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여성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와 불안정 노동 - 웹소설 작가 A씨, 전 여행업 인솔자 B씨 인터뷰 / 2020. 09

[현장의 목소리]

여성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와 불안정 노동 - 웹소설 작가 A씨, 전 여행업 인솔자 B씨 인터뷰

지안 상임활동가

코로나19 이후 노동의 위기는 비정규직, 그중에서도 프리랜서 노동자들에게 더욱 집중됐다. 서비스·돌봄·여행업 등 대면이 필수적인 특정 업종의 일자리들이 사라졌고, 그런 일자리들을 지탱하고 있던 프리랜서들은 해고도 아닌 방식으로 실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런 업종에서는 주로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문제를 '여성 노동'의 맥락으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런 업종들에 주로 여성이 고용되어 있었으며, 이들이 고용된 일자리의 형태는 불안정했을까. 전 사회가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사회적 재난이 사회보험 체계에서 배제된 노동자, 그리고 불안정 노동자에게 얼마나 불평등하게 집중되는지 목도하고 있는 시점이다. 즉 이런 일자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변화가 필요하다.

꾸준히 일해왔으나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 프리랜서 노동자의 인터뷰를 담았다. 한 축으로는 두 프리랜서 노동자가 코로나19 이후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도 주요하게 물었다. 여행업 종사자였던 B씨의 경우에는 코로나19의 확산 초기부터 무급휴직에 들어갔고, 그동안 저축한 자금과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한시적 정부지원금으로 버티다 현재는 전혀 다른 분야로 이직한 상황이었다. 한편 웹소설 작가인 A씨의 경우에는 코로나19 이후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는 두 자녀를 돌보는 데 필요한 시간이 급증했다. 결국, 일과 가사를 병행하며 총 노동시간이 증가했고, 그만큼 정신적 스트레스와 더딘 작업으로 인한 수입 감소를 우려하는 상황이다. 여성의 노동, 또는 여성의 노동시간은 코로나19 이후 어떻게 변화했을까.

출처: 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 노동자지회


'프리랜서' 자유로운 일의 형태?

- 먼저 두 분이 하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A씨 같은 경우는 전국여성노조 산하 '디지털콘텐츠지회' 소속 조합원이기도 한데요. 가입 계기도 궁금합니다.

A(웹소설 작가): 저는 5년차 웹소설 작가입니다. 처음으로 도전한 소설이 정식 출간으로 이어진 후로 웹소설 작가를 업으로 삼게 됐어요. 노조에 가입하게 된 배경은, 웹진/웹소설 플랫폼 기업에서 일방적으로 몇몇 웹소설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관련된 대응 활동을 시작했고, 그것이 노조 결성과 가입, 활동으로 이어졌어요.

B(전 여행업 인솔자): 저는 코로나19 이전까지 여행 인솔자로, 2년간 일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가이드'라는 직업은 익숙할 것 같아요. 인솔자는 패키지 상품 형태의 여행에 동행해서 가이드가 담당하는 업무 외 고객들의 각종 요구사항이나 불편사항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해요. 저는 주로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을 담당했어요.

- '프리랜서' 노동을 보통 시간 운용이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노동의 측면에서는 노동시간이 불규칙하다는 특성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런 측면에서 어떻게 일해 오셨는지 소개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B씨: 인솔자가 담당하는 역할은 출국 전부터 시작됩니다. 함께 동행할 고객들에게 주의사항과 안내 연락을 돌리죠. 출발 당일 공항에서 첫 미팅을 가진 후 탑승부터 시작해 전 스케줄을 동행하고 귀국 후 공항에서 헤어지는 일정이죠. 물론 경우에 따라서 여행이 끝나고 나서 발생하는 민원을 담당해 대응하기도 해요.

제 근무 스케줄을 놓고 보면 한 달에 9박 10일 정도의 비행을 2번 정도 나가고, 일정 사이에 3~4일 정도의 휴식기간이 있어요. 쉬는 날도 많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일하는 기간 동안에는 비행 중에도, 자다가도 민원이 발생하면 해결해야 하죠. 보통 오전 7시 정도부터 오후 9시까지 여행 스케줄이 이어지는데요. 9시 이후는 각자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해도 어떤 이슈가 생기면 바로 대응해야 해요. 한번은 고객이 새로운 객실을 달라고 해서 제 숙소를 사용하라 하고 로비에서 잔 적도 있어요. 여행 일정 동안은 사실상 퇴근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A씨: 저 같은 경우는 작품이 매주 월요일 마감이었는데, 1만 4천 자 정도의 분량이었어요. 거기에 휴재할 경우를 대비하여 비축분량도 마련해야 했고요. 일주일에 5일을 작업한다고 치면 하루에 무조건 5천 자 분량의 완성도 있는 글을 써내야 하는 거죠. 마감일 최소 2일 전에는 항상 밤샜던 것 같아요. 저는 당시 미취학 자녀가 있었는데, 거의 주말에 함께 있어주질 못했죠.

- 상당히 장시간을 일하시는 것 같아요. 거기다 웹소설 작가의 경우에는 마감 기간, 인솔자의 경우에는 여행 일정이라는 기간 내에 상당히 긴 노동시간을 소화해야 할 것 같은데요. 관련해서 경험하신 건강 문제들도 있었나요?

B씨: 남유럽 국가들이 보통, 스페인을 예로 들자면 비행시간만 13시간이 걸리고, 경유지를 거칠 경우에는 대기 시간까지 포함해 총 18시간이 걸려요. 한 달에 평균 2번 비행을 나간다고 치면, 편도로 4번을 비행하는 셈이죠. 비행기에서 문득 자다 일어나면 여기가 한국행인지 스페인행인지 헷갈린다고 하는 인솔자들이 많을 정도였어요. 뿐만 아니라 여행 기간 동안은 전용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하루 대부분이에요. 허리 등 근골격계질환 문제는 특히 취약할 수밖에 없죠.

A씨: 작가들의 경우에는 모이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어느 병원이 좋냐는 거예요. (웃음) 대부분 포털사이트에 올라가는 웹소설의 1회 분량이 5천 자 정도예요. 또 보통 일주일에 3번에서 많은 경우 5번까지 웹소설이 업로드되길 원하죠. 작업량이 너무 많아요. 하루 종일 앉아서 타자를 치고 있으니 손목이나 손가락 관절, 허리디스크는 정말 흔한 질환이예요.

- 이렇게 장시간을 일하는데 고용형태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점은 흔히 '프리랜서'라고 하는 용역계약 형태의 가장 큰 문제점이기도 한데요.

A씨: 보다 근본적으로는 레진코믹스가 일방적으로 연재중단 결정을 통보했던 사건처럼 하루아침에 일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어요. 아무런 고지 없이 작가들이 하루아침에 생계가 막막해진 상황이 발생했던 거죠. 저는 개인적으로 플랫폼의 '사과' 한마디만을 원했는데 끝까지 사과는 없었어요. 노동청이나 국회의원실을 찾아가도 노동자가 아니라 해결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오더군요.

B씨: 가장 우선적으로는 한 달에 9박 10일에 달하는 일정을 평균 2번씩 진행하는데, 이걸 마냥 프리랜서라고 볼 수 있을까요. 또 프리랜서로 일하는 인솔자들은 여행사 소속 인솔자로 일하는 경우와 급여가 거의 2배 차이가 나요. 임금뿐 아니라 일하다 보면 부당 대우도 워낙 많이 겪고요. 본사 소속 가이드에게 현지에서 성희롱을 당하거나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회사에 이야기하면 그냥 해당 가이드를 다른 팀으로 옮기면 된다는 생각이에요.

- 불안정한 고용뿐 아니라 회사와의 관계, 또는 회사 내 동료와의 관계에서도 불평등을 경험하신다는 거군요.

B씨: 맞아요. 고객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고객에 의한 민원이 3회 이상 접수되면 차후 계약에 지장이 있는 조항이 있어요. 그래서 많은 인솔자가 혹시라도 다음 일감을 못 받을까봐 고객이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성희롱을 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도 꾹 참을 수밖에 없죠.

A씨: 플랫폼과 작가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플랫폼이 홍보나 노출 지면 등 일방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매출에 대한 수수료 비율뿐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죠. 레진코믹스에서 문제가 되었던 '지각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플랫폼에서 메인에 노출해줄테니 정해진 수수료보다 더 많은 수수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요. 다른 플랫폼에 일정기간 동안 출간되지 못하게 요구하는 경우도 꽤 있어요.

여성노동자는 코로나19 이후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나 

- 특히 코로나19 이후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불안정 노동이 조명되고 있어요. 두 분은 이 시기를 어떻게 겪고 있으신가요.

B씨: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는 사무실에서 계속 재근무를 한다고 문자가 왔어요. 그래서 금방 상황이 종결될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장기화될 거라곤 생각 못 했죠. 모아둔 여유자금으로 몇 달을 생활하다 급하게 이직을 했어요.

A씨: 웹소설이라는 업계는 코로나19의 영향이 없을 수 있겠지만, 아이를 양육하는 입장에서 코로나19 이후에 정말 돌봄 시간이 많이 증가했어요. 그만큼 작업이 늦어지고, 늦어지니 인세가 안 들어오고.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는 것 뿐입니다.

- 여행업 인솔자 같은 경우는 워낙 이동이 많아서 안전사고도 잦을 것 같은데, '프리랜서'들은 사회보험 체계에서 배제되어 있어요. 그건 웹소설 작가들도 마찬가지이고요. 고용보험이 있었다면 B씨처럼 일감이 끊긴 노동자들이나, 레진코믹스 사태에서 잘린 작가들이 일단 실업급여라도 신청할 수 있었을 거예요. 말씀하신 건강 문제들의 경우도 산재보험을 통해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고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B씨: 이전에 이탈리아에서 이동 중 교통사고를 당한 인솔자가 있다고 들었어요. 여행 기간 중 다치거나 몸이 아픈 경우에는 일정에서 빠져서 알아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해요. 물론 숙소나 비용은 자부담해야죠. 일하다 사고를 당하신 분도 자비로 타지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고요. 현재로써는 해외에서 일하다가 다쳤더라도 회사에 얘기하지 못할 거예요. 오히려 일감이 끊길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고객들 같은 경우에는 1만 5천 원 정도 하는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지만, 인솔자들은 그마저도 없어요. 회사에서 따로 비용이 나오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보험사에서도 인솔자는 여행객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받아주지 않아요. 무보험으로 한달에 대부분을 타지에서 일하고 있는 거죠. 인솔자들은 이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일단 최대한 스스로 조심하려고 하죠. 이번 코로나19의 경우에도 제가 저축해둔 여유자금이 없었다면 몇 달 버티기도 어려웠을 거예요. 특히 부양가족이 있는 경우는 더 심각한 상황일 것이고요.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안전망이 필요합니다.

A씨: 최근 고용보험 개정안에 특례로 포함된 '예술인'에 웹소설 작가는 해당 안 된다고 해요. 고용보험의 보편적인 적용이 필요해요.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는 예술인들이 생계 위협 없이 일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를 두 명의 여성 노동자가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정기적으로 일해왔으나 '프리랜서'라는 노동의 형태로 인해 아무런 보장 없이 실직했다는 B씨의 경험은 왜 모든 노동자에게 사회보험의 권리가 주어져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A씨의 경우는 재택근무를 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증가된 노동시간, 임금 노동을 하는 시간 외에도 육아·돌봄·가사와 같은 것들이 포함된 '총 노동시간'과 같은 것을 사회적으로 고민해야할 필요성을 던진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프리랜서'라는 불안정한 노동 형태와 '여성 노동자'가 경험하는 노동과정의 어려움, 배제를 고민하기 위해 필요한 논의는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 걸까? 새로운 질문과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현장의 목소리]산재 제도의 사각지대, 여성특수고용노동자의 현실을 살펴보다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금속노조 케어솔루션지회,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인터뷰 / 2020. 08

[현장의 목소리]

산재 제도의 사각지대, 여성특수고용노동자의 현실을 살펴보다 -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금속노조 케어솔루션지회,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인터뷰

지안 / 상임활동가 

"통상 산업재해에서의 '일반적인 합리성'이란 산업재해를 어떻게 인식해왔는가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관련된다." 최윤정 <산업재해로써 직장 내 성희롱>(2019)

산재보험은 일하다 다치거나 아픈 노동자가 걱정 없이 치료를 받고 재활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다. 그러나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산재보험의 적용, 신청, 승인에 이르는 과정에는 여러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먼저 고용 형태·직종에 따른 적용 범위는 가장 큰 쟁점이다. 산재법 시행령 2조는 적용제외 사업을 지정하는데 이로 인해 가사노동자 등이 배제된다. 특수고용노동자의 경우에는 특례로써 9개의 적용 직종을 정하고 있는데, 이 비율은 전체의 13.1%이다. 최근 7월 1일부로 시행령 개정을 통해 총 14개의 직종으로 적용 대상이 확대되었다.

성별 역시 중요한 특성이다.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현황분석>에 따르면, 산재 노동자 중 여성 비율은 2008~2017년간 19.4%였다. 학교 급식실, 마트 등 서비스업 노동자의 대표적인 직업병으로 알려진 근골격계질환의 요양 재해 현황 역시 2017년 기준 21.4%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비슷한 기간 동안 일한 전체 노동자 중 여성 비율이 42.8%임을 보면, 산재보험의 성인지 감수성의 문제를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여성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 문제는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 우선 전국의 등록된 특고노동자 중에서 여성 비율은 68.1%로 과반수를 훨씬 상회한다. 그중 남성의 적용제외종사자 비율은 28.2%인데 반해, 여성은 70.3%에 달한다. 이런 성별 차이는 왜 발생했을까? 그리고 이 격차는 실제 일하는 여성 특고노동자들의 건강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우리에게는 산재 신청과 승인에 이르는 과정, 여성들이 주로 일하는 직종·산업의 특성과 가정 내의 역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분석이 필요한 상황이다. 

대표적인 산재 적용 직종인 전국학습지노조, 올해 5월 결성한 신생노조이자 올 7월 부로 산재가 적용되는 직종인 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 지회, 그리고 애초 산재보험 적용에서 배제된 가사노동자들의 안전보건 문제를 듣기 위해 전국가정관리사협회(전가협)를 만났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여성 특고노동자가 어떤 안전·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지,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서 성별과 고용 형태가 맞물려 발생하는 효과는 무엇일지, 이 배제를 건강권 차원에서 다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난 6월 특수고용노동자 관련 법제도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고, 학습지 교사의 노조할 권리와 4대보험 보장을 요구하였다. 출처: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방문·이동노동의 특성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세 직종의 가장 큰 공통점을 꼽으면 방문 노동 형태로 업무가 이루어진다는 점이 있다. 방문·이동 과정 중의 전도·교통사고 등의 위험도 크고, 폭염·한파·미세먼지에도 취약하다. 2019년 학습지노조에서 실태조사를 한 결과, 호흡기 질환 문제가 심각하다는 답변이 29%에 달했다. 노조는 미세먼지 경보가 떠도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호흡기 질환에 취약하다고 해석한다. 한편 케어지회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자가격리자와 접촉해 2주간 일을 쉰 사례도 발생했다. 노동자들은 감염병 유행 시기에서도 불안하지만 위험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이다. 

오수영(전국학습지노조 위원장): 숙제 점검을 하려면 학습지를 걷어야 하는데, 하루에 30과목이니 엄청난 분량의 학습지를 짊어지고 다닌다. 약 10kg 정도다. 또 이동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7시간 정도의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학기 중에는 하교 시간부터 수업을 시작하니 종일 뛰어서 이동한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급하게 뛰어다니다가 낮은 턱에 걸려 발생하는 골절사고가 가장 잦다.

김정원(LG케어솔루션지회장): 매니저가 담당하는 가전제품이 10가지 정도 되고, 관리에 필요한 작업 도구도 각기 다르다. 짐이 워낙 많아서 근골격계질환을 많이 호소한다. 비가 크게 오면 우산 들 손이 없어 비를 맞고 다닌다. 한파로 길이 얼 경우에 미끄러지기도 쉽다. 주로 자차를 이용하니 교통사고도 빈번하다.

일터가 고객의 집인 만큼 작업환경 상의 문제점도 특징적이다. 학습지교사의 경우는 학습을 지도할 때 보통 바닥에 앉으며, 아이가 사용하는 책상에서 진행한다. 일하는 시간 대부분을 몸에 맞지 않는 작업환경에서 보내는 것이다. 아이에 맞춰진 책상을 성인이 사용하면 신체 자세 상 특히 목의 부담이 상당하다. 가정관리사도 가정마다 작업 도구가 구비되지 않거나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도구를 쓰면 수월할 작업을 더욱 힘들게 해야 한다. 직접 장비를 사서 들고 다니는 노동자가 있을 정도다. 협회에서는 특히 화장실 청소를 할 때,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안내하지만 보호구도 직접 구매하기에 실효성이 낮다.

김재순(전국가정관리사협회장) :주로 화장실 청소, 특히 곰팡이 제거 작업에 사용되는 세제들이 독하다. 눈이 따갑다거나 어지럽고 핑 돈다는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그 외에 솔질, 걸레질로 인해 테니스 엘보, 오십견을 진단받거나 창틀 닦기 등으로 인한 손가락 관절염도 주요하다.

방문 직종의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화장실 이용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물었다. 작년 학습지노조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방광염 증상이 있다는 노동자가 61.9%, 증상이 심각한 정도는 35%로 나타났다. 많은 교사들이 일하는 내내 다양한 가정을 방문하지만, 화장실 이용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케어솔루션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김정원: 2년 동안 일하면서 고객 화장실 이용은 정말 급할 때 딱 1번이었다. 서비스 방문 후에 고객에게 만족도 조사 문자 발송이 가는데, 혹시라도 평가 등급에 영향이 있을까 우려가 돼 사용하지 않았다.

케어솔루션지회의 임원, 조합원, 활동가들. 출처: 케어솔루션지회

노동시간, 특수고용노동자의 딜레마?

특수고용노동자에게 '노동시간'은 양단에서 모두 문제가 된다. 기본급이 따로 없이 건당 수수료가 곧장 소득으로 이어지기에 장시간 노동이 반복되기 쉬운 구조다. 특히 학습지교사·케어솔루션 매니저의 경우는 하루에 방문해야 할 건수는 정해져 있지만, 노동시간에 대한 규제는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두 직종은 방문 약속이 가능한 시간대가 정해져 있다. 학습지교사의 경우는 학생이 하원·하교하는 오후 3시경부터 약 밤 10시까지의 시간이다. 그러니 하루의 수업은 약 7시간 정도의 오후~늦은 저녁 시간대로 몰린다. 한 수업 당 소요되는 시간은 15분, 하루에 보통 30과목을 수업한다. 그래야 월 200만 원 정도라도 소득이 보전된다. 학습지 교사들이 식사도 하지 못하고 바쁘게 뛰어다녀야 하는 이유다. 가정관리사 역시 4시간 서비스로 하루에 2가정을 방문할 경우,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식사 시간도 부족해 식사를 거르거나 간단히 김밥을 사 먹는 수준이다. LG케어솔루션 매니저들 역시 고객이 선호하는 시간대가 있지만, 그것이 오전부터 늦은 저녁을 아우르기에 결국 장시간 노동이 불가피하다. 

김정원: 보통 9시가 첫 가정이다. 고객들은 이른 오전이나 퇴근 시간 이후 점검을 선호하기에 약 8시 반에서 9시에 퇴근을 하고, 한 달에 2~3번은 주말에도 점검한다. 한 달에 평균 180~200개 가정을 방문한다.

반대로 고객이 감소해 단시간 일하게 되는 경우는 소득 자체가 줄어들어 생활에 큰 어려움이 된다. 코로나19 이후 인터뷰한 세 단위는 고객이 30% 정도 줄었다고 답했다. 

