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마트노동자는 더 건강하고 안전해지고 싶습니다 / 2018.11

마트 노동자는 더 건강하고 안전해지고 싶습니다 

[인터뷰] 정민정 마트산업노동조합 사무처장·노동안전보건위원 위원장                                                                                                                                                    재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집회 현장에 가면 눈길을 끄는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진달래색 조끼를 입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개나리색 조끼를 입은 마트 노동자들이다. 두 노조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 활발한 활동으로 꾸준히 조합원들을 조직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일터>는 연말을 맞아 올 한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 마트산업노동조합(이하 마트노조)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인터뷰는 지난 10월 19일 마트노조 사무실에서 정민정 사무처장 겸 노동안전보건위원회 위원장과 진행하였다.

2017년에 출범한 마트노조

"저희 마트노조는 이른바 빅3라고 불리는 대형마트인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산별 노조에요. 조합원 역시 빅3 회사 조합원들이 제일 많아요. 물론 그 밖에 협력업체 조합원들도 있고요.

저희 마트노조는 2017년에 만들었는데 그전에는 각각 노조가 있었어요. 2012년에는 이마트, 2013년에는 홈플러스, 2015년에는 롯데마트 이렇게요. 그런데 개별 노조로 활동하고 투쟁하다 보니 어려운 것이 너무 많더라구요. 노조가 더 큰 힘을 가지기 위해서 2016년부터 산별노조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위원회를 만들고 활동하다가 2017년 10월 22일에 총회를 하면서 마트노조를 설립했어요."


마트노동자들이 산별노조로 모인 이유 

"아무래도 복수노조 제도가 결정적이었던 것같아요. 이 제도로 인해서 현장에선 다수 노조만 교섭권이 있으니까 역사와 활동이 짧은 민주노조가 개별적으로, 긴 어용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노총, 기업노조와 싸워서 이기기 힘들겠다는 판단이 있었어요. 두 번째는 최저임금 문제인데요. 마트노조에서 아무래도 홈플러스 노조가 가장 큰 힘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아무리 임금을 교섭하고 파업투쟁을 해도 실제로 임금의 경우, 수당은 올라도 기본급은 최저임금 수준을 넘지 못하더라고요.

왜냐 노동조합은 수당을 올리려고 싸우는 게 아닌데, 홈플러스 자본 입장에서는 전체 대형할인마트 업계의 관례라는 게 있어서 여기만 임금을 대폭 인상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민 끝에 우리는 산별노조 체제로 가면서 전체 마트 업계 환경을 바꿔야지 개별로 싸우는 건 한계가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정민정 사무처장은 노동조합 활동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과 함께 조합원들의 업무 환경이나 특성에서도 산별노조 체제로 가는 것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사실 마트노조 조합원들이 회사만 다를 뿐이지 하는 일들은 똑같거나 비슷하거든요. 이렇다보니 조합원들이 회사를 떠나서 같은 업무를 하는 조합원들에 대한 동질감을 많이 느껴요. 게다가 마트가 지역마다 가까운 위치에 입점해 있잖아요. 그러니까 지역에서 활동하거나 투쟁을 하기에도 좋은 조건이더라고요. 사실 중앙에서 지역 투쟁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우리 현장과 가까이 있는 노조에서 일상적으로 연대하고 투쟁하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어요."

노조 출범 직후 연속했던 사망사고

"이마트 무빙워크를 사망하던 하청 노동자분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사건 당일에 바로 접했어요. 장례식장에서 유족인 아버지를 만나 뵙고, 혹시라도 만약에 노조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연락을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리고 사고 4일만인가 이마트에서 이번에는 저희 조합원인 캐셔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했어요."

언론에서 사고 소식을 접한 아버님은 자식의 사망사고로 경황이 없을 텐데 이마트 조합원이 사망한 현장으로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한다.

"저희가 노동자의 죽음을 방치하고 거기에 책임이 있는 이마트와 신세계 그룹을 상대로 고인의 49제까지 투쟁했거든요. 그때 유족의 동생분도 집회에 와서 본인도 특성화고 학생이라서 이제 곧 현장에 나가야 하는데 앞으로는 세상이 이렇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데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마트 무빙워크 사고 이후 노동자들과 유족은 싸움도 슬픔도 한마음이었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는 기업은 없었다고 했다. 이마트는 하청을 준 업체가 재하청을 준지 몰랐다.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이 사고에 있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까 말씀드린 데로 이마트 무빙워크 사고가 있고 4일 뒤에 저희 조합원이 계산대에서 일하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장례식장에 바로 달려가서 대책을 논의하고 그랬는데, 이때 마트의 태도는 역시 비슷했어요. 저희가 이마트에 고인이 의식을 잃어서 쓰러지고 구급차에 호송될 때까지 CCTV 영상을 달라고 요구했는데 처음에는 바로 주겠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개인정보라서 못 보여준다고 말을 바꾸고 그러면서 실랑이가 있었어요."

이후 노조는 CCVT를 확인했는데, 왜 이마트가 이 영상을 주는 것에 대해서 말을 바꿨는지 알 것만 같은 상황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CCTV를 확인해보니 갑자기 조합원이 바닥에 쓰러졌는데 그 누구 하나 돕지 못하고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더라고요. 결국 시간이 한참 지나서 이마트 보안업체 여성 노동자가 조합원 옷 단추를 풀고 몸을 주물렀어요. 그리고 보다 못한 고객이 뛰어들어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119가 와서 제세동기를 켜고 응급조치를 했는데 이미 늦어버린 상황이었어요."

정민정 사무처장은 지난 이 상황을 돌아보며 이 점을 꼭 강조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저희는 누가 잘못했냐 아니냐를 따지는 걸 떠나서 이 조합원의 사망은 구조적인 문제였다는걸 꼭 지적하고 싶어요. 매뉴얼 상으로는 마트 현장에서 발생하는 위급 상황이나 안전 문제를 대처하는 역할은 안전관리자들과 보안업체 직원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문제는 보안업체 직원들의 경우 용역 업체 노동자들이기 때문에 이분들이 안전 교육을 받는지, 본인들에게 이러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아는지, 원청이 마트에서는 어떻게 관리하는지, 벌어진 상황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지가 모호하다는 거예요.

원청인 마트는 책임을 용역업체에만 전가하고요. 그래서 저희는 누가 잘못했냐 개인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대체 이런 상황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개선할 것인지를 묻는 거예요. 노조에서 관리자들한테 이렇게까지 말했거든요. 아마 지금 이마트 상황이면 대표이사든 사장이 와서 쓰러져도 누구 하나 도와주는 직원이 없을 거라고요."


정민정 사무처장은 사고 직후 이마트의 태도는 예상했다고 한다. 노조가 더는 이 문제를 시끄럽게 하지 못하도록 유족에게 돈으로 보상하고자 한 것이다.

"유족분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렸어요. 만일 이마트에서 유족이 동의할 수 있는 보상안을 제안하면 우리 노조를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 저희는 조합원이 사망했고, 남은 조합원들을 위해서 해야 할 역할이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니, 유족분들은 고인을 위해서 마음 편하게 생각하라고, 노조가 있기 때문에 이마트가 긴급하고 적극적으로 보상하자고 제안할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이후에 유족은 보상을 받았고 산재신청도 하지 않기로 했어요. 어떻게든 이마트는 노동자가 일하다 자신들의 관리 소홀로 죽었다는 사실을 지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마트는 유족과의 보상 이후 노조가 앞으로 조합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서 어떠한 조치를 할 것인지 요구하는 사항에 대해, 이미 유족과 합의를 마쳤는데 노조가 트집 잡기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였다.

사고 이후 노동자들의 안전 감수성 

"일단 현장에 제세동기가 많이 늘었어요. 그리고 이전에는 완전히 형식적이었던 안전보건교육에서 심폐소생술을 직접 배운다든가 하는 내용으로나 질적으로나 조금 나아졌어요. 무엇보다 마트노조가 출범하고 나서 조합원이 처음 사망했고, 이마트에 책임을 묻기 위해서 전체 마트노조 조합원이 하나가 되어서 분노했고 투쟁했다는 점 그러면서 안전보건에 대한 조합원들의 의식이 높아진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본격적인 안전보건 활동 시작으로 활발해진 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 사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마트노조 차원에서 지역마다 안전보건담당자를 조직했고 정기적으로 회의와 교육 등을 진행하면서 노동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했어요. 노동안전보건위원회 위원장 역할은 제가 하게 되었고요. 지금 주요한 활동으로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분들과 안전보건 강사단 교육을 하고 있어요. 지난 7월부터 각 지역별로 진행하고 있는데요. 1차 교육은 마트현장에서 필요한 산안법 전반에 대해 교육을 하고 근골격계 질환, 감정노동 이런 주제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어요.

2차 교육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각각 현장의 안전보건문제를 기록하고, 발표하게 하고 있어요. 이 교육이 호응이 좋은데 이게 조합원들이 대부분 특정 부서에 몰려서 가입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러면 솔직히 다른 부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잘 모르는데 체크리스틀 작성하면서 현장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비/조합원 간 소통하는 계기도 되었다고들 말씀하셔요."


감정노동자보호법 이후 후속 사업 모색

"일단 각 마트회사들은 감정노동자보호법이 만들어졌으니 현장에서 고객들에게 이제 노동자에게 폭언하거나 괴롭히는 등 폭력을 가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라고 요구했는데 아직 가시적으로 바뀌었다 하는 건 별로 없어요. 마트에서 상품 광고 하는 자리 곳곳에 이걸 알리면 되는데 여전히 너무 부족한 것 같아요."

또, 정민정 사무처장은 감정노동 문제와 관련해서 현장 조합원들이 활용할 수 있는 매뉴얼이 회사에서 제작한 것 밖에 없어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차원에서 판매유통노동자 전체를 위한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저희가 이제 만들어진 노조라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이제 공부하면서 하나하나 해나가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앞서서 활동하는 동지들이 관심 가져주시고 함께 해주시는 게 정말 많이 힘이 되니까 앞으로도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어둠이 내린 학교는 누가 지킬까 / 2018.11

어둠이 내린 학교는 누가 지킬까

[인터뷰] 학교 야간당직 경비 노동자 이한수 님 인터뷰                                                                                                                                                          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학생과 여러 노동자로 북적이는 낮의 학교. 하지만 어둠이 내린 학교를 홀로 지키는 이들이 있다. 바로 학교 야간당직 경비 노동자들이다. 밤의 학교를 지키는 학교 야간 당직 노동자들은 어떤 일을 할까? 많은 사람이 잘 알지 못한다. 가리워진 이들을 만나기 위해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이한수(가명) 님을 지난 10월 25일 만났다.
 
과로 권장하는 근로기준법
 
학교 야간 당직 경비 노동자들은 감시·단속적 노동자다. 근로기준법 제62조에 따라 노동시간, 휴게 및 휴일 등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무방비 상태다. 이한수 님은 오후 3시 30분에 집을 나서 일터인 학교로 향한다. 오후 4시 정도에 학교에 도착하면 바로 행정실로 향한다. 당직 근무 일지를 받기 위해서다. 오후 5시가 되면 학교 문을 잠그기 시작한다. 하지만 완전히 문을 다 잠그는 때는 밤 9시 30분 정도다. 학교 체육관을 지역 주민에게 개방하기 때문에 배드민턴을 치고 가는 사람들이 다 나가는 시간에 맞출 수밖에 없다. 최종 문을 닫는 시간은 밤 10시다. 문을 닫고 들어와 한 번 더 점검한다. 일을 마치고 밤 10시 40분 쯤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잠을 깊게 자기 어렵다. 간혹 비상벨이 울리기도 하고, 문이 1cm만 열려 있어도 작동되지 않는 세콤 때문에 몇 번씩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렇게 긴장한 상태로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새벽 5시 30분이다. 씻는 일은 뒷순위다. 우선 학교 문을 열어야 한다. 그렇게 문을 다 열고 나면 겨우 씻을 수 있다. 문단속만 하지만은 않는다. 보이는 데를 쓸고 청소한다. 교감, 교사분들이 학교가 깨끗해졌다며 인사도 건넨다. 오전 8시가 되면 집으로 향한다. 여름, 겨울방학 때도 학교는 개방하기 때문에 독같이 근무한다. 이렇게 평일엔 꼬박 16시간을 교대 근무 없이 혼자 일한다. 주말은 이틀 내내 48시간 혼자 학교에 있다. 용역 소속 당시 2일 중 하루는 유급 휴무였지만 올해 9월 1일부터 교육감에게 직고용되고 나서 모든 휴일이 무급제로 전환됐다. 겨우 2일 가족, 친구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도 이젠 없다.
 
"무급으로 쉴 수는 있죠. 그런데 열악한 처우에서 이틀을 무급으로 쉬면 임금을 더 못 받아요. 그러니깐 다들 쉬지 못해요. 이번 달 기준으로 평일 하루 소정근로시간이 6시간이고 22일 일한거로 하면 총 132시간이에요. 주말은 하루 소정근로시간이 9시간으로 되어있고 8일 계산하면 총 72시간이죠. 한 달 총 204시간 일 한 것으로 돼서 사대보험 제하면 월 140여만 원 을 받아요. 대체 근무자를 세워서 쉬려고 해도 이 분들 일당이 6만 원, 이틀로하면 총 12만 원이죠. 이 돈이 지금 임금에서 빠지게 되면 임금이 확 줄어요. 용역소속일 때보다 더 나빠진 거죠."
 
누구를 위한 정규직화죠?
 
정부는 지난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용역 소속의 간접고용 노동자를 직고용하라고 했다. 인천교육청 역시 이 가이드라인을 따랐다. 하지만 무늬만 직고용일 뿐 이한수 님이 체감하는 긍정적 변화는 적었다. 오히려 악화된 부분에 아쉬움이 크다.
 
"올해 추석 연휴가 길었잖아요. 용역 소속일 땐 명절 때 학교에 너무 오래 있으니깐 하루 쉴 수 있게 대체 근무자를 보내줬어요. 그런데 올해 직고용으로 바뀌고 나선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학교에 있었어요. 직고용되고 나서 부풀었던 마음을 꺼트린 거죠. 전과 같든지 아니면 더 나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일하는 시간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평일 16시간, 주말 24시간을 학교에 있고 일을 하는데 인정해주는 시간은 평일 6시간, 주말 9시간이에요. 나머지 10시간, 15시간 인정 못 받고 있어요. 전부 인정해달라고도 안 해요. 최소한 절반이라도 인정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학교 야간 당직 노동자가 하는 일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하지만 이한수 님이 없는 학교는 상상을 못 한다. 소소하게는 학생들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것부터 다쳐서 밴드를 찾는 학생들에게 밴드를 붙여주는 것까지 여러 가지다. 밴드도 일부러 보건실에 가서 부탁해 받아오기까지했다.
 
학교 야간당직 노동자로 지키고 싶은 자부심 
 
노동시간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학교 야간당직 경비 노동자로서 자부심은 단단하다.
 
"제가 경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3년 정도 됐어요. 맨 처음 교육받고 나간 곳이 아파트예요. 학교보다 아파트 경비 일이 돈을 더 벌어요.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더라고요. 잠을 3시간밖에 못 자요. 돈을 더 주긴 하지만 아주 사람을 잡아요.

