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신명나게 일할 수 있으려면 / 2018.06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신명나게 일할 수 있으려면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이정엽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전공의 3년차가 되어 처음으로 출장 검진을 시작한 지 불과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다그 날 방문한 곳은 경북 고령에 위치한 사업장으로 불과 8명의 노동자들이 공업용 줄을 만드는 영세한 곳이었다그 곳에서 줄의 표면을 가공하기 위해 탁상 그라인더를 3년 째 다루고 있는 한 50대 노동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라인더와 같이 진동이 발생하는 공구를 쥐고 장기간 사용할 경우에는 손에 있는 말초혈관과 말초신경 등에 손상이 생기는 수완진동 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다그래서 근로자 특수건강진단에서는 착암기연마기굴착기 등 진동공구를 취급하는 작업자들이 진동과 관련된 문진 및 진찰을 받도록 되어 있다. 

손가락이 저리거나 감각이 떨어지는 증상은 없으세요?

"얼마 전부터 양쪽 손이 다 좀 저리고요특히 두 번째 손가락은 좀 얼얼한 것 같습니다." 

아 그러세요혹시 겨울철이나 추울 때 손가락 색깔이 하얗게 변하지는 않으세요?

"맞아요어떻게 아셨습니까추울 때 손가락 끝이 하얗게 변하는 걸 본 적 있습니다." 

진동공구를 다루는 직업력저리거나 감각이 떨어지는 신경 증상그리고 혈액순환 저하로 인해 추운 환경에서 악화되는 손가락 창백 현상까지수완진동 증후군의 전형적인 소견이었다손톱 압박 검사에서도 혈색이 금방 돌아오지는 않는 듯 보였다이러한 증상이 그라인더 사용에 의한 직업병일 수도 있다는 설명과다른 원인의 배제 및 정확한 진단을 위해 추후 병원 방문 및 추가 검사가 필요할 수 있다는 안내를 드렸다. 

이후 몇 명의 검진을 더 진행한 뒤 다른 어떤 직원이 씩씩거리며 내 앞에 앉았다자신은 이곳의 관리자인데 조금 전 그라인더 작업자와의 대화를 들었다며 갑자기 직업병이 대체 무슨 말이냐고 다짜고짜 따졌다. 

"그 사람보다 그라인더 작업을 오래한 사람들도 다 멀쩡한데 그게 무슨 직업병이요그리고 그런 걸 다 직업병이라고 하면 대체 그 작업을 할사람은 누가 있단 말이요?" 

예상치 못한 항의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나는 그 사람이 직업병이라는 게 아니라 직업병의 가능성이 있으니 설명만 드린 것이고 정확한 진단은 추가 검사를 해보아야 알 수 있다는 식으로 답을 했다. 

더 큰 사건은 출장검진을 마치고 병원에 돌아온 이후 발생하였다그 관리자로부터 병원에 직접 전화가 와서 아까 그 직업병 이야기는 말도 안되는 소리고 직업병 판정이 나면 그 사람은 바로 해고시켜 버릴 거라며 아까 그 의사 전화 바꿔보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나는 허락도 없이 개인 검진 내용을 엿들은 것도 모자라 이미 충분히 설명을 했는데도 그렇게 협박조로 나오는 그 관리자에게 언짢은 감정이 들었다나는 우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2차 검사는 시행해 보려고 했다하지만 2차 검사 비용은 사업주가 부담을 해야 하는데 사업주가 그 비용을 낼 수 없다고 버텨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매년 검진을 해오던 사업장에서 강한 불만이 나오니 병원 직원들도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그리고 나에게는 무엇보다 직업병 판정이 나면 그 사람을 해고시켜 버릴 거라는 그 관리자의 엄포가 가장 무겁게 다가왔다노동자 본인에 있어서 실직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상황은 자신의 손가락 색깔이 창백하게 변해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재해'일 수 있었다관리자의 협박은 무섭지 않았지만 나의 결정이 그 분의 삶에 도움은커녕 도리어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가능성때문에 나는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결국 2차 검사는 시행되지 못하였고 '보호구 착용 철저추적관리'라는 다소 무책임한 조치명이 새겨진 결과지를 발송하는 것으로 이 사건은 끝이 나고 말았다. 

그날 저녁 퇴근을 하고 나서 나는 아내에게 그날 겪었던 일과 고민에 대해 털어놓았다직업병의 조기 발견을 위해 시행하는 검진이지만 직업병을 발굴해 내는 과정에서 때로는 회사병원심지어 노동자까지 그 어느 누구도 그 과정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딜레마를 겪고 난 이후의 혼란스러움과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나는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의 본분에 충실할 수 있는 길인지에 대한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 즈음부터 나는 의학 서적 내용만 읽어 내려가던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우리나라의 안전보건 및 산재보상 제도노동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권리 등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가지며 그러한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그러한 모순에 빠지지 않고 노동자들의 직업병을 정확하게 진단하며 그들이 합당한 보상을 받도록 적극적으로 돕기 위해서는 어떠한 전제 조건이 필요할까나의 생각에는 '실효성 있는 제도'와 '노동자들의 적극적 참여'의 두 바퀴가 동시에 굴러가야 하며 바퀴가 도중에 멈추지 않도록 윤활유 역할을 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산재 은폐를 조장하는 개별실적요율제검진기관이 사업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계약방식 등 현재의 제도에 대해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노사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노동자의 건강보호에 좀 더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을 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또한 고용에 있어 건강상의 이유로 부당하게 가해지는 불이익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는 원칙 아래 많은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목소리를 낸다면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도 안심하고 자신의 본분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사업주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필요 시 행정절차를 밟는 것이 '불만이 많고 별난일부의 행동이 아니라 노동자라면 누구나 선택할 수 있고 주변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당연한대응 방식으로 사회적 인식이 바뀌게 된다면 노동자들도 비로소 주변의 시선을 불편해 하지 않고 자신의 건강권을 위해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게 된다면 그 사업주도 더 이상 "직업병 받으면 해고시켜 버리겠다와 같이 법과 노동자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는 발언을 그토록 당당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공동체가 그러한 사회로 한 발짝 더 내딛는 만큼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능력을 노동자 건강을 위해 더 신명 나게 펼쳐 보일 수 있을 것이다한편으로는 그러한 사회적 변화를 수동적으로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노동자들의 권리 신장을 위한 많은 이들의 노력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함께하리라 다짐해본다.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이야기] 진단보다 치료가 우선 / 2018.05

진단보다 치료가 우선

권종호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서울 시내의 지하철 건설 현장으로 출장 검진을 나간 날이었다. 새벽부터 때 묻은 작업복에 안전화 차림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던 노동자들은 한창 정선에서 채광이 한창이던 때 갱도로 내려가려는 광부들의 모습처럼 보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보는 1970년대 광부들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끼던 것도 잠시, 이내 정신없는 문진이 시작되었다. 문진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여기저기 볼멘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매년 똑같은 폐기능 검사, 청력 검사를 뭐하러 하느냐." 
"검사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나아질 것도 없는 그런 검사들을 병원이 돈 벌려고 하는 것 아니냐." 
"차라리 그 돈으로 사람을 더 써주던가, 환풍기를 좋은 걸로 바꿔주던가, 소음이나 좀 줄일 수 있게 개선해 달라."

실제로 지하철 건설 현장의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예를 들면, 지하철 건설 현장 위의 도로를 뒤덮은 철판 소음 같은 것이 있다. 밖에서는 그 위를 차로 지나면서 잠깐 소음을 접하지만 지하의 건설 현장은 그 소음을 직접, 그것도 작업 시간 내내 접하게 된다. 그럼에도 건설 현장 특성상 산재 사고의 위험이 크고 작업자들 간 의사소통을 하며 진행해야 하는 작업이 많기 때문에 귀마개에 귀덮개 까지 할 정도로 차음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때문에 다른 건설 현장에 비해 소음성 난청인 노동자들이 훨씬 많고 그 정도도 심각했다.

아무리 청력 검사를 하고 수십 명의 소음성 난청자가 나와도 개선되지 않는 현실에 볼멘소리가 나올만하다. 위험해서, 작업의 특성상 귀마개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이대로 청력 손상을 두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이럴 경우 매우 큰 소리는 줄여주고 주변의 작은 소리는 반대로 적정 수준으로 증폭시켜주는 귀덮개를 적절히 사용하면 청력 손상을 다소 완화 할 수 있다. 실제로 공항에서 일부 사용하고 있고 최근에는 공군에서도 2016년부터 2022년까지 1만 개를 공급하기로 했다.

