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누군가의 상흔에 빚진 보통날 - 전국건설노동조합 송전지부 이충구 전국지부장 인터뷰 / 2021. 04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누군가의 상흔에 빚진 보통날

- 전국건설노동조합 송전지부 이충구 전국지부장 인터뷰

한재영 상임활동가

혹시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할 때마다 사용되는 전기의 행방을 떠올려 본 적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숨 쉴 때마다 공기의 존재를 구태여 알아차리지 않듯이, 전기는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기까지 한 질문을 던지는 까닭이 있다. 이유를 말하기 전에 앞서,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지상으로부터 100m가량 치솟은 곳에 올라가 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잠시 머무는 게 아니라 대여섯 시간 동안 머문 적이 있는가? 앞선 질문의 답과 마
찬가지로 아마 없을 것이다.

여기에 숨결 하나마다 전기를 떠올리고, 듣기만 해도 아득해지는 높이가 일상인 이들이 있다. 바로 송전탑을 오르내리는 ‘송전 전기원’의 이야기다. 낮게는 30m 높게는 100m에 이르는 높이에, 얼기설기한 철골로 이뤄진 송전탑 위에서 행해지는 노동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지난3월 10일, 대림역 인근의 건설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송전지부 이충구 지회장을 만나 허공을 밟아가며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허공을 밟으며 일하는 사람들
송전탑은 현 전기공급체계에서 널리 활용되는 시설이지만 동시에 그만큼 꺼려지기도 하는 존재다. 송전탑 주위에는 수만 볼트의 고압전기가 흐르고 있어 매우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고압전기가 주위 환경이나 인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송전탑 대부분을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세우다 보니, 최악의 조건에서 작업이 이뤄진다.

“송전탑은 주로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오지나 야산에 세워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하는 노동자에게도 최악의 현장입니다. 화장실이 급하다고 50~100m 되는 높이를 올라갔다 내려오기는 어렵죠. 그래도 소변이면 밑에 있는 사람들한테 말하고 상공에서나마 해결하는데, 대변은 어쩔 수가 없죠. 그런데 현장 주변에 이동식 화장실이나 간이 화장실도 없어서 불편할 때가 많죠. 이동시간 때문에 식당에 가기 어려우니, 점심도 흙바닥에 앉아 도시락으로 대충 때워요. 어느 계절이고 일하기에는 다 어려워요. 여름에는 폭염 아래에서 일해야 하고, 한겨울에는 산불 위험 때문에 불도 못 피우죠. 화재위험이 없는 고체연료를 사달라고 요구하지만, 비싸다는 이유로 매번 거절합니다.”

주변 지형이나 전압 크기에 따라 높이 역시 달라지지만, 고압 송전탑의 경우 평균 높이가 100m에 달한다. 통상적으로 아파트 1개 층 높이가 약 3m인 점을 고려하면, 사방이 뻥 뚫린 30층짜리 고층 아파트 꼭대기에서 작업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송전탑을 오를 때에는 맨몸이 아니다. 매번 20kg에 육박하는 여러 장비에다가 개당 9kg에 육박하는 애자를 메고 송전탑을 오른다. 그들은 단 한 번의 헛길 질도 허용되지 않는 상공에서 철근을 조립하고, 전선을 연결한다. 감히 그 고단함을 헤아리기조차 어려웠다.

“온종일 위에 있다가 땅에 내려오면 멍해지면서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어요. 송전탑 위에서 하는 일은 다양하죠. 송전탑 건설은 시작이고, 전선을 탑에 걸치는 연선 작업과 선을 잘라서 연결한 뒤 지상으로부터 적절한 높이까지 띄우는 긴선 작업이 있어요. 송전탑 유지보수작업도 있어요. 애자라고 하는 절연체가 있는데요, 보통 교체 주기가 30년이라고 해요. 하지만 오염이 심할 경우에는 그만큼 사용할 수 없죠. 아무래도 비바람이니 자외선이니 하는 온갖 외부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부식도 빠르고요. 그래서 주기적으로 애자를 물로 세척하거나 노후된 자재를 교체하는 등의 유지보수 작업을 해요.”

송전탑 위에서 찢기고 데인 몸과 마음
내리쬐는 햇볕에 무쇠나 다름없는 철근도 부식되는데, 하물며 그보다 연약한 사람의 피부가 성할 리 만무하다. 피부뿐만이 아니다. 허공에서 오직 상체의 힘으로만 철탑재를 내려치고 조립하다 보니 쑤시지 않는 데가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름에 햇볕이 있다면 겨울에는 칼바람이 있고, 골병은 추락과 세트처럼 묶여있다.

“사시사철 외부에서 하는 옥외작업이니만큼 기후조건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요. 폭염을 피할 그늘이 없을뿐더러 철탑이 달궈지면서 화상도 많이 입죠. 다량의 자외선에 장시간 노출되니 피부암 등 피부질환의 위험도 크고요. 한겨울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예요. 겨울에 작업하면 온몸에 핫팩을 붙이고 가요. 그래도 종일 추위에 떨죠. 그러고서 숙소로 돌아오면 얼었던 얼굴이 그제야 녹으면서 벌겋게 달아올라요.

피부질환 외에도 어깨, 척추까지 완전 종합병원이에요. 송전탑을 보면 알겠지만, 발 디딜 곳이 하나도 없어요. 작업하는 내내 어디 모서리에다 발끝이나 발꿈치를 딛고 서서 미끄러지지 않게 온 힘을 줘야 해요. 평지에서 작업하면 물건을 들거나 잡아당길 때, 두 발을 바닥에 고정한 채 일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수가 없는 거죠. 그렇게 무게중심도 못 잡고 팔 힘으로만 작업하다 보니 근육과 뼈 모두 성할 곳이 없어요. 제가 일한 지 30년이 다 돼가는데, 양쪽 회전근 모두 파열돼서 한동안 치료했는데 완치는 안 된 상태예요. 

예전에는 사망사고가 나도 다음날이면 일하러 나갔어요. 30년간 일하면서 눈앞에서 떨어져 죽은 동료만 3명이에요. 추락한 동료에게 겉옷 벗어다 덮어주고, 산에서 들고 내려오는 것도 다 했어요.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다음 날이면 또 송전탑을 올랐죠.”

송전 전기원의 노동은 그 자신의 생활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역시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사회의 필수재인 ‘전기’를 제공하는 이들이지만, 정작 그들의 일상은 당연하지 않다. 2년 전부터 안전사고를 대비해 수평로프와 추락망 그물을 설치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노동자의 안전보다 이윤이 앞서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작업 공기(공사기간)를 느슨하게 잡는 거예요. 공기가 늘어나면 그만큼 소요되는 예산이 많기 때문에 무리하게 공기 단축을 하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당연히 사고가 나죠. 안전 관리감독자 수도 늘려야 해요. 우리가 송전탑 하나를 작업 완성하고 다음 송전탑 작업을 하는 시스템이 아니거든요. 몇 개의 작업현장에서 일하는 거죠. 예를 들어 송전탑 10개를 작업한다고 했을 때, 한데 모여 작업하는 게 아니고 산봉우리마다 떨어져서 작업해요. 그럼 총 10개의 현장이 있는데 무슨 수로 소장 한 명이 모든 현장의 안전을 점검하고 관리할 수 있겠어요? 송전탑별로 관리자를 두거
나 아니면 송전작업은 보통 팀 단위를 이뤄작업하니 팀별로 관리자를 두는 게 맞죠. 하지만 현장의 안전은 작업자들에게만 온전히 맡겨놓고 있어요. 

송전작업은 안전벨트 하나만을 몸에 매달고, 온몸을 공중에 띄운 채 두 손으로 하는 작업이에요. 그 높은 곳에서 믿을 건 안전벨트 하나밖에 없어요. 그러니 자기 몸에 꼭 맞아야 하죠. 그런데 업체는 값싸고 허술한 안전벨트 하나 사서 던져주고, 제공했다고 서명받고 사진 찍으면 끝이에요. 그저 안전관리비 집행했다는 보고에 불과한 겁니다. 그리고 상용직이면 안전장비 관리 담당자도 있고, 때에 맞춰 교체도 할 건데 일용직이다 보니 그럴 수가 없어요. 보통 3일에서 7일 이렇게 짧게 여기저기 현장을 옮겨 다니는 일용직이다 보니, 안전벨트는 개인이 구매해서 사용하는 게 더 편해요. 현장에 갈 때마다 안전벨트를 받는다 치면 못해도 1t은 될 거예요.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측에서는 우리더러 안전장비 상태를 확인하라고 하는데, 작업장비의 상태나 교체 시기를 판단할 수 있는 기관이나 기준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관리자나 개개인이 알아서 헤지거나 낡은 정도를 맨눈으로 판단하고 바꾸는 실정이죠.”

이 일이 우리를 먹이고 살리려면
지상 수십 미터 철탑에 오르는 것만이 송전 전기원의 고충은 아니다. 올려다보기만 해도 어질해지는 높이에서 벨트 하나에 몸을 맡기는 것도, 살이 익다 못해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비틀어지는 것을 감내할 수 있는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IMF 이후 계속 임금을 깎였죠. 10년 가까이 평균 노무단가가 30만 원이었는데, 몇년 전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임금 인상이 이뤄졌죠. 문제는 작업일수예요. 1년 중 성수기보다 비수기가 더 많아요. 한전에서 발주하는데 1년 중 상반기에는 5, 6월 하반기에는 10, 11월에 주로 일이 몰려있어요. 

성수기보다 비수기가 더 많아, 이 일만 해서는 먹고 살기 어려우니 대부분 비수기 때 다른 일을 하러 가죠. 철골작업이나 건물 유리닦기, 전차선 작업 등 고공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요. 요즘에는 지자체에서 주력하고 있는 출렁다리 사업 현장에 자주 가요. 고공작업 외에 중량물 취급도 익숙하니 용광로 교체작업에 나가기도 하고요.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인력소에서 용역을 구해 부족한 수입을 메꿔요.

현재 전국의 송전 전기원은 300명 정도 되는데 평균 연령이 50세예요. 한전에서 고시한 정년은 만 60세에서 지난 2월 17일 이후 만 65세로 늘었어요. 그렇다 해도 새로운 인력투입은 거의 없는 게 문제예요. 워낙에 일은 고된데 처우는 열악하고 일거리도 많지 않아서 그렇죠. 지금 상황을 보면 5년 후에는 70%, 8년 후에는 80%의 송전 전기원이 사라져요.”

노동조합은 송전 전기원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위해서 상용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한전 측의 발주금액을 늘리는 등의 방식을 통해, 한전 송전정비협력회사의 상용직으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현재 실제 시공인력은 턱없이 부족한데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1만 명 가까이 돼요. 대학생이나 포크레인 기사, 목욕탕 관리사까
지 자격증이 있어요. 현재 송전 관련 자격증이 민간자격증인 터라, 6주간 교육이 끝나고 자격증이 발급되면 자격증 브로커들이 
얼마간의 돈을 주고 그 자격증을 관리하는 거죠. 일부 전기 협력업체들은 이런 유령자격증을 동원해서 입찰에 참여해요. 국가자
격증으로 전환해 국가가 주관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시공업체도 마찬가지예요. 시공능력이 없다면 입찰도 막아야 해요. 현재 송전작업은 지중배전이나 변전과 달리 전기공사업만 등록돼 있으면 누구나 입찰에 참여할 수 있어요. 전국의 전기공사업체만 해도 1만 7~8천 개는 되는데, 실제로 작업할 수 있는 업체는 100개도 채 되지 않아요. 이렇다 보니 온갖 페이퍼컴퍼니나 유령자격증이 난립하고, 불법 하도급이 남발하는 탓에 노동자들의 처우는 날로 열악해져요. 업체의 시공능력 검증을 제대로 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송전전문업체 등록제를 시행해야죠.”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쉬는 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물었다. 그러자 ‘취미는 사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송전 전기원의 삶에서 사치는 취미 하나만이 아니었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사치라 했다. 어디 그뿐이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 고된 노동의 대가, 우리 사회의 필요한 빛을 책임진다는 자부심도 모두 사치다. 다른 사람들처럼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꽃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는 송전 전기원들의 소망이 사치가 아닌 그저 보통날의 모양새가 되길 바란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우리가 열차를 달릴 수 있게 합니다" -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차선지부 배정만 지부장 인터뷰 / 2021. 03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우리가 열차를 달릴 수 있게 합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차선지부 배정만 지부장 인터뷰

박기형 상임활동가

 

막차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역이 문을 닫는다. 텅 빈 정류장, 불이 꺼진 선로. 기차가 고요하게 잠든 사이, 분주하게 선로 위를 오가는 노동자들이 있다. 1971년 4월 지하철 1호선(서울역~청량리역) 착공 이후, 이들은 지난 50년간 전국 곳곳에서 전기 열차가 매일매일 빠짐없이 달릴 수 있게 선로와 설비를 설치·정비해왔다.

2020년 드디어 자신들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전차선 노동자들이 모여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차선지부 배정만 지부장을 만나, 전차선 노동자들의 노동과정과 어려움,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계기를 들어보았다.

전차선 노동자들의 업무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하면, 열차가 오가는 선로 위의 전차선과 주변의 시설물들, 즉 교류 2만5000v의 전기가 흐르는 전선과 관련 설비들을 설치·정비하는 일이다. 전기로 움직이는 전국의 모든 지하철과 열차는 전차선 노동자들의 노동 없이는 달릴 수 없다.

"전차선 작업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기존 선로를 보수·정비하는 작업입니다. 다른 하나는 선로를 신설하는 작업이고요. 기존 선로를 작업하는 일은 지하철이나 열차가 운행을 멈춘 시간 동안에 이뤄집니다. 모든 차량이 차량기지로 들어간 이후인 새벽에 작업하는 것이죠.

신설 선로는 보통 낮에 작업하고요. 전차선을 선로 위에 깔기 위해서 땅을 고르고 전차선을 걸 빔과 빔을 지지할 구조물을 설치합니다. 이후에 전선을 깔고 전기가 흐를 수 있게 연결까지 합니다. 이 일을 마쳐야 비로소 전기가 공급됩니다. 우리가 열차를 달릴 수 있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지만 그동안 전차선 노동자들의 노동은 늘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고, 그랬기에 아무렇게나 방치되고 있었다.

출처;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차선지부



쫓기듯 일하는 건 일상

일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작업을 특정 시간 내에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이다. 신설 선로 작업의 경우에는 덜하지만, 기존 선로 작업의 경우에는 운행이 멈춘 시간 내에 '반드시' 작업을 마쳐야 한다. 열차가 정시에 운행을 시작할 수 있게 하려면 운행이 멈춘 3~4시간 내에 작업을 끝마쳐야 한다. 혹여 작업이 늦어질 경우엔 운행에 차질을 빚기 때문이다. 운행 중 고장이 난 경우도 마찬가지다. 

"EBS에서 하는 극한직업에 전차선 노동자들 나온 적이 있는데요. 그거 보셨다고 했죠? 그건 양반이에요. 평상시는 훨씬 심각해요. 정해진 시간 내에, 어떤 때에는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일을 마쳐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열차 운행을 못하잖아요. 일을 마치고 선로에서 벗어난 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열차가 쌩하고 지나가요. 일 마칠 때, '야, 빨리 내려와. 열차 온대' 소리치면서 허겁지겁 정리할 때가 많아요. 그렇게 늘 무언가에 쫓기듯 일해요."

전차선 노동자들은 각종 중량물을 들고 나르고 세우는 일만 하는 게 아니다. 9~10m에 달하는 높은 곳에 올라가 전선을 깔고 연결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런 안전장비도 제공받지 못한다. 안전장비를 착용하는 것조차 '시간'과 '비용'이 드는 불필요한 일로 치부된다.

"전선을 까는 빔 위에서 안전장비도 없이 서서 작업하거나 매달려 있는 건 일상이에요. 정확히는 그렇게 안 하면, 일 못하는 사람 취급받아요. 처음 일 시작하면, 무서워서 두 발로 설 수도 없어요. 그러면, 밑에서 소장이 소리치고 난리 나죠. 빨리해야 하는데, 엉금엉금 기어 다니냐고 쌍욕 먹는 거죠.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둔감해져야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대부분의 정비 작업은 야간에 이뤄지지만, 헬멧에 다는 헤드랜턴도 자비로 사야 하는 현실에서 작업 현장에 조명 장비를 달아서 밝혀주는 건 사치와 다를 바 없다. 보이지 않으니 걸려 넘어지거나 장비에 몸이 끼이거나 부딪히는 일이 다반사다. 급하게 일하다 보니, 그 정도 다치는 건 일도 아니다.

고소 작업 시 안전은 뒷전

"이렇게 위험한 현장인데도, 노동조합이 없을 때는 사고조사조차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요. 노동조합 만들자마자 시작한 활동 중 하나가 바로 사고조사였어요. 평균적으로 볼 때, 1년 동안 13~15건의 산재사고가 있었던 걸로 추정돼요. 여기서 말하는 사고는 떨어져서 어딘가 부러지거나 끼여서 장애를 입는 정도의 심각한 건들만 포함한 겁니다. 그중 절반 이상이 추락사고에요."

언제나 고소 작업이 동반되다 보니, 추락의 위험이 늘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추락을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추락사고의 대부분이 A형 사다리에서 발생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최근 노동조합에서 현 작업에서 A형 사다리를 아무런 조치 없이 사용하는 것은 위법하고, 노동자들을 위험에 내모는 것이라 문제제기하였다.

"최근까지만 해도, 한국전기철도기술협회에서는 작업현장 상황상 부득이하게 A형 사다리를 쓸 수밖에 없다고 변명했고, 노동부에서도 A형 사다리를 쓰되 감독자의 철저한 지시·관리 하에 안전조치 최대한 하고 사용하라고 회신했었죠. 그게 제대로 된 답변인가요? 노동조합 결성 후 지속해서 문제제기하니까, 그때서야 A형 사다리 사용을 규제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적은 비용으로 작업을 빨리하겠다고 A형 사다리 쓰는 곳이 태반이지요."

또, 위험의 외주화

왜 소장과 회사에서는 위험한 A형 사다리를 고집하는 것일까? 바로 정해진 시간 내 최대한 빨리 많은 작업량을 해치우기 위해서다.

"최근까지도 현장에선 알루미늄으로 된 절연 FRP A형 사다리를 많이 쓰는데요, 거기다 연장식까지 붙여서 사용하기도 해요. 가벼우니까 둘이서 들고 나르고 위에선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이 올라가 작업하면, 이동시간도 단축하고 작업량을 많이 뽑을 수 있죠. 작업 인원도 많이 필요 없고요.

그런데 노동자 입장에서는 안전대조차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올려 보내니 위험하기 짝이 없죠. 노동자들이 정말 안전하게 일하려면 안전난간이랑 안전발판이 갖춰진 이동형 고소작업대를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공사비용이 올라간다고, 사람도 많이 써야 하고, 작업시간도 길어지니 거부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왜 소장과 회사는 명백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동자의 안전을 내팽개치고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또 다시 '위험의 외주화'라는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전차선 노동자의 90% 이상이 일용직입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공사를 발주합니다. 공개 입찰로 진행하죠. 하지만 정작 입찰된 회사들, 즉 원청에서는 실질적으로 시공능력이 없어요. 공사를 따기 위한 명의와 구색만 갖춰진 회사들인 거죠. 원청은 자격증, 담당 인력 등을 허위로 기재해두거나 문서상으로만 갖고 있을 뿐이에요. 입찰에 지원하고 공사를 따내기 위한 자격증만 범람하고 있어요.

대신 실제 시공은 다른 하청업자에게 넘겨요. 하청업자도 자기가 시공을 전담하질 않아요. 사업별로 시공기술이나 설비도 갖추고 있고 인력도 부릴 수 있는 소장, 기술자 등을 하청업자가 섭외하죠. 그러면, 이제야 우리 같은 일용직들이 각 팀에 불려갑니다. 이런 상황이니, 전차선 노동자들은 원청회사가 어딘지도 모르고 일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모든 전차선을 설치하고 정비하는 일을 이들이 도맡고 있음에도, 이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기만 하다.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전기사업소 등 산하 기관 및 사업장에서 정규직으로 채용된 기술직들이 있지만, 이들은 정작 간단한 점검만 할 뿐이다. 긴급한 사태가 터져도 대처할 역량이 없다. 결국 대처는 일용직으로 고용되는 전차선 노동자들이다.

어둠이 몸을 갉아먹지 못하도록

"단지 안전사고만 문제가 아닙니다. 전차선 노동자들의 직업병도 많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우선 근골질환도 상당합니다. 무엇보다 허리가 많이 안 좋아요, 도지나를 차고 상부 9~10m에 달하는 높이의 설비를 오르내리는데 장비 무게만 10~13kg입니다. 거기다 철제 구조물을 당겨 올리고 조립하는 일도 하죠. 손목이나 팔꿈치도 닳고 닳습니다."

야간작업이 대부분인데, 작업일수는 불규칙적이다. 제조업 사업장의 교대제처럼 정기적 야간노동을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수면장애를 겪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평균 경력이 15~20년 되는 조합원들도 잠은 어찌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전선 작업을 하다 보니, 감전사고도 빈번합니다. 물론 사선으로 만들어서 일하긴 하지만, 전기를 죽였다고 해서 전선에 전기가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남아있는 전류가 있어요. 어떨 때는 전선을 잡으면, 손에서 전선을 못 놓는 일이 많아요. 특히 흐리고 비 오는 날이면 심해요. 전력을 송출하는 철탑 근처에서는 유도 전력이 발생해서 예상치 못하게 감전되는 일도 종종 있어요."

