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우리 삶도 형광등처럼 반짝반짝 오래가자 /2015.6

우리 삶도 형광등처럼 반짝반짝 오래가자

해외 먹튀 자본에 맞서 투쟁하는 금속노조 경기지부 오스람분회


재현 선전위원


오스람은 세계적인 기업 지멘스(Siemens)의 자회사였다 3년 전 분사한 세계 3대 조명회사 중 하나다. 1987년 오스람은 국내 회사 승산과 50%씩 합작 투자로 경기도 안산 반월·시화 공단에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1994년 오스람은 승산 회사 지분을 100% 인수하고 오스람 코리아로 상호를 변경,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에 투자를 확대했다. 1995년엔 콤팩트 형광 램프(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오스람 제품) 자동화 라인을 도입하는 한편, 서울·부산 등 영업소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점차 높였다. 최근 들어서는 급부상 하고 있는 LED 또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생산량을 자랑한다.

오스람은 친환경 조명을 만들어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기본 철학을 갖고 있다. 또한, “사람과 환경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고 에너지 효율적인 제품으로 지구 온난화 대책에 지속적으로 공헌한다”는 사명을 가진 회사다.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작년 9월 오스람 코리아가 매년 약 200억 원의 영업 이익을 내기 위해 삶을 다 바쳤던 노동자들의 목에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밀었다. 자신들이 떠벌려온 철학에 반하는 천박한 해외 먹튀 자본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사진 설명 : 해외 먹튀자본에 맞서 투쟁하는 금속노조 오스람코리아분회 조합원들 (출처 : 금속노조 경기지부)


설비 및 시설 투자 없이 현장을 방치한 오스람 코리아


“최근 LED 시장이 호황을 맞으면서 전통 조명 시장이 사양 산업으로 접어드는 추세에요. 그렇다 보니 회사는 설비 투자를 안 하고, 신입 사원도 안 뽑았죠. 부족한 인력은 물량에 따라 전환 배치하면서 공장을 운영했어요.” (최영식 부분회장)


분회장, 부분회장, 수석부분회장은 노조 결성 이전 10년여 가까이 노사협의회 노동자 대표 위원이었다. 이들은 줄곧 회사에 앞으로 LED 시장이 계속해서 확대될 테니 국내 공장도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소 설치나 설비 및 기술 개발 투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이 아무래도 인건비가 싸니까 그쪽에 LED 설비 공장을 세우고 한국은 계속 등한시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최근 들어 저희가 제조해서 판매하는 것보다 수입해서 판매한 매출이 훨씬 증가했어요.” (권남규 수석부분회장)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오스람 코리아


이들은 처음 오스람 코리아를 입사할 때만 해도 반월·시화 공단에서 임금을 손에 꼽을 정도로 높게 받았다. 98년 IMF 외환위기 때에도 환율 차이로 인해 많은 이득을 내면서 크게 어려움을 못 느꼈다.그런데 2000년대 들어 호봉제를 연봉제로 바꾸면서 임금 체계가 완전히 무너졌고, 저임금 구조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매년 기본적으로 뽑던 신입사원도 2012년 이후 명맥이 끊겼다. 한때는 300명이 넘었던 현장인데 이제는 약 220명의 노동자만이 남아있다.


“전통 방식의 조명이 사양 산업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어요. 백열전구가 오래됐다고 해도 지금도 사용하잖아요. 기존공사 설비 또한 여전히, 전통 방식 조명이 필요하고, 하다못해 기본적인 A/S를 위해서도 필요해요. 그런데 제가 입사한 이래 회사는 단 한 차례 적자도 없었고, 5년간 1,088억 영업 이익을 냈는데도 단 1%도 재투자가 없었어요. 최대한 수익을 뽑아냈으니 정리하겠다는 거죠. 해외 먹튀 자본의 마지막 본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최용식 부분회장)


오스람 코리아는 LED 시장이 지속해서 성장하더라도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어서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러다 2012년 8월 부임한 방인철 사장이 꼬박 2년만인 작년 9월, 희망퇴직이라는 미명하에 노동자들의 목에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을 들이밀었다.


노동조합 깃발을 세우다


“작년 8월에 전 직원 앞에서 약속했어요. 본사 차원에서 인원을 줄이려고 하는데 오스람 코리아도 예외는 아닐 것 같다, 그러나 생각보다 늦춰질 것으로 예상한다, 늦출 수 있게 본사에 얘기하겠다, 앞으로 희망퇴직 관련해선 노사협의회와 먼저 논의하겠다고. 그렇게 약속을 했어요. 그런데 완전 뒤통수를 맞은 거죠.” (조동윤 분회장)


하루아침에 공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에 떤 노동자들은 이쯤 되면 노조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을 제출하면서 한 달 만인 지난 2014년 10월 18일 115명에 노동자들의 결의로 금속노조 오스람 코리아 분회노동조합을 출범했다.


