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건설기계 노동자, 산재법 확대적용의 명암을 들여다보다 / 2019.05

[모든 사람에게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②] 

 

건설기계 노동자, 산재법 확대적용의 명암을 들여다보다 

 

박기형 / 상임활동가 

 

2018년 12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 시행령이 일부 개정되어, 올해 1월 1일부터 건설기계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을 받게 됐다. 개정 이전에는 27개 건설기계 중 레미콘 1개 직종만 특수형태근로(이하 특고) 종사자로 적용됐다. 개정 이후 27개 직종에서 일하는 1인 사업주 모두가 특고로 간주되어 산재보험에 당연가입 할 수 있게 됐다. 지난 4월 22일 건설노조 기계분과 서울경기북부 김학열 지부장을 만나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산재법 확대적용에 대해 갖는 기대감과 우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직면하는 건설현장의 위험들

건설현장은 전체산업 사망자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그중 건설기계에 의한 사망사고는 전체 사고의 21%를 차지한다. 특히 최근 건설현장의 고층화·대형화·기계화가 진행되면서, 건설기계 장비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 중대형 장비인 건설기계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면 건설기계의 조종사뿐만 아니라 인근 노동자들까지 위험에 처해 중대재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지난해까지도 건설기계에 의한 사고 책임은 오롯이 건설기계 노동자가 져야 했다.

"산재처리와 관련한 현장의 원칙은 '당신이 사장이니까 당신이 책임져야 하는 거다'에요. 현장에선 근로자처럼 일하기를 요구받는데, 일하다 다치면 근로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로 취급했던 거죠. 직접 장비를 운전했을 경우엔 공상 처리도 안 해주는 경우가 다반사에요.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영세한 1인 차주가 많아 경제적 부담이 커요. 더욱이 근무 조건이나 개인 사정에 따라 기사를 쓸 때가 종종 있다는 사실이 문제에요. 기사가 큰 사고를 당하면, 1인 차주가 중소기업사업주로 임의가입해서 해당 기사를 산재처리를 해줘야 해요. 기사와 같이 일하다 차주 본인까지 다쳐도 마찬가지죠. 그러면 차주의 부담은 더 커지죠."

건설기계 장비는 대개 고가의 제품이다. 이 비용을 한 번에 지불하기 어렵기 때문에 금융기관에 빚을 지거나 장비매매업체에 리스 방식으로 구입한다. 만약 사고로 인해 일하지 못하게 되면, 할부 대금, 대출 이자, 리스 대금을 납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결국엔 금융기관에 차량을 차압 당하거나 매매업체가 차량을 회수해가는 지경에 이른다. 결국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몸이 상하고 장비를 잃는다. 생계유지가 어려워져 가정이 무너지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산재법 확대적용이 갖는 의미와 한계

올해부터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특고로 간주되어, 산재법의 특례 적용을 받게 되었다. 이는 건설기계 노동자가 근로자성의 인정 여부와는 별개로 보호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산재법 적용 범위에 포함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산재법 확대적용으로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휴업급여, 요양급여 등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김학열 지부장은 장비에 대한 손실을 보상받지 못하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언제나 기계와 함께 노동을 제공해요. 더구나 기계 손실에 대한 비용도 상당한 부담이죠. 과거 공상 처리 시에 노동조합이 압박하면, 회사와 사고에 대한 책임 비율을 책정해서 장비 손실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보상받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산재 원칙에 따라 장비는 보호 범위에서 제외되죠. 현행법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보호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장비손실에 대한 보상 대책도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이에 더해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과 달리, 근로복지공단의 구상권 청구에 따른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구상권 청구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에요. 차주가 고용한 기사가 상해를 당했을 경우와 1인 차주의 장비 사고로 다른 노동자가 상해를 입었을 경우죠.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근로복지공단이 기사나 다른 노동자에게 보상해주고, 해당 금액을 차주가 가입한 보험회사에 구상권을 청구합니다.

구상권 청구로 인해 보험료가 크게 인상되죠. 대다수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장비 보상을 위해 민간 보험에 가입해요. 이런 상황에서 구상권 청구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악화시켜요. 근로복지공단이 기금 규모를 유지 및 확대하려는 태도로 보아, 산재법 확대적용 이후에도 구상권 청구 관행이 지속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원청책임 더욱 강화되어야

김학열 지부장은 산재법 확대적용 의미가 퇴색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청책임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건설기계·장비는 건설업 하도급 구조로 산재사고 예방관리 및 안전보건 조치의 책임 소재가 불명확했다. 더욱이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맺는 계약 형태는 고용계약이 아니라 임대계약이었다. 근로자의 속성과 자영업자의 속성 모두를 가진 것으로 간주되어 기존의 근로자 개념으로 규정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전부개정안에서 기존의 근로자보다 넓은 개념인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규정이 바뀌면서, 건설기계 노동자들에까지 안전보건 조치가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이는 산재법 적용확대와 마찬가지로, 건설기계 노동자들을 보호할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4월 22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안법 전부개정안 시행령·시행규칙 입법예고안에는 타워크레인, 건설용 리프트, 항타기, 항발기 등 4대 기종에 제한하여 원청이 책임지도록 하는 내용이 담기고 말았다. 김학열 지부장은 건설현장의 안전을 제대로 담보하기 위해선 27개 기종 전체로 규정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원청은 관행적으로 건설현장의 안전보건 조치와 그에 대한 책임을 하청사에 미뤄왔어요. 그렇지만 건설기계와 관련한 산재사고가 빈번했고 현장 내외에서 예방관리에 대한 요구도 컸어요. 특히 타워크레인 사고가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면서, 이미 고정식 기계 설비의 설치·해체에 대해서는 원청도 충분히 책임을 인정하고 있었죠. 이번 입법예고안은 이러한 현장의 요구와 변화를 법적인 조항으로 확정한 것에 불과해요."

"더구나 현장에서 사고가 나는 건 고정식 기계 설비만이 아니에요. 물론 대형 타워크레인이 넘어지면 위험의 정도가 크지만, 현장투입 비율만 놓고 보면 다른 건설기계 기종들이 훨씬 많고 사고도 빈번해요. 예컨대, 대개 25톤 덤프가 27개 기종 중에 현장투입 비율이 절반이 넘어요. 그만큼 덤프 전복이나 작업 중 추락 등 크고 작은 사고들이 매일 같이 일어나죠.

하지만 사회적으로 문제되지 않으면 보호받지 못해요. 산재보험 적용 특례를 정할 때처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야만 해당 직종을 포괄하는 것이죠. 싸우지 않으면 보호받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정부가 진심으로 건설현장의 산재사망사고를 줄이고 싶다면, 그렇게 접근하면 안 되죠. 이동식 기계 설비를 포함한 27개 기종 전체에 대해 원청책임을 강화해야죠."



건설기계 노동자에게 위험과 비용을 전가하는 원청

하지만 원청책임을 묻는 것은 단지 건설기계 노동자 보호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원청이 하도급 구조를 활용해 건설기계 노동자에게 위험과 비용을 전가하기 때문이다. 김학열 지부장은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원래부터 전통적인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틀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처음부터 특고였던 건 아니에요. 예전에 덤프기사들도 건설사에 정규직으로 고용돼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한진그룹 계열사였던 한일개발에 입사해서 7~8년간 근무했어요. 그때만 해도 건설사들이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장비와 기사를 갖추고 있어야 했죠. 하지만 80년대 중후반 국내 건설경기가 나빠지면서 공사수주자격 규제가 완화되고 건설사들이 재무건전성을 높여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해 중장비 등 유휴고정자본들을 줄여나가기 시작했어요.

물론 90년대 초반에 주택 200만호 건설 정책으로 건설경기가 반짝 좋아졌지만, 건설사 몸집 줄이기는 계속됐죠. 저도 그때 장비를 불하해주는 조건으로 회사 일을 계속 줄 테니 개인 사업자로 일하라는 요구를 받고 나왔어요. 기계 하나 주고 회사가 직원을 내친 격이었죠. 사업증 하나 달랑 가진 사장 아닌 사장이 됐죠. 이런 일이 레미콘부터 시작해서 다른 기종들로 확산됐어요. 그렇게 하도급 구조가 널리 퍼진 게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모호한 근로자성의 출발점이었다고 생각해요."

건설업의 특성상 공정에 다수의 건설기계가 필요하다. 건설기계는 고정자본, 즉 유형고정자산에 해당한다. 유형고정자산의 구입·운영·유지에는 각종 고정비용과 감가상각비용이 든다. 문제는 계절에 따라 공사수주 물량의 변동이 크고 거시경제순환에 따라 건설경기가 유동적이라는 점이다. 몇몇 대형건설사를 제외하고는 공사 물량이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확보되는 경우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건설사들은 경기 순환에 유연하게 대응하여 재무구조 건전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한국의 건설사들은 80년대 중후반 이후 지속적으로 건설경기가 하락하는 국면에서, 이윤을 높이고 비용을 낮추기 위해 고정자본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취하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건설기계를 임대하여 공정에 투입하는 비율을 높였다. 그 결과, 하도급이 건설현장에 널리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그 반대급부로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건설기계 운용에 따르는 각종 비용과 건설현장의 위험을 떠맡게 되었다.

한마디로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특고로 진입하게 된 이유는 건설사들의 이윤추구전략 때문이었다. 원청이 이윤은 최대한 사유화하고 비용과 위험은 건설기계 노동자들에게 전가한 것이다. 따라서 건설기계 노동자들에 대한 산재 적용 및 안전보건 조치 확대 요구는 단순히 건설현장의 위험이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건설기계 노동자들을 특고로 전환시킨 원청에게 사회적 책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의 하도급 구조가 위험의 외주화를 통해 지탱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고용노동부의 입법예고안은 한계가 명확하다.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을 위해 남은 과제들

다른 한편, 원청책임 강화뿐만 아니라 27개 기종에 대한 산재법 확대 적용이 정말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해봐야 한다. 특례규정에 따라, 건설기계 노동자들도 1인 차주에 한해서 산재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김학열 지부장은 실제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타인을 고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공사 기간이 점점 단축되면서 정해진 시간 내 많은 공사 물량을 해치워야 하기 때문에, 1인 차주 혼자서는 해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타인을 고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산재법은 여전히 1인 차주에 한해서 보험이 제공되도록 규정되어 있죠."

또한 김학열 지부장은 지금처럼 특고에 대한 특례 조항으로 산재보상과 안전보건 조치의 적용범위를 확대해 나갈 경우,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난점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건설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임금체불, 부당해고 등에 대항하기 위해선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전통적인 근로자와 동등한 법적 지위를 누리지 못할 경우, 현행 법체계 내에서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였다.

마지막으로 일부 건설현장들에서는 고용 조건으로 적용확대 제외신청을 건설기계 노동자들에게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얘기하며, 이런 사례들을 적발하고 위반 시에는 강력한 처벌을 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평생 정규직이길 바랬다는 김학열 지부장. 사업증만 하나 달랑 가진 사장 아닌 사장이 되어 버린 지금, 그의 바람은 단 한 가지였다.

"최저수준의 임금을 유지하며 겨우겨우 살아가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과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기를 바랍니다. 건설기계 노동자들 모두에게 산재법, 산안법이 제대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고 싸워나갑시다. 투쟁!"

 

 

특집1. 노동자 건강권 관련 법, 적용제외 조항 '제외'하라 / 2019.05

[모든 사람에게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①]

 

노동자 건강권 관련 법, 적용제외 조항 '제외'하라 

 

 

류현철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국회가 난장판이다. 근대 이후로 공중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국가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기제 중 하나가 법률일진대 그것을 만드는 입법기관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혈안이 되어 이전투구 중인 것이다.

지난 연말 이런 이전투구 집단에서도 쉽게 외면할 수 없었던 법안 하나가 어렵사리 통과되었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가 몸이 끼어 숨진 19살 하청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발의되어, 석탄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가 컨베이어에 온몸이 갈리어 숨진 24살 또 다른 하청 노동자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그것이다.

노동자의 허망한 죽음을 막자고 발의된 법안은 그렇게 또 다른 숱한 죽음이 쌓이고 나서야,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앞섬에 노동자 민중들의 분노가 뒤서고 넘쳐서야 통과되었다. 그렇게 법이 만들어지고 고쳐지는 것이다. 노동자가 일터에서 건강하게, 최소한 몸과 마음을 다치지 않게 아니 최소한 죽음을 무릅쓰지 않고 일하게 만들어줘야 할 기본법으로서 산업안전보건법과 더불어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모두 마찬가지다.

 

법 적용제외는 삶 전체의 불평등으로 이어져

근로기준법은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 안전 및 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노무를 제공하는 자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하겠다고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산업재해보상보험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하여 이에 필요한 보험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재해 예방과 그 밖에 근로자의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법 취지가 온전히 지켜지고 있을까? 사회적인 가치,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해내는 과정과 거기에 결부되는 노동의 투입과 매개의 방식이 다변화되고 있으며 사회는 이것을 4차산업이니 하면서 떠들고 있다. 4차산업 시대에 기업과 사용자들은 오로지 책임회피 측면에서만 창의적이고 희한한 고용·계약 관계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은 기존 법률의 '근로자'의 개념의 고루함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수많은 노동자를 '노동자'라 불리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이름을 제대로 얻지 못하면 권리에서도 배제되는 것이다.

고용특례업종, 영세업종(업주) 보호, 공익필수직종,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위험작업의 범위 등 여러 가지 설명을 곁들여 이들 법의 적용범위에 '차이'를 둔다. 이는 일터의 안전과 건강문제에 있어서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을 낳는다. 사용자와 사업주가 지켜야 할 기준 적용에 있어서 예외(특례)는 결국 불평등을 낳고, 이것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의 수준이 낮아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일수록 건강과 안전상 위험이 높아진다.

지난 연말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은 '김용균법'으로 불렸지만 그 이름으로 대표되는, 일터에서 위험에 노출되는 많은 비정규직/불안정 노동자들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진행된 하위 법령 개정에서라도 최대한 노동자의 건강권 영역과 포괄범위를 넓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하위법령 개정안은 더욱 후퇴하고 말았다.

도급금지/승인 규정을 두어 관리하겠다는 일터의 위험업무의 범위, 법적 보호조치 대상이 되는 특수고용직의 범위와 보호조치의 내용, 작업중지권 실질적 운용 가능성은 형편없이 줄어들었다. 산재보상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노동자가 산재보험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어 일터와 업무에서 비롯된 사고와 질병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산재임에도 '산재'로 인정되지 않는 질병과 재해는 통계에 잡히지 않아 위험의 크기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산재 통계는 '산재보상 승인 통계'일 뿐이다. 드러나지 않은 산재는 위험을 감춘다. 감춰진 위험은 관리할 수 없다. 관리되지 않는 위험은 또다시 산재를 일으키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위험 관리의 출발은 '드러내기'부터 시작한다.

