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안전한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한·미동맹이 대체 무슨 소용일까 /2015.8

안전한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한·미동맹이 대체 무슨 소용일까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하주희 변호사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메르스로 온 정국이 혼란에 빠졌던 지난 5월. 미국 의 주요 언론을 통해 유타 주에 있는 미 국방부 산하 더그웨이 연구소에서 4월 24일 살아 있는 탄저균을 각 산하 실험실에 보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산하 실험실 가운데에는 경기도 평택에 자리 잡고 있는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 51비행단이 포함돼 있었다. 치사율 90%에 달하는 살상력으로 생물학 테러의 대명사로 알려진 탄저균이 활성화된 상태로 민간물류배송업체인 페덱스(Fedex)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이번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일련의 과정을 한국 정부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편, 사실관계 확인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이번 사태를 단순 '배달 사고'로 규정하면서 이 사안이 확산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한편, 시민사회는 6월 22일 8,704명의 국민 고발인단 모집을 통해 주한미군 관리자인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과 테렌스 오쇼너시 주한 미7공군 사령관 2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 7월27일 이번 싸움에 주요 역할을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미군 문제연구위원장 하주희 변호사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처음 언론 보도를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어이가 없었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미군 관계자에 따르면 2013년부터 미군은 국내 미군기지 에서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생물무기와 관련된 실험을 하겠다'는 입장을 줄곧 밝혔습니다. 한국이 이러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도 했고요. 그런데 이번 사건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문제와 직결된 만큼 미군이 다시는 이러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국민고발인단 소송 발표 기자회견 발언에 나선 하주희 변호사


미군은 왜 치사율 90%에 달하는 탄저균을 국내에 들이려고 했나요?

"미 국방부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7월 24일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균화된 생물학적 물질을 산업계, 학계 및 기타 실험실 등에서 연구, 개발, 시험 평가 목적으로 정기적으로 배달해왔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연구, 개발, 시험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무엇인지 우리는 아는 게 없고 구체적으로 알 방법도 없다는 점이죠." 


이번 보고서에 명확한 해명은 없지만, 그간 미군이 발표한 입장을 유추해보면 탄저균이 어떠한 이유와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왔는지 알 수 있다. 미군은 2011년 4개년 프로젝트로 주피터(JUPITR, 합동 주한미군포털 및 통합위협인식(Joint USFK Portal and Integrated Threat Recognition))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주피터 프로그램의 목적은 '한반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세균전 등 위기 상황에 대비해 이전보다 강력한 감시체계를 구축하고 탐지 능력을 확보하는 것'인데 그 연장선에서 탄저균을 국내에 들여보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미군은 올해 3분기 이내 북한을 비롯한 주변 국가에서 생화학무기를 사용했을 때 초기에 확인할 수 있는 최전방 감시소를 설치하려고 계획했다. 이번 사태 역시 국내에서 생화학 무기로 인한 테러 등 위협이 벌어졌을 때 해당 물질이 무엇인지 국내 미군기지에서 분석을 마쳐 주한 미군 사령관이 직접 상황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에서 탄저균을 들여왔다. 실제 미군의 공식문서를 통해 서울 용산기지와 오산기지 등에 분 석 장비를 도입했고, 2015년 3분기에 오산기지에서 주요 장비의 시연작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2013년 4월 주피터 프로그램 책임자인 피터 이매뉴얼 에지우드 생화학센터 생명과학부문장이 했던 언론과 인터뷰가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피터 이매뉴얼 씨는 한국 정부가 주둔국에 호의적 이며 생화학무기 실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어느 정도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미군은 한국을 첫 번째 실험장으로 시작해서 이후 전 세계 미군기지로 유사한 탐지시설을 늘려갈 계획이었다. 


이번 사태 주요 원인으로 소파협정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문제인가요?

"우선 이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상의 규정은 없습니다. 그래서 미군기지에 어떤 물품들이 반입되는지, 미군이 어떤 작전을 하는지 알 수도 없고 통제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통관과 관세문제이긴 하지만 SOFA 9조상의 미군 군사화물에 대해 통관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도록 한 조항이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조항으로 인해 페덱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탄저균이 들어있는 택배 물품과 일반 택배 물품과 뒤섞여서 일해야 했다. 만일 배달하는 과정에서 작 은 실수라도 있었다면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위태로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공공운수노동 조합은 이러한 상황을 연출한 페덱스를 생화학무기 법과 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 지난 7월 21일 서울서부지검에 고발했다. 


"페덱스 노동자들의 안전에 대해 사측이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점을 방치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안전을 스스로 법에 맞게 보장하고 있는지 묻고, 사측에게 이점을 강제 한다는 측면에서 이번 고소 고발이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심각성을 인식한 때문인지 8월 1일 언론을 통해 페덱스는 더 이상 고위험병원체 배송 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국내 감염예방법과 시행령·규칙에 따르면 탄저균은 생물테러 등의 목적으로 사용돼 국민 건강에 심각 한 위험을 줄 수 있는 고위험 병원체로 분류돼 있어 국내 반입 시 보건복지부 장관의 허가를 받게 돼 있다. 그러나 SOFA 제26조(보건과 위생)에는 위험 물질 반입 시 사전통고나 허가같은 내용을 포함하지 않고 있어 미군은 보고의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군은 26조를 들어서 보고 할 의무가 없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26조는 분기별로 질병이 발생하지 않았음을 보고할 의무가 없다는 조항인데 미군은 감염된 사람이 없으니까 없었다고 보고하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결과 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들여왔는지를 말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고위험병원체의 반입과 목적을 통제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소파 협정 7조에는 접수국 법령을 존중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직접적인 규정이 없으면 당연히 국내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  주한미군의 탄저균 불법 반입 실험을 규탄하는 시민들의 목소리


미 국방부가 이번 사태에 대해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요?

"서두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번 발표로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책임자도 특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리면서 처벌하지도 않았고요." 


이번 보고를 통해 더그웨이 연구소로부터 지난 10년간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7개국 86개 시설에서 저농도의 살아있는 탄저균을 배달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연구·개발용으로 쓰이는 탄저균은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고 완전히 비활성화된 상태로 배송하도 록 돼 있는데 그 규정을 지키지 않고 탄저균을 배달한 것은 심각한 규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살아있는 탄저균의 숫자가 적어 일반 대중에게 는 위험이 노출되지 않았고, 이번 사고의 경우 정확한 원인이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책임 주체도 특정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미 합동 조사단이 이번 보고서를 기초로 조사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무엇부터 제대로 해야 할까요? 

"지금은 명백한 진상규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미군이 과연 무슨 목적으로 무슨 물질을 다른 나라에 보내왔는지, 특히 한국에서 무엇을 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가 명확하게 밝혀져야 합니다. 한국에는 주피터 프로그램과 관련한 실험이 존재하고 이것과 관련해서 주한 미군 사령관이 이후 한국과 계속 협의하고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얘기하고 있잖아요. 사실 이렇게 위험한 프로그램을 지속하겠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안전과 한반도 평화를 생각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미군 이 이번 보고서를 자체 내부 조사를 통해 발표했잖아요. 거기에 기초해서 조사하겠다고 하는 얘기는 조사를 거기까지만 하겠다는 얘기라서 무척 우려스럽습니다. 미국은 과거 소련이 군부대의 실험실에서 탄저균 실험을 해서 생물무기금지협약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유엔 안보리에 제소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놓고 이제와서 자기는 해도 괜찮다는 건지.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는 보고서에 기초한 조사로는 한국에서의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는 이번 미군의 보고서 결과를 기다리겠다면서 합동 조사단 운영 및 구성을 연기해왔다. 또 한 조사단의 업무 및 역할을 조사 그 자체에 제한시켰다. 따라서 조사 결과에 따른 문제 해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미정부가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해서 어떤 행위든 정당화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한국정부와 미국이 동맹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한국국민의 생명 안전에 대해서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면 동맹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죠. 참고로 미국 이 일본이나 독일에는 공식적으로 사과의 뜻도 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국 정부가 국민의 대표로서 이번 사태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한국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으니까 불가피하게 헌법상 주권자인 국민과 언론, 시민사회단체, 저희 같은 법률가 단체 등 각자 할 수 있는 역할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행동해야죠. 고 발과 관련해서도 조만간 고발인 조사가 있을 예정 인데 이후에 고발인도(피고발인도) 불러서 조사할 지 의문이에요.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평화는 포기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대응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소파에 명시적으로 국내에서 반 입금지물품을 반입할 때에는 한국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여야 합니다. 독일 소파에는 이미 규정이 있거든요." 

[현장의 목소리]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병원을 만들고 싶어요 /2015.7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병원을 만들고 싶어요
- 보건의료노조 고려수요양병원지부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2008년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에서 문을 연 고려수요양병원은 서울 구로, 금천구에서도 200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안엔 강남점 오픈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업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병원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하는 치료사들은 병원 명성과 달리 20대임에도 근골격계 질환으로 인한 통증과 관리자들의 성추행을 견디며 일하고 있었다. 그중엔 희선씨도 있었다. 희선씨는 이 병원 6년 차(치료사 9년차)면서 팀장으로 일하며 병원의 부당함에 대해 할말은 하는 정의로운 직원이었다. 희선씨는 본인 또한 근골격계 질환 또한 직업병이라는 생각에서 산재를 신청했고 병원의 협박과 모욕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산재 인정을 받아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희선씨는 눈앞에 펼쳐있는 병원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심하던 중 동료들을 설득해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했다. 1년 반을 준비했지만 병원에 노동조합 설립 움직임이 들통이 나는 바람에 140여 명의 직원 중 27명이 모여 지난 4월 3일 보건의료노조 고려수요양병원지부 노동조합 깃발을 올렸다.

 

며칠 후 70명의 직원이 한국노총 산하 한국철도노조를 만들었고,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를 통해 지부는 교섭권을 박탈당했다. 이후 지부는 상식적으로 요양병원 노동자들이 한국철도산업노조에 가입한 것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웠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노동조합의 명칭을 철도사회산업노동조합으로 변경하고 가입규약까지 바꿔버렸다. 병원은 현재 대표교섭권이 있는 한국노총과 교섭을 진행하고 있어 지부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하 치료실에서 쉼 없이 일하는 치료사들

 

심희선 지부장 : 우리 병원은 주로 중풍이 오거나 뇌혈관질환이나 뇌·척수에 손상이 온 중추신경계환자들의 재활을 위한 병원이에요. 병원 이름 이 손 수(手)자를 써서 고려'수'요양병원이듯 다른 병원과 다르게 기구나 기계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요.

 

치료사들은 이점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손목 질환, 허리디스크 등 골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치료사들은 환자 한 명에 1타임(30분)씩 하루 꼬박 8시간을 치료한다. 쉬는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오로지 다음 환자 치료를 위한 대기 시간만이 존재한다.

 

심희선 지부장 : 만약 1타임이 비면 치료실 한쪽에 있는 테이블에서 차트를 쓰면서 대기해요. 그러다 전화 오면 받고, 직원들이 부르면 가고. 그런데 병원은 치료 안하는 시간은 가만히 있으니까 쉬는 시간이라고 주장해요.

 

임미선 부지부장 : 예를 들면 연말(혹은 월말)에 성과 보고를 하면서 치료사들의 치료 시간을 평균으로 계산하는데 15개 타임 중 10번 정도 일한 걸로 나와요. 분명 치료가 없는 타임에 차트도 쓰고 치료 외에 업무도 하는데 직접적으로 환자를 치료한 것만 타임수로 인정하는 거죠. 대기시간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계산하니까 마치 우리가 5타임을 쉬는 것처럼 되요.

 

김지윤 사무장 : 시간뿐만 아니라 환경도 열악해요. 구로 병원에 있을 땐 치료실이 지하 2층에 있어서 환기가 전혀 안 되니까 1타임하고 나면 머리가 어지럽고 그랬어요. 그래서 다음에 병원 만들 때는 치료실을 지하에 짓지 말라고 요구했었는데 금천 병원도 기어코 지하 1층에 치료실을 만들어서 치료사들은 인후통, 인후염을 달고 살아요.

 

그뿐만 아니라 2014년 병원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변경을 강요했다. 그 결과 직원들 연차 15개에서 공휴일을 제외하면서 연차가 6개나 없어졌다. 또한, 연차 촉진제를 시행했는데 그마저도 2개월 전 서면 통보 등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결국 연차를 더 쓰지도 못하고 연차수당도 못 받게 됐다.

 

 

▲  부당한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움을 결의한 보건의료노조 고려수요양병원지부 노동자들

 (왼쪽부터 임미선 부지부장, 심희선 지장, 유지현 보건의료노조위원장, 김지윤 사무장)  

 

 

동료 치료사가 일을 그만두길 바라게 하는 병원

 

치료사들은 높은 노동 강도와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인해 3년 이상 병원에 다니지 못한다. 중간관리자들의 경우 병원이 어렵다는 이유로 팀장들에게 각 팀 내에서 권고사직 명단을 제출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라도 다른 병원을 찾게 된다. 또한 병원은 이를 이용해서 동료가 그만둬야 남은 사람들의 연봉이 오를 수 있다고 분위기를 조장한다.

 

심희선 지부장 : 치료사 대부분 결혼하거나 출산을 하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출산하고 다시 돌아온 사람도 없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는 거죠. 병원이 5년 차 넘은 직원들하고 연봉협상 할 때 "너희는 연애 안 하느냐" "너희 그만 안 두느냐" 는 등 노골적으로 그만두라고 말해요.

 

임미선 부지부장 : 연 차가 쌓인 동료들이 많으면 저희한테 "네가 연봉 많이 받고 싶으면 옆 사람을 나가게 해라"라고해요. 이러니까 동료가 그만둔다고 해도 내년엔 연봉이 오르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분위기를 조장해요.

 

골병을 견디며 일하는 치료사들

 

치료사들은 자신들의 골병이 직업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고통을 혼자 감내하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러나 심희선 지부장의 산재신청을 계기로 동료들은 골병이 직업병이고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김지윤 사무장 : 동료들이 손목을 다치거나 허리디스크로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까지도 저는 산재신청 하면 병원에서 돈을 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지부장이 산재신청 했을 때도 팀장에서 강등되니까 무서워서 앞으로 누가 산재신청 하겠나 생각했죠.

 

심희선 지부장 : 재신청 한다니까 회사에서 "네가 죽은 것도 아니고 병신도 아닌데 왜 산재를 신청해서 병신 낙인을 찍히려고 하느냐" "산재인정 받아서 병신 되면 다른 데 가서 일할 수 있겠느냐" 등등 온갖 협박을 했죠. 그래도 결국 산재 인정을 받았어요.

