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사가 들려주는 노동자 건강 이야기] 보험을 보험답게 쓰도록 알리고 장려해야 / 2018.12

보험을 보험답게 쓰도록 알리고 장려해야

권종호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얼마 전 출장 검진에서 양손에 손목터널 증후군수술을 한 노동자를 만났다. 아직 수술 자국이 조금 빨갛게 남아있어 나는 그분의 검진 항목인 이소프로필 알코올보다 수술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올해 초에 정형외과에서 양 손목을 한꺼번에 수술하셨다는데 무릎까지 한꺼번에 해서 조금 싸게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손 저림은 현재 공장에서 일 시작하면서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해 올해 딱 10년째인데 더 참을 수 없어 수술했고 그동안 해온 작업이 물건을 집어 돌려보며 불량 확인하고 이물질 닦아내고 하는 일이라 손을 많이 쓰는 상황이었다. 일 때문에 생긴 질환인데 산재 신청은 안 하신 거냐고 묻자 도리어 일하다 아프면 치료받으라고 월급 받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어차피 산재라고 해도 본인은 신청 방법도 모르고 복잡할 거고 회사에 싫은 소리 하기도 싫고 해서 그냥 수술받은 거에 만족한다고 했다.

매년 회사는 일정 금액의 보험금을 산재 발생에 대비해서 내고 있다.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보험료를 회사가 열심히 내고 있으니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회사가 앞장설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실제 회사는 마치 우리가 자동차 보험금 올라갈 것을 걱정해서 함부로 쓰지 못하는 것처럼 반응한다. 산재나 직업병이 많을수록 관리 감독이 심해지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다른 하나의 요인으로 산재 보험금 산정에 있어서 개별실적요율제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별실적요율제란 간단히 말해 산재 보험금사용액 비율에 따라 개별 사업장의 보험료를 할인해주거나 할증하는 제도이다. 예를 들면 납입 한 산재 보험료의 5% 미만을 사용한 사업장은 보험료를 50%까지도 감면해주게 된다. 물론 반대의 경우 50% 할증이 되기도 하지만 실제 할증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개별실적요율제 해당 사업장 중 89.8%)의 사업장은 할인을 받고 있다.

원래 취지는 산재 보험금 사용을 줄이기 위해 안전 설비에 더욱 투자하고 실제 산재가 줄어 할인받는 선순환을 의도한 것일지 모르나 결과는 산재 보험료 할인을 받기 위해 산재 신청에 비협조적이거나 공상 처리를 종용하는 행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의 개별실적요율제는 매우 불평등한 구조로 되어 있다. 개별실적요율제를 적용받을 수 있는 사업장은 노동자 10인 이상, 3년 이상 산재 보험 가입한 사업장으로 한정하고 있는데 이는 2015년 통계로 보면 전체 사업장의 4.45%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사업장 전체 보험료의 29.6%(1조 4,037억 원)를 감소시키고 있고 규모별로 할인율에 차등(30인 미만 사업장 ± 20% ~ 1000인 이상 사업장 ±50%)을 따로 두어 대기업일수록 더 높은 할인을 받게 만들어 놓았다. 그 결과 2017년 산재보험료 감면자료(개별실적요율 적용현황)에 따르면, 최다 감면 기업은 1위 삼성 (1031억 원)이었고 뒤를 이어 현대자동차 (836억2300만 원), LG (423억1200만 원), SK (347억5400만 원) 순이었다. 이렇게 할인된 금액은 결국 개별실적요율 적용 대상이 아니거나 할인 폭이 적은 소규모 사업장의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

다행히 2018년 1월부터 시행되는 산재보상보험법 등의 개정 내용에서는 개별실적요율 할인수준을 규모와 관계없이 20%로 통일하였다. 노동부 보고서인 「개별실적요율제의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효과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이로 인한 보험료 징수 증가분은 7,136억 원 정도로 예상되었다. 적용 시까지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또한 같은 시기 제도 개선을 통해 출퇴근 산재 인정, 산재 신청 시 사업주 확인제도 폐지 등이 이루어졌고 올해 6월 말 기준 산재신청 건수가 전년 대비 19.4%(1만 618건) 증가했다고 한다. 그중 출퇴근 재해와 인정기준 완화로 재신청된 건수를 제외한 13.2% (7,240건) 정도는 사업주 확인제도 폐지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대기업 위주의 산재 보험료 할인 특혜, 불필요한 사업주 확인제도 등 이제 겨우 몇 가지 문제가 개선되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노동자의 생각처럼 여전히 산재 신청의 과정은 복잡하고 껄끄럽고 어떤 제도인지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할인받기 위해 보험료를 내고도 최대한 안 쓰려는 제도로서의 산재 보험은 의미가 없다.

차라리 할인을 없애고 보험료를 낸 만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가벼운 산재나 흔하게 발생하는 직업병에 대한 산재 신청 시 불이익을 없애고 보건관리자나 사업주에게 신청을 장려하여야 한다. 또한, 신청과정을 간소화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해 이를 통해 은폐된 산재를 양성화하는 것이 산재 예방 관련 지표 조작보다 훨씬 중요하고 시급한 일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반올림 11년의 싸움 일단락 짓다 / 2018.12

반올림 11년의 싸움 일단락 짓다

- 반올림 공유정옥 활동가 인터뷰

재현 상임활동가


지난 11월 23일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사회적 합의/중재라는 방식으로 길고 길었던 싸움을 일단락지었습니다. 협약식 이후 많은 언론에서 이번 결정이 갖는 의미를 보도했습니다. 길게는 11년간 반올림 운동을 함께 해왔고, 짧게는 5년 10개월 동안 반올림 교섭단 간사로 활동한 공유정옥 반올림 활동가를 만나 이번 사회적 합의에 대한 소회와 이후 계획에 대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인터뷰는 지난 12월 4일 반올림 사무실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 보상

“크게 보면 사과, 보상, 예방 대책에 대한 보완, 사회 공헌 이렇게 4개로 나눌 수 있어요. 각각 보면 보상은 개별 보상액은 낮아도 보상 대상은 넓다고 볼 수 있어요. 보상 대상자는 1984년부터 삼성전자 반도체 DS(디바이스솔루션)에서 일했던 분들이고요. 보상 기간은 향후 10년 뒤인 2028년까지 발생 할 수 있는 피해자들을 보상하도록 했어요. 여기에 사내하청업체 전/현직 노동자, 생산직은 아니지만, 현장에 상시 출입하는 업무를 했던 노동자들도 보상을 받도록 했어요.”

공유정옥 활동가는 보상 대상을 확보하면서, 보상 질병 범위도 넓혔다고 한다.

“질병의 경우 기존에 삼성전자 자체보상위원회가 했던 것보다 범위를 넓혀서 희귀 질환, 자녀에게 나타난 질환에 대해서도 보상하도록 했어요.”

구체적인 질병으로 보면 백혈병, 비호지킨림프종, 다발성골수종, 폐암 등 16종의 암이다. 자녀에게 나타난 질환의 경우 유산, 사산, 소아암 등이 포함되었다. 

재발방지와 사회공헌도 진행

“사과는 삼성전자 대표 이사가 공식 석상에서 사과하는 것으로 했어요. 반올림과 함께해왔던 피해자들에게는 개별로 사과문을 발송하도록 했고요. 재발방지대책은 2016년에 삼성전자와 합의했던 사항이 있는데 거기에 내용을 보완했어요. 구체적으로 보면 이전에 합의했던 재발방지대책이 삼성전자 내부에 이런 시스템을 마련
하고 그걸 감시하는 옴부즈만 위원회를 만드는 거였다면, 이번에는 삼성전자가 타 반도체 전자산업 기업, 공공기관과 협의해서 반도체 전자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지침을 만들라는 거예요. 일종의 업계 차원의 매뉴얼을 만들라는 거죠.”

또, 이번 사회적 합의로 삼성전자가 사회공헌을 하도록 내용을 마련하였다.

“사회공헌의 경우 삼성전자가 공공기관인 안전공단에 500억을 기탁해서 전자산업안전보건센터를 설치하고 전체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의 건강을 예방하도록 했어요.”

꼭 해야 할 재발방지와 사회공헌 활동

“아까 말씀드렸던 재발방지대책과 관련해서 지난번 조정위원회가 제안한 1차 조정안에서는 삼성전자가 1천억 원을 출연해서 직업병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예방 활동을 하는 독립법인을 만들라고 한 건데요. 결국 삼성전자가 못하겠다고 하니까 이번 2차 조정에서는 형식을 바꾼 것 같아요. 저는 이제 규모가 있는 반도체 전자산업 기업은 피해가 드러난 사람들에게 보상을 하고 있으니 개별 보상을 넘어서 사외협력업체 노동자를 비롯해 전체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의 위험이 외주화 되고 있는 것들을 안전공단이 긴시간을 들여서 연구하고 해결 방안을 꾸준히 찾아나가게 하는 걸 꼭 해야겠어요.”

공유정옥 활동가는 두 가지 집중해야 할 의제를 제안했다.

“첫째는 현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삼성전자도 노동자도 잘 모르거든요. 그렇다면 삼성전자가 고객으로써 화학물질을 공급하는 업체가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하도록 해야 해요. 둘째는 사외 협력 업체 노동자들 문제인데요. 이분들은 마치 건설 현장 플랜트 노동자들처럼 반도체 전자산업 현장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일하다 병에 걸리는데, 기업은 다들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서요. 이 사회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단위 사업장 문제를 넘어서 고민하는 게 필요하고 결국 그걸 할 수 있는 건 공공기관인 안전공단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상액이 아닌 과정을 주목

“많은분들이 보상액이 충분하지 못한 것 아니냐고 속상해하고 아쉬워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2028년에 보상 제도가 중단되면 답답해지는 점도 있을거고요. 무엇보다 이걸 보상금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피해자들의 젊음과 삶과 목숨을 어떻게 보상금과 비교 할 수 있겠어요.”

공유정옥 활동가는 보상액 못지않게 보상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마도 이번 중재 합의로 보상지원위원회가 본격적으로 보상을 하게 되면 11년간 반올림이 알고 있거나 제보하는 사례보다 더 많은 피해자들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자체가 2028년까지 10년의 연구라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드러나는 직업병 피해 사례들은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의 건강을 예방하는데 있어서 소중한 자료가 모이는 거니까요. 과거 피해자의 아픔을 기록해서 10년간 모인 이 정보를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남기기 위해서 계속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반도체DS 계열 노동자들만 보상을 받는 이유

“2012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요. 당시에 반올림과 함께하는 피해자, 유가족들이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삼성전자가 행정소송 원고 5명에게 개별로 보상을 하고 싶다 연락이 왔고요. 저희는 삼성전자가 보상하고 싶으면 5명만 하지 말고 직업병 피해자 전체에게 보상하라고 요구했고. 삼성전자로부터 답이 왔죠.”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사장이 본인이 책임지고 총괄 해서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한 것이다. 반올림, 직업병 피해자, 유가족은 논의 끝에 삼성전자 반도체 DS피해자들의 보상을 위한 대화에 응하기로 하였다.

“그때까지 반올림에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외에 직업병 피해자들의 제보가 일부 있었지만 소수였고 반올림과 산재신청을 한다 던지, 싸우는 투쟁하는 상황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결국 삼선전자 반도체DS 부문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사과,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며 대화에 응하기로 했어요.

삼성전자는 반도체DS 부문만 가능하다고 하니, 이 순간을 몇 년간 기다려왔던 반올림의 반도체DS 직업병 피해자 유가족들이 다른 부문까지 포괄하고 기다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반올림 활동가들이나 다른 피해자, 유가족들도 모두 마찬가지인데요. 다른 계열사에서 일했던 직업병 피해 노동자가 보상을 받지 못하는 부분은 정말 아쉽고 꼭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중재안 협약식에서 황상기 아버님이 삼성전자가 하루 빨리 다른 계열사 노동자에게도 보상하라고 요구한 것도 이러한 이유고요. 조정위원회 역시 중재안 권고 사항으로도 삼성전자가 다른 계열사 노동자를 보상하라는 요구한 것도 이런 맥락이고요.”

국제 사회의 평가

“활동가들이나 전문가들 반응은 일단 삼성전자가 화학물질 노출과 직업병 간 원인이나 노출 여부를 따지지 않고 보상한다는 것에 대해서 대단히 충격적이라고 보는 것 같아요. 그리고 1023일간 삼성본관 앞에서 농성을 이어나갔는데 그 힘이 이러한 성과로 귀결된 것에 대해서 뭐랄까 영감을 준다, 힘이 된다, 정말 하면 되는구나, 삼성이라는 기업에게 이런 약속을 받아낼 수 있구나라는 얘기들을 많이 해줬어요.”

공유정옥 활동가는 해외 활동가, 전문가, 언론 등에서 이번 중재 합의서와 조정권고안에 대한 여러 질문들을 해오고 있어서, 이 의미를 정확하기 전달하기 위한 번역 작업도 진행 할 거라고 했다.

이번 사과의 의미

“삼성전자가 한 사과가 충분했냐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우리가 충분했냐 아니냐를 결론 낼수 없는 것 같고요. 주목해야 하는 건 앞으로 우리가 붙들고 갈 사과 표현이 있느냐가 중요할거 같은데요. 삼성전자 김기남 이사가 ‘과거 화학물질 관리가 충분하거나 완벽하지 못했다’라는 말을 했다는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이 말을 두고도 누구는 빈말한 거라고 치부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빈말이라도 말이 나오게 하는데 11년이 걸렸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이게 빈말이 아니려면, 우리가 삼성전자에게 구체적으로 무슨 잘못했는지 묻고, 사과의 의미가 어떻게 살아 숨쉬게 할 건지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는 문제 같아요.”


또, 공유정옥 활동가는 이번 삼성전자의 사과는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과로 피해자들 당신이 몸이 약해서, 잘못해서가 아니라 삼성전자가 잘 못해서 병에 걸릴 수도 있었다는 말 자체가 피해자들에게 명예회복이 일부라도 되었기를 바라고요. 삼성전자가 했던 사과를 우리가 어떻게 진정성 있는 결과로 만들어 낼지, 어떻게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도록 만들지 적극 해석했으면 좋겠어요.”