물론 일터에서의 사건 사고, 질병, 손상과 죽음이 법적인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음은 논문과 통계가 아니라도 직관만으로 알고도 남는다. 그런 현실을 부정하기 힘들었던 정부와 전문가들이 위험의 외주화 방지, 원청의 책임 강화, 취약노동자보호를 입에 달고 있지만 입법과 행정과정에서 실물로 엮여 나오는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합리적 이유나 설명 없이 법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하는 예외규정이 숱하다.

일터의 안전, 일과 건강에 관련된 영역은 계속 확장되고 있음에도 구시대적인 안전개념에 머물러 있는 구분이나 예외조항도 여전하다. 안전과 건강문제에 대서 작업환경이나 업무의 위험성과 그에 따른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관리 전략에 따른 것이 아니라, 사업주의 경제적 여건이나 (기형적인) 계약 관행에 따라 적용을 달리하는 예외규정은 차별에 불과하다.

수년 전 무상급식이 공론의 장에 올라와 보편적 복지 논쟁이 일었던 적이 있다. 잘사는 집 아이에게도 무상급식을 해야 하는가를 집요하게 문제 삼았음에도 보편적 복지가 판정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관련된 법안의 예외규정은 거꾸로 더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에게서 밥그릇을 뺏는 형국이다.

사용자와 사업주의 의무를 주로 규정한 법들이니 어려운 형편의 사업주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위험에 노출되어 일하는 것은 노동자들이며 법의 목적에서 보호하고 지켜야 할 대상도 그들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경제를 살펴 영세한 사장님들을 배려한다는 논리로 법률상의 예외조항을 두는 것은 본말의 전도이다.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할 권리가 가장 우선이어야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여 향상하고,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 증진하기 위한다는 법의 예외는 그 목적(법익)에 충실히 부합하는 한에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예외는 어쩔수 없는 경우에만 인정되어야 하며 그 어쩔 수 없는 이유라는 것이 누구의 이해에 맞닿아 있는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할 '권리'가 우선이며 이것을 중심으로 그것을 보장할 책임과 의무를 사업주이든 정부건 지자체건 국가건 나눠 가져야 한다. 안전과 건강에 관련된 제도에 있어서 사업의 규모나 사업주의 여건을 고려한 적용 제외조항이 남아있는 한, 위험하여 책임져야 할 것이 많은 업무는 계속 외주화될 것이며 법률상 권리도 조직력도 없는 노동자들은 더욱 위험해질 것이다.

안전하고 이윤이 많이 남는 사업을 독식할 수 있는 구조는 위험하고 책임의 비용이 많이 드는 업무의 외주화를 얼마든지 허용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일터와 노동자 안전보건에 있어서 예외는 오로지 특히 위험하거나 취약한 대상에 대한 더욱 각별하고 강화된 관리와 보장의 측면에서만 인정되어야 한다.

이윤에 매몰되지 않은 인간다운 노동을 위해 관련 법률의 개정과정은 늘 난항을 겪는다. 그리고 그 난항을 헤치고 나가는 해법 역시 변함없다. 진부해 보이지만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각성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힘, 노동인권과 생명에 대한 사회 인식의 진전과 참여를 전제로 하는 연대가 그것이다. 정부의 산업안전보건법개정안에서 '근로자'가 아닌 '일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이라는 개념 찬 제안이 등장한 배경도 거기에 있다.

한편으로 최근의 산업안전보건법 하위 법령의 명백한 후퇴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사회적 관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언제든 오로지 경제 논리와 이윤을 중심에 둔 제도의 역진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진전되고 개선된 제도의 경우는 현실 작동을 점검하고 성과를 확인하여 확장하고, 미진하고 후퇴하는 제도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 짚고, 공중에게 드러내고 바로 잡는 것을 게을리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모든 노동자에게 나이, 성별, 인종, 직종, 업종, 사업장 규모, 고용형태를 넘어서 똑같이 안전하고 건강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특집4.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존재, 청년노동자를 말하다 / 2019.02

[특집 청년 + 노동자, 다시 보기④]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존재, 청년 노동자를 말하다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준비위원장 인터뷰

 

선전위원회

 

도로의 무법자로 불리는 이들이 있다. 바로 배달노동자이다. 언론은 큰 사고가 날 때만 그들을 주목하고 호명한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존재해왔다. 단지 우리 사회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지 않았을 뿐. 가리어진 존재의 목소리를 모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라이더유니온의 박정훈 준비위원장을 지난 131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라이더유니온이 궁금한데요. 조합원의 구성이나 특징, 조합의 핵심 요구사항은 무엇인가요?

프랜차이즈, 배달대행사, 우버이츠 기사들로 주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리고 돈 못 버는 영세 배달대행 지사장들도 조합원으로 받을 생각인데, 아직 세부 기준은 정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등에 칼 꽂는다고들 말하는데 일하다가 자기가 창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배달대행은 가게와 기사만 있으면 되거든요. 운영 프로그램은 따서 쓰면 되고요. 그러다 보니 영세한 사람도 많고, 이 업 자체에서 지지고 볶는 특징이 있죠.

그리고 배달노동자는 개별화되어 있어요. 프랜차이즈 라이더를 한 사업장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모두 출퇴근 시간이 달라서 모이기가 불가능해요. 그래서 플랫폼노조로서 온라인을 기반으로 해요. 그러다 보니 가끔 정기로 모이듯이 조합원들이 모여요.

대여섯 가지 조합의 요구 중 보험료 문제가 가장 큽니다. 배달용 오토바이 보험료가 제 나이대인 30대 정도에 1년에 300만 원이에요. 20대는 500만 원이구요. 심각하죠. 그래서 대부분 배달용 보험을 안 들고 출퇴근보험을 들어요. 이렇게 일하다 사고 나면 보험 적용이 안 돼서 문제가 생기고, 부담이 크니 산재보험 가입도 꺼려요. 산재보험 가입률이 높아지려면, 배달용 오토바이 보험료를 해결해야 해요.

추가로 기후변화에 따른 보호 대책, 최소배달료, 플랫폼세를 통한 고용보험, 산재보험 기금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어요. 지사장에게 책임을 묻는 두 당으로 하지 말고 일정 매출 이상의 플랫폼 사업장이 근로복지공단에 보험료를 내라는 거죠.

개인 사업자의 경우, 유급휴일 보장 안 되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보험을 바꾸고 싶어요. 개인사업자도 유급휴일을 주는 거죠. 예로 들면 여름휴가 간만큼 일하지 못한 부분을 고용보험 재정에서 조달하는 거죠. 그러면 라이더들이 고용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생기겠죠. 또 산재보험기금으론 악천후일 때 일을 못 하니 그때 휴업급여를 지급하고요. ‘근로자신분이 아니란 현실과 괴리되는 이유로 말이죠. 물론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 여겨질 수 있어요. 그러니까 노조가 싸워 만들어나가야겠죠.”

연령대 특징도 있을 텐데요. 노조에 10~20대 청년이 많은 편인가요?

아뇨. 30~50대가 많아요. 10~20대는 눈에 띄어서 과잉대표된 거죠. 배달 노동에 대한 편견이에요. 소위 젊은 놈이 오토바이 함부로 몰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거죠. 언론에서 주로 다루는 배달노동자 사고가 10대이기도 해요. 어리면 어리다고, 50대까지 라이더 일을 하고 있으면 그것도 그거대로 욕먹죠. 20~30대 정도는 그럴 수 있다 치고요. 나머지는 실패, 혐오의 상징이에요. 보면 가족들에게 얘기를 잘 못 하세요. 자녀 학교가 있는 동네이거나 지인이 주문하거나 하면 다른 사람에게 일을 넘기기도 해요. 당당하기 힘든 거죠.”

지금 하는 맥도날드 배달 일을 포함해 여러 노동을 경험하셨을 때 우리 사회가 청년 노동자에 대해 어떤 인식을 하고 있고, 어떤 노동조건에 내몬다고 보시는지 궁금해요.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요. 청년이라고 했을 때 청년 내 계급, 계층의 문제가 다 삭제되어 있어요. IMF 이후 청년실업이라는 말, 단 한 번도 해결되지 않은 이 문제에서 주인공은 4년제 대학을 나온 이들이죠. 뉴스 인터뷰 보면 그래요. 문제는 이런 조건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이 가려진 거예요. 수능성적으로 1~2등급. 나머지 80%의 사람들은 주인공이 아니죠. 그런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면 고등학교 때 공부 좀 열심히 하지라는 댓글이 달리는 거죠. 더 문제는 최저임금, 위험한 일자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 지금의 노동시장을 다 공급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이 사람들이 청년 문제 담론 주인공이 된 적은 없어요. 당연히 공부 못했으니까 그런 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공론화되고 주인공이 되어야 해요.

우리 사회의 드러나지 않는 주인공이란 말이 인상적이에요. 그런 주인공 중 하나가 배달노동자라고 생각하시나요?

대표적이죠. 아르바이트 노동자도 마찬가지고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선진적 기술혁신산업과 가장 최하층의 노동이 만난다는 점이에요. 아르바이트 시장, 플랫폼 시장은 실업자의 노동이자 잉여시간의 노동을 조직해요. 20대 청년들도 실업인 상태에서 취준생으로 자기 생존을 위해 일하고 있죠. 플랫폼 노동은 나머지 시간조차 자본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시간으로 투자하라고 강요하고 있어요. 자본이 모든 시간을 장악하는 거예요. 시간 장악, 이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곧 위험한 노동이자, 과로 노동이기 때문이에요.”

최근 고 김용균 님 사건부터 산업체 파견형 현장 실습문제까지 소위 젊은 노동자들의 문제가 이슈인데요. 계속 잇따르는 청년 노동자의 사고를 볼 때 특히 공감되는 부분이 있나요.

한국 노동시장 자체가 왜곡되어 있어요. 사람이 매일 죽어 나가는 구조를 계속 유지하죠. 그 문제를 청년 문제로만 접근하면 답이 없어요. 청년이 문화적, 지식 권력에서 약자이기도 하지만, 원래 노동시장 자체가 최악인 게 근본적 원인이죠.

그걸 바꾸기 위해서 저는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모든 담론이 일자리를 달라는 거죠. 사실 이게 우리의 구호가 되어야 하나 싶어요. 핵심은 사회안전망이죠. 여기서 계급 문제가 발생해요. 노동자들이 나쁜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으려면 생계비가 필요하죠. 고시 공부, 해외 유학, 대학원까지 약 10년간의 취업 기간을 견딜 수 있는 노동 상품과 당장 최저임금 일자리라도 가야 하는 노동 상품은 거부권이 완전히 다르죠. 지금까진 가족들이 그 부담을 졌어요. 하지만 이제 사회가 해야죠. 고용으로만 풀려는 것은 답이 없어요. 임금만을 소득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렇다면 청년 노동자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적 조건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노동자의 권리는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핵심은 노동과정에서의 권한이에요. 그걸 쟁취하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야 하죠. 작업중지권조차도 소극적이라고 봐요. 노동과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작업중지권은 사후적일 수밖에 없죠. 예를 들어 빙판길이 얼었다고 하면 위험을 겪을 수 있는 노동자들 모두 일하지 않는 것. 배달에 적합한 오토바이 기종이 있다면 교체하는 것. 배달 시간이 너무 촉박하면 안전하게 바꾸는 것. 자본이 정한 30분 배달제가 대표적이죠. 지금까지는 임금을 많이 받기 위해 노동 강도를 높여왔다면, 이제는 노동과정을 조직하는 권리를 쟁취해야 해요.

지금까지 배달노동자는 100원이라도 더 받는 곳으로 이동했어요. 그분들에게 이런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이동하지 말고 모든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자고요. 라이더유니온으로 오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올해 51일 노동절에 국회에서 청와대까지 오토바이 행진을 할 예정이에요. 트럭을 한 대 불러 공연도 하고 그 뒤를 오토바이가 따라가는 거예요. 그 행진에도 꼭 함께 해주시길 바랄게요.”

 

 

 

특집3. 견디는 사람의 얼굴을 보라-산재 유가족들의 활동에 함께 하자 / 2019.04

[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③]

 

 

 

 

견디는 사람의 얼굴을 보라

-산재 유가족들의 활동에 함께 하자 

 

 

 

 

최민 / 상임활동가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빅터 프랭클은 인간은 이성으로 사유하는 존재이기 이전에 먼저 고통 받는 존재이며, 그것이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하는 더 중요한 측면이라는 점에서 호모 파티엔스(고통 받는 인간)라는 말을 제안했다고 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빅터 프랭클의 논의를 이어, 인간이 단순히 고통을 받는 위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당해내고 견뎌내며, 그 점이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질문한다.¹ 고통을 받으면서 인생의 비참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고통을 견디면서 인간임을 증명해내는 사람들이 견디는 사람이다. 견디는 사람이 보여주는 것은 인생의 비참, 삶의 비극, 개인이 어찌하기 어려운 구조의 폭력이지만, 동시에 비극을 넘어선 삶 그 자체의 숭고함, 폭력 너머 새로운 구조에의 꿈이기도 하다.

 


아픔을 함께 견디는 산재 유가족들

최근 모여서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산재 유가족을 보면서 '견디는 사람'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는 모습은, 둥그렇게 둘러서서 어깨를 옹송그리고 남극의 겨울을 버티는 펭귄들을 떠올리게 한다. 유가족은 무엇보다 함께 모여 아픔을 '견디는' 중이다.
 
"세월호 예은 아빠 유경근씨가 민호 1주기 때 왔어요. '많이 아프지? 많이 아플 거야.' 이 말 한마디 해주는데, 그게 저한테는 너무 큰 위로가 됐어요." - 2017.11. 현장실습 도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민호 님의 아버지 이상영씨 


"씩씩한 얼굴로 외출을 해도 당신이 지금 어떤지 안다라고 누군가가 위로를 해줘도 '대체 뭘 알아?'라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와서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담당 변호사 외의 사람에게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 너무 기뻤습니다." - 일본 과로사 유가족 모임 ㅇㅋㅁㅌ
 
하지만 가족들이 함께 모여 견디는 것은 단순히 가족을 잃은 '슬픔'만은 아니다. 일하다 발생한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 탓이 아닌 구조의 문제다. 제대로 된 안전교육도 받지 못하고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 부주의 탓이 아니다.

근로기준법 상 노동시간 관련 조항이 모두 적용 제외되어, 일주일에 80시간 근무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서, 장시간 일하다 숨진 60대 학교 경비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 탓이 아니다. 일터에서 폭력과 폭언을 당하고, 지속적인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의 탓이 아니다. 

 


울분을 함께 견디는 산재 유가족들 


하지만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죽음은 쉽게 '동정'의 대상이 되거나, '불운'의 상징이 되고, 결국 개인의 문제로 돌아간다. 심지어 남겨진 가족들은 '왜 그런 험한 일을 시켜서',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지 몰랐냐?', '평소에 건강 좀 잘 챙겨주지 그랬냐'와 같은 비난에 부닥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산재 유가족들은 거대한 울분에 휩싸이게 된다. 일하다가 생긴 사고인데 왜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가? 일하다 죽은 것도 억울한데 왜 우리가 숨을 죽이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가?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일하다 죽어갔다는데, 왜 세상은 아무 일 없는 듯 돌아가는가?

