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리포트] 영화스태프 안전보건 실태조사 연구보고서(2019.09 전국영화산업노조) / 2019.12

영화스태프 안전보건 실태조사 연구보고서

(2019.09 전국영화산업노조)

 

선전위원회 편집

 

1. 연구 목적

 

“영화종사자의 경우, 단기(주로 3개월이며, 대부분 6개월 미만)로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노조와 단체협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는 한, 1년에 1회 건강검진 실시와 같은 산업안전보건법상 근로자에 대한 안전과 건강과 관련한 조치가 충분하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교육도 크랭크인 전 1회에 그치고, 그마저도 동영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 자체를 스탭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 현장 스태프 인터뷰 중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은 건설현장과 같이 한 장소에서 계속 작업하는 경우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영화 촬영은 장소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법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안전장비나 조치들을 매번 마련하기가 힘들다. 또한 단기(주로 3개월)로 이루어지는 영화제작 현장의 특성상, 분기·반기·연도별로 해야 하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조치들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제작사 인터뷰 중

 

본 연구에서는 영화산업의 고용 형태의 특성 및 제작 현장의 현실을 고려한 현실적인 안전보건 지침(가이드라인 등)을 만들고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의 현실적인 공백 지점이 실제 현장에서 법 사각지대로 전환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산안법 법률 개정을 제안하고자 한다. 2020116일부터 적용되는 산안법의 경우 많은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법 적용 보호의 대상을 근로자의 범위에서 현실적인 노무 제공자로 까지 영토를 확장한 것과 도급관계에서 도급업자의 책임을 강화한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제작 현장과 같이 단속적인 고용이 반복되는 경우(단기간의 계약이 반복되는)까지 산안법 적용이 연착륙되기엔 시기상조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영화 스태프를 비롯하여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건강 및 안전 보호를 위한 더 강력하고 집단적인 목소리와 지혜로운 집단의 지성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실태보고서는 아래와 같이 설문조사 등을 진행하여 영화 스태프 안전보건 실태를 분석하였고, 산안법의 영화 제작 현장의 적용 가능성을 고려하여 안전한 촬영을 위한 가이드라인의 실마리를 마련하였고, 법제도 개선의 과제와 정부의 지원방안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2. 설문조사 결과

 

이번 설문조사는 영화종사자 총 200명이 참여하였고, 참여자 중 66%는 남성, 34%는 여성이었다. 참여자의 평균연령은 32.9세였으나, 평균 영화경력은 약 8년으로 연령에 비하여 비교적 높은 수치를 보였다. 참여자들의 담당 업무(소속 분야)는 연출 및 제작 분야가 31.5.%로 가장 높았으나, 촬영팀(15%), 조명팀(8%), 미술 및 세트팀(8%), 분장 및 미용팀(4%) 등 매우 다양한 분야 종사자들이 설문조사에 참여하였다.

 

최근 참여한 영화 촬영 중 사고 경험 질문에 대해선 참여자의 약 4분의 124%가 경험하였다고 답변하였으며, 사고 유형으로 넘어짐·미끄러짐이 62.5%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근골격계질환, 찔림과 베임, 교통사고 경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당시 발생 사고에 대해서는 제작사 비용으로 처리했다는 답변이 68.8%로 가장 높았고, 본인 비용과 상해보험으로 처리했다는 견해가 각각 39.6%, 29.2%를 차지했다. 산재 처리하였다는 비율은 16.7%에 불과하였는데, 설문 결과 이는 산재처리 절차가 복잡하고 제작사가 산재 처리에 비협조적이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제작사의 조치는 비교적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최근 참여한 영화작업 중 제작사로부터 안전교육을 받았다고 응답한 비율은 58%에 그쳤으며, 안전교육은 대부분 크랭크인 전 1회 실시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제작사 내 별도 안전보건관리자가 있는 경우는 17%에 불과하였으며, 대체로 영화종사자에게 보호구가 지급되기는 하였지만(75%) 지급된 보호구는 마스크, 장갑, 방음 귀마개 정도에 그쳤다.

 

최근 참여한 영화작품에서 설문 참여자의 일평균 근로시간은 약 12시간, 주 평균 근로일수는 5.2일로, 1주 평균 약 61시간을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1주 평균 야간근로시간은 약 11시간에 달하였으나, 회차 사이 평균 휴식 시간은 9.17시간에 불과하였다. 영화종사자의 수면시간 보장을 위한 제작사의 조치가 있었는지는 응답자의 54%가 없다고 답변하였고, 있다고 답변한 42.5% 중 제작사의 구체적 조치의 내용으로는 사우나 혹은 근처 숙소 렌탈, 휴차 또는 촬영 시간의 단축 등이 있었다.

 

영화종사자 대다수는 무거운 장비를 사용하고, 서서 근무하는 등의 근무 형태를 띠고 있어 근골격계 질환이 발병하기 쉬운 근무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이는 본 설문조사의 결과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설문 참여자의 절반 이상은 근무시간의 50%가량을 근골격계 유해요인에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영화종사자 대다수는 영화 일을 하면서 우울, 두려움, 수면 부족 등의 작업 스트레스 증상을 경험하고 있었는데, 가장 자주 겪었던 증상으로는 수면 부족(41.22%), 피곤(39.7%), 불안/걱정(34.4%), 흡연(29%)인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종사자의 경우 업무 수행이 비교적 빠르게 이루어져야 하고, 정해진 기한 내에 업무를 끝내야 하며, 업무 수행을 위하여 고도의 전문성과 지식이 요구되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므로 이러한 점들이 영화종사자들에게 위와 같은 증상을 발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영화 작업 중 노출될 수 있는 다양한 위험 요인 중 영화종사자들은 수면 부족(53.5%)을 가장 위험한 요인으로 보고 있으며, 2순위로는 폭염, 추위 등(43%), 3순위로는 무거운 물건 운반(41.5%)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위험 요인으로부터 영화종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지급되어야 할 보호구에 대해서는 마스크(66%)와 장갑(57%)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으며, 그 이외에도 방한복, 안전화, 허리보호대가 필요하다는 견해의 비율도 높게 나타났다.

폭염과 추위 등 영화작업에서의 위험을 초래하는 요인이 되며, 영화종사자들 역시 폭염과 추위가 영화작업 중 노출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요인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한 촬영일정의 조정이나 별도의 휴게시설은 제공은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안법은 사업주에게 현장직의 경우 1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받게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영화종사자 대다수는 건강검진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영화종사자 중 최근 2년간 건강검진을 받은 비율은 31%에 불과하였고, 이 중 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직장인 건강검진을 받은 비율은 38.4%로 나타났다.

 

영화종사자의 건강보호와 영화 현장의 안전 개선을 위해 해결되어야 할 다양한 과제 중, 영화종사자들은 수면시간과 휴게시간의 보장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는 정기휴일의 보장과 근로시간 단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는 현재까지도 영화 제작 현장의 근무시간이 장시간이라는 점과 제대로 된 휴식과 휴일이 부여되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3. 영화제작 현장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 및 개정 검토

: 안전한 촬영현장을 만들기 위한 가이드라인 제정을 위하여

 

20151119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에서는 안전사고 예방 및 지원에 관한 사항을 정하고 있을 뿐 노동자의 안전보건 보호를 위한 사업주의 각종 조치에 대해서는 내용이 없으므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노동관계법률 중 산안법이 적용되며, 영비법은 영화제작 과정의 위험성과 단속적인 고용형태의 특성을 고려하여 정부지원의 근거를 마련한 규범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산안법률 조항들은 상당히 기술적이고, 전문적이며 제조업 및 건설업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내용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영화촬영 현장에 적용하는 것이 생소할 수 있다.

 

영화 제작업은 프로덕션 단계의 경우 세트장에서 상당부분 작업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특정한 공간에서만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야외/실내 구분 없이 광범위한 현장에서 촬영이 이루어지는 특징이 있다. 또한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에 모든 스태프들이 노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각 팀별로 다음 작업을 준비하기 위한 별개의 작업단위가 구성되어 다른 현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노동관계법령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사업’, ‘사업장의 개념과 기준이 현장의 상황과 맞아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 산안법이 이러한 산업적 특수성을 모두 고려하지 못하는 한계지점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는 비단 영화 제작업만의 문제는 아니며, 기술 발전과 다양한 노동력 제공 양태에 대하여 산안법이란 법규범이 전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제작 과정에서 산안법의 적용 가능성과 법 준수의무를 배제할 수 없으며, 산안법의 취지와 현장의 특성을 적절히 접목할 수 있다면 영화제작현장에 적절한 안전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이를 활용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영화제작 안전을 위협하는 위해요소가 무엇인지 분석하고, 영화제작 현장 만의 특별한 관리지침((가칭)안전한 촬영현장 만들기 가이드라인) 및 관리감독체계에 관한 역할분담이 있어야 할 것이다. , 영화제작 현장은 일반적인 제조업, 건설업과 달리 산안법을 현장에 맞게 좀 더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영화제작현장의 위험요인들은 완전히 제거하거나 이를 대체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 위험한 씬을 촬영하는 것을 중단하거나 작업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경하지 않는 한 결국 영화스태프 등 현장인력들은 자신 스스로 위험에 대처하거나 개인별 보호 장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한 영화 종사자들은 항상 위험을 미리 숙지하고 긴장감 있게 작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이 안전의식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작업현장의 위험의 예측 및 대처를 각 개인이 부담하는 것은 산안법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산안법의 개정이 요청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영화작업의 특성을 반영한 안전보건 가이드라인 제정도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산안법의 개정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논의할 수 있다. 영화제작업이나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업 등 프로젝트형 사업의 경우 상시 근로자 수 산정의 기준 불분명하므로, ‘사업장 기준이 아닌 사업 기준으로 상시 근로자 수를 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안이다. 만약 사업 기준으로 할 경우, 상시 근로자 수 50인 미만인 경우에는 (더구나 근로자 수는 고정 상수가 아니기 때문에) 상시근로자 수 기준 이외에 건설업(120억 이상)과 같이 공사금액에 준하는 제작규모(예컨대 순제작비 30억 이상)로 법 적용기준을 보완하여 영화제작사가 영화제작 프로젝트의 수행을 위하여 고용된 모든 인력의 안전보건을 책임지는 방향으로 산안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법규정 및 규범 제개정과 함께 정부의 안전보건교육 사업 지원, 안전보건관리비 지원, 안전보호장구 구매대행 및 대여 등 유지관리, 노동자 참여 보장, 산업안전보건위원회와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 활용 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산안법의 주요제도에 비춰본 재해예방 매뉴얼 항목> (가안)

- 작업중지권의 실효적 보장, 안전보건교육의 내실화(크랭크인 전후 교육, 채용 연계 교육, 영진위 교육 이후 소정의 인증절차), 안전보건 관리시스템 구축(산업보건의 선임, 근로자건강센터 연계 등)

 

- 산재발생 보고와 자료 보존 의무, 법령요지 게시 의무 이행, 안전보건 표지 부착

 

-프리단계에서 위험성 평가 진행, 물질안전보건자료 작성 및 비치, 특수건강진단 시행

 

-도급 시 안전보건협의체 구성 및 운영,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규정 및 시행

 

-작업 중 안전보건조치 사항(전도 방지, 분진 방지, 보호구 지급, 추락위험 방지, 교통사고 예방, 휴게 및 숙소시설 보장, 과로운전 금지, 화기관리 및 화상예방, 감전·낙뢰 등 위험 방지, 소음에 의한 건강장해 예방, 혹서기·혹한기 대비, 밀폐공간 작업에 따른 위험 예방, 근골격계부담작업 예방, 장시간근로 및 야간촬영 건강장해 예방, 고용불안 및 감정노동에 따른 정신건강 보호, 직장괴롭힘 예방조치 및 고충처리 등)

 

* 본 연구보고서는 고용노동부 노동단체지원사업에 의한 영화스태프 안전보건 실태조사 및 정책보고서의 최종보고서로서, 해당 내용은 부산국제영화제 토론회 <한국영화 노동안전 진단과 과제>에서 발표되었다. 보고서 작성자 및 내용 전문, 그리고 조사 진행 과정에 대해서는 해당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 현장 스태프와 제작사 인터뷰 전문은 해당 보고서의 부록에 수록되어 있다. 위 내용은 인터뷰 중 주요 내용을 연구진이 발췌 및 요약한 것이다.

 

[산재보험 톺아보기] 우리나라 산재보험은 충분한 보상을 하고 있나? - 한국 산재보험 급여체계에 대한 고찰 / 2019.12

우리나라 산재보험은 충분한 보상을 하고 있나?

- 한국 산재보험 급여체계에 대한 고찰

 

 

김형렬 노동시간센터, 산재보험연구팀

 

 

일하다 다치고 병들면 산재신청을 하게 된다. 안 아픈 게 가장 좋겠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직업위험이론에 따라 최소한의 산재발생은 일어날 수 있다. 산재 승인이 되면 받게 되는 보상을 급여라고 부르는데, 의료기관에서 치료비용을 현물로 지급하는 요양급여, 요양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득손실을 보장해주는 휴업급여가 가장 핵심이다. 그 외 휴업급여와 유사한 성격이지만 장기 요양을 하는 폐질등급 환자에게 주어지는 상병보상연금, 그리고 장해급여, 간병급여, 유족 급여, 장의비 등이 있다. 산재보험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급여가 있는데, 바로 직업재활급여다. 산재보험은 단지 질병을 낫게 하는데 한정하지 않고, 건강하게 작업장에 복귀하는 것까지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일반적인 건강보험에 비해 훨씬 적극적인 요양과 재활의 기회가 제공해야 한다.

