정창조 간사는 장애인 노동권이 추구하는 방향은 일반 노동시장에의 편입만으로는 안 되고, 기존 노동체계 바꿀 수 있도록 다양한 노동형태, 방식, 과정을 바꿔내는 계기들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기존의 노동 개념, 정상 신체 등 정상성을 뒤흔드는 운동이다. 장애인과 산재 노동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일하고 활동할 수 있는, 그럼으로써 각자의 조건에 맞게 최대한 자기 삶의 역량을 발휘하는 세상.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을 장판과 노동현장에서, 부문과 전체가 교차하며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200호 기획3.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일터> 200호로 살펴본 한국 사회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 / 2020. 10·11

[기획 -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발자취 ]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일터> 200호로 살펴본 한국 사회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 

최민 상임활동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창립 초기부터 '노동자 정신건강'이라는 주제에 주목해왔다. 도시철도 기관사 공황장애 및 자살 사건, 청구성심병원과 하이텍알씨디 집단 정신질환 산재신청, 요양 중인 산재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 등으로부터 시작된 고민은, 일터괴롭힘과 가학적 노무관리, 자살 대국에서 과소평가되고 있는 노동자 자살 문제, 감정노동과 작업거부권 등으로 확장되어 왔다.

그 사이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정신질환 산재 신청 건수와 승인율이 증가하는 등 사회적 변화도 있었다. 최근에는 직장내괴롭힘과 감정노동과 관련된 중요한 노동법상의 변화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노동자 자살을 반복하게 하는 구조적 요인은 변화가 없고, 치료, 심리상담, 산재신청 등 개별적인 대응만 활발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200호까지 <일터>가 다뤄왔던 노동자 주요 이슈를 훑어보면서, 노동자 정신건강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를 돌아보고, 향후 과제를 짚어본다.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의 정신건강
 

노동자 정신건강과 관련한 문제의식은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에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일터 초기에 소개된 노동자 자살은 주로 산재 요양과 관련된 것이었다. 다쳤지만 산재를 신청하지 못하거나 승인을 받아도 불충분한 요양으로 요양 중, 혹은 회복되지 못한 채 일터에 복귀한 후의 자살을 꾸준히 소개했다. 사실 <일터> 발간이 시작되기도 전인 1999년 이상관 투쟁이 있었다. 1999년 대우국민차 창원공장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쳐 산재로 요양하던 20대 청년 노동자 이상관은,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도 요양을 종결하라는 근로복지공단 직원의 종용을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IMF 사태에 따른 근로복지공단의 예산 절감 방편으로 세워진 '산재보험급여 거품 제거 대책'의 희생양 중 하나였다.

당시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155일간의 농성 투쟁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 시민사회단체와 현장 노동자, 의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연대했다. 이 연대투쟁 과정에서 산업재해, 산업안전보건, 산재추방운동이라는 말 대신 노동재해, 노동안전보건, 노동안전보건운동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상관의 죽음은 끝내 산재로 인정되지 않았고, 책임자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도 자리를 보전했다.

하지만 이 투쟁으로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가 위기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산재 요양 중 이와 관련하여 발생한 정신질환이나 자살의 경우 산재로 인정되는 건이 늘었다. 2005년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요양 중 발생한 우울증은 업무상 재해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일관된 판단을 내리고 있었는데, <일터>에서는 산재요양 과정 중 발생한 우울증이 산재라고 인정한 법원 판결을 소개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산재 요양 노동자 자살이 지속되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2003년에서 2014년 사이 업무상 사고를 당해 산업재해보상보험 요양급여를 수급한 15~79세 노동자 약 77만 명 중 2796명이 2003년에서 2015년 사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들 산재 노동자의 자살 사망률은 전체 경제활동인구에 비해 2.21배 높게 나타났다. (Hye-Eun Lee, Inah Kim, Myoung-Hee Kim, Ichiro Kawachi. 2020."Increased risk of suicide after occupational injury in Korea." Occupational & Environmental Medicine, BMJ Journals.)

사고 당시 임시직에 종사한 노동자는 상용직보다 자살 사망률이 더 높았고, 특히 남성 산재 사고 노동자의 경우 장해가 발생하지 않은 노동자가 중증 장해를 앓는 노동자보다 자살 사망률이 더 높은 역설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장해가 없는 산재 사고 노동자는 장해등급 1~3급의 중증 장해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연금을 받지 못하고 계속해서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처지에 놓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산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 개입뿐 아니라, 산재 사고 노동자들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회복하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논문의 주저자인 이혜은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이메일을 통해 "산재 요양 중 자살이 산재로 인정된 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렇지만 정작 산재 노동자의 자살을 예방하는 노력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향후 산재노동자 자살의 구체적인 경로 파악과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 "장해 수준과 상관없이, 오히려 장해가 없는 산재노동자들의 자살률이 더 유의하게 높았다는 점"이 연구의 중요 결과라며, "산재요양이 종결되어 산재보험의 경제적 지원이 끝나고 산재 이전보다 소득이 줄어든 경우에 대해 특별히 대책이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열차를 운영 중인 지하철 기관사. 위 사진은 일터 통권 12호(2004.07) "스크린 도어로 기관사 정신건강을 보장할 수는 없다"에 수록되어 있다.

도시철도 기관사 이야기

일상적 노동환경의 문제로 발생한 최초의 집단적인 정신질환 직업병 사례로 <일터>가 주목한 것이 도시철도 기관사들의 공황장애와 자살이었다. 2003년 당시 서울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던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기관사 2명이 연달아 자살했다.