최근 정신보건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울분'은 분노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라고 한다. 울분은 '이런 처사는 부당하다'는 생각이 지속되면서 감정적 고통이 격화된 상태라 공정성이나 정의에 대한 감각과 뗄 수 없다고 한다. '세상은 공정해야 한다'는 기대와 '실제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는 경험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² 산재유가족의 고통은 여기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제 아들은 현장실습으로 나간 업체에서 일하다 자살했습니다. 전공과도 맞지 않는 실습처였고, 학교에서 체결했다는 표준계약서에는 엉뚱한 사람의 사인이 들어 있을 정도로 엉망인 채 나간 실습이었는데 학교에서는 끝내 사과 한마디가 없었어요." - 직업계고 현장실습 피해가족모임 김용만 씨 


"(산재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유가족들에게 있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회사가 자료를 다 가지고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뿐이에요. 자료를 요청할 때 우울증이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이지 회사랑은 관계없다고 얘기하기까지 했어요."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장향미씨

 


현실을 바꾸려 손을 잡는 산재 유가족들 


이렇게 고통을 함께 견디고, 울분을 함께 견디던 유가족들은 끝내 울화통 터지는 현실을 함께 바꿔보기로 결심하기도 한다. 유가족들이 피해자로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가는 주체로 나서는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낯설지 않다. 가까이에는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물으며 싸워 온 세월호 유가족이 있다. 독재 정권 시절 사망한 열사들의 가족들이 결성해 민주화운동에 함께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도 있다.

일본에서는 좀 더 특수한 산재 유가족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 모임이 있다. 공식 명칭은 '전국과로사를생각하는가족회'이다. 약 300여 명의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이 가입된 이 모임은 1991년 결성되어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과로사·과로자살을 낳은 구조적 원인에 대해 학습하고, 과로사·과로자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끊임없이 환기해, 결국 2014년 '과로사 등 방지대책 추진법'(과로사 방지법)의 제정을 이끌어냈다.

한국에서도 2018년 반올림이 10년 넘는 싸움 끝에 삼성과의 합의에 도달하고, 김용균씨의 어머니가 나서 산업안전보건법을 고치는 모습을 보면서 산재 유가족들도 힘을 내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조금씩 모임을 이어 가던 '한국 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직업계고현장실습희생자가족모임', '재난· 참사가족모임', '산재피해자및가족모임' 등 다양한 형태의 모임들이 활동의 싹을 틔우고 있다.

한 해에 2천여 명이 산재로 사망하는 현실에 비추어 이런 모임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산재 사망자의 1차 가족만 해도 한 해에 8천~1만 명이 발생하고 있다. 홀로, 각개로 견디고 견디던 그들이 이제 함께 세상을 바꾸자고 손을 잡은 것이다.


"제 남편의 자살은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유족모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비록 승소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남편과 같은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고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다른 유족들을 보니 '그래! 이들과 함께라면 끝까지 싸워보자!'란 생각이 들었고, 이젠 남편 산재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닌 일본사회에 과로사와 과로자살문제를 없애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일본 과로자살 유가족. ㅅㅇㄹㅋ


견디는 사람의 얼굴을 보라. 거기에는 인생의 비참, 삶의 비극, 구조의 폭력이 있지만, 동시에 비참함을 견디는 인간의 숭고함이 있고, 비극에도 다시 이어지는 인생의 이야기가 있고, 다른 구조, 다른 삶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의 얼굴이 있다.

한국에서 이제 본격화되는 산재 유가족들의 활동에 함께 하자.

 

 


각주1) 신형철, '호모 파티엔스'에게 바치는 경의, 권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해설 259면.
각주2) 박권일, 한국인의 대표감정, 한겨레신문 칼럼, 2019.3.8
*일본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 구술은 모두 <<과로자살 사례 연구>>보고서에 실린 「과로자살 이후 남겨진 유가족들의 이야기」(강민정, 2018)에서 인용.

 

 

 

 

 

특집2. "형의 이름을 밝히는 것, 그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 2019.04

[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

 

 

 

 

"형의 이름을 밝히는 것, 그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나래 / 상임활동가

 

 

 

 

사랑했던 이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건 어떤 무게일까.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다. 2017년 4월 비상식적인 장시간 노동과 비정규직 스태프 해고 문제로 괴로워한 형의 이름이 새겨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동생 이한솔씨를 지난 3월 30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tvN의 <혼술남녀> 조연출을 맡았던 고 이한빛 PD의 죽음은 감춰져 있던 방송업계의 장시간 노동, 비정규직 문제 등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사회적 관심과 응원,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 속에서 CJ E&M에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던 유족들은 마침내 회사의 공식 사과를 받았다.

재발방지 대책 마련의 일환으로 CJ E&M의 출연기금, 유족 기부금, 시민들의 성금이 모여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한 줄기의 빛'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2018년 1월 24일 설립됐다. 이후 여러 사건이 있었고 1년이 지났다. 그에게 현재 센터의 주요 사업과 활동에 관해 물었다.

"혼술남녀 사건 이후로 대책위 활동을 하면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센터)까지 이어온 운동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방송업계에는 다양한 문제가 있는데, 그걸 해결하기 위한 주된 사업이 바로 'Drama Safe 캠페인'입니다.

제작 가이드 라인은 캠페인 차원에서 나온 거고 노동법 강연, 쉼터 공간 마련 활동을 병행해서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현장에서 노동시간이 살인적이란 건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안 지켜지는 것도 있고, 아예 사각지대 영역도 있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상식적 노동환경으로 바뀔 수 있도록 다방면의 활동을 이어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까지 드라마 제작 개선활동 TF를 구성해서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활동이 한 축으로 있었죠. 또 다른 하나는 제보센터를 운영해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노조와 대응하는 건데요. 심각한 현장은 건별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센터는 디지털미디어시티역 근처에 있는데, 역주변엔 방송국이 참 많다. CJ E&M은 물론이고 MBC 본사, SBS 프리즘타워, KBS 미디어센터, YTN 본사 뉴스퀘어, JTBC 본사뿐만 아니라 IT 기업도 상당수다. 방송업계 노동자들이 하루의 상당 부분을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당연히 센터는 현장의 목소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홈페이지 익명 게시판, 온라인 채팅 등으로 제보가 들어온다. 다들 흩어져서 일하기도 하고 아직 자신을 드러내고 문제를 밝히기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있다. 지금도 방송업계는 장시간 노동이 심각하다. 다른 문제도 상당하지만, 하루 21시간씩 일하는 문제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다른 유형의 제보가 들어오기엔 갈 길이 멀다.

"작년만 하더라도 33건의 제보가 들어왔어요. 다 다른 드라마였어요. 제보가 안 들어오는 드라마도 있을 거에요. 웹드라마를 제외한 수치죠. 웹드라마도 다른 차원으로 심각한데요. 주로 들어오는 건 KMS(KBS, MBC, SBS), CJ E&M, JTBC 쪽으로 들어옵니다. 종편 합쳐 1년에 드라마가 백 건 정도 제작돼요. 그렇기 때문에 현장을 전수 조사하면 2건 중 1건은 노동시간 위반으로 걸린다고 예상해요."

고 이한빛 PD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고인의 죽음을 '평소 근무태도가 불량하고 나약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던 CJ E&M측도 유가족과 연대 단위의 대응과 지지로 결국 자사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관행적인 제작시스템을 선진화하겠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고인의 죽음은 명백히 개인의 죽음이 아닌 사회적·구조적 문제로 인한 것임을 주장했고 회사도 이를 결국 인정했다. 절대 쉽지 않은 싸움이었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그였다.

"응원을 많이 받아요. 그럴 때 제일 보람찹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그럴 때마다 건건이 기쁘죠. 형의 이름을 걸고 하는 활동이니깐요. 최대한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응원을 들을 때 기뻐요."

유가족은 관련자를 처벌하기보다 방송사에서 책임을 지고, 형의 죽음 이후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책이라 생각하고 노력해왔다. 그에게 센터 설립을 결정하기까지 유가족으로서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때와 비교해 지금은 질감과 온도가 좀 다른데요. 형은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고, 그와 더불어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어요. CJ E&M 측이 정말 밉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회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드라마 산업 전체와 묶여있는 것이기 때문에 형의 이름을 잘 간직하고, 기억하고 추모하는 차원에서 형이 바라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초기 협상 국면에서 처벌 같은 건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대신 CJ E&M이 선도적으로 드라마 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역할을 하라고 요구했고요. 부담감은 있었지만 해야 할 일은 명확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진 않았어요. 위로금을 받아봐야 마음이 쓰여서 쓸 수도 없었을 거고요. 센터에 사용하도록 하는 게 맞았던 거죠."
 
며칠 걸러 노동자의 자살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하지만 소식을 접한 이들의 눈총은 따가울 때가 많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둬야 했지 않느냐는 시선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있다. 유가족으로서 이런 사람들의 시선과 인식이 어떻게 다가올까.

"사회적 타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은 안타깝죠. 사회적 타살, 노동에 대한 관점이 아직 시대가 요구하는 감수성을 못 따라오는 것 같기도 해요. 과거 산업화시대 유산이 지금의 수많은, 특히 젊은 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그냥 시키는 대로 일하라는 게 익숙했던 사회가 이제는 새로운 감수성을 받아들여야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요새 위로와 지지가 많아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특히 젊은 층의 사람들은 어떤 문제인지 잘 알기 때문에요."

작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을 계기로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개정 됐고, 한편에선 산재, 재난 유가족들이 모여 직접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최근엔 노동자 죽게 한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자리에 함께하기도 했다. 이처럼 단순히 피해자의 자리가 아니라 문제를 드러내고, 변화를 직접 만들어가기 시작한 유가족들의 모임 구성과 활동에 대해 물었다.

"유가족들의 경우 비슷한 입장일 것 같아요. 삶의 선택지가 다양하겠지만 사실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유가족은 삶 자체가 온전하게 살아가지 못해요. 아마 유가족 모임을 만드신 분들도 당연하단 생각을 갖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가 떳떳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말이에요. 저도 그랬고요. 사회가 유가족을 존중해주고 함께 모여 활동해나가길 바랍니다.

그 활동의 의미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더불어 방송업계에 맞게 노동자에게 필요한 권리를 요구하려면, 모여서 문제를 토로하고 그것들을 이슈화시킬 수 있는 응집력과 조직들이 더 필요해요. 제작사는 거대 제작사까지 더해서 더 뭉치고 강해지죠.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비정규직, 프리랜서 등 다 흩어져 있어요. 조금은 어려워도 일터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모여서 함께 해결해나가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특집1. 산재 유가족, 그들의 못다한 이야기 / 2019.04

[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①]

 

 

 

 

산재 유가족, 그들의 못다 한 이야기 

 

 

 

 

정리 선전위원회

 

 

 

 

하루 5~6명의 노동자가 죽는 나라. 감춰지거나 혹은 밝힐 수 없는 노동자들의 죽음은 훨씬 많을 거라 짐작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신년사에서 안전, 특히 산업재해 예방에 정부가 정책 역량을 집중할 계획임을 거듭 강조했다. 이미 2022년까지 산재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하며 자살예방, 교통안전, 산업안전 등 3대 분야를 국민생명 의제로 설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일 노동자의 사망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한 시인은 얘기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한 사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 그만큼 사회안전망은 허술하고, 노동자의 건강권은 침해당하기 일쑤다.

 

일하다 세상을 떠난 노동자의 이야기는 주목받지 못한다. 더군다나 유가족들의 존재는 더욱 흐려진다. 그러나 여기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높여 사회를 바꾸기 위한 행동을 시작한 유가족들이 있다. 지난 3월 17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3명의 유가족과 함께 가슴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부터 최근 유가족 모임을 만들기까지의 경과를 이야기 나눴다.

- 대담 참여 유가족 : 장향미 님(ST유니타스 고 장민순 씨 유가족), 김미숙 님(태안화력 고 김용균 씨 유가족), 김용만 님(군포 토다이 현장실습생 고 김동균 씨 유가족)

  • 진행: 이나래 (상임활동가)
  • 기록: 박기형 (상임활동가)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용만 “제 아들 동균이가 한국 토다이 분당점에서 일하다가 뛰쳐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저 혼자 3~4개월 정도 힘들게 싸웠죠. 시민단체도 만나고, 전교조나 민주노총과 힘을 합쳐서 매주 수요일마다 광장에 모여서 집회를 6개월 정도 했어요. 1인 시위도 회사 앞에서 했죠. 1년 10개월가량 진행했습니다. 제대로 진상 규명 되지 못했어요. 사과 한마디 받아본 적도 없어요. 사측과는 협의가 돼서 끝났지만, 과제가 남았죠. 현장실습생 홍수현 양, 이민호 군 등이요. 그때 싸웠을 때 좀 더 강력하게 밀고 나갈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제 아들은 인터넷 쇼핑몰을 전공했어요. 자격증과 특허 5개씩 땄죠. 학교는 실적 때문에 전공이 다른 곳으로 내보냈어요. 회사는 인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겠죠. 실습 전에 학교 선생님과 상담했는데 대기업이라 대우가 좋을 것이라고 했데요. 또 선생님은 교장·교감의 압박을 받기도 했겠죠.”

 

김미숙 “용균이도 학교에서 견학 가면 전공이나 원하는 것과 맞지도 않고 현장 상태가 안전하지 않다고 했는데, 피해서 간 게 태안화력발전소였어요. 교수들은 취업률을 목표로 여기저기 알선해줬죠. 사실 전 안전하지 않다는 걸 느끼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에 나보다는 낫겠지 하고 보냈어요. 취업하는 것 때문에 걱정도 되고, 그런 상태에서 애가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상태가 됐죠. 동료들도 위험 취업하더라도 취업 하기 힘드니깐 여기서 버티다 경력 쌓아 이직해야지 생각했을 텐데 결국 다치게 되죠. 30대가 없고 아주 많거나 어리거나, 비슷한 또래들 많았다고 했어요. 자기가 위험한지 모르고 일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죠. 그냥 여기는 당연히 그렇게 일하는 곳인가 보다 생각했던 거예요.”

 

장향미 “동생은 웹디자이너였어요, 공단기, 영단기 등 상품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회사였어요. 회사에 다닌 지 2년 8개월 정도였고, 웹디자인 경력은 10년 정도 됐죠. 이 업종이 야근을 많이 해요. 그렇기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만을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죠.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새벽 3~4시까지 일을 했어요. 5일 중 3일은 야근이었죠. 포괄임금제여서 일한 만큼 제대로 돈도 못 받았어요. 일하면서 건강 상태가 나빠졌어요. 불면증, 스트레스로 밥을 못 먹어서 살이 많이 빠졌죠. 동생이 죽은 게 작년 1월이었는데 2017년도 여름부터 휴직하고 싶다고 신청했더라고요. 그런데 두 번인가 반려가 됐고, 마지막으로 동생이 퇴사를 할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해서 그때서야 한 달 휴직을 받았어요. 일로 괴롭힘을 당한 거죠. 일을 안 해야 하는데, ‘못 해’라는 말이 안 나왔고 동생 입장에서는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시야가 좁아져요. 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 거죠.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가 안 되는 거예요.”