 

일상적인 성희롱에 노출된 치료사들

 

연차가 낮고 나이가 어린 재활치료사들일수록 병원 관리자들에 의한 성희롱에도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심희선 지부장 : 하루는 술자리에 불려서 갔는데 저를 제외한 8명이 모두 남자 직원들이었는데, 저한테 오빠라고 부르라는 거에요. 또, 여성의 성기를 반복해서 묘사하거나 언급하길래 나중엔 듣기가 너무 힘들어서 지금 불쾌하다 그만하라고 하니까 그냥 웃어 넘기더라구요.

 

노동조합은 4월 28일 고용노동부 관악지청에 직장 내 성희롱 문제로 진정서를 제출했다. 한편, 현재까지도 병원 직원들은 사실관계를 전면 부인하는 것은 물론, 진짜 문제를 제기하고 싶으면 고소해야 하는데 증거가 없지 않으냐는 적반하장 식의 태도를 보인다.

 

1년여의 준비 끝에 노동조합 깃발을 띄우다

 

병원의 태도에 염증을 느낀 심희선 지부장은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부지부장, 사무장을 중심으로 27명의 노동자들과 결의를 모았다.

 

김지윤 사무장 : 지부장이 노동조합을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놀라웠죠. 마치 지구에 큰 이변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두려움도 있었고요. 그렇게 한 달을 고민하다 함께하기로 마음먹고 1년 3개월 동안 함께 준비했어요.

 

임미선 부지부장 : 저도 처음에 지부장님한테 제의를 받았을 때 꼭 해야 하나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그런데 병원에서 연차나 취업 규칙 문제가 계속 터지니까 노동조합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준비하면서 노동법, 역사 교육받으면서 이 사회의 구조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면서 점점 더 생각이 확고해진 것 같아요.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부는 병원에 교섭을 요구하며 다음과 같은 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병원은 다수 노조인 한국노총과 이야기하겠다면서 민주노조와의 대화를 일체 거부하고 있다.

 

 

 * 대표적인 노동조합 요구사항

1. 고용안정을 위한 호봉제 도입
2. 연차/공휴일 개별 지급 및 연차 사용의 자율성 보장
3. 휴게시간 및 휴게공간 보장
4. 직장 내 문화 개선위한 방안 (조직문화, 성희롱 예방)
5. 노조업무를 이행하기 위한 타임오프 시행

 

 

당신들을 만나서 참 행복하고 감사하다

 

인터뷰를 마치며 향후 투쟁에 대한 각오,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탁했다.

 

 

 

▲  보건의료노조 고려수요양병원지부 노동자들

  

임미선 부지부장 : 노동조합하면서 몰랐던 부분도 알게 되고 이제는 동료를 넘어서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노동조합을 만나지 못했다면 예쁜 옷 사고,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고, 남자 잘 만나서 시집가는 것에 관심을 두고 살았을 텐데, 앞으로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어요.

 

김지윤 사무장 : 사람들이 노동 조합한 거 후회하지 않느냐고 많이 물어보는데 저는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오히려 노동조합 활동하면서 깨닫고 배우게 된게 많아요. 집에서도 이왕 시작한 거 실패해도 괜찮으니까 제대로 싸우라고 응원해주세요. 앞으로도 노동조합에 가입했다고 노동자들이 탄압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서 싸울 거예요.

 

심희선 지부장 : 성과라고 하면 성과인데 지난 5.1 노동절에 처음으로 유급 휴가를 받았어요. 이렇게 차츰차츰 빼앗겼던 우리 권리를 하나씩 찾으려고 해요. 무엇보다 제가 운이 좋아서 우리 조합원들처럼 멋진 사람들을 만나서 참 행복하고 감사한 것 같아요. 앞으로 제가 더 많이 배우고 노력해서 동료들과 끝까지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이후 과정에서 병원은 노동조합의 소식지 배포 등이 경영상 심각한 피해를 줬다며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심희선 지부장 등 노동조합 간부 3명에게 각각 3천만원씩 총 9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간부를 포함한 전체 조합원들은 병원의 탄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병원을 만들기 위해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모아내고 있다. 힘든 여건에서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고려수요양병원지부 조합원들의 건투를 빈다!


 

[현장의 목소리] 우리 삶도 형광등처럼 반짝반짝 오래가자 /2015.6

우리 삶도 형광등처럼 반짝반짝 오래가자

해외 먹튀 자본에 맞서 투쟁하는 금속노조 경기지부 오스람분회


재현 선전위원


오스람은 세계적인 기업 지멘스(Siemens)의 자회사였다 3년 전 분사한 세계 3대 조명회사 중 하나다. 1987년 오스람은 국내 회사 승산과 50%씩 합작 투자로 경기도 안산 반월·시화 공단에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1994년 오스람은 승산 회사 지분을 100% 인수하고 오스람 코리아로 상호를 변경,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에 투자를 확대했다. 1995년엔 콤팩트 형광 램프(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오스람 제품) 자동화 라인을 도입하는 한편, 서울·부산 등 영업소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점차 높였다. 최근 들어서는 급부상 하고 있는 LED 또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생산량을 자랑한다.

오스람은 친환경 조명을 만들어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기본 철학을 갖고 있다. 또한, “사람과 환경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고 에너지 효율적인 제품으로 지구 온난화 대책에 지속적으로 공헌한다”는 사명을 가진 회사다.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작년 9월 오스람 코리아가 매년 약 200억 원의 영업 이익을 내기 위해 삶을 다 바쳤던 노동자들의 목에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밀었다. 자신들이 떠벌려온 철학에 반하는 천박한 해외 먹튀 자본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사진 설명 : 해외 먹튀자본에 맞서 투쟁하는 금속노조 오스람코리아분회 조합원들 (출처 : 금속노조 경기지부)


설비 및 시설 투자 없이 현장을 방치한 오스람 코리아


“최근 LED 시장이 호황을 맞으면서 전통 조명 시장이 사양 산업으로 접어드는 추세에요. 그렇다 보니 회사는 설비 투자를 안 하고, 신입 사원도 안 뽑았죠. 부족한 인력은 물량에 따라 전환 배치하면서 공장을 운영했어요.” (최영식 부분회장)


분회장, 부분회장, 수석부분회장은 노조 결성 이전 10년여 가까이 노사협의회 노동자 대표 위원이었다. 이들은 줄곧 회사에 앞으로 LED 시장이 계속해서 확대될 테니 국내 공장도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소 설치나 설비 및 기술 개발 투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이 아무래도 인건비가 싸니까 그쪽에 LED 설비 공장을 세우고 한국은 계속 등한시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최근 들어 저희가 제조해서 판매하는 것보다 수입해서 판매한 매출이 훨씬 증가했어요.” (권남규 수석부분회장)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오스람 코리아


이들은 처음 오스람 코리아를 입사할 때만 해도 반월·시화 공단에서 임금을 손에 꼽을 정도로 높게 받았다. 98년 IMF 외환위기 때에도 환율 차이로 인해 많은 이득을 내면서 크게 어려움을 못 느꼈다.그런데 2000년대 들어 호봉제를 연봉제로 바꾸면서 임금 체계가 완전히 무너졌고, 저임금 구조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매년 기본적으로 뽑던 신입사원도 2012년 이후 명맥이 끊겼다. 한때는 300명이 넘었던 현장인데 이제는 약 220명의 노동자만이 남아있다.


“전통 방식의 조명이 사양 산업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어요. 백열전구가 오래됐다고 해도 지금도 사용하잖아요. 기존공사 설비 또한 여전히, 전통 방식 조명이 필요하고, 하다못해 기본적인 A/S를 위해서도 필요해요. 그런데 제가 입사한 이래 회사는 단 한 차례 적자도 없었고, 5년간 1,088억 영업 이익을 냈는데도 단 1%도 재투자가 없었어요. 최대한 수익을 뽑아냈으니 정리하겠다는 거죠. 해외 먹튀 자본의 마지막 본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최용식 부분회장)


오스람 코리아는 LED 시장이 지속해서 성장하더라도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어서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러다 2012년 8월 부임한 방인철 사장이 꼬박 2년만인 작년 9월, 희망퇴직이라는 미명하에 노동자들의 목에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을 들이밀었다.


노동조합 깃발을 세우다


“작년 8월에 전 직원 앞에서 약속했어요. 본사 차원에서 인원을 줄이려고 하는데 오스람 코리아도 예외는 아닐 것 같다, 그러나 생각보다 늦춰질 것으로 예상한다, 늦출 수 있게 본사에 얘기하겠다, 앞으로 희망퇴직 관련해선 노사협의회와 먼저 논의하겠다고. 그렇게 약속을 했어요. 그런데 완전 뒤통수를 맞은 거죠.” (조동윤 분회장)


하루아침에 공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에 떤 노동자들은 이쯤 되면 노조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을 제출하면서 한 달 만인 지난 2014년 10월 18일 115명에 노동자들의 결의로 금속노조 오스람 코리아 분회노동조합을 출범했다.


“99년에 부서장 (공장장급)이 너무 강압적이라 힘들어서, 최소한 그 밑에 있는 관리자라도 잡자는 생각에 핵심 생산 파트 엔지니어, 팀장, 반장 전체 다해서 33명이 집단 사표를 썼던 적이 있어요. 노조를 만드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니까 우선 우리끼리 강한 의지만 믿고 집단행동을 한 거죠. 그런데 회사가 하루 만에 전원 사표를 수리하고, 완전 참패를 당했죠. 당시 주동한 사람들은 회사에 다시 못 들어왔어요. 중간에 있던 사람들은 재입사를 했고요. 이날 이후로 노·사 힘 관계가 회사한테 확 넘어갔고, 1년 후에 자연스럽게 연봉제를 도입한 거죠.” (조동

윤 분회장)


현장에선 노조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99년의 트라우마는 넘기 힘든 벽이었다. 일부 노동자들은 회사가 어렵다고 하고, 임금도 적지만 그래도 내가 다니는 동안 형광등은 팔릴 거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노조 출범식 날 저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폭발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또 노사협의회와는 다르게 이제는 회사와 대등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권남규 수석부분회장)


“저는 속으로 됐어! 그랬어요. 저희가 나름 노사협의회를 준 노조 수준으로 강경하게 하고 있다고 자평도 하고 그랬거든요. 근데 한편, 그래도 항상 힘의 논리에서 회사에 밀리다 보니 노동조합에 대한 필요성과 아쉬움을 오랫동안 느꼈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잖아요.” (최영식 부분회장)


노조는 절대 인정 할 수 없다


10월 18일 노조 출범 이후 11월 복수노조 단일화 창구 절차를 밟고 11월 회사에 단협 체결을 위한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지난 2월이 돼서야 첫 교섭 테이블에 나왔다.


“회사가 교섭을 회사 밖인 제3의 장소에서 퇴근 이후인 저녁 7시 노동자 3명이 하자는 거에요. 우리는 회사 안에서 오후 3시에 6명이 하자고 했죠. 결국, 제대로 된 교섭 한번 못해보고 조정 신청에 들어갔죠. 경기지방노동위원회가 회의 장소를 회사와 제3의 장소를 교차하겠다는 조정안을 제출했는데, 회사가 결국 거부하면서 교섭은 해보지도 못하고 파업권이 생긴 거예요. 이후에 1월 말 확대 간부 중심으로 첫 파업에 돌입했고, 언론에서도 우리 소식을 보도해주고, 노동부도 압박을 하니까 2월 26일 회사가 교섭에 처음 나왔어요. 별 논의는 없었지만 2월 이후에도 최근인 5월 말까지 11차례 교섭을 했는데, 논의가 진행 된 건 하나도 없어요” (조동윤 분회장)


오스람 코리아는 노동조합의 요구가 부담스러워서 교섭을 게을리 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일관되게 금속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몇몇 회사 관리자들은 지금도 금속노조가 아니면 대화에 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번에 얘기하는 게 교섭을 하더라도 분회 사람들 하고만 하면 안 되겠냐고 하는 거예요. 우리끼리 있으면 말실수를 해도 넘어갈 수도 있고 그런데, 금속노조 경기지부나 안산지역 지회가 오면 부담스럽다는 거죠.” (권남규 수석부분회장)


“이게 참 아이러니한 게 회사가 희망퇴직이 필요하다면서 말했던 논리가 글로벌 경제 전반이 어려워서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노조를 만드니까 요새 경기가 좋아졌다, 그러니까 굳이 노조 안 만들어도 된다는 거예요. 20년 내내 회사가 어렵다고 하더니. 어떤 임원은 민주노총에서 스킬 다 배우고 나중에 기업노조를 하는 게 어떻겠냐. 민주노총만 제발 하지 말아 달라는 거죠.” (최영식 부분회장)


오스람 코리아는 지금까지도 줄곧 노동조합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분회는 그 이유를 이렇게 판단했다.


“노조가 만들어지면 회사 경영에 침해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한국 공장을 정리할 때 노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굉장하니까요. 그러니 저희가 3월 11일부터 2시간씩 파업을 해서 매출 손해가 굉장할 텐데 회사가 꿈쩍을 안 해요. 이것만 봐도 공장 철수를 위해 어떤 손해를 감수하더라고 노조만큼은 인정하지 않는 게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조동윤 분회장)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함께 극복했으면 좋겠어요


“반월·시화공단에서 8년 만에 신생 금속노조가 생겼다고 해요. 저희가 공단 노동자들의 희망이 돼야 하는 위치에 있는 거죠. 꼭 투쟁 승리해서 우리가 만드는 조명처럼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에게 빛이 되고 힘이 되는 노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권남규 수석부분회장)


“분회장, 수석 모두 고생 많이 하고 있어요. 저는 질긴 놈이 이긴다고, 질기게 싸우면 꼭 이길 거라고 생각해요.” (최영식 부분회장)


“회사가 문 닫기 직전인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서 노조를 만든 경우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도 노조를 만들 수 있었던 건 우리의 절박함이 조합원에게 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노조 만들고 교섭 진행하면서 눈에 보이는 결과가 꼭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못 만들어서 조합원들이 많이 힘들텐데 그 점이 미안해요. 그렇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함께 극복해서 꼭 이 싸움 이겼으면 좋겠어요.” (조동윤 분회장)

  • 호조벌긴팔 2015.06.18 18:03 ADDR 수정/삭제 답글

    오스람 회사 안에서 집회했다고 이사람 저사람 고소고발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 호조벌긴팔 2015.06.18 18:27 ADDR 수정/삭제 답글

    어둠이 깔린 새벽길을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이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깊은 고민에 빠진듯 걸어가고 또다른 누군가는 믿음이 있기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며 전진합니다.
    함께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 그길은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사측의 일부는 의자에 앉아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회사인양 행세하지만 그자리에 이르기 까지는 종업원의 땀으로 거기까지 밀어준 것이라는것을 망각해선 않되죠
    그자리 또한 누군가에게 물려주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것입니다.
    손가락질 받으며 떠날것이냐 , 누구든 그사람을 기억하면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내미는 사람으로 떠날것이냐
    선택을 잘 하십시요.
    늦지 않았습니다.

