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부산진구청의 공공성 강화로 행복하게 아이들 보육하고 싶어요! / 2017.9

부산진구청의 공공성 강화로 행복하게 아이들 보육하고 싶어요!

- 보육노조 최초파업 중인 성북 초등어린이집분회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부산의 중심지 서면 일대는 부산진구청이 담당 한다. 우뚝 솟은 부산진구청 앞 가로수 아래에는 50일이 다 돼가도록 돗자리를 깔고 무더위를 지나며 파업농성 중인 4명의 보육교사가 있고, 부산진구청 정문 안으로는 ‘과연 이런 억지 집회가 정당한가?’라는 제목의 어른 키보다 큰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단순한 노사문제로 바라 보는 부산진구청을 향해 공공의 보육현장을 제대로 관리하고 책임지라고 주장하는 보육교사 들은 어째서 이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것일까?

부산진구에 있는 성북 초등어린이집 보육교사 노조 윤경순 분회장, 이서영, 김현아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성북 초등어린이집은 박순애 원장이 20년 가까이 부산진구청으로부터 재위탁을 받아오면서 4년 동안 25명의 교사가 교체될 만큼 각종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노동착취와 인권을 짓밟아 오고 있었다고 한다.

“2014년에는 친환경 페인트칠을 했는데. 2015년에는 페인트를 벗기는 작업까지 했어요. 3~4일에 걸쳐서 사포를 들고 생전 처음 마스크를 낀 채 온종일 창틀의 페인트를 손으로 벗겨냈어요. 호흡기도 좋지 않고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었지만, 특히 손톱이 빠져나갈 듯 아파서 후배 교사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요.

임신한 교사에게도 이일을 시켰어요. 밤 10시가 넘어 퇴근을 한 날도 있었고, 점심은 각자의 돈으로 사먹어야 했죠.

보육시간 아이들과 함께해야 함에도 불러내어 잡무를 시킬 때가 많았죠. 가까운 예로 2016년 5월 시민 공원 봄꽃 축제 후 원장님의 집, 지인들, 학교, 어린 이집에 두기 위해 시민공원에 전시되었던 화초들을 가지러 3일을 시민공원에 다녀야 했어요. 한두 개씩 가져가는 시민들과 달리 어린이집 차에 넘치도록 실어 “이렇게 많이 가져가면 곤란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무거운 화분들을 반복해서 날라야 했는데 부끄럽고 교사로서의 자존감도 떨어지고 몸도 아주 아팠어요. 그 시간에 같은 반에서 근무하는 동료는 혼자 영아들을 보육하며 힘들어했죠. 며칠 동안 허리 어깨 근육통으로 파스를 바르고 생활해야 했어요.“

그런데 문제의 발단은 2015년 부산진구에서 제정한 조례로 인해 원장의 정년이 다되어지자 구청이 계약해지를 통보했고, 원장이 이에 불복 하고 행정소송을 진행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소송이 시작되고 부신진구청의 어린이집 감사, 경찰 조사가 시작되었고, 교직원들은 원장의 협박과 구청의 진정서, 탄원서, 각종 진술 및 경찰서 출석 요구 등으로 고초를 겪게 되었고, 결국 2016년 3월부터 6월까지 9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하였다고 한다.

“현장에 있는 저희가 알고 있는 내용이 많으니 구청 에서 행정소송에 필요한 탄원서를 적어 달라고 했어요. 여기에 협조해주었다는 이유로 원장님이 저희를 해고하려 했고 이를 위해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죠. 그래서 조리사님이 제일 먼저 노조에 가입하 셨어요.

사실 주변에서 ‘노동조합’이라는 것도 있으니 가입 해서 힘을 키워내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노동조 합에 대해 왜곡된 말을 들어서 망설이고 있었죠. 그러던 차에 3년 차인 이서영 선생님을 해고했어요. 2학기가 시작하기 전 이제 사회 초년생인데 못된 것만 배워서 못된 짓만 한다고. 어차피 재계약을 안 할거니까 지금이라도 다른데 알아보라고. 다른데 취직하면 자기한테 연락이 오는 데 조금이라도 좋게 말해줄 때 가라고 했어요. 노조에 가입할까 봐 으름 장을 놓으며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원장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내기 위해 노조에 가입한 거죠.“

2016년 6월, 박순애 원장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을 빌미로 구청이 계약을 해지하고, 구청의 직영 운영 하에 김석순 원장이 투입되면서두 명의 원장이 모두 어린이집에 출근하였다고 한다.

“아이가 화상을 입은 일이 있었어요. 원장님 부재중에 안전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거죠. 뉴스가 나가고, 학부모님의 항의 전화가 오고, 선생님들은 난리가 났는데 원장님은 심신이 약하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셨던 거죠. 그래서 구청에서 새로운 원장님을 파견 보냈고, 두 원장 체계로 저희가 몇 달간 지내게 된 거죠.”

결국, 구청의 행정패소로 김석순 원장이 물러가고 원장자리를 되찾은 박순애 원장의 노동 탄압은 극에 달하였고, 2016년 12월 구청은 갑작 스럽게 2017년 12월 성북 초등어린이집을 폐원하겠다고 통보하였다고 한다. 노동조합은 시민단체와 함께 폐원반대 투쟁을 전개하여 막아 냈으나 원장은 이를 이유로 2017년 원아 모집을 하지 않아 1차 정리해고를 강행하여 결국 교직원 7명이 해고압박을 못 이기고 퇴사하였다고 한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전에 저희가 아동학대를 했다는 아동학대 시말서를 강요했어요. 아이가 화장 실에서 울었는데 일부러 배변을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앉혀서 울렸다는 내용으로 적으라고 했어 요. 그리고 원장님은 아이의 울음소리만 녹음하고 있고요. 그래서 배변훈련 중이었고 그에 맞는 것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만약 원장님이 아동학대로 판단한다면 아동학대 전수조사를 신고해서 조사를 받겠다고 했죠. 설사 저희가 아동학대를 하였다면 원장으로서 당장 바로잡도록 조처를 하는 것이 맞으나 그 상황을 그대로 녹음하고 있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인 거죠.

원장님 손녀 반을 2년이나 했거든요. 그때 내 손녀 한테 아동 학대한 것을 다 알고 있고, 증거를 가지고 있으니 노조 가입하지 말라고 협박도 했어요. 최근 에는 그 손녀가 저희 반에 있었어요. 초과보육이어서 다른 반 선생님과 분반을 했었는데 저에 대해서그 선생님에게 자꾸 물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동학 대를 걸어서 해고하려고 했던 거죠.“

조합원이 급격히 줄어들자 원장은 원아를 조금더 모집하여 비조합원 교사 2명을 채용하였다.

그리고 조합원에게는 업무반려, 불가능한 업무 지시, CCTV 감시압박 등으로 괴롭히며 징계위협을 가하다 또다시 조리사에게 경영상 이유로 2차 정리 해고통보를 하였으나 현장투쟁으로 철회시켰다고 한다.

“지난 3월엔 조리실에 조리사님의 동의도 받지 않고 CCTV를 몰래 설치했어요. 지금은 정보공시에는 조리실에 CCTV가 설치되어있다고 변경되어 있기는 하지만 당시, 눈에 불을 켜고 조리사님을 해고 하기 위해 징계 거리를 찾으려고 했던 거죠. 분회장님 같은 경우 원장님의 요구대로 안 하시니 부장직을 박탈하고 업무지시 거부통보서를 줬어요. 해고를 위한 준비단계로 징계를 위한 서류를 모으는 거죠. 변호사가 옆에서 알려주니 법적으로 꼼짝 못 하게 해놓고 고소 고발하려 한 거죠.”

2017년 7월, 조리사 정리해고가 좌절되자 원장은 비조합원을 무리하게 채용하더니, 극심한 차별대우와 탄압으로 교직원들이 더는 견딜 수없게 만들었고, 보육 노조 성북초등어린이집 분회는 2017년 7월 24일 보육노조 역사상 최초로 파업에 돌입하였다. 원장은 조합원 교사들이 맡고 있던 반만 부분 직장폐쇄를 시켰고, 부산 진구청은 아이들을 다른 어린이집으로 전원시 켰다.

“저희가 파업을 하면 학부모님과 아이들이 피해를 보는 거잖아요. 그래서 꼭 파업해야 하나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만두는 것 말고는 더 버티기 힘들었어요. 파업하면서도 많이 힘들죠. 그래서 많이 울었는데 연대해주러 정말 많이 오세요. 맛있는 것도 많이 사 오시고 ‘힘내라고 이길 수 있다! 끝까지 힘내라! 할 수 있다!’ 이런 격려의 말씀으로 싸움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부산진구청은 파업은 노사 간의 일이라며 문제 해결에 아무런 의지가 없고, 한때 이용했던 교직원들이 자신들 때문에 생계를 잃거나 지옥 같은 현장에서 고통받는 부분에 대해 책임회피 에만 급급하며 적대시하고 있다. 쉽지 않은 싸움이라는 것도 예상되고 앞으로 더 심한 탄압과 난관이 기다릴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 들어보았다.

“노조 가입하면 뭔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줄 알았 는데 우리가 이겨나가야 하고, 파업을 시작할 때도 어느 정도 싸우면 결과가 나올 줄 알았는데 더 큰 산이 나타나요. 그래서 하루는 힘 빠졌다가 하루는 다시 또 다짐하곤 하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쉽지는 않겠지만 많은 분이 관심 가져주시고, 저희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투쟁해서 이기지 않겠나 생각해요. 건강이 좀 염려되지만 끝까 지, 투쟁해야죠.”

행복한 보육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 투쟁하는 것이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한다. 아이들 보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눈에는 눈물이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보고 싶죠. 어제도 아이들 사진 보면서 흉내 내면서 아이들 생각했어요. 그런데 돌아가면 아이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반겨줄까 하는 염려도 돼요. 아이 들이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지만 지금은 전원을 시켰으니 아이들과 함께할 수없는 게 마음 아프죠. 그래도 아이들 앞에서 원장님 한테 끌려나가는 모습, 아이들이랑 같이 있으면서 울었던 모습, 아이들 앞에서 소리 지르는 원장님께 대응해야 하는 좋지 못한 모습을 아이들에게 계속 보여주는 것보다 당당하게 이겨내서 ‘너희 선생님 들은 올바르게 너희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험난하지 만, 이 길을 갔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견뎌 내는 것 같아요.”

운영의 투명성으로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국공 립어린이집이 민간위탁으로 공공성을 상실해 가는 현장에서 이를 막아보고자 파업투쟁으로 맞서고 있는 보육노동자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마지막으로 들어 보았다.

“저희처럼 투쟁하는 분이 있다면 좀 더 용기 내자고 말하고 싶어요. 투쟁하면서 왜 나만 이런 걸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나 여러 연대투쟁을 다니며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노조가 있는 일터를 많이 접했거든요. 각자 일터에서 힘든 점이 있지만 자기 일터에서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육노조 최초로 파업을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기도 해요.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따라 보육노동자의 예시가 될 수 있고, 보육노동자의 노동조건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끝까지 열심히 싸울 거예요. 그래서 꼭 이겨내 볼게요.”


[현장의 목소리] 현장을 바꾸고 삼성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 2017.8

현장을 바꾸고 삼성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동인천분회 김인석 분회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지난 201376년의 무노조 경영을 자랑하던 삼성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그 어려운 걸 해낸 노동자들은 바로 에어컨, 냉장고, TV, 휴대폰 등을 설치/수리하는 노동자들이었다. 노동조합은 민주노조 깃발을 올리고 한국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삼성에 맞서 열사 투쟁, 본사 앞 노숙투쟁 등 치열하게 싸웠다. 투쟁 이후 현장의 노동조건을 점차 변화시켰고, 비수기에도 일정 생활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삼성은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각 센터 사장(이른바 바지사장)을 앞잡이로 세워 노동조합 탄압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이에 맞서 지난해엔 촛불을 들었고 올해는 '재벌개혁 실천단 SEEN()'을 구성하여 투쟁하고 있다. 이번 투쟁을 비롯해 노동조합의 현안 등 문제와 관련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지난 726일 인천에서 김인석 분회장님을 만났다.

노동조합 설립 이후 변화된 현장

저희는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휴대폰 등을 설치/수리하는 일을 한다. 아무래도 가장 더운 7~9월이 성수기인데 그중에서도 78초가 가장 바쁘고 힘든 시기다. 아침 8시 출근해서 밤 8~9시에야 일을 마친다. 주말도 계속 출근해야 하고 저도 이번 3주 동안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아무래도 서비스 일을 하다 보니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고객이 불편호소에 퇴근 시간이 지났 다고, 주말이라고 모르는 척 하기 어려운 조건이 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작업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하루 10건 정도의 일을 한다고 한다.

에어컨의 경우 한번 고칠 때 건당 30~1시간 정도 걸린다. 일할 땐 안전 장비와 공구 가방도 챙기 고, 이동할 땐 운전도 하는데 그런 시간이 책정되어 있지 않다 보니 늘 시간에 쫓긴다. , 작업자들이 에어컨이나 세탁기 같이 무거운 가전제품을 들고 나르다 보니 어깨, 허리, , 손목, 다리 등 온몸이 다 아프다. 물리치료를 받고 싶어도 지금도 밀려있는 고객콜을 더 미루고 가야 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가장 바쁜 성수기에 병원에 가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김인석 분회장은 그나마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 점심시간은 보장된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점심시 간이 없어서 작업자들이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는 데,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나서 이제는 점심시 간에 콜도 받지 않고 오롯이 밥을 먹고 쉴 수 있다 고 한다. 뿐만 아니라 현장은 노동조합 이전과 이 후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한다.

"노동조합을 만들기 이전엔 기본급도 거의 없어서 항상 출장 건수에 목을 매는 삶이었다. 비수기 때 한 달에 60건 해봤자 100만 원도 안 남아서 가족에게 늘 미안하고 면목 없었다. 차도 직접 사서 할부 갚 고, 기름 넣고, 밥도 내 돈으로 사서먹고, 휴대폰 요 금도 내 돈 내면서 일했기 때문에 아무리 일해도 돈 을 벌기 어려웠다. 일하는 환경도 위험해서 고소작 업을 할 땐 목숨을 걸고 혼자 일해야 했다. 고객한테 는 평가 점수 잘 받아야 해서 늘 굽신거리며 저자세 로 일하는 문화였다. 그러다 노동조합이 생기니까 고객한테 내 자존감을 지키면서, 고객에게 할 수 있 는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되었다. 기본급 비중도 급여 중 70~80%로 올라가면서 일을 할 때 여유도 생기 고 건수에 목을 맬 정도는 아니게 되었다. 위험한 작 업을 해야 할 땐 추가 인원과 안전장비가 올 때까지 고객에게 기다려 달라고 요청하거나, 지금 당장 작 업을 할 수 없다고 고객에게 동의를 구할 수도 있게 되었다.“

아무리 현장의 노동환경이 열악하다고 해도 무노 조 경영 삼성에 맞서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싸움 을 해야겠다고 결의하게 된 배경과 과정이 궁금 해졌다.

회사에서 우리를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늘 실 적 압박 스트레스는 주면서 정작 줘야 할 수당도 제 대로 주질 않았다. 특히 지금 센터 바로 직전 팀장하 고 사장은 돈도 너무 떼먹었다. 예를 들어서 센터에 서 한 달 500건을 일하면 작업자들이 월급 250만 원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200만 원만 주고 나머지 150만 원은 팀장하고 사장이 먹은 거다. 심지어 한 명분도 아니고 40명분을 몇 년 동안이나 가져갔다. 그사이 사장은 빌딩 2개를 올리고 보트도 샀다고 들 었다. 그래서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싸워야겠다 생 각하고 투쟁과정에서 조합원들이 당신이랑은 같이 일을 못하겠다고 요구해서 전 사장의 목을 날렸다.”

촛불 이후 재벌개혁 투쟁에 나서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지난 4월부터 쟁의권을 얻고 투쟁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 싸움은 가장 현장이 바쁘다는 여름에도 이어지고 있다. 대체 어떤 이유에서 재벌개혁 투쟁에 나서게 된 것일까?

노동조합에서 지난 촛불 이후에 적폐청산을 하겠다던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삼성 이재용 부 회장도 감옥에 있으니 사회적으로 적폐청산의 목소리를 이어 가보자는 뜻으로 '재벌개혁 실천단 SEEN()‘을 만들고 투쟁하게 되었다. '재벌개혁 실 천단 SEEN()’은 전국에 조합원 30명이 34동안 서울로 모여 다양한 실천을 하고 있다. 벌써 7차례 210명의 조합원이 참여했는데 단체티셔츠나 조끼를 입고 광화문, 시청, 여의도 등에서 재벌개혁 캠페인을 해왔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따릉이 자전거로 우리 문제를 알리는데 시민들 호응이 좋았다. 한강에서 얼마 전까지 가장 핫하던 최저임금 1만원 노래를 배우고 춤도 배웠다. 학생, 반올림 동지들과도 함께 연대하고 있다. 땀도 나고 체력적으로 힘들기는 한데 그래도 행복하고 즐겁게 투쟁하고 있다. 이전에 52일 동안 삼성 본사 앞에서 노숙투쟁을 했을 땐 조합원들이 너무 불안해하고 힘들어 해서 이번엔 그렇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고민 하고있다.”

동인천분회의 경우 투쟁도 함께 하면서 조합원들 이 경제적으로도 연대하고 있다고 한다. 34일 동안 지명파업으로 일을 안 하면 경제적으로 부 담이 되기 때문에 현장에서 그동안 일했던 동지 들이 급여를 나눠서 보전해주는 것이다. 그랬더 니 조합원과 그 가족들이 돈도 돈이지만 어려운 일을 함께 나눌 동료가 있고 가족에게도 믿음과 신뢰를 주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현재 어 렵게 진행되는 임금협상에서도 이러한 노동조합 이 단결력을 잃지 않고 있다.

올해는 임금 협상만 하고 있는데 역시나 이전과 마 찬가지로 원청인 삼성은 전혀 대화에 나서지 않고 전국 센터 중 대표단을 구성한 사장들이 나오고 있 다. 이렇다 보니 노동조합은 금속노조 중앙교섭 기 준으로 기본금 약 30만원 인상, 식대 7,000원으로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원청이 아니라 결정 권한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모두가 잘못인 걸 아는데 혼자만 모르는 삼성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배제하는 건 삼성이지만 많 은 대중이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게 사실이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에 대해서도 고 객이나 시민들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그 평 가에 따라 조합원들이 영향을 많이 받는 건 아닌 지에 대해서도 궁금함이 있었다.