 

 

산재 유가족에게 사건 발생 이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걸로 예상돼요. 실제 가족의 죽음 이후 가장 어려우셨던 점이 무엇이었나요?

 

장향미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요.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유가족들에게 있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책임은 회사에 있는데 회사가 아니라 유가족이 입증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회사가 자료를 다 가지고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뿐이에요. 자료를 요청할 때 우울증이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이지 회사랑은 관계없다고 얘기하기까지 했어요.”

 

김용만 “저희도 그랬습니다. 경찰이 우울증이 있는지 의료기록을 확인해오라고 했어요.”

 

김미숙 “여기 회사도 용균이 잘못으로 죽었다고 말했어요. 가지 말라는 곳 갔고 하지 말라는 것 해서 죽은 거라고요. 그런데 회사 동료들은 이상 신호가 발생하면 무조건 고치러 가야 한다고 말했어요. 얘길 듣고 회사 사람들이 용균이 잘못으로 돌리려고 하나보다 판단했죠. 사회 시스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에 판단이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직접 일하는 장소도 가봤죠. 현장 상태가 너무 열악했어요. 탈의실부터 모든 경로 다 가봤죠. 회사는 부검 관련해서도 술이나 약물 등 주장을 했어요. 회사가 개인의 문제로 돌리려고 했던 거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기 계신 분들의 경우 대책위원회도 꾸려지고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등이 함께 힘을 모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것들이 도움이 되었나요?

김미숙 “힘 있게 갈 수 있었던 점이요. 저 혼자만이 아니라 100개 넘는 단체가 함께 했어요. 사회 전체의 문제, 비정규직과 안전 문제에 대해 발언할 때마다 도와달라고 호소했죠. 사실 한 집 건너 한집이 비정규직이잖아요. 연대할 수 있었기 때문에 힘 있게 할 수 있었어요.”

 

김용만 “혼자서 시작했어요. 여기저기 찾아다녔죠. 가정이나 개인의 잘못이라고 하는데, 증거를 찾아서 입증해야겠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회사에서 동료들 입단속을 시켰더라고요. 6~7월까지 증거 수집하러 혼자 다녔어요. 언론에 알리려고 했는데 자살 사건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기피하더라고요. 조그맣게 대책위가 생기면서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내가 죽더라도 이거는 해야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서 한 사람의 목숨이 아니라 가정과 다른 사람들의 삶이 파괴됐어요.”

 

 

그렇다면 산재 유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정부와 사회의 지원은 무엇이라고 보세요?

 

장향미 “산재 신청의 문턱이 높아요. 입증자료 모으는 것부터가 힘들죠. 회사가 순순히 내주지 않거든요. 저희도 법원에 증거보존신청, 판결까지 받아서 받아냈어요. 그런데도 회사가 불성실하게 자료를 줬죠. 법적 강제력이 없어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거죠. 어떻게든 은폐시키려고 해요. 법적 강제력 없는 상황에서 자료를 확보하는 싸움이 불가능합니다. 개인 대 조직의 싸움이기 때문이죠. 대책위와 함께할 수 있어서 가능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유가족이 그렇게 못하기 때문에 포기해요. 그런데 자료를 모아도 문제에요. 추가 자료요청, 진술요청, 자료보관 등, 산재 판결이 날 때까지 죽음을 안고 있어야 해요. 경제적 문제를 떠나서 이게 끝나지 않으면 일상으로 돌아가지를 못해요. 오래 걸리는 산재승인 기간문제도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산재인정 여부나 개인보상 차원의 문제로 여겨지고, 그러다 돈 때문에 저러는 거 아니냐는 유가족에 대한 비난이 가해지기도 해요.”

 

김미숙 “서로가 자책하게 돼요.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는데, 거기만 안 보내면 되었는데, 그만두라고 왜 말하지 못했을까, 했는데도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여러 생각이 들어요. 치유는 그냥 되지 않아요. 법 제도가 바뀌고 개선되는 상황을 봐야 치유가 되는 거예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죽은 사람이 헛되이 죽은 게 아니라는 걸 입증해야죠.”

 

김용만 “죽을 때까지는 고통 속에서 가슴 아파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변화 없이는 그런 상황이 반복될 거잖아요. 그걸 지켜보기 힘들어요. 나 혼자보다는 같이 뭉쳐서 해결해나가고 싶어요. 사실 삶 자체도 피폐해졌습니다. 저도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자요. 1년 동안 악몽에 시달렸어요.”

 

 

유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다시는 이 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어떤 게 필요할까요?

 

장향미 “정부도 문제의식을 점차 가지게 되는 중인 것 같아요. 사실 개인의 문제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약한 사람만 있는 걸까요? 사회 구조적 문제죠. 자살자 한 명으로 인해서 영향을 받는 사람은 평균 8명 정도 될 거예요. 그에 따른 여파가 있을 거란 거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케어를 해줘야 해요. 하지만 현재로는 없죠. 지자체에서는 연락을 취하고 매뉴얼을 갖추려고 하는 것 같은데 초반이라 배려 없이 기계적이고 유가족 입장에 와 닿지 않아요.”

 

김미숙 “사람 목숨값이 제일 싼 거로 취급되잖아요. 영국처럼 강력하게 기업을 처벌하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용만 “교육부의 개악 안으로 그동안 요구해온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 노력이 물거품이 됐어요. 다시 요구해야 합니다. 사실 공공기관의 정책을 신뢰하기 어려워요. 유가족, 시민단체, 전문가 등의 참여하에 바꿔나가야 해요.”

 

 

장향미 님은 과로사·자살 유가족 모임에 참여하고 계시고, 다른 두 분도 얼마 전 출범한 산업재해, 현장실습 유가족 모임에 함께 하고 계시는데요.

 

장향미 “일본 과로사, 과로자살 모임에 참여했던 연구자분이 주도해서 유가족들과 연락이 닿게 되어 모임이 결성됐어요.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회사와 어떻게 싸워나가야 하는지 배워나가 다른 가족들은 시행착오를 안 겪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유가족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에요. 일련의 절차와 노하우, 쟁점 등을 다룰 생각입니다. 누구도 내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죠. 일본은 유가족 모임이 지속되면서 과로사 방지법까지 만들어 냈어요. 향후엔 이를 한국에서도 실현해보고 싶은 바람이에요.”

 

김미숙 “힘을 모아서 싸워나가야 해요. 법제도를 개선해나가는 것조차 유가족들이 나서지 않고서는 못해요.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한테 닥치지 않을 것이라 자기 문제가 아닐 것이라 생각하기 쉬워요. 유가족들이 뭉친다면 사회적 목소리도 커질 거라 생각해요.”

 

김용만 “들불처럼 번질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 산재사망 유가족 모임이 서로 연대하지 않으면 사회를 바꾸기 쉽지 않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 전해졌으면 하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미숙 “인식의 변화, 법제도 변화, 노동과 안전에 대한 생각이 전환되어야 해요. 사회가 안전하게 상생하여 삶이 윤택해지려면 우리가 나서야 해요. 의지가 있다고 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있고, 기업이나 정치인들은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잖아요.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예요.”

 

장향미 “정부도 기업도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해서 경제가 안 좋아진다고 하는데요. 그런 논리면 소위 선진국들은 다 경제위기에 처해야겠죠.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려고 하는 건 기업의 입장을 반영하는 거예요. 출산율이 낮아져서 위기라고 하는데 안전하지 않은 나라에서 누가 아이를 낳고 싶겠어요. 자살률, 산재사망률 높은 이유가 뭔가요. 해결 방법을 1차원적으로 접근하면 안 돼요.”

 

김용만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유가족들이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싸워나간 것처럼 같이 일어설 수 있어야 해요. 생업에 쫓기다 보니 힘들겠지만, 당사자들이 힘들더라도 서로 다독여주며, 서로 연락을 해서 뭉치고 연대를 해서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노동자-기업이 상생해서 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해요.”

 

 

 

 

 

특집3. 지금 당장, 성평등 노동을 외치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이을 활동가 인터뷰 / 2019.03

[특집 지워지지 않는 존재, 여성 노동자] 





지금 당장, 성평등 노동을 외치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이을 활동가 인터뷰





선전위원회  





올해로 111주년을 맞이한 날이 있다. 바로 세계 여성의 날이다. 빵과 장미가 상징이 되어 장미를 여성에게 주며 기념하는 날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19년에도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장밋빛과 거리가 멀다. 190838일 미국 여성 노동자 15천 여명이 외친 구호는 오늘과 맞닿아 있다. 당시 여성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심지어 18시간 동안 일해야 했고 그들은 외쳤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이 아니라 휴식이다!”, “우리는 빵(임금)과 장미(권리)를 원한다!” 


한국에서도 올해 38일 제33시 스탑 조기퇴근 시위가 열린다. 채용 성차별, 최저임금 개악, 성차별 조직문화를 끝장내기 위해 바쁘게 준비하고 있는 한국여성노동자회 사무실을 지난 228일에 방문해 이을 활동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요즘 집회 준비하시느라 많이 바쁘시죠. 한국여성노동자회가 1987년에 창립되고 지금까지 활발히 활동 중인데요.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성평등 노동이 주요 슬로건이에요. 인구의 절반, 노동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존재함에도, 여성이 어떻게 일 하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잘안 드러나고 있다는 걸 뜻해요. 법이나 정책을 살펴보면 남성 중심적이죠. 거기에 대해서 여성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분명한 인식 속에서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울려 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동 문제에서도 여성 노동은 부차적이거든요. 노동 안에서 성평등해지는 것,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안전하게 일 하는 것이 성평등이라는 키워드 안에 담겨 있어요. 최근 주목하고 있는 건 성별임금격차 문제예요. 임금으로 차별 받는 것 안에 무수히 많은 것들이 포함돼요. 임금 차별은 성차별의 총합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해서 고용상 차별 받는 문제도 시정되어야 하고, 문화가 바뀌어야 해요. 그래야 성별임금격차가 해소 될 수 있는거죠.” 



채용 성차별은 노동권, 시민권을 침해받는 엄연한 범죄 행위에요. ‘여자보다 남자가 일 잘하지’, ‘여자는 임신, 출산 때문에 생산력이 떨어져라는 인식 자체가 심각한 시민권 침해인거죠. 채용을 안 하는 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여성들이 나쁜 일자리로 몰리고, 빈곤에 빠지고, 삶을 영위하기 힘들게 만들어요. 이뿐인가요. 승진, 배치, 정규직전환 나중에는 퇴직까지 다 이어져요.” 



얘기하신 채용 성차별 문제는 그간 여러 활동의 고민이 묻어나는 슬로건 같네요.


실제 채용 성차별 문제는 심각한 문제예요. 남녀고용평등법이 생긴지 30년이 지났어요. 71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되어있지만, 처벌규정은 벌금 500만원에 불과하죠. 사실 유명무실해요. 관행이 계속 있어요. 과거 90년대 채용 공고에 아예 여성 키, 몸무게, 외모 준수를 명시했죠. 여성운동 진영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성과가 있었어요. 그런 활동이 있은 후 최근 점수 조작 사건이 확인된 거죠. 다시 재점화가 된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사이 공백이 길기도 했고, 여성 스스로도 채용 과정에서 임신, 출산 계획, 남자친구 여부 묻는 걸 당연시 생각하기도 하죠. 기분은 나쁜데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고민스럽고, 이런 걸 묻는 게 법을 어기는 거다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아요.” 


제일 기억에 남는 사례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면접을 보는데 우회적으로 결혼을 안했냐는 질문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솔직하게 이혼했다고 대답했더니 갑자기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서 이혼했다는 건 성격상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하더니 결국 채용이 안 된 거죠. 다른 한 경우는 디자이너 면접을 보러갔는데 쓰리 사이즈(가슴, 허리, 엉덩이)를 물어보면서 피팅 모델해야하니깐 사이즈를 물어본다는 거예요. 사실 시민사회진영에서도 결남출(결혼, 남자친구, 출산) 질문이 횡횡해요. 지역운동과 결합되어 있는 한 풀뿌리운동 단체의 채용과정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면접관이 나름 배려 차원에서 임신 계획을 물어봤다고 하더라고요. 진짜로 여성 노동자를 배려하려고 했다면, 육아휴직과 출산휴가문제는 뽑고 나서 협의하면 될 문제라고 생각해요. 면접 자리에서 물어보는 건 그 자체가 당사자에게 부담이고, 위계적인 불법 질문입니다.” 



그런 상황과 문제가 여성 스스로 자기 검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애초에 일자리를 구할 때 나에게 가능한 것들, 결혼과 임신, 육아 계획이 있다면 다니지 못할 환경이 갖춰진 곳은 애초에 선택조차 못하게 되죠. 그리고 그런 환경이 주어진 곳은 드물고요. 


여성들은 출산해서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 친구들만 봐도 그걸 많이 고려하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찾는 게 아니라, 근거리에 있는데, 사장이 눈치 안 주는 데, 근무시간이 유동적일 수 있는 데를 많이 찾죠. 이런 사회 전반적 분위기와 조건이 채용 성차별로 연결되는 거예요. 순응하는 질서가 있죠. 인터뷰한 사례 중 어떤 분은 커플링을 빼고 면접장소에 들어 간데요. 확실히 반지를 빼고 들어가면 결남출 질문을 덜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커플링 끼면 그거 보고 남자친구 있냐, 결혼 계획 있냐 묻고요. 실제 계획이 없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5년 안에 없다고 대답을 한다는 거죠. 당사자에겐 확실히 부담이에요.” 



순응, 자기검열, 타협 아닌 타협을 해서 직장에 들어가는 거네요. 남녀고용평등법이 30년 넘게 존재했는데, 사람들은 법 자체를 많이 모르는 것 같아요. 왜 이 법 자체가 주목을 받지 못했을까요?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요. 남녀고용평등법의 주무부처는 고용노동부예요.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성평등, 젠더 의식 자체가 없죠. 고용 평등에 관심이 없어요. 채용 성차별 문제도 2017년 한국가스안전공사 사건을 계기로 밝혀졌어요. 게다가 국민은행, 하나은행, 신한은행까지 금융권에서도요. 점수를 조작해서 합격했던 여성들을 떨어뜨렸죠. 매우 심각한 성차별 채용 비리 범죄죠. 하지만 작년에 국민은행은 채용 성차별 1심 판결에서 벌금 500만원을 받았어요. 500만원은 그런 대기업에는 껌값에 불과하죠. 500원 느낌 아닐까요? 그러니 기업은 위반해봤자 벌금 정도니 그냥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 뽑자는 태도를 갖기 쉬워요. 게다가 직권조사해서 증거를 잡지 않으면 밝히기 쉽지 않아요. 그러니 면접 2차까지 여성이 훨씬 많은데 3차 올라가면 확 줄어든 인원을 보고 여성들은 차별 받는 것 같다고 생각할 뿐이죠. 채용 성차별 문제가 어려운 지점이 그런 거에요. 거기에 취준생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얘기하기도 어렵죠.” 



