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호_다양한노동이야기] 부스 안팎, 그 어디에도 없는 요금 징수원의 안전_부산일반노조 공무직지부 시설공단지회 김혜수 지회장 인터뷰

부스 안팎, 그 어디에도 없는 요금 징수원의 안전

부산일반노조 공무직지부 시설공단지회 김혜수 지회장 인터뷰

 

박시윤 상임활동가

 

부산 수영구에 위치한 광안대교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해상 복층 현수교로, 밤에는 아름다운 조명으로 광안리를 밝히는 부산의 대표 명물이다. 광안대교로 진입하기 위해선 우선 요금소 부스를 거쳐야만 한다. 광안대교를 찾는 많은 이들이 교량이나 고속도로의 요금소를 일상적으로 지나치지만, 부스 안 노동자의 노동환경에 대해선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광안대교 요금소를 지키는 요금 징수원 노동자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일할까? 광안대교의 요금 징수원은 약 90명으로, 50대 노동자의 비중이 가장 높고 열에 아홉은 여성 노동자다. 이들의 노동이 어떤 모습인지, 부산일반노조 공무직지부 시설공단지회 김혜수 지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요금소는 지금 업무와의 전쟁

 

종일 차량이 이동하는 광안대교에선 요금소 역시 24시간 운영된다. 이 때문에 요금 징수원은 43교대 근무를 하며, 24시간 내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저희의 주된 업무는 광안대교를 통과하는 차량의 대교 통과요금을 받는 일이에요. 자동차 중에서 통행료 면제 스티커나 카드가 부착된 경우가 있는데, 이걸 일일이 눈으로 구분해서 징수해야 해요. 이외에도 통행료 미납요금이 고지서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기록 업무나 교통카드 충전, 길 안내도 맡고 있어요. 하루에 부스 하나당 3천에서 4천 대의 차량을 다루는데 한 번 엉키면 혼란이 발생할 경우가 많고, 민원 발생의 소지가 될 우려도 있죠. 그래서 요금소 안에선 항상 전방주시를 하는 터라, 일하는 내내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수 천대의 차량을 처리하다 보면 요금을 내지 않고 통과하는 도주 차량이 적게는 50, 많게는 120대 정도로 발생해요. 도주 차량은 차량번호를 파악한 뒤 우편으로 고지서가 발송하는데 해당 업무는 미납팀이 담당하고 있지만, 일차처리는 요금 징수원이 현장에서 맡고 있어요. 간혹 일하다 실수가 생기면, 뒤에 오던 다른 차가 도주 차량으로 처리될 수도 있어서 늘 조심해야 해요. 민원 응대도 요금 징수원의 업무 중 하나인데요, 광안대교의 경우 BC·롯데·농협 등 일부 카드만 사용할 수 있어서 이와 관련된 불편 호소도 종종 들어오곤 합니다.”

 

짧게는 몇 초, 길어봤자 1분 이내. 요금 징수원은 차량이 요금소에 머무는 단시간 내에 차량번호 파악, 하이패스 및 면제 카드 유무 확인, 도주 차량 발생 시 정보 수집, 이전에 미납된 요금 등 수많은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통행료 부과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뒤따라오던 차량이 빵빵거리며 압박을 주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스 안에서 일하는 2시간 동안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잠시 숨을 돌릴 여유조차 없다.

 

쉴 수 없는 휴식 시간

 

“2시간 근무당 40분 휴식 시간이 있어요. 이걸 하루에 3번 하는 구조죠. 40분 안에 화장실도 가고 식사도 해야 하는데, 휴게실까지 왔다 갔다만 해도 20분이 소요되니까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요. 직고용되면 모든 게 나아질 거란 기대는 잘못된 생각이었죠. 직고용되기 전엔 2시간 근무당 1시간 휴식 시간이었는데, 오히려 정규직 전환이 되면서 인원과 휴식 시간이 감소했어요. 모든 게 돈의 기준에 따라 바뀌고, 현장의 특수성이 고려되기엔 우리 사회가 노동 존중을 기반으로 해 성장한 사회가 아니란 걸 입증하는 현실이었습니다.

 

일하면서 이동 시간이 많기도 하고, 휴게실에 별도의 식당도 없어서 싸 온 도시락을 데워먹어야 해요. 항상 시간이 빠듯해 마음이 급하고 식사도 빨리 끝내느라, 소화불량에 걸리는 사람도 많죠. 휴식 시간에 화장실을 가지 못했거나 배탈이 나는 등 긴급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데, 인력이 부족하니 쉬고 있는 사람을 불러내요. 불려 나온 사람은 쉬지도 못하고, 휴식 시간도 그대로 끝나 버려요. 그러면 해당 근무자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그건 또 도미노 현상처럼 퍼져나가고 되고요.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늘 음식 조심, 컨디션 조절을 합니다. 이외에도 노동자의 근속연수가 높기도 하고, 50대가 대부분이어서 근골격계질환도 심각해요. 순환기질환이나 호흡기질환도 많고 전반적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하죠.”

 

일하러 갈 때마다 차에 치일까 노심초사

 

야간근무할 때면 잠을 거의 못 자요. 집이 멀었던 직원이 있었는데, 오전 730분에 일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졸음 때문에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었어요. 교통사고의 위험도 커요. 요금소 부스를 올라갈 때 부산항의 경우에는 아치형으로 된 통로가 있다고 해요. 그런데 여기는 별도의 통로가 없어서 차량 사이를 지나다녀야 하거든요. 이동하는 구간에 횡단보도가 있긴 하지만 법적으로 정해진 횡단보도는 아니에요. 길을 건널 때마다 눈에 잘 띄는 조끼를 입고, 불이 들어오는 비상봉을 흔들기도 하는데 날이 밝을 때면 이마저도 표시가 잘 나진 않아요. 이렇게 늘 조심해서 길을 건너지만 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할 때도 있죠.”

 

실제로 부스로 향하는 길은 교량 기둥에 시야가 가로막혀 차량이 오는지도 잘 보이지 않았다. 또한 달려오는 차량도 마찬가지로 부스 사이를 이동하는 사람을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교대근무를 하는 요금 징수원은 해당 길을 건너는 일도 잦아, 길을 건널 때마다 치이진 않을지 걱정하며 차량 통행이 드문 시간에 조심해 건너곤 한다. 요금 징수원이 시달리는 건 비단 일상적인 교통사고의 위험뿐만이 아니다. 좁디좁은 공간에서 같은 자세로 오랜 시간 일하는 탓에 각종 질환에 시달린다.

 

일단 2시간 동안 좁은 공간에서 한 자세로 앉아서 일하느라 허리가 아파요. 변비나 비뇨기계 질환, 자궁근종이 많이 발생하고요. 관리자가 정규직 전환이 되기 전까지는 병가가 많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선 왜 이렇게 병가가 많이 생기냐는 거예요. 정규직 전환 이후 인원이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시간 내 노동 강도가 높아졌고, 여유 인력이 부족해 연차 사용도 자유롭지 못하니 병에 걸리기 더 쉬워진 거죠. 점점 더 몸이 버티기 힘드니까,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해도 연장근무를 많이 하지 않으려 하기도 하고요.”

 

숙명처럼 여겨지는 감정노동의 굴레

 

요금이 1,000원인데 수중에 있는 돈이 900원밖에 없다며 너무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하는 손님이 있었어요. 이때 대신 100원을 내드리기도 하죠. 그러면 다음에 올 때는 더 많은 돈을 주고 가시기도 해요. 물론 요금보다 더 많이 주신 경우에도 무조건 공단으로 입금해야 하고, 간혹 정산이 맞지 않아 돈이 부족할 때면 노동자가 충당해야 해요. 나중에 관련해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서 사비로 메꾸는 거죠.

 

고객 중에서 네가 나와서 받아 가라라고 하거나 찢어진 돈을 주는 경우, 500원인데 5만 원을 주는 사람, ‘배 째라라며 요금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카메라로 직원의 얼굴을 촬영한다든지, 고의로 거짓 민원을 넣는 일도 있죠. 그리고 반말하는 사람, 욕설하는 사람도 아직 있고요.”

 

감정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바뀌고 관련된 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예전보다 고객의 폭언이나 폭행 등의 문제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고객의 갑질은 존재한다. 고객 응대가 주된 업무 중 하나인 요금 징수원 역시 하루에 만나는 수천 명의 고객에게 친절해야 한다. 일하면서 고객에게 상처를 받더라도 당장 해소할 방법이 없을뿐더러 이 일을 하기 위해선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피해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체계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래도 요금소를 지나는 짧은 찰나에 고생이 많다며 요금 징수원의 노동에 공감하고, 그들의 고됨에 위로해주며 고마움을 전하는 고객들이 있어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매일 새롭다라고 한다.

 

광안대교를 매일 지나가야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중에선 우리더러 고생한다고 인사하거나 박카스를 챙겨주는 분도 있어요. 새벽 두 시쯤 장사 나가는 어르신은 잠을 못 자면서 일하는 고단함을 안다며 껌이나 초코바, 김밥을 챙겨주시기도 해요. 음식이나 음료를 받아도 부스 안에서 먹을 순 없어요. 하지만 함께 건네주는 손길에 담긴 그 마음과 표정, 눈인사에 힘들었던 몸이 확 가벼워지고 보람을 느끼곤 하죠.”

 

노동조합의 길을 선택한 까닭

 

정규직 전환 이전에 용역으로 관리되고 있을 당시 현장 관리소장의 지나친 갑질과 비리가 있었다. 심한 횡포를 견디다 못한 직원들이 말 그대로 폭발하기 직전이었을 때, 현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부산일반노조 공무직지부 시설공단지회가 설립됐다. 당시 조합원들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던 용역회사의 회장을 부산으로 불러내, 단체협약을 맺고 임금체계를 잡아가는 등 시설공단의 잘못된 용역 수주 비리와 싸웠다. 장장 3년간의 치열한 투쟁 끝에 20204, 정규직 전환이 이뤄졌고 마침내 문제 많던 소장과도 끝을 볼 수 있었다.

 

정규직 전환 투쟁을 하면서 몸으로 습득한 게 있어요. 사소한 두루마리 휴지 하나도 쟁취하려 노력하지 않고선 우리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게 없다는 거예요. 저희가 소수노조이다 보니, 어용인 대표노조에 의지해 나가야 하는 현실이 불만족스럽고 빛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길이 맞는 거라고, 바른길로 가고 있다고 서로 위로하며 쉬지 않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8월_다양한노동이야기] “현장의 힘으로 소방의 미래를 열자”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김주형 사무처장 인터뷰

 

현장의 힘으로 소방의 미래를 열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김주형 사무처장 인터뷰

 

이숙견 상임활동가

 

부산지역에서의 연구소 연대 활동 중 하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노동인권 교육이다. 그간 교육자료를 만들며 외국의 사례를 자주 인용했는데, 그중 소방관도 경찰도 스스로가 노동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국가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지난 76, 한국에서도 드디어 73년 만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가 출범했다. 6만 명의 소방관을 대표해 1만 명 조합원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초대 집행부(박해근 본부장, 김주형 사무처장)의 김주형 사무처장을 만나 소방관 업무와 애로점, 소방본부가 출범하게 된 배경과 앞으로의 과제를 들었다.

 

한 개의 시나 도의 경우 소방본부 아래 소방서와 119안전센터, 구조대, 소방정대, 119지역대 등의 체계가 잡혀있다. 소방서는 내근직으로 총무·회계·예방업무를 하고, 119안전센터나 119지역대의 경우 현장직으로 화재 진압·민원업무·화재 예방업무를 도맡는다. ‘소방이라고 하면 대부분 화재 진압이 중심 업무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화재 진압은 10% 정도다.

 

행정업무를 정말 많이 한다. 카페에도 소방시설(비상구·소화기·소화전 등)이 다 있다. 이를 관리하고 점검하는 것 역시 화재 예방업무다. 큰 건물의 경우 그 층에 어떤 시설이 있는지, 식당이면 어떤 가스를 사용하는지, 유동 인구가 몇 명인지를 조사해서 기록한다. 해당 작업이 쉽지는 않다. 시스템이 제대로 연계되지 않아, 시나 구청에서 넘어오는 자료도 별도의 작업을 한 번 더 해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119는 화재 진압 및 예방작업 이외에도 긴급한 일이 발생할 경우, 민원을 해결하는 공공기관이 됐다. 실제 업무 중 50% 이상이 현관문을 열어 달라거나 여름철에는 말 벌집 제거, 애완동물 구조 등 다양한 민원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민원업무의 경우 손실에 대한 배상이 있고 보험도 들어있지만, 가능한 관계자나 주인이 책임진다고 동의하면 진행한다. 하지만 화재 발생과 같은 긴급한 상황이 되면 확인할 시간이 없어서 일단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 배상 문제는 나중에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정말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부수는 건 신중하게 생각하고, 되도록 부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시도하려고 한다.”

 

공공기관 대부분은 공공의 서비스를 위해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고 있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은 위협에 노출돼 있었고, 최근 근무체계변경에 대한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실제 부산지하철의 경우 202011월부터 32교대제에서 42교대제로 변경했고, 철도는 시범 운영을 통해 교대제 변경을 모색 중이다. 하지만 소방서의 경우, “안전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해 24시간 깨어있겠습니다라는 소방청 홈페이지 문구를 이행하기 위한 32교대 근무체계에 맞는 인력 충원이 되지 않은 상태다.. 2009년부터 현재의 3교대 근무체계를 위해 인력을 충원 중이나 아직도 미충원 인원은 7천 명이나 된다.

 

현장직 대부분은 32교대 근무로, 21주기 체계다. 1주기는 주간근무를 하고, 2주기는 월··금 야간근무 후에 일요일은 24시간 당직을 한다. 3주기는 화·목에 야간근무를 하고 토요일에 24시간 당직한 뒤 다시 1주기인 주간근무를 하는 방식이다. 교대근무로 인해 생활 리듬이 계속 바뀌어서 직원들이 힘들어한다. 더군다나 인원도 부족해서 더욱더 힘들다. 그러다 보니 근무체계 변경의 요구가 많다.

 

궁극적으로 42교대를 희망하지만, 4교대를 하려면 기존 미충원 인원인 7천 명에 17천 명을 더 뽑아야 한다. 언제 인원 충원이 될지 모르니, 4교대로 넘어가기 전의 과도기라도 기존의 32교대 근무체계에서 하루 24시간 당직, 이틀간 비번 근무체계로 변경하는 것을 원한다. 실제로 시범 실시도 해봤는데 직원들의 반응이 좋았다. 설문조사에서 7~80%가 선호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김주형 사무처장은 경상남도 소방본부 소속으로 현재 근무지는 원동 119구조대다. 집에서 근무지까지 넉넉히 잡아도 1시간 이상 소요되는 거리이며,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예산이 지자체에서 나오기 때문에 같은 국가공무원이라도 지역에 따라 식사, 숙소, 시설 등 복지와 관련된 것들이 균등하지 않다.

 

식사의 경우 지원이 되는 곳도 있고, 하나도 안되는 지역도 있다. 부산은 영양사 선생님이 식단을 짜주고 단체 구매해서 체계가 잘 돼 있는 편이다. 하지만 도() 단위는 조금 열악하다. 영양사 선생님이나 공무직 두 분이 계시는 곳도 있긴 하지만, 시니어클럽의 지원을 받아서 식사를 지원해주는 곳도 있다. 내가 있는 곳은 외곽지라서 약간의 지원금은 있긴 하지만, 거의 아무것도 없고 알아서 먹어야 한다.”

 

교대제나 복지시설의 문제도 힘들지만, 조합원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업무지시와 공정하지 못한 인사제도다. 대표적인 것으로 일과표라는 게 있는데, 이는 전국의 모든 현장에서 소방청에서 작성한 일과표에 맞춰 업무를 하도록 하는 방침이다. 실제로 행정업무가 너무 많아 일과표대로 하지 못한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몰래 촬영해 일과표대로 현장훈련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문제로 삼는다. 더욱 문제는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업무지시가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시골의 경우 화목보일러가 많은데, 화목보일러가 있는 집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라는 특수시책 사업이 내려왔다. 문제는 예산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방관들 보고 나가서 직접 설치하라는데, 우리가 설비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다짜고짜 하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직장협의회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달라지는 게 없었다. 소방관이 상수도관 연결하는 전문가도 아닌 데, 만약 설치 후 문제가 발생한다면 책임은 설치한 사람에게 있다. 위에서는 진급을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사업이 자꾸 내려오는데, 예산을 확보해서 제대로 하게 하거나 사업에 대한 적정성 평가가 필요하다.”

 

일방적인 업무지시는 공정하지 못한 진급 제도와 연관이 돼 있어, 진급을 위해서는 이러한 불합리한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경직된 조직 분위기는 업무상 사고로 발생한 사망도 순직 처리로 인정받기 어렵게 한다.

 

대표적인 사건이 고양이 구조사건이라고, 고양이를 구조하다가 로프가 끊어져서 사망하셨는데 처음에는 순직 처리가 안 됐다. 그런데 여론이 들끓고 시민이 함께 문제를 제기하자 순직 처리가 됐다.”

 

실제로 이 사건뿐만 아니라 김주형 사무처장도 현장업무를 하다가 어깨의 인대가 끊어진 사고를 당했다. 공무상 재해 또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처럼 재해 당사자가 모든 서류를 만들고 업무와의 연관성을 입증할 책임이 있기에 매우 어렵다. 심지어 공무상 처리를 하면 승진 고과에도 영향을 받아 더욱 눈치를 보거나 신청을 할 수 없는 분위기다. 하지만 최근에는 직업성 암(혈액암·폐암 등)이나 질병으로 공상처리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혈액암으로 돌아가신 분도 있는데 개인이 서류를 만들고 입증했다. 그분이 길을 만든 덕분에 다른 피해자도 그 길을 갈 수 있게 됐다. 우리 일이 연기를 많이 마시다 보니 폐암도 많고 혈액암도 많다. 알려지지 않은 질병이 많다 보니, 아는 선배님 중 두 분이나 퇴직하고 채 1년이 못 돼서 암으로 돌아가셨다. 명백하지 않은 혈액암이나 여러 질병은 입증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일도 노동조합에서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방본부 노동조합이 1만의 조합원과 함께 시작할 수 있었던 건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현장 활동가의 싸움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함께한 덕분이다. 이제는 조합원을 가장 힘들게 하는 일과표 폐지·근무체계 변경·공정한 인사제도 도입·수당 현실화·효율적인 인력배치 등 현장의 여러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조직된 힘으로 소방노동자의 미래를 함께 만드는 것이 중요한 지점이다.

 

“5대 과제는 큰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인간, 노동자로서 자존감을 높이고 존중해달라는 것이다. 지금까진 위에서 조합원의 자존감을 떨어트리는 행동을 많이 해왔다. 솔직히 노동조합에서 일과표 대응을 위해서 유튜브 영상도 만들었는데, 남들이 보면 웃을 만한 일이다. 그런 사업을 만든 사람들 대부분은 현장경험이 없는 간부다. 현장 활동을 안 하다 보니까 그렇다. 임용받자마자 시험 쳐서 간부가 되는 간부후보생 제도도 바꿔야 한다.”

 

지난 3개월 동안 세 명의 소방관이 사망했다. 510일 성남시 분당구 농기계 창고의 화재 진압 과정에서 차가 전도돼 사망했고, 619일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인명구조를 하다 사망했으며, 629일 울산 중구 상가 건물 3층에서 화재 진압을 위해 진입했던 소방관이 사망했다.

