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목숨 걸고 일하는 청소노동자의 하루 / 2018.10

목숨 걸고 일하는 청소노동자의 하루

- 마포구 청소위탁업체 노동자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사람들은 더 사용할 수 없어지거나, 가치가 없어진 물건을 쓰레기라 칭하고 버린다.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발생시키는 폐기물을 '생활폐기물'이라고 하는데, 환경부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5년 기준 하루 평균 51,247톤, 1인당 0.97kg 정도다.

하지만 우리는 이 쓰레기들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치워지는지 잘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 거리 환경미화원들은 어둠이 내린 밤에만 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의 유령'이라 불리기도 한다.

지난 9월 14일 오전 9시 마포구청 앞에서 피케팅 중인 그들을 만났다. 마포구 청소 위탁업체 소속 청소노동자들인 이들은 민간위탁 폐지와 직고용 전환,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인터뷰는 배성훈 위원장, 신용진 조합원, 서복석 조합원, 김성민(가명) 조합원 총 4명이 함께 했다.

이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한 건 작년 7월이다. 무엇보다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배성훈 "주 6일 야간근무를 합니다. 지금보다 당시엔 10명가량 적은 인원으로 일을 했고, 작업량도 훨씬 많았습니다. 관리직 빼고 22~23명 정도가 근무했어요. 아무리 짧게 끝나도 평일 10시간 근무는 기본이었어요. 저희가 토요일 휴무인데 쉬고 출근하면 쓰레기가 쌓여있어서 12~13시간 일을 해야 했죠. 게다가 관리자들은 사람 취급도 안 해주고, 막말을 서슴지 않았죠. 하다못해 내 연차도 자유롭게 못썼어요.

그래서 노동조합을 결성했는데 사측 탄압이 거셌습니다. 신입 직원 중 수습 하던 분들은 계약해지 당했고, 퇴사도 당했어요. 대부분 노동조합 가입을 하려는 분들이었죠. 노동조합 생기고 나서 회사는 신규직원을 10명가량 채용했어요. 상대적으로 저희 조합을 축소시키기 위해서라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 소속 조합원이 8명이에요. 대표노조는 기업노조가 됐죠."


이들의 일과는 밤에 시작된다.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을 하는데, 일요일 출근은 오후 4시 30분~5시에 하여 다음날 오전 6시~7시에 퇴근, 화~금요일은 저녁7시까지 출근해 다음날 오전 5시~6시에 퇴근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후에도 한동안 유지되다 얼마 전부터 일요일 저녁 7시에 출근해 오전 6~7시에 퇴근, 다른 요일에는 밤 9시에 출근을 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한다.

쓰레기양도 어마어마하다. 뉴스타파 보도 영상(18년 1월25일)에 따르면, 마포구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의 경우 혼자서 하루 3톤이 넘는 폐기물을 처리하고 1805세대를 돌아야 한다. 5분에 쌀 한가마니(80kg) 무게에 이르는 폐기물을 쉼 없이 들어 올려야 겨우 일을 마친다.

휴일은 일주일에 토요일 단 하루다. 토요일 오전에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 1주일 치 피로를 푸는 잠을 취하고 나면 출근해야 하는 일요일 밤이 금세 돌아온다. 만약 토요일에 일이 있다 치면 그마저도 날린다. 사실상 이들에게 온전히 쉬는 날은 없다.

연속 야간근무를 해도 되는 걸까? 야간노동은 노동자 건강에 절대 좋지 않다. 가장 흔하게 수면장애, 우울과 불안, 소화기계 질병을 일으키고, 오랜 기간 야간 노동에 종사할 경우 뇌심혈관 질환과 암 위험을 높일 뿐 아니라, 수명을 단축시킨다.

그럼에도 이들은 6일 연속 야간근무를 한다. 서복석 조합원은 벌써 11년째다.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연속 야간근무 개수, 야간근무와 다음 야간근무 사이의 간격, 1주일 및 1개월에 가능한 야간근무 일수 등 세부적 규제가 없다. 단지 임금가산과 보상휴가만 명시할 뿐이다.

김성민 "불면증은 당연해요. 생체리듬이 바뀌니까요. 정말 힘든 건 생명의 위협을 매일 느낀다는거예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을 하는데 말이죠."

서복석 "야간에는 시력이 저하돼요. 빛에 약해지죠.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오래 못 쳐다봐요. 별것도 아닌 거에 신경도 예민해져요. 잠도 많이 못 자죠. 자더라도 깊이 못자요. 사실 야간 일을 하지 말아야죠."


하지만 마포구청은 문제를 제기한 노동조합에 주민들이 냄새와 청결 문제로 낮에 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밤에 하는게 낫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야간노동으로 겪는 문제는 건강 문제만이 아니다. 사회적 관계까지 단절된다.

배성훈 "가족 모임이요? 상상도 못하죠."

서복석 "친구들하고 멀어져요. 모임에 가서 술 한잔해도 일찍 뻗어요. 2차 갈 생각도 못하죠. 모임에 가서 심지어 졸아요."


아픈 몸과 사회적 관계 단절은 정신 건강까지 위협한다. 일을 하며 받는 스트레스는 이미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김성민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같은 경우는 민원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요. 동일한 곳에서 민원이 들어오면 사유서를 써야 해요. 누적되면 징계도 가능하죠. 회사에서 노동자가 마음에 안 들면 해고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해요."

노동자로서 자존감이 날아가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휴게시설이 근무지마다 있지 않아 지하철 화장실이나 빌라 주차장 뒤편에서 눈치 보며 갈아입는다. 어둡기 때문에 감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회사 옥탑에 탈의실이 가건물로 하나 있지만, 그곳에 가는 것은 거리가 멀어 불가능하다. 탈의실만 아니라 휴게실, 샤워실 등 필요한 공간이 없는 문제도 심각하다.

배성훈 "저희는 밥도 못 먹어요. 미화원 근무복을 입고 쓰레기를 수거하다보면 오물이 많이 묻어요. 냄새가 나서 식당을 못 가죠. 그래서 정말 배고픈 사람만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사 먹는 정도예요. 그러다가 저희가 문제 제기를 계속하니까 이제야 취업규칙에 있는 1시간 휴게시간을 보내게 됐어요."

이들의 담당지역은 마포구인 상암동, 성산동, 합정동, 상수동, 창전동, 서강동 6곳이다. 유동인구도 많고 상업지구가 몰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배성훈 "상암동은 다 빌딩이라 무거운 게 많이 나와요. 100L 쓰레기봉투에 150L 양의 쓰레기를 담아 버려요. 그리고 농수산물 시장도 어려운 곳 중 하나예요. 거긴 쓰레기 압축기를 쓰거든요. 젖은 쓰레기를 100L 봉투에 담아 버리는데, 80~100kg 정도는 나갈 거예요. 둘이서 낑낑대며 겨우 들죠. 시장에 가면 그런 야채 쓰레기가 엄청 쌓여있어요. 제가 올해 1월에 거기서 수거작업 하다 청소차 회전판에 손이 껴서 부러졌어요."

김성민 "쓰레받기나 빗자루 사용은 엄두도 못내요. 일단 큰 마대자루를 땅바닥에 놓고 손으로 막 쓸어 담아요. 봉투에 잘 담겨 있으면 좋은데, 편의점 봉다리 같은데 넣고 안 묶어 두는 게 많아요."



마구 섞여 있는 쓰레기, 묶여있지 않은 봉투, 날카로운 것 등 위험 물질이 섞여 있지만 알 수 없는 상황 등이 청소 노동자들의 안전을 항상 위협한다. 무게 제한 없이 담긴 무거운 쓰레기 뭉치를 청소차량에 직접 들어 던지고, 받는 과정에서 근골격계 질환, 부상, 추락의 위험도 높다.

청소 차량 적재함에 쓰레기를 담고 발로 눌러 담으면 어느새 산처럼 높이 쌓이지만, 회사는 노동자들의 안전이 아니라 한 번 실어 나를 때 무조건 많이 담는 게 중요하기에 무시한다. 전기선이 낮게 위치한 주택가를 치울 땐 긴장하게 된다. 밤이라 잘보이지 않는 전깃줄이나 나뭇가지에 걸려 추락하거나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적재함에 올라타 있다가 전깃줄에 얼굴이 걸려 입이 찢어진 동료도 있다.

배성훈 "발판에 매달려 이동하다가 사망 사건이 많이 생겼죠. 마포구청에 불법 아니냐고 물었는데, 서로 책임을 미루더라고요. 결국 신문고에 올려서 떼게 했어요. 그런데 다른 업체는 발판을 다시 붙여서 매달려 일하더라고요. 저희는 걸어 다녀요. 조금 거리가 있으면 운전석 자리에 탑승해요. 걸어 다니는 게 훨씬 안전해요."

이처럼 사고의 위험도 높고 중량물 취급의 반복 작업을 해서 몸이 성한 곳이 없지만 산재처리는 꿈도 못 꾼다. 공상처리라도 해주면 다행인 현실이다. 산재 신청을 하겠다고 회사에 얘기했더니 인정 못 해준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위탁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해야 하는 마포구청도 별 다른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안전하게 일할 노동환경을 쟁취하기 위해 마포구와 업체를 상대로 민간위탁이 아닌 직고용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에 대한 조치를, 조합원 상대 부당노동행위 중단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하지만 마포구청은 올해 노동조합과 면담을 진행하고 나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고, 회사는 조합원들에게 징계처분을 몰아붙이고 있다. 그럼에도 결코 노동조합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눈을 반짝였다.

배성훈 "청소 노동자들에겐 안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진 항상 위험을 강요받았어요. 내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안해야 해요. 야간근무는 매우 위험합니다. 야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가 많아요. 그리고 민간위탁 형태는 업체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인원수를 줄이고, 안전에 투자를 하지 않아요. 전문 경영인이 보다 나은 서비스와 질을 제공하기 위한다는 목적에도 맞지 않죠. 사실 소수 몇 명을 먹여 살리는 게 민간위탁입니다. 다수의 노동자들을 죽여가면서요."

김성민 "저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와도 일해요. 만약 구청 소속이었다면 험한 상황에서 최소한 한 시간이라도 작업중지 시켰을 거예요. 저는 저희가 하는 이 일이 공공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산업안전보건법이 모든 노동자에게 제대로 적용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청소노동자들이 어떤 건강 문제에 처해있는지도 제대로 연구되고, 조사되면 좋겠습니다."

신용진 "우리가 다 같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하면 조금씩 변화할거라 생각해요. 우리가 비록 소수노조지만 회사도 분명 우리 눈치를 보거든요. 함께 뭉쳐서 바꿔내는 게 우리 힘의 원천이기도 해요. 많은 분들이 함께하면 좋겠어요."

서복석 "전국의 청소노동자분들 현실적으로 일을 그만두는 게 어렵겠지만, 그래도 힘들다면 과감히 건강을 꼭 먼저 챙기시라는 얘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

[현장의 목소리] 지난 38년의 세월을 뒤엎다 / 2018.09

지난 38년의 세월을 뒤엎다

-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대구카톨릭대의료원분회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이번 현장의 목소리는 대구가톨릭대학병원 노동조합을 찾아갔다. 대구가톨릭대학병원 노동자들은 선정적인 의상을 입어야 하는 강제 장기자랑, 관리자 이삿짐 나르기, 공원 조성 기부금 강요 등 부당한 갑질은 물론 병원 이익률과 반대로 가는 임금 인상, 임산부 강제 야간 노동, 장시간 과로 노동 등 부당한 업무환경을 바꾸기 위해 파업 투쟁에 나선 상황이었다. 지난 38년의 세월을 뒤엎기 위해 투쟁하는 조합원과 현지현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조직국장 동지를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8월 16일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진행하였다.

억눌린 분노를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11년차 간호사, 7년차 간호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보 조직국장 현지현입니다.”

현지현 지금 노동조합은 1,300명이 가입 대상자인데 조합원이 900여 명 정도 가입해있어요. 간호사, 의료 기사, 방사선사 등 모든 부서에서 일하는 분들이 함께하고 있죠.

11년차 간호사 사실 처음 병원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고 했을 때는 망설였는데 우리가 몰랐던 병원 실상도 알게 되고 하면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다 같이 노동조합에 가입했어요.

7년차 간호사 저도 비슷한데요. 널스케입이라고 전국에 간호사들이 이용하는 홈페이지가 있는데, 거기에서 저희 병원이 이슈가 됐어요. 그런데 그 이슈가 된 이야기들이 과장이 아니라 모두 사실이었다는 거에 분노해서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되었어요.

부당한 업무를 강제 당하며 일해왔다

7년차 간호사 병원이 인증평가를 받기 위해 준비할 때마다 사직하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다른 병원도 상황이 비슷한데 간호사 업무랑 관련 없는 일을 너무 많이 시키거든요. 가령 걸레로 병원 휠체어를 닦으라는 거부터 시작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을 다 해요. 본격적인 준비만 두 달 정도 하는데 이때는 아침 데이 출근하면 밤 10시에 퇴근해요. 문제는 평상시에도 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예요. 말이 8시간 근무지 환자 보는 일이 교대 시간을 딱딱 맞춰서 끝내기가 어렵잖아요. 그런데도 가끔 제시간에 딱 맞춰서 정시 퇴근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눈치를 많이줘요. 어떤 분들은 그렇게 일찍 갈 거면 여기로 퇴근하지 말고 구석 엘리베이터 타고 퇴근하라고 하더라고요. 밤새워서 나이트 근무를 해도 다음날 데이 근무자들이 티 타임 할 때까지 남겨두고 집에 차 마시고 가라고 하기도 해요. 지금껏 아무리 힘들게 일했어도 그날 딱 하루 일찍 퇴근하면 그 병동은 퇴근을 빨리 한다더라 소문이 나요. 병원 자체가 간호사들이 집에 늦게 가야 일 잘하고 열심히 한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니까 다들 이렇게 살았어요.

현지현 대구가톨릭대학병원이 환자들이 직접 간호사, 의사 의료 서비스나 친절도 같은 걸 평가하면 전국 상위권에 들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거든요. 그 이야기를 뒤집어 보면 그만큼 일하는 사람들이 높은 강도로 일하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동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11년차 간호사 노동조합이 있기 전에는 간호사들이 임신 마지막 달까지 나이트 근무를 하는 게 당연했어요. 저는 이 병원이 처음 다니는 병원이고 이직을 했던 적이 없어서 다른 병원에서도 다들 그러는 줄 알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다른 병원에서 일하는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니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임신한 노동자에게 동의를 구해야한다는 거예요. 우리 병원은 지금까지 무조건 강제였거든요. 이 문제는 너무 심각해서 저희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이것부터 바로 바꿨어요. 그리고 전에 제가 몸이 아파서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병가는커녕 제 휴가랑 오프 이용해서 치료 받았어요.

7년차 간호사 대구에 대학병원이 4개가 있는데요. 우리 병원이 병상도 제일 많고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는데 급여는 정말 작았어요. 그런데도 대부분 종교 재단이 운영하는 병원인데 다른 민간 병원보다 양심적으로 운영하지 않을까 기대를 걸고 버티면서 일해왔는데 달라지는 건 없었어요.

현지현 아무래도 노동조합 처음 만들 때 조합원들에게 갑질 중단해달라는 요구가 제일 많았어요. 관리자들의 부당한 인사나, 간호사들 선정적인 장기자랑 시키고, 관리자가 이사하면 이삿짐 날라줘야 하고, 눈 오면 병원 눈 쓸게 하고 그런 것들이 심각했더라고요.

11년차 간호사 예전에 병원에서 공원을 만든다고 전 직원들이 기부하도록 강요한 적이 있었어요. 제일 작은 구좌가 5만 원이었는데 최고 60만 원까지 할 수 있어서 다들 어쩔 수 없이 참여했어요. 그리고 끝전 기부하자고 해서 월급에서 끝전을 강제로 기부했거든요. 저는 지금까지 병원에 돈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고 기부했었는데 이것도 어이가 없어요. 또, 병원이 체계 자체가 없어요. 우리는 지금까지 임금명세서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도 모르거든요. 같은 동기인데 월급이 다른 경우도 있어서 총무과 물어보면 너희가 재수가 없는 거라고 말하고 끝이었어요. 여기가 38년 된 병원인데 기본적인 시스템 자체가 없다는 게 정말 말도 안 되죠.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시스템이 없었다

현지현 여기 병원은 직장 갑질 문제만이 아니라 행정적으로도 문제가 많았더라고요. 지금까지 출퇴근을 주 5일 40시간으로 운영한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하루는 8시간 일하고 어떤 날은 6~7시간 일해서 남는 시간을 토요일에 시키는 방식이었어요. 이렇게 해서 토요일에 휴일, 연장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기본급으로만 일은 시킨 거예요.

11년차 간호사 아침에 출근했는데 만약 환자가 줄었잖아요. 그러면 병원에 다 왔는데 집에 가라고 그래요. 반대로 휴가나 오프여서 쉬고 있는데 환자가 많다고 출근하라 그래요. 해외여행이라도 가면 왜 네가 마음대로 해외에 나갔냐고 뭐라고 하고요. 최근엔 조합원한 분이 파업 중간에 휴가를 써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부서장이 환자 버리고 병원 나갈 땐언제고 휴가 가냐고 비난을 했다는 거예요. 외래팀장인 수녀님들은 노동조합에서 파업하면서 소식지를 냈는데 거기에 수녀님이 아니고 수녀라고 했다고 역정을 내더라고요. 여기는 기본적으로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최고 VVIP 에요. 만약에 본인이 일하는 병동에 입원이라도 했다 하면 기본적인 치료는 물론이고 물 떠다 드리고 심부름하고 수발들어야 해요.

대화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현지현 작년 12월 27일에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금까지 7개월 정도 교섭을 진행했는데요. 4월까지는 병원 책임자인 의료원장이 교섭에 나오지 않겠다고 해서, 책임자가 나오라는 교섭에 집중했어요. 그러다 의료원장 나오고 파업에 돌입하고 나서 4차례 정도 교섭을 했고 지금까지 대화를 하는 상황이에요.

노동조합은 이번이 첫 단협을 체결하는 거다보니 핵심 요구안이라고 해서 10개를 논의하고 있는데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임금 문제가 안 풀려서 다른 사항들도 진전을 못 하고 있어요. 병원은 자신들의 제시한 임금 문제를 노동조합이 받지 않으면 이후 대화도 없다고 하고요.

끝까지 힘내서 투쟁해보자 다짐하고 있다

11년차 간호사 사실 다른 거보다 환자, 보호자들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들 얼마나 힘들었길래 이렇게까지 나와서 투쟁을 하냐고 많이 응원해주더라고요. 그게 제일 힘이 돼요. 파업 투쟁하면서는 사실 처음엔 3일이나 7일이면 병원이 교섭하겠지,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겠지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고 싸우면 싸울수록 병원의 실체를 알게 되니까 그래도 내가 11년을 몸담았던 병원인데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 그렇네요. 마음 한편으로는 걱정이 많이 되는데 그래도 지금 포기하는 건 말도 안 되니까 힘내서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이 들어요.

7년차 간호사 투쟁하면서 울컥했던 적이 많았어요. 우리가 누렸어야 할 기본적인 권리 조차 누리지 못했구나. 지금까지 재단 좋을 일만 했구나 그런 걸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노동조합이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11년차 간호사 저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학교 졸업하고 여기가 첫 직장이고 다른 곳에 이직했던 적이 없어서, 우리 병원이 노동조합이 없는 곳이니 할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말았거든요. 가까운 지역에서 영남대나 경북대병원에서 파업한다고 해도 그저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직장 생활 하면서 우리끼리 툴툴거리기만 했지 이런 목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못했거든요. 나 혼자 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7년차 간호사 저도 지금까지 부당한 상황을 보면 투덜거리고 말았거든요. 만일 돌파구가 있다면 퇴사다 이렇게 생각했었고요. 다른 간호사들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이제는 달라진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하고 싶다

11년차 간호사 조합원들 함께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서로 의지하면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앞으로 며칠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버텼으면 좋겠어요.

7년차 간호사 이때까지 힘들지만 버텨서 왔으니까 열심히 투쟁해서 꼭 같이 승리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지난 9월 2일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대구가톨릭대학교의료원 분회가 병원과 잠정합의하였다. 파업투쟁 39일 동안 모든 조합원들이 한 마음으로 싸웠기에 이뤄낸 소중한결과이다. 노동조합은 이번 파업을 계기로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 가장 큰 성과이고, 앞으로도 환자와 노동자 모두가 안전한 병원을 만들기 위한 현장투쟁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결의를 밝혔다.