여성들이 겪는 차별의 문제는 실제 존재하는 것인데도 정황으로만 취급되는 현실이네요. 한편에선 여성이 그 직무에 적합하지 않은 거 아니냐, 여성이라고 차별 받았다고 하는 거 억지 아니냐는 시선이 많은 것 같아요. 


맞아요. 그리고 여성 스스로도 알기 어려워요. 공채 시스템의 문제를 얘기하시는 분도 있어요. 걸러지는 시스템이죠. 사람들을 대거 모집해서 걸러요. 그런데 당사자들은 왜 떨어졌는지 모르죠. 그냥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힘들어하죠. 저희 대표의 딸과 친구들 이야기인데, 여자라서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그게 또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고,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그랬나 싶어 자존감이 막 떨어진다는 거예요. 정황만 있지 정확한 증거도 없고, 어떤 기준이 나한테 공개되는 것도 아니고, 채용 당사자들에게 밝혀지지 않죠. 그러니까 개별 여성들은 자기 탓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원형 탈모가 생기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이 많아요. 채용 성차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인거죠. 그렇기 때문에 고용노동부에 익명신고센터만 만드는 게 아니라, 채용과정에서부터 채용 성비를 공개하라, 왜 이 과정에서 떨어졌는지 밝히라고 요구했지만 먹히지 않았죠. 블라인드 면접이라고 하지만 최종으로 가면 얼굴 다 공개되고, 서류에도 군필, 미필 이런 거 아직도 체크하게 되어 있거든요. 거기에 해당 사항 없음으로 체크하면당연히 여성인 게 밝혀지죠.” 



채용 성차별뿐만 아니라 성별임금격차 해소도 중요한 요구인데요. 성별임금격차라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문제도 있다고 보여지네요.


 성별임금격차라는 한 키워드 속에 여성 노동의 다양한 의제가 담겨있어요. 여성의 임금이 저임금화되어 있고 소위 싸구려노동 취급을 받죠. 그래서 미투운동 이후 해외에선 페이미투운동이 일어났고요. 채용 성차별을 시작으로 안 좋은 일자리에 내몰리고, 경력단절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고용단절을 겪는 것, 고용단절이 되면서 질 나쁜 일자리로 더욱 고착화 되는거죠. 같은 일을 하면서 임금을 적게 주는 건 눈치 보이니깐 아예 여성의 일이라고 해서 떼어 버리는 것, 회사에서 승진하거나 경력이 올라갈 수 없게 단순한 업무로 임금을 낮게 처버리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젠더 관점에서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재해석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혹시 주목해야 한다고 보는 의제가 있으신가요?


여성 노동자 건강권 문제를 더 파고 들었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부터 그런 흐름이 있는 것 같긴 해요. 여성 노동자들이 많은 사업장, 직군, 직종에서 노동환경, 작업환경이 더 많이 얘기되면 좋겠어요. 그 안에서 신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 그리고 사회적 건강도 다뤄져야죠.” 


노동자 건강권 운동에서도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 고민이 많은데 그것 역시 남성의 얼굴을 띄지 않았나 싶어요. 많은 수의 여성들이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죠. 왜 여성들이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 하게 됐는지 얘기 되는 게 필요해요. 임신출산 문제, 육아 문제도 건강권과 연결되죠. 정말 많은 수의 여성들이 임신출산, 육아 문제로 해고 위협을 당하거나, 막상 들어가도 불이익을 당해요. 파리바게트 사례만 봐도 그렇거든요. 80% 넘게 여성이 있는데도 여성 생애주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요. 생리, 임신출산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도 말이죠. 생리 때 화장실에 못가고 일하다 질염에 걸린다던지, 임신을 해도 노동시간에 대한 고려가 인력 부족을 핑계로 전혀 안 되서 유산을 한다던지. 임신 했으니 차라리 그만둬라, 아니면 휴직해라. 당사자는 건강하게 일할 수 있고, 하고 싶은데 그런 게 전혀 안 되는 거죠. 그런 문제가 없도록 하는 활동이 필요해요.” 


작업중지권도 다뤄지는 게 필요해요. 독일은 작업거절권이라고 해서 법에 명시되어 있죠. 한국도 산업안전보건법에 있긴 하지만 협소하게 해석되고, 여성이 경험하는 위험까지 연결되진 못해요. 노동안전보건 운동에서도 작업중지권과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을 연결해 본 적이 없죠. 2차 가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작업중지권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피해자로만 머무는게 아니라 피해를 당한 노동자로서 취할 수 있는 권리들, 그 권리가 다각적으로 재해석 될 필요가 있어요.”






특집2. 여성 노동자의 재생산권을 보장하지 않는 산재보험제도 / 2019.03

[특집 지워지지 않는 존재여성 노동자 ] 





여성 노동자의 재생산권을 보장하지 않는 산재보험제도  





조애진 / 한노보연 회원, 법률사무소 시대 변호사 





지난 2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인구동향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98명으로 기록되었고, 이는 출생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라고 한다. 통상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가 채 한 명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론은 큰 일이 난 것처럼 출산율 수치를 보도했고, 인터넷 뉴스 댓글에는 결혼하지 않는 젊은이들, 출산하지 않는 여성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댓글이 심심찮게 달렸다.



과연 우리 사회는 여성의 재생산권을 얼마나 보장하고 있으며, 출산과 양육과정을 얼마나 두텁게 보호하고 있기에, 이같이 근거 없는 비난이 통용되는 것일까. 출산과 양육을 둘러싼 우리의 사회보장제도를 진지하게 들여다본다면, 가임기 여성의 출산파업에 대해 그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노동하는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수년에 걸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바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낸 요양급여 반려처분 취소소송이 그것이다. 제주의료원에 비슷한 시기에 입사하여 근무하다가 2009년경 임신한 여성 간호사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하였고, 다른 5명은 유산을 했다. 의료원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 간호사들은 임신 중 주·야간 교대로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임산부에게 치명적인 약물 등 유해한 작업환경에 노출되었음이 드러났다.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간호사들은 자녀의 질환이 업무와 관련되어 있음을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청구하였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및 그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업무상 재해란 근로자 본인의 부상·질병·장해·사망만을 의미하고, 자녀는 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요양급여 부지급 처분을 하였다. 간호사들은 공단에 심사청구를 하였지만 기각되었고, 처분결과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 1심에서 승소하였으나 2심에서 원심판결을 취소함에 따라 현재 대법원에 사건이 계류 중이다.



이 사건의 쟁점은 노동자가 임신 중 업무상 유해요인에 노출되어 태아의 건강이 손상됨으로 인해 아이가 선천성 질병을 가지고 태어난 경우, 이 아이의 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할 것인지, 산재보험급여의 수급권은 누구에게 귀속되는 것인지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1심 법원은 선천성 심장질환의 발병 원인과 메커니즘이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원고들이 제주의료원에서 임신 중에 근무하면서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 ·야간 교대근무, 임산부와 태아에게 유해한 약물 등과 같은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에 일정기간 지속적·복합적으로 노출된 후 원고들이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하였으므로, 이러한 선천성 심장질환의 발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넉넉히 추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항소심 법원은, 산재보험급여의 수급권자는 업무상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 본인에 한정되고 업무상 사유로 사망한 경우에는 그 유족이 된다는 점, 여성노동자에게 업무상 질병을 야기할 정도의 유해요인으로 태아에게 건강 손상이 발생한 것을 보험사고로 본다 하더라도, 출산 이후에는 보험급여 수급권의 주체를 출산한 자녀로 볼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여성노동자 본인이 급여수급권자가 될 수는 없다는 점, 여성노동자에게 출산한 자녀를 위한 보험급여수급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 자체만으로 임신한 여성노동자를 불리하게 차별하는 것으로서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거나 모성보호의무 및 사회보장·복지증진의무 등에 위배된다고 할 수도 없는 점, 출산으로 모체와 출산아가 분리된 이상 그 질병은 출산아가 지닌 것이므로 업무상 재해도 출산아에 대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태아의 건강손상에서 비롯한 선천성 질병을 가진 자녀의 출산은 여성노동자 본인의 신체 기능이나 노동능력 감소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점 등을 논거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말았다.



헌법상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사회보장의무·평등원칙 등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이 법률의 문언해석에만 천착하여 내린 항소심의 판단에 동의할 수 없다. 다만 항소심 역시 출산아에게 보험급여의 수급권이 있는지는 별론으로 하고라거나, “출산으로 모체와 출산아가 분리되는 이상 그 질병은 출산아가 지닌 것이므로 업무상재해도 출산아에 대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하는 등 모체의 업무와 태아의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출산아가 급여수급권자가될 수 있다는 취지를 설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현행법 해석상 원고인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급여수급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출산아에게는 그것이 인정된다는 취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판결이유에 명시함으로써, 판결 주문에서의 청구기각 여부와 무관하게 근로복지공단으로 하여금 재처분의 여지를 제공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편, 이 소송 중에 산재보험법 대상조항이 불완전·불충분하게 규정되어 헌법에 위배된다는 점을 들어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을 하거나, 헌법해석상 특정인에게 구체적인 기본권이 생겨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위의무 내지 보호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한데도 입법자가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라고 하여 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을 하는 방법도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항소심 법원의 판단은 입법권자의 광범위한 입법권을 침해하지 않으려는 권력분립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라기보다, 우리 사회가 여성노동자를 대하는 시선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인권위도 2심 판결의 위헌성을 지적하며, 지난 129일 대법원에 헌법이 규정하는 모성보호와 여성 근로의 특별보호, 국제인권기준, 산재보상보험법 제정 목적 등을 고려할 때, 임신한 여성노동자와 태아는 업무상 유해요소로부터 특별히 보호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오늘날 임신부터 출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양육의 과정이 더 이상 여성 또는 개인만의 문제로 치부될 수 없음에도, 여성 노동자의 출산을 사회연대적 관점으로 보지 않고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려는 경향은 쉽사리 변하지 않고 있다. 태아

의 건강손상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 이외에 모()와 자() 모두 현행 산재보험법으로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은 매우 부조리하다. 이는 그간의 노동시장이 남성 중심으로 조직되어 왔고, 산재보상제도 또한 남성의 노동을 중심으로 설계되었으며, 여성의 노동은 주변화 되고 소외되어 왔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행 산업안전보건제도 및 산재보상제도에서 여성노동자 특유의 임신·출산·육아·가사노동과 관련한 보호와 보장 방안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국가와 사회가 여성 노동자의 재생산권 보장 의무는 방기한 채 여성에게 재생산의무의 이행만을 강요해 왔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태아와 모성보호를 위한 산재보험법 개정논의가 시작되었고, 2018.5.3. 산재보험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발의되었다. 늦은 감이 없지는 않으나 여성 노동자의 재생산권보장을 위한 개정법률안의 조속한 통과를 바라는 동시에, 제주의료원 노동자들의 기나긴 법정투쟁이 헛되지 않도록 대법원이 전향적 판단을 내리길 기대한다.








특집1. 일하는 여성의 숨겨진 노동시간 / 2019.03

[특집 지워지지 않는 존재, 여성 노동자 ]





일하는 여성의 숨겨진 노동시간





나래 / 상임활동가





노동시간이 연일 이슈다. 작년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상한제부터 최근 탄력근로시간제 단위 기간 확대 합의까지 노동시간을 둘러싼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놓쳐지고 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 공정하게 주어진 것처럼 여겨지지만, 여성 노동자는 시간 빈곤을 경험한다.



사회는 여성에게 빚지고 있다


한 여성 노동자의 하루를 떠올려보자. A씨는 대형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한다. 새벽 6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씻고 아침밥상을 차린다. 아이를 씻겨 옷을 입히고 달래가며 밥을 먹인다. 그시간 동안 남편은 밥을 먹고 바로 출근길에 나선다. 설거짓거리가 쌓여있지만 치울 새가 없다. 본인 출근길에 늦지 않기 위해선 부지런히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직장으로 향한다. 출산 전까진 중소기업에서 기획 업무를 담당했지만, 출산 후 육아를 하며 몇 년 동안 공백이 생기니 재취업하기가 쉽지 않았다. 면접을 보러 가도 아이가 있단 사실을 안 면접관들은 A씨를 뽑아주지 않았다. 결국 집에서 멀지 않은, 아이의 등하교 시간에 맞는 대형마트 계산원에 지원했고 비슷한 상황과 조건에 처한 여성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일을 마친 A씨는 유치원에 들러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향한다. 아이를 씻기고 바로 저녁 준비를 한다. 아이와 함께 밥을 먹고 나선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개고 어질러진 집을 치운다. 중간중간 놀아달라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재우고 나서야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긴다. 봄이 돼서 친구들과 인근으로 나들이라도 가고 싶지만 언감생심이다. 11시가 다 되어가지만, 남편은 오늘도 자정이 가까이 돼서야 들어온다. 녹초가 된 남편과 반갑게 인사할 시간도 없이 A씨는 먼저 잠자리에 든다. 내일 또 고단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극적인 설정이 아니다. A씨처럼 여성은 직장과 가정에서 출·퇴근이 없이 가사노동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작년 12월에 발간한 시간 빈곤에 관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직장을 다니며 미취학 자녀를 돌보는 40대 기혼 여성이 가장 극심한 시간 빈곤(타임푸어)’에 시달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결혼했거나 돌볼 가족이 있는 경우, 다른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가 또는 자유시간이 더욱 부족한 것이다. 결국 가사 부담을 크게 지고 있는 여성이 남성보다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4년 기준 1일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남성이 53, 여성이 214분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4배 이상 가사노동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추정치 역시 가사노동 범주에 자녀 목욕, 음식 준비 등 단순노동만을 포함했을뿐 필요한 가계 경영, 가족 돌봄 시 수반되는 감정노동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가사노동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시각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여성은 이 복잡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지만, 그것은 성별분업이 굳어진 형태로 여성의 당연한 일로 취급될 뿐이다. 장시간 노동을 이야기할 때 정작 여성이 가사·돌봄 등 무급 노동을 전담하는 것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분명 존재하는 사실인데 이상하게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듯한 시간, 노동시간을 뒤집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여성에게 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심지어 저평가되거나 가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성 노동자의 과로사를 대하는 한국사회


시간 빈곤 문제와 연결해 함께 주목할 것이 있다. 바로 여성 노동자의 노동시간-장시간, 과로 문제다. 노동시간에 관해 이야기할 때 누구의 입장에서, 누구의 조건에서 살펴보느냐는 중요하다. 지금까지 노동시간에 대한 분석, 문제 제기, 대안 마련은 남성 중심으로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로사 인정 기준조차 여성의 돌봄노동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만 봐도 그러하다.



