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어느 하청 노동자의 건강 /2016.11

어느 하청 노동자의 건강

 

장영우 선전위원, 내과전문의


 

저는 올해 2월부터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위치한 300병상 규모의 녹색병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주로 보는 내과환자들은 대부분 노인환자로 여러 질환을 가지고 있고, 제 역할은 입원환자나 외래 환자의 당뇨, 고혈압, 심부전 등 만성질환을 관리하도록 도움을 드리는 일입니다.

 

며칠 전 50대 초반의 한 남자가 진료실에 들어왔습니다. 병원에 오게 된 이유를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 노동자는 목포 조선소에서 하청업체에서 7년간 일했다고 합니다. 정확히 어떤 일을 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으나, 7년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일했고 중간 관리자도 했다고 합니다. 관리자면 몸은 덜 쓰지 않느냐물었더니 관리자였지만 직원들이 야간작업, 휴가 등 손이 모자라는 시간에는 이른바 땜빵일을 주로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동시간도 불규칙하고 노동 강도도 만만치 않았다고 합니다.

 

한편, 이 노동자분은 올해 5월 갑자기 가슴이 아프고 식은땀이 나는 등 평소에 없던 증상이 나타나서 근처 목포 병원에서 영상 검사를 했다고 합니다. 검사 결과 이상이 없으니 집에 가도 된다고 했는데 얼마 후 그런데 얼마 후 혈액검사에서 심근경색이 의심되니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는 소견을 들었다고 합니다. 목포의 더 큰 병원에서 혈관조영술 검사를 받은 결과 혈관연축성 협심증(혈관연축성(이형협심증, variant angina) : 휴식 시에 발생하는 비전형적 흉통증후군으로 관상동맥의 동맥경화에 의해 발생하는 일반적인 협심증과는 달리 관상동맥 연축으로 관상동맥의 내경이 일시적으로 급격히 감소하여 심근허혈을 일으키는 질병. 내피세포기능이상, 산화 스트레스 등이 연축의 기전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이 밝혀져있지는 않고 흡연, 음주와 연관이 많다.)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정기적으로 약물을 복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혈관조영술을 받고 약을 먹고 있지만 오히려 어깨가 더 아픈 것 같고 일을 한 다음에는 손, 발이 더 붓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한편, 최근에는 조선업이 불황이다 보니 목포에서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되었고 최근에 상경하여 인력시장을 전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려다 보니 몸은 더 힘들고, 일하다 어지럽기도 하고 전보다 힘이 더 들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이 노동자분이 제게 우선 혈관조영술이 심장에 나쁜 영향을 주어서 펌프질이 잘 안되니까 몸이 힘든 게 아니냐고 질문하였습니다. 하지만 쉴 때는 어떠냐고 물으니 작업을 하지 않으면 몸의 여러 증상이 호전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검사목적의 혈관 조영술이 합병증을 일으키는 경우가 흔하지 않고 합병증을 일으키더라도 검사 도중이나 검사 직후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련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혈관연축성 협심증으로 산재가 가능할지 다시 질문하였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해 뇌혈관질환이나 심혈관질환이 산재로 인정될 수도 있다는 판례는 여러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킨 경우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입니다.

그렇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는 뇌심혈관질환의 대상 질환으로 뇌실질내출혈, 지주막하출혈, 뇌경색, 심근경색, 해리성 대동맥류로 뇌 또는 심장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위 질환들은 생명을 위협할만한 중대한 질병에 해당합니다.

 

물론 협심증이라서 산재신청이 안된다고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협심증은 진단 이후에 관리 또한 중요한 질병입니다. 진단 이후에 금연이나 혈압조절, 고지혈증 관리를 통해서 일상생활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께 현재로서는 산재판정이 쉽지 않을 것 같고 산재신청을 하려면 우선 의무기록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첫 번째 순서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더불어 꼭 금연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노동자의 말처럼 서울에 와서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처지인데 건강관리가 제대로 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시간을 많이 들여서 충분히 상담을 했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었습니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신규 병원노동자 이야기 /2016.10

신규 병원노동자 이야기
– 배우며 일하는 노동

 

 

 

김형렬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근무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난 종합병원 외과병동에 신입 간호사가 외래에 들어 왔다. 수면건강을 평가하는 설문도구의 점수가 매우 높았다. 이제 막 병원에 들어와 한 달에 6-8일 가량 야간 근무를 하는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수면장애가 없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야간 근무를 해야만 한다면 효과적인 적응을 위해 수면위생과 관련된 설명을 한다.

 

최근 “예방적 수면”, 혹은 “쪼개어 자기”라고 해서, 야간 근무 후에 아침에 퇴근하고 바로 수면을 취한 후 낮 1시 혹은 2시에 일어나 일상생활을 하고, 밤에 일하러 가기 전에 1-2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고 가는 방법에 대한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이렇게 예방적 수면을 취하면 밤 근무 때 멜라토닌 분비를 늦추고, 덜 졸리게 되고, 더불어 아침에 집에 가서더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야간 근무하고 나면 아침에 몇 시에 퇴근을 하나요?” “솔직히 말해도 돼요? 보통 12시에 퇴근해요.”“야간근무 끝나고……. 그러니까 인계 시간 이런 거 있는 거 아는데, 보통 1시간 정도인걸로 아는데……. 12시까지 일을 하는 거예요?” “네…….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해서 그래요.”

그렇게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예방적 수면을 이야기 하는 건 불가능한 근무조건이었다. 그 이후로 우울감을 묻게 되었고, 이와 관련한 심각한 상황을 확인하고 정신건강 상담과 치료를 권고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상황은 이렇다. 최근 병원은 간호사들의 노동 내용과 강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환자들에 대한 안전문제, 감염관리 등에 대한 책임이 강화되었고, 병원 경영 측면(?)에서 환자들의 입/퇴원도 잦아졌다. 이를 병상회전율이라고 하는데, 환자들이 초기 입원 시 지불하는 금액이 높다는 점 때문에 병상회전율이 높은 병원일수록 병원의 수익은 높아진다. 한 명의 환자를 입원, 퇴원 시키는 일이 간호사 업무의 힘든 정도를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인데, 이렇듯 환자의 입퇴원이 잦아지는 것은 간호사 업무를 가중시키고 있다. 어느 현장에서나 그렇듯, 일은 늘어났지만 인력은 그대로이다.

 

이직률이 어느 직종보다 높다고 알려진 병원의 간호사 일은 언제나 신규직원들이 많다. 신규직원이 많다고 그날 해야 할 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일의 효율을 위해 신규 간호사가 맡아야 할 일의 상당 부분을 몇 년간의 경험이 있는 간호사가 맡게 된다. 당연히 일이 서툴고 속도가 느린 신규간호사는 자기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선배 간호사들을 대신해서, 다른 노동을 부가적으로 더 처리하고 퇴근을 한다. “물품관리, 장부정리, 기초 행정처리” 등, 시간압박을 덜 받는 일들을 퇴근을 하고 나서도 해야 한다. 물론 이런 노동에 대한 임금은 지불되지 않는다.

 

이런 병원 환경에서 신규직원을 배려하지 않는 기존 직원들에 대한 비난만을 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일은 돌아가야 하고, 그 일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는 이유로 효율(?)적인 업무분장과 초과노동을 하도록 강요한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지만, 신규 직원에 대한 배려는 없다. “회사는 배우는 곳이 아니라 일하는 곳이다.”하고 말하며 능력이 안 되면 시간으로 때우라고 이야기 한다. 누구나 신규 직원이었을 때가 있었고, 그때 어떤 것이 힘들었는지 기억을 꺼내 보자. 그때 나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했는지…….

 

능력 있는 선배의 모습을 보며, “나도 시간이 지나면 이곳에서 저렇게 성장할 수 있겠구나” “일은 힘들지만, 선배들이 잘 챙겨줘요.”, “신규직원이라고 해도, 우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통로가 있어요.”, “제가 돌봤던 환자가 건강하게 퇴원하는 걸 보면 힘들었던 것도 다 잊게 돼요.” 이런 말들을 들은 지 너무 오래되었다.

 

“시간이 지난다고 이런 허드렛일 하며 과연 선배처럼 될 수 있을까?”, “선배들도 하루하루 사는 게 전쟁인데, 말 붙이기도 힘들어요.”, “1년을 버티고 야간근무하며, 희망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다른 데 갈 곳이 없어서 남아있죠. 신규 직원들이 자기 이야기 하는 건 불가능이에요. 누구에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환자들 보면 잘해야지 생각하다가도, 저도 살아야 하잖아요. 그냥 일이죠.” 이제 이런 말들을 주로 듣게 되었다.

