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 가정을 잠식한 화학물질 /2016.11

가정을 잠식한 화학물질

 


권종호 선전위원

 

미세먼지, 매연, 소음 등의 일상적인 공해와 노동자들이 작업 공간에서 접하는 분진, 화학물질, 피로, 스트레스 등 다양한 종류의 유해인자들로부터 격리될 수 있는 공간. 안전하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공간. 바로 우리들의 가정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이러한 안전한 공간, 편안한 공간으로서의 가정마저 여러 위해인자들로부터 위협받고 있다. ‘케미컬 포비아’, 화학물질 공포증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범국민적 불안이 현재 한국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심각한 화학물질 노출 사례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겪었고, 정부의 안일한 관리 감독과 기업의 비도덕성이 그 근저에 깔려 있었음을 깨달았다. 결국 그러한 정부와 기업에 대한 불신은 일상에 사용하는 화학물질들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함유된 치약 및 물티슈에 대한 리콜 사태, 페브리즈 위해성에 대한 논란 등 여러 사회적 이슈들을 겪고 있는 것이다.

 

불필요한 불안 심리

현재 가정 내에는 세정제부터 방향제, 화장품, 살충제, 접착제, 심지어 식품들까지도 따져보면 화학 물질이 포함되지 않은 것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수많은 화학 물질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런 화학 물질에 의한 건강 영향은 없거나 아주 미미하다. 심지어 이번 치약 리콜 사태로 이슈가 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도, (물론, 가습기 살균제 사태이후 현행법상 치약에 금지된 성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당연한 관리 소홀과 법규 위반 사례이긴 하지만) 호흡기 노출로 인한 건강 영향이 발생하는 물질이긴 하나 치약에 함유된 양은 유럽 기준치보다도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실제적인 건강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이미 그 물질에 대한 정보가 있고 노출되는 양에 대한 기준이 있는 상태에서 용도에 맞게 잘 관리되는 화학 물질들이라면 그에 대한 불안은 불필요한 것일 수 있다.

 

막연한 불안의 정체

하지만 문제는 가정 내에 존재하는 화학 물질의 건강 영향이 모두 확인되고 노출 기준이 마련되어 있으며 용도에 맞게 잘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습기 살균제 성분 중 가장 심각한 독성을 지닌 헥사메틸구아니딘(PHMG) 성분을 보자. 이 물질은 이미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폐섬유화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사용이 금지된 상태였지만, 올해 4월까지 스프레이형 신발 탈취제 성분으로 정부에서 인증된 KC마크까지 달고 판매되던 중 발각되었다. 문제가 되었던 화학 물질인데도 여전히 관리가 안 된 상태였고 심지어 호흡기 노출이 가능한 스프레이 형태로 유통되었다.

 

화학물질 관리 - 인력도 체계도 대책도 없다

환경부는 지난 5월 탈취제를 비롯해 소독제·방충제처럼 곰팡이나 세균 등을 제거하는 살생물 성분이 들어간 생활 화학제품 전수 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환경부의 전수 조사 형태는 8,000여 업체로부터 함유된 살생물질 종류와 인체 유해성 여부에 관련된 자료를 제출받아 수행하는 것으로 업체가 고의적으로 누락하거나 유리한 자료로만 제출하는 경우 이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또한, 안전이 의심되는 제품의 경우 위해성 평가까지 함께 수행한다는 계획인데 실제 조사 인력은 10여명에 불과해 충실한 조사가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살생물 성분에 국한된 전수 조사이므로 그 이외 물질에 대한 건강 영향은 여전히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다.

 

국방만큼 중요한 화학 물질 안전 관리

오늘날 가정에서 쓰이는 수많은 화학 물질 제품에 대한 관리부재가 막연한 불안만을 낳았고,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겪고 나서야 막연한 불안이 실제로 위험한 것임을 인지하면서 이제는 케미컬 포비아로 번지게 되었다. 막연한 불안을 철저히 확인해 가정에서 쓰이는 화학물질이 안전함을 인증해 주는 것은 치안과 국방만큼 중요하게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안전 문제이다. 화평법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 제도를 보완, 강화하는 것만으로 해결하려 하거나 보여주기식 전수 조사를 통해 모면하려는 행태를 지양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 보다시피 화학 물질 관리 책임은 환경부, 식약처, 노동부 등 각 부처별로 나뉘어 있고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또한, 쏟아져 나오는 화학 물질의 건강 영향을 확인해 줄 전문 인력도 없는 상태다. 이제는 한국도 선진국 수준의 독성 물질 감시 센터를 설립해 가정은 물론 노동 현장에 사용되는 물질까지 국민에게 노출될 수 있는 모든 독성 물질에 대한 안전성 확인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