 

“3개월 사이에 세 분이 돌아가셨다. 하지만 쿠팡, 울산, 용인 사고 현장에서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사과하는 사람도 없다. 소방 쪽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돼야 한다. 사망사고가 너무 일상이 됐다. 지휘부가 언급조차 하지 않지만 더는 순직사고가 나오지 않게 지휘부(서장, 소방본부장, 소방청장)가 책임져야 한다. 사과도 하고 재발 방지대책을 만들어져야 계속되는 죽음을 멈출 수 있다. 앞으로 5대 핵심과제와 함께 조합원의 안전과 건강권 쟁취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7월_A-Z다양한노동] 선한 사회를 그려나가는 타이핑- 미디어오늘 손가영 기자 인터뷰

선한 사회를 그려나가는 타이핑- 미디어오늘 손가영 기자 인터뷰

 

기자는 사회 구성원이 궁금해 할 만한 내용을 취재해서 기사로 쓰고, 이를 매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뉴스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직업을 말한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기자라고 하면 신문기자나 방송기자를 떠올렸지만 이젠 온라인이나 모바일로만 기사를 공급하는 인터넷 신문기자들도 많다. 이번 AZ 다양한 노동이야기에서는 손가영 기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터넷 신문 기자의 일과 삶의 한 편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미디어 오늘이라는 인터넷 신문 기자로 2015년부터 일하고 있는 손가영입니다. 인터뷰를 많이 하는데 당해보니 새롭고 당황스럽네요.

저는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했고 교지편집위원을 했었어요. 학생때는 구체적으로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교지편집이 재미가 있었고 이쪽 분야의 일들이 제 적성에 맞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그래서 생업으로 기자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에 삶에 관심이 많아 사회분야 기사를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노동, 복지, 환경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회부에서 3년 일했고 지금은 미디어부 소속입니다. 요즘은 오보, 왜곡보도, 기자들의 갑질 등 언론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기자들의 일과는 밀도가 있고 업무 스트레스도 많다고 들었는데, 어떤 일들을 하시고 그 과정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공식적인 근무시간은 9시부터 6시까지인데, 9시 전에 오늘 어떤 기사를 쓸지 데스크 팀장에게 발제를 합니다. 이렇게 취재승인을 받으면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되죠. 현장취재, 전화 문의, 자료검색 등을 통해서 그날 여섯 시 전후로 기사를 마감하게 됩니다. 기사를 작성하면 데스크에 넘기고 최종적으로는 국장승인 후 기사를 내보내게 됩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한 개의 기사를 쓰는 것 같습니다. 출입처에 보도자료를 쓰는 기자들은 하루에도 몇 개의 기사를 쓰는 데 저희는 하루에 하나 정도 기사를 씁니다. 밀도 있게 일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어떤 언론사의 비리 문제를 전화로 확인하고, 인터뷰까지 마친 뒤 여기에 왔네요.

제가 관심있게 보고 있는 사안들이 여러 가지라 특정 기사를 쓰는 도중이라도 그 사안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틈틈이 확인합니다. 그래서 하루 일과가 밀도 있게 돌아가는 편인데요, 일상적인 업무를 하다가도 갑작스럽게 큰 사건이 발생하면 바로 취재를 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아침 신문 솎아 보기라는 기사를 쓰는 당번이 있어요. 국내 일간지를 8시에 정리해서 기사를 작성하는 건데, 5시 반에 일어나서 8시 반까지 정리해서 올리고 좀 쉬다가 11시에 출근을 합니다. 52시간제 덕분에 업무시간은 줄어든 거 같습니다.

주말은 하루는 쉬고 하루는 자료 조사 하는 편입니다. 업무과 비업무 시간이 분리가 잘 안 되는 편이에요. 주말에도 취재원들로부터 불쑥 전화가 오는데요, 그러면 받아야지요. 이 또한 업무의 연장인데... 그림자 노동이라고나 할까요. 밥 먹고 있다가도 중요한 전화가 오면 받아야 되고요. 스트레스를 안 받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의 업무가 지속되니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더라구요.

 

일을 하다보면 인터뷰 거부당하고 기사로 비판 받는 일도 많을 것 같아요.

우리가 일상적인 삶에서는 거절당하는 일이 많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기자는 거절 당하는 게 일상사입니다.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면 우선 피하고 인터뷰를 거부하는 사람이 정말 많으니까요. 비판적인 기사를 쓰면 욕을 듣기도 하고요.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해서 힘들게 인터뷰 했는데 인터뷰 받는 분(인터뷰이)이 언론에 기사화하는 걸 거부할 때도 있죠. 그런 때는 내가 설득을 못했다는 자책감도 듭니다. 그래도 거절이 연속되는 일상을 겪어왔다보니 이제는 거절 당하는 게 신경쓰이진 않습니다.

그리고 취재원들이 기사를 보고 비난할 때도 있어요, 사실관계가 맞는데도 기사를 철회해달라고 막무가내로 요구할 때도 있고요. 기사에 대한 반응과 평가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들어옵니다. 취재원들이 연락하기도 하고 데스크도 기사에 대한 평가를 하고요. 기사에 댓글도 달리고요.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마냥 편한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기자 생활을 5년 이상 하다보니 맷집이 생기는 거 같아요, 웬만한 일에 상처받지 않는다는 거, 이게 입사초기에 비해 달라진 점이예요. 하지만 책임감은 더 느끼죠.

 

일 하시면서, 힘든 순간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취재원이 1년 전 유서를 남기고 돌아가신 적이 있어요. 지역 방송사 비정규직 PD인데 만 13년 동안 정식 직원처럼 일을 했어요. 프리랜서 신분이었지만 고정으로 매주 1, 1시간의 고정 프로그램을 했고 그 외에도 다른 일을 했어요. 십 수년 간 박봉으로 일해왔기에 상사한테 13년 만에 월급을 올려달라고 했는데 바로 해고 되었어요. 이분은 정식 직원처럼 일을 했기에, 억울해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진행했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동료를 회유해 진술을 번복하게 했습니다. 법원에서는 회사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1심을 패소했어요. 저는 몇 개월전부터 그 분 관련 기사를 썼었어요. 판결나고 후속 기사 쓰려고 통화했는데 며칠만에 돌아가신거지요. 그 일을 겪고 충격이 컸습니다. 유서에는 제 이름도 있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못했다는 자책감도 컸습니다. 제가 이분 관련 기사를 많이 썼는데 다른 언론에서는 기사가 많이 나오진 않았습니다. 이 사건 겪으며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자가 뭔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고 이재학 PD2018년 억울해서 미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 피디의 가족은 재판을 이어받아 법정 다툼을 벌여왔다. 지난 20215, 근로자였던 점과 부당해고 당한 점이 인정된다고 항소심에서 승소한 바 있다.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는 고 이재학 PD만의 문제는 아니다. 방송계에 잘못된 관행, 열악한 노동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건 익히 알려졌다. 그의 죽음 이후 방송계 노동자들의 부당한 노동현실에 사회적인 관심이 모아진 바 있다. 손 기자는 이 PD의 사망 이후에도 여러 번 후속 기사를 낸 바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020년 올해의 좋은 보도상에 미디어오늘 손가영, 김예리 기자의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부당해고 및 사망사건 관련 연속 보도를 선정했다.

기자의 직업병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지난 1년 동안 그 분 자살로 충격을 받고 집에 들어가면 문득 우울해지고 불면증도 생긴 적이 있어요. 지금은 좀 나아졌습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손가락이 아파요, 저도 손가락이 욱씬거려 병원도 가 봤는데 딱히 병명은 못 찾았어요, 병원에서는 쉬라고 하는데 쉴 수는 없는 현실이고요. 그리고 두통이 생겼고요, 편두통인거 같은데 일을 시작하고 생활이 안 될 정도로 머리가 아픈 적도 있어서 약을 챙겨서 먹기도 합니다. 알고 보니 다른 기자들도 두통이 많더라고요. 매일 기사거리를 생각하고 작성해야 되니 긴장감이 높고 스트레스가 많은 편이예요.

 

언론사 내부 문화는 어떤가요?

우리 언론사는 각자 일 열심히 하자는 분위기입니다. 수평적인 분위기로 지시하는 편이라기 보다는 기자들이 스스로 각자 발제하는 아이템 위주로 흘러가는 편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방향성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다른 일부 언론사는 선후배 관계가 명확하게 수직적인 곳들도 많아요. 선배가 시키면 해야되는 분위기인 곳도 있고요, 심하게는 자기기 쓰고 싶지 않은 기사를 써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 양심에 반하는 기사를 쓰게 되는 경우가 있어서 심한 경우 사직하는 경우도 있어요. 내가 쓴 기사가 기사내용이 바뀌어서 나가는 경우도 있고요. 또 직장내 괴롭힘이 있기도 하죠, 수 년전만 해도 잠도 안재우고 주말에 당직서게 했어요. 언어 폭력으로 스트레스 받는 기자도 있습니다. 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옂너히 남성중심적인 편이고, 술자리에서 성희롱도 있어요. 언론계에 숨겨진 이야기가 많아요, 언론은 자기 이야기를 잘 안해요.

 

기사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일까요?

언론은 필요한 정보를 주고 기업, 정부, 공공기관 등 권력집단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며, 내 이웃의 문제를 충분히 보여 주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 번째에 방점을 두는데요, 사회를 선하게 바꾸어 내려는 힘이 있는, 영향력이 있는 기사가 좋은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좋은 기사는 많은 노력이 끝에 완성됩니다. 시간을 들여 여러 사람들 만나야 합니다. 기사에는 1명 인터뷰한 걸로 나오지만 실제 취재과정에서 여러 명을 만나 인터뷰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발품을 들여야 좋은 내용이 나옵니다. 저도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에게 물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인터넷 기사를 보면 양은 많지만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라고 느낄 때가 많은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표적으로는 최근 손정민씨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손정민씨의 사건에 대해 언론이 전해주는 수준으로 세세히 알 필요가 있을까요? 하지만 기사가 잘 팔리니까 많이 쏟아져 나왔죠.

요즘은 코로나백신 이상반응에 대한 기사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이 보도하는 거 같습니다. 사람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린 게 아닌가 합니다.

 

좋은 기사, 좋은 언론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독자의 역할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기자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는 정확한 지적이 필요하고요. 그리고 경쟁과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다 보니 좋은 기사가 나오면 격려도 필요합니다. 이런 피드백이 언론 발전에도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선전위원장 장영우)

 

 

 

 

 

 

 

 

 

[일터6월호_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동물 감염병 방역의 일선에 일하는 사람들 -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 김필성 지부상 인터뷰

동물 감염병 방역의 일선에 일하는 사람들 

-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 김필성 지부상 인터뷰

장영우 선전위원장, 내과의사

 

 

2000년 이후 조류독감,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동물 감염병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 동물감염병은 사람에게도 감염을 일으킨다. 전세계에 퍼진 코로나도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이번 다양한 노동이야기 코너에선 가축방역을 책임지는 가축방역사를 만났다. 세종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에서 2003년부터 일하면서 노동조합 지부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필성 님과 가축방역사의 노동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세종시에 위치한 가축위생지원본부에서 진행하였다.

가축방역사는 무슨 일을 할까?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는 6대 질병(구제역, 소 결핵병 및 브루셀라병, 돼지열병, 돼지오제스키병, 닭뉴캐슬병) 및 조류인플루엔자 검사를 위한 시료 채취사업과 농장 방역실태 점검사업을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수임받고, 가축방역사가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위의 업무들을 수행하고 있다.

가축방역사가 소속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는 어떻게 설립된 것일까? 1999년 민간방역기구인 돼지콜레라박멸비상대책본부가 창립되었고, 2000년 사단법인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로 인가되어, 2003년에는 특수법인으로 확대되었다. 이후 2007년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된 바 있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의 주업무는 가축방역과 축산물 위생검사, 해외에서 들어오는 축산물 검역이다. 가축전염병예방법에 의해 가축의 질병유무를 검사하는데 축산농가를 방문하여 소와 돼지 등 축산물의 검체를 채취한다. 도축장에서도 축산물 위생검사를 한다. 그리고 감염 사례가 발생하는 경우 현장에서 초동방역 업무도 하고 있다. 직종은 방역직, 위생직, 수입축산물 검역직, 가축방역을 위한 콜센터가 있다.

힘들고 고된 시료채취 작업

가축방역사들은 현장에 방문해 가축들의 질병 여부를 검사하기 위한 시료채취 작업을 한다. 그런데 가축을 혈액을 채취하는 일이 쉽지는 않아 보였다. 일일이 현장을 방문하는 것부터, 낯선 이들이 방문할 뿐더러 자신의 신체를 상하게 할까 불안해하는 동물들에게서 혈액 등의 시료를 채취하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고 위험해보였다. 축산농가에서도 가축을 사육하는 과정에서 가축이 받는 스트레스에 민감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협조를 얻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어린 아이들도 주사맞거나 피 뽑는다고 하면 울면서 처치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와 같은 대동물은 무게가 700~1000kg까지 되잖아요, 뿔도 있고요, 낯선 사람들이 다가가는데 소가 어디 얌전히 있습니까? 계속 피해다니니깐 카우보이처럼 올가미 같은 걸로 소의 목을 묶고 고정해서 피를 뽑아야 해요. 소는 목의 정맥과 꼬리의 정맥에서 피를 뽑는데 목에서 뽑는 경우 뿔에 부딪칠 수 있고 꼬리정맥에서 혈액 채취하는 경우 발길질에 넘어질 수 있어요.

제가 2003년 입사했는데 그 당시에는 초기라 가축방역이 생소하여 축주(가축주인)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이전에는 이런 검사 안했는데 왜 국가에서 하냐 이거죠, 가축이 혈액채취 당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이를 보는 축주들은 싫어했지요. 2000년 초창기에는 저희가 검사하는 걸 절대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축산농가에서도 방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어 저희가 주기적으로 검사하는데 협조해주시는 편입니다. 물론 방문할 때는 미리 연락을 합니다."

가축방역사가 노출되는 위험들

한편, 하루에도 수 십 마리의 동물의 시료를 채취하다보면 가축방역사들은 항시 부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심지어 2011년 소에 받쳐서 돌아가신 분도 있었다. 그리고 인수공통 감염병에 걸릴 위험도 방역사들을 늘 따라다녔다.

"시료채취하다 다치는 일도 꽤 있었죠. 동물에 부딪쳐 타박상이 생겨도 크게 다치지 않으면 저희는 대수롭지 않게 파스 붙이고 일했는데요, 장기적으로 일하다보면 여러 가지 부상이 누적되고 근골격계질환이 생길 수 있지요. 그래서 작업 중 부상에 대해 사유서를 작성하라고 해도 직원들이 서류 작성하는 게 번거로우니깐 그냥 넘어가는 경향이 있어요. 안타깝지요, 혈액을 뽑다보면 주사침에 찔리기도 하고요. 주사침 자상사고도 제대로 신고가 안되고 있어요.

그리고 일하다보면 인수공통 감염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브루셀라병이나 큐 열(Q fever)1), 조류독감(AI)인데요, 저희는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해 선제적으로 검사를 해달라고 회사에 요구하고 있는데 아직 전국적으로 시행되지는 않고 일부 지자체에서만 하고 있습니다. 도축장에서 축산물 위생검사하는 직원이 큐 열이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10여 년 전 큐 열 검사한 적이 있었는데 큐 열 양성이었어요, 근데 당시는 다음 조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 돈으로 병원에서 검사하고 약 먹었지요, 요즘은 선제적으로 검사를 더 확대하는 추세입니다. 노동조합에서 안전문제뿐만 아니라 보건문제도 신경 쓰려고 합니다."

신종감염병 등장에 따른 어려움

2000년 들어 구제역이 발생했고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우리나라에 2019년 최초 발생하였다. 조류독감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이런 신종감염병이 생기니 기존 업무에 새로운 업무가 추가되는 실정이다.

"매년 조류독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하고 앞으로도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해 5월 4일 강원도 영월에서 양돈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면 발생한 축산농가 살처분하고 주위 농가 검사하면 되는 걸로 생각할 수 있는데요.

현장에서는 강원도에서 모든 출하하는 돼지에 대해서는 아프리카돼지열병 검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시간에 많은 축산농가를 방문해서 검사하려면 결국 1인이 검사를 하게 됩니다. 과거 안전사고가 다수 발생하면서 2인 1조 근무가 의무화되고 인력도 충원됐지만 쏟아지는 검체채취 업무로 여전히 1인이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동물의 이동을 막는 등의 초동방역하는 것도 또한 방역사들의 업무라고 한다. 언론에서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다는 보도를 자주 접하지만, 이후 어떻게 후속조치가 이뤄지는지, 해결은 된 것인지는 일반 대중들은 잘 알기 어렵다. 방역사들은 우리의 눈과 귀가 안 보이는 곳에서 신종감염병의 해결을 위한 후속검사와 조치들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신종감염병이 새롭게 등장할 때마다 그들의 업무부담은 가중된다.

불안정한 일자리, 열악한 처우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축방역은 제2의 국방이라고 했습니다. 코로나도 인수공통감염병이지 않습니까? 조류독감도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가축전염병을 막고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 건강에 대한 일을 담당하기에 저희는 공공의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일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는 열악합니다. 저희는 무기계약직인데요, 오래 근무해도 임금의 상승폭이 크지 않습니다. 10년 이상 근무를 해도 수당 빼면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받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감염 사례가 발생하면 가축방역사들은 24시간 내내 근무를 하면서 해당 지역을 통제하는 업무를 하는데요, 이때 지급되는 수당의 기준이 최저시급 수준 밖에 안 됩니다."

가축방역지원본부는 49명이 정규직이고 나머지 1000여 명이 무기계약직이라는 비정상적인 인력구조로 되어 있다고 한다. 현장에서 고생하며 일하는 건 가축방역사들인데 그 성과는 관리하고 행정 업무하는 정규직이 다 챙겨간다는 생각이 들어, 상대적 박탈감을 종종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전국조직을 49명 중앙 직원이 행정 일을 다 본다는 게 한계가 있잖아요, 지방 공기업을 보면 현장인력 대비 행정인력이 20%정도인데 저희는 약 3%밖에 안 돼요, 그러다보니 전국 42개 사무소의 현장인력이 행정업무도 하고 있어 현장인력이 부족하지요, 노동조합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서 인력이 약간 충원되었지만 여전히 부족한 실정입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려고 하지만 더럽고 위험한 업무를 담당하는데 처우가 열악하다 보니 사직하게 되고, 경력자가 사직하면 신규직원이 들어오고 신규직원은 업무에 익숙하지 않으니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보통 공공기관에서 근무한다면 이직률이 낮은데 저희는 이직률이 높습니다. 특히 올해 이직률이 높아요, 희망이 안 보인다는 거죠. 지금 일을 시작한 젊은 직원이 20년 후에는 현재 우리의 모습은 아니어야 할 텐데요."

가축방역사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움직임

"문재인 정부의 농업정책에서 가축방역은 성공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숨은 노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수고했다는 말뿐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제대로 된 노동권 보장을 위해 노동조합은 지난 2021년 5월 13일 농림식품부에서 처우개선, 인력충원, 신분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었다.

"소방직 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지원되지 않았습니까? 저희도 장기적으로는 국가방역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경기도, 강원도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겨울 서해안을 중심으로 조류독감이 발생했습니다. 가축전염병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에 집중적으로 인력을 파견해서 감염병을 조기에 차단 해야합니다.

그런데 현재는 발생지역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구조라서 인력운영에 제한이 있습니다. 예산문제도 지방비와 국비로 나눠져 있다 보니 타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로 인건비를 반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앙정부에서 방역시스템을 컨트롤하는 하는 국가방역시스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올겨울 조류독감이 약 100건 정도 생겼습니다. 이로 인해 수천만 마리의 닭이 살처분되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이 사실이 묻혀버렸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우리들의 노력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우리 가축방역사들은 현장에서 미련할 정도로 묵묵히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신분, 처우개선에 대한 문제는 기필코 해결해서 앞으로 저희 아이들에게도 추천할 수 있는 직장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1) 양, 소, 염소에서 주로 서식하는 세균의 일종인 콕시엘라 부르네티에 의해 유발, 박테리아가 담긴 공기비말을 흡입하거나 생우유를 섭취할 때 감염된다.

