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호_다양한노동이야기] 부스 안팎, 그 어디에도 없는 요금 징수원의 안전_부산일반노조 공무직지부 시설공단지회 김혜수 지회장 인터뷰

부스 안팎, 그 어디에도 없는 요금 징수원의 안전

부산일반노조 공무직지부 시설공단지회 김혜수 지회장 인터뷰

 

박시윤 상임활동가

 

부산 수영구에 위치한 광안대교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해상 복층 현수교로, 밤에는 아름다운 조명으로 광안리를 밝히는 부산의 대표 명물이다. 광안대교로 진입하기 위해선 우선 요금소 부스를 거쳐야만 한다. 광안대교를 찾는 많은 이들이 교량이나 고속도로의 요금소를 일상적으로 지나치지만, 부스 안 노동자의 노동환경에 대해선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광안대교 요금소를 지키는 요금 징수원 노동자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일할까? 광안대교의 요금 징수원은 약 90명으로, 50대 노동자의 비중이 가장 높고 열에 아홉은 여성 노동자다. 이들의 노동이 어떤 모습인지, 부산일반노조 공무직지부 시설공단지회 김혜수 지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요금소는 지금 업무와의 전쟁

 

종일 차량이 이동하는 광안대교에선 요금소 역시 24시간 운영된다. 이 때문에 요금 징수원은 43교대 근무를 하며, 24시간 내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저희의 주된 업무는 광안대교를 통과하는 차량의 대교 통과요금을 받는 일이에요. 자동차 중에서 통행료 면제 스티커나 카드가 부착된 경우가 있는데, 이걸 일일이 눈으로 구분해서 징수해야 해요. 이외에도 통행료 미납요금이 고지서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기록 업무나 교통카드 충전, 길 안내도 맡고 있어요. 하루에 부스 하나당 3천에서 4천 대의 차량을 다루는데 한 번 엉키면 혼란이 발생할 경우가 많고, 민원 발생의 소지가 될 우려도 있죠. 그래서 요금소 안에선 항상 전방주시를 하는 터라, 일하는 내내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수 천대의 차량을 처리하다 보면 요금을 내지 않고 통과하는 도주 차량이 적게는 50, 많게는 120대 정도로 발생해요. 도주 차량은 차량번호를 파악한 뒤 우편으로 고지서가 발송하는데 해당 업무는 미납팀이 담당하고 있지만, 일차처리는 요금 징수원이 현장에서 맡고 있어요. 간혹 일하다 실수가 생기면, 뒤에 오던 다른 차가 도주 차량으로 처리될 수도 있어서 늘 조심해야 해요. 민원 응대도 요금 징수원의 업무 중 하나인데요, 광안대교의 경우 BC·롯데·농협 등 일부 카드만 사용할 수 있어서 이와 관련된 불편 호소도 종종 들어오곤 합니다.”

 

짧게는 몇 초, 길어봤자 1분 이내. 요금 징수원은 차량이 요금소에 머무는 단시간 내에 차량번호 파악, 하이패스 및 면제 카드 유무 확인, 도주 차량 발생 시 정보 수집, 이전에 미납된 요금 등 수많은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통행료 부과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뒤따라오던 차량이 빵빵거리며 압박을 주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스 안에서 일하는 2시간 동안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잠시 숨을 돌릴 여유조차 없다.

 

쉴 수 없는 휴식 시간

 

“2시간 근무당 40분 휴식 시간이 있어요. 이걸 하루에 3번 하는 구조죠. 40분 안에 화장실도 가고 식사도 해야 하는데, 휴게실까지 왔다 갔다만 해도 20분이 소요되니까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요. 직고용되면 모든 게 나아질 거란 기대는 잘못된 생각이었죠. 직고용되기 전엔 2시간 근무당 1시간 휴식 시간이었는데, 오히려 정규직 전환이 되면서 인원과 휴식 시간이 감소했어요. 모든 게 돈의 기준에 따라 바뀌고, 현장의 특수성이 고려되기엔 우리 사회가 노동 존중을 기반으로 해 성장한 사회가 아니란 걸 입증하는 현실이었습니다.

 

일하면서 이동 시간이 많기도 하고, 휴게실에 별도의 식당도 없어서 싸 온 도시락을 데워먹어야 해요. 항상 시간이 빠듯해 마음이 급하고 식사도 빨리 끝내느라, 소화불량에 걸리는 사람도 많죠. 휴식 시간에 화장실을 가지 못했거나 배탈이 나는 등 긴급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데, 인력이 부족하니 쉬고 있는 사람을 불러내요. 불려 나온 사람은 쉬지도 못하고, 휴식 시간도 그대로 끝나 버려요. 그러면 해당 근무자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그건 또 도미노 현상처럼 퍼져나가고 되고요.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늘 음식 조심, 컨디션 조절을 합니다. 이외에도 노동자의 근속연수가 높기도 하고, 50대가 대부분이어서 근골격계질환도 심각해요. 순환기질환이나 호흡기질환도 많고 전반적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하죠.”

 

일하러 갈 때마다 차에 치일까 노심초사

 

야간근무할 때면 잠을 거의 못 자요. 집이 멀었던 직원이 있었는데, 오전 730분에 일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졸음 때문에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었어요. 교통사고의 위험도 커요. 요금소 부스를 올라갈 때 부산항의 경우에는 아치형으로 된 통로가 있다고 해요. 그런데 여기는 별도의 통로가 없어서 차량 사이를 지나다녀야 하거든요. 이동하는 구간에 횡단보도가 있긴 하지만 법적으로 정해진 횡단보도는 아니에요. 길을 건널 때마다 눈에 잘 띄는 조끼를 입고, 불이 들어오는 비상봉을 흔들기도 하는데 날이 밝을 때면 이마저도 표시가 잘 나진 않아요. 이렇게 늘 조심해서 길을 건너지만 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할 때도 있죠.”

 

실제로 부스로 향하는 길은 교량 기둥에 시야가 가로막혀 차량이 오는지도 잘 보이지 않았다. 또한 달려오는 차량도 마찬가지로 부스 사이를 이동하는 사람을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교대근무를 하는 요금 징수원은 해당 길을 건너는 일도 잦아, 길을 건널 때마다 치이진 않을지 걱정하며 차량 통행이 드문 시간에 조심해 건너곤 한다. 요금 징수원이 시달리는 건 비단 일상적인 교통사고의 위험뿐만이 아니다. 좁디좁은 공간에서 같은 자세로 오랜 시간 일하는 탓에 각종 질환에 시달린다.

 

일단 2시간 동안 좁은 공간에서 한 자세로 앉아서 일하느라 허리가 아파요. 변비나 비뇨기계 질환, 자궁근종이 많이 발생하고요. 관리자가 정규직 전환이 되기 전까지는 병가가 많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선 왜 이렇게 병가가 많이 생기냐는 거예요. 정규직 전환 이후 인원이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시간 내 노동 강도가 높아졌고, 여유 인력이 부족해 연차 사용도 자유롭지 못하니 병에 걸리기 더 쉬워진 거죠. 점점 더 몸이 버티기 힘드니까,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해도 연장근무를 많이 하지 않으려 하기도 하고요.”

 

숙명처럼 여겨지는 감정노동의 굴레

 

요금이 1,000원인데 수중에 있는 돈이 900원밖에 없다며 너무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하는 손님이 있었어요. 이때 대신 100원을 내드리기도 하죠. 그러면 다음에 올 때는 더 많은 돈을 주고 가시기도 해요. 물론 요금보다 더 많이 주신 경우에도 무조건 공단으로 입금해야 하고, 간혹 정산이 맞지 않아 돈이 부족할 때면 노동자가 충당해야 해요. 나중에 관련해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서 사비로 메꾸는 거죠.

 

고객 중에서 네가 나와서 받아 가라라고 하거나 찢어진 돈을 주는 경우, 500원인데 5만 원을 주는 사람, ‘배 째라라며 요금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카메라로 직원의 얼굴을 촬영한다든지, 고의로 거짓 민원을 넣는 일도 있죠. 그리고 반말하는 사람, 욕설하는 사람도 아직 있고요.”

 

감정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바뀌고 관련된 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예전보다 고객의 폭언이나 폭행 등의 문제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고객의 갑질은 존재한다. 고객 응대가 주된 업무 중 하나인 요금 징수원 역시 하루에 만나는 수천 명의 고객에게 친절해야 한다. 일하면서 고객에게 상처를 받더라도 당장 해소할 방법이 없을뿐더러 이 일을 하기 위해선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피해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체계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래도 요금소를 지나는 짧은 찰나에 고생이 많다며 요금 징수원의 노동에 공감하고, 그들의 고됨에 위로해주며 고마움을 전하는 고객들이 있어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매일 새롭다라고 한다.

 

광안대교를 매일 지나가야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중에선 우리더러 고생한다고 인사하거나 박카스를 챙겨주는 분도 있어요. 새벽 두 시쯤 장사 나가는 어르신은 잠을 못 자면서 일하는 고단함을 안다며 껌이나 초코바, 김밥을 챙겨주시기도 해요. 음식이나 음료를 받아도 부스 안에서 먹을 순 없어요. 하지만 함께 건네주는 손길에 담긴 그 마음과 표정, 눈인사에 힘들었던 몸이 확 가벼워지고 보람을 느끼곤 하죠.”

 

노동조합의 길을 선택한 까닭

 

정규직 전환 이전에 용역으로 관리되고 있을 당시 현장 관리소장의 지나친 갑질과 비리가 있었다. 심한 횡포를 견디다 못한 직원들이 말 그대로 폭발하기 직전이었을 때, 현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부산일반노조 공무직지부 시설공단지회가 설립됐다. 당시 조합원들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던 용역회사의 회장을 부산으로 불러내, 단체협약을 맺고 임금체계를 잡아가는 등 시설공단의 잘못된 용역 수주 비리와 싸웠다. 장장 3년간의 치열한 투쟁 끝에 20204, 정규직 전환이 이뤄졌고 마침내 문제 많던 소장과도 끝을 볼 수 있었다.

 

정규직 전환 투쟁을 하면서 몸으로 습득한 게 있어요. 사소한 두루마리 휴지 하나도 쟁취하려 노력하지 않고선 우리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게 없다는 거예요. 저희가 소수노조이다 보니, 어용인 대표노조에 의지해 나가야 하는 현실이 불만족스럽고 빛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길이 맞는 거라고, 바른길로 가고 있다고 서로 위로하며 쉬지 않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8월_노안활동가에게듣는다] 노동안전이라는 노동조합운동의 돌파구

노동안전이라는 노동조합운동의 돌파구

 

정경희 선전위원

 

건설노조 조직 및 교육 담당자에서 교육공무직본부 노동안전 담당자로. 같은 노동운동이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큰 노동조합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벌써 8개월째인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김진모 노동안전부장을 만났다. 출퇴근시간이 긴 두 시간이 걸려도 대학시절 익숙해진 동네에 정이 들어 화성시 병점에 살고 있다는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김진모 노동안전부장을 715일 오후 동네 카페에서 만나 활동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진모 부장은 노안부장을 맡기 전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에서 4년 가까이 조직과 교육업무를 맡아 활동하다 자연스럽게 정리하고 3개월 정도 쉬던 중 교육공무직본부 얘기를 들었고 활동 결심을 했다. 노동안전 활동은 처음이었다.

 

사실 노동안전을 할 것인지 망설였어요. 건설의 경우 노동안전 문제가 많긴 하지만 워낙 고용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고용 관련 투쟁이 많았었고, 노동안전에 에너지를 많이 못 쏟고 있었죠. 노조에서 특히 노동안전은 부수적인 경우가 많거든요. 노동안전이라고 하니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고요.”

 

현장과 가까이에서 노동안전 활동을

 

전에 활동했던 건설과 현재의 교육공무직은 직종에 따른 업무특성이나 조합원 구성 면에서 다른 점도 많지만 공통점도 있다고 한다. 조합원 구성 성별 비율의 경우만 봐도 건설은 90%가 남성, 교육공무직본부는 90%가 여성이다. 고용형태도 건설은 일용직이 대다수고, 교육공무직은 무기계약으로 전환되어 비정규직으로 차별은 있지만 고용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교육공무직에도 다양한 직종이 있는데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급식은 현장 안에서 팀 단위로 움직이는데, 건설도 팀 단위로 움직이며 일하고, 연령대도 50대가 많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노동안전 활동을 전문적으로 접근하면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최대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화하려고 노력해요. 산업안전보건법 조항을 모르더라도 조합원들이 겪는 노동현장의 작업에 가까워져야 저도 이해하기 편해서 책을 보는 것보다 현장에 가 직접 보면서 접근했더니 더 빠르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코로나19로 학교방문을 많이 하지 못하다 최근 급식실 폐암 산재신청 관련해서 전북의 어느 고등학교에 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리사 혼자서 3시간 반 동안 튀김을 했고 계속 연기가 올라왔다고 한다. 설치된 후드가 그 연기를 전혀 빨아들이지 못해 옆으로 번졌다.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일하는 영양교사는 후드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어 황당하고 안타까웠다고 한다. 김진모 부장은 급식실에서 폐암 환자가 속출하고 있는 사실을 잘 알리고 동시에 당당하게 건강을 지키기 위한 요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노동조합에서 집중하고 있는 것에 노동과정이 빠져있는 상태라는 생각이 들어요. 노동조합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일자리 안정과 일 한만큼 임금을 받는 것인데, 그 중간이 없어요. 저도 노동조합 운동을 해오면서 고용과 임금에만 꽂혀있었거든요. 그런데 열심히 싸워도 임금을 충분히 받지 못 하는 상황에서 일을 30~40년을 해도 안 다치고 몸 성히 나갈 수 있는 건가, 이게 전제가 안 되면 한푼 두푼 버는 게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노동조합이 전환하기에 늘 쉽지 않은 게 이런 얘기를 하다가도 결국 교섭 시즌이 오면 다 뒤로 가고, 임금 인상에 집중하게 돼요.”

 

노동조합 활동가의 로망은 조합원 가까이 가고자하는 것이라고 한다. 조합원들과 부대끼면서 서로 웃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면서 신뢰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노동조합의 중요한 힘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코로나19를 뚫고 몇 만 명 모여 위세를 떨치는 것보다 노동조합이 오래 가려면 조합원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했다. ‘요즘 몸은 괜찮냐는 얘기부터 생활에 대한 이야기, 현재 상태가 어떤지 등 노동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활동가와 조합원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려면 노동조합운동도 더 깊이 조합원 속으로 들어가고 소통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생각을 밝혔다.

 

노동안전 활동을 하다보면 방향이나 구상이 좀 더 달라질 것 같아요. 물론 그게 지난해보이고, 당장 돈 더 얻어내야 하는데 뭐하는 짓이냐 그럴 수 있을 것 같고, 그래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생각도 들어요. 조합원들과 가깝게 할 수 있는 노동운동에 노동안전으로 접근하는 전환을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죠.”

 

직종이 다양한만큼 위험도 다양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받는 직종은 현업업무로 분류되고, 여기에는 비교적 육체노동이 잘 드러나는 급식, 미화, 시설, 통학, 경비업무가 해당되는데, 교육공무직에는 이외에도 돌봄, 교무실, 행정실, 도서관, 특수교육직, 실무사 등 직종이 많다고 한다. 직종을 세분화하면 80여개가 된다. 업무상 유해위험 요소가 더 드러나는 직종 외에도 사무직종처럼 그렇지 않은 직종도 있다. 교무실에 있는 교무실무사, 행정실무사나 학생들을 직접 만나고 돌보는 돌봄 노동자의 노동안전 의제가 그렇다.

 

교무실, 행정실 노동안전 설문조사에서 전화가 울려도 아무도 받지 않는다고 적었다고 한다. 학교 대표번호로 전화가 오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받게 된다. 그러나 걸려오는 전화 중 비정규직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어 민원인의 비난을 혼자 다 들어야 하고, 대처할 수도 없는 고충이 있다고 한다. 돌봄 노동자들은 30~40명 아이들을 혼자 감당해야하는 전쟁터 같은 상황에 있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다. 특수교육지도사의 90%가 여성인데 10~20명 학생을 혼자서 맡는다고 한다. 도서관 사서는 무거운 책을 혼자 정리하고 운반하고, 과학실무사는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기 때문에 특수건강진단을 받지만 산업안전보건법 적용대상은 아니라고 한다. 이처럼 학교는 특수한 공간이고 무궁무진한 비정규노동자가 있고 이들은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아직도 학교가 서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가르치고 아이들은 알아서 혼자 큰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치고 있거든요. 그 분들의 노동이 안 드러나는 것, 그게 제일 과제고 어려운 상황이에요.”

 

학교가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그래서 교육부나 교육청도 저희도 처음이다 보니 서로 감이 안 잡히는 거예요. 임금교섭은 이미 자리 잡았고 잘 하고 있는데 말이죠.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꾸려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관리감독자를 어떻게 지정할 것인가를 가지고 거의 2년을 싸우는 거예요. 교육부나 교육청이 보수적이어서 학교에 무슨 산업안전이냐고 방어적인 태도로 나오니까 노동안전사업들이 공회전하는 거죠. 그래서 힘든 것 같아요.”

 

학교가 위험하다

 

요즘 교육공무직본부 노동안전에서는 폐암 집단 산재신청이 가장 큰 현안이다. 20년씩 근무한 노동자들이 폐암에 걸렸다는 얘기가 급식실 조합원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는데, 3년간의 싸움 끝에 결국 올해 산재인정을 스스로 받은 조합원이 있었다고 한다. 4개월 후에는 충북에서 두 번째 산재승인 사례도 나왔다. 올해 5월 직업성암 119에서 집단산재신청을 했을 때는 학교급식실 노동자 중 10명이 폐암을 제보하는 충격적인 상황이 펼쳐졌다고 한다.

 

이건 사실 대참사거든요. 학교에서 발생하는 일은 빠르게 사회적 이슈가 되는 현장이라, 학교 측에서 여론에는 엄청 신경 쓰는데 문제해결에는 소극적이에요. 지역여론이 민감하니 17개 각 시도교육청은 대응은 하는데, 고용노동부에서 조치사항을 내리면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죠. 그런데 이 문제 원인에 95%가 시설과 식단문제가 있더라구요. 지하에 급식실이 있다면 무조건 리모델링해야 하고, 후드가 문제면 다 들어 엎어야하죠, 급식실 전체에 방향을 잡고 중장기적으로 가야하는 것 같아요.”

 

노동안전이라는 돌파구

 

과거 노동조합 활동을 할 때는 중요한 명분이나 활동을 내세워 조합원들을 끌어오려고 하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노동안전 활동을 하다보면 조합원과 활동가 사이의 벽을 허물고 가깝게 소통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투쟁 이후 민주노총에서 더 이상 죽이지 마라는 노동안전 의제를 슬로건으로 걸고는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요구는 여전히 그대로여서 노동안전에 대해 친근하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법방을 더 깊게 습득해 가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노동조합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요즘 노동운동 길이 막혔다고 하는데, 노동안전이 길을 뚫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이디어도 많이 제공하면서요. 교육공무직본부는 어느 정도 고용이 안정돼서 우리의 목소리를 어떻게 내야할지 노조가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거기에서 노동안전 이야기가 중요하게 많이 나와요. 노력하는 게 확실히 보이는데 사업의 위상이 잘 안 만들어지는 어려움은 있지만요.”

