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허공에 손 젓기’, 산재 트라우마 재활기 / 2020. 09

[산재, 치료 후 '정지'할것인가 직장복귀로 '연결'할것인가②]

‘허공에 손 젓기’, 산재 트라우마 재활기

유청희 상임활동가

노동 현장에서 업무상 사고나 질병에 의한 산업재해는 잘 알려져 있었지만, 업무상 정신질환이나 직업적 트라우마는 일반인들에게 익숙하지 않다. 이런 인식의 문제는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트라우마 산재 피해자에게 치료와 지원을 위한 제도가 부재한 상태이고, 그 피해와 상처는 산재 피해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한국에서 정신질환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것은 오래됐지만, 업무와 관련된 트라우마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체계화하게 된 것은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이후라고 볼 수 있다. 2018년 노동부에서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를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고, 올해 5월부터는 8개소에서 운영을 시작했다.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에서 800톤 대형 크레인과 32톤 크레인이 충돌해 타워크레인 지지대가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삼성중공업 협력업체 노동자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크게 다쳤다. 이 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한 많은 노동자가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이 중 7명에게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산업재해가 인정됐다. 

이 사고 목격자로 산업재해 승인을 받아 치료를 받는 김영환씨를 만나, 지금까지 트라우마 산업재해로 치료를 받은 과정을 묻고, 이후 직장 재취업을 위한 지원을 어떻게 받고 있는지 등을 들었다.

산재신청은 누가 알려주나요?

사고를 겪고 10일 만에 다시 직장으로 돌아간 김영환씨에게 직장의 그 누구도 트라우마에 대해 얘기해주거나 치료에 대해 안내해준 사람은 없었다. 사고 장면이 떠오르고 밤에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됐지만 어떤 도움을 누구에게 청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극도로 예민해지고 가족에게도 폭력적으로 대하는 그에게 정신과 치료를 권한 것은 동생이었다. 

그때서야 김영환씨는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깨닫고 2017년 9월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영환씨에게 업무상 재해로 산재 신청을 할 수 있고 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회사도, 노동부도 해주지 않았다. 그런 조언을 해 준건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마창거제산추련)가 유일했다.

"7월경에 거제시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어요. 시 아니면 노동부에서 결정해서 한 것 같았어요. 보건소 갔을 때 담당 공무원과 얘기했고요, 그런데 행정일 하는 공무원이 정신과 진료받아야 하는지 판단하더라고요. 다음에 일을 하루 빠지고 가서 정신과 의사와 만났는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니까 자신의 병원에서 치료받으라고 했어요. 

비용 부담은 누가 하는지 물으니 개인 부담일 거라고, 잘 모르겠다고 했어요. 공무원한테 누가 병원비 내는지, 또 근무하지 못한 것 급여 보상은 어떻게 하는지 물으니까 모른다고 해요. 병원에 계속 다닐 수 없어서 중단했습니다.

산재 신청은 마창거제산추련에서 추진해주셨어요. 2017년 10~11월경으로 기억나네요. 그전까지는 산재 신청해보라는 사람 없고요. 오히려 (산재신청을) 하면 큰일 난다고 했죠. 팀장이 '산재 신청하면 못 돌아온다'라고 했고요. 그래도 진행했습니다. 같은 사고 겪은 친구는 안 했어요. 삼성중공업에 돌아올 때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으니 산재 신청 포기하겠다고요."

'산 넘어 산' 트라우마 치료기

산재 승인 후 새로운 병원에 다니게 된 김영환씨는 가장 의지하게 됐던주치의로부터 상처를 받는 일이 발생했다.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중에 주치의로부터 치료 종결하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다른 지역으로 옮긴 뒤에는 담당 공무원이 김영환씨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트라우마 산재 노동자가 이해받지 못하고 지지받지 못한다는 기억만 남게 했다. 김영환씨는 산재 신청과 치료 기간이 공무원을 비롯한 제도와의 싸움 기간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의사를 밝히거나 질문하지 않으면 제대로 치료를 받기 어려운 과정이었다. 

"9월에 최초로 병원 진료를 받았습니다. 산재 승인된 후에는 다른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라고 해서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진료에 문제가 많았어요. "잠은 잘 자요?" "아니오" "요즘 어때요?" "힘들어요" "그래요" 이렇게 하고 진료가 끝이 납니다.

7~8개월 진료받고 나니까 의사 선생님이 산재 종결 얘기를 자꾸 하시는 거예요, 그만할 때 되지 않았냐고요. 기분이 나빠져서 "그만둘 수 없다. 며칠 전에 집사람이랑 싸웠는데 집사람 몸을 손을 댔다"고 하니 그냥 웃고는, "알겠다"고 하면서 연장 신청서 작성을 해주더라고요. 대구에 있기 싫었던 이유 중 하나가 그 병원이었어요.

산재 승인 후 대구에서 진료받다가 이후에 인천으로 옮겼는데, 인천에서는 주치의는 괜찮은데 공무원이 힘들게 했어요. 2018년 3월에 연장 신청을 했는데 공무원이 그만하라는 말을 계속하는 거예요. 결국 주치의 선생님이 연장 신청을 했죠. 또 근로복지공단 인천지사에서 (산재 승인 후 1년이 되는) 5월 이후에는 산재 신청이 종결된다고 하더라고요. 