고용노동부는 과로로 인해 뇌심혈관계 질환이 발생한 것인지 판단하는 근거로 뇌심혈관질환업무상재해 인정기준을 두고 있다. 뇌심혈관질환은 과로를 상징하는 주요 질환 중 하나다. 정기준에 따르면 지난 4주간 매주 64시간 이상 또는 지난 12주간 매주 6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를 과로로 인정한다. 법정 노동시간을 주 52시간 상한제로 설정했음에도 여전히 60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것도 문제지만, 여성 노동자에게 있어 더 큰 문제는 직장을 벗어나 가정에서 행한 가사·돌봄노동 자체를 노동(시간)’으로 인정조차 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강조하는 ·가정 양립을 실현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에게 이 같은 과로사 인정기준은 해당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과로사라는 개념이 이슈 되기 전이었던 20132월 한 여군 중위가 임신 상태에서 과로하다 숨졌다. 유가족에 의하면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했고, 한 달 초과근무만 50~53시간에 달했다고 한다. 휴가 계획도 1개월 전에 올려야만 했다. 규정은 없었지만, 남성 중심적 군대에서 여군이 임신을 이유로 필요에 따라 자기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20171, 30대 여성 공무원이 정부세종청사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던 그는 한 주 평일 동안 밤 9시 전에 퇴근한 적이 없었고, 주말 오후엔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새벽 5시 청사에 출근해, 밀린 업무를 봤다. 계산해 본 그의 한 주 근무시간은 70시간이 넘었다. 이 기간에도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밥을 짓는 등 세 아이를 돌봐야만 했다.

죽지는 않더라도 죽을 만큼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너무나 많다. 자녀가 있는 한 여성 노동자는 점심시간을 포기한 지 오래다. 돌볼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업무 능력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밥 먹는 시간을 포기하고 점심시간 1시간조차 일하는 데 바친다. 자기 시간을 포기할 뿐만 아니라 노동강도를 높여 건강을 위협한다.



4년의 세월 차이가 나는 두 사례지만 여성 노동자로서 겪는 문제는 공통적이다. 여성은 과로의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휴가나 병가를 쓰기조차 어렵다. 자신보단 자녀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느라 얼마 없는 휴가도 거기에 몰아 쓰게 되고, 직장에서 평판을 위해 본인이 아픈 것은 도리어 참는다. 결국 여성 스스로 건강()을 포기하게 된다. 혹은 자녀가 없더라도 고용 유지, 진급 등을 위해 결혼, 출산을 포기하거나 미루기까지 한다. 자기 생애 결정권마저 침해당한다.



돌봄노동은 사적이고, 비공식적 시간으로 치부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1주일, 한 달, 1, 평생 일한 노동시간이 일터 위험에 노출된 시간을 계산할 때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위험에 노출된 시간이 적은 것처럼 보인다. 최근 얘기되고 있는 과로사,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문제의 경우에도 여성은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여성은 위험에 더욱 적게 노출되는 것처럼 취급된다. 주로 여성에 집중된 시간제 일자리, 단기 일자리가 갖는 효과가 그것이다. 유연근로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노동시간을 분절, 단절하기 때문에 위험의 연속성도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노동시간 단축이 모든 노동자에게 좋다는 것은 대명제다. 예를 들어, 노동시간이 줄어든다고 했을 때 여성에게 그 줄어든 노동시간이 어떤 시간으로 재구성될 것인가가 중요하다. 직장에서 보내는 노동시간이 줄어든 만큼 가사·돌봄시간이 더 증가한다면 그것이 정말 여성을 위한 것일까. 직장에서 과로하지 않는 대신 집에서 과로하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여성노동자, 모두를 위한 노동시간 단축은 무급으로 평가되는 여성의 직장 밖 노동시간을 제대로 인정받을 때, 시간의 주권자로서 여성이 자기 시간을 재구성할 수 있을 때만이 의미 있을 것이다.






특집3. 미완성의 존재로 여겨지는 청년 노동자 : 20대 청년 여성 김지안 씨 인터뷰 / 2019.02

[특집 청년 + 노동자, 다시 보기]

 

미완성의 존재로 여겨지는 청년 노동자 : 20대 청년 여성 김지안 씨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봄의 시작인 입춘이 얼마 전에 지났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새로운 절기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청년의 계절은 꽁꽁 얼어붙어 있다. 정부는 청년 고용 문제를 풀어내겠다며 나서고 있지만 정작 청년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청년 노동의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지난 130일 서울시청 인근 카페에서 20대 청년 여성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도입한 청년 일자리 사업에 직접 참여한 경험이 두 차례 있는 김지안씨를 만났다. 최근 일을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이직 예정 중이라 잠시 숨을 돌리는 중이라 했다.

 

  그동안 어떤 일을 해오셨나요?


중학교 때 생애 최초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전단요. 짬짬이 많이 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고속버스터미널 틈새라면에서 일했어요. 터미널이라 엄청 바빴죠. 그때 저의 아르바이트 선택 기준은 최저임금보다 높이 주는 곳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일이 많고, 바쁜 곳을 주로 가게 됐어요. 그다음엔 카페, 호프집도 갔어요. 이후엔 서울시 뉴딜 일자리 사업으로 한 비영리단체에서 1년 동안 일을 했고, 거길 그만두고 나선 출장 뷔페처럼 단기 인력 뽑아서 하루 일 하는 곳에 많이 갔죠. 그 중 기억에 남는 곳은 합정에 있는 이자카야인데, 거긴 아르바이트를 하루씩 고용하더라고요. 정말 이상한 시스템이었어요. 예를 들어 일하는 사람이 8명이면 2명만 원래 일하던 사람이고, 나머지는 매일 뽑아서 쓰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손님도 정신없고, 일하는 사람도 처음 와서 정신없고. 대충대충 날림으로 하게 되죠.”

 

  단기 일자리,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왔는데 그런 일자리에 대해 깨달은 점이 있을 것 같아요. 문제일 수도 있고, 주로 일하는 청년들이 어떤 피해를 보는지요.

 

위험해요. 출장 뷔페 경험을 떠올리자면, 거긴 음식이 새벽에 만들어지면 그 음식을 직접 벤에 싣고 같이 이동해요. 거기서 서빙 하는 거죠. 그일이 끝나면 잔반통을 갖고 가서 설거지까지 해요. 중간에 도망가는 사람이 많아서 설거지까지 하면 돈을 더 줘요. 몇 백 인분을 만드는 주방은 엄청 위험해요. 그런데 일하러 가면 바로 투입이에요.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서 미끄러진 적도 있어요. 주변에 큰 냄비, 큰불, 칼 이런 게 막 널려있는데 말이죠. 거기를 왔다 갔다 하는 것 자체가 위험인데 아무런 설명도 안 해주고, 가면 바로 일을 하는 게 위험 그 자체죠. 안전교육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자세한 교육도 없죠.”

 

  민간 기업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서울시 청년 혁신 일자리 사업으로도 일하신 경험이 있죠. 두 번 일자리 경험을 했는데 실제 청년고용 문제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고 보시나요?

 

지금 시스템은 한계가 많아요. 2015년에 청년 혁신 일자리 사업으로 비영리단체에서 일했을 때 딱 최저임금을 받았어요. 일당제라서 만약 연휴가 길거나 하면 그만큼 임금을 못 받았죠. 너무 힘들었어요. 그나마 생활임금제가 도입되면서 최저임금보단 높게 받아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해요. 모든 곳이 그런 건 아니지만 사업장의 대표자나 기존 직원이 봤을 때 소위 경력도 없는 애들이 돈을 많이 받는다는 생각을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많이 받는 것도 아니에요. 190만 원 후반대 정도를 받는셈이니까요. 표면적으로 보면 생활임금제니깐 열악한 곳보다 많이 받는 것처럼 여겨지죠. 적어도 ‘23개월동안은요. 전적인 보장은 아니어도 임시로 해결됐다고 여기는 거예요. 그러니 표면적으로 성과가 있어 보이죠. 문제는 내부에서 당사자가 위치상 겪는 감정, 고용에서 오는 불안정성이에요. 그리고 주어지는 일도 문제예요. 들어가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요. 전문성을 갖고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거기에 맞는 직무교육이 있어야죠. 그런데 그런 경우가 많지 않아요. 한 예로 다른 일을 주지 않고 계속 회의록만 쓰기도 하고요.”

 

  그런 어려움을 서울시가 제대로 알아야 할 텐데요. 문제나 어려움을 토로하고 피드백하는 자리가 없었나요?

 

마지막에 설문 조사도 하고 연 1~2회 정도 모니터링도 해요. 사업장 대표, 활동가도 직접 만나요. 서울시에서 따로 현장 방문도 해요. 그런데 저는 서울시에서 피드백을 듣고 문제 해결을 위한 회의를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어요. 우리가 보낸 서류만 남는 거죠또 다른 문제는 일자리 성과 지표로 여긴다는 거예요. 서울시가 취업률 중간 체크를 계속해요. 일자리 사업을 그만두고 중간에 이직하면 그걸 성과로 측정해요. 서울시 입장에서 이 사업은 중간단계, 연습 과정으로 보는 것 같아요. 계약 기간이 정상적으로 종료되고 계속 전화가 와요. 취직했는지 안했는지 물어보는 거죠. 심지어 활동가가 적응하고 있는 중에도 필요한 취업 교육 있으면 지원하겠다고 연락을 해요. 당사자들은 당황스럽죠. 자기는 을 하고 있는데 왜 취직에 필요한 교육을 받으라고 전화가 오는 지 모르겠는 거죠. 그때 제가 담당자로 있어서 그 문제를 제기했는데, 얼마 전에 제가 일 그만두고 나서 전화를 했더라고요. 당시 서울시 관점과 태도에 정말 화가 났어요. 청년활동가들은 지금 하는 일이 청년 + 노동자, 다시 보기 11자신의 노동이고, 이제 적응해 가면서 자기 영역을 만들어 가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전화해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뭔가 완성된 노동이 아닌 것처럼 여기는 태도에 화가 났던 거죠.”

 

  그 이전에도 그렇고, 최근에도 청년 노동자의 사고, 사망 소식이 많이 들려오고 있는데요. 고 김용균 님도 그렇고, 현장 실습생 문제도 그렇고요. 그런 소식을 접하면서 공감되는 점이 있으셨나요?

 

당일 아르바이트 가면 아무런 교육을 받지도 못하고 바로 투입됐던 상황이 떠올랐어요. 정말 큰 문제예요. 필요한 교육을 못 받는 건 기본적 문제이고, 파견이 아니라 직고용이었다면 문제제기를 훨씬 쉽게 할 수 있겠죠. 실제 해결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나중 문제라 해도요. 파견의 경우엔 너무 혼란스럽죠. 내가 어디에 말을 해야 한다고 얘기조차 해주지 않거든요.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이에요. 거기서 안전문제도 당연히 생기고, 감정적 소모도 심각하죠. 내가 여기서 동등한 구성원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일상 대부분을 보내는 일터에서 나만 배제된다는 생각을 매일 하게 돼요. 그런 상황과 조건이 공감됐죠청년 노동자들의 사고 소식을 다루는 언론을 보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표현을 자주 접하게 돼요. 공감, 연민의 표현일 수 있겠지만 더 나아가면 보호할 대상이 아니라 청년 노동자 당사자에게 자기를 지킬 힘과 권리를 주는 것,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는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청년을 피해자화 하고 있어요. 여러 측면에서요. 특히 노동문제의 경우 그런 것 같아요. 사실 계속 피해자화 하는 게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없게 하는데 말이죠.”

 

  청년을 바라보는 사회의 이중 잣대가 있죠. 젊고 생기 있고, 신선하고, 열정적이라고 할 때도 있지만 한 편에선 반대로 소비 지향적이고, 무책임하다는 인식이요. 그런 이중 잣대를 몸소 경험할 텐데 어떤가요?

 

이중 잣대가 항상 그렇듯 연결되어 있어요. 일 열심히 하고, 열심히 사는 청년, 아이디어도 많고 의견도 적극적으로 내고, 활력을 주는 청년을 소비하고 싶어 해요. 거기서 벗어나면 게으르고 열심히 안 하고, 쉽게 그만두는 청년의 이미지를 만들죠. 아르바이트를 하든, 활동하든, 회사에 가건 똑같아요. 친구들과 그런 경험을 많이 나누기도 해요.”

 

  마지막 질문인데요. 청년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최저임금이요.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요구한 지도 꽤 오래된 것 같아요. 이제 1만 원은 높은 액수도 아니죠. 임금이 너무 낮아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파견 같은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되어야 하고요. 인식의 변화도 중요해요.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미숙한 존재로 취급하는데 그게 청년으로까지 이어져요. 그런 시선도 같이 바뀌어야 하겠죠.”

특집2. 계급은 왜 청년의 이름으로 등장하는가? / 2019.02

[특집 청년 + 노동자, 다시 보기]

 

계급은 왜 청년의 이름으로 등장하는가?

 

전주희 노동시간센터,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청년, 계급의 표상 혹은 계급의 무화?