당시 도시철도노동조합 승무본부 사묵국장이었던 윤성호 기관사는 "처음부터 정신건강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접근했던 건 아니었다"라고 기억한다. 처음으로 자살이 연달아 발생한 2003년은 노동조합 집행부의 대폭 물갈이가 있던 해였다. 선거운동하던 중 기관사 한 명이 자살했고, 당선되고 새로운 임기를 준비하던 중 다른 한 명이 연달아 자살했다. 두 명이 연달아 이런 일을 당하자, 뭔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1~4호선을 운영하는 1기 지하철에서는 자살하는 노동자가 없는데, 도시철도에서만 기관사가 자살한다면, 노동환경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

당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공유정옥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정신질환도 직업병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안내해줬다. 새로운 노동조합 집행부의 첫 활동이 되었다. 도시철도는 지하철공사에서 분사하면서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가 만들어져 있었다. 거기에 혼자 전철을 운전하며, 서비스까지 담당해야 하는 기관사들은 책임감과 서비스 강요에, 자주 혼나고 억눌려 있었다. 연달아 발생한 자살이 노동환경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얘기하자 주변에서 그동안 참고 있던 울분을 터뜨렸다. 윤성호 기관사는 정신건강 문제는 조합원들에게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고 기억한다. 다들 공감하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개별 사건의 산재 보상을 청구했을 뿐 아니라, 서울도시철도공사 내 모든 기관사에 대해 직무스트레스와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정신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기관사가 다수 발견되었고, 먼저 공황장애를 진단받은 기관사들이 연달아 업무 관련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정신건강과 관련이 높은 요인으로, 운전 중 사상사고 경험 여부뿐만 아니라, 도시철도에서 운영 중인 1인 승무제도와 권위적인 인사노무관리도 문제로 지적됐다. 하지만, 사상사고를 줄이기 위한 안전문 도입과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관사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지 않도록 하는 등의 대책에만 합의할 수 있었다. 2인 승무 제도 도입은 결국 합의되지 못했다. 사상사고와 같은 극적인 단일 사건에 의한 정신질환 발생은 산재로 인정해도, '1인 승무' 등과 같은 일상적인 스트레스 요인에 따른 정신건강 영향은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여전한 관행이다.

그래도 안전문 설치는 인명 사고 발생 가능성 때문에 운전 내내 긴장할 수밖에 없던 기관사들의 압박감을 상당히 낮춰주었고, 승객 안전 측면에서도 진일보한 정책이었다. 그 후 일상적인 개선결과 평가와 피드백이 잘 이루어지지는 않던 차에, 2011년 다시 기관사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2013년 다시 기관사 전체를 대상으로 실태조사에서, 사상사고 이외에도 권위적 조직문화 등이 직무스트레스에 중요한 원인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위험군 노동자들을 잘 관리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 또한 확인하였다.

이를 교훈 삼아, 작업장 기반의 노동자 정신건강 관리를 위해 '도시철도 힐링센터'가 문을 열었다. 의사, 간호사, 임상심리사 등이 상주하며 개별 노동자 혹은 노동자 가족의 심리상담과 치료 지원, 조직 차원의 정기적인 직무스트레스 검사와 작업복귀 프로그램, 정신건강 증진 프로그램 등을 시행하고 있다.

도시철도공사의 정신건강 관리 프로그램 도입 과정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정신건강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에 일찍이 종합적 접근의 중요성을 깨닫고, 체계적으로 문제 해결을 도모하였다. 다음으로 긴 시간에 걸쳐 노동자 당사자들의 요구와 참여를 바탕으로 개선 방안 마련했다. 노동자 정신건강의 예방 및 치료에서 개별적이고 단편적 접근이 아닌 집단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 사례였다.

윤성호 기관사는 특히 "그전까지 노사는 항상 대립하는 상대였는데, 힐링센터가 세워지면서, 직무스트레스를 줄이고, 기관사를 보호해야 한다는 같은 방향의 고민을 노사가 함께 한다는 것이 신기한 경험이었다"라고 회상한다. 회사로부터 독립적이고, 단순히 심리상담뿐 아니라 전직이나 업무 복귀 상담까지 포괄하고. 직무스트레스 관리와 노동환경 평가까지 다면적으로 접근하는 힐링센터의 경험은 "웬만한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는 다 했으면 좋겠다"라고 추천한다.

일터괴롭힘에서 조직은 '중재자'가 아닌 '반성의 대상'

200호까지 발간되는 동안, <일터>가 꾸준히 다뤘던 문제 중 하나가 '일터괴롭힘'이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상사의 폭언에 의한 정신질환, 직장 내 따돌림 등 관련된 이슈가 간헐적으로 있었다. 여기에 '직장갑질', '일터괴롭힘'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면서, 지난 3~4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노동 인권 이슈가 되었다.

