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잘 살려고 하는 노동인데/ 2015.6

잘 살려고 하는 노동인데...


나후오 후원회원


교대제 근무는 본디 일부 특수직종(군인, 선원 등)에만 있었던 근무 형태였으나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이제는 너무도 당연한 근무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연구가 교대근무 자체가 노동자의 건강에 상당한 위험요인임을 밝히고 있지만, 자본은 교대근무를 포기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장시간 노동도 자본이 포기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 인가보다. 자본주의 초기 하루 16~18시간씩 노동을 강요하다가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10시간, 8시간 하루 노동시간을 줄여왔지만, 여전히 현실에서 하루 8시간 이상 노동하는 노동자를 만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니 말이다.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로 첫 근무를 시작한 2012년 3월, 한 노동자가 외래를 방문하였다. 그는 인쇄 업종에서 약 10년간 근무한 노동자로, 약 두 달 전 두통과 어지러움을 느껴 병원을 방문하여 ‘동맥류 파열에 의한 뇌지주막하출혈’ 진단을 받았으며, 현재 치료 중이라고 하였다.



건강하던 노동자의 뇌출혈


지주막하 출혈은 자발성 또는 외상성으로 나눌 수 있는데, 환자는 머리 부분의 충격이나 사고는 없었기 때문에 외상성 출혈을 배제하였다. 지주막하 출혈의 원인은 뇌동맥류 파열이 가장 큰 원인으로 알려졌다. 뇌동맥류가 생기는 원인 및 병태생리는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뇌동맥류의 파열은 혈압 상승이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이 노동자는 고혈압으로 진단받거나 치료받은 병력이 없었으며, 가족 중 고혈압 병력을 가진 이도 없다고 하였다. 뇌동맥류가 발생할 가능성은 차치하고도 갑작스레 뇌출혈이 발생할 이유는 없어 보였으나, 환자면담을 통해 듣게 된 이야기는 교대근무, 장시간 노동, 과중 노동 등 무척 힘든 상황이었음을 짐작게 하였다. 인쇄노동자 대부분이 업무 과다와 인원 부족으로 인한 장시간 노동과 교대근무(야간작업), 불규칙적 휴일 등의 상황을 겪고 있었다.

교대근무는 지속적 연구를 통해 뇌심혈관 질환과 관련이 있음이 밝혀져 있고, 그 외에도 이황화탄소, 질산염, 일산화탄소, 유기용제 등의 화학적 요인과 고온, 한랭, 소음, 진동 등의 물리적 요인, 장시간 노동, 업무과부하, 직무 스트레스 등 사회 심리적 요인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러한 원인 중 화학적, 물리적 요인에 대한 객관적 검토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자료는 자신의 근무시간표가 전부였으며, 몇 장 찍어온 사진에서도 인쇄에 사용되는 물질이나 환경을 쉬 짐작하기 어려웠으며, 현장을 방문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2조 2교대, 하루 11시간 근무


그러나 근무표를 검토하고 나니 교대근무와 장시간노동이 원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질병 발생 전 3개월 동안의 근무일과 근무 시간을 검토하였다. 휴일은 일요일이 유일했으며, 이마저도 인쇄소 사정에 따라 불려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이는 근무시간에 표시되지 않았다). 2조 2교대 근무를 하였으며, 오전 근무는 오전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야간근무는 저녁 8시부터 오전 9시까지였다. 월간 근무 시간은 2011년 10월에는 총 25일, 276시간, 11월에는 총 26일 284시간, 12월에는 총 27일 294시간이었다. 이는 일반적 근무시간 주5일, 주당 40시간 근무를 크게 웃도는 시간으로 하루 11시간 정도를 일한 것이다.

결국, 이 노동자의 경우 장시간 근무와 교대근무가 혈압상승을 초래하여 뇌동맥류 파열에 따른 뇌출혈이 발생하였을 것으로 판단하였으며, 업무 관련성이 있다는 취지의 평가서를 작성하였다.

시간이 흐른 지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노동자 또는 가족들에게 원래 고혈압이 있었다면, 흡연자였다면, 노동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면 나는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사실 자신은 없다. 근거중심의학이 어쩌고, 논문리뷰가 어쩌고, 의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고민하고 평가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기에 나라고 많이 다르진 않을 것이다. 직업병을 바라볼 때 ‘과연 그 병이 그 일을 안 했으면 생기지 않았을까?’라는 질문보다 ‘비직업적 소인이 있었다 하더라도 일을 하면서 발생한 질병은 직업병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늘 하는 편이지만, 여전히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 되는 것은 사실이다.

과거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오늘을 싸우지만, 2015년의 대한민국은 그리 쉬운 상황은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보다 덜해진 듯도 하지만) 교대근무와 장시간 노동은 여전히 뜨거운 문제이며, 뜨겁게 다루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한노보연을 포함한 여러 단체에서 교대근무와 장시간 노동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실제 노동현장에서도 그 문제를 인지하고 있기에 이 사회가 교대근무와 장시간 노동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토론해서 노동자 건강에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