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돌, 밥, 이 /2015.4

[직업환경의학의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돌, 밥, 이

공유정옥


몇 년 전, 사업장 보건관리 대행차 경기도에 있는 어느 채석장에 출장을 나갔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구내식당에 들어가 앉았다. 이윽고 오전 업무를 마치고 잔뜩 허기진 노동자들이 들어왔다. 대개 오륙십대 나이로, 키는 작지만, 몸이 제법 다부지다. 방금 씻고 온 두 손과 얼굴을 빼고는 여기저기 하얀 돌 먼지투성이다.

안녕하세요, 건강 상담하러 오세요, 나랑 간호사가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나긋나긋하게 말하면 못 듣기 때문에 크게 말해야 한다. 채석장 소음 때문에 청력이 다들 나이에 비해 떨어져 있다. 하지만 씩씩하게 인사해도 대부분 힐끗 쳐다만 보고 배식대로 직행한다. 가끔 낯익은 ‘단골손님’들은 눈인사를 건네기도 하지만 발걸음은 배식대로 향한다.

채석장 식당에는 제육볶음 같은 고기반찬이 꼭 하나씩 나온다. 힘을 많이 쓰는 사업장에 가면 늘 그런 것 같다. 밥 푸는 모습을 본다. 배가 몹시 고플 텐데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차분히 밥을 퍼서 쌓아올린다. 멀리서도 식판 위로 하얀 밥 봉우리가 보일 정도다.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식판 위에 김치 봉우리, 나물 봉우리, 제육볶음 봉우리가 하나씩 소복하게 쌓인다.

일단 밥을 받아서 좋은 자리를 찜해 놓으면 몇 분이 우리에게 온다. 혈압만 재고 벌떡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혈당도 재고 여기저기 아픈 데 얘기를 좀 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담은 길어야 삼사 분을 넘기 어렵다. 증상을 이것저것 듣고 나서 뭔가 얘기를 좀 해볼라치면 밥이 식는다고 야단이다. 식사 다 하신 다음에 다시 오시라고 보내드리는 게 상책이다. 그러고는 십여 분 동안 우리는 그들이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려야 한다. 하도 맛나게 먹으니, 어떨 땐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바라보기도 한다. 기다리는 동안 이따 점심은 뭘 먹을까, 여기 음식이 좀 남으면 그냥 여기서 때우면 좋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한다.


밥을 먹는 동안 얘기를 나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식판에 수저가 달그락거리는 소리, 김치 씹는 소리, 후루룩 국물 마시는 소리 속에서 낮게 웅성거리다가 한 번씩 웃는 소리, 기침 소리가 나는 정도다. 단조로운 소음인지라 가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음소거 단추를 누른 것처럼. 그럴 땐 밥을 씹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들이 더 소상히 보인다.

그를 본 것도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유난히 깡마른 몸집에 얼굴이 작아서, 대추씨라 불리던 옛날 코미디언을 연상시키는 외모의 아저씨였다. 그가 밥을 씹는 모습이 어딘가 남달라서, 왠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찬찬히 지켜보니 그는 남들보다 오래오래 씹었다. 씹을 때마다 아래턱이 유난히 많이 움직였고, 두 볼은 깊이 꺼졌다 나오곤 했다. 옛날 우리 할머니가 틀니 없이 밥을 씹을 때 보았던 모습이었다. 밥을 다 먹은 뒤 물 한 잔으로 입을 오래오래 헹구는 것 하며, 상담하는 내내 쯥쯥거리며 입 청소를 하는 것조차 꼭 우리 할머니 같았다.

그는 어금니가 없었다. 앞니부터 송곳니까지만 용케 남아있었다. 어금니가 받쳐주지 못하는 두 볼은 움푹 패었고, 가뜩이나 작은 얼굴은 더욱 작아 보였다. 입안에 혀가 의지할 곳이 없으니 말할 때마다 바람이 샜다. 가족은 없고, 학교는 못 다녔으며, 여기 일이 힘들긴 하지만 혼자 사는데 궁할 정도는 아니라 했다.

하지만 그는 어금니가 없었다. 오십 대 중후반의 나이에, 요새 그 흔하다는 임플란트는 물론이고 틀니도 없었다. 돈이 없어서 못 한 건지 불편할 게 없어서 안 한 건지 묻지 못했다. 어쩌다 어금니가 몽땅 빠진 건지도 묻지 못했다. 다만 그의 삶에 이를 잘 닦아야 할 이유나 충치 치료를 받으러 갈 생각 같은 게 자리 잡을 수 없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치과에 한번 가보시는 게 어떨까요? 넌지시 건넨 한마디에, 그는 입을 다문 채 배시시 웃어 보이고는 묵례를 하고 일어섰다. 그는 돌 캐는 노동자, 이가 없어서 밥을 오래 씹어야 하는 노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