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저희는 시민들의 정신건강증진을 위해 싸웁니다 /2017.1

저희는 시민들의 정신건강증진을 위해 싸웁니다

보건의료노조 서울시 정신보건지부 김성우 지부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작년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은 한국 사회를 큰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당시 언론과 경찰은 사회적 여성 혐오의 현상이라기보다는 한 미치광이의 살인사건으로 규정하고자 했고, 이것은 한국사회의 정신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이 더해지면서 효과를 발휘했다. 그런데 여기 혐오를 조장하고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는 정신장애인에게 희망이 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정신보건전문 요원들이다. 이들은 정신건강증진센터를 통해 정신질환 장애인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자살, 우울증, 알코올 중독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 사회적으로 너무나도 소중한 일을 하지만 그에 비해 이들이 처한 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었고, 이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싸움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성우라고 하고요, 현재 은평구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상임 팀장을 맡은 정신보건전문 요원이에요. 노동조합에서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서울시 정신보건지부장을 맡고 있어요.”

 

- 정신보건전문 요원이라는 이름이 상당히 낯선데,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된 건가.

저는 사회복지를 전공했는데 간호사, 임상심리사, 사회복지사들이 정신 보건 전문 요원 수련기관에서 수련을 받아서 정신보건 2급자격증을 받아요. 그뒤에 5년간 실무 경험을 해야 보건복지부 장관이 임명하는 1급 국가 자격증이 나옵니다. 제가 일하는 정신건강증진센터 역시 몇몇 분들 제외하곤 이 전문요원들이 일하고 있어요.”

 

정신건강증진센터는 1995년 제정한 정신보건법에 의해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2개의 산하 기관(서울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서울시 자살예방센터)25개 자치구에서 운영하는 정신건강증진센터가 있는데 이전에는 주로 정신질환자 관리가 주목적이었다. 그러나 현재에 정신보건 문제 자체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아동, 청소년기 정신건강상담, 성인기 우울증이나 알코올중독치료, 자살상담을 비롯해 의학적 치료를 연계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 그럼 센터 운영은 어떻게 되고 있나.

직영이 아니면 민간위탁 방식으로 운영하는데 서울시의 경우 80% 이상이 민간위탁으로 운영했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일방적으로 직영으로 전환하겠다는 통보를 받은 상황이죠. 운영은 자치구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직영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강제 휴업과 해고대상이 되면서 이를 막는 투쟁을 해야 했어요.”

 

- 정부와 지자체가 민간에 외주화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이 사업을 담당하는 것이 긍정적인 변화가 아닌가.

이 사업을 현장에서 해야 할 공무원들은 전문적으로 자격증을 따고 일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민간위탁으로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데, 서울시와 자치구가 직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죠. 그 이유에 대해서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인건비 절감과 고용률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 같아요. 박근혜 정부의 주요 공약인 고용률 70%를 맞추기 위해 직영으로 전환하면서 기존 인력을 시간제 일자리로 채용하겠다는 거예요. 게다가 저희가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을 하니까 노조에 대한 혐오가 강해진 거죠. 그래서 시간제 일자리로 일하는 직원들의 단체 행동권을 제약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무력화하려고 한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센터 직영화로 인해 시간제 일자리가 도입되면 정신보건전문 요원들은 연봉 500만 원 이상의 손해를 입게 된다. 게다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고 매년 이뤄지는 재계약에 따른 고용불안도 감내해야 한다. 따라서 정신보건전문 요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임금보전과 성과를 위해 연장근무를 해야 하고, 그러면 시간제 일자리의 원래 취지 중 하나인 일/가정 양립은 요원해진다.

 

시간제 일자리도 문제인데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찾아다니는 우리의 성과를 평가하겠다고 해요. 대체 어떤 식으로 평가하는지 물어보면 기준도 없다고 하는데 말이죠. 게다가 평가자는 현장과 거리가 먼 담당 자치구 보건소에서 한다는데 이해가 되지 않아요. 지금도 만일 상담을 하던 분이 자살하면 담당자가 뭘 잘 못 했으니까 죽었겠지.’라고 수군거려요. 게다가 보건소는 언제 마지막으로 상담했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왜 죽었는지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한다면서 전문요원에게 책임을 덮어씌우려고 해요.”

 

- 그럼 현재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가.

지금 직영을 추진하는 센터의 경우, 시간제 일자리로 변경할 때 행정적 절차가 필요하다면서 1~2개월 휴업을 하겠다고 해요. 공무원들은 그저 고용률을 높여서 인센티브를 받으려고 추진하는 것 같고요. 우리야 길거리로 나가든 말든 본인들에게 피해가 안 가니까 너무 일을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실제 한 센터 주무관은 한 조합원에게 이제 2개월 동안 휴업할 거니까 실업급여 받으면서 자원봉사하라고 말했다는데 항의하니까 그제야 농담이었다고 하는거예요.”

 

-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운다는 것이 웬만한 결심 없이 어려웠을 것 같은데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나.

정신건강증진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지 20년이 됐는데 아직도 시범사업처럼 운영해요. 센터마다 지자체가 예산을 얼마나 확보했는지에 따라 운영해야 하고 인건비/사업비/운영비가 분리되어 있지 않아서, 이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해요. 결국 노동자들이 문제를 다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서 재작년에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어요. 우리 센터가 2012년 서울시가 자살예방사업을 하면서 2명의 인력을 보조해줬어요. 이분들 포함 5개 센터에서 맨 땅에 헤딩하는 느낌으로 사업을 진행한 것이죠. 이른바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자살예방사업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모델을 만들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201412월에 갑자기 센터로 공문이 와서 지금 추진하는 사업을 모두 보건소로 이월하라고 한 거예요. 사업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서울시에서 지원했던 2명의 인건비도 가져가면서, 내내 고생했던 이분들이 20151월에 퇴사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상 해고 된 거예요.”

 

김성우 지부장은 이 일을 겪으면서 다음부터는 미리 움직이지 않으면 이런 일이 또 벌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노원구가 2016년 직영으로 전환되면서 시간제 일자리가 도입되었다. 사람들이 떠나가면서 함께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20162월에 노동조합을 만들게 되었다.

 

- 조합을 만들자마자 파업에 돌입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추진하게 되었나.

노동조합을 만들고 조정 절차를 통해 진짜 사장을 찾으려고 했어요. 이 과정에서 서울시가 실질적인 사용자라는 결과를 확인했고, 6개월간 서울시와 임금 및 단체교섭을 협의했어요. 그리고 9월 서울시와 최종 의견을 조율하여 고용 보장 약속 등 합의안을 냈는데 104일 합의가 거부되었어요. 서울시와 센터장, 자치구장이 서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핑퐁게임을 하다 조정이 결렬되었어요. 결국, 노동조합은 쟁의권만 남았고 파업을 하게 되었어요.”

 

핑퐁게임이 왜 벌어 졌는가.

센터장은 권한이 없어서 자치구가 사인해야 할 수 있다고 하고, 자치구는 센터가 사인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이때 서울시가 가장 큰 책임이 있는데, 시로서는 이 둘을 모두 강제할 수 없다고 했죠. 특히 서울시가 구청장을 강제한다는 것에 대해 매우 부담스러워 했어요.”

 

현재 정신건강증진센터는 병원 기관의 정신과 의사 1인이 센터장을 맡고 이 센터장이 개인사업자를 내어, 전문요원을 채용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법적 사용자는 센터다. 그러나 센터를 운영하는 예산은 관에서 지원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사용자는 각 지자체장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자 센터와 지자체는 진짜 사장은 내가 아니라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 파업이 50일을 넘었는데, 조합원들 마음이 무거웠을 것 같다.

처음엔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는 것도 어색했어요. 그런데 파업을 하면서 조합원들이 센터에서 겪었던 문제가 개인 잘못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알고 분노하더라고요.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모인 지금 아니면 못 싸운다는 마음으로 파업에 임했어요. 그런데 파업이 50일을 넘기면서, 대상자들이 50일간 방치 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많이 느꼈어요. 제가 그걸 보면서 농담으로 우리 조합원들은 착하다 못해 바보라고 그랬어요. 당장 본인들이 거기로 쫓겨나게 생겼는데 대상자들 걱정을 먼저 하는 거예요.”

 

2016년은 104일부터 시작된 서울시 정신보건지부의 파업 투쟁은 50일만에, 서울시와 고용 안정 협력 등을 합의하고 마무리되었다.

 

- 그런데 복귀하자마자 곧바로 다시 촛불을 들어야 했다. 이유가 있었나.

당장 1월부터 민간 위탁 기간 만료되는, 6개 구 센터에서 노동자들에게 해고 통지서를 보냈어요. 물론 위탁 기간이 종료될 때마다 해고통지서를 늘 받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다른 거죠. 이후 고용에 대한 약속도 없고 센터가 내년에 어떻게 운영되는지 계획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와 했던 약속이 지자체를 전혀 강제하지 못한 것이에요.”

 

- 앞으로의 계획이 있는가.

투쟁을 이어가려고 해요. /시의원 가운데 저희 문제에 협력하겠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조례도 만들고 협의체에서 센터 운영과 관련해서 합의를 끌어내려고 해요. 노동조합 혐오에도 맞서 싸워야 할 것 같아요. 아마도 저희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반발하다보니 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버티려는 것 같아요.”

 

김성우 지부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 현재 한국의 공공사업에서 정신건강예방을 위해 하는 사업은 이게 유일해요. 그런데 이 사업도 제대로 못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국가가 정신보건사업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우리부터 제대로 시스템을 만들어놔야 다른 서비스로 연계되고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일을 하는 저희를 이렇게 거리로 내몰고, 근로 조건 낮추고, 시간제 일자리로 채우면 이 사업 자체가 흔들려요. 그렇게 되면 내담자들이 결국 피해를 입어요. 이분들이 이 문제를 말해야 하는데 말하기가 어렵고 세상으로 나오기 힘든 분들이기 때문에 종사자들이 저희부터 나서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었고요. 앞으로 저희의 싸움에 많은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려요.”

 

[현장의 목소리] 역사상 최장기 철도파업, 정부가 왜 손 놓고 지켜보는가? /2016.12

역사상 최장기 철도파업, 정부가 왜 손 놓고 지켜보는가?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 이철의 교육국장 인터뷰

“신자유주의 정권의 신의 한수 ‘필수유지업무제도’ 철도노조에게 큰 과제 남겨”

“노동자들의 파업은 언제나 정당한데, ”합법/착한 파업“으로 순치하는 건 옳지 않아”

 


재현 선전위원장


 

철도노조 역사상 가장 긴 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파업인데 열차 운행률은 81.4%(12.1기준)이다. 시민들은 “불편해도 괜찮아”가 아니라 “철도 파업해요?”라고 되묻는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조합원들의 피로는 높아만 가는데, 언제 마무리 될지 기약이 없다. 1977년 부기관사로 입사해 노동조합 활동에 함께했던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이철의 교육국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장기간 파업이 이어지고 있는데 조합원들 상황은 어떠한가?

조합원들 집회에서 보면 표정이 안 좋다. 얘기해보면, 월급 안 나오니까 힘들다고 한다. 대출을 많이 받은 조합원들은 특히 더 그렇다. 필수유지업무제도로 인해 일하는 조합원들이 기본급 10%씩 모아서 파업에 나와 있는 조합원들에게 주기로는 했지만, 부족하다. 조합원 중에 밤에 대리운전 뛰는 조합원들도 있다.

 

- 힘들고 지치는 와중에 최장기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무슨 힘으로 버티고 있는 건가.

지금의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을 노동자들이 주도해왔는데, 그중에 우리가 일부라는 자부심이 있다. 나도 조합원들에게 지금의 200만 촛불을 만든 건이 불씨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도 철도 조합원들은 매일 저녁에 파이낸스센터 앞 집회에 참여한다. 아마 우리 조합원들이 70~80%는 될 거다. 

 

이철의 교육국장은 철도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행동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으면 힘이 빠졌을 텐데 우리 행동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 우리가 이런 정국을 만들어온 자긍심이 긴 파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이번 파업을 돌입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성과연봉제다. 철도가 어떻게 밀어붙였나.

사실 성과연봉제는 MB정부 시절부터 시작한 거다. 당시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이라 해서 모든 공기업에서 복지제도 공격을 받았다. 퇴직금 누진제를 폐지하거나, 계산제 자체를 바꾸거나, 단체협약이 민간보다 지나치게 노동조합에 유리하면 뜯어고치도록 강요했다. 철도는 구조조정 공격도 있었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은 MB가 세운 계획을 그대로 관철하고 있다. 2차 공공기관 정상화라고 부르는 이유다. 박근혜 정권은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와 퇴출제를 밀어붙였다.

 

한편, 철도는 우선 성과연봉제 도입을 시도했다. 강성 노동조합의 반발을 고려해 우선 성과연봉제만 도입해도 내부에 균열이 생길 것이고 이점을 이용해 퇴출제를 도입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철도 경영진 의지가 정권과 같지 않았다는 점도 있었다. 그러나 2015년 6월 상황이 바뀌게 된다.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다녀와서 공공기관장들에게 경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철도를 포함한 대부분 공공기관이 5월 29일 이사회를 열고, 노동조합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바꾸면서 성과연봉제-퇴출제를 밀어붙였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철도 구조조정, 노동개악 이런 게 꼭 대통령의 의지라고만 볼 수 없다는 거다. 이건 신자유주의자들이 한국의 노동정책을 좌지우지하면서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가 장기간 계획을 세우고 밀어붙이는 거다. 강제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빨리 도입하면 경영 평가에서 이익을 주고, 늦게 하면 불이익 주거나, 임금인상 승인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통제한다. 이러한 흐름은 DJ정권부터 쭉 이어졌기 때문에 박근혜가 퇴진한다고 중단 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 만일 성과연봉제가 현장에 들어온다면 어떠한 변화들이 있을 거라고 보나.

회사가 철도 취업규칙을 바꾼 걸 보면 노동조합 눈치를 보면서 많은 물타기가 있었다. 성과로 실적을 평가 할 때 개인평가가 아닌 사업소별 평가를 하게 했다. 연봉제 삭감 폭도 정부 지침보다 작은 3% 내로 결정했다. 


그렇다 보니 철도는 형식적인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것이고, 불이익받는 사람은 없다고 주장했다. 연봉 삭감도 기본급을 손대는 방식이 아니고, 임금 외 부분에서 조정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성과제가 들어온 관리자들만 보더라도 경력이 꽤있는 조합원이 연 300만 원 손해 보는 정도다.

 

그래서 가볍게 넘길 수 있지만, 성과연봉제가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있는 구로승무사업소만 해도 관리자들이 우리 사업소가 꼴찌 하면 안된다는 부담을 갖는다. 게다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리 잘해도 한번 사고가 나면 크게 나면, 그간 모든 노력이 무산되지 않나? 내 실수로 300여 명의 사업소 식구들이 연봉 300만 원 깎인다고 생각해봐라 개인평가보다 더 부담을 주는 방식이다. 또, 지금 이 사회가 성과연봉제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에 대해 재판을 청구하고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우리가 이길 거라 확신하지 못하지 않는가.

 

상식적으로 법에선 임금이나 중요한 노동조건 관련 사항은 노동조합 과반수 이상 동의를 얻어야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법원이 상식적으로 판단하리라고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 도입이 어렵지 아무리 무늬만 연봉제라 해도 일단 들어오면 개악되는 건 시간문제고, 법적으로 가면 해결하기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노동자를 개별화시키는 성과연봉제는 아예 들어오면 안된다, 이거 들어오면 노동조합이 깨진다는 생각으로 지금껏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 철도공사는 파업 시작부터 지금껏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매도하고 있는데 이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조합원들이 위축거나 그러지는 않는가. 

나는 기본적으로 합법 파업이냐 불법 파업이냐 따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파업은 늘 정당한 거 아닌가? 노동자들이 우리들의 파업은 언제나 정당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합법, 착한 파업이라는 말로 노동조합 투쟁을 자꾸만 순치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지금 엄밀히 말하면 부분 파업을 하고 있다. 파업이 왜 길어지나. 우리가 잘 버티는 것도 있지만 부분 파업이라 위력이 없는 거다. 전면파업이었다면 1주일 안에 결판난다. 정권이 무리하게 탄압해서 노조를 깨던가, 우리 요구를 들어주거나. 역사상 가장 긴 파업은 결코 자랑이 아니다. 문제가 심각하다.

 

- 어떠한 문제가 확인되고 있는 건가

회사나 정부에서 손 놓고 가만히 쳐다보는 파업은 문제 있는 파업이다. 현대차를 봐라. 사회적으로 우리보다 더 욕을 먹어도 파업을 하니까 문제가 해결되지 않나. 얼마 전 화물연대 동지들이 파업했는데 거긴 노동조합도 아니다. 그 자체로 불법이고, 도로를 봉쇄해서 불법 파업을 했다. 그래도 결국 끝내지 않나. 파업의 본질이 뭔가? 생산을 멈추고, 일을 멈추고 업무를 마비시키는 것 아닌가?

 

사회적으로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파업이 지지받지 못하다 보니 불편해도 괜찮아 같은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시민들이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것 물론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보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한국은 시민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 자체가 서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한테 불편이 없으면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는 거고, 자기한테 불편을 주면 욕한다. 파업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건 좋은데 본질을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 같다.


이번 파업이 철도노조에 상당히 많은 숙제를 안겨준 것인가.

