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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목소리] 어느 웹디자이너의 과로자살 / 2018.05 어느 웹디자이너의 과로자살-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 유족 장향미 님 인터뷰나래 상임활동가 “제 이름은 장향미입니다. 제 동생은 장민순이고요. 게임회사에 재직 중인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그는 ‘평범한’이란 단어에 힘을 줬다. 동생 죽음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무엇이 동생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문제였고 해결되어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지 수 없이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 앞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던 곳의 문을 두드렸다. 바로 서울남부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였다. 함께 자료를 모아 분석하고 결국 회사의 강압적 ‘야근’이 문제였다는 걸 확인했다. 그렇게 장향미씨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려진 ‘공인단기·스콜레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에.. 더보기
월 간 「일 터」/[현장의 목소리]

[현장의 목소리] 어느 웹디자이너의 과로자살 / 2018.05

어느 웹디자이너의 과로자살

-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 유족 장향미 님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제 이름은 장향미입니다. 제 동생은 장민순이고요. 게임회사에 재직 중인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그는 ‘평범한’이란 단어에 힘을 줬다. 동생 죽음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무엇이 동생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문제였고 해결되어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지 수 없이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 앞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던 곳의 문을 두드렸다. 바로 서울남부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였다. 함께 자료를 모아 분석하고 결국 회사의 강압적 ‘야근’이 문제였다는 걸 확인했다. 그렇게 장향미씨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려진 ‘공인단기·스콜레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다. 쉽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된 진심을 물었다.

“제 동생의 일이기 때문에 제가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동생이 왜 죽었는지, 뭐가 문제인지 꼭 알아야 했거든요. 저는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그만두면 제가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하겠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동생이 하고자 했던 일을 제가 하고 싶어요. 저 혼자 힘으론 불가능할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대책위 여러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디자이너로서 열정이 많았던 동생의 죽음

“제 동생은 디자인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천부적으로 디자인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었지만 열정이 많았어요. 자기 꿈도 방에다 써놓았죠. 디자인에 도움이 되는 건 뭐든 배우려고 했어요. 서양화부터 디자인 강연같은 것도 찾아다녔죠. 디자인에 영감 주는 건 뭐든 사진으로 찍어놓고 기억했어요. 저는 디자인을 전혀 모르는데, 그런 저를 붙잡고 디자인 얘기를 한 게 동생이었죠.”

그런 그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장민순씨는 2015년 5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총 2년 8개월을 근무하는 동안, 거의 1년을 야근 제한 기준을 넘기도록 일했다. 그의 포괄임금계약, 실제 근무 시간은 근로복지공단에서 만성 과중한 업무로 인한 뇌·심혈관 질환의 산재인정 여부 판단 기준인 발병 전 12주 평균 업무시간인 60시간에 거의 근접한다. 특히 2017년 11월 한 달 간 집중적 야근이 이뤄졌다. 20시 이후 퇴근이 14회에 이르고 밤0시 이후 퇴근도 4일이나 됐다.

“야근문제가 굉장히 심하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만두라고 얘기를 많이 했죠. 하지만 그만두지 않았어요. 잘해보고 싶다고 그랬거든요. 우선 잠 잘 시간이 없는 게 제일 큰 문제였어요. 동생이 평소에도 불면증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잠 잘 시간도없어서 늘 피곤해 했죠. 주말이면 자기 방에서 잠만 잤어요. 밥 먹으라고 깨우면 일어나지도 못하고 계속 잠만 자는 경우도 있었고요. 평일에는 잠을 거의 못잔다고 했어요. 회사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요. 당연히 건강도 좋지 않았죠. 초반엔 몸무게가 굉장히 많이 빠졌어요.”

회사에 매여 있는 시간이 길다보니 당연히 친구, 가족의 얼굴조차 볼 시간도 없었다. 아침에 화장 할 시간조차 사치였다. 동생은 집에 와서 화장을 지울 기력조차 없이 잠드는 때가 많았다. 결국 장민순 씨는 지난해 12월 2일 언니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잠은 자면서 하냐? 머리가 맑을 때 일해야 한다’는 상사의 말에 폭발한 장민순 씨는 대성통곡을 하며 업무의 과중함과 상사의 문제를 털어놓았다.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문제를 더 이상 덮어놓을 수만은 없다고. 바로 다음날 12월 2일 자매는 고용노동부 강남지청에 근로감독 진정을 접수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강남지청은 ‘올해(2017년) 근로감독을 나가는 일정이 모두 끝났으니, 내년(2018년) 2월 이후에 신고 들어온 다른 업체들과 묶어서 근로감독을 나가겠다, 갑자기 단독으로 이업체만 근로감독을 나가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따위의 답변을 내놓고 자매의 SOS 신호를 무시했다. 결국 자매가 나서서 진정 준비에 들어갔고, 필요한 자료를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다.

해가 넘어가고 18년 1월 2일 동생은 언니에게 출퇴근 교통카드 기록을 보냈다. 그게 동생의 마지막이었다.