이전부터 저희가 선전전하고 그러면 시민들 반응 이 긍정적이었다. 시민들이 돈도 많이 버는 삼성 이 너무한다”, “삼성에도 노조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들 많이 해준다. 고객들도 회사에서 매번 서 비스 평가하는 전화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전화 를 잘 받아주겠다고 말씀한다. 또 고객들은 삼성 에 대한 불만도 많이 토로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삼성에서 만든 가전제품을 하나씩은 사용하는데, 삼성이 무상으로 A/S를 하는 게 아니 고 고객이 자기 돈 들여 서비스를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부담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삼성은 지금도 노동조합을 탄압하면서 진짜 사장 은 본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전혀 반성도 변화도 없는 것이다.

여기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 까지 모두 삼성 직원인 줄로 알고 있었다. 삼성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 3개월 동안 교육받고 사원 증 받아서 삼성 옷 입고 일하는데 어떻게 삼성 직원 이 아니냐. 일할 때도 삼성 관리자가 우리 일을 다 관리 감독 하는데 우리는 그저 협력업체 직원이라 고만 한다. 그래서 삼성을 상대로 불법파견 사용과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진행 중이다.”

현재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은 1심에서 노동조합 이 패소하고, 2심 재판을 앞둔 상황이라고 한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현장

현장에선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각종 소송과 비 정규직 문제에 있어 유리한 국면을 맞이했다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삼 성이 변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높은 상황에 서 새 정부가 줄곧 적폐청산, 비정규직 제로 시대 를 열겠다는 메시지와 함께 행동을 보여주고 있 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화겠다는 의 지가 있고 저도 그렇게 돼야 대한민국 노동자들이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조합원들도 기 대를 많이 걸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때 우리가 중심 을 잘 잡고 사회변화에 노동조합이 어떻게 대응해 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은 지난 촛불 에선 박근혜, 이재용을 감옥에 넣는데 함께 했다 면, 이제는 우리 일터를 바꾸고 재벌을 사회를 개 혁하기 위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알고 있 다. 삼성을 바꿔야 이 사회도 바꿀 수 있고 사회를 바꿔야 삼성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싸움에 한국에서 힘이 가장 강한 상대를 만나 애 쓰고 있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의 건투를 빈다

[현장의 목소리] 상식이 통하는 회사, 평범한 삶을 위해 우리는 싸웁니다 /2017.7

상식이 통하는 회사, 평범한 삶을 위해 우리는 싸웁니다

- 전국금속노조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 파업 투쟁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고층 건물과 인공 운하,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는 인천 송도 국제도시. 이곳에 위치한 자동차 전자부품생산공장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노동자들의 일상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생산공장 노동자 354명 전원 비정규직인 '100% 비정규직 공장' 만도헬라에서 드디어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그러나 사측은 대화가 아닌 탄압으로 노동조합을 대하고 있다. 100% 비정규직 공장에서 그간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왜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하고 있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공장 앞 농성장에 찾아갔다. 


지난 6월 23일 진행한 이 인터뷰는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 김태섭 사무장, 안정훈 조직부장, 한샘 여성부장, 홍광수 노안부장이 함께했다.


김태섭 사무장에게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계기에 관해 물었다.

"노동조합 설립 준비는 작년 11월부터 했고, 올해 2월 설립총회를 했습니다. 조합원들이 임금에 대해 불만이 많았어요. 결정적 계기 중 하나가 통상임금인데, 기존 상여금이 400%였는데 회사에서 통상임금 적용해 기본급화 시킨다고 해서 300%를 시급으로 전환했죠. 표면적으로 시급은 굉장히 높아졌는데, 그걸 빌미로 임금인상이 없었어요. 그리고 이 회사가 365일 쉬는 날이 없어요. 설, 어린이날, 추석, 크리스마스 전혀 못 쉬어요. 12시간 주야맞교대로 일하면서 운영하다 보니 장시간 문제도 컸죠. 그래서 몇몇 친한 동료들과 '이대로는 안 된다, 우리도 노동조합을 만들자.'는 판단을 했어요."


안정훈 조직부장은 임금과 노동시간 문제 외에도 그동안 회사가 얼마나 비인간적이었는지 털어놓았다.

"동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원청 직원에게 가봐야겠다고 했더니, '네가 지금 가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냐, 가지 마라'고 했어요. 정말 비인간적이죠. 그리고 출근하다 교통사고가 나서 머리에 피가 나서, 전화해 출근 못 하겠다고 하니깐 대충 치료하고 오라고 한 적도 있어요. 여성 직원은 성희롱 당해서 얘기했는데, 가해자는 한 달 감봉만 당하고 본래 부서로 복귀했어요. 결국 피해자인 여성 직원은 가해자 얼굴 못 보겠어서 퇴직했고요."


만도헬라는 전체 고용인원 700명 중 생산직은 비정규직, 사무직은 정규직으로 분리하고 임금, 고용, 복지 등 전반적 노동조건에서 비정규직을 차별했다.

사무장 "임금은 정규직 절반 정도예요. 근무시간은 정규직의 경우 주5일 근무에 주간근무만 하고, 비정규직은 주7일에 12시간씩 주야맞교대죠. 회사에선 비정규직 연봉이 3천5백에서 4천만 원이라고 하는데 실제 그돈을 받으려면 주야맞교대로 1년에 10번~15번만 쉬어야해요. 실제 저는 기본급이 145만 원 정도인데, 200만 원 이상 받으려면 잔업과 특근을 안 할 수 없죠. 그리고 복지라고 할 것도 없어요. 밥만 정규직과 식당에서 같이 먹어요."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척박한 데 비해, 노동조합 가입률은 2천 노동자 중 200만 명, 약 10%정도다. 게다가 어렵게 노조를 만든다 해도 자본은 노동3권은 무시한 채 오로지 노조깨기에 혈안이다. 이렇게 노동조합을 만들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간부들은 우선 노동조합 편견 깨기에 공들였다.

사무장 "저희 조합원들은 연령대가 20~30대로 낮아요. 관심도 없었죠. 저부터도 노조 활동하기 전엔 뉴스로 안 좋은 모습 접하다 보니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어요. 그거 깨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죠."


개인으로 있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란 조직으로 뭉치고,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현장에 변화가 일어났다. 권력 관계가 동조합으로 기운 것이다.

사무장 "과거에는 관리직들이 시키면 당연히 해야 하고, 주말 근무나 잔업도 얘네가 스케쥴 짠 거에 의해서 통제당했죠. 노조 생기고 나선 본인이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되는 거구나를 이제야 조금씩 느끼며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현재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는 ▲불법파견 인정 및 정규직 전환 ▲부당 인사 명령 철회 및 부서 원상회복 ▲장시간 노동 축소 및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5월 31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 전 하청업체 두곳과 11차례 교섭을 했는데, 단 한 번도 사측 제시안을 제출하지 않았다. 지방노동위원회 조정 받는 날 겨우 기본 단협안을 제출했는데 내용이 너무나 부실했다고 한다. 그날 조정중지가 떨어졌다.

사무장 "하청업체 서울커뮤니케이션과 쉘코아가 순차적으로 제출한 기본 단협안 내용이 똑같았어요. 이걸보면 원청 개입이 확인되죠. 교섭하는 과정에서 하청업체는 노조와 교섭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노조의 요구안을 들어줄 능력이 없다는걸 잘 알고 있어, 실제 결정권한을 가진 원청에 대화하자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회사는 계약해지 및 부당인사 명령을 내렸어요. 당한 부서가 노조 임원간부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에요.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려는 의도죠."


조직부장 "품질부서 대상으로 인원축소를 했어요. 품질 하던 사람들이 다 생산라인으로 보내졌죠. 품질에 5명 정도 소수로 남겼는데, 그 소수는 입사한지 얼마 안됐거나 사측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이에요."


파업하면서까지 지키려는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의 바람이 담긴 단협안의 주요 내용을 물었다.

사무장 "임금요구안은 금속노조 동일요구예요. 그 외 성과금, 상여금, 교대제 개편에 대한 노조와의 논의, 차후 개선을 해나가기 위해 합의체를 꾸리자는 것이 가장 큰 핵심이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노조를 인정 받는 거예요."


만도헬라는 형식적으로 2곳의 도급업체와 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제로는 원청인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의 지휘·명령을 받는다. 지난 3월 노조는 원청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원청은 발빠르게 증거를 은폐하고 있다고 했다.

조직부장 "고소고발 준비 과정에서 저희가 자료를 입수했는데요. 원청 직원들이 로고를 다 지우고, 싸인 승인 받았던 것도 지우더라구요. 불법파견 증명할 자료가 어마어마하게 많은데도 안하고 있어요."


게다가 파업에 돌입하자 대체 생산을 위해 관리직, 아르바이트생을 투입했다. 대체생산 부품은 현대, 기아차 완성차 브레이크 장치인데 불량품이 속출하고 있어 시민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조직부장 "브레이크와 핸들 생산을 현재 아르바이트생들이 하고 있어요. 정말 큰 사고가 날까 봐 걱정이 커요."


안전 문제는 만도헬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중요한 문제다. 일하며 어떤 안전 사고가 발생했는지 물었다. 회사는 산재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사고 조차 다 개인에게 떠맡기는 식이었다.

사무장 "산재는 노조 설립 이전에 거의 없었죠. 다쳐도 회사에서 공상 처리해주거나 그것마저도 안해줬어요.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공상처리로 돈 내주면 다 끝났다고 생각하거든요. 심지어 제가 있는 부서는 회사 차량을 못 쓰는 상황이라고 개인차를 쓰라고 했어요. 개인차를 가지고 갔다 사고가 났는데, 그것도 개인 보험으로 해야 했죠."


조직부장 "심지어는 회사용 업무 차 사고가 나서 차가 조금 찌그러졌어요. 그런데 블랙박스도 차에 없고, 운전자도 모르는 상황에서 너희 팀이 타는 차니까 돈 모아서 수리하라고 하더라고요. 차 보험 들었냐고 물으니, 그래도 저희보고 돈 내라고요."


중량물을 다루다 보니 현장에선 끼임사고, 찰과상, 타박상이 빈번하다. 다행히 노조가 생긴 후 사고에 대해선 산재신청을 하며 대응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MSDS(물질안전보건자료)도 없었지만, 2014년 간호사를 채용해 비치하고 해골무늬 스티커를 붙였다. 하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보호 장비조차 챙길 시간이 없다. 생산량에 쫓겼기 때문이다.

사무장 "사실 노동 안전문제 관련해 단협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내용이 기본적으로 다 들어있어요. 그중 저희는 '작업중지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죠. 동료가 다쳐 피를 흘리고 병원에 실려 갔는데도, 그걸 다 목격하고 지켜본 동료는 그 자리에 들어가 일을 해야 해요. 어떻게 그 작업을 할 수 있겠어요. 안전이 담보가 안 되는데요."


얼마 전 사측은 노조와 대화 없이 일부 생산라인을 3조2교대로 변경했다. 이유는 부하율이 높은 생산라인 5개(약 120명)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교대제 변경에 대해 노조가 대화를 요구했지만 사측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사무장 "노동시간 단축하는 교대제 변경은 저희도 고민이죠. 그런데 이번 교대제 변경은 인사발령과도 연계됐어요. 강제 인사발령을 하지 않으면 교대제 변경 수용은 어려워요. 인력충원 전혀 없이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보내졌죠."


만도헬라의 건강한 일터 지키기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됐다.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원청과 하청업체의 합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조합원들은 씩씩하게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투쟁 속에서 노동조합 결성 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다.

사무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해요. 생각할게 많고,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래도 좋은 점은 야간노동을 안 하는거요. 지금은 해 떠있을 때 일하고 저녁에 집에 가면 애들을 볼 수 있죠. 남들 잘 때 저도 자고요. 이런 평범한걸 못했으니까요." 


노안부장 "쉴 때 눈치 안보고 쉬는게 좋아요. 원청에서 쉬는걸로 강제를 많이 했는데 그게 너무 싫었거든요. 저희한테 원청 직원이 짜증도 많이 냈죠. 그런데 지금은 삶의 여유가 생겼죠."


삶의 질이 좋아졌냐는 질문에 한샘 여성부장은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엔 집에 가면 오늘은 몇 시에 자나, 일어나서 8시 30분까지 출근하려면 집도 먼데. 그러려면 6시 30분엔 일어나야 하는데, 일 끝나고 밤 9시에 집에 가면 밤 10시고, 씻고 뭐 하고 바로 자더라도 잠도 바로 안오거든요. 그런데 이제 사람이 생각을 하게 되요."


만도헬라에 대해 기사 검색을 해보면 비정규직 '100% 공장, 악마의 일터'라는 제목이 많이 나온다. 과연 이곳에서 일 하는 노동자들은 이렇게 불리는 일터를 어떻게 바꾸고 싶어할까 궁금했다.

사무장 "상식적이면 좋겠어요. 구조나 대우나. 저도 기사를 보더라도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싶어요. 7~8년 근무했지만, 다들 참은거죠. 만약 회사로 다시 돌아가 일을 하면 상식적인 공간이 도면 좋겠어요."


노안부장 "원청 직원이랑 우리랑 차별없이 똑같이 다니고 싶어요. 저도 개선 요청하려고 이메일을 몇 십통씩 보냈는데 개선이 안됐어요.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회사를 위한건데도 안들어주더라고요. 동료들은 매일 힘들다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너무 속상했죠."


마지막으로 아직 만도헬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투쟁 소식을 모르는 분들과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를 구독하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지 물었다.

사무장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본인과 동떨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르죠. 하지만 만연한 문제죠. 눈에 띄지 않게 어디에나 이런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그래서 노동문제나 환경개선, 현실에 대한 고민들을 같이 해보면 좋겠습니다."


여성부장 "우리나라에 국한된 건지 모르겠는데, 권리를 찾기 위해 나서는 사람들에게 가만히 참지 유난을 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비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걸 바로잡자고 하는 활동에 유난이다, 이기적이라 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노안부장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해야 해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안하면 계속해서 비정규직이 양산되겠죠. 그렇게 생각하고 서로 도와주면 좋겠어요."

[현장의 목소리] "고등학생 현장실습 문제, 우리 사회 노동 인식 바로미터" /2017.6

"고등학생 현장실습 문제, 우리 사회 노동 인식 바로미터"

[인터뷰] 전북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집행위원장·민주노총전북본부 강문식 교선부장


나래 상임활동가


201112월 기아차 광주공장 뇌출혈 사고, 20141CJ 제일제당 진천공장 자살, 2016년 구의역 하청업체 사망사고, 이 죽음의 공통점은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거나, 현장실습생 출신이란 점이다. 그리고 올해 초 LG유플러스 콜센터로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나갔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반복된 죽음은 막지 못할 죽음이었을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고민을 나누기 위해 전북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이며 민주노총전북본부 교선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문식님을 529일 전라북도 전주에서 만났다.


강문식님은 본인이 경험했던 학교가 억압적이고 질서복종만을 훈육했다고 했다.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구조에 노동문제까지 결합되는 것을 발견하면서 특성화고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특성화고 취업률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헛다리만 집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전북지역 특성화고 학생들이 어디로 현장실습을 나가 무슨 일을 할까가 궁금해졌죠. 작년 3월 네트워크에서 전라북도교육청에 특성화고 현장실습 현황 관련 정보공개 청구를 했어요. 그랬더니 '요청하신 자료는 단위학교 관리 자료이기 때문에 도교육청에서 보관하지 있지 않다고' 답변이 왔어요. 정말 깜짝 놀랬죠."


다른 시·도교육청도 비슷했다. 2016년 직업계고 전체 학생 수는 졸업생 기준 114225명에 달한다. 이 중 상당수가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으로 나감에도 시도교육청에서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결국 교육청과 학교 당국에 의해 학생들이 방치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청소년 노동인권에 관심이 있는 개인과 단체들은 네트워크를 만들어 서로 교류하며, 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인권교육만으로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의 근본적 문제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것을 정작 학교에 나가 깨달았다고 했다.


"작년 모 지역 공고에 교육을 갔는데, '우리는 ○○ 공고예요. 우리는 이런 거 필요없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거 들어봐야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특성화고 안에서도 서열화가 돼있어요. 그 서열구조에서 아래쪽에 있는 이런 학생들은 권리의식이 아예 없는 거죠. 십몇 년을 선생님, 가족, 사회에서 그런 대접받으며 살아왔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친구들에게는 학교를 졸업해서 안정적 직장에 취업한다는 고민 자체가 거리가 먼 거죠. 아르바이트 전전하는 거고요. 큰 문제와 결부되어 있는 것 같아요. 청년 일자리 문제와도 맞물려 있는 건데. 10, 20대 전반적 정서일 수 있겠단 생각도 들어요."


서울뿐 아니라 전주에서도 해결 촉구를 위해 격주 금요일 추모문화제, 회사 앞 출근 선전전, 지역 토론회, 회사 앞 추모 부스를 놓고 시민들이 추모 엽서를 쓸 수 있게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강문식님은 지역 추모활동을 하면서 시민들의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내 문제라고 느낄 수 있었던 사건이 바로 LG유플러스 콜센터 현장실습생 사망 사건이었던 것이다.


"주말이었는데 한 어르신이 오셔서 자기도 써도 되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놈의 실적, 딱 다섯 글자를 쓰시더라고요. 자기도 삼성에서 일하다 얼마 전 퇴직했는데 실적 가지고 사람을 줄 세우고, 쪼고, 인격적 모멸을 주고 하는 것들이 너무 힘들었다고, 대기업일수록 더 심하다고, 꼭 없애야 한다고 하셨어요. 거기서 한참 서있다 가셨어요."


문제는 교섭에 나오지 않는 LG유플러스였다. 모든 권한과 책임은 원청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식으로 교섭에 불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을 통해 현장에선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끝내 원청인 LG유플러스는 교섭에 참여하지 않았다. 업체와 교섭을 하는 동안 모든 권한과 책임은 원청에게 있음이 확인되었다. 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동안 투쟁이 전국적으로 벌어졌고, 현장에선 변화들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내부 재직자들을 만나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교섭을 진행하면서 현장 개선사항을 알려달라고 하니 '지금처럼만 되면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사건 이후 저녁 6시 반이면 아예 사무실 불 끄고 퇴근 시키고, 회사에서 일부 부서는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 업무를 분리시켰다고 해요. 당장 바꿀 수 있는 문제였다는 거에 슬프기도 하고. 사람이 죽어야만 바뀌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마 원청에서 바꾸라고 해서 조치가 취해진 걸 거예요. 전주고객센터뿐만 아니라 다른 자회사 콜센터도 노동환경이 조금씩 바뀌었다고 그러더라고요. 결국 원청에 책임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죠. 그런데 교섭에 원청은 안 들어오고 회피하고 있고, 괘씸하죠."