[다양한 노동 이야기]고령화 사회 ‘커뮤니티 케어’의 중심, 방문진료를 말하다_건강의집 의원 홍종원 원장 인터뷰/2021.5

[일터5월호_A부터 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고령화 사회 커뮤니티 케어의 중심, 방문진료를 말하다_건강의집 의원 홍종원 원장 인터뷰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만성질환이 유행하고, 인구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건강관리의 패러다임이 의료기관 중심에서 커뮤니티 케어로 변화하고 있다. 아직 생소한 용어인 커뮤니티 케어. 그건 장애인, 고령자 또는 환자가 병원이나 시설에 입소하지 않고 최대한 자신이 살던 집과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실질적인 여건을 조성하는 걸 가리킨다. 우리보다 고령화를 더 일찍 경험한 일본에서는 커뮤니티 케어와 방문진료가 활성화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으나, 방문진료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이다.

이번 5월호 <다양한 노동 이야기> 코너에서는 방문진료를 주로 하는 건강의집 의원의 홍종원 원장을 만났다. 화창한 일요일 오후 건강의 집에서 커뮤니티 케어를 구축하는 데 방문진료가 갖는 의미와 방문진료를 활성화하기 위한 고민에 대해 얘기를 들어보았다.

건강의집을 소개합니다

우선, 방문진료를 주로 하는 병원이 흔치 않은 만큼, ‘건강의집 의원에 대한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렸다. 방문진료는 어떤 것인지도, 현재 운영은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했다.

건강의 집은 강북구 번동에 있습니다. 심각한 장애 판정을 받은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방문진료를 하기 위해, 20193월에 의사 2명과 간호사 1명으로 개원하였습니다. 현재 직원은 의사 2, 간호사 2, 행정직 1명으로 총 5명입니다. 우리 의원은 방문진료, 요양원 촉탁의, 가정간호 등의 업무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가정간호는 간호사가 가정에 방문하여 수액처치나 비위관삽입, 소변줄 삽입 등의 처치를 해드리는 겁니다.

외래 진료는 제한적으로 하고 있고요. 방문진료를 주로 합니다. 저는 방문진료로 한 달에 50~60명가량의 환자를 만납니다. 함께 일하는 김창오 선생님은 100명 정도 방문진료를 합니다. 저희는 강북구만이 아니라 인근 노원구, 성북구까지 나갑니다. 중증장애인, 누워만 있어야 하는 와상환자, 요양원의 고령환자 등을 주로 만납니다. 환자분 중에는 생활이 어려운 의료급여 환자분들이 꽤 있습니다.

개원 후 방문을 요청하는 환자가 바로 생기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개원하고 장애인복지관 등을 일일이 찾아가서 저희를 알리고 인사드렸습니다. 개원 초창기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 의사 2, 간호사 1명이 다 같이 가가호호 방문을 하면서 배워나갔습니다. 하지만 점점 경험도 쌓이고 환자 요청이 늘면서 요즘은 의사, 간호사가 각자 혼자서 가정방문을 합니다. 웬만해서는 주말에는 일을 안 하려고 하는데요. 그래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방문하기도 합니다.

왕진에서 방문진료로의 변화

예전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집에 의사가 방문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낯선 장면이다. 이처럼 왕진은 지금처럼 의료기관이 많지 않았던 60~70년대는 보편적인 의료행위였다. 하지만 응급시설을 갖춘 의료기관이 급증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더욱이 의료수가가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의사들은 왕진보다는 진료실에 찾아오는 환자를 진료하길 선호했다. 그러면서 왕진은 그 명맥이 끊겼다. 그러나 최근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의료 사각지대 해소에 대한 요구 증대로, 가구에 방문해 의료를 제공하는 것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왕년의 왕진이 오늘날 방문진료라는 이름으로 부활하고 있다.

다른 의원은 환자가 직접 찾아오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희는 일일이 예약하고 시간약속 정한 다음 정해진 시간에 방문을 합니다. 일을 해보니 방문진료나 가정간호의 수요가 예상외로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응급실 가기는 애매한데 의료가 필요할 것 같은 상황이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환자나 보호자가 저희를 찾습니다.

그런데 의료라는 게 행위와 처지를 하면 수익이 나는 구조잖아요. 그리고 그 처치가 필요한지 결정하는 건 의료인이고요. 실제로 일부에서는 수익을 더 내기 위해, 요양원 방문간호로 수액 등의 과잉처치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개원해서 이루려는 목적이 경제적인 수입은 아니었습니다. 늘 초심을 잃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보건복지부는 거동이 불편해 병원에서 치료받기 힘든 고령 및 중증환자들의 의료접근성을 개선하는 목적으로 2019년 방문진료 시범사업을 시행하였다. 이에 따라 왕진과 달리, 방문진료의 수가가 정해지고 진료내용과 제공방식이 제도화되었다. 그로써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집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구체적으로 마비(하지ㆍ사지마비ㆍ편마비 등), 수술 직후, 말기 암환자, 의료기기 등 부착(산소, 인공호흡기 등), 욕창, 정신과 질환, 인지장애 등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방문진료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선 의원에서의 참여율은 저조하다. 아무래도 방문진료하는 것이 의료기관의 수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희의 노동에는 방문일정을 예약하는 것, 가가호호 방문해서 환자 보호자 만나는 일 그리고 방문후에도 보호자와 전화상담하는 것이 다 포함되어 있다보니 시간이 많이 들고 소진되기 쉽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상담전화나 방문요청이 와도 기꺼이 응할 수 있고 환자에게 진심으로 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진되지 않고 여유를 가지도록 노동강도를 조절하려고 합니다. 다른 직원분들한테도 무리할 정도로 방문을 하지는 마시라고 합니다. 저희를 찾은 분이 많아지면 직원을 더 고용하는 방법 또한 있겠으나 그러면 결국 관리의 업무가 더 추가되어 제가 신경 쓸 게 많아집니다. 현재는 양적인 성장보다는 저희업무의 질을 높이는 일에 집중하려 합니다.

가장 가까이서 마주하는 이의 마음

홍종원 원장에게 일하면서 언제 보람을 느꼈는지 물었다. 아픈 사람을 아픈 이의 공간 가장 가까이서 마주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까? 때론 일상을 묻는 가벼운 자리, 때론 마지막을 앞둔 이를 돌보는 자리도 있었다.

말기암 환자가 있었습니다. 치료가 더이상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 온 상황에서 건강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다시 가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이때 마침 찾아가서 깊게 상당을 하고 나니 상담만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며 고마워하셨어요.

그리고 한 번은 일요일에 방문요청 전화가 왔어요. 가급적 일요일은 방문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방문을 했습니다. 환자 집에 방문하니 환자가 임종을 앞두고 있었어요. 가족분들이 입원이 원치는 않아서 지속적인 방문진료를 통해 집에서 가족들 품에서 임종을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런 사례들이 몇 번 있었는데요, 요즘 코로나로 병원에서 여러 가족이 모여 임종을 지켜보는 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보호자와 환자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습니다. 저의 할아버지는 중환자실 침대에서 돌아가셨는데 바람직한 임종이라고 생각이 들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정임종에 대한 요청이 있으면 가능한 방문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늘 생명에 대해 겸손해져야 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개원한 지 2년이 지난 지금은 지역 주민들이 고마워한다는 데 대해 보람을 느낍니다.

저는 환자와 보호자의 말을 많이 듣고 신뢰관계를 쌓는 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환자 말을 충분히 듣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CT나 초음파로 검사하고 진단을 내리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와 다른 환경이다 보니 더욱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저희는 개인전화번호를 환자나 보호자에게 알려줘요. 그래서 불쑥 전화하기도 하는데.......절박한 마음을 이해하고 성의있게 응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환자나 보호자 말을 잘 들어보면 그 분들이 답을 알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람찬 순간들도 있지만, 그 뒤에는 남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고충이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생소하고 정착되지 않은 방문진료를 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물었다.

무리하다고 생각되는 요청을 잘 거절하는 게 초장기에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상황을 잘 판단하고 치료 방향을 결정해나가는 경험이 쌓여 적절한 상담을 해드릴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환자나 보호자가 일과시간, 주말을 가리지 않고 제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는데요, 이제는 이런 것도 나름대로 조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혼자 방문진료 혹은 가정간호를 했을 때 안전문제에 노출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 방문하는 집이 생기면 어떤 보호자들이 있는지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야외노동이다 보니 혹한기, 혹서기에 힘들고요.

방문진료를 시작하게 된 계기

방문진료하는 김창오 원장 ( 왼쪽 ),  홍종원 원장 ( 오른쪽 ).  출처 :  홍종원

방문진료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의사의 업무와는 꽤나 다르다. 의사들 중에도 방문진료에 대해 낯설어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도 방문진료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방문진료를 알게 되고 평생의 일로 삼으려는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의과대학생 시절부터 사회를 좀 더 건강하게 변화시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동네에 오래 살았고 2012년부터 강북구 번동에서 마을주민들과 마을공동체 및 지역활동 조직 등 다양한 주민건강권 활동 및 사업에 참여해 왔습니다. 공중보건의는 남양주에서 했는데 번동과 남양주를 오가며 지역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2008년에 현재까지 같이 일하는 김창오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김창오 선생님은 그때 보건소에서 방문진료를 했었고 건강마을 만들기사업, 의료복지 NGO단체 등의 지역 활동도 많이 했습니다. 김창오 선생님은 순수하고 신뢰할만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서로 의기투합하여 2019년 개원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개원초기에는 당연히 수입은 적고 병원의 운영비도 안나왔습니다. 경영이 어려워지면 초심을 잃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다행히 운영비를 감당할 정도는 되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정도 안정되었고 방문진료의 경험도 쌓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남들이 안 하지만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여 이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당분간 이대로 유지하며 경험을 더 축적하여 질적으로 더 잘하고 싶습니다. 잘한다는 게 특별한 데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초심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사회에서 방문진료와 같은 공공성을 지향하고 공익을 위해 활동하는 의료기관이 안정적으로 경영을 유지해나가는 건 녹록치 않다 이 현실에 맞서, 공공의료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의료를 실천하는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부디 <건강의집> 의료진들이 소진되지 않고 초심을 유지하여 오랫동안 지역사회에 안착하기를 기원한다.

(장영우 선전위원장, 내과의사)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누군가의 상흔에 빚진 보통날 - 전국건설노동조합 송전지부 이충구 전국지부장 인터뷰 / 2021. 04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누군가의 상흔에 빚진 보통날

- 전국건설노동조합 송전지부 이충구 전국지부장 인터뷰

한재영 상임활동가

혹시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할 때마다 사용되는 전기의 행방을 떠올려 본 적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숨 쉴 때마다 공기의 존재를 구태여 알아차리지 않듯이, 전기는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기까지 한 질문을 던지는 까닭이 있다. 이유를 말하기 전에 앞서,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지상으로부터 100m가량 치솟은 곳에 올라가 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잠시 머무는 게 아니라 대여섯 시간 동안 머문 적이 있는가? 앞선 질문의 답과 마
찬가지로 아마 없을 것이다.

여기에 숨결 하나마다 전기를 떠올리고, 듣기만 해도 아득해지는 높이가 일상인 이들이 있다. 바로 송전탑을 오르내리는 ‘송전 전기원’의 이야기다. 낮게는 30m 높게는 100m에 이르는 높이에, 얼기설기한 철골로 이뤄진 송전탑 위에서 행해지는 노동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지난3월 10일, 대림역 인근의 건설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송전지부 이충구 지회장을 만나 허공을 밟아가며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허공을 밟으며 일하는 사람들
송전탑은 현 전기공급체계에서 널리 활용되는 시설이지만 동시에 그만큼 꺼려지기도 하는 존재다. 송전탑 주위에는 수만 볼트의 고압전기가 흐르고 있어 매우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고압전기가 주위 환경이나 인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송전탑 대부분을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세우다 보니, 최악의 조건에서 작업이 이뤄진다.

“송전탑은 주로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오지나 야산에 세워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하는 노동자에게도 최악의 현장입니다. 화장실이 급하다고 50~100m 되는 높이를 올라갔다 내려오기는 어렵죠. 그래도 소변이면 밑에 있는 사람들한테 말하고 상공에서나마 해결하는데, 대변은 어쩔 수가 없죠. 그런데 현장 주변에 이동식 화장실이나 간이 화장실도 없어서 불편할 때가 많죠. 이동시간 때문에 식당에 가기 어려우니, 점심도 흙바닥에 앉아 도시락으로 대충 때워요. 어느 계절이고 일하기에는 다 어려워요. 여름에는 폭염 아래에서 일해야 하고, 한겨울에는 산불 위험 때문에 불도 못 피우죠. 화재위험이 없는 고체연료를 사달라고 요구하지만, 비싸다는 이유로 매번 거절합니다.”

주변 지형이나 전압 크기에 따라 높이 역시 달라지지만, 고압 송전탑의 경우 평균 높이가 100m에 달한다. 통상적으로 아파트 1개 층 높이가 약 3m인 점을 고려하면, 사방이 뻥 뚫린 30층짜리 고층 아파트 꼭대기에서 작업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송전탑을 오를 때에는 맨몸이 아니다. 매번 20kg에 육박하는 여러 장비에다가 개당 9kg에 육박하는 애자를 메고 송전탑을 오른다. 그들은 단 한 번의 헛길 질도 허용되지 않는 상공에서 철근을 조립하고, 전선을 연결한다. 감히 그 고단함을 헤아리기조차 어려웠다.

“온종일 위에 있다가 땅에 내려오면 멍해지면서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어요. 송전탑 위에서 하는 일은 다양하죠. 송전탑 건설은 시작이고, 전선을 탑에 걸치는 연선 작업과 선을 잘라서 연결한 뒤 지상으로부터 적절한 높이까지 띄우는 긴선 작업이 있어요. 송전탑 유지보수작업도 있어요. 애자라고 하는 절연체가 있는데요, 보통 교체 주기가 30년이라고 해요. 하지만 오염이 심할 경우에는 그만큼 사용할 수 없죠. 아무래도 비바람이니 자외선이니 하는 온갖 외부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부식도 빠르고요. 그래서 주기적으로 애자를 물로 세척하거나 노후된 자재를 교체하는 등의 유지보수 작업을 해요.”

송전탑 위에서 찢기고 데인 몸과 마음
내리쬐는 햇볕에 무쇠나 다름없는 철근도 부식되는데, 하물며 그보다 연약한 사람의 피부가 성할 리 만무하다. 피부뿐만이 아니다. 허공에서 오직 상체의 힘으로만 철탑재를 내려치고 조립하다 보니 쑤시지 않는 데가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름에 햇볕이 있다면 겨울에는 칼바람이 있고, 골병은 추락과 세트처럼 묶여있다.

“사시사철 외부에서 하는 옥외작업이니만큼 기후조건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요. 폭염을 피할 그늘이 없을뿐더러 철탑이 달궈지면서 화상도 많이 입죠. 다량의 자외선에 장시간 노출되니 피부암 등 피부질환의 위험도 크고요. 한겨울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예요. 겨울에 작업하면 온몸에 핫팩을 붙이고 가요. 그래도 종일 추위에 떨죠. 그러고서 숙소로 돌아오면 얼었던 얼굴이 그제야 녹으면서 벌겋게 달아올라요.

피부질환 외에도 어깨, 척추까지 완전 종합병원이에요. 송전탑을 보면 알겠지만, 발 디딜 곳이 하나도 없어요. 작업하는 내내 어디 모서리에다 발끝이나 발꿈치를 딛고 서서 미끄러지지 않게 온 힘을 줘야 해요. 평지에서 작업하면 물건을 들거나 잡아당길 때, 두 발을 바닥에 고정한 채 일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수가 없는 거죠. 그렇게 무게중심도 못 잡고 팔 힘으로만 작업하다 보니 근육과 뼈 모두 성할 곳이 없어요. 제가 일한 지 30년이 다 돼가는데, 양쪽 회전근 모두 파열돼서 한동안 치료했는데 완치는 안 된 상태예요. 

예전에는 사망사고가 나도 다음날이면 일하러 나갔어요. 30년간 일하면서 눈앞에서 떨어져 죽은 동료만 3명이에요. 추락한 동료에게 겉옷 벗어다 덮어주고, 산에서 들고 내려오는 것도 다 했어요.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다음 날이면 또 송전탑을 올랐죠.”

송전 전기원의 노동은 그 자신의 생활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역시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사회의 필수재인 ‘전기’를 제공하는 이들이지만, 정작 그들의 일상은 당연하지 않다. 2년 전부터 안전사고를 대비해 수평로프와 추락망 그물을 설치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노동자의 안전보다 이윤이 앞서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작업 공기(공사기간)를 느슨하게 잡는 거예요. 공기가 늘어나면 그만큼 소요되는 예산이 많기 때문에 무리하게 공기 단축을 하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당연히 사고가 나죠. 안전 관리감독자 수도 늘려야 해요. 우리가 송전탑 하나를 작업 완성하고 다음 송전탑 작업을 하는 시스템이 아니거든요. 몇 개의 작업현장에서 일하는 거죠. 예를 들어 송전탑 10개를 작업한다고 했을 때, 한데 모여 작업하는 게 아니고 산봉우리마다 떨어져서 작업해요. 그럼 총 10개의 현장이 있는데 무슨 수로 소장 한 명이 모든 현장의 안전을 점검하고 관리할 수 있겠어요? 송전탑별로 관리자를 두거
나 아니면 송전작업은 보통 팀 단위를 이뤄작업하니 팀별로 관리자를 두는 게 맞죠. 하지만 현장의 안전은 작업자들에게만 온전히 맡겨놓고 있어요. 

송전작업은 안전벨트 하나만을 몸에 매달고, 온몸을 공중에 띄운 채 두 손으로 하는 작업이에요. 그 높은 곳에서 믿을 건 안전벨트 하나밖에 없어요. 그러니 자기 몸에 꼭 맞아야 하죠. 그런데 업체는 값싸고 허술한 안전벨트 하나 사서 던져주고, 제공했다고 서명받고 사진 찍으면 끝이에요. 그저 안전관리비 집행했다는 보고에 불과한 겁니다. 그리고 상용직이면 안전장비 관리 담당자도 있고, 때에 맞춰 교체도 할 건데 일용직이다 보니 그럴 수가 없어요. 보통 3일에서 7일 이렇게 짧게 여기저기 현장을 옮겨 다니는 일용직이다 보니, 안전벨트는 개인이 구매해서 사용하는 게 더 편해요. 현장에 갈 때마다 안전벨트를 받는다 치면 못해도 1t은 될 거예요.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측에서는 우리더러 안전장비 상태를 확인하라고 하는데, 작업장비의 상태나 교체 시기를 판단할 수 있는 기관이나 기준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관리자나 개개인이 알아서 헤지거나 낡은 정도를 맨눈으로 판단하고 바꾸는 실정이죠.”

이 일이 우리를 먹이고 살리려면
지상 수십 미터 철탑에 오르는 것만이 송전 전기원의 고충은 아니다. 올려다보기만 해도 어질해지는 높이에서 벨트 하나에 몸을 맡기는 것도, 살이 익다 못해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비틀어지는 것을 감내할 수 있는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IMF 이후 계속 임금을 깎였죠. 10년 가까이 평균 노무단가가 30만 원이었는데, 몇년 전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임금 인상이 이뤄졌죠. 문제는 작업일수예요. 1년 중 성수기보다 비수기가 더 많아요. 한전에서 발주하는데 1년 중 상반기에는 5, 6월 하반기에는 10, 11월에 주로 일이 몰려있어요. 

성수기보다 비수기가 더 많아, 이 일만 해서는 먹고 살기 어려우니 대부분 비수기 때 다른 일을 하러 가죠. 철골작업이나 건물 유리닦기, 전차선 작업 등 고공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요. 요즘에는 지자체에서 주력하고 있는 출렁다리 사업 현장에 자주 가요. 고공작업 외에 중량물 취급도 익숙하니 용광로 교체작업에 나가기도 하고요.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인력소에서 용역을 구해 부족한 수입을 메꿔요.

현재 전국의 송전 전기원은 300명 정도 되는데 평균 연령이 50세예요. 한전에서 고시한 정년은 만 60세에서 지난 2월 17일 이후 만 65세로 늘었어요. 그렇다 해도 새로운 인력투입은 거의 없는 게 문제예요. 워낙에 일은 고된데 처우는 열악하고 일거리도 많지 않아서 그렇죠. 지금 상황을 보면 5년 후에는 70%, 8년 후에는 80%의 송전 전기원이 사라져요.”