노동인권 의식이 매우 낮은 한국 사회 일터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가 '직장갑질'이라는 말에 열렬히 호응했고, 그동안 인식되지 않았던 다양한 인격 침해를 '일터 괴롭힘'이라고 명명함으로써 각자의 고통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억압적인 일터로부터 겪은 각자 경험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서사로 묶이면서, 한국의 노동현실을 드러냈다. 물론 처음에는 일부 자극적인 사건들을 중심으로만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직장갑질119 등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이뤄지면서 해당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조직적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리고 각 기관에서 일터괴롭힘 예방 가이드라인을 제정했을 뿐 아니라,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도입하는 등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 중 특별히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주목해 온 부분은 조직적 괴롭힘이다. 조직적 괴롭힘은 일터괴롭힘을 실적이나 성과 향상 수단, 노무관리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조직적 괴롭힘이 중요한 이유는 집단적 노사관계, 자본의 착취 구조와 형태 등이 노동자 정신건강에 매우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가학적 노무관리'라는 말에서도 드러나듯, 회사가 최고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또는 자본이 이윤을 내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노동자의 인격과 정신을 파괴할 수 있다. 조직적 괴롭힘에 주목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들을 드러내보일 수 있다.

일터 148호(2016.05) 표지 사진. 당시 <일터>는 유성기업 고 한광호 열사 투쟁을 "가학적 노무관리" 측면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조직적 괴롭힘의 역사는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청구성심병원,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등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억누르기 위해 일터괴롭힘이 활용된 사례들이 <일터>에 소개됐다. 2010년대 들어서는 KT와 유성기업의 노조탄압, 증권사의 저성과자 퇴출 프로그램 등의 사례가 부각되었다. 이러한 조직적 괴롭힘 또한, 한국에서 일터괴롭힘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데 있어 중요한 계기 중 하나였다.

조직적 괴롭힘은 개인 간의 괴롭힘보다 대규모로 이뤄질 뿐만 아니라, 훨씬 더 분명하고 악의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조직적 괴롭힘은 멀리 있는 일처럼 느껴지기 쉽다. 개인 사이에 발생한 괴롭힘에 비해 개선이 어렵고,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더욱이 문제로 인식되더라도, '노동자 정신건강 침해'라는 관점보다 '노사갈등', '공격적 경영' 등의 틀로 설명되기 쉽다.

예를 들어, 경비원에게 막말을 한 입주자는 손쉽게 가해자로 지목되지만, 은근하게 모멸감을 주면서 마치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것처럼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회사는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조직적 괴롭힘의 양상은 모호하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문제제기를 어렵게 한다. 오히려 자본과 기업은 이를 빌미삼아 피해자와 그에 연대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왜곡 또는 희석시킨다.

지난 2005년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의 집단 우울증을 둘러싼 말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노사갈등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업무상 질병이 아니지 않느냐는 반문과 아프다면서 어떻게 농성할 수 있냐는 비아냥거림 등등. 이러한 공격은 2016년 유성기업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광호 조합원의 산재 승인 후 회사가 승인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 소송을 거는 방식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이에 대해,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일터괴롭힘 대응과 심리상담을 오랫동안 지원해 온 충남 노동인권센터 노동자심리치유사업단 두리공감의 장경희 활동가는 "'조직'에 의한 구조적 괴롭힘은 비가시성 때문에 잘 조명되지 않는다. 사내 규칙과 규율 또는 제도, 경영자의 암묵적 메시지는 괴롭힘을 행사하는 도구이자 은폐하는 장치"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조직적' 괴롭힘과 '개인 간' 괴롭힘이 따로 있다고 얘기하는 것도 또 다른 은폐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노동자 개인들 사이의 폭력(괴롭힘) 역시, 그 배후에는 조직이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를 위한 연단은 확대되어야 하지만, 괴롭힘을 "개인 일탈로의 치부, 방관하면 괴롭힘은 재생산"된다는 것이 장경희 활동가의 주장이다. "조직이 더이상 중재자가 아닌 반성과 변화의 대상임을 제기"하고 조직 자체를 변화의 대상으로 삼을 때, 일터괴롭힘을 줄여나갈 수 있다.

노동자 자살, 죽음 너머 노동환경을 보라

이런 다양한 이슈들이 우리의 시야로 들어오는 과정에 대부분 '노동자 자살'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일터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적대적인 노동환경에 적응하려 애쓰다가, 아픈 몸을 이끌고 일해 보려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산재 요양 중 목숨을 끊은 이상관 노동자를 통해, 경제적 동기에 따른 산재요양 관리가 산재 노동자를 얼마나 압박하는지 드러났다. 도시철도 기관사의 잇따른 자살로 과도한 책임, 억압적인 조직문화 등이 집단적인 직업적 정신질환 발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스스로 세상을 등진 노동자들을 통해, 정리해고가 노동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이며, 그 과정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이 이 트라우마를 어떻게 확대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일과 관련한 자살은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노동환경으로 인한 침해를 드러내는 여러 징후 중 하나로 봐야 한다. 자살이 하나의 극단적이거나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라, '자살 정도는 돼야 주목하는 한국사회'가 극단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자살'의 경우에도 죽음 너머 노동환경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한 해에 1만 3000여 명이 자살하고, 2003년부터 자살예방대책을 운영하면서도, 그동안 정부의 자살예방대책에서 노동자는 빠져있다시피 했다. 1, 2차 자살예방정책에서는 '직업'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매년 발간하는 '자살예방백서'에서도 직업군에 대한 분석은 매우 단순하여, 직업군별 사망자수만 제시될 뿐, 사망률도 분석되지 않는다. 2019년에야 정부가 심리부검을 실시하고 경찰청 조사 기록을 확보하는 등 자살의 원인에 대해 심층적인 접근을 시작하면서, 노동환경에서의 스트레스가 자살 경로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중앙자살예방센터가 펴낸 '2018 심리부검 면담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자살사망자의 사망 전 스트레스 사건 중 정신건강 관련 문제가 84.5%로 가장 많았지만, 직업 관련 스트레스 사건이 68%로 뒤를 이었다. 직장 내 대인관계, 퇴직 및 해고, 이직 또는 업무량 변화 등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자살 경로의 시작점인 첫 번째 위험 요인에서 가장 빈도수가 높았던 것이 업무부담이었다는 점이다. 직접적인 자살 동기는 정신적 건강 때문일지라도, 그 정신적 건강 문제가 시작되는 요인이 업무일 수 있다는 얘기다. 자살 예방 정책에서 일터와 직무스트레스를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업무상 정신질환 연구모임'에 함께 하고 있는 류한소 사회학 연구자는 그래도 노동자 자살과 관련해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가 크다고 본다. "경비노동자 자살 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이 공분하거나 아이돌 가수가 자살로 사망했을 때 '이것도 산재'라는 기사들이 뜨는 것"을 보면서 이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노동자 자살은 구체적인 규모와 원인도 공백으로 남아 있다. "일단은 노동자 자살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통계들이 생겨야 한다. 심리부검 수준의 세부적인 통계가 생겨서 일단 이 사람이 왜 자살을 했는지 추정이라도 해볼 수 있는 국가통계가 있어야" 예방을 위한 활동도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감정노동은 '고객'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주'의 책임