강문식님이 만났던 재직자들은 공통적으로 일반상담업무(인바운드)와 상품 판매 영업(아웃바운드)을 분리해야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원하지 않아도 실적을 채우기 위해 무조건 해야 하는 상품 판매 영업이 가장 큰 고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2012년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진행한 '서비스 산업의 감정노동 연구'에 따르면 콜센터 노동자의 경우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를 동시에 하는 노동자가 사회심리 스트레스, 우울증의 위험 정도가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아웃바운드, 인바운드 순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고인이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한 것처럼 기업으로 나가 실습을 하는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올해 당장 중단이 안 돼도 업체 파악, 직무 등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전라북도교육청은 파견 시기를 2학기 중간고사 이후로 미룬다고 매뉴얼 지침 발표를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학생들이 면접을 이미 보러 다니거든요. 면접을 보러 갔는데 똑같은 조건에서 다른 지역에서는 9월부터 바로 일을 할 수 있는데, 여기는 10월이나 11월부터 되는 거죠. 면접 보러 갔다가 그냥 되돌아오는 경우가 더러 있나 봐요. 이렇게 되면 당장 반발이 생기죠. 학생들에게서 나오는 이런 반발을 접하면서 아직 우리가 공감대 형성을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전국적으로 같이 대응해서 늦추더라도 같이 늦추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현장실습생 역시 민주노총과 함께 해야 할 주체로서, 노동조합 활동가로서의 의견을 물었다.


"노동조합 전체 사업장의 공통된 고민이에요. 조합원 평균 연령이 높아요. 신규 조합원 특히 젊은 조합원 조직이 필요하죠. 단순히 젊은 사람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 문제예요. 솔직히 나이에 따른 위계, 직군에 따른 위계가 노동조합에도 있어요. 이런 현상을 바꾸기 위해 서로 존중하는 노력도 필요하죠. 그런 걸 통틀어서 현장의 미조직 청년 노동자들의 처지를 살피는 것부터 착목하면 좋겠어요."


강문식 님은 그동안 전북에서 있었던 문제와 해결방식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토론을 해보고 싶은 지점이기도 한데, 김승환 전북교육감의 문제 해결 방식에 고민이 있어요. 2015년에 김승환 교육감이 반도체 기업에 현장실습 보내지 말라고 했죠. 삼성전자반도체 직업병 사례를 봤을 때 환영할 일이에요. 하지만 문제는 삼성 공장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반도체 공장에만 있는 것도 아니에요. 업체 한두 군데 차단한다고 학생들, 미래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전북교육청의 조치가 사회적으로 논란을 던지는 효과는 있었겠지만 실제 노동환경의 변화로 이어지는 고리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문제가 있으니 일단 차단하자 하는 건 너무 편의적이고 임시방편적인 처방입니다. 우선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알 권리에 대한 교육, 취업 전 충분히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고요. 더 나가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바꿔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당장 전북지역 특성화고에서 2015년 현장실습을 나간 기업체 중 1급 발암물질 배출사업장이 11곳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로 취업한 학생들도 상당수 있다. 교육청의 취업제한 조치만으로 실질적인 효과를 얻기 어렵다는 뜻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취업한 업체에 어떤 위험이 있고 어떤 물질이 쓰이는지 사전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고객센터 사건이 발생하기 전,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전북교육청에 화학물질 정보제공 등 문제를 제기했었고 교육청에서도 추진해가겠다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강문식님은 취업제한보다 권리 강화가 먼저라고 지적했다.


강문식님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에 대해 물었다.


"현장 실습 문제는 특성화고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큰 틀에서 우리 사회의 노동의 인식도 같이 바뀌어야 합니다. 현재는 노동인권교육이 법에 치중되어 있는데, 노동과 사회의 관계 문제를 담은 교과서 개발과 교육과정이 시급하다고 봐요. 지금의 교육은 특성화고뿐만 아니라 전체 교육에서 교육의 목표가 실종됐습니다. 고민할수록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제 시작인 것 같고 더 길게 보고 가는 게 필요하겠죠."


인터뷰 이후 지난 67일 공대위와 서울 대책회의는 회사와 교섭을 통해 LB휴넷 대표이사 명의의 공개사과 및 유가족 대면 사과 유가족 보장 감정노동자 보호대책 마련 시간 외 근무 중단 전주시 감정노동 실태조사 적극 협조 일반 상담업무와 영업 상담업무 분리 등 작업환경개선 대책에 합의했다.


그리고 6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 대표실에서 'LG유플러스 고객센터 현장실습생 사망사건 경과·교섭결과 보고회' 자리가 마련되었고, LG유플러스 유필계 부사장이 참석하여 사과의 말을 전했다. 전라북도 교육감은 614일 유가족을 만나 사과하고 대안적인 직업교육 제도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사과를 받기까지 약 5개월이 걸렸다.


공대위는 67일 교섭 결과 보고대회를 마지막으로 공식 해산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후에도 다방면의 활동을 모색 중이다.

 

[현장의 목소리] 콘크리트에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2017.5

콘크리트에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 부당해고 맞서 싸우는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서울지회 정경철 지회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오늘날 한국 사회는 은퇴할 나이가 훌쩍 지났지만, 턱없이 부족한 사회보장제도로 인해 일터로 내몰리는 빈곤 노인들의 문제가 심각하다. 이번에 만난 강화실업, 호석교통, 서연교통에서 해고된 조합원들의 투쟁도 노년 노동자들의 생존권리 걸린 싸움이다.

 

본인 소개 부탁드린다.

“저는 이 투쟁 함께하고 있는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서울지회장 정경철이다. 호석교통 해고자이기도하고, 지난 5월 4일부로 해고된 지 만 2년이 된다.”

 

어떤 이유로 부당해고 투쟁을 같이하게 되었고, 회사만이 아니라 도봉구청에서도 투쟁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지회 11명의 해고자 중 3개의 회사에서 5명의 해고자가 나와서 함께 투쟁하게 되었다. 이 중 4명은 부가가치세 환급 문제로 회사와 싸우다 해고되었고 1명인 본인은 민주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탄압을 받다가 해고되었다. 도봉구청하고 싸우는 이유는 이 구청이 택시 회사들을 제대로 관리/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법 위반도 눈감아주고, 회사에서 제출한 서류만 보고 판단해서 다 믿어주는 문제가 있어서다."

 

부가가치세 환급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달라. 

“부가가치세 환급 문제가 뭐냐면 정부가 1996년부터 시행한 제도다. 택시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사업주가 낸 부가가치세 세금 중 90%를 감면해서 이 돈으로 노동자들에게 돌려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제도를 택시노동자들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현장에선 유명무실했다. 그러다 2004년 정호교통에서 일하던 조경식 동지가 부가가치세 환급을 요구하는 집회 현장에서 분신했다. 그때 바로 내 눈앞에서 분신을 해서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택시 노동자들이 부가가치세 환급 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후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한 달에 2~3만 원씩 임금에 포함해서 줬다. 국토교통부가 제출하는 자료, 사업주가 내는 세금을 따져보면 한 달에 약 25만 원을 돌려줘야 하는데 턱없이 부족한 돈을 줬다.”

 

부가가치세 환급 관련해서 2015년 2월 26일에는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고 한다. (사건번호 2012두 22003) 판례에 내용은 부가세 경감세액이 최저임금 시행령 제5조의 2단서 2호에 따라 일반 택시운수종사자의 최저임금에 산입 시킬 수 없는 노동자의 생활 보조와 후생을 위하여 지급하는 임금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법을 안 지킨다. 강화실업은 지금껏 한 번도 부가가치세 환급금을 받지 못하다 올해 2월 처음으로 민주노조 조합원들의 문제제기로 20만 원을 받았다.”

 

그럼 이전까지 경감받은 부가가치세를 회사는 어디에 썼는가?

“그때까지 어용노조 간부, 회사 놈들하고 다 해 먹었다. 부가가치세를 주더라도 액수가 더 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도 늘 이 돈을 임금에 포함해서 줬다. 그렇게 해야 회사는 시급을 낮추고 우리한테 줄 부가가치세 환급금으로 시급을 보전해서 월급을 맞춰준거다.”

 

그럼 이 문제에 도봉구청 역시 책임이 있어 투쟁하는 건가? 

“2주 전쯤에 도봉구청 교통지도과랑 면담을 했는데 자기들은 법대로 했다고 한다. 이 제도가 복잡한데 부가가치세를 감면하는 건 국세청이 하지만 관리는 국토부가 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국토부는 인력이 없어서 지자체에 이걸 위임하고 지자체는 관리/감독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부가세를 부당 사용했는지, 안했는지 여부를 회사가 제출하는 서류만 확인하고 끝낸다. 당연히 회사는 서류에 1원도 틀리지 않게 쓸 텐데 정작 실태를 파악하지도 않고 본인들이 법대로 했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한편, 노동조합의 계속된 요구와 투쟁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도봉구청에서 3개 회사가 지난 5년간 제출했던 자료를 주기로 했다고 한다. 그간 실태를 가장 잘 아는 노동조합에서 사실관계를 따져볼 수 있게 된 거다. 노동조합은 이 자료 검토 이후 도봉구청 교통지도과와 다시 면담하기로 했다. 이 전까지는 아무리 정보공개청구를 해도 노동조합이 절대 자료를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부가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면 부산은 2015년 4월에 심정보 동지가 부산시청 앞 철탑에서 253일을 농성하면서 부산시 택시 회사가 부당 사용한 850억을 환급해달라고 요구했는데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택시 업계에서 정말 오랫동안 계속되는 문제다.”

 

또 이번 투쟁에서 택시발전법(택발법) 관련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어떤 내용인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22조에 따라 전액관리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1994년에 이 법이 처음 만들어졌는데, 영업용 택시나 버스든 모든 기사는 나가서 벌은 운송수입금을 전액을 회사에 납부하도록 했다. 그러면 사업주는 전액을 받고 노동자와 협의해서 어떻게 나눌지 배분율을 정하도록 했다. 그런데 3년 유예기간 거쳐 1997년부터 20년 동안 이 제도가 사문화되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도 전액관리제가 정당하다고 했는데 관리/감독하는 현실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

 

만약 전액관리제를 위반하면 1년에 1회 위반하면 과태료 500만 원, 2회는 1,000만 원, 3회는 벌금 +차량 50대 이하 회사에서 1대 감차하는 벌칙이 있지만 유명무실했다고 한다. 그리고 인사권이 있는 회사가 택시 노동자들에게 “우리는 사납금이 더 좋아요” 이런 연서명을 받아서 재판부에 제출하다 보니 법원도 사업주 편을 들어줬다고 한다. 그 결과 택시 노동자들은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하루 약 15만 원의 살인적인 사납금을 회사에 내면서 모든 차량 유지비를 개인이 감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 전액관리제와 택발법이 무슨 관련이 있나?

전액관리제가 무력화되고 살인적인 사납금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는 없으니 택발법을 제정해서 택시 노동자들에게 어떠한 경우라도 운송경비를 부담할수 없게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1인 1차제, 책임만근제 이런 걸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1인1차제는 서울시의 경우 적정한 택시 노동자가 지금 6만 5천 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노동자가 3만 7천 명밖에 안 된다. 이렇다 보니 교대할 사람이 없고 혼자 13~14시간을 일하는데 사납금은 사납금대로 내고 있다. 사업주는 한 사람 인건비 아끼고 차량 유지비 덜 들어가니까 돈을 벌게 된다. 구체적으로 보면 만약 오전에 출근하면 사납금 12만 5천원, 오후 출근하면 사납금 14만 5천 원을 낸다. 만일 이걸 혼자 내면 하루 총 27만 원의 사납금을 회사에 내야 한다. 그런데 교대자가 없으니 회사는 한 노동자에게 오전 사납금에 3만원만 추가해서 총 15만 5천 원을 받고 오후까지 운전을 시킨다. 얼핏 보면 회사가 오후 분 사납금을 못 받아서 손해일 것 같지만, 택시 장사가 안 되는 요즘 한 사람 인건비가 빠지고 차량 유지비가 일체 나가지 않다 보니 손해가 아니다.“

 

책임만근제는 또 어떤 문제가 있나?

책임만근제는 죽었다 깨어나도, 하늘이 무너져도 한 달에 월 14만 5천 원 사납금을 26일 내야 하는거다. 병원을 가든 사고가 나든 부모님이 돌아가시든 만근을 하고 사납금을 내야 한다. 그래서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도봉구청이 이러한 살인적 사납금에 대해 제대로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거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도봉구청 측에선 서울시가서 따지라고 늘 외면한다.

 

이 점에 대해 정경철 지회장은 노동조합이 서울시와 싸워보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작년 택시노동조합은 서울시청 앞에서 82일간 투쟁하면서 서울시도 택발법이 지켜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알고 있고 인정했다고 한다. 그 이후 각 지역별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라는 지침까지 내렸지만, 여전히 큰 변화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서 해고 문제와 함께 도봉구청을 상대로도 싸움을 하는 건가?

“가장 근본적인 해고 문제는 회사에서 결단해야 하지만 도봉구청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현실이 바뀌지 않고 복직한다면 회사는 민주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어떻게든 탄압해서 다시 쫓아낼 거다. 게다가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도봉구청까지 소홀히 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정말 쉽지 않은 싸움인 데다 매우 절박한 싸움일 것 같다. 해결의 기미가 보이는가?

“우리가 해고자 문제 해결 시한을 일단 10월로 보고 있다. 이때까지 투쟁을 계속할 건데 걱정되는 게 다들 너무 분해서 그런지 매일 문제 해결 안 되면 분신하겠다, 죽겠다고 해서 걱정이 된다. 투쟁 한 달 정도 지나니까 더 억울하고 피가 끓어서 잠이 안 온다고 말한다. 우리가 투쟁 시작할 때 도봉구청에서 플랑도 못 달게 하고 전기도 안 빌려줘서 장성곡을 1주일 내내 틀고 싸운 적이 있다. 그리고나서 도봉구청이 사과하면서 전기 빌려주고 하니까 조합원들이 이제는 싸움 끝날 때까지 매일 장성곡만 틀자고 할 정도로 악에 받쳐있다.“

 

마지막으로 일터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워낙 오랫동안 불법이 만연해있고, 택시 노동자들은 나이도 많고 회사는 철저하고 공무원들과 결탁도 되어 있고 어려움이 많다. 노조도 우리가 제일 큰 산별이라고 하는데 다들 바쁘고 어려운 상황이라 투쟁으로 돌파를 못 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누구 잘못이 아니라 뾰족한 수가 당장은 없는 상황인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매일 콘크리트에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계속 가보자 그러면 언젠가 씨가 뿌리를 내리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다. 그러니 동지들께서 많이 응원 해주시고 연대해주시면 고맙겠다.

[현장의 목소리] 투쟁하는 노동자 잡는 손배가압류에 우리 함께 손잡고 희망을! /2017.4

투쟁하는 노동자 잡는 손배가압류에 우리 함께 손잡고 희망을!

- 손배가압류를잡자! 손에손을잡고! ‘손잡고’ 윤지선 활동가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227, 225, 195, 159, 13…등. 무슨 숫자일까? 로또 번호일까? 뒤에 '억'을 붙여보자. 227억, 225억,195억, 159억, 13억 등 듣기만 해도 '억'소리 나는 금액이다. 철도노조,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 MBC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유성기업지회 등 투쟁하는 노조에 사측이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이다. 여기에 가압류까지 더해지면 금액은 더 어마어마해진다. 2016년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의 손배소 총액은 1600억 원, 가압류 금액은 175억 원에 달한다.


손배가압류로 인한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손배가압류로 인한 노동자들의 고통과 죽음을 막고, 진정한 노동권 회복을 위해 2014년 2월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가 설립됐다. 지난 3월 21일, 올해 3주년을 맞이한 손잡고의 윤지선 활동가를 만났다.


'손잡고'의 탄생, 공감과 참여가 만들어낸 기적

손잡고는 노동자 손배가압류 문제 때문에 만들어졌어요. 2013년 11월 쌍용자동차 47억 판결이 나왔고,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공농성을 200일 넘게 하고 있었죠. 마침 사회적으로 손해배상가압류 문제에 관심이 모였어요. 그 직전 12년 2월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가 박근혜 당선 이틀 후에 목숨을 달리하셨는데, 그때도 158억이라는 손배소 언급을 했어요.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는 시민사회, 전문가, 학계가 모여 제도적으로 바꿔보자고 한 게 손잡고의 시작이었어요. 마침 시민들이 4만7천 원씩 모아 보내는 노란봉투 캠페인을 시작해서 불과 한 달 사이에 10억이 모였어요. 기적 같은 일이었죠."


현재 상임대표 배춘환 님이 노란봉투 캠페인의 첫 번째 발송자였다. 당시 셋째를 임신했던 상황. 내 아이가 태어나면 노동자가 될 테고, 나도 노동자고, 남편도 노동자인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아이들이 학원비도 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첫째 아이 태권도 학원비였던 4만7천 원과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가 불씨가 되었다. 시민도 자신이 노동자라는 걸 알아가면서 손잡고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윤지선 활동가는 힘주어 말했다.


"손배압류 사업장만 20여 곳이 되는데, 만나다 보면 계속 사건이 빵빵 터져요. 그러다 보면 힘들 틈이 없고, 분노가 차올라요. 먼저 시작한 사업이 생계의료비지원이었는데 최소한의 서류와 신청서류를 받아보니 손배가압류로 고통 받는 분들의 제각각 사연이 있어요. 내가 어떤 고통을 받고, 내가 왜 지금 힘들고, 나한테 어떤 빚이 있고, 회사가 나한테 무슨 짓을 했고…. 이런 내용이 쭉 있는데, 한마디로 정리하면 '대체 나한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거든요."


헌법에는 노동 3권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을 만들고,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주장한 일이 '불법'이 됐다. 평생 벌어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천문학적인 돈을 내라고 판결하는 상황. 노동자들은 억울함, 분노, 좌절을 겪는다고 한다. 


당당한 노동자이고 싶던 피해자들

"어느 부분에 지원이 필요하냐,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하고 싶냐는 질문에 '쌀값 곱하기 12달'을 써놓은 거예요. 쌀값, 그게 너무……. 그 정도까지라고는 생각 안 하니깐. 그리고 처음 수요조사를 했을 때 적어도 500가구는 넘을 거라 생각했는데, 신청서 접수된 게 139가구였어요. 지원대상자 발굴 기간에 한 달 통신비가 20만 원 가까이 나왔어요. 일반 전화로 하면 절대 전화를 안 받는 분들이 많은 거예요. 독촉 전화일 거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거죠. 문자라도 남겨야 통화가 겨우 됐고요."


