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리포트
누구를 위해 특성화고 현장실습은 존재하나
최민(선전위원장,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현장실습으로 취업을 시작한 스무 살 A 씨 이야기 고3이던 작년 11월 현장실습으로 처음 취업했어요. 올해 2월에 졸업했어요. 작년 11월에 처음 나간 회사는 간단한 조립을 하는 곳인데, 쥐에게 전기 자극을 주는 실험 기구예요. 그런 기구 만드는지는 모르고 간 거죠. 일은 편하긴 한데, 개인적으로 좀 너무 잔인한 거 같고, 월급도 적고. 그래서 친구가 있던 전기 스위치 만드는 곳에 갔어요. 12시간씩 맞교대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저는 야간 체질이라 처음에는 안 힘든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일하다 졸고 있으면 언니들이 깨워주고. 얼마 전에 그냥 나와서 아이스크림 가게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요. 몸은 덜 힘든데 월급은 팍 줄었죠. 차라리 다시 교대하는 데로 가서 1~2년 바짝 일하고 대학에 가볼까 궁리 중이에요. *면접 때 나온 이야기들을 모아 엮은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
특성화고 현장실습 들여다보기
특성화고등학교는 ‘소질과 적성 및 능력이 유사한 학생을 대상으로 특정분야의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전문적으로 실시하는 고등학교다. 이전에 ‘실업계 학교’로 부르던 학교다. 2014년 기준으로 전국 36만여 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현장실습은 일 기반 실습 교육을 모두 칭하는 일반적인 말이지만, 여기서는 주로 3학년 2학기에, 졸업 후 채용을 약속하고, 등교 대신 출근하는 형태의 현장실습을 말한다.
2014년 1월 20일 충북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한 학생이 자살했다. 자살하기 며칠 전, 동료에게 얼차려를 당하고 뺨까지 맞았다. 폭력적인 직장 문화가 문제였지만, 전자 기계 전공 실습을 위해 나간 그가 그런 모욕을 참아가며 하던 일은 육가공품 포장이었다.
2014년 2월 10일 울산에서 폭설로 공장 지붕이 내려앉아 사망한 노동자 가운데 현장실습생이 있었다. 현장실습생에게 금지된 야간 근무 중이었다는 성토가 이어졌지만, 야간 근무만 문제였을까? 오히려 장시간 노동해야 급여를 더 받을 수 있고, 대다수가 그렇게 고달프게 일해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 이 현장실습의 진짜 목적은 아닐까?
사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사망이나 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2005년 ‘간접고용’ 형태의 현장실습이 늘어나면서 현장실습생들의 노동 인권침해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실태조사를 발표하면서 공식적인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교육부가 2006년 실업계고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며 현장실습의 대상과 시기를 제한하였다.
그러나 2008년 학교 자율화 정책에 따라 정상화 방안이 폐지되고 취업을 점점 강조하면서 다시 현장실습 시기가 확대되었다. 결국, 2011년에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2교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현장 실습생이 과로에 의한 뇌출혈로 쓰러졌다. 2012년에는 울산항만 공사 현장에서 작업선이 전복되면서 함께 타고 있던 현장실습생이 사망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현장실습 표준협약서 개정, 노동관계법 교육 의무화, 학생 안전 강화, 실습 감독 강화 등 제도적 보완책이 제안됐지만 비극은 되풀이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땜질식 개선안을 더 고민하는 대신, 현장실습 제도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때가 아닌가 한다.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 속에서 가장 적절한 대안을 찾기 위해서다.
대체 지금의 현장실습은 대체 무엇을 목표로 굴러가고 있는가?
이렇게 문제가 많은 현장실습인데, 문제 제기가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굳건하게 유지되고 굴러가고 있는 것일까?
어긋난 단추는 어디에 있으며, 문제의 해결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특성화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의 여러 주체를 직접 만나, ‘현장실습’을 둘러싼 각 주체의 목적과 필요, 인식을 확인하고, 이 목적과 필요, 인식과 현실이 어떻게 어긋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했다.
