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우리가 열차를 달릴 수 있게 합니다" -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차선지부 배정만 지부장 인터뷰 / 2021. 03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우리가 열차를 달릴 수 있게 합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차선지부 배정만 지부장 인터뷰

박기형 상임활동가

 

막차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역이 문을 닫는다. 텅 빈 정류장, 불이 꺼진 선로. 기차가 고요하게 잠든 사이, 분주하게 선로 위를 오가는 노동자들이 있다. 1971년 4월 지하철 1호선(서울역~청량리역) 착공 이후, 이들은 지난 50년간 전국 곳곳에서 전기 열차가 매일매일 빠짐없이 달릴 수 있게 선로와 설비를 설치·정비해왔다.

2020년 드디어 자신들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전차선 노동자들이 모여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차선지부 배정만 지부장을 만나, 전차선 노동자들의 노동과정과 어려움,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계기를 들어보았다.

전차선 노동자들의 업무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하면, 열차가 오가는 선로 위의 전차선과 주변의 시설물들, 즉 교류 2만5000v의 전기가 흐르는 전선과 관련 설비들을 설치·정비하는 일이다. 전기로 움직이는 전국의 모든 지하철과 열차는 전차선 노동자들의 노동 없이는 달릴 수 없다.

"전차선 작업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기존 선로를 보수·정비하는 작업입니다. 다른 하나는 선로를 신설하는 작업이고요. 기존 선로를 작업하는 일은 지하철이나 열차가 운행을 멈춘 시간 동안에 이뤄집니다. 모든 차량이 차량기지로 들어간 이후인 새벽에 작업하는 것이죠.

신설 선로는 보통 낮에 작업하고요. 전차선을 선로 위에 깔기 위해서 땅을 고르고 전차선을 걸 빔과 빔을 지지할 구조물을 설치합니다. 이후에 전선을 깔고 전기가 흐를 수 있게 연결까지 합니다. 이 일을 마쳐야 비로소 전기가 공급됩니다. 우리가 열차를 달릴 수 있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지만 그동안 전차선 노동자들의 노동은 늘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고, 그랬기에 아무렇게나 방치되고 있었다.

출처;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차선지부



쫓기듯 일하는 건 일상

일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작업을 특정 시간 내에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이다. 신설 선로 작업의 경우에는 덜하지만, 기존 선로 작업의 경우에는 운행이 멈춘 시간 내에 '반드시' 작업을 마쳐야 한다. 열차가 정시에 운행을 시작할 수 있게 하려면 운행이 멈춘 3~4시간 내에 작업을 끝마쳐야 한다. 혹여 작업이 늦어질 경우엔 운행에 차질을 빚기 때문이다. 운행 중 고장이 난 경우도 마찬가지다. 

"EBS에서 하는 극한직업에 전차선 노동자들 나온 적이 있는데요. 그거 보셨다고 했죠? 그건 양반이에요. 평상시는 훨씬 심각해요. 정해진 시간 내에, 어떤 때에는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일을 마쳐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열차 운행을 못하잖아요. 일을 마치고 선로에서 벗어난 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열차가 쌩하고 지나가요. 일 마칠 때, '야, 빨리 내려와. 열차 온대' 소리치면서 허겁지겁 정리할 때가 많아요. 그렇게 늘 무언가에 쫓기듯 일해요."

전차선 노동자들은 각종 중량물을 들고 나르고 세우는 일만 하는 게 아니다. 9~10m에 달하는 높은 곳에 올라가 전선을 깔고 연결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런 안전장비도 제공받지 못한다. 안전장비를 착용하는 것조차 '시간'과 '비용'이 드는 불필요한 일로 치부된다.

"전선을 까는 빔 위에서 안전장비도 없이 서서 작업하거나 매달려 있는 건 일상이에요. 정확히는 그렇게 안 하면, 일 못하는 사람 취급받아요. 처음 일 시작하면, 무서워서 두 발로 설 수도 없어요. 그러면, 밑에서 소장이 소리치고 난리 나죠. 빨리해야 하는데, 엉금엉금 기어 다니냐고 쌍욕 먹는 거죠.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둔감해져야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대부분의 정비 작업은 야간에 이뤄지지만, 헬멧에 다는 헤드랜턴도 자비로 사야 하는 현실에서 작업 현장에 조명 장비를 달아서 밝혀주는 건 사치와 다를 바 없다. 보이지 않으니 걸려 넘어지거나 장비에 몸이 끼이거나 부딪히는 일이 다반사다. 급하게 일하다 보니, 그 정도 다치는 건 일도 아니다.

고소 작업 시 안전은 뒷전

"이렇게 위험한 현장인데도, 노동조합이 없을 때는 사고조사조차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요. 노동조합 만들자마자 시작한 활동 중 하나가 바로 사고조사였어요. 평균적으로 볼 때, 1년 동안 13~15건의 산재사고가 있었던 걸로 추정돼요. 여기서 말하는 사고는 떨어져서 어딘가 부러지거나 끼여서 장애를 입는 정도의 심각한 건들만 포함한 겁니다. 그중 절반 이상이 추락사고에요."

언제나 고소 작업이 동반되다 보니, 추락의 위험이 늘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추락을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추락사고의 대부분이 A형 사다리에서 발생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최근 노동조합에서 현 작업에서 A형 사다리를 아무런 조치 없이 사용하는 것은 위법하고, 노동자들을 위험에 내모는 것이라 문제제기하였다.