* 기본 합의 사항 *

▲ 기본급 정률 5.5%+정액 6만원 인상

▲ 갑질 전수조사, 부서장 상향평가 인사반영

▲ 주5일제 도입, 시차근무 폐지

▲ 간호사 1인당 환자수 10~12명 고정

▲ 배치전환 원칙 마련

▲ 육아휴직급여 지급, 임신기간/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 외주용역 금지 및 불법파견 정규직화

[현장의 목소리] 2018 여름건강현장활동 대학생, 모두의 건강을 고민하다 / 2018.08

2018 여름건강현장활동 대학생, 모두의 건강을 고민하다


활자, 그 너머에서 배우다 

윤상일 보건의료학생 매듭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 입 속의 검은 잎(기형도), 문학과지성사, 1989


스스로를 '노동'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 생각했다. 고등학생은 물론, 대학생이 되었을 때도 '노동', '노동자'라는 단어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단어가 주는 불온하고 강렬한 인상 때문이었을까.

애써 '일', '일하는 사람'이라고 바꿔 부르곤 했다. 의대에 진학하고 나서는 두꺼운 교과서와 수많은 강의록에 허우적대며 사회와 담을 쌓고 지내면서 노동과 더 멀어졌다.

그러다 노동자 건강권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어느 한 책 덕분이었다. 그 책의 저자는 우리네 사회는 질병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묻고 있으며, 때로는 일터 자체가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반올림, 원진레이온 등 사례를 설명하며 '어떤 학자는 노동자들의 편에 서 있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의 말에 설득이 되어, 이후 학내 동아리에서 같이 책과 뉴스 기사를 읽으며 노동자 건강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그러던 중 보건의료학생 매듭에서 여름방학에 건강현장활동¹⁾ (이하건활)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2주밖에 없는 방학 중에 6일을 바쳐야 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망설였지만, 포스터에 적힌 '학교와 병원에만 있으면 알 수 없습니다'라는 글귀에 설득되어 길게 고민하지 않고 신청했다.

건활은 글이 차마 담아내지 못한 현장의 모습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현장은 글을 통해 접한 것보다더 열악했다. 지난 6월 시안화수소 중독으로 인한 사망 사건이 발생한 인천남동공단에서 노동자 119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나눠주면서 눈에 들어온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공단 내부를 자세히 둘러볼수는 없어, 모든 장면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많은 담배꽁초와 숨 막히듯 더운 공기는 현장의 상황을 충분히 담아내는 듯했다. 특히 시안화나트륨 라벨이 그대로 붙어있는 쓰레기통은 두 눈으로 보아도 믿기지 않았다. 불과 1달 전 이곳에서 사람이 죽었는데도 말이다. 쓰레기통 하나만으로도 인천남동공단이 위험 물질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고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현장 당사자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책이든 기사든 필자가 현장에 오기 전 접한 글들은 현장 당사자의 목소리를 가공한 결과물이었다. 웹툰 『송곳』과 인천공항 노동자들에 대한 사전 세미나를 통해 노동조합과 그들의 현실을 접할 수 있었지만, 현장에 직접 가서 들은 노동조합 조합원들의 목소리는 글보다 더 열악하고 복잡다단했다. 수북이 쌓인 정체를 모르는 먼지들, 노동시간 52시간을 어떻게든 끼워 맞추겠다며 공항 공사에게 억지로 강요당한 12조 8교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 어떻게든 임금을 최소한으로 주려고 하는 공항 공사의 지능적인 꼼수.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불건강에 기여하고 있었다.

현장의 이 모든 열악한 환경이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서 생기는 것일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장에 찾아가기 전 사전 세미나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모두가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었다. 서울아산병원의 고(故) 박선욱 간호사 자살 사고는 태움이라는 기이한 일터 문화와 간호사 인력 부족이, ST유니타스 웹디자이너자살 사고는 과로를 조장하는 포괄근로계약이 문제였다. 인천남동공단 시안화수소 중독 사망 사고는 하청업체에 가해지는 낮은 단가의 압박, 부족한 위험 물질 관리 및 규제 제도와 원청 처벌의 부재가 문제였다.


한번은 휴식시간에 친구들과 모여 노동자가 건강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와 그에 대한 대책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결론은 뻔했다. 생명보다 돈과 이익을 중요시하는 자본주의의 구조가 문제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뒤엎고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며 우리는 자조 섞인 말투로 이야기를 나눴다. 덤으로 '4차 산업혁명이 노동 구조를 바꾸면 노동자들이 더 건강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때 친구들과 나눴던 말들이 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구조를 바꾸자는 말은 한편으로 공허한 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구조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건의료학생의 입장에서 볼 때 현실적인 대안은 막막하다. 2년여 전 파견직 노동자 6명이 메탄올 중독으로 인해 실명했을 때도, 노무사 선생님들은 원청을 처벌해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외쳤다. 

피해자 중 한 명은 UN 인권이사회에 가서 원청과 정부에 책임을 요구한다는 발언을 했는데도, 지금까지 변한 것은 없다. 심지어 같은 공단에서 시안화수소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분명해 보이는 대안마저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학생 입장에서 제안할 수 있는 대안이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이들의 외침이 전달되지 않았을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필자는 보건의료인의 무관심이 큰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학교 교육과정에 노동문제에 대해 경제 · 사회 · 윤리적 측면의 광범위한 교육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심지어 독일은 초등학교에서 모의 노사교섭을 진행한다고 한다.²⁾ 반면 우리나라는 노동권에 대한 교육은 거의 하지 않을뿐더러, 노동권 교육시간을 제외하면 노동이라는 표현을 수업시간에 듣기도 힘들다. 대학교에 오면 사정이 달라질까. 그렇지 않다. 대개 보건의료학생들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학교가 시키는 것들을 꼬박꼬박 잘 지켜가며 대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이다. 애초에 이런 학생들이 노동권에 관심이 별로 없고, 혹시나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사회과학동아리에서 알아서 찾아가며 공부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올해 초, 내과 강의시간에 대사성 산증이 다뤄진 적이 있다. 그 시간에는 대사성 산증의 원인, 기전, 표준 치료 등에 대해 배웠다. 교수님은 "메탄올에 의해 대사성 산증이 생길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으니 몰라도 된다"며 지나가듯 말씀하셨다. 병원 안에서는 맞는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병원 밖, 피해자분들께는 틀린 말이다. 2년 전 메탄올 중독 실명 사고, 1달 전 시안화수소 중독 사고 피해자분들 모두 대사성 산증으로 아파해야만 했다.

대사성 산증 강의 삽화에서 알 수 있듯, 의학 교육은 (적어도 필자의 학교에서는) 지나치게 과학적 측면에서만 이뤄진다. 의학을 사회적 맥락에서 바라보려는 사회 의학도 엄연히 의학의 하나의 패러다임으로서 존재하지만, 과학적 의학만을 진정한 의학이라 생각하며 교육하는 의과대학의 입장에서 사회 의학은 잊혀 버린 옛 이론일 뿐이다. 필자는 의학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의학이 지금까지 발전한 데에는 과학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과학적 의학만이 의학의 전부가 아니며 의과대학에서 사회 의학도 과학적 의학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요즘 보건의료학생에게 "의학은 사회과학이며, 정치는 대규모의 의학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병리학의 아버지, 루돌프 피르호(Rudolf LudwigKarl Virchow, 1821-1902)가 했다고 말해주면 믿을까? 1848년 초, 상부 실레지아 지역의 직조공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유행했다. 이에 당시 유능한 의사였던 루돌프 피르호는 현장으로 가서 머물면서 전염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조사했다. 

그가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전염병의 원인으로 빈곤을 지목하며, 노동을 해도 노동자의 몫에 돌아가는 돈이 적은 현실을 비판하고, 무능한 정부를 비난하는 대목이 나온다. 훗날 세균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세균설이 입증되면서 당시의 전염병이 Rickettsia prowazekii라는 균에 의한 발진티푸스임이 밝혀졌지만, 루돌프 피르호의 주장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보건의료학생들에게 주는 울림은 크다. 결국은 교육이다. 교육이 바뀌고 보건의료학생들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 진부한 대안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필자는 보건의료인이 한 사람이라도 더 노동자 건강권에 관심을 두고 아픈 노동자의 곁에 선다면, 그들의 목소리는 더욱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건의료인이 과학 교과서 너머, 활자 너머의 현장과 연대하는 사회가 오길 꿈꿔본다.

* 각주
1) 건강현장활동은 보건의료학생 매듭이 기획하는 활동으로, 건강할 권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 5박 6일 간 산업 재해, 의료민영화, 여성 건강권, 노동 건강권 등에 대해 세미나를 하고 현장을 찾아가는 활동이다. 올해 건강현장활동에서 노동, 인천남동공단 시안화수소 중독사망사고, 반올림, 인천공항 교대제다. 현장활동은 각각의 주제에 대해 먼저 글을 읽고 생각을 나눈 다음, 현장에 찾아가서 선전전이나 간담회를 진행했다.
2) 김소연, 『"한국 노동교육 전무…독일 초등학생은 단체교섭 배워"』 한겨레, 2012년 11월 18일



현장에 가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형섭 보건의료학생 매듭


불건강한 환경에 놓인 수많은 사람이 있고, 단순히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병원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적 원인이 존재한다. 책이나 뉴스를 통해 많이 접한 이야기이고, 이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지난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현장은 방문하지 않으면서 그에 관련한 뉴스만 들으면서, 학업 때문에 바쁘거나 해서 지칠 땐, 잠시 귀 기울이는 것을 멈추기도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자부심에 사로잡혀 살았던 것 같습니다. "나 이런 이슈들 알고 있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저희는 이번 건강현장활동에서 故 박선욱 간호사 공동대책위원회와 ST 유니타스 과로 자살 대책위원회, 반올림, 인천남동공단, 인천공항,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 분회 등과 연대하였고 먼저 아산병원에 찾아가 선전전을 진행하였습니다. 병원은 으리으리하였고 그에 맞게 수많은 환자가 붐볐습니다. 병원이 크니깐, 게다가 아산병원이니깐 환자들은 병원의 의료를 믿고 자신의 몸을 맡기지만 정작 의료진들이 인력 부족에 의해 그에 따른 "태움"에 의해 고통 받는 것은 전혀 몰랐습니다.

'리플렛을 나눠주면서 정말 이런 일이 있었어요?'라면서 매우 놀란 시민분도 있었고, 같이 아산병원을 욕하면서 공감해주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저만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를 공론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고, 그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호소하고 알리는 것 자체가 정말 힘들다는 것 역시 깨달았습니다. 책상에만 앉아있으니 알 턱이 없었고, 알기만하고 행동하지 않았던 내가 위선적이었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故 박선욱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것은 스트레스 조절을 못 한다거나 우울증이 있었다는 등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간호사의 수련기간도 부족하고 수련을 담당할 인력 역시 부족하게 된다면, 감정적 스트레스는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교육받는 사람과 교육하는 사람 모두 고통스럽게 됩니다. 게다가 아직은 본인의 일에 익숙지 않은 간호사가 현장에 투입되게 된다면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환자에게 불이익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이런 환경에서 일한다면 신규 간호사는 환자에게 해가 되는 존재로 스스로를 바라볼 수밖에 없고 의료인으로서 효능감은 바닥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는 결국 구조의 문제입니다.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고, 범인은 병원입니다. 추모의 의미로 보라색 리본을 육교에 묶으면서 보이는 병원이 과연 생명을 살리기만 하는 곳인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력 부족과 직장 내 괴롭힘, 과로의 구조에 갇혀 사는 의료인들을 포함한 병원 노동자들을 바라보며, 사실 한국의 모든 노동자가 이러한 현실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라면 독서나 영화감상과 같은 취미생활은 사치이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과 여유롭게 보낼 시간은 당연히 없고, 밤새워서 일하기도 하고 휴가 반납하기도 하면서 직장 내 상사의 괴롭힘도 다 버티면서 사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프레임에 갇혀 살진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 구조가 과연 누구한테 이득이 돼서 굳건히 존재하는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희는 반올림 농성 마침 문화제에 참여하였습니다. 삼성전자, 조정위원회와 반올림이 중재합의서에 서명을 하고 1023일의 긴 농성이 끝난 현장이었습니다. 저희를 비롯해 많은 연대 단위들이 같이 발언하고 반올림 분들과 같이 지난 농성했던 순간들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날에 함께하게 되었고, 저는 그날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이렇게 지난한 싸움을 해온 현장이 있었는데, 그리고 그러한 현장 역시 알고 있었는데, 왜 난 바쁘다는 이유로, 과제가 많단 이유로 같이 농성장 지킴이를 많이 하지 못하였고, 그들과 공감하지 못하였는가. 승리의 기쁨을 같이 나눌 자격이 있는가.

그러나 문화제에 다녀온 후 작업환경보고서 공개가 될 경우 기업의 영업비밀이 노출되어 이익이 침해할 수 있다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결정이 나와 아직 세상은 노동자의 편이 아니라 기업의 편이라는 생각이 너무 들었습니다. 언제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한다는 것, 생명 없는 이윤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세상이 알까요.

반올림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일하는 작업장에 대한 알 권리가 보장되지 않은 인천남동공단을 방문하여 선전전에 참여하였습니다. 인천남동공단에선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거나 마비가 되거나, 시안화수소 중독으로 노동자들이 죽어갔고 왜 자신이 아픈지 모른 채 자신이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공단 내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가면서 주변의 공장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내부에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진 못했지만, 얼핏 봐도 안전관리가 부실한 작업환경에 놓여 있었고, 대부분 하청업체에서 파견근로 하는 노동자들로 자신의 안전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작업환경 측정하는 기업조차도 관련 사업장들과 관련이 되어 있어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파견업체, 하청업체, 원청업체, 정부 그 무엇도 이들의 건강을 책임지지 않고 방기했습니다. 파견업체나 원청은 작업장 탓으로 돌리고, 하청업체는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노동자를 지켜줄 수 있는 안전 장비나 화학약품 등을 갖추지 않고, 정부는 이러한 위험을 미리 방지하지 못하였고 하청업체들이 경쟁력을 위해 노동자의 안전을 희생하게 하도록 만든 환경 역시 방치하였습니다. 결국 근본적으로 자본이 낳은 파견과 하청의 구조가 노동자들의 건강보다 이윤추구에 힘쓰도록 만든 것이죠.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선 사업장 자체의 잘못도 크지만, 그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저희는 인천공항에 방문하여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선전전에 동참하였습니다. 문재인대통령이 취임 후 공항에 찾아가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화하겠다며 선언했었기에 저는 잘 되겠거니 하고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으나 실상을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아직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진행 상황은 더디고, 직접고용이 아니라 자회사를 설립해 간접고용을 진행하며, 아직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의 차별은 심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몇몇 노동자들은 12조 8교대제와 같은 비인간적인 교대제에 처해있고, 대부분 4조 3교대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교대제는 없듯, 야간근무를 하여도 제대로 된 쉬는 시간을 보장받지 못한 채, 모두 겨우겨우 일하며 24시간 공항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번에 주 52시간 근무제로 전환되면서 기존의 교대제 근무를 하시는 분들의 일하는 시간은 단축하되 인력은 충원하지 않아 훨씬 더 고된 강도의 노동환경에 처할 위기입니다.

현장을 방문해보니 공항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시는 노동자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사실 공항에 가면 여행을 가는 느낌이 들어 싱숭생숭한 느낌이 많이 들었고, 그 안에서 일하시는 노동자분들은 생각해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장에 방문하고 왜 우리가 공항을 갈 때마다 깨끗한지, 수화물이 처리되는데 착오가 없는지, 승강기나 무빙워크를 이용할 때 고장이 없고 고장이 나도 빠르게 고쳐지는지, 보안 검색이나 출입국 심사 시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는지, 공항 내 위험 상황 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 공항과 비행기를 연결해 주는 통로가 덥거나 춥지 않고 탑승 시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는지, 이착륙 시 두려워하지 않고 안전한 비행이 되도록 활주로가 정리되어 있는지 등 우리가 지나쳤던 모든 노동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공항뿐만 아니라 모든 우리가 누리는 시설에서, 제품에서 지나쳐왔던 노동들이 있겠죠.

이런 수많은 노동자가 그러나 같은 직장에서 노동해도 비정규직이라고 차별당하고 교대제에 의해 불건강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 역시 잘 몰랐습니다. 알아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였고, 저의 일로 와 닿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 현장에 와 봐야 이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고 비로소 문제를 인식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들 역시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는 노동자로 비정규직이라는 값싼 노동력으로 사람이 치환되고, 노동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아 안전관리 역시 미흡해 수하물 관리하다가 벌레에 쏘여 하반신이 마비되거나, 분진에 의해 폐암이 생기고, 노동 강도도 높아 골병이 드는 등 건강권이 침해되고 있었습니다. 공사로서 타 기관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정작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비인간적인 교대제를 적용하는 등 노동자 착취에 모범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토록 다양한 현장을 방문하면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일 때문에 다치고 아팠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아프게 한 구조를 살펴보면 얼마나 자본이 치밀하게 일터에 들어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구조를 짜왔는지, 이런 불건강한 환경에 놓인 노동자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먼저 이러한 환경에서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는 병원의 규모나 병상수에 따라 필수 의료 인력을 정해두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합니다.

또한, 노동자들의 알 권리가 보장되도록 기업보다는 힘없는 노동자의 편에 서야 합니다. 산재 입증책임을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장이나 기업이 하도록 해야하며, 영업기밀이라며 공장이 작업환경을 숨기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건강권을 침해하는 사업장을 찾아 강하게 처벌해야 하고, 이를 보장할 수 없는 사업장들을 돕기 위해 금전적 지원을 해주거나, 하청업체끼리의 경쟁을 줄이기 위해 원청의 하청 후려치기를 막는 규제를 두고,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작업환경이나 안전 문제를 원청에도 직접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작업환경측정 역시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감시해야 하고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부족한 인력 역시 충원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노동자들은 결국 더 아파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모두 얼마나 자본주의가 사회에 요구하는 이윤 중심, 효율 중심의 사고에 갇혀왔는지 반
성하며,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선 어떤 가치를 우선 시 해야 하는지를 돌이켜 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건강한 삶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건강한 삶은 일하기 위한 삶이 아니라 일과 일 이외의 삶이 공존하는 삶입니다. 이를 위해선 노동자들은 일할 때도 자신이 어디서 무슨 약품이나 기계를 다루면서 어떤 일을 왜 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이 어느 시간에 어느정도 일을 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으며, 그에 합당한 것을 넘어 일 이외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만큼의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몸을 버리고 죽어라 일해야 겨우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일에 효능감을 느끼며, 건강권을 보장받고, 결정권과 통제권을 지닌 주체적인 노동자 말입니다. 이렇게 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가 변해야 모두가 건강하게 노동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자본가와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건강한 삶과 일터를 위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 다녀온 후 전 정말 안일하게 살아왔음에 반성하였고, 노동자들의 삶과 사회적 구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노동자가 건강한 그 날까지 얻은 깨달음을 잊지 않고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ST 유니타스 간담회를 다녀와서

이지연 보건의료학생 매듭

이번 2018 건강현장 활동에서는 주로 여성 건강권과 노동자의 건강권을 다루었고, 몇 개의 현장을 방문하여 간담회를 갖기도 하고 직접 현장에서 연대하기도 하였다. 이 중에서 ST 유니타스 간담회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소개해보고 싶다. ST유니타스에서 과로로 인해 자살한 웹 디자이너 故 장민순 씨는 회사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과로로, 일주일에 연장 근로했던 시간이 법으로 정해진 기준인 12시간이 넘는 주가 ST 유니타스에서 근무한 총 129주 중의 46주가 되었다. 이는 근로기준법을 심각하게 위반한 행위이다. 또한, 이와 같은 과도한 업무로 인해 회사에 입사하기 전 거의 완치되었던 우울증이 재발하게 되었다. 우울증 악화로 휴직하고 돌아온 고인에게 회사는 총 4명분의 일을 맡겼다. 그뿐만 아니라 업무 외 시간에 연락하거나, 수당도 주지않는 업무 참여 여부를 인사 고과 등에 반영하는 등, 직장에서의 갑질도 비일비재하였다.