김재순: 안산 지역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부터 30~40% 정도 줄어들었다. 한 가정이 보통 주 2회 이용을 한다고 하면 주당 10만 원, 한 달 40만 원의 소득이 바로 사라지는 것이다. 생계에도 문제가 상당하다.

덧붙여 정부의 특고고용안정지원금도 신청하기 어려웠는데 이유도 갖가지다. 학습지 교사의 경우에는 현재 사측에서 회원 탈퇴 처리를 해주지 않아 개인 교사들이 중단한 '유령회원'들의 수업비를 대신 납부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결국이 비용이 소득에 잡혀 공식적으로는 소득감소가 없었다. 

LG케어솔루션의 경우 지난 3월 직수형 정수기 제품 중 하나가 결함으로 인해 곰팡이가 생기는 사태가 생겼다. 회사는 이를 리콜하지 않고 매니저들이 수리하도록 했다. 정수기를 해체하는 작업이라 "온몸이 아파 끙끙 앓을 정도로" 고된 작업이었지만 건당 수수료는 3천 원에 불과했다. 이 사건은 추후 노조 결성의 핵심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 건당 수수료 때문에 줄어든 소득이 잡히지 않아 고용지원금에서 배제되었다. 

가정관리사들은 고객과 현금 지급, 계좌이체 등으로 임금을 받기 때문에 소득 자체를 증빙하기 어려워 신청 수가 거의 미미했다. 정부 지원금이 필요한 노동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체계가 제대로 만들어진 것인지, 이미 특고라는 형태 자체가 하나의 행정적인 기준에 들어맞기 어려운데 이런 점들이 제대로 고려된 것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김정원: 노동시간이 소득과 연결되는 점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입장이 상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적은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기본 수수료가 상향되는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한편 '방문노동'의 특성상 각 노동은 모두 정해진 서비스 제공 시간이 있지만, 그 시간 내에 모든 업무를 마치기는 사실상 어렵다. 특히 '방문업무'에 필요한 제반 업무들은 노동시간으로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문제다. 특히 학습지 교사와 케어솔루션 매니저들은 고객과 방문 약속을 잡거나 변경·취소하는 일을 위해 퇴근 이후나 주말에 별도로 시간을 낼 정도로 가려진 노동시간 문제가 심각하다. 

오수영: 소득이 발생하는 건 수업 시간뿐이지만, 실질적으로 하는 업무가 다양하다. 방문 약속 잡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물론이고, 주 1~3회 정도 아파트나 유치원을 돌아다니며 전단을 뿌리거나, 주 2~3회는 오전 10시부터 지국별 교육·미팅에 참여한다.

'산재를 산재로' 여전히 유효한 구호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산재 사고를 현장에서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실질적인 비용 문제부터, 특수고용노동자의 경우 노동시간이 곧바로 소득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제대로 치료받는 시간적 자원도 부족하다.

오수영: (수업을) 죽어도 한다. 죽기 전까지. 아파서 수업을 못 하면 교재만 돌리러 다닌다. 그조차 못할 정도로 아프면 동료에게 대신 돌려달라고 부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웬만해서는 해당 수업을 그달 안에 해야 하기에 참고 나간다.

오수영 위원장은 산재를 신청하는 경우는 더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될 경우가 아니면 거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학습지교사의 경우 병가가 소득의 감소로 이어지는 문제뿐만 아니라, 고객의 이탈로 이어지기에 실질적으로 치료를 받거나 휴업을 하는 일이 어렵다. 실제로 학습지노조의 경우 이미 산재 적용되는 직종이지만 가입률이 평균 15% 미만이다. 실태조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로는 '산재 제도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가 46%, '회사의 상해보험 가입 유도'가 32%로 나왔다. 

오수영: 교사의 97%가 여성이고, 평균 나이가 47세다. 1년 미만 퇴사율이 높은 점을 감안해 실제 평균 연령은 이보다 높을 것으로 짐작한다. 무거운 가방, 반복해서 계단 오르내리기, 대부분 바닥에 앉는 데다 안 맞는 책상 크기 등으로 인한 만성 질환도 많다. 20년 넘게 일한 교사가 척추 디스크로 산재 신청을 했는데 불승인됐다. 업무상 질병의 입증이 쉽지 않다. 지금으로써는 병원에 주기적으로 다니는 시간조차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김재순: 가정관리사의 법적 보호를 위해 4대 보험을 가입할 수 있도록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산재 사고에 대한 보상 등의 문제를 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산재 사고에 대한 해결이 가능하지만 대부분 사회보험 가입 시 발생하는 보험료를 부담스러워해 가입하지 않는다. 왜 4대 보험을 가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홍보와 교육이 정부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한편 김정원 지회장은 이번 산재보험 확대를 우선 반기는 입장이다. 물론 특고에게만 있는 산재보험의 본인 부담분과 적용제외 신청 제도는 비판점이다. 이런 개선지점이 있지만 일차적으로 조합원들이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관심도가 높고 노조 차원에서도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실제 산재 사고 역시 빈번하기에 이번 적용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김재순 협회장은 현 고용노동부·강은미 의원 발의안 외에 플랫폼/알선업체 노동자를 모두 포괄하는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 준비 중이다. 우선 근기법·산재법·산안법상 모든 일하는 노동자가 포괄되어야 하지만, 이번 법안의 발의로 법적 보호에서 완전히 배제된 가정관리사의 처우가 향상될 것으로 전망한다.

마지막으로 오수영 위원장은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특례 적용 자체를 비판했다. 올 7월부터 특고 중 일정 직종 확대가 있었고 학습지노조는 원래 산재 적용 직종이었지만, 그가 보기에는 한 직종이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학습지노조를 구성하고 있는 대다수인 중장년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서 주로 배치되는 일자리의 특성은 모두 유사하고 노동자들은 연령이나 다양한 요인들로 여러 일자리를 옮겨 다니기 쉽다. 그러니 이 문제를 여성 노동자 공통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 학교 비정규 여성 노동자, 외치다 "우리가 가는 길이 바로 여성노동자의 길" / 2020.07

[현장의 목소리] 

 

학교 비정규 여성 노동자, 외치다 "우리가 가는 길이 바로 여성노동자의 길"

 

나래 / 상임활동가 

 

인터뷰해야겠다는 다짐은 한 언론 기사의 두 줄에서 시작됐다. '충남에서만 여성 강사 3명이 임신 사실을 숨기고 체육활동을 하다 유산했다'라는 내용이었다. 임신 사실을 숨겨야 했던 절박한 상황, 불안을 참고 견디며 일하다 결국 유산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자체가 '현실' 같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저출산이 국가의 위기라고 떠들며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일터에서 여성 노동자의 재생산권은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다.

초등학교 스포츠강사는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직군 중 하나다.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체육 직종 관련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학교에 배치하기 시작했고, 이후 교육부도 사업에 참여했다. 일자리 창출이란 명목으로 도입된 사업인 만큼 양적 양산 초점에만 맞춰지고, 일자리의 질은 한참 낮다. 노동조합에서도 꾸준히 제기해온 문제점이다. 담당 직무를 체육 수업 보조자라고 정해놓고 1년 단위의 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더욱 문제는 공적 기관인 학교가 비정규직, 특히 여성 비정규직을 끊임없이 양산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는 여성 노동자 고용이 높은 대표적인 곳이다. 노동조합에 따르면 교육공무직원과 강사 포함 전국에 40만 명의 노동자가 있으며 여성이 93%, 남성 7%로 추산하고 있다. 교원의 경우에도 여성 비율이 높다.

2019년 교육부가 발표한 교육기본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체 교원 대비 여성 교원은 71.3%(35만4093명)로 고등학교(53.5%), 중학교(70.1%), 초등학교(77.2%), 유치원(98.3%) 순으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으며 교원 성비 불균형이 두드러진다. 이처럼 학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성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서, 여성으로서 겪는 이중차별 문제를 살펴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해결의 출발점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지난 6월 30일 노조 사무실에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하 학비노조)의 안순옥 수석부위원장과 최은희 정책부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유령 취급당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안순옥 수석부위원장은 11년 차 경력의 학교 식생활관(급식실) 조리실무사다. 노동조합에 가입해 지회장, 지부장을 역임하고 올해 노조 수석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도 처음엔 노조가 낯설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자신의 일이 존중받지 못하고, 차별받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으며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만 했던 경험이 스스로 노조를 찾게 만들었다. 

안순옥: "방학 날이었어요. 교직원 연수를 떠나는 날인데 급식실 빼고 다 가더라고요. 연수 참여자들이 일찍 움직여야 하니깐 배식 시간도 1시간 이상 빨라졌죠. 그러면 우리도 일찍 가서 일하거나 빠르게 움직여서 일해야 하는데, 너무 서럽더라고요."

최은희 정책부장은 자신이 노조에 가입하게 된 이유로 학비노조의 출범 계기를 꼽았다. 그는 2011년부터 8년 동안 초등학교 돌봄교실 전담사로 일하며 올해 1월 1일 자로 노동조합 전임을 맡았다. 

최은희: "일하면서 처음으로 '우리가 하는 일에 비해 저평가받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학교의 유령' 같다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한 적도 많아요. 제가 결정적으로 노조에 가입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돌봄교사의 무기계약직이 때문이었어요. 돌봄교사는 1년 단위로 계약을 했어요. 2년 이상 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는 돌봄 교사가 괜찮다 싶으면 교장 선생님들끼리 암묵적으로 돌렸어요. 학교에선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가르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인터넷으로 노조를 검색해서 가입했죠."

비정규직이란 불안정한 고용형태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이 노동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학교는 배움의 장이 되는 공적 공간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는 오히려 차별적 구조와 문화를 끊임없이 양산해내고 있다. 50~70여 직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는 곳이 바로 '학교'다. 

비정규직이라 차별받고, 여자라고 차별받고 

정부는 교육 분야에 비정규직을 도입한 이유로 학교행정업무의 경감 및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실제론 IMF 이후 유연해진 노동시장에서 소위 경력단절 여성들을 노동시장에 끌어들이며, 시간제 일자리와 같은 불안정한 고용형태, 저임금의 일자리를 집중 양산했다. 임신, 출산, 육아를 거쳐 다시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여성의 입장에서 그나마 손을 뻗을 수 있는 곳은 '비정규직 일자리'뿐이다. 특히 학교에서 조리, 돌봄과 같은 업무는 여성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지며 대표적인 비정규직 일자리다. 

2017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말이 있었다. 당시 국민의당 이언주 원내수석부대표가 민주노총 총파업에 참여한 학교 비정규직 급식노동자를 놓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급식소에서 밥하는 아줌마들"이라고 말한 것이다. 노동기본권에 대한 몰이해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을 폄하하는 말로 당시 노동·여성계의 지탄을 받았다. (관련 기사: 이언주 "밥하는 동네 아줌마가 왜 정규직 돼야 하나?" http://omn.kr/np76)

안순옥: "예전엔 행정보조, 교무보조 명칭이 이랬어요. 교사들도 보조 선생님이라고 불렀고요. 초창기에는 교사, 행정 공무원의 보조 업무를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교사, 행정 공무원들이 하는 일을 똑같이 하고 있어요. 어느 학교에 가면 공무원이 해야 하는 일을 비정규직 노동자가 하고 있어요. 만약 보조라고 한다면 교육청에서 업무 교육을 할 때 다른 교육을 해야겠죠. 그런데 그렇지 않거든요. 급여 담당자를 부르면 거기에 정규직, 비정규직 다 와요. 똑같은 일을 하기 때문이에요."

최은희: "돌봄교사의 경우 입직할 때 조건이 되는 자격증이 유치원, 중등 교사 자격증, 보육교사 2급 자격증 등이에요. 엄연히 자격이 요구되고 그에 필요한 것들을 다하죠. 그런데 보조적 업무라고 생각해요. 특히 돌봄의 경우 엄마들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강해요.

그런데 사회가 변했잖아요.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졌고 전문적으로 돌봄을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로 해졌죠. 그 업무를 하기 위해 돌봄교사들이 있는 거고요.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학교에서 유일하게 움직인 게 어딘지 아세요? 바로 돌봄교실이에요. 긴급돌봄이라고 해서 계속 운영했죠. 돌봄 업무가 보조적인 업무이거나 가치가 없는 노동이 아니에요. 이제는 정말 이 시대에 필요로 한 필수 노동인 거죠. 이제는 돌봄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때라고 봐요."

코로나19로 등교 수업이 미뤄지면서 자녀를 집에만 둘 수 없는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긴급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공적으로 받을 수 있었던 돌봄노동이 중단되면서 그 부담이 돌봄의 주 담당자인 여성 개인에게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이 부담과 책임은 성별분업이 공고한 학교의 여성 노동자에게 다시 돌아갔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이라면 그만큼 사회적 투자와 지원이 아낌없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이나 지금이나 학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소위 '엄마의 마음과 태도'로 임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비정규직이자 여성노동자로 부딪혀야 하는 이중차별에 노동조합은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여성 노동자의 길, 우리가 만들어 간다  
 

▲   지난 6월 27일 서울 여의도 여의대로에서 "코로나시대! 초등돌봄교실 시간제 폐지 및 법제화! 초등돌봄노동자대회"와 "코로나 시대, 비정규 직 차별철폐 법제화 쟁취! 집단교섭 승리! 공무직위원회 정상화! 간부결의대회"가 열렸다.

산업재해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상 학교 비정규 노동자는 법 적용에서 배제됐었다. 그러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현장 증언과 투쟁으로, 지난 2017년 2월 고용노동부는 학교 식생활관 업무를 적용 범위에 포함하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하게 되었다.
  
여성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를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자리다. 특히 여성은 일터에서나 가정에서나 주요한 결정 권한을 행사하는 위치에 놓이지 못한 경험이 많다. 그런 측면에서 여성노동자의 렌즈를 통해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역할과 의미를 찾아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것이 학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걸어가는 길이자 여성 노동자가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안순옥: "초등 스포츠강사 유산 문제를 알고 나서 화가 났어요. 이분들은 무기계약직도 아니에요.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육아휴직도 못 써요. 쓰겠다고 하면 고용이 어렵잖아요. 여성이란 이유로 그런 거죠. 이런 문제로 임신 사실을 숨기다가 유산한 사실이 너무 속상해요. 상시지속 업무면 누구나 당연히 필요한 육아휴직 제도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해요. 정부에서는 계속 저출산이 문제라고 하는데 왜 필요한 제도를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사용하지 못하는지 답답해요. 축복받아야 할 일을 숨겨야 하는 현실이 바뀌면 좋겠습니다."

최은희: "이전보다 여성 노동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긴 했지만, 대기업만 봐도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여성 비율이 낮잖아요. 여성에겐 유리천장뿐만 아니라 벽도 존재한다고 봐요. 그만큼 여성에게 허용되지 않는 게 있어요. 남성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게 여성에겐 그렇지 않은 거죠. 노조를 하면서 저희끼리 이런 얘기를 많이 해요. '우리가 가는 길이 여성 노동이 가는 길이야!'라고요. 우리 조합원 대부분이 여성이에요. 우리 처우를 올리는 게 결국 사회적 지위를 올리는 거고, 이런 활동과 경험이 여성 지위를 향상하는데 일조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현장의 목소리] 집단 안질환에 대한 회사의 조치는 '작업용 고글'이 전무 / 2020.06

[현장의 목소리] 

 

 

집단 안질환에 대한 회사의 조치는 '작업용 고글'이 전무

 

 

이숙견 / 상임활동가 

 

 

연구소 상임활동을 하면서 여러 현장의 식당을 가 본 경험이 많았다. 주로 부산울산경남지역의 현장이었는데, 그중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식당은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맛이 좋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과 함께했던 노동강도 평가 사업이나 간부 교육 등으로 울산공장을 방문하였기에, 매일 3만 명이 넘는 노동자(많게는 4만~5만 명 이상)의 아침, 점심, 저녁을 책임져야 하는 식당 노동자의 작업환경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진 못하였다.

2020년 4월 22일, 금속노조 울산지부 현대그린푸드울산지회는 14명의 노동자에게 집단으로 발생한 안질환의 원인 규명과 노동조건 개선 요구와 함께 회사의 탄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무엇이 14명의 노동자에게 집단적인 안질환을 발생시켰는지, 한 달이 지난 현재는 어떠한 상황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지난 5월 26일 금속노조 현대그린푸드울산지회를 방문하였다. 마침 노동조합 상집간부 회의로 지회장님과 다른 간부들도 만날 수 있었다.


집단적 안질환이 발생되기까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22개의 식당이 운영되고 있으며 5개의 섹터로 관리되고 있다. 회사는 주)현대그린푸드로 현대백화점그룹의 계열사이다. 이번 안질환이 발생한 식당은 52공장 식당으로 지난 2월부터 3월에 걸쳐서 14명의 작업자가 각막 손상, 그로 인한 안구 건조증, 눈물 흘림, 비비면 멍이 드는 안질환으로 연·월차를 내고 자비로 안과 치료를 받아오다가 이러한 사실을 인지한 조합원이 노동조합에 제보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52공장 식당에서 집단 안질환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인지, 기자회견 이후 노동부의 원인 규명 조사는 어떠했는지 물었다.

"현대자동차에서 사용하는 식판은 폴리카보네이트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플라스틱 식판이기에 깨끗하게 씻어도 식단의 종류에 따라 식판에 음식 얼룩이 남는 경우가 있어요. 실제 락스와 세제를 혼합하여 사용하지 못하지만, 52공장 식당은 식판 침지세척 과정에서 락스를 세제와 함께 사용하였고 식탁 청소 시에도 락스를 사용한 것으로 제보되었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유해가스로 인하여 집단 안질환이 발생한 것으로 보여요."

"노동조합에서는 14명이 집단발병하였기에 중대재해로 보고,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하였으나,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관 1명을 파견하여 단독으로 피해자를 면담하는 등 형식적인 현장 조사를 했어요. 실제 현장 조사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연락을 받지 못해서 참여조차 하지 못했죠. 그러다 보니 안질환이 발생했던 당시 작업조건-환기 시설, 작업장 온도, 락스의 비율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노동부의 1차 조사에서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에 노동조합은 노동부를 방문하여 항의 면담을 하였고, 노동부는 어쩔 수 없이 6월에 2차 역학조사를 하기로 한 상황이에요."

울산공장 식당에서 일하는 작업자는 약 830여 명이다. 8시간을 일하는 정규직 조리원이 340명이고, 단기 작업(4~6시간)자인 조리 보조원이 약 340명, 관리자인 조리사가 120여 명으로 구성되어있다. 현대그린푸드 울산지회는 2018년 8월 26일 창립하였고, 대부분 조합원은 정규직 조리원이다. 이번 안질환의 피해자는 대부분 비조합원으로 노동조합이 이번 사건에 대하여 대응을 하자 회사에서 탄압과 입막음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현대그린푸드 측은 그간 언론보도를 통해 압박, 회유 등 제기된 문제에 대해 "노초 측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편집자 주) 노동조합이 제보를 받고 현장조사를 하자 회사는 어떠한 행동을 하였는지, 안질환 피해자 14명은 산재 신청을 했는지 물었다.