주목해야 할 조정권고문

“1차와 2차 조정에서 조정위원회가 삼성전자가 노동인권선언을 하도록 권고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꼭 노동인권선언을 만들었으면 하는데 현실적으로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선 삼성전자가 2011년에 이 문제에 대해 사과했는데 여기에 더해 권고 사항까지 이행하라는 건 어려울 것 같고요. 운동 진영 안으로 보면 지금 삼성전자가 노동인권선언을 발표하도록 해서 사회적으로 면죄부 받을 기회를 주는게 아니라 기업이나 경영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해야 상황이라고 판단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선언도 선언인데, 이 선언이 현장에서 살아 숨 쉬려면, 현장노동자들과 이런 약속을 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11년을 싸웠는데 아직도 이 주체들이 없고 안보잖아요. 노동인권선언을 하는데 정작 현장 노동자는 없고 공장 밖 노동자들과 사회만 있는 상황인거죠.”

공유정옥 활동가는 여러 상황이 있지만 그럼에도 삼성전자 스스로 충분하지 않고 완벽하지 않았다던 현장 안전보건 관리에 대한 개선 방향과 노동자의 단결권을 비롯해 노동인권의 가치를 부여하는 의미로 노동인권선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회적 합의/중재의 의미

“이번 사회적 합의/중재의 가장 큰 의미는 삼성전자가 직업병 피해자가 발생한 원인이 무엇인지, 어떠한 유해화학물질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 따지지 않고 보상한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것도 첨단산업에 상징이라는 삼성전자가 그 공장이 생긴 이래로 현장을 완벽하고 충분하게 안전관리를 하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 보상하고 책임지겠다고 사과한거니까요.”


뒷짐지고 있던 정부의 책임

“사실 지금 오늘이 오기까지 정부의 책임이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정부가 당장 할 수 있는거부터 하나 하나 해나갔으면 해요. 일단 수십 건의 판례가 있으니 이걸 토대로 직업병을 폭 넓게 인정해야 하고 인정 기준 역시 낮추는 게 필요해요. 이것을 앞으로 일관되게 집행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하고요. 이런 작업은 정부가 관심과 의지만 있으면 당장 할 수 있는 부분이거든요. 국회는 현재 미비한 법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연구와 입법적 개선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현장 노동자들과 만나고 손잡아야 할 때

“이 부분과 관련해서 얼마전에 여성신문에 기고한 글이 하나 있는데. 이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최근 어느 방송에서, 반올림 최초의 산재 신청자이자 삼성과 정부에 맞서 11년 동안 투쟁의 구심에 서왔던 황상기 씨는 이렇게 말했다. 딸 유미와 했던 약속을 지켰으나 정작 유미의 목숨은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많은 이들이 그 인터뷰를 보며 눈물을 훔쳤다. 필자도 도리 없이 울 수밖에 없었다. 만 스물 세 살을 채우지 못하고 숨진 유미 씨를 비롯하여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들과, 생명은 유지하였으나 평생 통증과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안타까와서 울었다. 이들의 고통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더 깊이 울었다. 보상도 회복도 불가능한 고통이기에, 그 아픔을 예방하는 일이 더욱 절실하다. 이제는  목숨을 지켜주지 못한 딸과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아버지만이 아니라, 목숨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딸들과 만나고 싶다.

[꽃다운 나이에] 가엾게 희생된 반도체 소녀의 영정이 아니라, 자신의 일터를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한걸음 나서는 여성 노동자들을 마주하고 싶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여동생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당당하게 나서는 멋진 그녀들을 만나고 싶다. 병상에 누운 차가운 손이 아니라, 뜨겁고 힘이 가득한 그 손을 잡고 싶다.] 지난 11년의 활동을 돌아보면 반올림이 산재 피해자이자 유가족 당사자들과 싸우면서 작은 불씨를 만들고 여기까지 왔는데요. 다음에 더 큰 횃불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장 안에 있는 노동자를 만나야 하는데 지금까지 못 만나왔어요. 현장에서 여성 오퍼레이터들은 성별, 직무, 임금, 전문성 등 모든 위계에서 제일 밑에 있는 노동자들 이잖아요.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현장의 문제를 알고 투덜대고 참여해서 바꿀 수 있느냐가 노동자 건강권을 보장하는 현장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리트머스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이 리트머스 종이를 언제 확인할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네요.“


공유정옥 활동가는 반도체 소녀의 목숨은 누가 지켜주는 게 아니라 그녀들, 노동자들 스스로 지킬 때 가능할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앞으로 놓인 과제

“많은분들이 이제 반올림은 일단락 하고 정리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요. 수많은 직업병 피해자들이 기업의 보상이 아니라 공적으로 산재를 인정받아야 해요. 또, 이번 삼성전자와 중재 과정에서 정말 많은 피해자분들이 전화를 주셨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보상에서 배제되어 있는 다른 계열사분들이나 진단명이 없어서 보상을 못 받는 분들이 있어서 너무 괴로운데, 앞으로 이분들과 산재신청도 하고 개별 기업 보상을 희망하는 분들은 같이 싸우고 그러면 좋겠어요. 산재보험 개혁을 위해서 할 게 있어요. 지금 소송전을 하는 작업현경측정결과 보고서나 기업의 영업비밀 남용 문제 등에 대해서 싸워야 해요. 반올림 내부로 보면 긴 농성으로
조직 구조와 운영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어서 그걸 안정화하기 위한 계획이 필요하고요.”


반올림은 이번 삼성전자와 사회적 합의/중재로 11년의 싸움을 일단락 한다. 그러나 일단락이라는 말처럼 이번 결과는 쉼표이지 마침표가 아니다. 앞으로 더 많은 피해자들과 산재를 인정받기 위한 싸움, 더는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현장의 안전보건 예방을 강화하는 활동, 이를 위한 법제도 마련, 현장 노동자의 조직화 등을 위해 다음 싸움을 펼칠 것이다.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고공 위의 노동자, 타워크레인 기사를 아십니까? / 2018.12

고공 위의 노동자, 타워크레인 기사를 아십니까?

건설기계 타워크레인 기사 김주호, 윤원경, 김영호 님 인터뷰

재현 상임활동가


이번 일터는 세상의 모든 건축물을 만드는 데 있어서 '꽃'이라 할 수 있는 타워크레인 기사 노동자들을 만났다. 건설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히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일하면서 여성이라고, 노가다 꾼이라고 차별받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11월 14일 건설노조 경기남부타워지부 사무실에서 경기도 안산시 선부동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김주호 님, 경기도 안성 아파트 건설 현장 윤원경 님, 경기도 의왕시 백운호수 근처 아파트 건설 현장 김영호 님과 진행하였다. 


김주호 "타워크레인이라는 장비는 아파트를 예로 들면 아파트 주거 건물, 상가, 주차장 등 전체 건설 현장 작업에 필요한 장비, 자재를 작업자와 작업 공간에 운반하는 기계예요. 저희는 그 장비를 운전하는 기사고요. 건설 현장에 타워크레인이 없으면 일 자체가 안 돌아간다고 봐야 해요. 한 현장에서 몇 개의 타워크레인이 필요하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요, 하나의 타워크레인이 보통 반경 50m~70m를 담당해요. 아파트로 따지면 한 동 정도가 되고요. 건설 현장 규모가 크면 더 많은 타워크레인이 필요하고요."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 일상

김주호 "제가 지금 일하는 현장은 집에서 10km 정도 떨어져 있어요. 이게 타워크레인 기사 치고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따져보면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출근 준비하고, 5시 반에 집에서 나와요. 운전해서 6시에 현장 도착하면 아침 식사하고 6시 반에 대기실에 가요. 기기서 작업복 갈아입고 차 한 잔 마시면 7시죠. 아침 조회 갔다가 7시 20분 정도에 작업해야 하는 타워크레인으로 올라가요. 올라가면 7시반 정도고 그때부터 점심 먹기 전까지 쭉 작업해요. 보통 점심은 11시 반부터고 13시까지 밥 먹고 쉬어요. 13시부터는 오후 4시 반까지 쭉 작업하고요. 4시 반부터는 대기실에 와서 씻고 옷 갈아입고 5시에 퇴근해요. 퇴근하고 저는 운동을 워낙 좋아해서 헬스장으로 가거나 밖에서 런닝 하다가 집에 들어가요. 술 약속이 있거나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밤 10시 전에는 자려고 해요. 출근할 때는
특별 할 것 없이 매번 똑같이 반복해요."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근로계약서상으로나 실제 현장에서나 점심 식사 외에 공식적인 휴식 시간이 있거나 마땅한 휴게 공간이 없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생리 현상을 해결할 시간도 없다는 것이다.

윤원경 "화장실 가는거 만큼은 최대한 대기실에서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종종 도저히 시간이 없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대부분 여성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최대한 물을 마시지 않으려고 해요. 어떨 때는 하루에 종이컵만큼도 물을 마시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여성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방광염으로 고생해요."

반복되는 실업과 취업 속에서 불안정한 삶

김영호 "저희는 대부분 건설회사에 직접고용되어 있지 않고 원청에 파견돼서 일해요. 건설회사가 공사할 때 타워크레인 임대사랑 장비 대수, 임대료, 인건비가 얼마인지 계약하거든요. 계약을 마치면 임대사에서 원청 건설 현장으로 저희를 보내서 일하는 거죠."

윤원경 "이런 타워크레인 임대회사 100여 개 정도 있는데요. 너무 많아서 노동조합에서는 개별 임대회사와 일일이 협의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임대회사도 협의회를 만들고 거기 대표가 노동조합과 교섭을 해서 전반적인 타워크레인 기사 임금이나 복지 등 처우를 상의하고 결정해요."

이렇다 보니 민주노총 조합원은 단체협약으로 정한 표준 임금이 있어서 어떤 현장에서 일하던지, 경력이 어떠한지 관계없이 같은 급여를 받는다. 반대로 노동조합이 없는 개별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1:1 노사 계약을 통해 결정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영호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은 여름휴가도 같이 정하거든요. 그게 8월 둘째주 월요일이에요."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쉬면 건설 현장은 다 같이 멈춘다고 한다. 공사에 필요한 장비를 운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전국의 건설 현장은 8월 둘째 주에 다 멈춘다.

윤원경 "임금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게 있는데요. 주변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고액의 임금을 받는다고 말씀하셔요. 그런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저희가 주 52시간으로 한 달 일해 받는 기본급이 전체 월급에서 50%예요. 거기에 평일에 연장 노동하고 주말에 일하고 연휴에 일하고 상여금을 받는 게 나머지 50%고요. 그런데 왜 너희는 월급도 많이 받는데 맨날 투쟁하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속상해요."

효율 만능주의에 위협받는 타워크레인 기사


김주호 "아무래도 안전 문제죠. 작업자, 신호수 모두 안 다치는 게 중요한데 일하다 보면 장비로 작업자를 친다던가, 크레인에 자재 결속이 안 돼서 떨어질 것 같다던가, 신호수와 소통이 안 돼서 사고가 날수 있거든요. 그럴 때는 정말 머리카락이 쭈뼛쭈뼛서요."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이미 건설현장은 작업자들이 개별적으로 조심조심 일해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김영호 "타워크레인 위에서 일하면 아래쪽에 시야 확보가 안 되거든요. 그래서 신호수 사인하고 무전기로 말하는 내용을 따라서 일해야 하는 데 그때 어려움이 있어요. 무전기는 현장에서 여러 사람이 같이 사용하다 보니까 자주 혼선이 오거든요. 그러다 보면 신호수 말이 안 들릴 때가 있어요. 그리고 요즘엔 건설회사에서 비용을 줄인다는 이유로 아주 기본적인 한국말이 가능하면 이주노동자들에게 신호수 업무를 시키는데, 그분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못 알아들을 때가 있어요."

윤원경 "지금 상황은 타워크레인 기사나 신호수가 자기가 알아서 잘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현장은 무조건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것만 관심이 있으니까 두 명이 해야 할 일을 한 명이, 전문적인 일은 비전문가가 하면서 결국 사고 위험이 높아지는 거죠."

높아지는 건물만큼이나 올라가는 노동강도

윤원경 "다들 그런 생각 안 들어요? 예전보다 일이 더 많아지고 바빠지지 않았나요? 예전에는 타워크레인 기사가 하는 일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거든요. 지금은 20개월 하던 공사를 12개월에 다 끝내야 하니까 하루에 해야 할 업무량도 많아지고 속도도 빨라졌어요."

김영호 "맞아요. 지금은 건설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의 역할이 90%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작업자 인력으로 했던 일들도 이제는 전부 타워크레인에 의지해서 하거든요."

그래도 노동조합이 있기에 소중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윤원경 "저희가 몇 년 전만해도 일요일에 쉬는 건 꿈도 못 꿨거든요. 매번 출근했어요. 게다가 돈도 안 받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대체 그걸 왜 했는지 모르겠는데요. 노동조합을 만들자고 처음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제일 큰 요구가 일요일은 쉬자였어요. 결국 노동조합을 만들고 일요일에 쉬는데 '아! 이게 정말 작은 행복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노동조합의 중요성을 깨닫고 작업자들이 요구하는 안전문제, 노동조건 문제 이런 것을 바꾸려고 싸우게 된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이 자랑스러워요"

김영호 "가끔 아내랑 아이랑 현장에 와서 제가 일하는 것도 보고 끝나고 같이 밥도 먹고 그래요. 며칠 전에도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친구들한테 자기 아빠가 타워크레인 탄다고 하니까 어떻게 그렇게 높은 데서 일하냐고 너무 멋있고 부럽다고 했다고요. 아무래도 그런 얘기 들을 때 자부심도 느끼고 좋아요."
 

김주호 "저는 밖에 나가서 일해서 번 돈으로 아내랑 딸이 한 달 먹고 살고 조금 남으면 저축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자부심은 글쎄요. 대한민국 중년 남자들이 다들 그렇지 않나요? 내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그럴 분이 몇 명이나 있겠어요."

윤원경 "제가 사회에 나왔을 때 대부분 여성이 은행원이나 회사 경리로 일하다 결혼하면 그만두거나 못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결혼하고도 할 수 있는 일하려고 타워크레인 기사가 되었는데 지금까지 후회하지는 않아요. 다만 사회적으로 건설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요. 세상에 모든 건축물은 노동자들의 손으로 만들었는데 왜 그걸 만든 노동자들은 노가다라고 비하하고 무시하는지 모르겠어요."

타워크레인 기사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권리

김영호 "며칠 전에 비가 많이 왔는데 계속 일을 시키는 거예요. 제가 지금 사용하는 타워크레인은 모터가 중심인 기계라서 열을 식혀주는 펜이 있는데 거기에 물방울이 들어가면 고장 나거든요. 그래서 현장 관리자한테 지금 작업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어떻게 멈추냐고 하더라고요. 지금 작업 중지하면 인건비는 인건비대로 주고 일은 일대로 못하니까 강행하겠다는 거죠. 이럴 때 정말 답답해요."