    한솥밥을 먹은지가 꽤나 오래 되셨을 터인데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던 것입니까?
    다같이 살자고 하는건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네요,

    다시한번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시고 부디 조속한 시일내에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현장의 목소리] 회사는 교대제 합의 후 신종 노조파괴 공작, 위장취업까지/ 2015.5

[현장의 목소리]

회사는 교대제 합의 후 신종 노조파괴 공작, 위장취업까지


안재범 운영집행위원 (갑을오토텍지회 노안부장)


2014년 회사는 심야노동을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노동조합의 교대제 취지에 동의하여 주간 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에 합의했다. 하지만 회사는 교대제 합의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교대제 합의는 잘못되었고 기업의 생존을 위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며 호소문을 발표했다. 또한, 기초근무질서 준수라는 명분으로 관리자들을 동원해 현장을 감시하고 통제했다. 이에 노동조합은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최우선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장 순회를 비롯해 안전점검을 강화했다.


사건의 발단 및 개요

2015년 2월 5일 14시 10분경 명예산업안전 감독관 직무수행을 위해 현장 안전보건사항을 점검하던 중「CAC 언로딩기의 산업용 로봇」이 오작동으로 인해 멈춘 상황을 목격했다.

이후 작업자는 주 전원을 끄지 않은 상태로 도어를 열고 로봇 안으로 들어가 불량제품을 꺼내려고 했다. 그때 다른 작업자가 지나가다 열린 도어를 건들어서 도어가 닫힐 뻔한 위험천만한 상황을 목격했다. 현장에서 바로 작업 중지를 시켰고 회사 측 안전관리담당자를 불러 작업자의 특별 안전교육실시 여부와 도어 및 안전장치가 제대로 돼 있는지 확인을 요청했다.

아니나 다를까 노동조합에서 조합원에게 확인한 결과 회사는 특별안전교육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실시한 것으로 거짓 서명을 하도록 했던 사실이 들통 났다.

또한, 로봇의 안전장치와 작동 여부도 센서 부위에 자석과 테이프가 부착되어 안정상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어가 닫히면 별도의 리셋 스위치를 작동하지 않아도 로봇이 스스로 움직이는 위험천만한 상태였다. 즉, 로봇 펜스 안에서 불량 제품을 꺼내거나 고장이나 수리, 점검 중에 누군가 실수로 도어를 닫으면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태였다.


작업 중지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이러한 사실을 회사의 안전보건 담당자와 함께 목격하고 위험천만한 상황에 대해 작업 중지를 요청한 것이다. 이후 노동조합은 현장 조합원들을 휴게실로 모아 작업 중지를 한 이유와 회사의 안전보건 실태 등을 설명하고 공정별 요구사항과 노동조합 요구안을 마련하는 토론을 진행했다.

회사는 “산업용 로봇의 방호장치와 안전상의 문제 그리고 특별안전교육의 허위작성을 인정하고 노동조합이 요구한 긴급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고 노동조합이 요구한 ▲로봇 관련 해당 작업자 특별안전교육 시행 ▲로봇 관련 전 공정 노사합동 특별안전점검 시행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직무수행 방해 및 특별안전보건 교육 허위작성에 따른 해당자 징계건 등을 전면적으로 수용했다. 작업 중지 6시간 만에 긴급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합의를 통해 작업을 재개하며 일단락 지은 것이다.


산보위 합의 후 “악의적인 회사 측 고소”

그런데 사건이 있고 한 달 후 회사가 도리어 노동조합과 간부를 대상으로 업무방해 및 폭력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후 곧바로 4명의 조합원이 복수노조 설립 신고를 하더니, 지난해 말 경력직으로 취업했던 신입조합원 29명이 집단으로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복수 노조에 가입했다. 회사 측에 의해 현장에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작동한 것이다. 또한, 노사가 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긴급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합의했던 문제를 갖고 노동조합을 고발한 것이다. 민주노조 파괴 공작도 모자라 노동자의 안전 문제까지 활용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자행한 것이다.



회사의 민주노조파괴 시나리오

제보를 통해 확인한 결과 2014년 교대제 합의 후 회사 측은 새로 뽑은 신입사원 60명 중 일부를 서울 종로구 모처에 모아 민주노조 파괴 공작을 기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다른 사업장 노조 파괴 사례 교육은 물론 입사 후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등등에 대해 비밀리에 사전 교육을 받은 것이다. 또한, 입사 당시 회사에서 갑을오토텍엔 강성 노조가 있으니 회사 편에 있는 기업노조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채용조건은 금속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것 등의 강요를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민주노조 파괴를 위해 채용된 신입사원들 사이에서 “각 팀장이 가입을 권유한 기업노조는 원서를 받아놓고 하루 이틀 뒤 가입하기 바란다” “기업노조에 가입신청 했다고 해서 바로 알려지는 건 아니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서로 공유되어 민주노조 파괴 공작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민주노조 파괴를 목적으로 입사한 직원들에게는 처음부터 팀장, 조장 등 직책이 부여됐고 월급도 차이가 났다. 일부는 그룹 내 다른 계열사인 동국실업에서 지난해 11월 단체협약을 체결할 때 본사 간부 직원처럼 행세했던 사람도 있었다. 이는 갑을오토텍 민주노조 파괴를 위해 갑을 그룹사 차원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반증한다.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노조법·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집중 조사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은 4월 14일부터 현장에 근로감독관 3명과 산업안전감독관 2명, 안전보건공단 관계자 2명을 파견하여 사용자의 노동관계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했다. 특히, 신입사원을 대거 채용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특전사 출신 신입사원을 대거 채용해 기존 노조를 대체할 신규노조 설립을 추진한 의혹과 사업장 산업안전보건 전반적인 실태와 법 위반사항 등을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지금 현장에서는

회사의 민주노조 파괴 공작에 분노한 조합원 3명이 시작한 아침출근 선전전은 일주일도 안 돼 점점 늘어 매일 100여 명이 함께하고 있다. 노동조합 통제와 지침이 아닌 현장 조합원 스스로가 조직되어 구역별 현수막과 피켓을 만들고 이후 대응들을 논의하고 만들어 가고 있다.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지금 현장에서는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민주노조 사수투쟁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 길었던 여정의 마무리, 그리고 새로운 출발 - 동희오토 산재인정투쟁 /2015.4

현장의 목소리

길었던 여정의 마무리, 그리고 새로운 출발

-동희오토 황재민 씨 산재인정투쟁 승리와 지회의 계획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사무장 최진일


<<황재민 씨 산재사건 경과>>

 2013. 7. 19   뇌경색 발병, 야간 중식시간에 식당에서 쓰러짐

 2013. 8. 18   산재 최초요양신청 불승인 (사측 종용으로 증빙자료 없이 졸속처리)

 2014. 5.       산재 심사청구 불승인

 2014. 5. 20    부인 김려화씨 공장 앞에서 아이 업고 1인 시위

 2014. 6.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와 만남

 2014. 7. 1     산재 재심사 청구 최종 불승인

 2014. 7. 15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투쟁 돌입

 2014. 9.        산재 행정소송 접수

 2014. 12. 4    사측과 보상 합의, 대신기업이 보상금 지급과 산재 협조 약속

 2014. 12. 11   근로복지공단과 담판, 재조사 결정

 2015. 1. 9      대신기업 현장조사

 2015. 2. 9      근로복지공단 대전질판위원장 면담

 2015. 2. 16    대전질판위 항의방문 (노조참여보장 요구)

 2015. 2. 23    대전질판위에서 산재로 승인


보령지사 면담을 통해 전면적인 재조사가 결정된 이후 지회는 일체의 관련된 자료를 제출했다. 동희오토 의장라인의 편성효율, 타 공장과의 노동강도 비교, 열악한 작업환경 및 스트레스에 대한 증거자료와 진술서, 사고 당일 현장 온도와 식당 온도에 대한 증빙 자료, 사고 정황에 대한 진술서 등 상당한 분량의 자료가 준비되었고 여기에 의학적 소견들이 추가로 준비되었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부터 업무 연관성이 있다는 소견을 확보하고 내과 전문의로부터는 기존의 심부전 진단이 의증에 불과하다는 소견을 확보했다. 과거 정상소견을 보인 검사기록도 추가했다.

이후 대신기업에 대한 현장조사를 거쳐 질병판정위원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지회는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참여를 보장받고자 많은 노력을 했지만 끝내 관철하지는 못했다. 현장조사 과정에서는 금속노조 조합원을 현장에 들여보낼 수 없다는 사측의 결사적인 반대가 문제였고, 질판위에서는 ‘본인과 가족, 법정대리인이나 관련 전문가’만이 참석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는 규정이 문제였다. 불합리한 똥고집을 부리는 사측을 통제할 규정은 없지만, 노동조합의 참여를 가로막을 규정은 넘쳐났다.



1년 7개월 만의 승인





질병판정위원회는 결국 기존 판정을 번복하고 황재민 씨의 뇌경색을 산재로 인정했다. 주당 60시간을 넘지 않았지만 주야 맞교대로 인한 만성 과로가 인정되었고, 추가 제출된 의료기록으로 기왕증이 부정된 것이 핵심적인 이유였다.

“과로의 인정기준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은 확인되지 않으나, 심방세동과 심부전에 대한 의무기록이 명확하지 않아 기왕력으로 확진하기 어려워 신청 상병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근거가 미약하고, 온도, 조도, 소음 등의 근무환경, 높은 업무편성률, 신청인의 주야맞교대 근무형태 특히 주간근무에 비하여 더 많은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발생시킬 수 있는 야간근무를 주간근무와 동일하게 수행하여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에 노출되었을 것으로 판단되어 신청 상병은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 업무상질병판정서 중

당사자인 황재민 씨와 가족들은 그동안의 고통과 좌절을 뒤로하고 삶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동희오토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여타 완성차공장보다 월등히 높은 노동강도로 만성적인 과로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산재가 은폐되어 온 동희오토의 현실이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산재승인에 박수를 보냈고 끈질기게 싸우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희망은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했다. 지회는 비참한 현실을 바꾸어 내고 새롭게 민주노조의 영향력을 확대할 일말의 가능성을 획득했다.

이제, 원인과 싸워야 할 때

황재민 씨 사건은 비인간적인 노동강도로 인한 산재였고 일단 이번 승인으로 재해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회사와 공단이 지도록 만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다시는 현장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 그리고 노동자들이 더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지회는 황재민 씨 사건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근골격계질환 산재인정을 중심으로 하는 건강권 확보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근골격계 질환이 동희오토의 노동강도 문제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사안인 동시에 지금 당장 가장 많은 노동자가 고통을 겪고 있는 지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상 황재민 씨 사건이 처음으로 겪어본 산재 사건인 지회에는 너무나 커다란 과제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과 함께 건강권과 산재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해결능력을 키우는 일부터 시작했고, 황재민 씨 산재 투쟁의 과정에서 아낌없이 힘을 보태준 한노보연 동지들이 여전히 함께 해주고 있다.



<한노보연과 함께 테이핑 요법 교육 중인 조합원들>


단계론적 사고를 뛰어넘는 돌직구를 던져보자!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는 1,500명 공장에서 단 6명의 조합원만으로 이루어진 극소수노조다. 단체협상은커녕 전임자조차 하나 없이 전 조합원이 주야 맞교대 근무를 하고, 그 와중에 잠을 줄여가며 노동조합 활동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지회에 앞으로의 근골격계 투쟁, 건강권 쟁취투쟁은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다. 그동안 민주노조의 깃발을 세우고 사수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시간을 보냈고, 전원 해고와 장기간의 복직 투쟁을 거치면서 건강권의 문제는 어느새 지회 시야 밖으로 밀려나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고 노동조합을 안정화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산재 문제는 우리도 남들처럼 ‘번듯한’ 노동조합이 된 후에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황재민 씨와 가족들에게도 몇 번이나 이런 말을 했다. ‘노동조합이 힘이 없어서 뭐 하나 장담할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합니다.’ 라고. 그런데 연대해준 동지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번듯한 정규직노동조합들은 이제 이런 투쟁 않으려고 하는데, 왜 그럴까요?’ 아직 정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당장 눈앞에 두개골이 함몰되고 좌반신이 마비된 황재민 씨의 처절한 모습이 우리가 ‘번듯한’ 노동조합에 대한 허상을 깨고 ‘닥치고 투쟁’하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지회가 동희오토 현장에 민주노조를 세워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도 다름 아닌 살인적 노동강도의 문제였다. 노동조합을 만든 이유였던 것이 이제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행히 지회는 황재민 씨 산재인정투쟁을 통해 자신을 스스로 가두었던 틀을 깨고 투쟁하고 승리하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가진 것이 없어서 잃을 것도 없는 6명의 조합원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이 경험은 지회의 앞길에 분명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어느덧 우리는 ‘노동조합’에서 ‘노동’보다 ‘조합’이 커져 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부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가 만들어나갈 근골격계 투쟁은 부디 ‘조합’보다는 ‘노동’에 힘을 싣는 과정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황재민 씨 산재인정투쟁에 함께 한 금속노조 충남지부 김창헌 노안부장과 갑을오토텍 지회 안재범 동지를 비롯한 충남지부 동지들, 금속노조 노안실장과 한노보연 동지들에게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동지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동희오토 본관 앞 무재해현황판을 쇠파이프로 부술지 돌로 부술지 논의하고 있었을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 나와 내 동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싸운다

나와 내 동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싸운다

- 현대위아평택 가스 누출사고 대응 투쟁 이야기

 


선전위원  재현

 

지난 115일 현대위아 평택 2공장 SM 테크에서 유독가스 누출 사고가 있었다. 당시 유독가스에 노출된 12명의 노동자가 구토, 안구 통증, 신체 마비 등 고통을 호소했다. 인터뷰가 있던 2월 말까지 사고 원인은커녕 회사의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 노동자의 편에 서야 할 고용노동부조차 회사와 다를 바 없는 태도로 일관했다. 대체 사고 당일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만났다.