학교는 우리 집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큰 건물에 나 혼자밖에 없어요. 그런 책임감이 있죠. 어떤 사람은 무섭지 않냐고도 물어요. 나는 무섭지 않다, 자신 있다고 대답하긴 하는데 실제 근무를 해보니깐 무섭긴 해요. 밤에 아무것도 없고, 큰 건물에 혼자 있으니 말이죠. 헤드라이트 들고 학교 한 바퀴 돌 때 내가 이 큰 건물을 다 지킨다는 생각, 뿌듯함이 있어요. 또 그런 마음이 없으면 학교에서 근무 못 하겠더라고요."
 
자부심을 꺾는 노동환경
 
하지만 요즘 들어 자꾸 자부심을 꺾는 일이 있어 속상하다.
 
"노동시간을 제대로 인정 못 받는 게 정말 속상합니다. 그리고 본래 맡은 업무 외의 것을 자꾸 요구할 때도 그렇고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험을 할 때가 있어요."
 
자는 공간도 문제다. 당직실이 있기는 하지만 시설이 좋지 않다. 여름엔 모기가 너무 많아서 괴롭다. 겨우 몸을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정도다. 에어컨이 있지만, 작동이 잘 안되서 얘기를 하니 그때서야 리모컨을 줬다. 처음 들어갔을 때 충격이었다. 이불이 너무 지저분하고, 새까매서 도저히 잘 수가 없다 싶어 얘기하니 세탁을 해줬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이불이라 더는 쓸 수 없어서 바꿔 달라고 하니 그때 새 이불을 학교에서 사줬다. 지금은 바꾼이불을 덮고 지내고 있다. 모든 게 얘기를 해야 그제야 겨우 들어주는 식이다. 정기적으로 관리를 해주거나 미리 물어봐 주는 경우가 드물다. 이한수 님은 밥 먹는 것도 문제라고 입을 열었다.
 
"우리는 나가서 사 먹을 수가 없어요. 학교에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보통 도시락을 싸 오거나, 급식소에서 조그만 통에다 먹을 걸 담아서 줘요. 아니면 김치만 갖다 놓고 간단히 해 먹는 정도죠. 탕비실도 없어요. 화장실에서 겨우 쌀 씻어서 제가 집에서 밥솥 하나 가져왔는데 거기다 해먹고 그래요.
 
교육감 직고용이 되면서 식대로 13만 원이 나와요. 용역 소속일 땐 식대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나와서 좋지가 않아요. 식대가 나온다는 이유로 1끼당 3,100원~3,500원을 식대에서 빼요. 학교 행정실에서 급식실에서 밥을 받아먹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하니깐 식대를 빼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전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거든요."
 
종교 활동도 못하는 학교 야간당직 노동자의 고충 
 
이한수 님은 기독교 신자다. 하지만 학교 야간당직 경비 일을 하게 되면서 주말에 교회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1인 교대근무제, 무급 휴일로 인해 종교 생활도 하지 못하고, 가족, 친구 등 사회적 관계가 전부 끊겨 버려 속상하다고 했다.
 
"원래 교회를 다녔어요. 그런데 학교 일 시작하고선 주일을 못 지키고 있죠. 너무 마음이 쓰여요. 종교 생활도 못 하게 돼서 안타깝죠. 그리고 원래 친목회가 몇 군데 있었어요. 그런데 이젠 다 끝났죠. 못해요. 겨우 같은 일 하는 사람들끼리 친목회 만들자고 하고 있는데, 어려움이 크죠. 아내하고도 쉬는 날엔 근교로 놀러 가기도 하고 그랬는데 무급 휴일이 되고 나선 그것도 못 하고 있어요. 많이 아쉬워하죠."
 
일하다 다치면 건강이 아니라 해고 걱정
 
"회사는 상급 단체가 없는 자체 노동조합이 대표노조에요. 시설 쪽이랑 주차 업무노동자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이고요. 노동조합은 5~6년 전에 일하면서 부당한 것도 많고 처우는 나빠지다 보니까 한마음이 돼서 만들었어요.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조합원이었어요."
 
이길섭 님은 얼마 전까지 용역 업체 소속이다 보니 2~3년에 한 번씩 업체가 바뀌면서 고용 승계 불안, 원청과 용역 업체 간 책임 소재 떠넘기기 등으로 인해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전에는 회사가 대표노조도 아니고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개별 교섭도 해왔고 우리가 목소리라도 낼 수 있었는데 최근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나서는 개별교섭을 해야 할 법적 책임이 없다 보니 전혀 응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지속해서 이 문제를 요구하고 있어요."
 
또, 노동조합은 같은 시설관리 업무 노동자 중 일부가 감시단속적 업무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63조에 의해 노동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근로기준법 적용이 제외 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여기서 일하기 전까지는 노동조합에 대해 이야기만 들어봤고, 회사에서 일하다 억울한 일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일일이 이야기하나 했었는데 결국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기업도 경총으로 목소리 내고 중소상인들도
협회가 있잖아요. 그렇다면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이 있어야죠."
 
명절때라도 쉬면 안될까요? 
 
노인빈곤율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60~70세의 고령 노동자들에게 실업은 곧 삶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OECD 한국경제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8.6%로 OECD 평균(12.4%)의 4배에 달한다. 한국을 포함 호주 35.5%, 일본 19.4%, 그리스 15.8%,
미국 14.6% 등 5개 국가만이 OECD 평균을 웃도는데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압도적으로 높다. 하지만 가계의 노후 준비는 미흡하다.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39.3%에 머물고, 사적연금 가입률은 24%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저임금에 힘든 일이어도 꾹 참고 버틴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이한수 님 역시 꼭 노동환경이 바뀌어야 한다고 마지막으로 강조했다.
 
"모두 똑같이 고생하는데 뭐라고 제가 얘기하겠어요. 그나마 용역 소속일 때보다 고용이 안정화된 건 다행이에요. 하지만 다른 것들은 아직 갈 길이 멀었죠. 정부와 교육청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학교 야간당직 경비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이 필요합니다. 마음 놓고 건강하게 이틀만이라도 유급으로 제대로 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최소한 명절 때라도 하루, 이틀 정도라도 쉴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면 좋겠습니다."

특집2. 28년 만의 산안법 개정, 노동·시민사회 총력 모아야 / 2018.11

28년 만의 산안법 개정, 노동시민사회 총력 모아야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 실장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의 역사는 노동자 죽음과 투쟁의 역사이다. 30년 전 문송면, 원진 레이온 노동자의 죽음과 사회각계 각층의 투쟁이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으로 이어졌다. 2018년 28년만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 제출도 기간의 죽음과 투쟁이 만들어 낸 것이다.

문송면, 원진레이온 투쟁으로 진행된 1990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의 핵심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노사 동수 규정을 비롯한 노동자 참여권 확대와 정기 안전보건교육 실시, 직업병 예방을 위한 화학물질 조사 및 조치 의무와 건강관리 수첩제도 등 14개 항목'이었다.

그 이후에도 근골격계 질환 집단 산재신청, 석면, 철도 지하철 궤도안전, 병원 감염성 질환, 청소노동자 씻을 권리, 전기 안전, 타워크레인 안전, 산재은폐, 감정노동 보호 등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시행규칙 조항 하나하나에 노동자의 피 눈물이 배어 있다.

최근 7~8년은 하청 산재사망 문제를 지속 제기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 29조가 계속 개정되어 왔고, 구의역 참사 이후에는 위험의 외주화 금지 의원입법 법안도 발의되었다. 산재사망 기업 처벌강화는 10여 년 전부터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진행하면서 기업살인법 제정에 대한 요구가 계속되어 왔으나, 실질적 입법 투쟁이 진행된 것은 2012년 민주노총과 민변 등이 특별법 안을 준비하고 추진하면서부터 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시민재해를 포괄하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투쟁으로 이어져, 2017년에야 입법발의가 되었다. 20대 국회 환노위에는 산재사망 처벌강화 특별법이 법사위에는 재난안전에 관한 특별법 형태로 의원입법 발의안도 있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와 산재사망 처벌강화는 입법발의도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18대, 19대 국회에서는 심의도 없이 회기만료로 폐기를 반복했다. 20대 국회에도 도급금지, 처벌강화, 안전보건정보 노동자 알 권리 등 다수 법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되어있다.

28년만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은 개정되는 '주요 내용만 8개 분야의 32개 조항'에 달한다. 그리고, 산업안전보건법 법률은 그대로이면서 순서와 배치를 바꾸어 놓거나, 하위 법령에 있던 것을 법률로 올려놓은 것도 많아 조문 비교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상황은 경총을 비롯한 사업주 단체와 보수 전문가들이 '후퇴, 졸속, 일방 강행' 등의 프레임을 만들고, 최소한 '법 개정을 지연시키거나 회기 만료로 또 다시 쓰레기통으로 폐기 처분'하게 만드는 길로 가게 만들거나, '취지는 좋으니 통과시키고 보자'라는 안일한 대처로 몰고 가고 있다.

민주노총은 2월 입법예고안에 대한 입장에서 '28년만의 전부 개정안'이라고 하기에는 노동자 정신건강에 대한 대책이 누락되어 있고, 노동자 참여와 관련 조항이 없다는 점을 강하게 지적했다. 이후 감정노동 보호와 관련해서는 법안이 별도로 통과되었고, 일터 괴롭힘 금지와 관련해서는 근기법, 산안법, 산재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으나,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법사위에서 계류된 상태이다.

노동자 참여 확대 조항의 핵심인 명예산업안전감독관 권한을 비롯해 세부 내용들은 대부분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관련 사항으로 법률에서 다루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노동자 참여 확대가 전부 개정안의 주요 내용으로 애초부터 제출되지 못한 점은 한계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국무회의를 통과한 산안법 개정안이 현행 법 대비 진전된 내용과 문제점을 최대한 정리 해 보려한다.

첫째, 일하는 사람으로의 보호대상 확대

개정안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문에 '일하는 사람'을 명시했다. 그러나, 실제 내용에서는 사업주 정의에 특수고용, 배달노동 등의 중개사업주, 프랜차이즈 본부만 구체적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여하는 사업주를 명시했다. 다만, 정부의 책무에 '일하는 사람의 안전 및 건강의 보호증진'을 명시하여 정부의 사업 확대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이 구체적 안전조치, 보건조치를 명시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이하 하위 규칙)은 사업장 전체에 대한 조치로 근로자 여부를 따지지 않는 조치가 많고, 구체적으로 조치 대상을 정할 수 밖에 없는 보호구 지급, 안전교육, 건강검진 등은 '소속 노동자'로 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구체적 실물 내용이 반영된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일하는 사람'의 정의가 없어 대표적인 산재보고의 경우에도 사업주는 어디까지가 대상인지 알 수 없다 라는 주장을 펴면서, 일하는 사람 조항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에 사업주 정의 자체가 '근로자를 사용하는' 이라고 명시되어 있어 산재보고는 고용사업주가 하는 것이므로, 경총과 보수 전문가의 주장은 과도한 해석이다. 오히려 문제는 특수고용 노동자 정의가 '주로 하나의 사업' 이라는 산재보험법 특수고용 정의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어 건설기계, 화물, 택배, 퀵 서비스 등 위험도가 높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적용 제외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개사업주의 경우에도 이륜자동차로 한정하고 있고, 프랜차이즈 본부의 경우에도 '소속근로자' 로 한정하여 가맹점에 자회사 형태로 인력 공급이 되는 경우에 대한 보호조치가 누락 된다. 이에 개정 논의과정에서 범위대상 확대와 보호조치 내용의 확대가 필요하다.

둘째, 원청 책임의 확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29조는 그 태생이 건설, 조선, 제조업의 하청 산재에 대한 보호조치로 계속 추가 확대되어 왔다. 그러나, 서비스업 등 여타 산업의 다양한 하청산재 문제를 포괄하지 못했고, 임대 위탁 등 다양한 계약형식으로 책임에서 빠져나가는 원청 문제가 지속되어 왔다. 병원, 지하철의 청소 노동자, 삼성전자 서비스 등등 다양한 하청 산재 문제가 도급의 정의, 일부 도급, 형식상 임대 위탁인 경우 등을 빌미로 법령에 있는 원청의 의무는 실제 감독, 처벌 과정에서 번번이 누락되었다.

개정안은 도급의 정의를 확대하고, '관계 수급인'정의를 도입하여 다단계 도급 시에 도급인이 누구인지 불명확했던 점을 원 도급인으로 명확히 하였으며, 도급인이 제공, 지정하는 장소도 포괄하게 하는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다. 내용적으로는 안전교육의 확인의무를 추가하고, 작업환경측정, 위험성 평가 조항에서 하청 노동자 공정까지 포괄하도록 하고, 노동자 대표가 원청의 하청 산재예방 조치를 요구하면 사업주가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개정안에 대해 '임대' 정의가 포함되어야 건설현장, 제조업 현장의 장비 임대계약 형식의 고용과 서비스업의 장소임대 형식의 사실상 하청 문제가 해결된다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타워크레인으로 한정하여 원청 책임강화로 입법예고 되었던 법안을 건설기계 등으로 일부 확대했고, 다른 문제는 반영되지 못했다.

또한, 경총 및 보수전문가들이 원청 책임확대를 반대하면서, 원 하청 책임 명확화를 주장하고, 원청 책임확대가 불법파견 판정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수용하여 '보호구 착용의 지시 등 작업행동에 관한 직접적인 조치는 제외' 조항을 추가 명시했다. 안전보건의 기본 조치인 안전교육은 원청에 확인의무만 부여하고, 보호구 지급은 하청 사업주에게 부여하고 착용지시 등은 제외하는 결과로 된 것이다.

또한, 발주처 책임강화를 비롯하여 건설업의 별도 절을 만들어 건설 산재사망 감소 대책을 추진하면서, 건설업이 주 대상이지만 법령상으로는 원청의 책임으로 되어있던 공기단축, 위험 공법 변경금지, 원 하청 산보위 등의 규정이 건설업으로만 한정되게 되었다.

셋째, 산재사망에 대한 처벌 강화

산재사망에 대한 솜방망이 기업처벌에 대해 그동안 민주노총은 세 가지 문제를 제기해 왔다. ① 산재사망에 대해 평균 500만원 이내의 솜방망이 벌금과 형사 처벌 사례가 전무 한 점 ② 하청산재사망에 대한 원청 처벌이 안 되고 있는 점 ③ 기업 최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안 되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출되었던 것이 '산재사망 처벌강화 특별법'이며, 시민재해까지 포괄하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다. 그 동안 정부는 솜방망이 처벌에 대해서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양벌 규정으로 해결될 수 있다며 법원과 검찰의 문제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개정안에서는 형사 처벌과 기업 법인의 벌금을 분리하여 법인 벌금을 10억원 이하로 개정했다.

또한, 기업의 대표이사가 이사회에 산재예방계획을 보고하고 집행하게 하여 산재사망에 대한 기업의 최고책임자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근거 조항을 제출했다. (물론 이 또한 재판을 통한 실질 처벌이행은 지난한 과정이겠지만) 아울러 경총과 사업주 단체에게 가장 민감한 제도인 수강명령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입법예고안에 있었던 산재사망에 대한 1년 이상의 하한형 도입과 건설업의 불법 하도급으로 인한 산재사망 시 원청에게 3년 이상 하한형 처벌은 경총과 건설협회, 보수 전문가들의  공세에 밀려 삭제되었다. 당연 조항이었던 '수강명령'도 할 수 있다로 개정되는 등 후퇴했다.