노동조합은 송전 전기원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위해서 상용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한전 측의 발주금액을 늘리는 등의 방식을 통해, 한전 송전정비협력회사의 상용직으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현재 실제 시공인력은 턱없이 부족한데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1만 명 가까이 돼요. 대학생이나 포크레인 기사, 목욕탕 관리사까
지 자격증이 있어요. 현재 송전 관련 자격증이 민간자격증인 터라, 6주간 교육이 끝나고 자격증이 발급되면 자격증 브로커들이 
얼마간의 돈을 주고 그 자격증을 관리하는 거죠. 일부 전기 협력업체들은 이런 유령자격증을 동원해서 입찰에 참여해요. 국가자
격증으로 전환해 국가가 주관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시공업체도 마찬가지예요. 시공능력이 없다면 입찰도 막아야 해요. 현재 송전작업은 지중배전이나 변전과 달리 전기공사업만 등록돼 있으면 누구나 입찰에 참여할 수 있어요. 전국의 전기공사업체만 해도 1만 7~8천 개는 되는데, 실제로 작업할 수 있는 업체는 100개도 채 되지 않아요. 이렇다 보니 온갖 페이퍼컴퍼니나 유령자격증이 난립하고, 불법 하도급이 남발하는 탓에 노동자들의 처우는 날로 열악해져요. 업체의 시공능력 검증을 제대로 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송전전문업체 등록제를 시행해야죠.”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쉬는 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물었다. 그러자 ‘취미는 사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송전 전기원의 삶에서 사치는 취미 하나만이 아니었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사치라 했다. 어디 그뿐이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 고된 노동의 대가, 우리 사회의 필요한 빛을 책임진다는 자부심도 모두 사치다. 다른 사람들처럼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꽃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는 송전 전기원들의 소망이 사치가 아닌 그저 보통날의 모양새가 되길 바란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우리가 열차를 달릴 수 있게 합니다" -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차선지부 배정만 지부장 인터뷰 / 2021. 03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우리가 열차를 달릴 수 있게 합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차선지부 배정만 지부장 인터뷰

박기형 상임활동가

 

막차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역이 문을 닫는다. 텅 빈 정류장, 불이 꺼진 선로. 기차가 고요하게 잠든 사이, 분주하게 선로 위를 오가는 노동자들이 있다. 1971년 4월 지하철 1호선(서울역~청량리역) 착공 이후, 이들은 지난 50년간 전국 곳곳에서 전기 열차가 매일매일 빠짐없이 달릴 수 있게 선로와 설비를 설치·정비해왔다.

2020년 드디어 자신들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전차선 노동자들이 모여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차선지부 배정만 지부장을 만나, 전차선 노동자들의 노동과정과 어려움,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계기를 들어보았다.

전차선 노동자들의 업무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하면, 열차가 오가는 선로 위의 전차선과 주변의 시설물들, 즉 교류 2만5000v의 전기가 흐르는 전선과 관련 설비들을 설치·정비하는 일이다. 전기로 움직이는 전국의 모든 지하철과 열차는 전차선 노동자들의 노동 없이는 달릴 수 없다.

"전차선 작업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기존 선로를 보수·정비하는 작업입니다. 다른 하나는 선로를 신설하는 작업이고요. 기존 선로를 작업하는 일은 지하철이나 열차가 운행을 멈춘 시간 동안에 이뤄집니다. 모든 차량이 차량기지로 들어간 이후인 새벽에 작업하는 것이죠.

신설 선로는 보통 낮에 작업하고요. 전차선을 선로 위에 깔기 위해서 땅을 고르고 전차선을 걸 빔과 빔을 지지할 구조물을 설치합니다. 이후에 전선을 깔고 전기가 흐를 수 있게 연결까지 합니다. 이 일을 마쳐야 비로소 전기가 공급됩니다. 우리가 열차를 달릴 수 있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지만 그동안 전차선 노동자들의 노동은 늘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고, 그랬기에 아무렇게나 방치되고 있었다.

출처;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차선지부



쫓기듯 일하는 건 일상

일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작업을 특정 시간 내에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이다. 신설 선로 작업의 경우에는 덜하지만, 기존 선로 작업의 경우에는 운행이 멈춘 시간 내에 '반드시' 작업을 마쳐야 한다. 열차가 정시에 운행을 시작할 수 있게 하려면 운행이 멈춘 3~4시간 내에 작업을 끝마쳐야 한다. 혹여 작업이 늦어질 경우엔 운행에 차질을 빚기 때문이다. 운행 중 고장이 난 경우도 마찬가지다. 

"EBS에서 하는 극한직업에 전차선 노동자들 나온 적이 있는데요. 그거 보셨다고 했죠? 그건 양반이에요. 평상시는 훨씬 심각해요. 정해진 시간 내에, 어떤 때에는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일을 마쳐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열차 운행을 못하잖아요. 일을 마치고 선로에서 벗어난 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열차가 쌩하고 지나가요. 일 마칠 때, '야, 빨리 내려와. 열차 온대' 소리치면서 허겁지겁 정리할 때가 많아요. 그렇게 늘 무언가에 쫓기듯 일해요."

전차선 노동자들은 각종 중량물을 들고 나르고 세우는 일만 하는 게 아니다. 9~10m에 달하는 높은 곳에 올라가 전선을 깔고 연결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런 안전장비도 제공받지 못한다. 안전장비를 착용하는 것조차 '시간'과 '비용'이 드는 불필요한 일로 치부된다.

"전선을 까는 빔 위에서 안전장비도 없이 서서 작업하거나 매달려 있는 건 일상이에요. 정확히는 그렇게 안 하면, 일 못하는 사람 취급받아요. 처음 일 시작하면, 무서워서 두 발로 설 수도 없어요. 그러면, 밑에서 소장이 소리치고 난리 나죠. 빨리해야 하는데, 엉금엉금 기어 다니냐고 쌍욕 먹는 거죠.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둔감해져야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대부분의 정비 작업은 야간에 이뤄지지만, 헬멧에 다는 헤드랜턴도 자비로 사야 하는 현실에서 작업 현장에 조명 장비를 달아서 밝혀주는 건 사치와 다를 바 없다. 보이지 않으니 걸려 넘어지거나 장비에 몸이 끼이거나 부딪히는 일이 다반사다. 급하게 일하다 보니, 그 정도 다치는 건 일도 아니다.

고소 작업 시 안전은 뒷전

"이렇게 위험한 현장인데도, 노동조합이 없을 때는 사고조사조차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요. 노동조합 만들자마자 시작한 활동 중 하나가 바로 사고조사였어요. 평균적으로 볼 때, 1년 동안 13~15건의 산재사고가 있었던 걸로 추정돼요. 여기서 말하는 사고는 떨어져서 어딘가 부러지거나 끼여서 장애를 입는 정도의 심각한 건들만 포함한 겁니다. 그중 절반 이상이 추락사고에요."

언제나 고소 작업이 동반되다 보니, 추락의 위험이 늘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추락을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추락사고의 대부분이 A형 사다리에서 발생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최근 노동조합에서 현 작업에서 A형 사다리를 아무런 조치 없이 사용하는 것은 위법하고, 노동자들을 위험에 내모는 것이라 문제제기하였다.

"최근까지만 해도, 한국전기철도기술협회에서는 작업현장 상황상 부득이하게 A형 사다리를 쓸 수밖에 없다고 변명했고, 노동부에서도 A형 사다리를 쓰되 감독자의 철저한 지시·관리 하에 안전조치 최대한 하고 사용하라고 회신했었죠. 그게 제대로 된 답변인가요? 노동조합 결성 후 지속해서 문제제기하니까, 그때서야 A형 사다리 사용을 규제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적은 비용으로 작업을 빨리하겠다고 A형 사다리 쓰는 곳이 태반이지요."

또, 위험의 외주화

왜 소장과 회사에서는 위험한 A형 사다리를 고집하는 것일까? 바로 정해진 시간 내 최대한 빨리 많은 작업량을 해치우기 위해서다.

"최근까지도 현장에선 알루미늄으로 된 절연 FRP A형 사다리를 많이 쓰는데요, 거기다 연장식까지 붙여서 사용하기도 해요. 가벼우니까 둘이서 들고 나르고 위에선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이 올라가 작업하면, 이동시간도 단축하고 작업량을 많이 뽑을 수 있죠. 작업 인원도 많이 필요 없고요.

그런데 노동자 입장에서는 안전대조차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올려 보내니 위험하기 짝이 없죠. 노동자들이 정말 안전하게 일하려면 안전난간이랑 안전발판이 갖춰진 이동형 고소작업대를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공사비용이 올라간다고, 사람도 많이 써야 하고, 작업시간도 길어지니 거부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왜 소장과 회사는 명백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동자의 안전을 내팽개치고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또 다시 '위험의 외주화'라는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전차선 노동자의 90% 이상이 일용직입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공사를 발주합니다. 공개 입찰로 진행하죠. 하지만 정작 입찰된 회사들, 즉 원청에서는 실질적으로 시공능력이 없어요. 공사를 따기 위한 명의와 구색만 갖춰진 회사들인 거죠. 원청은 자격증, 담당 인력 등을 허위로 기재해두거나 문서상으로만 갖고 있을 뿐이에요. 입찰에 지원하고 공사를 따내기 위한 자격증만 범람하고 있어요.

대신 실제 시공은 다른 하청업자에게 넘겨요. 하청업자도 자기가 시공을 전담하질 않아요. 사업별로 시공기술이나 설비도 갖추고 있고 인력도 부릴 수 있는 소장, 기술자 등을 하청업자가 섭외하죠. 그러면, 이제야 우리 같은 일용직들이 각 팀에 불려갑니다. 이런 상황이니, 전차선 노동자들은 원청회사가 어딘지도 모르고 일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모든 전차선을 설치하고 정비하는 일을 이들이 도맡고 있음에도, 이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기만 하다.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전기사업소 등 산하 기관 및 사업장에서 정규직으로 채용된 기술직들이 있지만, 이들은 정작 간단한 점검만 할 뿐이다. 긴급한 사태가 터져도 대처할 역량이 없다. 결국 대처는 일용직으로 고용되는 전차선 노동자들이다.

어둠이 몸을 갉아먹지 못하도록

"단지 안전사고만 문제가 아닙니다. 전차선 노동자들의 직업병도 많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우선 근골질환도 상당합니다. 무엇보다 허리가 많이 안 좋아요, 도지나를 차고 상부 9~10m에 달하는 높이의 설비를 오르내리는데 장비 무게만 10~13kg입니다. 거기다 철제 구조물을 당겨 올리고 조립하는 일도 하죠. 손목이나 팔꿈치도 닳고 닳습니다."

야간작업이 대부분인데, 작업일수는 불규칙적이다. 제조업 사업장의 교대제처럼 정기적 야간노동을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수면장애를 겪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평균 경력이 15~20년 되는 조합원들도 잠은 어찌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전선 작업을 하다 보니, 감전사고도 빈번합니다. 물론 사선으로 만들어서 일하긴 하지만, 전기를 죽였다고 해서 전선에 전기가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남아있는 전류가 있어요. 어떨 때는 전선을 잡으면, 손에서 전선을 못 놓는 일이 많아요. 특히 흐리고 비 오는 날이면 심해요. 전력을 송출하는 철탑 근처에서는 유도 전력이 발생해서 예상치 못하게 감전되는 일도 종종 있어요."

또한, 옥외작업의 부담도 상당하다. 혹한기나 혹서기에 겪는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다. 차량운행을 위해서, 아무리 비바람이 심하게 불어도, 심지어 태풍이나 눈보라가 쳐도 작업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는 발주처 및 원하청과 현장 작업상황을 공유하고 노동자들의 의사를 반영해 작업개시 여부를 조정하거나 필요한 안전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아무리 궂은 날씨라도, 원하청은 무리하게 작업을 강행한다. 그래야 다음 입찰 때에 흠 잡힐 일도 없기도 하니까.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은 흠이 아니다. 주어진 공사량을 최소 비용으로 최대한 많이 해내는 게 미덕이다. 

"전국 각지에서 350여 명의 전차선 노동자들이 자기 몸을 바쳐가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320명이 넘는 전차선 노동자가 건설노조 조합원으로 가입했어요.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쟁취하기 위해 마음을 합쳐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지난 50여년 간 우리 전차선 노동자들이 대한민국의 발전에 큰 이바지를 한 사람들이잖아요. 하지만 정작 그림자로만 살고 있었죠. 우리가 기여한 바, 우리의 노동현실을 시민들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차선 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자신들의 권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전차선 지부가 열심히 활동을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노인의 삶을 살피는 이들의 몸과 마음은 누가 돌보는가?-공공연대노동조합 최순미 조직국장, 생활지원사 J님 인터뷰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노인의 삶을 살피는 이들의 몸과 마음은 누가 돌보는가?

-공공연대노동조합 최순미 조직국장, 생활지원사 J님 인터뷰

 

박기형/상임활동가

 

  <일터>에서는 돌봄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돌아보기 위해 요양보호사, 가사관리사 등 다양한 직종을 만났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던, 작년 연말에 청와대 앞에서 집단해고 철회와 고용안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또 다른 돌봄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생활지원사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한국 사회에서 독거노인들의 삶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생활지원사의 노동을 들여다보고자 생활지원사 J님과 이들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시는 공공연대노동조합 최순미 조직국장님을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독거노인의 생활을 받치는 사람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생활을 지원한다'라는 말이 참 모호하게 다가왔다. 독거노인의 '어떤' 생활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지원한다는 것인지, 지원이라 함은 어떤 걸 말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J: 생활지원사는 만 65세 이상 국민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기초연금수급자 중 독거·조손가구처럼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안부확인, 생활교육, 사회참여 프로그램, 일상생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노인 대상 사회복지의 최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죠.


  생활지원사들은 2020년 1월 보건복지부가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새롭게 시행하는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사업을 담당한다. 2000년대 초중반 시행되었던 기존의 노인돌봄서비스들은 ① 노인돌봄기본서비스 ② 노인돌봄종합서비스 ③ 단기가사서비스 ④ 독거노인 사회관계활성화 ⑤ 초기독거노인 자립지원 ⑥ 지역사회자원연계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를 노인돌봄사업 간 장벽을 없애고, 수혜자 요구에 기반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목하에 통합‧개편한 것이 바로 '노인맞춤돌봄서비스'다.

J: 전국적으로 약 3만 명의 생활지원사가 있습니다(2020년 7월 말 기준, 2만 5470명). 이들이 독거노인 45만 명을 돌보고 있다고 봐도 되어요. 하루에 5시간씩, 평균 16명의 노인들에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이용자들은 일반군과 중점군(신체·정신적인 기능제한으로 일상생활 지원 필요가 큰 대상)으로 나뉘어요. 보통 일주일 단위로 전 이용자(중점군 2~3명 & 일반군 14명, 총 16여 명)들에게 일정대로 안부전화를 하며 말벗서비스를 제공하고, 가정에 방문을 합니다. 병원, 관공서, 은행 등 필수적인 외출에 동행하기도 하고요. 중점군의 경우에는 말벗서비스 외에 일주일에 2번 각각 2시간씩 직접 가정에 방문하여 가사지원서비스 등도 지원합니다.

필수적이나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

  정부의 사업안이나 교육에서는 특정 업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일하다 보면 요양보호사나 가사관리사처럼 이용자의 거동과 가사노동 전반을 챙기게 된다. 정부는 이용자들의 욕구에 기반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복지의 질을 높이겠다고 말하지만, 노동자들에겐 업무의 경계가 흐려질 가능성이 크다. 여전히 돌봄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미약한 상황에서는 그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J: 생활지원사의 전신은 생활관리사예요.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죠. 실제로 오랫동안 이 서비스를 받고 계신 이용자들도 '집에 왔다가는 아줌마', '전화해 주는 사람', '일하러 오는 아줌마나 어딘가에서 오는 복지사'라고 정확한 명칭을 잘 모르시거나 잘못 알고 계신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본인이 때로 일하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해도, 이용자들과 주변 사람들이 인정을 제대로 안 해주다 보면, 남들이 꺼려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죠. 이 때문에 업무 만족도도 낮아지고, 심지어 일하는 과정에서도 부당한 걸 많이 겪게 되는 것 같아요.

  작년 통합·개편되면서 '노인맞춤돌봄서비스'로 묶인 노인돌봄기본서비스·노인돌봄종합서비스·단기가사서비스 등은 2007년부터 10여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사업들이다. 하지만 이 사업에서 고용한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는 여전히 열악하기만 하고, 사회적 인정조차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다. 이는 생활지원사들의 고용불안, 저임금과 같은 노동조건과 직무스트레스, 성폭력 위험 등의 안전과 건강상에 유해한 노동환경과 긴밀히 연관된다.

최순미: 갈수록 우리 사회에서 돌봄노동은 필수적인 영역이 되고 있잖아요. 하지만 점차 시장화되는 돌봄노동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어요. 마치 과거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것을 무임금 노동으로 평가절하했던 것처럼 말이죠. 최저임금을 받으며, 마치 아무런 사회적 가치를 받지 못하는 가사노동을 하는 사람들로 취급받고 있어요. 여성이면 누구나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회적 평가 속에서 급여 등 노동조건이 최저 수준으로 책정되어 버리는 거죠.
 

▲ 2020년 12월 30일 청와대 앞에서 진행한 "노인생활지원사 집단 해고 철회 및 고용안정 촉구 기자회견" 당시 사진.

노동권 보장에는 손놓은 정부

  생활지원사들은 여러 가정을 돌아다니며 방문해야 한다. 이동은 업무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이동에 드는 비용은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이동시간 또한 근무시간으로 산정되지 않기도 한다. 더욱이 생활지원사들을 관리하겠다면서, 정부가 도입한 '맞춤형 광장앱'은 각종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최순미: 맞춤형 광장앱은 기본적인 노무관리 시스템이라고 보면 됩니다. 생활지원자들은 5시간 근무시간 동안 맞춤형 광장앱을 실행시켜야 되는데 그 시간 동안 자신들의 위치가 기관이나 센터에 자동적으로 보고가 되고 있는 거예요. 3분마다 위치가 추적당하는 거죠. 사생활 침해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기본이죠. 더구나 최저임금을 주면서 이동경비뿐만 아니라 광장앱 사용에 따른 데이터 비용까지 자비 부담이에요. 앱을 사용하기 위해선 때론 앱 사용이 가능한 핸드폰으로 기기변경까지 해야 하는데, 그 비용도 마찬가지죠.

  더욱이 광장앱은 노인생활지원사의 업무 형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정 시간과 특정 장소에서만 일하는 게 아니라, 노인들의 요구나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일하게 될 때가 있는데, 이걸 부당하게 근무시간 미준수 또는 근무지 이탈이라고 판단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방문시간이 짧을 경우 집 앞이나 주변을 서성이면서 시간을 채워야 하고, 식료품 등의 물품을 전달해야 할 때 이용자가 집에 부재할 경우에는 선 전달 후 앱상 방문체크를 위해 해당 가정에 재방문하는 일도 빈번하다. 서비스 제공의 효율은 증대되지 않은 채, 불필요하게 노동강도만 높이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앱만 개발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현장에 적합한지, 잘 활용되고 있는지, 개선할 점은 없는지 등 정부가 책임지고 관리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다. 하지만 다른 복지서비스들처럼 노인맞춤돌봄서비스도 대부분 민간에 위탁되다 보니, 앱 관리는커녕 노동권조차 보장하지 않고 있다.