날씨 상황에 따라 타워크레인 기사는 물론 동료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해 작업을 중지하고 싶어도 전혀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윤원경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이런 악천후 때는 정말 작업하기 어렵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매뉴얼 상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까 현장에서 관리자와 작업자 판단이 다 달라요. 현장 관리자들은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꼬장 부려서 작업 못 하게 한다고 뒷돈 달라고 일부러 그러냐고 매도하고 우리는 현장관리자들이 노동자 안전이나 건강에 대해서 무책임하다고 비판하고요."

여전히 여성 노동자 앞에 놓인 장벽

윤원경 "예전과 많이 바꼈다 해도 여전히 여성 노동자들이 고용에 있어서 피해를 보는 문제는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원청에서 타워크레인 기사를 채용해야 하는데 똑같은 경력이나 기술이라도 여성이면 아무래도 한 번 더 고려하더라고요. 노동조합에서 여성 노동자 권리를 위해서 같이 싸우고는 있는데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장벽을 매일 실감해요."

효율성과 바꿀 수 없는 타워크레인 기사의 건강과 안전

윤원경 "저는 건설회사, 임대사, 작업자 모두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것 같아요. 최소한의 효율만큼 작업자들 모두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으면 해요. 또,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혼자 일하는 작업 특성 때문인지 서로 잘 몰라요. 그래서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고민도 모르고 서로 안부 묻고 교류하고 그런 게 부족한 것 같아요. 앞으로는 서로 어울리면서 그렇게 지냈으면 해요."

김영호 "중장비를 운전하기 때문에 위험한 업무를 하고 있고 실제 사고도 자주 일어나니까 안전하게 일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생각해요."

김주호 "저는 동료들이나 후배들이 고지혈증, 혈압, 당뇨 이런 약 먹는 경우가 많으니까 운동 많이 하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다 같이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현장의 목소리]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 인터뷰 / 2018.12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지난 11월 30일 한국잡월드가 노사정 교섭으로 합의안을 만들었다. 29일 16시간에 이르는 교섭 끝에 합의한 것이다. 집단단식 농성 10일 차, 청와대 농성 38일 차, 경기지청 농성 36일 차만의 일이다. 직접고용을 쟁취하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이나, 조합원 전원을 자회사로 전환 채용하되 상생발전협의회를 구성하여 2020년까지 고용 및 처우개선 등 방안을 마련한다는 내용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정규직 전환의 문제를 드러내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한국잡월드 노동자들의 노고에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 기자 말


“꿈이 뭐예요?”라는 질문. 어린이, 청소년 시절에 이 질문을 안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하고 싶은 일을 행복하게 상상하면서 공책에 스케치북에 열심히 그렸던 지난날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노동과 직업에 대한 즐거운 상상과 체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잡월드(Korea Job World)이다. 2012년에 개관한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잡월드는 종합직업체험관이다.

한국잡월드에는 약 380명의 직원 중 330명이 비정규직이고, 275명의 직업체험 강사 모두 간접고용 비정규직(파견, 용역)이다. 용역업체만 7개다. 반면 정규직은 단 50명에 불과하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다양한 직업, 노동을 체험시키며 꿈이 아닌 현실로 나아갈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일을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임에도 비용을 줄이기위한 목적으로 비정규직이란 나쁜 일자리를 양산했단 점에서 공공기관 정규직화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모든 노동자는 비정규직이 아니어야 한다고, 그러니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직접고용을 지킬 것을 촉구하며 지난 10월 19일 무기한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왜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지난 11월 19일 농성 장소인 한국잡월드 로비에서 이주용 부분회장, 정민지 총무부장, 김현아 조합원을 만났다. 


▲ 왼쪽부터 인터뷰에 참여한 김현아 조합원, 정민지 총무부장, 이주용 부분회장 


“저도 이런 일 하고 싶어요”라는 말 한마디에 얻는 힘 그리고 노동조합 결성

이주용 부분회장은 청소년체험관에서 군훈련 담당으로 파트타임으로 일했다가 강사로 전환되어 3년째 한국잡월드에서 일하고 있다. 정민지 총무부장은 전통공예 담당으로 6년째 아이들을 만나고 있으며, 김현아 조합원은 현재 고성능차디자인센터 담당으로 일한지 2년 반 가까이 됐다. 담당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모두 다르지만, 직업체험 강사라는 직업에 쏟는 애정은 모두 컸다.

김현아 “아이들이 재미있어하고, 다음에 ‘또 올게요’, ‘저도 이런 일 하고 싶어요’라고 말할 때, 내가 한 이야기에 질문할 때 하루가 뿌듯해요. 그리고 전국에서 이곳으로 모든 아이가 오는데, 내 교육을 받고 간다는 자부심도 크죠.”

1년 단위 계약직, 월급이 160만 원이 갓 넘는 열악한 조건임에도 하는 업무에 자부심을 가지며 열심히 일해왔다. 하지만 정부와 회사는 이들의 열정을 착취하면서 정규직 전환이 아닌 자회사로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계기를 묻자 이주용 부분회장은 정규직 전환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힘이 없다는 것을 직접 느꼈기 때문이라고 입을 열었다.

이주용 “처음에는 직원들이 5000원씩 모아서 노무사 자문을 구했어요. 노·사·전협의체가 꾸려져서 들어가긴 했는데 우리가 주장하는게 맞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회사에 노무사 배석을 요청했는데도 거부당했어요. 노무사님도 도대체 회사가 이렇게까지 자회사를 강행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되면 노동조합의 힘이 필요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 하시더라고요. 사실 이전부터 노동조합 얘기는 나왔는데 1년 단위 계약직인 처지다 보니깐 노동조합 결성에 대한 부담이 컸죠. 그러다 지금 분회장님이랑 몇 명이 회사 때려치울 각오하고 노동조합 가입서를 돌렸는데 당일 50명이나 가입을 했어요.”

무늬만 정규직 ‘자회사’ 밀어붙인 한국잡월드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을 발표하자 작년 8부터 노·사·전문가협의체를 열었다. 하지만 간접고용 노동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강사 직군을 처음부터 협의체에 포함하지 않았다. 당사자들은 전환 대상자인 줄도 몰랐다고 했다. 이후 협의체에 참여하게 됐는데, 논의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온전한 정규직화가 아닌, 자회사 전환을 밀어붙인 것이다. 결국 자회사 전환을 반대했던 노동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4월 3일 자회사를 결정했다.

이주용 “지금 자회사로 간 분들은 실망감, 배신감이 엄청나세요. 회사 말만 믿고 자회사 전환을 한건데 달라진 게 없데요. 임금도 안 주던 식대 주던 거 말곤 달라진 게 없고요. 오히려 관리자가 하는 말이 일단 다녀보고 임금이 적으면 그만두면 되지 않냐고 말하더라고요.”

자회사로 전환된 동료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자회사 전환은 이름만 다른 고용불안을 일으켰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일손을 놓으면서까지 자회사 강행을 막기로했다. 전면파업, 청와대 노숙농성,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농성, 민주노총 경기본부장 단식까지 이어가고 있지만, 정부와 회사는 묵묵부답이다.

결국 조합원들은 곡기까지 끊었다. 11월 21일 41명의 조합원이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좋은 직업체험 강사가 되고 싶어요” 바람과 다른 노동환경 

단지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만 문제가 아니었다. 매일 출근했던 중앙 로비를 바라보며, 이들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그간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회사는 강사들이 애정을 갖고 일하게끔 지지나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잡월드는 미션으로 ‘고객가치’와 ‘전문역량’을 걸어 놓고 있지만, 정작 아이들과 직접 만나는 강사들의 역량을 키워주지 않고 있다.

김현아 “프로그램을 잘할 수 있게 필요한 것들을 얘기하면 재정이 없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안해줄 때가 가장 힘들어요. 돈 없다고 하면서 문제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하다가 나중에는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지고, 열정도 안 생기고, 그냥 시간 때우다 가지라는 생각까지 들게 돼요. 직무교육도 없기 때문에 프로그램 진행 가이드, 대본 시나리오만 받아서 하는 상황이에요. 담당하는 직업 프로그램도 돌아가면서 하는데, 사실 저희 모두가 전공자는 아니거든요. 그러면 아이들에게 직업 내용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강사부터가 역량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지원을 해주지 않아요.”

화려한 수식어가 가득한 한국잡월드는 노동자의 건강·안전 문제에도 소홀하다. 실제 강사들이 담당하는 체험에 따라 강사들 역시 그 직업에서 얻는 직업병 문제를 겪는다. 

김현아 “일하다 쉬는 공간이 없어서 쉴 자리를 만들려고 창고를 정리하다가 어깨가 다쳤어요. 그래서 한 달가량 입원했어요. 청소년체험관으로 와서 레스토랑 프로그램에 배치됐는데 관리자에게 어깨가 아파서 일할 때 고려해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런데 후라이팬이 무겁잖아요. 그걸 계속 사용하고, 프라이팬이 좋지 않아서 설거지하는 것도 어깨에 무리가 가더라고요. 프라이팬 바꿔 달라고 했더니 예산이 없다고 거절 당했어요. 결국 치료받은 어깨가 다시 아파서 지금도 병원 치료를 받고 있어요. 다친 첫 진료비만 서울랜드에서 주고, 그 이후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저뿐만 아니고 다른 분의 경우엔 허리 디스크가 있는데 계단 오르락내리락 하는 일을 하시다 다쳤는데, 무급휴가라도 달라고 했더니 퇴직 처리하고 재입사로 들어온 경우도 있어요.”

매일 수많은 체험객을 만나는 강사들은 감정노동과 성희롱 등 다양한 문제를 겪는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감정노동자 10명중 3명은 고객 응대 과정에서 위험 수준의 과부하·갈등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고, 대면응대 비율이 높을수록, 남성보다는 여성의 위험 수준이 더 높았다. 하지만 회사는 반복되는 문제임에도 적극적으로 조처를 하지 않고있다.

이주용 “청소년체험관은 초·중등학생이 많이와요. 그런데 간혹 남학생 중 여자 강사에게 난감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일례로 뉴스제작 프로그램이었는데 한 학생이 바지를 벗으려고 해서 제가 바로 가서 말린 적이 있었죠. 그런 일을 겪으면 강사가 충격을 크게 받고, 일을 다시 하는데 힘들죠. 하지만 회사는 형식적인 대응 매뉴얼만 얘기하고, 관리자들은 즉각적으로 대응을 해주지 않아요. 책임을 회피하는 거죠.”

안전교육도 노동자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맞춰 진행되지 않고 있다. 회사 관리자가 교육 자료를 넘기며 ‘이건 우리랑 맞지 않는 상황인데, 알아만 두세요~’라고 말할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

정민지 “바뀐 정부에 대한 신뢰가 있었죠. 예전에는 정치에 관심도 없고, 잘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두고 말장난하는 기분이에요. 자회사로 전환돼도 우리가 겪은 상황, 처우, 부당함은 그대로 남아있는데, 이름만 비정규직이 아니게 되는 건데 말만 ‘정규직’이라고 하는 거죠.”

인터뷰에 참여한 세 명 모두 입을 모아 현장의 의견이 반영된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이 어느새 또 다른 나쁜 일자리 양산인 자회사 전환으로 가는 문제를 한국잡월드 노동자들은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다.

모두가 바라는 한국잡월드는 어떤 곳일까?

김현 “한국잡월드는 교육 시설이에요. 그런데 회사는 교육 측면보다 사업을 부각해요. 말 그대로 직업 체험이 우선될 수 있도록 큰 노력이 필요해요. 직업에 귀천이 없고 한 기관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아 성실히 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회사의 가치관이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 차별이 아닌 각자의 역할에 대한 차이만 있다는 것. 그것이 진짜 직업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비정규 없는 세상, 그게 진짜 한국잡월드가 그려야 하는 현실이다.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마블 영화 시리즈에서 노동은 어디로 갔을까? / 2018.12

마블 영화 시리즈에서 노동은 어디로 갔을까?

 박상빈 (서교인문사회연구실)

 

내년에 어벤져스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 나온다고 한다. 과연 그 마지막 편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이하 MCU)가 끝이 날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미국 군수재벌의 이중생활이나 2차 세계대전 참전군인의 세계 구원기로 시작한 이 영화의 우주(MCU)는 가히 한 시대를 풍미한 영화 스타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백억 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였고, 디즈니를 세계 최대의 영화배급사로 성장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또한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시리즈 영화의 스타일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 마블 히어로 [출처: 나무위기]

보편 언어가 상실된 마블 시리즈 

사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마블 영화를 보는 일이 퍽 피곤한 일처럼 느껴졌다. MCU의 어떤 특징 때문이다. 마블 영화는 자꾸 영화 바깥에 있는 정보를 관객에게 미리 공부하고 오라고 부추긴다. 관객이 영화로 보지 않은 곳에서도 영화 속 인물들은 지속해서 살아있고, 활동하고 있다. MCU의 새 영화가 나오면 그곳에는 MCU에 속한 다른 영화들에 대한 언급이 당연하게 펼쳐지고, 그걸 이해하는 건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전가된다. 

그게 몇 명이 되었건, 수천만 명이건, 수십억 명이건 간에, 같은 가격의 입장권만 사면 같은 이야기가 전달되고 따라서 같은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 그것은 20세기 영화의 이상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영화는 조금 달라졌다. 같은 가격을 지불하고 들어간 영화관에서 누군가는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기에 급급한 반면, 다른 누군가는 전작에서 펼쳐진 인물 관계도를 상기하면서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행위들의 온갖 숨은 의미까지 찾아내며 영화를 즐긴다. 물론 20세기에도 보편언어로서 영화의 이상과는 달리, 실제 영화관에서는 관객의 정체성에 따라 영화의 의미가 많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20세기에 영화의 이상적인 형태는 모두에게 동일한 즐거움을 전달할 수 있는 보편언어였다. 

그런데 MCU는 적어도 그런 형태의 이상적인 언어를 추구하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MCU는 자신을 한 편의 영화로 국한하지 않음으로써 이전의 MCU 영화들을 섭렵하는 노동을 한 관객들에게만 자신의 즐거움을 허락한다. 마치 은행이 ATM 기기를 도입하면서 은행 출납계 직원의 노동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한 것처럼. 

바꿔 말하자면 MCU 영화 한 편의 가격은 단순히 1만 원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새로 출시되는 MCU 영화 한 편의 온전한 재미를 느끼려면 최소한 MCU의 다른 모든 영화를 한 번은 보아야 하므로 영화의 편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 실질적인 가격은 상승한다고까지 할 수 있다. 