일터가 200호까지 발행되는 동안, 노동자 정신건강 분야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가 있었던 주제가 감정노동이 아닐까 싶다. 2006년 3월 서비스연맹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진행한 감정노동 연구를 소개한 단신 기사로 <일터>에 처음 등장했던 감정노동은 콜센터 노동자, 판매 노동자, 교사, 금융노동자 등 다양한 노동자들의 문제제기로 이어졌고, 다양한 개선책도 제안되었다. 감정노동수당, 감정노동휴가 등의 보상 방법이 개별 사업장마다 시도되었다. 무엇보다 노동자가 고객의 과도한 요구에 시달리지 않도록 예방과 지지체계를 사업주가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산업안전보건법에 도입되기도 했다.

감정노동을 수행하던 노동자에게서 발생한 정신질환도 산재로 보상받게 되었다. 특히 콜센터 노동자가 먼저 통화를 끊을 수 있는 권리를 얻어낸 것은 서비스 노동, 감정노동에서 작업중지권이 어떻게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지 잘 드러내는 사례였다.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 투쟁의 성과로, 2014년 2월 콜센터 상담사들의 인권실태조사 이후 원스트라이크아웃 제도가 도입됐다. 성희롱, 언어폭력, 무의미한 통화 등의 악성 민원에 대해 상담사들이 안내 후 전화를 끊을 수 있게 하고, 곧바로 법적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조치가 중요한 이유는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정책 마련과는 달리, 노동자에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힘과 권리를 부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사례를 통해 작업중지권이 반드시 재래식 사고 위험이 임박했을 때에만 활용되는 권리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콜센터 노동자들의 전화 끊을 권리 보장은 쉬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 이후, 마스크공급, 방역수칙, 재난지원금 등 정부 문의가 폭주하면서, 업무량이 엄청나게 증가한 정부민원안내콜센터의 석소연 분회장은 "끊을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차단하겠다'는 멘트를 하면서 팀장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끊을 수 있다. 결국 허락받을 때까지, 욕설이나 고성을 다 들어야 한다"라고 토로했다. 감정노동자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높아졌다고 해도, 콜센터 업무의 특성상 결국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악성 민원인으로 돌변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이럴 때 스스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노동자의 자율권이다.

또한, 감정노동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성 노동자가 처한 특수한 위험 요인을 드러내는 데에도 기여했다. '타인의 감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은 꼭 임노동에서만이 아니라 많은 여성이 가족, 일터, 사회관계에서 일상적으로 수행하던 일이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감정노동에서 흔히 문제가 되는 '친절과 미소' 요구는 대부분 여성 노동자에게 집중된다. 이런 요구는 업무에 성별화된 역할과 지위를 부여하고,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여성 노동자를 성적 괴롭힘에 취약하게 만든다. 특히 야간에 안내하는 여성 상담원들의 경우, 더 자주 성폭력에 노출되는 것처럼 보인다. 석소연 분회장의 동료 중에도 심한 성폭력 발언을 들은 뒤, 자살 충동을 느껴 옥상에 올라가기까지 한 사례도 있었다.

고객을 상대하는 모든 업무가 노동자를 소진시키는 것은 아니다. 감정노동은 노동자의 감정조차 자본에 의해 어떻게 이윤 추구의 도구로 활용되는지를 보여주는 개념이다. 이를 염두에 둬야만,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회사와 자본은 노동자의 감정을 어떻게 착취하는가? 반대로 노동자의 권리와 주체성을 보장하기 위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가? 고객 응대 등의 업무를 하는 노동자에게 노동과정에 내재된 감정노동이 노동자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는 업무 자체에 더해,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작업환경은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진다. 감정노동과 관련된 과제가 '감정노동' 그 자체로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석소연 분회장에 따르면, 코로나로 문의 전화가 폭주하고, 이 때문에 쉬는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매달 통화품질평가(QA)를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감정노동을 진상 고객과 서비스 노동자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주의 관리 책임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KT 직장내 괴롭힘 보고서 표지 사진. 해당 사안과 관련해서는 일터 138호(2015.07)에서 "이것은 '학대'다 - 사례로 본 가학적 노무관리" 기사로 다룬 바 있다. 출처: KT 직장 내 괴롭힘 조사연구팀.