 

노동안전 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도 노동안전부장을 맡고 알게 되었다는 그는 노동안전 활동가 선배들을 만날 때면 활동 오래 할수록 한도 많이 쌓이고 애타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선배 활동가들의 활동을 통한 고민과 과제를 공유하고 공부도 같이 할 필요도 느끼고 있다. 또 노동안전 활동이 풍부해지려면 후배 노동안전 활동가들이 선배 활동가들을 찾아가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이렇게 노동안전 활동가들이 서로 발전하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7월_노안활동가에게 듣는다]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자가 안다”- 전남 노동권익센터 문길주 센터장 인터뷰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자가 안다- 전남 노동권익센터 문길주 센터장 인터뷰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가 전국 여러 곳에 생기면서 자주 거론되는 사람이 있다. 90년대부터 노동운동, 노동안전보건 운동을 해오며 노동 현장을 안전하게 바꾸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온 전남노동권익센터 문길주 센터장. 그는 20대 중반에 시작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노동조합을 거쳐 광주 근로자건강센터로, 이제는 전남 노동권익센터의 센터장으로 이어가며 하고 있다. 진도 장애인복지시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피해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 진정을 넣던 날 인권위 진정과 기자회견에 동행한 그를 서울에서 만났다.

 

발암물질 실태조사로 드러난 노동 현장 위험

광주노동건강상담소,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 등 광주전남 지역에서 활동하던 그에게 금속노조 중앙에서의 활동 제안이 들어왔다. 2011년 금속노조 노안실장이 되어 첫 사업으로 그가 제시한 것이 발암물질 실태조사와 야간노동 실태조사였다. 예산도 상당히 들어가게 될 일이라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당시 금속노조 집행부가 받아들였고 사업을 시작했다. 실태조사를 통해 현장의 실상을 확인하게 되었고,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 사업 구상까지 하게 되었다.

여러 차례 기획회의를 하면서 해볼 만하다고 판단했어요. 추진해보니 문제점이 엄청나게 많았고 반응도 폭발적이었죠. 금속노조 최초로 발암물질 실태조사를 했던 건데요, 작업현장 50% 이상이 발암물질로 뒤범벅되어있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런 와중에 암 환자도 속출했고요. 시작할 때는 발암물질 조사해서 작업환경을 바꿔보자는 생각 정도만 한 것이었는데 말이죠. 또 대기업은 작업복 세탁소가 있었는데 영세기업에는 없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어요. 현대차, 기아차에는 있는데 소규모 작업장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는 충격받았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거였죠. 이때 암 환자들을 1, 2, 3차 조사로 드러내고 집단적으로 산재신청까지 했어요. 제도도 어느 정도 변화시켰고요. 노동부도 움직였으니까요.”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의 시작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는 지금 경남에 3개가 있고, 그리고 최근 광주에 문을 열었다. 지자체에서 위탁 운영을 하고 있어 아주 적은 금액을 내면 노동자들이 깨끗한 작업복을 받아볼 수 있다. 그런데 문 센터장은 광주전남지역에서 활동을 하는데,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가 먼저 세워진 것은 경남에서였다. 왜 그랬을까?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는, 2011년 발암물질 실태조사 하면서 생각한 것을 정책으로 추진하려 한 것이었어요. 실제로 하게 된 것은 제가 광주근로자건강센터에 있을 때였습니다. 금속노조 있을 때 산업단지마다 작업복 세탁소를 세워야 한다고 제가 그랬어요. 그런데 근로시간면제 철폐 투쟁에 묻혀 추진되지는 못했죠. 2018년 지자체 선거 때 광주시장 후보들에게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추진할 의향이 있는지 질의서를 보냈어요. 모두 좋다고 하더라고요. 현 시장이 후보일 때 당시 근로자건강센터에도 방문했어요. 광주에 산업단지 7개 있는데, 산업단지마다 세탁소를 만들자고 했죠. 그때 해당 후보가 적극 추진하겠다고 보도자료도 냈고 시장으로 당선됩니다. 그런데 만드는 데 4년이 걸렸죠. 임기 끝날 때쯤 되어서야.”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당선되었기 때문에 금방 시행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되지는 않았어요. 시행하려면 타당성 조사를 하고 시의회에 올려야 하는 것이었는데 시의회에서 예산을 줄여버린 거죠. 그래서 여론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2천만 원 예산을 만들었고요. 광주 시의원이었던 윤난실이라는 분이 경상남도 사회혁신단장으로 가셨는데요. 이 분이 누가 봐도 좋은 안이었으니 추진했고 김해에서 작업복 세탁소를 먼저 만들었어요. 민주노총, 금속노조, 상공회의소까지, ‘··을 모두 불러서 회의하고 추진한 겁니다.”

노동자들은 종일 작업복을 입은 채 작업을 한다. 단순하게 더러워지는 것은 물론 각종 유해 물질로 오염될 수 있어, 노동자 개인이 집에 가져가 세탁한다면 노동자 건강은 물론 가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업무 때문에 오염된 작업복 세탁을 사업주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문길주 센터장의 생각이다. 사업주뿐만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 지원까지 연결시켜야 한다고 한다.

안전모가 노동자를 보호하듯 작업복도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의사, 간호사 가운같은 거죠. 작업복은 회사에서 지급하는 필수품이에요. 노동자 작업복이 얼마나 청결한지가 노동자 안전과 건강에 직결됩니다. 작업복은 항상 입기 때문에 특히 중요합니다.”

세탁소 건립을 행정 차원에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특히 50인 미만 중소 영세기업 노동자들 의견입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행정만 가고 있고 노동계가 따라오는 상황이거든요. 노동자들의 고민이 들어가야 해요. 세탁, 건조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담과 휴식을 포함해야 합니다. 광주는 아직 세탁만 맡고 있는데 아직 해야 할 숙제가 있는 거죠.”

작업복 세탁소를 단순히 작업복 빨아주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럼 실패하는 거죠. 산업단지 노동자들의 의견을 듣고 조직하는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자조적인 모임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여기에 건강 상담, 실태조사 등 프로그램 만들면서, 산업단지가 친노동적인 곳으로 기능하도록 해야 해요. 문제점을 서로 발견하고 공유하는 구조로 가야죠. 아파트 놀이터같이 어린이들이 몰려오고, 또 시설에 투자하는 식으로요.”

 

도시에서 농어촌으로 확장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

작업복 세탁소가 생긴 곳은 주로 산업단지인데, 문 센터장은 제조업 공장 외에도 농민들에게도 역시 세탁소가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농민들은 농약을 하니 옷에 농약, 흙먼지가 항상 묻어있죠. 옷을 그대로 두고 다음날 또 입게 되고요. 농촌에는 이주노동자도 많은데, 국가가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만들 때도 되었어요. 노동자·농민 세탁소가 필요합니다. 제주도를 보면 소규모 건설이나 천리향, 귤 농장이 많습니다. 그런 농장에는 이주노동자가 많고, 농약을 많이 쓰죠. 작업복 세탁소는 농촌 노인, 이주노동자들에게도 필요합니다. 농민과 노동자가 함께 쓰는 식으로 만들어서 농민들도 혜택 받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2탄은 농민 세탁소입니다. 이번에도 시··군에서 큰 관심이 없어요. 그렇지만 지자체 선거 때 추진할 계획입니다. 농민들 대상으로 간단한 설문조사 만들어서 지자체에 뿌릴 계획이에요. 될 거라고 생각해요. 혼자 해서는 안 되고 농민회가 함께 해야죠.”

 

지역, 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건강 지킴이

노동권익센터에서는 소규모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사업을 한다. 문 센터장은 활동을 지속하고 또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사업 내용뿐만 아니라 기관의 형태와 쓰임새까지 그의 고민에 포함되어 있다.

환경미화원도 시나 군으로 가면 50인이 안 되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해요. 그러니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가 없죠. 노동권익센터에서 안전보건관리를 담당하면 어떨까요. 산업안전보건팀을 만들어서 안전관리, 보건관리에 자격을 갖춘 사람을 두고 전담하게 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업장 컨설팅이나 보건관리를 할 수 있게 되겠죠. 이 팀이 지역의 산업안전보건센터로 발전하는 것까지도 생각해요. 또 지역에서 산업안전보건조례가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이에 발맞춰서 센터를 만들면 좋겠지만 현재로선 하기 어려우니 인큐베이팅을 시작해야죠.”

현재 전남 노동권익센터에서는, 사회복지사 노동자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고, 환경미화원과 군내버스 노동자 실태조사도 계획 중이라고 한다. 군단위에서는 버스 노동자들이 군과 군을 넘나들면서 열악하게 일을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가 많고 어촌, 농촌의 특성을 다 가지고 있는 전남 지역에서 그는 계속해서 열악한 노동 현장을 찾고 바꿔보려 노력 중이다.

문 센터장은 서울에서 활동한 시간도 있지만, 오랜 시간 광주와 전남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해왔다. 그에게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의 의미를 무엇이라 보는지, 또 특히 지역에서 열악한 소규모 영세 사업장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존재하는 근로자건강센터나 노동권익센터의 역할과 방향에 대해서 물었다.

정책은 중앙에서 만들지만, 노동자들의 고민과 아픔은 지역에게서 더 현실감 있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만큼 노동자들을 많이 만나니까요. 중앙에서 하는 정책 만들어 입안, 통과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중앙과 지역이 잘 교류해야 성공하겠죠.”

문 센터장은 2013년에 시작해 2019년까지 광주 근로자건강센터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계약 기간을 다 마치지 못하고 공단과의 계약관계를 종료했다. 문 센터장은 현재 안전보건공단을 상대로 광주근로자건강센터 근로자 지위 소송을 진행 중이다. 안전보건공단이 지휘·감독 기관이었으므로 자신을 직고용하라는 요구다.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설립한 근로자건강센터가 소속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고용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취지에 맞게 사업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근로자건강센터는 좋은 취지로 만들었고 지역 사회에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현재 센터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짚어봐야 하는데, 제대로 가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직원들 고용불안 문제도 있고 실적 위주로 사업을 하는 것도 문제고요. 직업병 예방과 건강 증진 취지는 많이 사라졌죠. 안전보건공단, 고용노동부가 원하는 사업 위주로 하게 되고, 보이지 않는 사업은 다 떨어져 가요. 취지는 좋지만 이렇게 가면 앞으로 큰 위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보건관리를 책임지는 곳이 크게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어요.”

문 센터장에 대해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아이디어가 많다는 말들을 꽤 들었다. 그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순간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을 고안해낸 것이라고 한다. 여전히 취약한 영역에 노동자들이 많고, 그렇기에 문 센터장의 관심은 끊임없이 열악한 노동 현장으로 향해있다.

취약 계층 노동자들을 더 많이 만나고 고민을 들어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에요. 그렇게 많은 노동자를 만나서 이야기 듣고 생각해낸 것이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인 거죠. 환경미화원, 버스 기사, 건설 노동자, 배전전기 노동자,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노동자들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면서 아이디어와 정책구상이 나오는 것이죠.”

취약계층, 특수고용 노동자들 관련 활동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에서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이요. 전남노동권익센터의 지원과 조직화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동권익센터에서 활동하다 보니 노조에 포함되지 않는 노동자가 굉장히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당분간 계속하려고 해요. 지역에서는 활동하는 사람이 소수여서 어려움이 있지만, 최대한 여러 사람과 함께 해나가고 싶습니다.”

(유청희 상임활동가)

[일터6월호_노안활동가에게 듣는다] 현장 안전에 타협이란 없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대의원 안규백 활동가 인터뷰

현장 안전에 타협이란 없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대의원 안규백 활동가 인터뷰

유청희 상임활동가

 

GM의 대우자동차 인수 후 2001년 1,785 명 노동자 해고, 2005년 1,700명 공장 복직, 2017년 군산 공장 폐쇄. 바로 한국지엠 노동자들에게 지난 20년 간 일어났던 일이다. 최근에도 창원 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되기도 했다. 사측과 여기 동조하는 언론은 끊임없이 한국지엠의 위기가 강성 노조 때문이라는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회사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끈질기게 해온, 연구소 회원이기도 한 안규백 한국지엠 대의원을 만났다.

안규백 활동가는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대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측은 인원 투입은 하지 않은 채 생산성 향상을 이유로 노동강도를 강화하려는 시도를 지속했고, 작년 8월 노조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현장 투쟁을 했다. 안규백 활동가의 선택은 작업중지였고, 작년 10월 해고되었다. 이후 그는 대의원으로 활동하며 지방노동위원회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작업중지를 하면 회사가 노동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고, 법원에서 다툴 시 오히려 노동자가 불리할 때도 많다. 이런 현실을 모를 리 없는 그가 작업중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 안규백 활동가는 인력 충원 없이 생산성 향상만 요구하는 사측에 맞서, 무엇보다도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이 일순위임을 외쳐왔다. 

 

안규백 활동가가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는 한국지엠이 운영한 기술교육원 출신인데, 2006년 부평 공장에 입사해서 목격한 현장은 '암울'했다고 한다.

"대우자동차가 지엠에 넘어가면서, 부평공장이 차를 제대로 생산 못 하던 상황이었어요. 그러다가 신차 생산이 시작되면서 인력이 필요해진 시기에 정규직으로 입사했죠. 운이 좋았어요.

입사 후 충격적이었던 것이, 보전 요원이 설비 수리하다가 협착되면서 크게 다친 일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자체에 대해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라인은 계속 돌아가는 것을 목격했어요. '사람이 죽어나가도 라인은 멈추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는 과정 중에도 해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 대의원과 사측이 협의를 하고요. 작업량은 그대로 유지하고 사람을 빼는 일이 횡행했어요. 거기서 빠진 인원은 정년 퇴직시키거나 추가로 필요한 곳으로 보내고. 신규 채용은 안 하고, 하더라도 최소 인원만 뽑는 시기가 있었어요. 그런 과정에서 뭔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장에서 알게 된 선배들과 현수막 게시하면서 선전전하고, 선전물도 뿌리고요."

무거운 현장에서 내딛은 한 걸음

당시는 지엠에서 해고됐다가 복직한 1,750명의 노동자와, 안규백 활동가와 같은 신규 입사자가 함께 일하는 상황이었다. 각종 암이나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계속 나왔지만, 조합원들은 업무 연관성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회사는 이를 ‘개인 질병’으로 봉합했다.

"제가 입사한 후부터 10년 동안 매달 사망자가 나왔어요. 사고사는 많지 않았어요. 회사는 개인질병이라고 하지만, 의문이 들었습니다. 1750명이 해고됐다가 복직되는 5년 동안 노동자들이 피폐해진 것 같았어요. 다시 일 하면서도, 술 없이는 삶이 유지가 안 되는 분들도 계실 정도로요. 그때는 정말 브레이크 없이 계속 노동강도를 올리고 있었어요. 저는 사망자가 속출하는 일이 노동강도와 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현장에서의 문제제기는 아예 없었고요. 그래서 대의원과 (회사) 부서에서 생산량 증가에 합의하는 것에 문제제기하고, 생산량 증가는 노동강도 심화와 관계가 있다고 선전물도 배포했죠. 안전사고 나면 대응 매뉴얼 요구하면서 일상적인 안전보건 활동도 하고요."

입사 이후 안규백 활동가는 현장의 몇몇 조합원들과 함께 가칭 ‘조립2부 노동강도 완화 대책위원회’를 결성해서 작은 실천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침체된 회사 분위기 속에서도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이어갔고, 조금씩 변화를 목격하기도 했다.

"바로 효과가 나타났다고 보지는 않아요. 안돈 줄이라고, 라인 중지하는 선이 있어요. 문제가 발생하면 직장(중간관리자)을 호출하는 선인데요. 이 선을 당기면 라인의 일부가 멈춰요. 라인이 완전 중지되지 않게 하려고 직장이 오는 거죠.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에는 사람들이 안돈 줄을 잡지 못했어요. 멈추면 정말 큰일 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도 제가 근무하는 2공장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서 적어도 안돈 줄은 잡게 됐죠. 그런 부분들이 대책위원회가 만든 작은 기틀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이후 실제 작업중지 사례도 있었고요. 조합원들이 그런 과정에서 자신감을 회복해갔다고 생각합니다."

위험한 현장을 멈추자, 첫 번째 '작업중지'

회사는 현장 안전을 전혀 우선하지 않았다. 설비에 문제가 생기면 라인을 정지하고 원인을 찾아 재발방지를 해야 하지만, 회사는 정지에 대한 책임소재만(작업자 판단 때문인지 설비 유지보수 때문인지) 따졌다. 2011년, 안규백 활동가는 사업장에 사고가 나자 작업중지를 걸고 회사에 대책을 요구했다. 현장을 안전하게 바꾸는 일에 있어 그에게 타협이란 없었다.

"대의원 당선되고 활동하던 때인데 보전 작업자가 작업 도중 다쳤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어요. 매뉴얼 상으로는 2인 1조 작업이지만 보통 한 사람씩 하거든요. 차 시트를 들어 차에 장착하는 기계가 있는데, 센서에 문제가 있었는지 작동이 안 된 거예요. 혼자 보다가 손가락 협착이 되어 찢어진거죠. 사고가 났는데도 라인은 정상 운영하고 아무 조치도 없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작업중지로 싸워볼 수 있겠는지 판단하기 위해서 건강한 노동세상 장안석 동지랑 의논했어요. 각오는 되어있었습니다. 기아자동차 작업중지 사례를 참고하고 가능하겠다 판단해서, 라인 정지하고 노동조합에도 연락했죠. 이길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때 주장한 것은 사고 사례를 모든 작업자들에게 알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동종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서 안전교육 요구했고요. 이때 120분 넘게 라인을 세웠어요. 회사가 요구사항을 수용했고, 20분 안전교육도 실시했죠. 작업중지 시간이 총 126분이었는데, 회사가 이 중 106분을 문제 삼아 생산 손실 이유로 저를 징계했습니다. 저는 바로 지엠에서 산재 사고가 은폐되고 있다고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 하고, 법적 조치를 예고했습니다. 그러자 회사가 해고 안 할테니 정직 1개월로 마무리 하자고 제안 해왔어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없던 것으로 하자는 것도 아니고 정직 1개월이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 제안을 받지 않았죠. 결국 정직 2개월로 결론 났습니다."

현장을 바꿔보려는 여러 시도

한국지엠 노동조합은 2016년 연구소와 함께 노동강도평가를 진행해 보고서로 내기도 했다. 이런 조사 활동을 통해서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또 기억에 남는 현장 변화 시도는 무엇이 있는지 들어보았다.

"대의원, 정책부장, 노동안전보건실장 하면서 보니 회사와 협의하면서 노동자 입장의 근거로 제시할 데이터가 없더라고요. 또 현장 조직도 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보고서를 내기로 하고 부서마다 현장위원들을 선임했어요. 현장위원들이 발로 뛰면서 직접 조사한다는 게 중요했어요. 이들이 노안활동가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요. 그분들 중에 관심갖고 했던 분들은 한두 명 정도였고, 지속되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의미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쉽지만 현장에서 큰 반응은 없었어요. 조합원들은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으면 반응하기 어려우니까요. 노동강도평가를 한 번으로 끝낼 것은 아니고, 차종도 바뀌었고 평가한지 5년이나 지났으니 다시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당시 지적됐던 문제들이 개선되었는지도 확인해야 하고요.

그 외에 기억나는 활동으로는, 원하청 공동 안전보건사업 제안했던 것인데요. 사업계획을 세우다가 비정규직 실태조사 사업으로 확대해서 진행한 겁니다. 비정규직 지회와 함께 현장 안전점검도 하고요.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가 청소하다가 발가락 골절되고 해고까지 당할 뻔한 일이 있었는데, 산재 처리하고 해고도 막아냈어요. 그분에게 문자메시지 받았는데 참 뿌듯하더라구요. 어떨 때는 뭘 하고 있나 생각 들기도 했었는데 이런 일로 뿌듯함을 느낀 적이 있네요."