“99년에 부서장 (공장장급)이 너무 강압적이라 힘들어서, 최소한 그 밑에 있는 관리자라도 잡자는 생각에 핵심 생산 파트 엔지니어, 팀장, 반장 전체 다해서 33명이 집단 사표를 썼던 적이 있어요. 노조를 만드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니까 우선 우리끼리 강한 의지만 믿고 집단행동을 한 거죠. 그런데 회사가 하루 만에 전원 사표를 수리하고, 완전 참패를 당했죠. 당시 주동한 사람들은 회사에 다시 못 들어왔어요. 중간에 있던 사람들은 재입사를 했고요. 이날 이후로 노·사 힘 관계가 회사한테 확 넘어갔고, 1년 후에 자연스럽게 연봉제를 도입한 거죠.” (조동

윤 분회장)


현장에선 노조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99년의 트라우마는 넘기 힘든 벽이었다. 일부 노동자들은 회사가 어렵다고 하고, 임금도 적지만 그래도 내가 다니는 동안 형광등은 팔릴 거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노조 출범식 날 저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폭발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또 노사협의회와는 다르게 이제는 회사와 대등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권남규 수석부분회장)


“저는 속으로 됐어! 그랬어요. 저희가 나름 노사협의회를 준 노조 수준으로 강경하게 하고 있다고 자평도 하고 그랬거든요. 근데 한편, 그래도 항상 힘의 논리에서 회사에 밀리다 보니 노동조합에 대한 필요성과 아쉬움을 오랫동안 느꼈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잖아요.” (최영식 부분회장)


노조는 절대 인정 할 수 없다


10월 18일 노조 출범 이후 11월 복수노조 단일화 창구 절차를 밟고 11월 회사에 단협 체결을 위한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지난 2월이 돼서야 첫 교섭 테이블에 나왔다.


“회사가 교섭을 회사 밖인 제3의 장소에서 퇴근 이후인 저녁 7시 노동자 3명이 하자는 거에요. 우리는 회사 안에서 오후 3시에 6명이 하자고 했죠. 결국, 제대로 된 교섭 한번 못해보고 조정 신청에 들어갔죠. 경기지방노동위원회가 회의 장소를 회사와 제3의 장소를 교차하겠다는 조정안을 제출했는데, 회사가 결국 거부하면서 교섭은 해보지도 못하고 파업권이 생긴 거예요. 이후에 1월 말 확대 간부 중심으로 첫 파업에 돌입했고, 언론에서도 우리 소식을 보도해주고, 노동부도 압박을 하니까 2월 26일 회사가 교섭에 처음 나왔어요. 별 논의는 없었지만 2월 이후에도 최근인 5월 말까지 11차례 교섭을 했는데, 논의가 진행 된 건 하나도 없어요” (조동윤 분회장)


오스람 코리아는 노동조합의 요구가 부담스러워서 교섭을 게을리 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일관되게 금속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몇몇 회사 관리자들은 지금도 금속노조가 아니면 대화에 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번에 얘기하는 게 교섭을 하더라도 분회 사람들 하고만 하면 안 되겠냐고 하는 거예요. 우리끼리 있으면 말실수를 해도 넘어갈 수도 있고 그런데, 금속노조 경기지부나 안산지역 지회가 오면 부담스럽다는 거죠.” (권남규 수석부분회장)


“이게 참 아이러니한 게 회사가 희망퇴직이 필요하다면서 말했던 논리가 글로벌 경제 전반이 어려워서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노조를 만드니까 요새 경기가 좋아졌다, 그러니까 굳이 노조 안 만들어도 된다는 거예요. 20년 내내 회사가 어렵다고 하더니. 어떤 임원은 민주노총에서 스킬 다 배우고 나중에 기업노조를 하는 게 어떻겠냐. 민주노총만 제발 하지 말아 달라는 거죠.” (최영식 부분회장)


오스람 코리아는 지금까지도 줄곧 노동조합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분회는 그 이유를 이렇게 판단했다.


“노조가 만들어지면 회사 경영에 침해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한국 공장을 정리할 때 노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굉장하니까요. 그러니 저희가 3월 11일부터 2시간씩 파업을 해서 매출 손해가 굉장할 텐데 회사가 꿈쩍을 안 해요. 이것만 봐도 공장 철수를 위해 어떤 손해를 감수하더라고 노조만큼은 인정하지 않는 게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조동윤 분회장)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함께 극복했으면 좋겠어요


“반월·시화공단에서 8년 만에 신생 금속노조가 생겼다고 해요. 저희가 공단 노동자들의 희망이 돼야 하는 위치에 있는 거죠. 꼭 투쟁 승리해서 우리가 만드는 조명처럼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에게 빛이 되고 힘이 되는 노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권남규 수석부분회장)


“분회장, 수석 모두 고생 많이 하고 있어요. 저는 질긴 놈이 이긴다고, 질기게 싸우면 꼭 이길 거라고 생각해요.” (최영식 부분회장)


“회사가 문 닫기 직전인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서 노조를 만든 경우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도 노조를 만들 수 있었던 건 우리의 절박함이 조합원에게 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노조 만들고 교섭 진행하면서 눈에 보이는 결과가 꼭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못 만들어서 조합원들이 많이 힘들텐데 그 점이 미안해요. 그렇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함께 극복해서 꼭 이 싸움 이겼으면 좋겠어요.” (조동윤 분회장)

  • 호조벌긴팔 2015.06.18 18:03 ADDR 수정/삭제 답글

    오스람 회사 안에서 집회했다고 이사람 저사람 고소고발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 호조벌긴팔 2015.06.18 18:27 ADDR 수정/삭제 답글

    어둠이 깔린 새벽길을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이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깊은 고민에 빠진듯 걸어가고 또다른 누군가는 믿음이 있기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며 전진합니다.
    함께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 그길은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사측의 일부는 의자에 앉아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회사인양 행세하지만 그자리에 이르기 까지는 종업원의 땀으로 거기까지 밀어준 것이라는것을 망각해선 않되죠
    그자리 또한 누군가에게 물려주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것입니다.
    손가락질 받으며 떠날것이냐 , 누구든 그사람을 기억하면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내미는 사람으로 떠날것이냐
    선택을 잘 하십시요.
    늦지 않았습니다.

    한솥밥을 먹은지가 꽤나 오래 되셨을 터인데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던 것입니까?
    다같이 살자고 하는건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네요,

    다시한번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시고 부디 조속한 시일내에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