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문중원을 대하는 정부와 공기업의 자세 : 노동자 자살로 본 자살예방정책 / 2020.02

문중원을 대하는 정부와 공기업의 자세 : 노동자 자살로 본 자살예방정책

 

최민 상임활동가

 

2018년 자살에 의한 사망자는 총 13,670. 10만 명 당 자살률은 26.6명이다. 이미 널리 알려져 새로울 것도 없게 느껴지는 이 숫자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하루 37명이 자살한다. 2시간에 3명꼴이다. 같은 해 교통사고 사망률의 2.9배다. 자살은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순위 1위이고, 40, 50대에서는 사망원인 순위 2위다. 연령을 표준화하여 비교했을 때, OECD 평균 자살률의 2배가 넘는다. 자살률이 높고, 자살자 수가 많기도 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자살률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교통사고 사망률이 14.7명에서 9.1명으로, 38% 줄어들 때 자살은 오히려 2.4% 증가했다. 1985년부터 2013년까지 28년 동안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증가한 나라는 한국 포함 8, 자살률이 10명 이상 증가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는 이미 2004년부터 <국가자살예방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자살예방정책은 자살을 줄이지 못하는가?

 

우리나라 자살예방대책의 흐름

 

2003OECD 가입 국가 중 최고의 자살률(10만명 당 24)을 기록한 뒤, 정부는 2004<국가자살예방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 기본계획에서는 자살의 원인에는 생물심리학적 요인과 사회경제적 요인이 있으나, 결국 80%는 우울증을 거쳐 자살하므로 현대 의학이나 경제적 여건상 변화시키기 힘든 생물심리학적 요인이나 사회경제적 요인보다 자살에 이르는 길목에 있으면서 조기발견을 통한 치료가 가능한 우울증을 주요 사업대상으로 하는 것이 자살예방에 효율적이라고 선언했다. 따라서 우울증 상담 및 치료율 증가, 자살시도 및 충동률 감소, 자살사망률을 2010년까지 18.2명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것이 목표였다.01 한국에서 자살률이 IMF 사태와 신자유주의 도입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기본적인 배경을 무시한 채, 아예 처음부터 의학적이고 정신건강적 문제인 우울증에 집중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효과는 없었다. 200324.0이던 자살률은 200724.8명 수준에 머물렀다.

200812월 발표된 <2차 자살예방종합대책>은 이에 대해 스스로 정신보건사업위주의 활동이었고, 자살의 다양한 사회환경 요인을 포괄하지 못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시적 성과를 내는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대신 <2차 자살예방종합대책>은 한국에서 자살률이 급증한 것은 “97년 경제위기 및 03년 신용카드문제때문이었다고 처음으로 진단하였다. 특히 이전 계획에 언급되지 않았던 실업률, 소득양극화, 가계부실, 사회적 지지망 약화 등 다양한 자살의 사회경제적 원인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복지부에서 주도하던 자살예방 대책을 국무총리실 주도의 범정부적 대응으로 전환하고, “개인의 정신보건분야와 사회환경적 접근을 통해 자살예방대책을 수립하겠다고 선언했다.02

 

하지만 종합대책에서 선포했던 사회환경적 접근은 본격적으로 시도되지 못했다. 이후 매년 발간되는 <자살예방백서>는 경제위기, 사회안전망 약화, “경쟁심화로 인한 상대적 스트레스의 증가의 문제는 본격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대신 우울증 등 정신질환 증가의 요소는 연령별, 성별, 지역별로 세분화하여 분석하고 있다.03 이후 발표된 <3차 자살예방기본계획(2016~2020>과 문재인 정부에서 3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의 보완계획이라고 2018년 발표한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 역시 모두 같은 선상에 있다.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에서도 우리나라 자살의 특성을 실업률에 크게 영향을 받고, 경제적 문제가 자살의 직접적 동기 중 23.4%를 차지하고, 조선업 구조조정 등 지역경제 침체도 큰 영향을 받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반영한 추진과제는 복지대상 등 자살고위험군에 대한 지원체계를 구축한다는 것 외에는 없다.04

 

2003년부터 현재까지 국가의 자살예방정책은 사회적 원인에 대한 해결보다 자살에 대한 인식개선, 자살예방을 위한 홍보와 정신보건 서비스 강화, 우울증 등 정신의학적 고위험군 관리에만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정책 방향은 실제로 한국사회 자살의 특징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과학적이다. 문제의 구체적 특성과 원인을 외면한 정책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20년 2월 5일 오전 <7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마사회의 구조와 노동실태 조사 보고회>가 열렸다.