필수유지업무제도가 노무현 정권의 신의 한 수였다고 본다. 지금 현재 480여 명 대체 인력으로 수도권 전철 85%, KTX 70%, 무궁화, 새마을이 60% 정도 운행률을 맞추고 있다. 파업 때 가장 힘을 발휘할 수 있는 KTX, 수도권 전철 운행에 차질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회사가 파업에 대비해서 기관사 출신 관리자도 많이 세웠고, 군인, 퇴직 기관사 합치면 파업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기관사 5,000여 명이 필수업무유지제도를 무시하고 전면 파업에 돌입하면 대체인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우리에겐 2가지 문제가 남는 것 같다. 위력이 없는 부분 파업같은 파업을 할 것이냐? 아니면 전면 파업을 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하겠는가? 이점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상황이다.


 - 이번 파업은 해결의 실마리가 전혀 안 보이는 상황인가.

철도 내에서도 이 문제해결에 대한 견해가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사장이 꼴통이라 그렇다고 하는데, 나는 다르게 본다. 여전히 정부 관료 기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청와대,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3곳이 합의를 해야 하는데 그것도 안 되는 상황이고. 철도 사장은 자기들만 성과연봉제 철회하면 내년에 옷 벗어야 하는데 어떻게 합의하겠는가.


- 이번 파업에서 궤도와 22년 만의 공동파업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가도 있던데 어떻게 평가하나.

글쎄, 철도를 뺀 나머지 노동조합은 2004년에 공동파업을 했었는데 이제 와서 철도를 끼워 22년만에 파업이라는 것은 억지로 의미를 붙였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올해 처음으로 산별답게 공공운수노조 파업을 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노조가 방침을 내고 공동으로 무기한 파업을 처음 결의해 본 것 아닌가.


 - 오랜 노동조합 활동, 해고자 생활 등 이른바 철도 민주화 1세대 활동가고, 정년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이번 파업은 어떤 의미로, 어떻게 기억될 것 같나.

노무현 정권 때도 2번인가 파업을 했지만 이명박근혜 정권 들어서 하는 파업과는 다르다. 우리가 쟁취하는 투쟁이라기보다 밀려서 지켜야 하는 투쟁이었다. 게다가 최근 계속된 파업으로 조합원들도 노동조합도 지쳐있는 것 같다. 우리도 쉬어야 할 때가 있는 거다. 그래서 이번 파업 잘 싸우고, 마무리하면 재정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철도가 대표적인 대기업 노조 중 하나라 자기중심주의가 강하다. 연대도 잘 못해왔다. 그런데 이번 파업은 다른 때와는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파업의 직접적 요구를 떠나 박근혜 퇴진, 전경련 규탄 투쟁도 벌이고, 교육도 많이 받으면서 의식을 높이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것 같다. 앞으로 노동조합 활동에 있어 큰 힘이 될것 같다.

 

[현장의 목소리] 사드 배치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닫는 길이다 /2016.11

사드 배치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닫는 길이다

-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오미정 사무처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의 아바타 역할을 했던 것도 충격을 금하기 어렵지만,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사드 배치 결정 역시 굉장한 문제였다. 정권 존립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사드 배치문제 역시 언제든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 그래서 사드에 대해 총체적인 고민이 필요한 상황인데,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을 활발하게 펼쳐오고 있는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하 평통사) 오미정 사무처장님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평화와통일은여는사람들은 어떤 곳인가

말 그대로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활동하는 노동자, 학생, 교수, 종교인, 여성 등 다양한 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저희는 지난 3년 전부터 사드 배치 저지활동을 비롯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과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를 위한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왔다.”

 

평통사는 2008년부터 한반도가 분단 체제를 넘어 평화협정체결을 실현함으로써 군사적 경쟁을 해소하고 평화체제와 통일을 앞당겨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는 곳이기도 하다. , 사드를 막기 위해서라도 평화협정체결이 대안으로 제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권은 대체 왜 사드를 밀어붙이는 것인가

미국의 의도인 것 같다. 미국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임기 내 무조건 사드를 배치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계기가 마땅치 않다, 올해 북한이 핵 실험을 하고 인공위성 로켓 발사를 발판삼아 오랜 숙원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드 문제가 최근 들어 공식적으로 불거진 건 2014년 한미연합사령관 스카파로티가 미국에 사드를 건의하면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사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반도에 MD(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고자 했고, 사드는 이를 실현하는 무기체계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던 대통령의 진심은 무엇이라고 보나

박근혜가 말하는 통일은 흡수통일이라고 보면 된다. 가능한 군사적으로 북한을 제압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자본주의 체제로 흡수하겠다는 뜻이다. 만일 전쟁이 벌어질 경우는 물론, 자본주의 체제로의 흡수통일은 엄청난 통일비용 때문에 자본에게는 대박일지언정 남한 민중들과 북한 주민들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다.”

 

오바마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데, 한국에서는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고 있다. 어떻게 봐야 하나

오바마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는 이란, 북한 등 이른바 불량 국가 지도자들을 만나 대화 할 계획이 있다고 했는데, 백악관에 가자마자 말이 확 달라졌다. 2010탄도 미사일 방어 검토 보고서를 발표하면서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MD를 구축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전 부시 정권의 군사 정책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오미정 사무처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초반 북한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면서 대북 정책을 대화 기조로 갈 것인지, 한미일 군사 동맹을 강화할 것인지 두 방향에서 후자를 선택하고, 시아태평양 지역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핵 문제를 명분삼아 MD구축과 사드를 구축하는 과정이라고 판단했다.

 

지금 미 대선 주자인 힐러리, 트럼프 역시 마찬가지 입장인 것 같다.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북핵문제를 핑계삼아 한미동맹 강화와 함께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 내 자신들의 군사력을 주둔시키고 늘리고 싶은데 유지할 능력이 안 되니까 이 부담을 한국이나 일본이 짊어지라는 것이다.”

 

사드가 배치되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멀어질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전 세계 그 어느 국가도 도전 할 수 없는 압도적인 군사력과 패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사드 한국배치로 동북아 MD를 구축까지 더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점하고 패권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뜻을 의미한다. 이제 사드가 들어오고 중국 코앞에 레이더가 배치되면 제1공격 대상이 중국과 러시아가 된다. 이러면 한미일 동맹 / 북중러 군사협력체 사이에 진영 대결 체제가 강화되며 국가군비 경쟁이 격화되고, 각 나라의 모든 재원이 이쪽에 집중될 것이다. 민중들에 대한 기본권, 복지, 교육, 의료에 들어가야 할 나라의 재원이 대결체제로쏟아 붓게 되고, 극단적으로 보면 핵전쟁이 일어날 위험에서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평통사는 만일 한국에 사드가 배치되면 국가 안보가 위태로워지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더욱 멀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저희 단체 목적이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은 여는 일인데 이제 아주 먼 일로 혹은 영영 멀어지게 된다고 본다. 평화와 통일이 뒤로 가거나 닫히는 문제이기때문에 저희로서는 단체의 명운을 걸고 이걸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활동하는 이유다.”

 

한편, 모든 통일 운동 단체가 이번 사드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는 못한 상황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선언하고 핵을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과 목소리를 내는 평통사와 달리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한 단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핵 문제를 특히 북한의 핵폐기를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폐기(주한미군 철수 등)과 어떻게 연동시켜 실현할 것인가? 평화협정 내용 안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등 각 단체의 견해 차이에 따라 사드를 보는 시각들도 미세한 차이들이 존재한다.

 

성주, 김천 지역 주민들의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지금 미국은 아주 오랫동안 노리던 바 이기에 어떻게든 사드를 박근혜 대통령 임기 때 못 박고 싶어하고, 그래서 시기도 당기겠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성주 군민들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김천으로 부지를 이동하게 되었다고 본다. 성주, 김천 모두 아주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우리는 지역에서 역할을 다 할테니 운동단체들은 전국적인 활동을 펼쳐달라고 부탁했다.”

 

야당 역시 사드와 관련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현재 야당이 사드와 관련해서 입장을 밝히지 않는 점은 아주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개인적으로는 반대라면서, 더 나아가 공식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사드 국민 여론조사를 해보면서 찬성이 65%정도 된다. 여론이 이러니까 내년 대선을 생각했을 때 사드 반대 당론 채택에 부담을 갖는 것이다. 우상호 원내대표가 사드 입장을 밝히면 반미로 찍혀서 대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거다라고 말하는 상황이다. 야당이 계속해서 안보 사안에 대해 자기 비전과 대안이 없으면 매번 종북으로 찍혀서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공동 행동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나

올해 초 북핵 실험 이후 한미 당국이사드 배치를 하겠다고 공표한 시점부터 여러 단체가 기자회견 대응 중심으로 활동을 해왔는데, 장기적으로 공동행동이 필요할 것 같아 6월 준비 단계를 거쳐 지난 8월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을 발족했다. 준비단계에서는 50여개 통일, 민중 운동 단체들이 중심이었고 8월 발족하면서 시민, 종교계를 포함해 100여개 단체들이 함께하게 되었다.”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은 지금까지 한미간 주요 회의 이후 대응 기자회견을 중심으로 성주투쟁 50, 100일을 맞아 전국적으로 촛불을함께 들기 위해 조직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드가 가진 중요한 의미에 비해 운동으로 대중들이 모이는 동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사드배치로 불거진 제2의 냉전을 막아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한반도의 핵전쟁을 막아내기 위해선 북학이 핵을 포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라고 본다. 미국이 오랫동안 핵 공격 의사를 숨기지 않아오면서, 결국 북한이 핵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북의 안보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지금의 분단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북한을 이유로 미국이 사드 배치를 고집하는 흐름이 바뀔 것이라고 본다.”

 

또한, 오미정 사무처장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10.4 공동선언에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약속이 있었다며 만일 내년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된다면 당장 MB정부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더라6자 회담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는 있다고 본다며 이를 위해서도 무엇보다 시민운동의 힘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금 야당이 미국에게 당당하게 목소리 내고 당론을 바꾸게 하는 데는 시민운동의 힘이 좌우한다고 본다. 우리들의 삶의 질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더 큰 쓴 소리와 비판으로 정권의 정책에 영향력을 미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터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흔히 운동에 이해 당사자들의 활동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또 그분들이 앞장설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다고 한다. 반도체 직업병 당사자, 가족들이 반올림 운동을 함께 만들어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점에서 평화 운동은 모든 사람들이 이해 당사자이고 함께 해야 하는 중요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성주, 김천, 원불교 교인들이 앞장서고 있다. 앞으로 보다 많은 분들이 행동에 나서주면 좋겠다.”

[현장의 목소리] 대찬인생 살아볼랍니다! /2016.10

대찬인생 살아볼랍니다!
-노동조합 인정 요구하며 파업중인 금속노조 경기지부 대창지회 노동조합 김용세 사무장, 장종우 노안부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전면파업 37일 (9/23기준)을 맞는 금속노조 경기지부 대창지회는 노동조합 설립 5개월 차 신생 노동조합이다. 금형 황봉을 수입하여 가공하는 일을 하는 대창은 설립된 지 40년이 넘는 역사와 한해 매출 5,000억을 넘는 건실한 기업이다. 그래서일까 대규모 중소·영세 사업장이 밀집한 반월/시화 공단에 있는 대창은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가고 싶은 회사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모르는 대창의 실상
김용세 사무장 : 택시를 타고 대창가주세요 그러면 좋은 회사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지역에서 포장이 잘되어있는 회사에요. 일단 회사가 크고 급여도 주변보다 더 받으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모르죠. 우리가 주말 내내 일해서 그나마 이 정도 받는건데 다들 기본 8시간 일해서 받는 기본급이라고 생각해요. 현실은 연간 노동시간이 3,000시간이 넘거든요. 그것도 현장에서 적게 일한다는 분들이 그랬어요.

 

임금의 경우 최저임금은 조금씩이라도 올랐건만 대창은 늘 제자리였다고 한다. 이러니 1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 1년 다녀도 최저임금이고 심지어 경기가 어렵다고 2년 정도 임금을 동결한 적도 있었다. 정년 2년 전부터는 임금피크제라서 해마다 20% 임금이 깎였다.

 

김용세 사무장 : 연 순이익만 400~500억이 되는 회사에요. 그런데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한테 투자는 미비하죠. 18년 다니면서 회사가 20억

벌 때가 분위기가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 불편하니까 바꿔달라고 하면 개선해주고, 힘들어하면 회식도 하고 그랬는데 수익이 200억 정도 되니까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더라고요.

 

위험한 현장이지만 다치면 늘 작업자 탓이었다. 오랜 기간 현장에서 쌓였던 불만은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고민으로 이어졌고 지금의 지회장을 포함해 몇몇 분들이 금속노조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김용세 사무장 : 현장에 안전사고가 너무 잦아요. 특히 절단 사고가 많고, 근골은 기본으로 깔고 가요. 내가 언제 다칠지 모르는 환경인 거죠. 만일에 다치기라도 하면 회사 관리자들은 무조건 다친 사람책임이라고 뒤집어 씌우는 거예요. 만일 산재신청이라도 한다고 하면 회사는 거짓으로 서류를 제출하고 그랬어요.

 

장종우 노안부장 : 저는 금형에 호일을 당겨서 봉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기계도 조작하고 했는데요. 일하다 무릎이 아파서 산재신청을 했는데 결국 승인도 못 받고 장해만 남았어요.

 

 

산재 승인을 받기 위한 과정에서 회사는 재해자를 도와주기는커녕 방해했다.

장종우 노안부장 : 그때 당시엔 산재를 잘 몰라서 제대로 대응도 못 했어요. 그러다 나중에 회사가 제출했던 서류를 봤는데 악의적으로 꾸며서 제출했더라고요. 저희 설비는 수동인데 자동이라고 했고, 지난 20년간 이 설비에서 다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냈어요. 하지만 저랑 같이 일했던 4명 중에 한 사 람은 무릎 수술을 했고, 한 사람은 무릎연골이 없어요. 저는 장애가 남았고요. 그런데 누구도 반발할 수 없는 분위기에요. 그게 오래전 일도 아니고 2015년에 일이에요.

 

장종우 노안부장이 산재를 신청한 것만으로 동료들 사이에서 용기가 부럽다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회사 분위기가 어떠한지 짐작 가능한 대목이다.

 

 

휴먼노조 들먹이며 노동조합 인정 안

김용세 사무장 : 노사협의회 성원이던 지금의 지회장님과 몇몇 분이 1년 넘게 노동조합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오픈하기 직전에 회사에 발각됐어요. 논의 끝에 그날 바로 노동조합 가입을 받기로 하고, 하루 만에 220명을 받았어요. 이후에 나머지 사람들도 다 받았고요.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절박감으로 이렇게 오게 된 것 같아요.

 

회사는 긴급하게 전체 직원들을 강당으로 불렀다. 대표는 그 자리에서 노동자들을 회유하려 했다.

 

김용세 사무장 : 직원들을 다 부르더니 다 해주려고 했다 그러는 거예요. 임금 올리고 그런 거 다 준비했다고요. 그런데 그때 한 분이 일어나서 그랬죠. “우린 더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돈 때문에 그런 걸로 보이냐며 나가자”고 했고 전 직원이 일어나서 강당을 나왔다.

 

 

휴먼노조를 핑계로 노조와 대화거부

김용세 사무장 : 회사에 대화를 요구했는데 기존에 있는 노동조합과 지난 1월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아서 2노조인 금속노조 대창지회의 교섭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면서 노동조합과 대화를 계속 거부했어요. 그러나 이는 회사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거짓이었다. 회사가 주장하는 1노조는 휴면노조 즉 페이퍼 노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휴먼노조 위원장은 지난 4월 20일 나일권 대창지회장을 만나 “회사에 페이퍼 노조가 있는 것 알지 않았냐. 회사에서 이름만 올리고 서명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실제 휴먼노조는 2003년 설립했지만, 조합원이 4명에 불과하고 단 한 차례도 회사와 임금협약을 체결하지 않은 것이 밝혀졌다.

 

김용세 사무장 : 4월 19일 노조를 만들고 지금까지 교섭을 회피하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어요. 1노조가 휴면노조라서 교섭 회피하지 말라는 지노위, 중노위 결정문 나 몰라라 하고, 휴먼노조를 해체하라고 결정하니까 그제야 마지못해 교섭하자고 하더라고요.

 

결국 전면파업에 나서다

회사는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대창지회가 요구하는 수준이 과해서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창지회로썬 노동조합활동 인정 외엔 신규 노조에서 맺는 수준의 요구안이기 때문에 결국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회사의 뜻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결국 노동조합은 전면파업에 돌입하게 되었다.

김용세 사무장 : 결국 우리가 전면적으로 파업해서 대화를 해야지 그러지 않고서는 답이 안 나오겠다는 판단이 있었어요. 처음 하는 파업이라 걱정도 많이 됐는데 지금 와서 보면 선배 노동자들이 대창 분위기가 최강이라고 말씀하더라고요. 한 달 넘는 시간인데 조직력도 흐트러지지 않고요.

 

장종우 노안부장 : 한 달 임금 안 받고 마이너스 대출받고 생활해보니까 악에 받치더라고요.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해지고요. 어쩌면 회사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노동조합 조직력이 만들어지게 회사가 도와주는 것 같아요. 물론 파업이 길어지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학교에서 배우듯 노동조합에서 파업하면서 조직력을 배우는 시간 같아요.

