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5월호_직환의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노동자에게 재해는 곧 삶의 위기
산업재해는 크게 사고와 질병으로 나뉜다. 사고와 질병 사이에서 두드러진 차이점 중 하나가 ‘드러남’의 정도일 것이다. 사고는 드러남의 정도가 크기 때문에 산재로 쉽게 인정되는 편이지만 질병의 경우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노동자가 어렵게 산재신청을 하더라도 업무와 발병한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입증 책임이 노동자에게 있는 것 또한 큰 부담이다.
업무상 질병의 산재 인정률에 대한 최근 통계를 보면 산재 승인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어 얼핏 다수의 노동자들이 산재보상시스템의 혜택을 누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승인률이라는 것은 알다시피 신청건수에 대한 승인건수의 비율이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산재신청건수는 각각 5,201명, 6,375명, 9,524명으로 증가추세는 맞지만 한국에서 직업으로 인해 ‘골병’이 드는 사람이 1년에 과연 만 명도 안 될까. 승인률이 높은 것은 고무적이지만 근골격계 질환을 포함하여 다수의 직업성 질병들이 크기를 추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노동자 건강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기관들은 여전히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최근 근골격계 질환의 업무관련성을 평가한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짧게나마 의견을 나누고자 한다.
첫 번째 사례는 좌측 어깨 회전근개 파열로 산재신청을 했던 41세 여성이다. 불승인되어 소송을 진행하였으며 법원 제출 목적으로 업무관련성 평가서를 받기위해 내원하였다. 사실 내원한 노동자가 OO자동차 서비스센터의 전화교환원이어서 선입견이 있긴 했다. 이 노동자가 일한 곳에서는 원래 전화교환원이 2명이었으나 한 명이 퇴사하였고 인원 보충 없이 2016년부터 혼자서 업무를 담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2017년 특정 차종의 리콜사태가 발생하면서 문의가 쇄도하여 노동강도가 증가하였고 이 상황은 1년 넘게 지속되었다. 문제는 전화교환기 자체의 독특한 기능과 어깨를 들어 뻗어가면서까지 퇴사 직원 자리의 전화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본인 교환기에 동시 통화량이 많고 통화보류를 잡아 놓기에도 한계가 오면 옆 전화기로 보류를 넘긴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도 교환기로 전화가 오는 상황인데다 현장으로 넘긴 전화가 일정 기간 응답이 없으면 다시 교환기로 연결이 된다.
전화기의 재착신 업무와 교환기의 복잡한 기능과 동시에 걸려오는 전화를 대처하는 방식을 고려한다면 응대전화 한 건 당 어깨 사용 1회로 단순하게 계산할 수는 없다. 게다가 옆자리의 교환기는 몸을 기울여 팔을 뻗어서 받아야 해서 어깨 부담이 컸다. 최근 10년간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을 봐도 노동강도가 증가한 시점 이후로만 어깨 치료 이력이 확인된다. 오른손잡이인 41세 여성에게 발생한 좌측 회전근개 파열을 자연적 퇴행의 결과로 결론짓기엔 무리가 있는데도 공단은 이러한 이유로 불승인하였다. 다행히 법원에서 업무관련성을 인정하여 1심에서 승소하였으나 공단에서 항소하여 현재 항소심 진행 중에 있다.
두 번째 사례는 요추부 추간판탈출증으로 산재신청을 했던 60세 남성으로 산재 불승인되어 재심사 청구를 위해 내원하였다. 20년을 조선소 배관공으로 일했던 분이라 질판위에서 탈출 정도를 두고 또 발목을 잡혔겠거니 생각했다. 불승인 사유는 MRI 영상에서 팽륜만 있고 신청 상병은 추간판탈출증이기에 관련성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MRI 영상을 확인해보니 요추 4-5번 사이의 추간판이 명백히 탈출되어 있고 일부는 분리되어 있었으며 치료차 다녔던 병원의 판독소견 역시 동일했다. 물론 재해자의 주치의와 질판위 의사 사이에 영상학적 소견을 두고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 경우 있는 소견을 없다고 한 것이라 황당했다. 재해자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근로복지공단의 관치행정 혹은 관료주의가 지닌 한계라는 말로도 앞선 두 사례는 납득할 수 없다. 첫 번째 사례의 재해조사 내용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부실했다. 업무환경의 변화와 증가한 업무량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또한 좌측 어깨 사용량을 그저 기계적으로 접근해 계산하였으며 팔을 뻗어 전화를 받는 작업자세가 어깨에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린다. 부실한 재해조사 자체가 불승인에 기여도가 높아도 공단에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노동자가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재심사 청구가 전부이다. 두 번째 사례의 경우 더욱 황당하다. 추간판 탈출 정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유무가 바뀌었는데도 그것을 재평가하기 위한 내부적인 프로세스가 전혀 없다.
코로나를 맞은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노동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대책들이 나와도 벌써 나와야 했다. 노동자 보호에 더욱 힘써야 하는 상황임에도 그 책임이 있는 기관들은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임을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업무상 질병의 인정기준을 우리가 처한 상황에 맞게 완화하여 선보상하고 차후 재평가를 통해 업무관련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단계적으로 환수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것이 재난지원금보다 훨씬 더 큰 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 팬데믹 이후 모든 영역에서 불평등의 크기는 점차 커지고 있다. 산업재해는 노동자에게 언제나 큰 부담이었지만 코로나 시대의 재해는 노동자에게 삶의 위기나 다름없다. 재해 당사자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면 그것은 개인을 넘어 가족공동체의 위기이다. 더 늦기 전에 노동자 보호에 역할을 부여받은 자들은 더 이상 직무유기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영일 회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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