또한, 옥외작업의 부담도 상당하다. 혹한기나 혹서기에 겪는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다. 차량운행을 위해서, 아무리 비바람이 심하게 불어도, 심지어 태풍이나 눈보라가 쳐도 작업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는 발주처 및 원하청과 현장 작업상황을 공유하고 노동자들의 의사를 반영해 작업개시 여부를 조정하거나 필요한 안전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아무리 궂은 날씨라도, 원하청은 무리하게 작업을 강행한다. 그래야 다음 입찰 때에 흠 잡힐 일도 없기도 하니까.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은 흠이 아니다. 주어진 공사량을 최소 비용으로 최대한 많이 해내는 게 미덕이다. 

"전국 각지에서 350여 명의 전차선 노동자들이 자기 몸을 바쳐가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320명이 넘는 전차선 노동자가 건설노조 조합원으로 가입했어요.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쟁취하기 위해 마음을 합쳐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지난 50여년 간 우리 전차선 노동자들이 대한민국의 발전에 큰 이바지를 한 사람들이잖아요. 하지만 정작 그림자로만 살고 있었죠. 우리가 기여한 바, 우리의 노동현실을 시민들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차선 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자신들의 권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전차선 지부가 열심히 활동을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노인의 삶을 살피는 이들의 몸과 마음은 누가 돌보는가?-공공연대노동조합 최순미 조직국장, 생활지원사 J님 인터뷰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노인의 삶을 살피는 이들의 몸과 마음은 누가 돌보는가?

-공공연대노동조합 최순미 조직국장, 생활지원사 J님 인터뷰

 

박기형/상임활동가

 

  <일터>에서는 돌봄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돌아보기 위해 요양보호사, 가사관리사 등 다양한 직종을 만났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던, 작년 연말에 청와대 앞에서 집단해고 철회와 고용안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또 다른 돌봄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생활지원사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한국 사회에서 독거노인들의 삶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생활지원사의 노동을 들여다보고자 생활지원사 J님과 이들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시는 공공연대노동조합 최순미 조직국장님을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독거노인의 생활을 받치는 사람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생활을 지원한다'라는 말이 참 모호하게 다가왔다. 독거노인의 '어떤' 생활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지원한다는 것인지, 지원이라 함은 어떤 걸 말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J: 생활지원사는 만 65세 이상 국민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기초연금수급자 중 독거·조손가구처럼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안부확인, 생활교육, 사회참여 프로그램, 일상생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노인 대상 사회복지의 최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죠.


  생활지원사들은 2020년 1월 보건복지부가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새롭게 시행하는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사업을 담당한다. 2000년대 초중반 시행되었던 기존의 노인돌봄서비스들은 ① 노인돌봄기본서비스 ② 노인돌봄종합서비스 ③ 단기가사서비스 ④ 독거노인 사회관계활성화 ⑤ 초기독거노인 자립지원 ⑥ 지역사회자원연계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를 노인돌봄사업 간 장벽을 없애고, 수혜자 요구에 기반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목하에 통합‧개편한 것이 바로 '노인맞춤돌봄서비스'다.

J: 전국적으로 약 3만 명의 생활지원사가 있습니다(2020년 7월 말 기준, 2만 5470명). 이들이 독거노인 45만 명을 돌보고 있다고 봐도 되어요. 하루에 5시간씩, 평균 16명의 노인들에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이용자들은 일반군과 중점군(신체·정신적인 기능제한으로 일상생활 지원 필요가 큰 대상)으로 나뉘어요. 보통 일주일 단위로 전 이용자(중점군 2~3명 & 일반군 14명, 총 16여 명)들에게 일정대로 안부전화를 하며 말벗서비스를 제공하고, 가정에 방문을 합니다. 병원, 관공서, 은행 등 필수적인 외출에 동행하기도 하고요. 중점군의 경우에는 말벗서비스 외에 일주일에 2번 각각 2시간씩 직접 가정에 방문하여 가사지원서비스 등도 지원합니다.

필수적이나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

  정부의 사업안이나 교육에서는 특정 업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일하다 보면 요양보호사나 가사관리사처럼 이용자의 거동과 가사노동 전반을 챙기게 된다. 정부는 이용자들의 욕구에 기반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복지의 질을 높이겠다고 말하지만, 노동자들에겐 업무의 경계가 흐려질 가능성이 크다. 여전히 돌봄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미약한 상황에서는 그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J: 생활지원사의 전신은 생활관리사예요.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죠. 실제로 오랫동안 이 서비스를 받고 계신 이용자들도 '집에 왔다가는 아줌마', '전화해 주는 사람', '일하러 오는 아줌마나 어딘가에서 오는 복지사'라고 정확한 명칭을 잘 모르시거나 잘못 알고 계신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본인이 때로 일하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해도, 이용자들과 주변 사람들이 인정을 제대로 안 해주다 보면, 남들이 꺼려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죠. 이 때문에 업무 만족도도 낮아지고, 심지어 일하는 과정에서도 부당한 걸 많이 겪게 되는 것 같아요.

  작년 통합·개편되면서 '노인맞춤돌봄서비스'로 묶인 노인돌봄기본서비스·노인돌봄종합서비스·단기가사서비스 등은 2007년부터 10여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사업들이다. 하지만 이 사업에서 고용한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는 여전히 열악하기만 하고, 사회적 인정조차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다. 이는 생활지원사들의 고용불안, 저임금과 같은 노동조건과 직무스트레스, 성폭력 위험 등의 안전과 건강상에 유해한 노동환경과 긴밀히 연관된다.

최순미: 갈수록 우리 사회에서 돌봄노동은 필수적인 영역이 되고 있잖아요. 하지만 점차 시장화되는 돌봄노동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어요. 마치 과거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것을 무임금 노동으로 평가절하했던 것처럼 말이죠. 최저임금을 받으며, 마치 아무런 사회적 가치를 받지 못하는 가사노동을 하는 사람들로 취급받고 있어요. 여성이면 누구나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회적 평가 속에서 급여 등 노동조건이 최저 수준으로 책정되어 버리는 거죠.
 

▲ 2020년 12월 30일 청와대 앞에서 진행한 "노인생활지원사 집단 해고 철회 및 고용안정 촉구 기자회견" 당시 사진.

노동권 보장에는 손놓은 정부

  생활지원사들은 여러 가정을 돌아다니며 방문해야 한다. 이동은 업무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이동에 드는 비용은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이동시간 또한 근무시간으로 산정되지 않기도 한다. 더욱이 생활지원사들을 관리하겠다면서, 정부가 도입한 '맞춤형 광장앱'은 각종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최순미: 맞춤형 광장앱은 기본적인 노무관리 시스템이라고 보면 됩니다. 생활지원자들은 5시간 근무시간 동안 맞춤형 광장앱을 실행시켜야 되는데 그 시간 동안 자신들의 위치가 기관이나 센터에 자동적으로 보고가 되고 있는 거예요. 3분마다 위치가 추적당하는 거죠. 사생활 침해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기본이죠. 더구나 최저임금을 주면서 이동경비뿐만 아니라 광장앱 사용에 따른 데이터 비용까지 자비 부담이에요. 앱을 사용하기 위해선 때론 앱 사용이 가능한 핸드폰으로 기기변경까지 해야 하는데, 그 비용도 마찬가지죠.

  더욱이 광장앱은 노인생활지원사의 업무 형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정 시간과 특정 장소에서만 일하는 게 아니라, 노인들의 요구나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일하게 될 때가 있는데, 이걸 부당하게 근무시간 미준수 또는 근무지 이탈이라고 판단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방문시간이 짧을 경우 집 앞이나 주변을 서성이면서 시간을 채워야 하고, 식료품 등의 물품을 전달해야 할 때 이용자가 집에 부재할 경우에는 선 전달 후 앱상 방문체크를 위해 해당 가정에 재방문하는 일도 빈번하다. 서비스 제공의 효율은 증대되지 않은 채, 불필요하게 노동강도만 높이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앱만 개발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현장에 적합한지, 잘 활용되고 있는지, 개선할 점은 없는지 등 정부가 책임지고 관리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다. 하지만 다른 복지서비스들처럼 노인맞춤돌봄서비스도 대부분 민간에 위탁되다 보니, 앱 관리는커녕 노동권조차 보장하지 않고 있다.

J: 우리 사회는 돌봄노동을 가족에게서 시장으로 이관시켜 왔어요. 그렇게 사회복지 영역에서 시장화가 확대되었죠. 국가는 이용자들에게 비용을 지급하고, 이용자들이 기관과 종사자를 선택해서 서비스를 받는 형태가 기본적인데, 이때 해당 기관들에선 이용자들을 많이 유치하려고 경쟁이 치열해요. 그래서 기관들은 적은 노력과 비용으로 최대한 잡음 없이, 많은 이용자를 보유하려고 해요. 처우 개선도 안 하려고 하고, 이용자들에 대한 관리도 부실하죠. 노동자들은 어려움이 있어도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

  보건복지부는 노인맞춤돌봄서비스로 통합개편하면서 서비스 대상자를 35만 명(2019년)에서 45만 명(2020년)으로 10만 명 확대하기로 했다. 그런데 민간위탁 기관들에서는 기관평가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대상자가 18명에 이르지 못하는 생활지원사들에게 나머지 대상자를 발굴하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담당 지역의 독거노인 리스트를 나눠주면서 방문하거나 전화로 서비스 제공을 권유하거나, 기존 이용자나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를 부탁하는 등의 사회복지사 업무를 재고용을 운운하며 이들에게 전가시킨 것이다.

최순미: 보건복지부가 직접 기획하고 추진하는 사업들이잖아요. 그런데 민간위탁을 줬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생색만 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민간위탁 사업방식을 취한 사회복지 영역 대부분에서 고용불안 문제가 있어요. 1년 단기계약해놓고 해고시킨다든가, 평가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센터나 담당자별로 (재)채용 여부를 자의적으로 해버린다든가. 물론 보건복지부에서 지침을 내리지만, 법률 수준이 아니니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일이 빈번해요. 현장에선 정부 지침이 무용지물과 다를 바 없어요.
 
생활지원사가 마주하는 위험

  생활지원사들은 노인들의 일상을 챙기기 위해, 전화할 뿐만 아니라 직접 각 가정을 방문한다. 제공할 서비스가 규정되어 있지만, 한 사람의 삶을 살피다 보면, 부득이하게 또는 자발적으로 업무를 넘어선 일들을 나서서 하게 될 때가 많다. 더욱이 청소·정리 등이 거의 되지 않거나, 반지하 등 주거환경이 열악한 집들이 많은데, 충분히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일정 시간 안정적으로 머물러야 하기에, 직접 청소하는 등 별도의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업무 외 노동, 매뉴얼에는 보이지 않는 노동들이 많다는 것으로 생활지원사의 위험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문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겪는 폭언, 폭력, 성폭력 등의 위험에도 늘 노출되어 있으며, 이에 대한 충분한 예방조치나 관련한 가이드라인 등은 부재한 상황이다.

J: 그 외에, 아직 잘 드러나지 않는 문제가 있어요. 생활지원사들이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 고통이에요. 대표적으로 노인분들이 응급상황에 처하는 걸 목격하는 일이 발생해요. 우선 전화를 계속 받지 않으시면 긴장되고 불안해요. 무슨 일이 생겼을까 걱정되죠. 물론 밤중에 취한 채로 전화하거나 수시로 전화를 거는 일도 부담이 되지만요. 방문했는데, 갑자기 쓰러져 계신다든가 하면, 긴급히 대응해야 하잖아요. 저도 최근에 한 분이 돌아가실 뻔한 사례를 겪었는데, 3~4시간을 119 불러서 후송하고 챙기고 그랬어요. 그때만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서워요. 이런 걸 트라우마라고 하는구나 싶어요.
 
최순미: 하지만 정부나 기관들에선 생활지원사들에게 휴식도 주지 않고 트라우마 치유도 해주지 않아요. 긴급상황에 대한 대응매뉴얼도 없고 교육을 충분히 제대로 하지도 않죠. 결국, 개인 몫으로 남겨질 뿐이죠.
 
문제해결의 시작, 사회적 인정과 공공성 강화로부터

  돌봄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실현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고용, 노동과정 등 전반을 국가가 책임지도록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J님은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지적하였다.

J: 노인돌봄은 우리 사회에서 더 중요해질 거예요. 초고령사회로 노인인구 증가는 기정사실이고 이 노인들 중 가족이 무너지고, 사회와 단절된 노인들은 방치할 수 없잖아요. 국가나 지역사회에서 돌봐야 해요. 하지만 정부는 민간기관과 노동자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고, 이용자들의 편의와 취업통계 상 고용률만 고려하다 보니, 정작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워요. 우리 생활지원사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서, 당면한 문제를 조직된 힘으로 바꿔나가길 바랍니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타투는 예술행위라고 부르자!-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타투유니온지회 김도윤 지회장 인터뷰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타투는 예술행위라고 부르자!-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타투유니온지회 김도윤 지회장 인터뷰

유청희 상임활동가


타투나 문신 하면, 힙합 뮤지션들이 TV에 나와 랩 경연을 할 때 그들의 몸 곳곳에 모자이크 처리된 문신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시청자들은 방송에서 가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두 알고 있지만 굳이 방송은 몸에 그려진 그림을 가리려 한다. 그럼에도 문신을 하는 소비자는 생각보다 많은데, 타투를 경험한 한국 국민은 무려 13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타투이스트들은 타인의 몸에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직업의 특성이지만 이들이 떨쳐낼 수 없는 또 하나가 바로 법을 위반하는 노동이라는 것이다. 보이지만 가리려 하는 것, 타투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타투유니온지회 김도윤 지회장을 지난 2020년 12월 22일, 경복궁역 근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의료법 제 27조 제1항은 의료인이 아닌 자의 의료행위를 금하고 있다. 1992년 대법원은 문신을 "의료행위"로 판단했고, 갈수록 타투를 편안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지만 여전히 의료인이 아닌 자가 하는 문신 작업은 법에 저촉되는 행위이다. 지금까지 수차례 문신업을 법제화하려는 정부의 계획과 국회 법안 발의가 있었지만, 법 제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일본의 경우 2020년 9월 의료인이 아닌 문신사가 문신 행위를 해 의사법 위반으로 기소되었으나 무죄 선고를 받아 타투이스트들이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 이제 한국은 문신을 의료행위로 보는 유일한 국가로 남았다.

▲   화섬식품노조 타투유니온지회 김도윤 지회장.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을 일반직업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단위와 함께 공동대책위를 꾸리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시도가 이번에는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타투라는 예술 행위

타인의 몸에 그림을 그리는 타투라는 행위를 업으로 삼는다면 감당해야 할 것들이 있다. 타투가 예술행위인지 의료행위인지에 대한 분분한 의견들, 평생 몸에 남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의 무게, 법이 인정하지 않는 직업군이라는 요소다. 김 지회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타투이스트가 내리는 결정에도 변화가 있다고 한다.

"저는 원래 디자인 일을 하다가 타투이스트가 되기로 결정하고서 한동안 다른 일도 같이 했어요. 그러다 자리를 잡았을 때 전업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법이 허용하지 않는 일이니까요. 지금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 고민을 덜 한다고 생각해요.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으로 생각하고 이 일을 시작하죠. 타투가 불법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인지 인지하고 있어요. 많이 알아보면서 해볼 수 있겠다고 결론 내리고 결정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 타투를 배울 때는 잘 하는 사람에게 가서 작업을 받으면서 배우기도 하는데요. 인조 피부에 연습을 합니다. 하지만 사람 살에 얼마나 많이 해보는가가 중요한 거라서, 친구들한테 해보기도 합니다. 타투가 예술인지 묻는데, 저는 미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10년 동안 그림을 그리다가 타투를 시작했을 때 매체가 달라진 것이지 새로운 행위를 하는 건 아니라고 느꼈어요. 또 타투이스트에게는 직업 윤리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긍정적이지 않은 인식을 만드는 데 이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문화가 영향을 끼친 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타투이스트들에게는 다른 업종보다 더 높은 직업 윤리가 있어요. 그런 높은 기준은 작업을 하면서 갖게 됩니다."

문신은 전신을 써서 타인의 몸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 손, 손가락, 손목, 목, 허리를 많이 써서 오는 근골격계질환과, 잉크와 바늘을 써서 일하며 찔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몸을 숙여 작업하기 때문에 등, 목, 척추 질환이 많아요. 손목터널증후군이나 손가락 염좌는 누구나 겪는 질환이고요. 또 아무리 오래 해도 떠나지 않는 게 긴장감이에요. 누군가의 몸에 평생 가는 그림을 그리는 거잖아요. 긴장한 상태에서 작업을 하면 예상하지 못 한 곳, 타투 작업을 3시간 하고났는데 무릎에 문제가 생기기도 해요. 너무 긴장한 상태에서 잘못된 곳에 힘을 주어서 그런 경우가 많아요.

바늘 같은 경우, 타투유니온지회에서 녹색병원과 건강실태조사를 했어요. 바늘에 얼마나 많이 찔리는지 물었더니 심한 사람은 1년에 25번 찔린 사람도 있었어요. 다른 사람의 살을 뚫고 들어갔던 바늘이 내 피부에 찔리면 위험할 수 있죠. 실제로 바늘 때문에 감염 확진 받은 사례는 없지만, 그래도 더 조심합니다. 지회에서 바늘에 찔렸을 때는 꼭 병원에 가도록 하는 내용을 교육 과정에도 넣었습니다."

고객을 상대하는 일은 무엇이든 감정노동을 동반한다. 특히 타투이스트들은 자신의 일이 '합법적'이지 않기 때문에 분쟁이 생길 때 다른 업종보다 더 큰 위기에 처할 수 있고, 특히 경력이 짧은 타투이스트들에게 고객의 고발은 가장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감정노동은 모든 서비스 업종의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인 것 같아요. 저는 타투이스트 14년째인데 감정노동에서 벗어나려고 계속 노력했어요. 감정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그런 일을 겪는 타투이스트도 많죠. 타투유니온지회 만든 이후에, 고객과의 분쟁이나 법률 문제가 생겼을 때 조정, 중재하고 법률 상담하는 업무가 초반부터 가을까지 지회 업무 중 90%를 차지할 정도로 너무 많았어요. 물론 쌍방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법제도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더 크게 데미지(피해)를 입는 거죠.

예를 들어서, 그림 작업 서비스가 맘에 들지 않으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데, 유독 타투는 불법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고객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갑자기 형사고소로 협박을 해요. 손님이 협박하고 갈취한 거지만 저희가 전과자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건 원하지 않기 때문에 신고한 소비자랑 협상을 하려고 해요."

법에 있지만 반투명한 존재 '타투이스트'

현재 한국 산업 분류에는 문신업이 존재하고 문신업으로 사업자 등록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럴 경우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모순이 있을까 싶지만 1992년 대법원 판례로 지금까지 타투이스트는 반투명한 존재로 남게 되었다.

"저희는 직업 코드가 있어요. 2015년에는 고용노동부에서 유망 직업이라고 선정하기도 했고요. 문신업으로 등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문신업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세금 신고를 하면 불법행위로 잡힐 수 있습니다. 영리 목적의 불법 의료행위, 보건범죄 단속에 대한 특별법에 의거하면 최저 2년 징역형에 처해요. 지금 1992년 판례를 제외한 모든 것이 돌아가는데도, 그 판례를 이용해서 누군가가 신고할 수 있는 거예요. 문신업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세금을 올바로 낼 때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는 거죠. 타투유니온 만들자마자 내세운 것이 '세금을 내고 싶습니다'예요. 거기 동의하는 사람들이 노조에 가입하는 거고요. 빨리 제도권 안으로 넣어서 납세하게 만드는 것이 국가가 할 일입니다."

'노동자'라는 지위

타투이스트들은 대부분 사업이나 사업장에 고용되기보다는 자영업자인 경우가 더 많다. 자영업자와 노동조합을 바로 연결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데, 타투이스트들의 법적 지위를 바꾸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헌법상 타투이스트가 획득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가 노동자입니다. 가장 강한 조직들과 연대해서 싸울 수 있는 곳이 노동조합이라는 판단이 있었어요. 노동조합이라면 활동에 필요한 지혜와 노하우를 모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화섬노조에 있는 저희 타투유니온, 시민사회단체 등 총 55개 단체가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었어요. 공대위 활동 하면서 문체위, 산자위, 보건복지위 국회의원들을 만나 대담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게 연대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타투유니온지회를 포함한 많은 시민사회노동법률단체로 구성된 '타투 할 자유와 권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타투이스트들이 타투할 자유와 권리를 위해 헌법소원을 냈다. 의사들만 문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직업선택의 자유와 표현·예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 그 취지였다.

"11월 초에 두 가지를 냈습니다. 하나는 '헌마', 또 하나는 '헌바'로요. '헌마'는 법적인 문제가 이 일을 시작한 사람, 개인의 기본권을 구속한다는 내용이에요. 자격요건은 이 일을 시작한 지 1년 미만인 사람이라서, 노조에서 1년 미만인 8명이 자원해서 헌법소원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헌바' 소송이고 지금 준비 중인데요. 이 소송은 이 판례나 법조항 때문에 누군가가 피해받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9월 이 재판에서 이기면서 타투가 비범죄화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최근 제가 신고 당해서 제가 당사자가 되었고,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최근 일본에서 타투이스트들이 '무죄' 선고로 인정받게 되면서 한국에도 법제화의 시기가 더욱 가까워진 것 같기도 하다. 이들의 노력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기대가 된다.