지하철 건설 현장에는 매년 반복되는 청력 검사보다 위와 같은 보호구가 더욱더 절실하다. 이러한 보호구로도 부족하다면 추가적인 시설 개선도 필요할 수 있다. 즉, 검사를 통한 진단보다 문제 되는 질환에 대한 치료가 시급한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감기 환자가 폐렴으로 진행되는 것을 확인하고도 적절한 항생제 치료 없이 감기약만 주는 것과 같다. 좀 더 자세히 비유하자면 폐렴이 악화되는 것을 매년 강제적인 엑스레이 촬영으로 확인하면서 제대로 된 치료는 전혀 하지 않는 매우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물론 정확한 진단과 조기 발견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적절한 치료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폐렴을 다시 예로 들면, 폐렴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는 항생제는 폐렴의 원인이 되는 여러 종류 세균 중에 정확한 원인균이 세균 배양 검사를 통해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정황상 예상되는 세균에 대해 효과가 좋을 것으로 보이는 '경험적 항생제'를 통해 치료를 먼저 시작한다. 더 큰 손상을 막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치료가 정확한 진단에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

특수건강진단,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 위험성 평가, 직무스트레스 및 뇌심 발병 위험도 평가 등 노동자들은 수많은 '진단' 과정을 매번 겪고 있고 이를 통해 발견된 노동 환경 문제들에 대한 개선 '처방'까지 그 안에 포함되어있다. 하지만 정작 실제 현장을 바꾸는 '치료'는 얼마나 되고 있는가. '치료'에 해당되는 시설 및 보호구 개선, 인력 충원 등에 '진단'에 사용되는 비용만큼이라도 사용되고 있는가. '진단'으로 행해지는 항목을 일부 조정해서라도 '치료'를 위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는 없을까(실제로 특수건강진단으로 청력검사를 재검까지 모두 시행하는 경우 비용은 6만 원 정도. 반면 귀덮개 정가는 18만 원 정도다).

핸드폰이 컴퓨터의 성능을 뛰어넘는 시대, 청소 로봇이 상용화된 시대이다. 그만큼 노동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기술도 크게 발전해왔다. 하지만 노동 현장에서는 법적으로 정해진 '진단'과 '처방'에 사용될 비용이 있을 뿐 발전된 기술을 통해 '치료'하는데 쓰일 비용은 필요 없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수건강진단을 위해 길게 줄지어선 노동자들 사이의 볼멘소리는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진단'과 '치료' 상황에 대한 당연한 불만인 것이다.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나 노동자 건강 이야기] 공포의 빵 공장 / 2018.03

공포의 빵 공장

권종호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얼마 전 제빵 공장에 특수 건강 검진 출장을 다녀왔다. 24시간 빵을 만드는 라인이 돌아가는 곳이라 대부분 직원이 주야 2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고 1주일 위로 교대하는 패턴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일주일 내내 야간 근무를 하고 다음 주는 주간 근무로 돌아가는 근무 형태에서 제대로 된 잠을 자기는 매우 힘들다. 그래서안전보건공단의 ‘교대 작업자의 보건관리지침’은 ‘야간작업은 연속하여 3일을 넘기지 않도록한다.’고 권고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지침 때문에 검진을 시작하기 전에는 감시단속 노동에도 해당하지 않는 일반 제조업이 교대 근무를 일주일 단위로 하니 수면 장애나 다른 건강문제들이 심각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수면 장애를 호소하는 노동자가 매우 드물었다. 대부분은 잠드는데 걸리는 시간도 짧고 한번 잠들면 깨지 않고 잘 잔다고 했다. 검진이 한참 진행되고서야 10년 넘게 일하셨다는 분을 통해서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24시간 내내 빵 공장이 돌아가는데 그렇게 하려고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까지 근무한다. 야간은 다음 한 주간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일 시작 시간이 7시인 거지 옷 갈아입고 준비하는 시간 생각해서 30분에서 1시간 일찍 출근한다. 점심시간은 20분 안에 줄서기, 배식받기, 식사하기 등을 모두 마치고 제자리에 돌아가고 이외의 쉬는 시간은 거의 없다. 10년 넘게 일하는 동안 주 5일 근무는 해본 적이 없다. 찐빵이 만들어지는 가을부터 겨울까지 주 7일 근무를 하기도 한다. 업무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서서 몸 쓰는 일이고 쉴 시간이 거의 없이 일하는 데다 근무 시간도 길다보니 대부분 집에 들어가면 다른 생활이 없이 잠만자게 된다. 하루라도 쉬는 날이 생기면 그런 날은오히려 더 잠만 자게 된다.’

이후에 검색해보니 인터넷상에 이 공장은 이미 ‘공포의 빵 공장’으로, ‘제빵 업계의 원양어선’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 공장에서 근무했다는 사람들의 후기를 일부 인용해 보겠다.

“진짜로 힘들고 고단하면 그렇게 술 마실 기력도 없습니다. 생각도 안 듭니다. 기숙사 내에서 술 마시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조용하고요. TV도 잘 안보죠. 술은 최소한 인간일 때 마시는 겁니다.”

“그래도 좋은 점은 여유가 없고 너무 빡빡해서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는 적습니다. 애초에 영혼을 빼버린 듯한 좀비들만 일할 수 있는 곳이라서. 사람간의 갈등은 적은 편.”

“쉬는 시간이 30초 같은 느낌 느껴봤어? 월급이 200이 넘는데 200만원 보다 100만원 받고 살고 싶다는 생각해봤어? 이거 말고 뭐든지 잘할 수 있다는 생각 군대 때 말고 해본 적 있어?”

아무리 연장, 휴일, 야간 수당을 모두 받는다 하더라도 일과 잠이 생활에 전부가 되어버릴 정도의 노동 조건이 가능해서는 안 된다. 장기 매매, 매혈을 법적으로 금지한 것처럼, 경제적 이익을 선택할 자율성 이전에 인간의 존엄성과 최소한의 건강권이 지켜지도록 법적으로 강제되어야한다. 실제로 이를 위해 각국의 노동법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기본적인 노동시간이 4개월 평균 주 48시간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에 추가로 독일, 영국은 야간작업이 포함된 노동의 경우 1일 8시간 이상 노동을 금지하고 있고 핀란드의 경우는 더 나아가 교대조가 2개뿐이라면 새벽 1시 이후 노동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전혀 없다. 그래서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임금 이외의 노동 조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공포의 빵 공장’이 버젓이 존재할 수 있었다. 지난 2월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법정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계적으로 단축하겠다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합의되었다. 

법정 노동시간이 주 40시간으로 명시된 나라에서 52시간으로의 단축을, 그것도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은 매우 황당한 일이다. 또한, 이러한 합의가 현실적인 변화를 얼마나 가져올지, ‘공포의 빵 공장’이라도 없앨 수 있을지는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나 노동자 건강 이야기] 그때 그 군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 2018.02

그때 그 군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최혜란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공의


나는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 2년차이다. 2017년 상반기에는 컨설트 환자를 볼 기회가 있었다. 컨설트란 병동에 입원한 다른 과 환자들이 직업환경의학과 진료를 원하는 경우, 찾아가 면담 및 진찰을 하는 의료행위를 말한다. 그렇게 의뢰된 환자의 수는 많지 않았다. 또한, 대부분이 환자나 보호자가 질병에 대한 업무 관련성을 의심하는 경우에 주치의를 통해서 의뢰해달라고 부탁해서 이뤄지는 경우였다.

컨설트를 통해서 다양한 사례를 접할 수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군인이었다. 30대 초반의 젊은 남성이었고 2017년 5월 급성백혈병으로 진단받았으며, 본인이 맡았던 부대 내의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에 대해 소견을 적어달라는 의뢰였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부대에서 전차 등의 모형을 제작하는 업무를 수행했고 그 과정에서 환기나 보호구 지급 등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꽤 오래 그 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유기용제 노출 등에 의해 백혈병이 발병된 것 같다는 것이었다.

처음 그를 만나러 갔을 때는 백혈병에 관한 두꺼운 전공 서적을 읽고 있었다. 간단히 질병력과 직업력, 취미 등을 이어 물어보았고 그가 사용했었던 여러 가지 도장 재료들의 성분이 무엇인지 물어 그 자료들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조금 불안해하고 있었다. 아직 공상을 신청하지 않은 상태여서 걱정 반 기대 반인 모습이었다.

본인은 성실히 업무를 수행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방신문에 이슈 인물로 선정되어 실린 적도 있으며 표창도 여러 번 받았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면서 공상 위원회에 병원 기록과 업무 관련성을 서술하는 서류를 제출하면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게끔 도와주겠다는 이야기를 상사로부터 들은 차였다.

한편, 백혈병 치료를 받아야 하고 장기간 추적 관찰해야 하기에 더 이상 군에서 근무할 수 없어서 아쉽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군이 그의 일들을 인정하고 그 질병의 업무관련성을 수용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 했다. 나도 그의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믿고 싶었다.

과연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퇴원 후 혈액 내과 외래를 오가는 기록 사이에 직업환경의학과에도 두 번 방문한 기록이 있어서 확인해보았다. 교수님의 외래 기록에 따르면, 공상처리위원회에서 그가 제출한 모든 자료를 반려해서 업무관련성을 인정받지 못할 위기에 놓여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 그를 방문했을 때 들었던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공상이 쉽게 인정될 것 같았지만 상황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아직 이 방면의 일을 많이 경험해보지 못한 탓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나에게 찾아와 그런 상황에 대해 상담을 한다고 하면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으나 뾰족한 대안이나 해줄 수 있는 조치는 떠오르지 않았다. 지식이 부족한 탓인지 경험이 부족한 탓인지 모르겠다.