"회사는 노동조합이 이 사건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자마자 '노동조합에 이야기해서 일을 크게 만드냐?'며 제보자 색출에 들어갔고, '누가 물어보면 다른 말 하지 말고 마스크를 써서 그렇다'라는 답변 강요와 함께, 조합원을 1:1로 면담하여 근태복원과 치료비를 회사가 부담하겠다며 회유와 협박을 했어요. 그리고 현대자동차 환경보건팀이 득달같이 52공장을 방문하여 식판 등 잔류물 조사를 자체적으로 하여 잔류물이 없었다는 결과와 함께, 락스 희석농도 적절, 배기 닥터 정상작동, 에어컨 바람이 세서 환기가 안 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노동부 울산지청에 보고했지요. 결국, 노동부의 1차 현장조사는 회사의 급박한 조치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피해자들이 대부분 비조합원이기에 회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회사의 1:1 면담, 관리자의 압박은 개별 노동자와 조합원에겐 큰 부담이었어요. 치료를 받았지만, 개인 근태로 처리하거나 자비로 부담하였기에 조합 차원에서 피해자의 협조가 없으면 근거자료를 확보하기가 어렵죠. 결국, 현재 산재 신청을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집단 안질환 발생 외 안전보건 의제

노동조합은 기자회견을 통하여 회사에 5가지의 요구안을 제시하였다. 첫 번째는 중대재해자 14명 전원의 산업재해처리와 인정, 두 번째는 식당에 사용 중인 저가형 세제 사용 중단과 식당 노동자와 현대차 조합원의 건강권을 고려한 친환경 세제 전면교체 및 애벌 세척기 도입, 세 번째는 식판 심지 세척과 식탁 청소 시 락스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에탄올 대체 요구, 넷째는 환경호르몬 논란이 되는 플라스틱 식판을 스테인리스 식판(STSS304)으로 교체, 마지막으로 그동안 장시간에 걸쳐 유독가스에 노출된 작업자들에게 특수건강검진 실시와 노조가 추천한 전문위원이 포함된 공동조사와 긴급 노사협의회 개최이다. 기자회견 이후 현장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이번 안질환 이외의 노동자 건강권 문제는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노동부의 1차 조사 결과에서도 뚜렷하게 회사의 문제점으로 확인된 내용이 없기에 눈에 보이게 달라진 것은 없어요. 락스 비율 정도를 고려하거나 환기 시설을 개선한 정도이며, 실제 노동조합이 요구한 내용은 대부분 개선되지 못하고 있어요. 오히려 예전보다 더 힘든 상황이 회사가 작업자의 눈을 보호한다며 '작업용 고글'을 착용하라고 지시했죠.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도 힘겨운데 고글까지 착용하기 때문에 더욱 작업자들이 힘들게 작업을 해야 해요. 모두가 다 뜨거운 불 앞이고, 조식 1000명, 중식 2200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스크도 해야 하고, 앞치마도 입어야 하며, 여기에 고글까지 끼면 엄청나게 습기가 차요. 특히 식당은 고열작업이 많고 세척과정에서도 더운물을 많이 사용하기에 고글착용 시 김이 서려서 앞이 보이지 않게 되요. 이 때문에 사고 발생의 위험을 더욱 높이는 조치라고 생각해요. 회사의 이러한 일방적인 조치는 작업자의 고충이나 노동조합의 요구를 전면 무시한 행위인 거죠."

"급식노동 자체의 작업환경으로 화상, 피부질환, 호흡기질환 등에 늘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반복 작업, 중량물 작업도 많기에 근골격계질환자도 많아요. 3만 명 이상의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배식을 하기에 감정노동에도 많이 노출됩니다. 특히 주간 연속 2교대제에 맞춰서 음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교대작업으로 인한 수면장애와 스트레스가 심각해요. 오전반은 4시에 출근하기 때문에 새벽 3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속적인 교대근무로 오전반 근무가 되면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실제 뇌심혈관계 질환도 많이 발생하고요."

노동조합 결성 이후 안전보건 과제

현대그린푸드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15년 이상이며, 대부분 조합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20년이 넘는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2018년에 최저임금이 10.8% 인상되면서 임금인상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회사는 아무런 설명 없이 임금피크제와 격월 지급이던 상여금 600%를 매달 지급으로 바꾸는 내용에 대한 개별 동의서를 받았다. 결국, 상여금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되어 임금은 동결되었고,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으로 겉으로는 노동시간이 단축되었으나 실제 작업량과 인원은 그대로였기에 현장의 노동강도는 엄청나게 높아지게 되었다. 결국, 2018년 8월 현대그린푸드 울산지회가 창립하였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게 되면서 현장의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앞으로의 노동조합의 계획은 뭔지 물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아파도 산재로 나가지 못했어요. 회사 때문에 눈치도 많이 보고,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부담이 될까봐 참고 일했죠. 하지만 노조가 만들어지니깐 산재로 나가는 것이 조금 수월해졌어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고, 노조를 통해서 산재 인정과정에서 도움도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산재로 나가면 비는 인원에 대하여 4시간 임시 가사보조원이 충원되는데 4시간만 보조가 되기 때문에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해서 여전히 동료들의 힘들까봐 부담이 되죠."

"6월에 있을 2차 현장 조사에 최선을 다해서 임하고 싶어요.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여, 노동조합이 요구한 요구가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조합원의 작업환경을 고려한 맞춤형 건강검진 실시와 안정적인 산보위 운영, 작업장내 민주적인 조직문화를 위한 개선 노력도 필요합니다. 특히, 대부분 조합원은 여성노동자이고, 22개 식당 관리자는 남성 조리사로 구성되어있기에 오랫동안 위계적인 구조로 인한 비민주적인 조직문화가 지속하여 왔어요. 최근에 회사가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기 위해서 1기 노조 간부 모두를 전환배치 하는 등 일터괴롭힘도 심한 상황이에요."

주식회사 현대그린푸드는 푸드서비스사업(급식사업)뿐 아니라 외식사업, 리테일사업, 식자재유통사업, 해외사업, 건강식 사업 등의 다양한 식품 관련 사업을 펼치고 있는 국내 대표적인 식품회사이다. 그렇기에 2019년 연간 매출액은 3조 1243억 원이고, 영업이익은 899억 원, 당기순이익은 639억 원으로, 연말 기준 자산총계 2조 9666억 원 규모(출처 : 다음 백과)의 회사다. 하지만 회사가 이렇게 확장하기까지 현대그린푸드 노동자의 노력과 희생에 대한 인정과 보상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최저임금 인상을 적용하지 않기 위해 꼼수를 부렸고, 이러한 과정에서 참지 못하고 노동조합을 만들자 간부들을 전환배치했다. 심지어 집단 안질환 발생으로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자 개별 작업자를 압박하여 노동조합의 요구를 배제하고 있다. 여기에 노동부는 회사의 입장만을 반영한 채 현장 조사를 하였으며, 노동조합의 집단 항의 면담을 진행하자 겨우 2차 현장 조사를 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가 현대그린푸드 울산지회만의 문제일까?

"우리는 임직원의 보람과 행복을 중시한다. 우리는 모든 임직원을 회사의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고, 개개인의 인간적 존엄성을 존중하며 각자의 자질과 능력에 따라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고 정당한 평가를 통해 보상받을 수 있는 조직문화의 조성을 통해 개인의 꿈과 미래가 보장되는 자랑스러운 일터가 되도록 노력한다."(출처: 주식회사 현대그린푸드 홈페이지)라고 명시한 임직원은 과연 누구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1년 동안 식사 제공 수 2억 끼, 운영영업장 수 570개, 직원 9700명을 거느린 주식회사 현대그린푸드는 국내 식품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답게 노동자에게 정당한 보상과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유지 증진하고 노동자의 인간적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업주의 책임과 의무를 제대로 해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 2인 1조 근무가 만든 안전한 일터 - 울산 경동도시가스 안전점검원 투쟁 이후를 인터뷰하다 / 2020.05

2인 1조 근무가 만든 안전한 일터 - 울산 경동도시가스 안전점검원 투쟁 이후를 인터뷰하다

지안 상임활동가

 

2019년 4월, 공공운수노조 경동도시가스서비스센터 분회 소속 조합원인 도시가스안전점검원이 한 고객의 집에 감금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작년 5월부터 시작된 울산 경동도시가스 노조의 파업은 약 5개월 간 이어졌다.

관할 지자체인 울산시와 원청인 경동도시가스 모두 안전점검원들의 안전 문제에 책임을 회피하던 와중에 3명의 조합원이 울산시청 옥상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였고, 바로 경찰에 연행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9월에 들어서야 노조와 사측은 성과제 폐지와 2인1조 시행을 두고 합의하게 되었다. 

이 투쟁의 성과로 조합원들은 작년 10월부터 2인 1조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고, 위험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성과제도 폐지되었다. 2020년인 올해는 1년간 성과제 폐지와 '탄력적 2인1조'를 시행한 뒤 적합한 방문 세대 수 등 노동조건을 결정한다. 노조에게 작년 투쟁만큼이나 올해를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다. 

지난 4월 23일, 울산의 한 바닷가 동네에서 울산경동도시가스노조 조합원 네 분을 만났다.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 대화 사이에서도 조합원들의 안전과 건강 문제에 관해서는 진지하고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 지난 투쟁의 동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었다. 조합원들은 올해 1년 간 탄력적 2인1조와 성과제 폐지를 잘 시행하고, 이후 산재 중인 동료 조합원이 복귀할 수 있는 노동조건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위험을 키운 성과제, 97% 점검율의 문제점 

울산 지역 도시가스 안전점검원들이 하고 있는 가스 안전점검 업무는 검침, 고지서 송달 업무와 달리 가스누출을 확인해야 하기에 고객의 집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면 업무다.

박근혜 정부 시기 '안전점검' 업무를 도급하지 말라는 지침에 따라 원래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일하던 도시가스검침원들이 업무 내용에 따라 안전점검원과 검침원으로 분리되었다. 그 과정에서 안전점검원들은 경동도시가스 고객센터를 운영하는 하청업체 소속으로 직고용이 되었지만 검침원들은 오늘날까지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일하며 각종 법적 보호 밖에 있는 형국이다. 

한편 안전점검원들은 분리 과정에서 검침 파트보다도 인력이 적어졌다. 점검율 등의 경영정책 속에서 안전점검을 담당하는 인원이 줄어든 것은 더욱 부담이 가중되는 문제였다. 또한 점검 업무 자체가 고객의 집에 들어가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검침, 고지서 송달보다 건당 시간도 오래 걸리며 까다로운 일이다. 업무의 종류 역시 여러 가지다.

보통 도시가스 안전점검원의 업무를 생각했을 때, 고객의 집에 들어가 가스누출 등을 확인하는 작업만 떠오르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고객과 방문약속을 잡고, 가스요금 등 도시가스 관련 민원에 대응하는 등 수많은 부수적인 업무들이 있다. 그런 와중에 점검율을 100%에 수렴하게 맞춰야 했으니 도시가스 안전점검원들은 밤이고 낮이고 일에 매달려야 겨우 실적을 맞출 수 있었다.  

이신자 : "언론에서 이야기되는 성과제란 얼마나 누락 없이 전 담당 세대 점검을 완료했느냐를 말하는 점검율을 의미해요. 파업 전에는 저희가 일하는 경동도시가스 동울산센터의 점검율 기준이 97%에 달했어요. 그런데 지금처럼 1인 가구도 증가하고, 각자 스케줄이 바쁜 사회에서 가가호호 방문을 해서 97% 점검율을 달성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저희도 어떻게 해왔는지 모를 정도로 밤낮없이 일에 매달려서 겨우 채워왔던 거죠."

이 점검율이 문제적인 지점은, 노동강도의 증가나 점검율과 연동되는 임금 삭감 등의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문제는, 점검율을 채우기 위해 빨리 다음 가정을 방문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안전점검원들로 하여금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고, 안전문제가 발생해도 단순히 위험 상황을 모면하고 넘기도록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안전'을 위해 시작한 파업에서 왜 성과제가 가장 쟁점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정희 : "예전에는 남자들이 속옷만 입고 문을 열어도 일단 들어가서 점검하기 급급했거든요.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은 하루 중에 굉장히 제한적이죠. 이른 오전이나 주로 저녁 시간대예요. 그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가정을 돌아야 겨우 점검율을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저녁 시간대에는 특히 정신없이 일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일하는 던 중에 안전에 위협을 느끼더라도, 혹은 고객과의 관계에서 성희롱 등 위험한 상황이 발생해도 그냥 모른척하며 들어가서 빨리 해치우고 나오는 것에 급급했었죠."



아침부터 밤까지 점검에 매달리도록 하는 '간주노동시간제' 

이때, 성과제 문제는 도시가스 안전점검원들의 노동시간이 '간주노동시간'으로 되어있다는 점 속에서 더욱 가중된다. 간주노동시간이란 정해진 노동시간이 없고, 대신 하루에 정한만큼의 시간을 일했다고 간주한다는 의미다. 안전점검원들의 경우 하루 8시간 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에 따라 임금을 책정한다. 

여기서, 정해진 노동'시간'만 있고 '시간대'의 규정이 없으니 우선 노동시간이 어떻게 배치될지 알 수 없게 된다. 두 번째로는 장시간 노동에 대한 감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결과 보통 오전에 출근을 하거나 일을 보러 나가서 저녁쯤 들어오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생각해보았을 때 이 간주노동시간제가 얼마나 그 자체로 안전점검원들의 노동시간을 악화시키는 지 알 수 있다. 

파업 전 안전점검원들은 사람들이 집에 있을 8시 반 쯤 담당 구역을 돌고, 대개 빈집일 오후 시간대는 집에 돌아가 오후부터 저녁에 이르는 방문약속을 잡고 오후 근무의 동선을 짰다. 그리고 사람들이 퇴근해서 집에 있을 저녁시간 대부터 많게는 밤 10시에 이르는 시간까지 집중적으로 점검을 해왔다. 한편 이 지점은 안전점검원들의 노동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심화된다. 종종 사측은 비는 시간대에는 쉬고 사람들이 있는 시간대에 가서 일을 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 : "그런데 중간 비는 시간에 쉰다고 해도 그게 쉬는 건가요? 어떤 고객은 1시에 오라고 하고, 어떤 고객은 3시에 오라고 해요. 그러니 늘 대기하는 상태로 있는 거죠. 또 오후 시간대에도 전적으로 휴식을 취할 수도 없어요. 고객들과 방문 약속을 잡고 동선을 짜는 등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회사에서는 그 시간들을 인정을 안 하고 있지만요."

노조에서는 이 간주노동시간제와 성과제로 인해 조합원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일에 매여 있어야 하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파업을 시작하기 직전인 작년 4월에는 전 조합원이 점검율을 맞추기 위해 고무줄처럼 노동시간을 늘리는 식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노동시간과 배치를 정하고서 일을 했을 경우에 어느 정도의 점검율이 나오는지 실험해보기로 했다. 97%라는 터무니없는 점검율을 폐지할 근거를 사측에 제시하기 위함이었다. 

이신자 : "안전점검원들이 정상적인 근무를 했을 때 도대체 몇 세대를 점검할 수 있고, 점검율은 어느 정도가 되는지, 노동량은 어떻게 되는지 그걸 테스트를 해보자고 했어요. 이전까지는 한 번도 사측은 물론 노조에서도 데이터화를 해본 적이 없었죠. 전 조합원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근무를 하기로 했죠.

한 달 동안 실험해본 결과 점검율이 70%정도 나오더라고요. 나머지 30% 가까이 되는 수치 만큼은 조합원들이 자기 시간들을 들여서 채우고 있었던 거예요. 결과적으로 파업을 하게 되면서 다른 국면으로 흘러갔지만, 점검율에 대한 노조의 비판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죠."

2인 1조 시행 이후 조합원들은 근무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먼저 1인당 1200세대를 방문하던 이전보다, 2인 1조로 총 2060세대를 방문하는 지금이 방문하는 세대의 숫자는 두 배 가까이 되어 양적인 강도 자체는 높아졌다. 이런 구체적인 세대 수에 대해서는 이후 줄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는 점은 가장 중요한 변화점이다. 실제로도 조합원들은 걸음 수는 증가했을지 몰라도 2명이 근무함으로써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성과라는 말을 전했다. 이후로는 문답 형식으로 조합원들이 체감하는 현장 변화를 전한다. 



2인 1조 근무 시행 이후 현장의 변화

▲   왼쪽부터 공공운수노조 경동도시가스분회 김정희 여성부장, 권미순, 이신자, 안미선 조합원의 모습이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노사 간 합의 내용이 '탄력적 2인 1조'라고 발표가 되었는데요. 어떤 방식으로 2인 1조가 이루어지고 있는 건가요? 
이신자 : "우선 두 명이서 근무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시간을 9시부터 6시로 정했어요. 근무를 하는 동안 2인이 함께 움직이게 되는데요. 모든 세대에 2인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방문한 가정에서 여성 고객이 나오면 1명만 들어가서 점검을 진행하고 나머지 1명은 옆집으로 가는 거죠. 이런 방식으로 운영을 해서 효율적이면서도 미연의 사고를 방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 안전점검 업무를 어떻게 2명이 할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근무하는 방식이 안전해지고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1명이 소화하는 세대 수 자체는 많아졌으니 그만큼의 부담은 없으신가요? 
이신자 : "저희도 직접 시행해보기 전에는 2인 1조를 하면 인력도 배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막상 해보니 이전에 인당 1200세대를 담당했다면, 현재는 둘이 2060세대를 담당하니 사실상 큰 차이가 없는 거죠. 몸의 무리가 오긴 하지만 2명이서 일을 한다는 게 훨씬 장점이 많아요. 제일 중요한 건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특히 성과제를 폐지했다는 점이 주요한 성과입니다. 15년 넘게 가스검침, 점검 일을 해왔는데요. 항상 사고는 급할 때 나더라고요. 정상적인 속도로 일할 때는 사고가 안 나는데, 마음이 급하고 시간에 쫓길 때 꼭 사고가 나요. 그러니 안전점검원들을 몰아세우던 성과제가 없어졌다는 것도 안전문제에 있어 중요한 변화였죠."

- 2명이 방문을 하니 아무래도 위험에 대한 대응력도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어떤 변화들을 가장 체감하시나요? 
김정희 : "가장 먼저 물리적으로 안전이 확보된다는 점이 중요할 것 같아요. 고객과의 마찰이나 성희롱 등의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제재하거나 대응할 사람이 내 옆에 한명이 있다는 점이 일단 든든해요. 두 번째로는 혼자 근무를 할 때는 고객 집에 들어가면 아무 일이 없어도 주눅이 들 때가 많았어요.

평소에 감정노동도 많이 했고, 고객이 요구하면 무조건 사과를 해야하는 악습도 많았어요. 예를 들어 고객과의 트러블이 발생했을 때 회사에서는 무조건 안전점검원들이 사과하도록 요구했어요. 2인 1조 시행하고 나서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당당해졌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안미선 : "주로 고객들이 집에 있는 시간인 저녁시간대에 점검을 하러 가면, '고객님 죄송합니다. 1분이면 됩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이렇게 비굴하게 말하며 들어가곤 했어요. 사실은 고객들이 낮에 집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개인 시간을 들여서 저녁에 점검을 하러 다니는 건데도, 항상 우리가 죄인이었죠.

2인 1조를 하고 있는 지금은 옷을 제대로 입지 않고 문을 여는 고객이 있는 경우에는 '고객님, 옷을 제대로 갖춰입고 나와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라고 안내를 해요. 두 명이서 일을 한다는 그 작지만 큰 차이가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일할 때의 당당함을 주더라고요."

여전히 남은 과제는 많다.  투쟁 합의 사항 중 감정노동자 보호 매뉴얼 보급, 예약점검제 시행 등 다른 사항들이 1/4분기가 지나간 지금까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약속된 합의 내용이 모두 지켜지는 일이 필요하다.