 

 

회사의 무리한 대체생산이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장종우 노안부장 : 회사에서 저희가 부분 파업할 때마다 대체 생산을 했거든요. 그때마다 다른 설비를 돌려야 하니까 작동법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저희가 안 알려줬어요. 그러자 이압출 기계를 깔지 1년여 됐는데 설치한 사람을 불러다 작동법을 배우더라고요. 이후에 사측에 붙어먹은 김상표라는 사람과 고인이 된 이규재 부장이 같이 일하다 이압출 기계 오작동으로 이규재 부장이 가슴이 눌려서 압착으로 사망했어요.

 

신규설비이고 조작법이 익숙하지 않은 사무실 직원들이 대체생산에 투입되었다가 끔찍한 일을 겪었고, 그 이후 모든 대체 생산은 중단되었다. 사무실 직원들을 이제 물건 출하 중심으로 남은 재고들만 보내는 업무를 하고 있다. 한편, 고인의 가족들은 회사와 이후 협의하고 장례를 마쳤다.

 

 

대창만의 힘으로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김용세 사무장 : 금속노조 경기지부가 아니었으면 이 자리까지 못 왔죠. 전면파업하고 여러 사업장에서 연대 와주시는데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요. 저희끼리 농성장 지키면 그것처럼 처량한 게 없는데요. 올 때 또 그냥 빈손으로 안 오세요.

 

장종우 노안부장 : 금속노조가 없었으면 이런 조직력이 만들어졌을까 생각해요. 아마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그리고 처음에 여기저기서 와주시는 게 품앗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품앗이는 아닌 것 같아요. 의리도 아닌 것 같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에요.

 

 

안전한 일터, 변화를 인정하는 일터가 되었으면

김용세 사무장 : 회사도 저희도 모두 대창이 세계 일류 기업이 되는 게 꿈이에요. 저희 열심히 일해 왔고 앞으로도 노력할 거예요. 그런데 진짜 1등이 되려면 노동자랑 파트너쉽을 가져야 해요. 우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1등이 될 수 없죠. 그리고 현장에 없던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는데 대체 왜 만들어졌는지 한번 돌아보고 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종우 노안부장 : 노동조합 만들고 여러 변화가 있는데요, 팔자에도 없는 부장을 하고, 사람들 앞에도 서서 교육도 해보고, 산안법 고발도 하는데요. 저한테 가장 큰 변화는 개개인으로 흩어져 있을 땐 그렇게 이기적이었던 사람들이 노동조합이라는 틀 하나로 뭉치는 게 신기했어요. 그런 말이 있죠 나무가 모이면 숲이 된다고요. 이분들과 하루 빨리 파업 끝내고 돌아가면 안전한 일터 만드는 거에 관심이 많아요. 우리 조합원들 다들 골병들어있는데 예방도 하고 아픈 분들은 치료도 받고요 그렇게 해서 살맛나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현장의 목소리] 비리로 점철된 사학 재단에 맞서 싸우다 /2016.7

비리로 점철된 사학 재단에 맞서 싸우다

민주노총 전국대학노조 수원여자대학교지부 노동조합 권순봉 지부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이번 일터는 사학 재단 설립자 가족인 이사장을 비롯해 그 주변 인물들의 비리와 부당노동행위에 문제를 제기하다 하루아침에 거리로 쫓겨난 수원여자대학교 노동조합을 만났다. 지금껏 500일 넘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권순봉 지부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문제의 설립자 장남 이모씨 

사학재단들을 보면 설립자나 이사장의 비리도 문제가 있지만, 설립자 자녀들과 친척들이 학교에 들어와서 문제를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저희가 딱 그런 상황이에요. 설립자 장남이자 당시 기획조정 실장이었던 이모씨가 모든 문제의 핵심인데, 이분이 직원들한테 반말은 기본이고 상습적으로 욕설하고 비인간적으로 대했죠. 게다가 저희는 2004년부터 연봉제였는데 이게 찍기 연봉제라고, 연봉 책정에 기준이 없었어요. 이모씨 마음에 드는 직원이 있으면 딱 찍어서 연봉 올려주고, 마음에 안 들면 깎는거죠. 다음 20103월엔 학교가 업무 개선팀을 만들었는데 5명의 직원을 해고할 생각으로 이 부서로 발령을 냈어요. 그러니 직원들은 부당해도 혹시 잘리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에 문제를 제기할 수가 없었죠.”

그러다 20124월 수원지검에서 이모씨를 긴급체 포하게 된다. 학교 건물을 증축하는 과정에서 건축 업자한테 25천만 원의 뒷돈을 받은 정황이 밝혀진 것이다. 결국, 업무상 횡령으로 벌금 3천만 원을 받았다. 이때 권순봉 지부장을 비롯해 몇몇 직원들이 그동안 부당해도 차마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했고 그렇게 32명이 모였다.

 

학교는 끝내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조합 만들고 단체협약을 맺자고 했는데 절대 안 맺으려고 하고 시간을 끌더라고요. 그리고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려는 목적으로 저를 경기도 화성에 있는 2캠퍼스로 발령을 내더라고요. 단협도 결렬돼서 저희는 천막 농성에 돌입했고, 이후엔 전면 파업까지 투쟁을 이어갔죠. 학교는 용역을 써서 노동조합에 맞섰어요. 이들 시켜서 농성장 강제철거하고 학교는 직장폐쇄해서 우리 쫓겨내고 난리가 났죠.” 

학교 측은 노동조합이 용역들과 몸싸움을 계속하도록 상황을 만들었다. 그리고선 용역을 시켜 조합원 전원을 폭행 혐의로 형사고발을 하고 학교는 직장폐쇄 이후 주거침입, 퇴거불응, 명예훼손, 업무방해죄로 조합원을 고발했다.

 

노동조합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해 7월에 학교에 비리도 많고 하니까 교육부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앞에서 1인 시위, 집회, 기자회견 심지어 노숙 투쟁을 하면서 감사를 요구했고, 실제 조사로 이어졌어요. 결과가 11월에 발표됐는데 이때 교육부에서 총장 해임, 이사장 및 이사 8명 전원 임원 취임 승인 취소를 받았어요. 그런데 학교 법인은 어디까지나 교육부 결정은 권고 사항이지 강제사항이 아니라면서 배 째라는 태도였어요. 그리고 2013년 들어서자마자 부당한 인사 발령을 냈어요. 조직에 꼭 보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옆에 행동대장이 있잖아요. 산학협력처장이 그런 사람이었는데 사람을 산학협력처, 행정총괄본부, 법인 사무국 이들 부서 책임자로 임명하더라고요. 이러니 각 부서에 있는 조합원들은 감시당하고 탄압을 받았죠. 가령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활동하면서 학교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려서 기사화 되면 내부 기밀을 유출했다면서 징계를 하겠다는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이번 인사 때 대학 규정을 다 무시하면서 낙하산 인사도 했어요. 하루아침에 계약직 직원이 정규직으로 채용되고, 심지어 팀장도 맡았거든요.”

이후 노동조합이 문제를 제기한 끝에 교육부는 총장을 제외하고 이사진 8명에 대한 임원 선임은 취소했다. 이후 끝까지 버티려고 했던 이모씨 총장은 교육부의 감사 처분에 대한 압박과 노동조합 탄압하는 데 들어간 용역비와 법률 대리인 선임 비용을 교비에서 사용한 것에 대해 고발되어 수사가 진행되자, 해임되었다. 이후 학교 법인은 교육부 관료 출신인 총장을 외부 공모로 선출했고, 이후 201410월까지 노사 양측은 큰 충돌 없이 지나갔다.

 

새로운 총장이 선임되면서 다시 탄압이 시작되다

“201411월인데 총장이 갑자기 학교로 출근을 안하더라고요. 확인해보니 법인 이사회랑 마찰이 생겨서 사직서를 던지고 나갔더라고요. 그리고 우리 대학 출신인 현재의 엄 총장이 취임했어요. 이분이 오자마자 12월에 조합원들을 징계하겠다며 인사위원회를 개최했어요. 또다시 노동조합 탄압이 시작된 거죠. 상황을 돌이켜보니까 이모씨가 학교 바깥에 있었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서 총장을 바꾸는데 압력을 넣고 엄 총장이 온 거였어요.”

결국, 201522일 조합원 26명중 14명의 조합원이 파면 3, 해임 11명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어느 정상적인 경영자가 평균 근속이 12년이 넘는 직원들을 한 번에 자르겠어요. 아무리 노동조합을 혐오한다고 해도 업무 공백을 생각하면 그렇게 판단할 수 없는 거죠. 간부나 대표자들만 해고하는 것도 아니고 비상식적인 경영진에 의해서 결국 노동자들과 학생들만 피해를 보는 거죠.”

 

막막했던 조합원들의 상황을 끝까지 이용한 학교 

저희가 아침에 출근하면 대개 업무전산망인 그룹 웨어에 로그인해요. 근데 해고된 날은 10시쯤 됐나, 전산망이 안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로그아웃을 했다 다시 접속을 시도하는데 아이디, 패스워드가 없다고 뜨더라고요. 그때 이건 뭔가 일이 있구나라고 느꼈죠. 그리고 징계처분 받고 짐 정리하는데 당일엔 하루 종일 정리할 게 많아서 정신이 없었는데 다음날 노동조합 사무실로 다 모이고 보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당황스럽고 막막하더라고요. 징계 재심 신청도 하고 지노위 중노위 이런데도 가고 그런 행정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해고됐을 땐 그게 막상 눈에 잘 안 들어오더라고요. 당장거처를 잃고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우리 조합원들은 어떡할지 상황 자체가 무겁고 힘들었어요.”

이후 징계 재심을 요청하는 해고자들에게 학교는 어떤 식으로든 지난 행동에 대한 반성의 모습을 보여 주면 법인 이사회에 선처를 구해보겠다는 제안을 하면서 해고자들의 약한 고리를 이용하여 기만했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간부들만 그런 것도 아니고 조합원 절반 이상이 해고자가 되니까 어떻게든 대량해고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오죽하면 교도소에 있는 이모씨를 위한 탄원서를 해고자 직원 이름으로 제출했겠습니까?그랬더니 그다음엔 교도소 직접 가서 설립자 장남에게 용서를 구하라는 거예요. 학교 측은 특별 면회 신청을 요구하면 자기들이 절차를 밟아주겠다고요. 근데 아무리 상황이 절박해도 도저히 그것까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지노위, 중노위 모두 노동조합 손 들어줘

지난해 5월 지노위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았어요. 9월 중노위에선 부당해고랑 부당노동행위 전체를 인정받았고요. 근데 학교는 여전히 인정을 안 하고 오히려 중노위를 상대로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 구제 심판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 소송을 걸었어요. 이것과 관련해선 조만간 서울행정법원에서 최종 변론이 있고 7월엔 선고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학교가 했던 걸 보면 선고가 어떻게 되던 학교는 결과를 이행하지 않고 시간을 끌 것 같아요. 지노위, 중노위 때도 그랬으니까요. 아니 노동조합 만들고 단협을 미루는 것만 봐도 우리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서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려고만 했죠.”

중노위 판정이 있고 노동조합은 이사장이 사는 아파트 앞에서 판정을 이해하라는 요구를 걸며 지난해 겨울부터 지금까지 농성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제가 해고되고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 중 하나가 법도 경영자의 인사권에 관여하지 못한다 거예요. 10여 년 넘게 열심히 일했던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집단으로 해고하면서 학교를 제대로 운영하려고 하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는 최소한의 소양도 갖추지 못한 경영자의 인사권을 정부도, 교육부도, 법도 강제할 수 없다는 점이 참 답답한 거죠. 꼭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도 생각하고요. 사립대학의 비리 문제는 수원여대만이 아니라 굉장히 비일비재하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이 싸움은 단순히 노사문제 혹은 수원여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 상황이 장기화 될수록 결국 피해는 학교와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거거든요.”

수원여대는 매년 대학이 받을 수 있는 국고보조금을 2014년 제외하고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 액수만 해마다 30~40억가량 된다. 결국,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한 학교는 학생들 학업을 지원하는 것은 커녕 학교 운영비 부담을 전적으로 등록금에 의존 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씀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더라고요. 혼자 저항하면 뭇매를 맞지만, 모두 저항하면 때리던 자가 몰매를 맞는다. 그러나 저항하지 않으면 맞는 게 습관이 된다. 이게 딱 우리 학교 상황이에요. 학교의 문제를 바꾸기 위해 저항했던 노동조합은 혼자 뭇매를 맞고 비조합원들은 맞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어요. 저희와 같이 저항해주었던 교수협의회 회장 교수님도 파면이 됐어요. 저희처럼 뭇매를 맞은 거죠.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건 저희가 소송 준비를 하거나 노동조합 사무실에 가려고 학교에 가면 누가 볼새라 슬쩍 저희한테 와서 학교가 진짜 절망적이다. 희망은 노동조합에 있다고 말해요. 학교 안에 있는 분들이 함께 힘을 내주셔야 우리가 현장으로 돌아 갈 수 있을 텐데, 밖에 있는 저희가 희망이라고 하니 답답한 상황인데 뭐 어쩌겠어요. 안에 있는 사람들이나 저희나 학교에 맞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이 필요한 거죠. 지금은 비록 힘들어도 조합원들이 계속 모이고 서로 보고 있는 거 그 자체가 힘인 것 같아요. 학교는 늘 우리가 와해되길 기다리니까 우리는 끝까지 버텨서 다시 일상을 되찾아야죠.”

 

[현장의 목소리] 알바 노동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다 /2016.6

알바 노동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다

- 불안정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알바노조 최기원 대변인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2013년에 출범한 알바노조는 당시만 해도 "야 거기 알바!"로 불리며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며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던 알바들이,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조직을 만들고 싸움을 하며 만들어온 노동조합이다. 알바노조가 꾸준히 싸워온 덕분에 "그게 가능해?"라고 했던 '최저임금 1만원' 요구는 지난 20대 총선에서 야당이 공약으로 내걸 정도로 전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지난 시기 알바노조가 현장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어떻게 싸워왔는지, 그리고 오는 6월 2017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둔 지금, 어떠한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지난 1일 알바노조 최기원 대변인을 만났다.


▲  알바노조 최기원 대변인


- 본인소개를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요. 저는 알바노조 대변인 최기원입니다. 대변인이 있는 노동조합이 드문데 언론이나 정치적인 역할을 중요시 하는 노동조합이다 보니 대변인이 있고 지금은 제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 저 또한 이전엔 알바는 그냥 용돈을 벌기 위해 혹은 사회 경험을 하는 과정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저희가 제일 처음 노동조합을 만들고 얘기했던 것이 사회적으로 더는 '알바생'이 아니라 '알바 노동자'로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알바 노동자가 용돈을 벌기 위해서든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해서든 어떤 이유로든 근로 계약을 맺고 일을 하지 않는가. 그럼 그에 따른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전과 달리 생존을 위해 알바를 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의 권리는 늘 제자리에 있다는 데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알바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선 조직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처음엔 알바연대를 만들고 이후 노동조합 창립까지 이어졌다."


- 아무래도 다른 노동조합에 비해 조합원들이 하는 일이나 업종이 굉장히 다양할 것 같다.

"저희 조합원들은 주로 알바를 채용하는 요식업이나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분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요즘엔 워낙 불안정한 일자리가 많아서 콜센터, 건설일용직, 학원 강사, 택배 노동자 등에도 조합원들이 일하고 있다. 


알바노조가 다른 노동조합과 또 하나 다른 특징이 있다면 일자리가 불안정하다 보니 조합원들의 업종이 바뀌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알바노조엔 지금 당장은 알바 노동자가 아니어도 알바 경험이 있거나 알바를 할 기회도 많이 있는 대학생들이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겪는 부당한 사례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

"여러 사례가 있는데 최근 알바노조가 주목하고 있는 사례는 맥도날드 '45초 햄버거'와 '17분 30초 배달제'다. 지금 맥도날드는 햄버거 주문을 받으면 45초 이내에 만들어서 내보내야 한다. 배달 주문의 경우 접수부터 배달까지 17분 30초 안에 마쳐야 한다. 이렇다 보니 노동자들이 촉박하게 일을 하니까 라이더(배달 노동자)들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데 전부 노동자 과실이라고 한다. 햄버거를 빨리 만들다 보면 화상을 입는 경우도 있는데 팔토시나 장갑 등을 지급하지 않는다.


알바 노동자들 사이에서 맥도날드는 그나마 시급을 잘 지켜서 주는 곳이라 "돈 벌려면 맥도날드 가라"는 얘기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거대 프랜차이즈 기업마저 노동자들이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도록 방치하는 상황이다 보니 알바 노동자들은 안전하게 마음 편히 일할 수가 없다.


- 알바노조 하면 딱 떠오르는 게 최저임금 1만원인 것 같다. 어떻게 1만원 요구가 만들어진 것인가?

"최저임금 1만원은 엉뚱하면서도 굉장히 도전적인 의제였다. 처음에 1만원을 제기했을 당시 시급이 4860원이었는데 적어도 2배는 인상이 필요할 것 같아서 1만원을 요구하게 되었다. 여러 연구결과나 자료들을 검토해 보니 OECD 가입 국가들 최저임금이 평균 1만원 가량 되었다. 


최근 미국의 경우 연방 최저임금이 8.5달러인데 주마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곳이 있다. 한 곳에선 조례를 통해 15달러로 인상했다. 15달러를 위한 투쟁(Fight for 15 dollar)이라는 최저임금인상 시민운동이 큰 역할을 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한국의 국가 경제 규모나 1인당 GDP 등 조건을 봤을 때 지금의 최저임금은 굉장히 낮고 1만원은 가능하다고 봤다.