마음 다치지 않고 일하는 일터는 가능한가?

노동자의 정신질환과 자살은 이윤축적 과정에서 노동자를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안전할 수 없는 상태에 빠뜨리는 자본주의 자체로부터 비롯된다. 어떻게 마음 다치지 않고, 인간답게 일할 수 있을 것인가. ILO 산업보건서비스의 원칙 중 '적응의 원칙'이 있다. 일터의 속도와 질서에 노동자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몸과 삶에 일터를 맞춰가야 한다. 예를 들어, 근골격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량물을 줄이고,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정신건강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 각자가 더 참고 견디는 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유리멘탈인 사람도 일할 수 있는 일터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일터를 바꾸는 데 있어, 노동자 참여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신체건강이나 정신건강 모두 마찬가지다. 노동자가 참여할 때에야 제대로 문제제기할 수 있으며, 실효성 있는 개선방안을 제안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자들 스스로도 일터를 변화시키는 주체로 설 수 있다. 이를 위해 도시철도에서 노동자, 노동조합이 시도했던 것과 같은 다양한 경험이 공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산재보상과 관련해, 그동안 주로 정신질환 산재 승인률을 높이는 데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져 왔다. 앞으로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산재 요양의 질과 재활 과정, 노동자와 사업장 양 측면에서 업무 복귀를 위해 필요한 지원, 다른 질환 요양 중 발생하거나 악화되는 정신질환 문제 등이 폭넓게 다뤄져야 한다. 아직 연 200건이 채 되지 않는 정신질환 산재 신청 자체가 늘어나고,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받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 노동자 건강 영역에서도 정신건강과 관련된 관심과 요구는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류한소 연구자가 지적하듯이, 일과 관련된 정신질환이나 자살에 대한 관심이 "여러 방식의 심리치료, 다양한 힐링문화나 서비스 상품들, 하다 못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충동구매를 하는 '시발비용'에 대한 유행까지 또 다른 힐링상품에 대한 소비로 끝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각자 참아내거나, 각자 다른 상품을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일터를 바꿔내기 위한 시도를 월간 <일터>가 지속적으로 알리고 엮어나가기를 기대한다.

200호 기획 2. 노동시간과 노동자 건강 - 노동시간센터 활동을 돌아보며 / 2020. 10·11

[기획 -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발자취 ]

노동시간과 노동자 건강 - 노동시간센터 활동을 돌아보며

김형렬 노동시간센터

총 200권에 달하는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를 발간하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자신의 활동을 그곳에 담아냈다. 노동운동이자 노동안전보건운동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연구소가 노동시간에 대한 투쟁과 과제를 다룬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장시간 노동, 노동강도, 심야노동, 과로사, 임금과 노동시간 등 노동시간을 둘러싼 현장의 이야기와 변화, 법제도 개선을 위한 요구와 실천을 해왔다.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발자취" 기획의 두 번째 기사에선, 노동시간 문제에 대한 그동안의 문제의식과 주요한 실천들, 앞으로의 과제를 정리해 보고자 하였다.

과로, 삶과 죽음 사이의 줄타기

연구소에서 노동시간에 대한 접근은 과로사 사례와 현장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초창기 <일터>에서는 완성차 공장에서 12시간 맞교대, 한 달에 하루 쉬며 일하는 노동자, 야간조 근무 때 주당 64시간 노동이 이루어졌고, 1년에 4일 쉬고 361일 일한 노동자의 사례를 소개하였다.

한 회사에서 1998년부터 2002년 사이에 59명의 노동자가 과로사에 해당하는 뇌혈관, 심장질환으로 진단을 받거나 사망한 통계를 제시하였다.¹) 부당영업을 강요하는 등의 직무 스트레스와 과로로 사망한 학습지 교사, 인력감축으로 노동시간이 증가하고, 노동강도가 증가하여 사고로 이어졌던 철도 노동자의 죽음을 이야기했다.²)

우리나라는 1953년에 근로기준법을 제정하면서부터 1일 8시간 노동제가 도입되었고, 주당 기준 노동시간은 1953년에 48시간으로 정한 이후, 1989년에 44시간, 2004년에 대기업부터 40시간으로 단축되어, 2011년에 5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에게 주당 40시간이 적용되었다. 그럼에도 법에 존재하는 1일 8시간, 주 40시간 노동은 노동시간특례제도와 같이 수많은 예외조항을 담아 다수의 노동자에게 이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전국학습지산업노조(위원장 이소영) 주최로 6월 26일(토) 오후 2시 울산대공원 동문에서 열린 ‘고 이정연 교사 추모제’. 일터 통권 13호(2004.08) 특집 <과로사 대응,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다룬 바 있다. 출처: 참세상

밤에는 집에 가서 자야 한다

밤에는 집에 가서 자야 한다. 병원, 경찰, 소방 같은 야간에 불가피하게 일해야 하는 공공영역을 제외하고 생산을 목적으로 반드시 야간에 노동해야 하는 경우는 없다. 야간노동이 심장질환, 수면장애, 소화기 장애, 심지어 호르몬 교란을 일으켜, 유방암, 전립선암, 대장암 등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노동자 건강을 위협하는 야간노동을 생산을 목적으로 꼭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반인권적이다.