이전에 군대와 같은 폐쇄적인 조직에서 보건관리가 잘 되고 있을지 의문이 들어 세미나 주제로 삼고 발표했던 기억이 있다. 국내 연구는 많지 않았고 그나마 행해진 연구도 상대적으로 재정상태가 좋은 미군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이라크나 아프간전에 참전 후 발생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서 전쟁터 주변 주둔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진의 종류와 폐질환에 대한 것이 그나마 내가 궁금해 하던 영역과 비슷하여 정리해 발표했던 기억이 있다. 실제 내가 궁금해 했던 것은 군대에서 취급하는 전반적인 유해물질과 작업환경들, 그리고 군인들의 직업병 유병률이 궁금했었는데, 당연하게도(?) 그런 좋은 자료는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면 전혀 그 방면의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다소 막연한 희망사항에 그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군대 내의 작업환경에 대한 조사와 그들의 건강상태와 함께 공상 심의 과정상의 합리성도 점검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나 노동자 건강 이야기] 위험이 집중되는 열악한 사업장 실태 파악이 우선이다 / 2018.01

위험이 집중되는 열악한 사업장

실태 파악이 우선이다

조성식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올해는 근로자 건강센터에서 일하게 되다 보니 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사고나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사업장에 방문해서, 해당 사업장의 안전보건 관리의 실태를 조금이나마 경험하게 되었다. 사고가 발생한 작업장의 작업환경은 매우 열악해서 화학물질에 대한 중독사고나 안전문제로 인한 재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작업환경이었다. 아마도 이 작업장이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이어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다른 사업장보다 더 위험하고 더 해로운 환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소규모 사업장, 하청 사업장과 파견 노동자들이 일하는 작업환경은 평소 안전과 보건에 관한 근로감독 수준을 고려했을 때 다른 사업장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을 것 같지 않다. 중독사건이 발생한 작업장을 방문하면서 한국의 작업장의 안전보건문제와 관련해서 느꼈던 점을 기술할 것이다.

작년 여름 소화기 제조 공장에서 발생하였던 간독성 물질인 HCFC-123 중독이 생겼던 사업장을 방문해서 재해 노동자를 조사한 적이 있다. HCFC-123으로 인한 간독성 문제는 비교적 잘 알려 있지만, 특검이나 작업환경측정 물질은 아니어서 현재 관리가 되지 않는 화학물질이다. 그래서 이를 취급하는 사업장은 이 물질에 대한 노출관리가 안 되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역시 예상과 다르지 않게 소화기 제조공장의 작업환경은 매우 열악한 상태였다.

소화액을 소화기에 충전하는 작업에서 작업자들이 호흡기와 피부로 고농도로 노출돼서 사업장을 방문해 확인하였다. 그 결과 작업과정 공학적으로 개선 국소 배기장치와 같은 환기시설이 미비하였다. 유기용제 노출을 줄여 줄 수 있는 적절한 보호구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날이 더워지면서 끓는점이 낮은 HCFC-123이 대기 중으로 증발하면서 작업자의 피부와 호흡기를 통한 고농도 노출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작업자들에서 독성간염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해로운 작업환경 때문에 한 명의 노동자가 독성 간염으로 사망하였고, 2명은 간 수치가 많이 올라가서 독성 간염으로 입원 치료를 하였다. 이 재해의 특징은 젊은 노동자가 희생되었고 파견업체서 파견한 노동자들이 산업재해 피해자였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요약하면 50인 미만 소규모 제조업의 육체노동자 그중에서도 비정규직 파견노동자에서 안전 보건관리의 실패로 일어나 사건이었다.

또 다른 사업장은 화학물질 보관 탱크에 점검하러 들어간 노동자가 화기 물질에 의한 질식 사건이 발생한 사업장이었다. 다행히 구조가 되었지만 끔찍한 중독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 사업장도 많은 양의 화학물질을 작업자들이 다루고 있었고, 화학물질 중독으로 인한 건강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현장은 관리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급성중독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저장 탱크에 송기 마스크와 같은 안전 장비도 없이 들어가서 저장 탱크에서 작업한 것은 안전 수칙에서도 많이 벗어난 일이었다.

내가 방문해서 조사했던 사업장이 한국의 소규모 제조업 사업장의 현실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을지 모르겠지만, 취업자 노동 환경을 조사를 분석해보면 제조업의 육체 노동자들이 더 해로울 수 있는 작업환경에서 일할 가능성이 높고 같은 직업군에서도 정규직보다 임시직이나 일용직 노동자들이 더 해로운 환경에서 일할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조사된다, 하지만 한국의 작업장에서는 직업적 노출은 잘 관리되지 않고 있으며 안전 문제 역시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많이 발생해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크레인 사고가 한국의 작업장 안전문제를 현실을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경험한 중독사고와 취업자 노동 환경 조사 결과와 같이 많은 생산직 노동자, 특히 하청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좀 더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의 안전을 위한 화학물질 관리는 무방비상태이며, 어쩌면 위험성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우선 현재 산업재해와 중독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제조업의 생산직 노동자, 건설업의 일용직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에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대책 마련의 기본이자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소규모 사업장, 하청업체, 파견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사업장의 화학물질 관리 실태는 더욱더 파악되고 있지 않다. 이렇게 취약한 노동자의 산업재해와 화학물질로 인한 중독 사고를 줄이기 위한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드가의 발레, 아니 빨래하는 여인을 보았나요 / 2017.12

드가의 발레, 아니 빨래하는 여인을 보았나요

김지원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관내 영세한 업체 건강진단은 우리 병원의 몫이다. 지역 내 유일한 특수건강진단 기관이지만 인근 경쟁병원들의 영업망이 죽 훑고 지나간 뒤 이삭을 줍는 터라 50인 미만의 소규모 업체를 맡는 데 익숙해졌다. 물론 의사 입장에서는 사실 편하고 사업장도 중간중간 둘러볼 수 있어 나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덕분에 조그만 유리를 입으로(!) 불어 성형하는 공장, 소규모 도금업, 화장품 용기 따위를 제조하는 업체 등을 훨씬 많이 가보게 되었다.

 

가을에 방문한 이 업체는 수술복과 가운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곳이었다. 압도적이었다. 갠지스 강가의 빨래터를 본다면 이러할 것만 같다.

 

병원에서는 가운, 수술복을 아무렇게나 수거함에 집어 던진다. 수술복으로 음식물을 닦거나 수술적출물들이 묻는 경우도 있다. 가운에는 피고름이 튀고 베타딘 소독액이 묻어나온다. 가끔 심폐소생술을 하다보면 가운이 찢어지고 단추가 떨어져 나간다. 그다음엔 우리 모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수거함에 던져두고 잊을만할 때쯤 되면 가운은 다시 하얗게 표백되어 각이 잡혀 접힌 채 비닐에 쌓여 누군가가 가져다 놓는다. 떨어진 단추도 알아서 달려있고, 인턴이니 레지던트니 하는 글귀도 다시 잘 수놓아져 있었다.

 

그 생략된 이야기 속에 이곳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런 일감은 이문이 많이 남지 않는다. 대개 사회적 기업, 장애인 채용 기업들에서 맡는다. 혹은 종교단체나 사회봉사단체에서 운영한다. 고용된 여성 중에는 작업에 지장이 없는 수준의 청각장애인이거나 지적장애인들도 제법 있다. 그들은 종일 수술복에 묻은 이물질들을 털어내고 커다란 공업용 세탁기와 건조기에 넣고 돌린 뒤 다시 꺼내 일일이 다림질을 하고 또 하나씩 포장한다. 세탁소와 비슷하지만, 그 규모나 양이 상당하고 단순 반복적이다. 빨래 더미 위에 앉아 허리를 비틀고 고개를 숙이고 작업을 하다 보면 근골격계 통증을 가장 많이 호소한다. 면 분진에 의한 호흡기 자극증상과 화학약품에 의한 비특이적 피부 자극증상 등도 발생한다. 하지만 여성 노동자들이 다수인 사업장답게 다 같이 집에서 싸 온 고구마와 떡을 꺼내먹으며 또 감사하게 일을 하루하루 이어 나간다.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 작업장 사진을 보여줬더니, 다른 직환의가 에드가 드가(Hilaire-Germain-Edgar Degas)가 그린 작품 중에 빨래하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 있단다. 발레하는 여자들 말고 빨래하는 여자들(?) 기억에 없다. 그의 아름다운 그림 속에는 아름다운 여인들만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드가도 여느 화가들처럼 이쁜 정물화나 초상화를 그렸다. 하지만 점차 민중 노동자들의 삶을 포착하여 그려내는 데 관심을 옮긴다. 발레 무용수들은 그 당시에 매춘부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의 삶을 누리며 퍽 곤란한 노동을 이어갔다고 한다. 드가는 이런 무용수들의 처우 개선에까지 직접 개입할 정도로 자신의 피사체들에게 공감하였다. 아마도 무대 뒤에서 빨래하고 다림질하는 여성 노동자들까지 같은 맥락으로 아꼈고 화폭에 담은 것 같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라고 세탁 노동자들을 다 아는 것처럼 감히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의 나의 의사 노릇을 위해 가운을 빨아주고 다려준 이분들의 노고에 대해 실로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간 감사했노라고 고백해본다. 늘 그렇듯 우리의 일은 이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나는 감시, 단속적 노동자인가? / 2017.10·11

나는 감시, 단속적 노동자인가?

