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시그네틱스 노동자의 기나긴 해고와의 싸움 /2017.2

시그네틱스 노동자의 기나긴 해고와의 싸움

- 금속노조 시그네틱분회 윤민례 분회장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삼성 재벌 이재용의 구속 영장이 기각되고 재벌 해체와 이재용 구속을 외치던 13차 촛불 집회에서 영풍 자본의 표적이 되어 온갖 탄압을 긴 해고 복직투쟁으로 맞서고 계신 경기금속지역지회 시그네틱스 윤민례 분회장님을 만났다.


시그네틱스 해고 복직투쟁은 매우 오래된 투쟁으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의 긴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는지요?


“(1차 해고) 2001년도에 이 싸움은 시작됐어요. 영풍그룹이 들어오기 전 공장이 서울 염창동에 있었는데 공장이전을 하게 계획돼 있었어요. 염창동에 있는 공장을 담보로 파주 탄현면에 3배 큰 규모로 공장을 새로 지은거죠. 그리고 2000년에 영풍그룹이 시그네틱스 반도체를 인수했는데 그때부터 노사갈등이 심하게 됐어요. 당시 회사엔 한국노총 소속 노동조합원 1,000여 명이 있었어요. 파주는 염창동에 비해 3배 규모고, 유니온 샵 제도였으니 반도체업종에 거대노조가 생기는 거였죠. 


그런데 저희 모두 파주로 가는 줄 알고 있었는데 염창동보다 작은 공장을 안산에 짓더니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싸움이 본격화됐어요. 공장이전을 하면서 노동조합을 없애기 위한 자본의 계획이기 때문에 전면 파업을 했고, 그 과정에서 전원 해고됐어요. 그러다 6년의 투쟁을 통해 65명이 안산 현장에 복귀를 했고 2007년 대법원 판결 받을 때 핵심간부와 열성 조합원 29명 전원패소로 1차 해고자라고 부르는데 저도 그때 해고되었죠.“


지금 현재 파주공장은 자본의 계획대로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서울 염창동의 기계가 파주로 이전했지만 파주 공장에 생산라인은 모두하청화해서 다른 회사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말 가고 싶으면 사표를 내고 비정규직으로 들어오면 받아준다고 말하고 있다.“


“(2차 해고) 안산으로 65명이 복직했는데 자연 감소하기도 하고 4년 후 2011년도에 경영상 어려움을 들면서 32명 전원 정리해고를 했어요. 다른 회사로 전적해서 가라고 했는데 저희가 거부했어요. 본사인 파주공장이 있는데 남의 회사에 가서 1년도 못 버티고 잘릴게 뻔에 그것을 받아들일 순 없었죠. 17개월 동안 투쟁해서 2013년 1월에 전원 복직을 했어요.”


“(3차 해고) 1년도 채 못돼서 2014년도에 안산공장을 팔아버리고 광명 하안동으로 또 공장이전을 해요. 2년이 지난 2016년 광명공장을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폐업으로 인한 정리해고를 했어요. 그래서 현장에 22명이 남아있었는데 1억에 가까운 위로금을 제안했고 평균연령이 52세이다 보니 그보다 많은 언니 13명이 사직을 하고 최종 9명이 남아서 투쟁을 결의하게 되었죠.”


16년 긴 시간 동안 해고 복직투쟁을 해오고 계신건데, 사측은 폐업까지 하고 더욱 힘겨운 상황이네요. 요즘 어떠신지요?


“2015년 12월에 교섭할 때 내년 6월에 광명사업부 정리하고 해고한다고 할 때 힘들더라고요. 어떻게 세 번씩이나 전원을 해고할 수 있나! 두 번씩이나 투쟁해서 복귀했으면 그만할 때도 됐는데 하는 생각에 많이 울었죠. 그래도 한편으로는 설마 하는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는데 9월말까지 연기하다가 역시 하더라고요. 상반기에는 조금 힘들었어요. 그런데 마음의 준비를 해서인지 막상 해고통지를 받아도 조합원들이 또 하냐?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위로금

액이 올라가서 혼란스러운 것도 없지 않았죠. 지금은 투쟁하는 것이 맞다고 보고요.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늙었다고 노동조합 지켜내고 일자리를 지켜내는 투쟁을 접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죠.”


지금 투쟁의 쟁점은 무엇이고, 교섭은 어떠한지요?


“1차, 3차 해고자 26명의 파주공장으로 배치전환입니다. 우리는 입사할 때 시그네틱스 정규직으로 입사를 한 것이기 때문에 사업주는 고용유지를 위한 해고회피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니 광명사업부 폐업을 하더라도 시그네틱스 파주공장에 일자리를 만들라는 것이죠."


마지막 교섭이 2016년 9월 27일 있었지만 그때이후로 사차의 입장변화가 없기 때문에 교섭도진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투쟁하시는 분들 모임은 어떻게 하고 계시고 앞으로 어떤 투쟁계획이 있으신지요?