하한형 처벌은 국내에도 형법과 시설물 안전관리 특별법에 유사법례가 있는 조항이다. 고용노동부 연구보고에 따르면 2016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범 중 전과자 비율은 21%로, 9범 이상인 경우도 91명이나 된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밥 먹듯이 하는 실태가 반복적 산재사망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경총과 보수전문가들은 형사 처벌 조항 도입을 근원적으로 반대하고 있고, 법무부 관료들은 사업주 단체의 논리와 똑같이 "과실범인데 왜 하한형 까지 도입 하느냐"며 반대했다. 결국 규제개혁위원회와 법제처 내부 심사까지 끝난 조항이 막판 뒤집기를 당했다.

10월 31일 바른미래당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하한형 도입을 삭제하고 7년 이상을 10년 이상으로 강화한 처벌 조항까지 문제 삼았다. 현재 국회에는 산재사망에 대한 하한형 도입에 대한 의원입법 발의안이 2개 있으나, 건설업 불법 하도급 산재사망 하한형은 발의안이 없는 상태이다. 민주노총은 추가 입법발의를 통해 하한형 도입이 국회에서 병합 심사를 통해 반영되도록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다.

넷째, 위험의 외주화 금지

도급금지는 2013년 국회의원 산업안전보건법 입법발의가 있었고,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생명안전업무의 도급 금지를 포함한 특별법' 발의가 있었고, 구의역 참사 이후에는 철도안전법 등 추가발의가 있었다. 현재 20대 국회에는 4개의 도급금지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그 동안 정부는 도급금지는 위헌조항이라는 경총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여 반대하더니, 이번 개정안에는 도급금지를 명문화 하고, 도급인가제도 정비, 도급인가의 경우 재하도급 금지하고, 관련 처벌조항 도입 등이 제출되었다.

원청의 의무로 적격 수급인 선정의무도 도입되었으나, 처벌 조항은 없다. 도급금지의 경우 그 동안 그 대상의 기준 문제가 쟁점이었고, 개정안은 현행 도급인가 대상을 그대로 도급금지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결국 개정안은 도급금지는 도입했으나, 그 대상과 범위는 고용노동부 자체 조사결과로 22개 사업장에 852개 사업장으로 한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국무회의 통과 법안에서는 일시 간헐적인 경우도 제외하고, 기술적 문제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적용 제외를 열어두는 것으로 후퇴했다. 또, 하위 법령의 위임 규정도 없어 추가적 확대는 계속 입법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총과 보수전문가들은 '외국의 입법례가 없다, 과잉입법으로 위헌이다'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외국의 경우에는 한국과 같은 사실상 인력 공급, 불법 파견형태의 도급이 없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아니라 민법이나 형법 조항을 통해 하도급의 변경 시 부당한 고용문제나 노동조건의 저하가 있는 경우 처벌하고 있다.

원하청이 산업의 특성처럼 되어 있는 건설업의 경우에도 미국, 영국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발주 계약 지침을 통해 원청이 하도급을 주지 않고 직접 고용으로 시공하는 비율을 50%, 60%이상으로 하고 있다. 보수 전문가들은 외주화를 금지할 것이 아니라 적격 수급인 선정의무에 처벌 조항을 도입하는 것이 예방조치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탁상 위의 법 조문으로 현실을 호도하는 주장이다. 적격 수급인 선정의무는 화학물질 관리법 하위 법령에서 도입된바가 있으나, 보호구 지급 등 산업안전보건법 준수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 적격수급인이라는 규정이 극단적으로 협소하다. 중국위생안전법도 유사한 내용이 있으나, 구체적이지 않고 협소하다.

결국 적격 수급인 조항에 처벌 조항을 도입하면 '적격수급인'기준이 포괄적으로 되어 보수 전문가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 처벌로 되거나, 보호구 지급 등 협소하게 규정되어 현실적으로는 의미 없는 조항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격수급인 선정 조항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도급금지 조항을 무력화 하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미 도급금지의 범위와 추가확대의 대상과 절차를 법 조문으로 제시한 바가 있다. 도급금지 법 개정안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와 국회 투쟁이 필요하다.

다섯째, 물질안전보건자료 정부 보고제도와 영업비밀의 제한

화학물질 독성정보와 관련한 현장의 현실은 이렇다. 물질안전보건자료(MSDS)가 있기는 한데 산안법에서 영업비밀로 할수 없다고 규정한 것도 영업비밀로 기재되어 있거나, 영업비밀 대상인 경우에도 아무런 절차나 기준 없이 기업 마음대로 영업비밀로 하고 있다. 화학물질 관리법에서는 기업의 영업비밀 남발에 대해 법에서 별도의 기구를 두어 심의를 하도록 2년 전에 이미 개정되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전혀 진행 되지 않고 있었다. 개정안은 두 가지 방향이다. 하나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노동부에 보고하도록 하여 법에 공개하도록 되어 있는 화학물질을 기업이 비공개 남발하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영업 비밀에 대한 기준은 산재예방정책심의위에서 다루고, 영업비밀을 하려면 사업주가 안전공단에 신청 심의해서 결정하도록 하고, 화학물질 독성 정보에 대해 노동자 대표, 질병판정위원회, 의사, 대행기관 등이 요청하면 정보공개를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개별 기업들의 반대가 가장 강력한 법안이다. 이에 입법예고에서 3년으로 되어 있던 기간을 5년으로 후퇴하고, 국외기업에 대해서는 별도 조항을 추가 하는 등 수정되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더욱이 부칙에서는 보고의무를 5년 이내로 하고 있다. 이미 화학물질 관리법에서 민간이 참여하는 심의기구 별도 운영을 하고 정착화 되고 있어 개정 요구를 하였지만 반영되지 않고 있다.

여섯째, 제도의 실질화를 위한 조치

개정안에는 각종 안전보건제도의 실질화를 위한 조치도 포함되거나 추가 개정되었다. 유해위험 방지계획서 제도의 경우 하위령에 있던 이행평가를 법령으로 명문화 했다. 위험성 평가의 경우에는 노동자 참여를 추가했다. 특수건강검진제도와 작업환경 측정제도와 특수건강진단의 경우에는 전문기관을 두도록 하여, 제도는 있으나, 현장에서는 실질 효과가 없고 대행기관의 돈벌이로만 전락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보완책이 마련되었다.

노동자의 작업거부에 대한 사업주의 불이익 처분에 대한 형사 처벌 조항이 도입되고, 역학조사에 노동자 참여, 메탄올 중독사고 등 의료정보에 대한 고용노동부 통보가 가능하도록 한 조치등도 기간의 현안 투쟁에서 제기된 문제가 반영된 조항이다. 작업중지의 경우 기존에는 기계 기구에 대한 사용중지 등만 법령에 있고, 작업중지는 정책과 지침으로만 진행되어 사업주 단체의 끊임없는 소송과 제기가 있었으나, 노동부 작업중지를 법제화 하고 있다.

그러나, 입법예고안의 전면 작업중지는 폭발, 누출 등 협소한 범위로 축소되어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노동자 대표의 작업중지권은 아예 입법예고에서 조차 제출되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이 밖에도 세부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보칙으로 있던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을 본조 산업안전관리체제로 이동하는 등 체계 변화를 통한 제도 실질화도 일부 반영되어 있다.

개정안이 이제 국회로 이송되었다. 경총과 건설협회 및 보수 전문가들의 공세로 후퇴도 많이 했지만, 국회에서는 보수 야당이 또 다시 칼날을 휘두를 준비를 하고 있다. 개정안에 대해 보다 면밀한 분석과 현장과 밀착한 교육선전을 통해 후퇴된 내용을 다시 살리고, 개정안 통과에 총력을 다해야 할 시점이다.

이에 보수 전문가의 호도에도 휘둘리지 않고, 취지는 좋으니 그대로 통과시키자는 안일한 대처도 경계하면서 노동·시민사회의 총력을 모은 공동투쟁을 다시 한번 제안 드린다.

특집1. 산업안전보건법,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 2018.11

산업안전보건법,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김재광, 소장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전부 개정안이 10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한편, 국회의원들의 부분적인 여러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는 상태다. 법과 제도라는 것은 사회의 변화를 선도하기도 하고, 변화된 사회를 뒤쫓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언제나 산안법은 변화된 사회를 아주 느리게 뒤쫓고 있다.

고용 형태와 성장하는 안전보건에 관한 요구에 맞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간 산안법이 주안점을 두었던 전통적인제조업이나, 건설업에서조차 노동자의 건강 유지 및 증진하는 것에 모자람이 크다. 또한, 이 모자람조차 적용 제외되는 노동자와 사업 영역이 너무도 광범위하다. 따라서 이번 개정이 어떤 모습이건 간에 추가 개정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산안법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것인가?

적용 대상의 확대

정부의 전부 개정안은 산안법의 법 취지를 변경하였다. 안전 및 보건의 유지 증진의 대상을 '근로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변경하였다. 법 취지 외에 '일하는 사람'에 대한 정의나 그 적용에 대하여 특별한 규정이 없어 선언적 의미에 지나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변화임이 틀림없다.

유연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은 지속해서 전통적인 고용 관계를 해체하여, 법률적으로 사용자의 의무를 가볍게 하거나, 아예 해소하면서 제공된 노동력으로 사업 이익을 확대하는 것을 조장, 독려하였다. 이 같은 결과로 외주화, 파견, 위장도급을 시작으로 프랜차이즈, 프리랜서, 플랫폼 기반노동 등으로 나타났으며, 이 변화된 노동력 사용과 제공의 관계가 확대되고 공고해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정보통신 기술 발전에 의한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영향도 있겠으나, 상당한 부분은 노동시장의 유연화 전략과 정책의 결과이다. 현재의 고용시장 상태는 극단적인 양극을 이루면서 동시에 이윤 극대화를 위한 '사용자 책임 탈피 노동력 사용' 경향의 확대상태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분절되고, 파편화된 노동시장의 안정화를 도모하는 것은 당연하나, 이를 이유로 현재 발생하고, 확산하는 부작용에 대한 대처에 손을 놓아둘 수만은 없다.

즉, 유연화 된 노동시장에 대한 법, 제도적 복구의 노력(분명하고 투명한 고용 관계의 구축)과 더불어 이러한 노동시장에서 허우적거리는 노동자에 대한 보호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고, 후자에 해당하는 것 중 하나가 산안법이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이에 의존하면서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법상 '근로자'가 아니기에 보호받을 수 없는 노동자, 다시 말해 개정법이 언급하는 '일하는 사람'에 대한 보호는 절박하고 현실적인 시대의 요구이다. 법상 '근로자'가 아니면서 '일하는 자'들은 상대적으로 더욱더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으며, 집단적 대응을 하기에도 취약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산안법은 '누구의 건강을 유지 증진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있어 고용 형태와 무관하게(외형상 고용 형태가 불명확하더라도) '노동력 제공하는 모든 자'를 모두 그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에 개정법이 제시하는 '일하는 사람'의 개념을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자'들로 구상하고, '타인의 노동력 제공 이익을 얻는 자'를 '사용수익자'로 정의하여 산안법 상 '사업주'에 해당으로 하는 책임을 모색하여야 한다.

일부 '특수 고용 형태 근로자'를 대상에 포함하는 것으로 부족하다. 현재의 산안법과 같이 고용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노동과 위험을 초점으로 하는, 노동하는 모든 사람을 보호하는 명실상부한 '노동안전보건법'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보호법익을 확대하여야 한다.

한편, 이번 법 개정과 무관하게, 또 다른 차원에서 현행 법 제도를 통해 산안법의 적용을 확대할 수 있다. 산안법은 모든 사업장에서 적용하게 되어있지만, 정작 산안법 시행령을 통해 일부 적용되지 않은 사업을 규정하여 그 적용을 배제하고 있으며, 각종 규정 적용에 있어 규모의 예외를 둠으로써 또다시 적용을 배제하고 있다.

시행령에서 적용 제외되는 사업은 대부분 생산 및 건설업이 아닌 사업이 해당하는데, 사고에서는 상대적으로 그 정도가 작을 수 있으나 증가하는 직업성 질환의 발생 추이를 살펴본다면 결코 무시할수 없는 상태이므로 시행령에 의한 적용제외는 점점 그 타당성을 잃어가고 있다. 따라서 시행령 등의 개정으로 그 적용제한을 시급히 풀어야 한다.

노동자의 권리 확대는 사회적 이익의 확대 

현행 산안법의 체계는 '사업주' 및 '근로자' 준수의무를 규정할 뿐 사실상 명문화된 노동자의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알 권리, 참여할 권리, 거부할 권리는 인간인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실제 안전과 보건을 유지 증진 시키는 데 있어 중요한 기제이다.

사업장에서 재해가 발생하여 관리 감독 기관인 고용노동부에 비난의 화살이 갈 때 언제나 망가진 오디오 마냥 반복되는 변명이 있다. 바로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인력으로 수많은 사업장을 관리, 감독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상태를 보자면 한편 수긍이 가지만 마냥 인정할 수만은 없다.

그간 고용노동부의 행태는 차치하고, 설사 인력이 지금보다 2배가 늘어난다 한들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여전히 사업장의 수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는 유력한 방법은 일하는 노동자가 관리감독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를 현재의 노동자가 발견하고, 이를 제거하고, 개선하는 하나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관계기관의 감독 또는 처벌을 요구하는 공무원의 협력자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산안법은 노동자의 알 권리, 참여할 권리, 거부할 권리를 명문화하고 개별 및 집단적 개입을 보장해야 한다. 산안법에 규정된 각종 조사와 검사 그리고 평가에 어떤 형식이건 노동자가 참여하고, 이에 대한 결과와 의미를 노동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알리고, 언제든 열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용하고 있는 물질에 대한 성분과 위험에 대한 정보를 왜곡 없이 파악할 수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관련된 작업 방법 및 공정, 노동강도, 사용 물질, 보호조치 등이 변화할 때 해당 노동자의 의견을 구하고, 집단적 참여를 허용해야 한다.

지역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의 권한을 확대하여 지역 사업장 관리감독에 노동자가 개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 기준을 낮추고, 심의와 의결의 권한을 확대하여야 한다. 이럼에도 위험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즉각적인 작업 거부 및 중지의 권한이 개별적, 집단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노동자의 권리가 확대되면 될수록, 당연히 안전과 보건의 유지 증진은 확대될 것이고, 관리감독의 인원 부족만을 탓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 확대는 단순히 노동자의 이익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행정력의 보완, 노동재해의 예방, 이로 인한 직간접적 사회적 비용의 감축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이익의 확대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정신과 사회 심리적 건강의 포용

현재의 산안법은 신체안전 및 건강을 중심으로 규정되어있다. 현재 헌법도 이점에 있어 다를 바가 없는데, 현대 산업 사회에서 확대되고 심화하는 질병에 있어 심리적, 정신적 질병을 무시할 수가 없다. 노동재해도 마찬가지로, 최근 산안법 개정에서 고객 응대 노동자의 안전 문제가 규정화되고, 직장 내 괴롭힘 등이 근로기준법과 산안법 등에 편입하려 하는 것은 이를 반영한 것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조짐이 분명 긍정적이기는 하나, 땜질하듯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산안법 상 의무인 보건 조치에 명문으로 정신건강 장애에 대한 예방 의무를 명시하고, 이에 대한 구체 의무를 시행령, 규칙, 고시, 지침 등으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립해야 한다. 사업이 어떤 종류이건 간에 신체와 정신의 건강은 균형 있게 예방하고, 보장해야 한다.