이런 상황 뒤에는 특정 법령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 최대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월 69시간까지 연장 근로를 시킬 수 있는 탄력 근무제로 인해 노동자는 연장 근로와 야근을 매우 압축적으로 하게 되었다. 단적으로, 고인의 경우는 하루에 12시간 이상 근무한 비중이 18%가 되었다. 하지만 고인의 연봉 근로계약서에는 이미 주당 16시간이 연장근로수당으로 책정되어 있었다. 이것은 이미 이 자체로 연장근로 한도를 위반한 것뿐만 아니라, 노동자는 이러한 포괄 임금제로 인해 만성적으로 야근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근무환경에 못 이겨 자살을 한 직원에 대해 회사는 과로 자살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심지어 고인은 이미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우울증이 거의 완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이것을 개인의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치부했다. 이러한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하루 최장 노동시간을 법으로 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근무시간 이외의 연락을 지양하도록 해야 하고 과도한 업무를 방지하기 위해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 실적이 인격이라 하는 회사를 향한 IT노동자들의 싸움! / 2018.07

실적이 인격이라 하는 회사를 향한 IT노동자들의 싸움!

- 한국오라클노동조합 김철수 위원장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미국계 IT회사 한국오라클(ORACLE)은 미국의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회사이다. 데이터베이스 관리 솔루션, 클라우드 어플리케이션을 기업에 공급하는 기업으로 서버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은 들어보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외국계 IT업계에서도 많은 이들이 선망하기도 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한국오라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한국오라클노동조합은 지난 5월 16일부터 무기한 전면파업을 진행하며 일터를 바꾸기 위한 행동에 돌입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지난 6월 12일 한국오라클노동조합 김철수 위원장을 만났다. 이날도 조합원들은 파업 참여를 위해 용산 철도회관에 모여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 한국오라클노동조합 김철수 위원장 (출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017년 10월에 설립된 한국오라클노동조합의 역사는 짧지만, 노동자들이 겪은 부당한 대우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고 한다.

“사람들이 외국계 회사인 한국오라클을 보면 돈을 잘 벌고, 거의 놀면서 일한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안 만들어도 되는 거 아니냐고 묻기도 했죠. 하지만 실제 일하는 노동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한국오라클의 임금 체계는 성과급제다. 회사는 계속해서 기본급을 인상하지 않고, 직원들에게 성과를 내야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택했다. 결국 회사를 오래 다닐수록 소위 성과가 좋지 않은 직원은 오히려 임금이 삭감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성과급제가 노동자의 삶을 위태롭게 만든다.

“한국오라클은 매니저 중심의 회사입니다. 매니저와 친한 사람이 좋은 고객사를 받아가죠. 그런데 이런 식으로 성과를 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대다수는 그렇지 못하죠. 오히려 눈 밖에 나면 압박을 하며 내보내려고까지 합니다. 노조가 파악한 것으론 직원 90% 정도가 10년째 임금이 동결된 상황입니다. 신입직원이 연봉이 높아요. 오래 일한 직원들은 얼마나 자괴감이 들겠습니까.”

김철수 위원장은 한국오라클이 오로지 돈만 벌면 모든 게 다 된다는 식으로 운영되는 곳이라고 했다. 노동강도가 높기로도 유명한데, 노조가 파악한 것으론 주당 110시간 이상 근무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엔지니어의 경우 문제가 생기면 바로 출동해서 업무를 처리해야 해서, 주말에도 24시간대기다. 만약 규모가 큰 장애면 일주일 이상 밤새고, 집에조차 가지 못한다. 인력이 부족해 교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오히려 직원들에게 주당 근무시간을 80시간까지만 입력하게 해서 제대로 수당을 지급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회사는 80시간 이상의 노동시간은 대체휴가로 사용하라고 하지만 만성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이들에겐 꿈같은 소리다. IT업계에만 20년, 한국오라클 입사는 올해 9년 차인 김철수 위원장은 이런 문제들 때문에 노동조합을 선택했다.

“노동여건이 너무 열악합니다. 제가 위원장을 하게 된 가장 큰 결심은 옆에 있던 동료들이 하나둘씩 회사를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예요. 본인이 원해서 나가는 것 같지가 않았어요. 보통 이직하는 사람들은 갈 곳을 알아봐서 입사하고, 그 뒤에 사직하는 게 순서죠. 그런데 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알아본 결과 권고사직으로 포장해서 해고를 했던 겁니다. 이분들을 만나서 얘기 들어보니 울면서 얘기하더라고요.

오라클이 3~4년 전부터 클라우드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꿨습니다. 클라우드 사업을 확장하려면 비용에 문제가 생기니 직원들을 정리해야 한다고 판단한 거죠. 법무팀에 직원들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 오라고 하고, 사람들을 골라 권고사직, 사실상 해고죠.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아무 데도 얘기하지 않겠다는 조항에 사인하게 해서 어떤 문제도 밝히지 못하고 나갔죠. 한국오라클이 김앤장에 어마어마한 돈을 준다는 건 고객사들도 아는 얘기입니다.”

노동조합이 더욱 답답한 건 한국지사가 미국 본사 핑계를 대며 어떤 의무와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지사장과 매니저에게 모든 권한과 소통이 제한되어 있다. 한국지사는 노동조합에 ‘본사가 완강해 협상에 임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이러한 한국지사의 주장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본사는 심지어 한국오라클노동조합을 테러집단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철저하게 한국지사가 정보와 소통구조를 장악하고 있는 조건에서 노동조합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파업을 선택했다.

일을 멈추는 것, 그렇게 해야 자신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 기울이고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저희가 노동조합을 만든 이후 집행부, 대의원 분들 중 이전에 노동조합 만들려고 했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용기를 못 낸 거죠. IT업계는 이직이 심합니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지’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노동자’라는 인식도 희박해요. 소위 전문직이라고 생각하죠. 노동조합에서도 이런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교육도 하고, 홍보도 하니 점차 가입률도 높아지고 파업 참가율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도 찬성이 96%로 압도적이었죠. 하지만 여전히 한국지사장은 본인이 뭘 잘못 했냐, 자기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본사에도 상황을 계속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회사가 들으려고도 안 합니다.”

오라클은 한국지사뿐만이 아니라 해외 곳곳에 지사가 있다. 당연히 그곳에도 노동조합이 있다. 한국오라클노동조합의 소식을 들은 다른 나라의 노동조합 반응은 놀라움이었다고 한다. 물론 유럽지사 노동조합도 문제는 있지만, 한국 상황과는 다르다. 한국이 더 열악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투쟁을 멈출 순 없었다. 김철수 위원장은 무엇보다 조합원이 힘들더라도 지치지 않게, 즐겁게 투쟁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IT노동자들의 의식을 바꾸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 노동조합 활동이 아직 낯설죠. 우선 다 같이 모여 재미있게 하려는 방식으로 투쟁을 하려고 합니다. 파업에 참가하는 조합원들도 우리가 회사에 굽히고 들어갈 수 없다, 어려움이 있겠지만 계속 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특히 여러 프로그램 중 회사 한 바퀴 돌기가 반응이 제일 좋았습니다. 노동조합 가입한 사람이어도 가입을 아직 못한 사람이어도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파업에 참여한 사람들과 얼굴도 보고, 설득할 기회가 되기 때문에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서로 봐야지 얘기가 되고, 나는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어려움을 얘기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입니다.”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 조합원들에게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건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권리구나, 당당하게 회사에 요구할 수 있구나’라는 깨달음과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사측에 의해 억눌려왔던 권리를 향한 의식과 행동들이 뭉치니 깨어난 것이다. 

“오라클이란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느낌과 경험은 ‘자유롭다’ 였습니다. 출퇴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여분 시간에 쉬거나 개인 생활도 할 수 있었죠. 그런데 회사에 ‘실적이 인격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자유는 실적이 내야 보장되는 겁니다. 만약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노동자를 압박해대죠. 엄청 쪼는 거예요. 고객사 어디 갔다 왔냐, 레포트 가져와라, 시간당 레포트 내라고 하는 곳도 있습니다. 최근 노동조합이 파업하자 30분 단위로 레포트를 제출하라고 합니다. 사실상 내용은 누굴 만났고, 뭐하고 있고 이런 걸 적어서 내라는 거죠. 한국식으로 굴리는데, 더 심하게 굴리고 결국 해고하는 겁니다.”

급격한 기술의 발달과 빠르게 변화하는 IT업계에서 노동자들은 강도 높은 업무 능력을 요구받는다. 개발을 위한 장시간 노동과 몰아붙이기 식의 근무 스케쥴로 인해 다양한 건강상 문제를 겪는다. 한국오라클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퇴사한 사람들에게 들은 얘기인데 마감 때만 되면 영업 사원들을 가위에 눌려 일찍 깬다고 합니다. 제가 요즘 노동조합 활동하면서 오전 7시 정도에 회사에 나갈 때가 많아요. 그런데 그 시간에 오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일찍 출근했냐고 물으면 마감을 해야 하는데, 잠이 안 와서 그냥 출근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스트레스 때문에 잠도 못 자는 상황이에요. 그리고 고용불안에 시달리죠. 업무 성과와 모든 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윗사람에게 찍혔다는 ‘찍퇴’에 큰 불안이 있습니다. 매니저에게 무조건 굽신할 수밖에 없어요. 불만이 있어도 얘기 못 하죠. 이런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은 술이나 흡연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결국 정신질환에 시달립니다. 노동조합 만들고 나서 굉장히 자주 오는 상담 중 하나가 병원에 가서 정신 관련 상담을 받고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는데 회사가 병가 신청을 안 받아준다는 거예요. 회사가 병가 대상이 아니라고 해버리는 바람에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겁니다.

엔지니어분들은 잠도 못 잡니다. 우울증이 기본이에요. 덤프트럭이 지나가는데 문득 거기에 부딪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잠을 잘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이게 다 우울증 증상이고, 심각한 문제인 거죠.”

노동조합은 지금도 파업 중이다. 최근에는 거래처 기업의 고위임원 자녀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귀족 인턴’을 받아온 사실까지 밝혀졌다. 또 한국오라클 임원이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하고도 사건을 축소한 뒤 피해 여직원의 퇴직을 강요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여러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노동조합은 계속해서 상황을 알리고 국회, 정부, 외국까지 대상으로 투쟁의 방향으로 삼고 있다. 김철수 위원장은 한국오라클 노동자들을 대표해 IT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일 할 수 있기 위한 방향에 대해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했다.

“한국오라클에는 거의 100개 이상의 조직이 있습니다. 1명인 조직도 있어요. 당연히 서로 잘 몰랐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잘 뭉치지 못했습니다. 서로 이해관계도 다르고 모르니까요. 그런데 노동조합이 생기고 자유발언도 하고, 서로 어려운 점도 이야기하다 보니깐 단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각 부서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전체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힘이 생겼죠. 

IT업계가 노동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IT노동자들이 내가 월급을 받는 건 맡겨진 일을 하고 있기때문이고, 정해진 시간보다 더 일을 하는 건 회사의 문제라는 걸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회사에 인력도 요구하고, 일도 줄여달라고 해야 하는 게 맞는 거죠.”

[현장의 목소리] 간호사 침묵을 깨다 / 2018.06

간호사 침묵을 깨다

[현장의 목소리] 고 박선욱 간호사 공대위 박고은님 인터뷰

재현 (한노보연 상임활동가)


지난 215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에서 고 박선욱 간호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고 박선욱 간호사는 서울아산병원 신규간호사로 약 6개월간 일했다. 이 소식을 들은 유가족과 전·현직 간호사들은 고 박선욱 간호사가 서울아산병원의 높은 노동강도와 태움 문화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며 병원에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서울아산병원은 묵묵부답이다.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한 시민들 기억에서도 점점 잊히고 있다. 그래서 이번 <일터>는 현직 간호사로서 "나도 너였다"며 제2, 3의 박선욱을 막기 위해 싸우고 있는 박고은님을 지난 523일에 만났다.


박고은과 고 박선욱, 다르지 않았던 간호사의 삶 

"저는 2010년에 간호학과 졸업하고 간호사가 되었는데요. 직장을 구하자마자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다른 동기들과 다르게 일을 연속해서 못했어요. 그래서 제 친구들은 8~9년 차 경력이 있는데 저는 어느 병원을 가나 박선욱 간호사처럼 신규였죠.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번 일에 마음이 더 쓰이고 공감 됐어요. 저는 심지어 박선욱 간호사보다 더 오랜 시간 신규 생활을 했으니까요." 

박고은님은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태움과 각종 부조리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대학병원 정규직으로 입사를 했어요. 그런데 정규직으로 채용이 돼도 자리가 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거든요. 그때 병원이 prn(pro re nata: "필요하면"라는 뜻)이라고 정규직 간호사들이 자리가 날 때까지 대기하는 동안 계약직으로 일을 시키려고 했어요. 간호부 관리자들이 신규 간호사들이 다 모이는 자리에서 어차피 자리 나려면 기다려야 하는데 그 시간에 놀다가 입사하면 동료들에게 뒤처지니까 알바 한다 생각하고 와서 일 배우라고 하더라고요. 뭔가 그럴싸하게 말하면서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제안을 강요하는 거라 너무 황당했어요." 

박고은님과 다른 간호사들은 이 제안을 거부하기 쉽지 않았다. 결국 prn 신청서를 작성하고 일을 시작했다. 이때를 다시 기억하면 처음 직장에 갔는데 학교 실습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을 마주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일을 시작했는데 제가 예상치 않게 임신했어요. 그리고 설 연휴 동안 무리하게 일하다가 조기 진통이 와서 일주일 병가를 받았죠. 그렇게 쉬고도 회복이 안돼서 복귀 전날 부서장님을 찾아뵙고 조금 더 쉬면 안되냐고 했더니 막 뭐라 그러더라고요. 그렇지 않아도 다른 간호사들이 신규 간호사가 임신해서 병가로 쉬고, 나이트도 빠지고 일 시키기도 불편하다고 불만들이 많은데 대체 나한테 뭘 어떡하라는 거냐고 짜증을 내는 거죠." 

결국 부서장은 박고은님에게 '너에게 더 줄 수 있는 휴가는 없으니 계속 출근하든지 일을 그만두든지 결정'하라면서 사실상 퇴사를 종용했다.

"그때는 아무리 여기가 좋은 대학병원이라고 해도 제 컨디션이 더는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일을 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그렇게 사직서를 쓰고 나왔죠." 

박고은님은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생활도 해야 하고 간호사로서 경력이 끊어진다는 불안함과 부담감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운영하는 건강검진센터 내시경실에서 다시 일자리를 구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아이 문제로 결국 일을 그만둬야 했고 국내 로컬 병원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제가 그전에는 대학병원이거나 대학병원에서 운영하는 검진센터에서 일했거든요. 병원들이 좋아서 그랬다기보다는 대학병원 체계가 굉장히 익숙했어요. 그런데 국내 로컬 병원에서 일 해보니까 상상했던 거 이상으로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기본적으로 일회용품을 재사용하거나 재소독 하고, 간호사들이 의사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더라고요. 의사들은 환자들 감염관리나 안전문제에 관심이 없고 간호사들한테 일을 다 떠넘기고요. 이런 데서는 도저히 양심적으로 환자를 못 보겠다, 생각해서 병상 규모가 큰 로컬을 가봤는데 역시 똑같더라고요. 그렇게 3개월 다니다 그만두고 2일 다니다 그만두고 몇 번은 더 이직했어요." 


'못난 사람, 못난 간호사'로 만드는 인력부족과 태움문화 

박고은님은 여러 경력 중 학생 때부터 가고 싶었던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도 일했다. 고 박선욱 간호사도 같은 중환자실에서 일했던지라 감정이입이 더 된다고했다. 

"제가 중환자실 경력이 없었는데 병원 쪽에서 관계 없다고 해서 면접을 보고 합격했어요. 그런데 첫날 출근해서 수간호사랑 면담하는데 제가 무경력자인지 몰랐더라고요. 병원이랑 중환자실이랑 소통이 잘 안된 거죠. 중환자실 선생님들은 사람이 부족해서 경력자를 구해달라고 했는데 신규가 와서 자기 일도 하고 저도 가르쳐야 할 판이니 화가 났겠죠. 그래서 매일 혼나고 몇 간호사들이 제 프리셉터 없을 때 윽박 지르고, 눈칫밥 먹고 살았어요. 근데 사실 이런 거 때문에 힘든 건 두 번째였고요, 뭐가 가장 힘든 줄 아세요?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이 여기서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요. 나는 중환자실에서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도움이 못 되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이런 싫은 소리 들어도 마땅하다고 스스로 이런 생각이들 때가 사실 제일 힘들었어요." 

박고은님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일하다 계속 쓰러졌고, 결국 병원도 그만두게 되었다. 

"이사하면서 그만둔 거긴 한데 지금 생각해보면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아요. 아마 박선욱 간호사도 많은 순간 도망치고 싶었겠죠. 게다가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은 국내에서 가장 위급하고 위중한 사람들이 오는 병원인데 다들 일도 제대로 안 가르쳐주고 사람을 태웠는데 어떻게 일을 잘할 수가 있겠어요." 

박고은님은 본인이야 살면서 여러 풍파를 겪고 이제야 마음이 조금 단단해졌다고 생각하지만, 막 학교 졸업하고 사회로 나온 박선욱 간호사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개인의 탓이 아닌 무책임한 병원 문제에 집중해야 

"언론이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면 서울아산병원이 문제라기보다 박선욱 간호사를 괴롭힌 프리셉터나 같은 병동 사람들을 악마화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저는 그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저번 집회 때도 이야기했지만 그 병원이나 부서 분위기가 어떤지, 구조는 어떤지를 파악하고 시스템에 관해서 이야기 해야지 개인을 먼저 손가락질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 한편에서는 박선욱 간호사가 일을 진짜 못해서 선배들이 참다, 참다 그런 거라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저는 박선욱 간호사가 아무리 일을 못 했다고 해도 '그럼 일 못 하는 사람은 꼭 죽어야 하냐'고 되묻고 싶어요. 아니, 일을 못 하면 트레이닝을 해주라고 선배들이 있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병원에서 박선욱 간호사가 학교 성적도 좋고 긍정적인 성격이니까 일 잘할 것 같다고 채용했으면 잘하든 못하든 병원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그리고 일한 지 겨우 몇 달 된 신규 간호사가 일을 못 하면 또 얼마나 못했겠어요. 쉬는 날에도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자기 스스로를 탓했던 게 박선욱 간호사예요." 

이런 이야기가 도는 건 바로 이 사건 때문이다. 고 박선욱 간호사는 동료 3~4 명과 함께 해야 하는 환자 체위변경을 간호조무사와 단 둘이 하던 중 중환자의 담즙을 배액 하는 관을 빠지게 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한다. 이런 경우 환자는 재시술 해야 해서 책임이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박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박고은님은 박선욱 간호사는 이 일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일하는 내내 태움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 환자에게 실수까지 했으니 낭떠러지로 몰리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했다. 

"그 일은 환자한테 폐를 끼치고 잘못한 건 맞아요. 하지만 그 일에 대해서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면 되는 거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한 게 있어서 책임감을 느끼고 죽었다고 하는데, 이 실수가 본인이 죽음으로 갚아야 할 만큼 중대한 과실은 아니라고 생각해요만약에 저라도 제가 일을 잘못해서 환자가 죽었다면, 내가 죽어서라도 죄를 갚아야 하는거 아닐까 고민했을거예요. 하지만 그런 상황도 아니었고 사실 박선욱 간호사가 실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어요. 

보통은 중환자실 환자는 많은 장비를 달고 있고 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4명 정도가 같이 환자 체위변경을 하는 게 맞아요. 아무리 적어도 3명이 같이 환자 자세 바꾸고, 처치하고, 장비 고정하고 이런걸 해요. 그런데 병원에서 박선욱 간호사한테 2명만 가서 그 일 하고 오라고 시키면서 사고가 생겼죠. 그 일이 있고 나서 박선욱 간호사는 너무 괴롭고 외로웠을 거예요. 병원은 자기한테만 잘못을 뒤집어 씌우고 도와는 사람은 없고 나 힘들다고,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었겠죠. 

정말이지 만일 이때 단 한 사람이라도 다음부터는 안그러면 되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그리고 2명만 환자 체위변경하게 한 병원도 잘못이 있다고 박선욱 간호사의 책임을 덜어줬다면 어땠을까요."

 

병원을 바꿔야 간호사의 삶도 바뀌어 

"우리 사회는 이런 일이 벌어지면 몇몇 개인의 문제로만 이야기하면서, 다른 문제들은 묵인하거나 방관해 왔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전국에 있는 간호사들이 병원 시스템의 문제다, 신규 간호사 교육 과정이 잘못됐다고 목소리 내고 있잖아요. 서울아산병원같이 한국에서 제일 큰 병원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다른 소규모 병원은 얼마나 더 심각하겠어요. 그러니까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가 힘을 모아서 병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서울아산병원은 사과는커녕 아무런 말도 없네요. 어떻게 그럴수가 있죠. 박선욱 간호사가 결국 죽음을 선택한 게 자기 직장에서 일하다 죽은 거잖아요. 그러면 사과해야죠. 산재를 인정받도록 도와줘야죠."

