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마주침 ③]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으로 안전한 현장 만들자! -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야 라이 위원장,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대표 인터뷰
유청희 상임활동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노동안전보건 운동은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 산업재해 피해자와 사망자의 유가족들의 기나긴 싸움이 만들어냈다. 많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조항이 이들의 싸움으로 바뀌고 개선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자본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은 나 몰라라 한 채 이윤만을 좇으며, 노동자의 죽음까지도 비용으로 처리할 뿐 현장을 바꾸는 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끈질긴 싸움으로 안전과 보건 관련 제도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가운데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어 현장 변화가 너무나도 더딘 곳이 있다. 바로 이주노동자들의 일터다.
이주노동자들의 산재발생률은 한국인의 7배로 수치 면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이주노동자들이 산재신청에 대해 잘 모르거나 사업주가 승인하지 않아서, 또는 미등록 신분이 불안해 많은 경우 산업재해 신청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사업장에서 일상적으로 듣고 겪는 고성, 인종차별 발언, 폭행은 이들의 정신 건강을 갉아먹기도 한다.
이런 이주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노동안전보건 운동은 무엇일지, 이주노동자들이 운동의 주체로서 서기 위해서는 노동안전보건 운동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 법의 사각지대를 어떻게 메꿀 수 있을지를 묻기 위해 이주노동자노동조합(아래 이주노조)의 우다야 라이 위원장과 포천 이주노동자센터의 김달성 대표를 만나보았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사업장 변경 자유를 위해, 또 이주민 차별을 막기 위해 싸워왔다. 2014년부터 노조 위원장직을 맡아 이주노동자 처우 개선과 조직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김달성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과거 노동운동 활동 후 일반 교회 목회 활동을 이어가다가 3년 전부터 영세 소규모 제조업 사업장과 농업 사업장이 분포해있는 포천 지역에서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병들게 하는 사업장 변경 제한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게 최초 3년간의 노동 시간을 준다. 사업주가 승인한다면 1년 10개월간 더 일을 할 수 있고, 또 한 번의 승인이 있으면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재입국할 기회가 생긴다. 사업장 변경은 온전히 사업주의 권한이기 때문에 사업주가 근로계약 해지를 원할 경우, 사업장의 휴업, 폐업,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또는 부당한 처우가 있을 경우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그 외에는 사업주 승인이 있어야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직장에서 한국인 관리자에게 폭행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한다 해도 사업주가 승인하지 않으면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산업재해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더라도 사업주 승인 없이 직장을 옮길 수 없는 이들에게 강제노동은 먼 얘기가 아니라 매일 맞닥뜨리는 현실이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노동자로 들어와 있는데 직장 변경 권리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강제노동에 노출되는 거죠.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고 한계를 넘어서면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런 건 전혀 고려가 되질 않아요. 사업장에서 산재사고, 또 산재사망도 일어나는데 열악한 근로조건이 개선되지를 않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계속하고 있어요. 사업주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개선 노력을 하지 않아요. 권리가 인정되어야 사업주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할 수가 없죠.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하는 이주노동자도 있습니다. 사업장 이탈해서 미등록 상태가 되는 노동자도 있고요."
김달성: "산재보상신청 하는 데 거기서부터 걸려요. 사업주 동의가 없어도 산재신청할 수 있지만 방해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합법적인데도 못 하는 거죠. 고용허가제 첫 기간은 3년이고 1년 10개월 연장하기 위해서 사업주 승인이 필요하고, 그 후 본국에 돌아갔다가 재입국을 할 때도 사업주 승인이 필요합니다. 그런 법과 제도하에서 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산재보상보험 신청조차 이주노동자가 포기하게 만드는 거예요. 법과 제도적 문제가 노동자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거죠. 고용허가제가 산재를 조장하기도 합니다.
올해 1월, 양주에 있는 회사에서 보일러가 폭발해서 노동자 2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대재해를 당했는데 사망자 중 1명이 이주노동자였습니다. 재해자 중 절반이 이주노동자였고요. 재해당한 이주노동자가 사고 충격이 심해서 불안해 일을 못 하겠다고 하면서 사업장 변경을 신청했는데 사업주가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세 노동자가 외상 후 스트레스를 심각하게 앓았고 담당 의사도 사고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거든요. 사업장 변경하려고 5개월 넘게 요구하다가 겨우 승인받았습니다."
한국인의 7배 산재발생률
2018년 이주노동자의 산재발생률은 1.42%로, 0.18%인 한국인 노동자보다 7배가 높다. 그만큼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이다. 영세 사업장이 대다수이다 보니 사업주 역시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경우가 많다.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유해하다고 지적하니 어떤 사업주는 "30년간 내가 썼지만 아무 문제 없었다"고 했다는 우다야 라이 위원장의 말이 씁쓸하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단기간 머물다 가지만 유해 물질을 취급한 후 당장 나타나지 않을 질환이 나중에 나타날 수 있어 그 위험 정도를 알기 어렵다. 이런 위험을 알고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안전보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안전장치가 필수적이겠지만, 그런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이주노동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김달성: "3년간 만나 본 이주노동자 중 안전교육을 받았다는 사람은 한, 두 명 정도뿐이에요. 99%가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거의 없는 거죠. 공장에 안전장치도 설치되어있지 않고요. 올해 초 양주 가죽공장 사고를 보면 폭발이 엄청 크게 나서 주변 공장들이 파편 맞을 정도였습니다. 가죽공장은 안전관리사가 있어야 하는 업종인데, 안전 관리사를 두지 않고 안전조사를 하지 않아 기소됐거든요. 큰 보일러를 쓰기 때문에 안전 관리사가 있어야 하는 공장인데 없었습니다. 안전장치가 있어도 빼놓고 일하게 하는 것이 현실이고요."
