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권리입니다 - 이상진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인터뷰 / 2021. 03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권리입니다

장영우 선전위원장

이번 일터 3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는 지난 추운 겨울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단식투쟁을 강행한 이상진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님과 인터뷰하였다. 이상진 전 부위원장은 민주노총에서 노동안전 담당 임원으로 활동하며 여러 투쟁을 이끌었고, 지금은 임원 역할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가 있다. 1월 초만 해도 그는 국회 앞에서 단식을 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벌써 한 시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니 놀랍기도 하다.

한노보연 회원이기도 한 이상진 전 부위원장과 직접 만나 차 한 잔 마시면서 인터뷰를 진행했으면 좋았겠으나 지역적인 제약으로 그렇게 하지는 못 했다. 봄비가 종일 비가 내리던 3월 1일 저녁 화상으로 이상진 전 부위원장과 지금까지 노동조합 활동,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년 12월 고 김용균노동자 사망 2주기 현장추모제에서의 이상진 동지 모습. 출처: 호나라



노동현장을 바꿔보겠다는 생각과 함께 만난 노동조합

그간 해왔던 활동을 끝없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먼저 그가 일을 시작한 시기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코오롱 구미공장에서 1994년 입사해서 10년 일하다가 정리해고 되었는데 끝내 복직은 못했습니다. 최근까지 십 년 넘게 노동조합 활동을 했었습니다."

노동이란 우리가 삶을 유지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노동에서 긍정적인 일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일을 시작하면 수많은 부당함을 겪고 노동자의 권리나 안전보다는 기업의 이윤이 항상 우선순위에 올라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상진 전 부위원장 역시 그런 일들을 목격하고 자신과 동료들에게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고, 자연스럽게 노동조합 활동으로 이어졌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계급모순에 눈을 떴다고 할까요? 노동조합에 관심 생겼고 2000년 밀레니엄 시기에 코오롱 노동조합에서 대의원이 되었습니다. 당시 제조업 현장은 환경이 참 열악했지만 대부분 노동안전의식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그러려니 했었지요. 하지만 제가 대의원이 되고 당연시 되었던 현장의 문제를 바꾸려고 노력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국소배기장치를 만들고 안전장치를 새로 구비했었습니다. 이렇게 현장을 조금씩 바꾸니 조합원들이 좋아하였고 저는 보람을 느꼈습니다. 노동안전활동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되었고요.

당시는 요통, 자상과 부상이나 손상은 공상처리 하는 게 관례였습니다. 하지만 사측에 산재처리를 요구했었고 현장 투쟁도 했습니다. 2004년에는 근골격계 집단산재 신청을 시도했어요. 결국 산재신청은 안되었지만 임단협에 우리의 요구가 반영이 되었고 현장에서 노동안전에 관심이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이후 코오롱은 정리해고를 단행했었고 대부분의 노동자가 해고 되었습니다."

코오롱에서 일을 하고, 노동 조건을 바꾸려 열심히 발로 뛰기도 했지만, 회사는 구조조정이라는 카드로 노동자들을 결국 정리해고 했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동료들과 회사를 상대로 싸운 뒤에 복직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화학섬유연맹의 임원으로, 그후 민주노총 부위원장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이어갔다. 화학섬유연맹과 민주노총 임원으로 14년을 보냈다.

"노조활동 경험을 기반으로 중앙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화학섬유노동조합위원장을 거쳐 민주노총 부위원장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올해 부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지금은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른 나이에 중앙노조활동을 했었는데요, 이제는 저와 주위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껴 재출마는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거의 백수인데요, 집안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데 도와주고 있습니다."

치열했던 투쟁의 순간들

이상진 전 부위원장은 대책위 참여 등 핵심적 활동을 한 투쟁이 여럿이다. 최근의 투쟁부터 꼽자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문중원 열사 투쟁, 김용균 열사 투쟁 등 바로 떠오르는 것만 해도 여러가지다. 특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투쟁에 돌입하며 보낸 시간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함께 해 법안 발의를 위한 10만 동의청원이 이루어진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후 코로나19 상황에서 집회 한 번 하는 것도 어려웠기 때문에 여러가지 면에서 한계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잇따른 노동자 사망 사건 등으로 노동자들의 분노가 모아졌고 그 추운 겨울 산재 유가족들과 노동계에서 단식까지 결의하며 투쟁의 열기를 높였다.