한편, 노동자의 심리적, 정신적 건강의 문제는 사회 심리적 차원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즉 해당 조직문화와 업무와 관련한 조직 내외 관계 그리고 업무성과 설정 등과 같은 것을 살펴야 한다. 앞서가는 국가들에서는 이미 사회 심리적 요인을 사업장 건강에 영향 요인을 파악하고, 부정적 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연구 및 제도화를 모색하고 있다.

최근 문제로 주목받는 감정노동, 직장 괴롭힘, 고객 응대 노동, 정신 스트레스의 증가는 작업장의 건강 장애 환경을 물리적 요인만으로 국한해서는 예방할 수 없다. 사회 심리적 요인을 작업장의 건강 영향으로 포함하여 산안법은 이에 대한 예방 사항을 규정하여야 한다.

법 성격과 체계를 바꿔야

현재 산안법은 사업주를 수규자로 하는 법이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노동자의 권리와 권한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노동자는 보호의 대상이며 동시에 권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개별적이건 집단적이건 관계 없이 그래야 한다. 노동력을 받는 사업주 또는 사용자는 당연히 안전배려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의무를 다하고 임금을 지급한다고 하여 노동력을 포함한 노동자의 모든 신체와 정신의 처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옳고 그름을 떠나서, 사용자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안전과 보건을 파악하는 것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노동자는 능동적으로 자신의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위협하거나, 증진을 방해하는 노동환경에 대해 개입하기도 하고, 때로는 거부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자신을 보전할 수 있다.

사용자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로서는 온전히 자신을 보존하기 어렵다. 따라서 산안법의 법 취지와 같이 안전과 보건의 증진 유지를 위해서는 노동력을 사용하는 자의 의무와 노동력을 제공하는 자의 권리를 균형 있게 설정하여야 한다. 법의 성격과 체계를 바꾸어야 한다.

<일터> 통권 176호 / 2018.10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 통권 176호, 2018년 10월호


[특집]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 바로잡기

1. 노동자 정신건강과 자살실태

2. 정신건강 보호와 예방? 행복하게 일할 권리!

3.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 함께하기

[지금 지역에서는] 

사망사고 반복하는 삼성을 뜯어고쳐 보자

[국제 노동안전건강뉴스] 

번아웃 증후군 예방을 위한 프랑스의 시도

[연구리포트]

저임금 불안정노동자 '공급원'인 현장실습

[안전과 건강 칼럼]

골병의 악순환을 끊는 단초, 근로복지공단 병원의 시도

[사진으로 보는 세상]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작품 뒤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현장의 목소리]

목숨 걸고 일하는 청소노동자의 하루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일, 방치나 탈주 혹은 주체되기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직업을 묻고 대답하는 불편함을 넘어

[노동자 건강상식]

독감예방접종 이야기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與]

똑바로 제대로 살아야 한다

[발칙 건강한 책방]

'오빠'가 읽은 '오빠는 필요없다'

[문화읽기]

우리의 죄는 중대하다

[이러쿵 저러쿵]

과로사의 나라, 일본에 다녀오다

[안전보건동향]

[한노보연 이모저모]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일, 방치나 탈주 혹은 주체되기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2018.10

일, 방치나 탈주 혹은 주체되기 

-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김재광 노동시간센터 회원


한낮 주인공 다카시는 약간 실성한 듯 기뻐하며 건널목을 건너고 있다. 그에 비하면 주변의 사람들은 별다른 표정이 없다.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마치 운동복을 입은 듯 사뿐사뿐 발걸음이 가볍고, 자유롭다. 그는 방금 사표를 쓰고 회사에서 탈출했다. 반인권적 괴롭힘과 출근과 퇴근 그리고 평일, 휴일이 구분이 없었던 회사를 때려 치운 것이다.


다카시를 바라보는 관객은 다카시와 같은 자유로움과 쾌감을 느낀다. 소설이 원작인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는 제목 자체로 탈주의 욕망을 '쿨(cool)'하게 대변한다.

이미 관용어가 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은, 당장 가능하지 않아도, 우리 사회가 달성해야 할 목표가 된 듯하다. 일에 종속된 피폐한 삶이 워낙 비일비재한지라, 지극히 당연히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고, 휴가나 휴일을 제대로 누려야 된다는 사회적 요구와 방향에 대해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런 연장선에서 보자면 밤낮없이 일하고, 자살까지 감행한 <잠깐만회사 좀 관두고 올게>의 다카시의 고뇌에 찬 결단도 충분히 공감하고, 응원하게 된다. 그런데 찜찜하다. 고뇌에 찬 결단이 분명 결단이 맞는데 말이다.

'워라밸'은 일과 삶이 서로 마주 본다. 일은 삶의 일부도 아니고 분명한 대칭이다. '워라밸'의 목표는 일에 포식된 삶을 일로부터 분리하여 삶의 독자적인 것을 구축하고,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 이다. 이러한 설정에 이르게 된 배경을 물론 모르는 바는 아니나, 노파심인지 몰라도 이러한 설정은 일이 삶에서 분리되어 노동자에게 주체적 영역이 되고, 일을 제외한 그 외의 삶만이 노동자의 주체적 영역으로 분리되는 기이한 이데올로기가 성립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분리 사고는 일은 사용자에 처분에 맡겨진 비주체적 영역으로, 삶의 방치영역으로 고립될 수 있다. 어떠한 자에게 일은 대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고, 어떤 자에게는 작은 부분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크건 작건 간에 일은 삶의 일부이고, 모두 주체적 영역이 되어야 하며, 일관된 자기 결정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일과 삶을 분리하려는 것은 현실을 인정한 한편의 개량적 모색이기도 하고, 아예 현실을 은폐하고 현실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전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차피 노동은 소외되는 것이므로, 노동력에 대한가격에 대한 흥정이나, 그 외의 부수적 처우에 대해 논할 수 있지만, 노동소외 자체를 극복할 수 없으므로, 일(노동)을 삶의 영역에서 분리하여 가능한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후자는 아예 노동의 소외를 언급할 근거도 없이 판매된 노동력에 대한 독점적 처분권을 자본(사용자)이 행사하고, 나머지 시간만을 주체적으로 처분 가능한 삶으로 규정하여 판매된 노동에 대한 노동자 스스로의 개입을 원천적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자가 되었건 후자가 되었건 결과적으로 일은 주체적 삶에서 분리되어 방치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다카시는 맨 처음 자기 일과 삶을 일치시키려 했다. 그러나 하루 24시간 가까이 일을 했음에도 일은 자기 삶의 일부 조차 될 수가 없었다. 일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부장으로 대표되는 자본의 것이었다. 다카시의 의도와 무관하게 일은 삶 속에서 방치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 다카시는 괴로워는 했지만 이를 극복하려는 엄두도, 시도도 하지 않는다.

종국에는 사표를 쓰고, 일을 삶 속에서 드디어 주체적으로 단절시켰다. 다카시를 응원 했던 것은 사표를 쓴 것이 아니라, 주체적 삶속에서 배치되는 일을 다시 용기 있게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카시의 선택을 모두가 할 수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방치가 당연시되고, 탈주가 마냥 칭송된다면 도대체 정작 삶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일은 짧은 시간만 하는 것이 답이고, 휴일과 휴가를 가능한 많이 향유하면 되는 것인가? 일과 삶은 분리된 것이고, 분리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일과 직장은 그저 호구지책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호구지책 이상의 일은 특정하게 한정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직장에서의 노동을 포함한 삶은 사용자의 것이고, 직장을 벗어나서야 온전한 내 삶이 성립되는 것이 맞는 것인가? 그 삶은 실제 온전히 자신의 삶일까? 노동시간이 짧건 길건, 여유롭건 고되건 간에 그 공간과 시간에서 내가 내 노동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모두 다카시와 같이 먼 이국땅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일과 삶을 가질 수 없기에 묻고 또 묻게 된다.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직업을 묻고 대답하는 불편함을 넘어 / 2018.10

직업을 묻고 대답하는 불편함을 넘어

강충원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 회장

의대생들에게 "일하는 사람의 건강"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직업환경의학과라는 정식 수업 이외에 의학 공부에 집중된 의대생들에게 사회의 현실을 알려주는 일종의 교양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그때 의대생이나 의전원생들에게 여러분들이 노동자를 진료하는 일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고 물어보면 잠시 정적이 흐르고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한다. 학생들 머릿속에는 병원에서 보는 환자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덧붙여 이야기하며 여러분들이 만나게 될 환자분들은 일을 하고 있거나 과거에 일을 했거나 앞으로 일을 해야 할 사람일 가능성이 높음을 상기시켜 주곤 한다. 그런데 학생들에겐 의학지식보다 어려운 것이 직업을 묻는 일인 것 같다 환자들에게 "무슨 일 하십니까?" 물어보면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 흐르는 직업에 대한 편견도 작동하지만, 의사들에게 직업에 관해서 이야기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의사들은 직업을 물어보지 않는다.

그것은 직업을 아는 것이 치료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직업을 물어보는 것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의사가 그것을 배운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직업을 다 이해하거나 그 일이 병의 원인이나 치료, 이후 재활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오히려 노동자들이 환자가 되었을 때 자기 일이나 자신이 사용한 화학물질이나 자신이 의심가는 상황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고 업무와 관련된 것인지 의사와 상담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도 해본다. 둘 다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도 "당신은 무슨 일을 하세요?" 같은 질문을 많이 받는다. 막상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질문을 받으면 그것도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왜 그럴까? 앞서와 비슷한 이유로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직업, 노동과 의료, 건강이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건강하게 일하기"를 위해서 직업환경의학과라는 전문 과목까지 생겼음에도, 여전히 현실은 이윤을 표방하는 기업 논리 앞에 노동자의 건강권은 한없이 작아지고 만다. 

이렇게 직업, 노동과 괴리된 의료, 건강에 대한 인식 외에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직업을 물어보고 일하는 과정에서 노출되거나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생명을 다룬다는 병원에서도 시간은 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못 버는 과는 공간과 시간이 축소되거나 폐과되고, 돈이 안 되는 행위들은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그래서 사실 돈이 안되는 직업환경의학과는 사실상 늘 존재증명을 해야 하는 과이다.

현대인의 질병의 원인이 70%가 흡연이라고 하지만, 의사들이 환자의 금연에 시간을 많이 쓰지 않는 것이나, 질병에 대한 직업의 기여도가 2~10%라고 하지만 의사들이 직업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몇 가지 구조적이고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제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진료실에서 한번 더 고민할 이유가 몇가지 생겼다.

내년부터 고용노동부에서 보건관리대행이나 근로자건강진단 시에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이 산재신청을 도울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또한 업무상 질병에 대해서는 노동자가 불필요하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당연 인정기준에 해당하면 이전보다 쉽고 빠르게 산재로 인정받아 조기에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또한 산재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근골격계 질환이나 뇌심혈관계 질환 중 고위험 직종이나 업종에서 근무하는 경우 산재 특진 과정에서 진단과 치료에 대한 비용을 공단이 부담하여, 적절한 시기에 치료적 개입을 통해 노동자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서울시에서는 지자체 예산으로 근골격계 다발 위험업종이나 아파도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미루던 노동자들을 위해 유급 병가제도를 내년에 시행할 계획이다. 

그동안 일하다가 병을 얻었지만, 업무상 질병인정이라는 험난한 길을 걷기 주저했던 많은 분들, 그리고 그 가치가 저평가 되었던 많은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에게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반대 세력이 있고, 좋은 무기를 가졌더라도 잘 연마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다노동자와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이 "직업을 물어보고, 자신이 하는 일을 잘 설명하여" 변화하는 제도를 통해 서로를 살리는 관계가 되길 바란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도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서로가 잊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만남이, 직업을 물어보는 일들이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다.


[A~Z 다양한 노동 이야기] 작품 뒤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 2018.10

작품 뒤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 예술의전당 시설관리 노동자 이길섭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이번 <일터>는 세계적 수준의 공연 종합예술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의전당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지난 920일에 만났다. 예술의전당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시민들이 세계적 수준의 공연과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밤낮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다. 그런데 최고의 작품과 달리 이길섭 님이 일하는 업무 환경은 최악이었다.


한국 최고의 종합예술기관 시설관리 노동자로 살아가기

저는 20039월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15년 동안 시설관리 업무를 하고 있어요. 시설관리 분야는 기계, 전기, 방재, 제어, 통신, 영선실로 크게 나누는데 저는 기계 파트를 담당하고 있어요. 업무는 서예관, 오페라극장, 한가람미술관, 디자인 미술관, 음악당까지 예술의전당 전체 건물 시설을 관리해요.”

우리가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이나 작품을 관람할 때 필요한 전기, 조명 등은 물론 냉난방, 환기 등 쾌적한 환경이 갖춰진 것은 바로 이길섭 님 같은 분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기계 분야는 주로 시설물과 기계 등을 유지보수하고, 전기 분야는 전체 조명 등을 유지보수해요. 방재는 화재 예방을 위한 스프링쿨러 등 유지보수하고, 제어 분야는 고객 민원에 따라 전체를 컨트롤 하는 업무를 해요. 통신은 전체 통신, 전화선 등을 유지보수하고, 영선실은 계단, 소파 등 고객이 이용하는 편의시설에 대한 유지보수업무를 하고 있어요.”

무늬만 정규직 전환

올해 71일부터 정규직으로 전환됐어요. 예전에는 경비, 미화, 시설 관리 등 행정직이 아닌 이상 용역업체 소속이었는데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이야기를 하면서 저희한테도 그 영향이 미쳤어요. 문제는 전환하면서 이전 근속연수도 보장하지 않고 연차나 휴가, 처우 문제 역시 신규채용 형태가 되었어요. 동료 대부분이 여기서 10년 이상 근무했는데 결과적으로 임금은 똑같고, 이전에 있던 연차가 더 줄었고, 하계휴가는 아예 없어졌어요.” 

문재인 정부의 1호 공약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후 모든 공공기관은 청와대 눈치를 살피며 한정되어있는 예산과 인력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계획을 발표했다. 그 결과 예술의전당 시설관리 노동자처럼 지난 경력, 복지 및 처우 등에 있어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객의 편의를 맞추기 위한 노력

“9시에 출근해서 사무실에서 업무 회의를 해요. 조회 같은 거죠. 조회에서 오늘 어디 기계가 고장 났으니 고치라든가 정기점검을 하라든지 업무 지시를 받아요그러면 서예관에서 각종 공구를 챙겨서 현장에 나가서 일해요. 오전 업무가 11시반에 끝나는데 이때까지 일을 마치면 오후에 다른 일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밥 먹고 지속해서 그 업무를 마쳐요. 중간에 고객한테 민원을 받거나, 비상이다, 그러면 그쪽 일에 투입돼요.”

이길섭 님은 예술의전당 시설이 30년이 되다 보니 기계 고장은 물론 냉방으로 인해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등 각종 고장 및 점검할 일이 많다고 했다.

 각종 모터 베어링, 벨트, , 펌프 점검하거나 교체하고 필터 청소하거나 교체하는 일을 주로 해요. 매주 수요일은 안전점검의 날이라 전체 기계를 가동하고 상황에 따라 점검해요. 월별, 분기별로 정기 점검하는 경우도 있고요. 일이 제일 바쁠 때는 아무래도 주간에 공연이 잘 없으니까 그때 점검하는 일을 제일 많이 해요. 유명한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는 점검이나 교체보다 냉난방, 로비 조명 등 정비를 많이하고요.”