권종호 선전위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24시간 맞교대를 하는 보안업체 노동자 A 씨는 주상 복합 아파트 경비 및 안내 업무를 수행한다. 근무하는 날은 낮에 따로 쉴 시간 없이 순찰, 감시, 안내 등의 업무를 하다가 밤에는 4시간 정도 수면 시간이 주어져 수면실에 들어가서 잘 수 있다. 하지만 저녁 9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세 팀이 번갈아 수면을 취하는 관계로 밤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자는 날이면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어쨌든 수면 시간이라 눕긴 하지만 평소 항상 깨어있던 시간에 갑자기 자려니 잠도 안 오고 잡생각만 늘어간다.

24시간 맞교대를 하는 아파트 경비직 노동자 B 씨는 상황이 더 열악하다. 낮에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정해져 있다. 분리수거, 주차단속, 화단 정리, 청소 등등 일이 끝나면 틈틈이 CCTV 확인도 해야 되고 순찰 업무도 주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다행히 밤에 휴게시간이 3-4시간 주어진다. 함께 근무하는 파트너와 적당히 시간을 나눠서 자긴 하는데 마땅히 몸을 누일 공간은 없다. 의자에 기대어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전부이다. 피곤해서 깜박 잠들긴 하는데 자고 일어나도 피로는 여전하다.

24시간 맞교대를 하는 시설 관리 노동자 C 씨는 서울 시내 작은 빌딩의 지하에서 냉난방 설비를 운용하고 필요시에는 각종 전기 설비의 유지 보수를 해주기도 한다. 24시간 맞교대이기는 하지만 오후 6시 이후로는 대부분의 빌딩 인원들이 퇴근하는 관계로 특별한 일이 없다. 지하에 있어서 공기가 좋지 않고, 기계 소음에, 비좁긴 하지만 그래도 누워서 잠을 잘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빌딩 내부 공사 같은 특별한 일이 있는 경우를 빼고는 잠은 충분히 자고 퇴근하는 편이다.

앞서 본 세 명의 노동자 모두 감시, 단속적 노동자로 승인되어 근무하고 있었다. 이러한 감시, 단속적 노동자로 정의되는 순간 근로기준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부분은 야간노동 수당과 연차 휴가뿐이다.(표 1) 연차 휴가는 못 쓸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실제 보호받을 수 있는 부분은 야간노동 수당뿐이고 이러한 결과 1년 동안 휴무 없는 24시간 맞교대도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일해도 연장, 휴일 노동 수당조차 받지 못한다.

앞서 이야기한 A, B 노동자는 24시간 근무 후 집에 가면 하루를 꼬박 피로를 푸는데 쓰곤 한다. 반면에 C 노동자는 불편하게라도 근무 중에 좀 잠을 자고 퇴근 후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C 노동자에게 현재의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상황이 적절하다는 것은 아니다. 감시, 단속적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서 노동시간 상한은 꼭 적용되어야 하고, 수면 및 휴게 시설에 대한 개선된 기준도 마련되어야 한다.

반면 A, B 노동자의 경우 현재 근무 조건이 감시, 단속적 노동자에 해당하는지부터 다시 따져야 한다. 낮 시간 동안 하는 감시 이외의 상시적인 활동이 있다는 점, 근무 중 밤 수면이 현실적으로 힘들어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심각하다는 점 등은 감시, 단속적 노동으로 승인될 수 없는 요건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의 승인은 전적으로 근로감독관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고 대부분 서류 접수를 통한 관행적 승인으로 신청의 98%가 승인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근로감독관의 과도한 업무량 때문에 제대로 된 판단이 어렵다는 점에서 자세한 승인 기준을 상위법에 명시해야 된다는 제안과 열악한 감시, 단속적 노동자의 근무 실태가 이미 2004년에 「감시.단속적 근로자 실태조사」 보고서로 노동부에 제출되었지만, 최저임금 적용이 2015년에야 가까스로 시행된 것 이외에는 아직까지 전혀 개선된 바가 없다.

휴식의 기회도 추가 근무의 수당도 없을 정도로 노동 가치를 최소한으로 평가하는 감시, 단속적 노동의 개념이 가능하다면, 역으로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노동 시간의 상한이 있어야 한다. 노동 가치가 최소화될 수 있을 정도라면 그에 맞는 엄격한 기준 수립과 적용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보이지 않는 굴레 속에서, 오늘도 달린다 / 2017.9

보이지 않는 굴레 속에서, 오늘도 달린다

이영일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지난 7월이었다. 인터넷 인기 검색어 중 K5가 상위권에 랭크되었고, 내 차도 같은 차종이기에 무슨 내용인가 싶어 클릭해봤다. 관련 동영상들이 나열되었고 그중 하나를 보았는데 끔찍한 교통사고 내용이었다. 경부고속도로 양재 나들목 부근에서 발생한 버스추돌사고 이야기이다. 동영상에 달린 댓글은 운전기사에 대한 비난, 현대기아차를 비아냥거림 등으로 가득한 가운데, 나는 왜 버스 기사를 연민했을까. 검진을 통해 내가 여러 버스 기사 분들을 만나고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냈던 광역버스 기사는 전날 16시간을 넘게 운전 후 짧은 수면 뒤에 출근했던 터였다고 한다. 버스 기사는 어떻게 전날 16시간을 근무하고도 바로 출근할 수 있을까. 근로기준법은 59조를 통해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초과해서 근무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법으로 정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것은 근로기준법 59조 때문에 가능하다. 59조에서는 초과근무가 허용되는 예외업종(특례업종)을 정하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운수업이다. ‘사용자와 노동자 대표 간의 합의를 통한’이라는 단순한 조건만 있을 뿐 초과근무에 대한 시간제한도 없기 때문에 사업주는 사실상 ‘합법적으로’ 노동자들을 자유로이 부리게 된다. 버스추돌 사고 기사를 보고 나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이후 버스나 택시 기사분들을 검진하면서 평소보다는 좀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눴고, 지면을 빌려 일부분이나마 공유해보려고 한다.

우선 버스의 경우를 보자. 오전과 오후 두 개의 조가 있는데, 오전조의 경우 새벽 4시 40분 첫 발차를 시작으로 오후 4시 20분에 막차가 나간다. 오후조의 경우 13시 40분에 발차해서 밤 12시 40분을 막차로 끝이 난다. 버스 운행의 특성상 지하철처럼 정확히 시간을 맞춰서 들어오기란 쉽지 않다. 배차 간격 또한 여유가 없으며, 상시적인 교통정체 현상으로 인해 편안한 ‘휴식’은 쉽지 않을뿐더러 식사시간에 밥 한 끼 여유롭게 하는 것도 힘들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기사분들은 최소한 11시간 동안은 운전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장시간 운전을 한다. 유럽의 경우 일일 운행시간을 9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처벌규정을 보더라도 외국의 경우 처벌의 정도가 높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안전규정을 어겼다 하더라도 사업주는 그저 180만 원의 과징금만 내면 된다.

택시의 경우는 버스와는 또 다르다. 이전에는 교대근무형태가 많았지만, 요즘은 차 한 대를 도맡아서 운행하는 방식인 일차제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교대로 돌릴 인력은 부족하고 차량은 남아돌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시설의 확대와 잘 정비된 환승 시스템은 택시 이용률을 더욱 낮추었다. 또 하나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은 사납금이다. 사납금은 기본적으로 하루에 회사에 가져다 줘야 할 금액이다. 내가 검진을 나가는 한 택시회사의 경우 사납금은 일차제 일일 기준으로 13만 8천 5백 원이다. 교대제의 경우 운전 가능한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이보다는 좀 낮은 편이다. 유류비는 회사에서 일정 리터까지 지원해주지만, 식비나 간식비 지원은 없으며, 휴식을 위한 ‘휴게공간’은 거의 없는 것과도 같다. 사납금을 제외한 나머지는 운전자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사납금을 확보하려면 과연 얼마나 운전을 해야 할까. 적게는 12시간에서 많게는 16시간 정도의 노동을 통해 가능하다. 일차제 기사분들은 일하는 시간에 있어 자율권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보통 저녁 5시 즈음에 출근해서 다음 날 아침 8시 즈음에 마친다. 손님이 많은 출퇴근 시간과 요금 단위가 높은 야간에 운전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강제로 야간운전을 하는 셈이다. 기사들은 야간운전과 장시간 운전이라는 두 가지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 속에서 매일 매일을 ‘살아내고’ 있다.

지난 2월 졸음운전의 방지책으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일부 개정되었는데, 그 내용 중의 하나가 ‘퇴근 후 다음 출근까지 연속 8시간 휴식시간 보장’이다. 운수업 종사자들이 보면 피식 웃고 말 일이다. 더욱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오히려 악법은 나쁜 것임을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나 악법이라도 그것은 모두의 합의로 만들어진 법이기에 그것을 따르지 않고 무시한다면 자신이 외치는 정의가 사람들에게 울림이 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기에 소크라테스는 기꺼이 미나리 독주를 들이켰다. 이 위대한 철학자는 공동체의 합의를 존중했고, 그 합의에는 ‘보편적 옳음‘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특례업종이 현실적으로 당장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퇴근 시간 이후에도 또 다른 누군가는 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보호 장치는 철저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의 근로기준법 59조는 현장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된 ‘합의된 옮음’이 더해져서 재탄생해야 한다. 버스나 택시 기사들의 졸음운전, 심지어는 거친 운전까지도 시스템이 결국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요즘은 운전을 하곤 할 때면 버스나 택시의 거친 운전에도 반응하지 않게 된다. 자연스럽게 양보하게 되더라. 여러분들도 화내지 말고 양보하시라.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나는 용팔이로소이다 / 2017.8

나는 용팔이로소이다

류현철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재작년인가 공중파에서 방송된 장소불문 · 환자불문 고액이 돈만 준다면 조폭도 마다하지 않는 실력 최고의 돌팔이외과의사가를 기억하는가” “왜인지 모르겠지만 병원에 잠들어 있는 '잠자는 숲속미녀 재벌 상속자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스펙터클 멜로드라마를 기억하는가?