- 지금은 워낙 사회화가 되었지만 처음 1만원을 제기했을 당시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영세 자영업자들 부담이 높아지는 부분을 어떡할 거냐, 알바들 다 잘린다, 이런 반론들이 있었다. 알바 노동자 당사자들도 사장님과 나라 경제를 걱정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사실 영세 자영자가 힘든 이유는 인건비가 아니라 높은 임대료, 프랜차이즈업체 본사에 납부하는 수수료 등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지금의 경제 환경을 바꿔야 하고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일각에선 고용률이 떨어질 거라고도 하는데 해외 여러 사례를 보더라도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해서 해고가 늘어나거나 고용률이 떨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다시 말해 최저임금 인상은 알바 노동자의 생계 문제를 넘어 사회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경제 체질을 바꾸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처음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한 독일에선(시급1만300원, 8.5유로) 이른바 저임금 나쁜 일자리가 20만800개 줄어든 반면 사회보험 적용도 받는 좋은 일자리는 71만3000개 늘어났다고 한다. 미국 또한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었지만 그로 인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보고는 없다.


- 그래서일까 지난 20대 총선에서 야당은 물론 여당도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한국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구조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알바노조에서 볼 때 어떤 지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나.

"지금 현재는 노동자측, 사용자측, 공익위원 각각 9명씩이 최저임금위원회를 구성해서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구조다. 이때 사용자측은 매번 동결을 주장하고 노동자 측은 1만원을 요구하면서 대화가 잘 안 되고 끝에 가선 매번 파행으로 치닫는다. 그럼 공익위원이 중재하면서 안을 던지고 대체로 그 선에서 최저임금이 관철된다. 결국, 이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되는 꼴인데 이분들은 고용노동부가 추천하는 인사들이다. 그렇다 보니 대체로 노동자들 권리에 대해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분들이 다수다. 전체 노동자 중 1/5이 최저임금을 적용받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인데 대표성도 없는 고용노동부 추천 인사들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이 비민주적이고 파행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알바노조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최저임금이 불안정 노동자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최저임금 자체가 자본과 노동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적 역학관계가 반영되는 만큼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심의를 하고 최종 결정은 대표성을 갖는 국회가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 알바노조는 조합원의 권리문제를 넘어서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에 대해서도 그렇고 그렇게 활동하는 이유가 있나? 그리고 조합원들 내에서 거부감이나 이견은 없는지 궁금하다.

"알바노조는 정치 활동 없이는 생존조차 어려운 구조라고 생각한다. 정부나 사업주에게 강제력이 없어서 노동법, 근로기준법에 기대서 활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와 자본이 알바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점을 캠페인이나 언론 등을 통해 알려야 한다. 그래서 알바 노동 문제와 관련해서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불안정 노동자들의 싸움에서 본질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조합원들도 우리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배제되어 있고 불안정한 사람들이 함께 힘을 합쳐 연대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결국은 우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그래서 이런 활동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다."


- 이제 6월이다.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이고, 알바노조에게는 한해 중 가장 바쁜 시기일 것 같은데 올해 어떤 투쟁들을 계획하고 있나?

"총선 때 야당이 최저임금 1만원을 이야기했는데, 총선 이후 다수당이 되었다. 그런데 스스로에게 자문해봤을 때 야당이 과연 20대 국회가 열리는 6월에 최저임금을 인상할까 생각해보니 아닐 것 같았다. 더민주가 2020년, 정의당은 2019년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한다고 했는데 야당 계획대로라면 올해 적어도 15%는 인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2017년 최저임금이 얼마로 결정되는지에 따라 향후 최저임금 1만원이 가능할지 판가름난다고 보고 국회와 정치권은 물론, 경총과 전경련을 압박하는 '만원 버스 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 6월 투쟁을 넘어 향후 알바노조의 목표,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

"장기적으로 보면 모든 불안정 노동자가 안전한 일자리에서 권리를 보장받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싸우는 노동조합이 되고 싶다. 근데 이건 굉장히 모순적이다. 불안정 일자리는 사라져야 한다. 그 과정까지 싸울 것이다. 중장기적인 목표는 맥도날드나 SPC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 전국적인 알바노조 지부를 만드는 것이다. 정책적인 과제로는 최저임금 1만원과 알바 노동자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 불안정한 노동과 삶을 완화시킬 수 있는 기본소득을 꿈꾸고 있다."


-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 모든 알바 노동자들과 일터 독자들께 한마디 부탁드린다.

"알바 노동자들은 당당한 노동자로서 근로기준법상 모든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 그 권리는 앉아서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투쟁할 수밖에 없으니 불안정 노동자를 위해 가장 앞서서 투쟁하는 알바노조와 함께 싸우자고 말씀드리고 싶다. 일터 독자분들께는 최저임금은 한국의 불안정/비정규직 노동자 900만 명의 삶을 바꾸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올해 최저임금 투쟁에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현장의 목소리] 시멘트만큼이나 굳건하게 투쟁을 이어간다! /2016.5

시멘트만큼이나 굳건하게 투쟁을 이어간다!
부당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동양시멘트 노동조합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2014년 5월 강원도 삼척에 있는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 <동일>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만들었다. 노동조합은 고용노동부에 동양시멘트 회사의 위장 도급 문제와 관련해서 진정서를 제출했다. 2015년 2월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은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 <동일> 노동자들은 입사 때부터 동양시멘트 노동자들로 인정하여 위장 도급 판정을 내렸다. 한편, 동양시멘트는 고용노동부 판정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동일>에 도급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법을 지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노동부의 판정으로 인해 101명의 노동자들이 하루 아침에 거리를 쫓겨나게 된 것이다. 이후 동양시멘트가 삼표시멘트로 매각되면서 노동조합은 삼표시멘트 본사가 있는 서울로 상경, 200일 넘도록 농성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4월 22일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자본에 맞서  싸우고 있는 조합원들을 만나 자세한 투쟁 상황을 들어보기로 했다.

 

- 각자 본인 소개 부탁드린다.

 

이인용 (사진 가운데) 저는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 노동조합 동양시멘트지부 부지부장 이인용입니다. 저희 노동조합은 아직 산별이 없는 민주노총 직가입 사업장입니다.

 

최창수 (사진 왼쪽) 저는 동양시멘트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다 해고된 최장수라고 합니다.

 

김세진 (사진 오른쪽) 저는 조합에서 막내인 김세진이라고 합니다. 원청이랑 비교했을 때 40%정도 임금 받고, 장시간 일해도 참고 살다가 불만들이 터져 나와서 노동조합 만들고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 시멘트 사업장이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께 동양시멘트는 어떤 회사인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하는지 간단한 설명 부탁드린다.

 

이인용 : 동양시멘트는 업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 현장엔 20여개 협력업체가 있는데 이중 대표적인 협력업체가 동일, 두성이다. 지금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은 모두 동일 소속 노동자들인데 110여명이 일했다.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은 작업장을 45광구, 46광구, 49광구, 55광구 이렇게 부르는데 조합원들은 주로 46광구에서 일했다.

 

이인용 : 저희는 시멘트 회사에서 가장 기초적인 업무인 광산에서 석회석 원석을 채취하는 일을 했다. 착암 (발파 전 돌에 구멍 뚫는 작업)부터 발파한 석회석을 중장비인 덤프, 굴삭기로 싣고 돌 파쇄기에 부으면 작업이 끝난다.

 

최창수 : 저희 일은 쉽게 말해서 탄광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탄광과 다른 건 거기는 밀폐된 갱에서 작업을 하는 거고, 우리는 갱이 실외에 있는 것 그 차이가 있다. 차감해서 발파하고 운반하는 것도 같다.

 

- 노동조합은 어떤 이유로 만들게 되었나?

 

이인용 : 회사가 곧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매각한다는 얘기가 돌면서 고용보장 여부가 문제가 되었다. 이전부터 관리자에게 차별적으로 대우 받고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해도 참고 일했는데 더는 그럴 수 없었다.

 

- 노동조합이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에 위장도급 관련 해서 진정을 넣었고,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어떤 과정들이 있었는지 판정 이후에 현장에 변화가 있었는지 자세하게 듣고 싶다.

 

이인용 : 노동부가 기한을 넘기면서 발표를 미루는 바람에 2015년 2월 5일 노동조합이 항의 면담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13일 위장 도급 판정이 내려졌다. 그런데 회사가 노동부 판정을 이행하는 게 아니라 도급 계약을 해지하고 해고하겠다고 했다. 사무실에 찾아가서 항의도 했는데 결국 설 명절 전날 문자로 2월 28일부로 해고하겠다는 통지를 받았다.

 

최창수 : 그 당시엔 정말 멘붕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억울하더라. 내가 뭘 잘못해서 해고가 됐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죄가 있다면 딱 하나 회사를 싫어하고 민주노총 노동조합을 만든 거 밖에 없는데 서럽기도 하고 악이 받쳤다.

 

 

 

- 막내 조합원분의 경우 아직 나이도 젊고 다른 일자리를 찾으면 그만이지 생각할 수도 있었을텐데 어떻게 싸움을 결심하게 되었나?

 

김세진 : 5년만 더 젊었으면 때려치지 않았을까. 농담이고, 다른데 갈 생각은 안했다. 싸우면 될 것 같았다. 법에서도 우리를 원청노동자로 인정하니까 유리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조합은 회사에 고용노동부 판정 이행과 관련해서 줄곧 교섭을 요구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결국 노동조합은 동일 회사 사무실이 있는 49광구 정문 앞에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하고, 각종 법적 투쟁도 함께 전개했다

 

3월9일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소장 접수
3월10일 동양시멘트 및 하청업체 대표이사 파견법 위반, 직업안정법 위반, 근로기준법 위반 관련 고발장 접수
3월18일 부당해고 구제신청 접수

 

- 천막농성 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이인용 : 회사에서 조합원 2 0여명이 회유당해서 현장으로 출근한 사건이 있었다. 공장이 멈춰야 회사가 압박을 받을텐데, 조합원들이 힘들어서 투쟁을 포기할 수는 있지만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회사는 회유한 조합원들이 출근할 수 있게 철저하게 보호했고, 우리는 그걸 저지하느라 몸싸움이 있었다. 또 한번은 회사가 삼표로 매각되는 과정에서 실사단이 삼척으로 내려온 적이 있는데 이때 노동조합이 교섭을 요구하는 공문을 들고 차 앞을 막아섰는데 업무방해라고 현행범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여러 차례 계속된 물리적 충돌로 인해 올해 1월 13일 조합원 7명이 형사 사건에 연루되어 법정구속되었다. (현재는 4월15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한편, 노동조합을 탈퇴한 사람들은 같은 집행유예를 받거나 벌금형만 선고 받았다.

 

- 투쟁 거점을 삼척에서 서울로 옮기게 된 건 동양시멘트 매각과 관련이 있는건가?

 

이인용 : 작년 9월 삼표가 잔금을 다 치르면서 회사가 완전히 넘어갔다. 삼표 본사 앞 농성은 매각설이 본격화 되었던 작년 8월 19일부터 시작했다. 당시 조합원 7명이 비닐 하나 덮으면서 자리를 잡았다.

 

- 현안에 대해 삼표시멘트의 입장은 뭔가?

 

이인용 : 처음엔 동양시멘트에서 있었던 일이니 동양하고 해결보라는 입장이었는데 농성이 계속되자 삼표 사장이 서로 대화로 풀면서 상생하자고 해서 10여 차례 교섭이 있었다. 우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노동부에서 위장 도급이라고 하니 그것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회사는 정규직은 어렵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그러나 위장 도급 관련해서 중노위 판정을 앞두고 자신에게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삼표시멘트는 자회사를 만들테니 노동조합을 탈퇴하고,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취하하면 받아주겠다는 안을 던졌다. 회사는 불법적인 안을 중노위 중재안으로도 던지는 뻔뻔함을 보였다. 노동조합은 당연히 그 안을 받지 않았다. 이후 11월 17일 중노위는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내렸고, 삼표시멘트는 지금까지도 교섭에 나오지 않고 있다.

어느덧 서울 농성 투쟁만 250일을 넘기면서 생계가 어려워서 투쟁을 포기하거나, 삼표시멘트 회유에 넘어 간 사람들 제외하고 현재 23명의 조합원들이 남아있다. 이분들 중에서도 몇몇은 생계투쟁으로, 7명은 수감생활을 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인원이 면회 투쟁도 해야 했고, 서울/삼척 두 곳에서 투쟁을 전개했다.

 

- 마지막으로 같이 싸우는 동료들에게, 연대해주시는 동지들께 한마디 부탁드린다.

 

 

이인용 : 삼척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살다보니 처음 서울로 상경 투쟁을 왔을 때, ‘연대’라는 글자가 우리 것만 하기 바쁜데 왜 해야 하나 마음이 앞섰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연대 투쟁하면서 재정적으로나 심정적으로 서로 상황을 알고 힘든 걸 같이 겪으면서 조합원이 떠나간 자리 이상을 채워주고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 또 우리 노동조합이 삼척에서는 물론 동양시멘트 내에서 처음 만들어진 노동조합이다. 그래서 우리가 꺾이면 이후에도 동양시멘트 노동자들, 삼척에 사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기 더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투쟁할거다.

 

최창수 : 조금 힘들더라도 지금까지 싸워왔던 것처럼 손잡고 끝가지 힘내서 웃는 모습으로 현장으로 돌아가서 일하고 싶다.

 

김세진 : 연대하는 동지들에게 도움 받았다, 고맙다 말씀드리면 같이 싸우는 거니까 고맙다는 말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래도 고맙다. 그리고 갚는다는 말이 웃기지만 연대하면서 열심히 함께 싸우겠다.

 

  • mimp 2020.07.03 17:08 ADDR 수정/삭제 답글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정보입니다.

[현장의 목소리] 그녀가 강의실이 아닌 천막 농성장에 있는 이유 /2016.4

그녀가 강의실이 아닌 천막 농성장에 있는 이유

- 부당 해고에 맞서 싸우는 서울대 음대 시간강사 전유진 선생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지난해 12월 흔히 시간강사법이라 불리는 고등교육법 개정안통과를 앞두고 서울대 음대 시간강사 113명의 선생님들이 하루 아침에 강의실에서 쫓겨났다. 201112월 국회를 통과한 시간강사법은 시간 강사에게 법으로 교원 지위를 부여하고, 1년 이상의 임용 기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시행령 9조에 의해 대학의 교원은 매주 9시간 이상의 강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대개 학교에서 3, 6학점 (3,6시간)을 강의하는 상황에서 주 9시간 이상으로 바뀌게 되면 현재 약 8만 명의 시간 강사 중 누군가는 해고된다. 대학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시간 강사를 채용하는데 법이 통과되었다고 해서 강의 자체를 늘리거나 강의 시간을 늘릴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한편, 현재 이 법은 앞서 언급한 쟁점으로 인해 2018년까지 유예된 상황인데, 서울대는 신규 강사 채용을 강행했다. 113명의 선생님들 가운데 성악과 선생님들을 주축으로 학교 본관 앞에 천막 농성장을 치고 지금까지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41일 가장 선두에 서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전유진 선생님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출처 :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안녕하세요. 저는 이 학교 성악과를 졸업했고 미국에서 석·박사 마치고 한국에서 강의를 한지 10여년 만에 시간강사법과 학교의 갑질에 의해 싸우고 있는 전유진이에요.”

 

- 이런 일을 겪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을 것 같은데 당시 어떤 심경이었나요? 

“11월 말에 후배 선생님들한테 전화가 와서 성악과 강사채용을 다시한대요그러더라고요.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 임기가 5년인데 그랬더니 믿을 만한 곳에게서 들은 거라고 했는데 정말 사실이었죠.”

 

- 보통 시간 강사 임기가 5년은 아니지 않나요? 특이한 경우인 것 같아요? 

전국의 모든 대학 강사 위촉 계약서는 3/1 ~ 8/31까지 9/1 ~ 2/28까지 6개월 단위로 되어있어요.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는 2년에서 5년 정도의 임기가 있고, 어느 학과는 공개채용 없이 수십 년간 강의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서울대학교 성악과는 30년간 5년 단위로 강사를 채용했어요. 요즘은 학교가 1년 단위로 채용했다고 우기고 있고요. 5년 임기가 단순히 관례 문제는 아니기도 해요. 93년도에 이미 성악과 내규로 정했고요. 음대 관련 선생님들에게는 상식적인 이야기죠. 다른 학교들도 한번 채용하면 34년 강의를 하거든요.”

 

- 5년 임기가 중요한 이유가 있나요? 

성악을 가르칠 때 4, 5년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어요. 1년은 선생님이랑 학생이 서로 익숙해지다가 끝나요. 강사마다 발성법이 다르니까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하죠. 그래서 시간강사라고 해도 4년을 지속해서 배우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세요. 이제 학생들은 1년마다 선생님이 바뀔 거예요.”

 

- 채용 공고 소식을 듣고 어떻게 대응을 했나요?

“121일에 아름아름 친한 선생님 10명이 광화문에 모여서 회의를 했어요. 강사들이 탄원서를 쓰자, 서명을 받자 논의를 했는데, 그때만 해도 선생님들이 소극적이었어요. 아직 학교가 공고를 낸 것도 아닌데 미리 움직여서 찍히면 어떻게 하냐, 그런 의견도 있었죠. 그런데 저희가 모인지 12시간 만에 학교에서 이 사실을 알았더라고요. 내부 고발자가 있었던거죠. 그리고 123일 음대 홈페이지에 신규 채용공고가 났어요.”