J: 우리 사회는 돌봄노동을 가족에게서 시장으로 이관시켜 왔어요. 그렇게 사회복지 영역에서 시장화가 확대되었죠. 국가는 이용자들에게 비용을 지급하고, 이용자들이 기관과 종사자를 선택해서 서비스를 받는 형태가 기본적인데, 이때 해당 기관들에선 이용자들을 많이 유치하려고 경쟁이 치열해요. 그래서 기관들은 적은 노력과 비용으로 최대한 잡음 없이, 많은 이용자를 보유하려고 해요. 처우 개선도 안 하려고 하고, 이용자들에 대한 관리도 부실하죠. 노동자들은 어려움이 있어도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

  보건복지부는 노인맞춤돌봄서비스로 통합개편하면서 서비스 대상자를 35만 명(2019년)에서 45만 명(2020년)으로 10만 명 확대하기로 했다. 그런데 민간위탁 기관들에서는 기관평가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대상자가 18명에 이르지 못하는 생활지원사들에게 나머지 대상자를 발굴하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담당 지역의 독거노인 리스트를 나눠주면서 방문하거나 전화로 서비스 제공을 권유하거나, 기존 이용자나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를 부탁하는 등의 사회복지사 업무를 재고용을 운운하며 이들에게 전가시킨 것이다.

최순미: 보건복지부가 직접 기획하고 추진하는 사업들이잖아요. 그런데 민간위탁을 줬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생색만 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민간위탁 사업방식을 취한 사회복지 영역 대부분에서 고용불안 문제가 있어요. 1년 단기계약해놓고 해고시킨다든가, 평가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센터나 담당자별로 (재)채용 여부를 자의적으로 해버린다든가. 물론 보건복지부에서 지침을 내리지만, 법률 수준이 아니니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일이 빈번해요. 현장에선 정부 지침이 무용지물과 다를 바 없어요.
 
생활지원사가 마주하는 위험

  생활지원사들은 노인들의 일상을 챙기기 위해, 전화할 뿐만 아니라 직접 각 가정을 방문한다. 제공할 서비스가 규정되어 있지만, 한 사람의 삶을 살피다 보면, 부득이하게 또는 자발적으로 업무를 넘어선 일들을 나서서 하게 될 때가 많다. 더욱이 청소·정리 등이 거의 되지 않거나, 반지하 등 주거환경이 열악한 집들이 많은데, 충분히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일정 시간 안정적으로 머물러야 하기에, 직접 청소하는 등 별도의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업무 외 노동, 매뉴얼에는 보이지 않는 노동들이 많다는 것으로 생활지원사의 위험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문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겪는 폭언, 폭력, 성폭력 등의 위험에도 늘 노출되어 있으며, 이에 대한 충분한 예방조치나 관련한 가이드라인 등은 부재한 상황이다.

J: 그 외에, 아직 잘 드러나지 않는 문제가 있어요. 생활지원사들이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 고통이에요. 대표적으로 노인분들이 응급상황에 처하는 걸 목격하는 일이 발생해요. 우선 전화를 계속 받지 않으시면 긴장되고 불안해요. 무슨 일이 생겼을까 걱정되죠. 물론 밤중에 취한 채로 전화하거나 수시로 전화를 거는 일도 부담이 되지만요. 방문했는데, 갑자기 쓰러져 계신다든가 하면, 긴급히 대응해야 하잖아요. 저도 최근에 한 분이 돌아가실 뻔한 사례를 겪었는데, 3~4시간을 119 불러서 후송하고 챙기고 그랬어요. 그때만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서워요. 이런 걸 트라우마라고 하는구나 싶어요.
 
최순미: 하지만 정부나 기관들에선 생활지원사들에게 휴식도 주지 않고 트라우마 치유도 해주지 않아요. 긴급상황에 대한 대응매뉴얼도 없고 교육을 충분히 제대로 하지도 않죠. 결국, 개인 몫으로 남겨질 뿐이죠.
 
문제해결의 시작, 사회적 인정과 공공성 강화로부터

  돌봄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실현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고용, 노동과정 등 전반을 국가가 책임지도록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J님은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지적하였다.

J: 노인돌봄은 우리 사회에서 더 중요해질 거예요. 초고령사회로 노인인구 증가는 기정사실이고 이 노인들 중 가족이 무너지고, 사회와 단절된 노인들은 방치할 수 없잖아요. 국가나 지역사회에서 돌봐야 해요. 하지만 정부는 민간기관과 노동자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고, 이용자들의 편의와 취업통계 상 고용률만 고려하다 보니, 정작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워요. 우리 생활지원사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서, 당면한 문제를 조직된 힘으로 바꿔나가길 바랍니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타투는 예술행위라고 부르자!-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타투유니온지회 김도윤 지회장 인터뷰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타투는 예술행위라고 부르자!-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타투유니온지회 김도윤 지회장 인터뷰

유청희 상임활동가


타투나 문신 하면, 힙합 뮤지션들이 TV에 나와 랩 경연을 할 때 그들의 몸 곳곳에 모자이크 처리된 문신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시청자들은 방송에서 가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두 알고 있지만 굳이 방송은 몸에 그려진 그림을 가리려 한다. 그럼에도 문신을 하는 소비자는 생각보다 많은데, 타투를 경험한 한국 국민은 무려 13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타투이스트들은 타인의 몸에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직업의 특성이지만 이들이 떨쳐낼 수 없는 또 하나가 바로 법을 위반하는 노동이라는 것이다. 보이지만 가리려 하는 것, 타투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타투유니온지회 김도윤 지회장을 지난 2020년 12월 22일, 경복궁역 근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의료법 제 27조 제1항은 의료인이 아닌 자의 의료행위를 금하고 있다. 1992년 대법원은 문신을 "의료행위"로 판단했고, 갈수록 타투를 편안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지만 여전히 의료인이 아닌 자가 하는 문신 작업은 법에 저촉되는 행위이다. 지금까지 수차례 문신업을 법제화하려는 정부의 계획과 국회 법안 발의가 있었지만, 법 제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일본의 경우 2020년 9월 의료인이 아닌 문신사가 문신 행위를 해 의사법 위반으로 기소되었으나 무죄 선고를 받아 타투이스트들이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 이제 한국은 문신을 의료행위로 보는 유일한 국가로 남았다.

▲   화섬식품노조 타투유니온지회 김도윤 지회장.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을 일반직업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단위와 함께 공동대책위를 꾸리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시도가 이번에는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타투라는 예술 행위

타인의 몸에 그림을 그리는 타투라는 행위를 업으로 삼는다면 감당해야 할 것들이 있다. 타투가 예술행위인지 의료행위인지에 대한 분분한 의견들, 평생 몸에 남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의 무게, 법이 인정하지 않는 직업군이라는 요소다. 김 지회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타투이스트가 내리는 결정에도 변화가 있다고 한다.

"저는 원래 디자인 일을 하다가 타투이스트가 되기로 결정하고서 한동안 다른 일도 같이 했어요. 그러다 자리를 잡았을 때 전업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법이 허용하지 않는 일이니까요. 지금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 고민을 덜 한다고 생각해요.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으로 생각하고 이 일을 시작하죠. 타투가 불법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인지 인지하고 있어요. 많이 알아보면서 해볼 수 있겠다고 결론 내리고 결정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 타투를 배울 때는 잘 하는 사람에게 가서 작업을 받으면서 배우기도 하는데요. 인조 피부에 연습을 합니다. 하지만 사람 살에 얼마나 많이 해보는가가 중요한 거라서, 친구들한테 해보기도 합니다. 타투가 예술인지 묻는데, 저는 미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10년 동안 그림을 그리다가 타투를 시작했을 때 매체가 달라진 것이지 새로운 행위를 하는 건 아니라고 느꼈어요. 또 타투이스트에게는 직업 윤리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긍정적이지 않은 인식을 만드는 데 이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문화가 영향을 끼친 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타투이스트들에게는 다른 업종보다 더 높은 직업 윤리가 있어요. 그런 높은 기준은 작업을 하면서 갖게 됩니다."

문신은 전신을 써서 타인의 몸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 손, 손가락, 손목, 목, 허리를 많이 써서 오는 근골격계질환과, 잉크와 바늘을 써서 일하며 찔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몸을 숙여 작업하기 때문에 등, 목, 척추 질환이 많아요. 손목터널증후군이나 손가락 염좌는 누구나 겪는 질환이고요. 또 아무리 오래 해도 떠나지 않는 게 긴장감이에요. 누군가의 몸에 평생 가는 그림을 그리는 거잖아요. 긴장한 상태에서 작업을 하면 예상하지 못 한 곳, 타투 작업을 3시간 하고났는데 무릎에 문제가 생기기도 해요. 너무 긴장한 상태에서 잘못된 곳에 힘을 주어서 그런 경우가 많아요.

바늘 같은 경우, 타투유니온지회에서 녹색병원과 건강실태조사를 했어요. 바늘에 얼마나 많이 찔리는지 물었더니 심한 사람은 1년에 25번 찔린 사람도 있었어요. 다른 사람의 살을 뚫고 들어갔던 바늘이 내 피부에 찔리면 위험할 수 있죠. 실제로 바늘 때문에 감염 확진 받은 사례는 없지만, 그래도 더 조심합니다. 지회에서 바늘에 찔렸을 때는 꼭 병원에 가도록 하는 내용을 교육 과정에도 넣었습니다."

고객을 상대하는 일은 무엇이든 감정노동을 동반한다. 특히 타투이스트들은 자신의 일이 '합법적'이지 않기 때문에 분쟁이 생길 때 다른 업종보다 더 큰 위기에 처할 수 있고, 특히 경력이 짧은 타투이스트들에게 고객의 고발은 가장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감정노동은 모든 서비스 업종의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인 것 같아요. 저는 타투이스트 14년째인데 감정노동에서 벗어나려고 계속 노력했어요. 감정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그런 일을 겪는 타투이스트도 많죠. 타투유니온지회 만든 이후에, 고객과의 분쟁이나 법률 문제가 생겼을 때 조정, 중재하고 법률 상담하는 업무가 초반부터 가을까지 지회 업무 중 90%를 차지할 정도로 너무 많았어요. 물론 쌍방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법제도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더 크게 데미지(피해)를 입는 거죠.

예를 들어서, 그림 작업 서비스가 맘에 들지 않으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데, 유독 타투는 불법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고객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갑자기 형사고소로 협박을 해요. 손님이 협박하고 갈취한 거지만 저희가 전과자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건 원하지 않기 때문에 신고한 소비자랑 협상을 하려고 해요."

법에 있지만 반투명한 존재 '타투이스트'

현재 한국 산업 분류에는 문신업이 존재하고 문신업으로 사업자 등록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럴 경우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모순이 있을까 싶지만 1992년 대법원 판례로 지금까지 타투이스트는 반투명한 존재로 남게 되었다.

"저희는 직업 코드가 있어요. 2015년에는 고용노동부에서 유망 직업이라고 선정하기도 했고요. 문신업으로 등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문신업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세금 신고를 하면 불법행위로 잡힐 수 있습니다. 영리 목적의 불법 의료행위, 보건범죄 단속에 대한 특별법에 의거하면 최저 2년 징역형에 처해요. 지금 1992년 판례를 제외한 모든 것이 돌아가는데도, 그 판례를 이용해서 누군가가 신고할 수 있는 거예요. 문신업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세금을 올바로 낼 때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는 거죠. 타투유니온 만들자마자 내세운 것이 '세금을 내고 싶습니다'예요. 거기 동의하는 사람들이 노조에 가입하는 거고요. 빨리 제도권 안으로 넣어서 납세하게 만드는 것이 국가가 할 일입니다."

'노동자'라는 지위

타투이스트들은 대부분 사업이나 사업장에 고용되기보다는 자영업자인 경우가 더 많다. 자영업자와 노동조합을 바로 연결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데, 타투이스트들의 법적 지위를 바꾸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헌법상 타투이스트가 획득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가 노동자입니다. 가장 강한 조직들과 연대해서 싸울 수 있는 곳이 노동조합이라는 판단이 있었어요. 노동조합이라면 활동에 필요한 지혜와 노하우를 모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화섬노조에 있는 저희 타투유니온, 시민사회단체 등 총 55개 단체가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었어요. 공대위 활동 하면서 문체위, 산자위, 보건복지위 국회의원들을 만나 대담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게 연대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타투유니온지회를 포함한 많은 시민사회노동법률단체로 구성된 '타투 할 자유와 권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타투이스트들이 타투할 자유와 권리를 위해 헌법소원을 냈다. 의사들만 문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직업선택의 자유와 표현·예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 그 취지였다.

"11월 초에 두 가지를 냈습니다. 하나는 '헌마', 또 하나는 '헌바'로요. '헌마'는 법적인 문제가 이 일을 시작한 사람, 개인의 기본권을 구속한다는 내용이에요. 자격요건은 이 일을 시작한 지 1년 미만인 사람이라서, 노조에서 1년 미만인 8명이 자원해서 헌법소원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헌바' 소송이고 지금 준비 중인데요. 이 소송은 이 판례나 법조항 때문에 누군가가 피해받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9월 이 재판에서 이기면서 타투가 비범죄화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최근 제가 신고 당해서 제가 당사자가 되었고,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최근 일본에서 타투이스트들이 '무죄' 선고로 인정받게 되면서 한국에도 법제화의 시기가 더욱 가까워진 것 같기도 하다. 이들의 노력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기대가 된다.

타투가 예술로 인정받는 미래

타투유니온지회에서는 위생 및 감염관리가이드를 제작해 조합원들에게 배포 중이다. 이들에게 먼저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이 감염, 위생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지회에서 직접 건강검진을 실시한다. 노동시간 산정 방법을 안내하고 있고, 표준계약서도 미리 준비하고 있다. 법이 보여주지 않는 길을 타투이스트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일반직업화 되어도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더라고요. 자영업자인지 예술가인지 등은 세금 문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정부나 사회에 요구해야 할 것들은 더 많아질 거예요. 예술인 고용보험을 통해 보장받으려면 예술인 지위를 받아야 하는데, 모이지 않으면 잘 이뤄지기 어렵죠. 일반 직업화를 이루기 전에 많이 해놓을 겁니다. 세무교육, 위생교육, 법무교육, 노동교육까지 진행하고 있고요. 그 뒤에는 일반직업화가 과제로 남을 텐데,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직업, 노동에는 이미 많은 이슈와 어려움이 따르는데 거기에 더해 일 때문에 단속될 수 있다면 누구든지 휘청거릴 수 있다. 타투이스트들이 시도한 여러 번의 두드림이 곧 결과를 낼 것 같다. 어쩌면 아주 가까이에 와 있을지도 모르겠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물 관리의 토대를 마련하는 '수문조사' 노동 / 2020.12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물 관리의 토대를 마련하는 '수문조사' 노동

 

다연 / 상임활동가 

 

52일간의 비. 올해 장마는 그야말로 기록적이었다. 한국은 여름에 집중되는 호우 때문에 해마다 비로 인한 재해들이 발생하는 지역이기는 하지만, 올해는 그 피해 규모가 더 컸다. 게다가, 기후위기로 인해 앞으로 이렇게 예측할 수 없는 긴 폭우와 그로 인한 홍수와 같은 재해 발생률이 더 높아지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예상에 따라, 홍수와 같은 '물과 관련된 사고'에 대비하는 일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그러한 대비체계를 구축하는 일의 뒤에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수자원조사기술원(한국수자원공사와 다르다!)의 수문 조사 노동자들이다. 한국수자원조사기술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유량조사단이 설립된 2007년 부터 수문조사에 몸담아 온 민주노총 한국수자원조사기술원지부의 임혁진 지부장을 만나, 수문조사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365일 중 100일 넘게 강 안팎에서

수문조사는 한 마디로 국가의 물 관리에 필요한 각종 기초 데이터를 모으는 작업이다. 우선 수문조사의 1차적 목적은 홍수예보/경보를 위한 것이지만, 이외에도 여러 목적을 위해 다양한 종류의 조사를 수행한다. 수문조사는 크게 (1) 수문조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강하천의 물의 양 조사(유량조사) (2) 토양에 흡수된 형태로 존재하는 물의 양 조사(토양수 분량조사) 그리고 (3) 대기중으로 방출되는 물의 양을 측정(증발산량조사) (4) 강하천에 쌓인 토사량을 파악(유사량조사)하는 업무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된 자료를 바탕으로, 홍수 뿐만 아니라 물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갈수(비가 내리지 않아 강물이 마르는 일)에 대비하고, 국내의 수자원 활용 계획을 세우며,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수문조사는 국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의 안정적인 생활과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기본이 되는 물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노동이다.

"기기는 좋아졌어도, 실질적으로 하천 유량 조사는 백 년 전부터 그랬듯, 하천에 직접 들어가서 측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대피하거나 집에 머무를 수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희는 내린 비 양에 따라 하천의 유량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1년 주기로 전부 파악해야 하기에 오히려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예전에는 14박 15일씩 외부 출장을 나갔습니다. 하천수위가 높을 때와 낮을 때의 수치를 모두 조사해야 하는데, 큰 규모의 하천이라면 수위가 낮아지는 게 느리다보니 오래 기다려서 측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현재는 노동존중이라는 슬로건 아래 주52시간제가 법으로 도입되어, 이렇게 긴 출장은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보통 길게 나가면 4박 5일 정도 나가요. 그런데도 1년 총 출장 일수를 따져 보면 100일에서 120일에 달합니다."

유량 조사의 경우, 홍수기 이전에는 홍수기 조사를 준비하고, 홍수기 이후에는 홍수기 때 수집한 데이터들을 모아 분석하여 보고서를 작성한다. 하지만 출장은 홍수기뿐만 아니라, 저평수기(홍수기 외의 시기)에도 나가야 한다. 1년의 365일 중 100일에서 120일의 출장은 그 자체로 체력에 부담이 된다. 여름 홍수기 때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지치는 습하고 더운 날씨에 장화와 방수 작업복을 입고 일해야 한다. 게다가 하천의 물살을 버틸 수 있을 만한 무거운 장비들을 사용해야 하다보니 근골격계에도 무리가 온다. 임혁진 지부장은 자기 자신도 허리가 안 좋고, 몇년 전부터 수술까지 받아야 할 만큼 허리가 안 좋아진 분들이 아주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조사원들의 업무상 어려움에 대한 내외부의 평가 간 온도차도 있다, 현장 경험이 없는 내부에서는 출장가서 놀다오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조사원들이 앓는 근골격계 질환들이 단순히 개인의 소홀한 몸 관리 문제로 치부되는 경우도 있다.

 

▲   수문조사를 위해 강 안팎을 오간다. 조사원들은 위험한 외부환경에 늘 노출된다.

여전히 위험한 노동 환경

"예전에는 대형 화물차가 쌩쌩 오가는 교량 위에서 라바콘(안전고깔) 하나없이 3~4시 간씩 측정을 했어요, 낙동강 같은 곳에서는 작업복 하나 없이 여섯 시간, 여덟 시간씩 도로 위에 서 있기도 했고요. 밥도 못 먹어서, 중간에 빵 하나 먹으면서 일했어요. 그러다 2010년쯤 일용직 노동자 한 분이 돌아가시는 사고가 났죠. 그걸 계기로 안전장비가 확 늘어났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잃은 뒤에야 겨우 조금바 뀌는 현실. 그렇다면 그 이후로는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을까? 나아지긴 했지만, 5~6 년 전 또 다른 사망사고가 있었다. 잇따른 사고들로 인해 노동자들은 '나도 언제 사지로 내몰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마음 한 켠에 있는 데, 작년 홍수기 때 얼마나 위험할지 알 수 없는 계획되지 않은 지점에 조사를 나가라는 요구가 있었다. 노조는 이 위험한 요구를 거부하는 노동자들의 의견들을 모아, 초대원장에 대한 퇴진투쟁을 단행했다(물론 그 시기까지 축적되어 온 많은 문제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새 원장이 부임했고, 단협도 대대적으로 개정했다. 이제 노조 차원에서 단협에 기초해 주말 근무나 위험도를 예상하기 어려운 계획되지 않은 지점에서의 측정은 막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노동자 개개인들이 더 경각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얼마 전에 다시 강에서 조사를 하던 한 노동자가 물에 빠져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동지의 장례식장에서 들어보니, 진짜 다 한 번씩은 죽을뻔한 경험을 했더라고요. 이 상황에서 이렇게 해서 살았다'는 얘길 다들 했어요."
 

▲   올해 오랜 장마로 불어난 강에서 수문조사를 진행한 현장.