MCU가 구축한 완벽한 세계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 문화논리(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에서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의 그 유명한 보나벤투라(Bonaventura) 호텔 공간에 대한 분석을 떠올려보자. 

일본의 미쓰비시사가 투자하고 존 포트먼(John Portman)이 설계한, 1974년 시공되어 1976년 완공된, 로스앤젤레스 신중심가 한가운데에 위치한, 35층이라고 표기되어있지만 실제로는 33층의 층고를 가진, 꼭대기에는 빙글빙글 회전하는 레스토랑이 있는, 현재 20억 달러를 웃도는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되는 이 호텔은 제임슨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 논리를 가장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이었다. 

이 건물은 마치 선글라스를 낀 사람처럼 외벽이 모두 반사유리로 마감되어 그 속내를 파악할 수 없다. 고전적인 호텔들의 차양 달린 위풍당당한 입구 같은 게 없어 호텔의 내부 공간이 외부 공간과 분리된 것 같으며, 입구에 들어선다고 할지라도 쇼핑몰이나 정원이 펼쳐져 있어 로비에 도착할 때까지는 한참을 더 이동해야해 호텔 외부에서의 방향감각이 호텔 내부에서는 단절된다. 이런 특징은 제임슨으로 하여금 이 건물을 도시의 한 부분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그와 맞먹는 것, 즉 도시의 교체물이나 대체가 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게 만든다. 

이렇게 그것이 자리하고 있는 외부 도시를 거부하면서 어떤 전체적 공간, 완전한 세계, 혹은 일종의 축소도시가 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자신의 문화적 생산을 그 내용으로 삼는 경향을 가진 문화의 자기지시성을 두드러지게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제 MCU의 구조를 떠올려 보자. 2008년 개봉했던 <아이언맨>을 필두로 펼쳐지기 시작한 MCU는 기존의 히어로 영화 시리즈물이 히어로 한 명의 삶과 영웅적 행적을 좇는 것과는 달리 세계 곳곳에서 다른 기원을 가지고 활동을 시작한 능력자 모두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MCU로 들어가는 입구는 시간상으로 가장 먼저 개봉된 <아이언맨>이 될 수도 있지만, <토르><캡틴 아메리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닥터 스트레인지>, <앤트맨>, <블랙팬서>, <스파이더맨: 홈커밍>이 된다고 해도 그 우주를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 일단 그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개별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서사의 층위는 좀 더 근본적인 우주(MCU)의 역사 속에서 돌출된 미시적 사건에 불과하다. <어벤져스> 시리즈가 보여주는 전 우주적 전쟁의 거시적 전장 속에서 각각의 영웅들은 각자의 매력을 뽐내며 관객들을 유혹한다. 마치 거대한 쇼핑몰 안의 서로 다른 상품과 분위기를 판매하는 소매점들처럼. 

노동자의 재현을 거부하는 MCU 

MCU의 또 다른 특징은 그 우주 안에서 노동()의 재현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토니 스타크의 비서 버지니아 펩퍼 포츠(기네스 펠트로)의 지위가 노동자의 신분에서 최고 경영자로 급상승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피터 파커(톰 홀랜드)는 이전의 소니 픽쳐스 버전의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와는 달리 노동하지 않는 이로 그려진다. 피자를 배달해 생계를 해결하고 지역신문사에 자신이 찍은 사진을 투고해 사회적 지위 상승을 이루려 했던 피터 파커는 이제 군수 재벌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후원 아래 들어가 노동의 강제로부터 해방된 것처럼 보인다. 혹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사례처럼 <가오갤> 시리즈는 무수히 많은 익명의 노동자(군인)를 우주전쟁에 배치하곤 하는 <스타워즈> 시리즈보다, 거대한 우주함선 안에서 선원 개개인의 두드러진 개성을 부각하는 <스타트렉> 시리즈의 방식에 더 가깝다. <가오갤>의 등장인물은 <스타트렉>보다 한층 더 진일보하여 모두가 복제 불가능한 각자의 독특한 개성을 지녀 서로 다른 자신만의 목적으로 움직이기에 타인의 지시를 따른다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MCU에서 유일하게 타인의 지시에 복종하며, 타인을 위해 노동하는 존재는 토니 스타크의 AI 비서 자비스 뿐이다. 그러나 그 역시 인피니티 스톤의 힘으로 자신만의 신체가 생기고 토니로부터 독립한다. 

노동자이기보다는 전문가이기를,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경영자이기를 촉구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노동 이데올로기라는 점은 이제 익숙해졌다. 어떤 것이든 너무 많이 말해지다 보면 그 본래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 법이다. MCU가 보여주는, 자신을 경영하는 캐릭터 역시 그렇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보여주는 유토피아적 삶, 그러니까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려 지위 상승을 이루어내는 삶을 어느 정도 성취하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그러나 그 성취는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자금력과 미국의 패권 질서에 지배를 받는 한에서의 성취다. 혹은 MCU의 거대한 우주 전쟁을 박진감 넘치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로서 존재하는 한에서의 성취다. 

“[우주]의 한 부분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그와 맞먹는 것, [우주]의 교체물이나 대체가 되고자 하는” MCU의 욕망은 그들이 내쫓았던 노동()들의 형상을 부지불식간에 다시 불러들인다. 경영자들은 자신을 위해 일하는 동시에 MCU라는 거대한 타자를 위해 일한다. 이쯤 되면 MCU를 동시대 자본주의 사회를 대체하는 완벽한 또 하나의 세계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아니, 대체하는 것인지 알레고리 속에서 연장해 나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울한 비전 

이런 맥락 속 비전(VISION)’의 우울함을 한번 살펴보자. 자비스이던 시절(<아이언맨>, <아이언맨2>, <아이언맨3>)에는 감정을 가질 새도 없이 스타크를 위해 노동했다. 그러나 <에이지 오브 울트론> 이후 신체를 얻게 되고 자기 자신의 존재 목적이 타인을 위해 노동하는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는 우울감에 빠진다. 본다는 것이 지니는 앎의 함의(‘I see’라는 관용어, 혹은 백문이불여일견’)를 떠올려 봤을 때, 보기()의 화신인 그가 느끼는 우울감은 퍽 당혹스럽다. 그가 느끼는 우울감은 이제 노동이 완벽하게 사라진 세계, 모두가 자기 자신의 목적의식 속에서 행위를 결정하는 세계가 완성된 시점에서 자신의 행위를 결정하지 못하는 데로부터 오는 우울감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그가 비전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우주적인 지식을 얻게 된 결과 우주를 위해 인류를 없앨 것이냐 인류와 함께 싸워나갈 것이냐를 고민하게 되면서 그런 감정에 사로잡힌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나는 그가 우울감을 느끼는 이 지점이 동시대 유연 노동체제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가지는 감정의 구조와 유비관계를 이루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배달대행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의 가치를 건당 3,500원의 배달대행료로 표상한다. 그들이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 일은 더 많이, 더 빠르게 배달을 치는 것을 통해서이다. 그러는 와중에 요식업의 유통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사회 전체의 가치 실현 속도가 증대해 연간 GDP의 일정한 상승에 기여한다. 그들은 그 누구도 타인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사회라는 개인들의 완벽한 타자는 그들을 자신의 가치를 증대시키게끔 기계처럼 작동하는 한에서만 그 개인들을 자신의 구성원으로 가진다. 사회 내에서 배달대행 노동자들의 노동은 노동력 재생산비용을 절감시키는 노동으로 나타나며, 자본가들의 잉여가치 수취분은 그들이 의식하지 않은 이 과정에 의해 증대하게 된다. 이 배달대행 노동자들의 오롯한 자기 자신을 위한 노동은 토니 스타크를 위해서만 노동하는 자비스의 이전의 삶과 거울 이미지를 이룬다. 정확히 같지만 정확히 정반대인 그런 이미지로서 말이다. 

비전이 우울감에 빠지는 순간은 그 우주에서 타인을 위한 노동을 완벽하게 제거한 순간이다. 우울이라는 감정은 이전에 애착을 가졌던 대상을 상실했을 때 발생한다. 비전의 대상은 명백하다. 그는 자비스이던 시절을 상실했다. 완벽하게 타인을 위해 일하던 자기 자신을. 그는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 순간에 도달했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다. 

거울 이미지로서 비전의 우울감은 아마도 유연 노동체제의 노동자들이 자기 자신을 위한 노동이 자신을 배신했을 때 겪는 감정이 아닐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생활 수준은 나아지지 않을 때,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는 시간이 오히려 자신의 건강을 해칠 때, 그럴 때 느끼는 우리들의 감정이 아닐까? MCU가 구축한 완벽한 세계는 우리들의 세계를 정말인지 완벽하게도 대체/연장하고 있는 것 같다.

특집4. 앞뒤가 안 맞는 탄력근로제 - 공공운수노조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안병호 위원장 인터뷰 / 2018.12

앞뒤가 안 맞는 탄력근로제

- 공공운수노조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안병호 위원장 인터뷰

재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최근 방송, 영화업계의 과로사 문제가 이슈되었다. 한주에 80시간~100시간 씩 일하는 영화업계 노동자들의 삶은 이미 위태롭다. 몸이 아픈 것은 일상이고 심지어 죽기까지 한다. 다행히 지난해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의 계속된 요구와 투쟁으로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업종에서 영화산업이 제외됐다.

그렇기 때문에 큰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탄력근로제를 확대 시행하겠다고 밝히면서 영화업계에는 다시 장시간 노동이 성행하고 있다. 왜 탄력근로제가 확대되면 안되는지에 대해 지난 12월 7일 공공운수노조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안병호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전국영화산업노조 안병호 위원장은 영화업계의 과로사 문제를 돌아보며 탄력근로제 확대를 크게 우려했다

앞뒤가 안 맞는 탄력근로제

"영화 제작에 함께하는 스태프이 모여있는 노동조합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감독 밑에 촬영, 조명, 제작, 미술, 분장팀 스태프이 있거든요. 이분들을 보통 조수 스태프이라고 하는데 우리 노동조합은 스태프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해있어요. 앞으로도 영화산업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과 함께 하려고 하고요."

주요한 노동조합 활동

"노동조합이 투자사, 제작사, 정부와 함께 논의해서 현장에서 일하는 스태프들과 표준근로계약서를 쓰고 일하도록 했어요. 무조건 강제할 수 없기는 한데 이제는 대부분 투자가, 제작사들이 영화를 만들 때 표준근로계약서를 쓰고 최소한 법은 지키면서 하려고 해요. 불과 5년 전만 해도 스태프들은 계약서는커녕 개별로 용역 계약을 맺고 영화 촬영이 다 끝나도 월급을 못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거든요. 또,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을 시작하기 전에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안전교육 등도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가장 큰 변화였던 노동시간 특례 폐지

"아무래도 가장 큰 변화는 올해 특례 업종에서 제외된 거예요. 올해 7월 1일부터 근로기준법 59조를 바꿔서 영화 스태프 노동자들이 최대 주 52시간만 일하게 된 거죠. 물론 아직 몇 달 안 돼서 현장이 대대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는데요. 그래도 시스템이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가령 영화 제작사들이 촬영 스케줄을 정할 때 스태프들 노동시간을 주당 52시간, 4회 차로 맞추고 있어요. 예전에는 새 영화 촬영 들어가면 스태프들은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거든요. 앞으로 6개월 아니 길게는 1년 정도 연락을 아예 못하고 사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영화 촬영을 하면서도 퇴근해서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집에 가서 저녁 먹고 여가도 즐기게 되었죠. 지금 개봉한 국가부도의 날 영화는 스태프들이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한다고 공무원처럼 찍는다고 이야기 할 정도였어요."

모두에게 같지 못한 변화

"촬영, 조명, 녹음 쪽 스태프들은 A팀 B팀 두 조로 나눠서 촬영하면 되니까 주 52시간을 지킬 수 있는데요. 영화 촬영할 때 분장하고 소품 정리하고 하는 스태프들은 시간을 줄이지 못하고 있어요. 가령 전투장면을 촬영한다고 하면 분장팀은 수많은 보조출연자들 분장해야 하고 소품 팀은 장비 챙겨서 준비해야 시간이 있거든요. 촬영을 마치면 분장 지우고, 장비 다시 챙기고 하는 시간이 걸리고요. 미술팀 같은 경우는 한 달에 하루도 못 쉬고 400시간을 일할 때도 있으니까 주 52시간은 너무나 먼 이야기에요."

앞뒤가 안맞는 탄력근로제

"제작사들은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인력을 더 늘리거나 촬영 기간, 회차를 늘리는 것 보다 탄력근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만약에 정말이지 제작사들이 주 52시간으로 쭉 해봤는데, 이런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던가 영화 제작의 완성도가 떨어진다거나 흥행에 실패해서 탄력근로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한번 이야기는 해볼 수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주 52시간으로 해보지도 않고 인력을 충원하거나 그러지도 않고 무조건 안 된다고 하니까 대화가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영화라는 작업의 특수성이 있는데 그렇게 노동시간을 정해버리면 자율성이 떨어진다고 탄력근로제를 도입하자고 하는 데 동의하기 힘든 것 같아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는 탄력근로제

"전 사회적으로 탄력근로제 논의가 되고 있으니까 제작사들도 스태프들하고 근로계약을 할 때 이거 도입할 거니까 알아서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하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이랑 전체 스태프들에게 혹시 탄력근로제를 언급하는 근로계약서나 동의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하는 게 있으면 연락하라고 이야기하라고 안내하고 있어요".

뒷짐지고 구경하는 정부

"정부도 그래요. 영화 스태프들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서 건강에도 문제가 되고 그러니까 특례업종에서 제외해서 노동시간을 줄이도록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제는 유연근로시간제 가이드나 탄력근로제 도입을 논의해서 제작사들이 스태프들을 주당 80시간까지 일을 시키도록 권장하는지 이해가 안 돼요. 또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특집3. 과로사 예방하겠다는 정부가 내놓은 탄력근로제-노동시간 단축운동 역사를 통해 본 탄력근로제 / 2018.12

과로사 예방하겠다는 정부가 내놓은 탄력근로제

이나래 (노동시간센터) 


본 글은 11월 13일에 발행한 이슈페이퍼 「제한 없는 하루노동 가능케 하는 '고주물 노동시간제' 탄력근로제 – 하루 노동시간 제한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를 재구성하였습니다... 기자말

일하는 사람의 시간을 마음대로 줄였다, 늘렸다하는 '탄력근로제'

총성 없는 전쟁이다. 노동시간을 둘러싼 자본과 노동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무제한 노동을 허용했던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제도 업종 축소, 연장근로 12시간 제한을 중심으로 하는 주 52시간제, 최근엔 초과 노동 가산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탄력근로제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쟁 중앙에 놓인 탄력근로제는 특정 일·주에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한 노동을 가능하게 하며, 초과 노동시간 가산수당조차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이다. 특정일의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대신 다른 날의 노동시간을 줄여 일정 기간 평균 노동시간을 법정노동시간에 맞추는 방식이다. 유연근무제의 일종으로, 근로기준법 51조에 근거를 둔다.

