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주는 메시지 ①
이이령 운영집행위원, 직업환경의학 전공의
산업안전보건 국제기준 비교 연구팀에서는 산업안전보건과 관련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검토해 몇 차례 기고하였고, 최근에는 국내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전면개정과 관련해 다른 국가들의 산안법을 살펴보고 있다. 첫 시작으로 독일의 안법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독일과 한국은 법체계가 달라 단순 비교가 어렵고, 산안법이 다루는 범위가 워낙 넓어 전부 살펴보기엔 한계가 있다. 이 글에서는 국내 산안법 전면 개정과 관련해 제기되는 쟁점에 참고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언급하려 한다. 독일은 산업보건의 및 산업안전 전문 인력에 대한 법, 화학물질 관련 및 위험성평가 등은 산안법 외에 따로 있어 추후에 다루기로 한다. 독일 법은 한국노동연구원에서 2013년 발간한 「독일 노동법전」 등을 참고하였다.
폭넓은 법 보호대상과 사업주 안전보건조치의 원칙
‘일하는 사람’이라는 혁신적인 개념을 국내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도입하였음에도 이에 대한 정의가 부재해 결국 법 보호대상에 일부 직종만 추가 포함되었으며, 여러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현장실습생은 여전히 제외되었다. 독일 산안법 2조 정의규정에서, 산안법 적용대상인 ‘취업자’는 노동자, 군인, 공무원, 법관, 장애인을 위한 공장에 취업중인 자 등을 포함하며, ‘직업교육을 받고 있는 자’도 명시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독일 산업안전보건법 제4조 일반적 원칙 <독일 노동법전>, 한국 노동연구원, 2013.
사용자는 산업안전보건조치를 취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일반적 원칙에 근거하여야 한다.
1.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험이 최대한 예방되고 현존하는 위험이 가능한 한 최소화될 수 있도록 근로형태가 조직되어야 한다.
2. 위험은 그 근원을 제거해야 한다.
3. 산업안전보건조치를 취함에 있어서는 기술, 노동의학, 위생 및 기타 노동학술상 확립된 이론이 고려되어야 한다.
4. 산업안전보건조치는 기술, 근로체계, 기타 근로조건, 사회적 관계, 작업장에 대한 환경의 영향을 적절히 연관시킬 목적으로 계획되어야 한다.
5. 개인을 위한 보호조치는 다른 조치보다 후위에 있다.
6.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취업집단에 대하여는 특수한 위험이 고려되어야 한다.
7. 취업자에게는 적절한 지시가 부여되어야 한다.
8. 직·간접적으로 성별에 따른 효과를 미치는 규정은 생물학적 사유에 의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된다.
또한, 독일 산안법에는 사용자가 산업안전보건조치를 취함에 있어 지켜야할 일반적 원칙이 기술되어 있다. 최대한의 건강 예방과 위험의 최소화를 위한 근로형태 조직, 위험의 근원적 제거, 공학적 제어 등 보다 개인보호구는 후순위 조치라는 점, 기술·근로조건·사회적 관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산업안전보건조치의 계획 등이다. 이는 ILO 산업안전 분야 협약의 원칙들을 많이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원칙적인 수준일 수 있으며 처벌 규정은 없지만, 중요하고 실제적으로 필요한 내용들이기에, 국내 산안법 전면개정안 5조 (사업주 등의 의무) 등에도 이런 원칙이 기술되어야 한다.
안전보건교육은 근무시간 중에, 파견노동자 교육도 원청의 의무
국내 산안법 및 하위 규정 상 안전보건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지지만, 정작 노동자들이 근무시간 외에 안전보건교육을 받거나, 새로운 기술 도입 시에는 못 받는 경우도 많다. 독일 산안법 상 사업주의 안전보건교육은 취업자의 근무시간 중에 충분하고 적절히 해야 하고, 채용 시 · 업무 범위 변경 시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작업수단·기술 도입 시에도 시행해야한다. 그리고 독일 산안법 상 파견근로자 안전보건교육의 의무는 사용사업주에게 있다. 그렇다고 파견사업주의 산안법 상 다른 의무가 제외되거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국내 산안법 전면개정안 중 원청의 책임 확대가 주요내용 중 하나이나, 제64조에 의하면 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도급인의 안전보건교육 책임은 장소 및 자료의 지원에 한정된다. 독일과 같이 안전보건교육의 의무에 대한 원청의 책임도 명확히 규정해야 산업재해 예방에 더욱 일관적이고 실효성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위험 업무 재개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노동자와 공동 결정 하에
독일 산안법 9조에서 직접적이고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 노동자는 작업장을 즉시 이탈할 수 있고, 이 위험이 지속되는 경우 사용자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노동자에게 업무 재개를 요구할 수 있다. 이런 위험상황에서 사업주의 안전보건대책 계획 및 시행은 사업장 ‘종업원평의회’01와 공동결정 하에 이루어진다. 국내는 작업 중지 후 위험이 여전하다는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도, 업무 재개를 요구하여 2차 사고가 나곤 하는 게 현실이다. 작업중지 명령과 해제에 대해 국내 산안법 전면개정안에서 일부 진전된 절차가 마련되긴 했으나, 현장 안전보건에 대한 해당 작업 노동자 및 노동자대표의 주체적 참여 보장이 여전히 부족한 국내 산안법에 이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위험 업무 재개에서 일부 살펴봤듯이,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에 있지만 한국 산안법에는 거의 없는 가장 큰 차이는 노동자 개인 및 단체의 알 권리, 참여할 권리 및 사업장 공동결정권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