산재예방을 위한 제도는 전무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지 않는 소규모 사업장이기에 산재예방은 먼 얘기일 뿐이다. 예방은 고사하고 산업재해가 빈번히 일어나는데도 산재보상보험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주노동자들이 고용되는 농축산어업의 경우 법인이 아닌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사업주가 산재보상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고나 질병이 발생하는 사업장에 법을 적용해 산재를 예방하게 만들고 정부가 작업 환경 감시를 통해 안전을 유지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정부 정책에 그런 고려는 전혀 없어 보인다.
농축산어업에서는 법인이 아닌 사업주에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문을 열어두지만, 이들에게 산재보상보험법이나 건강보험에는 가입을 강제하지 않아 노동자 보호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본적인 산재보상보험과 건강보험 보장이 시급해 보인다.
김달성: "농어촌은 대부분 기계화되어 있습니다. 산재가 적지 않아요. 그런데 5인 미만 사업장이 대다수라서 산재보상보험 적용이 안 되죠. 어떤 이주노동자는 과수원에서 일하다가 허리뼈가 부러지는 재해를 입었는데, 산재보상도 안 되고 근로기준법으로도 보상을 못 받았습니다. 1년간 1억 넘는 비용이 들었는데 네팔 공동체, 일반 시민들이 기금 모아서 병원비를 지원해줬습니다.
5인 이상 농어촌 사업장은 산재보상보험법 적용 대상이지만 이주노동자와 사업주가 주종관계나 마찬가지라서 산재보상 신청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근로기준법 63조(농축산어업 등에 근로시간, 휴게, 휴일 등 적용 제외) 때문에 제조업보다 더 옥죄는 상황이고, 하루도 안 쉬고 일하는데 수당도 없습니다."
이주노조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입국하는 인천공항에서 직접 사전 교육을 하기도 한다. 공항에 막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에게 고용허가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개선할 점, 노동3권에 대해 설명한다. 노동자에게 문제가 생길 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산재신청, 보상 안내 등도 교육 내용이다.
이런 기본 교육은 사업주가 실시해야 하지만, 고용허가제는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사용'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노동자의 노동권, 건강하게 일할 권리에 관심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예상도 못 한 채 다치고 폭력에 시달리며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안전한 현장을 위한 과제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사회는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사업장을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우다야 라이: "노동강도를 낮춰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하게 일할 수 있죠. 사업주가 산재보상보험법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만드는 것도 필요하고요. 산재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다시 고용하지 못하게 해야 안전에 신경 쓰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업장 점수가 높으면 이주노동자를 많이 고용할 수 있는데요. 성폭력이나 사고가 나면 감점 몇 점주는 식이죠.
이주노동자가 정해진 날짜에 귀국하거나 사고가 안 나면, 또 문제가 있어도 정부에 들키지 않으면 점수 잘 받아요. 노동자가 사망해도 감점 몇 점 받을 뿐 이주노동자 고용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사업장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사고가 나도 폭행이 나도 사업장 변경이 어려운 상황을 바꿔야 해요. 사업장 변경 권리가 산재개선에 핵심적인 부분이에요."
이주노동자들의 싸움이 어려운 것은 이들이 한국에 장기간 머물지 않는 데서 오는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싸움을 해야 할 때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이주노동자들에게 어려운 것이다. 이런 한계로 인해 사업주나 정부에서도 변화하지 않고 오히려 악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필요한 체류 기간을 쪼개는 현 정책은 이주노동자를 단기간 사용하고 본국으로 보내겠다는 뜻이 분명히 담겨 있다.
우다야 라이: "체류기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어요. 체류기간이 더 길면 부당함을 더 잘 알 수 있으니까요. 이주노동자들이 의식을 높일 수 있는 시간도 더 있어야 합니다. 현 제도가 노동자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해요. 이주노동자 유입되기 시작한 지 30년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참 오랫동안 똑같은 요구를 하고 있어요.
제도, 정치인, 국민들의 인식까지 바꿔야 해요. 동남아시아 출신 무시하고 선진국 출신은 다르게 생각하는 인종차별 문제도 바꿔야죠. 한국인도 똑같이 이주민이 될 수 있는데, 이걸 깨닫고 차별 없애야 해요. 한국 사회에 있는 차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쁜 것은 나쁘다고 말할 수 있어야죠."
노동안전보건 운동을 가열차게 진행하는 동안에도 변화는 더디고 어떤 곳은 빛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있기도 한다. 소규모 영세 사업장은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안전보건은 때로 교집합이면서 때로 합집합 상태가 된다.
산재보상보험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하라는 지금까지의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요구가 이주노동자에게도 중요한 요구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이주노동자에게도 해당되는 문제로, 이에 더해 사업장 변경 제한 폐지가 함께 들어가는 것까지 확장한다면 이주노동자가 함께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