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안전보건기준비교검토] 화학물질관리, 뿔뿔이 흩어져도 괜찮을까 / 2019.02

[국제안전보건기준비교검토]


화학물질관리, 뿔뿔이 흩어져도 괜찮을까


김세은 선전위원

 

산업안전보건 국제기준 비교 연구팀에서는 20189월부터 독일 산업안전보건법과 체계를 공부하면서, 한국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 글로 화학물질 관리 문제를 다룬다. <머리말>

 

화학물질을 제조·취급하는 산업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이 화학물질에 노출되고, 이렇게 생산된 다양한 제품을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다양한 소비자들 역시 밀접한 노출 대상이 된다. 산업 현장의 화학 사고로 인해 노동자들은 물론 주변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환경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구미 불산 누출 사고, 가습기 살균제 문제 등 화학물질과 관련된 큰 이슈를 경험하면서 화학물질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과 인식도 높아졌다.

 

한국의 화학물질 관리와 관련된 주요 법령은 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과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이하 화평법)이라고 할 수 있다. 화관법은 전체 화학물질을 포괄해 관리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고, 화평법은 일정량 이상 수입, 생산되는 모든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 국내 유통되는 모든 화학물질의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것이 핵심적인 취지라 할 수 있다.

 

이 법은 환경부 소관으로, 화관법은 보편적인 국민 건강 및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임을 명시하고 있다.1 국가적 차원의 화학물질 관리 측면에서 꼭 필요한 법이지만, 살펴보면 화학물질을 가장 직접 다루는 노동자 건강과 안전 보호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많다. ‘국민의 건강이라면 당연히 노동자들도 포함될 텐데 이런 부분은 쏙 빠져 있다. 이와 관련해 역할을 해오던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호법이 있기 때문에 법 조항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중복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적용제외는 최소한인 독일의 화학물질관리법

 

이와 달리 독일의 화학물질관리법(Chemikaliengesetz)은 화학물질 관리체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법령으로 화학물질관리의 일원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은 적용 대상이다. 관련된 수십 개의 시행령 중 가장 핵심적인 유해물질관리 시행령을 보면, 적용 제외 대상은 생물학적 작업물질, 그리고 화학물질을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두 경우뿐이다. 화학물질을 다루는 학생 및 기타 연구기관 종사자도 취업자로 간주하여 역시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된다.2 반면, 한국의 화관법에서는 화장품법, 약사법, 식품위생법 등 다른 법의 적용을 받는 십여 가지의 경우가 적용 제외 대상이며, 화학물질을 다루는 연구실 종사자는 연구실안전법3 적용 대상이다. ‘화학물질관리라고는 하지만 실질적 관리는 분야에 따라 법령도, 소관 부처도 제각각인 상황이다.

 

한국의 화관법은 노동자 보호 규정 찾아볼 수 없는 반면, 독일은 세세하게 보장해 

 

산업 공정에서 노동자들이 노출되는 화학물질과 일반 국민들이 접하는 화학물질은 전혀 다른 것인가. 생산·제조 현장에서 다뤄지는 화학물질에 대한 평가와 관리가 합리적으로 이뤄지고 노동자들이 제대로 보호받는다면, 긍정적인 효과가 그뿐이겠는가. 거꾸로 생활 속의 다양한 화학물질에 노출되면서 국민 건강이 위협받는다면, 바로 그 생산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은 어떨까.

 

한국의 화관법에는 노동자 보호 관련 규정이 거의 없다. ‘14조 취급자의 개인보호장구 착용조항이 눈에 띄는 정도다. 정부가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와 통계를 수집하는 것이 목적인 만큼, 관련한 사업주의 의무, 화학사고 발생 시 대책 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하위 시행령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반면 독일의 유해물질관리 시행령에는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유해물질취급 업무시 위험성평가를 수행하고 필요한 안전조치가 강구된 이후에 재개해야 한다(7조 사업주의 기본의무)’, ‘사업주는 작업복과 평상복을 별도로 구분해 보존하도록 조치하고 오염된 작업복을 세탁해야 한다(9조 추가적인 보호조치)’ 등이 눈에 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항목은 노출 기록에 관한 것이다. 발암성, 생식세포 변이원성 또는 생식독성 유해물질 취급 업무에 대해 사업주는 노동자가 노출된 기간과 강도를 포함한 기록을 업데이트한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데, 이것을 노출 종료 후 40년간 보존해야 하며, 고용 관계 종료 시에는 노동자가 종사했던 업무에 대한 부분을 발췌해 인도해야한다(14조 취업자에 대한 교육 및 지도). 이런 내용은 국내 화관법은 물론 산안법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산안법과의 중복을 고려하더라도, 화관법에서 노동자 보호에 있어 원칙적인 내용이라도 화관법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국의 화관법 역시 독일의 화관법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REACH4를 참고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명시된 목적대로 화학물질을 관리하는 것에 충실해 보일 뿐, 국민의 건강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장치는 제각각 흩어져 있다. 그 사이사이 틈새는 잘 메워져 있는 것일까.

 

 ※ 각주

1) 화학물질을 적절하게 관리하는 한편, 화학물질로 인하여 발생하는 사고에 신속히 대응함으로써 화학물질로부터 모든 국민의 생명과 재산 또는 환경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시행일 2018.11.29)

2) 독일의 연구실 종사자는 산안법 적용 대상이기도 하나, 한국은 그렇지 않다.

3)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

4) 유럽연합(EU)의 유럽화학물질관리규정(Registration, Evaluation, Authorisation & Restriction of Chemicals, RE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