실제 손배가압류 문제가 노조 안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노동자 개인이 이 사건과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확인해야겠단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피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지원금 받기를 꺼려했던 분들에게 '이 기금을 받는 것은 더 당당히 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라고 설득했단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이건 사회가 잘못된 건데'라는 생각 때문에 피해자로 규정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왜냐면 정당히 싸웠으니깐.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 당당해야하는데, 이걸 신청하고 기금을 받으면 피해자가 되니깐. 다른 한편으로 나는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본인보다 힘든 사람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신청도 안 하고 양보하신 분들이 계셨어요. 그때부터 저희가 현장을 가기 시작했죠."


삶이 망가지는 손배가압류 문제

손잡고는 설립 초기 모금액으로 생계의료지원 배분 사업을 시작하며, 법제도개선위원회, 노동현장 간담회, 노동법 관련 모의법정 경연대회, 연극제 등 활동 영역을 넓혀나갔다.


"생계의료비지원을 두 번 할 수 있을까의 고민은 있어요. 노란봉투캠페인 시즌2를 하려고 준비 중이예요. 벌써 2년이 지났거든요. 그런데 손배가압류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하고, 제대로 해결된 사업장이 없어요. 기금 받은 사업장 중 노조가 완전히 무너지거나, 회사 강요에 못 이겨 합의를 하지 않으면 거기서 벗어나기 힘든 거예요. 승소해서 이긴 곳은 상신브레이크밖에 없어요. 이렇게 상황이 심각해지니깐 지원을 하지 않으면 버티기가 정말 너무너무 어렵겠단 생각을 한거죠."


윤지선 활동가는 피해 노동조합에 '합의를 하지 말라'고 얘기하기 어려운 현실을 털어놓았다. 천문학적인 손배가압류 금액의 압박, 인지대법률 비용에 대한 부담감, 길고 지루한 법정 다툼, 사측의 탄압과 회유. 피해노동자를 버티지 못하게 하는 환경과 조건은 수없이 많다.


"피해노동자분들 인터뷰를 하다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얘기가 이거예요. 자기는 살면서 주차위반 한 번 해본 적이 없는데, 노조 활동하고 나서 전과자가 됐대요. 도로교통법위반부터 업무방해, 얘기도 들어본 적 없는 죄명으로요. 그렇게 전과자가 되더니 어느 날은 몇 백 억 빚쟁이가 됐다는거예요. '내가 뭘 잘못했지?'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법원에서 노동자가 잘못했다고 판결을 내려요. 이 분들은 살면서 제일 정의로운 게 '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정의롭다고 생각한 것에서 내버려졌다고 생각해요. '내버려졌다'는 표현을 하세요. 그러면 살아가기에 정의로운 사회가 아닌 거예요."


손배가압류 피해노동자들은 단순히 생계문제만 겪지 않는다고 했다. 사회적 관계도 파괴되고 투쟁과정에서 폭력을 당한 이들의 경우 트라우마로 남아 본인이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에 스스로 괴로워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금지원 뿐만 아니라, 심리적 치료와 지원이 시급함을 강조했다.


"이분들이 버틸 수 있으려면 생계비 지원도 필요하지만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해소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봐요. 치유 관련된 지원이나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쌍용자동차투쟁을 계기로 만들어진 '와락치유단'이나, 유성의 '두레공감' 같은 곳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노란봉투법 입법청원운동에 함께 해주세요

활동을 시작한 지 3년 동안 손잡고. 윤지선 활동가가 다녀본 많은 현장 중 가장 기억에 남는곳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윤지선 활동가의 답을 듣자마자 이 질문이 우문(愚問)이었음을 깨달았다.


"다 기억에 남아요. 어느 하나 기억에 안 남을 수 없어요. 정부가 노동탄압을 집중적으로 하던 시기가 이명박 때였는데, 그 시기에 대다수 사업장들이 탄압을 받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모든 사안이 다 알려질 수 없고 더구나 주요 언론사에서는 노동 사안을 잘 다루지 않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잘 몰라요. 사람이 죽어야 알죠. 누가 특별하다가 아니라, 저마다 사연이 기구해요. 다 말도 안 되고요."


윤지선 활동가는 손배가압류를 '악마의 제도'라고 표현했다.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게 만들고, 경제적 활동과 사회적 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손잡고를 통해 꿋꿋이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들과 함께 해온 윤지선 활동가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었다.


"지금 노란봉투법 입법청원운동을 하고 있어요. 이 법의 취지는 노동3권에 따른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청구 제한하고, 개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을 금지하고,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법이에요. 19대 국회에서 입법이 좌절되면서 2015년 이후에 새롭게 손배 청구된 사업장들이나 혹은 이미 손배 판결이 나버린 사업장들, 이런 사업장들이 너무 가슴 아픈 거예요. 그땐 환경노동위원회 과반을 차지했던 새누리당이 격렬하게 반대했거든요. 


손해를 입혔으면 갚아야 한다는 민사법의 가치를 국회의원들이 주장하더라고요. 지나간 일이지만 그때 좀 더 노력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20대 국회에서는 일찍 준비해서 발의했는데, 논의안건에 못 올랐어요. 정치권을 실제 움직이게 하는 힘은 시민과 노동자들에게 나오기 때문에 6월 국회 전까지 입법청원운동을 계속할 거예요. 그러니 입법청원 운동에 함께해주시면 좋겠어요."

[현장의 목소리] 괴물같은 인천성모병원에 맞서 싸우는 사람 /2017.3

괴물같은 인천성모병원에 맞서 싸우는 사람

- 보건의료노조 인천성모병원지부 홍명옥 전 지부장

 


 재현 선전위원장



2016년 인천성모병원에서 30년간 일했던 간호사 홍명옥 님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쫓겨났다. 2006 년부터 끊임없이 노조 파괴를 해왔던 병원의 악 행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 종교집단이 운영 하는 병원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노동자의 인권을 짓밟는 상황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싸우는 노동자가 있다.

 

병원의 노조 파괴가 시작된 계기가 언제부터였나? 

“우리 병원은 한국전쟁 끝나고 1955년에 전쟁고아,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만들어졌어요. 이후엔 한국복지수녀회에서 운영했고요. 유서 깊은 병원이고 일 하는 사람들 모두 우리 병원은 종교 이념에 맞게 이 윤 중심이 아니라 환자 중심으로 운영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정부와 자본이 의료를 돈벌 이 수단으로 삼으면서 우리 병원은 경쟁력에서 밀리면서 적자가 생겼어요. 결국, 2005년 신자유주의 정책이 도입되면서 영양과 정규직 직원 30명을 정리해고 했고, 노조가 싸움을 통해 전원복직을 시켰 어요. 그러고 나서 병원을 천주교 인천교구(이하 인 천교구)에 아무 조건 없이 봉헌했어요. 하루아침에 경영진이 바뀌는 건데 이미 천주교 서울교구 산하 가톨릭대학병원인 CMC 8개병원이 신부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어서 경영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죠.”

 

인천교구는 병원 인수와 함께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조가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때 부터 노조를 탄압했고 그 결과 20년간 노사가 쌓아 온 단체협약은 3년 만에 병원 측의 해지통보로 있으나마나한 수준으로 후퇴되었다. 노조는 병원과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화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230여 명이었던 조합원은 현재 10명이 남 아 있다고 한다.

 

노조 파괴 과정에서 집단 괴롭힘, 일터 괴롭 힘도 있었다고 들었다.

“사실 일터 괴롭힘이라는 말은 이번에 재판하면서 처음 듣게 된 말이에요. 제가 처음 그 일을 겪은 건 2012년인데 19대 국회의원선거가 있어서 임시공휴일이니까 병원이 쉬어야 하는데 정상근무를 하겠다고 한 거예요. 제가 노조 지부장이었는데 아무리 우리가 힘이 없어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항의 공문 보내고 노조에서 유인물도 만들고 게시판에 붙이고 그랬죠. 그러고나서 전 직원들 보는 인터넷 게시판 에 항의성 글을 올렸는데, 난리가 났죠. 제가 근무하는 부서로 부서장이 오더니 잠깐 밖에서 얼굴 보자 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갔더니 환자들이 가득 찬 중앙 로비에 부서팀장들 대여섯 명이 서 있었고 그 중 한 명이 큰 소리로 “니 얼굴 보는 것도 지긋지긋 하니까 당장 나가!”라고 고함을 지르고 “왜 병원을 매일 어렵게 하냐!”고 퍼부었죠. 하루에만 사람이 계 속 바뀌면서 4번 정도 찾아오고 쫓아다니면서 괴롭혔어요.

 

결국, 홍명옥 님은 병원으로부터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징계 처분을 받았는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고 한다.

 

병원의 비상식적인 운영이 계속 된 것인가 

“병원의 정책들이 뭐랄까 일하는 사람들의 인권이 쉽게 무시되고 돈벌이 수단으로 취급하는 게 느껴졌어요. 아침 8시부터 업무 시작인데 7시 45분경 부터 직원들을 로비에 다 세워두고 강제로 기도하게 하고, 기도 모임 참석하라고 강요하는 거죠. 또, 누군가 나와서 크게 선창으로 “안녕하십니까? 가족처 럼 모시겠습니다!”하면 사람들이 복창하게 했는데 그게 너무 모욕적이었어요. 1주일에 한 번은 아침 7 시에부터 현관 로비에서 부서별로 돌아가면서 그런 인사를 하게 해요."

 

언론에서도 이러한 병원의 행태에 대해 많은 보도가 있었다. 

“2,000데이, 3,000데이라고 외래환자를 늘리기 위 한 아주 비상식적이고 부도덕한 행사들이 있었죠. 우리 병원이 외래 환자가 하루 1,600명 정도였다 면 병원에서 2,000명으로 끌어 올리는 목표를 정 해요. 그럼 부서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날짜에 외래환자를 2,000명, 3,000명 채워야 해 요. 어떻게 채우냐면 병원 직원들은 접수비도 받지 않고 진료비 감면도 되니까 여러 과에 1,2개씩 접수를 해요. 그리고나서 비타민, 파스 등의 처방을 간단하게 받고요. 그러면 직원들은 돈이 한 푼 안 나가고 병원은 건강보험공단에서 의료급여를 받는 거죠. 나중에는 가족, 지인들 총 동원해야 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죠.

 

인천교구는 2014년에 국제성모병원을 새로 신축해서 개원했는데 거기서도 똑같은 방법으로 반복한 거예요. 또 한 가지 나쁜 방법은 에이스 3,000, 에이스 4,000이라는 행사 이름으로 전 부서 직원들 조를 짜서 돌아가면서 퇴근 후 길거리에 나가서 병원 홍보물이나 판촉물 나눠주면서 환자 유치활동을 하게 했어요."

 

병원은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직원들의 임금을 강제로 4년간 동결하면서 정작 경영진(신부)들의 임금은 3배 이상 인상해서 억대연봉을 받아갔다. 결국 노조는 이 같은 인천교구와 인천성모병원, 국제성모병원 사태를 알리기 위해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했고, 교황청은 2015년 12월 교황 직속 산하 기구로 보건의료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가톨릭이 운영하는 병원들이 교리에 맞게 운영하고 있는지 감시하도록 했다고 한다. 한편 1인 파업을 결심했다.

 

어떤 의미에서 진행하게 되었나?

“21세기 대한민국, 인천 시내 한복판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2013년 임단협 교섭하는 과정에 1인 파업이라도 하겠다고 결의했어요. 간부나 조합원들은 극심한 탄압이 예상되니까 파업까지 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 저 혼자라도 싸우겠다고 결심 했어요. 에이스 3,000 폐지, 기도모임 폐지, 점심시간 보장, 생리휴가 사용 보장 등 부도덕한 돈벌이경영 중단과 근로기준법 준수, 노조활동 보장을 요구했습니다. 쟁의조정신청 하자마자 병원이 발칵 뒤집혔고 이때부터 관리자들이 본격적으로 집단괴롭힘을 다시 시작했지요. 이번 재판에서도 밝혀졌지만 이는 병원에서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기획하고 관리자들을 동원해서 저지른 일이에요. 2015년 3월, 국제성모병원 직원이 퇴직하면서 병원 문제들을 경찰에 제보해서 경찰이 압수수색을 하고 건강보험공단의 의료급여를 부당하게 타냈다는 기사가 언론에 보도됐어요. 그런데 우리병원 관리자들이 나를 찾아와 언론에 병원을 해코지하는 인터뷰를 했다며 다시 집단괴롭힘을 시작했어요.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이 극에 달해 출근하다가 실신해서 응급실 실려 가고 적응장애로 3개월 병가를 받게 되었어요.”

 

이후로 병원은 홍명옥 님이 일터 괴롭힘으로 인해 쓴 병가를 무단결근이라 주장하고 이 문제를 알린 점에 대해 병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2016년 1월 해고했다. 노동조합은 국제성모병원 부당청구사건과 노조지부장 집단괴롭힘 사건이 발생한 이후 병원 측과 인천교구 측에 대화를 통한 사태해결을 요구했으나 병원과 교구는 모든 대화를 거부하였다. 이에 노조는 시민대책위까지 구성해 단식농성, 집회, 시민선전전 등 사태해결을 요구했으나 현재까지도 묵묵부답이다.

 

각종 괴롭힘과 탄압이 무섭거나 공포로 다가오진 않았나?

“병원의 폭력적인 경영과 노조파괴도 너무 슬프고 충격적이지만 그것만큼이나 1,600명이나 되는 직원들이 하나같이 숨죽이고 있는 상황이 더 충격적이었어요. 직원들의 입장을 대변할 유일한 조직인 노조가 깨지니까 이정도로 처참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관리자들 눈빛이 바뀌었어요. 2005년 정리해고 반대 투쟁할 때까지만 해도 관리자들이 뒤로 와서는 “저희 본심 아닌 거 알죠. 우리 입장도 이해해주세요”라며 이해를 구했는데 지금은 전적으로 병원입장을 대변하면서 시키는 대로 무조건 다하고 공격적이예요.“

 

한편, 지난 1월 13일 노조는 힘겹게 싸운 끝에 재판을 통해 인천성모병원 노조 지부장 집단 괴롭힘 1심 판결을 승소했다. 병원 측과 가해자들에 대해 1,000여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 했다. 그러나 병원은 항소를 결정했다.

 

성직자이고 종교인들이 대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성직자라는 특권과 종교라는 특수한 조직이 만나서 아주 부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 같아요. 점차 시스템화되는 거죠. 고용노동부가 중재도 거부하고 국회의원실이 불러도 거부하고 도리어 항의하고, 천주교 다른 교구들은 일절 타 교구 문제에 있어 서 개입할 수 없고 이런 점들이 인천성모병원 경영진을 더 끝도 없이 파국으로 몰고 가는 구조가 되는 것 같아요.”

 

상당히 긴 시간 늘 싸움의 연속이었는데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는가

“병원에서 고소고발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데 법적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저를 인격적으로 매도하고 모욕하고 난도질 하는 걸 감당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얼굴도 본 적 없는 수백 명의 직원들에게 홍명 옥을 중징계하라는 탄원서에 서명하게 하고, 수백 장에 이르는 소송 서면에 온갖 허위와 왜곡으로 저를 완전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과정을 다 감내하는 게 정말 견디기 어려워 우울증까지 겪었습니다. 제가 노조 활동하면서 잔뼈가 굵어서 웬만한 건 감 당할 수 있는데 이때는 힘들어서 포기해야 할까 생각도 들었어요. 두 딸들도 엄마가 활동하는 건 알았 지만 자세한 상황은 몰랐거든요. 그런데 제가 싸우면서 자료를 만들고 제출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니까 아이들이 발표자료 만드는 걸 도와줬어요. 이때 애들이 경악했어요. 큰 애가 하는 얘기가 “엄마 내가 졸업하고 사회 나가면 이런 데로 나가는 거야” 그러는데 가슴이 덜컥 하더라구요."

 

앞으로도 싸움은 계속되는 건가?

“우리 상대가 종교조직이다 보니 어려움이 많아요. 지난 10년간 병원이 저질러 왔던 문제들이 터진건데 그 불똥을 저한테 가져와 집단으로 괴롭혔다는 게 말이 되나요. 아무리 노조를 혐오하고 홍명옥을 없애야 할 존재로 생각해도 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죠. 그래서 이 사건의 본질이라도 제대로 알리고 싶은 심정이에요. 저희 남아 있는 조합원이 10명이에요. 지금까지 이렇게 끈질기게 싸울 수 있었던 건 산별노조인 보건의료노조와 민주노총, 인천지역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의 힘입니다. 너무 고맙고 든든합니다. 저희는 결코 물러날 수 없는 싸움 을 하고 있기 때문에 끝까지 할 겁니다.”

 

 

[현장의 목소리] 시그네틱스 노동자의 기나긴 해고와의 싸움 /2017.2

시그네틱스 노동자의 기나긴 해고와의 싸움

- 금속노조 시그네틱분회 윤민례 분회장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삼성 재벌 이재용의 구속 영장이 기각되고 재벌 해체와 이재용 구속을 외치던 13차 촛불 집회에서 영풍 자본의 표적이 되어 온갖 탄압을 긴 해고 복직투쟁으로 맞서고 계신 경기금속지역지회 시그네틱스 윤민례 분회장님을 만났다.


시그네틱스 해고 복직투쟁은 매우 오래된 투쟁으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의 긴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는지요?


“(1차 해고) 2001년도에 이 싸움은 시작됐어요. 영풍그룹이 들어오기 전 공장이 서울 염창동에 있었는데 공장이전을 하게 계획돼 있었어요. 염창동에 있는 공장을 담보로 파주 탄현면에 3배 큰 규모로 공장을 새로 지은거죠. 그리고 2000년에 영풍그룹이 시그네틱스 반도체를 인수했는데 그때부터 노사갈등이 심하게 됐어요. 당시 회사엔 한국노총 소속 노동조합원 1,000여 명이 있었어요. 파주는 염창동에 비해 3배 규모고, 유니온 샵 제도였으니 반도체업종에 거대노조가 생기는 거였죠. 