타투가 예술로 인정받는 미래

타투유니온지회에서는 위생 및 감염관리가이드를 제작해 조합원들에게 배포 중이다. 이들에게 먼저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이 감염, 위생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지회에서 직접 건강검진을 실시한다. 노동시간 산정 방법을 안내하고 있고, 표준계약서도 미리 준비하고 있다. 법이 보여주지 않는 길을 타투이스트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일반직업화 되어도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더라고요. 자영업자인지 예술가인지 등은 세금 문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정부나 사회에 요구해야 할 것들은 더 많아질 거예요. 예술인 고용보험을 통해 보장받으려면 예술인 지위를 받아야 하는데, 모이지 않으면 잘 이뤄지기 어렵죠. 일반 직업화를 이루기 전에 많이 해놓을 겁니다. 세무교육, 위생교육, 법무교육, 노동교육까지 진행하고 있고요. 그 뒤에는 일반직업화가 과제로 남을 텐데,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직업, 노동에는 이미 많은 이슈와 어려움이 따르는데 거기에 더해 일 때문에 단속될 수 있다면 누구든지 휘청거릴 수 있다. 타투이스트들이 시도한 여러 번의 두드림이 곧 결과를 낼 것 같다. 어쩌면 아주 가까이에 와 있을지도 모르겠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물 관리의 토대를 마련하는 '수문조사' 노동 / 2020.12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물 관리의 토대를 마련하는 '수문조사' 노동

 

다연 / 상임활동가 

 

52일간의 비. 올해 장마는 그야말로 기록적이었다. 한국은 여름에 집중되는 호우 때문에 해마다 비로 인한 재해들이 발생하는 지역이기는 하지만, 올해는 그 피해 규모가 더 컸다. 게다가, 기후위기로 인해 앞으로 이렇게 예측할 수 없는 긴 폭우와 그로 인한 홍수와 같은 재해 발생률이 더 높아지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예상에 따라, 홍수와 같은 '물과 관련된 사고'에 대비하는 일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그러한 대비체계를 구축하는 일의 뒤에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수자원조사기술원(한국수자원공사와 다르다!)의 수문 조사 노동자들이다. 한국수자원조사기술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유량조사단이 설립된 2007년 부터 수문조사에 몸담아 온 민주노총 한국수자원조사기술원지부의 임혁진 지부장을 만나, 수문조사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365일 중 100일 넘게 강 안팎에서

수문조사는 한 마디로 국가의 물 관리에 필요한 각종 기초 데이터를 모으는 작업이다. 우선 수문조사의 1차적 목적은 홍수예보/경보를 위한 것이지만, 이외에도 여러 목적을 위해 다양한 종류의 조사를 수행한다. 수문조사는 크게 (1) 수문조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강하천의 물의 양 조사(유량조사) (2) 토양에 흡수된 형태로 존재하는 물의 양 조사(토양수 분량조사) 그리고 (3) 대기중으로 방출되는 물의 양을 측정(증발산량조사) (4) 강하천에 쌓인 토사량을 파악(유사량조사)하는 업무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된 자료를 바탕으로, 홍수 뿐만 아니라 물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갈수(비가 내리지 않아 강물이 마르는 일)에 대비하고, 국내의 수자원 활용 계획을 세우며,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수문조사는 국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의 안정적인 생활과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기본이 되는 물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노동이다.

"기기는 좋아졌어도, 실질적으로 하천 유량 조사는 백 년 전부터 그랬듯, 하천에 직접 들어가서 측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대피하거나 집에 머무를 수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희는 내린 비 양에 따라 하천의 유량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1년 주기로 전부 파악해야 하기에 오히려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예전에는 14박 15일씩 외부 출장을 나갔습니다. 하천수위가 높을 때와 낮을 때의 수치를 모두 조사해야 하는데, 큰 규모의 하천이라면 수위가 낮아지는 게 느리다보니 오래 기다려서 측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현재는 노동존중이라는 슬로건 아래 주52시간제가 법으로 도입되어, 이렇게 긴 출장은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보통 길게 나가면 4박 5일 정도 나가요. 그런데도 1년 총 출장 일수를 따져 보면 100일에서 120일에 달합니다."

유량 조사의 경우, 홍수기 이전에는 홍수기 조사를 준비하고, 홍수기 이후에는 홍수기 때 수집한 데이터들을 모아 분석하여 보고서를 작성한다. 하지만 출장은 홍수기뿐만 아니라, 저평수기(홍수기 외의 시기)에도 나가야 한다. 1년의 365일 중 100일에서 120일의 출장은 그 자체로 체력에 부담이 된다. 여름 홍수기 때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지치는 습하고 더운 날씨에 장화와 방수 작업복을 입고 일해야 한다. 게다가 하천의 물살을 버틸 수 있을 만한 무거운 장비들을 사용해야 하다보니 근골격계에도 무리가 온다. 임혁진 지부장은 자기 자신도 허리가 안 좋고, 몇년 전부터 수술까지 받아야 할 만큼 허리가 안 좋아진 분들이 아주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조사원들의 업무상 어려움에 대한 내외부의 평가 간 온도차도 있다, 현장 경험이 없는 내부에서는 출장가서 놀다오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조사원들이 앓는 근골격계 질환들이 단순히 개인의 소홀한 몸 관리 문제로 치부되는 경우도 있다.

 

▲   수문조사를 위해 강 안팎을 오간다. 조사원들은 위험한 외부환경에 늘 노출된다.

여전히 위험한 노동 환경

"예전에는 대형 화물차가 쌩쌩 오가는 교량 위에서 라바콘(안전고깔) 하나없이 3~4시 간씩 측정을 했어요, 낙동강 같은 곳에서는 작업복 하나 없이 여섯 시간, 여덟 시간씩 도로 위에 서 있기도 했고요. 밥도 못 먹어서, 중간에 빵 하나 먹으면서 일했어요. 그러다 2010년쯤 일용직 노동자 한 분이 돌아가시는 사고가 났죠. 그걸 계기로 안전장비가 확 늘어났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잃은 뒤에야 겨우 조금바 뀌는 현실. 그렇다면 그 이후로는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을까? 나아지긴 했지만, 5~6 년 전 또 다른 사망사고가 있었다. 잇따른 사고들로 인해 노동자들은 '나도 언제 사지로 내몰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마음 한 켠에 있는 데, 작년 홍수기 때 얼마나 위험할지 알 수 없는 계획되지 않은 지점에 조사를 나가라는 요구가 있었다. 노조는 이 위험한 요구를 거부하는 노동자들의 의견들을 모아, 초대원장에 대한 퇴진투쟁을 단행했다(물론 그 시기까지 축적되어 온 많은 문제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새 원장이 부임했고, 단협도 대대적으로 개정했다. 이제 노조 차원에서 단협에 기초해 주말 근무나 위험도를 예상하기 어려운 계획되지 않은 지점에서의 측정은 막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노동자 개개인들이 더 경각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얼마 전에 다시 강에서 조사를 하던 한 노동자가 물에 빠져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동지의 장례식장에서 들어보니, 진짜 다 한 번씩은 죽을뻔한 경험을 했더라고요. 이 상황에서 이렇게 해서 살았다'는 얘길 다들 했어요."
 

▲   올해 오랜 장마로 불어난 강에서 수문조사를 진행한 현장.


늘어난 사업예산에도 충원은 미숙련 비정규직으로

이렇게 위험한 작업을 거부하기 어렵게 만들면서도, 총 업무량 또한 증가시키는 원인들에는 수문조사 노동의 낮은 단가와 기재부에서 인력 충원을 위한 예산을 배치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한국의 많은 현장 노동들이 그렇듯이, 이 업무에 대한 단가 역시 굉장히 낮습니다. 단가가 낮으니 사측에서는 물량을 최대한 확보하려 합니다. 보통 1년에 한 하천에 대해 36회 조사를 나가는데, 4대강 실시 설계를 할 때는 그 두 배 가량의 조사를 나가야 했습니다."

일은 두 배가 되었으나, 필요한 인원의 일부만이 채워지는데 그나마도 비정규직으로 충원되었다. 내년에도 유량측정 업무는 더 확대될 예정인데, 이러한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다.

"통합적인 물 관리를 위해 유량측정 사업의 중요성이 커졌고, 이에 따라 환경부에서 사업 확장을 위해 예산을 증액했습니다. 사업이 확장된 만큼, 사업을 수행할 정규직 노동자들을 더 뽑아야 했고요. 그런데 기재부가 사업 예산은 증액하면서도, 충원에 필요한 예산은 할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사람은 더 필요하고, 예산은 부족한 상황에서 선택지는 비정규직 채용밖에 없었던거죠

보통 한 팀이 4명으로 꾸려지는데, 이제 내년부터는 모든 팀이 3(정규직)+1(비정규직)으로 구성됩니다. 노조에서는 당장 노동강도를 너무 높일 수는 없으니 그러한 채용 방침을 일단은 수용하지만, 2년만 그렇게 하고 그 이후에는 그럴 수 없다고 막아놓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사측에서 정규직 충원을 위해 노력하더라도, 기재부에서 또 안 된다고 하면 방법이 없어요. 이런 상황이니 점점 노동강도가 증가될까 우려가 됩니다."

비정규직 배치는 다양한 지점에서 문제가 있지만, 우선 기존 노동자들의 업무 강도를 높이고 팀원 모두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대한 문제가 된다. 특히 유량 조사의 경우에는, 현장 경험이 오래 쌓여야 불어난 강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다. 심지어 오랜 작업 경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강에 들어가서 하는 작업은 늘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 얼마 전에 일어난 사고도 사망한 노동자도 경력 10년 이상의 전문가였는데, 초심자의 경우는 오죽할까. 그러니 2년간의 짧은 계약 기간만 근무하며, 숙련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비정규직들에게는 자칫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를 주요 업무들을 맡기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대부분의 업무는 고스란히 숙련된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팀원은 4명이지만, 실질적으로는 3명이 업무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일, 직업윤리와 노동안전 사이에서

"수문조사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기초자료를 생산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직업윤리를 생각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조사를 나가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노동자 자신의 안전은 포기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기죠. 여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위험작업 거부의 중요성이 이야기되고는 있습니다만, 실제로 저희는 비가 많이 오면 '나가서 찍어야하는데, 이렇게 안 나가도 되나' 하면서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불안감은 차차 줄여나갈 수 있도록 해야겠지만요. 이렇게 노동 특성상 위험요소가 상존하는 곳에서 일해야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누군가는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스스로가 이러한 일을 선택한 만큼, 어떻게 노동환경을 개선해 나갈 것인가에 방점을 찍고 노력해나가려고 합니다."

노동환경 변화에 있어서는, 임혁진 지부장은 우선 작업 자체가 자동화될 수 있도록 기계 교체가 이루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 역시 안전한 노동 환경은 사측이 노동자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 아니라 그들이 의무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영역임을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동자가 안전을 위해 스스로 지켜야 할 수칙과 사업주가 해야 할 일에는 분명히 구분이 있음을 알고, 후자에 대해서는 사업주에게 당연히 요구해야 한다는 당부를 했다.

특정 노동에서 노동자가 마땅히 따라야 할 바가 있다면, 그 목록에는 반드시 '자신의' 생명 보전과 자기효능감, 행복의 증진 등이 반드시 포함될 것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생명이 희생되는 사회에선 그 누구도 '진정' 안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환경이 바뀌기 위해선 기술적인 면에서의 개선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 기관조차 재정예산을 이유로 노동자의 삶을 정책의 뒷전으로 밀어내는 태도다. 자기 몫의 삶을 힘껏 살아내 온 이들의 죽음을 도외시한 채 살아남은 이들에게 동일한 위험을 지게 하는 무책임한 태도 말이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사회 전체에 잘못된 사인을 준다. 사람이 중요하지만 '돈'을 생각하면 "소수의 희생" 은 어쩔 수 없고 문제 삼지도 않겠다는 사인을 말이다. 무엇을 우리 사회의 가치로 삼을 것인가. 이 질문에 노동자의 삶이 최우선이라고 답 할 수 있는 정부의 태도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유예된 권리, 인턴의 ‘노동력’은 어떻게 활용되는가 - 인턴 노동자 A씨 인터뷰 / 2020. 09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유예된 권리, 인턴의 ‘노동력’은 어떻게 활용되는가 - 인턴 노동자 A씨 인터뷰

지안 상임활동가

인턴/실습 노동 형태의 일자리는 저임금·불안정 형태의 열악한 노동을 양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인턴/실습 노동의 가장 큰 특징은 '교육'과 '경험'이라는 명목 아래 열악한 노동조건이 특수한 것으로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경험'이라는 명목으로 어떻게 '인턴'과 '실습생'들의 노동력이 활용되고 열악한 노동조건이 정당화되는지, 이 기제에 대해 비판할 필요가 있다.

인턴, 실습 노동은 각기 형태가 다른 만큼 여러 층위의 문제가 섞여 있다. 먼저 기업이 정식 채용 이전에 '인턴' 기간을 두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 있다. 기업은 고용의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신입 직원을 '교육'의 명목으로 테스트하는 기간을 갖지만, 노동자에게 그 기간은 채용 확정 여부가 걸린 대단한 압박감이 된다. 한편, 인턴 일자리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값싼 노동력을 공급받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인턴으로 채용했으나 업무 분장은 정규 직원과 다름없이 이루어져 과로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었으며, 대학교 현장실습 경험을 통해서는 방학 기간 실습을 명목으로 무임·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경험을 듣기도 했다.

A씨는 영상계열 전공을 했던 2010년대 초반부터, 대학 졸업을 한 최근까지 여러 기업의 인턴으로 근무했다. 짧게는 2~3달부터 길게는 7개월가량에 달하는 이력들은, 기업에 입사하기 위한 '스펙'이란 명목하에 저임금·불안정 노동을 감당해온 시간이다. 지난 8월 31일,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A씨를 만나 인턴 노동 당시의 경험을 들어보았다.

인턴 노동의 양산, 어떤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는가?

이번 인터뷰를 통해 주목한 지점은, 인턴 노동자가 임금/노동조건 상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일터라는 공간 안에서 관계의 불평등을 경험한다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채용에 대한 기대감과 압박감을 가지고 인턴 일자리에 지원하는 노동자들은 일차적으로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일터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관계 속에서 인턴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일터란 어떤 공간일까?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인턴을 단기간노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는 기업의 전략을 어떤 식으로 비판할 수 있을까?

-여러 인턴 일자리를 경험하셨는데, 주로 어떤 업무를 담당하셨는지 소개해주세요.
 "최근 졸업하기까지 언론사, 엔터테인먼트사 등 다양한 업계에서 짧게는 2~3달 길게는 7달 정도를 인턴으로 일해왔어요. 기업마다 담당한 업무는 달랐는데, 주로 언론사에서는 제보 접수, 사실관계 확인, 보도자료 취합 등을 통해 초벌 기사를 작성해 담당 기자에게 넘기는 일을 했어요. 다른 업계에서도 유사한 형태였는데 정직원들이 기획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제반 작업이나 자료조사, 아이디어 기획 등을 했어요. 예를 들어 최근 신간 소설을 읽고 요약 분석을 해 자료를 넘기는 식이죠."

-근데 설명하신 업무들을 보면 상당히 중요성이 있는 구체적인 업무들이네요.
"맞아요. 그런데 반대의 경우들도 있어요. 특별히 인턴을 채용해서 어떤 업무나 교육하겠다는 계획 없이 막연하게 정부 지원금이나 기업 이미지를 목적으로 인턴 공고를 내는 기업이 많아요. 그러면 출근해서도 의미 있는 업무를 하며 경험을 쌓는 게 아니라 무작정 대기하면서 업무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거죠."

-인턴이라고 하더라도, 비용이나 인적 자원이 투여되는 일인데, 이런 식의 일자리를 기업에서 왜 만든다고 생각하시나요?
"인턴은 어차피 6개월 정도 출근하는 거고, 유튜브나 SNS 관리 등 정직원에게 시키고 싶지 않은 일들을 인턴에게 시킬 수 있는 명목이 생기는 거죠. 한 인턴이 일하다가 나가면, 다음 기수에 다른 인턴이 들어와요. 기업에서는 정규직 채용에서 가산점을 준다고 하지만, 그게 그렇게 의미 있는 점수는 아니에요. 심지어 어떤 대기업에서는 인턴 월급을 회사 포인트로 지급했어요. 그 회사 인턴 채용 공고에는 애초부터 임금이 아닌 '소정의 활동료'를 지급한다고 게재되어 있었어요. 인턴을 한 명의 노동자로 생각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겠죠."

-인턴 노동이 흔히 '열정페이' '무급노동'으로 이어지는 한 가지 이유는 교육이나 경험, 경력의 일환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이런 논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노동이라는 개념이 아주 이상하게 잡혀있다고 생각해요. 반드시 어떤 결과물을 계속 내고 있어야만 '노동'이 되는 건 아니에요. 업무를 기획하거나 구상하는 단계, 사전 조사하는 단계도 충분히 노동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에 필요한 시간이나 출근해서 책상 앞에 대기하고 있는 시간도 마찬가지예요. 경중을 따졌을 때 부차적인 '잡일'로 여겨지는 업무도 그렇고요. 인턴을 하러 가면, 첫 출근 날 책상 하나가 있어요. 그럼 앉아서 종일 대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럼 아무도 저를 찾지는 않지만, 누군가 인턴이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내 긴장이 돼요. 8시간을 꼬박 그런 상태로 있다가 집에 오면 퇴근을 하자마자 곯아떨어질 정도로 긴장이 심했어요. 이렇게 업무에 대기하고 있는 시간을 노동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럼 실무 경험이나 업에 대한 이해나 역량이 향상될만한 교육을 회사 차원에서 진행한 것이 있나요? 혹은 인턴들을 담당하는 직원이 따로 있다든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실무교육이라도 진행해야 최소한 인턴 기간은 교육/경험의 기간이니 임금이 낮거나 없어도 된다는 논리가 설득력이라도 있을 거예요. 제 경험상 인턴에게 교육이라고 할 만한 시간이 10%는 될까요? 하루 대부분은 눈치 익히기,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대기하는 거로 생각해요. 반대로 실무에 곧바로 투입하는 경우들은, 그 일에 필요한 체계적인 실무교육을 사전에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아니면 일을 주고 인턴 혼자 아이디어 구상해오고 알아서 해오라는 것밖에 되지 않아요."

-대부분의 일자리는 정규 노동시간 동안 진행된 거죠? 초과 노동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대부분 10시에서 7시까지가 정해진 업무 시간이었어요. 업계마다 차이가 있는데, 엄격한 마감 기한이 있는 언론사 같은 경우는 일이 못 끝나면 초과수당이나 이런 게 따로 없더라도 집에 가긴 어렵죠. 만약 주에 금요일이 마감일이라고 치면 최소한 2~3일 정도는 야근했던 것 같아요. 또 특이하게 언론사는 인턴 일자리가 24시간 운영되었어요. 방송국 스케줄 그대로 맞춰서요. 처음에는 낮에 일하다가 경력이 차고 나서는 심야 시간으로 옮겼어요. 야간에는 당직 기자들 뿐이라 훨씬 심적 부담이 덜하거든요."

-노동강도의 측면에서 인턴 일자리는 어떤가요.
"유튜브 매니지먼트에서 일하던 선배가 있어요. 지금은 과로로 너무 부담이 커 그만두었는데, 당시에 정식 채용 후에 3개월 인턴 생활을 거쳐 시험을 보고 정규직 전환이 되는 상황이었어요. 인턴 하는 동안 너무 극심한 노동강도 때문에 힘들어했어요. 3명이 한 주에 영상 2개를 업로드 해야 하는데, 그럼 촬영/편집 및 그래픽/미팅 작업이 각각 주에 2번씩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예요. 너무 작업량이 많다 보니 매일 자정에 퇴근해서 오전 6시에 첫차를 타고 출근했다고 해요. 일하는 방식도 편집해가면 자막 색깔, 배열 하나하나 지적을 당했는데 일을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로봇처럼 입력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과로로 신체 부담도 크고 탈모도 생겨서 결국 일을 그만두었어요."

유예된 노동, 유예된 권리

기업은 계속 사람을 바꿔가면서 '인턴' 형태로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받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노동자를 고용해 그가 업무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면 그건 신입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대신에 기업은 교육 기간을 명목으로 '인턴' 기간을 두거나, 특정 제반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목적으로 인턴을 뽑아 저임금·불안정 노동력을 활용한다. 그런 과정에서 실제 인턴노동자들이 호소하는 정신적 압박감이나 일터 내 관계에서의 낮은 대우의 경험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말씀하신 내용 중에 '눈치 보였다' '심기' 같은 표현들이 눈에 띕니다. 아무래도 일터 내에서 인턴의 위치라는 게 불안정하고, 또 관계 내에서 취약하다 보니 주변의 눈치가 많이 보였나 봐요.
"인턴 일자리가 채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 속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나 압박감이 있죠. 무슨 업무가 들어오면 빨리 잘 해내야겠다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요. 설사 당장 처리하는 업무가 없더라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덜덜 떨고 있는 거예요. 점심시간이나 퇴근도 옆에서 말을 해줘야 움직일 수 있고요. 막막하고 초조한 시간이었죠."

-여러 명을 인턴으로 뽑고 있는데,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서 경쟁해야 한다든지 이런 문제는 없었나요?
"저 같은 경우는 1곳을 제외하고 대부분 한 팀에 저 혼자 인턴으로 일한 경우였어요. 그래서 경쟁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는 혼자서 압박감을 오롯이 견뎌야 하는 분위기 속에 있었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지인 중에 대기업 인턴으로 취직한 경우가 있었는데, 몇천 명이 지원해서 인적성 검사, 1차 시험, 면접을 거쳐 최종 2명을 뽑았어요. 그리고 그 두 인턴은 6주 동안 인턴 생활을 거쳐 정규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었죠. 상관들도 "너희 둘 중 한 명만 될 거야. 둘 다 안될 수도 있어. 그러니 제대로 잘해야 돼"라고 했다고 해요. 저라면 정말 하루하루 숨이 막혔을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그해에 정규직 채용은 하지 않았어요."