보다 중요하게는 성과제 폐지와 2인 1조 근무가 올해를 거쳐 제대로 안착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비조합원이나 타 센터, 타 지역의 안전점검원들에게도 2인 1조 근무가 그동안 줄곧 논의가 되고 있는 안전문제의 해답으로써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 

- 마지막으로 도시가스안전점검원들의 노동환경이 성과제 폐지를 넘어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권미순 : "일하다 아플 때 쉴 수 있도록 인력을 충원하는 일이 필요해요. 지금까지는 병가 사용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할지 구체적으로 논의가 안 되었어요. 2인 1조 근무인 만큼 그런 부분들이 중요하게 보강이 필요할 것 같고, 이후로는 산재 중인 피해자가 복귀할 수 있도록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일에 힘쓰고 싶어요.

저희가 경험하는 현장변화가 타 센터와 다른 지역 안전점검원들에게도 꼭 전해져 전국의 도시가스 안전점검원들이 더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현장의 목소리] 무늬만 프리랜서, 방송사의 책임을 묻는다- 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 진재연 집행위원장 인터뷰 / 2020.04

무늬만 프리랜서, 방송사의 책임을 묻는다

- 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 진재연 집행위원장 인터뷰

 

최민 상임활동가

 

한국 사회는 일하는 사람이 쉽게 억울하고, 억울한자리에 놓이는 곳이다. 2004년부터 청주방송에서 일했던 이재학 PD도 그랬다. 조연출로 입사한 뒤, 청주방송에서 다양한 방송프로그램의 조연출과 연출 업무를 했다. 매년 정규직 PD2배에 이를 정도로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자유롭게 프로그램만 만든 게 아니다. 지자체 보조금을 따내기 위해 사업 계획서를 쓰고, 공무원들과 협의하여 방송을 제작하고, 프로그램 종료 후 정산하는 등의 대외 업무도 했다. 일상적으로 업무를 보고하고 결재용 서류를 써 냈다. 모두 청주방송 PD로서 한 일이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고 했던가. 2018년 문제가 생겼다. 동료 프리랜서, 비정규직 스태프들의 인건비 증액과 인원 보강을 나서서 요구했다. 그러자 갑자기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해고가 아니라 프리랜서 계약종료라고 했다. 억울한 마음에 직장갑질119를 찾았고,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시작했다. 소장을 접수한 지 14개월이 지난 뒤에야 1심 판결이 선고되었는데, 결과는 패소. 재판 과정에서 CJB는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이재학 PD를 위해 나선 증인들을 회유하기도 했다. 결국 고인을 돕기로 했던 증인 한 명이 진술을 번복하기까지 했다. 1심 선고 후, 어머니에게 전화하여 억울하고 억울하다는 말만 하며 울었다고 한다. 판결문을 받자마자 곧바로 항소장을 접수하고, 끝까지 싸워보겠다 다짐했지만, 분노와 억울함이 더 컸다. 결국 202024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다, 억울해 미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1956개 단체가 모여 ‘CJB 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명예회복,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고 이재학 PD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뿐 아니라, 방송계의 오랜 문제인 무늬만 프리랜서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다. 얼마 전인 323일 이재학 PD49재가 있었다. 대책위원회 진재연 집행위원장을 만나 대책위의 싸움에 대해 들었다.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를 파헤치고 해결하기 위한 싸움

이재학 PD의 경우, 직장갑질119 등을 통해 법정 투쟁을 함께 하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고, 이전에 미디어오늘에 소송 과정이 보도되기도 하는 등 알고 있던 분이라 더 마음이 아팠다. 이재학 PD가 돌아가시기 전에도 방송 산업 내에 무늬만 프리랜서 문제가 너무 심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상황이었다.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일하는 드라마 제작 스태프들의 근로자성이 인정됐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방송작가, 독립PD 등은 허울 좋은 프리랜서다. 방송작가나 독립PD들은 개편 때 잘리면 그만이다. 그런 경우 한 건, 한 건 법정에서 노동자성을 다투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재학 PD 사건의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명예회복도 중요한 과제지만, 방송사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목표로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코로나 영향으로 집회 한 번 잡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도 49재는 같이 해야 하지 않나 해서 청주방송 앞에서 작은 집회로 진행했다. 조계종에서 천도제를 지내주셨는데, 큰 위로가 되었다.“

지난 227일 대책위원회는 회사와 합의를 통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게 되었다. 그러나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린다는 합의하에 대책위원회와 회사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첫 회의부터 난관이었다. 회사 측에서는 고인이 억울하다고 한 재판 과정에 참여했던 사측 변호사를 진상조사위원으로 추천했다.

회사는 합의서에서 진상조사위 꾸리고 성실하게 임하겠다 약속했다. 합의문에는 객관적인 진상조사를 위해, 진상조사위원을 방송사 내부위원이 아니라 외부위원으로 구성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사측에서는 이재학 PD1심 재판 과정에서 동료들의 증언을 방해하고, 중요한 증거들을 은폐한 혐의가 있는 사측 변호사를 진상조사위원으로 추천했다. 이런 행동은 사실상 진상조사를 방해하는 것이다. 앞에서는 합의서 쓰고, 사과했다고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협조하지 않고 있다. 지금도 적당한 외부위원을 찾기 힘들다며 위원 구성을 계속 미루고 있다. 회사 내부 사람을 조사위원으로 넣어달라는 논리인데, 그렇게 되면 방송사 직원, 노동자들이 제대로 진술에 참여할 수가 없다. 일단 대책위 추천 진상조사위원들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49재가 끝나고 진상조사위원들이 현장조사를 했다. 1~5층 돌면서 직원들도 만나고 실제 일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는데, 그 자리에 전 보도국장인 고위 인사가 배석했다. 그러니 분위기가 얼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도 청주방송 모기업인 건설사의 이두영 회장이 직원들 앞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청주방송 음해세력이라고 말하며, 조사에 협조하기 어렵도록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 뒤로 회사 분위기가 긴장될 수밖에 없다.”

진재연 집행위원장은 청주방송 진상조사위원회는 관례적으로 요구하여 꾸리게 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재학 PD억울함의 실체를 밝혀야 하는 과제가 절실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재학 PD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의 도화선이 된 청주방송 비정규직 처우 문제를 제대로 파헤쳐야 한다. 동료들의 처우 문제를 제기했다가 해고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본인이 당했던 불공정함 뿐 아니라, 청주방송 내 비정규직 처우 문제를 밝히는 게 고인의 명예회복에도 중요하다. 이후, 문제제기 과정에서 폭언과 괴롭힘을 당했고, 소송 과정에서 위증과 은폐 시도가 있었다. 이러면서 믿었던 동료에게 배신당하기도 했다. 결국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이재학 PD가 다른 출구가 없다고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회사와 함께 다시 짚어보면서, 회사도 반성하고 밝혀내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유가족 입장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이재학 PD14년 동안 정규직보다 더 열심히 일했는데, 사측에서는 홈페이지 리뉴얼한다면서 이재학 PD가 연출했던 프로그램 보기도 삭제하고 있다. 유가족에게는 고인의 모든 흔적을 지우고,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재판도 이어가고,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여, 고인이 어떻게 일했는지 밝히는 것, 그야말로 노동자였다는 걸 밝히는 게 중요하다.”

열악한 노동환경을 정당화하는 한 마디, ‘방송 펑크낼 거야?’

대책위원회에서 만든 카드뉴스 중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방송국이 왜 후진적으로 운영되는지 너무나도 안타깝다는 메모가 인상적이었다. 방송국이 유난히 비정규직, 프리랜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199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중소제작사 지원 정책이라는 명목으로, 지상파 프로그램 외주편성 비율을 정해두게 된다. 외주제작사에 방송 기회를 일정 정도 이상 줘서, 외주제작사를 키워서 방송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IMF 이전까지만 해도 외주제작사의 직접고용이 어느 정도 유지되었지만, IMF이후에는 고용자체가 불안정해지면서 비정상적인 고용형태가 복합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을 예로 들면, 100명 중 5% 정도가 방송사 정규직이다. 나머지 95%의 비정규직도 고용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프리랜서, 파견, 도급 등등. 아예 무계약 상태로 일하는 노동자도 많다. 구두계약조차 없는 상태로 일한다. 그러다보니 그냥 짤리는일도 여전히 많다.”

이 업계에서는 그래도 방송은 내보내야 하지 않냐.”는 말로 모든 것이 넘어가고 있기도 하다. 방송 나가야 한다는 것이 지상과제다. 그 외의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다. 그러니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후 수십 년간 특례업종으로 밤샘노동을 당연히 해 온 것이다. ‘방송 펑크 낼 거야?’라는 말이면 모든 게 정리돼 왔다. 우리가 관행이라 부르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사 노동자들 사이의 위계나 서열 문제도 심각하다. 꼭 정규직-비정규직뿐 아니라, 직군별로나 고용 형태 별로 서로 이해도 높지 않고 경쟁하는 분위기도 있다. 같은 직군 내에서도 경력에 따라서 임금 차이도 크고 위계도 심하다. 노동자들 사이에 이런 차이를 줄이는 게 중요한데, 그러려면 시스템이 제대로 돼야 한다. 직군별로, 맡은 역할이나 일한 연차 등에 따라 임금이 정해진다든지, 표준적인 계약의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하는데, 방송계는 계속 주먹구구식으로 굴러가고 있다. ‘여기서는 10만원인데, 할래?’ 이런 식으로 계약을 맺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방송노동자들을 노동자가 아닌 척하는 방송사, 거기서 비롯된 열악한 노동환경과 장시간노동, 과로사와 안전문제, 저임금과 폭력적인 직장 문화 등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도 4~5년 정도의 일이다. 진재연 집행위원장은 2016년 이한빛 PD의 죽음 이후, 방송작가유니온,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등이 결성되면서 이제야 얘기가 시작되고 있다고 본다. 방송계에서 프리랜서 방송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모으고 조직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가 않다.

예를 들어, 이 투쟁에서도 청주방송 내 비정규직이 모이는 것도 쉽지 않다. 오히려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는 고용 불안이 너무 크니 불안해하고 있다. 회장 말 한마디에 사내 분위기가 얼어붙기도 하고, 대책위에 도움을 주던 분이 힘들다는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방송계에서 몇 년간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현장도 변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여전히 현장 노동자 모임하면, 누가 알까봐 걱정하는 수준이다. 사실상 방송 현장이 인맥으로 이어지는 주먹구구식 구조이다보니, 권리를 주장하고 문제제기하는 것이 고용 문제와 직결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방송사 정규직 노동자와의 관계도 쉽지 않다. 제작 현장에서는 정규직 노동자가 회사 관리자 역할을 하고, 업무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감정이 쌓이기도 하고, 이 사이에서 단결이나 연대로 한 발 나아가는 것도 어렵다. 그런 점에서도 노동자성 인정 문제가 중요하다. 그래야 노동자로 문제제기나, 싸움이나, 연대를 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방송계에 만연한 무늬만 프리랜서

대책위원회는 청주방송뿐 아니라, 방송계 전반의 무늬만 프리랜서문제를 함께 제기하고 있다.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없더라도, 처우 개선이나 조직화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남기고 싶다. 그래서 지상파 4사 앞에서 1인 시위도 진행하고 있다.

수많은 방송사와 제작사 안에 제3, 4의 이재학이 있다. 이재학 PD가 해고되기 전, 동료들의 처우개선 문제제기했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그런 얘기를 하기까지 얼마나 고민했을지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용기를 냈던 사람이 결국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게 안타깝다. 장시간 노동하면서 임금도 제대로 못 받고, 부당한 처우에 목소리 한 번 내기 어려운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함께 내는 것이 이재학 PD의 뜻을 잇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책위에서는 무늬만 프리랜서 관련 실태조사도 하고 있고, PD 외에 다양한 방송직군 증언대회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상황에서도, 방송계 노동자는 고용 형태에 따라 천차만별의 처지에 놓인다고 한다. 재택근무하면서 안정적인 급여를 받는 정규직도 있지만, 일당 받는 직군들은 방송 하나 취소되면 생계에 직격타를 입는다. 반대로 별다른 예방 조치 없이 수십 명의 스태프가 장시간 촬영을 강행하여 불안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으며,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지금 이재학 PD의 죽음에 대해 청주방송의 책임을 묻는다.

[현장의 목소리] 수탁법인의 부당해고 방관하는 경기도 각성해야 / 2020.03

[현장의 목소리] 

 

 

수탁법인의 부당해고 방관하는 경기도 각성해야

 

 

 

정경희 / 선전위원 

 

 

 

 

유난히 찬바람이 기승을 부린 2월 17일. 경기도청 앞에서는 '공정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경기도는 제대로 시정을 펼쳐라'는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공공운수노조 경기마을공동체지원센터분회가 해고의 부당함을 알리는 점심 선전전을 진행 중이었다. 피켓팅을 함께 한 후 투쟁 중인 류태희, 장희진님을 천막농성장에서 뵈었다.
  
장희진님은 공동체지원실장으로 업무를 수행해왔고, 류태희 님은 정책지원팀장으로 일해 왔다고 한다. 두 분 다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생긴 2015년부터 일하다 2019년 12월 31일로 수탁법인으로부터 고용불가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류태희: "기존에는 마을공동체, 사회적 경제 두 영역을 묶어놓은 사업이었는데 사회적 경제는 공공기관 위탁으로 일자리재단으로, 마을공동체는 민간위탁으로 나뉘게 되면서 사회적협동조합 문화숨, 더좋은 공동체 두 업체가 컨소시엄으로 마을공동체지원센터를 수탁 받게 된 거죠."
 

마을공동체지원센터는 지자체마다 존재하는 것 같은데 어떤 사업이나 활동을 하는지 설명을 부탁드렸다.
 
장희진: "현대사회에서 관계망이 깨지면서 범죄나 사각지대가 생기는데 이런 문제를 행정에서 다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구성된 공동체끼리 서로 안전망이 되어주고 그 속에서 관계망이 회복되면서 사회가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시작했습니다. 경기도에서는 10명 이상이 모이면 공동체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1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뭔가 의미 있는 사회적 활동을 한다고 평가하면 지원해주면서 컨설팅도 해주고 교육도 해주는 사업을 진행합니다. 또한 영역별로 분야별로 다양한 지원사업들을 진행합니다."
 

지역에서 관계망 형성이라는 것이 장기계획 속에서 지속성을 담보로 진행해야 하는 사업인데 운영주체가 이렇게 자주 바뀌게 되면 실제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어떠한지 두 분이 서로 말을 이어갔다.
 
장희진: "사업 특성상 성과가 눈에 보이기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려요. 경기도의 한 시군에서는 올곧게 7년을 지원을 하며 그야말로 7년 동안 행정력이나 예산을 들여가면서 성과를 기다리는 반면 전반적인 경기도는 1년 단위로 성과평가를 하면서 계속 점검을 하는 거죠."
 
류태희: "민간위탁제도 자체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분도 계시고, 이게 바뀌지 않는 한 마을공동체지원센터나 사업을 단발적으로 하다 단체장의 의지나 성향에 따라서 엎어지기거나 왜곡하는 우려를 하시더라고요. 사실 센터에는 1세대 운동가뿐 아니라 청년층, 새로운 사람들이 이로운 변화를 만들기 위해 진입하는데, 1~2년이라는 짧은 위탁기간동안은 안정적으로 자기 비전을 가지고 일하기 어려운 조건이죠. 자기전망을 가지고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로조건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명무실한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
 
정부는 2019.12.04.에 민간위탁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를 위해 위탁기관(공공부문)은 수탁기관(업체)을 모집하고 선정할 때, 반드시 "민간위탁 근로자 근로조건 보호 관련 확약서"를 제출받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제출 내용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현재 벌어진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류태희: "마을공동체, 도시재생, 사회적 경제, 청년활동, 최근에는 사회적 자본, 사회혁신 등사회를 변화시키는 업무특성을 반영한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개념정립, 정의가 필요하고 이것에 맞는 민간위탁관리매뉴얼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여기에 있는 개개인은 부속품은 아니잖아요. 저희도 지역과 주민들과 관계 속에서 성장하기도 하고, 그 관계를 바탕으로 사업 혹은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거든요. 비단 경기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시급한 문제이고 행정의 경직된 구조가 아닌 사업의 자율성과 전문성은커녕 생존권도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다 사업의 자기결정권도 하나도 없습니다. 지역마다 운영의 구조나 특성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돼요."
 
수탁법인에서 고용승계를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여쭤봤는데, 질문이 되돌아왔다. '고용승계를 하지 않을 특별한 명백한 사유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상식적으로 특별한 사유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공금횡령, 성폭행 등 결정적 사유가 있는 것을 말하지 않나.
 
장희진: "해고자 넷 중 저는 전(前) 법인의 경영진이라는 이유로 면접조차 보질 못했어요. 사실 팀장으로 근무하다가 실장직이 공석이라 승진을 한 케이스였거든요. 그런데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시기에 형식적인 면접을 보고 불합격통보를 주더라고요. 그런데 해고자 모두 우선채용 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불합격된 이유를 모르는 거예요.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사유가 있었더라면 저희가 지난 5년동안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겠지요. 저희가 문의했더니 말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 법인대표의 답변이었고, 저희는 해고수준에 준하는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기 때문에 부당해고라고 주장하고 있는 거죠."
 

그러나 이 문제는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고 했다.

류태희: "재작년 12월부터 업무, 인력의 분리, 고용승계 안정화에 대한 내부이슈는 계속 있어왔고, 경기도의 방침 분리는 예상되나 인력과 내용을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한 결정 자체가 계속 지연되고, 작년 11월 말~12월 초까지 늦어지면서 위수탁공고가 나고 위수탁계약이 12월 19일 체결되면서 고용승계, 우선 고용에 대한 흐름 자체가 너무 촉박하게 진행됐던 거죠. 하지만 경기도는 그 문제를 계속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수탁 공고상에도 우선 고용의 방침, 위수탁협약서 안에도 우선 고용에 대한 의무사항을 계속 명시해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신규 수탁기관은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거죠."
 
법인이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무시하면서 고용승계를 하지 않고, 경기도는 이런 법인에 대해 계약해지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의견을 들어보았다.

장희진: "법인입장에서 주요 보직을 맡는 사람들을 교체해서 조직을 쇄신하겠다는 의지, 혹은 법인의 사람을 앉힘으로서 이것들을 장악하려는 심정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민간영역의 중간지원조직 혹은 관례처럼 해왔던 거고, 노동권이라는 건 딴 세상 얘기고, 아프더라도 참아야 되지 않을까가 관행처럼 흘러왔던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악행을 좌시하지 않은 직원들이 함께 투쟁을 한 것이고, 오늘부터 생계 때문에 일터에 복귀했습니다만, 다들 그런 문제의식들이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해고에 대한 책임 회피와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천막농성 29일차, 해고일수 48일차이신데 해고는 살인이라고 얘기할 만큼 해고는 노동자에게 치명적인 조치인데 개인적 생활은 어떠신지, 혹시 가장은 아니신지, 집에서는 어떠신지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다.
 
장희진: "모두 가장이지요. 집에서는 당연히 그만하라고 하죠. 뭐 하는 짓이냐고, 다들 낯선 행동들이에요. 저희뿐 아니라 함께 연대해 준 복귀한 직원들 역시 이런 행동이 생애 처음이에요. 초반에는 뭔가 낯설음에 대한 설레임 때문에 왔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노동권이라는 것을 우리가 주장하면서 약간의 생활, 생계에 대한 위협이 점점 다가오니 어떤 형태로든 다른 방식으로 이 투쟁을 이어가야하지 않을까 생각까지 이르게 되더라고요. 함께했던 동료들이 동참해준 투쟁에 감사하고 복귀할 수 있다면 자기자리에서 생활을 유지하면서 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현 상황을 경기도나 시의원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고, 점심선전전에는 여러분들이 함께하셨는데 함께 연대해주시는 분들은 어느 정도인지 여쭤봤다.
 
