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 최근 불승인 사례를 중심으로 본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안재범 (운영집행위원,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노안위원장)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7월 2일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아래 질판위) 10주년 기념식을 했다.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질판위가 지난 10년간 심의 안건만 9만 2000여 건에 이르며 직업병 인정률은 2010년 36.1%, 2013년 44.1%, 2017년 52.9%로 상승했고 판정위원도 218명에서 550명으로 대폭 늘었다"는 평가를 했다.
하지만 2018년 현재도 여전히 질판위의 엉터리 심의와 부실한 운영능력으로 인해 억울한 불승인 처분이 나오고 있다. 재해자는 이미 정신적·물리적 손실을 입은 상태에서 산재 승인 여부까지 다퉈야 하는 탓에 결국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최근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에서도 2건의 산재 불승인건을 정보공개청구한 결과,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질판위 심의 내용을 확인했다.
[사례①] 의사가 "업무-질병 관련성 높다"는데도...
재해자는 10년간 하루 평균 11시간 정도의 주야교대 근무를 하였으며 주 업무는 고객이 주문한 물건을 수량에 맞게 손으로 옮겨 팔렛트에 적재를 하고, 적재된 물건을 지게차를 이용하여 배송차에 상차해주는 업무를 했다.
그러던 중 2017년 9월경 참을 수 없는 통증이 계속되어 병원에 내원하여 MRI를 찍은 결과 '경추추간판 탈출증 제6-7번 간', '경추의 염좌 및긴장'의 진단을 받고 요양신청을 했다. 근로복지공단 해당 지사는 재해조사·평가결과 재해자가 해온 전체 공정이 목에 부담을 주는 정도가 최대 7점 중 6점이라고 평가했다(지게차 작업 6점, 피킹 작업 6점, 빵 피킹 작업 6점, 제품 제고 체크 6점).
자문을 맡은 임상의와 직업환경의학의도 다음과 같은 의견을 냈다.
○ 임상 자문의사 의견 : 진료 기록상 상기 진단명이 확인됨.
○ 직업환경의학과 자문의사 의견 : 2007년부터 약 10년간의 근무경력 및 업무 내용, 작업 자세 등을 고려한 결과 높은 높이의 적재물을 지게차를 이용하여 적재 및 하차작업 등이 경추부터의 과도한 신전이 이루어져 부담 작업으로 업무 관련성이 높음.
그러나 질판위는 결국 불승인을 판정했다. 사유는 이렇다. "신청인은 지게차 작업 외에도 패킹 작업을 병행하여 1일 4시간 정도 지게차 작업을 수행하고 렉의 위치도 3단으로 이루어져 있어 정상적인 자세로 작업을 하는 비율이 상당하여 반복하는 작업 빈도가 낮다는 판단으로 업무 부담 작업으로 볼 수 없다"고 불승인 판정을 하였다.
[사례②] 팔을 사용하는데... "팔꿈치 부담작업 아니다"
재해자는 완성차 사내하청에서 근무하는 여성조합원이며 1997년에 입사하였고 재해 발생공정으로 직종을 전환한 것은 8년 정도였다. 주업무는 차량의 출하 전 검사를 하는 공정이며 구체적으로 차량의 휴즈박스, 도어, 트림, 본네트, 트렁크 등을 손과 팔을 이용하여 올리고 내리는 반복적인 동작을 통해 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을 2인 1조로 일 3백 대 정도 하였다.
이로 인해 수년 전부터 손, 손목, 팔꿈치, 어깨 등의 통증으로 퇴근 후 병원에서 약물과 물리치료를 하였으며 2017년 11월경 업무 수행이 도저히 어려워서 주치의로부터 'M770 내측상과염'을 진단을 받고 요양신청을 하였다. 해당 지사 임상 자문 및 업무 관련성 자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임상 자문의사 의견 : : 진료 기록상 상기 진단명이 확인됨.
○ 직업환경의학과 자문의사 의견 : 장기간 근무 기간 및 작업 내용을 고려한 결과 반복적 상지 및 손사용으로 인한 업무 관련성이 높다고 판단됨.
그러나 질판위는 결국 불승인을 판정했다. 사유는 이렇다.
"신청인이 수행한 작업 내용상 팔을 사용하는 작업 자세가 신청 상병을 유발할 정도의 팔꿈치 부위 부담 작업으로 보기 어렵다는 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으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처럼 두 건의 사례만 보더라도 질판위가 얼마나 부실한 운영과 엉터리 심의를 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두 사례 모두 임상 및 직업환경의학 자문 의사는 모두 질병이 확인되며, 업무 관련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였다. 또한 지사의 재해조사결과 역시 재해자의 전 작업공정에서 업무 관련성이 높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불승인 판단 근거는 매우 추상적이며, 직업환경의학 자문의사 자문결과와 해당 지사의 재해조사결과, 재해자가 제출한 자료에 전부 반하고 있다. 불승인 판정의 핵심적인 근거가 되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 의견은 단지 모두 동일하게 "상병은 확인되나 업무 관련성은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했을 뿐이다.
왜 업무 관련성을 인정하기가 어려운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누가 보더라도 이해가 될 수 있는 상세하고도 구체적으로 서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라는 이유가 빠져있다. 이렇게 불성실한 판정 의견을 제출하는 것은 그 누구도 불승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불승인 이유가 명확하지 않으면 심사 청구나 재심사청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질판위가 근로복지공단 의견과 반하는 결정을 하려면 최소한 질판위 위원장은 심의안건을 충분히 검토해야 하고, 설령 불승인 판단을 내리더라도 명확한 근거로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이처럼 질판위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설치배경과 취지에 맞지 않는 운영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는 심의위원 구성부터 심의안건의 검토, 심의회의 절차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운영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문제로 고군분투해가며 언제까지 싸워야 할지 이제는 다른 판단을 해봐야 할 시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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