무엇보다 탄력근로제는 대상 제한 없이 모든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야기할 우려가 크다. 정부는 유연 근로시간제 가이드에 탄력근로제 적합 직무를 계절적 영향을 받거나 성수기.비수기 등 시기별 업무량 편차가 많은 업종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도입할 수 있기 때문에, 업종.직무별 특성을 벗어나 사업주의 필요에 의하면 얼마든지 사업장에 도입될 수 있다.

또한, 정부는 탄력근로제를 포함한 유연 근로시간제의 의의를 '근로시간의 결정 및 배치 등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여 업무 생산성 향상 및 기업 경쟁력을 제고 한다고 밝히고 있다. 동시에 근로시간의 효율적 배분을 통해서 일 · 생활 균형이 가능한 근로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제도의 면면을 살펴보면 노동시간 제도는 노동자의 몸과 삶이 아닌 자본의 이윤 창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편, 자본은 탄력근로제를 통해 일하는 사람의 시간을 구속해 자율성을 침해한다. 어떻게 노동하느냐, 어떤 노동시간과 휴게.휴식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노동자의 건강과 삶,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다르다. 예를 들어 하루 8시간 주간 고정 노동자와 12시간 주야 맞교대 노동자의 생활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탄력근로제는 노동자의 필요, 욕구, 선택을 기준으로 하는 제도가 아니다. 노동자들의 의사와 판단, 필요와 무관하게 기업이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시간 동안 일하도록 강제한다. 이미 탄력근로제가 아니더라도 오래 일하는 것으로 인해 자기 시간에 대한 자율성을 박탈당한다. 심야교대, 주말교대, 파트타임 등 다양한 교대제가 대표적 예이다. 결국 탄력근로제는 노동자의 시간 주권을 강화하는 방향이 아닌 자본의 생산 향상을 위한 시간 통제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자본은 끊임없이 노동시간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현행법으로 정해진 최장 3개월 단위 기간 조차 짧다며 단위 기간 확대를 주장하고 있고, 정치권은 단위 기간 확대안을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민주당은 6개월, 자유한국당은 1년을 주장하고 있다.

하루 8시간 노동 쟁취, 노동자들의 오랜 요구


노동운동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노동시간을 둘러싼 노동과 자본간 대립은 오래된 첨예한 사안이다. '시간'을 누구의 시간으로 확보할 것인가, 노동자에겐 곧 목숨과 삶이었고 자본에겐 이윤 창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전 세계 노동자들의 쟁취 대상이었다. 하루 8시간 노동제는 피의 역사다.

1884년 미국 방직노동자들을 중심으로 8시간 노동제 실현을 주장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하루 12~16시간 일해 주급 7~8달러 임금을 받으며 월 10~15달러 판잣집 방세를 감당했다. 결국 노동자들은 파업을 결의했고, 1890년 5월 1일 전 세계적으로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국제적 시위인 제1회 메이데이(노동절)가 열렸다. 우리나라도 1920년대부터 메이데이 행사를 치르며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실업방지를 외쳤다.

1953년 도입된 근로기준법은 노동시간을 1일 8시간, 주 48시간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쳐 노동시간 단축 요구가 퍼졌고 1989년이 되어서야 주 44시간제로 개정됐다. 법정 근로시간 1주 4시간을 단축하는 데 36년이 걸린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주 40시간제가 입법화된 것은 2003년이다. 사업장 규모별 적용 제한을 두어 5인 이상 사업장에 주 40시간제가 완전히 도입된 것은 불과 7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노동시간 단축 역사를 살펴봤을 때 1953년 법정노동시간은 1일 8시간 주 48시간, 1989년 주 44시간, 2004년 1주 40시간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노동시간 단축은 하루 단위 기준으로 요구되어 왔다는 점이다. 하루를 기준으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총 노동시간(주, 달)을 단축하는데 기준점이 되고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우리나라는 하루 노동시간 제한이 없다.

주 40시간제를 도입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하루 노동시간 단축이 아닌 연장근로 12시간을 제한하는 주 52시간제로 전환됐다. 이는 노동시간 단축이 아닌 명백한 장시간 노동의 고착화일 뿐이다.

노동시간 단축, 하루 노동시간 제한으로 이뤄져야

일하는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분명 노동시간 단축이라고 정치권과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긴 하는데, 정작 내 삶은 변한 게 없으니 말이다. 제도는 변하고 있지만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우린 이미 오랫동안 길게 일해 왔다.

한국은 OECD 최장 노동시간을 오랫동안 기록해왔으며, 이전에 묻혀 있던 노동자들의 장시간으로 인한 사고와 죽음이 '과로사'라 명명되어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번 이슈페이퍼를 계기로 조사한 노동시간 상한선이 없는 특례 업종의 경우 운수업에서 35% 이상의 노동자가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를 한 달 10일 이상하고 있다고 응답한 결과가 나왔다.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대상인 특수고용 운수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장시간 노동 실태는 더욱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운수 노동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모든 노동자 혹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지만 노동시간 제한 대상이 되지 못하는 모두의 현실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일하는 사람의 건강과 삶에 근거해 이뤄져야 한다. 무엇을 원칙으로 삼느냐에 따라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진다. 하루 노동시간 제한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 그것이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통해 얻은 우리의 교훈이자,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특집2.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노동자 건강을 위협한다 / 2018.12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노동자 건강을 위협한다

김형렬 (노동시간센터장,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보수 언론들과 자본은 지속해서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우려하는 여론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자본이 노리는 더 큰 속마음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시간당 노동밀도 증가 등을 통한 노동유연성을 확보하는데 있는 듯하다.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문제는 양보(?)했으니,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는 꼭 도입하라는 정부에 대한 압박이 먹혀들어 가는 듯하다. 탄력근로시간제가 확대되더라도 노사합의를 전제하므로 확대의 영향은 영세 사업장,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더 큰 타격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막아내기 위한 민주노총의 파업을 이기주의로 몰아가는 여론은 관성과 타성의 정도가 지나치다.

바쁠 때 일을 좀 더 하고, 일이 없을 때 노동시간을 좀 적게 하자는 것이 나쁜 것인가. 자본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노동과 노동시간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으로 만든다. 육아 문제를 포함한 생활 문제에서는 보다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사회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는 추가적인 경제 부담뿐 아니라 심리적 부담을 낳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도 서구의 나라들을 예로 들어 탄력적 근로시간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와 우리 상황은 너무 다르다.

적어도 탄력근로 시간제가 노동자들의 삶과 건강의 위협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뒷받침돼야 한다.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을 자발적으로 해서 생활임금을 유지해야 하는 저임금구조가 아니어야 하고, 일을 많이 하는 시기에도 하루 노동시간의 제한이 있어야 한다. 탄력적 근로를 통해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은 노동자가 예측 가능하도록 해야 하고,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생활의 문제를 기업과 사회가 해결해줄 수 있어야 한다.

임금수준이 생활임금에 훨씬 미치지 못해 연장근무를 통해 생활임금을 유지하려는 노동자들에게 같은 노동시간을 하면서도 이를 연장근무로 인정받지 못 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하루에 정해진 노동시간이 없어 수면 부족을 초래할 정도의 노동시간으로 심혈관계질환을 촉발할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예측 가능하지 않은 연장근무의 확대로 아이돌봄을 위해 별도의 비용을 사용해야 하거나 생활의 불규칙성 증가로 사회 활동의 위축이 발생할 수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탄력근로시간제는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되고 있다. 탄력근로 시간제가 확대되면 노동자들의 삶과 건강이 위협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는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정책과도 충돌한다. 특정 주의 노동시간을 최대 64시간까지 가능하게 한다. 이미 올해부터 시행되는 과로사의 인정기준은 주당 52시간을 넘어서는 경우 특정 직무스트레스를 하나만 가지고 있더라도 발생한 심혈관계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기준은 국내외 여러 연구 결과를 근거로 만들어진 것이다. 국내에서 진행한 환자대조군 연구에서 주 5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가 심혈관계질환 발생의 위험이 1.85배 증가하고, 주 60시간을 초과할 경우 4.23배 위험이 증가함을 보고하였다.¹⁾

심혈관계질환뿐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준다. 국내연구에서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하는 노동자에서 우울 증상이 1.62배 증가함을 보고하기도 하였다.²⁾ 미국 자료를 이용하여 연장근무를 하는 것이 61%의 사고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고,³⁾ 독일에서는 하루 노동시간이 8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에 사고의 위험이 급격히 증가함을 보여주었다.⁴⁾

▲ 10시간 이상 근무하는 날이 월 9일(주2회) 초과인 경우와 아닌 경우 비교 결과

제4차 근로환경조사 자료를 이용하여 노동시간센터에서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월 9일을 초과하여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하는 노동자들에서 '근무시간이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질문에 2.4배, '귀하의 건강상태는 전반적으로 어떠합니까?' 질문의 경우 1.5배, '내가 하는 일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1.5배, '지난 12개월 동안 우울 또는 불안장애'를 겪은 비율은 2.4배, '지난 12개월 동안 전신피로 건강상의 문제'를 겪은 비율은 1.3배, '지난 12개월 동안 불명증 또는 수면장애'를 겪은 비율은 2.1배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하는 날이 월 9일(주2회) 초과할 경우 모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장시간 노동, 그리고 이를 더 극단적인 상황으로 만들고 있는 탄력근로시간제를 확대하는 정책은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 각주
1) Jeong IC et al. Working Hours and Cardiovascular Disease in Korean Workers: A Case-control Study. Journal of occupational health 2013
2) Kim I et al.Working hours and depressive symptomatology among full-time employees: Results from the fourth Korean National Health and Nutrition Examination Survey. Scand J Work Environ Health. 2013
3) Dembe et al. The impact of overtime and long work hours on occupational injuries and illnesses: new evidence from the United States. OEM 2005
4)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 제한 없는 하루노동 가능케 하는 '고무줄 노동시간제' 탄력근로제- 하루 노동시간 제한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 이슈페이퍼 2018

특집1. 위기를 위기로 덮는 방법 / 2018.12

위기를 위기로 덮는 방법


전주희 (노동시간센터 회원,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최근 개봉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IMF 위기'로 회자되는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다. 젊은 남성들, 그러니까 'IMF 키드'로 어린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된 이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을까?

"역시 종자돈이 있어야 위기 때 과감하게 투자를 할 수 있어. 우리한테 인생역전은 이럴 때 가진 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이거거든."
"그래. 곧 또 닥칠 텐데, 알바해서 참 많이도 모아봐라. 쯧쯧"


자신들도 어이가 없는지 낄낄거리며 영화관을 빠져나간다.

IMF 위기. 따지고 보면 이상한 말이다. 김영삼 정부시절 경제위기가 있었고,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IMF(국제통화기금)에게 구제금융을 요청했다는 단순한 사실을 뒤집어놓는다. IMF로부터 야기된 위기인지, IMF로 극복된 위기인지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때로는 모호한 의미가 복잡한 사건을, 엉킨 실타래를 표현하기도 한다. 단어 혹은 개념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단어들 간의 관계이다. IMF 그리고 위기라는 단어가 맺는 관계. 이것은 위기의 자리이동 혹은 한 국면에서 다른 국면으로 위기의 전화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위기는 여전히 한국사회를 떠받치는 불안의 이면이지만, 이것은 우리가 다른 위기 속에 놓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위기는 무엇일까?

<국가부도의 날>에서 내가 본 것은 위기의 층위다. 자본의 위기가 곧 노동자의 위기로 전화되는 국면, 자본이 위기를 극복했을 때 노동자의 위기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장면으로 펼쳐지는 그 순간 말이다.

경제위기라는 이 의도적인 모호한 단어는 이 분열, 삶의 위기가 곧 자본의 위기가 되지 않는 IMF 이후 20년의 현실에 베일을 드리우는 효과적인 이데올로기가 된다. 그럼에도 위기는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피부로 느낀다. 하지만 이 생활세계의 바깥에서 어떤 자본은, 어떤 부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조건에서 부를 축적하며 황금의 20년을 살아왔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기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위기인가이다. 자본의 위기는 곧 삶의 위기로 간주되지만, 삶의 위기는 자본의 위기가 아닌 시대. 둘 중 하나는 현실이고 둘 중 하나는 기만인 이 기묘한 위기의 시대.

자본의 축적이 개인의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지금, 우리는 '유연화'라고 부르는 노동의 위기를 지렛대 삼아 유래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 자본이 어떻게 지난 20년간 부를 축적해왔는지,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처한 삶의 위기를 어떻게 재료로 삼아왔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노동시간 단축은 왜 흔들렸는가?

한때는 영광의 표현으로, 지금은 비난의 표현이 된 '촛불정부'. 문재인 정부는 수많은 논란과 반발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단축을 감행했다. 그리고 이제 탄력근로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2018년 최저임금 16.4% 인상에 맞서 보수 언론이 내건 대응은 '자영업자의 눈물'과 '중소 자본의 한숨'이었다. 이것은 노동시간 단축 관련 보도에서도 반복된다. 언론사들은 이른바 '지불능력'이 없는 중소영세 사업장들의 문제를 현장의 목소리를 인용해 앞 다퉈 보도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의 가시적 인상을 무력화하고, 주 40시간인 법정노동시간을 사실상 주 52시간으로 대체하는 효과를 가지게 된 기묘한 상황이 펼쳐졌음에도 말이다.

이때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이야기했다. 여기서 소득은 노동자들의 임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영업자의 소득까지 포함한 자본소득을 의미하고 이는 중소영세사업장의 소득분배를 개선하는 것을 포함한다.

즉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이론상으로는 대기업과 상위 1% 혹은 상위 10%의 부의 집중이 사실상 대다수 노동자 대중들의 소득을 약탈한 결과이며, 이러한 부정의한 분배를 다시 바꾸겠다는 것의 부분적 인정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저임금인상과 같은 조치와 함께 무엇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약탈적 거래, 건물주들의 약탈적 지대 수취의 문제 해결이 우선해야한다.