류태희: "도의 입장은 계속 법인의 권한입니다. 행정이 개입하면 법인의 인사권을 침해한다고 하는데, 직책이나 직급의 변화에 대한 인사권이 아닌 고용에 대한 지휘감독의 책임을 다하라는 것인데, 인사권 침해는 말이 안 되는 거예요. 모 도의원이 수탁법인에서 새로운 직원에 대한 모집공고를 내자 싸움에 동참했던 직원들이 생계의 문제로 계약을 맺고 오늘부터 출근했는데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썼어요. 지인한테 타결됐냐고 연락이 온 거예요. 세 명의 해고자는 여전히 남아있고,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본질을 호도하고 본인에 의해서 해결된 것인 양 말하는 도의원의 태도에 문제의식을 느낍니다."
 
장희진: "중간조직 협의체에서도 찾아오시고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저희와 같이 활동가들, 현장에 있는 주민들 내방하셔서 도대체 무슨 일이냐 우리가 신규수탁법인에 들을 때는 이런저런 내용을 들었는데, 내방해서 듣고 보니 그게 다가 아니라고 알고 가시기도 합니다. 마을 활동가들도 관심은 많으나 정보가 고르게 전달되지 않으니 확인, 판단 자체가 어려운 것 같아요. 종종 사실관계를 명확히 아시는 분들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개별적인 지역단위에서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서도 발표해주시고 합니다. 오늘 선전전에는 아주대비정규직분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노조차원에서 연대투쟁오신 겁니다."
 
투쟁의 끝에 마주할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집이 멀어서 이른 새벽에 일어나 초반에는 철야까지 하셨는데, 천막생활하시면서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물었는데 서로를 걱정하고 계셨다.
 
장희진: "사실 힘들어요. 자존감도 떨어지고..... 그나마 동료들이 와서 같이 지켜주고 함께 할 때는 이런 감정을 미뤄뒀었나 봐요. 근데 동료들이 들어간 후 한꺼번에 폭발하는 거예요. 텔레비전에서 비슷한 낱말 나오면 눈물 쏟고 대개 힘들더라고요. 저희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이 좋을 거 같아요. 공동체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일을 하며 헌신적인 활동과 품을 내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선전 도구에 이용당하지 않고,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실상이 반영된 연구, 공론이 필요합니다."
 
전체 직원이 싸움을 함께하다 빠져 어느 때보다 개인적 소진이 우려되는 시기이다. 주변의 관심과 소통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말씀처럼 제대로 해결돼서 함께한 모든 직원들과 마음 편히 걸으며 마음을 정리할 따뜻한 봄날을 기대해본다.
 
류태희: "직원들도 복귀는 했지만 마음이 여러 갈래일 거예요. 숨겨왔던 갈등, 상황에 대한 서로 다른 판단 등이 있을 테고. 그래서 이 일이 정리되면 같이 좀 걷자고 한 적이 있어요. 걷는 행위가 굉장히 자기성찰도 되거든요. 서로 위로하고 정리하면서 파하는 자리를 갖자고 했거든요. 저희도 그렇지만 들어간 직원도, 퇴사한 직원도 뭔가 정리할 계기는 있어야 하고, 이대로 살아나간다는 것은 개인에게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장의 목소리] 빼앗긴 노동, 빼앗길 수 없는 희망을 위한 투쟁 / 2020.02

빼앗긴 노동, 빼앗길 수 없는 희망을 위한 투쟁

- 금속노조 시그네틱스 분회 윤민례 분회장 인터뷰

 

정재현 상임활동가

 

시그네틱스()1966912일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전자산업을 한국에서 처음 시작한 기업이자 최초의 외국인투자기업이었다. 한국에서 반도체 사업 이끌었던 사업장이다보니 삼성전자, 엘지전자 등이 기술을 배우러 올 만큼 시장에서의 영향력이나 높았고,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자부심 역시 상당했던 현장이었다. 그런데 1975년에는 필립스가 1995년에는 거평 그룹이 지분을 인수했다가 기업 부도로 2000년 영풍 그룹의 계열사로 넘어가면서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18년의 세월동안 3번의 해고를 당하며 소소하고 평범했던 일상은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고 눈물겨운 투쟁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빼앗긴 노동 빼앗길 수 없는 희망 : 시그네틱스 노동자 18년 투쟁의 기록>이라는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반도체 전자산업 현장의 어두웠던 이면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고 자란 윤민례 분회장은 1988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3월 서울 염창동에 있는 시그네틱스에 입사했다. 윤민례 분회장에게 시그네틱스 현장은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인데 2001년에 해고 되어 지금껏 출근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화곡동에 언니가 살고 있었는데 동네에서 시그네틱스가 굉장히 유명했다. 언니가 나를 입사시키려고 직원 모집하는데 접수를 했고 회사에서 면접 보고 국영수 시험을 봤다. 반도체 공장 설비가 미국에서 사용하던 것들이라 키가 157CM 이상 넘어야 하고 영어를 아는 여성 직원만 선발하는 게 기준이었던 거다. 1차 모집은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사람만 선발해서 떨어졌고 2차 모집에서 합격했다. 이후 6차까지 모집이 이어졌다.”

 

윤민례 분회장과 같은 시기에 입사한 노동자들은 시그네틱스가 새로운 제품 제작을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공정에서 일했는데 그해 연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1년 내내 일했는데 갑자기 12월 연말이 되니까 회사에서 사람을 해고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 미리 사직서를 제출하면 1달치 월급을 주고 아니면 그냥 나가야 하니까 미리 제출하라고 사람들을 압박했던 거다. 그래서 나도 사직서를 썼는데 같이 일하던 언니들이 이거는 월급 많이 받는 선배들 나가라고 하는 거니까 너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게다가 우리는 황산을 온종일 쓰면서 일하는데 누가 오려고 하겠냐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는 필립스 자본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매년 사람을 뽑고 정리하는걸 알게 됐다.”

 

윤민례 분회장은 일하면서 노동조합을 만나고 새로운 세상을 눈을 뜨게 되었다. 입사 당시 1988년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현장에서 노동운동이 활발했고 시그네틱스가 유니온샵이었기 때문에 노동조합 활동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장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열기가 남아있을 때라 아주 활동이 활발했다. 개인적으로는 대의원을 할 때 같이 일하던 부서 사람들이 황산을 사용한 것 때문인지 부인과 질환으로 수술하거나 유산한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관리자들에게 적어도 임신 중에는 직접 황산을 사용하지 않는 다른 부서로 배치해달라든지, 특수건강검진을 요구하고 받도록 하는 것, 위험수당 도입 이런 것들을 제안하고 요구하는 활동을 했다. 나도 나중에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다른 부서에 배치 받았다가 다시 돌아왔다.”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을 불행하게 한 거평과 영풍

 

1995년 건설업과 부동산업의 성공으로 갑자기 덩치를 키운 거평 그룹은 필립스로부터 시그네틱스를 인수했는데 이후에도 무분별한 계열사 확장으로 경영이 어려워졌다. 게다가 염창동 공장 부지를 담보로 융자를 받아 파주에 땅을 사들여 새로운 공장을 짓기로 하면서 부채 비율이 높아지면서 경영은 더 어려워졌고,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려 진행한 직장폐쇄에서 노동조합은 패배했다. 결국 거평 그룹은 워크아웃 상황에 놓였고 노동조합은 임금 동결, 상여금 반납 등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권리를 양보하면서 2000년 워크아웃 상태를 벗어났다. 노동자들은 회사와의 상생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는데 영풍 그룹은 이런 노동자들을 탄압했다. 안산으로 공장이전하기 전 이주불가자라는 이름으로 희망퇴직을 받으면서 190명이 사직하게 된 것이다. 2000년 거평 그룹을 인수한 영풍 그룹은 거평 보다 더 악날했다. 본사가 있는 파주에 모든 노동자들을 데려가는 것으로 사람들은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기도 안산에 공장을 만들고 모두 이곳으로 내쫓으려고 한 것이다.

 

영풍 그룹은 안산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최대한 많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노동조합 역시 무력화 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파주공장은 노동조합이 없는 100% 비정규직 공장으로 만든다는 것이 큰 계획이었다. 파주공장은 노동조합이 없는 100% 비정규직 공장으로 만든다는 큰 계획이 있었다. 이후 영풍 자본은 끊임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3번의 해고를 비롯해 노조파괴를 일삼았다. 윤민례 분회장은 노동조합 간부로써 2007년부터 현재까지는 분회장으로써 시그네틱스 투쟁을 승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어깨에 지고 살아야 했다.

 

어떤 조합원들은 제가 장기 집권한다고 이야기들을 하는데 워낙 현장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기 때문에 지금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해고 싸움해서 이기고 현장으로 복직하면 출근을 못하게 하고, 하청 회사로 들어가라고 하고 또 싸우다가 해고되고 복직하면 몇 년째 일을 안주고 휴업해버리고 늘 전쟁을 치루는 상황이었다.”

출처: 알라딘

 

빼앗긴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었던 투쟁

 

오랜 기간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투쟁에 관심을 기울여왔던 박일환 작가는 18년이라는 기나긴 시간동안 왜 이들이 싸움을 멈출 수 없었는지, 오늘도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노동조합에 책 작업을 제안했다.

 

작가 선생님께서 우리 투쟁에 관심이 있었다고 들었고 현장에서 조합원들과 만나면서 책을 쓰고 싶다는 연락을 주셨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도 지금까지의 투쟁을 백서로 남기고 싶은데 그럴 예산이나 여력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기저기 찾아서 나오는 기록들 말고 뭐랄까 조합원들이 직접 겪었던 경험이나 기억이 잊혀지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43일부터 책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고 저희가 127일에 조합원들과 연말 송년회를 앞두고 있다고 하니 이때 우리에게 선물로 꼭 주고 싶다며 작업을 진행하셨다.”

윤민례 분회장에게 이번 책 작업에서 느낀 점,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우선 글이 너무 좋았다. 작가님이 제가 하나를 표현하면 열을 담아주신 것 같다. 다른 동지들도 역대 투쟁 사업장 백서보다 이번이 훨씬 좋은 책이다, 하루 만에 쭉 읽을 수 있었다는 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이 책을 꼭 저희한테 사시라. 한 권 사면 저희한테 투쟁 기금이 들어온다. 그리고 꼭 읽어 봐주셨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영풍 자본이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했지만 견디었고, 지나간 세월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우리는 승리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풍 자본의 만행을 시간이 지나면서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누군가 꼭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이번 책 제목인 <빼앗긴 노동 빼앗길 수 없는 희망>은 어떻게 정해졌는지, 어떤 부분이 와 닿았는지 궁금했다.

 

가제목으로 몇 개 주셨는데 처음부터 이 제목이 확 와 닿았다. 우리는 빼앗기고 버림받은 사람들인데 이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그네틱스 투쟁으로 희망을 만들어보고 싶다. 저희는 노동조합도 있었고 정규직이었는데 영풍 그룹은 노동조합을 없애려 단체협약 해지 통보와 해고를 반복했다. 그러나 19년간 투쟁사업장으로 지내오면서 3번의 해고도 이겨서 극복해왔다. 2001600여명의 조합원에서 202025명이 되었지만 저는 그 숫자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풍은 우리의 것을 다 뺏어가려고 탄압했지만 버티고 견디었다. 다시 되찾고 싶고. 못 되찾더라도 이를 알려내는 것이 남아있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윤민례 분회장은 분회장 역할과 함께 금속노조 경기지부 가)안산시흥지역지회에서 안산반월시화공단에 있는 영풍전자, 코리아써키트, 인터플렉스, 테라닉스 등 영풍 그룹 산하의 전자 계통 계열사 노동자들에게 시그네틱스 투쟁 상황과 영풍 자본의 악독함을 알려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훗날 이들과 함께하게 될 날을 기약하면서 말이다.

 

여전히 끝나지 않는 싸움

 

시그네틱스는 2016년 폐업 수순을 밟았고 위로금을 받고 퇴사한 조합원을 제외한 9명이 끝까지 남았고 해고 되었다. 이후 소송을 통해 해소 무효 판정을 받았다. 판정 이후에도 영풍 그룹은 경기도 광명에 있는 아파트형 공장으로 이전하고 공장 설비를 갖추지 않고 일을 시작할 수 없다며 1년 넘게 휴업을 시켰다. 이후 노동조합은 영풍 그룹이 위장휴업을 하고 있으니 즉시 고용해달라고 다시 소송을 걸었고 2019920일 위장휴업과 강제휴직 철회를 요구하는 소송에서 또다시 승리했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자들은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영풍 그룹은 다시 항소를 했고 2심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매일 출근은 하는데 일이 없어서 대기하다가 퇴근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2주에 한 번씩 임단협 교섭을 하고 있는데 회사는 늘 사정이 어렵고 무급휴직, 희망퇴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흘린다. 이렇게 하는 게 법원에서 노동조합과 충분히 협의하고 있는데 상황이 어려워서 공장 가동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우리도 회사가 뭔가 꾸미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으니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후 대응을 할 것이다. 만일 다시 해고한다면 싸워야 할 것 같고 지금과 같은 무한정 휴업이 계속 길어지면 그것에 맞는 판단을 다시 할 것이다.

 

윤민례 분회장에게 지금까지 옆에서 함께 싸워준 조합원들에게 한마디 말씀을 부탁드렸다.

조합원들이 예전에는 파업 몇 일인지 계산하다가, 해가 바뀌면 파업 몇 년 하다가 그것도 지나니까 이제는 투쟁 20년이라고 한다. 지금껏 3번의 해고 싸움을 하면서 많이 지쳤고 고생도 많이 했지만 조합원들이 함께 싸웠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으니까 조금만 힘내서 같이 가면 좋겠다.”

인터뷰 이후 윤민례 분회장에게 연락이 왔다. 202023일 전면휴업 공고문이 붙었단다. 무기한 휴업이 시작 된 것이다. 조합원들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며 또 다시 가보자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 투쟁 연혁 -

1996912일 한국시그네틱스() 설립

1975년 필립스가 한국시그네틱스() 인수

1995년 거평 그룹이 필립스로부터 인수

199812월 거평시그네틱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 업체 선정

1999년 거평시스네틱스에서 한국시그네틱스로 회사 개명

2000년 영풍 그룹이 거평 그룹으로부터 한국시그네틱스 인수

20008월 노동자들의 임금동결, 상여금 반납, 퇴직금 누진제 폐지 등 희생으로 워크아웃 종료

20001130일 파주 공장으로 이전 불가자 모집으로 정리해고 시작

200012월 영풍 그룹 계열사인 영풍산업주식회사 소유로 안산 공장 부지 마련

20012월 노동자들을 파주가 아닌 안산 공장으로 배치하겠다는 계획 발표

20016월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으로 상급단체 변경하고 본격 투쟁 돌입

20015610여 차례 염창동 공장 장비를 파주 공장으로 반출 시도

2001723일 노동자 전원에게 안산 공장으로 인사 발령, 노동조합은 전면 파업 선포

20018월 약 160명 노동자중 130명에게 해고 통보

20021월 성실교섭 촉구와 파주 이전 승리를 위한 34일 영풍 본사 앞 노숙 투쟁

20025월 임영숙 부지회장, 윤민례 사무국장, 정승현 대의원, 이미경 조합원 한강대교 아치 위 고공농성

2002610일 조합원 집단 단식농성 돌입

2003218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95명에 대한 해고는 정당, 28명은 복직 명령

20076년의 재판 과정을 통해 대법원에서 64명 조합원은 안산공장으로 복집, 29명은 복직 불가 판정

201010월 시그네틱스 부사장이 안산공장을 인수하고 유앤씨라는 하청업체를 만듦. 조합원들 모두를 하청업체로 강제 이직하면서 자진 퇴사를 강요.

20117월 회사 방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28명에 대한 2차 해고

20121123일 재판에서 전원 복직 명령, 회사는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

201212월 공장 휴업

20144월 공장 재 휴업과 함께 광명으로 이전하고 근무량을 점차 줄임

201699명에 대한 3차 해고

20179월 재판에서 해고 무효 판정

20189월 대법원에서 복직 확정 판정

20199월 회사의 휴업과 강제휴직을 철회하라는 판정

현재 회사로 출근하면서 임·단협 체결을 위한 협의, 해고자 복직 투쟁 중

 

 

[현장의 목소리] 권리의 사각지대 외국인보호소를 아십니까 - 아시아의친구들 김대권 대표활동가 인터뷰 / 2019.12

권리의 사각지대 외국인보호소를 아십니까

- 아시아의친구들 김대권 대표활동가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1명의 의사가 어떤 환자이든 상관하지 않고 하루 약 41건의 진료를 해야만 하는 곳, 바로 화성외국인보호소의 실태다. 결국 지난 1018일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어 있던 보호외국인 A씨가 응급 후송 된지 사흘 만에 병원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10년 넘게 한국에서 살았고 미등록체류자란 이유로 단속반에 적발돼 강제퇴거명령을 받았다. 그가 출국을 거부하자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됐다. 사망진단서 상의 사인은 외부감염에 의한 급성신부전으로 알려졌다. 안과적 질환 외에 심각한 건강상 문제가 없었던 고인의 사망 원인은 여러 가지로 추측이 되는데, 1년이란 기간 동안 보호소에 갇혀 지내야만 했던 상황과 보호소 내의 열악한 의료시스템 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제기되었다.

 

보호라는 명목하에 이주민들을 가둬 놓는 시스템의 문제는 오랫동안 제기되었다. 보호외국인의 죽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211일에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로 인해 당시 구금되어 있었던 외국인 55명 가운데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화재가 발생한 곳을 조사해보니 출입문은 이중장치로 되어 있었다. 사실상 강제수용소와 다름없었다. 각 사건의 유형은 달랐지만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외국인보호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합법적 강제수용소인 외국인보호소의 보호외국인들의 치료받을 권리가 침해당하는 문제를 조명해보고자 단체 아시아의친구들김대권 대표활동가를 지난 1119일 단체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 나눴다.

 

2002년에 창립한 아시아의친구들은 아시아인과의 소통, 신뢰를 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간다는 목표를 두고 활동하는 시민단체다. 김대권 활동가는 2004년 단속추방저지와 합법화를 위한 이주노동자들의 명동성당 농성투쟁에 연대하면서 이주민,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단체 상근 활동까지 이어지게 됐다고 한다.

 

“현재 아시아의친구들이 집중하고 있는 사업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화성외국인보호소 정기방문 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건강보험에 가입이 안 된 이주민 의료공제회 가입사업입니다. 미등록이주민은 제도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그 부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화성외국인보호소 정기방문 사업을 정기적으로 하게 된 이유는 2007년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사건이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제가 당시 세 달 넘게 여수에 직접 내려가 생활하며 지원활동을 했습니다. 그때 인식의 전환이 있었죠. 이 문제가 국민국가의 국경관리와 세계화된 이주 문제의 모순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외국인보호소는 문제가 응축된 곳입니다. 꾸준히 지켜보고 활동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이후 하지 못했죠. 그러다 2016년이 되어서야 이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외국인보호소를 불법체류 외국인을 보호하는 시설이라 정의한다. 하지만 실태를 살펴보면 이 정의가 얼마나 어그러지는지 알 수 있다. 사실상 강제퇴거(추방) 명령을 받은 외국인이 출국할 때까지 임시로 가둬두는 시설이다. 우리나라에는 경기도 화성, 충북 청주에 있으며 광역시마다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있고, 인천공항엔 별도의 보호실을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보호소는 이런 시설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되는 사람들은 체류기한을 넘겨 체류하다 단속에 걸려 붙잡힌 소위 불법체류자라 호명되는 이주민이다. ‘불법체류자라는 표현은 국가인권위와 국제기구 등에서 해당 단어를 지양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행정절차를 준거로 하는 등록, 미등록이란 사실관계를 벗어나 사용되는 불법체류자라는 단어는 범죄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혐오 표현은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한다. 외국인보호소 역시 이들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지 않고, 오히려 권리를 침해한다. 면회조차 쉽지 않다. 김대권 활동가는 당시 이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막막했다고 한다. 우연찮게 발견한 선전물에서 그들의 이름을 발견한 게 기회가 됐다.