 


냄새 난다 항의해도 무시하던 회사

 

김경진(조직부장) : 1120분쯤 코를 찌르는 심한 냄새가 났어요. 처음에는 페인트나 신나 작업을 하는 줄 알았죠. 그러다 점심시간이 돼서야 라인 하나(J3)를 없애면서 폐 세척액을 탱크로리 차량으로 옮기느라 나는 냄새라는 걸 알았어요.

 

냄새의 원인은 엔진에 도포된 방청제를 제거하기 위한 세척 작업에서 생긴 폐 세척액이었다. 지하 탱크에 저장되어 2년가량 방치된 상태였다.

 

위응량(부지회장) : 그날 작업이 있는지 조·반장도 전혀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보통은 냄새가 심해서 작업자들이 대부분 퇴근한 저녁에 하거나, 3주에 한 번 정도 주말에 하는데 그날은 특별한 경우였죠.

 

박인규(교선부장) : 평소에도 세척 작업을 자주 해서 냄새가 나기는 하는데 그날은 유독 심하더라고요.

 

김경진 : 냄새가 하도 심해서 세척액 퍼내는 데를 가니까 2공장 원청에서 나온 관리자가 세척액 푸는 직원한테 작업 지시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근무시간인데 냄새도 많이 나고 그러니 작업을 나중에 하면 안 되느냐 물었어요. 그런데 아무 대꾸가 없더라고요.

 

당시 세척액 푸는 작업을 뉴그린이라는 폐기물 수거 업체에서 했는데, 작업자들은 방독면을 끼고 일했다. 그러나 방독면 없이 현장에 있던 50여 명 노동자들은 1시간 가까이 가스 누출에 방치된 채 불쾌한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식당이나 탈의실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 여성 노동자 한 명이 점심도 못 먹고 탈의실에서 쉬던 도중, 탈의실에서도 냄새가 심해 구토를 하며 몸에 마비 증세까지 생겨 119로 실려 나갔다.

 

위응량 : 회사는 한 시간 동안 내버려 두더니 나중에 조치를 한다는 게 현장 바깥으로 대피시키는 게 다였어요.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 소장이 가스 냄새가 가득한 식당에서 특별안전교육을 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조합에선 노동부를 계속 불렀어요. 그런데 전화를 받은 근로감독관이 시종일관 자기들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했죠. 그때 현장에선 세 분이 또다시 구토 증세를 보이고 이후에도 두 차례 119를 부르니까 나중엔 소방방재청, 경찰까지 현장으로 총출동하더군요. 노동부는 2시 반 다 돼서 왔어요.

 

노동부 관계자는 회사 관리자에게 전화로 신속한 사고처리를 지시했다고 했지만 현장은 방치되어 있었다. 소방방재청은 얼마나 능력이 뛰어난지 사고 누출의 원인으로 지목된 탱크로리 차량을 후각으로 검사하더니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조합은 재조사를 요구했고, 3시간이 지나 노동부 도움으로 유해물질 측정 기기로 다시 조사했다. 그러나 이미 현장은 환기가 다 된 상태였고, 유해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

 

위응량 : 사고 다음 날 아침 사장을 찾아가 산보위를 개최해서 어떤 가스가 누출된 건지, 피해를 본 조합원들 대책은 어떻게 세울 건지 논의하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사장이 일단 (근골 예방) 체조를 해야 하니까 조회 끝나고 얘기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리곤 퇴근할 때쯤 돼서 이미 기업 노조랑 산보위를 하고 있으니 금속노조랑 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같은 날 구토, 두통을 호소한 9명의 노동자는 회사 지정병원에서 특수건강검진을 받았다. 특수건강검진이라고는 하나 병원 측은 무슨 검사를 하는지 노동자들에게는 알려주지 않고, 회사 관리자인 현장 소장하고만 소통했다. 검진 결과 대부분 각막 및 결막 화상 등으로 일주일간 안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회사는 정 힘들면 연차로 퇴근하라고 강요했다. 결국, 조합은 회사에 사과와 사고 원인 규명, 피해 노동자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현장 1인 시위 및 출근 투쟁을 시작했다.

 

위응량 : 120일부터 시작했는데 처음엔 회사 관리자들이 동영상 촬영해가고, 명단 적어가고 하면서 조합원들이 위축됐어요. 그래도 이제는 계속하다 보니 조합원 참여율도 높고, 기업 노조 사람들도 회사 사람들 안 볼 때 웃어 주고 가기도 해요.

 


사고 난지 한 달 만에 시료 채취가 제대로 된 감독인가요?

 

김경진 : 121일에는 노동부 평택지청 산재예방과를 찾아갔어요. 과장이랑 면담을 하는데 가스 누출로 몸이 아픈 거랑 유해 가스는 아무 관련이 없으니 정 아프면 병원에 가라고 하데요. , 사고 이후에 회사가 사과 한마디를 안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보니까 그건 근로개선과 가서 얘기하세요.’ 그러는 거예요. 면담이라고 그렇게 1시간 앉아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우롱 당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30일에는 금속노조의 요구로 경기지부·지회 노안 간부들과 노동부 평택지청장이 면담을 했다. 노동부는 이 자리에서도 12명의 피해자와 가스 누출 사고는 무관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면담 과정에서 세척제에 발암 및 생식독성 가능성이 있어 금속노조에서 금지 물질로 규정·관리하고 있는 트리에탄올 성분이 함유된 점을 확인했다. 금속노조는 우선 노동부에 세척액 성분 분석, 현장점검 실태에 관한 원청 사업주 관리 책임성 등 확인을 요구했다. , 피해자 12명의 치료비 및 근태 인정,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조합을 포함한 노사 공동대책 회의를 제안했다.

 

위응량 : 노동부 면담 있고 나서 210일에 노동부에서 2명이 와서 시료를 채취해갔어요. 13일엔 시정명령이 나왔는데 앞으로 작업자에게 방독 마스크 지급해라, 국소배기장치 제대로 점검하고 보완해라 그게 전부더라고요. 시료 분석 결과는 3월 초에 나온다고 하는데 사실 기대가 크지 않아요. 당일 탱크로리에서 세척액을 퍼 나르면서 가스가 누출된 건데 뒤늦게 시료 채취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노동부는 이래 놓고 자기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겠죠.

 

현대위아는 자동차 핵심부품인 엔진을 비롯하여 공작기계를 생산하며 잘 나가는 회사다. 그러나 정작 일하는 노동자들은 구토가 나고 몸에 마비가 올 정도로 아파도 회사 눈치 보고, 참고 일하는 삶을 살고 있다. 더군다나 이제 3월 재계약 시즌이 다가왔다. 자칫 회사 눈 밖에 났다가는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



현대위아평택 비정규직 지회의 노동부 앞 집회 현장

 


위응량 : 저는 관리자로 5년을 일했어요. 2013년 금속노조가 다수가 되니까 위장 폐업을 하고 다시 만든 회사에 들어오면서 금속노조에 가입했어요. 회사는 노동자를 노예로 봐요.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행복할 권리가 있는데 근무 시간에 화장실 가면 이름 적히면서 살고 있어요. 인간답게 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요. 민주노조가 없으면 우리는 더욱 회사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와 내 동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싸울 거예요.

 

박인규(교선부장) : 사회가 발전했다 하는데도, 기계를 돌리고 사회를 움직이는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대우도 안 하고 쓰고 버리려고만 하니까 그 현실이 안타까워요.

 

민경복(대의원) : 사고가 있던 날도 바로 옆 동료한테 냄새가 나지 않았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냄새난다는 거예요. 다들 잘릴까 봐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참고 일하는 거죠. TV 광고를 보니까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하는데, 노동자를 무시하고 기계 취급하는 회사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겠어요?

 

조합을 만든 지 만 2년이 안 되다 보니 경험도 부족하고 아는 것도 많지 않았지만, 이번 사고로 노동조합은 회사가 노동자들을 어떻게 여기는지 배웠다. 그래서 노동조합, 그것도 민주노조가 왜 필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단다. 사고와 이후 활동을 보며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 데 민주노조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함께 깨닫게 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온 힘을 다하는 현대위아 평택지회 동지들의 건투를 빈다.



[현장의 목소리] 빅브라더에 맞서 말과 글을 지키려는 사람들 / 2015.2

빅브라더에 맞서 말과 글을 지키려는 사람들
사이버 사찰에 맞서 긴급행동에 나서다

 

 

 

재현 선전위원

 

 

작년 9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을 참을 수 없다. 사이버상의 국론 분열에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9월 18일 검찰은 유관기관을 소집하여 논의 끝에 ‘사이버 허위사실유포전담수사팀′을 발족,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서 발생하는 허위사실유포에 대해 직접 수사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검찰이 공공연하게 사이버 검열 및 사찰에 대한 입장을 밝히자 사회적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다음카카오가 검찰과의 유관기관 회의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노동자·시민들은 정부의 권력 감시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진 ‘텔레그램’ 메신저로 집단 사이버 망명을 시작했다.

 

검찰의 발표가 있던 날. 정진우 당시 노동당 부대표는 종로경찰서로부터 ‘송수신이 완료된 전기통신에 대한 압수·수색·검증 집행 사실 통지’ 우편물을 하나 받는다. 내용인즉 2014년 5월 1일부터 6월 10일까지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 대화 상대방 아이디 및 전화번호, 수발신 내역 일체, 그림과 사진 파일에 대해 압수·수색·검증 집행이 있었다는 내용의 통지서였다. 그는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끔찍한 그 느낌을 지금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한 명이 사이버 사찰 피해자가 아닌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감시사회로 가는데 제동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싸움의 주체로 서고자 결의했다. 그 길에 함께하고자 정보 인권·시민사회·법률 단체들과 함께 ‘사이버 사찰 긴급행동’을 구성하여 저항을 시작했다.

 

그 날의 끔찍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

 

“지금껏 활동하면서 구속도 돼보고, 형사적인 탄압을 많이 받아왔지만 그런 것과 이번 압수수색 결과 통지서를 받았을 때 느낌은 많이 달랐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고 피해를 당한 주변 사람들에게 굉장히 미안했다.”

 

정진우 당시 노동당 부대표는 지난 6월 10일 박근혜 정부에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노동자·시민 만민공동회를 주관하다 집회 중 연행, 그 길로 구속되었다. 6월 17일 서울구치소에서 보석으로 출소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재판부의 보석 결정이 못마땅했는지 보석취소 청구를 강행하더니 6월 16일 영장을 발부받아 뒤늦게 어떻게든 그를 가두기 위해 6월 10일 낮 12시부터 딱 12시간 사이버 사찰을 해서 수사 자료를 완성했다.

 

 

 

말과 글을 포기 할 수 없었다

 

“처음엔 사찰 사실을 알고 화도 나고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혼자 끙끙 앓았다. 그러다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 문제가 개인 사찰의 문제가 아니라, 삼성서비스, 밀양 투쟁 등 공적인 사회 활동에서 메신저로 주소 받은 내용이 정부에게 넘어간 문제였기 때문에 혼자 끙끙 앓고 위축되어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0월 1일 ‘카카오톡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을 통해 제 일로 사람들이 스스로 주춤하고 검열하면서, 말과 글을 읽도록 하는 것이 이 정권과 자본이 노리는 것이니 절대 말과 글을 포기하지 말고 저항의 직접 행동으로 나서자고 제 심경을 밝혔다.”

 

검찰의 압수수색 당시 그가 나눴던 메신저 대화에는 신용카드 비밀번호, 초등학교 동창들과 나눈 대화, 각종 투쟁 사안들을 주고받았다. 검찰은 그와 직접 대화를 하지 않아도 같은 대화방에 있었다는 이유로 2,368명을 사찰했다. 이들 중에는 정진우 본인도 전혀 모르는 사람도 태반이었다. 이후 그는 검찰과 다음카카오에 어떤 과정으로 어떠한 내용을 사찰했는지 사실관계를 요구했다.

 

“10월 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과 다음카카오에 사실 확인을 요구했다. 검찰은 지금까지 답이 없는데, 다음카카오는 변명에 가까운 답을 보내왔다. 검찰이 요구해서 자료를 줄 수밖에 없었다는 답이었다. 이후에 사회적으로 사이버 사찰 논란이 커지자 검찰과 다음카카오 사이에 공방이 벌어졌다. 검찰은 다음카카오가 사전에 추린 자료를 넘겨받았다고 주장했다. 다음카카오는 본인들은 자료를 추릴 방법도, 그럴 생각도 없다며 검찰이 시켜서 자료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사이버사찰 긴급행동’ 출범하다

 

10월 23일 정보인권활동을 하는 진보네트워크센터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천주교 인권위원회 등 시민사회단체와 피해 당사자가 있는 노동당 등이 모여 <사이버사찰 중단! 검경의 개인정보수집 반대! 사이버사찰 금지법 제정! 을 위한 ‘사이버사찰 긴급행동’>을 출범했다. 이들은 사이버 사찰의 직접적인 피해자 2,368여 명을 비롯해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대중적인 저항의 주체로 묶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사이버 사찰을 막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데 시간이 필요하므로 무분별한 사이버 사찰을 시도하는 사법 기관을 압박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 결과 통보 늦고, 내용도 불충분하지만 9월 18일 압수수색이 끝났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런데 2,368명은 통지조차 없다. 본인이 사찰의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누가 봐도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법에서는 제3자이기 때문에 다음카카오·검찰, 누구도 통지의 의무가 없다. 또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당사자 참여 권리의 문제가 있다. 다른 압수수색의 경우 본인 혹은 법정 대리인의 참여가 보장된다. 그런데 이번 경우엔 당사자 참여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민변의 카카오톡 등 사이버 공안탄압법률대응팀과 수사기관이 사이버상에서 송·수신되는 정보, 전기 통신 내용을 사찰하거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원칙적 금지하고, 메신저에 대한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압수수색 관행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사이버사찰금지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사이버 사찰 피해자에서 저항의 주체로 나서다

 

지난 12월 23일 사이버사찰 긴급행동과 피해자 24명은 국가와 다음카카오를 상대로 압수수색 통지와 수색 범위에 관한 형사소송법을 위반을 이유로 300만 원의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또, 헌법 제12조 영장주의 및 청구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밀양, 삼성전자서비스 등 투쟁하는 주체들과 촛불 시민 등 사이버 사찰의 피해자 24명에게 소송을 권하고 법률 위임장을 받았다. 헌법소원의 경우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 결정과 맞물리면서 최소한의 법과 민주주의를 외면하는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묻는 것이 적절치 않은 것 같다는 주변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손해배상소송과 헌법소원으로 보상을 받으려는 것보다 더 많은 분에게 피해 실상을 알리고 감시 사회로 나가고 있는 사회 현실을 문제 뜯어고쳐야 한다는 취지가 크기 때문에 계획대로 진행하게 되었다.”