왜냐하면 보수언론이 떠들어대는 중소영세 사업장의 '약한 지불능력' 원인이 중소기업의 부실함이나, 우후죽순으로 난립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태생적 한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원인이 아니라 지난 20년간의 결과이다.

다시 말해 부실한 중소기업이나 준비 안 된 자영업자들의 취약함은 지난 20년간 구조화된 거대자본과 중소자본 간 생산력 차이의 결과이며, 이 생산력의 차이는 IMF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이 강화된 재벌이 "약탈적 산업생태계"를 구축하면서 높아진 지배력의 결과이다. 그 결과 대기업은 자본집약적 고부가가치 부분과 중소기업의 노동집약적 저부가가치 부문으로 나뉘었다(홍장표 2014).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삶 역시 기업규모 뿐만 아니라 업종과 고용형태에 따라 분할되었다.

탄력근로제 확대가 지시하는 태세전환

그러기에 최근 정부에서 강행하고 있는 탄력근로제 확대 추진은 매우 중요한 전환처럼 보인다. 이는 '줬다 뺏는' 최저임금, 노동시간단축의 연장으로 보일 수 있지만 보다 궁극적으로는 소득주도 성장론의 폐기이다. 그리고 지난 20년간 진행된 IMF 위기를 노동자 대중의 '삶의 위기'로 정정하려는 시도의 발 빠른 포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포기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의 입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표명되었다. 탄력근로제 확대 추진,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 제주영리병원 허용 등과 관련된 입장은 그가 여전히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위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그는 소득주도 성장의 속도조절을 이야기하며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을 사실상 폐기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력근로제 확대와 관련한 보수 언론의 초점은 '중소기업 살리기'라는 프레임으로 정당화된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탄력근로제 확대를 둘러싼 여·야를 비롯한 정치권 일반의 논조는 그 차이가 식별불가능하다. 지난 12월 3일 바른미래당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한국게임산업협회가 공동주관한 "ITC분야, 52시간 근무, 정답인가?"라는 정책토론회의 부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저녁있는 삶과 선택근로제를 중심으로'이다.

여기에서는 "획일적인 노동시간 단축" 혹은 "과도한 노동규제"를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탄력근로제 도입의 정당성을 획일적인 노동시간 단축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는 IT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또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 그것은 법에 대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일지라도 국가가 필요한 이유는 이 획일적인 법, 제도가 반드시 자본주의의 재생산에 필요한 계기들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가령 기업은 노동력의 사용을 위해 노동력의 재생산 따위는 관심이 없기 마련이기에, 국가는 기업의 무정부적인 경쟁을 제어하며 교육이나 의료 등의 '획일적인' 조치를 취하며 노동력을 재생산해야할 필요가 있다.

정치는 이러한 보편성(그들이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로 끌어내리고 있는)의 계급적, 사회적 의미를 둘러싸고 벌어진다. 그런데 경제부총리 장관 후보와 여, 야 모두는 지금 최저임금과 노동시간단축에 이어 탄력근로제 확대에 이르러 이러한 법의 보편성을 공격하고 있다.

이것은 지난 IMF 위기이후 20년간 시장권력이 국가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권력기반을 갖추었으며, 이제 그 시장권력이 국가의 정책과 제정된 법을 얼마나 마음껏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지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의 반격이 한 두해의 일이 아님을, 단지 올해의 노동정책을 둘러싼 문제만이 아님을 익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새삼스러운 것은 단지 '촛불정부'의 실망만은 아닐 터이다.

IMF 위기 이후, 20년 동안 이 위기는 과연 어떤 위기였는지, 누구의 위기였으며, 누군가는 이 위기가 엄청난 기회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얽힌 실타래를 붙잡고, 성급하게 풀리지 않는 매듭을 자르지 않고 한 올 한 올 풀어내는 시도를 우리는 매번 반복했지만 또 다시 반복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보수언론이 매순간 꺼내드는 '경제위기'에 움츠러들기 때문이다.

<일터> 통권 177호 / 2018.11




[특집] 모두를 위한 산업안전보건법을 만들자

1.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의 문제는 무엇인가?

2. 28년만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강력한 공동투쟁이 필요하다 

[연구리포트]

정신질환 요양 산재판정의 쟁점과 개선방향

[안전과 건강 칼럼]

'감정노동 중지권'을 제대로 보장하려면 

[사진으로 보는 세상]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어둠이 내린 학교는 누가 지킬까

[현장의 목소리]

마트노동자는 더 건강하고 안전하고 싶습니다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밥하고 국 끓여도 죽지 않는 학교를 위해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재난과 노동인권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與]

시멘트벽돌 생산 노동자의 폐암

[노동자 건강상식]

술과 건강 

[문화읽기]

우리는 죄는 중대하다 

[이러쿵 저러쿵]

'당연하게' 노동이 안전한 세상을 꿈꾸며 

[발칙 건강한 책방]

여성 노동자 체공녀 강주룡과 간호사의 이야기 

[안전보건동향]

[한노보연 이모저모]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재난과 노동인권 - 영화 <감기> / 2018.11

재난과 노동인권 

- 영화 <감기> 


김영선,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 연구교수, 노동시간센터 회원


바이러스 재난은 연례행사처럼 발생한다. 바이러스 재난은 예외적이거나 우연적인 사고가 아니다. 바이러스 재난의 반복성은 사회학자 찰스 페로우가 말하는 정상사고의 범주에 넣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정상사고(normal accident)는 위험성이 높은 기술과 시설들, 이를테면 화학 공장이나 핵발전소 등이 증가하면서 그 자체가 가진 복잡성과 불확실성 때문에 예기치 않게 체계 전체를 뒤흔드는 사고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음을 가리킨다. 바이러스 재난이 정상사고에 꼭 부합하는 사례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전염병 재난이 기후 변화와 전 지구적인 이동이 가속화된 시대에 빈도 높게 반복됨을 고려할 때, 바이러스 재난을 정상 사고의 범주로 넣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사람과 사물의 전 지구적 이동이 가속화되고 환경 개발에 따른 기후 변화 등이 감염과 전염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바이러스 감염이 이런저런 동물(원숭이, 박쥐, 낙타 등)로부터 비롯하는 지역적 기원을 갖는 우발적 사건이라 하더라도 전염의 위험성은 전 지구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다.

영화 <감기>가 플루(flu, 독감) 발생을 선상의 컨테이너로 설정한 것은 꽤나 상징적이다. 플루가 특정하고 단일한 장소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물류 공간을 가로지르며 전 지구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위험임을 잘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감기>는 플루가 감염자들을 한 군데(탄천 주차장의 임시 막사) 몰아넣는 대책 본부의 반인권적인 격리 조치로 악화됨을 강조했다. 전염의 확산이 전염병 그 자체에 있을 수 있지만, 전염병에 대한 사회적 대응에 따라 확산의 양상이 달라짐을 적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감기>는 메르스 재난 2~3년 전에 상영됐지만 우연하게도 메르스 공포의 광풍을 예견한 것 마냥 다시 회자됐다. 메르스 사태를 미리 재현할 수 있었던 건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만은 아니었다. 감독은 사전에 전문가 인터뷰와 사례 분석에 오랜 시간을 들였고 이를 통해 바이러스 재난에서 반복되는 특성을 연출했을 뿐이라고 한다.

여느 바이러스 재난 영화처럼 <감기>도 빠른 전염 속도, 100퍼센트에 달하는 치사율, 피를 토할 정도의 고통 등으로 플루의 위험성을 극화한다. 관계기관의 대응 또한 여느 영화처럼 바리케이드를 쌓는 방식의 격리, 감염자를 일괄 감금해 살처분하는 방식으로 그렸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 메르스에 대한 공포가 전례 없었던 것은 메르스의 내재적인 파괴력, 높은 치사율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전례 없던 공포는 신뢰할 수 없는 대응 체계에서 비롯했다.

공포와 불안은 저 신뢰 사회일수록 배가되는데, 세월호 이후 "바람에 슬레이트지붕 날아가듯" 날아간 국가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국면에 WHO의 감염병 소통 가이드라인(신뢰 확보, 빠른 공지, 투명하게 공개, 대중과 공감, 대응 계획)을 "교과서적으로 어겼다"는 대책 본부의 '아몰랑'식 대응이 반복되면서 전 국민의 공포와 불안은 폭발했다.

재난 불평등과 노동인권

메르스 재난은 시민의 안전을 위협했던 것은 물론 재난 대응에 투입된 노동자들을 죽음의 사지로 몰아넣었다. 재난이 반복될 때마다 노동인권의 침해는 심각하다. 안그래도 빠듯한 인력난이나 위험의 외주화 등 기존의 위험에 메르스 재난이 덧대지면서 병원노동자는 이중의 위험에 노출된다.

그간 간호노동자나 간병노동자를 포함한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인권은 병원자본의 저비용 전략에 일상적인 침해 상태에 놓여 있었다. 메르스 재난 시기 확진자 186명 중 20%가량이 병원종사자였고 그 가운데 간호노동자와 간병노동자의 비율이 유독 높았던 것은 전염병의 내재적 특성에 기인한다기보다는 병원 내 노동자가 다뤄져 왔던 방식들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조류독감이나 구제역 때마다 벌어진 대량의 살처분 방식은 한국 사회에 동물권이 실종된 현실을 날것으로 보여주는데, <감기>는 살처분 대상을 닭이나 돼지가 아닌 '인간'으로 상정하면서 인권 또한 재난에 얼마나 무력한 상태로 내몰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노동인권 침해의 고통은 비정규 노동자에게 더욱 파고든다.

병원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치료보호 대상 명단에서 빠졌다는 어느 비정규 노동자의 분노는 병원자본의 비용절감 논리의 폐해를 함축하고 있다.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비정규 노동자는 병원 내에서 일하면서도 병원 '외부'에 놓인 잉여였다. 메르스 재난은 이러한 병원 내 '외부', 재난 불평등의 지점을 타고 또한 확산됐다.

재난의 고통이 이렇게 내부이면서도 '외부'로 처리되는 사람들에게 직접 관통하는 모습이 자주 반복된다. 후쿠시마 원전 제염작업에 투입된 비정규노동자 및 이주노동자들을 비롯해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으로 강제 살처분 작업에 투입된 일용직 및 용역업체 노동자들, 호리에 구니오의 표현처럼 '원전 집시'라고 명명할만한 원자력발전소 협력업체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감기>에서 소방구조대원으로 나오는 주인공 장혁은 불굴의 '직업정신'을 발휘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재난 시 이러한 직업정신을 우리는 기대할 수 있을까? '비상 상황'이라는 이유로 노동자 안전도 보장되지 않은 채 위험의 한복판에 투입되는 현실, 위험으로 겪게 될 신체적·정신적 문제에 대해서는 보호나 보상이 터무니없는 현실에서 영화 주인공 같은 직업정신의 발휘를 기대하는 건 영화에서나 찾을 일이다.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밥하고 국 끓여도 죽지 않는 학교를 위해 / 2018.11

밥하고 국 끓여도 죽지 않는 학교를 위해

[인터뷰] 김영애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부본부장

재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이번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 듣는다'는 학교에서 행정 업무 및 지원 역할을 하는 사무직, 특수 지도사, 과학실 실무사, 도서관 사서, 시설, 청소, 경비 노동자, 급식노동자 등이 모여 있는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김영애 부본부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10월 24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자신의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된 학교 노동자들 

"안녕하세요. 저는 학교에서 급식 일을 하고 있고, 올해 2월부터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부본장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또, 올해는 노동안전보건 담당 임원 역할도 같이 하고 있어요. 이전에는 안양지회장, 경기지부 부지부장으로 활동하면서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관심을 두고 활동해 왔어요."

김영애 부본부장은 본인뿐만 아니라 교육공무직본부 조합원들 대부분이 업무로 인해 근골격계 질환 부담이 있어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저처럼 급식 노동자들이나 시설, 청소 노동자들은 근골 문제가 없는 경우가 드물어요. 특수지도사 선생님들도 장시간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 업무를 하면서 근골 부담이 높고요. 문제는 노동부, 교육부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인식이 이러하니 개선을 요구하는 건 더 어렵고요."

잊을 수 없는 산재 인정 투쟁의 기억

"제가 2014년에 경기지부 부지부장, 안양지회장 역할을 했는데 근골 산재 노동자이기도 했어요. 그때는 학교 급식 노동자가 활발하게 산재를 신청하고 인정받을 때가 아니라서 산재 신청부터 인정받는 것까지 투쟁의 연속이었어요. 그때 왜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거나 아플 때 노동조합이 같이 대응하지 못하고 혼자서 개별적으로 힘들게 싸워야 하는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김영애 부본부장은 노동조합에 이러한 문제를 제기했고, 그해 본격적으로 노동조합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시작하도록 계기를 만들었다.

학교를 바꾸기 위한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시작

"노동조합에서 당장 활동을 시작할 사람이 별로 없다 보니, 경기 지역에 있는 저를 서울에 있는 본부로 발령을 내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시작했어요. 다음 해인 2015년에는 노동조합에 노동안전보건국을 만들었고 지역별로 노동안전보건 활동 담당자를 조직했어요. 그러다 노동조합 전체 선거가 있었는데 제가 경기 지역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다시 지역에 내려가야만 했죠."

결국 김영애 부본부장은 지역으로 내려갔다. 다만, 골병으로 아픈 조합원들을 생각해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이 유실되지 않도록 담당 활동가를 배치해달라고 요구했고, 올해 초까지 이 활동가와 함께 많은 활동을 만들어갔다.

"처음에 지역별로 노동안전보건 담당자를 세우고, 지역 담당자들이 정기 회의를 해서 현장 상황 공유하고, 조합원들과 함께 공부하고, 산재사건 현황 공유하면서 해결 방안을 찾았어요. 올해 여름엔 폭염이 큰 문제여서 현장에서 안전하게 일하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힘써왔고요. 최근엔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투쟁 관련해서 꾸준히 논의 해왔어요."
 

김영애 부본부장은 꾸준히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면서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제가 이 활동을 할수록 느끼는 건데, 노동조합은 기본 임금단체협상 투쟁을 열심히 하잖아요. 그리고 이걸 제대로 하려면 간부나 조합원들이 기본적으로 현장을 잘 이해하고 이후에는 어떠한 개선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활동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점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 이야말로 간부나 조합원들이 현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하게 고민해야 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산업안전보건법 적용받지 못했던 학교 급식 노동자

교육공무직 노동조합은 일상 활동을 바탕으로 학교 급식 노동자들이 교육 서비스 업종이라는이유로 그동안 산업안전보건법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해왔다.