"최근까지만 해도, 한국전기철도기술협회에서는 작업현장 상황상 부득이하게 A형 사다리를 쓸 수밖에 없다고 변명했고, 노동부에서도 A형 사다리를 쓰되 감독자의 철저한 지시·관리 하에 안전조치 최대한 하고 사용하라고 회신했었죠. 그게 제대로 된 답변인가요? 노동조합 결성 후 지속해서 문제제기하니까, 그때서야 A형 사다리 사용을 규제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적은 비용으로 작업을 빨리하겠다고 A형 사다리 쓰는 곳이 태반이지요."

또, 위험의 외주화

왜 소장과 회사에서는 위험한 A형 사다리를 고집하는 것일까? 바로 정해진 시간 내 최대한 빨리 많은 작업량을 해치우기 위해서다.

"최근까지도 현장에선 알루미늄으로 된 절연 FRP A형 사다리를 많이 쓰는데요, 거기다 연장식까지 붙여서 사용하기도 해요. 가벼우니까 둘이서 들고 나르고 위에선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이 올라가 작업하면, 이동시간도 단축하고 작업량을 많이 뽑을 수 있죠. 작업 인원도 많이 필요 없고요.

그런데 노동자 입장에서는 안전대조차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올려 보내니 위험하기 짝이 없죠. 노동자들이 정말 안전하게 일하려면 안전난간이랑 안전발판이 갖춰진 이동형 고소작업대를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공사비용이 올라간다고, 사람도 많이 써야 하고, 작업시간도 길어지니 거부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왜 소장과 회사는 명백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동자의 안전을 내팽개치고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또 다시 '위험의 외주화'라는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전차선 노동자의 90% 이상이 일용직입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공사를 발주합니다. 공개 입찰로 진행하죠. 하지만 정작 입찰된 회사들, 즉 원청에서는 실질적으로 시공능력이 없어요. 공사를 따기 위한 명의와 구색만 갖춰진 회사들인 거죠. 원청은 자격증, 담당 인력 등을 허위로 기재해두거나 문서상으로만 갖고 있을 뿐이에요. 입찰에 지원하고 공사를 따내기 위한 자격증만 범람하고 있어요.

대신 실제 시공은 다른 하청업자에게 넘겨요. 하청업자도 자기가 시공을 전담하질 않아요. 사업별로 시공기술이나 설비도 갖추고 있고 인력도 부릴 수 있는 소장, 기술자 등을 하청업자가 섭외하죠. 그러면, 이제야 우리 같은 일용직들이 각 팀에 불려갑니다. 이런 상황이니, 전차선 노동자들은 원청회사가 어딘지도 모르고 일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모든 전차선을 설치하고 정비하는 일을 이들이 도맡고 있음에도, 이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기만 하다.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전기사업소 등 산하 기관 및 사업장에서 정규직으로 채용된 기술직들이 있지만, 이들은 정작 간단한 점검만 할 뿐이다. 긴급한 사태가 터져도 대처할 역량이 없다. 결국 대처는 일용직으로 고용되는 전차선 노동자들이다.

어둠이 몸을 갉아먹지 못하도록

"단지 안전사고만 문제가 아닙니다. 전차선 노동자들의 직업병도 많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우선 근골질환도 상당합니다. 무엇보다 허리가 많이 안 좋아요, 도지나를 차고 상부 9~10m에 달하는 높이의 설비를 오르내리는데 장비 무게만 10~13kg입니다. 거기다 철제 구조물을 당겨 올리고 조립하는 일도 하죠. 손목이나 팔꿈치도 닳고 닳습니다."

야간작업이 대부분인데, 작업일수는 불규칙적이다. 제조업 사업장의 교대제처럼 정기적 야간노동을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수면장애를 겪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평균 경력이 15~20년 되는 조합원들도 잠은 어찌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전선 작업을 하다 보니, 감전사고도 빈번합니다. 물론 사선으로 만들어서 일하긴 하지만, 전기를 죽였다고 해서 전선에 전기가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남아있는 전류가 있어요. 어떨 때는 전선을 잡으면, 손에서 전선을 못 놓는 일이 많아요. 특히 흐리고 비 오는 날이면 심해요. 전력을 송출하는 철탑 근처에서는 유도 전력이 발생해서 예상치 못하게 감전되는 일도 종종 있어요."

또한, 옥외작업의 부담도 상당하다. 혹한기나 혹서기에 겪는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다. 차량운행을 위해서, 아무리 비바람이 심하게 불어도, 심지어 태풍이나 눈보라가 쳐도 작업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는 발주처 및 원하청과 현장 작업상황을 공유하고 노동자들의 의사를 반영해 작업개시 여부를 조정하거나 필요한 안전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아무리 궂은 날씨라도, 원하청은 무리하게 작업을 강행한다. 그래야 다음 입찰 때에 흠 잡힐 일도 없기도 하니까.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은 흠이 아니다. 주어진 공사량을 최소 비용으로 최대한 많이 해내는 게 미덕이다. 

"전국 각지에서 350여 명의 전차선 노동자들이 자기 몸을 바쳐가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320명이 넘는 전차선 노동자가 건설노조 조합원으로 가입했어요.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쟁취하기 위해 마음을 합쳐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지난 50여년 간 우리 전차선 노동자들이 대한민국의 발전에 큰 이바지를 한 사람들이잖아요. 하지만 정작 그림자로만 살고 있었죠. 우리가 기여한 바, 우리의 노동현실을 시민들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차선 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자신들의 권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전차선 지부가 열심히 활동을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