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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우리가 밀리면 현장이 무너진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우리가 밀리면 현장이 무너진다 "우리가 밀리면 현장이 무너진다." 이 말을 마음에 꾹 눌러 담고 고군분투하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아래 한타지회)의 오동영 동지를 만났다. 오동영 동지의 현재 메신저 사진에서도 앞의 문구가 새겨진 현수막을 볼 수 있는데, 사실 그 밑에는 '정신 똑바로 차리자'라는 말이 이어진다. "우리가 밀리면 현장이 무너진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현장이 무너지지 않게, 그래서 노동자들이 아프거나 죽게 내버려 두지 않기 위해, 지지 않으려고 먹어야 하는 마음은 어느 정도로 단단해야 하나. '정신 차려야 한다'는 말이, 도리어 이들이 매번 마음을 다잡고 또 잡아야 하는 순간들을 얼마나 많이 맞이할 수밖에 없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서글서글한 웃음.. 더보기
월 간 「일 터」/[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우리가 밀리면 현장이 무너진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우리가 밀리면 현장이 무너진다

"우리가 밀리면 현장이 무너진다."

이 말을 마음에 꾹 눌러 담고 고군분투하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아래 한타지회)의 오동영 동지를 만났다. 오동영 동지의 현재 메신저 사진에서도 앞의 문구가 새겨진 현수막을 볼 수 있는데, 사실 그 밑에는 '정신 똑바로 차리자'라는 말이 이어진다.

"우리가 밀리면 현장이 무너진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현장이 무너지지 않게, 그래서 노동자들이 아프거나 죽게 내버려 두지 않기 위해, 지지 않으려고 먹어야 하는 마음은 어느 정도로 단단해야 하나. '정신 차려야 한다'는 말이, 도리어 이들이 매번 마음을 다잡고 또 잡아야 하는 순간들을 얼마나 많이 맞이할 수밖에 없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서글서글한 웃음 아래 깊고 힘 있는 목소리를 가진 오동영 동지는 그러한 현장 노안활동가이자, 조합의 부지회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다.

소수노조 설립과 함께 시작한 노동안전보건 활동

5천여 명의 노동자 대부분이 한국노총인 1노조에 속해 있는 공장에서, 치열한 과정을 거쳐 30명 남짓의 조합원이 한타지회를 설립했다. 그중 한 명이었던 오동영 동지는 지회를 확장해나가기 위해서는 노동안전분야에서의 활동이 중요하니, 이를 맡아달라는 지회의 권유로 노동안전활동(아래 노안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 노안활동이 지회에서 중요하게 부각된 이유는, 지회가 바꿀 수 있는 여러 현장의 사안 중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가장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분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수 노조라도, 현장 노동환경을 변화시키도록 사측에 강제할 힘을 법에 근거하여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노안 교육을 받으면서 노안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타지회 설립 이전에는, 다들 산재라는 걸 모르고 일했어요. 다치면 본인이 부주의한 탓으로 여겼으니까요. 그래서 일하다 다치거나 아픈 노동자들의 산재처리를 진행하고, 제대로 치료받고 복귀할 수 있게끔 하는 일들로 노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산재를 신청할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그러면서 지회 인지도를 높여갔고, 위험하고 유해한 작업 환경들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   2020년 12월 22일 대전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한국타이어 중대재해 특별근로감독 관련 입장발표 기자회견 당시 발언 중인 오동영 부지회장

중대재해 발생 현장에서의 변화

그렇게 많은 것들을 변화시켜왔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것들이 많다. 지난 2020년 11월 18일, 안전센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노동자가 기계에 협착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의식불명의 상태였던 그는 한 달 후인 12월 5일에 사망했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이 사고는 '중대재해'가 아니다. 72시간 내에 사망한 경우가 아니었기 때문에. 타지회에서는 노동부가 사실상 그 사고를 중대재해에 준하는 대형사고로 인정하고, 특별근로감독(아래 특감)을 실시하게 '만들어'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2017년도에도 금산공장에서(한국타이어 공장은 금산과 대전으로 나누어져 있다) 사망사고가 일어났어요. 그 일을 계기로 현장의 노동안전보건관리체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사정 TF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형식적이었어요. 노사정 TF를 하는데도 산재는 계속 증가했고요. 이렇게 산재가 많이 발생하니 노동부에서 특별히 한국타이어를 집중 관리하기 위해 정기 감독까지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18일 사고가 바로 그 정기 감독 중에 난 거예요. 그래서 대전노동청장에게 항의했어요. 2017년 사망사고 이후 제대로 현장개선이 안 된 상황에서 노동부가 작업중지를 해제했고, 그 이후 진행한 내실없는 노사정 TF와 정기 감독이 이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원인이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 전부터, 일상적으로 현장의 산안법 위반 사항에 대해 고소·고발과 진정을 많이 해서 노동부도 한국타이어의 실상들을 많이 알고 있는 상태였고요."

이런 대응 과정에서 한타지회는 노동자의 의견이 개선대책에 반영되게끔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자 했지만, 그 과정은 역시 순탄치 않았다. 한타지회는 6개(시스템, 보건, 현장 4개 파트) 감독팀에 조합원을 각 1명씩 배정하여 노동자가 감독 과정 전체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각 노조에서 최소 인원만(2명) 감독에 참여시키려는 1노조의 시도 및 노동부의 노동자 감독참여 분야 제한이 있었고, 논쟁 끝에 4개 현장감독에만 참여하는 것으로 조율됐다. 소수노조의 의견 제대로 반영이 안 되는 문제가 발생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한타지회에서는 소기의 성과들을 이뤄냈다.