늘어난 사업예산에도 충원은 미숙련 비정규직으로

이렇게 위험한 작업을 거부하기 어렵게 만들면서도, 총 업무량 또한 증가시키는 원인들에는 수문조사 노동의 낮은 단가와 기재부에서 인력 충원을 위한 예산을 배치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한국의 많은 현장 노동들이 그렇듯이, 이 업무에 대한 단가 역시 굉장히 낮습니다. 단가가 낮으니 사측에서는 물량을 최대한 확보하려 합니다. 보통 1년에 한 하천에 대해 36회 조사를 나가는데, 4대강 실시 설계를 할 때는 그 두 배 가량의 조사를 나가야 했습니다."

일은 두 배가 되었으나, 필요한 인원의 일부만이 채워지는데 그나마도 비정규직으로 충원되었다. 내년에도 유량측정 업무는 더 확대될 예정인데, 이러한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다.

"통합적인 물 관리를 위해 유량측정 사업의 중요성이 커졌고, 이에 따라 환경부에서 사업 확장을 위해 예산을 증액했습니다. 사업이 확장된 만큼, 사업을 수행할 정규직 노동자들을 더 뽑아야 했고요. 그런데 기재부가 사업 예산은 증액하면서도, 충원에 필요한 예산은 할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사람은 더 필요하고, 예산은 부족한 상황에서 선택지는 비정규직 채용밖에 없었던거죠

보통 한 팀이 4명으로 꾸려지는데, 이제 내년부터는 모든 팀이 3(정규직)+1(비정규직)으로 구성됩니다. 노조에서는 당장 노동강도를 너무 높일 수는 없으니 그러한 채용 방침을 일단은 수용하지만, 2년만 그렇게 하고 그 이후에는 그럴 수 없다고 막아놓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사측에서 정규직 충원을 위해 노력하더라도, 기재부에서 또 안 된다고 하면 방법이 없어요. 이런 상황이니 점점 노동강도가 증가될까 우려가 됩니다."

비정규직 배치는 다양한 지점에서 문제가 있지만, 우선 기존 노동자들의 업무 강도를 높이고 팀원 모두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대한 문제가 된다. 특히 유량 조사의 경우에는, 현장 경험이 오래 쌓여야 불어난 강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다. 심지어 오랜 작업 경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강에 들어가서 하는 작업은 늘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 얼마 전에 일어난 사고도 사망한 노동자도 경력 10년 이상의 전문가였는데, 초심자의 경우는 오죽할까. 그러니 2년간의 짧은 계약 기간만 근무하며, 숙련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비정규직들에게는 자칫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를 주요 업무들을 맡기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대부분의 업무는 고스란히 숙련된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팀원은 4명이지만, 실질적으로는 3명이 업무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일, 직업윤리와 노동안전 사이에서

"수문조사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기초자료를 생산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직업윤리를 생각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조사를 나가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노동자 자신의 안전은 포기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기죠. 여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위험작업 거부의 중요성이 이야기되고는 있습니다만, 실제로 저희는 비가 많이 오면 '나가서 찍어야하는데, 이렇게 안 나가도 되나' 하면서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불안감은 차차 줄여나갈 수 있도록 해야겠지만요. 이렇게 노동 특성상 위험요소가 상존하는 곳에서 일해야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누군가는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스스로가 이러한 일을 선택한 만큼, 어떻게 노동환경을 개선해 나갈 것인가에 방점을 찍고 노력해나가려고 합니다."

노동환경 변화에 있어서는, 임혁진 지부장은 우선 작업 자체가 자동화될 수 있도록 기계 교체가 이루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 역시 안전한 노동 환경은 사측이 노동자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 아니라 그들이 의무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영역임을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동자가 안전을 위해 스스로 지켜야 할 수칙과 사업주가 해야 할 일에는 분명히 구분이 있음을 알고, 후자에 대해서는 사업주에게 당연히 요구해야 한다는 당부를 했다.

특정 노동에서 노동자가 마땅히 따라야 할 바가 있다면, 그 목록에는 반드시 '자신의' 생명 보전과 자기효능감, 행복의 증진 등이 반드시 포함될 것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생명이 희생되는 사회에선 그 누구도 '진정' 안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환경이 바뀌기 위해선 기술적인 면에서의 개선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 기관조차 재정예산을 이유로 노동자의 삶을 정책의 뒷전으로 밀어내는 태도다. 자기 몫의 삶을 힘껏 살아내 온 이들의 죽음을 도외시한 채 살아남은 이들에게 동일한 위험을 지게 하는 무책임한 태도 말이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사회 전체에 잘못된 사인을 준다. 사람이 중요하지만 '돈'을 생각하면 "소수의 희생" 은 어쩔 수 없고 문제 삼지도 않겠다는 사인을 말이다. 무엇을 우리 사회의 가치로 삼을 것인가. 이 질문에 노동자의 삶이 최우선이라고 답 할 수 있는 정부의 태도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유예된 권리, 인턴의 ‘노동력’은 어떻게 활용되는가 - 인턴 노동자 A씨 인터뷰 / 2020. 09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유예된 권리, 인턴의 ‘노동력’은 어떻게 활용되는가 - 인턴 노동자 A씨 인터뷰

지안 상임활동가

인턴/실습 노동 형태의 일자리는 저임금·불안정 형태의 열악한 노동을 양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인턴/실습 노동의 가장 큰 특징은 '교육'과 '경험'이라는 명목 아래 열악한 노동조건이 특수한 것으로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경험'이라는 명목으로 어떻게 '인턴'과 '실습생'들의 노동력이 활용되고 열악한 노동조건이 정당화되는지, 이 기제에 대해 비판할 필요가 있다.

인턴, 실습 노동은 각기 형태가 다른 만큼 여러 층위의 문제가 섞여 있다. 먼저 기업이 정식 채용 이전에 '인턴' 기간을 두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 있다. 기업은 고용의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신입 직원을 '교육'의 명목으로 테스트하는 기간을 갖지만, 노동자에게 그 기간은 채용 확정 여부가 걸린 대단한 압박감이 된다. 한편, 인턴 일자리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값싼 노동력을 공급받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인턴으로 채용했으나 업무 분장은 정규 직원과 다름없이 이루어져 과로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었으며, 대학교 현장실습 경험을 통해서는 방학 기간 실습을 명목으로 무임·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경험을 듣기도 했다.

A씨는 영상계열 전공을 했던 2010년대 초반부터, 대학 졸업을 한 최근까지 여러 기업의 인턴으로 근무했다. 짧게는 2~3달부터 길게는 7개월가량에 달하는 이력들은, 기업에 입사하기 위한 '스펙'이란 명목하에 저임금·불안정 노동을 감당해온 시간이다. 지난 8월 31일,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A씨를 만나 인턴 노동 당시의 경험을 들어보았다.

인턴 노동의 양산, 어떤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는가?

이번 인터뷰를 통해 주목한 지점은, 인턴 노동자가 임금/노동조건 상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일터라는 공간 안에서 관계의 불평등을 경험한다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채용에 대한 기대감과 압박감을 가지고 인턴 일자리에 지원하는 노동자들은 일차적으로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일터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관계 속에서 인턴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일터란 어떤 공간일까?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인턴을 단기간노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는 기업의 전략을 어떤 식으로 비판할 수 있을까?

-여러 인턴 일자리를 경험하셨는데, 주로 어떤 업무를 담당하셨는지 소개해주세요.
 "최근 졸업하기까지 언론사, 엔터테인먼트사 등 다양한 업계에서 짧게는 2~3달 길게는 7달 정도를 인턴으로 일해왔어요. 기업마다 담당한 업무는 달랐는데, 주로 언론사에서는 제보 접수, 사실관계 확인, 보도자료 취합 등을 통해 초벌 기사를 작성해 담당 기자에게 넘기는 일을 했어요. 다른 업계에서도 유사한 형태였는데 정직원들이 기획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제반 작업이나 자료조사, 아이디어 기획 등을 했어요. 예를 들어 최근 신간 소설을 읽고 요약 분석을 해 자료를 넘기는 식이죠."

-근데 설명하신 업무들을 보면 상당히 중요성이 있는 구체적인 업무들이네요.
"맞아요. 그런데 반대의 경우들도 있어요. 특별히 인턴을 채용해서 어떤 업무나 교육하겠다는 계획 없이 막연하게 정부 지원금이나 기업 이미지를 목적으로 인턴 공고를 내는 기업이 많아요. 그러면 출근해서도 의미 있는 업무를 하며 경험을 쌓는 게 아니라 무작정 대기하면서 업무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거죠."

-인턴이라고 하더라도, 비용이나 인적 자원이 투여되는 일인데, 이런 식의 일자리를 기업에서 왜 만든다고 생각하시나요?
"인턴은 어차피 6개월 정도 출근하는 거고, 유튜브나 SNS 관리 등 정직원에게 시키고 싶지 않은 일들을 인턴에게 시킬 수 있는 명목이 생기는 거죠. 한 인턴이 일하다가 나가면, 다음 기수에 다른 인턴이 들어와요. 기업에서는 정규직 채용에서 가산점을 준다고 하지만, 그게 그렇게 의미 있는 점수는 아니에요. 심지어 어떤 대기업에서는 인턴 월급을 회사 포인트로 지급했어요. 그 회사 인턴 채용 공고에는 애초부터 임금이 아닌 '소정의 활동료'를 지급한다고 게재되어 있었어요. 인턴을 한 명의 노동자로 생각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겠죠."

-인턴 노동이 흔히 '열정페이' '무급노동'으로 이어지는 한 가지 이유는 교육이나 경험, 경력의 일환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이런 논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노동이라는 개념이 아주 이상하게 잡혀있다고 생각해요. 반드시 어떤 결과물을 계속 내고 있어야만 '노동'이 되는 건 아니에요. 업무를 기획하거나 구상하는 단계, 사전 조사하는 단계도 충분히 노동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에 필요한 시간이나 출근해서 책상 앞에 대기하고 있는 시간도 마찬가지예요. 경중을 따졌을 때 부차적인 '잡일'로 여겨지는 업무도 그렇고요. 인턴을 하러 가면, 첫 출근 날 책상 하나가 있어요. 그럼 앉아서 종일 대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럼 아무도 저를 찾지는 않지만, 누군가 인턴이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내 긴장이 돼요. 8시간을 꼬박 그런 상태로 있다가 집에 오면 퇴근을 하자마자 곯아떨어질 정도로 긴장이 심했어요. 이렇게 업무에 대기하고 있는 시간을 노동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럼 실무 경험이나 업에 대한 이해나 역량이 향상될만한 교육을 회사 차원에서 진행한 것이 있나요? 혹은 인턴들을 담당하는 직원이 따로 있다든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실무교육이라도 진행해야 최소한 인턴 기간은 교육/경험의 기간이니 임금이 낮거나 없어도 된다는 논리가 설득력이라도 있을 거예요. 제 경험상 인턴에게 교육이라고 할 만한 시간이 10%는 될까요? 하루 대부분은 눈치 익히기,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대기하는 거로 생각해요. 반대로 실무에 곧바로 투입하는 경우들은, 그 일에 필요한 체계적인 실무교육을 사전에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아니면 일을 주고 인턴 혼자 아이디어 구상해오고 알아서 해오라는 것밖에 되지 않아요."

-대부분의 일자리는 정규 노동시간 동안 진행된 거죠? 초과 노동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대부분 10시에서 7시까지가 정해진 업무 시간이었어요. 업계마다 차이가 있는데, 엄격한 마감 기한이 있는 언론사 같은 경우는 일이 못 끝나면 초과수당이나 이런 게 따로 없더라도 집에 가긴 어렵죠. 만약 주에 금요일이 마감일이라고 치면 최소한 2~3일 정도는 야근했던 것 같아요. 또 특이하게 언론사는 인턴 일자리가 24시간 운영되었어요. 방송국 스케줄 그대로 맞춰서요. 처음에는 낮에 일하다가 경력이 차고 나서는 심야 시간으로 옮겼어요. 야간에는 당직 기자들 뿐이라 훨씬 심적 부담이 덜하거든요."

-노동강도의 측면에서 인턴 일자리는 어떤가요.
"유튜브 매니지먼트에서 일하던 선배가 있어요. 지금은 과로로 너무 부담이 커 그만두었는데, 당시에 정식 채용 후에 3개월 인턴 생활을 거쳐 시험을 보고 정규직 전환이 되는 상황이었어요. 인턴 하는 동안 너무 극심한 노동강도 때문에 힘들어했어요. 3명이 한 주에 영상 2개를 업로드 해야 하는데, 그럼 촬영/편집 및 그래픽/미팅 작업이 각각 주에 2번씩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예요. 너무 작업량이 많다 보니 매일 자정에 퇴근해서 오전 6시에 첫차를 타고 출근했다고 해요. 일하는 방식도 편집해가면 자막 색깔, 배열 하나하나 지적을 당했는데 일을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로봇처럼 입력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과로로 신체 부담도 크고 탈모도 생겨서 결국 일을 그만두었어요."

유예된 노동, 유예된 권리

기업은 계속 사람을 바꿔가면서 '인턴' 형태로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받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노동자를 고용해 그가 업무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면 그건 신입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대신에 기업은 교육 기간을 명목으로 '인턴' 기간을 두거나, 특정 제반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목적으로 인턴을 뽑아 저임금·불안정 노동력을 활용한다. 그런 과정에서 실제 인턴노동자들이 호소하는 정신적 압박감이나 일터 내 관계에서의 낮은 대우의 경험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말씀하신 내용 중에 '눈치 보였다' '심기' 같은 표현들이 눈에 띕니다. 아무래도 일터 내에서 인턴의 위치라는 게 불안정하고, 또 관계 내에서 취약하다 보니 주변의 눈치가 많이 보였나 봐요.
"인턴 일자리가 채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 속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나 압박감이 있죠. 무슨 업무가 들어오면 빨리 잘 해내야겠다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요. 설사 당장 처리하는 업무가 없더라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덜덜 떨고 있는 거예요. 점심시간이나 퇴근도 옆에서 말을 해줘야 움직일 수 있고요. 막막하고 초조한 시간이었죠."

-여러 명을 인턴으로 뽑고 있는데,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서 경쟁해야 한다든지 이런 문제는 없었나요?
"저 같은 경우는 1곳을 제외하고 대부분 한 팀에 저 혼자 인턴으로 일한 경우였어요. 그래서 경쟁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는 혼자서 압박감을 오롯이 견뎌야 하는 분위기 속에 있었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지인 중에 대기업 인턴으로 취직한 경우가 있었는데, 몇천 명이 지원해서 인적성 검사, 1차 시험, 면접을 거쳐 최종 2명을 뽑았어요. 그리고 그 두 인턴은 6주 동안 인턴 생활을 거쳐 정규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었죠. 상관들도 "너희 둘 중 한 명만 될 거야. 둘 다 안될 수도 있어. 그러니 제대로 잘해야 돼"라고 했다고 해요. 저라면 정말 하루하루 숨이 막혔을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그해에 정규직 채용은 하지 않았어요."

-인턴의 경우에는 대개 4대보험 가입을 안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일하다 다치거나 건강 문제가 생겨도 사회보험을 통해 보상받고 치료받기도 어려운데요.
"인턴은 대부분 4대 보험 가입은 되지 않고 원천징수세만 떼요. 그리고 만약에 일을 하거나 출퇴근 시 다치는 일이 생기더라도, 보험의 유무를 떠나서 회사에 말하기는 거의 어려운 구조예요. 저 역시 직접적인 경험은 없지만 만약에 다치거나 아픈 곳이 있어도 알아서 처리했을 것 같아요."

A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떻게 인턴 노동자가 '노동'과 '노동이 아닌 것'의 경계 속에서 일터의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는지 들어볼 수 있었다. 특히 이 기간을 상당한 정신적 압박감 속에서 보내고 있다는 점이 이번 인터뷰의 중요한 주제였다. 인턴 일자리를 계속해서 채우는 노동력과 이 시스템을 악용하는 기업은, 실재하는 노동을 노동이 아닌 것으로 만듦으로써 노동자의 권리 또한 유예시키고 있다. 이 유예된 권리의 경험은 이후의 일경험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런 고민의 지점들이 단기적인 일자리에서도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건설현장 관리감독의 한 축, 감리 - OO건축사무소 L씨 인터뷰 / 2020. 08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건설현장 관리감독의 한 축, 감리 - OO건축사무소 L씨 인터뷰

박기형 상임활동가

하나의 건물을 짓는 일은 무척이나 복합적이다. 설계, 시공, 준공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는 땅을 고르고 다지는 일부터 건물을 올리고 내부의 각종 설비를 설치하고 외관을 다듬는 일까지 다양한 업무가 때로는 시간 순서대로 때로는 동시에 진행된다. 이렇게 수많은 업무와 그에 투입되는 다양한 인력을 관리·감독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더욱이 한 번 건물을 지으면, 적어도 수십 년은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삶을 터전을 이루기에, 건물이 원래 설계 목적에 맞게 제대로 지어지는지, 건물을 만드는 과정과 이후 이용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안전이나 환경을 저해하지 않는지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이렇게 여러 관리·감독 업무를 수행하는 인력 중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담당자가 있다. 바로 감리다.

지난 7월 21일 경기도의 한 복지센터 건설현장에서 감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L씨를 현장 근처 카페에서 만나 감리의 노동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L씨는 건축 디자인 및 설계를 주로 하다가, 최근 감리 업무를 겸하고 있다. 감리를 하면서 느낀 소감을 나누면서, 감리 업무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건설사업 전반을 관리·감독하다

건설현장과 건물 자체의 관리·감독에 대해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감리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건설현장에서 감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감리의 주요 업무는 무엇인지, 실제 업무 수행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뤄지는 물어보았다.

"'공사감리'라 함은 건축물 및 건축설비 또는 공작물이 설계도서의 내용대로 시공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품질관리·공사관리 및 안전관리 등에 대하여 지도·감독하는 행위입니다. 감리 주요 업무를 단계별로 구분하여 설명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크게 3단계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 공사착수 단계 둘째, 공사 단계 셋째, 준공 단계입니다.

우선 공사착수 단계에서는 ①허가된 설계도서(도면, 명세서, 계산서, 조사서) 등과 각종 인허가 및 인증 관련 도서 등을 검토하고 확인합니다. 오류나 누락 또는 개선할 부분을 발췌하여 발주처와 설계자의 의견을 들어 수정, 반영하지요. ②시공자와 함께 현지조사(각종 재료원 확인, 지반 및 지질상태, 진입도로 현황, 인접도로의 교통규제 상황, 지하매설물 및 장애물 등)의 조사를 수행하여 공사계획에 반영합니다. ③시공자가 각종 공사계획서(시공, 공정, 품질, 안전, 위해방지, 환경 등)를 사전에 작성하게 하여 검토, 확인 후 향후공사의 기준을 설정합니다."

이렇듯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설계와 공사계획이 제대로 작성되었는지 검토하고, 공사가 이뤄지는 현장에 비춰볼 때, 설계사항이 적합한지 공사단계에서 주의할 사항은 무엇인지 점검한다. 이를 통해 실제 공사가 이뤄질 때,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사가 시작된 이후에는 어떤 일을 할까?

"공사단계에서의 업무는 크게 6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①시공성과 확인 및 검측 업무로서, 작업의 추진 여부를 확인하고 금일 작업실적과 사용 자재, 품질시험회수 및 성과 등의 일치 여부를 검토하고 주요 공정별, 단계별로 시공 규격 및 수량이 설계도서의 내용과 일치하는지를 검사하고 확인된 부분에 대하여 다음 공정을 착수하게 합니다. ②하도급 관리업무는 하도급업체의 실적, 규모 등의 자격 검증과 적정도급 계약비율, 노무비 안심 지급 장치 등을 확인, 검토합니다.

③사용자재의 적정성 검토업무(품질관리)로서, 사용될 주요자재의 공급원을 검토하고 자재수급 시 자재 검수를 통해 규격, 품질 등이 적정하게 조달되었는지 확인하여 불합격된 부분은 공사시공자에게 시정 통보합니다. 또한 각종 자재의 품질시험 계획에 의거 품질시험 여부와 횟수를 확인하지요. ④시공계획의 검토업무로서는 시공자로부터 공사 시방서의 기준(공사종류별, 시기별)에 의하여 시공계획서를 진행단계별로 제출받아 검토합니다. 그 내용으로는 현장조직, 세부공정, 시공일정, 주요장비, 자재동원계획 등입니다.