 박고은님은 마지막으로 자신도 매일 태움을 당하면서도 이 문제를 방관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통계, 연구 보고서들 보면 학대받은 아동이 학대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고 가정폭력을 당한 사람이 폭력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하잖아요. 저는 간호사도 비슷한 거 같아요. 간호사들은 이미 학생 때 실습하면서 선배들한테 혼나고, 또 혼나는 걸 보거든요. 그러니까 직장 구하면 혼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아이를 키우다 보니까 생각이 든 게 어떨 때 아이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 소리 지르고 매를 들 때가 있잖아요. 그게 굉장히 잘못된 방법인데 아이한테 소리 지르고 눈 한번 부릅뜨고 매를 들면 아이가 눈치를 보거든요. 그건 에너지도 별로 안 들고 당장 아이 행동을 바꿀 수 있어서 편해요. 그런데 이런 폭력적인 방식은 결국 인간의 영혼을 훼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쉽지 않은 게 아이를 존중 하면서 행동을 바꾸게 하려면 하나를 만 번 설명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성인은 만 번까지는 아니겠지만 신규 간호사를 가르친다고 했을 때 선배가 만 번 가까이 이야기할 만큼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한데, 생각해보세요. 병원 인력은 늘 부족한데 선배가 신규 간호사가 들어오면 어떤 식으로 가르치게 되겠어요. 화내고 눈 부릅 뜨는 게 편하고 빠르겠죠. 저는 그래서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간호사들도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조금 더 상대방을 인간적으로 대하고 존중하려는 노력도 해야겠지만요." 

현재 박고은님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를 비롯해 간호사단체와 개별 간호사, 노동시민사회 단체들이 공동으로 구성한 '고 박선욱 간호사 공대위'에 함께하고 있다. 공대위는 앞으로도 서울아산병원의 사과, 산재인정, 재방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끝까지 싸울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 어느 웹디자이너의 과로자살 / 2018.05

어느 웹디자이너의 과로자살

-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 유족 장향미 님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제 이름은 장향미입니다. 제 동생은 장민순이고요. 게임회사에 재직 중인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그는 ‘평범한’이란 단어에 힘을 줬다. 동생 죽음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무엇이 동생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문제였고 해결되어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지 수 없이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 앞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던 곳의 문을 두드렸다. 바로 서울남부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였다. 함께 자료를 모아 분석하고 결국 회사의 강압적 ‘야근’이 문제였다는 걸 확인했다. 그렇게 장향미씨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려진 ‘공인단기·스콜레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다. 쉽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된 진심을 물었다.

“제 동생의 일이기 때문에 제가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동생이 왜 죽었는지, 뭐가 문제인지 꼭 알아야 했거든요. 저는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그만두면 제가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하겠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동생이 하고자 했던 일을 제가 하고 싶어요. 저 혼자 힘으론 불가능할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대책위 여러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디자이너로서 열정이 많았던 동생의 죽음

“제 동생은 디자인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천부적으로 디자인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었지만 열정이 많았어요. 자기 꿈도 방에다 써놓았죠. 디자인에 도움이 되는 건 뭐든 배우려고 했어요. 서양화부터 디자인 강연같은 것도 찾아다녔죠. 디자인에 영감 주는 건 뭐든 사진으로 찍어놓고 기억했어요. 저는 디자인을 전혀 모르는데, 그런 저를 붙잡고 디자인 얘기를 한 게 동생이었죠.”

그런 그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장민순씨는 2015년 5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총 2년 8개월을 근무하는 동안, 거의 1년을 야근 제한 기준을 넘기도록 일했다. 그의 포괄임금계약, 실제 근무 시간은 근로복지공단에서 만성 과중한 업무로 인한 뇌·심혈관 질환의 산재인정 여부 판단 기준인 발병 전 12주 평균 업무시간인 60시간에 거의 근접한다. 특히 2017년 11월 한 달 간 집중적 야근이 이뤄졌다. 20시 이후 퇴근이 14회에 이르고 밤0시 이후 퇴근도 4일이나 됐다.

“야근문제가 굉장히 심하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만두라고 얘기를 많이 했죠. 하지만 그만두지 않았어요. 잘해보고 싶다고 그랬거든요. 우선 잠 잘 시간이 없는 게 제일 큰 문제였어요. 동생이 평소에도 불면증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잠 잘 시간도없어서 늘 피곤해 했죠. 주말이면 자기 방에서 잠만 잤어요. 밥 먹으라고 깨우면 일어나지도 못하고 계속 잠만 자는 경우도 있었고요. 평일에는 잠을 거의 못잔다고 했어요. 회사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요. 당연히 건강도 좋지 않았죠. 초반엔 몸무게가 굉장히 많이 빠졌어요.”

회사에 매여 있는 시간이 길다보니 당연히 친구, 가족의 얼굴조차 볼 시간도 없었다. 아침에 화장 할 시간조차 사치였다. 동생은 집에 와서 화장을 지울 기력조차 없이 잠드는 때가 많았다. 결국 장민순 씨는 지난해 12월 2일 언니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잠은 자면서 하냐? 머리가 맑을 때 일해야 한다’는 상사의 말에 폭발한 장민순 씨는 대성통곡을 하며 업무의 과중함과 상사의 문제를 털어놓았다.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문제를 더 이상 덮어놓을 수만은 없다고. 바로 다음날 12월 2일 자매는 고용노동부 강남지청에 근로감독 진정을 접수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강남지청은 ‘올해(2017년) 근로감독을 나가는 일정이 모두 끝났으니, 내년(2018년) 2월 이후에 신고 들어온 다른 업체들과 묶어서 근로감독을 나가겠다, 갑자기 단독으로 이업체만 근로감독을 나가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따위의 답변을 내놓고 자매의 SOS 신호를 무시했다. 결국 자매가 나서서 진정 준비에 들어갔고, 필요한 자료를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다.

해가 넘어가고 18년 1월 2일 동생은 언니에게 출퇴근 교통카드 기록을 보냈다. 그게 동생의 마지막이었다.

야근, 업무과중, 일터 괴롭힘… 동생을 괴롭혔던 것들

“한 명, 두 명씩 계속 만나면서 동생이 왜 죽었는지를 알고 싶어 계속 만났어요. 만난 분들이 공통적으로 한 얘기가 있어요.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업무지시, 체계적인 관리나 운영시스템이 전혀 없고, 업무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운 환경, 투명하지 않은 의사결정 구조, 심각한 야근 문제요. 이게 다 에스티유니타스라는 회사에 다녔던 분들이 한 얘기예요.

문제가 많은 곳이니 경력이 있는 분들은 오래 남지않고 퇴사해요. 그러다보니 신입분들이 잘 몰라도 일을 맡아요. 여기 디자인부서는 디자인 말고도 요구 받는 게 많았어요. 예를 들어 디자이너가 기획도 볼줄 알아야 했죠. 그런 것까지 디자이너가 다 한 거예요. 제 동생도 그랬고요. 그런 식의 야근이 많았다고해요. 문제는 그 야근이 생산적인 게 아니고, 대표나 상사에게 보고 디자인 시안을 만드는데 그게 계속 까이고, 까이고 그러다 보니 야근이 잦아지고요. 그런 식으로 일을 하게 되면 자기 이름 걸고 디자인이 나가는데 만족스럽지 않게 나가니 자기 성취감도 없죠.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기계처럼 뽑아내니까요.”

더불어 중요하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장시간 노동과 업무 과중도 문제였지만, 직장상사에 의한 괴롭힘과 주말 무료 노동도 고인을 힘들게 한 요인이었다.

“회사 홈페이지만 보면 권위적인 것과 정반대를 강조해요. 저도 이번 일이 있기 전에 여기가 그렇게 문제가 많은 곳일줄 몰랐죠. 모두 회사가 홍보하는 이미지는 가짜라고 하시더라고요. 회사의 사내문화도 자유롭게 참여한다고 하지만 사실 다 강압적이고, 인사고과에 반영한다고 했어요. 주말 응원 이벤트부터 시작해서 사내 합창대회, 체육대회 이런 행사도 모두요. 도대체 이게 자발적인 건가요?“

야근 없는 일터는 가능하다

흔히 IT(정보기술) 업계와 같은 열정, 창의, 젊음을 강조하는 산업에선 야근은 어쩔 수 없다는 소위 불문율이 존재한다. 이 말의 함정과 문제점, 그리고 정말 IT 업계에서 야근은 없앨 수 없는 것일까.

“넷마블도 불가피하다고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거의 없어졌죠. 그건 회사의 의지예요. 야근을 없앨 수 없다는 건 말이 안돼요. 사실 이 문제는 공짜로 사람을 부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포괄임금제로 묶어서 야간수당을 넣어버리면 얼마든지 일을 시킬 수 있죠.”

대책위와 장향미 씨의 요구는 ▲ 직장 내 야근근절, 직장내 업무 스트레스 야기 환경 개선 ▲ 에스티유니타스의 진정성 있는 사과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 ▲ 책임 있는 직장 상사에 대한 징계이다. 그 중 가장 우선순위는 에스티유니타스의 야근 근절이다. 유족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됐는지 물었다.

“동생이 하고 싶었던 일이라서요. 동생이 죽기 열흘 전 가족들에게 얘기했거든요. 야근을 없애고 싶다고요. 그래서 제가 이걸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료 분들 만나면서도 생각이 확고해졌어요. 우울증상을 겪은 게 제 동생만의 일이 아닌 걸 알게 됐고, 재직자 중에서도 많이 겪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빨리 야근을 없애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과로로 인한 동생의 우울증 악화 

회사가 얘기한 대로 고인은 평소 우울증을 앓아왔다. 에스티유니타스에 입사하기 전 2015년 5월엔 완치에 가까울 정도로 호전된 상태였다. 하지만 회사에서 근무하는 2년 7개월 동안 비인간적 근무환경,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악화 되었고 과중한 업무로 인해 주치의에게 제때 상담, 치료를 받지 못했다. 겨우 가까운 병원에서 약처방전으로 대신한 것이 무려 10차례나 됐다. 결국 장민순 씨는 2017년 9월 우울증 악화로 휴직했다 복직했지만, 회사는 11월 한 달간 살인적인 야근을 시켰다. 4명이 해야 할 일을 고인에게 모두 맡겼다. 인력 충원도 없이 말이다. 그러면서 회사는 고인의 죽음의 원인은 우울증이라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제 동생의 죽음은 우울증이 원인이 아니고, 과로로 인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명백히 사회적, 회사의 타살입니다. 유난히 회사에 충성하는 분위기가 강한 우리나라와 일본에 과로자살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요인으로 제대로 바라보고 해결해야 해요.”

“야근 없는 회사가 제 동생의 유지예요”

그는 대책위 활동을 통해 사회 곳곳의 아픔을주목하게 됐다. 

“사실 저는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거나 참여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방관자였죠. 내 가족만 아니면 되고, 직접 나서기는 귀찮고, 내가 이걸 하다가 혹시 불이익이라도 받으면 어쩌나, 내가 안 해도 누군가 해주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왔어요. 뉴스에 나오는 일들이 저한테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막상 제가 당사자가 되고 보니깐 나쁜 일은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더라고요. 다 각자를 위해 조금씩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면 내가 약자가 됐을 때 조금은 나은 세상이 되어 있겠죠?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온라인 교육업계의 근본적 문제를 드러내고 바꾸고 싶어요.”

[현장의 목소리] 광호가 꿈꿨던 노조파괴 없는 세상을 꿈꾸며 -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 이정훈 지회장 인터뷰 / 2018.04

광호가 꿈꿨던 노조파괴 없는 세상을 꿈꾸며

-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 이정훈 지회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자동차 부품회사 유성기업은 2011년부터 지금까지 비인간적인 노조파괴와 가학적 노무관리로 금속노조 조합원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결국 2년 전 3월 17일 한광호 조합원이 노조파괴 이후 극심한 우울증을 앓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 한광호 열사의 2주기를 맞아 노동조합은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유성기업 노조파괴로 숨진 고 한광호 열사의 2주기를 추모하고 노조파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결의를 모으는 집회를 열었다. 지난 3월 16일 집회 시작에 앞서 고 한광호 열사 2주기 투쟁을 비롯해 노조파괴에 맞선 지난 투쟁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이정훈 지회장을 만났다.

제2의 한광호가 나오지는 않을까 불안하다

한광호 열사 기일이 다가왔는데 이정훈 지회장과 조합원들의 마음이 어떨지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사진출처: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광호의 원을 풀지 못해서 가슴 한쪽에 뭔가 응아리가 맺힌 것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광호의 한을 풀지 못한 것만큼이나 조합원들 중에 제2의 광호가 나올까봐 불안한 게 사실이다. 지난 2월에도 조합원들 중에 3명이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쓰려졌다. 2명은 그나마 퇴원해서 통원치료 받고 있는데 1명은 아직 병원에 있는 상황이다. 노조파괴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와 언제 해결될지 모른다는 불안함으로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노동조합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빨리 공개하고 후속 사업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2017년 1월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전체 조합원건강 실태조사를 했다. 그런데 아직도 결과 공개를 안 해서 지난 2월 19일에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하고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 과정에서 건강 실태조사 결과에 대해 일부 내용을 구두로 전달 받았는데 고위험군 조합원이 상당히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확한 결과를 확인해야겠지만 노동조합은 노조파괴 투쟁 초기인 2011년과 2012년 노동자심리치유사업단 ‘두리공감’에서 실태조사를 했을 때 보다 고위험군 조합원이 더 많은 것으로 예상하고 빠르게 대책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지금 유성기업이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고 딴지를 걸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최종 3개 병원을 지정해서 고위험군 조합원에게 필요한 치료를 실시하겠다는 계획인데, 유성기업에서 그 병원을 믿지 못하겠다고 주장하면서 계속해서 후속 사업 추진이 늦어지는 상황이다.”

이정훈 지회장은 조합원들의 유성기업의 끝없는 노조파괴가 조합원들의 생계와 건강 모두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벌써 한광호 열사 2주기인데 건강 실태조사도 조사지만 노조파괴 문제가 8년이 되도록 정리가 안 되다 보니까 조합원들이 생계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노조파괴자 유시영 회장을 감방에 보냈는데 회사의 전혀 태도의 변화가 없다. 유시영 회장이 이제 4월 16일이면 만기출소 하는데 회사가 이판사판으로 가보자고 하니까, 조합원들은 이대로 아무런 변화를 못 만들어내고 끝나는 거 아닌가라는 불안함과 초조함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아마 별별 생각이 들텐데 노동조합 입장에서 참 안타깝다."

광호의 한을 풀기 위해 다시 투쟁에 돌입한다

노동조합은 한광호 열사 2주기를 맞아 전국적인 투쟁을 만들고 교섭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 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광호 열사 기일을 맞아서 전국적으로 투쟁을 확대 하려고 기획하고 있는데 주체들이 먼저 투쟁에 나서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지난 3월 12일부터 3월23일가지 노동조합이 속해있는 금속노조 충남지부와 충북지부가 집회를 열고, 지역 현대자동차 대리점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조파괴를 일정 부분 끝내기 위해 싸울거다. 노조파괴를 끝내지 못하면 제2의 한광호가 나올 수도 있다. 유성기업은 계속해서 교섭을 회피하고 있는데 노동조합은 지속해서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유성기업은 노동조합이 계속해서 교섭을 요구하자 설 명절 바로 직전 상견례 자리를 가졌다. 하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본 교섭을 회피하고 있다고 한다. 

“상견례 이후에 교섭을 요구해도 회사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본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3월 15일에도 본 교섭을 요구했는데 회사는 역시 실무자 한명 내보내고 불참했다. 유성기업은 8년 동안 지금까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회사가 노동조합과 대화를 일체 거부하다 보니 지난 8년 동안 노동조합은 단체협약, 임금인상, 노동조합 활동 보장 등 그 어떠한 약속도 받아낼 수 없었다. 조합원들에게 돌아온 건 각종 징계와 일터 괴롭힘, 빈곤한 생활이었다.

“2011년에 금속노조 단체협약이 해지되고 임금협상도 8년 간 못하면서 조합원들은 최저 생계비를 받으며 살고 있다. 거기에 계속 파업 투쟁해야 했던 해고자 19명과 영동과 아산에 노동조합 간부 6명 활동비까지 조합원들이 책임지고 있다 보니 생계가 다들 어려운 게 사실이다.”

투쟁으로 노조파괴의 진실이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 2월 6일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비롯해 과거 인권침해 및 검찰권 남용 의혹이 있는 12건의 사건을 재조사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중 하나로 2011년 유성기업 노조파괴 및 부당노동행위 사건이 선정되면서 노조파괴와 관련한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대한민국에 수많은 사건이 있을텐데 그 중에 하나로 선정됐다. 이번 3월부터 6개월 동안 집중 조사한다고 하는데 조사 포인트가 현대자동차가 유성기업 노조파괴에 어떻게 개입했나라고 들었다. 현대자동차와 창조컨설팅, 유성기업이 수십만 문건을 만들면서 노조파괴를 저질렀는데 왜 검찰은 이들을 불구속했는지, 유성 자본을 재판에 빠르게 기소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

여전히 묵묵부답인 노조파괴 주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노조파괴의 주범이자 공범 현대자동차에 책임을 묻기 위해 본사 앞에서 천막 농성을 이어가는 중이다.

“여기에 천막을 친 게 309일 정도 됐고, 농성을 한건 2년 가까이 되가는데 대화는 전혀 안 되고 있다. 우리는 뜬구름 잡는 듯 여기와서 집회하고 농성하는게 아니라 현대자동차가 노조파괴에 개입했다는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투쟁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본사 사옥 10층으로 유시영 회장과 창조컨설팅 심종두대표를 불러서 1주일에 1번씩 기획회의를 했다. 그 다음에 현대자동차가 유성기업에 주던 납품대금을 기존 가격에 23% 올려서 더 줬다. 노조파괴에 필요한 자금을 이런 방식으로 조달한거다. 이러한 사실이 밝혀져서 현대차 임원이 검찰로부터 기소 됐는데 현재 위헌 시비가 붙어서 재판은 중단된 상황이다.”

지난 대선 직후인 5월 검찰은 현대자동차 임직원 4명과 현대자동차 법인을 기소했다. 노동조합은 8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노조파괴의 주범이자 공범인 현대자동차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현재 잠시 재판이 중단되었다. 지난 9월 현대자동차 법인이 임직원이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렀다고해서 법인까지 같이 처벌하도록 하는 노조법 양벌규정이 위헌이라며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냈는데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재판은 헌재가 노조법 양벌규정이 위헌인지 합법인지 결정을 내린 후에야 진행이 가능해졌다.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투쟁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한국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현대자동차 재벌과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상대로 8년간 노조파괴문제로 투쟁하는 것이 쉽지 않은 길이었을 것 같다. 한 쪽에선 너무 무모한 거 아니냐 대체 어쩌려고 그러냐는 이야기도 많이 듣지 않았나. 이런 이야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쭤보았다. 

(사진출처: 노동과세계)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2011년 지역에서부터 노조파괴가 시작되었다. 우리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조합 운동을 말살하기 위해 정부와 자본이 기획한 폭력이었던거다. 그래서 노조파괴로 투쟁하는 다른 사업장들이 우리처럼 같이 싸워줬으면 조금만 버텨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그러면 조금덜 힘들었을텐데 아쉬움이 있다. 이렇다보니 유성기업 노동조합은 많은 사람들에게 “너희는 왜 뒤도 안돌아보고 싸우냐”는 질문을 받았다.

노조파괴 공작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투쟁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우리는 너무나 억울한 마음이 크다. 대체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나. 죄가 있다면 올해 유성기업이 58년 됐는데 여기서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다. 그런데 왜 용역깡패가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려고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너무 원통하고 이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그런와중에 투쟁하면 투쟁할수록 우리가 주장하는 게 맞다는 근거 자료들이 계속확인되니까 거기에 또 분노하게 되고 뒤도 안돌아보고 싸우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정훈 지회장이 우리는 승리감을 느끼고 있다고 희망이 있다고 했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아직 투쟁을 마무리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승리감을 느낀다. 그동안 우리가 진게 없다. 어용 노조하고 싸워서 금속노조를 다수 노조로 지켜냈고 우리 투쟁이 정당하다고 세상 사람들도 법원도 인정해줬다. 힘든 길이지만 희망도 보이고 나름 쟁취감도 있다.”