 

노동의 효율적 배치, 수익의 창출, 구조조정……. 이런 용어들이 환자를 돌보는 병원에서도 일상적으로 듣는 말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신규 직원들의 “노동”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고 있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밤을 잊는 그대에게 /2016.8

밤을 잊은 그대에게



권종호 선전위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 1964년 5월 첫 방송을 시작해 현재까지 50년 넘게 같은 시간, 같은 이름으로 방송되는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던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멘트는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공부 때문이건 이런 저런 고민 때문이건 모두 잠들었을 시간에 혼자 남은 외로움을 누군가 알아주고 있다는 뉘앙스가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밤잠이 많아서 지금 저 방송을 듣지는 못하지만 요즘 나는 매일 진료실에서 저 멘트를 되뇌이게 된다. 하루에도 몇 십 명씩 '밤을 잊은 그대'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2014년 1월부터 '야간작업'에 대한 특수건강검진이 실시되면서 교대근무와 관련된 건강 영향이 조금이나마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했는데 그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 한다.


여러 통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교대근무 노동자는 전체 임금 노동 인구의 10~15% 정도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들 중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심야 택시, 버스 운전기사, 밤을 새며 운송하는 트럭 운전기사, 대리 운전기사 등은 아직 특수건강검진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특수건강검진을 통해 만나게 되는 교대근무 노동자는 주로 경비 및 보안 업체 노동자, 교대근무가 있는 제조업 노동자, 호텔 등 숙박업 노동자, 건물 미화 및 시설 관리 노동자들이다.


얼마 전,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이 진료실에 왔다. 진료실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보안업체 노동자였다. 생애 첫 직장으로 6개월간 교대근무를 해왔다고 했다. 이제 6개월이면 한창 교대근무에 적응 중이라 힘든 시기일 텐데 잠자는 건 좀 어떠냐고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많이 피곤하고 힘들다고 했다.


야간근무 중에 잘 시간은 좀 있냐고 물었다. 사업장, 근무 일정 등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야간근무 중에 사이잠을 보장해주는 사업장들이 있기에 물어봤는데 다행히 2시간 정도가 주어진단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그 때라도 꼭 챙겨 자라고 했더니 그 다음 한마디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일을 하라고 월급 받는데 그 시간에 자면 안 되죠. 양심적으로 근무 중에 잠자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해줄 말이 너무 많았지만 야간 근무 중 휴식은 꼭 필요한 거고 건강을 위해 당연한 권리니 잘 수 있는 한 충분히 챙겨 자라고 해주고 문진을 마무리했다.


2002년 노동부는 '교대근무자 건강을 위한 9대 작업 관리 권고 지침'을 만들었다. 이 내용에는 야간작업 중 사이잠 및 수면 공간 제공을 포함해 고정적 혹은 연속적 야간교대 축소, 2교대 근무 금지 등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건강을 위해 보장되어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 담겨져 있었다. 


민주노총은 당시 성명서를 통해 보장 수준 강화와 벌칙 조항을 포함하는 시행령 수준으로 격상할 것을 요구했지만 경제부처와 재계의 반대로 권고안 조차 빛을 보지 못했다. 2011년부터 이와 관련된 내용을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지침' 수준으로 권고하고 있긴 하지만 강제력이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장마다 교대근무 조건에 큰 차이가 있고 노동자들은 2교대 근무나 야간 고정 근무를 종용하는 사업장, 아침 교대시간이 새벽인 사업장, 사이잠 시간 및 공간이 전혀 없는 열악한 조건의 사업장에서 하소연할 곳 없이 견디다가 결국 너무 힘들어 그만두게 되는 현실이다.


'좋은 교대제'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교대제를 폐지하거나 그게 지금 당장 어렵다면 좀 더 '나은' 교대제를 마련해야 함에도 아직까지 교대근무에 대한 제도적 규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다행히 야간작업이 직업적 유해인자로 여겨져 특수건강검진의 영역에 들어오긴 했지만 이는 좋지 않은 교대근무로 나타날 수 있는 건강 문제를 확인하고 일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에 불과하다.


실제로 고정 야간근무만 가능한 사업장에서 고통 받는 노동자에게 주간 근무로 전환은 퇴사 권고나 마찬가지이고 새벽에 교대하는 형태, 연속 야간 근무를 장기간 하는 형태 등을 전체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권한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제도적 차원의 접근이 절실하며 좀 더 나은 교대근무 형태를 강제하는 규제를 필요로 한다. 야간작업 특수건강검진은 이러한 규제의 면죄부가 아니라 규제를 위한 디딤돌로 잘 활용되어야 한다.


조금의 위안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인지, 고된 교대근무 일정을 들으며 저절로 나오는 한숨인지. 여전히 진료실에서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되 뇌이고 있다. 수많은 '밤을 잊은 그대'들의 건강한 노동을 위해 야간작업 특수건강검진으로 교대근무자의 건강권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제도 확립의 기초가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귀족노동자?의 실체 /2016.8

귀족노동자?의 실체



김정수 (사)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의원 원장



작년 9월에 개원한 우리 병원 인근에는 K자동차 공장이 있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일부 언론에서 종종 '귀족노동자'로 불리곤 한다. 


작년 말 한 노동자가 우리 병원을 찾았다. 이 공장에서 10여 년간 일한 30대 후반의 남성 노동자로, 우측 어깨에 통증을 느껴 찾아간 병원에서 회전근개 파열이라고 진단을 받고 산재 처리가 가능할지 (업무 관련성 소견서 발급이 가능할지) 상담 차 내원한 것이다. 혼자 오신 것이 아니고 노동조합 담당자와 함께 오셨다. 


진단이 비교적 명확해서 작업 공정상 어깨 부담 작업이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가능할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은 이 분이 어느 한 공정에서만 일했던 것이 아니라 부서 내 20개쯤 되는 공정에서 번갈아가며 일을 했던지라 전체 공정을 다 뒤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두 달 뒤 이 분이 다시 병원을 찾아 왔다. 이번에는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형님과 함께 오셨다. 일하는 부서 내 전체 공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각 공정에 어깨 부담 작업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각 공정에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했는지 등에 대해 사진까지 첨부해서 아주 자세히 정리해 오셨다. 함께 오신 분의 도움을 받아 정리하신 것이라고 했다. 


정리해온 자료를 다시 한 번 정리해서 업무 관련성 소견서를 작성했고 올해 1월 산재 신청을 했다. 4월에 산재 승인이 났고, 두 번의 연장 신청이 받아들여져서 8월 말쯤 종료 예정으로 현재 열심히 치료 중이다. 


이 분과 함께 산재를 신청하고, 승인받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귀족노동자'의 실체를 좀 더 정확히 알게 되었다. 병원에 처음 오셨을 때 이 분은 산재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조합원들이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팠을 때 필요하면 산재 처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노동조합과 산재에 대해 좀 아는 직장 동료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산재 신청조차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산재 승인을 받았지만 처음 진단받았을 때부터 산재 승인까지 6개월이 걸렸으나 이 기간은 그나마 짧은 편이다. 나중에 전해 들은 얘기인데, 같은 부서 내에 아픈 분들이 또 있는데 잘 몰라서 혹은 회사의 눈치가 보여 그냥 적당히 개인적으로 치료받고 마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산재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산재를 신청하려고 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헤매다 보면 산재 승인을 미끼로 접근하는 각종 브로커에게 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산재를 신청하더라도 승인되는 경우보다 불승인되는 경우가 많고, 그런 경우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고 한다. 


회사에 찍히고, 브로커에게 돈 뜯기고, 동료들에게 꾀병 환자로 낙인찍히고... 노동조합도 없는 영세 사업장 노동자 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강성노조로 유명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얘기다. 


이들에게 '귀족'이라는 수식어가 과연 온당한 것인가?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팠을 때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 무슨 특별한 권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인 이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귀족'이라니... 게다가 '귀족'이라고 불리는 노동자들의 처지가 이러한데, '평범한' 노동자들의 처지는 어떨까? 생각하면 그저 답답할 뿐이다. 


이런 막막한 현실 속에서 이 분이 산재로 요양하면서 열심히 치료에 전념하며 건강해질 수 있었던 것은, 조합원들이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팠을 때 필요하면 산재 처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노동조합(단결)과 산재에 대해 좀 아는 직장 동료(지지)와 우리의 도움(연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괄호 안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당신 탓이 아닙니다 이제 그 기억을 놓아주세요 /2016.6

 당신 탓이 아닙니다 이제 그 기억을 놓아주세요

- 칠순 노동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류현철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회원



머뭇머뭇 지인의 손에 이끌려 상담실 문을 들어선 칠순의 노동자. 단정한 옷매무새와 차분한 말투, 오랜 시간을 두고 일터에서 그을려 온 특유의 구릿빛 얼굴과 미간을 가로지르는 세월의 주름, 거기에 더하여 뭔가 짐작하기 어려운 무거움과 어둠이 더해진 낯빛. 내 아버지 세대의 노동자와 마주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노동을 시작했을 그가 아들뻘의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를 찾아온 사연은 무엇일까? 한자리에 머물지 못했던 시선이 조금씩 내 시선과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아직 어색했지만, 언뜻 엷은 미소가 깊은 주름으로 굳어진 미간을 부드럽게 풀어주니 진즉부터 가지고 계셨을 듯한 순박하고 인자한 표정이 비친다.  