 

출처: 광주노무사 일과품 산재사업부

여전히 높은 본인 부담 비율

 

건강보험에서는 외래/입원, 병원의 등급(의원, 병원, 종합병원), 연령, 중증질환 여부에 따라 다양하게 본인 부담 정도를 결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의원급에서 외래를 볼 때, 요양급여 총액의 30%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산재보험은 원칙적으로 본인부담이 없다. 하지만 한국의 산재보험은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에서 규정한 사항을 급여로 인정하고 있어, 비급여 진료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입원 초기 산업재해 의료비의 비급여율은 2015년 기준 44.2%에 이른다(송윤아, 2017). 구체적으로 보고된 액수로는 산재보험 1건당 비급여 의료비가 116만원이었고, 종합병원에서는 133만원이었다.

 

회사에서 일하다 다쳤는데도 본인이 부담해야 비용이 현실적으로 과도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비급여라고 하는 것이 필요 없는 치료가 아니라 종합병원에서 병실 부족으로 인해 상급병실을 사용하거나 수술, 약물 치료에서 주치의의 치료 권고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대부분이어서, 환자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요양기관 종별가산율, 이송처치료, 물리치료, 가정산소치료, MRI, 초음파검사 등 분야에서 국민건강보험보다 완화하여 급여 적용을 해주거나, 상급병실사용료, 재활치료, 재활보조기구 등에서도 건강보험과 달리 별도 추가 인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본인 부담 정도가 높아, 사업주가 부담을 해주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개인이 실비보험 처리를 하거나 직접 부담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산재보험에서 급여로 인정하지 않는 의료비가 발생하더라도 산재환자 치료에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개별 심사를 통해 별도로 인정을 해주는 개별요양급여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대체가능 항목이 없어야 하고 사유를 명확히 해야 하는 등 현실적으로 절차가 까다로워 신청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 이러한 제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문제다.

 

환자 치료에 필요함에도 건강보험의 재정 여건으로 인해 혹은 한국 의료의 현실에서 발생하는 비급여 영역이 다수 있는 점을 고려해서, 신청한 사람에 대해서만 개별요양급여 제도를 적용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산재 환자에 대해 개별 심의를 통해 비급여 적정성 검토를 하고 요양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하다면, 다빈도 비급여 영역을 급여 영역으로 확장하거나 특정 불필요 비급여를 제외하고, (보약 처방 등) 전체 비급여의 일정 비율을 급여로 지급하고, 추후 이를 점차 확대해 가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생활임금 및 실질적인 직업재활 급여 보장이 되어야

 

산재보험에서는 휴업치료에 따른 소득손실을 보장하기 위해 산재요양기간 동안 평균임금의 70%를 휴업급여로 지급하고 있다. 초기 요양 6주간 임금 전액을 이후 80%를 지급하는 독일보다는 부족하지만, 부양가족 수에 따라 60~75%를 지급하는 미국 워싱턴주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100%로 지급하는 건 안 되는 건가? 일하다 다치거나 병들었다고 해서, 70%의 임금만을 보장받아야 할 명확한 근거는 없다. 아파도 생활임금이 보장될 필요가 있고, 이는 예방적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보험의 취지에도 맞다. 더욱이 앞서 언급했던 비급여 영역의 치료비가 추가로 발생하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니 일정한 상한액을 두고 상한액 이하에서는 휴업급여를 100% 지급하는 방안을 우선 시도해 볼 수 있다.

 

나아가 산재환자의 실질적인 재활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의 급여 또한 제공되어야 한다. 장해가 있는 산재노동자에게 직업훈련에 드는 비용 및 직업훈련수당 등을 지급하거나 직장적응훈련, 재활운동을 위해 직장복귀지원금 등을 지급하고 있다. 직업복귀프로그램은 장해가 없이 복귀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주어져야 하고, 원직장 복귀 의무화 등 실질적인 작업복귀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도 이루어져야 한다.

 

 

산재보상의 확대와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가 연결되는 이유

 

이외에 산재보험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가 함께 이루어질 필요 또한 있다. 당장 산재보험의 비급여 영역이 건강보험의 비급여 영역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에서도 휴업급여가 지급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병이 직업병으로 인정되지 못한 수많은 노동자도 치료를 위해 일하지 못해 발생하는 소득손실을 보상받을 필요가 있어서다. 그것이 사회보험의 역할이고, 이를 관장하는 국가의 역할이다.

 

특집3. 역행하는 위험의 외주화 금지 / 2019.12

역행하는 위험의 외주화 금지

 

이진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문재인정부의 노동안전보건 정책 행보

 

퇴진 촛불의 결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정책 이념과 이론이 취약한 상황에서의 인기관리를 핵심목표로 갖는 포퓰리즘적 성격이 다분하다. 노동자·시민의 생명안전과 관련 공약과 정책을 발표했으나 인기관리의 맥락에서 속도 조절을 해왔고, 최근에는 오히려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2017년 대선시기 세월호 광장에서 진행된 '대선후보 생명안전 서약식'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는 "안전 때문에 눈물짓는 국민이 단 한 명도 없게 만들겠습니다.”라고 직접 서명했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제·개정,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비롯한 생명안전 관련 공약을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대통령 자리에 오른 후 2017750회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그 어떤 것도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될 수 없다산업재해는 한 사람의 노동자만이 아니라 가족과 동료 지역공동체의 삶까지 파괴하는 사회적 재난이라고 했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 외주화는 절대 없도록 하겠다,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안전의 대상이 되도록 하겠다, 사망사고 발생하는 사업장은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모든 작업을 중지하도록 하겠다, 대형 인명사고의 경우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20178, 범부처 합동으로 '중대산업재해 예방대책'을 발표했다.

 

이어 20181, '국민생명안전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통해 사고성 산재사망 절반감소 대책을 포함했다. 이후 환경부를 비롯한 범정부 차원의 환경미화원 안전대책, 2019년 공공기관 안전관리 대책 등 각종 안전대책이 쏟아졌다.

 

그러나 임기 절반을 넘긴 문재인 정부의 공약과 대책은 휴짓조각으로 전락했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 약속을 파기했다. 오히려, 생명안전제도의 개악과 후퇴가 급속하게 추진되고 있다.

 

▲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4월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3주기 추모 '생명 존중 안전사회를 위한 대국민 약속식'에 참석해 국민안전 약속 서명을 세월호 유가족들과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 가습기 피해자에게 전달하는 모습

 

김용균이 없는 김용균법 산업안전보건법

 

고 김용균 노동자 죽음에 대한 유족과 사회적 투쟁으로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지만,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의 도급금지에는 구의역 김 군도, 태안화력의 김용균도, 조선하청 노동자도 없다. 대선 공약에서는 산업현장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제개정, 상시 유해위험작업의 사내 하도급 전면금지를 명시했다. 그러나, 정부는 도급금지의 범위를 22개 사업장으로 극단적으로 축소해서 입법 예고를 했고, 국회를 통과했다. 자본과 국회 핑계를 대던 정부는 하도급하려면 노동부 승인을 받도록 하는 도급승인조차도 4개의 화학물질 설비 해체작업으로만 한정했다.

 

건설현장에서는 해마다 600명이 사망한다. 그중 20%가 넘는 사망사고는 건설기계 장비에서 발생한다. 장비 사고 중 65% 이상은 굴삭기, 덤프, 이동식 크레인 등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노동부는 원청 책임 적용 대상으로 이들을 제외한 채 2개만 규정했다. 사고 다발 기종은 아예 빠진 것이다. 원청 책임 강화 전면 적용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하더니 하위법령에서 사무직 노동자만 사용하는 사업장은 적용을 제외했고, 사고가 다발하는 에어컨 등 전자제품, 통신 설치·수리·정비작업도 빠져있다. 법의 구멍은 실제 산재 사망사고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지난 117일 오전10시 경 경기 남양주시의 한 건물에서 통신 개통 작업을 위해 홀로 건물 외벽에서 사다리를 이용해 작업을 하던 KT협력업체 직원이 추락해 사망한 것이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KT새노조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KT서비스 남·북부에서 총 6명이 숨지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중 외주화가 진행된 KT서비스 남부의 경우 같은 기간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크게 다쳤는데, 이 중 3명이 협력사 직원으로 밝혀졌다.

 

고 김용균 노동자 죽음을 두고 더 위험의 외주화는 없어야 한다던 문재인 정부였다. 이후 진행된 특조위는 노동의 외주화가 위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하였다. ‘외주화는 노동의 불안정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불안전성을 높인다. 외주화는 고용을 외부화 할 뿐만 아니라 위험 역시 외부화한다. 이때 위험은 단순히 위험이 외부로 전가되는 것이 아니다. 위험을 동태적으로 파악하면 원-하청 관계에서 새로운 위험이 형성된다.’는 점을 규명하였고, 이로부터 위험의 외주화는 원-하청 관계에서 새롭게 구조화된 위험의 형성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발전소 비정규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특조위의 권고는 아직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와 조선업 노동자의 죽음 이후 꾸려진 사고조사위원회는 위험의 외주화가 산재사망의 주범임을 밝히고 대안을 제시했지만, 권고는 보고서 활자로만 남아있다. 대통령이 약속한 국민 참여 사고조사위원회는 조선업 산업재해 조사위원회 이후 열린 적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11월 국가인권위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명안전과 기본적인 노동인권 증진을 위해 위험의 외주화 개선 불법 파견 근절 노동 삼권 보장 등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도급 금지 작업 확대, 생명안전업무 기준 구체화, 산재보험료 원·하청 통합관리제 확대 등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내뱉은 말이 이행되지 않으니, 인권위까지 나서게 된 처참한 상황이다.

 

위험의 외주화, 자본에게 책임 물어야

 

곧 김용균 노동자의 1주기다. 위험의 외주화에 의한 죽음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111일부터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김용균 분향소를 설치하고, 다시 농성을 시작했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 김용균 특조위 권고안 이행, 비정규직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조선, 철강, 건설노동자를 비롯한 시민단체들도 18일부터 조사위원회 권고 즉각 이행 촉구, 위험의 외주화 금지·중대재해 기업 처벌을 요구하며 농성 투쟁에 나섰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가 문재인 정부의 인기영합을 위한 말 잔치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위험의 외주화는 구조화된 위험이다. 노동을 분할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원청의 책임을 지운다. 노동자와 시민의 힘으로 사회에 드러낸 위험의 외주화. 실질적이고 최종적인 사용자, 자본에 직접적인 책임을 묻자.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 시켜 노동자·시민의 생명안전을 지켜내고, 산재사망에 대한 기업과 정부 관료에게 조직적 책임을 묻기 위한 연대와 투쟁에 함께하자.

특집2.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업무상 질병 승인율 증가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 2019.12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

업무상 질병 승인율 증가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김형렬 노동시간센터,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업무상 질병 승인율 증가

 

2018년 이후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여러 정책 토론회, 보도자료를 통해 업무상 질병 인정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2018년 업무상 질병 인정률이 63%를 기록해 2017년보다 19.1%포인트 상승했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경향은 20196월까지의 승인율에서도 65%로 이어져 승인율 상승은 이어지고 있다. 각 질환별로 승인율을 살펴보면, 2016년에 비해 2017년도 승인율이 뇌심혈관계 질환은 10.6%p 상승(22.0%32.6%), 정신질환은 14.5%p 상승 (41.4%55.9%), 근골격계질환은 7.5%p 상승(54.0%61.5%), 직업성 암은 2.6%p 상승했다(58.8%61.4%).

 

고용노동부의 뇌혈관질병 또는 심장질병 및 근골격계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뇌심혈관계질병 인정기준)’ 고시 개선이 일정한 역할을 했다. 노동부는 20181월 개정한 고시를 시행하여 평균 업무시간이 주 60시간이 안 되고 52시간에 미달해도 교대근무, 해외 출장, 책임의 증가, 높은 육체 강도 업무, 휴일 부족 등 질적인 요소를 반영하여 과로 기준을 정하고, 이를 업무상 질병을 판정하는 데 활용하도록 했다. 또한 추정의 원칙을 만들어 작업(노출)기간·노출량 등에 대한 인정기준을 충족할 경우 반증이 없는 한 해당 사례를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사례를 만들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암, 희귀 질병, 특정 직종의 근골격계질환 등에서 이와 같은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었다.

 

 

구분

2014

2015

2016

2017

승인

승인

승인

승인

승인

승인

승인

승인

직업성암

215

86

129

188

92

96

228

134

94

303

190

113

 

(40.0)

(60.0)

 

(48.9)

(51.1)

 

(58.8)

(41.2)

 

(61.4)

(37.3)

<> 직업성 암 신청, 승인율 변화

 

 

산재 신청 증가했나?

 

2018년 산재신청 건수는 128576건으로 2017년에 비해 24860(21.9%p) 늘었다. 출퇴근 중 사고를 산재보상 대상으로 확대하고, 노동자가 사업주의 확인 없이도 산재보상을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는 등의 노력이 있었다. 최근에는 병원에서 산재요양 신청서를 작성해주지 않을 경우, 진단서만으로도 산재신청이 가능하도록 변경되었다. 여전히 많은 병원의 의사가 산재요양 신청서를 작성해주지 않아 노동자들이 산재신청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산재요양 신청서는 업무관련성을 평가하는 서류가 아니라, 해당 병원에서 해당 상병으로 진료를 받고 있음을 써주는 것인데, 이에 관해 부담을 느끼거나 귀찮은 이유로 써주지 않는다.

 

애초에 산재요양 신청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환자의 신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치의나 자문의사의 판단으로 산재절차가 밟아질 수 있어야 한다. 20% 이상 신청 건수가 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재해율은 1%를 넘지 않고 있다. 독일, 캐나다 등이 3% 수준임을 생각하면, 신청하지 않는 재해, 질병이 아직도 너무 많다. 산재신청을 늘리기 위해서는 신청과 승인절차를 더 간소화하고, 산재신청에 따른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이 뒤따라야 하고, 산재요양의 질을 개선하고, 작업 복귀 프로그램이 강화되는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

 

신속한 처리 이루어지고 있나?

