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악에 맞서자①]
국회 문턱 넘은 노동개악, 그에 맞선 우리의 투쟁
박기형 상임활동가
지난 12월 9일, 노동개악 법안들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보험료징수법 개정안, 고용보험법 개정안, 공무원노조법 개정안, 교원노조법 개정안, 근기법 개정안, 노조법 개정안, 산재보험법 개정안 등 총 7개 노동관련 법안이 처리되었다. 이 중 노동권을 제약할 독소조항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노조법 개정안은 각각 76.31%와 62.95%로 가결되었다. 민주당은 이 두 법안을 당일 새벽 1시 30분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날치기 처리하였다.
반면, 10만 국민동의청원을 받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심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몸과 삶을 지키기 위한 법은 도외시 한 채, 과로사회를 심화시키고 노동권을 제약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노동개악은 현재 진행형이다.
노동개악 국면의 지형
지금의 노동개악 시도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약속했던 '노동존중 사회 실현'과도 거리가 멀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변화의 흐름에도 역행한다.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며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지 50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노동권 보장은 미약하기만 하며, 각종 사회적 변화 가운데 새롭게 등장하는 노동형태들에 놓인 노동자들은 노동권 사각지대에 계속해서 머물고 있다. 그리고 고 문송면군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지 32년이 지났다. 그러나 오늘도 수많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일하다 아프고 다치고 죽는다.
올해 매일 7명이 퇴근하지 못하는 죽음의 일터를 멈추고 바꿔보자고, 모든 일하는 사람이 노동자로서 존중받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보자고, 노동자와 시민이 힘을 합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전태일3법을 마련하여 10만의 국민동의청원을 하였다. 코로나19가 극심한 상황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모이고 흩어지며 목소리를 내고 사회개혁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공수처법, 국정원법 등 권력기관 개혁을 우선입법과제로 내세우면서, 다른 모든 법안을 뒷전으로 밀어내었다. 며칠 전 임시국회가 열렸지만, 여전히 두 법안은 법안 심의조차 제대로 거치지 못했다. 이들은 서로 선후문제나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마치 자신들이 하는 모든 선택이 세상 모든 정의를 담보하고 있는 것인 양, 노동존중 사회를 위한 과제는 나중에 할 수 있고 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나중에, 언젠가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노동존중 사회' 실현에 역행하는 수많은 조치를 아무 거리낌 없이 통과시켰다.
노조법 개정 논의의 출발점
그러면서 그들은 노조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개정안을 가리켜, 'ILO 3법'이라 부르며, 국제노동기구 ILO의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것이라 주장했다. 한국은 ILO에 가입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총 29개 항만 비준했으며 핵심협약 8개 항 중 4개 항을 비준하지 않았다.
그 4개 항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결사의 자유 협약'(87호·98호)과 '강제노동 협약'(29호·105호)이다. 이 중 전자가 바로 '노조할 권리'에 해당하는 조항이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비준하지 않다가, 올해 서둘러 노조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환노위 날치기 통과를 하면서까지 비준에 나선 것인가? 더욱이 얼핏 보기에 ILO협약을 비준해 노동권을 강화시켜주는 법안에 60%가 넘는 위원들이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찬성한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선, ILO 핵심협약 비준을 누가 어떻게 요구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국은 ILO, OECD, EU로부터 이 4개 항의 비준을 지속해서 요구받았다. 그 압력이 가장 높아진 때가 바로 최근 추진 중인 EU와의 무역협상을 하던 때였다. EU는 한-EU FTA를 체결할 당시 "핵심협약 체결을 위해 노력한다"고 약속한 조항을 근거로 한국 정부에 대해 경제적 제재를 시사하며 압박을 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EU와의 경제적 관계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ILO 협약 비준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결국, ILO 3법이라 불리는 노동 관련 법률 개정안들은 애초부터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EU와의 무역갈등을 해소해, 자본과 기업을 위한 경제활동을 원활히 지속하기 위한 것이었다.
노조할 권리를 제약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법 제정의 목적이 무엇이든, 그 논의 출발이 무역갈등해소였든 아니든, 국제사회가 요구한 바는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을 비준하라는 것이었다. 해당 핵심협약의 요지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노조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의 법률 개정안은 노동권을 강화시켜주는 거란 게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 아닌가. 출발점이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괜찮지 않은가. 여기가 바로 문제의 지점이다.