"제가 학교 급식 일을 시작한 게 2004년 4월이에요. 그리고 그해 12월부터 병원을 정말 많이 다녔어요. 이유는 다 골병이었고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저랑 다를 게 없었는데 2009년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너무 아파서 결국 잠깐 일을 쉬었는데 그때 누가 산재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산재는 일하다 다치거나 사고를 당한 노동자만 가능한 줄 알았어요.

그 정도로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인식도 없었는데, 산재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면서 저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때 산재 인정도 인정인데, 우리가 산업안전보건법상보호를 받지 못해서 산재도 발생하고 현장을 개선하기도 어렵다는 걸 알게 됐어요."


결국 교육공무직 노동조합은 지속해서 산재를 신청하고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면서, 노동부나 교육부가 학교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문제를 인식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노동부가 예외적으로 학교 급식, 청소, 경비 노동자를 교육 서비스업에서 구내식당업 노동자로 분류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상 적용을 받도록 내부 지침을 바꿨다. 아주 큰 결실이었다.
 
"노동부가 2017년에 학교 급식실, 청소, 경비 노동자를 교육 서비스업이 아닌 구내식당업 노동자라고 판단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하라고 교육부로 공문을 내렸어요. 그런데 교육부가 이 문제를 계속 손 놓고 있다가 올해 4월에서야 각 시도 교육청에 산업안전보건법상 중요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를 명령했어요."


교육공무직 노동조합은 현재 교육청 측과 노동조합에서 이 문제를 협의하는 기구를 구성해서 구체적으로 논의하거나, 아직 협의체를 구성하지 못한 지역의 경우 시행되도록 요구하고 있다.

노동안전보건 활동으로 변한 학교 

"산재를 신청하는 조합원들이 많이 늘었어요. 예전에는 일하다 다치면 개인 실비보험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특히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산재신청이 많아졌고 인정받은 사례도 늘어났어요. 결과가 이렇다 보니 조합원들이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높아졌고요. 결과적으로 조합원이나 노동조합 자체가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관심이 높아졌죠. 물론 지금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투쟁만 해도 노동조합이 더 노력할 게 많아요.

지금까지 현장에선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 기구인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그래서 이걸 이해시키는 교육과 노동조합이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교육청과 동등한 힘을 가지고 제도를 만들 수 있게 모의실습도 하고 있어요. 비슷하게 정부기관과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는 현장 사례 교육도 공부하고 있구요."


물론 어려운 점도 있다. 김영애 부본부장은 아직 교육공무직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교육의 필요성은 동감하고 열심히 참여하지만 아직 법과 제도가 익숙하지 않고, 평일 내내 일하다 주말에 시간 내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다보니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다고 했다.

"제일 먼저 시작했던 투쟁은 위험수당을 확보하는 싸움이었어요. 그 이후에는 작업 환경에 대한 싸움이었고요. 급식실은 정기적으로 후드를 청소하는데 그때마다 낙상 사고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안전장비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일하는게 아니라 교육청이 후드 청소 전문업체를 선정해서 진행하도록 요구했어요. 폭염에 대응하는 투쟁도 중요했죠.

급식실은 불, 물을 많이 사용하니까 안 그래도 찜통인데 폭염 때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요. 그래서 에어컨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하고, 오래돼서 성능이 약한 에어컨을 새것으로 바꿔달라 요구했어요. 또, 음식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식기 청소를 할 때 근골 부담이 있는데 100% 수작업으로 했거든요. 그래서 1차로 식기를 애벌 해주는 세척기도 제공하라고 요구했고요."


김영애 부본부장의 이야기를 통해 노동안전보건 담당자를 세우고, 조합원의 필요와 문제의식을 반영한 활동이 중요함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여전히 과제가 많은 현장

"어제 인천 지역에서 가스 누출 사고로 조합원 한 분이 일산화탄소에 중독됐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바로 현장에 가서 상황을 살펴보니 설비에 큰 문제가 있더라고요. 신축 건물인 학교인데 급식실이 양쪽 건물에 꽉 막혀 있고 천장은 낮아서 환기 자체가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교육부 관계자에게 이야기 했어요. 여기서 밥하고 국 끓이면 급식실이 아니라 죽음의 공간이 된다고요. 문제는 여기뿐만 아니라 대부분 학교 급식실이 전혀 일하는 사람을 고려해서 만든 공간이 아니라는 거예요."

김영애 부본부장은 기본적으로 교육부가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교육부가 학생들을 위해서 급식실 위생 점검은 굉장히 철저하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급식 노동자들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후드, 가스 이런거에 대해서는 전혀 검사를 안 해요. 그나마 신경 쓴다고 하는데 위생 점검할 때 곁다리로 점검하는 정도, 아니면 후드를 몇 년에 한 번 청소 전문업체를 불러서 관리하는 정도예요. 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침을 내린 것도 1년간 다시 법적으로 해석을 요청하면서 시간을 끌고 어떻게든 면피하려고 했던게 바로 교육부에요."

이같은 사례만 보더라도 교육부가 산업안전보건법 1조 목표인 사업주가 노동자의 건강을 유지 증진하기 위해 해야 할 역할과 의무를 과연 다할지 걱정과 의구심이 들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조 목적은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해두었다. 교육부와 노동부는 학교 노동자들이 이 법에서 명확히 하고 있는 것처럼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안전한 학교를 만들기 위한 다짐

"지금까지 활동 중 잘했다고 생각하는 거는, 법적으로 아무런 보호도 못 받았던 우리가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게 아닐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투쟁했던 결과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이제는 조합원들이 일하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산재를 신청하고 인정받기 위해 요구하고 투쟁에 나서는 게 참 뿌듯해요.

예전에는 일하다 아프거나 사고가 나도 뭐 하나 바꿔 달라고 말 한마디 못하고 꾹 참고 일했으니까요. 또, 산재 인정만이 아니라 현장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도 꾸준히 활동해왔으니까, 이런 거는 잘 해왔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문제를 시작하는 만큼 현장에 잘 안착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김영애 부본부장 개인의 평가와 소회는 어떠한지 궁금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면 이전까지 노동조합에 대해서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그동안 일하면서 억울했던 부분,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말할 수 있게 된 거 그게 제일 좋아요. 처음 기자회견이라는 걸 하면서 이야기 했을 때가 생각나는데요.

제가 그때 이런 말을 했어요. '왜 학교는 급식 노동자를 후미진 곳에 처박아 놓고 사람대접도 안 해 주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라고 차별하는 거냐'고요. 그런데 이제는 아직 과제가 많이 남아있지만 적어도 우리 조합원들이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현장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게 굉장히 뿌듯해요."


그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잘 하지 못했던 날들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활발한 활동이 있었지만, 여전히 조합원들이 아파도 말하지 못하고 참고 일하는 게 사실이에요. 아직 노동조합의 활동이 부족하고 조합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할 게 많지요.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 우리 조합원들은 신체 포기각서를 쓰고 일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꼭 이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현장 상황이 참 슬프기도 하지만 그 슬픔이 앞으로 투쟁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하고, 조합원들에게도 꼭 그렇게 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또, 임금투쟁 하는 것만큼 노동자 건강권 투쟁도 해나가자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사실 우리도 그렇고 많은 노동조합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우선순위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사후약방문처럼 누가 다쳐야 대응하고, 사고가 있어야 조합원들이 위험성을 깨닫는 게 현실이고요. 앞으로는 정말로 예방 활동에 힘쓰고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려면 여전히 의식화 교육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모두 조합원들의 아픔에 대해서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노동조합에서 임금 인상, 고용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투쟁하는 것만큼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권에 대해서 깊게 자각하고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마트노동자는 더 건강하고 안전해지고 싶습니다 / 2018.11

마트 노동자는 더 건강하고 안전해지고 싶습니다 

[인터뷰] 정민정 마트산업노동조합 사무처장·노동안전보건위원 위원장                                                                                                                                                    재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집회 현장에 가면 눈길을 끄는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진달래색 조끼를 입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개나리색 조끼를 입은 마트 노동자들이다. 두 노조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 활발한 활동으로 꾸준히 조합원들을 조직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일터>는 연말을 맞아 올 한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 마트산업노동조합(이하 마트노조)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인터뷰는 지난 10월 19일 마트노조 사무실에서 정민정 사무처장 겸 노동안전보건위원회 위원장과 진행하였다.

2017년에 출범한 마트노조

"저희 마트노조는 이른바 빅3라고 불리는 대형마트인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산별 노조에요. 조합원 역시 빅3 회사 조합원들이 제일 많아요. 물론 그 밖에 협력업체 조합원들도 있고요.

저희 마트노조는 2017년에 만들었는데 그전에는 각각 노조가 있었어요. 2012년에는 이마트, 2013년에는 홈플러스, 2015년에는 롯데마트 이렇게요. 그런데 개별 노조로 활동하고 투쟁하다 보니 어려운 것이 너무 많더라구요. 노조가 더 큰 힘을 가지기 위해서 2016년부터 산별노조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위원회를 만들고 활동하다가 2017년 10월 22일에 총회를 하면서 마트노조를 설립했어요."


마트노동자들이 산별노조로 모인 이유 

"아무래도 복수노조 제도가 결정적이었던 것같아요. 이 제도로 인해서 현장에선 다수 노조만 교섭권이 있으니까 역사와 활동이 짧은 민주노조가 개별적으로, 긴 어용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노총, 기업노조와 싸워서 이기기 힘들겠다는 판단이 있었어요. 두 번째는 최저임금 문제인데요. 마트노조에서 아무래도 홈플러스 노조가 가장 큰 힘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아무리 임금을 교섭하고 파업투쟁을 해도 실제로 임금의 경우, 수당은 올라도 기본급은 최저임금 수준을 넘지 못하더라고요.

왜냐 노동조합은 수당을 올리려고 싸우는 게 아닌데, 홈플러스 자본 입장에서는 전체 대형할인마트 업계의 관례라는 게 있어서 여기만 임금을 대폭 인상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민 끝에 우리는 산별노조 체제로 가면서 전체 마트 업계 환경을 바꿔야지 개별로 싸우는 건 한계가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정민정 사무처장은 노동조합 활동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과 함께 조합원들의 업무 환경이나 특성에서도 산별노조 체제로 가는 것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사실 마트노조 조합원들이 회사만 다를 뿐이지 하는 일들은 똑같거나 비슷하거든요. 이렇다보니 조합원들이 회사를 떠나서 같은 업무를 하는 조합원들에 대한 동질감을 많이 느껴요. 게다가 마트가 지역마다 가까운 위치에 입점해 있잖아요. 그러니까 지역에서 활동하거나 투쟁을 하기에도 좋은 조건이더라고요. 사실 중앙에서 지역 투쟁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우리 현장과 가까이 있는 노조에서 일상적으로 연대하고 투쟁하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어요."

노조 출범 직후 연속했던 사망사고

"이마트 무빙워크를 사망하던 하청 노동자분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사건 당일에 바로 접했어요. 장례식장에서 유족인 아버지를 만나 뵙고, 혹시라도 만약에 노조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연락을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리고 사고 4일만인가 이마트에서 이번에는 저희 조합원인 캐셔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했어요."

언론에서 사고 소식을 접한 아버님은 자식의 사망사고로 경황이 없을 텐데 이마트 조합원이 사망한 현장으로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한다.

"저희가 노동자의 죽음을 방치하고 거기에 책임이 있는 이마트와 신세계 그룹을 상대로 고인의 49제까지 투쟁했거든요. 그때 유족의 동생분도 집회에 와서 본인도 특성화고 학생이라서 이제 곧 현장에 나가야 하는데 앞으로는 세상이 이렇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데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마트 무빙워크 사고 이후 노동자들과 유족은 싸움도 슬픔도 한마음이었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는 기업은 없었다고 했다. 이마트는 하청을 준 업체가 재하청을 준지 몰랐다.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이 사고에 있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까 말씀드린 데로 이마트 무빙워크 사고가 있고 4일 뒤에 저희 조합원이 계산대에서 일하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장례식장에 바로 달려가서 대책을 논의하고 그랬는데, 이때 마트의 태도는 역시 비슷했어요. 저희가 이마트에 고인이 의식을 잃어서 쓰러지고 구급차에 호송될 때까지 CCTV 영상을 달라고 요구했는데 처음에는 바로 주겠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개인정보라서 못 보여준다고 말을 바꾸고 그러면서 실랑이가 있었어요."

이후 노조는 CCVT를 확인했는데, 왜 이마트가 이 영상을 주는 것에 대해서 말을 바꿨는지 알 것만 같은 상황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CCTV를 확인해보니 갑자기 조합원이 바닥에 쓰러졌는데 그 누구 하나 돕지 못하고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더라고요. 결국 시간이 한참 지나서 이마트 보안업체 여성 노동자가 조합원 옷 단추를 풀고 몸을 주물렀어요. 그리고 보다 못한 고객이 뛰어들어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119가 와서 제세동기를 켜고 응급조치를 했는데 이미 늦어버린 상황이었어요."

정민정 사무처장은 지난 이 상황을 돌아보며 이 점을 꼭 강조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저희는 누가 잘못했냐 아니냐를 따지는 걸 떠나서 이 조합원의 사망은 구조적인 문제였다는걸 꼭 지적하고 싶어요. 매뉴얼 상으로는 마트 현장에서 발생하는 위급 상황이나 안전 문제를 대처하는 역할은 안전관리자들과 보안업체 직원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문제는 보안업체 직원들의 경우 용역 업체 노동자들이기 때문에 이분들이 안전 교육을 받는지, 본인들에게 이러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아는지, 원청이 마트에서는 어떻게 관리하는지, 벌어진 상황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지가 모호하다는 거예요.

원청인 마트는 책임을 용역업체에만 전가하고요. 그래서 저희는 누가 잘못했냐 개인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대체 이런 상황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개선할 것인지를 묻는 거예요. 노조에서 관리자들한테 이렇게까지 말했거든요. 아마 지금 이마트 상황이면 대표이사든 사장이 와서 쓰러져도 누구 하나 도와주는 직원이 없을 거라고요."


정민정 사무처장은 사고 직후 이마트의 태도는 예상했다고 한다. 노조가 더는 이 문제를 시끄럽게 하지 못하도록 유족에게 돈으로 보상하고자 한 것이다.