 4일에 한 번은 밤새며 일해

 제가 있는 기계 분야는 12명이 21조로 일해서 총 6개의 조가 있어요. 교대는 주간 주간 숙직 비번 이런 순서로 돌아요. 주간은 9시 출근해서 18시에 퇴근하고 숙직은 아침 9시에 퇴근해서 다음날 아침 9시에 퇴근해요. 이때 퇴근하면 하루 비번이 생겨요.”

이길섭 님은 통상 다른 시설 관리 업무에서 맞교대나 3교대 근무를 하는 경우보다 지금이 훨씬 건강에 좋다고 말했다.

일하는 조건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데 아무래도 숙직 근무할 때는 여러 가지로 힘든 거 같아요. 저녁 6시에 다들 퇴근했는데 다음 날 아침까지 남아서 벌어지는 일을 다 해야 하고 대기시기간도 긴장을 풀기 위해서 담배나 커피를 평소보다 더 하는 것 같아요.”

숙직 근무 시 새벽 1시부터 4시까지는 규정상 쪽잠을 자는데 휴게 시설을 갖추지 않아 탈의실 바닥에서 쉰다. 

언제나 도사리는 위험

기계를 만지는 게 일이라 늘 위험에 노출돼요. 특히 천장에서 작업할 때 추락 사고가 잦아요. 올해 초에도 동료가 기계 점검하려고 사다리를 높이 타고 일하다 추락해 뼈가 다쳐 산재 요양을 나갔었어요기계가 바닥에 있어서 넘어질 위험도 있고 감전 위험도 많아요.”

그렇다면 일하다 다쳤을 때 신속하고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는지 궁금했다. 

일하다 다치면 사무실에 있는 구급함에서 간단히 조치하는 게 다예요. 뼈라도 부러져야 산재처리를 해요. 그때도 비급여 치료를 많이 받아야 하는데 회사에서 법적으로 산재처리 했으니 다른 책임은 없다고 아예 모른척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올해 동료 산재 요양 기간 중에 비급여 치료비도 지원해달라고 3일간 투쟁을해서 지원을 받았어요. 사다리도 조금 더 안전한 거로 바꾸고요.”

노동조합을 무시하는 회사와의 싸움

회사는 상급 단체가 없는 자체 노동조합이 대표노조에요. 시설 쪽이랑 주차 업무노동자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이고요. 노동조합은 5~6년 전에 일하면서 부당한 것도 많고 처우는 나빠지다 보니까 한마음이 돼서 만들었어요.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조합원이었어요.” 

이길섭 님은 얼마 전까지 용역 업체 소속이다 보니 2~3년에 한 번씩 업체가 바뀌면서 고용 승계 불안, 원청과 용역 업체 간 책임 소재 떠넘기기 등으로 인해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전에는 회사가 대표노조도 아니고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개별 교섭도 해왔고 우리가 목소리라도 낼 수 있었는데 최근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나서는 개별교섭을 해야할 법적 책임이 없다 보니 전혀 응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지속해서 이 문제를 요구하고 있어요.”

 , 노동조합은 같은 시설관리 업무 노동자 중 일부가 감시단속적 업무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63조에 의해 노동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근로기준법 적용이 제외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여기서 일하기 전까지는 노동조합에 대해 이야기만 들어봤고, 회사에서 일하다 억울한 일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일일이 이야기하나 했었는데 결국 노동자가 자기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기업도 경총으로 목소리 내고 중소상인들도 협회가 있잖아요. 그렇다면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이 있어야죠.”

늘어나는 업무량과 어려움

“2003년에 입사했을 때랑 비교해보면 관리해야 할 카페, 레스토랑 등 편의시설이 많아지면서 전기나 냉난방, 통신 등 관리해야 할 일 역시 늘어났어요. 게다가 전체적으로 노후화되서 손봐야 할 것도 많은데 전체 인력은 줄었어요. 처음에는 이 정도로 타이트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업무량이 늘고 빠듯해요.” 

그렇다면 지금의 근무 환경을 바꿔야 한다면 어떤 점을 가장 먼저 해야 할지 물었다.

전체적인 근무 환경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인력도 충원하고 처우도 개선하고요. 경영하는 사람들이 노동자들은 내가 고용한 거니까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무조건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물불 안 가리는 것 같은데 그런 점도 바뀌어야죠.”

현장직도 당당한 노동자

아주 비좁은 공간에 들어가서 사고를 감수하면서 작업해야 할 때 힘들어요. 힘든과정이지만 고장 난 기계를 고치면 그때 보람이 있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기계 고치는 걸 좋아했거든요. 지금까지도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즐거워요. 그리고 한국 예술을 대표하는 곳에서 일한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이길섭 님은 인터뷰를 마치며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아쉽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한국 사회가 사무직하고 현장직에 대한 차별이 있잖아요. 요즘은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현장에서 땀 흘려 가면서 고생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런 분들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개선되어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았으면 해요.”

[현장의 목소리] 목숨 걸고 일하는 청소노동자의 하루 / 2018.10

목숨 걸고 일하는 청소노동자의 하루

- 마포구 청소위탁업체 노동자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사람들은 더 사용할 수 없어지거나, 가치가 없어진 물건을 쓰레기라 칭하고 버린다.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발생시키는 폐기물을 '생활폐기물'이라고 하는데, 환경부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5년 기준 하루 평균 51,247톤, 1인당 0.97kg 정도다.

하지만 우리는 이 쓰레기들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치워지는지 잘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 거리 환경미화원들은 어둠이 내린 밤에만 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의 유령'이라 불리기도 한다.

지난 9월 14일 오전 9시 마포구청 앞에서 피케팅 중인 그들을 만났다. 마포구 청소 위탁업체 소속 청소노동자들인 이들은 민간위탁 폐지와 직고용 전환,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인터뷰는 배성훈 위원장, 신용진 조합원, 서복석 조합원, 김성민(가명) 조합원 총 4명이 함께 했다.

이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한 건 작년 7월이다. 무엇보다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배성훈 "주 6일 야간근무를 합니다. 지금보다 당시엔 10명가량 적은 인원으로 일을 했고, 작업량도 훨씬 많았습니다. 관리직 빼고 22~23명 정도가 근무했어요. 아무리 짧게 끝나도 평일 10시간 근무는 기본이었어요. 저희가 토요일 휴무인데 쉬고 출근하면 쓰레기가 쌓여있어서 12~13시간 일을 해야 했죠. 게다가 관리자들은 사람 취급도 안 해주고, 막말을 서슴지 않았죠. 하다못해 내 연차도 자유롭게 못썼어요.

그래서 노동조합을 결성했는데 사측 탄압이 거셌습니다. 신입 직원 중 수습 하던 분들은 계약해지 당했고, 퇴사도 당했어요. 대부분 노동조합 가입을 하려는 분들이었죠. 노동조합 생기고 나서 회사는 신규직원을 10명가량 채용했어요. 상대적으로 저희 조합을 축소시키기 위해서라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 소속 조합원이 8명이에요. 대표노조는 기업노조가 됐죠."


이들의 일과는 밤에 시작된다.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을 하는데, 일요일 출근은 오후 4시 30분~5시에 하여 다음날 오전 6시~7시에 퇴근, 화~금요일은 저녁7시까지 출근해 다음날 오전 5시~6시에 퇴근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후에도 한동안 유지되다 얼마 전부터 일요일 저녁 7시에 출근해 오전 6~7시에 퇴근, 다른 요일에는 밤 9시에 출근을 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한다.

쓰레기양도 어마어마하다. 뉴스타파 보도 영상(18년 1월25일)에 따르면, 마포구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의 경우 혼자서 하루 3톤이 넘는 폐기물을 처리하고 1805세대를 돌아야 한다. 5분에 쌀 한가마니(80kg) 무게에 이르는 폐기물을 쉼 없이 들어 올려야 겨우 일을 마친다.

휴일은 일주일에 토요일 단 하루다. 토요일 오전에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 1주일 치 피로를 푸는 잠을 취하고 나면 출근해야 하는 일요일 밤이 금세 돌아온다. 만약 토요일에 일이 있다 치면 그마저도 날린다. 사실상 이들에게 온전히 쉬는 날은 없다.

연속 야간근무를 해도 되는 걸까? 야간노동은 노동자 건강에 절대 좋지 않다. 가장 흔하게 수면장애, 우울과 불안, 소화기계 질병을 일으키고, 오랜 기간 야간 노동에 종사할 경우 뇌심혈관 질환과 암 위험을 높일 뿐 아니라, 수명을 단축시킨다.

그럼에도 이들은 6일 연속 야간근무를 한다. 서복석 조합원은 벌써 11년째다.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연속 야간근무 개수, 야간근무와 다음 야간근무 사이의 간격, 1주일 및 1개월에 가능한 야간근무 일수 등 세부적 규제가 없다. 단지 임금가산과 보상휴가만 명시할 뿐이다.

김성민 "불면증은 당연해요. 생체리듬이 바뀌니까요. 정말 힘든 건 생명의 위협을 매일 느낀다는거예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을 하는데 말이죠."

서복석 "야간에는 시력이 저하돼요. 빛에 약해지죠.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오래 못 쳐다봐요. 별것도 아닌 거에 신경도 예민해져요. 잠도 많이 못 자죠. 자더라도 깊이 못자요. 사실 야간 일을 하지 말아야죠."


하지만 마포구청은 문제를 제기한 노동조합에 주민들이 냄새와 청결 문제로 낮에 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밤에 하는게 낫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야간노동으로 겪는 문제는 건강 문제만이 아니다. 사회적 관계까지 단절된다.

배성훈 "가족 모임이요? 상상도 못하죠."

서복석 "친구들하고 멀어져요. 모임에 가서 술 한잔해도 일찍 뻗어요. 2차 갈 생각도 못하죠. 모임에 가서 심지어 졸아요."


아픈 몸과 사회적 관계 단절은 정신 건강까지 위협한다. 일을 하며 받는 스트레스는 이미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김성민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같은 경우는 민원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요. 동일한 곳에서 민원이 들어오면 사유서를 써야 해요. 누적되면 징계도 가능하죠. 회사에서 노동자가 마음에 안 들면 해고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해요."

노동자로서 자존감이 날아가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휴게시설이 근무지마다 있지 않아 지하철 화장실이나 빌라 주차장 뒤편에서 눈치 보며 갈아입는다. 어둡기 때문에 감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회사 옥탑에 탈의실이 가건물로 하나 있지만, 그곳에 가는 것은 거리가 멀어 불가능하다. 탈의실만 아니라 휴게실, 샤워실 등 필요한 공간이 없는 문제도 심각하다.

배성훈 "저희는 밥도 못 먹어요. 미화원 근무복을 입고 쓰레기를 수거하다보면 오물이 많이 묻어요. 냄새가 나서 식당을 못 가죠. 그래서 정말 배고픈 사람만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사 먹는 정도예요. 그러다가 저희가 문제 제기를 계속하니까 이제야 취업규칙에 있는 1시간 휴게시간을 보내게 됐어요."

이들의 담당지역은 마포구인 상암동, 성산동, 합정동, 상수동, 창전동, 서강동 6곳이다. 유동인구도 많고 상업지구가 몰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배성훈 "상암동은 다 빌딩이라 무거운 게 많이 나와요. 100L 쓰레기봉투에 150L 양의 쓰레기를 담아 버려요. 그리고 농수산물 시장도 어려운 곳 중 하나예요. 거긴 쓰레기 압축기를 쓰거든요. 젖은 쓰레기를 100L 봉투에 담아 버리는데, 80~100kg 정도는 나갈 거예요. 둘이서 낑낑대며 겨우 들죠. 시장에 가면 그런 야채 쓰레기가 엄청 쌓여있어요. 제가 올해 1월에 거기서 수거작업 하다 청소차 회전판에 손이 껴서 부러졌어요."

김성민 "쓰레받기나 빗자루 사용은 엄두도 못내요. 일단 큰 마대자루를 땅바닥에 놓고 손으로 막 쓸어 담아요. 봉투에 잘 담겨 있으면 좋은데, 편의점 봉다리 같은데 넣고 안 묶어 두는 게 많아요."



마구 섞여 있는 쓰레기, 묶여있지 않은 봉투, 날카로운 것 등 위험 물질이 섞여 있지만 알 수 없는 상황 등이 청소 노동자들의 안전을 항상 위협한다. 무게 제한 없이 담긴 무거운 쓰레기 뭉치를 청소차량에 직접 들어 던지고, 받는 과정에서 근골격계 질환, 부상, 추락의 위험도 높다.

청소 차량 적재함에 쓰레기를 담고 발로 눌러 담으면 어느새 산처럼 높이 쌓이지만, 회사는 노동자들의 안전이 아니라 한 번 실어 나를 때 무조건 많이 담는 게 중요하기에 무시한다. 전기선이 낮게 위치한 주택가를 치울 땐 긴장하게 된다. 밤이라 잘보이지 않는 전깃줄이나 나뭇가지에 걸려 추락하거나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적재함에 올라타 있다가 전깃줄에 얼굴이 걸려 입이 찢어진 동료도 있다.

배성훈 "발판에 매달려 이동하다가 사망 사건이 많이 생겼죠. 마포구청에 불법 아니냐고 물었는데, 서로 책임을 미루더라고요. 결국 신문고에 올려서 떼게 했어요. 그런데 다른 업체는 발판을 다시 붙여서 매달려 일하더라고요. 저희는 걸어 다녀요. 조금 거리가 있으면 운전석 자리에 탑승해요. 걸어 다니는 게 훨씬 안전해요."

이처럼 사고의 위험도 높고 중량물 취급의 반복 작업을 해서 몸이 성한 곳이 없지만 산재처리는 꿈도 못 꾼다. 공상처리라도 해주면 다행인 현실이다. 산재 신청을 하겠다고 회사에 얘기했더니 인정 못 해준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위탁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해야 하는 마포구청도 별 다른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안전하게 일할 노동환경을 쟁취하기 위해 마포구와 업체를 상대로 민간위탁이 아닌 직고용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에 대한 조치를, 조합원 상대 부당노동행위 중단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하지만 마포구청은 올해 노동조합과 면담을 진행하고 나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고, 회사는 조합원들에게 징계처분을 몰아붙이고 있다. 그럼에도 결코 노동조합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눈을 반짝였다.

배성훈 "청소 노동자들에겐 안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진 항상 위험을 강요받았어요. 내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안해야 해요. 야간근무는 매우 위험합니다. 야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가 많아요. 그리고 민간위탁 형태는 업체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인원수를 줄이고, 안전에 투자를 하지 않아요. 전문 경영인이 보다 나은 서비스와 질을 제공하기 위한다는 목적에도 맞지 않죠. 사실 소수 몇 명을 먹여 살리는 게 민간위탁입니다. 다수의 노동자들을 죽여가면서요."

김성민 "저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와도 일해요. 만약 구청 소속이었다면 험한 상황에서 최소한 한 시간이라도 작업중지 시켰을 거예요. 저는 저희가 하는 이 일이 공공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산업안전보건법이 모든 노동자에게 제대로 적용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청소노동자들이 어떤 건강 문제에 처해있는지도 제대로 연구되고, 조사되면 좋겠습니다."