"1년 반쯤 되었나 봅니다. 처음 그 일이 벌어진 것이..." 그는 차분했지만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공장에 취업했다. 8명이 일하는 조그마한 단조 공장에서 그는 고무공장에 납품하는 가위를 만들었다. 10시간이든 11시간이든 열심히 일했다.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아들 하나 딸 하나를 얻었다. 그리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아니면 운이 좋아서 일하던 공장을 인수했다. 직원이 10명도 안 되는 작은 공장이었지만, 풍족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를 넘어설 재주는 없었다. 공장은 폐업했고, 다들 퇴직한다는 55세에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피혁 공장에서 일을 다시 시작했는데 그곳이 3년 만에 폐업하면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러다 10년 전부터는 주물공장에서 일했다. 시끄럽고, 덥고, 주물사와 로(爐)에 날리는 분진과 흄에 뒤덤벅이 되었지만, 환갑을 넘긴 그에게 허락되는 일자리는 그런 자리였다.


주물공장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그가 하던 일은 중자(심지, core)를 만드는 일이었다. 주물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쇳물을 부어서 모양을 만드는 외부 주형과 만들어질 제품의 내부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미리 주형 안에 만들어 넣어두는 중자가 필요하다. 1년 6개월 전 그 일이 벌어진 것은 그 공장에서 일한 지 2년 정도 되었던 어느 겨울이었다. 일요일이었지만 늘 그랬듯이 일을 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가 났다. 


그가 만든 중자가 주형과 합체되어 쇳물을 부을 틀을 완성하기 위해 크레인으로 들어 옮겨지다가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이상하게 그 공장은 크레인이 높이 달려서 불안 했는데, 기어코 사단이 났다. 떨어진 중자 아래로 동료 노동자가 깔려서 사망했고, 그는 처참해진 동료의 시신을 수습했다.  나이가 많이 어려서 그와 자주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알고는 지냈다는 사망 노동자는 61세였다. 처참한 광경은 잊히지 않았고 꿈에 계속 나타나서 그를 괴롭혔다. 사고 현장에 가면 가슴이 떨려 일을 할 수 없었다. 며칠을 쉬다가 업무가 바쁘다고 해서 다시 출근했지만,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날 일은 그를 계속 괴롭혔다. 하릴없는 심정을 달래려 기도하러 다니던 절에 부탁해 자비를 들여 사망한 동료의 천도재를 지냈다. 이렇게라도 하면, 극락왕생을 빌어주면 이 심경이 나아질까 싶어서였다. 그래도 자리에 누우면 처참한 광경이 떠올라 잠을 잘 수 없었고 무기력했고, 집 밖으로 나가기도 싫었다. 10개월 동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다. 10년 전 주물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알게 되어 동갑내기라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일자리를 알아봐 주었다. 


그런데 다시 일을 시작한 지 1개월이 지난 겨울 어느 날, 갑자기 현장이 소란스러웠다. 지게차 사고가 난 것이다. 그를 일터로 다시 불러준 조형 반에서 일하던 친구가 쓰러졌다. 운행하던 지게차에 찍혀 흐르기 시작한 피는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의식도 있었고, 그렇게 갈 줄은 몰랐지요. 내게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지게차 사고로 쓰러졌던 칠순의 동갑내기 친구이자, 동료 노동자는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했고, 1년 간 일터에서 두 번의 죽음을 경험한 그는 더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칠순을 넘긴 나이, 세상사 웬만한 풍파는 겪고 넘어온 그에게도 지난 2년 동안 두 번이나 겪어야 했던 끔찍한 경험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 받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는 신체나 정서상의 심각한 손상 (외상, 트라우마)을 입은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그것에 대한 공포감이나 부정적인 감정이 계속 고통스럽게 회상되고, 재경험 되고, 유사한 상황과 조건을 회피하고 때로는 지나친 각성상태나 반대로 지나친 위축이 계속되는 것을 뜻한다. 최근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하여 산재로 인정할 것을 명문화한 바 있다. 자신의 경험과 증상이 무엇에 연후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산재요양 대상이 되는지도 몰랐으나 세상일에 밝은 또 다른 친구의 권유로 나를 찾았다. 이후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고 산재 요양신청을 하기로 했다. 그는 아들 뻘의 의사에게 연신 고맙다 인사했지만 나는 미안함이 더할 뿐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참혹한 전장에서 돌아온 군인들의 사회 심리적 병리를 다루는 과정에서 자리 잡은 질환이다. 그런데 매년 9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병들고 다치고 2천 명이 죽어가는 오늘 우리 사회의 일터는 참혹한 전장과 다름없다. 노동자들은 또 쓰러지고 죽어간다. 화가 난다. 다들 그렇게 열심히 일했고 그렇게 다치고 스러져 갔다. 


는 죽게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 최근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어이없는 산재사고로 세상을 등지게 된 19살 노동자에게 수많은 시민이 애도와 공감을 남기고 있다. 이제 애도와 공감을 넘어서야 한다. 지금의 어이없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악의 면면을 보라! 죽음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시스템을 멈추는 행동이 같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만 나도 이런 메모 한 장이라도 전해줄 수 있지 않겠는가?

[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나의 그녀들에게 /2016.5

나의 그녀들에게

 

 

 

 

조이 회원, 산부인과 전공의

 

 

 

 

저는 강남의 한 대형병원에 근무하는 산부인과 전공의입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여성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생명탄생의 순간에 대한 경외심이 대부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러나 산부인과 의사로 산다는 것은 생명 탄생을 돕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수많은 사연의 그녀들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산부인과 주치의로 첫 산모의 출산을 지켜보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지난 몇 년 간 대학병원에서 지내며 마음속에 오랜 고민으로 남은 그녀들은 따로 있습니다.

 

A씨는 50대의 난소암 환자였습니다. 그녀에게는 지극정성으로 병수발을 들어주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마치고 지내던 중 암이 재발하였을 때 담당 교수는 그녀에게 경제적 여유가 되는지를 확인했고 돈이 얼마가 들던 뭐든 할 수 있다는 그녀의 남편의 강력한 지지에 힘입어 표적치료제 치료를 시작하였습니다. 얼마 전 외래에서 만난 그녀는 조금 야위었지만 성공적인 두 번째 항암을 마쳤고 여전히 남편과 함께였습니다. 언젠가 암이 재발할 수 있겠지만 그녀 곁에는 늘 최고의 지원자가 있을 것이고 물심양면으로 지지하는 가족들이 있을 것입니다.

 

B씨는 60대의 자궁경부암 환자였습니다. 그녀가 수술을 위해 입원했을 당시 보호자라고는 사촌언니 뿐이었습니다. 그녀의 차트에는 그녀가 기혼이고 아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지만 가족들을 만나볼 수 없었습니다. 수술 후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그녀는 퇴원 이후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1년 후, 그녀는 암이 재발하여 복수 때문에 부른 배를 부여 잡고 온 얼굴에 멍이 든 상태였습니다. 상담을 진행하며 그녀로부터 폭력적인 남편이 있었고 항암치료를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그녀가 그 몸으로 일을 계속 해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몇 달 간의 치료가 끝나고 그녀는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소견서를 요구했습니다. 그럴 상태가 아니라고 일을 쉬어야 한다고 소견서를 써줄 수 없다고 하자 그녀는 일을 하지 못하면 돈을 벌 수 없다고 이미 치료를 위해 빚을 졌고 그걸 갚아야 한다며 울었습니다. 그녀는 재발 가능성이 커서 꾸준히 외래에 다녀야 했지만 그때 이후 그녀를 볼 수 없었습니다.

 

사실 A씨를 보면서 많은 고민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치료도 성공적인 편이고 든든한 가족의 지원이 있어 암환자들 중에서 운이 좋은 편에 속합니다. A씨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B씨와 같은 환자를 마주할 때 입니다. B씨가 A씨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B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생각하게 됩니다.

 

치료를 결정하는 것은 의사의 몫이 아닙니다. 의사가 최선의 치료를 권할 수는 있지만 결국 치료를 선택하는 것은 환자의 몫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경제적인 뒷받침이 중요합니다. 진단 당시의 경제적 상태, 치료 과정 중 지속적으로 경제적 지원이 가능한지에 따라 환자는 의료진이 권하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녀들은 목숨을 위협하는 거대한 질병의 파도앞에서도 경제적 상황과 타협합니다. 시스템앞에서 개개인일 뿐인 의사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크지 않습니다. 아프면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고 해도 누구나 똑같이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는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매일매일 그러한 현실 속의 그녀들을 마주하며 그녀의 질병을 규정하는 것은 의학적인 상태만이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주위환경과 그녀의 조건들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앞으로 그녀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과연 어떤 의사로 살 것인지 고민해봅니다. 일에 치어 바쁘게 사느라 잠시 내려놓았던 고민들을 다시 일깨워주는 나의 그녀들에게 감사합니다. 이제 고민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 볼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 고민을 확장해가는 지점에서 연구소 회원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우리 사업장이 변할까요? /2016.4

우리 사업장이 변할까요?