⑤안전관리업무로서는 공사전반에 대한 안전관리계획의 사전검토, 실시확인 및 평가, 자료의 기록유지 등 공사시공자가 사고예방을 위한 안전관리를 취하도록 합니다. 공사시공자의 안전조직 편성 및 임무, 시공계획과 연계된 안전계획, 현장 안전관리 규정, 안전관리 협의체 구성, 일일 안전교육, 정기안전점검, 안전관리비 사용 내역 확인, 재해 예방 전문지도 기관의 기술지도 여부 등을 확인 시행하도록 감독합니다. ⑥그 밖에 공정관리, 기술검토, 환경관리, 기성검토, 설계변경, 조사, 계측관리, 전 공정 업무 조정 회의, 발주처, 유관 기관 협의, 각종 교육 진행 및 참가, 민원관리, 인증업무 확인 등 실로 모든 부분의 확인, 검수, 검측, 지도, 발주처 보고 등의 업무를 하지요."

이렇듯 감리는 공사단계에서 이뤄지는 작업 과정 전반을 일일이 챙겨야 한다. 작업 각각이 절차에 맞게 이뤄졌는지, 품질 수준을 맞추고 있는지, 해당 작업에 들어갈 자재가 적합한지, 수량은 충분한지 등을 살펴본다. 기존의 설계와 법제도적 기준에 맞게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지 면밀히 점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건물의 안전과 품질을 적정 수준으로 담보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준공단계 업무를 말씀드리죠. 예비준공검사를 통해 미비한 점을 보완 시정토록 하고 준공신청 이전에 예비 및 정상상태 시운전을 완료하여 준공검사원을 제출토록 합니다. 시공자가 작성 제출한 준공도면이 실제 시공된 대로 작성되었는지의 여부를 검토·확인하고 각종 인증에 대한 본 인증서, 통신, 소방, 전기, 배수 설치 등 전문분야 준공필증을 확인한 후 공사비 최종 지불 청구서를 검토·확인하지요. 그 후 관할관청과 발주자에게 감리 완료보고서를 제출하고 사용승인서를 받습니다.

준공 이후 단계 업무로는 건축물 시운전 및 유지관리 협력이 중요합니다. 공사시공자가 당해 시설물을 관리할 자에게 인계하도록 협의하여야 하며, 당해 현장에서 특수한 재료 혹은 공법을 적용하였을 경우 시공 부위, 방법, 특성, 공사시공자 관리상의 주의점 등에 대한 기록을 인계하도록 하여 유지관리, 점검이 용이하도록 협력체계를 구축하도록 합니다."

감리원의 자격과 선정

설계·시공·준공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감리가 맡은 역할이 다양하고, 건설 산업 내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감리되기 위해선 어떤 자격이 요구되고, 어떻게 선정이 되는 걸까? 이에 대해 얘기를 들어보았다.

"감리원의 자격은 여러 각도에서 평가해 주어집니다. 교육 수준, 실무 경험 등을 고려해서 감리 역량에 등급을 매기고 있습니다. 건설공사의 감리원에 대해서, 관련 해당 학과를 전공했는지 여부, 일정 기간의 설계, 시공 경력과 국가기술자격증, 교육이수현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등급 및 역량지수를 나누죠. 초급, 중급, 고급, 특급으로 정해집니다. 이후 감리나 건설사업관리의 현장의 규모에 따라 배치됩니다.

그리고 감리 선정은 법에 근거해서 이뤄지는데, 크게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됩니다. 건축사법에 의한 감리는 (바닥면적의 합계가 5천 제곱미터 이상인 건축공사/연속된 5개 층(지하층을 포함한다) 이상으로서 바닥면적의 합계가 3천 제곱미터 이상인 건축공사/아파트 건축공사/준다중이용 건축물 건축공사)로 일반경쟁입찰방식으로 선정됩니다. 건설기술진흥법에 의한 건설사업관리용역(200억 원 이상 건설공사)은 기술용역 적격성 심사(보유 건설기술인 역량/신용도/실적평가)와 가격입찰로 선정됩니다."

감리 활동의 증진을 위해

한국의 건설 산업에서 안전문제는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다.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각종 토목·건축현장의 건물 자체의 품질과 안전뿐만 아니라, 건설현장에서의 산업재해, 중대재해까지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빈번히 벌어졌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데 있어서 현장에서의 관리·감독 업무를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때 감리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무엇이 중요할지 의견을 구했다.

"감리는 설계도서 검토, 시방서에 기술된 각종 내용의 이해, 수많은 자재의 품질과 시험성표 해독능력, 각 공정별 전문기술의 폭넓은 기술능력, 공정 간 조정회의 등 실로 수많은 경험과 지식, 리더쉽까지도 필요합니다. 초급이나 중급정도의 경력자는 수행하기가 역부족일 것입니다. 규모와 관계없이 10년 이상의 경력자를 상주감리로 배치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지역 업체나 중소 건설회사는 이 수많은 건설과정 업무와 관리를 할 인원을 보유할 수 없는 실정이고 기술능력 또한 현저히 떨어집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시공 기술자의 배치를 지원하거나 품질, 안전, 환경, 과 시공을 분리 발주하는 등 다양한 정책이 필요합니다."

최근 국토부에서는 산재사망사고가 다발하는 소규모 건설현장의 안전을 증진하기 위해서, 감리를 통한 현장 관리·감독을 강화하려는 정책방침을 내걸었다. 현재 건설현장(철거현장에도 일정규모 이상(3층 또는 연면적 500㎡ 이상)에서 허가제로 전환하고 감리를 도입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건설업면허 없이 공사할 수 있는 소규모 공사는 현장관리인이 안전 관련 사항을 감리에게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위험요인 확인 시 시공자에게 시정 요청, 정도에 따라 공사 중지, 주요시설 개선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였다(2018년 건축법 개정). 나아가 위험 상황 발생 시 감리의 공사중지 권한 법제화와 함께 이로 인한 손해책임을 부과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2018년 건설기술진흥법 개정). 또한 감리보고서에 안전관리이행상황을 기입토록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감리가 건설사업의 A부터 Z까지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건설 노동자의 안전까지 이들이 챙길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이다. 과중한 업무 부담으로 관리·감독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기도 하는 문제를 먼저 개선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지난 잠실에서의 철거현장 붕괴사고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감리 활동 자체가 유명무실하거나 시공사의 요구에 좌우되는 상황이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조건 하에서 법제도상의 의무만 강화하는 것이 감리 몇몇의 개인적 책임으로만 전가하는 부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감리는 발주처(공공기관, 감독관)의 단순한 행정 대행자나 자신들의 책임을 전가하는 하수인이 아닙니다. 책임과 권한을 정확히 주어 소신 있게 감리에 임할 수 있게 감독(관료)의 권한을 축소시켜야하며, 공공기관의 불공정한 계약 행위도 근절되어야 합니다. 아니면 차라리 공무원들이 직접 상주하여 감리를 하거나, 별도의 공무직처럼 운영하는 등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일련의 정책적 변화와 관련해, L씨는 안전관리를 위한 체계 구축의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동시에, 감리원이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선, 감리 업무의 공공성 강화 및 독립성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 산업에서 제3자로서 관리·감독의 중요한 한 축인 감리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역량강화 및 인력관리, 실질적 업무수행 보장 등의 개선이 이뤄지길 바란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활동지원사 노동자의 쉴 권리 보장을 위해 / 2020.07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활동지원사 노동자의 쉴 권리 보장을 위해 

-전덕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전국활동지원사지부 사무국장 인터뷰 

 

 

김가을길 / 상임활동가 

 

"휴게시간은 근로기준법에 의해 4시간에 30분, 8시간에 1시간씩 부여하도록 돼 있잖아요. 휴게 시간의 부여 시기를 변경할 수 있게 해주는 게 특례업종이었어요. 국가인권위 권고사항으로 휴게시간을 유연하게 부여한다거나 하는 방안이 나왔는데, 이런 정책들이 7월 1일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 이전의 상황이었죠. 

활동지원사들의 쉴 권리가 특례업종 제외 이전에도 없었던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사실상 활동지원사들은 그간 제대로 된 휴게시간을 부여받지 못하고 일했어요. 근로기준법상 휴게시간의 권리가 있음에도 부여받지 못하는 불법적 상황이 근 10년 가까이 계속되어왔던 거예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벌써 1년이 넘었지만, 활동지원사 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휴게시간이 없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전국활동지원사지부 전덕규 사무국장을 낙원상가 골목 근처의 활동지원사노조 사무실에서 만나 활동지원사 노동자의 쉴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복지사업 특례업종 제외 후 변화

언론에서는 최중증장애인 사고방지 등을 앞세워 활동지원사의 끊임없는 서비스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그럼에도 쉼의 권리는 노동자 건강권의 측면에서 너무나 필요한데, 개정된 맥락에는 또 무엇이 있었을까? 개정 이후 휴게시간이 생겼다고 볼 수 있는가?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이 2018년 3월 20일에 개정되었고 7월 1일 이후 시행입니다. 여기서 근로기준법상 특례업종이라는 게 뭔지가 중요한데, 특례업종이 될 경우 연장근무가 제한 없이 가능했어요. 그때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주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고 특례업종을 축소하자는 논의가 진행됐는데, 제외되는 특례업종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았어요.

화물 운송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으로 교통사고가 난다거나, 집배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한다던가. 그런 일들이 계속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요구에 따라 특례업종이 축소됐던 겁니다. 많은 활동지원사들도 이용자 필요에 따라 장시간 노동을 했고요.

개정 후 사회복지사업이 특례업종에서 빠지면서, 휴게시간을 4시간에 30분, 8시간에 1시간 부여하게끔 변화하게 되었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활동지원사들에게 휴게시간의 권리라는 게 기존에 없던 게 아니라는 거예요. 사실상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있는 상황이 제도 초기부터 있었고,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활동지원사 휴게시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거지 '휴게시간이 생겼다'와 같은 표현은 맞지 않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개정 이전 '휴게시간을 유연하게 부여하도록 한다'라는 등의 대안을 내놓았다. 특례업종 제외에 관해 활동지원사 노동자의 고용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보건복지부나 기타 정부 부처, 지자체 등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사항은 돌봄서비스의 경우 휴게시간을 유연하게 부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사실 그게 기존에 없는 걸 마련한 게 아니라 원래도 법률적으로 유연하게 하도록 돼 있는데 새로운 방법인 것처럼 또 권고한 것뿐이에요. 그렇다면 국가인권위의 권고는 유효한 권고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방법은 조금씩 다를 수 있어도 법이 기본적인 테두리를 마련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근로기준법 개정 과정에서 특례업종 제외에 관해 반대했어요. 보건복지부는 지금까지도 노동자 휴게시간 권리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을 앞둔 2018년 6월에 '휴게시간 지원 방안'이라는 대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열어보니 사실상 공백을 가족돌봄으로 대체하고 한 시간 정도 되는 단시간 대체 인력을 5000원 정도 더 주는 방식으로 파견하거나 퇴근할 때 맞춰 8시간에 할당되는 휴게시간 1시간을 당겨서 교대 스케줄을 짜는 정도였죠. 실제로 그렇게 운영이 되지는 않습니다. 일하는 활동지원사 입장에서는 근무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보건복지부에서 국가기관과 실질적 고용주로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정부에서 제대로 조치하지 않으니, 개정된 근로기준법상의 특례업종 제외의 의미가 잘 실행되기는 어려웠을 것 같았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물었다.

"사회적 논의로 인해 근로시간이 축소되고 특례업종이 줄어든 것은 노동자의 권리 보장의 측면에서는 진일보 한 것이죠. 그렇다면 보건복지부에서도 활동지원사에게 휴게시간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그런 건 전혀 안 되고 있고요. 일단 근로기준법상 휴게시간이라는 것은 사용자의 지휘/감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잖아요. 하지만 활동지원사들은 그렇게 쉬는 것이 아니라 단말기를 종료해 근무기록을 삭제하는 등의 방법으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예요."

보건복지부에서 대책이라고 내놓았던 위의 지원방안을 통해 휴게시간을 준 이용자는 다섯 손가락에 꼽았다고 한다. 그만큼 실효성이 없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때 보건복지부는 계도기간이라 이용자들이 많이 쓰지 않았다는 핑계를 댔지만, 계도기간 동안 보건복지부나 고용노동부가 본 목적을 위한 제대로 된 시도를 한 적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2018년 12월이 되어 계도기간이 지나자 보건복지부에서는 다시 또 같은 지원방안(단시간 대체 인력 고용)을 지자체에 공문으로 배포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벌써 2020년이 절반이 가까이 됐는데, 지난 1년간 이용자 수가 어땠냐 하면, 10명도 안 되는 처참한 실정입니다. 지금 보건복지부는 그것이 실패한 정책임을 알지만, 대책을 내놓지도 못하고 있어요. 

아예 휴게시간을 부여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아까 말했듯 일부 기관에서는 단말기만 종료하게 시킵니다. 단말기만 종료하게 되면 근무기록을 삭제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휴게시간 부여가 아닌 임금체불이 되죠. 그러니 지자체들 상황이 우스워요. 휴게시간을 부여하는 지자체는 사실상 단말기를 종료하고 있기에, 실질적인 휴게시간도 아닌 데다가, 임금체불까지 해서 이중 근로기준법 위반이겠죠. 그러나 휴게시간을 부여하지 않는 지자체는 휴게시간에 관련한 법률 위반이 됩니다. 아무 대책이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최소한 일한 것에 대한 임금이라도 받게끔 설명하고 있습니다."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유

그는 휴게시간을 쉴 수 없으니 돈으로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쉼의 권리마저도 돈 문제로 치환시키는 것이기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당장 조건을 바꿀 수 없다면, 휴게시간 저축제 등 온전한 휴게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운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국회에서도 노조에서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되지는 않았다. 휴게시간인데 쉴 수 없는 구체적인 사유는 무엇일까. 

"거의 모든 활동지원사는 1:1로 파견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일하는 동안 다른 사람이 쉬는 방식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근육장애인이나 최중증장애인의 경우 특성상 끊김 없는 서비스를 원하죠. 또 장애인 이용자가 사회활동을 할 경우 대중교통 안에 있다면 휴게시간을 가질 방법도 공간도 없는 등의 문제가 있죠. 

활동지원사가 실질적으로 휴게시간을 쓸 수 있는가의 여부는 제도적 조건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바우처 제도, 1:1 방식으로 파견하는 방식 안에서는 이를 활용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휴게시간은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함으로 노동자 건강권에 있어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저희는 휴게시간 저축제를 요구하는 거예요. 휴게시간 저축제는 쉬지 못한 휴게시간을 유급휴가로 계산해 활용하는 방식으로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겠죠."

언론에서는 근로기준법 이전의 특례업종으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여러 차례 제기됐는데,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인터뷰 기사는 개별적인 의견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장애인 단체 같은 경우 근육장애인이나 최중증장애인 생존권연대 같은 데서 목소리를 많이 냈죠. 근육장애인 중에서는 활동지원사가 10분 정도 잠시 퇴근하고 교대하는 사이에 호흡기가 떨어져서 사망한 사례도 있었고, 그러다 보니 절박함이 있으셔서 끊김 없는 서비스를 필요로 하십니다. 

그런데 장애인은 활동지원사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용자예요. 그러면서 한 가지 더 주장하셨던 게 과거의 특례업종으로 돌아가자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아까 제가 말씀드렸듯 기존의 특례업종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휴게시간을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잖아요. 돌아가는 것이 해법일 수는 없습니다.

또 특례업종을 축소하는 것 자체도 노동계의 성과인데 이걸 다시 돌아가자고 하는 건 퇴보시키자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최중증장애인 생존권연대 토론회 기사 내용에서 변호사가 지적하는 걸 보면, 2018년 7월 1일 시행 이전의 근로기준법이 말하는 특례업종과 시행 이후에서 규정하는 특례업종의 성격이 또 다르다는 건데요. 

가령 지금은 '연속적으로 근무를 하면 얼마만큼의 휴식이 주어져야 한다' 이런 이야기도 한다는 거죠. 그런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특례업종에 지금의 사회복지사, 활동지원사가 들어간다고 해도 그분들이(이용자) 원하는 방향으로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아마 그렇게 세세하게 보게 되면 (기존처럼 특례업종으로 포함시켰을 때) 원하는 상과는 다를 거라고 보고요."

활동지원사의 쉴 권리 보장을 위한 과제

휴게시간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 활동지원사 노동자들의 노동안전보건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이 있는지 들어보았다. 

"휴게시간이 있는 근무를 상상해본 적이 없어서 영향이 무엇일까 명확하게 말하기는 힘듭니다. 산재에 관해서는 근골격계 질환이 많은데, 이용자가 가벼워도 60kg, 많이 나갈 경우 100kg가량 되기 때문에 그들을 한 사람이 들어야 하는 현 제도에서는 근골격계 질환의 위험이 아주 큽니다. 산안법상에는 10kg만 넘어도 두 명이 들게끔 권고했는데 그런 주장은 받아들여진 적이 없죠. 산재 인정률이 낮다 보니 대체로 산재 신청도 어렵고요. 이용자를 들어 옮기고 하는 업무가 많아 허리나 어깨에 영향이 크죠. 

조합원 중 직업병으로 산재 신청을 해서 인정받은 경우는 한 건 있었습니다. 요즘은 코로나19가 주요 이슈인데, 활동지원사 노동자들은 이용자와 밀접하게 자주 대면하는 것에 비해 마스크 지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근무 중인데 코로나 발생 이후로 지금까지 받은 마스크 수가 총 여섯 장입니다. 장애인이 보조구를 충분히 지급받지 못하는 문제가 활동지원사의 노동조건과도 충분히 연결돼 있습니다. 휠체어를 예로 들자면, 장애인들에게는 이동수단을 보장하는 기기겠지만 활동지원사 노동자에게는 노동을 보조해주는 기기라서요."

전덕규 사무국장은 활동지원사들의 온전한 쉴 권리를 위해 앞으로도 권리보호와 요구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활동지원사에게 실질적인 쉼의 권리가 주어질 때까지 함께 연대하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사회복지사는 왜 착하고 희생적이어야 하나요? / 2020.06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사회복지사는 왜 착하고 희생적이어야 하나요?

 

 

정경희 / 선전위원 

 

"뭔데? 지는 얼마나 잘났다고, 처음부터 다 알았나? 환자 앞에서 우릴 그렇게 무안 주면, 지가 올라가는가 보지?" 

실습 일과를 마친 후 동기들과 수다가 없었다면 버티기 어려웠을 시절. 젊은 시절이 좋았어도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빛바랜 시간들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사회복지학과 실습을 마치고 지금은 휴학 중인 소나기님을 지난달 13일 안양역 근처 카페에서 만나 그가 겪은 생생한 실습 이야기를 들었다.


장애인 복지관에서 실습을 시작한 이유 
 

사회복지학과 실습은 보통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 때 많이 하는데, 사회복지사 자격증에 필요한 160시간, 4주를 기본으로 한다. 
대략 3~4월에 실습하고 싶은 곳을 서너 군데 정해두고 자기소개서와 프로파일을 작성하고, 그 후엔 4월부터 6월 사이에 사회복지 실습이 인정되는 각 기관이나 단체에서 실습생 모집 공고가 올라오면 지원한다. 

소나기님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실습을 했다. 사회복지사가 되려는 이유와 장애인복지관을 실습 장소로 선택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봉사활동 중에 누군가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우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때 장애아동 방과 후 프로그램에 자원봉사자로 활동을 했었는데요. 가끔이었지만 공원에 산책을 나갈 때면 먼저 와있던 부모들은 장애 아동을 보고 같이 못 놀게 하거나 비장애 아동을 데리고 공원을 나가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지역사회에서 장애아동들이 받는 편견과 차별들이 하나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스며들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했고, 실습해 장애인 복지 분야를 조금 더 알아보고 싶었어요."