현대자동차와 유성기업이라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있지만, 8년이란 시간동안 벽에 균열을 내며 투쟁해왔던 유성기업 노동조합이 반드시 승리해서 고 한광호 열사의 한을 풀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현장의 목소리] 전국 243개 시군구청장 고발한다! / 2018.03

전국 243개 시군구청장 고발한다!

- 환경미화원 산업재해 근본적 해결을 위한 시장·군수·구청장 고발투쟁

재현 선전위원장


지난 1월 언론을 통해 환경미화 노동자들이 일터를 바꾸기 위해 투쟁에 나섰다는 소식을 접했다. 3년간 15명의 동료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면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는 가슴 절절한 외침이었다. 소식을 접하고 바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터뷰는 지난 2월20일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이름만 정규직인 환경미화원 노동자

“안녕하세요. 저는 민주노총 민주연합노조 김성환 위원장입니다. 경기도 시흥시에서 11년 동안 환경미화원으로 일했는데, 현재는 휴직계를 내고 노동조합에서 전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위원장 임기를 마치면 다시 현장으로 복귀할 예정입니다.”

김성환 위원장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로에서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환경미화원은 도로 청소 외에도 생활폐기물이나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하는 직종 등으로 나눌 수있다고 한다.

“도로를 청소하는 업무라서 동료들끼리 각자 구역을 나눠서 업무를 합니다. 구역에 따라서 어떤 곳은 좁으면서 넓고, 넓으면서 좁고 다른데 평균적으로 아침·저녁으로 가로, 세로 4km씩 전체를 청소한다고 보면 됩니다. 여름엔 사람들이 먹다 남기거나 버린 음료수를 치우고 가을엔 떨어지는 낙엽 치우고 겨울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눈이나 얼음을 치우고 그렇게 1년을 보냅니다.”

김성환 위원장은 현재 시흥시가 직고용해서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가 흔하지 않다고 한다. 

“경기도 시흥시 직영 환경미화원이라서 공무원들은 저희보고 정규직이라고 하는데 저희는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고용이 보장돼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노동조합이 있어서 그런 거지, 노동조합이 아니라면 언제든 지자체에서 민간위탁을 할 수 있습니다. 조례에서도 민간위탁을 금지하지않고 있어서 언제든 상황이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늘 안전사고 위험을 감수하는 현장

“하루에 8시간 근무를 하는데 오전 7시에 시작해서 4시간 일하고 오후에 1시간 쉬었다 오후12시부터 16시까지 또 4시간 일합니다. 밥은 대기실이 있는 곳에서 먹는데 이 대기실도 노동조합이 있어서 가능해진 겁니다. 요즘엔 본인이 일하는 구역이랑 집이 가까운 분들은 집에서 식사하고 나오기도 합니다.”

아직도 환경미화원들은 매일 다치거나 사고가 나는 등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뾰족한 물건에 찔리거나 유리병에 감염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주삿바늘에 저도 많이 찔렸는데 병원에서 나온 주삿바늘은 문제가 없지만, 그게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은 마약도 하고 불법 시술도 흔해서 이게 혹시 감염된 바늘은 아닌지 전혀 사실을 모르니까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주사 바늘이 아니어도 깨진 형광등을 폐기물에 버리지 않고 쓰레기봉투에 버려서 청소하다가 찔리고 파상풍으로 치료받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일하다 다쳤을 때 작업자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물었더니 그냥 참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일하다 다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지자체 차원으로 안전교육도 하고 대처 방안에 대해 알려주고 그래야 하는데 자치단체가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이렇다 보니 조합원들도 일하다 다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인식이 부재한 게 현실입니다. 그나마 노동조합에서 싸우니까 지자체가 뭐라도 하는 시늉만 하고 있습니다.”


일하다 다쳐도 아무 대책이 없는 현장

자치단체의 경우 치료는커녕 일하다 다친 노동자에게 핀잔을 준다고 한다. 

“자치단체랑 가장 쟁점이 붙는 게 뭐냐면 바로 병원에 가는 겁니다. 작업자들은 일하다 다쳤을 때 바로 병원에 가질 않습니다. 만일 내가 업무에서 빠지면 일 할 사람이 없기도 하고 워낙 안전사고가 자주 있는 데다, 다쳤을 때 별다른 대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며칠 뒤 작업자가 통증이 심해져 집 근처 병원을 가면 지자체가 왜 오늘에서야 아프다고 병원을 가나며 혼을 냅니다. 더 황당한 건 작업자가 집이랑 가깝고 자주 가는 병원에 가면 병원을 옮기라고 강요합니다.”

대체 어떻게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왜 발생하는걸까?

“지자체는 우리가 일하다 다쳐서 병원에 가 있으면 가짜 환자로 취급합니다. 그리고 병원 의사랑 이야기해서 과도하게 병원비를 요구하거나 진단서를 받을까 봐 의심합니다. 나중에는 지자체에서 작업자가 자주 다니는 병원이 아니라 본인들이 지정하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강제합니다. 병원비 한푼 지원해주지도 않는데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다친 사람에게 지자체가 하는 짓을 보니 노사가 서로 전혀 신뢰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으면 사용자랑 상호 간 대화를 많이 해서 서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사용자가 노동조합 자체를 싫어하고 부정합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대화 자체가 안 되는 게 가장 문제고 어렵습니다. 노동조합이 무슨 터무니없는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나마 공무원 중에 실무자급은 이야기가 되는 경우도 있는데 노동조합과 직접 교섭을 하는 공무원들은 대개 노동조합을 좋아하질 않습니다.”


결국, 사용자를 고발하다

지난 1월24일 환경미화원 산업재해 근본적 해결을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243개 시장·군수·구청장을 고발하는 기자회견 개최했다. 어떻게 고발 투쟁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사용자가 공공기관인데도 산업안전보건법 자체를 지키지 않고 있고 불법을 저지르고 있으니 법을 지키고 시행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특히 법으로 지키라고 조항이 있는데도 그걸 시행하지 않고 있어 노동조합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검찰에 고발하면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청와대에도 고발장 전달하고 왔습니다.”

이번 고발은 목숨 걸고 일하는 조합원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요구하기 위해서 라고도 했다. 

“제가 다녀온 건 아니지만, 2011년에 노동조합에서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일본은 산업안전보건법에 해당하는 법 조항으로 환경미화원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작업 안전 매뉴얼도 있어서 검토해보니 일본 환경미화원도 우리와 같이 공무원 신분이었는데 법 적용을 받고 있어서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어떤 상황인지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이후 몇 년간 정부와 노동부에 입장을 물었고, 2016년 2월에 노동부가 지침으로 환경미화원이 산업안전보건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대상임을 확인시켰습니다. 노동조합은 이어서 사용자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라고 항의했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어서 고발 투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발 투쟁 이후 계획

“공무원들은 법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이번 고발에 대해서 일단 과태료를 부과하고 조금씩 현장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노동조합은 이번 고발을 계기로 지자체별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반드시 설치하고 운영하도록 강제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있어야 현장에 안전보건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을 강제할 텐데, 이게 없다 보니 지금까지는 개인이 민원을 제기하거나 항의하는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노동조합은 안전공단 캠페인 사업에 공모해서 지원금을 일부 받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운영매뉴얼을 만들고 현장에 배포하게 될 계획이라고 한다.

민간위탁 폐지를 위한 투쟁도 이어간다. 산업안전보건법 고발은 물론이고 노동조합에서꽤 오랫동안 민간위탁 폐지를 주요한 투쟁 요구로 걸고 싸우고 있는데 이점을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예전에는 전부 시나 구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면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공무원들이 일하기 싫으니까 민간에 위탁하는 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자체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다 보면 공무원들이 사고부터 각종 업무에 대해서 일정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민간으로 위탁하면 노동조합이 위탁 업체 사장하고 이야기 김성환 위원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이렇게 오랫동안 환경미화원의 노동조건이 바뀌지 않는 이유를 인간으로서 존엄을 존중받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산업안전보건법 고발 투쟁이 모든 걸 한 번에 바뀌지는 못하겠지만, 이번 투쟁을 계기로 적어도 노동자가 목숨을 걸면서 출근하는 일터가 아닌 현장으로 점차 변화하는 전환점이 되면 좋겠다.

[현장의 목소리] 청춘을 바친 회사에서 과로사로 죽고 싶지 않습니다 - 공공운수노조 민주한국공항지부 서우석 홍보부장 인터뷰 / 2018.02

청춘을 바친 회사에서 과로사로 죽고 싶지 않습니다

- 공공운수노조 민주한국공항지부 서우석 홍보부장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작년 사회적으로 큰 관심과 공감대를 형성했던 이슈가 있었다. 바로 ‘과로사’ 문제다. 짧은 단어이지만 그 이면에는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 담겨 있다. 하루 15시간 넘게 일 하고 바로 새벽에 출근해야만 하는 버스운전사, 본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업무강도에 쓰러져간 집배원, 야근하는 사람이 많아 ‘구로의 등대’라 불린 넷마블에서 과로사한 게임개발자 등 모두 일 때문에 세상을 등진 노동자들이다.

2017년 12월13일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자신이 일하던 일터에서 사망했다. 바로 대한항공 자회사 한국공항 직원인 故 이기하 님(49)이다. 한국공항은 대한항공 및 대한항공과 계약을 맺은외국항공사들의 지상조업을 처리해주는 회사이다. 고인은 수하물 탑재 및 하역을 맡은 램프 여객부 93조 조업장으로 무려 17년 동안 일했던 베테랑 노동자였다. 그런 그가 왜 오전 출근한 직후 쓰러져 사망했을까. 고인을 비롯한 한국공항 노동자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기 위해 공공운수노조 민주한국공항지부 서우석 홍보부장을 지난 1월18일에 만났다.

서우석 님 역시 올해 공항에서 근무한지 20년 차다. 만만치 않은 경력이지만, 본인 말고도 30년 가까이 한 사람들도 제법 많다고 한다.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버텨야만 했던 이유를 물었다.

“혼자일 때랑 가정을 꾸려 식구가 있는 사람들은 못 그만둬요. 힘들어도 계속 참고, 견디고 그러죠. 이곳 일은 여러 분야가 있는데 근무환경은 비슷비슷해요. 제가 처음에 한 일은 화물 수출·수입이었죠. 국제우편물 취급소에도 1년 있었고, 램프여객에 온지 4년째예요.”

故 이기하 님의 사망 날, 서우석 님도 출근을 했다. 

“저도 그날 아침 근무를 나왔거든요. 어떤 직원이 카톡에 소식을 올렸죠. 출근했는데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이송됐다고요. 우리도 그 정도만 듣고 일 하다가 계속 소식을 기다렸죠. 그런데 숨졌다는 거예요. 사람이 일 하러 나왔는데 죽었으니까 정신이 없었죠. 노조 홍보부장이니 소식을 모르는 조합원들에게 알리고, 지방 공항의 조합원들에게도 내용을 전했죠. 일이 손에 안잡히더라구요.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옛날부터 직원들이 누구 한명 죽어나갈 것 같다는 말을 정말 많이 했어요. 일이 많이 힘들기 때문에요. 같이 움직이는 팀 인원만 충원을 해줬어도, 병원 다니면서 일을 했을 텐데... 거의 1년 가까이 인력 충원 없이 자꾸 사람을 줄이기만 했어요. 한명, 한명 빠져나갈 때마다 노동 강도가 배가 됐어요. 심지어 어떨 때는 급하게 병원 가서 못나오면 3명이 할 때도 있었죠. 어쩔 수 없이 하는데, 정말 힘들어요.“

노조는 고인의 죽음을 ‘과로사’로 주장하고 있다. 반면 회사는 공항 업무 특성상 탄력근무를 도입해 운영한 것이고, 연장근로는 주 12시간 초과한 사실이 없다고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에서 고인의 출퇴근 자료를 분석한 결과 월평균 50시간의 초과노동을 한 것 으로 드러났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근무한 날은 월평균 8~9일이나 됐다.

여기에 인력부족 문제까지 더해져 현장은 매일이 전쟁터와 다름없다. 고인 역시 사망하기 세달 전부터 7명이 작업할 일을 4~5명이 도맡았다. 비행기에 수하물을 싣기 위해 좁은 공간에 몸을 구겨 넣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은 노동강도가 굉장했다. 야외 작업이기 때문에 날씨영향도 크게 받는다. 인원도 부족한 상황에선 제대로 식사하기도, 쉬기도 어렵다. 어쩌다 운좋게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도, 비행기가 빨리 도착하면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다시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공항에서 일하는 지상조업 노동자 모두가 시달리는 문제다. 그러니 故 이기하 님의 죽음에 대한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고인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동료들의 정신적 충격과 상처회복을 위한 조치는 취해졌을까. 사고 트라우마를 예방하기 위해선 사건초기 대응 때부터 심리치유를 해야 한다. 하지만 회사의 대책은 찾아볼 수가 없다. 결국 개인이 버티거나, 그만두거나 둘 중에 하나일 뿐이다.

“트라우마 치료? 그런거 없어요. 故 이기하 님이 근무했던 조의 조원이 5명이었어요. 그런데 사고 나고 바로 하루, 이틀 있다가 계약직 직원은 충격 받아서 회사 못 다닌다고 사표내고 그만뒀어요. 다른 친구도 일주일 있다가 자기도 그만두겠다고 부조장한테 얘기했다고 하더라구요. 자기 조의 조장이 일 하다 쓰러져 죽었는데, 당연히 그 조원들의 충격이 컸죠. 전문가들에게 의뢰해서 트라우마 치료를 해주거나 그런걸 안하고 있어요.

한국공항이란 회사가 대한항공 자회사이지만 전혀 작은 규모가 아니예요. 상장도 했고, 사원수도 적지 않죠. 매출도 크게 증가했구요. 그런데 직원들에게 푸는게 없어요. 당연히 직원들 애사심도 떨어질 수 밖에 없죠. 회사는 직원들 일 시킬줄만 알지 다른 걸안해요. 사고도 감추기에 급급하고... 몇 십년간 계속 벌이지고 있는 일이예요.“

열악한 환경은 당연히 노동자들에게 유인책이될 수 없다. 나름 기대를 품고 입사해도 버티기조차 힘들다. 일손이 부족해도 일을 그만두는 젊은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했다. 

“이직률이 높아요. 일이 힘드니까요. 실제 일을 해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어서 많이 그만둬요. 제일 큰 문제는 수면시간이예요. 잠을 못자요. 출근시간만 있고 퇴근시간이 없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죠. 오전 7시에 출근을 했으면 오후 4시30분, 5시 정도엔 퇴근을 해야 하는데, 그런 퇴근 시간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라고 같이 일하는 선배들이 얘기할 정도죠. ‘1시간 후면 퇴근이네’라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고 오늘 일이 끝나야 끝나는 거라는 식이예요.”

존재하지 않는 퇴근과 부족한 수면시간 외에도 이들을 힘들게 하는 건 유동적인 업무표다. 어떤 날은 오후 5시에 출근이고, 어떤 날은 오후 4시, 또 다른 날은 새벽 5시. 심지어 30분 간격으로 쪼개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신입직원들은 알람을 맞춰놓고 자도, 2~3일 일을 하고나면 힘들어서 알람 소리를 못 듣고 지각을 하거나 심지어 출근을 못하기도 한다. 또 퇴근과 출근 시간 간격이 지나치게 짧아 집에 가지 않고, 회사에서 자고 출근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비인간적인 업무 스케쥴은 10명 중 겨우 2~3명만 남게 하는 악조건으로 작용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더욱 강도 높은 노동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비행기랑 여행객은 계속 늘고, 수하물 양도 많은데 오히려 일하는 사람은 줄어요. 적은 인원이 일을 하다보니까 과로가 되고, 과로사가 발생했죠. 몸에 질병도 많이 생겨요. 비행기하고 시간 싸움을 하다보니까 식사를 못해요. 제일 긴 노동시간이 일 하는 기준으로 15~16시간 정도인데 그러면 하루 세끼는 먹어야 하거든요. 운이 좋으면 먹는거고, 반대로 한 끼만 먹고 일하는 경우도 많아요. 아파도 병원에 못가죠.

쉬는 것도 문제예요. 만약 휴게공간이 있다고 해도 이용할 시간이 없어요. 사실 진짜 조용하게 직원이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이건 저희만의 문제가 아니고 인천공항의 문제이기도 해요. 인천공항 전체를 둘러봐도 일하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자체가 없거든요.”

높은 노동 강도는 당연히 일하는 사람의 몸에 좋을 리가 없다. 서우석 님 본인도 일하다 엄지손가락 일부가 잘려나갔다며 본인의 손을 슬쩍내밀었다. 또 근골격계질환으로 어깨 근육이 파열되어 두 달간 집중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본인만 시달리는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일 자체가 좁은 공간에서 쭈그려 앉아 무거운 가방이나 화물을 다루다 보니 양이 많을 때는 주먹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가방을 쌓는다. 그런 일을 길게는 20~30년 하다 보니 당연히 몸이 성한데가 없다. 하지만 병원에 치료 받으러 가지도 못하고, 만약 입원까지 해도 자기 연차를 쓰는 경우가 태반이다. 산재여도 회사가 거부해 하지 못한 경우가 제법 많다고 했다.

안전장비 지급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전에는 신청을 하면 새 물품을 지급 해주는 식이었다. 지금은 포인트 제도를 운영하여 1인당 포인트 내에서만 구매를 해야 하고, 만약 포인트가 없으면 개인이 사비를 들여 구매하는 식이다. 회사에서 주는 포인트는 필요한 안전장비를 사는데 턱 없이 부족하다. 서우석 님도 올 겨울 새방한화가 필요했지만, 새 작업복 교체를 위해 방한화를 본인 돈으로 샀다고 했다.

“사고가 났지만 변한 게 없어요. 작년 3월에 강영식 대표이사가 한국공항 신임사장으로 취임했어요. 그뒤로 현장은 더 힘들어졌습니다. 1년 가까이 인력충원도 안하고 있고, 줄어든 인력으로 계속 일하고 있거든요. 특히, 유족에게 먼저 손을 뻗어 책임 있는 사과나 배상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유족들에게 상처만 주고 있어요.”

결국 사람이 한 명 죽었지만, 현장은 여전히 바뀐 게 없다. 고인의 장례식 또한 아직 치루지 못했다. 유족과 민주한국공항노조는 ▲회사의 공식사과 ▲산재처리 ▲유족보상 ▲주52시간 근무준수 ▲적정인력 배치 준수 및 인력충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서우석 님은 하루 빨리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다. 이 청원에 약 3천명 가까운 이들이 서명했다.

“회사는 자기들 힘들땐 직원들에게 봐달라고만 하고, 막상 직원들이 어려움에 처하거나 목숨을 잃어도 눈 하나 꿈쩍을 안해요.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청와대 게시판에 청원도 넣었어요. 정말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는 자기가, 노조가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가족들과 단 한, 두 시간이라도 시간을 갖고 싶고 집에 대소사가 있으면 참여를 하고, 아프면 병원에 가고 최소한 인간답게는 살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죽지 않는 공항 노동자들의 행보에 우리가 함께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 지난 2월 1일 저녁 유족과 회사 측의 협의를 통해 故이기하 조합원의 위로 보상과 장례 일정에 합의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고인에 명복을 빕니다.

[현장의 목소리] 건강할 권리를 헌법에! / 2018.01

건강할 권리를 헌법에!

손정인,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지난 2017년 11월 28일 오전 국회에서는 권미혁 의원실, 국민주도헌법개정 전국 네트워크(개헌넷),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건강세상네트워크,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빠띠, 바꿈/세상을 바꾸는 꿈이 함께 주최한 건강권 시민증언대회 “건강할 권리를 헌법에! 건강할 권리를 외치다”가 열렸다. 2018년 6월로 예정된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앞두고 헌법에 반영할 건강권 내용에 대해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자리였다.