“외국인보호소는 면회를 갈 때 대상자 이름, 국적, 생년월일을 다 알아야 해요. 그런데 아무도 모르는 상태라 엄두가 안 났죠. 우연히 구속노동자회라는 곳이 발행하는 소식지를 봤는데 거기에 명단이 있는 거에요. 그래서 그곳에 연락을 했죠. 그랬더니 예전 이주노조 위원장, 부위원장, 사무국장이 잡혀서 추방되기 전에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있었는데 구속노동자회에서 그 분들 면회를 갔다가 그 분들 이야기를 들었던 거에요. 본인들보다 더 열악하고 힘든 사람들이니깐 챙겨달라고 했다더라고요. 그 분들에게 저희가 편지를 보냈고 답장을 해주신 분들 중심으로 면회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10명 정도 꾸준히 만나고 있죠.”

 

면회를 시작하고 가장 놀랐던 점은 4~5년 씩 장기 구금되는 이주민들이 있단 사실이었다고 한다. 그 중에는 난민인정 심사결과를 기다리는 미등록외국인을 외국인보호소에서 기약 없이 장기간 구금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 때문에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비인간적 처우라는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난민을 인정받을 때까지 심사결과를 기다려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소요된다. 기본 1년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보호소에 갇혀 있는 이들에겐 선택할 자유가 없다. 특정 장소에 갇혀 속박된다는 것은 권리의 박탈, 침해와도 연결된다. 건강권 문제 역시 심각하다.

 

“외국인보호소는 단기구금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이라 의료진이 많지 않아요. 의사가 1명밖에 없어요. 원래 공중보건의가 1명 더 있어야 하는데 예산도 없고 지원자도 없어요. 못 구한지 벌써 3~4년이 됐죠. 평일 주간을 겨우 1명이 채우고 야간, 주말엔 의료 인력이 아예 없는 거죠.

 

만약 보호소에서 치료하지 못하는 질병이라고 했을 때 외부의 다른 병원에 가려면 보호외국인 본인이 의료비용을 100% 부담해야 해요. 그것도 MOU가 맺어진 2차 병원 한 곳만 가능하죠. 하지만 장기보호인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적 능력이 없어요. 2~3년 동안 갇혀만 있었기 때문에 병원비 있는 사람은 드문 거죠. 보험도 안되요. 간단한 검사만 해도 병원비가 엄청 나와요. 그렇기 때문에 보호소의 의료시설에 의존해야 하는데 학교 보건실 수준이에요. 지금 있는 의사도 정형외과 전공의에요. 그 분이 내과, 정신과까지 모두 진료해요. 그러니 그 분도 적극적 치료는 못하는거죠.”

 

이들의 정신건강 문제도 심각하다. 시설에 가두는 형태는 어떤 이유에서든 보호외국인의 일상을 통제하고, 자유를 박탈한다. 더불어 신체를 가두는 것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속박한다. 건강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안 된다. 게다가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들에게 집단생활은 더욱 힘들다.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보호소는 구금시설이고 24시간 폐쇄된 공간에서 살아야 합니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하고 지내는 거죠. 게다가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같은 방에 수용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해요. 집단행동 우려가 있다고 보는 거죠.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섞여 있으니 말조차 통하지 않아 언어, 문화 문제로 갈등이 생겨요. 그 자체로 엄청난 스트레스 인거에요. 그러니 건강했던 사람도 보호소에 들어가면 아파요. 특히 밖에서 약한 우울증, 수면장애가 있었던 분들 중 보호소에 들어와 악화된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정신질환을 전문적으로 진단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거죠. 결국 증상이 심각해져서 헛소리를 한다든지 대소변까지도 못 가린다든지 심각한 일이 발생합니다.”

 

국적이 다르고 언어, 문화가 다르다는 것은 서로 다른 세계를 마주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외국인보호소라는 시설에서 이들의 다양한 조건이 배려 받을 리 만무하다. 이들이 경험하는 권리의 박탈은 상상이상이다.

 

“보호외국인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게 텔레비전 보는 거에요. 그런데 문화권 별로 보고 싶거나 볼 수 있는 채널이 다르죠. 그런게 거기서는 싸움의 원인이 돼요. 또 시차 때문에 집에 전화할 시간도 다른데 다른 사람들은 밤에 잠을 자야 하잖아요. 그 시간에 전화하면 수면에 방해가 되는 거죠. 여러 이유로 밤에 숙면을 못 취하면 낮에 자게 되요. 그러면 생활이 불규칙해지죠. 식사도 좋은 질로 제공되지 않아요. 소위 일식 삼찬인데 밥, 국, 김치를 포함해 삼찬인거죠. 그거 빼고 반찬 하나 나오는 거에요. 그러니깐 한국음식에 적응을 못한 분들은 힘들죠. 그러다 보니 건강이 계속 안 좋아질 수밖에 없구요.”

 

이주민들을 사회 안에서 제대로 지원하며 안착화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방향이 아니라 반대로 구분 짓기 하는 방식은 이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더욱 부추긴다. 김대권 활동가가 목격하고 보호외국인 당사자들에게 들은 외국인호보소의 현실은 이처럼 건강 더 나아가 삶 전체를 훼손한다. 더불어 강제출국 당한 이후의 삶은 더욱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특히 난민신청자의 경우 한국정부가 난민이 아니라 결정을 내리기만 할뿐 인도적 차원의 감수성 있는 고민은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본국으로 송환된 난민신청자의 결말은 결코 안전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외국인보호소에서 박탈되는 이주민들의 생존권, 인권, 건강권은 어떻게 보장해나갈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질문에 김대권 활동가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보호기간의 엄격한 제한이 있어야 합니다. 무의미하게 장기간 수용되어선 안 돼요. 그 다음으로 보호단계에서 장애인, 임산부, 아동이 구금되지 않아야 해요. 지금은 출입국 공무원이 임산부인지, 장애인인지, 아동인지를 판단하는데 제대로 살펴보질 않아요. 자료도 충분치 않고요. 중립적인 제3기관이 판단하던지, 당사자들이 부당한 것에 싸울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교정이 목적이 아닌 외국인보호소라면 신체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뀌어야 해요.

 

이런 것들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한국사회는 이민사회로 가는 것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안 되고 있어요. 겨우 단속과 추방으로 지금 상황을 유지만 하고 있죠. 현실을 부정하고 있어요. 구금 시설에 투자할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잘 생활할 수 있을지, 이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은 무엇인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현장의 목소리] 과거의 노출이 현재의 피해를, 현재의 노출은 미래의 피해로 / 2019.11

과거의 노출이 현재의 피해를, 현재의 노출은 미래의 피해로

-후루야 수기오 (동경, 일본석면대책전국연락회의(BANJAN) 사무국장)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아시아직업및환경피해자권리네트워크(ANROEV, 이하 안로아브) 서울대회 둘째 날 인 1029일 늦은 오후 바쁜 일정 중 겨우 인터뷰 시간을 할애 받았다. 먼저 이번 서울대회는 안로아브 20주년,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ABAN, 이하 에반) 10주년으로 뜻깊은 해인데, 조직위원이기도 한 후루야 수기오 활동가를 직접 만나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통역은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이기도 한 스즈키 아키라 님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

"에반 회의는 설립 이후 이번이 일곱 번째입니다. 실은 여섯 번째 회의를 2015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었는데, 200명이 모였습니다. 사람 수가 너무 많아서 아시아 전체가 모여서 이야기하기보다 동남, 남, 동아시아로 구분하여 소지역 회의를 하는 것이 오히려 논의가 잘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노이 지역별 회의에서 호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후 소지역 회의를 몇 차례 진행해왔습니다."

지역별회의를 여는 취지는 이번 안로아브 참가자 중 절반 가까이가 에반에도 참석하는 분들이라서 안로아브 회의에 앞서 에반 회의를 하였습니다. 에반은 1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10년 전과 지금 어디까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현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 10년 활동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석면대책전국연락회의(BANJAN, 이하 반잔)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아시아에서 에반 활동을 하면서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BANKO, 이하 반코)에도 영향을 준 그가 의사소통, 물리적 거리 등 힘든 요소가 많은 국제연대활동에 특히 노력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일본에서 1987년 반잔이 설립되었고, 2004년 석면이 금지되었지만 그 사이 일본의 석면추방운동도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계기가 된 것은 프랑스에서 1997년 석면사용을 금지하였고, 석면과 관련해서 처음으로 세계대회가 열린 2000년 브라질에서의 세계석면추방대회에 참가였습니다.

프랑스가 석면을 금지하고 나서 유럽 여러 나라가 석면 금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본은 가만히 있으면 석면추방과 점점 멀어져서 그대로 상황을 답보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초조해졌습니다. 그래서 2004년 도쿄에서 석면추방세계대회를 개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해 세계의 흐름의 격려와 자극을 받아서 일본도 석면 금지가 됐는데, 저희가 세계적 흐름에서 좋은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아직 석면 금지가 되지 않은 나라에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후루야 수기오 사무국장에게 이렇게 석면추방 활동을 열심히 하게 된 계기나 과정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는데, 한국에서도 진행하는 보건의료학생들의 노동보건 현장 활동과 유사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일본 학생운동의 마지막 세대라고도 할 수 있고, 사회 변혁에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도 가지던 중 가나가와 산재직업병센터가 그 시기 의대생들이 너무나 노동현장을 모른다는 문제의식으로 ‘노동현장(field work)’을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였습니다. 의대생은 아니었지만, 그 노동현장(field work)에 참여하게 되면서 이러한 직장에서도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대학 졸업 후 도쿄 옆 가나가와 현의 산재직업병센터 상근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산재직업병 관련 활동을 하였고, 1989년 전국안전센터를 만들게 되면서 도쿄로 상근활동 파견을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반잔 활동도 같이 하게 된 것이지요."

지난 10월 28일, 29일 서울대에서 열린 제17회 아시아직업환경피해자대회장에서 후루야 수기오(우측에서 두번째) 활동가가 아시아의 여러 활동가들과 '기업살인 이제그만'이란 구호가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반잔 설립 초기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가 중심이었으나 현재는 석면피해자단체가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들은바 있기 때문에 중심축이 변화한 과정,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역시 아픔이 큰 사건이자 계기였다.

 

"반잔 설립 초기에는 피해자를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직업병센터가 전화 상담을 하면서 피해자를 발굴하기도 했지만, 환자 만나는 것이 어려웠죠. 2002년 중피종 피해유가족 2명이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고, 2004년에 처음으로 석면피해유가족모임이 결성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반잔이 지원해가면서 그런 모임을 만들었는데, 중심이 되는 피해유가족모임이 지금은 반잔을 끌고 나가는 위치에 있습니다.

2005년 일본 아마나사키시 소재 석면 수도관을 만들었던 쿠보다 회사 주변의 지역주민 중에서 중피종이 발견되면서 쿠보다 쇼크를 겪었습니다. 이 사건은 두 가지 측면에서 획기적인 의미가 있어요. 첫째, 그때까지만 해도 공장 안 노동자와 공장 밖 지역주민과는 연대가 없었어요. 그런데 석면환자 가족으로 구성된 석면피해가족모임이 쿠보다 주변 지역주민 피해자가 연대하면서 공장 안팎의 분절을 뛰어넘는, 일본 현대사에서도 괄목할만한 사건이었어요. 그 자체가 언론을 통해 중피종이 석면과 연관 있다고 보도되면서 이미 존재했던 지역의 환자들이 각성하게 된 거죠. 중피종을 석면 공장노동자의 병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본인이 석면을 다루지도 않았는데 중피종에 걸린 거잖아요. 그래서 지역주민들이 나도 나도 나서면서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거죠.

두 번째는 쿠보다 회사와 공해피해자가 직접 교섭해서 구제한 보상제도를 만든 거예요. 일부에서는 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냐는 문제 제기도 있었는데, 소송은 대법원까지 10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려요. 소송이라는 것은 그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소송 없이 해결하면 더 바람직한 거잖아요. 쿠보다 쇼크로 자율교섭으로 보상이 이루어져 언론화되면서 많은 피해자가 나타나고, 그 환경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서 일본에서 석면피해구제법이 제정되었어요. 이러한 해결방식은 앞으로 화학물질이나 환경피해에 있어서 직접 교섭을 통해 해결방안을 만드는 하나의 모델이 됐다고 생각해요."

 

이쯤에서 석면피해구제법이 제정된 일본과 한국, 두 나라 제도는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를 물었는데, 한국 산재보상제도의 문제점까지 짚어내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꽤 닮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공통적인 문제는 두 나라 모두 산재보상에 비하면 아직 보상내용이 낮은 수준이라는 겁니다. 다른 점은 석면피해 정책의 문제이기도 한데, 한국은 석면피해구제법에 의한 구제 건수에 비하면 산재보상법에 의한 산재인정건수가 아주 적은 거예요. 일본을 예로 들면, 구제법으로 보상받은 건수와 산재보상법에 의한 인정 건수가 거의 비슷해요. 그런데 한국은 구제법보다 산재인정 건수가 1/10도 안 돼요. 저는 석면피해자의 70~80%는 산재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피종을 예로 들자면, 진단만 있으면 구제법은 무조건 인정돼 산재 인정받는 것보다 쉬워요. 아시다시피 업무관련성을 증명해야 되기 때문에 까다롭고 오랜 시간이 걸리죠. 그래서 산재신청까지 안 가는 거죠. 어쨌든 한국의 석면피해 산재인정 건수가 적다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산재인정건수와 구제법에 의한 구제 건수가 비슷한 일본의 노동자 조직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연관질문을 했는데, 한국에서도 시도해볼 만한 ‘퇴직자노조’라는 개념을 접할 수 있었다.

 

"석면피해가 재직 중보다 퇴직 후에 나타나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석면피해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쿠보다 사건 이후 석면피해를 다루는 노조도 생겼지만, 노조가 석면피해를 다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시민사회단체와 같이해야 하는 것이지요. 일본은 조선소에서 일하고 퇴직한 경우 노조 조합원으로 남아있어요. 퇴직자회가 있는 날이면 모임 있는 곳에 검진 차량으로 검진을 하고, 이런 활동의 성과로 ‘퇴직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어요.

퇴직자가 전 사업주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한 거예요. 중앙노동위원회와 대법원까지 간 결과, ‘전 사용자는 건강문제에 있어서는 교섭에 응해야한다.’라는 판례를 얻었어요. 퇴직자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법적으로 인정한 거죠. 아스베스트유니온이라는 석면노조는 퇴직자 노동조합으로 큰 조직은 아니에요. 교섭권에서 법적으로는 아직 퇴직 노동자 당사자만 조합원으로 인정하고 있고, 유가족은 가입할 수 없어요.

석면에 의한 보상은 산재보험이 적용되면 일본은 평균임금의 80%를 휴업급여로 받아요. 모자라는 20%는 노사협약으로 보전 받는데, 석면은 보통 퇴직 후에 나타나잖아요. 퇴직 후에도 산재신청을 할 수 있어서 퇴직자 노동조합과의 협약으로 퇴직 후 요양기간동안도 100%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쿠보다 사건을 계기로 다른 노조에서도 협약으로 맺고 있죠."

 

더불어 석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은 대체 물질을 사용하는 것일 텐데 어느 정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물었다.

 

"2004년 석면금지가 되기 전, 사업주들이 대체품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사용하게 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해왔던 거예요.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로켓의 가스켓이나 잠수함의 일부 부품의 경우 예외사항으로 두고 있었거든요. 2012년 한국도 비슷한 시기에 된 것으로 아는 데 예외까지 포함해서 완전금지가 됐어요. 그것은 대체가 끝났다고도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석면 형성판이라는 게 있어서 튼튼했던 것이 대체품을 사용하면 약해져요. 그래서 강화플라스틱을 쓰게 되는 것처럼 대체품이 아니라 사용하는 물질이 변경되는 경우도 있어요."

 

끝으로 한국의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나 석면피해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렸다.

 

"한국도, 일본도 석면사용 금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석면문제가 끝났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피해는 지금부터 늘어납니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석면피해는 과거의 노출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고, 현재의 새로운 노출은 미래에 피해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석면추방운동은 환경 분야 활동가들의 몫뿐만 아니라 노동조합활동의 역할도 크다는 것을 알고 분발했으면 합니다."

[현장의 목소리] 노조 탄압을 멈추는 날까지, 흔들림 없는 투쟁 이어간다 / 2019.10

노조 탄압을 멈추는 날까지, 흔들림 없는 투쟁 이어간다

-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정책부장 배원길 인터뷰

 

지안 상임활동가

지난 626,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일진다이아몬드지회는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작년 1229일 설립된 노조는 2월부터 노조 인정과 노조파괴중단, 5년째 동결된 임금 인상, 작업환경 개선을 놓고 교섭을 진행했다. 그러나 사측은 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교섭에도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고, 이에 조합원들은 서울 마포에 위치한 일진그룹 본사로 상경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진다이아몬드 사측은 8/12 충북 음성공장을 직장폐쇄하면서 여전히 노조 탄압을 이어가고 있다. 28회차 교섭에 이르는 현재까지 사측은 쟁의 행위중단을 조건을 내걸며 교섭 이행에 응하지 않는 상황이다.

늦여름부터 이어진 일진다이아몬드 조합원들의 상경 투쟁은 폭염을 지나 완연한 가을이 온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03일이면 노조 파업 100일을 맞는다. 지난 923일에 마포 본사에서 농성 중인 일진다이아몬드지회를 방문해, 정책부장인 배원길 님을 만나 음성공장과 일진그룹 본사 농성장의 상황을 들어보았다. 또한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설치한 40~50개에 달하는 작업장 CCTV 설치부터, 늘 발생해왔던 강압적인 조직문화 문제들을 짚어보며, 현장에서 어떤 문제점들이 있어 왔는지 들어보았다.

노조설립부터 전면파업까지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일진다이아몬드에는 현관부터 일층 로비에는 돗자리를 깐 채 농성 중인 조합원 수십 명이 있었다. 가장 먼저 폭염 중 상경투쟁을 시작한 조합원들의 건강은 어떤지, 또 음성공장 퇴거명령은 어떤 상황인지 궁금했다.

“상경했을 때가 늦여름이긴 했는데, 무척 더웠거든요. 본사 로비는 전기가 끊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냉난방이 안 되어서 많이 힘들었죠. 발전기를 연결해 사용하고 있어요. 가을 접어들면서 저녁에는 선선해지긴 했지만 그래서 감기 환자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어요.

음성공장 같은 경우는 회사에서 소송을 걸어퇴거 요청이 들어왔는데, 법원 판결이 보류되면서 시월로 연기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노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이고요. 지금 협의를 통해서 상명관이라는 복지관을 쓰고 있는데, 컨테이너를 가져다가 회사랑 벽을 쳐버렸어요. 복지관 쓰지 말고 컨테이너를 쓰라고 하는 상황입니다.”