야근, 업무과중, 일터 괴롭힘… 동생을 괴롭혔던 것들

“한 명, 두 명씩 계속 만나면서 동생이 왜 죽었는지를 알고 싶어 계속 만났어요. 만난 분들이 공통적으로 한 얘기가 있어요.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업무지시, 체계적인 관리나 운영시스템이 전혀 없고, 업무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운 환경, 투명하지 않은 의사결정 구조, 심각한 야근 문제요. 이게 다 에스티유니타스라는 회사에 다녔던 분들이 한 얘기예요.

문제가 많은 곳이니 경력이 있는 분들은 오래 남지않고 퇴사해요. 그러다보니 신입분들이 잘 몰라도 일을 맡아요. 여기 디자인부서는 디자인 말고도 요구 받는 게 많았어요. 예를 들어 디자이너가 기획도 볼줄 알아야 했죠. 그런 것까지 디자이너가 다 한 거예요. 제 동생도 그랬고요. 그런 식의 야근이 많았다고해요. 문제는 그 야근이 생산적인 게 아니고, 대표나 상사에게 보고 디자인 시안을 만드는데 그게 계속 까이고, 까이고 그러다 보니 야근이 잦아지고요. 그런 식으로 일을 하게 되면 자기 이름 걸고 디자인이 나가는데 만족스럽지 않게 나가니 자기 성취감도 없죠.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기계처럼 뽑아내니까요.”

더불어 중요하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장시간 노동과 업무 과중도 문제였지만, 직장상사에 의한 괴롭힘과 주말 무료 노동도 고인을 힘들게 한 요인이었다.

“회사 홈페이지만 보면 권위적인 것과 정반대를 강조해요. 저도 이번 일이 있기 전에 여기가 그렇게 문제가 많은 곳일줄 몰랐죠. 모두 회사가 홍보하는 이미지는 가짜라고 하시더라고요. 회사의 사내문화도 자유롭게 참여한다고 하지만 사실 다 강압적이고, 인사고과에 반영한다고 했어요. 주말 응원 이벤트부터 시작해서 사내 합창대회, 체육대회 이런 행사도 모두요. 도대체 이게 자발적인 건가요?“

야근 없는 일터는 가능하다

흔히 IT(정보기술) 업계와 같은 열정, 창의, 젊음을 강조하는 산업에선 야근은 어쩔 수 없다는 소위 불문율이 존재한다. 이 말의 함정과 문제점, 그리고 정말 IT 업계에서 야근은 없앨 수 없는 것일까.

“넷마블도 불가피하다고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거의 없어졌죠. 그건 회사의 의지예요. 야근을 없앨 수 없다는 건 말이 안돼요. 사실 이 문제는 공짜로 사람을 부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포괄임금제로 묶어서 야간수당을 넣어버리면 얼마든지 일을 시킬 수 있죠.”

대책위와 장향미 씨의 요구는 ▲ 직장 내 야근근절, 직장내 업무 스트레스 야기 환경 개선 ▲ 에스티유니타스의 진정성 있는 사과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 ▲ 책임 있는 직장 상사에 대한 징계이다. 그 중 가장 우선순위는 에스티유니타스의 야근 근절이다. 유족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됐는지 물었다.

“동생이 하고 싶었던 일이라서요. 동생이 죽기 열흘 전 가족들에게 얘기했거든요. 야근을 없애고 싶다고요. 그래서 제가 이걸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료 분들 만나면서도 생각이 확고해졌어요. 우울증상을 겪은 게 제 동생만의 일이 아닌 걸 알게 됐고, 재직자 중에서도 많이 겪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빨리 야근을 없애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과로로 인한 동생의 우울증 악화 

회사가 얘기한 대로 고인은 평소 우울증을 앓아왔다. 에스티유니타스에 입사하기 전 2015년 5월엔 완치에 가까울 정도로 호전된 상태였다. 하지만 회사에서 근무하는 2년 7개월 동안 비인간적 근무환경,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악화 되었고 과중한 업무로 인해 주치의에게 제때 상담, 치료를 받지 못했다. 겨우 가까운 병원에서 약처방전으로 대신한 것이 무려 10차례나 됐다. 결국 장민순 씨는 2017년 9월 우울증 악화로 휴직했다 복직했지만, 회사는 11월 한 달간 살인적인 야근을 시켰다. 4명이 해야 할 일을 고인에게 모두 맡겼다. 인력 충원도 없이 말이다. 그러면서 회사는 고인의 죽음의 원인은 우울증이라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제 동생의 죽음은 우울증이 원인이 아니고, 과로로 인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명백히 사회적, 회사의 타살입니다. 유난히 회사에 충성하는 분위기가 강한 우리나라와 일본에 과로자살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요인으로 제대로 바라보고 해결해야 해요.”

“야근 없는 회사가 제 동생의 유지예요”

그는 대책위 활동을 통해 사회 곳곳의 아픔을주목하게 됐다. 

“사실 저는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거나 참여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방관자였죠. 내 가족만 아니면 되고, 직접 나서기는 귀찮고, 내가 이걸 하다가 혹시 불이익이라도 받으면 어쩌나, 내가 안 해도 누군가 해주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왔어요. 뉴스에 나오는 일들이 저한테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막상 제가 당사자가 되고 보니깐 나쁜 일은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더라고요. 다 각자를 위해 조금씩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면 내가 약자가 됐을 때 조금은 나은 세상이 되어 있겠죠?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온라인 교육업계의 근본적 문제를 드러내고 바꾸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