 

투쟁하는 이들 모두 저항의 주체로 나서자

 

그는 우선 1차적으로 피해 당사자들이 이번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용기를 낸 것처럼 이후엔 더욱 많은 사람이 저항행동에 함께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대중행동 못지않게 국가와 자본의 사이버 사찰 1순위일 수밖에 없는 활동가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남겼다.

 

“저의 경우 대체로 정보 공안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카카오톡 단체 방이 많았다. 문제는 저뿐만 아니라 활동가들 모두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저도 정보 인권 활동하는 동지들을 지지, 지원하는 것에 그쳤는데 더는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하는 사람들의 공적인 토론, 사적인 영역, 말과 글을 통제하려는 국가와 권력의 감시 문제에 있어 직접 맞서 싸우는 당사자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9월 필자도 사이버 망명 행렬에 동참했던 기억이 난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카카오톡 단체방 사람들이 한꺼번에 탈출했다, 그 날 난 차마 문득 다시 꺼내보고 싶은 메시지들과 사진이 아쉬워 몇 날 며칠을 홀로 그 방을 지켰다. 또, 한편엔 내가 활동하면서 나눈 이야기들이 당당하니까 잡아가려면 잡아가 봐라! 그런 심정이었다. 그러나 소극적인 저항(?)은 며칠을 버티지 못했고 결국, 텔레그램으로 망명했다. 어느덧 이 생활도 익숙해져서 망명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즈음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저항을 시작한 그를 만났다. 이 싸움이 더욱 더 큰 사회적 저항의 물결로 가득해지길 희망하며 건투를 빈다!

[현장의 목소리] 2014년 ‘현장의 목소리’ 그 이후 / 2015.1

2014년 ‘현장의 목소리’ 그 이후




재현 선전위원



2개월 전. 새해 첫 현장의 목소리는 2014년 한 해 우리가 만났던 현장들 가운데 승리의 소식을 모아 전하고자 방향을 정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획 의도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싸움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에는 자본 스스로 노동조합과, 더 나아가 전 사회적으로 맺은 합의를 어기면서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곳이 있다. 그래서 2015년 첫 ‘현장의 목소리’는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자본에 맞서 싸우고 있는 현장을 재조명하기로 했다.



○ 금속노조 레이테크코리아분회

지난해 8월 난생 처음 노동조합을 경험하고 파업 투쟁을 벌이던 레이테크코리아 분회 조합원을 만났다. 레이테크코리아는 대표적으로 라벨(견출지)을 만드는 회사로 300만 불 수출을 기록할 정도로 시장 경쟁력이 있는 회사였다. 그러나 회사의 성장 이면엔 작업장과 탈의실에 있는 CCTV 감시와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했던 노동자들이 있었다. 


우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회사로부터 시간제 비정규직 전환을 강요받고, 더는 참을 수 없었던 70여 명의 노동자들은 2013년 5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투쟁은 끈질기게 이어졌고, 그 결과 지난 10월 24일 노사 간 쟁점이었던 작업장 이전을 다시 합의했다. 또한, 조합원 전원 서울 발령, 노사공동답사로 서울 공장 부지를 확정, 최저임금에서 기본급 2만 원을 인상하는 등 임·단협을 체결했고 길고 길었던 136일 파업을 종료했다. 


레이테크코리아, 노동조합과의 약속을 저버리다


그런데 또다시 회사의 태도가 돌변했다. 노동조합과 협의 없이 서울 신당동에 창문 하나 없는 곳에 작업장을 마련했다. 또한, 조합원에게 이른바 ‘순응 서약서’를 강요하였다. 정년연장에 관한 합의를 어기면서까지 조합원 3명을 퇴직금 10만 원 백화점 상품권 하나와 함께 12월 말 강제 퇴사시켰다. 현재 조합원들은 환풍 시설이 전혀 없는 현장에서 나는 본드 냄새로 호흡기 질환과 구토, 어지럼증을 참아가며 일한다. 또한, 휴게실과 탈의실조차 없어 회사 복도에 앉아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회사가 지난 10월 자신들의 비인간적인 행태가 알려지고 사회적 비난 여론이 일면서 국정조사 대상 사업장으로 선정되는 것을 막고자 우선, 노동조합과 합의를 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한 회사가 ‘순응 서약서’ 요구를 통해 23명의 조합원을 어떻게든 자발적으로 내보내고 시간제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 정책의 민낯을 보여주는 레이테크코리아 투쟁


지난 12월 10일 금속노조 서울지부와 노동조합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노·사 합의를 무시하고 몰상식한 노조 탄압을 벌이는 회사를 규탄하고,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출처 : 레이테크코리아분회 트위터


난생처음 노동조합을 만들고 힘든 투쟁을 벌인 끝에 현장으로 돌아간 조합원들이 회사가 스스로 했던 약속을 이행할 때까지 지치지 않고 마지막 힘을 다할 수 있길 희망한다.


○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1,895일 투쟁 끝에 노·사가 사회적 합의를 맺으며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쟁취했던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이 다시 길거리에 나섰다. 지난 해 10월 인터뷰 당시 기륭전자분회는 사회적 합의를 어기고 일터를 버리면서까지 야반도주한 최동열 회장을 사기죄로 구속하는 고발 운동을 마치고, 그 다음 사회적 투쟁을 고민하는 시기였다. 


900만 장그래의 목소리를 알리러 나선 기륭전자분회


지난 12월 박근혜 정부는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 기간 제한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국회 또한 비정규직 양산을 넘어 정리해고제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 모습을 본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은 기륭 자본의 문제를 넘어 이 사회 900만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알려내고 비정규직·정리해고제 철폐를 위한 사회적 투쟁을 시작하기로 했다. 


출처 : 참세상


첫 시작으로 12월 22일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은 10년의 투쟁으로 어디 성한 곳 하나 없는 몸을 이끌고 오체투지 행진에 나섰다. 많은 사람이 건강을 염려하며 만류하기도 했지만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은 이번 오체투지 행진은 자신과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몸을 더욱 낮추고 함께하겠다는 결의를 밝히는 행진이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오체투지 행진에는 교직원공제회 콜센터, 학교비정규직, LG U플러스, 씨앤엠 등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인권·문화예술·종교계를 비롯해 시민사회가 함께 연대했다. 


비정규직·정리해고 철폐를 염원하는 노동자들


지난 12월 26일을 끝으로 1차 오체투지 행진은 1월 7일 쌍용차 해고자 전원복직,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2차 오체투지 행진으로 이어졌다. 2차 행진에는 기륭전자분회를 비롯해 스타케미칼, 콜트-콜텍 등 정리해고에 맞선 투쟁을 하는 노동자들과 쌍용차 노동자들이 함께 나섰다. 2015년 비정규직·정리해고제 철폐를 위해 물꼬를 트고자 하는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의 싸움에 뜨거운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 


2015년 한 해도 비록 큰 힘은 되지 못할지라도, 전국 곳곳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잊지 않고 ‘현장의 목소리’로 알려내는데 함께하겠습니다.

[현장의 목소리] 일하다 죽었는데 자살이라뇨?? / 2014.12

일하다 죽었는데 자살이라뇨?

현대중공업 산재사망 노동자 故 정범식 씨 이야기



재현 선전위원



지난 2014년 4월 26일 11시경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블라스팅[각주:1] 작업을 하던 사내 하청 노동자 정범식 씨가 에어호스에 목이 감긴 채 3m 난간에 매달려 사망했다. 이를 발견한 동료들은 에어호스를 끊고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사고 직후 현장에선 故 정범식 씨가 자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침 오후 3시경엔 수사를 맡은 울산 동부 경찰서는 부검의 소견으로 봤을 때 故 정범식 씨의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에 의한 자살로 추정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울산 동부 경찰서의 말을 빌려 언론을 통해 故 정범식 씨가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부검은 저녁 6시가 돼서야 이뤄졌기 때문이다. 


울산지역 노동자 건강권 대책위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故 정범식 씨의 부인 김희정 씨는 경찰과 회사, 언론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9개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진실은 안개 속이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김희정 씨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보기로 하였다.



조선소가 그렇게 위험한 곳인지 몰랐다


“오전 11시쯤 동료에게 전화가 왔다. 남편이 많이 다쳤으니까 울산으로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이 죽을 만큼 심각한지 몰랐다. 그저 심하게 다친 줄만 알았다. 그러다 성남에서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 왔을 때 이미 숨이 멎어있었고, 심폐소생술을 계속 해도 차도가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故 정범식 씨는 현대 미포 조선에서 10년, 목포에서 3개월, 그리고 15일 전 다시 현대 중공업에서 일을 시작한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렇다 보니 김희정 씨는 사고 전까지만 해도 현대중공업이 산재사망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곳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조선소 일이 힘들다는 건 알았는데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지는 몰랐다. 주말부부로 멀리 떨어져 지내다 보니 제가 괜한 걱정 할까 싶어 집에 힘든 내색 한번 잘 비추지 않는 성격이었다.”



회사와 경찰 모두 신뢰할 수 없었다


“회사도, 경찰도 남편이 자살했다고 하는데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고가 있고 하루는 장례식장에 서문기업(하청업체) 사장이 왔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더니 뒷일은 내가 책임질 테니 빨리 장례를 치르자고 했다. 남편을 언제까지 저렇게 둘 수 없어서 사장 뜻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장례 이후에 지금까지 단 한 번 연락이 없었다.”


6월 3일 울산 동부 경찰서에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역시 경부압박질식에 따른 자살이었다. 근거로 1) 사고 현장이 故 정범식 씨 작업장과 떨어져 있고 2) 에어호스에 목이 감겼는데 저항한 흔적이 없고 3) 3달 전 부부가 다퉜던 카카오톡 메시지가 있고 4) 신용카드와 통신비를 연체했고 5) 4개월 전 아내에 대한 의심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았던 내역을 꼽았다.


울산 동부 경찰서의 수사결과는 김희정 씨와 지역 동지들의 분노를 키웠다. 현장 검증에선 에어호스에 결함이 있던 정황이 밝혀졌다. 또한, 故 정범식 씨 사진을 보면 아래턱에서 왼쪽 가슴, 허벅지에 쇳가루가 박혀있다. 특수 보호구를 쓰고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눈에도 쇳가루가 묻었다. 종합해보면 에어호스 결함으로 온몸에 쇳가루가 노출돼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았던 故 정범식 씨가 난간에 매달렸을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故 정범식 씨 작업장은 항상 쇳가루가 뿜어져 나오는 곳이다. 벌건 대낮에도 손전등이 없인 한 치 앞도 이동이 어렵다. 사고가 일어나기 너무나 쉬운 환경에 있는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산재 가능성은 배제하고, 故 정범식 씨를 둘러싼 가족관계, 채무관계 등 개인적인 정황을 근거로 수사를 종결한 울산 동부 경찰서의 발표는 가히 충격적이다.


“부부라면 안 싸울 수 없지 않나. 주말 부부다 보니까 문자를 주고받다 보면 싸울 수도 있고, 또 살다 보면 카드 값이나 휴대폰 요금을 미납할 때도 있는데 그런 것을 이유로 남편이 자살했다는 데 도저히 이해가 안됐다.”


김희정 씨는 경찰 조사 발표 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우기로 결심했다. 


“처음 남편이 죽었을 때부터 울산산추련, 노조에서 도움을 주려고 옆에 계셨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장례를 치렀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그러다 경찰 발표 이후에 울산저널 용석록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가 봐도 이건 자살이 아니니 지역 활동가들한테 도움을 청해보라고. 그래서 지역 분들께 다시 연락했고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의 명예를 찾아주고 싶었다


“큰 애가 고1인데 그 밝던 아이가 아빠가 죽었다는 충격으로 7개월이 지나도록 아빠 영정사진을 못 쳐다본다. 집 밖으로도 안 나가서 학교도 못 가고 있다. 저도 싸우기 전에는 집안에서 매일 우는 게 다였다.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아빠가 최고라 여기던 애를 위해서, 그리고 남편의 잃어버린 명예를 찾아주겠다는 결심으로 나서게 되었다.”



출처 :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공장과 경찰 앞 1인 시위를 시작으로 기자회견도 하면서 故 정범식 씨의 억울한 죽음을 알렸다. 그 결과 지난 10월 17일엔 울산 지방 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故 정범식 씨 사건이 다뤄졌다. 당시 울산 지방 경찰청장은 부실 조사를 인정하며 재조사를 약속했다. 이후 싸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최근엔 수사 결과에 대해 의문을 갖는 법의학자, 정신과 전문의 등 각계각층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담은 울산 MBC시사프로그램 ‘돌직구 40’이 방송되기도 했다. 


“아까 1인 시위하는 거 봐서 알겠지만, 다들 새벽부터 바쁘게 출근하지 않나. 인사를 하고 싶어도 참 어려운데. 그중에 그래도 한두 분은 수고하십니다! 말 한마디 건네거나, 손 한번 잡아주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이 힘이 많이 된다.”


현대 중공업은 올해만 벌써 9명의 하청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계열사 전체로 보면 12명이 산재로 사망했다.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현미향 활동가는 상황이 이쯤 되니 회사 내 안전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여론과 연이은 산재사망 사고에 관해 부담을 느낀 현대중공업이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故 정범식 씨가 자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중공업 입장에선 때마침 이번 사고엔 목격자가 없었고, 손발이 척척 맞는 울산 동부 경찰서가 옆에서 큰 몫을 하면서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번에 취재하면서 사내 하청 노동자 죽음의 행렬에도 굳건한 현대 재벌공화국의 울타리 안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故 정범식 씨와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쯤으로 치부하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는 박근혜 정권에 맞선 세월호 유가족의 모습이 겹쳐 마음이 더욱 아팠다.


그래도 여전히 희망을 발견한다. 한 사람의 죽음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진실 규명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싸우는 유가족들과 이들 옆에서 함께하는 노동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애씀이 있기에 그렇다. 이러한 노력과 마음들이 모여 현대 재벌과 조선소 울타리를 넘어 일하는 모든 이들의 죽음의 행렬이 멈추는 그날을 꿈꾼다. 

  1. 금속을 매끄럽게 하고 이물질을 제거하여, 도장을 쉽게 하고 선박 수명을 늘리기 위해 선박 표면에 쇳가루를 쏘는 작업 [본문으로]

[현장의 목소리] 이런 사람이 병원 운영해도 되나요? / 2014.11

이런 사람이 병원 운영해도 되나요?