 

- 탄원서는 어떻게 했나요? 

채용 공고 보니까 다 끝났구나 생각했는데 125일에 시간강사법이 유예된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들한테 전화하고,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으로 사람들 모아서 총 41명의 서명과 탄원서를 127일 총장, 교무처장, 교육부총장, 음대학장한테 이메일로 보냈어요. 지금까지 아무 답은 없었고요.”

 

- 다른 학과에 비해 시간 강사 비중이 많은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성악과는 음대 공통필수 전공과목 말고도 성악전공과목만 20개가 넘어요. 다른 과와 비교하면 2~3배 많죠. 저만해도 4학년 영어 딕션 과목 2학점 강의를 했어요. 딕션이라는게 노래를 부를 때와 말할때 발음이 다르거든요 그걸 가르치는 수업인데 이렇게 딕션으로 배우는 언어가 이태리, 불어, 독어, 노어, 영어 5가지에요. 그러니 각각 그 나라에서 유학하고 오신 선생님들이 수업을 하죠. 특히 성악이 다른 악기와 가장 큰 차이는 언어가 있다는 점이고,정확한 단어를 사용해서 가사로 전달한다는 거예요. 악기의 경우 멜로디를 어떻게 표현하고 전달할 것인가가 중요하잖아요.”

딕션 수업이 끝이 아니다. 장르에 따라 오페라, 합창, 종교가곡 등으로 과목이 나뉘고, 오페라도 역사, 이해를 배우는 강의가 따로 있다.

 

- 해야 할 전공 수업도 많고 가르쳐야 할 과목들 특성이 다르네요?

저희는 그래서 시간강사법이 적용되면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가 없어요. 다른 학과에 비해 음대, 미대, 인문대의 경우가 시간 강사에 대한 수업 의존도가 높은데 만일 시간강사법이 통과되면 그 나라로 유학가지 않은 사람이 여러 과목을 강의하게 되겠죠. 물론 가르칠 수는 있겠지만, 미국을 다녀온 제가 독일,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온 선생님의 뉘앙스를 따라갈 수 있을까요? 인문학도 마찬가지죠. 중국 문학을 공부한 선생님이 러시아 문학, 영어 문학을 가르치면 결국 그 피해는 학생들이 받는 거죠.”

 

- 강사 신규 채용 과정에서는 별일 없었나요? 

보도자료에는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발한다고 강조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저희는 서류 심사때 연주 실적을 내요. 독창회를 했으면 100, 2인이 했으면 70점 이렇게 점수가 있는데 작년에는 200점이상 이었던 커트라인이 올해는 100점으로 낮췄어요. 작곡과는 커트라인을 넘으면 서류 심사를 다통과시켰는데, 성악과는 약 100여명이 넣어서 33명이 통과했어요. 이번에 해고된 성악과 50여 명 중엔 11명만 올라갔어요. 이전에 커트라인이 200점일 때도 채용되었던 분들이 서류심사를 통과 못한 게 말이 되나요. 작곡과인 부학장님하고 면담하는데 평가 기준이 우리와 생각하는 것도 다른 방식이라 그렇다고 해명하더라고요. 그래서 심사위원 명단과 점수를 공개하라니까 못한대요. 그게 공정하고 투명한 건가요?

서류 심사 통과하면 저희는 면접이 아니라 2차로 오디션을 봐요. 강의를 어떻게 진행할지 5분 내로 ppt 발표하고 질문에 답을 하고, 성악실기를 가르칠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입학시험 보듯이 노래를 하죠. 교수님 5명이 배석해서 평가하는데 이번엔 교수님이 2명만 들어오고 외부 전문가가 들어왔어요. 또 확인해보니까 명예교수 한분이 제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이번에 꼭 서울대 넣으라고 했데요. 그럼 10년 보장한다고요. 그분들 중 11명이 올라갔어요. 이런 일이 학교에서 그것도 최고의 학부라는 서울대에서 일어나다니 정말 창피한줄 모르는 것 같아요.”

 

- 오늘로 천막농성 며칠 째죠? 건강은 어떠신가요? 

“94일차에요. 건강은 좀 피곤하죠. 집에 있어도 오늘은 별일 없나 이런 저런 걱정도 되고요. 그래도 올해 1월에 한국비정규교수노조랑 대학노조, 기전노조, 총학생회, 변혁당 서울대분회 등이 공대위를 결성해서 든든하게 싸우고 있어요. 이분들 말씀처럼 울지 말고 재밌게, 즐겁게, 오래 버티자는 마음으로 싸워보려고요.”


출처 : 서울대저널

 

- 얼마 전엔 계고장도 날아왔다고 하던데요? 급한 불은 끈 건가요?

 “34일에 1차로 계고장이 왔어요. 311일 철거하겠다고요. 그래서 이날 삼겹살 20근 사다가 공대위 분들과 파티하면서 난장을 펼쳤어요. 그렇게 넘어갔나 싶었는데, 14일에 2차 계고장이 날아와서 18일에 정리한다고 했는데 또 한 번 넘어갔네요.”

 

- 지금 상황도 열악하지만 이전에도 시간강사 처우는 워낙에 열악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어떠했나요?

 저희는 시간당 강사비로 8만원을 받은 지 오래됐어요. 대부분 국립대들도 비슷하고요. 다른 대학은 3,4만 원대에요. 4대 보험 가입도 안 되고, 강의 준비할 공간도 없죠. 강사 휴게실이 있다는 건 이번에 싸우면서 알았어요. 참 이건 임기가 끝난 다른 대학교 케이스인데 이번에 실업급여를 받으려고 알아보니까, 글쎄 제가 12/21부로 해고 된 걸로 돼있는 거예요. 계약 기간은 2/28까지인데요. 대학들이 행정적인 것도 엉터리죠.”

 

- 이후 싸움 계획이 있나요?

사실 서울대 시간강사가 지방대 교수보다 사람들이 더 알아줘요. 시간강사만 해서 먹고 살기 힘드니까 대부분 개인 레슨 하면서 생활비를 버는데 그럴 때 서울대 강의 나간다고 하면 시간강사라고 해도 특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다들 학교가 불합리해도 참고, 밟아도 꿈틀거리지 않는 지렁이였죠. 투쟁을 하면서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칼을 한번 뽑았으니까 휘둘러는 봐야죠. 다음 일정으로는 성악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우리 문제도 알리면서 음악회를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또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도 준비하고 있고요.”

 

전유진 선생님은 본인이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유학에서 돌아오자마자 강의를 하게 되었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보람을 많은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남편을 비롯해 가족들의 지지와 응원 또한 큰 힘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싸움을 시작하면서 세월호 참사 유족,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앞으로 편견 없이 세상을 사람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여전히 두렵고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이 싸움에 전유진 선생님만큼 적극적이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손을 놓지 않고 함께 어울러서 싸우고자 애쓰고 있는 전유진 선생님이 하루 빨리 천막 농성장이 아닌 제자들과 강의실에서 음악으로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현장의 목소리]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나쁜 정치'는 폐지당 /2016.3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나쁜 정치'는 폐지당

-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폐지당 준비위원 양유진 활동가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이번 <현장의 목소리>는 장애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어 장애인 차별에 저항하고 이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활동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하전장연) 양유진 활동가를 만났다. 전장연은 장애인들의 이동권 문제나 활동보조 서비스 투쟁에 선두에 서왔으며 현재는 빈곤사회연대 등 단체와 함께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공동행동을 구성하고 광화문역에서 1,300일 가까이 농성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전장연이 오는 413일 총선을 앞두고 출범을 선언했다. 너도나도 을 출범하는 지금 어떤 이슈로 장애, 빈민 당사자들이 중심이 되는 을 출범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듣고자 광화문 농성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본인 소개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장연 서울지역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고, 이번에 출범을 앞두고 있는 폐지당 준비위원 양유진입니다.”

 

이제 곧 1,300일차 농성입니다. 처음 농성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흔히 우리 농성장을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농성장이라고 이야기해요. 한국 사회에서 주된 복지 대상층이라 할 수 있는데 국가가 이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보다, 장애인에게는 장애등급제라는 기준을 매겨 복지 수급권 밖으로 내쫓고 혜택을 받지 못하게 걸림돌을 만들고 있어요. 빈곤 문제에서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는데, 부양의무자 기준을 만들어 놓고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과 수준을 개인과 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죠. 그래서 저희는 가난과 장애는 개인 책임이 아니라는 고민을 가지고 다른 운동진영에선 악법을 철폐하는 투쟁처럼 저희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같은 기준을 없애자는 투쟁을 하기 위해 이곳에서 농성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장애등급제나 부양의무제로 인한 장애, 빈곤 주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는가?

부양의무제의 경우 기초생활수급권을 받아야만 생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녀가 있어서 혹은 부모가 있어서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장애등급제의 경우 장애 등급이 1,2급 그리고 중복 3급이 아니면 활동보조 서비스 대상자 기준으로 들어 갈 수 없어요.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생활 전반이 어려워져요. 그러나 대상자 선정할 때 당사자의 삶과 현실을 보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맞나 아닌가만 보기 때문에 복지의 사각지대가 굉장히 커요.”


농성을 1300일 가까이 하셨으니 진짜 안 해본 것 투쟁이 없을 것 같다. 어떤 투쟁들을 펼쳐왔는가?

저희가 농성을 2012811일부터 시작했어요. 당시 대선으로 한창 시국이 시끄러울 때였죠. 농성 이전에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가 제도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는데 어려웠어요. 그래서 농성시작하고 선전활동에 집중하면서 이 문제를 알리고 정책적인 내용을 변화시키는 투쟁을 전개했어요

 

농성 초반엔 각 정당의 대선 후보에게 엽서를 보내는 투쟁과 함께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바라는 시민들의 100만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현재도 서명운동은 계속 진행중이다.

 

, 당시 선거철이니까 정치인들이 농성장에 많이 다녀갔어요.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후보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공약으로 걸기도 하고, 안철수 후보도 고 김주영 동지 장례식장에 얼굴을 비췄어요.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서는 소식이 없네요. 하지만 진보정당들은 지금까지 꾸준하게 농성장 지킴이도 맡아주시면서 함께 투쟁하고 있어요.”

 

이 외에도 다양한 기획 투쟁들이 있었다고 들었다

“2013년 겨울엔 12월 한 달 내내 백기완 선생님이나 김조광수 영화감독 등 유명인사분들과 농성장에서 토크콘서트를 하면서 우리의 목소리를 알려내는 활동을 했어요. 2014년엔 차차차(차별을 걷어차는 자동차)’라 해서 리프트차 5대를 공수해서 10여 명이 팀을 꾸려 세종시도 가고, 부산까지 총 78일 동안 전국 순회를 투쟁을 했어요. 이때 부산지역의 철거민 투쟁이나 굴뚝에서 투쟁하던 스타케미칼해복투 차광호 동지와도 연대했어요. 작년엔 농성 1000일부터 3주년을 앞둔 95일 동안 우리 삶에 적색 신호가 켜졌다고 해서, 전국 곳곳 파란신호등에서 우리 목소리를 알려내는 그린 라이트를 켜줘투쟁도 하고요.”

 

올해 8월 농성 4년차, 9월엔 1500일차 투쟁을 앞두고 열정적인 투쟁을 기획중에 있으니 <일터> 독자들도 꼭 함께 연대 투쟁해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러한 투쟁의 연속선상에서 이번에 폐지당을 창당한 건가?

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어요. 매번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정책협약을 맺고 마치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것처럼 약속을 하는데 선거가 끝나면 약속은 사라져 버리니 허무하더라고요. 진보정당은 예외로 두더라도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여당, 야당을 보면 기대할 것도 없을 뿐더러 우리가 조금이라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장애당사자, 빈민들이 주체적으로 거리에서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정치를 해보자!요즘 너도나도 당 만드는데 우리도 못할게 뭐 있냐. 이런 도발적인 심정도 들었고요. 그래서 폐지당을 출범하게 되었어요.”

 


출처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폐지당은 어떤 분들이 준비하고 있는가?

장애, 빈민 당사자들을 최대한 조직하고 있어요. 정식 당이 아니기 때문에 연대 단체든, 기존 정당 당원이든 관계없이 모두가 당원이 될 수 있고요. 당 준비는 기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집행부가 폐지당 준비위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어요. 당원 모집은 선거 직전까지 꾸준히 할 생각이에요.”

 

폐지당은 오는 310일 창당대회를 개최하고 이때 지역구과 비례대표 후보자의 출마선언과 함께 정책 발표가 함께 있을 예정이다.

지역구 후보의 경우 장애, 빈민 당사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대표해 출마해요. 비례대표 후보자들은 이동권, 탈시설 등 의제별 후보를 선출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고요. 후보자들은 정책을 알리고 선전활동을 진행 할 것 같아요. 또 폐지당 활동을 하면서 인권, 성소수자, 용산참사대책위, 청소년 등 각운동진영에서 폭 넓게 총선 대응을 함께해보자는 제안이 있어서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목소리 내는 활동을 펼치게 될 것 같아요.”


폐지당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폐지당원에 함께하는 이들이 정치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껴보는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폐지당이 쉽게 이해가 되는데, 몇몇 분들은 이게 어떻게 당인지, 진짜 정당을 만들고 후보를 내는 건지 여부에만 관심을 쏟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고민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폐지당을 준비하면서 인권, 성소수자 등 여러 운동 진영과 함께 만나게 되는 연대의 고리가 만들어지고 더욱 끈끈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린다

언젠가 지금의 농성이 마침표를 찍을 텐데 그때 좌절하는 게 아니라 몇 년간 우리가 고생해서 이정도 성과를 얻었다, 서로 토닥이면서 마무리 지을 수 있다면 참 좋겠어요. 그리고 지금도 거리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누군가 손을 뻗으면 잡아줄 수 있는 마음의 연결고리를 하나씩 가지면 좋겠어요.”


현재 제도권 정당은 진박을 자처하며 대통령에게 줄서고, 운동권진영은 계파 간 헐뜯기에 바쁘다. 진보정당은 마치 자신들이 노동자 민중의 대표임을 자처하지만 정치는 없고 만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이 사회에서 소외받는 장애인들이 직접 정치를 위해 나섰다. 누군가는 진짜 정당도 아닌데 무슨 정치냐 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대체 정치란 무엇일까? 인간의 존엄을 짓밟고 노동자 장애 빈민의 삶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이 사회를 체제를 바꾸기 위해 이들이 정치의 주체로 서는 과정이 '정치'의 시작이 아닐까? 

 

*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당에가입하자! 가입하자!

폐지당은 이땅에 차별받고 소외 받는자 모두다 당원이 될 수 있으며 2016년 총선을 맞이하여 가난한 사람들과 장애인이 함께 살기위하여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힘차게 활동할 것입니다참여 개인 입당 비용 1만원 (이상당입시 폐지당원 노트제공 

계좌번호 국민은행 488401-01-230807 박경석 (분홍종이배)

동의서&인증샷을 팩스(02-2179-9108) 또는 (주소:https://goo.gl/QnEIcK) 광화문공동행동(SNS) 이메일(dact@hanmail.net)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폐지당은 정식 정당이 아니며, 20대 총선기간 동안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비롯하여 우리의 삶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모든 것들을 폐지하고자 하는 대시민 활동을 하기 위한 모임임을 알려드립니다문의전화 02-739-1420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현장의 목소리] 아름다운 사람들의 비상을 꿈꾸며기 /2016.2

아름다운 사람들의 비상을 꿈꾸며

- 구조조정에 맞서 투쟁하는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 신철우 위원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아시아나항공, 과도한 유급조합활동 보장 요구

아시아나항공, 117일 근무 열외 노조 간부

"단체협약 교착, 과도한 유급조합활동 요구 탓

 

아시아나항공을 검색하면 나오는 뉴스 헤드라인이다. 1988최고의 안전과 서비스를 통한 고객 만족이라는 경영이념으로 창립한 아시아나항공은 201584대의 항공기로, 한해 5조 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는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지난 20151230일 아시아나항공은 구조조정을 핵심으로 하는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항공지부 노동조합은 이에 맞서기 위해 지난 13일 김포공항 국내화물청사 내 회사 앞에서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언론에선 노동조합이 왜 농성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주목하기보다 노동조합이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 한파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던 날 천막 농성장에 있는 신철우 위원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끊임없이 노동자를 탄압하는 아시아나항공

-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난해 5월부터 노동조합 위원장을 맡고 있고, 하는 일은 인천공항에서 손님들이 카운터에서 탑승수속 마치고 출국장 들어선 순간부터 출발하기 전, 비행기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밟기 전까지 담당하는 출, 도착 업무를 하고 있다. 지금은 이 업무를 회사가 주장하는 협력사, 저희가 볼 땐 불법 도급인 업체가 아웃소싱해서 비정규직이 하고 있는데, 저는 이분들을 관리하는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다. , 기상 상황, 정비 등으로 인해 비행기가 지연되거나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도급사에서는 책임지기 어려워서 이럴 때 손님들 응대하고 고충처리를 주로 하고 있다. 하는 일이 이렇다 보니 저희끼리는 무릎 꿇는 직업이라고도 부른다.”

조종사를 제외하고 일반/정비/캐빈/케이터링 4직종의 노동자들이 가입된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은 1999년 기업별 노동조합으로 시작해 2006년 산별(공공운수)노조로 전환했다.