그런데 저희 모두 파주로 가는 줄 알고 있었는데 염창동보다 작은 공장을 안산에 짓더니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싸움이 본격화됐어요. 공장이전을 하면서 노동조합을 없애기 위한 자본의 계획이기 때문에 전면 파업을 했고, 그 과정에서 전원 해고됐어요. 그러다 6년의 투쟁을 통해 65명이 안산 현장에 복귀를 했고 2007년 대법원 판결 받을 때 핵심간부와 열성 조합원 29명 전원패소로 1차 해고자라고 부르는데 저도 그때 해고되었죠.“


지금 현재 파주공장은 자본의 계획대로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서울 염창동의 기계가 파주로 이전했지만 파주 공장에 생산라인은 모두하청화해서 다른 회사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말 가고 싶으면 사표를 내고 비정규직으로 들어오면 받아준다고 말하고 있다.“


“(2차 해고) 안산으로 65명이 복직했는데 자연 감소하기도 하고 4년 후 2011년도에 경영상 어려움을 들면서 32명 전원 정리해고를 했어요. 다른 회사로 전적해서 가라고 했는데 저희가 거부했어요. 본사인 파주공장이 있는데 남의 회사에 가서 1년도 못 버티고 잘릴게 뻔에 그것을 받아들일 순 없었죠. 17개월 동안 투쟁해서 2013년 1월에 전원 복직을 했어요.”


“(3차 해고) 1년도 채 못돼서 2014년도에 안산공장을 팔아버리고 광명 하안동으로 또 공장이전을 해요. 2년이 지난 2016년 광명공장을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폐업으로 인한 정리해고를 했어요. 그래서 현장에 22명이 남아있었는데 1억에 가까운 위로금을 제안했고 평균연령이 52세이다 보니 그보다 많은 언니 13명이 사직을 하고 최종 9명이 남아서 투쟁을 결의하게 되었죠.”


16년 긴 시간 동안 해고 복직투쟁을 해오고 계신건데, 사측은 폐업까지 하고 더욱 힘겨운 상황이네요. 요즘 어떠신지요?


“2015년 12월에 교섭할 때 내년 6월에 광명사업부 정리하고 해고한다고 할 때 힘들더라고요. 어떻게 세 번씩이나 전원을 해고할 수 있나! 두 번씩이나 투쟁해서 복귀했으면 그만할 때도 됐는데 하는 생각에 많이 울었죠. 그래도 한편으로는 설마 하는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는데 9월말까지 연기하다가 역시 하더라고요. 상반기에는 조금 힘들었어요. 그런데 마음의 준비를 해서인지 막상 해고통지를 받아도 조합원들이 또 하냐?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위로금

액이 올라가서 혼란스러운 것도 없지 않았죠. 지금은 투쟁하는 것이 맞다고 보고요.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늙었다고 노동조합 지켜내고 일자리를 지켜내는 투쟁을 접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죠.”


지금 투쟁의 쟁점은 무엇이고, 교섭은 어떠한지요?


“1차, 3차 해고자 26명의 파주공장으로 배치전환입니다. 우리는 입사할 때 시그네틱스 정규직으로 입사를 한 것이기 때문에 사업주는 고용유지를 위한 해고회피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니 광명사업부 폐업을 하더라도 시그네틱스 파주공장에 일자리를 만들라는 것이죠."


마지막 교섭이 2016년 9월 27일 있었지만 그때이후로 사차의 입장변화가 없기 때문에 교섭도진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투쟁하시는 분들 모임은 어떻게 하고 계시고 앞으로 어떤 투쟁계획이 있으신지요?


“1차 해고자는 2개월에 한 번씩 모여요. 17년째 하고있고요. 1차 해고복직투쟁은 죽는 것 빼고는 다했어요. 단식, 고공농성, 교섭위원 5명 전원구속, 저도 수배 8개월, 아이들 조합원들에게 떼 놓고 영등포 구치소 3개월 갔다 왔거든요. 강도 높게 안 해본 투쟁이 없었어요. 그 때는 그렇게 치열하게 할 수 밖에 없었죠. 2차 해고복직투쟁의 기조는 1차 때 해고자를 밖에 두고 들어가니 너무 마음 아프더라. 그래서 전원이 현장에 복직하는 것을 기조로 하고 투쟁수위도 전원이 동의하는 방법으로 했고, 실제 전원이 복직을 하죠.”


한편 이번 3차 해고자 투쟁은 장기적으로 보고 유연하게 가기로 했다고 한다. 또한, 조합원들이 늙었고 소수이기는 하나 세 번의 해고를 단행한 무노조 경영이념을 갖는 영풍자본의 비도덕적인 행태를 여론화시키고 국민의 관심을 모아서 영풍 불매운동 등으로 이미지 타격하는 것과 실제로 사업주가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 부분을 알려내는 것을 이번 투쟁에서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한다.


한 축으로는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하고 있죠. 영풍자본의 24개 계열사 중 노조는 저희 밖에 없으니 얼마나 눈의 가시이겠습니까? 비정규직 나쁜 일자리를 확대하고 있고, 파주공장도 모든 라인이 비정규직이죠. 개돼지처럼 필요할 때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리겠다는 무책임한 자본에게 저항하고 투쟁하다보면 반드시 관철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비정규직 반대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축은 정리해고 반대투쟁입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본이 절차를 밟아서 끊임없이 정리해고 했다가 법정에서 해고무효소송에서 패소하면 말고 끈질기게 정리해고하고 탄압하는 것이죠. 악랄한 영풍그룹의 경영이념에 대해 사회적으로 문제제기해야 하는 것이죠. 이런 게 의미 있는 투쟁이라고 생각하니까 많이 힘들지 않고 왔던 것 같아요.”


끊임없는 탄압에서도 16년 넘게 지속적으로 투쟁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얻으시는지요?


“영풍자본이 투쟁하게 하는 것 같아요. 같은 사람인데 우리는 지배를 당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인정을 안 해주잖아요. 세상이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어지잖아요. 광화문의 촛불도 단순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민중들이 먹고살기 힘드니까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니었나 생각해요. 노동조합 활동하면서도 고민이 있었던 것이 우리 아이들 어떻게 키울 것인가도 있었죠. 개인적으로 아무리 일 열심히 해도 살아가기 힘든 사회인데 상위 1%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열사람이 한걸음 하는 것이 세상을 변화하는 것인데 그렇게 아이들을 키워야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런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살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분회장님의 경우 16년 동안 복직투쟁을 하고 계신데 개인적인 생활은 어떠신지요?


“어떤 분은 여성이니 더 힘들지 않았냐고 하시는데 제 경우는 여성이라 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결혼해서 아이들이 4살, 7살 때라 아직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투쟁하려니 힘들 긴 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남편이 벌고, 저도 가끔 아르바이트도 하고, 조합비나 금속노조 지원금 등으로 적게 쓰면서 활동했죠. 지금은 두 아들이 스무 살이 넘었어요.”


남편분의 반대와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노동조합의 ‘노’자도 모르는 사람인데 요즘엔 광화문에 나오더라고요. 남편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결혼할 때는 이해해준다고 했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 알았냐고 얘기해요. 십 몇 년을 할줄 몰랐다고. 고비 때마다 힘들면 집을 나갔어요. 첫번째가 수배 때 저보고 자수하고 들어가라고 하더라고요. 두 번째는 구치소 갔다 오면 그만할 줄 알았는데 계속 활동하니까 또 나가더라고요. 지금은 제가 대표니까 몸이 힘들어도 나가는 것 보면 가야되는가보구나 하는 거죠. 힘들어도 내가 해야 하는 일 고 이것이 내 직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죠. 활동을 할 때 난 행복하다고, 이것을 안 하고 다른 일을 하면 난 행복하지 않을 것 같으니 날 이해해 주든지 아니면 각자의 길을 가자고 했죠. 조금 바뀌긴 했지만 아직도 이해와 각자의 길의 중간에 서 있어요.”


조합원들과 촛불에 나오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투쟁해서 우리가 현장에 복직하는 것도 좋은데 광화문 촛불을 보면서 오늘 문득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가까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쫓아다녔던 집회가 17년째인데 늘외쳤던 구호가 현실화되고 있는 거예요.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외쳤던 구호를 유치원생부터 할아버지까지 함께 외치고 있는 이 모습에 뿌듯함이 있는 거예요.


분회장님은 그러면 바뀔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동안 잘못 됐던 것을 하나 둘 바로 잡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다음 대선에 누가 당선되느냐로 귀결되지 않고 국민들이 지속적으로 관심 갖고요구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힘들 때면 스스에게 묻죠. 죽을 만큼 힘든가! 그렇지 않다면 가보자! 조합원들이 힘들다고 할때면 말해요. 죽을 만큼 힘드냐? 그렇지 않다면 할수 있다고. 현재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지 않겠냐고!”


노동조합을 없애려는 영풍 자본과 첨예하게 맞서 한 길을 걷고 계신 윤민례 분회장님의 바램처럼타오르고 있는 촛불도 시그네틱스분회의 해고복직투쟁도 성공하는 그 날이 올 수 있게 사회적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겠다.

[현장의 목소리] 저희는 시민들의 정신건강증진을 위해 싸웁니다 /2017.1

저희는 시민들의 정신건강증진을 위해 싸웁니다

보건의료노조 서울시 정신보건지부 김성우 지부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작년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은 한국 사회를 큰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당시 언론과 경찰은 사회적 여성 혐오의 현상이라기보다는 한 미치광이의 살인사건으로 규정하고자 했고, 이것은 한국사회의 정신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이 더해지면서 효과를 발휘했다. 그런데 여기 혐오를 조장하고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는 정신장애인에게 희망이 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정신보건전문 요원들이다. 이들은 정신건강증진센터를 통해 정신질환 장애인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자살, 우울증, 알코올 중독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 사회적으로 너무나도 소중한 일을 하지만 그에 비해 이들이 처한 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었고, 이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싸움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성우라고 하고요, 현재 은평구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상임 팀장을 맡은 정신보건전문 요원이에요. 노동조합에서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서울시 정신보건지부장을 맡고 있어요.”

 

- 정신보건전문 요원이라는 이름이 상당히 낯선데,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된 건가.

저는 사회복지를 전공했는데 간호사, 임상심리사, 사회복지사들이 정신 보건 전문 요원 수련기관에서 수련을 받아서 정신보건 2급자격증을 받아요. 그뒤에 5년간 실무 경험을 해야 보건복지부 장관이 임명하는 1급 국가 자격증이 나옵니다. 제가 일하는 정신건강증진센터 역시 몇몇 분들 제외하곤 이 전문요원들이 일하고 있어요.”

 

정신건강증진센터는 1995년 제정한 정신보건법에 의해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2개의 산하 기관(서울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서울시 자살예방센터)25개 자치구에서 운영하는 정신건강증진센터가 있는데 이전에는 주로 정신질환자 관리가 주목적이었다. 그러나 현재에 정신보건 문제 자체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아동, 청소년기 정신건강상담, 성인기 우울증이나 알코올중독치료, 자살상담을 비롯해 의학적 치료를 연계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 그럼 센터 운영은 어떻게 되고 있나.

직영이 아니면 민간위탁 방식으로 운영하는데 서울시의 경우 80% 이상이 민간위탁으로 운영했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일방적으로 직영으로 전환하겠다는 통보를 받은 상황이죠. 운영은 자치구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직영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강제 휴업과 해고대상이 되면서 이를 막는 투쟁을 해야 했어요.”

 

- 정부와 지자체가 민간에 외주화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이 사업을 담당하는 것이 긍정적인 변화가 아닌가.

이 사업을 현장에서 해야 할 공무원들은 전문적으로 자격증을 따고 일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민간위탁으로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데, 서울시와 자치구가 직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죠. 그 이유에 대해서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인건비 절감과 고용률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 같아요. 박근혜 정부의 주요 공약인 고용률 70%를 맞추기 위해 직영으로 전환하면서 기존 인력을 시간제 일자리로 채용하겠다는 거예요. 게다가 저희가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을 하니까 노조에 대한 혐오가 강해진 거죠. 그래서 시간제 일자리로 일하는 직원들의 단체 행동권을 제약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무력화하려고 한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센터 직영화로 인해 시간제 일자리가 도입되면 정신보건전문 요원들은 연봉 500만 원 이상의 손해를 입게 된다. 게다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고 매년 이뤄지는 재계약에 따른 고용불안도 감내해야 한다. 따라서 정신보건전문 요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임금보전과 성과를 위해 연장근무를 해야 하고, 그러면 시간제 일자리의 원래 취지 중 하나인 일/가정 양립은 요원해진다.

 

시간제 일자리도 문제인데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찾아다니는 우리의 성과를 평가하겠다고 해요. 대체 어떤 식으로 평가하는지 물어보면 기준도 없다고 하는데 말이죠. 게다가 평가자는 현장과 거리가 먼 담당 자치구 보건소에서 한다는데 이해가 되지 않아요. 지금도 만일 상담을 하던 분이 자살하면 담당자가 뭘 잘 못 했으니까 죽었겠지.’라고 수군거려요. 게다가 보건소는 언제 마지막으로 상담했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왜 죽었는지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한다면서 전문요원에게 책임을 덮어씌우려고 해요.”

 

- 그럼 현재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가.

지금 직영을 추진하는 센터의 경우, 시간제 일자리로 변경할 때 행정적 절차가 필요하다면서 1~2개월 휴업을 하겠다고 해요. 공무원들은 그저 고용률을 높여서 인센티브를 받으려고 추진하는 것 같고요. 우리야 길거리로 나가든 말든 본인들에게 피해가 안 가니까 너무 일을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실제 한 센터 주무관은 한 조합원에게 이제 2개월 동안 휴업할 거니까 실업급여 받으면서 자원봉사하라고 말했다는데 항의하니까 그제야 농담이었다고 하는거예요.”

 

-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운다는 것이 웬만한 결심 없이 어려웠을 것 같은데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나.

정신건강증진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지 20년이 됐는데 아직도 시범사업처럼 운영해요. 센터마다 지자체가 예산을 얼마나 확보했는지에 따라 운영해야 하고 인건비/사업비/운영비가 분리되어 있지 않아서, 이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해요. 결국 노동자들이 문제를 다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서 재작년에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어요. 우리 센터가 2012년 서울시가 자살예방사업을 하면서 2명의 인력을 보조해줬어요. 이분들 포함 5개 센터에서 맨 땅에 헤딩하는 느낌으로 사업을 진행한 것이죠. 이른바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자살예방사업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모델을 만들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201412월에 갑자기 센터로 공문이 와서 지금 추진하는 사업을 모두 보건소로 이월하라고 한 거예요. 사업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서울시에서 지원했던 2명의 인건비도 가져가면서, 내내 고생했던 이분들이 20151월에 퇴사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상 해고 된 거예요.”

 

김성우 지부장은 이 일을 겪으면서 다음부터는 미리 움직이지 않으면 이런 일이 또 벌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노원구가 2016년 직영으로 전환되면서 시간제 일자리가 도입되었다. 사람들이 떠나가면서 함께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20162월에 노동조합을 만들게 되었다.

 

- 조합을 만들자마자 파업에 돌입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추진하게 되었나.

노동조합을 만들고 조정 절차를 통해 진짜 사장을 찾으려고 했어요. 이 과정에서 서울시가 실질적인 사용자라는 결과를 확인했고, 6개월간 서울시와 임금 및 단체교섭을 협의했어요. 그리고 9월 서울시와 최종 의견을 조율하여 고용 보장 약속 등 합의안을 냈는데 104일 합의가 거부되었어요. 서울시와 센터장, 자치구장이 서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핑퐁게임을 하다 조정이 결렬되었어요. 결국, 노동조합은 쟁의권만 남았고 파업을 하게 되었어요.”

 

핑퐁게임이 왜 벌어 졌는가.

센터장은 권한이 없어서 자치구가 사인해야 할 수 있다고 하고, 자치구는 센터가 사인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이때 서울시가 가장 큰 책임이 있는데, 시로서는 이 둘을 모두 강제할 수 없다고 했죠. 특히 서울시가 구청장을 강제한다는 것에 대해 매우 부담스러워 했어요.”

 

현재 정신건강증진센터는 병원 기관의 정신과 의사 1인이 센터장을 맡고 이 센터장이 개인사업자를 내어, 전문요원을 채용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법적 사용자는 센터다. 그러나 센터를 운영하는 예산은 관에서 지원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사용자는 각 지자체장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자 센터와 지자체는 진짜 사장은 내가 아니라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 파업이 50일을 넘었는데, 조합원들 마음이 무거웠을 것 같다.

처음엔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는 것도 어색했어요. 그런데 파업을 하면서 조합원들이 센터에서 겪었던 문제가 개인 잘못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알고 분노하더라고요.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모인 지금 아니면 못 싸운다는 마음으로 파업에 임했어요. 그런데 파업이 50일을 넘기면서, 대상자들이 50일간 방치 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많이 느꼈어요. 제가 그걸 보면서 농담으로 우리 조합원들은 착하다 못해 바보라고 그랬어요. 당장 본인들이 거기로 쫓겨나게 생겼는데 대상자들 걱정을 먼저 하는 거예요.”

 

2016년은 104일부터 시작된 서울시 정신보건지부의 파업 투쟁은 50일만에, 서울시와 고용 안정 협력 등을 합의하고 마무리되었다.

 

- 그런데 복귀하자마자 곧바로 다시 촛불을 들어야 했다. 이유가 있었나.

당장 1월부터 민간 위탁 기간 만료되는, 6개 구 센터에서 노동자들에게 해고 통지서를 보냈어요. 물론 위탁 기간이 종료될 때마다 해고통지서를 늘 받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다른 거죠. 이후 고용에 대한 약속도 없고 센터가 내년에 어떻게 운영되는지 계획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와 했던 약속이 지자체를 전혀 강제하지 못한 것이에요.”

 

- 앞으로의 계획이 있는가.

투쟁을 이어가려고 해요. /시의원 가운데 저희 문제에 협력하겠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조례도 만들고 협의체에서 센터 운영과 관련해서 합의를 끌어내려고 해요. 노동조합 혐오에도 맞서 싸워야 할 것 같아요. 아마도 저희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반발하다보니 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버티려는 것 같아요.”

 

김성우 지부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 현재 한국의 공공사업에서 정신건강예방을 위해 하는 사업은 이게 유일해요. 그런데 이 사업도 제대로 못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국가가 정신보건사업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우리부터 제대로 시스템을 만들어놔야 다른 서비스로 연계되고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일을 하는 저희를 이렇게 거리로 내몰고, 근로 조건 낮추고, 시간제 일자리로 채우면 이 사업 자체가 흔들려요. 그렇게 되면 내담자들이 결국 피해를 입어요. 이분들이 이 문제를 말해야 하는데 말하기가 어렵고 세상으로 나오기 힘든 분들이기 때문에 종사자들이 저희부터 나서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었고요. 앞으로 저희의 싸움에 많은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려요.”