"복지관의 직원 출근 시간은 8시 50분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 실습생은 8시 40분부터 오후 6시까지였어요. 그런데 오후 5시 50분경 팀장님과 마무리 모임하면, 정시에 마치는 날이 거의 없었어요. 저녁 7~8시까지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일과의 시작과 마무리는 팀장님 조회에요. 팀장님께서 실습생이 다 왔는지 확인 후 오늘, 내일의 업무를 설명해주십니다. 

그다음엔 사회복지 사무실로 올라가 한가운데 일자로 쭉 서서 매일 다른 멘트로 아침저녁 인사를 해요. 예를 들면, '안녕하십니까. OOO 실습생 인사드리겠습니다' 구호를 외친 후 '활기찬 O요일 되십시오'라 하고, 끝날 때는 아침과 똑같이 구호를 외치고 '오늘도 열심히 배웠습니다'라고 합니다. 

매일 다른 멘트를 생각해야 했고, 얼마나 창의적이고도 인상적인 인사를 하는지 항상 팀장님이 확인하셨기 때문에 실습생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어요. 인사 시간만 다가오면 다들 불만이 많았지만, 전통이었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실습 2주 동안은 방과 후 프로그램을 돕는 역할을 했어요. 프로그램 특성상 점심 보조를 했는데, 그동안 점심을 빨리 먹어야 해서 먹는 둥 마는 둥 할 수밖에 없었죠."

보통 4주간 실습 중 첫 주는 대부분 교육, 2주 차부터는 기관마다 다른데 실습 간 복지관에서는 해마다 방학프로그램 부담임으로 배치해왔다고 한다. 

마지막 주는 관장, 팀장 면담이나 1주 차 교육을 계속 이어갔다. 실습프로그램을 마치고 어떠했는지 소회를 물었는데 시작 전부터 수퍼바이저의 고정관념과 편견 때문에, 세 번의 심리적 지진을 느꼈다고 한다.

"실습 일주일 전 실습 기관의 담당 수퍼바이저와 만나서, 실습 일정이나 필요한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는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어요. 실습생 10명 중 여자가 7명 나머지는 남자였어요. 

실습 일정에는 1박 2일의 대규모 캠프가 있었는데, 실습생 2명은 복지관에 남아야 하고, 남자는 무조건 캠프를 가야 한다고 했어요. 선택권 없이 여자 실습생만 남을 수 있다는 말이 충격적이었어요. 그러나 첫 만남이라 어떤 말씀도 드릴 수 없었죠."

"반팔 티셔츠는 되도록 입지 말고 전문직처럼 보이게 남자는 카라티, 여자는 블라우스를 입으라며, 옷차림에 대해 한 명씩 일일이 지적하는 것을 보고 두 번째 지진을 느꼈어요. 그리고 자기소개서를 보시더니 갑자기 제 이름을 부르셨어요. OOO! 학생회 했네! 콕 집어 질문 없냐고 해서 복장규제와 캠프참여를 정함에 남녀차별에 대해 질문했고, 무거운 것은 남자가 들어야 한다는 고정된 성 역할을 이해시키려고 계속 말씀하시더라고요. 

말이 길어져서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는데, 마지막에 학생회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제가 이런 질문 할 것을 예상했고, 이해시키기 위해 일부러 지목했다 하시더군요. '실습 그만두겠는데?'라고도 하셨어요. 제 마음에는 세 번째로 지진이 일었어요." 

"항상 수퍼바이저 손바닥 위에 있는 느낌" 

시작 전부터 받은 충격으로 실습을 꼭 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실제 진행한 실습내용이 본인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물었다.

"실습 기간 동안 이용인에게 다가가는 방법, 복지관의 역할 등 정말 많은 사회복지 지식들을 배웠어요. 하지만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는 팀별 과제라든가,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해보는 과정들이 없었고, 실습생은 활동에 참여하면서 사회복지업무를 어깨너머 봐야 했어요. 이미 짜인 프로그램에 실습생이 투입돼서 보조하는 역할이었기에 배웠다기보다는 봉사활동을 한 느낌이었어요."

일반적으로 실습비를 개인이 실습 기관에 8~10만 원을 직접 지불하지만, 실습 기관에 따라 예외적으로 실습비를 받는 경우도 있다. 당시 실습비의 대부분은 식사비나 회식비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기관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기관에선 실습생에게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한편, 실습 평가점수는 실습 기관의 수퍼바이저에 의해 좌우된다고 한다. 그래서 수퍼바이저의 권력은 실습생들에게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수퍼바이저가 실습생들의 개인 평가점수를 학교에 제출하게 돼 있어요. 실습 도중에 실수했거나 OT에서 했던 질문 같은 것으로 밉보이면 수퍼바이저는 맘대로 점수를 깎으면 그만이잖아요. 

그런데 실습생에게는 '이 점수가 취업까지 연결된다',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은 미래에 네게 돌아간다'라는 메시지가 강해요. 그래서 실습생은 항상 수퍼바이저의 손바닥 위에 있어야만 했어요. 굴욕적인 일을 겪어도 참아야 했고, 회식 자리는 실습의 연장이 돼서 항상 필수로 참석해야 했어요."

이어서 들려준 1박 2일 캠프에서 이야기는 '실습생을 부려먹었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진행, 고깃집에서 서빙, 수영장 안전요원, 늦은 시간까지 회식이 비용을 지불하고 경험하는 실습의 과정으로 보기에는 부적절해 보였다.

"매년 캠프를 가지만 이번에는 자원봉사자 인원이 부족했어요. 호텔 전체를 빌려 행사를 진행했는데, 각 부서 팀장님들과 실습생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만 했어요. 가기 전에 각각의 프로그램에 실습생을 미리 한 명씩 배치했는데, 실습생은 프로그램 준비 과정을 모르다 보니까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었어요. 

사전 정보도 없이 시작된 터라 다들 우왕좌왕했어요. 낮에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한 번도 안 해본 것을 설명해야 했고, 남자실습생은 워터슬라이드 안전요원을 하다가 다치기도 했어요. 그러고 나서 저녁 식사 시간에는 일손이 부족하다고 수영장 옆에서 진행하다 젖은 옷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 식당으로 가야 했어요. 식사 준비를 돕고 서빙도 해야 했어요. 

같은 차를 타고 왔던 이용인이 불판을 바꾸고 자리를 안내하는 저를 보곤 실습생이 이런 것도 하냐고 묻기도 하셨어요. 저녁 프로그램이 끝난 후엔 평가회의 겸 회식을 한다고 해서 완전 긴장을 했어요."
 

육체적 힘듦보다 회식에서 겪은 바가 훨씬 굴욕적이었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평가 회의가 끝난 후 회식을 이어가던 도중에 국장님께서 갑자기 '너희를 우리 기관에 붙여 줄 거로 생각하느냐. 여기 들어오기 힘들다. 아예 너희의 희망을 자르는 거다' 하시는 거예요. 그러고는 갑자기 '첫 잔은 원샷을 해야 된다'며 건배 제의를 했어요. 저는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편이라 무척 당황했죠. 

그때 누군가 '국장님께서 하시면 저희도 할게요'라고 용기 있게 말했고, 국장님은 보란 듯이 술잔을 비워버리셨어요. 저는 원샷이 힘들어 반만 마셨는데, 옆에 있던 친구들은 눈이 빨개지면서까지 다 마시는 거예요. '술을 이렇게 열심히 마셔야 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식 말미에 국장님께서 '술잔을 비우라고 한 것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대처나 적응능력을 본 거다'라고 하셨어요. 캠프 와서 실습 시간 160시간을 초과했는데, 이런 굴욕적인 상황을 겪어야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어요. 복지관에 취직시켜준다고 해도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복지사에 대한 전망을 갖고 실습을 나갔는데, 실망스러웠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실질적인 실습이 되려면 개선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해요. 복지기관들이 보수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기도 해요. 예를 들어, 탈색모거나 밝은 염색을 한 사회복지사에 대해 컴플레인이 들어오니 가급적이면 실습생도 검은색의 단정한 머리를 해야 하더라고요. 

주변에 수평적 조직문화를 가진 복지관에서 실습한 사례가 있는데, 팀장, 부장님의 이름을 부르며 장난도 치고, 저희처럼 이미 기획된 캠프 프로그램에 자원봉사활동 하는 게 아니라 사회복지사와 함께 캠프를 기획하여 프로그램을 구축해 나가는 경험했다고 합니다. 

애초에 복지관의 조직체계에서부터 차이가 있었더라고요. 말단 실습생의 경험으로는 '모든 게 내가 맞다'라고 생각한 것부터가 수직적 조직문화의 시작이 아닐까 해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태도가 수평적 조직문화의 시작이라 생각해요."

사회복지사는 왜 착하고, 희생해야 하지?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한국 사회에서 사회복지기관이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에 필요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재정이 취약할수록 일선 근무자의 근무조건·환경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업무의 특성상 감정노동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소진이 많을 텐데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도 들어보았다.

"복지관 프로그램은 대부분 후원금으로 진행하는데요. 사회복지사가 현장에 많이 나간다고는 하지만, 후원금을 따와야 하기에 앉아서 서류 작성이 더 많더라고요. 보통 계획안, 보고서, 결과서를 작성하는데, 규모가 작고 재원이 적은 복지관의 경우는 더욱 예산을 많이 따와야 해서 서류도 많이 필요해요. 

유니세프,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처럼 위탁재단이나 법인이 클수록 후원금이 많아요. 그래서 임금을 받을 때 재단에서 특별수당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아무래도 재원이 많을수록 할 수 있는 업무 범위도 넓어지고 업무수행도 좀 더 안정적이에요. 하지만 사회복지사가 후원금 납부나 종교를 강요당하는 사례가 있기도 해요. 사실 사회복지사는 업무 강도에 비해 처우가 낮다 보니 많은 분이 이직합니다. 

이 진로에 큰 목표를 가지고 왔지만, 복지관의 비리나 사회복지 현실을 접하고 나니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복지를 하면서 부당함을 당하기보다는 오히려 부당함을 헤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현실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야 할지 막연해져서 고민도 많이 되더라고요."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복지서비스를 제공만 하지 받지는 못하고 있어요. 관장, 국장처럼 높은 직급과 달리, 입사 초년생은 고용조차 불안정하잖아요. 주변에 졸업하고 취직한 지 1~2년 된 선배님들의 퇴직 사례를 종종 들어요. 업무 강도가 지나치게 높거나 직장 내 대인관계에서 생긴 문제로 그만두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서비스가 대중들에겐 '착함'이라는 프레임을 갖고 있잖아요. 그러다니 감정 소모가 있어도 무시되는 거 같아요. 이를 관리해줄 제도도 없고요. 사회복지사들도 다른 일반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데, '왜 착해야만 하고, 봉사나 희생을 강요당해야 하지?' 의문이 들어요."

소나기님은 실습의 과정을 거치면서 뭘 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수평적 조직문화에 기반한 노동환경, 사회복지환경을 만들어보고자 장기적인 진로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졸업 후 사회복지 분야의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재단이나 법인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소나기님이 바라는 사회복지공동체가 실현되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뉴미디어 산업은 MCU 히어로처럼 멋지기만 할까? - 자유로운만큼 불안정한 뉴미디어 산업의 과제들 / 2020.05

뉴미디어 산업은 MCU 히어로처럼 멋지기만 할까?

- 자유로운만큼 불안정한 뉴미디어 산업의 과제들

박기형 상임활동가

 

지난 4월호에서는 온라인 방송 산업의 구조와 MCN의 역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번 5월호에서는 파트너쉽 매니저와 크리에이터들이 노동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소개하고, 신산업으로 주목받는 온라인 방송 산업이 제대로 된 산업으로 자리 잡고 발전하기 위해선 어떤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하는지 검토해보고자 한다.

[관련기사] 전략분석부터 발굴까지... 크리에이터 매니저의 일과 http://omn.kr/1nd39

뉴미디어의 특성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
 

뉴미디어 콘텐츠는 크리에이터 각각의 특성이 자유롭게 드러난다. 그렇기에 MCN이나 광고회사 등이 콘텐츠 생산 자체에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뉴미디어의 강점이 사라질 수 있다. 크리에이터의 색깔이 사라져서, 콘텐츠의 독특성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MCN에서는 기본적으로 크리에이터들의 창작을 자율성에 맡기고, 도움을 통해 그들이 강점을 살릴 수 있을 때나, 도움을 통해 더 높은 퀄리티의 콘텐츠가 제작될 것으로 기대될 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4월호에 살펴봤던 기획과 모니터링이었으며, 그 외에도 기술적, 인프라적으로도 지원한다. 기획에 따라 평소와 달리, 외부촬영을 하게 될 경우, 장소섭외를 도와주거나, 외부촬영 장비를 제공하기도 한다. 특별한 컨셉의 촬영 시 MCN이 보유하고 있는 스튜디오를 빌려주기도 한다. 이러한 지원 서비스들이 크리에이터들에게 제공될 때에는 파트너쉽 매니저가 중간에서 소통 역할을 담당한다.

이렇듯 파트너쉽 매니저가 컨설팅과 기획 등을 주된 업무로 한다고 해도, 늘 중심에 놓인 것은 다수의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이다. 즉 업무 전반에서 사람을 상대하는 게 빠질 수가 없다. 이는 크리에이터들도 마찬가지다. 뉴미디어의 특성 중 상호작용이 빠르고 활발하다는 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면 부정적인 피드백도 빠르고 자극적으로 전달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연예인들처럼 크리에이터들도 온갖 악플과 위협 등에 노출되어요. 그러다 보니 크리에이터들도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게 되죠. 소통 과정 자체가 늘 수반되다 보니 피할 수도 없죠. 여러 방식으로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죠. 그럼에도 받는 스트레스가 있죠. 이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고 나누게 되는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담당 매니저예요. 매니저가 직접적으로 공격을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크리에이터와 협업을 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크리에이터가 악플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게 되죠. 이는 상당히 힘든 일이에요. 매니저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 바깥의 일이지만, 업무에 상당한 부담을 주죠. 크리에이터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최근 MCN에서도 대면 업무에서 발생하는 갈등 상황이나 악플 등에 대한 대처 등 파트너쉽 매니저들의 감정노동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를 분명히 인지하고서 대책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한다.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심리치유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감정노동과 관련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담 지원도 도입했다. 이러한 사후적 대처뿐만 아니라, 매니저 등 직원의 감정노동에 대한 사전적 예방 조치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  뉴미디어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다양성이 실현되는 매체가 될 수 있을까? ⓒ pixabay

 


뉴미디어의 발전, 특성에 맞는 사회적 보장이 뒷받침되어야

"악플 등으로 인한 감정노동 외에 또 다른 어려움은 모든 게 자유로운 만큼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아서 생기는 어려움도 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콘텐츠를 내가 만드는 것이다 보니 규칙도 없고 정해진 시간도 없어요. 그런데 시청자들의 요청과 피드백은 끊이질 않죠. 그러다 보니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어요. 기획, 출연, 촬영, 편집을 다 하는 상황에서 1일 1업로드, 1주일 1업로드를 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모든 콘텐츠를 언제까지고 혼자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편집자와 섬네일러가 있다. 크리에이터들은 이들을 프리랜서 등의 형태로 고용한다. 이렇듯 뉴미디어에서도 간단하고 단순한 형태의 분업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뉴미디어 산업 자체가 아직 초기 단계라는 점이다. 업계 표준이나 법적 규정이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편집자들과 섬네일러들을 고용할 때 여러 사건·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하든, 혼자서 만들든, 열심히 콘텐츠를 만들어도 반드시 고소득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에요. 한 달에 수천만 원씩 버는 유튜버들이 주목받으면서 많은 사람이 유명 크리에이터를 꿈꾸게 되었죠. 하지만 마치 자영업처럼 내가 열심히 일하는 거랑 대중이 나를 선택하는 건 별개의 문제에요. 그래서 크리에이터들의 주된 고충이 규정되지 않는 노동시간과 소득 불안정성이에요. 뉴미디어에서 인기가 급상승하는 것과 급하락하는 것은 순식간인데, 이를 예측할 수도 없고, 명확한 이유를 알기도 힘들죠. 이를 직업으로 삼게 되면, 누구라도 큰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관련 업계 종사자로서 크리에이터를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안정적으로 창작을 이어나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나도 저렇게 성공하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 삶이 보장되는 산업이 절대 아니니까요."

필자가 상상해보건대,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세상은 참으로 흥미롭고 재밌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상상이 실현되기 위해선 아무런 분석이나 대책 없이 장려할 것만이 아니라, 누구나 안심하고 이 산업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관련 인프라를 탄탄하게 만드는 일부터 이뤄져야 한다. 더불어 안정적인 노동환경을 만드는 일도 이뤄져야 한다.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에는 새로운 노동 형태가 등장하고 안정화되는 과정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사회정책을 시행하고자 한다면, 뉴미디어 산업의 자유로운 만큼 불안정하기도 한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   급속도로 변하는 미디어 환경은 서로 다른 삶을 연결시켜준다. 이러한 관계망을 바탕으로 한 뉴미디어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 사회적으로는 무엇이 뒷받침 되어야 할까? ⓒ LIUC.it


그럼에도 뉴미디어와 함께하고 싶은 이유

그렇다면 H씨가 파트너쉽 매니저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뉴미디어 산업이 갖는 매력이 분명히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4월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뉴미디어는 레거시 미디어와 달리, 쌍방향 소통이 내재해있다. 기존의 창작활동들은 일방향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아무리 소통하려고 해도, 사후적이거나 제한적인 영향만을 행사할 뿐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H씨는 뉴미디어 산업은 기획부터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하고 빠른 게 강점이라고 보았다. 그로 인해 때론 영상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누구나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얘기했다. 문턱이 낮아지면서,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되어 다양한 콘텐츠를 더 쉽게 만들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저에게는 큰 매력이었어요. 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누구나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각자의 독특성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점에서 뉴미디어 산업은 혁신적인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죠.

전문가가 아니어도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미디어 산업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영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고, 거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의견을 덧붙이고, 나아가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이 계속 자리를 바꿀 수 있는 상호연쇄 작용이 빠르고 자유롭게 일어나는 게 너무 좋았어요. 거기서 함께 웃고 떠드는 게 즐거웠죠.

이 즐거움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었고, 뉴미디어의 세계를 더 자세히 알고, 그 세계가 더 발전하는 데 기여하고 싶었어요. 매니저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크리에이터로도 활동하는 바람도 있어요. 이미 때때로 취미와 일의 경계, 매니저와 크리에이터의 경계가 흐려질 때도 종종 있고요(웃음)."
 

H씨는 뉴미디어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이유에 대해서 사회 전반의 변화에 뉴미디어의 특성이 잘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점점 '공감'과 '소통' 그리고 '자기표현'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게 된 것 같아요. 사회에서 이런 가치들을 잘 구현할 수 있는 매체를 찾게 된 것이죠. 뉴미디어야말로 콘텐츠의 다양성과 독특성뿐만 아니라, 제작과정 자체가 적합한 매체 같아요.

이런 생산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크리에이터의 인간적인 매력과 자기만의 재능이 각자의 콘텐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죠. 이로 인해 크리에이터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 거죠. 그래서 매니지먼트의 차원에서 본다면, 크리에이터 각자가 가진 장점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좋은 매니지먼트라고 생각해요."
  
물론 뉴미디어를 이윤을 내려는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면 트렌드를 쫓고 어떻게 조회 수와 구독자를 늘릴지 고민할 수 있다. 그 연장선에서 유명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이들이 느는 것만큼, 레거시 미디어들이 뉴미디어 산업에 투자하거나 자회사 등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H씨는 앞으로도 뉴미디어가 뉴미디어답기를 바라고, 자신도 그에 기여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뉴미디어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우리 생활의 중심에 들어왔죠. 산업이 발전하면서, 여러 문제도 수반되고, 이 매체만의 특성도 약해질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뉴미디어 세계에서 우리 모두가 크리에이터로서 자신의 창의성을 자유롭게 발휘하고,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서로를 존중하며 공감대를 만들어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