“1차 해고자는 2개월에 한 번씩 모여요. 17년째 하고있고요. 1차 해고복직투쟁은 죽는 것 빼고는 다했어요. 단식, 고공농성, 교섭위원 5명 전원구속, 저도 수배 8개월, 아이들 조합원들에게 떼 놓고 영등포 구치소 3개월 갔다 왔거든요. 강도 높게 안 해본 투쟁이 없었어요. 그 때는 그렇게 치열하게 할 수 밖에 없었죠. 2차 해고복직투쟁의 기조는 1차 때 해고자를 밖에 두고 들어가니 너무 마음 아프더라. 그래서 전원이 현장에 복직하는 것을 기조로 하고 투쟁수위도 전원이 동의하는 방법으로 했고, 실제 전원이 복직을 하죠.”


한편 이번 3차 해고자 투쟁은 장기적으로 보고 유연하게 가기로 했다고 한다. 또한, 조합원들이 늙었고 소수이기는 하나 세 번의 해고를 단행한 무노조 경영이념을 갖는 영풍자본의 비도덕적인 행태를 여론화시키고 국민의 관심을 모아서 영풍 불매운동 등으로 이미지 타격하는 것과 실제로 사업주가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 부분을 알려내는 것을 이번 투쟁에서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한다.


한 축으로는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하고 있죠. 영풍자본의 24개 계열사 중 노조는 저희 밖에 없으니 얼마나 눈의 가시이겠습니까? 비정규직 나쁜 일자리를 확대하고 있고, 파주공장도 모든 라인이 비정규직이죠. 개돼지처럼 필요할 때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리겠다는 무책임한 자본에게 저항하고 투쟁하다보면 반드시 관철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비정규직 반대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축은 정리해고 반대투쟁입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본이 절차를 밟아서 끊임없이 정리해고 했다가 법정에서 해고무효소송에서 패소하면 말고 끈질기게 정리해고하고 탄압하는 것이죠. 악랄한 영풍그룹의 경영이념에 대해 사회적으로 문제제기해야 하는 것이죠. 이런 게 의미 있는 투쟁이라고 생각하니까 많이 힘들지 않고 왔던 것 같아요.”


끊임없는 탄압에서도 16년 넘게 지속적으로 투쟁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얻으시는지요?


“영풍자본이 투쟁하게 하는 것 같아요. 같은 사람인데 우리는 지배를 당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인정을 안 해주잖아요. 세상이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어지잖아요. 광화문의 촛불도 단순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민중들이 먹고살기 힘드니까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니었나 생각해요. 노동조합 활동하면서도 고민이 있었던 것이 우리 아이들 어떻게 키울 것인가도 있었죠. 개인적으로 아무리 일 열심히 해도 살아가기 힘든 사회인데 상위 1%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열사람이 한걸음 하는 것이 세상을 변화하는 것인데 그렇게 아이들을 키워야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런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살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분회장님의 경우 16년 동안 복직투쟁을 하고 계신데 개인적인 생활은 어떠신지요?


“어떤 분은 여성이니 더 힘들지 않았냐고 하시는데 제 경우는 여성이라 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결혼해서 아이들이 4살, 7살 때라 아직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투쟁하려니 힘들 긴 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남편이 벌고, 저도 가끔 아르바이트도 하고, 조합비나 금속노조 지원금 등으로 적게 쓰면서 활동했죠. 지금은 두 아들이 스무 살이 넘었어요.”


남편분의 반대와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노동조합의 ‘노’자도 모르는 사람인데 요즘엔 광화문에 나오더라고요. 남편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결혼할 때는 이해해준다고 했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 알았냐고 얘기해요. 십 몇 년을 할줄 몰랐다고. 고비 때마다 힘들면 집을 나갔어요. 첫번째가 수배 때 저보고 자수하고 들어가라고 하더라고요. 두 번째는 구치소 갔다 오면 그만할 줄 알았는데 계속 활동하니까 또 나가더라고요. 지금은 제가 대표니까 몸이 힘들어도 나가는 것 보면 가야되는가보구나 하는 거죠. 힘들어도 내가 해야 하는 일 고 이것이 내 직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죠. 활동을 할 때 난 행복하다고, 이것을 안 하고 다른 일을 하면 난 행복하지 않을 것 같으니 날 이해해 주든지 아니면 각자의 길을 가자고 했죠. 조금 바뀌긴 했지만 아직도 이해와 각자의 길의 중간에 서 있어요.”


조합원들과 촛불에 나오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투쟁해서 우리가 현장에 복직하는 것도 좋은데 광화문 촛불을 보면서 오늘 문득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가까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쫓아다녔던 집회가 17년째인데 늘외쳤던 구호가 현실화되고 있는 거예요.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외쳤던 구호를 유치원생부터 할아버지까지 함께 외치고 있는 이 모습에 뿌듯함이 있는 거예요.


분회장님은 그러면 바뀔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동안 잘못 됐던 것을 하나 둘 바로 잡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다음 대선에 누가 당선되느냐로 귀결되지 않고 국민들이 지속적으로 관심 갖고요구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힘들 때면 스스에게 묻죠. 죽을 만큼 힘든가! 그렇지 않다면 가보자! 조합원들이 힘들다고 할때면 말해요. 죽을 만큼 힘드냐? 그렇지 않다면 할수 있다고. 현재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지 않겠냐고!”


노동조합을 없애려는 영풍 자본과 첨예하게 맞서 한 길을 걷고 계신 윤민례 분회장님의 바램처럼타오르고 있는 촛불도 시그네틱스분회의 해고복직투쟁도 성공하는 그 날이 올 수 있게 사회적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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