신용진 "우리가 다 같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하면 조금씩 변화할거라 생각해요. 우리가 비록 소수노조지만 회사도 분명 우리 눈치를 보거든요. 함께 뭉쳐서 바꿔내는 게 우리 힘의 원천이기도 해요. 많은 분들이 함께하면 좋겠어요."

서복석 "전국의 청소노동자분들 현실적으로 일을 그만두는 게 어렵겠지만, 그래도 힘들다면 과감히 건강을 꼭 먼저 챙기시라는 얘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

[연구리포트] 저임금 불안정노동자 ‘공급원’인 현장실습 / 2018.10

저임금 불안정노동자 ‘공급원’인 현장실습

- 반월시화공단 현장실습생 실태조사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2016학년도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에는 전국 593개교 60,016명이 참여했으며 참여 기업은 31,404개에 이른다. 2017년 제주도의 한 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학생이 기계에 깔려 결국 죽음을 맞았다. 그 이전에도 많은 죽음이 있었다. 2017년 12월 1일 정부는 ‘조기 취업형 현장실습 전면 폐지’를 발표했다.

하지만 2018년 2월 발표한 개선안에서 ‘산업체 채용 약정형 현장실습’을 제시하고 있어 조기 취업형 현장실습을 여전히 살려놓고 있다. 이 글은 반월시화공단에서 현장실습을 한 19명, 그리고 도제학교 학생 4명의 면접 조사를 토대로 한 실태조사 결과이며,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의 문제점과 이후 직업 세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반월시화공단은 25만 명이 일하는 큰 공단이지만, 한 업체당 20명 미만이 일하는 소규모 제조업체 중심 공단이다. 2015년 9월 민주노총의 ‘2015년 전국 산업단지 노동실태조사’ 결과에서 반월시화공단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위반은 92%였고 최저임금 위반은 40%를 넘었다. 2016년 3월 <반월시화공단 인권침해 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의 인권침해 빈도수는 55.74%에 달한다. 이런 현장이 결코 좋은 ‘실습장’이 될 수는 없다. 현장실습생들의 첫 번째 일터, ‘실습’이라는 명분으로 일하게 되는 현장은 노동에 대한 불안과 혐오를 심고, 자신의 미래를 고통스럽게 인식하도록 만들 뿐이다.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등 전국 각지에서 반월시화공단으로 현장실습을 하러 온다. 경기도 지역이 특히 많은데, 안산에 있는 한 공고의 경우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반월공단 내 모두 213개 업체에 모두 생산직으로 현장실습을 보냈다. 그 외에 안산과 시흥지역의 공업고등학교들이 반월공단 내 제조업체로 현장실습을 많이 내보냈다. 전공과 관련이 없는 제조업 생산직이다. 그 외에 경기권 공업고등학교의 경우 반월시화공단 생산직으로 현장실습을 내보내는데,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학생들도 현장실습을 ‘취업’이라고 인식하고, 교사들도 마찬가지이다. 기업들도 현장실습을 ‘저임금 노동력을 공급받는 통로’로 인식한다. 직업계고 학생들은 이름만 ‘현장실습’일 뿐 실질적으로는 ‘조기 취업’을 하러 반월시화공단으로 가는 것이다.

1. 현장실습에 대한 학교의 준비와 대응

학생들이 직업계고를 선택한 이유는 주로 ‘내신성적’이었다. 면접 참여자 대부분이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할 때 직업계고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적성과 진로 계획에 따라 선택하기보다 성적, 친구, 취업률을 앞세운 학교 홍보물에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또, 공부로는 뒤처지기 때문에 기술을 배우는 것이 경쟁력이 있겠다고 생각한 이들도 있었다. 직업계 고등학교는 공업, 상업, 농업, 해양, 보건, 관광 등 다양한 분야의 과를 개설하여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학교와 학과 특성이나 향후 진로와의 연관성 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선택에 어려움을 느낀 상태로 직업계고에 들어오게 된다.

학생들은 재학 중에 전공 여부와 상관없이 각종 자격증 준비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취업에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격증을 따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정작 사회에 나와 보니 자격증을 인정하거나 대우해주지도 않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노동인권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대부분 ‘노동인권 교육’이 무엇인지 묻거나, 뭔가 배우기는 한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산업안전과 근로관계법”에 대해 의무적으로 15차시 교육을 하게 되어 있는데, 이 교육의 효과성이 의문이다. 대강당에 전체 학생을 모아놓고 외부 강사가 대규모로 교육하거나, 온라인으로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현장실습에 필요하지 않은 자격증만 갖춘 상태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준비 없이 현장실습에 나간다.

면접자들은 ‘취업’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고 한다. 한 손에 아메리카노 커피를 들고 목에 사원증을 매는 일자리를 상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공단으로 출근한 이들은 바로 현실을 알게 된다. 실망하는 학생들에게 교사들은 ‘어디가든 똑같다’고 말한다. 대기업과 공기업 등 상대적으로 노동조건이 좋고 취업으로 연결되는 확률도 높은 곳은 ‘성적 좋은 애들만 뽑아서 보내’는 곳이다. 성적이 안되면 기계과를 나왔지만 리조트에 가고, 설계를 하고 싶지만 도면은 구경조차 할 수 없으며, 기능장을 만들어준다 말했지만, 청소의 달인이 된다고 말한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돌아간 학생들에게 학교는 ‘청소’나 ‘껌 떼기‘를 시키고, 깜지를 쓰는 등 징계를 하기도 했다.

현장실습이 의무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현장실습을 나간다. 3학년 2학기 수업은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현장실습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은 방치되어 있기 때문에 차라리 학교를 벗어나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현장실습을 통해 보람을 느끼기보다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차별적인 대우를 알게 된다. ‘억압받고 무서운 느낌을 일찍 알게 되어 취업을 망설이게 된다’고 말한다. 결국 다시 취업하지 않고 알바를 하거나 대학 진학으로 진로를 변경한다. 그런데 대학을 가더라도 현실이 달라질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취업’을 유예하는 것이다.

2. 실습 현장의 실태

학교는 ‘현장실습’을 조기 취업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학교-기업’의 연결망을 형성하려고 한다. 현장실습은 취업률 지표로 나타나고 학교의 실적과 연결되고, 기업은 저렴한 노동력을 공급받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현장실습을 나온 경우 학생들은 이곳을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일하는 것을 전제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현장실습을 마친 후 일터에 대해 ‘무서운 느낌’을 갖고 졸업과 동시에 그만두거나, 대학진학을 모색한다. 대부분이 기업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 없이 선생님이 소개해주는 곳에 ‘조기 취업’을 했기 때문에 쉽게 실망하게 된다.

게다가 실습지의 노동조건도 형편없다. 면접 조사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검토해보니 2018년 현재 월 임금 총액은 평균 169만원, 주당 노동시간은 무려 51.4시간에 달한다. 주 40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계산한 2018년 월 최저임금이 약 157만 원임을 고려한다면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사실상 최저임금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아니 51.4시간에 이르는 주당 노동시간을 고려한다면 실질적으로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경우도 다수일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기업들이 현장실습을 했던 이들을 대상으로 수당을 기본급에 편입하는 등 편법으로 임금체계를 바꾸기도 했다.

무책임한 기숙사 공간도 이들에게는 매우 충격이었다. 지방에서 온 학생의 경우 기숙사 한 방에 16명이 자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한회사는 공장 사장실 옆방을 기숙사로 만들어서 밤에도 호출하여 일하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면접자들이 경험한 일터는 노동안전 확보를 위한 조치들이 매우 미흡하고 위험한 환경이었다. 이에 한 면접 참여자는 ‘무서웠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결국 대다수는 현장을 떠난다. 그리고 현장을 떠나지 않는 이들도 자신의 미래를 이곳에서 찾지 않는다. 모든 면접자 중에 이곳에서 일을 계속하겠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여기에서 돈을 벌어서 자영업을 하거나, 대학에 진학하여 공부를 더 하거나, 혹은 다른 기술을 배워서 이 공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민을 준비하는 이도 있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려고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실현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현장실습을 왔다가 중도 포기한 경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대학을 가더라도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부유하는 노동자:시흥시 정왕동 1인 가구 노동자들의 노동과 생활세계,”(『산업노동연구』 22권 1호))에 의하면 결국20대 후반이 되어 다시 제조업 공단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높다고 한다.

3. 졸업 후에도 현장에 남는 학생들은 왜?

일부 학생들은 졸업 이후에도 계속 현장에 남는다. 이들의 현장실습지였던 반월시화공단이 결코 좋은 일자리가 아닌데도 친구들이 떠나간 일자리에 계속 남아서 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방 출신의 경우 서울 근교에 온다는, 수도권에 진입한다는 생각에 막연한 희망을 품고 현장실습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단 지방을 떠나오면 다시 돌아가지 않고 수도권에 정착하려고 하게 되는 것이다. 면접자들은 그래도 집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곳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반월시화공단에서 일자리를 구하려고 한다. 젊은 나이에 집에서 독립한다는 것도 매우 큰 기대감이다.

또 하나 남성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군대 가기 전에 자신의 전망을 뚜렷하게 세우지 못하기 때문에 군대 가기 전까지 일하는 ‘임시직’ 일자리라고 생각하며 다니기도 한다. 졸업 이후에도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면접 참여자들의 경우 ‘뭘 할지는 군대 다녀와서 생각을 해보겠다’고 하거나 ‘군대 가기 전에 돈을 벌어서 군대 다녀온 이후에는 다른 일을 찾아보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은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이전의 임시적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동조건이 형편없다 하더라도 새로운 일을 구하기보다는 현장실습을 한 곳에서 그대로 돈을 버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월시화공단에 계속 남아서 일을 하는 이들은 ‘산업기능요원’인 경우도 많다. 산업기능요원제도란 기술 자격이나 기술 면허를 가진 청년들을 군 복무 대신 국내 중소기업에 근무토록 하는 병역대체 복무제도로서, 중소기업 인력난을 덜고 고교졸업생의 취업을 지원한다는 의미로 2011년부터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위주로 운영을 하고 있다. 2016년의 경우 특성화고 등의 배정율이 무려 85.7%에 달했다. 그런데 일자리를 옮길 경우 노동자가 직접 다른 특례업체를 찾아야 해서 쉽게 옮기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인 헌신과 차별을 강요한다. 대부분의 산업기능요원이 최저임금을 받고 있었고, 노동법위반 사실을 알아도 제보를 하기 어려워했다. 졸업 이후에도 3년간 열악한 일자리에서 일하도록하는 굴레이다. 

최근에는 일·학습병행제가 노동자들을 열악한 일자리에서 계속 일하도록 만든다. 일·학습병행제는 ‘기업이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을 학습근로자로 채용해 현장 훈련을 하면서 동시에 전문대에서 이론 교육을 받게 하는 교육 훈련 제도’이다. 이 제도에 참여하는 노동자는 6개월 ~ 4년간 직장에 다니면서 학교 교육을 받는다. 회사와 학교 간 협약을 통해 운영되며 비용은 고용보험 기금에서 지출된다. 다른 회사로의 전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학’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노동자들은 산재를 당하고 불이익을 당해도 이 회사에서 계속 일할 수밖에 없다. 고용허가제처럼 전직을 불가능하게 하는 제도는 노동자를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묶어둔다.

현장실습이 학생들에게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대부분은 현장실습 이후 현장을 떠나지만, 정부가 중소기업 구인란 해소, 고졸 취업 장려를 명목으로 만드는 일·학습병행제나 산업기능요원제도가 노동자들의 발목을 붙잡아서 이 열악한 일자리에 3년 ~ 4년간을 버티도록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 간을 버틴 노동자들은 이 일자리에서 자신의 미래를 꿈꾸지 않으며 이곳을 탈출할 준비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고, 중소 공단의 일자리 질을 높이지 않고, 열악한 일자리에 노동자들을 붙잡아두는 제도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젊은 노동자들이 이 현장에서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4. 왜 대안적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가

힘들고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부당한 대우를 경험하면서도 현장실습을 하거나 혹은 현장실습 이후에도 반월시화공단에 남아있는 이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 자신에게 강요되는 상황에 맞서는 것은 생각도 못 하고 있으며, 친구나 동료를 만나서 자조 섞인 한탄을 하거나 혹은 장기적으로 이곳을 떠나는 것을 꿈꾸며 버틸 뿐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현장 실습제도가 불만이 있어도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어렵기 때문이며, 졸업 이후에는 산업기능요원제도나 일·학습 병행제도에 묶여 현장을 떠나기 어려운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현장실습을 시작할 때 학생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노동인권교육에서는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은 가르치지만,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했을때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학교는 문제가 생길 경우 ‘참으라’고 할 뿐,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한 회사에 16명 정도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매우 드물고, 대부분 한 회사에 1명 내지는 2명 정도가 현장실습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뿔뿔이 흩어져있기때문에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설령 산재를 당해도 회사에서 공상 처리하라고 하면 그래야 하는 줄 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노동조합’을 상상하지도 못한다. 이번 조사에서 놀란 것은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너무 없다는 점이었다. 조사에 참여한 노동자들 대부분이 ‘노동조합’에 대한 질문 자체를 어려워했다. 노동조합이 무엇인지 전혀 들어본 적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언론을 주의 깊게 보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의 경우, 학교에서 배우거나 경험이 있지 않는 이상 ‘노동조합’을 인식하기 어려웠다.

5.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은 폐지해야 하고 새로운 직업교육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교육부는 2018년 현장실습에 대해 ‘교육과정’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학생의 선택을 보장하도록 관련법을 정비했지만, 현장실습의 여러 유형 중 ‘산업체채용 약정형’ 중심으로 개선안을 마련하여 학교현장과 학생이 체감하는 변화는 미지수다. 포장지만 ‘학습 중심’이고 실제로는 조기 취업이기 때문이다. 학교 입장에서는 취업률을 올릴 수 있는 도구로, 산업체 입장에서는 저임금 노동력을 받는 통로 정도로 여기는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은 중단해야 한다. 학교가 중심이 되어 학과 특성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현장실습을 운영할 수 있도록 현재 의 직업교육을 점검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노동권 교육도 의무화해야 한다.

현행의 산업기능요원 제도와 일·학습병행제도에 대한 성찰과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산업기능요원’, 일·학습병행제도의 ‘학습 근로자’라는 특수신분의 폐해가 심각하다. 일반노동자와 구분되는 특수한 신분으로 인해 해당 노동자들은 자신의 회사에 상당 기간 동안 묶여있을 수밖에 없다. 전직을 불가능하게 하는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 학교에서의 학습과 특정기업근무를 분리하는 방향으로의 일·학습병행제도를 개선해야 하고, 산업기능요원을 지속하기가 어려운 조건에서 남은 병역기간을 다른 형식으로 대체복무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산업기능요원 제도와 일·학습병행제도를 활용하려는 기업의 기준을 강화하고 별도로 특별 근로감독을 해야 하고, 전담 상담창구도 마련되어야 한다.

고졸 청년 진로를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취업담당 교사가 전체 학생들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고용지원센터와 학교가 연계하여 전문 직업상담원을 배치하고, 학생들을 위한 진로 선택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취업과정에서는 담당 교사와 전문 직업상담원과 함께 취업상담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에서 고졸 취업에 대한 지원을 하고자 한다면 학교와 고용지원센터를 연계하는 직업상담원을 적극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다. 취업을 ‘현장실습’, 혹은 ‘중소기업 생산직이나 사무보조’ 등으로 단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맞춤형 진로 및 취업상담을 해야 한다.