노조 설립 이후로 올해 초부터 시작된 교섭 이후로 일진다이아몬드 사측은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 교섭의 의지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노조가 파업까지 감행했지만, 황당하게도 회사는 파업을 중단해야만 교섭에 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본 교섭이 지금 28차까지 왔고, 실무 교섭도 하자고 해서 일주일에 3~4회를 사측과 만나고 있어요. 그런데 아무런 진전이 없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본사 농성을 중지하고 내려와야 본 교섭을 진행하겠다고 대표이사가 직접 피력을 했어요. 또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를 제외하고 지회 조합원들과만 대화를 하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파업을 시작한 지 백일이 되고 있는데 아무런 태도 변화가 없다는 것 자체가 일진다이아몬드라는 회사가 어떤 기업인지 드러내 주는 것 같습니다.”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대표적으로 최저임금에 수렴하는 저임금이 노조 설립의 계기가 되기도 한 일진다이아몬드의 문제점이다. 올해 2분기 일진다이아몬드의 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178.4%, 전년 동기보다도 77% 상승했다. 반면 올해 일진다이아몬드 노동자들의 기본급은 최저임금인 8350원보다 10원 높은 8360원이다. 또 회사의 영업이익이 매년 10%씩 났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이루어진 임금 동결 이후로 신입직원과 10년차 직원의 임금 차이가 미비 해질 정도로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은 하락했다. 기존의 상여금 600% 400%를 기본급으로 전환 시키면서 몇 년간의 최저임금 인상분을 맞춘 것이다.

“대표이사가 바뀌면서, 5년간의 임금 동결 뿐만 아니라 원래 회사에 있던 얼마 안 되는 복지도 대부분 사라졌어요. 저희는 회사가 어렵다고 해서, 정말 그런 줄 알고 임금 동결에도 5년간 참아왔어요. 알고 보니 그동안 영업 이익은 해마다 10%씩 났어요. 그런데 그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1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 수준을 받고 있는 것이 말이 되나요?”

이러한 저임금 문제뿐만 아니라 작업장의 열악한 노동환경 역시 심각한 문제점이다. 작업환경 개선 역시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이다. 일진다이아몬드의 열악한 작업장의 문제는, 대표적으로 20181월 발생했던 음성공장 불산누출 사고를 통해 알려져 있다. 사고 당시 인근에 있던 두 명의 노동자는 보호구나 보호복 차림을 하지 않은 채였고 화관법상 유해화학물질인 불산은 누출 시 바로 신고 하도록 되어 있지만 회사는 신고뿐만 아니라 누출 장소에 있었던 두 명의 노동자에 대해서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위험 물질을 사용하는 작업장에서 평소에도 안전보건 조치들은 어떠했는지 궁금했다.

“저희가 불산 뿐만 아니라 황상, 핵산, 염산, 질산을 다 다루고 있어요. 불산 누출 사고 같은 경우에는 노출된 노동자가 밤에 호흡곤란 등을 느끼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는데, 관리자는 되려 ‘왜 검사를 받느냐’며 질타를 했어요. 안전교육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아주 형식적인 교육일 뿐이고, 거기다 교육에 불참하게 된 사람들이있으면 그냥 했다고 체크 하는 일도 비일비재해요. 누출사고가 있었던 곳에서는 마스크조차 안 쓰고 일 해왔다고 하더라고요. 안전장비는 물론이고요. 이런 배경에서 작업환경개선이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 중 하나가 된 것입니다.”

현재 음성공장은 회사가 유해화학물질 안전교육 등을 하지 않은 채 대체인력을 투입하여 고용노동부 충주지청은 공정 12곳을 작업중지명령을 내린 상황이다. 1차 현장조사에서도 2곳을 제외한 10곳은 여전히 작업중지 상태다. 한편 불산 등 화학물질 문제만이 아니라 일터의 수많은 위험들 역시 방치되어 왔고 노동자들의 부담으로 전가되어왔다.

“제가 있는 부서가 파우더를 다루는 부서인데요. 폐초경을 가져와 다시 반응을 시키고 세척을 해서 원자재인 파우더로 만드는 공정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분진이 엄청나게 날려요. 그런데 그 넓은 공장에서 이동식 집진기 하나를 사용하고 있어요. 이전부터 아무리 요구해도 회사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어요. 그리고 일 할 때 워낙 중량물을 많이 취급해요. 쉽게 말하면 원자재 깡통 하나가 50kg에요. 원래 2인 1조로 들도록 되어 있고, 보통은 이렇게 무거운 건 기계로 들어야 해요. 근데 야간조 편성이 1명이 되면 그냥 혼자 들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허리, 목 디스크 환자들이 많이 발생하고요. 이건 화학물질과 다르게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비가시화 된다는 측면에서 어떻게 보면 더 위험합니다.”

강압적인 조직문화 속 노동자 통제

분진으로 인한 폐질환이나 무거운 중량물 등으로 인한 디스크 등의 산재는 없었는지 궁금했다. 12년의 근무 동안 산재 처리는 프레스 절단 사고 이외에 없었다는 답변을 들었다. 놀라운 점은, 작년 1229일 노조가 생긴 이후로 파업(6/26) 이전까지 단 6개월 간 승인된 산재만 5건이라는 점이다. 노동자의 안전에 있어서 노조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예전에 프레스에 손가락 2개가 절단되는 사고가 있었어요. 그런데도 입원한 노동자를 총무과장이 찾아와서 꼭 산재를 해야겠느냐, 공상처리를 해주겠다고 말했다고 해요. 즉 사고와 질병이 없었던 게 아니라 이제껏 회사가 공상처리하는 방식으로 숨겨왔던 거죠. 허리, 목 디스크, 인대파열 등 총 5건이 산재 승인되었고 현재 1건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강압적인 조직문화 역시 뿌리 깊은 문제였다. , 이런 조직문화 속에서 정해진 작업량에 사람을 맞추는 식으로 노동강도는 점점 강해졌다.

“몇 년 전부터 각 부서에서 1인 당 소화할 수있는 작업량 데이터를 수집해서 1일 작업량 평균을 냈어요. 한 시간에 노동자가 최대 10개를 작업할 수 있다고 하면 8시간을 곱해서 80개를 산정하는 식이에요. 그러나 사람인 노동자는 기계가 될 수 없고, 1시간 작업량 최대치를 8시간 내내 동일하게 유지할 수는 없어요. 이런 작업량 데이터를 가지고 개개인을 ‘왜 이것 밖에 못했느냐’는 식으로 압박을 주는 것이 심했어요. 일 자체에 스트레스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실적이 떨어지거나 관리자와 관계가 안 좋아지면 바로 배치전환되는 것이 부지기수였어요. 노조 설립을 하고 활동을 하기 전까지 참 눈치를 많이 보고 살아왔어요. 출근하면 전 직원의 핸드폰을 걷어 갔고, 잠깐 짬이 나는 사이에 담배를 피거나 하는 것도 들키면 안 되는 분위기였죠. 노조 만들기 전까지 저희는 원래 어디나 다 그런 건 줄 알았어요.”

작업량의 데이터화, 배치전환, 핸드폰 거치 등의 각종 규율 속에서 일진다이아몬드는 지속적으로 노동자에 대한 통제력을 강하게 행사해왔다. 이런 배경 속에서 노조 설립조차 인정하지 않고, 직장폐쇄까지 감행한 노조탄압 기업 일진다이아몬드에 대항해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흔들림 없이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의를 말했다.

“노조 활동을 시작하면서 작업환경이, 노동안전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하는 것을 알아가고 있어요. 이런 앎 속에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기 위해 조합원들이 다함께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자본이 이렇게 노동을 탄압하는 건 비단 현재 일진다이아몬드지회의 싸움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입니다.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맞서서 싸우기 위해 전 조합원이 흔들림 없이 다짐하고 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 50대 여성 노동자들, 고공농성, 노숙농성하며 힘나는 이유 / 2019.09

[현장의 목소리]

 

50대 여성 노동자들, 고공농성, 노숙농성하며 힘나는 이유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본부지부 부지부장 박순향 인터뷰

 

최민 / 상임활동가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도 한국도로공사 정규직 노동자였던 때가 있었다.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이렇게 흔해지기 전 얘기다. 1997년 외환위기 후 도로공사는 요금소 수납 업무를 점차 민간용역업체에 위탁 운영하게 됐다. 용역업체 사장은 대부분 도로공사의 명예 퇴직자들이었고 계약 연장을 빌미로 요금수납원에 대한 횡포가 만연해졌다.

노동자들은 도로공사의 지휘와 명령에 따라 요금 수납 업무를 하고 있다며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법원은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1, 2심에서 모두 도로공사가 요금수납원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판결이 났다. 2017년의 일이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상고했고 현재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발표가 있었지만 도로공사가 내놓은 건 '자회사 전환'이었다. 대법원판결만 나면 도로공사가 직접 고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다. 게다가 도로공사는 자회사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소송에서 노조 측이 승소하더라도 직접 고용으로 가지 않고 자회사에 잔류하겠다'는 내용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6월 1일부터 일부 톨게이트영업소에서 자회사 전환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자회사 전환을 거부한 요금수납원들이 해고되기 시작했다. 7월 1일 전국의 톨게이트 영업소를 자회사로 전환함에 따라 6천여 명의 요금수납원 중 자회사 전환에 동의하지 않은 요금수납원 1500명이 일시에 해고됐다. 

이에 6월 30일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43명이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서울 톨게이트 지붕에 올랐고, 500여 명이 청와대와 서울요금소 주변에서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고공과 노숙 농성 41일째인 8월 8일 박순향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본부지부 부지부장을 만났다.

고용 매개로... 위탁업체 사장과 관리자들의 폭력
   
"우리는 지금까지 하루살이 인생이었다. 단기간 근로계약을 맺고 계약 연장 때문에 온갖 눈치를 보았다. 너무 억울해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했고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곧 직접고용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자회사라니. 직접고용을 회피하려는 꼼수로밖에 볼 수가 없다.

7월 1일부로 대량 해고 됐지만, 우리는 그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해고당했다. 내가 안 잘리면 옆 동료가 잘렸다. 아 소리도 못 냈다. 싫다 소리 못하고 뒤돌아서 울고,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 한숨 쉬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어차피 잘리던 삶이니, 두렵지 않다. 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우리가 그렇다. 정규직 전환으로 해고 고통에서 벗어나자는 것이고 대법원 판결에 자신감이 있어서 더 잘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농성에 참여하는 여러 노동자들이 자주 하는 말은 '이기적인 요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임금 인상이 아니라 이미 법원에서 판결한 직접고용의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고용불안을 매개로 수년 동안 당해온 위탁업체 사장과 관리자들의 폭력과 전횡이 있다. 

"모여서 얘기해보니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있다. 중년 여성노동자들이 대부분인데 바로 그런 특성을 이용하는 갑질들이 많았다. 한 조합원의 얘기다. 오전 6시에 교대를 들어가느라 남편 밥도 못 차려주고 나왔는데, 출근해서 외주업체 사장을 위해 밥을 지어줬다고 한다. 전기밥솥에 지은 밥은 안 먹는다고 해서 1인용 돌솥에 밥 지어주고 일 시작했다고 한다. 

술을 못 먹는 조합원을 대리기사로 쓰려고 회식 자리에 부른 적도 있다고 한다. 성추행은 비일비재다. 사장을 싣고 집에 가고 있는데 뒤에서 가슴에 손을 집어 넣은 사례도 있었다. 도로공사랑 위탁업체가 회식을 하면 비교적 젊고 예쁜 조합원들은 억지로 불려나갔다. 우리끼리 못생겨서 다행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였다. 회식 후에 노래방에 갔는데 어떤 도로공사 직원은 못볼 꼴을 보여주기도 했다. 심지어 도로공사 본사에만 권한이 있는 사항에 대해 전화로 요청을 했더니 '나랑 자면 삭제해주겠다'고 말한 직원도 있었다. 

앉아서 하는 일이다 보니 지체 장애가 있는 직원들도 꽤 많다. 계단 다니는 게 어렵다든지, 의족이나 의수 쓰는 분들도 있다. 장애인 고용하면 보조 수당이 3년간 지원된다. 3년이 지나면 그들 말로는 쓸모가 없는 셈이다. 서로 다른 영업소랑 장애인 직원을 교환한다. '너무 멀어 못 가겠다'고 하면 계약 만료되는 거다. 

조합원들에게 마이크를 줬더니 이런 얘기가 터져나왔다.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으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싶다."


'중년 여성' 노동자들의 저력이 빛을 발하다

 
막상 싸움이 시작되자 그들이 무시하던 바로 그 '중년 여성' 노동자들의 저력이 드러났다. 현재 한국노총 소속의 톨게이트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서울요금소 근처에서, 민주노총 투쟁본부 소속의 노동자들은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200여 명이 장기간 노숙농성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처음 청와대 앞 노숙농성 시작했을 때 고데기를 가져온 조합원이 있을 정도였다. 노숙농성이 이 나이대 여성들이 흔히 겪는 경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뭐가 뭔지 몰랐던 거다. 텐트도 천막도 없이 맨바닥에서 홑이불 하나씩 덮고 잤다. 단 며칠만에 조합원들이 정말 잘 적응해줬다. 대부분 중년이라 엄마 손이 한참 가는 어린 자녀를 둔 조합원이 많지 않았다. 도로공사에서는 남편들이 투쟁을 방해하고 괴롭힐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조합원들은 '남편이 투쟁하지 말라고 하면 이참에 갈라선다'고 농담 반 진담 반 말했다. 중년 여성들한테는 이혼 얘기가 두렵지가 않다. (웃음). 남이 해 주는 밥 먹으면서 온 종일 투쟁만 하면 되니 너무 좋다는 조합원도 있다. 

늘 집안 일 챙기던 여성들이라 노숙 농성도 잘 하는 것 같다. 자고 일어난 자리 청소, 분리수거도 정말 잘한다. 매주 금요일은 서울요금소에 와서 지붕 위 동지들을 만나고 여기서 자는데, 우리가 떠난 자리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건 가로수 은행잎 뿐이다. 빌려 쓰는 경찰서 화장실 휴지통이 꽉 차면 우리 조합원들이 봉투 가지고 가서 직접 다 치운다. 

노숙 농성은 3박4일씩 2조로 나눠서 교대하고 있다. 여성 조합원들은 집에 가도 나머지 3일을 제대로 쉬는 게 아니다. 밀린 집안일 하고, 농성하면서 입었던 옷 몰아서 빨고, 다음 농성하러 올라갔을 때 가족들이 먹을 밑반찬 만들다보면 3일이 금세 지나간다. 그러면 다시 1인용 텐트랑 돗자리 챙겨 전국에서 버스타고 기차타고 서울로 올라온다."

7월 1일부터 해고 상태이기 때문에 현재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급여가 나오지 않는다. 벌써 급여 없는 월급날이 한 번 지나갔다. 노동조합은 해고와 동시에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실업급여 받아가면서 같이 싸우자고 설득했다. 첫 번째 월급날 조합원들이 충격 받지 않을까 걱정되었는데 큰 흔들림 없이 지나갔다. 

"생각보다 다들 정말 잘 해주고 있다. 청와대 앞에서는 매일 오후 6시 문화제를 한다. 열명씩 조를 짜서 트로트 가사 바꿔 부르기 대회를 했는데 준비하는 4시간 동안 팀별로 구석에서 노래 틀어놓고 율동을 만들었다. 정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걸 보고 톨게이트 지붕 위에 있는 조합원들이 자기들도 참여하겠다며 'DOC와 춤을' 노래를 '톨게이트와 춤을'로 개사하고, 핸드폰에 대고 불러 녹음하고, 율동까지 만들어서 공연했다. 

양대 노총에 5개 노동조합 조직 소속 노동자들이 함께 투쟁하고 있다. 한 조직이 아니기에 같이 싸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친해지기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수납원으로 십수년을 같이 살아왔다. 공동의 정체성, 끈끈함이 있다. 지금도 도로공사는 나누고 회유하려고 온갖 시도를 하지만 우리에겐 함께 해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박순향 부지부장은 투쟁이 끝나면 조합원들과 같이 1박2일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노숙은 문제 없으니 버스만 대절해 계곡이든 바다든 산이든 가서 신나게 놀고, 아무 데서나 하루 자고 오자고 약속했다고 한다. 40일이 넘게 노숙하고 '사람 있을 곳이 못 되는' 톨게이트 지붕 위에서 버티면서도 이런 신나는 약속을 할 수 있는 힘은 이기적인 싸움이 아니라는 자신감, 우리가 옳다는 확신, 수납원으로 함께 고생한 노동자 사이의 연대감이다.

기자와 인터뷰를 한 날 저녁, KBS1 <거리의 만찬>에는 '고속도로 로망스'라는 제목으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의 농성 이야기가 방송됐다. 투쟁과 연대로 성장하는 노동자 이야기가 로망스다. 

"우리가 옳다는 확신이 투쟁의 동력"
  
박순향 부지부장과 인터뷰를 마친 후, 서울톨게이트 농성 현장으로 이동해 지붕 위의 도명화 지부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박순향 부지부장은 지붕 위 조합원들에게 미안하다며 울었는데, 도명화 지부장은 밑에서 싸우는 조합원들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이런 끈끈한 마음이 조합원들을 계속 한 자리에 묶어 세워두고 있었다.

다음은 톨게이트 지붕 위 도명화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본부 지부 지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매우 더울텐데 어떻게 지내나?
"비 올 때는 비가 와서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폭염이 오니 비오는 게 낫다. 그늘막 밖에 햇빛을 피할 곳도 없다. 더울 때는 그냥 죽은 듯이 숨만 쉬고 있다."

- 건강 문제는 없나?
"오늘도 설사가 심해서 한 분이 내려갔다. 다른 조합원은 진드기에 얼굴을 물려 진물이 나고 퍼져서 내일 내려가기로 했다. 나는 발가락이 부러졌는데 일단 임시처방으로 붕대를 감아뒀다. 토요일마다 인도주의실현의사협의회에서 올라와 진료해주는데 엑스레이가 안 되니 한계가 많더라. 청년한의사회는 수요일마다 올라와 침을 놔주신다." 

- 정신적으로도 힘들지 않나?
"힘든 것은 오히려 무감각해졌다. 소음과 진동 때문에 잠 못자는 것도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잠을 잘 자면 그것도 이상하다며 받아들이자고 했다. 서로 얘기하면 자꾸 눈물짓는 분들도 있지만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게 좋다 해서 얘기하는 시간 자주 가지려고 하고 있다."

- 아래 있는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올라올 때까지만 해도 밑에 있는 동지들이 잘 싸워줄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우리는 버티기만 하면 되지만 밑에서는 시간을 내 몸을 움직여 싸워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밑에 있는 동지들이 우리를 걱정하고, 우리를 내려오게 하려고 애쓰는 마음에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 생각보다 잘 싸우고 있어서 매일 감동이다."

- 이렇게 잘 싸우고 있는 동력은 무엇일까?
"처음 하는 투쟁이라 잘할까 불안했는데 지나고 보니 처음이라 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같이 버틸 수 있는 동지들이 많고 우리가 하고 있는 투쟁이 욕심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 우리가 옳다는 확신이 투쟁의 동력이다." 

[현장의목소리] "요금소 수납원이 얼마나 우스웠으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박순향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본부지부 부지부장 인터뷰 / 2019.08

지난 6월 30일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43명이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서울 톨게이트 지붕에 올랐고, 500여 명이 청와대와 서울요금소 주변에서 노숙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1심, 2심에서 도로공사의 직접고용 판결을 받았지만, 이를 수용하지 않고 대법원까지 소송을 끌고 간 도로공사가 '자회사' 전환을 내세우며 이를 거부한 노동자들을 일시해고 했기 때문입니다.