-인턴의 경우에는 대개 4대보험 가입을 안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일하다 다치거나 건강 문제가 생겨도 사회보험을 통해 보상받고 치료받기도 어려운데요.
"인턴은 대부분 4대 보험 가입은 되지 않고 원천징수세만 떼요. 그리고 만약에 일을 하거나 출퇴근 시 다치는 일이 생기더라도, 보험의 유무를 떠나서 회사에 말하기는 거의 어려운 구조예요. 저 역시 직접적인 경험은 없지만 만약에 다치거나 아픈 곳이 있어도 알아서 처리했을 것 같아요."

A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떻게 인턴 노동자가 '노동'과 '노동이 아닌 것'의 경계 속에서 일터의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는지 들어볼 수 있었다. 특히 이 기간을 상당한 정신적 압박감 속에서 보내고 있다는 점이 이번 인터뷰의 중요한 주제였다. 인턴 일자리를 계속해서 채우는 노동력과 이 시스템을 악용하는 기업은, 실재하는 노동을 노동이 아닌 것으로 만듦으로써 노동자의 권리 또한 유예시키고 있다. 이 유예된 권리의 경험은 이후의 일경험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런 고민의 지점들이 단기적인 일자리에서도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건설현장 관리감독의 한 축, 감리 - OO건축사무소 L씨 인터뷰 / 2020. 08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건설현장 관리감독의 한 축, 감리 - OO건축사무소 L씨 인터뷰

박기형 상임활동가

하나의 건물을 짓는 일은 무척이나 복합적이다. 설계, 시공, 준공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는 땅을 고르고 다지는 일부터 건물을 올리고 내부의 각종 설비를 설치하고 외관을 다듬는 일까지 다양한 업무가 때로는 시간 순서대로 때로는 동시에 진행된다. 이렇게 수많은 업무와 그에 투입되는 다양한 인력을 관리·감독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더욱이 한 번 건물을 지으면, 적어도 수십 년은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삶을 터전을 이루기에, 건물이 원래 설계 목적에 맞게 제대로 지어지는지, 건물을 만드는 과정과 이후 이용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안전이나 환경을 저해하지 않는지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이렇게 여러 관리·감독 업무를 수행하는 인력 중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담당자가 있다. 바로 감리다.

지난 7월 21일 경기도의 한 복지센터 건설현장에서 감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L씨를 현장 근처 카페에서 만나 감리의 노동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L씨는 건축 디자인 및 설계를 주로 하다가, 최근 감리 업무를 겸하고 있다. 감리를 하면서 느낀 소감을 나누면서, 감리 업무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건설사업 전반을 관리·감독하다

건설현장과 건물 자체의 관리·감독에 대해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감리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건설현장에서 감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감리의 주요 업무는 무엇인지, 실제 업무 수행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뤄지는 물어보았다.

"'공사감리'라 함은 건축물 및 건축설비 또는 공작물이 설계도서의 내용대로 시공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품질관리·공사관리 및 안전관리 등에 대하여 지도·감독하는 행위입니다. 감리 주요 업무를 단계별로 구분하여 설명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크게 3단계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 공사착수 단계 둘째, 공사 단계 셋째, 준공 단계입니다.

우선 공사착수 단계에서는 ①허가된 설계도서(도면, 명세서, 계산서, 조사서) 등과 각종 인허가 및 인증 관련 도서 등을 검토하고 확인합니다. 오류나 누락 또는 개선할 부분을 발췌하여 발주처와 설계자의 의견을 들어 수정, 반영하지요. ②시공자와 함께 현지조사(각종 재료원 확인, 지반 및 지질상태, 진입도로 현황, 인접도로의 교통규제 상황, 지하매설물 및 장애물 등)의 조사를 수행하여 공사계획에 반영합니다. ③시공자가 각종 공사계획서(시공, 공정, 품질, 안전, 위해방지, 환경 등)를 사전에 작성하게 하여 검토, 확인 후 향후공사의 기준을 설정합니다."

이렇듯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설계와 공사계획이 제대로 작성되었는지 검토하고, 공사가 이뤄지는 현장에 비춰볼 때, 설계사항이 적합한지 공사단계에서 주의할 사항은 무엇인지 점검한다. 이를 통해 실제 공사가 이뤄질 때,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사가 시작된 이후에는 어떤 일을 할까?

"공사단계에서의 업무는 크게 6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①시공성과 확인 및 검측 업무로서, 작업의 추진 여부를 확인하고 금일 작업실적과 사용 자재, 품질시험회수 및 성과 등의 일치 여부를 검토하고 주요 공정별, 단계별로 시공 규격 및 수량이 설계도서의 내용과 일치하는지를 검사하고 확인된 부분에 대하여 다음 공정을 착수하게 합니다. ②하도급 관리업무는 하도급업체의 실적, 규모 등의 자격 검증과 적정도급 계약비율, 노무비 안심 지급 장치 등을 확인, 검토합니다.

③사용자재의 적정성 검토업무(품질관리)로서, 사용될 주요자재의 공급원을 검토하고 자재수급 시 자재 검수를 통해 규격, 품질 등이 적정하게 조달되었는지 확인하여 불합격된 부분은 공사시공자에게 시정 통보합니다. 또한 각종 자재의 품질시험 계획에 의거 품질시험 여부와 횟수를 확인하지요. ④시공계획의 검토업무로서는 시공자로부터 공사 시방서의 기준(공사종류별, 시기별)에 의하여 시공계획서를 진행단계별로 제출받아 검토합니다. 그 내용으로는 현장조직, 세부공정, 시공일정, 주요장비, 자재동원계획 등입니다.

⑤안전관리업무로서는 공사전반에 대한 안전관리계획의 사전검토, 실시확인 및 평가, 자료의 기록유지 등 공사시공자가 사고예방을 위한 안전관리를 취하도록 합니다. 공사시공자의 안전조직 편성 및 임무, 시공계획과 연계된 안전계획, 현장 안전관리 규정, 안전관리 협의체 구성, 일일 안전교육, 정기안전점검, 안전관리비 사용 내역 확인, 재해 예방 전문지도 기관의 기술지도 여부 등을 확인 시행하도록 감독합니다. ⑥그 밖에 공정관리, 기술검토, 환경관리, 기성검토, 설계변경, 조사, 계측관리, 전 공정 업무 조정 회의, 발주처, 유관 기관 협의, 각종 교육 진행 및 참가, 민원관리, 인증업무 확인 등 실로 모든 부분의 확인, 검수, 검측, 지도, 발주처 보고 등의 업무를 하지요."

이렇듯 감리는 공사단계에서 이뤄지는 작업 과정 전반을 일일이 챙겨야 한다. 작업 각각이 절차에 맞게 이뤄졌는지, 품질 수준을 맞추고 있는지, 해당 작업에 들어갈 자재가 적합한지, 수량은 충분한지 등을 살펴본다. 기존의 설계와 법제도적 기준에 맞게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지 면밀히 점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건물의 안전과 품질을 적정 수준으로 담보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준공단계 업무를 말씀드리죠. 예비준공검사를 통해 미비한 점을 보완 시정토록 하고 준공신청 이전에 예비 및 정상상태 시운전을 완료하여 준공검사원을 제출토록 합니다. 시공자가 작성 제출한 준공도면이 실제 시공된 대로 작성되었는지의 여부를 검토·확인하고 각종 인증에 대한 본 인증서, 통신, 소방, 전기, 배수 설치 등 전문분야 준공필증을 확인한 후 공사비 최종 지불 청구서를 검토·확인하지요. 그 후 관할관청과 발주자에게 감리 완료보고서를 제출하고 사용승인서를 받습니다.

준공 이후 단계 업무로는 건축물 시운전 및 유지관리 협력이 중요합니다. 공사시공자가 당해 시설물을 관리할 자에게 인계하도록 협의하여야 하며, 당해 현장에서 특수한 재료 혹은 공법을 적용하였을 경우 시공 부위, 방법, 특성, 공사시공자 관리상의 주의점 등에 대한 기록을 인계하도록 하여 유지관리, 점검이 용이하도록 협력체계를 구축하도록 합니다."

감리원의 자격과 선정

설계·시공·준공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감리가 맡은 역할이 다양하고, 건설 산업 내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감리되기 위해선 어떤 자격이 요구되고, 어떻게 선정이 되는 걸까? 이에 대해 얘기를 들어보았다.

"감리원의 자격은 여러 각도에서 평가해 주어집니다. 교육 수준, 실무 경험 등을 고려해서 감리 역량에 등급을 매기고 있습니다. 건설공사의 감리원에 대해서, 관련 해당 학과를 전공했는지 여부, 일정 기간의 설계, 시공 경력과 국가기술자격증, 교육이수현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등급 및 역량지수를 나누죠. 초급, 중급, 고급, 특급으로 정해집니다. 이후 감리나 건설사업관리의 현장의 규모에 따라 배치됩니다.

그리고 감리 선정은 법에 근거해서 이뤄지는데, 크게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됩니다. 건축사법에 의한 감리는 (바닥면적의 합계가 5천 제곱미터 이상인 건축공사/연속된 5개 층(지하층을 포함한다) 이상으로서 바닥면적의 합계가 3천 제곱미터 이상인 건축공사/아파트 건축공사/준다중이용 건축물 건축공사)로 일반경쟁입찰방식으로 선정됩니다. 건설기술진흥법에 의한 건설사업관리용역(200억 원 이상 건설공사)은 기술용역 적격성 심사(보유 건설기술인 역량/신용도/실적평가)와 가격입찰로 선정됩니다."

감리 활동의 증진을 위해

한국의 건설 산업에서 안전문제는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다.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각종 토목·건축현장의 건물 자체의 품질과 안전뿐만 아니라, 건설현장에서의 산업재해, 중대재해까지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빈번히 벌어졌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데 있어서 현장에서의 관리·감독 업무를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때 감리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무엇이 중요할지 의견을 구했다.

"감리는 설계도서 검토, 시방서에 기술된 각종 내용의 이해, 수많은 자재의 품질과 시험성표 해독능력, 각 공정별 전문기술의 폭넓은 기술능력, 공정 간 조정회의 등 실로 수많은 경험과 지식, 리더쉽까지도 필요합니다. 초급이나 중급정도의 경력자는 수행하기가 역부족일 것입니다. 규모와 관계없이 10년 이상의 경력자를 상주감리로 배치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지역 업체나 중소 건설회사는 이 수많은 건설과정 업무와 관리를 할 인원을 보유할 수 없는 실정이고 기술능력 또한 현저히 떨어집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시공 기술자의 배치를 지원하거나 품질, 안전, 환경, 과 시공을 분리 발주하는 등 다양한 정책이 필요합니다."

최근 국토부에서는 산재사망사고가 다발하는 소규모 건설현장의 안전을 증진하기 위해서, 감리를 통한 현장 관리·감독을 강화하려는 정책방침을 내걸었다. 현재 건설현장(철거현장에도 일정규모 이상(3층 또는 연면적 500㎡ 이상)에서 허가제로 전환하고 감리를 도입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건설업면허 없이 공사할 수 있는 소규모 공사는 현장관리인이 안전 관련 사항을 감리에게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위험요인 확인 시 시공자에게 시정 요청, 정도에 따라 공사 중지, 주요시설 개선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였다(2018년 건축법 개정). 나아가 위험 상황 발생 시 감리의 공사중지 권한 법제화와 함께 이로 인한 손해책임을 부과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2018년 건설기술진흥법 개정). 또한 감리보고서에 안전관리이행상황을 기입토록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감리가 건설사업의 A부터 Z까지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건설 노동자의 안전까지 이들이 챙길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이다. 과중한 업무 부담으로 관리·감독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기도 하는 문제를 먼저 개선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지난 잠실에서의 철거현장 붕괴사고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감리 활동 자체가 유명무실하거나 시공사의 요구에 좌우되는 상황이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조건 하에서 법제도상의 의무만 강화하는 것이 감리 몇몇의 개인적 책임으로만 전가하는 부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감리는 발주처(공공기관, 감독관)의 단순한 행정 대행자나 자신들의 책임을 전가하는 하수인이 아닙니다. 책임과 권한을 정확히 주어 소신 있게 감리에 임할 수 있게 감독(관료)의 권한을 축소시켜야하며, 공공기관의 불공정한 계약 행위도 근절되어야 합니다. 아니면 차라리 공무원들이 직접 상주하여 감리를 하거나, 별도의 공무직처럼 운영하는 등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일련의 정책적 변화와 관련해, L씨는 안전관리를 위한 체계 구축의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동시에, 감리원이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선, 감리 업무의 공공성 강화 및 독립성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 산업에서 제3자로서 관리·감독의 중요한 한 축인 감리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역량강화 및 인력관리, 실질적 업무수행 보장 등의 개선이 이뤄지길 바란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활동지원사 노동자의 쉴 권리 보장을 위해 / 2020.07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활동지원사 노동자의 쉴 권리 보장을 위해 

-전덕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전국활동지원사지부 사무국장 인터뷰 

 

 

김가을길 / 상임활동가 

 

"휴게시간은 근로기준법에 의해 4시간에 30분, 8시간에 1시간씩 부여하도록 돼 있잖아요. 휴게 시간의 부여 시기를 변경할 수 있게 해주는 게 특례업종이었어요. 국가인권위 권고사항으로 휴게시간을 유연하게 부여한다거나 하는 방안이 나왔는데, 이런 정책들이 7월 1일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 이전의 상황이었죠. 

활동지원사들의 쉴 권리가 특례업종 제외 이전에도 없었던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사실상 활동지원사들은 그간 제대로 된 휴게시간을 부여받지 못하고 일했어요. 근로기준법상 휴게시간의 권리가 있음에도 부여받지 못하는 불법적 상황이 근 10년 가까이 계속되어왔던 거예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벌써 1년이 넘었지만, 활동지원사 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휴게시간이 없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전국활동지원사지부 전덕규 사무국장을 낙원상가 골목 근처의 활동지원사노조 사무실에서 만나 활동지원사 노동자의 쉴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복지사업 특례업종 제외 후 변화

언론에서는 최중증장애인 사고방지 등을 앞세워 활동지원사의 끊임없는 서비스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그럼에도 쉼의 권리는 노동자 건강권의 측면에서 너무나 필요한데, 개정된 맥락에는 또 무엇이 있었을까? 개정 이후 휴게시간이 생겼다고 볼 수 있는가?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이 2018년 3월 20일에 개정되었고 7월 1일 이후 시행입니다. 여기서 근로기준법상 특례업종이라는 게 뭔지가 중요한데, 특례업종이 될 경우 연장근무가 제한 없이 가능했어요. 그때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주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고 특례업종을 축소하자는 논의가 진행됐는데, 제외되는 특례업종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았어요.

화물 운송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으로 교통사고가 난다거나, 집배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한다던가. 그런 일들이 계속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요구에 따라 특례업종이 축소됐던 겁니다. 많은 활동지원사들도 이용자 필요에 따라 장시간 노동을 했고요.

개정 후 사회복지사업이 특례업종에서 빠지면서, 휴게시간을 4시간에 30분, 8시간에 1시간 부여하게끔 변화하게 되었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활동지원사들에게 휴게시간의 권리라는 게 기존에 없던 게 아니라는 거예요. 사실상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있는 상황이 제도 초기부터 있었고,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활동지원사 휴게시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거지 '휴게시간이 생겼다'와 같은 표현은 맞지 않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개정 이전 '휴게시간을 유연하게 부여하도록 한다'라는 등의 대안을 내놓았다. 특례업종 제외에 관해 활동지원사 노동자의 고용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보건복지부나 기타 정부 부처, 지자체 등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사항은 돌봄서비스의 경우 휴게시간을 유연하게 부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사실 그게 기존에 없는 걸 마련한 게 아니라 원래도 법률적으로 유연하게 하도록 돼 있는데 새로운 방법인 것처럼 또 권고한 것뿐이에요. 그렇다면 국가인권위의 권고는 유효한 권고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방법은 조금씩 다를 수 있어도 법이 기본적인 테두리를 마련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근로기준법 개정 과정에서 특례업종 제외에 관해 반대했어요. 보건복지부는 지금까지도 노동자 휴게시간 권리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을 앞둔 2018년 6월에 '휴게시간 지원 방안'이라는 대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열어보니 사실상 공백을 가족돌봄으로 대체하고 한 시간 정도 되는 단시간 대체 인력을 5000원 정도 더 주는 방식으로 파견하거나 퇴근할 때 맞춰 8시간에 할당되는 휴게시간 1시간을 당겨서 교대 스케줄을 짜는 정도였죠. 실제로 그렇게 운영이 되지는 않습니다. 일하는 활동지원사 입장에서는 근무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보건복지부에서 국가기관과 실질적 고용주로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정부에서 제대로 조치하지 않으니, 개정된 근로기준법상의 특례업종 제외의 의미가 잘 실행되기는 어려웠을 것 같았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물었다.

"사회적 논의로 인해 근로시간이 축소되고 특례업종이 줄어든 것은 노동자의 권리 보장의 측면에서는 진일보 한 것이죠. 그렇다면 보건복지부에서도 활동지원사에게 휴게시간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그런 건 전혀 안 되고 있고요. 일단 근로기준법상 휴게시간이라는 것은 사용자의 지휘/감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잖아요. 하지만 활동지원사들은 그렇게 쉬는 것이 아니라 단말기를 종료해 근무기록을 삭제하는 등의 방법으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예요."

보건복지부에서 대책이라고 내놓았던 위의 지원방안을 통해 휴게시간을 준 이용자는 다섯 손가락에 꼽았다고 한다. 그만큼 실효성이 없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때 보건복지부는 계도기간이라 이용자들이 많이 쓰지 않았다는 핑계를 댔지만, 계도기간 동안 보건복지부나 고용노동부가 본 목적을 위한 제대로 된 시도를 한 적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2018년 12월이 되어 계도기간이 지나자 보건복지부에서는 다시 또 같은 지원방안(단시간 대체 인력 고용)을 지자체에 공문으로 배포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벌써 2020년이 절반이 가까이 됐는데, 지난 1년간 이용자 수가 어땠냐 하면, 10명도 안 되는 처참한 실정입니다. 지금 보건복지부는 그것이 실패한 정책임을 알지만, 대책을 내놓지도 못하고 있어요. 

아예 휴게시간을 부여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아까 말했듯 일부 기관에서는 단말기만 종료하게 시킵니다. 단말기만 종료하게 되면 근무기록을 삭제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휴게시간 부여가 아닌 임금체불이 되죠. 그러니 지자체들 상황이 우스워요. 휴게시간을 부여하는 지자체는 사실상 단말기를 종료하고 있기에, 실질적인 휴게시간도 아닌 데다가, 임금체불까지 해서 이중 근로기준법 위반이겠죠. 그러나 휴게시간을 부여하지 않는 지자체는 휴게시간에 관련한 법률 위반이 됩니다. 아무 대책이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최소한 일한 것에 대한 임금이라도 받게끔 설명하고 있습니다."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유

그는 휴게시간을 쉴 수 없으니 돈으로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쉼의 권리마저도 돈 문제로 치환시키는 것이기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당장 조건을 바꿀 수 없다면, 휴게시간 저축제 등 온전한 휴게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운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국회에서도 노조에서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되지는 않았다. 휴게시간인데 쉴 수 없는 구체적인 사유는 무엇일까. 

"거의 모든 활동지원사는 1:1로 파견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일하는 동안 다른 사람이 쉬는 방식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근육장애인이나 최중증장애인의 경우 특성상 끊김 없는 서비스를 원하죠. 또 장애인 이용자가 사회활동을 할 경우 대중교통 안에 있다면 휴게시간을 가질 방법도 공간도 없는 등의 문제가 있죠. 

활동지원사가 실질적으로 휴게시간을 쓸 수 있는가의 여부는 제도적 조건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바우처 제도, 1:1 방식으로 파견하는 방식 안에서는 이를 활용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휴게시간은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함으로 노동자 건강권에 있어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저희는 휴게시간 저축제를 요구하는 거예요. 휴게시간 저축제는 쉬지 못한 휴게시간을 유급휴가로 계산해 활용하는 방식으로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겠죠."

언론에서는 근로기준법 이전의 특례업종으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여러 차례 제기됐는데,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인터뷰 기사는 개별적인 의견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장애인 단체 같은 경우 근육장애인이나 최중증장애인 생존권연대 같은 데서 목소리를 많이 냈죠. 근육장애인 중에서는 활동지원사가 10분 정도 잠시 퇴근하고 교대하는 사이에 호흡기가 떨어져서 사망한 사례도 있었고, 그러다 보니 절박함이 있으셔서 끊김 없는 서비스를 필요로 하십니다. 

그런데 장애인은 활동지원사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용자예요. 그러면서 한 가지 더 주장하셨던 게 과거의 특례업종으로 돌아가자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아까 제가 말씀드렸듯 기존의 특례업종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휴게시간을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잖아요. 돌아가는 것이 해법일 수는 없습니다.

또 특례업종을 축소하는 것 자체도 노동계의 성과인데 이걸 다시 돌아가자고 하는 건 퇴보시키자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최중증장애인 생존권연대 토론회 기사 내용에서 변호사가 지적하는 걸 보면, 2018년 7월 1일 시행 이전의 근로기준법이 말하는 특례업종과 시행 이후에서 규정하는 특례업종의 성격이 또 다르다는 건데요. 

가령 지금은 '연속적으로 근무를 하면 얼마만큼의 휴식이 주어져야 한다' 이런 이야기도 한다는 거죠. 그런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특례업종에 지금의 사회복지사, 활동지원사가 들어간다고 해도 그분들이(이용자) 원하는 방향으로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아마 그렇게 세세하게 보게 되면 (기존처럼 특례업종으로 포함시켰을 때) 원하는 상과는 다를 거라고 보고요."

