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바친 회사에서 과로사로 죽고 싶지 않습니다
- 공공운수노조 민주한국공항지부 서우석 홍보부장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작년 사회적으로 큰 관심과 공감대를 형성했던 이슈가 있었다. 바로 ‘과로사’ 문제다. 짧은 단어이지만 그 이면에는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 담겨 있다. 하루 15시간 넘게 일 하고 바로 새벽에 출근해야만 하는 버스운전사, 본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업무강도에 쓰러져간 집배원, 야근하는 사람이 많아 ‘구로의 등대’라 불린 넷마블에서 과로사한 게임개발자 등 모두 일 때문에 세상을 등진 노동자들이다.
2017년 12월13일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자신이 일하던 일터에서 사망했다. 바로 대한항공 자회사 한국공항 직원인 故 이기하 님(49)이다. 한국공항은 대한항공 및 대한항공과 계약을 맺은외국항공사들의 지상조업을 처리해주는 회사이다. 고인은 수하물 탑재 및 하역을 맡은 램프 여객부 93조 조업장으로 무려 17년 동안 일했던 베테랑 노동자였다. 그런 그가 왜 오전 출근한 직후 쓰러져 사망했을까. 고인을 비롯한 한국공항 노동자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기 위해 공공운수노조 민주한국공항지부 서우석 홍보부장을 지난 1월18일에 만났다.
서우석 님 역시 올해 공항에서 근무한지 20년 차다. 만만치 않은 경력이지만, 본인 말고도 30년 가까이 한 사람들도 제법 많다고 한다.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버텨야만 했던 이유를 물었다.
“혼자일 때랑 가정을 꾸려 식구가 있는 사람들은 못 그만둬요. 힘들어도 계속 참고, 견디고 그러죠. 이곳 일은 여러 분야가 있는데 근무환경은 비슷비슷해요. 제가 처음에 한 일은 화물 수출·수입이었죠. 국제우편물 취급소에도 1년 있었고, 램프여객에 온지 4년째예요.”
故 이기하 님의 사망 날, 서우석 님도 출근을 했다.
“저도 그날 아침 근무를 나왔거든요. 어떤 직원이 카톡에 소식을 올렸죠. 출근했는데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이송됐다고요. 우리도 그 정도만 듣고 일 하다가 계속 소식을 기다렸죠. 그런데 숨졌다는 거예요. 사람이 일 하러 나왔는데 죽었으니까 정신이 없었죠. 노조 홍보부장이니 소식을 모르는 조합원들에게 알리고, 지방 공항의 조합원들에게도 내용을 전했죠. 일이 손에 안잡히더라구요.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옛날부터 직원들이 누구 한명 죽어나갈 것 같다는 말을 정말 많이 했어요. 일이 많이 힘들기 때문에요. 같이 움직이는 팀 인원만 충원을 해줬어도, 병원 다니면서 일을 했을 텐데... 거의 1년 가까이 인력 충원 없이 자꾸 사람을 줄이기만 했어요. 한명, 한명 빠져나갈 때마다 노동 강도가 배가 됐어요. 심지어 어떨 때는 급하게 병원 가서 못나오면 3명이 할 때도 있었죠. 어쩔 수 없이 하는데, 정말 힘들어요.“
노조는 고인의 죽음을 ‘과로사’로 주장하고 있다. 반면 회사는 공항 업무 특성상 탄력근무를 도입해 운영한 것이고, 연장근로는 주 12시간 초과한 사실이 없다고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에서 고인의 출퇴근 자료를 분석한 결과 월평균 50시간의 초과노동을 한 것 으로 드러났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근무한 날은 월평균 8~9일이나 됐다.
여기에 인력부족 문제까지 더해져 현장은 매일이 전쟁터와 다름없다. 고인 역시 사망하기 세달 전부터 7명이 작업할 일을 4~5명이 도맡았다. 비행기에 수하물을 싣기 위해 좁은 공간에 몸을 구겨 넣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은 노동강도가 굉장했다. 야외 작업이기 때문에 날씨영향도 크게 받는다. 인원도 부족한 상황에선 제대로 식사하기도, 쉬기도 어렵다. 어쩌다 운좋게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도, 비행기가 빨리 도착하면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다시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공항에서 일하는 지상조업 노동자 모두가 시달리는 문제다. 그러니 故 이기하 님의 죽음에 대한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고인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동료들의 정신적 충격과 상처회복을 위한 조치는 취해졌을까. 사고 트라우마를 예방하기 위해선 사건초기 대응 때부터 심리치유를 해야 한다. 하지만 회사의 대책은 찾아볼 수가 없다. 결국 개인이 버티거나, 그만두거나 둘 중에 하나일 뿐이다.
“트라우마 치료? 그런거 없어요. 故 이기하 님이 근무했던 조의 조원이 5명이었어요. 그런데 사고 나고 바로 하루, 이틀 있다가 계약직 직원은 충격 받아서 회사 못 다닌다고 사표내고 그만뒀어요. 다른 친구도 일주일 있다가 자기도 그만두겠다고 부조장한테 얘기했다고 하더라구요. 자기 조의 조장이 일 하다 쓰러져 죽었는데, 당연히 그 조원들의 충격이 컸죠. 전문가들에게 의뢰해서 트라우마 치료를 해주거나 그런걸 안하고 있어요.