두 번째 작업중지, 멈추지 않는 투쟁

안규백 활동가는 최근 또 한 번 작업중지를 하고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다. 중징계가 내려질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작업 중지를 선택한 그에게, 그런 결정의 바탕에는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 물었다.

"작업중지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큰 사고가 아닌 경우에는 왜 그걸 가지고 작업중지를 하냐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지금은 작은 사고지만 내버려두면 더 큰 사고가 된다고 저는 말 하는데요. 직접적 안전 문제는 아니지만, 짭수(시간당 차량 생산 대수) 투쟁같은 부서 현안 문제에는 현장에서 더 동의하는 편이고요. 과거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잘 아니까요. 안전사고 문제로 세운 것은 대우자동차 역사상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라인을 끊을 수 있는 것은 노동조합뿐이에요. 이건 일상적 쟁의권의 문제죠, 합법인가 불법인가를 넘어서.

처음 라인 세웠을 때는 2시간 동안 공장을 세웠는데, 공장 가동이 안 되니까 회사가 휴업 결정 내리고 남은 사람은 다 퇴근을 시켰죠. 이것의 학습 효과로 변화가 생깁니다. ‘우리가 일하지 않으면 선다’는 인식이 생겼어요. 최근 작업중지 이후에는 해고 확정통보 받고 다음 날 출근을 했는데, 제 선거구의 조합원들이 많이들 출근을 안했더라고요. 또 일부는 출근했다가 두시간 만에 퇴근을 하기도 하고요. 거기서 자부심을 느꼈어요. 그날은 라인이 가동되다 말다 하다가, 4시간 휴업으로 결정 됐습니다."

이번 작업중지는 현장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까? 이런 투쟁을 통해 안전권, 건강권에 대한 생각이 다른 동료들에게까지 퍼질 수 있지 않을까? 노동자들이 작업중지를 비롯한 안전과 건강에 관한 의제를 더 일상적이면서도 중대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게 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지 물었다.

"노동안전보건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윤보다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는 감수성 키우기요. 잘 못하면 노동조합이 있어도 회사가 안전 문제에 대해 전혀 무서워하지 않기도 해요. 노안실장할 때 조합원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던 근골격계 문제를 집단의 문제로 올려내지 않았던 것이 아쉬워요. 다시 해보면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회사는 끊임없이 생산성 요구하고, 10명이 하던 일을 7명에게 하라고 하죠. 설비는 90년대 말 설비 그대로인데요. 회사의 논리를 깰 수 있는 방법은, 지금의 심각한 노동강도 때문에 사람이 망가진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료받게 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조직하는 게 중요해요.

마지막으로는 노동조합이 다양한 사회연대활동을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코로나는 우리만 조심한다고 안 걸리는 것이 아니잖아요. 지엠은 인천의 중심 기업인 만큼, 코로나 예방을 위한 지역 활동을 해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우리가 임금 인상만 집중했던 것도 사실이라 그것을 돌아보고 변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그런 고민이 있어요."

안규백 활동가는 두 번의 작업중지를 했고, 그로 인해 징계를 받고 해고를 당했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철저한 노동안전보건 활동이 있어야 하고, 사고 원인을 파악하고 재발 방지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 한다. 싸우면 싸울수록 노동자에게 힘이 생긴다고.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활동을 이어가는 그에게 응원을 보낸다.

[노안활동가에게 듣는다] 우리의 일터는 우리가 통제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창지회 이정기 노안부장 인터뷰/2021.5

[일터 5월호_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우리의 일터는 우리가 통제한다_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창지회 이정기 노안부장 인터뷰

 

산재로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동료에 대해 말하며 눈물을 흘렸던 이정기 노안부장. 그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아, 언젠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하 명산감)이자 노안부장인 그의 노안활동에 대해 듣다 보면, 활활 타는 용광로가 떠오른다. 그렇게 고통스러우며 슬프고, 분개하면서도 어떻게 현장의 문제로부터 고개 돌리지 않고 도리어 기꺼이 그 자리에 두 발을 박을 수 있는지, 어떻게 그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작업중지, 이후의 현장이 가능하게 하는 권리

대창 지회는 20164, 260여 명의 조합원을 모아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지회 설립 당시 회사에는 이미 다른 노조가 있었으나, 노조활동은 전무한 페이퍼노조였다. 사측은 조합원들을 회유하기 위해 큰돈을 내걸고 조합 탈퇴를 요구하기도 했으나, 결국 투쟁 끝에 대창지회는 이름만 남은 기존의 노조를 없애고 대표 지회로 서게 됐다. 이정기 노안부장은 2008년부터 명산감을 했지만, 본격적으로 노안활동을 하게 된 건 지회 설립 이후부터다.

“2008년 처음 명산감이 됐을 때는 이름만 있지, 힘도 못 쓰고 회의 때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다가 끝났다 하면 나가고 그랬죠. 회사에서 한 번씩 교육가라 하면 이유도 모르고 갔고요. 하지만 노조가 생긴 이후부터는 우리가 직접 노안활동을 주도하고 있어요. 제 생각엔 노안활동 덕에 노조 내부 결속력이 높아진 것 같아요. 처음 노조를 설립한 후에 불만스럽다는 사람들도 있었거든요. 우리는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다치지 않는 현장을 만들어보려고 새 노조를 설립한 건데, 몇몇은 노조 생기면 임금협상에도 유리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었나 봐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기대와 다르니까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고, 몇몇은 조합을 탈퇴하기도 했어요. 또 우리가 투쟁하면서 다른 곳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우리도 다른 사업장 투쟁을 돕거나 모금을 하자고 하면 조합에 짜증 내는 이들도 있었고요. 그래서 상집간부, 확대간부가 책임지고 이들을 설득하자고 했죠. 그런데 그런 불만들이 본격적으로 없어지기 시작한 건 아픈 조합원들의 산재 승인이 많이 나고, 노안 활동 덕분에 현장의 환경도 많이 개선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아요.”

현재 대창에서는 작업 중 위험할 시, 작업자가 작업중지를 내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있는 편에 속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언젠가 용해부서에서 용해로에 작업자 발이 빠지고, 유압유에 맞아 골반이 골절된 사고가 하루 사이에 연달아 일어난 적이 있었다. 연차를 내고, 시골에 내려가 있던 이정기 노안부장이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현장으로 복귀해 보니, 현장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똑같이 가동되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용해로 작업을 중지하라고 한 뒤, 노동부 상황신고센터에 연락해 노동부에서 유선으로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도록 했다. 그날 바로 노동부, 안전보건공단 등에서 들어와 설비 및 현장을 조사했고, 현장 개선 완료 전까지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것이 대창에서의 첫 번째 작업중지다. 생산공정 특성상 용해로를 멈추는 것만으로도 하루에 수억이 깨지고, 전체 공정을 중단해야 한다. 작업중지 당일, 회사는 이정기 노안부장을 잡으러 다녔고 그는 회사 밖으로 도망가야 했다. 이후 회사는 그를 호출해 회사와 상의없이 작업중지를 걸었다며 이를 문제 삼았으나, 그는 그것이 자신의 업무이며 동지들이 다치는 것을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었다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이 첫 번째 작업중지가, 그간의 노안활동 중에서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다.

“예전에는 진짜 회사가 ‘일해’ 하면 위험해도 해야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조합원들이 자신 있게 ‘못하겠습니다. 왜 우리가 위험한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업계 특성상 어쩔 수 없이 황산을 쓰는 공정이 있어요. 근데 고농도 황산은 시간이 지나면 안에서 결빙체가 생겨서 굳어요. 처음엔 밑바닥에 황물만 있다가 이후 덩어리가 생겨서 작업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는 거죠. 그러면 이 황산 덩어리를 사람이 들어가서 깨야 해요. 제가 직접 해보니 멀쩡한 쇠삽이 다 삭고 녹아서 없어져요. 근데 그걸 또 시키더라고요. 작업방식을 개선하든지 외부업체에 맡기든지 하라고, 우리는 못 하겠다고 했어요. 회사에서 억지로 시키면 내가 욕먹더라도 고발하고, 책임도 질 테니까 다른 작업자들한테도 다 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후로도 문제가 생기면 절대로 혼자 작업 못 하게 하고, 조치하려고 나서지도 말고 관련 전문가 불러서 도움받으라고 해요.”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너무 위험한 현장의 곳곳들

이정기 노안부장은 가능하다면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현장이 여전히 너무 위험하다고 말한다. 조합 차원에서 제대로 산재 신청을 진행하게 된 2017년 이래, 사고성과 근골을 포함해 발생한 484건의 산재가 그의 말을 증명한다. 그래도 각고의 투쟁 끝에 많이 개선돼왔다. 앞서 언급한 황산을 다루는 작업도 여전히 위험하지만, 어느 정도는 개선된 상태라고 한다. 이외에도 현장 곳곳의 위험이 조금씩 사라졌다. 미끄럼 사고가 빈번했던 용해로 근처 쇳물이 흘러가는 탕로에서는 이제 쇳물을 부을 때 사이렌이 울리고, 레이저 안전선을 쏴 작업자의 접근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예전에는 좁은 계단에 올라서서 400kg짜리 코일을 잡아당겨 이동시키다가 추락사고도 자주 발생하곤 했는데, 그 계단도 전면 교체됐다고 한다.

또한 무거운 코일을 다루다 보니 근골질환이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이를 반영해 작업 공정의 변경도 요구했다. 회사에서는 현재 개선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변화 뒤에는 작업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서 생산량을 위해 무리한 작업을 시키는 회사를 질타하고, 제대로 된 개선안을 가져올 때까지 절대 물러나지 않는 이정기 노안부장과 노조가 있었다. 올해 초에만 해도 안전 순찰을 없애버리려는 회사의 시도가 있었는데, 그 역시 노조의 힘으로 무력화시켰다.

“사고성 재해는 회사가 전면적으로 다 처리하거든요. 근데 근골격계 질환은 못 해주겠다는 식이에요. 한 마디로 인정을 못 하겠으니 근골격계 질환은 노동조합이 입증하라는 거죠. 여기까진 좋다고 쳐요. 근데 산재 신청하면 반대의견서 내면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요. 지금 설비를 개선 중이다, 근골격계 질환이 며칠 만에 발생하는 병이 아니다, 다른 동료들은 다 괜찮다면서요. 그럼 저는 개선 전에는 설비가 엉망이었고, 시간당 생산성도 따져서 사람들이 아프다고 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싸워요. 이렇게 자신 있게 싸울 수 있는 것도 좋은 일이죠.

활동하다 보면 산재 승인이 어려울 거 같은데 그래도 진행하는 경우가 있어요. 한 번은 정말 어렵겠다 싶은 일을 만났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다른 지회의 경험들도 비교하기도 하고, 진짜 혼자서 며칠 내내 씨름했어요. 결국 준비할 수 있는 근거 자료는 다 마련하고, 근로복지공단에 가서 열심히 괴롭히는 방법밖에는 없더라고요. 근로복지공단 직원들한테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고 했죠. 당신네 동생이나 친척들이 회사에서 그런 일을 하고 있고, 근골격계 질환으로 아프다고 하면 어떻게 써줄 거냐고, 이 사람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고요. 회사가 설비 개선만 해도 문제가 없었을 텐데 왜 자신의 책임을 방기한 회사의 의견만 중요시하냐고 그랬어요. 그리고 승인을 받았는데, 이때 성취감을 느꼈죠.”

이렇게 위험한 노동조건에서 고되게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보니 산재 신청 건수가 많지만, 그 모두를 이정기 노안부장과 노조의 다른 부장 한 둘이서 소화해내고 있다. 일을 마친 뒤의 새벽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내내 시간을 쏟아야 한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개인 휴가를 써가며 활동하기도 한다. 이처럼 쉽지 않은 노안활동이지만 그의 가장 큰 고민은 다른 데 있다. 대창에는 노안활동의 중요성을 조합원들이 인정하고, 활동하는 이들을 깊게 신뢰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있다. 그런데도 새로 노안활동을 시작해보려는 조합원들은 없다.

“조합원들은 내가 어떻게 싸우는지 다 봤어요. 그래서 노안활동을 안 하려고 하는 게 있죠. 회사가 너무 막강하게 나오니까 거기에 부딪힐 자신이 없는 거예요. 지회 차원에서 활동가를 양성하려고 하는데도 안 와요. 안 오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고요. 그런 부분이 안타깝죠.”

노동자가 무너지지 않는 현장을 위해서

여전히 현장 곳곳에 CCTV가 있고, 인당 생산성을 평가하며 인사고과나 재계약 시 산재 신청 여부를 반영하는 환경에서 노안활동을 하며 이정기 노안부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무엇일까. 그는 노조에서 힘을 갖고 현장 통제의 주체를 노동자로 세우는 것이라 말한다. 이정기 노안부장을 비롯한 노조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현장을 통제하려는 회사에 맞서고 있다. 최근 회사는 지게차 작업자들의 보호구 착용 여부를 단속해 지키지 않을 경우, 징계를 내리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는 보호구를 착용하는 건 회사가 주체가 돼 감시와 처벌 방식으로 강제하는 게 아니라, 노조에서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행동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반대했다. 징계를 내리더라도 그건 조합의 몫이지, 회사의 것은 아니다. 회사의 몫은 노동자들이 왜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는지 확인하고, 문제없이 쓸 수 있는 환경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마저도 노조가 지게차 작업자들의 경우, 헤드켓이 낮아 보호구를 쓸 수 없었던 상황을 지적하고 헤드켓의 높이를 올려달라고 요구해 전면 교체를 이뤄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창지회 이정기 노안부장

“금속노조에서 주최한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본 문구가 하나 있어요. 현장이 무너지면 우리가 죽는다. 저는 그 문장이 가슴에 진짜로 와닿았어요. 현장은 우리가 땀 흘려서 일하는 터잖아요. 회사가 설비와 환경을 개선할 책임을 안 져서 매일 사고가 나는데, 그때마다 사고 원인으로 우리 조합원들을 문제 삼거든요. 저는 그걸 용납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의 롤모델이 되는 사업장은 자동차 부품사인 SJM이라고 한다. SJM은 용역 깡패들의 폭력을 겪을 정도로 초반에 극심한 노조 탄압을 겪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조합의 힘을 꾸준히 키워왔다.

“이전에 SJM 현장을 한 번 둘러봤어요. 현장의 모든 게 체계적이에요. 그걸 보면서 와 조합 힘이 이 정도는 돼야 하구나 싶었죠. 거기에는 노안부장으로 오래 활동한 사람도 있지만,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곤 해요. 노조에 대한 신뢰도도 높죠. 조합원들이 조합을 믿고 따라가요. 그렇게 믿은 만큼 산재와 현장 개선, 회사와의 대립 등 모든 부분에서 월등하고 실패가 없다 보니 후회도 없는 거죠. SJM은 노조의 힘이 세니까 지금의 저처럼 고군분투 안 해도 돼요. 이외에 자체적으로도 노안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조합이기도 하고요. SJM은 우리의 롤모델이에요. 거기를 뛰어넘는 게 우리 목표인데, 아직 갈 길이 멀죠.”

혼자서 감당해야 할 일이 많아 힘들어도, 아프고 힘들어하는 동지들을 보며 자신의 힘듦은 잊은 채 다시 한번 힘내본다는 이정기 노안부장. 진급보다는 대창의 모든 현장 동지가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그는, 바위처럼 버티고 싸워 현장의 여러 안전보건활동의 체계를 닦아왔다. 그 과정이 이어지다 보면 언젠가 이정기 노안부장처럼 많은 것을 걸고 싸울 수 있을 만큼 아주 강인하지는 못한 이들이라고 할지라도, 체계적이고 충분히 강한 노조의 힘을 바탕으로 부담감이나 불안감 없이 현장을 안전하고 더 편하게 바꿔나갈 수 있을 날이 오지 않을까. 반드시 그러하리라 믿는다.

(김다연 상임활동가)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과 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보람 - 파주병원 노동자 건강증진센터 이진우 센터장 인터뷰 / 2021. 04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과 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보람 

- 파주병원 노동자 건강증진센터 이진우 센터장 인터뷰

장영우 선전위원장

1년여 전까지는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에서 다양한 산별 노동자들에게 교육하고, 집회를 기획하며 법 제정·개정, 대정부 투쟁을 하는 활동가였던 이진우 동지. 어느새 새로운 직장에서 직업환경의학 의사로 또 다른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일터 4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코너는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어느 봄날 저녁 서울의 한 카페에서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 센터장이자 연구소 회원이기도 한 이진우 동지를 인터뷰하였다.

출처: 한노보연

지금은 직업환경의학 의사로 노동자건강증진센터장이신데, 전에는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셨었죠?

안녕하세요, 이진우입니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이고 1년 전부터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사회진보연대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다가 2016년부터 4년간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에 있었습니다. 2015년부터 5년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연대 사무국장 역할도 했었고, 작년 초부터 현재 직장으로 옮겼습니다.”

크게 볼 때 노동안전보건 활동이라는 면에서는 유사하지만 직장의 성격도, 하는 일도 상당히 다른데요. 어떻게 현재의 일을 하게 되었나요?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에서 일할 때 다양한 업종의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관심이 있었어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던 것도 있고요. 하지만 여러 영역 중에서 작은 사업장에서의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진행하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보건관리자를 선임해야 할 의무도 없고, 노동부의 근로자건강센터도 전국에 23개 밖에 없어서 충분하지 않고요. 그렇게 작은 사업장에 대해 어떤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었고, 개인적으로 새로운 일터를 찾아보다가 지인의 소개로 여기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진우 동지가 주목했듯 소규모 사업장은 산업재해 예방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다. 2019년에는 국내 산업재해 노동자 10만여 명 중 76.5%가 5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이었다는 씁쓸한 통계가 있다. 작은 사업장은 안전보건 규제의 많은 부분에서 제외되고 있고, 노동부는 근로자건강센터 형식으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의 노동자건강증진센터는 근로자건강센터와는 또 다른 운영 형태로 소규모 사업장들을 지원하고 있고, 이곳에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실시하는 사업들은 큰 의미가 있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 안전보건 지원 사업

파주병원 같은 공공병원 자체가 별로 없고, 또 그 병원에서 노동자건강증진센터를 운영하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50인 미만 사업장은 보건관리자를 선임할 의무가 없어서 노동자의 건강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경기도에서는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포괄적인 산업보건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 회사 건강주치의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특수건강진단과 사후관리로 노동자들의 건강을 관리하고 사업장 위험성평가를 통해 작업장 환경개선컨설팅도 지원합니다. 집중사례관리를 통해 통합적인 노동안전보건서비스를 제공하고 하는데요. 이 사업은 경기도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행하는 사업으로, 현재 도지사의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2019년에 경기도 노동자 건강증진조례가 통과되어 사업이 시작되었고, 올해 예산은 약 11억입니다. 현재 경기도 의료원 6개 병원 중 파주병원과 수원병원에서 주치의 사업을 위탁받아 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센터 정원은 총 18명입니다. 위험성평가팀에 산업위생기사 2, 사례관리팀에 간호사·사회복지사·심리상담사 등 4, 나머지 노동자건강진단팀입니다파주센터가 포괄하는 지역은 파주, 고양, 양주, 김포 등 경기 북부입니다. 아무래도 파주가 중점 지역입니다. 파주엔 16개의 산업단지가 있는데요, 많이들 아시는 출판단지 사업장들과 LG디스플레이 하청업체를 비롯한 작은 사업장이 많아요. 그리고 이주노동자들도 여러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진우 동지가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서 하는 활동은 간간이 기사를 통해서도 볼 수 있었다. 작년 여름, 대리기사들이 생애 최초로 특수건강진단을 받았다는 기사가 났었고, 그 검진은 바로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서 진행한 것이었다. 경기도가 도입한 ‘우리 회사 건강주치의 사업’을 통해 소규모 사업장과 특수고용 노동자들까지 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사업장에서 건강관리를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건강진단을 받게 되어 흐뭇해하던 기사 인터뷰에 나 역시 흐뭇해졌던 기억이 난다.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서의 노동안전보건활동

들어보니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노동안전보건 지원일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노동자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지자체에서 노동자 건강을 지원해주는 최초의 모델이라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잘 운영하는 게 중요합니다. 작년, 올해 일정 정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고 다른 의료원에서도 설립이 된다면 서로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여러 연구에서 특수건강진단을 받아야 하는 사업장 중에서 실시율이 10%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머지 90%의 작은 사업장 노동자도 건강진단을 받는 게 중요한데 민간기관에만 맡겨서 해결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공공기관이 노동안전보건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업주를 교육하는 역할을 하도록 활성화해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행 주체 중에서는 지자체가 먼저 나서야 하고요.