물론 몰라도, 기억나지 않아도 된다. 사실 나 역시도 관심사는 메디컬(의학) 드라마로서 주인공인 의사의 리얼리티나 멜로 드라마로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이 드라마 제목에 있었다. 실력 최고의 용한 돌팔이라는 뜻의 용팔이가 드라마의 제목이었다. ‘용한 돌팔이라니 이것은 그야말로 소리 없는 아우성과 같은 형용모순 아닌가?

그러나 근골격계 질환과 같은 직업성 질환을 대하는 의사의 모습을 투영해보면 그다지 모순적이지 않다는 생각이다. 저 용한 의사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용함은 질병을 다루는 의사로서의 기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증상이나 질병의 원인을 알고, 진단을 내려 병명을 붙여주고, 치료방법까지 정확히 알면 될 것이다. 그럼 다음의 상황을 보자.

-노동자 : 선생님, 몇 주 전부터 오른쪽 어깨가 자꾸 아파요. 이제는 팔을 잘 들어 올리지도 못하겠어요. 왜 그런 걸까요?

-의 사 : 팔을 들어 올리는 자세로 일을 오래 하시잖아요. 또 일할 때 어깨에 힘을 줘서 잡아 당기는 경우도 많아서 그런 겁니다.

-노동자 : 도대체 병명이 뭔가요?

-의 사 : 우측 어깨의 회전근개 손상이 의심됩니다.

-노동자 : 그러면 어떻게 하면 안 아프고 좋아질까요?

-의 사 : , 일 좀 그만하고 쉬셔요. 일을 안 하면 좋아집니다.

-노동자 : ??

질병의 원인을 알려주고, 진단도 내리고, 치료방법까지 알려준 의사는 이 노동자에게 용한 의사일까 돌팔이일까? 돌팔이는 치유의 능력이 없는 의사를 말하는 것이겠다. 물론 의사로서의 기본적 지식을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그러할 것이며, 질병 자체를 다루는 기술 이외에는 다른 품성을 갖추지 못한 경우도 그럴 수 있으며, 질병의 원인과 치료방침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회적 관계요인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해도 그럴 수 있다.

사회기초보장제도가 부실한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아야만 생계와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직장 안에 있는 위험요인 보다는 직장 밖으로 내몰리는 실업과 해고가 더 큰 건강유해요인이 되는 법이다. 그들에게 일을 그만하고 쉬라는 이야기, 작업을 전환하라는 틀리지 않은 이야기가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기만 하다. “나는 용팔이로소이다.”

중장비 유압장치를 만드는 공장에서 20년 넘게 일해 온 40대 노동자는 수년간 좌우를 번갈아가면서 발생하는 어깨통증으로 나에게 진료를 받아왔다. 스트레칭, 물리치료, 운동치료, 주사치료를 병행하면서 증상을 관리해왔다. 증상은 개선과 악화를 반복했다. 분명한 것은 작업물량이 줄어드는 시기나 휴가를 보내고 나면 증상이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동갑내기인 그는 나를 주치의로 부르면서도 짐짓 ‘어깨는 날개입니다’라고 라디오에 등장하는 유명 의사를 찾아가야하는 것 아니냐고 농반진반한다. 나는 용한 의사를 찾을게 아니라, 인제 살살 일하라고 일을 안해야 낫는다고 진반농반한다. “일을 계속 하면서 증상이 좋아질 수 있을까요?”

몇 번의 악화와 개선을 거듭하고 난 이후 그는 진지하게 묻는다. 부담스러운 일로 인해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은 질환인데, 어찌 그 일을 고스란히 해나가면서 좋아질 수 있겠는가? 일을 계속하면서 증상이 좋아지려면 작업의 조건이 개선되어야만 한다. 장비개선을 포함한 인간공학적 개선을 하거나, 인력을 충원하여 작업물량을 줄이고 노동강도를 낮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리 정확한 진단도 용한 의사도 무의미한 것이다.

소음성 난청에 대하여 요관찰 대상이 된 50대 노동자는 매번 소음성 난청에 대한 검사를 다시 받으러 병원에 가야하는 것이 불만이다. “아이고, 만다꼬 자꾸 불러쌌능교? 청력 안 좋아진거야 벌씨로 알고 있는 기고, 약도 없다믄서요. 말하는 거 다 알아묵꼬 하믄되고. 고마 귀마개나 잘 착용하라고 할 거 아잉교? 아따, 귀찮아서 몬살긋네.”

벌써 몇 년째 소음성난청에 대한 특수건강진단이라고 치르는 연례행사에 대해 그는 못마땅하기 이를 데 없다. 변하는 것이 없는 탓이다. 때가 되면 으레 소음측정기를 달아 작업환경측정을 하고 오라가라 특수건강진단을 하지만 작업장의 소음을 낮추기 위해서 공정 개선이 이루어지거나 장비가 개선된 것은 없다.

소음측정기를 달아주는 산업위생기사에게 특수건강진단 문진을 하는 직업환경의학전문의에게도 볼멘소리를 해보지만 달라지지 않는다. 작업장의 소음 수준을 낮추는 권능은 일하는 노동자에게도, 소음을 측정하고 분석하는 산업위생기사에게도, 그를 문진하고 판정한 의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업환경측정, 배치 전 건강진단, 특수건강진단, 근골격계 질환 유해요인조사, 위험성 평가 모두직업성 질환의 예방을 위한 제도들이다. 직업성 질환은 질병경과가 일반 질환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원인규명과 산재 인정에 매우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직업성 질환이 일반 질환과 구분되어서 관리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예방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위험요인을 관리하고 조절하여 질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1차 예방이다.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여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2차 예방, 질병이후의 적절한 재활 관리를 통해서 복귀를 원활하게 해주는 것이 3차 예방이다. 그래서 당연히도 1차 예방이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하다. 앞서 열거한 제도들은 확인된 위험요인의 개선을 전제로 기능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작업환경과 노동조건을 변화시키는 권능은 조직된 힘에서 나온다. 노동조합이조직된 사업장의 노동자들의 안전보건과 직업건강수준이 높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직업환경의학 의사들의 권능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전문성을 기반으로 하여 직업윤리를 관철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직업건강과 관련한 학문적 성과와 연구를 기반으로 한 지속적 참여와 개입을 통해 충돌되는 이해관계에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2015년 국제산업보건위원회(ICOH)에서 제안되었고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의학과 의사회'에서 번역한 “직업건강 전문가를 위한 국제 윤리강령(International code of ethics for occupational health professionals)” 에서는 직업건강전문가들에게 개선조치에 대한 추적조사를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부당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건강 또는 안전에 대한 위험의 증거를 제시하는 상황을 개선하기를 거부하거나 부정적인 입장을 갖는 경우, 직업건강 전문가는 최대한 신속하게 우려 사항을 서면으로 작성해야 한다. 여기에는 적절한 과학적 지식을 고려하여 노출 제한을 포함하는 관련 건강보호기준을 적용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법률 및 규정을 적용하고, 고용주가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할 의무를 상기시킬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여야 한다. 필요하면, 해당 노동자와 기업대표에게 통보하고 관할당국에 보고하여야 한다.”

이 윤리강령의 서문의 일부는 용한 돌팔이에서 진정한 직업건강 전문가로서 거듭나는 길의 면모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건전한 직업건강실무의 목적은 단지 건강을 평가하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과 업무능력을 보호, 유지 및 증진하고, 이를 위해 일 외의 가족상황과 직장 외의 생활환경까지 고려하는 것이다. 직업건강실무 및 직업건강증진의 이러한 접근은 포괄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노동자의 건강과 인간적·사회적 필요를 다룬다. 여기에는 예방적 건강관리, 건강증진, 치료적 건강관리, 긴급재활, 필요한 경우에는 재해에 대한 보상, 그리고 질병 및 손상으로부터의 회복과 업무복귀를 위한 전략이 포함된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나지 “못 한” 노동자 이야기 / 2017.6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나지 “못 한” 노동자 이야기