각 업무에 대한 소개와 조합 규모에 대해서도 간단히 소개 부탁합니다.

일반직은 쉽게 말해 지상에서 예약, 공항 업무를 담당한다. 정비는 말 그대로 정비업무고, 캐빈은 승무원을 뜻한다. 케이터링은 기내식을 담당하는데 2003년 회사에서 외국계 회사로 매각했는데, 이때 고용/단협/임금을 승계하기로 하면서 회사는 다르지만, 노동조합은 저희 소속으로 함께하고 있다. 조합원이 많을 땐 2,500여 명 정도로 전체 과반을 넘을 정도로 많았는데, 2001년 파업 이후 노동조합이 탄압을 받으면서 지금은 153명이 함께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2001년 파업 이후 노무관리 컨설팅을 위해 전문가를 영입하면서 노동조합을 탄압했다. 2006년 산별노조로 전환할 땐 회사의 탄압은 극에 달했다.

직원들이 항공사에서 일한다는 프라이드가 있다보니 회사는 이점을 이용해서 특히 승무원들에게 이데올로기 작업을 했다. 산별로 전환하면 운수화물 노동자들하고 같이 노동조합으로 묶이는데 너희가 화물차 운전사하고 같은 레벨이냐던가 진급하고 싶지 않느냐? 니 동기들은 이미 노조 다 탈퇴했다라면서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와해시켰다.”

교대, 장거리 근무를 하는 승무원의 특성상 동료간 소통이 쉽지 않은 데다 파업의 후유증, 사측의 진급 압박 등은 실제 효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노동조합 조합원의 평균 근속이 20년이 넘지만, 직급이 대리인 경우가 가장 많을 정도로 진급에서도 피해가 있었다.

 

대규모 구조조정 발표

지난 구조조정 발표가 어느 정도 예상됐었나요? 

지난여름 회사가 비상경영을 선포했었다. 직원들은 회사 설립하고 27년 동안 힘들다고 안 한 적이 언제 있었냐면서 화도 냈지만 대수롭지 않게도 생각하기도 했다. 회사가 양치기 소년이었다. 그런데 20151224일 회사가 일방적으로 임단협 교섭 중단을 선언하고, 교섭위원 8명 전원에게 현장 근무 복귀 통보했다. 그리고 5일 만에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계획도 나왔나요?

회사가 공식으로 축소 인원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다만, 부서별로 발표해서 노동조합이 확인해본 결과 500여 명 정도가 포함될 것으로 예상한다. 회사가 생각하는 유휴 인력 500명에 영업, 관리부서에서 인건비 부담이 높은 연차가 높은 직원들을 쫓아내고 조직 통폐합을 진행할 것 같다. 이전에도 매년 비상경영이네 하면서 TFT를 꾸리고 현장을 불안하게 했는데 이렇게 전면적으로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 한 건 처음이다.”

전임자도 없이 간부들이 휴무, 연차를 이용해서 조합 활동을 하고, 교섭 테이블도 일방적으로 파기된 상태에서 사측과 대화 채널이 없는 노동조합은 사측에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천막 농성을 결의했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해야 할 만큼 회사 상황이 실제로 좋지 않은 상황인가요?

회사가 실제 힘들고 위기인 측면도 있다고 본다. 2006년 회사의 부채비율이 200%였다. 만일 제조업 회사라면 재무구조가 건강한 건 아닌데, 항공사는 항공기 구입에 워낙 비용이 많이 들어가서 400%가 일반적이고 이를 넘어가면 위험하다고 본다. 그런데 200612월 대우건설 인수, 2008년엔 대한통운을 인수했다. 이 두 번의 과정에서 10조가 들었는데 그중 6조억 원을 차입금으로 하면서 부채 비율이 680%가 됐다. 이러니 노동자들이 죽도록 일해서 영업 이익을 내도 이자로 한해 2,000억씩 나가니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회사는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매번 어떻게든 임금 인상을 안 하려고 몸부림을 쳤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은 저가항공사의 공세에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더욱 고전하고 있다. 국내선의 경우 운행을 대부분 중단하고 자회사인 에어부산에 넘겨준 상황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중급 모델 항공사입니다. 그렇다 보니 항공사 규모가 있는 대한항공이 유럽, 미국 등 장거리 노선에 강점이 있다면, 우리는 중/단거리 노선 일본, 중국 등에 강점이 있었는데 저가항공사와 노선 경쟁을 하게 되었고 이럴 때 어떻게 생존할 것 인지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데 무조건 고급화, 항공기 대형화 기조로 방향을 잘 못 잡으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본다.”

노동조합은 회사 경영진이 무리한 기업 인수, 그로 인한 채무, 이자 문제와 저가항공사와 경쟁 실패 등에 따르는 책임은 지지 않고, 무조건 노동자를 해고하고 인건비를 줄이겠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만들어가는 노동조합

언론은 노동조합이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호도하고 있는데 어떤 심경인가요?

“2014년부터 임/단협도 못 맺고, 통상임금 관련 취업 규칙도 회사의 강압적으로 개정하고 임금피크제도 도입하고, 전임 간부도 없이 한 달에 800시간 타임오프 받아서 활동하는 노동조합이 과도하다고 하는데 어처구니가 없다. , 단협으로 보장되어있는 고용안정위원회 (노사 5:5 동수)를 구성해서 구조조정 관련 논의를 하자고 해도 회사는 구조조정을 발표해놓고 고용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서 노동조합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 언론 인터뷰 요청이오면 다 응하고 있는데, 언론에선 노동조합이 과도하다고 하고, 회사 경영진의 책임에 관해서는 얘기되지 않는 부분이 힘든 상황이다.”

- 농성투쟁도 그렇고 지난 시간 노동조합 활동을 이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런데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요?

간부들이 건강해서 그런 것 같다. 전체 8,000명 중에 단 153명 조합원이 그것도 몇 년째 투쟁을 지속하면 상당한 패배의식이 있고, 움츠러들 법한데, 그런데도 함께 싸우다 보니 조합을 찾아오는 노동자들 있고 이들에게 희망을 발견하고 앞으로 나가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서비스업계에선 내부고객(노동자), 외부고객(손님)이란 말이 있다. 서비스라는 게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인데 내부 고객이 만족하지 않고 불만투성인데 어떻게 자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한 응대, 서비스가 나오겠는가. 물론 가식적으로, 회사가 말하는 이빨 몇 개 보이는 미소는 보일 수 있겠지만, 고객에게 다가가는 서비스는 안 나온다고 생각한다. 내부고객이 회사에서 일하는 것에 자부심이 생길 수 있도록, 노동자를 인건비/비용으로 인식하는 것부터 바꿔야 한다.”

  • 반가 2016.06.10 21:49 ADDR 수정/삭제 답글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현장의 목소리] 반쪽짜리 편집자 윤정기 씨의 고군분투기 /2016.1

반쪽짜리 편집자 윤정기 씨의 고군분투기

- 부당전보와 노동탄압에 맞서 싸우는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 윤정기 조합원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이번에 <일터>가 만난 윤정기 씨는 20145월 평소 좋아하는 인문학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 출판인의 길을 선택한 편집자다. 그런데 윤정기 씨에게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그 이유는 2014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추행 방지 위해 CCTV 설치?

“CCTV 얘기를 처음 언급한건 전자책(e-book)팀에 있던 김 차장님이었어요. 새로운 플랫폼 사업을 하는데 보안 문제와 함께 당시 쌤앤파커스 출판사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을 언급하며 CCTV를 설치하자고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리더라고요. 대부분 직원들은 반대했죠. 저도 직원들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으니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꼭 거쳐야 한다고 의견을 말했죠. 그런데 어느 날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CCTV를 설치하겠다는 공지를 띄운 거예요. 그리고 강병철 사장이 저를 포함해서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직원 3명을 부르더라고요.”


신입사원이 의견을 피력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신입사원으로서도 참고 넘어가기 힘든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죠. 게다가 면담에서 사장은 좋은 의미로 설치하려고 했는데 너희가 반대하니 달지 않겠다라더니, 대신 본인 책상을 저희가 일하는 (편집부) 사무실로 옮겨서 일을 잘하는지 지켜보겠다고 했어요. 어이가 없었죠. 어쨌든 결국엔 CCTV 설치도, 사장의 책상 이동도 중단됐어요.”

CCTV 사건이 이렇게 넘어가는 듯했지만 윤정기 씨는 교정만 하는 반쪽짜리 편집자가 되어야만 했다.

1회 기획회의를 했는데 사장이 제 기획안에 대해서 대놓고 면박을 주거나, 같은 기획을 발표해도 제가 하면 통과를 안 시켜주더라고요. 12월부터는 교정교열팀에 배정돼서 정상적인 편집 업무는 못 하고 교정교열만 했어요. 처음 입사했을 때보다 권한도 줄고 업무에서 배제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죠.”


그리고 결국 올해 3월 일이 터진 거군요.

. 올해 3월에 조직개편이 있었어요. 이때 정은영편집주간이 저를 부르더니 각 팀장들이 저를 까칠하고 비판적인 직원으로 생각해서 아무도 팀원으로 받으려 하지 않으니 권고사직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말도 안 되는 이유라며 거부했죠. 편집주간도 일단 알겠다고 다시 얘기해보자고 했는데 다음 날 바로 파주에 있는 물류창고로 인사발령이 나더라고요.”

윤정기 씨는 처음 권고사직 얘기를 듣고, 이를 거부 했을 때 다른 게 돌아오겠다고 예상했는데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다음 날 물류창고로 부당전보를 당한 이후 싸워야겠다고 결심한 윤정기씨는 회사 짐을 정리하면서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화면을 캡처하고 그동안 부당노동행위라고 할 만했던 증거들을 모았다.


파주 생활은 순탄했나요?

처음에 갈 때는 재고관리 업무만 할 거라고 했는데, 현장에 가보니 재고 파악도 어느 정도 상황을 아는 분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저는 박스 포장하고 책 배송하는 일을 주로 했어요. 일도 일이지만 출퇴근이 가장 힘들었어요. 집이 일산이라 파주까지 그나마 가깝기는 했는데, 일하는 곳이 대중교통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파주 롯데아웃렛에서 자전거로 20분씩 이동해야 했어요. 게다가 지각하면 시말서를 써야 했거든요. 잠자는 시간 쪼개서 회사와 법적인 싸움도 준비해야 하고 출퇴근도 해야 하니까 그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본격적인 싸움을 결심하면서 노동조합과 언론사 문을 두드리다



부당전보 공지가 있던 날, 저와 2월까지 같이 일하다 퇴사한 선배 A와 어떻게 할지 상의했어요. 결국을 포함해서 그동안 자음과모음에서 있었던 문제를 제보하기로 했어요. 그러고 나서 출판지부 부지부장과 면담하면서 노동조합에도 가입했죠.”

 

제보 이후 한겨레, 한국일보 등 주요 일간지를 통해 자음과모음의 일이 세상에 알려졌다. 한편, 자음과모음은 제보자들과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출판지부와 윤정기/퇴사자 A씨를 상대로 형사 고소하고, 한국일보를 상대로는 언론중재위 신청으로 맞대응했다. 뿐만 아니라 자음과모음에서 책을 출판한 저자들에게 윤정기 씨가 평소 행실이 바르지 않은 직원이었다는 인신공격성 메일을 보내며 기사의 본질을 흐리는데 애썼다. 각종 소송에도 위축되지 않고 싸움으로 이어간 윤정기 씨는 20157월 말 현장에 복귀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회사는 윤정기 씨에게 2억여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라는 폭탄을 던졌다

 

복귀는 했지만 업무는 여전히 교정교열이었어요. 강병철 사장과 정은영 편집주간은 사과 한 마디 없이 그저 분란 일으키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분란이 뭐냐, 하고 물어봤죠. 사무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편집주간이 저보고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이튿날엔 손배소 고소장을 받았어요. 회사와 책을 내려고 했던 저자들이 저의 사건으로 작업을 못하겠다고 하면서,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고 손배 소송을 제기한 거죠. 그때는 정말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회사에 피해를 주는 건 피해야겠다, 하는 생각이었는데 너무 악의적으로구니까 이젠 정말 확실히 대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지금 현재는 회사가 모든 소송을 취하했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정은영 편집주간이 ()자음과모음의 새 대표 이사로 선출됐어요. 사옥도 새로운 건물로 이사하고요. 그러면서 모든 소송(형사, 민사)을 취하하고 언론에 이 사실을 흘리면서 사태를 마무리 짓는 분위기를 만들더라고요. 출판지부와 출판노동자들이 계속 피케팅하고 집회도 하고 사태가 커지니까 회사가 정리를 한 거죠. 출판사와 관계 맺고 있는 저자들, 일부 출판관계자들이 중재하려고 노력했던 것도 한몫했고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싸움

소송을 취하하긴 했지만 노동조합에서 줄곧 교섭을 요구했어요. 요구안은 강병철 사장과 정은영 현 대표이사가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거예요. 교섭에서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는 사장이 제게 개별적이고 비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재발 방지 대책은 회사에 조합원이 저밖에 없다보니 단체협약은 어렵더라도 취업규칙을 변경하거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강제하려고 해요. 다행히도 회사가 줄곧 교섭을 거부해오다 최근 처음으로 교섭에 응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어요. 지금은 교섭 날짜와 시간 등을 조율하고 있고, 20161월 첫 교섭이 열릴 것 같아요.”


현재 회사에서 윤정기 씨가 ()자음과모음이 직원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대체 무슨 상황인가요?

소속 문제는 복잡하지만, 본질적인 발단은 입사 당시 소속을 근로자인 제게 통보도 없이 마음대로 계열사로 정했다는 점이에요. 애초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니 저로서는 알 방도가 없었죠. 저는 현재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계열사인 더이룸출판사(구 이룸)’ 소속 직원으로 되어 있어요(현재 대부분의 직원들은 ()자음과모음 소속). 최근에 대표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제 법적 사용자는 여전히 강병철 사장입니다. 더이룸출판사에는 4명의 노동자가 소속되어 있지만 하는 일은 물류, 교정 등 제각각이에요. 업무에 의한 소속의 구분이 전혀 아니라는 거죠. 단순히 5인 이하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니까 이점을 회사가 노리고 있는 겁니다. 최근 교섭에 응하는 과정에서 회사는 갑자기 제가 ()자음과모음이 아니라 더이룸출판사 직원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그런데 형식적 소속이 그럴 뿐이지 저는 지금껏 자음과모음이라는 출판사에서 일한 겁니다. 다만 월급을 더이룸출판사(구 이룸) 명의로 받았는데, 이 때문에 회사에서그렇게 주장하는 거죠. 지노위에서도 제가 자음과모음이라는 하나의 출판사 직원이기 때문에 (부당전직이 아닌) 부당전보를 인정한 건데 말이에요.”

 

강병철 사장과 정은영 편집주간은 그간 주요 일간지와 인터뷰를 통해, 윤정기 씨의 계열사 근로계약서 작성 문제는 201411월 노동부에서 감사가 나왔을 때 경영지원팀에서 형식적으로 계열사 근로계약서를 제출한 실수였고 이것으로 인해 불이익은 전혀 없다고 말해왔다.


지난 1,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는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네요.



출판지부 조합원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못 했을 거예요. 아내도 워낙 힘든 상황인걸 아니까 많이 이해해줬고요. 또 저보다 훨씬 힘들게 노동하고,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은데 오히려 그분들이 저를 지지해주고 함께 연대해주셨던 게 가장 큰 동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윤정기 씨는 이번 싸움이 좋은 선례로 남아서 출판노동자들이 다시는 자신과 같은 일을 겪지 않게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2016년엔 반드시 승리해서 만큼이나 책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가치가 존중받고, 반쪽짜리 편집자가 아니라 인문학 편집자 윤정기 씨의 책을 읽고 많은 독자들이 감동을 받는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현장의 목소리] 청년 알바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 2015.12

청년 알바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
- 부당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아름다운 청년 김영 씨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올해 언론을 통해 롯데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이 보도되면서 탐욕스러운 자본가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하기야 호텔, 백화점, 대형할인마트, 야구구단, 극장 등을 비롯해 편의점, 커피숍, 패스트푸드, 스낵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롯데그룹의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경영권의 의미는 평범한 노동자, 시민들은 상상하기 어렵다. 한편, 지금 여기 거대재벌 롯데그룹에 맞서 싸우는 아름다운 청년이 있다. 올해 24살인 김영 씨는 2013년 12월부터 3개월여 롯데호텔 뷔페에 있는 라세느 매장에서 일용직 계약직으로 일하다 하루아침에 해고당했다. 부당한 일을 겪기는 했지만, 알바니까 다른곳에서 일해도 그만일 수 있지만 김영 씨는 부당함에 맞서기로 했다.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의 조합원이기도 한 김영 씨는 또래의 청년들이 자신이 경험한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김영 씨는 2년 전 고향 전북 전주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고시원에서 사는 김영 씨는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서 생계를 꾸려야 하는 형편이라 알바를 해야했다. 그러다 인터넷 구인 사이트에서 장기간 일할 수 있고, 하루 2끼 식사를 지원하는 롯데호텔 알바에 지원했다.