활동지원사의 쉴 권리 보장을 위한 과제

휴게시간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 활동지원사 노동자들의 노동안전보건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이 있는지 들어보았다. 

"휴게시간이 있는 근무를 상상해본 적이 없어서 영향이 무엇일까 명확하게 말하기는 힘듭니다. 산재에 관해서는 근골격계 질환이 많은데, 이용자가 가벼워도 60kg, 많이 나갈 경우 100kg가량 되기 때문에 그들을 한 사람이 들어야 하는 현 제도에서는 근골격계 질환의 위험이 아주 큽니다. 산안법상에는 10kg만 넘어도 두 명이 들게끔 권고했는데 그런 주장은 받아들여진 적이 없죠. 산재 인정률이 낮다 보니 대체로 산재 신청도 어렵고요. 이용자를 들어 옮기고 하는 업무가 많아 허리나 어깨에 영향이 크죠. 

조합원 중 직업병으로 산재 신청을 해서 인정받은 경우는 한 건 있었습니다. 요즘은 코로나19가 주요 이슈인데, 활동지원사 노동자들은 이용자와 밀접하게 자주 대면하는 것에 비해 마스크 지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근무 중인데 코로나 발생 이후로 지금까지 받은 마스크 수가 총 여섯 장입니다. 장애인이 보조구를 충분히 지급받지 못하는 문제가 활동지원사의 노동조건과도 충분히 연결돼 있습니다. 휠체어를 예로 들자면, 장애인들에게는 이동수단을 보장하는 기기겠지만 활동지원사 노동자에게는 노동을 보조해주는 기기라서요."

전덕규 사무국장은 활동지원사들의 온전한 쉴 권리를 위해 앞으로도 권리보호와 요구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활동지원사에게 실질적인 쉼의 권리가 주어질 때까지 함께 연대하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사회복지사는 왜 착하고 희생적이어야 하나요? / 2020.06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사회복지사는 왜 착하고 희생적이어야 하나요?

 

 

정경희 / 선전위원 

 

"뭔데? 지는 얼마나 잘났다고, 처음부터 다 알았나? 환자 앞에서 우릴 그렇게 무안 주면, 지가 올라가는가 보지?" 

실습 일과를 마친 후 동기들과 수다가 없었다면 버티기 어려웠을 시절. 젊은 시절이 좋았어도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빛바랜 시간들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사회복지학과 실습을 마치고 지금은 휴학 중인 소나기님을 지난달 13일 안양역 근처 카페에서 만나 그가 겪은 생생한 실습 이야기를 들었다.


장애인 복지관에서 실습을 시작한 이유 
 

사회복지학과 실습은 보통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 때 많이 하는데, 사회복지사 자격증에 필요한 160시간, 4주를 기본으로 한다. 
대략 3~4월에 실습하고 싶은 곳을 서너 군데 정해두고 자기소개서와 프로파일을 작성하고, 그 후엔 4월부터 6월 사이에 사회복지 실습이 인정되는 각 기관이나 단체에서 실습생 모집 공고가 올라오면 지원한다. 

소나기님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실습을 했다. 사회복지사가 되려는 이유와 장애인복지관을 실습 장소로 선택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봉사활동 중에 누군가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우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때 장애아동 방과 후 프로그램에 자원봉사자로 활동을 했었는데요. 가끔이었지만 공원에 산책을 나갈 때면 먼저 와있던 부모들은 장애 아동을 보고 같이 못 놀게 하거나 비장애 아동을 데리고 공원을 나가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지역사회에서 장애아동들이 받는 편견과 차별들이 하나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스며들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했고, 실습해 장애인 복지 분야를 조금 더 알아보고 싶었어요."

"복지관의 직원 출근 시간은 8시 50분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 실습생은 8시 40분부터 오후 6시까지였어요. 그런데 오후 5시 50분경 팀장님과 마무리 모임하면, 정시에 마치는 날이 거의 없었어요. 저녁 7~8시까지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일과의 시작과 마무리는 팀장님 조회에요. 팀장님께서 실습생이 다 왔는지 확인 후 오늘, 내일의 업무를 설명해주십니다. 

그다음엔 사회복지 사무실로 올라가 한가운데 일자로 쭉 서서 매일 다른 멘트로 아침저녁 인사를 해요. 예를 들면, '안녕하십니까. OOO 실습생 인사드리겠습니다' 구호를 외친 후 '활기찬 O요일 되십시오'라 하고, 끝날 때는 아침과 똑같이 구호를 외치고 '오늘도 열심히 배웠습니다'라고 합니다. 

매일 다른 멘트를 생각해야 했고, 얼마나 창의적이고도 인상적인 인사를 하는지 항상 팀장님이 확인하셨기 때문에 실습생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어요. 인사 시간만 다가오면 다들 불만이 많았지만, 전통이었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실습 2주 동안은 방과 후 프로그램을 돕는 역할을 했어요. 프로그램 특성상 점심 보조를 했는데, 그동안 점심을 빨리 먹어야 해서 먹는 둥 마는 둥 할 수밖에 없었죠."

보통 4주간 실습 중 첫 주는 대부분 교육, 2주 차부터는 기관마다 다른데 실습 간 복지관에서는 해마다 방학프로그램 부담임으로 배치해왔다고 한다. 

마지막 주는 관장, 팀장 면담이나 1주 차 교육을 계속 이어갔다. 실습프로그램을 마치고 어떠했는지 소회를 물었는데 시작 전부터 수퍼바이저의 고정관념과 편견 때문에, 세 번의 심리적 지진을 느꼈다고 한다.

"실습 일주일 전 실습 기관의 담당 수퍼바이저와 만나서, 실습 일정이나 필요한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는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어요. 실습생 10명 중 여자가 7명 나머지는 남자였어요. 

실습 일정에는 1박 2일의 대규모 캠프가 있었는데, 실습생 2명은 복지관에 남아야 하고, 남자는 무조건 캠프를 가야 한다고 했어요. 선택권 없이 여자 실습생만 남을 수 있다는 말이 충격적이었어요. 그러나 첫 만남이라 어떤 말씀도 드릴 수 없었죠."

"반팔 티셔츠는 되도록 입지 말고 전문직처럼 보이게 남자는 카라티, 여자는 블라우스를 입으라며, 옷차림에 대해 한 명씩 일일이 지적하는 것을 보고 두 번째 지진을 느꼈어요. 그리고 자기소개서를 보시더니 갑자기 제 이름을 부르셨어요. OOO! 학생회 했네! 콕 집어 질문 없냐고 해서 복장규제와 캠프참여를 정함에 남녀차별에 대해 질문했고, 무거운 것은 남자가 들어야 한다는 고정된 성 역할을 이해시키려고 계속 말씀하시더라고요. 

말이 길어져서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는데, 마지막에 학생회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제가 이런 질문 할 것을 예상했고, 이해시키기 위해 일부러 지목했다 하시더군요. '실습 그만두겠는데?'라고도 하셨어요. 제 마음에는 세 번째로 지진이 일었어요." 

"항상 수퍼바이저 손바닥 위에 있는 느낌" 

시작 전부터 받은 충격으로 실습을 꼭 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실제 진행한 실습내용이 본인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물었다.

"실습 기간 동안 이용인에게 다가가는 방법, 복지관의 역할 등 정말 많은 사회복지 지식들을 배웠어요. 하지만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는 팀별 과제라든가,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해보는 과정들이 없었고, 실습생은 활동에 참여하면서 사회복지업무를 어깨너머 봐야 했어요. 이미 짜인 프로그램에 실습생이 투입돼서 보조하는 역할이었기에 배웠다기보다는 봉사활동을 한 느낌이었어요."

일반적으로 실습비를 개인이 실습 기관에 8~10만 원을 직접 지불하지만, 실습 기관에 따라 예외적으로 실습비를 받는 경우도 있다. 당시 실습비의 대부분은 식사비나 회식비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기관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기관에선 실습생에게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한편, 실습 평가점수는 실습 기관의 수퍼바이저에 의해 좌우된다고 한다. 그래서 수퍼바이저의 권력은 실습생들에게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수퍼바이저가 실습생들의 개인 평가점수를 학교에 제출하게 돼 있어요. 실습 도중에 실수했거나 OT에서 했던 질문 같은 것으로 밉보이면 수퍼바이저는 맘대로 점수를 깎으면 그만이잖아요. 

그런데 실습생에게는 '이 점수가 취업까지 연결된다',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은 미래에 네게 돌아간다'라는 메시지가 강해요. 그래서 실습생은 항상 수퍼바이저의 손바닥 위에 있어야만 했어요. 굴욕적인 일을 겪어도 참아야 했고, 회식 자리는 실습의 연장이 돼서 항상 필수로 참석해야 했어요."

이어서 들려준 1박 2일 캠프에서 이야기는 '실습생을 부려먹었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진행, 고깃집에서 서빙, 수영장 안전요원, 늦은 시간까지 회식이 비용을 지불하고 경험하는 실습의 과정으로 보기에는 부적절해 보였다.

"매년 캠프를 가지만 이번에는 자원봉사자 인원이 부족했어요. 호텔 전체를 빌려 행사를 진행했는데, 각 부서 팀장님들과 실습생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만 했어요. 가기 전에 각각의 프로그램에 실습생을 미리 한 명씩 배치했는데, 실습생은 프로그램 준비 과정을 모르다 보니까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었어요. 

사전 정보도 없이 시작된 터라 다들 우왕좌왕했어요. 낮에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한 번도 안 해본 것을 설명해야 했고, 남자실습생은 워터슬라이드 안전요원을 하다가 다치기도 했어요. 그러고 나서 저녁 식사 시간에는 일손이 부족하다고 수영장 옆에서 진행하다 젖은 옷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 식당으로 가야 했어요. 식사 준비를 돕고 서빙도 해야 했어요. 

같은 차를 타고 왔던 이용인이 불판을 바꾸고 자리를 안내하는 저를 보곤 실습생이 이런 것도 하냐고 묻기도 하셨어요. 저녁 프로그램이 끝난 후엔 평가회의 겸 회식을 한다고 해서 완전 긴장을 했어요."
 

육체적 힘듦보다 회식에서 겪은 바가 훨씬 굴욕적이었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평가 회의가 끝난 후 회식을 이어가던 도중에 국장님께서 갑자기 '너희를 우리 기관에 붙여 줄 거로 생각하느냐. 여기 들어오기 힘들다. 아예 너희의 희망을 자르는 거다' 하시는 거예요. 그러고는 갑자기 '첫 잔은 원샷을 해야 된다'며 건배 제의를 했어요. 저는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편이라 무척 당황했죠. 

그때 누군가 '국장님께서 하시면 저희도 할게요'라고 용기 있게 말했고, 국장님은 보란 듯이 술잔을 비워버리셨어요. 저는 원샷이 힘들어 반만 마셨는데, 옆에 있던 친구들은 눈이 빨개지면서까지 다 마시는 거예요. '술을 이렇게 열심히 마셔야 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식 말미에 국장님께서 '술잔을 비우라고 한 것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대처나 적응능력을 본 거다'라고 하셨어요. 캠프 와서 실습 시간 160시간을 초과했는데, 이런 굴욕적인 상황을 겪어야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어요. 복지관에 취직시켜준다고 해도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복지사에 대한 전망을 갖고 실습을 나갔는데, 실망스러웠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실질적인 실습이 되려면 개선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해요. 복지기관들이 보수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기도 해요. 예를 들어, 탈색모거나 밝은 염색을 한 사회복지사에 대해 컴플레인이 들어오니 가급적이면 실습생도 검은색의 단정한 머리를 해야 하더라고요. 

주변에 수평적 조직문화를 가진 복지관에서 실습한 사례가 있는데, 팀장, 부장님의 이름을 부르며 장난도 치고, 저희처럼 이미 기획된 캠프 프로그램에 자원봉사활동 하는 게 아니라 사회복지사와 함께 캠프를 기획하여 프로그램을 구축해 나가는 경험했다고 합니다. 

애초에 복지관의 조직체계에서부터 차이가 있었더라고요. 말단 실습생의 경험으로는 '모든 게 내가 맞다'라고 생각한 것부터가 수직적 조직문화의 시작이 아닐까 해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태도가 수평적 조직문화의 시작이라 생각해요."

사회복지사는 왜 착하고, 희생해야 하지?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한국 사회에서 사회복지기관이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에 필요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재정이 취약할수록 일선 근무자의 근무조건·환경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업무의 특성상 감정노동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소진이 많을 텐데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도 들어보았다.

"복지관 프로그램은 대부분 후원금으로 진행하는데요. 사회복지사가 현장에 많이 나간다고는 하지만, 후원금을 따와야 하기에 앉아서 서류 작성이 더 많더라고요. 보통 계획안, 보고서, 결과서를 작성하는데, 규모가 작고 재원이 적은 복지관의 경우는 더욱 예산을 많이 따와야 해서 서류도 많이 필요해요. 

유니세프,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처럼 위탁재단이나 법인이 클수록 후원금이 많아요. 그래서 임금을 받을 때 재단에서 특별수당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아무래도 재원이 많을수록 할 수 있는 업무 범위도 넓어지고 업무수행도 좀 더 안정적이에요. 하지만 사회복지사가 후원금 납부나 종교를 강요당하는 사례가 있기도 해요. 사실 사회복지사는 업무 강도에 비해 처우가 낮다 보니 많은 분이 이직합니다. 

이 진로에 큰 목표를 가지고 왔지만, 복지관의 비리나 사회복지 현실을 접하고 나니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복지를 하면서 부당함을 당하기보다는 오히려 부당함을 헤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현실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야 할지 막연해져서 고민도 많이 되더라고요."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복지서비스를 제공만 하지 받지는 못하고 있어요. 관장, 국장처럼 높은 직급과 달리, 입사 초년생은 고용조차 불안정하잖아요. 주변에 졸업하고 취직한 지 1~2년 된 선배님들의 퇴직 사례를 종종 들어요. 업무 강도가 지나치게 높거나 직장 내 대인관계에서 생긴 문제로 그만두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서비스가 대중들에겐 '착함'이라는 프레임을 갖고 있잖아요. 그러다니 감정 소모가 있어도 무시되는 거 같아요. 이를 관리해줄 제도도 없고요. 사회복지사들도 다른 일반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데, '왜 착해야만 하고, 봉사나 희생을 강요당해야 하지?' 의문이 들어요."

소나기님은 실습의 과정을 거치면서 뭘 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수평적 조직문화에 기반한 노동환경, 사회복지환경을 만들어보고자 장기적인 진로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졸업 후 사회복지 분야의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재단이나 법인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소나기님이 바라는 사회복지공동체가 실현되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뉴미디어 산업은 MCU 히어로처럼 멋지기만 할까? - 자유로운만큼 불안정한 뉴미디어 산업의 과제들 / 2020.05

뉴미디어 산업은 MCU 히어로처럼 멋지기만 할까?

- 자유로운만큼 불안정한 뉴미디어 산업의 과제들

박기형 상임활동가

 

지난 4월호에서는 온라인 방송 산업의 구조와 MCN의 역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번 5월호에서는 파트너쉽 매니저와 크리에이터들이 노동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소개하고, 신산업으로 주목받는 온라인 방송 산업이 제대로 된 산업으로 자리 잡고 발전하기 위해선 어떤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하는지 검토해보고자 한다.

[관련기사] 전략분석부터 발굴까지... 크리에이터 매니저의 일과 http://omn.kr/1nd39

뉴미디어의 특성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
 

뉴미디어 콘텐츠는 크리에이터 각각의 특성이 자유롭게 드러난다. 그렇기에 MCN이나 광고회사 등이 콘텐츠 생산 자체에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뉴미디어의 강점이 사라질 수 있다. 크리에이터의 색깔이 사라져서, 콘텐츠의 독특성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MCN에서는 기본적으로 크리에이터들의 창작을 자율성에 맡기고, 도움을 통해 그들이 강점을 살릴 수 있을 때나, 도움을 통해 더 높은 퀄리티의 콘텐츠가 제작될 것으로 기대될 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4월호에 살펴봤던 기획과 모니터링이었으며, 그 외에도 기술적, 인프라적으로도 지원한다. 기획에 따라 평소와 달리, 외부촬영을 하게 될 경우, 장소섭외를 도와주거나, 외부촬영 장비를 제공하기도 한다. 특별한 컨셉의 촬영 시 MCN이 보유하고 있는 스튜디오를 빌려주기도 한다. 이러한 지원 서비스들이 크리에이터들에게 제공될 때에는 파트너쉽 매니저가 중간에서 소통 역할을 담당한다.

이렇듯 파트너쉽 매니저가 컨설팅과 기획 등을 주된 업무로 한다고 해도, 늘 중심에 놓인 것은 다수의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이다. 즉 업무 전반에서 사람을 상대하는 게 빠질 수가 없다. 이는 크리에이터들도 마찬가지다. 뉴미디어의 특성 중 상호작용이 빠르고 활발하다는 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면 부정적인 피드백도 빠르고 자극적으로 전달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연예인들처럼 크리에이터들도 온갖 악플과 위협 등에 노출되어요. 그러다 보니 크리에이터들도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게 되죠. 소통 과정 자체가 늘 수반되다 보니 피할 수도 없죠. 여러 방식으로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죠. 그럼에도 받는 스트레스가 있죠. 이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고 나누게 되는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담당 매니저예요. 매니저가 직접적으로 공격을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크리에이터와 협업을 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크리에이터가 악플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게 되죠. 이는 상당히 힘든 일이에요. 매니저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 바깥의 일이지만, 업무에 상당한 부담을 주죠. 크리에이터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최근 MCN에서도 대면 업무에서 발생하는 갈등 상황이나 악플 등에 대한 대처 등 파트너쉽 매니저들의 감정노동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를 분명히 인지하고서 대책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한다.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심리치유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감정노동과 관련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담 지원도 도입했다. 이러한 사후적 대처뿐만 아니라, 매니저 등 직원의 감정노동에 대한 사전적 예방 조치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  뉴미디어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다양성이 실현되는 매체가 될 수 있을까? ⓒ pixabay

 


뉴미디어의 발전, 특성에 맞는 사회적 보장이 뒷받침되어야

"악플 등으로 인한 감정노동 외에 또 다른 어려움은 모든 게 자유로운 만큼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아서 생기는 어려움도 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콘텐츠를 내가 만드는 것이다 보니 규칙도 없고 정해진 시간도 없어요. 그런데 시청자들의 요청과 피드백은 끊이질 않죠. 그러다 보니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어요. 기획, 출연, 촬영, 편집을 다 하는 상황에서 1일 1업로드, 1주일 1업로드를 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모든 콘텐츠를 언제까지고 혼자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편집자와 섬네일러가 있다. 크리에이터들은 이들을 프리랜서 등의 형태로 고용한다. 이렇듯 뉴미디어에서도 간단하고 단순한 형태의 분업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뉴미디어 산업 자체가 아직 초기 단계라는 점이다. 업계 표준이나 법적 규정이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편집자들과 섬네일러들을 고용할 때 여러 사건·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하든, 혼자서 만들든, 열심히 콘텐츠를 만들어도 반드시 고소득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에요. 한 달에 수천만 원씩 버는 유튜버들이 주목받으면서 많은 사람이 유명 크리에이터를 꿈꾸게 되었죠. 하지만 마치 자영업처럼 내가 열심히 일하는 거랑 대중이 나를 선택하는 건 별개의 문제에요. 그래서 크리에이터들의 주된 고충이 규정되지 않는 노동시간과 소득 불안정성이에요. 뉴미디어에서 인기가 급상승하는 것과 급하락하는 것은 순식간인데, 이를 예측할 수도 없고, 명확한 이유를 알기도 힘들죠. 이를 직업으로 삼게 되면, 누구라도 큰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관련 업계 종사자로서 크리에이터를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안정적으로 창작을 이어나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나도 저렇게 성공하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 삶이 보장되는 산업이 절대 아니니까요."

필자가 상상해보건대,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세상은 참으로 흥미롭고 재밌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상상이 실현되기 위해선 아무런 분석이나 대책 없이 장려할 것만이 아니라, 누구나 안심하고 이 산업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관련 인프라를 탄탄하게 만드는 일부터 이뤄져야 한다. 더불어 안정적인 노동환경을 만드는 일도 이뤄져야 한다.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에는 새로운 노동 형태가 등장하고 안정화되는 과정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사회정책을 시행하고자 한다면, 뉴미디어 산업의 자유로운 만큼 불안정하기도 한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   급속도로 변하는 미디어 환경은 서로 다른 삶을 연결시켜준다. 이러한 관계망을 바탕으로 한 뉴미디어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 사회적으로는 무엇이 뒷받침 되어야 할까? ⓒ LIUC.it


그럼에도 뉴미디어와 함께하고 싶은 이유

그렇다면 H씨가 파트너쉽 매니저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뉴미디어 산업이 갖는 매력이 분명히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4월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뉴미디어는 레거시 미디어와 달리, 쌍방향 소통이 내재해있다. 기존의 창작활동들은 일방향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아무리 소통하려고 해도, 사후적이거나 제한적인 영향만을 행사할 뿐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H씨는 뉴미디어 산업은 기획부터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하고 빠른 게 강점이라고 보았다. 그로 인해 때론 영상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누구나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얘기했다. 문턱이 낮아지면서,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되어 다양한 콘텐츠를 더 쉽게 만들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저에게는 큰 매력이었어요. 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누구나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각자의 독특성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점에서 뉴미디어 산업은 혁신적인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죠.

전문가가 아니어도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미디어 산업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영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고, 거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의견을 덧붙이고, 나아가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이 계속 자리를 바꿀 수 있는 상호연쇄 작용이 빠르고 자유롭게 일어나는 게 너무 좋았어요. 거기서 함께 웃고 떠드는 게 즐거웠죠.