 

산재보험제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신속하고 공정한 보상이다. 그러나 업무상 질병에 대한 산재신청과 절차가 진행되는 기간은 신속성과는 거리가 멀다. 2018년 근로복지공단은 16건의 업무상 질병 사건을 처리했고, 이들의 평균 처리기한은 166.8(근골격계질환 108.7, 뇌심혈관계질환 103, 직업성 암 341, 정신질환 179일 등)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산재신청을 한 노동자는 자신의 병이 직업병으로 승인되기 전에는 치료에 소극적이다. 치료가 늦어지면 병이 잘 낫지 않을 것이고, 산재 노동자의 복귀는 더 늦어진다. 장애가 남을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보험자의 입장에서도 손해다. 몇 가지 조치는 당장이라도 시행할 필요가 있다. 주치의와 공단 자문의 소견이 업무관련성이 높다라고 판단하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를 거치지 않고 바로 승인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단계적으로 2주 혹은 4주 이내 요양 기간의 질병부터 실시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직업성 암은 당연 인정기준을 확대하여 그동안 직업성 암으로 인정된 유사 사례를 정리하여 전문조사 없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바로 판단하거나, 장기적으로는 자문의사에 의해 바로 판단이 내려질 필요가 있다.

 

정신질환 직업병 인정, 여전히 어렵다

 

최근 5년간 업무상 정신질환으로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는 2014137, 2015165, 2016183, 2017213, 2018268명으로 총 966명이다. 이 중 산재 승인을 받은 것은 총 522건으로 승인율은 약 54%에 불과했다. 아직 정신질환은 산재신청도 적고, 업무상 질병 판정에서도 개인 요인의 영향을 크게 보는 경향이 있다. 정신질환으로 확진된 사례라면 환경요인과 관리 요인을 중심으로 업무관련성 판단이 이루어져야 하고, 산재신청과 승인 사례가 늘고 (특히 사망 사건), 예방 노력도 이어져야 한다.

 

지역별 승인율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6개 지역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주요 질병에 대한 승인율의 차이가 현저히 드러났다. 근골격계질환 산재판정 결과는 평균 승인율이 최저 60.4%에서 최고 86.7%까지 편차가 컸다. 지역별로 업무관련성이 높거나 낮은 질병만 신청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직업병을 인정하는 위원회의 판단 절차와 과정, 인정하는 기준의 차이가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지역별 위원회의 위원장이 갖는 역할도 매우 중요하고, 위원들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구성의 변화 또한 필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비롯한 업무상질병판정을 위한 여러 심의회의 체계상 변화가 필요하다. 그 중 임상의사는 업무관련성을 평가하는 심의회에 참여하기보다는 업무관련성평가에서 상병을 명확히 확인하는 과정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즉 심의 전 단계에 참여하는 것이 적절하고, 업무관련성을 평가하는 것은 법률적 판단, 사회적 판단 중심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심의마다 다뤄지는 건수를 제한하여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위원회별로 구성 위원 수를 줄여 (현행 7명에서 4~5명 수준), 위원회를 늘리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예방에 중점을 두고 정책이 입안·시행되어야

 

산재로 승인받는 것보다 질병이 걸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과로사 문제는 노동시간 단축의 제도 변화로 이어져야 하고, 근골격계질환의 문제는 인간공학적인 작업환경 개선으로, 정신질환은 과로, 직장 내 괴롭힘, 폭력, 감정노동 등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 정책들이 뒤따라야 한다.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와같은 노동정책의 변화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우려스러운 행보가 이루어지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무력화시키는 탄력근로제 확대, 300인 미만 사업장 주 52시간 상한제 실질적 유예, 특별근로허용제 도입 등 장시간 노동 사회로 회귀하는 정책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주40시간 법정근로시간 조차 무력화 시키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돌아봐야할까. 이처럼 오히려 예방이 아니라 직업병을 늘리는 정책이 시도되고 있다.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 모든 일하는 이들의 건강할 권리가 보장되고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정부가 취한 방향이라고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노동안전보건정책의 방향은 어디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특집1. 산재사망사고 절반 줄이기,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 2019.12

산재사망사고 절반 줄이기,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최민 상임활동가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2022년까지 자살 예방, 교통안전, 산업안전 등 ‘3대 분야 사망 절반 줄이기를 목표로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집중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에 따라 총리실 주도로 관계부처가 함께 하는 자살 예방 국가행동 계획, 교통안전 종합대책, 산업재해 사망사고 감소대책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집행을 시작한 지 2년이 다 돼 간다.

 

산재 사망사고 감소 대책을 노동부만의 과제가 아니라 범정부적 차원의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고, 산재 사망을 줄이기 위해 여러 부처가 공동의 행보를 시작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예를 들어 국토교통부는 10월 사고사망자가 발생한 6개 대형 건설사 현장을 집중적으로 점검하는 '징벌적 현장 점검'12월부터 특별 점검 형태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건설사에 영향력이 큰 국토교통부의 감독이 노동부의 부족한 관리, 감독 인력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넘어 건설 현장을 바꾸는 지렛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아직 산재 사망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지는 않고 있다. 현재 정부의 접근 방식만으로, 2022년까지 산재 사망 사고를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든다.

 

더디게 줄어드는 산재사망사고, 건설업은 오히려 증가

 

2018년부터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정부에서는 2018년 사고사망만인율 8% 감소를 목표로 제시했지만, 2018년 사고사망자 수는 971명으로 2017964명보다 더 증가했다. 노동부는 산재보험 적용이 확대되어 산재로 인정되는 사고 사망이 증가했고(10), 이전 년에도 사망했지만 유족급여를 뒤늦게 받은 경우가 포함돼 있다고 해명했지만, 궁색했다.

2019년은 2018년보다는 사고 사망이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 3/4분기 산업재해 발생 현황이 발표되지 않았지만(12월 발표 예정), 상반기까지의 현황을 보면, 20196월말까지 사고사망자수는 465명으로 2018년 상반기보다 38명이 감소해 7.6%의 감소율을 보였다. 사고사망만인율은 0.25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02p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줄긴 했지만, 인상적인 수준은 아니다.

구분

2018.

16

2019.

1~6

증감

 

증감률

ㅇ 사망자수

1,073

1,115

42

3.9

- 사고 사망자수

503

465

-38

-7.6

- 질병 사망자수

570

650

80

14.0

ㅇ 사망만인율

0.58

0.60

0.02

3.4

- 사고 사망만인율

0.27

0.25

-0.02

-7.4

- 질병 사망만인율

0.31

0.35

0.04

12.9

ㅇ 건설업 사고사망자수

235

229

-6

-2.6

ㅇ 건설업 사고사망만인율

0.86

0.97

0.11

12.8

 

게다가 안전보건공단과 노동부가 전력 집중하고 있는 건설업의 사고 사망자는 여전히 전체 사고 사망의 49.2%229명이나 됐다. 2018년 상반기보다 6명 줄었을 뿐이다. 2.6% 감소해서, 전체 사고 사망자수 증감율보다 낮다. 산재보험 대상 건설업 노동자 수가 줄어, 사고사망만인율은 오히려 증가했다. 2018년 상반기 건설업 노동자 사망만인율은 0.86, 2018년 전체 건설업 노동자 사망만인율은 1.65, 2019년 상반기 건설업 노동자 사망만인율은 0.97이다. 2018년 전체 사고사망의 49.9%가 건설업에서 발생했는데, 그 비율도 큰 변화가 없다.

 

사고 유형으로 보면 떨어짐 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184(39.6%)으로 여전히 가장 많다. 2018년 상반기에는 떨어짐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173명으로 34.4%였고, 2018년 전체를 통틀어 보면 376명으로 38.7%였다. 떨어짐 재해가 오히려 소폭 늘어나고 있으며 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아직 각 업종 내에서 사고 유형이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자세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산재 사망사고가 매우 더딘 속도로 감소하고 있을 뿐이며, 그 효과 역시 정부가 자신 있게 집중했던 건설 현장, 추락사고 예방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연말에 발행할 ‘2018년도 산업재해분석에서는 2018년부터 해온 추락사고 예방 중심, 건설업 안전 비계 설치 중심의 사고사망재해 예방활동에 대한 중간 점검과 진지한 평가가 제출되어야 한다. 건설업에서 추락사고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그 효과는 어떤 규모의 건설 현장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는지, 아직 뚜렷하지는 않지만 이런 예방 활동이 앞으로 성과를 거두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지 등이 제대로 논의돼야 한다.

▲ 지난 11월22일에 '문재인정권 생명안전제도개악분쇄!건설산업연맹, 공공운수노조, 금속노조 투쟁 결의대회'가 개최됐다.

노동자 단속 대신 권한과 책임 있는 자를 찾아라

안전비계를 지원하여 사망사고를 줄인다는 것은 매우 좁은 목표를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기술적인 접근이다. 사고 사망이 매우 높은 한국 상황에서는 이런 접근이 효과를 일부 발휘하기를 기대했을 수 있다. 그런데도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는 단순한 인적 오류가 아니라 기업의 안전 문화부재 및 시스템 실패와 관련성이 높다는 최근의 연구를 고려한다면, 실제로 지금까지 2년 동안 정부의 산재 사망 사고 감축 정책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근본적 인식 변화 없이, 지금처럼 얼마 안 되는 행정력을 특정 업종에 총동원해 따라다니는 방식으로는 절대 사망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예를 들어, 원청이나 실사용주의 책임성 강화, 실질적 경영 책임자에게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 부여, 안전에 최상위 가치를 부여한다는 기업들의 명시적 선언과 이에 걸맞은 실천 등이 사망사고를 줄이는 데 더 시급한 일일 수 있다. 안전공단에서 2018년 제출했던 또 다른 목표 중 하나가 산업현장에서 권한과 책임 있는 자가 산업안전보건의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던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기술적 접근 외에 이런 거시적인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 것이며, 얼마나 추진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업주는커녕, 노동부 자신도 이런 시각을 제대로 장착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 1121일 고용노동부와 경찰청은 이륜차 안전운행 및 사고 예방을 위한 홍보 및 단속이라는 보도 자료를 냈다. 최근 3년간(’16’18) 이륜차 가해 사고로 연평균 보행자 31명이 사망하고 3,630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연평균 812명의 이륜차 탑승자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특히 이륜차 탑승자 중 배달 종사자가 많아 이륜차 사고 예방은 교통안전과 산재사망사고 줄이기 측면에서 모두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정부가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운전자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121일부터는 이륜차 사고가 잦은 곳과 상습 법규 위반지역에서 고위험 위반행위를 암행 단속하고, 난폭운전 등에 대한 기획 수사도 추진한다고 한다. 국민이 좀 더 편리하게 공익 신고할 수 있도록 스마트 국민제보앱 화면에 이륜차 신고 항목을 별도로 신설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으로 산재 사고를 노동자의 불안전 행동 탓으로 보는 접근이다. 배달 종사자들이 왜 난폭운전을 하는지 들여다보고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사고는 줄지 않는다. 노동자의 위험 행동과 단속사이에 숨바꼭질만 벌어질 뿐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라이더를 직접 고용하고 고정급이 보장되면 훨씬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안전배달료등을 도입해서 배달 단가를 높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서울신문, 2019.11.21.) 배달뿐 아니라, 플랫폼 노동 등의 이름으로 고용 관계를 넘어서는 노동력이 점점 증가하고, 정부는 이들의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할 대책을 내놓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위험은 여러 형태로 증가할 뿐이다.

 

노동 정책 전반이 변해야 산재 사망 줄어든다

 

그런 점에서 산재사망 사고를 줄이기 위한 대책은, 임금과 고용 등 노동정책 전반에서 함께 고민돼야 한다. 하지만 산재사망 사고를 줄여야 한다는 정부의 노동정책 전반은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201812월 김용균 노동자의 사고 이후 석탄화력발전소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에서는 다단계 고용 구조 자체가 책임의 공백을 낳고, 새로운 위험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설비 개선은 이루어지고 있어도 약속했던 발전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는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다. 구의역 사고와 태안화력발전소 사고에서 위험의 외주화가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대안으로 직접 고용이 제안되었지만,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계획은 여전히 자회사를 통한 간접 고용 중심이다.

 

201910월에도 선로 보수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철도노조는 32교대에서 42교대로 전환하고, 안전인력을 충원하라며 파업을 진행했고 지난 1125일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측과 잠정합의하였다. 당시 코레일 사측에서도 최소한 1,800명 이상은 충원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기획재정부에서는 정부 예산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회사 측 주장마저 수용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아쉽게도 노조 핵심 요구안이었던 인력충원에 대한 확답을 이끌지 못해 과제로 남았다.

 

매년 반복되고 있는 이주노동자 사망 사고도 마찬가지다. 이주노동자는 언어, 문화 등의 이유로 산재 사고 고위험군이 되기 쉽다. 고용허가제로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사업주에게,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와 흔한 사고예방을 위해 반드시 취해야 할 조치 등을 교육해야 한다. 지금은 입국한 노동자가 산업안전보건 교육을 받을 뿐, 사업주들은 관련 교육을 받을 의무가 없다. 사업주들에게는 외국인고용관리 교육을 실시하며 그 내용은 주로 고용허가제, 출입국관리법, 외국인근로자 노무관리기법 등이다. 산재 발생이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발생 시 고용 허가를 취소하는 등의 제재도 없다. 이런 제도를 그대로 두고, 개별 사업장 교육과 감독으로 2018135, 20196월까지 42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하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산재 사망사고 줄이는 것을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산업안전보건정책뿐 아니라 고용, 임금 등 노동 정책 전반을 바꿔야 한다. 지난 수십 년을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은 뒷전인 채로 경영을 하고, 이윤을 남겨 온 세상이다. 전 사회적으로 노동자 권리가 증진되고, 노동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과정을 통해서만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이 지켜질 수 있다.

 

산재사망사고는 그 사회 노동권의 수준과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존중정책이라던 약속을 모두 버리고, 유예하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줄어들길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정부는 노동자, 노동조합에 더 적극적으로 손 내밀어야 한다. 주체들의 안전보건활동 참여가 행정력의 공백을 메우고, 현장의 문화를 바꿀 것이다. 건설노조에서 얼마 전부터 국토교통부와 함께 현장안전점검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법적 근거도 없고, 큰 현장 중심의 소수 현장에, 예고한 날에만 방문하고 있다. 더 많은 노동자, 노동조합이 이렇게 사업장을 수시로 드나들며 명예산업안전감독관으로 현장을 바꾸고, 위험하다 싶으면 멈출 수 있을 때야 사망사고가 줄어들 것이다. 노동권을 키우고, 노동인권을 보장하는 정책이 산재 사망사고를 예방하는 정책이다.