 


재현 선전위원

 

 

충북 청주노인전문요양병원에서는 고령의 여성 간병사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20일이 넘는 파업과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공공예산 예산 157억 원을 들여 만든 청주노인전문병원을 청주시로부터 위탁 운영하고 있는 씨앤씨병원(원장 한수환)이 각종 불법과 노동탄압을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10월 노동조합을 만들고 병원 측에 교섭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병원은 조합원을 부당해고 하였다. 3월엔 인력충원 없이 3교대로 전환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밀어 붙여 3월 29일 파업에 돌입했다. 병원 측은 5월 1일 약 2억 원의 연봉을 약속하며 악질적인 노조파괴 전문브로커를 행정부원장을 영입하면서, 사태를 파국으로 끌고 갔다. 이 브로커는 직원 동의 없이 직원 정년을 만 60세로 하는 취업규칙을 만들어, 조합원 11명을 문자 통보로 해고하였다. 이 해고가 부당하므로 원직 복직시키라는 충북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이 있었지만, 병원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10월 현재 전체 해고자만 16명, 부당정직 및 부당전보를 받은 조합원만 9명이다.

 

병원 측은 근무체계를 바꾸려면 시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조례를 어겨가면서 3교대에서 2교대로 근무형태 변경을 추진했다. 그 결과 180여 병상을 보유한 병원의 간병 인력이 46명에 불과해, 간병사 1인이 3개 병실 24명을 돌보게 되었다. 병원 측은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언어도 통하지 않는 중국인 도급 간병사 인력을 투입했고, 별도의 도급 관리자가 관리하고 있다. 이들은 노조파괴 전문브로커와 함께 전국의 병원을 돌아다니며 파업을 무력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결과 환자들의 안전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 되자 나이 육십을 바라보는 권옥자 분회장은 지난 10월 29일까지 24일간 단식농성을 하였다.

 

한편, 지난 10월 20일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한수환 병원장이 출석했고, 다음날 병원 측은 노조와 교섭에 임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일까? 병원 측의 전향적인 태도에 조합의 입장은 무엇이고, 이후 투쟁에 대한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청주 시청 앞 천막 농성장을 찾았다. (인터뷰 당시 권옥자 분회장님은 단식 22일차였다)

 

 

교섭은 무슨 교섭!

 

“전에도 교섭하자고 하면서 조합원을 대기 발령시켰다. 단식도 그 이후에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면서 시작했다. 지금 여기 농성장에 부당 해고, 징계 받은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 현장에 우선 복귀시켜야 교섭에 나갈 수 있다. 220일 넘게 파업하는데 지금까지도 자기는 의사고 너희는 간병사기 때문에 우리는 동등한 관계일 수 없고, 그래서 교섭도 내가 하면 노조가 따라서 하는 거고 내가 (교섭에) 나가주면 고맙게 생각하라는 태도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청주시는 뭘 하고 있었나?

 

분쟁이 막 시작되었던 5월, 청주시장은 지방선거로 인해 공백이 있던 시기였다. 문제는 지방 선거 이후에도 지금의 사태는 노사관계 문제라며 수수방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20건의 위법사항과 임금 체불액이 8억 9천 3백만 원인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이런 청주시의 태도는 한수환 병원장의 노조탄압에 날개를 달아줬다.

 

 

환자는 CCTV로 보면 되잖아!

 

한수환 병원장은 지난 3월 3교대제 시행에 이어 6월 2교대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 병원은 다른 병원들과 달리 공공병원이라 법에 딱 맞게 1인 1실로 지어졌다. 심지어 병실엔 창문도 없다. 그래서 환자들이 방치되기 쉬운 구조인데 회사는 인력충원도 없이 교대제를 바꾸면서 뻔뻔하게 환자를 CCTV로 보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게 있으면 사고가 나도 모니터링을 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좋게 바뀌는 거라고 말했다. 아니 환자들이 사고 나기 전에 예방해야지 사고가 나고 어디가 다치고 부러진걸 아는 게 무슨 소용인가

 

 

안하무인 파업파괴자들

 

6월 2교대제 전환 이후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현장에 들어온 도급 간병사들은 병원에 상주하면서 상전 노릇을 하고 있다.

 

“이 사람들 알고 보니까 전국 돌아다니면서 파업 현장에 다니는 도급 간병사들이다. 얼마 전엔 자기들 입으로 경기도에 있는 병원에 있다 왔다고 하더라. 도급 간병사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한 번은 환자가 기저귀 갈아달라고 얘기하니까 등을 때린 일도 있었고, 환자들이 먹지도 않는 약을 먹이려고 해서 글씨를 볼 줄 아는 환자들이 왜 나한테 내가 먹지도 않는 약을 먹이느냐고 하니까 벽에 밀치고 위협하는 일도 있었다.”

 

권옥자 분회장은 노조 파괴 전문 브로커를 병원 직원으로 데려와서 운영하는 한수환 병원장이 무슨 의사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런 사람은 의사 면허증도 박탈시켜야 하는 거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체 우리를 왜 해고 하는 거냐?


“파업이 길어지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우린 요구사항도 없다. 4년에 한 번 위탁회사 바뀔 때 안 짤리고 계속 일하게 해달라는 거 그거 하나다.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벌써 몇 명을 자른 거냐.” “가족들도 간병으로 지쳐서 마지막에 찾아오는 곳이 요양병원이라는 특성도 있고 간병사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 노동 강도가 더욱 강할 수밖에 없는 게 요양병원이다. 그래서 어렵게 노동조합 만들고 우리도 힘들다는 얘기를 이제 조금했는데 그 대가가 1년 가까운 시간 길바닥 농성이다. 우리 문제를 해결 못 하면 다른 요양보호사들이 목소리 내기가 더 어려워질 텐데 큰일이다.”

 

 

 

▲ 지난 10월 6일 청주시노인전문병원 정상화를 위해 권옥자 분회장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출처 : 미디어 충청)

 

인터뷰 이후 10월 31일과 11월 1일 이틀간 정부기관의 중재로 노사 교섭이 있었으나 최종 결렬됐다. 노조는 근무형태 변경과 관련해서 전문기관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안을 마련해보자고 양보했으나 병원 측이 인력 충원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또한, 취업규칙을 이유로 들면서 올해 말 60세가 되는 권옥자 분회장을 비롯해 정년 60세가 넘는 노동자들을 촉탁직으로 계약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주노인전문병원 노동자들의 투쟁은 공공요양병원이 민간위탁으로 맡겨졌을 때 원활한 의료 서비스 제공과 안전하고 투명한 운영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 투쟁이다. 생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병원에 오는 노인들의 안녕한 삶을 보장해야 하는 공공요양병원을 민간에 위탁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부의 제도 개선이 시급한 때이다. 파업을 끝내면 조합원들하고 손잡고 야유회를 가고 싶다는 분회장님의 작은 소망이 겨울이 오기 전에 하루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청주노인전문병원 노동조합의 투쟁에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

 

[현장의 목소리]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 2014.10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기륭전자분회, 다시 싸움을 시작하며'


재현 선전위원



2010년 11월 1일 금속노조 기륭분회 조합원들이 1,895일 투쟁 끝에 모든 노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회에서 노·사가 사회적 합의를 맺으며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쟁취했다. 사회적 합의 당시, 기륭자본은 국내 생산 설비가 없고, 경영상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현장복귀까지 유예기간을 요청했다. 결국, 조합원들은 2년 6개월을 기다린 끝에 2013년 5월 2일 설렘을 가득 안고 정규직으로 당당히 현장에 복귀했다. 


현장 복귀 9개월이 지났는데도 회사는 업무배치를 하지 않았다. 월급은커녕 4대 보험도 들지 않았다. 한 술 더 떠 지난 8월 최동열 기륭 회장은 “일을 하지 않으면 너희는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다”는 막말까지 퍼부었다. 조합원들은 화가 끝까지 치밀었지만 그래도 사회적 합의가 있으니 회사의 전향적인 태도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2013년 12월 30일 꼭두새벽 최동열 회장과 몇몇 직원이 회사 집기를 들고 야반도주를 했다. 아침에 출근한 조합원들은 회사 총무부장에게 항의하고, 어디로 공장을 이전하는지 밝히지 않으면 이곳에서 버틸 수밖에 없다고 했다. 1,895일을 투쟁하며 그토록 바라던 일터가 하루아침에 농성장이 되었다. 주저앉아 있을 수많은 없었던 조합원들은 8월 29일 ‘사회적 합의 이행 촉구, 경영 투명성 보장’을 요구하며 투쟁을 선포했다.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는 최동열 회장을 사기죄로 구속하기 위한 고발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지난 9월 27일 고발인 대회를 마치고 다음 투쟁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유흥희 기륭 분회장을 만나 고발운동의 취지와 당일 현장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듣기위해 10월 어느 날 제법 내리는 소나기를 뚫고 농성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으로 변한 ‘사회적 합의’


2004년 순이익 200억 이상의 알짜배기 회사였던 기륭전자는 2006년 에스에인베스트먼트 투자회사를 거쳐 2008년엔 최동열 회장이 회사를 인수했다. 그 뒤로 공장부지 매각을 시작으로 소위 투기 놀음과 무리하게 회사를 인수하면서 경영 상태가 악화하였다. 2012년엔 지금의 사옥까지 매각하고 다시 임대로 들어오면서 지금 현재 생산시설도 자산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올해 2월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투명하지 못한 경영과 회사를 지속 운영하는 의미가 없다는 평가를 받아 상장 폐지까지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경영상의 악화로 인한 피해를 온전히 노동자들이 입고 있다.


“사회적 합의를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무너뜨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물론 지금껏 기륭 자본이 워낙 조합원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해서 여러 정황상 우려가 컸죠. 그래서 투쟁이 끝나고 힘들어서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쉬지 못했고, 현장 복귀를 기다리는 2년 6개월 동안 조합원들이 사무실 하나 내서 거기서 먹고 자면서 기륭 자본을 계속 감시하고, 일상적 긴장을 놓지 않았죠. 그래서 이렇게까지 했으니 기륭 자본이 사회적 합의를 이렇게 쉽게 어기고 야반도주를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기륭전자 최동열 회장 사기죄 고발 운동의 두 가지 의미


출처 : 기륭전자분회


“고발 운동을 하게 된 건 두 가지 이유였다. 2010년 기륭의 사회적 합의는 불법파견 비정규직의 부당해고는 정당했다는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기륭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했던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의 사회적 연대투쟁의 힘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한 사회적 합의였던 것이죠. 그런데 이를 뒤로하고 야반도주를 한 최동열 회장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것에 대하여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고발운동은 기륭뿐만 아니라 다시는 투쟁하는 동지들이 이러한 고통을 반복하지 않도록 사회적 합의를 어기는 기업주에게 법적 책임을 묻게 하는 투쟁의 의미도 있다.


“다들 아시다시피 2011년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있었던 한진중공업 투쟁에서도 국회가 보증을 서서 사회적 합의를 맺었었는데요. 이후 사측이 기존 합의를 어기면서 희망을 잃어버린 두 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가뜩이나 요즘엔 투쟁을 시작했다 하면 장기투쟁으로 가면서, 대개 투쟁을 정리할 때 사회적 합의를 맺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거든요. 그런데 사실 사회적 합의는 이행하지 않아도 법적 처벌의 근거가 없어요. 그러니 이를 이용해 돈 있고 힘 있는 자본가들이 사회적 합의를 너무나 쉽게 어기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이라도 사회적 합의를 어기는 자본가들의 인신 구속을 통해 법적 책임을 묻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고민에서 지금의 고발운동을 시작했어요.”


기륭 조합원들은 올해 2월엔 2010년 사회적 합의의 의미를 다시 환기하고, 이행하기 위한 법·문화예술·인권·종교 등 각계각층의 운동진영과 토론회를 진행했다. 또한, 지금껏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유성기업·쌍용자동차·현대자동차 자본가의 처벌을 요구하는 ‘잡아라 기업사기꾼’ 문화제를 진행하는 등 고발 운동의 취지를 나누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투쟁을 발판삼아 지난 9월 27일 11,800여 명 동지들의 서명을 모아 최동열 회장 사기죄 고발 투쟁을 전개했다.




고발운동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기 위한 첫 발걸음


기륭조합원들은 무엇보다 이번 고발 운동이 사회적 합의를 이해하지 않는 자본가를 처벌하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했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있었다.


“이번 고발 운동을 시작으로 ‘기륭법’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업주에 대한 징벌적 처벌 조항을 만드는 입법의 밑거름이라도 만들어보자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소위 기륭 자본의 투기 놀음과 ‘먹튀’ 전략이 신경영이라 불리며 벤치마킹하는 자본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최근 스타케미칼을 비롯해 금속노조 내에도 투기 자본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아서, 이런 사례를 더 모으고 사회적 대안까지 마련하는 투쟁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내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새로운 투쟁을 고민하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기륭동지들의 힘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오랜 투쟁으로 건강도 좋지 않고, 경제적인 형편도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참 무거웠다.


출처 : 기륭전자분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봤을 때도 지금 활동이 힘이 드는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막바지로 가고 있는 기륭 투쟁에서 마지막 남은 10명의 조합원 모두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하면서 어떤 의미를 남기는 투쟁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어요.”


 2005년 노동조합을 만들고 비정규직 파견 노동자로 온갖 차별과 서러움을 견디며 1,895일의 싸움 끝에 정규직화를 쟁취한 기륭 동지들이지만, 지금은 돌아갈 현장도 없고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나 투쟁은 마치 자전거와 같아서 더디게 가더라도 페달을 계속 밟아야 쓰러지지 않는다 생각하기에, 지금의 투쟁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힘을 내서 자전거 페달을 밟고 또 밟고 있다. 어떤 시의 한 구절처럼 언제나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되는 투쟁이 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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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목소리] 요양보호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 2014.9

요양보호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재현 선전위원



지난 8월 16일 일산에 위치한 수요양원 조합원분들과 인터뷰를 위해 길을 나섰다. 같은 일산이지만 요양원은 주변엔 차도 다니지 않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는 산골짜기에 타운으로 조성된 곳에 있었다. 주변에 인기척이라고는 오로지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 들렸다. 이름만 다를 뿐 비슷하게 지어진 요양원 건물들을 지나고 지나, 가장 구석에 있는 요양원에 다다르니 로비에 농성장이 보였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 소속된 일산수요양원 분회 조합원은 모두 요양보호사들이다. 이들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에,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휴식시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으로 참고 버티다 지난 4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러자 사업주는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해 돌연 폐업을 단행하고, 요양보호사를 해고한 이후 하루아침에 바뀐 사업주가 비조합원 요양보호사를 고용해서 일산수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처음엔 돈도 벌면서, 봉사할 수 있는 일 요양보호사 일이라 하게 됐어요. 그런데 지금은 후회할 때도 많아요. 제가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어머님이 5년간 식물인간이셨어요. 당시 저희 집에서 모셨었는데, 돌아가신 후에 보니 요양보호사 교육과정이 있더라고요. 병간호 했던 경험도 있고 해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죠. 저는 여기가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너무 황당하고 억울하고, 속상하고 분통이 터져요.”