이강 회원



한 알루미늄 제제 처리 업체. 2조 2교대, 죽음의 맞교대를 하는 곳을 상담 차 방문했다. 작년 건강검진 결과 수축기 혈압이 230까지 올랐고, 당 관리도 잘 안 된 분이 있어 상담을 요청했다. 6개월 전에 한 번 뵈었지만 어떻게 관리하고 계시나 보고 싶었다. 그간 다행히 혈압약 투약은 시작했다고 간호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분 오늘 병가세요.” 회사 담당자의 말이었다. 더 설명을 안 하는 담당자에게 간호사 선생님이 무슨 일이었냐고 물었다. 난 밀려오는 상담자에게 상담을 하느라 그들의 대화를 한 귀로 들었다. “쓰러지셨어요.” 간신히 말을 뗀 담당자였다. 귀가 번쩍 뜨여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는 2주 전에 일하다가 회사에서 쓰러졌다는 답을 해왔다. 곧바로 산재 신청을 했냐고 물었다. 하지만 담당자는 “저희도 잘 모르고 지금 병원 중환자실에 계시고 의식이 없단 말만 들었어요.” 라고 옆 동네 얘기하듯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 분의 아들이 회사에 다니고 있고 우리와 여러 번 상담을 했던 분인 것을 알게 됐다. “아드님과 통화해볼 수 있을까요?” “오늘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재차 부탁했지만 담당자는 거절했다.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위원회의(이하 질판위) 판결에 따라 다르겠지만 산재로 승인될 여지가 꽤 높은 분이었다. 맞교대에 지난 8년간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를 해왔다. 마음이 걸려서 그날 밤 여러분들의 의견을 구하고 사측에 직업환경의학의로써 제언 사항을 문서로 작성했다. 요지는 사업주에게도 산재로 신청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제일 깨끗하고 안전한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공상 처리를 한다 해도 현재 2주째에도 의식이 안 돌아왔다는 것은 향후 위중한 경과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며 그럴 경우 언제든 노동자 측에서는 마음이 바뀌어 산재를 신청할 수 있고 그러면 향후 산재 은폐로 처벌될 가능성도 있다는 강한 말도 포함했다. (실제로 직업성 질병의 경우 질병판정위에서 승인을 내린 그 시점부터 산업재해로 치기 때문에 그 시점으로부터 1개월 이내 공식화한다면 은폐는 아니다)


담당자에게 통화를 했으나 그는 이런 언급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통화 내내 그는 웃음을 흘리며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자꾸 전화를 끊으려 했다. 정확한 노동 시간을 알기 위해 (질판위에서는 최근 4주, 12주의 과중 업무가 산재 승인에 중요한 요인이다) 업무 일지를 달라는 요청도 가볍게 거절당했다. 통화 후 심장이 쿵쿵거리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음 날 메일로 제언서를 보냈지만 별 효력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날 내가 관리해야 하는 노동자를 못 만났고, 가족과 통화도 못 했다. 향후 또 사측에 그 분의 상황을 물어보면 아마도 담당자는 불편해할 것이다. 계속 물고 늘어진다면 어쩌면 우리 보건관리 기관과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번 뇌심혈관 질환 사례에 특별히 더 신경이 쓰였던 것은 전에도 그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도 주야 맞교대를 하는 자동차 부품 회사였다. 한 노동자가 야간 근무 후 집에서 자다가 뇌출혈이 왔다. 난 사측에 노동자의 가족과 통화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상태보고서에 이 상황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말했고 실제로 기록을 남겼다. 이후 사업장에서는 우리 기관과 계약을 해지했다. 공장 이전이라는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런 사례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기여를 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뇌출혈이나 뇌경색, 심근경색과 같은 뇌심혈관 질환이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인정받는 것이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뇌심혈관 질환은 눈에 보이는 ‘사고’로 인한 산업 재해는 아니지만 과중업무가 크게 기여해서 일어난 산업 현장의 질환으로 산업 재해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주야 맞교대를 하는 곳, 일주일에 하루도 간신히 쉴까 말까 하는 곳은 더더욱 그렇다. 개인의 건강 상태 기여도? 물론 있다. 하루에 담배 두 갑 피고 라면만 먹는 사람이면 업무보다 개인 생활 관리가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사람이더라도 하루 12시간 근무에 주야 맞교대를 하고 있다면 업무 기인성을 높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작은 공장들을 순회하고 노동자를 상담하는 게 내 일이다. 이 밑바닥 일선에서 이런 예민한 문제들에 직면할 때마다 산업보건의 모순을 피부로 경험한다. 분명 산업보건기관은 산업안전보건법 하에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녕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일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일은 사업주가 법에 명시된 그 의무를 다 이행했다는 생색내기에 그치고 말 때가 혹은 그쳐야 할 때가 부지기수다. 노동자를 위한다는 명제 하에, 사업주의 생색내기 수단으로 변질되기 십상인 이 산업안전보건법은 어쩌면 법철학 상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법이 가진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우리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의사가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저도 노동자입니다 / 2017.5

저도 노동자입니다.



조이 산부인과 전공의


 

추운 겨울이 아닌 5월의 장미대선을 앞두고 TV와 신문, 인터넷은 대선 관련 보도가 넘쳐났습니다. TV 토론에 대한 관심도 제가 기억하는 그 어느 대선보다 뜨거운 것 같습니다. 제가 일하는 대학 병원에는 20~30대의 전공의와 간호사부터 60대의 교수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일상적인 대화의 주제에 정치적인 이슈가 등장했던건 지금 이 상황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죠. 그러나 그러한 상황들이 최근 저를 좀 불편하게 합니다.

 

제가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노동자는 저 자신, 대학병원의 전공의입니다. 대학병원의 전공의는 의대를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통과하여 의사 면허를 득한 의사의 신분으로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임과 동시에 전문의 시험 자격 조건을 얻기 위해 일정기간 정해진 과정을 수련하는 피교육자의 위치를 겸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이 대학병원에 입원하는 경우 가장 자주 만나는 의사이며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짜 의사 취급을 안해주는 그 '레지던트' 말입니다.

 

전국의 대학병원의 전공의의 90% 이상은 주 100시간이 넘는 근무시간에 따른 만성 수면부족 및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도 전공의 1년차때 주 평균 120시간 정도 일을 했습니다. 전공의는 피교육자의 신분이고 의학 및 의술의 교육은 위계질서가 강한 환경에서 도제식으로 이루어지는 면이 크다 보니 대부분의 전공의는 본인이 노동자라는 인식을 갖기 어렵습니다.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사회에 나간 이후의 삶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살고 있으니 더욱 그러하겠지요.

 

최근 2-3년간 전공의들에게 근무환경에 관한 가장 큰 이슈는 주 80시간 근무법입니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국가정책으로 주 80시간 근무법이 입법 되었는데 일의 총량을 줄이지 않고 추가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근무 시간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수많은 논쟁들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주 80시간 근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저는 80시간이라는 숫자 자체에 주목하게 됩니다. 근무시간 단축을 이야기 할 때 그 목표가 주 80시간인 직업군이 있었던가요. 근무시간 단축을 포함한 전공의 근무 환경 개선을 이야기하는 데에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 전공의들 스스로 자신을 노동자라고 인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자신을 노동자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주위의 동료 전공의들과 이미 사회 기득권층인 교수들, 그들과 나누는 대선 이야기는 저를 불편하게 합니다. 정치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고 자신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하는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모두 한결같이 오른쪽으로, 더 오른쪽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건지, 여전히 주 70시간 이상 근무중이고 근로계약서도 연봉협상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저는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일상에서 어떠한 이야기로 전공의가 노동자라는 인식을 확산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이 되는 요즘입니다.

 

정치는 또한 가장 불편한 것이라고 했던가요. 이 불편함이 저에게는 또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겠지요. 대선 이후 이 불편함과 우리의 처지에 대한 이야기를 수면위로 끌어올리려 노력해봐야겠습니다. 전공의도 노동자라는 인식이 그 전공의가 수련을 마치고 사회에 나가 어떤 의사로 살 것인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기대합니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일하다 걸리는 폐병은 쌍팔년도 얘기 아닌가요? / 2017.4

일하다 걸리는 폐병은 쌍팔년도 얘기 아닌가요?



이이령 운영집행위원, 직업환경의학전공의



저는 대학병원에서 직업환경의학 전공의를 하고 있으며, 특수 능력(?)을 가진 별종 의사입니다. 보통 병원에서 폐질환 환자들은 호흡기 내과에서 진료를 보지만, 제가 속한 병원은 대학병원 중 유일하게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진폐증 환자 진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의사 중에서도 소규모 과를 전공하며, 특수한 질병을 가진 환자들의 주치의 경험을 가진 저는 어찌 보면 별종 의사인 셈입니다.


입원 환자의 대부분은 과거 광부나 석공으로 일하다 생긴 진폐증으로 산재 승인 받아 외래 치료를 받던 중 폐렴, 흉수, 결핵, 폐암 의심 등으로 입원하는, (서른네 살인) 저의 아버지 세대이거나 할아버지 세대인 분들입니다. 비슷한 직업력을 가진 환자들을 보다 매너리즘에 빠져들 때쯤이면, 현직의 용접공 같은 분들이 요새 들어 숨이 조금씩 차는 게 혹시 진폐증 아니냐며 외래에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정신이 번쩍 들면서 용접 흄·분진·가스 등에 노출되는 수많은 전·현직 노동자들은 과연 폐질환 진료를 어디서 받는 것일까?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이 멀어서 공단 주변 병원들에서 진료 받는 것인가? 산재신청은 하는 것일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됩니다.


질병에 따라 다르지만, 진폐증은 물론이고 만성폐쇄성폐질환, 간질성 폐질환, 폐암 등의 발생에 직업적인 요인이 약 15~20% 기여한다고 알고 있는데, 산재신청·승인이 험난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한다 해도 탄광부진폐증 환자 외에 제 눈에 보이는 환자가 한참 적기 때문입니다.