이런 자리는 왜 만들어졌을까?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이하, 국회 개헌특위)가 2017년 초부터 공식 활동을 시작했고, 인권학계와 법조계를 중심으로 사회권 강화와 관련한 여러 개정안들이 이미 제출된 상태이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 시민들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점이다. 헌법이란 “그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공감하는 기본 가치에 입각하여 구성원의 기본 권리,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조직, 행사에 관한 기본원칙을 정하는 한 나라의 최고규범”이다. 따라서 기술적, 전문적 논의뿐 아니라 공론 과정을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윌리엄 탤벗의 설명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인권은 도덕규범으로부터 하향식의 추론, 특수 사례에 대한도덕적 판단으로부터 보편적 인권을 이끌어내는 상향식 과정 두 가지 모두를 통해 발전해왔으며, 이 중 후자가 우세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향식 과정은 종종 도덕적으로 지배적인 권위자의 판단에 도전한 피지배층의 사회운동이기도 했다. 인권의 발전을 위해 상향식 과정이 한층 더 강조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건강권의 경우에도 일반 시민들이 숙의 과정을 통해 목소리를 낸 선례가 있다. ‘2013 건강권에 관한 서울시민회의’에 참여한 시민 13인은 건강권에 대한 국제규범, 법적 근거에 대한 전문 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직간접 경험과 가치를 바탕으로 건강권 내용을 도출한 바있다. 당시 시민들은 전문적, 기술적, 분과적 관점을 보였던 전문가들에 비해 더욱 통합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을 보여주었다. 개헌 논의 과정에 시민이 참여하는 것은 구색 맞추기가 아니라 내용과 절차의 모든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건강권은 한국 사회에서 아직 많이 대중화되지 않은 개념이다. 한국 사회에서 건강은 의학적 처치의 대상으로 간주되거나, 극단적인 자기책임 혹은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운명론을 오가는 어떤 상태로 여겨지고는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체력은 국력’이나 ‘건강은 국력’처럼 국가주의 관점에서 동원가능한 사회적 자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건강이 개인적 책임을 넘어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문제라는 점, 건강이 인권이라는 관점은 아직 낯설다. 그러나 건강을 인권으로 바라보게 되면 인간 존엄성, 권력의 재조정, 의무와 책무성 기제를 강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건강에서 ‘권리’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집합적 선(善)보다 모든 개별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게 되고, 질병의 극복과 억제를 넘어 질병의 생성과 분포, 그리고 질병의 사회적 상태를 결정하는 권력을 인식하게 만들어준다. 또한 건강권의 초점은 보건의료에서 건강 상태의 통제로 옮겨가고, 환자를 바라보는 시각도 질병의 피해자나 보건의료의 수혜자에서 자신의 건강과 관련한 적극적 의사결정 참여자로 변하게 된다.

이날 증언대회에는 건강 악화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님을 포함하여, 학교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급식노동자 박화자 님, 중증 뇌병변 장애 아들을 돌보고 있는 최은경 님,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치이즈 님, 성소수자 청소년 위기지원센터 띵동의 활동가 이인섭 님, 화력발전소가 밀집된 당진의 환경운동가 유종준 님, 필수의료자원의 부족을 타개하고자 시민의 힘으로 공공병원건립 운동을 전개해온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의활동가 백승우 님이 참석했다. 이들은 각자의경험을 토대로 건강권 침해 사례와 요구를 이야기했다.¹ 이날의 증언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인들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보건의료 서비스를 넘어, 다양한 건강 결정요인이 중요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건강에 해를 미치는 것은 단순히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해서라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환경 때문이라는 지적이었다. 구체적으로는 ① 고온다습하고 환풍장치가 고장 나 있으며 바닥이 미끄러운 학교 조리실 같은 근로환경 ② 체벌과 폭력이 난무하고 지나친 통제로 학생을 압박하며 장시간 학습과 수면부족을 강요하는 학교 환경 ③석탄발전소에서 비롯된 먼지와 소음으로 살기어려워진 생활환경 ④ 필수 의료자원 부족과 오염시설 집중이라는 지역 불평등, 장애인의 교육기회 제한과 낙인‧ 차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차별과 직간접적 폭력, 청소년의 자율성 무시, 임금과 근로환경에서 비정규직 차별 등 불평등과 차별/혐오의 문제 등이 지적되었다. 따라서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건강결정요인에 대한 개입이 필요하다.

둘째, 기업이나 개인들의 건강침해에 대한 국가의 보호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 또한 거듭 지적되었다. 이를테면 가습기 살균제나 열악한 근로환경, 성소수자 차별 같은 문제의 경우, 국가가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다. 하지만 생활용품의 안전이나 근로환경의 안전보건에 대한 규제가 미비했던 것,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세력을 방조하는 것 등은 제3자에 의한 건강 침해를 방지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이다.

셋째, 건강과 의료보장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 역시 컸다. 구체적으로 ① 비정규직 노동자는 산재보험 신청이 어렵고, ②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는 이 때문에 의료이용에 제약을 받고 있었다. 또한 ③ 소외 지역에서는 응급의료 같은 필수 의료자원에 접근하기 어려우며, ④ 장애인의 경우 일상 돌봄에 필요한 장비와 소모품, 의료지원이 부족할 뿐 아니라 건강검진 같은 예방서비스를 받거나 치료하는 과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⑤ 가습기 살균제 같은 소비상품 때문에 건강피해를 입었음에도 구제가 불충분하고, ⑥ 청소년은 콘돔 같은 건강보호용품에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점 등이 제기되었다.

넷째, 이렇게 건강권 침해가 일어나고 이에 대한 해결이 어려운 것은 건강에 대한 의사결정에 시민 참여가 제한된다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근로환경 개선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단체 행동을 하는 것에 큰 제약이 있었으며,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는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해서 체납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고,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활용품에 대한 정보가 소비자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기에 가습기 살균제 같은 피해가 발생했다. 또한 지역 공공의료기관의 설립과 운영, 지역개발과 환경정책에도 주민 참여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한편 건강권 시민증언대회를 앞두고 온라인 플랫폼 “우리가 생각하는 ‘건강할 권리’란?”²에 올라온 시민들의 의견에는 보편성, 차별금지, 평등권, 건강하고 안전하며 인간다운 생활환경과노동 환경, 다양한 삶의 기회, 사회적 책임 등 다양한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이를테면 “돈 없어도 건강하게 살 권리”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 성폭력 OUT!” “모두가 건강히 일할 수 있는 사회!” “건강할 권리란? 다양한 삶에 대한 기회 보장!” 등이 대표적 발언이다.

이러한 시민들의 건강권 피해 증언과 의견을 종합하여 이날 행사에서는 개정헌법에 반영해야 할 건강권 요구안을 도출했다. 현행 헌법 제36조 3항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를 다음과 같이 개정하자고 요구했다.

첫째, 헌법 전문(前文)에 기본원리로서 ‘생명과 건강 존중의 원리’가 포함되어야 한다. 둘째, 건강권은 현행과 같은 부속 조항이 아니라 별도의 독립 조항으로 명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건강권의 속성,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건강결정요인과 이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소극적 의무, 시민들의 의사결정 참여 권리를 명시해야 한다.

제OO조

① [건강에 대한 권리성, 보편적·비차별적 권리로서의 건강권] 모든 사람은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을 누릴 권리를 갖는다. 성별, 연령, 지역, 고용 형

태, 장애, 성적 정체성과 지향, 경제적 부담능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

②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국가는 사람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제도․정책․서비스의 기획과 실행에서 제1항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

③ [소극적 건강권] 국가는 제3자의 건강 침해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할 의무를 지닌다.

④ [적극적 건강권, 공공의료 확충] 국가는 사회보장과 보건의료 제도·정책·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의 건강을 보호할 의무를 지닌다. 특히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충분한 수준의 공공의료를 제공해야 한다.

⑤ [참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람의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서비스의 기획, 실행, 평가과정에 당사자들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셋째, 건강권 보장을 위해 헌법상 여타 기본권 강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차별금지, 노동권, 노동3권, 인간다운 생활권, 환경권, 주거권 등의 강화가 중요하다. 

건강권 시민증언대회는 헌법 개정 과정에 시민의 목소리를 내고, 개헌을 넘어 건강권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고 이후 건강권에 대한 담론이 확산될 수 있도록 참여 단체들은 증언대회 내용을 동영상으로 제작하고 시민 증언들을 모아 개별 카드뉴스로 발간 중이며, 이론적 내용과 해외 사례를 추가한 연구보고서를 발행했다. 향후 국회 개헌특위 활동의 모니터링을 비롯하여 학술 토론과 미디어 캠페인을 지속할 것이다. 모든 활동과 자료는 온라인 플랫폼가브크래프트 캠페인 사이트 “건강할 권리를 헌법에!”³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각주

1) 행사 당일에는 시간 제약 상 시민들이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전 인터뷰를 진행하여 그 내용을 연구보고서 『헌법에 건강권을! 10차 개헌과 건강할 권리』 부록 1에 담았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http://health.re.kr/?p=4253).

2) http://govcraft.org/events/270

3) http://govcraft.org/discussions?project_id=health-right

[현장의 목소리] 현장 노동자 의견이 반영된 작업중지 해제? / 2017.12

현장 노동자 의견이 반영된 작업중지 해제?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상황실

 

 

지난 1022일 저녁715분경 한국타이어 금산공장 정련공정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고무 원단을 옮기는 컨베이어벨트와 롤에 끼어 숨졌다. 그 후 전면 작업중지 됐던 한국타이어 금산공장은 18일만인, 11 9일 모두 재가동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제50회 산업안전보건의날에 사망사고 발생 사업장의 안전 확보는 현장 근로자의 의견을 듣고 확인하겠다.”는 메시지를 발표 한 후, 고용노동부가 8작업중지 해제를 판단할 경우 현장 노동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심의위원회에서 현장의 위험 개선 사항과 향후 작업 계획의 안전 여부를 검토해 결정토록 한다.’고 운영기준을 내놓은 상황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이다. 그렇다면 한국타이어에서 작업중지 상황은 어떻게 마무리 됐을까? 자세한 이야기를 1121일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한국타이어지회 양장훈 지회장, 김용성 노안담당 부지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들어 보았다.

 

1022일 사고가 발생한 것을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회사에서 연락을 줬나요?

조합원이 저에게 사고가 났다고 연락을 했어요. 전화를 받고 회사에 곧 바로 들어갔던 거죠.


그럼, 사고가 발생하면 전 사원(작업자)에게 이를 알리는 시스템이 있나요?

그런 건 없습니다. 사고가 나면 은폐하고 감추려 하죠. 이번에는 사망사고였기 때문에 감출 수 없어서 이렇게 드러난 것이 아닐까 싶어요.

 

당일 사고현장에 지회장님의 재해조사 참여를 막았다고 알고 있는데요. 어땠나요?

처음엔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죠. 사고 때문에 연락이 와서 들어간다고 하니까 들여보내줬어요. 사고를 최초로 목격한 게 저희 조합원이에요. 조합원이 사고 목격 후 굉장히 두려움에 떨고 있고, 전화통화만으로도 조합원이 걱정됐어요. 금산공장에 1시간가량 걸려 도착했는데, 그때까지 그 조합원을 정신적 충격으로 덜덜 떨고 있는데 방치해 뒀더군요. 제가 최초에 들어갔을 때 사고발생 공정 주변 작업자들은 다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다들 불안한게 얼굴에 나타난 상태로요. 그래서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지 않았냐고 하니까. 안났 다고. 그래서 작업중지 해야 하는가 아니냐고 말하고, 사고 장소로 이동했는데, 아무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휴게실에 갔더니, 주임, 반장, 경찰 등 관계자들이 모여 있었어요. 그 상황에서 우리 조합원이 경찰조사를 받으며 계속 떨고 있었어요. 그래서 119를 불러서 그 조합원을 우선 병원으로 보냈죠. 후송하는 것만 보고, 사고 조사 하는 걸 확인하려고 회사로 다시 들어가는데, 그때부터 못 들어가게 막았어요. “니네 조합원 아니니까 들어가지 마라.” 사고에 우리 조합원이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고, 사고재해 조사에 조합원이냐, 아니냐를 따질 문제가 아닌데 경비실에서 출입을 통제하더라고요. 대전지방노동청(이하 노동청)에 전화를 해서 상황설명 을 하니, 노동청에서는 그와 관련해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면서, 회사에서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면 들어갈 수 없다고 하더군요. 출입문 앞에서 들어가려고 1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계속 그 대답만 들었습니다. 그때가 저녁 9시정도였는데. 마침 공장에 들어가는 근로감독관이 있길래 제가 그 사람을 붙잡아서 내가 출입을 해야 하는데 못 들어가게 하고 있으니,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를 해달라고 했는데, 별말을 안 하고 자기만 회사로 들어가더라고요.

 

처음엔 작업중지를 안했던거군요.

, 사고설비 이외에 그 옆의 설비들은 가동되는 상황이었어요. 24시부터 가동이 정지됐다고 알고 있어요. 빨리된 곳이 24, 다른 곳은 새벽 01시에 정지됐어요. 그래서 제가 거기 나와 있는 회사의 관리자(환경안전팀장)에게 당신 뭐하는거냐, 지금. 이렇게 중대재해가 일어났는데, 전체 중단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얘기했는데. 그런 건 신경 안 쓰더라고요.

 

재해발생 당일 출입통제로 사고재해 조사에 참여하지 못한 이후에는 참여하게 된건가요?

3일간의 재해 조사 중 마지막 날만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사실상 사고 현장조사가 거의 다 끝났고, 유족들이 어떻게 사고가 난 것인지 확인하고 싶다고 해서 그걸 재연하는 자리였어요. 어이없는게 첫날 출입통제로 못 들어오게 해놓고, 둘째 날 카톡으로 새벽4시에 (부지회장에게) 메세지를 보내놨더라구요. “8시까지 회 사에 들어와라”, 사실상 오던지 말던지 통보만 한거죠. 회사에서는 안 오길 바랐으니, 전화도 아니고, 새벽4시에 카톡으로 통보해서 4시간 후에 회사에 들어오라고 한 건데. 결국 회사는 참여를 요청했는데, 금속노조가 참여를 안한거다라는 명분을 만들려고 그렇게 한게 아닐까 싶어요.

 

사고 재해조사에는 배제됐고, 근로감독관들이 실시하는 조사에 결합하게 된 거네요.

노동청에서 24일부터 정기근로감독을 하는데 참여하라고 요청이 왔어요. 그래서 저희가 정기 감독의 내용 이 뭔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 공유하자고 했는데. 그 자료를 공유할 수 없다고 참여 중간에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정기 감독 진행하는 도중에 저희가 빠져 나왔어요. 자료공유를 안한다는 건, 저희를 들러리 세워놓고, 같이 조사한 것이니 결과에 대해서만 너희도 책임 있다고 하는 거라서 그렇게는 못한다고 빠져 나온 거죠.

 

전면 작업중지 중 1027일 물류공정만 먼저 작업중지를 해제하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해제과정도 기가 막힌게 회사와 노동청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인지를 재확인한 상황인 것 같아요. 노동부 내부 지침에 작업중지를 해제하려면 회사가 작업개선내용, 작업자 동의서,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이렇게 3가지를 노동청에 제출을 한데요. 그럼 노동청이 그에 따라 현장 확인을 하고 노동자들의 의견청취를 해서, 심의위원회를 거쳐서 작업중지를 해제하게 되는데 그게 순식간에 이뤄졌어요. 그 과정이 5시간 만에 진행됐어요. 심의에는 외부전문가를 위촉해서 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 외부전문가가 한국타이어의 문제를 제대로 모를 텐데. 30분 만에 심의를 하고, 바로 해제를 결정했더라고요. 물류공정에서 56가지의 문제가 확인됐는데, 그걸 30분 만에 해제를 했다는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불안전한 56가지의 요소를 그걸 일일이 확인을 해야 하는걸 텐데. 물론 심의위원 중에 노동청에 있던 사람들이야 업무를 계속 하던 사람들이니까 바로 파악하겠지만. 외부전문가는 몰랐을 텐데. 그게 가능한 건가요?

 

외부전문가는 누구인지 확인하셨어요?

그건 노동청에서 기밀, 비밀이라고 안 알려주더라고요.

 

물류공정을 해제할 때 현장노동자의 동의 절차는 있었나요?

그걸 하긴 했는데. 동의과정을 거치는 것도 문제가 있었어요. 동의를 받고 나서, 미동의자에 대해서는 1:1로 사측이 면담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거기는 협력업체라서 협력업체 부장이 1:1로 면담을 해서 동의로 바꿔 써라, 고쳐 쓰라고 해서 바꿨다고 당사자들이 저희에게 제보를 해주셨어요.

 

물류공정만 먼저 푼 건 직접 생산이 아니니 까, 그런 건가요?

완성차와의 물량공급 약속이 있으니까. 그래서 납품을 위해서 빨리 해제요청을 먼저 한거고, 그걸 노동청이 편의를 봐준 것이라고 생각돼요. 사고 다음날, 물류공정은 작업을 했어요. 그래서 노동청에 가서 전 공정 작업중지 아니냐고 항의를 하니까. 그 다음날 정지를 한 거고요. 그러다가 회사가 먼저 물류만 풀어달라고 요구 하고, 그걸 받아서 해제를 한 거죠.

물류공정은 전체공정을 작업중지 했는데 가동된다고 제보가 왔어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이죠. 그래서 제보를 듣고 노동청장과 면담을 하면서 그 얘기를 했더니. 그 얘기를 듣고서는, 회사에 나가있는 근로감독관에게 전달해서 오전에는 그 명령으로 중단했고요. 그런데 오후에는 숨어서 작업을 했답니다. 오전에는 밖으로 외부에 싣고나가는 작업을 했는데, 오후에는 밖으로 나가는 작업은 들통 나니까 못하고, 컨테이너에 싣기만 하는 작업을 몰래 말이죠.

 

그러다가 1133공장만 먼저 가동하는 데요. 이건 어땠나요?

물류공정 작업해제 절차 때문에 항의를 지속적으로 엄청 했거든요. 그래서 3공장 해제시에는 조금 더 보완해서 하더군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3공장도 제대로 확인을 하고 절차를 밟은 거냐고 묻는다면,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3공장에 대한 작업자 동의절차는 어땠습니까?

실명을 쓰고, 찬반을 표시하게 하고, 가동을 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서 날인을 하게 했어요. 현장의 문제를 적어내는 칸이 있었고, 거기에 몇 건의 개선지적 사항 의견이 있었는데. 그것도 개선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재개를 시킨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말이죠, 한국타이어 회사의 분위기상 주임이나 반장 앞에서 그런 걸 작성하도록 하면 자기 주관대로 제대로 작성을 못해요. 그런걸 비춰봤을 때 형식적인 절차인거죠.

 

언론에는 노동청이 노동자 과반수의 의견을 들어서 작업중지 심의위원회를 열어서 전면 재가동을 하게 됐다고 하던데요.

노동청 감독관도 저희에게 과반수 얘기는 했던 적이 없어요. 노동자 3%의 의견청취를 들었다는 얘기를 했고. 의견청취에 대해서도 저희 지회가 의견을 냈던 게 사측 에 가까운 노동자들만 데려다가 의견청취를 하면 올바른 의견이 나오긴 하겠냐는 의혹을 제기하니까. 노동청에서는 전체 작업자들의 전화번호를 받아서 자기들이 임의적으로 선택해서 전화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고는 했는데. 누구랑 했는지 알 수 없죠. 신뢰가 안 되니까요, 지금껏 봤을 때 말이죠.

 

한계적이지만 작업중지를 했던 효과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걸까요?

제일 효과라고 하면, 기존에 한국타이어에서는 안전보건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고 보는 게 맞거든요. 그런데 어쨌든 이번 사망사건을 통해서 받은 충격이, 이게 가족한테까지 전달된 거죠. 오랫동안 휴업을 하다 보니까. 한 측면에서 가족까지 전파되고 인식하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현장이 현재 가동 중인 상황이긴 하 지만 현장의 팀마다 조금씩 분위기는 다르겠으나, 작업재개 명령시에 나왔던 내용을 엄밀하게 준수하려는 노동자들의 의식이 생긴 것 같아요.

 

해제 시 작업자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한다고 했으나, 사실상 형식에 그치는 이런 상황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가 뭐겠어요. 사측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조합원들과 얘기를 하고, 작업자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회사 측에 전달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사측 관 리자들이 나와서 얘기하는데 나 찍히는 거 아냐라고 겁부터 먹을게 대부분의 노동자들인데. 노동조합이 있다면, 노동조합이 의견을 취합해서 회사에 전달하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타이어에 있는 두 노조가 같이 조합원 총회 형식으로 작업자들의 의견을 모으는 자리를 마련하고, 의견을 수렴해서 진행하는게 작업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일 텐데요. 그걸 가능하도록 하는게 노동청이 해야 할 또 다른 역할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현장의 목소리]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안전사회를 그립니다 / 2017.10·11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안전사회를 그립니다

안전사회시민네트워크(준) 창립준비위원장 송경용 신부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우리사회에서 '안전'문제는 주로 어떻게 다뤄질까. 흔히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안전모'다. 개인에게 장비를 지급하여 스스로 사고를 대응하고, 책임지는 것.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것이 변화했다. 안전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라는 점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과 머릿속에 박힌 것이다.