강충원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보건관리위탁기관 의사의 사업장 방문 횟수는 100인 이상 사업장인 경우 3개월에 1회, 50인 이상인 사업장인 경우 6개월에 1회이다. 일본은 규모에 상관없이 2개월에 1회라고 들었는데, 한국은 특이하게 필수적이고 중요한 안전보건도 작은 기업일수록 더 비중이 작다. 오히려 작은 사업장일수록 작업환경이나 노동조건이 열악한데도 규제라는 측면에서 경제성을 따져서 그렇다.


그렇게 가끔 의사가 사업장을 방문하면 매달 방문하는 사업장의 터줏대감인 보건관리 간호사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게 되고, 그동안 간호사가 귀에 따갑도록 말해도 변화가 없던 노동자나 관리자, 사장님에게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설득작업에 들어간다. "누가 법 다 지키고 사업하나?” 라는 말을 들어도, “선생님은 그냥 서류만 써주시고 가세요.” 라고 해도,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해야 할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가끔 가는 사업장이니 현장순회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참석과 근로자건강진단 사후관리를 비롯해서 보건교육 등 할 일은 많은데,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하기는 어렵다. 이 사업장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인가?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사실 일할 맛 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을 하게 된다. 


예전에 SNS에서 “직원들은 사장의 현란한 철학보다 사무실, 식당, 화장실, 처우를 통해 회사를 평가한다.”라는 글을 본 이후로, 회사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사실 회사의 분위기, 즉 조직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다만 그런 분위기에서 사측의 대리자로 선임된 보건관리위탁기관의 의료인들이 사업장에서 조금 더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어떤 보탬이 될 수 있을까? 의 관점이 바뀐 것이다.


첫 번째는 노동자와의 건강상담 환경개선이다. 그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는 노동자분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보면 알 수 있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고통, 직장 내에서의 어려운 관계, B형간염이나 수술, 개인적으로 민감한 건강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는 면담실을 제공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더라도 모든 길이 막힌 상황에서 의료진을 만나서 숨 쉴 공간을 얻는 경우도 많다. 가장 최악이 관리자나 사장님이 옆에서 다 듣고 거드는 경우다. 본인은 남을 생각한다고 하고, 가끔 정말 치료가 필요한데 치료안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적극적인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불가한 일이다. 정말 면담이 필요한 분들이 의료진을 멀리하고 면담 시 짜증을 내거나, 불편해 하는 것은 개인의 성격이라기보다는 회사가 건강의 문제에 대해서 함께 배려하고 공감하는 문화인지 아니면 통제하고 핀잔을 주는 문화인지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건강진단의 결과를 활용하여 건강보호를 위한 목적 외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면 과태료가 300만원이다.


두 번째는 휴게실 환경개선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 제9장에는 “사업주는 근로자들이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추어야 한다.”라는 조항부터, 세척시설, 수면시설, 장시간 서서 일하는 경우 의자의 비치까지 규정하고 있다. 보건관리계약을 맺고 처음 방문하는 사업장에서 내가 제일 많이보는 것은 휴게실이다. 냉난방은 되는지, 천장에서 가루는 안 떨어지는지, 혹시 석면은 아닌지, 물이나 화장실, 목욕탕 사용, 개인 락커는 있는지, 등받이가 있는 의자인지, 누워서 쉴 수 있는지, 파라핀욕조, 안마기, 발마사지기 등의 시설이 있는지, 휴게 시간은 적절한지 등을 본다. 내가 이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람다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기계처럼 일하더라도 “사람처럼” 쉬면 좋겠다는 작은 타협이다.


세 번째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개선의견을 내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100인 이상, 일부 위험업종은 50인 이상, 일부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분기별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라는 회의체를 운영하게 되어있다. 여기에는 노사동수로 위원들이 구성되고 책임자가 참석하게 된다. 실제로 운영되는 경우는 10%내외, 나머지는 매년 반복되는 서류작업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분위기가 바뀌어서 실제로 회의를 개최하고 의견을 반영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사업장에서 노동자와 면담을 통해서 들었던 불편한 사항에 대한 것이나, 건강검진이나 작업환경측정,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의 개선의견 등 관리자 차원에서 차단되거나 관리자가 깜빡한 내용들을 책임자에게 바로 건의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다. 실제로 회사 내부회의에 참여하면 산재보험을 거치지 않고 회사차원에서 처리되는 수많은 사고와 질병들을 만날 수 있다. 진짜 문제를 발견해야지 제대로 된 해결을 할 수 있기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참석은 점점 중요해질 것 같다.


무엇보다 현장순회를 할 때나, 노동자와 면담을 할 때나 사업장에 오는 의사나 간호사가 과연 내편인지 확인이 되어야 진짜 이야기가 가능할 텐데, 그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이다. 병원에서는 아플수록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더 기밀하게 지속되지만, 노동자와 보건관리의사의 만남은 더 많이 아플수록 만나기 힘들어진다. 건강과 고용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도 회사측 위원이고, 사측의 관리비를 받는 입장에서 보건관리의사가 100% 노동자편이다 말하긴 힘들다. 다만 자신을 도와주는 의료인과의 신뢰관계가 치료에 좋은 영향을 주듯, 현장에서 만나는 의사들과 노동자들이 잘 만나가는 것이 사업장을 변하게 하는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노동자의 건강지킴이가 되려는 이유 /2016.3

노동자의 건강지킴이가 되려는 이유



김정수 (한노보연 회원, (사)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의원 원장)





저는 올해 11년 차가 되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입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제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노동자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 생각해 보면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특히 최근에 잇따라 터져 나오는 수은 중독, 메탄올 중독 등 7~80년대에나 있을 법한 사고들을 접하다 보면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마저 듭니다전문의를 취득한 이후 군 복무를 제외하고 주로 종합병원 건강검진센터에서 특수건강진단 업무를 했습니다


저와 같은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이 주로 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특수건강진단은 소음이나 분진, 중금속이나 유기용제와 같은 유해요인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이 반드시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건강검진입니다. 이 업무를 하는 동안 이게 노동자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소음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청력검사 결과를 제외하면 이상이 발견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 하게끔 되어 있는 특수건강진단이 노동자들에게 생길 수 있는 직업병이나 업무 관련성 질환을 찾아내기에는 빈구석이 너무 많았습니다. 게다가 오히려 특수건강진단을 받는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하청 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은 이런 특수건강진단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이런 노동자들을 위해 특수건강진단 비용을 국비로 지원하고 있는데, 모르는 사업주도 많고 제대로 알려주는 특수검진기관도 많지 않았습니. 바로 이런 노동자들이 7~80년대에나 있을 법한 그런 사고들로부터 고통을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답답한 마음에 주변 동료들과 얘기를 나눠보았는데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료들이 많았습니다. 몇번 얘기를 나누고 나서 이런 답답한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데 그치지 말고 작은 일이라도 우리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우리가 직접 병원을 만들어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증진시키는데 조금이라도 기여를 해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단법인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 의원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는 산업보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업체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학술연구, 교육, 홍보 등의 사업을 통해 이들의 건강증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향남공감의원은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의 부설의원으로 작년 9월에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 개원하였습니다. 화성시는 중소영세사업장이 밀집한 지역일 뿐만 아니라, 서울 영등포구, 경기도 안산시에 다음으로 이주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저희가 법인의 첫 번째 부설의원을 화성시 향남읍에 개원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향남공감의원의 세 가지 모토는 지역 주민의 주치의, 노동자 건강의 지킴이,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병원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퇴근해서 집에 가면 바로 지역 주민이 됩니다. 지역 주민이 건강해지고 나아가 지역 사회가 건강해져야 노동자도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저희가 지역 주민의 주치의가 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자기가 하고 있는 일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얘기를 해주는 의사들도 많지 않습니다.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일 할 수 있어야 보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노동자 건강의 지킴이가 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의미 있고 좋은일을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막상 그 일을 하면서 불행해지는 경우를 많이 봐왔습니다. 그 일을 하겠다고 모인 우리들 역시 노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노동을 통해서 의미 있고 좋을 일을 해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노동부터 즐겁고 재미있어야 합니다. 저희가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병원이 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개원한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 아직 부족한 것이 많고 많은 노동자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저희가 하고자 했던 것들을 하기 위해 한걸음씩 가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의 주치의가 되고자 인근 어린이집 다섯 곳과 진료 협약을 체결하였고, “노동자 건강의 지킴이가 되고자 사단법인 한국이주민건강협회와 함께 이주노동자 순회 진료, 농어촌 이주노동자 교육을 함께 하기로 했고,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병원을 만들고자 노동감사라는 것을 실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저희가 제대로 잘 가고 있는지 지켜봐 주시고 아낌없는 조언 부탁드립니다