 

[현장의 목소리] 역사상 최장기 철도파업, 정부가 왜 손 놓고 지켜보는가? /2016.12

역사상 최장기 철도파업, 정부가 왜 손 놓고 지켜보는가?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 이철의 교육국장 인터뷰

“신자유주의 정권의 신의 한수 ‘필수유지업무제도’ 철도노조에게 큰 과제 남겨”

“노동자들의 파업은 언제나 정당한데, ”합법/착한 파업“으로 순치하는 건 옳지 않아”

 


재현 선전위원장


 

철도노조 역사상 가장 긴 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파업인데 열차 운행률은 81.4%(12.1기준)이다. 시민들은 “불편해도 괜찮아”가 아니라 “철도 파업해요?”라고 되묻는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조합원들의 피로는 높아만 가는데, 언제 마무리 될지 기약이 없다. 1977년 부기관사로 입사해 노동조합 활동에 함께했던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이철의 교육국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장기간 파업이 이어지고 있는데 조합원들 상황은 어떠한가?

조합원들 집회에서 보면 표정이 안 좋다. 얘기해보면, 월급 안 나오니까 힘들다고 한다. 대출을 많이 받은 조합원들은 특히 더 그렇다. 필수유지업무제도로 인해 일하는 조합원들이 기본급 10%씩 모아서 파업에 나와 있는 조합원들에게 주기로는 했지만, 부족하다. 조합원 중에 밤에 대리운전 뛰는 조합원들도 있다.

 

- 힘들고 지치는 와중에 최장기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무슨 힘으로 버티고 있는 건가.

지금의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을 노동자들이 주도해왔는데, 그중에 우리가 일부라는 자부심이 있다. 나도 조합원들에게 지금의 200만 촛불을 만든 건이 불씨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도 철도 조합원들은 매일 저녁에 파이낸스센터 앞 집회에 참여한다. 아마 우리 조합원들이 70~80%는 될 거다. 

 

이철의 교육국장은 철도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행동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으면 힘이 빠졌을 텐데 우리 행동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 우리가 이런 정국을 만들어온 자긍심이 긴 파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이번 파업을 돌입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성과연봉제다. 철도가 어떻게 밀어붙였나.

사실 성과연봉제는 MB정부 시절부터 시작한 거다. 당시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이라 해서 모든 공기업에서 복지제도 공격을 받았다. 퇴직금 누진제를 폐지하거나, 계산제 자체를 바꾸거나, 단체협약이 민간보다 지나치게 노동조합에 유리하면 뜯어고치도록 강요했다. 철도는 구조조정 공격도 있었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은 MB가 세운 계획을 그대로 관철하고 있다. 2차 공공기관 정상화라고 부르는 이유다. 박근혜 정권은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와 퇴출제를 밀어붙였다.

 

한편, 철도는 우선 성과연봉제 도입을 시도했다. 강성 노동조합의 반발을 고려해 우선 성과연봉제만 도입해도 내부에 균열이 생길 것이고 이점을 이용해 퇴출제를 도입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철도 경영진 의지가 정권과 같지 않았다는 점도 있었다. 그러나 2015년 6월 상황이 바뀌게 된다.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다녀와서 공공기관장들에게 경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철도를 포함한 대부분 공공기관이 5월 29일 이사회를 열고, 노동조합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바꾸면서 성과연봉제-퇴출제를 밀어붙였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철도 구조조정, 노동개악 이런 게 꼭 대통령의 의지라고만 볼 수 없다는 거다. 이건 신자유주의자들이 한국의 노동정책을 좌지우지하면서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가 장기간 계획을 세우고 밀어붙이는 거다. 강제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빨리 도입하면 경영 평가에서 이익을 주고, 늦게 하면 불이익 주거나, 임금인상 승인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통제한다. 이러한 흐름은 DJ정권부터 쭉 이어졌기 때문에 박근혜가 퇴진한다고 중단 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 만일 성과연봉제가 현장에 들어온다면 어떠한 변화들이 있을 거라고 보나.

회사가 철도 취업규칙을 바꾼 걸 보면 노동조합 눈치를 보면서 많은 물타기가 있었다. 성과로 실적을 평가 할 때 개인평가가 아닌 사업소별 평가를 하게 했다. 연봉제 삭감 폭도 정부 지침보다 작은 3% 내로 결정했다. 


그렇다 보니 철도는 형식적인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것이고, 불이익받는 사람은 없다고 주장했다. 연봉 삭감도 기본급을 손대는 방식이 아니고, 임금 외 부분에서 조정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성과제가 들어온 관리자들만 보더라도 경력이 꽤있는 조합원이 연 300만 원 손해 보는 정도다.

 

그래서 가볍게 넘길 수 있지만, 성과연봉제가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있는 구로승무사업소만 해도 관리자들이 우리 사업소가 꼴찌 하면 안된다는 부담을 갖는다. 게다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리 잘해도 한번 사고가 나면 크게 나면, 그간 모든 노력이 무산되지 않나? 내 실수로 300여 명의 사업소 식구들이 연봉 300만 원 깎인다고 생각해봐라 개인평가보다 더 부담을 주는 방식이다. 또, 지금 이 사회가 성과연봉제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에 대해 재판을 청구하고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우리가 이길 거라 확신하지 못하지 않는가.

 

상식적으로 법에선 임금이나 중요한 노동조건 관련 사항은 노동조합 과반수 이상 동의를 얻어야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법원이 상식적으로 판단하리라고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 도입이 어렵지 아무리 무늬만 연봉제라 해도 일단 들어오면 개악되는 건 시간문제고, 법적으로 가면 해결하기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노동자를 개별화시키는 성과연봉제는 아예 들어오면 안된다, 이거 들어오면 노동조합이 깨진다는 생각으로 지금껏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 철도공사는 파업 시작부터 지금껏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매도하고 있는데 이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조합원들이 위축거나 그러지는 않는가. 

나는 기본적으로 합법 파업이냐 불법 파업이냐 따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파업은 늘 정당한 거 아닌가? 노동자들이 우리들의 파업은 언제나 정당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합법, 착한 파업이라는 말로 노동조합 투쟁을 자꾸만 순치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지금 엄밀히 말하면 부분 파업을 하고 있다. 파업이 왜 길어지나. 우리가 잘 버티는 것도 있지만 부분 파업이라 위력이 없는 거다. 전면파업이었다면 1주일 안에 결판난다. 정권이 무리하게 탄압해서 노조를 깨던가, 우리 요구를 들어주거나. 역사상 가장 긴 파업은 결코 자랑이 아니다. 문제가 심각하다.

 

- 어떠한 문제가 확인되고 있는 건가

회사나 정부에서 손 놓고 가만히 쳐다보는 파업은 문제 있는 파업이다. 현대차를 봐라. 사회적으로 우리보다 더 욕을 먹어도 파업을 하니까 문제가 해결되지 않나. 얼마 전 화물연대 동지들이 파업했는데 거긴 노동조합도 아니다. 그 자체로 불법이고, 도로를 봉쇄해서 불법 파업을 했다. 그래도 결국 끝내지 않나. 파업의 본질이 뭔가? 생산을 멈추고, 일을 멈추고 업무를 마비시키는 것 아닌가?

 

사회적으로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파업이 지지받지 못하다 보니 불편해도 괜찮아 같은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시민들이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것 물론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보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한국은 시민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 자체가 서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한테 불편이 없으면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는 거고, 자기한테 불편을 주면 욕한다. 파업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건 좋은데 본질을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 같다.


이번 파업이 철도노조에 상당히 많은 숙제를 안겨준 것인가.

필수유지업무제도가 노무현 정권의 신의 한 수였다고 본다. 지금 현재 480여 명 대체 인력으로 수도권 전철 85%, KTX 70%, 무궁화, 새마을이 60% 정도 운행률을 맞추고 있다. 파업 때 가장 힘을 발휘할 수 있는 KTX, 수도권 전철 운행에 차질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회사가 파업에 대비해서 기관사 출신 관리자도 많이 세웠고, 군인, 퇴직 기관사 합치면 파업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기관사 5,000여 명이 필수업무유지제도를 무시하고 전면 파업에 돌입하면 대체인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우리에겐 2가지 문제가 남는 것 같다. 위력이 없는 부분 파업같은 파업을 할 것이냐? 아니면 전면 파업을 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하겠는가? 이점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상황이다.


 - 이번 파업은 해결의 실마리가 전혀 안 보이는 상황인가.

철도 내에서도 이 문제해결에 대한 견해가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사장이 꼴통이라 그렇다고 하는데, 나는 다르게 본다. 여전히 정부 관료 기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청와대,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3곳이 합의를 해야 하는데 그것도 안 되는 상황이고. 철도 사장은 자기들만 성과연봉제 철회하면 내년에 옷 벗어야 하는데 어떻게 합의하겠는가.


- 이번 파업에서 궤도와 22년 만의 공동파업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가도 있던데 어떻게 평가하나.

글쎄, 철도를 뺀 나머지 노동조합은 2004년에 공동파업을 했었는데 이제 와서 철도를 끼워 22년만에 파업이라는 것은 억지로 의미를 붙였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올해 처음으로 산별답게 공공운수노조 파업을 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노조가 방침을 내고 공동으로 무기한 파업을 처음 결의해 본 것 아닌가.


 - 오랜 노동조합 활동, 해고자 생활 등 이른바 철도 민주화 1세대 활동가고, 정년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이번 파업은 어떤 의미로, 어떻게 기억될 것 같나.

노무현 정권 때도 2번인가 파업을 했지만 이명박근혜 정권 들어서 하는 파업과는 다르다. 우리가 쟁취하는 투쟁이라기보다 밀려서 지켜야 하는 투쟁이었다. 게다가 최근 계속된 파업으로 조합원들도 노동조합도 지쳐있는 것 같다. 우리도 쉬어야 할 때가 있는 거다. 그래서 이번 파업 잘 싸우고, 마무리하면 재정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철도가 대표적인 대기업 노조 중 하나라 자기중심주의가 강하다. 연대도 잘 못해왔다. 그런데 이번 파업은 다른 때와는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파업의 직접적 요구를 떠나 박근혜 퇴진, 전경련 규탄 투쟁도 벌이고, 교육도 많이 받으면서 의식을 높이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것 같다. 앞으로 노동조합 활동에 있어 큰 힘이 될것 같다.

 

[현장의 목소리] 사드 배치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닫는 길이다 /2016.11

사드 배치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닫는 길이다

-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오미정 사무처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의 아바타 역할을 했던 것도 충격을 금하기 어렵지만,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사드 배치 결정 역시 굉장한 문제였다. 정권 존립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사드 배치문제 역시 언제든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 그래서 사드에 대해 총체적인 고민이 필요한 상황인데,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을 활발하게 펼쳐오고 있는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하 평통사) 오미정 사무처장님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평화와통일은여는사람들은 어떤 곳인가

말 그대로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활동하는 노동자, 학생, 교수, 종교인, 여성 등 다양한 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저희는 지난 3년 전부터 사드 배치 저지활동을 비롯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과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를 위한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왔다.”

 

평통사는 2008년부터 한반도가 분단 체제를 넘어 평화협정체결을 실현함으로써 군사적 경쟁을 해소하고 평화체제와 통일을 앞당겨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는 곳이기도 하다. , 사드를 막기 위해서라도 평화협정체결이 대안으로 제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권은 대체 왜 사드를 밀어붙이는 것인가

미국의 의도인 것 같다. 미국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임기 내 무조건 사드를 배치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계기가 마땅치 않다, 올해 북한이 핵 실험을 하고 인공위성 로켓 발사를 발판삼아 오랜 숙원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드 문제가 최근 들어 공식적으로 불거진 건 2014년 한미연합사령관 스카파로티가 미국에 사드를 건의하면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사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반도에 MD(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고자 했고, 사드는 이를 실현하는 무기체계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던 대통령의 진심은 무엇이라고 보나

박근혜가 말하는 통일은 흡수통일이라고 보면 된다. 가능한 군사적으로 북한을 제압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자본주의 체제로 흡수하겠다는 뜻이다. 만일 전쟁이 벌어질 경우는 물론, 자본주의 체제로의 흡수통일은 엄청난 통일비용 때문에 자본에게는 대박일지언정 남한 민중들과 북한 주민들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다.”

 

오바마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데, 한국에서는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고 있다. 어떻게 봐야 하나

오바마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는 이란, 북한 등 이른바 불량 국가 지도자들을 만나 대화 할 계획이 있다고 했는데, 백악관에 가자마자 말이 확 달라졌다. 2010탄도 미사일 방어 검토 보고서를 발표하면서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MD를 구축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전 부시 정권의 군사 정책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오미정 사무처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초반 북한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면서 대북 정책을 대화 기조로 갈 것인지, 한미일 군사 동맹을 강화할 것인지 두 방향에서 후자를 선택하고, 시아태평양 지역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핵 문제를 명분삼아 MD구축과 사드를 구축하는 과정이라고 판단했다.

 

지금 미 대선 주자인 힐러리, 트럼프 역시 마찬가지 입장인 것 같다.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북핵문제를 핑계삼아 한미동맹 강화와 함께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 내 자신들의 군사력을 주둔시키고 늘리고 싶은데 유지할 능력이 안 되니까 이 부담을 한국이나 일본이 짊어지라는 것이다.”

 

사드가 배치되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멀어질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전 세계 그 어느 국가도 도전 할 수 없는 압도적인 군사력과 패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사드 한국배치로 동북아 MD를 구축까지 더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점하고 패권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뜻을 의미한다. 이제 사드가 들어오고 중국 코앞에 레이더가 배치되면 제1공격 대상이 중국과 러시아가 된다. 이러면 한미일 동맹 / 북중러 군사협력체 사이에 진영 대결 체제가 강화되며 국가군비 경쟁이 격화되고, 각 나라의 모든 재원이 이쪽에 집중될 것이다. 민중들에 대한 기본권, 복지, 교육, 의료에 들어가야 할 나라의 재원이 대결체제로쏟아 붓게 되고, 극단적으로 보면 핵전쟁이 일어날 위험에서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평통사는 만일 한국에 사드가 배치되면 국가 안보가 위태로워지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더욱 멀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저희 단체 목적이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은 여는 일인데 이제 아주 먼 일로 혹은 영영 멀어지게 된다고 본다. 평화와 통일이 뒤로 가거나 닫히는 문제이기때문에 저희로서는 단체의 명운을 걸고 이걸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활동하는 이유다.”

 

한편, 모든 통일 운동 단체가 이번 사드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는 못한 상황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선언하고 핵을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과 목소리를 내는 평통사와 달리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한 단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핵 문제를 특히 북한의 핵폐기를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폐기(주한미군 철수 등)과 어떻게 연동시켜 실현할 것인가? 평화협정 내용 안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등 각 단체의 견해 차이에 따라 사드를 보는 시각들도 미세한 차이들이 존재한다.

 

성주, 김천 지역 주민들의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지금 미국은 아주 오랫동안 노리던 바 이기에 어떻게든 사드를 박근혜 대통령 임기 때 못 박고 싶어하고, 그래서 시기도 당기겠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성주 군민들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김천으로 부지를 이동하게 되었다고 본다. 성주, 김천 모두 아주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우리는 지역에서 역할을 다 할테니 운동단체들은 전국적인 활동을 펼쳐달라고 부탁했다.”

 

야당 역시 사드와 관련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현재 야당이 사드와 관련해서 입장을 밝히지 않는 점은 아주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개인적으로는 반대라면서, 더 나아가 공식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사드 국민 여론조사를 해보면서 찬성이 65%정도 된다. 여론이 이러니까 내년 대선을 생각했을 때 사드 반대 당론 채택에 부담을 갖는 것이다. 우상호 원내대표가 사드 입장을 밝히면 반미로 찍혀서 대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거다라고 말하는 상황이다. 야당이 계속해서 안보 사안에 대해 자기 비전과 대안이 없으면 매번 종북으로 찍혀서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공동 행동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나

올해 초 북핵 실험 이후 한미 당국이사드 배치를 하겠다고 공표한 시점부터 여러 단체가 기자회견 대응 중심으로 활동을 해왔는데, 장기적으로 공동행동이 필요할 것 같아 6월 준비 단계를 거쳐 지난 8월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을 발족했다. 준비단계에서는 50여개 통일, 민중 운동 단체들이 중심이었고 8월 발족하면서 시민, 종교계를 포함해 100여개 단체들이 함께하게 되었다.”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은 지금까지 한미간 주요 회의 이후 대응 기자회견을 중심으로 성주투쟁 50, 100일을 맞아 전국적으로 촛불을함께 들기 위해 조직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드가 가진 중요한 의미에 비해 운동으로 대중들이 모이는 동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사드배치로 불거진 제2의 냉전을 막아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한반도의 핵전쟁을 막아내기 위해선 북학이 핵을 포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라고 본다. 미국이 오랫동안 핵 공격 의사를 숨기지 않아오면서, 결국 북한이 핵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북의 안보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지금의 분단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북한을 이유로 미국이 사드 배치를 고집하는 흐름이 바뀔 것이라고 본다.”

 

또한, 오미정 사무처장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10.4 공동선언에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약속이 있었다며 만일 내년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된다면 당장 MB정부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더라6자 회담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는 있다고 본다며 이를 위해서도 무엇보다 시민운동의 힘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금 야당이 미국에게 당당하게 목소리 내고 당론을 바꾸게 하는 데는 시민운동의 힘이 좌우한다고 본다. 우리들의 삶의 질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더 큰 쓴 소리와 비판으로 정권의 정책에 영향력을 미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터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흔히 운동에 이해 당사자들의 활동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또 그분들이 앞장설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다고 한다. 반도체 직업병 당사자, 가족들이 반올림 운동을 함께 만들어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점에서 평화 운동은 모든 사람들이 이해 당사자이고 함께 해야 하는 중요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성주, 김천, 원불교 교인들이 앞장서고 있다. 앞으로 보다 많은 분들이 행동에 나서주면 좋겠다.”

[현장의 목소리] 대찬인생 살아볼랍니다! /2016.10

대찬인생 살아볼랍니다!
-노동조합 인정 요구하며 파업중인 금속노조 경기지부 대창지회 노동조합 김용세 사무장, 장종우 노안부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전면파업 37일 (9/23기준)을 맞는 금속노조 경기지부 대창지회는 노동조합 설립 5개월 차 신생 노동조합이다. 금형 황봉을 수입하여 가공하는 일을 하는 대창은 설립된 지 40년이 넘는 역사와 한해 매출 5,000억을 넘는 건실한 기업이다. 그래서일까 대규모 중소·영세 사업장이 밀집한 반월/시화 공단에 있는 대창은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가고 싶은 회사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모르는 대창의 실상
김용세 사무장 : 택시를 타고 대창가주세요 그러면 좋은 회사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지역에서 포장이 잘되어있는 회사에요. 일단 회사가 크고 급여도 주변보다 더 받으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모르죠. 우리가 주말 내내 일해서 그나마 이 정도 받는건데 다들 기본 8시간 일해서 받는 기본급이라고 생각해요. 현실은 연간 노동시간이 3,000시간이 넘거든요. 그것도 현장에서 적게 일한다는 분들이 그랬어요.