그동안 특수 고용노동자는 사업주가 없으니까 건강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었습니다. 그래서 경기도에서 이 노동자들을 위한 건강주치의 사업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택배 노동자 같은 경우 CJ, 한진은 계약을 맺은 검진기관에서 건강진단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용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건강진단이라 한계가 있습니다. 건강진단 결과가 노동자의 고용을 저해할 우려도 있고요. 공공병원에서 이들에게 건강진단을 수행한다면, 노동자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건강관리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미 있는 사업을 많이 하고 있고 노동자들이 많이 찾아오면 좋겠지만, 처음 하는 사업이라 검진 대상자를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파주는 노동조합 조직화가 경기 남부에 비해 아직 부족합니다. 노조와 연계하여 사업을 진행하는 것 플러스 알파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파주와 고양시 비정규직 노동자지원센터와 업무협약과 사업논의를 하면서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지역의 상공회의소에도 찾아가서 사업설명을 하고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50인 미만 사업장 중에서도. 상공회의소에 속해 있는 사업장이 많으니까요. 여러 산업단지의 사무국장님들도 찾아가기도 하고, 시의원과 도의원에게 찾아가 설명회도 진행했습니다. 작년 한 해 정말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사업 설명을 하고 홍보를 했습니다.

일반 노동자들의 특수건강진단은 사업주의 의무라서 진행이 되지만,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건강진단은 그렇지 않아 노동자들을 직접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사업주를 통할 수 없으니 지역의 활동가분들 소개를 통해 진행하기도 하고, 노동조합을 통해 진행했습니다. 지난 4년간 노동조합에서 활동했던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대리운전노조, 라이더유니온, 건설노조 특수형태 고용직 노동자 89명에게 건강진단 지원을 했습니다.

레미콘 공장 같은 경우 출장으로 레미콘 노동자들 휴게실에서 건강진단을 했습니다. 사측에 미리 양해를 구하는 과정도 필요했습니다. 특수형태 고용직 노동자 입장에서는 하루 일당을 빼면서까지 병원에 건강진단을 받으러 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직접 찾아갔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가면서 일하다 보니, 함께 일하는 센터 직원들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하고 설득해야 하는 과정도 중요했습니다.”

지자체에서 하는 노동자 안전보건 지원사업이 잘 알려지기만 한다면 더 많은 사업장에서 노동자건강진단을 신청하거나 안전보건 지원을 요청할 것 같지만 지금까지는 사업장에서 직접 문의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 듯했다. 혹은 그보다, 사업주들이나 노동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부족하고, 사업장 안전보건을 위해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도 아직 널리 인식되지 못 하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하시던 일과는 달라서 하지 않던 일도 해야 할 텐데요, 일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을까요?

새로운 사업이라 아직 홍보가 부족합니다. 기관들뿐만 아니라 사업장 하나하나에 방문해서 설득하는 과정들을 꾸준히 해야겠지요. 센터 내에 다양한 전문 직종 선생님들이 계시고, 각자 전문성이 있어서 각 팀과 각자의 업무들을 조율하는 것도 제가 잘해야 하는 일이에요. 노동자 건강증진센터는 우리회사건강주치의 사업을 하는 것이 기본이고, 파주병원 내에 있기 때문에 병원 구성원으로서 해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파주병원이 코로나전담병원이라서, 방역이나 선별진료 업무 등에 협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사업을 많이 못 한 아쉬움은 있습니다.

이 사업 위탁은 3년마다 갱신되는데, 우리 센터 직원들은 2년 계약만 가능한 비정규직 형태로 고용되어 있습니다. 꼭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하지만 확보된 예산으로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에게도 건강증진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은 자율성이 있는 편이라 좋습니다.”

이진우 동지와 인터뷰를 하고 나니 전체 노동안전보건 활동 중에서 예전에는 A라는 톱니바퀴에서 활동을 했다면 지금은 C라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자리와 역할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노동자 건강과 안전을 위해 활동하고 있고, 더 큰 질병이 나기 전에 예방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어 보였다. 쓰지 않던 근육을 써가며 신청을 받기 위해 먼저 사람들에게 제안하기도 하는 등 쉽지 않은 일도 하고 있지만, 이진우 동지 얼굴에 활기가 보여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 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활동하는 이진우 동지에게 응원을 보낸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권리입니다 - 이상진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인터뷰 / 2021. 03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권리입니다

장영우 선전위원장

이번 일터 3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는 지난 추운 겨울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단식투쟁을 강행한 이상진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님과 인터뷰하였다. 이상진 전 부위원장은 민주노총에서 노동안전 담당 임원으로 활동하며 여러 투쟁을 이끌었고, 지금은 임원 역할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가 있다. 1월 초만 해도 그는 국회 앞에서 단식을 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벌써 한 시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니 놀랍기도 하다.

한노보연 회원이기도 한 이상진 전 부위원장과 직접 만나 차 한 잔 마시면서 인터뷰를 진행했으면 좋았겠으나 지역적인 제약으로 그렇게 하지는 못 했다. 봄비가 종일 비가 내리던 3월 1일 저녁 화상으로 이상진 전 부위원장과 지금까지 노동조합 활동,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년 12월 고 김용균노동자 사망 2주기 현장추모제에서의 이상진 동지 모습. 출처: 호나라



노동현장을 바꿔보겠다는 생각과 함께 만난 노동조합

그간 해왔던 활동을 끝없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먼저 그가 일을 시작한 시기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코오롱 구미공장에서 1994년 입사해서 10년 일하다가 정리해고 되었는데 끝내 복직은 못했습니다. 최근까지 십 년 넘게 노동조합 활동을 했었습니다."

노동이란 우리가 삶을 유지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노동에서 긍정적인 일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일을 시작하면 수많은 부당함을 겪고 노동자의 권리나 안전보다는 기업의 이윤이 항상 우선순위에 올라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상진 전 부위원장 역시 그런 일들을 목격하고 자신과 동료들에게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고, 자연스럽게 노동조합 활동으로 이어졌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계급모순에 눈을 떴다고 할까요? 노동조합에 관심 생겼고 2000년 밀레니엄 시기에 코오롱 노동조합에서 대의원이 되었습니다. 당시 제조업 현장은 환경이 참 열악했지만 대부분 노동안전의식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그러려니 했었지요. 하지만 제가 대의원이 되고 당연시 되었던 현장의 문제를 바꾸려고 노력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국소배기장치를 만들고 안전장치를 새로 구비했었습니다. 이렇게 현장을 조금씩 바꾸니 조합원들이 좋아하였고 저는 보람을 느꼈습니다. 노동안전활동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되었고요.

당시는 요통, 자상과 부상이나 손상은 공상처리 하는 게 관례였습니다. 하지만 사측에 산재처리를 요구했었고 현장 투쟁도 했습니다. 2004년에는 근골격계 집단산재 신청을 시도했어요. 결국 산재신청은 안되었지만 임단협에 우리의 요구가 반영이 되었고 현장에서 노동안전에 관심이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이후 코오롱은 정리해고를 단행했었고 대부분의 노동자가 해고 되었습니다."

코오롱에서 일을 하고, 노동 조건을 바꾸려 열심히 발로 뛰기도 했지만, 회사는 구조조정이라는 카드로 노동자들을 결국 정리해고 했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동료들과 회사를 상대로 싸운 뒤에 복직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화학섬유연맹의 임원으로, 그후 민주노총 부위원장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이어갔다. 화학섬유연맹과 민주노총 임원으로 14년을 보냈다.

"노조활동 경험을 기반으로 중앙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화학섬유노동조합위원장을 거쳐 민주노총 부위원장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올해 부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지금은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른 나이에 중앙노조활동을 했었는데요, 이제는 저와 주위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껴 재출마는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거의 백수인데요, 집안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데 도와주고 있습니다."

치열했던 투쟁의 순간들

이상진 전 부위원장은 대책위 참여 등 핵심적 활동을 한 투쟁이 여럿이다. 최근의 투쟁부터 꼽자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문중원 열사 투쟁, 김용균 열사 투쟁 등 바로 떠오르는 것만 해도 여러가지다. 특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투쟁에 돌입하며 보낸 시간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함께 해 법안 발의를 위한 10만 동의청원이 이루어진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후 코로나19 상황에서 집회 한 번 하는 것도 어려웠기 때문에 여러가지 면에서 한계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잇따른 노동자 사망 사건 등으로 노동자들의 분노가 모아졌고 그 추운 겨울 산재 유가족들과 노동계에서 단식까지 결의하며 투쟁의 열기를 높였다.

이렇게 단식 투쟁이라는 어려운 투쟁 전술을 택했을 때, 또 법이 제정되었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했다. 한편으로 그런 투쟁을 하면서 들었을 아쉬움도 있었을 것 같았다. 민주노총 부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을 마치고 돌아봤을 때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였을까?

"민주노총활동 중에서 제일 보람이 있었던 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된 점이었습니다. 비록 이빨이 빠진 채 법안이 통과 되었지만 산재가 기업 범죄라는 것을 우리 사회가 인정했고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일하는 모든 이들의 권리라는 점을 우리사회가 배운 것이 이번 투쟁의 가장 큰 성과입니다.

저는 구의역 김군, 문중원 열사, 김용균 열사 대책위 활동을 했었는데요. 작년에 투쟁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코로나로 인해 대중투쟁의 공간에 제약이 있었고, 민주노총은 지도부가 교체되어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2020년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결의한 바 있었습니다.

이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에 노동자와 시민 10만 명이 동의를 한 바가 있고 겨울에 선도적으로 유가족 분들이 단식을 결단하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점은 운동이나 역사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단식하면서 국회에 잠시 머물다 보니 여당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반쪽으로 통과된 데 대해 미안해하고 부담스러워 한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향후에도 기회는 열려있고 개입할 이슈는 많다고 봅니다.

하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특정 단체가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단체들이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는 어렵고 민주노총이 전적으로 할 수도 없습니다. 전국적인 연대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운동본부 이름으로 형식적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게, 내실 있게 단체들을 규합해야 합니다. 하지만 각급 단체들이 조직 고유 업무가 바쁘다 보니 여력을 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이 점이 고민입니다. 물론 한노보연도 고민하겠지만요.

지금은 여러 노동안전단체들이 좀 지쳐 있어 보여요. 하지만 내년 법 시행을 앞두고 올해가 중요합니다. 정부가 시행령으로 법을 훼손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노동안전단체가 각자의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량을 모아야 합니다."

더 넓고 깊은 노동안전보건 운동을 기대한다

노동안전보건 투쟁을 하면서 기대만큼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물론 기쁘겠지만 자본의 반격으로 좌절하는 때도 많다. 또한 노동조합 역시 노동안전보건 투쟁을 끌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투쟁의 성공 여부, 그리고 노동조합의 역량 등 그를 고민하게 했던 것들이 있을 것 같았다. 이상진 전 부위원장이 민주노총 부위원장 임기를 마치면서 떠오른 아쉬움은 무엇이었을까?

"뭐 딱히 떠오르진 않는데요, 개인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같은 시민재해를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싶었었는데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산재현장 대응역량도 좀 강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산재대응에 있어서도 총연맹이 체계적이고 선제적인 역량을 더 갖추면 좋겠다면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주노총은 16개 가맹조직과 16개 지역본부가 있어요. 하지만 가맹산하조직에 아직도 노안(노동안전)활동가가 없는 곳이 있어요. 현장의 관심이 부족한 조직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이 비해서는 많이 나아진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민주노총에 노안국 인원이 1명인 적이 있었습니다. 조합원은 70만인 큰 조직임에도 불구하고요. 심지어 당시 한국노총은 노안담당자가 3명이었습니다.

민주노총 총연맹에서는 노동안전국은 기피부서였습니다. 실무자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 전문적인 영역이거니와 산재사고 현장 대응에 급급하다보니 인력은 늘 부족했습니다. 쉽게 말해 막노동이었지요. 이런 점들로 인해 정책생산능력은 떨어졌었어요. 내부적으로 개선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노동안전국이 노동안전실로 격상되고 상근자도 3명으로 충원했습니다. 앞으로도 더 인력을 확충할 계획입니다. 더 나아지겠지요."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면서 민주노총 노동안전 임원이라는 무게와 책임이 따르는 자리에서 여러 투쟁을 이끌어왔다. 밖으로는 노동자들이 다치고 아프고 죽어가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안으로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 양성에도 애를 쓰면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은 당위성 면에서 모두 공감하지만 그 활동을 짊어지는 사람은 적은 것이 현실이다. 그가 지금까지 몰두해온 노동안전보건 활동과 쉽지 않은 현실을 걱정하는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고향에서 집안일을 돕고 있다는 이상진 전 부위원장. 지금은 노동조합 활동을 마치고 쉬어가는 기간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부당함에 맞서 싸워온 그가 앞으로 어떤 계획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 궁금해진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응어리진 아픔들을 말하도록, 더 크게 말하도록-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양선희 노동안전보건위원장 / 2021.02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응어리진 아픔들을 말하도록, 더 크게 말하도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양선희 노동안전보건위원장

 

김다연/상임활동가

 

  눈빛은 속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양선희 노동안전보건위원장(아래 노안위원장)이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뛰어든 계기와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오래 남았던 건 양선희 노안위원장의 눈빛이었다. 나의 삶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일, 나의 많은 힘을 기꺼이 할애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할 때의 눈. 그런 눈은 다른 빛을 낸다. 이번 <일터> 2월호에서는 그 빛 뒤에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고자 한다.

산재 대신 내민 종이에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 원래 어떤 일을 하셨고, 어떻게 노조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저는 급식일을 2003년부터 시작했어요. 조리실무사로요. 처음엔 너무 행복했어요. 내가 해 주는 밥을 아이들이 맛있게 먹고 가는 것만큼 뿌듯한 일이 없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고가 잦아졌어요. 2009년에는 큰 화상을 입었고요. 당시 사용하던 야채 절단기는 잘못하면 손가락도 절단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위험했는데, 사용하다가 손가락 살점 일부가 잘려 나갔어요.
  잘못된 가이드를 받아 절단된 살을 버리고 병원으로 갔죠. 어쩔 수 없이 발바닥 살을 떼어서 손가락에 붙였어요. 12년이 지난 지금도 겨울이면 항상 그 부위가 시려요. 그렇게 당한 두 번의 사고와 이른 출근 시간대, 감당해야 하는 엄청난 양의 급식을 생각하니 고등학교에서 더 일하는 게 어렵겠더라고요. 2010년 중학교 조리사로 이직을 했죠.

  2013년쯤부터 밤에 잠도 못 잘 정도로 양팔이 아팠어요. 급식실에선 일단 작업복 착용하면 나도 모르게 몸 아픈 건 잊고 기계처럼 일을 해요. 2~3개월 참다 병원에 가니 양팔에 테니스엘보가 왔다고 하더라고요. 의사 선생님께서 이 정도면 급식 일을 좀 쉬거나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아니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 병의 수술 예후가 좋지 않고 그 이후 삶은 어떻게 할 거냐고 하면서요. 전 10년 넘게 급식 일을 했고 천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면서 그분이 제 병은 산재라고 얘기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저도 산재신청을 하려고 했죠. 그런데 학교에서 산재가 아니라고 해요. 일단 유급/무급 병가와 방학기간을 사용해서 3~4개월 정도 치료받고 많이 회복했어요. 복직하러 가니까 학교에서 동의서를 내밀더라고요. 뭔지 읽어보려 하니 언제부터 이런 거 읽어보고 사인했냐면서 그냥 하라고 했어요. 일단 급하게 사인했죠.
  알고 보니 조리사에서 조리실무사로 변경하는 건에 대한 동의서였어요. 교육청에서 기존 조리사에 대한 학교의 임의적인 직위변경을 금지했는데도요. 복직하고도 힘든 일들이 많았어요. 그러다 노조 소개를 받았죠. 갖가지 문제들에 대한 이의제기를 노조와 함께하고, 그 길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 노동안전보건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당시 어떤 활동들로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다치기도 했고, 몸도 아프잖아요. 그러니까 아픈 사람이 문의를 해 오면 더 관심이 가는 거예요. 임금도 중요하지만 일단 몸이 안 아파야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당시 안양지회장이셨던 김영애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부본부장이 양어깨 회전근개파열로 수술도 하고 산재승인을 받으셨어요. 저는 비슷한 시기에 아팠어도 노조도 노안활동도 몰라 산재신청도 못했지만요.
  김영애 부본부장이 그러더라고요. 우리도 노안활동을 해야 한다고요. 경험이 있다 보니 그 말이 더 와닿았죠. 노안활동을 2015년부터 했어요. 지회에서 누군가 아프다고 문의를 해 오면,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노무사님들의 도움을 받아 산재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일로 시작했죠. 조합원들과 산재교육을 진행하면서 우리의 병은 산재승인 받을 수 있다고 홍보도 했고요. 처음에 지회 조합원 60~70명으로 시작했는데, 그런 활동들이 계기가 되어 현재 500명 이상까지 늘어났어요.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양선희 노동안전보건위원장

 

폐암, 갑상샘암... 말 못 하는 이들을 위해

- 교육공무직에 포함되는 직종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질병은 어떤 건가요?