 

 

* 김영 청년유니온 조합원

 

장기간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고 했는데 롯데 호텔에서는 일용직 계약으로 일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구인 게시물에서 분명 장기간, 상시적인 업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정작 근로계약서를 쓰려고 보니 하루 단위로 계약하는 일용직이더라고요. 앞선 게시물이랑 내 눈앞에 있는 근로계약서가 다르니까 처음엔 의아했는데 그 자리에서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중년의 인사과 직원에게 왜 일일 근로계약서를 써야 하는지 물어볼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계약서 쓰고 만일 일용직으로 일하는 거면 바로 나오자 생각했는데, 일을 하다 보니 계약서가 다분히 형식적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형식적이었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일일 근로 계약을 맺었지만, 정규직 직원이랑 마찬가지로 직고용이었고 근무 스케줄은 물론 휴무 스케줄도 정규직 직원이랑 같이 조율해서 정했어요. 매일 아침 출근 도장 찍듯이 사무실에 수백 장 복사해져 있는 계약서에 두 장씩 사인해서 하나는 회사에 제출하고 하나는 제가 갖는 것 말고는 다를게 없었죠. 저처럼 일하는 사람들도 수십 명이었고요. 그래서 계약서는 다분히 형식적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일하고 싶은 만큼 오래 일할 수 있겠다 기대를 했어요."

 

현장에서 어떤 일을 했나?

 

"12시 출근해서 밤 10시에 마감했어요. 오픈 뷔페라서 점심, 저녁 시간에는 손님들이 달라고 하는 베이커리, 디저트 챙겨 드리고 그 외 시간에는 베이커리 만드는 곳에서 정규직 직원들 보조 역할을 했어요."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대체 그럴만한 사유가 있었나?

 

"2013년 12월부터 3개월가량 일했는데 크리스마스, 신정 연휴 등 공휴일에 다 나와서 일했어요. 지각도 한번 안 하고 근무태도가 나쁘냐고 지적받은 적도 없고요. 그런데 하루는 일하면서 정규직들은 노동조합에서 단체협약으로 얻어내서 휴일에 근무했을 때 수당을 받는다는 걸 알았어요. 그때 저처럼 일용직 알바들한테는 왜 적용이 안 되는지 궁금해서 근로계약서를 확인했죠. 보니까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는 사항은 취업규칙과 근로기준법에 따른다는 조항이 있어서 그 뒤로 인사과에 찾아가서 취업규칙을 보여 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인사과 직원이 인턴인지 알바생인지 물어보더라고요. 알바생이라고 하니까 굉장히 불쾌하다는 투로, 알바한테는 보여드릴 수 없으니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돌아가는데 손이 떨리고 심장이 뛰더라고요. 너무 모욕적이어서요."

 

김영 씨는 다음날 휴무여서 현장을 비웠다. 이때 롯데호텔은 김영 씨와 함께 일하는 인턴에게 찾아와 김영 씨가 뭐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 취업규칙을 왜 보여달라고 했는지 아는지 등을 캐물었다.

 

"다음날 출근하니까 주임님이 어제 상황을 말씀하면서 농담으로 너 잘리는 거 아니냐고 다 같이 웃고 그랬는데, 마감 한 시간 전에 전화가 왔어요. 알바 지원할 때 구인 소개업체 분이더라고요.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까 제 업무에 여성 직원이 필요해서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잘린 거죠. 처음 해고를 당한 건데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구나, 일할 때는 항상 가족이라고 했는데 눈엣가시가 되면 몇 마디 말로 쫓겨난다는 생각에 씁쓸했어요."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사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게 현실인데, 거대재벌 롯데에 맞서 싸울 생각을 했나?

 

"일하면서 매우 많은 또래 청년들을 만났어요. 인턴, 실습생, 알바 이렇게 나뉘는데 솔직히 일용직 알바인 저보다 인턴, 실습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 있었어요. 인턴의 경우엔 최저시급 받고 딱 1년 10개월 일하고 끝나요. 인턴 끝나고 정규직 전환하는 사람들은 극소수고요. 그리고 나면 새로운 인턴 뽑아서 일을 시켜요. 실습생들은 주로 전문대 학생들인데 월 30만 원 받으면서 정규직이랑 똑같이 일해요. 그렇다고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는 것도 아니고, 단순 업무를 도맡아 해요. 그래도 실습생들 입장에선 대기업에서 실습했다는 이력 한 줄이 필요하니까 참는 거죠. 이런 친구들이 저처럼 어처구니없는 일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싸움을 결심했어요."

 

김영 씨는 2014년 6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12월 중노위에서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롯데호텔은 사태를 진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김영 씨를 만나 돈으로 회유했다.


"중노위 판결이 있고 판정서가 송달되기 전에 회사에서 일할 땐 한번 본 적도 없는 인사과장이란 사람에게 직접 연락이 왔어요. 개별적으로 만나자고요. 그래서 3차례 봤는데 회사에서는 중노위 소송 취하하고, 언론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복직을 포기하면 3,000만 원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나 김영 씨는 회사의 회유의 흔들리지 않았다. 다급해진 롯데호텔은 곧바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중노위를 이겼기 때문에 재판에서도 유리했을 것 같은데 법원의 판단은 뭐였나?

 

"중노위를 이겼기 때문에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1심 판결에서 납득하기 힘든 논리로 지니까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내심 2심 가면 번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희망을 놓지 않았는데 패소하니까 마음이 꿀꿀해요. 2심 때는 알바가 있어서 제가 직접 공판장에 가지 못해서 결과를 전해 들었는데 뭐랄까 벽 앞에 서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2015년 6월 1심 재판부는 김영 씨의 부당해고에 대해 “평소 수행한 업무가 특별한 기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한 보조업무에 불과하므로 상시적, 지속적 업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아르바이트 직원 상당수가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으로 복학 하거나 더 좋은 직장이 있으면 언제든지 일을 그만둘 수 있어 소송 참가인에게 근로계약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없다”고 판단했다. 법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며 롯데호텔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후 지난달 열렸던 항소심에서는 김영 씨와 롯데호텔이 매일 계약서를 새로 쓴 일이 기간제법 취지에 어긋나지 않으며 김영 씨에게 롯데호텔이 계약 갱신을 기대할 권리가 없다면서 항소를 기각했다.

 

거대그룹과 힘든 싸움을 하는 것도 그렇고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로 언론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다뤄지는 것이 힘들거나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제가 처음 싸움 시작할 때 큰 벽으로 느꼈던 건 20대 청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 알바에 대한 인식이었어요. 해고당하던 날 저와 알바를 하던 친구가 알바인데 다른 데 가면 되지 않느냐, 대기업이랑 어떻게 싸우느냐고 말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언론을 통해 제 싸움이 다뤄지면서 이런 문제에 별 관심 없고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주변 친구들이 기사보고 메시지를 보내요. 권리 의식, 사회문제에 목소리 내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고요. 한편, 개인이 내부 고발자로서 문제를 터뜨리고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안에서 조직된 사람들의 집단적인 힘이 필요하구나, 그게 있어야 싸울수 있겠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이번 싸움에 목표가 있다면?

 

"신동빈 회장에게 걸림돌이 되고 싶어요 (웃음) 우선 부당해고를 인정받고 복직하는 거예요. 비록 알바지만 대기업과 싸워서 권리를 보장받고 당당하게 다시 복직한다면 이런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될 또래 친구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당당히 걸어 들어가서 다시 일하고 싶어요. 복직하면 롯데호텔 노동조합에서 활동도 해보고 싶어요."

 

인터뷰가 끝나고 김영 씨는 학교 기말고사 공부를 위해 책을 펼쳤다. 또, 지금 사는 고시원이 여름에는 에어컨 한번 안 틀어주는 곳이라 내년엔 매달 5만 원씩 월세를 더 내고 창문 있는 방으로 옮기는 게 목표라고 했다. 롯데라는 거대한 자본에 맞서 싸우는 청년이자 소박한 꿈을 꾸는 아름다운 청년 김영 씨의 건투를 빈다!

[현장의 목소리] 끝까지 함께 투쟁해서 반드시 승리하자 /2015.11

끝까지 함께 투쟁해서 반드시 승리하자!

공장 부지 매각에 맞서 투쟁하는 금속노조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신애자 분회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하이텍알씨디코리아(하이텍)는 무선모형조종기를 만드는 회사로 그 시작은 1973년 태광산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이텍은 연 500억 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는 흑자기업이었지만 노동자들은 월 1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일했다. 이뿐만 아니라 하이텍 자본은 직장폐쇄, 휴업, 부당해고, 단협해지, CCTV를 통한 노동자 통제, 감시 등 노조파괴 공작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9월 회사는 노동조합에 공장 부지를 매각했다고 통보하며 새로운 공장으로 출근하라고 통보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노동조합을 파괴하겠다는 하이텍 자본의 도발이 시작된 것이다. 7명의 조합원은 생존권 보장, 민주노조 사수를 요구하며 투쟁에 돌입했다.


하이텍 자본의 일방적인 공장 부지 매각 통보 공장 부지 매각 소식은 언제 접하셨나요?

914일에 공장에 임대 들어온 수선집 아주머니가 부지 매각 소식을 전해줬어요. 회사가 노동조합에 공식으로 얘기한 건 915일 교섭 석상에서였는데 11일에 240억 받고 공장 부지를 매각했다고 일방적 으로 통보하더라고요.


하이텍 자본의 일방통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공장을 3개월 안에 빌려줘야 한다며 공장이전 장소 와 시기는 추후에 통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사와 임·단협 교섭 기간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전에 회사에서 전혀 언급이 없었나요?

교섭에서는 전혀 없었어요. 2014년에 공장부지를 매각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는데 그때도 교섭은 아니었죠. 이때만 해도 회사에서는 공장부지 매각에 대해 노동조합의 입장을 말해달라고 요구했었어요. 공장 부지 매각으로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고 공장을 폐쇄하려는 의도가 분명해서 노동조합은 그 안을 받을 수 없다는 의사를 전달했어요.


신애자 분회장 사진 (출처 : 금속노조)


현재 이전했다는 공장은 확인되었나요?

917일에 회사가 현장 게시판에 공고를 붙이더라고요. 조합원 개별로 내용증명도 보내고요. 독산역 근처에 있는 대륭 2차 건물에 공장이 있으니 1012일부터 근무를 해라 이렇게 왔어요.


공장 설비는 있던가요?

가서 확인해보니 설비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준비를 완벽하게 하지는 못했는지 의자와 창문이 없었어요. 한 마디로 생색내기 하는 거죠. 분양 면적을 확인해보니까 56평인데 실 평수는 38평 정도 되겠더라고요. 지금 현장이랑 비교해보면 너무 작은데 공장 안에 식당 겸 휴게실, 노동조합 사무실까지 만들다 보니 공간이 안 나와요.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건 피하려고 장치를 마련한 것 같아요.


공장을 완전히 정리하지는 않겠다고 보이는데 실제 그런가요?

, 겉으로 보면 그렇죠. 그런데 지난 10여 년간 회사가 노동조합을 없애려고 탄압했던 걸 돌아보면 박천서 회장이 무슨 의도로 공장 부지를 매각하고 이전을 하려고 하는지 뻔하다고 생각해요.


공장을 돌리겠다는 하이텍 자본 신뢰할 수 없다


하이텍은 1996년 필리핀에 생산 공장 세운 지 2년 만인 1998년 국내 공장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려고 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투쟁을 통해 이를 막았다. 이후 2002년 박천서 회장은 올해는 10억이 들든 20억이 들든 반드시 노동조합을 깨겠다고 천명하면서 일방적으로 단협을 해지하고 5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2005년에는 노동자들 몰래 본사를 충북 오창으로 옮겼고, 2007년에는 자본금 5,000만 원 짜리 회사를 만들어 생산부서를 그 회사로 분리하고 평생 고용을 약속하며 이전을 강요했다. 회사의 강요에 못 이긴 비조합원 노동자들은 회사를 이전했으나, 1년여 만에 정리해고 당했다. 이후에도 하이텍 자본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다가 201110여년 만에 임·단협을 체결해야 했다.


지난 상황을 돌이켜 봤을 때 회사를 신뢰하기 힘든 상황인 것 같습니다.

회사가 평생 고용보장을 하겠다고 약속했던 것도 깼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이번 공장이전이 노동조합을 정리하려는 목적이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밖에서 볼 때는 공장을 운영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동안 당해왔던 조합원들 정서와 박천서 회장이 했던 행동들을 보면 고용보장은 믿을 수 없어요. 그래서 저희는 생존권과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서 싸울 겁니다.


박천서 회장 만났다고 들었는데 뭐라고 하던가요?

공장 부지 매각 소식을 듣고 921일에 충북 오창 본사에 가서 박천서 회장을 만났어요. 사실 회사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본사에들어가지도 못하고 정문에서 막혔는데 이날은 우리가 조금 늦게 갔더니 회사 경비가 느슨해져 운 좋게 본사 건물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건물 들어가서 3층 중역실을 가니까 박천서 회장이 딱 있더라고요. 회장 만나서 우리 조합원들 생존권 보장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얘기했더니 첫 마디가 니들하고 할 얘기 없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는 임금 따박따박 받아가면서 무슨 생존권을 이야기 하느냐고 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직원들을 불러서 우리를 막아 세우고 그 길로 도망갔어요. 우리가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박천서 회장은 매번 우리만 보면 도망가기 바쁘네요.


2013년 박천서 집 앞에서 조합원들이 잠복근무하다 만났을 때도 박천서 회장은 나는 노동조합 일에 관여하는 바가 없으니 할 얘기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회사를 성장시키는데 가장 기여했던 노동자들이 본인들의 회사 본사에 마음껏 들어가지도 못하고 회장은 조합원들만 보면 도망치는 하이텍 자본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는 이 공장을 지킬 것입니다

 

천막 농성에 돌입하면서 노동조합의 요구와 각오는 무엇인가요?

이 공장에서 계속 일을 하겠다는 거예요. 회사를 발전시켰던 노동자들이 버려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민주노조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들 오랫동안 투쟁으로 건강도 좋지 않아서 농성 투쟁 결의하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농성하는 거에 대해서 조합원들이 많이 부담스러워 했어요. 근데 우리 상황이 조합원이 많지 않으니까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안 할 수가 없거든요. 우리 싸움을 알려내고 확대하려면 발로 뛰는 수밖에 없는데 그 역할도 해야 하고 공장도 지켜야 하니까요. 그래서 다 같이 싸우자고 결의했어요. 그래서 지금 조합원들은 순번을 정해서, 저랑 부분회장은 격일로 공장을 지키고 있어요.


공장 앞에서 집회를 하는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분회 조합원들 (출처 : 금속노조)


아이가 아직 어린 조합원들도 있어서 육아에 대한 부담도 있겠어요

저만 해도 집에 가면 난리예요. 애들 반찬도 해야 하고. 밥을 자주 못 챙겨주니까 맨날 컵라면, 냉동 식품 사다 놓는 것도 미안하고. 빨래도 수북이 쌓여있고. 다른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하는게 버겁기는 한데 그래도 여기서 쫓겨나면 당장 갈곳도 없으니까 버텨야죠.


오랜 시간 투쟁하면서 지칠 법도 한데 계속 투쟁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있다면 그게 뭘까요?

'억울하기도 하고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런 심정인 것 같아요. 포기하면 공장에서 쫓겨나는 것 밖에 없으니까요. 지난 10년 동안 순간순간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고 포기할까 생각도 했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하지만 분회장이니까 책임도 있고. 개인이 포기하는 거는 다른 부분인 것 같아요.


지긋지긋한 하이텍 자본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뭘까요?

하이텍은 개인의 욕심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여기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노동조합도 인정해야 하고요.


힘든 싸움을 함께 이어나가고 있는 조합원들에게도 한 마디 부탁드려요

정말 힘들지만, 끝까지 함께 투쟁해서 반드시 승리 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 오는 1127일 금요일 15시부터 하이텍 공장 앞에서 투쟁 기금 마련을 위한 주점을 연다. 이 행사에도 많은 관심과 연대 부탁한다.

문의 : 금속노조 서울지부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신애자 분회장 010 7434 4050

[현장의 목소리] 노동조합으로 하나가 되었어요 /2015.10

노동조합으로 하나가 되었어요

-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는 민주노총 서산톨게이트지부 도명화 부지부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2009년 이명박 정권은 공공기관 경영 효율화를 목적으로 한국도로공사 소속 336개의 톨게이트 영업소 전체를 외주화하면서 7,0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했다. 그 결과 영업소 노동자들은 24시간 3교대로 일하며 최저임금을 받았다. 이마저도 비정규직이다 보니 매년 재계약에 대한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외주화한 영업소는 불법 수의계약을 통해 한국도로공사 (명예)퇴직자들의 전관예우 통로로 활용되었다. 그 결과 이들은 현재 2,000억 원이 넘는 톨게이트 운영권을 손에 쥐고 있다. 


서산톨게이트 영업소 용역업체 ‘이지로드텍’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지로드텍은 지난 3월 새로운 수의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3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이에 해고 노동자를 비롯해 서산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서산톨게이트지부 조합을 만들고 조합원 3명의 복직과 요금징수원 정규직 전환, 단체협약 체결 등을 요구하는 파업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47년 역사상 첫 번째 파업으로 각종 특혜비리, 불법운영, 노조탄압 등을 폭로하며 전국 336개 요금징수원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맞닿아 있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도명화 부지부장을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명화 씨 하루아침에 해고당해

대구에서 결혼하고 아이 아빠 직장 때문에 서산에 왔어요. 애가 어릴 때는 대구에 자주 왔다 갔다 했는데 그때마다 톨게이트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을 눈여겨봤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도로공사 직원인 줄 알았어요. 옷도 깔끔하게 입고 앉아서 일하고, 얘기들어보니 급여도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자리 있냐고 전화를 했는데 이력서 들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 뒤로 면접보고 일을 시작했어요. 회사 다니면서 도로공사 직원이든 외주 회사 직원이든 그런 걸 떠나서 일 자체가 재미있어서 열심히 일했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일을 열심히 하면 뭐하나 싶어요. 외주회사 사장 바뀌면 하루아침에 이렇게 잘리는걸.