홈페이지 www.gonggam.net 에 들어오시면 저희가 하고 자 하는 것과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보다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피부병 생겨도 대체 어렵다던 금속가공유가 바뀐 사정 /2016.2

피부병 생겨도 대체 어렵다던 금속가공유가 바뀐 사정


이선웅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몇 달 전, 같이 보건관리대행을 나가는 간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 사업장에서 직업성 피부질환이 생긴 것 같으니 의사방문을 예정보다 빨리하자는 것 이었다. 며칠 후 사업장을 방문하여 노동자들을 면담했다. 태양광 전지를 만드는 곳이었다


피부증상자는 모두 6개월 전 새로 생긴 웨이퍼 공정의 노동자들이었고, 전체 웨이퍼 작업 노동자 35명중 10명에서 증상이 발생했고, 이 중 일부는 현재도 증상이 있었다. 증상은 대부분 팔 부위에 금속 가공유가 튀어 생긴다고 하였다. 대개 1~2cm 크기의 붉은 발진이 생겨서 가렵다가, 노출이 없어지면 사라졌다. 하지만 오래 남아있던 경우, 약국에서 연고를 사서 증상을 조절한 분도 있었다. 또 정비작업 시 다리에 대량으로 묻은 한 분은 범위가 넓고 증상이 심해 피부과 진료를 받았으며, 다행히 조장이라 관련 업무를 스스로 그만두고 나서야 호전되었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공정에 투입된 직후부터 석달 사이에 주로 증상이 생겼는데, 주기적 정비 과정 중에 묻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이전에 쓰던 토시는 효과가 없었고 열흘 전부터 몇몇 증상자에게 제공된 신형내화성 토시는 효과가 있어 이를 사용한 분들은 증상이 호전되기도 하였다.


노동자들은 그동안 사업장에 이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조심하여 작업하거나 개인적으로 치료하다가, 증상자가 여럿임을 뒤늦게 알게됐다. 그래서 지난달에야 안전관리자의 현장방문중에 얘기하여 보건대행기관에 전달된 것이다. 증상 양상으로 볼 때 자극성 접촉성 피부염으로 판단 되었고, 노출이 차단되면 증상도 비교적 잘 호전되는 것으로 보였다. 얼마 전부터 강화된 보호구 착용으로 증상자 수는 최근에 줄어든 것 같았고, 상담 시 발진이 남아있던 세 분도 다행히 불편감이 가벼워 노출만 피하면 호전될 것으로 보였다. 물질안전보건자료를 확인해 보니, 신규 웨이퍼공정의 금속 가공유에 포함된 항균제 성분 이소티아졸론이 원인으로 생각됐다. 이는 일반적인 절삭유 성분은 아니고, 부식성이 매우 강하여 피부에 화상을 일으킬 수 도 있는 강력한 피부자극물질이었다. 또 피부, 호흡기 알레르기 가능성도 보고되어 있어, 다른 질병 발생도 걱정되었다.


현 상태에서 질환의 치료요양보다는 원인 차단과 제거가 중요하니, 전 웨이퍼 공정 노동자에게 내화성 토시, 앞치마, 고글을 지급하여 착용하도록 하였고, 피부접촉 즉시 세척이 가능한 현장 세척실 설치를 권고하여 담당자도 약속하였다. 그렇지만, 원인 물질의 대체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는 거의 최초로 도입된 공정이라 방법이 없다고 했다. 현재 노동자들의 증상이 심하지는 않지만, 발생자가 많고, 사고로 심하게 피부나 눈에 노출될 경우 위험성이 크고, 다른 질환의 발생 가능성도 있어 근본적으로 대체물질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했으나, 담당자는 공정상의 불가능함을 얘기할 뿐이었고 상부에 보고할지도 의문스러웠다.


나는 직업성 피부질환은 수시건강진단 항목에 해당하고 노동자 개인, 노동자 대표, 보건관리대행기관 등이 건의하면 피부증상자가 특수검진을 받고 이에 대한 사후관리 보고를 노동부에 해야 한다고 했다. (사업주가 특수건강진단 대상업무에 노출되는 근로자중 직업성 천식, 직업성 피부질환 증상을 호소하는 근로자에 대하여 실시하는 건강진단으로 근로자가 직접 요청 근로자대표 또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당해 근로자 대신 요청 당해 사업장의 산업보건의 또는 보건관리자(보건관리대행기관 포함)가 수시건강진단을 건의하는 경우 시행할 수 있다.) 사실 수시건강진단을 해도 원인파악이나 사후관리는 같기 때문에 이 건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실제로 건의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수시건강진단 얘기를 하니 담당자는 좀 더 심각히 받아들였다. 나는 두 달 안에 증상자가 없어지지 않거나, 새 증상자가 생기면 수시건강진단을 하기로 하고 대체물질 개발은 가능한 빨리 조치하며 이에 대해 매달 확인하겠다고 했다. 다음 달 내화성토시와 보호구가 전부 지급되었고 세척실도 설치되었으며 신규 증상자는 없었다.


두 달 후 상담 시, 세척실이 도움되어 증상자는 거의 없었는데, 절삭유가 묻은 작업 셔츠를 하루 이상 입을 경우 가슴에 증상이 생겼던 경우가 두 명 있었다. 이에 매일 작업복을 교체하라고 안내했다. 물질 대체는 계속 어렵다고 했다. 다음 달, 증상자는 더는 없었으며 다른 질병도 다행히 발견되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공정상 물질 대체가 불가능 하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수시건강진단의 필요성도 스스로 잊고 있었다.


그런데 몇 달 후 위생기사로부터 그 사업장이 물질을 대체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피부 질환 때문이 아니라 원가절감을 목적으로, 이미 시험가동 중이라고 했다. 다행히 운 좋게 예전보다 안전한 물질로 대체되긴 했지만, 결국 나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이윤에 의해 무시되는 현장 속에 같이 있었던 셈이다. 물질 대체를 좀 더 적극적으로 요구하거나 수시건강진단을 시행하여 노동자 건강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더 인식시켜야 했다는 아쉬움이 들었고, 다음에는 사후관리를 위해서 뿐 아니라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직업성 피부질환이나 천식의 경우 수시건강진단을 적극적으로 건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성 피부질환은 증상이 약해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고, 이 사례와 같이 집단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알려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근본적인 현장 관리를 위해서는 노동자들 역시 수시건강진단을 요구하거나 보건관리대행 기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꼭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관절염은 나이 때문이라고요? /2016.1

관절염은 나이 때문이라고요?


백리마 회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50대 후반의 조선소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위해 찾아왔다. 손을 보니 누가 보더라도 엄지손가락이 이상하다고 눈에 띌 정도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보니 쇠를 녹여 제품을 만드는 주조작업을 약 37년간 수행하면서 크레인 리모컨과 콘트롤박스의 버튼을 엄지손가락을 이용하여 반복적으로 누르는 작업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힘을 주어 버튼을 누르다 보니 엄지손가락이 정상적인 위치를 벗어나서 탈골되고 또한 심한 관절염이 있는 상태였다. 이 환자는 엄지관절염으로 산재신청을 하여 승인을 받고 요양 중이다.



관절염은 많은 사람이 직업병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관절 중에서 관절염이 가장 많이 생기는 부위는 무릎관절로서 무릎의 퇴행성 관절염은 확실히 나이 증가에 따라 증가하는 경향이 있고, 남자보다는 여자에서 발생할 위험이 크다. 그리고 비만할수록 관절염이 발생할 위험이 증가한다.


그러나 직업적으로도 충분히 관절염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쪼그려 앉아서 일하거나 중량물을 많이 취급하는 경우에는 무릎 관절염이 조기에 발생할 수 있다. 대개 무릎의 관절염으로 인공관절을 하는 시기가 60대 후반, 70대가 일반적인데 노동자들의 경우 50대에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실은 관절염도 직업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무릎을 제외한 관절에 류머티스 관절염이 아닌 퇴행성 관절염이 발생하였다면 그 관절염은 직업병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대표적으로 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 등이다. 2014년과 2015년에 모조선소에서 팔꿈치 관절염이 있는 작업자 7~8명이 산재신청을 한 결과 전원 승인을 받은 바도 있다.