 

[만평] 유야무야 / 2019.08

[만평] 무전유병 유전무병...? / 2019.11

<일터> 통권 189호 / 2019.11

https://issuu.com/kilsh2003/docs/__19-11_-_

 

일터 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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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평등해야 건강하다
1. 건강 불평등과 노동
2. 노동자들의 건강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제도, 근로자건강센터
3. 노동자 건강 불평등, 노동조합 참여로 바꿔내기 

[지금 지역에서는]

부산퀴어 총궐기 참가기

[산재보험 톺아보기]

산재보상보험 전면 적용, 어디부터 어떻게 :  산재보험 적용 확대 3

[연구리포트]
여성 노동자의 노동환경은 안전한가?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노동자는 없고 그의 속도만 존재하는 공간


[사진으로 보는 세상]

[현장의 목소리]
과거의 노출이 현재의 피해를, 현재의 노출은 미래의 피해로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화학물질의 위험으로부터 노동자와 시민이 안전한 지역을 만들자!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미국 공장’의 노동자들은 어쩌다 ‘교체’됐을까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노고(勞苦)했습니다, 오늘도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與]
블라인드 채용 – 성차별

[노동자 건강상식] 
역류성 식도염


[문화읽기]

지금이 바로 행동할 때, “기후위기 즉각 대응해~~”


[발칙 건강한 책방]
생존을 위해 가난을 입증해야 하는 사회


[이러쿵 저러쿵]

세심하면서 강인한 노안활동에 함께 하기 위한
첫걸음을 떼다


[안전보건동향]


[한노보연 이모저모]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노동자는 없고 그의 속도만 존재하는 공간- 쿠팡 이천 덕평 물류센터 피커(Picker) K 님 인터뷰 / 2019.11

노동자는 없고 그의 속도만 존재하는 공간

- 쿠팡 이천 덕평 물류센터 피커(Picker) K 님 인터뷰

 

지안 상임활동가

 

쿠팡은 지난 2018, 기존에 12개였던 물류센터를 24개로 확장했다. 쿠팡의 대표적인 서비스인 로켓배송시스템의 수요 증가를 충당하기 위함이다. 2014년 처음 시행된 서비스인 로켓배송은 자정까지 주문 시 고객에게 상품이 익일 배송되는 시스템이다. 이 서비스의 확장판인 로켓프레시는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로, 자정까지 주문하면 익일 오전 7시 전까지 고객의 집으로 배송해준다. 현재 쿠팡에서 로켓배송이 적용되는 상품의 개수는 약 500만 종이다. 그렇다면 이 많은 상품 중에서 내가 주문한 물건들은 어떻게 취합되어 바로 다음날에 집 앞으로 도착하는 것일까?

물류센터에 대한 흔한 고정관념 중 하나는 주문한 상품이 집까지 배송되는 모든 경로가 주로 남성들의 노동으로 진행된다는 생각이다. 그 이유는 상품 전달이라는 마지막 단계인 배송 업무 비중을 남성이 높게 차지하고 있다는 점과 물류센터를 주로 힘을 많이 사용하는 상하차 작업으로만 제한해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하차 작업은 물류센터의 여러 업무 중 한 파트일 뿐이고, 성별을 살펴봤을 때 남성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이 사실을 간과하면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약 500만 개의 다종다양한 상품 중에서 내가 고른 물건이 우리 집까지 도착하는 데는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 이번 <일터>를 통해 물류센터 출고파트의 한 가지 업무인 집품을 담당하는 피커(Picker) 노동자의 노동을 살펴보았다. 인터뷰는 지난 1024일 평택에서 진행됐다.

 

물류센터 작업들과 피커의 노동

 

쿠팡은 24개 물류센터의 면적이 총 37만 평이라고 발표했는데, 개당 1.5만 평에 달하는 크기인 셈이다. 물류센터 업무는 크게 입고(IB), 출고(OB), 허브(HUB)로 나뉜다. 각 업무파트 안에서도 세세하게 작업들이 나뉘어있지만, 먼저 허브파트는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상·하차 작업을 담당한다. 입고파트의 경우에는 크게 진열, 재고 확인 등의 역할을 하며 출고파트는 이렇게 진열된 상품 중에서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찾아서 담는 피킹 작업과 피킹해온 상품들을 각 주문별로 포장하는 업무(패킹)가 주된 역할이다. 여기서 이 노동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한데, 각 노동자가 배정된 구역은 나뉘어있더라도 이 모든 업무가 수행되는 공간은 1만 평이 훌쩍 넘는 거대한 공간이다. 이렇게 큰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물건을 진열하고, 물건을 찾아서 담고, 포장(과 그에 수반되는 보조적인 작업)하는 모든 노동과정은 매우 고되고 체력소모가 심하다.

인터뷰이가 주로 일해온 이천 덕평 물류센터는 총 4층짜리 건물로 이루어져있다. 각 층에는 높이 2~3미터 되는 진열대가 쭉 늘어서 있는데, 먼저 물건이 물류센터에 들어오면 입고파트에서 진열을 담당하는 사원들이 진열대에 물건을 무작위로 쭉 진열한다. 일반적으로 물류센터 안에서 각 물건의 분류에 따라 구역과 위치가 설정되어있으리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쿠팡 물류 시스템은 랜덤 스토우(Random Stow) 방식으로, 모든 상품을 진열대에 무작위로 진열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신에 피커 노동자에게 PDA를 통해서 본인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상품 위치를 안내하여 최적의 동선을 알려준다. 광범위한 공간에서는 각 물건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하는 것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을 짜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기업인 아마존의 물류창고 운영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피커들은 PDA를 들고 다니면서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찾아요. PDA는 자신의 현재 위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상품의 위치를 알려줘요. 그걸 보고 피커들이 물건들을 찾는 거죠. 피커들은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토트박스라고 하는 플라스틱 박스에 물건을 담아요. 물건들이 카트에 어느 정도 차면 포장라인으로 가는 레일에 물건을 올립니다. 그리고 이 작업이 계속 반복되는 거죠.”

 

1명의 피커가 카트를 끌고 다니며 물건을 담는데, 시간당 물건 담기를 40~50개 정도 하는 사람부터 60~70개까지 하는 사람까지 처리 개수는 저마다 다르다. 주문된 물건의 무게가 다르고 물건이 놓인 위치 등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1인당 처리해야 할 할당량이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빠르게 많은 물건을 처리하도록 하는 관리 시스템 속에서 노동강도를 향상할 것을 요구받는다.

▲   쿠팡의 물류센터. 이 넓은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가 제기되어야 한다.

 

37만 평을 채우는 당일 알바

 

알바몬이나 알바천국 같은 일자리 중개 사이트를 들어가면, 하루에도 수십 개의 물류센터 구인 공고가 올라온다. 하루나 일주일 단위로 일할 사람을 끊임없이 구하기 때문이다. 이 일자리는 하루 혹은 원하는 기간만큼만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다는 점이나 임금이 익일 지급 혹은 주급으로 지급된다는 점 때문에 선호된다. 또 매일 사람을 구한다는 점에서 접근성이 높아 많은 사람이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일자리이기도 하다.

이렇게 당일 알바, 즉 일용직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3개월, 6개월, 9개월 등의 단위로 계약을 하는 계약직 사원들이 있다. 물류센터 안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고용 형태는 정규직, 계약직, 일용직으로 총 3가지이다. 그러나 고용형태의 비율은 각 물류센터마다 차이가 있는데, 어떤 센터는 대다수가 일용직, 소위 당일 알바 자리를 찾아서 온 사람들로 채워지고 어떤 센터는 주로 계약직 사원들의 교대근무를 통해 운영된다. 대개 오픈 한 지 얼마 안된 신생 물류센터가 일용직 노동자들을 많이 고용하고, 시간이 갈수록 그 자리를 계약직 사원들이 채운다.

 

그냥 잠깐 알바하거나 급전이 필요해서 오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피킹 작업을 직업으로 하는 전문 피커들이 많아요. 당일 알바의 임금은 딱 최저시급인 8,350원에 맞춰져 있는데요. 사실 계약직과 임금 차이는 거의 없어요. 최저시급보다 80원쯤 많은 9,030원 정도를 받습니다. 근데 당일이나 주급으로 일을 하면 자기 스케줄에 맞춰서 시간대와 요일을 조정할 수 있는데, 계약직으로 근무하면 회사가 정한 스케줄대로 교대 근무를 해야 해요. 그래서 직업으로 이 일을 하더라도 일부러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요.”

 

인터뷰이가 일한 쿠팡의 이천 덕평 물류센터는 3개 조가 교대로 근무를 한다. 중간에 식사 시간이 1시간 주어지기 때문에 총 노동시간은 8시간이다. 한 물류센터에서 하루 동안 근무하는 총인원은 약 1천 명 이상으로, 센터별로 상이하다. 그 인원 중 다수를 여러 가지 이유로 1, 또는 단기 알바를 하는 사람들과 매일 출근하지만 고용 형태는 일용직인 당일 알바 아닌 당일 알바들이 빼곡히 채우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자연스레 드는 의문은, 이렇게 단기적으로 고용되는 수많은 사람에 대한 안전 문제와 건강이 어떻게 담보되고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또한 노동자의 건강권이라는 측면에서, ‘당일 알바들이 채우는 총 노동량을 관리하는 장치가 어떤 식으로 각 노동자의 노동강도를 올리고, 감시하고 있을지의 문제도 중요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UPH를 통한 노동강도 압박과 노동 감시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문제는 상호 연관된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노동강도에 대한 압박 속에서 안전 문제가 발생하는지도 주요한 문제다. 물류센터가 그날마다 처리해야 하는 총 물량이 정해져 있고 심지어 이 물량은 로켓배송서비스 등 매우 촘촘하게 짜인 시간 속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이때 이 일들을 실행하는 인력은 매일 매일 바뀌기 때문에 기업에 노동강도의 유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여기서 물류센터라는 공간성 역시 중요한 특징이다. 드넓은 물류센터를 활보하며 물건을 담는 피커들의 작업 속도를 관리자가 일일이 걸어서 체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은 PDA를 이용해 노동자들이 시간당 카트에 물건을 담는 개수를 측정한다. 이 개수를 UPH라고 하는데, 각 노동자의 UPH를 철저하게 유지함으로써 노동강도를 관리한다. UPH가 떨어지면 전체 방송으로 압박이 들어오기 때문에 피커들에게 UPH 유지 및 향상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물론 이 압박 및 관리의 방식도 개별 물류센터를 관리하는 인력업체의 매뉴얼에 따라서 각기 다르다.

 

들어오는 주문을 현장에서는 할당이라고 부르는데요. 이 할당을 시간당 처리하는 개수를 UPH라고 불러요. 평균 UPH는 물류센터마다 다르게 지정되지만, 예를 들어 UPH60이라고 하면, 무조건 그만큼은 채워야 해요. 만약에 그만큼을 못 채우면 방송이 나와요. ‘OOO 사원님, UPH 향상 안 시키면 강제 퇴근 시키겠습니다이렇게요. 그렇게 큰 공간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다 듣고 있는 곳에서 방송을 틀어대면 정말 모욕감이 느껴져요. 방송이 몇 번 나와도 UPH가 늘어나지 않으면 관리자가 사무실로 오라는 방송을 합니다. 관리자는 정규직 사원이거나 층마다 있는 반장이기도 해요. 사무실로 가면 언성을 높이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일을 어떻게 하느냐고 모욕을 주기도 해요. 그래서 피커 일을 하는 사람들은 UPH라는 소리만 들어도 다들 싫어하죠.”

 

UPH가 떨어지는 일용직 사원들은 쿠팡에서 관리하는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다음에 일할 기회가 박탈된다. 계약직 사원의 경우에는 계약을 3, 6, 9개월 단위로 하기 때문에 UPH가 떨어지면 재계약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UPH 상승을 위해 노력한다. 물류센터에는 끊임없이 UPH를 올리라는 방송이 울려 퍼지고, 이 작업속도의 지표만 있을 뿐 안전하고 건강할 권리가 있는 한 사람으로써 노동자는 없는 것이다.

 

피커 일은 계속 걷고, 이동하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물건을 찾으러 넓은 곳을 돌아다니니 나중에는 다리가 너무 아파서 걷기 힘들 정도예요. 근데 이렇게 개인 면담을 하자는 방송이 나오면 조바심이 많이 나요. 그래서 사람들이 카트를 끌고 빠른 속도로 뛰다가 카트끼리 부딪히거나 카트로 사람을 들이박는 경우도 있어요. 또 사다리를 타고 진열대를 올라가 물건을 꺼내는데 이 사다리 개수가 부족하고, UPH 압박은 심하고 하니까 사람들이 사다리 없이 진열대를 타다가 떨어져서 크게 다치기도 하고요.”

 

물류센터의 노동환경과 노동시간

 

앞서 말했듯이 피커의 주된 업무는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물건들을 찾아 카트에 담고 포장 라인으로 옮기는 것이다. 끊임없이 걷고 물건을 꺼내야 하므로 다리 부종이나 통증, 각종 근골격계질환은 흔한 일이다. 또한 물류센터별로 식품을 다루는 곳은 저온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작업복을 입더라도 추위에 떨면서 일하고, 폭염에는 냉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탈수하는 일도 발생한다. 그렇다면 작업의 중간중간 휴식은 보장되는지, 휴게공간은 갖춰져 있는지 물었다.