연구소 최민 상임활동가가,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본부지부 부지부장 박순향님과의 인터뷰를 전합니다.

http://omn.kr/1ke1c

 

"요금소 수납원이 얼마나 우스웠으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현장의 목소리] 박순향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본부지부 부지부장 인터뷰

www.ohmynews.com

 

[현장의 목소리] "죽음의 행렬... 과로사 없는 우체국 위해 투쟁은 계속된다" 전국집배노동조합 최승묵 위원장 / 2019.08

[현장의 목소리]

"죽음의 행렬... 과로사 없는 우체국 위해 투쟁은 계속된다"

전국집배노동조합 최승묵 위원장 인터뷰

 

최민 상임활동가

7월 24일 오전 6시 30분, 최승묵 집배노조위원장이 양천우체국 앞에서 출근하는 집배원들에게 선전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현재 여의도 우체국이 공사 중이어서 양천, 여의도 우체국 소속 집배원들이 모두 양천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받아 배달에 나섰다. 장시간 중노동하는 집배원의 현실을 보여주듯 오전 6시부터 출근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집배노조는 지난 2년 동안 집배원의 장시간 중노동 문제를 지속해서 제기해왔다. 2017년 안양과 서광주에서 집배원들이 연달아 자살하고, 노조가 이에 대응하면서 집배원 과로사 문제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한 고발, 사회적 지지와 연대를 모으기 위한 활동, 집배원 노동강도를 평가하고 드러내기 위한 자체 조사와 연구 등 다양한 활동으로 집배원 인력 증원과 완전한 주5일제를 요구해왔다.

긴 진통 끝에 우정사업본부 노사와 전문가가 참여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 꾸려지고, 2018년 10월 22일에 7대 권고 사항이 노사 합의로 발표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약속했던 2000명 인력 충원과 토요택배 폐지를 위한 노력 등은 이어지지 않았다. 우정본부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미적대는 사이 2019년에도 집배원은 계속 죽어 나갔다. 상반기에만 9명이나 되는 집배원이 사망하면서, 집배원들 사이에서 싸워야 한다는 결의가 모였다. 6월 13일 우정 노조, 집배노조 등 집배원이 가입돼있는 노동조합들이 모두 모여 대표자 회의를 열고, 총파업과 공동 투쟁을 결의했다. 6월 24일 총파업 투표에는 94.4% 참여, 92.9% 찬성으로 압도적으로 총파업이 가결됐다.

집배원 과로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파업을 앞두고 언론 반응도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7월 8일 다수 노조인 우정노조는 결국 파업을 철회했고, '노동존중' 정부의 국무총리는 SNS에 '한 번도 파업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전통'과 '우정노조의 충정'을 칭찬했다. 다수 노조인 우정노조의 변심으로 파업은 무산되었지만, 과로사 대응 활동을 주도해 온 집배노조는 여전히 바쁘다. 출근 선전을 마치고 최승묵 전국집배노동조합 위원장을 만났다.

"6, 7월 정신없었다. 지난 2년간 집배원 과로사, 중노동 관련해서 노동조합이 해 왔던 활동을 모아내고자 말 그대로 '총력'을 다 해 활동한 시기였다. 우리의 주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얘기하는 노동존중시대, 산재 사망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선언, 노동시간을 1800시간으로 낮추겠다는 약속과 맞닿는 요구였다. 한국 사회 노동자들의 과로사, 장시간 노동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문제로 한껏 확산이 되자 드디어 정부가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면 국가 기관부터 선도적, 모범적으로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집배원 과로사 문제를 풀지 않으면 민간영역 그 어디도 달라지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 구성된 후 1년 6개월 동안 집배원 대상으로 전수에 가깝게 조사하고 연구해서 내놓은 결과였다. 집배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우리 노조뿐 아니라 범사회적으로 벌어졌고, 이를 통해 우정사업본부로부터 약속을 받아낸 것이었다.

그런데 우정사업본부는 2019년 초에 이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갔다. 우편 사업 적자, 경영 위기설을 내놓으면서 현장 노동강도를 더 높였고 무료노동으로 내몰았다. 인력 충원으로 정상적인 노동조건을 만들고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하는데, 인력 충원 없이 초과근무 수당 예산만 반 토막 내놨다. 인원은 늘지 않았는데 2019년 1/4분기 택배가 22.6% 증가했다. 인력은 충원되지 않고 물량은 증가했는데 수당이 줄었다는 게 말이 되나? 많이 일해 적자와 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올 초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그러다 5월 12일 부처님 오신 날, 집배원 세 분이 사망했다. 그 뒤에 당진에서 한 분 더 돌아가셔서 상반기에 9명의 집배원이 숨졌다. 그중 공주우체국 34살 이은장 집배원은 비정규직 3년 만에, 정규직 꿈도 못 이룬 채 과로사로 숨을 거 뒀다. 정부나 우정사업본부의 정책이 현장 노동자를 어떻게 죽일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래서 6월 투쟁이 이어졌다. 죽음의 행렬을 멈추라는 강력한 투쟁 요구가 현장에서부터 있다. 우정노조가 파업을 졸속 합의로 철회하면서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하지만 합의의 내용이나 절차를 보면서 우정노조 조합원들이 우정노조의 실체를 깨닫는 계기가 됐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벼락이 한 번 치면 잠깐 세상이 아주 밝아지는 것처럼, 파업을 철회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 그 노조의 실체가 드러나고, 실제로 투쟁을 이끄는 조직의 모습을 집배원들이 똑똑히 볼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최승묵 위원장은 파업 철회 후에도 집배원들 사이에서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고 본다.

"파업 철회 후 정말 정신이 없었다. 7월 9일 예정 돼 있던 총파업 철회되었지만 현장은 식지 않았다. 현장의 열망도 여전하다. 이를 모아내기 위한 현장 순회와 선전전을 이어가고 있다. 많은 현장 집배원들이 우정노조에 대한 크나큰 실망을 표했다. 보름도 안 되는 사이에 수백 명이 우정노조를 탈퇴했다고 들었다. 지난 2주 사이 우리는 조합원이 200명 늘고, 9개 지부가 새로 설립됐다. 이런 흐름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우체국 출근 선전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노사 간 교섭권이 중요한 이유는 그걸 통해 현장의 노동조건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사측에 지배당하는 어용노조에 교섭권은 의미가 없다. 현장의 자주적인 민주노조가 투쟁할 때 교섭을 통해서보다 현장을 더 많이 바꿔낼 수 있다는 것을 지난 3년 동안 우리가 스스로 보여줬다고 자부한다.

노동시간이나 인력, 업무 환경 등 지금까지도 집배노조의 투쟁으로 현장이 많이 바뀌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에 총파업 가결까지 가게 된 것도, 우리가 집배원 과로사, 중노동 문제를 전방위적으로 알리고, 단호하게 투쟁해 왔기 때문이다. 단체교섭권 쟁취도 중요하지만 투쟁으로 현장을 바꾸고 잘못된 제도를 바꿔 현장이 올바르게 자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집배원이 1만 6천 명인데, 2019년 이내에 조합원 2천 명, 100개 지부 시대를 열기 위해 매진할 것이다." 

▲ 과로사 없는 우체국을 위한 노동조합의 다양한 활동 중 하나가 선전전이다. 최승묵 위원장이 아침 출근 선전전 중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배원들의 현장이 여전히 뜨거운 이유는 우정사업본부와 우정노조의 이번 합의안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8년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 권고했던 정규직 2천 명 증원 대신, 위탁택배원 750명을 포함한 집배 인력 988명 증원에 합의했다. 인력 충원 규모도 축소됐고 위탁택배원이 증가했다. 우체국 위탁 택배 노동자들은 우정사업본부 자회사 격인 우체국 물류지원단과 계약을 맺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다. 공공기관 정규직화 기조에도 맞지 않고, 언제든 경영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길 수 있다.

기획추진단이 권고하고 우정사업본부도 받아들였던 '토요근무 폐지 사회적 협약' 역시 '농어촌 지역 집배원 주 5일 근무 체계 구축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 기구 운영'으로 축소되었다. 특히 우정사업본부가 토요근무 폐지를 위한 사회적 협의를 만들어가는 것은 전체 택배 시장과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는 이런 역할을 외면하고 있다.

"과중한 노동을 바꾸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중 하나는 '근무 일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고강도 노동을 하는데 충분히 쉴 수 없으면 건강하게 일할 수 없다. 우리는 주 5일 근무를 주장하면서 토요일에 일하는 것을 이슈화해왔다. 사용자 측에서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일 년 365일 가동하고 싶어 한다. 우리의 구호는 '같이 일하고 같이 쉬자'는 것이다. 정규직은 주말에 쉬고, 특수고용직은 토요일에 나와 토요 택배를 맡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고 본다. 이런 노력이 배달노동자 전체로 확산하기를 바라며 연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의 토요 택배를 멈출 수 없는 이유가 국민들, 소비자들 때문이라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는 홈쇼핑 등 기업 택배들이다. 배달이 계속되고 이윤이 늘어나는 것을 기업들이 원하고 있다.

택배나 배달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실 택배는 원가보상률이 1도 나오지 않는다. 하면 할수록 적자라는 얘기다. 택배 시장의 문제는 원가에도 못 미치는 운송료로 과다출혈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걸 배달노동자의 저임금, 건강과 생명이 채워주고 있던 셈이다. 그래서 하반기에는 배달노동자 전체와 소비자 단체를 포함한 범시민사회단체를 망라해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형성해 나가려고 한다.

현장에서는 이와 발맞춰 '토요일에 병원 가자. 토요일에 친구나 친척 결혼식에도 가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 평일에 장시간 노동을 하다 보면 병원도 못 갈 지경이다. 토요일이라도 병원도 가고, 사회활동, 가정사도 챙겨야 한다. 토요일마저 일하다 보니 절로 골병이 든다. 그런데 우정사업본부는 토요근무 강제 명령을 내리고 거부하는 경우 징계 운운하고 있다. 아파서 휴일에 병원 좀 가야겠다는 사람에게, 일할 사람 없으니 무조건 나오라는 식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대응을 준비하면서, 토요일만이라도 강제 노동을 거부하는 형태의 투쟁을 벌여 나갈 것이다."

집배노조는 7대 권고안에 담겼던 집배 부하량 산출 시스템 개선, 조직문화 혁신 등의 과제가 이행될 수 있도록 강제하기 위한 활동 계획도 세우고 있다. 사람을 기계처럼 여유율도 계산하지 않고 집배 노동의 표준시간을 산출한 '집배 부하량'이 오·남용되는 것을 막는 활동도 과중 노동을 개선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다. 집배노조가 집배원 과로사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노동자의 과로 노동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앞장서고 싶다는 얘기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집배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 강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시간, 노동강도를 만들어가는 집배노조의 거침없는 행보를 기대한다.

"집배원들은 매일 전국의 사업장을 찾아다니며 국민들,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 작은 영세사업장부터 큰 대기업까지 모든 곳에서 각 노동자가 얼마나 고단할까 생각한다. 과로 노동 문제는 집배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로해서 생명을 잃고, 건강과 행복을 잃는 모든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우리가 앞장서자는 생각이 강하다. 집배노동자가 그동안 국민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는데, 앞으로는 한국 사회의 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배노조가 앞장서 나가고 싶다." 

[현장의 목소리] 공장 담벼락을 넘어,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안전한 삶과 일터를 만들자 / 2019.07

[현장의 목소리] 

 

 

공장 담벼락을 넘어,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 안전한 삶과 일터를 만들자

 

 

나래 / 상임활동가 

 

 

2014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발생한 화학물질 사고만 15건. 전부 충북에서 발생한 사고의 건수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5월 13일 제천시 한 업체에서 화학물질 폭발사고가 터져 3명이 숨지기도 했다. 사실 이런 사고는 충북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고용노동부의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 산업재해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 7월까지 4년 7개월간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에서 화학물질에 의한 폭발·파열·화재나 화학물질 누출·접촉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총 100명에 이른다. 부상자도 2천169명에 달한다. 유해 위험물을 취급하지만 안전교육을 시행하지 않은 사업장은 총 1천228곳에 달한다.


과연 대한민국에 안전한 곳이 있는지조차 의문인 현실에서 ‘자본의 탐욕으로부터 안전한 삶과 일터!’를 핵심 키워드로 삼는 충북노동자시민회의가 작년 9월에 출범했다. 유해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고민과 활동을 이어나고 있는지 소집권자이기도 한 조남덕 씨를 지난 6월 25일 화요일 청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충북 노동자시민회의 소집권자,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콘티넨탈 지부장 조남덕

 

“저는 자동차 계기판을 만드는 노동자입니다. 회사에서 근무한 지는 23년 정도 됐습니다. 한 곳에서만요. 그리고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콘티넨탈지회장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충북노동자시민회의(이하 노동자시민회의)는 유튜브에 한 청년 노동자가 나와 박근혜가 퇴진하면 나의 삶이 바뀔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 동영상이 주요한 출발점이었습니다. 박근혜 퇴진 이후에 촛불의 힘이 실제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일터가 바뀌는 운동으로 발전하고, 노동자와 시민이 그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죠. 그쯤 충북지역의 다이옥신 소각장 문제, 라돈침대 문제가 부각됐던 때이기도 합니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통해 자신의 일터를 바꾸고, 시민사회단체는 지역사회의 개입을 통해 활동하는데 그 과정에 노동이 배제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지역과 노동이 어떻게 만날 것인가 고심했죠. 동시에 유해화학물질을 빼놓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지역의 단체와 노동조합이 만나 간담회를 진행했고, 작년 9월 창립총회를 열었습니다. 이후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공부도 하고, 운영위원회 회의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노동과 안전, 건강을 키워드로 삼는 조직이 생겨나면서 주변에서 어떤 반응이 있었는지 물었다.

“다들 처음에는, 특히 노동조합의 경우 ‘뭐지?’ 이런 분위기가 있었죠.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보통 정해진 A, B, C가 있는데 노동조합이 유해물질, 환경문제를 갖고 뭔가 해보자고 하니깐 취지는 공감하나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지역에서 노동자들이 경제적 이익 투쟁 말고 환경 문제를 두고 지역사회에서 목소리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전전을 하며 확인한 것은 반응을 적극적으로 주시는 분의 경우엔 내용에 공감하며, 노동자들과 이 문제에 나서서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연락을 주기도 하셨고요. 충북이 워낙 대기질 문제가 심각하기도 하거든요. 더불어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는 제기를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일하는 일터의 담벼락을 뛰어넘는 것. 그것이 노동자시민회의의 출발점이자 도전이기도 했다.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사람들은 모여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일 계속되는 사고 소식에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제천 사고와 관련해 관심이 많습니다. 활동을 아직 왕성하게 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서 카드 뉴스도 제작하고, 기자회견도 열었어요. 지역사회와 노동자들에게 이 문제를 알려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거죠. 또 다른 활동은 대기오염물질 조작사건과 관련해서 노동조합도 찾아가고, 간담회도 하고 공동 기자회견도 열었어요. 사업장 전면 실태 재조사 촉구 기자회견이었죠. 이때 많은 기자가 찾아와서 솔직히 놀라기도 했어요. 지역사회의 노동자들이 공장 밖을 나와 환경문제, 유해물질문제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이만큼의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노동자시민회의는 본인 스스로 어떤 역할을 부여하고 있을까.


“사실 사고가 나면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알기 쉽지 않아요. 사고가 난 현장에 가까이 사는 사람들도 이것이 나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럴 때 ‘당신 삶에 어떤 영향이 있어요.’라고 해석해주고,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 어떤 것들이 차단되어야 우리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 계속 설명해주는 것, 그리고 각 일터와 내 일상이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기도 하죠. 그런 활동이 우리의 1차
목표입니다.


제천 사고의 경우에도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굉장히 한정될 수밖에 없어요. 정보가 워낙 차단되어 있거든요. 그런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와 기업에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죠. 노동자시민회의가 확인한 것은 그동안 노동조합이 자기 사업장, 자기 안전문제가 아니고서는 지역과 함께 하겠다는 고민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이에요. 그것을 앞으로 해나가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고, 기자회견을 통해 지역사회가 관심을 갖게 됐다는 걸 본 거죠. 이런 것들이 계속 필요합니다. 또한 이런 것들이 충북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연결 되어야 하고요.”

 

노동자시민회의 회원들이 지역에서 거리 선전전을 진행하는 모습. 이들에게 거리에서 시민과 노동자를 만나는 것은 중요한 활동 중 하나다.


가장 최근 이슈가 됐던 제천 화학폭발사고의 경우에도 노동자시민회의 가 갖는 주요한 문제의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화학폭발사고가 난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사고 원인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노동자시민회의를 포함한 지역 노동계가 기자회견을 통해 노동자와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진상조사 및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사고가 난 공장은 유해화학물질을 일상적으로 취급하는 화학업체이다. 그런데도 사고가 발생한 것은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동안 여러 번의 위험 신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사고를 겪은 후 노동자 시민회의 역시 고민이 깊어졌다.

“저희가 평상시 생각했던 것보다 위험에 정말 그대로 노출됐다는 것이 확인됐죠. 위험을 평소에 관리·감독 하지 못했고, 지자체 역시 현황 파악도 하지 못한 것이죠. 그런 상황 자체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동자시민회의가 계속 주장한 것은 사업장에서 유해화학물질이 얼마나 사용되고 있고, 관리되고 있는지 지역과 일터의 노동자들이 알 수 있도록 언제든 자료를 요구하고 받아볼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것이었어요. 어떤 대책위를 꾸린다고 하더라도 피해 보상 얼마로 끝날 뿐이고, 제도적 변화는 없을 거란 생각이 이번 사례를 통해 재확인된 거죠. 사실 지역 명예산업안전감독관 같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참여할 수 있는 제도도 있거든요. 이런 것들을 어떻게 구축해 나갈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지난 2016년 7월 26일, 조남덕 씨 본인 역시 화학물질 유출 사고를 직접 경험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일 반복되는 화학물질 사고가 남의 일 같지 않다. 공단 내에서 ‘티오비스’라는 화학물질 2개, 드럼 300리터가 유출 됐는데 그 자체로 유해물질은 아니지만, 유해물질인 황화수소가 생성될 수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반경 300미터 지역엔 대피령이 내려졌다. 사고 공장과 콘티넨탈의 지도상 직선거리는 300미터였다. 하지만 당시 콘티넨탈엔 대피령이 내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콘티넨탈 직원들은 가스 누출사고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듣지 못했다. 결국 당시 지회장이었던 조남덕 씨는 조합원들을 대피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용자 측은 조남덕 씨를 사업장을 무단으로 이탈했고, 회사의 작업 복귀 요청에 불응했단 이유로 징계위에 회부했다. 현재 대법원에 가 있는 상태다.


“최근 사고를 보면 우리 사업장 상황과 겹쳐 보여요. 일하는 공간에서 엄밀히 말하면 노동자에게 위험을 거부할 권리가 없어요. 특히 이번 산안법 개정을 보며 더욱 걱정되는 상황이죠. 자꾸만 노동자들 스스로 위축시키고,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간다면 어느 누가 자신과 일터의 안전을 위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할까요?”


일터에서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위험한 작업을 거부하거나 피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더불어 알권리 역시 제대로 보장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권리는 아래로부터, 위험 노출이 쉽게 될 수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란 곳이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SK하이닉스 공단이 있어요. 근처에 5천 세대가 넘는 주거지역이 있고요. 실제 비오거나 날씨가 흐리면 냄새가 많이 나요. 신고해도 지자체는 알았다고만 하고요. 해당 주민들은 이상한 걸 알아요. 그런데 답답한 게 냄새로 아는 것 외에도 어떤 것이 위험한지 알아야 하는데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어요. 앞으로 공장이 더 들어올 텐데, 주민이나 노동자가 얼마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죠. 무엇보다 주민과 노동자들에게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고,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제공해줘야 해요.


노동자시민회의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일터가 안전해야 지역 시민의 안전도 지킬 수 있다는 거예요. 노조가 있는 사업장보다 노조가 없는 곳,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곳 등 여기서 노동자시민회의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안전을 지키는 주체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 노동자, 지역 주민들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