특히 팔꿈치에 관절염이 생기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로서 이런 부위에 관절염이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팔꿈치의 사용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상지에 퇴행성 관절염이 있는 경우 직업병을 의심하고 일단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와 업무 관련성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무릎의 경우에는 직업병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무릎관절을 많이 사용하는 작업이면서, 체중이 비만하지도 않은데 40대 혹은 50대 같이 조기에 관절염이 발생하는 경우 직업병임을 의심할 수 있다. 앞서 기술한 것처럼 쪼그려 앉아서 일하거나 앉았다 일어서는 것을 반복하는 작업, 계단을 반복적으로 오르내리는 작업, 중량물을 반복적으로 취급하는 작업의 경우 직업적으로 무릎의 퇴행성 관절염을 발생시킬 위험이 증가한다.

 

따라서 관절염은 직업병이 아니다 혹은 산재 신청해도 승인이 안 된다는 식으로 포기할 필요가 전혀 없다. 관절염으로 인공관절을 하는 경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인공관절을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산재승인을 받는 경우에는 인공관절 재수술 비용도 보장을 받을 수 있어 산재승인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이런 관절염은 팔다리 같은 부위뿐만 아니라 척추관절의 퇴행성 관절염과 척추협착증 같은 퇴행성 척추질환에도 적용된다. 다만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척추 관련 질환의 경우 퇴행성이란 글자가 붙으면 승인을 잘 안 해주려고 하기 때문에 신청 전에 전문가와 긴밀한 상의를 할 필요가 있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소규모 사업장, 보건관리의 사각지대 /2015.11

소규모 사업장, 보건관리의 사각지대

 

 

 

이영일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현재 근무하고 있는 병원 근처에는 공단들이 제법 있다. 병원 바로 근처인 사상지역에 주로 5인 이상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들이 밀집된 공단이 있으며, 낙동강을 건너가면 녹산공단이라는 비교적 큰 규모의 공업단지가 있다.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곳이라면 특수건강검진을 당연히 받아야 함에도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으며, 특히 영세사업장이 그러하다. 특수건강검진업무를 시행하는 기관들은 대부분 50인 이상의 사업장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현재 근무하고 있는 병원의 경우 종종 사상공단의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이 병원 외래로 특수건강검진을 위해 내원한다.

 

올해 4월에 전체 노동자 10명 미만의 작은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특수검진을 위해 내원하였는데, 이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의 주된 업무는 용해작업과 사상작업이었으며, 작업과 관련된 여러 가지 유해인자 중 특히 납이 문제가 되었다. 인체에 유해할 수 있는 금속, 유기용제 등은 소변이나 혈액 검사를 통해 노출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데, 납의 경우 특수 검진 1차 검사항목으로 혈액검사를 통해 납 농도를 측정하게 되어 있다. 특수건강검진 실무지침에 의하면 혈중 납 농도가 30ug/dl이상이면 요관찰자로 더 이상 노출이 없도록하고 관찰해야하며, 혈중 납 농도가 40ug/dl이상이면 질병이 있는 사람으로 분류해야 한다. (ug은 마이크로그램으로 1/1,000,000그램, dl은 데시리터로 1/10리터에 해당하는 단위다.) 내원한 노동자들의 검진 결과는 평균 혈중 납 농도가 45ug/dl 이상이었으며, 60ug/dl을 넘어가는 분도 한 분 있었다.

  

미국에서 사용되는 납 작업장 경고 표지 "중독될 수 있으므로 흡연이나 음식물 섭취 금지

 

납을 다루는 직업군은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납 노출의 위험성이 크다고 알려진 업종은 제련·합금 제조업, 고철 가공처리업 등이다. 용해된 납의 경우 500~600℃부터는 납 흄(fume)이 발생하는데, 흄이란 고체 상태의 물질이 높은 온도에 의해 기체로 되었다가 다시 응축되어 아주 작은 입자 상태로 된 것을 말한다. 이러한 납 흄은 입자가 아주 작아서 호흡기를 통해 쉽게 흡수될 수 있고, 혈액 속으로 녹아들면서 인체에 고루 퍼져 유해한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납뿐만 아니라 어떤 종류이든 흄의 흡입은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 용접작업자와 용해작업자 는 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대표적인 직업군에 속한다. 그 밖에도 페인트 등의 안료나 염료 제조에도 사용되며, 이전에는 휘발유를 만드는 과정에서 성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납을 첨가하였지만, 대기 중으로 납이 방출되는 문제로 미국에서는 일찌감치 판매를 제한하였고, 우리나라의 경우 1993년부터 판매가 중지되었다. 납은 한자어로 연(鉛)인데, 과거 주유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무연휘발유에서 ‘무연’은 매연을 배출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닌, 납이 포함되지 않은 휘발유를 의미한다.

 

외래로 내원했던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은 열악했으리라 판단이 된다. 혈중 납 농도가 60.7ug/dl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던 분은 용해작업이 아닌 사상 작업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용해작업과 사상 작업의 공간이 분리되지 않았고, 용해작업자들의 경우 간헐적으로라도 마스크를 착용한 반면, 이 분의 경우 사상 작업을 하시면서 마스크 착용을 거의 안 했던 것이 유독 혈중 납 농도가 높았던 이유였으리라 판단된다. 사업장 내에 배기장치가 있다고는 하였으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하였고, 배기장치에 대한 주기적인 점검은 이루어지지 않는 등 작업환경에 대해서도 개선할 점이 많았다. 특수건강검진 실무지침에 의하면 혈중 납이 30ug/dl 이상일 경우 2개월에 한 번씩 혈중 납을 연속해서 최소 2번 추적검사를 하게 되어있으며, 작업을 제한한 후에 추적검사를 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이러한 소규모 사업장에서 작업제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납 자체가 1급 발암물질은 아니지만, 신경계 증상(떨림, 저림), 소화기계 증상(식욕 저하, 소화불량 등) 등을 유발할 수 있으며, 신장에 손상을 가하는 등 다양한 계통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심한 납중독은 뇌병증까지도 유발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높은 혈중 납 수치와 비교하면 호소하는 증상은 없었으며, 표적장기들과 관련된 검사에서 특별한 소견들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노동자들 개개인에게 현재 하는 작업에서 납이 인체에 끼칠 수 있는 유해한 영향, 납의 특성과 함께 납 흄의 개념을 알려드리면서 특수방진 마스크 착용의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렸다. 8월 2차 추적검사까지 완료한 결과 다행히도 노동자들의 혈중 납 농도는 4개월 전에 비해 많게는 15ug/dl 이상 감소하였다.

 

요즘 TV에서 노동개혁 공익광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실 공공의 이익에 전혀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공익광고’에서 ‘공익’이란 단어는 어폐가 있으며, 광고를 보고 있자면 부아가 치민다. 진정한 노동 개혁은 노동자들이 당연하게 누려야 할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산업현장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위험요소로부터 노동자들을 잘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함에도, 정부가 외치는 노동개혁에는 ‘쉬운 해고’만 있을 뿐 개혁의 방향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2014년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산업재해 통계자료에 의하면 전체 노동자 수 중에 5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 수가 월등히 많으며, 재해율 또한 사업장의 규모가 작을수록 높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크게 달라진 것도 없으며, 여전히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산업보건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더는 방치할 수 없다. 소규모 사업장의 보건관리를 위한 인프라 구축과 관리방안에 대한 제대로 된 담론이 필요하며,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시작해도 늦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너무 흔한 산재은폐와 직업병의 은폐 /2015.10

너무 흔한 산재은폐와 직업병의 은폐


조성식 회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얼마 전 특수검진 시, 한 노동자에게 직업병에 해당하는 D1 판정을 하였고, 얼마 후 그 사업장의 사업주에게 항의와 함께 판정을 바꾸어 달라는 부탁을 들었다. 그 사업장은 자동차 휠을 만드는 사업장의 사내하청 회사였다. 작업 중 소음 노출 수준이 높고, 소음으로 인한 직업성 난청도 적지 않게 발생하는 사업장이었다. D1 판정을 한 노동자의 경우, 한쪽 귀는 소음 노출로 인해 생기는 감각신경성 난청과 중이염으로 인한 전음성 난청이 동반된 혼합성 난청으로 직업성 소음 노출로 인한 소음성 난청이 존재하였기에 직업성 질환으로 판정을 내렸고, 다른 쪽 귀는 '소음성 난청 주의'에 해당하는 C1 판정을 하였다. 하지만 사업주는 이 노동자가 중이염의 병력 때문에 소음이 난청이 아니니 일반질병(D2) 판정으로 내려달라며 항의를 동반한 부탁 전화를 한 것이었다.


현재 특검 제도는 직업병 발견의 측면에서 그리 잘 작동하고 있는 제도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현재의 특검 제도가 진폐증과 소음성 난청의 조기 발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도 하고, 직업성 질환의 경우 잠복기가 긴 질환이 많은데 이를 적절한 검사로 찾아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또한, 현재의 검사 항목이 부실하거나 부족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2013년도 근로자 건강진단 실시결과를 보면, 특수검진 후 7,804명의 노동자에게 직업성 질환이 발견되었고, 이중 소음성 난청이 7,388명, 진폐 관련성 질환이 162명이었다. 이 두 질환의 비율은 발견된 전체 직업성 질환의 95%를 넘어선다. 이처럼 직업성 질환은 특수 검진을 하더라도 소음성 난청과 진폐증 이외에는 잘 발견되는 않는 것이 현실이다.