<일터> 통권 30호에서는 "노동안전보건투쟁, 이렇게 나아집니다. 4대 실천의제를 중심으로"라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4가지 실천의제 중 "교대제로부터 생명 지키기-심야노동 철폐"를 첫 번째 실천의제로 제시하였다. 당시의 문제의식은 교대제를 없애는 것까지는 어려우나, 생산을 이유로 24시간 운영하는 제조업의 질서를 노동자 건강권을 근거로 심야노동을 제한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여러 완성차, 부품사들의 심야노동을 줄이는 주간연속2교대제 전환으로 이어졌다.

"심야노동 철폐는 교대제로부터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는 첫 발걸음일 수 있다. 물론 심야노동 철폐는 노동자의 몸과 삶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일 뿐이며, 그것이 곧바로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질을 보장해 주거나 자본의 이윤율에 타격을 주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심야노동 철폐는 교대제 문제의 근본 해결이나 완벽한 대안일 수는 없지만, 중요한 시작임은 분명하다.

특히 완성차와 조선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국의 제조업 체계를 고려한다면, 앞으로 상당한 범위의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서비스업에서도 심야노동을 확대시키고 있는 최근의 흐름을 본다면, 심야노동 철폐는 24시간 노동하는 사회를 구축하려는 자본의 시도에 맞서는 투쟁의제로 적극 발전시킬 문제라 하겠다."³)    

반쯤의 성공, 주간연속 2교대 전환
  
심야노동을 없애기 위한 현장의 투쟁이 진행되었다. "노동시간 연장 없는, 실질임금 삭감 없는, 노동강도강화 없는 주간연속2교대"를 주장하였고, 실제 "두원정공"은 이를 실현시켰다. 점심시간이 포함된 하루 8시간 노동,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오후 4시부터 밤 12시까지 근무하는 주간연속2교대를 2010년에 실시하였다. 주간연속2교대와 함께 월급제도 시행하였다.

교대제 변화 이후 노동자들의 건강 수준의 개선이 보고되었다. 교대제 개선 6개월 후와 1년 6개월 후에 두 차례 설문조사를 했다. 삶의 질과 노동의 질이 좋아졌다는 노동자가 많았다. "교대제 개선 전에 비해 수면의 질이 좋아졌다"라고 응답한 노동자들이 6개월 후 60.4%에서 1년 6개월 후 69.6%로, "노동시간 단축으로 근무 피로도가 줄어들었다"라는 노동자들은 70%, 78%로, "자신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횟수와 시간이 늘어났다"라는 노동자들은 64.5%, 67.8%로, "퇴근 후 집안일을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라는 대답은 75.9%, 82.8%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라는 대답은 57.2, 66.9%로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적인 변화가 확대되었다.
  
대표적인 완성차 회사들은 2012년부터 주간연속2교대 근무로 전환이 이루어졌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연구소는 노동시간 연장 없고, 실질임금 삭감 없고, 노동강도 강화 없는 교대제 변화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시간제 임금체계로 인해 발생하였던 장시간 노동으로 유지되던 실제 임금의 감소가 있었고 자동화와 비정규직 확대, 라인의 재배치 등이 이뤄졌다. 명확한 정량화는 어려웠으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 노동강도가 강화되었다. 주간연속2교대로 전환되었지만, 야근과 특근 또한 여전히 남아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에 노동시간센터에서는 2015년 8월호 <일터> 특집 기사를 통해 부품사들의 교대제 전환 문제를 다뤘다. 임금삭감 없고 노동시간 연장이 없는 교대제 변화를 만드는 대신, 실질적인 노동강도 증가를 받아들였던 완성차 방식의 교대제 전환을 다른 사업장에도 도입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자동차 부품사의 경우에는 이미 상당한 노동강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완성차 회사에서의 교대제 전환 방식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것은 아닐지, 적정한 수준에서 노동강도 증가를 제한할 수 있을지 등 면밀한 검토가 필요했다.

"야간노동의 단축 효과가 예상했던 것보다 미미하고, 토요일, 일요일 특근이 다시 시작되는 등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가 크지 않은 불완전한 변화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일부 사업장에서 교대제 변경과 함께 노동 강도의 증가가 있거나 예측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임금 감소에 따른 조합원들의 반발도 있었다. 완성차 공장의 교대제 변화 과정에서 발생한 이와 같은 문제는 예측했던 문제이거나 얻은 성과의 크기에 비해 작은 문제라고 판단하는 관점이 있다.

또 한 측면으로는 이러한 문제와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야간노동 철폐를 만들어나갈 기획과 현장 통제력이 충분치 않다는 비관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동차 부품 사업장의 주간 연속 2교대로의 전환은 임금, 노동 강도, 고용(비정규직 확대)의 문제와 연동되어 몇 가지를 양보하거나 맞바꾸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임금의 유지를 위해 생산물량을 더 늘리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변화가 단위 사업장에서 고립되어 진행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이에 부품사들의 주간연속2교대 이행 실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이행 과정에 대해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즉, 이행의 과정에서 임금, 노동강도, 고용의 문제가 어떻게 논의되고 결정되었는지, 조합원을 설득하는 과정은 어떠했고, 사측의 대응과 투쟁 방향을 설정해 가는 과정은 어떠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이러한 확인과 평가를 통해, 향후 주간연속2교대뿐 아니라 이후에 벌어질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한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기초 자료를 만들고자 하였다.”4) 

주간연속2교대제 전환은 부품사에게도 노동시간 단축의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냈다. 절대적인 노동시간의 감소는 그 자체로 긍정적일 수 있었고, 이로 인한 건강 수준의 향상도 일부 가져왔다. 다만, 자본의 공세 역시 거셌다. 숨은 여유율을 찾아내어 실제 노동강도를 높였고, 현장에서 '물량과 임금의 연동'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계속해서 심었다. 교대제 전환을 통해 노동의 몫과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되찾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음을 깨닫는 계기였다. 생산력의 발전만큼 노동시간, 노동밀도를 감소시키는 싸움을 해내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한계였다고 할 수 있다.