"저희 마음에 완전하게 충족되는 건 아니었지만, 현장의 문제점들을 적극적으로 들춰내 노동부가 많은 설비에 사용중지를 내리게끔 했습니다. 이번 특감은 사측이 현장 안전에 두는 관심을 고취시킬 수 있게 된 계기이기도 했어요. 사측은 현장 안전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안전운영팀을 증원하겠다고 약속했고요. 미뤄왔던 노사합동점검도 특감 이후 시작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그동안 축적되어 온 산재 자료를 바탕으로, 각 공정에 특화된 안전교육을 진행하라고 요구도 해 놓은 상황입니다. 사측 역시 그간 부실했던 안전교육을 바꾸어나가겠다고 했고요. 노동부로부터도 노사정 TF에 쏟는 시간을 늘리고, 제대로 운영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 뒤에는, 지회에 지역의 다양한 단위가 결합한 '특감대응팀'이 있었다. 이 팀에는 지회의 노안활동가들 뿐만 아니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충북·세종충남·대전 3개 운동본부가 결합한 충청운동본부와, 연구소가 함께했다. 이렇게 지역 차원에서 구성된 특감대응팀 내에서는, 트라우마 대응을 포함하여 특감 전체 과정에 관련하여 실시간으로 질문과 답변, 보고와 회의가 이루어졌다. 격려와 응원도 함께. 

소수노조이지만 노동부, 사측과 함께 '공식적으로' 현장의 안전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노사정TF, 노사합동점검, 특감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온 한타지회. 하지만 2017년 일어난 사망사고 때만 해도 상황이 달랐다. 당시에는 재해조사가 3일간 이루어졌지만 한타지회는 마지막 날, 그것도 조사가 아니라 유족 앞에서 사고를 재현하는 자리에만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한타지회와 현재의 한타지회의 사이에 놓인 이 중대한 질적 성장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지회에서 노안활동 하는 동지들이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투쟁해 왔기 때문입니다. 산재자들을 직접 발굴해 이들이 거의 다 산재 승인을 받게 했고, 산안법에 기반해 현장의 위험·유해 요인들을 찾아 사측에 시정을 요구했습니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고소·고발하며, 소수노조인 저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꾸준히 노력해왔습니다.

지회의 동지들에게 고마운 게, 저희는 이 노안활동을 위한 시간을 사측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보장받고 있지 않아요. 다들 교대근무는 고스란히 다 하면서 연차와 개인 시간을 들여 활동하고 있죠. 또한 한노보연,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의 노안부장인 이태진 동지(연구소의 회원이기도 하다) 등 지회 바깥에서도 적극적으로 결합해주면서 저희가 꾸준히 노안활동을 하는 데 있어 큰 힘이 되어줬습니다."

더 강력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그렇다면 이제 한타지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갈까. 오동영 동지는 이제 노안활동이 몇몇 노안 간부들을 넘어, 지회 조합원들 전체의 일이 되는 것이 앞으로 지회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이야기했다. 

"소수의 노안 간부들이 현장 문제점을 다 점검하는 건 물리적으로 어렵습니다. 앞으로는 지회차원에서 노동안전교육을 실시하여, 조합원들도 자신의 노동환경에 대해 고민하고 바꿔나갈 수 있게끔 하고자 합니다. 그런 교육들이 바탕이 된다면 안전보건진단이나 노사합동점검, 노사정 TF 등에서도 조합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될 거고요.

이 사업은 단발성사업이 아니라 지회의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타이어와 같이 많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사업장에서는, 노안활동이 지회의 다양한 사업 중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니까요."

많은 갈등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노안활동. 편안하기만 할 수 있는 삶의 방식들을 제쳐두고, 이 자리를 계속해서 지켜내는 용기는 어디서 나올까.

"지금도 한국타이어의 노동자들은 위험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망사고도 많이 일어났고요. 그런데도 사측이나 1노조는 전혀 현장에 대해서 신경을 안 씁니다. 이러한 현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 제게 깊이 자리 잡고 있어요. 현장을 무너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죠. 금속노조에서 노안교육 받을 때, 그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노안이 무너지면 현장이 다 무너진다.' 정말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장의 작업환경 개선도 없을 것이고 계속해서 일하다 아프거나 죽는 사람이 생길 거고, 산재 신청 시 사측이 어떻게 부당하게 대우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산재신청도 못 하겠죠. 그러니 노동안전 부분이 버티고 서야 합니다. 그래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고, 치료와 회복이 필요한 노동자들은 마음 놓고 그에 전념할 수 있어요.

저는 더 나아가 지회 외부의 다른 현장에도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의 자본들은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노동자의 목숨쯤은 너무 가볍게 생각합니다. 이에 분노를 느낍니다. 하루빨리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오동영 동지로부터 그와 한타지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말은 접속사인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바꿔내고 있는 사람과 사람들. 이 추진력을 부당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현장의 노안활동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책임감에서 받고 있다면, 그 분노와 책임감 아래에는 '나와 나(로 대표되는 가족)'를 넘어, 수많은 '나와 같은 이들'로까지 확장된 세계를 품은 마음이 있다. 

현장에서의 노안활동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고 그 권리를 확장해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두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일이다. 모두의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떼어 쓰는 사람들이 있는 한타지회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