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길었던 여정의 마무리, 그리고 새로운 출발
-동희오토 황재민 씨 산재인정투쟁 승리와 지회의 계획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사무장 최진일
<<황재민 씨 산재사건 경과>>
2013. 7. 19 뇌경색 발병, 야간 중식시간에 식당에서 쓰러짐
2013. 8. 18 산재 최초요양신청 불승인 (사측 종용으로 증빙자료 없이 졸속처리)
2014. 5. 산재 심사청구 불승인
2014. 5. 20 부인 김려화씨 공장 앞에서 아이 업고 1인 시위
2014. 6.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와 만남
2014. 7. 1 산재 재심사 청구 최종 불승인
2014. 7. 15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투쟁 돌입
2014. 9. 산재 행정소송 접수
2014. 12. 4 사측과 보상 합의, 대신기업이 보상금 지급과 산재 협조 약속
2014. 12. 11 근로복지공단과 담판, 재조사 결정
2015. 1. 9 대신기업 현장조사
2015. 2. 9 근로복지공단 대전질판위원장 면담
2015. 2. 16 대전질판위 항의방문 (노조참여보장 요구)
2015. 2. 23 대전질판위에서 산재로 승인
보령지사 면담을 통해 전면적인 재조사가 결정된 이후 지회는 일체의 관련된 자료를 제출했다. 동희오토 의장라인의 편성효율, 타 공장과의 노동강도 비교, 열악한 작업환경 및 스트레스에 대한 증거자료와 진술서, 사고 당일 현장 온도와 식당 온도에 대한 증빙 자료, 사고 정황에 대한 진술서 등 상당한 분량의 자료가 준비되었고 여기에 의학적 소견들이 추가로 준비되었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부터 업무 연관성이 있다는 소견을 확보하고 내과 전문의로부터는 기존의 심부전 진단이 의증에 불과하다는 소견을 확보했다. 과거 정상소견을 보인 검사기록도 추가했다.
이후 대신기업에 대한 현장조사를 거쳐 질병판정위원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지회는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참여를 보장받고자 많은 노력을 했지만 끝내 관철하지는 못했다. 현장조사 과정에서는 금속노조 조합원을 현장에 들여보낼 수 없다는 사측의 결사적인 반대가 문제였고, 질판위에서는 ‘본인과 가족, 법정대리인이나 관련 전문가’만이 참석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는 규정이 문제였다. 불합리한 똥고집을 부리는 사측을 통제할 규정은 없지만, 노동조합의 참여를 가로막을 규정은 넘쳐났다.
1년 7개월 만의 승인
질병판정위원회는 결국 기존 판정을 번복하고 황재민 씨의 뇌경색을 산재로 인정했다. 주당 60시간을 넘지 않았지만 주야 맞교대로 인한 만성 과로가 인정되었고, 추가 제출된 의료기록으로 기왕증이 부정된 것이 핵심적인 이유였다.
“과로의 인정기준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은 확인되지 않으나, 심방세동과 심부전에 대한 의무기록이 명확하지 않아 기왕력으로 확진하기 어려워 신청 상병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근거가 미약하고, 온도, 조도, 소음 등의 근무환경, 높은 업무편성률, 신청인의 주야맞교대 근무형태 특히 주간근무에 비하여 더 많은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발생시킬 수 있는 야간근무를 주간근무와 동일하게 수행하여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에 노출되었을 것으로 판단되어 신청 상병은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 업무상질병판정서 중
당사자인 황재민 씨와 가족들은 그동안의 고통과 좌절을 뒤로하고 삶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동희오토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여타 완성차공장보다 월등히 높은 노동강도로 만성적인 과로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산재가 은폐되어 온 동희오토의 현실이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산재승인에 박수를 보냈고 끈질기게 싸우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희망은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했다. 지회는 비참한 현실을 바꾸어 내고 새롭게 민주노조의 영향력을 확대할 일말의 가능성을 획득했다.
이제, 원인과 싸워야 할 때
황재민 씨 사건은 비인간적인 노동강도로 인한 산재였고 일단 이번 승인으로 재해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회사와 공단이 지도록 만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다시는 현장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 그리고 노동자들이 더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지회는 황재민 씨 사건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근골격계질환 산재인정을 중심으로 하는 건강권 확보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근골격계 질환이 동희오토의 노동강도 문제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사안인 동시에 지금 당장 가장 많은 노동자가 고통을 겪고 있는 지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상 황재민 씨 사건이 처음으로 겪어본 산재 사건인 지회에는 너무나 커다란 과제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과 함께 건강권과 산재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해결능력을 키우는 일부터 시작했고, 황재민 씨 산재 투쟁의 과정에서 아낌없이 힘을 보태준 한노보연 동지들이 여전히 함께 해주고 있다.
<한노보연과 함께 테이핑 요법 교육 중인 조합원들>
단계론적 사고를 뛰어넘는 돌직구를 던져보자!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는 1,500명 공장에서 단 6명의 조합원만으로 이루어진 극소수노조다. 단체협상은커녕 전임자조차 하나 없이 전 조합원이 주야 맞교대 근무를 하고, 그 와중에 잠을 줄여가며 노동조합 활동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지회에 앞으로의 근골격계 투쟁, 건강권 쟁취투쟁은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다. 그동안 민주노조의 깃발을 세우고 사수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시간을 보냈고, 전원 해고와 장기간의 복직 투쟁을 거치면서 건강권의 문제는 어느새 지회 시야 밖으로 밀려나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고 노동조합을 안정화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산재 문제는 우리도 남들처럼 ‘번듯한’ 노동조합이 된 후에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황재민 씨와 가족들에게도 몇 번이나 이런 말을 했다. ‘노동조합이 힘이 없어서 뭐 하나 장담할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합니다.’ 라고. 그런데 연대해준 동지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번듯한 정규직노동조합들은 이제 이런 투쟁 않으려고 하는데, 왜 그럴까요?’ 아직 정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당장 눈앞에 두개골이 함몰되고 좌반신이 마비된 황재민 씨의 처절한 모습이 우리가 ‘번듯한’ 노동조합에 대한 허상을 깨고 ‘닥치고 투쟁’하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지회가 동희오토 현장에 민주노조를 세워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도 다름 아닌 살인적 노동강도의 문제였다. 노동조합을 만든 이유였던 것이 이제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행히 지회는 황재민 씨 산재인정투쟁을 통해 자신을 스스로 가두었던 틀을 깨고 투쟁하고 승리하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가진 것이 없어서 잃을 것도 없는 6명의 조합원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이 경험은 지회의 앞길에 분명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어느덧 우리는 ‘노동조합’에서 ‘노동’보다 ‘조합’이 커져 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부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가 만들어나갈 근골격계 투쟁은 부디 ‘조합’보다는 ‘노동’에 힘을 싣는 과정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황재민 씨 산재인정투쟁에 함께 한 금속노조 충남지부 김창헌 노안부장과 갑을오토텍 지회 안재범 동지를 비롯한 충남지부 동지들, 금속노조 노안실장과 한노보연 동지들에게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동지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동희오토 본관 앞 무재해현황판을 쇠파이프로 부술지 돌로 부술지 논의하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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