 

  청년만큼 문제가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단순히 생애의 특정 시기를 의미했던 이 단어는 이제 세대와 노동, 그리고 젠더를 둘러싼 갈등, 민주주의와 정치를 가로지르는 논쟁적인 개념이 되었다. ‘88만 원 세대라는 개념의 등장은 청년세대 담론을 새로운 문화집단의 출현에서 경제적 약자를 상징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대략 2010년 이후 청년은 불안정 노동과 위태로운 삶을 표상한다. 청년 문제를 다루는 김선기 연구자에 따르면, 이 시기의 청년세대 담론은 세대가 곧 계급이라는 식의 논의를 통해 계급 담론을 세대화시켜 표현하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88만 원 세대, 삼포세대 등이 그런 예이다. 계급은 매우 까다로운 개념이지만, 분명한 것은 계급은 계급 그 자체로 등장한 적이 없다. 압축적 근대화 시기인 80~90년대에는 제조업 노동자가 산업역군으로서 계급으로 표상되었다면, 오늘날 청년은 하나의 세대이자 계급의 이름이 되었다. 이러한 명명을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로 양분되지 않는 매우 다른 입장들이 제출되고 경합을 벌이고 있다. 청년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신자유주의에서 계급의 문제를 불안정한 삶의 문제로 다룰 때 청년은 특정 연령대로 한정되지 않은 정세적이고 상황적인 구성물이 되었다. 청년세대 담론은 생물학적 연령대를 일컫는 청년층에 제한되지 않는다. 김선기 연구자가 지적하듯이 오히려 청년세대라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사회적 여론의 형성, 그리고 자신이 청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청년세대라는 기호에 담긴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대중적인 집단이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청년세대라는 담론은 특정 대상을 넘어서 사회적 개념이 되었다. 논쟁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계급이 세대화 된 표현으로 등장하는 것에 대해, 이를 뒤집으면 계급은 곧 세대가 아니라는 점, 구조적 문제를 세대 프레임으로 가두어 세대전쟁으로 왜곡시킨다는 점이 곧잘 지적되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은 타당하다. 오늘날 청년들은 그 어느 시대의 청년들보다 힘들다. 하지만 청년들만 힘든 것이 아니다. 불안정성은 신자유주의 시대, 삶의 일반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또한 청년세대는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다. 청년세대 내부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고, 이는 전체적인계급의 양극화와 궤를 같이 한다. 즉 구조적이고 계급적인 모순의 부분으로서 청년문제가 자리한다는 반박이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 불안정한 삶과 노동의 문제는 청년의 얼굴로 가시화된다. 현장 실습생들의 자살과 죽음,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죽음,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공의 죽음, 그리고 발전소 하청노동자의 죽음은 무엇보다 청년의 죽음으로 사건화 된다. 청년들의 곁에 무수한 노동자들의 사고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우선 청년의 죽음을 분노한다. 이러한 죽음들이 청년세대담론의 효과로서 등장하는 것이라고 단순화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 오늘날 계급은 청년의 얼굴로 나타난다. 젊음의 상징이 아니라 불확실함, 불안정함, 불안전함의 얼굴로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청년이라는 계급적 표상이 무엇을 전망하고 무엇을 나누는가이다. 계급은 소득분포의 아래로 실체 하거나 계급의식으로 의식적으로 집단화되지 않는다. 그것은 늘 지역, 국적, 젠더, 나이 등과 같은 요소들을 둘러싸고 지배적인 권력과 대중들 사이의 갈등과 투쟁 속에서 떠오르고 존속한다. ‘산업역군이 개발독재 세력이 명명(nomination)하고자 했던 계급의 이름이었다면, ‘골리앗 전사로 상징화되었던 제조업 노동자들은 맑스주의 이론에서 등장하는 종이 위의 계급의 현실화한 표현물이었다. 이러한 계급의 얼굴은 특정한 젠더와 특정한 국적을 포함하며 여성 노동, 이주 노동은 주변부화 되어 차별받거나 배제된다. 이는 진보적인 운동진영이 이러한 차별과 배제를 자신의 전망 하에 감추어두었다는 것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다. 특정 시기의 계급의 얼굴은 특정 정세에서의 계급투쟁의 잠정적 표현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늘 그런 한에서 집단화된 존재로서 계급을 대면할 수 있다.

 

청년이라는 계급이 전망하는 것, 나누는 것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의 풀네임은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이다. 김용균은 24살이고, 첫 직장이었다. 김용균의 동료 중에는 김용균처럼 첫 직장인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위험을 위험이라 인식하지 못하고 일 해왔다. 위험하고 힘들어도 잦은 이직은 커리어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을 잘 알기에 참아왔다고 이야기한다. ‘힘들어도 견뎌보라는 부모님의 독려(?)도 있었다. 앳된 얼굴들 옆에 잔주름이 금이 간 유리창처럼 얼굴을 덮고 있는 나이든 동료들도 꽤 있다. 이들은 이전에 일했던 제조업 공장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발전소를 떠나지 않았다. 나이 먹었기 때문에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들을 발전소로 몰아넣고, 위험을 감수하게 만드는 사회적 압력은 다양하고 중층적이다. 세대 부채감. 50대 나이든 노동자는 자기의 나이 어린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김용균의 죽음에 대해 서부발전이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동안 동료들은 모두 자신을 탓했다. 거기에 덧붙여 나이든 노동자는 세대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까운 나이에 때 이른 죽음을 언론이 보도하면 할수록 세대 부채감은더 커졌을 것이었다. ‘청년이라는 기호가 갖는 의미, 불확실성, 불안정성, 불안전성은 이렇듯 그 의미에 동의하는 주체들을 가른다. 청년노동자의 죽음에 모두 비탄의 정서를 공유하지만, 청년의 비참은 좀처럼 불안정한 삶 모두의 비참으로 확장되지 않는다. 불안정한 삶을 상징하는 청년 세대가 생물학적인 연령의 문제로 미끄러지는 이유다.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가 연쇄적으로 나타난다.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청년은 20대 남성의 얼굴을 갖는다.

 

  최근 가장 고용상황이 악화한 집단은 20대 남성이다. 20대 남성 고용률은 66.2%에서 2018년 56.1%로 떨어졌다. ·연령별로 봤을 때 고용률이 가장 매우 감소한 집단이 20대 남성이다. 20대 여성 고용률은 같은 기간 54.9%에서 59.6%로 올랐다. ‘된장녀란 조어가 나왔던 200520대 남녀 고용률이 역전됐다. 하지만 여성 고용률은 30대부터 급감한다. 지난해 30대 여성 고용률은 60.7%30대 남성(89.7%)을 크게 밑돈다. 소득주도성장특위 특별위원인 신현호 경제평론가는 “20대 고용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높지만 30대 이후 여성이 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컨설팅 등 연봉이 높은 고급 일자리 분야에선 여성 채용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전했다. 현재 20대 남녀 간 극심한 젠더 갈등의 원인 중 하나로 이 같은 고용 현실이 꼽힌다.

 

  2~30대 남성이 <82년 김지영>에 공감하면서도 92년 김지영에게 적대감을 표출하는 이유는 자신을 곧 20대에 머무는 청년으로 동일화하기 때문이다. 20대 여성이 자신들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사는 것 같다는 착시는 청년이 생물학적 연령대의 문제로 뒤집어지는 순간 예고된 것이다. 1998IMF 위기 시, 김대중 정부와 보수 언론은 노동의 위기를 가장의 위기로 전환했다. 당시 민주노총이나 진보진영도 마찬가지였다. ‘아빠 힘내세요!’는 곧 계급의 구호이기도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취약한 계급으로 등장한 청년은 가장의 자리를 대체했다. 가족의 위기는 가장의 위기에서 아들의 위기로 자리바꿈 되었다. 한국사회의 가족주의는 지난 20년간 심화한 가족의 위기 시에 더욱 강렬하게 작동한다. 그 사이에 4~50대 여성 노동자들은 시간제 일자리의 주요 타겟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시기 시간제 일자리의 증가로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은 일자리가 늘었다. 오늘날 청년 여성들의 문제는 젊은 여성들의 문제로 곧잘 치환된다. 그것이 성차별이든,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따라 나오는 불안정함이든 말이다. 청년의 비참이 신자유주의적 세계의 복잡하고 상이한 비참들과 경쟁하는 한 청년을 매개로한 정치적 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다고 청년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의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계급의 문제는 이러한 청년을 둘러싼 문제를 우회하고서는 사유할 수도, 새로운 전망을 모색할 수도 없다.

특집1. ‘청년’이 아니라 ‘노동자’가 죽었다 / 2019.02

[특집 청년 + 노동자, 다시 보기]

 

청년이 아니라 노동자가 죽었다

 

최민 상임활동가

 

  201812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중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고 김용균의 장례가 사망 62일 만인 201929일 치러졌다. 출근을 앞두고 새로 산 양복을 입어보고 쑥스러워하던 젊은이가 결국 헤드랜턴 하나 받지 못해 위험하게 일하다 비명에 갈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한국 사회에 깊은 충격을 주었다. 그의 삶과 죽음은 20165월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 하다 숨진 김 군을 떠올리게 했다. 그들에게는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일자리와 컵라면이 있었지만,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힘이 없었고, 21조 매뉴얼을 지키는 회사가 없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장이 논평한 대로 최근 주요 사고와 노동재해의 공통적 특징 중 하나를 청년의 죽음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김용균이 일했던 한국발전기술 태안사업소 연료운영팀 60명의 팀 전체 평균 나이는 39.1세다. 40대 이상이 43%. 구의역 김 군이 일하던 은성 PSD에도 특성화고 현장 실습으로 취업한 10, 20대가 많았지만, 73%30대 이상이었다. 청년의 사고, 청년의 노동재해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것이지, 산재 사고의 주요 위험군이 청년은 아니다. 2017년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업무상 사고로 인한 사망자 총 964명 중 34세 미만은 74명으로 전체 사고 사망자의 7.68%에 불과하다. 무상 사고 사망자 중 35%60세 이상의 고령노동자다. 전체 업무상 사고 사망자의 80%45세 이상이다. 고령 인구가 늘어감에 따라 고령노동자 비율도 높아져 사고 발생 건수도 늘어난다. 뿐만 아니라 고령 노동자가 건설일용직, 재활용 사업 등 재해율이 높은 업종에 분포하고 있어 고령 노동자의 안전보건에 대한 관심이 더 절실하다고도 볼 수 있다. 연령별 전체 사망자 중 업무상 사고 사망자가 차지하는 비율 역시 마찬가지다. 2017년 기준, 25~29세 사망자의 2.24%, 30~34세 사망자의 1.62%가 업무상 사고로 사망했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약간 높지만 젊은 나이에 외인성 사망비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눈에 띌 정도는 아니다. (업무상 질병에 따른 사망은 제외했다.)

 

청년 일자리가 아니라, 모두의 일자리가 위험해지고 있다.

 

  청년 노동자의 사망에 애통한 마음에 공감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단 한 명이라도 누군가 일하다 죽는 것은 피해야 하고, 피할 수 있기에 더욱더 안타까운 일이다. 다만, 이것이 열악한 일자리에 내몰린 청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해 두어야 한다. 청년들이 위험한 일자리에 내몰린다기보다, 우리의 일터 자체가 위험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 20187월 열린 산업재해 피해자 증언대회 및 노동안전보건과제 대토론회에서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산재 사망률이 1988년 이후 지속해서 감소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일반 인구의 (자살을 제외한) 사고성 사망률이 산재 사망률보다 더 빠르게 낮아졌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회 일반의 사고 사망률이 낮아지는 만큼 산재 사망률을 낮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터가 위험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는 사고사망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산업재해를 중심으로 한 분석이다. 일터 괴롭힘, 감정노동, 성과 압박과 같은 일터에서의 정신적 유해요인 등 최근 새롭게 문제로 제기되는 위험을을 생각해보면 산업재해일터의 위험은 사실상 우리 노동세계 곳곳에 오히려 가까이 와있다고 볼 수 있다.

 

불안정한 노동은 안전을 위협한다.

 

  21세기 내내 지속한 불안정한 일자리, 비정규직의 증가는 전반적인 직장의 위험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김용균의 사고 이후 왜 비정규직이 더 위험한지에 대해 여러 논의가 있었다. 더 위험하고, 꺼려지는 일을 비정규직, 외주의 형태로 내려보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위험하다. 같은 일을 해도, 직무 스트레스가 높으면 사고위험이 증가한다. 심리적, 물리적 업무 부담이 많고, 지원과 보상은 적어 직무 스트레스가 높은 노동자는 그렇지 않은 노동자에 비해 업무상 사고, 재해 발생 비율이 높다. 비정규직이 겪는 차별과 스트레스는 재해 발생률을 높인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을 시작한 지 6개월 이내에 사고의 대부분이 발생한다. 2017년 업무상 사고 사망의 64%615건이 6개월 미만의 근속 기간에 발생했다. 사망사고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설업에서 근속기간이 특히 짧아서 더욱 그렇지만, 건설업 사망자를 제외한 사고 사망자 458명 중 43%196명이 6개월 미만의 근속기간에 사망했다.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근속기간이 짧아지고, 불안정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채용과 퇴사, 이직이 빈번한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충분한 교육과 정보제공을 받기 어렵다. CJ대한통운 택배 상하차 작업을 하던 청년노동자가 감전으로 사망한 뒤, 하청업체 사장은 경찰 조사에서 안전관리, 안전교육이 미흡했다고 진술했다. 매일 채용이 이루어지는 상하차현장에서 안전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을 리 만무하다. 근속 기간이 짧고, 고용이 불안정해지면 이런 명시적 지식을 제대로 전수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노동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체험을 통해 습득해야 할 암묵적인 지식도 얻기 어려워진다. 이런 지식은 주로 장인 도제 관계나 일터의 선후배 관계처럼 지식을 보유한 사람과의 접촉을 통해 얻게 된다. 매뉴얼로 작성돼 있지 않아도 선배가 하는 작업 위치와 형태를 보며, 좀 더 안전하고 수월한 작업 방식을 익히게 되는 게 대표적이다. 모두가 단기로 계약을 맺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세계에서 이런 암묵적 지식의 전달은 불가능하다. 파견 노동자로 이루어졌던 반도체 하청업체에서 몇 년에 걸쳐 여러 명의 노동자가 실명에 이르도록 높은 농도의 메탄올에 중독됐던 사건은, 노동자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소통이 없을 때 위험이 어떻게 퍼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무엇보다 권한은 없고 책임만 아래로 내려오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무권리 상태는 노동자를 취약하게 한다.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 보고서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하청) 노동자는 현장의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하고 판단할 수 있다하더라도 원청의 결정과 지시가 내려질 때까지 현장 상황에 직접 대응할 수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2~3%에 불과해 집단적인 대응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런 모든 조건이 상호작용하여 불안정노동자를 위험하게 만든다.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이제 50%를 넘는다는 사실은, 이런 위험이 젊고 앳된노동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노동시장 전체가 처한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불안과 위험에 내몰린 불안정 노동자의 연대만이

 

  물론, 노동자에게 적대적이고, 계층에 따라 깊이 분절된 신자유주의 말기 상황에 본격적으로 임금노동에 뛰어들게 된 세대들이 갖는 어려움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청년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죽음의 일터 상황을 목격하면서 자기 직장의 위험이 다른 일터와 연결되어 있음을 인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구의역 김 군과 태안화력 김용균에게는 노동조합과 동료들이 있어서, 한해에 2천여 명에게 발생하는 다른 산업재해 사망과 달리 뉴스 단신으로 처리되지 않고 한국 사회에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청년들에게 미안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청년 노동자를 더는 죽음의 일터로 내몰지 말자, 청년노동자를 보호하자고 외치는 대신, 먼저 자신이 일하는 직장이 죽음의 일터가 되지 않도록 만드는 활동을 시작하기를 기대한다. ‘불안하고 위험에 내몰린 청년이미지 속에 담겨 있는, 모든 불안정 노동자들이 서로의 처지와 상황을 읽어내고, 세대와 관계없이 동료로, 조직된 노동자로 함께 싸울 때야, 청년 노동자의 죽음이 보여주는 우리의 현재가 달라지지 않을까.

특집4. 2019년 건설현장 달라지는 것과 달라져야 할 것들 / 2019.01

2019년 건설현장 달라지는 것과 달라져야 할 것들

이승현 (건설노조 정책국장) 


2019년 건설업은 안전예방 및 보상 분야에서 많은 부분이 변경되었다. 무엇보다도 정책적으로 그동안 현장에서 만연했던 '공상'(산재사고에 대한 개별합의)을 억제하고, 산재보험을 통한 보상을 받는 방향으로 정책이 개편되었다.