 

무급이긴 하지만 점심시간이자 휴식 시간이 1시간 주어져요. 그런데 물류센터가 대규모 인원이 있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식당 규모도 매우 커요. 규모는 크지만, 배식 줄 자체가 워낙 길어서 20분을 줄만 선적도 있어요. 그래서 사실상 쉴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근무 중에는 UPH 때문에 짬 없이 일해야 하고요.”

 

한편, 대부분의 물류센터는 해당 지역의 외곽에 있다. 수도권의 경우에는 사당, 노량진, 안산, 오산, 부평, 평택 등지에서 해당 물류센터까지 셔틀버스가 운행한다. 물류센터에 도착하기까지 셔틀버스 운행 지점에서부터만 짧게는 1시간에서 1시간 반까지 걸리기 때문에 왕복 3시간이라는 이동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집에서 셔틀버스 탑승 지점까지 이동해, 여기서부터만 왕복 3시간과 총 9시간의 근무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지급되는 노동시간은 식사 시간을 제외한 8시간이지만, 최소한으로 잡아도 하루에 반 이상이 노동에 소비되는 시간이다.

 

갈수록 각종 배송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는 사회에서, 그 배송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안전할 권리와 쉴 권리, 노동시간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특히 이 노동자들의 다수가 일용직 노동자이며, 계약직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3, 6, 9개월 단위의 쪼개기 계약으로 고용계약이 이루어진다. 일용직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자유롭게 근무 스케줄을 짤 수 있다는 점에서 피커 일을 선택하곤 한다. 하지만 쿠팡 셔틀버스를 탄 시점부터 하루에 12시간 가까이를 보내는 상황에서 노동의 자율성이란 과연 어떤 걸까? 다양한 물건을 빠르게 배송해주는 서비스들은 UPH 향상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지만, 이 빠른 속도 속에서 일하는 사람의 권리는 축소되고 있다.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노고(勞苦)했습니다, 오늘도- 아픔을 탓하지 않으려면 / 2019.11

노고(勞苦)했습니다, 오늘도 - 아픔을 탓하지 않으려면

 

정지윤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공의

 

허리랑 어깨랑 목이랑 다 아파요. 발이랑 종아리랑 퉁퉁 붓구요, 압박스타킹 하고 일해도 어쩔 수 없어요. 애기들(소아과 환자) 키에 맞춰서 맨날 허리 굽히고, 쪼그리고 일하다 허리 좀 펴려고 일어나면 머리가 핑 돌아요.”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을 때가 근무 중에 두세 번씩 있어요. 애플워치 차고 일하는데 심박수가 110가까이 체크될 때가 근무 중에 수 십 번 있구요. 근데 그럴 수밖에 없어요. 응급실에는 계속 사람이 오는데 너무 긴장되어, 저도 제 맥박소리가 들려요

손을 자주 씻다 보니까 손에 습진이 생겨요. 이미 습진이 생겨서 손 씻을 때 쓰린데, 그렇다고 안 씻을 수도 없죠. 처치할 때마다 손세정제 쓰는데 보습한다고 핸드크림 챙겨 바를 수도 없구요.”

교육 받는 게 너무 어려워요. 잘 안 가르쳐 주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냥 제가 멍청하고 잘 못 배우는 사람인 것 같아요.”

구내염 때문에 잇몸에서 피가 자주 나요. 일 할 때 물을 거의 한 번도 못 마셔요. 입이 바짝 마르니까 더 염증이 자주 나는 것 같아요.”

은박 포장지에 들어있는 약들을 계속 까 넣다 보니까 양쪽 엄지 관절이 항상 쑤시고 아파요. 자다가도 아파서 깹니다.”

 

야간작업이 유해인자로 알려져 있는 병원 직원들과 특수건강진단 문진실에서 나누게 되는 대화이다. 야간작업으로 발생하는 수면장애, 위장장애에 대해서 호소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 외 일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고충이 진료실을 메운다. 문진표에 제시된 여러 증상 중에 심하다라고 표시한 항목만 대화를 나누어도 시간은 모자란다. 그나마 잘 알고 있는 업무 공간인 병원에서도 어떤 의학적 조언을 해야 할지 모를 상황이 자주 찾아오고는 한다. ‘스트레칭 자주 하시고 규칙적으로 운동하셔야 합니다, 보습 잘해주세요, 물 많이 드세요, 증상이 심해지면 해당과 진료 보세요등 기운 없는 조언들을 늘어놓고 문진실을 나오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온다. 내가 아는 직종에서 몰랐던 업무부담이 있었음을 다시 한번 배우고, 그 상황에서 그런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공감하게 된다.

문진실을 나오면 거치는 나만의 절차가 있는데, 문진 과정에서 했던 말들이 당신이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혹은 당신이 유별나서 그런 불편이 발생했다고 하는 뉘앙스가 있었는지 복기하는 것이다. 문진실 밖에서 만나게 되는 환자들은 자신이 앓고 있는 질환의 업무 관련성을 밝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서류에서 만나는 사측의 입장은 한결같다. ‘건강검진도 시기에 맞춰 잘 해주고, 작업환경측정도 잘 되고 있으며 사업장 보건관리자도 있는 이 좋은 시스템 안에서 질병이 발생하는 건 당신이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혹은 당신이 유별나서 그런 불편이 발생하는 것이며 당신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아프지 않아서다’.

그러나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세상에 없다. 가려진 위험, 그리고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지점이 있음을 파악하고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한 걸음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로서 내가 만나는 일하는 사람들, 일했던 사람들의 일터에는 다양한 이유로 신체적·정신적 위험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매일 자신의 일터에서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불편한 신체에 개연성 있는 이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감지하는 불편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최선의 보호조치를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왜냐하면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프다. 아픔이 장기적으로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질병으로 나타나건, 일시적으로 발생했다 일을 쉬면 나아지는 통증이건, 그 무게는 다를지라도 결국 매일의 삶을 파고드는 어려움으로 작동한다. 나는 그런 어려움이 우리가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대화에 등장하기를 바란다. 현재 가용한 대답들로는 해법이 되지 않더라도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고 남겨두는 일, 그리고 대답을 찾아가는 일을 함께 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문진실에서 기운 없는 조언들이 힘을 갖기 위해서는 문 밖에서 더 바쁘게 움직여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미국 공장’의 노동자들은 어쩌다 ‘교체’됐을까 / 2019.11

미국 공장의 노동자들은 어쩌다 교체됐을까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팩토리(American Factory)>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운영위원

 

이런 가정을 해보자. 당신이 10년간 잘 다니던 회사가 있다. 야근도 별로 없고 나름대로 노동문화가 잘 잡힌 모범 직장이다. 하지만 어느 날 지속적인 경영악화로 사장이 홀라당 도망가고, 회사는 공중분해 위기에 처했다. 그때 한 귀인이 나타나 자신이 회사를 사겠노라고 약속한다. 아아, 당신의 이름은 착한 자본가.

그런데 이 사장님, 취임 일성에 난데없이 6일제복원을 외친다. 아침마다 1시간씩 일찍 집합해서 단결을 위한 조례를 갖자고도 한다. 아이고,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태연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함께 일해 온 동료들도 동요하는 게 느껴진다. “미친 거 아냐? 시대가 어느 땐데.”

 

3세계의 일이 미국에서 일어난다면

 

사람에겐 국경이 있지만 자본에겐 국경이 없는 시대에 이런 일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이런 일은 주로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높고 임금수준이 높은 나라의 자본이 사람 값이 싼 나라로 생산 공장을 옮기면서 일어난다. 어떤 나라의 임금수준이 낮다는 것은 대체로 노동자의 힘이 약하다는 뜻이고, 밀려드는 자본의 공세에 속수무책이기 쉽다. 그리고 자본은 그래도 되는곳에선 필연 그렇게한다. 자국에선 그리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서 끔찍한 노동착취를 자행해 왔다는 이야기는 비밀 축에도 못 낀다.

그런데 세계 최강대국이자 자본주의의 총 집산이라는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오바마 부부가 제작해 화제가 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팩토리(American Factory)>는 바로 이 드문 사례를 근접거리에서 생생하게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원래는 GM이 자동차를 만들다가 2008년에 버리고 떠난 미국 오하이오 주 데이턴 시의 빈 공장을 중국계 차량용 유리제작 기업인 푸야오(FUYAO)6년 만인 2014년 인수하면서 2년 반 동안 생긴 일들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는 희망적으로 시작한다. 가장 큰 일자리를 잃고 도시가 황폐화되던 와중에 글로벌 기업이 공장을 인수해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하니, 지역에서도 큰 희망을 품을 수밖에. 물론 홍보를 위한 멘트일 테지만 푸야오도 자기들이 상당한 일자리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며 지역사회에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 말을 실천해서 데이턴 시의 주민들을 적극 고용한다.

 

중국식 경영과 노동자들의 패배

 

갈등은 푸야오 회장이 본격적으로 중국식 경영을 도입하면서 시작된다. 장시간 노동. 중국 본사는 12시간 2교대제를 운용하고, 주말도 잘 보장되지 않는다. 어용 노조. 중국 본사의 노동자 대표 기구를 책임지는 것은 푸야오 차오 더왕 회장의 사위다. 군대식 문화. 중국 본사의 중간 관리자들은 아침마다 노동자들을 집합시켜 회사를 찬양하는 구호를 외치게 한다. 위험한 노동. 유리를 자르고 나르는 노동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할 안전장비들도 비용을 이유로 지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중국 본사 노동자들은 그걸 당연하다고 여긴다. (‘중국식이라기엔 좀 낯익은 경영법이긴 하다.)

자본주의가 진작 고도로 발달한 까닭에 노동조합이 일찍 성장한, 그래서 상식적이라고 부를 만큼은 노동문화가 안착된 미국의 조건 속에서 그 같은 시도들은 크게 논란이 됐다. 하지만 차오 더왕 회장은 최선(?)을 다해 중국식 경영을 미국 공장에 이식하려 들고 노동자들은 강력 반발하기에 이른다. GM이 있을 적 노동조합의 힘을 경험한 고참 노동자들로서는 퍼뜩 이런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다. 노동자들은 노조 조직에 나선다. 차오 더왕 회장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안 된다는 듯 노조파괴 컨설팅을 고용하거나, 임금을 올려준다며 회유책을 뿌리거나, 노동조합 생기면 공장 버리고 떠나겠다며 협박을 해대는 식으로 노조 조직을 방해한다. 결과는 어떨까. 반대 800여 표, 찬성 400여 표, 부결. 이후 노조 조직을 주도한 노동자 몇몇은 교체’(경영진은 해고를 이렇게 표현했다)된다. “노동조합의 필요를 못 느낀 젊은 노동자들이 많이 반대한 것 같아요.” 교체되어 나가는 노동자의 마지막 말이다.

다큐멘터리는 노조 조직 실패 이후의 이야기도 보여준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푸야오 경영진은 공장 자동화 시스템 구축에 돌입한다. 쉽게 말해 기계팔로 대체할 수 있는 공정은 모두 기계팔로 대체해서, 노동자 2~3명이 일해야 할 곳에 1명만 일하게 하거나 아무도 일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자는 얘기다. 노동조합이 조직되었다면, 그래서 노동자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이런 계획을 감히 언급이나 할 수 있었을까.

 

5일제에서 주52시간제까지

 

<아메리칸 팩토리>가 보여주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노동문화 성장 차이에 따른 갈등이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갈등은 한 국가 안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5일을 출근하고 주말 이틀은 쉬는 문화에 대해 생각해보자. 젊은 독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그게 무슨 문화씩이나 되냐고,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하지만 주5일제는 시행된 지 불과 15년밖에 되지 않은 제도다. 게다가 시행 초기에 논란도 많았다. 경영계가 특히 우는 소리를 많이 냈다. “지금 주 5일 근무제로 들어가기에는 대단히 빠르다(한국경총)”고 했던가.

그들 중 누구도 이제는 주5일제에 대해 이런 얘기를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상식적인 회사라면, 토요일에 출근하라는 말을 당연하게 하지는 않는다. 이제 주6일 출근은 비상식적이거나 예외적인 편에 속하게 됐다. 물론 여전히 주6일 출근을 강요하는 직장들이 제법 많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적어도 정치권이든 경영계든 6일제로 법제도를 복원하자는 식의 이야기를 감히 할 수 없다는 시대라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오늘날 갈등의 대상이 된 것이 있다면 바로 주52시간제다. 하지만 주5일제가 그랬듯, 최저임금 인상이 그렇게 되어가듯, 시간이 흐르면서 주52시간제 역시 점차 당연한 것이 되어 우리 사회에 착근될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들의 징징거림은 일종의 상수라는 얘기다. 그들은 언제나 그랬고, 그들의 말은 대체로 틀려왔다.

 

불가역적 제도를 만들려면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의 입장이 이상하다. 52시간 시행 1년 조금 지난 지금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서 내년도 50인 이상 기업으로 확대 시행되는 것에 대해서는 경제계의 우려가 크다(108일 국무회의 대통령 들머리발언)”면서 탄력근로제 도입을 의제화하고 나선 것이다. 새로운 제도가 정착되도록 독려하며 인내심을 요청해야 할 정부는 이번 결정으로 시곗바늘을 한참 뒤로 돌리고 있다.

중국 공장의 전근대적 풍경을 마주한 미국 노동자의 표정을 기억한다. “5일제를 주6일제로 바꾸겠다는 말을 누군가 한다면 우리의 표정도 과연 그러할 터다. 문화란 그렇게 발전하는 것이다. 우선 법으로 제도화되고, 당장은 잡음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지만, 시간이 흘러가며 자연히 사회가 제도에 맞춰 재구성되고, 마침내는 모두가 당연한 문화로 인식하게 된다. 52시간제에 대해 지금 필요한 것도 시간일 뿐이다.

노동조합 결성에 실패하고 해고되어 나가는 미국 노동자들의 뒷모습도 기억한다. 미국에서 당연한 것이 푸야오 공장에서만은 당연하지 않게 된 것은 노동조합을 저지한 자본이 이곳은 그래도 되는 곳이라고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자들은 푸야오의 문화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결국 노동자들은 힘을 잃음으로써 이런 파국을 맞았다. 이곳 문재인 정부가 자신들이 추진한 정책을 스스로 뒤집은 것도 그래서일 게다. 자본 앞에선 그럴 수 없지만, 노동 앞에선 그래도 되니까.