 

임금의 경우 최저임금은 조금씩이라도 올랐건만 대창은 늘 제자리였다고 한다. 이러니 1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 1년 다녀도 최저임금이고 심지어 경기가 어렵다고 2년 정도 임금을 동결한 적도 있었다. 정년 2년 전부터는 임금피크제라서 해마다 20% 임금이 깎였다.

 

김용세 사무장 : 연 순이익만 400~500억이 되는 회사에요. 그런데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한테 투자는 미비하죠. 18년 다니면서 회사가 20억

벌 때가 분위기가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 불편하니까 바꿔달라고 하면 개선해주고, 힘들어하면 회식도 하고 그랬는데 수익이 200억 정도 되니까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더라고요.

 

위험한 현장이지만 다치면 늘 작업자 탓이었다. 오랜 기간 현장에서 쌓였던 불만은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고민으로 이어졌고 지금의 지회장을 포함해 몇몇 분들이 금속노조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김용세 사무장 : 현장에 안전사고가 너무 잦아요. 특히 절단 사고가 많고, 근골은 기본으로 깔고 가요. 내가 언제 다칠지 모르는 환경인 거죠. 만일에 다치기라도 하면 회사 관리자들은 무조건 다친 사람책임이라고 뒤집어 씌우는 거예요. 만일 산재신청이라도 한다고 하면 회사는 거짓으로 서류를 제출하고 그랬어요.

 

장종우 노안부장 : 저는 금형에 호일을 당겨서 봉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기계도 조작하고 했는데요. 일하다 무릎이 아파서 산재신청을 했는데 결국 승인도 못 받고 장해만 남았어요.

 

 

산재 승인을 받기 위한 과정에서 회사는 재해자를 도와주기는커녕 방해했다.

장종우 노안부장 : 그때 당시엔 산재를 잘 몰라서 제대로 대응도 못 했어요. 그러다 나중에 회사가 제출했던 서류를 봤는데 악의적으로 꾸며서 제출했더라고요. 저희 설비는 수동인데 자동이라고 했고, 지난 20년간 이 설비에서 다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냈어요. 하지만 저랑 같이 일했던 4명 중에 한 사 람은 무릎 수술을 했고, 한 사람은 무릎연골이 없어요. 저는 장애가 남았고요. 그런데 누구도 반발할 수 없는 분위기에요. 그게 오래전 일도 아니고 2015년에 일이에요.

 

장종우 노안부장이 산재를 신청한 것만으로 동료들 사이에서 용기가 부럽다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회사 분위기가 어떠한지 짐작 가능한 대목이다.

 

 

휴먼노조 들먹이며 노동조합 인정 안

김용세 사무장 : 노사협의회 성원이던 지금의 지회장님과 몇몇 분이 1년 넘게 노동조합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오픈하기 직전에 회사에 발각됐어요. 논의 끝에 그날 바로 노동조합 가입을 받기로 하고, 하루 만에 220명을 받았어요. 이후에 나머지 사람들도 다 받았고요.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절박감으로 이렇게 오게 된 것 같아요.

 

회사는 긴급하게 전체 직원들을 강당으로 불렀다. 대표는 그 자리에서 노동자들을 회유하려 했다.

 

김용세 사무장 : 직원들을 다 부르더니 다 해주려고 했다 그러는 거예요. 임금 올리고 그런 거 다 준비했다고요. 그런데 그때 한 분이 일어나서 그랬죠. “우린 더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돈 때문에 그런 걸로 보이냐며 나가자”고 했고 전 직원이 일어나서 강당을 나왔다.

 

 

휴먼노조를 핑계로 노조와 대화거부

김용세 사무장 : 회사에 대화를 요구했는데 기존에 있는 노동조합과 지난 1월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아서 2노조인 금속노조 대창지회의 교섭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면서 노동조합과 대화를 계속 거부했어요. 그러나 이는 회사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거짓이었다. 회사가 주장하는 1노조는 휴면노조 즉 페이퍼 노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휴먼노조 위원장은 지난 4월 20일 나일권 대창지회장을 만나 “회사에 페이퍼 노조가 있는 것 알지 않았냐. 회사에서 이름만 올리고 서명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실제 휴먼노조는 2003년 설립했지만, 조합원이 4명에 불과하고 단 한 차례도 회사와 임금협약을 체결하지 않은 것이 밝혀졌다.

 

김용세 사무장 : 4월 19일 노조를 만들고 지금까지 교섭을 회피하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어요. 1노조가 휴면노조라서 교섭 회피하지 말라는 지노위, 중노위 결정문 나 몰라라 하고, 휴먼노조를 해체하라고 결정하니까 그제야 마지못해 교섭하자고 하더라고요.

 

결국 전면파업에 나서다

회사는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대창지회가 요구하는 수준이 과해서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창지회로썬 노동조합활동 인정 외엔 신규 노조에서 맺는 수준의 요구안이기 때문에 결국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회사의 뜻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결국 노동조합은 전면파업에 돌입하게 되었다.

김용세 사무장 : 결국 우리가 전면적으로 파업해서 대화를 해야지 그러지 않고서는 답이 안 나오겠다는 판단이 있었어요. 처음 하는 파업이라 걱정도 많이 됐는데 지금 와서 보면 선배 노동자들이 대창 분위기가 최강이라고 말씀하더라고요. 한 달 넘는 시간인데 조직력도 흐트러지지 않고요.

 

장종우 노안부장 : 한 달 임금 안 받고 마이너스 대출받고 생활해보니까 악에 받치더라고요.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해지고요. 어쩌면 회사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노동조합 조직력이 만들어지게 회사가 도와주는 것 같아요. 물론 파업이 길어지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학교에서 배우듯 노동조합에서 파업하면서 조직력을 배우는 시간 같아요.

 

 

회사의 무리한 대체생산이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장종우 노안부장 : 회사에서 저희가 부분 파업할 때마다 대체 생산을 했거든요. 그때마다 다른 설비를 돌려야 하니까 작동법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저희가 안 알려줬어요. 그러자 이압출 기계를 깔지 1년여 됐는데 설치한 사람을 불러다 작동법을 배우더라고요. 이후에 사측에 붙어먹은 김상표라는 사람과 고인이 된 이규재 부장이 같이 일하다 이압출 기계 오작동으로 이규재 부장이 가슴이 눌려서 압착으로 사망했어요.

 

신규설비이고 조작법이 익숙하지 않은 사무실 직원들이 대체생산에 투입되었다가 끔찍한 일을 겪었고, 그 이후 모든 대체 생산은 중단되었다. 사무실 직원들을 이제 물건 출하 중심으로 남은 재고들만 보내는 업무를 하고 있다. 한편, 고인의 가족들은 회사와 이후 협의하고 장례를 마쳤다.

 

 

대창만의 힘으로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김용세 사무장 : 금속노조 경기지부가 아니었으면 이 자리까지 못 왔죠. 전면파업하고 여러 사업장에서 연대 와주시는데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요. 저희끼리 농성장 지키면 그것처럼 처량한 게 없는데요. 올 때 또 그냥 빈손으로 안 오세요.

 

장종우 노안부장 : 금속노조가 없었으면 이런 조직력이 만들어졌을까 생각해요. 아마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그리고 처음에 여기저기서 와주시는 게 품앗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품앗이는 아닌 것 같아요. 의리도 아닌 것 같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에요.

 

 

안전한 일터, 변화를 인정하는 일터가 되었으면

김용세 사무장 : 회사도 저희도 모두 대창이 세계 일류 기업이 되는 게 꿈이에요. 저희 열심히 일해 왔고 앞으로도 노력할 거예요. 그런데 진짜 1등이 되려면 노동자랑 파트너쉽을 가져야 해요. 우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1등이 될 수 없죠. 그리고 현장에 없던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는데 대체 왜 만들어졌는지 한번 돌아보고 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종우 노안부장 : 노동조합 만들고 여러 변화가 있는데요, 팔자에도 없는 부장을 하고, 사람들 앞에도 서서 교육도 해보고, 산안법 고발도 하는데요. 저한테 가장 큰 변화는 개개인으로 흩어져 있을 땐 그렇게 이기적이었던 사람들이 노동조합이라는 틀 하나로 뭉치는 게 신기했어요. 그런 말이 있죠 나무가 모이면 숲이 된다고요. 이분들과 하루 빨리 파업 끝내고 돌아가면 안전한 일터 만드는 거에 관심이 많아요. 우리 조합원들 다들 골병들어있는데 예방도 하고 아픈 분들은 치료도 받고요 그렇게 해서 살맛나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현장의 목소리] 비리로 점철된 사학 재단에 맞서 싸우다 /2016.7

비리로 점철된 사학 재단에 맞서 싸우다

민주노총 전국대학노조 수원여자대학교지부 노동조합 권순봉 지부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이번 일터는 사학 재단 설립자 가족인 이사장을 비롯해 그 주변 인물들의 비리와 부당노동행위에 문제를 제기하다 하루아침에 거리로 쫓겨난 수원여자대학교 노동조합을 만났다. 지금껏 500일 넘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권순봉 지부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문제의 설립자 장남 이모씨 

사학재단들을 보면 설립자나 이사장의 비리도 문제가 있지만, 설립자 자녀들과 친척들이 학교에 들어와서 문제를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저희가 딱 그런 상황이에요. 설립자 장남이자 당시 기획조정 실장이었던 이모씨가 모든 문제의 핵심인데, 이분이 직원들한테 반말은 기본이고 상습적으로 욕설하고 비인간적으로 대했죠. 게다가 저희는 2004년부터 연봉제였는데 이게 찍기 연봉제라고, 연봉 책정에 기준이 없었어요. 이모씨 마음에 드는 직원이 있으면 딱 찍어서 연봉 올려주고, 마음에 안 들면 깎는거죠. 다음 20103월엔 학교가 업무 개선팀을 만들었는데 5명의 직원을 해고할 생각으로 이 부서로 발령을 냈어요. 그러니 직원들은 부당해도 혹시 잘리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에 문제를 제기할 수가 없었죠.”

그러다 20124월 수원지검에서 이모씨를 긴급체 포하게 된다. 학교 건물을 증축하는 과정에서 건축 업자한테 25천만 원의 뒷돈을 받은 정황이 밝혀진 것이다. 결국, 업무상 횡령으로 벌금 3천만 원을 받았다. 이때 권순봉 지부장을 비롯해 몇몇 직원들이 그동안 부당해도 차마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했고 그렇게 32명이 모였다.

 

학교는 끝내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조합 만들고 단체협약을 맺자고 했는데 절대 안 맺으려고 하고 시간을 끌더라고요. 그리고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려는 목적으로 저를 경기도 화성에 있는 2캠퍼스로 발령을 내더라고요. 단협도 결렬돼서 저희는 천막 농성에 돌입했고, 이후엔 전면 파업까지 투쟁을 이어갔죠. 학교는 용역을 써서 노동조합에 맞섰어요. 이들 시켜서 농성장 강제철거하고 학교는 직장폐쇄해서 우리 쫓겨내고 난리가 났죠.” 

학교 측은 노동조합이 용역들과 몸싸움을 계속하도록 상황을 만들었다. 그리고선 용역을 시켜 조합원 전원을 폭행 혐의로 형사고발을 하고 학교는 직장폐쇄 이후 주거침입, 퇴거불응, 명예훼손, 업무방해죄로 조합원을 고발했다.

 

노동조합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해 7월에 학교에 비리도 많고 하니까 교육부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앞에서 1인 시위, 집회, 기자회견 심지어 노숙 투쟁을 하면서 감사를 요구했고, 실제 조사로 이어졌어요. 결과가 11월에 발표됐는데 이때 교육부에서 총장 해임, 이사장 및 이사 8명 전원 임원 취임 승인 취소를 받았어요. 그런데 학교 법인은 어디까지나 교육부 결정은 권고 사항이지 강제사항이 아니라면서 배 째라는 태도였어요. 그리고 2013년 들어서자마자 부당한 인사 발령을 냈어요. 조직에 꼭 보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옆에 행동대장이 있잖아요. 산학협력처장이 그런 사람이었는데 사람을 산학협력처, 행정총괄본부, 법인 사무국 이들 부서 책임자로 임명하더라고요. 이러니 각 부서에 있는 조합원들은 감시당하고 탄압을 받았죠. 가령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활동하면서 학교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려서 기사화 되면 내부 기밀을 유출했다면서 징계를 하겠다는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이번 인사 때 대학 규정을 다 무시하면서 낙하산 인사도 했어요. 하루아침에 계약직 직원이 정규직으로 채용되고, 심지어 팀장도 맡았거든요.”

이후 노동조합이 문제를 제기한 끝에 교육부는 총장을 제외하고 이사진 8명에 대한 임원 선임은 취소했다. 이후 끝까지 버티려고 했던 이모씨 총장은 교육부의 감사 처분에 대한 압박과 노동조합 탄압하는 데 들어간 용역비와 법률 대리인 선임 비용을 교비에서 사용한 것에 대해 고발되어 수사가 진행되자, 해임되었다. 이후 학교 법인은 교육부 관료 출신인 총장을 외부 공모로 선출했고, 이후 201410월까지 노사 양측은 큰 충돌 없이 지나갔다.

 

새로운 총장이 선임되면서 다시 탄압이 시작되다

“201411월인데 총장이 갑자기 학교로 출근을 안하더라고요. 확인해보니 법인 이사회랑 마찰이 생겨서 사직서를 던지고 나갔더라고요. 그리고 우리 대학 출신인 현재의 엄 총장이 취임했어요. 이분이 오자마자 12월에 조합원들을 징계하겠다며 인사위원회를 개최했어요. 또다시 노동조합 탄압이 시작된 거죠. 상황을 돌이켜보니까 이모씨가 학교 바깥에 있었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서 총장을 바꾸는데 압력을 넣고 엄 총장이 온 거였어요.”

결국, 201522일 조합원 26명중 14명의 조합원이 파면 3, 해임 11명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어느 정상적인 경영자가 평균 근속이 12년이 넘는 직원들을 한 번에 자르겠어요. 아무리 노동조합을 혐오한다고 해도 업무 공백을 생각하면 그렇게 판단할 수 없는 거죠. 간부나 대표자들만 해고하는 것도 아니고 비상식적인 경영진에 의해서 결국 노동자들과 학생들만 피해를 보는 거죠.”

 

막막했던 조합원들의 상황을 끝까지 이용한 학교 

저희가 아침에 출근하면 대개 업무전산망인 그룹 웨어에 로그인해요. 근데 해고된 날은 10시쯤 됐나, 전산망이 안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로그아웃을 했다 다시 접속을 시도하는데 아이디, 패스워드가 없다고 뜨더라고요. 그때 이건 뭔가 일이 있구나라고 느꼈죠. 그리고 징계처분 받고 짐 정리하는데 당일엔 하루 종일 정리할 게 많아서 정신이 없었는데 다음날 노동조합 사무실로 다 모이고 보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당황스럽고 막막하더라고요. 징계 재심 신청도 하고 지노위 중노위 이런데도 가고 그런 행정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해고됐을 땐 그게 막상 눈에 잘 안 들어오더라고요. 당장거처를 잃고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우리 조합원들은 어떡할지 상황 자체가 무겁고 힘들었어요.”

이후 징계 재심을 요청하는 해고자들에게 학교는 어떤 식으로든 지난 행동에 대한 반성의 모습을 보여 주면 법인 이사회에 선처를 구해보겠다는 제안을 하면서 해고자들의 약한 고리를 이용하여 기만했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간부들만 그런 것도 아니고 조합원 절반 이상이 해고자가 되니까 어떻게든 대량해고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오죽하면 교도소에 있는 이모씨를 위한 탄원서를 해고자 직원 이름으로 제출했겠습니까?그랬더니 그다음엔 교도소 직접 가서 설립자 장남에게 용서를 구하라는 거예요. 학교 측은 특별 면회 신청을 요구하면 자기들이 절차를 밟아주겠다고요. 근데 아무리 상황이 절박해도 도저히 그것까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지노위, 중노위 모두 노동조합 손 들어줘

지난해 5월 지노위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았어요. 9월 중노위에선 부당해고랑 부당노동행위 전체를 인정받았고요. 근데 학교는 여전히 인정을 안 하고 오히려 중노위를 상대로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 구제 심판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 소송을 걸었어요. 이것과 관련해선 조만간 서울행정법원에서 최종 변론이 있고 7월엔 선고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학교가 했던 걸 보면 선고가 어떻게 되던 학교는 결과를 이행하지 않고 시간을 끌 것 같아요. 지노위, 중노위 때도 그랬으니까요. 아니 노동조합 만들고 단협을 미루는 것만 봐도 우리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서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려고만 했죠.”

중노위 판정이 있고 노동조합은 이사장이 사는 아파트 앞에서 판정을 이해하라는 요구를 걸며 지난해 겨울부터 지금까지 농성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제가 해고되고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 중 하나가 법도 경영자의 인사권에 관여하지 못한다 거예요. 10여 년 넘게 열심히 일했던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집단으로 해고하면서 학교를 제대로 운영하려고 하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는 최소한의 소양도 갖추지 못한 경영자의 인사권을 정부도, 교육부도, 법도 강제할 수 없다는 점이 참 답답한 거죠. 꼭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도 생각하고요. 사립대학의 비리 문제는 수원여대만이 아니라 굉장히 비일비재하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이 싸움은 단순히 노사문제 혹은 수원여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 상황이 장기화 될수록 결국 피해는 학교와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거거든요.”

수원여대는 매년 대학이 받을 수 있는 국고보조금을 2014년 제외하고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 액수만 해마다 30~40억가량 된다. 결국,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한 학교는 학생들 학업을 지원하는 것은 커녕 학교 운영비 부담을 전적으로 등록금에 의존 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씀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더라고요. 혼자 저항하면 뭇매를 맞지만, 모두 저항하면 때리던 자가 몰매를 맞는다. 그러나 저항하지 않으면 맞는 게 습관이 된다. 이게 딱 우리 학교 상황이에요. 학교의 문제를 바꾸기 위해 저항했던 노동조합은 혼자 뭇매를 맞고 비조합원들은 맞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어요. 저희와 같이 저항해주었던 교수협의회 회장 교수님도 파면이 됐어요. 저희처럼 뭇매를 맞은 거죠.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건 저희가 소송 준비를 하거나 노동조합 사무실에 가려고 학교에 가면 누가 볼새라 슬쩍 저희한테 와서 학교가 진짜 절망적이다. 희망은 노동조합에 있다고 말해요. 학교 안에 있는 분들이 함께 힘을 내주셔야 우리가 현장으로 돌아 갈 수 있을 텐데, 밖에 있는 저희가 희망이라고 하니 답답한 상황인데 뭐 어쩌겠어요. 안에 있는 사람들이나 저희나 학교에 맞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이 필요한 거죠. 지금은 비록 힘들어도 조합원들이 계속 모이고 서로 보고 있는 거 그 자체가 힘인 것 같아요. 학교는 늘 우리가 와해되길 기다리니까 우리는 끝까지 버텨서 다시 일상을 되찾아야죠.”