청년노동자들이 유입되려면 공단이 좋은 일자리가 되어야 한다. 정부는 열악한 노동조건은 그대로 둔 채, 병역특례나 일·학습병행 제도 등 공단에 유입할 수 있는 외부적 유인만 강화한다. 중소기업이 좋은 일자리가 되어야 유인이 생긴다. 최저임금의 실질적 인상이나 청년노동자들이 주로 취업하는 중소사업장에 대한 정부 지원을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 그리고 노후화된 공단을 청년노동자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재생’하는 것, 예를 들어 주거환경 개선이나 노동자들의 교육 훈련 기관의 확대 등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개선이 필요하다.

청년노동자들이 스스로 뭉치고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 많은 노동자에게 노조를 경험하게 하는 것, 노조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노동조합이 전교조 직업계 담당 교사들과 연계하여 노동권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만드는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 노조에 대한 인식이 확산될 수 있도록 현수막, 공중파 광고 등 최선을 다해서 노조를 알리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의 노동조합 형식으로는 공단의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기는 어렵다. 개인이 가입할수 있는 형태로 노동조합의 형식을 바꾸어 노조의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특집3.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 함께하기 / 2018.10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 함께하기

- 치유활동가 허윤제 님 인터뷰

재현 상임활동가 


노동자 정신건강 관련해서 현장에서 함께했던 활동, 그 과정에서 느낀 고민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치유활동가 허윤제님을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9월 21일 충남아산노동인권센터 노동자 심리치유단 두리공감에서 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시작한 활동

"저는 2011년부터 충남노동인권센터 노동자 심리치유단 두리공감에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두리공감은 충남도, 아산시, 금속노조, 공동으로 활동하는 현장, 개별 등의 후원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첫 활동은 지역에 있는 유성기업의 불법적인 직장폐쇄와 노조파괴 문제로 조합원들 정신건강 문제에 개입하면서였어요."

허윤제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살릴 것인가인데 이 점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다치거나, 자살하는 경우를 해마다 보면서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죽지 않게 살려보자는 마음으로 활동해왔는데 유성기업에서 한광호 열사 돌아가셨을 때는 일을 그만둬야 하나 생각할 정도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2차, 3차 피해는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현장에서 긴급하게 위기 지원 활동을 했어요.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이 활동으로 사람이 살아나지는 않는 거 같아요.

노동자 개인적 원인이나 문제도 있겠지만 결국 현장에서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나쁘게 하는 건 노동조건의 문제이고 관계의 문제이거든요. 회사가 노동자에게 가하는 괴롭힘, 업무 스트레스 등의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실낱같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지난 시간

"유성기업은 직장폐쇄 이후에 5년 동안 꾸준히 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했어요. 개인, 집단 상담은 물론이고 공동체 프로그램 등을 통해 노동자들이 마음을 열고 힘들고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도록 했어요. 이 과정에서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노동조합이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 안고 주체적으로 고민하게 하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현장에서 사업단을 구성하게 하고 늘 공동으로 진행하고자 했어요.

그러다 한광호 열사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일단 현장에서 상주하자는 생각으로 1주일에 2~3일 정도 내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조합원들이 굉장히 예민해져 있어서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그랬거든요. 그러다 저희가 오랫동안 현장에서 함께 있으니까 경계심도 풀고 마음을 열고 각자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갑을오토텍 역시 직장폐쇄 이후였는데 투쟁 과정에서 분임조를 운영할 때라 분임조장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조합원들 상황을 같이 점검해보고, 몇 달간 집단 상담 등을 해왔어요."

유성기업의 경우 노동자들이 차량에 자살 도구를 가지고 다니거나, 정신을 차려 보니 베란다나 옥상에 있었다는 등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위급한 상황이었다. 노동조합은 지속해서 정신건강 문제로 고통받는 조합원에 대한 산재 인정을 촉구하고 현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임시건강진단 등을 요구했으나 관철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서 현장 노동자에 대한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했으나 아직 결과를 공유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 과정 역시 두리공감 활동가들이 함께해왔다.

모두가 개인의 문제로만 취급하는 문제

"개별 기업이나 자본, 정부, 지자체, 국회, 전문가들까지도 대부분 비슷한 시각인 것 같아요.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사실 이게 굉장히 어려운 문제인 게 만약 노동자가 일하다 현장에서 사고가 나거나 다쳤다, 그러면 원인이 너무나 명확하잖아요.

그런데 질병처럼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의 원인은 너무 다양하고 복합적이라서 업무로 인해 우울증 증상이 있는데 가정에서의 분란 등으로 인해 알코올에 의존하게 되었다고 하면 정신건강의 원인이 현장에서의 상황 때문인지 개별적인지 명확하게 밝히기가 어렵잖아요. 이렇다 보니까 개별 기업은 노동자의 스트레스가 개별적인 문제라고 주장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개별의 문제라고만 단정할 수 있겠어요."

허윤제님은 일부 개별 기업에서 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 제도라는 것을 만들어 현장 내 자체적인 상담실을 마련해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상담하고 대응하는데, 이 역시 회사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일환이라고 말했다.

"노동자 개인의 정신건강이 생산성과 효율성에 영향을 미치니까 정신건강을 돌봐서 생산율을 높이겠다는 의도예요. 회사 복지 차원으로 제공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거죠.

그런데 노동자들이 회사가 운영하는 이러한 시스템을 거부해요. 상담 과정에서 개인 정보도 많이 요구하고 나한테 정신건강 문제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 인사고과나 구조조정 등에 있어 불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회사가 자신을 보호하지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모든 이야기를 다하겠어요.

심지어 저희 두리공감에도 말씀을 꺼리는 분들이 많아요. 내가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내가 약하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선입견으로부터도 자유롭기가 쉽지 않거든요."

허윤제님은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의 정신건강은 노동조건이나 업무 스트레스 등이 주요한 원인이라는 연구나 사례들을 전문가가 많이 발견해서 개별 노동자의 탓으로 돌리는 기업이나 자본에 영향을 미쳤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노동조합에서도 아직은 고민이 부족한 문제

"유성기업 문제 이후로 노동조합에서 투쟁이 어렵거나 뭔가 돌파구가 없을 때 정신건강 문제를 수단으로 활용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를 드러낸다는 것 자체는 중요한 일인데, 문제를 드러내는 것 못지않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계획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걸 물었을 때 답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더라고요. 실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를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거든요. 어렵기도 하고요. 그럴 때는 저희가 현장과 만나서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 더 고민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있어요."

허윤제님은 이런 사례들은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를 일상적으로 고민하지 못하거나, 고민하기 어려운 점이라며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다.

"생각해보면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해결하려면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일환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 담당자도 세우고 이 문제를 적극 고민이 가능하도록요.

그런데 아직은 어려운 것 같아요. 현장에서 이 고민을 주도적으로 하는 주체도 별로 없고요. 그래서 두리공감에선 이제부터라도 현장 주체를 발굴해보자 고민하고 있어요. 일단은 시작으로 상담, 치유활동에 대한 양성과정과 매뉴얼 등을 고민하고 있어요.

상당히 고무적인 게 유성기업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하다 보니 이제는 현장에서 우리가 직접 해 보겠다 이야기 나오는 상황이에요. 처음에는 투쟁할 시간도 없는데 뭘 이런 거까지 해야 하느냐 이야기도 있고, 주요 투쟁 일정에 밀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적극적으로 고민하게된 거예요."

허윤제님은 갑을오토텍의 경우 투쟁 백서를 만들고자 하는데 이때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다른 상담, 치유 활동을 만들어가면서 주체 발굴 활동의 가능성을 조금씩 발견해나가는 것 같다고 한다.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의 가장 큰 원인

"현장에 가서 노동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실태조사 등을 해보면 개별 기업이나 자본이 노동자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을 때 우울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노동자는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게 생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나의 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것인데 그렇지 않거든요.

그리고 여러 논문을 검토해보고 현장에 가서 봤을 때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은 생계가 너무 힘들고, 고용이 늘 불안하고, 장시간 노동이 건강에 많은 영향을 미치겠더라고요. 아직 사회적 인식이 기업이 잘 살아야 나도 잘산다고 생각하잖아요."

지금까지 활동의 성과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라는 게 집단의 문제, 공동체의 문제라는 걸 알았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개별 기업이나 자본이 우리를 탄압해서 힘들어도, 노동자들이 마음이 나약해서 그런 거지 투쟁해서 이기면 괜찮아 지지 않겠어 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이제는 공동 활동을 하면 할수록 우리가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를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인식한 거예요. 내가 마음이 아프다는 걸 동료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부끄럽지 않게 된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치유활동가의 의미

"제가 개인적으로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이 아니고 그렇다고 전문상담사라거나 전문가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를 어떻게 소개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하는 활동이 현장과 전문가를 연결해주고, 그들에게 현장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도록 해주는 코디네이터 역할과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사람이 치유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특집2. 정신건강 보호와 예방? 행복하게 일할 권리! / 2018.10

정신건강 보호와 예방?

행복하게 일할 권리!

최민 상임활동가, 직업환경의학전문의


"본인의 일, 직업에서 자부심이나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까?"
"혹시 로또에 당첨되어 10억 원 정도의 돈을 받게 되더라도, 지금의 일을 계속할 생각인가요?"


'과로자살'이라는 말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매년 500명~600명이 일과 관련된 이유로 자살하는 한국에서 얼마나 되는 노동자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2017년 프랑스 민주노조총연맹이 프랑스 노동자 19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6.4%는 '자신의 일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설문 참여자의 70.5%는 '일을 하면서 가끔 웃는다'고 답했고, 일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노동자도 절반 이상, 자부심을 느낀다는 노동자도 절반이 넘었다. 39%는 로또에 당첨되더라도 지금의 업무를 계속하겠다고 응답했다.¹⁾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보호한다는 것은, 결국 노동자가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즐거움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정신질병 예방이 아니라 행복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이렇게 노동자 정신건강 증진 활동을 '노동자가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즐거움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까지 폭넓게 정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터에서의 정신건강 문제라고 하면 흔히 우울증과 같은 중한 정신 질병이나 자살을 떠올리게 된다. 일터에서의 정신건강보호 활동으로는 심리 상담이나 치료 지원, 직업병 인정 등이 제안된다. 직장 내 스트레스나 업무와 관련해 발생한 정신 질병이나 자살 사건에 대한 산업재해 승인과 보상 역시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노동자의 정신건강 보호와 예방 논의는 업무 관련 정신질환이나 자살을 줄이기 위한 대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노동자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직무스트레스를 줄여나가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과제로 인식돼야 한다. 직무스트레스라고 하면 막연하게 느껴지지만, 직무스트레스를 평가하는 여러 모델을 활용하여 ▲업무의 양과 요구가 적당할 것 ▲업무에서 노동자의 자율성을 가능한 보장할 것 ▲고용 불안정을 가능한 낮출 것 ▲직장 내 조직 체계를 공정하고 정의롭게 할 것 ▲업무환경이 심리적 안정을 방해하지 않도록 할 것 ▲동료, 상사와의 관계에서 생긴 갈등을 제기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 것 ▲평등한 조직 문화를 구축할 것 등의 과제로 구체화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전사회적으로 높아지는 고용 불안정이나, 일하는 노동자를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업무 요구, 노사갈등이나 노조 탄압에 업무를 활용하는 행태 등은 모두 노동자 정신건강을 저해하는 요인들이다. 이 문제들에 대해서도 '노동자의 정신건강 증진'이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문제 제기가 더 높아져야 한다.

정신 질병에 대한 관심 역시 질병에 도달하기 전 상태인 소진 증후군, 병가 사용 증가, 업무 만족도 감소, 이직 의도 상승 등으로까지 확대돼야 한다. 예를 들어, 스웨덴에서는 의학적 진단명이 아닌 '소진 증후군'도 업무와의 관련성이 증명되면, 산업재해로 인정되어 노동자가 산업재해와 관련된 각종 보상을 보장받는다.

실제로 2011년 스웨덴에서 총 451건의 번아웃 증후군 관련 질병이 산업재해 승인 신청됐고, 이 중 70건이 인정되었다고 한다.²⁾ 보상에서의 확장뿐 아니라, 직종별, 세대별로 질병 이전의 이런 실태에 대한 조사와 원인 분석이 필요하다. 개선을 위한 정부, 기업의 역할이 사회적으로 활발히 토론돼야 한다. 

노동자 정신건강 보호를 사업주의 법적 책임으로 

이를 위해,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보호하는 것이 사업주의 책임이라는 것이 법적 수준에서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고 근로조건을 개선 할 것'을 사업주의 의무로 두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사업주가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보건조치' 조항에는 물리적 요인, 화학적 요인, 인간공학적 요인에 대한 조치는 담겨있지만, 정신건강과 관련된 내용이 빠져 있다. 노동자 건강과 관련된 사업주의 의무를 가장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조항이라는 점에서, 보건조치 조항에 정신적 스트레스와 관련된 조치 의무를 담는 것이 필요하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4조(보건조치)
① 사업주는 사업을 할 때 다음 각 호의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1. 원재료·가스·증기·분진·흄(fume)·미스트(mist)·산소결핍·병원체 등에 의한 건강장해
2. 방사선·유해광선·고온·저온·초음파·소음·진동·이상기압 등에 의한 건강장해
3. 사업장에서 배출되는 기체·액체 또는 찌꺼기 등에 의한 건강장해
4. 계측감시(計測監視), 컴퓨터 단말기 조작, 정밀공작 등의 작업에 의한 건강장해
5. 단순반복작업 또는 인체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작업에 의한 건강장해
6. 환기·채광·조명·보온·방습·청결 등의 적정 기준을 유지하지 아니하여 발생하는 건강장해
<추가 제안> 7. 업무 수행 및 이와 관계된 인적, 물적 환경에 의한 신체적 피로 및 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한 건강장해


물론 사업주에게 법적 의무가 부여된다고 현실에서 바로 작동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신건강 문제를 전체 산업안전보건관리의 영역 내로 포함하여 규율화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유럽 기업체 조사를 기반으로, 유럽 나라들의 직장 내 심리적 위험요인 관리를 비교·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내에서도 나라에 따라 심리적 위험을 관리하는 정책, 수단의 차이가 크고, 일반적인 산업안전보건관리가 잘 되는 나라가 심리적 위험관리도 잘 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 노동자, 경영진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계획과 주도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³⁾

개별 사업장의 과제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도 노동자의 정신건강이 노사 간에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사업장마다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다양하다. 직무스트레스나 정신건강과 관련된 교육 활동, 직무스트레스 요인과 정신건강 상태에 대한 조사·연구, 조사 결과에 기반한 스트레스 저감계획 시행, 시행 이후 평가와 새로운 목표 설정 등이 모두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보호하는 사업주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구체적인 할 일이 된다.

앞서 강조한 대로, 이런 활동이 사업장 산업안전보건 체계 내에 통합되어 진행돼야 한다. 직무스트레스와 정신건강 예방 활동이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노사협의회의 중요한 안건이 되고, 법적 의무로 실시되는 안전보건교육의 일부로 직무스트레스 교육을 진행되는 것이다. 직무스트레스 관리나 술·담배 의존 관리가 노동자 뇌심혈관질환 예방 활동과 통합되고, 근골격계질환에 따른 통증 관리가 다시 정신건강 증진 활동과 통합되는 사업장 보건관리도 모색돼야 한다.