  "일단 교육공무직에는 조리사, 조리실무사, 영양사, 사서 등 수십 개가 넘는 직종이 있어요. 직종마다 질병도 다양하죠. 일단 제가 경험했던 급식실 쪽을 이야기하자면, 근골질환은 기본적으로 있고요.
  급식실은 공기순환이 잘 안돼서 폐암도 많아요. 후드는 있어도 공조기는(후드에 연결되어, 후드로부터 올라오는 이물질을 빨아들여 밖으로 배출하고 새 공기를 넣어주는 기구) 없는 학교가 많거든요. 조리할 때 음식에서 나오는 연기가 폐에 아주 안 좋아요. 급식실에 그 연기가 자욱해요. 특히 겨울에는 후드를 켜고 일하면 너무 추우니까 끄는 경우가 많아요. 옷 이물질이 들어갈까 봐 두껍게 껴입지도 못하니 더 춥거든요.
  또 갑상샘암도 많아요. 한 사업장에 2~3명씩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어요. 직업성 암인지 조사해야 해요. 얼마전엔 락스 중독사고도 있었죠. 아주 독한 오븐 크리너 3종은 2~3년 전에 없어지고 세척력이 좀 약한 1종으로 바뀌었죠. 그런데도 중독사고가 났어요.
  미화선생님들도 근골질환이 많아요. 아파도 참고 일하고 마치면 치료받고. 지난 2020년 2월에 한 분이 테니스엘보로 수술하면서 산재 신청을 하셨고 승인을 받으셨어요. 그걸 계기로 다른 선생님들도 더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청소가 힘들잖아요.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많으시고요. 6시간 안에 그 큰 학교를 다 청소해야 하니 굉장히 바쁘고 몸에 무리가 많이 가죠.
  초등학교는 아이들이 화장실을 깨끗하게 못 써서 일이 더 많다고 하시더라구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포함되지 않은 직종 중에서 행정실무사 선생님들은 테니스엘보나 손목터널증후군, 회전근개파열이 많아요. 컴퓨터를 많이 쓰니까요. 목도 안 좋은 경우가 많고요. 또 특수건강검진 대상이 되기도 한 과학 선생님들은 각종 화학물질들을 관리하시다 보니, 그로부터 발생하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죠."

- 2020년 여름부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아래 한노보연)와 '굴뚝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이하 굴뚝책) 책 읽기 강좌'를 진행하고 계신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지부 박정호 국장이 지회마다 노안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셨어요. 노안활동은 저 혼자 할 수 없어요. 지회마다 노안활동가들이 있어야 하죠. 특히 자기가 아프다는 말을 하기 어려운 위치에 계신 분들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아픈데 말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제가 조리실무사로 있을 때, 하루는 몸이 막 떨릴 정도로 아팠어요. 출근 못한다고 전화했죠. 그랬더니 저한테 '야 너 때문에 난리났어, 기어서라도 빨리 출근해' 라고 하더라고요. 하루 종일 이를 악물고 일을 했어요. 식은땀 뻘뻘 흘리면서. 내가 조리사가 되면 그 말 만큼은 안 하고 싶더라고요. 동료가 아프다고 하면. 조리사 되고 나서는 아프면 쉬라고 하고, 거기에 대해선 토를 못 달게 했어요.
  쉬어야 다음 날 다시 일할 수 있잖아요. 그런 날은 진짜 내가 뛰어다니면서 일을 했어요. 대체인력 쓰는 건 지금도 잘 안 돼요. 그 시절부터 일하시던 분들은 지금까지도 그게 머리에 박혀서 하루도 제대로 못 쉬어요. 그런 분들이 밖으로 자기 이야기를 어떻게 하나요.
  올해 8월 말이 정년이신 분이 계세요. 목 디스크, 허리디스크, 양팔 테니스엘보, 회전근개파열이 왔대요. 오래 서 있을 수도 누워있을 수도 앉을 수도 없어요. 학교는 출근 안 한다고 난리가 났고요. 제가 무조건 쉬라고 했어요. 자기 곧 정년인데 뭐 아쉬울 게 있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나는 그분한테 '선생님이 여기서 이겨나갔으면 좋겠다고, 선생님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다음 사람을 위해서라도 그래줬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리고 4개 질병에 대해 한 번에 산재신청을 했어요. 보통 이 정도로 아프면 학교에서도 규정 들이대지 않고 질병 휴직하게끔 해줘요. 그런데 그 학교는 이 선생님을 자르고 싶은 거예요. 그 분이 유급/무급병가를 다 썼고, 취업규칙상 질병 휴직 쓰려면 8주 진단서 필요한데 없으니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경기도교육청에 말 했어요. 어느 의사가 4주 이상 진단서 떼 주냐고요. 그러던 차에 그 선생님 어깨도 너무 망가져서 수술을 하게 되셨고, 그 때문에 8주 진단을 받아 질병휴직 들어가기는 했어요.
  얼마 전에 그분과 통화를 했어요. '네가 아니면 이런 용기도 못 냈지만, 20년 넘게 급식실에서 몸 생각 안 하고 죽기 살기로 일 한 게 억울하다고. 어느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데 누구를 위해서 이 일을 했을까' 그 생각만 든대요. 산재 진행하는 동안 학교 때문에 너무 비참했대요. 저는 그 분께 정년퇴임 하셔도 이 활동 계속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현장은요, 근골격계 문제에 앞서서 이미 마음에 병들이 너무 많아요. 제가 노조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게, 난 진짜 교육을 잘못 받았구나. 저는 학교 다닐 때 부모, 선생님께 순종해야한다고 배웠어요. 안 그러면 큰일 난다고요. 나라에 충성해야한다는 교육은 당연히 받았죠. 내가 왜 그 말을 잘 들었지? 억울해요.
  이런 분들의 의견을 모아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한노보연과 함께 굴뚝책 읽기 교육을 진행하게 됐죠. 처음처럼 스물 몇 명씩 나오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나오시는 선생님들은 진짜 열심히 하세요. 빨려드는 교육이에요. 다들 의견도 적극적으로 내시고. 진행하길 아주 잘 했다고 생각해요.
  또 작년엔 '나도 강사다' 교육도 해보려고 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못 했지만요. 계속 설득해서 올해 6월 교육 참석자분들이 들으실 수 있게끔 할 거예요. 물론 그 교육 한 번 받고 바로 강사로 뛰기는 어렵죠. 근데 한 번 받고 또 받고. 용기를 내시면 돼요. 나 같은 사람도 하는데. 현장에 계신 분들이 노안활동가로 성장하실 수 있게끔 해야 해요. 가장 현장을 잘 아는 사람들이 해야 교감하는 교육이 돼요. 그게 현장에서 현장을 바꿀 수 있는 길이예요."

- 노안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게끔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사실 때로는 제 부담감을 떨치고 싶기도 해요. 학교 현장으로 들어가는 게 가족들이 바라는 거기도 하고요. 24시간 노조 혹은 노안 활동이 항상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어요. 근데 제 주변에서 '네가 있어서, 네가 이렇게 해 주니까 우리가 이만큼 학교에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장 뿌듯하고, 내가 이 일을 참 잘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분은 '광명은 언니가 있으니까 누구도 걱정 안 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주변에서 인정해 주시는 게 감사하죠. 제가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그런 것 아닐까 해요."

응어리진 아픔들을 말하도록, 더 크게 말하도록
 

  양선희 노안위원장의 말을 통해 산재를 신청하고 승인받는 일을 다시 보게 되었다. 산재인정이 되면, 회복을 위한 시간/금전상 보상을 받는다. 이는 동시에 나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그에 대한 응답과 인정을 받는 일이기도 했다.
  노동에서 비롯된 몸과 마음의 고통을 말하지 못하는 것 혹은 말했으나 인정받지 못하는 것. 내 몸과 마음이, 곧 나라는 사람이 부당하게 고통받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세심히 보살펴야 할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무시당하는 경험이다. 나의 인격을 존중받지 못하고, 생명 없는 노동력의 한 단위로 취급받는 고통. 몸의 병 이전에 이미 마음의 병이 있다는 양선희 동지의 말은 바로 그것들의 응어리를 일컫는 것일테다.
  노안활동은 그렇게 단단히 뭉친 아픔을 한 겹, 두 겹씩 풀어내는 일이 아닐까. 고통의 부름에 응하면서, 그들의 '말하기'를 지지해주면서.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우리가 밀리면 현장이 무너진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우리가 밀리면 현장이 무너진다

"우리가 밀리면 현장이 무너진다."

이 말을 마음에 꾹 눌러 담고 고군분투하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아래 한타지회)의 오동영 동지를 만났다. 오동영 동지의 현재 메신저 사진에서도 앞의 문구가 새겨진 현수막을 볼 수 있는데, 사실 그 밑에는 '정신 똑바로 차리자'라는 말이 이어진다.

"우리가 밀리면 현장이 무너진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현장이 무너지지 않게, 그래서 노동자들이 아프거나 죽게 내버려 두지 않기 위해, 지지 않으려고 먹어야 하는 마음은 어느 정도로 단단해야 하나. '정신 차려야 한다'는 말이, 도리어 이들이 매번 마음을 다잡고 또 잡아야 하는 순간들을 얼마나 많이 맞이할 수밖에 없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서글서글한 웃음 아래 깊고 힘 있는 목소리를 가진 오동영 동지는 그러한 현장 노안활동가이자, 조합의 부지회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다.

소수노조 설립과 함께 시작한 노동안전보건 활동

5천여 명의 노동자 대부분이 한국노총인 1노조에 속해 있는 공장에서, 치열한 과정을 거쳐 30명 남짓의 조합원이 한타지회를 설립했다. 그중 한 명이었던 오동영 동지는 지회를 확장해나가기 위해서는 노동안전분야에서의 활동이 중요하니, 이를 맡아달라는 지회의 권유로 노동안전활동(아래 노안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 노안활동이 지회에서 중요하게 부각된 이유는, 지회가 바꿀 수 있는 여러 현장의 사안 중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가장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분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수 노조라도, 현장 노동환경을 변화시키도록 사측에 강제할 힘을 법에 근거하여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노안 교육을 받으면서 노안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타지회 설립 이전에는, 다들 산재라는 걸 모르고 일했어요. 다치면 본인이 부주의한 탓으로 여겼으니까요. 그래서 일하다 다치거나 아픈 노동자들의 산재처리를 진행하고, 제대로 치료받고 복귀할 수 있게끔 하는 일들로 노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산재를 신청할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그러면서 지회 인지도를 높여갔고, 위험하고 유해한 작업 환경들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   2020년 12월 22일 대전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한국타이어 중대재해 특별근로감독 관련 입장발표 기자회견 당시 발언 중인 오동영 부지회장

중대재해 발생 현장에서의 변화

그렇게 많은 것들을 변화시켜왔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것들이 많다. 지난 2020년 11월 18일, 안전센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노동자가 기계에 협착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의식불명의 상태였던 그는 한 달 후인 12월 5일에 사망했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이 사고는 '중대재해'가 아니다. 72시간 내에 사망한 경우가 아니었기 때문에. 타지회에서는 노동부가 사실상 그 사고를 중대재해에 준하는 대형사고로 인정하고, 특별근로감독(아래 특감)을 실시하게 '만들어'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2017년도에도 금산공장에서(한국타이어 공장은 금산과 대전으로 나누어져 있다) 사망사고가 일어났어요. 그 일을 계기로 현장의 노동안전보건관리체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사정 TF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형식적이었어요. 노사정 TF를 하는데도 산재는 계속 증가했고요. 이렇게 산재가 많이 발생하니 노동부에서 특별히 한국타이어를 집중 관리하기 위해 정기 감독까지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18일 사고가 바로 그 정기 감독 중에 난 거예요. 그래서 대전노동청장에게 항의했어요. 2017년 사망사고 이후 제대로 현장개선이 안 된 상황에서 노동부가 작업중지를 해제했고, 그 이후 진행한 내실없는 노사정 TF와 정기 감독이 이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원인이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 전부터, 일상적으로 현장의 산안법 위반 사항에 대해 고소·고발과 진정을 많이 해서 노동부도 한국타이어의 실상들을 많이 알고 있는 상태였고요."

이런 대응 과정에서 한타지회는 노동자의 의견이 개선대책에 반영되게끔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자 했지만, 그 과정은 역시 순탄치 않았다. 한타지회는 6개(시스템, 보건, 현장 4개 파트) 감독팀에 조합원을 각 1명씩 배정하여 노동자가 감독 과정 전체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각 노조에서 최소 인원만(2명) 감독에 참여시키려는 1노조의 시도 및 노동부의 노동자 감독참여 분야 제한이 있었고, 논쟁 끝에 4개 현장감독에만 참여하는 것으로 조율됐다. 소수노조의 의견 제대로 반영이 안 되는 문제가 발생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한타지회에서는 소기의 성과들을 이뤄냈다.

"저희 마음에 완전하게 충족되는 건 아니었지만, 현장의 문제점들을 적극적으로 들춰내 노동부가 많은 설비에 사용중지를 내리게끔 했습니다. 이번 특감은 사측이 현장 안전에 두는 관심을 고취시킬 수 있게 된 계기이기도 했어요. 사측은 현장 안전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안전운영팀을 증원하겠다고 약속했고요. 미뤄왔던 노사합동점검도 특감 이후 시작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그동안 축적되어 온 산재 자료를 바탕으로, 각 공정에 특화된 안전교육을 진행하라고 요구도 해 놓은 상황입니다. 사측 역시 그간 부실했던 안전교육을 바꾸어나가겠다고 했고요. 노동부로부터도 노사정 TF에 쏟는 시간을 늘리고, 제대로 운영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 뒤에는, 지회에 지역의 다양한 단위가 결합한 '특감대응팀'이 있었다. 이 팀에는 지회의 노안활동가들 뿐만 아니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충북·세종충남·대전 3개 운동본부가 결합한 충청운동본부와, 연구소가 함께했다. 이렇게 지역 차원에서 구성된 특감대응팀 내에서는, 트라우마 대응을 포함하여 특감 전체 과정에 관련하여 실시간으로 질문과 답변, 보고와 회의가 이루어졌다. 격려와 응원도 함께. 

소수노조이지만 노동부, 사측과 함께 '공식적으로' 현장의 안전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노사정TF, 노사합동점검, 특감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온 한타지회. 하지만 2017년 일어난 사망사고 때만 해도 상황이 달랐다. 당시에는 재해조사가 3일간 이루어졌지만 한타지회는 마지막 날, 그것도 조사가 아니라 유족 앞에서 사고를 재현하는 자리에만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한타지회와 현재의 한타지회의 사이에 놓인 이 중대한 질적 성장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지회에서 노안활동 하는 동지들이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투쟁해 왔기 때문입니다. 산재자들을 직접 발굴해 이들이 거의 다 산재 승인을 받게 했고, 산안법에 기반해 현장의 위험·유해 요인들을 찾아 사측에 시정을 요구했습니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고소·고발하며, 소수노조인 저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꾸준히 노력해왔습니다.

지회의 동지들에게 고마운 게, 저희는 이 노안활동을 위한 시간을 사측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보장받고 있지 않아요. 다들 교대근무는 고스란히 다 하면서 연차와 개인 시간을 들여 활동하고 있죠. 또한 한노보연,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의 노안부장인 이태진 동지(연구소의 회원이기도 하다) 등 지회 바깥에서도 적극적으로 결합해주면서 저희가 꾸준히 노안활동을 하는 데 있어 큰 힘이 되어줬습니다."

더 강력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그렇다면 이제 한타지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갈까. 오동영 동지는 이제 노안활동이 몇몇 노안 간부들을 넘어, 지회 조합원들 전체의 일이 되는 것이 앞으로 지회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이야기했다. 

"소수의 노안 간부들이 현장 문제점을 다 점검하는 건 물리적으로 어렵습니다. 앞으로는 지회차원에서 노동안전교육을 실시하여, 조합원들도 자신의 노동환경에 대해 고민하고 바꿔나갈 수 있게끔 하고자 합니다. 그런 교육들이 바탕이 된다면 안전보건진단이나 노사합동점검, 노사정 TF 등에서도 조합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될 거고요.

이 사업은 단발성사업이 아니라 지회의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타이어와 같이 많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사업장에서는, 노안활동이 지회의 다양한 사업 중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니까요."

많은 갈등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노안활동. 편안하기만 할 수 있는 삶의 방식들을 제쳐두고, 이 자리를 계속해서 지켜내는 용기는 어디서 나올까.

"지금도 한국타이어의 노동자들은 위험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망사고도 많이 일어났고요. 그런데도 사측이나 1노조는 전혀 현장에 대해서 신경을 안 씁니다. 이러한 현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 제게 깊이 자리 잡고 있어요. 현장을 무너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죠. 금속노조에서 노안교육 받을 때, 그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노안이 무너지면 현장이 다 무너진다.' 정말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장의 작업환경 개선도 없을 것이고 계속해서 일하다 아프거나 죽는 사람이 생길 거고, 산재 신청 시 사측이 어떻게 부당하게 대우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산재신청도 못 하겠죠. 그러니 노동안전 부분이 버티고 서야 합니다. 그래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고, 치료와 회복이 필요한 노동자들은 마음 놓고 그에 전념할 수 있어요.

저는 더 나아가 지회 외부의 다른 현장에도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의 자본들은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노동자의 목숨쯤은 너무 가볍게 생각합니다. 이에 분노를 느낍니다. 하루빨리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오동영 동지로부터 그와 한타지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말은 접속사인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바꿔내고 있는 사람과 사람들. 이 추진력을 부당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현장의 노안활동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책임감에서 받고 있다면, 그 분노와 책임감 아래에는 '나와 나(로 대표되는 가족)'를 넘어, 수많은 '나와 같은 이들'로까지 확장된 세계를 품은 마음이 있다. 

현장에서의 노안활동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고 그 권리를 확장해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두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일이다. 모두의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떼어 쓰는 사람들이 있는 한타지회를 응원한다.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향남공감의원의 5년을 돌아보다 / 2020.12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향남공감의원의 5년을 돌아보다 

 

유청희 / 상임활동가 

 

지역 주민과 노동자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일터의 안전을 위해 건강검진, 노동안전보건교육, 지역의 유해물질을 알아내는 활동을 하는 병원과 기관이 있다면 어떨까? 

2015년에 설립돼 지금까지 화성시 향남읍에서 지역 주민을 치료하고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안전보건활동(아래 노안활동)을 이어온 향남공감의원(아래 공감의원)을 찾았다. 공감의원은 지역에서의 노안활동을 고민한 회원들이 시작한 의료기관이었기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아래 한노보연)의 활동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지역 주민과 노동자들의 의사인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김정수 원장과 화성에서 노안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온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정경희 상임이사가 만남의 주인공이다. 

병원과 건강검진센터에서, 또 현장에서 지역 주민의 주치의이자 노동자 안전지킴이로 힘차게 달려온 지난 5년의 소회를 들어보았다.

 

▲   김정수 원장이 "뇌심혈관계질환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



화성이라는 지역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진료하고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하는 의원을 세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했다.

김정수: 회원들 사이에 '병원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오갔다. 2011년에 한노보연 10주년 준비하면서 근골격계질환 투쟁부터 이어왔는데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 전망 논의를 했다. 그때 나왔던 이야기가 의료기관 설립해서 지역에서 노안활동 밀착해서 해보는 것, 또 심야 노동에서 확장해 노동시간 문제 다루기가 나왔다. 노동시간도 센터로 만들고 향남공감의원 설립으로 연결됐다. 또 회원들이 각자 자기 직업을 가지고 활동하는 데 일과 활동이 일치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민간의료기관이 공공 의료 형태를 띠는 것이다. 기관을 여는 방식을 고민하다가 사단법인을 통해 의료기관을 만들기로 했다. 

지역주민, 노동자, 향남공감의원 구성원이라는 세 개의 발

공감의원 홈페이지 소개 페이지에는 3대 기치가 나온다. 바로 '지역 주민의 주치의, 노동자 건강지킴이,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병원'이 그것이다. 이 3대 기치는 공감의원이 사업을 선정할 때 기준이 된다. 

지역에서의 활동은 보건·환경 문제를 포함하고, 노동자 건강지킴이는 전국에서 이주노동자가 가장 많고 영세 제조사업장이 많아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나왔다. 더불어 병원에서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이 행복한 병원을 만들기 위해 고민을 끊임없이 한다.