ILO가 지속적으로 한국 정부에 요구해온 건 특수고용노동자, 하청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법‧제도적으로 노동3권을 온전히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노조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듣겠다며, 일견 공평무사한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정작 정부가 제출한 노조법 개정안은 이들의 노동3권을 보장하기는커녕, 부족하지만 어렵사리 지켜온 현재의 노동권들마저 후퇴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물론 공무원노조법 개정으로 가입 기준 가운데 직급 제한을 폐지하고, 교원을 제외한 교육·소방공무원 및 퇴직공무원 등의 노조 가입도 허용하도록 했다. 일부 개선된 면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정작 핵심 쟁점이었던 노조법 개정은 개악이라 비난받기에 충분했다.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도 허용했다고 하지만, ILO 핵심 협약 비준의 의미에 비춰볼 때, 너무 당연한 상식을 법으로 확인시켜주는 것에 불과했다. 기존 정부안에서는 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에 제한을 두는 등의 단서 조항을 뒀다가 비판이 거세게 일자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더욱이 실상을 들여다보면, 실업자·해고자 등은 현재 산별노조에 자유롭게 가입이 가능했었다. 그런데 기업별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라 개선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이다.
오히려 실업자·해고자 등이 사업장 내에서 노조활동을 하려면 '사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고, 실업자·해고자 등은 기업별 노조의 임원 및 대의원으로 출마하는 것 자체가 금지된다. 그나마 좋게 봐준다면, 심의 과정에서 독소조항이라고 비판받아온 '생산 주요 시설에서의 쟁의행위 금지' 조항도 제외되긴 했다. 하지만 이를 대신하여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여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의 쟁의행위 금지' 규정이 신설되었다.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체협약 유효기간 최대 3년 연장으로 기업에서 단체협약을 지속해서 미룰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조합원만 기업별 노조의 임원·대의원을 맡을 수 있다는 조항이 남아 해고자의 임원 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등 비종사자의 노조 활동 또한 제약할 수 있다. 더욱이 현재에도 현장에서는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못한 노조는 교섭대표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 유효기간 동안 교섭도 할 수 없고, 근로시간 면제를 인정받아 조합활동을 하는 것도 공정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빈번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악안이 시행되면, 사용자와 어용노조가 담합하여 최소 4년간 교섭대표노조가 아닌 노조의 단결권, 단체교섭권에 '합법적'으로 제약을 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더구나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조항을 삭제하는 대신, 타임오프제라 불리는 근로시간 면제제도 한도 내에서 하도록 규정함으로써 해당 제도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에 더해, 타임오프 한도 초과 단협이나 기존에 개별 사용자가 동의한 내용을 모두 무효로 한다는 규정을 신설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기존 현행법을 교모하게 후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작 정부가 개정 압력을 받았던 지점인 특수고용, 간접고용,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권 보장은 제대로 이뤄지지도 못했다. 물론 배달노동, 물류·택배 노동 등에서 논란이 일자, 산재법 개정안, 보험료징수법 개정안, 고용보험법 개정안 등을 통해, 이들 노동에서의 처우 개선이 일부 이뤄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노동자로서 노동3권을 제대로 인정하도록 하진 않고 있다.
이를 위해선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노조법상의 규정과 행정관청이 노조설립 신고를 반려할 수 있는 규정을 수정 또는 삭제해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행정집행 중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을 '근로자가 아닌 자'로 보고 노조설립 신고를 반려·지체하는 일은 지금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개정안 자체에서 전혀 다루고 있지 않았다.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한 투쟁들
노조법 개악만이 아니라, 3개월에서 6개월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근기법 개악까지 이뤄졌다. 내년부터 주52시간제가 각 사업장 규모별로 계도기간이 종료되면서 차츰 적용되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탄력근로제 도입을 통해 장시간 노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조치로 이해된다. 이런 탄력근로제의 확대는 장시간 노동에 따른 건강상 위험을 더 가중시키는 조치라고 지속해서 비판받아왔다. 한국의 과로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피를 토하며 장시간 일해야 했던 여공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국회 안팎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노동개악을 비판하며, 노동자와 시민들이 행동에서 나서고 있다. 고 김용균 노동자 2주기를 맞이했지만, 김미숙님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며 아들의 기일에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에 연대함과 동시에, 전태일3법 입법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국회 정문 앞에서 단식농성을 함께 이어가고, 구의역에서부터 국회로 오체투지 행진을 시작했다. 국회에서 노동개악이 시도되고 있던 11월 말과 12월 초에도 노동자들은 떨어져서 죽고 폭발사고로 죽고 기계에 끼여 죽고 과로로 쓰러져 죽었다.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터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기 위해선,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보장받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집단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자기 일터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 전체 노동자 집단으로 연대하여 노동권을 지켜내고 신장하기 위해선, 산별 노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요구하는 노동개악 저지, 나아가 전태일3법 입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바로 이러한 변화들을 쟁취하기 위함이다. 코로나19가 극심한 와중에도 우리는 자신이 행하는 바가 곧 정의라고 생각하는 자기승리 서사에 도취된 저들에 맞서, 전국 곳곳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한 우리의 싸움은 다시, 새롭게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