한국공항이란 회사가 대한항공 자회사이지만 전혀 작은 규모가 아니예요. 상장도 했고, 사원수도 적지 않죠. 매출도 크게 증가했구요. 그런데 직원들에게 푸는게 없어요. 당연히 직원들 애사심도 떨어질 수 밖에 없죠. 회사는 직원들 일 시킬줄만 알지 다른 걸안해요. 사고도 감추기에 급급하고... 몇 십년간 계속 벌이지고 있는 일이예요.“
열악한 환경은 당연히 노동자들에게 유인책이될 수 없다. 나름 기대를 품고 입사해도 버티기조차 힘들다. 일손이 부족해도 일을 그만두는 젊은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했다.
“이직률이 높아요. 일이 힘드니까요. 실제 일을 해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어서 많이 그만둬요. 제일 큰 문제는 수면시간이예요. 잠을 못자요. 출근시간만 있고 퇴근시간이 없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죠. 오전 7시에 출근을 했으면 오후 4시30분, 5시 정도엔 퇴근을 해야 하는데, 그런 퇴근 시간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라고 같이 일하는 선배들이 얘기할 정도죠. ‘1시간 후면 퇴근이네’라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고 오늘 일이 끝나야 끝나는 거라는 식이예요.”
존재하지 않는 퇴근과 부족한 수면시간 외에도 이들을 힘들게 하는 건 유동적인 업무표다. 어떤 날은 오후 5시에 출근이고, 어떤 날은 오후 4시, 또 다른 날은 새벽 5시. 심지어 30분 간격으로 쪼개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신입직원들은 알람을 맞춰놓고 자도, 2~3일 일을 하고나면 힘들어서 알람 소리를 못 듣고 지각을 하거나 심지어 출근을 못하기도 한다. 또 퇴근과 출근 시간 간격이 지나치게 짧아 집에 가지 않고, 회사에서 자고 출근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비인간적인 업무 스케쥴은 10명 중 겨우 2~3명만 남게 하는 악조건으로 작용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더욱 강도 높은 노동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비행기랑 여행객은 계속 늘고, 수하물 양도 많은데 오히려 일하는 사람은 줄어요. 적은 인원이 일을 하다보니까 과로가 되고, 과로사가 발생했죠. 몸에 질병도 많이 생겨요. 비행기하고 시간 싸움을 하다보니까 식사를 못해요. 제일 긴 노동시간이 일 하는 기준으로 15~16시간 정도인데 그러면 하루 세끼는 먹어야 하거든요. 운이 좋으면 먹는거고, 반대로 한 끼만 먹고 일하는 경우도 많아요. 아파도 병원에 못가죠.
쉬는 것도 문제예요. 만약 휴게공간이 있다고 해도 이용할 시간이 없어요. 사실 진짜 조용하게 직원이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이건 저희만의 문제가 아니고 인천공항의 문제이기도 해요. 인천공항 전체를 둘러봐도 일하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자체가 없거든요.”
높은 노동 강도는 당연히 일하는 사람의 몸에 좋을 리가 없다. 서우석 님 본인도 일하다 엄지손가락 일부가 잘려나갔다며 본인의 손을 슬쩍내밀었다. 또 근골격계질환으로 어깨 근육이 파열되어 두 달간 집중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본인만 시달리는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일 자체가 좁은 공간에서 쭈그려 앉아 무거운 가방이나 화물을 다루다 보니 양이 많을 때는 주먹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가방을 쌓는다. 그런 일을 길게는 20~30년 하다 보니 당연히 몸이 성한데가 없다. 하지만 병원에 치료 받으러 가지도 못하고, 만약 입원까지 해도 자기 연차를 쓰는 경우가 태반이다. 산재여도 회사가 거부해 하지 못한 경우가 제법 많다고 했다.
안전장비 지급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전에는 신청을 하면 새 물품을 지급 해주는 식이었다. 지금은 포인트 제도를 운영하여 1인당 포인트 내에서만 구매를 해야 하고, 만약 포인트가 없으면 개인이 사비를 들여 구매하는 식이다. 회사에서 주는 포인트는 필요한 안전장비를 사는데 턱 없이 부족하다. 서우석 님도 올 겨울 새방한화가 필요했지만, 새 작업복 교체를 위해 방한화를 본인 돈으로 샀다고 했다.
“사고가 났지만 변한 게 없어요. 작년 3월에 강영식 대표이사가 한국공항 신임사장으로 취임했어요. 그뒤로 현장은 더 힘들어졌습니다. 1년 가까이 인력충원도 안하고 있고, 줄어든 인력으로 계속 일하고 있거든요. 특히, 유족에게 먼저 손을 뻗어 책임 있는 사과나 배상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유족들에게 상처만 주고 있어요.”
결국 사람이 한 명 죽었지만, 현장은 여전히 바뀐 게 없다. 고인의 장례식 또한 아직 치루지 못했다. 유족과 민주한국공항노조는 ▲회사의 공식사과 ▲산재처리 ▲유족보상 ▲주52시간 근무준수 ▲적정인력 배치 준수 및 인력충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서우석 님은 하루 빨리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다. 이 청원에 약 3천명 가까운 이들이 서명했다.
“회사는 자기들 힘들땐 직원들에게 봐달라고만 하고, 막상 직원들이 어려움에 처하거나 목숨을 잃어도 눈 하나 꿈쩍을 안해요.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청와대 게시판에 청원도 넣었어요. 정말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는 자기가, 노조가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가족들과 단 한, 두 시간이라도 시간을 갖고 싶고 집에 대소사가 있으면 참여를 하고, 아프면 병원에 가고 최소한 인간답게는 살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죽지 않는 공항 노동자들의 행보에 우리가 함께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 지난 2월 1일 저녁 유족과 회사 측의 협의를 통해 故이기하 조합원의 위로 보상과 장례 일정에 합의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고인에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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