김정수: 지역사회 보건·환경에서의 역할, 노동안전보건 문제,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병원 등 세 가지를 세 개의 발이라고 생각한다. 매년 사업계획을 세울 때 각각에 대해서 세운다. 지역주민 주치의로 외래, 검진센터, 출장 검진, 내시경 등 여러 가지를 한다. 의사들 업무가 꽤 유동적이라 외래진료를 안정적으로 보지 못한다. 그래서 주민 주치의로서 역할에 미흡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다.

노동자건강 지킴이 활동은 '일과 건강 토크콘서트' 진행하고 후속으로 학습 모임 진행한 적도 있다. 아파트 경비, 미화 노동자들은 올해 후속 사업으로 방문해 관리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화성시 '노동안전'조례 제정도 같이하고 있고, 화성 외에도 안산, 안성, 일산 등등 지역뿐만 아니라 더 넓혀서 현장조사 같은 사업을 하려 한다. 화학물질 관련 활동은 노동자 건강권과 지역사회운동 둘 다 해당해서 의미가 있다. 

구성원들 노동조건을 개선하려고 노력해왔다. 5년 근속 시 1개월 안식월 부여하고 있고, 노동 감사도 둔다. 일하면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설문이나 면접으로 조사도 했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 실시했다. 단기 대책, 장기 대책 각각 마련했다. 핵심은 업무 관련해 직접 결정할 수 있는지, 의견을 개진했을 때 반영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직운영체계를 획기적으로 바꿔보자는 논의를 하고 있다. 

지역 주민과 노동자 주체 만드는 공감의원의 노동안전보건활동
 

▲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정경희 상임의사. 정 상임이사는 지역 노동자들과 함께 사업장 위험요소를 조사하고, 지역에서 화학물질 위험을 알려내는 다양하고 꼭 필요한 활동을 하고 있다.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에서 노동안전보건 사업을 계획하고 지역사회에서 네트워크를 꾸려가며 활동하는 사람이 바로 정경희 상임이사다. 정 상임이사는 공감의원 초창기부터 본래 직업인 물리치료사 업무를 하다가 최근 센터에서 상임이사로 활동 중이다. 환자들의 아픈 곳을 풀어주다가 이제 공감의원의 노동안전보건 예방 활동에 더 집중해서 일하게 된 정 상임이사에게 센터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들어보았다.

정경희: 지역활동 중에는 '화학물질 알 권리' 조례 제정과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 화학물질 알 권리 화성시민협의회 구성하고, 간사를 맡으면서 지역 사안 있을 때 대응하면서 시민사회에 공감센터에 대해서 알리게 됐다. 화성시는 난개발에 환경오염, 삼성반도체, 팔탄에 폭발 사고도 있었다. 그 외에도 2017년 싸이노스라는, 삼성반도체 제품을 해체하고 세척하는 업체가 있다. 거기서 화재 발생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공감의원이 성명서도 썼고, 그러면서 시민사회단체에 각인이 됐다. 이런 걸 되돌아보면 지역 시민에게 발언권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있어서 방향 설정은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자 건강권 관련해서는, 지역 주민 대상으로 공감의원에서 건강 강좌를 토크콘서트 식으로 했다. 집배노조의 경우 토크콘서트 후에 산업안전보건법 교육으로 이어갔다. 지역에서 화성청소년상담사 복직 투쟁에 연대 활동을 했다. 집배노조 노동자들이 청소년상담사에게 감정노동 집단 상담을 받으면서 노동자 간 연대활동을 추진한 게 기억에 남는다.

정 상임이사의 많은 활동 중 가장 뿌듯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들어보았다.

정경희: 도드람푸드지회에서 첫 번째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 진행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노동자들이 내가 왜 아픈지, 작업장 문제가 무엇인지 실천단을 통해서 찾게 하고 생각하던 걸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는 게 현장 참여 연구니까. 꾸준히 산재요양 신청이랑 설비 개선해가고 있어서 보면 보람을 느낀다. 제대로 된 조사가 아니면 큰 의미 없기 때문에 우리 센터는 원칙적으로 하고, 그래서 회사에서 두려워하긴 한다. 현장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유해요인조사를 하기 어렵다. 그 외에 안산에 한국와이퍼지회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다. 조합원 교육, 실천단 구성이라든지 지회를 독려하고 방향을 같이 설정했던 게 의미 있었다.

향남공감의원 직업환경의학센터는 올해 2월 산업안전보건법상 보건관리대행 기관으로 지정됐다. 50인 이상 300인 미만 기업에는 보건관리자를 두는 대신 보건관리대행 기관이 직접 관련 활동을 할 수 있다. 이 활동은 공감센터에 노동안전보건 활동 범위를 더 넓혔다는 의미가 있다.

정경희: 300인 이상 사업장에는 보건관리자를 두게 돼있고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은 보건관리 업무를 위탁할 수 있고, 50인 미만은 면해주고 있다. 우리가 보건관리전문기관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화성시의 사업장 대다수가 영세 소규모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미조직 사업장이고 보건관리기관으로 지정되면, 우리가 합법적으로 사업장에 들어갈 수 있다. 현장을 돌아보면서 법적으로 보완할 것을 제안하고 노동자들 정기 건강 상담도 진행했다. 작업 환경과 연관된 질병이 확인되면 사업주에 조치하라고 하는 게 역할이다. 특수건강검진도 지속하고 있다. 보건관리전문기관 하면서 노동자들이 의원에 외래진료 받으러 오기도 하고 순환이 되기 때문에 노동자 건강 주치의 개념으로 가져갈 수 있어서, 잘 되면 의미 있는 일이 되겠다 생각한다.

병·의원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생명을 살린다는 면에서 이미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지만 모든 의사가, 병원이 지역주민이나 노동자를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병·의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물었다.

김정수: 보건의료는 기본적으로 공공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의사파업 즈음에 비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법안이 나온 적 있는데, 거기서 의료인을 '공공재'로 표현한 부분이 있었다. 의사들이 반발하긴 했지만, 당연히 의료 행위는 공익적인 성격을 많이 갖고 있다. 코로나같은 위기에 공적인 대처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의료인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나 지자체가 만드는 병원, 또 민간이지만 공적인 소유구조를 가진 의료기관, 또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같은 공익병원이나 개인병원이 많아지면 좋겠다.

더 넓고 깊게, 노동안전보건 엮어내기

지난 5년간 지역 주민, 노동자들과 노안활동을 열심히 해 온 두 분에게 앞으로 해보고 싶은 활동을 물었다. 이미 생각해둔 사업이 꽤 많았고, 두 분의 계획대로 되면 지역에 큰 변화가 생기겠다는 예상을 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지역 주민과 노동자의 노동안전보건 지킴이로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김정수: 지역 주민 주치의 역할을 안정적으로 하고 싶다. 최소 30년 바라보고 있는데 앞으로 5년, 10년 계획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본다. 특수건강검진, 보건관리대행기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작업환경측정 기관까지 갖추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검진센터 공간이 필요해서 병원 확장하는 것, 정신건강의학과와 산부인과 진료 개설하는 것도, 다른 지역에 제2의 공감의원을 설립하는 것도 고민 중이다. 또 새로운 조직 운영 방안을 도입할 예정이고, 일하는 사람들이 방향을 직접 결정하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같이 어우러지면서 '스스로 진화하는 조직'이 됐으면 한다.

정경희: 이제 시작이다. 이제 노안활동 시작한 거다. 향후 5년 안에 여성건강권팀 만들고 싶다. 또 노동권익센터를 공감센터에서 위탁받아서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 센터'도 설립해서 제대로 조사하는 곳으로 노동조합에 알려지길 바란다. 노동자 주치의는 물론이고, 상인회와 협력해서 지역주민 중 상인들 주치의도 하면 좋겠다.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현장에서 전망을 찾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재현 노동안전보건부장 인터뷰 / 2020. 09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현장에서 전망을 찾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재현 노동안전보건부장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지난 7년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활동해오던 정재현 노동안전보건활동가는 지난 2월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로 거취를 옮겼다. 그리고 6개월이 흘렀다. 8월 24일 오후 프란치스코회관 산타미아노라 카페에서 노동안전보건활동가로 또 다른 전환기를 맞고 있는 그를 만났다.

노동자 건강권 운동을 시작한 계기

못 본 사이 얼굴이 더 작아졌다 했더니 예전보다 일은 줄었다며 반갑게 웃는다. 수다는 뒤로하고 인터뷰를 먼저 시작했다. 노안(노동안전)활동 8년 차를 맞은 그가 대학 전공과 무관한 노동자 건강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소위 운동권 학생이었는데 학교 다닐 때 노안활동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학생 때는 안전보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죠. 그러다 졸업을 앞두고, 선배로부터 반올림 자원 활동을 제안받았어요. 두 달간 반올림 상근활동가와 일정을 같이하며 피해자 가족도 만나고 활동도 알게 되면서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활동이고, 여성노동자의 문제이기도 해서 반올림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한노보연과 반올림이 사무실을 함께 사용했는데 연구소 활동가들도 자주 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연구소 활동도 접하게 되었어요. 그동안 익숙한 노조와 같이하는 활동이 인상 깊었고, 현장에서 꼭 임금만이 아니라 안전보건 활동을 오랫동안 해왔고 노안부가 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면서 관심 있어 시작하게 되었어요. 현장 활동 중에서도 또 다른 영역이나 의제가 있는 운동이어서 의미 있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부정은 긍정보다 강렬하다. 관심 있어 시작했고, 의미 있어 보람된 활동이더라도 어디서든 무슨 일이든 곤혹스러울 때는 있기 마련이다. 그동안 노동안전보건활동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한노보연에서 현장성, 계급성, 전문성이 있잖아요. 전문성이 제게는 화두였고 늘 마음의 짐처럼 있었던 것 같아요. 안전보건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애초부터 알았던 게 아니니 현장성이 있거나 전문직인 경우와는 다르게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워야 했어요. 현장 가서는 조합원들한테 '현장안전점검 최고 전문가가 누구냐, 현장에서 일하는 조합원 여러분들이다. 그래서 현장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여러분들이다'라고 말했지만, 정작 스스로는 위축되고 자신감도 부족했죠. 일례로 현장에 안전보건교육 갔을 때 사측 안전관리자들이 나이가 어리다고 깔보거나 어디 대학 출신이냐, 전공은 뭐였냐 질문을 받을 때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스스로 자신이 없어 지금도 잘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올해 방통대 환경보건학과에 편입해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잘 안 하게 되더라고요."

전문성은 기술 지식적 방법론에 지나는 것 아닐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급성이라 표현하는 일하는 사람의 관점이 아니겠냐는 질문에 연구소 상임활동가의 경험이 묻어나는 답변을 주었다.

"현장노동자에게 공감받는 연구를 책임 있게 해야 하고, 또 한 축으로는 노동조합과 사측 모두 설득할 수 있는 연구 활동을 해야 하니 무겁고 어려운 것이죠. 그렇지만 전문성이 가장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연구소 선배들을 보면 다 전문가잖아요. 자격증이 있어서가 아니라 노동자적 관점으로 현장을 볼 수 있어야죠. 현장활동가들도 몸으로 부딪치면서 산재나 노안활동 전문가가 되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연구소에서 전문성을 갖도록 이끌어주고,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던 것도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지난 2019년 인권재단 사람의 <일단, 쉬고> 프로젝트로 다녀온 뉴욕에서의 재충전 시간들. 출처: 인권재단 사람


활동에 대한 고민과 변화

지난 3월, 돌연 7년째 함께했던 한노보연에서 민주노총으로 활동을 옮겼다. 단체에서는 충족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노동조합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민주노총 활동에 대한 갈망이 있었을까? 솔직한 고민 지점을 듣고 싶었다.

"앞서 말씀드린 전문성이라는 부분, 또 하나는 현장의 안전보건활동이 활발하지 못한 이유인 것 같아요. 상근을 시작했을 때에 비하면 최근 사회적 관심과 인식이 많이 높아졌고, 언론에서 중대 재해를 다루는 관점이 달라졌어요. 운동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데 계속 반복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중대재해가 벌어지고 그걸 대응하는 활동, 사고가 나면 대책을 세우고, 현장에서 일상적인 노동안전보건활동이 잘 점검되지 않은 것 같았어요.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노동운동의 흐름 속에서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연구소 활동의 축도 현장과 같이하는 활동이 줄어들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 아쉬웠어요. 연구소 선배들이 현장과 같이 연구하고 투쟁으로 만들어왔던 경험이 저 때는 많지 않았거든요.

가령 연구소 신입회원을 보더라도 현장활동가보다는 전문가이면서 활동하고자 고민하는 분들의 가입이 많은 추세잖아요. 회원이 늘어 좋긴 한데 현장회원 가입률이 저조한 이유를 현장에서 확인하고, 잘 안 되는 과정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을까, 연구소 활동의 장점을 살려 현장과 더 잘 만나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죠. 지금도 그건 고민이에요. 연구소에서 받은 걸 잘 살려서 현장노안활동을 활성화하고, 이것이 연구소가 추구하는 현장노안활동을 만들어갈 수 있으니 연구소 회원들도 제 선택을 존중해줬다고 생각해요."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조직체계나 환경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적응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물었다.

"일단 여기는 100만 명의 조합원이 있는 곳이고 오랜 시간 동안 체계와 관행이 있어 제가 익숙해지면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뭘 하나 하더라도 공문이나 결재를 받거나 그런 것들이요. 그리고 예전에는 저를 보는 분들이 재현 동지 이렇게 불러주셨는데 여기에서는 노안부장 이렇게 불러주시니까 호칭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부를 때도 호칭을 잘 못 부른다든가 그럴 때 민망할 때가 있었죠."

바쁜 일정으로 정신없겠지만 현장을 그 전보다 많이 만나면서 이것만은 내가 지키겠다고 생각하는 노안활동가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여쭤봤다.

"적어도 현장에서 일하다 아프거나 다쳤을 때 조합원은 노조에 알리고, 노조 간부들은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화를 만드는 것 이것이 일단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그것에 대해 조직이 같이 고민하고 책임지고 모두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산재승인 여부를 떠나서 그런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 그리고 사실은 현장조합원 300명 있는데 한두 명 전임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노안부장 혹은 노안활동가에게 전가하는 현장 분위기는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같이 고민하고 같이 집행하는 구조가 되잖아요. 적어도 우리 현장에서 누가 죽거나 다치면 안 된다는 것을 조직 전체가 공유하고 그렇게 하기 위한 문화와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해요.

3~4년 정도면 공부나 활동을 통해 조금씩 알아 가는데 그때 집행부가 바뀌잖아요. 그래서 노안활동은 적어도 10년은 해야 한다는 긴 호흡으로 갈 수 있고, 조합도 그렇게 길게 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코로나19 때문에 더 안 되고 있는데 적어도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 안전보건교육은 꼭 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한 사항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향후 목표와 포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활동을 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이 많으실 거라 짐작되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현장이나 지역사회에서 필요성에 의해 준비하는 것을 아는데, 실제 현장의 요구는 어떠하고, 어떻게 조직하고 있는지 물었다.

"기업 살인법으로 시작해서 오랜 시간 요구해왔던 의제잖아요. 현장에서는 당연히 관심 있고, 건설노조의 경우 전태일3법 중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있으니까 적극적으로 받아 앉아 가자고 투쟁하고 있어요. 방식이 온라인 청원방식이잖아요. 건설노조는 9월 한 달간 모든 행사는 오프라인으로 하고, 이것을 진행한다고 하고 있어요. 21일대 국회 개원하면서 5~6월 농성 투쟁도 했고, 민주노총은 제정 원년으로 선포하고 코로나19로 어렵긴 하지만 반드시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전 조직이 가동되고 하반기 싸움을 준비하고 있어요.

전태일3법을 20만 명 조직해서 청원하는 것이 목표예요. 민주노총은 전태일3법 성공을 위해 실천단을 조직하고, 이들이 현장에서 20만 명을 조직하는 교육이나 총회, 집회를 통해서 입법 청원을 한다고 결의하고 선전 활동을 하고 있어요. 19대, 20대 국회에서 모두 발의를 했는데 국회 상임위에서 논의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10만 명을 모으는 게 쉽지 않지만, 국민적 여론이 있지 않으면 국회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목도해왔기 때문에 이번에 이런 방식을 선택하게 됐어요."

짧은 인터뷰 시간을 안타까워하며, 시민사회단체, 현장, 각 전문분야에서 활동하는 노안활동가에게 동지로서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했다.

"현장을 많이 가보자.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현장을 보는 것 자체가 배우는 게 많아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강권 활동에 대해 현장노동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현장 상황은 어떤지를 볼 수가 있어요. 건강권 현장 활동은 엄청난 정치적 문제잖아요. 자본 입장에서 안전보건활동은 규제고 귀찮은 것들이라 여기기 때문에 대립해야 하고, 현장에서 이런 것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읽을 수가 있고, 결국 안전보건활동이라는 것이 현장노동자적 관점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제도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서 현장에 가는 경험이 도움 되고 역량이 많이 쌓일 수 있어요.

조합원은 연구소 활동가라고 하면 다 알 것 같고, 질문하면 답을 바로 줄 거라는 눈빛을 해요.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요. 금속사업장은 연구소에서 경험이 많으니 조금만 노력을 기하면 답을 드릴 수가 있어요. 이전 사례들도 있고. 다른 업종의 경우 현장이 어려우니 경험이나 자료가 부족한데, 그런 현장과 활동을 너무나 하고 싶고, 막상 가면 제도적 한계가 있고 이분들은 기대하는 경우는 어렵지만, 현장보고 조합원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 활동하길 잘했다, 같이 바꾸고 싶다고 느끼면서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산재은폐저지 투쟁은 안전한 현장 만들기의 첫걸음 -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노동안전보건부 인터뷰 / 2020. 08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산재은폐저지 투쟁은 안전한 현장 만들기의 첫걸음 -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노동안전보건부 인터뷰

유청희 / 상임활동가 

최근 기업 매각 논의의 불안함 속에서도 산재은폐 저지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를 찾았다. 현장을 안전하게 바꿔보겠다고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기존에 해본 적 없는 노동안전보건 투쟁을 해나가면서 갖게 된 기대와 활동을 통해 생긴 변화에 대해 들어보았다.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총괄하는 이상우 노안1부장, 산업재해 처리와 관리 활동을 하는 손선호 2부장, 현장 위험 상황을 파악하고 작업중지 등 업무를 하는 이광기 3부장이 그 주인공이다. 각자 대우조선해양에서 근무한 경력은 각각 7년, 25년, 16년으로 다르지만, 현 노조 집행부와 함께 노동안전보건부에서 함께 활동하며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해 나가고 있다. 더불어 지회의 노동안전보건 담당 임원인 김정열 부지회장도 자리해 함께 지회 투쟁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조선소는 추락, 절단 등 각종 사고에서부터 방사능 노출로 인한 백혈병, 근골격계질환, 뇌심혈관계질환, 폐질환 등 각종 질환까지 업무상 재해 종합백화점이라 할 만큼 재해가 많은 곳이다. 그런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조선소에서 재해가 발생하면 119를 부르는 대신 회사 차량으로 병원에 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산재처리와 보고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산재은폐를 막고자 지회에서는 원청과 하청, 지역 병원, 노동부까지 전방위로 점검하면서 다치고 아프면 산재신청으로 이어지게 만들고 있다.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녿동안전보건부(왼쪽부터 손선호 노안2부장, 이상우 노안1부장, 이광기 노안3부장)

하청업체 사건에서 출발한 산재은폐 저지 투쟁

지난 5월 대우조선해양의 한 하청업체 노동자가 작업 중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청업체에서 재해자를 차량으로 이동시키고 덮으려 한 것을 조합원들 신고로 지회에서 확인하고 산업재해 신청으로 이어지게 했다. 하청업체 노동자의 재해는 결국 원청 책임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며, 지회에서 대우조선해양 대표인 이성근 사장을 고소했다. 원청보다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재해가 발생해도 산재신청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지회에서도 이런 저돌적인 산재은폐저지 투쟁은 처음 해보는 사업이기도 하고, 그 계기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의 사고였던 것도 큰 의미가 있다.