샤이(?) 직업성 폐질환 환자들

작업환경측정을 위해 방문한 조선소에서 의문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조선소는 연마 작업자, 도장공, 용접공은 물론 그 주변에서 일하며 용접 흄·분진 등에 매일 노출되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대공장이며 노동조합 힘도 있으니 폐질환 산재 신청자가 많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히려 거의 없었습니다. 노동자분들과의 대화 내용, 진폐증 환자 주치의를 하며 교수님들과 환자들에게서 배운 지식과 경험 등을 접목해 그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 유추해 보았습니다.


만성 폐질환은 대부분 질병 발생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며, 증상도 서서히 생깁니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이 입사하는데다가, 질병이 진행하고 있어도 한창 일하는 30~40대에는 대부분 증상이 없거나 약간의 기침·숨참이 있어도 동료들에게 꾀병 환자로 낙인찍히고, 회사에 알려져 잘리고 싶지 않아 그냥 넘기는 게 대부분입니다. 증상은 은퇴할 나이 즈음이나 은퇴한 후에나 심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미 그때는 주변에 동료 노동자도 노동조합도 없어 산재에 대한 정보도 없을 것입니다. 혹은 다른 직종으로 이직하고 나서 증상이 생겨서 생각을 못 했거나, 치료하는 병원에서 직업적인 원인을 고려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속한 병원에 오는 많은 탄광부진폐증 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본인이 담배를 피웠고, 마스크를 잘 못 썼으며, 배운 게 이것밖에 없어 먼지 구덩이인 줄 알면서도 일한 것에 대한 자책이 있어 폐병은 내 잘못이려니 하며 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대기업이며 강성노조가 있다는 조선소의 사정도 이럴 진 데 중소규모 사업장, 하청노동자들, 외국인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 명확해 보입니다. 요새 정치권에서 샤이 트럼프, 샤이 보수라는 말이 있는데, 대규모로 존재하나 드러나지 않는 직업성 폐질환 환자들을 샤이 직업성 폐질환 환자라고 불러야 할까요?


석면 꼴 안 나려면, 알파고 시기 신기술에 선제적 예방이 중요

과거 노출로 인한 직업성 폐질환 환자들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흔히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현재의 산업 구조 변화에 맞춰 미래의 직업성 폐질환을 예방하려는 노력도 중요합니다. 나노 물질은 ‘꿈의 물질’로 불리며 사용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물질이라도 큰 입자일 때보다 나노 입자 상태일 때 인체에 더욱 유해한 물질일 수 있음에도 노출 기준 조차 부재하고, 흡입 시 건강 영향에 대한 연구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한국은 나노 물질을 사용하는 정밀화학, 제약, 화장품 제조 및 전자산업 등의 비중과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더욱 우려됩니다. 또한,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3D 프린팅에 사용되는 물질로 인한 호흡기 문제도 제기되는데 이에 대한 대비는 전무한 수준입니다. 게다가 3D 프린팅을 이용한 소규모 사업장이 늘 것으로 예상하는데, 소규모 사업장이 안전보건 사각지대인 건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건강 영향에 대한 고려 없이 무턱대고 사용하다가 문제 발생 후 임기응변식 대처로 노동자·시민의 안전보건에 위협을 일으켜 ‘기적의 물질’에서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석면과 가습기 살균제 등의 역사를 돌아보면 산업 구조 변화 초기, 신규 물질 도입 전에 인체 건강 영향에 대한 선제적 예방 및 연구가 절실해 보입니다. 최근 관심이 증폭되는 미세먼지 대책만큼, 오히려 그보다 더 큰 비중으로 정부·산업계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합니다. 직업성 폐질환은 쌍팔년도 이야기가 아니라 알파고와 그 친구들이 많아질 미래에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귀에 드는 골병 소음성 난청 / 2017.2

귀에 드는 골병 소음성 난청



권종호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할석(割石). 돌을 나누거나 베어낸다는 뜻이다. 건설 현장에서는 잘못된 콘크리트 구조물을 해체하거나 수정하는 작업을 칭하는 용어다. 얼마 전 이 작업을 30년 해온 한 분이 배치 전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내원하셨다. 이 분의 청력은 소음성 난청 진단 기준 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콘크리트를 30 년 깨는 동안 청력이 온전히 남아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동안 귀마개는 좀 사용하셨는지 물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써 본 적 없었다는 대답 이 돌아왔다. 그에 덧붙여 처음 일을 배울 때 그런 거 쓰면 안 된다고 배웠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깨는 동 안 나는 소리를 들어야 어떤 부분을 깨고 있는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귀마개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귀마개를 사용하면 주파수나 귀마개 종류에 따른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략 15~25dB의 소음을 줄여주는 것으 로 알려져 있다. 어차피 귀마개를 하더라도 어느 정 도의 소리는 듣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소음의 크 기가 3dB만 줄어도 소음의 에너지는 반절로 줄기 때문에 청력 손상을 막는 데는 충분히 효과적일 수 있다. 따라서 귀마개를 한 상태로 들리는 소리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하지만 실제 노동 현장에서는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귀마개를 착용하려는 노동자의 의지가 있더라도 일 에 문제가 생기고, 일이 더뎌지는 상황에서 꾸준히 귀마개 착용을 할 수 있는 노동자는 많지 않다. 더욱 더 근본적인 원인은 그 적응 기간 생기는 문제를 용 인해주는 사업주나 관리자는 더 없다는 것이다. 또 한, 잦은 착용으로 인한 외이도염, 귀 덮개 형태 착 용 시 착용 부위의 통증, 청력 둔화로 인한 안전사고 위험 등 귀마개 자체가 가지는 문제도 노동자의 귀 마개 착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앞서 30년간 활석 작업하셨던 분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미 30년간 귀마개를 하지 않고 할석 작업을 해온 노동자분의 청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져 이제는 귀마개를 하는 상태보다 소음을 덜 듣는 수준이 되었다. 그분은 시끄러운 소리지만 어차피 참고 견디며 일해야 하는 줄 알고 미련하게 일한 것 같다고, 요즘엔 집에서 TV 볼륨 때문에 아내분과 말다툼도 잦아졌다고 하셨다. 열심히, 문제없이 잘 해내려고 참고 견디며 일해 온 노동자의 귀에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혼자 안고 가야 할 골병만 남은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통계자료인 근로자 건강진단 시행 결과를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2년 6,684명, 2013년 7,388명, 2014년 8,428명, 2015년 10,042로 소음성 난청으로 직업병 유소견자(D1) 판정을 받은 노동자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귀마개의 지급조차 되지 않던 옛날보다, 귀마개 착용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교육도 많아지고 충분히 지급하는 사업장도 많아졌지만 소음성 난청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는 결국 귀마개 착용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소음 사업장의 관리에 있어서는 귀마개 착용과 같은 노동자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소음 감소를 위한 공학적 개선이 꼭 필요하다. 즉, 소음 발생 기계, 기구의 대체, 시설의 밀폐, 흡음재, 덮개, 방음벽 설치 등 소음을 줄이는 근본적인 소음 관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개인 보호구 지급보다 투자비용이 많고 밀폐, 흡음재, 덮개 등의 사용으로 인해 생산 효율의 감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시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강제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이러한 시설 개선과 관련한 산안법 시행규칙 제120조에는 “다만, 작업의 성질상 기술적, 경제적으로 소음 감소를 위한 조치가 현저히 곤란하다는 관계 전문가의 의견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소음 감소 조치를 하지 않는다).”라는 면피 문구만 버젓이 들어있다. 결국, 전혀 해결되지 않는 직업병인 소음성 난청은 여전히 자본의 논리 아래에서 노동자 개인의 책임만 강조하고 교육하고 있다.

 

2015년 기준 직업병 유소견자(D1) 중 소음성 난청이 차지하는 비율은 96.8%에 달한다. 2012년부터 95% 수준을 벗어난 적이 없다. 다른 직업병에 비해 명확한 직업병 판정의 기준이 있다는 점도 그 영향이 있겠지만 그만큼 의심할 여지없는 직업병이라는 점, 그 발생 빈도가 높고 전혀 줄지 않는다는 점은 여전히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상태라는 것을 나타낸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소음성 난청에 대해 아무리 보호구 착용을 교육해도 안 된다고 매너리즘에 빠질 것이 아니라 소음 발생 시설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자본의 논리를 넘어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노동자의 건강을 팔아 자본의 배를 불릴 것인가.

 

 

[의사가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젊어서 고생은 나이 들어 더 고생 / 2017.1

젊어서 고생은 나이 들어 더 고생

 


송홍석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의원장



우리 병원이 위치한 경기도 화성 향남지역은 근처에 기아자동차 완성차 공장이 있고, 그곳에 부품을 공급하는 공장들, 제약단지, 그 밖에 많은 영세한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건강해야 할 나이에 건강과 삶이 위태로운 노동자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환자 1.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요.

20대 초반의 앳된 모습의 여성이다. 두 달 전부터 소화가 전혀 안 되고 뭘 먹어도 속 쓰리다며 병원을 찾았다. 식욕도 없고 두통도 생겼다. 딱 스트레스에 의한 증상이었다. 위내시경을 했는데 전날 먹은 음식이 위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통상 6시간이면 연동운동으로 비워졌어야 할 위의 운동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고, 그 원인으로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이다.