이 즐거움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었고, 뉴미디어의 세계를 더 자세히 알고, 그 세계가 더 발전하는 데 기여하고 싶었어요. 매니저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크리에이터로도 활동하는 바람도 있어요. 이미 때때로 취미와 일의 경계, 매니저와 크리에이터의 경계가 흐려질 때도 종종 있고요(웃음)."
 

H씨는 뉴미디어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이유에 대해서 사회 전반의 변화에 뉴미디어의 특성이 잘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점점 '공감'과 '소통' 그리고 '자기표현'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게 된 것 같아요. 사회에서 이런 가치들을 잘 구현할 수 있는 매체를 찾게 된 것이죠. 뉴미디어야말로 콘텐츠의 다양성과 독특성뿐만 아니라, 제작과정 자체가 적합한 매체 같아요.

이런 생산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크리에이터의 인간적인 매력과 자기만의 재능이 각자의 콘텐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죠. 이로 인해 크리에이터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 거죠. 그래서 매니지먼트의 차원에서 본다면, 크리에이터 각자가 가진 장점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좋은 매니지먼트라고 생각해요."
  
물론 뉴미디어를 이윤을 내려는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면 트렌드를 쫓고 어떻게 조회 수와 구독자를 늘릴지 고민할 수 있다. 그 연장선에서 유명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이들이 느는 것만큼, 레거시 미디어들이 뉴미디어 산업에 투자하거나 자회사 등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H씨는 앞으로도 뉴미디어가 뉴미디어답기를 바라고, 자신도 그에 기여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뉴미디어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우리 생활의 중심에 들어왔죠. 산업이 발전하면서, 여러 문제도 수반되고, 이 매체만의 특성도 약해질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뉴미디어 세계에서 우리 모두가 크리에이터로서 자신의 창의성을 자유롭게 발휘하고,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서로를 존중하며 공감대를 만들어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유투버에게도 매니저가 있다고?! / 2020.04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유투버에게도 매니저가 있다고?! 

 

 

 

 

박기형 / 상임활동가 

 

 

크리에이터. 원어를 그대로 번역한다면 창작자.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직업이 바로 크리에이터다. 하나의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크리에이터는 유튜브, 아프리카TV, 트위치 등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거나 영상을 기획·제작하여 올리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 크리에이터들이 영상을 만드는 과정은 전통적인 방송, 영화 산업에서의 영상물 제작과는 다르다. 그래서 방송, 영화 산업을 가리켜 레거시 미디어, 동영상 공유 서비스 또는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을 가리켜 뉴미디어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언제나 영상기술이 발전하면서, 뉴미디어들이 등장하곤 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검색조차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 특히 영상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유망직종과 산업은 정말 새로운 것일까? 모두가 꿈꾸는 크리에이터의 일은 정말 장밋빛으로 물들어 있을까? 취미와 일이 일체가 되는 삶을 누릴 수 있을까? 휴대폰과 태블릿, PC 화면에 송출되는 크리에이터의 방송이 기획, 제작, 방영되기까지 어떤 노동과정이 숨어있는 것일까? 한 MCN(Multi Channel Network, 다중 채널 네트워크) 업체에서 일하는 H씨를 지난 3월 28일에 만나 얘기를 나눴다.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의 산업구조와 MCN의 역할

MCN은 뭐 하는 곳일까? MCN은 한 마디로 인터넷 방송의 SM, YG, JYP와 같은 곳이다. 방송 스트리머,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를 유통하고 콘텐츠 기획·제작을 지원하며, 저작권을 관리해주고 광고를 유치하는 등 각종 매니지먼트를 제공하는 기획사다.

대표적인 회사로 CJ E&M과 같은 대기업도 있지만,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 기업인 샌드박스 네트워크, 트레져헌터 등이 있다.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서 영상을 찍고 올리는 사람과 보는 사람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연예기획사 같은 회사가 등장한 것일까

 
"유튜브나 트위치와 같은 곳에서 크리에이터 혼자 일하는 게 아니에요. 일종의 협업구조죠. 방송 콘텐츠의 수요 측면에서는 크리에이터와 시청자 둘만 있지만, 공급 측면에서는 크리에이터와 플랫폼 그리고 광고주가 있어요. 광고주가 중요해요. 크리에이터의 영향력이 커지면, 광고주가 자신들의 제품 또는 이벤트를 홍보하기 위해 접근해요. 방송이나 영화처럼 광고비를 얼마 줄 테니 영상이나 라이브 방송 때 노출 시켜달라고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죠. 이때 광고주들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홍보 효과를 누리고 싶죠. 크리에이터들은 광고의 대가로 최대한 많은 이윤을 얻고 싶고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해요. 광고주와 크리에이터 간의 비대칭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크리에이터는 사업자 등록의 여부와 관계없이, 개인으로 활동하는 것이죠. 하지만 광고주는 기업들이죠. 플랫폼 업체 입장에서도 광고주들이 이윤 측면에서 중요하죠. 그런 상황이니 크리에이터 혼자서는 광고주와 제대로 협상할 수가 없어요. 협상력이 떨어지는 거죠. 더구나 광고업계는 바닥이 좁기 때문에, 어느 한 광고주와 관계가 어긋나면 다른 광고주들로부터도 광고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요. 정말 '대도서관' 같은 사람, 뭐 방송으로 치면 유재석이나 강호동처럼 대체 불가능한 크리에이터가 아닌 이상 힘들다는 거죠.


더구나 광고 요청이 여러 군데서 연락 오기도 해요. 이럴 때 크리에이터 혼자 대응하려면, 정작 콘텐츠와 구독자 관리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요. 쉽게 말해, 공장에서 팔 물건을 만드는 것과 자본투자를 유치하는 것 간의 차이와 마찬가지죠. 투자를 받도록 도와줄 조력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바로 MCN입니다."
 
달리 말해, MCN 개별 크리에이터들의 합집합과 같다. 아니, 그 이상의 효과를 낳는다. 크리에이터 입장에서는 집단으로 협상할 수 있는 단위를 갖게 된다. 반대로 MCN 입장에서는 영향력이 큰 크리에이터를 확보하면 할수록 플랫폼, 광고주, 기타 업체들과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한 마디로, 회사 대 회사의 구도를 갖게 되는 것이다. 크리에이터가 안정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차원에서 지원을 제공해주는 대신 MCN은 크리에이터가 얻는 수익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는다. 일종의 광고대행사와 같다고 보면 편하다.

크리에이터와 MCN은 어떤 관계를 맺는 걸까?

크리에이터와 MCN의 관계는 크게 네 명의 행위자들 간의 관계로 이뤄진다. 크리에이터⇄매니저⇄광고매니저⇄광고주. 매니저는 크리에이터를 응대하고, 광고매니저는 광고주를 응대한다. 이후 회사 내에서 담당 매니저와 광고 매니저가 상호소통을 한다. 예컨대, 광고주 A가 이러이러한 상품을 광고하고 싶다고 하는데, 크리에이터 B한테 맡기면 좋을 것 같다고 한다는 걸 광고매니저 C가 매니저 D에게 전달한다. 그러면 매니저 D가 판단해서 광고주 A 및 광고매니저 C 등과 합의를 하고, 해당 내용을 크리에이터 B에게 전달한다. 크리에이터 B의 의견을 확인한 후 매니저 D는 다시 광고매니저 C에게, 광고매니저 C는 광고주 A에게 요청사항을 전달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광고가 체결된다.

광고 계약 체결 및 관리 외에 MCN의 주요 업무 중 다른 하나는 바로 크리에이터에 대한 매니지먼트다. 우리가 흔히 매니저 하면 떠올리는 건, 로드 매니저다.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으로 익숙한 연예인 매니저의 한 형태다. 하지만 로드매니저만 연예기획사에 있는 건 아니다. H씨는 연예인에 대한 매니지먼트의 유형이 다양한 것처럼 MCN에서도 파트너십 매니저는 여러 역할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로드 매니저처럼 각종 행사나 방송에 동행하기도 하죠. 하지만 이보다 더 많이 수행하는 역할들이 있어요. 방송 콘텐츠의 특성이나 구독자 성향, 영상별 포인트, 인기 요인 등 각종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홍보 전략이나 콘텐츠 기획을 짜는 것이죠. 또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광고를 유치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크리에이터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하고, 해당 크리에이터의 방송, 영상을 모니터링하고 피드백을 주기도 해요. 만약 크리에이터가 활동하다가 악플에 노출되거나 개인사로 힘들어할 경우에 상담사 역할을 하기도 하죠. 데이터 분석가부터 PD, 상담사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죠."

전략분석부터 크리에이터 발굴까지

"그뿐만 아니라 잠재력 있는 크리에이터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역할도 해요. 유튜브로 치면, 구독자 수가 많은데 상품 가치가 있는 영상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으면, 광고주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해요. 어떤 경우에는 구독자 수가 많지는 않지만, 개성 있는 영상을 만들고 있다면, 기술적으로 더 완성도 있는 영상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하고요.

게임 크리에이터로 치면, 한 크리에이터가 롤이라는 게임만 해요. 방송에서 게임도 잘할 뿐만 아니라, 시청자와 소통도 잘하고, 본인 캐릭터도 특이하죠. 그런데 롤 게임 하나만 하면, 광고주들의 관심을 얻긴 어려워요. 롤은 이미 유명한 게임이니 광고를 널리 띄울 필요도 없고, 다른 게임 광고주들은 이 방송에 광고를 올릴 유인도 없죠.

이때 만약 MCN에 크리에이터가 들어오게 되면, 다양한 게임을 다룰 수 있도록 하도록 교육을 제공함과 동시에, 해당 크리에이터의 게임 패턴, 게임 능력, 시청자에 대한 반응과 소통 방식, 구독자·시청자들의 댓글과 채팅창, 조회 수가 높은 영상의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주죠. 그러면 주요 키워드와 내용, 형식이 드러나죠. 이렇게 해당 크리에이터의 특성과 장단점에 맞는 게임들을 선별하고, 게임별로 적합한 방송 전략을 세워줘요."
 
H씨에 따르면, 흔히 업계에서 크리에이터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연기자형이다. 즉흥적인 진행과 다채로운 표현력이 장점이다. 하지만 기획력이 떨어져서 짜임새 있는 방송은 힘들다. 하지만 시청자와의 소통이 원활하고 리액션이 좋다. 더욱이 광대와 같이 콩트를 통해 시청자들을 울고 웃기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렇다면, 라이브 스트리밍에 적합하다고 한다.

다른 유형은 기획자형이다. 본인이 계획한 시나리오대로 영상을 찍는 것을 좋아하며, 실제로도 영상이 진행되는 시나리오를 탄탄하게 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들은 편집점을 잘 잡아서 VOD를 잘 만들 수 있기에, 유튜브 등 제작된 영상에 적합하다.

게임 크리에이터의 경우에도 이러한 두 유형에 맞게 게임들을 추천해준다고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자들과 리액션을 주고받으면서 진행하는 것에 적합한 게임과 상황별 콩트와 시나리오를 짜서 진행하는 것이 적합한 게임으로 나뉜다. 그에 맞게 진행하도록 제안하는 것이다. 연기자형에게는 방송 들어가기 전에 캐릭터를 잡아서 철저히 보여주려는 이미지와 특징들을 중심으로 연기를 보여주라고 지도하기도 한다. 본인이 잘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를 고려하기도 하고, 게임에 따라서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해보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영상 제작 자체에 내재한 쌍방향 소통

쌍방향 소통이라고 하면, 1980년대 말부터 뉴미디어라고 지칭된 여러 미디어 매체들의 특성으로 언제나 거론되던 것이다. 그래서 색다를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H씨는 쌍방향 소통의 위상이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과거 인터넷이 유행할 때, 쌍방향 소통이 언급되는 지점은 영상 제작과정과는 별개였다. 영상이 제작된 이후 제작된 영상을 시청한 시청자들이 방송사의 인터넷 게시판이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후기를 남기고 피드백을 줬다. 하지만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은 시간적으로 거의 즉시 피드백이 오가며, 공간적으로도 분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유튜브처럼 제작된 영상을 올리는 경우에는 제작과정 자체에 쌍방향 소통이 내재해있지는 않다.

하지만 유튜브의 실시간 방송이나 트위치 등의 라이브 방송의 경우에는 영상 콘텐츠 자체가 시청자와의 실시간 소통을 통해 만들어진다. 시청자와 소통하며 영상의 내용이 채워진다. 시청자의 참여가 언제나 영상 기획·제작·편집에 내재해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형식의 집단적인 영상 제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동시에 H씨는 크리에이터 개인의 특성이 오롯이 반영되는 점이 독특하다고 지적했다. 방송과 영화 제작과정에는 출연자, 연출자, 기획자가 모두 분리되어 있지만,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의 경우에는 크리에이터로 참여하는 이들 간의 역할 배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출연자, 연출자, 기획자로 분할 수 있기 때문에, 각자의 캐릭터와 인간적인 매력이 콘텐츠에 녹아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크리에이터의 특성이 중시되며, 그러한 특성을 지닌 영상물이 자유롭게 올라가고 사람들이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파트너십 매니저들이 매니지먼트를 하거나 MCN에서 기술적인 지원을 할 때도 주의하는 사항이 있다. 물론 계약 조건에 따라 지원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겠다. 하지만 H씨에 따르면, 크리에이터의 특성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자유롭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필수적인 조치에 국한해서 지원하는 것이 권장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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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 산업은 밝고 희망차기만 할까?
  
지금까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과 MCN, 크리에이터, 파트너십 매니저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일하고 있는지, 이들이 속한 산업의 구조는 어떤지, 이들이 하나의 영상 콘텐츠를 만들 때 어떤 노동과정을 거치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과연 MCN에서 일하는 이들과 크리에이터의 노동은 영상에서 비치는 것처럼 언제나 활력이 넘치고 생기발랄하기만 할까? 5월호에서는 H씨와 함께 급성장하는 산업들이면 언제나 수반되는 각종 노동문제가 여기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해보려고 한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신입노동자의 교육기간, '인턴 일자리' 말고 조직차원 고민으로 다뤄져야 / 2020.03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신입노동자의 교육기간, '인턴 일자리' 말고 조직차원 고민으로 다뤄져야

-전국영화산업노조 후반작업지부 J님, K님 

 

 

 

김지안 / 상임활동가 

 

 

 

 

지난 호를 통해서 인턴노동의 경험을 듣기 위해 출판업, 패션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만났다. 전혀 다른 산업이지만, 각 업계가 인턴을 고용하는 공통적인 이유는 만성적인 인력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임시적 방편이거나 정직원을 고용하기 전 예비적인 역량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동기가 있었다.

 

이번 호의 인터뷰이는 2019년 결성된 전국영화노동조합 산하의 영화후반작업노조 조합원들이었다. 영화후반작업에는 여러 가지 필요한 기술과 작업 단계가 있는데, 그 중 음향작업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이었다. 두 인터뷰이는 현재 일하고 있는 각각의 회사에 인턴으로 채용된 후 3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쳐 정직원으로 고용승계된 상황이었다.

지난 3월 신림역 인근에서 인터뷰이 j님과 k님을 만났다. J님은 영화후반작업을 하는 기업 중에서 꽤 큰 규모에 속하는 A 회사에서 일한지 6개월이 안된 상황이었고, k 님은 소규모 업체에서 4년간 근무했다.

 

먼저 영화후반작업이 무엇인지, 어떤 작업과정을 거치는 지 궁금하다

 

k: 보통 영화를 볼 때 대사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그 외에도 영화 안에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것과 동일한 소리들이 입혀져 있다. 촬영장에서는 배우들의 대사가 잡음 없이 녹음되는 게 최우선이기 때문에 촬영본이 저에게 도착하면 아무 소리 없이 대사만 들어있는 상태인 것이다. 영화후반작업은 영화 안의 인물이 내는 소리들, 주변 환경 소음들, 액션효과 등의 모든 소리를 담당하는 작업으로 보면 된다.

 

j: 이 음향작업을 단계별로 나누면, 현장에서 녹음된 소리를 깔끔하게 만드는 대사 파트, 여러 가지 효과음을 주는 이펙트 파트, 기존에 가진 소스로 만들어낼 수 없는 주인공이 문여는 소리나, 발소리와 같은 소리들을 만들어 입히는 폴리 파트, 음향의 공간적인 부피감과 톤을 입혀주는 앰비언스 파트가 있다.

 

작년 영화후반작업노조가 결성되었다. 두분은 시작부터 함께 한 조합원들인데, 어떤 계기로 노조를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k: 전체 영화 제작 예산에서 후반작업에 할당되는 비중이 매우 낮다. 영화후반작업 업계 자체가 아마 일하는 사람을 전부 합쳐도 100명쯤이다. 여기서 5년차 미만은 대부분 최저임금 정도를 받는다. 이것도 상황이 나아진 것이고, 최근까지 100만원 혹은 그 이하 저임금을 받는 일도 허다했다. 노조에서 조사했을 때 1개의 회사를 제외하고는 전부다 근로계약서 작성도 안했더라. 퇴직금 등 기본적인 처우도 미비된 회사가 많아 문제의식을 느꼈다.

 

j: 처우가 이런데, 업계 전반이 노동시간이 매우 길다. 일년 중에 반은 10~12시간 씩 장시간 노동을 하고, 반은 정시퇴근을 하는 정도다. 마감을 앞두고서는 더 바빠진다. 작업 일정이 너무 짧게 측정되있는 것도 문제다. 개봉일을 두고 그 안의 여러 일정들이 세팅되어있으니 그 마감일에 어떻게든 맞춰야 한다. 야근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극장도 성수기가 있다. 그럼 전체 제작기간이나 작업의 마감일을 맞추기가 더 힘들 것 같은데 어떻게 체감하고 있나

 

j: 보통 1개 작품을 작업하는데 한달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성수기 시기에는 영화가 몰리고 하면, 한번에 2개의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거나 하는 일도 발생한다. 영화의 제작 상황이나 일정 등에 따라서 작업량이 매우 유동적이니 개인의 삶도 예측하기가 어렵게 된다. 퇴근하고 별도로 운동을 한다던지, 병원에 간다던지, 최소한 잘 휴식을 취한다던지 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구조다.

 

k: 우리 회사가 특이하게 자율출퇴근제로 운영되고 있다. 평일에 개인 일정을 보는 등 시간 사용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지만, 4년 정도 근무한 입장에서 단점이 더 많다고 느낀다. 우선 음향작업이 전체 영화의 제작 안의 한 파트라는 점에서 마감에 대한 압박도 크고, 마감일에 가까울수록 노동시간도 늘어나게 된다. 그러니 사실상 조금 늦게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각각 독립된 스튜디오 칸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는데, 작업 자세도 문제지만 종일 소리를 듣는 직업이니 청각질환이나 정신적 스트레스도 우려된다

 

j: 맞다. 영화관의 음향시스템과 동일한 환경으로 맞추고 작업을 하기 때문에 후반작업자들이 일하는 환경은 작은 극장 같은 느낌의 1인 스튜디오다. 음량도 정확히 체크하기 위해서는 영화관에서 듣는 소리와 동일하게 두고 작업을 해야한다. 그러니 이명 같은 건 워낙 잦은 문제다. 종일 큰 소리를 듣기 때문에 작업을 하고 나면 귀도 먹먹하고 힘들다. 또 같은 자세로 장시간을 앉아 있다 보니 다들 허리나 목도 전반적으로 아프고 좋지 않다.

 

k: 액션영화의 경우, 효과음도 많고 음량도 크기 때문에 더욱 힘든 것 같다. 아직 주변에서 산재 신청했다는 분은 본적이 없다. 업계를 떠날 각오를 하고 신청하는 사례를 한번 보긴 했는데, 그 외에는 못 봤다. 산재 신청을 하는 것에 대해서 업계 내부에서 낙인이 워낙 심하다.

 

인턴노동에 대해 질문하려 한다. 두 분은 어떤 경위로 인턴으로 일하게 됐나.

 

j: 업계가 매우 좁다. 공채를 하는 경우는 잘 없고, 대부분 지인을 통해서 입사한다. 처음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을 때,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계약서에는 3개월의 인턴 기간과 더불어 야근을 할 수 있고 본 급여의 90%를 지급한다고 명시되어있었다. 평균적으로 정직원 초봉이 최저임금 정도 되는데 포괄임금제라 야근 등 수당에 대한 지급도 없다.

 

k: 영화후반작업 일이 궁금해 대학 선배를 통해 채용에 응하게 되었다. 다른 일자리도 있었지만 영화 일이 해보고 싶어 인턴직임에도 일을 시작했다. 당시에 주변 사람들이 인턴 일자리가 고용도 불안정하고 처우도 좋지 않으니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럼에도 해보고 싶은 직업이고 업계가 공채도 잘 없고, 일자리도 잘 나오지 않아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인턴으로 근무하면서는 주로 어떤 일을 했나.

 

j: 이전에는 오자마자 실무에 투입된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채용된 당시에 회사가 덜 바쁜 시기였다. 덕분에 3개월 간 충분히 교육기간을 거칠 수 있었다. 그런데 회사가 ()시와 ()시에 나눠져있다. 선배들은 모두 ()시 사옥에 있고 또 일의 특성상 모두 개별 스튜디오에 들어가 일을 한다. 일과 중에도 서로 볼 일이 잘 없다. 나와 동기 인턴 2명만 ()시 사옥에 있었는데, 누가 작업을 시켜서 결과물을 내도 아무도 컨펌을 안해주고 사실상 방치된 기간이기도 했다.

 

k: 3개월 동안은 거의 참관하는 형식으로 있었다. 그리고 한 영화를 담당하는 것은 못하고 특정 장면만 담당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일했다. 영화후반작업 일 자체가 전공자여도 실무는 회사에서 거의 새로 배우는 측면이 커서, 교육의 느낌이 강했다.