또, 노동자들에게 주요 스트레스가 될 문제들에 대해 미리 회사 차원의 규정을 수립해두는 것도 중요한 예방 활동이다. 예를 들어, 사내에 일터괴롭힘에 대한 규정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런 규정은 일터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처리를 신속히하고, 피해자를 도울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일터괴롭힘에 대한 조직 구성원의 인식을 높여 사건 발생을 줄일 수 있다. 일가정양립과 관련한 정책, 업무 평가 등 조직 체계상의 정의를 확보하기 위한 정책이 미리 노사 합의로 수립되어 공표되는 것도 마찬가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정부 정책과 법 개정에서 출발하자

사실 노동은 많은 경우 살아갈 힘을 제공한다. 급여와 복지 등 기본적 토대를 제공하고, 불안하거나 우울한 노동자에게도 규칙적인 일상을 부여해 사회적 기능을 유지하도록 돕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많은 일터는 살아갈 힘을 제공하기는커녕,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파탄내고, 죽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던 노동과 자살이, 지금의 불안정한 노동 조건 아래에서는 지극히 가까워졌다고 분석하는 학자도 있다.

노동자가 무한한 경쟁으로 내몰리고, 혼자라고 느끼며 폭력과 모욕에 노출되다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사회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일하는 것은 불가능한 목표인지도 모른다. 결국은 생산성과 이윤 대신 노동자의 몸과 삶을 우선시하는 사회가 될 때, 혹은 최소한 노동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일할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협상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에야 가능하다고 냉소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정부와 법적 차원에서 먼저 일터에서의 정신건강 문제를 지금보다 훨씬 폭넓게, 전향적으로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 각주 
1) 황재훈, 프랑스의 번아웃 증후군 예방을 위한 시도, 국제노동브리프 2018.9,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재인용
2) 위의 글과 같은 재인용
3) https://osha.europa.eu/en/tools-and-publications/publications/management-psychosocial-risks-europeanworkplaces-evidence/view

특집1. 노동자 정신건강과 자살 실태 / 2018.10

노동자 정신건강과 자살 실태

김인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직업환경의학교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어디엔가 있다. 보건복지부가 2016년 실시한 정신건강실태 조사에 따르면, 15세에서 64세의 생산가능 인구에서 니코틴이나 알코올 사용 장애를 제외한 정신질환의 평생 유병률은 13.2%였다. 즉 15세에서 64세의 국민을 사망할 때까지 관찰하면 백 명 중 약 13명이 사망할 때까지 한 번은 정신장애를 앓는다는 것이다.

니코틴이나 알코올 사용 장애를 제외하고 평생 유병률이 가장 높은 질환은 주요우울장애로 5%였으며 다음으로 특정 공포증이 5.6%였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평생 유병률은 1.5%였다.¹⁾ 2017년 취업자 수가 2,700만 정도가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건강한 노동자들만이 취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매우 많은 수의 노동자가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정신질환을 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살도 규모가 작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에 1~2위를 하고 있는 나라인 한국에서 2016년 전체 자살자 13,092명 중에 약 44%인 5,709명은 직업이 있었다. 이 중 서비스 종사자 및 판매 종사자가 1,380명으로 가장 많았고, 단순노무종사자가 824명,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가 677명, 농림어업숙련종사자 677명, 관리자가 414명 순으로 많았다.

경찰청의 변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자살자의 36.2%는 정신과적 질병 문제로 자살을 하였고 23.4%는 경제생활문제로 자살을 하였다.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로 자살한 경우는 514명으로 3.9%에 해당하였다.²⁾ 주된 자살의 원인이 되는 정신과적 문제나 경제적 어려움 역시 직장에서의 고용불안이나 다른 스트레스 요인 등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업무와 관련해서 발생한 자살의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체 규모에 비하면 업무와의 관련성이 인정된 정신질환과 자살을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경찰청에서 2016년 자살 사망자를 분류한 바에 따르면 88명이 공무원이었고 이중 약 25%인 22명은 직장내 문제로 자살을 하였고 26명은 정신과적 질병문제로 자살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³⁾ 민간기업 종사자의 경우에는 산재보험에 의한 보상 자료를 통해 그 일부나마 확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신청 건이 매년 200여건 정도로 전체 규모에 비해 적을 것으로 판단이 된다.

공무원연금공단이나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의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공무원이나 사립학교 교직원에서 정신질환이나 자살로 업무관련성을 인정받는 경우는 그 빈도조차 확인이 불가능하다. 다만, 그 규모가 상당할 것이라는 점은 몇 가지 자료로 추정할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이 이용득 의원실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1월에서 11월까지 194건이 정신질환과 자살로 산재신청을 하였으며, 이중 112건이 승인이 되어 약 57.7%의 승인율을 보였다. 승인율이 가장 높았던 것은 적응장애, 급성스트레스장애/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였으며 우울장애의 승인율이 56.7%였고, 불안장애는 상대적으로 낮은 승인율을 보였다.⁴⁾



이 표에서 기타로 분류된 99건의 거의 대부분은 자살일 것으로 판단되는데, 기타로 분류된 정신질환 중 49건이 승인이 인정이 되어 승인율이 49.5%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살의 승인율도 이와 유사할 것이다.


2017년 판정 사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판정이 이루어진 63건의 자살 사례 중에 23건이 업무관련성이 인정이 되어 승인율은 6.5%였다. 자살과 정신질환에 대한 승인율은 매년 증가를 하고 있는 추이를 보이고 있으며, 2018년에는 1월에서 8월까지 정신질환에 대한 승인율은 더욱 증가하여 75.7%에 이르고 있다. 즉, 업무관련성 판단에 대한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신청 건수와 양상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정신질환의 원인은 진단명에 따라 다양하다고 볼 수 있다. 급성스트레스장애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심리적 외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건이 원인이 되어 발생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통적으로 말하는 트라우마는 직접 죽음을 목격하거나 본인이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 정도의 충격을 말하는데, 동료가 산재로 사망하는 현장에 있었던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경우들이 대표적이다. 일례로 2017년 노동절에 발생한 비극적 참사였던 삼성중공업의 크레인 사고 당시 많은 노동자들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2018년 4월말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다치는 대형 사고를 목격했던 노동자 7명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을 받았다. 산재 인정을 받기는 했지만 그런 전형적인 트라우마를 겪은 노동자들에 대해서 응급처치와 같은 심리적 응급 지원(Psychological First Aid, PFA)을 하고 조기 개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적응장애는 외상후스트레스와 함께 '외상 및스트레스 관련 장애'로 분류되어 있는 질환이다. 즉, 외부적 스트레스 요인에 의해 외상후 스트레스의 전형적인 증상이 모두 나타나지 않고 불안이나 우울이 나타나는 경우에 붙이는 진단명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적응장애의 승인율이 80%로 가장 높다.

전형적인 심리적 외상 사건이 아니더라도 폭언·폭행·성희롱이나 경영위기, 민원인과의 갈등, 업무 수행 과정에 나타나는 갈등, 원치 않는 일방적인 전환배치, 회사와의 갈등이나 업무 부적응, 괴롭힘 등이 노동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적응장애의 주요 원인이었다. 노동자와 사업주의 진술이 다르거나 노동자들의 진술이 달라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누구나 그런 상황이 되면 심리적으로 힘들거라고 예상되는 사건들이 그 원인이 된다.

우울증의 경우에는 직업적 요인과 관련한 연구도 비교적 많이 되어 있고, 외국에서도 업무상 질병 포함 여부와 관련해서 이슈가 집중되어 있는 질병이기도 하다. 외국의 다양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심리적인 요구도, 낮은 사회적지지, 노력-보상 불균형, 불공정성, 위협, 폭력 및 괴롭힘, 남성에서의 직업 불안정성 등이 우울증의 주요 위험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은 유병률이 높은 만큼 국내 정신질환 신청 사례 중에서도 가장 많은 건수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신청 사례들도 주로 과도한 업무량, 계약 기간 만료를 앞두고 있는 노동자들이 느끼는 고용불안정, 직장 상사나 동료·후배와의 갈등, 성추행이나 성폭행, 노사 갈등, 부당 전보나 부당한 업무지시, 법적 송사나 감사에 연루가 되는 등의 사건이 많았다. 노동자들의 우울증은 수개월 또는 수년간 지속된 스트레스가 높은 상황에서 외상성 사건이 촉발요인으로 작용하여 증상을 악화시키거나 하는 경우가많다.

자살의 경우도 우울증과 유사하다. 자살에 이르게 되는 사례들을 살펴보면 가장 흔한 사례 중에 하나가 상사와의 갈등이나 괴롭힘이며 일방적인 배치전환 역시 주요한 계기가 된다. 또한 팀의 인원이 변화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담당하게 되면서 업무의 내용이나 업무량이 변화하게 되거나, 마감이 몰리거나 클레임 등이 생기면서 업무의 속도나 활동이 변화하게 되는 등의 사건이 많다.

'비참한 사고나 화재의 체험, 목격', '신규사업의 담당이 되거나, 회사 재건의 담당이 된 경우', '고객이나 거래처로부터 클레임을 당한 경우', '근무형태의 변화', '퇴직의 강요', '심한 괴롭힘이나 따돌림', '승진에서 뒤처지는 경우', '성희롱을 당한 경우', '상사와의 갈등이 있는 경우' 등이 주요 사건으로 이야기 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사례들을 자세히 살펴보다 보면 이러한 사건 자체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살은 한 번의 사건으로 인해 발생하기보다는 일정한 경로를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자살을 향해 달려가고 있구나'라는 느낌이라고 할까? 무언가 스트레스가 될 만한 큰 사건을 겪고, 이를 극복해가면서 또는 이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좌절과 불안, 절망감을 느끼게 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일들 때문에 너무나 괴로워하며 심각한 우울증상을 보이던 노동자들이 병가를 가고, 병가에서 복귀하여 다시 극복해보려 하지만 다시 절망감에 빠지게 되고 최후의 수단으로 사직서를 내게 된다. 보통 이러한 노동자들은 완벽주의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업무 성과도 굉장히 좋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상사는 이들의 사직서를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대치할 사람을 구할 수 없다'든가 '당신이 아니면 이 일을 해결할 사람이 없다'면서 사직서를 반려하게 되고, 마지막 희망이던 사직까지 좌절이 되면서 노동자는 결국 자살을 택하게 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체불된 임금을 받지 못해서 스스로 분신을 하는 노동자, 입주민의 폭언에 시달리다가 크게 싸우고 바로 옥상에 올라가서 뛰어내린 경비원, 정리해고와 노조탄압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을 맨 노동자, 지속된 상사의 폭언과 괴롭힘에 시달리다 퇴근 후 집에서 목을 맨 노동자,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과 교수의 폭언에 시달리면서 친구에게 농담조로 우울증 약을 달라고 하다가 스스로에게 치명적인 약물을 투여한 전공의, 외국 지사에서 발생한 제품 불량문제 해결을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다가 타지의 호텔에서 목숨을 끊은 노동자까지, 정말 다양한 죽음이 도처에 있다.

이러한 죽음을 살펴보다보면 자살 시도 자체가 가장 위험한 정신과적 증상으로 산재인정의 기준이 되는 '정신적 이상 상태'⁵⁾에 해당한다는 의견에 동의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스스로의 죽음 말고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감이 컸다. '그 정도로 힘들면 그만 둘 수 있잖아'라고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회사를 그만두면 된다는 판단과 실행을 못하는 상태가 자살 직전의 정신적 이상 상태'라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이다.

이런 상황이 반영되어, 최근의 대법원 판례들은 의학적·자연과학적 인과관계나 정신병적 증상을 자살 산재인정의 주요한 기준으로 보지 않는다. 이는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해석과도 관련이 있다. 실제로 최근 대법원 판례는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다.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노동자의 부상·질병·신체장애 또는 사망을 뜻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하지만,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가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경우라면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고, 비록 그 과정에서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자살 직전에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14.10.30. 선고 2011두14692 판결, 대법원 2015.1.15. 선고 2013두23461 판결 등 참조)

우울증이나 적응장애 같은 정신질환이나 자살과 관련한 사례들을 보다보면 이러한 스트레스성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이러한 질환들이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정신적으로 건강과 불건강한 상태라는 것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건 불가능하다. 사람은 누구나 정신건강이 좋을 때도 있고 상대적으로 좀 기분이 가라앉거나 심리적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그 원인은 선후가 다를 수는 있지만 개인적 문제와 업무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일을 하다보면 누구나 이러한 스트레스 사건을 겪을 수 있는데, 그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심리적인 회복력이 있거나 그 상태를 헤아리고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조직적 지원이 있다면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질환에 걸리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정신질환과 자살의 문제는 지금까지의 직업안전보건에 있어서의 엄격한 '의학적 인과관계'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해결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게 된다. 원인과 결과라는 일대일의 대응 관계를 벗어나, 개인적 요인과 직업적 요인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노동자들의 인격권이라는 것이 근로계약 속에서도 보호되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공감하고 이를 명시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지금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노동의 형태와 근로계약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전통적인 노동자성이라는 것에 대한 의문이 커 가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장으로 가면 노동자이고, 퇴근하면 지역주민이라고 나누어서 정책적으로 개입을 하는 틀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 각주
1) 2016 정신질환 실태조사. 보건복지부
2) 2018 자살 예방 백서. 보건복지부
3) 2018 자살 예방 백서. 보건복지부
4) 정신질환 질병별 산재 승인데 대한 연도별 추이. 『정신질환 요양자료분석. 자살·정신질환 산재판정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용득 의원실. 2018년 10월』에서 재인용
5)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자살과 자해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을 해주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는 산재보험법 시행령으로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해당하는 법률과 시행령은 다음과 같다.
△ 산재보험법 제37조(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
②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 다만, 그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 산재보험법 시행령 제36조(자해행위에 따른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 법 제37조제2항 단서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를 말한다.
-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 행위를 한 경우
- 그 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

<일터> 통권 175호 / 2018.09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 통권 175호 / 2018.9

특집 : 일터 괴롭힘 끝낼 수 있을까? 

4 직장갑질119 300일, 이제 정부가 답할 때   

10 일터 괴롭힘 대책에 대한 평가 

13 슈퍼갑질, 인권유린 끝낸다


18 [지금 지역에서는] 

석면으로부터 안전한 학교가 우선이다!!

20 [국제 노동안전건강뉴스] 

대만 대법원, RCA 산재판결에서 의미있는 선례 남기다

22 [국제 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 검토 연구]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주는 메시지 ①

24 [연구 리포트]

출판산업 내 숨은 노동 일러두기

30 [사진으로 보는 세상]

32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스마트폰 수리하는 여성 엔지니어의 하루

36 [현장의 목소리]

지난 38년의 세월을 뒤엎다 

40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장시간 중노동 근절을 위해 오늘도 달립니다”

44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우리는 시(時)쓰는 버스 운전 기사를 만날 수 있을까

46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48 [노동자건강상식] 

장염에 대하여

54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與] 

보일러공의 악성중피종 

52 [발칙 건강한 책방]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이 맞다!

54 [이러쿵저러쿵]

반올림과 같이 걷는 걸음

56 한노보연 이모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