▲  민주노총 민주연합노조 서산톨게이트지부 도명화 부지부장


열악한 노동환경으로부터 목숨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다

2013년에 공공기관이 에너지 절약해야 한다고 해서 요금소 부스에 에어컨을 못 틀게 했어요. 여기는 자동차 매연에 아스팔트 열기까지 더위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근데 에어컨을 못 틀게 하니까 얼음물을 들고 다녔는데, 관리자가 민감한 기계들도 많은데 물 튀면 안 되고, 또 화장실 자주 가면 안 되니까 물을 들고 가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아니 먹고 살려고 일하러 왔는데 그때는 정말 죽기 직전까지 일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언젠가 동료들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요금징수원 노동자들은 미납 요금을 받기 위해 때로는 목숨을 걸고 아스팔트 위에서 일해야 했다.


하이패스를 지날 때 요금이 미납 처리되는 차량이 종종 있어요. 그럴 때 몸으로 차를 막아서 운전자한테 요금을 받아서 미납률을 낮춰야 해요. 이게 다 실적에 포함되거든요. 푹푹 찌는 아스팔트에 서서 목숨 걸고 차를 막는 거죠. 상여금 지급하는 것도 백번 양보해서 실적 좋은 사람한테 많이 주는 거면 이해하겠는데, 누가 봐도 실적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일을 하는 사람한테 나머지 사람에게 줄 수당을 깎아서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누가 지나가는 말로 노동부에 신고해야 하지 않느냐 그랬나 봐요. 그랬더니 사장이 그 말 한 사람 누구냐고 빨리 자수하라고 재촉하더니 나중에는 새벽에 문자까지 보내서 자수하라고 그러는 거예요. 도저히 가만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노동조합(당시 한국노총)을 만들었어요.


한국도로공사 요금소는 통상 퇴직자에게 위로금 명목으로 5년간 수의 계약을 맺어서 운영권을 주는 시스템이다. 이렇다 보니 사업주는 기간 내 이윤을 최대한 창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요금소에서 일 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안중에도 없다. 더욱이 노동조합은 사업주들에게 눈엣가시와도 같다.


예전 사장은 어버이날이라고 수당을 준 적이 있었어요. 그걸 하면 도로공사에서 가산점을 줬나 봐요. 통장에 입금 내역을 확인해서 위에 보고했는데, 다음 달에 수당 받은 만큼 반납하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너무 황당하고 불쾌하더라고요. 


지난 3월 1일 서산톨게이트 영업소의 운영권이 이지로드텍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이지로드텍은 기존에 일하던 3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공교롭게도 3명의 노동자는 모두 명화 씨를 비롯한 노동조합 간부들이었다.


새로 온 사장이 서산 요금소가 이미지가 안 좋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분위기를 잡더라고요. 아니 여기는 도로공사가 관여하는 곳도 아닌데 왜 우리를 나쁘게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심지어 새로운 사장이 도로공사 노조 만들 때 초창기 간부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장님도 우리 마음 잘 알 테니 같이 잘해보면 좋지 않겠냐고 하니 자기가 을일 때는 노조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갑이 되니까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고 하더라고요.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과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이지로드텍

3명의 조합원 해고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는 용역근로자 보호 지침에 따라 고용 승계를 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지노위는 해고 노동자들이 이지로드텍에서 하루도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당해고로 볼 수 없다고 판정했다. 


회사는 계속해서 해고가 아니라 면접 점수로 정당하게 채용을 하지 않은 것 뿐이라고 주장해요. 지노위도 우리 손을 들어준 거 아니라면서 저희를 복직시킬 의무가 없다고 말해요. 국민권익위원회가 복직시켜야 한다고 했는데도 지침은 지침일 뿐이라고 법적 강제력은 없다면서요.


파업을 결심하고, 민주노조 깃발을 올리다

노동조합은 사측과 교섭에서 해고자 3인 원직복직과 단협 60여 개 중 11개 미합의 사항 (조합활동 · 조합원 교육시간 월 2시간 보장, 타임오프, 노조사무실 지급 연 유급휴가 1일, 건강진단 추가비용 등) 체결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측은 노동조합의 요구를 들어 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반복했다.


회사에서 하는 말이 우리가 요구하는 거 말고, 한국노총에서 제시하는 단협을 가져오면 사인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노동부에서도 하는 말이 사측이 주장하는 한국노총 단협은 자기들이 봐도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있으나 마나한 조항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러니 결국 파업을 하게 됐어요.


한편, 서산톨게이트 지부는 파업 결의 이후 사측이 아니라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의 반대와도 맞서서 싸워야 했다. 


파업한다니까 한국노총이 반대하더라고요. 아니 왜 우리가 한다는데 못 하게 하는지 의문이 들었죠. 준비하면서 어디서 들은 게 있어서 민주노총에서 천막 빌려서 농성장 만들고 앰프도 설치하고 집회신고하고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한국노총 톨게이트 노동조합 위원장이 난리를 치면서, 내가 하라고 한적도 없고, 나는 책임이 없다 그러면서 천막을 뒤엎더니 그 뒤로 사라졌어요. 그렇게 20일을 하루 3번 꼬박 집회하고 밥해 먹고 보냈는데, 이러고 한국노총만 바라보고 있으면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생각이 들어서 민주연합 노동조합에 찾아가서 노동조합 받아달라고 했죠.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지금은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와 지역에서 대책위까지 만들어져서 함께 투쟁하고 있어요. 저는 연대의 힘이 그렇게 큰 건지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파업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제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 것처럼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요즘은 사실 복직도 복직이지만 좋은 기회에 민주노총 만나서 내 의식이 달라져서 지금까지도 힘 잃지 않고 싸울 수 있는 게 고맙고 감사해요. 같이 근무해도 나이 차가 있고 안 친한 사람들은 멀어지게 되는데 파업하면서 온종일 붙어있으니까 이제는 한숨 쉬면 뭐 때문에 한숨 쉬는지도 알겠고 눈빛만 봐도 알겠어요. 복직되더라도 책임지고 톨게이트 노동조합을 알리고 다닐 거예요. 투쟁 사업장도 정말 많은데 그런데도 열심히 찾아다녀서 우리한테 많이 와주신 만큼 저희도 힘 실어주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힘든 싸움을 함께하고 있는 조합원에 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렸다.

진짜 고맙고 감사하죠. 해고되고, 이렇게까지 끝까지 싸울 수 있을지 몰랐어요. 사실 나 하나 손 털어 버리면 그만인데, 못 그러겠더라고요. 여기서 내가 손 털면 남은 조합원들 다 잘릴 거예요. 우리 3명 잘렸을 때 같이 싸우면 나머지 해고는 막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렇게까지 와준 언니 동생들 너무 고맙고, 복직하면 조합원들하고 더 친밀하게 근무해서 같이 정년 맞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현장의 목소리]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답이다!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는 김명성 금속노조 마리오 아울렛 분회장 인터뷰 /2015.9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답이다!
-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는 김명성 금속노조 마리오 아울렛 분회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옛 구로공단)에 있는 마리오 아울렛은 2001년 국내 최초로 생긴 의류 아울렛 쇼핑몰로, 주말이면 10만 명 이상이 드나드는 동양 제일의 매장이다. 김명성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마리오 아울렛 분회장은 8년 전 시설관리팀 정규직 노동자로 입사했다. 시설관리팀은 마리오 아울렛의 전기, 안전, 소방 등 시설 전반을 관리한다. 업무 특성상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일도 많았지만, 매장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으로 일했다. 그런데 2014년 3월 마리오 아울렛이 시설관리업무를 외주화하면서 김명성 분회장을 비롯해 24명의 노동자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이후 지방노동위원회에서도 마리오 아울렛이 부당해고를 저질렀다며, 이를 철회할 것을 판결했지만 회사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현재 6명의 조합원은 지방노동위원회 판결 이행을 요구하며, 회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쫓겨난 마리오 아울렛 노동자들

 

2012년 마리오 아울렛은 60여 명의 계산직 노동자들을 외주화했다. 2013년에는 회사가 직접 경영하는 식음료팀 직원 10여 명을 권고사직하더니, 2014년엔 패션 사업부 직원 20여 명을 또다시 권고사직했다. 이후 현장에선 다음 목표가 시설관리팀일 거라는 소문이 횡행했다.

 

“시설관리팀을 외주화한다는 소문이 계속 돌다 보니까 내부에서 긴장이 있었어요.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작년 2월 20일에 인사자문 직원이 권고사직을 발표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 날 노동조합 만들었는데, 결국 4월 1일에 시설관리팀을 외주화했어요.”

 

처음 만들 때, 한국노총 소속이었던 노동조합은 2014년 6월 상급 단체를 민주노총으로 변경하며 금속노조 깃발을 올렸다. 김명성 분회장(당시 부분회장)을 포함해 21명의 동료는 회사의 권고사직을 거부했다. 그러자 회사는 대기 발령을 내렸다.

 

“작년에 새정치민주연합 전순옥 의원실하고 마리오 아울렛 홍성열 회장이 면담하면서 알려진 내용인데, 홍성열 회장은 대기 발령시키면 우리가 새 직장 구해서 나갈 줄 알았는데 안 나가고 버틴 거라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임금을 받는 기준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가 아니라, 오후 7시까지 추가 고정 수당 1시간을 포함해서 받거든요. 그 부분이 임금의 30% 가까이 육박할 정도로 꽤 되는데 대기발령을 시키면서 임금을 70%만 주고 수당도 전혀 없으니까 다들 버티기가 쉽지 않았어요.”

 

회사는 시설관리팀 노동자들이 대기 발령에도 불구하고 그만두지 않자 제 발로 나가도록 다른 묘안을 찾았다.

 

“대기발령을 두 달 통보 했는데, 한 달 지나서 저희를 회사로 다시 부르더라고요. 그러더니 한 개에 200kg 되는 화분 600개를 매장에 나르고 정리하는 일을 시켰어요. 또 하루는 35도까지 올라가는 한여름 땡볕에 건물 외벽 페인트칠을 시키더라고요. 이때 4명이 일하다 쓰러져서 병원에 가고, 남아있던 사람들도 어지럼증을 느끼고 구역질하고 난리였는데 계속 일을 시켰어요.”

 

당시 노동자들은 폭염주의보에는 작업을 자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만일 쓰러지면 책임질 테니 작업을 계속하라고 강요했다. 그뿐만 아니라 7m 높이의 건물을 페인트 장대 연결봉으로 칠하라고 시키는 바람에 노동자들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다리와 안전모, 안전화 지급을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거부당했다.

 

약속은커녕 법도 안 지키는 마리오 아울렛

 

회사의 악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서울지방 고용노동청 관악지청이 마리오 아울렛이 지난 3년간 시설관리 노동자 19명에게 3억6천만 원의 임금체불을 지적하며 지급 명령을 내렸지만, 이것 또한 외면했다.

 

“노동자들이 노동법에 대해 배운 적도 없고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노동조합 만들고 노무사님 상담을 받아보니 24시간 당직 근무하면서 받아야 할 야간수당, 연장 수당을 못 받았던 체불임금액이 상당했어요. 문제는 노동부에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는데 검찰에서 재조사를 하더라고요. 재조사 과정에서 홍성열 회장과 같이 조사를 받았는데 검찰 조사관이나 검사가 법 위반에 대해서 고의성 여부를 따져본다고 하더라고요. 느낌이 이상했어요. 결국에는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기소 건은 무혐의처분이 나왔어요. 답답했지요. 마리오 아울렛은 동양 최대 아울렛이라고 말하면서 과연 근로기준법을 모르고 야간수당을 안 줬을까요? 만약 몰랐다고 하더라도 법을 안 지켰으면 그에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사업주가 최저임금이 안 되게 임금 을 주고,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몰랐다고 하면 고의성이 없어서 처벌을 안 받는 건가요? 저는 법을 모릅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상식에는 맞지 않네요. 지금은 체불 건은 민사소송으로 다투는 중입니다.”

 

이후에도 마리오 아울렛 문제가 계속 불거지자 새정치민주연합 전순옥 의원은 지난해 12월 29일 국정감사에서 홍성열 마리오 아울렛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해 반노동 행위의 책임을 물었다. 홍성열 회장은 국정감사에서 시설관리팀의 전문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외주화했다고 주장했다.

 

“전문성 확보가 아니라 비용을 아끼고 싶었던 거예요. 처음엔 외주화를 하면 인건비가 30% 가까이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자료를 보니 인건비 차이가 10%더라고요. 게다가 부가가치세는 별도고요. 계산해보면 한 달에 노동자 한 명당 4만 원 차이가 나는 거죠. 게다가 전문성은커녕 매장이 잘 돌아가지도 않아요. 일하는 직원들 얘기 들어보니 시설관리 직원들이 계속 바뀌고 있대요. 처음 온 사람이 일을 어떻게 제대로 하겠어요. 회사도 심각성을 알 텐데 자신들 잘못을 인정하기 싫으니까 쓸데없는 자존심이 세우면서 버티는 것 같아요.”

 

국정감사에서 홍성열 마리오 아울렛 회장은 ‘무분별한 권고사직과 130%에 이르는 높은 이직률에 대해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2014년 10월24일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각 의원실에 제출한 ‘중장기 고용확대전략’ 근거로 제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마리오 아울렛은 3년간 약 100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국정감사가 끝나자마자 2014년 12월 29일 분회장, 부분회장 등 조합원 5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회사가 2014년 9월에 다시 두 달간 대기 발령을 통보했어요. 11월엔 시설관리팀원들 위축시키려고 영업부로 전환배치 한다고 했는데 저희가 별거 아니다, 일할 수 있다고 하니까, 직무를 맡을 수준이 안 된다면서 정리해고를 통보하더라고요.”

 

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6월 5일 마리오 아울렛이 근로기준법 24조에서 정한 정리해고의 실질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점, 근로자 대표 등과 협의를 거치지 아니한 점 등을 볼 때 부당해고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마리오 아울렛은 지금껏 지방노동위원회 판정을 외면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회사가 지방노동위원회 판결을 지킬 거라고 기대했지만, 변화가 없자 싸움의 수위를 높이기로 했다.

 

“지방노동위원회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회사 앞에서 아침 1시간 선전전만 진행했어요. 나중에 들어가서 다시 일해야 하는데 우리 투쟁 강도가 세면 나중에 들어가서 일할 때 불편할 것 같아서 대화로 해결하려고 했죠. 그런데 이제는 회사가 지방노동위원회 판결을 지키지 않으니까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9시간씩 농성을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투쟁 계획이 있어도 제대로 싸우지 못했는데 이제부터는 할 수 있는 거 다해보려고요.”

 

 

 

마리오 아울렛은 최근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그 결과 영업팀 일부 직원을 총무팀으로, 홍보팀 일부 직원을 영업팀으로, 재무팀 일부 직원을 영업팀으로 보냈다. 이러한 조직개편은 회사가 시설관리팀 노동자들이 직무를 맡을 수준이 부족해서 전환배치가 어렵다는 이유로 정리해고했다는 말과 배치되는 행위다. 현장에서 들리는 얘기로는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나서 권고사직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회사가 인원 감축을 위해 전환배치를 한 것 아니겠냐며, 노동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한다. 마리오 아울렛은 한때 300여 명의 정규직 노동자가 있었지만, 지 금은 정규직이 100명도 안 된다.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다!

 

김명성 분회장은 생각보다 싸움이 길어지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것이 고민이라고 했다.


“사실 노동조합 활동한 거 후회를 안 한다면 거짓말일 것 같아요. 딸 셋에 아내까지 책임지고 가정을 꾸려야 하는데. 가족들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친구들도 처음엔 잘 해보라 하더니, 시간이 지나니까 네가 무슨 투사냐, 너는 가족 생각은 안 하느냐, 너 잘났다고 싸우는 거냐고 하니까 감정이 나빠지더라고요.”

 

그래도 이 싸움을 포기하지 못 한 것은 억울한 마음 때문이다.

 

“처음에도 억울하다는 심정 하나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억울한 마음이 더 커지는 것같아요. 그래서 힘들지만, 꼭 이겨야겠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홍성열 회장이 누구보다 명예욕이 큰 사람인지라, 우리보다 더 아프고 잠도 못 잘 정도로 힘들어할 거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어요. 회사나 노동조합이나 서로 이 상황이 힘드니까 빨리 현장으로 돌아가서 회사는 체불임금 지급하고 업무 정상화하고, 저희는 다시 하던 일을 하는 것만이 유일한 답일 것 같아요.”

 

김명성 분회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투쟁에 연대해준 동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농성장 보셔서 아시겠지만 연대 단위에서 보내온 플랑이 쭉 걸려있어요. 우리보다 먼저 정리해고 싸움을 하고 있는 쌍차 동지들, 지난번 영등포 근로복지공단에서 투쟁 같이했던 갑을오토텍지회 동지들이 연대해주셨어요. 갑을 동지들은 다음번엔 라인별로 플랑 맞춰서 오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연대 동지들의 플랑으로 마리오 아울렛을 둘러쌀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