전남 순천 출신인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후 꽤 많은 월급에 이끌려 연고도 없는 이곳에 왔다. 현대기아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꽤 잘나가는 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그녀는 가장 바쁜 부서에 배치되어 3교대로 근무한다. 25분 내로 식사를 마쳐야 했고, 4시간 연장근무가 밥 먹듯이 잦았다. 암막 커튼도 없는 기숙사 방안은 낮시간에 햇빛이 들이쳐 더욱더 잘 수 없다. 석 달 만에 5kg이 줄었다. 친구 만나기도 힘들고, 헬스클럽을 끊어놓고도 거의 다니지 못했다. 외동딸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을 그녀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이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못 잔다고 한다. 얼마 전 같은 부서의 정규직 아주머니가 오셔서, 동료가 효험을 봤다는 멜라토닌 수면제를 처방받아 가셨다. 잠을 잘 수만 있다면 약값 10여만 원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그들에겐 중대한 건강과 삶의 문제다.

 

환자 2. 꿈과 희망을 찾아 떠나 온 자본주의 공화국 한국, 밤낮없는 그의 미래는?

이북 말을 쓰는 20대 중반의 젊은 남자가 두 달째 소화가 안 되고 속이 쓰리다며 진료실에 들어왔다. 위내시경을 해봤지만 역시나 젊은 사람답게 별것 없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스트레스 때문이다. 함경북도 무산 출신인 그는 작년에 남한으로 왔다. 돈벌이의 선택지가 많지 않아, 밤 근무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경기도 평택의 작은 철강회사에 입사했다. 주야 맞교대로 일한 지 두 달도 안 되어 탈이 났고, 밤 근무에 적응이 안 된다고 호소했다. 암막 커튼을 쳐도 밤 근무 때는 2시간 밖에 못 잔다 한다. 주간근무 때도 피곤하다. 새벽 5시에 집을 나서 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한다. 안쓰러웠지만 증상을 개선하는 약물치료 말고 더 할 것은 별로 없었다.

몇 달 후, 그가 다시 찾아왔다. 그동안 속이 편해서 오지 않은 게 아니었다. 제때 병원 오기가 힘들어 약국 약만 먹으며 지냈고, 여전히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젊어서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직장을 비롯한 스트레스가 많아 힘들다고 토로한다. 친구도 시간이 안 맞아 만나기 힘들어 외롭다고 한다. 수면을 도와줄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추가로 처방하는 것 외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꿈과 희망을 찾아 떠나 온 밤의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환자 3. 젊어서 고생은 나이 들어 더 고생

당뇨가 있는 40대 남자가 병원을 찾았다. 식후 혈당은 300이 넘었고, 지난 3개월의 혈당 조절을 판단할수 있는 당화혈색소 검사에서도 그동안 조절이 전혀 안 되었던 것으로 나왔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나이 들어 당뇨 합병증으로 온갖 고생은 다 한다고, 운동 같은 혈당조절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리생산 설비의 프로그램업무를 하는 그는 아침 8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일한다. 나는 운동은커녕, 쉬기에도 벅찬 그의 노동시간에 안타까움을 내보였다. 그러자 그는 6시에 퇴근하는 매주 수요일엔 시간을 낼 수 있다며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기는 싫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장시간 일을 시켜도 매주 수요일은 정시 퇴근하는 날로 두는 사업장이 많긴 한 것 같다. 매주 수요일 정시퇴근제가 강제하는 현실을 보면, 정시 퇴근제를 주 2회로 늘리자는 사회적 캠페인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012년 대선 당시 화제가 됐던 어느 후보의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이 지금도 그가 등장할 때면 아이콘처럼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노동시간, 심야노동 문제는 그 자체로 삶을 규정하는 중요한 문제다. 이제 그것은 우리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행해져야 하고, 정시 퇴근제, 노동시간 상한제, 휴일근로에 대한 법적 제한을 우리가 말해야 한다

 

 

[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내가 들고 있는 촛불, 그리고 연대 /2016.12

내가 들고 있는 촛불, 그리고 연대



양민재 회원, 내과 전문의



저는 대학병원 소화기내과에서 진료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의 전공은 담도 결석, 췌장염, 담도/췌장암이고 이 환자들을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한 췌담도 내시경을 하는 것이 저의 주된 일입니다. 저는 환자를 책임지는 주치의임과 동시에 은퇴를 앞두신 스승님께 아직 시술 노하우를 더 배워야 하는 미생의 신분이고 전임 교수가 되기 위해 학문적 업적도 내야하고 재계약을 위해 진료 실적도 쌓아야 하는 자기 만족도가 높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제 전공인 췌담도 치료 내시경은 시술의 난이도가 높고 시술 관련된 합병증이 많아서 항상 스트레스와 긴장 속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처한 현실이 이렇다 보니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좋은 가장은 못되고, 연구소에서는 불러도 대답 없는 불량 회원인지 오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시술을 통해 생과 사를 넘나드는 환자들을 구할 수 있다는 보람과, 제게 어려운 일이 생길까 봐 제가 시술하고 있을 때는 밤에도 집에 못 가셨던 환갑이 넘으신 스승님에 대한 의리와, 이미 이 일을 해 온 시간들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자신을 더 믿을 수 있게 되고, 만나는 환자들과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어려서부터 배우고 외쳐왔던 이상적 가치들을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 것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주치의로 입원 환자를 받은 2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았던 환자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60대 후반 환자였고 10년 전 딸이 한국으로 시집을 오게 되면서 함께 들어온 조선족 여성이었습니다. 오산에 살면서 주로 식당 보조를 하며 생계를 꾸렸는데, 수개월전부터 허리가 아팠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파스를 붙이며 통증을 참고 지내다, 눈이 노래지고 소변이 짙어지는 황달 증상이 동반하면서 저희 병원에 내원하였습니다. 영상 검사 상 수술이 불가능한 췌장암이 진단되었습니다. 일차적으로 암으로 막힌 담도에 철망을 삽입하여 황달을 해결하고자 췌담도 내시경을 시행하였는데, 제 시술 구력이 부족하여 한 시간 동안 시술을 성공하지 못했고 스승님의 도움을 얻어서 어렵게 시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환자는 시술 이후 황달과 통증이 호전되면서 저를 은인으로 생각하며 의지하셨고, 이후 종양 내과에서 항암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도 저를 만나러 오실 때면 항상 곱게 화장을 하시고 음료수 박스를 들고 오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는 심한 구토와 탈수 증상으로 응급실을 내원하였고 CT상 췌장암의 크기가 증가하면서 십이지장을 침범하여 십이지장이 막힌 소견을 보였습니다. 십이지장을 뚫기 위한 철망을 추가로 삽입하여 식사를 할 수 있게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 시술은 스승님을 보조해서는 많이 시행했지만 제가 시술자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상황이었고, 제 스승님은 해외 학회를 가신 상황이었습니다. 저를 너무나 믿고 있는 환자에게 닥친 위기의 상황에서 도저히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는 할 수가 없었고 저를 믿으시라고 당부를 하고 시술을 들어갔습니다. 교회는 안 다니지만 하느님께 기도를 하고 시술을 시작하였고, 스승님과 함께했던 시술들을 기억하면서 한 시간 동안 종양과 싸운 끝에 운이 좋게도 십이지장을 뚫고 철망을 삽입하여 환자의 증상을 호전 시킬 수 있었습니다.


환자는 이후에 담도 철망이 막히고, 십이지장 철망이 다시 막혀서, 재 시술을 한 차례씩 더 하였고 이후로는 체력이 좋지 않아 항암치료는 할 수 없었지만 잘 기능하는 담도 철망과 십이지장 철망의 역할로 돌아가실 때까지 굶지 않고 영양 상태를 유지하면서 지내실 수 있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 저에게 다시 입원을 하셨는데, 대학병원 입장에서 급성기 치료가 끝나고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은 근처 호스피스 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전원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부족한 저를 만나 위기의 상황들을 겪어 왔던 환자에 대한 애틋한 마음, 그렇게 저를 좋아하신 분이었는데 저를 보아도 말조차 잘 못하는 환자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차마 전원을 하지 못했고 사유서를 몇 차례 쓰면서 한 달을 지낸 후, 환자를 하늘로 보내드렸습니다. 환자를 처음 만난 지 15개월만이었습니다.


환자와 함께한 세월 동안 제가 하고 있는 일의 무게를 참 많이 느꼈고, 부담스럽지만 극복하는 방법도 배웠으며 정서적인 공감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 나이는 37세이고 현장, 운동, 변혁, 투쟁, 연대라는 말들을 처음 들은 지 17년 정도 지난 것 같습니다. 매우 광범위한 개념을 내포하고 있고 일정 부분 정치적인 용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이 단어들을 받아들이게 되고 개개인이 스스로 정의를 내리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아직 미완의 과제이지만, 저는 제가 살아가는 이 공간이 죽음과 고통이 일상인 치열한 현장이라고 생각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술자로서 연구자로서 주치의로서 부단한 저의 노력이 세상을 향한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환자들과 가족들의 삶을 공감하고 굳건히 지켜주는 것이 훌륭한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항상 한노보연 회원, 후원회원, 일터 독자 여러분들의 삶이 평안하시길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