▲  2013년도 특수검진결과에서의 직업성 질환의 질환별 유소견자 수 (%)


또 한편 특수검진은 사업주의 부담으로 검사가 진행되고, 대다수 특수검진기관은 사립의료기관이다. 따라서 특수검진기관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전문가로서 성심껏 직업병을 발견해야 하기도 하지만, 비용을 지급하는 사업주의 눈치를 안 보기는 어려운 것이 또한 현실이다. 위와 같이 사업주가 항의 섞인 부탁 전화를 한 건 검진비를 지급한다는 갑의 위치를 이용해서 압박하려는 의도로 판단된다. (하지만 필자는 판정을 바꾸지는 않았다.) 이 회사의 경우 원청회사에 노동조합이 있었고, 원청 노동조합에서도 판정번복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는 상황이 더 어렵다.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는 사업주가 검진기관을 차기 연도에 쉽게 변경할 수 있으므로, 해당 검진기관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이 같은 전화가 상당한 위협이 된다. 


소음성 난청의 경우는 근로자 건강 실무지침에 직업성 난청에 해당하는 데시벨까지 명시되어 있어 판정을 비교적 명확하게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대다수의 직업성 질환은 노동자의 증상에 기반을 둬 판정을 내리게 되어 직업성 질환을 놓치지 않을까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업주가 항의를 할 경우 진단을 놓칠 수도 있겠다는 판단도 하게 된다. 이처럼 사업주의 부담으로 진행되고 사업주가 임의로 검진기관을 바꿀 수 있는 경우, 특히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거나 힘이 미약한 경우에는 더욱더 사업주의 압력으로 발견된 직업병도 은폐되기 쉬운 것이 21세기 한국의 현실인 것이다


사고로 인한 산업재해도 언론에서도 몇 차례 보도되었듯이 광범위한 은폐가 일어난다. 심지어는 응급한 상황인데도, 산재 발생을 숨기기 위해서 119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응급환자를 개인 트럭으로 수송하거나, 지정병원(이 경우 산재가 아니라 공상 처리해주는 병원)의 차량을 불러서 이송하는 경우가 흔한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사고성 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한해 1,000명이 넘고 이조차도 은폐된 숫자이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수많은 산재가 발생하지만 많은 수가 은폐되고 있다. 또 한편으로 많은 유해 작업과 위험작업을 원청이 아닌 하청 업체·중소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하고 있고, 이들 노동자에서 재해와 직업성 질병이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 같은 산재 은폐를 막고 작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적절한 개입 수단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산재 은폐를 막고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노동조합과 같은 노동자의 조직이 중소기업과 하청사업장까지 확대·강화됨으로써 산재 은폐를 하지 못하게 감시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하도록 사업주를 압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산업재해 은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하며, 중대 산업재해에 대해서 사업주를 비롯한 경영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 /2015.9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

 

 

김세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서울에서 전공의 생활을 했던 작년까지는 이주노동자 진료소에 나가는 등의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이상 일하면서 이주노동자를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쩌다 가끔 만나게 된다 해도 몸짓, 손짓, 간단한 그림으로 미흡하게나마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고, 그런 상황이 일단락되고 나면 더는 그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일하면서 자주 접하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큰 관심도, 그럴만한 별다른 계기도 없었다.

 

그런데 올해 봄부터 공단 지역이 있는 중소도시의 병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상황이 좀 달라졌다. 공단과 다소 거리가 있는 집 근처의 동네마트에서도 이주민들을 심심찮게 만날 정도이니, 공단에 있는 사업장으로 출장검진을 가면 회사마다 좀 차이는 있지만, 이전보다 상당히 자주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게 된다. 본디 ‘검진’이라는 업무가 가진 특성상, 그리고 여러 현실적 여건 때문에 검진하면서 만나는 노동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기는 힘들다. 이미 파악되어있는 유해인자 목록이 대체로 정확할 거라는 믿음 아래 그에 따라 핵심적인 증상이 있는지 물어봐야 하고, 신체진찰도 꼭 필요한 것을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이야기가 길어질라치면, 간호사가 다가와 ‘선생님, 조금 더 서둘러주셔야 해요.’라고 다급하게 속삭이기 일쑤. 테이블 옆에 길게 늘어져 서 있는 분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말과 손이 빨라진다. 하지만 1:1로 대면하는 검진만큼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상황 봐가며 가능한 이것저것 물어보고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늘 여유롭지는않다. 짧은 시간 내에 문진과 진찰을 해야 하고, 간략한 교육이 필요할 때가 많다.

 

짧은 검진시간, 말 안통하는 이주노동자는......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건강검진 자체도 여러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만나는 이주 노동자들은 더욱더 고민거리다. 대부분 시간적 여유가 없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국적을 물어보진 않지만, 이름이나 외모로 보아 대부분 동남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가장 많다. 얼굴을 마주 보고 앉으면 일단 한국어를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본다. 한국에 온 지 오래된 경우는 한국말이 꽤 능숙하거나, 최소한 질문 내용을 이해하고 간단하게나마 대답을 할 수 있는 분들이다. 그러면 아픈 곳이 있는지, 일할 때 보호구를 착용하는지 등 간단한 단어나 손짓을 통해 서로 알아들을 수 있다.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되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쨌든 핵심적인 내용의 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분들은 한국어를 할 수 있는지 묻는 첫 번째 질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여러 번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채로 처음으로 그런 상황을 맞았을 때는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혔다. 서로 멀뚱멀뚱 눈만 바라보며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손짓을 해야 할지 금방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그 나라 말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뭐든 말해봤자 전달이 되지 않을 테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개인의 병력이나 주요 증상 유무에 대해 미리 스스로 점검한 문진표를 건네받지만, 한국어로 된 문진표를 그가 정확히 표시했을 리 없다. 국적에 따라 간단한 영어로 소통할 수 있거나, 한국어가 능숙한 같은 나라 출신 동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그것은 운이 좋은 경우다.

 

의사소통도 어려운 이주노동자는 어떻게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까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이들이 어떻게 위험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국어로 된 매뉴얼이나 MSDS(Material Safety Data Sheet,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읽을 수 있고, 동료와 문제없이 소통이 가능한 많은 한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일터는 안전하지 않다. 많은 사람이 일하다 다치고 병들거나 죽는다. 하물며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쉽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은 어떨까. 그나마 반복적인 동작으로 인한 허리통증이나 어깨통증은 어떻게든 몸짓으로라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늘 일하며 다루는 물질이 훗날 암이나 진폐증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인지, 마스크를 끼지 않은 채로 일하면 왜 위험한지를 그들은 알고 있을까. 혹은 그런 것을 알 기회가 주어지기는 할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위험을 무릅쓴 채로 일하고 있는 걸까.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출장검진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만난 날에는 이런 생각으로 한동안 답답하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내가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고, 내가 뭔가를 바꾸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일이라는 생각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한국인이든 이주민이든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고 시스템을 갖춰 나가야 하겠지만, 이 지역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중 한 명인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해봐야겠다. 예를 들어, 기존에 나와 있는 외국어 안전보건자료를 사업장에서 활용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 외국어 문진표를 우리 병원에서 활용할 수 있을지 다른 직원들과 의논해보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이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요/ 2015.8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요



권종호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공의


전공의 4년 차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보건관리 대행 업무를 시작했다. 보건관리 대행은 병원과 계약된 사업장들을 돌아다니면서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특별한 이상은 없는지, 작업과 관련된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고 이에 대한 상담과 관리를 하는 업무이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사업장을 전담해서 매달 다니시지만, 의사는 분기별 혹은 상하 반기로 나눠서 방문한다.


처음 보건관리 대행을 다니면서 날씨가 덜 풀린 탓에 추위에 고생을 많이 했다. 유난히 경기 북부에 대행사업장이 많은 우리 병원의 특성상 가는 곳마다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쳤고 출장용 소형 차량은 그 칼바람을 이겨내기엔 상당히 버거웠다. 간혹 난방도 잘 안 되는 창고 같은 공간에서 상담하기도 했다. 그나마도 공장 안 작업장보다는 따뜻한 곳이라니 감사히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건강 상태도 제대로 모르고 일에 치여 살던 분들에게 혈압·혈당 등 건강 체크도 해드리고 건강 문제와 관련해 상담해드릴 수 있는 점은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가질 수 있는 큰 보람이다. 대부분은 혈압·혈당 등 간단한 검사에서 큰 문제가 없었지만, 간혹 심각한 수준의 고혈압이나 당뇨병 의심 상태를 보이는 분도 있었다.