어떤 제도도 그 자체로 불가역적일 수 없으며, 다만 그것을 불가역적으로 만드는 힘이 있을 뿐이다. 무한 야근의 시대에서 주52시간의 시대로, 그리고 적당히 합의된 노동시간이 아닌 노동자 스스로가 그리는 노동시간의 시대로 가는 길을 보장하는 것은 착한 정부착한 자본가가 아니라 오직 강한 노동조합이다. <아메리칸 팩토리>의 씁쓸한 결말이 보여주는 사실들이다.

 

[연구리포트] 여성 노동자의 노동환경은 안전한가?- 2017.05 ~ 2019.06 언론보도 내용 분석 결과 / 2019.11

여성 노동자의 노동환경은 안전한가? - 2017.05 ~ 2019.06 언론보도 내용 분석 결과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이슈페이퍼 2019-05, www.nodong.org

 

정경윤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연구위원 / 선전위원회 편집

 

문제제기

 

지난 718, 고용노동부는 노동자의 인격 보호와 쾌적한 근로환경 제공을 위해 사업장 세면·목욕시설 및 화장실 설치·운영 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에는 그동안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청소 노동자와 건설 현장 여성 노동자의 열악한 세면·목욕시설, 화장실 문제와 백화점·면세점 등 대형유통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화장실 문제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1981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된 후 36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수많은 노동자가 인간의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화장실조차 보장되지 않는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고 있는 주된 대상이 여성이라는 것이다. 2007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개정으로 화장실·탈의실 등의 시설을 설치하도록 하였으나 성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적용한 문제를 확인할 수 있으며, 이와 함께 여성 다수가 종사하는 직업에 속하는 매장 판매직의 노동안전과 건강문제가 여전히 법제도적으로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나라 15세 이상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꾸준히 증가하여 20196월 현재 54.4%로 경제활동인구는 12,307,000명에 이르고 있다. 건설업 여성 노동자, 백화점·면세점·대형마트 판매직 노동자, 학교급식 노동자, 병원간호사 등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관련한 내용들이 언론보도를 통해 이슈화되어 각 사업장들의 노동환경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여성 고용 확대는 정부의 주요 노동 정책에 속한다. 그리고 여성은 임신·출산의 당사자로서 저출산 정책 대상이기도 하며 저출산 위기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처럼 몰리기도 한다. ‘정부의 여성 고용 확대 촉진-여성 노동 안전 문제-저출산 위기의 연결고리에서 가지는 정부 정책의 문제에 대한 질문과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기에 노동안전보건문제에 초점을 두고 산업·직종별 여성 노동자 분포와 특성, 그리고 어떤 노동환경과 문제를 겪고 있는지 살펴본 후 개선을 위한 정책적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분석 대상은 고용노동부와 통계청 자료, 그리고 20175월부터 20196월까지 주요 언론에 보도된 여성 노동자의 안전, 건강과 관련한 기사자료다. 이 글을 통해 기존의 사안별로 각 사업장의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접근하던 것을 넘어 성인지적 접근으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산업·직종별 여성 노동자 분포와 특성

 

산업별 여성노동자 분포 현황을 살펴볼 때, 전체 산업 중에서 여성 노동자 수가 많은 상위 10개는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24.2%)>‘제조업’(18.7%)>‘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지원서비스업’(11.7%)>‘도매 및 소매업’(10.6%)>‘전문, 과학 및 기술서비스업’(5.9%)>‘교육서비스업’(5.7%)>‘숙박 및 음식점업’(4.6%)>‘금융 및 보험업’(4.5%)>‘출판, 영상, 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3.2%)>‘협회 및 단체, 수리 및 기타 개인서비스업’(2.8%) 순이다.

2018년과 10년 전인 2008년을 비교할 때, 여성 노동자 증가율이 가장 높은 산업은 통신업이 포함된 출판, 영상, 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397.7%)이고, 20년 전인 1998년을 비교할 때 여성 노동자 증가율이 가장 높은 산업은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625.3%)이다.

1998, 2008, 2018년 기준 여성 노동자가 50% 이상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을 살펴보면, 1998년은 보건업 및 사회복지사업’(67.0%), 2008년은 보건업 및 사회복지사업’(73.5%)숙박 및 음식점업’(54.6%), 2018년은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81.6%), ‘숙박 및 음식점업’(58.7%), ‘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지원서비스업’(53.7%), ‘교육서비스업’(52.0%)으로 나타난다.

20년 전에 비해 여성이 50% 이상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은 1개에서 4개로 늘었으며 주로 서비스업에 해당된다. 특히 여성 노동자 58% 이상 분포를 여성 집약형 산업이라 구분할 때,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숙박 및 음식점업은 대표적인 여성 집약형 산업이라 할 수 있다.

[그림1 2018년 직종 대분류별 여성 노동자와 비정규직 비율(단위 %)]

여성이 집중된 직종의 대표적인 특징은 비정규직이 많은 직종이거나 저임금 직종이라는 것이다. [그림 1]2018년 기준 직종의 대분류별로 여성 비율이 높은 순위는 서비스 종사자’(66.9%), ‘판매 종사자’(50.8%), ‘단순노무종사자’(49.5%), ‘사무종사자’(48.6%),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48.3%) 순이다. 이 중 1~3순위인 세 직종의 비정규직이 전체 비정규직의 57.4%를 차지하고 있다(직종 중분류별로 볼 때에는 이미용·예식 및 의료보조서비스직’, ‘방문·노점 및 통신 판매 관련직’, ‘가사·음식 및 판매 관련 단순노무직이 포함된다).

 

[그림2 2017년 산업별 여성노동자·여성상용노동자·여성임시일용노동자 비율(단위 %)]

이와 같은 특징은 여성 비율이 높은 산업 순위별로 임시일용노동자 중 여성 비율 현황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림 2]를 보면, 전체적으로 여성 비율이 높을수록 상용노동자 중 여성 비율도 높지만 임시일용노동자 중 여성 비율은 산업의 여성 비율보다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여성 비율이 높은 직업일수록 비정규직이 집중되고 임금수준이 낮아 고용의 불안정성이 심하다고 볼 수 있다.

 

언론 보도 분석결과와 노동안전보건 관련 법제도 상의 문제

 

20175월부터 20196월까지 언론에 보도된 여성 노동자 건강 문제와 관련된 기사들을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났다. 첫 번째, 16개 사례 중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4)이 가장 많았고 건설업, 제조업에 속한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서비스직에 해당되었다. 하지만 서비스직 노동자 비중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노동은 법제도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고, 여성 노동자가 집중된 서비스 산업·직종에서 나타나는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관련 법률에서 배제되거나 주변화되어 있다. 두 번째, 일반적으로 고객을 대하는 직종의 경우 감정노동이 주요 이슈로 제기되고 있고, 혼성 직종과 남성 집중 직종의 경우 성희롱 문제가 피해자의 자살이라는 사건을 통해 그 심각성이 드러나고 있다. 직무, 직급, 고용관계 등이 성차별과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중삼중의 차별이 여성에게 집중된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대한민국헌법의 여성 노동의 특별한 보호(32)와 모성의 보호(36)에도 불구하고 임신·출산에 유해한 작업환경에 대한 안전기준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인한 불임, 유산, 선천성 장애아 출산에 대한 고통을 노동자 개인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 노동자의 유산비율 현황을 통해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정부의 저출산 대책에서 여성의 고용 확대 정책이 주요하게 차지하고 있으나, 임신·출산과 관련하여 여성 노동자의 건강에 대한 보호조치 정책은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증가함에 따라 그동안 남성 중심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정책에 대해 남성뿐 아니라 여성의 안전과 건강 역시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남성과 여성은 신체적·심리적·사회적으로 차이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차이는 동일한 환경에 놓이더라도 남성과 여성의 안전과 건강에 다르게 작용한다.

그러나 노동안전보건 관련 법제도는 산업안전보건법근로기준법으로, 현행법에서 작업장에서의 여성 노동 안전 규정은 대부분 임신 중인 여성을 대상으로 할 뿐, 일반적으로 여성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작업장에서의 위험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구체적으로 근로기준법에서는 임신·출산과 관련한 모성보호에만 집중하여 특정 산업·직종의 제한, 근로시간 제한, 휴가제도를 두고 있고,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차이와 특수성을 고려한 내용이 전혀 없다.

이와 같은 문제는 노동안전보건 관련 법제도가 전통적으로 남성이 집중되어있는 위험 작업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성별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노동안전보건 정책은 업무 관련 위험으로부터 발생하는 여성과 남성 노동자의 사고, 부상, 질병의 차이를 무시하게 되고, 심하게는 여성이 수행하는 작업은 일반적으로 위험성이 적어 안전하다고 인식하게 하여 여성들이 작업장에서 당하는 사고, 부상, 질병들을 과소평가하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엔 젠더 간 건강과 안전상의 불평등, 즉 젠더 격차를 강화할 것이다.

산업재해 현황에서 성별에 따른 재해자수 비율을 보더라도 2008~201710년간 여성 재해자수는 평균 19.6%에만 머물러 산업재해 보상제도에 성편향과 성 불평등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업재해에 대해서도 전통적으로 남성이 집중되어있는 제조·중화학·건설업 중심으로 안전기준과 위험성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어 비전통적인 산업·직종에서의 노동안전 기준과 위험성 평가가 취약한 상황이다.

예를 들어 많은 여성들이 직무분리, 하위직급, 비정규직 등에 따른 직장 내 권력관계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서비스직의 경우 고객에 의한 감정노동과 성희롱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도시가스점검원의 경우 고객 방문 서비스 작업을 할 때 고객의 집에서 성희롱·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된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업무와 관련된 위험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더구나 임신·출산에 유해한 작업환경에 대한 안전기준이 없어 재생산권과 관련한 생식 건강을 위한 안전기준도 취약하다.

 

정책적 시사점

 

여성의 열악한 노동안전과 건강 문제는 노동시장에서의 낮은 지위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성별 차이를 고려한 작업장 안전 지침을 이미 국제노동기구 ILO에서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여성 고용 확대와 저출산에 대한 정부의 대책에서 여성의 노동안전과 건강에 관련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여성 노동안전보건의 문제 해결 없이 저출산 문제는 개선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여성의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별 차이를 고려한 성인지 노동안전보건 정책이 필요하다. 헌법의 성평등 이념에 따라 양성평등기본법에서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양성평등 실현 목적을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성 주류화 조치”, “성별영향평가”, “성인지예산”, “성인지 통계”, “성인지 교육등이 이에 해당한다. 노동안전보건 정책에서 이러한 기본시책들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여성의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인지 노동안전보건 정책으로 초점을 바꿔야 하며, 이상의 기본시책들을 시행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 과거의 노출이 현재의 피해를, 현재의 노출은 미래의 피해로 / 2019.11

과거의 노출이 현재의 피해를, 현재의 노출은 미래의 피해로

-후루야 수기오 (동경, 일본석면대책전국연락회의(BANJAN) 사무국장)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아시아직업및환경피해자권리네트워크(ANROEV, 이하 안로아브) 서울대회 둘째 날 인 1029일 늦은 오후 바쁜 일정 중 겨우 인터뷰 시간을 할애 받았다. 먼저 이번 서울대회는 안로아브 20주년,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ABAN, 이하 에반) 10주년으로 뜻깊은 해인데, 조직위원이기도 한 후루야 수기오 활동가를 직접 만나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통역은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이기도 한 스즈키 아키라 님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

"에반 회의는 설립 이후 이번이 일곱 번째입니다. 실은 여섯 번째 회의를 2015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었는데, 200명이 모였습니다. 사람 수가 너무 많아서 아시아 전체가 모여서 이야기하기보다 동남, 남, 동아시아로 구분하여 소지역 회의를 하는 것이 오히려 논의가 잘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노이 지역별 회의에서 호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후 소지역 회의를 몇 차례 진행해왔습니다."

지역별회의를 여는 취지는 이번 안로아브 참가자 중 절반 가까이가 에반에도 참석하는 분들이라서 안로아브 회의에 앞서 에반 회의를 하였습니다. 에반은 1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10년 전과 지금 어디까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현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 10년 활동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석면대책전국연락회의(BANJAN, 이하 반잔)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아시아에서 에반 활동을 하면서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BANKO, 이하 반코)에도 영향을 준 그가 의사소통, 물리적 거리 등 힘든 요소가 많은 국제연대활동에 특히 노력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일본에서 1987년 반잔이 설립되었고, 2004년 석면이 금지되었지만 그 사이 일본의 석면추방운동도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계기가 된 것은 프랑스에서 1997년 석면사용을 금지하였고, 석면과 관련해서 처음으로 세계대회가 열린 2000년 브라질에서의 세계석면추방대회에 참가였습니다.

프랑스가 석면을 금지하고 나서 유럽 여러 나라가 석면 금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본은 가만히 있으면 석면추방과 점점 멀어져서 그대로 상황을 답보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초조해졌습니다. 그래서 2004년 도쿄에서 석면추방세계대회를 개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해 세계의 흐름의 격려와 자극을 받아서 일본도 석면 금지가 됐는데, 저희가 세계적 흐름에서 좋은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아직 석면 금지가 되지 않은 나라에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후루야 수기오 사무국장에게 이렇게 석면추방 활동을 열심히 하게 된 계기나 과정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는데, 한국에서도 진행하는 보건의료학생들의 노동보건 현장 활동과 유사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일본 학생운동의 마지막 세대라고도 할 수 있고, 사회 변혁에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도 가지던 중 가나가와 산재직업병센터가 그 시기 의대생들이 너무나 노동현장을 모른다는 문제의식으로 ‘노동현장(field work)’을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였습니다. 의대생은 아니었지만, 그 노동현장(field work)에 참여하게 되면서 이러한 직장에서도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대학 졸업 후 도쿄 옆 가나가와 현의 산재직업병센터 상근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산재직업병 관련 활동을 하였고, 1989년 전국안전센터를 만들게 되면서 도쿄로 상근활동 파견을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반잔 활동도 같이 하게 된 것이지요."