 

[현장의 목소리] 알바 노동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다 /2016.6

알바 노동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다

- 불안정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알바노조 최기원 대변인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2013년에 출범한 알바노조는 당시만 해도 "야 거기 알바!"로 불리며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며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던 알바들이,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조직을 만들고 싸움을 하며 만들어온 노동조합이다. 알바노조가 꾸준히 싸워온 덕분에 "그게 가능해?"라고 했던 '최저임금 1만원' 요구는 지난 20대 총선에서 야당이 공약으로 내걸 정도로 전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지난 시기 알바노조가 현장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어떻게 싸워왔는지, 그리고 오는 6월 2017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둔 지금, 어떠한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지난 1일 알바노조 최기원 대변인을 만났다.


▲  알바노조 최기원 대변인


- 본인소개를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요. 저는 알바노조 대변인 최기원입니다. 대변인이 있는 노동조합이 드문데 언론이나 정치적인 역할을 중요시 하는 노동조합이다 보니 대변인이 있고 지금은 제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 저 또한 이전엔 알바는 그냥 용돈을 벌기 위해 혹은 사회 경험을 하는 과정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저희가 제일 처음 노동조합을 만들고 얘기했던 것이 사회적으로 더는 '알바생'이 아니라 '알바 노동자'로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알바 노동자가 용돈을 벌기 위해서든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해서든 어떤 이유로든 근로 계약을 맺고 일을 하지 않는가. 그럼 그에 따른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전과 달리 생존을 위해 알바를 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의 권리는 늘 제자리에 있다는 데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알바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선 조직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처음엔 알바연대를 만들고 이후 노동조합 창립까지 이어졌다."


- 아무래도 다른 노동조합에 비해 조합원들이 하는 일이나 업종이 굉장히 다양할 것 같다.

"저희 조합원들은 주로 알바를 채용하는 요식업이나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분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요즘엔 워낙 불안정한 일자리가 많아서 콜센터, 건설일용직, 학원 강사, 택배 노동자 등에도 조합원들이 일하고 있다. 


알바노조가 다른 노동조합과 또 하나 다른 특징이 있다면 일자리가 불안정하다 보니 조합원들의 업종이 바뀌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알바노조엔 지금 당장은 알바 노동자가 아니어도 알바 경험이 있거나 알바를 할 기회도 많이 있는 대학생들이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겪는 부당한 사례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

"여러 사례가 있는데 최근 알바노조가 주목하고 있는 사례는 맥도날드 '45초 햄버거'와 '17분 30초 배달제'다. 지금 맥도날드는 햄버거 주문을 받으면 45초 이내에 만들어서 내보내야 한다. 배달 주문의 경우 접수부터 배달까지 17분 30초 안에 마쳐야 한다. 이렇다 보니 노동자들이 촉박하게 일을 하니까 라이더(배달 노동자)들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데 전부 노동자 과실이라고 한다. 햄버거를 빨리 만들다 보면 화상을 입는 경우도 있는데 팔토시나 장갑 등을 지급하지 않는다.


알바 노동자들 사이에서 맥도날드는 그나마 시급을 잘 지켜서 주는 곳이라 "돈 벌려면 맥도날드 가라"는 얘기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거대 프랜차이즈 기업마저 노동자들이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도록 방치하는 상황이다 보니 알바 노동자들은 안전하게 마음 편히 일할 수가 없다.


- 알바노조 하면 딱 떠오르는 게 최저임금 1만원인 것 같다. 어떻게 1만원 요구가 만들어진 것인가?

"최저임금 1만원은 엉뚱하면서도 굉장히 도전적인 의제였다. 처음에 1만원을 제기했을 당시 시급이 4860원이었는데 적어도 2배는 인상이 필요할 것 같아서 1만원을 요구하게 되었다. 여러 연구결과나 자료들을 검토해 보니 OECD 가입 국가들 최저임금이 평균 1만원 가량 되었다. 


최근 미국의 경우 연방 최저임금이 8.5달러인데 주마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곳이 있다. 한 곳에선 조례를 통해 15달러로 인상했다. 15달러를 위한 투쟁(Fight for 15 dollar)이라는 최저임금인상 시민운동이 큰 역할을 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한국의 국가 경제 규모나 1인당 GDP 등 조건을 봤을 때 지금의 최저임금은 굉장히 낮고 1만원은 가능하다고 봤다.


- 지금은 워낙 사회화가 되었지만 처음 1만원을 제기했을 당시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영세 자영업자들 부담이 높아지는 부분을 어떡할 거냐, 알바들 다 잘린다, 이런 반론들이 있었다. 알바 노동자 당사자들도 사장님과 나라 경제를 걱정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사실 영세 자영자가 힘든 이유는 인건비가 아니라 높은 임대료, 프랜차이즈업체 본사에 납부하는 수수료 등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지금의 경제 환경을 바꿔야 하고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일각에선 고용률이 떨어질 거라고도 하는데 해외 여러 사례를 보더라도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해서 해고가 늘어나거나 고용률이 떨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다시 말해 최저임금 인상은 알바 노동자의 생계 문제를 넘어 사회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경제 체질을 바꾸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처음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한 독일에선(시급1만300원, 8.5유로) 이른바 저임금 나쁜 일자리가 20만800개 줄어든 반면 사회보험 적용도 받는 좋은 일자리는 71만3000개 늘어났다고 한다. 미국 또한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었지만 그로 인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보고는 없다.


- 그래서일까 지난 20대 총선에서 야당은 물론 여당도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한국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구조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알바노조에서 볼 때 어떤 지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나.

"지금 현재는 노동자측, 사용자측, 공익위원 각각 9명씩이 최저임금위원회를 구성해서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구조다. 이때 사용자측은 매번 동결을 주장하고 노동자 측은 1만원을 요구하면서 대화가 잘 안 되고 끝에 가선 매번 파행으로 치닫는다. 그럼 공익위원이 중재하면서 안을 던지고 대체로 그 선에서 최저임금이 관철된다. 결국, 이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되는 꼴인데 이분들은 고용노동부가 추천하는 인사들이다. 그렇다 보니 대체로 노동자들 권리에 대해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분들이 다수다. 전체 노동자 중 1/5이 최저임금을 적용받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인데 대표성도 없는 고용노동부 추천 인사들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이 비민주적이고 파행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알바노조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최저임금이 불안정 노동자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최저임금 자체가 자본과 노동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적 역학관계가 반영되는 만큼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심의를 하고 최종 결정은 대표성을 갖는 국회가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 알바노조는 조합원의 권리문제를 넘어서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에 대해서도 그렇고 그렇게 활동하는 이유가 있나? 그리고 조합원들 내에서 거부감이나 이견은 없는지 궁금하다.

"알바노조는 정치 활동 없이는 생존조차 어려운 구조라고 생각한다. 정부나 사업주에게 강제력이 없어서 노동법, 근로기준법에 기대서 활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와 자본이 알바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점을 캠페인이나 언론 등을 통해 알려야 한다. 그래서 알바 노동 문제와 관련해서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불안정 노동자들의 싸움에서 본질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조합원들도 우리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배제되어 있고 불안정한 사람들이 함께 힘을 합쳐 연대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결국은 우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그래서 이런 활동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다."


- 이제 6월이다.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이고, 알바노조에게는 한해 중 가장 바쁜 시기일 것 같은데 올해 어떤 투쟁들을 계획하고 있나?

"총선 때 야당이 최저임금 1만원을 이야기했는데, 총선 이후 다수당이 되었다. 그런데 스스로에게 자문해봤을 때 야당이 과연 20대 국회가 열리는 6월에 최저임금을 인상할까 생각해보니 아닐 것 같았다. 더민주가 2020년, 정의당은 2019년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한다고 했는데 야당 계획대로라면 올해 적어도 15%는 인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2017년 최저임금이 얼마로 결정되는지에 따라 향후 최저임금 1만원이 가능할지 판가름난다고 보고 국회와 정치권은 물론, 경총과 전경련을 압박하는 '만원 버스 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 6월 투쟁을 넘어 향후 알바노조의 목표,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

"장기적으로 보면 모든 불안정 노동자가 안전한 일자리에서 권리를 보장받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싸우는 노동조합이 되고 싶다. 근데 이건 굉장히 모순적이다. 불안정 일자리는 사라져야 한다. 그 과정까지 싸울 것이다. 중장기적인 목표는 맥도날드나 SPC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 전국적인 알바노조 지부를 만드는 것이다. 정책적인 과제로는 최저임금 1만원과 알바 노동자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 불안정한 노동과 삶을 완화시킬 수 있는 기본소득을 꿈꾸고 있다."


-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 모든 알바 노동자들과 일터 독자들께 한마디 부탁드린다.

"알바 노동자들은 당당한 노동자로서 근로기준법상 모든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 그 권리는 앉아서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투쟁할 수밖에 없으니 불안정 노동자를 위해 가장 앞서서 투쟁하는 알바노조와 함께 싸우자고 말씀드리고 싶다. 일터 독자분들께는 최저임금은 한국의 불안정/비정규직 노동자 900만 명의 삶을 바꾸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올해 최저임금 투쟁에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현장의 목소리] 시멘트만큼이나 굳건하게 투쟁을 이어간다! /2016.5

시멘트만큼이나 굳건하게 투쟁을 이어간다!
부당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동양시멘트 노동조합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2014년 5월 강원도 삼척에 있는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 <동일>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만들었다. 노동조합은 고용노동부에 동양시멘트 회사의 위장 도급 문제와 관련해서 진정서를 제출했다. 2015년 2월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은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 <동일> 노동자들은 입사 때부터 동양시멘트 노동자들로 인정하여 위장 도급 판정을 내렸다. 한편, 동양시멘트는 고용노동부 판정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동일>에 도급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법을 지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노동부의 판정으로 인해 101명의 노동자들이 하루 아침에 거리를 쫓겨나게 된 것이다. 이후 동양시멘트가 삼표시멘트로 매각되면서 노동조합은 삼표시멘트 본사가 있는 서울로 상경, 200일 넘도록 농성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4월 22일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자본에 맞서  싸우고 있는 조합원들을 만나 자세한 투쟁 상황을 들어보기로 했다.

 

- 각자 본인 소개 부탁드린다.

 

이인용 (사진 가운데) 저는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 노동조합 동양시멘트지부 부지부장 이인용입니다. 저희 노동조합은 아직 산별이 없는 민주노총 직가입 사업장입니다.

 

최창수 (사진 왼쪽) 저는 동양시멘트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다 해고된 최장수라고 합니다.

 

김세진 (사진 오른쪽) 저는 조합에서 막내인 김세진이라고 합니다. 원청이랑 비교했을 때 40%정도 임금 받고, 장시간 일해도 참고 살다가 불만들이 터져 나와서 노동조합 만들고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 시멘트 사업장이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께 동양시멘트는 어떤 회사인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하는지 간단한 설명 부탁드린다.

 

이인용 : 동양시멘트는 업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 현장엔 20여개 협력업체가 있는데 이중 대표적인 협력업체가 동일, 두성이다. 지금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은 모두 동일 소속 노동자들인데 110여명이 일했다.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은 작업장을 45광구, 46광구, 49광구, 55광구 이렇게 부르는데 조합원들은 주로 46광구에서 일했다.

 

이인용 : 저희는 시멘트 회사에서 가장 기초적인 업무인 광산에서 석회석 원석을 채취하는 일을 했다. 착암 (발파 전 돌에 구멍 뚫는 작업)부터 발파한 석회석을 중장비인 덤프, 굴삭기로 싣고 돌 파쇄기에 부으면 작업이 끝난다.

 

최창수 : 저희 일은 쉽게 말해서 탄광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탄광과 다른 건 거기는 밀폐된 갱에서 작업을 하는 거고, 우리는 갱이 실외에 있는 것 그 차이가 있다. 차감해서 발파하고 운반하는 것도 같다.

 

- 노동조합은 어떤 이유로 만들게 되었나?

 

이인용 : 회사가 곧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매각한다는 얘기가 돌면서 고용보장 여부가 문제가 되었다. 이전부터 관리자에게 차별적으로 대우 받고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해도 참고 일했는데 더는 그럴 수 없었다.

 

- 노동조합이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에 위장도급 관련 해서 진정을 넣었고,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어떤 과정들이 있었는지 판정 이후에 현장에 변화가 있었는지 자세하게 듣고 싶다.

 

이인용 : 노동부가 기한을 넘기면서 발표를 미루는 바람에 2015년 2월 5일 노동조합이 항의 면담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13일 위장 도급 판정이 내려졌다. 그런데 회사가 노동부 판정을 이행하는 게 아니라 도급 계약을 해지하고 해고하겠다고 했다. 사무실에 찾아가서 항의도 했는데 결국 설 명절 전날 문자로 2월 28일부로 해고하겠다는 통지를 받았다.

 

최창수 : 그 당시엔 정말 멘붕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억울하더라. 내가 뭘 잘못해서 해고가 됐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죄가 있다면 딱 하나 회사를 싫어하고 민주노총 노동조합을 만든 거 밖에 없는데 서럽기도 하고 악이 받쳤다.

 

 

 

- 막내 조합원분의 경우 아직 나이도 젊고 다른 일자리를 찾으면 그만이지 생각할 수도 있었을텐데 어떻게 싸움을 결심하게 되었나?

 

김세진 : 5년만 더 젊었으면 때려치지 않았을까. 농담이고, 다른데 갈 생각은 안했다. 싸우면 될 것 같았다. 법에서도 우리를 원청노동자로 인정하니까 유리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조합은 회사에 고용노동부 판정 이행과 관련해서 줄곧 교섭을 요구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결국 노동조합은 동일 회사 사무실이 있는 49광구 정문 앞에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하고, 각종 법적 투쟁도 함께 전개했다

 

3월9일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소장 접수
3월10일 동양시멘트 및 하청업체 대표이사 파견법 위반, 직업안정법 위반, 근로기준법 위반 관련 고발장 접수
3월18일 부당해고 구제신청 접수

 

- 천막농성 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이인용 : 회사에서 조합원 2 0여명이 회유당해서 현장으로 출근한 사건이 있었다. 공장이 멈춰야 회사가 압박을 받을텐데, 조합원들이 힘들어서 투쟁을 포기할 수는 있지만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회사는 회유한 조합원들이 출근할 수 있게 철저하게 보호했고, 우리는 그걸 저지하느라 몸싸움이 있었다. 또 한번은 회사가 삼표로 매각되는 과정에서 실사단이 삼척으로 내려온 적이 있는데 이때 노동조합이 교섭을 요구하는 공문을 들고 차 앞을 막아섰는데 업무방해라고 현행범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여러 차례 계속된 물리적 충돌로 인해 올해 1월 13일 조합원 7명이 형사 사건에 연루되어 법정구속되었다. (현재는 4월15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한편, 노동조합을 탈퇴한 사람들은 같은 집행유예를 받거나 벌금형만 선고 받았다.

 

- 투쟁 거점을 삼척에서 서울로 옮기게 된 건 동양시멘트 매각과 관련이 있는건가?

 

이인용 : 작년 9월 삼표가 잔금을 다 치르면서 회사가 완전히 넘어갔다. 삼표 본사 앞 농성은 매각설이 본격화 되었던 작년 8월 19일부터 시작했다. 당시 조합원 7명이 비닐 하나 덮으면서 자리를 잡았다.

 

- 현안에 대해 삼표시멘트의 입장은 뭔가?

 

이인용 : 처음엔 동양시멘트에서 있었던 일이니 동양하고 해결보라는 입장이었는데 농성이 계속되자 삼표 사장이 서로 대화로 풀면서 상생하자고 해서 10여 차례 교섭이 있었다. 우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노동부에서 위장 도급이라고 하니 그것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회사는 정규직은 어렵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그러나 위장 도급 관련해서 중노위 판정을 앞두고 자신에게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삼표시멘트는 자회사를 만들테니 노동조합을 탈퇴하고,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취하하면 받아주겠다는 안을 던졌다. 회사는 불법적인 안을 중노위 중재안으로도 던지는 뻔뻔함을 보였다. 노동조합은 당연히 그 안을 받지 않았다. 이후 11월 17일 중노위는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내렸고, 삼표시멘트는 지금까지도 교섭에 나오지 않고 있다.

어느덧 서울 농성 투쟁만 250일을 넘기면서 생계가 어려워서 투쟁을 포기하거나, 삼표시멘트 회유에 넘어 간 사람들 제외하고 현재 23명의 조합원들이 남아있다. 이분들 중에서도 몇몇은 생계투쟁으로, 7명은 수감생활을 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인원이 면회 투쟁도 해야 했고, 서울/삼척 두 곳에서 투쟁을 전개했다.

 

- 마지막으로 같이 싸우는 동료들에게, 연대해주시는 동지들께 한마디 부탁드린다.

 

 

이인용 : 삼척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살다보니 처음 서울로 상경 투쟁을 왔을 때, ‘연대’라는 글자가 우리 것만 하기 바쁜데 왜 해야 하나 마음이 앞섰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연대 투쟁하면서 재정적으로나 심정적으로 서로 상황을 알고 힘든 걸 같이 겪으면서 조합원이 떠나간 자리 이상을 채워주고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 또 우리 노동조합이 삼척에서는 물론 동양시멘트 내에서 처음 만들어진 노동조합이다. 그래서 우리가 꺾이면 이후에도 동양시멘트 노동자들, 삼척에 사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기 더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투쟁할거다.

 

최창수 : 조금 힘들더라도 지금까지 싸워왔던 것처럼 손잡고 끝가지 힘내서 웃는 모습으로 현장으로 돌아가서 일하고 싶다.

 

김세진 : 연대하는 동지들에게 도움 받았다, 고맙다 말씀드리면 같이 싸우는 거니까 고맙다는 말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래도 고맙다. 그리고 갚는다는 말이 웃기지만 연대하면서 열심히 함께 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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