이를 위해, 2014년 9월부터 12월까지 현장실습생(졸업생 포함) 5명, 동료 노동자 2명, 교사 2명, 교육청 장학사 1명, 사업주 2명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분석하였다.
결과 1. 교육이라는 거짓말
교육부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목표를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을 산업현장에서 적용하고 다양한 직업체험을 통해 현장적응력을 기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면접 참가자들은 이런 목표에 대해 회의적이다. 현장실습은 “교육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교육적 효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던 교육청 장학사 역시, 실제로는 “학생들은 아르바이트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고, 기업들은 싼 노동력으로 이윤 추구의 목적이 강하다.”라고 시인했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파견형 현장실습에는, ‘실습’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교육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다. 사업주에게 현장실습생을 선발하고 일을 시키는 과정이 신입사원을 뽑아 교육하는 과정과 전혀 다르지 않다. 사실상 현장에서는 ‘현장실습’, ‘현장실습생’이라는 용어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동료 노동자들 사이에서나 현장실습생 서로 ‘취업생’이라고 부를 정도로 교육적 의미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렇죠. 일반사원 체계나 똑같은 거죠, 말만 실습이라 하지. 말만 그렇지 일반 사원이랑 똑같지. 일반 직원 채용하고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 사업주 2
질 : 실습생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같은 게 따로 있나요?
답 : 교육프로그램… 여기 회사에서는 아직 없는 것 같아요. 만들어졌으면 좋겠는데… - 동료노동자 2
대부분 현장실습인데 저희는 현장실습이랑 취업이랑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이니까. 두 개를 그냥 아예 현장실습이 취업이구나. 선생님들도 다 현장실습이라고 말을 하시는데 저희가 받아들이는 건 취업으로 받아들여요. - 실습생 4
결과 2. 취업이라는 과장
현장실습에서 교육의 의미가 퇴색된 지 오래라면, 현장실습이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생애 첫 일자리로의 취업 과정은 되고 있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현재의 파견형 현장실습은 실습 종료 후 취업으로 연계되는 것을 기본적인 목표로 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 직장 경력이 5년 차라는 한 노동자는 지난 5년 동안 졸업 이후까지 쭉 이어서 직장 생활을 해 나간 현장실습생은 오직 한 명 봤다고 대답했다.
고3 애들 들어오면 뭐하러 저렇게 고3 애들 많이 뽑는지 모르겠다. 좀 아줌마들 뽑아서 오래 있을 사람을 뽑았으면 좋겠는데 고 3들은 금방 나가니까. 아 또 금방 언제 나갈지 모르는데 몇 명이 남겠나?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 동료노동자 1
현장실습생이 직장에 오래 남아있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군 입대라는 현실적인 장애도 있고, 취업 과정 자체가 장기적으로 일할 자리를 찾기보다 ‘일단’, ‘경험 삼아’ 나가는 경우도 많아 일자리가 실습생들에게 매력을 전혀 주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 회사에 대해서는 사실 베일 속이고. 본인이 기대한 것과는 다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걸 학교에서는 그냥 네가 기대치를 낮춰라. 이런 식이에요. - 실습생 1
여기는 3D 업종이라고 보시면 되잖아요 사실은. 좀 더 잘 해주면 좋겠지만 여기는 여기만의 규칙이 있는데. 19살이 졸업하고 여기 와서 뭐하겠어요. 심부름이에요. 사실 어디 가도 심부름이잖아요. - 사업주 1
현장실습이 교육이 아니라 취업이라고 할 때도, 그 취업은 자기 발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에 취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자리에 최하위 노동자로 취업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결론 3. 순응하는 근로자를 만드는 현장실습
그럼 제대로 된 교육 기회도 제공하지 않고, 실망스러운 취업 경험이 될 뿐인 이 파견형 현장실습에서 현장 실습생들이 배우는 것은 무엇일까. 사업장의 질서와 속도에 익숙해지는 것, 철드는 것,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배우는 것, 한 마디로 ‘순응하는 근로자’가 되는 것으로 보였다.