지난 10월30일 서울NPO지원센터에서 오는 11월 정식 출범을 앞두고 있는 안전사회시민네트워크(준)[이하 안전넷]의 창립준비위원장 송경용 신부를 만나 우리 사회가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안전문제와 안전넷의 설립 과정에 대해 자세히 들어 보았다.

안전넷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세월호 참사 때문이었죠. 사람들이 많이 잊어버리긴 했지만 과거에도 반복적으로 크고 작은 사고들이 일어났었어요. 서해 페리호 사건, 씨랜드 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가습기 살균제 문제 등 말이죠. 참사가 근본적으로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 뿌리를 뽑아야 하는데 그걸 관(官)에만 맡기면 안 돼요. 어떻게 시민의 힘으로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법과 제도, 정책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근본적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첫 번째로 사회의 패러다임을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존중하는 걸로 바꾸자고 했어요. 그동안 우리가 사람답게 사는세상을 외쳤는데, 가장 최우선에 생명과 안전이 있다는 거죠. 두 번째는 피해자의 눈으로 사건과 사회를 바라봐야 한다는 점이예요. 사건의 피해자는 해당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2, 3차로 피해를 입거든요. 세월호 피해자들에게 이제 지겨우니깐 덮자고 막말을 하기도 해요. 요새 늘 하는 얘기인데 산재로 상처 받는 사람들, 대형 참사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몇 명인지, 어디서 살고 있는지 몰라요. 사건이 일어나면 피해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빨리 돈 줘서 끝내자, 덮자는 식의 보상배상 논리로 보죠. 그러니 피해자의 입장, 관점에서 사건을 보고 대응 하는 게 중요해요."

우리 사회에서 안전 문제는 사회 정책이나 제도, 회사의 의무와 책임이 아닌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동안 안전문제는 개인 탓으로 돌렸어요. '너'가 부주의해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학교 갈 때 길 조심하라고 하잖아요. 우리는 늘 아이에게 조심하라고만 했지 아이들이 다니는 '길'에 대해선 고민해본 적이 없어요. 환경이 안전해야 아이들의 안전이 보장되는 것인데 말이죠. 일터에서 노동자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
정사업본부가 집배 노동자들에게 무제한 연장노동을 강제한다는데, 그것 자체가 용납할 수 없는 거죠. 어떻게 사람이 무제한 연장노동을 합니까. 기계도 아닌데요."

안전운동 의제 중 최근 논란이 되었던 문제가 핵발전소 재개입니다. 공론화위원회 재
개 결정을 두고 평가가 엇갈리기도 하는데요. 공론화 과정과 결정에 대해 어떻게 보
시나요? 그리고 핵발전소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의 규모가 38%로 확인됐습니다. 노
동자들이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놓이면 안전이 보장되기 어렵다고 보는데요. 안전과
노동의 문제는 어떻게 연결고리를 찾아야할까요?

"사실 핵발전소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을 위협하는게 너무 많아요. 1년에 2천4백 명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어요. 자살자 역시 1년에 3만 명이 넘습니다. 너무 끔찍하죠. 누군가 브레이크를 걸고 더 이상 안 된다, 단호히 조치를 취하는 게 필요합니다.

정리하면 첫 번째, 노동환경 자체가 안전해야 합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똑같은 사람인데 안전해야죠. 안전 앞에서는 좌-우, 정규직-비정규직이 의미가 없어요. 우선 노동환경이 안전하냐, 안하냐 그걸 집요하게 물어봐야 해요. 두 번째는 위험의 외주화를 용납해선 안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고, 비싼 노동과 값싼 노동으로 인간을 나누는게 상품화인거죠. 인간에게 등급을 매길 수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 영상메시지를 통해 '정부는 제도는
물론 관행까지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찾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안전문제를 대하는 태도와 관점이어떻다고 보시나요? 그리고 안전사회를 위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준비과정에서 대선 후보들이 다 약속했었어요. 문재인 대통령도 반올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도 했죠. 의지가 많다고 봅니다. 시민 안전, 노동 문제에 있어서 기대를 갖고 있어요. 우리도 함께 노력해야겠죠."

안전넷 활동을 해오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이신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올해 4월 광화문광장에서 한 약속식입니다. 아직 출범 전 상태였죠. 반올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세월호 가족 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셔서 잘 치를 수 있었죠. 그때 대선 후보들에게 생명안전에 대한 약속을 받았고, 약속을 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던 행사라고 봐요. 그리고 첫 번째 이야기 마당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세월호 가족 분들을 만나 이야기 나눴을 때 너무 의미 있었고, 크게 감동 받았어요. 그때 가슴 떨린 감동의 힘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정말 우리가 함께 해야 하는구나.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안전넷과 신부님께서 생각하시는 안전운동의 중요한 가치가 궁금합니다.

"사회적 환경, 노동환경을 비롯해 근본적으로 정부나 기업 등 책임 있는 주체들이 안전과 생명에 대해 인식하고, 제도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봅니다. 시민들도 '누가 알아서 해주겠지'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사회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조금 더 우리 사회가 품격 있는 사회, 물신주의를 넘어서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중요한 운동인거죠."

안전넷이 11월 정식 출범하는데요. 어떤 계획과 취지에서 진행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준비 정도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노동안전보건운동을 하는 활동가와 단체들, 시민단체, 인권운동단체, 노동조합, 정당 등 개인과 조직이 연대할 수 있는 것들에 무엇이 있을까요?

"어떤 인권운동가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생명안전 운동이야말로 우리 사회 운동의 블루오션이라고요. 그동안 쪼개져서 사안별로 운동해왔어요. 근본적 질문, 어느 순간 길을 잃어버릴 때도 있고, 그 사안이 너무 힘들 때도 있고, 정말 이 방향으로 모아져야 한다 하면 할수록 그랬어요. 그러다가 생명안전 문제,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근본을 되돌아보
게 된 거죠. 우리가 무엇 때문에 어디를 바라보고 운동했는지요. 때로는 싸우고 등 돌렸지만, 다시 근본에 대해 성찰하고 돌아볼 수 있었어요. 우리가 각자 20~30년간 열심히 살아왔는데 좀 더 근본적인 성찰을 하면 힘을 모을 수 있겠죠.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은 안전하고, 건강해야 한다는 겁니다. 노동이 존중 받는 사회, 인권이 존중 받는 사회라는 말이 결국 동일해요. 하나로 힘을 합칠 수 있는 운동이라고 봅니다. 어떤 이론, 조건, 이념에 관계없이 말이죠."

그렇다면 신부님이 바라시는, 안전넷이 그리는 안전사회 모습은 어떤 걸까요?

"정부든 기업이든, 시민이든 생명과 안전이라는 가치가 모든 법, 제도, 정책에 우선순위가 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어떤 정책과 제도를 만들 때 생명존중의 가치를 담고 있느냐, 이게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위험의 외주화도 없어진다고 봐요. 시민들도 안전문제를 생명에 대한 존중, 그렇지 않으면 생명에 대한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봅니다. 얼마나 돈이 있느냐, 없느냐 그걸로 사람을 줄 세우고, 금수저, 흙수저 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치가 전도 되어있어요. 궁극적으로는 시민들 사이에서 이런 운동을 통해 가치관이 바뀌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저희에게 들려주시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러 분이 꼭 읽어보셨으면 하는 책이 한 권 있어요. 19세기 영국의 사상가 존 러스킨이 쓴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라는 책입니다. 마태복음 성경에 나오는 포도원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침 9시부터 와서 일 한 노동자가 있어요. 그리고 일이 다 끝난 후 오후 4시에 온 노동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포도 농장주가 둘에게 임금을 똑같이 줘요. 아침 9시에 온 노동자가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랬더니 농장주가 뭐라고 하냐면 '그건 자네하고 한 약속이다. 이 사람은 하루 종일 일자리를 못 구해서 헤매다왔다.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니다.' 

즉 임금은 그 사람이 몇 시간 일 했느냐를 기준으로 주는 대가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걸 초월 하는 거죠. 사람이 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재충전하고, 가족과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 노동에 대한 대가이고, 그것이 함께 우리가 지녀야할 의무인거죠. 뜻하는 바가 많은 책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쉽게 '인적자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해요. 사람을 상품화하고, 도구화 하는 용어는 주의해야 합니다. 그 말 속에 담겨 있는 생명에 대한 태도, 자본주의식 사고인거죠. 안전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부터 바뀌었으면 합니다."

※ 11월23일 목요일 저녁7시부터 프란치스코교육회관 410호에서 '생명안전시민넷' 창립식이 열릴 예정이다. 

[현장의 목소리] 부산진구청의 공공성 강화로 행복하게 아이들 보육하고 싶어요! / 2017.9

부산진구청의 공공성 강화로 행복하게 아이들 보육하고 싶어요!

- 보육노조 최초파업 중인 성북 초등어린이집분회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부산의 중심지 서면 일대는 부산진구청이 담당 한다. 우뚝 솟은 부산진구청 앞 가로수 아래에는 50일이 다 돼가도록 돗자리를 깔고 무더위를 지나며 파업농성 중인 4명의 보육교사가 있고, 부산진구청 정문 안으로는 ‘과연 이런 억지 집회가 정당한가?’라는 제목의 어른 키보다 큰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단순한 노사문제로 바라 보는 부산진구청을 향해 공공의 보육현장을 제대로 관리하고 책임지라고 주장하는 보육교사 들은 어째서 이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것일까?

부산진구에 있는 성북 초등어린이집 보육교사 노조 윤경순 분회장, 이서영, 김현아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성북 초등어린이집은 박순애 원장이 20년 가까이 부산진구청으로부터 재위탁을 받아오면서 4년 동안 25명의 교사가 교체될 만큼 각종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노동착취와 인권을 짓밟아 오고 있었다고 한다.

“2014년에는 친환경 페인트칠을 했는데. 2015년에는 페인트를 벗기는 작업까지 했어요. 3~4일에 걸쳐서 사포를 들고 생전 처음 마스크를 낀 채 온종일 창틀의 페인트를 손으로 벗겨냈어요. 호흡기도 좋지 않고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었지만, 특히 손톱이 빠져나갈 듯 아파서 후배 교사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요.

임신한 교사에게도 이일을 시켰어요. 밤 10시가 넘어 퇴근을 한 날도 있었고, 점심은 각자의 돈으로 사먹어야 했죠.

보육시간 아이들과 함께해야 함에도 불러내어 잡무를 시킬 때가 많았죠. 가까운 예로 2016년 5월 시민 공원 봄꽃 축제 후 원장님의 집, 지인들, 학교, 어린 이집에 두기 위해 시민공원에 전시되었던 화초들을 가지러 3일을 시민공원에 다녀야 했어요. 한두 개씩 가져가는 시민들과 달리 어린이집 차에 넘치도록 실어 “이렇게 많이 가져가면 곤란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무거운 화분들을 반복해서 날라야 했는데 부끄럽고 교사로서의 자존감도 떨어지고 몸도 아주 아팠어요. 그 시간에 같은 반에서 근무하는 동료는 혼자 영아들을 보육하며 힘들어했죠. 며칠 동안 허리 어깨 근육통으로 파스를 바르고 생활해야 했어요.“

그런데 문제의 발단은 2015년 부산진구에서 제정한 조례로 인해 원장의 정년이 다되어지자 구청이 계약해지를 통보했고, 원장이 이에 불복 하고 행정소송을 진행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소송이 시작되고 부신진구청의 어린이집 감사, 경찰 조사가 시작되었고, 교직원들은 원장의 협박과 구청의 진정서, 탄원서, 각종 진술 및 경찰서 출석 요구 등으로 고초를 겪게 되었고, 결국 2016년 3월부터 6월까지 9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하였다고 한다.

“현장에 있는 저희가 알고 있는 내용이 많으니 구청 에서 행정소송에 필요한 탄원서를 적어 달라고 했어요. 여기에 협조해주었다는 이유로 원장님이 저희를 해고하려 했고 이를 위해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죠. 그래서 조리사님이 제일 먼저 노조에 가입하 셨어요.

사실 주변에서 ‘노동조합’이라는 것도 있으니 가입 해서 힘을 키워내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노동조 합에 대해 왜곡된 말을 들어서 망설이고 있었죠. 그러던 차에 3년 차인 이서영 선생님을 해고했어요. 2학기가 시작하기 전 이제 사회 초년생인데 못된 것만 배워서 못된 짓만 한다고. 어차피 재계약을 안 할거니까 지금이라도 다른데 알아보라고. 다른데 취직하면 자기한테 연락이 오는 데 조금이라도 좋게 말해줄 때 가라고 했어요. 노조에 가입할까 봐 으름 장을 놓으며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원장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내기 위해 노조에 가입한 거죠.“

2016년 6월, 박순애 원장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을 빌미로 구청이 계약을 해지하고, 구청의 직영 운영 하에 김석순 원장이 투입되면서두 명의 원장이 모두 어린이집에 출근하였다고 한다.

“아이가 화상을 입은 일이 있었어요. 원장님 부재중에 안전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거죠. 뉴스가 나가고, 학부모님의 항의 전화가 오고, 선생님들은 난리가 났는데 원장님은 심신이 약하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셨던 거죠. 그래서 구청에서 새로운 원장님을 파견 보냈고, 두 원장 체계로 저희가 몇 달간 지내게 된 거죠.”

결국, 구청의 행정패소로 김석순 원장이 물러가고 원장자리를 되찾은 박순애 원장의 노동 탄압은 극에 달하였고, 2016년 12월 구청은 갑작 스럽게 2017년 12월 성북 초등어린이집을 폐원하겠다고 통보하였다고 한다. 노동조합은 시민단체와 함께 폐원반대 투쟁을 전개하여 막아 냈으나 원장은 이를 이유로 2017년 원아 모집을 하지 않아 1차 정리해고를 강행하여 결국 교직원 7명이 해고압박을 못 이기고 퇴사하였다고 한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전에 저희가 아동학대를 했다는 아동학대 시말서를 강요했어요. 아이가 화장 실에서 울었는데 일부러 배변을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앉혀서 울렸다는 내용으로 적으라고 했어 요. 그리고 원장님은 아이의 울음소리만 녹음하고 있고요. 그래서 배변훈련 중이었고 그에 맞는 것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만약 원장님이 아동학대로 판단한다면 아동학대 전수조사를 신고해서 조사를 받겠다고 했죠. 설사 저희가 아동학대를 하였다면 원장으로서 당장 바로잡도록 조처를 하는 것이 맞으나 그 상황을 그대로 녹음하고 있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인 거죠.

원장님 손녀 반을 2년이나 했거든요. 그때 내 손녀 한테 아동 학대한 것을 다 알고 있고, 증거를 가지고 있으니 노조 가입하지 말라고 협박도 했어요. 최근 에는 그 손녀가 저희 반에 있었어요. 초과보육이어서 다른 반 선생님과 분반을 했었는데 저에 대해서그 선생님에게 자꾸 물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동학 대를 걸어서 해고하려고 했던 거죠.“

조합원이 급격히 줄어들자 원장은 원아를 조금더 모집하여 비조합원 교사 2명을 채용하였다.

그리고 조합원에게는 업무반려, 불가능한 업무 지시, CCTV 감시압박 등으로 괴롭히며 징계위협을 가하다 또다시 조리사에게 경영상 이유로 2차 정리 해고통보를 하였으나 현장투쟁으로 철회시켰다고 한다.

“지난 3월엔 조리실에 조리사님의 동의도 받지 않고 CCTV를 몰래 설치했어요. 지금은 정보공시에는 조리실에 CCTV가 설치되어있다고 변경되어 있기는 하지만 당시, 눈에 불을 켜고 조리사님을 해고 하기 위해 징계 거리를 찾으려고 했던 거죠. 분회장님 같은 경우 원장님의 요구대로 안 하시니 부장직을 박탈하고 업무지시 거부통보서를 줬어요. 해고를 위한 준비단계로 징계를 위한 서류를 모으는 거죠. 변호사가 옆에서 알려주니 법적으로 꼼짝 못 하게 해놓고 고소 고발하려 한 거죠.”

2017년 7월, 조리사 정리해고가 좌절되자 원장은 비조합원을 무리하게 채용하더니, 극심한 차별대우와 탄압으로 교직원들이 더는 견딜 수없게 만들었고, 보육 노조 성북초등어린이집 분회는 2017년 7월 24일 보육노조 역사상 최초로 파업에 돌입하였다. 원장은 조합원 교사들이 맡고 있던 반만 부분 직장폐쇄를 시켰고, 부산 진구청은 아이들을 다른 어린이집으로 전원시 켰다.

“저희가 파업을 하면 학부모님과 아이들이 피해를 보는 거잖아요. 그래서 꼭 파업해야 하나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만두는 것 말고는 더 버티기 힘들었어요. 파업하면서도 많이 힘들죠. 그래서 많이 울었는데 연대해주러 정말 많이 오세요. 맛있는 것도 많이 사 오시고 ‘힘내라고 이길 수 있다! 끝까지 힘내라! 할 수 있다!’ 이런 격려의 말씀으로 싸움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부산진구청은 파업은 노사 간의 일이라며 문제 해결에 아무런 의지가 없고, 한때 이용했던 교직원들이 자신들 때문에 생계를 잃거나 지옥 같은 현장에서 고통받는 부분에 대해 책임회피 에만 급급하며 적대시하고 있다. 쉽지 않은 싸움이라는 것도 예상되고 앞으로 더 심한 탄압과 난관이 기다릴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 들어보았다.

“노조 가입하면 뭔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줄 알았 는데 우리가 이겨나가야 하고, 파업을 시작할 때도 어느 정도 싸우면 결과가 나올 줄 알았는데 더 큰 산이 나타나요. 그래서 하루는 힘 빠졌다가 하루는 다시 또 다짐하곤 하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쉽지는 않겠지만 많은 분이 관심 가져주시고, 저희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투쟁해서 이기지 않겠나 생각해요. 건강이 좀 염려되지만 끝까 지, 투쟁해야죠.”

행복한 보육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 투쟁하는 것이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한다. 아이들 보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눈에는 눈물이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보고 싶죠. 어제도 아이들 사진 보면서 흉내 내면서 아이들 생각했어요. 그런데 돌아가면 아이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반겨줄까 하는 염려도 돼요. 아이 들이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지만 지금은 전원을 시켰으니 아이들과 함께할 수없는 게 마음 아프죠. 그래도 아이들 앞에서 원장님 한테 끌려나가는 모습, 아이들이랑 같이 있으면서 울었던 모습, 아이들 앞에서 소리 지르는 원장님께 대응해야 하는 좋지 못한 모습을 아이들에게 계속 보여주는 것보다 당당하게 이겨내서 ‘너희 선생님 들은 올바르게 너희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험난하지 만, 이 길을 갔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견뎌 내는 것 같아요.”

운영의 투명성으로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국공 립어린이집이 민간위탁으로 공공성을 상실해 가는 현장에서 이를 막아보고자 파업투쟁으로 맞서고 있는 보육노동자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마지막으로 들어 보았다.

“저희처럼 투쟁하는 분이 있다면 좀 더 용기 내자고 말하고 싶어요. 투쟁하면서 왜 나만 이런 걸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나 여러 연대투쟁을 다니며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노조가 있는 일터를 많이 접했거든요. 각자 일터에서 힘든 점이 있지만 자기 일터에서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육노조 최초로 파업을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기도 해요.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따라 보육노동자의 예시가 될 수 있고, 보육노동자의 노동조건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끝까지 열심히 싸울 거예요. 그래서 꼭 이겨내 볼게요.”


[현장의 목소리] 현장을 바꾸고 삼성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 2017.8

현장을 바꾸고 삼성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동인천분회 김인석 분회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지난 201376년의 무노조 경영을 자랑하던 삼성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그 어려운 걸 해낸 노동자들은 바로 에어컨, 냉장고, TV, 휴대폰 등을 설치/수리하는 노동자들이었다. 노동조합은 민주노조 깃발을 올리고 한국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삼성에 맞서 열사 투쟁, 본사 앞 노숙투쟁 등 치열하게 싸웠다. 투쟁 이후 현장의 노동조건을 점차 변화시켰고, 비수기에도 일정 생활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삼성은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각 센터 사장(이른바 바지사장)을 앞잡이로 세워 노동조합 탄압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이에 맞서 지난해엔 촛불을 들었고 올해는 '재벌개혁 실천단 SEEN()'을 구성하여 투쟁하고 있다. 이번 투쟁을 비롯해 노동조합의 현안 등 문제와 관련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지난 726일 인천에서 김인석 분회장님을 만났다.

