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조합원의 주체성으로 다시 서는 민주노조 /2015.9

조합원의 주체성으로 다시 서는 민주노조

 

 

선전위원회

 

 

조합원의 주체성으로 다시 서는 민주노조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경과하며 민주노조가 폭발적으로 등장한 이후, 30년이 지났다. 현장의 민주적 역동성은 어느 새 80년대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의 추억으로만 여겨진다. 민주노조 건설을 둘러싼 격렬한 투쟁 국면이 일단락되고 노사 관계에서 제도적 측면들이 완성됨에 따라, 노동조합은 노동자를 대리하거나 대행하는 데에 머물게 된 경향을 보였다. 그 결과 노동자 개인은 운동의 주체가 아니라 지침을 이행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 지도부를 넘어서는 아래로부터의 투쟁, 통제 가능하지 않은 자발적인 투쟁은 환영받지 못한다. 민주적 역동성을 잃고 제도화된 노동조합은 ‘관리된 투쟁’을 조직한다. 의례화된 임단협 투쟁 일정, 자조 섞인 ‘뻥 파업’ 등은 노동조합 운동의 현재를 보여주는 한 단초다. 나아가 투쟁을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현장의 역량에 대한 믿음 자체가 약해진지 오래다. 관성화된 조합 활동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수동적인 개인으로 여겨지고, 사회적으로는 자기 밥그릇 챙기는 정규직 노동자 취급당한다. 이런 노동조합들마저 사측의 주도 아래 극단적인 폭력으로 깨져나가 억압적인 어용노조로 교체되는 것이 복수노조 시대 민주노조의 현실이기도 하다.

 

투쟁 속에 실현된 조합원 민주주의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사측의 노조 파괴시도에 맞선 한 노동조합의 투쟁이 이목을 끈다. 금속노조 ‘갑을오토텍 지회’의 투쟁이다. 복수노조 도입 이후, 어용 노조를 활용한 민주노조 파괴가 노무법인들의 돈벌이 수단으로까지 된 마당에, 갑을오토텍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 자체는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뒤 진행 과정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의 지침을 넘어서는 활동을 제안했다. 1인 시위도, 가족 연대 활동도, 교대제 2조의 오전 투쟁 결합도, 조합원 스스로 채팅방을 통해 상황을 나누고, 토론하고, 투쟁 방안을 제안하고, 호응했다. 노동조합은 이런 조합원들의 열기를 적극적으로 받아 안고, 이런 주체적인 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고 살리는 투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전부터 고민하던 분임조 활동을 본격화해 실질적인 소통과 논의 구조가 될 수 있도록 조직했다. 갑을오토텍지회 안재범 노안부장은 “평상시처럼 지도부나 확대간부들만 공유하고 판단하여 결정했다면 조합원 동지들의 자발성, 역동성은 고사하고 기세도 떨어져 투쟁을 말아 먹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균형 조합원은 “우리가 몰랐던 조합원들의 저력이 있었던 것 같다. 그걸 끌어내는 계기와 모아내는 매개체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다시 발견한 조합원의 자발성과 주체성

 

갑을오토텍 조합원들에게 주체적인 활동의 영감을 준 것이 두원정공 투쟁이다. 2014년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두원정공 노동자들이 아래로부터 만들어간 투쟁이 힘이 되었다. 2014년 두원정공 지회의 투쟁은 사측의 단협 위반으로 시작되어, 교섭이 교착 상태에 있으면 폐업절차를 밟겠다는 사장의 발언으로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 폐업 발언이 나오자 조합원들이 스스로, 당시 지침으로 시행하고 있던 1시간 파업을 전면파업으로 전환시켰다. 노동조합도 이런 조합원들의 투쟁 의지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조합 지침 대신 소단위(중대)별로 파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노래가사 바꾸기 대회, 계열사 노동자 만나러 광주에 가기, 사장을 만나러 집이나 두원공대로 원정투쟁 가기 등 이었다. 조합원들은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두원 자본을 때려눕혔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투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런 투쟁 과정에 대해 엄정흠 두원정공 대의원은 “언제부터인가 투쟁이 지침에만 의존한다. 이러니 투쟁을 노동조합이 관리하는 측면도 있고, 그런 투쟁에 간부도 조합원도 익숙해진다. 지침을 떠나 자발적으로 투쟁하자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처음에는 조합원들이 지침을 내려달라고 하기도 했지만, 막상분임조 활동이 활발해지고 매일 1시간씩 중대 총회가 벌어지자 자연스럽게 갖가지 활동을 제안하고 주체로 나섰다. 정작 판이 열리니 조합원들이 다 알아서 하더라.”고 회상했다.두원정공 지회라고 전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합간부들이 이렇게 해도 되나 할 정도로,기세가 올라오는 게 무서웠다. 조합 활동 오래 한 간부들에게 조합원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던 거다. 조합원들의 투쟁이 간부들의 계획을 넘어서면, 결국은 그 부담이 조합으로 온다. 그러니 집행부도 조합원들의 자발성과 주체성을 받아 안을 수 있어야 한다.”

 

노조는 민주주의 학교라는데 주목해야

 

갑을이니까, 두원이니까 가능했다고 단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한편으로 단사의 투쟁 성공사례를 접하며 고군분투하는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자괴감에 빠지지도 않았으면 한다. 다만 ‘노동조합’이 형식적으로 유지되며 자본의 지배와 관리를 일부 대변하는 존재가 아닌 자본의 논리를 꿰뚫어 세상의 질서를 바꿔내는 노동자들의 학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이 투쟁과 경험에서 함께 배우고 읽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