교대제 개선이 가져온 일부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현장 대응의 문제를 짚어내고자 한 것은 노동시간 단축과 심야 노동의 철폐는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장의 힘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면, 더이상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절실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터 통권 32호(2006.05)에 수록된 만평. 당시 제조업 현장에서는 노동강도를 낮추기 위한 일상활동으로 맨아워(M/H) 투쟁이 진행되었다. 출처: 선전위원회

노동시간센터 만들어지다

2012년 연구소 창립 10주년 준비를 하며, <노동시간센터>를 만들기로 결의하였다. 연구소 초기부터 가졌던 노동시간, 심야노동, 노동강도의 문제를 노동보건운동의 주요한 문제라고 인식하였기에, 현장에 기반을 둔 실천적인 연구와 정책대안을 만들고, 현장에서 실천과 연대를 하고자 하였다. 조직 형식은 연구소 내에 위치하지만, 노동시간센터 회원은 개방된 형태로 연구소 회원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를 보장하였다.

현장 노동조합 활동가, 학계(사회학, 직업환경의학, 사회복지학 등), 사회단체 활동가, 학생 등 다양한 분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앞서 언급한 부품사 교대제 전환 관련 연구, 책 발간 사업('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굴뚝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보이지 않는 고통'), 정책연구활동(산재보험연구, 최저임금제, 직업성정신질환연구, 과로사 기준 마련), 현장 연구(택시노동조건 실태연구, 사무금융 노동자 직무스트레스 연구) 등을 실시하였다. 매월 공개토론회를 통해 다양한 노동시간 관련 주제를 다뤘다.

제대로 된 과로(사) 인정기준을 마련해야
  
노동시간센터에서는 과로의 인정기준, 질적인 기준의 예시를 만들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법원판례, 질병판정위원회 사례검토를 통해, 과로의 기준이 되는 노동시간 길이를 낮추고, 과로의 질적 기준을 다양하게 제시할 것을 요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대법원에서 업무상 이유로 고객과 잦은 술을 마셔야 했던 노동자의 사망을 직업병으로 인정한 것이 최초의 과로사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늘어나자, 1995년에 노동부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직업병 목록에 뇌혈관 심장질환을 포함하게 되었다. 2004년에 2천 건 이상이 직업병으로 산재승인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2007년 이후 직업병 인정기준의 변화가 생겼다. 2007년 이전에는 "업무수행성"이라고 해서 일을 하던 중에 뇌출혈이나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질 경우에 자동으로 직업병으로 인정하는 기준이 있었으나, 2007년 이후로는 작업 중 발생한 사고라도 업무관련성이 없다면 직업병으로 인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새로운 기준의 적용은 객관성, 과학성, 근거 중심 등을 강조하며 산재승인이 더욱 어려워지는 현상을 낳았다. 그 결과, 2007년 이후 직업병으로 인정되는 과로사의 사례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이후 만성과로를 발병 12주 평균 60시간으로 정하는 변화와 2018년 이후 12주 평균 주당 평균 52시간으로 과로의 기준을 정하는 변화가 있었다.

과로라고 하면 노동시간 길이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에 더해, 단위 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노동의 양을 나타내는 노동밀도 (노동강도), 직무스트레스, 교대제 등이 과로를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직무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사례로 갑자기 업무량이 늘어나는 상황, 일은 그대로라고 해도 일을 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경우, 과도한 책임을 부여받는 경우, 새로운 부서로 옮겨 직장 적응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 직장에서 집단 따돌림을 경험, 직장 내 구조조정에 의해 심한 고용불안을 경험, 잦은 지방 출장, 기한이 정해진 프로젝트의 참여, 회사 내 과도한 경쟁구조 등을 들 수 있다. 야간노동을 포함한 교대근무를 하는 것도 과로를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직업병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그 원인을 찾아 예방하려 하지 않는다. 과로에 의해 사망하는 노동자들이 직업병으로 인정되기 위한 연구와 기준마련이 중요한 이유다.

또, 다시 과로의 현장이

기술 및 산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노동의 형식과 내용에서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다시 과로를 이야기해야 하는 현장이 넘쳐나고 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택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문제는 주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은 전통적인 임노동 관계만을 보호 대상으로 삼고 있는 법제도에서 배제되어 있다. 이처럼 법제도가 변화하는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면서, 노동권과 사회보장의 사각지대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주류 산업으로 급속히 등장하고 있는 IT,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과로 또한 앞으로 드러내고 해결해야 할 과제다.