매일노동뉴스 기자님이랑 얘기했어요. 근로복지공단에 전화해서 기자님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산재 치료 기간이 1년이면 끝나는 거냐고 물으니까 절대 아니라고 했대요. 다 나은 후에 종결짓는 거라고요. 근로복지공단에서 지사에 공문을 다 보냈다고 했습니다."

트라우마 치료는 주치의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대구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동시에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에서 상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김영환씨는 전문상담센터에서 받은 상담에서 가장 큰 위안을 받았다고 말한다. 센터는 2018년 5월 대구에서 시범운영 되다가 2020년 5월 전국에 8개소로 확대했다. 

아이러니지만,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그 후 트라우마 산재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책 요구로 인해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가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시기를 고스란히 겪어온 김영환씨는 정부와 사회의 정신질환 산재 피해자를 향한 이해 부족, 시행착오를 겪어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주치의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성장 과정을 말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성장할 때 우울감이나 여러 문제점, 성격 등을 파악했어요. 외상후 스트레스의 원인을 성장 과정에서 찾는 식으로 했었고요. 어떤 병원은 제가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게 배려해주신 곳도 있었어요. 

대구 근로자건강센터에서는 한 시간 정도 상담하면서 제가 욕을 하든 소리를 지르든 얘기를 계속 들어주셨고요. 속에 있는 화를 분출하도록 도와주시더라고요. 속에 있는 불만이나 화가 나는 걸 가감 없이 이야기하게 해줬었고요. 대구 트라우마센터에서 근로자건강센터 내부에 헬스 시설이 있었는데, 간단한 헬스 운동을 병행하니까 좋아졌어요.

문제는 시민단체인 산추련에서 모든 걸 해줬다는 거예요, 정부 기관에서 한 것이 아니고. 정부에서는 언론에서 기사가 나오니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너무 늦게 개입하게 되는 거죠. 사고 난 후에 바로 개입해서 대구 근로자건강센터에서 받은 서비스를 받았더라면 많이 심각해지지는 않았겠죠."

손 닿는 곳에 없는 재취업 프로그램

김영환씨는 현재 산재가 종결된 상태로 장해 14급 판정을 받고 장해급여를 받고 있다. 내년까지 치료 지원을 받게 된다. 지금 구직이 절실한 김영환씨에게 정부의 재취업 지원은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치료자 재취업 설명회' 안내 문자메시지를 받아 설명회 내용에 대해 물었지만, 이력서 쓰는 방법 교육이 전부라는 말을 듣고 실망한 적도 있었다.

고용노동부에서 제공하는 재활 프로그램이나 재취업을 위한 교육에는 한계가 있다. 주치의에 따르면 김영환씨는 취업이 가능하지만 약을 복약해야 하는 상태인데, 담당 공무원은 약을 완전히 끊어야 취업성공 패키지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해 답답한 상황이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또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면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산재 겪으면서 부조리함을 많이 봤고, 세상이 내 편이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회사 입사할 때 근로계약서 작성도 제대로 하지 않는 회사가 많은 것도 문제죠. 작업 지시받을 때 '안전한가?',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도 하게 되고요. 그러다가 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도 해요. 위험한 곳에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해야 할 것같은데, 그렇게 하면 그만두라고 할 것 같아요. 일을 해야 돈을 벌 텐데, 내가 어느 정도 선에서 스스로 합의를 볼 것인지 그냥 넘어갈 것인지 생각하면 힘들어요.

사회적으로 취업 프로그램을 강화해서, 사람마다 다 다른 취업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하고, 혁신적으로 개선해서, 사고당한 사람마다 어떤 일에 잘 어울릴지 매칭해서 취업하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 사람이 여기 들어가면 딱 맞을 것 같다고 판단해서 연결시켰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해주는 것도 감지덕지하라' 이런 식은 맞지 않아요. 몇 명 취업시켰다는 식으로 성과를 말하지 말고 취업 프로그램 질을 올려야 합니다."

2019년 2월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노동자 맞춤재활로 직장복귀율 최초 65%"라는 내용으로 보도자료를 내서 "원직장에 복귀하지 못한 산재노동자에게는 구직등록, 취업설명회, 취업박람회 등을 통해 재취업을 지원하고 무료 직업훈련으로 고용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도록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것이야말로 김영환씨가 희망하는 재활과 재취업 방향이다. 

그런데 김영환씨가 겪은 산재 치료는 직업성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의료진과 공무원, 민간단체 안내 이외 접근성 부족, 충분한 치료 계획이나 요양 계획 안내 없음, 요양 기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상처받은 기억으로 가득하다. 재취업 프로그램 역시 필요한 내용을 제공하지 않거나 참가 요건이 너무 까다로운 사업뿐이었다. 김영환씨 바람대로 취업 성공자 수나 성공률 등 숫자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질을 올려서 산재노동자가 치료를 잘 마치고 직장에 복귀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