노동조합 설립 이후 변화된 현장

저희는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휴대폰 등을 설치/수리하는 일을 한다. 아무래도 가장 더운 7~9월이 성수기인데 그중에서도 78초가 가장 바쁘고 힘든 시기다. 아침 8시 출근해서 밤 8~9시에야 일을 마친다. 주말도 계속 출근해야 하고 저도 이번 3주 동안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아무래도 서비스 일을 하다 보니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고객이 불편호소에 퇴근 시간이 지났 다고, 주말이라고 모르는 척 하기 어려운 조건이 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작업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하루 10건 정도의 일을 한다고 한다.

에어컨의 경우 한번 고칠 때 건당 30~1시간 정도 걸린다. 일할 땐 안전 장비와 공구 가방도 챙기 고, 이동할 땐 운전도 하는데 그런 시간이 책정되어 있지 않다 보니 늘 시간에 쫓긴다. , 작업자들이 에어컨이나 세탁기 같이 무거운 가전제품을 들고 나르다 보니 어깨, 허리, , 손목, 다리 등 온몸이 다 아프다. 물리치료를 받고 싶어도 지금도 밀려있는 고객콜을 더 미루고 가야 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가장 바쁜 성수기에 병원에 가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김인석 분회장은 그나마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 점심시간은 보장된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점심시 간이 없어서 작업자들이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는 데,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나서 이제는 점심시 간에 콜도 받지 않고 오롯이 밥을 먹고 쉴 수 있다 고 한다. 뿐만 아니라 현장은 노동조합 이전과 이 후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한다.

"노동조합을 만들기 이전엔 기본급도 거의 없어서 항상 출장 건수에 목을 매는 삶이었다. 비수기 때 한 달에 60건 해봤자 100만 원도 안 남아서 가족에게 늘 미안하고 면목 없었다. 차도 직접 사서 할부 갚 고, 기름 넣고, 밥도 내 돈으로 사서먹고, 휴대폰 요 금도 내 돈 내면서 일했기 때문에 아무리 일해도 돈 을 벌기 어려웠다. 일하는 환경도 위험해서 고소작 업을 할 땐 목숨을 걸고 혼자 일해야 했다. 고객한테 는 평가 점수 잘 받아야 해서 늘 굽신거리며 저자세 로 일하는 문화였다. 그러다 노동조합이 생기니까 고객한테 내 자존감을 지키면서, 고객에게 할 수 있 는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되었다. 기본급 비중도 급여 중 70~80%로 올라가면서 일을 할 때 여유도 생기 고 건수에 목을 맬 정도는 아니게 되었다. 위험한 작 업을 해야 할 땐 추가 인원과 안전장비가 올 때까지 고객에게 기다려 달라고 요청하거나, 지금 당장 작 업을 할 수 없다고 고객에게 동의를 구할 수도 있게 되었다.“

아무리 현장의 노동환경이 열악하다고 해도 무노 조 경영 삼성에 맞서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싸움 을 해야겠다고 결의하게 된 배경과 과정이 궁금 해졌다.

회사에서 우리를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늘 실 적 압박 스트레스는 주면서 정작 줘야 할 수당도 제 대로 주질 않았다. 특히 지금 센터 바로 직전 팀장하 고 사장은 돈도 너무 떼먹었다. 예를 들어서 센터에 서 한 달 500건을 일하면 작업자들이 월급 250만 원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200만 원만 주고 나머지 150만 원은 팀장하고 사장이 먹은 거다. 심지어 한 명분도 아니고 40명분을 몇 년 동안이나 가져갔다. 그사이 사장은 빌딩 2개를 올리고 보트도 샀다고 들 었다. 그래서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싸워야겠다 생 각하고 투쟁과정에서 조합원들이 당신이랑은 같이 일을 못하겠다고 요구해서 전 사장의 목을 날렸다.”

촛불 이후 재벌개혁 투쟁에 나서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지난 4월부터 쟁의권을 얻고 투쟁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 싸움은 가장 현장이 바쁘다는 여름에도 이어지고 있다. 대체 어떤 이유에서 재벌개혁 투쟁에 나서게 된 것일까?

노동조합에서 지난 촛불 이후에 적폐청산을 하겠다던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삼성 이재용 부 회장도 감옥에 있으니 사회적으로 적폐청산의 목소리를 이어 가보자는 뜻으로 '재벌개혁 실천단 SEEN()‘을 만들고 투쟁하게 되었다. '재벌개혁 실 천단 SEEN()’은 전국에 조합원 30명이 34동안 서울로 모여 다양한 실천을 하고 있다. 벌써 7차례 210명의 조합원이 참여했는데 단체티셔츠나 조끼를 입고 광화문, 시청, 여의도 등에서 재벌개혁 캠페인을 해왔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따릉이 자전거로 우리 문제를 알리는데 시민들 호응이 좋았다. 한강에서 얼마 전까지 가장 핫하던 최저임금 1만원 노래를 배우고 춤도 배웠다. 학생, 반올림 동지들과도 함께 연대하고 있다. 땀도 나고 체력적으로 힘들기는 한데 그래도 행복하고 즐겁게 투쟁하고 있다. 이전에 52일 동안 삼성 본사 앞에서 노숙투쟁을 했을 땐 조합원들이 너무 불안해하고 힘들어 해서 이번엔 그렇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고민 하고있다.”

동인천분회의 경우 투쟁도 함께 하면서 조합원들 이 경제적으로도 연대하고 있다고 한다. 34일 동안 지명파업으로 일을 안 하면 경제적으로 부 담이 되기 때문에 현장에서 그동안 일했던 동지 들이 급여를 나눠서 보전해주는 것이다. 그랬더 니 조합원과 그 가족들이 돈도 돈이지만 어려운 일을 함께 나눌 동료가 있고 가족에게도 믿음과 신뢰를 주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현재 어 렵게 진행되는 임금협상에서도 이러한 노동조합 이 단결력을 잃지 않고 있다.

올해는 임금 협상만 하고 있는데 역시나 이전과 마 찬가지로 원청인 삼성은 전혀 대화에 나서지 않고 전국 센터 중 대표단을 구성한 사장들이 나오고 있 다. 이렇다 보니 노동조합은 금속노조 중앙교섭 기 준으로 기본금 약 30만원 인상, 식대 7,000원으로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원청이 아니라 결정 권한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모두가 잘못인 걸 아는데 혼자만 모르는 삼성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배제하는 건 삼성이지만 많 은 대중이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게 사실이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에 대해서도 고 객이나 시민들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그 평 가에 따라 조합원들이 영향을 많이 받는 건 아닌 지에 대해서도 궁금함이 있었다.

이전부터 저희가 선전전하고 그러면 시민들 반응 이 긍정적이었다. 시민들이 돈도 많이 버는 삼성 이 너무한다”, “삼성에도 노조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들 많이 해준다. 고객들도 회사에서 매번 서 비스 평가하는 전화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전화 를 잘 받아주겠다고 말씀한다. 또 고객들은 삼성 에 대한 불만도 많이 토로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삼성에서 만든 가전제품을 하나씩은 사용하는데, 삼성이 무상으로 A/S를 하는 게 아니 고 고객이 자기 돈 들여 서비스를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부담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삼성은 지금도 노동조합을 탄압하면서 진짜 사장 은 본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전혀 반성도 변화도 없는 것이다.

여기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 까지 모두 삼성 직원인 줄로 알고 있었다. 삼성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 3개월 동안 교육받고 사원 증 받아서 삼성 옷 입고 일하는데 어떻게 삼성 직원 이 아니냐. 일할 때도 삼성 관리자가 우리 일을 다 관리 감독 하는데 우리는 그저 협력업체 직원이라 고만 한다. 그래서 삼성을 상대로 불법파견 사용과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진행 중이다.”

현재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은 1심에서 노동조합 이 패소하고, 2심 재판을 앞둔 상황이라고 한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현장

현장에선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각종 소송과 비 정규직 문제에 있어 유리한 국면을 맞이했다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삼 성이 변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높은 상황에 서 새 정부가 줄곧 적폐청산, 비정규직 제로 시대 를 열겠다는 메시지와 함께 행동을 보여주고 있 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화겠다는 의 지가 있고 저도 그렇게 돼야 대한민국 노동자들이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조합원들도 기 대를 많이 걸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때 우리가 중심 을 잘 잡고 사회변화에 노동조합이 어떻게 대응해 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은 지난 촛불 에선 박근혜, 이재용을 감옥에 넣는데 함께 했다 면, 이제는 우리 일터를 바꾸고 재벌을 사회를 개 혁하기 위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알고 있 다. 삼성을 바꿔야 이 사회도 바꿀 수 있고 사회를 바꿔야 삼성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싸움에 한국에서 힘이 가장 강한 상대를 만나 애 쓰고 있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의 건투를 빈다

[현장의 목소리] 상식이 통하는 회사, 평범한 삶을 위해 우리는 싸웁니다 /2017.7

상식이 통하는 회사, 평범한 삶을 위해 우리는 싸웁니다

- 전국금속노조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 파업 투쟁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고층 건물과 인공 운하,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는 인천 송도 국제도시. 이곳에 위치한 자동차 전자부품생산공장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노동자들의 일상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생산공장 노동자 354명 전원 비정규직인 '100% 비정규직 공장' 만도헬라에서 드디어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그러나 사측은 대화가 아닌 탄압으로 노동조합을 대하고 있다. 100% 비정규직 공장에서 그간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왜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하고 있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공장 앞 농성장에 찾아갔다. 


지난 6월 23일 진행한 이 인터뷰는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 김태섭 사무장, 안정훈 조직부장, 한샘 여성부장, 홍광수 노안부장이 함께했다.


김태섭 사무장에게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계기에 관해 물었다.

"노동조합 설립 준비는 작년 11월부터 했고, 올해 2월 설립총회를 했습니다. 조합원들이 임금에 대해 불만이 많았어요. 결정적 계기 중 하나가 통상임금인데, 기존 상여금이 400%였는데 회사에서 통상임금 적용해 기본급화 시킨다고 해서 300%를 시급으로 전환했죠. 표면적으로 시급은 굉장히 높아졌는데, 그걸 빌미로 임금인상이 없었어요. 그리고 이 회사가 365일 쉬는 날이 없어요. 설, 어린이날, 추석, 크리스마스 전혀 못 쉬어요. 12시간 주야맞교대로 일하면서 운영하다 보니 장시간 문제도 컸죠. 그래서 몇몇 친한 동료들과 '이대로는 안 된다, 우리도 노동조합을 만들자.'는 판단을 했어요."


안정훈 조직부장은 임금과 노동시간 문제 외에도 그동안 회사가 얼마나 비인간적이었는지 털어놓았다.

"동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원청 직원에게 가봐야겠다고 했더니, '네가 지금 가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냐, 가지 마라'고 했어요. 정말 비인간적이죠. 그리고 출근하다 교통사고가 나서 머리에 피가 나서, 전화해 출근 못 하겠다고 하니깐 대충 치료하고 오라고 한 적도 있어요. 여성 직원은 성희롱 당해서 얘기했는데, 가해자는 한 달 감봉만 당하고 본래 부서로 복귀했어요. 결국 피해자인 여성 직원은 가해자 얼굴 못 보겠어서 퇴직했고요."


만도헬라는 전체 고용인원 700명 중 생산직은 비정규직, 사무직은 정규직으로 분리하고 임금, 고용, 복지 등 전반적 노동조건에서 비정규직을 차별했다.

사무장 "임금은 정규직 절반 정도예요. 근무시간은 정규직의 경우 주5일 근무에 주간근무만 하고, 비정규직은 주7일에 12시간씩 주야맞교대죠. 회사에선 비정규직 연봉이 3천5백에서 4천만 원이라고 하는데 실제 그돈을 받으려면 주야맞교대로 1년에 10번~15번만 쉬어야해요. 실제 저는 기본급이 145만 원 정도인데, 200만 원 이상 받으려면 잔업과 특근을 안 할 수 없죠. 그리고 복지라고 할 것도 없어요. 밥만 정규직과 식당에서 같이 먹어요."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척박한 데 비해, 노동조합 가입률은 2천 노동자 중 200만 명, 약 10%정도다. 게다가 어렵게 노조를 만든다 해도 자본은 노동3권은 무시한 채 오로지 노조깨기에 혈안이다. 이렇게 노동조합을 만들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간부들은 우선 노동조합 편견 깨기에 공들였다.

사무장 "저희 조합원들은 연령대가 20~30대로 낮아요. 관심도 없었죠. 저부터도 노조 활동하기 전엔 뉴스로 안 좋은 모습 접하다 보니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어요. 그거 깨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죠."


개인으로 있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란 조직으로 뭉치고,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현장에 변화가 일어났다. 권력 관계가 동조합으로 기운 것이다.

사무장 "과거에는 관리직들이 시키면 당연히 해야 하고, 주말 근무나 잔업도 얘네가 스케쥴 짠 거에 의해서 통제당했죠. 노조 생기고 나선 본인이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되는 거구나를 이제야 조금씩 느끼며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현재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는 ▲불법파견 인정 및 정규직 전환 ▲부당 인사 명령 철회 및 부서 원상회복 ▲장시간 노동 축소 및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5월 31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 전 하청업체 두곳과 11차례 교섭을 했는데, 단 한 번도 사측 제시안을 제출하지 않았다. 지방노동위원회 조정 받는 날 겨우 기본 단협안을 제출했는데 내용이 너무나 부실했다고 한다. 그날 조정중지가 떨어졌다.

사무장 "하청업체 서울커뮤니케이션과 쉘코아가 순차적으로 제출한 기본 단협안 내용이 똑같았어요. 이걸보면 원청 개입이 확인되죠. 교섭하는 과정에서 하청업체는 노조와 교섭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노조의 요구안을 들어줄 능력이 없다는걸 잘 알고 있어, 실제 결정권한을 가진 원청에 대화하자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회사는 계약해지 및 부당인사 명령을 내렸어요. 당한 부서가 노조 임원간부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에요.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려는 의도죠."


조직부장 "품질부서 대상으로 인원축소를 했어요. 품질 하던 사람들이 다 생산라인으로 보내졌죠. 품질에 5명 정도 소수로 남겼는데, 그 소수는 입사한지 얼마 안됐거나 사측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이에요."


파업하면서까지 지키려는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의 바람이 담긴 단협안의 주요 내용을 물었다.

사무장 "임금요구안은 금속노조 동일요구예요. 그 외 성과금, 상여금, 교대제 개편에 대한 노조와의 논의, 차후 개선을 해나가기 위해 합의체를 꾸리자는 것이 가장 큰 핵심이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노조를 인정 받는 거예요."


만도헬라는 형식적으로 2곳의 도급업체와 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제로는 원청인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의 지휘·명령을 받는다. 지난 3월 노조는 원청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원청은 발빠르게 증거를 은폐하고 있다고 했다.

조직부장 "고소고발 준비 과정에서 저희가 자료를 입수했는데요. 원청 직원들이 로고를 다 지우고, 싸인 승인 받았던 것도 지우더라구요. 불법파견 증명할 자료가 어마어마하게 많은데도 안하고 있어요."


게다가 파업에 돌입하자 대체 생산을 위해 관리직, 아르바이트생을 투입했다. 대체생산 부품은 현대, 기아차 완성차 브레이크 장치인데 불량품이 속출하고 있어 시민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조직부장 "브레이크와 핸들 생산을 현재 아르바이트생들이 하고 있어요. 정말 큰 사고가 날까 봐 걱정이 커요."


안전 문제는 만도헬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중요한 문제다. 일하며 어떤 안전 사고가 발생했는지 물었다. 회사는 산재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사고 조차 다 개인에게 떠맡기는 식이었다.

사무장 "산재는 노조 설립 이전에 거의 없었죠. 다쳐도 회사에서 공상 처리해주거나 그것마저도 안해줬어요.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공상처리로 돈 내주면 다 끝났다고 생각하거든요. 심지어 제가 있는 부서는 회사 차량을 못 쓰는 상황이라고 개인차를 쓰라고 했어요. 개인차를 가지고 갔다 사고가 났는데, 그것도 개인 보험으로 해야 했죠."


조직부장 "심지어는 회사용 업무 차 사고가 나서 차가 조금 찌그러졌어요. 그런데 블랙박스도 차에 없고, 운전자도 모르는 상황에서 너희 팀이 타는 차니까 돈 모아서 수리하라고 하더라고요. 차 보험 들었냐고 물으니, 그래도 저희보고 돈 내라고요."


중량물을 다루다 보니 현장에선 끼임사고, 찰과상, 타박상이 빈번하다. 다행히 노조가 생긴 후 사고에 대해선 산재신청을 하며 대응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MSDS(물질안전보건자료)도 없었지만, 2014년 간호사를 채용해 비치하고 해골무늬 스티커를 붙였다. 하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보호 장비조차 챙길 시간이 없다. 생산량에 쫓겼기 때문이다.

사무장 "사실 노동 안전문제 관련해 단협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내용이 기본적으로 다 들어있어요. 그중 저희는 '작업중지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죠. 동료가 다쳐 피를 흘리고 병원에 실려 갔는데도, 그걸 다 목격하고 지켜본 동료는 그 자리에 들어가 일을 해야 해요. 어떻게 그 작업을 할 수 있겠어요. 안전이 담보가 안 되는데요."


얼마 전 사측은 노조와 대화 없이 일부 생산라인을 3조2교대로 변경했다. 이유는 부하율이 높은 생산라인 5개(약 120명)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교대제 변경에 대해 노조가 대화를 요구했지만 사측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사무장 "노동시간 단축하는 교대제 변경은 저희도 고민이죠. 그런데 이번 교대제 변경은 인사발령과도 연계됐어요. 강제 인사발령을 하지 않으면 교대제 변경 수용은 어려워요. 인력충원 전혀 없이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보내졌죠."


만도헬라의 건강한 일터 지키기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됐다.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원청과 하청업체의 합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조합원들은 씩씩하게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투쟁 속에서 노동조합 결성 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다.

사무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해요. 생각할게 많고,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래도 좋은 점은 야간노동을 안 하는거요. 지금은 해 떠있을 때 일하고 저녁에 집에 가면 애들을 볼 수 있죠. 남들 잘 때 저도 자고요. 이런 평범한걸 못했으니까요." 


노안부장 "쉴 때 눈치 안보고 쉬는게 좋아요. 원청에서 쉬는걸로 강제를 많이 했는데 그게 너무 싫었거든요. 저희한테 원청 직원이 짜증도 많이 냈죠. 그런데 지금은 삶의 여유가 생겼죠."


삶의 질이 좋아졌냐는 질문에 한샘 여성부장은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엔 집에 가면 오늘은 몇 시에 자나, 일어나서 8시 30분까지 출근하려면 집도 먼데. 그러려면 6시 30분엔 일어나야 하는데, 일 끝나고 밤 9시에 집에 가면 밤 10시고, 씻고 뭐 하고 바로 자더라도 잠도 바로 안오거든요. 그런데 이제 사람이 생각을 하게 되요."


만도헬라에 대해 기사 검색을 해보면 비정규직 '100% 공장, 악마의 일터'라는 제목이 많이 나온다. 과연 이곳에서 일 하는 노동자들은 이렇게 불리는 일터를 어떻게 바꾸고 싶어할까 궁금했다.

사무장 "상식적이면 좋겠어요. 구조나 대우나. 저도 기사를 보더라도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싶어요. 7~8년 근무했지만, 다들 참은거죠. 만약 회사로 다시 돌아가 일을 하면 상식적인 공간이 도면 좋겠어요."


노안부장 "원청 직원이랑 우리랑 차별없이 똑같이 다니고 싶어요. 저도 개선 요청하려고 이메일을 몇 십통씩 보냈는데 개선이 안됐어요.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회사를 위한건데도 안들어주더라고요. 동료들은 매일 힘들다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너무 속상했죠."


마지막으로 아직 만도헬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투쟁 소식을 모르는 분들과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를 구독하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지 물었다.

사무장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본인과 동떨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르죠. 하지만 만연한 문제죠. 눈에 띄지 않게 어디에나 이런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그래서 노동문제나 환경개선, 현실에 대한 고민들을 같이 해보면 좋겠습니다."


여성부장 "우리나라에 국한된 건지 모르겠는데, 권리를 찾기 위해 나서는 사람들에게 가만히 참지 유난을 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비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걸 바로잡자고 하는 활동에 유난이다, 이기적이라 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노안부장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해야 해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안하면 계속해서 비정규직이 양산되겠죠. 그렇게 생각하고 서로 도와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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