비만·흡연·음주 관련 상담도 중요하지만, 고혈압·당뇨병 등 질환이 있는 경우 더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기에 그런 분들에게 왜 치료가 필요한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꼭 병원에 가 보시라고 권해드렸다. 보건관리 대행 사업이 상당히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측면이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서면으로 전달되는 건강검진 결과표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몇 달 뒤 같은 사업장들을 돌면서, 제대로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하는 분들을 다시 만나야 했다. 이런저런 설명 끝에 꼭 병원에 가셔야 한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가보셨단다.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다. 요즘 병원들 평일에도 저녁 7시, 8시까지 하고 주말에도 여는데 거길 못 가보신다는 게 말이 되느냐 했더니 평일에도 10시에 끝나는 날이 부지기수고 주말에도 출근하는데 일 끝나면 쉬고만 싶다고 하신다. 할 말이 없었다. 병원이 아무리 늦게 까지 열어도 갈 시간이 없고, 갈 힘이 없으면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것이다.


한국의 '미충족 의료 비율' 높아


'미충족 의료'라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하면 당장 아프거나 지속해서 병원에 다녀야 하는 질환이 있음에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를 국가 별로 비교해 보면 보건 복지 정책의 수준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즉 미충족 의료 비율이 높을수록 보건 복지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다. 


다음은 보건 복지 포럼에서 2013년 발표된 '우리나라 건강수준과 보건의료 성과의 OECD 국가들과의 비교'라는 자료에서 발췌한 표이다. 한눈에 보일 정도로 한국의 미충족 의료의 비율이 높다. 또한, 인지된 건강 상태도 낮게 나타나, 건강 상태는 전반적으로 안 좋은데 병원에는 잘 가지 못하는 상태 혹은 병원에 잘 못 가서 건강 상태가 전반적으로 안 좋은 상태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2010년에 더욱 악화하여 다른 OECD 국가들보다 현저히 동떨어진 수준을 보여준다. 사실 자료를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  김혜련, 여지영 '우리나라 건강수준과 보건의료성과의 OECD 국가들과의 비교' (2013)


이와 관련하여 2014년 정책보고서인 '한국 의료패널로 살펴본 우리나라 보건의료'라는 자료를 보면 이러한 미충족 의료의 원인은 65세 미만의 경우 시간 부족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65세 이상의 경우 경제적 이유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의학 기술로는 의료 선진국이고 공공 의료 보험 제도를 갖춘 나라, 병원을 개원하기 힘들 정도로 이미 많은 병원을 가지고 있는 나라임에도 시간과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가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노인·장애인·도서벽지 주민의 물리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을 이유로 원격 진료부터 시행해야겠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첨단 장비와 우수한 인력을 마련해 두고 환자가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병원이 곳곳에 있음에도 갈 시간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고 있다는 현실. 경제 성장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챙기지 못한 노동자의 건강권이 처한 현실이다. 그나마 노동자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만든 특수 건강 검진, 보건관리 대행도 노동자에게 병원에 가고 치료받을 시간과 정신적 여유를 주지 않는 이상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지 않을까. 노동자들이 마음 편히, 여유롭게 내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날, 그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사회가 될 때까지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해야 할 일들이 참 많아 보인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열사병의 원인은 태양이 아니라 저열한 제도/ 2015.7

열사병의 원인은 태양이 아니라 저열한 제도

 

 

류현철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얼마 전 반가운 산재 승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내심 재판까지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던 사안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인정되어 승인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늦여름이나 초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선소에서 일하던 만 23살의 젊은 하청 노동자의 '돌연사' 건으로 연락이 왔다. 그는 8월 한여름 낮에 조선소에서 작업하던 도중 혼자 쓰러진 상태로 동료 작업자에 발견돼 응급실로 후송됐으나 결국 사망했다.

 

담당 의사는 심근경색을 사망 원인으로 의심했고, 돌연사의 가장 흔한 원인이 되는 것이 뇌심혈관계 질환이기에 그쪽으로 가능성을 두고 있었으나 국과수의 부검 결과 뇌심혈관계 질환의 가능성은 배제됐다는 것이다.

 

"의사 선상, 뭐라도 쫌 방법을 찾아보소! 어떻게 안 되겠능교?"

 

부검 소견으로 산재의 가능성도 멀어지는 듯해 답답한 마음에 내게 연락을 넣었던 모양이었다. 부검 소견상 사인은 불명이었지만, 응급실 진료 기록상 간 수치가 높아서 급성 간 부전에 의한 사망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언급은 있었다고 했다.

 

당일 오전까지도 멀쩡하게 일하던 젊은 노동자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급성 간 부전으로 인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았지만, 간 효소 수치가 급성 간 부전을 언급할 정도로 높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열성 질환(열사병)의 경우에 간 효소 수치의 급격한 상승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뭐라도 '쫌' 해봐야 했다

 

최초 발견 후 후송된 응급실 진료 기록 전체, 부검 소견서, 과거 건강 검진 기록을 다시 검토했다. 최초 발견자의 진술을 다시 확인하고 고인이 일하던 조선소 현장을 찾아갔다. 그의 일은 선체 외부 용접을 하기 위해서 선체 안에서 용접할 철판을 100~120도까지 예열하고 용접이 잘 이뤄지도록 백킹제라는 것을 탈부착하는 업무였다.

 

그가 쓰러진 날은 8월, 한여름 낮의 날씨는 작업장의 열기를 더했을 것이다. 열사병의 가능성은 컸다. 그러나 열사병의 경과로는 너무 급작스러운 사망이었다. 의료 기록에서 응급 검사 기록상 높은 간 효소 수치,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으로 의심했던 심근 효소 수치의 증가(열사병의 경우에도 심근효소 상승 이 있을 수 있다)를 확인했다. 이 역시 열사병에서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역시 발견부터 사망에 이르는 시간 경과상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의 가능성은 적었다.

 

그러나 최초 도착 시 질식 상태에 대한 언급, 응급 간호 기록지에서 기도 흡인을 할 때 음식물이 배출됐다는 사실 역시 확인했다. 최초 발견자가 말했던 구토의 흔적이나 얼굴이 검게 돼 있었다고 언급한 정황과 맞춰보면 기도 폐색으로 인한 질식의 가능성이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열사병으로 그렇게 이른 시간에 사망에 이르기는 힘들 것이고, 또한 정상적인 경우라면 술에 취하거나 뇌 손상도 없는 젊은 성인 남자가 구토로 질식에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열사병으로 활력과 의식이 떨어진 상태에서의 구토라면 다르다.

 

"열중증(열사병)으로 인한 활력 및 의식 저하를 동반한 구토, 구토물의 기도폐색으로 인한 질식사"가 의심됐고 기존의 문헌 자료 검토와 의무 기록, 현장 검토 기록을 첨부해 업무와 관련한 사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업무 관련성 평가 소견서를 작성했다. 그 건이 다행히 산재로 인정되었다.

 

필사의 노동, 목숨까지 앗아갔다

 

근간의 일 중 적지 않은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먼저 젊은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외로운 죽음이 업무와 관련된 것이었음이 입증된 것이 중요한 의미이다. 남겨진 가족에게는 아주 작은 위안이라도 될 것이다. 또 한편으로 직업환경의학을 하는 의사로서의 작은 의미와 보람을 일깨워준 일이기도 하다.

 

응급실에서 처음 고인을 접한 의사 의견도, 국과수 부검의의 의견도 의학적 사실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으며 그들의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은 고인의 직업과 일을 돌아볼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죽음이 의미하는 바를, 그 죽음의 진짜 원인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인은 열사병, 기도 폐색이면서 또한 원·하청 제도이기도 하다. 그것을 밝히고 이야기하는 것이 직업 환경 의학 의사의 일이다.

 

8월 한여름 거대한 강철 구조물 안에서 벌어지는 필사의 노동. 조선소 하청 업체 노동자는 추천을 받아 직영으로 들어가게 해준다는 직영 추천제가 주는 작은 희망에 매달려 그렇게 일하다가 쓰러졌다. 스물세 살이었다. 고인이 남긴 휴대 전화의 문자 대화들을 보라. 이런 현실에서 빚어진 노동자의 죽음이 업무와 관련한 사망임을 밝히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 열사병으로 사망한 노동자 휴대폰에 남아 있던 문자

 

이런 애달픈 죽음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이제부터 할 일이다. 열사병에 이르게 하는 혹독한 작업 환경이 개선돼야 할 것이며, 더불어 자신의 건강과 안전에 위협을 느끼게 되는 상황에서는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줘야 한다. 어떻게든 직영이 되고자 가혹한 조건의 노동을 감내하고 휴식의 기회조차 내놔야 하는 현실 속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은 위협받기 마련이다.

 

다시 뜨거운 여름이 다가온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열사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맞서야 할 것은 무심한 태양이 아니다. 열사병의 원인은 태양이 아니라 저열한 제도(制度)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