"유족분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렸어요. 만일 이마트에서 유족이 동의할 수 있는 보상안을 제안하면 우리 노조를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 저희는 조합원이 사망했고, 남은 조합원들을 위해서 해야 할 역할이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니, 유족분들은 고인을 위해서 마음 편하게 생각하라고, 노조가 있기 때문에 이마트가 긴급하고 적극적으로 보상하자고 제안할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이후에 유족은 보상을 받았고 산재신청도 하지 않기로 했어요. 어떻게든 이마트는 노동자가 일하다 자신들의 관리 소홀로 죽었다는 사실을 지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마트는 유족과의 보상 이후 노조가 앞으로 조합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서 어떠한 조치를 할 것인지 요구하는 사항에 대해, 이미 유족과 합의를 마쳤는데 노조가 트집 잡기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였다.

사고 이후 노동자들의 안전 감수성 

"일단 현장에 제세동기가 많이 늘었어요. 그리고 이전에는 완전히 형식적이었던 안전보건교육에서 심폐소생술을 직접 배운다든가 하는 내용으로나 질적으로나 조금 나아졌어요. 무엇보다 마트노조가 출범하고 나서 조합원이 처음 사망했고, 이마트에 책임을 묻기 위해서 전체 마트노조 조합원이 하나가 되어서 분노했고 투쟁했다는 점 그러면서 안전보건에 대한 조합원들의 의식이 높아진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본격적인 안전보건 활동 시작으로 활발해진 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 사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마트노조 차원에서 지역마다 안전보건담당자를 조직했고 정기적으로 회의와 교육 등을 진행하면서 노동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했어요. 노동안전보건위원회 위원장 역할은 제가 하게 되었고요. 지금 주요한 활동으로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분들과 안전보건 강사단 교육을 하고 있어요. 지난 7월부터 각 지역별로 진행하고 있는데요. 1차 교육은 마트현장에서 필요한 산안법 전반에 대해 교육을 하고 근골격계 질환, 감정노동 이런 주제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어요.

2차 교육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각각 현장의 안전보건문제를 기록하고, 발표하게 하고 있어요. 이 교육이 호응이 좋은데 이게 조합원들이 대부분 특정 부서에 몰려서 가입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러면 솔직히 다른 부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잘 모르는데 체크리스틀 작성하면서 현장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비/조합원 간 소통하는 계기도 되었다고들 말씀하셔요."


감정노동자보호법 이후 후속 사업 모색

"일단 각 마트회사들은 감정노동자보호법이 만들어졌으니 현장에서 고객들에게 이제 노동자에게 폭언하거나 괴롭히는 등 폭력을 가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라고 요구했는데 아직 가시적으로 바뀌었다 하는 건 별로 없어요. 마트에서 상품 광고 하는 자리 곳곳에 이걸 알리면 되는데 여전히 너무 부족한 것 같아요."

또, 정민정 사무처장은 감정노동 문제와 관련해서 현장 조합원들이 활용할 수 있는 매뉴얼이 회사에서 제작한 것 밖에 없어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차원에서 판매유통노동자 전체를 위한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저희가 이제 만들어진 노조라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이제 공부하면서 하나하나 해나가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앞서서 활동하는 동지들이 관심 가져주시고 함께 해주시는 게 정말 많이 힘이 되니까 앞으로도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어둠이 내린 학교는 누가 지킬까 / 2018.11

어둠이 내린 학교는 누가 지킬까

[인터뷰] 학교 야간당직 경비 노동자 이한수 님 인터뷰                                                                                                                                                          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학생과 여러 노동자로 북적이는 낮의 학교. 하지만 어둠이 내린 학교를 홀로 지키는 이들이 있다. 바로 학교 야간당직 경비 노동자들이다. 밤의 학교를 지키는 학교 야간 당직 노동자들은 어떤 일을 할까? 많은 사람이 잘 알지 못한다. 가리워진 이들을 만나기 위해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이한수(가명) 님을 지난 10월 25일 만났다.
 
과로 권장하는 근로기준법
 
학교 야간 당직 경비 노동자들은 감시·단속적 노동자다. 근로기준법 제62조에 따라 노동시간, 휴게 및 휴일 등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무방비 상태다. 이한수 님은 오후 3시 30분에 집을 나서 일터인 학교로 향한다. 오후 4시 정도에 학교에 도착하면 바로 행정실로 향한다. 당직 근무 일지를 받기 위해서다. 오후 5시가 되면 학교 문을 잠그기 시작한다. 하지만 완전히 문을 다 잠그는 때는 밤 9시 30분 정도다. 학교 체육관을 지역 주민에게 개방하기 때문에 배드민턴을 치고 가는 사람들이 다 나가는 시간에 맞출 수밖에 없다. 최종 문을 닫는 시간은 밤 10시다. 문을 닫고 들어와 한 번 더 점검한다. 일을 마치고 밤 10시 40분 쯤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잠을 깊게 자기 어렵다. 간혹 비상벨이 울리기도 하고, 문이 1cm만 열려 있어도 작동되지 않는 세콤 때문에 몇 번씩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렇게 긴장한 상태로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새벽 5시 30분이다. 씻는 일은 뒷순위다. 우선 학교 문을 열어야 한다. 그렇게 문을 다 열고 나면 겨우 씻을 수 있다. 문단속만 하지만은 않는다. 보이는 데를 쓸고 청소한다. 교감, 교사분들이 학교가 깨끗해졌다며 인사도 건넨다. 오전 8시가 되면 집으로 향한다. 여름, 겨울방학 때도 학교는 개방하기 때문에 독같이 근무한다. 이렇게 평일엔 꼬박 16시간을 교대 근무 없이 혼자 일한다. 주말은 이틀 내내 48시간 혼자 학교에 있다. 용역 소속 당시 2일 중 하루는 유급 휴무였지만 올해 9월 1일부터 교육감에게 직고용되고 나서 모든 휴일이 무급제로 전환됐다. 겨우 2일 가족, 친구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도 이젠 없다.
 
"무급으로 쉴 수는 있죠. 그런데 열악한 처우에서 이틀을 무급으로 쉬면 임금을 더 못 받아요. 그러니깐 다들 쉬지 못해요. 이번 달 기준으로 평일 하루 소정근로시간이 6시간이고 22일 일한거로 하면 총 132시간이에요. 주말은 하루 소정근로시간이 9시간으로 되어있고 8일 계산하면 총 72시간이죠. 한 달 총 204시간 일 한 것으로 돼서 사대보험 제하면 월 140여만 원 을 받아요. 대체 근무자를 세워서 쉬려고 해도 이 분들 일당이 6만 원, 이틀로하면 총 12만 원이죠. 이 돈이 지금 임금에서 빠지게 되면 임금이 확 줄어요. 용역소속일 때보다 더 나빠진 거죠."
 
누구를 위한 정규직화죠?
 
정부는 지난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용역 소속의 간접고용 노동자를 직고용하라고 했다. 인천교육청 역시 이 가이드라인을 따랐다. 하지만 무늬만 직고용일 뿐 이한수 님이 체감하는 긍정적 변화는 적었다. 오히려 악화된 부분에 아쉬움이 크다.
 
"올해 추석 연휴가 길었잖아요. 용역 소속일 땐 명절 때 학교에 너무 오래 있으니깐 하루 쉴 수 있게 대체 근무자를 보내줬어요. 그런데 올해 직고용으로 바뀌고 나선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학교에 있었어요. 직고용되고 나서 부풀었던 마음을 꺼트린 거죠. 전과 같든지 아니면 더 나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일하는 시간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평일 16시간, 주말 24시간을 학교에 있고 일을 하는데 인정해주는 시간은 평일 6시간, 주말 9시간이에요. 나머지 10시간, 15시간 인정 못 받고 있어요. 전부 인정해달라고도 안 해요. 최소한 절반이라도 인정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학교 야간 당직 노동자가 하는 일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하지만 이한수 님이 없는 학교는 상상을 못 한다. 소소하게는 학생들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것부터 다쳐서 밴드를 찾는 학생들에게 밴드를 붙여주는 것까지 여러 가지다. 밴드도 일부러 보건실에 가서 부탁해 받아오기까지했다.
 
학교 야간당직 노동자로 지키고 싶은 자부심 
 
노동시간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학교 야간당직 경비 노동자로서 자부심은 단단하다.
 
"제가 경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3년 정도 됐어요. 맨 처음 교육받고 나간 곳이 아파트예요. 학교보다 아파트 경비 일이 돈을 더 벌어요.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더라고요. 잠을 3시간밖에 못 자요. 돈을 더 주긴 하지만 아주 사람을 잡아요.

학교는 우리 집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큰 건물에 나 혼자밖에 없어요. 그런 책임감이 있죠. 어떤 사람은 무섭지 않냐고도 물어요. 나는 무섭지 않다, 자신 있다고 대답하긴 하는데 실제 근무를 해보니깐 무섭긴 해요. 밤에 아무것도 없고, 큰 건물에 혼자 있으니 말이죠. 헤드라이트 들고 학교 한 바퀴 돌 때 내가 이 큰 건물을 다 지킨다는 생각, 뿌듯함이 있어요. 또 그런 마음이 없으면 학교에서 근무 못 하겠더라고요."
 
자부심을 꺾는 노동환경
 
하지만 요즘 들어 자꾸 자부심을 꺾는 일이 있어 속상하다.
 
"노동시간을 제대로 인정 못 받는 게 정말 속상합니다. 그리고 본래 맡은 업무 외의 것을 자꾸 요구할 때도 그렇고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험을 할 때가 있어요."
 
자는 공간도 문제다. 당직실이 있기는 하지만 시설이 좋지 않다. 여름엔 모기가 너무 많아서 괴롭다. 겨우 몸을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정도다. 에어컨이 있지만, 작동이 잘 안되서 얘기를 하니 그때서야 리모컨을 줬다. 처음 들어갔을 때 충격이었다. 이불이 너무 지저분하고, 새까매서 도저히 잘 수가 없다 싶어 얘기하니 세탁을 해줬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이불이라 더는 쓸 수 없어서 바꿔 달라고 하니 그때 새 이불을 학교에서 사줬다. 지금은 바꾼이불을 덮고 지내고 있다. 모든 게 얘기를 해야 그제야 겨우 들어주는 식이다. 정기적으로 관리를 해주거나 미리 물어봐 주는 경우가 드물다. 이한수 님은 밥 먹는 것도 문제라고 입을 열었다.
 
"우리는 나가서 사 먹을 수가 없어요. 학교에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보통 도시락을 싸 오거나, 급식소에서 조그만 통에다 먹을 걸 담아서 줘요. 아니면 김치만 갖다 놓고 간단히 해 먹는 정도죠. 탕비실도 없어요. 화장실에서 겨우 쌀 씻어서 제가 집에서 밥솥 하나 가져왔는데 거기다 해먹고 그래요.
 
교육감 직고용이 되면서 식대로 13만 원이 나와요. 용역 소속일 땐 식대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나와서 좋지가 않아요. 식대가 나온다는 이유로 1끼당 3,100원~3,500원을 식대에서 빼요. 학교 행정실에서 급식실에서 밥을 받아먹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하니깐 식대를 빼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전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거든요."
 
종교 활동도 못하는 학교 야간당직 노동자의 고충 
 
이한수 님은 기독교 신자다. 하지만 학교 야간당직 경비 일을 하게 되면서 주말에 교회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1인 교대근무제, 무급 휴일로 인해 종교 생활도 하지 못하고, 가족, 친구 등 사회적 관계가 전부 끊겨 버려 속상하다고 했다.
 
"원래 교회를 다녔어요. 그런데 학교 일 시작하고선 주일을 못 지키고 있죠. 너무 마음이 쓰여요. 종교 생활도 못 하게 돼서 안타깝죠. 그리고 원래 친목회가 몇 군데 있었어요. 그런데 이젠 다 끝났죠. 못해요. 겨우 같은 일 하는 사람들끼리 친목회 만들자고 하고 있는데, 어려움이 크죠. 아내하고도 쉬는 날엔 근교로 놀러 가기도 하고 그랬는데 무급 휴일이 되고 나선 그것도 못 하고 있어요. 많이 아쉬워하죠."
 
일하다 다치면 건강이 아니라 해고 걱정
 
"회사는 상급 단체가 없는 자체 노동조합이 대표노조에요. 시설 쪽이랑 주차 업무노동자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이고요. 노동조합은 5~6년 전에 일하면서 부당한 것도 많고 처우는 나빠지다 보니까 한마음이 돼서 만들었어요.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조합원이었어요."
 
이길섭 님은 얼마 전까지 용역 업체 소속이다 보니 2~3년에 한 번씩 업체가 바뀌면서 고용 승계 불안, 원청과 용역 업체 간 책임 소재 떠넘기기 등으로 인해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전에는 회사가 대표노조도 아니고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개별 교섭도 해왔고 우리가 목소리라도 낼 수 있었는데 최근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나서는 개별교섭을 해야 할 법적 책임이 없다 보니 전혀 응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지속해서 이 문제를 요구하고 있어요."
 
또, 노동조합은 같은 시설관리 업무 노동자 중 일부가 감시단속적 업무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63조에 의해 노동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근로기준법 적용이 제외 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여기서 일하기 전까지는 노동조합에 대해 이야기만 들어봤고, 회사에서 일하다 억울한 일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일일이 이야기하나 했었는데 결국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기업도 경총으로 목소리 내고 중소상인들도
협회가 있잖아요. 그렇다면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이 있어야죠."
 
명절때라도 쉬면 안될까요? 
 
노인빈곤율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60~70세의 고령 노동자들에게 실업은 곧 삶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OECD 한국경제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8.6%로 OECD 평균(12.4%)의 4배에 달한다. 한국을 포함 호주 35.5%, 일본 19.4%, 그리스 15.8%,
미국 14.6% 등 5개 국가만이 OECD 평균을 웃도는데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압도적으로 높다. 하지만 가계의 노후 준비는 미흡하다.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39.3%에 머물고, 사적연금 가입률은 24%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저임금에 힘든 일이어도 꾹 참고 버틴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이한수 님 역시 꼭 노동환경이 바뀌어야 한다고 마지막으로 강조했다.
 
"모두 똑같이 고생하는데 뭐라고 제가 얘기하겠어요. 그나마 용역 소속일 때보다 고용이 안정화된 건 다행이에요. 하지만 다른 것들은 아직 갈 길이 멀었죠. 정부와 교육청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학교 야간당직 경비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이 필요합니다. 마음 놓고 건강하게 이틀만이라도 유급으로 제대로 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최소한 명절 때라도 하루, 이틀 정도라도 쉴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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