지난 10월 28일, 29일 서울대에서 열린 제17회 아시아직업환경피해자대회장에서 후루야 수기오(우측에서 두번째) 활동가가 아시아의 여러 활동가들과 '기업살인 이제그만'이란 구호가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반잔 설립 초기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가 중심이었으나 현재는 석면피해자단체가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들은바 있기 때문에 중심축이 변화한 과정,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역시 아픔이 큰 사건이자 계기였다.

 

"반잔 설립 초기에는 피해자를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직업병센터가 전화 상담을 하면서 피해자를 발굴하기도 했지만, 환자 만나는 것이 어려웠죠. 2002년 중피종 피해유가족 2명이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고, 2004년에 처음으로 석면피해유가족모임이 결성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반잔이 지원해가면서 그런 모임을 만들었는데, 중심이 되는 피해유가족모임이 지금은 반잔을 끌고 나가는 위치에 있습니다.

2005년 일본 아마나사키시 소재 석면 수도관을 만들었던 쿠보다 회사 주변의 지역주민 중에서 중피종이 발견되면서 쿠보다 쇼크를 겪었습니다. 이 사건은 두 가지 측면에서 획기적인 의미가 있어요. 첫째, 그때까지만 해도 공장 안 노동자와 공장 밖 지역주민과는 연대가 없었어요. 그런데 석면환자 가족으로 구성된 석면피해가족모임이 쿠보다 주변 지역주민 피해자가 연대하면서 공장 안팎의 분절을 뛰어넘는, 일본 현대사에서도 괄목할만한 사건이었어요. 그 자체가 언론을 통해 중피종이 석면과 연관 있다고 보도되면서 이미 존재했던 지역의 환자들이 각성하게 된 거죠. 중피종을 석면 공장노동자의 병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본인이 석면을 다루지도 않았는데 중피종에 걸린 거잖아요. 그래서 지역주민들이 나도 나도 나서면서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거죠.

두 번째는 쿠보다 회사와 공해피해자가 직접 교섭해서 구제한 보상제도를 만든 거예요. 일부에서는 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냐는 문제 제기도 있었는데, 소송은 대법원까지 10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려요. 소송이라는 것은 그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소송 없이 해결하면 더 바람직한 거잖아요. 쿠보다 쇼크로 자율교섭으로 보상이 이루어져 언론화되면서 많은 피해자가 나타나고, 그 환경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서 일본에서 석면피해구제법이 제정되었어요. 이러한 해결방식은 앞으로 화학물질이나 환경피해에 있어서 직접 교섭을 통해 해결방안을 만드는 하나의 모델이 됐다고 생각해요."

 

이쯤에서 석면피해구제법이 제정된 일본과 한국, 두 나라 제도는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를 물었는데, 한국 산재보상제도의 문제점까지 짚어내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꽤 닮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공통적인 문제는 두 나라 모두 산재보상에 비하면 아직 보상내용이 낮은 수준이라는 겁니다. 다른 점은 석면피해 정책의 문제이기도 한데, 한국은 석면피해구제법에 의한 구제 건수에 비하면 산재보상법에 의한 산재인정건수가 아주 적은 거예요. 일본을 예로 들면, 구제법으로 보상받은 건수와 산재보상법에 의한 인정 건수가 거의 비슷해요. 그런데 한국은 구제법보다 산재인정 건수가 1/10도 안 돼요. 저는 석면피해자의 70~80%는 산재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피종을 예로 들자면, 진단만 있으면 구제법은 무조건 인정돼 산재 인정받는 것보다 쉬워요. 아시다시피 업무관련성을 증명해야 되기 때문에 까다롭고 오랜 시간이 걸리죠. 그래서 산재신청까지 안 가는 거죠. 어쨌든 한국의 석면피해 산재인정 건수가 적다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산재인정건수와 구제법에 의한 구제 건수가 비슷한 일본의 노동자 조직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연관질문을 했는데, 한국에서도 시도해볼 만한 ‘퇴직자노조’라는 개념을 접할 수 있었다.

 

"석면피해가 재직 중보다 퇴직 후에 나타나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석면피해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쿠보다 사건 이후 석면피해를 다루는 노조도 생겼지만, 노조가 석면피해를 다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시민사회단체와 같이해야 하는 것이지요. 일본은 조선소에서 일하고 퇴직한 경우 노조 조합원으로 남아있어요. 퇴직자회가 있는 날이면 모임 있는 곳에 검진 차량으로 검진을 하고, 이런 활동의 성과로 ‘퇴직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어요.

퇴직자가 전 사업주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한 거예요. 중앙노동위원회와 대법원까지 간 결과, ‘전 사용자는 건강문제에 있어서는 교섭에 응해야한다.’라는 판례를 얻었어요. 퇴직자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법적으로 인정한 거죠. 아스베스트유니온이라는 석면노조는 퇴직자 노동조합으로 큰 조직은 아니에요. 교섭권에서 법적으로는 아직 퇴직 노동자 당사자만 조합원으로 인정하고 있고, 유가족은 가입할 수 없어요.

석면에 의한 보상은 산재보험이 적용되면 일본은 평균임금의 80%를 휴업급여로 받아요. 모자라는 20%는 노사협약으로 보전 받는데, 석면은 보통 퇴직 후에 나타나잖아요. 퇴직 후에도 산재신청을 할 수 있어서 퇴직자 노동조합과의 협약으로 퇴직 후 요양기간동안도 100%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쿠보다 사건을 계기로 다른 노조에서도 협약으로 맺고 있죠."

 

더불어 석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은 대체 물질을 사용하는 것일 텐데 어느 정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물었다.

 

"2004년 석면금지가 되기 전, 사업주들이 대체품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사용하게 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해왔던 거예요.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로켓의 가스켓이나 잠수함의 일부 부품의 경우 예외사항으로 두고 있었거든요. 2012년 한국도 비슷한 시기에 된 것으로 아는 데 예외까지 포함해서 완전금지가 됐어요. 그것은 대체가 끝났다고도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석면 형성판이라는 게 있어서 튼튼했던 것이 대체품을 사용하면 약해져요. 그래서 강화플라스틱을 쓰게 되는 것처럼 대체품이 아니라 사용하는 물질이 변경되는 경우도 있어요."

 

끝으로 한국의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나 석면피해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렸다.

 

"한국도, 일본도 석면사용 금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석면문제가 끝났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피해는 지금부터 늘어납니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석면피해는 과거의 노출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고, 현재의 새로운 노출은 미래에 피해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석면추방운동은 환경 분야 활동가들의 몫뿐만 아니라 노동조합활동의 역할도 크다는 것을 알고 분발했으면 합니다."

[노안 활동가에게 듣는다] 화학물질의 위험으로부터 노동자와 시민이 안전한 지역을 만들자! / 2019.11

화학물질의 위험으로부터 노동자와 시민이 안전한 지역을 만들자!

- 이윤수 화섬세종충남본부 노안위원장 인터뷰

 

박기형 상임활동가

 

지난 8<일터>에서 충남플랜트노조의 노안활동을 소개한 적이 있다. 한화토탈 대산공장의 유증기 유출 사고가 계기였는데, 그때는 석유화학공장의 건설·정비 등에 관여하는 플랜트 산업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문제에 주목했었다. 이번 11<일터>에서는 석유화학공장에서 일하는 또 다른 노동자, 즉 석유화학 제품의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안전·문제에 관해 다뤄보고자 한다. 다시 한화토탈 대산공장 유증기 유출 사고의 대응 과정을 돌이켜보며 석유화학단지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석유화학단지에서 일상적으로 어떻게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을 지켜낼 수 있을지 등을 이윤수 화섬세종충남본부 노안위원장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중대재해 대응, 기본에 충실히! 규정대로 제대로!

 

“안녕하세요. 저는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 세종충남지역본부 노안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윤수라고 합니다. 한화토탈에서 1996년 10월에 입사한 후 지금까지 23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가 속한 한화토탈 노동조합은 2014년 11월 28일에 발촉이 되었습니다. 현재 현장에는 852명의 조합원이 있고, 상집과 대의원을 포함해서 총 55명이 간부로 있습니다. 제가 한화토탈에서 맡은 업무는 생산부 중 벤젠·톨루엔, 파라자일렌을 만드는 일로, 조정실에서 근무했습니다.”

 

이윤수 노안위원장은 지역본부로 옮기기 전에 한화토탈 수석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지난 5월 중순 발생했던 한화토탈 대산공장 유증기 유출 사고에 적극적으로 대응했었다. 그 결과, 환경부와 고용노동부 등 관계기관 합동조사단이 꾸려졌고, 지난 726일 사측 과실로 인한 사고라는 것이 밝혀졌다. 합동조사단의 발표에 따르면, SM 폭주반응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공정안전관리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채 SM이 다량함유 된 내용물을 전사유(殘渣油) 탱크로 이송한 한화토탈의 과실과 보일러가 정상 가동되지 않은 상황이 맞물려 유출사고가 발생했다. 이윤수 노안위원장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중대재해 대응의 기본적인 사항들만 지켰어도 피해가 이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라 지적했다. 그러면서 석유화학공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에 대응해야 하는 기본수칙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석유화학공장 내에서 화학물질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다음과 같이 대응해야 합니다. 첫째, 사고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즉각 생산부와 안전팀에 대피신고를 해야 하고, 생산부와 안전팀은 공장 내 모든 노동자에게 사고상황을 알리기 위해 대피방송을 해야 합니다. 사내 방송이든, 문자나 카톡이든 모든 채널을 통해 알려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사항입니다. 둘째, 생산부 직원들이 사고공정에 투입되어 사고 범위 및 정도를 줄이기 위해 생산설비를 운전하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생산부의 각 조장을 긴급호출하여 상황을 공유하고, 추가 사고 위험이 없는지 점검하도록 하며, 사고가 확인된 공정에서는 확산방지를 위해 생산공정 차단 등 긴급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셋째, 환경부와 고용노동부, 지자체 등 관계기관에 신고하여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합니다.”

 

화학물질은 단지 공장 내의 노동자만이 아니라 인근 지역 시민들의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기에, 사람들의 대피와 화학물질의 확산방지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화학사고의 경우 15분 이내에 신고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517일에는 사측에서 늑장 신고를 했으며, 근무자 대피방송 및 경보가 1시간 이상 지난 뒤에야 이뤄졌다. 초동 대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초동 대처에서 생산부 직원들의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반대로 생산부 직원들이야말로, 사고 위험에 가장 가까이 그리고 직접 노출된다. 생산부 직원들은 신속한 사고대응 및 보호조치를 위해 안전 교육을 받는다.

 

“근무 3년 차까지 소방훈련을 받아요. 그리고 사내에 기동소방대라는 것도 운영합니다. 5개 조로 교대근무를 하고, 방연복 등 보호장비도 지급받습니다. 생산공정별로 안전보건교육 및 사고대응교육을 받아요. 설비별로 유증기 유출이나 폭발 등 긴급상황 대처 시나리오가 있어요. 조정실에서 작성하고 생산부에서 보관하죠. 생산부에서는 이에 근거해서 각 공정에 해당하는 현장과 조정실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훈련해요. 한화토탈의 경우 공장마다 1달에 한 번씩 합니다. 공정별로는 1년에 한 번씩 한다고 보면 됩니다. 실제 대응 과정에서 소방서에서도 출동하지만, 해당 공정에서 어떤 화학물질이 유출되는지, 그게 어떤 위험이 있는지는 생산부 직원이 제일 잘 알죠. 만약 소방관이 그런 정보 없이 함부로 물을 쏘다가 사고가 더 커질 수도 있어요. 그렇기에 생산부 직원들의 안전보건교육 및 사고대응교육이 정말 중요하죠. 그리고 예방 및 대응 매뉴얼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이윤수 노안위원장은 잘 만들어진 대응 시나리오가 있음에도 사고위험이 커지는 이유는, 그것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갖춰진 규정에 따라 대응하면 되는데, 화학공장의 흐름 공정이 갖는 특성상 설비가동을 멈추게 되면 이윤손실이 나므로 이를 피하고 이윤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들이 무리하게 설비가동을 하다가 사고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윤수 노안위원장은 사고예방 및 대응이 실질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선 공정안전관리절차 및 사고대응 시나리오를 제대로 준수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 이윤수 화섬세종충남본부 노안위원장

 

현장점검과 산보위 활동, 끈기로 오기로 해나가기

 

그렇다면, 사업장 내에서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기 위해 어떤 일상 활동이 이뤄지고 있을까? 우리가 그동안 석유화학단지에서 벌어진 중대재해, 예컨대 불산누출이나 sm누출 등의 사고는 위험의 범위와 정도가 물론 크지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평소에 설비점검 및 안전조치를 잘한다면, 중대재해 발생도 줄어들 것이다. 이윤수 노안위원장은 이러한 일상적인 노동안전보건 활동이 갖는 중요성을 잊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하려면, 안전보건 의제에 참여할 수 있는 창구인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이하 산보위)를 잘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화토탈에서도 산보위를 하고 있어요. 제가 지역본부로 오기 전에는 노동안전부원을 맡은 부장과 차장 각각 2명에다 저까지 포함해 총 5명이었죠. 산보위에서 다를 의제를 발굴하기 위해서 각 부서별로 담당 구역을 조사해서 안전보건 관련해 사업장 내 문제점이 있는지 점검하는 활동을 계속했어요.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현장순회점검을 하든 산보위를 하든 형식적이지 않게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과거 삼성이 공장을 소유 및 운영하고 있던 시절부터 합동현장점검은 있었지만, 사측이 안내하면 노동자들이 따라다니는 형태로 형식적인 수준에 그쳤었거든요. 노동자들에게 정말 필요하고 실질적인 개선 효과가 나도록 해야 해요.”