일산수요양원 요양보호사들은 한 달에 10번 출근에 24시간 일했지만,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130만 원을 월급으로 받았다. 사업주는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그나마 지급하던 식대도 뺏으려고 했다.


“야간이나 휴일에 일해도 수당 같은 건 없어요. 올해 노동조합 만들고 처음 5월 1일 노동자의 날에 수당 받은 거 말고는요.”



요양보호사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아침에 출근해서 인수인계를 위한 팀원 미팅을 한다. 미팅이 끝나면 그때부터 온종일 환자들을 돌보게 된다. 규칙적으로 국민체조도 시키고, 기저귀 갈고, 끼니에 맞춰 식사도 챙긴다. 그리고 수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환자들 목욕을 시킨다. 요양보호사 1명당 7~8명씩 환자를 맡다 보니 다들 가장 힘든 일이 목욕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법으로는 요양보호사 한 명이 담당해야 하는 환자가 2.5명으로 정해져 있어요. 현실과는 너무 다르죠?”


“지금 사업주는 80이 넘은 자기 엄마를 요양보호사로 고용했다고 보고한대요. 요양보호사를 환자 수에 맞춰서 고용해야 하니까 이런 식으로 사람을 쓰는 거죠. 문제는 다른 요양원들도 다르지 않은데, 나라에서는 왜 이런 걸 묵인하는지 모르겠어요.”



24시간 온 종일 환자들과 씨름하다 보면 육체적으로 그렇지만 정신적으로 보통 힘든 일이 아니겠다 싶었다.


“몸이 힘든 것도 있지만, 환자분이 따귀를 때린 다던가 얼굴에 침 뱉고, 머리카락도 쥐어뜯고, 욕하고 성희롱도 하고, 도둑질했다고 의심하고, 그럴 땐 정말 힘들어요. 요양보호사가 자기 맘에 안 들면 사무실 직원한테 가서 고자질하고 그러는데, 문제는 직원들이에요. 무조건 환자들 말만 믿고, 요양보호사들이 잘못 했으니 맞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해요. 같은 말이라도 ‘선생님 힘드셨죠.’ 이 한마디면 되는데,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 사실 환자들이 그러는 거야, 치매 환자도 있고 하니까 하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사무실 직원들이 그러는 건 정말 참기 힘들 때가 많아요.”


요양보호사의 버팀목이 되어야 할 직원들은 환자보다 요양보호사를 더 무시하고, 이러니 보니 보호자도, 환자도 요양보호사를 무시한다. 한편, 그럼에도 요양보호사 일을 계속 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환자들이 안쓰러울 때가 많아요. 예쁠 때도 많고요. 대개 애 키울 때 그런 마음이 드는데, 요양보호사는 봉사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없으면 정말 못해요. 농성 시작하고는 병원에서 막으니까 병실에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지금도 환자들 보고 싶고 그래요. 우리가 농성하면서 아침 선전전하고 있으면, 환자들이 창문으로 우리를 막 불러요. 빨리 투쟁 끝내고 환자들 곁으로 가야죠.”



얘기를 듣다 보니 생계도 책임져야 하고, 아무리 꼬집고 때리고 해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환자들을 뒤로하고, 평범한 40~50대 여성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을 결의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월부터 회사가 근로 체제를 바꾸려고 했어요. 그때 노동조합에 문의했죠. 그 뒤로 5월에 가입하고, 단체교섭을 요구했는데, 사업주는 바로 폐업을 하겠다고 하면서, 교섭에도 딱 한 차례 응하더니 줄곧 거부했어요.”


이 한 차례 교섭에서도 사업주는 상급 단체인 공공운수노조에 ‘돈을 기부할 테니 노조를 없애 달라’고 했다. 이뿐만 아니라 교섭을 요청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병원을 방문하면 무단 침입으로 경찰에 신고하는 등 어이없는 행동을 일삼았다. 그러다 7월 5일 사업주는 폐업 공고를 냈고, 하루아침에 요양원을 인수하는 새로운 사업주가 기존 요양보호사 40명 중 17명은 재고용하고, 나머지는 요양보호사 신규 채용을 단행했다.


“저희가 7월 말이 대부분 계약 만기 시점이었는데, 퇴직금을 안 주려고 계약기간이 1년이 안 돼서 폐업 공고를 한거죠.”



더구나 새로운 사업주는 신규 채용 시 입사 지원서에 노동조합 가입 여부를 쓰게 하면서 사실상, 채용과정에서 조합원을 배제했다. 그 일을 계기로 요양보호사들이 다들 화가 많이 났고, 본격적으로 노조에 가입했다. 


“사업주가 바뀌었는데 요양원 대출 이자를 전 대표가 지금도 내고 있대요. 잔금도 안 치렀다 하고. 이러니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려고 위장 폐업했다고 확신하는 거죠.”


한창 무더운 7월 6일 시작한 농성도 어느덧 40일을 넘어서고 있지만, 사업주는 대화의 의지도, 태도 변화의 조짐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병원 로비 농성장에서 쓰지 못하게 단전, 단수까지 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친 기색 보다는 오히려 지금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그동안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 같이 일했지만, 근무 시간도 병실도 각자 다르고 서로 데면데면하게 인사 정도 하는 관계였는데 어느덧, 매일 같이 먹고 자고 하면서 친해지고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다만 솔직히 더는 이 시간이 길어지면 어떡하지 걱정은 돼요.”


“우리는 이제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다른 데 가서 일할 수도 없어요. 일산, 파주 요양원장들이 모여서 일산수요양원 요양보호사들은 절대 채용하지 말라고 했데요. 이번에 새로 온 요양보호사가 보호자에게 말해준 얘기를 전해줘서 알게 됐어요. 실제로 이력서를 내도 일산수요양원에서 일했다고 하면 쳐다보지도 않는데요. 어떤 요양원 협회 간부는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요양보호사가 요양원 상대로 어떻게 이기겠느냐 했다는데. 정말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 저희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2010년 기준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요양보호사는 약 23만여 명이다. 문제는 사회적으로 노인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돌봄 노동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는 데 반해 요양보호사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제도는 굉장히 미비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의 요양보호사들은 본래 돌봄 노동 외의 부당한 업무를 강요받거나, 근로기준법 위반 등 노동권 사각지대, 산재·직업병, 성희롱 문제에 노출되어 있다. 지금, 여기 일산수요양원 요양보호사들의 투쟁이 지금의 현실을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람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마음으로 돌봄 노동하고 있는 일산수요양원 요양보호사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래서 너무나 소중하고,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계절을 넘기지 않고, 하루빨리 농성장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요양보호사의 손길이 필요한 환자들의 곁으로 돌아갈 날을 기대한다.

  • 2014.09.19 15:30 ADDR 수정/삭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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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목소리] 더 이상 사장이 원하는 아줌마는 되고 싶지 않아요 / 2014.8

더 이상 사장이 원하는 아줌마는 되고 싶지 않아요


재현 선전위원


견출지, 라벨지 시장 매출 1위, 300만 불 수출을 기록한 레이테크코리아. 이 회사에서 온갖 반여성적, 반인권적 노동탄압을 견디며 일하다 이제 인간답게 일하는 일터와 일상을 되찾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레이테크코리아 지회 조복남, 김선희, 정해선 조합원을 만났다.


일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조복남 : 친구 소개로 왔어요. 집하고 멀지 않아서 출·퇴근도 편하고 그래서 다니게 되었죠. 근데 막상 와서 일을 해보니까 이렇게 일하는 곳도 있나 싶었어요. 아침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으면 점심때까지 고개 한번 들기 힘들었어요. 화장실도 못 가요. 요즘에도 이렇게 일하는 데가 있나 싶었어요. 계속 다녀야 하나 갈등도 많이 했어요. 


김선희 : 저도 전철 한 번에 오는 거리라 오게 됐어요. 만약 공장이 안성에 내려가는 줄 알았으면 다니지 않았을 거예요. 처음에 한 마디도 없었거든요. 나중에 공장 이전을 반대하니까, 회사는 6년 전부터 내려갈 계획이었다고 주장하는데 그게 사실이면 미리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해선 : 제가 늦둥이가 있어서, 집에서 가깝고 주 5일 9시 출근해서 6시 퇴근하고 잔업이 없는 데라고 해서 일했어요. 저는 여기서 일하면서 결혼하고 나오는 주부들은 다 이렇게 일하는 줄 알았어요. 


구체적인 노동조건은 어땠나요?


정해선 : 당시 대표가 회사 전체에 CCTV를 설치하고 감시가 굉장했어요. 주로 대표가 제주도에  있는데 핸드폰에 CCTV를 연결해서 감시하면서, 물건 때문에 화면이 가려지면 직원을 불러다가 그 앞에 물건치우고 그랬어요.


조복남 : 누가 물 마시는지, 화장실 많이 가는지 감시하고. 한 사원은 체격이 컸는데 답답하다고 다른 부서로 내려 보낸 적도 있어요. 당시 대표가 항상 카메라를 주시하면서 지적을 해서 직원들이 매번 고개를 푹 숙이고 일했어요. 처음 근무 할 때 화장실 가는 사람도 없고, 물 마시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옆에 동료한테 “여기 화장실 가면 안 되느냐?” 물어봤는데 “눈치껏 가면 돼요” 그러더라고요. 그때 바로 알았죠. 가면 안 되는구나. 그래서 대개 점심시간까지 참다가 종이 땡 울리면 화장실 가려고 다들 뛰어가요. 점심에도 식당이 없어서 도시락 싸와서 일하던 바닥에 돗자리 펴고 먹어요. 월급에 밥값 10만 원 포함해서 나오는데 그나마 그 돈으로 최저임금 딱 맞춰 주는 거예요. 그러니 그 돈으로 점심 사 먹으면 남는 것도 없어요.


정해선 : 대표 신년사도 가관이었어요. “여러분들은 원더우먼이십니다. 존경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더 좋은 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주저하지 말고 가십시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습니다.” 아줌마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거죠.


조복남 : 처음 3개월은 수습기간인데, 회사 마음에 안 들거나 못마땅하면 수습 때 바로 자르고 새로 사람 뽑고 그랬어요. 만약 3개월 수습이 지난 정규직 사원을 그만두게 하고 싶을 때는 부서를 마구 돌리면서 사람 자존심에 상처를 내고 스스로 그만두게 했어요.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뭐였나요?


조복남 : 전 직원에게 비정규직 전환 계약서, 시간제 알바 계약을 강요한 게 결정적이었어요. 그때를 계기로 작년 6월 4일 조합을 만들었는데, 회사는 곧바로 권한 없는 바지사장으로 대표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일주일 후에는 8월 말에 공장을 안성으로 이전하겠다고 했어요. 조합은 꾸준히 공장 이전에 맞서 항의했는데 결국 힘에 밀려서 예정대로 진행됐어요. 회사는 공장이 안성으로 가면 아무래도 출·퇴근에 제약을 받으니 조합원들이 회사를 그만둘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래도 안성 내려가서 피나는 노력 끝에 9월에 단협 체결하고, 출·퇴근 버스 제공 합의도 이끌어 냈어요.


정해선 : 처음엔 70명 정도 조합에 가입했는데 안성으로 공장 이전하고 작년 연말에 회사 그만두는 조건으로 위로금 100만 원을 준다고 했을 때랑 실업급여기간 끝났을 때, 결정적으로 그렇게 두 차례 조합원이 줄면서 현재 25명이 남아있어요.


 요구안 쟁취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레이테크코리아 조합원 동지들 (출처 : 노동과 세계)


안성공장에서도 CCTV는 계속 있었나요?


조복남 : 회사에서는 CCTV를 설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막상 가보니 조합원들이 주로 있는 포장부랑 생산부 그리고 휴게실이자 탈의실인 컨테이너에 CCTV가 있더라고요. 나중에 사회적으로 이 문제가 알려지니까 올해 3월에 폐쇄했어요. 이번 대표는 자기는 전 대표 같은 일은 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하나도 다르지 않았어요.


정해선 : CCTV뿐만이 아니에요. 작년 12월 31일, 퇴근 30분 전에 회사에서 통근버스를 없앤다고 했어요. 다들 일을 그만둘 줄 알았는데 생각대로 안 되니까 통근버스를 없앤다고 한 거죠. 그래서 두 달 동안 조합원들이 버스를 렌트해서 다니면서 노동부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회사와 교섭을 해서 작년 2월, 4월 19일 부로 안성에서 서울 공장으로 이전한다는 합의를 했어요. 그때부터 렌트 취소하고 임시로 회사에서 제공하는 차를 탔어요. 그런데 폐차 일보 직전의 봉고차 2대가 오는 거예요. 하루는 비가 엄청나게 많이 왔는데, 와이퍼 하나가 날아가서 도로에 차 세우고 주워가지고 끈으로 엮어서 겨우 내려간 적도 있어요.


김선희 : 조합원 대부분이 5시 반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집에 가 빨래하고 그러면 자정 넘어 자니까, 출·퇴근 시간 버스에서 눈 붙이는 게 다인데 봉고차는 앞 유리도 테이프로 붙여놓고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이 운전도 하다 보니 졸음운전도 하고. 우리는 고속도로에 목숨 내놓고 일했어요.


김선희 : 노동조합 만들고 투쟁하니까 전 대표가 “내 건물에 노동조합은 절대들일 수 없다”고 해서, 교섭에서 합의한 지금 대표가 본인도 어쩔 수 없다면서 약속을 어기고 있어요. 또, 단협에서 재직 중인 직원은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한다고 되어있는데 작년 2월 4일 비정규직 계약으로 한 김OO 조합원을 5월 1일 부로 해고했어요. 이것도 명백한 단협 위반사항이죠.


조복남 : 지회에서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고, 항의 농성하러 고용노동부 서울지방청에 자주 갔었는데, 우리가 생각할 때 노동부라고 하면 근로자 편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근로자편이 아닌 게 너무 화가 나고 서글펐어요. 