이를 위해, 건설업 산재 은폐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여러 제도가 변경되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건설업체의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PQ)에 반영하는 산업재해지표를 사망사고로 개편하였다. 이에 따라, 2019년 1월 1일부터 '산업재해 발생률' 산정기준을 부상재해자(환산재해율)를 제외한 사고사망자(사고사망 만인율)로 개편되었다.

개별실적요율제도 개선이 되었다. 보험수지율에 따라 산재보험료율을 증감해주는 개별실적요율제도 적용대상이 30인 이상 사업장으로 조정되고, 보험료 수지율 증감 폭도 사업장 규모와 상관없이 ±20%로 개선되었다. 아울러 개별실적요율 적용을 위한 보험수지율 산정 시 사업주 예방 노력과 연관성이 낮은 모든 업무상 질병을 제외하여 보험료 인상에 따른 산재 은폐요인도 해소되었다.

그동안 건설사들은 은폐할 수 없는 사망사고를 제외한, 일반 산업재해의 경우, 노동부에 산재 보고를 하지 않고, 피해 노동자와의 개별합의를 통해 이를 처리하였다. 산재 은폐가 일상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추락에 의한 골절 등 일반 사고의 경우에도 산재처리를 하기 힘들었으니, 근골격계 질환 등 직업병의 경우에는 말을 꺼내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현장에서 30년 넘게 일한 목수가 추간판탈출(허리디스크)로 수술을 하면서 산재신청을 하기 위해 결국 현장을 퇴사하는 등의 일 등이 비일비재했다.

그동안 건설사들은 보험료 인상, 관급공사 입찰불이익, 노동부 감독 등의 핑계를 대며, 산재 은폐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해왔으나, 이번 제도변경으로 더 건설사들은 산재 은폐의 핑계를 댈 수 없게되었다. 이제는 정말 산재를 드러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까발릴 때만이 실효성 있는 예방대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1월 1일부터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으로 건설기계 노동자(1인 차주)도 산재보험이 적용된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27개 직종의 건설기계 노동자 전체가 특수고용노동자로 산재보험이 적용되게 되었다. 건설기계 노동자는 산재 발생 위험이 높아 보호의 필요성이 컸음에도, 그간 산재보험의 혜택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

현장에서 철거 작업 중 건물 붕괴로 사망한 굴착기 노동자가 어디로부터도 보상을 받지 못하고, 남아있는 가족은 고인을 잃은 슬픔과 함께 극심한 생활고에 빠지는 등, 그동안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예방과 보상 정책 모두로부터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원청의 관리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사고가 대부분임에도,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막대한 차량 수리비와 함께 병원비, 입원 기간의 생계비 등을 모두 자비로 해결해야 했다. 건설 현장의 위험을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음에도, 그 책임은 온전히 사회적 약자인 건설기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방식이 개선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번 제도개선을 통하여 다수의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인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상황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제도 운영과정에서 원청의 산재보험 가입의무(원청 산재보험료 일괄징수)를 명확히 한 것도 의미가 있다. 추가로 실태를 반영하지 못하는 기준임금으로 인하여 보상액이 충분하지 못한 문제, 통상근로계수 적용문제, 구상권 문제 등 후속적인 제도개선이 연이어 진행되어야 한다.

산업재해 예방 측면에서도 진전이 있었다. 무엇보다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되었다. 부족한 점이 있음에도, 건설업 별도의 절 신설, 건설기계 원청책임, 특수고용직 산안법 일부 적용, 건설업 발주처 책임 신설 등이 포함되어, 건설업 산업재해를 예방의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건설기계 사고 원청책임은 타워크레인을 제외한 나머지 건설기계는 시행령으로 위임이 되어있다. 건설기계에 의한 중대 재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여, 건설기계 27개 기종의 사고 모두가 원청책임 강화가 필요하다. 특수고용직의 산안법 적용도 구체적 내용은 시행령에 위임되어 있다.

안전교육 등 극히 일부만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다. 어차피, 원청은 '건설 현장'이라는 장소를 전체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다. 건설기계 장비 운전사의 법적지위를 확인하여, 장비 소유주는 안전보건 대책에서 배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무엇보다도 '건설현장'이라는 장소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한 이익과 책임을 모두 가지고 있는 원청이 책임을 지는 것이 산안법 개정 취지에도 맞다. 발주처 책임의 경우에도, 구체적인 대상이 시행령에 위임되어 있다. 이번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사망 사건에서 보듯이, 전력산업에서 일하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발주처가 책임을 져야 한다.

발전업무뿐만이 아니라, 배전업무도 마찬가지이다.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건설공사'에 '전기공사업법에 따른 전기공사'가 반드시 포함되어, 배전 활선 노동자의 산업재해에 한국전력이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2019년은 건설업 사망사고 및 중대재 해를 줄이고, 산업재해를 드러내고, 발생한 산업재해를 누구든지 충분히 보상을 받는 해로 만들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

특집3. 도돌이표만 반복되는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 2019.01

도돌이표만 반복되는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조은혜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 회원) 


지난해 7월 1일부터 공공기관 및 300인 이상 사업장에 '주 52시간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으로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별도로 봤다. 따라서  그동안 1주일에 휴일을 2일로 지정하여 주 52시간(연장근로 포함) 외에 휴일근로를 별도로 노동자에게 지시해왔던 사업장의 경우,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무조건 1주 52시간(휴일, 연장 포함)의 노동시간을 준수하여야 한다.


또, 근로기준법 제59조의 특례업종들도 이번 개정안에서 대거 제외되었다. 그래서 휴식시간과 노동시간을 자의적으로 운영했던 과거와 달리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의 제한을 받게 되었다. 2019년 7월부터는 1주 52시간의 노동시간을 준수해야 한다. 최근 유명드라마들이 장시간 근로로 쟁점이 되고 있는 것 또한 방송업이 특례업종에서 제외되고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발생하면서 더욱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노동시간 단축 개정안이 발표되자 뉴스 등 언론에서는 '저녁이 있는 삶'이 실현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들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희망이 너무 섣불렀던 걸까? 시행일인 7월 1일을 열흘가량 앞두고 정부는 6개월의 계도기간을 건의한 경총의 요구를 수용하여 지난해 연말까지 처벌을 유예하는 6개월의 계도기간을 시행하였고, 시정 기간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였다.

심지어 고용노동부는 그동안 근로기준법에 있지만 주목받지 않았던 유연근로시간제에 대한 매뉴얼을 제작하여 배포하기 시작했다. 마치 주 52시간 제도가 시행되지만, 이 방식을 활용하면 예전과 같이 노동을 시킬 수 있다고 안내해주는 듯 했다.

유연근로시간제에서도 현재 가장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탄력근로제이다. 탄력근로제는 일정 단위 기간 내에 그 평균 시간은 법정 시간한도 내로 맞추되 일이 많은 주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일이 적은 주의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는 제도이다. 업종, 업무 특성상 일정 기간에 업무가 가중되는 경우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제조업, 운수업, 전기·가스 등 물량이나 소비량의 변동으로 일정 기간에 근무량이 많아지는 경우라면 2주 또는 3개월 단위 내에서 탄력근로제를 활용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2주 또는 3개월 단위로 시행할 수 있게 되어있는 탄력근로제를 6개월 혹은 1년으로 기간을 확대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탄력근로제에서도 3개월 단위로 하는 경우 연속 6주 동안 주 64시간의 노동이 허용된다. 그러나 이를 6개월 단위로 확대하게 되면 1주 64시간의 노동을 연속 13주 동안 할 수 있고, 1년으로 하면 연속 26주 동안 할 수 있게 된다.

단위 기간 확대는 사실상 주 52시간제 시행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정부는 주 52시간제의 계도기간으로 정한 6개월이 지나는 시점인 작년 연말에 다시 올해 3월 말까지 계도기간을 연장하였다. 현재 국회는 2월안에 탄력근로제 관련 입법을 마무리하겠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어 사실상 탄력근로제 관련 입법을 염두에 두고 계도기간을 연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 확대는 합법적으로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장시간 노동을 연속적으로 더 길게 허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주 52시간제를 시행한 의미를 무시하는 개악에 불과하다.

사실 노동시간과 더불어 노동자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도 지난해 많은 진통을 겪어야 했다. 올해 최저임금이 전년도보다 820원이 올랐다는 이유로 최저임금은 중소 영세 상인을 망하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몰려야 했다. 그러고 나서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일부가 최저임금산입범위에 들어가는 개악이 이루어졌다. 또 내달 중으로 최저임금의 결정구조에 대한 개편이 이루어질 예정이어서 이 개편이 어떤 풍파를 가져올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최저임금제도는 노동자의 생계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최저수준의 금액을 정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최저임금이 곧 노동자의 임금수준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노동시간이 감소하게 되는 경우 노동자들의 임금 보전을 위해서라도 최저임금의 인상은 지속해서 이뤄져야 하는데, 법 개정을 통해 그 인상속도를 저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노동자들이 과중한 노동에서 벗어나 조금 더 사람답게 살 수 있으려면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은 함께 연계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최저임금은 생활임금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펼치겠다고 한 정부는 지난해 그 발걸음을 힘차게 시작하는 듯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도돌이표를 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돌파하지 않으면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의 문제를 개선할 기회가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환경을 위해 더 지체하지 말고 완전한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보장을 위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집2. 산재 보상 제도의 변화와 과제 / 2019.01

산재 보상 제도의 변화와 과제 

이진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작년 12월 27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28년 만에 개정되었다. 2월 입법 예고된 이후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꾸준히 대응을 해왔고, 태안화력 비정규직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유족들의 완강한 법 개정 요구와 노동안전보건 단체와 전문가들의 투쟁이 확산 강화되면서 본회의까지 통과된 것이다.


산재보상 제도도 오랜 출퇴근 산재, 산재신청 사업주 날인제도 폐지, 소규모 건설공사 적용, 뇌심혈관질환 산재 인정기준 고시 개정 등 최근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외에도 노동현장에서 꼭 점검하고 적용해 나가는 실천이 중요한 내용도 많다. 2019년에 주목해야 할 산재 보상 제도의변화와 과제를 살펴보자.

산재보험 적용이 확대되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건설기계업종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확대, 서비스업종 1인 자영업자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해졌다.

기존에는 특수고용노동자 9개 직종(①보험설계사 ②골프장캐디 ③학습지교사 ④레미콘기사 ⑤택배기사, ⑥퀵서비스기사 ⑦대출모집인 ⑧신용카드회원 모집인 ⑨대리운전기사)에 한해 산재보험이 특례적용 되고 있었다.

건설기계 1인 사업주의 경우, 전체 27개 건설기계 중 '콘크리트믹서 트럭(레미콘)' 1개 직종만 특수형태고용으로 적용(26개 직종은 임의가입 대상)되고 있었는데, 이번 개정안을 통해 전체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보고 산재보험에 당연히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건설기계 종사 특수형태고용 약 11만 명에게 적용확대가 되리라는 것이 노동부의 설명이다.

1인 자영업자의 산재보험 가입 가능 업종도 확대되고 있다. 기존에는 △여객운송업자, △화물운송업자, △건설기계업자, △퀵서비스업자, △대리운전업자, △예술인 등 6개 직종에 대해서만 적용되었다. 2018년 7월부터는 △자동차 정비업 △금속 가공제품 제조업 △1차 금속 제조업 △전자부품·컴퓨터·영상, 음향 및 통신장비 제조업 △의료 정밀 광학기기 및 시계 제조업 △전기장비 제조업 △기타 기계 및 장비 제조업 △귀금속 및 장신용품 제조업 등 8개 제조업종에 종사하는 자 영업자 5만6천여 명이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더해 2019년 1월 1일부터는 △음식점업, △소매업, △도매 및 상품중개업, △기타 개인서비스업 등 4개 서비스업종이 추가되어, 약 65만 여명에게 산재보험 가입자격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주목해야 할 제도 변화는 다음과 같다.

우선, 산업재해 은폐와 미보고에 대한 처벌 강화는 2017년에 개정이 되었지만, 아직 현장에 널리 알려지지 않아 꼭 점검이 필요하다. 노조 전임활동 중 발생한 재해의 산재인정 기준이 정리되었다. 전임자의 노동자성과 전임활동의 업무를 인정하여, 사업장 노무관리업무와 관련된 노조 전임자의 전임활동(행사 포함) 중에 발생한 사고·질병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하는 것으로 되었다(단, 사용자 사업과 무관, 쟁의단계 이후 활동은 현행과 같이 불인정).

점심시간 중 사고에 대한 업무상재해에 대해 점심 식사도 출퇴근과 같이 사회 통념상 본래 업무와 밀접한 행위이므로 그 취지에 맞게, 구내식당 유무 등과 관계없이 통상 이동시간 편도 10분 이내(도보, 차량 무관) 인근 식당에서의 식사를 위해 왕복 도중 발생한 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점심식사 목적이 아닌 사적 행위의 경우는 불인정)하는 것으로 개선되었다.

산재 해당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특별진찰 기간 중 증상이 위독하거나 증상 악화 방지가 필요한 경우에는 치료비용을 지급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나, 그동안은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없어 실제로는 치료비용이 지급된 사례가 없었다. 이제는 뇌·심혈관질환 또는 근골격계질환의 업무상 재해(질병) 여부 판단을 위해 업무관련성 전문조사(특별진찰) 기간 중 치료비용을 인정하고, 추가로 산재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는 특별진찰 실시 일부터 업무상 재해 결정 일까지 치료비용을 공단이 부담하게 된다.

직업성 암과 원인적 연관성이 밝혀진 '석면, 벤젠'의 노출기준이 개선되었고 '도장작업'의 인정 업무 범위를 늘리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이 진행되어, 직업성 암 산재 인정기준 확대되었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피해노동자 보호에 관한 법안이 통과되었고, 이에 상응하여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에 대한 인정도 가능해질 예정이다.

산재보상은 노동자의 최소한의 기본권이다. 하지만, 한국은 산재보상 관련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번에 개선된 내용마저도 그렇다. 특수형태고용의 경우 노동자와 사용자가 보험료를 절반씩 부담해야 할 것에 더해, 적용제외 신청허용이 가능한 상황이라 사업주가 이를 악용하여 강요와 협박으로 대상 노동자의 9%만이 적용되고 있다.

적용제외 신청허용제도 폐지 개정안이 19대국회에 정부 입법으로 발의되었으나 삼성생명을 필두로 하는 보험 사업주 단체의 반대와 로비로 법사위를 통과 못 하고 폐기된 바 있다. 산재 입증 책임 전환이 필요하다. 산재 입증책임이 노동자에게 있지만, 업무 관련성을 증명할 정보는 사측이 보존하지 않거나 영업비밀로 감추고 있어 문제가 많다. 산재 치료가 건강보험 기준에 준용되어, 비급여가 많은 것도 여전한 문제이다. 산재 처리 절차가 어려워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어 국선 산재노무사 제도의 도입도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산안법 전면개정안이 보호 범위를 '근로자'에서 '노무 제공자' 등으로 확대하는 추세인 것을 고려하면, 여전히 배제되는 업종이 많은 산재법은 적용 범위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