 

자살 예방 대책의 한계를 보여주는 바로미터, 노동자 자살

 

자살 예방 대책의 한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노동자 자살이다. 세계 어디서나, 자살 사망자의 상당수가 경제활동인구이며, 자살로 사망하는 많은 사람은 사망 당시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터에서 자살의 원인을 찾거나, 자살예방활동을 벌이는 것은 자살예방정책의 관심사다. 특히 자살 위험이 높은 농부, 경찰, 소방관 등의 직업군에서 자살예방활동이 활발하게 벌어진다. 특정 직업군에서 자살위험이 높다는 것은 직업과 일터에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이며, 예방활동은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의 자살예방대책에서 노동자는 빠져있다시피 했다. 1, 2차 자살예방정책에서는 직업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매년 발간하는 <자살예방백서>에서도 직업군에 대한 분석은 매우 단순하여, 직업군별 사망자수만 제시될 뿐, 사망률도 분석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산재를 신청하고 승인되는 자살 노동자의 숫자가 계속 늘고 있다.

 

이제야 정부가 심리부검을 실시하고, 경찰청 조사 기록을 확보하는 등 자살의 원인에 대해 심층적인 접근을 시작하면서 외면할 수 없는 결과가 나타났다. 2018 심리부검 면담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자살사망자는 사망 전 평균 3.9개의 스트레스 사건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아 사망에 이른다. 스트레스 사건 중 정신건강 관련 문제가 84.5%로 가장 많았지만, 직업 관련 스트레스 사건이 68%로 뒤를 이었다.05 자살자의 70%가량은 사망에 이르는 여러 요인 중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이 직업적 스트레스 사건이라는 것이다. 직장 내 대인관계, 퇴직 및 해고, 이직 또는 업무량 변화 등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자살 경로의 시작점인 첫 번째 위험 요인에서 가장 빈도수가 높았던 것이 업무부담이었다는 점이다. 직접적인 자살 동기는 정신적 건강 때문일지라도, 그 정신적 건강 문제가 시작되는 요인이 업무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심리부검은 <자살예방 국가 행동계획>에서 얘기했던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전략적 접근을 위한 시도 중 하나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전략적 접근이 되려면, 자살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스트레스 사건 중 하나로 밝혀진 직업 관련 스트레스에 대한 개입이 자살예방정책의 핵심 과제로 제시돼야 한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당위성 대신 근본적인 접근을

 

설날 아침, 세종로에서 차례상을 받은 42세 고 문중원을 보라. 문중원은 지난 11월 말, 마사회의 부정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40대 초반의 경마기수다. 그러나 공기업 마사회는 꼼짝도 안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일터괴롭힘에 대해서는 특수고용노동자까지도 특별근로감독을 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이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 마사회 관리감독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서도 아무런 대응이 없다. 정부가 뭔가 배우고 달라졌다면, 벌써 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산경남경마공원의 문제를 이렇게 도외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는 경마 성적이 좋지 않아서, 누구는 빚이 많아서, 누구는 성격이 충동적이어서라는 핑계 뒤로 숨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정부의 자살예방정책이란 제대로 살기 위해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제공하려는 노력이 아니다. 인간답지 않은 삶도 참아내라는 알약을 제공하는 것뿐이다. 지금과 같은 접근으로는 자살을 줄일 수가 없다.

 

아래 표는 2006년 세계 최초로 <자살대책 기본법>을 제정하고, 이후 자살률을 감소시키는 데 성공한 일본의 자살대책기본법의 기본이념 조항이다. 일본이나 한국 모두 1998년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도입 이후 자살률이 증가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제정된 법이지만 기본 이념과 정책 방향이 다르다. 일본은 2010년 이후 자살률이 감소세로 돌아섰고, 한국은 여전하다. 당위가 아니라,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도 자살예방정책은 훨씬 폭넓어져야 한다. 특히 노동자의 권리와 건강을 증진하는 내용이 반드시 포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살로부터 안전한 건강한 사회(자살예방국가행동계획 추진방향)”는 요원할 것이다.

 

일본 자살대책기본법06

2조 기본이념

1)자살이 개인적인 문제만으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 여러 가지 사회적인 요인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사회적인 대처로서 실시되지 않으면 안 된다.

2) 자살이 다양하고 복합적인 원인 및 배경을 가지고 있는 점이라는 사실에 입각, 단순히 정신 보건적 관점뿐만 아니라 자살의 실태에 즉각적으로 대응되도록 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01. 보건복지부, 자살예방대책 5개년계획, 2004.

02. 보건복지가족부(자살예방대책추진위원회), 2차 자살예방종합대책(2009~2013), 2008.

03. 전주희, 과로자살의 사회적 인정과 배제를 넘어:‘과로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다, 2007.

04. 관계부처 합동, 자살예방 국가 행동계획, 2018.

05. 중앙자살예방센터, 2018 심리부검 면담 결과 보고서, 2019.

06. 일본 자살대책기본법. 보건복지가족부(자살예방대책추진위원회), 2차 자살예방종합대책(2009~2013), 2008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