이렇게 단식 투쟁이라는 어려운 투쟁 전술을 택했을 때, 또 법이 제정되었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했다. 한편으로 그런 투쟁을 하면서 들었을 아쉬움도 있었을 것 같았다. 민주노총 부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을 마치고 돌아봤을 때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였을까?

"민주노총활동 중에서 제일 보람이 있었던 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된 점이었습니다. 비록 이빨이 빠진 채 법안이 통과 되었지만 산재가 기업 범죄라는 것을 우리 사회가 인정했고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일하는 모든 이들의 권리라는 점을 우리사회가 배운 것이 이번 투쟁의 가장 큰 성과입니다.

저는 구의역 김군, 문중원 열사, 김용균 열사 대책위 활동을 했었는데요. 작년에 투쟁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코로나로 인해 대중투쟁의 공간에 제약이 있었고, 민주노총은 지도부가 교체되어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2020년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결의한 바 있었습니다.

이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에 노동자와 시민 10만 명이 동의를 한 바가 있고 겨울에 선도적으로 유가족 분들이 단식을 결단하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점은 운동이나 역사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단식하면서 국회에 잠시 머물다 보니 여당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반쪽으로 통과된 데 대해 미안해하고 부담스러워 한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향후에도 기회는 열려있고 개입할 이슈는 많다고 봅니다.

하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특정 단체가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단체들이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는 어렵고 민주노총이 전적으로 할 수도 없습니다. 전국적인 연대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운동본부 이름으로 형식적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게, 내실 있게 단체들을 규합해야 합니다. 하지만 각급 단체들이 조직 고유 업무가 바쁘다 보니 여력을 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이 점이 고민입니다. 물론 한노보연도 고민하겠지만요.

지금은 여러 노동안전단체들이 좀 지쳐 있어 보여요. 하지만 내년 법 시행을 앞두고 올해가 중요합니다. 정부가 시행령으로 법을 훼손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노동안전단체가 각자의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량을 모아야 합니다."

더 넓고 깊은 노동안전보건 운동을 기대한다

노동안전보건 투쟁을 하면서 기대만큼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물론 기쁘겠지만 자본의 반격으로 좌절하는 때도 많다. 또한 노동조합 역시 노동안전보건 투쟁을 끌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투쟁의 성공 여부, 그리고 노동조합의 역량 등 그를 고민하게 했던 것들이 있을 것 같았다. 이상진 전 부위원장이 민주노총 부위원장 임기를 마치면서 떠오른 아쉬움은 무엇이었을까?

"뭐 딱히 떠오르진 않는데요, 개인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같은 시민재해를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싶었었는데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산재현장 대응역량도 좀 강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산재대응에 있어서도 총연맹이 체계적이고 선제적인 역량을 더 갖추면 좋겠다면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주노총은 16개 가맹조직과 16개 지역본부가 있어요. 하지만 가맹산하조직에 아직도 노안(노동안전)활동가가 없는 곳이 있어요. 현장의 관심이 부족한 조직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이 비해서는 많이 나아진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민주노총에 노안국 인원이 1명인 적이 있었습니다. 조합원은 70만인 큰 조직임에도 불구하고요. 심지어 당시 한국노총은 노안담당자가 3명이었습니다.

민주노총 총연맹에서는 노동안전국은 기피부서였습니다. 실무자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 전문적인 영역이거니와 산재사고 현장 대응에 급급하다보니 인력은 늘 부족했습니다. 쉽게 말해 막노동이었지요. 이런 점들로 인해 정책생산능력은 떨어졌었어요. 내부적으로 개선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노동안전국이 노동안전실로 격상되고 상근자도 3명으로 충원했습니다. 앞으로도 더 인력을 확충할 계획입니다. 더 나아지겠지요."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면서 민주노총 노동안전 임원이라는 무게와 책임이 따르는 자리에서 여러 투쟁을 이끌어왔다. 밖으로는 노동자들이 다치고 아프고 죽어가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안으로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 양성에도 애를 쓰면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은 당위성 면에서 모두 공감하지만 그 활동을 짊어지는 사람은 적은 것이 현실이다. 그가 지금까지 몰두해온 노동안전보건 활동과 쉽지 않은 현실을 걱정하는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고향에서 집안일을 돕고 있다는 이상진 전 부위원장. 지금은 노동조합 활동을 마치고 쉬어가는 기간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부당함에 맞서 싸워온 그가 앞으로 어떤 계획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