지금까지 이 투쟁을 버틸 수 있었던 큰 힘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조복남 : 힘은 들지만, 조합원이 몇 명 없는데 제가 그만두면 다른 사람들도 얼마나 맥이 풀리겠어요. 세상 저 혼자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더불어 사는 건데, 내가 그만두면 다른 동료들이 더 힘들어하니까 그래서 지금도 싸우고 있어요.


김선희 : 엄마가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다 중간에 그만두면, 우리 애들도 노동자로 살아갈 텐데 애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지금 현실이 애들의 미래일 텐데 이런 끔찍한 현실을 똑같이 물려주고 싶지 않아요.


정해선 : 초등학교 1학년 막내가 “엄마, 내가 엄마 일할 수 있는데 알아봐 줄게 그만해” 그래요. 그런데 아무 결론 난 게 없는 상황에서 그럴 수 없죠. 또 지금 포기하면 대표가 원하는, 힘들면 그만둬버리는 그런 아줌마가 돼버리는 거잖아요. 아줌마들도 잘못된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어요.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1년 여, 지금까지 오면서 어찌 흔들리지 않았을까. 가족과 동료를 위해 버티고 있다고 말하는 레이테크코리아 지회 조합원들 모두 무수한 흔들림과 시련 속에서 누구의 엄마, 아내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한 주체로서 새로운 꽃잎을 피우고 있었다. 투쟁 승리하는 그날까지, 건투를 빈다! 

[현장의 목소리] 꿈의 공장을 찾아서 / 2014.7

꿈의 공장을 찾아서


재현 선전위원


창문 하나 없는 공장에서 유기용제를 다루며 손가락 지문이 없어져라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공장을 빼돌린 사장은 이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내쫓았다. 그렇게 거리에서 싸운 지 어느덧 2709일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래가 노래를 배반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삶을 배반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 꿈의 공장을 찾아서 싸우고 있는 콜텍 이인근 지회장 동지를 만났다.


최근 대법원의 재상고 판결이 있었다. 이번 판결 내용은 무엇이었나?

지난 6월 12일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판결 내용은 미래에 다가올 경영상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는 정당하다는 취지에서 원고들의 상고를 기각한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다가올 경영위기를 이유로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내린 이번 판결은 근로기준법에 정해져 있던 정리해고의 4가지 요건이 완전히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는 동시에, 자본가들에게 정리해고에 대한 부분을 활짝 열어준 계기가 된 판결이 아니었나 싶다.


이번 판결에 기대하는 바가 남달랐을 텐데, 실망이 컸겠다.

전혀 기대를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인 거고, 내심 고법 판결을 따라갈 거다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래서 더 참담하고 힘든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난 고법 파기 환송심 때는 솔직히 많은 기대를 했었다. 심리과정에서 진행되었던 회계 특별 감정도 좋게 나왔고, 기대했는데 실질적인 판단이 감정을 통해 밝혀진 결과는 대법 판결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을 앞두고 대법원 앞에서 25일 간 24시간 내내 1인 시위가 있었다.

대법에 상고가 됐고, 고등 법원 판결이 그렇게 나다 보니까 대법원에 있는 대법관들에게 올바르게 판결을 해달라고 하는 그러한 취지에서 대법원 1인 시위를 계획했다. 사실 원래 계획은 대법원 앞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함께 투쟁할 수 있는 방법이 좋지 않겠냐는 연대하는 동지들의 의견들이 있어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참 많은 연대 단위들이 함께해주셨다. 감사하다.


재판 과정에서 콜텍 자본이 경영상의 위기가 없었다는 것이 너무 명확하게 드러났는데도 이렇게 나온 이번 판결은 정치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회사에서는 콜텍 본사와 대전 공장을 분리해서 경영해왔는데 2003년부터 대전 공장이 적자가 났다고 계속 주장했다. 그러나 고법이 콜텍과 대전 공장은 하나의 기업으로 봐야 한다며 정리해고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사측에서 대법에 상고했고 3년 가까이 사건을 끌면서 결국 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당시 대법 판결을 내렸을 때 판사 중 1명이 얼마 전 총리 내정자였다 사퇴한 안대희였다.


▲ 콜텍 동지들은 대법 판결 규탄을 위한 1인 시위를 다시 준비하고 있다


심리하는 과정에서 사측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았나?

고법으로 환송했을 당시 대전 공장의 적자가 구조적인 문제인지, 기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지 다시 심리해야 한다는 결정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심리하는 과정에서 콜텍에 대한 특별 감정을 요청했던 조합의 요구를 받아들여 법원이 지정한 회계사가 특별 감정을 했다. 그 결과 콜텍과 대전 공장은 독립체로 볼 수 없고, 대전 공장의 적자가 미비하므로 기업 전제로 전위 될 가능성이 없다. 그러므로 긴박한 경영상의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정리됐다. 그런데 전혀 대법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사측으로 기운 판사가 립서비스 차원으로 너희가 한번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그런 거였지 않았나 싶다. 그런 게 아니라면 감정 결과를 하나도 반영하지 않은 것은 말이 안 된다.


2,000일을 넘어 3,000일 투쟁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동안 투쟁할 수 있었던 버팀목,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동안 내가 몸담아 왔던 열심히 일했던 일터에 대한 애정, 사장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지금까지 견디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또 많은 노동자, 시민들의 연대가 지금까지 콜트콜텍 투쟁을 버티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모든 조합원이 다 콜텍에 근무하면서 늘상 주인의식을 갖고 내 몸 아픈 줄 모르고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났다. 아침에 출근하러 가보니 출입문이 잠겨있더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나 이런 배신감이 너무 크더라.

▲ 이 팻말이 필요 없는 그 날은 언제일까


낙 긴 시간 싸우면서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다 했다. 이후 투쟁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 같은데.

대법원 판결에 규탄하는 1인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또한, 콜밴 연습, 지역 연대 단위 동지들과 함께하는 ‘야단법석’ 모임, 공동투쟁단 활동, 본사 집회, 유랑 문화제 등 일상적인 투쟁을 하면서 이후 장기적인 투쟁을 고민 중이다. 사실 우리가 노동조합을 해산하지 않고 지키고 있는 것 자체로 박영호 사장이 압박을 많이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

콜텍은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일은 해외에서 하고 반제품으로 만들어 들여온 기타를 마지막 조립 및 튜닝을 해서 ‘메이드 인 코리아’로 팔아먹는 것이 경영방침이었는데 그게 안 되고 전 제작을 해외공장에 의존하고 있으니, 상품질도 떨어지고 브랜드 이미지도 나빠지고 그러면서 판매 매출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후 투쟁도 현재 박영호 사장이 가장 많이 압박을 받는 부분인 매출에 직접적인 타결을 줄 수 있도록 뮤지션들에게 콜트콜텍 문제가 더욱 확산되고 알려질 수 있게끔  고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아직은 초벌 단계인데, 그동안 투쟁이 법적 싸움과 투쟁이 다소 분리됐었다면 이후 투쟁은 사회적 연대체 구성을 통한 투쟁을 고민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연대 단위들과 함께 논의하고 있는 건 안정적인 농성 거점과 생계를 함께 보존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하려고 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후원을 조직하려고 한다. 일터 독자들도 우리를 포함해서 정리해고·비정규직 문제에 맞서 싸우고 있는 동지들에게 더욱더 많은 관심 기울여주시고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법
1. 매달 마지막 수요일 홍대 클럽 ‘빵’에서 열리는 수요문화제에 함께한다.
2. 기타노동자를 착취하는 콜트기타를 사지 않는다.
3. 콜트콜텍 동지들과 친구가 된다.
(트위터 @NoCort / 페이스북 www.facebook.com/groups/nocort)
4. 콜트콜텍 동지들을 후원한다. (외환은행 620-216112-483 이은성)





  • 한노보연 2014.07.31 12:3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내 몸 아픈 줄 모르고 일했는데, 하루 아침에..." -[인터뷰] 꿈의 공장을 찾아서... 콜텍 이인근 지회장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13648

[현장의 목소리] 다음 생에는 버스기사가 대우받는 곳에서 태어나겠습니다 / 2014.6

다음 생에는 버스기사가 대우받는 곳에서 태어나겠습니다
- 열사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신성여객지회 오동석 조합원 -

 

재현 선전위원

 


지난 4월 30일 노동절을 하루 앞두고 ‘사측의 농간에 놀아나지 말고 또다시 나 같은 억울한 일이 없도록 투쟁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자결을 시도한 진기승 조합원. 그가 6월 2일 밤 9시경 우리 곁을 떠났다. 2012년 11월 부당해고 이후 힘든 생활고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그가 왜 우리에게 이와 같은 메시지를 남겼을까? 이유를 듣기 위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북지역버스지부 신성여객지회에서 그와 동고동락을 함께했던 오동석 조합원을 만났다.


진기승 조합원이 이렇게 마음 아픈 결정을 내린 이유가 무엇인가?

 

기승이랑 같이 지회 조합원 8명 정도가 모임을 하나 하고 있는데 죽기 이틀 전 편의점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 관리자 놈들한테 농간당하고 이용당한 것 같다고 억울해서 죽겠다고.

 

관리자 중 하나인 영업부장은 올해 2월 말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진기승 조합원에게 월급 250만 원을 챙겨줄 테니 민주노조를 탈퇴하고 회사 관리자로 들어오라고 회유했다. 대신, 다시 회사 들어오고 싶으면 회장에게 가서 무릎 꿇고 빌라고 했고 두 번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진기승 조합원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존심까지 다 버렸다.

 

회사가 약속을 어겼다. 이후 몇 날 며칠을 힘들어하다 4월 15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만나보고 마음의 결정을 해야겠다고 하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이제 마음 다 정리하고 행정법원 판결 결과 기다리면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는데 결국, 행정법원 판결을 10시간 앞두고 이렇게 됐다.

 

진기승 조합원이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노조에서 생계비 50만 원 주는 걸로는 고3, 고1 애들 키우기엔 턱도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조끼 벗겠다고 했고, 조합에서 생계를 보장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서로 미안해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승이가 한 부모 가정이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애들 생계 때문에 합의 이혼을 했다. 그리고 4월 30일 그즈음 정부에서 집으로 실사가 나온다 해서, 자기 짐을 모조리 빼야 했는데 그마저도 옮길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굉장히 힘들어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어려운 길을 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그날 오전만 해도 사무실에 와서 평소와 다름없이 얘기도 나누고, 친구랑 전화 통화를 하더니 점심 먹기로 했다고 나갔었다가 그날 저녁 소식을 들었다. 누구한테 내색도 못 하고. 회사에 대한 부당함이 머릿속에 떠나지를 않으니까 회사를 믿지 말라는 그런 유언을 남기고 더는 회사를 이렇게 둬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그 길을 선택한 것 같다.


함께 동고동락 하던 동료였는데 마음이 아주 아프겠다

 

요즘은 잠도 잘 안 오고 마음도 안 좋다. 나쁜 생각이 들까 봐 겁이 나서 술도 못 먹는다. 나뿐만 아니라 전 조합원들 마음에 상처가 크다. 기승이는 우리도 못하는 일을 항상 앞에 나서서 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오래 일했어도 노동조합 활동은 꿈도 못 꿨는데 기승이는 입사한 지 1년 만에, 그것도 야물게 하고 10년 넘게 차이 나는 동생인데 배울 게 많은 동생이었다.

 

지회는 진 조합의 자결 시도 이후 5월 6일부터 차고지 앞에 전 조합원이 무릎을 꿇고 승차거부투쟁을 전개했다.


특별히 무릎을 꿇고 승무거부를 한 이유가 있나?

 

기승이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과 한국노총도 함께 해달라는 의미를 담고자 무릎을 꿇었다. 승무거부 투쟁을 19일까지 진행했고, 싸움이 길어지면서 조합원들의 생계도 힘든 터라 지금은 간부를 제외한 평조합원들은 현장에 복귀해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조합원들의 간절한 마음이 전달된 걸까? 한국노총도 조합원 찬반 투표를 통해 7, 8일 이틀간 승무거부투쟁에 함께했다. 한편 지회는 19일까지 승무거부투쟁을 진행하면서 싸움이 장기화됨에 따라 조합원들의 생계를 무시할 수 없었기에, 조합원은 현장으로 복귀했고 간부들은 승무거부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한편 9일부터 매일 오후 4시 전주 도심에서 3보1배는 일을 쉬는 조합원과 간부들이 매일같이 진행하고 있었다.


현재 사측과 시의 반응은 어떤가?

 

민주노총이랑 전북시민사회대책위가 5월 7일 7대 요구 사항을 정리해서 시에 전달했다. 사실 노동조합은 기승이 자결 전부터 언제든 이런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매번 경고했다. 그럼에도 시는 부당해고와 계속되는 임금 체불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회는 이번 요구사항 중 다른 건 몰라도 진기승 조합원을 농락한 중간 관리자 3명은 반드시 퇴출하게 시키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전주시는 14일 여객운수사업법에 따라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부실경영에 대해 경영개선 대책을 버스사업주에게 요구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제출했다. 현재 전주 5개 시내버스 회사는 2013년 대중교통 시책평가에서 전국 최하위일 정도로 대중교통 현황이 열악하다. 그 결과 시내버스 이용자가 매해 줄면서, 버스회사 재정도 악화되어, 4개의 회사가 빚더미에 올라있다. 한편 이렇게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데도 시는 보조금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지 못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빚더미에 올라있는 버스 회사들이 적자가 늘어날수록 적반하장으로 더 많은 보조금을 시에 요구하고,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버스를 운행하지 않겠다는 협박마저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고향 선후배, 형님 아우 하는 지역에서 오래된 세력들이 운영하니까 무서운 게 없다. 도지사나 시장도 매번 민주당 놈들이고 뒤를 다 봐주니까. 그러니까 힘없는 조합원들만 짓밟는 거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우리 목적이 승무거부는 아니지 않겠나.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런 거다. 그 목적이라 하면 버스 공영제 빨리하고, 노조탄압 문제 해결하고 관리자 3명은 꼭 처벌하는 거다. 개인적인 심경으로는 다른 건 몰라도 기승이가 억울한 선택을 하게 만든 관리자 3명은 꼭 몰아낼 거다. 그리고 빨리 한명자 회장이 옆에서 감언이설 하는 관리자들 말만 듣지 말고 제대로 정신 차리고 노동조합이랑 협의해서, 회사가 정상화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강직했고 앞장서서 동료 조합원들의 모범이 되었던, 다음 생에는 버스 기사가 대우받는 곳에서 태어나겠다고 한 진기승 열사의 염원이 지금, 여기 구현될 수 있도록 모두가 다시 힘을 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