 

“저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하 명감)을 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총괄 공장장 및 부사장과 함께 공장을 하나씩 돌았어요. 이때 공장 순회 전에 저 나름대로 준비를 해갔죠. 만약 1월에 A공장 점검이라면, 12월에 미리 가서 조합원들에게 해당 공장에서의 애로사항이나 설비 등의 문제점을 파악합니다. 그리고 조합원들에게 의견을 취합해서 개선조치 및 개선시기 등이 담긴 안을 작성합니다. 이후 1월에 사측과 함께 점검하면서 해당 안을 가지고 지적 및 요구를 하는 거죠. 이때 노조 측 인사 빼고 나머지는 거의 다 사측 인원들이에요. 환경안전팀 임원, 팀장, 직원들 포함해서 4~5명, 생산부 임원과 팀장, 직원들 포함해서 4~5명 등 총 10~12명하고 함께 가는 거죠. 아무래도 노조 측 참여인원이 적으니 불리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미리 조합원들의 의견과 주요 사항들을 파악하는 게 중요한 거죠. 이렇게 순회하면서 위반사항이나 개선사항을 지적하고, 추후 지적된 게 반영 안 되면 노동부에 신고해서 개선하라고 압박하죠. 이를 위해서 조사 자료도 체계적으로 정리해놓고요. 안전 및 보건 조치를 취하는 시기도 딱 정해두고 요구해야 해요. 그래야 압박하든 협상하든 우리가 주도할 수 있죠. 만약 현장에서 바로 조치가 어려운 사항이면, 산보위로 의제화시키죠. 산보위에서 이런 의제를 정기적으로 다루면서 일상적인 예방활동을 하는 거예요.”

 

이윤수 노안위원장은 이 활동의 성과 중 하나로 공정을 통해 제품이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 테스트 하는, 샘플 작업의 개선조치를 언급했다. 샘플 작업을 할 때, 벤젠이나 sm 등 화학물질과 공간적으로 분리되지 않은 채 근거리에서 증기 등에 노출된 채 샘플을 빼왔던 오픈 시스템의 문제점이 조합원들과의 면담에서 드러났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화학물질에 최대한 노출되지 않은 상태로 추출할 수 있게 하는 클로즈 시스템으로 변경하도록 했다. 정기적으로 현장점검을 하고 이때 발굴된 의제를 산보위를 통해 협의함으로써 사업장 안전 수준을 높일 수 있었다. 설비 개선에 비용과 시간이 드는 문제에 대해 노조가 사측과 면밀히 협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산보위는 안전보건 활동을 해나가는 데 필수적인 제도였다.

 

“일상적인 점검 활동에 성실히 참여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점검 활동에서 노조의 목소리가 힘을 받기 위해서는 산보위를 비롯해 사측과 함께 안전보건 의제를 다루는 모든 자리에서 노조가 준비가 잘 되어 있고 실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해요. 한화토탈의 경우에는 공정안전보고서 채택을 놓고 3달 반가량 줄다리기를 해었죠. 석유화학공장에서는 공정안전보고서를 제대로 검토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공장을 새로 짓는다든지 일정 기준 이상의 설비를 확장한다든지 하면, 공정안전보고서를 작성해야 해요. 이는 산보위의 심의안건입니다. 의결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노조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공정안전보고서가 채택되지 않고서는 설비를 증축 및 신설할 수가 없어요. 더구나 공정안전보고서가 생산과정 상의 안전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중요한 문서죠. 그렇기에 면밀하게 검토해야 해요. 검토할 수 있는 자료의 한계도 있고 활동시간이나 인력도 부족했지만, 이 문제를 놓고 사측과 치열하게 부딪히는 과정에서 노안활동의 중요성도 각인시켜 줄 수 있었어요. 나아가 노조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는 게 좋겠다는 인식도 심어줄 수 있었죠.”

 

공장과 공단을 넘어 지역과 함께 하는 노안활동 만들기

 

앞서 얘기했듯이, 석유화학단지의 사고가 빈번하지 않지만, 한 번 일어나면 규모가 크고 시민안전도 위협받기 때문에, 지역차원의 대응 및 예방활동 또한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지역의 시민단체들과 노동조합이 뭉쳐서 서산화학물질감시학교를 만들었다. 시민 대상으로 유해화학물질의 종료와 위험성, 화학물질 유출 신고 절차, 사고 발생 시 지역 차원 공동대응 등을 교육하려 한다. 시민들이 화학물질의 관리 및 사고 예방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갖추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 외에는 석유화학단지 내에서 사업장 간 공동대응에 대해서도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서산에선 한국노총이 있는 현대오일뱅크,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이 있는 KCC 대죽공장, 롯데케미칼 등에서 노안담당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이고 있어요. 한 해 계획을 세워서, 안전보건 관련 교육을 하고 공단 내 안전보건 의제(사안 별 탄원서 제출 등)에 대해 회의도 하고, 각 사업장 내 활동(산재처리, 안전점검 활동, 공정안전보고서 검토, 작업환경측정 사업 등)도 공유합니다.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 새움터, 건강과생명을지키는사람들 등이 함께하고 있어요. 지역의 여러 단위들과 함께 공동대응 체계를 마련하고자 논의 중입니다. 나아가 지역명감 제도를 활용해보려고 시도 중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역 내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의 역량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에요. 더 많이 배우고, 서로의 경험을 나눠야죠. 노안활동가 대회와 같은 자리도 소중하죠. 만나서 고민도 토로하고, 네트워크도 형성하고. 각자의 노안활동 역량만 올라가는 게 아니라, 함께 노안활동의 수준이 높아져야죠. 그래야 누군가 열심히 하다 소진되는 반면 노안활동의 토대는 갖춰지지 않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 9월에 한화토탈 대산공장에서 공장 외부벽면과 지붕을 수리하던 하청업체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인터뷰 막바지에 이윤수 노안위원장은 이를 떠올리며, 지역공동대응체계 마련을 위한 노력과 함께 산업안전보건법의 의무 주체인 사업주에게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책임을 묻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헀다. 처벌 수준은 미미하며, 안전 및 보건 조치마저 다단계 원하청 구조를 통해 원청이 의무를 지지 않도록 하는 것 또한 사업장의 안전을 위협하는 주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앞으로 지역 차원에서 위험의 외주화 금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의 의제를 지역 내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인식하고 지지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노안활동가들만이 해서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겠죠. 우리 모두 함께 나란히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 싸워갈 수 있도록 노안활동가들이 앞서고 뒤서며, 노안활동을 지역의 중요 의제로 만들어 갑시다!”

 

[산재보험 톺아보기] 산재보상보험 전면 적용, 어디부터 어떻게 : 산재보험 적용 확대 3 / 2019.11

산재보상보험 전면 적용, 어디부터 어떻게 : 산재보험 적용 확대 3

 

최민 상임활동가

 

지난 두 번의 기사를 통해 산업재해보상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1인 자영업자가 여전히 많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일하는 사람 누구나 일하다 다치거나 병들었을 때 치료받을 수 있고, 다시 일할 수 있도록 지원받는 것은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이다. 혹시라도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게 다치거나 사망한 경우에도 충분한 보상이 따르고, 사회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믿음은 노동에 기초한 사회가 운영되기 위한 기반이다. 그런 점에서 산재보험 전면 적용은 더 이상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과제가 되어야 한다.

 

산재보험 적용 확대, 기준과 원칙은?

 

논의는 이제, 산재보험 적용을 어떤 기준으로, 어떤 순서로, 어떤 속도로 확대해나갈 것인가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박찬임은 2천 년대 초반부터 산재보험 적용 확대 방안의 원칙을 몇 가지로 제안한 바 있다. 첫째, 보호의 필요성이 높은 업종부터, 둘째, 산재 보험 적용확대로 실질적 보호 수준이 높아질 수 있는 집단부터, 셋째 이미 산재보험이 적용되고 있는 노동자와의 형평성, 넷째, 한국보다 더 넓은 적용범위를 가진 외국 산재보험의 적용 범주를 고려하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 따라 제안하는 적용 확대는 현 적용제외 노동자를 먼저 적용 확대하고, 그다음 농민 및 위험작업 종사 자영업자와 특수고용관계 종사자, 마지막으로 일반 자영업자의 순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산재보험 적용 범위는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이슈가 된 특정 직종, 업종을 기워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면적인 적용 확대를 목표로, 일정한 우선순위 원칙에 따라 확대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징수체계의 개편 등도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적용제외 노동자 전면 적용부터

 

가장 시급한 것은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적용되지 않는 적용제외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을 전면 적용하는 문제다. 농업, 임업, 어업 및 수렵업의 법인이 아닌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가구 내 가사서비스 노동자 등이다. 농업, 어업, 임업은 모두 산업재해율이나 사망만인율이 높은 업종이다. 특히 임업은 2018년 기준 사망만인율이 1.11로 전체 산업 평균 0.51명의 2배가 넘는 위험한 업종이다. 위험한 업종의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에게 사업장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사회보험을 똑같이 보장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일하며 발생하는 사고나 재해 위험을 사회적으로 나누어 책임진다는 산재보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국가 간 협약에 따라 입국해 일하는 농·임어업의 이주노동자 중 산재보험 대상이 되지 않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정부는 적용 제외 문제에서 노동자임에도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 노동자들의 문제를 최우선으로 다루어야 한다.

 

공무원 재해보상법, 선원법,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등 타법으로 업무상재해를 보상받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과 보완이 필요하다. 보상을 사회보험 대신 특수한 법으로 따로 규율할 때는, 이로 인해 해당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산재보험이 지속적인 관심과 사회적 감시, 투쟁으로 개선되어가는 사이 이들 분야에서는 개선이 없거나 행정적 수준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과로에 의한 뇌심혈관질환 인정 기준을 먼저 주 52시간으로 채택했던 공무원재해보상법 하에서 뇌심혈관질환을 업무상재해로 인정받는 것이 더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는 보편적 접근으로

 

그나마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최근 적용 확대 논의의 중심이 되는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해서도 좀 더 보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지난 107일 고용노동부는 특수고용노동자와 중소사업주 산재보험 적용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고용노동부는 스스로 특수고용 노동자들과 중소기업 사업주 다수가 산재보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내놓은 개선안이다. 내년 7월부터, 방문판매원, 방문교사, 대여제품 방문 점검원, 가전제품 설치기사, 화물차주 등 약 274천 명의 특수고용노동자가 추가로 산재보험 적용을 받는다.

 

기존 산재보험 적용 대상인 특수고용노동자가 47만 명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큰 폭의 변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여전하다. 특수고용직 규모는 정부 추산으로 150만 명에서 최대 221만 명에 이르고, 지속해서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이번 개선안으로 확대된 대상을 모두 포함해도 75만 명도 되지 않는다. 규모도 문제지만,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전히 특수고용노동자 전체를 산재보험 대상으로 하겠다는 계획 없이, 일부 직종 그것도 문제가 제기되는 직종에 대해서만 땜질식으로 늘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직종이 포함되더라도 전속성 등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가입 대상이 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도 많다. 특례 대상인 대리운전 노동자는 전국적으로 2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주로 한 사업장에 소속되어야 한다라는 규정 때문에, 가입 대상이 2019년 기준 12, 가입된 사람은 8명에 불과하다.

 

이런 장애물을 모두 통과해 당연 적용 대상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적용제외 신청이 가능하도록 하는 점도 큰 문제다. 임의 가입이 가능한 자영업자와 달리 해당 직종의 특수고용 노동자는 당연 적용 대상이라고 하지만, “적용제외 신청이 가능해 사실상 임의 가입과 다를 바 없다. 지난 기사에서 살펴본 대로, 계약 당시 사업주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기를 설득하거나,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적용제외 신청서를 받아 가는 경우도 많다. 이러니 기존에 산재보험을 적용받아 온 9개 직종 가입률은 올해 6월 기준으로 13.7%에 불과하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보편적 권리로 접근되기 위해서는 전속성 폐지 등 개념 규정을 정비하고, 적용제외 신청 제도도 폐지해야 한다. 더불어 필요한 경우 산재보험 징수 체계도 개편해야 한다. 이미 민간 보험들은 배달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건별 산재보험료를 부과하는 등 변화된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산재보험 사각지대에서 이윤을 얻어가고 있다. 이윤이 목적이 아닌 사회보험의 견지에서, 이렇게 변화된 노동환경에서 적절한 보험료 부과와 징수 방편이 무엇일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 모두의 보편적 권리로

 

보험료 부과와 징수 체계 개편 논의는 특수고용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수고용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뿐만 아니라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일하는 방송, 영화, 건설 등의 불안정한 노동자가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누가 정확한 고용주인지 알기 어려운 복잡한 고용 관계가 늘어나면서 특수고용뿐 아니라 다양한 고용관계와 비용의 외부화가 벌어지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도급인이 산업안전의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법이 진전되어 온 것처럼, 안전과 관련된 비용인 산재보험에 대해서도 원청, 바로 진짜 사용자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 고용 관계에만 기초한 산재보험은 여러 일자리를 이동하거나,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오늘날의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일하는 기간 동안 발생하는 사고성 재해에 대해서는 그나마 보상을 적용할 수 있어도, 누적된 손상이나 직업력에 의해 발생하는 암이나 근골격계질환, 뇌심혈관계질환, 정신질환과 같은 만성 질환에 대해서는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보상을 청구하기도 어렵게 된다.

업무상 재해에 대해 보상받을 권리를 취업자 모두의 보편적 권리로 만들어가기 위해, 노동관계를 중심으로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기존의 보험체계 자체를 의심하고 바꾸어가야 할 시점이다. 산재보험료를 사업장 매출에 따라 부과하고 보험 적용은 일하는 사람 누구나 대상이 되도록 하는 방안, 전 국민이 강제 가입되는 건강보험에 상병수당을 도입해, 업무상 재해 여부와 무관하게 일정한 소득을 보전하는 방안과 적극 연계한 새로운 (그러나 아주 오래전부터 제안되어 온) 고민이 본격화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