김정열: "기존에도 산재은폐가 발생하면 노동조합에서 대응을 해왔지만, 최근 하청업체 사건이 발생하면서 노동조합 사업으로 하게 되었어요. 사회적으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자는 요구가 증가했고요. 안전관리를 원청이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지적하면서 원청에 책임을 물으니까 회사도 확실히 움직인다는 걸 체감하고 있습니다.

119 제보 신고는 다친 노동자들이 하지 않더라도 관리자들이 하게끔 만들어 놓는 것이 노동조합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현장에서 변화가 올라오는 것도 있겠지만, 제도가 아래로 내려가게 하는 것도 있어요. 제보자를 보호하는 것도 관건인데, 제보 오면 직접 찾아가서 경고 하고 고소도 하면서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임기가 1년 반 가량 남았으니 그 때 까지 열심히 해보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제도화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건강보험공단에 부정수급 적발사례 건도 요청하고 있습니다. 병원도 뻔히 알고도 건강보험 처리한다든지 하는 문제가 있어서, 의사도 공범으로 고발하겠다고 경고하고요. 노동부에도 근로복지공단이 부정수급 받아서 산재은폐 처리한 것 있는지 확인하고 산재처리 하게 합니다. 현장 관리자들에게 '숨길 수 없다, 드러나게 돼 있다, 그때 걸리면 박살 나니까 무조건 119 부르라'고 하고요. 거기까지는 어느 정도 돼 가고 있고, 앞으로 궁극적으로 산재보상보험으로 하라고 하는 거죠."

손선호: "과거에는 이런 저지투쟁이 아니고 산재은폐 사례 홍보하는 수준이었어요. 이번 하청업체 사건으로 산재은폐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산재은폐에 관한 투쟁을 만들고 있습니다. 근무 한 25년 동안 처음이었어요. 전에는 정말 '이렇게 하면 안 된다'였지, 회사와 노동부를 압박하는 건 처음으로 알고 있어요.

원청이든 하청이든 사고가 나면 산재 신청을 하게 하는 것이 지회의 목표다. 지회의 산재은폐저지 투쟁 이후 조합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노안부장들은 현장의 변화를 분명히 느끼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사업장 곳곳에서 하청 업체들에서 붙인 산재은폐 근절 현수막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상우: "확실한 인식 변화가 있어요. 지지해주시는 조합원분들도 만났습니다. 아직도 산재했을 때 회사의 보복, 불이익을 걱정하긴 하는데요. 이런 건 지회에서 해소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 부분은 지회의 숙제이기도 합니다. 이번 사업을 통해 신고 건수가 과거보다 125%가량 늘었어요. 미세한 사고까지도 신고하게 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빙산의 일각일 거라고 판단하고 있고요. 1차 자진신고 기간에 각 부서와 하청업체 산재은폐 적발 건수가 53건 정도 있었고, 그 외에도 더 나올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 2차 자진신고 기간을 부여해서 산재은폐 털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사고는 즉각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적발했을 때 바로 대응하고 있지만, 질병의 경우 바로 드러나지 않아 조합원들이 지회에 알리지 않으면 업무상 질병 발생 여부를 파악하기조차 쉽지가 않다. 그 때문에 질병의 산재은폐 저지를 하는 것이 쉽지 않고, 조합원들에게 산재신청 후라도 사례를 취합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에 알리게 하는 등 또 다른 대응 방식이 필요했다."

김정열: "시작은 아무래도 '드러나는 사고도 은폐되는데 이것부터 막자'는 겁니다. 치료받을 권리 보장과 은폐 방지가 시작입니다. 조합원들이 따로 진행한 후에 승인/불승인만 지회로 통보되는 방식이라, 이런 사례들을 연구사업으로 분석한 다음 결과를 보고서, 질병산재은폐에 대응하는 것을 후속 사업으로 만들어가려고 고민 중입니다. 지금은 너무 당연한 권리가 박탈되는 부분들을 먼저 바꾸려 합니다.

직업병은 우회해서 시도하고 있고요. 지금까지 위임장 받아서 취합하는 사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질판위 결과 확인을 찬성/반대 정도까지만 받아볼 수 있는데 그거라도 받아서 노동조합에서 정리하고 보관하려고 합니다."  

기업 매각과 노안활동의 현실 돌파하기

기업 매각 논의는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국가적 사안이기도 하다. 이런 큰 쟁점이 있을 때 노동조합 투쟁에 복무하면서도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끌고 가야 하는 담당자들은 고민이 컸다고 한다. 이상우 노안1부장은 작년에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시작할 때 회사 매각을 저지하고 대응하는 데 노동조합이 힘을 쏟다 보니 노안 활동을 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올해는 매각 저지 투쟁을 하면서도 노동안전보건부에서 산재은폐를 막기 위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 모두를 해나가는 것이 노동안전보건부의 활동이고 앞으로 이 균형 잡기는 노안부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상우: "처음 노안 활동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회사 매각이 터져서 농성에 들어갔는데 노안 의제를 챙기기가 어려웠어요. 돌아봐도 노안 의제를 하긴 한 것인가 헷갈리기도 하고요. 활동을 위해 첫발을 내디뎠는데 매각 투쟁을 하면서 중심을 잘 못 잡은 것 같기도 합니다. 노동안전보건이 뭐고 노동조합이 뭔지 정립하는 기간이 없었습니다. 산재 사고 조치는 부차적인 걸로 밀렸던 게 있고, 현재도 사실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공세적 노안활동으로 안전한 현장을

지회 노동안전보건부는 노동안전보건 사업이야말로 현 집행부가 잘 할 수 있고 조합원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더욱더 공세적으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해나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장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작업중지를 즉각 발동하면서 공격적으로 산재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김정열: "노동조합 활동 중에 선방을 때릴 수 있는 활동이 노안활동이라고 생각해요. 현장을 바꿀 수 있고 회사가 무서워하게 만들 수도 있고요. 현장에서 노동조합을 찾게 만들고, 믿게 만들어야 하는데, 노안 활동을 잘하는 것이 민주노조를 사수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핵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나아가야겠다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광기: "중국에서 블록이 들어올 때 발판이 설치돼서 오는데, 발판을 3장 깔아야 합니다. 노사합의로 그렇게 정한 건데 2장을 깔아서 온 겁니다. 그러면 폭이 좁아져서 위험하죠. 노사합의한 것은 지키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안 되면 고소·고발 진행하는데, 그게 적발이 돼서 로얄도크 전체를 작업중지한 적이 있었습니다. 또 우천에 옥외작업 못 하게 하고 있는데, 엊그저께 재난경보문자가 올 정도로 비 많이 왔거든요. 회사에서는 일을 안 시키겠다고 해놓고 현장 가보니까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1도크 작업중지를 어제까지 이틀 정도 내렸습니다. 비가 그칠 때까지, 도크장 안에 물이 빠질 때까지는 작업중지 해제를 하지 않고 유지했죠."

노동안전부장들 역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기 전에는 재해가 발생해도 적절한 조치나 신고 없이 넘긴 적이 있었으나, 이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변화한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들이 생각하는 지회의 노동안전보건활동의 방향을 물었다.

이상우: "저도 산재은폐의 당사자였고, 그래서 작년에 특히 산재은폐 저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제 집행위가 끝나고 내려가는 속에도 조합원이나 협력사 노동자들이 이 집행부를 떠올리면 노안을 인식할 수 있을 만한, 이것은 이 집행부가 했다고 기억할 수 있는 사업들을 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이광기: "저는 현장을 통제해야 하는 강력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작업중지 발동 등의 업무를 맡아서 하고, 현장 민원 담당이기도 합니다. 안전에 있어서 타협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집행부가 끝나고 현장에 내려갔을 때 현민투 하면 안전문제에 타협은 없다는 기억이 남게끔 할 생각입니다."

이상우 노안1부장은 쉽지 않은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면서 사고 재해자 가족이 산업재해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큰 도움이 되었다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들었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현장의 위험을 항상 주시하며 조합원들이 두려워할 때 함께 해결해나가는 지회 활동가들이 대우조선지회 노동안전보건부, 그리고 지회의 힘이 아닐까?

기업 매각으로 오랫동안 불안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산재은폐 저지 투쟁을 해나가는 대우조선지회 노동안전보건부가 힘차게 투쟁해나가길, 계획대로 산재은폐 없는 안전한 현장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부딪히며 배우며 만들어간 안전보건활동 / 2020.07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부딪히며 배우며 만들어간 안전보건활동

 

박기형 / 상임활동가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희망연대노조 산업안전보건법(아래 산안법) 세미나가 2020년 5월 14일부터 총 6회차에 걸쳐 진행되었고, 6월 18일에 마무리되었다. 세미나에서는 희망연대노조에 소속된 지부들의 현장 상황과 안전보건과 관련한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 적극적으로 자신의 활동 경험을 나누려고 하는 한 분이 눈에 띄었다. 바로 딜라이브 지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형진 명예산업안전감독관(아래 명감)이었다. 지난 6월 29일에 노동안전보건(아래 노안)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못다한 이야기들을 듣고자 성수역 인근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제안으로부터 시작한 노동안전보건 활동

김형진 명감은 통신 분야에서 10여 년을 일했고, 파트너사에서 근무하다가 희망연대노조 가입 이후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겪었다고 한다. 이때 정책차장으로 파트너사에서 고용형태 전환과 관련한 투쟁을 했다. 그러다 딜라이브 지부에서 산업안전보건위원회(아래 산안위) 활동을 제안받았고,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직접고용으로 전환된 이후, 산안위 활동을 이어오다 2019년 1월 명감으로 위촉되었다.

"처음 제안받았을 때는 생소했습니다. 파트너사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는 현장에서 작업을 하지만, 정작 위험요소는 느끼지 못했어요. 전봇대에서 승주하고 담벼락에 올라가 작업하는 것도 일상업무라고 당연시했죠. 안전하게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산안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점차 배워나갔죠. 업무 외 시간을 활용해 산안법 스터디도 하고, 회의 일정 잡히면 사전 회의에 참석해서 관련한 내용도 검토하다보니, 현장의 위험요소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명감은 제가 처음은 아니에요. 지부에서 1기 명감을 위촉했었죠. 처음에는 노안활동이 자리잡기 전이었고, 노사관계도 불안정할 때였숩나다. 과도기였던 거죠. 그래서 사용자 측과 산안위든 실무협의든 많이 부딪혔어요. 그런 갈등 속에서 활동의 기본틀을 갖춰나갔습니다. 제가 2기 명감인데, 지금은 노안활동이 정착되어 가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위험성 평가나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 등에 업무시간 내 참여하고,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최대한 일정을 맞춰서 현장점검 및 대응도 하고 있습니다."
 

▲   희망연대노조 딜라이브지부는 안전문제를 인식하지 못 하고 위험 노동을 당연시하던 시기도 있었으나, 현장의 위험 업무와 사측의 안전조치 미실시 등을 알려가면서 노동안전보건활동을 해나가고 인식을 변화시켜왔다.

 

서로 몰랐던 안전보건 의제

김형진 명감이 노안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직고용 전환 국면과 겹쳤다. 이 때문에 본사와 파트너사 등 사측과 충돌하는 일이 잦았다. 단지 투쟁 국면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안전보건과 관련해, 사측도 충분한 이해나 정해진 관례가 없었다. 한마디로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 모르는 상황이었다.

"저로서도 일하면서 누군가 다치거나 사고났던 걸 봤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뭐가 문제인지를 잘 알지 못했었죠. 수습, 대응, 산재신청 등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도 몰랐으니까요. 사측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동안 산안법과 관련한 위반사항들을 전혀 인지조차 하지 못했으니까요. 산안위 처음 시작했을 때, 사측도 산안법 책을 펴놓고 찾아가며 얘기를 나누기도 헀습니다."

"그럼에도 정책차장으로 있을 때, 현장의 위험을 최대한 많이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사측이 위험업무에 대해 안전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걸 작업과정을 담은 영상을 통해 알려보려고 했습니다. 승주 작업부터 아치형 옥상 작업까지 여러 현장 상황을 영상에 담았고요. 작업량, 장비 무게 등을 측정하고, 위험상황별 사진도 찍어서 자료로 만들었습니다. 야간작업 문제도 지적하고요."

산안위에서 만들어간 노안활동

현장점검으로부터 시작한 노안활동은 산안위로 이어졌다. 산안위에서 사전회의, 실무회의, 본회의로 이어지는 안건마련 및 준비, 협의과정을 통해 여러 의제를 제기하고 관철시킬 수 있었다. 일과시간과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었지만, 최대한 협조를 이끌어내 업무시간을 조정하고 활동을 이어갔다.

"비록 산안위원 활동을 전임으로 하지 못하지만, 함께 업무 외 시간에서 열심히 준비하고 대응해나가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서로 소통도 하고요. 산안위의 경우에는 파트너사별, 지사별로 위원을 위촉하고 다양한 의제를 모아내려고 했습니다. 이제는 멀티, 텔레웍스, 내근직, 영업 등 직군별로 배정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산안위를 통해서 각종 노안의제를 파악하고, 제기하고 있어요. 현장작업의 경우 팔토시나 워머, 사무직들의 경우 발받침대 등을 구비해서 작업부담을 덜 수 있도록 요구했고, 안전화 교체주기나 작업복 제공도 늘리고 작업복 자체도 작업하기 편하게 개선하고요. 작업중지도 할 수 있도록 노안활동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했습니다. 현장에서 좀 더 실효성있게 작동하도록 작업중지 이후 현장개선 등으로 이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조합 내 의견을 모아 요청하고, 사측과 협상을 통해 현장을 개선해나가고 있었다. 최근에는 현장직군 외에 상담 및 사무 직군과 관련한 의제로 확장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상담직군의 경우, 고객갑질 등 감정노동에 따른 정신건강 보호를 위한 조치도 하도록 했고, 코로나19 이후 사무공간과 콜센터 내 아크릴 보호막 설치도 하도록 했다.

"현장 직군의 경우 사다리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합니다. 사다리 사고에 대해 현황 점검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LS사다리로 지급될 수 있도록 하고, 전봇대에 거치할 때에도 고무지지대 등을 설치해서 작업 중 미끄러져 돌아가지 않게 조치도 취했습니다. 계속해서 현장의 위험요소들을 알린 결과, 사측에서도 현장개선의 필요성을 인지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런 안전조치가 현장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안전장구류 지급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안전보건교육도 개선하고, 작업시간 등도 충분히 확보하는 등의 후속 노력이 이어져야 합니다. 고소작업의 경우엔 2인 1조 도입이 중요한데, 아직은 좀 더 고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전송망 관리와 관련해서 긴급출동을 위한 대기근무조가 운영되고 있는데, 인원이 부족해서 야간근무 부담과 함께, 혼자 출동하는 데 따른 위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고용조건 개선, 신규인력채용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은 과제라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법제도를 넘어선 활동을 만들어야

딜라이브 지부에서 명감을 위촉하면서, 사측과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1기와 2기 모두, 사측에서는 명감 위촉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다고 한다. 위촉 여부에 대해 사측의 의견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활동에 협조적이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었다. 명감의 지위와 권한에 대해 제대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도 명감 활동을 지속한다면, 활동시간 보장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전임으로 하든, 안전관리팀으로 직책 변경을 하든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필요가 있어요. 노조 상황도 고려해야 하긴 해야죠. 물론 현재 수준에서 별도로 협오를 구하면, 시간할애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직군이다 보니 업무를 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법에서 규정한 명감활동 내용 중 일부만 수행하고 있습니다. 좀 더 사고 대응도 열심히 해보고 싶고, 조사활동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아요. 나아가 산안위 활동과 지부 활동을 더 연계할 수 있도록 매개하는 역할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김형진 명감은 딜라이브 지부에서 노안활동을 활발히 이어왔지만, 한 번의 도약이 필요한 게 아닐까 고민이 든다고 했다. 산안위 활동 등을 통해 현장 개선을 해왔는데, 여전히 회사는 법제도 안에서만, 법에 규정된 최소기준만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안전보건 문제는 법에 규정된 기술적인 사항만 지키면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노안활동은 이를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 더 많은 문제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 노동조건, 고용형태, 임금과 노동시간 등 개선해야 할 과제는 더 넓다. 이를 위한 김형진 명감은 임기를 마치더라도, 노안활동을 이어가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와 함께 세미나 때 함께 의견을 나눴던 것처럼 희망연대노조에서 더 많은 지부가 함께 노안의제에 관심을 갖고 교류하며 활동을 만들어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 바람에 연구소도 함께 연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노동안전보건 할동가에게 듣는다] 아프면 쉬고, 예방은 과도하게 / 2020.06

[노동안전보건 할동가에게 듣는다] 

 

 

아프면 쉬고, 예방은 과도하게

 

 

최민 / 상임활동가 

 

 

한국에서 코로나19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온 것이 1월 20일. 5월 31일까지 133일, 벌써 4달이 넘는 시간이다. 2015년 메르스 때 첫 확진자 발생부터 신환자가 0명이 될 때까지 44일 걸렸던 것에 비하면 정말 긴 시간이다. 그나마 한국은 유럽이나 미국에 비하면 지금까지는 매우 안정적으로 이 새로운 감염병을 견뎌내고 있다.

K-방역의 우수성도 있겠지만, 사회구성원이 직접 접촉을 덜 할 수 있도록 대신해주는 많은 노동자, 우리가 만나고 생활하는 곳곳을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구석구석 소독하는 노동자들 덕에 우리의 일상이 유지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렇게 '대신' 해주던 콜센터노동자, 택배 노동자들이 과로사로, 연쇄 감염으로 건강을 잃은 뒤에야 이런 논의에 등장한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말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활동가들이 있다.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한창운 노안국장을 만나 코로나 시기 노동조합의 대응을 들었다.



코로나19 감염위험 대응 과정

한창운 국장은 메르스 때는 노동조합 전임 활동가가 아니었다. 사실 현장에서는 메르스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1월에 코로나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노동조합이나 교통공사 모두 마찬가지였다. 2월에 감염병 예방 단계가 '경계'로 상승하면서, 공사에서 먼저 대책팀을 꾸리고 노조와도 협의를 시작했다.

"서울교통공사가 빨리 대처했고, 잘했다고 국제적으로도 칭찬을 많이 받고 있어요. 메르스 때 감염병 유행에 대비한 매뉴얼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준해서 준비를 할 수 있었거든요. 기존 시스템이 있었으니까,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던 거죠. 노조에서도 2018년 말경부터 법정 감염병과 관련된 대책을 세우자는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A형간염 등 법정 감염병이 있는데, 이 사람들의 공간 사용이나 치료비 등을 회사에서 보장해야 한다고 제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공사에서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여서 의결하지는 못하고, 2019년에 의논만 좀 하다가 잊혔는데, 1년 뒤에 코로나가 터진 거죠."