 

인턴으로 일했던 시기의 경험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j: 특이한 건, 거의 모든 후반작업 업체들이 경력직을 제외하고서는 인턴 기간을 무조건 거치는 방식으로 신입을 고용한다. 듣기로는 어느 회사가 인턴으로 3개월 일하고 정식 채용하기로 했는데, 마음에 막상 마음에 안 드니 몇 달 더 수습기간을 거치자고 한 일도 있다고 한다. 내 경험으로는 인턴기간이 꼭 필요할까 의문이 든 것은 사실이다. 인턴 일자리의 처우도 그렇고, 바로 실무에 투입되는 것이 좌충우돌을 겪더라도 빨리 적응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k: 당시에는 첫 직장이고 정말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주변에서도 인턴으로 일한다고 하니 걱정이 많았지만, 당시에는 음향 작업 자체가 좋았다. 시간이 흐른 지금, 인턴제도가 너무 불안정하고 열악한 처우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회사가 자율출퇴근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정직원들이 오후에 출근해 밤에 퇴근하는 패턴으로 일하는데, 인턴은 10시부터 7시가 근무시간이었다. 그래서 7시에 퇴근하기도 눈치가 보였고, 옆에서 더 보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일부러 야근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러한 기준들이 명확했어야 하는 것 같다. 그걸 처음 들어온 신입직원, 그것도 인턴인 경우에 조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조직문화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일터 괴롭힘 등 문제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인턴 노동자에게 이런 조직문화는 더 어려운 조건이 되지 않을지 궁금하다.

 

j: 업계에 5년차 이상 직원이 거의 없다. 일한지 아주 오래된 시니어급 아니면 대부분 5년 미만의 직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후반작업은 외주 프리랜서들까지 다 합쳐봐야 100명도 안되는 좁은 판이다. 한 회사의 문제라기보다 업계 전체가 근속년수가 너무 짧고 이직률도 높다. 그런 배경으로 저임금, 장시간노동과 같은 처우상의 문제들도 있지만 말한 것처럼 괴롭힘 등 상사의 막말 사건, 물건을 집어 던진다던가 하는 일도 많았다. 최근에는 업계를 떠나 사회 분위기도 달라졌고, 신고할 수 있는 채널도 많아져 나아지긴 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어떤 업계나 검증된 사람을 채용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경력직이 아닌 신입직원을 뽑을 때, 면접과정을 거치더라도 필요한 역량들을 확인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우선 인턴으로 채용을 해 실력도 확인하고, 정식 채용하기 적합한 인물인지 확인하는 절차를 갖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은, 반대로 인턴의 입장에서는 검증 기간 동안의 실적과 태도, 적응력 등에 이 채용의 여부가 달린 시간이기도 하다. 이만 퇴근을 하라고 해도 회사에 남아있었던 k님의 비/자발적인 야근이 아마 인턴 기간 동안의 불안정함과 심리를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 아닐까.

물론 실제로 실무에 투입되기 전 필요한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절차들을 익히는 기간은 모든 직원들에게 주어질수록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 기간이 정식 채용 이후 신입 직원에 대한 조직 차원의 투자, 즉 교육 기간이 못하고, 기업의 기회비용을 인턴의 형태로 노동자에게 전가시킬 때 그가 느낄 불안정함, 저임금, 적응에 대한 압박 역시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렇게 검증 기간내지는 신입직원에 대한 교육기간을 개별 인턴 노동자의 힘과 노력에 대한 문제로 전화시킬 것이 아니라 조직이 함께 풀어가고 투자할 문제로 다뤄져야 할 것이다.

 

[A부터 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평등한 일터에서 ‘자율성’은 어떻게 압박이 되는가 / 2020.02

평등한 일터에서 자율성은 어떻게 압박이 되는가 : 출판사 편집자 차소영 님 인터뷰

 

지안 상임활동가

 

인턴·실습 노동이란 다른 형태의 임금노동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특이한 방식의 노동이다. 해당 기업에 정식으로 고용되는 것이 아닌데다가 교육·경험 제공·경력의 이유로 보조금 수준의 저임금 지급 또는 무임금도 정당화 된다. 또 인턴·실습 노동자는 교육과 경험, 경력, 고용 가능성이라는 명목 하에 저임금과 각종 열악한 처우를 감내해야 한다. 이러한 불안정 일자리는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자체로도 문제적이지만, 나아가 경력·경험과 노동조건, 권리의 문제들이 상호 교환되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비판이 필요하다. 인터뷰를 통해서 일하는 과정에서 인턴·실습 노동자들이 어떤 위치에 서게 되는지, 그 위치는 어떤 감정적 문제들을 낳는지를 중심으로 인턴 노동문제를 볼 수 있었다.

 

지난 호 인터뷰이들의 경우에는 방학 기간을 통해 졸업 의무사항인 대학생 현장실습을 나갔던 상황이었다면, 이번 인터뷰를 통해 만난 출판사 편집자 차소영님은 대학 졸업 이후 첫 직장으로 대형 출판사의 계열사에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졸업 이후 일자리를 구하는 입장인 만큼 인턴 일을 하게 된 배경과 동기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4대 보험도 없었으며, 연차·병가도 없어 눈치를 보며 부탁을 해야 했지만, 워낙 저임금 일자리였지만 신입직원을 잘 뽑지 않는 출판업계에서 경력을 쌓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하는 과정에서도 직장 내 관계들, 이 일자리가 정식 고용으로 이어질 것인지 등등의 문제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지난 130일 첫 직장에서의 인턴 경험과 현재 출판노동자로써의 노동경험을 듣기 위해 2015년부터 4~5년 간 출판사 편집자로 일해 온 차소영 님을 합정역 인근에서 만났다.

 

자율성과 마감기한 사이, 출판노동자의 업무 스트레스

 

차소영님은 a출판사 인턴으로 10개월을 근무한 이후 계약연장으로 6개월 정도 더 근무를 했다. a출판사를 그만둔 이후로는 b, c출판사의 정규직 직원으로 일했다. 인턴으로써의 노동경험의 특성을 비교하기 위해 우선 편집자들의 노동에 대해 들어보았다. 먼저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편집자들이 어떤 노동과정을 거치는지 물었다.

 

편집자가 하는 일은 소속 출판사나 분야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긴 해요. 예를 들어 문학 분야의 경우는 저자와 관계를 맺고 쌓는 일이 중요하다면, 인문사회 분야는 번역서가 절반이기 때문에 해외 신간 서적을 조사·검토하고, 역자를 찾는 일이 중요하죠. 제가 일하는 인문사회 분야의 경우 원고가 들어오면 아주 기본적인 오탈자·오역 잡기부터 사실관계를 찾고 검토하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역사서 같은 경우는 사실관계 확인이 매우 중요해요. 교정 단계 이후에 책이 만들어지면, 마케팅 자료를 마케터에게 넘겨주고 디자인 컨셉, 표지, 책의 판형 등 발주를 넣죠.”

 

출판사 편집자들은 2~3개에서, 많게는 4개 정도의 원고를 각자 담당하는 시스템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작업과정이 한 번에 1권씩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한 편집자가 여러 개의 원고를 각각의 진행 단계에 맞춰서 작업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서로의 교정본에 대해 편집자 간 크로스 체크를 하는 과정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편집일이 담당 원고를 가지고 각자 작업하는 업무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일의 자율성이 대단히 크다.

 

저는 인턴으로 일했던 당시에 기존 인턴 업무를 한 게 아니라 일반 사원과 똑같이 책임편집도 맡았어요. 당시 낮도 밤도 없고, 주말도 없이 야근을 정말 많이 했죠. 그런데 이게 참 까다로운 부분인 점이 편집 일이란 오역을 잡으려고 한번 원서 대조를 하면 한도 끝도 없는 일이예요. 한 문장 한 문장 단위로 확인을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이상한 문장 정도만 골라서 확인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적당히 교정을 보고 시간 내 마감만 맞추는 편집자들도 있죠. 그만큼 편집자 개개인의 역량과 노력에 기대는 부분이 커요

 

업무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자율성이 크지만 책이 예정된 시기에 원활히 출간되기 위해 필요한 마감기한이 엄격히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 마감에 대한 편집자들의 스트레스가 극심하다. 실제로 마감 기간은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하며 양적으로도 노동시간이 늘어난다. 특히 편집자들이 사무직 직군 중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대표적인 직종이라는 점에서 업무 연관 스트레스나 장시간 노동에 따르는 건강장해 문제도 질문했다.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교정 작업이예요. 3번의 교정 작업을 거치는데, 1교가 끝나면 검토한 내용을 저·역자에게 보내요. 이 코멘트를 얼마나 관철시키느냐가 해당 편집자의 역량이라고 볼 수 있죠. 3교까지의 교정 작업이 끝나고, 마지막 최종 체크를 하는 마감기간은 마지막 체크 단계라고 보면 돼요. 특히 차례나 소제목, 쪽수 등에서 오타가 나면 큰일이잖아요. 이미 3번에 걸쳐서 확인한 원고라고 하더라도 분명히 놓치는 경우가 생겨요. 그래서 마감 시기에 긴장하면서 한번 확인한 걸 두 번, 세 번씩 보는 거죠. 책의 내용을 읽는 게 아니라 그 안의 글자들을 전부 확인하는 단계예요. 얇은 책은 그나마 다행인데, 제가 인턴 때 편집했던 책은 무려 1400쪽에 달하는 역사서였어요. 그럼 확인하는 데만 이틀은 꼬박 봐야 하는 거죠.”

 

한편, 분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역자와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도 편집자의 중요한 업무다. 그렇지만 출판사 직원인 편집자와 저·역자의 위치란 이미 위계적으로 구성되기 쉽다. 특히 경력이 얼마 안 된 편집자와 이미 많은 책을 집필한 저·역자의 관계에서는 더 수직적인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고, 그런 점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책에 대한 코멘트 및 교정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어려움 때문에 업무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편집자들이 많다. 차소영 님 역시 편집자로 일하면서 경험한 건강 문제 중 업무 스트레스를 첫 번째로 꼽았다.

 

한번은 당시 일했던 출판사에서, 원로인 저자와 함께 주 1회 강연을 하고, 그 강의록을 가지고 묶어서 책으로 출판한 적이 있어요. 담당 편집자인 제가 매주 강의록을 교정해야 했는데, 강의록이 강의 전 날 밤에 도착하는 경우엔 밤새 교정을 보고 인쇄를 진행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교정한 원고를 원로인 저자가 맘에 들어 하지 않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교정본을 본 저자가 새 강의록을 보냈는데, 교정 이전으로 싹 다 되돌린 내용인 거예요. 토씨 하나 고치지 말라는 거죠. 그 날 내가 일한 것에 대한 완전한 부정을 당했다는 마음에 화장실 가서 울기도 했고, 큰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종합하면 편집자의 업무란 저자와의 관계, 일의 자율성, 마감기한 등등 스스로 상황에 대응하고 조절해야 하는 역량이 중요하다는 업무의 특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특성들이 노동자 개인에게 부담이 되기도 하고 압박감으로 작용한다. 그렇지만 일을 조율할 권한이나 대응력이 없는 신입 직원이 이런 일을 담당해야 한다면 어떨까? 또는 정식 직원도 아닌 인턴 노동자가 담당했다면 어떨까? 직원도, 외부인도 아닌 애매한 지위와 더불어, 고용승계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평가 속에서 편집자의 자율성에 맡기는 업무들은 대단히 좋은 성과를 내야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책의 무게만큼 과중한 출판 노동자의 업무 스트레스

 

인턴 노동경험의 감정들: 불안, 경쟁, 굴욕감, 압박

 

차소영님이 일했던 a출판사는 매년 2명의 인턴을 뽑아 책의 보도자료를 작성하거나 편집장을 보조하는 역할을 10개월 동안 시킨 뒤, 2명 중 1명을 정직원으로 채용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정규직 전환의 가능성은 채용공고나 구두를 통해서 전달되지도 않았고, 관례처럼 해왔다는 모호함 속에서 당시 함께 인턴을 하게 된 2명은 자연스럽게 비/자발적인 경쟁 구도에 놓이게 되었다.


이번에도 똑같이 두 명을 채용했으니 한 명을 정직원으로 고용승계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당연히 들었죠. 같이 채용된 인턴과의 관계에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갈등의 이유는 개인적 문제나 성격 차이 등일 수 있지만, 서로 경쟁하는 구도에 놓여있었다는 게 보다 근원적인 원인이었어요. 이미 경쟁관계 속에 있다는 스트레스로 다른 사람과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들도 더 곡해하게 되는 거죠.”

 

인턴 기간 동안 인사평가 등 고용승계와 관련된 평가제도가 있었는지 물었으나, 오히려 그런 평가 기준이 마련되어있지 않았고 편집장과 대표의 주관과 잣대에 고용승계가 달렸다는 점이 더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도록 한 원인이라고 답했다.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일 외적인 요소까지 신경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인턴 분은 성격이 아주 좋아서 모든 직원들과 친하게 지냈어요. 그런 게 절대 채용 여부에 결정적일 리가 없는데도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미래를 생각해봤을 때 내가 고용승계가 되면 과연 다른 직원들이 좋아할까 이런 생각도 들고. 그럼 인턴이니까 다른 직원들이랑 더 잘 지내야 하는 걸까 하는 정말 막연한 불안감도 들고요.”

 

이 막연한 불안감은 10개월의 인턴 생활이 끝난 후에도 관례와 다르게 계약직으로 채용되면서 지속되었다. 그리고 결국 6개월 만에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많은 업무량과 경쟁 속에서 열심히 일한 결과로 계약연장이 되었음에도 스스로 관두게 된 이유를 물었다.

 

일차적으로 계약직으로 고용된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컸고,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고민과 희망을 또 다시 견디는 게 너무 힘들고 굴욕감이 컸어요. 계약연장 과정에서 편집장이 당시 인턴 공고에 명문대 출신자들도 많이 응시했는데, 그들이 원하는 일을 줄 수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어서 안 뽑았다, 학벌이 낮으니까 너 뽑은 거다이런 식으로 말했어요. 근데 그 말은 사실도 아니었어요. 그 전해에 인턴을 거쳐 정직원이 된 선배 한 명도 편집장이 말한 그 대학 출신이었거든요. 아무튼 저는 그 출판사의 유일한 계약직이 되었고, 임금도 인턴 때보다는 올랐지만, 신입사원 초봉보다 못한 돈이었어요.

정작 일하는 과정에서는 편집장은 제 역량을 의심한 적이 없어요. 학술서 같이 어려운 책들은 항상 다 저한테 넘겼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정규직이 다시 될지 안 될지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는 게 너무 참담했어요.”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원래 인턴의 직무는 편집장, 편집자들의 보조적인 역할로 정해져있었으나, 차소영님은 채용 이후 인턴 직무에 배치된 것이 아니라 책임편집·외주한 결과물 최종 확인 등 일반 편집자들과 동일한 업무에 배치된 것이다. 심지어 처음 실무를 경험한 상황에서 인턴들에 대한 교육은 물론 기본적인 업무 인수인계조차 없어, 첫 편집을 하면서 옆자리 사원에게 물어가며 일을 시작했다. 게다가 원래 편집 과정에서 필요한 크로스체크과정도 없었다. 책 한권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는 생각은 강한 압박감으로 작용했다.

 

인턴으로 일하는 동안 마감기간에는 밤에 불을 켜놓고 잘 정도로 큰 압박감에 시달렸어요. 제가 더욱 과도하게 긴장을 느낀 부분도 있는데, 그건 처음부터 전혀 훈련이나 교육이 안 된 채로 실무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실무 용어들도 하나도 못 알아듣는 상태에서 옆 사원에게 물어가며 엄청난 부담감에 시달리며 진행을 했어요. 그게 습관이 돼서 마감할 때마다 큰 불안감을 느낀 것 같아요. 마감 기한이 항상 촉박한 것도 한 가지 원인이고요. 출판사고에 대한 불안이 컸는데, 누가 크로스체크라도 해줬으면 부담이 좀 덜어졌을 것 같아요.”


일터에서의 불평등한 관계가 인턴·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게 문제

 

특히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는 이런 불평등이 인턴 노동자 개개인에게 어떤 감정적 문제를 주는지, 감정적 손상의 문제를 들어볼 수 있었다. 정규직 사원 앞에서 들었던 위축감, 사원복지와 회의구조에서의 소외로 인한 배제감, 인턴에게 쉽게 가해지는 폭언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지적되었다. 이 문제는 인턴, 실습이라는 제도가 일터에서 공식적으로 불평등한 관계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심화되고 있다.

 

물론 어느 직장이나 그 안의 관계가 평등하기란 어렵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사내 직급 간 격차뿐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 간의 차별들은 뿌리 깊은 일터의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인턴이라는 제도와 지위 역시 위축감과 압박감, 배제의 문제, 그리고 그것과 연관된 감정적 손상을 낳는다. 그러나 인턴노동의 경우 이런 모든 요소들이 불완전한 노동’ ‘경험, 경력의 기회라는 언어를 통해 정당화된다는 점이 가장 문제적이다. 이런 기제와 더불어 인턴노동자들은 어떤 경우에는 (노동조건 또는 불평등한 대우) 인턴이기에 감내해야하는 불공평함이 전제되고 어떤 경우는 (업무량, 장시간 노동) 동일한 한명의 직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런 지점을 통해 어떻게 인턴이 저임금 인력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기업은 어떤 동기를 가지고 인턴제도를 유지하는지 차후의 인터뷰를 통해 더 밝히고자 한다.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노동자는 없고 그의 속도만 존재하는 공간- 쿠팡 이천 덕평 물류센터 피커(Picker) K 님 인터뷰 / 2019.11

노동자는 없고 그의 속도만 존재하는 공간

- 쿠팡 이천 덕평 물류센터 피커(Picker) K 님 인터뷰

 

지안 상임활동가

 

쿠팡은 지난 2018, 기존에 12개였던 물류센터를 24개로 확장했다. 쿠팡의 대표적인 서비스인 로켓배송시스템의 수요 증가를 충당하기 위함이다. 2014년 처음 시행된 서비스인 로켓배송은 자정까지 주문 시 고객에게 상품이 익일 배송되는 시스템이다. 이 서비스의 확장판인 로켓프레시는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로, 자정까지 주문하면 익일 오전 7시 전까지 고객의 집으로 배송해준다. 현재 쿠팡에서 로켓배송이 적용되는 상품의 개수는 약 500만 종이다. 그렇다면 이 많은 상품 중에서 내가 주문한 물건들은 어떻게 취합되어 바로 다음날에 집 앞으로 도착하는 것일까?

물류센터에 대한 흔한 고정관념 중 하나는 주문한 상품이 집까지 배송되는 모든 경로가 주로 남성들의 노동으로 진행된다는 생각이다. 그 이유는 상품 전달이라는 마지막 단계인 배송 업무 비중을 남성이 높게 차지하고 있다는 점과 물류센터를 주로 힘을 많이 사용하는 상하차 작업으로만 제한해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하차 작업은 물류센터의 여러 업무 중 한 파트일 뿐이고, 성별을 살펴봤을 때 남성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이 사실을 간과하면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약 500만 개의 다종다양한 상품 중에서 내가 고른 물건이 우리 집까지 도착하는 데는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 이번 <일터>를 통해 물류센터 출고파트의 한 가지 업무인 집품을 담당하는 피커(Picker) 노동자의 노동을 살펴보았다. 인터뷰는 지난 1024일 평택에서 진행됐다.

 

물류센터 작업들과 피커의 노동

 

쿠팡은 24개 물류센터의 면적이 총 37만 평이라고 발표했는데, 개당 1.5만 평에 달하는 크기인 셈이다. 물류센터 업무는 크게 입고(IB), 출고(OB), 허브(HUB)로 나뉜다. 각 업무파트 안에서도 세세하게 작업들이 나뉘어있지만, 먼저 허브파트는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상·하차 작업을 담당한다. 입고파트의 경우에는 크게 진열, 재고 확인 등의 역할을 하며 출고파트는 이렇게 진열된 상품 중에서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찾아서 담는 피킹 작업과 피킹해온 상품들을 각 주문별로 포장하는 업무(패킹)가 주된 역할이다. 여기서 이 노동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한데, 각 노동자가 배정된 구역은 나뉘어있더라도 이 모든 업무가 수행되는 공간은 1만 평이 훌쩍 넘는 거대한 공간이다. 이렇게 큰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물건을 진열하고, 물건을 찾아서 담고, 포장(과 그에 수반되는 보조적인 작업)하는 모든 노동과정은 매우 고되고 체력소모가 심하다.

인터뷰이가 주로 일해온 이천 덕평 물류센터는 총 4층짜리 건물로 이루어져있다. 각 층에는 높이 2~3미터 되는 진열대가 쭉 늘어서 있는데, 먼저 물건이 물류센터에 들어오면 입고파트에서 진열을 담당하는 사원들이 진열대에 물건을 무작위로 쭉 진열한다. 일반적으로 물류센터 안에서 각 물건의 분류에 따라 구역과 위치가 설정되어있으리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쿠팡 물류 시스템은 랜덤 스토우(Random Stow) 방식으로, 모든 상품을 진열대에 무작위로 진열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신에 피커 노동자에게 PDA를 통해서 본인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상품 위치를 안내하여 최적의 동선을 알려준다. 광범위한 공간에서는 각 물건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하는 것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을 짜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기업인 아마존의 물류창고 운영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피커들은 PDA를 들고 다니면서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찾아요. PDA는 자신의 현재 위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상품의 위치를 알려줘요. 그걸 보고 피커들이 물건들을 찾는 거죠. 피커들은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토트박스라고 하는 플라스틱 박스에 물건을 담아요. 물건들이 카트에 어느 정도 차면 포장라인으로 가는 레일에 물건을 올립니다. 그리고 이 작업이 계속 반복되는 거죠.”