"넷마블 설문에서는 흥미로운 질문이 포함돼 있었는데, 한번 출근해서 회사에 머물렀던 최장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이었다. 놀랍게도 전체 응답자의 30%가 36시간 이상 회사에 머물러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퇴직자의 40.1%였고, 현재 재직 중이라는 응답자 중에도 21.4%로, 현재 재직 중이라는 응답자로만 좁혀 봐도 5명 중 한 명은 회사에 36시간 이상 머물러봤다는 얘기다."5)

나아가 버스 노동자의 과로는 노동자 건강과 시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 놓여 있는 문제이다(근로시간특례제도에서 노선버스가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장시간 운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집배 노동자의 과로와 이로 인한 사망 또한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경기 시내버스 노동자들은 하루 15시간 이상 운전하는 경우가 전체의 95.7%나 차지하였다. 또 경기 시내버스 노동자들의 주당 운전시간은 56시간 이상이 76.3%였고, 72시간 이상도 4.9%나 됐다. 경기 광역버스도 장시간 운전에서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경기 시내와 경기 광역버스 노동자들은 격일제 운전이 기본이나 한 차량당 2명의 기사가 배치되어 있지 않아, 실제 하루 15시간 이상씩 3일 연속 근무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기본임금이 적어, 적정임금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이런 장시간 노동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용하고 있었다.6)

플랫폼 노동, IT,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뿐 아니라 버스, 택시, 집배, 보건의료,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 이르는 전통적인 산업의 노동자들에게도 장시간 노동, 과로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노동시간이 일부 줄었다고 하지만, 기술의 발달에 힙입어 자본은 노동자들의 노동밀도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노동과정을 통제·관리하고 있다. 택시노동의 사납금 제도, 버스 노동자들의 저임금 민영 구조, 집배, 보건의료 노동자들과 같은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의 공공지원 부재 등 각종 현안에 대해서 현장에 기반한 대안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출처: 우정사업본부

노동시간 단축, 노동강도 저지 투쟁은 노동자 생존과 건강권의 문제

연구소는 지속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일자리 창출 프레임으로 보는 것의 문제를 지적해 왔다. 노동시간을 일자리 창출로 연결 짓는 '노동 경제학'이 아니라 노동시간의 사각지대에서 허덕이고 있는 이들을 바라볼 '노동 인간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노동강도를 통해 무한 이윤을 축적하려는 자본의 시도를 비판하는 실천들이 요구된다.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 나누기가 아닌 노동자 삶의 문제, 생존과 건강권의 문제다. 주간연속2교대제의 문제를 건강권 중심으로 파악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노동시간 단축분만큼 임금을 보전하기 위한 연장근무, 특별근무 비중을 높이고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노동강도를 높이는 방향이 전개되었다. 지난 투쟁을 돌이켜 볼 때, 완성차에서부터 기형적인 주간연속2교대제를 막아내지 못하면서, 부품사로 내려가면 갈수록 노동자들은 높은 노동강도를 견디며 일하게 되었고, 이제 부품사 노동자들에게는 자본에 더 양보할 노동강도가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 이르기도 했지 않았는가.

노동안전보건운동은 지난 노동운동이 생산력의 발전만큼 노동시간 단축을 노동자의 권리로서 쟁취하지 못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결과, 노동강도는 올라가고 고용은 이뤄지지 않는 구조가 재생산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리고 앞으로도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평등하고 자유로운 노동의 출발점이자 지향으로 삼아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삶이 우선되는 세상으로의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

노동 유연화뿐만 아니라 노동시간 유연화도 심화되고 있다. 이는 산업구조의 측면에서 플랫폼 노동의 등장과 연관된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등이 이뤄지면서 재택근무가 확산되는 등 주춤했던 노동 유연화 논의가 다시금 활발해지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로 경기침체, 고용불안까지 촉발되었다. 현 상황을 돌이켜 볼 때, 앞으로 세워나가야 할 노동안전보건운동, 노동시간센터의 전망은 다음과 같다.

시간제 저임금 구조에서 비롯된 생활임금 유지를 위한 장시간 노동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현장의 노동강도를 평가하여 과도한 노동을 막아야 한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휴게시간을 확대함으로써,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의 통제권과 여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한 과제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심야노동, 교대제, 장시간 노동은 앞으로도 지속해서 대응해나가야 할 과제다. 동시에 저임금 (초)단시간 노동, 과로 자살, 플랫폼 노동 등은 새롭게 쟁점을 만들어가야 할 주요 의제들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보건의료 노동자, 운송업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노동시간 특례제도(근로기준법 제59조)의 폐지와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권 및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은 긴급하게 개입해야 할 사안이다.

이러한 장단기적 과제를 놓고서, 날카롭게 문제 제기를 하고 사안별 대응을 이어나가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기 노동의 주인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다양한 현장연구와 노동강도 저지 투쟁이 더욱 힘차게 이뤄져야 한다.


1) 일터 통권 2호(2003.09), 기획1, "노동강도 강화, 그 삶과 죽음 사이의 줄타기 - 현대자동차 생산공장 사례를 중심으로.", 김봉길(현대자동차민주노동자 투쟁위원회), p.14-18

2) 일터 통권 3호(2003.10), 기획2, "철도의 안전사고, 노동자 몇 명 구속되면 해결될 수 있을?", 손미아(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준)연구위원/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p.16-19

3) 일터 통권 30호(2006.03), 특집. "노동안전보건투쟁, 이렇게 나아집니다 - 4대 실천의제를 중심으로.", 공유정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p.12

4) 일터 통권 132호(2015.08), 특집. <노동시간을 둘러싸고 계속되는 싸움>, "주간연속 2교대 시행 현황과 교대제 변화의 영향", 김형렬(노동시간센터(준) 회원, 가톨릭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p.30

5) 일터 통권 158호(2017.03), 연구 리포트, "게임개발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실태.", 최민(상임활동가), p.25

6) 일터 통권 144호(2016.01), 연구 리포트. "장시간 버스 운전, 운전노동자의 건강과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 - 버스 운전노동자의 과로 실태와 기준 연구.", 이이령(회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직업환경의학과), p.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