"코로나 관련해서 첫 번째 대응이 코로나 관련 위험 국가로 지정된 7개 아시아 국가 방문자에 대해서는 유급 공가를 준다는 대책이었습니다. 처음 제안했을 때는, 악용하는 사람이 나오느니 마느니 하다가, 결국 악용 사례를 걱정하는 것보다는 예방이 중요하다는 걸 노사가 공감하게 된 거죠."

"공가는 병가와는 달리 '공적인 이유로 사용하게 되는 휴가'예요. 확진되고 나면 병가를 쓰면 되죠. 그런데 이건 확진되기 전에, 의심스러운 사람은 일터에 안 나오게 해서 질병 전파를 막자는 것이니, 따로 유급으로 휴가를 보장하는 것이 바르다고 봤어요. 한두 건 악용했을 수도 있지만, 공공기관에서 확진자가 없었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하철에서 확진자 나와서 사업장 폐쇄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조합원들 자신도 많이 조심했죠. 심각 단계에서는 부고 소식 알리면서도, 장례식장 오지 말라 공지하기도 하고요."

 

▲   코로나19 감염예방을 위해 지하철 내부를 소독 중이다. 시민과 노동자 모두의 안전을 위한 방역조치는 필수적이다. 나아가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감염되지 않게 충분한 안전보건조치를 취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고위험군에 대한 예방적인 유급 공가 보장

감염 고위험군에 대한 예방적인 유급 공가 보장은 코로나19 감염병 진행 단계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되었다. 2월 말, 대구·경북 지역에서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때는, 대구·경북 지역 다녀온 사람이나 그 지역민과 접촉한 경우는 유급 공가를 보장했다.

3월 말 이후, 국내 확진자가 감소하고, 해외에서 유입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부터는 유학생 등 해외 거주 자녀가 들어온 경우, 무조건 유급 공가를 보장해줬다. 이를 통해 조합원 중 확진자가 없었다는 점이 성공한 것이라고 본다. 대구·경북에 다녀오기만 한 사람도 공가를 주면서,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각인된 것이, 코로나를 겪으면서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다. 다만, 이런 대응이 개별 단위사업장만으로 적용된 것은 아쉽다.

"대응이 정부 수준에서 이루어졌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의심자 혹은 감염이 걱정되는 사람에게는 유급휴가를 보장하라고 정부가 똑똑히 말해줬어야죠. 나라에서 지정한 감염병이니까, 국가에서 보장해야죠. 고용노동부의 처음 대응 지침에서도 공가 사용은 '확진자'만 쓰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확진되기 전에, 걱정되거나 의심될 때부터 마음 놓고 안 나올 수 있어야죠. 무급이었으면 나오는 사람들 분명 있었을 거예요. 기침을 뭐 여덟 시간 내내 하는 건 아니니까, 참을 수 있다면서 나올 거고, 쉬라고 해도, 들어가라고 해도 버틸 사람들이 있죠. 월급이 깎여버리면요. 처음에 지하철 중에서도 이런 공가 지급 원칙이 어디는 적용되고, 어디는 적용이 안 됐다가 이제 보편적으로 적용되게 되었습니다. 노동조합들끼리 하는 궤도 노동안전위원회가 있으니까 거기서 우리가 시작한 공가 사용지침을 공유하면서, 부산지하철, 철도 등 다른 데들도 적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공사만 보면 '아프면 쉬어라' 이게 화두입니다. 우리는 병가 사용이 그렇게 빡빡한 곳이 아니었는데도, '감기 걸려서 쉰다' 하면, '야, 그런 거 가지고 안 나오냐' 하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만 열이 나도, 기침 조금만 해도 쉬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됐죠. 출근해도 소속장이 바로 들여보내고 있거든요. 그런 게 사회가 변하는 큰 흐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에는 '아프면 쉬는 것'이 자기 권리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조합원들도 많았는데, 앞으로는 이런 인식은 확실히 자리 잡힐 거로 생각해요."

교통공사에서 선제적으로 예방 차원의 공가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들의 감염 예방이 곧바로 시민들의 안전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는 코로나19 신규 환자가 급증하던 2월 말, 코로나19 감염병 위기경보가 '경계' 단계로 격상되자, 지하철 역사와 전동차 방역 소독을 크게 강화했다. 원래 주 1회 실시하던 지하철 역사 내부 방역을 주 2회로, 화장실 방역은 일 1회에서 2회로, 일회용 교통카드 세척은 5일 1회에서 1일 1회로 늘렸다. 전동차 내 방역소독을 회차 때마다 매번 실시하고, 주 2회 실시하던 의자 옆 안전봉과 객실 내 분무 소독도 회차 때마다 실시하는 것으로 늘렸다.

시민들은 안전해졌지만, 노동 강도는 높아진다. 노동자들에게 보호구와 보호복은 제대로 지급되는지, 늘어난 방역과 관련된 위험은 잘 예방되고 있는지도 문제가 된다. 하지만 청소와 방역은 교통공사 노동자가 직접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통공사 노동조합에서 직접 챙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원청의 안전보건관리 책임 강화가 필요

"청소나 방역은 자회사에서 하거든요. 방역 강화하면서 일이 2~3배는 늘었을 겁니다. 보호구라도 더 주라고 공사에 여러 차례 말은 했어요. 언론에 비치는 건 세계적으로 대단한 K-방역이라지만, 그 이면에는 노동자들이 노동 강도 증가나 감염 노출, 보호구 적기 지급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도 있었죠. 회사에 이런 것들을 제기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자회사라서 직접적으로 개입하면 안 된다는 핑계를 대지요. 자회사 담당자 만나서 얘기를 해보기도 하고, 교통공사와 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자리를 통해서도 청소노동자 보호 대책 마련해야 한다는 당부를 했습니다."

"소독 등에 독성물질 포함될 수 있으니, 이점 유의해야 한다는 것과 제대로 된 보호구 지급 등이었어요. 보안경도 줘야 하고, 마스크도 보건용 마스크를 주고, 방진복도 필요하면 지급해야 하고요. 그런데 현장에서 봐도 덴탈 마스크 쓰고 작업하는 경우가 많고, 라텍스 장갑도 안 쓰시기도 하더라고요. 보안경은 정말 쓴 사람을 못 본 것 같고요. 역에서 일하는 우리 조합원들은, 한참 마스크 품귀일 때도 이틀에 한 번씩은 마스크를 지급받았거든요. 공사에서도 마스크 확보에 공을 들였고요. 코로나 사태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보호를 다르게 받고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보호를 덜 받고 있죠."

2018년 김용균 노동자 사망과 이어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이후 원청의 안전보건 관련 책임이 강조되고 있지만, 아직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9년부터는 공공기관 안전관리에 관한 지침을 통해, 원청과 하청 노사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안전근로협의체'를 운영하도록 하고 있지만, 현재는 심의, 의결권도 없어 심도 있는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 교통공사의 시설물과 역사를 방역하는 것인데도 예산을 직접 추가 지급하는 것을 공사는 꺼리게 된다. 절차상의 문제도 있고, 고용상의 책임 문제로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책임 있는 안전관리가 가능하게 되려면 구조적인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안전근로협의체 준비할 때 공사 담당자에게 청소 노동자 보호구 등 문제를 제기하니, 우리 예산을 줄 수도 없고 애매하다고 변명하더라고요. 결국은 예산 문제로 귀결되는데, 현재는 예산 전용 등 여러 문제가 남게 됩니다. 안전근로협의체가 법적 구속력이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원청에서 모든 책임을 제대로 질 수 있게 만들어야죠.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원청의 책임이 강조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관념적, 형식적으로만 선포됐을 뿐이라고 봐요. 실질적으로 예산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청 노동조합인데도 '자회사에 잘하라고 권고하라'는 정도의 얘기밖에 못 한다는 게 답답하죠."

공공기관 감염병 종합예방대책 수립이 시급하다

이런 문제점을 포괄적으로 담을 수 있는 공공기관 감염병 종합예방대책을 만드는 게 남은 숙제라고 생각한다.
 
"마스크 수급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우리 사업장에서도 보호구가 여전히 문제이긴 하거든요. 식약처에서 마스크 물량을 의료, 방역, 안전, 국방, 교육, 안전 등 정책적 목적으로 배치하고 있는데, 여기에 철도나 도시철도 사업이 빠져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버스 등 대중교통 단위를 포함해야죠. 우체국도 마스크를 보장받지 못해서, 식약처에 가서 따지고 투쟁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것들 포함해서, 포괄적인 감염병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의료기관은 기본이고, 다양한 공공기관의 대응도 체계적인 정비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의료 노동자에 대해서 이제야 정비한다고 하는데 청소 노동자에 대한 대책이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어요. 서울교통공사만 보면, 지하철 이용하면서 전파가 없고, 종사자 중 확진자가 없는 제일 큰 공은 청소노동자인데, 실질적으로 보호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거든요. 또 이번 과정에서 철도, 지하철 수입이 많이 줄었거든요. 적자가 커지는 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안전예산이 줄어들거나 그런 방향으로 튀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런 건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죠."
 
이번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가장 큰 원칙으로 삼았던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코로나19에 약간은 과도하게 대하고 있기도 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예방적인 거죠. 예방은 약간 과한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우리가 말로는 항상 예방을 과하게 하자고 했지만, 지키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그게 감염병에 관해서는 지켜졌던 거죠. 예방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이 코로나19에 대응하면서 배운, 아프면 쉬는 게 기본적인 권리라는 사실, 예방은 과도하게 하는 게 맞는다는 경험, 여전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르게 보호받고 있다는 깨달음을 놓치지 않고, 노동안전보건활동을 이어가기를 응원한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노동자 건강권 쟁취, 조금 더 담대하게! - 반올림 이상수 활동가 인터뷰 / 2020.05

노동자 건강권 쟁취, 조금 더 담대하게!

-반올림 이상수 활동가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인터뷰하러 가는 길, 마치 헤어졌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인 것 마냥 들썩거렸다. 5년 넘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이하 연구소)와 동고동락했던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은 올해 1월 말 각자 둥지를 틀게 됐다. 오랜 시간 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해 묵묵히 걸어온 이들이 독립 공간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지난 4월 22일 오후 구로구 반올림 사무실에서 2017년부터 상임활동가로 일해 온 이상수씨를 만나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 그리고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로서의 고민을 나누었다.

반올림과의 만남, 다시 만난 세계

가장 첫 질문으로 반올림에서 상임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상수씨 본인 역시 삼성전기에서 PCB(인쇄회로기판)를 연구, 개발하는 일을 했다. 1999년에 입사해서 11년 조금 넘게 일을 하고 퇴사했다. 이때의 경험이 상수씨를 반올림 투쟁에 함께하게 했다.
  
"반올림의 이종란 활동가를 만나게 됐는데 저에게 뭘 많이 물어봤어요. 제가 일했던 곳에서 사람이 병에 걸리고 심지어 죽기까지 했으니까요.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몇 번 자문도 하게 됐죠. 법정 증언도 했어요. 이후 농성을 하게 되면서 농성장에 직접 가기도 했어요.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죠. 안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아프셨던, 돌아가신 분들을 제가 개인적으로 알았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 현장에 대해선 잘 안다고 할 수 있었죠. 자세히 들여다보니 PCB(인쇄회로기판)를 만드는 게 LCD(액정표시장치) 못지않게 유해하다는 걸 배웠어요. 중요한 계기가 됐죠."

그곳의 모습이 상수씨에겐 아직도 선명하다. 다양한 색깔의 화학물질이 목욕탕 크기의 어딘가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기도 하고, 거대한 기계들이 돌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소음 등 일단 공장에 들어선 순간 압도된다.

하얀 방진복을 입고 '클린룸'에 들어선 순간 누구나 멍해지는 걸 느낀다. 기압 자체가 다르다. 온도, 습도, 불빛 등 환경 요인으로 전혀 다른 세상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제공한다. 반도체 산업은 '굴뚝 없는 산업'으로 불린다. 환경오염도 없고 더불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위험하지 않은 듯한 이미지를 풍긴다.

하지만 올해 2월 기준 삼성 계열사(전자산업 분야)의 직업성질환 제보현황을 보면 총 588건, 그중 사망은 179건에 달한다. 상수 씨가 일했던 삼성전기에서도 제보가 25건, 사망은 17건에 달한다.

"반올림 운동 그 자체가 인상적이에요. 개인적으로 이전에 거쳤던 전업활동가는 아니지만 활동가로 살아오면서 이래저래 받았던 좌절, 상처가 치유되는 기간이기도 했어요. 반올림의 운동은 산재피해가족운동이기도 하면서 활동가, 시민, 의사, 법률가, 언론인 등 각자 자기 몫을 해냄으로써 불가능했을 과제를, 다들 버거웠을 과제를 끌어안고 성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노력을 신뢰하게 됐죠."

촛불 투쟁 그리고 희망

반올림과 인연을 맺게 된 이후부터 상임활동을 하는 지금까지 가장 기뻤던 때가 언제였는지 떠올려 달라고 했다. 그는 2018년인 2년 전 삼성전자와 맺은 협약을 떠올렸다. 전자산업 노동자의 직업병 문제를 전 사회적으로 알리게 된 삼성전자 노동자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11년, 중재가 시작된 지 4년 만에 일군 의미가 큰 성과였다.

"기뻤어요. 사실 2015년 10월부터 시작한 농성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2015년 10월 7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이 있는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는데 삼성전자, 반올림, 가족대책위가 수용해서 만들어진 조정위원회가 열렸지만 삼성전자는 조정위 권고가 아닌 자신들이 만든 보상위원회 때문에 조정위 권고안을 미루자는 입장을 발표했어요. 저희는 '직업병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간 거예요. 2016년엔 삼성전자가 옴부즈만 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어요. 이런 과정을 거치며 사회 전체 인식은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가 해결된 거 아니냐였어요. 전혀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2016년 11월 말부터 광화문에서 촛불이 벌어지면서 완전히 뒤바뀌었어요. 당시 광장에서 황상기 아버님이 중앙 연단에서 연설도 하셨죠. 그때 우리가 맨날 하는 방진복 다잉 퍼포먼스를 했는데, 사실 사람들이 되게 낯설어했거든요. 그런데 해가 바뀌고 연초에 퍼포먼스를 사람들이 알아보고 낯선 이에게 설명도 해주시더라고요.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봐 준다고 느꼈어요. 촛불을 거치면서 생긴 힘이 농성을 지속할 수 있게 했고, 그렇게 버틴 힘으로 협상까지 갔다고 생각해요. 사회 변화에 대한 희망을 다시 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습니다."

반올림의 시작은 삼성반도체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고, 진실에 다가갈수록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님이 밝혀졌다. 황유미씨 산재 신청을 준비하면서 미국의 IBM, 타이완의 RCA 공장 등 암으로 죽어 나간 젊은 노동자의 이야기가 한국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08년 본격적으로 반올림 이름을 사용하면서 활동 목표를 '직업병과 환경오염이라는 반도체 산업 세계화에 대한 폭로와 저항'으로 설정한 것도 그 까닭이다.

담대함으로 나아가는 노동자 건강권 운동을 꿈꾸다

최근 상수씨와 반올림에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다. 바로 서울반도체의 이가영씨 산재 사망과 대학교 현장실습생 방사능 피폭 사고 그리고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이다. 이가영씨는 서울반도체에 2015년 2월 입사했다. 그리고 2년 뒤 악성림프종을 진단받았고, 2018년 9월 림프종이 재발했다. 그는 유해 물질에 대한 교육, 보호조치를 받지 못했고 주야 2교대로 장시간 근무했다. 어렵게 산재 인정을 받았지만 회사는 산재 취소 소송까지 냈다. 게다가 회사는 올해 1월 14일 직원 잘못으로 사고가 발생했으며 설비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한 내용의 사내 뉴스를 내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2019년 7월에는 서울반도체에서 대학생 현장실습생 방사능 피폭 사고가 있었다. 안전장치가 임의로 해제된 반도체 결합검사용 X선 발생장치에 손을 넣고 작업을 하다 피폭을 당한 것이다. 이들 역시 현장실습 첫날부터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한 것이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이 사건은 서울반도체 및 전기전자업종 노동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안산·시흥지역 네트워크가 피해자 가족과 함께 대응하면서 학교와 업체 측에 사과, 보상, 재발방지 대책 등 합의와 이행을 앞두고 있다. 특히 현장실습 나가기 전 안전보건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애쓸 예정이다.

▲   작년 8월 27일 안산시청 앞에서 "서울반도체 및 전기전자업종 노동자 건강권 회복을 위한 안산시흥지역 네트워크 발족" 기자회견이 열렸다. 안산시흥지역의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등 다양한 곳이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 ⓒ 반올림

  
"서울반도체 사건은 악랄한 기업의 문제고, 방사선 피폭 사고입니다. 반도체 전자산업에서 유해화학물질을 주된 주인공으로 얘기해왔는데 방사선도 등장한 거죠. 게다가 피해자로 현장실습생까지 생긴 거예요. 저는 대학생도 현장실습을 한다는 걸 이번 계기로 알았어요. 고등학생만 하는 줄 알았거든요.

사실 서울반도체에 노동조합도 있었지만 노조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보고서야 뒤늦게 산재 사고를 알았어요. 회사는 이가영씨가 산재 인정받았을 때 그걸 되돌리겠다고 취소 소송을 냈어요. 고인이 살아있을 때 그 소식을 듣기까지 했고, 결국 돌아가시면서 장례 투쟁까지 해서 비로소 소송 취하가 됐죠.

산업기술보호법 개악도 저희에겐 매우 중요한 사건이에요. 개정된 걸 알고 나서 분노와 허탈이 뒤섞였어요. 노동자의 알권리가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간신히 진전되는 와중에 누군가 반칙을 써서 바꿔놓은 느낌이었죠. 10년 만에 산재인정 받은 삼성LCD 반도체 피해자 한혜경씨가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왜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냐'는 거에요. 회사 다닐 때 극기훈련을 가서 나무에 매달려 떨어지면 혼나고, 물에 들어가서 숨 차는 훈련을 받았었데요. 말도 안 되는 복종훈련을 받은 거죠. 그런 걸 가르칠 시간은 있었으면서 정작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는 알려주지 않았던 거죠.

그런 배경이 있어 산업기술보호법 대응 활동에 특히 한혜경씨와 김시녀 어머니가 활동을 열심히 하셨어요. 저는 알권리라는 건 기본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단지 일하는 사람에게만 공개하면 되는 문제인가 싶어요. 당연히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청소년, 청년들에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반올림은 개정 산업기술보호법이 유해 물질에 대한 알권리, 사업장의 유해환경 공론화할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 개정법 시행 바로 이틀 전 2월 19일 서울행정법원은 '작업환경보고서 일부 비공개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직업병 피해노동자의 산재 입증, 나아가 작업장의 안전보건 조치를 사전에 할 수 있는데 참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기업의 영업비밀이라는 주장에 내몰린 것이다.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결국 3월 5일 반올림과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는 헌법소원 투쟁에 돌입했다. 이 싸움은 한국 사회의 노동자 알권리가 얼마나 진전될 수 있느냐의 촌각을 다투는 중요한 싸움이 될 것이다.

상수씨는 마지막으로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대해 훨씬 담대하게, 꿈을 같이 꾸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18년 김용균 죽음 이후 한국사회의 안전에 대한 감수성 자체가 바뀌었다고 봅니다. 지금은 이전의 성과를 기반으로 담대한 진전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것 같아요.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우리 사회 전체의 과제가 됐다는 것은 전체 사회 운동 속에서 유기체적으로 놓일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함께 성과를 만들어나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