현장실습에서 (배우는 게) 몇 개는 되는 것 같아요. 애들이 철이 좀 없는데, 갔다 오면 약간 들어서 오는 것 같은 느낌이… - 실습생 5
실습생 2 : (반죽을) 계속 치니까 쉬는 시간도 없고. 학교 같은 경우는 한 가지 일하고 짬 나는 시간이 한 시간 두 시간 돼요. 그때 좀 애들이랑 얘기도 하고 장난치면서 하면 어느 정도 나와요. 그렇게 쉬엄쉬엄하잖아요. 근데 회사 같은 경우는 쉬엄쉬엄 못하니까, 계속 돌아가니까, 레일이. 계속 일하는 거죠.
실습생 3 : 근데 그 힘든 게 빠르면 일주일이고요, 길면 2주 정도면 그 힘든 게 적응되고 그 후부터는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일상생활처럼.
결과 4. 현장실습을 유지하는 구조
마음에 들지 않고, 자기 발전의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 일자리가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 혹은 특성화고 졸업생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젊은 세대에 대한 착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열악해진 청년 노동 전반이 그렇다. 그런 맥락 속에 현장 실습생들의 일자리, 현장 실습이 택할 수 있는 일자리도 놓여 있다.
면접했던 특성화고 졸업생은, 현장 실습을 나갔던 11월부터 다음 해 9월까지 5번 직장을 옮겼다.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가 대세인 가운데, 현장실습은 젊은 노동자를 억지로 인기 없는 일자리로 공급하는 파견 업체 역할을 맡는 것이다.
게다가 현장 실습생들에게는 20대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어려움 외에 특수한 문제도 있다.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은 현장실습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이 금지되어 있어 부당한 대우를 참고 견디는 것, 병역특례노동자가 업체에 쓴소리 한 번 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 사정이다. 의무적으로 견뎌야 하는 현장 실습은 직장 선택과 퇴사의 자유를 빼앗고, 부당한 상황을 참도록 강제한다. 현장실습부터 병역 특례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병역 특례 노동자가 가진 부담감을 똑같이 지게 된다. 학생이기 때문에, 학교나 후배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참고 견뎌야 한다는 압력도 있다. 청소년이라서, 사회 경험이 적기 때문에 당하는 차별이나 불편함도 있다. 여전히, 특성화고 학생들은 청소년 중에서도 사회적 자본이 불리한 경우가 많다. 사업주들은 이직이 쉽지 않은 먼 지방의 실습생을 선호한다.
현장 실습생들의 이런 약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업주도 많다. 3개월 수습으로 일하게 한 뒤, 졸업 후 다시 수습 기간을 적용하거나, 정규직들이 꺼리는 업무를 실습생에게 맡기는 경우도 있었다.
적절하지 못한 일자리, 부당한 처우에 방패가 되어 주어야 할 교사와 학교는 오히려 학생들을 현장실습으로 내몬다. 취업률 경쟁 때문이다. 취업률 경쟁은 교육청, 학교, 교사, 최근 도입된 취업 지원관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벌어지고 있다. 그 결과는 12시간 주야 맞교대 업체나 전공과 무관한 사업체까지 학생들을 내보내는 현재의 파행적 현장 실습이다. 특성화고 취업률이 1년 만에 14.3%나 증가했다고 선전했던 2012년 서울 지역 취업 기업 1위는 군대, 2위는 롯데리아였다. 이후 4대 보험 적용 사업장 취업률을 따로 발표하도록 하고 있지만, 쥐어짜기 식 취업률 조사를 강요한 취업률 경쟁 체제는 지속되고 있다.
‘취업률 제고’만 목표로 수십 년간 흘러온 특성화고 현장실습은 쉽게 대안을 말하기 어려운 주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렇게 엉망인 현장실습 몇 달 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당당한 노동자로 살아가는 데 밑거름이 될 노동 인권교육이 우리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더 필요하리라는 확신이 든다.
* 본 연구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직업환경의학교실 지원으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실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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