 

1명의 피커가 카트를 끌고 다니며 물건을 담는데, 시간당 물건 담기를 40~50개 정도 하는 사람부터 60~70개까지 하는 사람까지 처리 개수는 저마다 다르다. 주문된 물건의 무게가 다르고 물건이 놓인 위치 등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1인당 처리해야 할 할당량이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빠르게 많은 물건을 처리하도록 하는 관리 시스템 속에서 노동강도를 향상할 것을 요구받는다.

▲   쿠팡의 물류센터. 이 넓은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가 제기되어야 한다.

 

37만 평을 채우는 당일 알바

 

알바몬이나 알바천국 같은 일자리 중개 사이트를 들어가면, 하루에도 수십 개의 물류센터 구인 공고가 올라온다. 하루나 일주일 단위로 일할 사람을 끊임없이 구하기 때문이다. 이 일자리는 하루 혹은 원하는 기간만큼만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다는 점이나 임금이 익일 지급 혹은 주급으로 지급된다는 점 때문에 선호된다. 또 매일 사람을 구한다는 점에서 접근성이 높아 많은 사람이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일자리이기도 하다.

이렇게 당일 알바, 즉 일용직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3개월, 6개월, 9개월 등의 단위로 계약을 하는 계약직 사원들이 있다. 물류센터 안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고용 형태는 정규직, 계약직, 일용직으로 총 3가지이다. 그러나 고용형태의 비율은 각 물류센터마다 차이가 있는데, 어떤 센터는 대다수가 일용직, 소위 당일 알바 자리를 찾아서 온 사람들로 채워지고 어떤 센터는 주로 계약직 사원들의 교대근무를 통해 운영된다. 대개 오픈 한 지 얼마 안된 신생 물류센터가 일용직 노동자들을 많이 고용하고, 시간이 갈수록 그 자리를 계약직 사원들이 채운다.

 

그냥 잠깐 알바하거나 급전이 필요해서 오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피킹 작업을 직업으로 하는 전문 피커들이 많아요. 당일 알바의 임금은 딱 최저시급인 8,350원에 맞춰져 있는데요. 사실 계약직과 임금 차이는 거의 없어요. 최저시급보다 80원쯤 많은 9,030원 정도를 받습니다. 근데 당일이나 주급으로 일을 하면 자기 스케줄에 맞춰서 시간대와 요일을 조정할 수 있는데, 계약직으로 근무하면 회사가 정한 스케줄대로 교대 근무를 해야 해요. 그래서 직업으로 이 일을 하더라도 일부러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요.”

 

인터뷰이가 일한 쿠팡의 이천 덕평 물류센터는 3개 조가 교대로 근무를 한다. 중간에 식사 시간이 1시간 주어지기 때문에 총 노동시간은 8시간이다. 한 물류센터에서 하루 동안 근무하는 총인원은 약 1천 명 이상으로, 센터별로 상이하다. 그 인원 중 다수를 여러 가지 이유로 1, 또는 단기 알바를 하는 사람들과 매일 출근하지만 고용 형태는 일용직인 당일 알바 아닌 당일 알바들이 빼곡히 채우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자연스레 드는 의문은, 이렇게 단기적으로 고용되는 수많은 사람에 대한 안전 문제와 건강이 어떻게 담보되고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또한 노동자의 건강권이라는 측면에서, ‘당일 알바들이 채우는 총 노동량을 관리하는 장치가 어떤 식으로 각 노동자의 노동강도를 올리고, 감시하고 있을지의 문제도 중요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UPH를 통한 노동강도 압박과 노동 감시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문제는 상호 연관된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노동강도에 대한 압박 속에서 안전 문제가 발생하는지도 주요한 문제다. 물류센터가 그날마다 처리해야 하는 총 물량이 정해져 있고 심지어 이 물량은 로켓배송서비스 등 매우 촘촘하게 짜인 시간 속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이때 이 일들을 실행하는 인력은 매일 매일 바뀌기 때문에 기업에 노동강도의 유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여기서 물류센터라는 공간성 역시 중요한 특징이다. 드넓은 물류센터를 활보하며 물건을 담는 피커들의 작업 속도를 관리자가 일일이 걸어서 체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은 PDA를 이용해 노동자들이 시간당 카트에 물건을 담는 개수를 측정한다. 이 개수를 UPH라고 하는데, 각 노동자의 UPH를 철저하게 유지함으로써 노동강도를 관리한다. UPH가 떨어지면 전체 방송으로 압박이 들어오기 때문에 피커들에게 UPH 유지 및 향상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물론 이 압박 및 관리의 방식도 개별 물류센터를 관리하는 인력업체의 매뉴얼에 따라서 각기 다르다.

 

들어오는 주문을 현장에서는 할당이라고 부르는데요. 이 할당을 시간당 처리하는 개수를 UPH라고 불러요. 평균 UPH는 물류센터마다 다르게 지정되지만, 예를 들어 UPH60이라고 하면, 무조건 그만큼은 채워야 해요. 만약에 그만큼을 못 채우면 방송이 나와요. ‘OOO 사원님, UPH 향상 안 시키면 강제 퇴근 시키겠습니다이렇게요. 그렇게 큰 공간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다 듣고 있는 곳에서 방송을 틀어대면 정말 모욕감이 느껴져요. 방송이 몇 번 나와도 UPH가 늘어나지 않으면 관리자가 사무실로 오라는 방송을 합니다. 관리자는 정규직 사원이거나 층마다 있는 반장이기도 해요. 사무실로 가면 언성을 높이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일을 어떻게 하느냐고 모욕을 주기도 해요. 그래서 피커 일을 하는 사람들은 UPH라는 소리만 들어도 다들 싫어하죠.”

 

UPH가 떨어지는 일용직 사원들은 쿠팡에서 관리하는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다음에 일할 기회가 박탈된다. 계약직 사원의 경우에는 계약을 3, 6, 9개월 단위로 하기 때문에 UPH가 떨어지면 재계약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UPH 상승을 위해 노력한다. 물류센터에는 끊임없이 UPH를 올리라는 방송이 울려 퍼지고, 이 작업속도의 지표만 있을 뿐 안전하고 건강할 권리가 있는 한 사람으로써 노동자는 없는 것이다.

 

피커 일은 계속 걷고, 이동하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물건을 찾으러 넓은 곳을 돌아다니니 나중에는 다리가 너무 아파서 걷기 힘들 정도예요. 근데 이렇게 개인 면담을 하자는 방송이 나오면 조바심이 많이 나요. 그래서 사람들이 카트를 끌고 빠른 속도로 뛰다가 카트끼리 부딪히거나 카트로 사람을 들이박는 경우도 있어요. 또 사다리를 타고 진열대를 올라가 물건을 꺼내는데 이 사다리 개수가 부족하고, UPH 압박은 심하고 하니까 사람들이 사다리 없이 진열대를 타다가 떨어져서 크게 다치기도 하고요.”

 

물류센터의 노동환경과 노동시간

 

앞서 말했듯이 피커의 주된 업무는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물건들을 찾아 카트에 담고 포장 라인으로 옮기는 것이다. 끊임없이 걷고 물건을 꺼내야 하므로 다리 부종이나 통증, 각종 근골격계질환은 흔한 일이다. 또한 물류센터별로 식품을 다루는 곳은 저온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작업복을 입더라도 추위에 떨면서 일하고, 폭염에는 냉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탈수하는 일도 발생한다. 그렇다면 작업의 중간중간 휴식은 보장되는지, 휴게공간은 갖춰져 있는지 물었다.

 

무급이긴 하지만 점심시간이자 휴식 시간이 1시간 주어져요. 그런데 물류센터가 대규모 인원이 있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식당 규모도 매우 커요. 규모는 크지만, 배식 줄 자체가 워낙 길어서 20분을 줄만 선적도 있어요. 그래서 사실상 쉴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근무 중에는 UPH 때문에 짬 없이 일해야 하고요.”

 

한편, 대부분의 물류센터는 해당 지역의 외곽에 있다. 수도권의 경우에는 사당, 노량진, 안산, 오산, 부평, 평택 등지에서 해당 물류센터까지 셔틀버스가 운행한다. 물류센터에 도착하기까지 셔틀버스 운행 지점에서부터만 짧게는 1시간에서 1시간 반까지 걸리기 때문에 왕복 3시간이라는 이동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집에서 셔틀버스 탑승 지점까지 이동해, 여기서부터만 왕복 3시간과 총 9시간의 근무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지급되는 노동시간은 식사 시간을 제외한 8시간이지만, 최소한으로 잡아도 하루에 반 이상이 노동에 소비되는 시간이다.

 

갈수록 각종 배송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는 사회에서, 그 배송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안전할 권리와 쉴 권리, 노동시간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특히 이 노동자들의 다수가 일용직 노동자이며, 계약직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3, 6, 9개월 단위의 쪼개기 계약으로 고용계약이 이루어진다. 일용직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자유롭게 근무 스케줄을 짤 수 있다는 점에서 피커 일을 선택하곤 한다. 하지만 쿠팡 셔틀버스를 탄 시점부터 하루에 12시간 가까이를 보내는 상황에서 노동의 자율성이란 과연 어떤 걸까? 다양한 물건을 빠르게 배송해주는 서비스들은 UPH 향상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지만, 이 빠른 속도 속에서 일하는 사람의 권리는 축소되고 있다.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살림이 일인 사람들, 우리의 일터는 다른 누군가의 가정입니다.” / 2019.10

살림이 일인 사람들, 우리의 일터는 다른 누군가의 가정입니다.”

[인터뷰] 가사관리사 J, W

박기형 상임활동가

하루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흔히 우리는 집이라고 때, 쉼을 떠올린다. 내일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휴식을 취하는 곳, 생활하는 데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해주는 안식처. 하지만 집은 모두에게 쉼의 공간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누군가가 쉴수 있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집안일을 하는 사람, 가사노동자다. 우리에겐 가정이 생활의 터전이지만, 가사노동자에게는 일터다. 여기서 말하는 가사노동의 범주에는 가정에서 직업을 갖지 않고 주부로서 노동하는 사람이 포함되었다. 이에 더해 임금을 받고 가사노동을 하는 사람들, 어떤 가정에 방문해 세탁·청소·요리·육아·요양 등을 대신하고 일정한 대가를 받는 노동자들도 포함되었다.  

과거에는 파출부, 가사도우미라고 불렸던 이들은 시간제 또는 일일 고용 형태로 가정과 계약을 맺고 가사를 전담하거나 보조한다. 최근에는 1인 가구 및 맞벌이 부부의 증가, 사회 고령화 등으로 인해 돌봄 서비스 시장이 확대되면서 후자에 속하는 가사노동자의 비중과 규모가 점차 늘고 있다. 그리고 이전에는 알음알음 가정을 소개받거나 인력파견업체를 통해서 연결되어 가정과 직접 계약하는 형태였다면, 근래 돌봄 서비스의 사회적 가치가 높아지면서 사회적 기업을 중심으로 가사노동자와 가정을 매칭해주는 형태도 등장했다. 더욱이 플랫폼 경제가 확대되면서 배달 정보·서비스를 중개해주는 배달의 민족과 같이 돌봄 서비스를 중개해주는 플랫폼 회사도 여럿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일터에서는 사회적 기업이 운영하는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사관리사 J씨와 W씨를 지난 930일에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J씨 : 가사관리사를 한 지는 10여년이 되었네요. 가사관리사를 하기 전에도 가정방문형태의 일을 몇 번 했었어요.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해서 방문교사도 해봤고 요리도 곧잘 해서 출장요리 일을 한 적도 있죠. 그래서 가사관리사 중에서 요리를 요구하는 가정에 특화되어 있는 편이에요.  

W씨 : 저도 중간에 몇 번 쉬었던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15여년 넘게 일한 거 같아요. 저희가 속해있다고 해야 하나요...일거리를 연결시켜주는 사회적 기업이 처음 가사관리사를 운영할 때부터 시작했었죠. 제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거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학교를 가기 시작하면서부터였어요. 애들이 학교가고나면, 집에 혼자 있기도 하고 집안일을 마치고 조금 시간이 남기도 했었죠. 이 시간을 활용해 일하면 좋겠다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혼자만 있을 때 보다 기운도 나고, 삶에 활력도 생겼었어요.  

J씨 : 저는 가사관리사 일을 부담 없이 시작한 편이었어요. 제가 일하지 않으면, 가계를 꾸리기가 힘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가계에 제 일이 꽤 기여를 많이 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 교육비 때문에 시작했지만, 그 비중을 무시하지는 못하잖아요.  

J씨나 W씨처럼 가사관리사를 시작한 여성들은 살림을 챙기는 동시에 가사관리사 일을 한다. 이렇게 일과 살림을 병행하기 위해서는 야근을 한다거나 장시간 노동을 하기가 어렵다. 물론 J씨나 W씨도 다른 일자리를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J씨가 얘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집안일을 전담하는 여성이 살림을 챙기며 일하려다 보면 노동시간의 부담이 덜한 단시간, 일용직, 방문노동 등의 노동조건을 찾게 된다.  

W씨 : 우리 업무는 크게 청소·정리·요리·세탁으로 나눠져요. 일하는 건 오전파트, 오후 파트로 각각 4시간 단위로 나눠져요. 하루 한 곳에서 8시간 넘게 근무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물론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가정이 아니라 1회성으로 신청한 곳이면 하루 종일일하는 경우도 있고, 요리를 포함해 여러 서비스를 한꺼번에 바라는 가정인 경우에는 한 달에 2~3번 정도 8시간 일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한 가정마다 하루 4시간씩 일하는 게 일반적이죠. 일정표 보시면 알 수 있겠지만,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12시 반, 오후 1시 반에서 오후 5시 반까지로 나눠져요.  

J씨 : 전 처음 가정을 방문하면, 집 내부도 살펴보지만, 집 주변도 한 바퀴 둘러봐요. 전체 분위기를 파악하는 거죠. 그리고 중요한 것은해당 가정과의 소통이에요. 4시간 안에 할 수 있는 게 정해져 있거든요. 집마다 요구사항도 다르고요. 청소·정리가 기본이지만, 그것도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들이 다른 거죠. 그래서 어떤 걸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지를 확인해야 해요. 때론 가정관리사를 오래 써본 분이면, 먼저 목록을 정리해서 주시기도 해요. 한 달 정도 지나면, 쓰레기봉투나 청소도구, 소소한 물건 등 우리가 그 집에 사는 분보다 잘 알게 되요. 정리수납과 관련한 교육도 듣기도 하고, 수건 개는 것부터 침구각을 잡는 것까지 다른 분들이 손대는 거랑은 확실히 다르죠. 그렇지만 정작 집에 가서는 지치고 힘드니까 일할 때만큼 청소나 정리를 신경쓰지는 못해요(웃음).  

W씨 : 저나 다른 분들의 경우엔 한 가정에서 오래 일하는 편이에요. 한 곳에서 5년 넘게 일하는 가정들이 꽤 되죠. 저희가 가사관리를 잘 해드려서 만족도가 높으신 것도 있겠죠. 그와 함께 가사관리사를 사용하는 집인 경우엔 대부분 맞벌이를 하니까 가사관리사를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런 가정은 대개 소득형편이 높은 편이에요. 최근에 1인 가구가 늘면서 1회성 신청도 늘고는 있지만, 아직 큰 비중은 아니에요. 그리고 저희 입장에서도 장기간 일할 수 있는 곳이 좋죠. 소득안정성도 생기고, 고객의 요구도 잘 파악하고 있고 익숙하니까 일하기도 편하고요.  

물론 능숙한 가사관리사도 실수할 때가 있다. 그릇을 깨뜨린다거나 옷이 세탁하다 망가진다거나 기타 등등. 그래도 그로 인해 부당하게 해고되거나 과하게 변상을 요구받은 적은 많지는 않다고 한다. J씨와 W씨의 경우엔 만약 고객이 변상을 요구하면, 사회적 기업이 들어놓은 민간손해보험으로 처리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이 아니라 일반 영리회사에 속한 경우에는 민간손해보험을 가사관리사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사회적 기업의 경우에도 수도 누수, 화재 등 변상 수준이 너무 높을 때엔 민간손해보험으로 처리하는 데 한계가 있어, 가사관리사에게도 부담이 넘어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가사관리사는 법제도의 보호 바깥에 놓여 있는 것이다.  

▲ 지난 2018년 6월 12일 국제가사노동자의 날(6월 16일)을 앞두고 한국YWCA연합회와 한국가사노동자협회가 국회 정문 앞에서 '제 8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기자회견을 열고, ‘가사근로자 고용개선법 제정과 함께 국제노동기구(ILO) 가사노동자협약 비준을 촉구 했다. 출처 : 여성신문

W씨 : 최근에 저도 일하다 넘어진 적이 있어요. 가정이라고 해도,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거든요. 의자 위에 올라가서 먼지를 털거나 물기가 흥건한 화장실 청소를 할 때 넘어져서 다치는 사고가 자주 있지는 않아도 가끔 발생해요. 그렇다고 일하다 다치는 일이 없다고 말을 할 수는 없는 거죠. 그래도 저희가 속해 있는 사회적 기업에서는 민간보험을 통해 일정 부분 지원해줘요. 하지만 좀 더 제대로 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죠.  

J씨 : 요즘 들어서 4대 보험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개인 사정 때문에 고용안정성과 사회보장 서비스 이용이 필요해졌기 때문이긴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듣다보니 산재 보험을 통해서 아니라 일하다 다쳤을 때 제대로 치료받고 재활도 받을 수 있으면 훨씬 나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국민연금이나 실업급여 등의 금전적 지원을 받는다면, 더 안정성을 누릴수도 있고요.  

그런데 J씨와 W씨 모두 한결같이 지적하는 문제가 있다. 가사관리사가 근로기준법 상의 근로자로 인정받게 될 경우에, 지금과 같은 일-가정 양립이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살림과 일을 병행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4시간 파트타임으로 비정기적으로 일하지 못하는 것은 큰 부담으로 다가 오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는 사회적 기업에서 가정을 매칭해줄 때 자신이 원하는 근무환경, 예컨대 이동거리, 애완동물, 업무내용 및 방식 등을 요구할 수 있는데, 사회적 기업을 비롯한 가사관리 서비스 및 중개 업체에 근로자로 고용될 경우에는 이와 같은 이점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는 가사관리사가 위치한 모호한 경계 때문이다. 가사 서비스를 중개하는 업체나 가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정 모두 가사관리사의 노동권을 보장해줄 책임이 없다. 다시 말해, 자영업자로서의 성격과 근기법상 근로자의 성격 사이 어딘가에 가정관리사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딜레마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1953년 근기법 제정 이후 현재까지 66년째 가사노동자는 근기법 제11가사사용인 제외 조항으로 인해 노동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가사근로자 고용 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제정을 꾸준히 요구해왔었고, 지난 2017년 정부에서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과 육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2019년부터 가사서비스 바우처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발표 내용에 정부가 인증한 가사서비스 제공 회사에 가사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도록 해 4대 보험 및 유급휴가 등 노동권을 보장하도록 하려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해당 법률안은 2년째 국회에서 계류된 채 아무런 진척도 없는 상황이다. 그 결과, 근기법 상 근로자 개념을 변화하는 노동시장 현실에 맞게 확대하라는 요구, 아니면 특수고용노동자나 가사노동자와 같은 경계선에 놓인 이들에게 노동권 및 사회보장 서비스 제공을 보장하는 법률안을 제정하라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J: 제가 주변 동료들에게 늘 강조하는 게 있어요. 일하러 갈 때 옷을 단정히 갖춰 입고 가는 것 말이에요. 과거와 달리, 가사 서비스는 점점 더 사회적으로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점차 기술 발달로 집안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건 갈수록 가사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는 거예요. 물론 저의 경우엔 가사 서비스를 꾸준히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중상층 이상의 가정을 자주 가지만, 업체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더 다양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우리 업무는 정말 가사를 관리해주는 것이죠. 보통 가정에서 집안일 하는 것 이상의 서비스 질을 제공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우리 스스로도 더욱 프로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봐요. 사회적으로 가사노동자를 위한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사관리사로서 자부심을 갖는 것도중요해요. 이건 우리가 가사 서비스를 고객들이 충분히 만족할 수 있게 잘 제공해주는 것, 가사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함부로 자신을 대하지 않고 나를 가꾸는 것일 수 있겠죠. 이런 다양한 변화 속에서 우리 가사관리사, 나아가 가사노동자가 갖는 가치를 사회가 인정해주게 되겠죠.  

가사노동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공기처럼 늘 우리 주변에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숨 쉬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면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이, 가사노동의 가치를 우리는 쉽게 망각한다. 더욱이 가사노동 자체가 노동이 아닌 것처럼 취급한다. 따라서 집안일을 가사노동으로, 파출부나 가사도우미를 가사관리사로 호명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진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노동자 스스로 자기정체성을 노동자로 확립할 수 있으며, 사회에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사관리사가 가사노동자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정당하고 보장받을 수 있기 위한 여정은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하지만 J씨와 W씨의 말처럼 가사관리사들이 처한 상황이 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녀를 가진 중장년층 여성들로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기 위해 이 일을 택했고, 그것을 통해 가정에 여러모로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자신의 삶에 활력을 되찾기도 했지않는가. 그럼에도 가사노동자가 겪는 임금, 고용안정, 사회보장 등의 한계에 대해, ‘노동자이기에 그런 것은 아닌지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젠더불평등 을 해체하고, 가사노동자들 스스로 주체로서 바로설 수 있도록 이들과 함께 다양한 실천을 모색해가야 할 것이다.